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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종 임금이 서민과 함께 고깃국을 먹었다?

설렁탕에는 근거 없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늘 따라 다닌다. ‘선농단(先農壇)’에서 ‘설렁탕’이란 이름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이 ‘전설’은 다수설이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믿고 있다. 근거는 전혀 없다. ‘주장’도 아닌 ‘전설’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아마도 일제강점기, “그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와전되었다고 믿는다. 왜 일제강점기일까? 그 이전의 기록에는 ‘설렁탕’이 나타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설렁탕이 나타난다. 조선 말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에 ‘선농단=설렁탕’이 시작되었다.세종대왕과 설렁탕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많다. 세종대왕은 예나 지금이나 성군으로 추앙받는다. 그래서 ‘세종대왕 때’다. 내용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동화”인데 이야기 얼개는 제법 그럴듯하다.설렁탕은 조선 말기 주막과 더불어 시작된다“세종 임금이 선농단에 제사 모시고, 행사하러 갔다. 하필이면 행사가 끝날 무렵 비가 억수로 왔다. 세종대왕은 제사에 사용한 고기를 큰 가마솥에 끓이게 한 다음, 행사에 참석한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선농단에서 먹었기 때문에 설렁탕이라고 한다.”대략 이런 내용이다. 세종대왕이 흉허물 없이 일반 서민들과 고깃국물을 나눠 먹었다는 동화다. 물론, 터무니없다.지금도 마찬가지. 최고 통치자가 위급한 상황을 만나면 최우선으로 취하는 행동은 ‘정위치’다. 대통령이 외부 행사에 참석했는데, 대형 천재지변이 발생했다. 빨리 청와대로 돌아간 다음, 상황을 살피고 조처를 해야 한다.비가 많이 와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면 국왕은 먼저 환궁(還宮)한다. 높고 낮은 벼슬아치들이 동행하고, 그중에는 국왕의 안위를 챙기는 군인, 궁중의 인력들도 있었을 터이다. 선농단이 있었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궁중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선농단 행사는, 우리가 지금 그리는 것 같이, 소박하고 작은 행사가 아니다. 조선은 농본국가다. 농사가 국가의 바탕이다. 풍년은 ‘국왕의 선정’이다. 풍년이 들면 ‘성군(聖君)’이 된다. 홍수, 가뭄 등 천재지변으로 농사가 순조롭지 않으면 국왕은 멍석, 거적을 깔고 하늘에 죄를 고했다. 죄인이다.선농단은 한양도성의 동쪽에 있다, ‘동(東)쪽’은 생명, 생산, 새롭게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차기 왕위 계승권자인 세자는 ‘동궁(東宮)’이다. 국왕은 궁궐 동쪽의 선농단에서 모든 물산이 풍부해지기를 기원한다. 나라와 백성의 삶이 ‘농업 생산’에 달려 있다. 국왕은 ‘생산의 기본인 농사’를 직접 시범한다. 친경(親耕)이다. 국왕은 새벽부터 일어나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준비한다. 술잔을 따르고, 제사상에 드나드는 모든 절차까지 미리 준비한다. 제사상에 드나드는 사람에 맞춰 음악도 꼼꼼히 챙긴다. 이토록 꼼꼼하게 준비하는 행사에 비상 매뉴얼이 없을 리 없다.두 번째는 고깃국물과 설렁탕의 차이에 대한 오해다. 궁중이나 지방 관청에서는 정육(精肉)을 공급받는다. 오늘날 정육점에서는 고기와 더불어 사골 등 뼈도 판매하지만, 원래 정육은 ‘기름이나 뼈를 제거한 고깃덩어리’를 이른다.선농단의 제사다. 날고기라도 정육을 올렸다. 정육을 고면 대갱(大羹), 곰탕이 되고 고기 부산물을 고거나 끓이면 설렁탕이다. 부산물은 뼈와 사골, 잡뼈, 대가리, 기름 부위 등이다. 세종대왕이 촌노, 마을 주민들과 제사에 사용한 고기를 끓여서 나눠 먹었다면 설렁탕이 아니라 곰탕을 먹은 것이다.덧붙일 이야기가 또 있다. 지금과 같이 불, 주방 도구 사용이 자유롭던 시절이 아니다. 백 명 정도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대단한 일거리다. 고기를 끓일 가마솥, 장작, 그릇, 수저, 음식을 장만하고 내놓는 인원 등 어느 것 하나 편하지 않던 시절이다.예나 지금이나 최고 통치자의 동선에 돌발적인 일이 끼어드는 것은 최악이다. 비 온다고 국왕이 세민(細民)들과 식사를 같이 했다? 그야말로 “그랬으면 좋겠다”는 동화다.쇠고기는 있되, 설렁탕은 없었다?왜 조선 초, 중기에는 설렁탕이 없었을까? 왜 조선 후기까지도 설렁탕이 없었을까? 양이 많든 적든 ‘소의 도축’은 있었다. 제사, 손님맞이에 고기는 필요하다. 종묘, 성균관을 비롯한 각종 제사, 외국에서 오는 손님맞이 등이다.조선 초기에도 소의 공식적인 도축은 있었다. 문제는 양이다. 조선 후기에 비하면 양이 적었고 더더욱 불법 도축은 엄히 금했다.‘조선왕조실록’ 세종 7년(1425년) 2월의 기사다. 제목은 ‘한성부에게 우마를 도살하는 자를 수색 체포하여 엄히 금단하게 하다’이다.(전략) 우마(牛馬)를 도살(盜殺)하는 자는 오로지 이 신백정(新白丁)이기 때문에, 영락(永樂) 9년에 신백정을 조사 색출하여 도성으로부터 3사(舍) 밖으로 옮겨 놓았던 것입니다. 근래에 와서 이 금지법이 무너져, 드디어 성안과 성 밑으로 모두 돌아와 살면서, 한가로운 잡인과 더불어 같이 우마를 훔쳐내어 도살(屠殺)을 자행하니, 그 간악(奸惡)함이 막심하옵니다. 위에 말씀드린 백정과 그 처사를 모두 조사 탐색하여 아울러 해변 각 고을로 옮겨, 군관(軍官)으로 하여금 수시로 핵문(覈問)하여 원주지로 도망해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 우마의 고기를 먹는 자에게 다만 태형(笞刑) 50대를 가하니, 사람들이 이를 모두 가볍게 여기고, 〈그 고기가〉 나온 곳을 묻지 않고 공공연하게 사서 먹으므로 도살이 근절되지 않고 있사오니, 매우 부당한 일입니다. 금후부터는 (중략) 한성부(漢城府)로 하여금 이를 수색 체포하여 엄중히 금단(禁斷)을 가하도록 하소서. (후략)같은 시대임에도 글의 ‘신백정’은 다른 글에서는 ‘양척’ ‘화수척’ 등으로 더 험하게 표현했다. ‘새롭다’라는 ‘신’은 이들이 아직 조선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백정은 ‘일반적인 백성’을 의미한다. ‘신백정’은 새로운 백성이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 농사를 짓지 않고 고기를 만지는 이들이다. 도축은 이들의 손에 달렸다.신백정은 ‘3사 밖으로’ 쫓겨냈다. 1사는 30리, 3사는 90리다. 도성 바깥으로 쫓아낸 다음, 철저하게 관리했다. 벌이 너무 약하다. 아예 바닷가 마을로 쫓아내자고 말한다. 조선 시대 내내 바닷가는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이었다. 왜구들의 침략이 잦으니 바닷가 사람들은 전부 내륙으로 옮겼다. 이런 곳에 살게 하자는 것이다. 온전한 국민으로 여기지 않았다.불법 도축한 고기를 사 먹는 이에 대한 벌도 낮지 않다. 태형 50대다. 이것도 법이 너무 무르니 더 심하게 하자는 상소다.민간의 고기 수요도 철저히 통제되었다. 제사나 손님맞이 등에 고기가 필요하면 관청에 신고하고 특정 시기, 특정 양을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불법 도축은 좀 더 많은 고기를, 좀 더 편하게 구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편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기를 도축하고 그 부산물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렁탕이 나오지 않았던 이유다.시중(市中), 난전(亂廛)에서 특정 음식을 내놓으려면 음식 재료가 꾸준히, 일정 물량 공급이 가능해야 한다. 조선 전기에는 모든 면에서 설렁탕이 나올 수 없었다.설혹 부산물을 구할 수 있다 해도 ‘시장’ ‘식당’이랄 수 있는 ‘주막’이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다. 조선 초기, 상업이 발전하지 않았고 공식적인 시전(市廛) 이외에는 시장이 아예 없었다. 대부분 민간은 물물교환 경제였다.관리들은 역원(驛院)을 이용했고, 사설의 주막은 조선 후기의 이야기다. 고기 부산물도 없고, 주막도 없다. 더더욱 주민들의 이동이 드무니 설렁탕이 있었다 하더라도 사 먹을 사람이 없었다.개장국[狗醬, 구장]이 흔하던 시절이다. 조선 후기까지 주막의 주요메뉴는 개장국이었다. 쇠고기 부산물로 만든 설렁탕이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이유다. 조선 후기부터 소의 생산이 늘어난다. 금육이 풀리고 주막이 활발해진다. 청나라 영향으로 개고기를 피하는 이들이 생긴다. 여전히 정육, 살코기는 비싸다. 소 부산물로 끓이는 설렁탕이 급작스럽게 시작된다.한 가지 의문. 조선 초, 중기, 쇠고기 부산물은 먹지 않고 버렸을까? 그렇진 않다. 냉장,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이다. 각종 뼈, 소 대가리, 기름 등도 백정 혹은 인근 주민들이 먹었을 것이다. 다만 상업적으로, 설렁탕이라는 이름은 없었다.세종의 선농단, 설렁탕은 전설이자 아름다운 동화다./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10-14

스니커테크

스니커테크는 한정판 운동화를 가리키는 스니커와 재테크의 테크가 합쳐진 신조어로, 한정판 운동화를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한때 고가의 명품백을 되팔아 재테크하는 것을 샤테크(샤넬+재테크)라 불렀다면 이제는 운동화에 투자하는 스니커테크가 대세라고 한다.실제 얼마전 서울 마포구 나이키 조던 홍대점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그날 발매하는 ‘에어 조던 6 트래비스 스콧’의 드로우(Draw·제비뽑기)에 참여하려는 인파가 몰려서다. 드로우란 추첨을 통해 신발을 구매할 권리는 주는 것으로, 한정판 운동화 판매 방식으로 쓰인다.나이키는 이날 1만 개의 응모권을 발행했고, 총 656명에게 운동화를 살 기회를 줬다고 한다. 판매된 운동화 가격은 30만 9천 원이었지만, 출시 사흘 만에 이 운동화 가격은 중고거래 사이트 등지에서 140~180만 원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출시 3일 만에 가격이 6배나 오른 것이다. 180만원에 판다면 수익률은 482%. 운동화 구매권 응모에 사람들이 몰린 이유다.젊은이들의 이런 운동화 재판매 열풍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의 한 투자은행은 2025년까지 전 세계에서 60억 달러, 우리 돈 7조 1천600억여 원 규모의 스니커즈 재판매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추정했다.인기가 높은 신발은 당첨만 되면 리셀(Resell·재판매)로 2~3배의 수익을 낼 수 있고, 수수료도 세금도 낼 필요가 없으니 이만한 투자처가 없다. 만약 팔리지 않아 수익을 내지 못한다 해도 큰 문제는 없다. 신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한정판 운동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더 높아진다니 변화하는 세태가 어지러울 따름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0-14

