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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베르테르 효과

베르테르 효과는 유명인 또는 평소 존경하거나 선망하던 인물이 자살할 경우,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모방 자살(copycat suicide), 자살 전염(suicide contagion)이라고도 한다.베르테르 효과는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됐다. 괴테가 1774년에 간행한 이 소설에서 괴테는 자신의 실연 체험을 바탕으로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불멸의 고전을 남겼다.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약혼자가 있는 로테라는 여인을 사랑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자 깊은 실의에 빠진다. 결국 베르테르는 로테와의 추억이 깃든 옷을 입고 권총 자살을 한다. 소설 발간 후 유럽의 청년들 사이에 베르테르의 열풍이 불었다. 청년들은 소설에 묘사된 베르테르의 옷차림을 따라했고, 베르테르의 고뇌에 공감했다. 심지어 베르테르를 모방한 자살 시도까지 하게됐다.미국의 자살 연구학자 필립스(David Philips)는 유명인의 자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일반인의 자살이 급증하는 패턴을 발견하고, 이 현상에 ‘베르테르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실제로 록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 이후 그를 추모하는 자살 행렬이 있었고, 영화배우 장국영이 투신자살하자, 그가 몸을 던진 홍콩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일반인이 목숨을 끊는 경우도 발생했다.24일 가수 겸 배우 구하라가 28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하자 베르테르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우리나라 자살 사망률 증가 역시 베르테르 효과가 원인으로 꼽혔다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정한 언론의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따른 신중한 보도가 필요한 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1-25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붙여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한국과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의 대화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하여 25일부터 부산에서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번 특별정상회의는 2009년 제주, 2014년 부산에 이어 세 번째이며, 한·메콩 정상회의도 처음으로 개최된다.이 회의는 현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의 일환이다. 동남아시아의 경제적·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고 한국 외교의 다변화가 절실하다는 점에서 아세안 외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전반기에 이미 아세안 10개 회원국 방문을 완료함으로써 정책추진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이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대통령직속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와 외교부 ‘아세안국’을 신설하고, 주아세안대표부를 격상하는 등 제도적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도 평가할 만 하다.그럼에도 신남방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적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력파트너인 ‘아세안’과 ‘아세안 방식(ASEAN way)’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대통령의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 방문 때 있었던 ‘의전 실수’는 아세안에 대한 전문성 부족이었고, 아세안의 독특한 국제협력방식인 ‘협의를 통한 합의, 점진적·비공식적 접근, 조용한 외교(quiet diplomacy)’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은 정책결정자는 물론이고 외교실무자들의 아세안에 대한 전문성이 크게 제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둘째, 장기적 관점에서 ‘윈-윈’할 수 있는 호혜적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아세안은 중국 다음으로 중요한 교역대상이며, 한국과 아세안 교역은 한국의 일방적 흑자이다. 한국의 무역흑자는 2018년 406억 달러, 2019년 10월 현재 300억 달러이다. 이러한 교역불균형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협력의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아세안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를 비롯하여 다양한 방식의 지원을 더욱 확대함으로써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셋째, 사회문화적 교류와 협력의 강화이다. 한·아세안 관계는 상호신뢰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쌍방향의 사회문화적 교류확대가 절실하다. 현재는 동남아지역의 한류 확산에 비해서 한국인의 동남아문화에 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에 살고 있는 동남아 출신의 결혼이민자 및 이주노동자들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한·아세안 관계 발전에 가교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마지막으로 아세안을 국내정치나 대북정책에 이용하려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조용한 외교’를 선호하는 아세안의 협력방식을 고려할 때 ‘요란한 외교 이벤트’는 대국민 선전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실질적 협력을 증대시키기는 어렵다. 또한 이번 특별정상회의를 대북정책에 활용하려고 김정은을 초청했다가 거절당한데서 알 수 있듯이,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외교’는 북한뿐만 아니라 아세안으로부터도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2019-11-25

오직, 책 읽어주기를!

김현욱 시인기해(己亥)년도 어느덧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12월은 갈무리하는 달이다. 갈무리는 정리, 저장, 마무리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한국어 대사전 예문으로 ‘어머니는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의 갈무리 때문에 바쁘셨다’나 ‘갈무리를 제대로 못 하면 그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수 있다’로 쓰인다. 12월은 ‘시작이 반이다’보다는 ‘석 달 장마에도 개부심이 제일’이라는 속담이 어울린다. 개부심은 큰 장마가 끝난 후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퍼붓는 비를 말한다. 아주 새롭게 하는 것을 뜻한다. 마무리가 중요함을 빗된 속담이다.올 한 해 ‘책 읽어주기’ 강의를 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선생님과 학부모와 아이들을 떠올려 본다. 지난주에는 경주 감포초등학교 학부모와 선생님을 만났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된 책 읽어주기 연수는 9시 30분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쉬는 시간도 없이 책 3권을 읽어드렸다. 다비드 칼리의 그림책 나는 기다립니다, 고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김소연 시인의 에세이집 한 글자 사전이 그 주인공이다. 언제나 그랬듯 책 읽어주는 시간은 순수한 웃음과 따뜻한 공감이 넘치는 시간이다. 책 읽어주는 시간은 재미와 감동, 눈물과 성찰이 촛불처럼 타오르는 시간이다. 자신과 타인과 가족과 세상을 동시에 발견하는 시간이다. 아, 이토록 소중한 시간을 함께한 그리운 이들에게 축복을!많은 부모가 자녀를 책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한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줄 안다. 그렇지 않다. 방법이 아니라 실천만이 있다. 집에 책이 많으면, 교실에 학급문고가 많으면, 학교도서관이 훌륭하면, 공공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면, 자녀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한 것뿐이다. 책이 많다고 도서관이 좋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책 읽어주기다. 뉴먼(Neuman)의 연구에 따르면,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생후 6개월 정도부터 낮잠을 잘 때나 잠자리에서 부모가 매일 책을 읽어주었다고 한다. 또한 교사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 이야기에 대해 토의하는 활동을 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더 많이 읽는다고 한다.부모와 교사의 책 읽어주기는 우리 아이의 리터러시(읽고 쓰는 능력)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집이나 학교에서 꾸준히 책 읽어주기를 경험한 아이들은 독해력과 어휘력에서 매우 우수한 성적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잠자리에서 엄마나 아빠의 품에 안겨 책 읽어주는 부모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아이가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다. 교실에서 매주 책 읽어주는 선생님의 눈빛과 목소리는 아이의 영혼에 그대로 아로새겨진다. 책 읽어주기는 우리 아이에게 햇빛을 쫴 주는 것과 같다. 생명수를 떠 먹여주는 것과 같다.막상 해보면 쉽지 않다. 책 읽어주기는 실천이 제일 어렵다. 강연장에서 만난 학부모와 교사들의 고충에 십분 공감한다. 퇴근하면 쉬고 싶다. 묵언하고 싶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꾸준히 책 읽어주기를 실천하는 위대한 부모와 교사들이 있다. 그들을 보고 힘을 내자. 우리도 할 수 있다. 오직, 책 읽어주기를!

2019-11-24

전쟁의 상흔(傷痕) 3곳을 찾아가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6·25 전쟁은 민족적 비극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남침한 북한 공산군은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해 버렸다. 당시 우리 국군은 무엇을 했을까. 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분단의 상흔은 아직도 남아 있다. 천만 이산가족 당사자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2세, 3세들은 가족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지난주 실향민과 탈북민이 함께하는 부산 거제 탐방여행에 동참하였다. 부산의 임시 정부청사, 유엔군 묘지,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둘러보는 이틀 일정이었다.부산 임시 정부청사부터 찾았다. 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부산 부민동 2만8710㎡의 임시 정부청사, 붉은 벽돌식 2층 건물은 아직 잘 보존되어 있었다. 1923년 설립되어 일제 시부터 경남도청으로 사용했던 이 건물은 6·25 전쟁 시 임시 정부청사로 이용되었다. 이 건물에서 비상 국무회의가 개최되고, 대통령의 긴급 전시의 행정이 집행되었다. 당시의 도지사 관사는 오늘날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부산 임시 정부도 전황이 나쁘면 제주도로 옮길 계획을 세웠다니 아찔한 생각이 든다. 아픈 역사의 상처를 잊어버린 듯 이곳을 찾는 사람은 적었다.오후에는 새롭게 단장하여 6·25 참전 전사자 2천300기를 모시는 대연동의 유엔 기념공원을 찾았다. 공원 내에는 전쟁 시 희생된 4만869명의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진 위령벽도 있었다. 공원 내에는 16개 참전국과 의료 지원국 5개국 등 22개국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1955년 유엔 총회는 이곳을 세계 유일의 유엔군 공원으로 확정하였다. 우리 일행은 이역만리에서 파병되었다가 전쟁에서 산화한 이들에게 정중한 묵념을 올렸다.우리는 마지막 일정으로 거제 포로수용소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북한 인민군 포로 15만, 중국군 포로 2만 명, 최대 17만3천여 명의 포로가 수용되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여기에 여성 포로 300여 명도 포함되어 있음에 놀랐다. 현장에 재현된 형편없는 수용소 막사는 당시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곳에서는 반공포로와 친공포로간의 유혈 살상도 있었다.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관리관 돗드 준장이 포로들에게 납치되는 사건도 있었다. 반공 포로가 석방되고 휴전 협정이 체결되어 이 수용소는 폐지되었다.이번 탐방은 우리 모두 전쟁 아픈 상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번 방문객들은 대부분 6·25의 비극을 체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이다. 최근 북한을 탈출하여 새롭게 출발한 이들은 신기한 눈으로 비극의 현장을 바라보았다. 북에서 그들이 배운 6.25를 미화한 ‘민족해방’ 전쟁의 부당성만은 충분히 목도했을 것이다. 전쟁 시 남한으로 피난해온 실향민들은 전쟁의 참화를 체험하고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전쟁의 상흔을 바라보는 그들 간 시각에는 다소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비극이 이 땅에서 재현될 수 없다는 교훈은 모두가 깨닫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2019-11-24

세상을 변화시키는 특이점(Singularity)

