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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네마의 책임

올해는 한국 영화 100주년 되는 해다. 한국 영화가 국민과 가까워지면서 100년 영화 역사에 대한 국민적 호응도 높았다. 때마침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해 한국 영화 100년사의 의미를 더 높여주었다. 한국영화 100주년은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상영된 ‘의리적 구토’를 기준점으로 한다. 이 영화는 당시 신파극단을 이끌던 김도산이 감독, 주연한 연쇄극이다.시네마토 그라프(Cinemato Graphe)는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영화촬영 겸 영사기의 이름이다. 당시로는 특허를 얻을 만큼 획기적 발명품이었다. 그리스어 움직이다(Kinema)와 기록하다(Graphein)를 합성한 단어에서 따온 이름이나 시간이 지나 영화란 뜻의 시네마(Cinema)로 바뀐다.올해 한국 영화 관객이 사상 최다를 기록할 것 같다는 전망이다. 지난달까지 총 2억421만명을 기록했다. 연말까지 2억2천만명은 무난히 넘길 것이란 관측이다. 2013년 처음 2억명을 돌파한 이후 6년째 2억명 선을 유지한다. 영화가 왜 인기가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오락 기능으로서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과 접근성과 인프라 등이 좋다는 것. 그리고 팍팍한 현실 속에 초라해진 나를 위로해주는 카타르시스를 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100년을 맞는 우리 영화가 이제 예술성과 오락물의 차원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로서 영향력이 커졌다는 뜻이다. 영화 이후 나타나는 신드롬 현상이 이를 말한다. 어쩌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도약하고 있다고 봐야 할지 모른다. 관객의 높은 호응도만큼 책임감도 커진 것이 영화산업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03

미국식 예비군제도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대구의 남대구IC에 진입하려면 길게 쭉 뻗은 도로를 한참 지나야 한다. 그리고 경부고속도로 구미IC를 지나면, 일반 고속도로보다 더 넓고 곧게 뻗어 있는 고속도로를 만난다. 이들은 과거 공군용 비상활주로였다.필자는 공군 관제장교 출신이라 과거 군복무 시에 전국 비상활주로 좌표를 외우던 기억이 난다. 월배 비상활주로 자리에는 공장과 상가가 들어서 있고, 구미 비상활주로는 가변식에서 고정식 중앙분리대로 바뀐 것 같다.경북에는 영주와 울진에도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군 시절 영주 비상활주로는 자주 갔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변했는지 사뭇 궁금하다.월배 비상활주로와 구미 비상활주로를 지나갈 때면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예비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군사시설에서 해제되어 공장과 상가를 다 지어버렸는데, 언젠가 필요할 때에는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든다.미국은 상비군과 예비군을 복합적으로 운영한다. 이들을 다 합해서 국가방위군 및 예비군이라고 한다.일반 징병제 국가에서 제대 후 편입되는 예비군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절대 다수가 처음부터 예비군이 되는 개념이 존재한다. 미국이 연방국가임에 따라 연방예비군과 주방위군으로 구분되고, 상황에 따라 부분동원과 총동원을 할 수 있다. 2019년 현재, 미군은 상비군의 수가 135만 명, 예비군의 수가 81만 명에 달하며, 비상근과 상근 예비군 제도를 운영하면서 상비군 수준의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대부분의 비상근 예비역은 1년에 대략 보름에서 한달 반 정도의 훈련을 받고, 소수의 상근예비역은 이보다 훨씬 긴 연간 180일의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미국의 예비군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전시에도 동원되는 전력이다.한국은 국민 개병주의로 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이지만 요즘 모병제가 대두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모병제는 개인의 자발적인 의사로 입대하는 직업군인을 위주로 하는 제도라면, 징병제는 국민이라면 무조건 지게 되는 병역의 의무로 군복무를 하는 것이다. 냉전 이후 대체로 유럽의 각국들은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하는 추세였으나, 모병의 문제, 비용증가의 문제 등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모병제 도입 논란에 대해 아직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아 중장기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면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당장에 쓰지 않는다고 민간에 분양해버리거나 고정식 중앙분리대를 설치해서 사장(死藏)시키듯이 예비군을 운영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운영하면 어떨까? 미국식 예비군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볼 것을 제안한다. 건성건성 애국(!) 페이로 예비군을 운영할 것이 아니라, 현업에 종사하면서 충분한 보수를 지급받는 예비군으로 더블 잡(job)을 뛰게 하면 어떨까? 징병제이든지 모병제이든지, 어느 병역제도를 선택하더라도 미국식 예비군제도는 좋은 보완책이 될 것이다. 특히 인구감소에 따른 병력자원 부족 문제에도 효과적일 듯하다. 무조건 미국의 제도를 따르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시행하는 제도를 한국의 실정에 맞게 잘 응용하면 답이 나올 듯하다.

2019-12-02

386과 586

강희룡 서예가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학문으로 성립시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가 내세운 천심(天心)에 대해 공자는 ‘민심이 곧 천심이니 민심을 얻은 자가 천심을 가진 자’ 라고 정리했다. 맹자 역시 왕조는 천명에 의해 일어나며 천명(命)이 바뀌는(革) 것이 곧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 했다.이 혁명론은 민본주의와 직결되며 혁명의 주체는 엄격한 도덕성과 정의가 요구된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의 문하인 정몽주는 시경(詩經)의 이념을 바탕으로 고려왕조를 유지하면서 개혁을 하려는 온건파인 반면, 동문수학한 정도전은 서경(書經)의 정치이념과 궤를 같이하며 혁명을 들어 신 국가를 건설하자는 급진파로 역성혁명을 주장했다. 결국 신흥무인세력과 결탁한 급진파는 이 혁명을 통해 1392년 조선을 세우게 된다. 이처럼 혁명의 정당화는 완결된 인격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추진되었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현대사에서 1980년대는 민주화운동이 가장 격렬하게 대중적으로 확산된 시기이며, 대학생집단이 주도하였다. 1960년대 출생해 80년대 대학생활을 했고 90년대에 30대였던 이들이 바로 386세대로 부르는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1980년 광주항쟁에서부터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에서 이들은 사회의 공정과 정의 그리고 민주와 도덕을 앞세워 군사독재에 대항했다.이 운동권세대가 정치에 대거 진입한 건 2000년 총선 때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젊은 피 수혈’이라는 명분 속에 이 그룹을 대거 정치권에 입문시켰고,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이들이 노무현 후보의 열렬한 지지와 2004년 열린우리당까지 이끌면서 진보정치의 세대적 기반이 됐다.그들은 현재 한국정치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지도적인 위치에 도달했다. 이들은 짧은 고난으로 오랜 세월 영욕을 누리며 이제는 ‘586세대’가 됐다.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볼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 민주화의 선봉에 있었다는 그들만의 도덕적 우월감과 독특한 연대감을 갖추고 열정으로 세상을 바꿔보려 했던 패기가 모순과 불의로 가득 찬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없어지고 현실과 타협하며 기득권층이 된 것이다.보수기득권층을 경멸과 증오로 대하며 ‘우리끼리’ 라는 등식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공유하던 진보의 도덕과 정의도 사라졌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으며, 남의 눈 티끌까지 비판하면서 내 눈 속의 들보는 모른 척하는 이중적 태도까지 보인다. 국가의 주요정책이 처음부터 운동권 출신의 폐쇄적 생각에서 결정되니 그들 이외의 국민들이 이해 못하고 당혹해하는 결과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진다. 국민소득 약 2천달러 수준의 80년대에 저항했던 운동의 기억으로 국민소득 3만 달러시대의 한국을 진단하고 이끌어 가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자칭 진보라는 그들이 과거에 ‘독재’라고 그토록 비판하며 민주화를 외쳤던 정치행태를 지금 와서 더 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속성으로 적폐 덩어리로 변해있는 그들은 반드시 퇴출되어야 할 대상이다.

2019-12-02

투 핸즈(Two Hands) 2

2년의 방황 끝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두 손으로 연주할 수 있느냐보다 음악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돌아온 레온 플라이셔는 챔버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지휘를 시작하는 한편, 왼손으로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합니다.그가 도전한 왼손을 위한 솔로 작품과 라벨, 프로코피에프 협주곡을 녹음한 소니 클래식 레코드는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되기에 이르는 호평을 받습니다.왼손으로 연주회를 거듭 하면서, 레온 플라이셔는 결코 오른손을 포기하지 않습니다.수술에 실패했지만, 끝까지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내려놓지 않지요. 오른손을 위해서라면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입니다.1990년 정확한 진단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국소적 근육긴장이상증(focal task-specific dystonia) FTSD라는 것을 알아낸 겁니다.뒤틀린 넷째 다섯째 손가락에 보톡스를 주사하는 요법으로 치료합니다. 롤핑을 병행하면서 경직된 근육이 한결 유연해집니다.30년 만에 레온 플라이셔는 다시 두 손의 피아니스트로 돌아옵니다. 10년 활동 끝에 2004년, 새 음반 ‘투 핸즈 Two Hands’를 세상에 내 놓습니다.바흐와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 쇼팽의 녹턴, 슈베르트의 소나타 D.960.이런 주옥같은 곡들을 담은 이 앨범은 젊은 날 당당한 터치 대신 깊은 연륜과 예술 혼으로 악보 행간에 숨어 있던 작곡가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냅니다.안젤라 데이비스는 말합니다. “벽을 밀치면 문(door)이 되고 벽을 눕히면 다리(bridge)가 된다.” 벽을 밀쳐 문을 만들어 내고, 장벽을 눕혀 다리를 건넌 레온 플라이셔의 삶. 그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 아닐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2

능소화가 피는 계절에는 칠곡 도봉사(道蜂寺)

