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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불교의 지혜와 자비

효상 스님포항 운흥사 주지불교는 제법(諸法)을 있는 그대로 여실히 알아내는 지혜(般若)를 매우 존중합니다. 왜냐면 그러한 지혜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올바른 종교적 행위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믿음(信)만 있고 앎(解)이 없으면 미신에 흐르기 쉽고, 앎만 있고 믿음이 없으면 오만하게 되기 쉽습니다. 불교에서는 믿음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을 합니다.그래서 그러한 믿음과 함께 이지(理智)의 중요성을 또한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불교는 매우 지(智)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를 바탕으로 발현되는 인간애를 불교에서는 자비(慈悲)라고 말합니다.자(慈·maitri)는 어원적으로 ‘우인(友人·mitra)’이라는 말에서 파생한 말로, 진실한 우정·순수한 친애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비(悲·karuna)는 애련·동정 등의 뜻으로써 보통 쓰이고 있는 말입니다.따라서 자비는 ‘남에게 이익과 안락을 주고(慈, 與樂), 불이익과 고통을 덜어 주려는(悲, 拔苦)’ 인간애를 의미합니다.불교에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는 교설이 있는데 자(慈)·비(悲)·희(喜)·사(捨)의 네 마음을 일체 중생에 대해서 무한히 가지라는 것입니다.자(慈)와 비(悲)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고, 희(喜)는 남이 즐거움을 얻었을 때 그것을 흔연히 기뻐해 주는 것이며, 사(捨)는 다른 사람에게 애증원친(愛憎怨親)의 마음을 갖지 않고 항상 평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그러면 불·보살이 이렇게 무한한 자비를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해서, 고통 받고 있는 형제자매를 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비록 시름과 괴로움을 여의었다고 하더라도, 무수한 중생들이 죽어가는 저 슬픈 울음을 어찌 듣고만 있겠습니까?불교 경전 중 ‘우바새계경’에 나오는 말씀을 조금 살펴보겠습니다.“지자(智者)는 일체 중생이 생사의 고해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건지고자 하므로 슬픔을 일으킨다. 사도(邪道)에 헤매는데도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음을 보고 슬픔을 일으키고, 재물과 처자에 얽매여 빠져 나오지 못함을 보고 슬픔을 일으킨다. 또 중생들이 악업을 짓고 고계(苦界)를 받으면서도 탐착(耽着)을 하는 것을 보고 슬픔을 일으키고, 행복을 구하면서도 그 원인을 닦지 않기에 슬픔을 일으킨다.”이와 같이 불교의 지혜와 자비는 참으로 크고 크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괴로움을 여의고, 깨달음을 얻어, 남을 위해 살고 싶은 사람에게 그 큰 지혜와 자비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는 것입니다.

2020-02-26

교육 백신 5 - 평가를 평가하라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먹먹할 따름이다. 처음에는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1월이 총알처럼 지나고, 2월이 어영부영 물러나려고 한다”라고 쓰려 했다. 그런데 3월을 한 주 남겨둔 지난주부터 1분 1초가 1년보다 길다. 기하급수라는 말이 부족한 이제는 자고 일어나기가 무섭다.前門拒虎後門進狼(전문거호후문진랑)이라는 말이 있다.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에서 이리가 닥쳐온다”라는 뜻이다.바이러스와 숫자가 주는 두려움과 공포에 사람들은 패닉 상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 또한 우리 국민이 거뜬히 이겨내리라는 것을!필자는 주말에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의 교복을 찾으러 시내에 있는 교복사에 갔다. 문을 나서려고 할 때 아이가 말했다.“아빠, 코로나 때문에 교복사 앞에서 전화하면 바로 준대. 차에서 내리지 말고 꼭 전화해. 알았지”교복사로 향하는 내내 눈부시도록 맑고 아름다운 하늘이 자신을 봐 달라며 따라왔다. 거리에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뉴스는 사실이었다. 동네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조금 차를 몰고 나가자 바다를 배경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그들을 보면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자가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전문가의 말이 떠올랐다. 예방수칙을 지키면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필자의 면역력까지 높여주었다. 예방이 백신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거리의 많은 상점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교복사에 도착할 무렵 도로를 응시하고 있는 어느 상점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눈, 그 눈에서 기대와 희망을 찾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필자의 오판이었다. 가계를 지나치려는 찰나에 밖을 향해 손 흔드는 그를 보았다. 그 손 흔듦은 필자의 생각이 틀렸음을 말해주는 손사래였다. 도로까지 나와 교복을 건네는 직원의 밝은 미소에서 필자는 희망을 보았다.집으로 가면서 필자는 조수석에 놓인 교복을 보았다. “벌써”라는 말이 소리 없이 터지기 시작한 산수유꽃처럼 터져 나왔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여는 순간 아이는 만개한 봄꽃이 되어 교복을 맞이했다. 그리고 바로 교복을 입고 패션쇼를 했다. 그 모습에 필자의 가족은 코로나의 스트레스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됐다.그런데 즐거움도 잠시였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느낄 암담함을 필자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학원을 가도 걱정이고, 안 가면 더 걱정이니 어떻게 안 보내겠어요” 개학을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에도 시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들의 마음을 교육 관계자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제안한다.“수행평가, 서술형 평가와 같은 보여주기식 시험 개선! 지나치게 높은 수행평가 비율 조정!”이 나라 교육이 지금과 같은 혼돈에 빠진 것은 평가 때문이다. 평가를 개선하지 않고는 결코 교육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교육계의 진리이다. 그런데 그 평가가 정권에 너무 휘둘리고 있다. 예전의 평가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다간 코로나19 사태는 국민의 힘으로 곧 종식되겠지만, 교육계의 혼돈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2020-02-26

1만2천500번의 노크

이그나티우스 피자라는 미국의 한 젊은 박사가 의학 공부를 마치고 캘리포니아 몬테레이 베이에서 클리닉을 개원하려 했을 때. 그 지역의 의사 협회는 “이미 클리닉이 너무 많으니 다른 곳에서 개원하라”고 충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굳게 결심한 그는 그날부터 무려 넉 달 동안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집집이 찾아다니며 노크했습니다.“제가 어디에 클리닉을 내면 좋을까요?” “클리닉 이름은 A와 B중에 무엇이 더 좋을까요?” “제 클리닉 개원식에 초대합니다. 와주시겠습니까?”피자 박사는 당연히 수없이 거절을 당했습니다. 집에 사람이 없었던 경우도 많았습니다.하지만, 그는 지역 사회 1만2천500가구를 모조리 방문했고, 그 중 절반인 6천500명에게 말을 건네는데 성공했습니다. 넉 달 뒤 그는 개원했고, 첫 한 달 동안 233명의 환자를 진료, 7만2천달러의 기록적인 수입을 올렸다고 합니다.살아가면서 우리는 ‘거절’ 당할까 걱정합니다. 가끔은 그 두려움이 너무 커서 아예 시도 자체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절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생활 일부입니다. 거절당한다 해도 나빠질 것은 크게 없습니다.위신이 떨어진다고요? 창피하다고요? 1만2천500가구의 집 문을 노크해 6천번 이상 거절당했던 미국의 한 박사도 있었습니다.제가 늘 새벽 편지를 쓰는 이곳, 클북이 출판을 시작한 지 벌써 8개월이 지났습니다. 벌써 여덟 번째 책을 출간했습니다. 책 출간 이후 다양한 저자들의 반응을 봅니다. 낯가림이 심한 분은 책을 내고도 칩거하는 숨는 분도 있고, 자신이 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려 많은 분을 만나고 여기저기 노크하는 분도 있습니다.1년에 4만권도 넘게 쏟아져 나오는 새 책의 홍수 시대입니다. 자신의 책을 알리고자 오늘도 애쓰며 노크하는 이 땅의 수많은 저자를 응원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26

우한폐렴과 TK코로나

김규종 경북대 교수‘코로나19’가 극성이다. 코로나19는 애초 ‘우한폐렴’이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불리다가 질병관리본부 건의로 코로나19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지난 2월 11일 감염증의 정식명칭을 ‘COVID19’로 결정했지만, 영어표현이 길고 생소해 코로나19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대구와 경북의 확진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지역 거주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천지 대구교회와 청도 대남병원 확진자가 전체 확진자의 70% 가까운 비중을 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적잖게 충격적이다.중국 호북성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를 막아보자면서 통합당과 보수언론이 줄기차게 주장한 것은 ‘우한폐렴’과 ‘중국인 입국금지’였다. 2015년에 마련된 세계보건기구 명명법 기준에 따르면 특정지역 이름을 따서 감염병 명칭으로 삼는 것은 국제법상 올바르지 않다. 정부는 1월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우한폐렴’ 대신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명칭을 권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통합당 전신인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은 우한폐렴 명칭을 고수했다.대구와 경북에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자 보수언론은 대구 경북 거주민을 우롱하는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2월 20일 ‘중앙일보’에 “파장 커지는 TK 코로나”를 필두로 2월 21일 채널A는 “대구 코로나”, SBS는 “대구 고담시티”, 연합뉴스 텔레비전은 “대구발 코로나”를 줄지어 보도한다. 여당 국회의원과 대구시장이 대구와 경북을 모욕하지 말라고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해야 할 정도로 대경 지역민을 폄훼하고 모독하는 짓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가관인 것은 ‘우한폐렴’을 주장한 통합당 의원이 “대구 코로나” 명칭에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중국에 혹시나 흠이 갈까 봐 우한폐렴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펄쩍 뛰던 사람들이 이제 아예 대구 코로나라고 부르나”라는 희한한 논리를 전개한다. 그에 따르면 정부가 우한폐렴 대신 코로나19를 사용하는 것이 중국 눈치 보기나 사대주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한폐렴은 되고, 대구 코로나는 안 된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2월 20일 통합당 원내대표 일갈도 흥미롭다. “국민이 알기 쉽게 맨 처음에 사용했던 우한폐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 정부가 중국 눈치를 너무 보고, 제대로 대응조치를 하지도 못하면서 중국 심기만 살피고 있기 때문에 이를 부각하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지금 우한폐렴 명칭을 쓰고 있다.” 국민의 낮은 눈높이를 고려하고, 정부의 대중국 저자세를 비난하려고 우한폐렴 명칭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초기에 중국을 오가는 항공기 운항을 금지한 이탈리아에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인 입국금지를 주장하는 자들의 단견을 웅변한다. 바이러스가 행정적인 국경을 따라 이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엄중한 환란을 맞이하여 정쟁을 중단하고 국민과 더불어 현명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절실한 시점이다.