진흙 속에 피는 연꽃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정치꾼(politician)들이 권력을 두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 편, 네 편 나누어서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고 우기는 진영논리는 한국정치를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었다.‘정치는 실종’되고 ‘정략(政略)만 난무’한다. ‘승자독식’의 정치풍토이니 대화와 타협은 없고 집권을 위한 투쟁만 있다. 진보진영이 50만 명 동원해서 시위하면 보수진영은 100만 명을 결집시켜 세(勢)를 과시한다. 정치가 실종되었으니 국민은 생업을 뒤로한 채 거리의 전장(戰場)으로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국민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정치꾼들의 집권을 위한 대리전이다. ‘승자는 정치꾼’이고 ‘패자는 국민’일 뿐이다.거짓과 위선의 정치꾼들은 자연으로 돌아가서 ‘연꽃의 삶’을 배워야 한다. 연꽃은 ‘처염상정(處染常淨)’ 즉,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다. 색깔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하며, 향기는 강하지 않으면서도 은은하다. 연꽃은 가장 화려할 때 물러날 줄 아는 ‘군자의 꽃’이다. 연꽃은 정치꾼들에게 ‘자기 정화와 겸손의 미덕’을 가르쳐 준다.조국 사태의 본질은 ‘이념이 아니라 공정의 문제’임에도 진영논리에 갇힌 사람들은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특정 이념의 왜곡된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경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상대방만 탓한다. 반면에 ‘연꽃 같은 사람’은 자기 진영이라 할지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 없이 비판한다.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서도 청정심(淸淨心)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불행 중 다행인 것은 진보진영에도 ‘외눈박이 프레임’에 갇히지 않은 연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참여연대의 김경율 집행위원장은 “조국은 민정수석 자리에서 시원하게 말아 드셨다”고 하면서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인사들의 권력과의 밀착’을 맹비난하였다. 경실련 정책위원장인 박상인 교수도 ‘진흙탕 싸움의 원인은 대통령의 조국장관 임명’에 있기 때문에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조국 사태를 풀어야 한다.”고 고언(苦言)하였다. 이들 역시 진보주의자이지만 결코 정의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연꽃을 닮았다.정치적 동물인 인간은 ‘마약 같은 권력’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통합’과 ‘공정’을 철석같이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고 공정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념과 권력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오물 속에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결코 청정함을 잃지 않고 단아한 꽃을 피우기까지 겪는 연(蓮)의 고통을 생각해 보라. 연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오물을 걸러내고 또 걸러내는 자기 정화의 노력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도 대의(大義)에 헌신하는 ‘올바른 정치인(statesman)’이 되고자 한다면 ‘연꽃 같은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2019-10-14

인사가 망사(亡事)

인재 등용을 얘기할 때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일화가 자주 인용 되는 것을 본다. 신입사원 면접 때 자신이 직접 참석할 뿐 아니라 관상가를 모셔놓고 면접을 보는 독특한 스타일 때문이다. 이 회장 자신도 평소 관상학에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고 전한다. 사람을 잘 뽑아야 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그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내 일생의 80%를 인재를 모으고 교육시키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할 만큼 삼성의 발전은 유능한 인재에 있었음을 강조했다.삼국지에 등장하는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인재를 알아본 영웅의 일화다. 촉한의 유비는 오두막집에 기거하는 제갈량을 세 번이나 찾아가 간청한다. 제갈량의 지혜와 재능으로 유비는 정치적 포부를 이루는데 인재 영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는 교훈이다. 세종대왕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조선 최고의 융성함을 누렸던 것도 인재등용 정책 덕분이다. 조선시대 최고 발명가인 장영실은 본래 노비 출신이었으나 세종대왕에 의해 발탁된다. 세종은 그를 중국으로 유학보내 공부를 하게함으로써 그를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로 키웠다.인사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사람을 잘 뽑아 적재적소에 앉히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뜻이다. 단체든 기업이든 국가든 인재를 잘 등용해야 흥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가 입증했다. 따지고 보면 세상사 모든 것은 사람의 손끝에 달렸다. 인사가 만사라는 인재 등용의 진리는 고금동서를 관통한다.조국사태가 두 달째 소용돌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민의 걱정이 온통 나라를 덮는다. 대통령의 인사 하나로 끝날 문제가 이 지경에 왔다. 인사가 망사(亡事)가 된 꼴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10-13

‘검찰 개혁’ 죽이기

안재휘 논설위원승불요곡(繩不撓曲)이라는 말이 있다. 한비자(韓非子) 유도(有度) 편에 나오는 이 말은 ‘먹줄은 나무가 굽었다 하여 같이 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이란 먹줄과 같은 효능을 갖고 있다. 곧은 길이 어디인지, 우리가 지켜야 할 경계가 어디인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불가침의 기준이다. ‘법치’란 바로 먹줄의 기능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시대 상황이 제아무리 휘었다 한들 절대 휜 줄을 치지 않는 먹줄의 가치는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조국 대란’에 휘둘린 지 석 달째 접어들면서 대한민국은 ‘궤변 공화국’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조국의 문제는 ‘진보-보수’가 아니라 ‘정의-불의’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다. 아무리 생각해도 논리적 연결성을 찾아내기 힘든 대목은 ‘조국 수호=검찰 개혁’이라는 구호다. 불법과 편법이 뒤죽박죽 엉킨 인생을 살아온 조국 일가의 온존이 어찌 검찰 개혁과 등치(等値)되는 개념인가.최고 수준의 교졸한 궤변론자로 유명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치지도 않고 서툰 훈수질을 멈추지 않고 있다. 조국 장관 딸 조민의 인턴 수료증 위조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될 당시에 동양대 총장과 통화를 해 물의를 빚은 그는 대뜸 ‘유튜브 기자로서 취재한 것’이라고 세상을 희롱했다. 정경심 교수의 증거인멸을 ‘증거보존 행위’라고 강변해 또 한 번 그 진영주의 논법의 천박성을 드러낸 바 있다.이번에는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특수부를 반부패수사부로 바꿔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한 3곳에만 최소한으로 설치하기로 합의한 검찰개혁안을 물고 늘어졌다. 유시민은 이를 놓고 “영업 안 되는 데는 문 닫고, 잘 되는 곳은 간판만 바꿔서 계속 가면 신장개업이지 없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비아냥댔다.이쯤 되면 여권(與圈)이 추구하고 있는 ‘검찰 개혁’이 곧 ‘검찰의 무력화(無力化)’임을 단박에 알게 한다. ‘권력의 사냥개’였던 검찰을 ‘권력의 똥개’로 만들자는 흉계인 것이다.조국 장관이 내놓은 검찰개혁안도 마찬가지다. 법무부의 ‘인사권·감찰권’ 강화로 검찰을 통제하겠다는 그의 구상은 분명하게 ‘검찰 개혁’의 역방향이다. 검찰의 1차 감찰권을 법무부가 빼앗겠다는 방침은 ‘검찰독립’을 현저히 헤쳐 대통령의 ‘검찰 장악’을 더욱 강화할 게 틀림없는 개악(改惡)임이 분명하다. 서초동에 모여서 펼치는 친여세력 힘자랑의 목표가 ‘검찰 무력화’라면 이건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저질 선동정치에 불과하다.‘검찰개혁안’의 제1조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 중에도 상식이다. ‘검찰 개혁’이라는 구호를 앞세워서 ‘검찰 개혁’을 완전히 죽이고 있는 이 역설을 어찌 헤쳐가야 하나. 굽은 나무에 굽은 먹줄을 치려는 이 음험한 정치적 먹구름은 대체 어떻게 걷어내야 할 것인가.엉터리 궤변에 동조해 ‘조국 수호=검찰 개혁’ 팻말을 들고 길거리에 나가 말도 안 되는 구호를 외치며, 자신이 무슨 모순을 빚고 있는지도 모르는 무수한 편견의 노예들이 딱하기 그지없다.

2019-10-13

북한의 우상화와 시장화의 역설(逆說)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북한 당국은 최고 지도자를 항상 우상화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혁명 역사’와 ‘혁명 활동’까지 초중등의 핵심교과로 삼고 있다. 김일성 부자의 신출귀몰한 ‘혁명적 행위’는 우상화를 넘어 신격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김일성의 전기인 ‘세기와 더불어’도 그의 항일 투쟁과 빨치산 활동을 과장 선전하고 있다. 북한은 우상화를 통해 수령의 왕국 건설을 위해 일사불란한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이러한 수령 우상화 현상은 김정은 시대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2011년 김정일 사후 1984년 생 28세 김정은은 세습왕조의 통치를 위임받았다. 북한 당국은 그의 일천한 경륜 보강을 위해 상징조작을 시작하였다. 그의 헤어스타일과 제스처, 검은 뿔테 안경, 흡연 장면, 복장까지 할아버지 김일성을 모방하고 있다. 김정일이 회피하던 대중연설도 그는 할아버지처럼 수시로 연출한다. 30대의 통치자 김정은을 노령의 간부들이 호위하고, 그의 현장지시는 모두 빠짐없이 받아 적는다.‘적자생존’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고모부 장성택처럼 조금이라도 불경한 태도를 보이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받는다. 모두가 우상화 강화 현상이다.김정은 시대의 이러한 우상화에도 불구하고 북한 땅에서는 시장은 날로 확산되고 있다. 농촌의 소규모 장마당에서 출발한 종합 시장은 벌써 500여 개가 넘었다. 시장화에 따라 북한의 ‘돈 주’는 자본가 행세를 하고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북한의 시장화는 정보화가 촉진되어 휴대폰 소유자가 600만 명을 넘었다. 시장화의 급속한 진전은 기아자의 감소 등 긍정적인 측면도 나타난다. 그렇다보니 북한 당국은 이제 시장화의 물결을 막을 수 없다. 북한 시장에서 돈을 벌려는 사람은 증가하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신흥 부자가 되려는 것이다.이러한 북한사회의 시장화 진전은 우상화의 역행 현상을 초래한다. 그러나 북한의 시장 정책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지만 이제 시장화의 큰 물꼬를 막을 수는 없다. 벌써‘우리를 배고프게 하는 수령은 우리의 수령이 아니다’는 말까지 번지고 있다. 김정은이 작년부터 선군(先軍)보다는 선경(先經)을 앞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은 중단된 북한의 공업을 다소나마 회생시키고 물류와 운수업이 동반 성장하게 된다. 동시에 시장을 통한 정보화의 진전은 주민들의 의식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시장화가 촉진될수록 북한의 우상화 정책은 지장을 받는다. 북한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보다는 ‘눈앞의 빵’을 더욱 선호하기 때문이다.시장경제는 결국 주민들이 이념보다는 실용적 가치를 선호케 한다. 그러다 보니 북한 땅의 시장화는 우상화정책에 역행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북한 당국은 시장화의 부작용을 줄이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시장화에 따른 다양한 사회적 욕구마저 당이나 국가가 통제할 수는 없다. 시장화가 촉진될수록 독점 권력은 분산되고 다원화된다. 앞으로 북한 인민들의 정치적 욕구도 다원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장 경제의 초보 단계인 북한에서 주민들이 반정부 반체제 의식은 조직화되지 못하고 있다. 오렌지 혁명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2019-10-13

두려움을 줄이는 방법

1850년 독일의 작은 마을. 피아노 독주회 광고가 났습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가 연주하는 콘서트였습니다. 순식간에 티켓은 다 팔리고 연주회는 지역사회에 큰 화제가 됩니다. 곳곳에 포스터가 붙습니다. “피아노의 왕자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 그 품격 있는 연주가 우리 마을에 오다.”프란츠 리스트는 마침 우연히 그 마을을 여행 중이었습니다. 포스터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제자 중에 이런 여인이 있었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습니다. 프란츠 리스트가 그 마을에 왔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음악회를 준비하던 여인은 밤새 고민하다가 연주회 아침 리스트가 묵고 있는 저택을 찾아가 용서를 빕니다.“선생님. 죄송합니다. 병든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른 방법이 없어서 시골 마을을 돌며 연주회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 이름도 없는 제게 극장이 선뜻 공연 허가를 내줄 리 없기에 선생님 제자라고 속였습니다. 연주회를 취소하고 잘못을 빌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리스트는 무릎을 꿇은 여인을 일으킵니다. “솔직하게 말해 주어 고마워요. 이쪽으로 와서 피아노를 한 번 쳐 볼 수 있겠어요?” 리스트는 원포인트 레슨으로 여인의 부족함을 보완해 줍니다. “당신은 내 제자요. 이제부터 떳떳한 마음으로 연주를 해도 좋소.”무명의 피아니스트는 용서의 기쁨과 감동을 안고 그 감격을 연주에 쏟아부었습니다. 청중들은 기립 박수로 여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박수가 그쳐갈 무렵 무대에 프란츠 리스트가 등장합니다. 리스트는 자신의 제자의 연주를 축하한다며, 청중들을 위해 멋진 연주를 선사했습니다. 그날 독일의 작은 마을에는 별들이 더할 나위 없이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프레드 러스킨은 말합니다. “용서는 감옥 문의 열쇠를 우리 손에 쥐어 준다. 용서하고 나면 두려워할 일이 적어진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3

