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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변화는 또 다른 변화로 대응한다

오도창 영양군수 현대사회에서 영양군의 위치는 좋지 않은 교통 인프라로 내륙에서도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영양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면 별 볼일 없는 세상에서 별천지를 누리고 또 전국 최대 규모의 자작나무숲에서 천연의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 소위 말해 숨 쉬는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영양은 자연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와 더불어 환경적 문제를 다루는 전 세계의 주요 이슈 속에서 전형적인 생태관광의 기틀을 마련해 나가려고 한다.영양의 밤하늘, 그 대표적인 공간인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은 인공조명으로부터 생태계를 보호하고 소중한 밤하늘을 지키기 위한 영양군의 노력으로 국제밤하늘보호협회 (IDA)로부터 인정받아 아시아 최초로 밤하늘 청정지역으로 인정받은 곳이다. 동시에 반딧불이와 밤하늘의 별이 어우러져 아름다운밤 풍경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야간 여행의 명소로 주목받는 곳이기도 하다.특히나 여름밤에는 숲속 길을 걷다가 마주친 반딧불이가 환상적인 형광색 군무로 아이들의 환성을 불러내더니 새벽하늘에는 이야기로만 듣던 은하수가 또렷한 은빛 수를 놓는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자연의 웅장함을 그대로 비춰 보이는 영양 반딧불이 천문대에서 낮에는 태양망원경을 이용해 대지를 뜨겁게 달구는 태양의 겉모습을 눈으로 마주할 수 있고 밤이 되면 누구라도 꿈꿔보았던 아름다운 별들이 수놓인 밤하늘이 머리 위로 펼쳐질 것이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행성, 은하, 달 등을 가까이 관측할 수 있으며, 우주의 탄생과 진화에 대한 영상 콘텐츠들로 아이들에게 드넓은 우주에 대한 관심을 피우기 좋다. 누리호의 발사 과정을 다룬 실감 영상존 등으로 가족단위 구성원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전시실 한가운데에는 우주복을 입고 달에 착륙한 듯한 느낌을 내는 우주비행사 콘셉트의 포토존이 있다. 가상체험(VR)을 통해 천문대에서는 느껴보기 어려운 또 다른 재미를 누리면서 어렸을 적 그려봤던 풍경에 대한 동심의 여름방학의 구성이 갖춰진다.천문대 앞으로 흐르고 있는 물소리를 듣다 보면 개울 옆으로 울고 있는 곤충들과 아래위로 선을 그리며 날고 있는 반딧불이도 관찰할 수 있다. 어느새 대자연의 품에 안겨있는 것이다.반딧불이는 청정한 자연 환경에만 서식하는 곤충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존재가 되어 버렸지만 매년 여름이면 반딧불이 생태공원에서는 아름다운 반딧불이의 불빛을 감상할 수 있으며, 8월 중순부터 9월 초순까지 늦반딧불이와 함께 별자리를 함께 관찰할 수 있다.앞으로 영양군은 국제밤하늘 보호공원과 반딧불이 등 지역 특화 생태자원을 활용한 성장 동력을 구축하기 위해 ‘별의별 이야기, 영양’사업을 추진하는 등 ‘밤하늘 생태관광 명소’로의 독보적인 브랜드를 확립할 계획이다.디지털 천체투영관(오로라돔)을 설치해 직경 15m에 달하는 구 형태의 디지털 투영관을 구축하고 우주를 테마로 한 미디어아트를 연출하는 등 별의 정원(잔디광장)을 개선해 벤치형 조형물 설치 및 쉼터를 조성하고 휴식형 중앙광장 공간을 확보해 별빛 아래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힐링 장소를 만들어 낼 것이다.한편으로 영양지역 관광자원 가운데서도 보석 같은 존재인 자작나무 숲은 우리나라 최고의 산림 휴양지로 거듭나고 있다. 사시사철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며 하얀색 줄기와 초록빛으로 가득한 잎사귀에 여름조차 시원하게 만들어버리는 자작나무숲이 펼쳐진 힐링공간과 자연적 가치를 활용한 계획도 만들어내고 있다.영양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꼽히는 영양 자작나무숲은 지속적으로 방문객이 증가하는 지역임에도 전기 등 인프라 시설 부족으로 이동통신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유관기관의 협력을 통해 이통통신 음영지역을 해소한 첫 번째 사례가 되었고 향후 자작나무숲 힐링허브 조성과 방문자 센터, 주차장 및 조경 등 기반 시설을 차근차근 갖춰 나가고 있다.또한, 숨 쉬는 힐링스파를 통해 자작나무숲 권역 콘텐츠 다양화로 관광지 완성도를 제고하는 등 새로운 명소 확보에 노력하고 치유누리길 조성으로 숲길(맨발 산책로) 조성, 시설물(목교, 출렁다리)을 설치해 이용객들의 체험 수요 증가에 따른 다양한 탐방노선을 구축할 것이고 차세대 힐링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온전한 나만의 공간’의 필요성을 느낄 때가 있다. 지금의 영양은 온전히 나만을 느끼고 충분한 내 시간을 가져보는 정적인 공간, 빌딩 숲이 막아 왔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곳, 휴대폰은 잠시 내려놓고 자연속에서 삶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곳, 그런 공간적인 이미지가 확립되기 위한 희망찬 변화를 꿈꾸고 있다.

