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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멧돼지가 안긴 딜레마

강길수 수필가그놈만 아니었더라면, 오늘같이 무더운 날은 집에서 찬 수박이라도 나누며 티브이 보는 게 제격이다. 한데 사는 게 무엇인지 아내도, 나도 의기투합이라도 한 듯 주섬주섬 도구들을 챙긴다. 지난 주말, 텃밭에서 만난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 아른거려 현관을 나설 수밖에 없다.차를 굴다리 밑에 세우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 텃밭으로 간다. 많이 궁금했던 고구마 이랑으로 먼저 가 본다. 지난번 왔을 때, 멧돼지가 다 파 해쳐 잎은 마르고 샅샅이 젖혀진 뿌리에는 새알 고구마 하나도 달린 게 없었다. 사람이 팠던 땅을 어찌 아는지, 고구마 줄기나 파뿌리를 심었던 자리는 모두 패여 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심어 물까지 주었었다. 새로 심은 고구마를 또 옹골지게 모두 파 뒤집었다. 비록 늦을지라도, 줄기와 잎은 따 먹을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심었던 고구마다.너무 무참히 유린당한 모습이, 보기 싫었던 아래쪽 옥수수 이랑으로 발길을 돌린다. 혹시 작은 옥수수 한통이라도 화를 면했나 싶어, 자세히 살펴봐도 깡그리 아무것도 없다. 옥수수 알 뿐 아니라, 이삭도 통째 몽땅 먹어 치웠다. 대는 다 부러지고, 찢어지고, 넘어지고, 뽑히고, 짓이겨져 폭삭 내려앉았다.먹이사슬의 잔인함이 여지없이 드러난 텃밭의 모습이 내 초심을 흔들었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고라니만 출몰했었다. 고라니는 어린 옥수수를 뜯어먹는 데 그쳤었다. 그때만 해도 ‘그래. 우리가 농사 전업도 아니고, 시간 소일거리로 작게 시작한 텃밭 가꾸기이니 노지재배를 고수하자. 삭막하고 각박하게 울타리 치지 말고, 자연에 맡기자. 명색이 환경 분야에 오래 일했지 않은가. 생태계 먹거리는 모든 생명이 나누어 먹으라고 주어지는 것이니까’라고 마음먹었다. 이런 뜻에 아내도 암묵적 동의를 했었다.가끔 고향에 가면 동생은 야생동물 특히, 멧돼지의 횡포로 농사짓기가 정말 어렵다고 토로한다. 고구마 같은 작물은 한해 농사를 폐농(廢農)하는 농가도 많단다. 피해 현장을 목격하지 못한 나는, 그 걱정을 피상적으로 듣곤 했다. 하여, 농민들이 자구책으로 공기총이나 올가미, 덫을 써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였다. 반면, 작은 우리 텃밭의 수난현장을 겪는 마음이 착잡하고 헷갈린다. 사람의 입장과 멧돼지의 상반된 입장이 가슴속에서 충돌하기 때문이다.사람들은 논밭에 울타리나 망을 치거나 과도한 농약을 쓰는 등, 자기들만 먹으려 섭리에 도전하고 있다. 때문에 동물들도 살기 위해, 인간에게 응전(應戰)이라도 하여 예전보다 더 깡그리 농작물을 해하는 걸까. 나무만 무성하여, 산야의 먹이 환경이 예전만 못해 야생 먹이가 부족해졌단 말인가. 아니면, 멧돼지를 포함한 야생동물들의 개체 수가 늘어났기 때문일까.야생 짐승들로 부터 농작물 피해를 보는 농민들은, 동물 보호론자나 환경운동 단체들의 행태나 당국의 탁상행정에 분개한다. 현장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농촌 출신으로 도회에 살며 환경 분야에서 오래 일한 나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기후변화로 지구촌 모든 생명의 지속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인간과 다른 생명과의 먹을거리 쟁탈 갈등은 어떻게 수습해야 할 것인가. 딜레마다.웰빙 붐과 로하스 운동, 슬로시티 운동 같은 움직임들이 구미(歐美)를 중심으로 있지만, 아직 지구환경 전체의 개선을 이끌어 나가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인간은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이 있기나 한 것일까. 그린란드의 빙하가 삼십 년 만에 거의 다 녹았다는 미국 나사(NASA)의 발표를 뉴스에서 보았다. 북극얼음이 곧 다 녹아, 선박의 북극항로도 열릴 것이란 보도도 있다. 열린 북극항로가 인간과 지구촌에 축복이 될지, 재앙으로 닥칠 것인지는 가히 짐작이 가는 문제다.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할 생태계의 많은 생명이 하나, 둘 멸종의 길로 가고 있음도 이미 밝혀진 바다. 멧돼지와 야생생물들은 이 미증유의 사태를 본능으로 느끼고, 우리 인간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생태계에 점철된 먹이 갈등 딜레마를 풀어낼, 솔로몬의 지혜는 정녕 없는 것인가.

2019-08-25

‘후흑학’

청나라 말 이종오가 쓴 ‘후흑학(厚黑學)’은 지금도 중국에서는 잘 팔리는 책 중 하나다. 후흑은 면후심흑(面厚心黑)의 줄인 말이다. 얼굴은 철면피처럼 두껍게, 마음은 음흉하게 하여 철저히 자신을 숨겨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계산되지 않은 감정 노출은 하수의 짓이다.후흑은 난세를 극복하는 일종의 처세술이다. 법치나 순리를 숭상한 중국의 전통 사상과는 배치되는 생각이지만 실용적 측면에서 공감대가 적지 않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조직이나 사람을 바꿔도 배신이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고 한다.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것은 뻔뻔함과 음흉함에 있다고 가르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비굴해도 상관이 없고, 욕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 대의명분을 쫓다 패가망신하는 것보다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상이다. 삼국지의 조조와 유비가 대표적으로 후흑한 인물이며 손권과 사마의, 모택동도 그러하다고 했다. 중국 역사 속의 영웅호걸 치고 후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설명이다.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사회 속에서 ‘후흑학’은 현실적 실천 방법으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다. “천하를 알려면 ‘삼국지’를 읽고 천하를 얻으려면 ‘후흑학’을 읽으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 한다.그러나 난세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후흑의 기술만 잘 익힌다고 성공의 열쇠를 거머쥐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순리라는 자연의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수단이 된다고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면 결과는 불행해진다.각종 의혹 제기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민의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 ‘후흑학’에서는 역사의 승자는 사리사욕이 없어야 선한 결과를 얻는다고 했다. 청문회를 떠나 조 후보자의 정의롭지 못한 삶이 논란의 핵심이다. 덩달아 그의 정치 생명이 달렸기에 더 관심이 간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8-25

‘가짜뉴스’의 두 얼굴

안재휘 논설위원‘뇌송송 구멍탁’이라는 조어(造語)는 2005년 제작된 ‘파송송 계란탁’이라는 오상훈 감독의 코미디영화의 제목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조어는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 이후 퍼진 핵폭탄급 선동 구호였다. MBC ‘피디수첩’의 잇따른 보도로 촉발된 논란과 이 선동 구호에 현혹된 뭇 시민들이 ‘100만 촛불대행진’ 등 반정부 시위에 동원됐었다.대법원은 ‘언론자유’ 영역을 침범하는 과도한 기소를 일축하면서도 MBC로 하여금 지나친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공개사과하도록 징벌을 내렸다. ‘가짜뉴스’에 휘둘린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무력함에 대한 비판도 있다. 무엇보다도 의아한 것은 지금껏 광우병 발병이 없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또 어땠는가. 무자비하게 양산됐다가 확인이 여전히 안 된 채 묻혀가고 있는 ‘가짜뉴스’들은 가늠조차 어렵다.두말할 필요도 없이 ‘가짜뉴스’는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될 병폐다. 단 한 번의 그 음흉한 장난질로 누군가 일생을 망치기 일쑤요, 때로는 한 나라가 치명적인 혼돈에 빠지거나 퇴행할 수도 있다. 세계 각국은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싱가포르는 ‘가짜뉴스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운용한다. 독일에서는 ‘가짜뉴스’방치 소셜 미디어 기업에 최고 5천만 유로(669억여 원)의 벌금을 물리는 법안이 시행 중이다.그런데 ‘가짜뉴스’라는 말을 전혀 다른 개념으로 써먹는 지도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대표주자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뉴스를 모조리 ‘가짜뉴스(Fake news)’라고 몰아친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셉 나이는 최근 자신의 칼럼에서 올들어 6월 1일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3천259건의 거짓을 말했다고 썼다. 참으로 흥미로운 기록이다. 그의 인식체계에 있어서 ‘가짜뉴스’의 정의는 ‘마음에 안 드는 비판’ 정도로 변질된 게 아닐까 싶다.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 언론들의 공격에 맞서 언론을 ‘불량상품’으로 규정하고, 불매운동 등 정부 부처의 적극 대응을 독려했다. 스스로 언론을 고소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작금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가히 쓰나미 수준이다. 그와 그 가족에 대한 의혹이 보편적인 국민 정서와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조 후보는 물론, 청와대와 민주당은 모든 의혹 제기를 ‘가짜뉴스’로 몰아 때린다.법무부는 ‘가짜뉴스’ 제작 및 유통 행위를 강력 단속할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이 정부에 과연 순정한 의미의 ‘가짜뉴스’를 정의롭게 가려낼 신뢰성이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를 매국행위로 매도하는 한 또 다른 통제 시도는 위험하다. 느리고 힘들더라도 제대로 된 ‘진짜 뉴스’로 ‘가짜뉴스’를 밀어내는 게 맞다. 불편한 뉴스를 ‘가짜뉴스’라고 모함하는 ‘가짜뉴스’가 더 사악한 범죄다.

2019-08-25

다산(茶山)의 독서법, 초서(抄書)

김현욱 시인여름휴가 동안 정독(精讀)하고, 초서(抄書)한 책 목록은 다음과 같다. 염은열 교수의 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 정민 교수의 한밤중에 잠이 깨어, 김윤규 교수의 다산, 장기 유배 문학 산책, 이상준 향토사학자의 영일 유배 문학 산책, 김옥애 작가의 봉놋방 손님의 선물, 정찬주 작가의 다산의 사랑, 박석무 교수의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이소정 작가의 우리 조상의 유배 이야기 등이다.염은열 교수의 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에 나오는 조선판 오렌지족, 대전별감 안도환의 유배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한양의 밤(?)을 주무르던 안도환이 조선의 3대 유배 섬 중 한 곳인 추자도로 유배되어 온갖 고초를 겪는 모습에 몇 번이나 웃음을 터뜨렸는지 모른다. 안도환이 지은 유배가사 만언사는 요즘으로 치면 베스트셀러였다. 안도환의 유배 이야기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제법 인기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김옥애 작가의 봉놋방 손님의 선물은 다산이 강진 주막 봉놋방에서 중국 주흥사가 지은 천자문 대신에 아학편이라는 교재를 손수 만들어 제자들을 가르친 이야기다.책을 읽다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밑바닥까지 다 캐내는 독서법이 정독이라면, 필요한 것을 가려 뽑아 따로 정리하는 독서법을 초서라고 한다. 다산은, “책을 초록(抄錄: 글이나 문장 따위에서, 필요한 대목만을 가려 뽑아 적음. 또는 그 기록)해 적는 것은 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는 방법”이라면서, 아들 학유에게, “기왕 닭을 기른다면 모름지기 백가(百家)의 책 속에서 닭에 관한 글들을 베껴 모아 차례를 매겨 계경(鷄經)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라고 당부했다.여름휴가 동안 읽은 책들의 공통점은 ‘다산’과 ‘유배’, ‘경상도 장기’였다. 다산이 경상도 장기에 220일 동안 유배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801년 3월 9일, 다산은 경상도 장기에 도착한다. 장기에 머물던 220일 동안 다산은 130수의 시와 이아술, 기해방례변, 촌병혹치 등의 책을 남긴다. 특히, 인간 정약용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130수의 시는 경상도 장기만의 소중한 자산이다.다산이 아들 학유에게 시켰던 것처럼, ‘다산’과 ‘유배’, ‘경상도 장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여러 책에서 필요한 문장과 구절, 낱말, 유배 정보 등을 220일이라는 공책을 만들어 따로 정리했다. 시간과 공간으로 목차를 만들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보니 “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는 방법”이라는 다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사람은 누구나 ‘첫-’을 잊지 못한다. 다산에게 경상도 장기는 첫 유배지였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하다가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 유배를 온 신세였다. 다산의 인간적인 모습을 경상도 장기에서 만날 수 있다. 그 옆에 한 소년이 있었을 것이다. 다산의 경상도 장기 유배 동화 220일은 다산의 독서법, 초서 덕분에 그 뼈대를 점차 잡아가고 있다.

