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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어만자’는 ‘물 일하는 벌레 같은 인간’

긴 세월이다. 달라진 것은 없다. ‘중국어선의 불법조업’ 이야기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억울하지만 해결방법도 없다.오징어가 사라졌다. 수온, 조류의 변화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결국 중국어선 때문이다. 명태가 사라졌다. 마찬가지다. 중국어선 때문이다. 서해안의 불법조업과 동해안 불법조업은 방식이 다르다. 결과는 같다. 서해안의 불법조업은 우리 해역까지 중국 배가 들어와서, 작업하는 것이다. 동해안은 얼마간 다르다. 북한 해역에서 버젓이 조업한다. 중국어선들이 북한 해역의 입어권(入漁權)을 샀다는 흉흉한 소문만 돈다. 눈 감고 아웅 한다. 크기가 작은 치어(稚魚)도 마구잡이로 잡는다. 산란기, 금어기를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자기들끼리 ‘입어권’을 사고팔았으니 확인도 불가능하다.근래 일도 아니다. 이미 수백 년 이어졌다. 달라진 것은 없다. 조선 시대에도 이미 중국 배들과 숱한 마찰이 있었다. 불행히도, ‘마찰’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당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우리가 불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없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제62권_서해여언(西海旅言)’의 일부다. 제목은 ‘11일, 바람이 불고 조니진에 머물다’이다. 조니진은 황해도 장연의 바닷가 포구다. 지금도 ‘중국 배의 서해 불법조업’ 지역이다.(전략) 4월에 바람이 화창할 때면 황당선(荒唐船)이 와서 육지에서는 방풍(防風 한약재)을 캐고 바다에서는 해삼(海蔘)을 따다가 8월에 바람이 거세지면 돌아가기 시작한다. 8~9척에서 10여 척의 배들이 몰려오는데 배 1척에는 70~80명에서 큰 배는 1백여 명까지 타고 와 초도(椒島), 조니진, 오차포, 백령도(白翎島) 사이에서 출몰한다고 한다. (후략)북학파 실학자인 청장관 이덕무(1741~1793년)는 18세기 후반 사람이다. 중국은 청나라였다. 인조는, 만주족의 청나라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세 번 절을 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었다(三拜九叩頭禮, 삼배구고두례). 불과 100년 남짓 전의 일이다. 만주족에 대한 두려움, 분함이 살아 있었다.중국 배들이 우리 해안을 노략질한다. 조정에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단속할 수도 없다. 외교 분쟁(?)이 일어날 판이다. 청나라와 조선.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조공 관계다. 형식이든, 실제 내용이든 신하의 나라다. 억울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의 중국도 마찬가지다. 외국에 가서 한반도를 설명하면서 “예전 우리 조공국”이라고 말한다. 조선 시대와 지금. 뭐가 달라졌는지 모를 일이다.숙종대왕 시절이다. 살림살이도 썩 좋지는 않았다. 참혹스러운 상황에서 막 벗어났을 때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 1670-1671년)을 막 지났다. 경신대기근은, “왜란과 호란보다 더 무서웠다”고 한다. 겨우 숨을 쉴 만한 시절이다. 중국 배들이 우리 서해안을 마구 침범한다.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노략질을 한다.조선 초기 기록부터 황당선은 꾸준히 나타난다. 이덕무가 말하는 조선 후기, 18세기 후반의 ‘황당선’ ‘중국 막가파, 어만자’ 이야기를 들어보자.(전략) ‘황당선(荒唐船)’이란 무슨 말이냐 하면 의심스럽다는 뜻으로 혹 의선(疑船)이라고도 하는데, 다 등주(登州), 내주(萊州)의 섬 백성들로서 표독하고 날쌘데다 고기로 식량을 삼고 배로 집을 삼는 자들이다. 중국에서는 이른바 ‘어만자(魚蠻子)’라는 것들이고 (중략) 배들이 다 완전 치밀하여, 멎었을 때는 반드시 네 군데에 닻을 내리고 석회(石灰)로 배 틈을 발랐다. 밀랍 덩어리 같은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안주에 독한 술을 마시고 머리를 흔들며 노래하면 용감하여 당하기가 어려운데, 4월에 오는 놈은 ‘망인(網人)’으로 그렇게까지 날쌔지는 않으나, 5월에 오는 놈들은 ‘수인(囚人 헤엄을 치며 해물을 채취하는 사람)’으로 뺨은 깎은 쇠붙이 같고 살결은 옻칠을 한 듯하며, 발을 위로 하고 이마를 거꾸로 한 채 발랄(潑剌)하게 파도를 가르기도 하며, 도끼를 들고 뭍에 나와서는 소나무를 진흙 쪼개듯 하고서는 어깨에다 도끼를 매고 힐끗힐끗하며 걸어가며, 남과(南瓜 호박)건 서과(西瓜, 수박)건 제멋대로 따먹고 반드시 뿌리까지 망쳐버리며, (후략)이 글을 쓴 시기는 기록에 남아 있다. 무자년, 1768년이다. 이해 10월(음력) 이덕무는 황해도 서해안 일대를 여행한다. ‘서해여언’은 ‘서해를 보고 남긴 여행 에세이’다.등주, 내주는 중국 산동성의 해안 도시다. 예나 지금이나 불법조업의 출발지다. ‘중국식 막가파 배’들은 청나라 강희제(재위 1661-1722년)때 심했다. 이덕무가 ‘서해여언’을 작성한 시기보다 50-100년 앞 시기다. 중국 배의 노략질은 꾸준했다.‘어만자’는 ‘물 일하는 벌레 같은 인간’이다. 해적, 수적 중에서도 하층을 뜻한다. 인간 이하의 인간이라는 뜻이다. 우리 측 표현도 아니다. 중국인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오늘날, 단속하는 우리 측 해양경찰들에게 흉기를 들고 덤비는 중국 불법 어선의 선원이 바로 당시의 ‘어만자’다.‘어만자’에는 두 종류가 있다. 망인의 ‘망(網)’은 그물이다. 추측컨대, 망인은 그물로 생선을 잡는 이다. 수인은, 맨몸으로, 바다 밑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이들이다. 수인이 망인보다 훨씬 거칠다고 했다. 오랫동안 당했으니 그들의 습성을 정확히 알고 있다. 역시 지금과 다를 것 없다. 아무리 단속해도 때가 되면 불법조업에 나선다.이들은 내륙에 상륙하여 호박, 수박 등을 마음대로 따먹고, 뿌리까지 망친다. 나물(약초)을 캐고,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린다. 심지어 부녀자를 희롱, 겁간했다.황당선은 의심스러운 배, 의선(疑船)이다. 황당선은 조선 초기 기록에도 나타난다. 꼭 집어, 중국 배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중종 35년(1540년) 1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제목은 ‘황당선 한 척이 황해도 부근에 나타나 처리할 것을 예조에 이르다’이다.“황해도 관찰사 공서린의 서장을 보니 ‘도내 풍천부(豊川府) 침방포(沈方浦)에 황당선(荒唐船) 1척이 (중략) 실로 도둑들의 선박은 아니고 필시 중국 사람들일 것이다. (중략) 만약 이 사람들이 벌목(代木)이나 물고기를 잡을 목적으로 여기에 왔다면 나머지 선박들도 꼭 찾아내야 한다. 그들을 수색할 때는 대항해서 싸울 가능성도 없지 않으니 한학 통사(漢學通事) 2명을 속히 보내도록 하라. 첫째, 수색할 때는 대화로 설득하여 대항해 싸우지 못하도록 하고 우리 군졸들로 하여금 가벼이 사격하지 못하도록 할 것과 둘째, 중국인을 호송해 올 때에는 잘 구호(救護)하여 올라오도록 할 것을 예조에 이르라.”이 글에 나오는 황당선은 불법조업 어선은 아니다. 내용으로 봐서는 단순 표류한 배다. 글 중간에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이들이 벌목이나 물고기를 잡을 목적으로 여기 왔다면, 나머지 선박들도 꼭 찾아내야 한다”라고 한 부분이다. 불법적으로 나무를 베거나 불법조업하는 배들이 이미 있었다는 뜻이다. 의심스러운 황당선이라고 했다가, ‘중국인이면’이란 단서로 도적은 아닐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대처도 애매하다. 불법 선박이 있다면 찾으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통역사를 보내서 충돌하지 말고, 대화로 설득하라고 명령한다. 우리 병사들이 가벼이 사격하지 못하도록 하라, 만약 호송한다면 잘 보살펴 한양으로 보내라고 말한다.이때 중국은 명나라다. 이미 중국 배의 노략질은 있었다.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약한 나라의 서러움이다.중국의 약탈은 조선 시대 내내 이어졌다. 중종 때는 서해에서 우리 배의 소금을 약탈했다. 서해안 일대에서 해삼을 따고, 해안가의 약재를 채취했다. 조선 후기에는 황해도 앞바다에서 집중적으로 청어를 잡았다.숙종 43년(1717년)의 기록에는 “황당선이 오늘날같이 많이 나타난 적이 없다. 한꺼번에 32척이 나타났다”는 내용도 있다. 조선 정부는 외교문서를 보내는 등 여러 가지 조처를 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그 사이, 동해의 오징어와 명태가 사라졌다. 우리 배들은 아예 출항도 하지 못한다. 출항해도 고기가 없다. 서해안 꽃게, 조기, 남해안 멸치도 마찬가지다.‘막가파 중국어선’. 어떻게 할 것인가?/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12-09

너를 위한 소중한 기도… 영천 묘각사(妙覺寺)

