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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원화가치 하락의 근본적 이유

김학주한동대 교수원화의 가치 하락이 심상치 않다. 한국인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자원이 부족해서 수입 의존도가 높은 가운데 석유를 포함한 해외 원자재를 비싸게 사다 써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해외 여행도 부담스러워진다.많은 이들이 지금의 원화가치 하락을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따른 여파로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이 가까운 장래에 해소될 수 있을까?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는 9월 1일부터 실시 예정되었던 3천억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대해 일부는 12월 15일로 연기시켰고, 일부 제외된 품목도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내년 말 대선을 앞두고 이제부터는 ‘끝내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즉 성과를 챙기기 위해 더 이상의 갈등보다는 타협의 수순에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다.과연 그럴까? 그 동안 트럼프가 중국과의 갈등 유발을 통해 얻은 성과를 계산해 볼 때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 경쟁자들에 뒤쳐지는 그의 지지율을 뒤집기는 턱 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대선까지 중국과 대결구도를 유지하며 포퓰리즘에 의존하는 편이 트럼프에게 유리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트럼프를 민주당이 비난하지 못한다. 고된 삶을 사는 미국인들이 불평할 수 있는 창구를 포퓰리즘이 만들어주고 있는데 거기에 잘못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간 교역에 차질이 생기는 한 한국기업이 해외에서 달러를 벌어 오기는 힘든 상황이 된다.그런데 원화가치 하락에는 이런 갈등보다 더 근본적 요인이 있다. 세계적으로 경제 저성장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환율을 결정하는 요인이 해당국의 성장 잠재력보다는 “현재의 상태를 얼마나 버티고 유지할 수 있느냐?”, 즉 지속성(sustainability)으로 평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한 국가의 지속성을 평가하기 위해 보유 자원을 본다. 예를 들어 천연자원, 인적자원, 모아 놓은 유보 자산, 일본처럼 다른 나라의 자산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등이다. 한국은 뭐가 있을까? 달러를 벌어 올 수 있는 인적자원뿐 아닐까? 문제는 저성장 속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해야 할 동기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펀드 매니저들 가운데 똑똑한 많은 젊은 친구들이 집으로 갔다.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 둔 것이다. “예전처럼 펀드가 성장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의욕이 있겠는가?” 또는 “왜 남의 자산을 운용해 줘야 하는가? 내 자산을 굴려도 밥벌이가 되는데… 차라리 삶의 질을 찾겠다”는 대답을 한다.과거 성장하던 시절 한국의 잘 교육된 인적자원은 꿈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저성장 환경이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렸다. 더 이상 한국은 신나지 않는 동네가 되어 간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내국인 외국인 가릴 것 없다. 이것이 원화가치 하락의 근본 요인이다.과거 원화가치 하락의 수혜주가 뭐냐고 물어보면 얼른 수출주를 연상했다. 그러나 이제는 저성장 기조 속에서 그런 성장을 위한 도구보다는 차라리 해외자산을 직접 본다. 또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익의 안정성을 높게 평가한다. 따라서 원화절하의 진정한 수혜주를 배당지급능력이 있는 해외 필수소비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콘텐츠 업체들이다. 또한 친환경을 포함하는 사회책임 펀드, 즉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관련주도 대안으로 제기된다.심지어 술, 담배, 도박, 마약 등 중독성이 주는 이익의 안정성까지 탐을 내는 펀드가 늘어 날 정도다. 이런 죄악과 관련된 주식(Sin Stock)을 과거 공익펀드에서 모두 팔았었는데 이제 다시 사고 있다. 그 만큼 투자자들은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확실한 것에 굶주려 있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이런 환경에서 불리하다.

2019-08-19

집착은 미생지신(尾生之信)의 우(愚)를 범한다

강희룡 서예가장자, 도척편(莊子, 盜跖篇)에는 춘추시대 노나라의 미생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용인즉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렸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소나기가 내려 물이 밀려와도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다는 기록이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 만들어진 고사이다. 사기 소진열전(史記, 蘇秦列傳)과 전국책(戰國策), 회남자(淮南子) 등에도 보이는데 소진만 미생의 행동을 신의로 보고 다른 곳에서는 모두 이 이야기를 작은 명분에 집착하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예로 들고 있다.전국시대의 종횡가로 이름이 난 소진은 연나라의 소왕을 설파할 때에 이 이야기를 예로 들어 자신의 신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장자는 도척편에서 공자와 대화를 나누는 도척의 입을 빌어 미생의 융통성 없고 어리석음을 다음과 같이 통박하고 있다.‘이런 인간은 제사에 쓰려고 찢어발긴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 없다. 쓸데없는 명분에 빠져 소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기니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전국책에서는 미생과 같은 신의는 단지 사람을 속이지 않는 데 불과할 따름이라고 하고, 회남자에서도 미생의 신의는 차라리 상대방을 속여 순간의 위험을 피하고 후일을 기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 송양지인(宋襄之仁)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사람들 삶의 과정이 대체적으로 겉으로 꾸밈이 많은 오늘날 미생과 같은 행동은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이나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되는 잠깐의 카타르시스는 될지 모르지만, 참다운 삶의 도리를 알고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큰 흉년 때 자신에게 혀를 찼다는 이유로 그가 주는 구호 음식을 거절하고 굶어 죽은 제나라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가 일단 사과를 했으면 그냥 받아먹었어도 되는데 너무 소심하게 예의를 따졌다고 증자가 부정적 평가를 내린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신의와 예의와 명분은 유가의 절대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로 흘러 중용의 도를 해치는 것은 크게 경계했다.공자는 ‘군자는 무조건적으로 고집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오직 그 상황에서 가장 의로운 선택인가가 판단의 전제였을 뿐이었다. 예기 단궁(檀弓)에 보이는 고사인데, 이 고사는 두 가지 가치를 보여준다. 하나는 아무리 중요한 원칙이라도 상황에 맞게 권도(權道), 즉 융통성을 부려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현실에 타협하거나 비굴하게 굴지 않는다는 것이다.지금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전례 없이 큰 갈등과 고립된 외교를 겪고 있다. 대통령이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거듭 강조한 ‘평화경제론’과 이례적으로 통일의 시점을 제시하고, 통일 이후 한국의 밑그림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 대북 메시지를 던진 지 불과 24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북한은 문 대통령을 향해 심한 조롱 섞인 말 폭탄과 미사일 발사로 답했다.‘남한 패싱’을 노골화한 북한이 남북 관계의 창구를 닫고 저 혼자만의 길을 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풀리지 않고 있는 일본과의 경제대립이 그렇고, 북한과의 관계도 하나도 화해의 진전 없는 현실에서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세계 경제 6위권이 될 것이라는 환상과 ‘평화경제’라는 모호한 단어를 국민 앞에 들고 나와 자화자찬하는 정부와 여당도 그렇다. 미생지신이나 송양지인 같은 우매한 생각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을 도탄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다.시리아 난민을 돕기 위한 TV 광고가 나온다. 영화 ‘국제시장’속의 자유를 향해 남쪽으로 향하는 흥남부두 피난민의 처절한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2019-08-19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나는 산 정상에서 내 위로 번개가 먹구름 가운데 반짝이며 갈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초록빛 숲, 평야, 강과 호수 마을들을 보았습니다. 세이렌의 유혹하는 노래들을 들었으며 양치기의 굵은 고동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악마들의 날개 끝을 만져보았습니다.당신의 책을 통해서 나는 끝도 없는 절망의 수렁에 빠진 적도 있고 기적을 행하기도 했으며 한 마을을 불태우고 살육했고 새로운 종교를 설파했으며 전 세계를 정복하기도 했습니다. 책들을 통해 나는 지혜를 얻었습니다.고금에 걸쳐 인간들이 만들어낸 불안한 사상들이 내 머릿속에 작은 덩어리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 누구보다도 내가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략) 당신들이 살아가면서 의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나의 진정한 경멸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내가 한때 천국의 축복처럼 여겼던 200만 루블의 재산을 포기할 것입니다. 재산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나는 계약의 규칙을 어기기 위해 정해진 마감 시간 5분 전에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변호사는 약속대로 11시 55분에 탈옥을 감행하고 은행가는 쪽지를 금고에 넣어 보관하는 것으로 체호프 단편 ‘내기’는 여운을 남긴 채 끝납니다.책을 통해 사람은 변합니다. 마르틴 발저는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젊은 변호사의 15년을 묘사하듯 이렇게 말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단단하든 부드럽든 단어들의 껍질을 깨고 그 단어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 응축되어 있는 의미가 자신의 가슴속에 폭발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책은 생각을 서서히 변화시킵니다. 일정 임계량을 넘는 순간 젊은 변호사처럼 폭발적인 진보가 일어납니다. 그 임계점은 1천 권일 수도, 3천 권일 수도, 1만 시간 의식적 연습일 수도 있습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삶을 꿈꾸어 봅니다. 책으로 대화하고 책으로 교감하고 성장하는 빛나는 나날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책이 있는 구석방에 나를 유폐시키고 진정한 삶의 가치와 더불어 행동하는 양심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그대 용기에 큰 박수를 드립니다. 세상 도처에서 In omnibus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requiem quaesivi, 마침내 찾아낸, et nusquaminveni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nisi in angulo 나은 곳은 없더라 cum libro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00E0 Kempis/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9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눈물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정치학8월 14일 ‘기림의 날’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자는 날이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실명 증언한 날을 기념하여 2017년 12월 이날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다. 지난해에 이은 기념식 행사 장면을 보니 여성가족부 장관과 정치인들이 참석하고 아직 생존해 있는 피해 할머니도 여러 명 참석하였다. 낯익은 얼굴의 이용수 할머니가 소복차림으로 앞줄에 앉아 눈물 짓는 모습도 보였다. 일본 군속명부에 정식 등재되어 있는 김복동 할머니도 올해 세상을 떠났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로 한일 관계가 뒤엉킨 상황에서 치러진 이번 기념식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남기고 있다.일본군 피해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대구에 살아 계신다. 그는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 없는 위안부 합의는 무효라고 선언하면서 활발한 인권 운동을 펼치고 계신다. 1927년 생 92세인 그는 아직도 수요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도쿄뿐 아니라 뉴욕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아베 정권의 부당성을 알리고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전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한·중, 베트남 등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대한민국의 등록된 피해자는 238명이며, 2019년 5월 현재 21명이 생존해 있다.일본은 아직도 위안부의 강제 동원은 없었다고 억지를 쓰고 있다. 지난 7월초 연해주 학술행사에서 이용수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의 증언은 아베 정권의 주장을 근본적으로 뒤집고 있다.“나는 1928년 12월 13일 생입니다. 우리 나이로 92살입니다. 나는 15살인 1943년 일본군에 끌려가 대만 신숙에서 3년간 고통을 겪다 해방 후 1946년 가까스로 풀려난 사람입니다. 그 때를 다시 기억해 봅니다. 내가 끌려간 그날 밤 여자 아이와 군인이 나의 방 뒤의 봉창으로 들여다보며 나오라고 손짓했습니다. 그때 나는 장난하는 줄 알고 몰래 마루에 나와 앉아 있었는데 여자 아이와 군인이 갑자기 들어닥쳤습니다. 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 5명과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배를 탔습니다.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그날 밤 갑자기 끌려간 것입니다. 어린나이에 나는 너무 몰랐습니다. 그 길로 끌려간 곳이 대만 신죽(新竹)의 일본 특공대부대인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대만 일본 가미가제 부대였습니다. 그곳에서 군인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고 다리를 칼로 치고 죽이고 전기고문도 당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피해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고 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문제가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로 연결되고 있으니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극우의 아베 정권은 한국 피해자들의 사죄와 배상 요구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억지를 쓰고 있다. 아베 측근들은 강제 위안부는 한 명도 없으며 심지어 한국에는 본래 기생문화가 있었고 위안부들은 경제적 이득을 위해 종군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아베는 2015년 박근혜 정권 말기 한일 간의 위안부 문제의 ‘불가역 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은 외교 관례를 어겼다고 비난한다. 과거의 고노 담화를 뒤집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일 간의 합의를 정부가 파기한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제 징용의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처럼 국가 간 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법적 구제 절차는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법의 상식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할머니들의 동의와는 무관한 10억 엔짜리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해 버렸다. 시민들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27년간 1천400회의 수요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민족적 반일 감정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양식있는 시민들까지 이에 동조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지금이라도 위안부 문제에 관한 진정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한일 간 화해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2019-08-18

