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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요즘 마음이 어때요?

김현욱시인예술인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문가인 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이 권한 ‘내 마음 들여다보기’를 일주일 단위로 실천했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떠오른 감정과 그때 내 머릿속을 스쳐 간 생각, 그에 따른 행동을 일주일 동안 기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전거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딸에게 새 자전거를 사줬다. 기념으로 영일대해수욕장에서 효자 시장까지 제법 먼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다. 아직 위태위태하지만 제힘으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대견하고 한편으론 안쓰럽다는 감정이 들었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우리 딸이 다 컸구나’, ‘함께 자전거를 타니까 참 행복하구나’, ‘그래 이런 게 소확행이지’, ‘딸과 이런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 겠다’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딸에게 응원과 격려의 말과 행동을 많이 해주었다. 중간에 크게 한 번 넘어졌을 때도 내가 일으켜주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기다려주었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 단위로 내 마음을 기록했다. 기록지를 들고 문가인 원장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돌이켜보면 우리는 제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가 별로 없다. 우리의 눈과 귀는 쉴 새 없이 미디어와 스마트폰에 노출되고 잠식당한다. 붓다의 표현으론 “끊임없이 불타고 있는 것”이고, 메리 파이퍼의 표현으론 “미디어는 우리에게 피상적으로 살라고 부추기고, 우리는 생각, 감정, 행동을 통합시키지 못하고 자기 분열에 이르는 교육을 받고 있고, 우리의 문화는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병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무한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는다. 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 같은 것은 미디어에서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을 어딘가 아프고 패배한 사람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일각에 남아 있다. 정작 진실은 그 반대인데도 말이다.정혜신의 책 ‘당신이 옳다’에는 만나는 사람에게 “요즘 마음이 어때요?”라고 묻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 글을 보고 ‘누가 나에게 요즘 내 마음이 어때요? 라고 물은 사람이 있었던가! 나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요즘 마음이 어떠냐고 물은 적이 있었던가!’하는 회한이 들었다.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게 인생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불씨처럼 살아나는 게 인생이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모질고 날카로운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나.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집에선 가족에게 말로 입힌 상처가 너무나 크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말의 삶이다. 말이 남는다. 내가 한 말, 당신이 한 말들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이다.내 마음 들여다보기를 실천하면서 가끔 지인을 만나면 “요즘 마음이 어때요?”라고 물어본다. 이 말은 분명 힘이 있다. 분열의 말이 아니라 통합의 말이고 차가운 말이 아니라 따뜻한 말이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도 그런 말이다. 메리 파이퍼는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을 “아름다운 존재가 성장하고 싶어 하는데 다른 어떤 존재가 그것을 저지할 때”라고 말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존재를 성장시킨다.

2020-05-17

국민을 위한 적극 행정…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곽용환고령군수올해 본격 추진되고 있는 정부의 ‘적극행정 정책’이 공직사회에 자발적 자세와 능동적 사고의 바람이 되어 다가오고 있다.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공복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정문화를 지칭하는 ‘적극행정’은 공직자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나, 아직까지도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대표되는 공직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우리 스스로 겸허히 반성하고 풀어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렇기에 소극행정 혁파, 적극행정 공무원 책임 면책, 우수 공무원 선발 및 인사상 우대조치를 담고 있는 적극행정은 시대적 소명으로서 국민 모두가 체감할 수 있도록 공직사회 구석구석, 국민의 삶 곳곳에 퍼져 나가야 하며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다가와야 하는 순리와 같은 일이기도 하다.고령군에서도 정부정책 추진을 기회로 삼아 적극행정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다양한 정책을 시행·보완해 공직사회에 ‘적극행정’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나가고 있으며,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적극행정은 우리 국민의 아픔을 보듬어 안고 함께 나누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령군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상황을 맞아 경제 살리기 비상대책 TF팀을 구성해 군민 생계 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예비비 등을 포함한 예산 92억원을 신속 투입해 중소기업·소상공인 정책자금 지원, 피해업종 긴급지원, 취약계층 긴급 복지 등의 정책을 차질없이 수행해 나가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특집판 대가야소식지 발행, 경제활성화를 위한 긴급 제안 실시 및 선정, 전국 최초 드라이브 스루 농산물 판매, 전 군민에게 마스크 및 손소독제 배부, 대구·경북 최초 제로페이 연계 모바일상품권 도입 등 우리사회에 어둡고 짙게 드리운 코로나19의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규제를 개선하고 절차를 간소화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적극행정 정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아직 긴장의 끈을 놓을 단계는 아니지만 인접도시에서 신천지 사태 등으로 확진자가 크게 늘어날 때 집단시설의 신속한 코호트 격리 조치와 관리직 직원 200명 전원에 대해 군비를 투입해 검사를 진행하는 등 선제적 방어망을 구축하고 코로나 확산 차단에 적극 매진한 결과 현재 지난 4월 2일 미국 유학생을 마지막으로 확진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그동안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방역체계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체계로 일부 완화되고 어느 정도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되는 현 상황에서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우리 국민의 삶을, 그리고 군민 모두의 경제적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며 철저한 방역체계를 유지한 채 경제를 살리는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도출되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구체적인 방안의 중심에는 적극적인 공직자의 자세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우리 마음속 소명의식처럼 공직자 모두가 선봉에 서줄 것을 주문한다.분명, 아직까지 코로나19가 드리운 지역경기 침체의 그늘이 깊은 것이 사실이나 “구내식당 운영을 중단한 채 외부식당을 이용하여 외식업 살리기에 앞장서고 급여 일부를 떼 고령사랑상품권을 구입해 관내 농산물 소비 등에 적극 앞장서고 있는 고령군 공무원의 모습은 모범적인 지역경제 활성화 사례”라는 어느 군민의 고마운 말씀처럼 우리 공직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국민들에게는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어두운 터널일수록 그 끝에는 언제나 밝게 빛나는 햇살을 머금고 있기에 고령군정을 책임지는 군수이자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군민 행복을 위한 적극적인 행정 추진의 선두에 서고자 한다.아울러, 오늘 우리가 뿌린 새로운 희망과 도약의 씨앗이 행복의 열매로 다가 올 그날을 위해 600여 고령군청 공직자들과 함께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령군의 내일을 위한 약속! 적극행정은 시대적 소명으로서, 우리 공직자 모두의 삶에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다가와야 하는 순리와 같은 명제임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한다.

2020-05-17

장기숲의 봄

이윽고 따스한 햇볕 사이로 한 줄기의 바람이 불어온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봄이 몸 안으로 퍼져간다. 소나무들도 새순을 내밀고, 온 마을에 노랑 이불을 덮으러 나서면 이팝나무도 고슬고슬한 밥을 지어 올린다. 이래서 봄은 ‘동사’이다.봄이 한창인 장기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숲이라 부르기엔 어색한 공간이다. 학교 교문으로 들어서야 하니까 말이다. 지난해 이맘때 같으면 까까머리 중학생들이 두런거렸겠지만 올 해는 햇살만이 교정을 가득 채웠다. 운동장 한편에 200년의 세월 동안 품을 키워온 이팝나무가 있다. 꽃이 피기 전에는 이팝나무라고 선뜻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왜냐면 이렇게 큰 키를 보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록이 무성한 오월, 흰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크리스마스트리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그 밑으로 들어가니 그늘이 넓고 편안해 탄성이 절로 나온다.이팝나무의 학명은 치오난투스 레투사(Chionanthus retusa)인데,‘하얀 눈꽃’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꽃송이가 사발에 소복이 얹힌 흰 쌀밥처럼 보여 ‘이밥나무’라고 했으며, 이밥이 이팝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라북도 일부 지방에서는 늦봄에 핀다 해서 ‘입하(立夏)목’ 또는 ‘이암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해의 풍년을 점치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는데, 꽃이 많이 피는 해는 풍년이, 그렇지 않은 해는 흉년이 든다고 믿어 왔다.장기숲에는 활엽수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팝나무, 느릅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큰키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밑에 탱자나무, 신나무, 산사나무, 꾸지뽕나무 등 작은 키 나무들이 빽빽이 자라도록 했다. 그 밑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면 어찌나 시원한지 발이 시려 오래 담그지 못 했다고 한다. 이처럼 복층 형태로 숲을 가꿔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나다니기가 어려워 숲속에 들어가면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울창해 동네 사람들도 길을 잃곤 했다고 기록에 전한다.김순희수필가예부터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 온 장기는 신라 때부터 중요한 군사기지로 자리했다. 장기읍성에 올라서면 지금은 성 아래 논으로 된 장기들판이 보이지만 예전에는 나무들로 가득한 장기숲이 있었다. ‘경상도읍지’에 따르면 숲은 길이가 7리, 너비가 1리 였다고 하며 면적이 지금 단위로 19㏊였다고 하니 규모가 엄청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에서 내린 왜구 무리들이 거대한 숲의 장벽 앞에서 멈칫한다. 그 순간 요란한 총포 소리와 함께 나무 틈에서 화살이 쏟아져 나온다. 당황한 일부 왜구들은 숲속에 뛰어들었지만 탱자나무 가시에 찔려 오도가도 못 하거나 길을 잃고 헤매다 붙잡힌다. 장기숲에서 벌어졌을 법한 상황이다.하지만 장기숲은 광복 후 장기중학교 건립과 새마을운동으로 농사짓는 경작지로 개간되면서 숲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교정에 십여 그루의 거목들이 남아 여기가 숲이었던 시절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당시 베어진 나무는 입찰을 통해 매각되었다고 하는데, 주로 숯장사들이 사들여 현장에서 바로 나무를 베어다 숯을 만들었다고 한다.몇 해 전부터 장기면 주민들은 장기숲복원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 뒤 장기숲의 옛 모습이 배경에 있는 ‘추억의 사진전’을 여는 등 숲 복원운동에 적극 나섰다. 숲을 가꾸어 간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또 하나의 마을 숲을 되살린다는 범주가 아니라 지역 문화를 발굴하고 알려 가치를 높여야 다음 세대에도 유효한 자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니체는 머리가 아프면 할 수 있는 일이란 산책밖에 없다고 했다. 나무 그늘에 들어가는 것이 쉴 휴(休)자이니 동·서양이 같은 방법으로 마음을 쉬었다. 뭉싯뭉싯 하얀 구름을 얹은 이팝나무를 바라본다. 왜 바라보기만 해도 기운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모르겠다. 200년 동안 지녀온 세월의 기운을 내게 주는 걸까. 코로나, 다 지나간다. 걱정 말아라. 장기숲이 나를 위로한다.

