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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석양에 돌아온 무법자, 황혼에 지다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한때 황야를 어슬렁거리며 숱한 서부의 악인들을 쓰러뜨린 사나이. 그가 출연한 영화는 아니었어도 당대 서부를 피로 물들이든 숱한 위인들이 존재했던 시대. 지금 그 위인들의 한때는 기억하지만 그들이 생존해 살아갔을 뒷모습은 한번도 이야기된 적이 없으며, 누군가의 총에 맞아 최후를 맞았는지, 어느 오두막에서 천수를 누리며 쓸쓸히 죽어갔는지 알지 못한다.화려했던 한때, 인생의 최절정기에서 소멸해갔던 이들 속에서 굳건하게 살아남은 한 인물의 이야기. 열차와 은행을 털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살인을 저지르던 살인자는 젊고 어여쁜 아내를 맞아 술을 끊고 총을 놓은지 11년이 지났다. 아내가 천연두로 죽은 후에도 캔사스 촌구석에서 어린 아들과 딸을 돌보며 돼지를 키우며 생활고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우리는 그의 전성기(?)를 알고 있다. 과거 그의 행적과 악명을 알고 있으며, 젊은 시절 서부를 내달리며 그의 총구 앞에서 쓰러져갔던 또 다른 악인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1964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에서 시작된 그의 행적은 이후 1965년 석양의 무법자에 이어 1966년 석양에 돌아오다의 무법자 3부작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는 살아남은 자, 서부에서 사라져갔던 이들의 뒷이야기이며, 스스로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함께 무법자 3부작에서 세웠던 서부극의 신화를 해체하는 영화다.1930년대부터 1950년대는 할리우드의 전성기였으며 서부극의 전성기였다. 당시 서부영화는 선악의 이분법이 분명한 정의로운 영웅과 전형적인 악인의 대립을 주된 테마로 삼았다. 선악의 대결이 얼마나 멋있고 치열한가, 살인의 명분을 악인의 악행으로 얼마나 쌓아 올리는가가 주된 내용이었다. 동일 주제로 다양한 변주와 유사품들이 헐리우드의 공장에서 숱하게 양산되던 시기다.1960년대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유사한 장르의 서부극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시절 최절정기에 이탈이아에서 만들어졌던 일련의 서부극을 지칭하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가 있었고, 그의 영화 속 주인공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있었다.△ 석양을 등지고 황혼에 돌아온 사나이스파게티 웨스턴은 정통 서부극과 결이 달랐다. 선악의 이분법이 흐려지면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선인과 악인의 명확한 지점에 있지 않았다. 정의를 위해 총을 뽑던 인물들은 돈을 위해 총을 뽑고, 정체성에 있어서도 선인과 악인의 경계지점을 오가고 있었다. 정통 서부극이 대결에 있어서 일련의 신사적(?)인 룰을 가지고 있었던데 반해 스파게티 웨스턴은 일대일의 결투에서부터 일대 다수의 결투까지 상상할 수 있는 대결의 다양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었다.그곳에서 살아 남은 자. 무법의 세계에서 촌구석의 농부로 돌아 온 자. 이곳에서 나이를 먹은 무법자 윌리엄 머니(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무법자 3부작의 신화를 스스로 해체하고 재해석한다. 그것은 부정과 연민이 아닌 한 시대의 종말을 향해가고 있으며, 영화 속 인물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현실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삶의 변화과정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가 황야에서 보냈던 과거를 마무리하는 중년의 고별사가 되었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2008년작인 그랜 토리노는 1970년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했던 영화 더티 해리 5부작의 황혼에 들어선 마무리처럼 보인다. 형사물인 더티 해리는 미국이 지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서스펜스 영화다. 이 영화에 출연했던 인물이 고스란히 나이를 먹고 황혼기에 접어 들었을 때, 그의 일상의 문제와 직면했을 때의 내용을 그리고 있다.자동차 공장에서 은퇴하고 무료한 일생을 보내는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한국전 참전의 기억으로 괴로워한다. 이런 남편의 참회를 바라던 아내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버틴다. 그의 차고 속에 고이 모셔 두기만 했던 자신의 1972년산 자동차 그랜 토리노와 이웃집 몽족과의 예기치 않은 얽힘으로 전개된다.한국전 참전에서부터 미국의 현대사를 관통해 온 ‘월트 코왈스키’는 그가 직접 조립한 포드사의 그랜 토리노와 함께 전형적인 미국인을 상징한다. 이웃의 몽족은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있는 현대 미국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가장 미국적이며 보수주의자인 그의 실제 모습을 투영하며 그의 영화 속 인물이었던 더티 해리와 또 다른 작별을 고한다.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서부시대를 살았던 사나이의 중년에 들어선 고별을 목격했다면, 70년대 미국의 정의를 위해 총을 들었던 사나이의 황혼에 들어선 고별을 영화 그랜 토리노에서 목격할 수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실제 살아왔던 영화 속 인물들이 늙어가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해 영화와 실제 삶을 오가며 그의 과거를 영화 속에서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두 편의 영화는 ‘클린스 이스트우드‘가 영화 속에서 쌓아왔던 삶과 영화 바깥에서 살아왔던 삶의 기록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전개시키고 있다. 그가 출연했던 영화, 그 이후 그가 직접 연출하고 출연한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같이 나이를 먹고 있었고, 그 모습 그대로 영화 속으로 이어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적 역사와 개인적 역사가 함께 녹아 들어가 있다.2008년 그랜 토리노에서 이 일련의 작업은 종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영화 배우이며 영화 감독으로, 영화 속 삶과 영화 바깥의 삶을 함께 녹여내며 마무리했던 최종 결과물이 영화 그랜 토리노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몇 편의 영화들을 더 연출했지만 배우로 출연하지 않았다.△ ‘마지막’ 선택지를 들고 돌아 온 거장2018년 90세의 영화감독이자 배우가 87세의 마약 운반원의 실화를 다룬 영화 라스트 미션의 감독이자 주연 배우로 다시 돌아 온다. 영화 바깥의 삶을 영화 속으로 다시 끌어들여 자신의 실제 나이와 비슷한 이를 등장시켜 아직도 할 이야기가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원예사업을 하는 ‘얼’은 자기 분야에서 유명인이며 잘 나가는 사업가이다. 바깥으로 맴돌며 가족을 돌보지 못한 남자.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사업은 망한다. 늦게나마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지만 그곳에 자신의 자리는 없다. 그리고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물건을 운반해주면 돈을 준다는 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물건은 마약이었다.영화가 시작되면 2008년의 황혼에 접어들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10년이 지난 모습이 등장한다. 황혼을 지나 노쇠한 그의 모습이 그대로 등장한다. 구부정한 어깨, 활처럼 휘어버린 등, 더욱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살이 그대로 느리고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현실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 온 것이다. 세 편의 영화 속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그의 육체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영화 그랜 토리노에서 종결되었던 그의 영화 속과 영화 바깥의 삶이 라스트 미션에 다시 이어지면서 마무리하고자 했던 그의 영화 안과 밖의 ‘미션’이 아직 남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랜 토리노의 주인공인 ‘월트 코왈스키’가 한국전에 참전한 용사라는 것과 라스트 미션의 ‘얼 스톤’또한 한국전 참전 용사라는 점과 가족과의 관계는 여전히 서먹하다는 동일한 설정을 가지고 있음에서 알 수 있다.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다시 영화 ‘안과 밖’을 버무려 돌아 온 이유, ‘마지막 미션’은 무엇일까. 정의로운 죽음, 혹은 사라짐의 선택지를 택했던 그가 또 다른 마무리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 그것은 라스트 미션의 마지막 장면인 교도소에서 평안히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을 통해 이것이 또 다른 ‘마지막’선택지라고 그의 귀환을 알리는듯 하다. 90세의 노장. 죽음과 사라짐, 평안의 공간을 보여주었던 결말들에서 이제 더 이상 그의 영화 ‘안과 밖’을 함께하는 귀환(영화)은 없을 것 같다. 물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기대에 가득 찬 영화관람을 할 것이다.영화적 삶과 영화 밖의 실제적 삶을 세월의 궤적과 함께 쌓고 해체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는 전무하다. 그의 온전한 인생이 ‘영화적 삶’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라는 장르가 되어 버렸다.락 그룹 시카고의 대표곡인 데스페라도(Desperado)의 가사,‘무법자여, 오, 당신은 더 이상 젊어지지 않아요 Desperado, oh, you ain‘t gettin’ no younger/…울타리에서 내려와, 문을 열어요 Come down from your fences, open the gate/만약 비가 올지 모르지만, 당신 위에 무지개가 있어요 It may be rainin‘, but there’s a rainbow above you/누군가 당신을 사랑하게 하는게 더 좋을 거에요 You better let somebody love you/ 더 이상 늦지 않게 Before it‘s too late ’의 가사처럼 시작해 조정권 시인의 독락당(獨樂堂),‘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벼랑 꼭대기에 있지만/예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내려오는 길을 부숴버린 이.이처럼 스스로 올랐던 길을 부숴버린 그 어떠한 경지 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머물고 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사다리를 내리고 조용히 찾아와 그의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를 일이다. /김규형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그랜 토리노’ ‘라스트 미션’은네이버영화나 구글플레이에서 다운로드하여 볼 수 있다.

2019-08-05

한국이 헤지펀드의 공격 대상이 될까?

김학주 한동대 교수세계적으로 투자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저금리로 인해 헤지펀드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쉬운 환경이다. 즉 약간의 취약성만 보여도 헤지펀드의 공격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데 지금은 한국의 약점이 드러나는 국면이라서 걱정된다.먼저 세계교역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출의존적인 독일, 일본, 한국 등이 취약한 것은 당연하다. 만일 트럼프가 중국을 KO시킬 수 있다면 미-중 갈등은 쉽게 끝나고 이들 국가의 고통도 덜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중국의 지난 2분기 GDP성장률은 전년비 6.2%를 기록했다.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감안할 때 나쁘지 않은 숫자다. 특히 2분기 말로 갈수록 중국의 회복속도가 빨랐다고 한다. 트럼프가 중국을 두들기고 있지만 중국이 버티고 있다. 괜히 중국의 내구력만 입증시켜 준 셈이다. 여기서 트럼프가 꼬리를 내릴 수 없다. 더 강한 약을 쓸 수 있다는 것이고, 그 피해는 수출의존도가 큰 나라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한국으로 넘어 올 수 있다.또한 한국 산업의 두 기둥인 반도체, 자동차가 흔들린다. 원화가치가 절하되면 이를 가격경쟁력으로 활용하며 더 많은 달러를 벌어 들이던 건강한 수출기업들 때문에 헤지펀드들이 감히 한국을 공격하지 못했는데 이제 그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자동차의 경우 세계 최대인 중국시장이 의외로 위축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자동차 보급과정을 감안할 때 중국 자동차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고, 그래서 모두가 중국에서 설비증설에 공격적이었다. 그러나 중국 내 부의 불균형으로 인해 1선 도시의 자동차 보급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자동차 수요가 급격히 둔화됐고, 도로 등 자동차 인프라의 더딘 보급, 그리고 예상보다 심각했던 대기오염이 수요를 제한했다. 그 결과 중국이 급작스러운 공급과잉으로 접어 들었다. 사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미국, 유럽처럼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수익성이 높았는데 그 시장이 위축된다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반도체는 아직 성장과정이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헤지펀드들도 중국정부가 삼성전자를 추격하여 흔들어 놓기 전까지는 한국을 관망하는 분위기였는데 의외로 한일 통상마찰로 인해 삼성전자가 한국을 떠나야 한다면 서둘러 공격해 볼만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한편 한국은 인구도 가장 빨리 노령화되는 국가 중 하나다. 즉 향후 건강보험 재정지출이 급증할 것이다. 또한 연기금의 자산이 과대평가되고, 부채가 과소평가된 부분도 정부재정으로 충당해야 한다. 특히 한국에는 통일이라는 이벤트가 있다. 예전에 한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은 통일되면 달러당 3천원 갑니까?”라고 물은 적 있다. 통일비용을 염두에 둔 것이다.이런 한국의 구조적 문제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 나올 수 밖에 없으니 헤지펀드 입장에서는 시간을 끌더라도 승산이 높을 수 있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한국을 공격할 수 있다. 만일 헤지펀드가 한국자산을 팔거나 원화를 공격해서 절하시키면 원자재 수입비중이 높은 한국은 수입물가가 상승해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진다. 정부가 이를 좌시할 수 없으므로 재정으로 그 부담을 흡수하게 될텐데 이는 또 다른 원화가치 하락 요인이므로 헤지펀드 입장에서는 해 볼만한 게임이 될 수 있다.2016년 초 소로스는 중국 위안화를 공매도하며 공격했다. 부채위주의 기형적 성장이 지속될 수 없고,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 이유는 중국의 성장 잠재력 때문이다. 지금 빚이 있어도 성장을 지속하면 갚고도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헤지펀드의 공격에서 벗어나려면 성장이 살아 있어야 한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젊은 벤처기업들을 지속적으로 탄생시킬 수 있는 인프라와 규정을 시급히 갖춰야 하고, 이들의 성장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2019-08-05

