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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험대에 오른 구미시 인사

김락현 경북부구미시 인사가 시험대에 올랐다. 시가 적극행정 우수공무원을 대상으로 특별승진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벌써부터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 내부에서조차 “승진자리에 이미 내정자가 있다”, “특정인을 위한 생색내기다”라는 등의 뒷말이 무성하다.어느 지자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구미시도 인사가 끝난 후 여러 뒷말을 남겼다. 정부가 승진임용 배수를 크게 늘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은 아닐까?이번 인사가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는 공을 세운 이가 특별승진을 한다면 인사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리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시에도 특정 부서가 일 잘하는 부서로 인식 돼 있고, 젊은 직원들은 그 특정 부서에 들어가 조금이나마 일찍 승진하길 바란다. 그러다보니 특정 부서에서 특별승진이 많이 나올거란 추측이 자연스레 나온다. 하지만 일명 3D부서 즉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업무를 다루는 부서에서 묵묵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 직원에 대한 보상이 이번 특별승진에서 있어야 한다. 최근 경북도에서 우수공무원을 선정했다. 그런데 특정 부서에서 전체 추천 인사의 절반을 차지해 논란이 일었다. 구미시에서는 이런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란다. 또 한가지 시에 바라는 것이 있다. 청렴성을 중요하게 평가해 주길 바란다.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구미시는 그동안 청렴도에서 전국 꼴찌 수준을 면치 못했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라도 청렴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올해 초 구미시 석회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은 인사가 자신이 특별승진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니다가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이 인사는 이미 구미시가 특별승진을 추진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말을 하고 다녔을 것이다. 자신 혼자만의 공도 아니었고, 선임의 공이 더 컸음에도 공공연하게 특별승진을 입에 담은 인사가 만약 자신의 말처럼 이번 특별승진의 대상자가 된다면 구미시의 인사 신뢰도는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는 특별승진이 갖는 본질적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겼으면 한다. /kimrh@kbmaeil.com

2019-11-18

연포탕은 낙지탕이 아니다

‘연포탕(軟泡湯)’이라는 음식이 있다. 누구나 알만한 음식, 연포탕을 거창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연포탕을, 흔히, 낙지와 무 등 채소를 넣고 끓인 음식으로 여긴다. 낙지가 비교적 흔한 서해안 일대의 고유 음식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틀렸다.연포탕은 연포로 끓인 탕, 국물 음식이다. ‘軟泡(연포)’는 ‘연한 두부’다. 연포탕은 부드러운 두부로 끓인 탕이다. 낙지탕이 아니다. 무슨 그런 억지를 피우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릴 필요가 없다. 원형 연포탕은 연한 두부에 닭고기, 닭고기 국물을 더한 음식이다.‘동국세시기’ 10월 부분에 나오는 내용이다.◈ 두부 연포탕요즈음 반찬 중에 가장 좋은 음식은 두부다. 두부를 가늘게 썰고 꼬챙이에 꿰어 기름에 지지다가 닭고기를 섞어 국을 끓이면 이것을 연포탕(軟泡湯)이라고 한다. 여기서 포라는 것은 두부를 말하며 한 나라 무제 때 신하 회남왕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상고하면 육방옹(陸放翁)의 시에 이르기를 솥을 닦고 여기(黎祁)를 지진다는 글 뜻의 주(註)에 촉인(蜀人)은 두부를 ‘여기’라고 부른다고 한 것을 보니 지금의 연포가 곧 이것인 것이다.명확하게 두부 탕이 연포탕임을 설명한다. 지금의 두부 탕과는 얼마간 다르다. 두부를 가늘게 썰어 꼬챙이에 꿴다. 두부 꼬치다. 날두부를 넣지 않는다. 꼬치 두부를 한번 지진다. 국물은 닭고기로 만든다. 닭고기를 섞어서 국을 끓인다.두부는 ‘포’다. 연한 두부면 연두부 탕, 곧 연포탕이다.‘동국세시기’는 1849년(헌종 15년)에 완성되었다. 19세기 중반이다. 저자 홍석모(1781∼1857년)는 18세기 후반에 태어나서 19세기 중반에 죽었다. ‘동국세시기’의 내용은 19세기 초중반, 조선사람들이 생각하고 겪은 내용을 기술한 것이다. 두부나 연포탕도 마찬가지다. 그 이전부터 19세기 중반까지도 연포탕은 연두부 탕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연포탕에 낙지가 들어가고, 연포탕으로 불렸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육방옹은 이름이 육유(1125∼1210년), 호가 방옹. 지금의 절강성 소흥 출신이다. 육방옹의 시대는 12세기 후반, 13세기 초반이다. 육방옹이 이야기하는 ‘촉나라 사람들의 여기가 두부’라는 이야기도 13세기 남송 사람들의 시각이다.한나라 무제 때 회남왕 유안(기원전 165~122년)이 두부를 처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유안이 만든 두부가 좋았다고 하지만 ‘유안 두부’는 한나라가 아니라 후대의 이야기다. 한나라 무제의 전한(前漢)은 기원전 202년~기원후 8년 사이에 있었던 나라다. 두부는 이보다 뒤 시대에 중국 대륙에 나타난다는 기록이 오히려 많다. 육방옹의 두부 이야기도 남송 시대, 12세기 말의 내용이다. ‘두부’가 중국 측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당나라 때다. 당(618~907년)은, 7세기 초반에서 10세기 후반의 나라다. 우리의 통일신라 시대와 겹친다.더 우스꽝스러운 것은 ‘두부와 왕’의 상관관계다. 예나 지금이나 두부 만드는 일은 육체적으로 고되다. 유안은 회남왕이다. 황족이고, 작은 지역 회남의 왕 노릇을 했던 이다. 정치적으로 힘든 시기를 살았다. 유안은 결국 마흔넷의 나이로 자결했다. 역모와 반란 혐의였다. 정치적으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황족이 두부를 만들었다? “유안의 시대에”라고 하면 이해가 된다. “유안이 두부를 처음 만들었다”는 표현은 어색하다. 황족이 두부를 잘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다.콩도 문제다. 두부를 만드는 콩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만주 일대가 원산지다. 콩은 북방 기마민족의 것이다. 기마민족은 일찍부터 우유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버터, 치즈 류다. 치즈, 버터와 두부는 만드는 원리는 비슷하다. 치즈, 버터는 동물단백질을 굳힌 것이다. 두부는 식물 단백질을 굳혀서 만든다. 북방 기마민족은 이미 우유를 굳혀서 버터, 치즈를 만들었다. 두부는 북방 기마민족을 통해 중국으로 흘러들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우리도 일찍부터 두부를 먹었다. 여말선초의 목은 이색(1328~1396년)은 ‘먹보 영감’이다. 음식에 대해서 많은 기록을 남겼다. 먹보 영감 목은이 두부를 빠트렸을 리 없다. ‘목은시고_권 33_시’의 내용이다. 제목은 ‘대사(大舍, 승려)가 두부를 구해 와 먹이다’이다. ‘大舍(대사)’는 ‘大師(대사)’와는 다르지만, 승려를 높여 부르는 이름이다.채솟국 맛이 없어진 지 오래니/깔끔하고 뽀얀 두부 맛이 새롭네/성긴 치아로도 먹기 좋으니/진실로 나이 든 몸을 보양한다네/생선, 순채[魚蓴, 어순]를 보면 월나라 사람이 떠오르고/양락(羊酪)을 보면 북방 사람들이 생각난다네/우리나라 땅에서는 이걸 맛있는 음식으로 꼽으니/하늘이 백성들을 잘 보살핀다네목은 이색은 14세기 사람이다. 중국의 육방옹과는 불과 200년 정도의 차이가 난다. 목은의 두부에 대한 설명은 천연덕스럽다. 목은에게 두부는 새롭게 들어온, 신기한 음식이 아니다. ‘이 땅에서 나오는 맛있는 음식’이다.시의 내용 중에 월나라의 어순(생선, 순채)과 북방민족(胡人, 호인, 만주족)의 양락이 있다. 어순의 ‘순’은 ‘순채(蓴菜)’다. ‘순갱노회(蓴羹鱸膾)’의 고사에 나오는 바로 그 음식이다. ‘양락’은 양젖 혹은 양 등의 젖으로 만든 음식이다. 월나라 사람들에게는 순채, 북방 만주족에게는 양락이 있듯이, 우리 땅에서는 두부가 난다고 말한다. 두부는 목은의 시대에 전래된 것이 아니다. 그 이전부터 있었던 음식이다. 늦어도 몽골의 원나라 시절 한반도에 전래되지 않았을까, 라고 추정한다.우리는 두부를 잘 만들었다. 목은보다 약 100년 후의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_세종 16년(1434년) 12월’의 기록이다.“(전략) 왕이 먼젓번에 보내온 반찬과 음식을 만드는 부녀자들이 모두 음식을 조화(調和)하는 것이 정하고 아름답고, 제조하는 것이 빠르고 민첩하고, 두부를 만드는 것이 더욱 정묘하다[而作豆腐尤精妙]. 다음번에 보내온 사람은 잘하기는 하나 전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못하니, 칙서가 이르거든 왕이 다시 공교하고 영리한 여자 10여 인을 뽑아서, 반찬·음식·두부 등류[造豆腐之類]를 만드는 것을 익히게 하여, 모두 다 정하고 숙달하기를 전번에 보낸 사람들과 같게 하였다가, 뒤에 중관을 보내어 국중에 이르거든 경사(京師)로 딸려 보내도록 하라. (후략)”이때 중국을 다녀온 이는 천추사(千秋使) 박신생(생몰년 미상)이다. 박신생은 중국 황제의 칙서 세 통을 가지고 왔다. 두 번째 편지가 바로 위 문장이다. 음식에 관한 내용이다. 콕 집어서 조선 여인들이 반찬과 두부를 잘 만든다고 했고, 두부를 만들 여인들을 연습시켜 다시 보내 달라고 했다. 방법까지 구체적이다. 첫 번째 팀은 두부, 반찬을 잘 만들었다. 두 번째 팀은 잘 만들기는 하나 첫 번째에 못 미친다. 이번엔 미리 훈련 시켜 첫 번째 팀과 같은 수준으로 준비했다가, ‘경사(京師, 수도, 북경)’로 딸려 보내라고 했다.두부는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발전한다. 연포탕은 조선 초기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두붓국인 두부갱(豆腐羹) 정도가 조선 초기 음식이다.조선 초기인 성종 1년(1470년) 5월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이다. 제목은 ‘전라도 관찰사에게 민간에 떠도는 요사한 말의 근원을 캐어 의혹을 풀게 하라고 명하다’이다.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 고태필(高台弼)에게 글을 내리기를, 윤필상(尹弼商)의 반인(伴人) 임효생(林孝生)이 고하기를, 함평(咸平) 사람 김내은만(金內隱萬)의 아내가 내게 와서 말하기를, “입이 셋, 머리가 하나인 귀신이 하늘로부터 능성(綾城) 부잣집에 내려와서 한 번에 밥 한 동이[盆], 두붓국[豆腐羹] 반 동이를 먹었는데 (후략)”두붓국에 대해서 별다른 설명이 없다. 일상의 음식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조선 초기에는 두붓국이 일상적이었다. 성종 초기는 조선 시대 유일하게 원상회의가 있었다. 국왕은 나이가 어렸고, 원로대신들은 성종을 추대한 사람들이었다. 허약한 국왕이었다. 민간에는 여러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전라도 함평의 ‘한꺼번에 밥 한 동이, 두붓국 반 동이를 먹는 귀신’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단순한 두붓국이, 화려한 ‘연포탕’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다음 회에 계속한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11-18