2020-02-26

과학기술에 대한 사랑

누구나 사랑을 경험을 할 때엔 무슨 열병이라도 걸린 듯 가슴은 두근거리고, 속은 울렁거린다. 오직 한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무슨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삶은 일상적 현실 위로 둥둥 떠올라 표류한다. 이런 때에 우리는 그런 비현실적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기만을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이 바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이제는 너무 나이 들어 그런 순간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심술이 나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삶을 조금 더 알게 되어 하는 말이다. 도대체 그렇게 현실감을 잃은 상태가 계속되면, 사람은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몇 날, 몇 주, 몇 달, 몇 년 그렇게 사랑에 빠진 상태를 계속 견디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도 가능할 것 같지 않고, 삶은 그 사랑으로 모두 망가지게 될 것이 뻔하다.“미국 대중은 과학기술에 대한 사랑에 빠졌다.”2003년 작고한 미국의 시사 문화 평론가인 닐 포스트만 뉴욕대학교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과학기술에 매혹되어 과학기술이 미국 사회에 끼치는 유의해야 할 영향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미국인들을 향해 이렇게 경고했다. 그는 “과학기술은 파우스트의 거래(Faustian bargain)와 같아서 늘 주는 것이 있으면, 가져가는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과학기술을 잘 사용하려면, 꼼꼼히 손익을 따져 거래를 하는 것처럼 깨어있어야 하는데 미국 대중은 과학기술에 대한 사랑에 빠져 눈멀고 귀먹어 현명한 거래를 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헌데, 돌아보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사정도 그리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과학기술에 대한 현대인의 사랑은 강렬하다. 눈멀고 귀먹기에 충분히 달콤하다. 과학기술이 펼쳐 보이는 내일은 항상 희망으로 가득해 보인다. 하지만 그 희망은 결코 내 품 안에 잡혀 차분히 머물지 않는다. “한 발 다가서면, 두 발 도망간다.”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애정 행각엔 마지막 목적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YOLO! 한 번 사는 인생!”,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Carpe diem! 이 순간을 잡아라!”, “지금 이 순간!”, “부러우면, 지는 거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첨단 과학기술 제품 광고의 끊임 없는 권고,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 속 PPL 광고,이 모든 것들의 무차별 폭격 속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는, 현대 과학기술의 산물들에 대한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우리는, 늘 채워지지 않은 갈망 때문에 굶주린다.사랑에 빠진 연인 간에서 “사랑을 향한 굶주림”이라는 말은, 그 허기가 채워지는 날,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있기에 아름다운 시구가 된다. 하지만 현대과학에 대한 배고픔은 과연 채워지는 날이 올까? “현대 과학기술, 이만하면 되었다”라고 인정할 수 있는 날은 과연 올까?컴퓨터 메모리에서 두 배의 집적도가 가능해진 순간, 네 배로, 다시 여덟 배로의 목표가 세워지는 것은 자동적이다. 생각해보면 기술적 혁신을 이뤄 낸 연구팀을 “이제 이만하면 되었으니, 집에 가세요”라고 연구팀을 해체할 수 없는 노릇이니, 과학기술은 제동장치가 없는 기관차처럼 끊임없이 변화, 발전한다.이런 현상을 보고, 프랑스의 사회비평가 자크 엘륄은 “기술은 자율적이다”라는 주장을 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람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과학기술이 어떻게 자율적인가? 하지만 과학기술 현상 자체를 볼 때, 그의 주장은 매우 호소력이 있다. 한번 발전이라는 방향을 향해 나선 과학기술은 멈추지 않고 그 발전 방향을 지속하려 한다는 것이다.혹자는 과학기술이 가는 길은 과학기술자의 선택으로 “구성”되어지기 때문에, 결국 과학기술은 인간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연구할까?”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과연 과학기술인들은 자신이 하는 과학기술에 대해 얼마나 생각할까?“저는 연구실에서 연구만 했기 때문에 그런 건 잘 모릅니다”라는 말은 무지를 드러내는 말이지만, 종종 과학기술인들에겐 자신의 전문가로서의 삶을 은근히 부각시키려는 복심에서 하는 말일 때가 있다. 요컨대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 너무나 깊은 사랑에 빠져서, 삶의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눈멀고, 귀먹었다는 말인데, 그러니 “제 삶이 부끄럽지 않아요, 저는 사랑에 빠졌거든요”라는 고백으로 들리는 대목이다.마하트마 간디는 우리 시대에 주의해야 할 일곱가지 치명적인 죄악들을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양심없는 쾌락, 원칙없는 정치, 윤리없는 상거래, 성품없는 지식, 인간성 없는 과학, 노동없는 부, 희생없는 종교적 숭배. 이 일곱가지 죄악 중 인간성 없는 과학(Science without humanity)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와 과학이 분리되는 것이 커다란 오류일 수 있다는 지적으로 현대과학기술의 대세를 볼 때,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점들을 많이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돌아보면 과학기술은 한국인이 사랑의 대상으로 삼을만하기도 했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쓸 때, 경제를 부흥시키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낼 때, 늘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더없이 고마운 친구였다. 지금도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위한 혁신을 통해, 또한 세계적 기술 벤처 창업을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유일한 수단이 과학기술의 추구에 있다는 생각은 아마도 우리 모두의 공감대일 것이다.그렇기에 더욱 이 모든 국가적 기대감을 현실로 만들어 갈 과학기술인들은 지금보다는 좀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으며, 누구의 수고로 내가 누리는 행복이 가능하며, 어떤 미래가 우리, 더 나아가 모든 인류를 행복하게 할 것일지에 대해 고민하는 일에 우리는 좀더 시간을 써야 한다. 더욱더 귀 기울여 듣고, 힘써 공부하고,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어지럽게 격변하는 이 시대에 현대 과학기술을 그래도 한자락씩이라도 이해하는 과학기술인들의 어깨엔 어느 때보다도 무거운 역사적 책임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물론 과학기술인의 손에 과학기술이 잡혀 있기에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과학기술인이 지어야 한다. 하지만 그 과학기술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그 결과물이 거래되는 시장이 결정하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불편한 현실이다. 그렇기에 과학기술의 산물을 사고 소비하는 모든 소비자들의 의식이 더욱더 중요한 시절이 되었다.‘인간을 생각하는 경제’라는 부제가 붙은 E. F. 슈마허의 ‘작은 것은 아름답다’라는 책에서 저자는 “이만하면 되었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중요한 미덕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벌써 반세기가 훌쩍 넘은 오래된 책이지만, 슈마허가 강조한 이 중요한 절제의 미덕은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사회가 될수록 더욱 중요해 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닐 포스트만 뉴욕대 교수.과학기술은 마술처럼 우리를 매혹한다. 과학기술이 펼쳐 보이는 과학기술의 재주는 우리의 삶, 우리의 미래를 내어 맡기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렇기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과학기술에 대한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랑이 그렇듯이 그 사랑도 우리를 눈멀고 귀먹게 하도록 내어 버려 두어서는 아니된다.과학기술이 주는 유익은 한껏 향유하면서도 그것이 주는 유익과 함께 따라올 결과에 조금 더 눈을 돌리는 일은 성숙한 시민이 가져야할 중요한 덕목이다. 우리가 속한 사회와 그 안의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가져올 결과에 관심을 가지고 혹여 소외되고 어려움에 처할지 모르는 이웃이 있을지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 살피는 일에 조금 더 마음을 쓰는 것이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지혜롭고 성숙한 과학기술에 대한 올바른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장수영 포스텍 교수

2020-02-26

정치와 선거는 내려놓기로 하자

장규열 한동대 교수가히 광풍이다.‘코로나19’가 온 나라를 삼켜버렸다. 깊은 우려와 함께 높은 관심이 치솟는다. 날마다 알려지는 확진자 숫자는 위험이 순간순간 내게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걱정하게 만든다. 대구와 경북은 초유의 위기를 만났고, 신천지와 대남병원은 진원이라는 의심을 산다. 초중고 학교들 개학이 연기됐지만, 일주일이 충분한가 의심스럽다. 새 학기를 앞둔 대학들도 개강을 미루거나 온라인강의로 대체하는 등 지혜를 모은다. 우리뿐 아니라 지구적 위기가 되어가는지 이란과 이탈리아, 급기야 미국에도 비상사태에 대비한다는 뉴스가 전해진다.사람은 가장 어려울 때 진면목을 드러낸다. 사회도 마찬가지. 오늘처럼 힘든 일을 만나니 보수든 진보든 이념의 향배가 그리 힘을 쓰지 못한다. 총체적 위기 앞에 정치적 경향성은 별것이 아니었음을 드러내고 만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과제 앞에 생각의 차이를 드러내기보다 협력의 지혜를 모아가야 한다.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생각을 집중해야 한다. 정략으로 혼돈을 거듭할 일이 아니라 전문성으로 문제를 돌파해야 한다. 중국에서 시작했지만 시급한 과제는 신천지가 아닌가. 대구와 경북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모든 일에 잘 대처하였는지 평가와 분석은 문제가 지나간 다음에 하기로 하자. 정부도 돌아볼 일이 있을 터이지만, 위기를 정략으로 대하는 당신이 더 문제가 아닌가.정치와 선거는 내려놓기로 하자. 문제 앞에 이념이 힘을 잃듯이, 건강과 생명 앞에 정치와 선거는 또 무슨 소용인가. ‘코로나19’를 넘지 못하면, 국민에게 그 어떤 희망을 전할 수 있을까. 캐나다의 정치인 마이클 이그나티에프(Michael Ignatieff)는 “세상에는 정치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많다”고 하면서 국민건강 과제는 정치적 담론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며 애쓰는 의료진의 전문성을 믿어야 한다. 신천지교회가 잘못 대처한 일을 종교의 자유에 연결하는 실수도 문제가 아닌가. 특정교단을 차별함이 아니라 그들이 혹 이 모든 감염과 전파에 기여하지 않았을까 우려함이 아닌가.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눈에 보이는 위험과 실수는 반드시 규명하여야 한다. 해결책을 모색하는 노력을 지원해야 하며, 불필요한 정쟁은 거두어야 한다. 언론도 의견의 차이에 집중하기보다 위기극복을 위한 해결책에 집중했으면 한다.위기는 지나간다. 어떻게 지나가게 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하며, 지나간 시간을 붙들고 늘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려움의 터널을 통과한 다음에, 또 닥칠지 모를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잘잘못을 돌아보고 평가해야 한다.‘코로나19’의 가파른 언덕을 넘은 다음, 정치와 선거의 문을 다시 열었으면 한다. 주장과 의견에 휘둘리기엔 심각함이 도를 넘는다. 해결과 극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두의 지혜를 모으기로 하자. 힘내라, 대구경북!

2020-02-26

공포지수

공포지수(fear index)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거래되는 SP500 지수옵션의 변동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증시지수와는 반대로 움직인다.이 지수는 1993년 미국 듀크 대학의 로버트 E. 웨일리 교수가 미국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나타내기 위해 개발한 SP 500 지수옵션에 대한 향후 30일간의 변동성에 대한 투자기대 지수다.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의 하나인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수치로 나타낸 지수다.예를 들면 VIX 30(%)이라면 앞으로 한 달간 주가가 30%의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의미다. 변동성 확대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투자자들의 심리가 불안하다는 것을 의미해, VIX지수(Volatility Index)를 ‘공포지수’라고 부른다. VIX지수는 주식시장과 역방향으로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이 지수가 높아지면 주식시장의 변동이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는 것이고, 이는 투자에 대한 불안심리가 높아 증시에서 주식을 팔고 빠져나가려는 투자자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후 주가는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이러한 VIX지수가 최고점에 이르면 공포심리가 극에 달해 매도세가 소진되면 주가가 바닥을 형성, 증시 반등의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최근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에 대한 공포로 미국증시의 공포지수도 이틀연속 급등했다. 25일(현지시간)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변동성지수(VIX)는 전 거래일보다 47.72%나 치솟은 25.23을 기록한 데 이어 이날엔 27.91로 11.51%나 더 솟구쳤다.코로나19 공포가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의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2-26