가깝고도 먼 나라

강희룡 서예가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보면 기원전 3세기경 한반도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 600여 년간 청동기와 철기문화를 일으켰는데 이를 ‘야요이 문화’라고 한다. 오늘날 일본인의 조상은 원주민인 조몬(繩文)인을 몰아낸 이 야요이인이라는 학설도 있다. 이후 백제와 가야, 고구려인의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가는데 이를 도래인(渡來人)이라고 한다. 일본의 건국과 일월숭배와 관련이 깊은 신화적 요소가 짙은 설화인 ‘연오랑 세오녀’도 삼국유사에 전한다. 이 설화가 고대 일본문화의 성립과 관련이 깊다는 것은 세오녀가 짠 비단의 존재에서 알 수 있다. 이는 일본으로 건너간 집단 가운데 직조 기술자가 있으며, 이들이 일본에 직조 기술을 전파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렇듯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류는 그 유래가 매우 깊음을 알 수 있다.일본인에 대해 일찍이 신숙주는 ‘해동제국기서’에 ‘그들의 습성은 강하고 사나우며, 무술에 정련하고 배타기에 익숙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게 되었으니, 그들을 만약 도리대로 잘 어루만져 주면 예절을 차려 받들고, 그렇지 않으면 문득 함부로 노략질할 것입니다.’라고 하여 일본에 대한 경계심과 함께 교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신숙주는 임종 직전에도 성종에게 ‘일본과의 평화를 잃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임진왜란은 명, 청의 교체, 일본의 에도막부와 같은 새로운 정권의 성립을 말해 준다. 이 전란의 시대를 살던 강항(1567∼1618)은 왜군에 잡혀 피로인(被虜人)의 신세가 된다. 그가 지은 ‘간양록(看羊錄)’은 일본에 끌려가 목격한 실상을 속속들이 기록한 체험기록이다. 그 중 ‘적중봉소(賊中封疏)’의 한 대목을 보면 ‘백만의 야인이 수십만의 왜병을 대적치 못할 터인데, 국가에서 남쪽을 가볍게 여기고 북쪽을 무겁게 여기는 까닭을 알지 못하겠습니다.(중략) 왜인이 포 쏘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고 천성이 영리하여 지금의 왜인은 옛날의 왜인이 아니니, 조선의 방어 또한 옛날의 방어로는 안 되는 것이니, 국경의 방비를 전일보다 백배 더해야 할 것입니다.’ 당시 일본의 역사와 사회상을 객관적으로 제시한 기록이다.에도시대 조선통신사는 1607년에 시작되어 200년 동안 모두 열두 번 파견되었다. 통신사로 파견된 인사들 중 신유한(1681∼1752)이 쓴 ‘해유록(海遊錄)’의 기록을 보면, ‘통신사들은 일본 전국의 지식인과 민중에게 거의 열풍에 가까운 큰 환영을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즉 조선 문화전파의 길이었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문화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일본 내부와 속사정을 자세하게 관찰하는 이가 드물었고, 일본의 참모습을 직시하기는커녕 깔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연암 박지원이 ‘우상전(虞裳傳)’에 남긴 언급을 보면, ‘수백 년 동안 사신의 행차가 내왕했으나 체통을 지키고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치중하느라 그 나라의 인물, 요새, 강약의 형세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왔다갔다만 하였다.’라는 기록이 당시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일본에 관한 종합 정보지의 성격을 지닌 이덕무(1741∼1793)의 ‘청령국지(873B86C9國志)’를 보면 조선후기 지식인들은 일본을 통해 서구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적지 않게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역학에서는 한국과 일본은 모두 동쪽에 있는 나라라고 해서 목(木)으로 분류한다. 같은 목이지만 한국은 갑목이고, 일본은 을목이다. 이렇게 음양을 십성(十星)으로 분류하게 되면 겁재(劫財)가 되는데, 이 겁재는 사람으로 치면 배다른 형제이다. 즉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인 것이다.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일본과 불붙은 경제전쟁은 목소리만 높인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아베의 숨은 목적은 한국에서의 극대화된 반일감정을 이용하여 그의 목표인 전쟁 가능한 일본 헌법으로 개정하는데 있다. 국민들에게 죽창과 의병의 행동강령, 이순신의 12척의 배를 운운하며 국민을 애국과 이적으로 가르는 것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반드시 이긴다.’는 손자병법이 필요한 시국이다.

2019-08-05

랍비와 황제의 밀약(2)

성문은 무너지고 로마 병사들은 예루살렘으로 진격합니다. 110만 명이 몰살당합니다. 예루살렘 길거리에 어린아이 무릎 높이까지 피가 강처럼 흘렀다고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말합니다. 150만 명 유대인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나라 없는 디아스포라의 운명으로 살아가지요.한 나라가 멸망하면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이면 모든 문화나 문명은 다 사라집니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에 따르면 역사상 28개 문명이 발생했는데 유일하게 수천 년을 살아남은 문명은 유대 문명이 유일하다고 하지요. 멸절 위기에 처한 유대 문명은 어떻게 그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았을까요?랍비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 멸망 후 야브네로 떠납니다. 제자들과 함께 작은 학교를 세우지요. 황제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아들 티투스를 유대 총독으로 보내면서 작은 학교 설립을 돕습니다.그 학교에서 요하난 벤 자카이는 랍비들을 길러내기 시작합니다. 한 명 두 명 길러낸 랍비들은 유대 전역으로 흩어져 마을마다 토라를 가르칠 수 있는 회당을 짓습니다. 그곳에서 토라와 탈무드를 목숨 걸고 가르칩니다. 회당은 영토를 잃어버린 유대인들의 구심점입니다. 나라는 망했지만, 탈무드와 토라를 가르칠 수 있는 랍비를 길러낼 수 있으면 민족이 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으로 뼈아픈 역사의 경험을 통해 학습 공동체로 새롭게 태어납니다.세계 인구 0.2%밖에 안 되는 유대인들이 세계 경제 70%를 장악하고 있고, 노벨상을 22% 휩쓸고 있으며 미국의 모든 언론과 영화, 포춘 500대 기업을 거의 쥐락펴락한다는 이야기는 신물나게 들었습니다. 배움이라는 것이 모든 민족의 뼛속에 DNA로 아예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의 작은 학교에서 시작한 교육이 2천 년의 세월 동안 흩어져 있는 모든 유대인의 삶에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먹구름 아래 환경이 로마 군인들에게 포위당한 예루살렘보다 낫다고 볼 수 없습니다. 칼과 창으로 살육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보이지 않는 장치들로 우리를 교묘히 길들여 소비하는 대중으로 만드는, 진짜 삶을 살지 못하게 가로막는 캄캄한 세상입니다.손 놓은 채 10년 후를 맞을 수 없습니다. 10명이 될지, 100명이 될지 모르지만 서로 연대하면 분명히 승리할 것이라 믿습니다. 독일 꼬마 펠릭스핑크바이너가 말합니다. “잊지 마세요. 모기 한 마리는 코뿔소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천 마리 모기는 코뿔소의 길을 바꿀 수 있어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5

랍비와 황제의 밀약(1)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1차 유대-로마 전쟁을 꼽습니다. AD 66∼70년 벌어진 끔찍한 전쟁으로 유대인들은 인구가 800만 명에서 400만 명으로 줄어듭니다. 그리스인과 유대소송에서 승리한 그리스인들이 유대인을 학살하는데도 로마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유대민심이 흔들리는 와중에 로마 총독 폴로루스가 성전에서 17달란트 금을 몰수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성전 모독 행위에 분노한 유대인들은 로마 수비대를 급습해 병사들을 살해합니다. 네로 황제는 유대를 공격하라고 명령합니다.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완강한 저항 때문에 수도 예루살렘만은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장군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주민들이 굶주려 항복하기를 기다립니다. 2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몰살당한 상태입니다. 온 나라는 피로 물들었고 성벽 내부는 굶주림과 질병, 끝없이 발생하는 아사자로 항복하자는 측과 끝까지 저항하자는 측으로 나뉩니다.예루살렘 지혜자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유대 민족이 살아남을 길은 협상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확신합니다. 전염병에 걸린 시신이라고 기지를 발휘해 예루살렘 성문을 통과해 베스파시아누스 장군 막사로 찾아갑니다. 면담은 흔쾌히 이뤄집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사령관의 눈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나는 장군에게 로마 황제에게만 표하는 존경을 드립니다.” 당황한 장군이 손사래를 칩니다. “황제를 모독하는 그런 발언은 삼가시오.” 벤 자카이는 말합니다. “아니오. 당신은 반드시 로마의 황제가 될 것입니다.”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주위를 살핍니다. “그런 얘기는 그만둡시다. 나를 찾아온 목적이나 말해 보시오.”“장군. 나에게는 작은 소원 한 가지가 있소.” “무엇이오?” “예루살렘은 궤멸 직전의 상황이오. 우리는 항복하고 성문을 열어 투항할 것이오. 그 대가로 작은 부탁이 하나 있소이다. 야브네 거리만은 파괴하지 말아 주시오. 방 한 칸의 교실이라도 좋으니 조그만 학교 하나만 그곳에 지어 주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작은 학교만은 없애지 말기를 부탁하오” “그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수 있소.”대화를 나누는 도중 로마에서 파견한 전령이 헐레벌떡 막사로 뛰어들어옵니다. “황제가 돌아가셨습니다. 원로원에서 장군님을 차기 황제로 선출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랍비의 통찰에 경의를 표하고 엄명을 내리지요. “작은 학교는 절대로 없애지 마라”(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4

아베의 오만한 식민사관이 결국 화(禍) 불렀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일본의 8·2 경제 보복조치는 아베의 오만한 식민사관에서 비롯되었다. 아베는 1997년 12월 중의원 역사모임을 결성하고 사무총장직을 맡는다. 아베는 신도(神道)정치 의원모임 등을 통해 자신의 역사 인식의 토대를 굳건히 하였다. 아베는 이 모임을 통해 그의 극우 군국주의적 신념을 전파하였고, 일본 역사 교과서 개정운동도 동시에 펼쳤다. 이들의 ‘역사 교과서의 의문-젊은 의원들에 의한 교과서 문제 총괄’이라는 보고서는 일본 역사 교과서의 개정의 지침이 되었다. 아베의 패권주의적 군국주의적 시각은 일본 국익 팽창에는 기여했겠지만 우리 경제에는 상당한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아베의 오만한 일본 극우 식민사관이 오늘의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연결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아베의 오만한 역사인식은 우리의 징용자 보상 문제에도 적용되고 있다. 아베는 1965년 한일 간 체결된 3억불의 보상협약으로 징용자 보상 문제는 재론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한국 대법원의 징용자 일본기업 배상 판결은 그의 경제 보복으로 연결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같은 아베의 조치는 일본의 지식인들까지 수긍하지 못하고, 일본의 전 변협회장까지 국가의 잘못으로 인한 개인의 법적 구제 절차는 당연한 피해자의 권리라는 주장이다. 아베의 이러한 발상은 과거 국권 침탈과 식민지배를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부인하지만 아베의 과거사에 대한 오만한 인식이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연결되었음은 분명한 현실이다.나아가 아베는 과거 종군 위안부 강제 동원까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위안부의 강제 연행을 인정한 1993년 고노담화까지 부정한 셈이다. 아베의 역사 모임은 조선의 위안부 문제도 ‘조선에는 기생집이 있어 위안부 문화가 보편화되어’ 강제 동원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1965년 조약체결 시 위안부문제에 관해 아무도 이의가 없었는데 한국 생존 증언자 16명의 의견 청취를 토대로 군의 강제 동원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종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에 대해 물증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2012년 박근혜 정부 시절의 ‘불가역’의 위안부 문제의 부당한 합의만을 이행할 것만 요구하고 있다.독도문제에 관한 일본 영토주장은 얼토당토않은 오만한 시각이다. 일본은 1905년 러일 전쟁 시 ‘주인 없는 섬 독도’를 러시아 함대 감시용으로 일본 영토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독도가 한반도에 속한 영토임은 1145년 삼국사기,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 등 우리 사료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1695년 돗도리번 답변서, 1877년 태정관 문서 등 그들의 문서에도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87㎞, 일본의 돗도리에서는 157㎞나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토인 독도는 사실 한일 합방에 의한 일본의 국권 침탈의 첫 희생물이다. 최근 러시아의 독도영공 침범에 대해 일본이 한국과 러시아를 싸잡아 비판한 것은 그들의 영토적 속내를 다시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아베의 이러한 과거사에 대한 오만하고 왜곡된 인식이 이번 8·2 경제 보복의 단초이다. 아베의 집권 초기의 군국주의나 패권주의적 주장은 일본 경제위기 탈출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 아베는 이제 일본의 보수적인 여론을 토대로 헌법 9조 개정을 통해 무력강국의 합법화를 획책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의 이번 경제 보복조치는 결국 자유무역의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그것이 일본 경제나 외교에도 부메랑이 될 것이다. 세계 3위인 일본 경제도 12위의 한국 경제를 이제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의 저자세 대일 외교가 오늘 아베의 오만성을 키웠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아베의 너울성 파도부터 잠재워야 할 것이다.