차는 영천댐을 끼고 달린다. 가끔 혼자서 찾아오던 길을 석 달 전 어미가 된 딸과 강보에 싸인 손녀가 동행중이다. 길은 한때의 화사함과 초록의 풍성함, 형형색색의 찬란함을 거친 후 차분히 스스로를 굽어보고 있다. 계절이 보내오는 완곡한 서두름들, 숨이 멎을 것 같던 풍경은 그 새 어디로 사라졌을까?겨울이 지닌 섬세한 생명력과 사색이 주는 충만함에 젖어들기를 바라는데 딸은 불쑥 직장 이야기를 꺼낸다. 육아 휴직으로 업무가 늘어나버린 부서원에 대한 미안함과 복직 후 육아 문제와 일에 대한 부담감이 시나브로 그녀를 흔들고 있었나 보다. 아이의 사랑스러움에 빠져든 달콤한 시간 속으로 찾아온 뜻밖의 갈등과 고민들이 겨울 풍경을 앗아가 버린다.한결 현실적이고 성숙해진 대화가 오간다. 잔잔한 수면 위로 장성한 자식의 든든함만큼 안쓰러움이 파도친다. 내 그릇의 크기만한 조언들을 주섬주섬 늘어놓다 습관적인 애착이란 걸 깨닫고, 바람 한 점 없는 수면 위로 빗나간 모성을 날려 보낸다. 잠시 말이 없다.차는 댐과 작별하고 단풍도 가을걷이도 끝나버린 쓸쓸한 산길을 꾸역꾸역 오른다. 나무들은 알몸이 되어서도 자리를 뜨지 않고, 차가 달릴 때마다 길가에 쌓여 있던 낙엽들이 가볍게 몸을 들썩인다. 딸은 젊은 혈기가 불러올 무모한 과욕을, 나는 시나브로 찾아드는 노욕을 경계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나 보다.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도량 묘각사가 보인다. 절이 있는 산은 창건할 당시 동해 용왕이 의상대사에게 설법을 듣기 위해 말처럼 달려 왔다고 해서 기룡산으로 불린다. 대사가 법성게 일구를 설 하자 용왕이 묘한 깨달음을 얻어 곧바로 승천하여 감로의 비를 뿌렸으며, 이는 당시 관내의 오랜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가 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사가 묘한 깨달음을 얻어 사찰이름을 묘각사라 하였다.게다가 절의 부근은 예로부터 불보성지로 알려져 있다. 절의 뒷산은 보현보살이 머무른다는 보현산이며, 산 아래 동네는 미륵불의 용화삼회 설법을 상징하는 용화동에 이어 삼매동, 선원동 등 수많은 지명이 마치 불국정토를 칭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산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마음이 평화롭다.겹겹의 산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트인 시야를 막아주어 절은 아늑하면서도 시원하다. 일주문 없이 ㄷ자 건축물에 산문이 붙어 있는 독특한 건축양식은 단청이 없다면 여염집의 행랑채로 착각할 법하다. 전각의 문살들도 소박하고 단아하다. 온순한 눈빛의 백구 두 마리가 무료함을 달래며 길손을 맞는다.우리는 서로의 생각에 빠져 경내를 둘러본다. 극락전 법당에 앉아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지만 아기가 칭얼대며 계획을 방해했다. 딸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내려놓고 법당에 들어가는 일을 접고 아이를 어르며 산문을 나선다.엄마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를 과감히 비울 줄 아는, 본능에 가까운 인내력을 발휘하는 딸아이의 모성이 짠하다. 그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아이는 무엇이 불편한지 자꾸만 칭얼댄다. 아이 키우는 일은 숱한 노력과 인내의 연속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누구나 피해가고 싶어하는 것들과 대면하면서 우리는 성장하는지 모른다.나는 극락전 법당에서 아미타부처님을 향해, 딸은 아이를 안고 묘각사 산문 앞을 서성이며 사색에 잠긴다. 숲은 한 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숲이 열리는 소리, 한량없이 대지를 감싸 안은 하늘의 품을 올려다보며 딸은 무언가를 얻으리라. 그리고 무(無)를 향한 평온한 걸음에서 참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을 것이다.잠시 돌아앉아 열린 어간문 사이로 밖을 본다. 오후의 햇살이 내려 쬐는 산문 밖에 별천지가 보인다. 나와 딸, 그리고 어리석은 중생들의 번민과 사랑, 슬픔이 잉잉하게 차오르는 곳, 법당에 앉아서 바라보니 겹겹의 산 너머, 내가 사는 바로 그곳이 도솔천처럼 느껴진다. 묘하고 신통한 마음 잘만 다스리면 극락이 따로 없는데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것은 아닐까.조낭희 수필가우리는 지혜를 바로 옆에 두고도 어둠 속을 헤매듯 방황할 때가 있다. 언젠가는 딸도 추억을 되짚으며 이곳을 찾아 번잡한 마음 내려놓고 스스로를 되짚어 볼지 모른다. 그런 날 묘각사의 이름처럼 소중한 깨달음 하나 얻고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산문 앞에 서서 하염없이 사바의 세계를 바라보고 서 있는 딸과 그 품에 안긴 손녀를 위해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스스로 사랑하는 법과 침묵하는 법을 배우고,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힘이 들면 가까이 갈 수 있는, 빗장 열려진 곳을 향해 사다리를 내릴 줄 아는 지혜를 갖추게 해 주소서. 마주 잡아 주는 손이 있지만 행여 외롭다 방황할 땐 같은 쪽으로 부는 바람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아주 작은 것에 참다운 행복이 머물고 있음을 한 순간도 잊지 않게 해 주소서.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넉넉한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겨울햇살이 감미롭다. 차담을 요청한 주지 스님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고 삼대를 지켜보는 아미타부처님의 시선만 유난히 자비롭다.

2019-12-09

작가의 글 쓸 권리와 글 쓰지 않을 권리

‘모비딕’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허먼 멜빌은 미국의 소설가로 뉴욕 세관의 검사계로 일하면서 법률 소설을 활발하게 썼다.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글로 쓰는 사람이다.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시대에 작가는 그리 특별날 것 없는 존재로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의 눈이 책 표면에 새겨진 글자를 훑으며, 그것이 단지 까만 잉크로 된 물리적 실재가 아니라 생생하게 빛나는 또 다른 차원의 글자처럼 여겨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거나, 또는 글자들 낱낱을 읽어내는 파편적인 시선이 아닌 어떤 통합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 우리는 바로 ‘작가’를 본다.과거, 문학 작가의 모델은 남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지식이나 뛰어난 생각을 자신이 갖고 있는 문자 표기의 기술을 활용하여 글을 쓰고, 그 글을 읽는 누군가로 하여금 자신의 지식이나 생각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고 나아가 동의하는 것에까지 나아가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과정을 포함하는 대상이었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지금보다 조금 더 특별한 것이었던 시대에 작가의 자리는 좀 더 특별한 곳에 마련돼 있었다.하지만, 대도시 파리의 아케이드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곳에 진열된 자본주의 상점의 상품들 속에서 희미하게 감지되는 고대의 향기를 맡았던 작가 보들레르 이후, 작가는 거리를 산책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이 받은 감각이나 자신이 했던 정서, 생각 등을 단초로 글로 옮기는 사람이 되었다.조금은 특별한 곳에 마련됐던 온전히 창조적인 작가의 자리는 이제는 현실 세계의 감각을 받아들이는 예민한 자의식으로 환치된다. 글쓰기가 특별한 능력이랄 것도 없게 된 지금 시대에 우리 모두는 새로운 의미의 ‘작가’가 될 준비가 이미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미국 작가인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이 1853년에 쓴 ‘필경사 바틀비-월가 이야기’라는 짧은 소설은 바로 새로운 시대의 작가의 모습에 대해 말해준다.바틀비는 월가의 변호사 사무소의 세 번째 필경사로 고용됐다. 필경사란 남이 쓴 글을 그대로 옮겨 적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문서를 복사하는 기계 같은 존재이다. 바틀비는 엄청난 양의 문서를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필사를 해낸다.하지만, 독특하게도 그는 자신이 쓴 글을 검토하는 일만큼은 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는 단호하게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필경사로서 글을 옮겨 적는 것은 할 수 있지만, 검토하는 것은 거부하는 태도는 일반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현대적인 작가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 문제는 좀 더 복잡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글을 복제하는 기계인 복사기에게 그 글을 검토하기를 요구할 수 있을까.바틀비는 ‘진정한 의미의 작가’가 되지 못하는 시대에 ‘작가’가 되고자 했던 20세기의 돈키호테였을지도 모른다. 그가 필경을 멈추는 틈틈이 유일하게 하는 일이 가끔씩 창밖을 내다보며 공상을 하는 일이라는 사실은 그러한 지표이다. 그는 진정한 작가를 꿈꾸지만, 그가 하고 있는 일은 고작해야 남의 말을 옮기는 필경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는 남의 글이 자신의 살이 되는 것을 원치는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 시대 작가가 처한 모순이다.결국 모든 것을 거부한 채 죽어가는 바틀비를 기억하며, 이 소설은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라는 문장으로 끝맺는다. 바틀비는 작가가 되었지만 작가가 되지 못하는 바로 우리 시대의 인간이었던 것이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12-09

포퓰리즘 마약: 베네수엘라 vs 스위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총선이 다가오면서 망국병 ‘포퓰리즘(populism)’이 또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치꾼(politician)’들은 선거 승리를 위해 ‘마약 같은 포퓰리즘’ 공약들을 쏟아내고, 유권자는 그들의 달콤한 유혹에 솔깃하여 이성을 잃어버린다. 때문에 포퓰리즘에 대한 베네수엘라와 스위스의 사례 비교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다.세계 최대의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는 한 때 1인당 GDP가 일본이나 독일보다도 높은 부국이었다. 1999년 집권한 차베스(Chvez)와 2013년 그의 후계자 마두로(Maduro)에 의한 포퓰리즘 정책들의 시행, 즉 무상복지, 연금 및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대대적 공무원 증원 등으로 인하여 다시 최빈국이 되었다. 최근 4년(2015∼2018) 동안 370만 명이 생존을 위해 조국을 탈출했으며, 평균 몸무게가 10㎏이나 빠진 그들은 굶주림을 참다못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고, 살인범죄 세계 1위라는 오명의 나라로 폭망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년이었다. 차베스와 마두로가 집권을 위해 사용한 마약, 즉 포퓰리즘에 취한 국민은 ‘금단현상’때문에 다른 길로 가는 것을 거부한 결과였다.반면에 스위스의 포퓰리즘 사례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2016년 6월 스위스기본소득(BIS)이라는 단체가 요구한 ‘모든 국민에게 월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내용의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에 붙여져 77%의 반대로 부결되었고, 동년 9월 ‘국가연금 10% 인상안’도 60%의 반대로 역시 부결되었다. 양식 있는 스위스 국민들이 자신에게 더 많은 기본소득과 연금을 보장해주겠다는데도 거부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상복지 확대를 위해서 사용하는 세금인상이나 국채발행 또는 통화남발의 부작용이 매우 심각할 뿐만 아니라, 놀고먹는 사람들이 늘어나 노동력이 저하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스위스의 정치권 역시 국민투표 과정에서 인기에 영합하여 복지 포퓰리즘을 부추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이처럼 베네수엘라와 스위스의 사례는 선·후진국의 차이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국민을 ‘마약환자’로 만들어도 좋다는 ‘정치꾼들의 나라는 후진국’이요, 인기가 없더라도 국민을 위해서는 절대로 ‘마약’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품격 있는 ‘정치인(statesman)들의 나라가 선진국’이다. 또한 포퓰리즘이 초래하게 될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은 물론 자식들까지도 병들게 하는 ‘마약을 받아먹는 어리석은 국민은 후진국’이요, 그것이 초래하게 될 파괴적 결과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마약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는 지혜로운 국민이 선진국’이다.한국정치의 비극은 진정한 정치인이 없고 권력에 눈먼 정치꾼들만 난무한다는데 있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매표를 위한 정치꾼들의 포퓰리즘 유혹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한국이 마약에 취해서 베네수엘라와 같은 후진국으로 전락할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거부하여 스위스와 같은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

2019-12-09

에잇포켓족

에잇포켓(8 Pocket)족은 부모는 물론 양가 조부모의 식스 포켓에다 삼촌과 고모 또는 이모까지 더하여 아이를 위한 지출을 아끼지 않는 가족들을 이르는 말이다.아이 한 명을 위해 온 가족이 지갑을 연다는 의미의 ‘에잇 포켓’이라는 신조어에서 비롯됐다. 에잇포켓족이 늘면서 국내키즈 산업규모 역시 크게 성장하고 있다.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키즈 산업 규모는 2002년 8조 원에서 지난해에는 40조 원까지 성장했다. 출산율이 둔화되면서 아이 한 명에게 소비가 집중됨에 따라 아이들을 위한 프리미엄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있다.특히 어린이 키성장과 건강관리를 위한 건강기능식품이 에잇포켓족들에게 큰 인기다. 장기적인 경기 불황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지만 자녀들의 건강을 위한 제품들의 경우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에잇포켓족의 소비경향 덕분에 아기를 덜 낳는 저출산 시대지만 유아와 어린이 시장은 쑥쑥 커지고 있다.또 연말연시를 맞아 백화점 유아·아동 매장에 중장년층 여성들이 붐비고 있다. 크리스마스 연휴와 연말연시를 앞두고 책가방과 옷 등 손주나 조카 선물을 사러 온 고객들이다. 백화점에서도 아동복과 완구 등 유아·어린이 상품 매출 역시 극심한 불황 속에도 쑥쑥 커지고 있다. 매장도 장난감 가게와 놀이 시설, 도서관 등 모두 아이 눈높이에 맞춰 꾸며 놓고 쇼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신도시 등 유아나 어린이 비율이 비교적 높은 지역의 백화점들도 아이들과 관련한 특화된 매장을 선보이며 고객 잡기에 나섰다.온라인 업체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새로운 VIP로 떠오른 아이와 ‘에잇포켓족’의 발길을 잡기 위한 유통업계의 변신이 눈부실 정도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09