개, 돼지가 고(告)함

박화진전 경북지방경찰청장‘민중은 개, 돼지다’라는 막말로 비난 여론이 들끓어 어떤 고위 공직자가 곤욕을 치렀다. 잊을만하면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그릇된 행태에 대해 일반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할 때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을 ‘개, 돼지’라고 빗대는 표현은 말하기 뿐 아니라 듣기도 거북하기 짝이 없다. 국민의 의식이나 수준을 비하하는 말의 극치다. 개와 돼지의 말을 엿듣게 되었다.개 : 너 인간들에게 잘 못한 거 있냐?돼지 : 글쎄, 특별히 잘못한 거 없는데 너는?개 : 나도 하느라고 했어!개·돼지 : 인간들이란…. ㅠㅠ“살아서는 냄새나는 집에서 열악한 환경마다 않고 주는 대로 불평 없이 열심히 먹어주고 부위별로 육질 좋게 만들어 죽어서 충성하잖아. 고사 상에서는 힘든 거마다 않고 웃으며 분위기 띄워주지. 뼈가 으스러지면서 진국 만들어주는 건 어떻고? 심지어 발이 뚱뚱 부어도 분칠해서 인간들 입 즐겁게 해주고. 어떤 인간들은 껍질이 쫄깃하다며 술 마실 때 꼭 찾잖아. 이 정도면 하느라고 한 거 아니야?” 돼지의 하소연.“참 고생 많네. 나도 마찬가지야. 발가락 날아갈 거 감수하며 비무장지대 지뢰밭 누벼야지, 지진이니 건물붕괴 현장에 코 들이대며 피 냄새 맡아야지, 역겨운 폭탄, 마약 냄새는 어떻고. 심지어 낙하산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자폭하는 일도 우리 할 일이거든. 꼴랑 사료 한 주먹 챙겨주고는 갖은 포즈로 사진 찍게 만들지. 밖에서 짜증난 일 있는 인간들 집에 돌아오면 내 기분 팽개치고 꼬리 흔들어 줘야지. 보신하겠다고 삶아먹는 인간들은 어쩌고?” 개의 맞장구.말은 그 사람의 품격이다. 무심결에 날린 말들이 칼보다 상처를 깊게 한다. 들녘을 순시 중이던 황희 정승이 누렁이 두 마리가 밭을 가는 것을 보고 농부에게 물었다. “두 마리 중 누가 더 일을 잘하느냐?” 농부가 황희정승에게 다가와 귀에 말로 속삭였다. 멀리서 얘기해도 될 일을 다가와 귓속말을 하는 농부가 의아스러워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일을 부려먹는데 짐승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 귓속말을 해야 된다고 했다. 일개 농부였지만 황희정승은 농부의 사려 깊음에 감탄했다는 익히 아는 일화가 떠오른다. 선거철이다. 상대 후보에 대한 무분별한 말 비방이 걱정된다. 특히 품격 떨어지는 말 사용은 안했으면 한다. 정정당당하고 품위 있는 대결로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선량들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말 못하는 짐승일지라도 따져보면 인간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다는 인간을 향해 선거 때문에 상스러운 말을 해서는 되겠는가? 세상을 살맛나게 하겠다는 선량후보자들이 오히려 말 팔매질로 세상을 혼탁하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 그들의 입을 통해 듣고 싶은 말은 “우린 이겨 낼 수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위기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은 힘을 합쳐 헤쳐 나갔습니다!”와 같은 말이 아닐까 싶다. 잘들 하시겠지만.“사는 것도 팍팍한데,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할까?”, “아니, 몸도 허해졌는데 보×탕 한 그릇 하지!”개, 돼지라는 말, 사람을 향해 함부로 빗대어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2020-02-25

검소와 겸손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몇 달 전의 일이다. 밀려드는 업무로 정신없어 한동안 못 나간 친목 모임에, 이번에는 새로운 얼굴도 있고 하니 꼭 와 달라는 간청이 있어 잠시 짬 내어 뒤늦게 합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그날따라 왠지 싸늘한 느낌이 감돌았다. 그래,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말석에 앉아 있다 보니, 아하! 바로 이 때문이구나하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그 새로 왔다는 인물의 ‘자랑’. 그 자랑은 남편이 사준 알파카 코트에서부터 시작해 명품백, 명품 보석으로 신나게 이어지더니 급기야 전세 대출금 이야기하는 사람 앞에서 새로 산 건물 자랑으로 마무리하며 ‘왜, 다들 부러우세요?’라는 말로 최정점을 찍었다. 그야말로 3종, 4종 세트로 자랑질을 해댔으니, 다들 처음에는 그냥 듣다 나중에는 말없이 음식만을 꾸역꾸역 먹게 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옛말에 복은 검소함에서, 덕은 겸손에서, 지혜는 고요히 생각하는 데서 생긴다는 말이 있다. 물론 요즘은 자기 피알시대라, 어느 정도의 자랑은 귀엽게 봐줄 만도 하고 어느 정도 또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나친 자랑은 오만함으로 이어지고, 오히려 주변 사람을 잃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어리석은 자는 배우지 못하고 무식해서 산뜻한 옷에 좋은 갓을 쓰고 좋은 안장에 날랜 말을 타는 것으로 위풍을 떨치려 한다.’면서 ‘어리석은 자는 그러고 나서 남들이 부러워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부러워하기는커녕 도리어 미워하게 되니, 자기의 재산을 축내고, 자기의 명예마저 손상시킨 데다 남의 미움까지 사게 되니, 어리석은 짓 아닌가?’라 한 바 있다. 그러면서 사치를 통한 자랑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기보다는 검소함을 통한 겸손으로 제대로 된 인간이 될 것을 강조하였다.중국 송대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사학자인 사마광 역시 ‘家範’에서 겸손과 검소함은 인간의 덕을 기르는 기초이기에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자녀교육의 핵심이어야 한다 했고, 조선 시대 정조는 이를 몸소 실천하기도 했다. 즉위년(1776) 3월 16일, 궁중의 내시와 궁녀들을 대폭 축소하는가 하면, 재위 기간(24년) 동안 12첩 수라상 대신 하루에 두 끼, 그리고 한 끼에 다섯 가지 반찬만 먹기를 실천했고, 곤룡포·강사포를 제외한 옷들을 비단 아닌 무명으로 지어 입거나 심지어 구멍 난 버선을 실로 꿰매 신기도 했던 일이 그 대표적이다.우리 선조들이 이처럼 검소함을 강조한 것은 사치할 돈이 없어서이거나 그럴 능력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었다. 검소함에서 청렴함이 생겨나고, 자랑할 마음은 사라지며, 스스로 절제하는 데서 겸손함이 획득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덕이 자연스럽게 생겨나 타인을 포용할 수 있게 되고, 마침내 한 인간으로서 한층 더 성장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2월 말이다. 이 겨울의 끝자락에, 사치와 자랑으로 치장한 ‘어리석음’ 대신 검소와 겸손으로 무장한 ‘현명함’으로 한겨울을 마무리하고 새봄맞이 마음을 한번 다져보면 어떨까?

2020-02-25

한 청년의 독특한 버릇

20세기 초, 이탈리아에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독특한 버릇이 있었는데 ‘동전 던지기’를 통해 고민스러운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선택을 결정하는 습관이었습니다.그에겐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습니다. “파리 적십자사로 전근을 가느냐, 디자이너 가게에서 일하느냐.”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디자이너 샵으로 뒷면이 나오면 적십자사로 전근을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결과는 앞면이 나와 디자이너 샵으로 진로를 결정했지요. 이 인연으로 청년은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였던 크리스찬 디오르 문하에서 일을 배웁니다. 디오르가 죽고 후계자로 지명된 그는 또다시 동전을 던집니다. “회사에 남아 그의 뒤를 이을 것인가? 내 브랜드를 단 가게를 시작할 것인가?” 결국, 독립을 택한 그는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었고, 우리는 그 브랜드를 “피에르가르뎅”이라 부릅니다.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운이 정말 좋으시네요, 동전을 던져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피에르가르뎅은 대답합니다. “동전 던지기가 좋은 선택을 하도록 한 게 아닙니다. 어떤 선택이든 일단 결정한 후엔 믿음을 갖고 밀고 나갔기 때문입니다.”‘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는 사르트르 말대로 인생은 태어나서(Birth)부터 죽는 날(Death)까지 선택(Choice)의 반복입니다. 식사 메뉴나 책을 고르는 것부터 직장, 배우자를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까지 선택에서 자유롭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어떤 결정을 내릴 때 신중하고 사려 깊게 고민을 거듭하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선택 이후에 우리가 어떤 행동과 실천을 하느냐, 아닐까요?지금 이 순간, 내 선택이 옳을까 혹은 틀릴까 고민하기보다는 한 번 선택한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신념을 갖고 실천하기로 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25

권력의 교만

사마천의 사기(史記) 자객열전에 나오는 말 가운데 방약무인(傍若無人)이라는 표현이 있다.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할 때 쓰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기고만장(氣高萬丈)이나 안하무인(眼下無人), 오만방자(傲慢放恣) 등을 들 수 있겠다.교만함의 사전적 뜻은 “남을 깔보고 자신을 높게 평가하여 반성함이 없고 우쭐거리는 마음”을 일컫는다. 그래서 교만은 예로부터 군자가 경계해야 할 도리로 여겨졌다. 공자는 “교만한 말과 아첨하는 사람치고 선한 이가 드물다”고 했다.특히 종교적으로 교만은 죄악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성서에서는 교만함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부인하는 최고의 범죄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불교에서도 자기 본성을 보지 못하고 헛것에 매달려 교만에 빠지는 것을 두고 어리석음이라 한다. 어리석음은 탐욕과 성냄과 더불어 삼독(三毒)이라 부른다.사람만 교만한 것이 아니다. 권력도 교만해진다. 권력이 교만한 사례는 정치사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독재자들의 말로 등이 그렇다.권력이 교만해지면 몇 가지 공통적 특징을 보인다. 듣기 좋은 말만 듣는다. 비판의 소리를 외면한다. 자기 독선적으로 바뀐다. 그리고 남 탓으로 돌리는 습성이 생긴다는 것이다.최근 더불어 민주당이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교수를 검찰에 고발했던 것이 교만한 행동의 대표적 사례라 할만하다. 비판의 소리를 거부하다 여론의 역풍을 맞은 정치적 망신이다.코로나19 사태가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정부 여당의 독선적 결정이 국민보건을 망친다는 목소리가 높다. 권력은 민심을 경청하는 겸손함부터 먼저 배워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2-25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며칠 뒤면 산과 들에 물이 오른다는 물오름달 3월이다. 날이 차츰 풀리면서 봄 기운이 조금씩 감돌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난데없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지역사회, 나라 전체, 아니 온 세계가 코로나19로 명명된 신종 바이러스 감염과 여파에 불안해하며 바짝 긴장하고 위축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첨단디지털과학문명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해가는 4차혁명시대에 전염병이 돌연 창궐하다니 믿기지 않은 일 같지만, 근 3개월째 중국 우한에서 발생된 신종 바이러스는 인근의 국가는 물론 세계 30여개 나라에 무서운 전염력으로 퍼져나가 세계인들을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가공(可恐)의 난국이 이어질지 심각하고 우려스럽기만 하다. 지구상의 유기체와 구성원들은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곧 하나의 생물체처럼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가지고 있어서 떼어낼 수 없는 것이며, 생명 현상의 기본은 생물체를 구성하는 물질과 조직화의 과정이 어떤 특정한 질서·결합 상태가 유지돼 고유한 평형과 발전적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한다. 예컨대 자연계의 먹이사슬이나 인간의 사회생활 등은 상호 유기적인 조합과 체계로 균형을 이루며 유지된다고나 할까? 이러한 기저에서 어떤 유기체와 구성요소 간의 기능과 역할에 괴리가 생기고 모순이나 흠결로 부조화가 나타나면 결국 생태계의 불균형과 혼돈이 초래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작년 말에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균제된 유기체에 대한 교란과 부주의로 파생된 경고로 본다면 필자의 편협한 소견일까?이 세상에는 상보적(相補的)인 관계나 자생적인 노력없이 저절로 이뤄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물 한 방울 공기 한 점도 공것이 없고 흙 한 줌 풀 한 포기도 아무렇게나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했던가? 그런데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당연한 듯한 무관심(?)속에서 무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 순간 하나하나 너무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들이 많은데, 사람들은 그저 모든 것들이 그냥 저절로 나타나고 이뤄지고 지나가는 것으로 여기는 지도 모른다.그러나 세상과 자연은 그렇게 만만하다거나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이번의 일련의 바이러스 확산 사태를 보면서 하루를 무사하고 온전하게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당연하고 무관심하게 여겨졌던 일들도 자신이 상황에 직면해서는 누구라도 긴박하고 절실해지기 마련이다. 수년 전부터 미세먼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마스크를 쓰던 시민들이 이제는 독감이나 신종 바이러스에 대비해 마스크를 상용(常用)해야 할지도 모를 판이다.어쨌든 이런 때 일수록 우리는 더욱 신중하고 차분하게 대응체계를 면밀히 세우고 예방수칙을 잘 지켜야 한다. 방역과 행동수칙에 적극 협조 참여하고, 이동과 다중 시설 이용 자제, 개인의 위생과 건강관리 등으로 면역력을 높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가 자중하고 배려와 지혜로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희망의 새봄을 맞이하기를 학망해본다.