유학산은 옛날 학이 놀던 명산이다. 병풍처럼 깎아지른 절벽은 학바위라고도 하고 어른 키의 50길이나 된다하여 쉰질바위로도 불린다. 그 아래 도봉사가 가파른 지형에 아담하게 터를 잡고 앉아 있다. 그 비탈진 곳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채의 전각과 탑까지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눈을 부라리며 절 입구를 지키는 금강역사보다 더 먼저 마중을 나오는 관세음보살 염불 소리, 숙연할 정도로 차분하다. 천년고찰도 아니고 보물급 유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도봉사를 찾는 이는 많다. 기암괴석을 뒤로 하고 앞으로는 툭 트인 경관을 찾아오는 등산객과 6.25 전쟁 격전지 순례 답사 코스이기 때문이다.도봉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신라의 고찰 천수사의 옛 터에 1962년 건립되었다. 험준한 지형과 치열했던 전투가 주는 남성적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비구니 스님이 맞아 주셔서 내심 놀랐다. 도봉사의 속살은 여성적인 정겨움이 곳곳에 숨어 있다. 기왓장에 심어놓은 야생화와 다육이, 거친 암벽을 아름답게 장식할 덩굴식물, 부지런히 경내를 청소하는 스님 두 분의 세심함까지.서운 주지 스님께서 커피를 건네신다. 편안하고 따뜻한 고성(古城)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당시만 해도 약자인 여성으로서 발심 출가한 것도, 해발 700m 고지의 험준한 절을 선택한 것도 놀랍고 존경스럽다. 개인적인 질문을 하고 싶은 걸 꾹꾹 눌러 담고 도봉사 이야기를 듣는다.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 교통이 두절되기도 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절 살림을 서운 스님은 여성다운 부드러움과 노련함으로 잘 해내시는 것 같다. 구중을 떠돌던 원혼들도 비구니 스님의 염불 소리에 한결 안정감을 느끼리라. 도봉사와 스님의 하루를 여는 새벽예불은 아마도 젊은 원혼들의 넋을 위한 기도로 시작되지 않을까.부자가 많다는 다부동(多富洞)이나 학이 노닌다는 유학산(遊鶴山)이란 지명에 어울리지 않게 아픔이 서린 곳, 아름다운 풍광만큼 6.25때 격전지로 유명했던 이야기를 스님은 자세히 들려주신다. 슬픔은 언제나 묵직해서 듣는 이의 가슴을 여미게 한다. 주지 스님과 차담을 나누는 동안에도 관세음보살 독송은 쉬지 않고 허공을 울린다.가파른 지형 때문에 긴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당연하다. 수량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지금도 용왕단의 물을 신성하게 여겨 아침마다 법당에 올린다. 하지만 퍼내도 끝없이 쌀이 나오는 구멍을 욕심 많은 이가 파낸 후 그곳에서 빈대가 나와 빈대절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지금은 그 가난조차 애잔한 추억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과거사다. 끔찍한 전쟁의 비극, 물질만큼 평화를 간절히 원하던 시기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지금 누리는 경제적인 풍요와 여유, 그 밑거름이 된 숭고한 희생들을 생각한다면 좀 더 겸허해지고 좀 더 진중해야 하리라. 모처럼 대웅전 법당에서 내가 아닌 젖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한다. 나와 내면이 훨씬 더 잘 보인다.도봉사 뒤 가파른 암벽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이 궁금하다. 억척스럽고 투박한 줄기가 고지를 탈환하려는 젊은 병사의 생사에 놓인 몸부림 같다. 그에게 여유와 잉여는 없다. 오직 살기 위한 치열성과 숨 막히는 순간만 존재했을 뿐이다. 능소화라고 하신다. 여름이면 우리의 시선보다 높은 곳에서 화사하게 눈길을 끌던, 왕을 흠모하는 어느 궁녀의 슬픈 전설을 담고 있는, 명예와 그리움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이다.조낭희 수필가여름 날 도봉사를 화사하게 물들일 능소화를 상상한다. 청춘을 바친 호국장병의 넋들이 능소화로 피어나 도봉사는 온통 꽃 멀미로 몸살을 앓으리라. 못다 이룬 꿈들은 어사화란 또 다른 명칭으로 최상의 명예를 얻었지만 그 아픔은 어찌할 수가 없다. 쉰질바위를 훈장처럼 눈부시게 밝히다, 그 해 팔구 월의 절박함에 목이 졸리듯 통꽃으로 뚝뚝 떨어지며 ‘나를 잊지 마세요’ 한 마디를 남길 것만 같다.하늘을 업신여길 정도로 끝없이 위로 향하는 능소화, 헤어지고 떠나온 부모형제와 산천이 그리워 자꾸만 높은 쪽으로 향하는가? 꽃도 잎도 지고, 앙상한 줄기 홀로 오늘도 암벽을 탄다. 간신히 뻗어나가는 저 목마른 감각들, 신전처럼 버티고 서 있는 쉰질 바위, 오로지 바위만 의지하고 나아가는 뜨거운 혈류와도 같은 생명 앞에서 나는 가만히 두 손을 모은다.절벽 아래 잘려나간 느티나무 줄기 위에 동자상 하나 평화롭다. 전쟁은 인간과 문명 자체를 위협하는 가장 비극적인 일이다. 행여 나는 지금 누리는 행복과 나눔을 국한시키지는 않았는가. 물질적 안락함에 빠져 더 높은 가치와 이상을 추구하는 일에 소홀하지는 않은지 돌아본다.도봉사를 빠져나오며 다시 한번 아픈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지 않기를 바라며. 천천히 839고지를 오른다. 크게 분노할 일도 특별히 기뻐할 일도 없는 내게 염불소리가 친구가 되어 한참을 함께 걷는다.그 길은 마치 성소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2019-12-02

분단의 상징에서 통일과 평화의 상징으로

독일의 수도 베를린. 그곳에는 20세기 유럽의 역사를 가장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다.한때 베를린을 동과 서로 나누었던 이 문은 독일 분단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이념으로 충돌했던 두 세계의 분열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데 브란덴부르크 문의 역사적 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독 사람들이 자유를 찾기 위해 넘어야 했던 곳도 브란덴부르크 문이었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가슴 벅찬 역사의 현장도 다름 아닌 이곳 브란덴부르크 문이었다.브란데부르크 문의 역사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이곳은 베를린으로 들어오는 열여덟 개의 관문들 중 하나였는데 드나드는 마차로부터 세금을 걷는 곳이었다.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 2세의 명에 따라 1793년경 지금의 모습으로 브란덴부르크 문이 만들어 졌다. 건축가 카를 고트하르트 랑한스는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관문 ‘프로필라이아’(Propylaia)에서 영감을 받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브란덴부르크 문을 만들었다. 아마도 건축가는 이 문으로 들어가 내딛는 베를린이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였던 고대 아테네에 버금가는 도시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브란덴부르크 문 꼭대기에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승리의 여신 청동 조각상 ‘승리의 사두마차’가 장식으로 올라가 있어 기품 있고 위엄 있는 풍모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 위품 있는 문을 통과한 개선장군은 프로이센의 왕이 아니라 프랑스 ‘침략자’ 나폴레옹이었다. 1805년 나폴레옹은 체코 남동부 아우스터리츠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에 패배를 안겨주었다. 이듬해 10월 예나와 아우에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으로부터 승리를 거둔 나폴레옹은 군대를 이끌고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해 베를린 궁으로 입성했다. 나폴레옹은 전리품으로 브란덴부르크 문을 장식하던 청동 조각상을 끌어내려 파리로 가져가 루브르에다 전시를 했다. 프로이센에게 이보다 더 굴욕적인 일은 없었을 것이다.승리의 청동상을 약탈당한 브란덴부르크 문은 그 후 8년 동안이나 초라한 모습으로 베를린을 지키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의 침략을 피해 동쪽 끝 쾨니히스베르크(지금의 칼리닌그라드)로 도망했던 프로이센 왕실이 전력을 가다듬어 러시아와 연합군을 형성해 1813년 베를린을 수복하고서야 빼앗겼던 승리의 사두전차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1933년 1월 30일 독일 공화국 총리로 임명된 히틀러는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해 독재체제를 수립했다. 2만5천명의 나치당원들은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횃불 퍼레이드를 펼치며 히틀러에 열광했다. 그리고 악마가 일으킨 잔혹한 전쟁의 결과 독일은 동서로 분열되었다. 1953년 동베를린에서는 소련의 동유럽 지배를 반대하며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소련군은 탱크를 투입해 진압했다. 1961년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쌓기 시작하자 서독 시민들이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몰려나와 항의했다. 동독 정부는 브란덴부르크 문의 국경 검문소를 폐쇄했고 28년 동안 이 문은 열리지 않았다.1963년 냉전의 불안 속에 떨고 있는 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베를린을 찾았고 1987년 레이건 대통령은 같은 장소에서 소련 서기장 고르바초프를 향해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원한다면 이 문을 열고 장벽을 허물라고 외쳤다. 1989년 11월 9일 기적처럼 장벽은 무너졌고 2년 뒤 나뉘었던 독일은 다시 하나가 되었고 분단의 문은 통일의 문이 되었다./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김석모

