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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 시대에도 필요한 새마을정신

이승율 청도군수‘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 가꾸세’ 지금은 듣기가 쉽지 않은 새마을노래의 도입부 가사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의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중요한 사건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의 한 축을 담당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새마을운동이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청정지역이며 대다수 군민이 농업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청도의 자치단체장으로 새마을운동 50주년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1969년 8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남지역 수해복구 현장을 시찰하고자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중에 철로 주변에 있는 청도읍 신도마을의 슬레이트 지붕을 보고 기차를 멈추게 했다.잘 단장된 지붕, 우마차가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닦여진 마을 안길, 정비된 우물과 넓어진 농로를 보며 신도리 주민들의 협동심과 자조심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 이를 바탕으로 마을 가꾸기 사업을 제창하고 이것을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라 부르면서 대한민국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새마을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새마을운동의 정신인 ‘근면(勤勉)·자조(自助)·자립(自立)’이 정착되며 대한민국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이 새마을운동과 정신을 본받고자 청도를 찾거나 교육에 열중하는 것을 보면 새마을운동의 가치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청도군은 새마을개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새마을 세계화 사업, 재활용품 모으기 경진대회 등으로 새마을정신을 계승하고 세계화 등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에 노력하고 있다. 2017년부터 매년 시행하고 있는 새마을개발 국제학술대회는 지난해 ‘지구촌 환경의 변화와 글로벌 새마을개발의 새로운 방향 모색’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친 것처럼 매년 30여 개 국가 250여 명이 참석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다는 평을 받았다.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재활용품 모으기 경진대회는 폐자원을 모아 환경을 보호하고 판매 수익을 창출해 내는 일석이조의 사업 효과로 제2의 새마을운동이라 불리고 있다. 청도군은 올해 국가 성장의 밑바탕이 된 새마을운동 가치를 재조명하고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엠블럼 제작, 생명살림 환경대축제 개최, 새마을대학 개설 및 운영, 새마을운동기록물 자료전시관 설치사업 등이다. 엠블럼은 청도출신 미술작가와 시각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손복수씨가 재능 기부한 것으로 적극적인 활용으로 새마을운동 50주년을 홍보한다. 3월에는 재활용품 모으기 경진대회 21주년을 기념해 생명살림운동을 환경대축제로 격상시키며 새마을운동 사진전과 전시회도 함께 열어 새마을지도자, 지역민에게 다양한 볼거리도 제공할 예정이다.6개월 과정으로 개설될 청도새마을대학은 새마을운동정신 기본이해와 공동체 의식교육, 인문학, 자산운용 등 다양하고 심도 있는 프로그램으로 새마을운동발상지 청도인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관 내에 새마을운동기록물 자료전시관을 설치해 새마을운동의 역사적 유물을 쉽게 이해하게 할 것이다.베트남 타이응웬성 딩화현 프엉띠엔 토마을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새마을 세계화 사업은 푸닌마을을 제2의 토마을로 육성한다. 토마을은 2018년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의 신농촌프로그램 최우수마을로 선정돼 견학과 방문 명소가 됐다. 새마을국제학술대회도 상반기에 열려 다양한 국가와의 새마을운동 공감대를 형성한다.새마을운동의 정신인 ‘근면·자조·자립’은 이 시대에도 필요한 정신이다.자조·자립에는 ‘나’만이 아닌 ‘우리’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잘살게 되어 먹을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도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얼마의 재산이 있는가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타인을 위해 나누었는가를,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실천하는 봉사도 반드시 필요한 시기에 살고 있으며 근검절약은 말할 필요가 없다.청도군은 지금까지 추진해온 새마을 관련 다양한 사업을 더욱 확대 추진해 새마을운동발상지로서의 책임감을 다할 것이고 반세기 역사를 군민과 함께 기념하며 새마을 정신으로 지역이 부농의 고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20-02-09

철갑을 두른 소나무를 지키자

김영체 진솔 산림기술사사무소 대표며칠 전, 포항에서 대구로 향하던 중 서포항 나들목 근처를 지나다가 저절로 눈길이 머무는 경험을 했다. 직업은 속일 수 없는 법. 내 눈에는 제일 먼저 산(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지역은 소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임지(林地)다. 운전 중 눈길이 머문 이유가 있다. 벌겋게 죽은 소나무가 보였기 때문이다. 병든 소나무를 보는 순간 가시에 찔린 듯 마음이 따끔했다. 소나무숲이 주는 푸르름은 간데없고 벌겋게 변한 소나무들이 눈에 밟힌다. 한두 그루가 아니었다. 이미 많은 소나무가 벌겋게 변했다. 산이 일터인 필자는 이런 장면을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몇 배 더 가슴이 아프다.벌겋게 서 있는 소나무는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이다. 재선충(材線蟲)병에 감염된 소나무는 서 있는 채로 말라버린다. 이 병에 걸린 소나무는 고사할 확률이 100%에 가깝다. 재선충은 소나무의 양분과 수분을 빼앗아 간다. 인위적으로 소나무에 영양제를 투여하지 않는 이상 재선충에게 소나무의 영양분을 대부분 뺏겨 말라 죽는 것이다. 재선충은 스스로 다른 나무로 이동하지 못한다. 솔수염하늘소와 같은 매개충을 통해 이동한다. 솔수염하늘소는 2~3cm 크기의 작은 벌레다. 산림청에서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를 위하여 매년 예산을 배정한다. 솔수염하늘소 같은 매개충의 서식처를 없애는 일이다. 매개충의 서식처가 되는 고사목에 대해서 훈증 및 매몰 파쇄 작업을 하는 것이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사업이다.필자는 2014년도에 포항 나들목 인근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사업의 설계용역을 한 적이 있었다. 벌써 6년 전 일이다. 그 당시에도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가 많았었다. 그 이후 매년 꾸준히 산림청과 포항시에서 방제작업을 해왔다. 다행히 죽어가는 소나무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런데 2020년 초, 6년 전 못지않게 다시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산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익숙한 노랫말이다. 애국가이다. 식전행사로 국민의례를 할 때 주로 듣는다. 70~80년대 필자의 학창 시절에는 거의 매일 들었다. 애국심을 고취시켜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국민적으로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국기 강하식이라는 행사도 매일 거행했는데 관공서와 학교에 게양한 태극기를 내릴 때 애국가가 전국에서 흘러나왔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국민은 누구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태극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다.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쉽게 듣지 못하는 애국가다. 그래도 애국가 1절은 많이 들어 볼 기회를 접하지만 4절까지 전부를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애국가 2절 가사에 소나무가 등장한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소나무는 다른 수종에 비하여 성장이 느린 편이지만 수명이 길다. 자연히 장수의 상징이다. 불로장수라는 꽃말이 붙였다. 소나무 모양은 다양하다. 곧게 자라기도 하고 구불구불하게 자라기도 한다. 쭉 곧게 자란 소나무는 전통 건축물 목재로 사용하기에 제격이다. 백 년 이상 모진 비바람을 견디면서 성장한 소나무가 불타버린 남대문 축조에 쓰였다. 구불구불하게 자라는 소나무는 조경수로 으뜸이다. 척박한 토질에서도 자란다. 바위산에도 홀로 서 있는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소나무는 쓸모없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곧게 자라면 건축 자재로, 못생겨도 그 나름대로 조경수로, 아니면 생활에 필요한 땔감으로, 여러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지금은 우리나라 어디든 소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상이변이 일어나 우리나라에서 소나무가 점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예측을 하고 있다. 2100년에는 백두산 같은 고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으로 변할지 모른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는 임업인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의 작은 관심만 가진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의 애환과 함께해 온 소나무를 지켜야 한다. 다시 반만년 역사를 이어가도록 온 국민의 작은 관심이 절실한 시기다.

2020-02-09

가난한 사람들

춥다. 서울의 겨울이 추워졌다. 요즘 겨울은 겨울도 아니라더니 어디 한 번 겨울맛을 보라 한다.겨울을 좋아하던 나인데 디스크를 앓으면서 몇 년씩 겨울이 무섭다가 최근 들어 겨우 겨울이 좋아졌다. 몸이야 아프든 말든 손가락 관절이 쑤시든 말든 겨울은 역시 상쾌한 계절이다.그래도 연로하신 부모님은 걱정이 아니될 수 없다.서울, 대전 사이를 돌아온 탕자처럼 왔다갔다 하다보니 끼니를 제 때 찾아 먹기 어려운 때가 많다.가만 있자, 뭐 먹을 만한 게 없나? 대전역사 안에 성심당 분점이 있지만 맛있다는 튀김소보로도 하루 이틀이지 오늘은 다른 게 먹고 싶어진다.광장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막 꺾어 들면 옥수수며 가래떡이며 군밤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계신다. 그중 어느 한 분에게 흰 가래떡을 가리키며 얼마냐고 여쭙는다. 헉. 천원이라 한다. 가래떡 하나에 천 원이 아니라 두 개가 천 원이라는 것이다.옥수수는 두 개 한 묶음에 이천 원 이라 하신다. 서울에서는 삼천 원였다.서울이냐 대전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는 돈을 세는 단위가 다른 사회들이 있다.아파트를 사고파는 곳에서는 10억, 20억이 예사인 경우도 많다.공부하는 사람들이 회의라는 곳엘 가면 십 만원도, 이십 만원도 쉽게 받는다. 택시 운전사들은 미터기에 몇백 원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작지 않은 문제다. 역 앞의 행상들은 다들 한 묶음에 천 원, 이천 원, 삼천 원을 매긴다.대전 중앙로역 성심당 본점 앞에 가면 행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닭꼬치도 팔고 오뎅도 판다. 빨간 오뎅이든 그냥 오뎅이든 한 개에 칠백 원인데, 세 개를 사면 이천 원이다. 백 원을 깎아 주는 셈이다.서울 지하철 6호선 불광역 앞에 가면 날이면 날마다 오뎅과 떡볶이를 파는 집이 있는데 1인분에 삼천 오백 원이다. 언젠가 오백 원짜리 동전이 없어 제발 삼천 원어치만 주십사 했다. 그랬더니 절대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다가 나중에 지나가는 길에 오백 원을 더 내라고 했다.세상에는 확실히 ‘등급’이 다른 사회들이 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더 높은’ 사회에 소속되고 싶어한다. 그런데 간과하기 쉬운 것이 하나 있다. 백 원짜리 천 원짜리를 세는 사회에 무슨 거짓이 있겠으며 설혹 있다한들 그 크기가 얼마나 되겠는가.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성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성스럽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럴 것이다.좋은 옷, 고상한 취미를 가지면 성스럽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성스러운 흉내를 내는 것이다. 그 외투 안에 숨어있는 거짓을 우리는 모두 볼 수 있어야 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0-02-06