편의점 일자리

생활의 편의성을 좇아 생겨난 편의점의 본산은 미국이다. 1927년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의 ‘사우스랜드’라는 작은 회사가 세븐일레븐이란 이름으로 소형점포 사업을 시작한 것이 시초다. 다른 소매점이 문을 닫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영업을 한다는 뜻에서 ‘세븐일레븐’이다.국내에 편의점 형태의 점포가 들어선 것은 1982년 롯데쇼핑이 서울 약수동에 문을 연 점포가 처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편의점이 대중적 붐을 일으킨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인기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라면과 김밥을 먹는 장면이 TV에 방영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편의점은 새로운 생활공간의 하나로 자리를 잡는다. 2017년도 집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4만개가 넘는 편의점이 생겨났다고 하니 놀라운 변화다.편의점은 이름 그대로 편리함을 개념으로 도입된 소형 점포다. 연중무휴와 24시간 영업이 특징이다. 맞벌이 부부와 1인 가구의 증가와 같은 새로운 사회 현상과 더불어 지속적 성장을 한다.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설 비용 부담이 적어 자영업으로도 큰 인기를 모았다. 지금은 직장인 등 젊은층이 즐겨 찾는 휴식 공간으로 대중화된 셈이다.확산일로에 있던 편의점이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영향으로 지난해 2천 곳이나 문을 닫았다 한다. 인건비 부담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주원인이다. 이에 따라 편의점에서 일하던 알바 일자리도 한해동안 4만개가 사라졌다는 소식이다. 짬짬이 틈내 일하던 대학생과 저소득층 근로자의 일자리가 사라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한계 근로자의 일자리를 되레 뺏어갔다는 비판도 나온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고용쇼크의 비명소리가 우리를 우울케 하는 연말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08

‘김정은’에게 당한 걸까

안재휘 논설위원상상하기 싫지만, 버릇 나쁜 어린아이가 날카로운 면도칼을 들고 휘두르며 심하게 생떼를 쓴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쓸 수 있는 수단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달래고 꾀어서 칼을 내려놓게 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꾸짖으면서 힘으로 빼앗는 수단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빠르고 효과적일 수 있으나 위험성이 높다. 그렇다 보니 가능한 첫 번째 방법을 써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일단 더 순리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한반도의 안보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연말까지’라며 일방적으로 협상 시한을 정한 북한이 모종의 도발프로그램을 획책하고 있는 징후가 뚜렷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을 향해 비핵화 협상 이후 사용을 중단했던 ‘로켓맨’이라는 조롱 호칭을 2년 만에 또다시 꺼내 들었다. 북한의 북미 협상 책임자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를 통해 즉각 ‘늙다리 망녕(망령)’이라며 신랄하게 비난했다.북한이 고체 연료를 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분석이 나왔다.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에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준비 징후로 추정되는 상황이 미국 상업위성에 잡혔다는 것이다. 미국의 첨단 정찰기들이 한반도 주변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전문가들이 일제히 한반도의 상황을 ‘긴박하고 엄중하다’고 분석한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북한이 모종의 도발을 감행할 공산이 크다는 예측마저 나온다. 그런데도 외눈박이 평화론자들은 여전히 이 모든 정황을 ‘협상용’으로 해석한다. 남한을 향해 거듭되는 북한의 위협에도 “북한은 남한을 향해 절대로 핵무기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를 알 수 없는 맹신을 방패막이로 내세운다. 김정은으로부터 그런 철석같은 약속을 받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작금의 한반도 ‘긴장 고조’가 정말로 동트기 전 일시적인 어둠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만에 하나 북한 김정은이 수준 높은 교언영색 위장평화 전술로 핵무기와 ICBM 기술개발의 시간을 넉넉하게 확보한 것이라면 정말 큰 일이다. 한미를 비롯한 전 세계가 2년 동안이나 농락당한 셈이라면 어떻게 되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 9월 전문가 패널보고서에서 “북한이 함흥 미사일 공장 등에서 활발하게 고체 연료 생산과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 위정자들 누구도 ‘ICBM만 아니면 괜찮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에 대해 북한은 이미 가차 없는 ‘핵보유국’이고, 남한 전역은 핵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터무니없는 김정은의 ‘선의’와 미국의 ‘핵우산’만 믿고 온 국민을 어설픈 ‘한반도 평화’ 착시에 빠져 살게 할 참인가. ‘자체핵무장’ 필요성을 명확하게 말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은 철저하게 ‘미국’ 편일 따름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김정은은 ‘햇볕정책’ 따위의 유화책으로 달래고 꾄다고 말을 들을 철부지가 아닌 게 분명하다.

2019-12-08

백마 탄 김정은의 백두산 리더십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정은은 소위 그들의 혁명 성지 백두산을 자주 찾는다. 눈 길 속에서 그는 리설주와 나란히 선두에 서고 최룡해와 박정천 등 군 수뇌부가 말을 타고 그 뒤를 따른다. 김정은은 중대 결심을 앞두고는 백두산을 찾는단다. 나름대로 조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정신’을 되새겨 보겠다는 뜻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요구했으나 트럼프는 아직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는 김정은을 향해 ‘로켓맨’이라 비하하면서 필요시 군사력 사용까지 언급하고 있다. 다급해진 김정은이 백두산을 찾은 이유일지도 모른다.몇 해 전 나는 백두산 서파로 등정을 한 적이 있다. 한국 관광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북파가 아닌 서파를 통해 백두산 천지에 손을 담갔다. 백두산 서파는 계단 1천442개를 거쳐 5호경계비에 이른다. 이 국경 경계비에는 앞뒷면에 조선과 중국이라는 국호가 새겨져 있다. 북한 땅을 30m까지 밟을 수 있는 곳이다. 사드 문제로 한중관계가 원활치 못하지만 중국 당국은 관광 수입을 위해 이곳 관광은 허용하고 있다. 서파를 오르면서도 길 왼쪽의 북한 백두산을 바라보면서 여러 상념이 들었다. 우리도 중국 땅을 밟지 않는 백두산 관광은 언제쯤 이루어질까.얼마 전 독일에서 만난 이사벨라는 동독 훔볼트대학 조선어과 출신이다. 그녀는 김일성대학에 유학하여 한국어에 능숙했다. 북한 유학 시절의 기억에 남는 것을 물었더니 백두산 혁명전적지 답사 행군이라고 대답했다. 무거운 배낭은 군 출신 학우들이 대신 메어주었단다. 이처럼 김정은이 백마를 타고 찾아간 백두산은 북한당국이 오래전부터 성역화시킨 지역이다. 북한 지폐 2천원에는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밀영이 새겨져 있고, 그 뒷 봉우리가 정일봉이다. 김일성이 항일 투쟁의지를 새겼다는 3천여 그루의 ‘구호나무’(?)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이처럼 백두산은 김일성의 백두혈통의 상징물이 되어 버렸다.김정은의 잦은 백두산 등정은 그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보강하기 위함이다. 김정은 세습정권은 대내적 안정을 위해 집권 초기부터 김일성의 상징을 조작하였다. 그는 조부 김일성의 헤어스타일, 복장, 중절모, 걸음걸이, 연설 행태까지 그대로 모방하였다. 그의 3대 세습에는 적대 세력을 과감히 제거하고 인민들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해 카리스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혁명 위업의 계승자’ 자격을 여전히 백두혈통에서 찾고 있다. 그는 조선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를 앞두고 대내적 결속과 미국의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 백두산 등정길을 선택하였다.김정은은 2017년 말 당 중앙위 전원 회의에서 ‘핵, 경제 병진노선’을 포기를 선언하였다. 그는 2018년 4월 7기 3차 전원 회의에서 ‘경제 건설 총력 집중 노선’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자립 경제는 획기적인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의 이러한 시대에 뒤진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경제 발전 노선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땅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그의 전통적 리더십은 오래 갈 수 없다. 김정은의 리더십이 합리적 리더십으로 바뀔 때 대남, 대미 수교도 경제 발전 정책도 빛을 발휘할 것이다.

2019-12-08

멜랑콜리아와 군자불기

김현욱 시인동네 취미 미술 학원에 등록해서 가장 먼저 그린 것은 내 왼손이다. 왼손을 관찰해 그려보라는 미술학원에서의 첫 번째 과제는 내가 그동안 반 아이들에게 시 쓸 때 주변 사물이나 사건을 잘 관찰해서 써보라는 것과 같은 주문이었다. 이왕 시작했으니 잘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내 왼손을 그렸다. 다 그린 후 미술 선생님이 유심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손과 스케치를 잘 비교해보세요. 다르지요?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하는데 현욱 씨는 머릿속에 있는 손을 그렸네요. 검지를 자세히 보세요. 약간 굽어있는 부분이나 굵기, 손톱 모양이 닮았지요? 검지는 다른 손가락과는 다르게 잘 관찰해서 그렸어요.”두 번째 수업은 사진을 거꾸로 놓고 따라 그리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수업이 머릿속에 있는 관념을 그리지 말고 눈에 보이는 대로 유심히 대상을 관찰해서 스케치하라는 주문이었다. 글쓰기를 지도하는 입장에서 “머리로 꾸며 쓰지 말고 보고 들은 것을 솔직하고 자세히 써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요즘 미술 관련 연수를 들으면서 르네상스 최고의 발명품은 안경, 나침반, 현미경, 인쇄술, 총, 지도 같은 것이 아니라 원근법이라는 얘기가 솔깃했다. 원근법은 거리감 있는 현실 공간을 기하학적인 방법으로 평면 위에 구성, 재현하는 기술이다.원근법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태도 세 가지를 들었는데, 첫 번째는 세계를 관찰하는 고정된 시점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신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신화나 신학이 아닌 경험주의적 태도로 세계를 직접 관찰하고 기록하고 분석하는 태도를 갖게 됨으로써 근대 과학발전의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여러 분야의 지식이 융합되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법이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원근법은 기하학에 대한 이해가 광학으로 이어져 미술의 표현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3차원을 2차원 위에 옮겨 놓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바로 원근법이다.15세기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 ‘멜랑콜리아 I’에 그려진 인물과 소품이 참 흥미롭다. 날개를 단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이 컴퍼스를 잡고 앉아 있다. 주변에는 원구, 톱, 대패, 망치, 시계, 저울, 종, 마방진이 보인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수학적, 과학적 탐구와 예술적 표현이 서로 융합된 시기였다. 문학, 철학, 역사, 과학, 수학 등의 학문을 구별하지 않았다. 논어 위정편에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이 나온다. “군자는 한 가지에만 쓰는 그릇이 되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맵찬 겨울바람처럼 수능 점수가 발표됐다. 고3이든 중3이든 학생들은 진로를 고민할 것이다. 취준생이나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날개 달린 르네상스 사람, 여러 그릇으로 쓰일 수 있는 군자가 되고 싶으면 문과, 이과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소신대로 선택할 일이다. 실패와 절망이 후회와 눈물이 결국에는 거름이 되는 게 인생이니까.