다산(茶山)의 깊이 읽기

김현욱 시인휴식(休息)이란 멈추는 것이다. 쉼이란 내려놓는 것이다. 방학이 놓을 방, 배울 학(放學)이듯이. 영어 베케이션(vacation), 프랑스어 바캉스(vacace)의 어원은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이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해제, 비움’을 뜻한다. 휴가(休暇)란 나무에 기대어 사람이 쉬는 모양이다.나무에 기대어 쉬는 것도 좋지만, 폭염에 가장 좋은 휴가는 시원한 도서관에서 쉬는 것이다. 그동안 못 봤던 책과 잡지들이 나무처럼 곁에 있다. 방학동안 포은도서관에 사람들이 붐비니 반갑다.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은 더 반갑다.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지만, 아이와 어른들이 붐비는 도서관은 내 맘을 기쁘게 한다. 한 나라의 미래는 도서관에 있다. 교육감과 단체장들은 공공도서관 투자만큼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휴가 중에 도서관에서 읽은 책 중에 정민 교수의 다산의 지식경영법이 가장 볼 만 했다. 정민 교수는 다산을 조선 최고의 지식경영자라고 칭했다. 다산이 남긴 저서는 500여권에 이른다. 시시껄렁한 책이 아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후손에게 끊임없이 회자되는 명저들이다. 세계사를 뒤져봐도 다산보다 뛰어난 저술가는 찾기 쉽지 않다. 도대체 다산은 어떤 방법으로 그런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일까?다산의 지식경영법에 따르면, 다산은 정독(精讀), 질서(疾書), 초서(抄書) 세 가지 독서법을 실천했다고 한다. 정독은 낱말과 문장, 전후 맥락을 아주 세세하게 뜻을 새겨가며 읽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 근본을 알 때까지 밝히는 것을 뜻한다. 다산은 아들 학유에게 그 방법을 편지로 전했다.“예를 들어 『사기』의 「자객열전」을 읽는다고 치자. ‘조(祖)를 마치고 길에 올랐다’라는 한 구절을 보고 “조가 뭡니까?”하고 물으면, 선생님은 “전별할 때 지내는 제사다”라고 하실 것이다. “하필 할아버지 조 자를 쓰는 것은 어째서인가요?”라고 물으면, 선생님은 “잘 모르겠다.”고 하시겠지. 그런 뒤에 집에 돌아오거든 사전을 뽑아다가 조 자의 본래 의미를 살펴보아라. 자전에서 조(祖) 자를 찾아보면 뜻밖에 ‘길제사 지낼 조’라는 뜻이 나온다.풀이를 찾아보면 “고대에 먼 길을 떠날 때 행로신(行路神)에게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도 할아버지 조 자를 쓰는 까닭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여기서 한 번 더 나가야 한다. 더 자세히 찾아보면, 먼 옛날 황제의 아들 누조(累祖)가 여행을 좋아하다가 길에서 죽었다는 기록과 만나게 된다. ‘조(祖)’란 조상이 아니라 바로 누조의 귀신을 위로하기 위해 생긴 제사임을 그제야 알게 된다. 마음이 후련해진다.또 『통전』이나 『통지』, 『통고』 등의 책에서 조제(祖祭) 지내는 예법을 찾아보고, 한데 모아 차례를 매겨 책을 만든다면 길이 남는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만 한다면 전에는 한 가지 사물도 모르던 네가 이날부터는 조제의 내력을 훤히 꿰는 사람이 될 것이다. 주자의 격물(格物)공부도 다만 이와 같았다. 오늘 한 가지 사물을 궁구하고, 내일 한 가지 사물을 캐는 것도 또한 이처럼 시작하는 것이다. 격(格)이란 밑바닥까지 다 캐낸다는 뜻이다. 밑바닥까지 다 캐지 않는다면 또한 유익되는 바가 없다.”(학유에게 부침(寄遊兒) 9-40)세세하게 뜻을 새겨가며 읽다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그 근본을 알기 위해 밑바닥까지 다 캐내는 독서법이 바로 ‘정독, 깊이 읽기’이다.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요즘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장문 읽기를 버거워한다. 단문과 축약, 이모티콘이 횡행하는 시대에 깊이 읽기는 울림이 크다. 학교나 도서관에서 다산의 깊이 읽기를 실천하는 방법은 ‘인문고전 낭독교실’을 여는 것이다.

2019-08-18

15년 삶을 건 내기

독방에 홀로 있는 변호사는 결국 책을 손에 잡기 시작하죠. 첫해에는 가벼운 소설들을 읽습니다. 2년차에 접어들면서 고전을 읽기 시작합니다. 5년째에는 다시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입에 대지 않던 와인을 요청합니다. 6년 반이 흐르자 그는 외국어와 철학, 역사를 공부합니다. 10년이 지나자 변호사는 일 년 내내 신약 성서만을 읽습니다. 마지막 2년 동안 그는 온갖 종류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습니다. 자연과학, 고전문학, 화학, 의학, 심리학, 생리학, 천문학, 물리학, 역사 등 인간 지성이 닿을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책을 섭렵합니다.그사이 은행가는 부주의로 인해 재산을 거의 날립니다. 15년이 다가오자 초조해진 은행가는 마감 하루 전에 변호사를 죽이고 200만 루불의 채무에서 벗어날 흉계를 꾸밉니다. 감시자의 눈을 피해 조용히 변호사의 방에 잠입한 은행가는 뼈만 남은 채 앙상하게 말라 꼼짝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잠들어 있는 그를 발견합니다. 훅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변호사를 침대에 옮긴 후 베개로 눌러 살해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보입니다. 범행을 저지르려는 순간 은행가는 책상 앞에 놓인 작은 쪽지 하나를 발견하지요.“내일 정오가 되면 나는 자유다. 그러나 나는 마감 5분 전에 이곳을 떠날 것이다. 지난 15년의 시간을 통해 나는 당신들이 추구하는 물질적 세계의 모든 것을 경멸하게 되었다. 나는 내 삶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뀐 것을 입증하기 위해 200만 루블을 내 자유 의지로 포기함으로써 증명해 보이련다.”15년 책 읽기를 통해 변호사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은행가는 눈물 흘리며 그의 이마에 키스하고 그곳을 빠져나갑니다. 변호사가 남긴 쪽지 내용은 안톤 체호프의 명문장으로 가득합니다.15년간 나는 세상과 삶에 대해 열정적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비록 땅이나 사람을 직접 느끼지는 못했지만, 당신이 준 책들을 통해 나는 향기로운 와인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숲에서 사슴과 멧돼지를 사냥했으며 여인들을 사랑했습니다.시와 천재적인 영감의 마술에 의해 창조된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구름처럼 신비롭고 영묘했으며 밤마다 나를 찾아와서 정신을 자극하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내 귀에 들려주었습니다. 책을 통해 나는 엘부르스 산맥과 몽블랑 산을 올랐으며 거기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저녁에는 태양이 황금색과 진홍색으로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산봉우리를 뒤덮는 것을 감상했습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8

제2의 천안문 사태

1978∼1992년 중국의 최고 실권자였던 등샤오핑은 오늘날 중국의 근대화를 이룬 정치 지도자다.‘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흑묘백묘론을 앞세워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다.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 인민이 잘 살면 그것이 최고라는 사상으로 중국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이다.그의 개방 정책은 오늘날 중국을 G2 국가로 성장시킨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그는 긍정적 지도자로 평가받는다.그러나 그의 개방 정책이 한편으로 중국의 민주화 열기를 끌어들였고, 이를 진압하는 선봉에 그가 섬으로써 그는 긍정과 부정의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인물로 남아 있다.그의 개방 정책으로 일어난 중국에서의 민주화 요구는 급기야 천안문 사태로 발전한다.부정부패 척결과 민주화를 요구한 수십만 군중을 향해 등샤오핑은 전차와 장갑차를 동원, 진압에 나선다. 무차별적으로 쏘아 댄 최루탄과 실탄 등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1989년 당시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사망자 200명 정도다.하지만 항간에서는 수천명, 영국정부의 외교문서를 인용한 언론 보도에서는 1만명이 넘는 사람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올해 6월로 중국의 천안문 사태는 발발 30년째가 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중국의 젊은이와 지식인에게 천안문 사건은 잊혀진 과거사일뿐이다.중국 정부가 빠른 경제성장에 집중하면서 중국인 머리에는 천안문 사태는 지워지거나 잘못된 민중 항거정도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공산당인 중국에서의 민주화는 여전히 미완의 숙제라 할 수 있다.송환법으로 촉발된 홍콩의 시위사태가 천안문 사태 30년을 기점으로 더욱 폭발하고 있다.중국 인민군의 홍콩 접경지 집결 등 중국 정부의 대응 움직임도 심상찮아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게 한다.중국으로 반환된 땅이라 하지만 홍콩의 국제적 위상은 여전히 자본주의 가치 존중과 인권의 보루라는 상징성에 있다.만약 만에 하나라도 무력진압이 진행되면 국제사회의 경제 질서는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홍콩경제가 예측불허의 충격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홍콩사태에 대한 중국의 접근 방식을 눈여겨보고 있다. 제2의 천안문 사태가 일어날까 봐서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8-18

‘조국 청문회’ 관전법

안재휘 논설위원차기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동네북 신세다. 야당이 벌떼처럼 일어나 오만 의혹들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까발리고, 이 나라 언론들이 피를 본 상어처럼 특종 경쟁에 돌입했다. 법무부 장관이 어디 만만한 자리이던가. 이 나라 법치를 온통 책임지는 행정부의 으뜸 자리이니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이상할 까닭은 없다. 하지만 지금 펼쳐지고 있는 따따부따는 가히 대선주자 후벼 파기 수준이다.결론부터 말하면 야당이 무슨 푸닥거리를 하든,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할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번 청문회도 결국은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로 끝날 가망이 높다. 언론이 경쟁적으로 벌이는 취재 경쟁은 결과적으로 조국을 도와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방주사를 놔주니 면역성을 기르는 데도 좋고, 청문회를 할 즈음이면 김이 다 빠져서 더 좋을 수도 있다. 민심을 돌아보니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강행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가 민정수석을 하면서 공직자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작업 한 번 제대로 못 한 무능 따위는 이미 까마득히 잊은 표정이다. 지금 시점에 오히려 관심은 과연 야당이 그동안 못 밝혀낸 중대한 하자 한줄기라도 더 찾아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대목이다.정말로 걱정되는 것은 제1야당을 비롯한 야당이 또다시 이 중차대한 청문회를 구닥다리 ‘호통’과 ‘어깃장’ 쇼로 마무리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다. ‘송곳 검증’이네, ‘메가톤급 폭로’네 하면서 빈 깡통이나 요란하게 두드리다가 종 치고 막 내리는 꼴이 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돌이켜보면, 국회에서 벌어진 인사청문회가 선진국의 수준에 닿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더욱이 제아무리 ‘부적격’ 딱지를 붙여도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돼 있는 제도하에서 국회 ‘인사청문회’는 유치한 ‘통과의례’처럼 돼버린 지 오래다. 왜 그럴까. 궁극적으로 국회 청문회가 민심에 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문위원들의 낮은 의식과 역량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청문회(聽聞會)에 쓰는 문자는 ‘들을 청(聽), 들을 문(聞)’자로 구성돼 있다. 영어로도 ‘히어링(Hearing)’이다. 그런데 우리의 국회 청문회를 보면 청문회가 아닌 문문회(問問會)로 끝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략 청문위원으로 나선 국회의원의 묻고 또 묻는 ‘원맨쇼’ 형태로 펼쳐진다. 어쩌다가 답변을 좀 하려고 하면 청문위원이 말을 끊고 시간이 없다고 윽박지른다. 물론 여기에는 청문위원에게 할당된 시간에 ‘답변시간’을 포함하는 결정적인 결점이 있다. 청문회의 본질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질문시간’만 할당해야 하는데, 왜 안 고치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야당이 ‘조국 청문회’를 또다시 관습대로 해나간다면 무조건 실패다. ‘어쨌든 임명될 것’이라는 예단을 전제로 청문회 자체를 보이콧 한다면 이야말로 하지하책(下之下策)이 될 것이다.조국 후보자에게 제기되고 있는 의혹은 사노맹 전력·사모펀드·동생의 위장 이혼과 편법 채무 문제 등 방대하다. 그러나 솔직히 야당이 결정적 허물을 밝혀내리라는 기대는 희박하다. 틀림없이 야당 청문위원들은 처음부터 흥분할 것이고, 중간에 논리가 부족하면 고함을 칠 것이고, 여차하면 파행으로 치달을 것이기 때문이다.풍부한 정보를 움켜쥐고 의혹의 내용을 조곤조곤 따져 물어 ‘듣고 또 들음’으로써 국민이 진실을 좀 더 알게 하는 모범적인 청문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 이번 청문회를 우리 그릇된 청문회 문화를 확실히 바꿔 낼 계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알고 물어야 한다. 답변을 들어야 한다. 목소리를 낮추어 짧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을 들을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국회 청문회의 혁신’을 바라는 국민의 희망이 이번만큼은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2019-08-18

희망경산의 내비게이션 ‘경산발전 10대전략’

최영조 경산시장우리는 지금 어느 지자체 할 것 없이 4차 산업혁명과 인구문제라는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경산이지만 지역 내 균형 발전과 통합, 도시의 정체성 유지라는 새로운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경산은 일찍이 1990년대 들어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기계금속, 전기전자, 자동차부품 업종의 기업들이 모이면서 ‘산업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산업단지는 2016년 3개 단지 356만㎡로 확대되었고 2022년까지 경산지식산업지구와 경산 4일반산업단지, 화장품단지 등의 조성이 완료되면 산업단지 1천21만㎡ 시대가 열리게 된다.지난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이 4차 산업혁명을 처음 의제로 제시하는 것을 보면서 자칫 머뭇거리다가는 뒤처질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지역의 미래를 고심한 끝에 나온 것이 ‘경산발전 10대 전략’으로 10개 대학의 11만 명의 창의 인력, 170여개 부설연구소, 1천21만㎡ 산업단지, 3천500여개 기업체 등의 지역 강점을 극대화해 경산의 미래를 열어가고자 하는 전략이다.경산발전 10대 전략은 희망산업 5대 전략과 희망정책 5대 전략으로 구성된다. 희망산업 5대 전략은 4차 산업혁명에 직접 대응하는 대책으로서 4차 산업혁명 선도도시, 청색기술 중심도시, 美-뷰티도시, 휴먼의료도시, 청년희망도시 등이다. 이를 위해 첨단 복합신소재산업 분야, 스마트자동차 분야, ICT 전자 분야, 소프트웨어 분야 등에서 4차 산업혁명 전략과제를 발굴하고 국책사업 유치를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그 결과, ‘탄소복합 설계해석 기술지원센터 구축사업’, ‘생활소비재 융복합산업(패션테크) 기반 구축사업’, ‘도심형 자율주행 트램부품/모듈 기반조성사업’ 등 핵심선도 사업들이 국책사업으로 선정되었다. 또 2016년부터 화장품산업을 역점을 두어 추진해 지역 내 화장품 기업을 지원하는 글로벌 코스메틱비즈니스센터가 내년 개소를 앞두고 있고, 여천동 일원에 15만㎡ 규모로 화장품 특화단지가 곧 착공될 예정이다.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선도 사업으로 게임·방송·만화 등의 콘텐츠산업을 역점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경북글로벌게임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게임산업을 지원하며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 양성사업, 웹툰 창작체험관과 전문교육을 통한 청년 일자리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산지구 등 명품 정주 여건과 문화생활 기반을 꾸준히 확충해 매년 3천명 정도의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그러나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 균형 발전과 통합이라는 또 다른 과제가 나타난다.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희망정책 5대 전략으로 착한 나눔도시, 행복건강도시, 창의문화도시, 중소기업경제 특별시, 스마트농업도시 등이다.나눔 문화의 의미 있는 지표의 하나인 ‘착한 가게’는 2009년 1호 가입을 시작으로 2018년 460호를 달성하였고, 올해는 25개소가 신규 가입했다. 지난 5월 ‘글로컬 6차산업 창업문화센터’가 개소하고 활력 넘치는 농촌 만들기 활동에 들어갔다. 이 센터는 6차 산업 창업을 지원하고, 지역의 다양한 농산물을 활용한 상품 개발 등 다양한 창업문화 조성에 앞장선다.압독국, 삼성현(원효, 설총, 일연), 자인단오제, 갓바위 등 경산의 역사문화도시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사업, 경산 센트럴파크 등 경산을 고품격 문화를 가진 역사문화도시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사업들도 힘써 추진하고 있다. 압독국 유적전시관은 2024년까지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은 역사와 문화 생태가 어우러진 다목적 복합 관광시설로 청소년들에게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함)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도시가 커지면 도시의 효율과 속도 즉, 사통팔달 도로망 역시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구도시철도 1호선 하양 연장 사업이 2022년 개통을 목표로 본격 추진되고 있다. 구미∼대구∼경산을 잇는 대구권 광역철도 사업 또한 올 하반기에 본격 공사를 시작한다. 경산지식산업지구와 경산 일반산단들을 연결하는 국도 대체 우회도로 개설공사도 실시설계에 들어간다.이와 함께 출산 육아의 공공성 강화, 일자리 창출, 도시재생, 농촌 6차산업도 차근차근 추진되고 있다. 지난 4월에 우리 시에서 열렸던 제57회 경북도민체육대회는 역대 최고의 대회로 평가받은 대회였다. 모두가 참여하며 화합체전·문화체전으로 끝난 이 대회를 통해 경산시는 외형성장만이 아니라 내실도 탄탄히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요약해 ‘희망경산 10년 대계’라고 할 수 있다. 그 핵심 전략이 경산발전 10대 전략이며 28만 시민이 모두 행복한 희망 경산으로 가는 원동력이다.