2019-08-25

와다 하루키의 한일 문제의 참된 해법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와다 하루키(和田春樹)는 193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1960년 도쿄(東京)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부터 도쿄대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8년에 정년퇴임했다. 러시아사와 북한 현대사 연구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학자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베트남전 반대 운동, 한국 민주화운동과의 연대 등 행동하는 진보 지식인이다. 2010년 제4회 후광 김대중 학술상, 2012년 DMZ 평화상을, 이번에는 만해평화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북조선: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러일전쟁과 대한제국’등이 있다.그는 지난주 ‘한국은 일본의 적인가?’라는 화두를 통해 일본 아베 정권의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 조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벌써 일본인 8천명 이상이나 서명을 받았는데 그중 3천500명이 그 사유까지 밝히면서 서명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하여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반길만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아베의 횡포에 대해 노 재팬(No Japan)이 아닌 노 아베(No Abe)를 외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에는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양식 있는 국민이 상당히 많다. 아베 정권이 극우 정치와 헌법 개정을 통한 패권 국가 지향을 반대하는 국민이 많다는 뜻이다.이런 상황에서 하루키 교수의 주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크다. 그는 1965년 한일 협정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그 정당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협정 체결 시 일본 정부는 1910년 한일 병합을 정상적 합의로 보았지만 우리 한국은 부당한 강제 병합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일본이나 한국 학자들의 ‘식민지 근대화론’에는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일제 시 일본의 교육이나 산업 투자는 조선 근대화의 촉진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는 일제의 식민지 교육은 조선의 동화, 말살 정책이며 한국인들에게 큰 문화적 정신적 상처를 남겼다는 것이다.그는 1993년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고노(河野)담화나 1995년 식민지 지배를 사과한 전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담화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다. 최근 일본의 경제 제재의 빌미가 된 강제 징용의 개인의 청구권 요구도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는 종군 위안부가 1명도 없었다는 일본의 주장은 일본 보수층에서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전시 종군위안부는 다양한 경로로 모집되었으며 일본군의 강제성은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시 군 위안소는 강간 센터의 역할을 했으며 군의 강제성 인정은 상식이라는 것이다.그는 경색된 한일 관계의 해결책으로 아베의 대한(對韓)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식 있는 양국 국민 사이의 유대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식 있는 양국의 시민단체의 연대와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인 강제 징용자 보상 문제도 일본의 양식 있는 변호사들이 동참하여 한국 대법원의 승소를 이끌었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정권은 일시적이지만 국민관계는 영원하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도 한일관계의 경색된 국면을 풀기 위한 양국 시민 연대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2019-08-25

종(Bell)을 울리는 종(Servant)의 삶

이문재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땅바닥이라고 말하는 곳은 사실 하늘의 바닥이다. 땅바닥은 없다. 땅바닥은 땅의 머리다.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인간 중심주의가 땅의 정수리를 땅의 바닥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우리는 땅바닥이 아니라 땅의 정수리를 함부로 밟고 있다.”그의 대표작 ‘농담’을 아시지요?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해서 / 종은 더 아파야 한다.강하거나 외로운 사람은 많은 것을 움켜쥐기 위해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나다움을 포기하고 세상의 각본에 휘둘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인 것이지요. 3연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듭니다. 왜 갑자기 종이 나오는 것일까? 산뜻한 내용 전개에 감탄하며 고개 끄덕이다가 눈동자를 커지게 만드는 것이 3연입니다. 속도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충만한 삶으로 회복을 위해서는 아픔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시인은 일깨웁니다.몸을 붓 삼아 언어를 남기는 사람들은 땅바닥이라 부르지 않고 지구의 정수리라 여기며 생태계를 지켜내려 안간힘 쓰는 반항아들입니다. 종메가 자신을 힘껏 내리쳐 아름다운 울림을 만들어 낼 때, 그 아픔을 견디는 이들입니다.시인 정현종은 종메를 생각합니다. 종의 아픔보다 더 진한 종메의 아픔을 매일 같이 견대내며 삿된 생각들을 아침마다 잘라내고 밀어낼 때 비로소 우리 몸은 붓이 되는 모양입니다.종이 되어 아름다운 울림을 세상에 보내기 위해, 더 깊고 충만한 소리를 내기 위해 하늘 바닥 저 아래 종(servant)의 자리까지 낮아져야 함을 깨닫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5

‘조국 지키기’ 어려운 이유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국회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야단법석이다.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서 검사출신이 아닌 학계인사로서 민정수석을 맡아 문 정부의 사법개혁을 이끌어온 주역이다. 그런 조국 전 수석이 사법개혁을 마무리할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국회 인사청문회 무대에 올려지자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집중포화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여의도 정치권 인사들은 최근 만나기만 하면 ‘정부여당의 조국 지키기가 과연 성공할까’에 대해 궁금해한다. 문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에 대한 신임이 아직도 두터운 데다 이 정부의 근간을 이루는 세력들과 공동보조를 맞춰온 조국 후보자를 법무장관에 안착시키는 일이 사법개혁을 완성하는 지름길이란 점에서 임명강행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하지만 조국 후보자의 딸 입시부정에 대한 의혹이 터져나오면서 정부여당의 조국 지키기가 성공하기 어려워졌다고 본다. 세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그 이유의 첫째는 본인이 ‘정의’‘공정’으로 대변되는 가치를 주장해놓고 정작 자신의 주변에 대해서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둘째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사태에서 보듯이 최순실의 딸 최유라의 부정입학이 문제가 되자 결국 최유라의 이화여대 학위가 취소된 전례에서 보듯 자녀들에 대한 입시부정에 대해서는 국민정서가 용납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항간에는 ‘조유라’나 ‘조로남불’이란 말이 떠돌만큼 조 후보자 딸의 부정입학 의혹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일어나고 있다. 셋째로는 촛불집회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가 자칫 촛불집회에서 퇴진압력을 받을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려대 학생들은 23일 학교 측에 조씨의 학위 취소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집회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학생만 2천명에 이른다. 정치권에서 동원한 사람들이 아닌 순수한 대학생들의 촛불집회에서 정부가 지탄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런 압박을 버티고 입각했다해도 법무장관으로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다.문재인 정부는 이미 16명의 장관급 인사들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명강행한 바 있다. 그렇다해도 현 정부가 여론이 어떻든 정권이 바라는 인사를 임명강행할 것이란 선입견을 갖게하는 것 역시 좋지 않다. 정부가 국민의 뜻이나 여론을 깡그리 무시한다는 인상을 줘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조국 후보자가 문재인 정부에 어떤 공적을 세워 문 대통령이 그리 신임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조 전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있을 당시 여러 차례 “인사검증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야당의 사퇴압박을 받았던 것 역시 간과할 일이 아니다. 또한 사법개혁의 틀을 그린 공은 있을지 모르되 이번 사태로 정작 사법개혁을 제대로 실행할 동력을 잃어버렸다고 봐야한다는 분석도 있다.돌직구 발언으로 명성(?)이 높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조국 딸이 시험 한번 안 보고 외고, 고대, 부산대 의전원 간 것에 분노하는 민심을 보면서, 한국 사회를 이렇게 만든 정치인들에게는 분노하지 않는 민심을 보고 한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홍 전 대표는 “한국 사회 기득권층, 특권층 자제들의 신분 세습 수단을 어디 조국 딸만 이용했겠느냐”며 “잘못된 제도를 이용하여 병역회피를 하는 사람이 어디 조국 아들만 있겠느냐”고 사회지도층을 싸잡아 질타했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한 대학생이 “누군가는 말 위에 올라탔고 누군가는 페이퍼 위에 올라탔지만 내가 올라탔던 건 부모님의 등이 아니었나 싶어 잠을 설쳤다”고 내쉰 탄식이 더욱 가슴아프게 느껴졌다. 평범한 서민들의 자녀들과 부모들 가슴에 못을 박은 ‘조국 지키기’는 더 이상 안 된다.

2019-08-22

감나무 예찬

예로부터 감나무를 문무충효절(文武忠孝節)의 나무라 예찬했다. 잎이 넓어 글씨 연습하기에 좋아 문(文)이 있고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 재료가 되기에 무(武)가 있다고 했다. 열매의 붉은색이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아 표리가 부동치 않아 충(忠)이 있으며, 노인이 치아가 없어도 홍시를 먹을 수 있으나 효(孝)가 있다고 했다. 서리가 내리는 날까지 열매를 맺으니 이것이 절(節)이다.중국의 한 문헌에서는 감나무의 일곱 가지 좋은 점을 기술했다. 첫째 수명이 길다. 둘째는 좋은 그늘을 만든다. 셋째 새가 둥지를 틀지 않고 넷째는 나무를 파먹는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가을 단풍이 아름답고 여섯 번째 열매가 맛있다고 했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낙엽이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고 했다. 감나무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는 뜻이다.경북 상주시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다. 쌀과 누에, 곶감이 유명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곶감이다. 전국 생산량의 약 65%를 차지한다. 연간 7천t의 곶감을 생산하며 경제적 효과가 2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상주가 곶감으로 유명해진 배경에는 상주에서 재배되는 감나무의 재질이 곶감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타닌 함량이 많은 대신 물기가 적어 곶감 재료로 매우 훌륭하다. 조선시대 예종 때는 임금에게 진상할 만큼 최고의 품질로 손꼽혔다.곶감은 감의 껍질을 벗겨 건조시킨 것으로 쫄깃한 식감에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겨울철이 제철이다. 추운 겨울날 변변한 간식거리가 없었던 시절에 훌륭한 영양 간식으로 서민의 위안이 된 먹거리다.상주에는 수령 750년 된 감나무가 있다. ‘하늘아래 첫 감나무’로 명명된 보호수다.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에 있는 이 나무는 긴 세월의 풍파에도 아직 가을철이 되면 감이 주렁주렁 열린다.상주시가 감 농업 분야의 유구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전통 감 농업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고 한다. 각 지역이 보유한 농업관련 자원 중 보존의 가치가 현격히 뛰어날 때 국가가 인정하는 제도다. 상주 감 농업의 우수성이 드디어 빛을 발할 때가 온 것 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22

임팔 전투의 기억

일본군 최악의 전투 가운데 임팔 전투라는 것이 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가던 무렵 일본이 기울어가는 전세를 만회하고자 한 것이다.때는 1944년 3월부터 7월까지. 장소는 지금 미얀마에서 인도 쪽으로 넘어간 곳.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에 싱가포르를 3개월만에 함락시키는 등 영국군을 손쉽게 밀어붙인 기억이 있었다. 태평양 일대에서 미군에게 밀리고 밀리던 끝에 생각해낸 전세 역전 방법이 미얀마 쪽에서 성공을 거두자는 것이었다. 그런 연장선에서 영국군이 주둔해 있던 임팔을 공략해서 인도 쪽으로 진격해 들어가자는 발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전투는 일본군의 지옥이었을 뿐 아니라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인류에게 깨우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이 임팔 전투에 관해 NHK에서 만든 다큐멘터리가 있다. 중일 전쟁의 장본인으로 성공을 거둔 무다구치라는 일본 장군이 이 전투 계획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고 했다. 병참 부분을 고려한 어떤 보좌관이 극구 반대했지만 무다구치는 그를 전격 좌천시키면서 전투 작전을 감행했다.일본군이 주둔하던 곳에서 임팔까지는 줄잡아 470킬로미터 정도. 폭이 600미터에 달하는 친드윈 강을 넘어 야포 같은 것을 수레에 싣고 둘러메고 산맥을 넘어가야 하는 끔찍한 행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기억이 맞다면 말이다.보급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먹을 것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무지막지한 짓을 벌였는지 몰라도 무다구치의 병사들은 임팔에 다 가지도 못하고 식량 부족에 시달렸고 나중에는 무기들마저 짐스럽게 변해 버렸다. 내 기억에 따르면 공격을 시도하기는 했던 모양이지만 이미 영국군은 개전 초기의 영국군이 아니었다.다큐멘터리는 3만명의 절반 이상의 병사들이 어디서 어떻게 죽어갔는지에 대한 기록을 점으로 찍어 살폈다. 이 점들은 이 전투 기간에 죽음을 당한 병사들의 절반 이상이 전투에서가 아니라 후퇴하면서 변을 당했음으로 보여준다. 추격해 오는 영국군에 쫓기던 일본군은 먹을 것이 없어 나중에는 멀쩡한 자들이 부상병을 ‘잡아먹으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대부분의 죽어간 군인들은 일반 사병들이었고, 장교들은 그나마 식량 같은 것을 최후까지 차지한 덕택에 많이들 살아남았다고 하던가.요즘 왜 이 임팔 전투가 자꾸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아베 같은 이들은 자기 신념에 정신 팔린 나머지 자신이 추종하는 그 군국주의 망령들이 일본 국민을 어떻게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을 얼마나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게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가 벌이는 한국을 향한 ‘경제 전쟁’이라는 것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는 대일본의 재흥을 꿈꾸고 있는지 모르지만 과거를 겸허하게 성찰하지 못하고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성급히, 자신의 의지만으로 전세를 바꾸려 한다면, 그를 기다리는 것은 일본의 경제적 쇠락이자 일본인들의 고통뿐일 수도 있다.한국은 이제야말로 일본으로부터 새롭게 다시한번 벗어날 때가 되었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에도 일본은 이 나라에 얼마나 오래 ‘빨대’를 꽂았던가. 아베의 국가는 한국에 돈을 빌려주고도 자기 것 아니면 사지 못하게 하는, 그러면서도 시혜를 베푸는 양 ‘거들먹거린’ 것이다. 이번에는 이런 ‘구조’를 어떻게든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힘이 들더라도 지금은 버텨야 할 때, 몇 푼에 자긍심을 버리지 말아야 할 때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8-22