2020-02-25

정치인과 아수라

강희룡 서예가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시스템의 핵심 동력은 탐욕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탐욕 덕분에 첨단기술 등을 개발했지만 바로 그 탐욕 때문에 도덕을 무시하기도 한다. 신이 아니고서야 사람에게는 양면의 모습이 존재한다. 즉 ‘예의바른 나쁜 인간’이다. 과일을 아무리 얇게 잘라도 그 반대 면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이중성도 여기에 해당된다. 다만 자신의 신앙과 양심 그리고 도덕정신에 따라 선과 악 중 어느 부분이 크게 될 수 있어 나머지 한쪽을 제어하게 되는 것이다. 인도 신화에 ‘아수라’ 라는 신이 있다. 어느 날 자기 여동생을 희롱하던 ‘인드라(인도신 중의 왕)’와 한판 결투를 하게 된다. 그 결투에서 인드라는 패하게 되고 도망을 간다. 아수라는 그런 인드라를 계속해서 쫓자 도망가던 인드라는 자기 발 앞에 지나가는 개미를 밟지 않으려고 잠시 멈추게 되고 그로인해 치명타를 입는다. 그러나 인드라의 임기응변으로 상황은 역전되어 결국은 아수라가 패한다. 이 사건으로 아수라는 나쁜 신이 되고, 문제의 발단을 일으킨 인드라는 쫓기는 입장임에서도 살생을 하지 않기 위해 위험을 자초한 면이 훌륭하게 받아들여진다. 아수라의 지나친 집착과 복수심은 그를 악한 신으로 만들고 흔히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진 두 얼굴의 신으로 불린다. 때문에 한쪽은 악의 얼굴로 한쪽은 선의 얼굴로 표현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어디서나 그 이중성을 찾을 수 있다. 이 이중성이 진실의 잣대로 실망을 크게 안겨줄 때 상대를 영원히 아웃시켜 기억에서 지우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선행을 할 수도 있고 악행을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인간의 이중성이 필요한 때도 있지만 윤리는 이렇게 인간의 이중성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이러한 사람의 이중성은 정치인에게 가장 많이 나타난다. 겉으로는 서민을 위하는 척 하면서 부와 권력을 대물림 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 한 예로 조국의 트위터가 이 이중성에 대한 가장 정리된 지식의 보고(寶庫)이다. 그의 행적과 말은 모순을 통한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검찰해체를 시발점으로 궁극적으로는 법치와 국가해체를 구현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해 단계적으로 천민 부르주아로 일평생 살아왔고 이 시점에는 언행의 불일치를 통해 유물론적 변증법의 중간 단계로서 공산 혁명을 이루고 나아가서는 아나키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지금 나라는 코로나19로 몸살을 앓는다. 국가 간의 눈치 속에 미온적인 대책으로 방관하더니 전국으로 확산되자 최고대응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허나 이미 늦었다. 5년 전 메르스의 홍역을 앓고도 설마하다 지금과 같은 괴물로 키운 것이다. 보건, 방역의 최일선인 의료 기관부터 정부와 시민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 전염병의 사태가 번지는 데 일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와중에 경험과 학습 효과가 있어서 메르스 때보다 훨씬 더 잘하고 있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은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 다분하다. 공동체의 안전보다는 자신이나 패거리의 이익만 앞세우는 위정자들과 우리의 이중성이 지금 코로나19를 통해 아수라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2020-02-24

천재 수학자의 노력

1707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난 수학자 오일러는 뉴턴이 발표한 미적분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대수학, 정수론, 기하학 분야에 큰 발전을 이룬 위대한 수학자입니다. 또한, 유명한 삼각 함수의 기호를 창안하고 ‘오일러의 정리’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뛰어난 업적들은 그의 천재성과 꾸준한 노력의 결과입니다.학자로서 평생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오일러는 인생의 반은 공부에 투자하고 나머지 반은 책을 쓰는 데 보냈습니다. 그러나 열정과 성실이 지나쳤는지, 오일러는 왼쪽 눈의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 뒤 오른쪽 눈도 차츰 나빠져 오른쪽 눈마저 실명하고 말았습니다.하지만, 오일러는 이미 자신의 실명을 예상하고, 오른쪽 눈이 나빠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눈을 감은 채 여러 수식을 적고 푸는 연습을 하고,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바르게 글을 쓸 수 있도록 대비하고 연습했습니다.오일러는 시력을 완전히 잃은 후에도 무려 17년 동안 연구와 저작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고, 평생 5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하고 책을 썼습니다. 얼마나 그 양이 대단했는지 그가 죽은 후 45년이 지나서야 그의 저서들을 모두 출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이에 대해 18세기 후반에 발표된 수학에 관한 논문을 모두 모아 놓는다면 대략 3분의 1은 오일러의 펜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하지요.우리는 다재다능하고 쉽게 눈부신 결과를 일궈 내는 천재들을 부러워합니다. 수학자 오일러는 인생이란 1퍼센트의 재능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몸소 우리에게 보여준 셈입니다.격변의 시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10년 이내에 인공지능이 수많은 일자리를 사라지게 한다는 이 시대에 무방비 상태로 미래를 맞이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점검하고 성찰하는 새벽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24

나는 세 아이의 엄마다

최미경동화작가나는 세 아이의 엄마다.선생이란 직업도 하지 않으면 불리지 않을 것이고 작가라는 명패도 쓰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지만 ‘엄마’는 내가 아무것도 하질 않는다고 해도 떼어낼 수 없었다.그리고 그 ‘엄마’의 무게란 게 불리는 횟수와 부르는 머릿수에 비례하는 듯해서 첫째를 낳고도 크게 느끼지 못했던 무게가 둘째를 낳고서 조금씩 무거워지더니 셋째가 생기고서는 세 아이가 동시다발적으로 부르는 ‘엄마’ 소리에 나는 고꾸라져 넋을 놓기 일쑤였다. 처녀 적에는 꼴딱꼴딱 잘도 새던 밤샘작업이 엄마가 되고서부턴 꿈도 못 꿀 일이 되었다. 그렇게 뭘 좀 써볼까, 하다 아이들보다 먼저 잠드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한번은 어느 새벽에 홀로 깨어 잠든 아이 셋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나’라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던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그렇다. 나는 세 아이의 엄마였다.돈벌이를 게을리할 수가 없었다. 가르치는 일이 개중 잘하는 일이었으니 수업료의 크고 적음에 관계없이 가르칠 수 있으면 시작했다.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셋째를 맡길 때가 마땅찮아 초등학교 2학년 새학기가 막 시작된 첫째에게 학교를 일 년만 쉬면 어떨까, 라고 물었던 때도 있었다.사내아이만 셋이라 먹는 양도 횟수도 달랐다. 눈만 뜨면 “배고파, 엄마.”라고 했으니 달걀은 서른 개짜리 다섯 판이 기본이고 20kg 쌀은 두 주면 바닥이 났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입에서 “배불러”라는 말이 나오면 모든 엄마 역할을 다 한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옷은 어떤가. 아니 양말부터. 10켤레에 만 원 하는 모양 무늬 똑같은 시커먼 양말 다섯 뭉치를 사다 놓으면 열일곱 살, 열 한 살, 열 살. 세 놈이 번갈아 신어대서 어떤 놈이 구멍을 냈는지 모르는 오른쪽 양말이 다음 주가 되기 전에 다른 놈 왼쪽 발에 신겨 있었다.그러니 일주일에 한 번 빨래를 돌리면 다섯 식구 양말이 35켤레, 다섯 식구 팬티가 35장이었다. 그래서 빨래 개는 걸 도맡아 하던 첫째의 제안에 따라 몇 년 전부는 옷장에 개어놓지 않고 빨래건조대에서 걷어입고 있다. 물론 첫째의 업무는 빨래 개기에서 세탁기 돌리기로 이전되었다.그렇다. 나는 세 아이의 엄마다.하지만 꾸역꾸역 밀려오는 이미지와 심상은 시어와 어휘는 ‘엄마’라는 말에 폭삭 젖어있어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전전긍긍 댔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몸이 아팠다.그래서 막내가 예비 초1이 되었던 그해부터 개학 1주일 전 아침 식탁 앞에서 ‘새학년맞이’ 덕담을 가장한 일관된 부탁의 말씀을 줄줄이 읊어댔다. 게다가 올해는 코로나19로 전국 모든 유치원, 초·중·고 개학이 1주일 연기되었다는 소식에 한숨을 토해내며 한 번 더 강조했다.“올 한 해 무조건 건강할 것”이젠 뭘 좀 아는 것 같은 열일곱 첫째와 아직 뭘 좀 더 알아야 할 것 같은 열한 살 둘째와 아무것도 몰라도 될 것 같은 열 살 셋째가 나란히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한숨을 조금 쉬고 세 아이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셋째가 발랄하기 묻는다.“아침 뭐 먹어?”그렇다. 나는 세 아이의 엄마다.

2020-02-24

매혹하는 언어들과 그것이 일으키는 파문

그래도, 여전히 한국 문학에서 ‘이상(1910~1937)’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지금은 조금 퇴색한 것이 되고 말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중고등학교 문학시간에 이상이라는 천재의 시와 소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며, 그래서 독해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 열렬하게 강조하시던 문학 선생님의 목소리를 기억하시는 분도 계실 터이고, 난해하기로 악명 높다던 시 연작 ‘오감도(烏瞰圖)’를 두고 내가 그것을 해석해 보겠노라 호언하셨던 분도 계실 것이다. 아마도 한국 문학 작가들 중에서도 이상만큼 많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예술적 파문을 남겼던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감수성이 예민했던 어린 시절 한번 들여다보고 매혹된 예술적 대상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는 것처럼, 우리가 어느 시기 접했던 어떤 언어는 우리의 주의를 끌고, 예술적으로 매혹한다. 우리를 매혹하는 언어들은 이미지와 달라, 그 언어를 품고 있는 소리나 문자가 우리 앞에서 사라지더라도, 훨씬 오래 동안 우리의 마음에 각인되어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의도치 않은 어떤 순간에 나타나 우리의 마음을 잠식한다.어린 시절, 나 역시 이상의 그 ‘악명 높은’ 시 연작 ‘오감도’를 열어 보고 그만 그 낯선 언어에 매혹되었다. 그 속에는, 그 무렵의 어린아이 치고는 책 좀 읽어 보았다는 나의 자만을 깨어버릴 만큼의 낯선 언어들이 천연덕스럽게 들어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불안을 일으키는 언어이면서 한편으로는, 갇혀 있는 의식을 해방하는 언어였다. 그렇게 나는 이상이라는 낯선 언어에 매혹되어 버렸다. 그 매혹의 경험이 나로 하여금 지금까지 문학에 대한 기대감을 못내 거두지 못하게 하는 원천일 지도 모르겠다.우리가 알고 있는 시 연작 ‘오감도’는 조선중앙일보에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15호가 연재됐다. 원래는 30호의 기획이었으나 중도에 독자들의 비난이 빗발쳐서 그만뒀다. 이상은 정지용, 이태준과 함께 구인회 활동을 함께 했는데, 이 때의 인연으로 그들의 도움을 받아 이태준이 학예부장으로 있었던 조선중앙일보에 시 연재를 하게 됐다. 정지용은 분명 당시의 식민지였던 조선에서도 이러한 정도의 시는 발표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했겠지만, 의외로 반발이 대단했던 것이다. 아마도 추천을 한 쪽이나 받은 쪽이나 당황스러웠을 터였고, 나중에 이상은 다른 지면에서 당시 ‘오감도’의 연재를 중단하게 된 경위를 밝히며 그 몰이해를 한탄하기도 했다.당시 ‘오감도’에 대한 독자들의 반발이라는 것은 사실 지금 생각해도 독특한 현상이었다. 그것은 좋고 싫음 같은 취미의 차원이나 이념적 분쟁의 차원이 아니라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언어가 버젓이 신문에 실려 있는 것에 대한 집단적 불안 반응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연재 당시 이상이 원고교정과 인쇄를 살피기 위해 신문사에 왔을 때에는 신문사의 모든 이들이 도대체 이상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생겼는가 구경하기 위해 나왔다고 하니, 당시의 독자들은 그의 언어가 싫어 그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모두 그의 언어에 매혹되어 불안의 상태로 빠져버렸던 셈이었다. 마치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생물을 보거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면 판단 이전에 겁부터 집어먹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그렇게, 가장 이상다운 파문을 일으키며 문학계에 등장한 이상은 그 뒤로 한참 동안 한국 문학에서 가장 특별하고 독특한 자리를 차지했다. 매혹의 순간에 대한 경험은 그것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설명할 수 있는 만큼 그 경험은 빛을 잃어버린다. 내 주위를 둘러싼 언어들이 더 이상 빛나지 않을 때, 이상의 시 연작 ‘오감도’의 15편을 다시 열어보시기를. 그 속에는 새로운 매혹의 계기들이 들어 있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0-02-24