2024-07-28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장마가 오락가락 땡볕 더위가 시작되는 대서(大暑)가 지나고 폭염이 전국을 뒤덮는다. 체감온도가 35℃ 이상이면 폭염특보인데 경주와 감포는 36℃를 넘었다. ‘대서에는 염소 뿔도 녹는다’지만 대단한 삼복더위다. 초복에서 말복까지는 20일, 그런데 올해는 중복에서 말복까지가 20일인 월복(越伏)이라 더위가 더 길어질 것으로 예측되어 더위와의 전쟁은 절정에 닿는다.74년 전 북한이 중국, 소련의 비호 아래 조용하던 삼천리 무궁화 금수강산을 남침하여 쑥대밭을 만들며 3년간 피를 튀기면서 UN 참전과 인천상륙 작전, 중공군 개입 등 외세가 이 나라 운명을 쥐고 있었다. 마침내 휴전안이 나왔으나 정작 우리는 참석하지 않은 채 유엔-중국-북한의 3군 대표가 정전협정에 서명한 날이 7월 27일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작권을 이양했던 탓이리라. 그리고 3개월 내에 평화협정을 맺어야 했는데 군사분계선이 설정되고 비무장 지대 DMZ가 만들어지고 아직까지도 남북대치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정전(停戰)과 휴전(休戰), 그 의미는 어떻게 다르며 종전(終戰)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 1953년 7월 27일에 이루어진 것은 정전협정(ceasefire)인데 38선이 휴전선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휴전협정(armistice)이라 부르고도 있다. 정전은 전쟁 중인 국가들이 전투를 일시 멈추는 것으로, 국제적 개입이 있는 것이 보통이고, 휴전은 당사국 간 협상으로 전쟁을 멈추는 것이라는데 국제법상으로 우리나라는 현재 전쟁상태인 것에 유의해야 한다.북한은 2013년 정전협정 파기 선언을 한 바 있고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며 남북정상회담 등을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뭉개져 버린 상태다. 2020년엔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최근에는 휴전선 전역에 지뢰매설, 철책 보강을 하는 사실도 보고된다. 또 잠시 뜸하던 북한오물 풍선도 다시 날려보내고 벌써 10번째이다. 그래, 휴전상태. 전쟁을 잠시 쉬고 있을 뿐 아직 끝나지 않았다.전쟁으로 모두 171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었고 민간 피해도 남북 250만, 이산가족 1000만 명이 발생했다. 이러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딛고 남한은 2018년 ‘30-50클럽’이 되었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를 높였다. 작년 포브스 선정 세계 6대 강국이 되었고 군사력도 세계 5위에 올라섰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기술력으로 지난주 24조 규모의 체코 원전도 프랑스를 제치고 수주하였다. 그러고 보니 27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는 하계 올림픽이 열리는데 우리나라는 총 21개 종목에 선수 143명을 포함하여 260명이 파견되어 금메달 5개 종합 15위를 목표로 마음을 다지고 있다.이러한 국력을 밑거름으로 남북한은 전쟁을 끝내는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어 민족 번영에 한뜻이 되어야 하는데 북한의 태도가 걱정이다. 장자(莊子)는 “형제는 수족이라 끊어진 경우에는 잇기 어렵다(手足斷處 難可續)”고 했다. 남북 형제가 인연을 끊었으니 서로 잇기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이제 서로 마음 열고 두 손을 맞잡아 분단을 넘어 통일국가로 세계에 우뚝 서는 그날을 만들어 가자.