음주산행 주의보

가을 산행은 자연이 선물하는 피톤치드와 풍부한 산소, 계곡의 음이온은 인체의 대표적 면역세포를 증강시켜 천연항암제와 자연항생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빠뜨릴 수 없는 기쁨 가운데 하나가 땀 흘린 뒤 산에서 마시는 막걸리 한잔의 행복이다.하지만 앞으로는 음주산행을 할 수 없게 됐다. 정부가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지정한 특정장소에서의 음주행위를 금지했기 때문이다.개정된 자연공원법에 따르면 지난해 3월 13일부터 대피소 20곳, 산 정상 60곳, 탐방로 21곳, 바위나 폭포 57곳 등 국립공원 내 158곳에서는 술을 마셔선 안 된다. 이를 어길 시 처음 5만원에서 2회 이상일 경우 10만원까지 과태료가 부과된다.이에 따라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지난해 3월 13일부터 올해 10월까지 대피소, 산 정상 등 국립공원에서 음주 행위 411건을 적발해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밝혔다.맨정신으로도 사고가 날 수 있는 것이 등산인데, 음주산행은 그만큼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다.음주로 인한 산악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난 6년간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64건의 음주사고 중 사망사고가 10건을 차지하고 있다. 음주산행으로 인한 안전사고는 전체 안전사고 1천328건 중 약 5%를 차지했다. 여름철 해상국립공원내에서 발생하는 익사사고 대부분이 음주가 원인으로 나타났다.취중산행은 낙상사고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고, 흡수된 알코올로 인한 저체온증을 유발할 수도 있고, 혈압을 높여 심장발작 뇌졸중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건강을 위한 산행이 음주로 위태로워지지 않도록 해야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1-18

늦가을에 배우는 인생 수업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뇌는 죽음을 다른 사람의 일로 생각하게 만든다.”‘뉴스위크’에 실린 이스라엘 바르일란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죽음이라는 정보를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과 관련된 것으로 분류함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지 않도록 한다. 누구나 죽는다는 보편적인 죽음의 문제를 자신만큼은 예외로 인식하는 뇌의 방어기제로, 부고 소식을 접해도 남의 일로 여겨 자신의 마지막을 떠올리기 쉽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우린 모두 죽는다.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는 없다. 문득 죽음의 문제를 자신과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성공과 성취만을 좇아온 삶을 리셋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괴테는 말한다. “모든 사람은 성공하려고만 할 뿐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성장하지 않는 삶이 어찌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속적 욕망에 따라 남보다 앞서기 위해 질주했던 삶이라면 내적 성장의 의미를 간과하기 쉽다. 재물과 권력을 성공의 잣대로 여기는 사회에서 성장의 가치는 소홀히 취급된다. 그러나 성장이 멈춘 성공은 허물어지기 쉽다. 진정한 성공은 자신을 성장시켜 사회에 기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성장은 자기 존재적 가치를 키우는 일이다. ‘하버드대 교수들이 들려주는 인생 수업’이라는 부제가 붙은 ‘하버드 인생 특강’에서 앤서니 사이치는 “인간의 성장은 생각과 행동이 모두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런 점에서 ‘성장’에는 ‘성숙’이 포함된다.해마다 나이테를 남기며 나무가 성장하듯 시간이 지난다고 절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로 성숙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자신의 경계에서 벗어나 주변 사람을 생각하고 공동체 문제에 따스한 관심을 갖는데서 성숙은 자리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는 사유의 지평이자 내면의 깊이가 성숙함의 본질이다. 존중과 감사, 위로와 공감, 배려와 용서는 성숙함을 보여주는 미덕이다. 자신의 존재만큼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성숙함이다. 그런 점에서 성숙함을 지닌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더불어 살 수 있는 공동체가 된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먼저이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성장과 성숙과 거리가 먼 삶이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으로 시작되는 시가 있다. 시 구절을 따라 음미하다 보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지난 봄과 여름에 자신이 뿌리고 땀 흘려 가꾼 것들이 어떻게 열매를 맺었는지 거두는 가을이기에, 이 계절은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게 한다. 우리의 뇌가 자신의 죽음을 곱씹지 않도록 프로그램이 되었다 해도, 부인할 수 없는 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마지막 문이 죽음이라는 점이다.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그러나 삶의 모습은 차이가 있다. 결국 우리 자신의 몫이다. 저물어가는 11월, 가을과 겨울의 접점에서 죽음이 던져주는 묵직한 지혜를 듣는다. 늦가을에 배우는 인생 수업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2019-11-18

추방된 자들의 탈출하지 못하는 여정

“우리 이제 어디로 가지?”쫓기는 남자들. 갈림길에서 갈 곳을 잃는다. 딱히 정해둔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세웠던 계획들은 만만찮은 대가를 치른다. 끊임없이 선택의 순간에 서게되는 남자들은 우정과 의리를 내세워 목숨을 건다.선택의 순간에 늘 동전을 던지는 이들은 근엄한 표정으로 결정된 길을 따라 이동하고, 머물며 권총을 뽑는다. 몰리고 몰리며 그들이 다다른 곳은 바다다. 홍콩을 가로질러 마카오로 건너가는 부둣가에서 남자들은 마지막 동전을 던진다.두기봉 감독의 영화 ‘익사일’에서 현실적이거나 스토리의 치밀한 연관성을 찾기는 어렵다. 애초에 그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시종일관 ‘폼’을 잡는다. 담배와 권총, 금괴탈취에서부터 하모니카가 등장하는 순간은 서부극의 전형이다. 황량한 사막에서 복잡한 현대의 홍콩거리로, 말 대신 자동차가 등장할 뿐 서부영화로 보아도 무방하다. 실제 많은 오브제들을 서부영화에서 대놓고 차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서부영화가 그러하듯 어디서 왔는가는 중요하지 않다.첫 등장부터 인물들에게 촘촘히 짜여진 사연은 없다. 그들의 인과관계는 느슨하고 사건의 기로에서 적이 됐다가 다시 아군이 된다. 오로지 상황과 그 상황 속의 액션에 집중한 영화다.그래서 영화 ‘익사일’은 호불호가 갈린다. 시종일관 ‘폼’만 잔뜩잡은채 끝을 맺고 있는 영화의 허망함에 실망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호쾌하고 화려한 액션 시퀀스들이 주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적어도 그 액션 시퀀스들은 세련되고 창조적이며 화려하다. 영화를 위해 그 장면이 필요했다기보다는 그 장면을 위해 영화의 나머지들이 필요했다는 느낌이 든다. ‘익사일’에는 자그마치 다섯 개의 주요한 액션 시퀀스가 있으니, 그 기대감을 따라 108분의 러닝 타임이 빠르게 지나간다.두기봉 영화의 특징이다. 그의 영화에서 탄탄한 스토리가 각인되었던 영화는 ‘흑사회’를 제외하곤 거의 없었다. 성긴 스토리와 어설픈 전개 사이로 반짝이고 재치있는 장면들이 알알이 들어가 박힌 영화가 바로 두기봉 스타일이다. 분명히 두기봉 감독은 그의 스타일을 살리는 장면을 위해 영화의 나머지 모든 것들은 장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일컬어 지는 ‘스패로우’ ‘대사건’ ‘매드 디텍티브’등의 영화들이 분명한 두기봉의 인장을 남기고 있다.오래된 사진 속에 남은 추억의 한자락처럼, 화려했던 홍콩 느와르의 재림을 위해 영화 ‘익사일’ 속의 주인공들은 현란한 춤과도 같은 액션장면을 연기한다. 서부영화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넘나들 때 ‘익사일’의 무대는 광활한 대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홍콩의 끝자락 한적한 부둣가에서 마지막 남은 희망을 뒤로하고 좁고 어두운 홍콩의 뒷골목으로 들어선다. 서부영화가 어디로든 막힘없이 탈주하는 공간이라면, 영화 ‘익사일’은 크게 다르지 않은 선택지를 고르는 여정을 이어간다.추방(exiled)된 자들의 탈출하지 못한 여정에 놓인 다섯 개의 총격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하다. 유치하고 쓸데없이 근엄하고 ‘폼’잡지만 그 속에 환상적이며 아름다운 액션 시퀀스가 있다는 것이 이 영화를 다시 보게하는 이유다./김규형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두기봉 감독의 ‘익사일’은 네이버영화나 구글플레이에서 다운로드하여 볼 수 있다.

2019-11-18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봉화 각화사(覺華寺)

산골 마을은 온통 무욕의 지혜들이 몸을 날린다. 한 때의 화려함에 미련을 두지 않고 시(詩)처럼 노래하고 시(時)가 되어 낙하한다. 언젠가는 고운 연둣빛으로 피어나 우리를 설레게 할 새로운 만남을 위한 이별들, 가을 숲은 공(空)으로 돌아가는 중이다.아늑하고 깊은 숲속, 장대한 막돌 축대 위로 각화사가 보인다. 신라 신문왕 6년(서기 686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선조 39년에 태백산 사고(史庫)를 세우고 조선왕조실록을 300년간 수호했던 사찰이다. 800여 명의 승려가 수행하는 국내 3대 사찰 중 하나였던 곳, 일제 강점기 때 의병 공격을 목적으로 일본군이 방화하여 월령루만 남은 것을 중창불사하였다.인근에 있는 남화사(覽華寺)를 옮겨 절을 지은 뒤 옛절을 생각한다는 의미로 각화사(覺華寺)라고 불렀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사상, 현상은 함께 일어나면서도 서로 의지하며 걸림 없이 교류하고 융합해 생긴다’는 화엄의 진리를 간직한 남화사.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으로 화엄의 도리를 직시하는 절이다. 각화사는 그 뜻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지어진 사찰인 것이다.‘태백산 각화사’ 편액을 단 월령루의 자태는 고고하다. 은은한 달빛이라도 흘러들면 영화로웠던 옛날의 정취가 더해져 교교한 느낌마저 들 것 같다. 전각들은 역사가 깊어 보이지 않고 소박하지만 자존심이 서려 있다. 인적도 없고 염불소리도 들리지 않는 마당을 가을바람 홀로 쓸쓸히 쓸고 있다.사찰의 이름과 어울리는 절이다. 아름답고 그리운 한 때를 각화사는 잊지 않고, 나는 과거의 흔적을 찾아 서성인다. 애를 써 봐도 흑백 사진에 담겨 있던 그 옛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경내를 둘러보아도 발길에 차이는 것은 적적함뿐이다. 까마귀 한 마리 울며 날아간다. 나뭇잎들이 놀라 떨어지고 시린 허공이 잠시 떨리고. 하지만 절도 숲도 이내 고요해졌다.인드라의 그물은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을 덮고 있다. 단풍과 빛, 낙엽과 바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수많은 관계와 관계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삶터, 나는 하필이면 백두대간 수목원의 인파 속을 무심히 지나쳐 이곳으로 왔을까?대웅전 법당문을 연다. 화려한 닫집 아래 협시보살 없이 석가모니 부처님 홀로 나를 맞는다. 바깥풍경과 달리 법당 안은 안온한 열기로 가득하다. 누군가의 식지 않은 기도가 머물러 있었을까. 천장에 빼곡하게 매달린 불자들의 소원등과 수미단 위에 정성스럽게 차려진 공양물 때문일까. 늘 드나들던 법당처럼 낯설지 않고 아늑하다.미미하지만 큰 존재임을 깨달아 가슴 뿌듯했던 오늘, 혼자 법당을 차지하고 앉은 이 시간도 좋다. 잘 짜여진 일정처럼 무여 스님에 이어 각화사와의 고요한 만남,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친 나를 떠나보내고 맑고 향기로운 나를 위해 기도한다.후드득 내 안에 꽃이 피어난다.산 그림자가 염치도 없이 법당문을 두드릴 때까지 부처님은 가만히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태백산 정기가 머무는 태백 선원의 비어 있는 선방들이 자꾸 가슴을 헤젓는다. 수많은 고승들이 거쳐간 금봉암이라 불리는 동암은 어디쯤 있을까. 한 때는 선지식의 그늘에서 화두를 잡고 태백산의 기운을 한 몸에 받고자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와 좌복을 깔던, 그 자랑스럽던 영화는 어디로 갔을까?조낭희 수필가선지식의 침향 같은 일화들은 두고두고 큰 울림으로 남는다. 지금 우리는 후세에게 남겨줄 정신적인 유산이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향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 월령루 옆 무릎이 시려 보이는 삼층석탑과 눈이 마주친다. 상처가 많아서 보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걸까? 내로라하는 이름표 하나 없어도 탑의 눈빛은 깊고 평화롭다. 속살마저 푸른 기운이 감도는 정감 넘치는 탑, 청이끼가 유일한 훈장이다.고된 삶 위무 받고자 산사를 찾았다가 부처님 가피 받아 이곳에 주저앉아버린 불심 깊은 어느 여인의 모습이 저러할까. 닳고 닳은 무릎을 일으키며 아픈 영혼들을 보듬어 주었을 것만 같은 탑이다. 삶이 힘들다고 섣불리 언설하지 마라. 편한 것만 찾으면 삶이 너무 싱겁지 않겠느냐. 탑의 말씀이 들린다.가슴 적시는 모든 것에는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가 숨어 있다. 무명의 탑처럼 드러나지 않게 안으로 승화시키며 살겠노라 발원한다. 언젠가는 선지식의 발자국을 찾는 이들로 태백선원 처마 밑도 북적이리라. 인기척 없이 고요한 절을 두고 돌아서는 발걸음에 연등 하나 달린다. 내려오는 길이 환하다.달빛이 고운 날, 축서사로 달려와 탑돌이라도 해보고 싶다. 탐진치 내려놓고 팔정도 가슴에 새기며 온몸으로 달의 기운 받는 일은 얼마나 행복할까. 내게로 향하는 깊고 향기로운 기도 하나만 있어도 분명 행복할 것이다. 짧고 따뜻했던 각화사와의 첫 만남이 나를 기도케 한다.‘날마다 깨끗한 마음으로 등불을 켜겠습니다. 눈물로 지새는 누군가의 영혼이 밝아올 수 있도록. 힘들어도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겠습니다. 아주 가까운 이의 가슴에 퍼렇게 멍이 들지도 않도록. 나는 날마다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겠습니다.’