2020-05-17

청출어람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교권을 존중하고 스승을 공경하자는 뜻에서 지정된 기념일이다. 때마침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수업으로 선생님과 대면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스승의 날을 맞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제간의 만남조차도 갈라놓은 듯해 고약하다는 생각도 든다.청출어람(靑出於藍)은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왔으나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비유한 말이다. 성악설을 주창한 순자의 권학편에서 유래했다. 순자는 학문을 계속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나올 수 있다며 학문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그 사례로 북위(北魏)의 이말과 공번의 관계를 들었다. 원래 이말은 어려서 공번을 스승으로 삼아 공부를 했다. 그의 학문 발전속도가 빨라 몇 년이 지나 스승의 학문을 능가하게 되었다. 공번은 이제 그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그를 스승으로 삼기를 청했다고 한다. 그러자 친구들이 훌륭한 제자를 두었다 하여 이를 청출어람이라 불렀다.우리 속담에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것과 비슷한 뜻이다. 논어에 나오는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후배는 장래성이 있으니 가히 두려운 존재”라는 뜻이다. 세상의 일은 반드시 순서대로 정해진 것은 없다. 노력하면 선생님이나 선배를 언제든지 뛰어 넘을 수 있다. 그것이 허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청출어람이 가지는 본뜻은 스승보다 나은 제자가 많이 나오길 기대하는 데 있다.철학자 니체는 “제자로만 남으면 스승에게 누를 끼친다”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스승의 마음은 다를 바 없다. 스승의 날을 맞아 청출어람의 뜻과 스승의 은혜를 한번 새겼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5-14

조국 방패론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힘써온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출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을 둘러싼 공방이 정치권에서 뜨겁다. 심지어 윤미향 당선자는 페이스북에 “딸이 여러 언론의 취재를 받고 있다”면서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장관이 생각나는 아침”이라고 적어 ‘조국 방패’를 내세웠다. 조 전 장관 때처럼 해명과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황인데, 이런 의혹들에 대해 조목조목 해명하기보다 일부 언론과 미래통합당이 만든 모략극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는 양상이다.한마디로 정치적인 공세라는 주장으로 맞서겠다는 의도다. 이처럼 진보진영에서 위기에 처하면 조국 전 장관을 방패로 소환하는 일이 처음은 아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도 지난해 1월 조국 전 장관의 의연한 모습을 보고 총선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으로 편지글을 띄웠다. 진보 진영에서 목소리가 큰 조국 전 장관 지지자들의 지원을 기대한 것으로 분석된다.정치부 기자로서 오랜 세월 지내온 필자는 정치권이 서로 상대방 주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에만 열을 낼때면 속내가 뻔히 들여다 보이는듯한 느낌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과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절대 아니다. 어떤 사람이 공금횡령이나 비리의혹이 있을 경우 어떻게 처리하면 되는 지 방법이나 절차는 너무 뻔하다. 객관적인 3자의 검증을 거쳐 의혹을 밝히고, 잘못이 있다면 있는 대로, 그렇지 않으면 않은대로 처리하면 된다. 그게 상식이다. 다른 길로 빠질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정치판에서 한쪽 당 구성원이 당 이미지를 크게 깎아먹을 만한 사고를 쳤을 경우 상황은 확 달라진다. 구성원이 했다는 잘못에 대한 즉각적인 진상조사나 당사자의 사과 등의 조치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는 접어야 한다. 오히려 잘못을 부인하는 당사자의 주장을 옹호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아예 여러 의원들이 함께 나서서 성명서 등을 통해 상대 당쪽의 주장은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상대방이 잘못을 구체적으로 꼬집어 지적해도 거기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지 않고 그런 것은 추후 수사당국 등에서 조사하면 밝혀질 일이니 이러쿵저러쿵 뒤집어 씌우지 말라고 부르짖는다. 그런 공방 와중에 여론이 조금 수그러들면 슬그머니 사고친 당사자에게 가벼운 징계를 먹이고, 수습을 시도한다. 뜨겁던 비난열풍이 식었을 때 쯤이면 언론에서도 새삼스레 악을 쓰며 비난하기 쉽지않다는 걸 노리는 것이다. 이런 물타기 전략은 정치권에서 매우 흔한 반면 유용하다. 윤미향 당선인의 기부금 횡령의혹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 역시 이같은 도식에 너무 잘 들어맞는듯 보인다.14일에도 더불어민주당 현역의원과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등 16명이 윤미향 당선인과 정의연을 둘러싼 각종 의혹 제기에 대해 공세 중단을 촉구했다. 야당이 제기한 회계 부정 논란에 대해서는 ‘제도적 개선 대상’이라고 치부했다. 과반을 훨씬 넘어선 여당의 조국 방패가 너무 두껍고 단단해보인다.

2020-05-14

울릉도 어장 현실 외면한 법령으로 잠수기조업 피해 심각

김윤배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이학박사매년 봄철이면 울릉도(독도)는 마을별 어촌계를 중심으로 청정 울릉도(독도) 바다가 품은 홍해삼, 전복, 소라 등 수산물 채취가 한창이다.통상의 해삼은 양식 혹은 해저의 유기물을 섭취하는 반면에 울릉도(독도)가 특산지인 자연산 홍해삼은 해조류를 주로 섭취하기에 붉은빛이 돌며 맛과 효능이 흑해삼 등에 비교해 월등히 뛰어나다.울릉도 어민들은 동해의 잦은 기상악화를 이기며 해적생물인 성게, 불가사리 구제작업, 해양쓰레기 회수, 수산종묘 방류 등으로 수산자원량 및 어장 관리에 힘쓰고 있다.울릉도 홍해삼은 단순한 홍해삼이 아닌 동해 끝 섬 울릉도(독도) 바다를 일구어 온 어민의 노고와 평생의 삶이 담겨 있는 자식 같은 존재이다.그러나 매년 봄 홍해삼 조업 철이 되면 외지에서 건너온 잠수기 어선의 마구잡이식 불법 조업으로 울릉도 어민들의 가슴은 타들어간다.현행 수산업법은 울릉도를 포함해 강원, 경북, 제주는 수심 15m보다 깊은 곳에 외지에서 건너온 근해 잠수기어업을 허가하고 있다.하지만, 잠수기어선들은 설령 선박은 15m에 있더라도 잠수부에게 공기를 공급하는 호스의 길이는 150m 내외이므로 잠수부들은 수시로 15m를 드나들며 주민들이 애써 기른 자식 같은 홍해삼을 불법 채취하고 있으며 수중이기에 단속 또한 쉽지 않다.수산업법에 의한 수심 15m 규정이 마치 송곳처럼 해저지형을 가진 울릉도에 적절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해안에서 수심 15m까지 거리는 울진 죽변의 경우 약 2km, 제주 서귀포는 약 2.5km에 이르지만, 울릉도 현포의 경우 불과 300m만 나가도 15m 수심이며 1km를 나가면 벌써 수심 100m에 이른다.서해안 군산은 무려 15~17km 나가야 수심 15m에 이른다. 수산업법 제정시 조금만 해저지형 특성을 살펴보았더라도 이런 현장 외면의 숫자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늦었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독특한 해저지형을 가진 울릉도는 수심 규정을 15m에서 200~500m 범위로 변경해야 한다.울릉도 어민들은 울릉도 100여 년의 먹을거리를 지탱해왔던 오징어 어획량 급감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외지 잠수기 어선에 의한 피해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어촌의 희망 만들기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어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건강한 마을어장 회복이 출발이다. 자식 같이 기른 홍해삼을 현실 외면한 수산업법에 따라 대부분 강탈당한다면 어느 어민이 어장을 가꾸고 관리하고 싶겠는가.누가 어촌에 살고 싶겠는가. 평생을 거친 바다를 안고 울릉도(독도) 해양영토를 관리해 온 주민들에게 뒤늦게라도 어촌의 희망을 돌려줄 필요가 있다.

2020-05-14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법

코로나19 ‘이후’는 우리로 하여금 삶에 대한, 정치와 경제에 대한 감각과 정서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세계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나는 한 마디로 말해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포스트콜로니얼’이란 ‘탈식민’을 말하는 것이니, 이는 우리가 1945년 8·15 이후 겪어와야 했던 역사적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일제에 의해 훼손된 우리말을 회복해야 했고, 문화와 전통을 되살려내야 했고, 대일 청구권을 확실히 행사할 수 있어야 했고, 또 일제 말기 강제 동원 노역을 당한 사람들,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여성들의 대가를 받아내야 했다.코로나19는 그러나 제국과 식민지의 변함없는 우열체계라는 모델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러니까 일본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허상과 달리 낡았고 무기력했고 뒤져 있었다. 우리는 새롭고 민첩했고 앞서 나가고 있었다. BTS가, ‘기생충’이, 반도체가 앞서 가듯이 방역체계도, 의료보험도, 위기에 대처하는 시민의식도 우리가 ‘앞서’ 있었다.이런 때에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기억연대’를 향해 어떤 매서운 일갈을 하고 나왔다. 그는 말했다. 그 돈 다 어디 갔느냐고. 그리고 지난 30년 투쟁은 증오를 키우는 투쟁이었지 않느냐고. 연이어 구차한 변명들이 줄을 잇고 심지어는 자녀 유학 비용까지 들추자 하고 고발까지 서슴지 않는 사태가 이어진다.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하나? 나는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을 생각한다. 자신은 죄 지은 적 없다 발뺌으로 일관하는 범죄자를 향해 돈으로 죄값음을 하라는 방식이 이제까지 해법이었다면, 새로운 해법은 이런 것이다. 당신들의 범죄를 부인으로 일관하고 근본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면, 좋다. 당신들은 영원히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은폐하고자 하는 범인들로 남으라. 우리의 딸들, 우리의 할머니들은 이제 당신들보다 나은 국가를, 사회를 만들어가는 우리들이 보살피련다.‘정의기억연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백’하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우리의 포스트콜로니얼을 내려놓고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우리가 즉각 식민지의 기억을 끊어버려야 한다. 아베와 그의 부끄러움 모르는 일본인들과 이 나라의 괴상한 동조자들을 저 어두운 과거 속에 묻고 역사의 새 장을 열어젖혀야 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5-14

반미와 미국유학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오래전 6·25 남침을 ‘통일전쟁’이라 부르고 미국의 참전을 맹비난하며 반미 활동과 친북 활동을 하던 서울의 모 대학 교수가 있었다. 그는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라고 일인 시위를 하였고 보안법 철폐를 요구하기도 헀다. 사상의 자유가 전혀 없는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보안법인데 이를 철폐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참으로 모순된 행동으로 생각되었다. 미국을 특히 격렬히 비판했다.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 본인 자신도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것은 물론 두 아들을 모두 미국에 유학을 보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게 하였다는 보도를 읽은 적이 있다.최근 한 시민단체가 일제 동원 위안부를 위한 기부금 남용에 관하여 논란을 빚고 있는 사건이 있다. 그런데 해당 시민 단체 대표도 미국의 국내 사드 배치를 반대하며 사사건건 반미를 하였고, 남편은 조총련 관련 단체로부터 돈을 받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 유죄판결을 받았던 인사이다. 그런데 그분도 딸은 비용이 많이 드는 미국 대학의 음대에 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반미를 부르짖는 분이 어떻게 유학비용을 마련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보낼 수 있는지 의아스럽지만 남편 국가 보상금으로 유학 비용을 대었다고만 하고 반미와 관련된 미국유학 동기에 대한 설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사실 북한유화정책을 추구하며 반일, 반미 정서가 강한 진보정당들의 지도자들도 그들 자신도 미국서 공부하고 자녀들도 미국 유학을 보내는 경우를 흔히 본다. 유학을 보내는 건 글로벌 교육화 시대에 잘못된 것은 없다. 포스텍도 프랑스, 미국, 독일 학부 교환학생이 들어와 있는 것은 흔한 풍경이고 대학원에서는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외국인 학생들이 유학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학부든 대학원이든 거의 10%가 넘어서는 학생들이 외국인 학생들로 채워지고 있다.필자가 졸업한 일리노이 대학은 영어로 UIUC(U of Illinois at UC)라고 하는데 이를 U of India, U of China로 농담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 정도로 외국인 학생이 많고 이건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이러한 시대에 미국으로 유학보낸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좌파성향의 인사들은 반미, 반일을 부르짖으며 지속적으로 우방을 폄하하고 있으면서 정작 자기 자녀들은 미국에 유학을 보낸다는 자기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등 교육을 외치는 전교조 교사들이 자녀들 미국 유학을 연구하다 미국 대학 전문가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산 쇠고기, 미국과의 FTA 체결을 그토록 비판하던 그들이었다.물론 미국 유학을 보낸다고 하여 미국을 비판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문제는 정당하지 못한 이유로 미국을 비판하면서 막상 자식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미국을 이용하는, 그러한 자세는 극단적 자기중심적. 자기이익주의적 사고 방식일 뿐이다. 사회운동가들의 내로남불이 아닌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방식을 기대해 본다. 그러한 합리적 사고를 보여야 그들의 사회운동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2020-05-14