달집태우기와 바이러스

8일은 정월대보름날이다. 우리 조상은 이날을 설명절만큼 큰 비중을 둔다.‘한국의 세시풍속’자료에는 12달 동안 한국의 세시풍속은 모두 189건에 달한다고 했다. 그중 정월 한달 이뤄지는 세배, 설빔 등과 같은 세시풍속이 78건으로 한해의 절반 가깝다.그러나 정월 78건 가운데서도 대보름날 하루와 관련되는 세시풍속이 무려 40여 건이 된다고 했다. 세시풍속만 본다면 정월 대보름은 우리의 가장 큰 명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는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삼는 농경사회에서 우리의 조상은 그 어떤 날 보다도 정월 대보름날을 가장 소중한 날로 삼았다는 반증이다. 중국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상원(上元)이라하고 천관(天官)이 복을 내리는 날이라 했다. 중국 역시 정월 대보름을 중요 날로 섬겼다.정월 대보름날 행해지는 세시풍속을 살펴보면 그 사정을 더 잘 짐작할 수 있다. 오곡밥, 약밥, 묵은 나물, 부럼, 귀밝이 술 등 먹는 것부터 지신밟기, 별신굿, 쥐불놀이, 줄다리기, 달집태우기 등 온갖 행사가 이날 축제로 벌어진다.한해가 시작되는 달에 첫 번째 뜨는 보름달은 우리 조상에게는 풍요와 모든 부정을 살라버리는 정화의 상징이다. 따라서 이날은 지신 밟고 달집 태우며 가능한 많은 정성을 들여 한해 농사의 풍요로움과 가족의 안녕을 달에게 빈다.특히 달이 떠오를 때 생솔가지 등을 쌓아놓고 불을 질러 노는 달집태우기는 질병도 태우고 근심도 태워 한해의 밝음을 소망하는 행사다. 지금도 그 전통이 매년 대보름날 이어진다.그러나 올해는 ‘신종 코로나’로 대보름 행사 일체가 중단됐다. 질병을 막아보자는 염원의 민족 전통이 공교롭게도 바이러스에 의해 중단됐다. 서운한 마음이 없을 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2-06

황교안 일병구하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자유한국당의 수도권 공성전략이 초장부터 꼬이고 있다. 통상 총선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국회의원 당락이 걸린 수도권 공략을 위해서는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대표주자끼리 건곤일척의 승부와 천번지복의 한판대결을 벌이는 게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4·15총선에서는 ‘서울의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종로지역구가 바로 그 현장이다. 그런데 이같은 대결구도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 할 제1야당 대표가 오히려 여당 후보로 나설 이낙연 전 총리와의 대결을 피하는 모양새로 비쳐 지역 정치권에서도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망신살이 뻗치려나. 황 대표가 우물쭈물 결단을 미루는 동안 호남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당선돼 ‘지역정서 타파의 선두주자’란 명예로 당 대표까지 지낸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전격적으로 종로에 출마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이왕 호남지역에서 힘을 잃은 이 전 대표야 격전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다해도 밑질 일없다는 계산이니, 그의 정치적 순발력은 상당하다 평가할 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 대표이자 차기 대권주자로 뛸 황교안 대표는 지난 5일 자신의 총선 출마 지역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이리 와라’ 그러면 이리 가고,‘인재 발표해라’ 그러면 발표하고, 그렇게 하는 건 합당하지 않다”면서 자신의 행보는 자신의 판단, 자신의 스케줄로 해야하고, 이번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큰 전략 하에 자신의 스케줄을 짜겠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종로 출마는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셈이다.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에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란 말이 나온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마땅히 하기 싫어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황 대표의 행보는 이같은 공자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중진의원들의 험지출마론을 설파해온 황 대표가 수도권에서 여권의 대권후보로 가장 유력한 이낙연 전 총리가 출마한 종로지역을 피해 다른 수도권의 험지에 출마하겠다면 어떤 의원들이 납득할까 싶다. 자신의 출마지역을 결정하기 위해 서울 용산, 양천구, 마포 등지에서 지지도 여론조사를 통해 승산을 점치느라 북새통을 벌이고도 공천신청이 끝난 오늘까지도 출마지역을 결정하지 못한 채 미적거리는 모습은 당 안팎의 비판을 자초한다.이런 마당에 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전 대표나 총리 물망에 올랐던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각각 자신의 고향에서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한들 무슨 염치로 험지출마를 강권할 수 있을까. 무릇 지도자는 타인의 모범이 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원외 당대표로서 겪어온 불편함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대권가도에 진력하기 위해서 이같은 무리수를 서슴치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짐작은 되지만 총사령관이어야 할 당 대표의 구차한 행보는 자유한국당 후보들의 전체 사기에도 나쁘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가 감행하고 있는 ‘황교안 일병 구하기’작전은 실속없고, 볼품없는 최악의 작전으로 기록될 듯 하다.

2020-02-06

사막에 채소밭을 만들기까지

레바논 출신의 무사 알라미는 전쟁으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요르단 강 유역 황량한 사막으로 갔습니다. 그 지방은 수천 년 동안 뜨거운 태양빛만이 내리쬐는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사막에서 지하수를 이용하여 곡물 재배에 성공하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는 이 타는 듯한 뜨거운 모래라도 밑으로 계속 파고들면 반드시 물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사막 사람들은 무모한 짓이라며 말렸지만,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막 한가운데로 갔습니다.함께 한 사람 중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도 있었습니다. 일행은 곡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 들어갔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그들은 삽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수개월 후, 드디어 습기에 찬 촉촉한 모래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시원한 물이 차오르자 그들은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울먹였습니다. “여보게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네. 이 메마른 사막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이 눈으로 보았으니….”수백 년 버려졌던 사막에 지금은 온갖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고 있습니다.‘서른, 기본을 탐하라’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실패는 환경이 나쁘거나 실력이 부족해서 보다는 스스로 한계라고 느끼고 포기했을 때 찾아온다.또한, 자주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을 ‘실패자’ 혹은 ‘패배자’라고 느낀다. 스스로 한계를 만들지 마라. 자신을 낮추는 데 익숙해지면 새로운 이미지도 만들 수 없다.”무사 알라미와 우리가 처한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사막에 곡괭이 질을 했고, 우리 역시 무언가 결과를 바라며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내 한계”라고 스스로 선을 긋고 물러서는 나약한 정신이 아니라, “끝까지 간다!” 스스로 다짐하는 정신 승리가 인생의 진정한 매력 아닐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06

양비론의 오류

김병래시조시인서로 충돌하는 두 의견을 모두 틀렸다고 하는 이론을 양비론(兩非論)이라 하고, 그 반대말은 양시론(兩是論)이다. 상당한 경우 대립하는 주장들이 나름의 근거와 타당성을 가지고 있고 복합적인 요소들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또 한편, 대부분의 논쟁이나 토론에서 대립하는 양측의 주장은 모두 한계나 모순, 단점, 불합리한 면을 가지고 있다. 만약 한쪽 주장에만 모순이나 단점, 불합리성, 한계가 있고 다른 쪽 주장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면 애초에 문제가 없는 주장이 당연히 정론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니 논란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논쟁의 소지가 있다는 것은 양시론이나 양비론이 나올 여지도 있는 것이다.얼핏 보면 양비론이나 양시론이야말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중도(中道)인 것처럼 보인다. 불가의 팔정도(八正道)가 그러하듯 중도란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중간이 아니라 엄정한 정도(正道)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양비론은 사태의 본질에 대한 천착과 성찰의 부족이거나, 쟁점을 흐리고 물타기 하려는 불순한 의도일 때가 많다. 아니면 매사에 냉소적인 태도를 가졌거나 세상사의 시비나 논쟁을 초월해 홀로 고고한 척 하는 사람들이 자기우월감의 표출 수단으로 양비론을 펴기도 한다.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수평계(水平計)는 어느 한 쪽으로 기울이면 유리관 속의 물방울은 반대쪽으로 이동한다. 수평계의 물방울이 가운데를 가리킨다는 것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분명히 기울어졌는데도 물방울이 가운데 있다면 그 수평계는 고장이 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위의 배가 한 쪽으로 기울면 중심축은 반대쪽으로 가기 마련이다. 이때 배에 실은 물건이나 사람들이 그 기울어진 쪽으로 몰리게 되면 배는 전복하고 만다. 전복을 막으려면 오히려 반대쪽으로 이동해서 무게중심을 바로 잡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다.올바른 지성(知性)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회현상에 대해 수평계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가 한쪽으로 기울면 금방 알아채는 직감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야 지성인이라 할 수 있다. 요트를 타는 사람이 배가 왼쪽으로 기울면 반사적으로 몸을 오른쪽으로 이동해 중심을 잡는 것처럼, 양식과 정의감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가 한 쪽으로 기울면 반발과 저항의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지금의 정권은 지나치게 좌경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물론 언론과 사법부, 교육계, 노동계, 문화계 전반을 걸쳐 좌파성향의 코드 인사들이 장악하여 전복의 위험성을 보이고 있다.이런 판국에도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논객들 중에는 점잖게 양비론을 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시국이 분명 심하게 좌측으로 기울었는데도 위기의식을 못 느낀다면 고장 난 수평계처럼 상황판단 능력을 상실한 것이고,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거라면 이권이나 보신을 위해서 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려는 불순한 저의가 있는 것이다.

2020-02-06

대학을 강타한 중국발 바이러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대학가에서 졸업식, 입학식이 사라졌다.30년이 넘는 교직 생활 중 졸업식, 입학식이 없는 해는 처음 겪는 것 같다. 사스, 메르스, IMF 등 시련 속에서도 대학이 졸업식, 입학식을 취소한 적은 없었다. 물론 시기가 다르긴 하지만 대학의 모든 행사가 취소 되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졸업식은 영어로 Commencement라고 하여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 있다. 그동안 배운 공부를 마무리하고 축하를 받으며 새로 시작하기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에 하나이다. 졸업식에서 유명 인사들이 강연하는 것도 그런 이유 중에 하나이다.요즘엔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가 너무 수월하여 졸업앨범을 잘 안 만든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나중에 졸업앨범을 뒤지면서 학창시절을 회고하는 건 아주 값진 인생의 추억이다.입학식도 부푼 꿈을 안고 새로이 추가된다는 라틴어 matricula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제 새로운 대학생으로 추가된 자신의 모습을 축하하는 뜻이다. 캠퍼스의 새내기들의 모습은 입학식에서부터 시작된다.그런데 이 두 개의 가장 중요한 행사가 금년엔 한국의 대학가에서 사라졌다.꽃집들이 울상이다. 평소대로라면 2월은 초·중·고·대학교의 입학식과 졸업식이 잇달아 꽃을 파는 업계가 가장 바쁠 시기지만 올해에는 90% 매출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업계는 최대 절반까지 가격을 내렸는데도 잘 팔리지 않아 손해가 막심하다고 한다.대학들의 2월 사람이 모이는 행사는 모두 취소되고 있다.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감염 확진 자가 1만 명을 넘어서고 있고 한국에서도 확진 자가 23명, 이들이 접촉한 잠재적 감염자는 1천명이 넘는다고 한다.마스크는 동이 났고, 마스크 제작 벤처기업을 하는 동료 교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상황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중국에서 수십억의 돈을 들고 와서 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선다고 한다. 교무회의에 들어가 보니 총장 이하 모든 학처장들이 마스크를 쓰고 회의에 임하고 있다. 마치 서로가 전염이 안 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낯설고 어색하다.개강도 연기하는 대학이 많아졌다.중국 유학생 수만 명이 다시 한국으로 입국하는 2월말을 늦추어 보겠다는 정부 당국의 권고 때문이다.캠퍼스마다 중국을 다녀온 유학생들을 조사하여 격리 조치하고 있다. 아예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해 유학을 포기하는 중국 학생들도 늘고 있다.외국유학생, 특히 중국유학생이 중요한 자원인 많은 대학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강의가 시작되어도 중국학생들 회피현상이라든가 교수들이나 학생들의 강의 거부 현상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전파속도가 2002년의 사스, 2012년의 메르스 보다 빠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얼마나 국내에 퍼질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대학을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 행사가 취소된 대학은 썰렁하다.빨리 이 사태가 지나가고 생기 넘치는 대학가의 모습을 다시 기대해 보지만 언제가 될지 막연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봄은 오고 있건만.