2019-11-18

입시 해방감

수능 끝난 후 고3이 맞는 해방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 통쾌하며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다. 꿈도 많고 호기심도 많으며,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고교시절을 책과 씨름해야 했던 그들에게 수능 후의 느낌은 “고3 끝”, “공부 끝”으로 통한다. 수능 성적이 좋고 나쁨은 다음 문제다. 규제와 통제의 학교생활에서 이제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은 그들을 들뜨게 한다.그들은 연말만 지나면 19살이 된다. 법적으로 술을 마셔도 되는 나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일탈 행동도 일어나기 쉽다. 입시 해방감에서 과음을 하다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수능시험이 끝난 고3에게 물었다. 수능이 끝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응답자의 1순위가 성형수술이다. 2위는 소개팅, 3위는 아르바이트다. 설문조사 기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개 쌍꺼풀 수술이나 다이어트 등 외모와 관련한 것을 가장 많이 꼽았다. 아르바이트도 많은 응답 중 하나다. 용돈을 벌어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자는 뜻으로 보인다. 기성세대가 바라는 것과는 다소 먼 엉뚱한 대답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새장에 갇힌 새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학업에 묶여 억눌려왔던 그들의 젊은 욕구가 본능적으로 분출한 것이라 이해하면 된다.수능시험이 끝나고 고3의 일탈이 문제화되는 시기다. 고3 스스로의 절제 있는 행동도 필요하지만 학교와 학부모의 관심과 보살핌이 더욱 절실하다. 지난해는 수능을 마친 고3 남학생 10명이 추억여행을 떠났다가 예상치 못한 참변을 당한 불행한 일도 있었다. 그들의 해방감을 우리 사회가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1-17

풍전등화(風前燈火)의 ‘한미동맹’

안재휘 논설위원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한 미국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의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 중단요청을 일단 거절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지소미아가 오는 23일 실제로 종료될 경우 “역내 안보와 한미동맹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일제히 경고했다는 미국의 소리(VOA) 뉴스가 나왔다. 엉뚱하게도, 한일 간 무역갈등이 한미동맹의 균열로 번질 수 있는 엄중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다.한미동맹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는 상당히 복합적이다. 핵심 변수는 북한 비핵화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느냐다. 우려했던 대로 미국은 북한이 ICBM(대륙간 탄도탄) 개발 중단 약속을 지키는 한 ‘북한 비핵화’을 서두르지 않을 태세임이 드러나고 있다. 터무니없는 수치를 내밀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한미군 주둔비용’ 청구서도 심각한 문제다. 이 모든 것들이 우연히 나타난 현상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전문가들은 소위 ‘유동성 딜레마’라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던 브레튼우즈체제(Bretton Woods system)의 완전한 붕괴 현상부터 언급한다. 국제무역의 확대, 고용 및 실질소득증대, 외환의 안정과 자유화 등을 달성할 것을 목적으로 1944년 7월 체결된 브레튼우즈협정은 1971년 닉슨 대통령의 ‘달러화 금 태환 정지선언’으로 일단 무너졌고,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American First) 정책으로 완전히 해체되고 있다는 설명이다.브레튼우즈체제는 원래 소련에 맞서는 안보동맹 체제가 그 본질이었다. 미국이 안보를 주도하는 대신 동맹국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안겨준다는 식이었고, 오랜 기간 미국은 엄청난 적자를 감수했다. 무역적자는 2017년 기준 무려 5천700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도 1970년 무렵 이 체제에 편입되어 미국 시장에 물건을 내다 팔아 경제도약을 달성했다.미국의 국제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Peter Zeihan)은 저서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셰일가스 개발로 에너지 자급의 꿈을 이룬 미국은 이제 세계질서 유지에 관심이 없다. 미국의 동맹은 각자도생해야 한다”고 썼다.그는 며칠 전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속내는 “ICBM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토로했다.결과적으로 북핵 위협은 오로지 대한민국만의 존망(存亡) 문제가 됐다는 얘기다.미국은 변했다. 우리가 알던 미국은 없다. 미국이 변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대응해야 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은 헛똑똑이 반미(反美) 급진세력들이 국민선동의 빌미로 삼는 일이다. 미국이 이제 출혈(出血)관리를 안 하겠다는 것뿐이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계 최강의 국가다.분명한 것은 이제 미군 없는 국가안보를 생각할 때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자체 ‘핵무장’이 절실해졌다. 픙전등화(風前燈火)의 ‘한미동맹’앞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2019-11-17

울릉도·독도 구급헬기 상주 절실

김병수 울릉군수지난달 31일 오후 11시 30분께 독도 인근 해상에서 홍게잡이를 하던 선박의 선원이 손가락이 절단돼 후송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중앙119구조 헬기가 출동, 독도에서 응급환자와 보호자를 태우고 이륙 직후 바다에 추락했다는 비보를 보고받았다. 직감적으로 매우 위급하고 위중한 상황으로 판단, 행정선과 독도평화호의 현지 출동을 지시했지만 선박 규모보다 항로상의 파도가 높고 야간이라 항해가 어렵다는 보고를 받고 대책을 고민했다.어찌 보면 울릉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항으로 소극적인 시각으로 사태를 관망하거나, 기초적인 대응 단계에서 역할을 해도 되겠지만, 울릉군민에게 독도에서 추락한 ‘119 응급구조 소방헬기’ 또한 독도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 보면 내 가족에게 일어난 사고나 다름없다는 생각으로 밤을 지새웠다.이튿날부터 울릉군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가족대기실을 설치하는 한편 울릉군이 보유한 독도행정선 독도평화호 출동 등 울릉군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해 오고 있다.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 주권 상징의 섬으로 일본의 영토침략에 맞서 울릉군민이 대대로 지키고 가꾸어 왔고, 온전하게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대한민국의 아픈 손가락이다.이곳 독도에서 그동안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울릉군민의 생명을 구해온 한 가족 같은 119소방헬기가 추락했기에 독도를 관할하는 울릉군수로서 마땅히 할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2019년 한 해는 울릉일주도로의 완전개통, 울릉 신항 공사의 순조로운 추진과 울릉공항 건설이 확정되면서 군민 모두의 숙원이 점차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10월에는 지난해 취임 때 제1호로 공약 한 대형여객선 유치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는 등 군민 행복과 미래를 향한 밝은 청사진이 제시된 한 해이다. 그러나 울릉군민에게는 아직도 숙제로 남아있는 한 가지 숙원이 있다.울릉도에 제대로 된 병원이 하나 없어 생명이 위급한 환자는 머나먼 동해바다를 건너 내륙병원으로 응급이송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울릉도에서 응급상황은 비단 울릉군민에게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울릉도는 연간 40여만명이 입도, 2박 3일을 머물면서 연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울릉도에 체재하고, 독도와 울릉도의 황금 어장을 중심으로 동해상에는 수많은 우리나라 어선들이 오징어, 대게, 홍게, 복어, 새우잡이 등 각종 어로작업을 하고 있다. 울릉도 독도 부근 공해상에는 중국어선 등 수천 척의 외국 어선도 조업 중이다. 환자가 발생하면 울릉도 병원으로 후송이 가장 가깝다. 또한 러시아, 중국, 북한 상선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통과해 태평양에 진출하는 길목이다.동해바다에서 발생하는 환자의 생명을 구하려면 가장 가까운 곳이 울릉도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 울릉군 보건의료원에 외국인 환자의 방문도 심심찮다. 이런 요충지 울릉도에 입대를 대신해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만으로 구성된 울릉군 보건의료원이 전부다.이런 이유로 울릉도에 제대로 된 병원이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이 또한 경제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당장 유치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병원이 어렵다면 빨리 환자를 후송할 수 있는 ‘구급헬기’(닥터헬기)가 울릉도에 상주하고 있었더라면 이번 사고가 있었을까?평소 군민들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올 때가 있다. “군수님 헬기 좀 띄워 주세요! ○○가 아파서 사경을 헤매고 있어요.” 기상이 악화돼 내륙에서 응급헬기 출동이 어렵거나 울릉도에 착륙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군민의 애타는 목소리이다.이럴 때에는 군수라도 어찌할 방법이 없어 같이 애타는 심정이다. 올해에도 4명의 군민이 함정, 여객선 등으로 이송 중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1분 1초를 다투는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다. 울릉도에 구급헬기가 상주해야 하겠다는 절실한 바람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나?’ 되물어본다. 여건을 갖추지 못하여 군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군수로서 막중한 책임감이 밀려온다.지금까지도 독도에서 구조 활동을 펼치다 희생한 119구조대원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추락사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실종된 분들이 하루빨리 수습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