처서(處暑) 무렵, 들녘에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여름이 가고 있다. 이 들녘에 주둔해 있던 염제(炎帝)의 군사들이 조금씩 철수하고 있다. 뜨거운 폭양과 이따금 내리는 비를 맞으며 무럭무럭 차오르던 초록의 벼들로 지난 여름의 들판은 참 무성했다. 일사불란하고 질서정연한 초록제복의 역군들이 생명의 양식을 생산하는 일에 일로매진해왔다. 들판은 굴뚝이 없는 거대한 공장이었다.기계화된 공장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이 광합성 공장에도 이젠 사람이 거의 없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라던 벼들이 이제는 가끔씩 물꼬를 보러 오는 오토바이 소리나 지하수를 퍼 올리는 양수기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겉보기엔 옛날의 들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같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천양지차다. 한 줌의 쌀이 되기까지 여든여덟 번이나 손이 간다는 말은 이제 전설이 되어버렸다. 못자리부터 추수까지 사람 손이 직접 닿는 일이 거의 없어진 게 요즘 농사다.벼가 팬다. 만삭의 배를 안고 있던 벼들이 일제히 이삭을 밀어 올린다. 벼들에게도 해산의 고통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서 무렵의 들판은 온통 신생의 파동으로 술렁거린다. 아마도 지난 시절의 농부들은 이맘때쯤이면 자식이라도 보는 양 설레고 흐뭇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감격조차 이제는 추억으로나 남아있을 뿐이다. 편리와 능률이라는 명분으로 우리 삶에서 생략되어진 수많은 과정들, 그 과정들에 배어 있던 삶의 애환들이 한갓 멍에와 노역에 불과한 것이었을까.들판의 초록물결 위로 제비들이 난다. 일부러 찾아도 잘 보이지 않던 제비들이 갑자기 수가 늘어난 걸 보니 그새 새끼를 친 모양이다. 먼 길 떠날 채비로 부지런히 비행연습을 하는 것이리라. 아직도 이 땅에 제비가 찾아와 준다는 것이 고맙고 반갑다. 행운의 박씨를 물어다 주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한 지붕 아래 산 정리(情理)가 그렇다. 가축이나 애완동물이 아닌 철새들과 수천 년을 한 지붕 아래 살아온 인연이 어찌 가벼울 것인가. 기와든 초가든 제비집이 없는 집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내 서너 마리씩 새끼를 키우느라 분주하게 벌레를 잡아 들락거리던 제비 부모들, 노란 부리를 한껏 크게 벌리고 서로 달라고 졸라대던 새끼들, 그 광경은 같은 지붕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제비야 반갑다. 그리고 미안하다. 제비들이 둥지를 틀 수 없도록 가옥의 구조를 바꾸고 들판에 농약의 살포해 먹이를 없애버린 인간들의 행위가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세 들어 살던 사람을 내쫓은 고약한 집주인과 다를 게 없을 터이다.바람이 분다. 여름 내내 바람을 쐬러 이 들녘으로 나왔다. 들판 한가운데서는 어디선가 늘 바람이 불었다. 미풍에서 태풍에 이르기까지 바람은 참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졌다.‘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읊은 시인도 있지만,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감촉에는 참으로 무수한 느낌이 들어 있다. 그 모든 느낌을 관통하는 것은 생명감이다. 열풍이든 산들바람이든 바람은 끊임없이 살아있음을 환기시킨다.우리는 살아있음을 자각하지 못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살고 있다. 항상 바쁘고 무엇에 기 듯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잊고 살기가 일쑤인 느낌이다. 잠시라도 그런 분주와 황망에서 벗어나려고 좌선이나 명상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하지만, 웃통을 벗고 들판 한가운데서 발람을 쇠는 것보다 나은지 모르겠다. 사람이 불철주야 의지를 불태우고 노력을 해서 얻은 성취감이나 자존감이 맨살에 와 닿는 바람의 감촉이 주는 생명감보다 더 충일한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여름이 조금씩 비운 자리에 가을이 스며들고 있다. 들판 가득 가을의 예감이 술렁거린다. 이 들판에 땅 한 평 가진 것 없고 지은 농사도 없지만, 이 가을의 예감 또한 소중하다. 누가 내 삶의 계절에서 또 여름 하나를 빼내간다는 이 느낌이 아쉽기도 해서 계절의 추이(推移)를 온 몸과 마음으로 받는다.

2019-08-22

4대강보 철거와 탈원전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필자가 중고교를 다니던 1960년대 후반 서울의 종로거리는 일년내내 매일 공사가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매일같이 거리가 파헤쳐지는 장면을 일년내내 목격했다.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거리는 복잡했다. 일관성 없는 계획으로 매몰된 수도관이나 하수관, 전기설치 등을 뜯었다 고쳤다 다시 설치했다 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세금과 인력을 낭비했다.이러한 즉흥적인 계획과 집행의 폐해의 대표적 예를 우리는 반세기 후 또다시 목격하고 있다. 최근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4대강 보 처리와 관련해 이번 정권내에서 보 철거를 강행하지 않겠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다.“선계획, 후조치가 돼야 하는데 필요한 계획을 세우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하위 계획까지 다 수립하려면 최소 4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제야 무리한 보해체 계획을 자인한 셈이다.그동안 줄기차게 4대강보를 비난하고 해체를 강행하려고 했던 정부가 이러한 신중한 자세로 돌아섰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싶다.문재인 정권 들어서 나오고 있는 4대강보 해체 주장은 정말로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홍수기와 갈수기의 유량 차이가 최대 300(금강)~680배(영산강)나 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방을 쌓아 홍수를 막고 댐을 지어 가뭄에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4대강 사업으로 강바닥을 깊게 파고 보를 쌓은 것도 그런 취약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거기에 따른 환경적 생물학적 부작용이 있다면 그걸 수정하는 정책을 마련해야지 보해체가 능사가 아니다.정치적 논리로 과거 보수정권의 정책은 모두 잘못되었기에 4대강 반대론자들은 감성적 주장만 갖고 보 해체를 주장해왔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들여 만들어 놓은 국가 시설물을 전 정권 것이라고 또 세금을 들여 파괴한다면 다시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건설해야 하는 70년대 종로거리의 재판이 될 것이다.말이 나온김에 4대강 보 해체만 아니라 탈원전도 정치적 논리로 만든 정책이다. 최근 비판을 받고 있는 한전공대 설립과 함께 현정권의 선거공약이었으므로 실행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 타당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 전기요금 인상, 전력수급의 안정성 등 국민적 걱정이 많지만 선거공약이라는 이유로 강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탈원전을 선언한 일부 나라들도 모두 수정정책으로 전환하는 추세이다. 혹독한 원전 폐해를 입었던 일본조차도 다시 원전을 가동시키기 시작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점 때문이다.정부가 내세우는 대체 에너지란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국내 환경에서 풍력, 수력, 원자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채택하기는 열악하다. 미국의 셰일 가스 및 오일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가 개발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력 수요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기업들의 주요 젖줄인 해외 원전 수출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어쨌든 중요한 것은, 원전은 정치논리로 건설되어서도 안 되고 정치논리로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충분한 학문, 경제적 검토와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해야 한다. 시간을 가지고 결정해도 늦지않다. 이 문제만은 포퓰리즘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진보정부는 과거 보수정부의 사드배치와 관련해 절차적인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현 정부의 4대강보 해체와 탈원전문제에 있어서 국민적 의견수렴과 절차를 중요시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4대강보 해체와 탈원전은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의 대명사이다. 이 대형 과제는 앞으로 한국의 미래의 백년대계와 연관성을 갖는다. 만든걸 부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들이 정치적 논리나 포퓰리즘에 의해 실행되어서는 안 된다. 두고 두고 후세에 후회할 정책을 즉각 멈춰야 한다.

2019-08-22

한 줄기 생각을 붙들고 있는 사람

레이저 광선처럼 몰입할 수 있는 한 가지 생각이 있다면, 그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내가 달라집니다. 내가 달라지면 세상이 바뀌지요. 문제는 그 레이저 광선 같은 한 줄기 생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편집자는 늘 책만 생각하는 사람, 기자는 늘 기사만 생각하는 사람, 시인이란 늘 시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작가란 오롯이 늘 어떤 글을 세상에 내 보낼까를 한 줄기 생각으로 붙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속도가 생명인 지금 이 시대에 그 한 줄기 생각을 붙들며 살기란 극도의 절제를 필요로 합니다. 자기 절제를 놓치는 순간 도도한 강물처럼 내 생각을 휩쓸어 가는 생각의 물살은 어느새 돈 걱정, 사람 걱정으로 밀려들기 마련이지요.문학 평론가 김종철이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를 찾아가 인터뷰한 경험을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한 줄기 생각이란 것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오로지 원고료 수입만으로 살아가는 일본 순문학의 대표주자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생활비를 감당할 길이 없을 것 같아 부인과 단둘이 지냅니다. 문학을 위해 세속적인 안락을 포기하지요.하루 일과도 규칙적입니다.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는 체력을 관리합니다. 체중이 늘면 머리가 둔해지기 때문에 저녁은 먹지 않습니다. 물론 술과 담배 커피도 마시지 않습니다. 언론과 연락을 끊고 살지요. 그의 집은 논 한가운데 덩그러니 섬처럼 고립되어 있습니다.김종철은 마루야마 겐지에게 묻습니다. “늘 삭발을 하고 계신데요, 혹시 이유가 있으신지요?” “쉰 살 생일 아침에 문득 거울을 보니 문학에 대한 각오가 자꾸만 느슨해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머리를 깎았어요. 그날부터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면도칼로 머리카락을 밀며 흐트러진 마음을 잡습니다.”마루야마 겐지는 ‘소설은 몸으로 쓰는 것’이라 말합니다. 자신의 몸이 곧 붓이자 펜인 겁니다. 언제나 최상의 소설을 쓰기 위해 최상의 몸, 최상의 컨디션을 확보하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그의 빼어난 문장과 상상력은 매일 아침 면도날로 자신의 머리를 밀며 구도자처럼 지켜내는 깨끗한 몸에서 나옵니다. 몸을 붓 삼아, 자신 전부를 펜 삼아 언어를 남기는 사람들은 광풍처럼 우리를 ‘돈’의 세계로 몰아가고 물질이 전부라 속삭이는 이 시대정신에 마취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레이저 광선 같은 한 줄기 생각을 붙드는 이들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2

데스노트

‘데스노트’(DEATH NOTE)는 오오바 츠구미가 글을 쓰고 오바타 타케시가 그림을 그린 만화제목으로,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가 사람의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은 죽는 사신의 공책 ‘데스노트’를 갖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뤘다.1부에서는 고교생 라이토와 L과의 치열한 싸움을 그리고, 2부에서는 ‘키라가 곧 법’인 세상과 동시에 N을 비롯한 미국수사관들과의 심리전 등을 그리고 결말을 맞게 된다. ‘주간 소년 점프’에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총 108화로 완결됐으며, 일본의 슈에이샤 출판사에서 12권의 만화책으로 출판됐다. 대한민국에는 대원씨아이에 의해 12권 모두 번역 출판됐다. 2006년 10월에는‘DEATHNOTE-HOW TO READ-13’이 출시됐는데, 등장인물의 프로필, 사건, 트릭, 작가와의 인터뷰, 외전, L의 본명이 담긴 카드 등이 수록돼 있다. 일본 방송국 니혼TV와 미야기TV 등 각 NNN 계열국들에서 2006년 10월 3일 시작, 새벽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2∼3%를 기록했으며, 최종회 방송 당시에는 4.7%의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에서는 ‘데스노트’의 수입 방영권을 위한 경쟁을 벌여 챔프TV에서 2007년 10월 8일부터 2008년 1월까지 방영됐다.정치권에서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공직 후보자들의 도덕성과 자질, 국민 여론, 청문회 경과 등을 종합해 적격 여부를 판단한 뒤 부적격 후보자를 공개하는 걸 ‘데스노트’로 활용해 왔다. 이 가운데 정의당이 작성한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린 정치인들은 대부분 낙마해 상당한 적중률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둔 정의당 사정은 꽤 복잡해 보인다. 선거제 개혁을 위해 더불어민주당과 공조하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조 후보자를 데스노트에 올리는 데 신중한 모습이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16명의 장관급 인사들이 한국당의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렸지만 모두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을 받았다. 이번에 딸 부정입학 논란으로 국민정서를 거스른 조국 후보자 역시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리고도 임명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8-21

기대

장규열 한동대 교수계절이 건너간다. 이른 아침 바깥공기에 가을이 묻어있다. 연일 폭염 경보에 시달렸던 몸은 한여름을 아직 기억하지만 들뜬 마음은 이미 천고마비의 새 계절을 기다린다. 염천을 지나면서 겪고 쌓여온 생각거리들은 몸과 마음을 언제나 쉬게 할 것인지 그 끄트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바다 건너 일본이 힘들게 하지만 궂은 소리는 나라 안에서 더 많이 들린다. 겨레의 힘을 모아 전화위복을 꾀하려 했건만, 북한은 쓴소리 악다구니만 토해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문제인가 했더니 미국과 중국도 못지않은 씨름에 시달리는 중이다. 남북 팔천만의 소원인 통일이 관건인가 했더니, 고작 한 사람 장관 후보의 거취에 온 나라가 쩔쩔매고 있다. 무더위가 가시듯 벗어날 방법이 혹 어디 없을까.생각 밖으로 궂은일을 당할 때 늘 듣는 소리가 있다. 국민의 눈높이. 관련된 개인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국민의 시선은 늘 빈 마음을 바라는 낮은 자리에 머문다. 사사로운 처지에서 더 나은 열매를 위하여 수고로이 달려가는 일도 집단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욕심만 커다랗게 떠오르곤 한다. 들켜버린 사욕이 모든 이들에게 전염되면 공동체는 필시 불건강한 길로 접어들지 않을까. 가족과 친지들 사이에서 이해되던 융통성이 집단과 사회의 눈에 탐욕으로 비칠 때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인 사회를 생각하였던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이제는 비도덕적인 개인과 도덕적인 사회를 걱정해야 하는가. 개인의 우수함이 사회의 집단지성과 부딪힐 때, 우리는 어느 켠에서 지혜를 구할 것인가.나라의 국민은 위대하였다. 부조리와 비리에 휩싸인 권력을 국민의 힘으로 물러나게 했으며 기대를 한껏 실어 새로운 리더십을 출범시켰다. 그런 일을 해보지 못한 일본과 지금 막 진통을 겪고 있는 홍콩의 시민들은 우리를 부러워한다는 것이 아닌가. 국민의 힘과 지혜가 나라와 겨레가 가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 아닌가. 법치와 삼권분립이 제도의 틀이라면, 국민의 집단지성은 그 모든 민주역량의 기본임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혹 부족한 게 아직 있다면, 다른 생각을 거뜬히 수용하여 견주며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 내가 옳은 만큼 남도 같은 무게의 선의를 가졌음을 인정하여야 한다. 비웃거나 경멸하여 패대기치는 만큼, 상대는 내 생각을 가벼이 여길 터이다. 이만큼 키워온 민주의 바탕 위에 더 높은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높이 걸었던 기대가 사뭇 아깝다. 많은 부분 그의 생각이 함께 하였음도 국민은 안다. 역량도 출중하고 의지가 충분함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라가 바라보아야 하는 지향점은 그보다 훨씬 높은 곳을 향하여야 한다. 발표한 정책이 매우 소중한 가치를 담았음에도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국민은 혹 기대보다 깊은 상처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성의 힘과 인성의 덕으로 물러서는 용기와 비켜서는 지혜를 발휘하여 주시라. 실력과 혜안으로 막후에서 돕는 손길을 더욱 펼쳐 주시라. 팔천만의 소망이 걸린 일들이 수두룩한데, 한 건 인사로 혹 그르치면 안 되지 않겠나. 안 그래도 흔들리는 촛불을 불어 꺼버리면 누가 손해인가. 모두가 바라는 ‘나라다운 나라’는 당신의 결정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우리는 당신의 진심을 믿는다.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나라가 잘 되고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음을. 나라는 나라대로, 한 사람에게 나라의 운명을 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촛불이 걸었던 기대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일본을 이겨야 하고 북한을 아울러야 한다. 외교가 버겁고 국방도 어렵다. 경제가 힘들고 민생이 흔들린다. 사람은 폭넓게 찾아 든든하게 세워야 한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어 주시라. 높은 기대를 다시 건다.