스승과 제자

김병래시조시인인류도 원시시대에는 다른 동물들처럼 생존에 필요한 정보나 기술을 가족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학습해야 할 정보와 기술이 많고 다양해서 학교와 교사가 필요해졌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세상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다단하고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도 그만큼 폭증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과외나 학원의 수업까지 필수가 될 정도로 태교에서부터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에 이르는 입시를 위한 교육에다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을 위한 공부를 또 해야 하는 게 대다수 청년들의 실태이다. 오로지 입신출세를 위한 교육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게 이 시대의 일반적인 생존방식인 셈이다. 가장도 꽃다운 시절을 몽땅 그럴싸한 직장을 얻기 위해 바쳐야 한다는 건 너무 억울하고 부당한 일이 아닌가.문명과 야만의 차이는 교육에 있다. 갓난아이를 늑대가 키워서 늑대와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늑대소년의 일화처럼,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온정이 있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맞는 구성원을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오늘의 교육 현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학생들의 인권을 강조한 나머지 교사들의 교권이 훼손되는 부작용을 가져온 것이 그 하나다. 교육이란 당시 사회에 적당한 구성원이 되도록 다듬고 가꾸어가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좋은 열매를 맺는 과실나무가 되게 하려면 물과 거름을 제때에 공급하는 것 못지않게 가지를 치고 적과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제 맘대로 가지 뻗고 열매 맺도록 놓아두어서 바람직한 결실을 기대할 수 없듯이 개성도 좋고 인권도 좋지만 질서와 규칙을 따르도록 적절한 규제를 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다. 학생이 교사의 지도에 잘 따르지 않고 교권이 존중되지 않아서야 어떻게 바람직한 교육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입시나 경쟁을 위주로 하는 교육은 반쪽짜리 교육에 불과하다. 교사는 지식이나 기술의 전달자이고 학교는 단지 입시나 취업을 위한 교습소 역할을 할 뿐이라면 인격의 함양이라는 교육의 또 다른 부분은 실종이 되고 만다. 비인부전(非人不傳)이란 말이 있듯이 지식과 기술의 습득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규칙과 질서를 지키고 남을 배려하는 사회성을 학습하는 일이다. 상당한 부와 권력과 학벌을 가졌으면서도 도덕성이나 준법정신은 뒷골목 잡배들 수준인 인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자들이 득세하고 행세하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일 수는 없는 것이고 그것은 참된 교육이 목표로 하는 세상도 아니다.교사들의 사고나 언행은 성장기의 학생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특히나 섣부른 이념에 경도되어 편향된 이념을 주입하려는 교수와 교사들이 적지 않은 현실도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를 기술하고 있지 않는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한다. 균형 잡힌 사고와 인격을 가진 스승이 없는, 올바른 교육이 부재한 나라는 미래가 없다.

2020-05-14

교육이 흔들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다시 어렵다. 코로나19의 상황이 이제는 나아지는가 했더니 한 달쯤 전으로 돌아간 모양이 돼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 속 거리두기를 구분도 하기 전에 도로 터널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내일 그 어떤 좋은 일이 있다고 해도 오늘을 마음껏 즐기겠다는 청년의 욕망이 이번엔 지나쳤다. 집단감염의 위험이 클럽 등 유흥업소에만 있을 것인지 보다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등교개학을 앞두고 있었던 학교들이 일정을 다시 연기했다. 친구들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학생들과 아이들 돌보기에 지쳐가던 부모들은 다시 한번 낙심하는 모습이다. 교육의 필요와 방역의 시급함이 부딛힌다. 개학 일정이 연기되는 것이 벌써 몇 번째인가.방역의 목표는 분명하다. 감염병 전파를 막아야 한다. 교육이 하고자 하는 바도 어렵지 않다. 어린 자녀들을 바르게 자라게 하는 일. 방역이 소기의 목적을 거두면서 교육도 적절하게 일어나야 한다. 여기까지 오면서 차선이긴 해도 온라인교육을 선택했다. 대통령이 디지털세상에 펼쳐지는 새로운 교육방식을 참관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그런지가 이제 몇 주나 됐다고 교육당국은 등교개학에 매달리는가.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새긴다면,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선생의 진정성과 사제관계의 신실함이 관건이 아닌가. 필자도 온라인 강의를 이어가면서 점차 새로운 전달방식에 익숙해 가고 있던 참이다. 이런 가운데 굳이 학교를 열어 감염의 가능성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정말로 있을까.학생과 부모의 안타까움은 해결해야 한다. 만나지 않고도 사회성의 발달에 지장이 없도록 온라인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교실수업의 내용을 온라인으로 옮겨놓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부족하다. 선생과 학생 간에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 있어야 할 교감과 협력을 잃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부모들의 상황도 어렵다. 맞벌이 가정에는 더 심각하다. 직장의 배려와 소득수준 유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교육부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제 겨우 맛보았나 싶은 온라인교육에서 우리는 무엇을 거뒀을까. 만나지 않고 시행하던 교육은 만나야 하는 교육을 겨우 때웠다는 정도로 만족할 것인가.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더 오래 지속된다면 그땐 어찌할 것인가. 바뀐 세상을 수용하면서도 교육의 본질을 살리는 철학을 세워야 한다.일주일이 문제인가. 백년을 바라보는 교육이어야 한다. 경제가 큰 문제겠지만, 교육도 작은 과제가 아니다. 사람을 기르는 일이며 나라의 미래가 걸려있다. 코로나19의 상황에 하루하루 흔들리는 교육은 국민을 힘들게 한다. 긴 지평을 겨냥하는 교육이길 바란다. 많은 대학들이 전 학기 온라인교육을 선택한 모습도 참고하여야 한다.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하는지도 둘러보아야 한다. 특별히 어려울 때에는 특별히 분명한 소신이 필요하다. 행정적 조급함을 극복하고 교육의 큰 뜻을 살려야 한다. 감염병도 극복하고 경제도 살렸으며 교육에도 든든한 나라가 돼야 한다.

2020-05-13

그림자금융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 system)은 정부의 통제를 넘어 고위험 채권에 투자해 고수익을 얻는 유사 금융을 일컫는다. 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 많이 활용된다.그림자(shadow)라는 말은 그림자 금융이 금융의 본래 모습과 유사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붙은 말로,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투자은행·헤지펀드·구조화투자회사(SIV) 등의 금융기관과 머니마켓펀드(MMF), 환매조건부채권(RP), 신용파생상품,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의 금융상품,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헤지펀드 등이 이에 해당한다.그림자금융은 비은행 금융기관의 중요한 자금 조달 역할을 수행해 은행의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그러나 투명성이 낮아 손실의 정확한 파악이 어렵고 자금중개 경로가 복잡해 금융기관 간 위험이 상호 전이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림자금융은 투기를 조장하고 자산 거품을 키우는 주범으로 꼽히는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촉발시켰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를 기초로 한 신용파생상품이 대표적인 그림자 금융이다.한국도 그림자 금융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자본시장 위험 분석보고서’에서 280조원 규모로 성장한 부동산 그림자금융을 자본시장 위험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동산 국내 자본시장의 부동산 그림자금융 규모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281조2천억원으로, 2017년 말(230조6천억원)과 비교해 21.9%나 증가했다.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이 없어야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5-13

가정의 달, 오월

윤영대수필가석가모니 부처가 태어나고 예수가 부활한 성령의 달이라 해도 코로나에 묶여버렸던 ‘잔인한 달 4월’은 지나갔다. 시인 엘리엇은 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는 4월’을 잔인하다 했을까? 봄비에 깨어난 뿌리의 힘으로 라일락 꽃향기 퍼드러진 앞뜰에는 계절의 여왕 오월이 화려한 옷을 입고 왔는데….나뭇잎은 어린아이의 손과 같이 부드럽고 하늘은 가끔 빗줄기를 뿌려 대지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형산강변에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고 초하의 들머리에는 농부가 밭을 갈고 씨 뿌리는 계절, 여름을 준비하라는 입하가 있고 보리 이삭이 누렇게 익어가는 소만도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번 5월에는 윤4월도 덤으로 끼어 있어 결실을 응원하는 태양도 천천히 하늘을 돈다.최근 서울 이태원 클럽을 일대로 다시금 코로나19 확산세가 퍼지는 상황을 묵인할 수는 없지만 계절의 여왕이 화려한 옷자락을 펼치며 우리 국민의 침착하고 현명한 방역 태도에 함빡 미소를 보내줄 것이다. 이제부터는 더욱 촘촘한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으로 서로를 돌보며, 나들이에 나서더라도 긴장의 끈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숫자 5는 다섯, 발음으로는 ‘닫고 서다’ 즉 밝은 세상으로 솟아난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많은 시인들이 노래한 오월에는 우리들 마음에도 밝고 아름다운 날들을 가꾸어야 하리라.시골집 작은 텃밭에 상추씨도 뿌리고 고추 모종도 심으니 손바닥 만한 채소밭에도 생기가 돈다. 마을 뒷산 기슭의 하얀 아카시아꽃이 꿀벌을 모으고 하얀 꽃들이 쌀밥을 닮았다는 이팝나무 가로수는 5월에 눈이 내린 듯 신기하다. 하얀 수국, 하얀 찔레꽃, 흰 장미…. 온통 하얀 꽃 잔치다. 지난달 알싸한 향기에 한 소쿠리 따서 삶아 먹었던 가죽나무 순과 엄나무 순도 벌써 새로운 가지를 하늘로 뻗어가고 있다.오월은 뭐니 뭐니 해도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고 성년의 날, 부부의 날도 있다. 모두가 감사와 사랑의 의미를 담아 선물을 주고받고 봉사와 기부라는 마음의 가치를 더 높이고 싶은 날들이다.어린이날에는 아직도 학교 가지 못하는 아이들 손을 잡고 푸르른 들과 산으로 또 강과 바닷가로 나들이하며 티 없이 맑은 영혼을 길러 줬을 테다. 점점 핵가족화되는 사회현상에서 옛과 같은 부모님들의 체온을 느끼지 못하니 어버이날이나마 소담스러운 선물 마련하여 찾아뵙고 가족의 정을 느꼈을 것이다.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40여 년을 교직에 몸을 담고 보니 스승의 날에 대한 감회가 깊다. 학생들은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음료수랑 작은 선물도 책상 위에 놓고 갔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선물을 주지도 받지도 말자’라는 희한한 말 속에 선생님에게는 꽃 한 송이도 드리지 않는다는 서글픈 현실에 교사는 오월이면 우울해지고 교단은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사제간의 사랑은 부모 사랑만큼이나 소중하다. 참된 가르침과 배움이 진정 사랑인 것이다.성년의 날은 셋째 주 월요일. 만 19세가 됨을 축하하며 독립된 인격체로서 대해주고 그에 따른 사회구성원의 책무를 다하도록 하는 날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남자에게는 갓을 씌워주고 여자들에게는 비녀를 꽂아주는 관례와 계례 등의 성인식을 치루었지만 요즘은 몇몇 곳에서만 한다니 되돌아볼 일이다.21일 부부의 날은 화목한 가정을 위해 2007년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으며, 둘(2)이 합쳐 하나(1)가 된다는 뜻이 들어 있다. 어쨌든 사회의 출발은 가정이니 이혼율이 증가하는 요즘 새로운 사회가정교육이 필요하리라 본다.또 있다. 입양의 날, 11일이다. 한 가정이 한 명의 아동을 입양해 새로운 가정(1+1)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로 정했다고 한다.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나라’를 위해 지난 10년간 100조원을 투자하고도 미혼모를 보는 사회의 인식 탓인지 해외입양 세계 4위- ‘아동수출국’이라는 부끄러운 인권후진국 오명을 빨리 벗어야겠다는 것이 가정의 달 5월을 맞는 또 다른 바람이기도 하다.감사의 달 오월에는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써서 잊고 있었던 지인들에게도 보내고 싶다.