2020-02-06

정치는 내가 아닌 국가·국민 위한 것

심한식 경북부4·15 총선 관련 선거구마다 수 명에서 십수 명에 이르는 예비후보들이 표심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정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경산시선거구에도 십수 명의 예비후보가 등록을 하고 인지도 높이기에 골몰하고 있다.이들 대부분이 자기 이름을 알리기에 열심이다. 심지어 자신이 속한 정당을 홍보하기 위해 예비 후보로 등록한 이도 있다.정치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이라고 배워왔다. 즉 자신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고 타인과 국가가 우선되는 것이 정치인 것이다.이러한 이유로 예부터 정치인에게 요구됐던 덕목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齋家治國平天下)’였다.자신을 다스릴 수 없다면 정치입문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다.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치를 국민과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인사들이 판을 치고 있다. 예비 정치인이나 기성 정치인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국민과 자신의 선거구 주민을 위해 살신성인의 정신을 가져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언론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를 바라는 인사들이 선거철만 되면 무더기로 얼굴을 내민다.심지어 사회적인 통념에 반하는 행위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선거에 뛰어들어 자신의 얼굴로 선거사무실 외벽을 도배한다.선거로 자신의 영달을 취하려는 인사들도 문제지만 투표권을 가진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인정에 끌리고 돈에 팔리고 자신이 챙길 이익을 앞세워 왜곡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우리 국민성이 아닌가 싶다.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세상.사면·복권을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처럼 휘둘러도 되는 정치세상을 허락한 것이 우리 국민이다.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늦은 감도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바뀌어야 한다. 출발이 반이라 하지 않았는가.깨끗하고 투명한 정치, 국가와 국민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정치가 우리 사회에 자리잡아야 한다.정당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후보자를 내세워도 선거권을 가진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첫걸음이 4·15 총선이 되길 기대해 본다. /shs1127@kbmaeil.com

2020-02-06

안전지대에서 학습지대로

우리가 안전지대를 벗어나 이르러야 하는 곳은 학습지대입니다. ‘먼데이 모닝’의 저자 데이비드 코트렐은 학습지대를 구성하는 세 가지 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첫 번째 방은 독서방이다. 읽지 않는다면 학습지대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시간은 더 줄어든다. 만일 회사로부터 ‘직급이 높아진다면 그 역할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시간이나 돈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책 읽을 시간을 챙길 수 있느냐는 의미이다.두 번째 방은 경청방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면 어느새 오만함에 빠지고 자기통제를 상실하게 되며 감각이 둔해진다. 그런 상태는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세 번째 방은 나눔방이다. 자신이 아는 것을 상대방에게 설명하고 가르치려 할 때 제대로 학습할 수 있다. 학습지대에 머무는 것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최근 한국의 독서 인구가 급격히 양분화되고 있습니다. 스마트 기기 발달과 온갖 자극적인 컨텐츠의 범람으로 책에서 이탈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출판계가 반성해야 할 일도 무수히 많겠습니다만, 시대적 흐름은 어찌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한번은 어떤 대기 장소에 모인 사람들 전원이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스크롤 하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폰 대신 손에 책을 들고 있으면 어떤 모습일까? 잠깐 상상해 본 적도 있습니다.하지만, 고급 독자들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책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토론하는 모임을 찾아다니고, 자기 책을 쓰려고 애쓰며 학습지대에 자신을 노출하려 애쓰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모쪼록 학습지대를 잘 선별해 독서방, 경청방, 나눔방 이 세 가지를 튼실하게 잘 가꾸어야 하겠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05

교육 백신 2 - 폐교 탈출론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계절을 잃은 1월이 어영부영 다 갔다. 겨울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바이러스들은 파죽지세로 인간 공격에 나섰다. 그 기세에 눌려 전 세계는 허겁지겁 대응책을 발표하지만, 두 글자로 요약하면‘예방’뿐이다. 인간이 바이러스와 싸울 방법이 예방뿐이라니 슬플 따름이다. 아무리 빅데이터 시대라고 하지만 괴(怪) 바이러스의 출몰 시기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인류는 아직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도 뻔뻔한 인류는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전 세계 과학자들이 전하는 인류 멸망 시나리오라는 글에는 인류 멸망의 10가지 원인이 나온다. “(10위) 핵전쟁, (9위) 감마선 폭발, (8위) 인공지능의 발달, (7위) 이산화탄소의 배출, (6위) 기후변화, (5위) 환경오염, (4위) 소행성 충돌, (3위) 꿀벌의 멸종, (2위) 전염병과 바이러스, (1위) 아무도 모르는 시나리오”. 글을 읽으면서 필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인류가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인류 멸망의 시간은 인류가 놀랄 만큼 앞당겨져 있는지도 모른다.그런데 필자는 위에 든 10가지 원인보다 인류 멸망을 앞당길 더 강력한 원인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인구절벽이 만든 ‘폐교 쓰나미’ 이제 서울까지 덮친다”. 지난주 신문 기사 제목이다.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학교, 한때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통계청은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2025년에는 올해보다 10만9천633명 줄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초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등학교 입학생 수는 폐교 도미노 게임의 시작이며, 게임의 끝은 국가 소멸이다.정부에서는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붓고 있지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4B 운동 등이 더 활성화되고 있다. 4B(비·非)란 ‘비연애, 비성관계, 비혼, 비출산’을 뜻하는 신조어이다.출산 억제 정책까지 펼쳤던 우리나라가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출산 포기 원인 중 가장 핵심은 자녀 교육이다. 정부만 인정하지 않을 뿐 이 나라 교육은 이미 죽었다는 것을 국민은 다 안다.다시 학교 교육이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행복하게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자유학년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자유학년제를 중학교와 고등학교 3년 전 과정에 걸쳐서 하지 않고서는 오히려 자유학년제는 독이 될 뿐이다. 만약 이것이 어렵다면 학교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 대안학교를 원하는 학생들은 대안학교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그런데 교육부와 교육청은 학생이 없다고 안절부절 어찌할 줄 모를 뿐 대안학교를 부정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주 교육청에 전화를 했다. “저희 학생들과 선생님들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교육 공모전에 참가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교육청에서 돌아온 답이다. “대안학교라서 안 됩니다.” 이게 교육 관료들의 교육 의식 정도이니, 교육 붕괴를 막을 답 역시 없다.

2020-02-05

광주를 떠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세상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리고 적절한 시점에 끝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밤과 낮의 교체, 사계절의 운항,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도 같은 궤적을 가진다. 생로병사로 점철되는 인생도 시작과 중간과 끝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유기체에 지나지 않는다. 만남과 작별에는 과정의 필연성이 내재해 있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필연 혹은 인과율의 거대한 손길이 잠재해 있는지도 모른다. 2019년 2월 18일 시작된 광주생활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경북대와 전남대의 교수 교환제도에 기초하여 1년 가까이 진행된 나의 광주 삶이 바야흐로 끝나가고 있다. 날마다 점심이나 저녁자리에서 그동안 신세진 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아쉬움을 함께 하고 있다.기나긴 인생살이에서 1년 시간은 짧은 기간이다. 더욱이 나이 들면 시간의 흐름이 신속하게 느껴지는 법이어서 광주에서 체류한 1년은 그야말로 순간의 일처럼 느껴진다.1980년 5월 광주항쟁 이후 언젠가 광주에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살인과 폭력이 절정에 달했던 80년 5월 광주에 진 마음의 빚이 오랜 부채(負債)처럼 떠나지 않았던 때문이다. 광주와 전남대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도 그것이었다. “왜 광주에 왔는가?” 하지만 정작 광주항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관념적 사치 혹은 철지난 바닷가 같은 쓸쓸하고 우울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책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보고 들었던 광주와 살면서 실감한 광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것을 제한된 지면(紙面)에서 말하고 싶지는 않다. 불과 한 해를 살아보고 광주의 전모를 알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과 관심이 있었기에 무탈하게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동고송 (冬孤松)’ 여러분이 보여준 우의와 관심은 오래 기억할 것이다.작년 4월 19일 개관한 사단법인 동고송. 광주의 가난하고 어려운 문인들을 도와주고자 창립한 동고송. 나는 일간지에 실린 기사를 보고 창립 기념일에 동고송을 찾은 일이 있다.훗날 동고송 관계자들이 내게 연락을 하고, 나의 대중강연에 몸소 찾아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시 나를 불러 ‘서향재’에서 유라시아와 격동의 20세기 강연을 청하고, 지난주에는 축령산을 함께 산보하며 재회를 기약한 것이다.나와 비슷한 연배의 가난한 식자들이 십시일반 추렴하여 후학들을 위해 사단법인을 만들고, 함께 모여 인문학을 공부하며 세상을 논한다. 대구에서도 부산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런 작업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다. 가난한 문인이 어디 광주에만 있으랴! 하지만 그들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곳은 광주가 유일한 것 같다. 이런 아름다운 면면이 항쟁 40주년을 맞이하는 광주의 든든한 자산이라 생각한다.헤어지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이들에게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대구에서도 실천해보리라 다짐한다. 고맙고 정다운 광주여, 이제 안녕! 다시 만날 때까지!

