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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주 산책

김현욱 시인2004년에 출간된 강석경 작가의 ‘경주 산책’을 어렵게 구했다. 지금은 품절이라 온라인 중고서점을 뒤졌다. 그중 한 곳에서 이상하게도 정상가보다 비싸게 팔고 있었다. 유심히 보니 ‘저자의 사인’이 있는 책이라서 그랬다. 얼른 신청했더니, 중고서점 사장에게서 문자가 왔다.“받는 사람 이름도 있는데 구입하시겠습니까?” 잠깐 망설였지만, 흔쾌히 구입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하루 만에 책이 왔는데 첫 장에 초록색 색연필로 받는 사람과 작가의 사인이 쓰여 있었다. 아무렴. 작가의 손 글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다. 강석경이 누군가. 1985년 제10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숲속의 방’ 작가가 아닌가. 한창 예민했던 문학청년 시절에 강석경의 소설 ‘숲속의 방’은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케 해주었다.내 인생 소설의 작가가 가까운 경주에 산다는 것만으로 ‘경주’는 더 특별해졌다.‘내가 경주로 돌아온 것은 나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온 회귀이다.’ 사실 강석경 작가의 고향은 대구다. 그런 그녀가 경주에 자리 잡은 건 무슨 이유일까? 책에서 그녀는 말한다. “존재의 불확실성에 방황하면서 성년의 세월을 보내고, 세계도 돌아보고 뒤늦게 경주에 터를 잡은 것은 그야말로 뿌리로의 귀환이 아닐까. 내 근원의 고향인 자연으로, 25년간 살았지만 뿌리내리지 못한 서울이 연옥처럼 떠오르는 것은, 자연과 분리된 삶 때문이리라. 도시의 삶은 늘 나를 허기지게 했다. 온갖 현세적인 욕망을 추구하느라 입에 거품을 무는 도시의 생리. 나도 알아볼 수 없으리만치 변해버린 대구도 고향같이 생각되지 않는다.내게 고향이란 육신이 태어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장소이다.”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곳이 고향이다. 경주가 그녀에게 그런 곳이다. ‘황룡사지에서’라는 글에서 수많은 장소 중에 왜 하필 ‘경주’인지를 밝힌다. “근원적인 것을 보여주기에 능이 있는 고도의 풍경은 아름답다. 산 자와 죽은 자,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경주는 늘 나를 매료시키고, 내게 영감을 준다. 환상과 영감의 샘물인 경주와의 조우는 작가로서 행운이지만 정신의 고향을 갖게 되었으므로 한 자연인으로서도 행복한 일이다. 누구와의 만남이 내 인생에서 필연이었는지는 말하기 힘들지만, 경주와의 만남은 그래서 필연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내게 경주는 청마 백일장과 목월 백일장이 열렸던 곳이다. 까까머리 학창 시절에 포항역에서 기차를 타고 경주역에 내려 의기양양하게 백일장에 참가하곤 했다. 요즘엔 불국사가 좋아졌다. 특히, 비에 젖은 석가탑과 크고 작은 돌탑들을 좋아한다. 황남동에 ‘소소밀밀’ 그림책방과 서악동에서 ‘시인의 뜨락’을 운영하는 부부 시인을 좋아한다. 동리목월문학관 특강에서 만난 경주의 엄마, 아빠들과 아이들을 좋아한다. 월포, 칠포, 구룡포, 양포도 좋지만 경주 감포를 더 좋아한다. 경주 남산 능비봉 오층석탑을 좋아한다. 적다 보니, 내게도 경주는 필연적인 장소다.내년에 직장을 옮기는데,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는 경주로 갈 운명인가보다.

2020-05-31

태극기 안녕하십니까?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보훈의 달이다. 호국영령들에 대해 머리를 숙인다. 그들의 넋을 기리며 애국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의무감은 산자들의 몫이다. 애국하면 떠오르는 상징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목청껏 부른다. 끓는 심장을 싸고 있는 유니폼 상의 태극마크를 감싸 쥔다. 대형 태극기가 물결처럼 출렁이고 관중석 함성은 하늘을 찌른다. 국가 간 축구대항전 식전의식이다. 군악대 팡파레가 울려 퍼진다. 양국 국기를 곧추 세운 의장기수단 옆을 지나간다. 태극기를 향해 방문 귀빈이 왼쪽가슴에 손을 올려 경의를 표한다. 순국한 국군장병의 관(棺)을 붙들고 오열하는 유족을 바라보는 동료장병들의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그의 남은 체온을 조금이라도 더 지키려는듯 관을 감싼 태극기의 작은 몸부림이 함께 한다. 캐네디 공항 상공을 휘감아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가 활주로를 따라 움직인다. 환영인파를 향하여 기체를 돌리는 대통령 전용기 태극마크가 이국땅에서 점점 더 크게 보인다. 반도강점 원흉들을 향하여 도시락 수류탄을 투척한다. 가슴 속에 숨겨둔 태극기를 꺼내 펼쳐든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대한민국의 상징, 태극기 활약상이다. 나라의 상징인 국기의 의미는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아도 모두들 잘 알고 있다. 학창시절 태극기 그리기 숙제는 지루하고 힘든 일이었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애국심이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다른 숙제는 빠뜨리더라도 놓치지 않고 했던 것 같다. 주입식 애국교육 탓인지 아직도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노라면 가슴 한 곳이 찡해진다. ‘국뽕’(애국심 발현을 마약에 취한 것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다) 꼰대라고 빈정거림을 당해도 어쩔 수 없는 세대다.학교에서 제대로 된 태극기 교육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건국시기를 두고 이념의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상징물에 대한 재해석 의견들이 분분하다. 광화문 광장을 매주 메꾸며 집회를 하시는 분들의 단체명에 태극기가 들어갔다. 특정 부류로부터 태극기가 마치 혐오도구로 기피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든다. 일부 극단적인 부류에서는 태극기를 분단의 상징물로 여기는 것 같다. 그 자리를 한반도 지도가 새겨진 ‘한반도기’가 통일 대한민국 국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듯하다. 하지만 아직도 155마일 휴전선을 두고 남북의 총구는 서로를 겨누고 있다. 군사분계선을 지키는 국군장병의 팔뚝엔 태극기 휘장이 그의 조국수호 의지를 받쳐주고 있다. 이념의 갈래 속에 태극기가 애증의 대상물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코로나로 광화문 집회에 등장했던 태극기가 장롱 속으로 잠시 들어갔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장롱 속 태극기가 나올지 모른다. 장롱 속에서 그의 마음이 안녕했을지 모르겠다. 현충일은 조기 게양 날이다. 마치 일제강점과 분단 조국의 슬픔에 겨워 깃대 맨 끝까지 못 올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산자들이 더이상 태극기의 안녕을 흩트리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 초대형 태극기가 하늘을 찌를듯 국기봉에 매달려 힘차게 휘날리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0-05-31

국민을 위한 적극 행정…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곽용환고령군수올해 본격 추진되고 있는 정부의 ‘적극행정 정책’이 공직사회에 자발적 자세와능동적 사고의 바람이 되어 다가오고 있다.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공복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정문화를 지칭하는‘적극행정’은 공직자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나, 아직까지도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대표되는 공직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우리 스스로 겸허히 반성하고 풀어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소극행정 혁파, 적극행정 공무원 책임 면책, 우수 공무원 선발 및 인사상 우대조치를 담고 있는 적극행정은 시대적 소명으로서 국민 모두가 체감할 수 있도록 공직사회 구석구석, 국민의 삶 곳곳에 퍼져 나가야 하며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다가와야 하는 순리와 같은 일이기도 하다.우리 고령군에서도 정부정책 추진을 기회로 삼아 적극행정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다양한 정책을 시행·보완하여 공직사회에‘적극행정’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나가고 있으며,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적극행정은 우리 국민의 아픔을 보듬어 안고 함께 나누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우리군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상황을 맞아 경제 살리기 비상대책 TF 팀을 구성하여 군민 생계 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대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예비비 등을 포함한 예산 92억원을 신속 투입하여 중소기업·소상공인 정책자금 지원, 피해업종 긴급지원, 취약계층 긴급 복지 등의 정책을 차질없이 수행해 나가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특집판 대가야소식지 발행, 경제활성화를 위한 긴급 제안 실시 및 선정, 전국 최초 드라이브 스루 농산물 판매, 전 군민에게 마스크 및 손소독제 배부, 대구·경북 최초 제로페이 연계 모바일상품권 도입 등 우리사회에 어둡고 짙게 드리운 코로나19의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규제를 개선하고 절차를 간소화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적극행정 정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아직 긴장의 끈을 놓을 단계는 아니지만 우리군 인접도시에서 신천지 사태 등으로 확진자가 수백수천 단위로 늘어날 때 집단시설의 신속한 코호트 격리 조치와 관리직 직원 200명 전원에 대해 군비를 투입하여 검사를 진행하는 등 선제적 방어망을 구축하고 코로나 확산 차단에 적극 매진한 결과 현재 우리군에서는 지난 4월 2일 미국 유학생을 마지막으로 확진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그동안 정부의‘사회적 거리두기’방역체계에서‘생활 속 거리두기’체계로 일부 완화되고 어느정도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되는 현 상황에서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우리 국민의 삶을, 그리고 군민 모두의 경제적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며 철저한 방역체계를 유지한 채 경제를 살리는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도출되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구체적인 방안의 중심에는 적극적인 공직자의 자세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우리 마음속 소명의식처럼 공직자 모두가 선봉에 서 주기를 주문해 본다.분명, 아직까지 코로나19가 드리운 지역경기 침체의 그늘이 깊은 것이 사실이나 “구내식당 운영을 중단한 채 외부식당을 이용하여 외식업 살리기에 앞장서고 급여 일부를 떼 고령사랑상품권을 구입하여 관내 농산물 소비 등에 적극 앞장서고 있는 고령군 공무원의 모습은 모범적인 지역경제 활성화 사례”라는 어느 군민의 고마운 말씀처럼 우리 공직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국민들에게는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어두운 터널일수록 그 끝에는 언제나 밝게 빛나는 햇살을 머금고 있기에 고령군정을 책임지는 군수이자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군민 행복을 위한 적극적인 행정 추진의 선두에 서고자 한다. 아울러, 오늘 우리가 뿌린 새로운 희망과 도약의 씨앗이 행복의 열매로 다가 올 그날을 위해 600여 고령군청 공직자들과 함께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고령군의 내일을 위한 약속! 적극행정은 시대적 소명으로서, 우리 공직자 모두의 삶에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다가와야 하는 순리와 같은 명제임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하며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2020-05-31

