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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당신의 귀인(貴人)은 누구인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운칠기삼(運七氣三)’, ‘운구복일(運九福一)’이라고 한다. 똑같이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나 누군가는 승승장구 앞으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기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며 하는 말이다. 사회적 성공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실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로버트 H. 프랭크는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라는 책에서 행운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생의 중대한 성취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크게 성공한 사람 대부분이 행운아”라며 ‘실력주의’라는 신화에 도전한다. 이제 인사평가가 끝나고 인사이동이 시작될 시기다. ‘누군가’의 평가가 앞으로 자신의 삶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 12월에 생각해 보는 질문, 당신의 삶에 도움을 준 귀인은 누구인가?성공과 실패는 한 개인의 노력과 능력 여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평소 맺어온 관계와 네트워크의 질이 성공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경쟁의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결정적인 누군가가 있다면 동일한 조건의 다른 이들보다 더 쉽게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다. 자신의 삶은 혼자 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힘은 결국 네트워크 효과다. 등 뒤에서 기분 좋게 밀어주는 순풍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속도를 더해 줄 수 있으나, 강한 역풍은 앞으로 한 발짝 전진하는 것조차 얼마나 어렵게 하는지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그런 점에서 자신이 이룬 그 어떤 성공에도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가 능력이 있어 그 자리까지 오른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이끌어준 덕분에 거기까지 갔고 그만큼 이룬 것이라는 겸손한 태도가 중요하다. 이전투구의 현실에서도 ‘밑지고 사는 게 밑지는 게’ 아니라는 진실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이해관계만 따지고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삶의 끝은 명확하다. 베풀어준 것이 없으니 받을 것도 없고 먼저 배려하지 않았으니 누군가의 마음에 따스한 존재로 기억될 리 없다. 유불리만 따져 당장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사람은 묵묵히 헌신하고 겸손하게 행동한 사람을 이길 수 없다. 평판은 그 사람이 만난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서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올해도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는 스쳐 지나갔고 누군가는 더 특별하게 자리하였다. 우리의 삶은 무수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궁극적으로 관계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는지,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가 그래서 중요하다. 행복은 ‘아는 사람이 많다’는 숫자에 있지 않다.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받고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과의 깊은 만남에 깃들어 있다. 좋은 관계망이 좋은 삶을 만들어주기에 자신의 주변과 지금까지의 네트워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신 곁을 묵묵히 지켜준 사람들이 바로 당신의 귀인이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일과, 당신 자신이 누군가의 삶을 이끌어주는 귀인이 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 필요한 때다.

2019-12-16

그 많은 남북 합의문 어디로 갔나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해방 후 남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수많은 합의문과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 직전 1971년 7월 4일 이후락과 김영주 명의의 7·4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1992년에는 남의 정원식 총리와 북의 연형묵 총리간의 남북 합의서가 발표되었다. 남북 간 불가침과 교류와 협력의 의지를 담은 지금도 손색없는 문건이다.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 간의 6·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되고 뒤이어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10·4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공 선언을 발표되었다.지난해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4·27 선언은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다.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시민들을 향한 7분간의 연설과 9·19 평양 선언은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케 하였다. 그러나 금년 초부터 북한 당국은 남한 정부를 비난하고 남북관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버렸다. 북미간의 하노이 협상은 결렬되고 북한의 비핵화와 대북 제재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못한 결과이다.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되고 결국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그간의 합의와 조치들은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같은 분단국 운명으로 태어난 독일은 1972년의 양독이 체결한 기본 합의서를 충실히 이행하여 이미 1990년 통일의 꿈을 성취하였다. 1972년의 10개항의 양독 기본 협정문은 내용은 간단하지만 독일 통일의 초석이 되었다. 그후 서독 빌리 브란트의 동방 정책은 정권 교체에 상관없이 일관성 있게 꾸준히 추진되었다. 양독은 인적·물적 교류 뿐 아니라 방송까지 허용하면서 상호 신뢰를 구축시켰다. 통일 전 동독인들은 서독의 TV를 통해 분데스 리가 축구 경기를 같이 보았다. 양독 간 1972년 기본협약서 한 장이 결국 독일 통일로 이어진 것이다.우리는 남북 정상 간 지난해의 합의마저도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근원적으로 남북은 아직도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적대적 공존 관계가 지속되는 한 그것을 지킬 의지가 사실상 없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6·25 전쟁과 같은 비극을 겪었고 그것이 이념갈등과 불신을 부추긴 결과이다. 친북과 반북, 용공과 반공이라는 프레임이 정치에 이용되어 득표로 연결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남북 정상 간의 합의마저 국회의 비준은 엄두도 못 낸다.결국 남북 합의마저 무력화 되는 비극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간의 남북 합의서 상의 공통분모를 뽑아 통일 헌장으로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북한은 세습정권의 특성상 최고 지도자의 서명 문건은 폐기치 않고 보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그간의 공동선언이나 합의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통일 헌장에 담아 국회의 인준을 받아 둘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외교 통일위원회가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며 여기에는 통일관련 시민 단체의 의견도 수렴해야 할 것이다. 이 통일 헌장은 가칭 우리의 ‘통일 국민 협약’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정권 교체에 관계없는 우리의 일관성 있는 대북 정책의 추진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장치이다.

2019-12-15

사진, 그 추억의 갈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유사(有史) 이래 인류는 기호나 그림으로 기록을 남겼다. 대상을 본뜨거나 의미를 전달하는 회화(繪畵)문자 체계를 고대 이집트 등지의 그림문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글이나 그림을 쓰거나 그리고 새긴 흔적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기록의 산실이라 했던가?시간은 기록이 되고 기록과 사진은 역사가 된다. 사람의 생각이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려지고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생각을 적어두거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사진 등으로 남겨두면 소중한 추억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래서 일상을 속속들이 일기처럼 적거나 사진으로 남기면서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가꿔 나가는지도 모른다.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현대인의 생활은 그 면면이 찍히고 사진기록으로 남겨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령 여행을 한다거나 행사에 참관하거나 음식을 먹거나 하는 등의 소소한 순간들을 폰카메라를 이용해 손쉽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도 있다. 사진과 사연을 알리고 함께 나누며 관심과 소통, 안부와 공감으로 인맥과 관계망을 넓혀나가는 양상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각박하고 스피디한 정보화시대에 친구나 지인 등을 자주 만나 담소할 수 없으니 온라인 상에서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교감하는 것도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닐까 싶다.1990년대 말 디지털카메라가 본격 보급되기 십 수년 전부터 필자는 필름 카메라를 구입해서 친구들의 결혼식이나 자녀들의 성장과정 등의 사진을 거의 도맡아 찍어왔다. 오죽했으면 교수로 재직 중인 친구 시인이 필자 더러 ‘인연을 인감도장처럼 찍는 찍사다’ 라고 표현했을까? 살아오면서 몇 차례 이사를 했지만, 지나칠 정도로 숱하게 찍어 인화해둔 사진들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창고 한 켠에 두어 박스 정도 쟁여져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수시로 그 빛바랜 사진들을 몇 장씩 꺼내 본인들에게 전해주니, 그렇게도 좋아하고 감격(?)해마지 않았다. 사진을 매개로 옛적을 회상하며 세월의 여울을 더듬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일상의 편린(片鱗)을/사진으로 켜켜이//기록영화 찍듯이/누리고 공유하는//저마다/기억의 곳간에/별로 뜨는 망울들’ -拙시조 ‘추억의 갈피’ 전문(2019)-현재 사진은 시각적인 언어로, 창조적인 예술로 생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사소한 일상이라도 사진으로 남겨놓으면 거기에 담긴 풍경이나 인물의 표정, 몸짓 하나하나가 시간에 버물려지면서 스토리가 되고 작품이 된다. 사진 속에서는 아련한 옛날이 망각의 저편에서 넌지시 손짓하기도 하고, 무언의 얘기꽃이 새록새록 피기도 하며, 아린 그리움 속에 엷은 감미로움이 안개처럼 깔리기도 한다. 순간은 영속의 실재(實在)이듯, 찰나의 순간을 담는 사진이 시각 정보로, 예술로, 기록으로서의 쓰임새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렇듯 사진은 우리 삶의 각인이고 여운이자 기억의 곳간에 별로 뜨는 추억의 갈피이리라.

2019-12-15

기적의 사과 (4)

어스름한 새벽이라 뭔가를 잘못 봤나 싶어서 나무 가지를 타고 올라 자세히 관찰합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것은 사과가 아니고 도토리였습니다. 6년 동안 사과에 집착한 나머지 도토리를 사과로 착각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 도토리는 크기도 엄청나고 더할 나위없이 건강해 보입니다. 집념의 기무라 아키노리, 이 상황에서 생각에 빠져듭니다. 자신이 지금 자살하러 갔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왜, 깊은 산속의 도토리는 이토록 건강한가?”를 집중적으로 생각합니다.하늘에서 무슨 계시라도 받은 듯한 깨달음이 머리를 때립니다. 미친 듯이 도토리 나무의 밑둥치 아래 흙을 두 손으로 파헤치기 시작하지요. 손톱에 피가 나도록 산속 도토리 나무 아래 땅을 파 들어갑니다. 마침내 그의 두 손에는 도토리 나무 뿌리가 닿아 있는 흙이 담깁니다. 그는 흙 냄새를 맡아봅니다. 형언할 수 없는 향기로움이 가득하지요. 온갖 미생물이 살아 숨쉬는 자연 그대로의 흙을 온 몸으로 느끼며 벼락에 맞은 듯한 전율을 느낍니다.“바로 이거다!” 그는 자살하려던 밧줄을 산 속에 버려둔 채, 정신없이 뛰어 내리막길을 달립니다.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웃다가 울다가 미친 사람처럼 킬킬거리며 한 밤 중의 산을 달려 초토화된 사과 밭에 도착하지요. 산에서 했던 것처럼 사과 나무 밑둥 아래 흙을 파헤칩니다. “역시, 완전히 다르구나”예상은 적중합니다. 산속 도토리 나무가 심겨 있는 토양의 흙 냄새와 사과 밭 흙 냄새는 생명의 향기로움과 죽음의 악취처럼 달랐습니다. 지난 6년의 실패는 눈에 보이는 것, 줄기와 가지와 이파리의 벌레만 바라보고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에 집착했음을 깨닫습니다. 기무라에게 다시 희망이 싹트자 그는 놀라운 의욕으로 다시 작업에 착수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과 밭 토양을 완전히 갈아 엎는 일에 착수합니다. (계속)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5