2019-08-18

숨비소리

송귀연 수필가휘-이유! 휘-이유!이랑사이로 가쁜 휘파람소리가 들려온다. 콩밭 매는 할머니가 굽은 허릴 펴면서 내는 소리다. 이랑 사이로 묻혔다 다시 일어서길 반복하는 모습이 꼭 자맥질하는 해녀 같다. 둥글면서 깊고 애절하면서 먼 소리는 맞은 편 산봉우리에 닿았다 메아리로 되돌아오곤 했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릴 때쯤 김매기는 끝났다. 나는 준비해간 호야를 앞세우고 할머니와 함께 어둑해진 들길을 걸어 돌아왔다.할머니는 꽃다운 열다섯 나이에 할아버지와 혼례를 치렀다. 원삼족두리 차려입고 초례청 너머로 훔쳐본 신랑이 어찌나 준수하던지 내심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고 한다. 때문에 시조부모 자리끼시중도 힘들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무거운 밥상을 들고 하루에도 수십 차례 샛문을 드나들었지만 신랑 얼굴을 쳐다볼 때마다 힘이 불끈 솟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할머니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잠수하는 해녀가 물 위로 떠올라 참았던 숨을 휘파람처럼 길게 내 쉬는 게 숨비소리다. 떼 지어 물질하는 해녀들이 물 위로 떠오르면서 내쉬는 소리가 해변을 가득 메웠다. TV에서 보았던 고래 떼 같았다. 고래는 바다 속을 헤엄치다 숨이 차면 물 밖으로 나와 크게 숨을 쉬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숨비소리는 물속에서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이기도,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들숨과 날숨의 수많은 숨비소리가 있고서야 그날의 수확을 망태기에 가득 담아 물 밖으로 나온다.할머니 삶에는 가슴을 짓누르는 커다란 고통이 있었다. 술과 노름으로 증조부 때의 가산을 거의 탕진해버린 할아버지는 해방과 함께 예전의 부(富)를 되찾겠다며 현해탄을 건너갔다. 그때 할머니 나이 사십 대 중반. 하나 뿐인 사위마저 데려간 할아버지는 세월이 흘러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하는 수 없이 집안의 권유로 작은댁 큰아들이었던 아버지를 양자로 들였다. 홀로 사는 딸이 어렵게 사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할머니는 아들내외 몰래 적잖이 도움을 주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에 시누이까지 돌봐주는 할머니가 못마땅했던 엄마와 자주 다퉜다. 그런 날이면 할머니는 잠을 뒤척이며 한숨을 푹푹 내리쉬었다.망부석이 된 당신의 마음은 풍파 일어나는 바다 같았지만 겉으론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수십 년 째 할아버지로부터 소식이 없자 주위에서 재혼을 권하기도 했다. 그러면 “이 무슨 소리고?”라며 심하게 역정을 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고 믿었다. 가끔씩 할아버지 얘기를 할 때의 할머니는 열다섯 살 연지 곤지 찍은 새악시처럼 두 볼이 빨개졌다. 언제나 웃음으로 우리를 다독였지만 그 근심의 바다 속 수심을 나는 알지 못했다.일본에서 인편으로 할아버지 소식이 온다는 전갈이 왔다. 온 집안사람들이 사랑채에 모여 기대와 희망으로 들떠 있었다. 낯선 남자가 검정양복차림에 사각가방을 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루 끝에서 기다리던 시선들이 일제히 그 사람을 향했다. 할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흘러들어간 곳은 조총련산하였다. 할아버지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며 할머니 얘기를 자주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고모는 쓰러졌고 할머니는 긴 침묵 사이로 담뱃대만 땅땅 두드렸다. 밤색 가방 안에는 생전에 할아버지가 쓰시던 안경이며 낡은 옷가지가 몇 벌 들어 있었다.어떤 위로도 태산 같은 할머니의 슬픔을 덜어줄 수 없었다. 둘러 선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돈벌어와 호강시켜준다며 옹서간(翁壻間)에 떠난 사람들이 남이 되어 돌아왔다는 둥, 진즉에 재혼을 했어야했다는 둥 안타까워했다. 지켜보던 나도 가슴이 먹먹했다. 그 날, 저녁상을 물리기 바쁘게 홍시 몇 개 품에 안은 채 고모네로 향하던 할머니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토닥토닥 고샅길 멀리 사라지던 지팡이소리는 할머니의 한숨처럼 오래 여운을 남겼다.정정하던 할머니의 기력은 시나브로 눈에 띄게 쇠잔해졌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탓일까. 할머니는 자주 한숨을 내쉬었으며 그 소리는 심해처럼 깊고 아득했다. 남편 없는 힘든 삶을 견뎌온 당신은 할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끝내 그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죽으면 무덤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유언을 따라 주검은 한줌 재가 되어 동해바다에 뿌려졌다. 나는 고비마다 할머니를 떠올리며 칠흑처럼 캄캄한 순간들을 넘기곤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숨비소리로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다시 삶이라는 바다에 자맥질을 시도하지 않을까.방파제엔 흰 파도들이 물이랑을 이루며 밀려왔다 밀려간다. 가끔씩 바닷가에 앉아 쪽빛 바다를 바라보곤 한다. 발아래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꼭 바다의 숨비소리 같다. 할머닌 지금쯤 꿈에 그리던 할아버질 만나 이승에서 못 다 이룬 정을 나누고 있을까? 갈매기들이 대답처럼 날아오르고 수평선 너머에서 할머니의 숨비소리가 크게 들려온다.휘-이유! 휘-이유!

2019-08-18

기미년 독립운동, 상하이로 간 사람들

아침부터 마음 바쁘다. 오늘은 학술대회가 열리는 날. 하루하루 일수 찍듯 살지만 오늘은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 먼저 도서관에 가서 오후에 잠깐 인터뷰할 소설부터 찾아읽고. 하근찬의 ‘삼각의 집’과 정한아의 ‘할로윈’. 정한아 작가는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복사하고 읽고 하는 사이에 시간은 금방 흘렀다. 아홉시 사십분. 손님맞이에는 늦었다고 봐야 한다.서둘러 행사장으로 가니, 원탁회의식 구상과 달리 책상들이 전부 앞을 향했다. 독일, 중국, 한국, 일본 국기도 어디 갔는지 없다. 파스쿠치에서 커피는 가져온 상태. 팔 걷어부치고 서둘러 행사장 모양 바꾸고 국기도 찾아 앞에 붙이고 한다.운이 좋다. 낙성대에서 올라오는 버스들이 무슨 일인가로 잔뜩 밀려 있다는 문자들. 시작 시간을 조금 늦출 수 있는 명분 제공.올해 초부터 준비한 학술대회. 지금부터 백 년 전은 기미년 삼일운동이 일어나던 해다. 많은 젊은이들이 상하이로 떠났다.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에 연유가 나타난다. 삼일운동 두 달 시위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은 사냥개에 쫓기는 토끼들처럼 숨을 곳 찾았다. 일제는 맨주먹의 청년들, 백성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살상했다.압록강은 이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건너가야 했던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 이때 이 강을 건너 상하이로 간 젊은이들이 있었다. 이미륵, 서영해, 강용흘 등등.그들은 상해에 모였다. 둘은 인도양 건너 유럽으로, 하나는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 갔다. 독일, 프랑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독립운동과 관련을 맺었다. 그들에게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안창호가 엿보인다.그리고 이광수와 주요한. 상하이까지 갔다, 가서 독립운동에 관계하다 조선으로 되돌아온. 총독부 체제의 강제적 포섭력이 그들을 기다렸다.중국 중앙민족대학의 이광수 연구자 김명숙 교수, 독일에서 이미륵의 산문들까지 본 박수영 작가, ‘압록강은 흐른다’를 일본어로 번역한 히라이 토시하루 교수, 이미륵을 독일 교양 소설 장르의 맥락에서 고찰한 최윤영 교수.주요한의 상하이 이전과 이후를 논의한 박현수 시인, 그리고 이극로라는 괴물을 상대하느라 몇 달 더 나이 먹어버린 김동식 평론가.살다 보면 운 좋은 때도 있다. 의도는 미미하였건만 그네들은 상상 이상이었다.1919년 3·1운동의 해는 사회역사적 운동만의 해가 아니었다. 현대문학 역시 격동을 맞았다. 다른 세계를 보고 다른 꿈을 꾸었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8-15

‘창과 방패’

‘창과 방패’는 법 지상주의자인 한비자(韓非子)가 유가(儒家)의 덕치주의를 비판한 고사로 유명하다. 초나라 때 한 무기상인이 시장에 창과 방패를 팔러 나왔다. 상인은 먼저 창을 들고 외쳤다. “여기 이 창의 예리함은 천하일품으로 그 어떤 방패라도 단번에 뚫어버린다”고 했다. 이어 상인은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 “이 방패는 견고하여 어떤 창이라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지켜본 구경꾼들이 “그러면 예리한 창으로 견고한 그 방패를 찔러보면 어떻겠소”라고 물으니 상인은 서둘러 시장을 떠났다.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생겨난 고사로 한비자의 난세편에 나오는 이야기다.한 주제를 두고 한 사람이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게 행동할 때 우리는 이율배반적이라 한다. 그리고 일이 생겼을 때마다 왔다갔다하며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사람을 자가당착적 행동자라 표현한다.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옳지 못한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요즘 많이 유행한다. “남이 바람을 피우면 불륜이고 내가 바람을 피우면 로맨스”라는 것이다. “남이 벼락을 맞으면 하늘의 뜻이고 내가 벼락을 맞으면 재수가 없는 것”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자기에게 유리하게 마음대로 해석하는 모순적 태도를 꼬집는 표현이다. 지금 우리 정치판이 이런 모순적 상황에 빠져있다. 여야가 현안마다 집단의 이익에만 매달려 협치의 묘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사 청문회를 마주할 때는 극과 극으로 대치한다. 언론에서는 이를 ‘창과 방패의 대결’로 비견한다.인사 청문회의 본질인 능력 검증이나 도덕성 검증은 처음부터 뒷전이다. 한쪽은 창을 들고 천하일품이라 떠들고 다른 한쪽은 천하무적의 방패라고 떠드니 국민이 보기에 어이가 없다. 8.9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가 곧 시작될 예정이다. 벌써 창과 방패의 싸움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미 16명의 장관급 인사가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된 전례로 볼 때 결과는 뻔하다는 관측이다. 청문회 무용론이 고개드는 이유다. 내 기준과 내 이익만 생각하고 세상을 재단하면 모순은 필연적으로 생긴다. 이번 청문회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15

다시 보는 광복절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광복 74주년 기념식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유달리 많은 국민들이 광복절 경축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로 인한 국민적 감정이 들끓고 있기 때문일게다. 그래서일까. 15일 저녁 광화문 광장은‘NO 아베’피켓을 든 인파의 물결로 뒤덮였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치달은 6.25전쟁의 군수물자 조달로 나라살림을 살찌운 일본이 뒤늦게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빌미로 경제보복에 나선 것도 모자라 일부 극우 정치인과 극우언론들이 우리 국민과 나라를 희화화하며 혐한발언을 지껄여대는 장면이 그대로 전파를 타고 우리 국민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를 통해 해방 직후 한 시인이 말한 새나라의 꿈인 ‘아무도 흔들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국제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질서가 깨질 수 밖에 없다”면서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된다”고 직설적으로 일본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며 “공정하게 교역하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평화를 번영을 이루는 평화경제를 구축, 통일로 광복을 완성하고자 한다”면서 “평화경제는 한반도의 비핵화위에 북한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대화와 협력을 계속해나가는 데서 시작한다”고 설명했다.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한 야당의 반응은 여전히 시니컬하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 “막연하고 대책없는 낙관, 민망한 자화자찬, 북한을 향한 여전한 짝사랑”이었다고 평가했다. 전 대변인은 “‘아무도 흔들수 없는 나라’에 대해서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말”이라면서도 “문재인 정부들어 외교·안보정책의 실패로 ‘아무나 흔들수 있는 나라’가 되고 있다”고 회초리를 날렸다. 야당의 독설이야 귀담아 들을 말만 챙기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민간차원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관광 거부운동이 빠르고 거세게 확산되고 있다. 수입맥주 시장에서 부동의 1위였던 일본 맥주가 지난 달 3위로 급락했는가 하면 이달 들어 일본 맥주 수입이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달 한국에서 일본 수입차 판매도 급감했다.전국 17개 광역의원들은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에 관한 조례안’제정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조례안에는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 대상기관과 금액,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지양에 대한 시장과 교육감의 책무 및 기본계획 수립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3.1운동과 광복으로 부터 기나긴 시간이 지났는 데도 청산하지 못한 일제의 잔재, 특히 전범기업은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들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고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면서 “우리 국민들을 강제동원해 착취한 노동력으로 일어선 일본기업들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은 커녕 공식사과조차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뜩이나 거센 일제 불매운동 불길에 기름을 붓는 회견이었다.이처럼 바짝 달아오른 일본과의 감정싸움에 다소 둔감한 아이들에게 일본 제국주의가 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저지른 전쟁범죄를 하나하나 설명하다보면 어느새 일본의 부끄러움 모르는, 후안무치한 태도에 분노하게 된다. 특히 전 서울대 교수 이 모씨의 발언에는 입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이들이 많았고, 친일파 언론인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에는 같은 하늘아래 산다는 게 부끄럽다는 반응마저 나왔다. 이래저래 올해 광복절은 밋밋하게 지냈던 여느 광복절이 아니라, 다시 보고, 듣고, 느끼게 된 특별한 광복절이 됐다.