기억의 향기

한 자리에서 몇 십 년 음식 장사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골이 많이 생길 때까지 지치지 않아야 하고, 제대로 된 맛을 유지해야 하고, 무엇보다 주인장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그 자리를 지켜야 가능하기 때문이다.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초심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30년 동안 커피를 내려온 가게가 있다. 포항 죽도시장 가까이 상가들이 어깨를 맞댄 거리에 아담한 양옥 한 채가 얌전히 앉았다. 붉은 장미넝쿨을 울타리에 얹고 ‘아라비카’라는 동그란 명찰을 마당가에 세워놓지 않았다면 손끝이 매운 주인이 정원을 잘 꾸며 놓은 가정집으로 보일 뿐이다.가게로 오르는 계단참에는 분홍낮달맞이가 도란거리고, 한 발 올라서니 벌이 열심히 꿀을 따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문지기처럼 지키고 섰다. 하얀 꽃이 미리 진 곳엔 작은 열매가 달렸고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열매가 빨갛게 익은 또 한 그루가 손님을 맞는다. 커피나무였다. 나무를 보고 예뻐서 카운터에 선 주인장에게 직접 키운 것이냐 여쭈니 ‘저 혼자 컸지요.’ 한다. 1991년에 카페를 시작할 때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냐는 질문에도 ‘그냥 먹고 살려고 했지요 무슨 큰 뜻이 있었을까요, 하다 보니 좀 더 좋은 맛을 내려고 커피에 대해 공부하게 되고 원두도 직접 골라서 로스팅 하는 법도 배우다보니 지금껏 하고 있다’고 했다.실내는 30년 전 처음 찾았을 때 그대로다. 살림집으로 지은 지 10년 된 건물에 유리창만 달아내 가게를 열었다. 그 후 30년이 지나도록 벽지만 가끔 새로 할 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다. 벽지도 다시 찾아온 손님이 생경해하지 않도록 비슷한 분위기로 한다는 말에 아, 이런 것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구나싶어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카운터 옆 박스형 코너에는 커피를 드립 하는 남자 그림이 걸렸다. 주인장을 그린 그림 같다고 했더니, 서울에 사는 여대생이 잡지에 인터뷰한 모습을 보고 커피로 그림을 그려 보내왔더란다. 마음이 담긴 선물이라 걸어두고 본단다. 그러면서 ‘이 박스가 뭔지 아시죠?’라며 되묻는다. 자세히 보니 지역번호가 표시된 전국지도가 붙었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공중전화박스였다. 머지않은 과거에 이곳에 줄을 서서 오지 않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8282라고 삐삐를 쳤었다. 공중전화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없애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어서 우리를 그 기억속의 그날로 데려간다.마침 스피커에서 ‘I love coffee, I love tea’가 울려 퍼졌다. 갈색 진한 커피향기도 따라 울렸다.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예쁜 정원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자릴 잡았다. 안주인이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몇 쪽이나 될 만큼 다양한 커피와 티 종류라 취향에 맞는 커피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카페인에 약한 나는 순한 맛으로 골랐다. 요즈음 대부분의 카페와 달리 이집에서 손님은 마냥 제자리에서 수다만 떨어도 커피를 가져다준다. 아주 매력적이다.김순희수필가커피를 내리는 사이 추억여행을 했다. 오래전 같은 자리에서 소개팅을 했다는 L양, 서울에서 포항으로 출장 온 아가씨를 이곳으로 데려와 점수를 딴 K군. O양은 늘 커피 값을 내고 거스름돈으로 교회헌금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빳빳한 새 돈을 은행에서 바꿔와 나가는 손님에게 봉투에 고이 넣어 건네주는 이집만의 좋은 풍습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되도록 새 돈으로 거슬러주려고 한다며 금고에서 꺼내 보여주는 모습에 변함없는 친구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안주인이 내려 준 커피 맛도 변함없다. 나오는 길에 박물관을 방문한 듯 로스팅한 ‘브라질 파젠다 프로그래소’ 알갱이를 기념 굿즈로 샀다. 천장까지 닿아 붉은 커피콩을 한껏 달고 있는 나무가 부러워 묘목 한 그루도 샀다. 다 익은 콩을 심어서 50여일이 지나야 싹이 튼다는데 2년의 시간을 간직한 녀석으로 골라 업어 왔다. 한 잔의 커피와 한 그루의 나무를 안겨준 카페 아라비카는 우리의 청춘이 묻어있는 곳이다.

2020-05-31

코로나 인재상

얼마 전 미국 고교에 재학 중인 한인 여학생이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에 동시에 합격해 교민사회에 화제가 됐다. 그 여학생이 특별하게 공부도 잘했지만 뉴스의 초점이 된 이유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항상 안내견을 데리고 다니는 그녀는 주변의 축하 소식에 대해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서 세상에 ‘긍정의 힘’을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그녀에게 긍정의 힘이란 시각 장애라는 신체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룬 성과를 말한다. 긍정이란 말은 “사실대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말은 시각장애를 불평등하다거나 차별로 인식 않고 있는 대로 받아들이면서 극복했다는 뜻이다.사람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컵 반잔의 물을 보고 ‘물이 반 컵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람이 있나하면 ‘반 컵이나 남았네’ 하는 사람도 있다.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다. 현실을 희망적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삶도 좋은 쪽으로 흐르게 된다는 것이 긍정적으로 보는 삶의 관점이다.긍정이 나쁜 것도 무조건 좋게 받아들이자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긍정은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수긍하고 다른 방법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긍정적 사고방식’의 저자 노먼 빈센트 필은 “작은 생각의 차이가 성공적인 인생과 행복을 약속한다”고 했다.한 취업 포털에서 불황기에 필요로 하는 인재상에 대한 조사를 벌였더니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긍정적 인재상’을 최우선으로 손꼽았다. 평소 가장 많이 선호했던 ‘성실한 인재상’보다 앞섰다고 한다.코로나19로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자 기업의 인재상도 불황 극복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5-28

끝나지 않은 대통령의 비극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이나라에서 대통령을 지낸 이들의 운명은 왜들 이럴까. 정치부 기자로 30여년을 지냈지만 이런 생각이 들때면 마냥 서글픈 마음이 든다.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은 광복 이후 11년 동안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내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의 국제적 승인, 농지개혁, 초등교육 의무교육,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대대적인 학교 건립, 평화선 선포 등과 같은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동시에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독재 권력을 추구해 반발을 샀고, 결국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직접적인 계기가 돼 4·19 혁명이 일어나자,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이후 윤보선 대통령이 잠시 대통령을 맡았으나 박정희 대통령이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관권·금권선거, 3선 개헌과 10월 유신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해 독재자의 길을 걸었으며,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으로 생을 마감했다.최규하 대통령은 국무총리로 재직하다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케이스이고, 전두환 등 신군부의 압력으로 8개월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10·26 사태 이후 하나회를 통한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았고, 1980년에는 5·17 내란을 일으키고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전 대통령은 퇴임 후 1995년 후임인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구속 기소됐으며, 반란 수괴죄 및 살인, 뇌물 수수 등으로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오랜 야당 생활끝에 정권을 잡은 김영삼 대통령도 차남 김현철이 구속되는 등 끝은 그리 좋지 못했고, 김대중 대통령 역시 정권 말기에는‘홍삼 트리오’로 불린 세 아들이 모두 권력형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구속되며 큰 곤욕을 치렀다.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한 뒤 고향 봉하마을에 귀향했으나 2008년에서 2009년까지 친형 노건평 등 친인척 비리로 조사를 받다가 2009년 5월 23일, 봉하마을 사저 뒷산의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투신하는 비극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 5년이 지난 2018년 뇌물수수 및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됐고,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임기 중 탄핵된 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강요 등 18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이리저리 따져보니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은 모두 옥고를 치렀거나 옥고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생각해보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직 대통령과 주변사람들의 비리를 캐는 데 권력의 힘을 투사한다면 어떤 사람이 버텨낼 수 있을까. 명백한 개인비리는 당연히 처벌대상이 돼야겠지만 정치판에서 벌어진 잘못은 정치적인 승부 자체로 마무리짓는 것이 좋다. 그래야 대통령마다 예외없이 불행해지는 ‘대통령의 비극’을 끝낼 수 있다.현재 정치권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면주장도 아마 그런 배경에서 일게다.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2020-05-28

코로나19 마스크

그냥 근처에나 돌아다니려던 것이 나도 모르게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습관은 무섭다. 하기는 뭘 쓰려 해도, 읽으려 해도 전철 타고 철커덩거리며 앉아 가는 맛이 나쁘지 않다.그런데, 참, 마스크가 없다. 없으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약국으로 향한다. 오늘은 내 주민등록번호 끝자리 날은 아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급히 살 수도 있다고 했다.과연, 약국에서는 컴퓨터인가에 무슨 기록을 하고 마스크를 선뜻 내어준다. 사천오백 원, 세 장짜리 한 묶음이다. 다행이면서도 약간은 서운한 느낌, 왜냐하면 한 장, 한 장 따로 포장한 마스크 여는 맛이 보통 아닌 것을, 이건 세 장을 하나로 포장한 상품이다.아쉬운 대로 마스크를 확보했다. 전철 역으로 들어서며 내 심각한 건망증을 잠시 탓해 본다. 학교 연구실 책상에도 두 장이 널려 있고 집에도 또 두어 장 걸려 있고 자동차 안에도 있고 가방 안에도 있는데, 또 사버린 것이다.지하철 안은 자못 한산하다. 책을 읽으려 했는데 정작 앉고 보니 책이 유튜브를 이겨내지 못한다. 휴대폰 이어폰을 꽂고 일본 코로나19 상황에 관한 뉴스를 듣는다. 전철 안에 서 있는 사람은 없고 모두 마스크를 엄숙히들 쓰고 앉아 있다.마스크도 참 제각각이군, 하는 재밌는 생각이 난다. 연예인 마스크라나, 얼굴 전체를 복면을 쓰듯 까맣게 가린 마스크도 있고 하얀 것도 있고 하늘색 것도 있다. 헝겊 마스크 안에 필터를 갈아 끼울 수 있도록 한 제법 비싼 마스크도 있고, 한 장에 오백 원씩 그냥 마스크 흉내만 낸 것 같은 마스크도 있다.오늘인가, 어젠가부터 마스크 안 쓴 사람은 버스나 택시, 전철조차 탈 수 없게 되었다. 승차 거부가 가능하다니 말이다. 비행기도 곧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 한다던가.그래도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정은경 씨의 질병관리본부가 살신하고 있지만 어제는 쿠팡과 마켓컬리 물류센터에서도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학생들이 등교하면 더 큰 일도 일어날 수 있다.바야흐로 무산된 도쿄 올림픽 대신 코로나19 올림픽 시절. 어느 나라가 더 잘 막느냐 ‘게임’이다. 한국은 지금 수위를 달리는 중. 일본의 아베와 나팔수 언론들처럼 요행수를 바라고, 민족이 우수해서 덜 걸리고 있다는 식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다들 마스크를 썼다고 생각하니 뭔가 든든한 느낌이다. 더구나 오늘의 내 마스크는 KF94다. KF라는 말은 ‘Korea Filter’의 약자란다. 이 필터 등급은 KF80, KF94, KF99 등이 있고, KF94 마스크는 0.4μm 크기 미세입자를 94% 이상 차단해 준다는 뜻이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5-28

현대와 삼성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70년대 현대건설이 중동시장을 개척할 때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은 사원조회 때 단골로 하던 말이 있다.“사나이로 태어나서”라는 군대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를 인용하여 “건설, 조선, 자동차 같은 중장대 산업에만 현대는 집중한다. 설탕, 모직 같은 경공업은 삼성에 맡긴다”는 식으로 어떻게 들으면 삼성을 낮게 보는 발언이었다.필자가 현대건설 사원 시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던 정 회장의 모습이 생각난다. 사원들과 씨름을 할 정도로 소탈하고 전용 엘리베이터 없이 사원들과 어울렸다.반면 만난 적은 없지만 삼성 이병철 회장은 소탈한 느낌의 정 회장과 달리 깔끔한 귀족적 인상을 주었다. 삼성의 업종도 힘든 업종 보다는 쉽게 이익을 산출하는 소비자 밀착형 업종이 주를 이루었다. 그 당시에도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들었다.당시 경영학계에서는 두 그룹의 운영방식을 아주 대조적으로 평가했다.소위 ‘막 밀어대는 식’의 경영과 ‘치밀한 기획’이 수반되는 경영방식이 대조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두 그룹이 모두 성공적이긴 해도 운영방식은 달랐고 그 원인은 총수의 성격과 그리고 업종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석되었다. 실제로 현대 정 회장은 공장 후보부지를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본 후 장소를 헬리콥터 안에서 정했다는 후문도 있다. 반면 삼성의 이 회장은 이런 경우 치밀하고도 꼼꼼하게 손익계산서를 작성하였다고 한다.그런데 이런 세상이 바뀌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약 10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90년대 초 귀국하여 보니 현대도 현대전자, 반도체 등에 투자하고 삼성은 중공업, 자동차를 만드는 상황이 되었다. 90년대 이후는 사반세기를 사업구분으로 분할되던 현대와 삼성의 역할은 사업분야로는 두 그룹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두 그룹은 다방면에 진출했다.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업무용 차량으로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G90(사진)을 이용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고 한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업무 차량으로 현대차를 쓰는 것은 삼성과 현대차의 협력을 강화하는 상징을 보여 준다고 평한다.이에 발맞추어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최근 차세대 전기 자동차(EV) 사업 협력을 위해 사상 처음으로 단독 비즈니스 미팅을 했다고 한다. 양 재계 3세대의 랑데부이다. 각 그룹의 두 총수가 비즈니스 목적으로 회동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향후 양사 간 협력이 크게 기대되는 대목이다.한국재계 1, 2위인 현대 삼성의 협력은 오랫동안의 바람이다. 사실상 일본, 미국에서도 그룹의 협력은 쉽지 않은 현실에서 두 그룹의 협력은 코로나 사태로 경제적 위기를 맡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 시의적절하다.포카전이나 연고전처럼 현삼전을 매년 하면 어떨까? 뭐 그런 엉뚱한 생각도 들어간다.