2019-08-04

시 암송 수행평가

김현욱 시인“뱀, 쥘 르나르, 너무 길다.” “섬,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반성, 함민복, 늘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파랑새, 한하운,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지푸라기, 임보, 낟알을 다 뜯기고 만신창이로 들판에 버려진 지푸라기 그러나 새의 부리에 물리면 보금자리가 되고 농부의 손에 잡히면 새끼줄이 된다.”서울 동도중학교는 전교생이 졸업할 때까지 시 100편을 외우는 전통이 있다. 일주일에 한 편씩이니 학년마다 33편 내외를 암송한다. 기사에 따르면, 동도중학교 전교생의 80% 정도가 시 100편을 외우고 졸업한다. 1999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4년째다. 시 암송 프로그램을 도입한 박찬두 국어 교사는, “수행평가 점수를 확정해야 하는 중간, 기말고사를 앞두고는 암송 확인을 받으려는 학생들의 줄서기가 교무실 앞부터 복도까지 길게 이어진다”고 말했다.시 암송으로 유명한 나라는 독일과 프랑스다. 독일과 프랑스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 암송을 시킨다. 시 암송 노트가 따로 있다. 매주 시 한 편을 나눠주고 시를 외우게 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고등학교 때까지 최소 100여 편의 시를 외워야 졸업을 할 수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국력은 모국어를 사랑하고 모국어의 정수를 획득한 문화 국민의 힘에서 나온다. 미국의 사립 명문학교, 중국의 사립 명문학교에서도 시 암송은 빠지지 않는 지도자 양성의 핵심 프로그램이다.시암송국민운동본부 문길섭 대표는 시를 400편쯤 암송하는 시 암송 전도사다. 시 암송을 하면 좋은 점이 너무 많다고 한다. “친구나 애인처럼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고 뇌세포를 활성화해 치매를 예방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고 불면증을 사라지게 하고 자투리 시간을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어주고 마음이 힘들 때 위로와 희망을 주고 글쓰기와 말하기의 수준을 높여주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고, 세상만물을 늘 가슴에 품게 해준다.”2008년 죽장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시 암송을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한 가지는 시 암송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시 암송을 통해 특정 교과 성적을 향상하겠다는 얄팍한 계산은 참으로 어리석다. 시 암송은 그 자체가 목적이고 자신의 삶과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거룩한 행위였다. 마치 경전을 암송하는 구도자처럼 말이다. 아이들이 꼭 암송했으면 싶은 시가 몇 편 있는데 그중에 정현종 시인의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도 그중 한 편이다.“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정현종,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시 암송을 학급에서 실천하려던 어떤 교사는 일부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이유인즉슨, 안 그래도 외워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아이에게 또 다른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암기는 하면 할수록 질린다. 시험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갖다 버리는 문제집 같은 것이다. 암송은 하면 할수록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이의 영혼에 인류 대대로 전해 내려온 언어와 문화의 에센스가 그득 차오른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 열정을 가진 교사가 아이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꽃을 옮긴다.교사로 근무하면서 아이들과 시 암송을 하고 매일 아침 글기지개를 쓰고, 매주 주제를 정해 시를 쓰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시 암송 축제를 열 수 있었던 에너지는 ‘그저 그러는 게 좋아서!’였다. 서울 동도중 학생들은 시 암송 수행평가 때문에 당장은 애를 먹겠지만 훗날 시 암송 덕분에 웃는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2019-08-04

왜관(倭館)

왜관은 과거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머물렀던 장소에 붙여진 이름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말 이후 조선 초기까지 경상도 지역에는 왜구의 원정 노략질이 잦았다. 경상도 지역 여러 항구에서 출몰한 그들은 상업 활동을 핑계로 자주 말썽을 일으키자 조선시대 태종이 그들의 노략질을 막기 위한 유인책으로 왜관을 설치했다. 왜관의 설치로 그들의 왕래와 상업 활동을 공식 인정하고 교역상의 무질서를 바로잡으려 했던 것이다. 그들이 머물렀던 왜관에는 관사와 숙소, 교역장 등이 세워졌다. 그러나 세종 때 대마도 정벌이 있은 후 우리나라에 설치된 왜관은 모두 폐쇄됐다. 이후 조선시대는 일본과의 외교 사정에 따라 왜관은 설치와 폐쇄가 반복됐다. 지리적으로 왜구의 노략질이 잦았던 동래의 부산포와 내이포, 울산의 영포 등이 왜관이 설치된 대표적 장소다. 일본인의 입국이 많아지자 서울에도 낙선방, 동평관이라는 왜관이 설치되고 관원을 두어 관리했다. 조선시대 많을 때는 한 해만 6천명이 넘는 일본인이 우리나라에 입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왜관이라는 용어는 한국과 일본의 교류사에서 파생한 단어라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 역사적으로 미묘한 관계에 있다. 최근 벌어진 한일간 무역전쟁도 어쩌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한일간 무역전쟁으로 빚어지고 있는 반일운동 분위기 속에 칠곡군 왜관읍 지명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고 한다. 일부 시민단체는 차제에 “일제 잔재 명칭인 왜관이란 명칭을 바꾸자”는 의견을 제안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일본인이 거주한 곳의 단순 의미의 명칭일 뿐이라 맞서고 있다. 1996년 전국적으로 일제 잔재 지명을 바꿀 때도 지금의 왜관읍은 사용해도 무방한 것으로 판단된 바가 있다고 한다. 이후 여러 번 명칭 변경 의견이 나왔지만 실행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중요한 것은 지역민의 종합된 생각이다. 반일감정이라는 일시적 시류에 흐르기보다는 역사적 시각 등 지명에 대한 종합적 상황 등을 고려해 지역사회 스스로가 판단, 결정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04

‘외눈박이’ 정권의 필연적 시련

안재휘 논설위원일본 아베 정부가 결국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수출심사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달 28일부터 발효가 예정된 이 조치로 인해서 수출 규제 대상이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서 857개 품목으로 늘어났다. 사실상 거의 모든 산업으로 확대된 데다가 일본 정부가 어떤 품목을 정밀 타격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까지 겹쳤다.한일 경제갈등의 시원(始原)은 지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일본과 문재인 정부의 인식 차이이다. 협정 제2조 1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중략)…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돼 있다. 이 조항을 근거로 일본은 개인 배상문제를 재론하는 것 자체를 명시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문에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핵심 논거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식민지배’ 자체에 대한 배상 판결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것이어서 간단히 이해할만한 내용은 아니다.일시적 반일감정으로 펼쳐지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나, 아베에 대한 성토, 길거리를 메운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당장은 속 시원한 장면일 수 있지만, 그 안에 슬기로운 해결책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일본이 한국제품 불매운동에 대대적으로 나서면 우리 경제는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들이 또다시 모진 고초를 겪는 것은 아닐까. 이번 사태는 결국 ‘외눈박이’ 정권이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 시련이라는 느낌이 든다. 문 정권의 이념정책 성향은 실사구시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적폐청산’이 그렇고, ‘소득주도성장’이 그렇고, ‘탈원전’이 그렇고, ‘최저임금 폭증’이 그렇다. 명분으로 따지면 하나같이 그르지 않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되는 게 도무지 없다.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상위법인 국제협약이기 때문에 존중돼야 한다는 견해를 말하면 곧바로 “한일합방도 존중돼야 하느냐”며 ‘친일파’ 멍에를 덧씌운다. 작년 10월 대법원판결 이후 일본과의 협상을 통해서 한일청구권협정 보완책을 마련하는 등 충돌을 피했어야 한다고 말하면 “네가 정권 잡아서 잘 해 보라”는 식의 마구잡이 핀잔이 돌아온다. 그 무지막지한 확증편향의 비논리적 이념무장이 작금 사태의 뿌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국정의 무한책임을 떠안고 있는 정권의 외교적 무능은 치명적이다. 반정(反正)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는 ‘과거청산’을 내걸고 중립외교를 추구했던 광해군 때 인사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명·후금(청)과의 외교 교섭을 전담해온 평안감사 박엽(朴燁), 의주부윤 정준(鄭遵)까지 처형했다. 그리고 치욕의 병자호란을 불러들여 삼천리강산을 피로 물들였고, 자신도 눈보라 치는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굴욕을 겪었다.국회 방일단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온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한국이 반복해서 일본의 상처에 손을 넣고 자꾸 후벼대는 것 아니냐는 비유를 하더라”고 일본 민심을 전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핑계만 무성했지 한일 관계를 이토록 악화시킨 책임에 대해서 사과를 앞세우는 위정자들을 본 적이 없다. 지금 국민들은 밖에 나가서 못난 짓을 하다가 실컷 얻어맞고 돌아와 줄기차게 ‘남 탓’만 거듭하는 찌질한 자식을 보는 부모의 애타는 심정일 것이다. 외교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 교실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문재인 정권은 무려 8개월 동안 도대체 무슨 대비를 해왔는지 거듭거듭 묻고 싶다. 수상한 그림자의 실체가 갈수록 궁금해진다.

2019-08-04

실패한 일회성 실험

강길수수필가잿빛 구름에 물방울이 송송 숨었다. 물방울들이 언제 구름을 모아 땅에 장맛비로 내릴지 알 수 없다. 비는 논밭을 일깨우고, 산을 더듬고, 강도 만지고, 바다를 간질일 것이다. 무엇보다 도시의 오염된 공기와 집, 도로와 공원을 씻어 내리리라. 사람들은 비 안 맞을 준비를 하고 나들이를 한다.자전거 뒤에 우산을 싣고 출퇴근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장마철이어서 그렇다. 오늘 출근길도 자전거 페달이 가볍다.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매일 두던 곳에 세우고, 우산을 내려 사무실에 가지고 올라갔다. 점심때가 가까워져 창가로 가 하늘을 살폈다. 구름 상태가 점심 먹고 오는 동안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산을 가지고 내려가 자전거 뒤 짐받이에 실었다.다른 일이 없는 한, 집에서 점심을 한지 꽤 오래되었다. 돈이 절약될 뿐 아니라, 운동도 되기 때문에 일석이조다. 점심 후 다시 사무실에 갔다. 자전거를 제자리에 두고, 우산을 내리려 끈에 손이 갔다. 그 순간, 장난스러운 생각이 튀어나왔다. ‘누가 가져가지 않을 것이란 사회에 대한 내 믿음을 우산으로 실험해 보자!’는 마음이 불쑥 든 것이다. ‘우산도 새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뒤따랐다.기실, 우산은 손잡이를 세게 당기면 아랫부분의 대가 쑥 빠져나오는 헌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새것이나 진배없는 아니, 새 우산보다 더 귀한 것이다. 전에 아내가 ‘대가 고장이 나서 못 쓰게 되었는데, 천이 좋고 살이 튼튼해 버리기가 아깝다’고 했던 우산이다.어느 날, 펜치와 드라이버로 고장 난 곳을 누르고 조정하여 당겨도 잘 빠지지 않게 고쳤다. 그 후 우산은 내 전용이 되다시피 했다. 아랫대를 적당한 부위까지 당겨서 쓰면 아무 지장이 없었다. 바람이 세게 불며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갈 때가 백미다. 대가 빠져 우산이 날아갈 수 있다는 긴장감 속에, 신경 모아 걷는 남모르는 스릴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우산을 자전거에 두고 사무실에 올라온 지 두 시간 정도 지났다. 물이 마시고 싶어, 잔에 물을 따라 창가로 가 마시며 자전거를 내려다보았다. 저만치 서 있는 자전거 짐받이에 있던 우산이 없어진 것 같이 보였다. 어찌 보면 있는 것도 같았다. 시력 탓이다. 당장 내려가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일었다. 하지만, ‘삼만 불 국민소득의 우리 사회인데, 퇴근 때까지 믿고 두고 보자’란 마음이 그 생각을 주저앉혔다.퇴근 시간이다. 얼른 컴퓨터를 끄고, 문단속한 뒤 계단을 내려갔다. 문을 나서며 눈이 저절로 길 건너 자전거를 보았다. 우산이 없었다. 실망한 마음으로 자전거에 갔다. 앞뒤 두 끈을 풀지도 않고 그대로 우산만 쑥 빼 가버렸다. 마른 물티슈 끈이다. 우산 빠진 구멍이 일그러지지도 않고 텅 빈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우산이 따라가기 싫었던 것일까. 아직도 못 떠난 우산의 잔해가 끈을 받치고 있단 말인가. 시나브로 끈을 풀어 다시 조여 매는 내 손가락은,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정든 우산이 아까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사회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지금껏, 자전거나 차량에 싣고 온 물건은 언제나 필요한 곳에 갖다 두면서 살았다. 쓰기 위함이었지만, ‘작은 불찰로 남을 도둑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마음도 있었다.오늘 즉흥 코미디 같이 해버린 이 실험은, 첫 도전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늘 물건을 챙기던 습관과 생각이 옳았다’는 마음도 들었다.하지만 단 한 번의 일회성(一回性) 실험으로 사회를 판단한다는 것은 도리에도, 이치에도 합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통계학적으로도 옳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우산 없어진 빈 자전거 짐받이를 처음 보았을 때, 가져간 이가 미운 마음이 든 것도 맞다. 그러나 우산 하나로 사회를 시험해 보려 했던 어설픈 실험자 곧, 원인제공을 했던 내가 더 문제였다는 생각에 이르자 미움도 금방 사라졌다. 정말 우산이 필요한데 살 수 없어서, 남의 것을 뽑아 갔으리라고 이해하는 마음도 뒤따랐다. 나아가, 우산이 그 사람에게 요긴하게 쓰이기를 바라는 바람도 생겼다.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이다. 낮의 우산 사건을 되돌아본다. 왜 그 순간 충동적인 우산실험이 떠올랐을까. 아마 나도,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가 변해가는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지 싶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상식과 이성(理性)이 마비되어가는 어지러운 사회다. 이리저리 공동체가 부서져 흩어지는 소리도 들린다.가면 쓴 보이지 않는 손이, 뒤에서 무언가 나를 주무르며 시험하는 느낌도 드는 요즈음이다. 그러니 내 무의식도, 우산실험이란 돌연변이를 투사(投射)한 것이리라.우리 사회는 지금, 한 번도 겪지 않은 일회성 실험을 당하며 사는 게 아닐까.