2019-12-02

한국인에게 시래기는 가난이자 고향

우거지와 시래기를 혼동한다. 우거지와 시래기는 전혀 다르다. 시인이자 정치인 도종환의 시가 있다. 제목은 ‘시래기’다.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중략)가장 오래 세찬 바람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기억하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겨울을 나다가/(중략) 서리에 맞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후략)이 시에서도 우거지와 시래기는 혼란스럽다. 우거지와 시래기를 뒤섞었다.우거지는 ‘웃걷이’ ‘웃거지’에서 시작된 말이다. ‘윗부분에 있었던 것’이 우거지다. 식물의 바깥 혹은 웃자란 부분이 바로 우거지다. 배추를 벗기면 겉껍질이 생긴다. 우거지다. 배추의 바깥 부분, 낡아서 버리는 부분이다. 정확하게는 ‘배추 우거지’다. 갓의 바깥 부분, 윗부분도 덜어내면 ‘갓 우거지’다. 다른 식재료도 마찬가지. 무청의 윗동은 무청 우거지다. 말리면 ‘무청 우거지 시래기’다. 줄여서 ‘무청 시래기’라 부른다.도종환 시인의 시에서 가장 오래 낡아간 것,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것이 바로 우거지다. 우거지를 기억하는 손에 의해서 거두어져, 서리 맞고, 눈 맞으며, 겨울을 지나면, 시래기가 된다. 우거지를 말린 시래기다. 우거지 시래기다. 정확하게는, ‘배추 우거지 시래기’다.우거지는 생물(生物)이다. 시래기는 겨울을 나면서, 말리고 발효시킨 것이다.한국인에게, 시래기는, 가난이자 고향이다. 시래기를 보면, 누구나 가난한 시절과 떠나온 고향을 떠올린다.나물과 말린 나물은 한식의 특질 중 하나다. 수도 헤아릴 수없이 많은 들나물, 산나물을 두루 먹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여러 종류의 나물을 말려서 이듬해 햇나물이 나올 때까지 먹는 나라도 한국뿐이다. 겨울이면 무청, 배추 우거지를 말리고, 주요한 식재료로 사용하는 나라도 한국뿐이다. 나물, 묵나물, 시래기, 우거지는 한국의 주요한 식재료이자 음식 문화의 특질이다.한국만 묵나물을 먹지는 않았다. 냉장, 냉동 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건조, 염장, 발효 등이 식재료 보관의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나물을 간장, 된장, 소금 등으로 절인다. 된장이나 김치 등은 발효를 통한 보관 방법이다. 말리는 것도 마찬가지. 주요한 보관 방법이었다.중국도, 오래전에는, 말린 나물, 묵나물을 사용했다.‘BAIDU[百度]’는 중국 검색 엔진이다.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바이두 사전[百度百科, 백도백과]라고 부른다. 바이두에서 ‘旨蓄(지축)’을 설명한다. “旨蓄: 貯藏的美好食品(저장적 미호식품)”. “지축: 저장한 맛있는 식품”이라는 뜻이다. 건조식품 중 특별히 ‘채소, 푸성귀[菜]’ 말린 것을 이른다. 넓은 의미에서 시래기다.중국에도 시래기가 있었고, 또 지금도 있지만, 우리처럼 무청 시래기, 배추 우거지 시래기를 널리 먹지 않았다.‘성호전집_권 53_가포정기(稼圃亭記)’에 ‘지축’이 있다.농사일하는 자가 채소밭 일하는 자에게 묻기를, “밭일에도 도가 있는가?” 하니, 밭일하는 자가 말하기를, “있다. 곡식이 있으면 채소가 있으니, 농사가 있으면 밭이 있는 법이다. 품종을 가려서 모종하고 시기를 기다려서 물을 주고, 뿌리가 있는 것은 흙을 북돋아 주고 덩굴을 뻗는 것은 뻗을 길을 내주며, 잎이 자라는 것은 물을 듬뿍 주고 열매가 있는 것은 길러 준다. 앞에는 가천(嘉薦)이 있고 뒤에는 지축(旨蓄)이 있으며, 크든 작든 빠르든 느리든 각각 그 능력대로 올려서 제향을 올리는데, 채마밭이 아니면 그 제수할 물건을 채울 수 없고 맛난 고기라 할지라도 채마밭이 아니면 그 맛을 더할 수 없으니, 이로써 말하자면 오직 밭일이 공이 있다.” 하였다.좋은 것과 부족한 것을 두루 설명한다. 농사일은 채소밭 일보다 앞선다. 채소 기르는 농사로 여기지 않았다. 곡식이 채소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가천(嘉薦)은 제품(祭品)이다. 제사에 쓰는 음식, 식재료다. 고기는 늘 채소보다 앞선다. 채소는 보완재다. 고기보다 뒤처지지만, 소중하다. 채소가 없으면 고기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 지축은 고기보다 뒤처지고, 채소 중에서도 뒷자리지만, 소중하다.조선 전기 문신 허백당 성현(1439~1504년)의 시에도 ‘지축’이 있다. ‘허백당집_신춘 2수’의 내용이다. 새봄이니 묵은 나물, 시래기, 지축과 더불어 햇나물을 이야기한다.(전략)//겨울 넘긴 묵은 나물[旨蓄] 먹기가 괴로우니/병든 입에 깔끄러워 뱉으려다 삼키누나/봄이 오자 연한 햇나물 먹고파서/묵은 땅을 일구어서 순무 뿌리 심어 보네겨울을 넘긴 묵나물은 아무래도 햇나물보다 맛이 덜하다. 겨우 내내 묵나물을 먹었으니 이젠 몸이 햇나물을 원한다. 몸보다 입이다. 입이 햇나물을 원하니 순무 뿌리라도 심는다. 묵나물, 시래기는 예전에도 가난의 대명사였다.조선 중기 문신 오음 윤두수(1533~1601년)의 ‘오음잡설’에서는 ‘산나물 시래기’를 상세하게 설명한다.기고봉의 서실(書室)이 호현방(好賢坊) 골목에 있었는데, 일찍이 봄철에 종을 보내어 용문산의 산나물을 뜯어다가 뜰에서 말려 월동 준비를 하였으니, 즉 ‘시경’에 이른바, ‘내 아름다운 나물을 저축한다[我有旨蓄, 아유지축]’는 뜻이니, 그가 향리에 있을 때의 일을 알 수 있는 것이다.호현방은 회현방으로, 지금의 서울 회현동이 있는 충무로 일대다. 기고봉은 기대승(1527~1572년)이다. 고봉은 호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퇴계 이황과 ‘사단칠정론’ ‘이기 논쟁’을 벌인 조선 중기의 큰 성리학자다. 그의 서실이 호현방에 있었다. 고봉은, 한양에 살면서 봄철이면 사람을 보내 용문산의 산나물을 채취하고 말렸다.“我有旨蓄(아유지축)”은 중국 고전에서 비롯된 문장이다. “나에게 맛있는 묵나물이 있다”는 뜻이다. ‘지(旨)’는 아름다운 음식, 맛있는 음식이다. ‘축(蓄)’은 모은다, 비축한다, 저축한다는 뜻이다. 잘 모아둔 맛있는 음식, 결국 말려서 겨울을 나는 산나물, 들나물 등이다. 용문산에서 뜯어말렸으니, 고봉의 지축은 산나물 시래기다.위의 시는 고봉의 검약한 삶을 잘 보여준다. 조선 시대에도 우리는 시래기를 가난한 이들이 먹는 음식으로 여겼다.‘조선왕조실록 성종 18년(1487년) 9월11일’의 기사다. 음력 9월이니 10월, 11월 무렵이었을 것이다. 제목은 ‘양양도호부사 유자한이 강무의 연기를 상서하다’이다.양양 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 유자한(柳自漢)이 상서(上書)하였다. 대략 이르기를,“신(臣)이 보건대, 강원도(江原道)는, (중략) 영서(嶺西)는 서리와 눈이 많고 영동(嶺東)은 바람과 비가 많은 데다가 땅에 돌이 많아서 화곡(禾穀)이 번성하지 못하여, 풍년이라 하더라도 백성들이 오히려 지축(旨蓄)과 감자나 밤으로 이어가고서야 겨우 한 해를 넘길 수 있으므로, (후략)강원도는 곡식이 귀하다. 가을이면 지축, 도토리 등을 모으고 준비해야 한다. 강무는 군사훈련과 사냥을 겸하는 주요 행사다. 강무가 있으면, 인근 주민들은 행사에 동원된다. 길을 닦고, 식사 준비, 말 먹이 등도 챙겨야 한다. 가을에 강무가 있으면 백성들이 겨울 준비를 하지 못한다. 강원도 양양도호부사 유자한은 강무 연기를 말하고 있다.가난한 이들이 주로 먹던 지축을 우리는 꾸준히 발전시켰다. 오늘날 산나물 시래기, 즉 묵나물이 바로 지축이다.중국인들은, 지금도 ‘지축’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만 정작 시래기 음식은 버렸다. 우리도 시래기는 가난의 대명사로 여겼지만 늦가을, 초겨울이면 집집마다 시래기를 챙긴다. 사시사철 나물이 흔하니, 필요할 때마다 슈퍼나 마트에서 매번 챙긴다. 특정 지방에서는 시래기를 지역 특산물로 홍보한다. 아름다운 우리의 지축, 시래기 문화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12-02

미닝아웃(Meaning out)

미닝아웃은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벽장 속에서 나온다는 뜻의 커밍아웃(coming out)이 결합된 용어로, 남들에게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던 정치적·사회적 신념을 소비 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소비자운동을 말한다.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해시태그(#) 기능을 사용해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함으로써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 내거나, 옷이나 가방 등에 메시지가 담긴 문구나 문양을 넣는 ‘슬로건 패션’, 환경보호를 위해 ‘업사이클링(up-cycling)’제품이나 페이크 퍼(fake fur)라고 불리는 인조 모피 제품을 구매하고, 이러한 내용을 SNS를 통해 공유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나타내는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18년 대한민국 소비트렌드로 선정되면서 널리 알려졌다.미닝아웃은 시대가 변하고, 생활상과 가치관이 변하고 있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가격 대비 성능을 강조하는 ‘가성비’가 소비 트렌드로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에는 금액에 관계없이 심리적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기 위한 에코백 구입,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 소비, 장애인 고용 기업의 제품 구매 등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지닌 제품은 가격이 비싸도 기꺼이 소비하는 ‘가치소비’가 확산하고 있다.특히 국내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역시 미닝아웃의 한 형태로 해석된다. 지난해 12월 인기 여행지 1위였던 일본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10월 일본 맥주의 한국 수출은 전년 대비 99.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이 아니라 신념을 사는 미닝아웃이 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02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구해줘 홈즈!’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25평 기준으로 4억원 상승했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서울 25평 아파트가 평균 12억6천만원으로 지난 2년 반 동안 32% 이상 상승했다고 한다.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 1.3%와 비교해 볼 때 아파트 가격이 12배나 뛰었다. 중산층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을 모아도 쉽게 마련하기 어려운 아파트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고 하였다. 내 집 마련이 어려워 좌절하고 있는 서민들의 체감과는 거리가 있는 답변이었다. 진보정권이기에 ‘혹시나’ 했던 기대가 부동산 문제에서 ‘역시나’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부동산 공화국에서 서울은 모순의 현장이다. 다주택자와 무주택자, 건물주와 세입자의 간극이 불평등 현상을 보여준다. 서울에 집이 있는 사람과 집 없이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은 출발부터 다르다. 부동산으로 매년 수억원의 불로소득을 버는 소수와, 허리띠를 졸라매도 서울에서 집 한 채 갖는 것이 쉽지 않은 대다수 서민이 존재한다. 강준만은 바벨탑공화국에서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고발한다. 공동체는 없고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바벨탑 멘탈리티가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온통 돈 버는 일과 소비하는 일로 시끌벅적한 욕망의 도시”인 서울로 집중화된 탐욕의 문화구조를 분석한다.부동산 불패 신화는 사실상 전국을 투기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 말을 믿는 것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일이라는 인식이 생긴 지 오래다. 부자들은 정권마다 달라지는 부동산 정책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 가격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2019 전국민중대회’ 참가자들은 “사회적 불평등이 유례없이 심화되고 있는데 사회정의를 확립하려는 노력은 실종 상태에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통계청의 ‘2019 사회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다섯 명 중에 한 명만이 “일생동안 노력한다면 본인 세대에서 개인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자식 세대에서는 계층 상승의 가능성이 더 희박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부와 권력이 부동산을 통해 대물림되면서 사실상 계급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일요일 밤에 하는 MBC 구해줘! 홈즈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다. 의뢰인들이 제시하는 비용 안에서 최고의 효용과 만족을 주는 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뜨는 이유는 집에 대한 기대와 욕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내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이 평생의 바람이다. 그러나 서울의 아파트 값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억 단위로 뛰고 있다. 삶의 질은 어디에 사는가 공간의 영향을 받는데, 정부의 주택 정책이 서민들의 팍팍한 삶에 단비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가 되지 않도록 서민의 현실 속에 발을 디딘 부동산 정책을 기대한다.

2019-12-02

핫팩으로 겨울나기

이시라 기획취재부포항지진특별법안이 지난달 2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지진 피해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포항시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선물해 주고 있다.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발목이 잡혀있지만 포항지진 발생 2년만에 특별법 제정이 가시권에 들어왔다.하지만 흥해실내체육관 임시구호소에서 생활하는 이재민들은 여전히 혹한이다.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방 한 칸도 없이 포항시가 마련해 준 텐트 속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올해도 역시 포항시에서 제공하는 핫팩 2개에 의지한 채 오들오들 떨며 겨울을 나야한다. 한밤중에 싸늘하게 식은 핫팩 대신 또 다른 핫팩을 꺼내서 비벼대는 동안 단잠에서 깨야 하고, 비박을 하는 등산객처럼 완전무장을 한 채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다.포항시가 온풍기 6대로 난방을 하고 있지만, 체육관의 천장이 높아 실제 생활하는 텐트까지 온기가 전해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개인생활공간인 한 평 남짓 한 텐트 안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가득하다.그럼에도 포항시는 전기담요나 전기장판 등 개인 전열기구에 대한 사용을 금지해 놓았다. 화재 발생의 위험성이 높다는 게 이유이다.하지만, 전기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개인 전열기구의 사용이 가능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콘센트를 추가로 설치하는 간단한 방법만으로도 화재의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 지금 생활중인 대피소 이재민 숫자의 10배가 추가되더라도 안전하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기술적인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지진대피소 전기사용을 놓고 두 기관의 견해가 완전히 상반되고 있다. 전기기술자의 진단대로면 포항시는 안전성만 추구하는 전형적인 복지부동행정이란 지적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불이 나면 누가 책임질 거냐. 개인 전열기 사용은 앞으로도 절대 불가능하다”며 강경했다. 지진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이재민들이 어떻게 겨울을 나란 말인가. 핫팩 지원 갯수를 기존 2개에서 4개로 늘린다는 게 포항시가 생각해낸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다.이재민들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포항시장과 간부공무원들이 단 하룻밤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대피소 텐트에서 영하의 추운 겨울밤을 보내 보면 어떨지. /sira115@kbmaeil.com