오어사 자장암(慈藏庵)… 내가 사는 이곳이 피안

상큼한 겨울날, 반쯤의 물만 채운 오어호는 공사중이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흔들다리나 오어사의 아침 풍경은 등산객들로 어수선하다. 그들의 한량없이 가벼운 웃음과 대화들이 내 귀를 자극한다. 그들에게 오어사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길목에 있을 뿐이다. 개발의 편리함이 빚어낸 풍경을 나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옛날의 오어사를 자꾸만 그리워한다.운제산은 신라사성(新羅四聖)으로 불리는 자장, 의상, 원효, 혜공이 수도한 명산이다. 오어사를 중심으로 골짜기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원효암, 가파른 바위산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은 자장암, 두 암자의 느낌은 많이 다르지만 전설 속의 스님들은 구름을 사다리 삼아 서로 왕래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구름 운(雲), 사다리 제(梯)자를 써서 운제산이라 부른다.오어사의 아침 예불소리는 인파 속에서 외로운 배경이 되어 흐르고, 절은 관광지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왁지지껄 절을 구경한 뒤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느라 정신이 없다. 커다란 동종 앞에서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게임을 하듯 동전을 던지며 환호성을 지른다. 예불소리 홀로 대웅전 근처를 맴돌 뿐 경건한 산사의 아침풍경은 고대할 수가 없다. 휴일에 산사를 찾아나선 나의 불찰이다.오어사 뒤쪽 산 위에 앉아 있는 자장암이 보인다. 접근조차 쉽지 않은 천상의 세계, 마치 영겁의 시간을 안고 살아갈 것만 같다. 아픔과 괴로움, 시끄럽고 번잡한 세속을 뒤로하고 살아가는 자장암의 눈빛을 만나고 싶다. 자장암은 오어사(吾漁寺)의 산내 암자로, 신라 진평왕 (578년) 자장율사와 의상조사가 수도한 곳으로 오어사와 함께 창건된 절이다.이십여 년 전 가파른 산길을 미끄러지며 올라갔던 기억을 더듬으며 산을 오른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면 간간이 나무그루터기에 앉아 숨 고르며 일상 속의 나를 만나는 것도 좋다. 부도밭을 지나자 대나무 숲길이 바람을 품고 일렁이며 길을 연다. 뜻밖에도 가파른 경사길 마다 나무계단이 친절히 놓여 있다. 옛것을 그리워하면서도 편리한 나무계단 앞에서 좋아하는 부조리한 내 몸을 읽는다.산길은 인적 없이 고요하다. 한 마리 까마귀가 정적을 깨며 지나갈 뿐, 겨울 햇살이 잡목 숲의 주인이다. 숨이 찰 때마다 산 아래 풍경을 돌아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어른거리는 호수의 풍광보다 얼마큼 올라왔는지 가늠해 보는 뿌듯함도 크다. 숨소리가 거칠어질수록 소음은 멀어지고 나는 숲의 일원이 된다. 북적대는 둘레길에 비해 자장암 오르는 산길은 여유로 넘친다.외롭고 적적할거라 여겼던 산길은 아늑했지만 아쉬울 정도로 짧았다. 자장암과 인사를 건네기가 무섭게 세찬 바람이 안겨들어, 나만의 특별했던 의례도 이내 끝이 나고 말았다. 고즈넉한 암자를 예상했는데 산 너머로 이어지는 차로를 이용한 차들이 벌써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제를 지내는지 사람들로 북적대는 설법전을 지나쳐 무심의 그림자 길게 드리우고 벼랑 끝에 서 있는 대웅전으로 향한다. 애초의 목적지도 그곳이었다. 대웅전은 허공 속에 가려진 동해의 푸른 바다를 더듬고 있는 듯하다. 높은 곳에 서면 내 눈도 높고 먼 곳을 향할 줄 알았는데 눈길은 자꾸만 아래로 향한다. 내가 올라온 길을 더듬고 둘레길을 걷던 낯선 사람들의 소란함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반짝이는 오어호의 윤슬과 낮은 자세로 침묵을 지키는 오어사가 유난히 아름답게 보인다. 흔들다리를 구르며 장난을 치던 남자들의 행렬도 시끌벅적함을 이끌고 산모롱이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유치한 행동들조차 이곳에 서니 정겨운 것으로 변한다. 눈을 감고 바람결에 귀를 기울인다. 멀리 오어호의 은빛 물결이 내 안까지 밀려들어와 찰랑거리는 아침이다.조낭희 수필가뒤늦게 자장암의 의연함도 눈물겹다는 것을 알았다. 햇살을 품은 대웅전의 온화한 앞모습과 달리 그 뒷덜미는 겨울바람에 한없이 떨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맞는 바람은 더 차고 세다. 대웅전 뒤편 사리탑 옆에는 어린 홍매가 꽃을 피운 채 심하게 휘청인다. 홍매의 화려한 시련이 절벽 위의 자장암과 닮았다. 멀리서 볼 때 피안처럼 여겨지던 이곳에도 그만의 아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름다움은 결코 그저 얻어지지 않는다.소란과 번잡함에 휘둘리지 않고 수행하듯 흔들림없이 깨어있는 오어사, 호수의 파란들이 일으키는 쉼없는 재잘거림과 삼삼오오 둘레길에 피어나는 건강한 수다들, 공사를 하는 중장비의 모습조차 정겹고 사랑스럽다. 어쩌면 우리가 갈망하는 피안의 세계는 차안의 세계 안에 있을지 모른다. 멀어져간 것들이 그립 듯,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우리의 주변과 일상이 혼탁하고 힘들수록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 아침,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외출을 삼가며 불안에 떨고 있는데 이웃에서 과일이며 채소가 든 보따리를 대문간에 두고 갔다. 함께 마음 모아 위기를 이겨내자는 문자 하나 남기고. 어수선한 마음에 햇살이 퍼진다. 코끝이 찡하다.모두가 힘들 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곳은 살 만한 세상, 바로 피안이 아닐까.

2020-02-24

문재인 정부의 정의란 무엇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하버드대학 샌델(M. Sandel) 교수는 그의 저서 ‘정의(正義)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공리주의나 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한 ‘공동체주의적 정의’이다. 정의로운 공동체 건설에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는 물론이고,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국민들도 명심해야 할 관점이다.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에서 정의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가? 문재인 정부의 정의는 진영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선과 악의 이분법은 나만의 정의, 즉 독선(獨善)에 빠지게 한다. 정치적 경쟁자를 적폐청산의 대상자로 인식함으로써 갈등을 부추기고 공동체를 황폐화시킨다. 공동체 건설을 위한 공동선의 추구가 아니라 공동체를 파괴하는 독선을 정의라고 강변하고 있다. 건전한 공동체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청와대에 방마다 걸려있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액자는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불의를 감추기 위한 장식품이 되어 버렸다. 대통령의 30년 친구가 당선한 울산시장 선거에 청와대가 개입한 의혹으로 전·현직 비서관 등 13명이 무더기로 기소되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에게는 다른 공무원보다도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는 사실이 적시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은 “편의적 정의가 아니라면 대통령은 직접 입장을 밝힐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또한 한변 소속 변호사들은 “대통령의 울산선거 개입이 확인되면 탄핵 사유”라고 했으며, 심지어 진보진영인 민변 소속 권경애 변호사도 “명백한 대통령 탄핵사유이며 형사처벌 사안”임을 지적하였다. 진영에 관계없이 모두가 정의를 짓밟고 있는 무법 정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정의를 수호해야 할 정의부(법무부)장관 추미애의 행태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던 검사들을 좌천시켜 인사 학살하더니, 무엇이 두려운지 국회가 요구한 검찰의 공소장 공개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공소장이 언론에 공개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번에는 또 다시 수사검사와 기소검사의 분리를 기도하고 있다. 추 장관의 행태는 청와대와 여당의 범죄피의자들에 대한 수사방해와 기소방해를 의심케 한다. 이에 대해 ‘검사내전’의 저자 김웅 전 부장검사는 “이것은 형사사법 정의가 아니라 엿장수 형사사법”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를 수호’해야 할 정의부장관이 ‘정권의 수호’에 혈안이니 나라꼴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이다.불의를 합리화하여 정의로 둔갑시키고, 검찰 수사에 개입하여 수사를 방해하면서도 민주적 통제라고 강변하는 철면피들은 국민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 나와 내 편밖에 모르는 정치꾼들의 오만과 독선은 ‘정의를 요구한 국민의 엄중한 심판’으로 결국 파멸했다는 역사의 교훈을 명심하기 바란다.