2019-08-15

러다이트 운동과 4차 산업혁명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40여 년 전 대학원을 갓 졸업하고 한국굴지의 모 건설회사에 취직하였을 때 일이다. 광화문 14층 기획관리실에서 근무할 때 어느날 건설노무자 여러 명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무실을 박차고 들어온 그들은 흥분된 어조로 “왜 우리 봉급이 봉급봉투에 0 이라고 나오는가?” 라고 물었다. 컴퓨터의 실수였다. 당시 한국에 컴퓨터가 도입된지 몇 년 안되던 시절 건설노무자 봉급을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에러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컴퓨터는 빌딩 지하에 있었고 노무자들은 그리로 몰려갔다. 컴퓨터를 파괴할 기세였다. 평소에 컴퓨터가 노동을 뺏어간다는 피해의식 속에서 이런 컴퓨터 에러는 컴퓨터를 파괴하기에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었던 시절이다. 다행히 사과하고 전산화 과정을 설명하고 과격한 행동을 만류하기는 했지만 정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진땀을 빼던 기억이 난다.이와 비슷한 일이 200여 년 전 영국에서도 일어났다. 후세의 평가는 갈리기는 하지만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은 19세기 초, 1811∼1817년 사이에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이다. 당시에 발명된 방직기의 등장으로 사람이 했던 노동을 기계가 빠르게 처리하게 되는데 위기감을 느낀 노동자들이 단합하여 대규모 기계파괴 운동을 벌인 것이다결국 기계로 인한 생산성은 무시할 수 없기에 러다이트 운동은 수그러들었지만, 노동자들은 노조설립 허용, 단체교섭을 인정받으면서 정치권과 자본가들의 양보를 받아내었다. 이는 어찌 보면 최초의 노동운동이었다.급격히 부각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네오 러다이트(Neo Luddite) 운동이라 하여 과학 기술에 적대적인 사상과 그 움직임을 뜻하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하였다. 네오 러다이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첨단기술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할 것으로 여기고 있다.4차산업혁명 시대의 언저리에서 네오 러다이트의 정당성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공지능의 발전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감 존재한다. 6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2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전문가 견해도 있는데 그래도 4만개가 마이너스다.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시발점으로 사회 전반에 퍼진듯 보이는 4차산업혁명은 이미 이전부터 인공지능이란 형태로 과학자들에 의해 개발이 진행되어 왔지만 알파고의 활약에 의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기술적, 물리적인 문제로 인해 구현이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지면서 인공지능의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알파고 사건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계기로 전세계는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뒤섞여 나오고 있다. 아마존 고(Amazon Go)라고 불리는 무인스토어에서는 고객이 가게에 그냥 들어가서 물건을 들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 모든 과정은 센서와 인공지능이 처리한다. 제조업의 자동화인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도 지능적 공장경영을 통해 직원수를 줄이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아마존고와 스마트팩토리의 예에서 보듯이 일자리 감축에 대한 우려감이 생기는건 당연해 보인다.그러나 러다이트 운동의 예나 2차세계대전 후 발명된 컴퓨터의 도입에 의한 사무자동화의 예로 볼 때 네오 러다이트 운동의 정당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기계화에서도 전산화에서도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일자리가 감축되었다고 보기보다는 일자리가 다양화되고 고급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40년 전 공대생들이 연산자를 가지고 고생하면서 계산하던 시대에서 이제 스마트 폰을 간단히 계산하면 좀더 응용분야 연구에 시간을 쏟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러다이트 운동의 4차산업의 적용인 네오러다이트 운동의 정당성은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는 다가오는 아니 이미 도착한 4차산업혁명을 환영하는 것이 맞다.

2019-08-15

인류의 보편적 가치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인류 보편의 가치란 무엇일까? 특정 종교나 문화에 따라서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사람답게 살 권리, 즉 인권(人權)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가 될 것이다. 21세기인 지금은 많은 나라들이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역사는 그리 길지가 않다. 민주주의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까지 소급하기도 하지만 노예나 여성을 차별하는 등 오늘날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개념이었다. 현대적 인권의 개념은 자연법 사상에 의거한 자연권의 관념에서 시작하여 프랑스혁명 등을 거치면서 보편적 인권의 개념으로 형성·발전되었다.자연법 사상이란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 생태계의 모든 생명체들은 우열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인류 역시 생태계의 한 종(種)으로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면 모든 개인은 한 생명체로서의 존엄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사회에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어서 종교나 제도나 이념에 의해서 그런 존엄성이 침해되고 제약되는 경우가 허다했다.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을 시작으로 한다. 당시 선포된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에 따른 것으로, 헌법이 규정하는 인권이란 일차적으로는 정치적 권리의 보장을, 나아가서는 보편적, 경제적 권리의 보장과 복지사회의 구현까지 아우르는 것이다.인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세계인권선언과 같은 보편적 가치에 대한 세계적인 합의에 이른 것을 들 수가 있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은 2차 세계대전으로 자행된 온갖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한 반성과 대응으로 생겨난 것이다. 전문과 30개 조항으로 구성된 세계인권선언은,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갖는 고유한 존엄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승인하는 것은 세계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초”라고 선언하면서 전문을 시작한다. 그리고 각 30개의 조항은 인간의 생명과 자유, 개인의 안전, 시민사회 내에서의 권리, 정치체제 내에서의 권리,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잘 보장하고 보호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한편 유엔인권소위원회는 1997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유엔 차원의 공식적인 논의를 시작하였다. 북한인권결의안은 2003년 제59차 유엔인권위원회부터 3년 연속 채택되었으나 북한인권 상황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게 되자, 2005년부터 유엔총회에서도 채택하고 있다. 그 결의안에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와 함께 개선을 위한 인도주의적 기술협력과 대화를 포함하고 있다. 북한인권결의안의 주요 내용은 고문, 공개처형, 정치범 수용소, 매춘, 영아살해, 외국인 납치 등 각종 북한 인권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는 한편 북한 주민의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우리 정부의 대북정책도 이와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기본으로 하는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통일이든 평화든 그것은 오로지 우리의 동포인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핵무기를 가지고 세계를 위협하는 김정은 일당과 협상을 하는 것도 저들이 저지를 수 있는 또 다른 범죄를 막기 위한 방편인 것이지 그들의 체제를 정당화해서가 아니라야 한다. 비록 전략적으로는 그들과 대화를 할지라도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한다는 대의에 어긋나지 않은 선에서만 명분을 가질 수 있다. 탈북자 모자가 굶어죽는 대한민국, 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심각한 오류와 착각이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2019-08-15

독방에 홀로

2010년 8월 17일, 의문의 심리 실험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가 올라옵니다. 20평 안락한 공간에 홀로 30일 동안을 견디면 950만원을 지급한다는 것. 조건은 간단합니다. 30일 동안 TV, 책, 컴퓨터, 신문, 인터넷, 대화 등 모든 일상생활을 단절하고 오직 창조적 활동, 즉 그림 그리기나 손으로 쓰기만 할 수 있습니다. 주 2회 담당 심리학자와 대화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외부와의 접촉도 금지합니다. 24시간 CCTV로 관찰한다는 조건도 있습니다. 7일까지는 중도 포기할 수 없으며 시급 1만1천원. 시간이 흐를수록 시급이 올라갑니다. 이런 조건으로 30일까지 버티면 950만원을 지급한다는 조건이었지요.많은 누리꾼이 후끈 달아올랐지만 실제로 지원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실험 이후 정신적 문제가 생길 경우 국내 최고 의료진과 교수들로부터 무료 치료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 사람들이 망설였다고 합니다. 자해 등으로 생긴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다는 경고문을 보면서 대부분 포기했다고 하지요. 실험에 도전한 한 남성은 30일 동안 영어 단어 1만 개를 외우고 나올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히고 시작했는데 13일 차에 악몽을 꾼 이후 견디지 못하고 포기 벨을 눌렀습니다.단편 소설의 최고봉이라 일컫는 안톤 체호프. 그가 쓴 1889년 작품 ‘내기’에 위 상황과 비슷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한 젊은 변호사가 부유한 은행가와 파티장에서 격론을 벌입니다. 사람을 단번에 죽이는 사형제도와 서서히 죽이는 종신형, 그 어느 것이 더 윤리적인가 하는 주제였습니다. 젊은 변호사는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백번 낫다는 주장을 하고 부유한 은행가는 사형제도가 훨씬 인간적이라면서 불꽃 튀기는 설전을 벌입니다. 흥분한 은행가는 젊은 변호사에게 제안합니다. “만약 당신이 독방에 5년 동안 들어가 있을 수 있다면 200만 루블을 상금으로 걸겠소.”25세의 피 끓는 변호사는 한 술 더 뜨지요. “차라리 15년으로 합시다. 5년은 실험해 볼 가치도 없소.”내기는 단숨에 성립합니다. 은행가는 정원 바깥채에 변호사를 감금하죠. 조건은 작은 창문 하나를 통해 와인, 담배 등을 비롯한 음식을 제공하고 책은 무한정 넣어 주며 피아노도 한 대 제공한다는 조건입니다. 외부 접촉은 일체 차단합니다. 30일이 아닌 15년 조건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배려해 줘야 하겠지요? 무료한 젊은이는 하루 종일 피아노만 칩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5

정부 분양가 상한제의 진실은

김영태 대구취재본부‘도대체 대구 수성구와 중구가 분양가 상한제에 들어가는건가, 아닌가’13일 조간신문을 본 독자들의 한결같은 의문이었다. 경북매일과 달리 대부분의 지역지가 수성구의 분양가 상한제 적용이 확정된 것처럼 보도해 독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국토교통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민간택지 분양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분양가 상한제 조치의 노림수는 서울 강남지역 재건축을 최대한 억제해 집값 상승을 막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집값 폭등으로 인한 총선 민심을 다독이려는 심모원려도 깔려있다. 대구·경북의 관심사인 수성구와 중구는 당초 예상과 달랐다. 중구는 제외됐고 수성구는 투기과열지구임에도 국토부 발표를 적용하면 실행 여부는 세모를 쳐야 하는 상태다. 국토부가 ‘주거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현재 투기과열지구라도 주거정책심의위의 결정이 우선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국토부의 장황한 발표도 결국 이 한마디로 수렴된다. 정책의 운용의 효과를 노리는 묘수를 둔 것으로 볼수도 있다. 머리 좋은 관료들의 발상답다.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집값 상승세가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 안게될 부담을 최소화하고 정책실무자인 관료들도 만일의 경우에 빠져나갈 퇴로를 열어두기 위한 방편이 맞아떨어진 지점이다. 어제 보도에서 드러난 것처럼 지역의 집값이 10월까지 원하는 선으로 안정(?)되고 굳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할 필요가 없을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성구가 분양가 상한제 적용에서 빠질 경우에는 지역언론의 자의적인 해석탓으로 돌릴수 있다. 이런 애매한 덫에 덜컥 걸려들었다고나 할까. 분양가 상한제를 두고 지역의 언론사마다 수성구의 포함 여부가 다르게 나타난 것은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것이다.지역의 한 기자는 “분명히 중구는 제외되고 수성구는 10월 이후에야 적용 여부가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판단되지만, 국토교통부의 발표자료와 달리 통신사 등 뉴스 보급사의 내용을 맹신하다가 빚어진 결과”라고 해석했다. 결국, 국토부가 정책 방향은 ‘엄포’로 소개됐지만, 가장 중요한 구체적인 조치인 시행령은 오는 10월로 미룬 노림수가 제대로 맞아떨어진 셈이다.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칼자루를 휘두를지 다시 칼집에 넣을지는 상황을 봐 가면서 시장과 심리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국토부가 10월까지 집값 동향을 봐가면서 일종의 꼼수를 둔 셈이다.최근 공영방송의 유명 개그 프로인 개그콘서트가 2주간의 개편작업을 마치고 지난 11일 방영됐다. 어설프고 서툰 정치개그와 억지 애국심을 자극하는 코너가 난무하면서 일부에서 개콘 폐지론까지 일고 있다. 개콘 개편과 국토부의 분양가 상한제 발표가 오버랩되는 것은 기자만일까./piuskk@kbmaeil.com