2024-07-25

민심이라는 것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민심’을 들먹인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도 자주 인용한다. 그야말로 아전인수로 필요할 때마다 끌어다 쓰는 게 민심이란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심을 얻은 자가 천하를 얻었다’는 말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민심이 반드시 옳다’는 말이 되지는 않는다. 과연 인류의 역사가 민심에 따라 옳은 방향으로만 흘러온 것인지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오히려 변덕스럽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부화뇌동하기 쉬운 것이 민심이다.민심이란 곧 여론이다. 정보화시대인 요즘은 여론조사에 의해 민심은 수시로 계량화된다. 국민의 투표에 의해 정권이 결정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란 여론전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론을 주도하는 세력이 승자가 된다. 일찍이 민심의 속성을 간파하고 선전·선동으로 민심몰이에 성공한 대표적인 예가 히틀러의 나치다.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에 열광하면서 파탄의 구렁텅이로 휩쓸려 들어갔다. 한때 낙농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도 석유 수출로 풍요를 누렸던 베네수엘라도 부실한 나라로 전락해서 빈곤의 악순환을 겪고 있는 것은 민심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의 결과이다.얼마 전에 치른 우리나라의 총선에서도 민심이란 게 얼마나 허접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수많은 범죄 혐의로 법원과 검찰청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이재명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는가 하면, 파렴치범으로 2심까지 유죄 확정을 받은 조국이 만든 당을 비례로 12석이나 차지하도록 표를 준 것이 바로 민심이었다. 대학생 딸을 개인사업자로 탈바꿈시켜 ‘사기 대출’을 받은 경기 안산갑의 양문석 후보나, ‘이화여자대학생 미군에 성(性)상납’ 주장이나 위안부 피해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비하하는 등 음담패설 수준의 망언을 일삼은 경기 수원정의 김준혁 후보를 반듯한 상대 후보들을 제치고 당선시킨 것도 민심이었다.지난 2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는 한동훈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대표가 되었다. 그만큼 우파의 민심이 한동훈에 쏠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 드러난 그의 인성이나 정체성에 불안한 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가 수차례나 보낸 문자를 ‘씹은’것에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보였고,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보수궤멸을 꾀한 문재인 정권 초기가 자신의 화양연화였다고 한 것과 총선후보의 공천에서 좌성향을 보이는 등 정체성에도 의구심을 갖게 한다.그러나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지난 총선에 패배한 후에 그가 한 “민심은 언제나 옳다”는 말이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과 조국이 이끄는 당에 압도적인 의석을 몰아준 민심이 정말 옳았다는 것인지, 자신도 그런 민심의 향방에 따라 움직이겠다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또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국민의 눈높이’도 어느 국민의 어떤 눈높이를 말하는 것인지, 그래서 결국 당을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은 노파심일까.

2024-07-25

죽어가는 소나무, 이대로 둘 텐가

홍석봉 언론인 대구 근교 산들이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대구~성주 간 국도변 소나무 숲이 재선충 피해가 크다. 필자는 한 달에 2~4차례 성주에 있는 시골집을 찾는다. 대구∼성주 간 국도변은 장관을 이루는 벚꽃길 등 4계절 피고 지는 각종 꽃과 나무들이 국도 이용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달성군 다사면 대구~성주간 국도변 야산에 갈색으로 변해 말라 죽는 소나무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최근엔 고사목이 발견되는 지역이 폭넓게 확산하고 있다. 국도변 곳곳의 소나무들이 재선충에 감염돼 흉한 모습으로 죽은 채 방치되고 있다. 소나무 고사목이 자꾸 느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마치 내 몸의 일부가 상처를 입은 느낌이 든다. 지구의 허파이자 생명의 숲이기도 한 귀중한 산림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이다.이곳뿐 아니다. 대구·경북의 소나무 재선충병 확산이 심각하다. 얼마 전 지역의 한 환경단체는 경북 일부 지역은 확산을 막기 어려운 정도로 감염이 광범위하다고 경고하며 당국의 대응 방안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녹색연합은 지난 4월 영남 동해안 권과 낙동강 인근 지역 중심으로 소나무재선충병 감염 상태가 심각하다고 발표했다. 경북 포항·경주·안동시와 성주·고령군 등은 확산을 더는 막을 수 없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들 지역은 정부가 소나무재선충병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어떤 곳은 멀쩡한 소나무 숲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오랫동안 방치된 고사목도 적지 않다. 10년 내 전국소나무의 78%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판이다.전문가들은 감염 지대가 길고 넓게 퍼져 방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 당국이 방제를 아예 않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만큼 상황이 악화한 것은 정부와 지자체가 재선충병 확산 초기 방제 시기를 놓친 탓이 크다. 점점 재선충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는 기후변화도 피해 확산의 한 요인이다.재선충은 1㎜ 안팎의 실처럼 생긴 선충(線蟲)이다. 소나무가 재선충에 걸리면 100% 말라 죽는다. 소나무에는 치명적이다.산림청에 따르면 소나무와 잣나무 등 소나무 숲은 우리나라 산림의 27%를 차지한다. 환경, 문화, 휴양 등 연간 71조원의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고 2540억원의 임산물을 생산한다. 대표적인 것이 울진 금강송과 울진·영덕의 송이 숲이다. 재선충 피해목을 잘라내면 산사태 우려가 커진다. 잘라 내 쌓아놓은 나무는 산불 발생 때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이래저래 손실이다.재선충병으로 소나무가 멸종되다시피한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방제작업이 성과를 내 소나무 숲이 어느 정도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예산과 노력이 들겠지만 애써 가꾼 소나무를 베어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상시 예찰과 신속한 방제작업으로 추가 피해는 막아야 한다. 대구∼성주 간 국도변 소나무 숲도 하루빨리 싱싱한 모습을 되찾길 바란다.