2020-05-13

첫맛

바닷가를 지나다 트럭 행상을 만났습니다. 한 차 그득 쌓아놓고 파는 것도 놀라운데, 그 내용물이 한라봉이라는 데서 더욱 놀랍니다. 감귤이 흔해진 지는 오래지만 업그레이드 된 파생 종류마저 흔하디흔한 세상이 올 줄 몰랐습니다. 한 컷 담겠다는 양해를 구하며 신기해하자, 사장님 왈, 제주 농장과 직거래하기 때문에 신선한 상태로 박리다매가 가능하다나요.제가 귤을 처음 본 것은 1974년 겨울 무렵이었어요. 삼촌이 귀향길에 사온 것이지요. 깡촌 아이였던 제게 귤이란 어린이 잡지책 광고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의 과일이었지요. 주황빛 부드러운 껍질을 벗겨내자 촘촘하게 박힌 과육이 보이고, 그것을 가르면 초승달 모양의 여러 조각이 되는 거예요. 모양부터 이국적이라 경이로웠지요. 조심스레 한 조각 베어 물면 입안으로 퍼지는 달콤함도 잠시, 목구멍을 적시는 새콤함에 온몸이 저릿해졌습니다. 천상의 맛이 따로 없었지요. 귤 종류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제게 그건 어디까지나 귤이 흔해지고 난 뒤의 일입니다. 바나나 같은 건 구경도 못할 시절에 귤은 그 첫맛만으로 어린 입맛을 사로잡았더랬지요.귤의 첫맛이 입맛의 로망을 실현시킨 보편적인 예라면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거예요. 기대한 맛을 충족시킨 추억이 아련함에서 그친다면 실망한 맛을 남긴 추억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거지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요즘, 틈날 때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을 찾아서 봅니다. 판타지가 아니라 지난날에 기대는 몇몇 작품은 제가 지나온 시절들과 아주 닮아 있어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추억은 방울방울’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다가 곧장 웃음이 터지는 거예요. 파인애플 첫맛에 관한 시퀀스 덕분이지 뭡니까.가족 온천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5학년 타에코는 보기에도 요상한 파인애플을 보고 졸라서 사게 됩니다. 하지만 식구들은 먹는 방법을 모릅니다. 다음날 큰언니가 배워온 방법대로 엄마는 중간을 잘라 박힌 심을 발라냅니다. 피자조각 같은 노란 파인애플 속살이 드러나고, 할머니를 비롯한 모인 식구들 눈동자가 일제히 파인애플 위에 동그랗게 꽂힙니다. 찰나의 긴장된 침묵이 끝나고 식구들은 저마다 한 조각씩 베어 뭅니다. 천상의 맛을 기대했건만, 그날 파인애플 맛의 진실은 썰어놓은 무맛만도 못합니다. 먹기를 포기한 채, 애써 외면하는 식구들의 눈치를 보면서 타에코는 꾸역꾸역 파인애플 조각을 입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역시 과일의 왕은 바나나야, 이런 혼잣말을 내뱉어보지만 위로가 될 리 없습니다. 어린 타에코와 제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때까지도 저는 바나나를 구경한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김살로메소설가비슷한 기억 하나를 소환하지요. 도회로 이사 온 후, 입주 과외를 하던 오빠가 첫 월급을 타서 과일을 사온 적이 있어요. 백화점에서 파는 과일 바구니 속, 구색 맞춰 담기는 것 중 하나라는 것만 알았을 뿐, 이름도 속도 모르는 과일이었어요. 거친 박처럼 생긴 그것을, 타에코네가 그랬듯이 우리 식구들 역시 먹는 법을 알 리 없었지요. 일차로 엄마가 과도로 자르기를 시도했습니다. 칼끝이 끄떡도 하지 않았지요. 첫 귤을 먹던 그때가 떠올라 저는 자꾸만 목구멍으로 침을 삼켜야만 했어요. 생채기로 얼룩진 채 끄떡도 않던 그 요물은 오빠가 식칼을 들고 힘자랑을 한 뒤에야 실체를 드러냈어요. 어슷하게 잘린 과일 머리 사이로 오줌 줄기 같은 물이 흘러내립니다. 식구들 눈빛은 적잖이 당황하고, 새콤달콤한 과육을 기대했던 저는 실망감에 주저앉고 맙니다. 무맛보다 못한 음료 한 잔, 그게 그날 얻은 수확의 전부였습니다. 한참 뒤에야 그것이 야자열매인 코코넛이란 걸 알게 되었지요.확실히 첫맛은 환희에 찬 ‘새콤달콤’보다는 실망으로 소침해진 ‘텁텁밍밍함’이어야 해요. 달콤한 첫맛은 너무 당연한 기억이라 우리의 정서에서 소환될 기회가 후자보다는 못해요. 마치 귤 맛에 익숙해진 제가 더 이상 그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처럼요. 기대했던 첫맛에 아려본 적 있을수록 삶의 소환장에 기록될 확률이 높아요. 때 이른 계절의 파인애플 맛을 만나거나 전혀 엉뚱한 코코넛 내용물의 실체를 알아챌 때, 우리 삶은 풍성해지고 공감 지수가 높아지니까요. 예견된 미감이나 충족된 호기심보다 실패한 환희나 실망했던 기대감이 더 나은 재산이 되는 셈이지요. 기상천외의 짠함으로 버무린 웃거나 울게 하는 온당한 좌절, 누가 뭐래도 그건 그 자체로 진실 된 에피소드가 되는 거예요. 아주 오래된 그 첫맛은 마법의 주문이 되어 누군가를 독려하고 진작시키는 힘이 되니까요. 과일에서 사랑까지, 첫맛이라면 다소 텁텁하거나 호되어도 나쁘지 않아요. 적당히 무너져줘도 괜찮은 거예요.각설하고, 그대들의 첫맛은 안녕하신지요?

2020-05-13

코로나 왕따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학생 중에 학교에서 코로나로 확진되면 어떻게 해? 그러면 그 학생은 왕따가 되잖아. 그 학생 잘못이 아니잖아. 그 학생은 학교에 다닐 수 있겠어? 그 학생 어떻게 해?”교육부에서 발표한 등교 개학 뉴스를 보고 아직 교문에 발도 못 들인 중학교 1학년 아이가 보인 첫 반응이다.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한순간도 입에서 놓지 않는 아이이다.그런데 반응이 바뀌었다. 아침을 먹다 말고 숟가락까지 내려놓고 아이는 진지하게 물었다. 그리고 답을 기다렸다. 어떻게든 얼버무려 보려 했지만, 아이의 기다림은 단호했다.“온라인 수업에 늦겠습니다. 빨리 드시고 접속하시죠.”“아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진짜 그 학생은 어떻게 하냐니까?”아이의 눈은 간절했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아이의 걱정을 덜어 줄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어떤 답이든 해야 할 것 같아 필자의 바람을 이야기했다.“맞아. 그건 그 학생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까 아무 일 없을 거야.”필자의 말에 아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아빠는 잘 몰라!”아이는 표정으로 필자가 틀렸음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온라인 수업 출석 체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냥 두었다. 아이의 말대로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교육부에서는 등교 개학 후 일어날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여 학교 코로나19 감염병 대응 모의훈련까지 실시했다. 물론 꼭 필요한 훈련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감염병 발생에 따른 대응만 나와 있지 발생 후 최초 확진 학생 보호에 관한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 발병에서 알 수 있듯 지금 일어나는 코로나19 발병 양상은 이전과는 다르다. 무증상자와 감염 경로를 모르는 확진자가 많다. 이태원 클럽발 집단 발병 전까지 한동안 국내 확진자 수는 0이었다. 그래서 방역 체계도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했다. 축배는 거기까지였다. 역시 바이러스는 예측할 수 없었다.그래서 걱정이다. 많은 학교의 1학기 중간고사 실시 시기가 6월 셋째 주 정도이다. 그 기간에 학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다. 시험 강행 아니면 연기! 어떤 선택이든 확진 학생은 전교생의 관심 대상이 된다. 그 관심이 조금이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다면 그 학생은 어떻게 될까!다음은 지난주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를 방문한 대통령 관련 뉴스에 나온 내용이다. “걱정이 아주 크실 것 같아 점검차 학교를 방문하게 됐다. 와서 보니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다.”대통령께 묻고 싶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등교 개학 이후 학생 가운데 확진자가 나오더라도 해당 학생이 심리적으로 고립감을 가지지 않도록 세심히 살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라고 청와대 대변인은 말했지만, 과연 학교 현장에는 그 준비가 되어 있을까? 분명한 것은 교육 당국의 매뉴얼에는 ‘코로나 왕따’ 예방과 관련된 구체적인 대책은 없다는 것이다.

2020-05-13

5·18 광주항쟁 40주년에 부쳐

김규종 경북대 교수해마다 5월이면 조기(弔旗)를 내걸었다.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열흘 동안 조기를 걸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후에는 4월에도 조기를 내다 걸었다. 작년에는 전남대 교환교수로 파견 나가는 바람에, 올해는 코로나19로 정신 놓는 바람에 4월의 조기게양은 무산됐다. 하지만 5월 광주를 어찌 잊을쏜가?! 더욱이 올해는 광주항쟁 40주년 아닌가!작년 5월 17일 저녁에 광주 국립묘지를 찾았다. 25년 만에 찾은 망월동 묘역은 예전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학회에 갔다가 후배들과 함께 김남주 시인 묘지 앞에서 묵념한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으나, 장소를 찾아내기 어려웠다. 전남대 철학과 김양현 교수께 문의하고 나서야 비로소 묘소를 찾을 수 있었다. 5·18 항쟁으로 산화하신 분들과 다소 떨어진 곳에 잠들어있는 김남주. 나는 그이가 없는 광주와 5월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그날 밤 광주의 옛 도청과 금남로를 떠돌면서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전남대로 파견 나온 이유는 5.18 광주항쟁 때문이었다. 죄의식과 부채의식이 40년 세월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까닭이다.부산 출신 대학원 선배는 1983년 매운 겨울, 광주와 남도를 떠돌다가 귀환했더랬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버림받으면서도 광주를 찾아갔던 그의 심사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김남주의 시집 ‘조국은 하나다’를 읽으면서 시대의 비극과 부조리를 깨달아갔던 시절. 60년대 김수영, 70년대 김지하, 80년대 김남주로 이어지는 시대의 저항자들로 희미하게나마 빛났던 시간대.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 아니라, 3김 시인’이었다. 망월동의 시인은 예전처럼 말이 없었다. 5월 3일 전남대 인문대 1호관에서 있은 ‘김남주 기념홀’ 개관식에서 환하게 웃기만 하고 침묵했던 것처럼.1980년 5월 광주에서 40년 세월이 흘렀다. 내 머리에도 허옇게 서리가 내렸다. 기나긴 세월에 우리는 87항쟁과 직선제 쟁취, 1998년 평화적 정권교체, 2017-18년 촛불항쟁과 탄핵을 넘어서 3050클럽 가입까지 수많은 성취를 해왔다.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광주를 모욕하는 극우주의자들의 망동을 단죄하지 못하고 있다. 발포 책임자는 반성하는 기미조차 없다.진정한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은 발포 책임자와 그 후예가 광주항쟁에서 산화해간 영령들과 유가족에게 석고대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40년 세월 광주와 광주 시민들을 능욕한 극우주의자들을 정당하고 엄중하게 징벌해야 한다. 광주와 광주항쟁의 역사를 더럽히도록 더는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어린것들과 그들이 마주할 미래와 미래기획을 위해서도 광주와 광주항쟁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잘못된 과거와 작별하려면 대낮처럼 깨어있는 정신으로 과거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마 같은 살인자들과 그 후예가 다시는 설레발 치지 못하도록 역사의 관에 ‘탕탕’ 소리 나게 대못을 두들겨 박아야 한다. 미래는 과거의 처절한 기억과 살을 도려내는 고통의 환기에서 비로소 출발한다. 광주항쟁 40주년의 교훈이다.

