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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트럼피즘

우정구 논설위원 트럼피즘을 일부학자는 일종의 자유민주주의의 변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의 이름을 딴 페로니즘이 좌파 포퓰리즘 권위주의 대명사라면 트럼피즘은 우파 포퓰리즘 권위주의 정책의 대명사로 본다는 뜻이다.“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외침에 대중들이 열광하고 있다. 미국의 내셔널리즘. 국민보수주의, 반공주의, 불개입주의 등으로 해석되는 트럼피즘은 본래 백인 노동자 계층 중심의 지지기반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지금은 대도시 대학졸업자, 유색인종 등에 이르기까지 지지기반이 크게 확장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특히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에 대한 총기피격 사건 이후 트럼프의 지지율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지지율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 것으로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미국 대통령 선거는 전 세계적 관심거리다. 미국 대통령의 정책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될 나라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피즘은 친이민정책과 자유무역주의 정책에 반격을 가하고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강력한 자국우선주의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그 배경에는 오랫동안 미국 사회를 주도한 엘리트층이 일반서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한 반엘리트주의가 근거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체된 임금수준에 대한 중년 백인 남성의 분노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트럼피즘의 본질은 극단주의적 표퓰리즘에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가 반면교사할 부분은 없을까. 고민할 문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21

보수와 진보는 결코 선악의 대립이 아니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정치의 가장 큰 고질병은 극한적 이념 갈등이다. 보수와 진보 어느 쪽에 속하든 상대를 부정하고 심지어 악마화 하려 한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을 편하고 이롭게 하려는 것인데 양측 모두 자기 정파만을 위한 투쟁에 몰입하고 있다.현재의 이 나라의 여당은 보수, 야당은 진보를 표방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현재의 여야는 참된 보수도 진보 정당도 아니다. 여야는 진영정치에 몰입하여 자기편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양분 프레임정치를 하고 있다. 양식 있는 시민들이 우려하고 실망시키는 우리 정치의 모순이다.이 나라 정치인뿐 아니라 언론까지 심지어 시민 단체나 개인들까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보수는 체제 안정과 유지를 위한 수단이고, 진보는 체제의 모순을 개선 개혁하려는 이념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보수도 진보도 본질에서는 많이 이탈하여 사이비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이념대립은 결코 선악대립이 아니다.달포 전 어느 스님의 산방을 찾은 적이 있다. 종교간 간헐적 대화 모임에 소생도 참여했던 것이다. 오찬 시작 전 초청 스님의 인사말씀이 있었다. 찾아와 주어 고맙다는 의례적인 인사는 아니었다. ‘회영(懷影)산방’이라는 옥호의 작명 내력부터 소개하였다. 인생을 오래 살다보니 남는 것은 자신을 따르는 그림자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 그림자를 가슴에 품고(懷影) 살아가는 곳이 이 산방이란다.노승은 젊은 시절 불교뿐 아니라 모순된 사회 개혁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는 평생을 현실 개혁을 위해 싸워왔지만 진보만이 선이 아니라는 점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보에도 선인과 악인이 항상 공존했다는 것이다.스님은 첩첩산중인 이 산방에서 조용히 살다 하직하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햇살이 고루 퍼지는 오전 10시, 산속의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서 춤을 추면서 이승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초연한 스님 말씀에 모두가 숙연해진다. 상당히 가슴에 와 닿는 인사성격의 법문이었기 때문이다.이 나라 정치에서 보수측과 진보측은 상호 비난하고 적대시한다. 여야 간 협치가 되지 않는 근원이다. 보수 강경 단체는 진보 단체를 수상한 집단으로 간주한다. 보수 우파는 진보 좌파를 용공이나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기도 한다.1950년대 미국에서 상대 경쟁자를 공산주의자로 거부했던 매카시즘이 아직도 횡행하고 있다. 6·25 전쟁직전 보도 연맹사건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자유당 시절 대선후보였던 조봉암마저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뒤늦게 무죄 판명되었다.8·7 민중항쟁 이전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용공이라는 명목으로 희생되었다. 보수측은 진보측을 아직도 반국가 세력이며 추출해야할 악의 세력으로 단죄하려 한다. 진보에 대한 의심과 불신 감정이 보수층의 심리적 기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강경인사들은 자기들은 항상 선이며 애국세력으로 자부한다. 보수 진보의 이념의 갈등이 선악의 프리즘으로 작동되는 증거이다. 진보측 역시 보수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강하다. 이들은 보수층을 기득권을 옹호하는 부패한 집단으로 간주한다. 해방 후 정당간의 실질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보수는 ‘권위와 정통성’이라는 독점적 지위를 견지해 왔다.진보측은 보수 측을 기득권 유지를 위한 부패한 세력으로 간주하였다. 진보측은 보수 측을 서민이나 소외된 자들을 돌보지 않고 가진 자의 편에 서 있어 역사를 퇴행시키는 ‘반역사적 세력’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진보 측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불러온 촛불 집회를 옹호하면서도 보수 측의 태극기 집회는 거부할 수밖에 없다. 진보 측에서는 보수 강경파를 친미 사대주의자로 간주할뿐 아니라 때로는 힘 있는 곳에 기생하는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한다. 이 나라 보수가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까지 옹호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항상 이런 강자에 의존하는 기회주의적 속성이 사회정의를 파괴하고 역사를 퇴행시킨다는 것이다.이 같은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한국의 정당 정치를 왜곡하고 극단적 거부 정치, 진영 정치를 부추길 뿐이다. 이런 정치판의 보·혁 갈등이 가족이나 친족, 동창 조직 등의 모임에서도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한국의 갈라진 언론이 이를 더욱 조장 확산시킨다. 보수는 영국의 에드먼트 버크에서 보듯이 전통과 기존질서를 옹호하려는 이념이다. 혁명이나 개혁으로 인한 대혼란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진보는 지속적으로 개혁하고 혁명해야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현실은 사이비 보수와 진보가 서로 비난하고 저주하면서 뒤엉켜 싸우고 있다. 정치적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대립이 도덕적 선악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는 셈이다.미국 정치학자 바라다트는 일찍이 보수도 진보도 자기의 뜻을 관철할 수 없는 허무주의에서 만난다고 주장하였다. 정치와 역사는 결국 양측의 정반합의 변증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 보수와 진보를 중재할 사람은 결국 양식 있는 중도층이다. 이들이 선거에서 심판자가 되고 있다.

2024-07-21

강박장애로부터의 자유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버스 손잡이를 잡는 게 오염이 될까 봐 걱정되거나 외출하는데 집의 문을 잠갔는지 걱정이 된다면 ‘강박장애’ 환자일까? 우리는 무언가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면, ‘강박장애’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강박적 사고는 강박장애 환자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정상인도 강박적 사고를 한다. 정상인은 강박사고를 경험하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쉽게 떨쳐버릴 수 있다. 강박장애 환자인지 여부는 자신이 원치 않은 강박적 사고를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억제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점에서 명확히 확인될 수 있다.강박장애를 가진 사람은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인지함에도 하루에 1시간 이상을 얽매여 있고 현저한 고통을 겪는다. 심한 경우는 하루종일 지속되어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이다.강박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은 강박사고(Obsession)와 강박행동이다. 강박사고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오염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또는 재확인해보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사고, 폭력적이거나 공포스러운 장면들과 같은 심상 또는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은 충동이다. 중요한 것은 강박사고가 즐겁지 않고 자발적이지 않으며 침투적이고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반응으로 현저한 불안감이나 괴로움을 초래한다는 점이다.강박행동은 강박사고에 대한 반응으로 그렇게 해야만 안심하게 되는 반복적 행동이나 정신적 활동이다. 예를 들면 더러운 물질에 손이 오염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강박 사고 또는 무언가 부정확하다는 강박사고가 유발하는 불안감은 손을 씻거나 재확인 함으로써 완화될 수 있는데, 불안을 완화시키기 위해 씻는 행동 또는 확인하는 행동은 강박행동이다. 정신적 활동인 강박행동의 예는 안심이 되는 단어나 문구를 속으로 반복하는 것 등이다.강박사고에는 ①오염 강박사고, ②확인 강박사고, ③공격적인 강박사고, ④대칭과 질서의 강박사고, ⑤신체적 강박사고, ⑥성적 강박사고, ⑦종교적 강박사고 등이 있다.강박행동에는 ①세척 강박행동, ②확인/반복 강박행동, ③숫자세기, ④정리정돈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결벽증이라고 불리우는 오염 강박사고와 세척 강박행동이 짝지어진 강박증상이 가장 흔하다. 대부분의 강박장애 환자는 강박사고와 강박행동 모두 갖고 있다.강박장애는 평생유병률이 2~3%로 결코 드문 질환이 아니다. 강박장애의 평균 발병 연령은 19.5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강박장애를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는 20~30대에 많다. 발병 후 바로 치료받지 않고 있다가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심해져 20~30대에 병원을 찾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에 비해 더 이른 나이에 발병한다.강박장애는 점진적 발병이 흔하다. 치료받지 않으면 대부분 만성적인 경과를 거치며, 증상의 악화와 완화를 자주 반복한다. 치료없이 저절로 관해되는 경우는 적다. 가능하면 조기치료가 중요하다는 말이다.강박장애의 생물학적 원인은 한 가지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주의를 전환하도록 해 주고, 인지적 융통성을 발휘하는 뇌의 전대상피질의 세로토닌 기능의 저하와 안와전두피질과 기저핵 이의 도파민 신경 회로의 과활성화이다.따라서 강박장애의 약물치료는 세로토닌 기능을 올려주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효과적이며, 강박장애의 증상이 심각한 경우 도파민 수용체 차단제를 사용한다.강박장애 환자의 치료에는 약물치료뿐만 아니라. 인지행동치료 또한 중요하다. 많은 강박장애 환자는 역기능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믿음에는 부정적 결과에 대한 지나친 책임감, 위험에 대한 과대평가, 완벽주의, 불확실성을 참기 힘들어 하거나, 금지된 생각이 마치 행동하는 것만큼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고의 지나친 확대해석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강박장애 치료에는 이러한 역기능적 믿음을 깨닫게 해주는 인지치료가 중요하다.강박장애의 가장 대표적인 행동치료법은 노출과 반응방지이다. 예를 들면, 강박적으로 자주 손을 씻는 환자의 경우 환자가 두려워하는 더러운 물건을 만지게 한 후 손을 씻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환자는 노출 초기에는 심한 불안을 경험할 수 있으나, 반복적인 시행을 함에 따라 점점 불안이 완화된다. 그러나 강박장애 환자 중 상당수는 두려운 상황에 노출될 때 불안 증가를 경험함으로써 치료를 거부하는 단점이 있다. 강박사고가 주 증상인 환자에게는 ‘중지’라고 외쳐서 그 생각을 멈추게 하는 사고중지법을 적용한다.필자가 강박장애 환자들에게 전하는 마음처방전을 공개한다. 강박사고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침투적인 생각이다. 통제할 수 없는 강박사고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사고억제의 역설적 효과로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할 때보다 오히려 강박사고가 더 떠오르고 집착하게 된다.필자는 환자들에게 “강박사고가 일어날 때, 아 나는 지금 강박사고를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수용하라고 처방한다. 강박사고, 강박행동 그리고 불안에 반응하지 않고 그저 바라볼 때 언젠가는 그 증상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체험하고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2024-07-21