2024-07-25

삼겹살 만찬

우정구 논설위원 삼겹살은 돼지고기의 한 부위로 살코기와 비계층이 세 번 겹쳐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비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한 1980년 이후 삼겹살 소비도 늘었다 한다.돼지고기의 여러 부위 중 삼겹살이 가장 인기를 끈 이유는 삼겹살 특유의 고소한 맛 때문이다. 삼겹살은 구울 때 기름기 부분이 녹아내려 고기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할 뿐 아니라 쌈채소, 쌈장, 김치, 마늘 등과 함께 먹으면 풍미를 더욱 진하게 즐길 수 있다.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다.구이, 찜, 볶음, 찌개 등 다양한 방법으로도 조리할 수 있어 가장 대중적이고 서민적 음식으로 취급받는다. 각종 미네랄이 풍부해 어린이들의 성장 발육에도 좋다. 그러나 지방 함유량이 많고 칼로리가 높아 과식을 하면 비만이 될 수 있는 단점도 있다.3월 3일은 삼자가 겹쳐 ‘삼겹살 데이’로 통한다. 공식적 기념일은 아니지만 이날 만큼은 삼겹살을 찾아 먹는 사람이 많다. 한 여론조사에서 샐러리맨이 회식 때 가장 즐겨먹는 음식으로 삼겹살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삼겹살을 함께 구워먹으면 상대방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여기에 소주까지 곁들이면 소통도 잘 된다는 생각을 한다.한국적 정서에 맞는 서민 음식이라는 동질감이 작용한 탓은 아닐까 싶다.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새 지도부를 용산으로 초청, 만찬을 가졌다. 만찬의 주 메뉴로는 삼겹살이 선택됐는데, 윤 대통령이 직접 골랐다고 한다.서민적 한국 음식을 통해 당정의 대화합을 강조한 의미라고 하는데, 정치가 먹는 것처럼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25

우천시는 내비게이션엔 안 나와요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우천시엔 체육관에서 모입니다’. 유치원생 아들의 가정통신문을 받은 엄마가 교사에게 전화를 했다. “우천시가 어디죠? 내비게이션에는 안 나오네요.” 雨天時(시)의 시(時)를 시(市·도시)라고 이해한 것이다.“이번 박물관 견학 때 중식을 준다던데 우리 아이는 기름기 많은 음식을 싫어하니 담백한 한식으로 주시면 안 될까요?” 이는 점심식사를 의미하는 ‘中食’을 ‘중국음식’으로 오해한 결과인 듯하다.드물지 않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한단다. “선생님, 사흘이 왜 4일이 아니고, 3일이에요?” 사흘의 ‘사’를 넷을 의미하는 사(四)라고 오해한 것일 터.지어낸 이야기 같지만,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가 털어놓은 실제 사례들이다.아주 조금 어려운 한자나 자주 사용되지 않는 순우리말 앞에서 문해력(文解力·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아이들이 많고, 어른도 적지 않다고 한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책을 읽으며 지식과 상식을 쌓고, 올바른 어법을 가진 어른들에게 언어 습관을 배우는 아동들이 줄어들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한국인의 1년 평균 독서량이 10권 아래로 떨어진 건 이미 오래전이다. 책을 통한 학습으로 체화되던 문해력과 어휘력. 그게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는 건 인터넷 공간을 떠도는 은어, 비어, 속어와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해괴한 줄임말과 욕설 따위다. 한 나라 언어의 품격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의해 결정되고 유지된다.본관(本貫)을 물으면 “네?”라고 반문하고, ‘시나브로’가 “프랑스어인가요?”라고 묻는다. 이쯤 되면 실소를 넘어 할 말을 잃게 된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24