호구지책의 해

한해를 마무리할 때 흔히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표현을 잘 쓴다. “한해동안 일도 많았으며 어려움도 많았다”는 뜻으로 한해를 회고하는 자리에서 사용하기에는 제격이다.연말이 다가오면서 올 한해를 되돌아보는 사자성어가 발표되고 있다. 다사다난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유난히 한해가 어려웠다고 회고하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청년 실업자가 내뱉는 아픔의 표현이 우리를 우울케 한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구직자가 가장 많이 뽑은 사자성어는 전전반측(輾轉反側)이다. 걱정거리로 마음이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해 몸을 뒤척인다는 뜻이다. 지난해 같은 시기에 그들은 “마른나무와 불기 없는 재와 같다”는 심정의 고목사회(枯木死灰)를 그해 사자성어로 선정한 바 있다. 한해가 지났어도 그들은 여전히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한 언론이 만들어 낸 3포세대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젊은 세대를 두고 한 말이다. 세월이 지나 3포는 5포와 7포로 바뀌더니 지금은 포기할 것이 너무 많아 n포세대라 부른다고 한다.꿈을 먹고살아야 할 젊은이에게 들이닥친 호구지책(糊口之策)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또 해를 넘기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젊은이는 삶의 가장 중요 가치로 ‘경제적 안정’을 압도적으로 손꼽았다. 도전과 성공, 성취라는 이상적 희망보다 경제라는 현실을 택한 젊은 세대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과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등이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한 것도 호구지책에 매달린 젊은이의 사고가 낳은 결과가 아닐까. 내년에도 모두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가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15

‘4+1’…협잡 정치의 끝판왕

안재휘 논설위원‘제1야당’이 사라졌다. 아니, 멀쩡히 살아남아서 삭발·단식·장외집회 등 한국 정치문화의 오만가지 극한투쟁 박람회를 열고 있지만, 여당과 그 위성 세력들에 의해 치욕스러운 ‘좀비’ 취급을 받고 있다. 참다운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 목불인견(目不忍見) 협잡들이 판을 친다.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권력 유지와 확대에만 혈안이 된 정치꾼들의 악취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이 나라 정치에는 ‘교섭단체’라는 제도가 있다. 20석 이상의 국회의원 의석을 확보한 정당을 ‘교섭단체’로 인정하여 각 정당 지휘부들이 모여서 국민 여론을 반영해 국정을 논하고 타협하고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제 여당과 뜻이 맞는 정치 패거리들끼리 따로 모여서 주요 결정을 내리는 형태로 변질하고 있다. 이른바 ‘4+1 협의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모임이 대한민국 국회의 상원(上院) 노릇을 하는 꼴이다.잘잘못을 따지자면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허물이 크다. 박근혜 정권의 비극적 종말 이후 한국당은 스스로 ‘좀비’ 정당으로 전락해간 측면이 있다. 국민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반성’도 ‘책임’도 실천하지 못했다. 오늘날 한국당의 가없는 추락은 딱 죽어야 할 때 ‘못 죽은 죄’, 아니 ‘안 죽은 죄’의 업보다. 땅에 떨어진 씨앗이 흙 속에서 다시 살아나려면 썩어서 흙과 동화될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그들은 도무지 낯두꺼운 권력의 화신처럼 굴었다.‘4+1 협의체’는 제1야당을 보기 좋게 따돌리고 내년도 예산안을 후다닥 처리하면서 실력을 넉넉히 과시했다. 이제 남은 것은 패스트트랙의 선거법과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안만 처리하면 되는 상황이다. 딱한 허수아비 제1야당은 국회 본회의장 정문 앞이나 광화문에 나가 소리나 질러댈 따름이다. ‘목숨 걸고 싸우겠다’고 부르대지만 민심은 구경꾼 자리에서 움쩍도 하지 않는 판이다.연동형 비례대표제도와 석패율제도 등 복잡한 방정식을 놓고 ‘4+1 협의체’에 참여한 군소정치 패거리들은 각자 유불리를 따져 권력 나눠먹기 몽니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그들의 언행 이면에 진정한 ‘애국’은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의석 몇 자리 더 훔쳐내자고 선거제도와 공수처법을 바꿔먹는 짓은 역사에 대죄(大罪)를 짓는 일이다. 현재의 공수처법안이 통과되면 검찰은 무력화되고 옥상옥 공수처가 현직 대통령의 미친개가 되어 좌파독재 시대를 열어젖힐 공산이 크다.지난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에 실린 장지연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떠오른다. ‘저 돼지와 개만도 못한 소위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이 영달과 이익만을 바라고….’ 공자께서는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무리를 지어 사익을 취하는 소인배 짓거리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군자는 두루 친하되 결탁하지 않지만(君子周而不比), 소인은 결탁하되 두루 친하지 않는다(小人比而不周).’ ‘4+1’…. 저 협잡 정치의 끝판왕을 막아낼 묘책은 정녕 없는가.

2019-12-15

앞으로 흘릴 땀을 생각하며

고윤환 문경시장문경의 3선 시장으로 7년 동안 시정을 이끌어오면서 우리 시의 무한한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보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듯이 인구 8만명도 되지 않은 중소도시에서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의 하나인 2015경북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를 저비용·고효율의 롤 모델을 제시하며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만 보아도 그렇다.지금 문경은 연간 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문화관광 도시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해 전국 어느 지역에도 뒤지지 않는 관광의 도시로 거듭났다. 그리고 문경은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이 시간에도 변화하고 있다.2021년 중부내륙고속철도(이천∼충주∼문경) 개통을 대비해 문경역세권 사업 등 현안 사업을 순조롭게 실시하여 문경은 대한민국 신 수도권 시대 진입에 따른 준비를 착실히 해나가고 있다.새로운 희망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2019년 문경의 노력은 △민선 7기 10개 분야 63개 공약 92% 이행 △올해 연말 예산 8천억 원 돌파 △도시재생 뉴딜, 농촌 신 활력 플러스사업 등 46건에 국·도비 736억 원을 확보한 것 등으로 이어졌다.또한 지속적인 인구 감소가 증가 추세로 돌아섰으며, 이는 다자녀 생활 장학금 지급, 파격적인 출산장려금 지원 등 대폭 확대된 인구증가 시책 및 귀농·귀촌·귀향 맞춤형 정착지원 사업 추진에 따른 정책 효과로 판단된다.지난해 10월 개장한 문경에코랄라는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민간에 위탁한 결과 타시군의 롤 모델이 되었다. 휴식과 체험을 통해 바쁜 현대인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문경 힐링휴양촌과 우리 지역 특산물인 문경 오미자를 테마로 하는 문경오미자테마공원도 개관하여 운영 중에 있다.문경찻사발축제에는 25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문경사과장터에는 35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 사과를 포함한 농·특산물을 18억 원어치나 판매하는 등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기업유치 활동도 활발하게 추진하여 올 한해 (주)마루종합식품 등 11개 업체를 유치해 1천967억 원의 투자와 일자리 430개를 창출하였다. 역사문화관광 도시로 도약하고 침체된 점촌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영강천변 청정자생식물원, 송진산 힐링공원, 귀농귀촌귀향 시설원예 시범단지 조성 등 점촌지역 랜드마크 조성사업도 활발히 추진 중에 있다.2020년 시정의 운영방향으로 크게 8대 방향을 설정했다. △농민이 잘 사는 부자농촌 건설 △인구증가 시책 지원 확대 △아이들의 보육과 건강 인프라구축 △명품교육도시 위상 공고 △문화관광수도 문경을 위한 인프라 구축 △시민이 행복한 복지도시 구현 △시민 중심 생명존중의 안전도시 문경 건설 △소통행정과 혁신으로 시민 체감도 향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먼저 농민이 잘 사는 부자농촌 건설을 위해 청년 농업인 발굴과 조기 정착 등 농촌 일자리 창출과 귀농·귀촌·귀향자들의 안정적인 소득기반 구축에 만전을 기하고자 한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출산장려금 지원으로 출산 친화적 사회분위기를 만들고, 놀이체험시설 및 맘 편한 돌봄 공부방을 운영하는 등 아이 돌봄 서비스를 확대한다. 화상영어교육 등 양질의 교육프로그램을 지원하여,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명품 교육 도시를 반드시 만들어 나갈 것이다.아울러 문화재 103점 보유 도시로 향토 문화유산을 발굴·보존하고, 하늘재 옛길문화 관광자원화 사업, 세계명상마을 조성 사업, 문경돌리네습지 생태자원화 사업, 단산권역 개발사업 등으로 문화와 관광이 꽃피는 도시를 만들어 갈 것이다. 맞춤형 복지행정을 구현해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조성하고, 하천재해 예방사업,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을 통해 시민중심 생명존중의 안전도시를 이룰 것이다. 또한 시민의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더 잘합시다 문경운동 등으로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삶의 변화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어 지금까지 흘린 땀보다 앞으로 흘릴 땀을 생각하며 8만 시민과 함께 시민 행복시대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2019-12-15