2020-05-28

찔레꽃이 피어서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찔레꽃이 한창이다. 입춘 무렵 매화에서 출발한 꽃들의 릴레이가 진달래, 벚꽃, 복사꽃, 아카시아꽃에 이어 찔레꽃이 배턴을 받았다. 밤꽃과 싸리꽃이 저만치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같이 피는 다른 꽃들도 많지만,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내겐 아무래도 앞에서 꼽은 꽃들이 대표주자 인 것 같다. 흔히들 이맘때를 장미의 계절이라고도 하지만 내게는 그보다 찔레의 계절이다. 꽃의 여왕이라는 장미의 화사함보다 찔레꽃의 소박함이 더 내 정서에 친근하게 와 닿는다.찔레꽃이 필 때쯤이면 뻐꾸기가 울기 시작한다. 봄부터 울던 산비둘기가 목이 쉴 때, 초여름 숲의 침묵을 깨뜨리고 뻐꾸기소리가 터진다. 이른 봄부터 숲이 품어온 적막의 유정란이 마침내 부화를 한 것이랄까, 뻐꾸기소리에는 어딘가 적막의 유전자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이맘때쯤 뻐꾸기소리가 없다면 초여름의 숲이 아무리 무성해도 무성영화처럼 답답하고 찔레꽃 향기조차 숨 막힐 것이다. 뻐꾸기소리와 찔레꽃은 한 쌍인듯 잘 어울린다. 초여름의 짙어가는 녹음 아래서 찔레꽃 향기를 맡으며 뻐꾸기 소리를 듣노라면, 슬픔도 아픔도 그리움도 한 줄기 아련한 강물이 되어 흘러가곤 한다.찔레꽃은 우리네 누이들을 닮았다. 보릿고개 막바지에 피는 찔레꽃에는 먼저 간 누이의 냄새와 미소가 들어 있다.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퍼서 목 놓아 울었다는 소리꾼 장사익에게도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해 도시로 나간 우리네 누이들은 가발공장이나 봉제공장의 공순이가 되거나 시내버스 안내양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유흥업소에 팔리기도 했다. 하루 열 몇 시간의 고된 노동의 대가로 받은 몇 푼의 돈을 아끼고 아껴 고향집으로 부치면 그것이 동생들의 학비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찔레꽃 핀 길을 누나는 떠났네/ 동생들 남들처럼 공부시키겠다고/ 서울로 떠나간 지 석 달 만에/‘좋은데 취직해서 몸성히 잘있단다’/ 적어 보낸 편지에도 소액환에도/ 찔레꽃 냄새가 묻어있었네//중략//고등학교를 마치던 해 어느 봄날,/ 작은 보퉁이 하나로 돌아온 누나는/ 철지난 꽃잎처럼 시들어 갔네/ 기미와 황달로 누렇게 뜬 얼굴에/ 아침마다 새하얗게 분화장을 하고는/ 나를 보고 쓸쓸히 웃어주던 누나// 누나가 묻혀있는 뒷산 언덕엔/ 해마다 오월이면 꿈결처럼 새하얗게/ 분화장한 얼굴로 찔레꽃이 피어/ 흐드러지게 흐드러지게 분냄새를 날리고/ 저승의 기별인 양 적막하게/ 온종일 뻐꾸기가 울고 있었네” - 졸시 ‘찔레꽃’꽃과 잎에 가려진 가시처럼 아픈 기억은 속으로 감추고, 오늘은 환하게 찔레꽃이 피었다. 활짝 핀 찔레꽃 덤불 가득 벌들이 잉잉거려 한바탕 흥겨운 잔치마당이다. 상다리 휘도록 흐드러지게 차려놓고 바람 편에 사방으로 향기 전단 뿌리고 뻐꾸기 악사가 벌써 흥을 돋우고 있다. 삶이란 한바탕 축제가 아니냐고, 벌 나비 모여들어 무르익은 잔치 마당에 초대를 받고 가서 나도 그득하게 한 상을 받는다.

2020-05-28

인간적인 붓다

탄탄 스님 포항 운제산 자장암 감원 중앙승가대 강사유럽의 불교학자들은 역사적 붓다를 인간적 존재로 보는 경향이 농후했다.붓다가 되기 전 고타마는 그의 재세 시대에서 무한하면서 초월적인 존재로 체현된다.신화와 우상화가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참답고 실다운 인간미 넘치는 분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완벽한 분이었고 절대적 경지에 이른 성인을 인간적 관점의 붓다로 조명하려는 까닭은 신과 인간이 종속적 관계인 주종관계임을 철저하게 부정하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신의 노예인 인간이 해탈하여 신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상세하게 일러주신다.세상의 모든 지식이 눈깜짝할 찰나의 시간이면, 검색이 가능하며 인공지능을 삽입한 로봇에게 인간능력의 수백배를 부여하고 그 역할을 주어 기능하게 하는 것을 보면, 눈부신 과학문명 사회에서 이제는 인간이 거의 신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였다.그러나 이렇게 최첨단 문명 속에서 살던 인류가 어느날 창궐한 전염병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속수무책이다.역시 인간은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돌파하고자 죽음 앞에서는 늘 두렵고, 내세를 기약할 수밖에….깨달음을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는 삶을 곧 완성된 인간인 붓다라고 한다.미완성의 인간이 중생이라면 자기 절제와 수행을 바탕으로 완성된 붓다를 이루는 것이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초기불교의 관점에서 초월적이고 절대적 존재로 붓다를 부각했고 이후 대승불교권에서는 붓다를 더욱 신격화 하는 경향이 농후했다.붓다재세 시 그 이후에도 무한하고 초월적인 것을 선례가 없는 방법으로 체현했고 붓다 설화에서 주목하는 것은 언제나 ‘진실’이었다.무조건적인 신격화 보다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이었던 붓다의 삶에서 인류가 신과 인간의 종속적인 관계에서 해방되고 인류사에서 가장 휴머니즘에 입각한 종교를 창시한 것이 불교이다.중생이 살고 있는 이땅은 오염된 ‘예토’이다.중생의 업보로 정결치 못한 예토에서 정결한 정토를 지향하는 불자는 늘 나무 아미타불을 염송하기도 하는데, 이는 ‘정토’라 하여 아미타불의 주불인 서방정토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서방정토를 포함해 타방(他方)에 존재하는 모든 불국토를 포괄하고 있기에 죽어서 가는 극락이 결코 아니다.현세의 예토를 정토로 바꾸고 금생의 지극한 환희와 기쁨의 세계가 극락이며 불교도 믿음을 출발점으로 하지만 이교도에 비하면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할 뿐.절대적인 신과 주종관계이고 죽어야만 가는 천국의 세계가 아닌, 현세의 극락을 지향하여 금생의 예토를 현세에 정토화 하는 것이 불자의 당면과제이다.

2020-05-27

하얀 오월

강길수수필가마르첼리노….오월을 어떻게 지내고 있나. 삼월인가 했더니 눈 깜짝할 새 사월이 가고, 오월도 하순에 접어들고 있다. 연녹색 나무가 순식간에 신록으로 변해 눈앞에 넘실댄다. 자연은 예나 다름없이 묵묵히 제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나의 오월은 어디를 걷고 있는지 헷갈린다.가만히 올봄을 되돌아본다. 내 봄은 별과의 만남으로 시작되었지 싶다. 춘분이 한 달가량 남은 날이었지. 가로수 보호대 사이를 비집고 올라와, 사뿐히 내려앉는 별을 보듬고 세상을 비추는 새 생명을 만난 거야. 대낮 땅바닥에서 하얀 별빛을 온 누리에 비추는 앙증스러운 존재, 바로 별꽃 말이야. 삼월이 되자 벚꽃에게 자리를 양보한 듯 보였지만, 낮은 곳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별이었다.마르첼리노.환하게 거리를 밝힌 벚꽃을 사열(査閱)하는 멋도, 그 아래 보도를 걸어보는 행복도 올핸 누리지 못했다. 코로나19의 위력에 짓눌려, 엄두도 못 내다 드라이브 스루 한 번으로 만족해야 했거든. 화무십일홍이라 하듯 벚꽃의 화사함도 요정처럼 사라져 버리더구나. 뒤이어 줄 서서 피어난 조팝나무꽃이 사월을 밝히기 시작했지. 공조팝나무에 탐스러운 등불이 켜지고 덩달아 산조팝나무도 신록 사이에서 등대같이 빛났다. 하지만 무심한 나는 별빛도, 등불도, 등댓불도 느끼려 하지 않았다. 그사이 계절의 수레는 나를 두고 오월로 도망치고 말았지. 사람들이 마스크를 낀 채, 다른 이를 피하며 총총 지나가는 출근길 모습을 만나며 걷던 오월 어느 아침이었어. 문득, 하늘을 쳐다본 내 눈에 이팝꽃이 하얀 신부(新婦)처럼 달려드는 게 아니겠나. ‘아, 벌써 이렇게 되었어!’ 혼잣말을 되뇌며 반갑게 쳐다보았지. 그러고 보니 ‘하루에 한 번은 하늘을 바라보자’던 그 옛날, 한 문우와의 다짐도 잊고 살아온 게야.마르첼리노.하얀 오월이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이팝꽃 앞에서 하얀 오월을 알아채게 된 게야. 삼월에 활짝 핀 하얀 별꽃에 이어 조팝꽃들과 이름 모르는 꽃들이 하얀 사월을 밝게 비추어주었지. 하지만, 내 눈엔 사람들의 하얀 마스크만 들어 올 뿐이었어. 무딘 마음이 하얀 삼, 사월을 외면한 게지. 왜 한눈에 모든 것을 알아보지 못할까. 정말 육신의 눈은 마음이 함께 하지 않으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인가.올봄, 이곳엔 줄곧 하얀 이팝꽃이 유난히도 많고 탐스럽게 피어났다. 철길 숲은 물론, 고속도로 진입 가로, 터널 앞의 고속도로 분리 화단, 고향 가는 국도변에도 하얀 꽃들이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어. 그 옛날 보릿고개 시절, 사람들은 이팝꽃을 보며 배고픔을 달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간직한 꽃. 아이러니하게도 보릿고개를 물리친 지금, 사람들은 더 많은 이팝꽃을 만난다.마르첼리노.하얀 방호복의 전사(戰士)로 무장한 방역진과 의료진…. 코로나19 방역과 치료의 전선(戰線)에 출전하여, 고군분투하는 그들 모습이 일상으로 스며든 봄을 살아온 우리들. 왜 올봄은 하얀 오월이 끝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보일까. 백의민족이라도 다시 일깨우려 함인가. 혹시, 우리가 백의민족의 혼을 잃기라도 한다는 하늘의 계시란 말인가. 거짓과 선동에 찌들어, 불의와 정의를 식별하지 못하고 생활의 불안에 내몰려 사는 동안, 조상들이 섬겨온 하늘과 땅을 멀리한 것은 아닌가. 나, 너 할 것 없이 우리 사회는 하얀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는 두려운 생각이 가슴을 짓누른다.곳곳에 장미꽃이 붉은 얼굴을 한껏 열어젖히고, ‘그대 내게 와서 사랑의 오월을 누려보라’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삼월과 사월을 관통한 하얀 오월은 침묵과 외면, 무시와 강행의 카르텔을 덮어쓴 장미의 유혹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물러서지도 않는다. 뒤이어 피는 하얀 찔레꽃과 하얀 꽃들이 쏘는 푸른 레이저광선이, 장미 아가씨의 삿된 유혹에 취할 때가 아니라고 일깨워 주고 있기에…….하얀 오월은, 잃을 수 없는 너와 나의 희망이다.하얀 오월은, 잃을 수 없는 너와 나의 희망이다.