2019-11-17

말(言) 다루기는 어려워

권해창 교사진심이 담긴 말은 듣는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 감동은 지속적으로 청자의 생각에 남아 자극을 주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말이 선하고 이타적일 때 울림은 더 크다. 듣는 사람도 그런 진심을 받아들일 상태라야 감동이 있다. 서로 타이밍이 맞아야한다. 주파수가 조금만 틀려도 잡음이 들리는 아날로그 라디오처럼 대화도 수많은 편견과 오해의 잡음 없이 서로 주파수를 맞춰야 가능한 일이다.소크라테스가 아고라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건네는 대화는 어땠을지 궁금하다. 울림을 주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 같다. 계속된 물음으로 주파수를 맞추고 결국에는 어떤 메시지를 깨닫게 하는 그의 대화법에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청년들이 많았던 만큼 싫어하고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대화의 충격은 사람들에게 울림과 감동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었나보다. 그 충격의 경험으로 스스로 가치관을 깨면서 탐구하길 좋아했던 사람은 그를 좋아했을 것이고, 상처를 입은 사람은 소크라테스를 혐오하고 경멸했다.교사는 말을 많이 할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곤란을 겪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내가 했던 말들을 곱씹어본다.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하거나 들었을 때 기분 나쁘지 않았을까 싶은 말을 했을 경우에는 특히 예민하게 그 장면을 떠올린다. 소심한 나의 성격도 한 몫 하지만 그렇게 곱씹으면서 그때 했으면 좋았을 말들을 상상해본다.수업시간에 하는 말은 학습 내용이 말의 대부분이다. 특정한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생활지도나 면담을 목표로 학생과 일대일로 말하는 경우에는 자칫 실수가 나오기 쉽다. 학생들과 일대일로 말할 때는 최대한 표정과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그럼에도 대화가 끝난 뒤에 내가 한 말과 행동을 후회하는 일이 많다. 말을 차분하고 조리 있게 잘하는 선생님들이 부러운 순간이다.며칠 전 학생 한 명이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자율학습에서 빠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독서실이 더 공부가 잘된다는 이유를 댔다. 순간 짜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본인이 교실에서 장난을 많이 치는 녀석이 아니던가. 평소 무단지각을 많이 하던 녀석이라 좋지 않은 편견과 감정도 한몫했다.교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설득했으나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그 모습도 고집스럽고 미워보였다. 결국 나는 그러면 안 되었는데, 소위 막말을 하고 말았다. 성실한 아이와 비교하고 평소 행동을 지적하며 지난 잘못을 들추어내 지금 하는 말이 얼마나 건방진 태도인지를 전했다. 감정을 실어 묵직하게 던졌다. 듣는 입장에서는 폭력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아이가 교무실을 떠나고 나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한 것은 아니지만 기분 나쁜 감정이 함께 섞여 나오는 말은 폭언 이상으로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후회했다. 말할 당시의 내 진심을 살펴보니 더 미안했다. 걱정되는 마음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말할 때의 내 진심이 그 학생을 위한 선한 마음뿐이었는가를 생각하니 그렇지 않았다. 미워하는 마음이 섞여있었다. 학생은 진심으로 고민하고 내게 말을 꺼냈을 텐데 나는 공부를 하지 않기 위한 핑계로 해석해버렸다. 주파수를 맞추지 못했다. 진심을 가장해 충격만 준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다음날 아침, 교실로 향하면서 녀석에서 어떻게 인사를 건넬지 고민했다. ‘머리를 쓰다듬을까? 장난치듯 말을 건넬까? 급식에서 나오는 부식을 챙겨주면서? 아마 시무룩하게 있겠지? 칭찬을 하는 게 나을까? 아 오늘은 일찍 왔으려나?’ 교실 문을 여니 그 녀석이 교실에 앉아 있었다. 오늘도 지각하리라 예상했는데 자리에 보여 약간 당황했다. 아직 선입견을 버리지 못했다. 놀란 나에게 그 녀석이 먼저 웃으며 말했다.“선생님 오늘 일찍 왔어요. 선생님 말 듣고 이제 일찍 오려구요. 저 어제도 새벽 1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했어요.”말하기는 항상 어렵다. 다른 분야는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어나는 법이지만 말하기는 그 발전이 참 더디게 느껴진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항상 조심스럽게 ‘말’을 다룰 일이다.

2019-11-17

1948년 평양 4김 회담과 김구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1945년 8·15 해방 정국은 어수선했다. 얄타 협정에 의해 38선을 경계로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 남북을 갈라 진주하였다. 해방 후 당시 국내 정국은 신탁과 반탁, 단정과 통일 정부 수립으로 양분됐다. 중경 임정의 주석 김구 선생은 임정 대표 자격을 상실한 채 그해 11월 겨우 미군 비행기로 귀국했다. 귀국 후 김구 선생은 좌우합작운동을 벌이면서 중도파를 규합한 김규식과 뜻을 같이 했다. 해방 정국 초기 김구는 이승만과 호형호제하면서 우호적이었으나 결국 정부 수립 문제로 상호 불신과 갈등을 겪게 된다.이승만의 단정을 반대하던 김구는 북측에 남북 지도자 회담을 제의한다. 1948년 3월 25일 북에서 응답이 왔다. 김일성과 김두봉이 “통일적 자주독립을 위한 전조선 대표자 연석회의를 갖자”는 것이다. 1948년 4월 19일 김구는 통합 정부 수립이라는 일념에서 반대를 무릅쓰고 북행을 강행한다. 출발 당일까지 경교장 담 밖의 수많은 청년들의 반대 시위가 있었다. 그는 김규식과 비서 선우진, 아들 김신만 데리고 평양에 도착한다. 백범일지는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고 기록하고 있다.4월 21일 평양 모란봉 극장에서 김일성이 ‘북조선 정세보고’를, 백남운과 박헌영이 ‘남조선 정세보고’를 했다. 4월22일 남한 41개 단체, 북한 15개 단체의 695명이 연석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박헌영, 백남운, 김구, 김규식, 조소앙, 김일성, 김두봉 등 좌우익 명망가들이 한 자리에 앉았다. 23일 남북 대표자들은 남과 북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투쟁을 벌일 것을 약속했고, 미국과 소련의 양국군이 동시에 한반도에서 철군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연석회의는 정부 수립에 관한 완전한 합의는 이루지 못했다. 분위기는 벌써 ‘김일성 만세’ 소리에 술을 따라주고 주악이 울려 퍼지는 이상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4월 30일 4김 회담은 김두봉 집에서 김구, 김규식, 김일성이 참석해 성사됐다. 이 회의에서 남한에 대한 전기송출 문제와 연백댐의 개방에는 합의했다. 김구는 그 회담에서 조만식 선생을 남쪽으로 대동하겠다고 요구했으나 김일성은 여러 핑계를 대며 묵살했다. 김일성은 회담이 결렬되자마자 전기와 농업용수를 끊어버렸다. 김구는 5월 30일 힘없이 서울로 돌아왔고 평양 연석 회담에 실망한 그는 김일성의 2차 회담 제의마저 거부했다.1948년 남한에서 5·10 선거가 치러지고, 북은 6월 29일 ‘인민공화국’ 수립을 결정한다. 이듬해 1949년 6월 29일 김구 선생은 73세로 암살이라는 비운을 맞는다. 김구 선생은 민족 통일이라는 원대한 꿈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그는 생전 남북한 단정 수립은 결국 군사적 대결과 민족의 영구 분단으로 이어진다고 개탄했다. 1950년 6·25 전쟁을 정확히 예측한 것이다. 그는 조국과 민족을 위한 헌신성은 탁월하지만 정치적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러나 그의 항일 우국충정은 어느 누구도 추종하기 어렵다.

2019-11-17

마음의 쿠션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면 압니다. 돌이 물에 닿는 데 걸리는 시간과 그때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 우물의 깊이와 양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내 마음의 깊이는 다른 사람이 던지는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깊으면 그 말이 들어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깊은 울림과 여운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흥분하고 흔들린다면 아직도 내 마음이 얕기 때문입니다.마음이 깊고 풍성하면 좋습니다. 이런 마음의 우물가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갈증이 해소되며 새 기운을 얻습니다. 비난이나 경멸의 말에 내 우물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내 마음의 우물은 얼마만큼 깊고 넓을까요?” - 조신영의 ‘쿠션’ 중에서.‘쿠션’은 ‘경청’에 이어 쓴 제 대표작입니다. 쿠션이 없는 딱딱한 바닥에 오래 앉아 있으면 혈액 순환도 안 되고 몸이 금세 고달파집니다. 인간의 몸이 닿는 곳에는 어떤 형태로든 쿠션이 존재하지요. 우리 마음은 어떨까요? 마음에도 쿠션이 존재한다면? 마음 쿠션의 품질이 우리 삶의 질입니다. 마음이 늘 팍팍하고 고단해서 쿠션이 없으면 메마른 영혼, 황폐한 삶입니다. 조그마한 자극에도 예민하고 거친 반응이 튀어나옵니다.어떻게 하면 마음 쿠션을 키울 수 있을까요? 마음 우물 깊이를 어떻게 더 깊고 풍성하게 울림 가득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먹구름을 뚫고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자극에 즉각 반응하는 구름 아래의 삶을 성찰하고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우리의 영혼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엘리베이션파워, 고결함에 이르는 힘입니다. 구름 아래에는 천둥, 번개, 비, 바람, 강풍 등이 늘 존재합니다.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새로운 세상이 존재합니다. 고요함. 밝은 태양. 푸른 하늘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그곳까지 도달할 수 있다면, 구름 아래 세상의 요란한 일들이 우리 마음을 흔들 이유가 없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17

山行을 하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몇주 전 주말 가을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듯 전북 장수군의 장안산(長安山)엘 올랐다. 평소 산을 좋아하며 산행을 무척 즐기는 편인데, 그 무엇에 저당 잡혀 이다지 뜸하게 산을 찾았는지, 상기된 풍엽(楓葉)들의 두런거림이 온통 밀어처럼 들리는데 말이다.산을 찾으면 고향처럼 푸근하고 어머니 품처럼 편안하다. 낮은 등성이건 험준한 고산이건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넉넉하고 한결같은 품새로 맞이한다. 철 따라 옷을 갈아입으며 신선한 공기와 향긋한 바람과 청아한 소리를 들려 준다. 생각이 번잡하거나 세파에 찌든 사람들은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씻기도 하고, 나무숲을 거닐며 차분하게 치유 받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땀방울로 산을 오르며 자신의 의지를 단련하기도 하고, 애써 정상에 오른 이들은 담담하게 성취와 희열을 만끽하기도 한다. 그렇듯 산은 찾거나 오르는 사람들을 반겨 맞고 위무하며 늘 그 자리에 서있다.가을걷이가 끝나가는 산밭을 지나 어쩌다가 산행 초입부터 길을 잘못 들어 등산로가 없는 비탈로 접어들었다. 풀섶이 발을 휘감고 잡목이 앞을 가리니, 발길은 더뎌지고 연신 힘겨움만 더해갔다. 단풍에 젖어드는 순조로운 산행을 기대했건만, 예기치 못하게 길 아닌 험로를 헤쳐가야만 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 헤매듯 올라가다가 원래의 순탄한 등산로를 찾아 가까스로 정상에 이르게 됐다. 등산은 어쩌면 모험을 시도하는 청년의 패기같은 것이다. 고지를 향하는 다짐을 눈빛으로 아로새기며 단호하게 앞만 보며 내닫는 굳건한 발걸음이다. 그러나 무난할 것만 같은 산행도 의욕만 앞서고 준비나 방향에 착오가 생기면, 이처럼 시작부터 고난을 면치 못하는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버겁고 부치는 숨결로 산마루에 서면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전경에 장쾌함이 솟아난다. 역경을 이겨내고 정상에 다다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땀의 결정, 중년의 성취, 환희 같은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쓰다듬고 너울너울 구름 꽃의 환호 속에, 저 멀리 덕유산, 지리산의 산세를 조망하는 것은 흔치 않은 불역쾌재(不亦快哉)가 아닐까!‘파도의 외침으로/안겨오는 저 물살/고원에 이는 격정/무리 지어 부신데/처연한 흰 손의 나부낌/가을날은 퍼덕인다’ -拙시조 ‘사자평에서’ 첫 수(1997)1천200m 고지의 장안산 동쪽 능선으로 하산하며 드넓게 펼쳐진 억새밭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은 이번 산행의 덤이었다. 무엇을 향하는지, 누구를 보내는지 긴 목을 뽑아대는 억새가 자꾸만 흔들어대는 건 아쉬움인가, 아우성인가? 온통 바람기에 취할 듯한 억새의 몸부림에 자신도 덩달아 취하며 그냥 가을에 빠져들었다. 이렇듯 정상에 올라 비우고 재우고 느긋한 걸음으로 하산하며 즐기는 것은 노년의 안도와 여유가 아닐까 싶다.짧은 하루의 힘겨운 산행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낀 알찬 여정이었다. 오르고 내려오는 것이 우리의 인생과도 비슷한 산행, 산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경외감으로 산을 즐겨 찾아야겠다.