2020-02-24

코로나 포비아 vs 코리아 포비아

코로나 포비아가 코리아 포비아로 바뀌고 있다.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전파로 정부가 최근 코로나19 대응 위기경보를 최고단계인 심각단계로 격상했기 때문이다.정부가 심각단계를 발령한 것은 지난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사태 이후 11년만이다.위기경보를 심각단계로 올리면 국제사회에서 입국이 거절당하는 등 ‘코로나19오염국가’로 취급받게 된다.실제로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크게 늘자 한국에서 들어오는 외국인을 막거나 한국인의 입국 절차를 강화하는 국가가 점차 늘고 있다.24일 외교부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응 조치로 한국으로부터의 입국을 금지한 국가는 이스라엘, 바레인, 요르단, 키리바시, 사모아, 미국령 사모아 등 6개국이다. 이들 국가는 코로나19 잠복기인 14일 이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코로나19 미발생국에서 14일을 지내고 건강검진을 받은 뒤 입국하도록 하고 있다.이밖에 아프리카의 섬나라 모리셔스도 한국인에 대해 입국보류 조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또 한국에서 입국한 이들을 일정 기간 격리하거나 건강 상태를 관찰하는 등 입국절차를 강화한 국가는 브루나이, 영국,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마카오, 오만, 에티오피아, 우간다, 카타르 등 9개국이다.미국 역시 한국에 대한 여행경보를 1단계에서 2단계로 상향조정했고, 대만정부도 한국정부에 대한 여행경보를 ‘1급주의’에서 ‘2급 경계’로 격상했다.코로나19가 코리아 포비아로 확산되지 않도록 온 국민이 힘과 지혜를 한데 모아 대처해나가야 할 때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2-24

우리 안의 불안과 흥분: 대구 경북 지역 코로나19의 너머에

한국인에게 종종 쏟아지는 ‘냄비’라는 비난은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차가워진다는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삶의 전체를 뒤흔드는 외부 세계의 위기와 위기가 불러오는 불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위기가 한풀 가라앉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일상을 일구는 우리만의 강인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올해 설 명절을 전후로 시작된 코로나19의 위기는 하루가 지날수록 급박해진다. 잠시 진정되었나 싶었더니 대구와 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확산되었고, 이제 대구 경북지역은 코로나19 폭풍의 핵이 되어 일부 병원과 응급실들이 폐쇄되고 확진자의 동선을 따라 곳곳이 폐쇄되는 상황이 줄을 잇고 있다. 뉴스 특보의 바쁜 호흡만큼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맥박도 빨라지는 것 같다. 상가 골목과 음식점에서는 손님들을 찾기 힘들고, 문을 닫은 곳 조차 많다. 생필품을 판매하는 슈퍼와 마트 또한 예외는 아니다. 슈퍼에 들어서면 전시된 상품들조차 여느 때와 다르다. 곳곳에 텅 빈 선반들이 눈에 띄고 수량을 제한하는 품목들도 보인다.마스크를 끼고 잔뜩 웅크린 채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며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2020년 2월 오늘의 카랑카랑한 뉴스 특보가 불러일으키는 불안과 흥분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임에도, 혹은 이러한 상황이기에 더욱 거세지는 정쟁의 수위 높은 발언들과 대구 경북 봉쇄를 운운하는 누리꾼들의 발언들은 심장박동을 더욱 빠르게 몰아간다.아마도 우리는 흥분 중인 것 같다. 패닉(panic)이라는 용어 대신, 흥분(agitation)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은 이러한 불안과 흥분이 처음이거나 낯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수우족과 유록족의 비교를 통해 우리 사회가 개인 내면의 내적 질서보다는 세계의 외적 질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세’와 시류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능동적 행위자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근대로의 급격하고 비정한 변화, 그리고 아마도 그 이전의 시간과 또한 그 이후의 시간에도 경험해 온 크고 작은 침략과 삶의 터전을 뒤엎는 위기들. 이러한 격동에 대처해야 했던 경험들은 우리 유전자의 어디쯤에, 혹은 우리 교육과 양육방식의 어디쯤에 생존을 유지하고 적응을 용이하게 하는 급격한 흥분과 금새 잊고 돌아서서 다시금 삶을 시작하게 하는 습성을 남겨놓은 것 같다.한국인에게 종종 쏟아지는 ‘냄비’라는 비난은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차가워진다는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삶의 전체를 뒤흔드는 외부 세계의 위기와 위기가 불러오는 불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위기가 한풀 가라앉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일상을 일구는 우리만의 강인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그런 의미에서 2020년 2월 코로나19의 위기가 가져오는 불안과 우리 안의 흥분은 결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뉴스 특보를 집에서 혼자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뉴스를 모든 사람들과 함께 지켜보는 것 같다고 느끼는 착각 또한 착각이 아닐 것이다. 외부 세계의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우리의 이웃과 주변의 움직임에 민감한 속성. 이러한 특성이 집단주의라는 이름으로 정의될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각자가 가진 내적 질서만큼이나 우리를 둘러싼 집단의 움직임과 집단의 외적 질서가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오늘 경험하는 흥분은 결코 개인주의적 흥분이 아니며, 집단적 형태의 그 무엇쯤으로 느껴지는 흥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적 대응이 가지는 신속함과 일사불란함 속에서 이번의 위기 또한 잘 헤치고 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의 의식의 저변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더더욱 코로나19의 위기는 결코 패닉이 아닌 흥분으로 경험된다.불확실성이 확실성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우리 사회가 보여 온 놀라운 적응력과 대응력은 ‘냄비’와 ‘대세 추종’이라는 이름으로 비난받아온 우리 사회의 속성에 대해 다시금 들여다보게 한다. 쉽게 흥분하는 것은 결코 흠으로만 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쉽게 잊는 것 또한 결코 흠으로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저 위기에 정신을 못 차릴 만큼 흥분만 했다면, 혹은 위기가 지난 후 과거를 까마득히 잊기만 했다면, 아마 우리의 역사는 오래 전에 명맥이 끊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점점 격해지는 정쟁의 듣기 거북한 목소리들과 봉쇄를 운운하는 논의들은 더욱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소리들은 흥분이 아니고 패닉이다. 혹은 자신의 불안을 주체하지 못하고 외부로 공격성을 전환시키는, 혹은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집단적 공격성일 수 있다.학교의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교실에서 집단 따돌림이나 학생들에 의한 집단적 교권 침해가 이루어지는 순간들은 종종 교실에서 팽배해진 불안들이 그 공격성을 누군가에게 돌렸을 때이다. 더욱 어이없는 상황은 그 피해자가 전학을 가거나 교직을 떠나면, 그 피해자를 대신하는 누군가가 다시금 들어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개입은 여러 가지 방향과 형태로 이루어진다. 개인적 접근을 우위로 할 수도 있고, 집단적 접근을 우위로 할 수도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상담을 받게 하거나, 강력하게 반을 휘어잡는 교사를 투입하거나, 아이들이 공격성을 안전하게 배출할 수 있는 구조와 기회를 제공하거나, 사회적 기술 학습과 분노 조절 집단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말이다.학교 따돌림과 폭력에서 피해자가 다시금 생겨나는 기제와 이에 대한 개입의 방법들은 그 자체로 무언가의 의미를 던져준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피해자의 많은 경우는 집단의 희생양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아이들이 속한 교실과 학교는 이러한 희생양이 번번이 생겨날 만큼 가혹한 곳, 즉 녹녹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급에서 이러한 희생양은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 가령 사회적 기술이 부족한 아이, 발달이 늦은 아이, 혹은 다문화 아이가 되기도 한다.이야기를 다시 우리 사회로 돌려보자. 교실의 확대판인 우리의 사회는 쉽게 희생양을 만들어 우리의 불안과 공격성을 쏟아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위기와 불안에 직면하여 지역주의를 불러일으키고, 선정적인 정쟁의 발언을 쏟아내는 일부의 모습은 우리의 불안을 희생양에게 전가시키는 패닉의 공격성일지도 모른다.우리에게는 가진 것이 많다. 집단으로서의 신속함과 시간적 연속성 속에서 성장해 온 경험들과 수차례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온 힘이 있다. 경북지역의 대학과 초중고교는 모두 개강과 개학을 연기하였고, 아이들의 학원 또한 2월 말까지 휴업을 결정하였다. 폐쇄된 곳은 방역을 서두르고 있고, 문을 닫은 상가 또한 3월과 4월을 기약하고 있다. 우리는 위기 속에서 불안하고 흥분하면서도 일상으로의 귀환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봄을 예기할 수 있는 능력은 아마도 우리가 가진 소중한 자산일 것이다./김은영(경북대 교수)

2020-02-23

지금 행복합니까?

김현욱 시인표준국어대사전에는 ‘행복’을 ‘생활에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한 상태’라고 정의한다.불면증으로 고통 받던 사람이 어느 날 꿀잠을 자게 되면 더없이 감사하고 행복해진다. 직장에서 동료와 불화하던 사람이 진통 끝에 관계를 회복하게 되면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젊은 나이에 난데없는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인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밤이면 우리 가족이 건강한 것만으로 큰 만족과 감사를 느낀다. 송사에 휘말리기 전에는 ‘송사에 휘말려서 좋을 것 하나 없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체감하기 어렵다. 영혼이 너덜너덜해지는 송사가 끝나면 ‘범사에 감사해라’를 뼈아프게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은 일견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큰 성취보다는 작고 소소하고 자잘한 것이 우리가 실제로 누리는 행복이다. 합격, 취직, 승진, 당선, 인기, 명예, 당첨, 성취 등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망하는 행복이다. 하지만, 불가에서는 그런 것들이 가짜 행복이라고 일갈한다.모든 종교는 진짜 행복, 영원한 행복의 길을 제시한다. 반면 붓다는 ‘나의 모든 가르침은 괴로움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말했다.붓다는 괴로움을 다음 세 가지로 설명했다.“첫째,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생로병사), 싫어하는 것(사람)과 만나는 일, 좋아하는 것(사람)과 헤어지는 일,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일은 일반적인 괴로움이다. 둘째, 영원하지 않는 것은 모두 괴로움이다. 셋째, 조건 지워진 것은 모두 괴로움이다.” 이어서 붓다는 괴로움의 원인으로 ‘오온(五蘊)에 대한 집착’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진리로 ‘욕망의 완전한 소멸(해탈)’,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여덟 가지 길의 진리로 ‘팔정도(八正道)’를 설했다.정리하자면, 붓다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소멸과 8가지 소멸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이 얼마나 명쾌하고 과학적인가! 정리하자면,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가 불교(佛敎)의 알맹이다.‘장부경’에서 붓다는 수행 방법에 의심이 많은 수밧다에게 위빠사나 수행의 중요성을 설했다. “내 나이 29세에 출가하여 5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나의 가르침인 사념처 위빠사나를 수행하지 않고서 구경각 아라한과에 도달한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네. 위빠사나의 실천법인 팔정도(八正道)가 있는 한 아라한들은 계속 출현하고 승가는 끊임없이 발전하리라.”거창 붓다선원 진경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아나빠나사띠(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를 수행 한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직장에서도 틈날 때마다 10분씩, 20분씩 아나빠나사띠를 수행했다.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잘 때까지 호흡이 들어가고 나감(숨보기)을 알아차리려고 애썼다. 아나빠나사띠 선정수행은 위빠사나 지혜 수행을 위한 중요한 토대가 된다고 하셨다. 생활 속에서 생명을 해치지 않고 삿된 마음을 먹지 않겠다는 ‘계(戒)’를 세워 실천 중이다. 지금까지 가짜 행복을 좇아 허망하게 살아왔다. 괴로움을 행복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계(戒), 정(定), 혜(慧), 여기 진짜 행복으로 가는 8가지 길이 있다.

2020-02-23

중도층의 표심은 어디로 갈 것인가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유권자의 표심을 말할 때 ‘중도층’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정치적 중도층은 어떤 사람들인가. 중도(中途)층은 사전적 의미로 어느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온건층을 말한다. 정치적 중도층에도 진보에 약간 기운 중도좌파도 있고 보수에 약간 기운 중도우파도 있다. 바라다트는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에도 중도를 보수와 진보의 중간에 위치시키고 있다. 한국과 같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가 극한 대립하는 정치풍토에서 중도는 상당한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중도층 획득여부에 선거의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극한 대결의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중도층을 형성한다. 4·15 총선에서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부동층도 중도층에 해당된다. 중도층은 좌우익이라는 극단정치를 비판하면서 정치적 판단을 유보하는 유권자층이다. 이들은 극단적인 정치 행태를 비판하면서 양비론적 입장을 취한다. 이들은 표심을 잘 드러내지 않아 좌우의 열성 지지자들부터 기회주의자로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선거 막판에 지지 후보나 정당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정치적 무관심으로 투표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우리나라에서도 이들 중도층을 대변하겠다는 정당이 수시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안철수의 중도 정당은 38석을 얻어 제3당의 위상을 과시한 적도 있다. 중도 정당이 호남 지역주의를 교묘하게 결합한 결과이다. 이런 정치적 자산을 바탕으로 안철수는 지난 대선에 출마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과거 제3당인 자민련도 영남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성공을 거둔 적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중도 제3당의 정치적 한계에 부딪쳐 해산되고 말았다. 중도 정당은 논리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열성적 지지기반이 취약하였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또다시 출현하였지만 성공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4월15일 21대 총선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여야는 중도층 표심을 얻기 위한 선거 전략을 세우고 있다. 보수 야권은 미래통합당을 결성하여 개혁을 표방하여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여당 역시 개혁에다 보수적인 정책을 가미하여 중도 진보층의 표심을 노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중도층 표심을 의식하여 당의 정체성에 어긋나는 선거 공약을 표출할 것이다. 가령 보수당이 안보는 보수지만 경제는 진보를 내세우고, 진보는 개혁보다 민생과 안전을 우선하는 것 등이다. 그리하여 현대 정치에서 보수 진보 정당은 모두 ‘잡탕 정당’으로 변신할 수밖에 없다.자유민주정치에서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는 건전한 중도층이 요구된다. 그들이 정치 안정의 균형 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정치적 의리와 결속을 중시하는 패거리 정치에서는 중도의 길은 견지하기 어렵다. 더욱이 선명성을 가장한 흑백 정치가 판을 치는 정치에서는 중도적 유권자의 존립은 더욱 어렵다. 결국 중도 표심은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논리를 거부하다 결국 막판 한쪽 진영으로 편입되기 쉽다. 이를 간취한 보수와 진보 정당은 4·15 총선에서 중도층 확보를 위한 치열한 전투를 전개할 것이다.