2020-05-27

사념이 없어야

아침마다 음악과 시를 전송해주는 지인이 있어요. 연세도 많은 분이 어쩜 그리 한결 같으신지. 처음엔 송구한 맘에 의무적으로 클릭을 했지만, 요즘은 늦잠을 완벽히 깨우는 마법의 음료수로 삼고 있어요. 눈을 뜨면 습관처럼 찾곤 하지요. 누군가의 수고로 제 하루의 시작이 신선합니다.오늘은 황지우 시인의 ‘겨울산’이 배달되었어요.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 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몸은 부스스한데 정신이 버쩍 듭니다. 짧은 시지만 통렬하게 뜨끔합니다. 칼럼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습니다. 시인의 일갈처럼 인간은 사색이 많아 괴로운 기회주의자들이죠. 그 출발점은 욕망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평범한 우리들에게 욕망 없는 만족이 있기나 할까요? 욕망은 인간의 숙명적 굴레예요. 하느님이 그렇게 만들었으니 욕망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에요. 거기에서 파생하는 수많은 ‘사색’이 문제인 거지요. 사념덩어리는 욕망하는 행위의 필수불가결한 부산물이에요. 그것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 욕망을 좀 더 건전하게 가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상념, 그러니까 어떤 판단이나 계산 같은 것들은 욕망이 누는 똥이에요. 그것은 필연적으로 괴로움을 수반하지요. 내가 기회주의자일 때 파생된 잡념들이니까요. 사색만 버릴 수 있다면 욕망 자체는 부끄러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사념이 많다는 건 유리에 갇힌 파도 같은 상태를 말합니다. 휘몰아치고 넘실대지만 자연스러운 게 아니니 제 안을 넘지 못합니다. 신선하지도 그렇다고 파란을 일으키지 못하지요. 끝내 해안선에 닿지 못하고 번뇌의 유리통만 되풀이해서 철썩일 뿐이지요.순수하니 몰염치해도 사랑스럽고 간절하니 맹렬해져도 용서가 되는 게 욕망이에요. 나아가 성취하면 오만해지는 것도 욕망의 속성이에요. 군자가 못 되는 대다수의 우리는 그렇게 욕망하면서 살아가지요. 욕망의 인간적인 면모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한 바퀴만 돌리면 다음과 같은 지점에 이르게 됩니다. 완벽하게 성숙하면 겸허해지는 것 또한 욕망이라는 것에요. 성숙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 사색을 버리는 일이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지요.쓸데없는 사색을 부려 놓기 위해 길을 나섰어요. 외곽지에서 폐차장을 만났습니다. 층층이 쌓인 껍데기들이 허공 속에 누워 있습니다. 차를 세우고 한 컷을 얻습니다. 탐욕의 끝자락이 저 쨍한 하늘자리에 걸려 있습니다. 한 때 도로를 누비던 부질없었던 영광이 낡고 부스러진 사념덩어리로 켜켜이 쟁여져 있습니다. 위태로운 사색의 끝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마음의 짐을 덜려다 더한 마음의 짐이 생깁니다. 사특한 욕망이야말로 끝내 허망의 탑 쌓기와 다르지 않음을 알겠습니다.인간은 근본적으로 ‘홀로쟁이’입니다. 어느 프로파일러의 말이 생각납니다. 사람에게서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고. 그래서 매체로는 동물의 왕국만 본다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생각에 동조할 때가 있습니다. 쌉싸름한 희망보다 달콤한 비관이 가슴을 지배하는 그런 날이 가끔 있잖아요. 그래서 누구나 외롭고 누군가는 고독을 즐긴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외로움과 고독 구별법, 사전적 의미와는 무관하게 저만의 풀이를 달아봅니다. 감성적 에너지로 자신을 갉으면 외로움이에요. 한마디로 괴롭지요. 그 자리에 창조적 에너지를 쏟으면 고독이 되는 거지요. 견딜만한 희열이지요. 어차피 무에서 시작하는 유는 없어요. 있는 유를 파괴한 찌꺼기가 신선한 창조물이 되는 거지요. 완벽에서 새로움이 생길 리 없잖아요. 새로움이야말로 기존의 새로웠음을 밟고 일어나는 뭉근한 혁명이니까요.지인의 전화기 퍼스나콘에서 이런 뉘앙스의 문구를 본 적이 있어요. ‘징징대거나 불평하지 말아요. 열심히 나아가요. 더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요. 나는 나예요. 이유를 찾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가만 읽어 내리면서 욕망이나 고독은 같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거니까요.김살로메소설가여전히 혼자 또는 소수를 강권하는 나날이에요. 코로나가 친숙한 친구가 되어가는 동안 건강한 욕망을 꿈꿔도 좋을 것 같아요. 외로움을 고독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연습도 괜찮구요. 주변을 챙기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는 게 결코 견디지 못할 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가만 자문자답해봅니다. 외로운가요? 욕망해서 그래요. 하지만 괜찮아요. 욕망은 나쁜 게 아니니까요. 다만 명심하세요. 욕망의 똥덩어리인 사념을 버려야 건강한 고독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번드르르하거나 번잡함 뒤의 공허한 잔해. 삶의 실체적 진실이 자명할수록 우리는 잘 견뎌내야 하니까요. 더한 사색이 쌓이기 전, 빨리 집으로 가야겠어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0-05-27

이번엔 잘 하려는지

장규열한동대 교수국민의 기억 속에 좋은 국회는 없다. 파행과 성토, 반목과 단절로만 회상되는 국회가 있을 뿐이다. 회기가 끝날 때마다 ‘최악의 국회’를 돌아보아야 하는 국민이 아닌가. 제헌의회가 선 지 72년이면 무르익어야 할 경륜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쯤 안심하며 국정을 맡길 만한 국회를 가질 수 있을까. 국민은 일하는 국회를 간절히 원하는데, 당신들은 당선의 영광에만 취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힘부리는 권력국회를 원하지 않는다. 압도하는 파워국회를 바라지 않는다. 군림하는 제왕국회를 그리지 않는다. 국민의 마음이 반영되길 원하고, 나라의 앞길을 밝혀가길 기대할 뿐이다.21대 국회가 문을 연다. ‘일하는 국회’를 통해서 국민은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의회의 주인은 국민이다. 링컨 대통령(Abraham Lincoln)도 ‘국민은 의회의 주인이 될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서 ‘국민의 목소리를 따르지 않는 의원은 언제라도 물러서야 한다’고 하였다. 힘없고 소외된 나라의 그늘진 곳에 어떤 기대와 소망이 존재하는지 살펴야 한다. 권력자의 오만함와 태도가 아니라 ‘친구의 마음’과 ‘가족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목소리가 없었을 국민을 챙겨야 하고 당신이 함께하여 희망이 생길 국민을 돌아보아야 한다. 오늘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지 못하면 당신은 이미 자격이 없다. 일상 가운데 국민이 겪는 어려움을 헤아려야 한다. ‘민생국회’가 되어야 한다.세상이 바뀌었다. 지난 국회는 서 있었다. 아니 오히려 뒤로 가고 있었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 앞서가는 국회가 되어주시라. 권력에 도취되어 태만한 당신은 그만 만났으면 한다. 누구보다 변화에 민감하여 오히려 새길을 만드는 국회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 국회에는 상상력과 창의가 필요하다. 기발한 생각이 넘치고 풍성한 토론이 가득한 국회를 만나보고 싶다. 변화를 읽지 못하면 혁신을 이끌어낼 수가 없다. 바뀌지 않고는 존재하기도 버겁다. 구태와 폐습을 아예 허락하지 않는 국회여야 한다. 국민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당신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있음도 명심하시라. 당신의 일상이 국민을 위한 일상임을 확인하고 싶다. ‘공부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국회는 다투는 곳이다. 생각을 겨루고 정책을 견주며 법과 제도를 가다듬어야 한다. 의견과 주장이 넘실거려야 하고 타협과 토론이 가득해야 한다. 생각의 힘이 부딪히는 마당이며 더 좋은 결론을 찾아야 하는 터전이다. 이성과 지성을 발휘해야 하며, 폭력과 고집은 내려놓아야 한다. 지난 국회에서 보았던 볼썽사나운 모습은 이제 그만 만나고 싶다. ‘품위있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국민은 목마르다. 우리의 생각과 목소리가 정당하게 전달되는 국회를 만나고 싶다. 민생국회, 공부하는 국회, 품위있는 국회가 되어 국민이 안심하는 국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새 국회에 높은 기대를 건다.

2020-05-27

인슈어테크(InsureTech)

인슈어테크는 ‘보험(Insurance)’과 ‘기술(Tech)’을 결합한 신조어로 보험산업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상품 개발, 계약 체결, 고객 관리 등 보험업무 전반에 정보기술(IT)을 융합하는 것을 뜻한다.인슈어테크가 도입되면 전체 가입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던 보험료율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다르게 적용하거나 사고 후 보상 개념인 기존 보험과 달리 사고 전 위험관리 차원으로 접근하는 서비스가 가능하다.또 보험 상담 업무도 로봇이 대행할 수 있고, 빅데이터 관리를 통한 보다 효과적인 영업과 블록체인 등을 이용한 안전한 결제 시스템 등을 구축할 수 있다.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가 도입한 인슈어테크는 크게 △IoT △빅데이터 △AI △블록체인 등으로 나뉜다.우선 보험 가입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인슈어테크 기술은 IoT다. 스마트기기로 사용자 정보를 실시간 수집·전송해 보험료 할인 등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자동차보험에서 많이 볼 수 있는‘운전습관 연계보험(UBI)’이 대표적 사례다.빅데이터를 마케팅과 계약 심사 등에 활용하는 보험사도 늘고 있다. 소비자에게 비슷한 연령·직업·소득 수준에서 많이 가입한 상품을 추천하고, 신규 계약의 사고 발생 위험을 예측해 위험이 낮으면 자동으로 계약을 받아들인다.1 대 1 채팅 방식의 AI 기반 챗봇(채팅 로봇)을 도입한 보험사도 늘고 있다. 삼성생명, 라이나생명 등은 AI 기반 챗봇으로 계약 조회, 대출 접수·상환, 보험금 청구·조회 등 업무를 연중무휴 24시간 처리한다.인슈어테크 시대의 본격화는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변화상의 한 단면일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5-27

인연에 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까까머리 학창시절 피천득의 ‘인연’은 언제나 가슴 통증으로 다가왔다. 몇 번을 읽어도 그와 아사코의 가슴 시린 사연은 익숙해지지 않는 생채기였다. 어린 아사코와 대학생 아사코, 그리고 점령군의 아내가 되어버린 아사코. 피천득에게 영화 ‘쉘부르의 우산’을 좋아하게 해준 연두색이 고왔던 우산 이야기는 지금도 코끝을 시큰하게 한다. 그와 아사코의 세 번에 걸친 만남은 악수도 없이 절만 하는 것으로 끝난다.뾰족한 지붕에 뾰족한 창문이 달린 집에서 함께 살자 했던 아사코. 하지만 그들의 인연은 허망하고 황망하다. 인연처럼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없다. 불가(佛家)에서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직접적인 원인인 인(因)과 간접적인 원인인 연(緣)을 묶어서 인연이라 한다. 대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이 관계 맺는 것을 인연이라 말한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설정과 진행 그리고 결과를 통칭해서 인연이라 한다.인터넷에 올라온 어느 무녀(巫女)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신내림으로 강신무가 된 그녀의 글은 사람을 아프게 하는 데가 있었다. 무엇보다 전생과 이생 그리고 후생에 대한 말이 그러했다. 원수지간의 전생이 부부의 인연으로 이생에서 구현된다는 말. 왜 하필 전생의 원수가 서로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해로(偕老)를 함께 하는 것일까?!붙잡아도 떠날 인연은 작별을 고하고, 아무리 험하게 대해도 남을 사람은 옆에 남는다는 글을 읽으면서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진다. 그래서 그녀는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라고 한다. 문제는 거기서 출발한다. 가려는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내가 싫은 사람 막아서는 것이 세상 사는 이치 아닌가. 마치 대각(大覺)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무연(無緣)하게 생각을 전달하는 무녀의 심사가 문득 궁금하기도 하다.사람 하나 보내는 일은 세상 하나와 작별하는 것과 같다. 사랑을 잃은 기형도가 ‘빈집’에서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하고 울먹이는 것은 공감이 간다. 그녀가 떠난 빈집의 문을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잠그는, 홀로 남겨진 시인의 고독과 황량한 내면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혼자 덩그러니 남은 사내의 어깨 주위로 켜켜이 내리는 어둠이 눈에 밟히는 듯하다.하지만 그들의 인연은 필시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의지나 욕망이 다른 사람의 그것과 충돌하고 파찰음을 낼 때, 그리하여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난파할 때 인연은 작별을 고한다.하나의 인연이 혹은 사랑이 또는 관계가 지나가면 크고 작은 흔적이 나이테처럼 생겨난다. 말 못 할 마음으로 흔적과 상처를 돌이키다 보면 그래도 다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을 채우기 시작한다. 영원한 작별 후에도 어디선가 새로운 생은 시작되는 법이므로.인연이 다한 사람 하나 보내고 한밤중 어둑한 방 그늘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다 문득 ‘인연’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 여기까지야! 어디서 무얼 하든 부디부디 행복하기를!