2020-05-13

광역의회 의장단 선거, 구태의연 털어내야

김영태대구취재본부 부장총선이 끝나고 지역 정가는 광역·기초의회 의장단 선출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전반기 의장단 구성은 철저히 선수에 따른 투표가 주류를 이룬 것과 달리 후반기 의회 의장단 선거는 거의 인기투표에 가깝다.전반기 의회기간 동료 의원들과 얼마만큼 소통하고 인간적인 유대를 가져왔느냐가 당선의 관건이 되는 분위기를 보여왔다. 이로 인해 그동안 세간에 거론되는 인사보다는 의외의 인물이 종종 의장을 맡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 같은 현상은 등록 후보자가 없이 실시되는‘교황 선출식 투표’에 그 원인이 있다. 교황 선출 방식은 교황이 선종하거나 사임 후 15∼20일 이내에 전세계 추기경들이 참석하는 비밀투표인 콘클라베에서 3분의 2 이상 득표해야 선출되는 방법으로 예상됐던 인물보다는 깜짝 교황이 선출되기도 했다.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러했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역시 세간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추기경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분들이다. 이런 방식은 니콜라오 2세가 교황 선출권자를 추기경들로 제한하는 선언을 했던 1059년에 시작됐으니 역사도 꽤나 깊다.경기도의 한 기초의회 등 일부는 이런 교황선출식 의장단 선거를 후보출마 방식으로 변경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방법이 주류를 이루는 것도 누구나 후보가 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물론 이 선거방식으로 인해 과거 쇼핑백 등 갖가지 잡음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는 구태의연한 행실은 통하지 않는다.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 역시 교황 선출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광역의회 의장이라는 막중한 지위를 두고 광역의원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욕심을 내볼만하지만 집행부를 견제하는 의회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의욕이 앞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됐다.어느 정도 선수를 갖추고 동료 의원들과의 친밀도, 집행부 견제력 등이 당선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불문가지다.대구시의회는 전반기 선거 당시의 후반기 약속 여부와 선수파괴 등이 이슈가 되고 경북도의회는 이른바 일부 인사의 자질 문제가 대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 광역의회에 의장단에 포함될 인사에 대한 하마평에 이어 일부 인사들은 벌써 물밑 작업을 치열하게 전개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하지만 과거처럼 상대방을 음해하는 비방과 소문, 카더라식 인신공격은 여전하고 마타도어식 소문까지 등장하고 있어 우려스럽다.이중에는 음주나 폭력 전과 등의 사실에 근거한 내용도 나오면서 일부 인사의 불가론까지 제기되며 본격적인 의장단 선출 시점에는 이전투구식으로 흐를 가능성마저 보인다. 이렇게 되면 소속된 당의 개입 빌미를 제공하고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돼 결국 당에서 지목한 인사를 선출하는 거수기로 전락하는 사례를 종종 봐왔다. 이는 당장 당 소속 의원들의 일사불란한 행보로는 비칠지 모르지만 의원들의 뜻과 정반대되는 상황으로 흐를 수 있고 의원들간 선거 앙금으로 남는 등 불신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이런 점을 한꺼번에 털어내 의장단 선거로 진행되길 기대하는 것은 기우일까.

2020-05-12

여름 마스크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 생활이 일상화된 지 꽤 되면서 마스크에도 패션이 등장했다. 중국과 홍콩 등지에서는 이미 마스크 패션쇼가 열렸고 국내서도 착용감과 색깔 등이 뛰어난 마스크를 찾는 수요가 차츰 늘고 있다고 한다.아직 마스크 패션이 대중화되지는 않았지만 마스크 착용이 당분간 더 이어질 것이란 전망 속에 인터넷 등을 통해 다양한 마스크의 등장이 예고되고 있다.특히 최근 기온이 올라가면서 마스크 착용의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자 통풍력이 좋은 여름용 마스크의 등장도 예상되고 있다고 한다.전문가들은 마스크 착용이 체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은 마스크가 열 반사를 방해하고 입김에 의해 열기가 유지되면서 체온이 올라간다고 호소한다.등교를 앞둔 학부모 사이에서는 자녀들이 더위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바깥활동을 할까 봐 걱정하는 이도 많다고 한다.어쨌거나 여름철에 마스크를 쓰는 일은 애물단지와 같은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착용하자니 더위로 진땀을 흘려야 할 판이다.그렇지만 마스크 사용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스크 착용을 주장한 한국과 대만, 중국에 비해 마스크를 쓰지 않은 미국과 유럽에서 더 많은 감염병이 유행을 했다. 처음에는 마스크 사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미국도 이젠 마스크 사용의 효과를 인정하는 분위기다.무더운 여름철을 맞아 마스크 쓰기가 또 한차례 논란을 일으킬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잡는 백신 개발이 없는 한 이 논란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5-12

대충, 목례, 사전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붉은 색 ‘상(賞)’자가 찍힌 띠종이를 두른 국어사전과 꽃묶음을 가슴에 안고 사진 찍던 모습은 1970년대 초등학교 졸업식의 일상적 풍경이었다. 사전을 졸업선물이나 상품으로 주는 경우를 요즘도 드물게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국어사전 선물은 ‘라떼는 말이야’의 이야깃거리이다.사전은 지식과 상식의 총합체이자 축약체이다. 백과사전은 말할 것도 없고 낱말 뜻을 풀이해놓은 국어사전만 떠들쳐 봐도 웬만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비상식적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난 4월 연구실 이사를 하면서 천여 권의 책을 버릴 때, 각종 사전은 한 권도 버리지 못했다. 한 때는 베개보다 두껍고 웬만한 보도블록보다 크고 무겁고 딱딱한 사전들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연구를 하고 강의 준비를 하였다.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굳이 책장에서 힘들여 사전을 꺼내고 펼쳐서 단어를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 몇 번만 두드리면 눈 깜짝할 사이에 단어 뜻이 주르르 펼쳐진다. 아니, 컴퓨터 앞에 앉는 수고조차 귀찮다면 있는 자리에서 손가락만 까딱해도 된다. 그런 데도 우리들은 잘 모르는 말이 있어도 대충 넘어간다. 듣고 읽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말하고 쓰는 경우에도 대충대충이다. 말하고 쓰는 전문가인 기자들까지 그렇다.“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목례와 함께 눈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공식석상에서의 인사를 대신하는 모습이 포착됐다.”(ㅎ일보 2020년 2월 4일자), “현충탑 앞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할 때…. 황 대표가 손을 내리고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것이다. 황 대표는 자신의 왼편에서 참배를 진행하던 양섭 국립서울현충원장이 묵념하듯 목례를 하는 것을 보고 자세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ㅇ뉴스 2020년 4월 1일자),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현충탑으로 향하던 중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렸다 목례로 바꾸어 국기에 대한 경례하고 있다.”(ㅇ뉴스 2020년 4월 1일자 사진 설명)‘목례’(目禮)와 ‘목인사’는 다르다. 목례는 눈으로 하는 인사이고 목인사는 고개를 숙여 가볍게 하는 인사이다. 물론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 후 상대방의 눈을 보며 다시 시선을 교환하는 눈인사를 할 수도 있지만, 목례가 고개를 숙이는 인사는 아니다. 위의 기사에서 ‘목례와 함께 눈인사를 나누는’, ‘묵념하듯 목례를’, ‘목례로 바꾸어 국기에 대한 경례’라고 쓴 것을 볼 때 목례를 목인사로 혼동한 것이 분명하다. 대충 아는 대로 대충 인식하고 기사를 쓰다 보니 이렇게 될 수밖에. 목례와 목인사를 혼동하고 쓴 글들은 널려 있다. ‘뇌졸증, 산수갑산, 아둥바둥, 양수겹장, 풍지박살’ 등 잘못 쓰고 있는 말들은 우리 주위에 또 얼마나 많은지.대충 알고 대충 말하고 대충 기사 쓰지 말고, 바로 알고 바로 말하고 바로 쓰며 살자. ‘대충언론인’과 ‘대충선생님’이 ‘대충국민’을 만든다. ‘대충국민’이 대충 물건을 만들고 대충 건물을 지으니, 사고는 필연적이다.사전 좀 보며 살자. 몇 초만 시간 내면 ‘대충’이 ‘정확’으로 바뀔 수 있는 세상이지 않은가.

2020-05-12

감속 운행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코로나19가 다소 소강상태였는데 갑작스런 유흥업소 전염이 다시 긴장감을 가지게 한다. 그럼에도 집안에서 장기간 움츠린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주말 근교 나들이 차량들이 도로에 점점 늘어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시점엔 상습 정체지역이 오히려 차량 속도가 빨라지는 듯했다. 모임 연기 같은 사회적 속도가 느려지니 이동 흐름은 빨라지는 기현상이다. 그 기간 차량속도 변화에 대한 측정 자료가 있으면 코로나 전후 사회적 변화 현상을 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경찰이 최고 시속 100㎞의 고속도로 주행속도를 시속 110㎞로 상향조정한 적이 있다. 100㎞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는 민심을 반영해야 했다. 나날이 성능이 좋아지는 승용차로 고속도로에서 시속 110km로 달리더라도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들은 단속카메라를 벗어나면 울분을 발산이라도 하려는듯 총알처럼 날아간다.그런 광기를 달래기 위해 ‘구간단속’이라는 날렵한 방패를 세웠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규정 속도로 주행 중인 내 차량 앞을 추월하여 쌩 내달리는 차를 본다. ‘×친 놈’이라는 상스런 말이 부지불식간에 툭 튀어나온다. 조금 느리게 가는 차가 내 차 앞을 주행하는 것에는 심한 더딤을 느낀다. ‘남녀가 노닥거리며 가는 것 같다’라는 근거 없는 빈축의 중얼거림을 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속도 병에 걸려있는 것이다. 모든 운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주행속도는 없는 것 같다. 주행속도는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문제다. 준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세상이 워낙 빨리 내달리니 뒤처질세라 너도 나도 내달리는 속도전이 가속화돼 왔다. 외국인들이 ‘빨리빨리’라는 말을 한국인의 속성을 대변하는 말로 여길 정도니 우리는 속도전에 강한 민족임은 맞다. 신속성의 무기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일 수도 있다. 퀵서비스와 ‘배달의 민족’ 시스템이 신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은 것도 한국인의 신속성 취향에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일 수 있다. ‘좀 더 빨리’는 모든 경제활동의 구동력이 된 지 오래다. 신속성은 정확성과 충돌하게 된다. 건물붕괴, 다리붕괴, 지하철화재, 세월호사건과 같은 것도 신속성이 정확성을 짓누른 결과가 아닌가 싶다. 도로의 주행속도를 늦추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학교 앞, 노인보호구역 등 속도가 안전을 집어삼키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느림의 지혜를 되돌아보게 된다. 바쁜 일상을 당연히 여기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퇴임 후의 일상이 다소 느려진 듯하다. 시속100㎞ 이상으로 내달리던 삶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 시속 50㎞ 생활이 되었다. 이렇게 느리게 달려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아직도 남아있다. 내 삶의 속도 병이 다 나은 것은 아닌 것 같다.코로나19로 세상의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 빨리 회의하고, 빨리 물건 만들고, 빨리 돈 벌고 등등. 모든 일들이 뒤로 미뤄지거나 취소된다. 지구촌이 느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모두가 느려지면 느려진다고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벌어지는 탈(脫)인간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감속운행도 좋은 묘수다. 뒤처진 자에게 희망을 주는 찬스가 될 수 있다. ‘천천히’를 약속하고도 다른 사람이 쌩하고 추월하면 어쩌지?