2019-12-01

독일 통일을 벤치마킹하자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독일이 통일을 이룬지 내년이면 꼭 30년이다. 2차 대전 후 우리와 같은 분단국 독일이 1990년 통일되고 이제 EU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 있다. 그들은 게르만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지속적인 국가 발전과 번영을 누리고 있다. 물론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지정학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 독일은 우리처럼 동족간의 전쟁도 겪지 않았다. 그러나 2차 대전 후 전범국가의 청산과정에서 분단국가로 낙착된 점은 우리와 같다. 엄격히 말하면 독일처럼 일본 본토가 분단되어야 하는데 식민지였던 한반도가 분단된 점은 아무래도 역사의 아이러니이다.여하튼 우리는 독일 통일과정에서 통일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서독의 일관성 있는 통일 정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사민당 빌리 브란트가 시작한 동방정책은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어도 대동독 화해정책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사민당의 브란트가 설계하여 1967년 시작한 동방정책은 1990년 기민당의 콜에 의해 독일 통일로 이어졌다. 통일된 지 30년이 된 독일 총리는 현재 동독 출신 앙겔라 메르켈이 맡고 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뀌면 대북 정책까지 180도 바뀌고 있다. 우리도 통일 정책만큼은 여야가 합의하여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독일은 1972년 양독 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조약에 서명하였다. 10개조의 합의서 내용은 서독이 동독을 정부로 인정하고 유엔에 동시에 가입한다는 것이 기본 골자이다. 물론 양독간 외교 관계인 대표부를 설치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양독은 이를 토대로 꾸준히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여 1990년 역사적인 통일을 이룩하였다. 우리는 그동안 남북 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 6·15 선언, 10·4 공동 선언, 지난해 9·19 공동 선언이 선포되었지만 발표와 동시에 사문화되어 버렸다. 우리는 남북 합의문의 실질적 이행장치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다.양독 간에는 기본합의서와 여러 협정에 의해 상호 교류 협력이 증대되었다. 어느 통계를 보니 서독은 동독에 1년에 26억불을 지원하였다고 적혀 있다. 이는 우리의 10여 년의 대북지원액에 해당된다. 그러한데도 우리는 ‘퍼주기’ 논쟁을 일삼다 그마저 중단되었다. 독일의 슈미트 정부는 동독 도로 건설에 20억 마르크를 투자하였다. 심지어 콜 정부는 1983년 동독의 부채 10억 마르크의 차관보증까지 해 주었다. 그 대가로 양독 간에는 TV방송이 전면 개방되었다. 동서독의 언론인들은 교차 상주하면서 기사를 송출하였다.서독인들은 동독을 자유롭게 방문하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는 약 500만 명이나 방문하였다. 심지어 서독인들은 최고 50만대의 차량으로 동독을 방문하였고, 그때 벌써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동독 전역에 파급되었다. 1987년 동독의 당서기 호네커도 서독을 방문하였다.우리가 김정은의 남한 방문에 기대를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독 간의 상호 교류가 독일 통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상호 여행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남북의 숨구멍 역할을 하던 개성과 금강산마저 막혀버렸다.독일 통일은 인적·물적 교류 협력이 결국 통일로 이어진다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에게 남겼다.

2019-12-01

코주부사,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작은 역사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새 학기가 되면 이름표를 만들고, 체육복과 교련복에 학교 마크, 이름을 새기기 위해 마크사에 가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리기에 마크사 앞에 장사진을 이루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포항에는 육거리 코주부사, 오거리 고려마크사가 유명했다.세월이 흐르면서 이름표와 학교 마크를 재봉틀로 박음질하던 모습은 흑백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마크사 일감도 크게 줄어 고려마크사는 수년 전에 문을 닫았고, 코주부사는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코주부사는 1953년경 중앙동 국민은행 건너편에 문을 열었다. 상호(商號)는 당시 신문지상에 인기리에 연재되던 만화 ‘코주부’에서 빌려왔다. 그동안 이사를 네 번 했지만, 육거리 인근을 떠나지 않은 육거리 터줏대감이다.중앙아트홀 바로 옆에 있는 코주부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박영준 대표를 만날 수 있다. 1940년생인 박 대표는 1955년부터 코주부사에서 일을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건강이 안 좋아 2년 쉬었다가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때부터 64년 동안 불편한 몸으로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당시 주인과는 양아들 같은 관계가 돼 1978년 코주부사를 물려받았다.초창기 코주부사는 만물상과 같아 마크, 휘장은 물론, 체육복, 태권도복, 작업복 등 다양한 품목을 다뤘다. 1970년대 호황기에 일감이 몰려들 때는 열 명이 넘는 직원을 두기도 했지만, 이제는 물려줄 사람도 없는 처지가 됐다. 박 대표가 재봉틀을 돌릴 기력이 없게 되면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코주부사에 간간이 활기가 돌 때도 있다. 이따금 일감을 들고 오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이웃 주민들이 찾아와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 구실을 하는 덕분이다.박 대표는 중학생 때 처음 만졌던 일제 주키(JUKI) 재봉틀을 아직도 돌리고 있다. 수많은 학생들의 이름표를 새겼으니 돈을 꽤 벌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면, 아이들 코 묻은 돈을 받았는데 벌면 얼마나 벌었겠느냐며 딸 둘 키운 걸로 만족한다고 답한다.포항 원도심에는 코주부사 외에도 50년 된 포항이발소, 40여 년 된 동아세탁소, 할매떡볶이 같은 노포(老鋪)가 있다. 이 오래된 점포의 주인들은 소소한 기술과 성실한 노동으로 어렵게나마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웠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 톨의 씨앗도 품기 어려웠던 폐허에 힘겹게 실뿌리를 내리며 평생을 보낸 것이다. 인생의 황혼에 이른 노포의 주인들을 만나 삶의 여정을 들어보면, 진정한 역사는 이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생명력이 서로 어우러지며 빚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역사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한평생 지켜온 점포가 작은 박물관이고, 이들이 사용해온 재봉틀, 이발도구, 요리도구가 역사 유물이며, 이들이 웃음과 슬픔을 버무려 풀어놓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역사책이 아닐까. 지역 공동체의 정서와 문화를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애틋한 삶을 잘 갈무리해 널리, 그리고 오래도록 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궁리해야 할 때가 됐다.

2019-12-01

투 핸즈(Two Hands) 1

네 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여섯 살 때 공개 연주회를 할 정도로 신동 소리를 듣는 천재가 있습니다. 열 살에 유럽으로 건너가 아르투르 슈나벨(Artur Schnabel)에게 사사합니다.스승은 콧대 높기로 유명한 지휘자 조지 셀(George Szell)을 이탈리아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는 솔로 연주자들과 협연을 절대 하지 않고 오직 오케스트라 음악만 지휘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슬쩍 연주를 한번 해 보라고 말합니다. 소년의 신들린 듯한 연주 솜씨를 한눈에 알아본 조지 셀은 자존심 다 내려놓고 이 소년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자고 제안하지요.소년의 이름은 레온 플라이셔(Leon Fleisher 1928∼)입니다. 열여섯 살 레온 플라이셔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메이저 무대로 등극합니다. 열여덟 살이 되기 전 카네기 홀에서 두 번이나 공연을 하는 기염을 토하지요. 1952년에는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미국인 최초로 우승하는 영예를 얻기도 합니다. 미국 클래식 연주자가 국제 콩쿠르 사상 처음으로 세계를 제패한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플라이셔는 31세의 나이로 피바디 음악원의 교수가 됩니다. 그는 미국의 자랑이자 세계를 뒤흔드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우뚝 섭니다.문제가 발생합니다. 34세 레온 플라이셔는 연주 도중 오른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넷째와 다섯째 손가락에 힘이 전달되지 않지요. 증상은 점점 악화돼 두 손가락이 말려들기 시작합니다. 결국, 피눈물을 뿌리며 그토록 사랑하던 무대를 떠나게 됩니다.음악이 삶 전부였던 그는 깊은 좌절에 빠져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합니다. 결국, 아내까지 그의 곁을 떠나 이혼하게 되죠. 한 줄기 빛도 없이 캄캄한 흑암 속으로 인생이 순식간에 굴러 떨어집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1

경제계 새해 키워드

국내 재계의 임원 인사철이 돌아왔다. 국내외 정세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연말을 맞은 기업들이 인사 혁신을 위해 어떤 승부수를 던질지 관심이다. 최근 한 경제컨설팅업체는 폭풍을 뜻하는 스트롬(strom)을 국내 기업의 신년 인사 키워드로 풀이했다. 내년도 기업들의 인사는 대폭적인 세대교체와 임원 수 감축으로 압축된다는 뜻에서 폭풍이란 표현을 썼다. 폭풍처럼 궂은 날씨와 변화무쌍한 움직임이 있을 것이란 뜻이기도 하다.기업의 세대교체는 젊은 층의 발탁으로 나타나고 불경기에 대응하는 수단으로는 임원 수를 줄여 정예화 하겠다는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LG그룹이 국내 재계서는 처음으로 2020년 임원 인사를 지난달 말 단행했다. 30대 여성 3명을 신임 임원으로 파격 발탁하고, 신규 임원의 20%를 45세 이하로 채웠다. 대신에 60대 사장급 임원은 줄줄이 퇴사시켰다. 한진그룹 등 다른 기업도 젊은 세대로 교체할 것이라는 것이 대세라 한다. 재벌그룹 임원 사이에는 올 연말이 폭풍전야와 같다는 전언이다. 기업 생존에 사활을 걸어야 할 재계로서는 가장 경쟁력 있는 인사로 채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기업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인사카드는 그래도 젊은 피를 받아들이는 세대교체로 본 것이 지금 기업의 판단이다.지금 국내 경제는 성장률을 연속 하향 조정할 만큼 불안정하다. 일자리 부족과 청년실업, 자영업자의 몰락 등 어느 한 곳 안정된 곳이 없어 불안하기 그지없다.경제계에 던져진 키워드 스트롬(폭풍)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대혁신이라 할 수 있다. 폭풍우 같은 큰바람이 불어와도 끄떡없는 든든한 우리 경제의 모습을 내년에는 보았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01

구멍난 ‘민주주의’