2019-11-17

지진특별법 이후를 생각한다

15일이 포항지진 2주년이다. 지진발생 때부터 그 원인을 주목, 추적해 온 필자로선 감회가 새롭다. 여러 주장이 대두되면서 지진 원인에 대한 정부합동조사단이 구성됐고, 그 결과 촉발지진이라는 성과를 거둔 것은 포항시민들의 단합된 힘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한 사업의 문제가 확인되면서 이제 남은 건 배·보상 문제다. 이 배상, 보상이 현재 순조롭지 않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배상 보상의 주체는 당연히 사업을 진행시킨 정부 기관이다. 정부도 피해를 당한 포항에 무엇을 해 주려면 그 근거가 필요하다. 근거를 만든다는 것이 작금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포항지진지원특별법이다. 상황을 보면 언제가 될지 불투명하긴 하나 시간의 문제이지 언젠가는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본다.지진 2주년을 맞아 새롭게 드는 생각은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예산지원이 본격화될 경우 과연 우리 포항은 그걸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할지, 과연 그 부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진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흥해는 여전히 심각한 아픔 속에 빠져 있다. 곳곳에 주민 간 갈등도 적잖다. 240세대의 흥해장관맨션의 경우 시로부터 소파판정이 나자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다. 이 소송 경우 1심에서 기각판결, 항소심이 진행 중에 있다. 2심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주민들이 포항시를 상대로 소송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양측 간 신뢰의 간격이 크다는 증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여러 상황을 파악해보면 특별법이 통과돼 예산이 내려오면 시민 갈등 사례가 더욱 증폭할 것으로 예상된다. 잠재된 갈등 요소가 너무 많아서다.실제, 지진특별법이 통과되면 피해를 당한 주민들의 고통을 해소시키고 손배상을 기대만큼 만족시킬 수 있을까? 과연 주민들 요구대로 정부가 다 해줄까? 부동산 자산 가치 하락은 어떻게 풀까? 여러 의문을 부정할 수 없다.이는 해외 선진국의 손배상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주민들의 만족도가 결코 높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포항은 ‘재난시민권’(disaster citizenship) 의 개념, 즉 국가가 잘못한 기술개발 사업에 시민들이 당연히 보상받아야 하는 권리라는 주장이 우선하긴 하다. 그러나 정부의 손배상이 어떤 기준 없이 될 리가 없을 것이다. 그 기준은 무엇으로 할까. 이 과정에서 심한 갈등이 재현될 수 있다. 충족되지 못하면 법정으로의 비화도 불 보듯 뻔하다.사회학분야에 성찰적 협치란 개념이 있다. 사회문제에 대해 성찰하고 대화를 통해 해결, 새로운 사회를 구성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전제는 양보와 협력이다. 지진피해를 입은 포항으로 끌고 들어오면 재난시민권도 인정하지만 예산자원의 한정으로 주민기대에 충족하지 못한 현실을 감안, 대화를 통한 협상과 합의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다만, 우리 시민사회가 그런 성찰적 협치를 할 역량을 소유하고 있고, 이를 실천할 리더들이 있는가하는 숙제는 있다. 동시에 시민들은 그런 리더를 인정하고 신뢰할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한번쯤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진 발생 3년째는 우리 시민들이 분노의 감정을 넘어 안정과 만족의 지수를 높이는데 역량을 모았으면 한다.•양만재 씨는 경북대 사회학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사회학박사, 영국더럼대학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8년 4월부터 포항11·15지진 지열발전 공동연구단원으로, 같은해 10월부터 포항지진 정부조사단 포항시민대표 단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포항지열발전소 부지안정성검토TF위원과 포항지진공동연구단 부단장을 맡고 있다.

2019-11-14

정치의 계절

언제부턴가 출판기념회라는 말이 북 콘서트란 말로 바뀌었다. 출판기념회가 정치인 후원금 모금의 한 방편으로 활용되면서 이미지가 나빠진 탓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북 콘서트라고 출판기념회와 크게 다를 바는 없다.북 콘서트는 작가가 자신이 쓴 책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독자와 질의 응답을 가지는 형식의 모임이다. 출판기념회보다 소통의 범위가 넓어진 것은 장점이자 특징이다. 요즘은 일방 통행식 행사보다는 소통을 통한 쌍방향 형식의 행사가 많아졌다. 북 콘서트도 사회자가 등장해 질문을 던지고 책쓴이는 그에 대한 자신의 소신과 심정을 털어놓는다. 수직적이기 보다 수평적 분위기라서 딱딱하지도 않다.5개월 앞으로 다가선 21대 총선을 두고 정치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2일 대구에서 북 콘서트를 가졌다. 대구와 포항 등 곳곳에서 또 다른 출마자의 북 콘서트가 연이어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정치인에게 북 콘서트는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출마자의 의지를 읽게 하는 행사로서 그런대로 적당한 이벤트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같은 날 서문시장을 찾아 간담회를 가졌다. 대구 민심의 심장부를 찾았다는 점에서 정치가 기지개를 편다는 해석도 나온다.문재인 대통령이 그저께 부산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했다.국정을 챙기는 대통령이 어딘들 못가겠냐만은 문 대통령의 부·울·경 방문이 유난히 잦아 오해도 많다. 올 들어서만 공식적으로 부·울·경을 12번이나 방문했다니 선거를 의식한 방문이라는 오해도 생길만 하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온 모양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1-14

한국당의 딜레마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딜레마에 빠졌다. 쇄신과 통합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내년 총선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자유한국당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참 딱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한 친박의원들과 탄핵에 찬성한 비박계 의원들이 한지붕 아래 같이 지내고 있다. 비박계 의원들은 탄핵에 찬성하며 탈당했다가 다시 입당한 의원들이고, 친박의원들은 탄핵에 반대하며 한국당에 남았던 의원들이다. 특히 친박 의원들은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을 거쳐 황교안 당대표체제가 될 때까지 자칫 인적쇄신의 대상이 될까 납작 엎드려왔다. 그러다 이제 수적 우세를 무기로 파워게임을 벌여야 할 때라는 생각일까. 충청 출신의 친박계 재선의원인 김태흠 의원이 영남 3선 퇴진론으로 선방을 치고 나왔다. 영남권 비박계 의원들을 몰아세우는 발언이었지만 욕만 얻어먹고 말았다. 친박인 자신들은 쏙 빼놓고 영남권 3선 퇴진론을 주장했다가 염치가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래도 몸조심하느라 엎드려 있던 친박의원들과 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쇄신바람을 앞장서 일으켜주니 싫지만은 않았으리라.그러나 민주당에서는 초선의원으로 활발히 의정활동을 하던 표창원·이철희 의원 등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인재영입으로 혁신공천을 하겠다고 북새통인 걸 생각하면 한국당의 쇄신바람은 너무 미약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수감 등으로 갑자기 치러진 대선에서 정권을 빼앗긴 직후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의원 하나 없었던 한국당이다. 당 지도부조차 은근슬쩍 몸을 뺀 마당에 이제 와서 누가 책임을 지려할까. 이런 상황이면 황교안 대표가 당무감사를 통한 의정활동 평가와 탄핵에 따른 도의적 책임 등을 따져 과감한 인적쇄신을 할 수 밖에 없다. 국민을 실망시킨 한국당이 표를 달라고 하려면 확연히 달라진 면모를 보여야 한다. 그러려면 상당수 친박의원들을 교체하는 획기적 인적쇄신 없이는 총선에서 과반수를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외연을 넓히는 보수대통합도 가는 길이 험난해 보인다. 쇄신 후 가능한 일이지만 황 대표는 상대측과 협의가 끝나지 않아 설익은 보수대통합론을 내놨다. 그래선지 바른미래당이나 대한애국당 양측 모두 시큰둥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대한애국당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인정하는 이들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뻗대고 있는 데다 바른미래당 역시 신당창당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당대당 통합이란 게 의석수를 보장해줘야 하는 문제가 있고, 지역구 문제 해결도 쉽지 않다. 흡수통합되는 당 의원들에게 험지로 나가라고 한다면 통합에 임할 의원들이 있을 리 없다. 이래저래 쇄신과 통합은 자유한국당의 딜레마다. 이 모든 난국을 풀 비책은 없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옥중에서 “모든 게 내 책임이다. 한국당을 중심으로 대통합해 나라를 바로잡아주길 바란다”라고 한마디하면 어떨까. 그러나 어쩌랴. 박 전 대통령은 오늘도 별다른 말씀이 없다.

2019-11-14

비내리는 인사동 -‘4음 4보격 가사체’로

담양 가서 가사문학 얘기 하는데, 공부도 공부지만 김학성 선생 만나 객지 잠 못드시는 이야기 듣고, “암만” “암만”하는 사투리도 듣고 박현수 ‘5촌 조카’광주 문흥지구까지 나가 무등산 막걸리도 한잔 걸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무주로 올라와 김환태 평론상 수상자 최명표 선생 일하느라 생고생 이봉명 시인 만나 네 시간 넘어 걸려 상경 하노라니 일요일에 천근만근 비가 오려는지 왼쪽 목 어깨며 등이며 고질병이 도져 아침에도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스마트폰 알려주는 일정표 따르면 김흥식 샘‘ 이기영 연구’일천오백 매 원고 떠들어 봐야 할 약속이 잡혔으니 점심 지날 때까지 마음 초조 몸은 엉금엉금 두 시 넘어서야 겨우 거동하여 걸어야 산다는데 걸을 힘은 없고 털털 자동차 끌고 구기터널 지나 세검정 자하문 경복궁 조계사 지나 공영 주차장에 파킹을 해놓고 컴퓨터 펴들러 커피숍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 놓고 원고를 넘기는데 ‘세계관의 형성 기반과 작가적 입신의 전사’,‘초기작의 세 유형과 민중 계몽주의의 한계’, ‘방향전환기 계급 소설의 양상’, ‘작가적 반성과 근대소설의 정점’, ‘전형기 이후의 추이와 명암’, 서둘러 체제를 보아 나가는데, 아하, 한 사람 공부가 사람마다 제각기되 소걸음 느릿느릿 그런데도 전차 걸음 천리 길 걸어 충남 하고도 아산 덕수 이씨 충무공 12대 지손 작가 민촌 이기영 생애와 작품이 여기처럼 자세 정심 알뜰하게 밝혀진 곳 없었으니 새삼 재삼 중병 앓는 선생 무서운 공력에 고개 끄덕이며 제목이며 체제며 이리저리 궁리하다 시간을 잠깐 놓쳐 다섯 시 언뜻 지나 골목 안 사천 이모집 달려가니 홍기돈 유찬열 먼저 와 기다리다 이십여 분 늦으신 선생을 맞아 이 집 명물 불고기에 굴전을 시켜놓고 책 만드는 상황을 점검해 보는데 이야기가 제목을 정하는 데 이르자 ‘한 근대 작가의 초상ㅡ이기영 연구’, ‘이기영 문학의 원점과 지향’등등 거론타가 선생이 직접 나서 ‘작가’말의 유래 밝히시며 ’작가 이기영, 그 생애의 치열성과 문학적 진실의 수준‘이라는 긴 제목을 제안하시니, 그것, 참, 길기는 하다만 1895 출1984 몰 작가 이기영 자취 제대로 담긴 듯하니 드디어 선생 책이 모양 갖추는구나 며칠 전 위출혈로 응급실도 가셨다는 선생은 식욕 없어 부지런 젓가락 놀리는 우리들만 쳐다보며 말씀만 이으시니 이윽고 일이 끝나 이모집 나서는데 때 아닌 늦가을비 기와를 때리나니 이 비 그치면 초겨울이리 엊그제 입동이니 어김이 없으리니 비닐 우산 사들고 제각기 흩어지되 선생 혼자 안국역 쪽 표표히 사라지시니 인사동 옛 거리가 적막하기 그지없어 인생은 오간데 없고 빗소리만 깊어라./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1-14