2019-12-08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1)

샤갈은 피카소와 어깨를 견주는 거장입니다. 화려한 색깔을 절묘하게 구사해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공산 혁명과 나치의 핍박을 피해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세계를 떠돌며 노마드로서 살아간 유대인이지요. 샤갈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벨라와의 사랑입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사랑이 한가득 색채에 녹아 있습니다.붓을 놀릴 때마다 캔버스가 그의 밑에서 떨렸다. 붉은색, 푸른색, 흰색… 그는 나를 색채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이더니 갑자기 바닥에서 떠오르게 했고, 그의 작은 방이 너무 비좁게 느껴졌는지 자신도 같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몸을 길게 늘이고는 천장에서 떠다니는 것이었다. 고개를 뒤로 젖혔고 내 고개도 뒤로 젖혔다. 그리고 내 귀에 키스하며 속삭였다. “그림이 맘에 드오?” ‘첫 만남’- 벨라 로젠필드벨라와 샤갈의 만남은 신분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샤갈의 외가는 도살업을 했고 아버지는 노동자에 불과했지만 벨라의 집안은 보석 가게를 3개나 운영하는 명문 가문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벨라 역시 역사, 문학, 철학을 공부하고 배우를 꿈꾸는 대단한 인재였으니 부모의 반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샤갈의 그림은 벨라를 만나면서 더 빛나고 아름답고 화려하게 무르익어갑니다. “예술에서도 삶에서도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색깔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사랑의 색이다.”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1915년 둘은 마침내 결혼을 합니다. 샤갈은 평생 자신의 그림에 벨라를 녹여냈습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절로 공중에 두둥실 떠오를 만큼 행복했던 샤갈. 하지만, 1944년 벨라는 감염에 의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되지요. 샤갈은 벨라의 죽음 이후 9개월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잠을 잘 수도, 그림을 그릴 수도 없는 상태에 빠집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8

인구절벽의 위기를 마주한 영양군, 위기가 곧 기회다!

오도창 영양군수얼마 전 우리나라 3분기 합계출산율이 0.88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소 기록을 새로 썼다. 작년과 비교해 출생아 수가 6천 687명(8.3%)이 줄어 1981년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3분기 기준 최소 기록으로, 합계출산율 역시 전년 동기보다 0.08명 떨어지면서 2년째 합계출산율이 1.0명 미만이 확실시되고 있다. 1960년 중반, 합계출산율이 5.63명이던 시절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정부가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할 정도로 높은 출산율을 경제성장에 큰 걸림돌로 여기던 때도 있었다. 산아제한을 실시한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의 결과는 참담하기만 하다. 저출산을 넘어 이제 합계 출산율이 1.3명 이하인 초저출산 시대로 접어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출산율 저하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정부도 대통령 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조직해 지난 2006년부터 150조원 가까운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2015년 반짝 회복했던 것을 제외하면 계속 줄어들어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명대에 진입해 세계 최초로 출산율 0명대 국가가 됐다.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되어 버렸다. 정부도 기존의 저출산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인구 감소 충격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장기간의 출산율 저하가 단순히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정도의 대책으로는 지금의 방향과 추세가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진하면서 출산율과 출생아 수를 목표로 하는 국가주도 출산정책에서 삶의 방식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람중심 정책으로 변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영양군이 선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출산양육비 지급도 최근 출산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지급하던 양육비 지급도 원정출산과 같은 논란이 일고 있어 많은 지자체에서 사업 지속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정책의 추진에도 적절한 시기와 처방이 필요하다. 정책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선제적이고 과감한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영양군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1973년 7만791명이던 영양군의 인구는 2002년 인구 2만명 선이 붕괴되더니, 이제 인구 1만 7천명선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 다다랐다. 인구는 자치단체 조직규모를 정하는 기본척도이자 중앙정부의 지자체 평가에 있어 각종 교부세와 지방세 확충에 주요 산정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기에 논란이 일고 있는 양육비 지급도 지자체에서는 경쟁적으로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인구급감으로 인해 자치단체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 오기까지 영양군에서도 인구증가를 위한 많은 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타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되레 인구 감소 속도만 빨라졌다. 이런 급박한 상황을 맞아 더 이상의 인구 후퇴는 안 된다는 군민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지난 11월 29일, 인구감소 대책을 위한 간담회와 인구증가 결의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영양군에서는 이미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사전 조치로 4월부터 준비한 ‘영양군 인구증가정책 지원조례’ 제정을 앞두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관내 신규 전입자에 대한 각종 지원을 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는 있지만, 그 효과 역시 크게 기대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신규 전입자 유치에는 대규모 기업 유치와 같은 대규모 전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큰 성과를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인구증가 결의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더 이상의 인구 감소를 방관하지 말자는 군민들과의 공감대 형성과 결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선제적이고 획기적인 인구증대 방안들을 마련하고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특히 출산과 양육의 정책적 지원과 영양군 저출산의 해결책을 총괄할 ‘영양군 인구지킴이 민관공동체 대응센터’건립사업과 방과후 학생들의 돌봄 공백을 해소할 ‘공립형 지역아동센터 건립사업’이 내년에 완공되면 인구 증가를 위한 대책에도 속도를 낼 예정이다. 아직은 정책적으로 아쉬움과 부족함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차별화된 귀농귀촌 지원과 시행 중인 출산보육정책까지 보다 촘촘히 보완하고 새로운 시책을 발굴해 인구정책의 새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아이들을 부모뿐만 아니라 가족, 이웃 등 온 마을, 온 나라가 하나 되어 함께 키운다는 마음가짐을 우리 모두가 가진다면 심각한 저출산 문제 해결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당장의 출산율을 올리기 위한 임시방편보다는 적어도 30∼4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하며 천천히, 그러나 견고하게 추진되는 정책의 고민을 이번 민선 7기 임기 내에서 담아보려고 한다. 인구 절벽에 마주한 지금 위기가 곧 기회가 되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영양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2019-12-08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문정민 에듀아이엠 대표“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 줄 아니?”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면이다. 어린 왕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한다.“글쎄,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어린 왕자의 생각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서 아침부터 밤까지 얼마나 바쁜가? 지혜로운 사막여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그래, 네 말도 맞아.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뜻밖의 답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이다.회사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싶은 이유 중 첫 번째는 함께 일하는 사람이 싫어질 때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지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함께 하는 기간이 길면 괜찮을까?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가 부부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는 일은 어렵고 힘들다. 무조건 상대방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맞춰주면 다 될 것 같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한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좋다고 하지만 그것은 더 힘든 일이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혼란스럽기만 하다. 대체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일이다. 영국 육상 대표였던 데릭 레드먼드는 400m 달리기 종목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출발 신호가 울리고 트랙을 질주하던 선수들 사이에 갑자기 한 선수가 주저앉았다. 데릭 레드먼드였다. 150m쯤 다다랐을 때 갑자기 다리 힘줄이 끊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고통 속에서 레드먼드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일어섰다. 진행 요원과 의료진이 만류했지만, 레드먼드는 한 발로 뛰기 시작했다. 그때 관중석에서 한 사람이 뛰어들었다. 아들의 고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레드먼드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울고 있는 아들에게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레드먼드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다. 레이먼드는 더 큰 부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경기 결과는 이미 뒤집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모든 불운에도 그는 뛰고 싶었다. 비록 메달을 딸 수 없지만, 이 순간을 위해 애쓴 자신에게 떳떳해지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아들의 마음을 깨달은 아버지는 부축하며 말한다.“그래, 같이 뛰자!”아버지는 결승선까지 완주하도록 도왔다. 어깨동무하며 골인하는 그들에게 모든 관중이 일어서 박수를 보냈다.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친한 친구를 생각해 보자. 나에게 정답을 가르치고 강요하려는 친구보다, 내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는 친구에게 마음이 열린다. 존중받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마음을 얻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나 자신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스스로 현재 자신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 상태도 잘 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관심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잘하는지에 관심이 있다. 자신의 마음을 얻는 사람은 나 자신을 잘 돌보며 살아간다. 내가 잘한 일과 못 한 일, 그 모든 일이 합해 나라는 사실을 안다. 자신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을 수용한다. 그래서 자신을 받아들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내 경험에 비추어 남도 실수할 수 있다고 인정하며 무시하지 않는다.얼마 남지 않은 2019년, 정신없이 사느라 놓쳤던 부분은 없는지 생각해 본다. 이런저런 일로 웃고 울기도 했다. 기대했던 만큼 잘 풀리지 않은 일도 있지만, 뜻밖의 소식에 기쁘기도 했다.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사람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사람 덕분에 힘이 나기도 한다. 손가락을 꼽아가며 고마운 이름을 떠올려 본다. 열 손가락으로 부족하다. 괜히 부끄럽고 미안하다. 어쩌면 내 상처만 기억하느라 고마운 사람을 잊고 지내지는 않았을까? 올해가 가기 전에 연락해야겠다. 내게 사랑과 이해를 가르쳐 준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나를 더 아끼고 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기온이 뚝 떨어져 바람이 차다. 사람의 따스한 온기가 그리워지는 겨울밤이다.

2019-12-08

서울의 계단

스무 살 무렵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가장 버겁게 느껴졌던 것 하나가 계단이었다. 국문학과가 있는 1동 계단은 그런 대로 견딜 만 했다. 정말 적응하기 힘든 것은 도서관 쪽 5,6층 사이 계단이었다. 열람실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이었다.처음에 생각하기로는 설계가 잘못된 게 아닌가 했다. 나라마다 각각 사람의 체형에 맞는 계단 높이라는 게 있다. 혹시 설계자가 한국사람 키높이를 몰랐던 게 아닐까?달리, 혹시 뭔가 장중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일부러 한 계단 높이를 약간 높게 설계한 것은 아닌가 하고도 생각했다. 1975년에 완공되었다는 이 한 세트의 건물들은 모두 고동색 빛깔이었고 도서관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4층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관료적인 인상을 주는 외관이다. 계단 높이도 이런 장중함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였던 것일까? 이 의도된 장중함은 이 학교의 ‘센터’에 해당하는 사각 스퀘어를 통해서도 발현되고 있었다. 이 사각 스퀘어를 둘러싸고 행정관, 도서관이 위아래로 마주 보고, 다시 학생회관과 인문대학의 1동이 양 옆으로 마주 보며 서 있었다. 이 사각의 공간은 대학의 중핵 기관이 행정관과 도서관이라는, 또 학생회관과 인문대학이 대학의 정신을 상징한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단지 학교 도서관 계단만은 아니었다. 그 무렵 내가 겪은 서울의 계단들은 늘 어딘지 모르게 높아서 올라 딛기 불편했다. 그후 서울은 어딜 가나 지하철 계단으로 넘쳐나는 도시가 되었다. 이 지하철 계단들은 어른도 내딛기 어렵게 느껴졌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육교 계단도 마찬가지였다.생각해 본다. 정말 서울의 계단들이 그러했던 것일까? 아니면 혹시 서울이라는 적응하기 힘든 세상에 대한 나의 위화감이 작용한 심리적 반응이었던 것일까?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산 대전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 계단이라는 것이 대전에는 없었던 것도 같다. 요즘 아침저녁으로 지하 6층 깊은 곳에 플랫폼이 있는 독바위역을 드나들어야 한다. 꼭 한 층만은 에스컬레이터를 운행하지 않는단다. 절전 때문일 것이다. 늦은 밤 지친 몸으로 계단을 올라가야 할 때면 불편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이제는 계단에 대해 더는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건만, 나는 지금도 서울의 계단이란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투덜거리곤 한다. 어쩔 수 없이, 운동 삼아 오르내리며, 심술을 부려본다. 계단을 보면 차라리 고마워해야 한다던 운동 권유자의 말도 별로 듣기에 좋지는 않다고 말이다.계단은 있는 것보다 없는 쪽이 좋다. 물성을 갖춘 진짜 계단 말고도 모든 사회적 계단도 말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2-05