안재휘 논설위원도덕경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일도 그 시작은 미세하다(天下大事必作於細)’는 말이 나온다. 돌아보면 세상의 그 어떤 큰일도 시작은 아주 작은 조짐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굵직한 정치적 사변(事變)들도 마찬가지였다. 권력이 제아무리 틀어막아도 끝내 봉쇄되지 않고 진실이 기어이 밝혀지고 만 역사와 교훈은 부지기수다. 문재인 정권의 구멍 난 ‘민주주의’가 조금씩 추악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몇 달 동안 나라를 온통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조국 대란’의 여진이 미처 잦아들기도 전에 ‘유재수’ 전 부산시 정무부시장 뇌물사건과 김기현 전 울산시장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이 불길을 활활 키워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과는 또 다른 차원의 권력 일탈을 의심한다.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유재수에 대한 뒷말은 혀를 차게 만든다. 문재인 대통령을 ‘재인이 형’이라고 불렀다는 소문마저 나도는 그의 위세가 어디까지였는지는 이제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 밝혀진 그의 부정행위는 거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수준이다.그러나 정말 심각한 것은 지난해 지방선거 직전에 벌어진 야당 후보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치공작 논란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하명수사 의혹은 파장을 가늠키 어렵다. 백원우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넘겨준 김기현 울산시장의 비리 첩보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을 통해 경찰청을 거쳐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에게 넘어간다.황운하는 김기현이 자유한국당으로부터 공천을 받던 그 날 전격적으로 울산시청을 압수수색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송철호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앞서 있던 김기현은 그 시점을 계기로 판이 뒤집혀 선거에서 낙선한다. 고향인 대전지방경찰청장으로 자리를 옮긴 황운하는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명예퇴직을 신청하기도 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 겹치고 또 겹치고 있다.의혹은 백원우가 민정비서관 시절 ‘비선 특감반’을 별동대로 운영하면서 거대한 정치공작을 지휘한 것이 아니냐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백원우는 “경찰로부터 수사내용을 보고 받은 적 없다”고 뻗댄다. 하지만 검찰은 청와대가 선거 이전에 경찰로부터 8차례나 보고를 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백원우는 현재의 ‘수사 시점’을 거론하며 검찰을 겨냥했다. 그러나 그가 ‘수사 시점’을 시비하려면, 울산시청 압수수색이 왜 하필이면 김기현의 공천 결정일이었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경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조진래 창원시장 후보를 비롯해 경남의 야당 출마자 8명이 경찰 수사를 받은 ‘시점’도 함께 설명이 돼야 마땅하다.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 중에 선거 공작보다도 더 추악한 것은 없다. 이런 험악한 의혹은 결코 그냥 넘어갈 성질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이렇게 무참히 펑크내고도 무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합리적 의혹들은 명명백백 밝혀져야 한다. ‘천 리의 둑도 개미구멍 하나로 무너진다(千里之堤 潰於蟻穴)’는 한비자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2019-12-01

원도심에 새로운 희망과 활력을

김충섭김천시장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도시 발달로 인해 개발하기 쉬운 도시 외곽 지역의 기능은 팽창하는 반면, 기존 시가지는 쇠락하게 된다. 도시재생은 이러한 도시 발달로 인해 발생하는 도심 공동화를 방지하고 침체된 도시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산업구조 변화, 업무시설 및 주택 개량 등을 통한 도시 공간구조에 힘을 불어넣고 공동화된 도심 지역의 일반적인 현상인 물리적인 노후화와 인구 감소 및 고령화로 인해 침체된 도심 지역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다. 김천시도 시가지 외곽지역의 도시개발과 혁신도시 건설에 따른 도심 공동화가 심화되고 있어 도시재생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김천시는 2015년부터 자산동 새뜰마을사업을 시작으로 도시재생 4대사업에 575억원을 들여 원도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추진되는 ‘자산동 새뜰마을사업’은 낡고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73억원이 투입됐다. 지금까지 소방도로 개설, 위험축대 정비공사, CCTV 설치, 골목길 정비, 주차장 조성, 주택정비사업 등을 진행했다. 지난해 태양광 조명, 이명균 열사비 정비, 주민공동체 활성화 프로그램 등을 추진했다.김천역 앞 상업지역을 중심으로 인근 주거지역을 포함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진행되는 ‘평화동 근린재생 중심시가지형 도시재생사업’은 182억 원을 투입하여 복합문화센터, 가로경관 개선, 주차장 조성, 상가 리모델링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평화동 도시재생사업의 핵심 거점시설인 복합문화센터 건립과 99세대 청년임대주택 복합개발을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실시설계를 추진 중에 있으며, 김천로 가로경관 개선사업을 전선지중화 사업과 병행해 진행하고 있다.2017년부터 2020년까지 추진되는 ‘황금동 도시활력 증진지역 개발사업’은 황금시장을 명품 상업가로 조성하기 위해 4년간 57억원이 투입된다. 우선 황금시장 특화가로를 조성하고, 마을 동아리방과 주민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4월 도시재생사업 마스터플랜을 수립 완료했다. 양금로 근대건축물 경관개선 시범사업과 황금시장 문화거점 및 커뮤니티거점 실시설계를 진행 중이며, 2020년부터 우리동네 가꾸기 사업, 쾌적한 생활거리 조성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감호시장 장옥부지와 중앙시장 일대 19만800㎡ 부지에 2020년부터 2024년까지 263억원이 투자되는 ‘감호지구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주요 거점 시설인 해피러닝 어울림 플랫폼과 은빛복지센터, 뉴트로 문화공간을 조성하여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기반시설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인 한국교통안전공단과 힘을 합쳐 교통정온화 기법을 적용한 교통안전 선도지구를 조성한다.농기계 프로그램과 행복한 가게 프로젝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물리적 환경개선과 더불어 새로운 문화 컨텐츠를 적용해 지역상권 회복과 조선시대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 번성했던 과거의 위상을 되찾는 노력을 할 계획이다.도시재생은 기존 도시의 문화, 경제, 주거지로서의 역할을 파괴하지 않고 도시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도시 기능에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또 민간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성공 가능성을 높여 준다.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만큼이나 지속성을 위한 유지·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적극 지원하기 위해 김천시 도시재생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센터에서는 마을 활동가 관리, 주민협의체 운영, 주민교육, 복지 및 사회경제 발굴, 교육 및 마을만들기 사업 발굴 등 도시재생사업 전반을 컨트롤하고 있으며, 도시재생 코디네이터을 두어 원활한 사업추진을 도모하고 있다.김천시는 도시재생 4대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서 원도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한편, 차기 도시재생 공모사업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재생 전략계획을 보완하여 도시재생사업 대상지구를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 혁신도시와 원도심이 서로 상생 발전하는 모델을 만들어 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어느 특정 지역만이 아닌 ‘시민 모두가 행복한 김천, 김천시 전체가 활력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 가겠다.

2019-12-01

2019년, 내 삶의 키워드

정현아 간호사찬 바람 부는 이 계절이면 커다란 양철통, 길쭉한 서랍 속 줄줄이 늘어선 고구마 생각이 난다. 잘 익었는지 젓가락으로 꾹 찔러보던 군고구마. 퇴근길 아버지가 들고 온 군고구마 냄새는 당신보다 먼저 집안을 가득 채웠다.해마다 12월은 한 해를 돌아보며 새롭게 앞날에 대한 기대감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이 계절은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딱 한 달 남은 2019년, 나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올해를 시작하며 세운 계획은 잘 실천했을까? 요가와 헬스장을 끊었지만 결국 제대로 실천 못 하고 유효기한을 넘겨버렸다. ‘라푼젤’ 영화를 자막 없이 보며 공부하겠다는 야심 찬 영어 공부 계획도 라푼젤이 태어난 시점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멈춰 있다. 올해 읽을 책은 70권이라고 자신 있게 썼던 독서계획은 반도 채우지 못했다. 여행을 비롯 몇몇 소소한 계획은 빛을 보지 못한 채 다이어리 속에 머물러 있다.이뤄낸 목표도 있다. 아픈데 없이 건강하고 좋은 분들과 함께 쌓아온 추억으로 올해는 유난히 풍성한 시간이었다. 딸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충실했다.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일은 한 해 동안 ‘나다움’ 찾는 여정을 시작한 점이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있던 내가 ‘나다움’을 찾고자 노력한 시간은 2019년 내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38년을 살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에 가슴 뛰는지 모른 채 살았고 어떤 선택에도 ‘아무거나, 다 괜찮아!’ 말하곤 했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면 나도 좋아해야 하는 줄 알았다. 좋아하는 음악도 좋아하는 색깔도 정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 취향에 나를 맞추며 살았다. 이랬던 나와 올해는 기어코 결별하고 싶었다. 이제는 ‘나’로 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답게 살 수 있을까? 나다움을 찾는데 도움받은 경험을 소개한다.첫째는 글쓰기다. ‘생각학교ASK’에 입학해 ‘어떻게 살 것인가?’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글쓰기를 하면서 묵은 감정을 토해내고 엉켜버린 생각을 가지런히 정리해 내놓을 수 있었다. 글쓰기 시간은 상처 입은 나를 보살펴주는 치유의 시간이었다.둘째는 차 마시기다. 차를 우려내 찻잔에 따르는 동작을 수행하고 있노라면 잠잠히 나와 마주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차의 깊고 따스한 향을 몸 전체로 스미게 해 마음의 평안을 회복하곤 했다. 찻잔이 비워지면서 내 존재도 비워지고 가벼워지는 순간을 만났다.셋째 명상이다. 아침, 저녁 10분 명상으로 마치 세수를 하는 것처럼 매일 나를 오염시키는 감정의 묵은 때를 벗겨냈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에 집중하면 투명하고 맑아지는 나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챙기는 과정을 통해 나는 ‘지금(now) 여기(here)’에 존재함을 깨닫는다.넷째는 시 필사와 낭송이다. 처음에는 저질 문장력을 어떻게 고칠까 고민하며 시 구절을 쓰면서 좋은 문장을 익히려고 필사와 낭송을 시작했다. 아름다운 시를 늘 접하니 일상에 쌓이는 감정 찌꺼기가 자연스레 털어지고 버석거리는 메마른 마음은 어느새 촉촉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느 분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들으며 철저히 나다움을 지켜내고 사랑하는 행위’가 곧 낭송이라고 정의했다. 살면서 내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낭송으로 듣는 내 목소리가 점점 내면의 목소리에 가까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나답게, 진짜 나로 살아낸 한 해다. 그래서 12월을 맞는 마음이 가볍다. 이루지 못한 계획도 방황도 아름다운 추억도 ‘나’였음을 안다. 감사한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며 남은 한 달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련다.법정 스님이 말했다. “삶은 순간순간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둔 채 매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내 삶의 매 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기를 바란다.