2019-08-04

구미의 담대한 여정

장세용구미시장구미에 희소식이 전해졌다. 지역 경제의 노둣돌이 될 ‘상생형 구미 일자리’가 성사된 것이다. LG화학은 구미국가산업 5단지에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 공장을 짓는다. 올해 반세기를 맞은 구미국가산업단지에 도약의 마중물이 마련된 셈이다.구미형 일자리로 일컬어지는 상생형 구미 일자리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협상 시작 반 년 만에 이끌어낸 노·사·민·정 합의라는 점, 국내 최초의 투자 촉진형 일자리라는 점, 첨단 소재 산업을 중심으로 양질의 미래형 일자리를 유치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더욱이 첨단소재산업의 국산화를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대한민국 산업 발전과 궤를 같이해 온 구미는 섬유· 전자·모바일·디스플레이·자동차 부품 등으로 주력산업을 변화시켜 왔다. 하지만 더 이상 기존의 산업 패러다임은 유효하지 않다. 많은 기업과 지자체가 새로운 성장 동력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구미 역시 새로운 변화의 한 가운데에 서 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다양한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 상생형 구미 일자리를 위해 시동을 건 것도 그 때문이다.세계적인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는 그의 저서 ‘총·균·쇠’에서 무기와 병균, 금속이 인류의 문명을 어떻게 바꿨는지 기술했다. 이제 여기에 재(材), 첨단 소재를 덧붙여야 하지 않을까.상생형 구미 일자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제조업 부흥을 이끌 신산업에 대한 투자다. 그 중심에 첨단 소재가 있다. 특히 이차전지는 일본의 수출 규제와 중국의 반도체 굴기의 대항마로 떠오르며, 제 2의 반도체로 부상 중이다. 전기차용 배터리인 이차전지는 환경친화적이고 새 시대에 적합한 에너지원이다.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쓸 수 없는 일차전지와 달리 이차전지는 충전해서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해 전기차에 있어 심장과도 같다. 전기차를 비롯해 스마트폰과 드론, 로봇에 없어서는 안 될 이차전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이기도 하다.이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 중 우리 구미에는 양극재 공장이 들어선다. 양극재는 배터리 재료비의 약 40%를 차지하는 중요한 원재료로 기술 장벽이 높은 고부가 산업이다. 2021년부터 연간 6만여 t의 전기 배터리 양극재가 바로 우리 구미에서 만들어지게 되면, 메르세데스 벤츠, 폴크스바겐, 포드 등의 세계적인 명차들이 구미에서 탄생한 배터리로 세계 곳곳에서 달리게 될 것이다.다시 구미형 일자리로 돌아가 보자.상생형 구미 일자리는 첨단 소재 산업의 미래 비전을 담아 출발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구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알려진 대로 우리 구미에는 이차전지와 연관된 기업들이 많고, 기반산업이 비교적 잘 구축되어 있다. LG화학의 협력업체는 물론 중소기업과의 동반 성장이 기대될 뿐 아니라, 나아가 경북의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 지정과 맞물려 시너지효과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또한, LG화학의 이번 구미 투자는 그동안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다. 양극재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직간접적으로 1천여 명 이상의 고용 창출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상생형 구미 일자리는 단순 수치상의 일자리가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지역을 떠났던 청년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만드는 기회의 일자리가 될 것이다.LG화학의 이번 구미 투자가 알려지면서 우리 구미로의 투자와 입주에 대한 관련 기업들의 문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구미는 구미국가산업 5단지에 이차전지 관련 기업과 지원 기관을 집적화하고, 지역 대학에 관련 전문학과를 신설할 방침이다.문제는 국산화다. 핵심 소재와 부품·장비의 국산화는 필수다. 이는 단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 첨단 소재와 부품의 국산화를 위한 기술 개발에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을 기대한다.문재인 대통령은 상생형 구미 일자리 투자협약식에서 상생형 구미 일자리는 일본의 수출 규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시 확인했다고 강조했다.그렇다. 구미는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경제가 구미에서부터 다시 활력을 되찾게 될 것이다. 구미의 담대한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2019-08-04

병원 찾아다니기

한 달쯤 전부터 한 동안 버틸 만하던 목 디스크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지간하다’라는 충청도 말로도 다 표현하기 부족한 것이 바로 이 고질병. 한 칠팔 년 전 앉지도 서지도 못하게 한 허리 디스크에서 겨우 회복되었더니 삼사 년 전부터는 목 디스크가 대신 들어와 기승을 부렸다.급기야 두 해 전에는 수술은 무섭고 시술이라는 것을 받았다. 영 못 버틸 것 같은 급박감에 속된 말로 당일 입원, 당일 퇴원 같은 플래카드를 내건 병원 같은 곳에서 순식간에 받았던 것. 그렇데 예후가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며칠 지나 조금씩 차도가 보이기는 보여 그 후 그럭저럭 버텨오기는 했는데 이번에 갑자기 도져 버린 것이다.몸이 안 좋으면 머리라도 좋아야 하건만 어쩌다 허리 디스크 시절 치병 과정을 다 잊어버렸던고. 처음부터 전혀 새로운 병 앓는 사람처럼 허둥지둥하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통증의학과, 통증을 다스려 준다니 우선 급한 마음에 찾아간 것이다.그런데 통증 병원도 많기도 많고 기술도 갖가지, 약물로 가라앉히기도 하고 신경 차단술도 있는데, 몇 곳 다니다 보니 결국 통증 치료는 임시 처방일 뿐이던가. 차일 피일 미루는 사이에 통증은 더욱 심하기만 하고 어깨며, 등이며, 전문 용어로 ‘상박’이며 계속 욱신거리다가 급기야는 팔이 떨리고 저리면서 힘까지 없어져 가는 것 같다.통증 치료로 헛 시간 보내고 몸 상태 나빠지고 나니 결국 떠오르는 건 지난 번 시술 받았던 곳. 시설도 수술 효과도 썩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금방 시술 해주니 그것만큼 편한 곳도 없었던 까닭이다.아침 일찍 병원 문 열리는 시간 기다려 애써 찾아가 시술 예약을 하기는 했는데, 하고 나자 다시 걱정이 태산이다.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시원치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 말이다. 아무래도 종합병원이라도 찾아가야겠어, 조금 멀리 떨어진 무슨 병원인가를 찾았더니, ‘제기랄’, 예약을 잡는데 가장 빨라도 팔 월 중순은 되어야 하겠단다.어떻게 하나, 고민하는 중에도 팔은 쑤셔온다. 아, 임시변통 생각나는 데가 있기는 있다. 동네 한적한 한의원에 긴 침 깊게, 그런데 안 아프게 잘 놓는 노인 분이 계셨던 것이다. 침이라니, 약물이나 신경 차단술 같은 것과는 속효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당장 아쉬운 게 한의원이다.노인 분에게 몸을 맡기고 침상에 눕자 될 대로 되라 싶은 자포자기 심정이다. 아픈 데 준비성 없는 나 자신을 탓해야 할 상황. 도대체 시내에 이렇게 병원이 많은데 왜 필요한 때 바로 찾아가 믿고 맡길 수 있는 데는 이렇게 적나?침을 맞고 나오니 그래도 마음이 안정은 된다. 하나의 교훈. 이번만 한 번 더 낫게 해 주시면 다시는 아프지 않게, 운동 열심히 하고, 술 안 마시고, 절제, 절제 하면서 살겠나이다.짧디나 짧은 인생살이건만 아프지 않게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산이 먼 곳에 있더라도 찾아가며 살겠다, 고개 숙여 본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08-01

책과 여름휴가

독서를 즐기며 보내는 여름휴가를 북캉스라 부른다. 먼 장거리를 떠나거나 가까운 곳에서 휴양의 시간을 보내든지 책 한권이라도 옆에 끼고 출발해 보자는 독서 권장의 개념이다. 때로는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직장인이 알뜰 휴가를 보내기 위해 독서 삼매경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것을 두고도 북캉스라 표현한다.올여름도 국립중앙도서관이 ‘올여름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100권’을 추천하는 등 독서 권장을 바캉스와 연계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일부지역에서는 도서관에서 1박2일을 함께하는 독서 행사도 열어 피서철 독서문화 확산을 꾀하고 있다.그러나 책 읽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든 요즘 북캉스가 얼마나 국민의 마음에 파고들지 궁금하다. 하지만 국민에게 책 읽기 등 독서 문화를 권장 혹은 확산시키는 운동은 해볼 만한 일이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자 지식을 얻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피서지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좋은 힐링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독서에 몰입하는 경지에 이르는 말로 독서 삼매경(三昧境)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삼매경은 불교에서 나온 말로 산스크리트어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한다”는 뜻의 한자 표현이라 한다. 삼매의 세 가지는 마음(心)과 눈(眼), 입(口)을 가르친다. 독서 삼매경이니 일상의 잡다한 생각을 버리고 오로지 책 읽는데 집중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마땅하다.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다. 지식을 얻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의미에서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선택이다. 선각자들의 깨달음과 경험을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독서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전국의 도서관 등 전문가가 추천한 ‘여름철 읽기 좋은 책’의 목록을 살펴보는 것도 복잡한 사회생활 속에 생활의 여유를 찾는 방법이 된다. 특히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날에 독서 삼매경에 들어갈 수 있다면 심신의 안정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또 방학을 맞은 어린 학생에게도 한 권의 책을 독파하도록 가르침을 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추억도 없다.휴양과 독서를 겸한 북캉스에 빠져 들어보자./우정구(논설위원)

2019-08-01

부끄러운 총선보고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총선관련 보고서가 유출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더구나 그 내용이 지나치게 정략적이어서 국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연구원은 지난 30일 민주당 의원 전원에게 ‘한일 갈등에 관한 여론동향’이란 제목의 대외비 보고서를 보냈다. 문제가 된 보고서에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여야 대응방식의 차이가 총선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이 78.6%로 절대다수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면서 연구원은 “일본의 무리한 수출규제로 야기된 한일갈등에 대한 각 당의 대응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견이 많다”라며 “원칙적, 단호한 대응을 선호하는 응답이 자유한국당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높게 나타났다. 원칙적 대응이 총선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보고서 내용의 공개로 파문이 커지자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가 나서서 민주연구원 대표인 양정철 원장에게 ‘주의’를 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자칫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뒷받침해야 할 여당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연구원도 보고서 유출논란이 터진지 하루만에 입장문을 내고 즉각 사과했다. 연구원은 “당내 의원들에게 발송한 보고서는 적절치 못한 내용이 적절치 못하게 배포됐다”며 “충분한 내부검토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부적절한 내용이 나갔다.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주의와 경고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여당내 총선전략을 논하는 상당수 의원들이 ‘반일 대 친일’구도로 총선을 치르는 것을 호재로 반기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 국가적으로 매우 위태롭지만 일본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적 반감을 감안하면 반일쪽에 선 현재의 민주당 입지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정치인들이 적지않다.야당들은 일제히 “국익에 상관없이 총선 유불리 계산을 두드릴 때냐”며 여당이 총선을 위해 안보를 팔았다고 맹비난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집권세력은 자신들의 총선을 위해 안보를 팔고,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을 팔았다”고 비판했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나라가 기울어도 경제가 파탄나도 그저 표만 챙기면 그뿐인 저열한 권력지향 몰염치정권의 추악한 민낯”이라고 질책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나라가 망하든 말든 국민이 살든 죽든 총선만 이기면 된다는 발상이 놀랍다”면서 “반일감정을 만들어 총선의 재료로 활용하는 민주당은 나라를 병들게 만드는 박테리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사실 권력의 획득을 목표로 하는 정당으로선 자체 싱크탱크에서 국가적 현안에 대한 대응방향을 가늠해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조치가 우리 사회 전반에 크나큰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한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국민적 정서에 부합하고, 국가적 이익에 부합하는 지를 연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그 분석이 총선에서의 지지만을 겨냥해 대응방식을 제안하고 있기에 문제다. 단호한 대응이 총선에서 지지를 받는 데 유리하다고 해서 단호한 대응으로 일관했다가 실제 일본의 수출규제가 실현될 경우 입게될 국가적 피해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정략이라면 정략일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민주연구원의 보고서는 한마디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탐욕으로 눈 먼 권력의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보고서를 소속 의원 전원에게 돌리고도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내용이 나갔다”는 변명으로 사태를 무마하려는 민주당의 태도 역시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양정철 원장은 부끄러운 총선 보고서 사태에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이 옳다.

2019-08-01

데자뷔, 고난의 행군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북한은 1990년대 중후반에 혹독한 기근을 겪었다.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다 수많은 사람이 굶어죽었다. 북한은 이때를 ‘고난의 행군’시기로 규정한다. 고난의 행군이란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하던 김일성이 일본군의 토벌작전을 피해 혹한과 굶주림 속에서 100여 일 간 행군을 했다는 데서 나온 말인데, 1995년부터 극심해진 경제난에 따른 체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벌인 캠페인의 구호로 쓴 것이다.당시 아사자의 수는 발표 기관에 따라 수십만에서 수백만으로 격차를 보이고 있으나, 국내외 시민단체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증언한 내용에 따라 3백만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저들은 사회주의 시장의 붕괴, 잇단 자연재해,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열강들의 대북 고립·봉쇄·압살 정책을 주요 원인으로 꼽지만, 체제유지와 선전을 위한 각종 건설사업과 핵·미사일 등 무기개발에 경제력이 집중된 것도 그에 못지않은 요인이었다.북한의 1990년대 대기근은 1995년의 대홍수로 촉발되기는 했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만성적으로 누적된 식량문제가 더 큰 원인이었다. 북한이 1997년 6월 유엔에 보고한 자체 경제평가에 따르면 1인당 GNP가 1989년 911달러를 정점으로 하강국면에 접어들어 1995년에는 239달러에 불과했다. 북한경제는 홍수피해 이전에 이미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었고 1980년대 후반부터 식량사정이 악화되기 시작하여 1993년에는 식량자급률이 58.7%를 기록할 정도로 심각한 식량난을 겪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100만t 정도가 부족했던 식량난은 1990년대 초에 200만t으로 늘어났고 이처럼 누적된 식량난이 자연재해를 계기로 악화되면서 대재난을 초래했던 것이다.현 정부 들어 한국의 경제도 악화일로다. 청년실업자는 늘어나고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속출하는 것에 이어 지난 일분기 GDP는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백색 국가)에서 제외되는 경제보복까지 목전에 두고 있다. 화이트 리스트란 일본 정부가 물자, 기술, 소프트웨어 등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관련 절차를 간소하게 처리하도록 지정한 물품 목록을 의미한다. 일본은 수출의 효율성을 위해 우방국을 화이트 리스트 국가로 지정해 우대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안보상 우호국 성격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경우 물품뿐 아니라 지식·기술 교류도 제한될 수 있다. 일본의 이번 조치로 수출입뿐 아니라 양국 기업 간의 기술 협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다양한 기술·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일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기술을 이전받아왔지만 2000년대 들어 일본 기업과 다양한 수평적 기술제휴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전기·전자와 철강, 기계 등 분야에서 대기업 간 기술제휴 등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만약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현실화되면 이 같은 기술교류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이 정권의 대응태도에 기시감이 있다. 이 판국에 국채보상운동이니 죽창가니 이순신의 열두 척 배니 하는 황당한 소리가 나오는 것은, 마치 북한이 정책의 실패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과 불신을 ‘미제 승냥이들’과 ‘남조선 괴뢰도당’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으로 덮으려는 것과 닮아 보인다. 북한은 지금 핵무기를 포기하면 모든 규제를 풀고 원조를 하겠다는 제안을 거부하고 또 다시 고난의 행진 운운하고 있다. 체제와 제 목숨의 부지를 위해서는 수백만 인민의 목숨쯤 희생해도 좋다는 저의가 엿보인다.치열한 국제경쟁의 시대에 낙오하지 않으려면 독불장군으로는 안 된다. 다른 불순한 저의가 없다면 나라경제와 국익을 팽개친 감정적 대립은 국가의 경영자들이 할 짓이 아니다. 지금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서로 윈윈하는 우방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최선일 것이다.