평범하고 작은 것이 쌓여 飛上하는 일에 대해

오지은 공무원나는 역사책 읽기를 좋아한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원인과 결과가 늘 궁금하기 때문이다. 왜 문명 발전이 늦었던 서양이 20세기에는 동양 대부분을 지배했을까? 왜 문명사에서 가장 앞선 비옥한 초승달 지역인 아랍 지역은 이후 한 번도 문명의 주인공 노릇을 못 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터지는 중동 지역의 일상생활은 어떨까? 생활 전반이 불편해 보이는 히말라야 자락의 부탄이라는 최빈국의 행복지수가 왜 세계에서 가장 높을까? 그들이 행복하다면 왜 행복한가? 이런 것들이 늘 궁금하다.역사, 책을 보면 인류는 자연환경을 지혜를 모아 극복하면서 문명을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문명은 작은 지혜가 모여 쌓인 결과물이다. 역사적 사건은 한 가지 단순한 원인에 의해 벌어지지 않는다. 여러 정황과 사건이 쌓이다가 마지막에 어떤 결정적인 변수 하나가 방아쇠를 당기면 비로소 거대한 역사적 사건으로 세상을 바꾼다. 이것을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고 한다.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 아주 작은 변화 하나만 일어나면 거대한 물결이 일어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제1차 세계대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보스니아의 라틴 다리에서 암살당한 사건으로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물밑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티핑포인트에 근접해 있었다. 늦게 식민지 경쟁에 합류한 독일, 보스니아를 점령해 지중해를 장악하고 아시아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하는 오스트리아, 부동의 항구를 얻고 싶은 러시아, 대(大)세르비아 민족국가를 만들고 싶었던 세르비아. 발칸반도에 전운이 무르익을 대로 익었을 때, 세르비아 비밀결사체 흑수단 청년이 얼떨결에 죽인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죽음으로, 발칸반도와 이해관계가 있던 모든 나라와 이를 저지하기 위한 강대국이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동시에 전쟁에 뛰어들었다.진나라가 멸망한 후 다시 분열한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의 유방과 그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초나라의 항우가 겪은 성공과 실패는 그 원인을 찾기 어렵지 않다. 완벽한 능력을 갖췄지만 백성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던 항우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별다른 기술 없이 어쩌다 나라를 세운 느낌의 유방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경청의 지혜가 있었다. 이 작은 차이는 두 사람의 운명, 두 나라의 운명, 중국이라는 문명의 운명을 바꾸었다.25년을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인정받는 직원의 비결에 대해 그 공통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진정성 있는 성실한 업무를 매일 수행해 조금씩 신뢰를 쌓고 성실성을 만들어 낸다. 결국 어떤 일이든 믿고 맡기는 선수로 인정받는다. 일단 인정을 받으면, 다음 일은 쉽게 풀릴 수 있다. 호감을 주는 직원은 누구든 도와주고 싶어 한다. 재테크에서 종잣돈과 비슷한 역할이다.올여름 농촌 여성을 대상으로 도 단위 경진대회를 목표로 부채춤 교육을 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30명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15명이 남았다. 그 15명이 무대에서 화려하게 부채춤을 추고, 대상을 받았을 때 미리 포기한 15명은 크게 후회했다.부채춤을 발표 과제로 결정하고 연습을 시작했을 때, 이들은 부채조차 펼 수 없는 왕초보였다. 부작은 원, 큰 원, 물결 모양 등 흐름이 변할 때마다 위치를 암기해야 했고, 음악에 순서를 맞추는 일은 60세에 가까운 농촌의 여성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이들이 끝내 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교육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마다 바쁜 일이 있고, 동작이 어려워 힘들 때는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교육에 참석한 사람들이 무대에서 공연하고 상을 받는 인생 경험을 할 수 있었다.주차를 할 때 작은 변화가 큰 결과를 만든다는 이치를 느낀다. 주차 라인에 차를 넣기 위해서는 각도를 조금씩 꺾으면서 움직이면 꼭 맞게 들어간다. 핸들 각도를 많이 틀지 않아도 된다.평범하고 작아 보이는 일상이 매일 쌓여 지금 우리 모습으로 나타났다. 조금씩 쌓인 것은 언젠가 결정적 순간을 맞이할 것이고 애벌레가 나비로 비상하듯 우리도 그런 날을 맞이할 것이다. 평범하고 작아 보이는 매일을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것 아닐까?

2019-12-15

박태준·김우중 ‘경제 거인’이 그립다

김순견 전 경북도 경제부지사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서거 8주기를 맞아 묘소가 있는 현충원을 다녀왔다. 함께 한 지인들과 고 박태준 회장과 있었던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난 9일 별세한 샐러리맨의 신화, 김우중 회장으로 이어졌다. 70년대 한국 경제를 일으켰던 주역들의 그야말로 신화 같은 이야기는 꿈과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1968년 기공식과 함께 모랫바람 속에서 이루어낸 포스코의 기적이 있었다면 1977년 서울역 앞에 솟아오른 대우빌딩은 우리나라 수출 백억 불 달성의 상징과도 같았다.수출 백억 불 시대를 넘어 6천억 불을 이야기하는 오늘날 그들이 새삼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우리의 국민소득은 3만 불을 넘어섰으며, 성급한 사람들은 30-50 클럽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꺼내기도 한다.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1970년대 국민소득 1천100달러 시대와 비교해 보면 30배 가까이 높아진 셈이다. 세계가 놀랄 정도로 엄청난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때가 더 살기 좋았다는 말을 한다.포항의 경제가 침체되면 될수록 박태준 시대를 떠올리고, 청년 실업률이 높아질수록 김우중의 세계 경영이 회자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196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개도국이였다. 물론 1997년 김영삼 정부 시절 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고 하지만 IMF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의 허약성을 깨닫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 경제의 맷집이 강해지고 세계 경제의 상황이 바뀌면서 2000년대는 그런대로 살기 좋은 나라, 행복한 국민이라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그러나 2007년 우리 국민들이 간절히 바라던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고소득에 이를수록 성장률 둔화는 정해진 수순이라고 하지만 우리 경제는 세계적인 경쟁과 견제의 높은 파고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여기에는 선진화되지 못한 정치 불안과 심화된 양극화와 이에 따른 계층 간의 갈등, 복지에 대한 욕구가 동반 분출하면서 경제는 더욱 침체되고 있다. 대책 없는 노동시간 단축, 성급한 최저임금제 도입은 집값 상승과 맞물려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정부에서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려 국민의 소득을 올려놓으면 서민의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면 세수도 늘어나면서 전반적인 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활성화가 아닌 불황의 늪으로 빠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판단의 잘못으로 정책의 실패를 가져온 것이다. 국민들의 삶만 더욱 피폐해진 꼴이 되고 말았다.다시 70년대 경제의 주역들을 불러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만은 아직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 정책 당국자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국민 모두가 다시 70년대의 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의 그 희망 어린 몸짓과 정신으로 일어서야 다시 우리에게 희망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

2019-12-15

30대 지도자

인간의 수명이 짧았던 공자가 살았던 시절의 나이와 지금의 나이는 무게감에서 차이가 있다. 공자 시절 15세면 성인이다. 지금은 청소년 정도로 부르면 적합할 나이지만 그 시절에는 결혼을 해도 무방한 성년의 나이로 인식됐다. 공자는 나이별로 30세를 이립(而立), 40세면 불혹(不惑), 50세는 지천명(知天命)이라 불렀다. 지금에도 그가 부여한 나이별 의미를 두고 삶의 가치 기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수명이 거의 배 가까이 늘어난 지금의 현실에 부합할지는 모르나 생활 실천의 기준으로 보는 것은 무방해 보인다.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30대 총리의 등장이 화제다.핀란드에서는 34세의 여성 총리가 선출됐다. 핀란드 여성총리로서는 세 번째지만 최연소를 기록했다. 현직 총리로도 세계 최연소라 한다. 특히 워킹맘이자 교통통신부 장관인 그녀는 총리 선출과 함께 19명의 장관 중 11명을 여성으로 채워 우먼파워를 과시했다고 한다. 2017년 8월 뉴질랜드에서도 30대 여성 총리가 선출됐으며,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38세 나이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우크라이나와 엘살바도르도 30대 총리가 등장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33세의 총리 탄생이 예고된다고 외신은 전한다.우리나라 30대는 과연 어떤 위치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자는 인생의 뜻을 세우고 장래를 고민할 나이를 30세로 보았으나 우리 현실은 아직 많은 이가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안타깝고 불운한 현실이다. 지구촌의 흐름을 보면서 우리 30대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한편으로 30대 총리를 뽑고 그에게 국가 경영을 맡긴 그 나라 국민의 포용성이 돋보이기도 한다. 노령화된 우리 정치 현실이 안타깝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12

위기의 한국당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자유한국당이 위기를 맞고 있다. 새해 예산안 협의를 놓고 여당과 밀고당기며 버티다가 패싱당했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붙여진 선거제개편안과 공수처법안 저지를 위해 국회 로텐터홀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황교안 대표는 “선거법과 공수처법마저 날치기 처리를 강행하려 할 것이다. 좌파독재 완성을 위한 의회 쿠데타가 임박했다”면서 국회 로텐터홀에 ‘나를 밟고가라’는 현수막을 바닥에 설치하고, 무기한농성에 들어갔다.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법안 날치기 통과를 막기 위해 로텐터홀에서 잠을 자며 24시간 머무르겠다는 계획이다. 현역의원들도 10∼15명씩 돌아가며 취침하기로 했다. 한국당은 지난 11일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상임위 소속 의원별로 조를 짜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해 본회의 개의를 막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민주당이 본회의를 취소하자 농성을 풀었다.문제는 한국당이 여당에 맞서 강경투쟁을 하려해도 할 수 있는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다. 범여권이 ‘4+1(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및 대안신당)협의체’로 수적 우세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 상임고문인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황 대표와 오찬을 하면서 “정치는 투쟁이고 싸우는 것”이라며 강경투쟁을 주문해 이에 부합하는 모양새를 내고싶지만 현실이 여의치 않다. 우선 국회의장이 의사진행을 못하게 막는 것은 국회선진화법 위반이 우려돼 의원들을 마냥 몸싸움에 내몰 수 없다. 추가 고소와 고발 위험이 있으니 내년 총선을 치러야 할 현역 의원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필리버스터로 맞선다해도 여당이 임시국회를 쪼개기로 대응하면 법안처리를 다소 지연시키는 정도의 효과밖에 기대하기 어렵다.비공개 회의에서는 의원직 총사퇴 주장도 나왔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행이 어렵다. 회기중 의원직 총사퇴가 본회의 표결에서 과반으로 가결돼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없다. 국회의장의 재가가 필요한 데, 재가해줄 리가 없다. 설령 의원직 총사퇴가 실현된다해도 사퇴 이후에는 대정부비판이나 견제 기능 자체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해볼 수 있는 게 없어지는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 선 셈이다.자유한국당이 이같은 곤경에 빠진 것은 여당이 야당을 무시하고 일방통행식으로 예산이나 법안을 통과시키지는 않으리란 순진한 착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패스트트랙 자체도 국회 상임위원 5분의 3 이상의 입법의지를 존중하자는 취지로 만든 강행처리 입법절차다. 의회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한다. 여당이 군소야당과 손을 잡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행위를 ‘의회쿠데타’라고 목청높여 비난해봤자 별 소용이 없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합법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14일 다시 장외집회에 나서기로 한 것도 바로 합법적인 방법으로 법처리를 막을 방법이 없고, 협상도 쉽지 않은 처지를 반영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했다. 소수당의 설움이 분하면 다수당이 되는 수 밖에 없다.