2019-08-21

교육 제안 - 경북형 마을학교 1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인구절벽 문제가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구절벽에 따른 많은 국가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학령인구 급감이다. 입학생이 0명인 학교 이야기는 이제 특별한 일도 아니다. 소규모 학교 통폐합 또한 마찬가지이다.인구절벽에서 시작된 도미노 게임은 학교통폐합을 지나 이제 지역 마을을 쓰러뜨리고 있다. 학교가 없는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런 마을 주민들의 연령은 굳이 조사해보지 않아도 고령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심각한 연령 불균형 현상은 마을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기능들을 삭제하고 있다. 그리고 종국엔 마을마저 소멸시키고 말 것이다.마을은 문화 생산은 물론 공동체 교육까지 다양한 기능을 해왔다. 마을 문화가 풍성한 나라일수록 문화 강대국으로서 다양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문화의 힘은 다른 산업들과 비할 바가 안 될 정도로 막강하다. 비교 불가의 막강한 힘을 지닌 문화의 출발지는 바로 마을이다.우리 교육이 한 때 경제 성장이라는 기적을 만들 때 우리 교육은 분명 마을과 함께 했다. 마을은 큰 학습장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천하고 그것을 내면화해 지혜로 승화시키는 살아있는 배움터가 마을이었다.마을에서 학생들은 나만이 아닌 우리들을 위한 꿈을 키웠고, 마을 사람들은 그 꿈이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격려와 응원을 해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 교육은 학교에서 마을을 배제시켜 버렸다. 그러면서 학교 교육은 폐쇄적으로 변해가더니 결국 교육을 학교 안에만 고립시켰다. 고립된 교육은 기형적으로 변해갔다. 그 모습은 성적지상주의, 입시 공화국, 학교 폭력 등으로 나타났다. 최종 목표가 오로지 입시에 맞춰진 우리 교육은 급기야 인구절벽이라는 국가 재앙의 진원지가 되어 버렸다.공부를 하면 할수록 포기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지는, 그래서 N포세대로 전락해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학생들의 원성(怨聲)을 교육 관계자들은 듣지 못하는가?자신의 미래에 대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던 고등학생 딸아이가 묻는다.“아빠, 앞으로 나 뭐할까?” 진지하게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묻는 아이에게 필자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다.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놓기 전에 우리 교육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 말로만 혁신을 외칠 것이 아니라 우리 학생들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학교 현장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극단의 폐쇄주의에 빠져 있는 학교 교육 범위부터 넓혀야 한다. 그 방법은 다시 마을로 학교가 들어가는 것이다.전라도 완주, 강원도 등 학령인구 절벽에 따른 지역과 학교 소멸이라는 위기에 봉착한 지역에서는 이미 지자체와 교육청이 손을 잡고 지역교육 활성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또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이 때의 의미 있는 성과는 바로 마을과 학교가 함께 하는 교육, 학생들의 교육 행복도 향상, 그리고 찾아오는 교육이다. 이들 지역에서 지역교육 활성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담당자들이 전국을 돌며 성공 사례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지난 2019 교감 자격 연수에서도 이들의 강의를 있었다.필자는 강의를 들으면서 이들 지역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공통점을 찾았다. 그것은 간절함이었다. 강의자들의 열정에서 그들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강의실 분위기는 뜨거웠다. 그 이유는 경상북도도 인구절벽이라는 재앙의 가장 큰 피해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강의자들과 연수생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간절함의 차이였다.“간절함이 없는 꿈은 꿈이 아닌 희망사항이다.”(탈무드)라는 말이 있다. 희망사항만으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제안한다, 경북형 마을학교를 하루 빨리 시작하자고!

2019-08-21

프랑켄슈타인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상사화(相思花)가 피어난 걸 보고 여름이 가고 있음을 알겠더라. 따사로운 4월에 이파리가 앞 다투어 무리지어 솟아오르다 어느 사품엔가 시나브로 자취를 감춘다. 그러다 8월이 지나 여름도 절정을 넘어설 무렵 홀연히 상사화는 연분홍색 화사하고 처연한 꽃을 피운다. 이파리와 꽃이 나뉘어서 피고 지는 까닭에 상사화 이름 얻었다 한다. 상사화 보다가 200년 전에 메리 셸리가 쓴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을 생각한다.소설 제목이기도 하고 주인공이기도 한 프랑켄슈타인. 그는 불과 열세 살에 의사이자 연금술사인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의 선집을 발견하고 완전히 매료된다. 거기 더해 파라셀수스와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저작에도 경도(傾倒)된다. 그가 18세기 계몽과 과학의 시간대에 이전시대의 연금술사에게 마음을 뺏긴 까닭은 그들이 불멸과 권력을 꿈꾸었던 대가였기 때문이다. 불가능에 도전하면서 거대한 영화를 실현하려던 과학의 이단아들을 향한 낭만적 존숭.열일곱 살에 입학한 잉골슈타트 대학의 발트만 교수가 프랑켄슈타인의 운명을 결정한다. “고대과학의 스승들은 불가능한 일을 약속하고 아무것도 실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천재들의 노고는 아무리 오도(誤導)된 것이라도 인류의 선을 공고(鞏固)히 하는데 쓰인다.” 그로부터 2년 뒤 우리의 주인공 프랑켄슈타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잉골슈타트 최고의 자연철학자가 된다.열아홉 살 청년은 창조주(創造主)의 반열에 오르고자 한다. 한낱 인간으로서 야훼나 프로메테우스가 되려는 것이다. 하기야 소설의 원제가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인 만큼 이해 가능한 대목이다. 2년 동안의 불철주야 용맹정진 각고의 노력 끝에 프랑켄슈타인은 마침내 무생물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데 성공한다. 그의 손에서 피조물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창조물을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다. 너무나 참혹한 형상의 괴물이었기에.실험결과를 사유하지 않은 채 설익은 젊음의 광기서린 욕망과 의지, 영생과 불사를 향한 미성숙한 과학자의 치기어린 신성(神性)의 갈망이 예기치 않게 괴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진선미에 친숙하고 마음 약한 주인공은 도주한다, 추악한 괴물에게서. 도주하고 다시 도망치지만 그는 괴물의 손아귀에서 맴돌고 있을 뿐.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괴물의 손에 스러져간다. 종당에는 괴물의 창조주 프랑켄슈타인마저 하릴없이 숨을 거둔다.그가 남긴 유언의 고갱이는 간명하다. 과학과 발견에서 명성을 얻고자 하는 야심을 버리고 평온함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것이다.사랑하는 친구와 가족, 자연의 변화와 오고가는 사계절, 가정과 고향의 따사로움을 완전히 망각한 채 생명창조에 몰두하다가 참혹한 결과를 도출하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자신마저 불귀의 객이 되고 마는 프랑켄슈타인. 필연적인 인과관계 전체를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불행한 자연철학자 프랑켄슈타인.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프랑켄슈타인은 깨닫는다. 지식획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고향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 지식추구가 소박한 즐거움과 취향을 파괴한다면 그것은 불법적이고 인간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라 할 것 없이 자연과학 실험과 탐사여행에 몰두했던 18세기 유럽의 광기에 가까운 과학을 향한 집착과 그것이 야기할지도 모를 파괴적인 양상을 빼어난 상상력으로 예견했던 메리 셸리. 21세기 자연과학과 공학과 기술은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영생 불사하는 인간을 꿈꾼다.유발 하라리는 호모사피엔스가 종말을 고하고 인간은 호모 ‘데우스 Deus’가 되리라고 예견한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들고자 했던 피조물을 넘어서 인간 스스로가 신의 반열에 오르려고 열망하는 21세기 지구촌. 혼란의 한 모퉁이에서 수줍게 얼굴 내민 상사화가 속삭인다. “헛되고 헛되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

2019-08-21

맨발 대학(Barefoot College)

인도에는 맨발 대학(Barefoot College)이 있습니다. 한국 맨발 학교가 맨발로 걷는 행위를 통한 배움이라면, 인도 맨발 대학에서 말하는 ‘맨발’은 하나의 상징입니다.1967년 기근에 시달리던 인도 비하르 주를 방문했던 벙커 로이는 굶주리고 교육받지 못하고 천대받는 하층민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합니다. 커다란 충격에 휩싸인 그는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황무지와 다름없는 시골에 내려와 맨발 대학을 설립합니다. 이름은 대학이지만, 맨발 대학은 여타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과는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학위를 주는 곳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주는 곳이지요.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사회를 살기 좋게 만드는 사람을 길러내는 곳입니다.맨발 대학에는 교과 과정이 없고 교수도 없습니다. 인도 사회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가난한 농민들, 임금 노동자들, 소외받는 불가촉천민과 여성들, 장애인들이 학생이자 선생이 되어 자유롭게 서로를 가르치고 배웁니다. 먼저 온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을 이끌어 주는 방식의 교육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면, 식수가 부족해 사람들이 죽어가는 마을에서 온 학생은 직접 수동 펌프 기술을 익힙니다.생전 처음 마을 밖으로 나온 여성들은 말도 안 통하고 문자도 읽을 수 없지만 오로지 모방, 반복, 따라 하기 같은 원초적인 학습을 통해 6개월 만에 수동 펌프 기술의 달인으로 변신하는 거지요. 태양열 조리기 기술을 이곳에서 배운 세나즈씨는 말합니다.“매일 4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이 조리기로 만든 음식으로 식사를 해요. 100명이 이 조리기를 사용하면 한 달에 84㎏의 가스연료를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세나즈씨는 이 기술을 배운 덕분에 한 달에 2천190루피, 미화 약 56달러를 법니다. 인도에서는 여성이 이렇게 큰돈을 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요.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집안에서 발언권도 덩달아 강해졌습니다.가난에 찌들고 계급 사회의 차별과 억압에 눌려 비참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고 헌신한 벙커 로이의 삶이 허덕이며 살아가던 수천, 수만 인도인들에게 한 줄기 빛을 선물합니다. 그들은 맨발 대학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대학 졸업장이 줄 수 없는 진정한 배움의 기쁨 가득한 곳입니다.맨 얼굴과 맨손과 맨발로. 자연 그대로 세상 그대로를 온몸으로 느끼고 품고 동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늘어나는 아름다운 날을 꿈꿉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1

처서와 추어탕

24절기 중 처서(處暑)는 14번째 해당한다.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들며, 양력으로 8월 23일(음력 7월 15일) 무렵 이후에 든다. 올해 처서는 이달 23일이다.“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보다 진짜 가을을 느끼게 하는 절기가 처서라 한다. 말 그대로 더위가 멈춰선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제법 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따갑던 햇볕도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농부들은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도 한다.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 극성을 부리던 파리와 모기떼도 사라진다. 속담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농부들은 처서 이후 날씨에 관심이 대단히 많다. 한해 농사의 풍흉을 이때의 날씨가 좌우하기 때문이다. 가을이 찾아왔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왕성한 햇볕이 있어야 벼가 완전히 성숙할 수 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줄어든다”는 말처럼 농부들에게는 한해 농사의 마무리가 이때부터 고비다. 여름 내내 우리를 지치게 했던 한여름 무더위는 처서로 한풀 꺾이고 지금부터 여름철 내내 지친 심신을 위로할 음식이 필요하다. 우리의 조상은 예로부터 가을철 원기회복 음식으로 추어탕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문헌에 의하면 고려말 송나라 사신인 서긍의 ‘고려도경’에 추어탕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미꾸라지가 강이나 논에서 흔하게 잡히는 것이어서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즐겨왔던 음식으로 짐작이 된다. 미꾸라지는 7월말에서 11월초까지가 제철이다. 몸에 좋은 음식은 제철에 해먹어야 효과가 높은 법이다.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푹 고아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양념하여 끓인 우리의 토속 음식으로 원기를 북돋워주는 가을 음식으로는 최고다. 특히 여름철에 더위에 지친 서민들에게는 단백질을 공급하는 매우 요긴한 음식이다. 본초강목에도 “양기에 좋고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하는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가을의 길목에 들어섰다. 우리 민족의 토속음식인 추어탕 한 그릇으로 몸보신도 하고 신선한 가을바람에 갑갑한 기분을 풀어보는 것도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20