아주 작은 습관의 힘

김현욱 시인예전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알람을 아침 7시로 맞췄다. 요즘은 6시 30분으로 맞춘다. 30분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하려고 노력한다. 거창 붓다선원에서 배웠다. 명상 중에 으뜸은 아침 명상인 게 분명하다. 멍한 상태라 숨 보기가 잘 된다. 잠결이라 그런가 보다. 몇 달 그렇게 아침 명상을 하고 나니 알람이 울리면 자동으로 어정쩡하게 평좌를 틀고 앉는다. 처음에는 10분도 버거웠는데 이제는 30분도 가뿐하다. 아침 명상을 하면 하루가 든든해진다. 출근할 때 마음이 즐겁다. 미운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신비한(?) 체험을 한다. 아침 명상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잠자리에 들기 전에 꼭 책을 읽는다. 30분일 때도 있고 1시간을 넘을 때도 있다. 클래식 FM을 틀면 안락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겠다는 나만의 의식이다. 960쪽에 이르는 홍익희 교수의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도 매일 밤 30분씩, 1시간씩 읽어나가니 벌써 절반을 넘겼다. 직장인이 독서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티끌 같은 시간이 쌓여 태산 같은 독서가 된다. 경험상 자투리 시간과 잠자리에 들기 전이 책 읽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습관(習慣)이란 말이 재미있다. 습(習)은 둥지에서 어린 새가 날기 위해 날개를 계속 퍼덕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관(慣)은 마음 심(心)에 꿸 관(貫)자를 더한 한자다. 즉, 날기 위해 어린 새가 퍼덕거린 날갯짓이 마음에 꿰인 듯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날마다 반복하여 익숙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이 바로 습관이다. 습관은 신호, 반복 행동, 보상이라는 고리로 움직인다. 알람이 울리면, 평좌를 틀고 명상을 하고, 행복한 하루를 시작한다. 클래식 FM이 들리면,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나중에 공책에 밑줄을 정리하며 뿌듯함을 느낀다.안동금연센터에 4박5일간 금연 캠프를 다녀왔지만 나는 아직 담배를 끊지 못했다. 전자담배는 일종의 절충인데 냄새가 조금 덜 난다는 것 말곤 역시나 백해무익하다. 흡연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면, 담배를 꺼내 들고 밖으로 나가 피운다. 피우면서 만족과 안도감을 느낀다. 니코틴이 뇌로 흡수되는 기전을 금연센터에서 똑똑히 보았지만, 흡연이라는 신호→반복 행동→보상이라는 고리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제임스 클리어가 쓴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 따르면 자신이 원하는 행동의 변화보다는 정체성 변화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지인이 담배를 권할 때 “괜찮습니다. 금연 중입니다” 보다는 “괜찮습니다. 전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가 습관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정체성을 바꾸는 습관의 네 가지 법칙을 소개한다. ‘분명하게 만들어라’, ‘매력적으로 만들어라’, ‘쉽게 만들어라’, ‘만족스럽게 만들어라’가 그것이다.습관이 운명이다. 오복(五福)보다 독서, 운동, 명상, 글쓰기, 악기연주 같은 습관을 들이는 게 더 낫다.

2019-10-13

행복한 청도건설을 위해 나아갈 방향

이승율 청도군수다른 자치단체와 비교되는 청정자연환경에 양질의 토양, 풍부한 일조량을 자랑하고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새마을운동의 시발점 청도군의 자치단체장으로서 지난 5년 임기를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새마을운동이 새로운 변화의 시작었듯이 지자체들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루도 잊어 본 적이 없다.청도지역은 예로부터 화랑정신이 자리잡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많은 분이 배출된 고장으로 군민에게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고장을, 후손에게는 청정자연을 물려주어야 하는 사명이 자치단체장에게 있음을 명심하고 있다. 이러한 사명감으로 군민의 목소리를 듣고 군정에 도입코자 한 것이 지난 7월의 ‘변해야 산다. 역동적인 민생 청도의 건설을 위한 100인 토론회’였다.인구감소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할 방안마련을 위한 것이었지만 행정혁신부터 생활안전까지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의견이 도출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청도군의 무한한 미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밤낮없이 고심하고 있다.무엇보다 공약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밝은 미래 역동적인 민생청도의 청사진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은 100인 토론회에서 발굴된 100대 사업은 ‘모두가 함께하는 행복한 희망 청도 건설’에 한발 더 다가서게 할 것이다.100인 토론회에서 발굴된 10대 의제인 △행정혁신 △문화관광 △보건·체육·교육 △농업소득증대 △귀농·귀촌 △지역경제 △사회복지 △여성 및 아동복지 △지역개발 △생활안전·환경 등은 2017년 11월 선포된 ‘청도군 2030 비전’과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청도군 2030 비전은 △농축산업 경쟁력 강화로 지역경제 활성화 △청도의 미래 안정적인 발전기반 구축 △활력 있고 지속 가능한 도시 인프라 확충 △삶이 행복한 문화예술 활성화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 대응 및 삶의 질 향상 △아름다운 자연환경 보전과 안전망 구축 △군민만족, 문턱 없는 행정서비스 등으로 급변하는 주변여건과 발맞추어 나간다.계획은 실천할 때 빛을 발한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실행에 옮겨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10대 의제 100대 사업 추진 현황을 점검하고자 ‘부서별 100대 사업 실시계획 수립 보고회’를 개최해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전문가를 위원으로 하는 청도군 정책자문위원회를 통해서는 국도비 확보방안과 사업 추진의 구체적인 방향의 조언을 받고 있다.최근 사회복지분야 10대 사업에 대한 토론회와 농업소득증대 및 귀농·귀촌분야 20대 사업에 대한 설명회 개최 등과 중간보고회를 통한 점검이 청도군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100대 사업 중 ‘군정추진 용역관리 시스템을 구축’ 등 4개의 사업은 완료되어 예산절감 등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시스템은 각종 용역 결과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로 중복 용역과 용역자료 사장을 방지하며 상시 자료 검색·열람으로 용역 결과 활용 극대화 및 예산을 절감하였다는 평가다. 또 직원의 역량강화를 통한 행정수요의 유기적인 대응, 열린 조직문화로 효율적인 행정서비스를 강화하는 프로그램은 지속적으로 도입될 것이다.100대 사업의 가시적 효과를 위해 예산이 필요 없는 사업은 즉시 시행하고, 시급한 사업은 추경 예산에 반영하고 국·도비 예산 확보로 중단 없는 사업추진이 되도록 할 것이다. 단기사업인 100대 사업에 공약사업을 더하고 장기계획인 2030비전이 어우러지면 청정자연을 보호하면서도 현재보다는 진일보한 청도로 변할 것이다.청도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서는 변화가 필수적으로 지방소멸 위기를 기회로 삼고 변화와 혁신을 통해 청도를 자랑스럽게 할 것이다.하지만 “사람이 우선이라는 생각”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즐겨 사용하는 사자성어가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마부작침(磨斧作針)인 것처럼 상대방을 생각하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의 바탕도 사람이고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행복한 청도건설을 위해 군민에게 희망을 주고 살고 싶은 고장, 자랑스러워하는 고장으로 청도를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2019-10-13

대학 생활에서 배운 것

한효정한동대 4년·ICT창업학부제2의 고향, 포항에서 나는 배우는(學) 삶(生)을 살아가고 있다. 입학 후 오리엔테이션 때, 한 교수님이 칠판에 큼직하게 단십백(單十百)이라고 쓰며 말했다. “인생에서 한 명의 스승과 10명의 친구와 100권의 책을 만나면 성공한 삶이다. 단십백을 대학 생활 때 이룰 수 있도록 목표를 세워 볼 것을 권한다.”교수님 권유대로 나는 대학 생활을 통해 스승을 찾고 친구를 만나며 책을 통해 배움을 이뤄가고 있다. 대학 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그 자체다. 새로운 만남은 설레지만 어렵기도 했고, 수많은 관계 안에서 피상적인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질문을 서로 연결해 가며 내 대학 생활을 만들어간다.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어떤 의미일까?’다. 우리 캠퍼스에는 RC(Residential Campus)라고 불리는 생활관 즉 기숙사가 있다. 학생 넷이 함께 방을 쓰고, 방끼리 팀으로 묶여 수요일마다 팀 모임을 하고, 다양한 학교 행사에 참여한다. 서로 다른 기질과 성향의 네 사람이 한 방에서 공동으로 생활하다 보면 당연히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는 갈등을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것에 익숙하다. 우리도 그렇게 길들여졌다. 그러나 4개월 동안 매일 얼굴을 마주 대하다 보면 갈등을 수면 위로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몇몇 친구의 경우 이런 갈등의 과정이 힘들어 학교 밖에서 자유롭게 살기도 하지만, 싸우고 풀고 정들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과 배움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갈등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여러 친구의 다양한 태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쓰여 미안하다는 사과를 반복하는 친구들, 할 말을 꺼내기보다 우선 참고 견디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나와 맞지 않는 친구들은 인스타그램 팔로워 끊어내듯 관계를 끊어 버리고 다시는 안 보는 친구들도 있다.특히 요즘 트렌드인 ‘나의 행복을 찾아서’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외면하고 아예 포기하며 살아가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다. 나와 안 맞는 사람과 어우러지기 위해 굳이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잃고 싶지 않고, 맞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에도 벅찬 세상이라고 딱 부러진 논리를 세우면서 선을 긋는다. 갈등을 드러내고 풀어보려는 시도들은 너무 비효율적으로 느껴져 그 과정은 생략한 채 더는 한쪽이 참지 못하게 되었을 때 뚝 끊어지는 인간관계들이 많아지고 있다. 풍요로워 보이지만 가난한 인간관계다.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스스로 원해 더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종종 호구라는 말로 비하당하기도 한다. 이들은 ‘너는 누가 챙겨?’라는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비효율적이고 귀찮은 일들을 감당한다. 감사하게도 나는 1학년 때 이런 선배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새내기들이 나가서 놀고 싶을 때는 같이 차를 타고 바다도 가주고, 고민이 생겨 힘들어할 때면 학교를 몇 바퀴나 함께 걸어 주기도 했다. 처음 접하는 전공 공부를 도와주고, 필수로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팀 모임에도 나와 열심히 게임에 참여해 흥을 돋워 주기도 했다. 4학년이 되어 보니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좋은 배움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하는 법이다. 나는 포항의 대학 생활에서 이런 질문하기 시작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더 사람답게 사는 길일까?’이 질문과 내 삶이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피상적인 관계가 많아질수록 진심이 되는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관계에서 나오는 갈등에 침묵이 아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나는 선배들을 통해 이런 상황에서 먼저 자기를 희생하며 아낌없이 내 것을 주는 것을 보았다. 나도 선배가 된 자리, 혹은 사회 초년생의 어느 자리에서 그런 환경을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2019-10-13

무필을 경계함

문득 생각 나는 말. 이렇게 버티다 갈 때 되면 가면 되지. 이 말씀은 대장암 4기를 앓고 계신 어느 선생의 말씀이다.이 말씀이 두고두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시대와 상황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며 지냈던 분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계신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세상 사는 일 본래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을, 힘들다, 힘들다 탄식해 오기를 십 년, 앞으로 십 년은 힘들다 소리 안 내고 참고 참으며 힘있게 살아가기 기약해 본다. 내게 그 십 년이 허용된다면 말이다.삶의 더할 수 없는 무게에 비추어 보면 텔레비전, 인터넷을 장식하는 오늘의 시사적 이슈들은 구름처럼 덧없고 연기처럼 허무하다.지난 정부 시대에 팟캐스트를 베개 삼아 잠들고 깨던 시절 내 가장 ‘열렬한’ 스타였던 김어준씨에게 안녕을 고한다. 윤석열, 김갑수 티비, 유재일의 유튜브, 이해생각, 장기표, 최상천의 사람나라, 김경률 같은 새로운 대안체들을 생각하며 떠나보내야 할 사람은 떠나 보내겠다 생각한다. 아둥바둥 매달리지 말 일이다. 이것이,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 일이다. 서초동에 운집한 ‘허무’한 사람 물결을 생각한다. 지난 광화문 촛불혁명을 부러워하며 새로운 혁명을 조산하고 싶은, 그러나 필시 유산될 백일몽 꾸는 집단들을 생각한다. 백만, 이백만, 삼백만, 심지어 오백만 명이면 무슨 일이라도 벌일 수 있는가. 그 헛된 숫자의 공상을 생각하며 웃는다.이봅시오. 그렇게 큰 ‘관제’ 데모는 박정희, 전두환 때 이후 처음이올시다 그려. 이건 이쪽에 대고 할 말이고. 광화문에 촛불들 모인 게 그렇게 탐나던가요? 그런다고 당장 권력이 바뀐다오? 이건 저쪽에 대고 할 말이고. 허, 참, 지록위마라 하더니, 이 고색창연한, 진나라 때 환관 조고의 고사성어는 어느 호시절 와야 쓸데없이 되리오. 이건 이쪽 저쪽 양쪽 다에다 대고 하고 싶은 말이고.앞을 봐도, 옆을 봐도, 뒤를 봐도 뾰족한 답은, 길은 보이지 않는다. 뒤돌아서 몇 년 전으로 돌아가기도 보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현재를 원칙과 정의 강물처럼 흐르는 때라 믿고 싶지도 않다.작가들이 모여서 성명서를 냈다고 한다. 요즘 나는‘나라’를 수호한다느니 검찰을 개혁한다느니 하는 말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민주주의니, 원칙이니, 정의니, 공정이니 하는 말도 옛날에는 알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알 수 없다. 아직도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있는 무려 일천이백 하고도 칠십육 분이나 되는 문학인들이 계시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다시 읽다 보니,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쓰며 무필(誣筆)을 많이 휘둘렀다고 한다. 어느 중국 사람이 쓴 ‘이태백 시선’에 이백은 “애국시인”이라 했던데, 요즘 그 “애국”이라는 말처럼 인플레가 심한 것도 없다.나도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살랴. 그래도 힘들다 소리는 안 하고 살겠다 생각한다. 그리고 모르고 잘못 쓰면 몰라도 알면서 그러고 싶지는 않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0-10