2020-05-27

6월 전에는 국민교육헌장을 읽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들판마다 논물이 가득이다. 자연은 인간들을 배불리 먹일 양식을 짓기 위해 마른 봄에도 물을 모았다. 물을 들인 논은 마치 정화수가 담긴 그릇 같다.이제부터 자연은 시간을 두고 그 물에 해와 달을 녹인다. 그리고 해, 달, 흙, 물이 서로를 인정하고 하나가 되는 시간을 기다려 별을 닮은 벼를 심고 지극 정성으로 기를 것이다.자연은 때를 알고 때에 맞는 일을 하기에 자연에는 억지가 없다. 자연이 제일 잘하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자연은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 기다림이 있기에 자연이 주는 결실은 부실하지 않다.자연의 시계는 소만(小滿)을 지나 망종(芒種)으로 향하고 있다.소만은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로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망종은 “벼, 보리 같이 수염이 있는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이다.“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라는 속담이 있다. 지금 들판을 보면 이들 속담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농부들은 절기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순리(順利)’를 들판에서 실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攝理)요, 이치(理致)이다.교육에도 이런 절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코로나19는 무원칙, 혼돈, 혼란 등과 같은 우리 교육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교육의 순리’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럼 교육의 섭리와 이치라는 말은? 필자는 순리, 섭리, 이치의 뜻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 말과 우리 교육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안다. 왜 그렇게 단정 짓느냐고 물으면 한마디로 답할 수 있다. “이 나라 교육 정책은 그때그때 달라요.”아 참, 필자가 잊고 있었던 것이 있다. 이 나라 교육에도 원칙이 있기는 있다, 그것도 절대적인 원칙이! 그것은 바로 성적 지상주의이다. 성적이 최고인 세상, 학생들을 시험의 노예로 만드는 학교, 그것이 이 나라 교육의 제일 원칙이다. 그 원칙이 실현되는 달이 온다. 6월이다.우리 교육도 자세히 찾아보면 교육의 순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교육헌장이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대한민국 교사들이여, 코로나보다 학교가 더 무섭다는 학생들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6월이 오기 전에 국민교육헌장을 마음으로 읽어보자! 그리고 제발 죽은 시험으로 학생을 괴롭히지 말자!

2020-05-27

사회자본과 KBS

박혁준KBS포항방송국장학창 시절에 영어 어휘를 공부할 때만 해도 그리스어로 ‘지역 혹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demic이라는 단어에 접두사 pan(모든)이 결합되어 지금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포스럽게 다가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전 세계적으로 550만 명이 넘는 확진자와 34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초래하고 있는 이 전염병으로 인해 우리나라 또한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지만 국민들과 정부의 단단한 신뢰의 기반 위에 그 어떤 선진국보다도 신속하고 정확한 조치로 초기 대응함으로써 물적자본과 인적자본 등의 총체적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 해외 유수 언론들의 대체적인 평가이다.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신뢰가 정착하여 생성된 무형의 자본을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칭하며 집단 내의 관계에 깔려있는 협동의 규범으로 번영과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코로나로 인한 전 세계적인 위기가 종식되면 적지 않은 물적, 인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 생성된 사회자본은 대한민국을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하는데 있어 공공재의 역할을 중추적으로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1961년에 개국한 KBS 포항방송국은 지역사회의 방송과 문화 발전에 매진하고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보도함으로써 공적책무를 다하는데 최선을 다해왔다. 시청자들과 KBS 사이에 형성된 신뢰 기반의 사회자본 또한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이와 같은 공적책무를 과거와는 비교불가하게 다변화된 미디어 환경 하에서 지역사회 맞춤 방송서비스로 확장하여 제공하기 위해서는 혁신과 분권의 단위를 지금보다 광역화해서 접근하고 능동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대처하는 ‘지역방송 활성화 정책’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미디어정책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러한 분권화를 통해 KBS지역총국을 거점으로 지역 뉴스 역량과 디지털 미디어 서비스를 강화하고 지역사회의 공론장 역할을 확대하며 지역 문화행사 및 미디어교육을 심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현재 방통위의 사업계획 변경 허가 심사를 앞두고 있다.이에 대해 결국 포항과 안동을 포함한 7개 지역국 폐지 수순의 일환이 아니냐는 지역사회와 시민단체의 우려의 목소리와 애정 어린 질책을 KBS는 엄중히 듣고 긍정적으로 응답하고자 본사 정책결정회의를 통해 ‘뉴스7’ 등의 참여를 위한 TV 제작기능을 지역국에 유지하는 것으로 며칠 전에 결정한 바 있는데, 이에 따라 지역방송 활성화 정책이 형해화(形骸化)되지 않고 그 진정성과 미래지향적 가치가 제도적으로 수용되기를 염원하고 있다.KBS 한국방송은 공적책무 완수를 위한 이와 같은 헤라클레스적인 노력이 시지프스적인 과업으로 끝나지 않도록 앞으로도 맡은 바 소임을 성실히 다함으로써 신뢰 기반의 지역 사회자본 형성과 유지에 기여하고, 시청자들과 인생의 동반자로서 희로애락을 함께 할 것이라는 점을 약속드린다.

2020-05-26

북한의 수령 우상화는 종식되기 어렵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수령은 북한의 최고 존엄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북한의 3대 수령승계는 봉건 왕조의 세습구조와 같다. 북한 당국은 1956년 8월 최창익·박창옥의 종파 사건 후 김일성 수령의 권위를 절대화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1959년 발간된 ‘항일 빨치산들의 회상기’에는 김일성이 항일 투쟁 시 축지법(縮地法)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1970년 북한의 초등교과서 ‘김일성 원수님의 어린 시절’에도 ‘솔방울로 수류탄’을 ‘모래로 쌀’을 만들고 ‘가량 잎 타고 강 건너’는 모습이 나타난다. 수령은 축지법까지 쓰면서 시공을 초월하여 활동한다는 허구이다.6월 20일 노동신문은 ‘축지법의 비결’에서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축지법을 이제 쓰지 않겠다.’고 선포하였다. ‘사람이 땅을 주름잡아 다닐 수 없다’고 고백한 것이다. 지난해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김정은은 ‘수령을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게 된다.’는 발언의 후속 탄이다. 30대 후반의 김정은은 10대 후반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서 2년 유학하였다. 이번 그의 발언은 수령에 대한 상징조작이 이제 과거처럼 먹혀 들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는 정보화 초기 단계인 북한 땅에서 이제 사라질 것인가.그러나 이번 조치만으로 북한의 수령 우상화는 쉽게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 곳곳에 수령의 우상화 정책이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요 광장에 세워진 수령 부자의 동상, 주요 명승지 바위마다 새겨진 김일성 어록, 심지어 가정집에도 수령의 사진은 걸려 있다. 평양 곳곳에는 ‘위대한 수령은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는 표어가 나부낀다. 아직도 수령의 양대 생일 태양절과 광명성절은 국경일이 되어 있다. 하노이 회담 후 김정은의 귀국 행사시 도로변에서 열광하던 시민들의 모습은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수령 우상화 정책은 아직도 당의 핵심적 지도 이념이 되고 있다. 수령은 인민의 ‘뇌수’이므로 당, 군대, 인민은 수령을 절대 옹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인민들의 육체적 생명은 부모로부터 받지만 수령과 결합해야 ‘정치 사회적 생명체’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어버이 수령님’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북한 주민이 수령을 직접 보는 것은 남한의 기독교 신자가 예수님을 뵙는 것과 같다. 이러한 수령론과 수령 승계론이 폐기되지 않는 한 북한사회의 수령숭배는 계속될 것이다.이렇게 볼 때 축지법은 사라져도 수령의 우상화는 계속될 전망이다. 세계 사회주의 어느 국가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수령론이 유지되는 한 수령 우상화는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학자들까지 북한의 세습 왕조체제를 비판하고 있다. 아직도 북한 세습체제까지 옹호하는 주사파들은 시대에 역행하는 군상들이다. 다행히 북한은 이미 초기 시장 경제에 편입되었다. 시장화의 진전에 따라 수령 우상화 정책은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 주민 1/3이 휴대전화를 소지하게 되었다. 정보화 사회 역시 북한의 일인수령제를 거부할 것이다. 북한의 수령제가 폐기 될 때 우상화 현상은 훨씬 약화될 것이다.

2020-05-26

비슷하나 같지 않은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어, 이상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구절인데….? 이 시구는 박인환이 1956년 봄에 지은 ‘세월이 가면’의 한 구절이다. 그런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는 박인환과 이름도 비슷한 가수 박인희가 부른 노래 ‘세월이 가면’의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으로 남아있을 것이다.훤칠한 키, 잘생긴 얼굴의 박인환은 당대 문인 가운데서 최고의 멋쟁이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서울에서 줄곧 자라고 살았던 ‘명동 댄디보이’ 박인환의 문학관이 강원도 인제 산골에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기까지 하다.(그가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났기에 인제군이 연고권을 주장하고 문학관을 지은 근거는 충분하겠다.)1926년에 태어난 그는 1956년 3월에 서른을 갓 넘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 출중한 외모에다 20대 초반인 1949년에 5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여 모더니즘의 기수로 주목받았던 박인환의 요절은 문단을 포함한 당대 예술계에 큰 울림이 있었나 보다. 그가 세상을 뜨기 일주일 전 쯤 썼다는 시 ‘세월이 가면’은 곧바로 노래가 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박인희의 노래로 알려진 ‘세월이 가면’은 박인희가 처음 부른 노래가 아니다. 1956년 여름 신신레코드사에서 발매된 나애심의 음반을 시작으로 현인, 현미, 조용필에서 박인희까지 이 노래는 당대 최고 가수들의 목소리로 이어졌다.노래로 불리면서 처음 시의 ‘사랑은 가고’가 ‘사랑은 가도’로 바뀌었고, ‘과거’가 ‘옛날’로 달라졌다. 시와 노랫말이 똑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노래의 운율에 맞추어 몇 구절이 빠질 수도 있고, 조사나 어미 한 두 개쯤은 바뀔 수도 있다. 문제는 바뀐 노랫말이 마치 원래의 시인양 전도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데에 있다.‘사랑은 가고’를 ‘사랑은 가도’라고 바꾸어 노래를 불러도 되지만, 원래의 시는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 ‘가고’와 ‘가도’는 확연한 의미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김소월은 그의 시 ‘왕십리’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여드레 스무 날엔 / 온다고 하고 /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이 시에서 ‘가도 가도’를 ‘가고 가고’로 바꾼다면 소월이 노래하고자 했던 왕십리의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과거’와 ‘옛날’도 그렇다. 지나간 시간이라는 큰 테두리는 같을지언정 풍기는 뉘앙스, 그 느낌은 같을 수 없다. 2002년 공쿠르 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옛날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사랑에 빠질 때마다 우리의 과거는 바뀐다. 소설을 쓰거나 읽을 때마다 우리의 과거는 바뀐다…. 과거는 바꿀 수 있지만 옛날은 바꾸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과거와 옛날은 다르다는 말이다.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의 기억은 점점 흐릿해진다. 기록으로 남겨놓아도 그 기록을 옮기고 전하는 과정에서 변형과 왜곡이 일어나는 것이 다반사이다. 역사의 정확한 기록은 그래서 중요하다.사이비(似而非)에 주의하자. 종교에만 사이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비슷하다고 같은 것은 아니다.