청송군 인구소멸 선제적 대응

윤경희 청송군수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는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2명이며, 올해 합계출산율은 0.6명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지방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에서 인구소멸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사과로 유명한 청송군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현재 청송군의 인구는 2만3887명으로, 2만4000명이 깨졌다. (2024. 6. 30.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현황). 여기에 인구의 40%는 65세 이상으로 유력한 지방소멸지역이다.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청송군은 인구소멸에 대응한 첫 걸음을 내딛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 주거지 확보,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먼저 청송군은 인구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주 4.5일제를 도입했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이 저출생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시행된 전국 최초의 시도이다.직장생활과 가사노동, 양육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일을 그만두거나 출산을 포기하는 일이 많아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청송군 기관단체의 근로시간 주 4.5일제 시행은 근로자의 개인, 부모로서 삶의 질을 높여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청송문화관광재단과 청송문화원, 청송군 체육회 등 산하 공공기관 및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 시범운영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다음은 주거지 확보이다. 청송군은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해 공공임대주택 청년빌리지 건립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이 돌아오는 청송’을 모토로 공공임대주택 4층 규모 44세대를 건립해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여건을 지원하고 있다.또한 ‘덕리지구 농촌공간정비사업’을 통해 덕리지구를 쾌적한 주거·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이 사업은 도시 미관을 해치는 축사와 견사를 철거하고 공공임대주택, 영농실습농장, 복합문화센터, 편의시설을 조성해 청년층에게 고품질의 주거지를, 지역민들에게도 문화공간을 제공해 청송읍 원도심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일자리 창출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청송군은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쟁력 강화를 위해 청송군-대구가톨릭대학-지역기업이 함께하는 ‘청송군 K-U시티 항노화 사업’을 시행한다.이 사업은 구직을 위해 지역을 떠나는 학생과 청년들의 유출 방지를 위해 양질을 일자리와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2026년까지 항노화 산업 연구센터를 덕리지구 농촌 공간정비사업과 연계하여 조성한다. 이곳에는 입주 기업실, 연구실, 실험실습실 등의 시설이 구축된다. 청송사과와 청송특산물을 활용한 항노화 사업 추진으로 인력 유치와 공동연구를 통한 창업도 지원한다. 또한 관련 근무자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공동 주택도 건립하여 일자리와 주거공간을 청송군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교정시설 신축 및 교정공무원 숙소 추가 건립을 법무부에 꾸준히 건의해왔다. 수용인원 1000 명 규모의 교정시설이 들어서면 교정공무원 400명이 새로 유입되고, 면회객 증가로 인한 인구 증가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마지막으로 출산 친화적 여건 제공으로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구축한다. 숲속 태교 프로그램, 찾아가는 산부인과 운영, 임신부·영유아 건강플러스 사업 시행으로 초보 부모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진보면과 산남지역에 지역아동 돌봄 센터를 운영해 맞벌이 부부의 돌봄 공백을 해소해 아이와 부모 모두 안심하는 양육 환경을 만든다. 지역 돌봄 센터는 정규 수업 외의 다양한 체험과 생활교육을 실시하여 향후 청송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이러한 노력은 중앙정부의 저출산 극복 대책과도 발맞추고 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앞으로 10년이 저출생 대응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비상한 각오로 대책을 마련 중이다. 청송군이 이러한 중앙정부의 노력에 발맞추어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청송군의 선제적 대응은 대한민국의 다른 지방정부에도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하고, 다양한 정책을 통해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청송군의 사례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이고 선도적인 접근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2024-07-21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작년 어느 날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나는 깜짝 놀랐다나는 아파서그냥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그동안은 나는 늘 사십대였다참 우습다내가 57세라니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최승자, ‘참 우습다’ 전문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문학과 지성사, 2011)최승자 시인(1952년~)은 “담배 한 대 피우며 한 십 년이 흘렀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후 시인의 시간은 거기에 또 한대의 담배가 얹힌 시간이 된다. 그렇게 한 세월이 있었다. 80년대에 시인이 되고자 했던 많은 시인처럼 최승자의 시들이 보여주었던 치명적이고 고질적인 꿈, 혹은 병(病)은 혹독한 고통의 시간이었다.기억한다는 것은 과거를 보존한다는 것과 보존된 과거를 상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에서 시간은 시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지연된다. 그것이 바로 ‘병(病)’이다. “그냥 아파서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시에 나타난 과거적 지평은 단순히 회고의 대상이 아니다. 과거를 응시하는 시인은 퇴행적 욕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미래 지향적 욕망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를 분출하고 있다.깨어 있는 동안에 우리가 무엇을 하든 현실은 삶에 달라붙는다. 시인에게 병(病)은 그러한 삶과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라캉은 죽음충동은 불쾌의 경험에서 쾌를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시인은 오랫동안 투병 속에 잠들어 있었다. 이는 의미와 존재의 사유를 표현하는 것에 실패했을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우회로이다. 시인은 과거를 재현하며 그에 투신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끌어당겨 현재의 ‘나’의 위치에서 언어화한다. 최승자의 시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 시적 자아는 삶에 위치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오랫동안 죽음에 투신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가출하듯 최승자는 최승자를 떠났다.시인 최승자는 묻고 답한다. “그러나 떠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주저앉아 있는 것, 정지해 있는 것, 고여 흐르지 않는 것은 시간의 누적과 더불어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히 굳어져 버린다. 단단히 굳어져 하나의 질병”이 돼버린다. 그러니까 이건 힘겨운 삶과 사라진 사랑, 버거운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최승자 시인의 시를 통해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의 그 아스라한 통증의 공허함이란. 그리고 타자들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에 의해 주도 되어오던 시인의 시간은 후반부에 이르러 시인의 시점으로 바뀐다. 그 순간 시인은 마침내 껍질을 벗고 세상으로 나올 생각을 한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속을 잠시 흐르다 가는 삶의 즐거움과 고통, 사랑과 죽음에 대한 방식은 이어지는 작품 ‘너에게’에서도 연역한다. 이희정시인 “네가 왔으면 좋겠다 / 나는 치명적이다 / 네게 더 이상 팔 게 없다 / 내 목숨밖에는.// 목숨밖에 팔 게 없는 세상, / 황량한 쇼윈도 같은 나의 창 너머로 /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내리고, 나는 치명적이다. // 네게, 또 세상에게, 더 이상 팔 게 없다. / 내 영혼의 집 쇼윈도는 텅 텅 비어 있다./ 텅 텅 비어, / 박제된 내 모가지 하나만/ 죽은 왕의 초상처럼 걸려 있다.// 네가 왔으면 좋겠다. / 나는 치명적이라고 한다.”그녀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의 표제를 비웃듯 1979년 등단 이후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 옮긴 책들은 투병 중의 그녀로서는 지극한 이력이다. 여전히 많은 독자가 시인의 시에 기대어 허무와 고통을 필사하는데도 불구하고, 덧붙은 이력에는 기초생활수급자, 초등생 몸무게, 정신병원 재입원 등의 키워드가 부록처럼 딸려있다. 그럼에도 시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앞으로도 뒤로도.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2021년 시인의 말, 최승자)”

2024-07-21

아프니까 사장이다

우정구 논설위원 국내 최대 규모 창업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창업 카페에는 요즘 사무실이나 가게를 팔겠다는 게시물이 더 많이 올라와 창업 카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최근 국세청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사업을 접고 폐업한 사업자가 98만여 명으로 집계돼 전년보다 14% 가까이 늘었다. 관련 통계 집계 후 가장 많은 자영업의 폐업이라 한다.폐업 사유는 절반 가까이가 사업 부진을 꼽았다. 내수 경기 부진을 원인으로 꼽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의 비중이 너무 높은 탓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6∼9% 수준이나 우리는 20% 정도다.기업의 구조조정으로 떠밀려나온 40∼50대 직장인이 쉽게 선택하는 것이 바로 자영업이다. 경기 부진도 원인이지만 과잉상태의 자영업 때문에 사업 성공률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최근 내년도 최저임금이 1만30원으로 오르자 ‘아프니까 사장이다’ 커뮤니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알바들 연봉 협상하느냐”는 비판 글부터 “겨우 버티는데 걱정”이라는 우려의 글들로 가득찼다.특히 15시간 이상 일하면 지급해야 하는 주휴수당 폐지를 주장하는 글들도 많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말이 시급 1만30원이지 주휴수당 포함하면 사실상 1만2000원 꼴이라며 높은 임금 때문에 앞으로 자영업을 포기할 사람이 더 늘 것이라는 글들이 많았다.더 우려스러운 것은 폐업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자영업자가 1년 새 20%나 늘었다는 사실이다. 문 닫고 빈털터리 신세된 자영업자들의 눈물을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커뮤니티 이름이 ‘아프니까 사장이다’라고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7-18

국회의원 배지의 무게

이상휘 국회의원(국민의힘·포항남울릉) “의원님 배지 달고 다니셔야 합니다.”국회 등원하고 나서 보좌진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국회의원 배지가 지금이야 조금 익숙해졌지만, 처음엔 너무 어색했다. 의원총회나 꼭 필요한 자리에만 달고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러다보니 간혹 분실 위험도 없지 않았다. 더욱이 가끔씩은 어느 주머니에 뒀는지 가물가물, 곤혹스러웠다. 그걸 지켜본 보좌진들이 ‘차라리 당당하게 배지 달고 다니시라’고 권유했다.흔히들 국회의원 배지를 ‘금배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99%의 은에 공업용 금을 입힌 것으로 무궁화 형상에 한글로 ‘국회’라는 글자가 있다. 지름 1.6㎝에 무게는 약 6g. 배지마다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으며, 처음엔 무료로 지급해 주지만 분실이나 추가 주문 시 3만5000원을 내고 구매해야 한다.국회의원 배지의 무게는 6g에 불과하지만, 그 가치(價値)의 무게는 측정이 어렵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과 준수해야 하는 의무가 뒤따르기 때문이다.지난 5월 30일 제22대 국회 첫 등원 이후 하루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주중이면 여의도로 올라와 지역의 대표자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한편 맡겨진 당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특히 당 미디어특위 위원장으로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야당과 싸우는 것은 여간 일이 아니었다. 주말은 더 바빴다. 지역구인 포항으로 내려가 현안도 파악하고 주민들과 만나 소통을 하다 보면 토, 일요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난 가끔 힘들 때면 ‘누가 국회의원을 노는 사람들이라고 했나’라며 읊조리곤 한다. 물론 일각에서는 국회의원이 뭐가 그리 힘드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그랬다.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 서 있는데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등원하고 보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특히 요즘은 국회의원이라는 권위만 잔뜩 내세우면서 한가하게 서울과 지역을 왔다 갔다 하다가는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그만큼 시대가 바뀌었다. 생존하려면 변화에 발맞출 수밖에 없다. 초선이든 중진이든 간에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최선을 다해 지역구 활동과 국회의원으로서의 의정활동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다만 갈수록 국회 사정이 복잡, 안타깝기만 하다. 여당 소속이지만 여당의 이점을 향유하기는커녕 일방 독주하는 야당을 견제하기도 버거운 것이 요즘 상황이다. 더욱이 이런 여야 대치가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복잡한 정국을 헤쳐 나가면서, 또 산적해 있는 지역 문제를 어떻게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할지 아득하기만 하나, 그래도 포항 출신 영일만 사나이는 시간 날 때마다 다짐하는 것이 있다. 믿고 뽑아준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을 유념, 조금 더디 가더라도 멀리 갈 수 있도록 시민들과 함께 담담히 걸어갈 것임을 다짐한다. 가끔씩은 이 지면을 통해 소식을 담은 편지도 전하면서….

2024-07-18

완장(腕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오래 전에 읽은 윤흥길의 소설 ‘완장’이 생각난다. 주인공 임종술은 동대문시장에서 목판장사도 하고 포장마차도 해보고 양키물건을 팔기도 하다가 고향에 내려와 낚시질이나 하며 지내는 건달이다. 그런 그에게 완장을 두를 일이 생겼다. 땅 투기에 성공해 기업가로 변신한 최 사장이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그 관리를 임종술에게 맡긴 것이다. 보수가 변변치 않아 처음에는 거절을 했으나 완장을 차게 해 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수락을 한다.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로 ‘감시원’이라고 쓴 완장을 찬 임종술은 사람이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도둑낚시를 하던 널금저수지는 이제 그가 지배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된다. 야밤에 몰래 고기잡이를 하던 초등학교 동창 부자를 폭행하여 아들의 귀청을 터지게 만들기도 하는 등 마치 마을에 군림하는 독재자인 양 행세한다. 그렇듯 완장놀음에 심취한 종술은 면소재지인 읍내에 나가서도 완장을 차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러다 어이없게도 저수지에 놀러온 최 사장 일행이 낚시하는 것까지 방해를 해서 감시원직을 빼앗기고 만다.감시원직에서 해고를 당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종술은 완장을 차고 저수지를 감독하는 일을 계속한다. 그러나 가뭄이 심해져서 저수지의 물을 빼서 전답에 대기로 결정이 나자 임종술은 강력히 반발을 하지만 소용이 없다. 수리조합직원과 경찰에게까지 행패를 부리다 결국 쫓기는 신세가 되어 완장을 버리고 고향을 떠난다.22대 국회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학창시절 소위 운동권이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다른 학생 5명과 모의하여 사과탄, 화염병, 사제폭발물 및 쇠파이프를 소지하고 주한미대사 관저의 담을 넘었다. 월담 직후 사과탄 및 사제 폭탄 1발을 터뜨리고, 폭발음을 듣고 달려온 경비원을 향해 다시 2발을 터뜨렸으며 미리 준비한 쇠파이프로 현관 유리창을 부순 뒤 공관 안 응접실에 침입했다.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액자를 쇠파이프로 부순 뒤 접견실에 있던 소파 4개와 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 대사관저 직원들을 인질로 하여 “노태우 매국 방미 반대”, “그레그 대사 취임 반대 및 추방”, “수입 개방 압력 철회” 등의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하다 경찰에 연행되었다.집시법위반,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총포·도검·화약류등단속법위반,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현주건조물방화미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화려한(?) 경력을 발판으로 정계에 진출, 좌파 정당의 공천을 받아 네 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수석최고위원에다 법사위원장 감투까지 쓴 정청래 의원은 완장을 찬 임종술을 방불케 한다.터무니없는 법안들을 마구잡이로 단독·강행 발의하는 등 무소불위 권력놀음에 도취되어 ‘해병대원 특검법’청문회에 불려나온 전 국방장관과 군 장성들을 모욕하고 능멸하는 작태를 벌이기도 한다. 인성과 자질이 안 되는 사람이 완장(감투)을 차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남을 일이다.