2020-05-12

살아있는 장례식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정말 화사한 5월이다. 그러나 이런 계절에도 여지없이 죽음은 찾아온다. 떠나는 분들, 남은 가족들 모두 이별의 슬픔과 아쉬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결혼식, 돌잔치, 환갑잔치가 지나고 나면 장례식이라는 인생의 통과의례를 거친다. 이제 나도 부모님들의 부고를 받는 나이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잘 이별할 수 있을까?삶과 이별하는 책 중에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1998년 번역된 후 2017년 출간 20주년 기념판이 나올 정도로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다.스포츠 기자였던 미치 앨봄은 우연히 대학 시절 은사였던 모리 교수를 티비에서 보게 된다. 모리 교수는 루 게릭병에 걸려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미치와 모리 교수는 다시 만나 매주 화요일 인생의 여러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미치는 삶에 대한 통찰이 담긴 노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녹음했다. 미치는 이것을 계기로 성공을 향해 달리던 자신의 삶에 큰 변화를 갖게 된다.20여 년 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여러 대목이 인상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던 부분은 모리 교수가 스스로 자신의 장례식을 주도한 대목이다. 모리 교수는 죽은 후에 문상 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가족들을 불러서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있는 장례식’이라고 이름 붙인다.이 책을 읽은 지 15년이 지난 5년 전, 아버지의 살아있는 장례식을 하게 되었다. 그때 13년간 투병하시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93세 고령으로 오랜 간병에 지치기도 했고 무엇보다 상실감에 매일 힘들어하셨다. 그래도 때마침 자치구에서 자서전 쓰기 지원 사업이 있어 자서전 쓰기를 권유했다. 처음에는 부끄럽기만 한 삶을 어떻게 기록하느냐고 망설였지만 무엇보다 그 많은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집필을 결정하셨다. 실제로 정기적으로 방문해주는 담당자와 지난날을 회고하는 시간 자체가 무척이나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그러나 그마저도 탈고하시고 나자 삶의 무의미감이 밀려오셨는지 더 쇠약해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삶과의 이별을 준비하시는 것이 역력했다. 위태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돌아가신 후 아무리 좋은 말로 애도한들 고인에게는 들리지 않는다는 모리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오랜 칩거 생활로 못 만났던 분들을 모실 핑계로 출판기념회를 열어 점심을 대접했다. 오신 분들도 정말 반가워하시고 아버지도 어찌나 기뻐하셨는지. 93세 고령에 거동도 불편하셔서 오랫동안 만나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었으니 그냥 돌아가셨다면 그 한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아버지는 출판기념회 후 바로 돌아가셨다. 이렇게 출판기념회는 ‘살아있는 장례식’이 된 셈이다.우리의 보통 정서로는 장례식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름을 붙이든 ‘살아있는 이별’을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부모님이 어렵다면, 언젠가 죽음이 다가올 때 나 자신이라도.

2020-05-11

코로나19와 얀테의 법칙

코로나19가 진정되는가 싶은 순간 이태원클럽 집단감염사태가 터져 방역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31번 확진자가 벌인 집단감염사태의 재연이다. 이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자기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이들이 문제다. 이와 반대되는 사회적규범이 바로 얀테의 법칙(Law of Jante)이다. 이 법칙은 노르딕(북유럽의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다섯나라) 국가에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행동 지침으로, 평범함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을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이 용어는 덴마크계 노르웨이인 작가 악셀 산데모세가 풍자소설 ‘도망자’(1933)에서 가상의 마을 얀테에서 통용되는 사회규범으로 처음 썼다. 산데모세는 10가지 규칙을 언급했다.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남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을 비웃지 마라. 누군가 당신을 걱정할거라 생각하지 마라. 남들에게 뭐든 가르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마라. 이 불문율을 깨려는 자는 마을 공동체의 조화를 깨는 적으로 간주된다.규칙은 산데모세의 창작이 아니며, 덴마크나 노르웨이인들의 정신세계에 수세기동안 박혀있는 것들을 명시한 것이다. 그들은 비슷하게 입고, 비슷하게 생긴 차를 타며, 집집마다 비슷한 물건들을 놓고 산다. 타인과의 경쟁을 부추기는 한국사회에 ‘얀테의 법칙’은 평등과 겸손, 절제의 미덕에 대한 답을 가르쳐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5-11

오래된 것들은 기도가 되어… 대구 북지장사(北地藏寺)

그는 백중날 태어난 크리스천이다. 산사기행을 떠나는 나에게 자기 몫의 기도를 부탁한다며 입버릇처럼 말할 때마다 나는 흘려들었다. 서둘러 떠날 걸 예감조차 못했을 그가 부처님 앞에서 무슨 기도를 하고 싶었을까.농담처럼 주고받던 말들이 가끔은 하나의 의미가 되어 우리를 아프게 할 때가 있다. 북지장사 가는 소나무숲길에 들어서며 그가 무심코 흘린 말들을 나는 또 낚고 있다. 훌훌 털고 일어나지 못했던 그는 가끔씩 휘파람새가 되어 나타나거나 꿈결에 스쳐가듯 다녀가는 게 전부였지만, 그럴 때마다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레테의 강을 건너는 자는 모든 것을 망각할 텐데, 그와 관련된 것들은 오로지 살아 있는 자의 몫으로 남는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까지도. 떠난 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바람결에 떠도는 독백 같은 언어가 되어 주변을 배회하는 것이다. 북지장사 오르는 소나무숲은 변함없이 평화로운데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북지장사는 동화사보다 8년 먼저인 신라 소지왕 7년(485년) 극달화상이 창건했다. 한 때는 절의 밭이 200결이나 되었으며 동화사를 말사로 거느렸을 정도로 매우 큰 절이었다. 19세기 초 동화사의 부속암자로 편입될 만큼 사세가 기울기도 했지만 끊임없는 중창불사와 함께 삼국유사에 기록됐던 ‘공산 지장사’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이태 전, 그가 희망의 끈을 놓고 이별의 강가에 바투 앉아 있을 때 나는 이곳을 찾아왔다. 나의 작은 기도가 새롭고 청정한 생명의 다리가 되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소나무 숲길을 걸어 대웅전에서 백팔 배를 하고 다시 소나무 숲길을 걸어서 내려오던 그날, 나는 텃밭에서 키운 채소 파는 할머니와 잡담을 나누며 웃다가 내려왔다. 삶은 공허하고 부조리한 것이다.계단 위 낡고 소박한 용호문이 흙벽을 지탱하며 서 있다. 변함이 없다. 오래된 시골집 대문간처럼 보이지만 세속을 벗어나 진리의 세계로 첫발을 대딛는 천왕문 겸 불이문인 셈이다. 그 너머로 보이는 보물 제 805호 지장전은 별천지처럼 찬란하다. 꽃잔디가 숨넘어갈 듯 절정을 토해내고 천수경에 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가 불자들을 맞는다.관세음보살과 삼보에 귀의하고, 악업을 금하며 탐, 진, 치 삼독을 멸하고 깨달음에 이르도록 기원한다는 주문이 오늘도 그날처럼 가슴을 헤젓는다. 익숙하다는 건 길들여진다는 것을 뜻한다. 오래 알아온 사이일수록 자연스레 서로에게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불과 몇 년 만에 대웅전에 이어 또 다른 당우가 새롭게 완공되어 규모가 커져 있지만 북지장사는 여전히 편안하다.가까이 있는 지장전보다 대웅전 앞 배롱나무가 나목인 채로 붉은 연등을 달고 먼저 달려 나와 반긴다. 갑자기 내 안에 연등 하나 켜진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아니라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는 대웅전에서 삼배의 예를 갖춘다. 백팔 배로 친구의 완쾌를 빌었던 그 작은 법당에는 오월이 길을 잃지도 않고 찾아와 침묵을 다스리고 있다.눈부시도록 화사한 이 봄날, 무언가 허전하다. 두 개의 대웅전 현판을 향한 석탑의 눈빛이 아련하게 흔들린다. 한 때의 영화를 떠올리며 감자꽃 같은 눈물을 그렁거리는 석탑 위에는 송홧가루만 날린다. 올해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석가탄신일 행사조차 윤사월로 미뤄진 탓일까. 술렁거릴 거라 여겼던 절간의 풍경은 뜻밖에 차분하다.근처에서 환담을 나누던 젊은 스님이 방으로 들어가신다. 편리함과 바꾼 스님의 정신세계만큼이나 오래된 요사채가 눈길을 끈다. 물결치듯 기울어진 지붕, 마루도 없는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철 지난 털신 한 켤레에 마음이 젖는다. 남루해 보일만큼 낡은 건물은 너와집을 연상시킨다. 운치 있게 기왓장을 올려놓은 키 낮은 지붕 아래 작은 종무소도 있다.아직은 우리에게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일깨워주는 따스한 풍경들,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한 처마 낮은 집, 저 문턱을 나서면서부터 우리는 탐욕에 길들여졌는지 모른다. 허기지듯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느라 늘 지쳐 있었다. 오래된 것들이 기도가 되어 발길을 붙드는 곳, 그것이 북지장사가 지닌 매력이다.조낭희 수필가한 차례 마음을 정화시키고 지장전으로 들어선다. 정면 한 칸, 측면 두 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을 한 지장전의 출입문은 특이하게도 측면의 뒤쪽 편에 붙어 있다. 텅 빈 법당을 석조지장보살좌상이 홀로 지키고 있다. 민머리에 늘어진 두 귀, 왼손에 보주(寶珠)를 들고 계신 부처님은 지장전 뒤뜰 땅 속에 묻혔다가 발견된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이다.죽은 뒤의 육도윤회나 지옥에 떨어지는 고통을 구제해 준다는 지장보살을 향하여 백팔 배를 시작한다. 그리움만 남기고 서둘러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할 것들, 몇 번의 봄을 보내고 나면 내 늑골에 살점처럼 돋아날, 애잔한 것들이 있어 우리는 겸허함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마음이 가볍다. 지장전을 나오는데 새 한 마리 지붕에 앉았다 날아간다. 잠시 천수경이 출렁, 다시 송홧가루 날린다.

2020-05-11

서양의 화가들이 성서나 신화를 많이 그린 이유?

그림은 그려진 주제에 따라 역사화,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로 나눠진다. 이러한 분류는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1648년 프랑스에서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명에 따라 왕립미술원이 설립됐다. 미술가들을 길러내기 위해 관(官)이 주도해 체계적으로 설립한 최초의 미술교육기관이다. 그런데 왕립미술원은 교육기관의 역할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문화 예술정책에도 깊이 관여를 했다. 그렇다면 루이 14세는 왜 왕립미술원을 설립했을까?절대왕정의 루이 14세는 국가의 모든 영역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싶어 했다. 모든 권력은 자신으로부터 나오며 정치나 경제뿐만 아니라 학문과 문화, 심지어 예술 또한 자신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한마디로 루이 14세는 ‘인간으로 태어나 신이 되고자’했던 인물이며, 정치적 목적과 함께 그의 욕망이 응축된 곳이 바로 베르사유 궁전이다. 베르사유를 장식하는 화려한 미술작품들은 오직 한 사람, 루이 14세를 찬양하는 수단이었다.루이 14세는 스스로를 ‘태양왕’이라 칭하며 태양의 신 아폴론을 자기와 동일시했고, 미술가들은 왕의 욕망을 신화 속 인물에 투영한 그림으로 웅장한 궁전을 장식했다. 루이 14세가 지향했던 미술은 위대한 인물들의 위대한 이야기이다. 왕에게 충성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며 귀감이 될 만한 교훈적인 내용을 웅장하고 명료하게 그리는 것이 미술가들의 덕목으로 여겨졌다. 왕립미술원의 교수들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미술가를 길러내기 위한 교과과정을 개발했다.몇몇 거장들의 화풍을 모범 답안으로 정해두고 기계적인 반복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는 교육 방식이었다. 석고상을 기계적으로 모사하는 데생도 왕립미술원의 교육과정에서 유래한 것이다. 왕립미술원 교수들은 회화작품을 주제에 따라 나누고, 이들 간의 위계질서를 정하게 된다. 학생들이 화가로 성공하기 위해 배우고 따라야할 그림과 그렇지 못한 저급한 수준의 그림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위계질서에서 가장 높은 등급에 위치한 그림은 역사화이다. 역사화는 신화나 성서 혹은 역사적 사건들을 묘사한 웅장하고 기념비적인 그림으로 위대한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두 번째 등급의 그림은 인물화이다. 인물화는 실제 인물의 모습을 담은 그림인데, 그림에 담겨진다는 것은 이미 높은 사회적 신분과 부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단계의 그림은 풍경화이다. 화가의 시선이 닿은 자연의 한 단면을 그린 것이 풍경화이다. 가장 낮은 등급으로 여겨졌던 그림은 정물화이다. 꽃이나 과일 등 곧 시들어 버리거나 섞어 버릴 일시적인 대상들을 표현한 그림으로 주로 삶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밖에 등급에 들지 조차 못할 정도로 저급한 그림으로 여겨진 것이 있는데 바로 풍속화이다. 역사화가 위대한 인물들의 위대한 이야기를 그렸다면, 풍속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묘사한다. 시장의 약장수가 등장하고, 젊은 여인에게 연애를 걸거나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의 모습, 술 마시며 떠들어 대는 게으른 주정뱅이가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프랑스 왕립미술원을 모방해 1744년 스페인의 펠리페 5세는 마드리드에 왕립미술원을 설립했고, 1768년 조지 3세에 의해 영국의 왕립미술원이 문을 열었다. 왕립미술원의 설립은 미술교육의 경직된 제도화를 가속시켰고, 그 가운데 미술권력이 탄생했으며, 미술을 제도권 그리고 비제도권으로 양분화하는 부정적인 현상들이 발생했다. 이러한 갈등이 19세기 중반 파리를 중심으로 극심한 충돌을 일으켰고, 보수적인 미술제도에 반기를 들었던 진취적인 미술가들에 의해 현대미술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아카데미의 폐쇄성에 대항했던 현대미술 선구자들 대부분이 역사적인 장면 보다 일상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던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0-05-11