2019-12-12

초미세먼지 날

요즘은 몸이 좋았다 나빴다 한다. 몸이 큰일은 큰일이다. 가뜩이나 목 디스크에 통풍인데, 관절도 하루하루 안 좋아지고 있다.그렇게 좋아하던 막걸리, 뚜껑이 흰 마개로 된 장수 막걸리는 파란색 뚜껑보다 거금 200원이나 비싼데도 많이 마셨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사양이다.이번 학기 끝이 불과 두 주도 안 남았는데 이렇게 허덕일 수가 없다. 사실, 대학 선생들 방학 얘기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눈코 뜰 새 없다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있었으면 싶다. 바쁘기로 말하면 재벌 반열에 들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학교까지 줄잡아 한 시간 사십 분, 오십 분이 걸리니 왕복 서너 시간, 아깝기 짝이 없다. 전철 타고 앉아 세월아 네월아 염치 없이 자리 차고 앉아 책을 읽든 뭐라도 끄적거리든 해야 한다. 그래도 꼼짝없이 전철 타는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면 행복하다.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고 딴 짓도 하기 힘들다.그런데 사흘씩이나 초미세 먼지라고 한다. 미세도 아니고 초미세라니, 세사도 아니요 극세사, 그냥 고생도 아니요 개고생이라 하는 요즘 세태에 어울릴 만 하다.하지만 전철이라도 타야 좋은 것을 전철역까지 걸어갈 일이 무서울 지경이다. 오늘은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났는데도 사방이 캄캄해서 아직도 날이 안 샜나 했더니 미세먼지라는 것이었다. 심해도 이렇게 심할 수가 있나.생전 처음으로 방독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서는데 을씨년스러운 공기가 아무래도 몸에 좋을 것 같지 않다.가람 이병기 선생 때문에 익산 여산에 갔더니 미세먼지인가 초미세먼지가 전국 수위를 다툰다던가. 새만금 어쩌구 때문에 그렇다는 소리를 흘려 들었는데, 오늘 이 먼지 안개가 그런 것인 듯하다.하루 종일 조심은 하노라고 한 것 같다. 모든 주의에 게으른 나로서는 이런 날도 일생에 꼽을 듯한 날이겠다.초미세먼지는 듣고 보면 황해 바다 건너 중국에서 날아온다고들 하고, 어떤 사람은 한국 땅 안에서 화석 연료를 태워서도 그렇다고 한다. 옛날에는 황사라고 했건만 지금은 초미세먼지라 하니 그럴 것도 같다.저녁이 되자 난방 때문인지 눈이 따갑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조금만 건조해져도 눈이 뜨거워졌다. 헌데, 이건 난방 건조하고는 뭔가 다르다. 아하, 초미세 먼지라더니. 바로 이것이로구나. 옛날에는 눈에 왕방울만한 황사 알갱이가 들어가도 떼굴떼굴 눈동자 위를 구르기는 해도 이렇게 따갑지는 않았다.세상은 좋은 게 좋게만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글쎄, 언제 이 짙은 안개 먼지가 개일 수 있을까.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2-12

초겨울 숲에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야산을 밀어 만든 아파트 단지에 아담한 공원이 있다. 새로 나무를 심어서 조성한 공원이 아니라 원래의 산 일부를 그대로 보존한 공원이다. 키 큰 교목들로는 소나무도 더러 있지만 참나무들이 대부분이어서 여름에는 그늘이 좋고 가을에는 단풍과 낙엽이 좋다. 참나무도 종류가 다양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밤나무를 비롯해서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가 대부분이다. 잎이나 도토리의 모양과 크기, 나무껍질의 모양으로 구별을 하는데 이 공원에는 상수리나무가 주종이고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도 더러 보인다.큰 나무 밑에는 어린 참나무들과 싸리, 개옻나무, 아카시아, 청미래, 인동덩굴, 찔레, 억새 등이 덤불을 이루고 있다. 산책로 오솔길 가에는 풀을 벤 자리에 파랗게 새로 자란 풀과 뒤늦게 꽃을 피운 쑥부쟁이가 추위에 떨고 있다. 얼핏 보아서는 어지럽게 무질서한 풍경 같지만 인위적으로 가꾸고 다듬은 공원보다 오히려 편안한 기분이 든다. 고층아파트 단지 안에 이렇게 자연생태계를 그대로 유지한 공원이 있다는 건 여간 흐뭇한 일이 아니다.초겨울의 숲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바싹 마른 잎을 달고 있는 참나무들이다. 키 큰 나무들은 거의 다 낙엽이 졌는데, 어린나무들은 대부분 마른 잎을 그대로 달고 있다. 상록수가 아닌 활엽수들이 마른 잎을 단 채로 월동을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산책로 가의 벤치에 앉아 그 까닭을 생각해보다가 문득 ‘바스락거리기 위해서’라는 답을 떠올린다. 아직 어린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로 삭풍의 겨울을 견딘다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혹독할 것 같다. 사람들도 몸살이 나서 삭신이 쑤시고 아플 때 신음소리라도 내면 견디기가 조금은 나은 것처럼 채찍으로 감기는 매운바람 앞에서 바스락 소리라도 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스스로 대견할 정도로 그럴싸한 추측인 것 같다.다분히 감성적인 상상을 하며 숲을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보다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관목들과 덩굴들이 뒤엉킨 덤불숲 밑에는 마른 나뭇잎을 바람막이로 월동하는 풀뿌리나 벌레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후자가 더 당위성을 갖는 결론일 것 같지만, 전자를 아주 버릴 생각은 없다. 세상의 이치란 그렇게 사실적인 당위로만 따질 일이 아닌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바람막이가 되기보다는 바스락거리기 위해서 마른 잎은 달고 있다는 것이 더 절실하게 와 닿는 결론일지도 모른다. 초겨울 숲에서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상념에나 빠져 있는 것도 한갓 부질없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또 한 해가 저물도록 대한민국의 정세는 시끄럽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거짓과 위선과 탐욕과 망집으로 얼크러진 실타래를 쾌도난마 할 묘책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천심이라는 민심도 떨어져 뒹구는 가랑잎처럼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던가. 이 나라의 권력자와 위정자들을 모두 겨울 숲으로 데리고 가서 온종일 찬바람에 가랑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나 듣게 하면 어떨까. 미세먼지처럼 자욱한 인간사의 소음 너머로 무엇이 참인지 보일 때까지.

2019-12-12

기적의 사과 (3)

무농약 재배를 시작한 첫 여름 95% 사과 잎이 벌레에게 초토화되어 떨어집니다. 기무라와 가족들은 망연자실합니다. 다음해에는 6만평 사과 밭에 단 한 그루도 꽃이 피지 않습니다. 수확량은 제로로 떨어집니다. 수천만원 이익을 남기던 과수원 수입이 0으로 떨어집니다. 건강보험료, 아이들의 학비, 생활비가 사라집니다. 아이 지우개를 3개로 잘라 써야 할 정도로 궁핍합니다.주위에서는 다시 농약을 뿌리라고, 무슨 정신 나간 실험이냐고 책망합니다. 기무라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마을의 캬바레에 가서 호객꾼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이때 조폭들에게 두드려 맞아 앞니가 왕창 빠집니다. 기무라의 사진을 보면 앞니가 없어서 약간 모자라는 사람처럼 보이는 인상입니다. 궁핍한 시절의 아픈 기억이지요.벌레와 사투를 벌인 게 6년입니다. 정말 미친 사람이 아닐까요?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기무라 아키노리 나이 서른다섯. 6년의 시간 동안 그는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농약을 쓰지 않고 벌레를 퇴치할 방법을 연구합니다.모든 수입이 다 끊어지고 가족들은 거지가 되었습니다. 사과 밭 모든 나무마다 빨간 딱지가 붙었습니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겁니다.“포기하느니 죽고 말겠다!” 서른다섯 기무라 아키노리는 자살을 결심합니다. 밧줄 세 가닥을 엮어 산으로 올라갑니다. 아무 탈출구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농약을 치면 6만평의 밭을 살릴 수는 있습니다. 사과나무가 죽은 것은 아니니까요. 벌레들에게 착취당하고 수탈당하고 있을 뿐이지 사과나무는 아직까지는 살아있으니까요.자살하려 새벽에 산 중턱에 올라 체중을 버텨줄 큰 나무를 고릅니다. 밧줄을 가지에 던지려 하는 순간, 기무라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입니다.분명 깊은 산 속인데 나무에 주먹 만한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겁니다. ‘저게 뭐지?’(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2

김우중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1998년 봄날 서울의 한 호텔에서 김대중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과 김우중은 마주 앉았다. 이 자리에서 김우중은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다. 경제수석의 답은 “이제 시장경제 중심으로 하니 안됩니다”였다. 그러자 김우중은 그러면 시장경제 하는데 청와대 경제수석이고 비서관이고 필요없겠네”라고 반발했다. 그걸로 김우중의 운명은 나락의 길로 걸었다.초겨울의 한파속에 대우그룹의 신화를 쓴 김우중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대우그룹의 전성시절 힘을 기울여 세웠던 아주대학교의 병원에서 오랜 투병을 하다가 홀연히 떠났다. 그의 빈소에는 정계, 재계의 많은 인사들이 찾았다. 한국 경제의 큰 축이었던 대우를 이끌었던 김우중의 떠남은 그렇게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한국경제발전의 아이콘인 그는 떠났다. 그는 1989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을 썼다. 그 책의 말처럼 그는 세계방방곡곡을 누비면서 한국을 알렸다. 대우는 한국 산업의 세계경영의 첨병이었다. 김 회장은 바둑 실력이 꽤 좋은데도 가끔씩 너무 호방한 수를 두다가 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는 꿈과 포부가 너무 큰 나머지 현실적인 수를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이 그의 일생의 행보와 맥을 같이 하는 듯하다.1936년 대구 출생인 김우중 회장은 경기고와 연세대 상대를 졸업한 후 만 30세인 1967년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그룹을 확장해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 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로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그러나 1998년 IMF 이후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대우는 해체되었다.그가 한국발전에 끼친 경제적인 공헌은 후세의 평가에 맡기기로 하자. 그가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후세에 맡기자.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세계경영’이라는 개념을 우리에게 심어준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대우의 그림자가 있고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그가 세계경영과 함께 1977년 그의 사재를 털어 인수하여 키운 아주대는 그의 교육의 세계경영의 일환이었다. 아주대는 공과대를 필두로 한국 사학의 한 축으로 한국 고등교육에 공헌해 왔다. 무엇보다 그의 교육에 대한 투자에는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아덴만의 영웅’으로 알려진 아주대 이국종 교수는 대한민국의 복합중증외상치료를 이끌고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도전하고 이를 통해 인생과 진로에 대한 자신감을 얻도록 하는 아주대의 파란학기제는 새로운 시도로 교육부의 인정을 받으며 큰 주목을 끌고 있다. 포스코의 박태준 회장이 포스텍을 세워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면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아주대를 세워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였다. 먼훗날 두 회장은 기업인에 앞서 한국의 교육현장을 이끈 위인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김우중 회장의 명복을 빈다.