특별한 재주나 지혜가 있는 이들을 초청해 들어보고 마음에 드는 만큼 상을 베푸는 왕이 있었습니다. 한 발명가는 체스 게임을 발명해 왕 앞에서 몇 게임을 시연합니다. 왕은 체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지요. 발명가에게 어떤 상을 받고 싶은지를 묻습니다. 발명가는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소원을 말합니다.“임금님. 제가 받고 싶은 상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 체스판의 첫째 칸에는 쌀 한 톨을 주시고, 둘째 칸에는 두 톨만, 셋째 칸에는 네 톨. 이렇게 한 칸을 지나갈 때마다 앞칸의 2배씩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왕은 순수해 보이는 발명가의 요청에 흔쾌히 그렇게 하겠노라 답을 하고 쌀을 준비해 당장 선물로 보내라고 지시합니다.잠시 후 얼굴이 하얗게 변한 신하가 왕에게 헐레벌떡 달려옵니다. 체스 칸의 절반을 채우면 논 한 마지기의 쌀이 필요했고, 쌀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왕이 가진 모든 재산과 영토를 다 합해도 상을 줄 수 없을 만큼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맙니다. 64칸을 다 채울 경우 필요한 쌀의 양은 922경 3천372조 톨입니다. 문화마다 결말은 다릅니다. 왕이 발명가를 죽이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기도 하고, 왕이 모든 재산을 발명가에게 빼앗긴다는 결말이 있기도 합니다.임계점을 넘을 때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할 수 없는 지점을 싱귤레러티(Singularity), 우리말로는 특이점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컴퓨터의 마이크로프로세서 발전 속도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느린 속도로 발전하더니 어느 순간 기하급수적으로 속도와 용량이 급증하죠. 휴대폰은 불과 30년 전만 해도 이 정도의 기능을 갖추려면 약 90억원 정도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특이점이 온 덕분에 지금은 누구나 90억짜리 물건 하나씩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앞으로 양자 컴퓨터가 펼칠 세상은 아찔하지요.(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24

계승해야 할 청도의 정신문화

이승율청도군수청도는 산이 푸르고 물이 맑고 인심이 좋은 삼청(三淸)의 고장, 소싸움의 고장으로 불릴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성지로 불린다.화랑정신과 새마을운동의 발상지가 청도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화랑정신, 조국근대화의 초석이 된 새마을운동 등 이 두 가지 정신문화가 청도에서 시작됐다는 역사적 사실로 청도가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성지라는 데에 이견(異見)이 있을 수 없다.청도를 화랑정신의 발상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등 세속오계(世俗五戒)가 이곳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서기 600년(진평왕 22년) 원광법사가 수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대작갑사(현 운문사)와 가슬갑사에 머물고 있을 때, 신라 화랑인 귀산과 추항이 찾아와 세속오계를 지침으로 받아 실천함으로써 세속오계가 화랑의 행동지침으로 보편화 돼 청도가 화랑정신의 발상지가 된 것이다.우리 청도는 이러한 화랑정신의 발상지라는 정신문화 자산을 계승·발전시킴과 동시에,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자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그 옛날 신라 화랑도의 수련도장이었던 운문산 일대에 화랑정신의 뿌리를 잇고 참된 가치를 구현하고자 2009년 ‘삼국 통일 초석, 화랑정신의 발상지 청도’란 안내간판을 운문면 삼계리 입구에 세우고 가슬갑사지로 추정되는 곳에는 두 화랑이 세속 오계를 든 조형물을 세웠다.또 운문면 방지리 일대 30여 만㎡ 규모의 ‘청도신화랑 풍류마을’을 총 610억원의 사업비로 2018년 3월 개관해 화랑정신을 이어가는 교육·체험시설 및 문화시설로 조성했다.잊힌 화랑혼을 현대로 전승하고자 세워진 청도신화랑 풍류마을에는 화랑도의 세속오계 정신과 풍류도를 계승하기 위한 화랑정신발상지 기념관, 화랑VR체험존, 화랑국궁장, 어린이 수련장 등을 갖추고 있다. 군은 2012년 화랑정신 발상지의 역사적 가치를 기념하고자 9월 1일을 ‘청도 화랑의 날’로 제정해 다채로운 행사들을 열고 있다.새마을운동발상지 청도읍 신도리는 새마을운동에 앞서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에 착안토록 아이디어를 제공한 최초의 마을로 대한민국 전역을 새마을운동으로 점화시키는 데에 불씨가 됐다. 예로부터 신도마을은 일찍이 노는 사람이 없고 술독에 빠진 사람이 없으며 노름하는 사람이 없는 3무(三無)의 마을로 주민들의 협동심이 유달리 강하고 부지런해 개미 마을로 불렀다. 이러한 신도마을의 협동심과 근면성을 바탕으로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새마을운동의 효시가 된 신도마을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고 지역의 정신문화를 재조명하고자 2009년 새마을운동발상지 기념관을 건립하고 2015년에는 새마을 테마파크를 건립해 새마을정신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녹색성장 실천을 위한 새마을백일장 및 사생대회를 매년 개최해 후손들이 새마을운동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최근 새마을운동의 국제화에 걸맞게 개발도상국가의 많은 지도자가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하려고 우리 청도를 찾고 있고 외국인 새마을연수단의 필수 방문지로 자리매김하는 등 새마을운동 가치가 재조명받고 있다.이처럼 우리 청도의 화랑정신과 새마을운동이라는 정신문화는 미래세대에게 온전하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귀중한 정신문화 유산을 넘어 세계인들과 함께 나눠야 할 정신적 가치이다.우리가 계승하는 정신문화는 눈에 보이는 건축물과 조형물들을 통해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활에 스며든 실생활이 몸에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이다. 앞으로 청도군은 화랑정신과 새마을운동 정신을 널리 보급·확산해 건강한 국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고 후손들에게는 참다운 정신문화를 전파해 지역민임을 자랑스럽게 할 것이다.

2019-11-24

잔액이 부족합니다

문춘희 종합자산관리사마트에서 물건을 산 후 휴대폰 페이로 결제한다.“잔액 부족입니다”“잠시만요”결제 수단을 신용카드로 한 단계 올린다. 처음 카운터에서 잔액 부족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너무 부끄러워 캐셔에게 체크카드라서 그렇다며 허둥지둥 손사래를 치곤 했다. 아는 사람이라도 주위에 있으면 어쩌나 마음도 졸였다. 이제는 당황하지 않는다. 마일리지 적립이라는 달콤한 보상으로 신용카드를 긁게 만드는 유혹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대신 한도가 분명한 체크카드로 지출을 조절하며 통장이 부디 월급날 전에 바닥을 드러내지 않도록 기대할 뿐이다.25일 새벽, 반가운 급여 문자가 들어온다. 설렘도 잠시, 통장 나누기에 들어간다. 자동 이체 이외의 고정 항목을 하나씩 직접 송금하는 과정에서 급여가 만드는 대단한 위력을 실감한다. 동시에 공중으로 사라지는 지출과 차곡차곡 쌓이는 자산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종합자산관리사 일을 하면서 다양한 재무관리 현장을 본다. 수입이 많지만 소비를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나 신용카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매달 악순환을 거듭하는 사람도 있다. 나 또한 갑자기 늘어난 씀씀이에 오랜 세월 동안 어려움이 많았었다. 진작 통장 나누기를 실천해 지출과 자산 만들기를 차근차근 해왔더라면 지금쯤 꽤 괜찮은 종잣돈을 마련해 자산을 굴리고 있을텐데, 당시에는 번거롭다고 생각했다.벤저민 프랭클린이 말했다. “세상에서 죽음과 세금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누구도 돈을 관리하는 인생의 책무를 피해갈 수 없다. 평생 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불편한 동거보다 확실한 친구로 삼는 것은 어떨까? 그 첫걸음으로 통장 나누기를 제안한다. 통장을 급여통장(고정지출), 예비비통장, 소비통장으로 세 개로 나눈다. 체크카드는 소비통장과 연결한다.25일에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띵똥” 월급이 들어오는 소리다. 이날 예비비통장으로 급여의 5∼10% 범위에서 정한 금액을 이체한다. 여기에서는 1년 단위로 지불하는 자동차 보험, 자동차세, 재산세 등 세금과 비정기적으로 발생하는 경조사 비용을 모은다. 고정지출, 소비 지출에서 절약한 돈도 이곳으로 이체해 종잣돈 굴리기 재원을 만든다. 부작용도 물론 있다. 예비비통장에 보관한 현금 유혹에 한두 달은 분명 시행착오가 생기게 마련이다.소비통장은 지난 3개월간 지출 평균 금액을 입금해 두고, 체크카드를 연결한다. 생활비, 식비, 피복비, 문화비, 유류대, 기타 잡비를 위한 통장이다. 카드 지출 내역을 2개월만 뽑아보면 매월 평균 지출 금액과 내 ‘방앗간(소비패턴)’이 어딘지 파악할 수 있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지, 외식을 많이 하는지, 계절마다 기분전환을 위해 옷을 얼마나 사는지. 자기계발에 한창인 사람은 책 구매 실적을, 사람이 우선인 경우는 아마 각종 술집 계산서를 금액을 확인할 수 있다. 소비는 생활 습관이기에 갑자기 줄이기 어렵다. 커피를 줄였더니 스트레스로 가을 코트에 지름신이 내리고, 술을 줄여보겠다고 애썼더니 억눌린 소비심리 때문에 더 큰 일을 터트린다. 무리하게 소비를 막으려 하지 않고 불필요한 소비를 조금씩 줄여나가야 한다. 월 5만 원이라도 지출 흑자를 기록한다면 대단한 일이다. 이 귀한 돈은 그대로 이월하지 않고 다음 달 급여가 들어오기 전 예비비통장으로 신분을 상승시켜 보낸다.마지막 작업은 급여통장에서 나가는 고정지출을 정비하는 일이다. 기부금, 관리비, 보험료, 대출이자, 용돈, 통신요금, 자기계발비, 곗돈, 운동 등 매월 선택의 여지 없이 나가는 고정비다. 기존 출금 통장을 확인해 이체 날짜를 급여 이후로 조정하고 다른 통장에서 이체되는 고정비는 급여통장으로 일원화한다.여기까지 정비하는 과정을 통해 통장 나누기를 완성하면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몇 달 치 카드내역서를 읽고 몇 개의 통장을 확인하며 야무지게 잘살고 있는 나를 만날 수도, 지금까지 버텨온 대견한 나를 만났을 수도 있다. 이런 간단한 방법으로 내 급여의 행방을 확인하는 자체로 의미가 있고, 분명해진 지출 패턴을 인지하고 예비비 마련까지 가능하다. 이제 신용카드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 돈의 주인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2019-11-24