하늘이 주는 것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하늘이 인간에게 주는 것으로는 네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천수(天壽)다. 천수는 하늘이 정해준 수명, 곧 천명(天命)이다. 천수를 누리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꿈꾸어 온 가장 큰 염원 중 하나였다. 동양의 도교에서는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신선이 되어 장생불사하고자 불로초, 선약 등을 찾아 헤맸고, 서양에서도 17세기 독일 의학자 안드레아스 리바비우스가 젊은이의 동맥을 늙은이에게 연결해 회춘하려는 실험을 행한 바 있다. 비록 혈액 관계에 대한 무지로 많은 사망자를 냈지만 이는 모두 천수를 누리고픈 인간 욕망의 한 단면들이다.하늘이 주는 또 다른 하나는 천운(天運)이다. 천운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으로 이것은 날 때부터 타고난 것이니 바꿀 수 없는 ‘팔자’다. 내가 여자 혹은 남자로 태어난 것, 내 부모, 내 형제, 자매 등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다. 다 하늘에서 이미 결정된 일들인 까닭에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소용없다. 그래서 누군가 큰 일을 해내거나 하면 ‘천운을 타고났다’고들 말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기에 하늘이 준 운명이 아니고서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좋은 천운을 타고나는 것 또한 인간이 꿈꾸고 바라는 것이다.하늘이 주는 또 다른 것으로는 천복(天福)이 있다. 명심보감 ‘계선편’에는 ‘착한 일을 하는 이에게는 하늘이 복으로 갚아준다’는 공자의 명언이 등장한다. 이미 고칠 수 없는 타고난 팔자이니 인간사 어쩔 수 없다 한다면 얼마나 한평생이 암울할까. 이런 한탄으로 생을 마감하는 대신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고 극복하면 하늘은 그러한 사람에게 합당한 복을 주니 좌절하지 말라는 기막힌 의미가 바로 ‘천복’에 담겨 있다. 즉,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선량한 이들에게 언젠가 하늘이 주는 복, 그렇기에 이 또한 누구나 희구하는 욕망 중 하나이다. 하늘이 주는 마지막 하나는 바로 천벌(天罰)이다. 천벌은 누구나 받기를 꺼려 하는 것이고 받아서도 안 되는 것이다. 옛날 사냥꾼들은 잠자는 짐승을 죽이지 않았다. 이는 아무리 급해도 상대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뒤에서 공격하고 칼을 꽂는 비열한 짓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여긴 까닭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어진 마음을 저버리고 인간의 도리를 잃게 되면 하늘로부터 내리는 천벌을 막을 길이 없다. 똑바로 살려고 하는 사람을 괜히 질투하고 미워하여 이유 없이 깔아뭉개면 그 화살은 언젠간 고스란히 자기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남의 등에 칼 꽂으려다 자기 등에 ‘하늘의 칼’이 꽂히는 것을 모르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바야흐로 5월이다. 총선도 끝나고 다들 ‘민심’이 천심이라며 겉으로는 목청 높여 떠들면서 실상은 그들의 ‘진심’을 헤아리는 대신 이미지 관리, ‘표심’ 잡기 등에만 여념 없던 정치인들. 천수, 천운, 천복을 바라며 권력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동안, 아는지 모르겠다. 경제가 파탄 나고 분노한 민심이 하늘에 닿아 ‘천벌’이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아무쪼록 누가 권력을 잡든, 다들 천벌 받기 전에 부디 민심을 잘 헤아리는 현명한 정치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05-11

위정자의 입

강희룡 서예가말을 삼가기를 옥을 손에 쥐듯, 가득찬 물그릇을 들듯이 조심하라. 이 글은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문신인 이첨(1345~1405)의 눌헌명(訥軒銘)으로 동문선에 실려 있는 구절이다. 우왕 1년(1375) 간관이었던 이첨은 당시 권신이었던 이인임 등을 탄핵하다가 하동에 유배되었다. 유배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구설에 오를까 염려한 이첨은 유배지의 한구석에 집을 지어‘눌헌’이라 이름 짓고는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명(銘)을 지었다.‘질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옛말도 있듯 사람의 처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 그리고 말해야 할 것과 침묵해야 할 것을 아는 것이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가 구설과 곤경에 처했던 역대의 설화(舌禍)는 굳이 군더더기의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반 개인의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지만 국가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허물을 바로잡고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는 올곧고 강직한 말은 윗사람의 노여움을 사기 쉬운 법이기 때문이다.당시 이첨은 조정의 전권을 쥐고 전횡을 일삼던 권신을 주살하기를 청했다가 겨우 목숨을 건져 머나먼 남쪽 변방 해안가에서 10년이나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 자신의 집을 눌헌이라 이름 짓고 말하기의 신중함을 강조하는 명을 지은 것으로 보아 언뜻 젊은 혈기에 집권자에 맞섰던 자신의 경솔한 언행을 후회하고 자숙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공자 역시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행동은 준엄하게 하되 말은 낮춰서 해야 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하지만 이첨이 눌헌명의 뒤에 쓰다(題軒銘後)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이 명을 지은 것은 평소의 생각을 밝힌 것이기도 하지만 뜻이 좌절되고 기가 꺾인 자신을 조금이나마 격려하고 분발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위의 말은 공자의 말은 낮추어서 해야 한다는 뜻을 부연한 것이다. 즉 혼란한 세상에서도 해야 할 말은 하되 좀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지난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은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돈키호테, 황교안 대표를 애마, 박형준 공동선대위원장을 시종에 비유하며 비판한 것을 건전한 비판과 해학이었다고 주장하며, 막말과 혐오발언의 사전적 의미까지 들먹이며 자신의 발언을 정당화했다. 정책경쟁이 실종된 지난 4·15 총선에서 후보자들의 막말은 ‘사이다 성’ 발언으로 지지층 결집을 굳히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미래통합당 후보들은 3040세대 비하에 이어 세월호 참사까지 비꼬는 거친 발언으로 선거에서 실패했다. 막말 논란은 단순 실수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합당의 공천이 부실했다는 방증이며 선거결과는 참담했다. 또한 공천에 탈락하자 미래통합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홍준표, 권성동 의원은 복당도 되기 전에 원내대표와 대권주자로 본인들이 적합하다며 말을 앞세우다 진퇴양난의 입장이 된 것 같다. 정치인들의 막말은 국민들의 정치 혐오를 더욱 부추길 수 있으며, 정치의 ‘고인 물은 민주주의를 위기에 처하게 한다.’는 말을 새삼 느끼게 하는 오늘의 정치판이다.

2020-05-11

두 바퀴 여행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모처럼의 긴 연휴를 맞아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신록의 물결이 넘실대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강변이나 해변의 자전거길을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서울~춘천까지의 북한강자전거길, 고성~영덕까지의 동해안자전거길을 4일 동안 약 500km를 달리면서 우리나라의 강과 산, 호수와 바다의 아름다운 정경을 한껏 눈과 가슴에 담은 유쾌한 여정이었다. 이렇듯 여행은 새로운 볼거리와 느낌으로 감흥을 더해준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일까? 아니면 알지 못하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대한 인식과 체험일까? 여행에 대한 많은 정의와 관점이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여’기에서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일상의 삶이건 잠시 집을 떠난 이색적인 만남이건 그 모두가 처해진 거기에서 새로움과 만족을 느낀다면 그 자체가 여행이고 행복이 아닐 듯 싶다. 그래서 혹자는 삶은 끊임없는 여행이라 했던가. 하루하루 새롭고 달라지는 일상일지라도 먼 훗날 되돌아보면 파란만장한 삶의 여행에 한 순간 같은 편린이 아닐 수 없으리라.비슷한 여행이라도 당사자의 주관이나 취향에 따라 여행의 느낌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이를테면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의 버스나 자동차, 기차여행은 거의 목적지에서의 집중적인 관광만 가능하다. 반면 땅을 직접 밟으며 산천의 초목과 생물을 접하고 듣고 냄새 맡으면서 천천히 이뤄가는 도보여행은 많은 것들을 느끼지만 다소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자전거로 떠나는 두 바퀴 여행은 수시로 더디거나 빠르게 주위의 풍경을 담을 수 있고, 때에 따라선 명소나 유적지를 여유롭게 탐방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일상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삶과 일, 쉼의 균형을 이뤄가듯이 자전거 여행을 애써 즐기는지도 모른다.수 년째 아들과 자전거 여행을 해왔지만, 강 언저리와 바닷가를 연이어서 아들과 함께 누비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팔당호에서 의암호까지 이어지는 한적하고 그림같은 풍경들, 간간이 수상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고 나름의 보법으로 도보여행을 하거나, 아들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이 단체 라이딩으로 질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통일전망대에서 영덕까지 이르는 동해안자전거길은 파도와 바람소리, 새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의 연속이었다. 거기에 오르막이 심한 언덕에서 들리는 거친 숨소리와 내리막길의 짜릿한 속도감과 진동은 형언 못할 전율 그 자체라고나 할까?초여름 같은 날씨라서 그런지 동해안 곳곳에는 정말 여름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캠핑족들이 붐볐다. 갑갑했던 코로나19의 여파로 지루하고 절제된 일상에서의 탈출같은 몸짓이랄까, 움츠러진 삶을 펴고 음울함을 환기(喚起)하려는 마음으로 어쩌면 그들과 나는 잠시나마 집을 나선지도 모른다.어쨌든 여행은 즐겁고 설레며 일상의 쉼표같은 것, 문득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하며 미래를 그려보는 시간이다. 두 바퀴를 굴리면서 새로운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으며 독서하듯 찬찬히 자연을 읽은 행복한 느낌표였다.

2020-05-10

북한 관련 가짜 뉴스부터 막아야 한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해 말 어느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여교수가 식사 중 카톡을 보더니 북한에서 쿠데타가 났다고 전했다. 식사 하던 사람이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단번에 그것이 ‘가짜 뉴스’임을 직감했다. 주변에는 북한 관련 이런 식의 ‘가짜 뉴스’가 상당히 많다. 김일성과 김정일도 생시 사망보도는 여러 번 있었다. 이번에는 미국의 CNN까지 김정은의 중병설을 흘려보냈다. 탈북 국회의원 당선자 지성호까지 ‘김정은 99% 사망설’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김정은의 깜짝 등장에 모두가 놀라고 발설자도 언론도 모두 망신을 당했다.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가짜 뉴스가 확산되는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무엇보다도 북한 사회에 대한 정보 부족과 접근의 한계 때문이다.북한 당국은 자신들의 정보를 엄격히 통제한다. 북한당국은 김정은의 출생연도, 자녀 출생여부까지 비밀에 부치고 있다. 다행히 남한에는 북한관련 연구기관과 정보에 밝은 연구자도 많다. 여러 해 전 박사논문을 쓴다는 어느 폴란드 대학원생이 나를 찾아 왔다. 그의 연구 주제는 ‘북한 일인 체제 장기 유지 배경’이었다. 그는 평양에 1년 체류했어도 북한체제는 도저히 알 수 없다고 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이러한 궁금증이 가짜 뉴스의 기본 진원이 되고 있다.또한 북한 관련 가짜 뉴스는 한국정치에서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건국 초기의 용공 조작에서부터 좌익 관련 흑색선전은 아직도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해방 후 대선에서 조봉암의 보안법 위반 사건, 2002년 대선의 ‘병풍사건’은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는 골동품이 된 맥카시즘이 한국정치에서는 아직도 유효하다. 북한 관련 흑색선전이나 네거티브는 아직도 상대에 대한 압박하는 수단이 된다.이러한 가짜 뉴스가 미치는 폐해는 심각하다. 무엇보다도 북한이나 통일 문제에 관한 우리의 객관적인 시각을 흐트려 놓는다. 북한 관련 허위보도나 추측 보도는 종종 사회적 갈등만 야기한다. 우리 사회에는 민족 통일의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북한 정권과는 대화할 수 없다는 사람이 상당수다. 분단국의 냉전적 반북적 사고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의 보수 정당의 참패는 시대에 뒤진 극우 이념의 결과라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가짜 뉴스나 추측 보도, 오보 등은 결국 민족의 화해에 역행하고 분단고착화의 수단이 될 뿐이다.이 사회에 수시로 등장하는 북한관련 가짜 뉴스를 막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정치적 목적이나 정파적 이해에 따라 확산되는 가짜 뉴스 전반을 차단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일부 보수 언론의 편파보도, 안보 상업주의, 오보는 철저히 막아야 한다.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개인이나 언론매체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관련법도 만들고 단속 전담팀이 구성되어 있다.우리도 가짜 뉴스의 생산자 뿐 아니라 전달자도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가짜 뉴스 방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형법상의 사이버 범죄 수사만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이번 국회는 가짜 뉴스 방지를 위한 입법부터 선행되길 바란다.