분양가 상한제의 명암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국토교통부가 최근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라는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치솟는 서울 강남을 비롯한 전국의 재개발 재건축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하지만,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쏟아진 부동산 대책 모두가 이번에도 재현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분양가 상한제를 완성하는 주거정책위원회다. 그러나 주거정책위의 정부 측 참석 인사가 거수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될 정도로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또 전매제한 주택을 LH가 매입한다는 내용도 지난 2005년 이후 단 한 건의 실적이 없어 실효성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시세의 반값에 부동산을 매각할 리 없고 경매나 공매로 위장해 시세대로 팔수 있는 방법이 무수히 많아서 거래 실적이 없을 수밖에 없다.국토부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이후 확인된 주택청약통장 가입자는 모두 2천500만여 명으로 전국민 두사람 중 한 사람이 청약통장을 가진 셈이 됐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무주택자 위주로 개편된 청약제도를 시행하자 이를 활용하려는 무주택자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정부 측은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실시를 겨냥한 역풍이라는 사실이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특히 오는 10월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된다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발 ‘로또 청약’을 노린 청약통장 증가가 나타날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되면 10월 이전까지는 HUG의 강화된 분양 보증심사에 따라 분양가를 규제받은 단지를 중심으로 분양이 본격화된다. 상한제가 실시되면 사업자는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HUG와의 분양가 협상력이 약해져 당초 분양가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청약에 당첨만 되면 나중에 인근의 집값 시세로 상승하는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어 부동산판 로또가 될 수 있는 점을 감안했다는 부분이다.또 다른 악재는 건설사를 겨냥하고 있다. 수주환경 변화에 어려움을 겪는 국내 건설업체가 늘어나면서 자산이 많은 건설사를 흔들 수 있는 행동주의 펀드가 서서히 고개를 들수 있다는 점이다. 전국 상위 순위 건설사의 경우 한 자산운용사가 지분율을 12.12%에서 15.22%로 증가시켜 당초 보유 목적이 단순투자에서 경영참가로 변경 공시됐다. 이 자산운용사는 중견 건설사 2곳에 대해서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자산운용사는 결국 주주로서 고배당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이는 건설사의 경영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는 우려다. 이같은 우려는 중견 건설사 2곳의 지분을 보유한 또 다른 자산운용사가 주주총회에서 배당안건에 대해 자신의 요구에 맞지 않다며 반대표를 던진데도 잘 나타난다. 현재 분양시장은 공급량이 현저히 줄어 전국적으로 2천37가구 청약에 그치는 현상을 불러왔고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도 1%대로 하락할 시점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신규아파트값이 강세를 보이는 역풍을 맞고 있다. 이러다 보니 최근 투자자들이 해외펀드에 넣은 돈이 무려 17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국내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전세계 경제는 그레이 스완(Gray Swan)이라는 다양한 악재에 노출돼 있다. 그레이 스완은 이미 알려져 있는 악재이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위험요인이 계속 존재하는 상태를 일컫는 것으로 블랙 스완(Black Swan)이란 용어에 빗대 생겼다. 현재 한국과 일본, 미국과 중국, 미국과 인도 간 무역분쟁을 비롯해 홍콩시위, 이란 경제 제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어려워지는 경제 사정에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기 때문에 정부는 추가 대책 발표에 대한 부담도 있겠지만, 위에 열거한 역풍으로 인해 다시 대책을 꺼내야 한다. 노무현 정권때처럼 실효성 없는 대책이 다시 반복된다면 악재와 후폭풍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될 것이다. 부동산이 우리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2019-08-20

독도 지킬 의지 있나?

김두한경북부바다 등 해양을 연구하는 데 선박이 없다고? 그렇다면, 무엇으로 연구할 것인가.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에 해양을 연구할 배가 없다고 지적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는 일본 시마네현이 지난 2005년 매년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선포하자 경북도가 ‘독도 지키기 5대 종합대책’ 중 하나로 설립됐다.하지만, 바다의 해양생태 등 해양을 종합적으로 조사하는 해양연구기지에 전용 연구 선박이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특히 일본의 독도 침탈 행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울릉도, 독도해양연구소에 연구선을 배정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독도연구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높다.독도는 울릉도에서 87.4㎞ 떨어져 있다.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는 독도 전용 연구조사선이 없어 소형어선이나 낚싯배를 임대해 독도에 대해 연구하고 그나마 정밀 연구는 울릉도에 한정돼 있다.정부가 건물만 지어놓고 연구 장비 없이 독도와 울릉도 동해 해양 전체를 연구하라는 것이다. 낚싯배와 어선을 임대해 독도현장 조사를 한다지만 연구 장비를 매번 옮겨야 하고 경비는 임차비도 모자라 연구의 질 향상 기대는 어렵다.울릉도∼독도 간 왕복 8시간 이상 소요되는 낚싯배의 선박임대료가 하루 400만∼450만 원 선. 경비 충당이 어려워 연구 선박을 제때 제대로 임대하지 못해 임무수행에 차질은 물론 연구가 반쪽으로 전락할 우려마저 낳고 있다.전문가들은 독도에서의 연구탐사시간 확보를 위해 울릉도∼독도 간을 왕복 4시간대에 운항할 수 있는 쾌속(32노트)연구조사선이 필요하다고 했다.이른 봄과 겨울철 해상기상 악화로 독도 접근이 어려워 독도 현지에 대한 체계적인 4계절 조사가 힘들기 때문에 더욱 울릉도, 독도해양연구기지의 전용 연구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수없이 제기돼 왔다.어려운 환경 속에 박사급 석학들과 울릉도 출신 직원들이 독도를 지킨다는 사명감과 울릉도, 동해바다의 더 발전 앞날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이런 열악한 형편에도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는 지난해 11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남해연구소와 공동 연구한 논문이 전 세계 우수 학술저널에 계재되는 등 독도와 울릉도 동해에 대해 많은 연구 자료를 발표하고 있다.따라서 독도영토주권수호와 울릉도, 동해의 더 체계적이고 정확한 해양조사 연구를 위해서는 반드시 전용 연구선이 필요하다. 정부의 인식전환을 기대해 본다./kimdh@kbmaeil.com

2019-08-20

시장의 지배자는 소비자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매일 같이 쏟아지는 다양한 뉴스를 보거나 들으면서 심장이 뛰거나 울리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한일, 미중, 남북 등 국가 간 뉴스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지역사회 전체, 때로는 국가 전체를 한 마음으로 결집시킬 정도로 마음을 뒤흔드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처럼 개인들의 입장에서는 그 뉴스가 자신의 인생사 속의 어느 한 구석과 동화되거나 마치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자신의 생업과 직결되는 어떠한 영향을 주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하지만 지역사회 전체를 결집시키는 문제부터는 다소 성격이 달라진다. 지역민의 결집은 국제정세 변화보다는 대부분 국내 사정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가령 국책사업의 배정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갈등 같은 경우다. 그런데 범국가적인 관심사이면서 국민들 대부분이 동조하는 것은 종교적인 문제, 역사적인 문제, 국제 정치외교적인 다툼, 그리고 민족 문제인 경우가 주류를 이룬다. 사실 이번에 발생한 한일 간 사태의 도화선에 불이 쉽게 붙은 것도 앞서 언급한 4대 문제 가운데 3개나 중첩되면서 국민 각자가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계기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그런데 이와 같은 갈등을 계기로 어느 일방이 선제적인 공격을 하고 상대방이 수비에 나섰다고 하여 반드시 공격자가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는 보장은 없다. 때로는 양측 모두가 손해를 입을 수도 있으며 공격자가 얻을 수도 수비자가 얻을 수도 있다. 누구나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경제문제에 관한한 누가, 어떤 지역이, 어느 나라가 더욱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시장을 읽고 있는가에 승패는 갈린다.미중 무역전쟁, 남북 경협문제, 사드배치를 둘러싼 한중간 갈등, 최근의 한일경제전쟁도 마찬가지다. 비록 정치외교적인 마찰이 원인이라도 외형적인 싸움의 수단은 결국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경제의 싸움터는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장이다. 그런데 국가나 지역의 문제로 발발하는 경제 전쟁이 어떠한 의사결정체계를 가지더라도 그 영향의 파급력은 결국 공급자 주도냐 소비자 주도냐에 따라 결정된다. 달리말하자면 과연 어느 측이 보다 정확하게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진단하고 시장의 향방을 예측할 수 있는가에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최근 유럽의 고급브랜드들이 홍콩을 중국과 다른 별개의 국가처럼 인식하면서 때 아닌 곤혹을 겪고 있다. 이는 중국이라는 시장(market)의 소비자를 무시한 결과다. 중국은 자신들이 세계의 공장이었지만 이제는 시장이기도 하다는 자신들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에 이탈리아의 베르사체, 프랑스의 지방시 등 세계적인 고급브랜드를 공급하는 그들이 세계 고급시장의 30% 이상을 소비하는 화교권의 반발에 바로 사죄한 것도 처음에는 안일했을지 모르지만 사태 발생 이후 시장의 지배자가 소비자임을 즉각 깨달았기 때문이다.포항도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 한때는 공급자로서 철강시장에서 지배력을 가지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렇다고 대단한 구매력을 지닌 소비자도 아니다. 최근 강소특구에 이어 관광특구까지 지정되면서 조금은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이지만 그럴수록 보다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포항이 추진 중인 다양한 관광 사업들도 실은 관광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포항이 준비하고 있는 관광서비스의 공급이 과연 관광소비시장에서 지배력을 발휘하는 국내외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살펴보아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최초의 소비자가 될 포항시민에게, 그리고 국내 다른 지역의 서비스를 소비해 온 내국인, 나아가 국제크루즈여객선을 타고 세계의 관광서비스를 소비해 온 외국인들의 눈높이 수준에 맞출 수 있을지를.

2019-08-20

1945년 광복과 한국미술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현재 대한민국은 36년이라는 일제식민지의 역사를 이겨내고 쟁취한 ‘광복(光復)’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상기해보는 소중한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조선의 개방정책과 근대화 과정에서 뼈아프게 겪어야했던 식민지 역사와 흔적은 씻을 수 없는 아픔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과 아픔을 통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며, 치욕과 역경의 역사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정치·경제·국방 등 모든 면에서 갖추어야 할 정도(正道)는 과연 무엇인지 각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 근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이루어졌던 모색과 문제점들을 되돌아보며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개선해 나간다면 이번 위기는 분명히 극복될 것이라고 믿는다.한국사의 근대적 출발점을 1919년으로 본다면 우리 민족은 불합리와 함께 모순의 정치적 환경 속에서 한국 근대사를 경험했다. 더불어 일제의 지배라는 비극 속에서도 민족적 고난과 비애를 강인한 저항정신으로 이겨내며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민족적 원동력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했던 시대정신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정신적 가치가 무엇인지 되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미술 분야 역시 진정한 한국적 미의식은 해방과 함께 새롭게 정립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서구의 미술양식과 미학적 요소들은 식민통치를 위한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보급되기 시작해 ‘전통서화’와 ‘서양화’의 갈등과 모순 속에서 우리의 미의식은 서구미술의 형식만을 흉내내는 수준으로 지속되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회화의 근대적 과정은 격동기의 파란만장한 변화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들이 이어졌다.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숨 가쁘게 진행되었던 한국미술의 주요 사건들을 간단히 살펴보자.먼저 해방 직후인 8월 18일에 전국 문화예술인들을 규합한 단체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가 결성되고, 그 산하에 문학, 미술, 음악, 영화, 연극의 5개 분과 중 하나로 ‘조선미술건설본부’가 결성되었다. 조선미술건설본부는 고희동을 중심으로 동양화부, 서양화부, 조각부, 공예부, 아동미술부, 선전미술대 등 6개 분과로 활동을 펼쳤는데, 186명의 미술가들을 총괄한 해방 후 최대 미술가 조직이었다. 덕수궁 석조전에서 제1회 ‘해방기념과 연합군환영 미술전람회’(1945.10.20∼29)를 개최했으며, 해방 기념행사에서 국기 제작과 함께 표어·도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연합군 환영식에서는 미국·소련·영국·중국 등 4개국 국가원수들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11월 20일 ‘조선미술건설본부’가 해산되고 “정치에의 불간섭과 엄정 중립”을 강령으로 내건 ‘조선미술가협회’로 새롭게 결성되었다.하지만 1946년 8월 11일 미군정청 문교부가 미술을 선택 과목으로 결정하자 ‘조선미술가동맹’과 ‘조선조형예술동맹’과 함께 ‘조선조각가협회’가 합류해 ‘조선미술동맹’을 발족하여 공동투쟁을 결의해 나갔다. 이들 단체는 ‘해방기념문화대전람회 미술전’(8월20∼27일)을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지만, 이 역시 남북 이데올로기의 차별에서 비롯된 분열과 갈등이 지속되었다.지역 1세대 화가 이인성(1912∼1950)과 이쾌대(1913∼1965) 역시 이러한 질곡의 시대적 변화를 직접 체험하며 참여해 한국 근·현대미술을 이끌어 나갔다. “과거가 햇볕을 쬐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된다.”는 말처럼 격동의 시대를 파란만장하게 살다간 지역 예술가들은 조국 광복을 위해 무엇을 하였으며, 해방된 나라에 새로운 예술과 문화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경주했는가는 이제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야할 우리들의 과제이다.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화가들을 이제는 ‘신화의 존재’가 아닌 ‘역사적 인물’로 기록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연구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2019-08-20

아프리카에는 자폐아가 왜 없을까요?