2024-07-18

TK와 웅도 경북(雄道 慶北)의 추억

정태옥​​​​​​​경북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 지난 대선 시절에 홍준표 후보는 풍패지향(豐沛之鄕)이란 말을 했다. 한 고조 유방의 고향이 풍읍(豐邑) 패현(沛縣)에서 유래하여 제왕의 고향이란 뜻으로 대권 쟁취와 고향 발전의 의지를 드러낸 말이다. 6~70년대 대구 경북은 한 몸이었다. 당시 전국체전 캐치프레이즈가 웅도 경북(雄道慶北)이었다.실제 부산과 경기도를 멀리서 따돌리고 서울 다음의 위상을 떨쳤다. 대구경북은 땅도 넓었고 인구도 많았고 산업 생산력도 대단하였다.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구미전자산업과 대구섬유산업은 산업 입국의 상징이었다. 영호남 갈등의 근저에는 대구경북의 남다른 발전이 깔려 있었다.당시 TK출신 위상도 대단했다. 일설에 의하면 원래 TK는 대구경북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서울에서 열리는 경북고등학교 총동창회를 가리키는 용어였다고 한다. 경북고등학교의 일제시대 전신이 대구고보였다. 경북고등학교 총동창회에는 대구고보와 경북(중)고등학교 출신들이 다 모였는데 그들의 앞 글자를 따서 TK라 부르고 아예 대구 경북 사람들을 TK라 일컫고 삼김(三金) 시대에 들어서면서 부산경남 사람들을 PK라 부르면서 지역 명칭으로 변했다 한다.내노라하는 정치인들도 가득하였다. 요즘 다른 지역 정치인들이 대구경북 사람들을 아무리 비하해도 찍소리 못하고 공천에 목메다는 비겁한 정치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서울에 갔을 때 남들이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대구 경북이라고 답할 때는 은근 자부심도 한 줌 들어가 있는 대답이었다.세월은 흘러 이제 대구경북은 몰락과 조소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구와 경북은 쪼개어지고 산업 경쟁력은 떨어지다 못해 형편없이 되었고, 정치적 발언권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여당 당대표 선거 때나 찾는 곳이 되었다. 서문시장은 다급한 보수 정치인들이 찾아와서 보수를 지켜달라고 애절하게 호소해 놓고 돌아서서는 웃어버리는 웃기는 동네가 되어 버렸다. 대구경북은 그들이 서울 가서 대구경북 발전을 위한 법안이나 정책에는 철저히 외면하는 허언(虛言)의 고장이 되어 버렸다.최근 얼마동안 대구경북을 위한 법안 한 두 개는 그들의 힘이 아니라 전라도 광주의 힘을 빌어 겨우 통과 됐다.최근 다시 대구와 경북을 통합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 실제 대구경북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깔려 있다. 그래도 나는 기대를 한번 해 본다. 가장 큰 이유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제 산업경쟁의 단위가 국가에서 지역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중부 내륙의 러스트 벨트(Lust Belt)라고 하는 전통적 산업도시 지역과 태평양과 대서양 해안지역 쪽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다르다. 대구경북도 합하여 규모를 키우고 독자적 산업 정책을 펼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고 21세기 첨단 산업시대에 알맞은 신산업을 창출해야 한다. 한때 잘 나가던 대구경북의 위상이 쪼들어진 원인은 수출주도형 산업시대에 항구가 없었기 때문이다.21세기에는 항공 물류의 비중이 많이 높아졌다. 대구와 구미에서 미국 한번 출장 가려고 새벽 5시에 출발해서는 지역 경쟁력이 있을 수 없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준비하는 신산업 정책도 필요하다.덩치만 크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열린다. 나는 기대해 본다.

2024-07-18

유튜브와 돈이 만들어낸 괴물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불과 반세기 전엔 초등학생들의 꿈이 대통령이나 과학자가 대부분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란 여자 아이의 경우 고풍스럽게도 “현모양처(賢母良妻)”라 답하는 경우까지 있었다.21세기가 되면서 장래희망을 물었을 때 그런 대답은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게 “인플루언서” 혹은 “인기 좋은 유튜버”다. 이걸 탓할 수는 없다. 세월과 세상의 변화에 따라 아이들의 꿈도 달라지기 마련이니.“왜 인기 좋은 유튜버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이던 아이.공고한 자본주의가 득세한 한국 사회에서 돈은 이제 모든 것의 척도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돈도 많이 벌고 싶은 것이다. 이것도 야단치기 어렵다. 아이들이 누굴 보고 배웠겠는가.하지만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문제는 돈을 버는 방식이다. 부정하고 부당하게, 불법과 편법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인간에게 독(毒)이 되는 법. 이젠 이 말을 해주는 어른들이 드물어졌다.최근 음식을 상식 밖으로 많이 먹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려 유명인이 된 한 여성의 과거사가 화제가 됐다. 남자친구에게 맞고 살면서 40억 원을 착복 당했다는 이야기. 저간의 사정을 아는 또 다른 유튜버 몇몇이 이 여성의 억울함과 고통을 알면서도 약점을 이용해 돈을 뺏으려 했다는 관련 보도가 줄줄이 이어졌다. 혀를 찰 일 아닌가.유튜브 운영사가 그 여성 유튜버를 협박한 3명 유튜버들의 수익 창출을 중지시켜 돈줄을 막아놓으니, 그제서야 사과의 의사를 밝히고 있다. 후안무치한 그들을 ‘유튜브와 돈이 만든 괴물’ 외에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17

대학이 살아야

장규열 고문 대학의 운명과 미래에 대한 고민은 교육기관으로 존속을 넘어 고등교육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걱정을 끼친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문대 입학생들 가운데 만학도의 입학이 꾸준하게 증가한다고 한다. 이미 신입생의 절반가량을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차지한다. 대학이 더 이상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말해준다. 신입생 가운데 50대 이상도 11%에 달하며, 비수도권 전문대는 만학도가 70%에 이른다고 한다. 대학은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학습자들을 포용해야 하며, 대학의 정의와 역할을 새롭게 다듬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전통적으로 10대 후반·20대 초반 학생들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인생의 여러 단계에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대학은 그 역할을 확장해야 할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다. 대학이 젊은이의 첫 번째 직업만을 준비하는 단계가 아닌, 인생 전반에 걸쳐 재교육과 재훈련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세상의 도래는 대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기술발전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이미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조차도 새로운 지식을 지속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기술과 산업의 발전과 변화는 대학에게 연령의 한계를 넘어서는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집단 온라인강의(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와 융합교육(Hybrid Education) 등 다양한 형태의 교육 방식이 등장하여 기존 강의 일변도의 대학교육 시스템을 보완하고 확장한다.사회생활을 이미 시작한 사람에게 다시 배워야 하는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직업의 변화, 기술의 발전, 경제 구조의 변화 등은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끊임없이 습득하도록 요구한다. 대학은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평생학습의 중요한 허브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대학의 존립과 미래는 대학 스스로 정의와 역할을 어떻게 재설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통적인 청년교육 중심에서 탈피하여 인생 전반에 걸친 학습을 지원하는 포괄적인 교육기관으로 변화해야 한다. 대학은 다양한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을 다기적으로 구성하고 디지털을 포함한 미래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교육의 다면적 확장을 추구하고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대학은 사회의 진보와 변화에 발맞추어 학습자들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유연한 ‘교육필요성 모니터링’체계를 구축해야 한다.세상이 변화하는 속도에 대학이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 직장인들이 재교육과 성인연령층의 평생교육은 대학에게 새로운 지평을 제공한다. 대학이 기술적 트렌드와 미래사회의 변화를 감지하는 맨 앞자리에서 청년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열린 교육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은 변화를 수용하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교육모델을 제시하며 사회 전반의 변화와 혁신을 추동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 대학이 사회전반과 과학기술의 변화의 뒷자락을 따라가서야 되겠나. 대학이 전향적으로 트렌드와 혁신을 유도하고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며 앞서가야 한다.

2024-07-17

입추(立秋)와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열세 번째가 입추(立秋)다. 태양의 황경이 135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8월 7일(음력 7월 4일)이다. 음력으로는 7월의 절기다. 입추(立秋)는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있다.입추(立秋)는 ‘가을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봄을 알리는 입춘, 여름을 알리는 입하, 겨울을 알리는 입동과 같이 계절이 바뀜을 알려주는 절기다. 이를 입(入)절기라고 하는데, 계절이 시작하는 절기를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름 기운이 강하게 남아 있다. 가을로 들어서려면 아직 한 달 이상이 남았다. 이런 시간 차이는 복사열 때문이다.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지만, 간혹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음력 칠월칠석이 지나면 밤에는 열대야가 식어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때때로 태풍이 올라오면 거친 바람과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지만, 입추가 지나면 뜨겁고 덥지만 습하지 않은 날이 지속된다.1년 벼농사의 성패가 이 때의 날씨에 달려있다. 입추는 벼의 성장에 중요한 절기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뜨거운 햇살을 받아야 낱알을 살찌울 수 있고, 벼가 제대로 누렇게 익어가기 때문이다. 입추에서 처서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야 풍작을 기대할 수 있다. 예로부터 각 고을마다 비가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청제(祈晴祭)를 지냈다.입추와 처서 사이에 칠석(七夕·양력 8월 10일)이 있다. 칠석은 양수인 홀수 7이 겹치는 날이라 예로부터 길일로 여겼다.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오작교(烏鵲橋)를 건너 만나는 날이다. 칠석날 내리는 비는 기쁨의 눈물이요, 다음날 내리는 비는 헤어지면서 흘리는 슬픔의 눈물이라 한다. 여름 하늘에 은하수를 중심으로 동쪽에 견우성(독수리자리), 서쪽에 직녀성(거문고자리)이 있다. 두 별은 약 16광년 떨어져 있다. 전설로만 전해진 사랑 이야기다.‘입추 때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때는 벼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또 ‘어정 7월, 건들 8월, 동동 9월’이란 말도 있다. 모를 심고 난 뒤 7월에는 어정어정 거리고, 8월에는 농한기라 건들거리며, 9월에는 발을 동동 구른다는 표현이다.입추는 입춘에서 시작된 만물이 성장을 마감하는 시기가 되고, 동시에 추수를 위해 기운을 안으로 응축시키는 결실을 준비하는 때다. 유종유시(有終有始)가 연결되는 시점이 입추인 것이다. 유종(有終)은 유시(有始)를 위한 미래의 준비가 되며, 내일의 약속이다. 운이 바뀔 때 길흉이 크게 표출되는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년)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권5 ‘시칙(時則)’에 보면 맹추(孟秋)의 달, 즉 음력 7월에는 초요(招搖·북두칠성 자루 끝에 있는 별)가 신(申) 방향을 가리킨다. 이 달의 방위는 서쪽이며, 신(申)은 오행으로 금(金)에 해당한다. 색깔은 흰색이며, 숫자로는 9다. 맛은 매운 맛이며, 냄새는 비린내다. 맹추가 시작될 때 대문으로 기운이 들어오기에 대문에서 제사를 드린다. 제물로 간(肝)을 먼저 올린다. 간(肝)은 오행에서 목(木)이다. 금(金)이 목(木)을 이기기에 제물로 사용한다.천자는 흰 옷을 입고, 흰 말을 타며, 흰 옥을 차고, 흰 기를 세운다. 입추는 가을이기에 금(金)의 기운이 왕성하므로 모든 복장, 의식, 행사 등에 금(金)의 색깔인 흰색을 사용한다. 가을의 정령(政令)을 내려 불효자와 불손한 자, 그리고 난폭한 자와 오만하고 교만한 자를 색출하여 벌함으로써 이 달의 기운에 보조를 맞춘다.입추가 드는 날에 천자는 삼공, 구경, 대부들을 거느리고 서쪽 교외에서 가을을 맞이한다. 농사가 결실을 거두기 시작하니 천자는 햇곡식을 맛보게 되는데, 먼저 종묘에 올린 다음 먹는다. 관리들에게 명하여 세금을 거둬들이기 시작하고, 제방을 완전하게 하고, 강둑을 잘 살펴 수해에 대비하게 한다. 또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감옥을 수리하게 하여 간사한 자를 잡아가두고, 재판을 신중히 하여 송사를 공평하게 한다.명리에서 입추(立秋)는 신월(申月)이며, 가을의 시작을 의미한다. 오행으로는 신(申)이며, 금(金)에 해당한다. 신(申)의 글자는 펼 신(伸)에서 파생되었다. 시간은 오후 4시경이고, 달로는 8월이니 ‘만물이 활짝 편다’(伸張)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특히 지지 신(申)은 천간에 경(庚)에 해당된다. 경금(庚金)을 숙살지기(肅殺之氣)라 한다. 숙살지기는 가을의 쌀쌀하고 살벌한 기운을 말한다. 살(殺)에서 풍기듯이 만물의 성장을 멈추게 된다. 그래서 가을 햇살은 뜨겁지만, 습기가 적어 덥다기보다 따갑다는 느낌이 더 든다. 이때 벼도 영글어가고, 열매를 더 단단하게 하고 골고루 성장시키는 것이다. 사실 가을 햇살이 여름 햇살보다 더 무서운 힘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숙살지기의 기운 때문인지 이 시기부터 미뤄 왔던 사형을 집행한다. 중국 한나라 때부터 입추에서 입춘 전까지 사형을 집행할 수 있었고, 입춘이 지나면 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사마천 ‘사기’ 혹리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왕온서라는 사람이 있었다. 젊은 시절 사람을 죽여 암매장하고, 남의 무덤을 도굴하는 등 악행을 저질렀다. 이후 관리가 되자, 도적을 체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도적을 잡아 뇌물을 준 자는 죄가 백가지라도 처벌하지 않았다. 승진하여 하내군 태수까지 오른다. 하내군 호족 가운데 간악한 집안을 파악하고, 한무제의 재가를 얻어 처형한 자의 피가 10여 리나 흘러내렸다고 한다.입춘이 되자 왕온서는 발을 구르며 이같이 탄식했다. “아! 겨울을 한 달만 늦출 수 있다면 족히 사안을 만족스럽게 처리할 수 있었을 터인데….” 살상을 통해 위세를 부리고, 백성을 아끼지 않은 것이 이와 같다. 결국 부정부패로 고발을 당하자 자진하였고, 오족(五族)이 처형됐다. 그의 집에는 재산이 천금이나 쌓여 있었다. 법령이 많이 세밀해질수록 도적이 많은 법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의 결과는 지금도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2024-07-17