임산부의 날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합계출산율이 0명대인 나라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인구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0명대에 진입했다. 합계출산율이란 가임여성(15∼49세)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수다. 0명대라는 것은 한 명의 여성이 1명의 자녀도 갖지 못할 것이란 뜻이다. 일반적으로 인구 유지에 필요한 합계출산율을 2.1명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 이대로 가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국가가 될 것이란 전망도 여기서 비롯됐다.정부는 지난 10여 년간 출산 장려를 위해 10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는 합계출산율 0명이었다. 올 상반기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91명으로 집계돼 한해동안 태어날 아이가 이제 30만명도 안될 것 같다는 우려다. 2년 전 우리는 한해 출생아수 40만명선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불과 2년 만에 30만명선이 또 위협 받고 있는 상황이다.요즘을 욜로(YOLO)시대라 부른다. 인생은 한번뿐이니 후회없이 이 순간을 즐기자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부딪힌 젊은이가 저축 대신 소비를 선택하는 경향을 꼬집어 한 표현이다. 저출산의 근본적 이유도 시대의 흐름이나 배경에 기인한다. 청년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에게 출산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출산보다 자기 자신의 생존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저출산 극복 정책이 어려운 것은 이처럼 사회적 복합 요인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출산 증가국은 출산과 육아, 보육 등을 동시에 책임지는 정책을 펴고 있다. 어제는 임산부의 날이었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 극복을 위해 임산부 보호를 위한 사회적 배려가 왜 필요한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0-10

민심이 가는 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을 주장하는 광화문 집회와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서초동 집회가 국론분열양상으로 흐르자 사회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한글날인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는“조국은 감옥 가라”,“문재인은 퇴진하라”는 구호 소리가 쉼 없이 울려퍼졌다.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주변은 물론 세종로 사거리에서 숭례문 앞, 서대문 방면까지 도심지역은 집회 참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그러나 정작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이번 사태의 단초가 된 문재인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진영의 대규모 집회에 대해 국론분열로는 생각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뒤 “특히 대의정치가 충분히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 때 국민이 직접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 행위로서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보수진영에서는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대통령의 굴절된 상황 인식과 국민 무시에 실망과 개탄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맹비난했다. 황 대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기를 포기한 것인가’라는 제목의 입장문에서 “국론 분열이 아니라고 한 것은 대통령의 인지부조화”라며 “절대 다수 국민에 맞서 대한민국을 70년 전의 해방정국으로 돌려놓은 장본인은 바로 대통령과 한줌 친문세력이 아닌가”라며 비난했다. 바로 강대국의 신탁통치를 놓고 벌어진 찬탁과 반탁시위의 국론분열상을 빗댄 것이다. 광화문 집회에서는 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과 관련해 “대통령은 서초동(집회 참가자들)만 국민으로 보이나 보다”, “광화문에 운집한 사람들은 국민도 아니라는 뜻이냐”라는 반발도 터져나왔다.다만 ‘검찰개혁 촉구’ 서초동 집회와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 광화문 집회에 대해 국민 10명 중 6명이 ‘국민 주권 발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10일 나온 것은 의외였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8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750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6%포인트)한 결과 서초동·광화문 대규모 집회가 ‘정치권의 무능력을 보완하는 국민주권의 발현’이라는 응답은 61.8%로 집계됐다. ‘국론을 분열함으로써 국민통합을 저해한다’는 답변은 31.7%였다. 다만 여론조사에서 ‘정치권의 무능력을 보완하는’이란 표현 뒤에 ‘국민주권 발현’항목이 있어 왠지 국론분열이란 응답을 피해갈 수 있도록 구성한 문항은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었다.어떻든 보수와 진보진영의 첨예한 의견대립이 맞서는 대규모집회가 끊이지 않고 열리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바로 민심이 나아가는 길로 나라가 운영되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대규모 집회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 팩트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사태의 본질을 직접민주주의로 오도하고, 검찰개혁이란 이슈로 덮으려 하고 있다. 민심이 가는 길과 점점 멀어지면 끝내 파국을 맞게될 뿐이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을 이기는 정부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19-10-10

불안장애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불안장애(Anxiety Disorder)라는 병이 있다. 불안장애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상적, 병적인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 질환을 통칭한다.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한 불안이다.불안과 공포는 당면한 위험에 대한 정상적인 경고 신호이지만, 지나칠 경우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더 어렵게 하고 정신적 고통과 각종 신체적 증상을 유발한다. 혈압 맥박 증가, 두통, 위장병 등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고, 불안이나 걱정, 신체 증상이 직장 생활, 대인관계, 사회 생활 등에 어려움을 초래한다. 불안장애에는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범불안장애, 사회불안장애 등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요즘 광화문, 서초동에서 수십만의 국민들의 세 대결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조국퇴진” “조국수호”의 양 편으로 갈라져 매일같이 거리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서로 세를 과시하기 위해 청중수를 부풀리기도 하고 SNS(사회관계망)를 통해 서로를 공격하며 양측의 대립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국민은 양분되고 있다. 삭발을 하는 야당 정치인들에게 비야냥거리는 여당 의원들의 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야당으로 투쟁하던 시절을 생각 못하는 모순도 볼 수 있다.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되면서 가속이 붙고 있는, 이런 국민을 양분시키는 투쟁은 정말 국민들을 불안케 한다. 마치 해방 후 좌우익으로 갈라져 국민이 이분되어 투쟁하던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미국과 북한의 회담의 결렬도 불안하다. 금세 평화가 올 것 같이 홍보를 하던 정부는 북한의 막말에 공격을 당하면서도 속수무책이다. 휴전선의 감시초소 등은 모두 없애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북한 특수부대가 공격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돌고 있다. 함박도라고 하는 한국의 섬에 북한의 인공기가 걸려있다고 한다. 정부는 함박도가 원래 북한 땅이라고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이다.국민전체가 불안 장애에 걸린 느낌이다. 사회불안, 정치불안, 안보불안장애를 겪으면서 국민들의 혈압은 올라가고 어지럼증과 균형감각이 떨어지면서 국민들은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 일을 해도 일이 손에 안잡히는 불안과 모이면 정세 이야기로 둘로 갈라지는 모습도 보인다.불안장애 예방치료 방법은 충분한 휴식, 취미활동, 심호흡 등의 이완을 통해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고 필요하면 식이요법과 약의 복용을 병행한다고 한다. 때론 불안한 감정으로 술을 마시면 더 악화가 된다고 한다. 또한 불안을 유발하는 요인을 환자에게 무작정 노출시키거나 접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장애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술을 들이키는 국민도 많아지고 울화병에 걸려 스트레스 관리가 되지 않는 국민들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들이 불안장애 속에 고생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 불안을 노출시키는 지금 상황은 국민들의 불안장애를 더 유발시키고 있다.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국민들의 속을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병이 깊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갈수 있다.

2019-10-10

만신창이 우리말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우리 민족의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은 고유한 말과 글을 가진 게 아닐까 싶다. 한 민족이 수천 년 동안 자기들만의 언어를 이어온다는 것은 고유한 전통과 문화의 정체성을 갖는 일이다. 그것은 인류문명의 일익을 담당한다는 민족적 자존이요 삶의 근간이기도 하다. 특히나 한글의 독자성과 우수성은 세계의 학자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한글은 세계 어떤 나라의 일상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표기 체계이다.”(에드윈 라이샤워·하버드대 교수),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다.”( 존 맨·과학사가, 다큐멘터리 작가), “세종이 만든 28자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알파벳이자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표기법 체계이다.”(재레드 다이아몬드·캘리포니아 의과대 생리학자)…. 심지어 미국 시카고대 교수이자 언어학자인 매콜리는 20여 년간 동료 언어학자들과 매년 한글날을 기념해오고 있다고 한다.한글의 우수성은 21세기 인터넷 정보통신의 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빛을 발한다. 언젠가 모 방송국에서 각 나라의 문자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속도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같은 조건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문자로 소설 어린 왕자의 1장을 타자로 입력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실험이 시작된 지 10분도 되지 않았을 때 한국이 가장 먼저 어린 왕자의 1장을 입력했다. 이는 중국, 일본보다 일곱 배나 빠른 속도였다. 한글로 5초면 치는 문장을 중국, 일본의 문자를 통해 입력할 경우 35초가 소요된다는 얘기다.우리말에는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얼과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것을 갈고 다듬고 발전시켜 다음 세대로 전해줄 역사적 사명이 우리에게는 있다. 그것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고 나라의 근간을 굳건히 하는 일이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말과 글의 가치와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특히나 청소년들의 언어실태는 우려를 넘어 절망감이 들 정도다. 그렇게 말과 글이 날로 오염되고 파괴되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학계나 교육 당국, 언론계 어디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고 한번 오염되고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말이다.시급한 처방으로는 방송 매체들이 캠페인이라도 벌여 우리말 바르게 쓰기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종사자들은 물론 출연자들에게 사전에 몇 가지 주의사항만 교육해도 한결 나아질 것이다. 그러면 불필요한은 외래어나 비속어,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것을 막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학교에서의 언어교육이다. 아이들에게 고운 말 바른 말 교육은 그야말로 백년지대계의 초석이다. 올바른 심성과 정서를 함양하는데 언어교육보다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년도 문화재청 예산이 1조원이 넘는다니, 그 중 1할이라도 가장 소중하고 실생활에 밀접한 문화재인 우리 말과 글의 아끼고 가꾸는 일에 쓰기를 바란다.