2020-05-26

뉴욕타임즈

‘뉴욕타임즈’는 뉴욕에서 발행되는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다, 1851년 창간된 이 신문은 세계적으로도 전통 깊은 유력지로 손꼽힌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기사와 논평 등은 지금도 많은 외신들이 인용, 보도하고 있다.신문 산업이 첨단 미디어 산업의 발달로 그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세평에도 신문의 전통을 꾸준히 이어가는 세계적 유력지란 점에서 주목받는 신문이다. 신문 산업의 쇠퇴 속에서 뉴욕타임즈가 명성을 이어가는 이유는 다름 아닌 뛰어난 취재력과 정확한 보도 때문이다.1912년 4월 타이타닉호 침몰사건 때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다각적인 취재보도를 해 신문사의 권위를 높였던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다. 또 세계대전 때도 신속 정확한 보도로 명성을 날렸다. 강대국 미국 내 최고 일간지라는 이유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신문사 자체의 보도내용만 놓고 보아도 권위가 있을 만하다.주로 미국인에게 수여되지만 퓰리처상만 100회 이상 수상했다. “인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뉴스다”는 사시에서도 신문 매체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최근 뉴욕타임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망자 1천명의 이름과 짤막한 부고로 가득채운 기발한 내용의 1면 기사를 내보내 화제를 일으켰다. “미국 사망자 10만 명 육박 막대한 손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숨진 그들이 바로 우리였다”는 말로 코로나 희생자 추모와 코로나 피해의 심각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알리려 했다.빌게이츠는 지구가 망할 때까지 살아남을 유산 중 하나로 신문을 손꼽았다. 비록 뉴미디어의 공세에 떠밀리고 있지만 신문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기획한 뉴욕타임즈의 기자정신이 놀랍다. 우리 언론이 본받을 타산지석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5-26

잘 회복하는 아이로 키우기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인생을 사는 동안 한번쯤은 좌절이나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다. 부모는 자녀가 좌절이나 트라우마를 피할 수 없어서 겪더라도 쉽게 이겨내고 회복하기를 바랄 것이다. 본 지면에서 잘 회복하는 아이로 키우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탄력성이라고 한다. 선천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이거나 유전인자 때문에 탄력성을 갖춘 경우도 있지만 후천적으로도 기를 수 있다. 탄력성을 키우는 방법 중 하나는 일상생활 속에서 아이들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문제가 생겼을 때 직접 문제를 해결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과 정보를 찾아보고, 문제를 해결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경험을 하다보면, 훗날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효율적으로 문제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장난감을 두고 싸움이 생겼다면 어른이 그 장난감을 제거해버리는 것보다 어떻게 장난감을 갖고 놀 것인지 아이들과 함께 대안을 찾고 실행해보며 그 대안을 아이들과 함께 평가해보길 권한다. 문제 해결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아이들은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낙관성 훈련도 필요하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괜찮아. 나도 처음에는 잘하지 못했어.”, “뜻대로 안되어 속상하구나. 다시 천천히 해볼까?” 등 상황에 적절한 해석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예전 칼럼에서도 강조한 바, 언어는 습관이어서 우리 어른들도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미국 심리학자 에미 워너는 하와이주 카우아이섬에서 열악한 상황의 아이들 201명을 추적조사를 해보니 삼분의 일이 잘 적응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들이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잘 적응하는가?”가 궁금하여 살펴보니, 아이 인생에서 아이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어른이 부모일 수도 있지만 조부모나 기타 친지, 선생님일 수도 있다. 탄력성은 아이가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내용이다.아이 인생 전체에 걸쳐 필요한 자산인 탄력성을 키워 주자.내게는 결코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있다. 인생이 책이라면 그 페이지만큼은 찢어버리고 싶은 시간도 있다. 종교에 의지해서 인생의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왔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배운 것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완전무결한 선(善)이라는 것과 앞으로 남은 삶은 이전의 삶보다는 더 나빠질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 에미 워너의 연구처럼, 나 역시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 덕에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독자들도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어려움을 잘 견뎌왔고, 잘 견뎌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어려움을 잘 극복할 것이다.코로나로 인해 힘든 요즈음 이 글을 보는 독자들이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 견뎌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본 지면에 담아본다.

2020-05-25

영욕에 본성을 잃은 위정자들

강희룡 서예가이규보(1168~1241)에 대해서는 극명하게 상반되는 두 가지 평가가 있다. 13세기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극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인 정권 아래의 기능적 지식인으로 권력에 아부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이규보가 태어나고 2년 후인 1170년 무신난이 일어난 난세였다. 천부적인 문재(文才)를 지니고 어려서부터 중국 고전을 익힌 지식인이 살아가기에는 녹록치 않은 시대였을 것이다. 이규보는 아홉 살에 이미 신동이라 일컬어질 정도의 시재(詩才)를 보여 주었고, 성격 또한 자유분방했다. 시대와 어울리기 어려운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청년 이규보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과거에 세 번을 낙방하고 네 번째로 응시한 사마시에서 수석으로 합격했지만, 오랫동안 관직은 주어지지 않았다. 방황하며 술을 마셨고 장자사상에 심취하여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동경하기도 했다. 무신정권과 화합하지 못하고 현실 정치에서 벗어나 시와 술을 즐기며 고담(高談)을 일삼던 죽림칠현 같은 이들의 눈에 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한동안 그들의 시회(詩會)에 출입하며 함께 하자는 권유를 받기도 했으나 이규보는 그들의 제의를 거절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길을 택한다. 서른 즈음 정권의 요직에 있는 이에게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호소하고 관직을 구하는 편지를 쓴다. 그러다 최충헌의 시회에 초청받아 그를 칭송하는 시를 쓴 덕분에 관직에 진출하게 된다. 본인으로서는 현실적인 선택이었겠지만 어떤 이들에겐 실망스러운 처신이었을 수도 있겠으며, 변절자란 지목도 있었을 법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규보는 내면세계의 갈등을 돌을 내세워 스스로 문답을 적었다.‘동국이상국문집 후집, 돌의 물음에 답하다(答石問)’의 내용을 살펴보면, 큰 돌이 이규보에게 ‘(중략) 사람은 만물의 영장인데 어째서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하지 못하고 언제나 외물에 부림을 당하고 다른 사람에게 떠밀리는가. 외물이 유혹하면 거기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외물이 다가오지 않으면 우울하여 즐겁지 못하며, 남이 인정해 주면 기를 펴고, 남이 배척하면 기가 꺾이니, 그대처럼 본래의 참모습을 잃고 지조 없는 존재도 없네. 만물의 영장이 이런 것인가!’이규보가 답하길, ‘너란 물건은 불서(佛書)에 우둔하고 미련한 것들의 정신이 목석으로 환생한다, 라고 했으니 너는 이미 정기와 광명을 잃고 돌덩이로 타락한 것이다. (중략) 내가 죽어 땅에 묻히면 너는 나의 비석이 되기 위해 깎여서 상할 것이다. 이것이 어찌 사물에 의해 움직여지고 본성을 손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도리어 나를 비웃는가?’ 여기서 돌은 자신의 선택을 비난하는 다른 사람들일 수도 있고 자기 내면의 또 다른 자아일 수도 있다.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영욕이 갈리고 궁달(窮達)이 판가름 나는 선택이다.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있다. 어쩌면 삶의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선택 앞에서 고뇌하고 해명이라도 하는 이규보의 인격이 오늘날의 위정자들에게 비춰보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2020-05-25

시간이 무서워질 때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며칠 전 전화기가 울린다. “선생님, 열무김치 담갔는데 갖다드릴게요.” “어머나, 아니에요. 제가 가야죠.” 내게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시는 이 분은 사실은 열 살 정도 언니뻘 되는 분이다. 집으로 가니, 곧 태어날 손주를 위해 뜨개 인형을 100개 정도 만들었다며 보여주신다.“선생님은 아직 시간이 무서운 거 모르죠? 내 나이 되면 시간이 제일 무서워. 시간 보내느라고 뜨는 거야.” 하시지만, 사실은 봉사 활동도 하고, 공부도 꾸준히 하는 분이다. 오래 기다린 손자라서 기쁜 마음에 열심히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무섭다’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자녀들이 장성해서 분가를 하면 집이 휑해진다. 그만큼 할 일도 줄어든다. 그렇다고 돈을 벌거나 봉사활동 하기도 쉽지 않다. 친구와 수다 떠는 것으로 일상을 채우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지난 삶을 돌아보고 남은 삶을 잘 살고 싶은 자아실현의 욕구가 절실하게 올라오기 때문이다.요즘에는 50세 이상의 중장년들을 위한 사회교육기관이 생겨서 이런 욕구를 많이 채워준다. 이런 곳에서 인생이모작, 삼모작을 준비하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나이듦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공부와 일상 나누기를 같이 하는 것이 좋다. 정서적 연대감 형성에는 소소한 일상 나누기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일요일 방문한 공방도 그런 곳이었다. 주인장은 출자자를 모아 사무실을 얻어 그들이 하고 싶은 강좌와 모임을 스스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오늘 갈비를 많이 쟀어요. 나눠 가실 분!” 하고 밴드에 올리면 “저요”, “저요” 금세 마감된다. 그렇게 공부와 일상 나누기가 함께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모임으로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의욕은 없어 보인다.세상을 구원하는 일이 불가능하거나 무모한 것만은 아니지만, 인생 후반기에는 아무래도 버거워진다. 체력도 받쳐주지 못하지만, 나이듦을 수용하는 일이 시급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자식만 바라보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배우자와 지혜롭게 같이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죽음을 의연하게 준비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이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적 통찰과 정서적 지지가 필요하다. 그런 과제는 이웃과 함께 할 때 힘을 얻는다.이웃에게 손을 내밀지만 일방적 헌신은 아니다. 지나친 열정과 헌신 뒤에는 인정욕구와 보상심리가 숨어 있다는 것도 알아챈다. 나이가 들면 현실감각이 생겨서 시행착오가 줄어든다. 수익과 헌신 그 중간 어느 지점에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게 된다.내게도 시간이 무서워지는 시기가 곧 다가올 것이다. 그동안 해온 인문학 공부와 생협 소모임 활동을 밑거름 삼아 지속가능한 ‘공부와 일상’의 이웃공동체를 꿈꾼다. 지적 허영도 쏙 빼고, 거창한 대의도 쏙 빼고, 밀실도 잃지 않으면서 광장도 만들어가고 싶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2020-05-25

융합가전 열풍

융합형 가전제품은 개별 제품을 한데 묶어 시너지를 내거나, 각기 다른 기능의 제품을 하나의 제품으로 새롭게 만든 가전제품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세탁과 건조를 함께 하는 세탁건조기, 정수기와 냉장고를 합친 정수기 냉장고, 가습기와 공기청정기를 합친 가습공기청정기 등이다.세탁건조기는 최근 아파트 주방과 발코니가 확장되면서 세탁과 건조를 위한 공간이 줄어드는 현상에 주목해 개발됐다. 보통 건조기와 세탁기를 위아래로 설치하는데, 이를 일체형 제품으로 만들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별도 받침대 없이 세탁물을 넣고 뺄 수 있고 필터도 손쉽게 관리 가능하게 만들어져 인기를 끌고있다.정수기 냉장고도 대표적 융합 가전이다. 삼성전자, LG전자, 위니아딤채는 일제히 올해 신제품 정수기 냉장고를 출시했다. 정수기와 냉장고를 따로 두기 보단 한 개 제품에서 구현해 주방 공간 활용성을 높인 게 특징이다. 가습기와 공기청정기 기능을 한데 합친 가습 공기청정기도 인기다. 대표적으로 LG전자, 다이슨 등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로봇쿠커 역시 밥솥, 죽마스터같은 자동조리기 기능의 핵심들을 융합해 탄생한 새로운 융합형 가전이다. 쿠첸과 쿠쿠·휴롬·신일산업 등이 선보인 멀티쿠커도 대표 융합 가전이다융합 가전제품은 수익성도 높다. 일반 가전 제품보다 가격이 비싸 가전업체의 프리미엄 전략에 활용된다. 융합 가전 시장은 앞으로도 꾸준히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보다 섬세한 기능과 편의성을 융합 제품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격언이 그대로 적용되는 분야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5-25

관계에서 보다 자유로워지기를… 청송 주왕암(周王庵)