울릉도 수능시험장 설치론 허실

김두한 경북부수능때만 되면 나오는 울릉도 수능시험장 설치요구는 과연 타당한가. 결론부터 밝히면 울릉 학생들에게 불리한 소리다.울릉도 수험생들은 쭉 그래왔듯이 올해도 포항에서 시험을 치렀다. 기상악화를 우려해 수험생들은 포항에 미리 나가 객지 생활을 하면서 대입 수능시험에 대비했다. 이에 따라 일부 학부형 및 주민들이 울릉도에서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일부 언론과 학부형들이 울릉도 상설시험장 설치를 요구해 왔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할 수험생이 뱃멀미와 낯선 환경, 잠자리 등 상대적으로 불공평한 조건에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이유를 든다.울릉도에도 수능 고사장을 설치해 달라는 행정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울릉도 고사장문제가 가장 큰 이슈가 됐던 해는 2017년 포항지진으로 수능시험이 일주일 연기됐을 때다. 울릉도 수험생들이 보름 가까이 포항 객지생활이 장기화됐을 때다. 당시 울릉도 수험생들은 11월 10일 울릉도를 출발, 16일 시험을 치르기로 돼 있었지만 15일 포항에 지진이 발생하면서 수능이 일주일 연기됐기 때문이다.2018년 6·3지방선거 때 경북도 교육감 후보였던 임종식 현 경북교육감이 울릉도 수능시험장상설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지난해 울릉도 수능고사장 설치문제에 대해 수용자들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0%가 반대했다.결국, 어른들은 수능시험장 상설화 설치에만 관심이 있었지 정작 학생들의 고민은 몰랐던 것이다. 냉정히 말해 표만 되면 공약하고 보는 정치인들의 현실이 맞물렸다고나 할까.임 교육감은 당시 공약에 대해 “학생들의 설문조사 결과로 모든 논리를 끝냈다”고 최근 SNS를 통해 밝혔다.학생들의 입장은 매우 현실적 이유가 있음을 설문조사에서 보여주고 있다.수능시험을 마치면 곧바로 대학에 따라 바로 수시모집 대학별 면접시험이 이어진다. 만약 울등도 현지에서 수능시험을 치르고 다음날 날씨가 나쁘면 수시모집 면접이나 실기고사에 응시할 수 없어 대입시험을 망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어차피 일찍 육지로 나가 수능시험을 치고 수시 면접시험에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 학생들이 처한 상황이다. 포항에서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면 된다는 것이다.울릉도 학생들이 조기에 포항으로 나가는 것은 1980대 초 학력고사 도입 때 시작됐다. 과거에는 공부할 주변 환경도 열악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2010년부터 경북도교육청이 숙박비 등 체류비 일체를 부담하면서 여건이 좋아졌다. 경북도교육청의 세심한 배려를 통해 학생들에게 면학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포항해병대의 협조로 공부할 장소, 숙박, 식사 등이 거의 완벽하게 지원돼, 학생들에게는 크게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 지도교사들의 설명이다.울릉도에 대학이 없고 모두가 울릉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울릉도 수능시험장 상설화는 불가능한 담론이다. 아니 낭비적이다. /김두한기자

2019-11-14

학생이 실험 대상인가?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어제 수능이 치러졌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학생들이 실험대상이 되고 있다는 자괴감으로 괴롭다. 1973년에 주요 고교 입시가 폐지되기 시작했다. 각 시도별로 명문교들의 입시는 폐지되었다. 당시 대통령의 아들 입시 때문에 고교입시가 폐지된다는 루머가 있긴했지만, 시도별로 명문고교가 있어 고교입시가 너무도 치열하였기에 고교입시를 폐지하고 평준화시켜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겠다는 뜻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이후 4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창의적인 교육은 우리와 멀고 노벨상은 아직도 요원한 현실이다.정부는 지금 다시 평준화의 망령을 꺼내 들었다.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 등 특성화 고교를 없애겠다고 한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시발점이었다.이러한 마당에 대학에는 정시모집 비율을 늘리라고 압박을 가하고 또 강사 숫자를 늘리라고 하고 강사 숫자가 적은 대학은 지원을 제한한다고 한다.도대체 학생이 실험의 대상인가? 아니면 포퓰리즘의 희생자인가? 특성화 고교 폐지와 정시모집 증가는 상호 모순이지만 포퓰리즘 과정으로는 서로 호응이 된다. 강사 숫자를 줄여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라는 주문은 언제이고 다시 일자리 창설을 위해 강사 숫자를 늘리라고 한다. 교육부에서는 “강사 숫자가 이리 적으면 교육부 지원은 포기하는거죠?”라는 협박같은 말을 종종한다고 한다. 중고교생들의 갈팡질팡은 고사하고라도 대학도 갈팡질팡이다. 갑자기 강사 숫자를 늘린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자사고 등 특성화 고교가 학교서열화의 주범이라는 것인데 도대체 서열화를 거부한다면 어떤 발전이 있을 것인가? 강남의 명문고 학군이 부활할 것이고 또다른 서열이 생길 것이다. 학교 서열화의 득실은 무엇이고 서열화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고 그것이 고교만의 문제인가를 냉철히 살필 필요가 있다.평등교육이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지 교육수준의 평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수준은 각각의 수준과 다양한 능력에 맞게 제공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고교의 필요성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평등교육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한다면 자사고나 특목고 폐지가 우리 교육의 정답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올바른 평등교육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는 자사고 등 특목고 폐지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선진국처럼 고교평준화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고교는 존재하여야 한다.정시모집 확대도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그동안 수시모집 확대를 강요하여 많은 대학들이 수시모집 위주로 편성되는 상황에서 다시 수능위주의 정시모집 확대는 대학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고교와 대학들은 정권에 따라 시류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정책에 신음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은 학생들이 불쌍하다고 말한다. 대학들도 고통에 헤매고 있다. 언제까지 학생들이 실험의 대상인가? 언제까지 교육이 정치적 논리의 희생양인가? 선거 때문에 교육정책을 만드는가?제발 자율시장에 맡겨라.

2019-11-14

벌써와 아직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벌써 절반이 지났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고 절망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에 대한 얘기다.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2년 반 동안은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전환의 시간이었다. 정부 시작부터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웠고 정의를 사회의 전 영역으로 확산시켰다’고 자평했다. 이런 평가에 대해서도 박수를 치는 사람과 어처구니없어 하는 사람이 극단으로 갈릴 것이다.한 나라 안에서 같은 사실을 두고 이렇게 극명하게 의견이 엇갈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단순한 관점의 차이가 아니라 이념이나 진영의 논리에 따른 골 깊은 반목과 적개심의 표출이라는 것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일차적으로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본인이 취임사에서도 말했듯이 자신을 지지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사도 존중하는 것이 통치자의 기본적인 소임이다. 날로 변하는 국제정세의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힘을 결집하는 대동단결이 우선과제이기 때문이다. 통치자가 국론분열의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한쪽 편의 선봉에 서서 시종 증오와 적개심을 부추기는 역할에만 집착하는 것은 참으로 국가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지금 대한민국을 가장 위태롭게 하는 것은 국가 정체성의 혼란이다. 정권을 장악한 좌파 세력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공연하게 부정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체제의 전복을 기도한 전력에다 사회주의자임을 천명하는 사람을 법무부 장관의 적임자라고 믿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 사람이 저질은 다른 죄까지 수사하지 말라고 검찰청 앞에 몰려가 시위를 하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자우민주주의 체제라고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 체제를 견지해 왔기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기반을 다지고 성장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족한 것은 보완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지, 혁명이니 개혁이니 내세우면서 모조리 뒤엎겠다는 것은 패망을 자초하는 구시대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좌파정권의 모든 실책은 종북주의(從北主義)로 귀결이 되는 것 같다. 오로지 김정은의 눈치만 살피는 비정상적이고 병적인 심리가 경제와 외교와 안보를 망치고 있다. 거기에는 어떤 합리나 법치도 통하지 않는 맹신과 집착이 있을 뿐이다. 며칠 전 동해에서 나포했다는 북한 어부(?) 두 사람을 몰래 북송하다가 들통이 난 사건도 그렇다. 그들이 제 입으로 다른 선원 열여섯 명을 죽이고 넘어 왔다는 말을 했을 리는 없을 터이니, 내통한 북의 주장과 요구에 따라 강제 송환했을 거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갖는다. 사람의 생사가 걸린 문제인데 어떻게 충분한 법적 절차와 심의도 거치지 않고 며칠 만에 비밀리에 넘겨준단 말인가.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는 헌법도 인권도 안중에 없는 것이 이 정권의 실상이다. 이런 정권의 임기가 아직도 2년 반이나 남았다는 사실에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2019-11-14

직업 선택 십계명

거창고등학교 전영창 교장이 제시한 직업 선택 십계명이 있습니다.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 위대한 가치는 이렇게 세상과 정 반대로 걷는 이들이 만들어 내는 법입니다.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암 환자가 있다 해 봅시다. 어느 시골 청년이 암 치료제를 완성했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옵니다. 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한 아이가 개발한 약입니다. 완치율 100%. 임상 실험도 끝났고 미국 FDA에서 승인을 했습니다.완치하는 데까지 투약하는 비용이 9백만원이랍니다.카드결제도 안 됩니다. 오직 현금으로만 구입할 수 있습니다. 택배로 보내주지도 않습니다. 그가 이런 조건에 불평할 수 있을까요?위대한 가치란 그런 것입니다.자질구레한 부대조건은 일고의 여지가 없어지는 것. 이런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인물들은 적당한 교육, 적당한 철학으로 길러지지 않습니다. 위대한 가치는 지식의 주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생각으로부터 탄생합니다.위대한 생각은 위대한 사람을 만나는 일로 싹이 트기 시작합니다. 모쪼록 직업선택 십계명 교훈처럼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나길 기도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14

사용후핵연료 처리의 골든타임

황성호 경북부천년 전 신라를 방문했던 페르시아인들을 본 신라인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서역의 상인들을 맞이했던 신라인들의 생활은 경주의 문화재에서 유물로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유리잔과 동물의 뿔로 만든 술잔, 각배와 유리병 등은 해양실크로드 문화의 절정기를 맞이했던 신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재다.문화재만이 역사일까?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실크로드를 동양과 서양의 문화와 문물이 만나던 역사적인 길이었고, 대부분 중국에서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실크로드는 신라 서라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유물들과 경주시 외동읍의 괘릉, 무인석상, 천마총 등은 신라 서라벌이 실크로드의 시작점이자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역사를 품은 도시에 골든시티 경주는 어떠한 모습으로 미래를 담아야 할까. 실크로드로 대변되는 문화와 교역의 중심지였던 역사속의 경주는 어떠한 방향으로 미래를 향해야 할지 지금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경주의 근현대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하는 원자력발전소의 존재는 경주의 미래를 예측하고 가늠하는데 매우 비중이 큰 요소이다. 인간의 삶에 필수소비재인 전기를 만들고 난 후 발생하는 부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하여 경주가, 경북이, 전국이 고민하고 있다.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쓰는 전기의 대가인 사용후핵연료의 올바른 처분방안 결정은 전기의 혜택을 받는 우리들이 당연히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당면 과제이다.원자력발전소의 존재로 인해 주변지역이 이제껏 피해를 입은 것도 있지만, 반대로 유입인구 증가와 주변지역지원금 등으로 지역이 부흥의 기회를 얻은 것 또한 사실이다.현 시점에서 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포화로 원전가동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점은 경주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다.정부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정책에 따라 경주시도 지역실행기구를 구성하고 주민토론회, 시민참여형 조사를 거쳐 지역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한다. 경주의 미래는 우리의 의견을 수렴하여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론화와 정부정책의 타이밍이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 나오더라도 타이밍이 늦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도 환자가 아플 때 없다면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hsh@kbmaeil.com