2019-10-10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헨리나우웬 박사를 아시지요? 하버드 대학교수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경력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토론토 장애인 공동체에 들어가 남은 생애를 약자를 위한 섬김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이 시대의 스승 가운데 한 분입니다. 그는 겟세마니 수도원을 방문해 토머스 머튼을 딱 한 번 만나는 경험을 합니다. 그 만남은 헨리 나우웬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기지요. 토머스 머튼을 자신의 스승으로 삼습니다.작년 겨울 토머스 머튼이 쓴 ‘칠층산’을 읽으면서 저는 죽비로 등짝을 호되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들은 새벽 2시 첫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저녁의 삶을 극도로 절제합니다. 하루는 머튼이 감기 몸살 기운이 있어서 늦잠을 잤습니다. 문득 깨어보니 시간이 새벽 2시를 넘은 시각. 아픈 몸을 이끌고 갑니다. 새벽 3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요.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고백합니다.칠층산은 제법 두꺼운 책입니다.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음미하면서 읽고, 토머스 머튼의 성장 과정에서 읽은 책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해서 후다닥 읽고 던지기가 아까운 책이었지요. 이제 그 책을 읽고 난 후 1년이 넘었습니다. 아직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은 토머스 머튼이 늦잠을 자고 새벽 3시에 첫 미사를 드리러 가는 장면입니다.‘칠층산’을 읽은 후 저의 새벽이 달라졌습니다. 저녁의 달콤한 삶을 포기하고 새벽에 클북에 나와 하루를 시작하는 글쓰기 루틴을 만든 것도 모두 토머스 머튼의 자극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죽어서도 책으로 후배를 흔들어 깨웠습니다.온갖 좋은 책과 훌륭한 리더들이 여기저기 빛나는 시대입니다. 훌륭한 스승들은 삶으로 우리를 일깨우지요. 그들의 수사와 현란한 말씀이 아니라, 눈빛과 표정 삶의 궤적으로 말을 걸어옵니다. 이런 스승을 곁에 둘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0

대구동구의회 의장불신임, 지역의 수치

손경찬 칼럼니스트·전 경북도의회 의원지방자치 제도가 주민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지만 그 목적에 맞게 잘 실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든다. 아직도 중앙정치 위주라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지방자치학자들은 정부의 입맛대로, 중앙정치의 손아귀에서 겉돌고 있다는 표현을 할 만큼 부정적이다. 심지어 ‘빛 좋은 개살구’ 또는 ‘모양만 지방자치’라는 말로 빗대고 있다. 특히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에 대한 문제 지적이 많다. 정당이나 지역구 국회의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지방자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방해물로 인식되고 있다.필자는 기초·광역의원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방자치 첫 기초의원을 지냈다. 그때는 정당공천제가 아니어서 주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고 지역개발에만 전념하면 됐다. 하지만 정당공천제가 도입된 이후 주민을 위한 의정활동은 어려워졌다. 그래서 필자는 기초자치단체의 정당공천은 득보다는 폐해가 더 많다고 늘 주장해왔다.지난 2일 대구 동구의회에서 기습처리한 의장불신임안 의결 소식을 듣고 우려하던 바가 그대로 적중됐으니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주민이 중심이 돼야할 기초의회가 정당간 싸움판이 되고, 정당 논리에 의해 상대당 의장에 대한 불신임안건을 제출하고, 의장은 의장불신임안 취소소송을 내는 등 법정싸움으로 비화됐다.의장불신임 근거는 지방자치법 제55조 제1항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지방의회의 의장이나 부의장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아니하면 지방의회는 불신임을 의결할 수 있다. 동구의회는 정원이 16명이지만, 지난 8월에 자유한국당 의원 2명이 선거법 위반으로 자격이 상실됨에 따라 현재 더불어민주당 7명, 한국당 6명, 바른미래당 1명 등 총 14명으로 구성돼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 7명과 합세한 바른미래당 소속 1명 등 8명이 수적 우세를 내세워 전반기 의장인 한국당 출신 의장에 대해 불신임안을 제출해 기습적으로 통과시켰다. 불신임안이 발의된지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통과시킨 예는 찾아볼 수가 없다. 또 범죄사건에 연루된 내용이 아니고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유를 들어 의장을 불신임한 것은 전국에서 동구의회가 처음이어서 논란과 파장이 클 것이다.민주당에서는 불신임 의결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그 의결이 법적으로 적합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불신임 사유에 대한 의장의 반론도 있고, 그 문제가 취소소송으로 이어져 현재 법적문제로 비화됐기 때문이다. 필자는 동구의회 의장과 일면식이 없다. 하지만 필자가 의정활동을 경험해본 바로는 기초의회는 주민이 우선이어야지 상대당과 정쟁을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어서는 안된다.지역 여론이나 들리는 바에 의하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참에 의장직을 가지자는 의도로 보여지고, 해임된 의장의 입장이 억울하다고 편드는 주민도 많다고 한다. 이는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의원이 제기했던 불신임사유 가운데, 잘못된 내용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규정과 행정안전부 답변에 비춰 볼 때에 불신임 사유가 명백히 사실에 반하고, 또 의사운영과정에서 결정권을 가지는 의장이 전체 의원의 의사를 타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해가 생길 수 있으며, 보는 편에 따라서 각각 정당성을 가지는 것으로 어디까지나 논쟁이지 명확한 위법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사유를 갖다 붙여서 수적 우세로 밀어붙이면 되니 이현령비현령이 아닌가.지방자치가 중앙정치를 닮아 정쟁을 하고, 의원 숫자를 앞세워 적당한 구실을 붙여 마치 인민재판식으로 몰아붙여 의장의 자리를 박탈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동구의회에서 발생된 의장불신임 건은 주민편의와 지역발전에 힘써야할 기초의원들이 중앙정치의 폐습을 배워 파벌정치를 하는 데서 발단이 된 것으로 필자는 판단하며, 우격다짐의 정쟁을 우려하는 바다.지방자치의 이념이 무엇인가? 첫째도 주민을 위한 것이요, 마지막도 주민을 위한 것이다. 정당 의원끼리 단합해 상대당을 끌어내리려하는 것은 기초의회에 정당공천제가 개입됨으로써 일어난 불상사다.동구의회는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세를 과시하려했던 의도적인 권력쟁탈전이지, 주민을 위해 행동한 것은 분명 아닐진대 정쟁을 일삼는 이런 사회는 바람직한 게 아니다. 전직의원으로서 동구의회 의장불신임 사건을 보는 마음이 한없이 안타깝기만 하다.

2019-10-09

광장의 명암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요즘 세간의 관심은 서초동과 광화문이 대표하는 광장이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으로 촉발된 대중과 정파의 대립이 도달한 종점이 서초동과 광화문이다. 그를 둘러싼 찬반으로 진영이 갈린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빌미가 된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가진 자들의 계급 내리물림이 얼마나 우심한가를 보여준다. 신분제 사회가 아니건만 한국에서 신분상승은 조선시대처럼 불가능해 보인다.그러나 빙산의 일각으로 본질적인 문제를 가린다면 도덕의 잣대로 정치를 가늠하는 우행(愚行)이 될 것이다.대중이 분노하고 허탈해하는 지점은 ‘좌파가 그럴 수 있나’ 하는 것이다. 같은 사안이라도 우파나 극우의 행악질에 대중은 그러려니 한다. 그들의 부패와 무능, 타락과 패거리주의에 관대하다. 하지만 좌파나 운동권 출신이 일탈하면 비난과 욕지거리가 하늘을 찌른다. 이런 이중 잣대는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하다.하나의 사안을 바라보는 정반대되는 시각의 차이와 그에 따른 정치행위는 살펴야 한다. 그것이 야기하는 대립과 갈등양상이 너무 첨예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세대갈등과 지역갈등에 계층갈등과 정파갈등이 보태져 사회통합이 어려워지고 있다. 일본과 진행 중인 경제전쟁, 난항을 겪고 있는 북한과 미국의 교섭, 하나의 중국문제로 터져 나오는 동아시아의 불안정성을 고려하면 우리의 대립과 갈등은 심히 우려스럽다. 하지만 광장이 열려있음은 행복한 일이다. 어린 시절에 김일성 화형식, 반일 관제데모, 봉고 대통령 환영식에 광장으로 동원된 나로서는 열린 광장이 행복하다. 돈 받고, 종교 때문에, 정당이 동원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광장이 넘쳐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더욱이 수백만이 모인 광장에서 사건사고 하나 없는 나라는 지구촌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이 점에서 광화문 광장의 추태와 망동은 부끄럽고 민망하다.광장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가 황망하다. 정치의 실종과 검찰권의 비대화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여당과 야당이 벌이는 죽기 살기 식의 대결구도는 분명 문제다. 이 나라 최고 지식인들이 모였다는 국회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고 극한대결로 치닫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는 제3지대의 부재에서 원인을 본다. 여야를 조정하고 아우르는 제3당이 우리나라에는 없다. 그러리라고 기대한 정당은 풍비박산 나있다.문제는 정당의 대립과 대결이 국민들의 일상에 틈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다. 내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것은 그래서다. 거대양당이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중소규모 정당이 일정정도 힘을 발휘하는 비례대표제가 자리 잡는다면 극한의 혼란과 대결양상은 치유되리라 믿는다.‘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양당구조는 소임을 다했다. 대한민국의 사회적 다양성이 증대한 만큼 정치도 그것에 준해서 바뀌어야 한다.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이 정치검찰을 비판하고, 공수처 설치를 외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가족단위로 어린아이 무동을 태워가며 평화적으로 민의를 드러냄은 치하할 일이다. 그러하되 양당제로 실종된 여의도 정치의 부활이 절실해 보이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2019-10-09

10.09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구름 한 점 없는 파란 10월 하늘만 봐도 눈물이 난다. 그 눈물에 대해 하늘이 물었다, 왜 그러느냐고? 그 물음에 칠순을 넘기신 어머니께서 추석날 외할머니 산소에서 대성통곡하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엄마, 세상 살기 참 힘들다.” 굴곡 많은 삶 속에서 속으로 수없이 삭였을 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한(恨) 맺힘의 원인 중에는 필자가 가장 크게 차지했다.지난 주말 청소를 하기 위해 거실에 있는 고등학교 2학년 딸아이의 가방을 옮기다 어머니의 아픔 중 가장 큰 아픔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대수로워 보이지 않아 그냥 들었다. 그랬다가 중력보다 더 센 가방의 저항에 도로 내려놓고 말았다. 가방의 저항은 필자의 마음을 후려쳤다.입시공화국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필자는 바쁘다는 핑계로 잠시 잊고 있었다. 가방의 무게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휴일에도 자신의 꿈을 위해 독서실로 향하던 딸아이의 모습을 소환했다. 필자는 아프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잠시 밖에 나갔던 아이가 들어왔다. “아빠, 나 조금만 잘게!”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깨가 너무 아파서 어제 잠을 못 잤어!”“다음 주부터 중간고사!” 필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방문을 닫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가방을 보았다. 가방은 커다란 바위덩어리 같았다. 그 큰 바위덩어리를 매일 메고 다녔으니 어깨와 허리가 오죽할까 싶어 당장이라도 내다 버리고 싶었지만, 필자는 가방 앞에서 망설였다. 그런 필자의 모습이 너무 가증스러웠다.시험(試驗)! 누구를 위한, 또 무엇을 위한 시험인지? 이 나라 시험은 줄 세기 이외에는 그 어떤 기능도, 역할도 하지 못한지 오래다. 교사들은 석차를 핑계로 문제를 최대한 비틀어서 출제하고, 이에 뒤질세라 학원들은 학교의 함정을 넘기 위해 오로지 문제풀이에만 몰두하는 이 나라 교육! 진정한 평가는 사라지고 괴물 같은 시험만 존재하는 시험 공화국! 그 공화국의 문이 10월에 열렸다.아이의 가방을 옮기는데 저울이 옆에 있었다. 필자는 무심결에 올려보았다. 그 숫자에 필자는 다시 놀랐다. 여고생들이 만든 “대한민국 고등학생 가방 무게를 재어보았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오버랩 되었다.동영상에는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의 가방 평균 무게가 나온다. 그 무게는 6.56㎏! “쌀 30컵-쌀30인분, 1.5L 생수병 4.5개의 무게”무게 재기가 끝난 후 제작자들은 친구들에게 물었다. “이 책가방 이외에도 당신을 무겁게 하는 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고생들은 답했다.“학원, 공부, 시험, (….) 입시, 대학, 내신, 스펙” 영상 중간에 친구들의 질문에 울어버린 여고생이 나온다.그 학생을 울게 한 짐은 바로 “부모님의 기대”였다. 딸아이의 가방 무게는 10.09㎏! 이 무게는 그날 공부할 책들을 뺀 무게. 만약 그 책들까지 넣었다면? 거기에다 필자의 부담까지 얹었으니 아이의 어깨와 허리가 괜찮을 리 만무하다.눈부시게 아름다운 10월의 하늘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아름다운 학생들! 그 학생들이 줄 세우기 식 시험에 병들고 있다. 이 나라 교사에게 묻는다, 당신은 시험과 학생 앞에 당당한가? 그리고 대통령과 장관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개혁 앞에 떳떳하고 정당한가?