인구 비상사태와 국가 이민정책

장규열 고문 정부는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저출산문제는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38개 가입국 가운데 ‘출생률이 가장 낮은 나라’ 타이틀을 11년째 거머쥐고 있다. 가입국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명도 안 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며 전체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구 감소는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대두됐다. 한국과 일본과 같은 선진화된 아시아 국가들은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인구절벽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정책을 활용해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요한 전략 중 하나가 될 것이다.캐나다는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통해 인구감소를 효과적으로 해결한 대표적인 사례다. 다양한 기술이민 프로그램을 운영해 교육수준이 높은 젊은 이민자들을 유치한다. 이민자들은 노동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경제성장을 견인한다. 캐나다 정부는 이민인구의 정착을 돕기 위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이민자들이 나라에 빠르게 융화되도록 돕는다. 호주 역시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통해 인구문제를 해결한다. 호주도 기술이민 프로그램을 활용해 필요한 산업인력을 유치하면서 경제성장과 인구증가를 동시에 달성한다. 호주는 이민자들에게 양질의 교육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 삶의 질을 높인다. 호주를 매력적인 이민목적지로 만들고 있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민정책을 펼친 사례이다. 2015년 난민위기 당시 약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수용하면서 이들을 경제와 사회에 통합하는 다양한 정책을 적용했다. 독일 정부는 난민들에게 언어교육과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노동시장 진입을 용이하도록 지원했다. 국가적인 노동력 부족문제를 완화하였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구현하였다.우리는 어떤가. 한국은 인구격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의 성공사례들을 적극 참고해야 한다.한국은 적극적이며 포용적인 이민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은 고학력 기술이민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숙련된 전문인력을 유치하면서 경제성장을 함께 촉진시킬 수 있다. 국내 노동시장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이민자들이 한국사회에 빠르게 정착하도록 언어와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이민자들이 한국사회에 쉽게 정착할 수 있으며, 사회적 갈등도 예방할 수 있다. 이민자들을 위한 주거, 의료, 교육 등 지원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이민자들이 적절한 삶의 질을 누리도록 배려해야 한다.한국은 ‘다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민자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다문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민자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인구격감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도전 가운데 하나다. 국내에서 다양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이민정책에도 혁신적 변화를 기해야 할 터이다. 사람이 그득해야 나라가 산다.