2019-12-01

경산문화 산실 문예회관 건립에 부쳐

심한식 경북부경산시민들도 드디어 지역 문화를 꽃피울 문화예술회관을 갖게 될 꿈에 부풀어 있다.경산시는 인구 28만 명을 자랑하고 있지만, 지역의 다양한 문화예술을 체계적으로 감당할 공간이 없다.지역 공연예술단체들은 정기발표회 등을 시민회관 대강당과 영남대 천마아트센터 무대를 이용해 왔다.이들 무대는 협소한 강단에 불과해 막이 바뀔 때마다 극에 맞는 세트를 설치해야 하는 등 불편이 아만저만이 아니었다.다행스럽게도 시 중심부 상방근린공원을 민간특례사업으로 2023년까지 개발하는 A 업체가 문화예술회관을 건립해 시에 기부키로 했다.이 업체는 1천500석 규모의 문화예술회관과 300석 규모의 야외광장 등을 조성할 계획이었다.그러나 시는 어려운 작업 없이도 공연에 적합한 환경으로 손쉽게 바꿀 수 있는 1천석 규모의 무대인 가변무대를 선호했다.가변무대는 역동성을 보여주는 장점에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지만 A 업체도 가변무대 조성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문화예술회관은 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특성이 있다.이 때문에 밋밋한 외관이나 특색이 없는 건물, 체육관 형태의 건물은 문화예술회관이 피해야 할 건축구조로 꼽힌다.구미문화예술회관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문화예술회관도 그 지역의 특색을 담고 있다.지역을 대표할만한 문화예술을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경산시의 문화예술회관의 외관이 어떤 모습을 갖추게 될지 몹시 궁금해진다.원효대사와 설총, 일연선사를 지역의 삼성현(三聖賢)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전국적인 이슈는 아니다.옛 압독국의 문화와 삼국통일의 전진기지로 김유신 장군이 병사와 화랑을 단련시켰던 연무장 등의 고유 문화와 젊은 도시, 미래가 있는 도시를 아우르는 건축물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사업시행자와 경산시, 문화예술단체가 서로 고집만 내세우지 말고 시민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문화예술회관을 건립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다.경산/shs1127@kbmaeil.com

2019-11-28

자연인 신드롬

거두절미, 나도 자연인이 되고 싶다. 나도 고향 예산 덕산 가까운 산골에 들어가 계곡물로 세수를 하고 더덕을 캐고 버섯을 따고 뜨는 해 지는 해 보며 황토방 오두막에서 자고 싶다.텔레비전은 지난 십 년 동안 아예 담을 쌓고 지내다시피 했다. 뉴스라는 건 이쪽 저쪽 다 어찌나 잘 ‘만드는지’ 진실 쪼가리 캐는 데 지칠 대로 지쳤는데 요즘에는 유튜브도 범람 지경이 되어 이상한 좌우 자처하는 세력들의 ‘손님끌이’ 장사가 되어버린 느낌이다.며칠 전 경향신문 11월 21일자 1면에 오늘도 세 사람이 퇴근하지 못했다고, 신문 전면을 하단 광고도 없이 산재로 희생된 사람 이름만 빼곡히 적어 놓은 것을 보고 아직도 세상이 변하지 않았음을 알았다.변하지 않은 게 어찌 노동문제뿐일까. 조국 사태는 좌우가 공수를 뒤바꾸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권력을 가지면 그것을 지렛대 삼아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생리라고 생각된다. 그게 없어지면 갑자기 정의로운 체 하는 것도 사람의 체질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 이 생물 그룹의 구성원임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그렇게 쓸모 없어 보이던 텔레비전 화면이 갑자기 환하게 빛이 난다. 이승윤, 윤택 두 개그맨이 방방곡곡 숨어사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데, 이쪽을 돌려도 자연인 재방송이요, 저쪽을 돌려도 자연인 재방송이다. 뭐랄까, 자연인 신드롬이라 할까. 요즘 남자들 로망이 ‘나도 자연인이다’란다.산속에서 손수 밭을 갈고 산약초를 캐고 한 끼 밥을 손수 지어먹는 ‘풍경’이 그렇게 귀해 보일 수 없다.악병에 걸린 사람도 깊은 산중에 들어가면 생명이 되살아나고 부도가 나고 사람살이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도 산속에 들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바로 아래 동생이 마음이 좀 나아져 자주 연락을 한다. 십 년 전 대장에 암이 생겨 죽을 고생을 한 동생이다. 삼형제 중 내가 장남이고, 셋째도 서울에 사는데, 이 친구만 대전 부모님 곁에 지내며 내가 치러야 할 고생을 했다. 참 미안하고 염치가 없다.방민호 서울대 교수유튜브에서 시골 집을 하나 봐둔 게 있다 했다. 한번 가보자 해서 서로 못한 이야기도 나눌 겸 같이 갔다 대실망을 하고 근처 절에서 맛있는 절밥만 먹고 돌아왔다.동생은 요즘 자연인이 되고 싶은 모양이지만 돈은 잘 못 벌어도 응급의다. 큰 병원 삼십 분 안에는 도착할 수 있어야 한단다. 나는 그게 대수냐고 응수한다. 마음 속에 ‘자연인’에서 본 산의 놀라운 치유력을 품고 말이다.나도 자연인이 되고 싶다. 너무 오래 ‘좌연인’ 하며 살았다. 산속으로 돌아가 세속 사람 때를 벗겨내고 싶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1-28

신뢰 국가

영어의 trust는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 trost가 기원이다. 즉 신뢰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편안함을 준다는 말이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 불필요하게 상대를 경계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개인이 사람을 교제할 때 뿐 아니라 국가에 대한 국민의 믿음도 마찬가지다.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낮으면 대체로 후진국으로 평가한다. 미국의 저명한 일본계 학자인 프란시스 후쿠야먀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에서 “한 나라의 경쟁력은 그 나라가 가진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한국이 국민에게 얼마만큼 신뢰를 갖고 있느냐는 것은 국가를 통치하는 위정자에게는 소중한 통계다. 위정자가 집행하는 정책에 대한 신뢰이자 성과로 평가된다.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회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우리 사회에 대해 절반 가량이 “믿을 수 없다”고 답해 충격을 주었다. 특히 20대와 30대는 사회를 불신하는 비율이 54.9%와 51.5%로 절반을 넘었다. 사회에 대한 신뢰를 묻는 설문이 올해 처음이라 그 추이는 알 수 없으나 국민의 절반이 우리 사회를 신뢰할 수 없다면 우리 사회에 내재된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뜻이다. 조사 결과에는 요즘 젊은이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반영된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거나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로 보는 것이 바른 분석이다. 청년 실업난과 자영업자의 몰락,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 등 지금의 경제적 위기감이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 것이다.내로남불이라는 유행어도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불신을 풍자한 표현이다. 불신과 갈등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에 대한 획기적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의 몫이 크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1-28

황교안의 단식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단식이 8일째인 27일 밤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감으로써 끝났다. 목숨을 걸고 시작한 단식이었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청와대측의 반응은 그저 의례적인 수준이었다. 청와대는 정무수석을 보내 단식을 만류하는 수준에 그쳤고, 여당도 이해찬 대표가 찾아와 단식을 풀고 대화를 하자는 제의를 하고는 돌아갔다. 진정성이 없는 단식 만류에 황 대표로서는 단식을 풀기 어려웠으리란 짐작이 든다.황 대표가 단식중에 쓴 글을 보면 단식에 임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황 대표는 지난 25일 단식 엿새째 페이스북을 통해 “고통은 고마운 동반자다. 육신의 고통을 통해 나라의 고통을 떠올린다. 저와 저희 당의 부족함을 깨닫게 한다”고 했다. 황 대표는 “이 길에서 대한민국의 길을 찾는다”며 “중단하지 않겠다. 자유와 민주와 정의가 비로소 살아 숨 쉴 미래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간밤 성난 비바람이 차가운 어둠을 두드린다. 잎을 떨어뜨려도 나무 둥지를 꺾을 수는 없다. 몸은 힘들어도 정신은 더욱 또렷해진다”며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는 국민 여러분 덕분”이라고 적었다. 그랬던 황 대표가 끝내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가자 정미경·신보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밤을 새운 뒤 황교안 대표의 뒤를 이어 동반 단식에 들어갔다. 정 최고위원은 “당 지도부로서 황 대표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신 최고위원과 함께 단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 역시 선거법개정안·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자유한국당 황 대표와 의원들이 벌이는 단식 투쟁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현대적인 의미의 단식투쟁은 국가입장에서 국민이 한 명이라도 아사를 하게 되면 곤란하게 된 시점부터 세계 곳곳에서 시작된 투쟁 방식이다. 대표적 사례가 인도의 성웅 마하트마 간디다. 그는 75세의 나이로 옥중에서 3주간이나 단식을 했다. 단식 투쟁은 본래 부당한 권력에 구금된 수감자들이 주로 행한 투쟁방식이다. 사회에서 존경받거나 인지도가 있는 사람일수록, 단식 투쟁을 하면 여파가 크다.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7년 진주교도소에서 면회 및 변호사 접견 제한에 항의하며 6일간의 단식 투쟁을 했고, 1990년에는 내각제 반대와 지방자치제 실현을 주장하며 13일간 단식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1983년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의해 가택연금 당시 언론통제 전면 해제, 정치범 석방, 해직 인사 복직, 정치활동 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무려 23일간 단식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세월호 특별법 지정을 놓고 단식 투쟁을 하는 김영오를 말리려다 같이 9일간 단식 투쟁을 한 바 있다.목숨을 건 단식투쟁 속에 황교안 대표가 찾아낸 정국해법은 무엇일까, 패스트트랙 철회를 향한 야당의 강대강 대응이 한 겨울 이 나라 정치를 꽁꽁 얼리고 있다.

2019-11-28

21세기 판 잭과 콩나무 2

2018년 9월 23일. 우주 엘리베이터 개발을 위한 실험을 시작합니다. 시즈오카대 연구팀이 작은 위성 두 대를 우주공간에 보내고 길이 10m의 강철 케이블 위에서 미니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키는 소꿉장난 같은 실험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기술 자문을 맡은 오바야시 구미는 2050년까지 우주 엘리베이터를 공급할 것이라는 구상을 발표했지요.이런 환상적인 아이디어에 위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난관은 우주의 혹독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밧줄’을 만드는 겁니다. 탄소 나노 튜브가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지만 낙관할 수 없는 기술적 장애가 있습니다. 전기를 공급하는 문제, 운석과의 충돌 등을 피할 안전 대책 등이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꿈은 저 멀리 하늘 궁궐에 있는데 내게는 콩 다섯 알도 없고, 금 동아줄도 내려오지 않고 있는 상황인가요? 동화나 신화에서는 오직 행운이라는 변수만이 우리에게 해결책을 제공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우리에게 하늘 궁궐을 향해 올라갈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할 것입니다.액션페이커(Action Faker)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꿈만 꾸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 달달한 꿈에 취해 현실을 부정하며 스스로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상태 또는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우주 엘리베이터라는 달콤한 꿈을 오래전 누군가 꾸었지만, 누군가는 가로세로 10㎝의 초미니 위성을 만들어 10m까지 케이블을 연결해 우주 공간에서 실험을 시작합니다.액션 페이커는 동화와 신화에 머물러 자기를 위안하지만, 진정한 행동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온갖 거센 반대와 저항을 물리치고 첫 번째 행동을 시작합니다.오늘 그 꿋꿋한 걸음을 다시 한 발짝 내딛으실 그대를 위해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하늘에서 금 동아줄이 내려오는 순간을 반드시 맞이하실 겁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28