맨발 학교를 아십니까? 대구교대 특수교육과 권택환 교수가 지난 2013년 3월 1일 시작한 신통방통한 학교입니다. 이 학교에는 다섯 가지가 없습니다.1. 건물 2. 교사 3. 교재 4. 시험 5. 시간표.맨발 학교의 수업은 운동장, 산, 바닷가 모래사장 등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수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학교의 수업은 새벽, 한밤중, 낮, 저녁을 가리지 않습니다. 맨발로 걷는 것이 수업이니까요.‘진리는 단순하고 실력은 꾸준함에서 나온다. 작고 단순한 것도 꾸준히 하는 사람이 행복을 잡는다’가 맨발 학교 교훈입니다.권택환 교수가 맨발 학교를 시작한 계기는 한 권의 책을 읽은 후입니다. 세계 지적장애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진호군의 어머니가 쓴 ‘자폐아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라는 책이지요. 김진호군이 맨발 걷기로 자폐를 극복한 것을 깨닫습니다. 그 책에서 발견한 한 문장이 권택환 교수의 뇌리에 번개처럼 번쩍입니다. “아프리카에는 자폐아가 없다.”권택환 교장은 말합니다. “교육부에서 일할 때, 한국의 자폐성 아동이 매년 1천명씩 급증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갖는 10개 장애 유형 중에 과거 7위였던 자폐가 지금은 2위까지 올랐습니다. 미국은 자폐 발병률이 68명 중 한 명입니다. 특히 실리콘 밸리에 많아요. 유럽은 미국과는 달리 자폐 아동이 적습니다. 어려서부터 흙과 교감하는 교육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죠. 흙 속의 무해 박테리아와 접촉하면서 몸의 면역력이 길러지고 몸속의 유해 전자파를 흙이 흡수합니다. 이런 과정을 어싱(earthing)이라고 합니다.”정현종 시인은 ‘한 숟가락 흙 속에’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한 숟가락 흙 속에 / 미생물이 1억5천만 마리래! /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 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 / 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 /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 수십억 마리의 미생물이 밀어 올리는 / 바로 그 힘이었다는걸!”아인슈타인이 연구소 근처를 맨발로 걷다가 상대성 이론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일화는 우연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양말, 신발, 아스팔트로 겹겹이 우리의 몸은 흙과 차단되어 있지요. 그 차단을 훌훌 벗어버리고 자연과 교감하는 맨발 걷기는 실로 혁명입니다. 태어날 때 부여받은 맨발로 한 숟가락에 1억5천만 마리 미생물이 꿈틀거리는 맨땅을 밟는 일. 가족과 함께 안전한 곳에서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0

태평양전쟁, 그리고 경성과 상해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 그러니까 현재의 서울은 일본인이 거주하는 남촌과 조선인이 거주하는 북촌으로 분리되었다. 그 역사는 18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해 2월 주한 일본대리공사가 일본인의 안전을 위해 일본공사관과 영사관 주위에 집단거주를 요청하면서 거주가 시작되었다. 한일합방 이후 진고개 일대 충무로, 명동에 이르는 지역은 완전한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변모되었다. 특히, 1911년에 개설된 황금정(현 을지로)은 일본인 거주지를 청계천변까지 확장시키면서 본정통(현 충무로)과 함께 일본인 주거지의 중심가로로 성장한다.특히 본정통은 가장 먼저 일본 민간자본에 의해 형성된 지역이라는 특성상 일본식 목조2층 건축에 의한 전형적인 일본식 가로 경관을 갖고 있었다.난징조약으로 개항하게 된 상하이는 1843년 영국과 후면조약, 1844년 미국과 왕샤조약, 프랑스와 황푸조약을 맺었다. 이때부터 자국의 국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치외법권 지역이 만들어졌다. 영국이 제일 먼저 토지를 빌려 와이탄 도로를 중심으로 거리를 조성했고 미국과 프랑스가 뒤를 이어 조계지를 만들었다. 그 후 1861년 화이하이루 지역에 프랑스가 단독으로 조계를 차지하게 되었고 1863년 영국과 미국이 공동 조계가 되어 와이탄과 난징루 지역을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일본과 조선은 하나의 나라라는 의미의 ‘내선일체’를 사상적으로 주입했다. 하지만 이 말의 허위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경성은 남촌과 북촌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상하이 역시 경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하이시는 조계지와 비조계지로 엄격히 분할되었다. 이러한 분리 속에서 경성과 상하이는 근대성을 대표하는 고층빌딩이 들어섰으며, 근대적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호텔, 백화점, 커피하우스, 댄스홀, 극장과 영화관, 공원과 경마장 등이 생겨났다.경성의 경우 1910년대까지만 해도 균형을 이루던 북촌과 남촌의 경제력은 1920년대에 이르면 현저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경성부내 주요 공공건물 중 북촌에 위치한 것은 식민지배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하나에 불과했으며, 주요 건축물은 남촌에 위치하고 있었다. 상권성장과 변화를 주도한 것은 근대적 유통구조인 백화점의 급속한 확산이었다. 주요 간선도로에는 근대적 상업시설과 은행사옥과 지점들이 빠르게 지어졌고, 재래상권도 백화점을 필두로 하는 근대적 유통구조와 서비스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는 경성의 주요 간선도로변의 경관을 빠르게 변모시켰다. 카페와 함께 주목할 수 있는 것이 극장이다. 카페가 당시 지식인 교류장소의 역할을 수행했다면, 극장은 일반의 대중적 오락기능을 수행했다. 이 무렵 서울에 설립된 서대문의 연극전문극장인 동양극장(1935)은 장식이 제거된 차가운 무채색으로 포장된 전형적인 근대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신파극의 중심극장이었으며, 한국 사람을 위한 극장으로는 단성사·조선극장·우미관 등이 종로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밖에 일본인의 영화관으로 황금좌, 약초좌, 명치좌, 희악관, 대정관 등이 있었다.상하이의 조계지 조성 초기에는 와이탄의 스카이라인은 영국에서 유행했던 신고전주의 양식을 따른 영국영사관, 팰리스호텔과 같은 영국식 건물들이 지어졌으며, 1920년대부터 파크호텔과 같이 높고 내부에 아르데코 형식이 더해진 현대식으로 설계된 미국식 건물들이 생겼다. 또 1892년 난징루에 최초의 백화점인 홀앤 홀츠가 개장을 하고 위크백화점, 레인 크로우포드 백화점 등이 잇달아 개장하였다. 1930년대 백화점은 유럽풍의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을 적용해서 고급스럽고 웅장함을 보여주고 소비자에게 이국에 온 것 같은 환상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도시의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경성은 1937년, 일본이 군벌체제를 갖추고 중국대륙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을 감행하면서 전시체제로 돌입하게 된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면서 경성의 철도와 철도역은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전용된다.또 대공 취약성을 강화하기 위해 곳곳에 방공시설이 확충되었으며, 전쟁 수행을 위해 일정한 구역 내에서 ‘건축물의 건축금지, 제한 또는 철거’ 등 물리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상하이 조계는 1845년부터 약 100년간 계속 되다가 1937년 중일전쟁과 제2차 상하이 사변이 일어나면서 일본군의 통제하에 놓였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군은 공동 조계에 진주하면서 영국인, 미국인을 억류했다. 1943년 난징의 왕조명 정권이 공식으로 공동조계, 프랑스 조계를 접수하면서 조계의 역사는 끝을 맺었다.태평양전쟁과 함께 경성과 상하이는 일본의 영토가 되었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내부 속의 외부로 자리잡고 있었다. 일본은 서구 열강과의 전쟁도 전쟁이었지만, 내전에도 상시 대비해야 했다. 전쟁 동안 경성과 상하이는 내부이면서도 동시에 외부로 존재하고 있었다.상하이에 살았던 장아이링은 1943년 ‘봉쇄’라는 소설 속에 식민지 도시가 처한 상황을 재현했다. 이 소설은 상하이 공습 시기의 어느 전차 위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루고 있다. 공습으로 인해 봉쇄를 알리는 종소리가 땡땡 울리자 소심한 남자가 원래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한 여성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들은 점차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 가능성까지 얘기하게 된다. 몇 시간 후 공습이 해제되고, 전차는 다시 출발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는 원래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녀는 이를 통해 깨닫게 된다. “봉쇄 순간의 모든 일들은 발생하지 않은 것과 같았던 것이다. 상하이 전체가 잠에 빠져 들고, 말도 안 되는 꿈을 꾼 것이다.”이 소설은 어쩌면 전쟁 전 식민지 도시가 이룩한 근대적 발전이 꿈과 같은 것임을 알려주는 알레고리처럼 느껴진다. 경성과 상하이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식민본국인과 피식민지인과 같이 대립을 실체화하는 공간으로 분할되어 있었다.이러한 분할 또는 이항대립은 잘못된 관념이 만들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지만 엔블록으로 구체화되었고, 엔블록은 다시 태평양전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주변을 분할하여 다시 중심과 주변을 만드는 일이나, 중심을 분할해 이것을 다시 중심과 주변을 만들려는 이유는 동일한 이유에서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그것은 중심이나 주변이 충족할 수 없는 욕망의 덩어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데리다는 이렇게 말한다. “중심은 현전적 존재자의 형태로 사유될 수 없다는 것, 중심은 자연적 장소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 중심은 고정된 장소라기보다 어떤 기능이며 기호의 대체가 무한히 일어나는 일종의 비장소라는 것”이다.중심으로 인해 주변이 생겨나고 주변은 중심의 영향을 받게 된다. 중심은 주변을 동질화시키려는 제스처만 취할 뿐 결코 동질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 중심에서 벗어날 때 억압도 배제도 사라진다. 중심과 주변의 끊임없는 분할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고, 이런 비싼 대가를 치르고 세계는 ‘탈중심’의 가치를 존중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심과 주변을 나누려는 욕망은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로 세계의 한 편에 도사리고 있다.

2019-08-20

개의 질병

개의 질병 중에 가장 위험하며, 잘 알려져 있는 광견병은 동물과 사람사이에 전파되는 병원체에 의해 생기는 질병이다. 법정 전염병으로 분류되는 광견병에 의해 세계적으로 10분당 1명이 사망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는데, 사망자의 40%가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다.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사람이 물릴 경우 상처부위를 타고 침입한 바이러스가 가까운 신경을 타고 하루에 8~22㎜ 정도 뇌를 향해 이동하는데, 발열, 경련, 마비 증상을 일으키다가 발병 후 일주일 정도가 되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광견병에 감염된 개는 침을 많이 흘리고, 어두운 곳으로 숨으려고 하며, 물을 극히 싫어한다. 행동은 느리지만 닥치는 데로 무는 등의 난폭한 행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아직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어서 백신을 통한 예방접종이 최선의 예방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지자체별 유기견 보호소에 개들이 들어올 때, 광견병 초기인 개들의 감염여부를 객관적으로 판정할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할 것이다.바이러스로 인해 걸리는 질병 중 광견병에 이어 개의 치사율이 높은 질병은 개 디스템퍼이다. 디스템퍼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와 직접 접촉을 하거나 분비물과 배설물의 접촉으로 감염될 수 있다. 일주일 정도의 발열기간 후 2주일째가 되면 비강, 눈, 폐, 내장기관의 세포들에 심각한 상해를 일으킨다. 손상된 조직에 세균에 의해서 2차적 감염이 일어나는 것이 보통인데, 세균과 바이러스의 복합적인 감염은 부위에 따라 다양한 증상을 일으킨다.특히 디스템퍼 바이러스가 뇌조직에 감염된 경우 경련이나 떨림 등 신경증상이 나타나는데 뇌와 척수에 손상을 받을 경우 간질성 발작을 일으킬 수 있고, 심하면 사지마비를 일으킨다. 현재는 디스템퍼를 치료하는 약물은 없는 상태이며, 항생제는 2차적 세균감염을 막기위해 사용될 뿐이다. 디스템퍼도 백신을 통한 예방이 최선이다.갓 태어난 강아지나 이유기 이후의 강아지에게서 많이 발병하는 대표적인 접촉감염 질병은 파보바이러스 감염증이 있다. 심장근육에 기생하는 심근형과 장에 기생하는 장염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장염형이 일반적으로 많이 발생하므로 파보 장염으로 불린다.구토와 설사가 대표적 증상인데, 탈수증세에 의한 쇼크상태에 빠지고 심하면 죽게된다. 파보장염 또한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없기 때문에 백신을 통한 예방이 최선이다.민간요법으로 한의학에서 쓰는 대표적 지사제인 작약을 파보장염에 의한 설사가 심할 때 사용하여 효과를 보기도 하지만 근본적 치료방법은 아니다.개 심장사상충은 개의 심장 우심실이나 폐동맥에 기생하면서 최대 30cm까지 자랄 수 있는 기생충이다. 이 기생충은 마이크로필라리아라는 유충이 모기의 체내에서 성숙한 후 개에게 전염되는데, 이에 감염되면 심장에서 혈류의 흐름을 방해해 기침, 호흡곤란, 실신, 복수, 심부전증 등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다량의 유충에 감염된 경우 치명적 증상이 나타나지만 소량에 감염된 경우에는 대부분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일생을 보내기도 한다. 심장사상충은 사람에게도 감염될 수 있다.이동훈그 외에도 개들이 쉽게 감염되는 질병은 켄넬코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아데노바이러스 감염증 등이 있다. 또한 개는 피부병이 빈번한데 개의 피부는 사람의 피부층에 비해 얇은 편이고 털을 가지고 있어서 진균성 피부병, 습진, 개선충성 피부염, 알러지성 피부염 등 다양한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개가 건강한 피부를 가지기를 원한다면 매일 빗질을 해주고 좋은 세정제 등을 활용하여 한달에 한번 이상은 목욕을 해주는 것이 좋다.개들에게서도 사람에게 나타나는 당뇨병, 관절염, 골다공증을 비롯해 각종 암이 나타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들 중 사람과 유사한 자연발생적인 유전질병이 원숭이를 제외하면, 개들에게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함께 살아가는 반려견들의 질병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사람의 질병원인도 밝힐 수 있게 되므로 반려견 질병연구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반려견의 질병연구와 동물의약품 연구의 경쟁력을 갖춰나가는 정책을 고민해볼 시기이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8-20