2020-02-23

결핍은 축복이다

코끼리의 귀는 무려 240km 떨어진 곳의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대구에서 비가 내리면 서울에서 그 소리를 감지하는 능력이 코끼리에게 있다는 의미지요. 놀라운 청력입니다. 코끼리들이 빗소리에 민감한 이유는 건조한 초원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멀리 내리는 빗소리를 잘 감지해서 비가 오는 지역으로 이동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나일강의 범람이라는 자연재해, 곧 역경은 오히려 이집트 문명이 발달할 수 있는 토대가 되다는 의미였습니다.해마다 반복하는 범람 시기를 예측하기 위해 천문학과 태양력이 자연스럽게 발달했고 범람 후 경지 측정을 위해 기하학이 눈부시게 발달했습니다.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도르래와 수레를 발명했습니다. 이런 기술력은 훗날 피라미드 공사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되었지요. 결핍은 이집트인들에게 불타오르는 극복 의지를 일깨웠습니다.플라톤은 사람이 행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겨루어 한 사람은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마지막으로, 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손뼉을 치는 말솜씨를 꼽았습니다. 적당한 결핍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뜻입니다. 삶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나날의 삶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입니다.풍족한 환경에서 늘 평온한 삶을 누리는 가운데는 간절함이 생기지 않습니다. 결핍은 간절함을 선물하고 그 선물은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행복의 기초를 이룹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2-23

‘홍위병’이 거지 같아요

안재휘 논설위원마오쩌둥(毛澤東)은 1958년부터 의욕적으로 시작한 대약진운동이 무려 4천500만 명의 아사자(餓死者)를 내며 실패한 일로 실권한다. 그러나 그는 1966년 ‘프롤레타리아문화대혁명’을 제창한 뒤 철없는 어린 학생들을 동원해 망국적 ‘홍위병(紅衛兵)’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권좌에 복귀했다. 이 동란은 이후 10년 동안 중국 사회를 초토화하면서 무려 150만~200만 명의 애꿎은 목숨을 앗아갔다.현대정치에서 최고 권력자의 맹목적 추종자들을 ‘홍위병’이라고 일컫는 배경에는 이 같은 비극적 역사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던 충남 아산 전통시장의 한 반찬가게 주인을 향한 강성 친문(親 문재인) 지지자들의 행태가 참혹한 홍위병 역사를 돌이키게 한다. 서민의 언어로 문 대통령에게 “(경기가) 거지 같아요”라고 한 가게주인 여성은 무참히 조리돌림을 당했다. 개인신상이 털리고. 상호명과 주소에 휴대전화 번호까지 모조리 공개되는 등 혹독한 ‘불경(不敬)의 죗값’을 물어야 했다.친문 지지자들의 도를 넘은 행태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개그맨 이용진 씨는 작년 2월 방송에서 문 대통령을 ‘문재인 씨’라고 지칭한 일로 “대통령을 어떻게 ‘씨’라고 부르냐”는 비난 폭탄 세례를 받았다. 한 영상제작업체는 문 대통령의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 축전을 비판했다가 친문 지지자로부터 뭇매를 맞고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최고 존엄’이라며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세계적 불량국가 북한의 우스꽝스러운 행태를 따라 배운 것도 아닐 터인데, 어찌 이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흔히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문빠’라고 불리는 이들 강성 친문 세력들은 치유 불가능한 확증편향(確證偏向)의 노예들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온갖 부도덕성이 폭로돼도 날마다 서초동에 모여서 ‘조국 수호’를 외치며 근육 자랑을 펼친 이들도 이 부류들로 유추된다. 문 대통령을 ‘황제’로 섬기는 듯한 그들은 지금 민주당 총선공천 국면에서 또다시 무지막지한 힘자랑을 뻗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뒤늦게 문 대통령이 반찬가게 주인의 말을 “서민적이고 소탈한 표현”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말이 “지지층에 대한 말씀이 아니다”라고 못 박아 광신도들의 일탈을 말린 것은 아님을 굳이 강조했다. 이쯤 되면 지난 대선 때 비문(非文) 인사들에게 달린 악성 댓글을 ‘양념’이라고 표현했던 문 대통령의 인식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이 자명하다. 몰지각한 지지행태를 이성으로 다스리지 못하는 그 소아적(小我的) 사리사욕이 머지않아 돌이킬 수 없는 허물이 될 수 있음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광신을 방치하는 정치는 국민을 망치고 역사를 더럽힌다. 지성을 내팽개친 광신도들, 불치의 확증편향에 빠진 ‘대깨문’과 그 기생(寄生) 지식인들에게 진솔한 서민의 언어로 한마디 들려주고 싶다. “‘홍위병’이 정말 거지 같아요.”

2020-02-23

역병과 사후약방문

전염 속도가 빠르고 치명적인 전염병을 역병(疫病)이라 한다. 이른바 대유행병이다. 의술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역병이 발생하면 역신(疫神)이 노해 벌을 내린 것으로 여겨 주술이나 기도를 통해 병의 퇴치를 소원했다.세균이 발견되고 역병의 병원이 옳게 알려진 것은 겨우 19세 후반의 일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역병이 돌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흑사병이 창궐했던 중세 유럽은 전염병으로 수천만이 목숨을 잃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조선왕조동안 역병이라 하여 크게 전염병이 번진 사례만 줄잡아 79차례 된다고 했다. 그로인해 목숨을 잃은 백성이 천만명을 넘었다하니 질병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적이다.1821년 순조 때다. 실록에 의하면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전염병이 우리나라에 닥치면서 무차별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심한 기침과 설사를 동반한 괴질에 한번 걸리면 양반, 평민 가릴 것 없이 열흘도 못가 목숨을 잃었다. 죽은 사람의 수가 10만을 넘었다니 원인을 몰랐던 당시로서는 하늘이 천벌을 내렸다고 믿을 법했다.나라에 괴질이 돌면 임금이 나서 몸을 단정히 해 제사를 올리고 먹을 것을 내준다. 감옥에 갇힌 죄수도 풀어 선정을 통해 괴질의 창궐이 가라앉길 기원했다. 괴질을 붙들어 맬 묘책이 없는 왕으로서는 선정으로 흉흉한 민심을 달래려 온갖 정성을 다했던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확산일로다. 정부의 뒷북대책이 또 비판대에 올랐다. “초기대응 실패” 등 지금이라도 사후약방문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진다. 이 와중에 대통령의 파안대소까지 구설수에 올랐으니 국민 눈에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큰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내놓는 당국의 사후약방문이 이번만은 제발 없었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2-23

권역별 ‘파워스팟’개발로 관광산업 공략

김학동 예천군수각 지자체별로 ‘굴뚝 없는 황금산업’이라 불리는 관광산업을 개발해 관광객 유치로 도시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경제를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쥐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우리 예천군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이용한 알짜배기 관광 코스를 바탕으로 지역 전통문화를 계승·보존하면서 새로운 관광자원 발굴에 초첨을 맞추기 위해 지역을 크게 3권역으로 나눠 선택과 집중으로 공략에 나서고 있다. 회룡포를 중심으로 한 회룡포~삼강 주변 낙동강 권역과 용문사~명봉사를 잇는 백두대간 권역을 양대 중심축으로 삼고 곤충생태원, 천문우주센터, 활체험장 이색 체험관광 권역을 더한 권역별 파워스팟 상품개발로 체류형 관광벨트를 조성해 전통문화와 청정자연이 함께하는 관광개발에 힘쓰고 있다.첫째, 새롭게 사랑받는 명승지 예천 회룡포~삼강 주변 낙동강 권역이다. 대표 관광명소인 회룡포, 용궁역 테마관광사업, 삼강주막 이외 삼강문화단지와 회룡포를 잇는 모노레일 설치계획이 있어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강문화전시관’을 꼽을 수 있는데 11월 중순 개관한 강문화전시관은 낙동강 연안의 우수한 강 문화와 생태자원을 관광자원으로 특화한 곳으로 지난 해 6월 중순부터 시범운영 8개월 만에 약 3만 명이 관람하는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자연, 역사, 문화, 사람 4개 존으로 구성된 전시관, 낙동강 발원지 태백 황지부터 부산 을숙도까지 1300리를 단독 항공 촬영한 써클 영상으로 상영하는 편안한 영상관이 특색 있고 최첨단 VR 및 AR체험도 가능해 학생들 학습체험 장소로 최적지다.둘째, 백두대간의 정기를 간직한 예천 용문사~명봉사 권역이다. 이 권역은 금당실 전통마을, 초간정, 소백산하늘자락전망대, 용문사를 대표하는 백두대간 파워스팟 권역 관광지 탐방코스로 명당과 힐링의 기를 받아 볼 수 있는 곳이다. 소백산 하늘자락공원전망대는 예천 양수발전소 상부댐 일원에 자리 잡은 공원과 어림호에 담긴 하늘전망대가 있어 탁 트인 주변 경관과 상부댐의 넓은 호수로 전망이 좋은 곳이다. 조선 태조가 도읍을 정하려 했던 용문 ‘금당실 전통마을’은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택과 돌담길이 어우러져 있고 전쟁이나 천재지변에도 안심할 수 있는 땅으로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 중 하나로 고택민박 체험을 할 수 있어 체험과 머무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소백산 기슭 천년고찰 ‘용문사’는 다수의 문화재와 보물이 있어 사찰 전체가 문화유산의 보고라 할 수 있고 지난해 12월 2일 국보 제328호 목조건물 ‘대장전(大藏殿)’과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회전식 경장(經藏)인 ‘윤장대(輪藏臺)’가 있는 국보 탄생으로 이목을 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풍수지리의 명당임을 입증하는 ‘태실’은 백두대간 권역 용문사 주변에 고려 강종대왕, 조선 문효세자 및 제헌황후 태실을 비롯한 명봉사 주변 조선 장조대왕(사도세자) 및 문종대왕, 오미봉 주변 총 6기(왕세자 또는 원자로 1등 명당에 모셔진 태실이 무려 4기)나 돼 백두대간 파워스팟에서 생명의 활력과 기운을 느끼며 힐링 타임을 가져 볼 수 있다.마지막으로, 곤충생태원과 천문우주센터, 활체험장의 체험관광 권역이다.활, 곤충, 별이라는 이색 테마 관광자원의 메카인 곤충생태원, 천문우주센터 및 활체험장은 예천군 대표 체험관광지로서 가족단위, 단체관광객이 방문하여 모노레일 탑승, 천문관측, 활쏘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펼칠 수 있어 인기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관광산업도 이제 무한 경쟁시대이다. 관광산업으로 민생 경제도 살리고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 수 있으며 지역 주민의 소득을 높이는데도 특효약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관광 인프라 조성은 원석인 관광자원을 잘 가공해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귀한 보석으로 만드는 과정과 다름없는 것으로 기존 관광에 재미를 더한 콘텐츠개발로 찾아오고 발길이 머무는 관광지로 재탄생시키느냐가 핵심인 것이다. 예천을 3대 권역으로 구분해 파워스팟을 개발하고 각각 허브 역할을 하면서 어디를 방문하더라도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토록 공략할 것이다.특히, 기존 관광지에 새로운 요소를 더한 킬러콘텐츠 프로그램 도입, 체험형 관광 위주 프로그램 보완, 체류형 관광 등이 함께 갖춰진다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요소가 충분하다고 보기에 이를 보완하면서 필사적으로 대응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2020-02-23

나는 나를 아는가?