자살이란 사회 병리

사회 병리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과 집단이 어떤 충격적 요소에 의해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 질병의 사례는 빈곤, 실업, 계층간 대립, 범죄, 가정불화, 자살, 마약 등 수두룩하다.우리사회 체제나 구조가 지닌 모순으로 사회적 기능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해법은 매우 어렵다. 1997년 말 IMF체제로 온 국민이 어려운 시절을 보낸후 한 통계에서 드러났다. 우리나라의 자살자가 처음으로 교통사고 사망자를 넘어선 것이다. 불경기라는 불행한 사회구조로 자살이라는 사회 병리가 국민의 한구석에 자리를 튼 것이다.자살은 어떤 이유로든 용납되지 않는다. 그것이 정치적 이유로든 연예인이 가지는 대중성 때문이든 용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소중한 생명과 직결된 문제로 인간의 본성이 지닌 엄격한 도덕적 규율에도 어긋난다. 국가가 이런 문제에 적극 대처해야 하는 것은 국가 윤리에 관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최근 우리사회에 빚어지는 연이은 자살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다. 특히 젊은 연예인의 잇단 자살은 안타까움을 넘어 우리 사회에 대한 원망의 자책으로 되돌아온다. 뭔가 잘못된 사회 시스템을 꼬집고 싶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문제라 더욱 곤욕스럽다.자살은 질병이고 전염이고 재발한다. 1년 전 죽은 사람을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보다 자살할 가능성이 3.7배 높다는 조사가 있다. 괴테 작품에서 딴 베르테르의 효과가 이런 것이다.1962년 미국의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의 죽음은 미국 내 큰 파장을 미쳤다. 그녀의 자살로 미국의 자살률이 12%까지 올라간 것이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자살의 사회병리 현상은 누가 고칠 것인가. 국가가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05

협상 없는 정치 끝내려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강대강 대치가 우려스럽다. 정기국회 폐회일인 10일이 다가오고 있는 데도 내년도 예산안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벼랑 끝 대치가 더욱 격화하고 있다.더불어민주당은 예산안과 패스트트랙 법안의 일방 처리 수순에 들어갔고, 자유한국당은 강력 저지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청와대 하명 수사 및 감찰 무마 의혹이 계속 확산하면서 여야는 물론 여권과 검찰 간 대립마저 심화하고 있다.현재 민주당은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한국당에 최후통첩을 했다. 지난 3일 한국당에 민생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사전에 철회할 것을 요청한 데 이어 이날 다시 한국당의 협상 참여 전제조건으로 필리버스터 철회를 요구한 것이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입장 변화를 압박하는 동시에 최악의 경우 패스트트랙 법안 및 예산안을 일방 처리하기 위한 명분을 쌓기위한 것 아니냐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은 한국당이 민생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카드를 공식적으로 폐기하면 한국당과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계속 밝혀 왔다.다만 민주당은 한국당과의 협상이 최종 불발될 경우에 대비, 4+1 협의체 논의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공수처법의 경우 본회의 의결정족수 확보가 가능한 안건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선거법은 ‘지역구 250석·비례대표 50석’을 기준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적용 의석 규모와 연동률 등을 놓고 막판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이런 가운데 한국당은 이른바 ‘2대 악법 저지 및 3대 청와대 게이트’를 연결고리로 대여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및 공수처에 대한 원천 반대 입장을 기조로 하명 수사 의혹, 감찰 무마 의혹, 우리들병원 특혜의혹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파상공세다.어쨌든 여야가 제대로 대화 한번 하지못한 채 강대강 대치로만 치닫고 있는 것은 국회 정상화를 고대하는 국민들에게 매우 실망스런 모습이다. 그나마 여당이 선거법은 한국당의 원내사령탑이 새로 선출될 때까지 연장하기로 한 것은 여야간 협상의 물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한다. 현재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강석호·유기준 의원 등이 모두 협상력 복원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삭발과 단식투쟁으로 한국당을 강경노선으로 이끌고 있는 황교안 대표도 패스트트랙 법안과 선거제개편안을 무조건 반대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건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임기연장을 막은 것 역시 새로운 원내지도부의 협상력 복원에 기대를 거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민주당과 한국당은 대화와 협상에 나서서 민생법안과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는 성숙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전부 아니면 전무’인 대통령중심제란 권력구조가 협상없는 정치를 촉발하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되짚어볼 때다.

2019-12-05

공부의 즐거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유가 경전인 논어의 첫머리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말씀이다.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요즘 말로 공부를 한다는 것일 터인데,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 공자님도 공부를 한다는 것과 또 그것을 기쁘게 여긴다는 걸 알 수 있다. 학창시절의 학생들이나 하는 것이 공부요, 지긋지긋하지만 입시나 취직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공부라는 보통사람들의 통념과는 많이 다른 말씀이다.현생인류를 분류학상 학명으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고 한다. 우리말로 ‘슬기슬기사람’이라고도 하는데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될 것 같다. 인류가 다른 영장류에서 갈라져 나온 원인이 바로 공부하는 특성과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사람노릇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세상이 복잡다단해질수록 해야 할 공부도 그만큼 더 많아지게 마련이다.우선은 생업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보통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각종 시험에 높은 점수를 받고 더 좋은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보장 받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소위 출세를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남보다 많은 재물을 모으고 높은 지위에 올라간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전락해서 감옥에 가거나 자살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남에게 고약한 갑질을 하거나 자기이익을 위해서 남을 해치고 부정부패를 일삼거나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인문학적인 소양의 부족에서 나오는 행태라고 봐야 할 것이다.사람다운 사람으로 살려면 평생을 두고 덕을 쌓고 교양을 갖추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인문학적인 공부다. 인문학이 보통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일컫는다. 그것을 통해 폭넓고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삶의 진실을 깨치는 것이 인문학적인 공부다. 물론 예술과 종교를 통해 심미안과 영성을 함양하는 것도 인문학의 영역이라 할 수가 있고.요즘은 참 공부하기 좋은 시절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무슨 공부든 손쉽게 할 수 있는 세상이다. 휴대전화기 하나면 세상의 온갖 정보에 접속할 수가 있는 데다 유튜브(Youtuve) 같은 동영상으로 각계 석학들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음악과 미술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문학과 철학과 역사와 종교에 이르기까지 혼자서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세계를 두루 여행하면서 인문과 자연을 배우는 것도 어렵지 않은 시절이다.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은 시류에 휩쓸리거나 편견과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는다. 복잡하고 혼란한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올바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다. 편향된 진영논리나 당리당략 따위에 인생을 걸지 않는다. 기쁘고 정의롭지 않은 것은 공부가 아니다.

2019-12-05

마지막 달력 한 장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달력을 떼어내고 마지막 달력 한 장만 남았다. 한해가 간다. 금년 2019년도 이제 마지막 한달. 매년 보내는 이맘때면 보내는 한 해이지만 금년 한 해는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매년 말이면 “희망과 혼돈의 한 해가 간다”라고 했지만 금년엔 “혼돈의 한해가 간다”라고 해야하지 않을까?금년은 “조국에서 시작하여 조국으로 끝났다”고 할 정도로 조국 사태는 심각했고 그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법정공방은 오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매주 말 열린 태극기 집회와 촛불집회 등으로 국가가 두 동강이 난 느낌은 여전하다. 보수파와 진보파로 불리는 여론층은 서로 매질을 하면서 국가가 분열되는 모습을 보였다. 혹자는 해방 직후 둘로 갈라졌던 시절을 떠올리며 한국전쟁의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정부가 그토록 약속했던 평화는 이제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내로남불이란 단어가 유난히도 많이 언급되었던 한해이다. 내가 하면 되고 남이 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정치인들이 상황이 바뀔 때마다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모습. 그 모습이 2019년엔 유난히 느껴졌다.북한과의 평화국면도 사라지고 대결국면이 다시 시작되는 분위기다. 미국과 북한은 무력을 언급했고, 또한 군사긴장완화 계획으로 비무장지대내 GP(감시초소) 시범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등 진행되던 계획도 이젠 수포로 돌아가는 분위기다.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식을 하고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우선 정상화, 서해경제공동특구·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 협의 등 화려한 약속도 물거품이다. 도대체 지구상 최고의 일당 독재국가와 평화 협상을 무장해제를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깍두기처럼 처해진 한국의 입장은 동정심마저 생길 정도이다.한일 관계도 최악의 길을 걷고 있다. 65년 한일협정 이후 최대의 위기가 한일간에 형성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우리가 가장 동맹관계가 견고해야할 국가들이다. 경제 상황은 말이 아니다. 집값과 땅값은 사상 최대로 오르고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경제상황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극단적 선택이 많았던 한해이다. 정치적 이유로 또 생활고로 많은 사람이 떠났다.한전공대 설립과 특목고 폐지로 대변되는 “대통령 공약과 한마디”는 무리한 정책임을 알면서도 강행되고 있다. 최근 터진 청와대의 선거개입 건은 결말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 국가,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것일까? 쿼바디스 코리아 (Quo Vadis Korea·한국이여 어디로 가는가)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2020년은 총선거의 해이다. 선거를 통해 민심이 잘 반영되고 새로운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말 중에 “Tough times never last, but, tough people do ”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유명한 로벗 쉴러 목사가 말한 이 말은 “힘든 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힘든 시간을 견딘자는 오래간다”이다. 이 교훈이 우리의 경우이길 빌어본다.

2019-12-05

우연을 가장한 행운

옛날 구종직이라는 말단 관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경회루의 경치가 아름다워 몰래 궁중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임금의 거동이 있었습니다. 구종직은 급히 도망치려 했지만 담을 뛰어넘어야 할 형편이어서 어쩔 수 없이 길을 비켜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금이 묻습니다.“누구이기에 여기까지 들어왔느냐?”구종직이 우물쭈물하자, 임금이 갑자기 질문합니다.“여차여차한 문장을 아느냐?”“네. 알고 있는 줄 아뢰오.”“그럼 한 번 들어보자.”구종직은 평소에 글 읽기를 좋아하는지라 문장이 술술 나왔습니다. 가상히 여긴 임금은 정9품 말단 관리였던 그에게 종5품 벼슬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구종직이 순식간에 벼슬에 오른 이 사건을 안 신하들은 불평이 많았습니다. 임금은 신하들을 불러 구종직에게 물었던 그 문장을 외게 했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구종직을 발탁해 벼슬로 임용한 임금은 세종대왕입니다. 세종이 물었던 질문은 ‘춘추’였고 구종직은 세종 앞에서 춘추 한 권을 모조리 암송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늘 인재에 목말라했던 세종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언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는 중에도 부지런히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구종직의 태도도 놀랍습니다. 그 후 구종직은 세조, 성종 시대를 거치면서 자신의 배움을 마음껏 발휘해 국가를 위해 봉사합니다. 1466년에는 공조참판에 이르고 자헌대부까지 올랐습니다. 문장이 뛰어나고 역학, 경학에 밝았지요.엘빈 토플러는 말합니다. “21세기 문맹은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배우기를 멈춘 사람이다.” 인공지능이전방위적으로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배움에 열려 있는 누군가에게는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이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2020년에는 어떤 배움의 즐거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5