2019-10-09

평생의 잠을 깨우는 스승

위대한 인물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상과 단절한 경험입니다.무작정 저 높은 고지를 향해 돌격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멈춤의 시간이 생의 한복판에 존재합니다. 텅 빈 공간. 그 안에서 마음껏 사유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진짜 나를 만나 앞으로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시간을 충만하게 누립니다.교부들 가운데 사막으로 나간 구도자들이 많았습니다. 세상과 단절하고 오직 신과 자신을 만나기 위해 가장 열악한 환경인 사막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교부 안토니우스입니다. 그는 사막에 들어가 20년을 씨름합니다. 고독하고 팍팍한 사막의 한가운데서 홀로서기를 시도합니다. 안토니우스는 지혜와 능력, 인격과 사랑을 갖춘 현자로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나지요. 그를 만난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살지 않습니다. 안토니우스를 한 번 만나는 경험만으로도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해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안토니우스를 찾아오는 제자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는 1년에 한 번 스승을 만나는 기회라 잠시도 스승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묻고 대화하고 무어라도 하나 더 배워 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유독 한 제자는 말이 없습니다. 첫해, 둘째 해도 그랬습니다. 해마다 그 제자는 말이 없이 조용히 방문했다가 아무 말 없이 다시 돌아가지요. 몇 년을 거듭한 후 한 번은 안토니우스가 제자에게 묻습니다.“형제님은 해마다 저를 찾으시지만, 한 번도 제게 묻지 않으시는군요. 혹시 어떤 이유라도 있으신지?”제자는 대답합니다. “스승님을 뵙는 것으로 족합니다. 스승님의 얼굴을 보고 하루 종일 함께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1년 동안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난초 향은 하룻밤 잠을 깨우고 좋은 스승은 평생의 잠을 깨운다는 공자의 말씀을 떠올립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09

이사철 집수선 상식

이사철 전·월세집을 들고날때 잘못 알고 있는 상식들이 많다. 특히 집수선과 관련, 전세는 세입자가, 월세는 집주인이 수리하면 된다고 알고 있다. 다만 주요 시설물에 대한 수리는 집주인이 부담해야 하나 전세의 경우 대부분 세입자가 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러나 현행법과 판례에 따르면 월세와 전세의 수리 비용 부담에는 차이가 없다.민법 623조 ‘임대인의 의무’에 따르면 임대인(집주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 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 세입자의 경우 민법 374조에 따라 임차한 물건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보존해야 하며, 민법 615조에 의거 원상 회복의 의무를 진다. 따라서 주요 설비에 대한 노후나 불량으로 수선, 기본적인 설비 교체, 천장 누수, 보일러 하자, 수도관 누수, 계량기 고장, 창문 파손, 전기시설 하자 등은 집주인에게 수리 의무가 있다.반면 임차인(세입자)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파손, 간단한 수선, 소모품 교체, 집을 사용하는데 지장이 없는 수리(형광등, 샤워기 헤드, 도어록 건전지 교체 등) 등은 직접 부담한다.통상적으로 임대차계약기간인 2년을 채웠을 때 집주인이 이사를 가라고 하지 않는 한 자동연장, 즉 묵시적 갱신이 이뤄진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 2항에 따르면 묵시적 갱신이 되면 언제든지 세입자는 계약 해지를 통지할 수 있으며 묵시적 갱신에 따른 해지는 그 통지를 받은 날로 3개월이 지나면 그 효력이 발생한다. 판례에 따르면 약정한 계약 기간 중 3개월을 남기고 나갈 경우 중개보수는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 그러므로 세입자는 최소 3개월의 여유를 두고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 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0-09

광장과 국회

장규열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국회가 필요한가.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여 국정을 감시하고 국론을 조정하며 국사가 올바르게 진행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국회가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가. 국회가 국론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있는가. 국사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가. 국민은 왜 여의도에 주목하기보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달려 갔을까.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광야에 모인 국민들에게 오히려 기대는 듯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착각일까. 아까운 공휴일과 금쪽같은 주말을 마다하고 길바닥에 앉은 국민들은 무엇이 저토록 억울한 것일까. 국회는 국민의 생각을 어떻게 담아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인 사람들 숫자를 놓고 입씨름이나 벌였던 당신은 국민의 생각이 무섭기는 했는가. 광화문과 서초동에는 진심어린 주장이 있고 진정 가득한 절박함이 있다.국민은 알고 있다. 들은 만큼 알게되었고 헤아린 만큼 진실에 접근한 국민은 무엇이 중요한지 모두 알고 있다. 가짜뉴스와 억지동원도 분명히 보았고 어린이들이 선동에 이용된 모습도 보고 말았다. 확인없이 기사를 날리는 언론 관행도 알아버렸고 급하면 슬쩍 흘리는 수사진의 모습도 눈치채 버렸다. 개혁이 급선무임을 충분히 들었고 그게 왜 필요한 것인지도 보고 말았다. 진보정치의 두 얼굴도 목격하였고 보수정치의 고집스러움도 확인하였다. 세상이 바뀌었다. 숨길 수가 없다. 드러내지 않고 적당히 누리던 기득권력에는 이제 설 자리가 없다. 철저한 자기반성을 토대로 소임에 따를 것을 국민은 기대하고 명령한다. 어차피 세상은 바꾸어야 할 일들이 가득한 곳이 아닌가. 변화가 기대되는 실체가 확인된 바에야, 더는 머뭇거릴 겨를이 없다.국민이 보고 있다. 태풍피해도 아랑곳 아니하고 서울로 달려간 당신을 기억하고 있으며, 이천 날이 넘도록 답 한 자락 듣지 못한 상처는 오히려 생생하다. 이해당사자이면서도 수사를 하지 말도록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당신을 보고 있으며, 마약범죄혐의가 짙은데도 경찰이 풀어준 명문가 자녀를 모두 보았다. 촛불의 희망으로 이어받은 정권이 상응하는 능력으로 답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국민은 느끼고 있다. 그 밖에 나라에 닥친 어려운 자락들도 깨알같이 보고 있다. 어려운 과제들이 산더미인데, 정부 기관 한 군데 개혁에 더는 휘둘릴 수가 없다. 권력이 주도한 ‘광장파시즘’이 아닌 것은 거리에 나가면 분명히 보인다. 답답하고 목마른 시민의 함성을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제각기 다른 생각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쏟아내는 광장의 뜨거움은 그곳에 나서면 금방 보인다. 폭력과 광기는 기억 속에만 있지 않은가. 바램과 열기는 확인되었다.국회가 존재 이유를 확인하려면, 광장의 목소리와 함성의 진정성을 담아 국회가 돌아가야 한다. 당신이 대표하는 국민의 마음을 담아내는 국정에 임해 주시라. 어느 여검사의 표현처럼 ‘당장 없어져도 할 말이 없을’ 국회가 되면 되겠나. 곧 선거 아닌가, 지금부터 소임에 충실해 주시라. 나라와 국민을 바라보는 당신을 만나보고 싶다.

2019-10-09

심지 굳은 바람처럼-안동 봉정사 영산암(靈山庵)

적요를 먹고 크는 배롱꽃, 깊이를 알 수 없는 평화, 오래된 침묵, 그리고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오후의 햇살이 관심당 툇마루의 나이테를 세다 창살에 기대 졸고 있다. 모두 하나가 되어 멎어 있는 풍경들, 발걸음 소리에 정제된 시간들이 파문을 일으키며 깨어날 것만 같아 고양이 걸음으로 들어선다. 귀 밝은 솔이가 컹컹 영산암이 떠나가도록 짖는다.봉정사 영산암은 석가불이 법화경을 설법하던 영취산에서 유래되었으며, 영취산에 모여 설법 듣는 나한을 모신 응진전이 주법당이다. 온통 국보와 보물로 가득한 봉정사와 달리 경상북도 민속자료라는 아주 작은 명함이 전부지만 어느 암자와는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다는 우화루, 이름의 유래는 불교적 색채를 띠지만 유학자의 선비다운 풍류마저 느껴진다. 키가 닿을 듯 낮은 누하문을 조심스럽게 들어서면 자연석을 이용한 계단 위로 사대부집의 아담한 정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만난다. 명문가의 자존심이 묻어나는 노할머니의 장죽(長竹)이 기척 소리에 문을 열며 내다볼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완만한 구릉지를 깎거나 다듬지 않고 바깥의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정원, 그래서 관심당 마루는 우화루 쪽으로 내려갈수록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문의 크기도 다르다. 단아하고 기품 넘치는 유가적인 분위기의 건물들과 시공간을 압축시켜 놓은 듯한 묘한 공간배치 앞에서 낮은 탄성이 절로 나온다.응진전 좁은 툇마루는 낡고 삭아서 내려앉을 듯 안쓰럽다. 법당에 들어서기도 전에 저절로 두 손부터 모으게 되는 인고의 고단함이 마음을 시리게 한다. 응진전보다 낮은 자세로 송암당과 관심당이 좌우를, 맞은 편 입구에는 우화루가, 세 건물은 툇마루로 연결되어 건물이 가지는 위계질서조차 잃지 않는다.송암당 나지막한 처마와 소나무 한 그루의 어울림,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되어주며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관계가 조화롭다. 시설 좋은 봉정사 템플관을 굳이 마다하고 영산암에 머물기를 고집한 이유다. 영산암 해주 스님은 출타 중이라 봉정사 주지 도륜 스님의 배려로 관심당 방 하나를 차지한다.오랫동안 떠나 있다 옛집을 찾은 것처럼 편안하다. 주지 도륜 스님의 자상한 설명으로 봉정사도 영산암도 내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시대별 특징들이 모여 살아 숨쉬는 건축박물관, 봉정사가 세월의 맛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시간의 멋을 지녔다면 영산암은 미학적인 혜안 속에서 오로지 지금 나로만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새벽 4시 도량석 목탁소리에 천등산이 눈을 뜬다. 새벽예불을 위해 나도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는다. 툇마루를 내려서는데 무심코 기봉의 눈빛이 느껴진다.‘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영화는 모든 것을 깊고 쓸쓸하게 담아냈다. 최대한 빛을 아끼고 말을 아꼈다. 돌보지 않은 영산암은 쓰러질 듯 고뇌에 찼으며,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조차 투명하도록 슬펐다.절제된 대사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지옥과 극락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가는 것이 오는 것이고, 오는 것이 가는 것이다’. 노스님의 기름기 없는 목소리가 들려 올 것만 같다. 죽음을 앞 둔 노스님과 호기심으로 세상을 열어가는 동자승의 뒷모습이 우화루 위에서 아른거린다.어둠 속의 영산암은 어제의 옷을 벗고 무의식 속의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 앞에 선다. 대자유의 길을 걷고자 출가하지만 생애의 고뇌마저 사랑하지 않고서는 피안의 완전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가는 기봉의 뒷모습은 그래도 희망적이다. 영산암은 사바와 피안 사이에 앉아 말이 없다.대웅전에 앉아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린다. 타종 소리와 함께 어둠이 밀려들고 은행잎이 아픈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늦가을 저녁, 고령의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새로운 나를 다짐했다. 오로지 나 혼자만을 위한 설레는 부름들, 영원할 것 같은 순간들, 잎새의 마지막 떨림처럼 의욕이 살아 숨 쉬던 젊은 날의 각오, 봉정사는 모든 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조낭희 수필가변화는 있어도 변함이 없어야 한다고 했던가. 안타깝게도 봉정사보다 더 빨리 변한 건 나였다. 지나친 의욕과 많은 생각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도시를 벗어나 길과 숲, 오래된 공간 속으로 자주 떠나 볼 일이다. 오래된 것들은 시간에 휘둘리지 않고 장악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어둠을 품고 잠든 나무들 사이로 새벽이 꿈틀거린다.유명세로 봉정사 문턱은 높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은 나만의 기우였다. 날마다 긴 세월을 견뎌내 준 극락전에 감사 기도부터 드리고 새벽 예불을 보신다는 도륜 주지스님, 끼니때마다 환한 미소까지 덤으로 얹어주던 공양주 보살님, 친절함이 몸에 배인 종무소 보살님, 모두에게서 잘 여문 과일향이 난다.차를 내린지 반나절이 지나도 차향이 남아 있듯, 좋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기품 넘치는 사찰이다. 스님과 나눈 대화를 가슴에 품고 봉정사를 내려오는데 천등산 맥박소리가 들려온다.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지독히도 낯익은 소리였다.