기림의 달

길섶이 고즈넉하다. 오늘만큼은 바람도 나무들의 참선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정갈한 마음을 준비하라고 함월산(含月山)에 흐르는 물소리가 마음을 씻고 간간이 날아오는 새소리가 귀를 맑게 한다. 부처님 생전에 제자들과 하안거하며 수행했다는 기원정사의 숲이 이랬을까.어머니의 사십구재 막재에 이르러 나는 초재 때의 마음을 내려놓았다. 부모와 자식사이의 정이 아무리 질기다 해도 하늘이 내린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도 애틋함도 지나고 나니 모두 바람이었다. 연(緣)의 끈을 놓아야 어머니도 홀가분히 떠나리라는 생각에 애써 마음을 비우려 밤길을 떠난다. 갑사 치마저고리에 허리띠를 질끈 동여 맨 어머니가 하얀 고무신을 신고 휘적휘적 오르던 길이었다.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났다. 나라 잃은 설움과 차별을 견디지 못한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은 일본에서 돌아오던 현해탄의 차디찬 바람에 돌배기 첫 아들을 잃었다. 그 후 아들 셋을 더 잃고 나서야 ‘붙들이’라는 이름으로 딸을 살렸다. 또 다시 자식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 부모님은 야심한 시간에 대웅전 부처님을 들어 올리고 방석을 바꾸기까지 했다. 나름의 방술(方術)까지 하며 자식을 지키고자했으니 어머니에게 자식보다 더 간절한 존재는 없었다.살다보면 한줄기 빛이 간절할 때가 한 두 번인가. 세속을 향해 은은히 빛을 발하는 삼신불(三身佛) 앞에 옷깃을 여민 어머니는 마음가짐부터 남달랐을 것이다. 남편이 징용의 후유증에 시달려 가정을 소홀히 했기에 어머니는 자식의 앞길도 평탄하지 않으리라 여겼다. 가뜩이나 가난으로 먹고 살 길이 지난한데 전쟁으로 다시 한 번 마음까지 폐허가 된 시절이었다. 자식의 앞길을 밝힐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몸을 열 개라도 사르리란 생각에 어머니는 부처님 전에 촛불을 밝히지 않았을까.어머니는 내게 삼배(三拜) 올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어린 내가 번뇌를 알기나 했을까. 절을 따라하면서도 어머니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동자승이라도 있으면 함께 마당에서 뛰어놀 수 있을 텐데 심심해진 나는 어머니 곁을 살그머니 떠나 배롱나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대적광전을 바라보았다. 색동저고리 같은 단청은 바라볼수록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화려한 꽃살문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면 꽃물이 밴 것 같아 내 옷을 바라보기도 했다.하얀 버선이 새카맣게 될 때까지 절은 끝나지 않았다. 밤이 이슥해지고서야 삼천배가 끝이 났고 어머니의 갑사 저고리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산사를 벗어날 즈음 둥근 달이 어머니와 나를 비추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걷던 길은 달빛으로 온통 하얀 꽃밭이었다. 배문경 수필가 열 달 동안 자식을 품었다가 세상에 내놓는 첫 심정은 경이였다. 자식과 탯줄로 이어진 운명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럴진데, 어머니는 눈앞에서 죽어가는 자식을 품고 얼마나 울었을까. 한겨울 언 땅에 자식을 묻고 와서 가슴을 얼마나 쥐어뜯었을까. 어머니는 자식을 잃은 죄책감으로 먼저 간 자식의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절을 하며 속울음을 삼켰으리라.나도 어느새 어머니가 되어 기림사(祇林寺)를 찾는다. 달이 차고 기울듯 인생도 부침을 거듭하며 희로애락의 꽃을 피운다. 나 또한 어머니의 길을 따르며 부처님 전에 엎디어보니 삶이란 가슴에서 피어나는 송이송이 아프고 시린 꽃을 불전에 올리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비켜갈 수 없는 게 운명이라면 모두 꽃으로 피워볼 일이다.함월산(含月山)은 달을 품고 토함산(吐含山)은 달을 토한다. 주어진 만큼의 무게를 지고 가다가 마지막에 다 내려놓는 것이 삶이다. 어머니도 모든 짐을 홀가분하게 벗고 숱한 번뇌에서 해탈했을까. 어머니가 이제는 업장을 다 소멸하고 더 좋은 세상에서 환생하길 기원하며 절을 올린다.순례를 마치고 세속으로 돌아가는 길, 토함산이 달을 하늘로 밀어올린다. 온 천지가 여광처럼 달빛 아래 하얗게 빛난다. 달이 만상을 비추는 해인(海印)의 밤, 등에 비치는 달빛이 따뜻하다.

2024-07-17

장이 튼튼해야 뇌도 건강해진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우리 몸의 장과 뇌는 멀리 떨어져 있고 각자의 기능 때문에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동안의 많은 연구 결과는 장과 뇌는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으며 장이 건강해야 뇌도 건강해지고 인체의 면역 시스템도 증가 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 몸은 세포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고 많은 세균들도 함께 몸에 살고 있다. 세균이라 하면 병을 일으키는 것만 생각하기 쉬우나 우리 인체 내의 세균들은 인체와 함께 공생을 하고 인체의 시스템과 유기적인 연결을 가지고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세균들을 유익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 것에 인체의 건강이 달려 있다고 할 수도 있다.이뿐만 아니라 장은 제2의 뇌라고도 불리며 장에는 척수의 5배 이상의 뉴런들이 모여 있다. 1억개 이상의 뉴런들이 모여서 뇌처럼 정보전달을 주고받고 있고 또 뇌와도 즉각적으로 상호 정보전달을 하고 있다. 뇌가 장으로 보내는 정보보다 장이 뇌로 보내는 정보가 훨씬 많다. 이 장이 건강하지 않으면 뇌로 가는 인체 건강의 정보 전달에 문제가 생기고 뇌에서도 잘못된 정보의 수용으로 인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장은 소화와 호르몬, 면역 및 신진대사를 조절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감정을 편안하게 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이렇게 장은 우리 인체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뇌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인체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이 장을 튼튼하게 하게 위해선 장내 세균인 미생물을 건강하게 길러야 한다. 나의 내장을 밭이라 보고 어떻게 하면 그 속에 사는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을 건강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면 간단하다. 농사에 비유하면 깨끗한 물과 충분한 영양 공급 그리고 잡초를 제거하는 식으로 돌보면 된다. 장도 마찬가지로 깨끗한 음식을 몸에 넣고 영양이 다양하고 풍부한 식재료를 먹어야 한다. 음식물을 먹고 생긴 찌꺼기인 대변은 하루 한 두번 적당한 굵기로 배출을 해서 독성이 쌓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첫째 다양한 곡물이 든 잡곡밥이나 도정이 덜 된 현미밥을 꼭꼭 씹어 입에서 죽으로 만든 후 삼킨다. 둘째 다양한 채소를 반찬으로 역시 꼭꼭 씹어 입에서 최대한 죽으로 만든 후 삼킨다. 이렇게 하면 이미 입에서 어느 정도 소화가 된 음식물들이 넘어가기 때문에 소화기관과 장이 할 역할이 줄어들어 내장의 부담이 덜해지고 음식에서 만들어지는 독소의 배출이 최소화된다. 고기 대신 단백질은 콩류로 보충해도 좋다. 과일은 갈아서 먹지 말고 꼭꼭 씹어 먹는다.한의원에선 수천년 전부터 내려오는 위장과 장에 좋은 처방들이 널려 있다. 잘 체하거나 소화가 잘 안된다 혹은 변비가 너무 심하거나 설사를 너무 자주 하는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방법과 함께 한의원에서 처방을 받은 후 꾸준히 복용하면 빠른 시일 내에 장의 건강을 회복 할 수 있다. 심하지 않은 경우 한달 내로 위장과 장이 정상화 되고 음식관리를 꾸준히 하면 평생 장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 내 몸은 내 스스로가 지키고 관리를 해야 한다.

2024-07-17

방과 후 수업 참관기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손주들의 방과 후 수업을 참관했다. 아이들이 수업을 파한 후 매일 방과 후 수업을 듣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 대신 할머니라도 가면 손주들이 좋아하겠지. 보내준 시간표를 보니 두 아이의 수업이 달라 남편과 함께 갔다. 손자의 바둑 수업엔 내가, 손녀의 방송댄스 수업엔 남편이 가기로 하고, 중간 휴식 시간 서로 연락을 해 교실을 바꾸기로 했다.안내된 교실로 들어가니 20명이 좀 넘는 1, 2학년 학생들이 있었다. 교실 뒤에 마련된 자그마한 학생용 의자에 앉았다. 쉼없는 선생님의 주의와 훈계에도 불구하고 수업은 쉬 안정되지 않았다. 주목하지 않고 옆자리의 친구와 떠드는 아이, 무슨 용무인지 몰라도 자꾸 선생님께 가는 아이, 번쩍 손을 들어 선생님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아이, 화장실을 가겠다고 선생님께 가서 귓속말을 하는 아이 등등….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칠판의 바둑판을 이용해 수업을 계속하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짝끼리 대국하는 시간이 되자 교실은 비로소 조용해졌고 책상 사이로 다니는 선생님의 훈수가 가능해졌다. 후에 들으니 바둑 수업은 주의력이 없어 산만하고 집중력이 약한 아이들의 학부모가 신청한 경우가 많단다.그날 이후 금요일까지 모든 방과 후 수업 참관을 자처했다. 창의수학, 미술, 농구, 실험과학, 바이올린 등 모두 7과목의 수업을 참관했다. 아이들의 외할머니와 동행했다.대부분의 수업이 한 반 약 20명 전후의 학생들이었고, 10명 내외의 학부모, 주로 엄마들이 왔는데, 우리 손주들은 할머니라도 반겨했기에 간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도무지 통제가 안 되는 조무래기들을 데리고도 수업을 이어가는 선생님들의 수고가 놀라울 지경이었다. 참관기를 쓰면서 선생님의 노고에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그러나 그렇지 않은 수업도 있었다. 개인적 지도가 필수적인 악기 수업의 경우, 20명이 넘는 수업은 애당초 무리였다. 학생들의 개인차도 있을 건데다, 3개월을 넘게 수강한 학생과 1개월이 채 안된 학생들이 섞여있었다. 학생의 수업 빈도 노출이 다르면 개인차는 더 클 거였다. 학생마다 진도가 다르니 수업의 질이 좋을 리 없었고,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 역시 좋을 리 없을 건 불본 듯했다.며느리에게 참관기를 피드백해주면서 얘기를 나눴다. 방과 후 수업은 학교의 정규 수업 시간이 끝난 후에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다. 공교육의 역할을 늘리고 사교육을 억제하는 정책이니 교육비는 과연 쌌다.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저학년에겐 비교적 선호되는 제도인가 보았다. 더구나 우리 손주들 같이 맞벌이 부모의 아이들이라면 방과 후의 학원 순례를 줄이는 효과도 있는 것 같았다.문제는 수업의 질이다. 이왕지사 하는 거라면 수업의 질도 담보되면 더 좋지 않을까. 수업의 성격에 따라 학생 수를 조정하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아무리 실력있는 교사라도 한꺼번에 많은 학생을 상대하기엔 버거울 거였다. 참관 후 내린 결론 하나. 이번 여름방학부터 바이올린은 반드시 학원에 보내기로 하자.

2024-07-17

트럼프 will be back?