2020-02-05

따뜻한 혁신

지난 1월 23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별세하였다. 미국의 CNN은 “크리스텐슨 교수는 실리콘밸리의 경전을 집필한 인물”이라 평가하며 아쉬움을 담은 부음 기사를 타전하였다.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그의 ‘파괴적 혁신’이라는 경영 혁신 이론은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거대 기업이 어떻게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기업의 등장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그가 말하는 파괴적 혁신의 가장 전형적인 예는 PC의 등장이다. 처음 PC가 등장하였을 때 PC는 컴퓨터를 잘 아는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PC를 만든 IBM의 엔지니어들 중에는“도대체 개개인 모두 각자의 컴퓨터를 가질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PC는 그저 장난감에 지나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결국 IBM은 스스로 독점할 수도 있었던 PC 기술을 무료로 공개하여 누구나 PC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며, 오늘날 윈도우 운영체계로 변모한 PC의 운영체계인 도스(DOS)를 빌게이츠에게 양도하여 오늘날의 마이크로소프트를 탄생시켰다. 이후 전개된 인터넷 혁명과 PC의 놀라운 성장,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엄청난 성공을 생각하면 PC를 포기했던 것은 IBM에게 너무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이렇듯 당대의 첨단 기술을 이끌어 가던 IBM 같은 기업에게 장차 중요해질 PC와 같은 기술이 눈에 띄지 않거나, 혹 보게 되더라도 그저 무시해야 될지 말지를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을 크리스텐슨 교수는 ‘혁신가의 딜레마’라고 부른다. 이 딜레마에 빠져, 그 기술을 이용한 ‘싸구려’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등장을 방관하며 지나치게 되고,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후 그 기술이 크게 발전하여 당시의 첨단 기술을 이끌어 가던 기업의 기술마저 모두 앞지르는 결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크리스텐슨 교수는 ‘파괴적 혁신’이라 부른다.그런데 ‘파괴적’이라 번역된 크리스텐슨 교수가 활용한 원어는 ‘Disruptive’로, 파괴한다는 개념이기 보다는 ‘단속적’이라는 뜻을 담은 표현이다. 그는 “대부분의 혁신은 한번 일어나면 마치 관성이라도 있는 것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같은 혁신의 방향으로 지속되는 속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서 지속된다는 뜻의 ‘Sustaining’이라는 단어의 반대말로 선택된 단어가 ‘파괴적’으로 번역된 ‘Disruptive’라는 단어이다.예를 들어, 집적도가 높은 메모리 반도체가 만들어지면, 그 다음은 더욱 집적된 메모리 반도체의 개발이 목표가 되어 계속적인 집적도의 고도화가 이루어 진다. 또한, 속도, 강도, 혹은 효율 등에서 이루어진 모든 다른 혁신들도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높이라는 방향을 향해 혁신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데, 이런 혁신을 크리스텐슨 교수는 ‘지속적(Sustaining) 혁신’이라 부른다.이런 가운데 크리스텐슨 교수가 주목한 흥미로운 점은 진정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신은 이런 지속적 혁신과는 반대의 길을 가는 것 같아 보이는 ‘단속적(Disruptive)’인 혁신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단속적인 혁신은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급속히 발전하여 지속적 혁신을 따라잡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다는 것이 크리스텐슨 교수의 주장이다.파괴적 혁신 이론은 PC 산업의 성장을 잘 설명해줄 뿐 아니라, 일본의 자동차와 전자 산업이 미국의 자동차와 전자 산업을 앞지르던 사례, 그리고 한국의 자동차와 전자 산업이 다시 일본의 전자와 자동차 산업을, 그리고 중국의 산업이 거의 모든 서구의 산업을 앞질러가게 되는 과정을 잘 설명해 주는 매우 중요한 이론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그런데 바로 그 크리스텐슨 교수가 1970년대 초반 우리나라 춘천에서 수년간 선교사 생활을 한 바 있으며, 그의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구창선’이라는 한국 이름도 만들었다는 따뜻한 이야기는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한 한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을 사랑하고,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지구 반대편의 나라 한국에 대해 이런 각별한 애정을 가질 만큼 따뜻한 크리스텐슨 교수의 성품과 파괴적 혁신 이론의 ‘파괴’라는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이 들리는데, 사실 그의 이론을 좀더 찬찬히 살펴보면 그의 따뜻한 성품은 그의 파괴적 혁신 이론의 기반에도 잘 담겨 있음을 보게 된다.사실, 크리스텐슨 교수의 파괴적 혁신 이론의 배경에는 크리스텐슨 교수 만의 매우 독특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숨겨져 있는데, 그의 이런 시각은 섬김을 받지 못한 이를 섬기기 (Serving the unserved)가 파괴적 혁신의 출발점이라는 그의 분석에 매우 잘 나타난다.크리스텐슨 교수는 ‘섬김을 받지 못한 이를 섬기기’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광석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처음 들었던 때를 이야기 한다. “비록 소리는 작았고, 수신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그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음악과 노래 소리는 나에게는 신세계를 경험하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가난한 자기 처지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주던 광석 라디오를 갖게 되었던 때를 돌아보며 “그 기술은 조잡한 기술이었지만, 내게는 어떤 첨단 통신 기구보다도 소중했다”라 회고한다.미국이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절대강자였던 시절에 미국 시장에 출현한 일본 차는 미국 자동차 기업이 보기에는 깡통 같은 저급한 제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본 자동차들의 출현은 그동안 가난하여 자신만의 차를 소유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유하여 이동의 ‘자유’를 얻게 되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이에 힘입어 크게 발전한 일본 자동차 산업은 급기야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심각한 위기에 몰아 넣었다. PC도 처음에는 초라하게 등장했지만 PC의 저렴한 가격 덕에 자신만의 컴퓨터를 소유하게 된 사람들의 정열이 PC 산업을 꾸준히 발전시켜 결국에는 IBM을 비롯한 모든 중대형 컴퓨터 기업의 종말을 가져왔으며, 오늘날의 인터넷도 PC에 의해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결국 크리스텐슨 교수는 ‘파괴적 혁신’이라는 이론을 통해 “지금 섬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어 볼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들을 섬기게 되는 것(Serving the unserved)”이 다음에 있을 ‘파괴적 혁신’의 단서가 되어 지금 온 세상을 지배하는 듯해 보이는 기업들의 종말을 가져올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 올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사실 기술의 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하여 그 기술로부터 소외된 계층을 생각하는 기술 혁신을 모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크리스텐슨 교수가 지적했듯이 기술 혁신은 늘 가던 길을 지속하려는(Sustaining)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시장 경제 하에서 더 빠른, 더 강한, 더 고성능의 제품의 개발만이 더 큰 이익의 근원이 되는 것으로 보이는 현실 속에서 “누가 기술의 섬김을 받고 있지 못하는가?”라 묻는 것은 우매하고 번거롭기 그지없는 질문 같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그럼에도 크리스텐슨 교수는 우리에게 좀더 참신한 질문을 던지라고 도전하고 있다. “누가 이 기술의 섬김을 받지 못하고 있을까? 그들을 위해 어떤 기술을 개발해야 할까? 어떤 제품으로 그들이 섬김을 받게 할까?” 당장의 경제적 이익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이런 질문들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이색적인 주장이 그의 갑작스러운 부음을 전해들은 우리들 마음에 오랫동안 깊은 울림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장수영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2020-02-05

어른도 춤추게 하려면

장규열 한동대 교수사회의 모습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바뀌어 간다. 다문화사회로 변화해 간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 온 어른들이야 본인의 결정에 따라 삶의 터전을 바꾼 것이지만 어린이들은 다르다. 영문도 모르고 부모를 따라왔거나 한국문화에 충분히 동화되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란다. 두 문화가 어린이들의 삶에서 충돌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제3문화 아동(Third Culture Kids)’. 완전한 한국문화도 아니고 분명한 다른 문화도 아닌 또 다른 환경에서 자란다. 필자의 아이들이 바로 그런 아이들이었다. 태어나 자란 미국에서 아빠를 따라 한국으로 옮겨와 지냈던 한동안의 시간은 쉽지 않았을 터. 이들이 기억하는 미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을까.미국 학교에서는 무엇을 해도 ‘잘 했어, 정말 잘 했어. 더 잘해 보자’를 늘 듣고 자랐는데, 한국 학교에서는 무엇을 해도 ‘그게 뭐야. 틀렸잖아, 처음부터 다시 해봐.’를 듣는 게 일쑤였다는 고백. 늘 칭찬을 듣고 자라다가 이제는 손가락질만 겪으며 지냈다는 기억. 미국이든 한국이든 어느 선생님 눈에 학생의 서툰 솜씨가 눈에 찰 까닭은 없다. 하지만 어린이 쪽에서 생각해 보면, 학생은 지금 애쓰는 중이 아니었을까. 선생님 눈에 들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가 오늘 그 모습인데, 칭찬과 격려가 아니라 핀잔과 질책이 쏟아진다면. 최근 미국의 한 연구진은 학교에서 칭찬이 질책보다 집중력을 30%나 높여준다고 했다.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격려와 응원은 학습과 학교생활에 동기를 불어넣고 추진력을 더해줄 것이므로.중국발 감염병 사태로 온 나라가 긴장하고 있다. 돌아오는 우리 교민들을 맞이하는 지역주민의 태도에 이념과 진영논리에 물든 혐오와 차별 메시지가 걷힌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민주정치에 견제와 균형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전하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에 트집부터 일삼는 태도는 일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절망하게 할 것인가. 정말로 중요한 일에는 이념의 좌우가 힘을 잃는다. 해결해야 할 큰 과제 앞에 모두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아프지 말아야 하고 얼른 나아야 하며 번지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진보니 보수가 끼어들 틈이 없다. 문제해결을 위해 똘똘 뭉쳐야 한다.소통은 문제를 극복하려 함이 아닌가. 최선을 다하려는 이들의 노력에 이왕이면 격려와 칭찬이 쏟아져야 한다. 숙제를 풀기 위해 밤낮없이 애쓰는 손길에 마음을 보태야 한다. 낯선 환경에서 오늘 그 모습으로 최선을 던지는 아이들에게 칭찬이 필요했듯이, 처음 겪는 건강안보 과제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집중력을 높여 해결하도록 밀어줘야 한다. 결산과 평가는 반듯하게 하기로 하고, 과정에 들이는 수고에는 격려로 도와야 한다. 아이든 어른이든 더 잘하게 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미움으로 탓할 것인가 격려로 보듬을 것인가.