월동준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겨울이 오고 있다. 벌써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린 곳도 있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다. 그래서 모두들 겨울이 닥치기 전에 겨울나기 준비를 한다.털이 있는 동물들은 방한용 털갈이를 하고, 땅속이나 굴속에서 동면을 하는 동물들도 있다. 곤충들은 대다수가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풀들도 보통은 씨앗이나 뿌리를 남기고 말라 죽지만, 살아서 겨울을 넘기는 풀도 상당수 있다. 나무들의 겨울나기가 그중 비장해 보인다. 앙상한 가지로 혹한을 견디는 나무들의 월동전략은 버리고 비우는 것이다. 나뭇잎을 다 떨고 몸 안의 수분까지 최소한으로 줄여서 빙점을 낮추는 것으로 동사(凍死)를 면한다. 잎을 달고 겨울을 나는 상록수들은 어쩌면 더 처절한 전략으로 월동을 하는지 모르겠지만.지금의 북한이 그러하듯 우리에게도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었다. 최소한의 생존조건인 식량과 땔감의 마련도 어려운 사람이 많았다. 끼니때면 바가지를 들고 밥을 얻으러 다니는 거지도 동네마다 한둘은 있었다.굶어 죽고 얼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북녘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아린 것은 굶고 떨어본 사람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남아돌아 처치 곤란한 옷가지라도 보내줄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은가. 세습 신격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인민들을 사지로 내모는 김정은 일당과 그에 동조하는 무리들에게 부디 천벌이 내리기를 바란다.아직도 굶어 죽은 사람이 있다고는 하나 백방으로 노력을 하면 먹고 입는 것의 해결은 가능한 것이 대한민국이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노숙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누군가 먹고 입을 것을 갖다 주는 나라가 되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살만하지 않은가. 빈부의 양극화니 상대적 박탈감이니 하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그다지 절박한 사정이 아닐 수 있다. 그 때문에 절망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어리석고 나약한 정신이기 때문이다. 맨몸으로 겨울을 견디는 저 나무와 풀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겨울이 되어도 굶어 죽고 얼어 죽을 걱정이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제는 겨울이 생존을 위협할 만큼 혹독한 계절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비를 해야 할 것은 계절의 추위보다 개인이 겪는 마음의 추위인 것 같다. 중병에 걸리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사고를 당하는 등의 이유로 극한상황에 몰리는 경우가 겨울에 해당한다. 무엇보다도 배고픈 게 가장 섧다고는 하지만 배가 고프다고 자살을 하지는 않는 것처럼 심리적인 이유가 더 절박할 수도 있는 것이다.며칠 전에도 젊은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 자살자가 연간 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중의 8할은 우울증이 있는 경우라고 하니 마음의 병, 심리적인 원인이 죽음이라는 극단으로까지 내모는 것이다.마음의 겨울에 대비하는 월동준비가 필요한 시절이다. 무성한 잎들을 다 떨어내고 최소한까지 수분을 내보내 빙점을 낮추는 나무들에게서 배울 일이다.

2019-11-28

치열해지는 대학경쟁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최근 부산권의 모 대학이 한 세계대학평가기관이 발표한 랭킹에서 동남권 10위에 올랐다는 보도가 큰 주목을 끌었다. 영국의 글로벌 대학평가 기관인 QS가 최근 공식 발표한 ‘2020 세계대학평가’에 따르면 이 대학은 동남권 10위에 해당하는 대학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반면 이날 발표된 랭킹에서 전통적인 서열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랭킹도 발표됐다. SKY로 대변되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순서가 성균관대의 등장으로 크게 흔들렸다. 이번 발표에서는 ‘서고성’이 된 것이라는 보도도 눈길을 끈다. 벌어지는 카이스트와 포스텍의 간격도 화제로 떠올랐다. 이 지역의 자부심인 포스텍의 랭킹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포스텍은 최근 중앙일보 랭킹에서 카이스트를 누르고 국내 1위의 과기대로 등극한 것과 대조적으로 이 세계랭킹에서는 카이스트가 1위로 랭크된 반면 포스텍은 국내 7위로 랭크되면서 보는이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들었다. 평가기관마다 들쭉날쭉한 기준과 기준의 비중으로 인해 랭킹은 수시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텍의 이번 결과는 개교 이래 가장 낮은 평가로 무엇이 문제인가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이런 가운데 경북대는 최근 대학 경쟁력 강화를 모색하기 위한 ‘제11회 한국대학랭킹포럼(URFK)’을 개최했다. 경북대가 주관하고, 한국대학랭킹포럼이 주최한 이번 포럼은 대학평가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국내·외 대학 평가 지표 및 방법론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학 발전과 경쟁력 향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포럼은 2014년 필자를 비롯한 몇몇 평가 관련 교수들이 모여 만든 포럼이다.‘연구와 랭킹: 양인가 질인가?’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는 타임스고등교육(THE), QS코리아, 엘스비어, 네이처 인덱스 등 주요 해외 대학평가기관 관계자와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등 30여 개 주요대학이 참가했다.대학평가 기관들의 들쭉날쭉한 대학평가 기준의 모순 그리고 이에 따른 상업적인 활동, 관련 보도기관들의 이권관계 등 여러 가지 모순에도 불구하고 대학간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당초 URFK의 목표는 “각종 평가지표를 통해 대학을 발전시키고 한국 대학의 경쟁력과 순위를 끌어올리는 동반자 관계”였다. 이 목표는 여전히 숭고한 목표이긴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대학간의 경쟁은 생존의 경쟁처럼 치열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이는 곧 밀어닥칠 인구감소에 따른 학생 수 하락으로 대학들의 상당수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유학생에 의지해야 하는 국내대학들의 재정과도 관련이 있다. 또 세계의 대학시장이 일방통행이 아닌 양방향 통행이라는 대학의 세계시장화와도 맞물려 있다.상위권이든 하위권이든 이제 한국 대학들은 치열한 환경 속에 쉽지 않은 경쟁에 내던져 지고 있고 이 경쟁에서 어떻게 생존할지는 각 대학의 몫이다. 대학 총장들의 어깨가 무거워 지고 있다.

2019-11-28

죽음의 형식과 방식

김규종 경북대 교수야스나야 폴랴나에 있는 레프 톨스토이 생가에 녹음이 한창인 어느 해 7월, 오솔길을 걷노라니 목소리 들린다. “여기가 톨스토이 무덤이에요.” 순간 걸음을 멈춘다. 아무런 표지도 비석도 없이 관 모양의 직육면체가 초록의 풀로 덮여 있을 뿐. 일행은 잠시 숨 고르고, 나는 선글라스 벗고 고개 숙인다. 그것이 톨스토이 무덤임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심코 지나칠 법한 수더분한 공간에서 인류 최후의 타이탄은 누워 있었다.“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크레타의 이라클리온에 잠들어 있는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묘비명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자유롭게 살다가 영면한 카잔자키스. 이승과 저승 모두에서 아무 욕망도 어떤 두려움도 없이 초월적이고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한 시인이자 소설가. 나무 십자가 뒤편 투박한 석관 위의 묘비에 새겨진 글귀는 인생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톨스토이와 카잔차키스 무덤만큼 심금(心琴)을 울리는 무덤은 없다. 지극히 간명하되 폐부를 찌르는 소박함. 살아서나 죽어서도 거대한 족적을 자랑하는 거인들의 단순하고 질박(質朴)한 주검의 그릇!무덤이 죽음의 형식이라면, 임종은 죽음의 방식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길가메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21세기에도 삶과 죽음의 마지막 경계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는 여전한 과제다. 주변을 돌아보라. 오늘 받은 부고장의 주인공은 대개 요양병원이나 응급실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다가 세상과 작별한 분들이다. 필시 그들 대다수는 최후의 순간에 자식도 알아보지 못한 채 임종을 맞이했을 것이다.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가 7만을 넘었고, 그런 의향을 밝힌 사람도 43만을 넘었다. 연명의료 결정제도가 도입된 2018년 2월 4일 이후 올해 10월 말까지 21개월 동안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사람은 7만996명이라고 전한다. 연명의료는 임종과정 환자에게 행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및 항암제투여 같이 임종과정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이다.생물적인 목숨만 남아있는 상태를 지속하는 연명의료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인간적인 존엄을 지키지 못한 채 죽음과 대면하는 환자. 정신적-물질적인 부담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가족. 그들 모두의 무겁고 수고로운 짐을 덜어주려고 시행된 제도가 차분하게 착근하고 있는 것이다. 짐작하기로 연명의료 중단의향을 지지하는 사람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생의 마지막 길만큼은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싶기 때문이다.정신이 또렷한 채 가족과 작별하는 임종의 자리는 경건하고 엄숙하며 숙연하다. 인공호흡기를 꽂은 채 맞이하는 처참한 죽음과 천양지차다. 누구나 맞이하는 생물적인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거룩한 표정과 목소리를 온가족이 함께해야 한다고 믿는다.

2019-11-27

21세기 판 잭과 콩나무

‘잭과 콩나무’는 1500년대 무렵부터 구전되는 이야기입니다.이 멋진 동화는 전 세계 어린이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습니다. 1895년 러시아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는 동화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를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로켓을 만들면 인류가 꿈꾸던 저 하늘 위의 궁궐, 우주에 올라갈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인류 최초로 말합니다.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처음 띄운 것이 1903년이었으니, 치올콥스키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 가시지요? 치올콥스키는 로켓 이야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우주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적은 비용으로 우주로 나갈 수 있다는 원리를 상세하게 밝히지요.120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그 사이 인류는 로켓을 만들어 달에도 다녀오고 지구 궤도에 온갖 위성을 쏘며 차근차근 우주로 나가는 길을 텄습니다.치올콥스키의 초기 이론이 대단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의 예견대로 우주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일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잭이 콩나무에 올라타고 하늘 궁궐로 쭉 올라가듯, 지구 궤도 밖 3만 6천㎞ 지점에 설치한 정거장에서 지구로 늘어뜨린 콩나무 가지, 즉 강철보다 100배 강한 소재에 달린 엘리베이터가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지구에서 우주 정거장까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른다는 개념이지요.로켓의 한계는 막대한 비용입니다. 1㎏ 물건을 대기권 밖으로 올리려면 2천400만원이 듭니다. 로켓으로 70㎏ 성인을 대기권 밖으로 올려 보내려면 16억 8천만원이 듭니다.승용차 한 대를 옮기면 120억원. 우주 엘리베이터 건설에 성공하면 비용은 100분의 1로 줍니다.저렴한 비용에 물자와 사람을 실어나를 수 있어 3D프린팅으로 우주 정거장에서 이후 우주 개발에 필요한 온갖 부품을 제작, 조립할 수 있다면 우주 개발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27