권해창 고등학교 교사어느 토요일 아침, 북 콘서트에 참여했다. 저자의 강연과 참여자들이 주어진 질문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평소 자신에 대해 잘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간단한 질문들 앞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만났다.질문은 이랬다. ‘좋아하는 계절은?’ ‘좋아하는 색깔은?’ ‘좋아하는 숫자는?’ ‘나를 닮은 동물은?’ ‘나를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이 쉬운 질문들 앞에서 나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잠이 덜 깬 것도 아니었다. 내가 갑자기 무색무취의 존재처럼 느껴졌다.‘좋아하는 계절은?’ 봄과 가을이 좋아 보이는데, 왜 좋은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좋아하는 색깔은?’ 무지개가 떠올랐지만 하나를 고르기는 불가능했다. 흰색? 회색? 검은색은 아닌 것 같았다. ‘좋아하는 숫자는?’ 아, 숫자를 좋아해 본 기억이 없다. 난감했다. 숫자를 좋아할 수 있을까? ‘나를 닮은 동물은?’ 이건 대답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돼지? 곰? ‘나를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한 글자로 나를 표현하라니, 어떻게? 이 질문이 가장 어려웠다.오늘 처음 본 짝에게 나를 ‘빛’ 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유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순간적으로 ‘빛’이 떠올랐다. 막상 말은 했지만 내가 진짜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횡설수설하면서 내가 ‘빛’인 이유를 댔다.쉬운 질문에 대답을 잘못했다고 부끄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신선했다. 대답을 주저했던 나에 대한 궁금증이 오히려 생겼다. 북 콘서트가 끝난 후 조용한 카페를 찾아 아까 받은 다섯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종이에 질문과 답을 하나씩 적어가며 나 자신과 대화를 시작했다.‘좋아하는 계절은?’ 봄. 봄이 주는 생기와 따스한 햇볕이 좋다. 바닷가를 걸을 때 불어오는 시원한 봄바람은 기분을 좋게 만들고 근심·걱정을 다 씻어주는 듯하여 좋다. 여행가기에 이보다 좋은 계절은 없다. ‘좋아하는 색깔은?’ 파란색과 흰색. 옷을 살 때 파란색과 흰색 상의를 종종 사는데 내 얼굴 톤이 이 두 색과 잘 맞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숫자는?’ 2. 전면에 나서서 무언가를 진행하기보다는 뒤에서 조력하는 쪽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 생각학교 2기라서 그런지 숫자는 2가 좋다. ‘나를 닮은 동물은?’ 팬더. 느릿한 행동과 느긋해 보이는 외모. 왠지 나를 쏙 빼닮았다. 직접 나를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나를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앞으로 되고 싶은 나를 표현해본다면 ‘물’이다. 노자의 ‘도덕경’8장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타인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모습. 예전에 동양고전을 공부하면서 물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이런 질문에 잘 대답한다고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거나 대오각성하는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사소해 보일지라도 나와 관련된 질문들에 답하는 행위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가치 있는 일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를 더 잘 알아갈 수 있다. 나를 잘 안다면 크고 작은 삶의 변화를 앞두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나를 모를 때보다 조금 더 나을 수 있다.짧은 도보 여행을 할 때 출발지가 없거나 명확하지 않다면 목적지를 정하기 힘들다. 설레는 마음으로 목적지를 정한다 해도 출발지를 모르면 어떻게 가야 할지 막연하다. 목적지만큼 출발지도 중요하다. 출발지는 현재 내 모습, 목적지는 내가 세우는 삶의 크고 작은 목표라고 할 수 있다.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다짐한 새해 목표는 잘 지켜지고 있는가?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었다면 포기하기 전에 나를 한 번 살펴보자. 목표가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내가 세운 목표는 진짜 원하는 것이었는가, 현재의 내게 무엇이 필요한가 등등. 질문을 던지면서 솔직하게 답 해보자. 이왕이면 종이를 펴서 생각을 글로 적어 구체적으로 나를 대면해보자.목표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출발지에 서 있는 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루 정도는 간단한 질문들로 나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2020-02-23

소방관 4월 국가직 전환 … 오랜 숙원이 풀렸다

이시라 기획취재부소방관들의 오랜 숙원이 마침내 풀리게 됐다. 오는 4월 1일부터 모든 소방공무원의 신분이 국가직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2011년 관련 법안이 최초 발의된 지 무려 9년여 만의 일이다.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은 소방관 개개인의 단순한 처우개선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이는 소방관이 지방자치단체 소속일 경우에는 해당 지자체의 재정능력과 단체장의 관심도에 따라 소방서비스의 품질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잘사는 동네의 주민은 빠르고 고품질의 소방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도서 산간 등 낙후된 지역에 사는 시민은 그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서비스를 받게 된다.그러나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되면 시도별 조례로 제각각 운영하던 소방서에 대한 예산을 소방특별회계를 법률로 격상하며 안정적인 소방재원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시민들은 더욱 평등한 소방, 안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이번 결정을 두고 일선 소방관들은 국가직 전환으로 인해 열악한 근무환경과 인력 부족, 노후화된 장비 문제 등의 고민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낡은 소방차와 헬기를 타고 현장에 출동하거나 방화 장갑 등 장비가 부족해 사비를 들이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력적인 측면에서도 소방청은 오는 2022년까지 소방공무원을 2만명 충원할 계획이다. 소방관 충원이 완료되면 1인당 담당 인구가 지난해 말 기준 926명에서 768명으로 줄어들게 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인 일본(779명)과 미국(911명)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다만,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이 2개월도 안 남은 현재시점에서 개정된 법률은 ‘반쪽 짜리’법이라는 우려도 있다. 신분만 국가직으로 바뀌었고, 인사와 지휘권은 지방 정부에 그대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인력 충원 등에서 이견이 발생할 수 있고, 소방 업무에 해박하지 못한 부처가 예산을 담당하고 있다면 국가가 많은 예산을 지원해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셈이 된다.열악한 환경 속에 해마다 평균적으로 502명의 소방관이 공무 중 다치거나 순직했다. 또한 지난 5년(2014∼2018년) 간 공무 중 부상을 입거나 순직한 소방공무원은 무려 2천509명(위험직무순직자 20명, 공상자 2천489명)이나 된다. 순직과 공상을 받지 못한 경우를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소방공무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수시로 생사를 넘나든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독도 인근해상에서 헬기추락으로 소방공무원 5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투철한 사명감과 국민을 위한 봉사정신이 없으면 하기 어렵다. 이러한 헌신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번 국가직 전환을 계기로 소방관의 처우가 개선되고 더 안전한 근무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도 더욱 안전해 질 수 있을 것이다. /sira115@kbmaeil.com

2020-02-20

총선과 코로나19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4·15 총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대구·경북지역에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대거 발생해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감염성 높은 신종 코로나 창궐은 선거운동에 큰 제약이 되고 있다. 악수하거나 명함을 건네는 것은 고사하고 마스크를 쓴 채 눈인사만 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유권자들에게 얼굴을 알려야 하는 정치신인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선거를 앞둔 예비후보들은 마스크를 쓰고 피켓을 들었다. 또 얼굴을 마주보는 대면 선거운동을 할 수 없게된 만큼 SNS, 블로그 등을 통한 사어버 선거전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코로나19 예방법을 선거운동에 활용하는 예비후보도 있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검색량 자체를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는 주자도 있다. 또 핫이슈 패러디 등 재치있는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로 내보내는 등으로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구·경북지역의 공포분위기를 의식한 일부 후보는 선거운동을 잠정 중단하거나 대면선거운동 중단을 외치고 있다. 대구 달서갑에 출마준비 중인 더불어민주당 권택흥 예비후보는 긴급 성명을 통해 선거운동 잠정 중단과 함께, 시민접촉이 없는 출·퇴근 인사와 더불어 SNS·미디어로 선거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영천·청도 선거구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정우동 후보 역시 대면접촉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예방수칙 홍보, 피켓 인사하기, 전화 및 SNS 활용 등으로 선거운동을 대체한다고 했다. 안동지역에 출마준비 중인 권택기 미래통합당 예비후보도 대면·방문 형식의 선거운동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급기야 선거운동 기간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이 대목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정당별 이해득실은 어떻게 될까 짚어보자. 먼저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책임론은 여당에 부담이 될 것이 확실하다. 어떻든 현재 정권을 잡은 쪽이 전염병확산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코로나19 발병초기부터 꾸준히 중국인 및 중국을 방문한 외국입국제한조치를 주장했고, 대구 경북지역에서 코로나 환자가 추가발생하자 이를 정권심판론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해도 신종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여야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참고로 한국갤럽이 지난 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천1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선‘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45%,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43%이었다.정권심판론과 국정지지론이 오차범위 내에서 맞서고 있다. 신종 코로나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경우 총선에서 야권의‘정권 심판론’이 먹혀들지 않을 것이란 주장과 오히려 증폭될 것이란 주장 어느 쪽이 들어맞을까. 이는 정부여당이 대구·경북지역의 코로나 확산방지 대책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2020-02-20

113년째 맞는 국채보상운동

오늘은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지 꼭 113년째 되는 날이다. 1907년 2월 21일 대구의 광문사 사장 김광제와 부사장 서상돈 등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인사들이 대한매일신보에 “나라의 빚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자”는 취지의 발기문을 게재한 날이다. 국채보상운동의 시작을 알린 날이자 기념일이다.당시 일본은 조선 경제를 파탄으로 이끌어 한국을 침탈할 목적으로 일본의 차관을 강요했다. 어쩔수 없이 조선이 진 빚이 1천300만원이다. 대구에서 발단한 민간 주도의 주권회복운동은 이날 후 전국 곳곳에서 호응을 얻기 시작해 우리나라 최초의 국난극복 민간운동이라는 신기록을 남기게 된다.특히 이 운동은 민족자본가와 지식층, 여성계, 노동자 등을 총망라한 지지를 받았다. 당시 양반집 부녀자는 물론 최하류층의 기생들까지도 동참함으로써 한국최초의 여성운동이라 불리게 된다.남자는 3개월 동안 담배를 끊어 돈을 모으자 했으며 여성들은 자신이 가진 비녀와 가락지 등 패물을 내놓았다.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몰렸을 때 국민이 금모으기에 동참했던 것과 유사하다. 당시 고종도 이 소식을 듣고 담배를 끊고 국채 갚기에 나섰다고 한다.대구는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이며 그 정신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는 곳이다. 독립운동 등 애국의 도시로 자부하는 대구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시민의 정신적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대구시는 2월 21일부터 28일까지를 ‘대구시민의 날’로 새롭게 정했다. 국채보상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고양하고 시민이 직접 느끼게 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대구시민의 날 행사가 모두 취소됐다. 아쉬움은 크지만 이 날의 의미만은 한번쯤 새겨 보는 것도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