태종은 윤돈을 파직했다 김문에게 소주를 많이 권하여 죽게 한 때문이다

주량보다 술을 많이 마시는 일. 우리는 과음(過飮)에 대해서 관대하다. 요즘 현상이라고? 아니다. 뿌리가 깊다. 술은 두 종류다. 발효주(醱酵酒)와 증류주(蒸溜酒)다. 과일, 곡물을 발효시킨 것이 발효주다. 자연생태계에서도 생긴다. 알코올 도수는 19도 미만이다. 한국 막걸리, 일본 청주(사케), 유럽의 와인 등이 발효주다. 중국 고량주(高粱酒, 수수), 일본 고구마 소주(고구마), 프랑스 코냑(포도), 유럽의 각종 위스키(보리 등), 한국 안동소주(쌀)는 증류주다. 인위적으로 증류해야 얻을 수 있다. 도수가 높다. 대부분 40도 이상이다. 우리가 마시는 희석식(稀釋式) 소주는 주정(酒精)에 물을 더한 것이다. 주정은 에탄올(ethanol)이다. 증류주는 발효주보다 고급술, 비싼 술로 친다. 발효주를 만든 다음, 증류 과정을 한 번 더 거치기 때문이다. 곡물, 과일로 발효주를 만든 다음, 증류한다. 곡물 소비도 심하고 술의 양도 줄어든다. 예나 지금이나 증류주는 비싼 고급술이다.술을 마시고 사람이 죽는다. 설마? 설마가 여러 사람 잡았다. 조선 시대 기록을 보면 퍽, 자주 ‘음주 사망사고’가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17년(1417년) 윤 5월 4일의 기사다. 제목은 ‘박강생, 윤돈을 파직하다. 김문에게 소주를 많이 권하여 죽게 한 때문이다’이다.수원 부사 박강생, 봉례랑(奉禮郞) 윤돈을 파직(罷職)하였다. 이 앞서 윤돈이 과천 현감에서 교대되어 서울로 돌아올 때, 박강생과 금천 현감 김문 등이 윤돈을 안양사(安養寺)에서 전별하였더니, 김문이 소주(燒酒)에 상(傷)하여 갑자기 죽었다. (중략) 헌부(憲府)에서 죄를 청하니, 임금이, “술을 권하는 것은 본시 사람을 죽이고자 함이 아니고, 인관(隣官)을 전별함도 또한 상사(常事)인 것이다.” 하고, 명하여 다른 일은 제외하고 파직하게 하였다.윤돈이 과천 현감으로 일하다가 서울로 전근한다. 인근 수령인 수원 부사 박강생과 금천 현감 김문이 전별연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문은 소주를 많이 마시고 상해서 죽는다. 이 죽음에 대해 사헌부에서 문제 삼는다. 태종의 대답이 재미있다. “설마 사람을 죽이려고 술을 많이 권했겠느냐? 벼슬아치들이 전별연을 여는 것도 늘 있는 일이다. 큰 잘못이 아니니 파직만 시키라”이다.태종도 호주(豪酒) 꾼이었다. 조선 초기 왕실은 술에 대해서 상당히 관대했다. 술 때문에 희생된 이들도 많았지만, 음주를 엄하게 금하거나 처벌했다는 기록은 없다.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의 집안은 모두 호주 꾼이었다. 술맛을 아니, 과다 음주에도 관대했다고 추정할 뿐이다. 진안대군 이방우(1354~1393년)는 조선 건국 이듬해 죽었다. 일설에는, 고려의 신하였던 진안대군이 아버지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반대했고, 1392년 조선 건국 후 황해도 해주와 고향 함흥에서 술을 마시다가 죽었다고 전해진다. 죽었을 때 나이 마흔 살. 불과 5년 전인 1388년, 별 탈 없이 사신단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아버지는 조선을 건국했고, 자신은 왕자가 되었다. 죽을 이유가 없다. 조선 건국 반대, 시대에 대한 불만으로 통음(痛飮), 술병으로 사망? 실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진안군이 술을 좋아했다. 날마다 마시더니 결국 소주를 마시고 병이 나서 죽었다”고 했다. 태종의 아들이자 진안대군에게는 조카인 양녕대군도 술에 대해서는 뒤처지지 않는다.세종 4년(1422년) 11월14일, 대사헌이 양녕대군을 탄핵한다. 죄목이 엉뚱하다. ‘소주를 마시게 해 사람을 죽게 했다’는 것이다.이제 재궁(梓宮)이 빈전(殯殿)에 계시온데, 일찍이 슬퍼하지 않고, 살림을 차리고자 하여(중략) 함부로 마을 사람을 불러서 돌을 실어다가 집을 꾸미었는데, 소주(燒酒)를 지나치게 먹여서 인명(人命)을 상하게 하니, (중략) “삼가 바라옵건대, 특히 유사(攸司)에 내리시어, 그 뜻에 있는 바를 국문(鞫問)하시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이해 5월10일(음력) 태종이 세상을 떠났다. 11월이면 아직 탈상도 하지 않았을 때다. 맏아들인 양녕대군은 ‘부모를 돌아가시게 한 죄인’으로 거친 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으며 근신해야 한다. 그런데 함부로 마을 사람을 불러 집을 지었다. 큰 죄다. 하물며 일하는 이에게 소주를 많이 권해서 죽게 했다.세종의 태도도 재미있다. 국문해야 한다고 탄핵하자 “윤허(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듬해인 세종 5년, 이번에는 대사헌 혼자가 아니라 문무관 2품 이상의 고위직들이 연대하여 양녕대군을 탄핵한다. 이 탄핵에서도 “소주로 사람을 죽게 했다”고 명기했다. 여전히 세종은 움직이지 않는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인 세종 14년(1432년) 7월의 기록에는, 세종이 양녕대군에게 “좋은 안주와 소주[宣醞, 선온]를 내렸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세종 15년 3월의 기록에는 세종대왕의 술에 대한 ‘속마음’이 나온다. 이조판서 허조가 “소주로 목숨을 잃는 이도 흔하니 술을 과하게 마시지 못하게 법을 세우자”고 건의한다. 세종이 대답한다. “비록(소주 마시는 일을) 굳게 금하더라도 그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조도 물러서지 않고 “그래도 법을 세우자”고 하니 세종이 마지못해 대답한다. “술을 경계하는 ‘주고(酒誥)’를 내리겠다”. 그뿐이었다.관대한 분위기 때문인지, 벼슬아치들은 꾸준히 음주 사고를 일으킨다.‘경차관(敬差官)’은 특정 임무를 띠고 지방으로 파견되는 임시직 관리다. 태종 4년 7월, 경차관 김단이 옥주(沃州, 옥천)에서 급작스럽게 죽는다. 사인은 ‘과다 음주’다. 한양을 출발, 경상도로 향하던 김단은 청주를 지나면서 소주를 과다하게 마셨다. 지방 관청에서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공식적인 ‘지응(支應)’이다. 아마 지응 자리였을 것이다. 김단은 청주에서 과음, 멀지 않은 옥주에서 죽는다.소주 때문에 패가망신을 당한 이는 고려 시대 김진(생몰년 미상)이다. 조선 후기 문인 낙하생 이학규(1770~1835년)의 ‘낙하생집_권20_동사일지’에 기록된 김진의 이야기다.“소주(燒酒)는 노주(露酒)다. 원나라 때 처음 들어왔다. 고려 신우 원년, 임금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소주를) 아낄 줄 모른다. 많이 마시면 재물을 잃는다. 앞으로는 소주를 비단, 금이나 옥같이 여겨 일절 금한다. 최영 전에 이르기를, 김진을 경상도원수로 삼았더니, 경상도 기생을 많이 모아, 무리와 밤낮으로 소주를 마셨다. 김진이 소주를 좋아하니 군중(軍中)에서 ‘소주도(燒酒徒)’라 불렀다. 마침내 왜구가 합포(마산)를 쳐서 불태우는데, 사람들이 소주도를 앞세워 왜구를 공격하라며 움직이지 않았다.(후략)”노주는, 소주가 마치 이슬같이 맑아서 붙인 이름이다. ‘신우(辛禑)’는 우왕을 이른다. 조선의 선비들은 우왕이 고려 왕통이 아니라 승려 신돈의 아들이라고 여겼다.우왕 원년에 이미 소주에 대한 경계문이 나온다. 몸을 상하기 전 재물을 먼저 잃는다고 했다. 소주를 금은보화같이 귀하게 여기고 앞으로는 금한다고 했다. 소주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김진이 경상도원수가 된 것은 불과 2년 후인 우왕 2년(1376년)이다.‘음주 도원수’ 김진은 처참하게 패배하고, 그 벌로 서민으로 강등된다. 김진은 창녕, 가덕도에서 귀양살이했다. 조정에서 다시 부르려 했지만, 직속 상관인 최영이 끝까지 반대한다. 이글에는 “소주가 몽골의 원나라에서 한반도에 전래하였다”고 했다. 조선 중기 문신, 유학자 이수광(1563~1629년)도 ‘지봉유설’에서 “소주는 원나라 때 시작되었다”고 했다. ‘원나라 전래설’은 다수설이다.소주는 아랍권에서 처음 발명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몽골의 원나라가 아랍의 ‘아라크’(Araq)를 배워서 고려에 전한 것이다. 소주는 한반도 개성, 안동, 제주도 등에서 처음 시작된다. 개성은 고려의 수도다. 원나라와의 교류가 잦았으니 소주 양조장도 많았다. 제주도는 말을 기르는 몽골 주둔지였다. 안동은 원나라의 일본 침략 시, 군수기지, 내륙집결지였다. 몽골은 개성-안동을 거쳐 마산 지역에서 일본 침략에 나섰다. 지금도 ‘안동소주’는 유명하다. ‘아라크’는 아랍어로 ‘땀’을 의미한다. 소줏고리로 소주를 내리면 마치 땀 같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지금도 안동 지방의 노인들은 소주를 ‘아래기’라고 부른다. 아랍어 ‘아라크’나 우리의 ‘아락주’와 비슷하다.재미있는 것은 소주 기원, 전래에 대한 ‘이설’이다.조선 후기 실학자 청장관 이덕무(1741~1793년)는 ‘청장관전서’에서 “소주가 원나라 때 전해졌다고 하나 그렇지 않다. 송나라 사람 전석이 이미 ‘섬라주는 소주를 두 차례 내린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두 차례 내리는 환소주가 있으니 섬라(暹羅)주와 같다. 오키나와와 (일본) 사츠마[薩摩] 의 소주는 포성주(泡盛酒)라 한다”고 했다.‘섬라’는 태국(SIAM)이다. ‘포성주’는 지금도 남아 있다. 소주는 기원전 3천 년에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원나라보다 훨씬 오래전이다. 청장관의 주장은 간단하다. 소주의 한반도 전래는 원나라 때인 12~13세기가 아니라 그 이전이라는 것이다. ‘원나라 전래설’이 다수설이지만 청장관의 주장도 무시할 바는 아니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8-19