김준협 RISTI 미래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 미국 동부 시간 2024년 7월 13일 토요일 오후 펜실베니아 유세 현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총격 습격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에도 의연하게 주먹을 불끈 쥐며 “Fight(싸워라)!”는 입 모양을 보이며 지지자들을 결집한다. 이에 유세 현장에 모인 지지자들이 한목소리로 “USA! USA!”를 연호한 진풍경을 연출하며 트럼프 후보는 경호원들과 함께 현장에서 벗어난다.이처럼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이 발생한 직후 전 세계 언론 매체와 각국 정부에서도 트럼프 후보의 대선 승리를 기정사실로 하는 분위기이다. 때마침 상대편 민주당 후보인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 논란과 트럼프 후보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어 더욱 이러한 대결 구도에 무게추가 기울어진 모습이다. 어느 후보 또는 정당을 지지하는지와 무관하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트럼프 후보가 대중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아직 미국 대선까지 100여 일이 남아 있지만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미국과 전 세계에, 그리고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이미 우리는 트럼프 행정부를 한 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2017년 1월 대통령 취임식 당시 트럼프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America First!”일 것이다. 다른 그 무엇보다 미국을 우선하겠다, 바꾸어 말하면 미국이 지금까지 전 세계의 문제에 관여하며 세계 경찰 역할을 하던 것을 중단하겠다는 의미였다.실제로 지난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안보 문제에 있어서 다른 국가로의 개입을 극도로 자제한 바 있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직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해서도 미국으로부터 의구심을 갖게 되는 시기가 바로 지난 트럼프 행정부였으며, 이 시기 미국 측에서는 트럼프 임기 내내 한국에 대해 방위비 분담금을 기존의 5배를 인상하라는 압박을 지속해 왔다. 이러한 잣대는 북대서양방위조약(NATO)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는데, NATO 소속 주요 국가들인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의 국가에 방위비 분담금을 늘려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NATO를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지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줄곧 유지하였다. 미국은 자신들에게 경제적으로 불리할 경우 우방국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관세와 같은 무역장벽 수단을 종종 쓰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철강 등 분야에서 對미국 흑자를 줄곧 유지해 왔는데, 지난 2018년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수입 철강에 관세 25%를 부과하며 한국 철강업계를 곤혹스럽게 한 바 있다.트럼프 후보가 다가오는 11월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이와 같은 정책이 재현되리라는 것을 어렵지않게 예측할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는 어쩌면 지난 트럼프 행정부보다 더욱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선 미국 국내적으로는 불법 이민자 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고, 안보 정책에 있어서는 동맹의 가치보다는 적자생존의 가치가 앞설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자유무역의 가치보다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으로 선회할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우선 안보적으로는 한미동맹의 고리가 약해질 우려가 있다. 다시금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에 난항을 겪게 되고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까지 거론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일각에서 제기하는 자체 핵무장 논의가 힘을 얻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한 국가가 핵무장을 하면 주변국들도 핵무장을 하게 되는 “핵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지금까지는 금기시되어 오던 핵무장 논의에 힘이 실리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는 2차전지, 재생에너지와 같은 탄소중립 관련 산업 분야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이미 2차전지 분야의 성장세가 둔화된 상황 속에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기존 내연기관과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다시금 높아지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서 전기자동차와 2차전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곳에게는 그야말로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물론 이 모든 것이 지금으로써는 가정에 불과하다. 미국 대선까지는 아직 100일이 넘게 남아 있다. 그리고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국제정세가 생각보다는 크게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이 부정적으로 예상하게 되는 이유는, 이미 우리 모두 트럼프 행정부를 한 번 경험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이 명쾌하게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어쩌면 크게 변하는 것이 없을지 모르겠다. 이미 태초부터 국가 간 관계라는 것, 정치인의 정책 결정이라는 것이 언제라도 순수하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적이 있었던가? 그래도 최소한 이상적으로나마 ‘세계 평화’와 같은 그럴 듯한 명분을 전면에 내세우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소위 쿨하게 “그런 것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이제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하였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2024-07-16

‘북한 이탈주민의 날’ 제정의 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장마의 영향으로 중남부 곳곳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어 시름을 겪고 있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주말쯤 다시 비를 뿌릴 예보라니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을 겪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 또는 천재지변 같은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많아도, 아무쪼록 큰 피해 없이 순탄하고 무난한 삶이 이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슬픔과 어려움은 그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자연현상이나 인간사회에서는 풍파나 시련의 엄습을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가급적이면 피해를 막고 아픔을 줄이는 지혜와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의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의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不經一事 不長一 智)는 가르침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습득하며 기억과 기록으로 남기는 가운데 또 다른 지혜와 슬기로움이 자라날 것이다. 그렇기에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세월이 주야장천 흐르면 삶의 자취며 생각의 잔상까지도 시간의 모래밭에 묻히고 스러지며 점차 잊혀지게 되겠지만, 무엇인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기억으로 뇌리에 채워 놓으면 쉽사리 소멸되거나 잊혀지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아름다운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해두고 기억을 하며 마음 속에 내내 간직하게 된다. 그것을 달리 말해 기념(紀念)이라고도 할 수 있다.무엇인가를 잊지 않고 기념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생일이나 졸업, 입사를 기념하고 결혼이나 성공, 퇴임을 기념한다는 것은 그만큼 뜻있고 소중하며 가슴에 되새겨 두고두고 잊지 말아야 할 사연을 인지하고 축원하며 기억해야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식을 통해 사람들은 더욱 친밀해지고 깊어지며, 표현이나 기록을 통해 감동과 감사의 정을 격의없이 나누기도 할 것이다.그러한 측면에서 정부가 지난 7월 14일을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제정하고, 기념식과 다양한 부대 행사를 개최한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며 환영할 일로 여겨진다. 철천지원수 같은 북녘땅에서의 질곡을 벗어나 꿈에서나마 그리던 자유의 땅을 밟았지만, 새로운 터전에서의 정착생활이 녹록지 않고 제도적인 지원책 등의 미흡함으로 처우가 미약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북한이탈주민의 포용과 정착지원을 위해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을 주문함에 따라 관련규정의 제정 추진으로 마침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것이다.따라서 매년 7월 14일은 통일부 주관으로 북한이탈주민을 포용하고 권익을 향상시키며, 남북 주민 간 통합문화를 형성해 통일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날로 기념할 계획이라 한다. 이날을 통해 탈북 과정에서 희생된 북한이탈주민들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물의 조성과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롭고 번영된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비전을 전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4-07-16

일과 현대인의 삶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일(work)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체적 또는 정신적 에너지를 사용하는 활동이다. 기업에서 보면, 고객이 가치를 인증해서 돈을 지불 할 수 있는 사람의 행위와 설비의 동작을 말한다.현대인의 삶은 일이 곧 생존이기에 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순리다. 일과 학습 속에 개인의 성장이 있고 자아실현과 사회적 정체성을 갖는 것이다. 현대인은 일을 선택 할 때 내가 좋아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 미래의 내 꿈과 연결되는 것을 선택하면 좋은 삶으로 가는 길이 된다.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치 있고 행복하게 하는 것일까.일은 성공과 실패로 나뉜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차이는 크지만 과정은 작은 차이에서 결정된다. 일에는 애정이 있어야 하고 테크닉의 문제보다 태도가 좌우한다. 일은 제대로 해야 낭비가 없다. 사소한 일에서 결정적인 실수가 나온다. 옛 성현들은 ‘눈은 큰 곳을 바라보되 손은 작은 곳에 두라’ 라고 말했다. 1퍼센트 실수는 100퍼센트의 실패를 가져온다. 생산자가 미처 해내지 못한 1퍼센트는 소비자의 손에서 100퍼센트 불합격으로 변한다.일은 시간의 길이로, 땀의 양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창의적인 지혜로 고객이 원하는 가치 있는 일을 창출하는 것이다. 한 농촌에서 두 농부가 벼를 베었다. 한 사람은 허리 펴는 법이 없이 열심히 베었다. 다른 한 사람은 중간에 논두렁에 앉아 노래까지 하면서 쉬기도 했다. 쉬면서 일 한 농부가 베어 놓은 볏단이 많았다. 알고 보니 쉬면서 낫을 갈아 지혜롭게 대응한 것이다.일의 성공 조건은 첫째, 명확한 목표 설정이다. 목표가 분명해야 일을 효과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 목표는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해야 한다. 둘째, 효율적인 계획수립이다. 자원 배분, 시간 관리, 우선 순위 등이다. 셋째, 적절한 자원이다. 인적, 물적, 시간적 자원이 확보되어야 한다. 넷째, 능력과 기술이다. 일을 수행하기 위한 관련 지식과 기술, 경험이 필요하다. 다섯째, 동기부여이다. 일을 지속적으로 추진 할 수 있는 내적, 외적 동기가 필요하다. 여섯째, 문제해결능력이다.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일곱째, 평가와 피드백이다. 일의 진행 상황을 평가와 피드백 하며 목표 달성하도록 조정해야 한다.직장인의 행복한 삶은 기업이 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개인의 성장 비전을 제시해주고 업무 목표와 기대 사항을 설정하여 역할과 책임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소통과 협력의 긍정 조직문화를 열어 창의성을 십분 발휘 할 수 있게 한다. 성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적절한 보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시대 흐름에 맞게 시간 탄력근무제 등 유연한 근무 환경과 개인의 삶과 업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갖출 수 있게 한다. 일의 보람과 직원이 성장하는 기업문화는 회사 발전은 물론 이직률을 줄이고 일류 기업이 되는 길이다.

2024-07-16

종부세 개편론은 ‘수도권 부자표’ 의식한 것

심충택 논설위원 울릉군의회는 최근 정치권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편’ 논의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국세지만, 지방자치단체에 전액 교부되는 종부세는 그동안 울릉군 같은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시·군엔 재정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울릉군은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종부세 감면조치에 따라 올해 부동산 교부세가 98억원 감액돼 각종 사업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전국의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는 대부분 울릉군과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해 종부세 감면조치로 국가재정수입(4조9609억 원)이 전해에 비해 2조6068억원이 감소해 자치단체 모두 재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종부세는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에게 세금을 더 부과해 비생산적인 부동산 투기 수요를 억제한다는 취지로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부터 시행됐다. 현재 공시가격 9억원(1가구 1주택자는 12억원)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에게 부과된다.지난주에는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종부세와 관련, “불필요하게 과도한 갈등과 저항을 만들어 낸 측면이 있다. 개편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밝혀, 민주당 전당대회의 쟁점이 됐다.당 원로들이 “종부세를 근본적으로 건드리는 것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종부세 개편론은 지난달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주택 가격 안정 효과는 미미한 반면 세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요소가 상당히 있어 폐지 내지는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며 불을 지폈다.이 전 대표의 종부세에 대한 입장변화는 수도권 표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부세에 민감한 수도권 화이트칼라 고소득층을 민주당 지지쪽으로 흡수하면 차기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을 하는 것이다. 서울의 중위 아파트 가격이 12억을 넘어가면서 종부세는 수도권 선거의 최대변수로 자리잡았다.종부세는 수도권에서 세금을 걷어 비수도권으로 분배하는 기능을 한다. 지난해 종부세 납부자 상위 1%(4951명)가 낸 금액은 2조8824억원이다. 대부분 수도권 거주자들이다. 전체 종부세 결정세액 4조1951억원의 68.7%에 해당한다. 종부세가 폐지되면 자산이 많은 소수 상위 계층에 감세 혜택이 집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종부세 세수 펑크’는 지방자치단체에 큰 충격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종부세가 경제활동을 왜곡하면서도 세수 효과는 크지 않은 대표적 세금”이라고 했지만, 뭘 모르고 한 소리다. 종부세는 어려운 지방 재정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 오죽하면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부세 개편은 지방세수로 활용되므로 신중해야 한다”며 대통령실 결정에 반기를 들었겠는가.현재 부동산교부세는 살림이 빠듯한 시·군일수록 더 많이 배분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앞으로 종부세를 더 완화하거나 폐지한다면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지자체의 충격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가난한 자치단체에 대한 세수 보전 대책 없는 종부세 개편은 큰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다.

2024-07-16

정치와 암살(暗殺)

우정구 논설위원 미국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암살시도가 일파만파다. 미 대선의 변곡점이 됐다는 분석 속에 미 대선의 흐름에 세계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미국에서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에 대한 암살시도는 모두 15차례 있었다 한다. 미 대통령에 대한 최초의 암살시도는 1835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 당시 범인은 정신 이상자로 판명됐으나 이후 암살로 4명의 대통령이 희생된다.1865년 링컨 대통령처럼 정치적 반대가 암살의 주 목적이나 케네디 대통령처럼 암살시도의 목적이 의문으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총격한 범인은 20대 청년으로 밝혀졌지만 경호원에 의해 현장에서 사살됨으로써 암살 동기는 미궁에 빠져 있다.중요 인사에 대한 암살은 적은 희생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어 오랜 역사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적 목적으로 보복을 시도한 경우도 있지만 특정집단에 의한 조직적 암살이 대부분이다.그래서 정치 권력자들은 이에 대한 방어에 각종 수단을 총동원했다. 일본에서는 방음이 안되는 미닫이 문을 만들고 잠잘 때도 발자국 소리를 들릴 수 있는 건축을 고안했다. 중국의 자금성은 암살자가 나무에 숨지 못하게 주변 나무를 모두 베어버렸다고 한다.총선을 앞두고 한국서도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와 배현진 의원에 대한 폭력시도가 있었다. 총 대신 칼과 돌멩이가 동원됐을뿐 정치인의 목숨을 노렸다는 점에서 암살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정치적 테러가 난무하는 배경에는 팬덤과 같은 극단주의 정치 성향이 자리한다. 대화와 협력이 없어지고 상대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기는 증오정치가 판을 치는 한 암살테러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16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까마중과 헛기둥