2020-02-05

디지털 보험사

보험업계에도 디지털 바람이 불고있다. 우리나라 1호 디지털 손해보험사인 캐롯손해보험에 이어 카카오페이와 삼성화재가 2호 디지털 손보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보험업체와 ICT기업의 합작인 ‘디지털 보험사’는 보험 데이터와 ICT를 결합해 고객이 합리적이고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신개념 손해보험사다. 현재 세계적인 4차산업 및 핀테크 혁신 추세에 따라 보험업계의 디지털 혁신 기술 활용은 세계적인 금융산업 트렌드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한화손해보험, SKT, 현대자동차 등이 손잡고 설립한 국내 최초 디지털 손보사인 캐롯손보가 최근 영업을 개시했다. 캐롯손보는 고객 라이프 스타일에 따른 생활밀착형 보험상품을 출시하며 시장 공략에 나섰다.첫 상품으로 ‘스마트온(ON) 펫산책보험’과 ‘스마트온 해외여행보험’ 2종을 선보인 데 이어 최근에는 월 보험료가 990원인 ‘캐롯 990 운전자보험’을 출시했다. 1분기 내로는 실제로 운행한 거리만큼만 보험료를 내는 자동차보험 상품도 선보일 계획이다.또 카카오의 금융플랫폼 계열사인 카카오페이와 삼성화재가 이르면 3월 초 금융위원회에 합작사 예비인가를 신청한다. 본인가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면 합작사는 내년 상반기 국내 두 번째 디지털 손보사로 출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손보사들이 디지털 손보사 설립에 나선 데는 지속적인 실적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다.시장 포화로 인해 대면 채널을 통한 보험 가입은 정체된 반면, 온라인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소비 계층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보사들이 디지털 전환을 통해 경영위기를 타개하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며, 시대변화를 반영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2-05

노숙인과 비둘기

박화진전 경북지방경찰청장지인과 시내에서 점심식사를 했던 날입니다. 식사 후 식당주변 커피 집을 찾던 중이었습니다. 골목 어귀에 앉아 컵라면을 먹던 노숙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미세먼지가 뒤섞인 차가운 공기에 온기가 가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 같았습니다. 노숙인의 초라한 행색과 비린 체취에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가던 행인들을 피해 비둘기 한 마리가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노숙인은 물끄러미 비둘기를 바라보더니 라면 몇 가락을 던져주었습니다. “이거 먹어”라며 비둘기에게 채근하였습니다. 경계심으로 머뭇거리던 비둘기는 던져진 라면 몇 가락을 쪼아 먹고 슬그머니 그의 주변을 서성였습니다. 길바닥 식탁과 바람을 반찬삼아 노숙인과 비둘기는 거나한 오찬(?)을 즐겼습니다.돌아오는 차안에서 둘의 식사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지난해 정년퇴직을 앞두고 몇 년을 해오던 구호단체 기부금을 끊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적은 액수였지만 퇴직 후 씀씀이를 줄인다는 계획의 일환이었습니다. 몇 권의 책을 내면서 인세를 기부하며 으쓱해 했던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들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남을 도우는 일은 결코 풍족할 때 하거나 폼을 잡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노숙인은 컵라면 한 개를 쉽게 구하지 못했을 겁니다. 자신의 주린 배가 다가온 비둘기에게 눈길을 돌리게 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먹이를 찾아온 비둘기를 외면치 않았습니다.고궁이나 광장에서 한가로이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던져주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기념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그들이 던지는 모이는 자신들이 꼭 먹어야하는 양식도 아니고 없어도 되는 것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쉽사리 던져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먹는 비둘기들을 바라보며 좋아라 합니다. 제가 했던 어쭙잖은 기부행위가 광장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던지는 행위나 다름없었던 것 같습니다.매월 일정액 기부나 책 인세기부 같은 것들이 저 자신을 위한 폼 잡기용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남을 위해 기부하는 것은 내게 남아도는 것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들은 도움을 받아야할 처지의 사람에겐 더욱 간절하게 필요한 것일지 모릅니다. 노숙인은 자신의 허기를 채우기에도 부족할지 모를 컵라면을 먹으며 주린 비둘기에게 쾌척(?)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못한 처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남을 도울 수 있음에 생의 의미도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알량한 소액의 기부금조차 끊어버린 저의 처사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물질이든 마음이든 남을 도우는 일은 내가 쓰고 남아서 하는 것은 고궁의 비둘기에게 모이를 던져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나라 안이 이런저런 일들로 을씨년스럽지만 컵라면 몇 가락을 던져주던 노숙인의 어깨 뒤로 겨울햇살 한줄기가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다시 구호단체에 연락을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해야 되나?’

2020-02-04

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신종 코로나가 나타났다. 전자현미경 없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들이 자기보다 몇 천 만 배 더 큰 인간들을 상대로 맹위를 떨친다. 첨단의 21세기에 아직 치료제는커녕 정확한 감염경로조차 밝혀지지 않은 그들. 스스로 이동 능력조차 없는 그들은 인류가 만든 교통수단에 무임승차하여 대륙을 넘나들며 팬대믹(pandemic,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킨다.2016년 국민 안전체감도 조사 결과, 자연재해, 교통사고, 시설물 붕괴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신종전염병이 체감위험도 1위를 차지했었다. 사스(SARS), 신종플루, 메르스(MERS) 등 이름도 생소한 바이러스들이 2~3년에 한번 꼴로 창궐한 직후였으니, 신종전염병이 가장 위험한 존재로 인식된 건 당연했다. 뼈아팠던 메르스의 교훈 이후 의료계는 병원 내 2차 감염을 방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응급의료체계와 병문안문화가 크게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 영향인지 2019년에는 위험도 1위가 환경오염으로 바뀌고 전염병은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하게 여겨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우리 관심이 미세먼지로 옮아간 사이, 바이러스는 조용히 변이를 거듭해 더 독하고 강해져서 돌아왔다. 몇 년 만에 다시 바이러스 패닉이 시작되고 보니, 지난번 소를 잃었을 때 쏠렸던 범국민적 관심에 비해서는 외양간 고치기가 너무 기본적인 정비에만 그친 것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무엇보다 역학조사를 개인 기억이나 설문조사, 의료기록, 신용카드 결제 이력 등 단편적이고 불완전한 데이터에 의존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지만, 공공 안전에 위협이 될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망은 마련해 뒀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 상업 목적의 스마트 디바이스 데이터가 유사시에 제대로 활용만 되었더라도 지역사회를 지키는 안전망의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의료진과 관련기관으로 개인의 건강·의료 기록, 여행·방문이력 등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즉시 일괄 제공하거나, 접촉자의 수와 소재 파악 등 역학조사 전 과정에 스마트 기술은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하므로, 개인 데이터를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해둘 수 있었을 것이다.바이러스의 공격은 호흡기를 파괴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불확실성 하에서의 막연한 공포심과 그로 인한 폐쇄적 태도를 유발하여, 마치 생태계를 파괴한 인류에 대한 복수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국가의 정치와 경제까지 뒤흔들어 놓는다. 일부 확진 환자가 자유롭게 지역사회 활동을 했다고 하면 불안감이 더 커지니 나라 문을 닫아걸자는 여론으로까지 번지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혹시 나도?’하고 막연히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과민하다 탓할 수만은 없다. 미세먼지 앱처럼 오늘 내가 다닐 경로는 안전할 거라는 ‘좋음’ 표시 같은 거라도 하나 있었다면 사람들 마음이 좀 놓이지 않았을까.

2020-02-04

백악관 견학기

초등학교 교사인 저스티스는 아이들을 데리고 백악관을 견학했습니다. 백악관 전체를 볼 수는 없었고 단체 방문객들을 위해 개방된 일부분만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둘러보았습니다. 일행은 나라에 중대한 일이 생길 때마다 국무회의가 열렸다는 회의실도 들어가 보고 초기 미국 대통령들이 좋아했다는 조각상도 구경했습니다. 기자 회견실도 보고 백악관을 장식하고 있는 건축 양식도 살펴보았습니다.견학을 마치고 돌아온 저스티스는 아이들 전체에게 백악관에 다녀온 소감을 써서 제출하라는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스티스는 아이들이 제출한 기행문 숙제를 살펴보았습니다. 백악관이 생각보다 훨씬 커서 놀랐다거나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던 것을 직접 보게 돼서 매우 기뻤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 가끔은 나라를 이끌어가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애쓰고 있는지 몰랐다거나, 백악관에도 자기 집에 있는 것과 비슷한 가구를 보고 반가웠다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중간쯤에 엉뚱한 기행문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맨 위에 달랑 한 줄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내가 살게 될 집을 다녀왔다.” 정해진 분량을 다 채우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저스티스는 도저히 그 아이를 야단칠 수 없었습니다.“꿈만큼 당신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미국의 유명한 잡지에 실린 광고 제목입니다. 그 광고에는 우주선이 발사하는 모습을 어린이가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사진 아래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정신이 가리키는 곳으로 성장은 따르게 마련입니다.”꿈이 사라져가는 시대입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꿈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꿈을 잃어버리면 인간의 정신은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다음 세대의 가슴에 불을 지를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04

골든타임

심폐소생술의 골든타임은 4∼5분 정도다. 심정지 상태가 시작되고 4∼5분이 지나면 뇌에 혈액공급이 끊기면서 뇌손상이 급격히 진행된다. 혈액공급이 차단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뇌손상은 심각해지고 급기야 사망에 이른다.골든타임은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긴박한 시간대를 가리키는 의학 용어에서 시작했으나 지금은 어떤 일을 하는데 가장 적합한 시간을 지칭하는 말로도 자주 사용된다.예컨대 항공기나 선박사고가 났을 때 탈출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시간대도 골든타임이라 부른다.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면 대개 생명을 잃게 되거나 사고가 커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모든 일에는 완급이 있는 동시에 사태를 수습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대가 있기 마련이다. 골든타임은 놓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절묘한 타이밍을 찾는 일이 문제 해결의 키포인트다. 골든타임을 기적의 시간이라 부르는 이유다.방송계의 골든타임은 의료 등 긴급재난에 사용하는 골든타임과는 의미가 다르게 사용된다. 우리말로 황금시간대를 말한다. 시청률이 가장 치솟는 시간을 가리킨다. 우리나라는 밤 8시∼11시 사이가 골든타임이다. 영어로는 프라임타임, 골든아워라고도 한다. 광고비가 가장 비싼 시간대다.어쨌거나 골든타임은 이를 사용하는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대를 뜻한다. 이것이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면 다수의 대중에게 돌아가는 영향력은 또한 대단한 것이다. 한국의협이 우한 폐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 전역을 입국금지 대상지역으로 선포할 것을 당국에 주문했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며 이를 놓치면 메르스와 같은 실패가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고한 거와 같다. 정부 당국이 지금을 골든타임으로 볼 것인지가 주목되는 대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2-04