교권보호, 교사 스스로는 안 되는 시대

조현명 시인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싸움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P선생님이 달려가서 지도하고 훈계했다.그날 오후 선생님에게 멱살이 잡혔다고 학부모가 학생을 데리고 와서 항의했다. 그 학부모의 눈에는 교사 모두가 다 자신의 아들을 멱살 잡은 깡패로 보이는지 소리 지르고 막무가내였다. 불려온 K선생님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결국 책임자가 CCTV 화면으로 확인해보자고 했다. 확인해보니 멱살은커녕 아무 일도 없었다.마침 그 방향 쪽으로 화면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학부모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증거 앞에서는 사과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씁쓸하기도 하지만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사건이었다. 이미 사회에서는 교사가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낸 세금이나 등록금으로 월급을 받아가는 존재’가 되어버렸다.체육 시간 후 씻고 온 얼굴과 손을 커텐에 닦는 것을 지도하는 선생님에게 ‘이거 우리 부모님이 낸 돈으로 산 건데 어떻게 쓰든지 선생님이 간섭하지 말아요’라고 하는 학생이 생겨날 정도가 되었다.학부모가 교권에 대해 침해하는 사건이 2018년 기준으로 210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한국교총 2019년 5월 발표). 그것도 드러나고 문제가 된 사건의 경우이고 앞에 적은 것처럼 사소하고 그냥 지나간 사건들은 훨씬 더 많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조사 발표에 의하면 학생들의 교권침해 사건은 2018년 기준으로 2천244건으로 역시 증가하고 있다. 교권 침해사건은 교육활동 부당방해와 상해 폭행이 가장 많고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가 다음 순이다. 성적굴욕감이나 공무방해, 협박, 손괴, 성폭력 등도 일어났다.세세한 사례들을 다 읽다보면 놀랄만한 내용도 많다. 그중 언론에서 온통 떠들썩했던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 만해도 도대체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인가 의아하기까지 하다.결국 대부분의 국민이 선생님을 존경하던 시대는 이미 끝나 버린 것이다. 사실상 그와 궤를 같이하여 가르침과 배움이 학교에서 끝나버린 듯하다. 그러나 교사를 존경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은 아직도 있긴 있다. 그 학생과 학부모들은 스스로 상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교사를 존경하는 학생이야말로 스스로 좋은 교육을 받고 있을 테니 말이다. 잘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깡패 쯤으로 여기고 자신의 노예처럼 여기고 하면 결국 스스로 깡패에게 배우는 것이고 노예에게 배우는 셈이 된다.해마다 교권보호주간을 시행하라고 공문이 오고 그래서 교사들로 하여금 교문에서 띠를 두르고 플래카드를 걸게 하고 캠페인을 하게 한다.그것은 교권보호를 교사 스스로 해야 한다 말하고 싶은 어떤 행정가가 만들어내었는지 모르지만 시대에 한참 모순됐다. 이제 교권을 교사 스스로 높여야 할 시대는 끝났다.학부모 학생이 막무가내이니 교원지위향상법과 교권침해에 대한 처벌을 더 심각하게 높이는 수준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이런 수준으로 가다가는 앞으로 교사, 공무원 기피사유 1번이 민원인들의 권리와 인격 침해가 될 것 같다.

2019-11-27

폭력, 차별, 야만

장규열 한동대 교수두 연예인을 떠나 보냈다. 젊디젊은 여성 재주꾼을 둘이나 잃고서 우리는 무엇을 바꿨는가.인터넷, 악성 댓글, 익명성…. 어느 한자락 직접 대응하기도 버거웠을 공격과 비난을 만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비참하였을까. 비겁하고 비열한 당신은 지금도 버젓이 숨쉬고 있는가. 꽃다운 딸이며 누이였을 그들의 넋을 보내면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안타까운 마음이 깊었겠지만,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빗장 하나쯤 마련하였는가. 떠나버린 한 생명도 세상없이 슬펐을 터에, 한 달 반도 못 채워 우리는 둘씩이나 잃고 말았다.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는지 뾰족한 대안도 방지책도 나누는 이가 없다. 목숨이 얼마나 귀한 것인데, 그냥 각자 알아서 지키라는 말인가.유엔(UN)이 정한 ‘세계여성폭력주간(16 Days of Activism Against Violence Against Women)’을 지나고 있다. 열여섯 날 동안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의 비정함과 무자비함을 살피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여러 모양의 폭력에 적극 반대하기 위한 날들이라고 한다.특히 올해는 장소와 연령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성폭행에 주목해 각종 캠페인을 벌인다고 한다. ‘미투(MeToo)운동’ 등을 통해 알려진 피해자들의 고통과 활동가들의 목소리 덕에 여성에 대한 폭력의 심각성을 이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인류의 절반을 그 나머지 절반이 우습게 생각하고 도구화하여 비참한 결과를 빚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개인적 수치와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하여, 굴욕적인 침묵으로 가라앉게 되는 일도 너무나 아픈 게 아닌가.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여성자살률 1위라는 오명도 쓰고 있다. 여성경제활동참여율도 조사대상 36개국 가운데 32위라고 하며, 성별 간 임금격차도 무려 36%나 되어 최하위라는 게 아닌가. 우리에게 여성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남성에 비해 턱없이 버거운 삶을 굽이굽이 넘는다. 소설도 읽었고 영화도 보았다. 그러고도 폭력과 차별을 마주하여 두려움과 처절함의 막다른 골목에 처한다면, 이는 비정함을 넘어 야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더 이상 참아내지 말아야 하고 이제는 힘들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목소리를 내고 고발한들, 관련 폭력에 대한 처벌과 대응수준이 흡족하지도 않아 보인다. 경각심과 인식을 새롭게 하고 제도적 보완에도 함께 주목하여, 여성에 대한 폭력이 실효적으로 감소하도록 노력해야 한다.여성운동가 앤더슨(G.D. Anderson)은 ‘페미니즘은 여성을 강하게 만들려는 운동이 아니다. 여성은 이미 강하다. 단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할 뿐이다’고 하였다. 비뚤어진 눈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이 바뀌어야 한다. 여성 스스로 당당함도 회복하여야 한다. 전통문화가 잘못 전달해 준 시선을 돌아보아야 한다.여성과 남성이 차별과 폭력을 걷어내고, 맑고 밝은 길을 함께 다듬어 가야 한다.

2019-11-27

스미싱 주의보

스미싱(Smishing)은 문자메시지(SMS)와 피싱(Phishing)의 합성어로, 악성 앱 설치를 유도해 금전적인 피해 등을 유발하는 수법을 말한다.주로 ‘무료쿠폰 제공’ ‘돌잔치 초대장’ ‘모바일 청첩장’ 등을 내용으로 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인터넷주소를 클릭하면 악성코드가 스마트폰에 설치돼 피해자가 모르는 사이에 소액결제로 돈이 빠져나가거나 개인금융정보가 유출되고 만다. 특히 최근에는 ‘우체국 택배 확인을 부탁한다’는 택배사칭 스미싱이 유행하고 있다니 주의해야 한다. 스미싱에 이용된 변종 악성코드는 소액결제 인증번호를 가로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 스마트폰에 저장된 주소록 연락처, 사진(주민등록증·보안카드 사본), 공인인증서, 개인정보 등까지 탈취해 더 큰 금융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스미싱 피해를 예방하려면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문자메시지의 인터넷주소를 클릭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설령 지인에게서 온 문자메시지라 해도 인터넷주소가 포함된 경우 클릭 전에 반드시 전화로 확인해야 한다. 또 미확인 앱이 함부로 설치되지 않도록 스마트폰의 보안설정을 강화하는 게 좋다. 스마트폰의 보안설정 강화방법은 환경설정 보안 디바이스 관리 ‘알 수 없는 출처’에 V체크가 되어있다면 해제하면 된다. 이동사 고객센터에 전화하거나 이통사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해 소액결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거나 결제금액을 제한하는 것도 예방법이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용 백신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디지털시대, 금융사기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만큼 스마트폰도 기본적인 예방법을 따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1-27

거대한 전환: 과학을 입은 인간

칼 폴라니는 자본주의가 태어나면서 “거대한 전환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가 말한 거대한 전환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다.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유와 이상을 파괴한다”고 보았으며, 이때부터 “인간의 삶이 비극적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머지않아 자본주의가 자신의 문제를 노정하며 결국 도태되거나 붕괴될 것이다”고 보았다.자본주의는 그가 활동했던 제2차 세계 대전 무렵보다 현재 더 깊이 우리의 삶에 침투해 있으며,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예견은 여전히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은 기존의 삶의 방식을 폐허로 만들고,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갈 것인가를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한다.미래사회에서 신재생에너지와 대용량전기저장장치의 급속한 발전은 화석연료의 의존도를 낮출 것이며, 인공지능과 로봇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자동차 수를 격감시키며, 자동차와 연관된 운송과 금융, 보험과 같은 서비스산업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킬러로봇의 등장은 전쟁, 대테러, 범죄예방과 같은 국가안보와 치안을 새로운 형식으로 정립할 것이다. 동시에 인간에게 위협을 가할 것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발전은 대규모 정보를 기반으로 지식노동자에게도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방대한 양의 법률과 판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빅데이터로부터 판결을 내려주는 인공지능 판사와 변호사, 개인의 병력에 합당한 처방을 내려주는 인공지능 내과의사와 영상의학과 의사, 인공지능 기자는 신문이나 방송기사를 자동으로 생성해낼 것이다.이러한 인공지능이 들어서면 인간은 쫓겨날 수밖에 없다. 인간만 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던 인간의 오랜 경험과 지식, 연륜을 바탕으로 했던 영역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인간의 단순지식노동을 밀어낼 것이다. 실제로 시카고 트리뷴지가 자사의 지역신문 기자 20여 명을 해고하고 저너틱사에 외주를 주어 기사를 작성하기로 했다.화제가 된 것은 기사를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아웃소싱 방법을 채택했다는 것이 아니라, 기사작성의 주체가 로봇이라는 점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에 의한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자동으로 기사를 작성하여 뉴스를 제공해 준다. 2010년에 설립된 저너틱사는 소셜 사이트를 포함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정보와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여 자동으로 기사를 생성, 제공한다. 이러한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폴라니처럼 과학기술문명의 불길한 미래를 예측하며 이 시대가 어서 끝나기를 바랄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과학기술을 이용해 이것을 기회로 삼아 새롭게 나아갈 것인가? 다가오는 첨단기술시대에 불안을 느끼는 것은 보수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뇌의 명령인지도 모른다.거대한 전환에 맞서려면 생물학적이고, 유전학적인 차원에서 요청되는 뇌의 명령을 거부하고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익혀나가야 한다.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밀려올 미래는 양날의 칼이다. 미국의 과학철학자 돈 이데는 과학기술의 양면성을 ‘확장·축소·변형’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과학기술의 사용은 대상이나 경험의 특정한 측면을 확장시키지만 한편으로 축소시키기도 한다. 자동차의 경우 주어진 시간 안에 보다 먼 공간적 이동이 가능하도록 우리의 경험을 확장시키지만,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 펼쳐진 파노라마 같은 공간을 사라지게 만듦으로써 도보여행이 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축소시켰다.걸어다니는 사람에 비해 자동차를 사용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체험한다. 그런 점에서 과학 이전의 인간과 과학을 입은 인간은 동일할 수 없다. 과학기술은 우리의 경험을 확장시키며 이를 통해 정체성을 변화시킨다. 인간이 새로운 과학기술을 만들지만, 과학기술이 인간과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과학기술을 입은 미래인간은 지성의 앰프(Intelligence Amplication, IA) 효과로 더 창의적이고 행복한 인간으로 변모할 것이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이와 함께 과학을 입은 인간은 과학기술이 가진 양면성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고 말겠지만, 그 변화를 무작정 따라간다면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이 양면의 압력을 이겨낼 수 있는 교육제도가 필요하다. 그러한 교육제도는 공학만을 강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공학만큼이나 인문학·예술 등도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 공학자가 인문학이나 예술교양을 쌓아야 하듯 인문학이나 예술분야에서도 공학교양을 쌓아야 한다. 이런 융합교육이 불투명한 미래를 투명하게 만들 것이다.미래는 미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형성된다.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때 미지로 남겨진 미래는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 국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몫이기도 하다. 미래의 일을 미래에 준비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준비해 나가야 한다. 오늘이 미래를 결정한다.

2019-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