2019-08-13

개도 사람처럼 감정을 느낀다

헝가리의 에오트보스 로란드 대학의 아틸라 앤딕스(Attila Andics)라는 동물 행동학자와 연구팀은 훈련된 개 11마리의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진행했는데, 개의 뇌 스캔이 진행되는 동안 연구팀은 개들에게 ‘하하하’ 혹은 ‘흑흑’ 같이 사람이 울고 웃는 등 200여 가지의 감정 소리들을 차례로 들려주면서 뇌 조직 신호의 변화를 관찰했다.이와 똑같은 환경과 방식으로 사람을 대상으로도 실험을 진행하고 두 개의 실험 자료를 비교해 보니, 감정 소리를 인식하는 개와 사람의 방식이 매우 흡사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를 테면 누군가 웃거나 울거나 하는 소리에 대한 개와 사람의 뇌 신호 움직임이 매우 유사하게 나타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이는 개 역시 사람처럼 감정이 섞인 음향신호에 뇌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뜻한다.이 때문에 종종 사람이 말을 하면 마치 개가 알아듣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배가 고프거나, 덥거나, 목이 마르거나 소란스러운 스트레스 환경이 해소되지 못하면 개들은 사람이 그러하듯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주인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때 받는 외로운 감정이나 다양한 감정적 원인에 의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개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데, 이런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개의 육체적, 정서적, 심리적 균형이 깨질 수 있다.스트레스를 받는 개의 신체적 징후는 구토, 용변실수, 부적절한 배뇨, 피부병, 과도한 탈모, 식욕부진 등이 있고, 정서적인 이상징후는 떨기, 심하게 낑낑거리기, 지속적인 짖음, 물어뜯음, 물기, 활동량의 증가나 감소 등이 있다.스트레스나 불안감으로 인해 시작된 행동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버릇이 되고, 문제행동들이 되며 그 행동들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강박신경증을 가지게 된다. 사람이 스트레스로 인해 가지게 되는 신체적 질병을 비롯해 우울증, 강박증 등 심리적 문제들을 개 관련 연구로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이탈리아 트렌토 대학의 조르조 발로티가라(Giorgio Vallortigar) 교수 연구팀은 43마리의 개에게 미리 녹화된 영상을 보여주고 심장박동수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개에게 보여준 영상은 개가 꼬리를 왼쪽 방향으로 흔드는 영상, 오른쪽 방향으로 흔드는 영상, 꼬리를 흔들지 않는 영상 등 총 세 종류였는데, 연구팀이 세가지 영상을 본 개들을 관찰한 결과, 왼쪽 방향으로 꼬리를 흔드는 영상을 본 개들은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등 불안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하지만 오른쪽 방향으로 꼬리를 흔드는 영상을 본 개들은 반대로 안정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개의 심리 상태에 따라 꼬리를 흔드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왼쪽으로 더 강하게 꼬리를 흔드는 개들은 우뇌가 활성 되는데, 우뇌는 부정적인 반응이나 불안, 두려움과 관련되어 있다.즉, 영상 속 개의 불안한 심리가 흔들리는 꼬리를 통해 다른 개들에게도 전달된 것이다. 꼬리를 흔드는 행위가 다른 개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런 연구들이 진행되었는데 개가 다른 동물의 상태를 알기 위해 꼬리를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또한 개는 눈빛으로 의사소통하기도 하는데 도쿄공업대학의 우에다 사요코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개들이 동료 간에 서로 눈빛을 확인하기 수월한 개과 동물일수록 무리지어 생활하고 협동해 사냥하는 생활방식을 가진다고 밝혔는데 사람들이 눈빛 교환을 하면서 의사소통을 하듯, 개 역시 유사한 방법으로 의사소통 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이외에도 개와 관련된 지금까지의 연구들을 정리해보면 개는 사람과 유사한 뇌기능을 가진 영역이 있다.사람의 뇌와 개의 뇌를 비교해보았을 때 정보를 기억하거나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신피질은 차이가 있지만, 기쁨, 슬픔, 두려움, 싫음, 좋음 등을 느끼는 감정과 관련된 대뇌변연계는 사람과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인간과 같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인 개와 관련된 연구가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되면 사람의 심리, 정신과 관련한 뇌과학 연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소장·마사과 교수

2019-08-13

칸트와 기술과학 시대

△칸트의 물음기술과학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칸트(Immanuel Kant·1724∼1804) 씨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칸트 씨의 말을 들으려면 우선 칼리닌그라드로 가야한다. 칼리닌그라드는 2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령이 되면서 동유럽의 변두리 도시로 밀려나게 되었지만, 한때 이 도시는 독일의 정신적 수도였다. 칼리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기 전 이 도시의 이름은 쾨니히스베르크였다. 이곳은 근대 통일독일의 모태가 된 프로이센의 발상지였으므로 정치 중심지를 베를린에 둔 뒤에도 프로이센 왕들은 대관식만큼은 쾨니히스베르크를 고집했다. 동프로이센 지방의 중심이며, 해외 무역의 요지인 이 도시는 서구 근대사회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세계시민도시의 성격을 띤다. 바로 이곳에서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태어났다.칸트는 이 사랑하는 거리를 떠난 적이 거의 없었다. 독일의 정신과 새로운 근대적 기운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칸트는 인간의 삶과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에 대해 고민했다. 산업혁명은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그러면서 생산방식도 변하게 만들었다.예컨대 이런 것들 말이다. 하나의 제품을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도 있지만, 여러 사람이 한 가지 일만 해나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주방에서 한 사람이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고, 설거지까지 하는 것보다는 일을 나누어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어떤 물건을 만들 때 전 과정을 습득하여 경지에 오른 사람을 우리는 장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분업에 참여하는 사람은 일의 전체가 아닌 부분만 습득하면 된다. 이들을 노동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장인이 만든 물건에는 그만의 혼이 실리고 독특한 흔적이 남지만, 노동자가 만든 물건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다. 노동자는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가능한 존재로 전락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의 고유성과 존엄성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까? 계몽주의는 이러한 시대에서 촉발된 철학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삶을 이끈다,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고 비판한다”라는 자발성 철학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계몽주의 사상을 펼친 인물의 중심에 칸트가 있다. 인간의 이성(순수이성비판), 실천(실천이성비판), 판단력(판단력비판), 윤리(윤리형이상학)가 중심주제였다.칸트의 철학은 인간과 인간의 이성에 관한 관심으로 귀결된다. 인간이 무엇을 인식한다고 할 때, 그것은 인간이 가진 인식 범위의 한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식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그것은 인식 범위 안에 있다. 이 범위를 뛰어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안다고 할 수 없다. 더 급진적으로 말하자면 세계가 있고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있고 세계가 있다.대상을 관찰하여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얻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인식을 확고하게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칸트는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인간은 유한하며 편협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라고 한 것은 아니다. 칸트는 그 한계 속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 도전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인간의 윤리라고 한다.공학기술 발전은 인간을 위해, 인간의 편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기술은 수단이며, 인간은 기술의 목적이다. 이것은 이윤추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돈을 버는 일은 인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목적과 수단이 역전되는 시대다. 그래서 기술과 이윤추구가 목적이 되고, 인간이 그 수단으로 동원된다.칸트는 이러한 목적과 수단의 전도 현상을 문제삼았던 것이다. 인간이라는 목적을 잃고 이윤추구에만 집중하게 될 때 그 수단은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것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인간은 세계로부터 고립되고 삶의 의미를 잃게 된다. 이것을 ‘인간소외’라 부른다.△수단과 목적이 전도하는 시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수단과 목적이 뒤집힐 수 있는 시대, 이 시대에 우리는 다시 인간을 부여잡아야 한다. 과거 르네상스가 신이 아닌 인간을 중심적 가치로 두는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시작되었듯이 오늘날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인간중심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신르네상스는 예술이나 인문학과 공학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인간친화 기술이 그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과학기술은 문제가 발견되기만 하면 혹은 문제가 무엇인지 알기만 하면 그 답을 찾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다. 이 말이 오만할 수도 있지만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이것이 거의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날기를 꿈꾼 인간은 결국 날게 되었다. 그것도 엄청난 규모와 무게의 쇳덩이를 날 수 있게 만들었다. 우주가 궁금해지자 인간은 결국 우주탐사를 떠났다. 공학은 마음먹은 것을 분명히 이뤄내고야 만다. 공학의 이 엄청난 성취 앞에 순기능과 역기능도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한다.게임의 폭력성과 중독성이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켜도, 원자력 발전의 폭발의 위험성을 앉고 있음에도 이런 문제들이 무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이윤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업사회는 이런 문제는 미뤄두고 더 큰 이윤을 낼 수 있는 기술 개발에만 몰두한다. 모든 것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때 인간의 삶은 피폐해진다. 돈이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면 된다는 생각이 이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이런 문제에 공학이 직접 나서야 한다. 윤리사회로의 길은 정치와 교육의 몫이기도 하지만 공학의 몫이기도 하다. 과학기술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고 말겠지만, 그 변화를 무작정 따라간다면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이 양면의 압력을 이겨낼 수 있는 교육제도가 필요하다. 그러한 교육제도는 공학만을 강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공학만큼이나 인문학·예술 등도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 공학자가 인문학이나 예술교양을 쌓아야 하듯 인문학이나 예술분야에서도 공학교양을 쌓아야 한다. 이런 융합교육이 불투명한 미래를 투명하게 만들 것이다.미래는 미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형성된다.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때 미지로 남겨진 미래는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미래에 대한 준비는 국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몫이기도 하다. 미래의 일을 미래에 준비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준비해 나가야 한다. 오늘이 미래를 결정한다.

2019-08-13

포스코의 나눔활동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얼마 전 포항 환호공원에서는 소소하면서도 이색적인 나눔행사가 열렸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재능봉사단이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작은음악회를 열어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기쁨과 흥겨움을 안겨주었다.수지효행, 아동행복지킴이, 사진, 제빵 등 6개 봉사단은 환호동, 여남동 일대의 자매마을 어르신과 공원을 찾은 시민들에게 손마사지와 압봉시술을 해주고,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인물사진을 찍어 주고 손수 만든 빵과 과자를 아이들에게 나눠주면서 어르신들에게는 말벗도 되어줬다. 저녁에는 사물놀이, 밸리댄스, 부채춤 등의 공연과 사내 문화예술봉사단이 기타와 하모니카, 대금, 색소폰 연주를 선보여 시민과 함께 즐기는 화합의 마당으로 어우러졌다.이러한 나눔활동은 포항시와 포스코가 지난 2001년에 함께 조성한 환호공원을 아름답게 가꿔 시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어 나간다는 취지에서 열린 것이다. 이처럼 직원들의 재능과 역량을 발휘하는 나눔활동을 통해 포스코는 지역사회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시민들은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공원을 찾으며 한껏 누리고 공감할 것이다. 물론 몇 차례의 재능봉사와 음악회로 환호공원이 금세 달라지고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속성을 갖고 시민과 직원이 동참해 공원 내 환경정화와 다채로운 공연, 이벤트, 테마 활동 등을 해나갈 때 공원은 점진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포스코의 나눔활동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활성화를 위한 자발적인 재능기부 활동을 포함해 임직원봉사단 활동, 대학생봉사단 운영, 포스코1%나눔재단의 사회공헌사업 등 실로 다양하고 광범위한 영역에서 공익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포항제철소에서는 1991년부터 포항시와 자매결연을 시작, 현재 127개 마을에 매월 나눔의 토요일 봉사활동을 실시해 환경정화와 일손돕기, 장학금 지급 등의 지원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또한 재능봉사단은 임직원들의 특색있는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보답하고자 2004년 창설돼, 최근 13개 신규 창단 발대식을 갖고, 총 23개 봉사단원 900여명의 개개인이 보유한 다양한 지식과 기술, 특기와 경험을 살려 포항시자원봉사센터 등 4개 복지기관과 협업해 지역사회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유익한 봉사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한편, 임직원들의 급여 1% 기부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포스코1%나눔재단’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1%나눔문화를 확산시키는 다양한 공익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포스코와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포스코 스틸 빌리지 건설, 국내 소외계층 사회복지 증진, 국내외 저개발지역 구호활동 및 미래세대 자립지원, 문화예술 진흥 및 전통문화 보존2219계승 사업 등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포스코의 창업정신과 역사적인 의미를 더하고 글로벌 포스코의 사회적 책임에 부응해가고 있다.이와 같은 제반 나눔활동과 지원사업은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의 포스코 경영이념에 부합하는 것으로 포스코가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기업시민으로서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시민활동으로 펼쳐지고 있다. 나눔과 베풂으로 이뤄지는 기업시민의 사회공헌활동은 지역사회와 더불어 포스코패밀리와 함께 해나갈 때 그 가치와 보람이 더욱 커지게 된다. 다만 일회성이나 전시성이 아닌, 꾸준히 실행하는 사명감과 확고한 정신으로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창출하는 의지와 노력이 무엇보다 중차대하리라고 본다.포스코재능봉사단의 열성적인 손길과 작은음악회의 열기로 초복의 더위마저 무색해진 환호공원에서는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歡呼)와 갈채가 줄기차게 쏟아졌다. 작은 관심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듯, 환호와 갈채가 계속 이어져 나눔이 즐겁고 베풂이 행복한 포스코와 포항시의 아름다운 동행을 기약해본다.