2019-11-13

베를린 장벽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1989년 11월 9일 동서 베를린을 차단한 장벽이 무너진다. 1961년 이후 28년 만의 일이다. 유라시아 동쪽의 냉전 상징이 휴전선이라면, 서쪽의 상징은 베를린 장벽이다. 베를린 자유대학에 다니던 나는 장벽붕괴를 실시간 경험한다.유고슬라비아 공용어인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제3슬라브어로 배우던 나는 담당강사 우베 힌리히스 교수와 서베를린 중심가 쿠담에서 역사적인 장면을 대면한다.“오늘 저녁에 특별한 일 있어요?” “아니, 없는데요.” “그럼 나하고 시내 나가서 동베를린 사람들과 이야기해 볼래요?!” “그러죠.” 이런 대화를 주고받고 난 다음 쿠담으로 나간다.거리 곳곳은 이미 흥분과 환희의 물결이 넘치고 있다.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다니며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윽고 우리 일행은 큼지막한 레스토랑에 들어선다. 그리고 우베는 동베를린 사람들을 모아서 이야기를 시작한다.“자, 오늘 술값은 내가 냅니다. 자유롭게 마시면서 얘기해봅시다.” 그렇게 우리는 왁자지껄 끝없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자신을 1961년생이라 밝힌 젊은 친구는 장벽 붕괴 이후 동서 도이칠란트의 재통일과 게르만족의 융성을 염원하는 발언을 남긴다. 왜 당신들은 ‘섹스 숍’에 몰려다니느냐는 물음에 ‘동베를린에는 없어서’, 하는 답이 돌아온다. 40도짜리 독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면서 나는 휴전선이 무너지고 남북한이 하나 되는 날을 상상한다.장벽설치 이후 5천여명이 장벽을 넘고, 5천여명이 체포되고, 200명 가까운 사람이 사살된다. 동과 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갈라놓은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자주적인 외교방침, 소련의 재건과 개방정책을 들고 나온 고르바초프의 등장,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동요, 미소군비경쟁 종언 같은 사건들이 맞물리면서 장벽은 서서히 하지만 근본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1990년 10월 3일 두 개의 도이칠란트가 하나로 재통일된다. 장벽이 무너지고 불과 1년 지나지 않아서 동서가 하나로 합쳐지는 장면은 극적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그러하되 동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의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에 쪽지가 나붙는다.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Wir haben keine Schuld)!”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한다. 사회주의 진영의 선두주자가 저렇게 속절없이 무너지다니! 가늠하지 못한 사변이 ‘도둑처럼’ 찾아온 것이다.제2차 대전을 일으킨 당사자도 냉전과 분단을 극복하고 재통일하는데, 악랄한 일제의 식민통치와 대동아전쟁의 피해자인 한반도의 남과 북은 여전히 갈등과 대립을 진행한다. 작은 일 하나도 큰 나라 눈치 봐야하는 나라꼴도 안타깝지만, 역사의식 없는 전임 대통들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그나마 돌아가던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마저 폐쇄해 버린 어리석은 자들! 언제 우리는 휴전선을 무너뜨리고 하나가 되려는가?!분단극복은 공염불이 아니라, 작은 손길 하나 마음 하나에서 시작되리라!

2019-11-13

긍정의 기대를 심으면

잭 웰치 GE 전 회장은 어린 시절 말을 심하게 더듬어서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습니다. 어머니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네가 말을 더듬는 이유는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야. 너는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2차 세계대전 말, 헝가리군 소속 부대가 알프스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고립되어 길을 잃었습니다. 기온은 떨어지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이들은 모두가 얼어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필사적으로 탈출 방안을 찾던 중 누군가 고함을 지릅니다. “제 배낭에 지도가 있습니다!”지도를 보며 탈출 경로를 의논했고 마침내 탈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부대 복귀 후 상관은 그들이 탈출할 때 사용한 지도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이 지도는 알프스 지도가 아니라 피레네 산맥 지도로구만!”수백 ㎞ 떨어진 피레네 산맥 지도를 알프스 지도로 착각하고 필사적으로 지도 하나 붙들고 탈출을 시도하고 결국 성공해낸 것은 긍정적 기대감이 우리 행동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오래 전, 강화도에서 세미나를 진행할 때 한 참여자가 나눈 이야기입니다.“아들이 이번에 성적이 많이 올랐어요. 이유가 있어요. 학교 선생님이 한마디 해 주신 것 때문입니다. 아이가 2학년 때는 반에서 최하위권이었어요. 3학년에 올라와 새로 온 담임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대요. ‘지훈아. 얼마 전에 보니까 입술에 뾰루지 났던데 이제 다 나았네?’ 아들은 선생님이 자기 입술에 났던 뾰루지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 거에요. 그날부터 우리 아들, 노트에 쓰는 글씨체가 달라졌어요. 학교 가는 걸 즐거워하고 숙제를 척척 해내더니 마침내 이번 시험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답니다.”오늘 하루, 내 주위 사람들에게 긍정의 눈빛과 표정, 말투, 언어와 몸짓으로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멋진 긍정의 날이시길!/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13

“교육 독립 운동”이라도!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지금 교육은 정치에 교육 주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입맛대로 재단되어 지금은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괴기스럽게 변해버렸습니다.한 나라의 교육은 그 나라의 희망입니다. 교육은 그 나라의 국운(國運)을 책임질 일꾼을 키우는 국가대사(國家大事)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라의 희망이어야 할 교육이 오히려 나라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정치인들 손에 교육을 계속 맡겨둔다면 우리 교육은 희망과는 영영 결별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엔 혼돈과 혼란, 갈등과 절망밖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희망이 부재한 교육의 최대 피해자는 우리 아이들입니다. 학교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자신과 나라, 나아가 세계의 밝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학교생활을 해야 할 학생들이 한줄 세우기 시험에 숨도 못 쉬고 있습니다. 정치판 교육시스템에 꿈을 저당(抵當)잡힌 채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이미 많은 아이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교육 당국은 통계 숫자로 학교 밖 청소년들이 줄었다고 하지만, 글쎄요?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말합니다. “여기가 어디야?” 필자에게 내민 휴대전화 화면에는 서울대학교 정문 사진이 있었습니다. 필자는 아이의 그 다음 말이 궁금했습니다. 혹시나 거기를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하며 아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내 친구들 정말 불쌍하다. 엄마들이 억지로 가자고 해서 지금 여기에 가 있대. 내 친구들 이제 초등학생밖에 안 됐는데도 서울대 가려고 학원 엄청 다녀. 아는 중학교 언니는 학원에서 벌써 고등학교 수학한대! 이거 너무 심하지 않아!”이 말은 결코 ‘SKY 캐슬’과 같은 입시 풍자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대사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정부나 교육청에서는 선행학습 금지법 등을 들며 학교교육과정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또 사교육 현황과 같은 신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수치로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학교 교육을 믿고 학교에서 자녀의 미래를 준비하는 학부모가 얼마나 될까요? 심지어 교육계 종사자들도 입시를 위해 당신 자녀는 학원을 보내는 게 이 나라 교육 현실입니다.“그래서 어떻게 하자고?”라고 물으시면, 죄송하지만 저 또한 뾰족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편향된 정치 이념에 사로잡혀 이 나라 교육을 일류, 이류 등으로 나누는 어용 정치 교육 관료들을 교육계에서 내모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육만큼은 대통령도 간섭할 수 없도록 초강력 법적 장치를 만드는 것입니다.인구 절벽으로 세계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이런 비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교육부터 살려야 합니다. 그 방법은 교육 독립 운동입니다. 그 시작은 정치인들에게 빼앗긴 교육 주권을 되찾는 일입니다. 교육이 정치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룰 때만이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미래의 희망이 싹틀 것입니다. 이 나라의 미래를 외칩니다. “정치인 여러분, 강탈해 가신 교육 주권을 돌려주세요!”

2019-11-13

플라잉 택시

플라잉 택시는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택시다. 도심 상공을 비행하며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른다.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교통체증도 없어 고질적인 도시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미래형 교통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공상과학영화에나 등장하던 플라잉 택시가 조만간 선보일 전망이다. 우버가 내년 플라잉 택시(Flying Taxi) ‘우버에어’를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현재 보잉, 에어버스, 아우디, 도요타 등 세계 150여 기업이 300종의 플라잉 카를 개발 중이다. 이중 미국 최대 차량 공유 업체 우버는 플라잉 카 개발에 가장 앞서 있다. 우버의 플라잉 카는 시속 241㎞ 수준으로 비행한다. 친환경 배터리는 한번 충전하면 약 96km까지 날 수 있다. 4명의 승객이 탑승할 수 있는 형태로 헬리콥터와 비행기를 결합한 구조로 설계됐다. 우버는 올해 초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9’에서도 헬리콥터 제조사인 벨과 함께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플라잉 카 ‘벨 넥서스’를 발표했다.미국 항공우주기업 보잉도 올해 초 길이 9m, 폭 8.5m의 플라잉 카를 수직 이륙해 1분간 비행 후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보잉은 올해 안에 200㎏ 이상의 사람과 짐을 싣고 비행할 수 있도록 개량해 내년부터 상용 판매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플라잉 카 전담사업부를 새로 만들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 출신 전문가를 영입, 플라잉 카 시장에 뛰어들었다. 궁금하다. 하늘을 나는 우버에어를 우리나라에서도 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까다로운 항공 규제 탓에 한국은 ‘드론’조차 자유롭게 띄울 수 없다. 우버엑스 같은 해외 승차공유 서비스도 까다로운 규제와 택시업계 반발로 제대로 안된다. 규제혁파가 그리 어려운 모양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1-13

글을 생각하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한글은 우수하다. 소리가 그대로 눈에 보이도록 고안된 글자를 가진 민족이 세상에 드물다. 문맹률이 제로에 육박하는 겨레가 아닌가.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수년 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문서독해력에서 조사대상 22개국 가운데 꼴찌였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국민들 가운데 생활정보가 담긴 보통 문서해득에 취약한 사람이 38%나 되고, 고도의 문서독해능력을 가진 사람은 2.4%에 불과하다고 한다. 적힌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과 글에 담긴 생각을 짚을 줄 안다는 것이 다르다면, 우리는 ‘글’에 대하여 생각을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 우수한 글자를 가졌으면서 글을 이해함에는 어째서 더딘 것일까. 기계적인 글 읽기를 넘어, 글을 이해하며 분석하고 비판하고 다루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누군가 적어 발표한 글이라 해서, 일방적으로 비판없이 수용하지도 말아야 한다. 디지털 문명이 펼쳐지는 길목에 글과 내용에 그럴듯한 모양을 입히는 일은 너무나 쉽다. 사실을 전하고 있는지, 진실을 담았는지, 필자는 누구인지, 인용한 내용의 출처는 분명한지, 글의 의도는 무엇인지, 전하려는 의미는 어떤 것인지 묻고 물으며 글을 대하여야 한다. 언급하기도 부끄럽지만, 가짜뉴스가 기성언론을 무색하게 하는 지경이 아닌가. 일인 미디어가 언론기관에 도전하는 환경이 아닌가. 미디어시스템과 언론매체들이 긍정적으로 작동할 것인가는 이제 소비자에게 달려있다. 이전보다 더 많이 읽어야 하고, 비교하고 분석하며 날카로운 비평적 시선을 가질 때 언론이 긴장하고 미디어가 제 역할을 회복할 터이다.가짜뉴스에 포위되어서일까, 매체들이 ‘팩트체크’를 한다는데. 글의 내용이 팩트,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를 체크, 즉 확인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럼, 이전의 기사들은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썼다는 말인가? 코바크(Bill Kovach)와 로젠스틸(Tom Rosenstiel)은 명저 ‘저널리즘의 기본(Elements of Journalism)’에서 ‘언론행위의 기본은 사실확인에 있다’고 하였다. 차라리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겠다거나 한 걸음 더 들어가 살핀다는 정도였으면 좋았을 것을 ‘팩트체크’를 이제 한다니 공연히 불안해지는 게 아닌가. 사회의 기본적인 소통은 언론이 바로설 때 가능해진다. 언론이 보내준 글에서 독자들이 유용하고 신뢰할 만한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잘 적어 주길 바란다.글은 소중하다. 생각을 전하고 마음을 나누며 소통하고 설득하는 일은 모두 글을 통해 일어난다. 기자나 작가 뿐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지 내 생각을 남에게 전하려면 잘 써야 한다. 좋은 글을 잘 쓰려 해도 기본은 역시 글 읽기에서 출발한다.‘실질문맹률’도 다시 낮아져야 한다. 보고 읽을 뿐 아니라 살피고 새기는 데에도 앞서가야 한다. 글이 독자를 두려워 해야, 가짜뉴스도 사라질 게 아닌가. 대학입시에도 성공해야 하지만, 글을 다루는 솜씨를 길러야 한다. 다음 세대의 성공이 글을 벼르는 능력에 달려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2019-11-13