음악 창의도시 대구

창의도시에 대한 자치단체의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창의도시는 영국 등 유럽을 거쳐 지금은 일본과 한국에서도 각광받는 도시 담론이다. 인류의 삶을 새롭게 설정하는 시대적 담론이란 점에서 관심이 높은 주제다. 전 세계 72개국 180여 도시가 유네스코가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가입돼 있다, 우리는 대구, 서울, 부산 등 전국 9개 도시가 가입돼 있다. 유네스코는 2004년부터 음악, 문학 등 7개 분야에서 뛰어난 창의성으로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한 도시를 창의도시로 선정하고 있다. 대구는 2017년 음악 창의도시로 선정됐다.대구가 음악창의도시로 선정된 배경에는 대구가 가진 풍부한 음악적 자산이 큰 힘이 됐다. 대구는 근대음악이 태동한 곳이라 할 만큼 음악과 관련한 인연이 많다.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서양음악이 일찍부터 이곳에 보급됐다. 서양 악기를 대표하는 피아노가 1900년에 낙동강 뱃길을 따라 달성군 사문진 나루터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최초다. 그 기념으로 이곳에는 해마다 100대 피아노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대구 출신으로 근대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도 많다. 동무생각을 작곡한 박태준, 국내 최초의 창작 오페라 춘향전을 작곡한 현제명, 한국 최초로 독창회를 연 테너 권태호 등이 그들이다. 국내 1호 클래식 감상실 녹향도 자랑거리다. 6.25전쟁으로 피란 온 예술인의 사랑방 역할을 한 곳이다. 이중섭, 유치환 등 당대 최고의 문인과 예술가가 즐겨 찾았다. 당시 외신은 대구를 ‘바흐의 음악이 흐르는 도시’라 묘사했다. 지난 주말 대구에서는 ‘음악창의도시 대구 주간’ 행사가 열렸다. 음악 창의도시로서 국제적 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음악도시의 글로벌 가치를 키우는 일에 민관이 힘을 모아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1-24

‘당랑거사(螳螂居士)’ 짝사랑

안재휘 논설위원춘추시대 ‘장공’이라는 제(齊)나라 왕족이 사냥터에 가고 있었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왕족의 행차에 무례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길가에 멀찌감치 물러섰는데, 웬 낯선 벌레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에서 앞발을 치켜들고 수레바퀴를 칠 듯이 덤벼들었다. 사마귀였다. 장공은 “저 벌레가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용감한 장군이었을 것”이라면서 사마귀를 피해 가게 했다.‘사마귀가 앞발을 쳐들고 수레를 막는다’라는 뜻의 ‘당랑거철(螳螂拒轍)’ 고사다.국제사회의 변화와 상식을 거부한 채 외톨이 길을 가고 있는 북한의 존재 방식을 놓고 사람들은 당랑거철을 떠올린다. 한미동맹이라는 형태의 편짜기 지혜로 놀라운 번영을 이룬 한국이 미국의 변심으로 곤혹스러운 번뇌 국면에 접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방위비 분담금을 5배나 올리자고 제안하면서 전천후압박을 시작했다.문재인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김정은은 눈도 깜짝하지 않는 자세를 줄기차게 견지하고 있다. 우리가 소원하는 ‘북한 비핵화’는 단 1㎜도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 전 생방송으로 진행한 타운홀 미팅에서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는 제가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는 분야”라고 표현해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도대체 뭐를 얼마나 이뤘다고 보람을 느낀다는 것인지.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혐의로 탈북 어민 2명을 우리 정부가 강제북송한 사건에 대한 여파가 길다. 북한인권탈북단체총연합 등 국내외 30여 인권단체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비롯한 고위 관계자 4명을 ICC(국제형사재판소)에 고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의 강제북송 조치는 헌법과 대법원 판례, 국제법에 정면으로 어긋난다는 비판이 많다.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보낸 날짜가 11월 5일이라고 북한이 공개했다. 바로 그날이 정부가 동해로 넘어온 탈북 어민 2명을 추방하겠다고 북에 서면으로 통보한 날이란다.‘김정은 초청장’에 ‘어민 북송문’을 선물꾸러미로 동봉한 셈이라는 의혹과 논란이 증폭 일로다.아무리 살펴보아도 문재인 정권은 북한과 잘해보려고 ‘평화’ 도박에 ‘짝사랑’을 몽땅 걸었다. 북한은 “(문 대통령) 친서 이후에도 (남측은) 몇 차례나 특사 방문을 허락해달라고 청했다”고 까발렸다. “반성과 죄스러운 마음으로 삼고초려(三顧草廬)해도 모자랄 판국” 운운하며 아랫사람에게 훈계하듯 하는 그들의 패악질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짓밟는다.미국은 변했다. 이제는 미국이 우리를 여전히 짝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북한을 계속 짝사랑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이 판에 북한을 따라 하듯이, ‘미군 철수’ 피켓을 들고 당랑거사(螳螂居士 사마귀) 놀음을 하자고 대드는 것은 더더욱 곤란하다. 북한이 천사로 변신하기를 고대하며 걸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이 지독한 ‘짝사랑 도박’은 멈춰야 한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게 아니다.

2019-11-24

김세연의 절대반지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가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 절대반지는 소유자의 힘을 증대시키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게 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반지다. 하지만 이 반지는 소유자의 마음을 사악하고 탐욕스럽게 변질시켜버리는 어두운 면도 함께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는 사우론처럼 이 반지를 차지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욕망의 소유자가 등장하는 가 하면 프로도를 위시한 반지원정대처럼 이 반지를 용암의 불 속에 던져 넣어 영구히 파괴해버리려는 측도 있다.이 영화속의 반지가 현실속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특히 한국사회에서 절대반지에 해당하는 것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법률을 제·개정하는 정치권력이 절대반지 첫번째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문재인 정부에서 개혁을 외치고 있는 검찰권력 역시 또 하나의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지난 17일 부산지역 3선의원인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이 총선 불출마 입장을 밝히면서 절대반지를 언급해 화제가 됐다. 영남지역 3선퇴진론으로 쇄신론이 일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 의원은 선언문에서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절대반지를 끼는 순간 이성을 잃게 된다”며 “공적 책무감으로 철저히 정신무장을 해야 그것을 담당할 자격이 주어짐에도, 아무리 크든 아무리 작든 현실 정치권력을 맡은 사람이 그 권력을 사유물로 인식하는 순간 공동체의 불행이 시작된다”고 정치 현실에 대한 실망이 불출마의 원인이 됐음을 언급했다. 김 의원이 가리키는 절대반지는 문맥으로 보아 현실 정치권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쇄신과 통합으로 새바람을 일으켜야 할 자유한국당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표현이란 해석도 있다.이 와중에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느닷없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철회,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수처법과 선거제개편안 처리 철회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투쟁에 나서 당내외에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우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다른 야당들은 일제히 냉담한 반응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황 대표의 단식은 명분이 없음을 넘어 민폐”라고 비판했고, 바른미래당 최도자 수석대변인도 “자신의 리더십 위기에 정부를 걸고 넘어져서 해결하려는 심산”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당 지도부와 의원직 총사퇴를 주장한 김세연 의원 역시 “단식투쟁 취지의 순수성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창조를 위해서는 먼저 파괴가 필요하다. (한국당은) 깨끗하게 해체해야 한다”라고 거듭 당쇄신을 요구했다.22일 자정 지소미아가 종료되고, 12월 2일 패스트트랙 법안 본회의 상정을 앞둔 시점에 제1야당 대표인 황 대표가 단식투쟁에 나서야 했던 정황을 이해못할 바 아니다. 다만 누군가 절대반지를 끼고 이성을 잃는 사태까지 가지는 말아야 한다는 걱정이 앞설 뿐이다.

2019-11-21

민식이법

엊그제 대통령과 국민의 대화에서 정치 이슈에 묻혀 두각을 보이진 않았지만 국민의 마음을 잔잔하게 흔들어 놓은 게 하나 있다. 스쿨존 내 어린이 안전보호를 위한 ‘민식이법’이다.지난 9월 충남 아산 스쿨존 구역에서 차량사고로 숨진 9살 민식군의 이름을 따온 이 법은 스쿨존 내 속도제한과 CCTV 설치 의무화, 가해자 처벌 수위 상향 등을 내용으로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다. 민식군 부모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청원자 20만명을 순식간에 돌파했다. 그동안 민식이법은 내 자식과 같은 다른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는 민식이 부모의 애타는 발품에도 겨우 2만여명 서명에 그쳤다.우리생활 주변에는 어린이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들은 얼마든지 있다. 20대 국회에는 어린이 생명과 관련한 법안이 17건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그러나 그중 한 건도 통과되지 못했다. 어린이집에서 귀가 중이던 5살 해인이가 제동 장치가 풀려 미끌어져 온 차량에 치여 숨진 사고를 계기로 만든 해인이법도 마찬가지다. 주차장에서 미끌어진 차량에 치어 숨진 하준이법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음이법이나 태호·유찬이법도 같은 케이스다.사고가 나 세간의 관심을 끌면 국회가 나서 법 제정을 해놓고 시간이 지나면 그냥 잊어버리는 꼴이다. 국회의원의 관심도가 이 정도인가 싶어 안타깝다. 어린 자식을 사고로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이야 말로 다할 수 없다. 자식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으로 어린이가 안전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을 모아 국회에 호소한 것이 어린이 안전 관련 법이다. 애절한 사연을 우리 사회가 아직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민식이법을 계기로 국회의 관심을 다시 촉구해 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1-21