2019-08-13

은퇴를 앞두고 있다면 공부하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지금 지구촌은 ‘지속가능’이라는 공통된 숙제 해결에 골몰하고 있다. 이 말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전 세계가 한 목소리로 이 지속가능이라는 목표에 동참할 정도로 옳은 이야기지만 그것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 크다고 여겨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지구촌의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세계의 산업경제가 발전하는 동안 지구 생태계가 병들고 급기야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음을 이제야 깊이 인식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포항도 지구촌의 축소판과도 같은 발전 과정을 거쳤다. 시로 승격한지 1년 만에 발발했던 한국전쟁은 도시 포항의 모습을 거의 지워버렸다. 당시 포항시민 즉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생업의 터전이었던 바다가 메꾸어지고, 울창했던 산림과 산허리가 잘려나가고, 마실 정도로 맑았던 강물이 막히거나 오염되는 것 정도는 신경쓸 겨를조차 없었다. 당장 내 가족이 머물 곳을 마련하고 배불리 먹일 수만 있기만을 바랐다. 희망찬 ‘내일’보다 당장 눈앞의 ‘생존’이 중요하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오륙십년이라는 세월 동안 포항시 인구는 6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늘어났고, 국가경제 성장에 필요한 산업의 쌀인 철강을 공급하였다는 자부심도 가지게 된 반면 원래 지녔던 적지 않은 천혜의 자연과 생태환경을 잃어버린 것도 사실이다.지금 포항시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지역경제의 주력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과거와 같은 급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데다 인구사회구조도 저출산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더구나 과거처럼 환경파괴와 같은 것을 도외시한 채 무분별한 개발로 성장을 견인하는 방법은 쓸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다른 나라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포항도 언젠가 ‘소멸도시’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속에 ‘지속가능’을 보다 분명하게 의식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다행히도 포항시는 상대적으로 다른 곳에 처지지 않는 ‘지속가능’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포항시는 대구·경북지역의 유일한 바다의 관문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국제화물과 국제여객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영일만항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조만간 영일만항까지 철도망이 진입할 수 있는 인입철도가 연결되고, 국제페리선이나 국제크루즈선을 타고 해외에서 관광방문객이 찾아올 수 있는 국제여객부두도 완공을 앞두고 있다.포항시가 추구할 ‘지속가능’의 방법론은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국제항만도시’라는 정체성을 포항시와 시민들이 어떻게 정립하고 활용해 나가는가에 성공여부가 달려있다고 본다. ‘환동해권’을 좁은 시각으로 보면 한반도 동해안과 중국 동북3성, 러시아 극동연방관구 그리고 일본 서안지역 정도다. 이 권역에서 국제 화물과 국제여객을 수용 가능한 해외관문 가운데 포항은 충분히 거점도시로서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 환동해는 영일만항을 거점으로 포항시가 앞으로 확장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잠재적인 경제영토인 셈이다.그런 의미에서 은퇴한 산업역군, 사업가, 연구원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포항시민은 포항시가 ‘지속가능’을 추진하는데 최고의 자원이며 바로 그들이 주역이 되어야만 한다. 포항의 미래 경제영토인 환동해권과 이들 시민은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 포항에는 특급호텔이 없는 것이 약점이라고 한다. 하지만 포항에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은퇴자나 은퇴예정자들도 많다. 이왕이면 이들이 영어 외에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중 하나 정도는 더 공부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준비된 시민들부터 국내외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홈스테이를 추진하였으면 한다. 그럴 경우 포항은 미래 경제영토인 환동해권을 선점하며 ‘지속가능한’ 해양관광도시 포항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2019-08-13

두 청년이 의기투합할 때

시카고 대학은 1892년 록펠러의 전폭적인 투자로 멋진 캠퍼스를 갖추고 탄탄한 교수진을 꾸렸지만, 삼류 학생들이 모이는 대학이었습니다. 재단에서는 학교를 이끌어갈 젊은 지도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발굴한 새 총장은 예일 대학에서 법학대학원장을 맡고 있었던 30세 젊은 청년 로버트 허친스입니다.허친스는 컬럼비아 대학 교육학자인 절친 27세 모티어 J. 애들러 박사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애들러 박사는 허친스에게 두툼한 목록 하나를 보내지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저서(Great Books) 목록이었습니다.애들러는 제안합니다. “만약 시카고 대학에서 이 위대한 저서들로 학생들을 가르쳐 보실 의향이 있으면 저도 함께하겠습니다.”허친스 박사는 목록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목록에 자신이 읽은 책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죠. 신입생들 가운데 뛰어난 학생 20명을 뽑습니다. 매주 두 시간씩 고전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시작하지요. 허친스는 20대 초반 학부생들과 매주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입니다. 고전 30권 정도를 독파해 나갈 무렵부터 변화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50권을 넘긴 시점부터는 학생들의 질문의 깊이, 생각의 폭, 점과 점을 잇는 상상의 능력,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해 삶에 적용하는 힘이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100권에 도달할 때 학생들이 지닌 잠재력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허친스 총장과 애들러 박사는 시카고 대학 전체에 고전 읽고 토론하기 프로그램을 전격 도입합니다.기득권 교수들의 극심한 반대와 모함에도 1930년대부터 시카고 대학의 커리큘럼은 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하는 세미나가 핵심 프로그램으로 바뀝니다. 이후 시카고 대학 학생들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 2010년에 이르기까지 시카고 대학 출신들이 받은 노벨상이 81명에 이릅니다. 시카고 대학 교수진의 반발 등으로 허친스 총장의 실험은 22년 후 중단되고 말았습니다만, 분명한 열매가 있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고전 토론이 직업을 얻는 기술을 직접 가르쳐 주지는 않습니다만 ‘나다움’이 무엇인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내 삶의 롤 모델은 누구인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음은 확실합니다. 먹구름 너머 눈부신 삶으로 우리를 이끄는 확실한 도구는 책 중의 책 고전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3

지방대학의 몰락

‘인서울 대학’은 90년대 유행한 용어다. ‘Universities in Seoul’의 영어 표현에서 따왔다. 서울시 내에 소재한 대학을 총칭하는 말이다.서울 쪽으로 정치와 경제 등 모든 것이 집중되면서 우스갯소리지만 그 시절에는 서울과의 거리에 따라 지방대학을 다르게 호칭했다.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을 ‘인서울 대학’이라 했고,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수도권에 있는 대학은 ‘서울 약대’라 했다. 서울에서 약간 떨어진 대학이란 뜻이다. 서울에서 그런대로 다닐만한 충청권에 있는 대학은 ‘서울 법대’다. 서울에서 제법 떨어진 대학이란 말이다. 경상도, 전라도와 같이 아예 멀찌감치 떨어진 대학은 ‘서울 상대’다. 서울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대학이란 뜻이다.모든 잣대가 서울 중심이다. 어느 때부터 서울에 소재해야만 우수대학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지방대학은 이미 오래 전부터 퇴조의 길을 걷고 있었다. 과거에는 서울의 몇몇 대학을 빼고는 우수한 대학은 지방에도 골고루 산재해 있었다. 그러나 국가정책의 수도권 집중화로 지금은 지방대학이 설 자리를 잃었다. 벼랑 끝 신세다.외국 어느 나라에도 찾아볼 수 없는 비정상적 현상이다. 미국, 영국은 물론 가까운 일본과 중국도 이 정도는 아니다. 나라마다 지방에도 명문대학이 고르게 분포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여건이라고 하기에는 국가 시책의 잘못이 너무 컸다.서울과 지방으로 극단적으로 갈라진 한국의 대학구조는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내년부터는 하위권 대학부터 치명적 타격을 입는다. 교육부에 따르면 내년도 대입가능 자원은 올해보다 4만6천여명이 줄어든 47만9천여명이다. 작년 대입정원 기준보다 1만7천여명이 적다. 대입자원을 40만으로 잡고 지난해 전국 372개 대학의 입학정원을 토대로 학생을 순차적으로 채워간다고 했을 때 하위 180개 대학의 신입생 수는 0명이 된다. 기막힌 현실이다. 지난해 지방대 입시 경쟁률은 수도권 대학의 절반 수준이다. 이런 추세라면 지방대학의 몰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방도시의 황폐화를 예고하는 현상이나 마찬가지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린 지방대학을 살릴 묘안이 필요한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8-13

미중 갈등의 해결점

김학주 한동대 교수미국은 3천억달러에 이르는 중국산 제품에 대해 다시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산 제품이 비싸지게 되는 셈인데 중국 정부는 통화가치를 마지노선이라고 여겼던 달러당 7위안이 넘도록 절하시키며 수출제품 가격을 다시 낮추려고 한다.중국정부는 미국에 대한 보복으로 당장 미국국채를 팔기보다 위안화 가치 절하를 선택했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2016년처럼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며 중국 본토의 자금을 빼 가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이 금리인상 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사실 미국 기업들 가운데 신용등급이 투자적격의 최하단인 BBB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구경제 한계기업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고, 이들이 정크(junk)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미국정부는 금리를 인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다.특히 미국은 그동안 자국의 금리 인상을 통해 중국 위안화를 절하시키는 게임은 해봤지만 중국정부가 위안화를 절하시켰을 때 미국 스스로가 달러를 절하시켜 위안화 절하를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그래서 트럼프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정해 놓고 관세뿐 아니라 자금조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재(sanction)로 넘어가려 한다.시장에서는 미국이 어떤 새로운 제재를 내 놓을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에 주가가 폭락했다. 하필 그 때가 월요일이라 1987년 10월 19일에 있었던 블랙먼데이를 연상시켰다. 그런데 상황은 그 때와 비슷하다. 미중 갈등이 주가 폭락에 불을 붙인 것은 맞지만 그 파괴력은 컴퓨터 프로그램 매수세를 비롯한 쏠림 현상이 만든 주가 거품의 붕괴였다. 특히 리만사태 이후 각국 정부는 투자은행들의 위험관리를 위해 그들의 고유계정을 줄이도록 규제해 왔다. 즉 지금처럼 단기 매물이 출회될 때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받아줄 수 있는 기관들(market maker)의 자금 규모가 줄어 변동성이 더 확대되는 부분이 있다.트럼프는 겉으로 무역적자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낸다. 그러나 핑계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이 당장 여럿 있기 때문이다. 갈등의 내막은 패권 다툼이고, 따라서 단기적으로 싸움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미국도 시간이 갈수록 골치 아파지는 문제가 있어 다툼을 계속하기 어려울 것이다.대표적인 문제가 셰일(shale) 유전이다. 그 동안 셰일 가스 덕분에 미국은 에너지 패권을 유지하고 고용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그랬던 셰일 유전들이 애물단지가 될지도 모른다. 셰일 유전의 손익분기점은 유가가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기준 배럴당 50달러선으로 알려져 있으나 운영비가 제외된 수치이므로 이를 포함하면 60달러로 추정된다. 현재 WTI는 55달러 근방이므로 많은 셰일 유전들이 손익분기에 도달하지 못하고 저금리 덕분에 좀비처럼 생존해 있다.셰일 광산 투자자들이 기대했던 채굴생산성은 둔화되고 있고, 환경 부담만 가중될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내 셰일 가스를 운송하는 파이프가 빠르게 확충되어 셰일 가스의 공급과잉도 우려된다. 현재 파이프로 운송할 수 있는 셰일 에너지의 양은 하루 220만 배럴인데 2020년까지 640만 배럴, 2021년까지 790만 배럴로 공급능력이 급증할 예정이다. 특히 셰일 가스는 경질유인데 그것을 가져다 쓰는 정유업체는 중질유와 경질유의 균형을 요구하는 바, 셰일 가스의 수요가 제한된다.결국 이런 셰일 가스의 공급 과잉분을 누가 사 주어야 하는데 다행히도 대기오염으로 몸살을 하는 중국은 석탄을 청정에너지인 천연가스로 바꿀 의향이 있다. 지금은 미중 패권 다툼으로 인해 미-중간 셰일 에너지 교역이 막혀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미국 셰일 유전의 공급과잉이 심각해질 것이므로 미국이 중국에 셰일 에너지를 수출하며 타협할 것으로 보인다.