2019-12-12

붉은깃발법

붉은깃발법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시절인 1865년 제정돼, 1896년까지 약 30년간 시행된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법인 동시에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표적 사례다. 정식 명칭은 ‘The Locomotives on Highways Act(약칭 Locomotive Act)’이다. 당시 증기자동차가 출시되면서 마차(馬車)업자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제정된 법안으로, 기존의 마차 사업을 보호하고 마부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조치로 시행됐다. 이 법안에 따르면 한 대의 자동차에는 반드시 운전사, 기관원, 기수 등 3명이 있어야 하며,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6.4km/h, 시가지에서는 3.2km/h로 제한했다. 기수는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자동차의 55m 앞에서 차를 선도하도록 했다.즉, 자동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붉은 깃발을 앞세워 자동차가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게 한 것이다. 이 법은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욕구를 감소시키는 주원인이 됐다. 특히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던 영국은 자동차를 가장 먼저 만들고도, 이 법 때문에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독일·미국·프랑스 등에 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우리나라에서는 차량공유서비스인 타다서비스를 금지하는 타다금지법이 붉은 깃발법에 비유되며 찬반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쏘카의 이재웅 대표는 최근 ‘타다금지법’이 국회 교통위를 통과하자 “150년 전 영국의 ‘붉은 깃발법’과 다를 것 없다”고 비판했다. 타다금지법은 관광 목적으로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차를 빌려줄 수 있는 조건’을 한 번에 6시간 이상 대여하거나, 고객이 승합차를 타고 내리는 장소가 공항·항만이어야만 가능하도록 규정해 타다 서비스는 조만간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11

안전은 상식이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일은 왜 하는가? 땀흘리는 수고와 노력이 돌려주는 보람과 만족은 여러 모양을 하고 있다. 가족의 하루 하루를 지키는 가장의 흡족함, 성과로 만들어내는 기업의 든든함, 노력이 대가로 돌아오는 나만의 기특함, 일하면서 생기는 동료의식과 협동정신, 그리고 경제활동의 결과로 빚어지는 사회활동과 지역공동체. 일은 사람에게 경제적 가치를 확인하게 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문화적 소통구조를 만들어내며 사회가 유기적으로 돌아가도록 함께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일하면서 보람을 찾고 일에서 나를 발견하며 일이 또 다른 일을 만들어낸다.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발상도 일이 있어야 가능하고, 사회와 국가에도 ‘즐거운 일자리’가 풍성해야 ‘나라다운 나라’도 만들 수 있다.잘사는 나라들의 모임인 G20 국가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웬일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산업재해사망율’이 또 1등이라는 것은. 경제수준이 비슷한 나라들 가운데 이를 다시 분석해 보면 다른 나라들보다 거의 세 배나 많은 사람들이 일하다가 죽어간다고 한다. 해마다 2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목숨을 잃어야 한다면 이 나라는 과연 선진국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하루에도 대여섯 사람이 일자리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런 일터를 ‘행복한 산업현장’이라 부를 수 있는가. 사망사고가 그 정도라면 크고 작은 산업현장 안전사고 탓에 다치고 병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지.‘모든 사고는 예방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의 생각이라고 한다.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투자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대기업들이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위험을 외주화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안전은 누구에게 떠넘겨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가 누구라도 모두 귀한 생명이며 일에서 보람을 찾으러 또 다른 의미의 ‘고객’이 아닌가. 노동으로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일이 보람찬 환경을 회복하여야 한다. 이익보다 생명이 소중한 경영철학을 세워야 하며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안전한 현장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안전은 상식이다. 불안한 일터에서 행복할 사람은 없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것도 부끄러울 판에, 그게 핑계가 되어 일자리가 위험하다면 이는 거의 범죄가 아닌가.유엔이 정한 ‘인권의 날(Human Rights Day)’은 각국의 기업들에게 노동인권을 보장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제도와 규제 때문에 ‘마지못해 돌아보는 안전’에는 빈 틈이 있게 마련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공동체의 가치를 높이 생각하는 기업문화가 살아나야 한다. 안전을 상식으로 여길 때, 비로소 현장의 안전은 지켜질 터이다. 모두가 안심하는 일터가 보장되어야 한다. 안전이 여지껏 비상식이라면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길은 멀고도 멀다.

2019-12-11

암의 습격

김규종 경북대 교수요즘 마음이 아주 무겁다. 즐거운 일이 있어도 흔쾌하지 않다. 오랜 세월 가까이 지낸 후배교수가 항암투병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30일 ‘담도암’ 4기로 각종 장기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은 그는 몸무게가 15㎏이나 줄었다고 한다. 그것도 부족해 5개월 예정의 기나긴 항암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요즘에는 10분 앉아있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그토록 활달하고 건강했던 50대 초반의 가장이 한순간에 고통의 나락에 떨어지다니?!울림 좋고 당당한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7월 중순 일이다. 울산에 일이 있어서 전화했을 때, 그는 두 아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쾌활하고 명석하며 해맑은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쟁쟁하다. 조만간 한 번 보자며 전화를 끊고, 불과 2개월, 암수술을 받은 게다. 아니, 이런 경천동지할 일이 있나?! 멀쩡하던 사람이 느닷없이 암의 습격을 받고 병상에 누워있다니.지금도 그의 투병생활이 실감나지 않는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가장이며, 대학교수이자 교양교육원장 직책을 수행하면서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던 창창한 장년의 사내. 언제나 밝은 웃음과 투명한 성정으로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던 사람이 암에게 불의의 일격을 받아 쓰러진 것이다. 현대의학은 어디까지 인간의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지, 단단히 회의가 드는 것이다. 무의미한 생명연장에 반대하는 자발적인 연명의료 중단노력이 진척됨으로써 의술에 대한 믿음이 커지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한편에서는 ‘길가메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이른바 500세 인생에 도전하는 신기원이 싹트고 있다. 여타 두더지들보다 노화가 훨씬 느리고 4배나 오래 사는 장수 유전자를 가진 두더지에서 단서를 얻은 연구자들이 진행하고 있다는 ‘길가메시 프로젝트’는 극소수 부자들을 위한 것이겠다.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의료비는 하락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호모사피엔스의 평균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후배교수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 언제 어디서 ‘암’을 비롯한 치명적인 질병의 급습으로 생명에 적신호가 켜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은 아직도 암과 싸우고 있지만, 총체적인 승리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도대체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그저 안부를 묻고, 삶을 향한 강렬한 의지를 일깨우고, 생명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키는 일 말고는 애당초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에 무력해지곤 한다. 그를 공격한 암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거리를 배회하는 수많은 인총들이 암과 무관하다는 사실마저 새삼 경이롭게 다가오기도 한다.그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우며 원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그래도 어찌 하겠는가?! 끝까지 싸워서 이겨내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하늘로 날려 보낸다. 이 친구야, 훌훌 털고 일어나시게! 반드시 살아서 인간세상으로 귀환하시게!

2019-12-11

달나라 교육(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어찌 이 나라 교육은 시간이 갈수록 달나라로 가고 있을까! 정말 우리 교육이 달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나라 교육은 설령 우주과학 기술이 발달해 우리가 달나라에 간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곳에서 의미도 없는 줄기세우기 식 시험을 볼 것이 확실하기에 달나라 교육이라는 말도 참 조심스럽다.요즘 교육계 돌아가는 꼴을 보면 휘황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휘황(輝煌)하다’의 뜻을 사전에서는 “행동이 온당하지 못하고 못된 꾀가 많아서 야단스럽기만 하고 믿을 수 없다.”라고 정의하고 있다.필자는 휘황(찬란)하다는 단어를 아는 게 너무도 다행스럽다. 왜냐하면 지금 이 나라 교육이 돌아가는 꼴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묻고 싶다. 이 나라에는 교사가 있는지? 물론 필자의 이 말에 분노해 하며 나는 교사다고 말하는 학교에서 일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말하는 교사는 그런 학교 직장인이 아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참으로 학생들을 위하는 스승을 말한다.한 때 우리 교육에는 스승이 많이 계셨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제자를 살리시는 스승의 노력 덕분으로 아무것도 없는 이 나라가 그나마 지금의 모습까지 올 수 있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지금 우리가 이만큼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한 때 이념 운동을 한 이데올로기 집단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의 스승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스승들을 우리는 오래 전에 잊어버렸다. 그래서인지 우리 교단에는 스승이라는 단어가 사어(死語)가 된지 오래다. 몇몇 단체에서 스승 상을 주고는 있는지만, 과연? 필자가 기억하는 스승은 필자에겐 달과 같은 분이셨다. 스승께서는 어두운 밤길 당신을 태우셔서 기꺼이 필자의 길을 밝혀주셨다. 이 나라의 스승들은 제자들에게 길이 되어 주시기도 하셨지만, 교육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셨다. 한 때이지만 그나마 이 나라 교육이 정부 하명과 같은 심한 외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이 나라를 이만큼이라도 키울 인재를 양성해서 사회로 배출시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스승들께서 몸으로, 정신으로 그 외풍을 막아주셨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거의가 YES를 외치는 교사들뿐이다. 그저 교육부 하명이 떨어지면 그것을 따르기 급급하다. 그러한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다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과연 우리는 학생들에게 정의를 말 할 수 있을까? 설사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이 우리의 말을 얼마나 믿을까?이 나라 교사들에게 묻는다. 다음과 같은 교육부의 하명이 우리 교육에서 정말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가?“부모나 사교육의 영향력이 학생부 생성 단계에서부터 개입되어 학종의 공정성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습니다. 이에, 정규 교육과정 내에서 교사가 학생의 학교생활을 직접 관찰·평가·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을 선발토록 함으로써 학종의 공정성을 높이고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고자 합니다.”12월, 달나라로 가는 교육을 막지 못하는 마음이 시리다.