2019-10-07

사람들 사이의 섬… 영화 ‘김씨 표류기’

섬이다.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안으로 문을 걸어 잠군 사람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의 또 다른 섬에 다다른 또 한 사람. 천혜의 고도가 아니라, 서울 한강변 아파트 숲 속 작은 방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여자 김씨. 그리고 63빌딩이 지척인 한강의 밤섬에 갇힌 남자 김씨.아파트 현관문을 열면 여자 김씨에게는 언제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그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아니 열지 않는다. 유람선이 지나가고 인근 아파트와 빌딩의 낮과 밤 풍경을 손에 잡힐듯 지척에 두고서 다가가지 못하는 맥주병 남자 김씨. 아파트의 작은 방에 스스로가 만든 섬에 고립된 여자와 자살시도가 실패로 끝나 밤섬에 고립된 남자의 표류기다.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표류될 수 없는 곳에 표류된 두 사람의 고립된 표류기가 시작된다. 망원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서, 쾌속의 속도를 자랑하는 첨단의 디지털 세상에서 무엇보다 느리고 불확실한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된다.두 명의 김씨는 열렬히 섬 밖의 세상을 갈구하지만 두려우면서 쉽게 나아가지 못한다. 내레이션은 남자 김씨의 이야기에서 여자 김씨의 이야기로 옮겨 간다. 전혀 공통점이 없는 두 사람의 내레이션은 조금씩 조금씩 서로의 섬으로 다가가고 동화되어 간다. 밤섬으로 떠내려온 쓰레기를 모아 무인도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남자와 일상의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여자. 옥수수에서부터 자장면으로 이어지는 느슨한 연결고리의 에피소드는 마지막 장면에서 극적인 해후를 이룬다.외로운 섬에서 서서히 달아오르며, 열렬히 갈망하는 한 없이 느린 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대화는 그들이 잡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되고, 고립된 섬에서 타인의 섬으로 도약을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무거운 내용을 무겁지 않게, 자잘한 소품 하나까지 세심히 살려 영화 속에서 의미를 부여 한다. 쪽지가 담긴 빈 와인병, 오리배, 옥수수, 빈 깡통, 우산과 민방위 훈련까지 재치있는 소품들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이끈다. 이러한 소품들 중에서 단연 최고는 자장면이다. 빈 짜파게티 봉투에 담긴 수프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되는 에피소드는 세상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짜장면으로 완성된다. 야생(?)의 무인도에서 각고의 노력과 인고의 세월을 거쳐 완성되어가는 자장면 만들기는 희망이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가를 보여준다.남자 김씨의 자장면은 잊고 있었던 삶의 또 다른 살아갈 이유가 되고, 이 과정을 지켜보는 여자 김씨에게 자장면은 누군가를 위해,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미는 이유와 희망이 된다.일상의 속도에서 이탈한 두 사람. 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아둥바둥했던 이들은 세상 속에서 세상의 속도와는 다른 속도로 이탈한 이들의 세상에 가 닿는다. 세상 모든 속도가 일순간에 정지되는 민방위 훈련 에피소드는 바로 이 두 사람의 속도이며, 이들의 간절한 희망의 순간이 된다.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이탈하고 싶은 사람과 사람들 속에서 갑자기 밀려오는 외로움과 무너지는 자존감이 엄습해 오는 순간, ‘내 삶에도 민방위 훈련의 싸이렌이 울렸으면’하는 이들을 위한 영화. 무엇보다 자장면이 너무 먹기 싫어질 때나 자장면이 너무 먹고 싶을 때, 이 모든 순간과 이 모든 이들을 위해 이해준 감독의 ‘김씨 표류기’를 권한다./김규형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이해준 감독의 ‘김씨 표류기는 네이버영화나 구글플레이에서 다운로드하여 볼 수 있다.

2019-10-07

한비자의 망국론과 한국의 정치현실

강희룡 서예가한비자(전280?∼전233)는 전국시대 말기 법가의 집대성자이고, 통치술, 제왕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는 형명법술에서 군주는 법을 세움과 동시에 신하에게는 법을 지키고 공을 세우게 하는 신상필벌의 법치설을 주장하였다. 당시 예치(禮治)의 정치적인 실효성이 빛을 잃으면서 예치와 덕치(德治)를 보조하는 정치수단에 불과했던 법이 통치이념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자신의 저서 ‘한비자15편, 망징(韓非子15篇, 亡徵)’에서 망국(亡國)의 징조 47가지를 일찍이 설파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망할 조짐을 보였던 전국시대의 6국은 천하통일로 중앙집권을 이룬 진나라에 의해 병합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한비자의 망징 47가지는 크게 나누어 분열, 부패, 무원칙, 안보의식해이, 가치혼돈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나라의 쇠망을 알려주는 징표 대표적인 7가지를 지금의 우리 정치현실을 우려하며 나열해 본다.첫째, 법을 소홀히 하고 음모와 계략에 힘쓰며, 국내정치는 어지럽게 두면서 외세에만 의지하는 경우이다. 둘째, 군주가 누각이나 연못을 좋아하며 수레나 옷 등에 관심을 기울여 국고를 탕진하는 경우이다. 셋째, 군주가 간언하는 자의 벼슬이 높고 낮은 것에 근거하여 의견을 듣고 여러 사람 말을 견주어 판단하지 않으며, 어느 특정한 사람이나 계층의 의견만을 받아들이는 창구로 삼는 경우이다. 넷째로 군주가 고집이 세서 화합할 줄 모르고, 간언을 듣지 않으며 승부에 집착하고 사직은 돌보지 않고 제멋대로 자신만을 위하는 경우이다. 다섯째, 나라 안의 인재는 안 쓰고 나라밖에서 사람을 구하며, 공적에 따라 임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평판에 근거해서 사람을 뽑는 경우이다. 여섯째, 군주가 대범하나 뉘우침이 없고 나라가 혼란해도 자신은 재능이 많다고 여기며, 나라 안 상황에 어둡고 이웃 적국을 경계 하지 않는 경우이다. 끝으로 나라의 창고는 텅 비어 있는 반면 대신들의 창고는 가득 차 있고, 백성들은 가난한데 나라밖 이주자들은 부유하며 농민과 병사들은 곤궁한데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득을 얻는 경우이다.현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국회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자로 판정되어 청문보고서 없는 인사들을 보고서 채택 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이 무려 22명이나 ‘묻지마 임명’을 강행했다.그 중 각종 비리의혹으로 국민의 비난과 검찰수사선상에 있는 조국을 검찰개혁의 적임자라는 명분으로 법무부 수장에 앉혔다. 이 조국 게이트는 단순히 윤리의 실종이나 도덕의 추락이 아닌 범법의 문제로 정의와 공정, 도덕을 강조하던 개혁진보세력과 좌파정치세력들의 부패와 도덕적 불감증의 민낯이 국민 앞에 드러났다. 이러한 범법행위에 대한 국민적 원망을 무마하려고 이번에도 과거처럼 촛불로 거리에 어릿광대들을 풀어 ‘조국지지와 검찰개혁의 국민적 요구’ 라고 숫자 부풀림으로 여론조작을 통해 덮으려 하지만, 한비자는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벌레가 파먹었기 때문이고,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틈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2019-10-07

두려움이 없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조현명 시인A는 문제아였다. 만나는 선생님들마다 외면했다. 도와준다고 말을 건넸다가 오히려 나쁜 일을 당하는 수가 많았다. 후배들의 돈을 빼앗는 것은 작은 일이었다. 오토바이를 훔치거나 성폭행범으로 신고 되기도 하고 동네 불량배에 끼어서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당연히 선도위원회나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에 이름이 여러 번 올라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위원들은 한탄만 하고 끝이 났다.“이런 아이는 작은 잘못에도 강하게 처벌해야합니다. 그러질 못하니 잘못을 키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몽둥이찜질로 정신 차리게 할 수 있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경찰과 검찰에서도 청소년이라고 양형기준을 낮추어버리니 그걸 이용합디다.”결국 A는 폭력과 절도 강도 성폭행으로 소년원 생활을 했다. 이후 학교생활에서도 사고뭉치였다. 오히려 더 대담하게 사고를 쳤다. 교사들은 “앞으로 큰 범죄자가 될 것이다.” 라고 했지만 아무도 교정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아이는 극소수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그에 비하면 착한 수준이다. 그러나 두려움이 없다는 것에는 동일한 것 같다. 두려움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이 두려움이 없어진다면 교육이 뿌리 채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개×× 같은 욕을 하는 것은 차라리 애교스럽다.“당신은 우리가 낸 세금과 납입금으로 월급을 받지 않느냐?”는 말을 해, 당혹스럽게 하기도 하고 컴퓨터가 말썽일 때 학생의 도움을 받으면 “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같은 요즘 힙합가사를 흥얼거린다. 교사를 비아냥대고 교사로 대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화를 내고 체벌을 하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한다. 흉기를 들고 달려들거나 주먹질해오면 교사는 방어권도 없다. 방어하다가 되려 학생에게 폭행을 가한 것으로 책임질까 두렵다. 피하는 것이 상수다. 이것은 교육을 포기하는 일이다.이지경이 된 것은 기존의 교육철학이 뒤흔들렸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이 두려움을 기반한 교육을 부정하고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는 아직도 두려움을 기반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교사들에게 ‘사랑의 매’를 빼앗고 ‘학생 인권 조례’ 같은 것으로 학생들의 권리를 신장시켰다. 무조건 오래 참고, 교사의 사랑으로 감화하라는 무언의 압력이 매뉴얼처럼 내려 보내졌다.두려움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교육사례는 ‘서머힐’이나 뉴욕의 ‘자유학교’정도이다. 그것은 성공했다고 보기 힘이 든다. 왜냐하면 소수교육에 적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보통학교에서 그런 예를 찾기 힘 든다. 세상의 질서는 ‘두려움’으로 계층지어 있고 그것을 학교교육 또한 따라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지금이라도 A같은 아이는 두려움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아니면 ‘서머힐’ 같은 대안교육으로 보내든지.다수 보통학교에서 두려움이 없는 아이들이 양산되는 것을 이제는 막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뭘 해야 할지는 뻔하다. 현장 교사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2019-10-07

잭 런던과 모차르트

‘야성의 부름’으로 알려진 잭 런던(1876∼1916)이란 작가는 하루에 무려 20시간씩 글을 썼습니다. 글쓰기의 진정한 장인, 마에스트로입니다.“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그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몽둥이라도 들고 찾아 나서야 한다.” 그의 각오를 엿볼 수 있는 말입니다.잭 런던은 20시간 글을 쓰고 나머지 4시간으로 잠을 보충했는데, 자꾸만 침대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힘들게 되자 놀라운 일을 벌입니다. 침대 위에 역기를 매달아 두었습니다. 그만큼 절박하게 글을 썼습니다.모차르트는 친구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쉽게 작곡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네, 유명한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나는 이미 수십 번에 걸쳐 꼼꼼하게 분석하고 연구해 보지 않은 작품이 하나도 없다네.”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모차르트를 신에게 키스를 받은 존재로 묘사하지요. 궁정 악사 살리에르가 왜 자신에게는 영감의 키스를 해 주시지 않느냐고 신에게 저항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묘사와 달리 모차르트는 하루 대부분 시간을 음악에만 온전히 바친 인물입니다. 그의 손은 작곡을 위해 가느다란 깃털 펜을 너무도 오래 사용한 나머지 손의 뼈마디가 온통 뒤틀려 있었다고 합니다.창작은 하늘의 영감을 받아 뮤즈가 나에게 불어넣어 주는 숨결을 들이마시는 일이 아닙니다. 매일 정해진 루틴이 있는 작업이 비로소 영감 넘치는 작업을 가능케 합니다.가장 능률적으로 일하는 예술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른 아침에 작업합니다. 세상은 고요하고, 전화도 오지 않고, 마음은 평안하되 깨어 있고, 다른 사람의 말로 아직 오염되지 않는 시간은 하루 중 오직 새벽뿐입니다. 위산일궤의 마음가짐으로 매일 한 삼태기의 흙을 모아 나르는 결심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독자님들이 늘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07