단재 신채호의 역사 방법론

‘민족’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다 보니 나의 눈은 다시 신채호로 향한다. 옛날부터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은 외로웠던 모양이다. 단재 신채호는 선생이라 불러 마땅한 선배 선각자였다.‘민족’이란 서양에서처럼 근대에 들어서나 자본주의 상품이 미치는 단위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 양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달리 신채호는 아주 오래 전부터 형성, 발전되어 온 민족사를 규명하려 한 학자였다. 황당한 역사를 주장했던 사람이 아니요 민족의 이상을 품고 있었고 가려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투쟁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그는 확실히 잃어버리고 잊혀지고 훼손된 것을 새롭게 일구어 내 본체를 드러내고자 애쓴 사람이어서 『조선상고사』나 『조선상고문화사』는 그 처절한 사투의 기록들이다.예를 들어, 그의 『조선상고사』는 사료의 수집과 선택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옛 비석을 참조하고 각 서적들을 서로 비교하고 진서와 위서를 가르는 제 주의를 기울이고 지명이나 인명 등을 해석하는데 따르는 문제들을 거론하며 이두문을 해석하는 방법, 우리와 가까운 인접 민족들의 언어와 풍속으로부터 추론해 내는 방법 등에 관해 그 나름의 치밀한 사유를 구축하고자 한다.“역사 재료에 대하여 그 사라진 것(亡)을 찾아서 기워 넣고(補), 빠진 것을 채우며, 사실이 아닌 것(僞)은 빼버리고(去), 거짓 기록을 판별하여 완비(完備)를 추구하는 방법”에 관한 『조선상고사』의 사유는 『조선상고문화사』에 오면 유증(類證), 호증(互證), 추층(追證), 반증(反證), 변증(辨證)의 다섯 가지 논리적 방법으로 가다듬어진다.방민호 서울대 교수유증이란, 어떤 규칙이나 유별을 따라서 증명하는 것으로 삼경 제도 같은 것이 있어 둘이 이미 밝혀졌다면 다른 하나도 밝혀야 하는 식이다. 호증이란 사서들에 적힌 사실들을 상호 참조하여 증명하는 것이니, 한국사의 망실된 부분들이 많은 것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중국 사서들을 대거 참조하여 한국사의 사실들을 밝히려 했다. 추증이란 “이 사건이 있으므로 저 사건이 없을 수 없음”을 들어 증명하는 것이요, 반증이란 “반면에서 그 사실의 참을 발견”하는 방법이었으니, 사서 안에, 또는 사서들 사이에 서로 모순된 서술들이 공존할 때 진실을 밝히는 방법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변증이란 것도 어떤 서술들에 담긴 내적 논리를 따져 이치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따짐으로써 진실 여부를 가리고자 하는 것이었다.단재는 헛된 이야기라도 쓸 수 있으면 좋다는 식의 몽상가는 전혀 아니었다. 그를 알면 알수록 그의 외로움에 대한 나의 사랑도 자꾸자꾸 깊어지는 것 같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1-21

사는 데까지 살아있는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벼를 베어낸 그루터기에 파랗게 싹이 돋았다. 머지않아 닥쳐올 추위에 얼어 죽기 마련일 터인데, 물기가 조금이라도 있는 논마다 제법 생기롭게 자라나 있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풀은 베어내면 금방 또 새싹을 낸다. 절기 따위 아랑곳없이 최소한의 조건만 되면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벼 그루터기 뿐 아니라 풀을 깎은 논둑에도 때아니게 새 풀들이 자라고 있다. 식물이 생장을 하는 목적이 꽃 피우고 열매 맺는 것이라면 이런 늦가을의 새싹이란 한갓 무모하고 부질없는 게 아닌가.사람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이 수긍하는 교훈이다. 그래야 보다 가치 있고 보람된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런 목적도 없는 삶은 무의미한 허송세월일 뿐이라고 지탄한다. 맞는 말이다. 사회나 개인이나 발전하고 성취하려면 뚜렷한 목표와 굳센 의지가 필요하고, 거기에 부단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 목표의 유무를 따지기 전에 먼저 생각할 것은 어떤 목표를 갖느냐다. 무엇을 목표로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이 될 것이므로. 보통은 남보다 많이 가지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걸 출세라 하고 거기에 이르는 걸 성공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열심히 태교를 하고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수단과 방법을 다해 스펙을 쌓고 학업에 매진한다. 그러나 그것이 출세라는 목표에 도달할 확률을 높이는 건 사실이지만 해피엔딩까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드물지 않게 본다.소위 출세를 위해서 희생하고 쏟아 부은 것에 비해 성취감이나 만족도는 충분하지가 못한 경우가 많다. 더 많이 차지하고 보다 높이 오르기 위한 욕망은 쉽사리 채워지지 않고, 오히려 그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비극적 결말을 초래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방송 드라마의 스토리가 대부분 그런 것이고 매스컴에 오르는 사건사고 대다수도 그런 범주의 일들이다. 근자에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어느 가족의 경우를 보더라도 삶의 목표 설정에는 올바른 선택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인생의 목표에는 몸과 마음의 건강이 기본이라는 생각이다. 우선은 몸을 상하는 일을 말아야 할 것이고, 그것에 못지않게 마음(정신)의 건강도 챙겨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취미와 소질과 능력에 맞는 목표를 정하는 일이 바람직할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정신으로 성취한 것은 결국 진정한 보람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다.늦가을 들판의 벼 그루터기에 돋아난 새싹들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또 다른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 삶이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란 것, 매순간 살아있는 그 자체가 목적이고 완성이라는 것, 그래서 대자연을 호흡하며 살아있는 데까지 살아있는 것이야말로 장엄한 우주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살아서 내 몸에 와 닿는 햇볕과 바람과 눈비를 체감하는 일이 가장 절실하고 궁극적인 삶의 성취이라는 것이다. 바람이 차다.

2019-11-21

둔마장관과 벌거벗은 임금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1975년 관악신림 종합캠퍼스로 이주하기 전 마지막 동숭동 캠퍼스 졸업식은 유난히 추운 날씨였다. 이날 벌어진 서울대 29회 졸업식에선 기가찬 촌극이 벌어졌다. 교육부장관의 축사가 시작되자 가운을 입은 졸업생들이 난데없이 “둔마장관”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의자를 돌려 등을 단상에 대고 둘러앉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1974년 9월 문교부 장관에 발탁된 유기춘 장관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이 둔한 말에 채찍질을 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 ‘주마가편(走馬加鞭)’에서 주마가 둔마(鈍馬)로 바뀌었다. 이후 그는 ‘둔마 장관’으로 불리며 세간에 놀림거리가 됐다. 권력자에 아부하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두고두고 회자됐다.지금 벌어지고 있는 지소미아 폐기, 한미공조와 한일관계 악화, 특목고 폐지, 원전폐지, 4대강보 파괴 등등 이런 정책에서 청와대 눈치만 보면서 제대로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 청와대 주변에 없다는 사실이 둔마장관의 에피소드를 생각나게 한다.정부 관계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현재 추진 중인 여러 가지 정책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정부 하급관료들은 현 정책에 대한 반론을 많이 가지고 있다.그런데 왜 권력에 아부하고 바른말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일까?오래전 한 동화가 생각난다. 사기꾼 2명이 궁궐 앞에서 “우리는 바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옷감을 짭니다”라고 외친다. 임금님은 귀가 솔깃하여 그 두 사람을 궁으로 불러들여 옷을 만들라고 명령을 했다. 사기꾼 두 사람은 베틀을 놓고 옷 짜는 시늉만 하다가 드디어 옷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임금 앞에서 옷을 입어보라는 것이다. 임금의 눈에는 옷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렇게 좋은 옷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싱글벙글 했고, 신하들은 보이지 않는 옷을 두고 온갖 아양을 떨며 색도 무늬도 이렇게 좋을 수 없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의기양양한 임금님은 거리를 활보하고 싶어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옷에 대한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벌거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임금님을 보고도 모두가 하나같이 좋은 옷이라고 칭찬을 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그러던 중 한 어린아이가 외쳤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그제야 백성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은 거의 200년 전인 1800년대 초 발표됐다. 약 50년 전의 ‘둔마장관’이나 200년 전의 ‘벌거벗은 임금님’의 모습은 지금 우리 정치 사회의 자화상이다.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합리적 사고에 의한 사회 경제, 정치상황을 판단하여 청와대에 직언을 할 수 있는 양심있는 관료가 절실히 요구된다.야당대표가 거리로 나와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을 비아냥 거리는 분들이 있다면 정말 단식을 해보았냐고 묻고 싶다. 과거 필자도 단식을 해보았다. 단식 정말 힘든다. 장난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죽 절실했으면 삭발과 단식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우리 관료들은 둔마에게 채찍을 때려달라고 하고 벌거벗은 임금님을 바라보면서 옷이 멋있다고 박수를 치고 있을 것인가?

2019-11-21

비둘기에 관한 생각

TIME이 선정한 최악의 올림픽 개회식이 있습니다. 88년 서울 올림픽이 그 주인공으로 뽑혔다고 하지요. 올림픽 깃발을 게양하면서 비둘기를 날리는 순서가 있었는데 이때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않은 비둘기 몇 마리가 성화대 위에 앉아 있었던 겁니다.온 인류가 TV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지켜보는 중입니다. 비둘기들은 성화가 점화되는 순간 푸드득 날아오릅니다. 하지만, 거센 불길에 미처 날아오르지 못한 비둘기들이 그대로 통구이가 되어 버리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잡힙니다. 정부는 국제적으로는 커다란 이슈가 된 이 사건을 절대 보도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하지요.2018년 8월 통일연구원이 발표한 ‘평화를 위한 심리학’ 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있습니다. 한국인 1천명을 대상으로 ‘평화’라는 단어를 보고 떠오르는 단어 3개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검사를 했습니다. 응답자의 21.1%가 비둘기를 떠올립니다. 다음이 17.5%로 통일이었다고 합니다. 나이, 성별, 이념에 따른 차이는 없었습니다.2011년 서구인 81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평화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단어 중 비둘기는 불과 1%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유와 행복을 가장 많이 떠올렸지요.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교육의 힘이지 않을까요? 서구인보다 24배쯤 더 많이, 더 자주 우리 뇌는 이런 자극에 노출되어 있었던 셈입니다.뇌는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덫처럼 곳곳에 누군가 설치한 언어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영혼에 스며듭니다. 어떤 이미지가 구축되면 꼼짝없이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자극-반응의 프레임에 갇혀 버리게 되지요. 깨어있지 않으면 자석에 쇳가루 끌리듯이 우리보다 훨씬 더 강렬한 에너지를 가진 쪽의 의도대로 휘둘리고 말지요. 영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애쓸 일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21