2019-12-11

기적의 사과 (2)

서점을 아무리 뒤져도 농약을 치지 않고 성공했다는 정보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정보만 찾아냅니다. “무농약 사과 재배에 도전하면 1년 만에 95%의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당장 죽지는 않지만,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2년차에는 수확량이 정확히 제로로 떨어집니다.”그만큼 사과 농사는 농약에 길들여져 있었던 거지요.청년이 서가에서 책을 뒤지던 중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손이 닿지 않는 맨 위 칸에 있던 책 한 권이 툭, 하고 머리에 떨어집니다. ‘자연농법’이란 책이었지요. 사과 농사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작물을 재배하는 일반적인 방법에 대한 책이지요. 청년의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피어납니다. 어쩌면 이 방법을 사과 농사에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싹트지요.장인어른과 식구들을 설득합니다. 가족들은 이 청년의 집념을 잘 압니다.한 번은 영국의 제조사에 직접 주문해 트랙터를 수입한 적이 있는데, 고장이 나자 트랙터 전체를 다 해체하고 뜯어 구조를 완전히 파악할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습니다.한 번 마음먹은 일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청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가족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승낙이 얼마나 큰 재앙을 몰고 올지, 그 당시는 결코 알 수 없었겠지요. 이 청년의 이름은 기무라 아키노리입니다.이듬해부터 농약을 중단합니다. 한 그루 한 그루에 붙은 벌레들을 떼기 시작합니다. 농약을 멈추자 벌레들은 신났습니다. 달고 향기로운 사과 이파리에 들러붙어 마음껏 식사할 수 있으니, 이 과수원은 벌레들의 천국입니다.“벌레들이 어린 새 잎이 붙은 가지 끝까지 바글바글 몰려들어서는 만원 지하철처럼 야단법석을 떨었어요. 벌레 때문에 사과 가지가 휠 정도였으니까요!” 당시를 회상하던 기무라씨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1

지금부터 후계자를 키우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최근 지역에서 개최되는 학술세미나는 물론 다양한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계 등 어떠한 분야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같음을 새삼 느낀다. 물론 재임기한이 있는 주요 임명직 기관장들이야 바뀐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하면 지역 각계의 유지라고 불리는 각 기업체의 임원진이나 단체 대표, 학계의 전문가 등은 대부분 같다. 그저 다들 얼굴의 주름살만 하나씩 늘어날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지역에서 매번 마주치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필자와 같은 급여생활자들은 가령 본인이 은퇴하더라도 그 역할은 당연히 후임으로 임명되는 그 누군가에 의해 앞으로도 꾸준히 지역 경제를 연구하는 일을 수행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사실 사람만 나이가 드는 것은 아니다. 100년 기업이라는 말처럼 기업들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업력이 쌓이는 것이다. 다만, 그동안 기업이 100년 동안 이어지려면 그 구성원만큼은 꾸준히 물갈이를 해 줄 필요가 있다는 점만 다르다.문제는 지역경제와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지역의 향토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대표나 사장 한 사람의 사정에 따라 기업의 존속 여부가 결정되기 쉽다는 점이다. 지금 지역의 유지라고 할 수 있는 지역 중소기업 사장들은 젊을 때 창업하여 불철주야 노력해 비록 손에 기름때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나름 일가를 이룬 분들이다. 그런데, 그들 자녀 중 비록 작은 공장이라도 부모가 일구어낸 중소기업을 가업으로 삼아 그 뒤를 이으려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금 포항에서 이삼대에 걸쳐 가업을 잇고 있는 곳은 소수의 음식점을 빼면 제조업체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어느 정도 안정화된 향토 중소기업 중에는 사장, 종업원이라는 금을 긋지 않고 서로가 한 몸이 되어 수없이 다가온 위기를 함께 극복해온 전우애로 다져진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기업들이 지금까지 포항경제를 뒷받침해 왔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포항의 우수한 중소기업일수록 숙련된 기능공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 중소기업의 경영자부터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함께 지난 세월을 보냈기에 고령화라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나 포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일본도 중소제조업체의 약 70% 이상이 후계자 부재에 허덕이고 있다.우리는 그동안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화두에 매달려왔다. 하지만 정작 지역경제를 지탱해왔던 향토 중소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대기업이나 재벌가가 아니라 자신이 일으켜 세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철공소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생존해야만 지역경제가 순환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지역 중소기업 경영자는 자신이 평생 일군 기업이 100년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자식이 아니더라도 뒤를 이을 지역 인재들을 발굴해 후계자로 삼아야만 한다. 지역 각계의 전문가도 자신의 후계자를 미리미리 육성해 나가야 할 책무가 있다.

2019-12-10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생리 욕구, 안전 욕구, 소속감과 애정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있으며 이 욕구에는 위계가 있어서 하위 욕구가 만족되지 않으면 상위 욕구를 추구하고 어렵다고 한다. 식욕, 수면욕, 배설 등 생리 욕구가 가장 기초적인 욕구이며 이 욕구가 충족되면 위험이나 고통으로부터 안전하고자 하는 욕구,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소속과 애정 욕구,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존경 욕구, 마지막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자아실현 욕구를 추구하게 된다. 욕구 이론은 연령이나 성, 인종을 초월해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은 육아에도 적용된다. 아이를 지도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생리 욕구와 안전 욕구가 충족되는 환경이 우선되어야 하고, 아이와 성인과의 관계에서 충분한 애정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는 주변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행동하게 된다. 아이들은 인정받고 싶으나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 수 없거나 서툴러서 못할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대부분의 경우는, 행동의 한계가 명확하지 않거나 어른의 지도 방식이 일관되지 않을 때이다. 같은 행동도 어른의 기분이 좋고 나쁨에 따라 허락되거나 허락되지 않을 때 아이는 혼란을 느낀다. 이러한 이유로 아이에게 허락할 수 있는 행동의 경계를 명확히 알려주고 일관되게 지도할 필요가 있다. 일관되어야만 아이도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고 예측이 가능할 때에 상황에 대한 통제감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아이를 인정하기 위해 우리 어른들이 하는 칭찬 중에 비효율적인 칭찬이 있다. 비효율적인 칭찬의 예로는 “네가 최고야”처럼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는 칭찬이 있고, “착하구나”와 같이 착함의 기준이 상대적이고 모호한 칭찬 등이 있다. 남들과 비교하는 대신, “어제는 나무만 그렸는데 오늘은 나무에 매달린 사과까지 그렸구나”처럼 지난 날보다 현재 아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본 지면에서 아이를 인정하는 방법 중 하나를 공유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긍정적인 자아상 만들기이다. 긍정적인 자아상 만들기는, “너는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색연필을 친구에게 빌려주는구나”처럼 “너는 어떠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행동하는구나”라며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을 담아 칭찬하는 방법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의 ‘꽃’처럼 아이를 꽃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불러줄 때 아이는 그렇게 성장할 것이다. 언어도 습관이어서 쉽게 바꿀 수가 없고 연습이 필요하다. 종이와 연필을 꺼내서 아이를 인정하는 말을 적어보자.

2019-12-10

기적의 사과 (1)

어릴 적 홍옥이라는 예쁜 이름의 사과가 있었습니다. 잘 닦으면 붉은색이 반짝반짝했지요. 중학생쯤 달콤하고 사각사각 식감이 뛰어났던 사과를 처음 맛보았습니다. 어른들은 그 사과를 ‘부사’라고 불렀습니다. 알이 큼직하고 홍옥의 시큼한 맛 없이 입에서 살살 녹았습니다.부사는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1962년 처음 생산한 사과계의 혁명입니다. 달고 상큼한 맛은 전 세계를 석권합니다. 1911년 꽃 썩음 병과 갈색 무늬 병이 사과 재배 농가를 강타했을 때 아오모리 현에 최초로 농약이 살포됩니다. 이 농약 덕분에 아오모리 사과 농사는 멸망하지 않았다고 기록은 전합니다. 한 번 농약의 효험을 몸으로 느껴본 아오모리 농가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좋은 약을 개발하기 시작하지요.더 달고 더 크고 더 맛있는 사과를 재배하려는 실험이 농약 개발과 더불어 진행되었음을 이 청년은 깨닫습니다. 더 달콤한 사과를 만들어 내려면, 그만큼 더 많은 벌레들이 달려든다는 뜻이고 점점 더 독성이 강한 농약이 개발되어야 사과밭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겁니다. 부사는 결국 51년 동안의 품종개량과 농약개발의 열매였습니다.1978년. 아오모리 현에 이상한 젊은이가 등장합니다. 나이는 스물아홉. 그의 사과 밭은 약 6만 평입니다. 이 밭에서 풍요로운 사과를 수확하려면 연간 13번 정도의 농약을 밭 전체에 뿌려주어야 합니다. 지역 농업지도소에서 알려주는 대로 때에 맞추어 아오모리 현의 모든 사과재배자들이 함께 농약을 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농약을 한 번 제대로 뿌리고 나면, 아내가 며칠을 앓아눕는 겁니다.청년은 결심합니다. 아내를 위해 농약을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아예 뿌리지 않고 사과를 재배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평소 습관대로 곧장 서점으로 달려갑니다. 그의 눈에는 실망스러운 정보들만 가득합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0