오천시의원 주민소환은 무엇을 가리나

안찬규기획취재부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광장으로 모여든 촛불 물결이 국가 원수를 물러나게 한 나라이기도 하다. 세계 200여 국가 중 대통령을 탄핵(彈劾)한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과 독일, 브라질, 에콰도르 등 12개 국가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즈 등 외신들은 공통으로 대규모 촛불집회가 탄핵의 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프랑스 르몽드는 “한국인들은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내려고 대규모로 움직였다. 바로 그들이 대통령으로부터 어설픈 사과를 하게 만들었고 특별검사에게 수사를 맡기게 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도 “한국인들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저항한 지 30년이 지난 후, 그들은 평화로운 방법으로 대통령을 파면하려고 저항했다”고 평가했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 국가의 본질이 촛불집회로 드러났다고도 볼 수 있다.최근 포항시 남구 오천읍 주민들은 지역구 박정호, 이나겸 시의원 2명을 상대로 주민소환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소환제는 재판이나 탄핵·행정처분에 의한 파면과는 달리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통제 방법이다. 주민소환을 청구한 ‘오천 SRF반대 어머니회(이하 어머니회)’는 “주민들이 SRF폐쇄와 이전 등을 요구하는데도 오천지역 자유한국당 두 시의원이 이를 무시한 채 포항시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며 선관위로부터 주민소환청구인 대표자 등록증을 교부받아 지난 7월 말부터 서명운동을 벌여왔다. 이들이 받은 서명은 투표 발의 요건을 충족했고, 주민소환투표일이 오는 12월 18일로 결정·공고됐다. 이 제도가 시작된 2007년부터 현재까지 90여건의 주민소환이 진행됐으나, 투표까지 간 사례는 8건에 불과했던 만큼 오천읍민들의 분노가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양측은 포항시남구선거관리위원회가 주민소환투표일을 공고한 지난달 26일부터 투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각종 구설이 불거졌다. 한 이장이 SNS를 통해 투표독려 문자를 보냈다가 입건될 처지에 놓였고, 논점과 벗어난 투표운동 홍보문구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주민소환은 SRF의 찬반을 가리는 투표가 아니라 두 시의원의 직무태만이나 잘못을 가리는 것이 목적이다. 청구한 쪽은 사실을 토대로 두 시의원을 경질해야 하는 이유를 알리고, 대상이 된 시의원들은 자신에 대한 의혹을 소명하면 된다. 선거운동처럼 경쟁이 아니므로 양측 다 선을 지키고 본인들의 주장만 알린다면 투표 운동이 과열될 이유가 없다. 양측 다 주민소환 투표와 관련한 법안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깨끗하고 공정한 투표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결은 다르지만, 광화문 비폭력 평화집회가 외신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것처럼 포항 오천읍 주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ack@kbmaeil.com

2019-12-04

12월 학교 하명 - 시험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1학기 때는 여유롭게 지내나 했는데, 2학기 오면서 내신 준비시킨다고 시험도 치고 있어요. 예민해지고, 친구와 갈등도 잦아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지난주부터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해요. 병원에서는 학교 스트레스래요. 아이 키우기 힘드네요.”지난 주 산자연중학교에서는 2020 학교설명회가 있었다. 지난 여름에 이어 전국에서 많은 학부모께서 학생의 행복 교육을 찾아 학교를 방문해 주셨다. 설명회가 끝나고 경기도에서 온 학부모께서 교무실 자리에 앉자마자 폭풍 같은 한숨과 함께 쏟아낸 이야기이다. 그 날 참가한 많은 중학생의 학부모와 이야기를 했는데, 공통점은 자유학년제의 배신이었다.“학생들의 꿈과 끼를 길러준다고요,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아요. 아이들이 이야기합니다, 자유학년제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과연 자유학년제를 운영하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진로를 지도해줄만한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보십니까. 자유학년제와 같은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교사들이 어떻게 학생들을 지도 할 수 있습니까. 그냥 연수나 이론으로 배워서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게 무슨 교육입니까? 자유학년제에 해당하는 학년의 자녀를 둔 교사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자신들의 아이들을 입시학원에 보내는 게 지금의 교육 현실입니다. 학생들 간의 교육 격차를 더 크게 만드는 것이 자유학년제라는 것을 정말 모르세요!”그 어떤 교육학자보다 더 정확하게 현재 실시되고 있는 자유학년(기)제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 학부모의 말에 필자는 그 어떤 부정도 할 수 없었다.자유학년제를 경험해 보지 못한 교사들의 “자유학년제 지도 가능 여부”를 따져 묻는 말은 지금도 필자의 마음에 꽂혀 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럼 지금의 자유학년(기)제는?한 나라의 문화는 곧 그 나라 국민들의 경험치(經驗値)이다. 국민들의 경험 수준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그 나라 문화 수준은 물론 그 나라 모습이 결정된다. 그럼 교육 수준은 어떨까? 그것은 교사의 경험치에 달렸다.우리나라 교사들의 경험치는 어떨까?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형식적으로는 자유학년(기)제다 뭐다 떠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성적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 이 나라 교육 수준과 이 나라 교사들의 경험치를 알만하다.교육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된지 오래다. 교육 문제의 핵심은 소통 부재이다. 근본도 없는 일방적인 교육당국의 하명과 그것을 따르기에 급급한 교사들에게 학생들의 이야기가 들릴 리 만무하다.교육 문제 해결의 해법은 소통이고, 그것의 구체적인 방법은 교사들의 경험치부터 넓히는 것이다.인성의 핵심 요소를 말하는 교사들 중에서 진정으로 사랑, 나눔, 배려 등을 실천하는 교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도전정신과 창조적인 삶을 이야기하면서 과연 이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몸소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교사는 몇이나 될까?또 답 없는 답답한 소리만 늘어놓았다. 시험 맹신자들이 만들어낸 시험 공화국의 학기말 시험 계절 12월, 한국 위기설이 아닌 한국 교육 붕괴설이 곧 현실이 될 것이 너무도 자명해 보이는 12월 첫 주다.

2019-12-04

온유에 대하여 2

‘벤허’의 전차 경주 장면에 나오는 네 마리 백마가 아라비아 명마입니다. 아라비아 말은 세계 최고 브랜드입니다. 그 배경에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옛날 아라비아에 말에 유독 관심이 많은 왕이 있었습니다. 온 천하를 다 뒤져 가장 뛰어난 준마(駿馬) 100필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구해 오라고 신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신하들은 정성껏 100필의 말을 구해왔지요. 왕은 뛰어난 조련사를 시켜 이 말들을 훈련시킵니다. 호각을 한 번 불면 달리기 시작하고 두 번 불면 어떤 일이 있어도 제자리에서 멈추게 했습니다.훈련이 다 되었을 때 왕은 특별한 시험을 시작합니다. 말들을 모두 마굿간에 넣은 뒤 사흘 동안 물을 주지 않습니다. 건초와 먹이는 주었지만, 물을 금지시킨 것이지요. 말들은 갈증에 시달리며 몹시 고통스러워합니다. 4일째 되는 날, 마굿간을 개방합니다. 100마리의 말들은 미친 듯이 개울가를 향해 초원을 달립니다. 그때 조련사가 호각을 두 번 불지요.이성을 잃은 말들은 조련사의 신호를 무시하고 거의 대부분의 말이 개울에서 허겁지겁 물을 먹기 바쁩니다. 그런데 딱 4마리의 말들이 브레이크를 잡았습니다. 호각 소리를 듣고 제자리에서 멈춥니다. 주인과의 약속을 무시하지 않은 것이지요. 왕은 나머지 96마리의 말을 처분하고 이 네 마리 말로 새로운 명마의 세계를 열어갑니다. 그 후손이 오늘날 아라비아 명마가 되었습니다.프라우스(온유)는 자신의 욕망, 추구, 의지를 내려놓고 겸손히 절대 선에 복종하는 태도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진리에 자신을 길들여가는 태도. 이것이 온유(meekness)함의 본래 뜻입니다.강철 같은 힘이 있으나, 그 힘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고 오직 선과 올바른 일에 절제하며 사용하는 능력입니다. 온유함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선물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4

6조를 내라고?!

김규종 경북대 교수‘다이내믹 코리아’는 쉬지 않는다. 나라 안팎의 사정도 그렇거니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역동적이며 욕망에 들뜨고 미래를 기획하는 한국인! 그래서 영국의 좌파 저술가 마틴 자크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에서 2050년 1인당 국민소득 1위로 대한민국을 꼽는다.그가 말하는 세계 1위 한국의 저변에 자리하는 것은 조지 소로스가 말하는 휴전선 철폐와 남북한 단일 경제공동체이리라.그것은 불과 30년 뒤의 일이다. 그것은 꿈도 아니고, 망상은 더더욱 아니다. 1960년대 세계 최빈국에서 2018년 30-50클럽에 가입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니까. 나는 ‘국뽕’ 개념으로 30∼50클럽을 말하지 않는다. 이념갈등, 빈부갈등, 노사갈등, 세대갈등, 종교갈등, 남녀갈등처럼 다차원적으로 작동하는 한국의 갈등기제는 임계점 직전까지 팽창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생각한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747’ 삽질과 ‘우주의 기운’ 운운했던 암흑시대를 지나면서도 우리는 세계가 인정하는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성취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무리 우심한 내우외환이 얽히고설킨다 해도 난관을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실패하지 않은 역사문화의 전달에 있다. 실패한 과거에서 배우고, 잘못된 과거를 관 속에 처넣고 대못을 치는 강력한 역사이해와 실천기제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얼마 전부터 한국사회를 요동치게 하는 청구서가 우방이자 동맹이라는 미국에서 날아들었다. 물경 6조를 내란다. 작년에 1조 2천억을 냈는데, 그 5배를 내라는 것이다.2015년에 담뱃값을 2천원 올리자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2천500원을 4천500원으로 0.8배 인상한 것이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한꺼번에 5배를 인상하라는 통지서를 날리고, 이의를 제기하니까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버린다.우리 국민 모두는 알고 있다. 한미동맹이 한미일동맹의 하부구조에 있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일본열도를 지켜주는 미일동맹의 실핏줄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기지 지어주고, 10조원으로 추산되는 미군기지 정화비용도 청구하지 않은 한국정부 아닌가?! 그런데 그들이 요구하는 6조의 실상을 보면 기도 차지 않는다.기존에 관행적으로 지급한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통상 9천억)는 당연하고, 괌이나 알래스카, 하와이에 있는 미군 순환배치 비용과 전략자산 전개비용도 한국이 내라는 것이다. 주한미군 특별수당은 물론 미군이 동반한 가족에게도 특별수당 주면 안 되겠냐는 게 미국의 주장이자 요구다. 이런 요구에 정부는 물론이고, 정치권 모두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때마침 우리에게는 지소미아 카드도 아직 살아 있고, 중국에서는 왕의 외교부장이 12월 4∼5일 이틀 예정으로 한국을 찾는다. 2016년 사드배치 이후 3년 만의 일이다. 우리가 가진 석장의 카드를 지혜롭게 활용해 전례 없는 난국을 풀어나가야 할 때다.