무릎까지 자란 까마중 무리를 헤치며 나아갔다. 까마중은 좁고 깊은 골을 따라 양쪽으로 나 있었다. 골 바닥은 물기가 많아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진흙이 신발 바닥에 붙거나 뒤로 튀었다. 까마중 열매가 식용이라는 이야기를 누가 해줬더라? 나는 눈으로 최의 장딴지를 쫒으며 까마중 이야기를 누가 해줬는지, 자신이 까마중의 이름을 어찌 알고 있는지 떠올렸지만 어렴풋한 기억조차 없었다. 나는 재채기를 하려다 못한 것처럼 답답해져 도리질을 했다.“얼마나 더 가야하는 거지?”최가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애초에 길잡이를 자처했던 박이 급한 일이 생겼다며 산에서 내려간 뒤로 우리는 기댈 곳이 없었다. 지도가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우리는 지도의 바깥에 있었다.산행 이튿날 아침 박이 지름길을 안다, 지름길로 가자고 했을 때 아무도 말리거나 거부하지 않은 탓이었다. 박을 믿은 탓이기도 했다. 그때 물었어야 했다. 왜 지름길로 가야 하는지?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산을 즐기러 온 것인데 지름길로 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왜 서둘러야 하는지? 우리는 묻지 않았다. 그저 지름길이라는 단어에 홀린 듯 그래? 지름길이 있다면 그리로 가야지, 했다.박은 길을 만드는 사람처럼 걸어갔다. 두 시간, 세 시간 동안 마주 오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자 우리는 박을 탓하기 시작했다. 박은 우리가 번갈아가며 얼마나 남았느냐? 길을 아는 것은 맞느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냐를 물어대자 지도를 꺼내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와 기존의 등산로, 그리고 산장이 있는 곳, 산장까지 가는 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고는 잊고 있었던 중요한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며 너희들끼리 다녀오라 말을 남기고는 내려가 버렸다. 차라리 욕을 하거나 화를 내었다면 맞서거나 달래거나 했을 텐데, 박은 차분히 그리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 뒤 돌아섰다. 되돌아가는 박을 멍하니 보던 우리는 박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저 자식 혼자 내려간 거야?”우리는 잊고 있었다. 녀석의 별명이 ‘나안해’였다는 것을.“그러니까, 지금 저 녀석이 ‘나안해’ 한 거야? 그런 거지? 개새끼.”한동안 우리는 없는 박을 놓고 욕을 했다. 하지만 이내 의미 없는 일이란 걸 알아차렸다. 돌아갈지, 앞으로 갈지. 선택해야 했다.“아직 오전이니까 밤이 되려면 멀었잖아. 우리가 빈 몸으로 온 것도 아니고 산행 준비해서 왔는데, 일단 가보자고.”아침에 출발했던 곳까지 되돌아가서 그곳에서부터 정식 등산로를 따라가자는 의견과 그렇게 되면 날 저물기 전에 다음 산장에 도착하기 힘들 것이고 야간 산행을 해야 하는데 야간 산행이야말로 위험하니 가까운 등산로를 찾아보자는 의견으로 나뉘었지만 우리는 의외로 침착했고 서로를 존중했다. 박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보였다. 무엇이 좀 더 합리적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시간에 쫒기지 않는다는 것, 함께 하는 산행이 목적이라는 것에 동의한 우리는 되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여차하면 지난 밤 묵었던 산장에서 하루를 더 보낸 뒤 다음날 출발해도 된다는 것까지. 어설프고 고집 센, 속 좁은 길잡이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미 뭔가를 보여준 듯한 뿌듯함이 가슴속을 채웠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옅은 홍조를 띤 채, 가끔은 노래를 부르고 가끔은 끝말잇기를 하며. 한 시간여가 지났을 즈음, 우리는 조용해졌다. 앞 사람의 장딴지만 내려다보며. 이따금씩 말을 했는데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여기가 맞아? 이것 본 적 있어? 처음 등산로를 벗어나 지름길로 들어선 지점까지 가는 것이 관건이었다. 우리는 오는 동안 보았던 것들을 기억해내며 걸었다. 처음에는 모두의 기억이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름길이라는 것이 애초에 길이 아니었던 탓에 그 흔한 산악회 리본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까마중을 보았다.골을 따라 양쪽으로 자란 까마중 무리 뒤쪽으로 너른 바위가 보였다.“저기서 좀 쉬었다 가자. 방향도 정하고.”아직 해가 지기에는 남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산장으로 돌아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당황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우리는 무리가 주는 평온함 속에 있었다. 박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하지만 신호가 간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중요했다. 언제든지 119에 전화하면 되는 것이니. 쉬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김은 영상에서 본 오지에서 살아남는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는 박의 지난 ‘나안해’ 만행을 하나씩 짚어가며 늘어놓았고 최는 미국 주식시장과 한국 주식시장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했다. 나는 녀석들의 이야기를 흘려들었다. 아니, 흘려들렸다. 까마중 무리를 살펴보느라. 내가 아는 무리들은 항상 앞서거나 이끄는 존재가 있는데, 하다못해 박 같은 놈이라도 생기는 법인데, 까마중 무리엔 그런 놈들은 없을 것 같았다. 그저 똑같은 흰 꽃과 똑같은 까만 열매를 달고 있을 뿐.“이 근처가 밭이었나 보다. 화전민이나 뭐, 그런”최가 꺼낸 삼성전자 주가 이야기를 끊으며 내가 말했다.“그걸 어떻게 알아?”이가 물었다.“저기 보이는 녀석들이 까마중이거든, 물론 산에서 자랄 수도 있기는 한데 주로 밭에서 자라는 녀석들이야. 게다가 1년생이고. 하나도 아니고 저렇게 무리지은 것을 보면 대대로 여기서 살아온 것 같아서 말이야. 좀 오래 전에 화전민이나 그런 사람들의 밭이었다가 지금은 숲이 된.”“그렇다면 길이 연결된 곳이겠네. 흔적이 있을 수도 있고. 캬, 우리가 잘 찾아왔네.”우리는 주위를 살펴보기로 했다. 길을 찾는 목적도 있었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오래 전에 누군가 살았던 곳이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최가 모두를 불렀다.“여기 뭐가 있어.”군데군데 파이고 검게 썩은 나무기둥과 돌멩이가 온전히 몸을 드러낸 흙벽, 부서지고 구멍이 난 석면 슬레이트 지붕. 예전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쓰던 창고 같았다. 반쯤 부서진 문 앞, 풀 사이로 바스라진 석면 슬레이트 조각들이 제법 보였다. 기둥이었을 것 같은 통나무도 몇.“야, 기둥이 쓰러졌는데도 건물은 그대로다 그지? 어설프기는 해도 옛날에 지은 것들은 튼튼하단 말이야.”이가 통나무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발이 닿는 곳마다 부스러기가 떨어졌다.“저건 헛기둥이야, 헛기둥.”김이 말했다.“기둥은 기둥인데 기둥이 아니야. 멋을 부리거나 부수적인 용도로 쓴 거지. 없어도 건물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박가놈 같은 거네. 누군가 말했고 우리는 모두 웃었다. 그리고 이어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창고 뒤편으로 어슴푸레 보이는 길을 보았다. 풀로 덮여있기는 했지만 나무들 사이로 이어지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는 너비를 가진, 예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걸어 다녔을. 아카시 나무들이 침범하지 못했고 소나무 뿌리들이 조금씩 드러나 있는 것이 분명한 길이었다. 어디론가 이어져있을 길이었다.우리는 어디론가 이어져있을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길이라 믿고 걷기 시작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걸으면서 점점 더 확신이 생겼다. 풀이 덜 자란 길바닥이 보였고 간혹 계단처럼 보이는 너른 돌판도 보였다. 김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흥얼거리는 멜로디를 따라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처럼 앞뒤로 팔을 흔들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나뭇가지에 묶인 빨간 산악회 리본을 발견했다. 노란 리본, 파란 리본이 뒤를 이었다. 숲을 벗어나 등산로에 발을 내디뎠다. 마주 오는 등산객이 보였고 등산객은 자신이 온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오늘 가려했던 산장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 해 저물기 전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고. 우리는 돌아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원래의 계획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우리는 까마중 같은 녀석들이었다. 박이 없어도, 헛기둥이 없어도, 제 갈길 알아서 잘 가는. 끝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07-16

핵폭탄이 만들어진 날의 ‘한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앞으로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날을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죽음으로 불릴 것이며, 운명은 나를 세상의 파괴자로 만들었다.”지금으로부터 79년 전 오늘인 1945년 7월 16일. 세계 제2차대전을 한시바삐 끝내고 싶었던 미국이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진행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핵심 인력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 ~ 1967)가 인류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Trinity)’를 지켜본 후 내놓은 한탄이다.과학은 인류의 행복과 편의 확장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건 당위. 그러나, 세상일이란 당위가 아닌 현실적 조건에 의해 휘둘리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핵폭탄 또는, 원자폭탄이라 불리는 대량 살상무기의 개발도 그런 우여곡절 끝에 완성됐다.실상 인간은 수만 년 전부터 분쟁과 다툼을 이어왔다. 민족과 종교, 인종과 욕망 따위의 이유로 죽고 죽이며 제 영역을 넓히려 한 것. 하지만, 핵폭탄의 탄생은 이전 시대 전쟁과 이후의 전쟁을 전혀 다른 양상으로 만들어버렸다.화살을 쏘거나 칼을 휘둘러 한두 명을 죽이는 전투가 아닌, 투하되는 폭탄 하나로 한꺼번에 1백만 명 이상을 불태워 버리는 시대로 전이시킨 것이다. 이것은 인류사의 발전인가? 퇴화인가?전쟁 관련 기술의 발달은 이제 탄두를 매단 로켓이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건너가 1만km 밖의 사람들 수백 만 명을 죽일 수 있는 핵폭탄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러시아는 그걸로 우크라이나 여자와 아이들을 위협하고, 북한은 그걸 미국과의 정치적 협상 수단으로 과시한다.‘죽음’과 ‘세상의 파괴자’를 언급한 오펜하이머의 한탄이 지금도 많은 이들을 겁박 중이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15

북·러 밀착과 우리의 대응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최근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양국은 군사동맹에 준하는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 조약’을 체결했을 뿐만 아니라, 푸틴(V. Putin)은 북핵을 사실상 인정하고, 군사·기술협력을 천명함으로써 유엔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부정했다.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되면서 이루어진 북·러 밀착은 한국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다. 북·중 혈맹에다가 러시아의 군사협력까지 확보한 김정은은 이른바 “남조선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 준비”를 가속화할 것이다. 북·중·러 3국은 모두 핵보유국인데, 우리는 핵 없이 미국이 약속한 핵우산만 쳐다보고 있다. 한미동맹의 재정비, 핵개발 잠재력 확보, 독자 핵무장 등보다 실효성 있는 안보전략이 요구되고 있는 까닭이다.철학자 스펜서(H. Spencer)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이란 환경에 적응하는 종(species)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종은 도태되어 사라지는 현상”이라고 했다. 생존하려는 자는 환경의 변화를 직시하고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 약육강식의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힘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국가는 멸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를 위한 현실주의적 인식이다. 현실주의는 이상주의가 주장하는 ‘대화를 통한 평화’를 신뢰하지 않으며,‘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한다. 지난 정부의 이상주의적 대북정책은 비핵화에 실패함으로써 북핵을 고도화시켰을 뿐이다. ‘핵무기는 비대칭전력’이라는 점에서 ‘핵은 핵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인식이 절실하다.이를 위해서는 장·단기 핵전략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그 핵심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의 실효성을 제고하면서 핵개발 잠재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현재의 ‘핵 확장억제전략’보다 진전된 ‘전술핵 재배치’ 또는 ‘NATO식 핵공유’와 같은 방식으로 핵우산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미국 의회와 학계에서도 제안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외교 여하에 따라서는 충분히 성과를 거둘 수 있다.한편 장기 전략으로서는 독자 핵무장을 위한 ‘핵개발 잠재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당장 핵무장을 위해 NPT를 탈퇴한다면 유엔제재로 우리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국제제재를 피하면서도 한미동맹이 작동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플랜 B가 필요하다. 그것은 일본처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무장 할 수 있을 정도의 잠재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제한을 받고 있는 우라늄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권한의 확보가 관건이므로 지속적인 대미외교협상이 중요하다.이러한 외교안보전략이 성공하려면 정쟁으로 날 새는 정치권의 각성이 시급하다. 내분(內紛)은 외침(外侵)을 초래하고, 분열된 나라는 통합된 안보를 추진할 수 없다. 정치인들은 권력투쟁으로 병든 소아(小我)를 버리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대의(大義)에 따라야 한다.