유럽과 아시아

김규종 경북대 교수1988년 햇살이 따사로웠던 4월 중순, 로렐라이 언덕을 찾아가는 길에 라인과 모젤, 란 강이 만나는 코블렌츠에서 중년신사와 대화를 튼다. 유럽의 시간은 영원히 사라진 것 아니냐는 나의 질문에 아니라는 답이 순식간에 나온다. “유럽은 한 지붕 아래!” 하고 그가 간명하게 말한다.장구한 세월 유럽은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각축을 벌이며 살아왔다. 특별한 절대강자 없이 전개된 피의 역사에서 ‘유럽은 한 지붕 아래’라는 전통이 세워진 것이다.‘유러피언 드림’에서 세계주의자 리프킨은 유럽이 공유하는 두 가지로 기독교와 계몽주의를 제시한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래 유럽은 예수와 마리아의 그늘 아래 있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인류역사에서 최고의 가치를 구현한 4인으로 예수와 마리아, 베드로와 바울을 거명한다. 지리상의 발견과 신대륙 착취에 기초한 17-18세기 계몽주의는 유럽의 과학적 세계관과 제국주의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그런 맥락으로 유럽을 보면 대강(大綱)이 잡힌다. 에르도안 이후 터키는 더 이상 유럽연합 가입에 목을 매지 않는다. 이슬람이자 계몽주의와 무관한 오스만튀르크의 후예가 어찌 유럽연합 회원국이 될 수 있겠는가?!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제국의 영욕(榮辱)을 역사적인 자산으로 가진 러시아도 유럽연합과 무관하다. 그들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끼어있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19세기 중반에 정체성 혼란을 겪은 일도 있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과 결부해 흥미로운 사실이 보인다. 프랑스는 물론이려니와 영국과 도이칠란트, 오스트리아까지 대혁명과 결부한 혁명문학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837년 뷔히너가 장막희곡 ‘당통의 죽음’, 1859년에 디킨스가 ‘두 도시 이야기’, 1862년에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쓴다.위고가 “예수 탄생이후 가장 위대한 사건”이라고 규정한 프랑스 대혁명을 문학적인 자산으로 공유하는 유럽. 하지만 아시아에는 그런 전통이 없다. 동북아의 절대강자 중국과 남아시아의 패자 인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및 서남아시아의 무슬림 국가들과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에는 유럽이 공유하는 종교-문화-예술적인 자산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다채롭고 중층적인 아시아는 커다란 덩어리로 나누어 이해하는 편이 수월해 보이기도 한다.그런 점에서 습근평이 주도하는 ‘일대일로’에 눈길이 간다. 현대판 실크로드 ‘일대일로’가 어디까지 순항할지 궁금하다. 요즘 우리를 사로잡는 홍콩시위는 다른 과제를 던진다. 홍콩의 민주화투쟁이 어떤 의미인지, 숙고해야 할 듯싶다. 유럽 내지 영국식 민주주의의 고수인지, 중국 내정문제인지, 혹은 대만까지 포괄하는 동북아 전체문제인지, 명징한 판단이 쉽지 않다. 막강한 백과사전을 손에 쥐고 있지만, 세계적인 문제의 올바른 인식과 정의는 난맥상이다. 숱한 사건과 전쟁으로 점철된 유라시아 동과 서에 자리한 아시아와 유럽은 특별하게 공유하는 대목이 없다. 그럼에도 유럽과 아시아는 정말 많이 다르다, 하는 것만은 분명한 아침이다!

2019-11-20

분노하라

고전 중 가장 오래된 책.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분노’ 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지배하려 드는 아가멤논 왕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대서사시는 시작하지요.스테판 에셀은 2차 대전 중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겨우 탈출, 목숨을 건지고 나치즘에 저항하며 살아갑니다.평생 우리의 자유를 옥죄는 거대 시스템에 저항하는 삶을 일구신 분이지요. 그가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외치는 노구의 목소리입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무언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동물과 사람의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동물에게도 물론 생각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본능에 따른 반응 일부일 뿐입니다. 사람에게 있는 고유한 능력은 ‘생각을 생각하는 힘’입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나 스스로를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할 수 있는 메타 인지 능력 즉 메타노이아입니다.이 능력을 발휘할 때만 사람은 동물과 구분될 수 있습니다.생각을 생각하는 힘 기르기. 자유를 앗아가려는 교묘한 술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삶의 방식입니다. 이 힘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글을 쓰는 작업이 유일한 훈련 방법입니다. 내 생각을 텍스트로 쏟아내고, 텍스트로 문자화된 내용을 보면서 내 생각을 한 걸음 떼어 놓고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이 힘이 싹트기 시작하는 삶은 진정한 자유를 항해 마침내 위대한 첫 걸음을 떼는 삶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20

목련화 같은 내 인생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입시공화국인 이 나라 입시에 또 하나의 나이테가 새겨졌다. 선 굵은 나이테를 위해 찬란한 학생시절 전부를 시험에 바친 수험생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마음만 전한다, 제발 이 사회를 요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흥청망청하는 어른들을 흉내 내지 말기를!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진정한 성년의 길에 선 예비 사회인들이 더 정신을 빠짝 차려야 한다. 그래서 나라를 참담하게 몰고 가는 구세대들을 견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시험 만능주의에 빠진 이 나라의 불행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변명 같지만 필자의 외침은 이제 공허한 메아리도 못 된다. 우리 사회의 중추인 수능을 끝낸 수험생들이 나서서 참혹했던 학교와 시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의미 없고 오로지 경쟁만 부추기는 시험의 폐단을 알려야 한다.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암기식 시험 때문에 학교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외쳐야 한다.그런데 필자는 중요한 사실을 잊었다, 지난 12년 동안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의 대부분이 시험을 위한 죽은 지식이라는 것을! 과연 학생들이 배운 것이 이것 말고 뭐가 있을까?자유롭게 주어진 시간 앞에서 몹시 당황하는 것이 우리 학생들의 현실이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과연 교사들 중에서 큰 시험이 끝난 학생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이 아닌 삶의 지혜로 가르칠 교사가 얼마나 될까? 설령 그런 내용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다가 해도 학생들이 마음으로 배우고 따를 교사가 있을까?학교교육의 불신의 정점은 수능이다. 그래서 수능이 끝나는 순간 학생들은 더 이상 학교와 교사의 지도를 따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동안 교사와 학생들을 연결해준 것이 수능이기 때문이다. 수능이 끝났다는 것은 학생들이 학교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과 같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수능 이후의 학생 생활지도가 불가능하다. 학교에서는 자신들이 학생들에게 한 짓은 모르고 학생 탓만 하기 바쁘다. 의미 없는 대학 탐방, 더 의미 없는 체험 학습은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신만 더 키운다는 것을 교육 관계자들은 꼭 알아야 할 것이다.수능이 끝나면 언제나 수험생들을 위하는 글들이 홍수를 이룬다. 모두 좋은 말이지만, 정작 수험생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이런 글들의 공통점은 학생들을 옭아맨 수능에 대한 비판이나 반성은 없고, 무분별한 격려만 있다는 것이다.이 글도 그런 글이 되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홀로서기 앞에 망설이는 학생들을 위해 칠순을 넘기면서 새로 공부를 시작한 자친(慈親)께서 얼마 전에 쓴 시(박화자, ‘목련화 같은 내 인생’)를 졸업 선물로 전한다.“집 가에 서있는 목련화 한 그루 / 어느 날 아침 나를 부르는 듯 / 곱게도 피어 나를 반기더니 / 밤새 그만 꽃잎 끝이 다 말라 시들어져가네 // 가만히 눈 깜박하고 나니 / 세월의 흐름 따라 꽃 같은 내 앞날도 / 다 시들어져버렸네 //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리오 / 슬기롭게 잘 받아들여 / 예측 못 할 남은 인생을 / 행복과 보람 찾아 즐겁게 보내보련다”

2019-11-20

변화를 위하여

장규열 한동대 교수바뀌지 않을 수 있을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세월이 흐르고 사조가 바뀌며 세대가 변하고 세상이 달라진다. 아니 이미 변화했다. 당신은 십 년 전 당신이 아니며 생각도 그때와는 다르다. 좀 가만히 있으려 해도 가파르게 달라져 가는 세상이 그대로 두지 않는다. 조금만 눈을 떼고 있으면, 사물들의 모습이 어느새 몰라보게 바뀌어 있는 걸 발견하곤 한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많은 걸 바꾸어 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도 함께 바뀌어 간다.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이해와 각성에 이르기도 한다. 소통하고 관계를 만드는 방법도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 남자와 여자, 위정자와 국민, 국가와 국가. 모두 다른 세상을 만나는 중이다.한국 기독교 내 가장 보수적으로 알려진 교단 신학교에서, 교수들이 성희롱적 발언을 한 사건이 발생해 물의를 빚고 있다. 여성의 성기를 자극적으로 언급하며 비하했는가 하면, 외모를 놓고 희롱하는 발언까지 있었다고 한다. 수업과 채플 등에서 성희롱과 성차별 발언이 있어, 학생들과 학교 당국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성직자를 기르는 이들이 어떻게 그런 행태에 이르게 됐을까. 그들이 섬길 사람들의 가슴에도 상처를 입힐 뻔 하지 않았는가. 성경 구절이 혹 남녀를 구분하고 차별하며 여성을 가벼이 여기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했더라도, 오늘 바뀐 세상이 이를 부당한 것으로 바라보는 터에 어떻게 그 같은 옛 모습을 아직도 고수하는가. 보수(保守)라 하여 어느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수구(守舊)에 머물러야 하는가.진보라 하여 급진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듯이, 보수라 하여 수구를 고집하면 안될 일이다. 진보가 변화에 신중해야 하며, 보수는 변화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보수가 오히려 세상 변화에 민감해 바꾸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헤아려야 한다. 어차피 바뀌어 가는 세상을 멈출 수 없을 바에야, 보수가 변화를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보수의 생명은 그 변화를 어떻게 맞느냐에 달려 있다. 용도폐기에 이른 가치를 붙들고 고집하는 보수는 부끄럽고 처연하다. 생각의 틀을 시대정신에 걸맞게 빚어내는지 국민이 불꽃같이 살피고 있다. 이전과 다르게, 살피고 헤아릴 도구들은 국민의 손에 들려있지 않은가.여성에 대한 차별과 경시는 부당하다. 양성은 각각 특별한 존재로 인식돼야 하며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함부로 칭하며 가벼이 대하면 안 되고, 그 어떤 목적을 가지고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동료로서 여성을 새롭게 발견하길 바라고 더욱 폭넓은 가슴으로 받아들이길 기대한다. 어머니와 누이 그리고 딸들의 하루하루를 새겨보아야 한다. 보수라는 핑계는 낡아도 너무 낡았다.보수가 새로워져야 한다. 진보가 정신이 번쩍 들도록 다시 태어나야 한다. 국민이 편안한 나라가 되기 위해 변화를 겁 없이 맞아야 한다.