2019-12-04

ESG투자

ESG 투자에서 ESG는 환경·사회·지배구조(Environment· Social·Governance)의 약자다. 기업의 재무적 성과뿐만 아니라 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같은 환경적 요소나 지배구조처럼 비재무적 성과를 고려하는 투자를 의미한다. 즉, 투자 의사를 결정할 때 ‘사회책임투자’(SRI) 혹은 ‘지속가능투자’의 관점을 기업의 재무적 요소들과 함께 고려하는 투자를 말한다. 사회책임투자란 매출이나 수익성외에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가치와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ESG 등의 비재무적 요소를 충분히 반영해 평가한다. 기업의 ESG 성과를 활용한 투자 방식은 투자자들의 장기적 수익을 추구하는 한편, 기업 행동이 사회에 이익이 되도록 영향을 줄 수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업과 투자자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지면서 세계적으로 많은 금융기관이 ESG 평가정보를 활용하고 있다. 영국(2000년)을 시작으로 스웨덴, 독일, 캐나다, 벨기에,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연기금을 중심으로 ESG 정보 공시 의무 제도를 도입했다. UN은 2006년 출범한 유엔책임투자원칙(UNPRI)을 통해 ESG 이슈를 고려한 사회책임투자를 장려하고 있다.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전체 자산군에 사회책임투자 원칙을 적용키로 하면서 ESG요소를 갖춘 착한 기업에 대한 투자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지난 2016년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이후에 사회책임투자(SRI) 펀드의 순자산이 증가하고 펀드 개수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착한기업에 대한 투자로 수익도 창출된다면 국민혈세로 조성된 기관투자가의 투자로서는 ‘일석이조’의 쾌거라 할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04

어린이의 나라는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나라를 잃었던 시절에 소파 방정환은 ‘우리의 미래는 어린 아이들에게 있다’고 했다. 작고 어린 꼬맹이들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없다는 생각에 ‘어린이’라는 표현을 지어주었다. 그런 어른들이 모여서 어린이를 위한 여러 활동을 한 끝에, 우리 정부는 1957년에 ‘어린이헌장’을 제정했다. 7개 조로 만들어진 헌장은 ‘어린이는 위험에서 맨 먼저 구출돼야 한다’라고 분명히 적고 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는 얼토당토않게 어린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긴 엄마아빠가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임에도 과속 자동차에 치였다거나 언덕받이 비탈길에서 굴러내린 트럭에 변을 당한 아이들이 있다는 게 아닌가. 우리는 어린이를 위험에서 구출하고 있는가.어린이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보다 우리에게 급한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정치인들의 다툼 마당에 얽히게 된 부모들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어린이헌장이 전문에 적고 있는 대로, 우리는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힘쓰고’ 있는가. 사회복리와 민생문제를 정치논리의 거래수단으로 사용하는 일은 관련 당사자들의 마음을 힘들게 할 뿐 아니라 정치의 진행에도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할 터이다. 아이가 당한 사고 앞에 누구라도 다른 핑계를 들이대면서 우선순위를 논한다면 당신은 참을 수 있을까. 눈물을 닦아줘도 모자랄 판에 엉뚱한 정치적 계산은 내려놓아야 한다. 어린이 안전을 위한 배려는 그야말로 ‘맨 먼저’ 해야 한다. 어른들 계산 탓에 아이들이 위험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칠 안에, 유엔(UN)이 정한 인권의 날(Human Rights Day)을 맞는다. 올해는 특별히, ‘청소년’들이 각종 인권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게 하고 인권침해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도록 캠페인을 벌인다고 한다. 어린이 인권에 대해서도 배려해, 어린이들을 위험과 폭력, 어려움과 문제들로부터 보호할 기준을 세운다고 한다. 각국의 정부들이 어린이들의 인권신장을 위하여 마음을 모은다고도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어린이들의 하루하루를 여러 위험으로부터 적절하게 보호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충분히 마련해 주고’ 있는가.필자는 한때, 우리에게 ‘어린이날’이 따로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한 미국 친구의 한 마디에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한국은 일 년에 단 하루를 정해 어린이날이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날마다 한국의 어린이날처럼 지내는데….’ 우리에게 어린이는 정말로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사람’인가. 어린이헌장은 ‘어린이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악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그들의 안전을 놓고 흥정하는 꼴을 보지 않았는가. 어린이가 안심하고 즐겁게 자라나는 나라가 돼야 한다. 나라를 찾기 위해서도, ‘어린이가 잘 자라야 한다’고 했던 그 어른들의 마음을 되새겨야 한다.

2019-12-04

자동차의 짧은 역사

△최초의 자동차 아니, 최초의 자동차 사고1769년, 오스트리아의 육군 공병 니콜라 퀴뇨는 들뜬 마음이 무척 들떠 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이상한 탈 것을 몰고 나왔다.그가 타고 있는 것은 앞에는 한 개, 뒤에는 두 개의 바퀴가 달려 있는 세발차다. 그렇다. 이것은 증기기관 자동차다. 이 최초의 자동차는 그 무게가 무려 5t에 이르렀고, 속도는 무게만큼이나 느려서 시간당 3.2km를 달렸다. 이 정도면 보통의 성인보다 느리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퀴뇨는 이 거대하고 육중한 증기기관 자동차를 끌고 나왔다. 육군 대신에게 이 경이로운 작품을 보여준 후 무거운 대포를 운반하는 모습을 보여줄 작정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명민한 육군대신이 당박에 퀴뇨가 만든 자동차의 용도를 알아보고 막대한 사례금을 줄 것이라는 건 퀴뇨 생각이었다.퀴뇨는 그런 기대를 품고 몸소 파리교외의 방생숲까지 시범운전을 나갔다. 그러고 보면 이것이 최초의 드라이브인 셈이다. 거기까진 좋았다. 받은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날이 너무 좋아 깜빡 졸았던 것일까?퀴뇨는 이 중요한 순간, 남의 집 담벼락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만다. 그리하여 퀴뇨는 최초의 증기기관 자동차 발명자이자 동시에 최초의 자동차 사고를 낸 운전자라는 오명을 가져야 했다.퀴뇨 덕분에 자동차는 태동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야 했다. 그는 또 다른 후원자를 찾기 위해 이것을 타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다 두 번이나 체포되고,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종국에는 추방당해 객사했다.△19세기, 자동차의 전성시대자동차는 퀴뇨의 삶만큼이나 우울했다. 17∼18세기를 주름잡은 것은 증기기관차였다. 증기기관차는 유럽 전역에 철도문명시대를 열었다. 기차는 더 빨리 달리게 되었고, 더 멀리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기차는 사람만 운반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하는 문화까지 운반했다. 유럽의 산업문명은 기차와 함께 더 빨리, 더 멀리까지 퍼져 나가 아시아의 동쪽 끝인 우리나라에까지 와 닿을 수 있었다.그러나 19세기가 되면서 판세는 역전되었다. 유럽에는 증기기관 차량이 버스로 쓰일 정도로 많이 보급되었으며, 미국에서는 20세기 초까지도 생산됐다. 100년 가까운 동안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1906년 플로리다에서 개최된 ‘스피드위크’ 경기(현재 ‘데이토나 500’)에서 시속 203km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증기기관 자동차는 강력했다. 하지만 물을 끓여서 달려야 하므로 물도 실어야 했고, 물을 끓일 수 있는 연료인 석탄도 실어야 했고, 증기를 배출하는 장치까지 만들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갖추려다 보니 자동차는 무겁고 커야만 했다. 이러한 문제는 가솔린이나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에 의해 극복된다.가솔린 엔진은 1864년 니콜라우스 오토(Nikolaus August Otto, 1832∼1891)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이를 실용화한 것은 현대 자동차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칼 벤츠(Karl Friedrich Benz, 1844∼1929)와 고틀립 다임러(Gottlieb Daimler, 1834∼1900)에 의해서였다. 1885년에 고틀립 다임러는 가솔린 엔진을 자전거에 부착하여 최초의 오토바이를 만들었으며, 1886년 벤츠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들어 이를 특허 등록했다. 두 사람이 다임러-벤츠Daimler-Benz 자동차회사를 창업하면서 본격적인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가 열리게 된다.1889년 독일의 스퍼거는 자전거의 핸들처럼 생긴 조향장치를 원형으로 바꾸었고, 스포츠카의 대명사가 된 포르쉐의 창업자 페르디난드 포르쉐는 1899년에 전기와 가솔린 엔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만들기도 했다. 1898년 윈톤 자동차 운송회사는 최초로 자동차를 광고했는데, 자동차 가격이 1천달러에 달했다. 당시 미국에서 50달러 정도면 집과 토지까지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하니, 가히 파격적인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짧은 시간 동안에 자동차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일반 대중에게 자동차는 먼 곳에 있었다. 그랬던 자동차는 헨리 포드에 의해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1910년경 포드는 신시네티의 도축장에서 컨베이어벨트시스템의 일괄작업에 영감을 얻어, 이를 자동차조립공정에 도입하였다. 장인 몇 명이 자동차를 만들던 기존의 생산 방식을 과감히 바꾸었다. 모든 부품을 표준화했고,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하여 전문분업화함으로써 대량생산시대를 열었다.당시 차량 한 대당 생산비가 2천달러 가량 들던 것을 250달러인 거의 1/10의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다른 회사보다 싼 값에 자동차를 공급했고, 이렇게 되자 시장점유율을 8%에서 50%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한때 포드사의 자동차는 세계의 모든 길을 달렸다. 포드 자동차는 동방의 먼나라 대한제국에까지 들어와 고종임금이 타는 어차로 쓰기도 했다. ‘마이 카(My Car)’시대의 여명은 그렇게 밝아오고 있었다.

2019-12-03

짖는 행동 멈추게 하는 방법

개는 낯선 사람이나 동물이 자기 영역에 들어오면 본능적으로 권세본능과 경계심 때문에 흥분해서 짖는다. 개는 자기영역을 지키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짖기 때문에 매우 피곤하다.개는 마음이 편치 않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짖게 된다. 개가 짖다가 음악을 듣게 되었을 때 짖지 않고 평상심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간혹 피아노 소리를 듣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개도 있다. 어떤 특정음에 반응하는 현상이 간혹 있는데 이것은 개의 습성 때문이다.야생의 개나 늑대는 들판에서 사냥을 할 때 무리를 불러 모으기 위해 ‘멀리짖기’를 한다. 사람에게 구슬픈 소리로 들리는 개의 ‘멀리짖기’는 동료를 부르는 일종의 교신음이다.개가 특정한 소리에 반응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음이 개에게 교신음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에 평상심을 보이는 개가 있다면 개를 혼자두고 외출할 때 그 음악을 틀어주고 나오는 조건 반사를 활용해도 좋다. 가끔 타이머를 이용해 외출한 이후에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좋은데 개의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줄 수 있다.차에 타는 것을 싫어하는 개들에게도 평소 듣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좋은데, 음악을 들었을 때 개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느껴본 사람은 진정한 애견인이다.야생 개과 동물들이 짖는 것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침묵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개는 무리의 리더이거나 강아지의 어미 또는 무리에서 그 개보다 분명하게 순위가 높은 개다.우위에 있는 개는 짖고 있는 강아지의 코를 이빨을 세우지 않고 물면서 짧고 낮게 목쉰 듯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멀리까지 퍼지지 않고 한순간에 끝난다. 강아지는 코를 물려도 아픔은 느끼지 않기 때문에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가지 않고 이것으로 대게 곧바로 조용해진다.이런 행동을 응용하면 간단하게 개를 침묵 시킬 수 있다. 개를 왼쪽에 앉히고 개의 등쪽에서 당신의 왼 손가락을 목줄 밑에 끼워넣고 왼손으로 목줄을 잡으면서 오른손으로 개의 코를 감싸듯이 눌러 내린다.침착한 목소리로 “조용히!”라고 말한다. 필요하면 이 동작을 반복한다. 견종에 따라서 두 번에서 열 번 정도의 반복으로 “조용히” 라는 명령어와 침묵하는 것을 연결짓는다.이 방법은 무리의 리더가 시끄러운 강아지나 어린 멤버를 어떻게 침묵시키는지를 보고 그 방법을 본 뜬 것이다. 왼손으로 목줄을 쥐는 것은 단지 개의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오른손은 리더가 강아지의 코를 무는 것과 같은 작용을 한다. 침착한 목소리로 “조용히” 라고 말하는 것은 낮고 짧은 목쉰 듯한 으르렁거림을 흉내낸 것이다.이동훈권세본능으로 짖기를 멈추지 않는 심각한 개는 목줄을 사용해서 짖기를 멈추게 할 수 있는데 짖기를 멈추지 않고 특정 위치로 올라가려는 개의 경우 시선을 개와 맞추지 않고 목줄을 잡아 당겨 행동을 제어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개는 줄이 당겨지면서 목이 아픈 것을 체벌이라고 생각한다. 목줄을 사용하는 체벌에서 개와 사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체벌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목줄을 당기는 것을 알지 못하도록 서로 시선을 맞추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개를 교육할 때 결과가 칭찬이면 그 행동은 증가하고 결과가 체벌이면 그 행동은 감소한다. 개의 특정 행동에 대한 칭찬이나 체벌은 빠를수록 좋고 늦어도 5초 이내에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도 꼭 기억하자./서라벌대 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12-03