2019-08-01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4반세기 전인 1994년 포스텍에 최고경영자과정이 설립되었다. 이름하여 팸팁(PAMTIP: Postech Advanced Management of Technology and Innovation Program)이라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대학이 그냥 AMP라고 부르는 과정을 포스텍의 특징에 맞게 ‘기술과 혁신’(Technology Innovation) 이라는 글자를 넣어 차별화시켰다.일반적으로 최고경영자과정(최경과정)은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고위공무원,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단기 비학위 교육과정인데, 포스텍은 ‘기술과 혁신’에 특화시키면서 출발부터 차별화와 특화를 꾀하였다. 이 과정을 만들기 위해 거의 1년간 포항, 경주, 울산 지역의 기업체를 방문하여 수요를 조사하고 계획서를 만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포스텍의 분위기는 “연구중심 대학인 포스텍이 과연 최경과정을 만드는 것이 적절한가?”였고 그래서 다소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했다.그런데 포스텍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MIT 공대 같은 곳은 최경과정이 여러 개 있다. 보스턴 지역의 각종 기업들과 공무원들을 위한 계속교육(Continuing Education) 과정인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수혈받고 산학협력을 도모하고 그들만의 정보교환 등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최근 소식에 의하면, 대학에서 정·재계 가교 역할을 하던 최경과정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지역대학은 물론 서울 주요대학에서도 정원을 채우지 못해 과정 운영을 잇달아 중단하고 있다고 한다. 천편일률적인 교육과정과 불황시대에 비싼 등록금도 최고위과정 입학생이 줄어든 요인으로 꼽힌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시행도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신입생을 채우지 못한 일부 유수 대학들의 20∼30년 전통을 가진 최경과정이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유수대학인 K대 컴퓨터정보통신대학원은 지난해 2학기를 끝으로 최고위정보통신과정(ICP)을 아예 폐지했다고 한다. ICP는 1996년 개설돼 2천500여 명의 동문을 배출한 전통 깊은 최고위과정이고 전 교육부 장관과 주요 그룹회장 및 국회의원 등이 수료한 과정이었다고 한다.Y대, S대 등 유수대학들의 언론대학원 최경과정, 교육대학원 최경과정 등이 최근 폐지되었다고, 형편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최근 개설된 대학들의 최경과정도 입학생 문제로 고전하면서 6개월 과정을 1년으로 늘리며 여러 변화를 모색한다고 한다고 한다.최경과정은 한때 사회 지도층의 학업과 인맥, 일석이조의 혜택으로 공무원과 중소기업 및 대기업의 임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매우 고전한다고 한다.우여곡절 끝에 1994년 3월 개강보다 한 달 늦은 4월초 팸팁은 문을 열었다. 필자가 창설 주임교수였지만 이후 여러 교수들과 스태프들이 수고를 많이 하여 포스텍의 팸팁은 4반세기를 착실히 운영되고 있고 이 지역의 기업인 공무원들에게 새로운 지식과 함께 정보교환의 네트워크 장을 제공하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차별화된 프로그램이다. 기술과 혁신에 중점을 둔 차별화 된 프로그램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의 자랑인 초일류 대학 포스텍과 함께 한다는 프라이드도 있다. 이러한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교수, 직원들의 노력도 큰 공헌을 하고 있다.최고위 과정이 여러 사정으로 어려움이 있어도 진정한 최고위 과정의 목표를 추구한다면 일반 기업인, 공무원 등 사회 지도층에게 매우 주요한 과정이다.창설된 그해 5월초 강연을 약속했던 김호길 초대 총장은 끝내 팸팁에서 강연을 하지 못하고 4월 30일 사고로 타계하셨다. 그 아쉬움은 오늘날 팸팁의 성공과 함께 깊게 투영된다.

2019-08-01

수표 이야기 (2)

한 남자가 겨울 산에서 조난을 당합니다. 추위와 굶주림에 탈진하기 직전 멀리 불빛을 발견하고 마지막 힘을 내어 기어갑니다. 눈을 떠 보니 따스한 방안. 약초 캐는 할머니가 말합니다. “이제 정신이 좀 드시우? 이 지독한 눈보라는 3∼4일은 걸릴게요. 그 사이 몸을 잘 회복하시구려.”할머니는 얼마 안 되는 식량을 아끼지 않고 내놓습니다. 눈보라가 잦아들고 체력을 회복한 남자는 봉투에 정성껏 편지를 써서 감사를 표시하고 수표 한 장을 담아 할머니 방 한쪽 구석에 놓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수표는 집을 한 채 사고도 남을 큰돈이었지요. 남자는 거부(巨富)였습니다.1년 후 다시 겨울. 남자는 할머니가 새집을 짓고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 산골을 다시 찾아갑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허겁지겁 방문을 열어본 남자는 숨이 막힙니다. 할머니가 숨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방을 둘러보다 깜짝 놀랍니다. 창호지 구멍 난 곳을 때우는 문풍지로 수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는 땅을 치고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어제와 오늘 소개한 이야기는 ‘할머니와 수표’라는 이야기가 약간 다른 버전으로 퍼진 것입니다. 어리석은 할머니의 이야기가 어쩌면 우리 이야기는 아닐까요? 고전에 숨겨 있는 지혜를 생각해 봅니다. 논어 페이지마다 1억 원 수표가 끼워져 있다면 믿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플라톤 대화편 한 페이지마다 5천만 원짜리 수표가 보인다면 허황된 말일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전 페이지마다 숨겨져 있는 수표를 어떻게 하면 현찰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능력입니다.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고전을 읽어 유능하고 돈 잘 벌고 높은 자리를 꿰차는 것이면 곤란합니다. 그들이 일구어 가는 사회는 향기롭지 않습니다. 뉴스만 봐도 악취가 진동합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석학들이 존경받는 이유는 그들이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들은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해 기꺼이 자진해 참전하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온몸을 던집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지성을 갖고 있기에 존경을 받는 것이지요.고전에 가득 넘치는 수표 다발을 현찰로 바꾸는 비밀번호는 두 글자입니다. ‘사랑’ 공동체를 섬기는 사랑. 약자를 보살피는 사랑. 나와 내 가족을 챙기는 이기적인 울타리를 부수고 대의를 위해 기꺼이 ‘사랑’을 몸소 행하는 용기를 보일 때 비로소 고전의 지혜는 방긋 웃으며 우리에게 그 힘을 나눠 주고 우리를 저 먹구름 너머의 눈부신 삶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1

슈퍼문

슈퍼문은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워지는 시기와 보름달이 뜨는 시기가 겹쳐, 평소보다 더 크게 관측되는 보름달을 가리킨다.달은 지구주위를 원형이 아닌 타원형으로 공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달과 지구의 거리는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가까워 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게 된다. 이런 현상중 달이 지구에 가장 근접했을 때, 보름달이 뜨게 되면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달의 모습이 관측된다. 이것이 바로 슈퍼문이다. 슈퍼문이 관측될 때는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운 만큼 달의 인력도 가장 크게 작용하게 된다. 이는 곧 조수간만의 차(밀물과 썰물의 차이)에 변화를 주게되는 데, 평소보다 19% 가량 차이가 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특히 1일에서 4일, 그리고 30일에서 9월2일 사이에 슈퍼문이 뜰 예정이어서 관계 기관이 주의보를 내렸다. 올해 지구와 가장 가까웠던 슈퍼문은 2월19일에 있었으나, 겨울철 낮은 수온과 고기압 발달로 인해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하지만 수온이 높고 저기압인 여름철에는 해수면의 높이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한다. 국립해양조사원은 이번 슈퍼문 기간에 해수면의 높이가 2010년 이후 약 10년만에 가장 높게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해양조사원이 설정한 4단계 고조정보(관심·주의·경계·위험) 기준에 따르면 슈퍼문이 뜨는 두 기간에 33개 바닷가 예보기준 지역 가운데 21개 지역에서 침수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고조정보가 ‘주의단계’로 상승할 것이란 예상이다. 이 가운데 인천, 평택, 안산, 마산, 성산포 5개 지역은 최대 ‘경계단계’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해안지역으로 여행하는 피서객들은 안전에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슈퍼문이 뜨면 평소보다 빨리 물이 빠지고, 물이 들어올 때는 빠르고 높게 차기 때문에 낚시나 갯벌 체험객 등은 고립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야간(새벽) 시간대에는 해수면이 더 차오르기 때문에 야간 바다활동을 자제해야 한다. 슈퍼문이 크고 탐스런 보름달을 연출해 보기에는 좋지만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7-31

폭염

장규열 한동대 교수아, 덥다. 길지 않은 장마가 후딱 지나가더니, 푹푹 찌는 공기에 숨이 막힌다. 주룩주룩 내리던 장맛비도 야속하더니만, 염천 무더위에는 짜증마저 겹친다. 섭리에 따라 들판 곡식을 익히는 손길이겠거니 차라리 기대를 건다. 이 여름을 힘들게 하는 또 하나 심통받이가 있다. 국민의 답답한 심정은 아랑곳이나 하는지 백날도 훨씬 넘게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세금도둑들이 있다. 국회라 이름하는 이 나라 입법부는 하마터면 개점휴업 상태로 달을 또 넘길 뻔하였다. 그러다 불현듯 새 달을 맞으며 모여 앉겠다고 하니, 그나마 기대를 걸면서도 안심하는 국민은 많지 않아 보인다. 추가경정예산을 정말로 처리할 건지, 진실로 국가안보를 걱정이나 하는지, 일본이든 북한이든 문제해결에 진정성은 실린 거인지 의심부터 드는 것은 더위 탓일까.모양만 갖추고 또 헛발질로 눈가림할 양이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길 바란다. 지진으로 무너진 포항의 이웃은 어느새 일곱 번째 계절을 천막에서 맞는다. 속초 산불이 할퀴고 간 산하에는 이미 초록이 무성한데, 무너진 백성들은 나라의 도움 그 냄새도 맡은 적이 없다.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들은 지역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대표한다는 일. 지역을 보살핀다는 생각. 공수표에 공염불이었는가. 몇십만씩 되는 표를 모아 당신을 밀어준 유권자들에게 아직도 세울 낯이 있는지 누군가는 물어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에 엉뚱하게 경제로 시비를 거는 저들의 공격에도 한 목소리를 못 내지 않는가. 뜨거운 햇볕에 살갗을 태우다가도 당신들만 생각하면 솟아오르는 짜증이 곱절을 넘긴다. 이글거리는 땡볕보다 뜨거운 기대가 그래도 당신들에게 걸려있음은 가련한 백성의 운명인가.일본. 질긴 악연이며 징한 이웃이다. 가까이에서 자극이 되고 도전이 되어 감사해야 하는가. 역사를 부끄러워 아니하는 그 마수가 언뜻 보일 때면, 강점기 기억이 송두리째 다시 돋는 일본의 심장. 21세기에도 도로 전쟁이 가능한 국가가 되어 남의 땅을 기웃거리겠다는 후안무치한 국가. 침략이 아니라 확장이었으며 수탈이 아니라 도와주었다고 강변하는 질긴 도둑의 마음. 상상하기도 싫지만 경계하는 마음은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이웃 섬나라. 나라의 국격과 자존심 쯤이야 돈으로 너끈히 사고팔 수 있다는 약삭빠른 계산 속. 경술국치(庚戌國恥)도 뜨거운 여름 날 자행되었었지. 그럼에도, 한 마음이 되지 못하는 우리네 마음은 또 무슨 조화일까. 이게 이념의 문제인가, 좌와 우가 다를 일인가. 척을 지며 나뉠 일이 더러 있을 손, 일본의 공격 앞에는 아니지 않은가.우리는 백년 전 우리가 아니다. 그들도 그때 그들이 아니다. 세상도 그 세상이 아니며, 이웃들도 모두 다른 모습이다. 디지털환경과 글로벌시장이 펼쳐진 오늘, 호락호락 힘에 넘어갈 일이 없어는 보인다. 힘도 그 때 힘이 아니라, 돈이 더 무서운 힘이 된 세상에 역사를 경제로 밀고 들어오니 다짐도 새로워야 한다. 논리도 분명해야 하고 뒷심도 넉넉해야 한다. 아마도 다음 목표는 독도가 되려는지. 즐비할 언덕과 구비를 힘겹게 넘으면서 그 모든 기억을 간직해야 한다. 가는 길이 더디더라도 탄탄하게 다지며 걸어내야 한다.여름 한 가운데 땀을 닦으며 다짐하는 오늘의 각오가, 허세와 허명으로 나라를 잃었던 그 날의 수치를 씻고도 남아야 한다. 그래서, 해방 전 윤동주(尹東柱)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기도하였으며, 나라를 찾은 한참 후 신동엽(申東曄)은 아직도 ‘껍데기는 가라’고 노래하였을까. 폭염에 지친 오늘도 문제지만, 어느 계절을 닮은 나라를 물려줄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나라는 당신의 마음에 달려 있으므로.