2019-11-20

Z세대

Z세대는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나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세대로, 밀레니엄세대(1980년대~1990년 중반)의 뒤를 잇는 세대다.통상적으로 세대를 가르는 정확한 기준은 없지만 인구통계학자들은 일반적으로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Z세대로 분류한다. 다만 언제까지를 Z세대의 끝으로 간주할 지에 대해서는 통일된 의견이 없다. Z세대를 규정하는 가장 큰 특징은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란 점이다. 2000년 초반 정보기술(IT) 붐과 함께 유년 시절부터 인터넷 등의 디지털 환경에 노출된 세대답게 신기술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이를 소비활동에도 적극 활용한다. 단적인 예로 옷이나 신발·책·음반은 물론 게임기 등 전자기기의 온라인 구매 비중이 모두 50%를 넘는다.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 신중하게 구매하는 경향도 강하다. 온라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X, Y세대가 이상주의적인 반면 Z세대는 개인적이고 독립적이며, 경제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등 이전 세대와 다른 소비패턴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런 성향이 있다보니 최근에는 남성 화장에 거부감이 없는 Z세대를 화장품 미래 주력 소비층으로 타깃팅하고 있다. 실제로 ‘남자 연예인 메이크업 따라 하기’ 영상부터 남성용 색조 라인 출시까지 남성 메이크업 시장을 겨냥한 제품 및 콘텐츠가 국내에서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중국 스타트업 바이트댄스의 동영상 공유 앱 ‘틱톡’이 누적 다운로드 15억건을 돌파할 만큼 인기를 끈 것도 Z세대의 호응 덕분이다. 이용자들이 직접 만든 15초 내외 짧은 동영상을 공유하는 틱톡은 태생부터 인터넷·디지털기기와 친화적인 Z세대와 천생연분일 수 밖에 없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1-20

개는 사랑하기 때문에 뽀뽀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뽀뽀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개와 즐겁게 뽀뽀를 한다.그러면 개들은 응답하듯이 혀로 날름날름 핥는다.개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침을 바르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보이는데, 개들이 혀로 사람의 입이나 볼을 열정적으로 핥는 것을 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을 애정표현이라고 생각한다.어떻게 보면 미소가 나올 수 있는 장면이지만 개가 사람처럼 사랑을 담아 핥고 있는 것일까?결론부터 말하면 정답은 “아니오” 이다. 이런 습성은 새끼늑대도 많이 보이는 행동이다.새끼늑대는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달라는 신호로 어미가 돌아오면 어미의 입을 핥아서 그 자극으로 어미늑대가 먹었던 것을 토해내게 한다. 개들도 새끼늑대처럼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야생의 개들은 고기조각을 물고 있으면 그 냄새 때문에 다른 동물들이 먹이를 빼앗기 위해 공격할 위험이 있었다.그래서 어미개들은 새끼들의 먹이까지 뱃속에 집어넣고(먹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안전하게 새끼들에게 먹을 것을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야생의 어미개가 집으로 돌아오면 배가 고픈 새끼 개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어미 개의 입을 날름날름 핥는 것인데, 이런 행동들이 오늘날까지 본능적인 행동으로 남은 것으로 보는 것이 대다수의 생각이다. 개들이 사람 얼굴을 핥는 것이 사람의 얼굴 맛이 좋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고 얼굴의 땀, 즉 소금 맛 때문에 핥는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개들 사이에서는 얼굴을 핥는 것이 의사소통의 한 방법으로 다양한 뜻을 나타내는데, 복종의 의미도 있고 친구하자는 의미가 있다고도 해석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과의 뜻을 나타낸다고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오늘날 개들이 사람 얼굴을 핥는 것은 주인 입장에서 애정표현으로 생각하면 반가울 수 있다. 하지만 개가 침을 너무 많이 바른다면 문제가 된다.아무리 애정표현으로 받아들여 준다해도 얼굴을 전부 침으로 바르는 건 사람 입장에서 힘든 일이다.이동훈이런 경우에는 단호하게 일어나서 다른 방으로 가버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몇 번 반복하면 강아지는 주인을 핥으면 주인이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게 되어 핥는 행동을 자제하게 될 것이다. 개가 핥는다고 해서 먹은 것을 토할 사람도 없고 아무리 핥아도 먹을 것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한 개들은 더 이상 핥지 않겠지만 개를 사람처럼 의인화 하여 지속적으로 반응을 해주면 개는 습관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사람의 단호한 행동이 강아지 입장에서 생각하면 힘들고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사랑을 표현할 때에는 양쪽의 동의가 필수이므로 반려인과 강아지 모두가 좋아하는 사랑표현법으로 약속해야 한다. 강아지가 침을 얼굴에 듬뿍 바르는 것이 싫다면 사람은 거부할 권리가 있다. 참고 받아준 강아지의 행동이 성견이 되었을 때 지속적인 문제행동이 될 수 있다.사실 개들이 주인에게 달려드는 원인 중의 하나가 사람의 얼굴을 핥기 위함인데 사람들의 입은 개에 비해 매우 높은 위치에 있으므로 입을 핥기 위해서는 개들이 뛰어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이런 이유 때문에 달려드는 개들을 그대로 받아주고 입주위를 핥는 개들을 귀엽다고 반겨주면 이런 행동이 버릇이 되어 반복하게 되는데, 강아지 때는 입을 핥기 위해 주인에게 달려들던 개가 습관이 되면, 성견이 되어서는 지배본능 때문에 지속적으로 달려들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동훈 서라벌대 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11-19

아버지와의 등산

2주 정도 되는 긴 휴가를 받았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휴가가 일할 때보다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녔다. 매일 술을 마셨다. 그 덕분에 몸무게가 불었다. 여름 내내 애써 뺀 살인데 며칠 사이에 허무하게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내가 간 곳은 부산, 충주, 인천, 일산 등이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거창에 있는 우리 집이다. 심정적으로 한 2년 만에 집에 내려간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한 일주일 정도 집에만 있을 생각이었는데 하룻밤만 잤다. 오래 있다가 간다더니 벌써 가냐며 아버지가 섭섭해 했다. 아버지가 냉랭해 보여도 ‘츤데레’란 걸 알고 있었는데 막상 확인하게 되니 만감이 교차했다. 아버지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드셨나보다.집에서 내가 한 일은 자고 먹고 하는 일이었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우리 동네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산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 산은 실제로 1천200m 정도의 높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구름은 이 산을 넘지 못했다.둥실둥실 떠온 흰 구름이 산을 넘지 못해 그 꼭대기에 걸렸고, 자꾸만 구름이 몰려들어 나중엔 먹구름으로 변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비든 눈이든 내렸다. 그래서 그 산만 쳐다봐도 날씨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어릴 때는 이 산의 이름도 몰랐다. 동네에 워낙 산이 많아 이름도 없는 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산악회를 따라 다니다보니 이 산이 백두대간의 한 줄기이면서 갈미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굉장한 산이 우리 집 앞에 있는데 여기에 올라가지 않는 것은 뭔가 반칙인 것 같아서 이번엔 꼭 올라가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다.그런데 어쩐 일인지 “아들이랑 등산도 한 번 가보고 해봐야지”라며 아버지가 같이 가겠다고 하셨다.나는 사실 갈미봉을 지나 대봉, 못봉, 귀봉 등을 지나 덕유산의 향적봉까지 갈 생각이었다. 한 7시간이나 8시간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따라오신다니 아무래도 멀리 가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물, 빵, 사과 등을 챙겼다.나는 신풍령에서 올라서 능선을 따라가 갈 생각이었는데 아버지는 우리 동네에서 갈미봉에 오르는 길이 있다고 하셨다. 아버지 말대로 군에서 만들어 놓은 등산 안내도도 있었고, 갈미봉으로 가는 길도 정비되어 있었다.하지만 입구는 그럴 듯해보였는데 갈수록 야산이었다. 드문드문 벌목을 해놓아 작은 나무와 가시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 있었다. 산에 오르는 것이 곤욕이었다. 아버지는 그래도 개의치 않으셨다. 올해 일흔 둘인 아버지는 산을 꾸준히 다닌 적도 없는데도 잘 올랐다. 요즘도 달리기를 한다니 그 덕인가보다.얼마쯤 걸었을까? 아버지가 갈미봉에 오르려고 한 이유를 말씀해주셨다. 아버지는 50년도 전에 동네 친구 분과 갈미봉에 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도 11월께였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기로 한 전 날이었다고 한다.아버지와 친구 분은 동네 사람들이 일을 하든지 말든지 당신들은 향적봉엘 가겠다고 모의를 했다고 한다. 한 2박 3일은 걸을 요량으로 솥, 쌀, 김치, 된장 이런 것을 챙겨서 저녁 즈음 산엘 올라 갈미봉에서 비박을 했다고 한다.그래서 더 늙으면 못 갈 것 같아 몇 년 전부터 그 친구 분이랑 갈미봉에 같이 가자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재작년 추석께에는 다 준비까지 해서 막상 가려고 했는데 비가 내리는 바람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년에도 올해도 그 친구 분이 기력이 쇠해서 엄두를 못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내가 갈미봉에 간다니까 얼씨구나 하고 같이 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다시 아버지의 이야기를 돌아오자면 갈미봉에서 하룻밤을 샌 아버지와 친구는 못봉까지는 용케 걸었나 보다. 그런데 등산이 목적이 아니라 동네에 일하기 싫어 도망친 것이니 향적봉까지 가는 것은 애저녁에 포기했다고 한다. 조금만 걸으면 배가 고프고 그래서 라면하나 삶아 먹고 또 얼마 안 걸으면 배가 고파서 또 라면 하나 삶아 먹고 그렇게 걸으니 얼마 가지도 못했었나 보다. 냇물에 된장을 풀어 가재를 잡아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으며 사흘 밤을 밖에서 자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 추억이 있던 곳이니 정말 얼마나 다시 와 보고 싶으셨을까.아버지와 나는 길도 없는 비탈을 올랐다. 멀리서 볼 땐 가파르게 보이지 않았는데, 기듯이 산을 올라야 했다. 길 없는 길에서 저기만 오르면 정상이겠거니 하며 그렇게 2시간도 더 오른 것 같다. 혼자였다면 벌써 갈미봉을 찍고 못봉까지는 달아났을 시간이었다.그래도 기어이 정상에 올랐다. 아버지 연세에 힘들었을 법도 한데 당신이 비박을 했던 곳을 찾겠다며 갈미봉 이쪽저쪽을 헤매며 아마 여기쯤에서 불을 피워놓고 잠을 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얼굴에 젊었을 적 모습이 언뜻 비취기도 했다.정상에서는 우리 동네 구석구석을 볼 수 있었다. 저 산을 넘어가면 어디가 있고, 저 산엔 어쩌다 오르게 되었는고, 저기에서는 무슨 일을 했는지, 뭐 이런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아버지는 내가 처음 이 동네에 온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설명해주셨다. 나도 다 아는 곳이었지만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했다. 더 자주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19-11-19