태산(泰山)과 바이러스(病毒)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큰 사건이 터진 후 뒤처리가 어정쩡하고 미흡하게 보일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회자되는 이 말은 쥐띠해인 2020년 올해에는 더더욱 탐탁스럽지 않게 들린다. 그런데, 쥐와 비교할 수조차 없이 작은 바이러스가 새해 벽두부터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바이러스는 온전한 생명체가 아니다. 미생물인 박테리아의 측정 단위가 마이크로미터(1백만분의 1m)인데 비해 바이러스는 그 단위가 나노미터(10억분의 1m)이다.바이러스(病毒)에 태산명동(泰山鳴動)! 고성능 현미경으로 겨우 볼 수 있는 바이러스로 인해 지금 태산이 울고 있다. 중국 온 나라가 질병의 재난 속에 휩싸여 있다. 중국 우한(武漢)이라는 도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병의 확산은 세계를 불안과 공포로 떨게 하고 있다. ‘갈수록 태산’이고 ‘걱정이 태산’ 같다.우한의 834킬로미터 북동쪽에 태산이 있다. 중국에서는 옆 동네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태산은 우리 산들과 비교해도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최고봉의 높이가 1천535미터로 지리산의 한 봉우리인 토끼봉과 얼추 비슷하다.(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 높이는 1천915미터이다.) 그런데도 태산은 중국 오악 중 하나로, 중국 최고의 산으로 대접받아 왔다. 공자도 ‘동산에 오르니 노나라가 작게 보이고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인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고 하였다.이러한 태산의 위용을 앞세우고 ‘메이드 인 차이나’를 지구촌 구석구석에 전파하며, 자본주의로 무장한 미국과 더불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며 세계화에 앞장서던 ‘큰나라’ 중국이 작디작은 바이러스로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것이다.1973년 독일의 경제학자 E. F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성장지상주의를 경계하였다. 경제 성장이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온다고 하여도 환경 파괴와 인간성의 파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면 성장지상주의는 맹목적인 수용의 대상이 아닌 성찰과 반성의 대상이라고 지적하였다. 성장보다는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을 통한 환경과 인간성의 회복을 주창하였다.그러나,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라는 말은 세계화의 거대한 파도에 밀려 그저 아름다운 한 문장으로 박제화 되다시피 하였다. 인터넷과 항공망에 의해 세계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고, 물적 인적 교류는 슈마허의 지적을 비웃듯이 나날이 거대화되고 있다. 세계화, 거대화는 이미 부인의 단계를 넘어섰지만, 부작용 또한 어마어마하다. 연결된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바이러스 질병이라는 부정적인 면을 우리는 눈앞에서 보고 있다. 중국의 한 도시에서 시작된 병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성장과 세계화의 탄탄대로를 질주하는 듯이 보이던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한가.작은 것이 두렵다(Small is Fearful)! 중국이, 한국이, 전 세계가 떨고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명제가 참이 되도록 만들 수는 없을까?마스크를 쓰며 옷깃을 여미고 겸허해질 시간, 지금이다.

2020-02-04

데카메론의 기억

강희룡 서예가13세기에 남러시아에 성립한 몽골왕조를 금장한국(金帳汗國)이라 한다. 칭기즈칸의 손자인 바투는 몽골 서정군의 총수가 되어 러시아 및 동유럽과 남러시아를 장악해 킵차크한국의 기초를 구축했다. 1347년 무렵 이 킵차크 군대가 제노바 시를 향해 페스트 환자의 시신을 쏘아 보냄으로써 유럽에 페스트를 전파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동방 원정에 나섰던 십자군 병사들이 보석과 동방 문화를 약탈해 오면서 부수입으로 나병과 흑사병을 얻어 왔다는 것 또한 정설이다.그때부터 순식간에 퍼져나간 흑사병은 불과 수년 동안 이탈리아,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 중부를 거쳐 3년여 만에 스칸디나비아 국가에까지 이르렀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전 유럽인구의 1/3 내지 1/4이 사망했다고 기록된다. 숫자로는 약 2천500만에서 6천만명에 이르는 유럽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서유럽의 인구는 16세기가 되어서야 페스트 창궐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당시 흑사병이 가져온 유럽인들의 공포와 사고의 변환을 잘 보여 주는 문학 작품이 있으니 바로 이탈리아의 작가 보카치오가 1348년에서 1353년까지 쓴 소설들을 묶은 단편 소설집 ‘데카메론’이다. ‘열흘간의 이야기’란 뜻의 이 작품에는 피렌체에 창궐한 흑사병을 피해 시골의 한적한 별장에 몸을 숨긴 청년 셋과 처녀 일곱 명이 열흘간에 걸쳐 차례로 이야기한 기록, 즉 100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단테의 ‘신곡(神曲)’과 견주어 이 작품을 인곡(人曲)이라 할 만큼 근대소설의 선구자가 탄생된 것이다.흑사병의 공포는 유럽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로 예술이 후퇴한 것이다. 예술은 기계가 아닌 사람의 창의력에서 비롯되는 것인 만큼 예술가들이 사라지고 난 후 그 자리를 메우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예술가들이 선호하던 여행까지 금지가 되었으니 운이 좋아 살아남은 예술가들이 그릴 만한 것은 너무나 생생한 기록인 페스트가 남긴 공포뿐이었다.다음으로 나타난 현상은 사회계층의 급격한 변동이었다.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은 지주의 파산으로 이어졌고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임금은 급격히 상승했다. 게다가 금은보화는 아무리 쥐벼룩이 공격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이전에 비해 훨씬 많은 재산이 할당되었다. 이 시대만큼 졸부(猝富)가 급격히 출현한 시대도 드물 것이다. 이 졸부들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지식을 머리속에 채우기보다는 겉치레만 신경 쓰는 유행으로 인해 패션산업이 급격히 성장하게 된 것이다. 지금 중국 우한지방에서 발생된 신종역병으로 인해 전 세계가 비상이 걸렸다. 앞으로 어떻게 확산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정부는 중국 눈치 보며 강력한 대책에 미온적이다가는 ‘설마가 사람 죽인다’는 속담을 상기해야 될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가 이 신종 코로나 감염자가 한 명 발생하자마자 700여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바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0-02-03

쥐의 사랑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올해는 경자년, 쥐의 해이다. 작년엔 ‘황금 돼지’띠라며 난리였는데, 올해는 흰 쥐띠라고 곳곳에서 ‘화이트’ 마케팅이 한창이다.하얀색의 크림치즈볼이 통째로 들어간 ‘폴인크림치즈징거버거’(KFC), ‘해피 치즈 화이트 모카’(스타벅스커피코리아), 하얀 크림치즈 아이스크림인 ‘우리끼리’(배스킨라빈스) 출시 등 흰색 잔치 한 바탕이다. 이는 경자년의 ‘경(庚)’이 십간(十干: 甲乙丙丁戊己庚申壬癸) 중 7번째로, 음양오행설에 따라 흰색을 상징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다.흰 쥐가 모두 ‘먹거리’와 관련된 것은 재미난 현상이다. 사실 ‘쥐띠는 평생 먹을 걱정 없는 띠’란 말이 있다. 천지창조 신화에는, 미륵이 태어나 물/불의 근원을 모를 때, 쥐가 이를 가르쳐 주었고 그 대가로 세상의 뒤주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전하는데, 이와 관련 있어 그런지는 모를 일이다.쥐는 사실 먹거리와의 관련성 외에도 우리의 고전 속에서 다양하게 등장한다. 사람으로 둔갑해 주인 행세를 하거나 인간사의 부조리를 비판하는가 하면(‘서동지전’), 달리기 시합 중 소 등에 타고 가다 결승점에 와서야 소등에서 뛰어내려 1등을 했다는 이야기들이 그 대표적이다. 문화권에 따라서는 밤을 상징하기도 하고(인도), 파멸·죽음을 상징하기도 했던(그리스) 쥐,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재미, 재치, 얌체의 동물이자 풍요, 다산, 번영의 동물로 인식되었다.그런데 문학 속의 이러한 쥐는, 사실 알고 보면 모성애가 매우 강한 동물이다. 어미 쥐는 새끼를 낳으면 열심히 핥아 주는 습성이 있다. 열 마리의 새끼 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어미 쥐와 함께, 다른 그룹은 어미 쥐로부터 떼어 놓았더니, 전자의 그룹은 모두 성장했고 성장 호르몬 수치 또한 높았는데, 후자의 그룹은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어미 쥐의 혀처럼 생긴 붓으로 붓질도 해 보고, 성장 호르몬을 주입해 보았어도 별 효력이 없었다.이처럼 어미 쥐의 사랑은 경탄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때론 이 사랑이 지나쳐 자식을 죽일 때도 있다. 얼마 전 학회 일로 신년교례회에 참석했더니, 마침 원로 교수 한 분이, 쥐의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용인즉슨, 쥐가 모성애가 강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새끼 쥐가 몸에 상처가 나 피가 나면 그것이 애처로워 어미 쥐는 계속 핥다가 결국에는 상처가 아물 틈이 없어 마침내 자식을 죽음으로 내모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는 것이었다.내 편만을 극히 감싸고돌고, 네 편은 백안시하는 게 다반사가 된 세상이다. 하지만 자기 자식만 귀한 줄 알고, 내 편만 감싸고 편의를 봐주고, 상대편은 괄시, 무시, 배척하곤 하다가 결국엔 서로 생채기만 남기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렇게 핥아대다 죽어버리면 아무 소용없는 것을. 바야흐로 올 경자년에는 상업적인 ‘화이트 잔치’도 좋고, 풍요와 다산, 쥐의 재치를 꿈꾸어 보는 것도 좋지만, 지나친 ‘쥐의 사랑’이 결국, 주변의 소중한 이들을 죽이고 고스란히 나의 ‘상처’로 남게 된다는 사실 또한 한번쯤 되새겨 보면 어떨까 싶다.

2020-02-03

하루 3만보를 걷는다고?

마스터즈 달리기가 전통인 미국에서는 재밌는 기록이 많습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 ‘러너스월드’에 실린 내용입니다. 한 사람이 28년 시차를 두고 같은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화제의 주인공은 당시 53세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테리 스탠리(Terry Stanley)’씨입니다.그는 1977년에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펜실베이나 주 프레스크아일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23분으로 우승했던 적이 있습니다. 28년 후 53세의 나이로 다시 도전해 2시간46분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스탠리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8∼10km 정도를 달리고, 저녁에 11∼14km 정도를 달리는 습관을 강조합니다. ‘하루에 두 번’ 훈련을 완벽하게 삶의 습관으로 정착시킨 결과입니다.영화배우 하정우씨도 최근 ‘걷는 인간’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습니다. 그는 하루에 평균 3만보 정도를 걷는 습관이 있습니다. 출근할 때는 2시간 넘는 거리를 걸어서 가고, 어지간하면 차를 타지 않습니다. 부득불 지방 촬영 때문에 차를 탈 경우 책을 읽습니다.하정우씨도 스탠리 교장과 비슷한 말을 합니다. 하루 3만보를 한꺼번에 걸으려면 1교시, 2교시, 3교시로 세 차례로 나누어 걷는다고 합니다. 1교시는 일어나서 바로 러닝 머신에서 50분을 걷는 일입니다. 몸 상태가 좋으면 10분 쉬고 바로 2교시에 들어가고, 일정이 바쁜 날은 2교시를 낮에 기회만 나면 걷습니다.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1교시 2교시를 연달아 수행하지요. 3교시는 일상에서의 걷기라고 합니다. 이런 습관을 통해 하루 평균 3만보라는 믿기 어려운 걷기를 꾸준히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건강을 위해 걷거나 뛰는 분들이 많습니다. 무리한 목표보다 하루를 1교시, 2교시, 3교시로 나눠 쪼개서 도전해 보는 지혜는 어떨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03