칠곡 향사아트센터는 개점휴업 중

김재욱경북부칠곡군 출신 향사(香史) 박귀희 명창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칠곡 향사아트센터가 ‘개점휴업’에서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칠곡군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관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이다.칠곡군은 ‘제7회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전’기간에 맞춰 지난달 12일 아트센터를 개관했다. 개관일에는 향사 박귀희 명창의 유품 160여점을 기증받은 전시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가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인 안숙선을 비롯해 향사 박귀희의 직계제자,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왕기철 교장 외 학생 60명이 개관 기념 공연을 펼치는 등 시작은 화려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후 향사아트센터에서 펼쳐진 행사라고는 칠곡군이 주관한 주민공청회뿐이었다.향사아트센터는 116억원을 들여 3만6천㎡부지에 240석 규모의 공연장과 교육실 겸 연습실 2개소, 전시실을 갖췄다. 교육과 연습, 전시와 공연이 한 장소에서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고는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향사아트센터는 올해 전시나 공연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센터 안내책자나 홈페이지도 만들지 않았다. 아마도 올해안으로 개관할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칠곡군은 왜 준비도 되지 않은 센터를 서둘러 개관 했을까.칠곡군 관계자는 “상징성이 있어서 우선 개관해 홍보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하지만, 군 관계자의 말처럼 홍보효과를 거두었을까. 항상 비어있는 ‘빈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였다면 성공한 듯하다.일각에서는 향사아트센터 개관을 무리하게 추진한 이유가 백선기 칠곡군수가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백 군수가 지난 6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총선 불출마의 뜻을 밝혔지만, 군민들 사이에서는 총선 출마설이 파다하다. 향사 박귀희 명창은 국악의 어머니로 칭송받고 있다. 그분의 국악에 대한 열정과 정신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정치적으로 이용돼서는 더욱 안될 말이다./kimjw@kbmaeil.com

2019-11-12

개들도 질투를 느낄까?

질투의 정신의학적, 사전적 정의는 사랑하고 있는 상대가 자기 이외의 인물을 사랑하고 있을 때 일어나는 대인 감정 같은 것을 말한다. 경쟁자의 실제적 혹은 가정된 이득에 대한 부러움을 의미하는데, 질투는 종종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의심을 수반한다. 질투의 목적은 욕구 충족이나 관심만이 아니라 사랑을 얻는 것이다. 복잡한 인지들이 질투라는 감정에 포함되므로 인간만이 느끼는 감정으로 여겨진다.개들도 질투를 느낄까? 개를 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개가 질투심을 드러낸다는 말을 자주한다.다른 개와 함께 있을 때 개가 질투를 느끼고 다른 개를 밀쳐내고 옆으로 밀고 들어온다든지, 다른 개를 밀어내고 기댄다는 이야기는 흔한 이야기이고, 다른 개의 배를 문지르면 슬쩍 옆으로 다가와서 문질러달라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개와 함께 사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질투라고 부르는 감정을 목격하는데, 개들이 폭넓은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캘리포니아 대학의 해리스와 프로보스트의 2014년 ‘개들의 질투’라는 연구에 의하면 개들이 다른 개체의 성공, 이익, 행동, 소유 등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방식으로 질투를 경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인간 유아에 대한 질투연구와 동일한 실험을 통해 36마리의 개를 조사했다. 주인이 개를 무시하고 다른 일을 하는 동안 비디오로 개의 반응을 촬영했다. 주인은 짖거나 꼬리를 흔들게 작동시킨 장난감 개와 놀거나 색다른 대상(헬로윈 축제때 사탕을 담는통)을 만지거나, 유아용 책을 큰소리로 읽었다. 개들은 주인이 장난감 개에게 애정어린 행동을 보일 때 확연히 질투하는 행동(달려들거나, 주인과 개사이에 끼어들거나, 주인이나 개를 밀치고 건드리는 등)을 나타냈지만 무생물 대상에 관심을 보일때는 훨씬 질투행동이 덜했다. 개와 인간이 긴밀하고 지속적인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주인이 옆에 있으면 개의 왼쪽 눈썹이 더 많이 움직이는 반면에, 매력적인 장난감을 보더라도 개의 눈썹 움직임이 없다는 것을 관찰한 연구결과가 있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주인에 대한 개의 애착을 반영한다고 해석한다.또한 개 12마리를 fMRI(기능적 자기공명장치)기계에 들어가도록 훈련해서 활동중인 뇌를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개들은 다른 개의 냄새에 비해 인간의 냄새에 더 강하게 반응했으며, 개들이 아는 사람에게 반응할 때 꼬리핵이라는 뇌부위가 가동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이 결과는 사람들도 자신이 즐기는 것을 기대할 때 꼬리핵이 가동된다는 점과 비슷했다. 여러 연구의 결과들은 개들의 사회적 삶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fMRI를 사용한 다른 연구에 의하면 개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좌반구를 사용해 단어를 처리하고 우반구로 억양을 처리하며 그런다음 그 둘을 결합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이동훈개의 뇌에 있는 보상중추에서는 억양과 의미가 모두 칭찬을 나타낼 때만 불이 켜졌는데, 결국 개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떻게 말하는지를 모두 알아차린다는 의미이다.2017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측정함으로써 개들이 인간의 감정을 파악할 뿐 아니라 주인의 특정한 개성요소를 채택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주인이 불안성향이 있을 때 개들도 위협과 스트레스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데, 주인이 음울하고 불안해하면 곁에 있는 개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냈다. 개는 질투를 느낄 정도의 감정적 존재이며 사람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살아가는 사회적 감정을 가진 존재임을 개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알고 배려하고 공부하고 존중해야 할 것이다./서라벌대 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11-12

인간이 만든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따라오려면

인공지능을 뜻하는 AI는 Artificial Intelligence의 약어이다. AI는 말 그대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능을 의미한다. 그럼 여기서 문제. 지능이 있느냐 없느냐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뭘까? 그것은 스스로 선택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다. 단세포인 아메바도 지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먹이가 있는 쪽으로 스스로 움직일 수 있고, 장애물이 나타나면 다른 쪽으로 움직인다. 아메바도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선택이라는 것을 한다. 그러니 지능이 없다고 할 수 없다.이런 것이 지능이라면 승용차도 지능을 가지고 있다. 앞차와의 거리가 너무 바트거나, 사각지대에 차가 있을 때 경고음을 울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정도의 인공지능을 약한 인공지능이라 부른다. 강한 인공지능은 인간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지적 능력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를 강한 인공지능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바둑은 돌을 놓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지구를 포함한 우주의 모든 원자 수(약 10의 80제곱)를 합친 것보다도 월등히 많다. 바둑의 경우의 수는 최대 250의 150제곱에 달하므로 알파고의 학습능력은 바둑의 모든 경우의 수에 턱없이 부족하다. 알파고는 최선의 착점을 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계산하는데 1초에 1천조 개 이상의 명령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그렇다고 해서 인간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인간의 뇌 역시 1초에 1천조 개의 명령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 알파고는 바둑에 관한 정보만을 처리하지만, 이세돌은 바둑 외에 삶과 관련된 문제 전반에 관한 정보도 처리해야 한다. 종합적인 처리 그리고 삶에 생기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결정은 바둑이 가진 경우의 수보다 훨씬 많다.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는 3천만 개의 수를 학습하였는데, 학습량으로 따지면 인간이 1천 년동안 학습할 분량에 맞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 이를테면 고양이와 개를 구분하고, 나무와 풀을 분류할 수 있는 능력은 수천만 년 동안 인간의 DNA 속에 축적되어 온 지식 때문에 가능하다. 인간에게는 하찮은 이러한 능력을 현재의 인공지능은 제대로 익히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런 것에는 정확한 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둑은 이기고 지는 것이 명확하지만 삶에는 그런 것이 명확하지 않다. 삶은 명확하지 않는 길 위에서 무수히 많은 선택과 만난다. 이 불안정한 삶 속에서 발생하는 숱한 문제는 답도 없으며 데이터도 부족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에 근접하려면 불가해한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무어는 18개월마다 반도체 칩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수가 2배씩 증가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런 ‘무어의 법칙’을 바탕으로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 무렵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앞설 것이라 예언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지점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 불렀다. 이와 함께 진단의학 기술도 함께 발달해 불멸의 시대가 올 것이라 믿으며, 그날까지 살아남기 위해 하루 150개의 알약을 먹는다.어쩌면 커즈와일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특이점이 찾아오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하지만 그의 주장은 어려울 것 같다. ‘무어의 법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런 존재 기반이 무너졌다. ‘네이처’지는 2016년 2월호에서 특집으로 ‘무어의 법칙’을 다루면서 이 법칙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가 ‘무어의 법칙’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바일 컴퓨팅 시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모바일 컴퓨팅은 자꾸만 작은 것을 원하고 있다.반도체 회로 크기는 계속 작아져서 지금은 14나노미터(㎚)다. 참고로 1㎚는 10억분의 1m에 해당한다. 그런데 모바일에 사용되어야 하므로 회로가 작아진 만큼 기판도 작아져야 한다. 이 작은 기판에 성능을 높이려면 더 많은 회로를 넣어야 한다. 이 회로에는 전기가 지나간다. 1초에 많게는 1만 번 정도. 작은 회로에 이 정도의 전기가 지나가면 열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도 아주 높은 온도의 열이 발생한다. 뜨거운 감자도 아닌 뜨거운 스마트폰이라니! 이런 스마트폰을 원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정리하자면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에 대한 꿈을 이루기엔 무리가 있다. 우선 인간이 지닌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인간은 답이 주어지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도 기어이 길을 찾아낸다. 이러한 인간의 역설적이고 지난한 삶의 방식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연산능력만 인간과 동일하게 만든다면, 인공지능이 뛰어넘은 것은 인간의 지성이 아니라 인간의 계산능력에 불과할 것이다.다음으로 물리적 차원에서 특이점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다. 인간의 뇌는 1초에 1천조에 달하는 명령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빠르게 뇌가 작동할 테지만 뇌에 불이 붙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이 정도의 횟수의 전류를 흘려보내도 감당할 수 없는 반도체 기판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도체 기판을 사용하지 않는 양자 컴퓨터와 같은 기술이 상용화되는 것 역시 요원하긴 마찬가지다.

2019-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