어떻게 살 것인가 캐묻는 사람들(2)

생각학교에서 읽기는 3개월 단위로 강조 분야가 다릅니다.1쿼터 고전 공부법. 수평, 수직 독서법, 읽기, 쓰기, 토론의 기술, 독서 루틴 등을 다룹니다. 2쿼터 문학과 예술입니다. 고전문학, 근대문학, 영미소설, 르네상스 예술사, 음악의 이해 등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지요. 3쿼터 역사는 고대로마사, 1885년 이전의 미국역사, 19세기 유럽 지성사, 과학의 역사 등 지성사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기릅니다. 4쿼터 철학. 고대철학입문, 근대철학입문, 근대정치사상, 법과 경제사상사를 다룬 책들을 함께 읽고 생각의 역사를 훑어봅니다.토론은 내 좁은 시야를 넓혀주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오독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래서 책을 쓰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오류를 바로잡는 방법이 텍스트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방식이지요.워크숍 시간에 고전 토론을 진행합니다. 그동안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문학적 건망증’, 조지 오웰의 ‘스파이크’, 프란츠 카프카 ‘단편’,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 그리고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토론했습니다. 11월에는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 ‘뤼시스’를 토론합니다.인류 역사를 뒤흔든 깊은 내용, 고전 저자들의 위대한 문장들이 우리의 생각을 자주 멈추고 책을 뒤적이게 합니다. 학위를 주는 것도, 취업이 되는 것도, 유명해지는 것도, 내 몸값이 높아져 더 좋은 곳으로 삶이 상승하는 것도 아닙니다.각자 우물의 깊이가 더 아래로 내려가 맑은 물을 길어 낼 수 있기를 소망하며 노력합니다. 구름 아래 떠돌던 삶이 위로 치솟아 밝고 환한 태양 아래 빛나는 삶으로 가득하기를 기대합니다. 숨겨진 가능성을 찾고 그 보물들이 반짝이며 나답게 하는 순간을 만나고 싶은 열망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19

작게 그리고 초라하게 시작하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연말이 다가온다. 이때쯤이면 지역 내 정치, 행정은 물론 주요 기업, 단체들도 새해의 신규 사업 발굴에 고심하기 마련이다. 사실 새로운 사업 추진을 위한 예산확보 문제는 특정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바쁜 시간을 보낸다고 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떠한 분야를 불문하고 단일 사업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시대적 구분을 할 때 가장 상징적인 하나의 사건을 단지 인용할 뿐이다. 용암이 끓어오르지 않고 갑자기 화산이 폭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경제주체나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 생활양식 등도 마찬가지다. 결코 이러한 것들은 하나의 계기나 사건, 사업만으로 변화할 수는 없다.그러하기에 우리는 신규 사업을 구상할 때 과도한 기대를 접을 필요가 있다. 아무리 화려하게 사업조감도를 작성하고,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신규 사업을 추진하였을 때 나타나는 진정한 효과는 수없이 통제할 수 없는 많은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결정된다. 일례로 어떤 사업이 지역에서 추진될 경우 그 사업의 추진과정과 완료된 이후까지도 해당 사업의 성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그 지역의 정체성, 경제 산업구조, 주민의 정치적 성향, 인구사회구조의 변화 등이 때로는 단독으로 때로는 복합적이고도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면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해당 사업의 진정한 효과는 아무도 모른다가 정답이다.문제는 정치가, 행정기관 또는 어느 기업의 최고경영책임자가 투표권자, 시민 내지는 주주들에게 무엇인가를 내세우려면 신규추진사업이 매우 거창하고, 화려하며, 엄청난 기대효과를 주는 사업이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와 관련된 이해관계자인 투표권자, 시민 그리고 주주들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정치인이 자신들의 지역사회를 단번에 변화시켜주기를 바라고, 행정수장에게 지역이 갑자기 발전할 수 있는 정책을 펴기를 바라며, 경영진에게는 배당금이 전년보다 엄청 늘어나기를 기대한다.바로 여기에 해당사업이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할 수 있는 요인을 내재하고 있다. 우리는 예전처럼 일사불란이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다양성, 계층 간 구분이 없는 포용성 등이 확산되면서 인재채용절차에서 조차 성별 나이를 불문하는 단계까지 왔다.이러한 다양성 사회에서 모든 계층을 만족시키는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단일 사업이란 애초에 있을 수 없음을 사업 입안자는 물론 이해관계자인 우리 모두가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사업의 규모나 외형보다는 어떠한 사업이든 하나씩 마침표를 찍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거대한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고, 화려하게 치장한 엄청난 기대효과로 포장된 사업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을 때가 왔다. 모든 지역민이 아니라 농어촌 어떤 한 구석 동네의 소수를 위한 사업이라도 하나씩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고 아주 조그마한 성과라도 낸다면 그것으로 좋다. 작게 더 작게, 화려하지 않고 초라하게 시작하자.

2019-11-19

떠날 때를 아는 것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이낙연 국무총리의 동생인 이계연 삼환기업 대표가 사의를 표명하였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두 차례나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삼환기업을 흑자로 전환하고 신용도를 제고하는 등 회사를 안정화하는데 기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영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무총리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여러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사퇴를 결심하였다고 한다. 삼환그룹 계열사의 기업 대표라면 연봉이 모르기는 몰라도 엄청날 터인데 용단을 내린 것 같다. 연봉이 아깝지는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아까운 생각도 든다. 솔직히 필자에게는 연봉이 얼마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하지만 형님인 국무총리나 사회에 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 크지 않았을까? 아마 이 말이 떠올랐을 게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즉, 오이가 익은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않으려는 뜻일 것이다. 정치색을 떠나 잘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다. 칭찬할 것은 칭찬하자. 한 마디로 깔끔하다.필자가 두 번째 떠올린 것은 바로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落花)’의 한 구절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요즘 우리 사회에는 염치없이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도 불구하고 가야 할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그 때를 모르고 그 자리에서 버티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 물러날 때에 제대로 물러나지 못하는 것은 권력욕과 자리욕심일 것이다. 그 자리에 있을 때 주어지는 여러 가지 특전, 영어로 ‘Perk’라고 한다. 한번 그 꿀맛을 보면 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기중심의 아집과 고집도 톡톡히 한 몫을 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휩싸여 쉽게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기업인들은 물러날 때와 나설 때를 잘 안다. 기업의 언어는 회계이다. 차변과 대변으로 이루어지는 대차대조표, 아니 요즘에는 재무상태표로 바뀌었다. 재무상태표의 대차평균의 원리를 알고, 총수익에서 총비용을 빼면 손익이 나오는 손익계산서를 아는 사람들이 기업인들이다.세 번째로 내년 총선이 떠오른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새 인물, 정치신인을 영입하려고 애쓴다. 현역의원 물갈이를 통해 새로운 바람몰이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정된 지역구에 공천을 두고 신인의 참신함과 다선의원들의 경험이 충돌한다. 정치의 목표는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일 게다. 국민의 행복 지수는 재무상태표나 손익계산서로 수치화하기 곤란하다. 그래서일까! 떠날 때를 잘 아는 정치인은 드물다.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도 없으면서, 혈세를 낭비했다면, 어영부영했다면, 떠날 줄 아는 염치가 필요할 성 싶다.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 하지만 때가 되면 꽃은 다시 피고 달도 다시 차오른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이는 떠날 때를 알고 떠난다. 지금 가면 아주 가는 것도 아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 겨울이 오는 것을…. 어디서 무엇을 하든 국무총리의 동생이 아니겠는가? 이 사회가 공평한 눈으로 봐줄 수 있을까? 그의 건투를 빌어본다.

2019-11-19

세대교체론

국어사전에 세대(世代)란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의 일을 계승할 때까지 30년 정도 기간’이라 설명한다. 본래 세대는 전통적 사회에서 가족체계를 구성하는 핵심적 개념이다. 세(世)는 사람의 한평생이고 대(代)는 대신해 잇는다는 뜻이다. 아버지에 이어 장남이 대를 잇는다는 개념이다. 현대사회에 와서는 같은 시대를 살면서 공통의 의식을 가지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 집단을 가리킨다. 보통 한 세대를 30년으로 보나 급변하는 세상 변화로 요즘은 20년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전쟁 후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 모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모바일 세대, 90년대 30대였던 386세대 모두가 한 시대의 특징을 모아 부르는 이름이다. 특히 386세대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괄목할 만큼 성장시킨 세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지금은 기득권층 반열에 올라 권력과 특혜를 누리는 세대로 비판을 받는다.세대교체론이 무성하다. 세월과 함께 자연스럽게 바뀌어야 할 세대 간 교체가 특정세대가 오랫동안 머물며 독점적 혜택을 누린다면 저항에 부딪치는 것은 당연하다. 조국사태 이후 민낯이 드러났다는 386세대에 대한 반발 등이 그런 예다. 20대 국회의 평균 연령이 55.5세라 한다. 역대 국회 중 최고령이다. 60대 이상 의원수가 86명으로 앞서보다 17명이 늘었다. 40대 이하는 53명에서 36명으로 줄고 초선의원 비율도 줄었다.세대교체론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대 국회는 일하는 국회가 아니라는 평가도 세대교체론에 무게를 실어준다. 여론조사도 국민 10명 중 8명이 세대교체를 희망한다고 했다. 언감생심 국회의원 입에서 의원 수를 늘리자는 말이 나올 수 있겠나 말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1-19