2019-07-31

정전협정 66주년과 ‘고지전’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지난 7월 27일은 한국전쟁이 멈춰선 날이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해 1953년 7월 27일 총성이 그친다. 하지만 그날은 전쟁을 종결한 날이 아니라, 전쟁을 멈추겠다고 결정한 날이다. 그래서 종전(終戰)협정이 아니라, 정전(停戰)협정이나 휴전(休戰)협정이라 한다. 정전협정은 유엔군 총사령관 클라크 대장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및 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 팽덕회 사이에 체결됐다.“귀하의 총체적인 지휘를 받게 되어 영광”이라며 이승만이 1950년 7월 14일 국군통수권을 맥아더에게 이양한 탓에 한국군은 정전협정 당사자 자격조차 없다. 그렇게 체결된 정전협정이 66년 계속되고 있다. 역사상 이토록 길게 이어진 정전협정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20세기 미완의 전쟁이 21세기에도 진행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하지만 대다수 한국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오래 전에 일어난 남의 일쯤으로 간주한다. 국사책이나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여긴다. 그럴 수도 있을 법하다. 사람은 개별적인 경험으로 많은 것을 판단하므로. 정전협정을 생각하니 ‘고지전(高地戰)’(2011)이 떠오른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작가 박상훈이 각본을 쓰고, 장훈이 감독한 영화 ‘고지전’. 신상옥의 ‘빨간 마후라’(1964), 김기덕의 ‘남과 북’(1965), 정지영의 ‘남부군’(1990), 강제규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 같은 한국전쟁 영화가 있지만, ‘고지전’은 전혀 다른 영화로 다가온다. 다른 영화들은 낭만, 자유, 외세, 가족주의를 내세움으로써 6·25 남북전쟁의 본질을 천착하지 않는다.“한국전쟁의 모든 기록은 1951년 1·4 후퇴와 휴전협정으로 끝난다.… ‘한국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고지전’은 그것의 끝 이야기이다.”박상연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1951년 1·4 후퇴 전까지 사망자는 100만이었지만, 휴전협정이 진행되는 동안 사망자는 300만에 달한다. ‘고지전’은 1953년 7월 26일 밤 10시 이후의 시간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7월 27일 오전 10시에 휴전협정이 발효되기 때문이다. ‘애록고지’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남-북한군. 안개 자욱한 한밤중에 인민군이 ‘전선야곡’을 부른다.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유호가 가사를 쓰고, 박시춘이 작곡하고, 신세영이 불렀던 불후의 ‘전선야곡’. 안개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한국군 병사들도 ‘전선야곡’을 함께 부른다. 조금만 지나면 어머니의 흰머리를 쓸어안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불과 12시간이 지나면, 그때까지만 안개가 버텨준다면 서로 죽이고 죽지 않아도 되고, 살아서 고향으로 달려갈 수 있다. 그런 애절한 심사를 담은 ‘전선야곡’이 고요히 흐른다. ‘고지전’은 6·25 한국전쟁의 본질을 보여준다. ‘땅’을 쟁취하려는 전쟁, 6·25를! 적군보다 높은 곳을 차지해 유리한 위치에서 적을 섬멸하고 땅을 얻으려는 전쟁. 그래서 제목이 ‘고지전’이다. 얼마간의 땅이라도 빼앗거나, 혹은 빼앗기지 않겠다고 남북의 숱한 청춘들이 죽어 나갔던 정전협정 당일 새벽과 오전까지 벌어진 ‘고지전’을 보여준 살 떨리는 영화. 거기서 들려오는 화장기 하나 없는 노래 ‘전선야곡’의 뼈를 저미는 전율과 슬픔. 정전 66년이 지나간다.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닦은 길을 문재인 대통령이 이어나가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휴전선을 넘나드는 기막힌 장면을 연출하는 2019년. 지구촌 마지막 남은 분단의 장벽을 이제는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나는 2019년 한여름. 그러하되 장구한 세월 분단과 북풍으로 장사하여 잇속을 챙겨온 수구세력과 보수정당, 야바위꾼들과 아베의 극우세력이 우리의 바람을 흔들어댄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거기에 우리 민족과 어린것들의 명운과 미래가 달려있다. 부디 희망의 녹음이 나날이 짙어가기를.

2019-07-31

수표 이야기 (1)

한 남자가 미국으로 발령을 받아 늙은 어머님을 모시고 함께 가고자 했지만, 어머님은 한사코 거부합니다. 아들 내외에게 짐이 될까 염려한 거지요. 어쩔 수 없이 아들 가족만 미국으로 건너가고 할머니는 혼자 살아갑니다. 할머니는 갈수록 기력이 떨어지고 표정도 어둡습니다. 동네에서 폐지를 주워 겨우 생계를 유지합니다. 미국에 잘 사는 아들이 있다는 것은 동네 사람들 모두 잘 아는 사실입니다. “아들한테서는 소식 없어요?”동네 사람들은 할머니의 궁핍한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아들의 불효막심한 행동에 분노합니다. 할머니는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동네 사람들의 심사가 뒤틀린 것을 알고 변호하지요. “아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꼭 편지를 보내온다우. 가끔 그림도 보내줘서 아들이 그리울 적마다 편지와 그림을 보면서 지내요.”추운 겨울날 할머니가 안 보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 집에 찾아갑니다. 이상한 예감에 방문을 뜯고 들어가 보니 할머니는 단정한 모습으로 잠을 자듯 숨져 있었습니다. 미국 아들의 연락처를 찾느라 방을 뒤지던 동네 사람들은 벽 한쪽 구석에 붙어 있는 몇 장의 작은 그림을 발견합니다. “저것 좀 보세요!”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거기에는 1만 달러 수표 몇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영어를 모르는 할머니는 수표가 지닌 가치를 모른 채 아들이 자신에게 보낸 그림인 줄로만 생각했던 겁니다. 소중한 것을 전해주어도 가치를 알지 못하는 이에게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 주는 우화입니다. 고전은 산삼과 같다고 말합니다. 길게는 2천500년, 짧게는 100년 이상 생명을 유지한 고전이 클래식 북스 서가마다 즐비합니다. 책 한 권에는 평균 3억~4억 원 정도 지적 자산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들이 삶에서 배운 지식을 책으로 바꾸어 놓은 것을 나름 환산한 것이지요. 3억 원 정도 되는 지적 자본을 불과 1만5천원 정도로 살 수 있으니, 책을 사서 읽는 행위는 남는 장사라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고전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아마도 3억에 0을 몇 개 더 붙여야 하지 않을까요?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의 열혈 팬이었습니다. 그가 소크라테스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는 것밖에는 없었겠지요. 오늘날의 애플을 있게 한 것은 플라톤의 저작물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한 끼 식사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전 재산을 바칠 용의가 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7-31

얘들아, 그럴 수 있어!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최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와의 이야기에서 뭔가 달라진 것을 발견했다.“딸, 휴대폰 좀 그만하시지.” “아빠, 그럴 수 있어.” “따님, 조금 일찍 일어나시는 게 어떨까요?” “아버님, 그럴 수 있습니다.” “딸, 책 좀 읽으실까요?” “아빠, 그럴 수 있어요.”이상했다. 예전 같으면 필자가 묻는 것에 대해 분명한 말투로 이유를 말했을 텐데 최근에는 너무 짧았다. 그리고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필자는 호기심이 생겼다. 딸아이의 대화법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런지? 그래서 관찰을 해 보기로 했다. 관찰 결과 아이는 많은 상황에서 같은 말 패턴을 사용하고 있었다.필자는 왜 그런 말을 쓰는지 물었다.“유행이야. 그것도 몰랐어?” “혹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니?” “……!” 아이는 생각을 했다. 기다려 주었다. 필자도 ‘그럴 수 있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조금 막연했다. 아이의 생각도 길어졌다.필자는 길어지는 만큼 아이의 생각이 깊어지기를 바랐다. 독자 여러분은 “그럴 수 있어.”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시간이 지나도 명확한 의미가 떠오르지 않았다. 필자는 검색을 해보았다. 검색 능력이 떨어지는 필자인지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가 필자를 보고 있었다. 아이가 “아빠,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다 겨우 하나 찾았다.“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 사람을 보는 인식, 사람의 행위를 읽어내는 지혜를 기르게 한다.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넉넉한 긍정’이라 할 수 있다.” (박인기 ‘그럴 수도 있지!’중에서)“인간성에 대한 넉넉한 긍정”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아이는 이 정도의 의미까지 생각했을까? 한동안 생각을 하던 아이가 친구와 약속이 있다면서 급하게 일어섰다. “무슨 뜻인지 알았어?” 아이가 “아빠, 그럴 수 있어. 놀다올게.”라고 말하며 바람보다 더 빠르게 문 밖을 나섰다.그런 아이를 항해 필자는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그래, 그럴 수 있어!”이번 주 라디오 사연에는 중복되는 내용이 많았다. 그것은 방학을 앞둔 학부모들의 사연이었다. 저마다 걱정들이 한 가득이었다. 방학 동안 세 끼를 어떻게 차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연에서부터 매일 전쟁을 치를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는 내용까지 소재만 다를 뿐 방학을 걱정하는 마음은 같았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필자는 “그럴 수 있어.”를 되뇌었다.과연 전쟁 같은 방학은 누굴 위한 것일까? 학생? 학부모? 교사? 그것도 아니면 다른 누구? 필자가 보기엔 학생과 학부모들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학생과 학부모 둘 다 방학 스트레스가 엄청 심하니까! 그럼 교사는? 교사들은 최소한 학생과 학부모가 느끼는 정도의 스트레스는 없으니까 나름 방학의 수혜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우리 교육계에서 참 바뀌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방학이다. 방학을 잘 보내는 이론적인 방법들은 많다. 그런데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는 가정은 얼마나 될까? 맞벌이가 보편화 되어 있는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더더군다나 이론적인 방학 생활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맞벌이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의존한다. 아니면 될 수 있으면 많이 학교에서 실시하는 방학 중 방과 후 수업에 아이를 보낸다. 그러니 방학 중 제일 바쁜 곳은 사교육 현장일 수밖에 없다.서로를 이해는 공감 능력을 기르는 방학, 갈등을 이해할 수 있는 갈등 공감 능력과 갈등 조정 능력을 기르는 방학이 되자고 하고 싶지만,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차마 말을 할 수가 없다. 차선책으로 “그럴 수 있어(요)!”라는 말을 상황에 맞게 써볼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 방학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나마 덜하지 않을까!

2019-07-31

반려견 학습원리

개의 행동은 개가 살아가는 생활방식이다. 동물행동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동물 행동에 대한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이해가 시도되고 있는데, 개 행동학은 개의 본능과 습성뿐만 아니라 개의 행동과 외부환경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처음에는 개의 역할이 주로 사냥을 하는데 활용되었기 때문에 고기를 획득하거나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동물의 수를 줄이기 위해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었다.20세기 초에 이르러 틴베르헨, 프리슈, 로렌츠와 같은 동물행동학자들은 동물의 행동을 ‘본능’으로 설명했고 동물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것을 주창했다. 미국의 왓슨, 스키너 같은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동물의 행동 기초가 ‘반사’에 있다고 믿었는데 행동이란 학습의 산물이며, 본능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실험실에서 동물 학습 실험을 했고, 이를 기초로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려고 했다.최근의 동물행동학에서는 동물의 행동이 유전자에 이미 프로그램화 되어 있으므로 학습이 필요하지 않다는 견해와 동물의 행동은 자극에 대한 조건부여의 결과이므로 학습을 더욱 중요시 해야 한다는 견해로 나뉘어져 있다.파블로프의 개는 잘 알려져 있는데, 고전적 조건형성이라 불리는 파블로프의 연구결과로 개를 학습 또는 습관화 시키는 훈련법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반려견에게 어떤 행동이나 반응을 학습시키고 습관화 시키고 싶을 때는 파블로프가 했던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파블로프는 개에게 먹이를 주기 전 또는 동시에 종소리를 들려주었고 먹이의 자극강도는 종소리가 주는 자극보다 큰 것이었고, 종소리는 일관되게 주어졌다. 파블로프가 밝힌 사실에 의하면 개를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자극과 반응의 결합이 계속적으로 반복되어야 한다. 이후에 스키너는 동물이 자극에 단순히 반응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환경에 대해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밝혔는데, 동물은 행동에 보상이 따르면 그 행동이 더 강해지고, 보상이 없거나 처벌이 주어지면 그 행동은 약해지거나 없어진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이는 강화, 처벌, 소거로 설명된다. 원하는 행동을 하는 반려견에게 간식이나 칭찬을 주는 강화는 그 행동을 증가시키고, 처벌하면 그 행동을 감소시킨다. 소거는 강화를 더 주지 않으면 그 학습된 행동이나 반응들이 약화되거나 없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반려견의 문제행동을 없애고 싶을 때는 그 행동을 강화시켜주고 있던 요인을 찾아서 없애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문제행동의 강화요인을 없애는 초기단계에서는 그 행동이 급격히 더 증가하는 ‘소거 격발’이라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해결되기 보다 훨씬 악화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이때를 잘 넘기면 문제행동은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문제행동을 강화시키던 요인을 전문가로부터 알게 되었다면 이러한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인내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반려견을 학습시킬 때 처음에는 원하는 행동을 할 때 마다 강화를 해 주어야 학습이 되지만, 학습이 이루어져 습관화가 되고 나면 간헐적으로 강화를 주는 것이 그 행동을 유지시키는데 더욱 효과적이다. 반려견이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할 때는 파블로프가 했던 연구를 응용해서 적용하면 되고, 스키너가 밝힌 강화방법으로 습관화시키면 되는데, 동물이 할 줄 모르는 새로운 행동을 학습시키고 싶을때는 그 행동에 근접해 가는 행동들을 여러 단계로 쪼개어 차츰 완성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목표로 하는 행동이 기존에 보이지 않던 행동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면 강화도 처벌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원하는 전체행동을 세분화하여 훈련시키는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강화는 동물행동 이론들을 잘 모르더라도 개가 좋아하는 간식이나 칭찬 등 여러 가지로 사람들이 잘 활용하고 있으나 강화 못지않게 중요한 반려견 행동의 처벌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반려견 처벌에서의 가장 중요한 것은 일정한 타이밍이다. 처벌이라는 것은 반려견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소리를 질러 혼내거나 때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반려견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반려견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즉시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반려견의 시선을 피하거나 바디블로킹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런 처벌에서는 보호자의 일관성이 가장 중요하다. 항상 정확하고 동일한 신호를 반려견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데 목소리의 톤이나 패턴을 바꾸어 가면서 혼을 내거나 불필요한 자극이나 폭력행위를 하게 되면 서로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거나 교육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나타나므로 주의해야 한다./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장(마사과 교수)