도무지 잠들 수 없는 여름밤, 문득 내게 말을 걸어왔던 ‘책’들에 대하여

갑자기 내려 창가로 들이치는 비가 오히려 반가울 만큼, 불같은 여름 더위가 한창이다. 최근에야 집집마다 에어컨을 구비하고 있는데다가, 어디든 널려 있는 카페로 나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켜 놓고 시원하고 편한 의자에 앉아 있으면 여름 더위랄 것이 특별할 것도 없는 것 같다. ‘피서’라는 것이 1년 중에 꽤 큰 행사였던 시기에, 산으로 바다로 떠나거나, 물이 있는 곳에 모여 ‘납량회’ 같은 것을 열던 감각에 비해, 집에 가만히 있으면서 밀린 드라마를 보거나 ‘호캉스’를 즐기거나 하는 것처럼 더위를 피하는 일이 커다란 일이 아닌 것처럼 돼버렸다.사실, 인간이 쌓아올린 근대적인 문명이라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도록 하는 방향으로 급속도로 발전해왔다. 예전이라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거리를 비행기로, 기차로 연결하고, 더울 때 더위를 피할 수 있게 하고, 추울 때 추위를 피할 수 있게 하며, 시끄러움 속에서 소리를 사라지게 하고, 조용함 속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처럼, 인간이 갖고 있는 태생적인 감각을 보다 무디게, 혹은 편하게 바꾸어 왔다. 그것이 말하자면, 기계문명의 발전이 인간에게 제공해온 감각의 즐거운 퇴화였던 것이다.이러한 문명의 발전과 인간의 본래적인 감각의 변화 앞에서, 더울 때는 좀 더워야 하고, 추울 때는 추워야지, 같은 의견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꼰대스러운 것임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이 어디 태초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랴. 인간의 감각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니 말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고, 하루에 세 끼를 먹고 하는 감각 내지는 삶의 문화적 습관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점차 변화하여 우리는 또한 새로운 ‘자연스러움’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이처럼, 인간의 감각적 변화에 있어서 당연한 것이나 부당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예전에 존재했던 감각들이 사라져 가는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여름밤 낮에 다 소진되지 못한 열기가 공기 속에 남아 여전히 살갗을 파고드는 후텁지근한 감각 같은 것들은 일반적으로야 좋을 수 없는 감각이겠지만, 어떤 기억과 얽혀 있을 때, 그것은 전혀 싫지 않은 감각이 된다.내게 여름은 어린 시절 방학이면 언제나 찾아갔던 큰집의 기억과 뗄레야 뗄 수 없게 엮여 있다. 낮 동안 더운 줄도 모르고 돌아다녀 벌겋게 상기된 내 팔을 어루만졌던 할아버지의 서늘한 손길. 땀으로 끈적거렸던 등에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을 부어 등목을 했던 기억. 인근의 큰 도시로 진학하여 남겨진 사촌 형, 누나들의 책이 보관된 웃방에서 책들을 하나하나 열어보던 것이 바로 내가 갖고 있는 여름의 기억이다. 지금이라면 분명 책들보다도 그 위에 뽀얗게 내려 앉아 있었던 먼지가 더 신경 쓰였겠지만, 그때는 그 책 하나하나가 마치 미지의 어딘가로 막 떠나버릴 것만 같은 기차표처럼 보여 허겁지겁 하나, 둘 씩 뒤지느라 먼지 따위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당연히 이마를 따라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땀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확실히 어린 시절에는 무언가 하고 싶은 대상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과자를 먹을 때 손에 달라붙는 과자부스러기들이 신경 쓰여 정작 과자의 맛에는 집중하기 어렵지만, 어린 시절에는 손에 달라붙는 것 따위에 신경 써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인간이 어떤 대상에만 집중해서 모든 그 외의 것들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복잡한 세계 속 인간관계에 존재하지 않는 어린 시절의 특권인 것만 같다.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있어서 여름철의 ‘피서’라는, 더위를 피한다고 하는 행위는 물리적으로 차가운 것을 먹거나 접촉하여 열기를 내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그보다 더 집중할 거리를 만들어 더위를 잊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간의 감각이란 사실 단순하고 상대적이라, 덥다는 감각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온몸에서 느껴지는 더위의 신호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이지만, 그에 비해 더 집중할 만한 대상을 찾게 되면, 더위는 금방 잊어버릴 수도 있게 된다.책을 읽으면서, 또 무언가 즐거운 일을 하면서 더위를 피한다는, 지금 생각해서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옛사람들의 감각은 어쩌면 이와 같은 발로일지도 모른다. 더워서 견딜 수 없는 열대야의 밤을 지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입 안에 들어오는 얼음 한 조각일 수도 있고, 더위를 잊어버릴 만큼 집중할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좀처럼 더위를 견디기 어려운 여름밤, 책 속의 이야기가 내게 반가운 말을 걸어오는 순간, 나는 그 이야기 세계로 걸어 들어가 피부에 달라붙은 끈끈한 땀의 열기나 한참 전에 꺼진 선풍기 같은 다른 현실적인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문자가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시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대, 상상의 힘은 더욱 약화되고 있어 책을 매개로 하는 이야기 세계에는 좀처럼 집중하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그래도, 여전히, 더위를 견딜 수 없는 밤에 여전히 생각나는 책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꽤 다행한 일인 것 같다. 어떤 여름날 만큼은 TV를 켜거나 유튜브의 영상을 보기보다는, 수박 한 조각과 맥주 한 잔을 따라 놓고, 책을 읽고 싶은 날이 있는 것이다. 그런 날 만큼은 심오한 내용이 담긴 철학이나 역사에 관한 책이나 예술이나 문학에 관한 책이 아니라, 시리즈로 된 미스테리나 스릴러가 어울린다. 내친 김에 몇 편의 시리즈를 더 볼 수도 있고, 중간에 그만두고 잠을 청해볼 수도 있다.여름밤이라면 탐정의 현란한 추리에 압도되어 종종 밤을 새버리기 일쑤였던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나 사건과 추리 모두에서 극적인 상황을 제시해서 입을 벌어지게 만드는 길버트 체이스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보다는, 감정이입을 자극하는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경감 시리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플 시리즈가 추리소설의 팬들에게는 더 좋을 것 같다. 미스테리라는 장르의 특성상 머리를 쓰지 않는 경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언제나 타인의 상황 속에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열혈 형사 ‘매그레’ 경감의 뒤를 따라가는 일이나 옆집 아주머니처럼 수더분한 태도로 동네 곳곳을 누비는 ‘제인 마플’의 뒤를 따르는 일은 책을 계속 읽어나가는 것도, 중간에 그만두고 잠으로 빠지는 일에도 부담은 적다.다음날 해야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어 잠들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다면, 조금 긴 역사소설책에 손을 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첫 부분만 잘 넘기게 된다면, 눈을 감아도 천정에 책의 한 장면, 한 장면이 펼쳐지고 위기에 빠진 주인공의 운명이 궁금해지는 탓에 아마 쉽게 다시 잠들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사실 역사 소설이라면, 역시 한민족의 역사를 다룬 것들이 입에 맞는다. 홍명희의 임꺽정이나 황석영의 장길산처럼, 역사의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호쾌한 모험담을 다룬 것도 좋고, 사실 이제 와서 추천한다는 것이 새삼스럽지만, 이번 여름을 기회로, 조정래의 현대사 3부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이야기인 만큼 크게 어렵지 않게 소설 속에 펼쳐진 세계를 남김없이 내 머리 속에 담아낼 수 있다. 그 세계의 재료가 모두 내 머리 속, 내 경험에서 온 것인 만큼, 책을 읽고 내 머리 속에 만들어진 세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문자로 가득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게, 영화를 보는 것과는 다르다. 저기 내 바깥에 존재하는 스크린에 영사된 영화가 오직 감각만으로 수용 가능한 유사 현실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책 속에 존재하는 세계는 어느 것이나 독자가 그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각적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고단함 때문에, 책읽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리라.어쨌거나, 여름밤은 그렇게 흘러간다. 누군가는 여름밤을 빨리 보내고 싶어서, 누군가는 이 여름밤을 쉽게 보내고 싶지 않아서 못 다 읽은 책을 펴든다. 비록 몇 장 읽지 못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하면서도 쉽게 책을 아예 덮지는 못하는 것은 분명 아직 어딘가에 그리운 무엇인가가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여름밤은 흘러간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08-19

님비 vs 핌피

님비(NIMBY)는 Not In My Back Yard라는 영어 알파벳의 각 단어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다. 쓰레기 매립장이나 소각장, 산업폐기물 처리장 등 혐오시설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설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역이기주의를 지칭한다. 이런 현상은 공공정신이 약화됨에 따라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이와 반대로 지역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체육경기장 시설이나 각종 대형사업을 적극 유치하려 하는 현상은 핌피(PIMFY : Please In My Front Yard)라고 불린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님비와 핌피 현상이 극도로 심화되어 공공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되는 등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최근 님비와 핌피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례로 네이버 데이터센터가 대표적이다. 논란은 네이버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총 5천400억원을 들여 약 13만2천230㎡ 규모 데이터센터를 2023년까지 완공할 계획을 밝히면서부터 시작됐다. 전자파 및 오염물질 발생 등을 우려한 인근 주민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네이버는 지난 6월13일 건립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그러나 용인 주민 반대 이후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네이버가 제2 데이터센터 부지 공개 모집에 돌입하자 전국 지자체에서 ‘러브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부지 공개모집에 경기, 인천, 수원, 전남도(해남/순천), 포천, 새만금, 평창 등 각지에서 신청이 밀려들었고, 심지어 반대했던 용인조차 다른 부지를 제안했다. 데이터센터는 일자리 창출 및 관련 IT기업의 투자 유치, 세수 증대 등의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낼 것이란 기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란 평을 들었다. 실제로 네이버는 최근 “제2 데이터센터 부지 공개 모집에 전국 지자체 및 민간사업자 137곳이 1차 의향서를 냈으며, 접수된 최종제안서는 96개”라고 밝혔다. 네이버는 제안 부지에 대해 서류 심사 및 현장 실사 등을 거쳐 9월 말까지 우선협상부지를 선정할 계획이다.경주시가 최종 유치한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전에서 벌어진 낯뜨거운 님비와 핌피논란이 재연되는 모습에 입맛이 씁쓸해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8-19

극일(克日)로 가는 길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반일과 친일, 항일과 극일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 논쟁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이성과 감성이 뒤섞여 있다. 게다가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겨냥해서 이 논쟁에 정치공학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는 모두 하나같이 극일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 인식과 방법에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그렇다면 우리는 한일 경제전쟁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쟁 당사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손자병법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했다. 일본의 경제력은 세계 3위이고 한국은 11위로서 GDP가 우리의 3배를 넘는다. 인구규모·경제기반·부채 대 자산비율·첨단기술능력 등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있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이것은 강대국인 일본과 중견국인 한국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경우 그 피해는 일본보다 우리가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불편한 진실’은 우리의 극일전략이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이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공영방송인 KBS 앵커가 “이 볼펜은 일제가 아닙니다”라고 하자 KBS 노조가 “공영방송으로서 경솔하고 선동적이다. 방송국에 고가의 일본 장비가 많다고는 왜 밝히지 않는가”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서울 중구청이 1천100개의 ‘No Japan’이라는 반일 현수막을 걸자 시민들은 구청이 주도하는 감정적 반일운동의 부적절성을 강력히 비판함으로써 바로 철거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극일은 말이나 선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반일의 가슴’은 뜨거워도 ‘극일의 머리’는 냉철해야 한다.‘극일’은 ‘과거의 시제(時制)가 아니라 미래의 시제’이다. 따라서 극일의 올바른 방향은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미래전략의 모색이어야 한다. 우리가 ‘일본이 자행한 과거사’를 문제삼은데 대해서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의 미래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역사는 국제분쟁에서 승리한 나라는 언제나 미래를 먼저 준비했던 강대국이었음을 가르쳐 준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매우 비현실적인 환상을 주장하고 있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단숨에 일본을 이긴다는 발상은 놀라울 뿐이다. 정부는 이념이 아니라 실용의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첨단기술력을 배양함으로써 ‘아름다운 보복’을 준비해야 한다.극일의 성공여부는 선거와 권력만 생각하는 ‘선동적 정치꾼들’이 아니라 그들을 감시·감독하는 ‘이성적 시민들’에 달려 있다. 최근 성숙한 시민들의 극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정치꾼들의 잘못을 일깨워주고 있음은 ‘불행 중 다행’이다. 민주당의 ‘한일갈등이 총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보고서를 접한 시민들은 경제전쟁마저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느냐고 꾸짖고 있다.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다고 발표하던 날 긴급국무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일본에 다시는 지지 않는다”고 격분하던 대통령이 이제 “감정적 대응은 안 된다”고 말을 바꾸게 된 것도 지식인의 비판과 유권자의 힘이다.정부가 경제문제를 정치이념으로 극복하려고 한다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경직된 이념’에 매몰되면 ‘살아서 움직이는 경제’를 따라잡을 수 없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말한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는 충고는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에게도 해당되며, 대통령 자신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2019-08-19

원화가치 하락의 근본적 이유

김학주한동대 교수원화의 가치 하락이 심상치 않다. 한국인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자원이 부족해서 수입 의존도가 높은 가운데 석유를 포함한 해외 원자재를 비싸게 사다 써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해외 여행도 부담스러워진다.많은 이들이 지금의 원화가치 하락을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따른 여파로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이 가까운 장래에 해소될 수 있을까?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는 9월 1일부터 실시 예정되었던 3천억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대해 일부는 12월 15일로 연기시켰고, 일부 제외된 품목도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내년 말 대선을 앞두고 이제부터는 ‘끝내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즉 성과를 챙기기 위해 더 이상의 갈등보다는 타협의 수순에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다.과연 그럴까? 그 동안 트럼프가 중국과의 갈등 유발을 통해 얻은 성과를 계산해 볼 때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 경쟁자들에 뒤쳐지는 그의 지지율을 뒤집기는 턱 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대선까지 중국과 대결구도를 유지하며 포퓰리즘에 의존하는 편이 트럼프에게 유리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트럼프를 민주당이 비난하지 못한다. 고된 삶을 사는 미국인들이 불평할 수 있는 창구를 포퓰리즘이 만들어주고 있는데 거기에 잘못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간 교역에 차질이 생기는 한 한국기업이 해외에서 달러를 벌어 오기는 힘든 상황이 된다.그런데 원화가치 하락에는 이런 갈등보다 더 근본적 요인이 있다. 세계적으로 경제 저성장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환율을 결정하는 요인이 해당국의 성장 잠재력보다는 “현재의 상태를 얼마나 버티고 유지할 수 있느냐?”, 즉 지속성(sustainability)으로 평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한 국가의 지속성을 평가하기 위해 보유 자원을 본다. 예를 들어 천연자원, 인적자원, 모아 놓은 유보 자산, 일본처럼 다른 나라의 자산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등이다. 한국은 뭐가 있을까? 달러를 벌어 올 수 있는 인적자원뿐 아닐까? 문제는 저성장 속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해야 할 동기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펀드 매니저들 가운데 똑똑한 많은 젊은 친구들이 집으로 갔다.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 둔 것이다. “예전처럼 펀드가 성장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의욕이 있겠는가?” 또는 “왜 남의 자산을 운용해 줘야 하는가? 내 자산을 굴려도 밥벌이가 되는데… 차라리 삶의 질을 찾겠다”는 대답을 한다.과거 성장하던 시절 한국의 잘 교육된 인적자원은 꿈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저성장 환경이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렸다. 더 이상 한국은 신나지 않는 동네가 되어 간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내국인 외국인 가릴 것 없다. 이것이 원화가치 하락의 근본 요인이다.과거 원화가치 하락의 수혜주가 뭐냐고 물어보면 얼른 수출주를 연상했다. 그러나 이제는 저성장 기조 속에서 그런 성장을 위한 도구보다는 차라리 해외자산을 직접 본다. 또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익의 안정성을 높게 평가한다. 따라서 원화절하의 진정한 수혜주를 배당지급능력이 있는 해외 필수소비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콘텐츠 업체들이다. 또한 친환경을 포함하는 사회책임 펀드, 즉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관련주도 대안으로 제기된다.심지어 술, 담배, 도박, 마약 등 중독성이 주는 이익의 안정성까지 탐을 내는 펀드가 늘어 날 정도다. 이런 죄악과 관련된 주식(Sin Stock)을 과거 공익펀드에서 모두 팔았었는데 이제 다시 사고 있다. 그 만큼 투자자들은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확실한 것에 굶주려 있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이런 환경에서 불리하다.

2019-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