소머리곰탕...이미 진한 설렁탕을 먹고 있었다

설렁탕은 서울 지방 음식이다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반, ‘경성 종로경찰서’에 설렁탕 배달꾼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외상 설렁탕값’에서 시작되었다. 단골집에 설렁탕 배달을 갔다. 외상값이 밀려 있었다. 수금은 배달꾼 책임이다. 밀린 외상값을 달라고 했다. 설렁탕을 배달 시킨 이는 “나는 이 집 객이다. 지금 주인이 없으니 설렁탕값은 나중에 주인에게 받아라”고 했다. 이 말끝에 배달꾼과 객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시비 끝에 주먹다짐이 오갔다. 둘 다 경찰서 행.조서에 배달꾼의 말이 남아 있다. “내 뒤에는 설렁탕 배달꾼 300명이 있다”는 내용이다. “우리 큰 조직이야!”라고 엄포를 놓은 셈이다. 당시 경성(서울)에는 냉면, 설렁탕 배달이 성했다. 음식 배달꾼들의 노동조합도 있었다. 300명이라면 적지 않은 숫자다. 주로 종로통 부근에 있었으니 설렁탕 배달꾼이 집집이 서너 명은 있었다는 뜻이다.당시 경성에는 설렁탕 집들이 유달리 많았다. 협객 김두한의 회고에도 숱한 설렁탕집들이 등장한다. ‘원 씨 성’을 가진 이는 경남 진주 형평사(衡平社) 간부 출신이다. 형평사는 1920년대 백정을 중심으로, 진주에서 시작된 ‘형평 운동’ 단체다. 사회주의 조직이다. 신분제도가 무너졌지만, 여전히 백정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원 씨는 진주에서 형평사 운동을 하다가 서울로 이주, 종로통에서 설렁탕 집을 열었다. 문제는 아이들의 취학이다. 대부분 학부모가 자신들의 아이가 백정의 아이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을 반대한다. 원 씨는 “신분제도가 무너졌지만 여전히 백정에 대한 인식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항의한다.설렁탕 집은 서울(경성)에서 널리 유행했고, 진주에도 있었다. 설렁탕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하루 소 500마리를 도축했다일제강점기 ‘소의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설렁탕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농, 축산물 생산이 늘어났다. 소의 소비가 늘어났고, 쇠고기 소비도 증가한다. 이때 소 부산물로 만드는 설렁탕 등이 등장했다는 뜻이다. 그렇지는 않다. 일부 맞지만 틀린 표현이다.조선 후기에 이미 소, 쇠고기의 소비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일제강점기에 갑자기 쇠고기 소비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설렁탕의 등장은 오히려 ‘느슨해진 금육(禁肉) 정책’ 덕분이다.조선은, 삼금(三禁)의 나라다. 금육(禁肉), 금송(禁松), 금주(禁酒)다. “쇠고기 먹지 마라, 소나무 베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가 국가의 주요 정책이다.모두 농사, 식량 확보와 연관이 깊다. 소나무를 베면 홍수가 난다. 술을 많이 마시면 결국 곡식이 허비된다. 곡식은 농본 국가의 주요 어젠다다. 소도 마찬가지. 우역(牛疫)이 돌면 정부는 “성한 소를 사고 지역으로 보내서 농사에 지장이 없게” 했다. 함경도의 멀쩡한 소를 수백, 수천 마리 삼남지역으로 보낸다. 심한 경우, 중국에서 소를 수입했다. 쇠고기를 먹는 일은 농사를 망치는 일이었다. 쇠고기 낭비를 철저하게 막았다. 문제는 민간이다. 민간에서는 여전히 쇠고기 먹는 일을 즐겼다. 정부에서는 강력하게 막고, 민간에서는 여전히 쇠고기를 즐겼다. 민간이, 반가(班家) 혹은 권력 계급이니 막기가 힘들었다.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_호전6조_권농’의 기사다. 제목은 ‘농사는 소로 짓는 것이니 진실로 농사를 권장하려 한다면 마땅히 도살을 경계하고 목축을 권해야 할 것이다’이다.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중략) 중국에서는 소의 도살을 금한다. 북경 안에는 돼지고기 푸줏간이 72개소, 양고기 푸줏간이 70개소가 있어서 (중략) 고기를 이같이 많이 먹는데도 쇠고기 푸줏간은 오직 2개소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잡는 소를 계산하면 500마리가 된다. 나라의 제향(祭享) 때나 호상(犒賞) 때에 잡는 것, 또는 반촌(泮村)과 서울 5부(五部) 안 24개소의 푸줏간에서 잡는 것, 게다가 전국 300여 고을마다 관에서 반드시 푸줏간을 열게 한다. 작은 고을에서는 날마다 소를 잡지는 않으나 큰 고을에서 겹쳐 잡는 것으로 상쇄되고, 또 서울과 지방에서는 혼례와 잔치, 장례, 향사(鄕射) 때 그리고 법을 어기고 밀도살하는 것을 대강 헤아려 보아도 그 수가 이미 500마리 정도가 된다. (후략)하루 500마리를 도축한다. 셈법도 정확하다. 전국 300개의 지방 관청마다 푸줏간(懸房, 현방)이 있다. 합법적인 도축 기관이다. 작은 곳에서는 소를 잡지 않는 날도 있지만, 큰 곳에서는 하루 몇 마리도 도축한다. 어림잡아 하루 한 마리씩 도축한다고 셈했다.서울이 문제다. 서울은 5부로 나누었다. 도성 안이다. 이곳에 푸줏간이 24개소. 여기서 200마리쯤 도축한다. 합계 500마리. 박제가나 정약용 모두 한양에 살았으니 한양의 도축 숫자는 비교적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하루 500마리 도축’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의 일이다. 망국의 시기보다 100년쯤 앞선다. 망국 100년 전에 이미 쇠고기 생산, 소비는 상당했다. 일제강점기 쇠고기 생산, 소비가 늘었고 설렁탕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틀렸다.금육이 무너지니, 설렁탕이 생겼다?쇠고기 생산, 소비가 늘고 설렁탕이 유행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나라가 무너지면서, ‘금육’ 정책도 무너졌다.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에는 사회 질서가 무너지면서 금육 정책도 무너졌다. 정조 사후(1800년)부터 조선이 공식적으로 망하는 1910년의 ‘한일늑약(韓日勒約)까지 110년 동안 조선의 사회 체재는 서서히 허물어진다. 쇠고기 식육을 강하게 막던 정부 정책도 힘을 잃는다.조선 말기, 일제강점기 민간의 쇠고기 소비가 얼마간 늘어났다.서울 ‘이문설렁탕’은 1904년 무렵 문을 열었다. 대한제국(1897-1910년) 시기다. 금육 정책은 완전히 무너졌다. 민간의 쇠고기 소비가 자유로워지고, 더불어 상업행위도 활발해진다. 국가의 공식적인 시전(市廛)도 무너졌다. 길거리 사설 식당은 주막이다. 주막에서는 주로 개장국을 내놓았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근대화된 식당들이 나타난다. 일제는 세금을 목적으로 적극적인 ‘가게 창업 신고’를 장려했다.조선 말기에도 쇠고기 소비가 있었다. 소의 부산물인 뼈, 대가리, 꼬리 등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탕, 국[羹, 갱]으로 만들어 먹었을 것이다. 음식을 이르는 정식 이름이 없었을 뿐이다. 1776년(정조 1년)의 기록물인 ‘명의록’에는 개장국 집이 등장한다. ‘쇠고기 부산물로 만든 음식’이 아니다. 쇠고기 소비가 비공식적이면 쇠고기 부산물로 만든 음식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공공연히 팔기는 힘들다. 정조 시절에도 개장국이 최선이었다. 설혹 쇠고기 부산물로 음식을 만들더라도 ‘구장(狗醬, 개장국)’같은 이름을 쓰지 않았다.금육 정책과 공식적인 시장, 시전이 무너진다. 주막과 사설 식당이 활성화된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한양도성에서 설렁탕은 개장국을 대신하는 음식으로 등장한다.설렁탕과 육개장서울 ‘이문설렁탕’이 생기고 경북의 중심도시 대구에서 육개장이 시작된다. 모두 개장국 대용품들이다. 서울의 경우, 주막의 개장국이 식당의 설렁탕으로 대체된 된 것이다.해방 후에는 변형된 설렁탕도 나타난다.포항 죽도시장에는 ‘곰탕집 골목’이 있다. 소머리곰탕이다. 영천 공설시장 안에는 몇몇 곰탕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고기 곤 전통 곰탕도 있지만, 내장, 소머리 등을 곤 변형 곰탕도 많다. 경북, 대구에는 설렁탕 전문점은 귀하다. 지방도시인 전남 나주에도 곰탕 노포들이 많다. 나주의 곰탕은 서울 ‘하동관’ 곰탕과 닮았다. 맑은, 고기 곤 국물이다. 포항 죽도시장 ‘장기식당’의 곰탕은 소머리 곰탕이다. 정확하게 짚자면, 곰탕이 아니라 설렁탕이다. 언론인 고 홍승면 씨는 수필 ‘백미백상’에서 “설렁탕 집 옆을 지나가다가 하얗게 탈골한 소머리를 보고 질겁한 후 오랫동안 설렁탕을 먹지 못했다”고 했다. ‘장기식당’의 곰탕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소 대가리 중심의 설렁탕이다. 소 대가리 뼈나 사골, 잡골 등으로 국물을 내고, 머릿고기 등을 넣은 것은 설렁탕이다.서울을 제외한 지방 특히 경북 지방에는 설렁탕 전문점이 드물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머리곰탕 등의 이름으로 이미 진한 설렁탕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10-07

실손의료보험의 함정

의료보험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의료비를 제외하고 병·의원 및 약국에서 실제로 지출한 의료비를 최대 90%까지 보상하는 보험으로, 보험 가입자가 질병이나 상해로 입원 또는 통원치료 시 의료비로 실제 부담한 금액을 보장해 주는 건강보험을 말한다.즉 아프거나 다쳐서 병원 치료를 받았을 때, 국민건강보험법 등에 의해 발생한 의료비 중 환자 본인이 지출한 의료비를 보험가입금액 한도 내에서 보장하는 보험이다. 이같은 실손보험은 나이가 들수록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 보험료가 올라가고, 유병자의 경우 보장내역이 줄어 효율적인 보험활용이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가급적 건강할 때 보험에 가입해 두는 것이 유리하다.특히 실손의료보험은 ‘비례보상 상품’이어서 중복가입하지 않는게 중요하다. ‘의료비 비례보상’은 부당이득의 문제점과 불필요한 장기입원 및 과잉진료행위 등 사회적 폐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피보험자가 상해 또는 질병으로 인해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아 발생하는 의료비에 대해 다수 상품에 중복가입 하더라도 피보험자가 실제 부담한 의료비 이상은 보상되지 않고 피보험자가 부담한 의료비를 보험사간 비례분담하게 된다. 예를 들어 甲이 1천만원을 한도로 의료비를 보장하는 A보험과 B보험 두개의 상품에 가입하고 병원비를 100만원 부담한 경우 두개의 보험사로부터 각각 100만원이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A보험과 B보험 각각에서 50만원씩 지급받게 된다.따라서 신용정보원 홈페이지나 인슈어테크 전문기업에서 내놓은 통합보험관리앱 등을 활용해 보험가입 내역을 조회, 보험료만 이중으로 납부하는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0-07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건너며 남긴 말이다. 그 후 10년이 지나 2018년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이 나왔지만, 남북한 교류나 협력은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10·4 남북정상선언 12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들었던 생각, 지금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운전자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지난 6일, 스웨덴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7개월만에 재개된 북미대화라서 전향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아무런 진전도 없이 스톡홀름 협상이 종료되었다. 북미대화를 방관자적 입장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형편이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관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문제가 대외환경의 종속변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북미대화 결렬이 남북한 관계를 좌지우지 하도록 둬서도 안된다.여야 공방이 치열하다. 자유한국당은 논평을 통해 북미대화 결렬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의 실패라며 “김정은 몸값만 올려놓는 자충수”를 두었다고 하였다. 청와대는 “북미대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하였다. 통일 문제는 국내정치의 수준이 달라지지 않으면 사실상 어려운 숙제다. 내부통합이 전제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통일 관련 논의는 공허하다. ‘10·4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정책을 놓고 벌어지는 정쟁이 빨갱이 만들기, 친북좌파 만들기 같은 맹목적인 이념대결과 정치 공작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정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 통일은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의 정치 현실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조국사태로 거리정치가 재연되고 여야가 극단적인 대결 양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소모적인 정쟁이 피로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경향신문과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는 46.4%만이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지지하였다. ‘사회갈등 해소 및 국민통합’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지난 해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광복100주년이 되는 2045년 ‘One Korea’가 되자는 비전이 현실화 되려면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통일 과제를 풀려면 긴 호흡이 필요하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를 높이는 혁신적인 셈법도 고려해야 한다. 일반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남북한 정상간의 공동선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내외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통일 비전을 확실하게 끌고 갈 동력이 있어야 한다. 장애물이 없는 경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10·4기념 심포지엄에서 나온 “중재자나 촉진자의 역할을 너머 쇄빙선을 띄우고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 시점에 주는 울림이 크다. 격동의 시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그 일을 하겠는가?”

2019-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