2019-07-30

바람이 불어오는 곳

△도시 공간 혹은 도시 장소도시의 바람이 도시에 갇혀 유령처럼 떠돈다. 자전거를 탔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무거운 바람이 불었다. 시원하지 않았다. 중간에 몇 줄기의 비를 맞았음에도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더운 날이다. 더운 날의 도시는 정말 최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도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우주공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우주장소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역시 도시공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도시장소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반대로 약속장소라는 말 대신 약속공간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때, 곳, 등장인물 등을 알려주는 연극의 무대지시문에서 ‘곳’은 장소로 바꿔 쓰기도 하지만 공간으로 쓰는 법은 없다. ‘곳’은 장소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나 공간을 뜻하는 순우리말은 없다.이것은 중요한 점을 내포하는데, 우리는 공간보다 장소를 더 익숙한 ‘말’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단지 언어적인 측면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우주공간은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며, 도시공간은 우리 삶의 공통적이고 일정한 패턴을 찾을 수 없는, 익숙해지기 어려운 곳이다. 도시 전체를 이야기할 때는 공간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도시 속에서 나의 생활주거지는 공간이라는 말 대신 장소라고 부른다. 공간은 언어적로도, 공간의 실제적 대상으로서도 우리와 익숙하지 않다.공간과 장소의 차이는 비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공간과 장소에 대해 깊이 탐구한 사람은 중국계 미국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공간과 장소’에서 이 문제를 방대하고도 치밀하게 다뤘다. 매우 복잡한 공간과 장소의 차이를 단순화 하면 그 핵심에는 시간이 놓인다.장소는 공간과 달리 시간이 작용하는 곳으로 시간과 함께 지내온 추억이나 흔적이 묻어 있다. 공간은 인간이 들어서기 위한 빈틈이지만, 장소는 그 공간을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어 친숙하고 익숙해진 곳이라 할 수 있다.이렇게 보자면 공간과 장소를 나누는 핵심적 요소는 시간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다시 말해, 공간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객체에 사심 없이 열려 있지만, 장소는 인간을 향해서 열려 있다.공간이 장소로 변화하는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시베리아 유목민들의 집짓기일 것이다. 그들은 나무를 세워 집의 형태를 만들고 거기에 짐승의 가죽을 두른다. 건축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이기도 한 함성호는 이렇게 썼다. “나무를 둥그렇게 모아 세우는 것은 곧 시간을 세우는 것이고, 거기에 짐승의 가죽으로 덮는 것은 공간을 두른다는 의미다. 즉 시간을 세우고 공간을 둘러서 우리가 사는 3차원의 공간과 시간을 더해 사차원 시공간이 완성되는 것”이다.1960~70년대까지 도시는 인간의 삶이 영위되는 공간이 아니라 산업이 활성화되는 공간이었다. 서구의 도시성립이 그러하듯 우리나라의 도시 역시 공장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사람들을 수용하는 공간이 도시였다.사람들에게 도시는 일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컸을 뿐 생활을 하는 ‘장소’라는 인식은 낮았다. 산업화의 황금기가 지나면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도시의 성장은 멈추게 되었다.멈춤과 함께 도시는 쇠퇴하게 된다. 종로와 을지로는 조명, 인쇄, 가구, 금형 등의 점포가 과거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 70~80년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번화했던 이 지역은 현재 서울의 중심부에서 가장 쇠락하고 퇴락한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런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젊은이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이균진, 2016).공간으로 규정되었던 도시를 장소로 이전시키려는 노력을 도시재생(Regeneration)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도시개선 및 개발과 관계된 개념으로는 재정비(Renewal), 활성화(Revitalization), 재개발(Redevelopment), 재생(Regeneration) 등이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1950년대는 ‘재건’, 60년대 ‘활성화’, 70년대는 ‘재정비’, 80~90년대 ‘재개발’, 2000년대는 ‘재생’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재건, 재정비, 활성화, 재개발이 도시를 경제와 산업적 측면에서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공간’활용에 주목했다면, 도시재생은 도시를 인간의 생활과 활동에 중점을 두어 ‘장소’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슈투트가르트로 부는 푸른 바람그렇다면 성공적인 도시 재생을 이뤄낸 도시로 가볼까. 슈투트가르트(Stuttgart)는 독일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전기, 자동차, 정밀기계, 광학기계, 출판업 등이 활발한 공업도시다. 그런데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의 도시이기 때문에 기온역전 현상이 일어나며 오염물질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아 대기오염이 심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환경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일까? 슈투트가르트는 1970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우선 공장과 자동차 등 대기오염의 주원인에 대한 규제를 마련했다.분지 안에 머무는 공기를 확산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는데, 이것이 ‘그린 유(U)’ 프로젝트로 우리나라에는 ‘바람길 조성 정책’으로 소개됐다. 이 프로젝트는 바람을 중심으로 생성, 수혜, 이동 지역을 구분하고 이를 관리하였다. 공기가 만들어지는 지역인 산지, 숲, 하천, 공원 등을 철저히 보존하였고, 이러한 바람이 이동할 수 있도록 공기의 흐름을 막는 건물 배치를 바꾸었고, 수로와 산책로 등을 통해 바람이 수혜지역인 도심으로 이동할 수 있게 했다. 도로주변에는 교목을 심고 도시 중앙부는 150m 폭의 녹지를 조성하여 바람통로가 제 기능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대기오염을 현저히 줄이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그 결과 슈투트가르트는 공업 도시보다 녹색도시로 더 유명해졌고, 경제적인 부를 얻음과 동시에 깨끗한 환경까지 유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2005년 독일의 시사 주간지 ‘포쿠스’는 삶의 질 측면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로 이 도시를 뽑았다(전국지리교사모임, 2009: 188). 이를 통해 슈투트가르트는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었으며, 도시의 인지도가 올라가 이주하고 싶어하는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도시민의 삶의 질 역시 향상되었다. 따라서 슈투트가르트의 도시 재생은 단순히 도시 환경 개선에 그치지 않고 쇠락해가는 도시 전체를 재생시킨다는 생태적 도시재생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19-07-30

잡호핑족

평생직장 개념이 엷어졌다. 요즘 젊은이한테 “지금 다니는 직장에 평생 다닐거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노(NO)라 답할 것이다. 막상 정해진 곳은 없으나 기회가 생기면 언제나 이직할 수 있다는 뜻이다. 60,70년대만 해도 직장은 한번 입사하면 퇴직할 때까지 근무하는 곳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직장에 대한 충성도며 사회적으로도 명예로운 일이었다. 연공서열이라는 체제가 유지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직장을 자주 옮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되레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평생직장 개념이 퇴색하게 된 것은 직업이 다양화되고 직장을 규제하는 각종 제도의 변화 등 우리 사회 전반의 문화가 크게 달라진데 기인한다. 특히 신기술의 도입 등 급변하는 정보통신기술(IT)의 변화는 직업인의 한자리 근무를 허용하지 않는다. 스카우트가 예사로 이뤄지고 유명 직장보다는 보수가 좋은 직장이 더 인기를 얻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최근 모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3명 중 1명은 자신을 ‘잡호핑족’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잡호핑족’이란 2∼3년 단위로 새로운 직장을 찾아 이직하는 직장인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고 경력을 쌓는다는 의미에서 ‘잡호핑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잡호핑족’을 이기적이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지금은 역전적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성취욕구와 도전정신을 긍정 평가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반 세기 정도가 흐른 지금, 평생직장 개념은 분명히 퇴조의 길로 들어섰다. 평생직장 개념이 반드시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물며 인간관계를 쌓아왔던 과거의 직장 문화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기성세대의 아쉬움은 있다. 행여 사람보다 물질이 우대받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도 있다.“우물을 파더라도 한우물만 파라”고 가르치신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나는 때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야 생존이 가능하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겠으나 평생직장, 평생동지와 같은 친근감 있는 말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7-30

삼성전자는 미국으로 가야 하나?

김학주 한동대 교수일본이 한국 반도체 업체에 소재 공급을 제한하겠다고 위협한 이후 이를 모면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생산설비를 미국으로 이전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됐다. 일본이 미국에 있는 설비에 대해 제재하기는 불가능하다. 일본경제가 미국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아베가 그런 시나리오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6월말 트럼프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미국 이전을 희망한다고 언급했었다. 한편 일본은 중국에 있는 한국의 반도체 생산라인에도 소재 공급을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싫으면 피난처인 미국으로 가라는 이야기인가? 아베가 확실히 트럼프를 밀어주는 모습이다. 물론 그는 대가를 바란다. 미국의 통상마찰을 피해 보자는 것이다.이는 정치가 경제에 간섭하기 시작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즉 이런 사태가 앞으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가 저성장에 돌입하여 먹이가 줄어들면 사람들도 동물의 본성을 갖는다. 약육강식이다. 이는 분명히 한국에게 불리하다.만일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통상마찰을 피해 미국으로 설비를 이전하면 비용 상승은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반도체의 경우 수요처, 즉 전자제품 조립업체, 그리고 부품공급 인프라가 모두 아시아에 몰려 있다. 미국으로 생산설비를 이전할 경우 품질관리를 위해 부품공급 인프라를 미국으로 옮겨야 하고, 생산된 제품을 미국에서 다시 아시아로 운반해야 한다.2000년대 중반 현대차가 미국, 중국에 생산설비를 만들었을 때 부품 인프라까지 현지에 구축했었다. 그런데 당시 자동차는 미국, 중국 시장을 확장하는 차원이었으므로 이런 투자가 정당화됐지만 반도체는 비용만 늘어나는 꼴이다. 반도체처럼 기복이 큰 산업의 경우 불황기에 이런 비용상승 요인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반도체 설비를 미국으로 이전하면 원화약세는 가속화될 것이다. 반도체가 우리나라 수출 가운데 20%를 넘게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증시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해외투자자들이 우리나라에서 탈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으로 갈 수 없다면 적어도 아베나 트럼프가 싫어하는 한국, 중국 이외의 지역으로 생산설비를 옮겨야 한다. 베트남이 떠오르고 있다. 따라서 베트남 투자는 고려할만하다.정부는 이 기회에 반도체 소재를 국산화하자고 설득한다. 반도체 소재는 같은 재료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고, 공정마다 적용방법도 다르다. 즉 다품종 소량 생산이고, 여기에는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노하우(know how)가 숨어 있다.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그 동안 일본의 노하우를 싸게 이용했던 셈이다.그렇다고 국산화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시간이다. 소재를 개발하는데 3∼4년 걸리고, 그 품질을 인증하는데 1∼2년 소요됨을 감안할 때 우리가 자체 개발한 소재를 안심하고 쓰려면 4∼6년을 기다려야 한다.위험한 것은 그 기간 안에 반도체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반도체 산업의 대표적 특징이 RD 및 설비 투자 부담이 매우 크고, 변동비가 작다는 것이다. 즉 판매량을 한 단위 높일 때 추가적으로 늘어나는 이익의 규모가 급증한다. 따라서 수요가 늘어날 때 설비투자를 공격적으로 하여 그 수요를 따라갈 수 있으면 엄청난 돈을 벌게 되고, 그 돈으로 다음 세대의 기술을 선도할 수 있게 된다. 과거 삼성전자가 일본의 반도체를 넘어 선 것도 같은 방법이었다.만일 향후 4∼5년간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가 온다면 미국 마이크론과 같은 경쟁업체가 공격적인 투자를 해서 주도권을 한국 업체로부터 빼앗아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 기간 동안 설비를 늘려도 소재 부족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대응할 수 없다. 즉 일본이 우리 경쟁력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불안하면 미국으로 가야 한다.

2019-07-30

이제 우리 주변도 살피자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최근 한일 간 경제전쟁에서 국민들이 자신의 평소 취향과 기호를 포기하고 일본에서 온 다양한 수입 식료품, 의류, 전자제품 등 소비재를 다른 것으로 교체 사용하면서 후방 지원에 적극 동참하는 결집력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 개개인이 조금씩 포기하는 경제적 효용 자체는 비록 작은 크기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전국 단위로 모이게 되면 결코 무시하지 못할 힘을 발휘한다. 실제 2018년 기준으로 일본은 우리나라의 소비재 수입 상위 5개국 중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소비재 수입규모는 2017년에는 전년대비 12.1%가 늘어난 33억1천80만 달러였고, 2018년에는 거기에서 다시 7.2%가 늘어난 35억4천980만 달러를 기록하였다. 1달러당 원화환율을 1천원으로 간주하여 이를 원화로 환산해 보면 2018년 한 해 동안 우리가 일본에서 들여온 소비재 수입액은 3조5천498억 원에 달한다. 물론 여기에는 원재료, 소재부품, 중간재, 자본재 등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의식주를 둘러싼 개인의 취향과 선호를 저격하는 선택의 폭도 매우 다양하게 확장되었다. 그러한 한 줄기를 이루고 있던 일본에서 수입되는 소비재를 과감히 포기한 우리 국민들은 충분히 할 만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소비자행동의 변화가 일시적인 이벤트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한일 관계에서 나타난 불협화음이 다소 해소된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가 영원히 잠잠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그런데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또 다시 우리 사회와 문화 전반에 다시 침투되기 시작한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는 무방비였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깨달아야만 한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각국에서 수입되는 문화를 완전 차단할 수도 없겠지만 이러한 것들은 저절로 한국화라는 필터링을 거치기 마련이다. 거창하게 전통보전이나 민족성 변질에 대한 우려보다는 직수입된 문화나 풍습이 자국문화와 이질적이기에 저절로 거부감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에게 남겨진 법과 제도, 사회적 관습,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편해서, 적절한 우리말 찾기가 귀찮아서 등 다양한 이유로 그대로 답습해온 원죄가 사방에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처럼 우리 주변에 남겨진 잔재들이 최근 수년간 급격하게 다시 침투되고 있는 일본문화의 직수입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시키며 나도 모르게 필터링이 생략되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무서운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현대 사회에서 외국의 다양한 음식, 의복, 생활, 문화 등을 즐기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원숭이 흉내를 낸다고 원숭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식 요리 전문점임을 강조하려고 종업원들에게 기모노를 입힐 필요까지는 없다. 아예 일본인들로 구성된 일본가게라면 몰라도. 심지어 주요 고객층이 한국인인데도 ‘어서 오십시오’ 대신 ‘이랏샤이마세’를 외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이제 다음 달이면 또다시 광복절을 맞이하게 된다. 비록 순수한 우리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우리 스스로 민족의 자긍심과 전통문화를 부정하고 우리말을 훼손시키는 것은 20세기 들어서 우리 민족이 겪었던 과거의 실수를 스스로 재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직도 남아있는 수많은 기술용어, 건축용어 심지어는 언론기관에서 사용하는 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손 대어야하고 바꾸어 나가야할 일본이 36년간 짧게 남겼던 잔재가 그 기간을 두 배나 넘긴 지금에 까지 번거로움을 이유로 지워나가지 않는다면 위기가 도래했을 때 우리의 구심점을 찾는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의 주변을 살피고 바꾸자.