거대한 바위와 가파른 절벽, 기암 단애라 불리는 바위 7개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서 석병산(石屛山)이라고도 불리는 주왕산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다. 불과 물, 시간이 만들어 낸 경이로운 합작품으로 경관뿐만 아니라 학술적인 가치도 높다.신비스런 계곡을 따라 걷는 탐방로는 완만하고 볼거리가 많아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대전사에서 10여분 쯤 걷다 갈림길에서 우측 자하교를 지나면 운치 있는 돌계단이 나타나고 호젓한 오솔길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길은 아쉬울 만큼 짧게 끝이 나고, 바위협곡이 시작되는 지점에 주왕암이 보인다.대한불교 조계종 대전사의 부속암자 주왕암은 919년(태조 2년)에 눌옹이 대전사와 함께 창건했다는 설과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설이 있다. 이곳에 은거하였던 주왕을 기리기 위하여 주왕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창건 이후 역사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기왓장으로 쌓아올린 담장 위 작은 돌멩이들이 운치를 더하는 오솔길은 가학루 앞에서 멈추고 만다. 끌리듯 가학루를 들어서면 우람한 바위 절벽 아래 아늑하게 절이 앉아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띤 건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석불좌상이다. 미소가 넉넉해 보이는 석불 앞에서 두 손을 모으지만, 목에 걸린 금빛 목걸이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 어울리지 않은 세속적인 장신구로 인해 석불의 신성함은 사라지고 호객하듯 격이 떨어져 보인다.착잡한 마음으로 높은 축대 위에 자리 잡은 나한전으로 오른다. 계단 주변을 금낭화가 허리 굽혀 불자들를 맞는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꽃말처럼 다소곳하며 지고지순한 자태에 암자는 환하다. 금낭화가 없었더라면 비탈진 계곡에 위치한 암자는 훨씬 음습하고 쓸쓸해 보였으리라. 금낭화로 인해 가파른 돌계단은 수미산을 오르듯 경건해진다.요사채에서 나오던 비구니 스님이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먼저 인사를 건네신다. 외진 암자를 지키는 바위 같은 분이시리라. 스님은 나한전을 들러 이내 주왕굴로 총총히 사라지고 그 뒷모습을 금낭화가 배웅을 한다. 짧지만 따뜻한 일련의 풍경들이 내 마음까지 밝힌다.적막한 산속에 비구니 스님과 금낭화의 아름다운 동거를 상상한다. 이른 새벽 법당에 불이 켜지면 금낭화도 눈을 뜨고 주왕암의 하루가 시작되리라. 날마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깨달음을 얻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혼자서 가는 길이 멀고 힘들 때, 한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보듬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바위산에 앉아 있는 전각들처럼 진부한 삶을 택하지 않은 스님의 길 또한 고단했으리라. 쓸쓸한 바람벽에 피어나는, 귀밑 하얀 금낭화의 오염되지 않은 모습에서 스님은 서방의 정토를 보았을지 모르고, 금낭화는 아침저녁 스님의 예불 소리 들으며 순결한 꽃빛을 피워냈을지 모른다.인생은 수많은 관계와 관계의 연속이다. 관계 속에서 상처를 안게 되면 영혼은 고독해지기 마련이며, 그 상처 난 마음을 제대로 치유해주는 것도 역시 관계이다. 높다랗게 앉아 있는 산신각과 칠성각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내 주변을 돌아본다.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요즘은 자연을 가장 든든한 벗으로 삼고 있다. 아무리 캄캄해도 자연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진분홍 복주머니 모양의 꽃을 단 금낭화가 허리 굽혀 사랑을 전하는데 느닷없이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무벤치에 앉아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다. 불자가 아닌데도 자식들을 위해 난생처음 불전을 놓고 절을 했노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책무처럼 한평생 쏟아 붓고도, 어쩌면 제대로 쏟아 붓지 못해서 늘 미진하기만 한 그의 부정(父情)이 애틋하다.문도 없이 오두막처럼 짜여진 산신각과 한 사람만 받아줄 만큼 협소한 칠성각은 욕심이 없는데 인간의 마음은 끝이 없다. 내려오는 길에 나한전에 들러 백팔 배를 시작한다. 조선 후기 작품인 석가여래 삼존불과 영험하다는 나한들, 색감 고운 영산회상도까지 작은 법당에는 그윽한 시선들로 가득하다. 나 스스로 짊어지고 가는 관계에서 좀더 자유로워지길 기도한다.조낭희 수필가법당을 나설 때 절은 한결 편안하고 따뜻하게 보인다. 주왕굴에 가기 위해 협곡 사이로 난 철제 계단을 오르는데 스님의 독경소리가 낭랑하게 마중을 나온다.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이 스스로 주왕이라 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패하자 주왕산으로 숨어 들어온 뒤, 주왕굴에 은거하다 굴 입구에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다 발각되어 신라의 마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조금 전 인사를 나누었던 비구니 스님의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뒷모습이 보인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수를 닮은 스님 뒤에서 여성 불자 한 분이 쉬지 않고 절을 한다. 당신을 따르겠다는 금낭화가 다시 보이고, 더러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연민으로 다가올 때가 있어 나도 절을 시작한다.다리가 후들거린다. 스님은 꽤 긴 시간 예불을 드리고 폭포수는 하염없이 떨어진다. 협곡을 빠져나오는 등 뒤로 스님의 독경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2020-05-25

다가올 질문의순례길에 나선 이의쓸쓸한 뒷모습

“자 어디로 갈까…. 네트는 광대해”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1995년 영화 ‘공각기동대’에서 인형사와 합체한 쿠사나기 소좌는 의체만을 남긴채 광활한 네트(일종의 네트워크) 속으로 사라진다. 작품 속 2029년의 일이다.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 인간의 생애는 타고난 육체의 노화와 함께 그 속에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는 정보의 네트워크 접속으로 연명된다. 즉, 죽는 것이 아니라 잠시 사라질 뿐 네트로 사라졌던 정보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의체를 통해 돌아올지 모른다.부활과 재탄생이 아닌 등장과 퇴장의 삶(?)을 반복하는 세상. 전세계 각국의 정보망을 오가며 주가조작, 정보조작, 정치공작과 테러 등을 일삼던 해커 ‘인형사’를 제거하기 위해 임무에 뛰어들었던 공안9과 ‘공각기동대’의 사이보그 쿠사나기는 인형사와 합체 후 광대한 네트 속으로 ‘퇴장’해 버린다.일부러 공각기동대에 체포된 인형사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다”고 말한다. 무엇이 그를 생명체로 규정할 수 있으며, 경계없는 네트의 세상 속에서 정치적 망명은 어떻게 규정되어 질 수 있는가. 근원을 알 수 없는 정보의 바다에서 생성된 정보의 집합체를 ‘생명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2029년 쿠사나기 소좌의 퇴은 존재에 대한 물음과 생명체의 규정이라는 의문을 남긴채 끝을 맺었다.쿠사나기가 퇴장한 2032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영화 ‘이노센스’에서 형사 바토(대부분의 신체를 기계화한 사이보그)는 온전한 인간(?)인 도그사와 파트너를 이뤄 공안 9과에서 각종 사이버 테러와 로봇과 관련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신체의 대부분을 기계화한 바토가 인간이라는 증거는 뇌의 일부분과 3년 전 네트 속으로 사라진 쿠사나기에 대한 기억뿐이다.바토에게 고스트(영혼)가 없는 인형(로봇)이 주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배당되고, 인형은 “도와줘요, 도와줘요”라고 속삭이다가 자살을 택한다. 인형의 ‘자살’은 극한에 몰린 인간의 최종 의지의 표현이라는 생각에 충격을 던진다. ‘공각기동대’에서 질문을 던지고 끝을 맺었던 영화는 ‘이노센스’에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그 질문들이 향하는 곳은 한 지점이다. 가까운 미래,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정보’와 ‘영혼’ ‘기억’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에 탄생하게될 ‘존재’를 어떻게 규정지을 것이며, 삶과 죽음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나는 나의 의지로 쌓아 올린 정보의 온전한 상태인가, 아니면 어느 순간 조작되고 오염된 정보를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인간의 희미한 기억만을 간직한 사이보그 쿠사나기와 바토는 각각 두 편의 영화에서 최종적인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다다른다. 퇴장할 것인가 남을 것인가, 퇴장 후 다시 등장할 것인가. 쿠사나기가 퇴장 후 무대에 남은 바토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말처럼 “인간이라는 존재를 묻는, 지옥 순례의 여행에 나서는 인물”이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무대에 서게 된다.바토의 여정을 담은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보다 화려하고 풍성하며 친절해졌다. ‘공각기동대’의 차갑고 냉정했던 분위기는 ‘이노센스’에서 ‘상실’과 퇴장하지 못한 자의 ‘쓸쓸함’이라는 감정을 담아 전개된다. 친절이라고 하지만 전작에 비해 ‘다소’일뿐 전개와 그 속에 담긴 질문들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바토, 잊지마! 당신이 네트에 접속할 때마다 내가 반드시 당신 곁에 있다는 걸” 잠시 의체를 빌려 등장했던 쿠사나기가 다시 퇴장하며 던진 말이다. ‘다소’ 위안과 상실을 지울 수는 있겠지만 전편에서부터 계속해서 이어졌던 질문으로 향하는 직접적인 열쇠가 되지 못한다. 여전히 ‘지옥의 순례’는 퇴장하지 못하고 남은 자의 몫이고, 그 순례의 여정에 ‘그리움’만 더해질 뿐이다.인간의 뇌에 담긴 정보를 디지털화해 컴퓨터 저장파일처럼 다룰 수 있을 때, 영화처럼 ‘전뇌화 기술’을 통해 고스트의 과정이 가능한 시대,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리’울지 모른다. 내 안에 있는 이가, 나를 흔드는 누군가가 그대인지, 0과 1의 신호일 뿐인지. 퇴장하지 못한 이의 질문이 가득한 쓸쓸한 생이다.*영화 ‘이노센스’는 네이버와 구글플레이, IPTV에서 감상할 수 있다./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2020-05-25