아름다운 천 년의 고독… 경주 분황사(芬皇寺)

인적 없는 분황사에 겨울비가 내린다. 나무들의 젖은 손짓이 기도하듯 평화로운 날, 명절 연휴의 분황사는 더없이 적막하고 스산하다.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하염없이 내린다. 그 너른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불국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3년(634년)에 창건된 분황사는 선덕여왕의 숨결이 살아 있는 절이다. 여왕이 즉위할 때 당나라 태종이 모란꽃 그림을 선물하자, 벌과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향기 없는 꽃임을 눈치 챈 후, 당 태종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에 빗대어 향기 나는(芬) 황제(皇)의 절(寺)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날씨 좋은 어느 봄날 황룡사를 찾았을 때 사람들로 붐볐다. 지혜로운 여왕의 이미지나 원효대사의 깨달음은 바람결에 스치는 언어가 되고 마음은 봄날에 들떴다. 조용한 분황사를 만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분황사에 가면 달아났던 언어가 돌아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절문을 들어서자 국보 제 30호 모전석탑(模塼石塔)이 비를 맞고 서 있다. 신라 최초의 석탑이며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양식이다.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신라로 들어올 당시 중국에는 흙으로 벽돌을 구워 만든 전탑이 유행했다. 하지만 벽돌 만들 환경이 여의치 않던 신라인들은 자연석을 일일이 깎아 모전석탑을 만들었다.유학파 스님들이 만든 모전석탑은 창건 당시 7층이나 9층으로 추측되지만 임진왜란 때 반이 파손되고 지금은 3층만 남아 있다. 기단의 각 모서리에는 사자상 네 마리가, 일층 네 개의 문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왕상 여덟 구가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모습으로 탑을 지키고 서 있다.근육질 사내의 분노에 찬 표정과 불끈 쥔 주먹, 금강역사상이라 불리는 인왕상은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사찰이나 불상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 탑의 꼭대기까지 연꽃장식을 만들 정도로 절과 탑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던 선덕여왕과 신라인의 불심이 드러나는 걸작이다. 하지만 오늘은 1300여 년을 견뎌온 석탑의 위용조차 무색하다.두 눈 부라리며 지켜온 사리 장엄구는 백 년 전에 발견되어 지금은 경주박물관에 있다. 그런데도 인왕상은 여전히 분노에 찬 표정을 내려놓지 못한다. 신라인의 불심과 예술혼을 대변하는 특유의 감각들이 살아 있는 저 정교함도 언젠가 흐물흐물 눈물처럼 내려앉을 것이다. 세월은 끊임없이 서 있는 것들을 공격하지 않는가.담장 너머에는 신라 최고의 사찰, 황룡사가 있었다. 한때 서라벌을 밝혔을 당당한 자태의 두 절은 어디 가고, 모전석탑 홀로 반쪽짜리 키로 담장 너머 황룡사지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탑을 바라보는 나의 한 쪽 가슴도 기운다. 황무지가 되어버린 절터에는 무심히 겨울비만 내리는데….머지않아 유채꽃 피는 봄이 오고 또 다시 메밀꽃 부케 같은 여름 찾아와 온몸이 아득해지기도 하겠지만,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욱신욱신 슬개골 쑤셔와 스스로의 무게조차 버거울 텐데 저 흔들림 없는 눈빛은 무엇인가? 모전석탑을 지켜온 것은 네 마리의 사자상도, 여덟 구의 인왕상도 아닌 천년의 고독 속에 감추어둔 질긴 그리움인지 모른다.사진을 찍을 때마다 출입문 근처를 지키고 서 있는 음료자판기가 눈에 거슬린다. 무채색 분황사 겨울 풍경이 원색의 자판기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잠시 탑의 고독이 와르르 무너진다. 이 비 그치고 나면 다시 관광객들 찾아와 예찬하고 탑은 기품 넘치는 모습으로 누군가의 가슴에 기억되리라.조낭희 수필가분황사를 적시는 쓸쓸함 사이로 애잔함이 흐른다. 아무도 없는 절, 마당에 고여 있는 빗물을 조심스레 피해 다니며 모전석탑을 돌고 또 돌아보지만, 천년의 저쪽, 신라의 향기는 까마득히 멀기만 하고 탑은 미동도 않은 채 찬란했던 한때의 시공(時空)을 더듬는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영원히 붉은 꽃은 없다 했던가.바람에 날리는 겨울비가 내 옷자락을 적신다. 우산을 든 손도 시리다. 나는 작고 아담한 보광전으로 향한다. 빗속에서도 어간문은 활짝 열려 있다. 유난히 커 보이는 약사여래입상이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나를 가만히 지켜본다. 약함을 든 손과 넙적한 얼굴, 너그럽고 수더분한 인상은 여느 부처님보다 편안하다.그 옛날 희명(希明)이 앞 못 보는 자식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천수대비 부처님 앞에 설 때의 심정을 생각하니, 나의 작은 소원조차 사치다. 빗속을 뚫고 분황사를 달려올 수 있는 건강과 여유가 주어짐에 감사하자. 문 밖에는 겨울비가 소리없이 내리며 갈 길을 막고, 법당은 안온하다.혼자 법당을 차지하고 비 오는 겨울풍경에 젖어들 때, 젊은 불자 한 분 마당을 가로질러 법당으로 들어선다. 그녀도 나처럼 혼자다. 자리를 비켜주고 나오는 내 뒤로 절을 하는 그녀의 뒷모습이 유난히 간절해 보인다. 모전석탑의 고독한 뒤태를 닮은 그녀의 기도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겨울비가 자꾸 허무감을 부추긴다. 이런 날은 저자거리를 돌며 춤추고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던 원효대사의 유현한 일생이 그립고 그립다.

2020-02-03

도시와 역사를 기억하는 기념조형물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는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둘러싸인 베벨광장(Bebelplatz)이 있다. 이 광장이 조성된 것은 아직 독일이라는 나라가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던 18세기로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2세의 명에 따라 궁정건축가 게오르그 벤첼스라우스 폰 크노벨스도르프가 만들었다. 광장주변에 있는 왕립오페라극장, 성 헤드비히 대성당, 현재 훔볼트 대학 본관으로 이용되는 하인리히 왕자궁과 옛 왕립도서관도 이때 함께 지어졌다.그렇다면 광장의 이름 베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베벨은 독일 사회주의 정치인의 이름이다. 원래 이 광장은 오페라하우스 광장(Platz am Opernhaus)으로 불렸는데 1947년부터 베벨의 이름을 따 베벨광장이라 불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베벨광장 정중앙 바닥에는 가로 세로가 120cm나 되는 꽤나 큰 규모의 유리창이 나있다. 유리창 아래로 비어 있는 공간이 나타나고 벽면에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하얀색의 책장들이 설치돼 있다. 도대체 이게 뭘까?발아래 텅 빈 공간과 비어 있는 책장들은 1933년 5월 10일 늦은 밤 이 곳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조형물이다. 나치는 정권을 장악한 이후 ‘비독일적인’ 예술과 사상에 대한 대대적인 말살정책을 폈다. 그날 밤 나치즘에 경도된 수천 명의 대학생들은 2만 권이 넘는 책들을 불태웠고, 수만 명의 시민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유대인 학자와 저자들의 책들과 나치를 비판한 지식인들의 저서들도 타오르는 불길에 던져졌다. 문화와 예술 그리고 사상과 학문의 중심지였던 베를린의 정신도 책들과 함께 잿더미로 변해버렸다.나치의 잔인한 정신 학살이 자행되자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 야만적 행위를 조롱하는 ‘분서(die Bucherverbrennung)’(1938)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어떤 시인이 태워질 도서 목록에 자신의 책이 빠진 것을 보고 분노하며 포함시키라 항변하는 역설적인 내용이다. 브레히트의 시는 실화에 근거를 둔 것으로 오스카 마리아 그라프(1894∼1967)라고 하는 작가가 실제로 분서사건이 있은 후 자기의 책들이 금서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분노하여 ‘나를 불태우라’(Verbrennt mich)는 탄원의 글을 신문에 기고한 일이 있다.책들이 화염에 싸여 잿더미로 변한, 다시 말해 인류의 정신이 광적인 이념에 유린당한 현장에 기념조형물을 설치한 사람은 유대인 미술가 미햐 울만(Micha Ullman)이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출신의 울만은 오가는 사람들이 발아래 유리창을 통해 잿더미로 변해 땅 속에 묻혀 사라져 버린 정신을 텅 빈 공간, 텅 빈 책장으로 표현했다. 작품의 제목은 ‘도서관’이다. 어둠이 깔리면 땅 속 비어 있는 ‘도서관’으로부터 하얀 불빛이 마치 나치의 그날 밤을 피어올랐던 불길처럼 흘러나온다. 책은 불에 탔고 지식인들은 추방을 당했다. 남은 것은 정적과 침묵뿐이다.울만의 ‘도서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념조형물과는 사뭇 다르게 보인다. 보통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들은 웅장한 모습을 뽐내며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하지만 울만의 ‘도서관’은 그렇지 않다. 드러나기 보다는 조용히 도시 속에 침전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 상징성과 호소력은 더욱 강하다. 울만의 작품 가까이 바닥에는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쓴 비극 ‘알만조르(Almansor)’의 대사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책을 태우는 자, 사람도 불태울 것이다. (Wer Bucher verbrennt, verbrennt auch Menschen)”/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20-02-03

코로나 바이러스의 폭주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인류가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전염병은 앞으로도 인류와 운명을 함께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인간의 역사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매개변수이자 결정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윌리엄 맥닐은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감염성 병원균의 돌연변이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도 안정된 생태계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2020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불안과 공포가 커지고 있다. 마스크 품귀현상이 나올 만큼 우리 사회를 무력하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생태적 위기는 모두에게 무차별적인 듯 보인다. 많은 국민들은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는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다. 상당한 복잡성과 이질성, 유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신종 바이러스인 ‘코로나’는 ‘메르스’와 ‘에볼라’ 사태처럼 사실상 누구든 위험대상으로 만들 만큼 강력하다.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해 중국으로의 출입국 제한조치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상황이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 ‘공중보건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를 분석할 때 ‘위험’이라는 개념을 추가하였다. 테러, 사건 사고의 불확실성, 재난의 국제화에서 볼 수 있듯이 각종 요인이 연계되어 작용하는 ‘위험사회(Risk Society)’가 되었다. 생태 위기로 인한 질병목록이 증가되고 수많은 위험 요소들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시대가 되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 위기는 국가 단위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다. 불가예측적인 위험의 속도로 한 국가의 권능에 의탁하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위험사회에서 특히 ‘위험’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을 분리하고 분열시킨다는 점이다. 우한지역에 사는 교민들을 전세기편으로 입국시키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련의 사태가 그것이다. 감염자는 사회로부터 격리조치 당하고 각자의 안전을 위해 서로를 불신하는 징후가 곳곳에 잠복되어 있다. 이에 정부에게만 기대거나 정부 주도의 하향식 거버먼트(government)로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시민들도 문제해결과정의 주체가 되는 거버넌스(governance)가 중요하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안을 바라보거나 방관하지 않고, 공익 차원에서 적극 협력하는 ‘아래로부터의’ 자율적 연대가 문제해결을 위한 열쇠다.시민사회 안전을 위해 종합적인 전략과 대안이 요청된다. 바이러스가 발생할 때마다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손 씻기, 옷소매로 가리고 기침하기”와 같은 예방수칙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위생문제로 단순 치환하기보다 예방과 관리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성숙한 시민의식에 기반한 협력적 거버넌스가 요청된다. 잠재적 위험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는 계층에 대해 ‘우리’ 문제라는 인식하에 마음을 모아야 한다. 위기 상황은 정부 권력이나 영웅적인 지도자가 해결할 수 없다. 위기가 위험으로 빠지지 않고 문제해결의 기회가 되려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2020-02-03