2024-07-15

안전 주행 위한 충전형 기기 이용 수칙 지키기

심학수포항북부소방서장 최근 경기도 화성의 한 배터리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참사가 있었다.그로 인해 배터리 등 충전기기의 화재위험성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배터리 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진 상태이다.전동킥보드, 전기차 등 배터리를 동력으로 하는 이동 수단 역시 그 이용자와 사용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화재 발생 또한 증가하는 추세이며 이에 화재 예방을 위해 충전기기의 안전한 사용 방법에 대한 이용자들의 숙지가 필요하다.전동킥보드와 전기차의 동력원인 리튬이온의 배터리는 화재 시 가연성 가스가 폭발적으로 연소하기 때문에 초기진화도 어렵고 순간적인 폭발은 그 위험성이 크며 이에 따른 화재 발생은 주변 가연물에 연쇄적으로 옮겨 붙어 대형화재로 번질 위험성도 크다.먼저 화재는 발생하기 전 예방 활동을 해야 한다. 그중 가장 첫 번째로 할 일은 이용자가 기기와 충전시설 이용의 안전 수칙을 지키는 것이다.전동킥보드와 전기차의 화재 예방 안전 수칙 첫째, 충전소 주변은 고압의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담뱃재는 큰 화재를 발생시키기에 근처에서의 흡연을 금지해야 한다.둘째, 젖은 손이나 물기 있는 상태에서 충전을 해서는 안되며, 전동킥보드는 우천 시 사용을 자제하고 실내 충전소를 이용하자.셋째, 단시간에 많은 전기를 투입하여 화재의 위험이 큰 급속충전보다 완속 충전을 이용하고 충전이 완료되면 장시간 방치하지 말고 가급적 짧은 시간 내 코드를 분리하자.넷째, 전기차에는 차량용 소화기를 비치하고, 전동킥보드를 비치하거나 충전하는 곳 주위에도 소화기를 비치해 화재가 발생하게 되면 초기 진압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두자.안전을 소홀히 하면 언제든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화재, 예방이 최우선임을 기억하고 충전형 기기의 이용 수칙을 잘 지켜 안전한 주행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4-07-15

삶이라는 한 알의 구슬

요즘 비즈발 만들기에 푹 빠졌다. 최근 들어 만나는 지인들에게 새로운 비즈 만들기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면 모두 비즈발이 대체 무엇이냐고 물어온다. ‘옛날 주택 현관문이나 가게 출입구에 많이 걸려 있던 것 있잖아요!’ 라고 말하면 모두가 그제야 알아챈다.비즈발은 햇빛 차단용 또는 통풍 그리고 가림막 형태로 많이 사용된다. 문이나 창문을 가릴 정도의 크기라 어느 정도 사이즈가 있지만, 요즘 내가 푹 빠진 비즈발은 창문가나 벽에 거는 손바닥 남짓한 크기의 비즈발이다.한참 유행중인 비즈발 만들기는 이렇게 작은 사이즈 크기로 원하는 그림을 도안으로 그려 만드는 캐릭터 비즈발이 트렌드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도안으로 그려, 형형색색의 구슬을 사용하여 미니 비즈발을 만드는 것이다.만드는 방법 또한 쉽다. 늘어나지 않는 실과 색색의 구슬들만 있으면 충분하다. 실 끝이 풀리지 않도록 잘 묶어준 뒤 그림을 그린 도안을 따라 구슬을 색에 맞춰 끼워주면 된다. 한 줄씩 완성된 비즈들을 모아보면 꽤 그럴듯한 비즈발이 완성된다. 실 한 줄에 구슬을 차례대로 꿰는 단순 작업 반복임에도 묘하게 중독되는 것은 손을 움직이면서 머릿속의 잡생각을 비우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특성 덕분일 것이다.포털 사이트 검색어 트렌드에 비즈발을 검색했을 경우 지난 4월 중순부터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7월인 현재에는 약 2배가량 증가된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에 비즈발 만들기 키워드를 검색했을 경우 가장 많은 콘텐츠의 조회수는 87만 회를 기록하고 있으며, 인스타그램의 경우엔 #비즈발 해시태그가 포함된 콘텐츠 수가 약 1000개 정도 노출되어 있을 정도다.가만 보면 비즈 꿰기는 참 재밌다. 구슬 하나라도 잘못 꿰게 되면 전체적인 그림에 묘하게 티가 나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집중하고 보면 어디에 구슬이 잘못 꿰어졌는지 표가 나긴 하지만 멀리서 본다면 그저 하나의 근사한 작품으로 보인다. 여기서, 지난 밤 또다시 돌려보았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 속의 스터츠 박사의 말을 떠올려 본다.삶의 고통과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이 고통 속에서 인간이 해볼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다. 이 의지를 갖기 위해서 해볼 수 있는 것은 ‘진주 목걸이 기법’이다. 여기서 진주는 행동이고 목걸이는 행동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행위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차려 먹는 행위도 진주알 하나이고, 내 삶에 깊게 각인될만한 업적 하나도 진주알 하나다. 결론은 진주알에는 더 훌륭하거나 반대로 훌륭하지 않다는 가치가 없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진주알로 대입해 그저 계속 행동하며 나아가는 것이다.진주와 비슷한 모양새의 비즈는 어떤가. 비즈알을 명주실에 꿸 때의 집중력, 하나하나 꿰어갈 때의 느릿해지는 호흡과 비즈알끼리 부딪혀 나는 귀를 자극하는 소리까지 비즈알 꿰기는 삶의 진주 목걸이를 만드는 기법과 동일한 면이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비즈의 표면이 매끄러운 것이 있는 반면 어딘가 깨져있거나 금이 가 있거나 또는 구멍이 너무 작아 실에 잘 꿰어지지 않는 구슬도 있다. 진주알에 대입했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루는 엉망진창 일수도, 또 다른 하루는 삶의 가장 큰 기뻤던 하루로 남아있을 수 있겠으나 ‘나의 일상’이라는 본질엔 변함이 없다. 그러니 유독 그 하루가 일이 풀리지 않는다 한들, 또는 실패의 연속인 나날이라며 주눅 들어 있든 일상은 나의 삶이므로. 멋진 비즈발이라는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삶은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지, 성공과 실패라는 결론이 중요하지 않으므로.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비즈를 실에 꿰어 하나씩 모으다 보면 어느새 멋진 비즈발이 완성되어 있다. 세상에, 이렇게나 빨리 내 손으로 이걸 만들었다고? 벽에 걸어 두었더니 여름의 토마토가 그려진 작품이 하나 완성되었다.물론 가까이서 보면 작은 티끌 하나로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부분이 있고, 본드 자국도 난무하지만 뭐 어떤가. 서툴지만 사랑스럽고 때론 너무 진지해서 픽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이 평소 나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러니 오늘도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비즈를 뒤적이며 하나의 작품을 준비해본다. 평소 같았다면 불만투성이인 여름의 초입일 테지만, 좋아하는 일을 손으로 하며 그럭저럭 여름을 잘 나볼 마음의 준비를 해본다.

2024-07-15

기억의 낚시, 망각의 낚시

“Some dance to remember, Some dance to forget” 밴드 Eagles(이글스)의 ‘Hotel California(호텔 캘리포니아)’의 한 소절이다. 어떤 춤은 기억하기 위해 추고, 또 어떤 춤은 잊기 위해 춘다니, 이렇게 시적인 노랫말이 또 있을까? 때때로 노래는 시보다 더 위대한 시가 된다. 물론 음악보다 더 위대한 음악이 되는 시도 있다. 나는 낚시할 때 가끔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리고 저 대목에서 가사를 바꿔 부른다. “Some fishing to remember, Some fishing to forget”이라고.기억하기 위해 하는 낚시가 있고, 잊기 위해 하는 낚시가 있다. 또 한 번 장마가 오고, 단풍이 들고, 첫눈이 내리고, 다시 꽃이 피고, 매미가 울고, 얼음이 얼고, 계절이 돌아오고 돌아올수록 사랑하던 이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나간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추억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삶이라는 지독한 경주는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게 우리를 채찍질한다. 그나마 낚시가 나로 하여금 그 각박한 트랙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낚시를 통해 나는 잠시라도 힘겨운 세상살이를 잊는다. 그게 잊기 위한 낚시다.복잡한 세상살이를 잊는 순간, 그동안 기억 구석에 방치됐던 풍경들이 하나 둘 뿌연 먼지를 털어낸다. 물론 낚시가 잘 되면 낚시에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할 여유도 없다. 입질은 없는데 석양은 환장하도록 아름답게 저물고, 찌는 말뚝인데 케미라이트 불빛이 강물 위를 은하수처럼 흐를 때가 문제다. 찌 대신 온갖 추억들이 올라오기 때문이다.“이제 젊은 시절 내가 사랑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제시마저도. 하지만 여전히 난 그들과 함께 있다. 물론 이제 너무 늙어 훌륭한 낚시꾼이 될 수는 없지만 난 지금도 이 강가에서 홀로 낚시를 한다. 이렇게 날이 저물어가는 계곡에 혼자 있을 때면 모든 존재가 내 영혼과 추억 속으로 스며든다. 빅블랙풋 강의 소리와 4박자의 리듬, 그리고 송어가 뛰어오를 거란 기대감… 결국 모든 것들이 하나로 합쳐진다. 흐르는 강물처럼.”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주인공 노먼 맥클레인의 독백이다. 팔순의 노조사는 강물에 몸을 담근 채 낚시 매듭을 묶으며 젊은 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목사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 일찍 세상을 떠난 동생 폴, 마을 축제에서 만나 결혼해 일생을 함께 산 아내 제시를 추억한다. 모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다 사라지고 오직 강물만 남았다. 평생의 추억이 흐르는 빅블랙풋 강에서 낚시를 할 때면 강물 소리와 바람, 무지개송어 입질, 후회, 상처,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의 음성과 눈빛이 하나로 합쳐져 영혼 속으로 스며든다. 노인은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낚시를 한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의 육체는 부재하는 현존이며, 현존하는 부재이다. 그러나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 없어져버릴 때, 죽은 사람은 다시 죽는다”고. 내가 살아 있는 한, 살아서 기억하는 한 내가 사랑했던 이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오직 잊기 위해 하는 낚시도 있다. 그런데 이 낚시는 정말 어렵다. 오래 사랑한 연인과 헤어지고서 그녀를 잊기 위해 뙤약볕 쏟아지는 갯바위에 올랐다. 발밑으로 파도가 부서지고, 거품 되어 사라지는 하얀 포말이 마치 부질없는 인연처럼 느껴졌다. 잊어야지, 잊어야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루어를 던지고 또 던졌다. 그런데 젠장, 입질이라도 좀 있어야 잊을 게 아닌가? 깻잎만한 광어, 손바닥만 한 우럭조차 물지 않으니 빈 바늘에 딸려 오는 건 오직 그녀 얼굴뿐이었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 선명해진다. 낚시를 하면 마음이 정리되기는커녕 더 심란해진다.그래서 어느 시인은 “어느 날인가는 앞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오래 당신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처럼 마음에서만 사는 아득한 것들은 또 어떻게 저 별의 시간을 건너가게 되는지”(강경보, ‘우주 물고기’)라고 묻기도 한다. “마음에서만 사는 아득한 것들”은 결코 저 별로 건너가지 못하고 이 별에 머문다. 갯바위, 좌대, 갑판, 강물 속, 방파제가 낚시꾼의 별이다.

2024-07-15

민경탁 시인의 “다음 김천 장날 또 바여”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경상북도 지역 방언은 의문형어미를 중심으로 3개 권역으로 나누어진다.옛날 교통이 덜 발달되었을 때 낙동강을 중심으로 강 우측과 강 좌측으로 나누고, 또 태백산맥 끝자락이 경남으로 휘어지는 큰 산자락이 나뉘듯 3개 방언권이 나누어진다. 안동을 중심으로 경북북부권은 ‘-니껴’권이고 대구경주권은 ‘-능교’(-능게)권이다. 낙동강 우측 선산에서 김천, 의성 일부지역은 ‘-여’권으로 나누어진다. 경북은 경주와 상주가 경상좌우도로 나눠지기 이전 고대 신라의 웅혼한 고토여서 오늘날 한국어의 기반이자 뿌리를 이룬 지역이다.경북방언은 악센트가 높고, 낮고 또 소리의 길이와 짧음이 아주 또렷하고 말씨는 왁자지껄한 느낌을 주어 투박하지만 그 자체에 리듬을 가지고 있다. 소리문법을 알아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지역보다 모음이 아주 단촐하다. 단모음 10개가 아닌 6개로 족하다. 모음이 적어도 악센트와 음장이 단어의 변별력을 높여주기에 의사소통에 전혀 불편하지 않다. “가가 가가가”, “운제요 나아 몬가니더”라는 말을 서울 사람들은 절대로 흉내 내지 못하며 그 의미도 읽을 수 없다. 경상도 깊은 산중의 오묘하고 심오한 말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오랜 전통과 역사가 악센트에 실려 있다. 또 말 수가 적은 경상도 사람들의 심성이 담겨 있다.김천 출신 민경탁 시인이 사통팔달 경북 김천 시골 장터의 인심과 인정을 소복하게 시집에 담았다. “닷새마다 지례 5개 면에서/푸성귀, 과일, 알곡이 모여 듭니다/증산의 송이버섯, 대덕의 잡곡들/구성 양파 조마 감자 지례 마늘들/구름 타고 담쑥담쑥 모여 듭니다/장바닥에 엉기정기 들면/고등어 갈치는 부산에서/갈치젓은 제주, 목포에서/생굴은 통영에서, 멸치는 삼천포에서/새우젓은 추자도, 강화도에서/벌써 들어와 있습니다/“머라 캐여” “안 비싸여” “고마바여”/호박 같은 인심과 산꿀 같은 인정 버무려/지폐와 맞바꾸다 보면 해거름이 오죠/“또 다음 장날 바여”/파장하고 탁배기 한잔하면, 노을이 찾아옵니다/이때 우린 생선 사고 약 사 가지고/버스 타고 들어갑니다/“다음 장날 또 봐여(바여)”-‘달의 아버지’(‘황금알’, 2024)교통이 발전되기 이전 태백준령의 산맥에 가로막힌 김천은 매우 깊은 산골이었다. 경부철도가 놓이고 경부고속도로가 터지면서 길을 가로막았던 높은 추풍령이 구름도 자고 가는 추풍령 휴게소가 되었고, 경남, 충청도, 전라도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소설가 김주영과 송기원을 키운 것은 장터였다. 경북에 있는 객주는 김주영을, 전남 보성의 장터에서는 송기원을 낳고 키웠다. 이효석의‘메밀꽃 필 무렵’ 역시 장터가 배경이다. 사람들이 모였다 헤어지고 사람들 살아가는 삶의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모일 때는 기쁘고 헤어질 때는 안타깝고 그립다. 장터란 바로 집산(集散)의 공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그리움과 기다림의 미학의 장소이기도 하여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가 된다.민경탁 시인은 ‘달의 아버지’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그렸다. 저녁노을 잔잔하게 퍼지는 서쪽하늘에 하얀 얼굴을 한 달님같은 아버지를 그리며 자식들을 먹여 키우기 위해 장터에서 장보는 아버지를 타자의 눈이 아닌 자신의 시각으로 그려내었다. 장터 풍경화에는 경상도 특유의 목소리가 그림처럼 펴져 있다. “머라 캐여”(뭐라고 합니까), “안 비싸여”(비사지 않아요), “고마바여”(고마워요) 아주 단호하고 칼로 자르는 듯한 토속적인 경상도의 심성이 울려난다. 구질구질하게 설명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장터는 여러 지역의 물산들이 한 자리에 모여들 듯 장터 부근 골짝골짝 사람들이 장날이 되면 모여든다. 이웃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누구 집 아들 언제 장가보내고 어느 마실 어른 돌아가신 이야기며, 누구 집 아들 고등고시 되었고 누구 집 아들 유학 간 이야기며 기쁜 일 슬픈 일 함께 나누는 곳이 장터이다. 서녘 저녁노을이 물들면 파장이 된다. 서로 갈 길 다른 길을 떠난다.고향의 추억과 기억들을 김천의 말씨로 호명해낸 시인의 시골 장터는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할 수 있는 황금시장이다. “다음 장날 또 보시더”. 아릿한 장터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민경탁 시인은 장터에 대한 절묘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미학을 김천토박이말로 불러내고 있다.