2019-08-13

고려 말 중국에서 들어와 조선시대 국립대학 ‘학식(學食)’으로 말복때 수박 하나씩 하사

늦여름이다. 수박 철이다. 이른 수박들이 흔하고, 한겨울에도 수박이 나온다. 수박이 제철을 잃었다. 수박 제철은 늦여름이다. 목은 이색(1328~1396년)이 남긴 시가 있다. 제목은 ‘수박을 먹다’이다. “마지막 여름이 곧 다해 가니/이제 수박[西瓜]을 먹을 때가 되었다/(중략)/하얀 속살은 마치 얼음 같고/푸른 껍질은 빛나는 옥 같다”(목은시고). 수박은 고려 말, 한반도에 전래 된 후, 조선 시대에는 전국적으로 흔하게 재배했다. 여름의 끝자락, 수박으로 마지막 더위를 보낸다.다산 정약용의 귀양살이는 모두 세 번이다. 전남 강진의 귀양살이는 세 번째로 마지막이다. 첫 번째는 서산 해미, 두 번째는 장기였다. 장기는 지금 포항시 남구 장기면이다. 강진 귀양살이 중, 다산은 필생의 역작을 대부분 완성한다. 앞서 두 번의 귀양살이에서는 몇몇 시를 남겼다. 그 시에 수박이 등장한다. ‘다산시문집_제1권_시’의 ‘온천에서 느낌을 쓰다’다.경진년 과거사를 또렷하게도/유민들이 이제껏 얘기를 하네/복성이 세자 행차 따라왔는데/한밤중 높고 맑은 노래 들렸네/쌀 주어 망가진 밭 보상하였고(賜米酬殘圃)/조세 감면 장마의 피해 위문해/내린 분부 사신이 따르지 않아/울분에 찬 백성들 마음 보겠네온천은 온양이다. 시에는 ‘수박’이 등장하지 않는다. 설명이 필요하다. 다산의 첫 번째 유배는 ‘정치적 쇼’다. 1790년 2월, 다산 스물아홉 살. 예문관 검열에 임명되었다. 9품의 소박한 자리지만 청요직(淸要職)이다. 반대파가 모함하고, ‘절대 불가’를 외친다. 정조는 ‘임명 강행’이다. 다산이 엉뚱하게 사직을 고집한다. 다툼은 임명권자 정조와 피 임명자 다산 사이로 번진다. 정조는 다산의 ‘사직 상소’를 ‘명령 불복종’으로 몰아붙인다. 서산 해미로 귀양. 1790년 3월 10일, 다산이 귀양지로 출발, 3월 13일 귀양지인 해미 도착, 3월 22일 해배. 겨우 열흘 정도의 유배. ‘정치쇼’라고 여기는 이유다.위 시는 돌아오는 길에 온양에 들러 남긴 것이다. 경진년은 1760년(영조 36년)이다. ‘경진년 과거사’는 장헌세자(사도세자)가 온양 온천에 들렀을 때 있었던 일이다. 다산은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온양에 들렀고, 이때, 30년 전 장헌세자가 온양에 왔던 일, 당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현지 노인에게 듣는다. 그중 하나가 ‘쌀 주어 망가진 밭 보상하였고(賜米酬殘圃)’라는 부분이다. 상세한 내용이 남아 있다.장헌세자를 호위하던 금군(禁軍)의 말[馬]이 동네 주민들의 수박밭을 짓밟았다. 수박과 수박 넝쿨이 엉망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장헌세자가 밭 주인에게 ‘쌀’로 배상하고, 밭의 성한 수박들은 금군에게 내려 주었다는 내용이다. 백성들의 우레같은 함성이 뒤따랐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다산은 온양에서 사도세자의 발자취를 말끔히 정리정돈한다. 지금도 남아 있는 정조 어필 ‘영괴대(靈槐臺)’는 당시 다산이 주관, 세운 것이다. 장헌세자는 정조에게 아버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장헌세자의 자취를 다산이 끄집어내어 결국 정조 어필의 비석까지 세우게 했다. 정치적이다. 짧은 귀양을 ‘정치 쇼’라고 보는 이유다.포항 ‘장기의 수박’은 슬프다. ‘다산시문집_제4권_시’의 ‘장기농가(長鬐農歌) 10장’ 중 일부다. 장기에서 보낸 유배 기간은 220일이다. 그때 지은 시의 일부다.(전략) 호박 심어 토실토실 떡잎이 나더니만/밤사이에 덩굴 뻗어 사립문에 얽혀 있다/평생토록 수박을 심지 않는 까닭은(平生不種西瓜子)/아전 놈들 트집 잡고 시비 걸까 무서워서라네(후략)‘장기농가’는 ‘장기 농촌 노래’쯤 된다. 다산은, 당시 장기에 살던 농민, 어민들의 삶을 마치 그림처럼 상세히 그렸다.‘온양 수박’은 1760년이다. ‘장기 수박’은 1801년이다. 40년을 두고 두 지역에 모두 수박 재배가 흔했음을 알 수 있다. 장기의 농민들이 수박을 기르지 않는 것은 슬프다. 세금 때문이다. 수박 역시 먹으려고 기르는 것이 아니다. 내다 팔려니 세금 문제가 걸린다. ‘장기 수박’은 명백하게 환금작물이다. 18세기 후반에 이미 수박은 널리 퍼져 있었다.다산은 시에서 수박을 ‘서과(西瓜)’라고 표현했다. 지금도 중국인들은 수박을 이렇게 부른다. ‘서(西)’는 어느 지역의 서쪽일까? 중국의 서부 지역인 우루무치 일대다. 정확히는 중국인들의 ‘과일창고’라고 불리는 우루무치, 투루판 일대다. 포도의 당도가 세계 제일이고, 살구, 수박 등이 아주 좋다. 중국인들에게 우루무치 일대는 서역(西域)이다. 수박은 이 지역에서 전래 되었다. 수박을 서과, 서쪽에서 온 과일이라고 부르는 이유다.우리는 중국을 통해서 수박을 받아들였다. 그까짓 수박, 어디서 온들 무슨 이야깃거리랴, 싶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렇진 않았다. 모든 과일, 채소 등이 어디서 왔는지 관심이 깊었다.수박의 전래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하게, 그러나 혼란스럽게 기록한 이는 교산 허균(1569~1618년)이다. 교산은 ‘성소부부고_26권_설부’에서 수박의 한반도 전래를 명확하게(?) 밝힌다.수박[西瓜] : 고려 때 홍다구(洪茶丘)가 처음 개성(開城)에다 심었다. 연대를 따져보면 아마 홍호(洪皓)가 강남(江南)에서 들여온 것보다 먼저일 것이다. 충주에서 나는 것이 상품인데 모양이 동과(冬瓜 동아)처럼 생긴 것이 좋다. 원주(原州) 것이 그 다음이다.제법 정확하게 보이지만 아리송하다.홍다구가 홍호보다 빠르다고 했다. 틀렸다. 홍호(1088~1155년)는 중국 남송 시대 관리다. 홍다구(1244~1291년)는 고려 원종, 충렬왕 때 원나라의 고려 침략 앞잡이 노릇을 했던 이다. 홍호는 홍다구보다 1세기 이상 앞선 시대의 사람이다. 홍다구가 먼저 수박을 전래했을 리가 없다.홍호의 이력을 보면, 그가 수박을 봤을 리도 없다. 수박은 열대성 과일이다. 홍호는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었고 15년 후 남송으로 돌아왔다. 금나라는 북방 유목민족의 국가다. 홍호가 강남에서 들여왔다? 믿기 어렵다.수박은 12세기경 서역에서 비단길을 통해 중국에 전해졌다고 추정한다. 고려에 전해진 것은 13세기, 홍다구에 의해서라는 표현이 오히려 맞다. 모양이 동과처럼 생겼다고 했다. ‘동과’는 오늘날의 동아다. 겉껍질은 박처럼 생겼고 크고 길쭉하다. 수박 중 둥근 것이 있고 긴 것이 있다. 길쭉하게 생긴 것이 좋다고 했다.수박의 모양에 대해서는 기록들이 일치한다. 교산 허균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옥담 이응희(1579~1651년)는 수박을 두고, “서역에서 온 특이한 품종/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던가/녹색 껍질은 하늘빛에 가깝고/둥근 몸은 부처의 머리와 같다”라고 했다(옥담사집). 부처의 머리 모양은 동그랗지 않고 길쭉하다. 교산의 말과 일치한다.한치윤(1765~1814년)의 ‘해동역사’에서는 ‘고려도경’을 인용, “고려에는 능금, 복숭아, 배, 대추 등과 더불어 ‘과(瓜)’가 있다”고 했다. 이 내용을 근거로, “고려 시대에도 수박이 있었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지는 않다. ‘고려도경’의 ‘과’가 서과 즉, 수박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고려도경’을 지은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년)이 고려에 온 것은 1123년이다. 홍다구보다 앞선다. 수박을 ‘서과[西瓜]’라고 부르지만, 오이[瓜, 과]와는 아주 다르다. ‘고려도경’의 ‘과’는 수박이 아니다. 시기적으로도 너무 이르다.수박의 전래에 대해서는 고종 때 영의정을 지냈던 이유원(1814~1888년)의 말이 믿을 만하다. ‘임하필기_제32권_순일편_서과’의 내용이다.어떤 사람이 서과는 원나라 세조 때부터 중국에 들어왔다고 하였다. 그러나 원나라 초기에 절강의 순안 사람 방기는 이미 시를 짓기를, “줄줄이 이어진 꽃무늬는 침에 젖어 푸르고, 가닥가닥 붉은 속살은 멍이 들어 붉구나.[縷縷花衫粘唾碧 痕痕丹血搯膚紅]”라고 하였으니, 이때 절강에 이미 서과가 있었던 것이다. (중략) 송나라 말기 방회의 시에도, “서과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으니, 옥같이 푸른 껍질을 자르네.[西瓜足解渴 割裂靑瑤膚]”라고 하였고,(중략) 호교의 “함로기”에, “내가 회흘(回紇)에서 서과 종자를 얻었는데 말[斗]같이 큰 열매가 달려 서과라 불렀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서과는 호교를 통하여 중국으로 들어온 것이다. (중략) 우리나라는 경기의 석산(石山)과 호남의 무등산, 평안도의 능라도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으며, 씨가 검은색이다.회흘은 위구르 카칸국이다. 위구르, 우루무치, 투르크, 돌궐 등은 동의어거나 연관이 깊다. 즉, 중국의 수박(서과)은 오늘날의 우루무치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한반도 전래는 그보다 뒤인 고려 말기다. 홍다구의 개성 수박 시험 재배(?)가 믿을 만하다.수박이 희귀한 과일은 아니었다. 다만 수박은 귀하게 사용되었다. 여름철 종묘에 천신하는 물품으로 앵두, 보리, 수박[西瓜], 참외 등이 등장한다. 성균관 유생들에게도 여름철에는 특별히 수박을 지급했다. 조선 후기 문신 무명자 윤기(1741~1826년)는 ‘무명자집’에서 “성균관 유생들에게, 초복에는 개고기 한 접시, 중복에는 참외 두 개, 말복에는 수박 한 개를 준다”고 했다. 조선 시대 ‘국립대학의 학식(學食)’이다.당뇨로 고생하는 이들도 수박을 귀하게 여기며 먹었다. 조선 초기 문신 사가정 서거정(1420~1488년)은 “10년 묵은 소갈병이 수박을 먹으면서 시원하게 낫는 듯하다. 약재보다 수박이 오히려 낫다”고 했다.(사가시집)/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08-12

세계가 주목하는 전시가 포항에서!

1957년 9월 26일 목요일 저녁, 서독의 도시 뒤셀도르프(Dǖsseldorf)의 어느 공장건물에서 미술전시회가 열렸다. 작품 전시를 위한 격조 있는 공간도 아니었고, 격조를 차릴 만큼 유명한 미술가들이 참여한 것도 아니었다. 1950년대 후반, 2차 세계대전으로 초토화되다시피 한 독일에서 미술을 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사회적으로 비상식적인 일이었는지 모른다. 예술이 언제 한 번 이라도 상식적인 적이 있었느냐마는, 정말이지 그 시절에 미술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더더욱 아무런 존재감도 없던 20,30대 젊은 미술가들에게는 어떠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젊은 미술가들은 작품 활동을 이어갈 방법을 모색하던 중 조건이나 형식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전시형태를 고안해 낸다. 아무 곳이나 전시장이 될 수 있었고, 원한다면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전시회였다. 격식을 차린 개막식 따위는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서서히 음악 소리가 커졌고, 맥주를 든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파티의 시작이 곧 전시회의 시작이었고, 파티가 끝이 나면 전시도 함께 막을 내렸다. 미술가들은 이 전시를 ‘저녁전시’(Abendausstellung)라 불렀고, 이곳에서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술운동 ‘제로’(ZERO)가 태어났다.‘제로’는 1950년대 후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동한 ‘국제미술운동’이다. 주축이 되었던 것은 독일 출신의 미술가 하인츠 마크, 오토 피네, 귄터 위커이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 미술의 중심은 유럽에서 뉴욕으로 넘어갔다. 유럽에서 망명한 미술가들의 영향 아래 잭슨 폴록, 바넷 뉴먼, 마크 로스코 등 이른바 ‘추상표현주의’ 미술가들이 등장해 미국미술을 이끌어 갔다. 1960년대 초 미국에서는 소비문화와 상업주의적인 미술경향을 반영하는 ‘팝아트’가 유행했다. 유럽에서 문화와 역사를 상징하면서 특별한 지위를 누렸던 미술작품은 이제 대량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상품이 되었다.이 무렵 유럽 전역에 걸쳐 전통미술과 결별을 선언한 전위적인 미술가 그룹이나 미술운동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스페인에서는 ‘에키포 57’(Equipo 57)가, 파리에서는 누보 레알리즘(Nouveau Réalisme)이, 이탈리아에서는 ‘그루포 엔’(Gruppo N) 그리고 독일 뒤셀도르프에서는 ‘제로’가 태동했다. 당시 유럽의 미술가들에게는 극복해야만 했던 두 가지 시대적 과제가 있었다. ‘전쟁으로 단절되고 왜곡된 전통미술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하는 것과 ‘상업적으로 퇴색되어버린 미술의 본질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진취적인 미술가들의 다양한 미학적 시도들 중 연속성을 가지며 국제적으로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이 제로이다.1958년 마크와 피네는 ‘제로’라는 제목의 미술 매거진을 출판했다. 숫자 ‘영’(0)을 뜻하는 제로에는 과거에 속박되지 않는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했던 젊은 미술가들의 미학적 염원이 담겨 있다. 20세기 초 유럽은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전쟁이 보여준 반인륜적 학살과 파괴는 모든 것을 일순간 앗아가 버렸다. 전쟁은 끝이 났지만 그로 인한 상처와 공포는 쉬 잊히지 않고 집단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모든 것이 파괴된 현실, 그렇다고 전쟁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놓을 수 도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실존적 빈사상태에서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무전제적으로 초기화(reset)하여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자 한 미학적 태도가 바로 제로라는 말에 담겨 있다.미술가와 미술이론가들의 글이 수록된 제로 매거진은 1958년과 1961년 걸쳐 모두 세 차례 발간되었으며, 개별 호의 출판에 맞춰 국경을 뛰어넘는 미술가들로 구성된 전시회가 함께 진행되었다. 출판을 매개로 국제적인 미술가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전시와 행위예술, 관람객들이 참여하는 이벤트 등 당시로서는 너무나 진보적인 형식들이 과감하게 실험되었다. 1966년 제로의 활동이 공식적으로 종결될 때까지 유럽과 아메리카, 아시아 대륙의 10여개 나라에서 온 40여명 이상의 미술가들이 제로의 활동에 동참했다. 특히 이브 클라인, 피에로 만초니, 루치오 폰타나, 쿠사마 야요이 등과 같이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던 미술가들은 제로가 태동하는데 결정적인 미학적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제로에 참여한 미술가들에게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예술과 기술이 융합되고 빛이나 움직임 등과 같은 비물질적인 재료를 작품에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하인츠 마크는 알루미늄의 재료적 특징을 이용해 빛과 움직임이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조각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는 문명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빛’(pure light)을 찾기 위해 1959년 ‘사하라 프로젝트’를 계획했던 3년 뒤 실행에 옮긴다. 우주인 복장을 갖추고 광활한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와 바람 빛을 이용한 실험적 퍼포먼스를 진행했다.오토 피네는 불로 그림을 그렸다.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불을 가해 이미지를 만들었다. 감상자가 보는 것은 불에 녹아 흘러내리거나 검게 그을린 물감의 흔적들 뿐이지만 사실 이러한 작품을 가능하게 한 근원에는 공기가 있다. 공기가 없다면 불은 존재할 수 없다. 피네에게 있어서 공기는 무언가를 실존하게끔 해주는 정신성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미술을 가능하게 끔 해주는 창조적인 정신과 다르지 않았다.귄터 위커는 ‘못’이라는 소재로 명상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국제적으로 크나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망치로부터 힘이 가해지면 못은 무언가를 뚫어 버리는 파괴력을 지닌다. 철이라는 차가운 재료의 속성과 뾰족하고 날카로운 형태 때문에 못은 폭력과 고통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커의 경우는 다르다. 위커에게 중요한 것은 못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못을 박는 반복된 행위이다. 그는 못을 박아 그림을 그린다. 못과 못 사이의 간격에 따라, 들어오는 빛의 방향에 따라, 감상자의 위치에 따라 새로운 형태들이 만들어 진다. 위커 역시 못이라는 물질적 재료를 작품에 사용하고 있지만 그가 본질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비물질적 정신성이었다.1950년대에서 60년대로 넘어가던 길목,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접어들던 변화의 시기에 제로는 미술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가치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움직이는 작품이 탄생했고, 빛과 공기가 작품이 되었고, 미술가와 감상자의 간극이 사라지는 상황 그 자체가 미술작품이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경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림이다’, ‘조각이다’ 하던 미술 장르간의 경계가 사라졌고, 국가 간의 경계도 사라졌다. 미술작품은 반드시 물질적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원칙조차 사라졌다. 일시적인 행위가 미술이 되거나, 보존하거나 보관할 수도 없는 거대한 자연이 작품이 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현대미술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선구적인 미술운동이 ‘제로’이다. 제로 미술가들의 주요 작품들은 9월 3일부터 아시아 미술관으로는 처음으로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19-08-12