디지털 아이디시대

디지털 아이디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신원 인증 시스템으로, 사용자가 이름·나이 등 자신의 개인 정보를 직접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특징이다.우리가 실제 주민등록증을 자기 지갑에 넣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것처럼 디지털 아이디는 개인 블록체인 지갑에 내 정보를 담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개인 키(비밀번호)를 입력해 자신의 정보를 활용한다. 특정 사이트에 가입할 때마다 내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휴대폰 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를 해당 사이트에 일괄 제출하는 것과는 반대다. 일련의 복잡한 본인 확인 과정을 간소화하는 일명‘디지털 아이디’로 불리는 분산 아이디(DID, 탈중앙화된 신원식별 시스템)가 머지 않아 공인인증서와 주민등록증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특히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입한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을 경우 결국 ‘아이디 찾기’를 눌러 휴대전화 인증을 거쳐 아이디를 찾아야 하고, 같은 과정을 반복해 비밀번호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개인마다 가입한 사이트가 100개가 넘는 현실을 감안하면 매번 다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아이디는 향후 인감증명서와 졸업증명서를 대체하는 신원인증시스템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최근 대학들은 DID를 활용해 출석 체크를 하거나 학생증을 발급하려는 시도를 하고있고, 자동차 산업에서는 차량 소유주 인증에 DID를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DID는 위·변조가 어려워 보안성이 높고 사용자가 간편하게 본인인증을 할 수 있어 차세대 신분증으로 각광받고 있다. 디지털시대에 단일화한 디지털 아이디가 가져올 긍정적 변화를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2-03

몬도가네 음식문화

혐오성 식품을 먹는 비정상적인 식생활을 두고 ‘몬도가네’식이라 한다. 1962년 전세계의 엽기적 풍습을 소개한 이탈리아 다큐 영화 몬도카네(Mondo Cane)에서 따온 말이다. 이 영화는 현대 문명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살상행위와 엽기적 음식문화 등을 소개해 세계인에게 충격을 주었다.15억 명의 인구와 56개 소수민족이 함께 어울려 사는 중국은 음식요리에 관한한 천국이다. 넓은 면적 곳곳에서 만들어지는 희귀한 음식뿐 아니라 그들이 가진 음식문화에 대한 특별한 생각이 버무려져 수많은 요리들을 개발했다. 그들은 요리를 끼니의 해결 차원이 아니라 예술의 한 장르로 생각하는 전통이 있다.중국식 요리의 재료가 다양한 것은 이런 전통적 음식문화에 기인한다. “중국 사람은 책걸상 빼고는 다 먹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식재료의 폭은 일반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문제는 전갈, 도룡뇽, 곰발바닥, 모기 눈알, 악어, 뱀 등 그들이 선택하는 재료의 엽기적 행태가 늘 화제라는 것이다. 중국의 전통을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그야말로 몬도가네가 따로 없다.우한 폐렴의 진원지로 알려진 우한 수산시장에서도 박쥐, 오소리, 여우, 사향고양이, 악어 등의 야생동물이 산채로 거래되었다고 한다. 특히 박쥐는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숙주로 지목돼 중국의 독특한 음식문화가 다시한번 도마에 올랐다.사스 때도 박쥐를 잡아먹은 사향 고양이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했고 메르스 때도 박쥐를 통한 낙타가 중간 숙주 역할을 했다.음습한 곳에서 생활하는 박쥐의 몸에는 200개나 되는 각종 바이러스가 기생한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 사태는 박쥐까지 잡아먹겠다는 몬도가네식 인간의 식문화가 자초한 불행이라 하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2-02

‘진중권’과 ‘윤석열’

안재휘 논설위원명재상으로 이름 높았던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자 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 선생은 명문의 후예답게 선비로서의 기상이 높았다. 이승만 정권의 국정농단을 보다 못한 그는 1951년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한 뒤 국회에 사임서를 제출하고 홀연히 권부를 떠났다.이시영의 성명서는 신랄하다. “정부 수립 이래 지금까지 고위 직위에 적재적소 인재가 등용된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탐관오리가 가는 곳마다 날뛰어 국민 신망을 상실하고 정부의 위신을 훼손하고 국가의 존엄을 잃어 신생 민국의 장래에 암영을 던지고 있으니 어찌 가슴 아픈 일이 아닌가? 나랏일이 틀려도 시비를 거는 자조차 없다”권력 핵심을 향해 촌철살인의 명검(名劍)을 휘두르고 있는 진보 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살아있는 권력에 예리한 법치의 창끝을 들이밀다가 코너에 몰린 윤석열 검찰총장의 고난이 깊다. 좌파 인사들은 대체로 두 사람에게 ‘배신자’ 이미지를 덧칠하기에 여념이 없다.우리 역사 속에서 자신을 발탁한 임금을 향해 ‘곧은 소리’를 펼치다가 수난을 당한 참 선비는 드물지 않다. 때로 그들은 역적으로 몰리기도 하지만, 역사는 그 인물에 결코 ‘배신자’ 딱지를 붙이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나라에 충성했기 때문이다. 선비의 길, 공직의 길이 어찌해야 하는지는 역사에 다 나와 있는 셈이다.진영을 불문하고 진중권의 한마디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그의 말에는 뭇 지식인들에게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엄정한 선비의식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논리에는 천박한 패거리 의식에 찌들어 자기가 신봉하는 진영에 맞춤식 궤변을 줄기차게 상납하는 비겁한 곡학아세(曲學阿世) 무리와는 확연히 다른 뭔가가 있다.법을 집행하는 검사 윤석열을 향한 진보 진영의 ‘배신자’ 논리는 사람에 충성해온 케케묵은 구시대적 폐습의 시궁창에 인식의 뿌리를 드리우고 있음을 스스로 반증한다. 현직 검찰총장 윤석열이 대권후보 여론조사에서 2위를 했다는 뉴스는 착잡하다. 구상유취한 진영논리 뻘밭 속에서 얼마나 우리 국민이 답답하고 갑갑했으면 그를 대안으로 떠올렸을까 짠한 심정마저 든다.하버드대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렛 교수의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나오는 거의 모든 참상이 나라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절에 진중권과 윤석열을 함부로 ‘배신자’로 낙인찍는 일은 가당치 않다. 비난하는 자들이야말로 비겁한 지식인이요, 민주주의의 배신자요, 역사의 죄인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신봉해온 사상이 오류로 판명 날 때, 소속한 집단이 끔찍하게 오염될 때, 제왕적 권력을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황제적 권력을 휘두를 때 ‘좌충우돌’하면서 비판하고 저항하는 것을 역사는 결코 ‘배덕(背德)’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법을 수호하려는 검찰총장이 매일 지하 주차장을 통해 출퇴근해야 하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2020-02-02

바닷가 카페, 새로운 일상이 되다

조현명 시인포항 칠포리에서 오도리까지 해안 길을 따라가노라면 가장 뜨거운 장소가 카페들이다. 높은 곳일수록 경치가 좋다. 낮아도 갯바위와 파도소리 그리고 수평선이 보이면 충분하다. 시원한 망망대해를 굽어보노라면 마음이 저절로 열린다. 거기에 갯바위와 갈매기 그리고 햇살이 부서지는 파도라니 평온함이 커피 한 잔과 함께 몸에 충만해진다. 단연 공기와 향기 또한 좋아서 오래 머무르고 싶어진다. 그래서인지 경치 좋을만한 곳곳에 새로운 카페가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나는 특히 이 해안 길을 좋아해서 주말이면 거의 갈매기처럼 한 바퀴 휘휘 도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도심에서 먼 곳까지 사람들이 많이 올까 싶지만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 눈에 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신혼의 남녀나 한참 연애중인 남녀나 할 것 없이 이상하게 젊다. 간혹 중년이 끼어있긴 하나 그들은 곧바로 자리를 뜨고 카페에 오래 앉아 풍경 속에 살기나 하듯 소일하는 것은 젊은 부부다. 하도 이상해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물어보기까지 했다. “집은 좁은데 여기는 넓고 시원하고 좋잖아요. 주말이라 할 일도 없고 아이와 남편같이 시간 보낼 겸 나왔어요.”, “사진 찍을 데가 많잖아요. 이런 곳에 왔다고 자랑도하고”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랬다. 새로운 트렌드인데 내가 그걸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이 특별히 겪고 있는 결핍이란 문제를 가려서 해소해주려 한 것이 카페가 성업인 비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공간의 결핍, 내속에 오래 전 자리 잡았던 동경하던 분위기 그리고 환상과 꿈에 대한 결핍, 꼭 가지고 싶었지만 잠시만 누려도 기분 좋은 그런 것들…. 한마디로 꿈과 환상을 잠시 동안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카페라면 누구에게라도 대환영일 것이다. 거기다 평소에 풀어놓지 못한 수다라니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가볼만한 곳이 된 것이다. 심지어 아저씨들도 술보다 커피를 마시며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이 늘어나고 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풍경 속에 앉아 웃고 떠들며 시간 속을 거닌다는 것은 왠지 삶의 품격을 높여주는 것 같다. 아니 모든 결핍을 잊게 해주는 힐링의 시공간이 열리는 것 같다. 아이들과도 같이 앉아 이것저것 나누면서 햇살과 바람을 즐기듯 앉아있는 젊은 부부와 곁눈으로 흘낏거리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남녀들,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별 의미는 없겠지만 끝없이 해안에 밀려드는 파도처럼 떠드는 사람들, 바닷가 카페에 가면 그것이 새로운 일상이 된다. 한마디로 일상을 즐긴다는 표현이 맞지 싶다. 그러다보니 신종 매니아도 생겨났다. 요즈음 카페를 순회하면서 평을 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올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폰으로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리는 SNS가 늘어난 것도 한몫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결핍이 있다. 그것을 이용해서 유혹하든지 말든지 나는 이 동화 같은 바닷가 카페에서 작은 꿈을 수평선과 파도에 실어 놓고 놀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2020-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