2024-07-15

비잔티움 최후의 날 배를 산으로 옮긴 메흐메트 2세

큰일을 앞둔 날에는 여지없이 재앙이 예견된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을 앞두고 조조도 그랬다. “달은 밝고 별은 성글고 까마귀와 까치는 남쪽으로 날아가서 나무에 세 번 둘러싸여 의지할 가지가 없네”라고 시를 읊자, 옆에서 시구절이 불길하다며 유복이 간언하자 조조는 도취된 흥을 깬다며 죽여 버렸다. 정말 유복의 한이 통했는지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완패를 면치 못하고 겨우 목숨만을 부지한 채 도망쳐야 했다.1451년 메흐메트 2세(Meh med Ⅱ·1432~1481), 19세의 나이로 제7대 술탄에 등극한 그는 천년 제국 비잔티움에 사활을 걸었다. 로마제국 최후의 날, 아니 콘스탄티노플 마지막 날, 불길한 조짐이 연이어 나타났다. 1453년 5월 22일 밤 월식이 있었다. 다음날 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날려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었다. 황제가 기도를 올리던 중 성상이 떨어지며, 짙은 안개가 성을 감싸고 성 소피아 대성당 돔 지붕에 붉은 기운이 흘러 아래까지 훑고 사라졌다. 비잔티움에는 1123년을 지탱한 제국의 에너지, 5세기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겹겹의 성벽으로 둘러쳐진 난공불락의 요새가 있었다. 길이 20km, 넓이 대략 70m의 3중 성벽 이름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이다. 그리고 바다 골든혼(황금 뿔)쪽에 비록 한 겹의 성벽이었으나 매우 견고했다. 무엇보다 골든혼 어귀에는 굵은 쇠사슬을 물아래 가로로 걸쳐놓아 어떤 배도 드나들 수 없었다. 그러나 메흐메트 2세는 사공이 많았다. 그는 골든혼에 닿는 도로를 닦고, 쇠로 바퀴를 만들고 철길을 완성했다. 목수를 동원해 중형선박 운반용 거대한 나무 받침대도 제작했다. 5월 22일 아침이 되자 수십 마리 황소와 군사가 이끄는 70척 함선이 언덕을 넘어 골든혼으로 내려왔다. 이를 본 콘스탄티누스 11세와 비잔티움 병사들은 경악했다.1453년 5월 29일 화요일 아침, 드디어 예니체리 부대가 진군하기 시작했다. 나팔과 북소리가 진동하며 죽음의 향연을 펼치려는 군사들의 함성이 저승사자를 불러내는 의식 같았다. 전투가 한창이던 때, 이슬람 병사 몇 명이 반쯤 열린 작은 쪽문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가 오스만제국 깃발을 올려버렸다. 이슬람 군사들이 물결치듯 밀려들었다. 아뿔싸! 바늘구멍이 거대한 둑을 무너뜨린 형국이었다.천년의 로마가 막을 내리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메흐메트 2세는 의례 3일 동안 약탈을 허용했다. 살육, 강간, 방화와 파괴가 이어졌고 도시는 죽어갔다. 그러나 당일 약탈을 중지시켰다. 이미 죽은 자가 태반이요, 죽어가는 자가 남은 반이고, 여자들은 강간당하고, 아이들은 머리가 깨어지고, 성당은 무너지고 불에 탔다. 황궁은 빈껍데기만 남았고, 성모상은 조각조각 흩어졌다. 더 약탈할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오후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갈 무렵이었다. 메흐메트 2세는 성소피아 성당으로 갔다. 화려하면서 장중한, 그 어떤 악인도 흡입할 압도적인 공간, 믿음의 방식이 다를 뿐인, 같은 하늘을 모신 성스러운 곳에 들자 파괴가 최선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기도를 올릴 때 가톨릭 아이콘을 천으로 덮은 채 진행했다. 성 소피아 대성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선포함으로써 화려했던 성당은 이슬람의 모스크로 변했다. 밤하늘에는 어둠 속에서 그믐달이 패망한 천년 제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의 튀르키예 국기 모습이다. 메흐메트 2세는 황궁으로 향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는 궁이었다. 황궁 입성! 인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궁전 내부를 돌아다니며 감회와 감상에 젖었다. 그러나 옛날 알렉산더가 페르세폴리스를 불 지르며 감상하던 것처럼 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문화와 예술이 역사를 품은 채 침묵으로 말을 건네는 도시, 천년을 이어오며 영고성쇠를 거듭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당당했던 황제가 머물던 궁이 초라한 모습을 한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고 한다.“궁전에는 거미줄만 무성하고 아프라시아브 탑에서 부엉이만 우는구나!”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제국의 수도로 화려하게 부상했던 비잔티움이, 콘스탄티누스 11세에 멸하게 되니 역사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성 소피아 대성당은 이를 기점으로 비잔틴 양식에 오리엔트 양식,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첨탑이 어우러져 곡선과 직선의 조화, 아치와 각짐이 마치 공존이 삶의 최선이라고 하느님이자 알라께서 간곡히 전하고 있었다.정복자 메흐메트 2세는 오스만제국의 수도를 아드리아노플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도시 이름을 ‘그 도시’, 혹은 ‘큰 도시’라는 뜻을 지닌 ‘이스탄불’로 바꿨다. 주인이 떠나고 없는 오래 버려진 허물어져 가는 빈집을 상상해 보라. 그러나 메흐메트 2세는 그 옛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스탄불에 제국의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7-15

이제라도 서로를 위해 손을 내밀어야

김규인 수필가 구독자 수 1000만의 먹방 유튜버, 쯔양이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에서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전 남자 친구이자 회사 대표로부터 폭행과 협박, 착취를 4년 간이나 당했다는 내용이다. 헤어지자는 말이 악몽 같은 생활의 시작이었다. 몰래 촬영한 동영상으로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며 온갖 험한 일을 시켰으며, 폭행은 4년간이나 지속되었다.불행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전 남자 친구가 다른 유튜버들에게 영상을 퍼뜨리며 또 다른 2차 가해가 시작되었다. 앞에서는 정의를 말하던 유튜버들이 쯔양을 협박하며 돈을 뜯으려 하였다. 실제 수천만 원의 돈을 뜯은 유튜버도 있었다. 여러 유튜버에게 건네진 자료로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서로를 잡아먹어야만 살아가는 동물의 세계를 보는 듯하다.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신문을 펼치면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묻지 마!’ 폭행, 학교 폭력, 데이트 폭력은 사람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표출하는 이들의 행동은 무엇을 말하는지 알 길이 없다. 왜 이렇게 상대에게 해를 가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 다시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자신과 조직의 이익만 추구하는 국회의원들의 행동을 아이들에게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지라도 끌어내리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승자라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려는 태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사회를 날마다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말끝마다 국민팔이를 하는 그들의 상투적인 말에 이제는 텔레비전을 끈다.사회 문제는 쌓여가는데 누구도 제대로 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 언론과 정치인은 우리 사회를 쳐다보기나 하는 것인지. 학생 화해를 중재하는 교사를 아동 학대로 신고하며,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보다 무조건 자식만을 대변하는 학부모들이 넘친다. 이제는 학교 문제를 경찰이 와서 해결해야만 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모든 것을 말로 해결하기보다는 고소와 고발로 상대를 압박한다.협박과 폭력으로 남의 돈을 갈취하는 사람과 그런 아픔을 당하면서도 남을 위해 손을 내미는 사람. 극단의 두 사람을 보면서 서로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 수는 없는지 생각한다. 고소와 고발이 아닌 상대를 위한 배려와 다정한 말로 감싸줄 수는 없는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몰락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라도 서로를 위해 손을 내밀던 우리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언제나 웃으며 방송하는 청년에게 그런 어려움이 있을 줄 누가 알 수 있을까. 방송 이후에 다시 본 구타의 흔적은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4년간이나 지속된 폭력에도 자신을 잃지 않고 정상적으로 방송을 한 것이 기적 같다. 언제쯤 우리는 사회의 구석을 환하게 비출 수 있을까. 먹구름 속의 한 줄기 햇빛처럼 쯔양의 선행이 인터넷에 오른다. 자신의 아픔을 말없이 삭이며 이웃을 위해 손을 내미는 천사를 잃지 않아 다행이다. “많은 사람의 후원으로 받은 돈이기에 후원한다”는 겸손이 진흙 속의 연꽃처럼 빛난다.

2024-07-15

국민체감형 폭염인프라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7월에 접어들어 유례없는 국지성 집중호우를 동반한 장마 속에서 간간이 비가 그치면 엄청난 폭염이 찾아오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우리 지역에 머문 장마가 곧 들이닥칠 것 같은 역대급 폭염을 잠시 주춤하게 하는 지난 7월 11~12일 ‘2024년 제9회 대구국제폭염대응포럼’이 개최되었다.이번 행사는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 대구정책연구원, 대구녹색환경지원센터, 대구녹색소비자연대, 대구지역에너지전환네트워크, 이클레이한국사무소 등 많은 기관, 단체가 함께 힘을 모아 주관하였다. 그리고 대구광역시,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한국에너지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 등이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였다.첫째 날인 11일에는 추소연 Re도시건축소장이 ‘폭염, 기후재난에 모두가 안전한 도시’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였다. 추 소장은 패시브 기술에 기반해서 제로에너지 건축물을 만들어야 온실가스를 줄이는 동시에 기후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건축물을 기대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서울시 은평구 새장골 경로당 ZEB(제로에너지건물)전환 리모델링사업과 같이 기존 건물의 기후위기 적응과 완화기능을 강화하고 시민인식을 높인 우수사례를 소개했다.이어진 관련 분야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라운드테이블 토론에서는 건축물의 그린리모델링도 중요하지만 당장 역대급 폭염 속에 쪽방촌 거주자, 외국인 근로자 등 폭염에 극히 취약한 계층의 보호 대책이 매우 시급한 것에 대해 인식을 같이하였다. 그래서 둘째 날인 12일에 개최된 ‘폭염과 쿨산업, 탄소중립’ 세션에서 김태형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 책임연구원이 발표한 ‘국민체감형 폭염인프라 조성 및 지원’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는 세션 참가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국민체감형 폭염인프라’의 구체적인 사업유형을 보면, ①취약가구·시설 차열페인트 도장사업, ②트레일러시설 등 야외근로자 쉼터 설치사업(농촌형, 야외 공공근로자, 야외 이동 공공근로자), ③그늘, 쿨링포그 등 폭염대응 쉼터 조성사업 ④옥상녹화, 벽면녹화 등 녹색공간 조성사업, ⑤녹지, 식생수로 등 소규모 사업장 주변지역 적응인프라 조성사업 등으로 다양하다.사업유형 명칭에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사업유형마다 주 지원대상 취약계층이 다르며, 인프라의 세부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김 책임연구원이 취약가구·시설 차열페인트 도장사업(쿨루프, 쿨웰)의 우수사례로 제시한 2023년도 인천광역시 계양구의 취약가구 19가구 대상 사업 체감·만족도 조사결과에서 종합점수가 86.6점으로 비교적 높게 산출되었다. 그리고 다른 유형의 폭염인프라도 80~86점의 분포로 비교적 긍정적인 체감·만족도를 얻었다.2025년도 기후위기 취약계층·지역 지원사업은 국비예산 95억 원을 책정하여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에 각 지역별 특화된 ‘국민체감형 폭염인프라’를 제출할 수 있게 금년 12월까지 공모하고 있다. 기초지자체가 사업비 50%를 부담하지만 만족도가 높아 점차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맞추어 탄소중립지원센터 등 전문기관의 지원이 이루어져 대구경북지역에 많은 ‘국민체감형 폭염인프라’가 조성되길 바란다.

2024-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