歲暮의 언저리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어느덧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매듭달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올해도 또 한 겹 연륜(年輪)의 테를 남기며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다. 가을에서 겨울로, 기해년에서 경자년으로 시간의 바톤을 이어가며 서서히 세월의 바퀴를 굴려가고 있다.세모(歲暮)의 언저리에 서면 만감이 교차한다. 연초에 다짐했던 계획이나 목표를 어느 정도 실행하고 이뤘는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신뢰와 관계는 어땠는지, 고난과 예기치 못한 일들에 직면해서는 어떻게 참고 극복해냈는지, 실로 끊임없이 희비의 쌍곡선이 그려지고 행, 불운의 갈피가 아스라하게 펼쳐지는 듯하다.설레임과 기대로 맞이한 새해의 숱한 나날 동안 별반 이뤄놓은 일도 없이 그냥 보내야 한다면 아쉽고 허전하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있어서 무위(無爲)한 날은 단 하루도 없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하루를 나름의 방식과 내용으로 시간을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돋보이거나 괄목할만한 일이 아닐지라도 매 순간은 개개인 생활의 단면이고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루 한달 한해를 보내면서 개인이건 조직이건 가시적인 성과나 목표 달성의 정도에 따라 보람과 희열의 체감도가 다르게 나타남은 보편적인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사람들이 애써 노력하고 이룩한 결과물이 업적이 되고 내공과 지혜가 더해지면서 사회의 진보와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세월은 무심치 않아 연륜을 쌓고, 인생은 덧없지 않아 경륜을 낳는다고 했던가?12월은 한해를 매듭하기도 하지만 새해를 준비하는 달이기도 하다. 지나 온 날들에 대한 성찰과 미진함에 대한 점검으로 새로운 날들의 포부와 희망을 가늠해보는 때다.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의 충실함을 일구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비슷한 이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맘 때가 되면 망년회니 송년회니 모임을 하면서 한 해 동안의 괴로움이나 근심 걱정을 지는 해와 함께 잊고 묻어버리면서, 좀 더 밝고 희망찬 날들을 기약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하루하루 숨가쁘게 살아온 날들에 대한 수고와 감사의 마음으로 주위에 온정을 베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침잠의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가 자신을 위무하며 명상과 관조의 세계에 접어들기도 한다. 그렇게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들 속에서 사람들은 한 겹 한 겹 나이테를 더해 가듯이 관록을 채워가며 성장과 농밀함을 더해간다.무슨 일이든지 끝이 좋아야 시작과 과정을 넉넉하게 웃으며 되돌아 볼 수 있다. 물론, 시작이 반이고,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자체도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결말이 빈약하다거나 흠결이 생기면, 결국 아쉽고 안타깝거나 오점으로 남는 일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숱하게 접해 왔다. 기해년 수묵빛 세월의 여울목에서, 한 달 남짓 남은 올해지만 끝까지 잘 갈무리하여 보다 꿈이 밝고 푸른 의미있는 내년을 준비해보자.

2019-12-03

포항의 시티즌 브랜딩을 시작하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어느 나라나 기업이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담보하기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원을 꼽는다면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우수한 인재에 대한 수요는 국가나 기업의 발전 정도나 규모를 불문한다. 그들 모두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요구하는 인재상은 다를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청년들이 취업하기 어렵다는 시기에도 기업들은 언제나 인재난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기업들은 자사의 매력을 높여 재능이나 경험이 풍부한 우수 인재의 고용을 쉽게 하고 이직을 억제하며 사원과 기업 간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는 임플로이어 브랜딩(employer branding)이라는 홍보 전략을 구사한다.최근 포항시의 인구유출이 심상치 않다. 도시 인구의 이동은 농어촌 인구와 달리 비교적 이동을 준비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매우 탄력적이다. 도시인구는 일종의 생물과 같아서 충분한 먹거리가 있으면 몰려들고, 그렇지 않으면 흩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그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직장생활을 하다 은퇴해 새로운 지역으로의 이주를 꿈꾸기도 힘든 지역에 충성도가 높은 이른바 애향시민의 비율이 높은 경우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권을 제외하면 대부분 먼저 자녀들이 이탈하고 이후 그 자녀들이 성공적으로 이탈한 지역에 정착하게 되면 농어촌과는 달리 직장근로자들이 밀집한 도시의 부모가 함께 이주를 선택하는 것은 비교적 자유롭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제 포항은 여느 지자체들과는 달리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 전국 지자체들은 국제적인 이벤트 개최 안내, 지역 관광지나 특산품을 홍보하는데 그치고 있다. 물론 지역 관광객의 유치와 특산물을 알리는데 지자체가 적극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한 마케팅은 해당 생산 기업이나 농어촌의 협동조합 차원에서도 충분히 자신들의 생계가 걸린 만큼 스스로 최선을 다해 광고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지자체는 보고만 있으라는 것인가. 아니다. 우선순위를 지역의 관광객유치, 특산물판매보다는 이왕이면 지속 가능도시를 담보하기 위한 신규 시민의 확보와 이주억제를 위한 부분에 좀 더 주목하였으면 하는 것이다.기업들이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임플로이어 브랜딩이라는 전략을 구사하듯이, 포항시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포항이 살기 좋은 고장, 자녀를 키우고 양육하기에 좋은 도시, 은퇴이후 삶의 질과 만족도가 높은 바닷가의 그러나 대도시이고 국제항만도시라는 다양한 장점을 알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시티즌 브랜딩(citizen branding)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의 포항시민들도 다른 도시로 이주하지 않고 계속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비전. 전국에 소재한 예비 포항시민들에게 포항의 장점을 알리는 홍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도시마케팅이 절실한 시점이다. 외국의 방송에서 대통령이 한국을 알리는 광고를 본적도 있다. 포항시도 시장이 직접 출연해 ‘포항으로 이사 오이소.’라고 나서는 적극적인 도시마케팅을 할 때가 왔다. 포항의 각계각층 모두가 새로운 이웃을 맞이하기 위한 시티즌 브랜딩에 동참하자.

2019-12-03

온유에 대하여 1

온유(溫柔)의 한자어를 풀어보면 따뜻할 온(溫), 부드러울 유(柔)입니다. 영어로는 meekness죠.어감으로 느껴지는 온유는 부드럽고 나약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약함을 뜻하는 weakness와 어감도 비슷해서 더욱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일까요?온유의 진정한 의미를 파헤치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집니다. 용기, 절제, 지혜, 경건 등과 더불어 온유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고대 철학의 중요한 미덕 가운데 하나였지요.희랍 원어로 온유는 프라우스(πραν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온유의 미덕을 힘(power)이 있을 때 그 힘을 잘 조절하는 능력으로 표현합니다. 희랍어 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프라우스에는 부드러움이 있으나 배후에는 강철과 같은 힘이 있다.”프라우스의 원래 뜻은, 야생 동물이 주인에게 잘 길들여져서 쉽게 다룰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구 상에서 거래되는 동물 중에 가장 비싼 종이 무엇인지 혹시 아십니까? 써러브렛(Thoroughbred)이라는 종마는 실전에서 뛰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지 종자만으로 최소 150억원 정도에 거래가 이뤄진다고 합니다.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비싼 말은 Sunday Silence 즉 일요일의 침묵이라는 이름의 수컷 종마인데요. 일본의 한 갑부가 이 종마를 구매하려고 1억달러(약 1천200억원)의 금액을 제시했다가 단번에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왜냐구요? 이 종마의 씨를 받기 위해 전 세계 각국에서 암컷 명마들이 줄을 지어 섰기 때문이지요.수익이 대단합니다. 1회 교배에 받는 비용이 5억원이라나요? 1년에 줄잡아 100번 정도 교배가 성사된다 하니, 바보가 아닌 한 연매출 500억을 거뜬히 올리는 종마를 1천200억에 팔아 치울 리가 없겠습니다. 참으로 오묘한 말(馬)들의 세상입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3

인적쇄신과 정치지도자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여야 정치인을 막론하고 대구·경북지역에 대한 찬사는 수도 없이 많다. 우파는 거의 단골로 보수의 성지, 보수의 터전 등으로, 좌파는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 언급한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주 듣다 보니 이제 대구·경북 시도민은 이같은 찬사에 거의 무감각할 정도로 흘러간 옛노래가 됐다. 여야 정치인들도 더 이상 이런 찬사로는 지역을 공략할 수 없음을 느끼지만, 이런 발언들이 종종 들린다.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의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최근 자유한국당에서는 영남권 중진을 비롯한 강남 3구 의원에 대한 물갈이론이 제기됐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이른바 한국당 살생부까지 등장했다는 소문이다. 특히 지역은 30% 인적쇄신을 넘어 최고 50%까지 교체될 것이라는 풍문이 나돌고 있다. 근거로 서울과 수도권에는 인재풀이 거의 없고 유독 영남권에서만 후보자가 넘쳐나기 때문이라고 한다.하지만,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이런 논리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3선 이상 영남권 국회의원을 오는 총선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에 원인이 있다. 그동안 정치권은 지역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수의 성지이자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추켜세우면서도 더 이상 대구·경북에서 정치 지도자를 배출하지 않겠다는 소리와 같기 때문이다.그동안 보수당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내리꽂는데 열중하면서 다선 의원을 배출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나마 다선 의원이 된 이들을 향해 이제는 인적쇄신의 대상이 되라고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만일 이들마저 지역에서 사라진다면 다선 국회의원의 몫인 국회의장이나 당 대표 등도 배출할 수 없는 지역으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한국당은 대구·경북을 먹기에는 너무 양이 적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과 같은 존재로 보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역민이 불만을 가지는 요소가 되고도 남는다. 결국 한국당의 인적쇄신안은 대구·경북은 상징적인 보수의 성지로 남고 선거때 그냥 표만 주면 된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정권 창출을 위해 다잡은 물고기인 대구·경북에는 먹이를 주지 않겠다는 심보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나마 정치 지도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인사를 한국당이 인적쇄신이라는 말로 포장해 말살하려는 의도로 의심받기에도 충분하다.인적쇄신을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선택지를 내놓으라는 소리다. 최근과 같은 정치적 홀대를 지역민들은 익히 경험한 바 있고 선거 결과를 통해 철저히 응징해 왔다. 지역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은 물론이고 지난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김부겸·홍의락 의원을 탄생시킨 것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지역민들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언급하는 정치적인 기득권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 지도자를 키우지 않는 박탈감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다. 최근 한국당의 무작정 영남권 중진 인적쇄신론이 오는 총선에서 가져올 파장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한다는 한국당이 오히려 지역을 홀대하는 상황을 시도민이 그냥 지켜보기만 하지는 않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2019-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