여론조사의 필수조건

이곤영 대구취재본부장“여론조사는 의뢰자의 입맛대로 가능하다”는 말은 정치권과 여론조사기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가운데 여론조사의 결과에 대해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 당시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한 조사기관마다 결과가 첨예하게 엇갈렸고 동일기관의 조사에서도 결과가 들쭉날쭉 해 여론조사 신뢰성 문제가 불거졌다.최근 국내 대표적인 조사기관 중의 하나인 모 여론조사기관의 모집단 표본이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에 편향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여론조사기관이 지난 5월 13∼15일 전국 남녀 1천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6일 발표한 주간 정례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는 48.9%였다. 이에 한 언론사는 표본 표집의 오류를 지적하고 실제 지지도는 29%라는 것이 중립적인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고 보도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체 응답자 1천502명 중 지난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찍었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53.3%인 800명이나 포함돼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또 지난 8월30일 조국 장관 임명을 두고 반대(54.3%)와 찬성(42.3%)의 격차가 12%포인트로 벌어졌으나 9월4일에는 격차가 오차 범위 내인 5.4%포인트로 좁혀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조 장관 일가에 대한 비리 의혹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던 시점에 통상적인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8월30일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조사에서는 ‘조 장관이 법무장관으로 부적절하다’(57%)는 응답이 ‘적절하다’(27%)를 무려 30%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양대 여론조사 기관이 서로 다른 결과를 내놓자 보수성향의 국민들이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고 특정 정권에 유리하거나 또는 불리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는 오해까지 받게 된 것이다.이런 가운데 대구 서구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자유한국당 김상훈 의원이 민심을 조작하는 여론조사기관을 영구퇴출하는 ‘(가칭)정치 및 선거여론조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다고 한다. 이 법안에 따르면 불법여론조사로 형사처벌을 받은 여론조사기관은 향후 10년간 재등록할 수 없도록 해 사실상 영구퇴출하는 등 벌칙을 대폭 강화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얼마나 여론조사가 신뢰를 받지 못하면 이런 법안까지 만들어야 하는지 씁쓸하기만 하다.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민심을 파악하는 데 여론조사가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대통령과 정당 지지율 조사뿐만 아니라 중요한 정치 현안마다 여론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국가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가 신뢰받기 위해서는 모집단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과 중립성, 과학적인 조사방법과 통계 처리로 최종값을 얻어내야 한다. 잘못된 여론조사가 국가의 존망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2019-11-19

진정한 자유학기제의 의미를 살리려면

조현명 시인막 교직에 들어온 한 여선생님과 자유학기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것을 잠시 내려놓고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라는 것에 대체적으로 같이 동의했었다. 그런데 여자의 편에서 보면 남자들이 부럽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군대라는 인생의 자유학기제가 주어지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일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은 그때 가장 많은 고민과 자기성찰이 이루어지는 시기이고 제대 후 현실적이 되고 많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면 여자는?” 이란 질문에 “글쎄요. 굳이 말한다면 걸으면서 생각한다는 정도로 보면 될까요.”라고 말했다.중학교 1학년에 자유학기제가 도입 된지도 6년째가 되었다. 중학교 교육과정 중 한 학기를 학생들이 중간·기말고사 등 시험부담에서 벗어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그에 따라 수업 운영을 토론, 실습 등 학생 참여 중심으로 개선하고 진로탐색 강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체험 활동이 가능하도록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했다.결과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유지되어왔고 또한 자유학년제로 확대할 예정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먼저 취지에 맞으려면 고등학교에 도입되어야 하지만 대입이라는 큰 걸림돌 때문에 중학교에 편성되었다. 그러다보니 진정한 자유학기제의 의미를 담기에는 부족한 듯하다. 앞에서도 남자들은 군대에서나 진정한 자유학기제를 가진다고 말해지고 있는 걸로 보면 생각해볼 점이 있다. 남자가 군 복무하는 시기는 자신을 성찰하고 꿈을 말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감이 있기 때문이다.또한 중학교에 도입된 자유학기제는 일부 학생에게 매우 치명적인 학습기초부진을 낳고 있다. 최근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서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이 증가하고 있다. 기초학력 부진 학생들의 특징은 중1부터 자유학기제에 의해 학업을 등한히 한 것이 습관화되어버린 것이 큰 원인이다.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가다가는 망하는 개인이 나온다는 말은 오래됐다. 혹 자녀가 자유학기제에 들어가는 중1이라면 기초학력이 부진해지지 않도록 학습습관을 놓지 않도록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겠다.졸업생들이 찾아와서 한 말 중에 가장 인상적인 말이 “인생 중 가장 중요한 시기를 들라면 고등학교 3년인 것 같아요. 3년 동안의 학업의 결과가 인생을 결정해버리니 말이예요”이다.그 말을 듣고 교사로서 반성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런 중요한 시기에 이미 학습습관을 갖지 못하고 기초학력부진으로 진학한 학생을 교사로서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는 무능함이 첫 반성 내용이다.또 대입이라는 목표 때문에 잠시도 여유가 없는 학생들에게 꿈과 끼를 살려보자며 토론대회를 열고, 수행평가에 찌들린 학생들에게 진로체험과 온갖 진로프로그램을 강요한 것도 반성이 됐다. 물론 대입제도와 학교교육과정이 그러니 일개 교사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전술한 여선생님이 “걸으면서 생각했다”면 고등학생들에게는 “뛰면서 생각해”라고 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진정한 자유학기제의 의미를 살리려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설치해야 올바를 것이다.

2019-11-18

어떻게 살 것인가 캐묻는 사람들(1)

조지 오웰이 말합니다. “기만이 가득한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적인 행동이다.” 거짓이 판치고 기득권이 대중을 후려치는 험준한 땅에서 진실을 글로 외칠 수 있는 용기있는 이들이 하나 둘 모일 때 진정한 변화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지난 2018년 9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캐묻는 사람들의 ‘생각학교ASK’라는 길고 긴 이름을 가진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생각학교’에서 기르고 싶은 힘이 바로 고결함에 이르는 엘리베이션 파워입니다.이 학교에는 세 가지 전공과목이 있습니다. 읽기, 쓰기, 토론하기. 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의 세 가지 도구입니다. 가장 강조점을 두는 포인트는 쓰기입니다.이오덕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글을 쓰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이 있는지를 나는 모릅니다.”생각학교 학생들은 매일 씁니다. 매일 한 개씩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한 달에 30개의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스스로 써내려 갑니다.20개의 질문은 생각학교에서 미리 준비해 제공하고, 10개의 질문은 스스로 만들고 답합니다.진짜 나를 알아가기 위해, 내 안의 암묵지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보물들을 캐 내기 위해 질문하고 또 질문합니다. 생각학교는 5년 과정입니다.이 5년 동안 1천800개의 질문을 던지고 꾸준히 보물찾기 하듯 글을 씁니다. 구름 아래에서 좌충우돌하고 낙심하고 슬퍼하고 우울하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한 발짝 떨어져 나를 객관화하고 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엘리베이션 파워를 키워갑니다.생각학교는 끊임없이 에세이를 씁니다. 질문에 묻고 답하면서 스스로 발견한 것들, 정리해 보고 싶은 주제를 선택해 정제된 언어로 글을 써 봅니다.모임에서는 그 글을 미리 인쇄해 배포하고 서로 발표합니다. 격려와 피드백으로 서로를 세워나갑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18

가치농단과 검찰개혁

강희룡 서예가지식의 축적이 인격의 성장과 비례하지 않는 것이 사회의 현실이다. 배움이란 현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천적 지식으로 활용돼야 가치가 있으며 이 지식이 선(善)쪽으로 사용돼 사물의 이치나 도리를 깨닫고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할 때 지혜라 한다.캐나다 출신의 사회인지학습이론의 창시자인 반두라는 사회학습이론에서 특정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강화보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함으로써 사회적, 인지적 행동을 배우고 좀 더 효율적인 학습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즉 사람의 성장과정 속에는 역할모델이 있다. 이 역할모델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나도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하며 마음속에 그리게 되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다. 대표적인 예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침대 머리맡에 뉴턴의 사진을 붙여놓고 그 사진을 보면서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노력하고자 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역할모델은 주변의 어른이나 책 속의 위인이 될 수도 있으나 부모가 되는 경우도 많으므로 부모의 언행을 그대로 닮는다. 역할모델은 아이의 관심분야에서 성취과정을 본받게 된다는 점에서 진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에 아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하며 은연중에 부모의견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질만능으로 치닫는 지금의 우리 교육에서 긍정적인 부모의 역할모델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특히 상위계층 일수록 오로지 내 자식만이 물불 안 가리고 명문대에 입학시켜 잘 먹고 잘살게 하면 된다는 생각에 교육을 단지 돈 버는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자식입시에 대한 그릇된 열망과 부모들의 욕망을 소재로 2002년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이 있다. 일본 사회의 대다수가 갈망하는 명문학교 입학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가족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 엔터테인먼트 문학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수작으로 꼽힌다. 명문 중학교 입시에 대비해 호숫가 별장에서 합숙과외를 하는 네 쌍의 가족들에게 벌어진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일본 교육시스템의 문제점과 폐단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풍자한 작품이다. 우리의 교육현실과도 맞물려 있어 공감이 큰 내용이다. 2019년 2월까지 방영된 JTBC의 한국의 의대입시와 사교육의 과욕을 소재로 삼았던 드라마 SKY 캐슬이 있었다. 이 드라마의 결말은 다행히 성적보다 자신의 가치관을 더 중시하는 모습으로 막을 내렸다. 가족들은 새로운 삶을 위해 스카이 캐슬을 떠났고 가식적인 삶에서 본성을 회복함으로써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참된 삶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 한국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조국가족의 빗나간 자식사랑’이라는 드라마 같은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다. 지금도 ‘엄빠찬스(엄마와 아빠의 지위를 이용한 특혜)’를 이용해 입시부터 취업까지 각종 범법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조국사태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정과 정의를 어지럽힌 가치농단을 검찰개혁이라는 틀 속에 희석시켜 왜곡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9-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