허무 속에서 살아가기 - 김훈 ‘칼의 노래’를 읽고

제목을 보았을 때는 ‘이순신’의 화려한 영웅담이 펼쳐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박진감 넘치는 전쟁 장면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대에 미치는 내용은 아무 것도 없었다. 뚜렷한 줄거리도 없었고, 뚜렷한 사건도 없었다.다만, “오늘도 적은 오지 않았다.”라는 말이 주문처럼 되풀이 되었고, 적은 좀체 오지 않았다. ‘나’의 지리멸렬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이 책 속으로 마법처럼 빠져들었다. 소설 속에 두텁게 베인 허무와 비관이 어떤 식으로 끝을 맺을지 궁금했다. ‘나’가 분명 죽을 것임을 알았음에도 그 끝이 궁금했다.“포탄과 화살이 우박으로 나르는 싸움의 뒷전에서 조선 수군은 머리를 잘랐고 일본 수군은 적의 코를 베었다. 잘려진 머리와 코는 소금에 절여져 상부에 바쳐졌다. 그것이 전과의 증거물이었다. 잘라낸 머리와 코에서 적과 아군을 식별할 수는 없었다. 머리를 얻기 위해 코를 얻기 위해 아군과 적군은 싸운다. 피난민들은 다만 얼굴 가운데 코가 있기 때문에 죽었다.”‘나’가 인식하고 있는 전쟁, ‘나’가 생각하는 전투는 ‘부지런히 잡초를 뽑는 농사일’ 과 같다. 전쟁은 잔악하며 참담하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싸울 뿐이며, 서로를 죽일 뿐이다. ‘나’에게 전쟁은 끼니와도 같다.“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그 연장선상에 있는 삶은 다만 허무할 뿐이다. 비 오는 날 면사첩의 면사(免死) 두 글자를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어땠을까?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 않겠다는 것’임을 생각하며, 비 오는 밤을 뒤척이는 ‘나’의 심정은 어땠을까?‘나’를 죽이고 임금에게 갈 적은 동시에 나를 살려주고 있기도 하다. 이 모순, ‘나’가 뒤로 물러나도 앞으로 나아가도 죽음은 똬리를 틀고 기다리고 있다. 결국 ‘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을 인정하고 그 죽음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가?“마침내 적의 전체로 맞아야 하는 날은 정확하고 분명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우수영으로 돌아온 날 밤에 나는 모처럼 깊이 잠들었다. 섬 앞 바다가 막힌데 없어서 죽기에 편한 자리였다.”하이데거는 현존재는 ‘죽음을 향하여 있음’을 이야기한다. 현존재가 죽음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이 죽음의 알 수 없음, 죽음의 서로 다름은 “고유한 존재 가능성”임을 역설한다.소설 속의 ‘나’는 ‘죽음과 관계 맺은 고유한 존재의 가능성’보다는 죽음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끊임없이 적의 전체를 기다리며 죽을 장소를 찾고 있다. 장인처럼 죽음을 다듬으며, 그 죽음을 탐닉한다.소설을 읽으며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저 죽음을 떨쳐버리고 조금 더 치열해지길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소설 속엔 끝끝내 죽음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죽음을 인정하고 수긍하는 나약한 ‘나’ 외에 더 무엇은 없었다.김훈의 거개의 소설들은 삶의 끝자락으로 몰린 자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은 왕명 속에 깃든 것들이 헛것임을 알면서도 그 헛것을 놓지 않는다. 삶은 수많은 헛것으로 이뤄졌더라도 그 헛것을 놓지 않는 일이라고, 그 헛것이 끝끝내 헛것으로 스러져 버리더라도 그 헛것을 끝끝내 지켜내는 그 부질없음이 삶이라는 것을 말하였다. 김훈은 그 지독한 허무를, 그토록 담담하게 그려냈던 것이다.김훈의 소설에 등장하는 허무한 이순신이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삶과 죽음은 타원형과 같다. 그 타원형은 양극을 가지고 있으며, 그 극과 극의 양상은 다르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하지만, 그 극에서 조금이라도 비껴서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삶의 극에 서 있는 자는 죽음으로, 죽음의 극에 서 있는 자는 삶으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나는 지금 삶의 극을 약간 비껴나 있는 것 같다.몇 해 살지 않은 삶,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왔는지 알 수 없다. 어느 날, 그 잘못들이 내 머리 속을 헤매는 것이다. 며칠 째 고열로 혼자 앓다가 애써 밥을 먹을 때, 벌겋게 부은 편도를 스치는 밥 알갱이들의 질감과도 같이, 삶 킬 수도 없고, 눈물이라도 나면 좋을 테지만, 눈물도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칼의 노래’의 ‘나’가 삶을 당당히 헤쳐 나가길 원했는지 모른다.

2019-12-10

반려동물 교감치유(上)

반려동물은 인간에게 친근한 동반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복잡한 일상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순수한 우정과 기쁨을 주고 정신적, 신체적 재활과 회복 그리고 치유에까지 관여하는 등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최근 반려동물이 참여하는 동물교감치유의 효과가 입증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환자에게 대체 치료요법으로 적용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활발하진 않지만 정부차원의 정책적 노력과 활동가들의 경험, 연구자들의 학술적 내용들이 정립되고 있는 단계에 있다.동물교감치유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일정한 훈련을 받은 반려동물 사이의 동반자적 생활과 활동을 통하여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교육적, 신체적 발달과 적응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육체적 재활과 정신적 회복을 추구하는 전문적인 분야이다. 첨단과학기술과 산업의 발달은 현대사회의 물질적 풍요와 인류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점을 발생시켰다.동물과 인간의 정서적 유대를 바탕으로 한 동물교감치유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선사시대부터 인간과 동물의 정서적 유대관계에 대한 주장이 있긴하지만 BC 400년경 부상당한 병사를 말에 태웠더니 치료효과가 있었다는 그리스 문헌에서 시작한다.이동훈1792년 영국의 요크셔지방에서 퀘이크 상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정신 장애인들이 생활하던 공간에서 토끼나 닭을 키우면서 자기 통제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긍정적 강화프로그램을 환자에게 적용하였는데 오늘날 동물교감치유 프로그램의 모델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1867년 독일에서는 간질환자 치료를 위해 주거시설 내에 새나 고양이, 개, 말 등을 돌볼 수 있도록 했고 동물농장과 동물 보호구역도 설치했었다. 1901년 영국에서는 재활승마라는 승마치료의 개념을 도입해 재활승마에 대한 전반적인 기준과 표준을 만들어 세계 각국이 활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으며 옥스퍼드 대학병원에서 재활승마치료를 실시했었다. 1919년 미국 엘리자베스 병원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군인의 치료에 개를 활용했고 1942년에는 적십자사와의 협조로 뉴욕의 파울링 공군요양병원에서 2차세계대전에서 다친 환자의 휴식과 긴장완화를 위해서 다양한 종류의 농장동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덴마크의 하텔이라는 승마선수가 소아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재활승마의 효과가 입증되었고 이후 재활승마는 유럽에 전파됐다. 반려견이 참여하는 동물교감치유는 1962년 미국 소아정신과 전문의인 레빈슨이 개와 놀면서 아동이 회복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동물교감치유를 임상심리학에 적용시킨 최초의 활동으로 역사에 남아있다.최초의 동물은 사람에게 단백질을 제공해 주던 식량자원이거나 인간을 공격하는 위협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식량으로 이용할 수 있는 동물을 더 많이 포획하기 위해 사냥기술과 개 육종이 발전하기도 했고 맹수들은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인간과 함께하고 있는 개들은 인간의 목적에 따라 육종되고 발전해 왔는데, 앞으로의 개들은 반려동물로서 어떤 역할들을 담당하게 될까? 아마도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활동과 교육, 치유는 앞으로 시대의 반려동물이 가지게 될 최고의 활동분야가 될 것이다. 인간과 동물 그리고 자연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서라벌대 반려동물학과 학과장 이동훈

2019-12-10

황금률(Golden Rule)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필자의 지인 중에, Y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구김살 없이 성격도 좋고 경우도 바르며 인물과 능력도 매우 뛰어나 어딜 가나 늘 인기가 있는, 타고난 호감형의 인물이다. 부유하나 돈 자랑은커녕, 오히려 가난한 이웃을 소리 소문 없이 도와주고, 뛰어난 능력자이나 항상 겸손하며, 남의 불행엔 진심 마음 아파하고 남의 행복엔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축하해주는 그런 위인이다. 그런데 그가 벌레 보듯 하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그는 바로 속 좁기로 소문난 L이었다.하루는, 왜 L이 그렇게 싫은가 물었더니, Y의 말인즉슨, L의 속 좁음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본인은 상대를 예로써 대하지 않는데, 상대방으로부터는 존경받으려 하는 모양새가 싫고,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골라서 남에게 시키니 그런 무례함이 싫으며, 특정인을 챙기려고 작정하면 애꿎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해서라도 무리수를 두니, 그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기에 싫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포스트잇이 붙은 성경 한 권을 건네었다. 펼쳐 보니 그 곳은 다름 아닌,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마태복음 7장 12절, 바로 그리스도교의 핵심 윤리인 황금률(Golden rule) 부분이었다.예수는 이 황금률을 율법서와 예언서에 나오는 모든 규칙들 중 가장 으뜸으로 여겼다. 사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한다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이는 단순히 물 한 그릇 밥 한 그릇 대접한다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을 대접한다’는 말에는 이미 내가 어떤 대접을 받을 사람인지가 정해졌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옛날 무학 대사가, 저를 ‘돼지 같다.’고 한 이성계를 향해, 오히려 부처 같다하면서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이,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이 보인다.’는 말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돼지만 보이는 당신은 돼지처럼 대접받으면 될 일이고, 부처를 보는 나는 부처같이 대접하라는 명쾌한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이처럼 ‘남을 대접한다’는 것은 곧 타자를 향한 베풂이자 나를 향한 베풂이기도 하다. 논어 위령공 편에는, 자공이 공자에게 평생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가르침을 요구하자 공자가 이렇게 말한 대목이 나온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자신이 원치 않으면 타인에게도 시키지 말라)’. 그렇다. 내가 대접받고 싶으면,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절대 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러한 인간관계의 기본원칙을 망각한 채,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는 ‘기소불욕 시어인(己所不欲 施於人)’ 족속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바야흐로, 한 해의 끝자락 12월이다. 이맘때면, 올 한 해를 찬찬히 돌아보기도 하고, 다가올 신년 계획도 세우기 마련이다.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여러 가지 기억들, 추억들이 많겠지만, 그 틈 사이로, 스스로 황금률을 제대로 실천해 왔는지, 혹 ‘기소불욕 시어인’ 하지는 않았는지 모두가 스스로 한번쯤 성찰해 보는 시간을 살짝 넣어보면 어떨까?