2020-05-10

‘코로나19’ 군민과 함께 희망으로 이겨내다

전찬걸울진군수코로나19와의 길고 지루한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일상은 무너지고, 지역경제는 더욱 어려워져 대한민국 전체가 혹독한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시간 울진군은 ‘함께’라는 이름으로 희망을 가지고 버티고 이겨내고 있다.국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시부터 울진군은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강력한 선제적 대응활동을 벌였다. 실무반으로 구성된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운영, 매일 회의를 통해 상황을 점검·체크해나갔다.또한 공무원들을 시외버스터미널에 배치해 열체크 및 경유지, 목적지 등을 조사하여 외부로부터 바이러스가 유입되는 경로를 철저하게 차단해 나갔다. 마스크품귀 현상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일 때 울진군은 군민들의 혼선을 덜고자 우체국, 약국, 마트의 마스크 판매시간을 통일 하도록 조치했다. 또한,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면마스크 제작에 나섰고, 많은 분들이 재능기부로 마스크 만들기에 함께 해 주었다.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대구·경북 지역에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울진군은 울릉군과 더불어 ‘확진자 제로’의 청정지역을 유지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난 3월29일 집으로 돌아온 해외유학생이 확진판정을 받아 울진군에도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다.사실 그 순간은 절망적이고, 안타까웠다.코로나19로부터 울진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지켜온 지난 시간이 치열했기에 더욱 허무했다.그러나 절망은 또 다른 기회가 되었다.확진된 환자의 철저한 자가격리로 더 이상의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모범적인 자가격리 사례로 울진군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울진군에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지 이제 한 달 여...좌절의 순간을 잊지 않고 더욱 철저하게 코로나19와 대응하고 있다.‘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은 없다’ 라는 마음으로 서서히 밀려오는 느슨함을 떨쳐내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중이다.지난 4월19일 울진군은 죽변항·후포항 일원을 코로나19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강력한 방역’과 ‘사회적 거리 두기’ 계도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인근 지자체에서 2차 3차 감염 의심자가 많아지고, 외부 관광객유입이 늘어남에 따라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다.바이러스와의 전쟁은 군의 행정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군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무한한 신뢰와 묵묵히 같이 하는 동참이 있어야만 승리가 가능하다.그리고 울진군은 군민과 함께 승리의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다. 직접 구입한 마스크를 본인보다 더 필요한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임차인을 위해 임대료를 감면해주는 착한 임대인이 늘고 있다. 각종 사회단체들은 자발적으로 방역활동에 나서고, 특별모금에도 기부가 끊이지 않았다. 2019년 울진군 태풍 미탁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하지만 서로가 힘이 되어 다시 일어났고, 어려움을 겪으며 더욱 강해졌다.그리고 2020년 코로나19의 위기...아직 그 끝은 보이지 않고, 가야할 길도 멀게만 보이지만 단합된 힘과 지금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맞서 싸우고 있다.울진군은 코로나19의 종식은 물론이고 바이러스와의 기나긴 전쟁으로 침체된 지역경제 살리기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재의 어려움을 막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이후 군민들이 편안하게 기존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역경제 활성화와 군민생활 안정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관광을 통한 수익창출을 위해 단체관광객 인센티브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다.그 어떤 고난과 어려움도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우리의 일상과우리의 가족과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울진군과 군민들은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다!

2020-05-10

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이번 주부터 김순희 작가의 시간을 담은 에세이 ‘무엇을 간직한다는 것에 대하여’를 연재한다. 하루하루 쌓아 올린 시간의 추억을 기록하여 이야기로 들려줄 예정이다. 소소한 물건이 유품이 되고, 오래도록 한자리를 지킨 노포의 유래를 기록하고,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을 찾아가는 작가의 발걸음이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기를 기대한다.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여러 해가 지나도 아직 시댁에는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봄이면 만들어주신 콩잎무침 레시피와 낮은 음성으로 들려준 구성진 말들이 떠난 후에도 우리가족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박인환 시인의 시구절이 입에 맴돈다. 소중하지 않은 것인데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일이 쉽지 않다. 무엇이든 정리란 개념자체가 부족한 나는 그냥 쌓아두기만 할뿐이다.그래서 같은 물건을 또 살 때도 있고 뒤적거리다 장 구석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어머니는 품에 들어온 것은 내다 버리는 게 없었다. 그래서 시댁에 가면 늘 보물을 발견하는 기분이다. 내 나이보다 늙은 물건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여 들춰보는 즐거움을 준다. 발견할 때마다 그 물건의 사연을 어머님이나 남편에게 꼬치꼬치 물었다. 늘 보던 것인 데 자꾸 묻는 내가 더 신기하다고 하면서도 어머님은 끝까지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어느 해, 모내기 새참으로 가자미회와 맥주를 내갔다. 잔을 찾다가 86년생 유리컵을 발견했다. 동국대 마크를 달고 있는 저 녀석은 남편의 물건이었다. 4학년 졸업반 체육대회 기념품인 듯하다. 우유회사나 소주 회사에서도 광고용으로 많이 나눠주는 게 컵이라 대충 사용하다 버리기 쉬운 것이 유리컵이다. 그런데도 저 유리컵은 용케 몇 십 년을 살아남았다니 대견스러웠다.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끝내고 기차역에서 화물로 짐을 부치고, 손에도 작은 짐을 들고 귀향 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깨지지도 버려지지도 않고 투명하게 웃고 있는 유리컵에게 칭찬을 한껏 해주고 싶다.무엇이든 소중히 하니 이젠 정말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시댁에 다니러 가면 어머님은 낮에 준비해둔 거라며 유채나물, 시금치, 파, 머위 같은 다듬어진 채소 한 자루와 고추장아찌를 양념해서 주셨다. 그리고 어머님표 노란 콩잎 무침도 담아 주셨다.무엇이든 손에 들어오면 버리시지 않고 오래 두고 되새김질 하시는 어머니. 테두리가 하얗게 벗겨졌지만 아직은 파란빛을 간직한 얌전한 찬합에 차곡차곡 많이도 담으셨다.김순희수필가저 그릇은 얼마나 쓰셨나 가만히 살펴보니 ‘신탄진연초제조창’이라고 기념품을 만든 이가 명조체로 써 있고, 1965년 추계 위안회 기념으로 만들었다고 새겨놓았다. 아버님이 젊은 시절 근무한 곳에서 가을 소풍을 다녀온 모양이다. 글씨나 그려진 꽃무늬나 ‘나 오래 된 물건이요.’하고 말하는 듯하다. 저 도시락은 참 오래도록 어머니 손을 탔다. 어머니의 결혼 생활 대부분을 함께 했다. 그동안 아버님의 점심을 담고 회사로 출근을 하고, 어느 날에는 어머님과 건넌들 밭에도 따라갔을 것이다. 누런 호박전을 품고 기름 냄새를 풍기며 새참으로 가족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우기도 했을 것이다.오래 간직된 그래서 소중해진, 남편보다 한 살 어리고 시동생이 형님이라 부르는 도시락. 어머니가 떠나서 이젠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는 데, 나보다 훨씬 오래 시댁살이 한 저 녀석에게서 오늘은 남편의 어린 시절 코딱지 파먹던 이야기 전해 들어야겠다.안동에서 태어난 김순희 작가는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수필부문으로 당선해 등단했다. 수필집으로 ‘작가와 비작가’를 펴냈으며 포항수필사랑 회원이며, 스마트폰 사진전을 하기도 했다.

2020-05-10

‘주호영’과 ‘김종인’

안재휘 논설위원각종 선거에서 연전연패하고 있는 제1야당 미래통합당은 해마다 시고 떫고 맛없는 과일만 생산하면서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한심한 과수원에 비유된다. 참으로 기막힌 것은, 혁신의 핵심인 과수(果樹)의 품종개량에는 관심이 없고 바보처럼 소비자들의 입맛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고대한다는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허접한 고목들마저 용기 있게 베어내지 못하는 모습이 딱하기 그지없다.미래통합당 새 원내대표에 5선의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갑)이 선출되면서 제1야당의 새로운 길이 주목받고 있다. 제일 큰 관심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도입 여부다. ‘정족수 미달’ 작전이라는 유치한 몽니 수법을 동원해 상임전국위원회를 무산시킨 정치꾼들의 행태는 절망적인 구태였다. 총회 격인 전국위가 김종인 비대위를 용인하는 결정을 내렸으니 더더욱 같잖은 작태 아니었던가.내외부에 산재한 문제들을 톺아보면 통합당은 일부 당내 명망가들의 장난질이 난무할 ‘자강론’ 따위의 대안으론 어림없어 보인다. 주호영과 김종인이 투톱(Two top) 형태로 이끌면서 역할분담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원내대표 주호영은 공룡이 돼버린 여당을 상대하는 일만으로도 버겁고 또 버거울 것이다. 시대에 맞는 이념좌표를 설정하여 당을 혁신하고, 미래비전을 만들고, 새로운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일은 김종인 비대위에 맡기는 게 옳다.190석을 헤아리는 의석을 거느리고 연일 으르릉거리는 골리앗 여당의 가공할 힘에 맞설 지혜를 양치기 소년 ‘다윗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트리기 위해 들고 나선 무기는 양을 지킬 때 쓰는 지팡이와 물매, 그리고 돌 몇 개뿐이었다. 물리력으로 민주당을 막아서겠다는 구닥다리 발상일랑 아예 접어야 한다. 철저하게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통합당이 다시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이념좌표 설정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 진작부터 ‘중도실용’, ‘진보 우파’ 등의 대안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썩은 고목들이 떠들어대는 ‘꼴통보수’의 퀴퀴한 이론에 함몰돼 자멸의 뻘밭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아니, 지금 못 바꾸면 정말 끝장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더이상 진보 진영의 전유물로 넘겨줘선 안 된다.주호영은 국민을 감동시킬 최고의 정책들을 단단한 조약돌로 들고 나서서 골리앗 민주당의 급소를 정확하게 겨냥해야 한다. 김종인은 지혜의 칼을 움켜쥐고 시장이 진작 퇴출한 맛없는 과일들이나 생산하는 철 지난 과목(果木)들부터 모조리 베어내고, 새로운 이념좌표를 세우는 품종개량 작업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통합당이 비로소 ‘미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달라진 정치지형 속에서, 주호영의 슬기로운 대응과 김종인의 용단이 빈사 상태의 제1야당을 잘 살려내길 기대한다. 많은 이들이 지난 4·15총선 선거운동 마지막 유세장에서 보았던 노정객 김종인의 뜨거운 눈물을 기억한다.

2020-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