영화 ‘기생충’이 보내는 메시지

강희룡 서예가사람에게 기생충(寄生蟲)은 이나 벼룩 같은 외부 기생충과 회충 또는 십이지장충 같은 내부 기생충이 있다. 조선의 허준(1539~1615)이 지은 동의보감도 대부분 중국의 각종 의서 내용들을 그대로 인용하는 데 그쳤다. 그 예를 보면 ‘사람이 고단할 때 열이 있으면 충이 생기는데 이 심충(心蟲)을 회충, 비충(脾蟲)을 촌백충(寸白蟲), 폐충(肺蟲)은 누에와 같으니 모두 사람을 죽이는 병으로서 그 중 폐충이 가장 급한 병이다’ 라고 천금방(千金方)의 기록을 인용했다.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관객수 1천만을 넘었다. 인간 기생충을 다룬 이 영화는 한국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흥행은 현실의 사회상을 반영한 대중성이 높을수록 성공한다.내용을 살펴보면, 지상과 지하를 경계로 지상의 집에 도착해도 다시 계단을 오르는 부유층과 반지하에서 작은 창문 틈을 통해 위를 봐야 세상이 보이는 지하방, 그리고 더 지하로 내려가서 사는 하층계급을 다룬다.이 영화에는 계획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부자인 IT회사 사장은 직원들과 회사경영의 계획을 세우며 그 계획을 성공시켜 부를 이루지만, 가난한 계층은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안 되니, 하루하루를 살며 무계획을 계획으로 살아가게 된다.땅을 경계로 지상과 지하 즉 피라미드형 사회적 계층으로 지상은 언제나 풍족하고 폭우 앞에서도 걱정 없지만, 반지하부터는 물에 잠겨 피난을 가야 한다. 신계급주의사회의 양단에 살고 있는 두 가족의 거주형태는 빈민계층 사람들이 아무리 위로 올라가려 해도 불가능해 현실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없는 자의 몸에선 늘 가난이란 냄새가 공통적으로 풍긴다. 이 냄새는 옷을 빨아도 없어지지 않는 찌든 생활의 냄새이다. 빈민층끼리는 못 맡지만 부유층에선 쉽게 맡아 이 냄새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다. 삶이 고통으로 찌들면 여유가 없어 남을 배려하거나 동정심은 사라지고 증오와 미움만 남는다는 인간심리 또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유층은 빈민층이 선을 넘는 것을 싫어한다. 이 선이란, 운전기사는 기사로서, 가정부는 가정부로, 각자 위치에서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되 상부층에 도전하지 말라는 선이다. 기생충 가족이 일시적으로 성충이 되어 보지만, 결국 못 견디고 숙주(宿主)가족을 공격한 후, 파멸되어 스스로 본연의 자리인 지하로 내려간다.달팽이는 몸속의 수분이 많이 증발하기 때문에 건조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한다. 하지만 바다달팽이는 기생충에 감염되면 매일같이 바위 위로 올라와서 갈매기들의 먹잇감이 된다. 이는 갈매기 몸속에서 번식할 수 있는 기생충이 달팽이를 이용한 것이다. 비슷한 경우로 개미도 있다. 평소에는 풀숲 사이로 기어 다니던 개미가 기생충의 공격을 받으면 자꾸만 풀잎 끝으로 기어오른다. 그리곤 풀을 뜯는 가축의 장으로 들어간다. 초식동물의 장 속에서 번식하는 것이 이 기생충의 삶이다. 영화는 우리 사회의 빈부의 양극화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살아가는 동선을 보면 거의 안 겹치는 게 현실이다. 기생충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국민을 숙주로 한 것이다. 어둠속에서 유권자들이 맡긴 권력을 이용하여 청탁이나 횡령 등으로 부패한 공직자들, 정치권력을 가진 엘리트가 대중매체 등을 이용해 그들의 의도대로 대중조작해 언론소비자들을 마취시키는 행위에 편승한 언론사는 회충 같은 내부 기생충이며, 패거리 정쟁을 일삼고 일을 안 하는 국회나 직권남용 같은 사례는 벼룩 같은 외부 기생충들이다. 대체로 이런 기생충들은 정치 후진국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런 독버섯 같은 기생충이 토착화하기 전에 완전 제거가 안 되면 사회와 나라는 병들어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다.

2019-08-12

교사의 평가 자율성 확보해야 창의력 교육 꽃핀다

조현명 시인·교사한국인의 평균 지능지수는 106으로 세계 1위라고 알려져 있다. 이 지능지수에 창의력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학교에서 경험하는 것은 한국인들의 유전자에 창의성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창의력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의문이지만 학교가 이 창의력을 막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창의력은 질문할 용기에서부터 출발한다. 학교에서 질문하는 아이는 버릇없고 쓸데없는 생각을 가진 아이로 취급되기 쉬운데 질문은 어디까지나 학습하는 진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범위를 넘어가면 쓸데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범위를 제한하면 창의력이 담길 수 없다. 시험성적을 위해서 정해진 답을 암기해야하는 현실에서 창의력을 발휘한 질문은 금물이다. 당연히 쓸데없는 질문을 하면 성적향상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한국기자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으나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기자가 질문하려 한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토론 강의 서두에 단골로 올라온 영상이다. 그때 강사들의 질문은 ‘왜 한국기자들은 아무도 질문하려 하지 않았을까’이다. 이 화두는 충격을 주기 위함이고 반성을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있다. 이래서 한국인들은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비판정신도 없고 어쩌고 하는 평을 늘어놓아 반성적으로 토론강의에 임하게 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 기자들이 질문과 토론의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기자회견의 질문자가 정해져있는 데다가 미국 대통령에게서 나올만한 대답이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질문자가 정해지지도 않고 답변도 예상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그렇지 않았으리라 생각이 든다. 학생들에게 적당한 문제를 내어주고 프로젝터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문제 상황에서 길을 찾아가는 학생들의 능력은 대단하다. 열정이 있고 충분히 아는 것도 많으며 해결점을 찾고 조직하고 적용하는 수업에서 학생들의 호기심과 끈기를 그들의 잠재력을 보았다.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그것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바꾸어 내는 창의적인 두뇌들도 있다. 감탄할 만하다. 이런 경험을 필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한국인들은 노벨상을 탈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나 국력이 그를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상을 타지 못할 뿐이라는 설이 떠돌아다니기도 한다.창의력을 억누르고 있는 학교의 교육시스템, 그것을 극복하고자 새로운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과 수업개선 등 다양한 노력이 병행되고 있다. 그러나 평가방법이 올바르게 개선되지 않으면 허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전국적으로 동시에 치르면서 오지선다형인 대입 수학능력시험에 의해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왜곡되어 오고 있다. 고3의 2학기 수업이 파행적인 것이 대표사례다.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은 그나마 평가를 다양하게 유도하는 듯 보이나 학교에서 시행되는 중간·기말고사의 성적이 사실상 과목별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중간·기말고사가 100%인 다양한 형태의 수행평가로 시행되는 고교는 드물다. 공정성 때문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평가방법의 개선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숙명여고 사건이나 여타 성적조작 사건으로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교사에게 책임을 지우고 문책하는 편이지 평가에 대한 자율권은 조금도 인정해 주진 않는다. 바칼로레아라는 논술평가를 시행하는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 교사가 교과서도 없이 자신이 직접 조직한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자율권을 가지고 평가한다. 학부모와 학생들도 그대로 따라 간다. 프랑스의 시스템에 한국 학생들이 배운다면 한국 학생들의 창의력은 아마 우주를 뚫고도 남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인재는 창의성을 가진 인재이다. 교사의 평가를 믿어주고 성적조작이라는 시선으로 공정성만 요구하다보면 평가개선은 요원해지고 미래를 여는 창의력 교육은 어려워진다.

2019-08-12

어떻게 살 것인가 캐묻는 삶(2)

동굴 속 답답한 공기와 달리 맑고 달콤한 산소가 폐 속으로 들어와 새로운 활력을 몸에 공급합니다. 밤이 되자 눈뜰 용기를 냅니다. 하늘에는 뭇 별들이 반짝입니다. 교교한 달빛에 비친 나무며 들판이며 산들을 바라봅니다. 하룻밤을 흥분으로 지새웁니다. 눈이 현실에 적응합니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세상 만물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멀리 뛰어가는 사슴 한 마리.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는 꿩 한 마리를 봅니다. 경이로움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마침내 죄수는 용기를 내어 가장 강렬한 빛인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플라톤은 동굴 밖으로 나온 죄수가 경험하는 세상을 ‘진정한 삶’이라고 말합니다.동굴 안에서 희미하게 보던 삶을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가시(可示)적 영역이라면, 동굴 밖 세상은 지성에 의해 알 수 있는 가지(可知)적 영역이라 말합니다. 가지의 영역에서는 태양으로 비유한 선의 이데아, 즉 만물의 궁극의 제1원리가 인간으로 하여금 진정한 삶, 진정한 앎에 이르도록 빛을 비춰 준다고 말합니다.지성으로만 알 수 있는 영역은 오로지 캐묻는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다고 말하지요. 캐묻는 삶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금광에서 황금을 캘 수 있는 비결입니다. 플라톤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진정한 삶을 한 번 본 사람은 거기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굴로 돌아가야 합니다.다시 어둠에 적응해야 하고, 밖에서 본 것들을 죄수들에게 설명하고 사슬을 끊고 방향을 돌려 밖으로 탈출하자고 설득해야 한다는 거죠. 죄수들은 익숙해진 삶에 태클을 걸고 자꾸만 캐묻는 이 작자가 귀찮아집니다. 결국, 죄수들은 밖에 나갔다 온 자들을 모두 잡아 죽이자고 결의합니다.아테네 법정에서 죽을지라도 캐묻는 삶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포한 소크라테스 존재와 죽음의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진정한 골드러시는 생각에서 황금보다 소중한 것들을 캐기 시작할 때 벌어지는 축제입니다. 익숙하게 살고 있는 먹구름 아래 현실이 어쩌면, 동굴 안의 죄수와 같이 희미한 삶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자기 인식과 성찰. 동굴 밖으로 나가 보고 싶은 호기심과 열망. 같이 가자고 부추기는 진정한 친구.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삶이 고난의 통로를 거치고 진흙으로 엉망이 된다 해도, 빛을 만나 안구에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해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길입니다. 진정한 황금은 우리 생각 안에 이미 가득 매장되어 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2

디지털디톡스

디지털디톡스는 세계적으로 디지털중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처방으로 등장한 운동을 말한다. 디톡스(detox)는 인체 유해물질을 해독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디지털 중독 치유를 위해 디지털분야에 적용하는 디톡스요법을 디지털디톡스라 한다. 디지털 단식이라고도 한다. 세계적인 IT회사인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도 디지털디톡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슈미트는 2012년 5월20일 보스턴대 졸업식 축사를 통해 “인생은 모니터속에서 이뤄질 수 없다”며 “하루 한시간 만이라도 휴대폰과 컴퓨터를 끄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보며 대화하라”고 강조했다. 디지털디톡스 운동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체로 다섯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인터넷 휴(休)요일’을 만들거나 한 시간 정도 ‘디지털과의 이별’을 연습하라. 둘째 디지털기기와 단절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뭐하고 시간을 보내나?’하는 생각을 예방하기 위해 생각의 목표를 설정하라. 셋째, 디톡스의 궁극은 침묵에 있기에 꼭 필요한 말외에는 하지 않는 ‘말의 침묵’, 불필요한 행동은 자제하는 ‘표현의 침묵’, 필요한 것에만 관심을 두는 ‘정신의 침묵’, 불같이 화를 내지 않는 ‘열정의 침묵’, 남에 대한 선입견을 품지않는 ‘상상의 침묵’을 시도해보라. 넷째, 디지털디톡스를 결심했다면 다음 날 기상한 순간 무엇을 할 지를 정해두라. 다섯째, 메신저로 수다를 떨고 싶은 욕심이나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마다 공책을 임시보관함 삼아 생각을 적어두라.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하는 디지털디톡스 5계명을 소개했다. 침대로 스마트폰을 가져가지 않기, 이메일 계정 로그아웃하기, SNS와 모바일 메신저 알림기능 끄기, 디지털기기 대신 종이책 보기, 온라인 접속시간 측정하기 등 5가지다.디지털중독을 치유하기 위한 디지털디톡스가 디지털을 매개로 전개되고 있다는 자체가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만큼 디지털중독이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름휴가가 한창인 요즘, 하루만이라도 디지털디톡스를 실천해보면 어떨까. 사랑하는 가족들과 더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귀한 처방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