인고의 계절을 함께 나누며 견디자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8만 명을 넘어섰다. 이번 사태로 3천300만 명이 실업보험급여를 신청하였고 4월 실업률은 14.7%를 기록하였다. 이는 공장에서 감염이 발생하거나 소비자 수요가 감소하고 공급망이 단절되는 등 다양한 사유로 미국 생산활동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4월 광공업생산은 전월보다 11.2%가 감소하였는데 이는 통계를 시작한 1919년 이후 101년 만의 최대 낙폭이다. 철강이 20.4%가 감소하는 등 전 업종이 타격을 입었지만 그중 자동차는 무려 71.7%나 감소하였다. 미국의 생산활동 전반을 파악할 수 있는 제조업 설비가동률은 61.1%에 그쳤다. 이는 1948년 통계작성 이래 72년 만의 최저수준이다. 앞으로 미국 생산활동은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한 규제조치가 5월 이후 단계적으로 완화될 경우 조금씩 회복은 될 것이다. 하지만 안전한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고 충분한 물량이 생산되어 팬데믹이 종식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결국, 상당 기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경제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생산, 고용, 소비의 회복도 생각만큼 빠르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공산이다.미국만이 아니라 지금 전 세계가 비슷한 상황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로 급증한 실업이 먼저 소비를 냉각시키고, 기업의 매출과 수익성이 격감하면서 이와 연동되는 금융시장에서 해당 기업 주가가 하락함에 따른 금융 경색이 다시 이와 관련된 다양한 균형들을 무너뜨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의 영향이 미국의 생산통계에서도 나타났듯이 20세기 전반의 대공황수준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금융부문의 위기는 재정출동 등을 통해 시장이 안정화되면 그때까지 전혀 문제가 없던 실물경제가 곧바로 정상화 단계를 밟아 위기를 수습시켰던 당시 상황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당장 실물경제에서 촉발된 실업이 수요증발을 일으키고 생산이 정체되면서 원활하게 흐르던 자금을 경색시키고 금융시스템까지 영향을 미쳐 신용을 경직시키고 다시 그것이 실물경제를 냉각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키는 위기인 것이다.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누구나 V자 회복을 기도하고 있겠지만 앞으로 제2, 제3의 감염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지금 열기 시작한 문을 또 닫았다가 여는 것을 반복할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강력한 백신이 등장하여 이번 전염병 사태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는 한 지금 전 세계 정부가 V자 회복을 위해 엄청난 돈을 뿌리고는 있으나 이 사태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거의 동시에 재택근무와 공장, 사업장의 조업 정지 조치가 이루어지게 되면 경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도 앞날이 불투명한 이유는 현재 과연 어느 나라, 어느 산업이 심신미약에 걸린 세계 경제를 이끌고 나갈 엔진이 될 것인지 모른다는 데 있다.당장 미국만 하더라도 공장 가동부터 시급한 실정이다. 중국도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 같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는 기대하기 어렵다. 일례로 중국의 경우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추진하는 동안 해당 노선 주변국에 대한 대출액이 약 1천3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여기에서도 문제 발생의 소지가 없지는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부티는 중국에 대한 채무가 GDP 대비 80% 수준에 이르며, 에티오피아는 20%, 파키스탄은 7%, 남아프리카공화국은 4% 등 작은 규모는 아니다. 지난번 G20에서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하여 가난한 나라들의 채무상환을 2020년 말까지 연기시켜 주기로 조정하였지만, 당시 중국은 일대일로와 관련한 채무상환은 그 조치에서 빠지길 원했다. 그만큼 중국도 사정이 만만치 않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일본이나 유럽이 대체 엔진이 될만한 힘을 가지고 있을 리도 없다. 신흥국인 터키,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도 달러화 표시 민간채무의 원리금 상환이 늦춰지는 상황이다. 이번 코로나 위기로 전 세계가 동시다발적인 몸살을 앓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중국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미국에 대해 이미 지난번 일시적이나마 휴전에 합의하였던 미중 무역전쟁의 불씨를 다시 지피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굳이 미국에 양보할 필요가 없었다는 강경파가 이번 사태로 힘을 얻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양국 간에 무역전쟁이 재개된다면 그 영향권에 놓일 우리로서는 한순간도 방심할 틈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올해 11월 재선을 목표로 101년 만의 최대 하락 폭을 기록한 자국의 생산 특히 자동차, 철강 등의 회복을 위해 강력한 조치를 발동할 수도 있다. 미국의 생산활동을 재개시켜 실업률을 낮추고 공장을 정상화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처방전은 수입 자동차, 수입 철강 등에 대한 방화벽 설치다. 이미 지난 수년간 관세장벽, 쿼터 물량축소 등으로 힘들었던 우리 지역의 수출시장은 미국이 나서고 유럽 등지가 뒤따른다면 더욱 그 문이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그동안 인내해왔지만, 이제부터는 그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인내를 감수해야만 할지도 모른다.포항경제는 철강으로 시작해서 철강으로 끝난다. 포항경제를 끌고 갈 엔진은 철강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최근 지역 철강 대기업이 감산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부에서는 대기업이 그러면 지역경제에는 큰일이니까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아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지역 기업들은 위기경영 아니 전시경영체제에 돌입해야만 한다. 아직은 여력이 있다고 방심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인고의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미래의 도약을 위해 지금부터 선제적으로 감량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힘써야만 한다. 지역 대기업은 해외의 정치 경제 정세에 대한 정보수집도 가능할 것이기에 사실 큰 걱정은 없다. 문제는 해외시장까지 살필 수 없어 자기 주변만 보게 되는 지역 중소기업이다. 혹시라도 중소기업 경영자들 가운데, 우리나라가 안정화된 것만 보고 곧 예년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 낙관할까 걱정이다. 일자리를 잃은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행동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이라고 일자리가 넘치지는 않는다. 잘못하면 부모의 경제적 부담만 높여 정작 필요할 때 손을 벌릴 수 있는 자신의 기반마저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집에서 자기계발에 정진하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비상사태에서는 인내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이런 때일수록 노사 간 대화와 소통은 큰 힘을 발휘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여 정부 정책, 금융 행태, 기업 행동, 소비 수요, 노동 수급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역의 경제주체 모두 주시해야만 한다.결국, 가장 중요한 점은 지역 전체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나부터 양보하려는 생각, 옆집이 죽고 나만 살아났을 때와 옆집도 겨우 나도 겨우 살아났을 때 지역 전체의 이익은 후자가 크다는 점을 서로 믿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해다. 마치 6·25 전쟁 직후 폐허가 된 포항이 다시 일어났을 때처럼 우리 모두 앞은 불투명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옆 사람, 옆 기업과 손잡고 같이 걸으면 불안감은 나눌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인고의 계절을 함께 하며 나누고, 견디자./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5-24

재난생존에서 살아남는 우리집 안전대책

최미경동화작가열어둔 창으로 이른 아침의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선다. 희미하게 새소리가 들리고 나는 커피를 끓인다. 첫째 아이는 소파에 푹 파묻혀 어제 읽다 접어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뒤적이며 사랑에 대한 몽상에 빠져들고 있다. 거실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있던 둘째는 팔이 저린지 천장을 향해 바로 누워선 무언가 읊조리리는 듯 하다. 그러다 기억이 나질 않는지 머리 위에 올려진 A4용지를 끌어와 그 안에 적힌 김용택의 동시‘선생님도 울었다’를 다시 가만가만 읽어 내려간다. 첫째 발치 근처에 있던 셋째가 손에 들고 있던 트리나 폴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을 덮고 좌탁 앞에 앉아 길고 뚱뚱한 원을 스케치북에 그리고는 그 안을 노오랗게 채운다. 그 길고 뚱뚱하고 노오란 원은 줄무늬 애벌레가 만난 노랑 애벌레인 듯하다. 나는 한 손에는 커피가 담긴 머그잔과 다른 한 손에는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을 들고 햇살이 내려앉은 1인용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리고 오롯이 탐독한다. 읽는다. 읽어낸다. 아, 책장이 소리 없이 넘어간다.“엄마, 배고파.”돌아보니 어제저녁 먹었던 짜장면 자국이 아직 입가에 남아 있는 둘째가 식탁을 닦고 있는 나를 흔들고 있었다. 그렇다. 그렇게 나의 상상놀이는 끝났다.우리 집엔 괴테를 아는 첫째도 동시를 외우는 둘째도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셋째도 없다. 그리고 나를 위한 커피타임은 더욱 없다. 대신 눈만 뜨면 컴퓨터를 켜는 첫째와 눈 뜨고 있는 모든 순간 먹을 것을 찾는 둘째와 잠들기 전까지는 뭘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셋째가 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미안함의 시간들을 사랑과 애정으로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보이지 않았던 것을 속속들이 지켜보게 되면서 미안한 마음은 분통 터지는 마음으로 변해 갔다. 조그만 일에도 목소리가 커지고 쉽게 짜증을 내는 나는 그런 엄마였다. 아니다, 나는 본래 일하는 엄마 그래서 늘 바쁜 엄마였다.항상 아이들에게 고마웠고 언제나 아이들 편이었다. 그런 나의 엄마 가면이 벗겨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가꾸어왔던 엄마 가면에는 아이들이 바라봐주길 바라는 얼굴도 있고 남편이 나를 바라봐주길 바라는 얼굴도 있고 남자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라고 바라봐주길 바라는 사회적 얼굴도 있다. 그것뿐이겠는가. 알면서도 숨기거나 알지못하는 사이 포장 되었던 가면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 중 하나의 가면이 벗겨졌을 뿐인데 내 민낯에 내가 더 당혹스러웠다.“엄마, 배고파.”다시 돌아보니 셋째도 둘째 옆에 서서 나를 흔들고 있다. 그렇다. 나의 실전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라면 하나를 끓여내도 “엄마는 어떻게 라면도 이렇게 맛있게 만들어?”라는 둘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는 대체 못 하는 게 뭐야?”라고 덧붙이던 셋째, “엄마니까 이 모든 게 가능하지.”라고 마무리를 짓던 첫째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집안전대책 엄마메뉴얼이 시급하다.

2020-05-24

사람경찰, 기계경찰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코로나이후 4차 산업의 기재들이 대폭 늘어날 것 같다. AI, 블록체인, 로봇, 드론 등등.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재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디지털 장애인이 될까 걱정이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면 컴맹이라고 했다. 디지털 기기가 도처에서 사람의 일상을 제어하는 오늘날엔 자칫하다간 ‘디지맹(디지털장애)’이 될 지도 모른다. 햄버거 가게에서 겪은 일. 종전처럼 주문을 하러 종업원에게 갔다가 기계한테 가라는 타박 아닌 타박을 당했다. 키오스크를 이용하라는 거다. 사람에게 거절당하고 기계를 상대하게 되었다. 얇은 널빤지 같은 화면 가득 형형색색의 상품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앞서 줄지어 선 젊은이들이 빠른 눈 놀림으로 상품사진을 선택하고 이어지는 기계의 지시사항을 컴퓨터게임 하듯이 빛의 속도로 손가락터치를 하며 주문을 했다.어정쩡하게 줄선 상태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지 고민하는 사이 차례가 돌아와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하는 눈빛으로 화면의 사진과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진 뒤 연인의 손을 처음 잡는 것처럼 긴장과 설렘으로 뜨덤뜨덤 기계에 손가락을 갖다 될 즈음. “아저씨! 좀 빨리 하세요. 제가 해드릴까요?” 라고 훅 치고 들어오는 젊은이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귓구멍을 막았다. 놀람과 무안함에 흠칫 뒤로 물러섰다. 이후 주문한 햄버거가 어떻게 내 앞에 놓였는지, 목구멍으로 넘어갔는지 알거나 느끼지도 못한 채 허둥거리다 서둘러 햄버거 가게를 나왔다. 허겁지겁 먹은 탓인지 아니면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 시대의 ‘부적응자’가 된 기분 탓인지 그날 오후 내내 속이 쓰리고 마음이 불편했다. 인간을 위해 개발되고 발전하는 4차 산업시스템이 혹시 나같이 소외되는 인간을 양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4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이 치안활동에도 획기적인 효율성을 이끌 것 같다. 장난감 비행기놀이 같았던 것이 ‘치안드론’이라는 이름으로 실종자수색, 행사경비, 심지어 테러범저격 같은 활동까지 하고 있다. 안전을 위한 기계의 발전은 인류에 유익한 것임은 자명하다. 머지않은 장래에 기계경찰도 등장할 것 같다. 최고성능 인공지능으로 작동하는 로봇경찰, 충전과 업그레이드만 시키면 지칠 줄 모르는 활동이 시민의 안전을 완벽하게 책임질 것 같다. 감히 인간경찰이 경쟁할 엄두가 안 날 것이다. 시민은 기계경찰로 인한 최고의 만족감을 기대하며 하루 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기계경찰의 경쟁력에 밀릴지 모를 인간경찰의 일자리가 걱정이다. 인간경찰의 생존비법이 시급하다. 주문이 어려워 우물쭈물 거리는 디지맹에게 “제가 직접 주문받을게요.” 라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종업원이 있다면 디지맹도 햄버그 가게에 가는 일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다시 그 가게를 찾고 싶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쭐되는 기계경찰을 이기는 방법은 햄버그 가게 종업원 말과 같은 사람의 온기가 아닐까?“ 범인 1시간 내 잡는다! 디비디비…. 띠띠, 철커덕 철커덕….”(기계강력형사)“ 아이구 할머니, 얼마나 놀라셨어요!. 이놈의 소매치기 놈들 그냥….(사람강력형사)”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2020-05-24

기부문화의 위기

미국 최초의 근대 자본가로 손꼽히는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미국 기부문화의 선구자로 통한다. 그는 “인생의 전반기는 부를 획득하는 시기이고 후반기는 부를 나누는 시기여야 한다”고 말한 인물이다. 그는 실제로 그의 말대로 실천한 기업가로 기억되고 있다.미국과 영국에 3천개의 도서관을 건립하고 미국의 과학발전을 위해 카네기 연구원을 설립했고 박물관 등도 지었다.미국은 세계에서 기부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다. 2017년 한해 미국인이 기부한 금액이 4천100억 달러(약 462조원)로 당시 우리나라 예산보다 많았다. 빌 게이츠나 마크 저그버그, 워렌 버핏 등 세계적인 기부천사가 수두룩하다.미국의 기부문화가 발달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특히 기부금 운용의 투명성을 우선 손꼽을 수 있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에서 고소득층은 기부의 이유로 자선단체에 대한 신뢰를 최우선으로 들었다 한다. 미국의 자선단체는 남이 준 돈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통감, 모든 돈의 사용에는 반드시 사회적 동의를 얻는다.이에 반해 우리나라 사람은 기부를 안 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을 손꼽고 있다. 2016년 어금니 아빠 사건과 2017년 새희망 씨앗 기부 사기사건 등으로 드러난 기부금의 횡령은 불신의 골을 키웠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9년 1년간 기부경험이 있다고 조사된 사람의 비중이 25.6%로 8년 전(36.4%)보다 되레 낮아졌다.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돕기 위해 설립된 정의기억연대와 그 단체의 윤미향 전 이사장을 둘러싼 기부금 횡령의혹이 점입가경이다. 기부금 용처만 밝혀도 끝날 문제가 불필요한 정치적 소모전으로 치달아 국민을 짜증나게 한다. 논란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기부문화는 후퇴할 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