2019-12-10

명문 집안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감이다. 고대 로마시대 왕과 귀족들이 전쟁에 직접 출전하는 등 실천적 솔선수범 정신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기원이 됐다. 지금도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런 도덕적 의무감을 정신적 지주 혹은 자부심으로 삼는다. 실제로 영국의 명문가 집안 자녀가 많이 입학하는 이튼스쿨은 1·2차 세계대전에 참여해 목숨을 잃은 2천여 명의 모교 졸업자 명단을 비문에 새겨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달성 서씨는 대구에 터를 잡은 700년 전통의 명문 집안이다. 조선조 대제학을 지낸 서거정 선생을 비롯, 현대사에서는 시서화에 능한 서병오, 항일 투쟁에 앞장섰던 서상일, 총독부 요인을 암살하려다 체포된 서상한 등 많은 애국자와 선비가 난 집안이다. 특히 조선 영조대왕의 원비 정성왕후의 본관이 바로 달성이다. 영조가 왕자였던 시절 가례를 올려 달성군부인에 봉해진다. 그러나 영조와 좋지 않은 관계로 비운의 시절을 보낸 왕비다. 달성 서씨 문중의 유허비가 달성공원 안에 세워진 것은 이곳이 본래 달성 서씨 세거지였기 때문이다. 1424년 세종 6년 구계 서침(徐沈)은 서씨 일문의 근거지인 달성공원을 나라에 헌납하게 된다. 이에 세종이 포상하려 하자 서침은 상 대신 주민에게 거둬들인 환곡의 이자를 감해 줄 것을 조정에 건의한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져 뒷날 서침 선생의 공덕을 기린 구암서원이 건립된다.달성 서씨 대종회는 동산동에 있는 옛 구암서원의 터를 대구시에 기증했다. 지금 평가 가치로 35억원 정도 된다고 한다. 대종회는 이번 결정이 서침의 뜻을 따르는 일이라 했다. 나라와 지역을 사랑하는 숭고한 정신이 바로 명문 집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10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2)

벨라가 죽은 후 오랜 슬럼프에 빠졌다가 겨우 몸을 일으킨 샤갈, 이후의 작품에는 주로 푸른 빛이 등장합니다.이 시기를 샤갈의 푸른색(Chagall’s blues)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샤갈이 태어났을 때 고향 마을은 큰 불이 났습니다.샤갈이 태어난 마을 전체가 한 시간 만에 불길에 휩싸입니다.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안전한 곳을 찾아 거리 여기저기로 요람을 들고 다녔지요. “어쩌면 이 때문에 항상 불안을 느끼며 방랑벽을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샤갈의 고백입니다. 평생 세상의 불길과 화염을 피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피해다닌 노마드의 삶이었기에 샤갈은 더욱 본향을 그리워했습니다.“만일 우리들이 부끄럼 없이 사랑이란 말을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참다운 정신은 사랑에 있다”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 유대인으로 늘 직면했던 살해위협,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며 인류가 저지를 수 있는 잔혹한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살았던 샤갈. 암울한 시대에 색채를 무기로 싸운 사랑의 투사였습니다. 샤갈의 언어 중 제 가슴을 찌른 말입니다.“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시대는 밤이었습니다. 대규모 학살이 버젓이 자행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파리 죽이는 것보다 쉬웠던 시절.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전혀 소망이 없을 듯한 암울한 세상을 살면서도 샤갈은 결코 꺾이지 않습니다. 짙은 밤처럼 어두운 시대,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색채에 물들어 자신의 태양을 빛내고 밝힌 등대였습니다.누구는 총과 칼로 또 다른 누구는 지성으로, 그리고 세상은 돈과 권력으로 혁명을 꿈꾸지만 여기 사랑으로 인류의 내면에 불꽃을 피운 진정한 혁명가의 삶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를만한 사랑의 깃발이 펄럭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9

교육개혁과 관료주의와 일선교사

조현명 시인교육개혁을 바라보는 일선교사의 생각은 늘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소외감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정책과 시스템은 교육부라 이름하는 교육 관료주의로 이루어져 있다. 항상 그 시스템의 말단에 서있는 일선교사가 교육 개혁의 대상이며 개혁 실행의 당사자였기 때문에 개혁에서 소외가 될 수밖에 없다.결국 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정책으로 전환되는 악순환을 경험한다. 일선교사는 그러므로 생각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관료주의 시스템이 단단하게 구축되어있다. 마치 검찰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촛불까지 켜들고 하지만 잘 안 되는 것과 같이 교육 관료주의 또한 만만치 않다.전국단위의 연수회에서 교육부 행정 사무관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에 대한 질의 응답시간이었는데, 갑자기 “학교에서 고3의 교육과정을 제대로 편성 실행하고 있습니까? 전부 수능에 맞추어 왜곡 변경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해서 듣고 있던 교사들이 술렁거리기도 했다. 행정 사무관 한사람의 협박에 모든 학교와 선생님들이 죄인이 되어버린 현장이었다. 사실은 교육부가 만들고 해마다 땜질식으로 바꾸어놓은 입시제도에 의해 교육과정이 왜곡되고 있는데도 그 잘못을 일선 학교 교사들에게 전가하는 모습에서 나는 처음으로 교육 관료주의가 이런 것이구나 통감하게 됐다.20년 시차로 우리사회가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동경대에 들어가기 위해 7수, 8수를 하던 경쟁과 사교육을 그대로 닮았고, 이후 유도리(여유)교육으로 공교육이 황폐화된 것도 닮았다.현재 일본은 ‘국제 바칼로레아(IB)’를 공교육에 도입,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혁명적인 교육개혁을 실행하고 있다. 그것도 대구, 제주 교육청이 따라가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부도 시차를 두고 따라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이 일본에는 문부과학성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닮은꼴의 교육부가 있기 때문이다. 관료주의는 두 나라가 뼈 속까지 닮았다.교육개혁은 관료주의의 조직 하에서는 단언컨대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질 것이다. 실제적이려면 일선교사들의 공감을 얻어야하는데,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하고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5년 주기의 정권하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교육개혁이란 만병통치약을 믿으면 안 된다’ 라고 선언한 ‘다이안 래비치’ 같은 교육학자도 있다. 그는 대안으로 ‘풍부한 교육과정과 충실한 수업’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일선 교사들의 입장에서 학생의 변화와 깨달음이 목표이지만 학생들은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을 매년 목도한다.어쩌면 ‘수업을 통해 더 망가지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때도 있다.관료주의 안에서 개혁의 대상이 된 일선교사는 정작 교육개혁에 소외되는 것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매일매일 학생들에게 소외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교사의 일상과 진로를 방해하는 관료주의에 맞서기보다는 묵묵히 ‘풍부한 교육과정과 충실한 수업’을 위해 열심을 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9-12-09

수오재기(守吾齋記)의 교훈

강희룡 서예가조선의 중종 시대는 연산군 시절의 잘못된 정책과 사회풍속을 바로잡으려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조광조는 도학정치의 실현을 위해 사림을 천거하여 인재를 등용하는 현량과를 주장하며 사림 28명을 선발했다. 또한 중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정국공신(靖國功臣)들의 공을 삭제하는 위훈삭제 등 개혁정치를 서둘러 단행하다가 사흘 후 반발한 훈구세력에 의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이 개혁정책은 무산되고 한 달 만에 사사됐다. 후일 율곡 이이가 경연일기(經筵日記)에서 조광조를 평가한 내용은 오늘날 위정자들이나 관료들은 귀담아 들을만하다.‘옛사람들은 학문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서야 도(道)를 행하려 했던 것이다. (중략) 조문정(趙文正·조광조)은 어질고 밝은 자질과 나라를 다스리는 재주를 가지고서 학문이 미처 이루어지기도 전에 갑작스레 요로(要路)에 올라, 위로는 임금 마음의 잘못을 바로잡지도 못하고 아래로는 권력세가의 비방을 막지도 못하여, 몸은 죽고 나라는 어지럽게 했으니 도리어 뒷사람들이 이것을 징계삼아 감히 일을 해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학문이 이루어지기 전이라는 것은 아직 국가를 경영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간절한 표현이다. 조광조가 학문이 이루어진 후에 관직에 나갔다면 국가에 큰 도움이 되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였을 것이라는 탄식을 글로 적은 것이다. 겉으로 보아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 있더라도 준비된 사람, 곧 학문과 인격을 이룬 사람이 먼저 있어야 한다. 학문이 논리적으로 완결됐다는 기준은 모호하지만, 지금처럼 학계출신들이 정부나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벼슬과 학문의 관계에 대해 주자는 ‘이치는 같으나 하는 일은 다르다. 하지만 학문을 하고서 벼슬하면 그 배운 것을 실험함이 더욱 넓어진다.’라고 했다. 대체로 사람들은 벼슬길에 들어서게 되면 여러 요인으로 본성을 잃게 되어 일생을 망치게 된다.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며 개혁가인 다산 정약용은 ‘여유당전서’에 자신을 지킨다는 ‘수오재기(守吾齋記)’를 실었다.다산의 강진 유배 시기는 관료로서는 암흑기였지만, 학자로서는 최고의 수확기였다. 자신을 잘못 간직했다가 잃어버린 본성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관찰하여 적은 이 수오재기는 본인의 정체성을 깨우치며 경계한 글이다.‘어렸을 때는 과거에 급제해 명성을 얻는 일이 좋아 보여 공부에만 매달려 10년을 보냈다. 마침내 뜻을 이루고 처지가 바뀌어 조정에 나아가서는 화려한 관복을 입고 미친 듯 대낮에도 큰 도로를 활보하고 다녔다. (중략) 세상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바로 나다. (중략) 맹자는 가장 큰 지킴이란 몸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이 진실이다. 내가 스스로 말한 것을 글로 써서 수오재에 관한 기(記)로 삼는다.’반복되는 시간 속에 저무는 해는 항상 아쉽고 오는 해는 늘 새롭다. 위정자들을 비롯한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은 본심을 잃고 가식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쯤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수오(守吾)의 시간을 살필 때이다.

2019-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