2019-07-30

특이점이 오고 있다

소리 없이 발전하고 있어 인지하지 못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폭발적인 속도로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기술력의 임계점. 그것이 싱귤레러티(singularity)의 특이점입니다.특이점에 거의 도달해 세상을 뒤흔들 몇 가지가 있습니다. AI의 비약적인 발전과 로봇의 결합입니다. 중국에서는 6만 명 이상 모인 대형 콘서트홀에 설치한 CCTV 화면을 AI가 분석해 범죄 용의자를 체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인공지능 카메라가 수강생들의 표정 변화를 포착합니다. 졸린 눈, 하품 횟수, 반짝이는 눈빛, 대화와 토론의 빈도, 질문 횟수 등 수업 참여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반응하는지를 실시간 계량화합니다.알리바바 마윈 회장은 중국에 수십만 개 무인 레스토랑을 오픈한다고 발표했습니다. AI와 로봇 시스템의 결합이 우리 사회에 던질 충격을 예고하는 대목이죠. 신선한 채소와 야채, 음식재료의 공급과 관리부터 조리 전 과정, 서빙과 계산까지 사람 한 명 필요 없는 무인 식당은 사업화를 기다리는 중입니다.생명공학의 특이점은 큰 충격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합니다. 유전자 가위질 기술이 유전자 정보들을 편집해 복사, 붙이기를 하기 시작하면 불치병들을 상당수 원천 봉쇄할 겁니다. 앤젤리나 졸리는 유방암 확률 87%인 유전자 보유자입니다. 이 사실을 검사로 알아내고 암 발생 확률을 0.5%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누구든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이런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혁명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3D 프린팅 기술은 이제 인공 장기까지 인쇄해 내는 기술적 단계로 발전했습니다. 조만간 인체 장기들을 브랜드를 달고 병원마다 전시 판매하는 일들도 눈앞에 펼쳐질지 모릅니다.“심장은 LG 게 좋대, 역시 폐는 삼성이지, 간은 SK 아닐까?”이런 대화를 주고받을지도 모르지요. 공상만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놀라운 이야기들이 눈앞에 현실로 매일 나타나고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빠르고 넓고 강력하게 삶을 뒤흔들 게 분명합니다. 기득권층은 이런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대중들의 고삐를 더 쥐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려 하겠지요.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하지요.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가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내가 나답게 바로 서고 풍요롭고 향기로운 인격을 갖추는 일이야말로 급변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대책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7-30

낭독과 암송

김현욱 시인소리 내어 글을 읽는 음독(音讀)에는 낭독(朗讀), 낭송(朗誦), 낭영(朗詠) 등이 있다. 음독이 자기 혼자서 소리 내어 읽는 것이라면, 낭독은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을 전제로 한다. 글의 정서나 운율, 이미지를 음성으로 전달하는 것이 낭독이다. 낭독은 혼자서 또는 같이, 순서를 정해서, 배역을 정해서 읽을 수 있다. 낭독 전에 글의 내용과 정서, 운율, 분위기 등을 파악하여, 듣는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음성의 높낮이, 길고 짧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전평론가 고미숙 씨의 낭송의 달인-호모 큐라스에 따르면, 큐라스는 케어(care)의 라틴어로, 배려, 보살핌, 치료를 뜻한다. 고씨가 말하는 낭송은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이 아니라 ‘암송’하는 것이다. 암송은 암기와 다르다. 암기가 음소거 상태에서 의미 단위로 텍스트를 먹어 치우는 것이라면, 암송은 소리로 텍스트를 몸 안에 새기는 행위다. 고씨는 “낭송이란, 존재가 또 하나의 텍스트로 탄생하는 과정이다. 낭송을 일상화하면 자연스럽게 쾌락에 미혹되지 않는다”라면서 “낭송이 공부와 우정을 북돋우고 나아가 삶까지 바꾸는 독서법이자 양생법이다.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서, 혹은 직장 동료의 결혼식장에 갔다가 니체나 스피노자, 공자나 연암 박지원의 문장을 듣게 된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친구나 동료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우정을 나눌 준비가 된 것이다. 그게 바로 신체와 소리의 힘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2019년 6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스웨덴의 의회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신뢰’ 주제 연설에서 시 낭송을 했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고 하는 고장에서는, 그 중립국에서는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기지도 탱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는 나라.” 신동엽 시인의 ‘산문시 1’을 낭송한 것이다. 1969년 서른아홉 나이에 요절한 신동엽 시인은 대표적인 한국의 참여 시인이다.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이 여름방학을 맞아 학급 장기자랑에서 트로트 가수 홍자의 ‘상사화’를 불렀다. 방과 후 수업에서 배웠던 우쿨렐레 연주나 댄스를 자랑하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요즘은 미스트롯에 나왔던 트로트를 부르는 게 유행이란다. 안타깝지만, 동요는 교실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학생들의 장기자랑은 아이돌 춤을 흉내내거나 가요, 랩이 대세다. 심지어 모 프로그램에서는 선생님들이 우스꽝스러운 변장을 하고 아이돌 춤을 추는 게 미덕인 것처럼 비춰진다.신영복 교수의 담론에는 초등학생들과 시 암송을 하는 선생님이 나온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 시를 암송했다고 한다. 그중 한 아이가 학교에서 소풍을 갔는데 장기자랑 시간이었다고 한다. 역시나 아이돌 춤과 유행가가 대부분이었다. 드디어, 그 아이 차례가 되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 아이는 윤동주의 ‘서시’를 암송했다.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 아이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고 한다.2008년 죽장초등학교와 상옥분교장에서 근무하면서 아이들과 시를 암송했다. 보름에 한 편씩 아이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시를 암송했다. 아이들의 부모님도 동참했다. 가을에 학급 시 암송 발표회를 열었다. 시 암송을 해보니 수많은 선현이 ‘암송’의 위대함을 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임종식 경상북도 교육감이 시 암송을 즐겨 하고 관심이 많다고 한다. 학급에서 학교에서 시 암송, 시 낭송 콘서트가 우후죽순 생겨나길 바란다.

2019-07-30

로봇은 무엇을 꿈꾸는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공포를 안고 사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라는 길가메시 신화에서도 그렇듯, 죽음이라는 인간이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대한 공포가 바로 그러하지 않은가. 또한, 가파른 언덕 위로 끊임없이 돌을 굴려 올라가야 하는 시지프스의 이야기가 그렇듯, 평생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자신이 감당하기도 버거운 돌을 끊임없이 굴리듯,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그러하다.한편, 언젠가 기계가 인간보다 뛰어나게 되어 인간의 위치를 대체하리라는 상상은 또 어떨까. 인간에게 과연 그것보다 더 큰 공포가 존재할까. 불과 몇 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그렇게 화제가 되었던 배경에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것이 인간의 삶을 대체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의 근거에는 바로 인간의 삶을 기계가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공포가 존재했다.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공포라면, 우리가 왜 그것을 그렇게 계속 이야기하느냐고? 사실, 모든 이야기 중에 가장 재미있는 것들은 바로 인간이 갖고 있는 공포와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인간의 다른 모든 감정들 중에서도 가장 인간의 모든 감각과 지각을 활성화한다.메리 셸리(Mary W. Shelley·1797~1851)가 쓴 프랑켄슈타인 ; 혹은 근대의 프로메테우스(1818) 속에는 이미 죽은 사람을 재료로 그를 되살리는 연구에 몰두했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등장한다. 그는 오랜 연구 끝에 키가 8피트나 되는 ‘괴물’을 만들어낸다. 그 괴물은 빅터로부터 인간다움에 대해 배우지만, 인간다움에 대해 배우고 나자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괴물’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빅터가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괴물은 빅터의 친구들을 하나씩 죽이고, 빅터는 복수를 위해 그 괴물을 쫓는다.메리 셸리의 이 프랑켄슈타인은 분명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딜레마가 담긴 이야기다. 신이 인간들을 빚어내고 그것에 숨을 불어넣었듯, 인간을 신의 자리에 위치시켜 인간의 형상을 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나아가 그 무언가가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승인을 요구한다면? 이라는 꽤 섬뜩한 상상력이 그 속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서 창조된 괴물은 키가 엄청나게 크고 힘이 센 대상으로 분명 내가 만든 것이었으되, 그것이 점차 자라나면서 자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 창조주의 생명조차 위협한다. 어쩌면 문학이라는 도구로 자신을 규정당하는 것을 바라보는 신의 마음속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신화 속 인간 창조라는 주제에서 빠져나와, 근대에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에 대한 상상이 본격화된 것은 분명,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apek· 1890~1938)가 쓴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1920)에서부터였다. 사실 ‘로봇(robot)’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된 것이 바로 이 작품에서였다. 이 단어는 ‘노동’을 의미하는 슬로바키아어에서 비롯되었다.노동계급을 중심으로 사회주의의 의미와 가치가 가장 치열하게 대두되었을 무렵인 1920년, 작가인 차페크는 이 작품을 통해 로봇이라는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력을 제시하였다. 이 작품에서 로숨이라는 박사는 머나먼 섬에서 해양생태계를 연구하다가 ‘인간’을 만들어내었고, 그가 세운 로숨이라는 로봇 회사는 노동 사회 속에서 번창일로를 겪게 된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해버린 새로운 시대가 된 것이다.로숨 회사가 만들고 판 로봇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인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로숨의 대표인 ‘도민’은 자신이 만들어 판 로봇들이 진화의 단계상 인간보다 자신들이 더 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코웃음을 치지만, 로봇들은 자신들의 우월성을 확신하면서 인간을 위협해온다. 분명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대립이 이 작품에 알레고리로 들어 있는 것이다.이 작품에는 인간의 노동이 창조성을 잃고 컨베이어벨트에서 파편화된 부분만을 반복하는 생산적 효율성만을 추구하게 된 테일러주의 아래의 노동이 중요한 테마로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노동은 인간을 괴롭게 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 단순 반복적인 프로세스를 반복하는 인간의 노동은 그 의미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노동의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정해진 알고리즘을 반복하는 로봇의 필요성을 요청한다. 로봇이 필요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 노동이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파편화되어 지루한 단순반복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봇은 어떨까. 그들은 과연 자신의 일을 대신해 줄 또 다른 로봇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로봇들은 로숨 회사를 포위하고 로숨 박사가 만든 생명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비밀이 담긴 문서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대표인 도민은 그 문서를 내주려고 하지만, 도민의 부인 헬레나는 두려운 나머지 그 문서를 태워버리고, 도민과 함께 떠난다. 로숨에 남은 유일한 인간 알퀴스트가 로봇들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생명의 비밀을 담고 있는 어린 로봇들을 풀어주면서 이 작품은 끝난다.차페크의 이 희곡은 우리에게 있어 인간이 만들어낸 로봇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로봇은 인간의 삶에 들어 있는 결여에서 비롯되는 상상력에서 시작되고, 그 상상은 점차 실현되어가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대상이라고 해도 좋은 인간의 ‘노동’에 대한 로봇의 대체 가능성을 차페크는 이미 100년 전에 보여주었던 셈이다.차페크의 이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이 출판된 해에 태어난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1920~1992)는 로봇에 대한 수많은 단편들과 로봇 시리즈를 연이어 쓰면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로봇학의 3원칙(Three Laws of Robotics)’을 제시한다.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면서 단순반복의 노동만을 대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인간과 동등한 사고를 하게 될 때, 과연 인간을 위협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에 대한 아시모프의 대답이었던 셈이다.로봇은 알고리즘으로 구성되어, 그 알고리즘을 반복하는 존재로, 그 알고리즘 속에 인간을 보호하는 원칙을 넣으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절대로 서로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갖고 있는 것처럼, 로봇의 가장 밑바닥의 토대에 일종의 원칙화된 헌장을 마련해두자는 생각이었다. 아시모프는 이 3원칙을 자신이 발표하는 작품 마다 조금씩 바꾸어가면서 발전시켰지만, 이들은 결국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가하거나,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류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가장 단순한 원칙으로 귀결된다.아시모프의 로봇이 지켜야할 원칙이 매력적인 것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카렐 차페크의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이 신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로봇을 비유하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에 비해, 아시모프는 인간과 로봇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로봇이 가져야할 자율적인 원칙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로봇을 인간학적인 사고로 바라보는 것에서 그 자신이 정의하였듯이 로봇학적인 사고로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로봇의 내부에 자기 원칙들을 가지고 인간과 관계없이 사고하고 활동하는 존재로 간주한다는 생각은 꽤 매력적이다.물론 로봇이 자율적으로 사고하게 된다면, 스스로 자신의 원칙을 부정하고 새롭게 자기의 존재에 대한 원칙을 새롭게 구성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결국 로봇은 자신에게 부여된 원칙을 폐기하게 되지 않을 것인가? 이러한 상상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1982)의 원작인 필립 K. 딕(Philip K. Dick·1928~1982)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1968)로 이어지겠지만, 일단은 여기까지만 해둔다. 여름날 로봇에 대한 상상은 그 정도까지가 딱 좋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19-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