2024-07-24

한의원 첩약보험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최근 한의원에서 처방하는 치료한약 중 일부가 보험이 되는 시범 사업이 열렸다. 이때까지 한약은 건강보험에서 제외되어 있었으며 이에 가격 부담을 느껴 몸이 아파 한약 복용을 하고 싶어도 선뜻 진료 받기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시행되었던 사업이나 정부의 홍보부족과 실제로 처방을 할 수 있는 상병명의 제약과 너무 복잡한 청구 방법 등으로 한의원들의 참여가 부족해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지는 않았던 사업이다.최근 정부는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처방이 가능한 상병명을 추가하고 처방 시스템을 좀 더 간편화 시켜 전국민 누구나 아픈 사람은 한의원에서 처방을 부담 없는 가격에 받을 수 있게 준비했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한의원, 한방병원, 종합병원에서만 가능하나 대다수 한의원이 참여중이니 본인이 다니는 한의원이 있다면 알아보고 거기 맞는 대상 질환이 있다면 처방을 받을 수 있다.대상 질환은 기능성 소화불량, 디스크, 알러지 비염, 안면마비, 중풍후유증, 월경통으로 제한되며 여기 해당하는 질환에 대해선 30% 본부금만 내고 처방 받을 수가 있다. 일년에 10일분씩 두 번 총 20일분이 처방이 가능하다. 보통 10일분이 15만원 가량 하는 한약을 4만원 근방에서 처방을 받을 수 있으니 관련 질환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처방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실비보험도 적용이 되기 때문에 실비보험이 있는 사람은 만원 정도에 자기 몸에 맞는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복용할 수 있다. 처방은 보약 처방과는 조금 다르고 그 질환에 특화된 처방을 위주로 처방이 나가게 된다. 이 처방을 할 때 녹용 같은 보(補)하는 처방을 같이 할 순 없다. 그러나 처방을 할 때 약재의 가감이 들어갈 수 있어 대상 질환 이외의 불편한 증상도 말을 하면 일정부분은 처방의 가감이 가능하니 처방시 자세하게 담당 한의사에게 말하는 것이 좋다.자주 체하거나 속이 더부룩하거나 설사를 하는 등의 소화기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보통은 침치료를 하고 약을 하루 이틀분 받아간다. 소화기 관련 질환은 약을 며칠분씩 같이 복용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한의원에 문의해서 첩약 보험이 된다면 첩약보험으로 처방을 받는 것이 좋다. 각각의 몸에 맞춰 약을 처방할 뿐만 아니라 바로 달여서 주기 때문에 상비약 보단 환자 몸에 좀 더 좋고 가격적인 측면도 부담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안면마비는 필수로 침과 함께 한약복용을 하는 것이 좋고 알러지, 비염, 생리통, 디스크, 중풍후유증의 경우엔 20일분을 저렴한 가격에 보험 첩약 복용을 먼저 해보고 효과를 보면 추가로 복용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10일분씩 처방이 총 20일 가능하다. 이 처방이 끝난 후부턴 100% 본인 부담으로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이때부턴 일반 한약을 짓는 것과 비슷한 비용이 발생하나 실비 보험에서 지원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적용이 되면 지속적인 복용이 가능하다. 전국민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아픈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첩약 보험이 한의원에서 가능하니 해당 질환이 있는 사람은 가까운 한의원에 문의하면 된다.

2024-07-24

이벤트 만들기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지난 달 경주시가 2025년 제32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 개최 도시로 최종 선정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자 28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1996년, 위덕대학교 개교 원년, 3월에 개교하고 5월경이었다. 신생학교를 알릴 홍보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 해 설립되어 태국의 방콕에서 열렸던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ia-Europe Meeting: ASEM, 아셈)가 제3회 회의를 대한민국에서 개최하기로 결정, 경주를 비롯한 여러 도시가 아셈 유치 경쟁을 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무릎을 탁 쳤다. 이것이로다. 위덕대가 있는 경주시를 위한 일이면서, 학교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당시 위덕대에는 학생은 1학년 400명밖에 없었으나 학생회와 동아리도 있었다. 학생회장 등 지도동아리 학생들은 선배가 없어 심심하던 차였다. 시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아셈유치서명운동을 하쟀더니 좋다며 신나했다. 서명지를 만들어, 일단 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을 상대로 워밍업을 했다. 반응이 좋자 학생들은 더욱더 신났다. 수업 없는 주말엔 경주 시내로 나가자며 뜻을 모았다. 마침 5월이라 관광객과 특히 단체 수학여행단이 많이 오는 때였다. 전국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위덕대 홍보로도 안성맞춤이었다. 가장 많은 관광객이 오는 대릉원과 불국사를 홍보 장소로 정해서 2팀으로 나누었다. 홍보용 현수막도 만들었다. 학생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 홍보 덕에 제법 많은 서명을 받아냈다. 이틀째, 지역 신문사에서 취재를 나왔고, 월요일 아침 신문 1면에 꽤 큰 사진과 함께 기사가 실렸다. 1차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아 학생들과 환호했다. 1주일간의 운동으로 약 2000명 정도의 시민과 관광객의 서명을 얻는 성과를 거뒀다. 서명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학생들과 논의 후, 경주시에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학생 대표 몇몇과 함께 경주시장님을 찾아 전달식을 가졌다. 이 행사 또한 경주시에서 보도자료를 배포, 여러 신문에 보도되었다. 학교 홍보를 위한 우리의 의도는 100% 달성하였지만 아셈회의 경주 유치는 실패, 2000년 아셈회의는 서울에서 개최되었다.이 행사로 광고비 없는 학교 홍보가 가능할 거란 예상은 적중했다. 그 후 위덕대에 재직했던 25년 동안 참 많은 이벤트와 행사를 벌였고, 이를 방송과 신문 등 각종 매체에 알리는 홍보역을 자처했다. 그 중 기억하는 이벤트는 ‘더사랑한데이’였다. 2009년 겨울, 종강 무렵이었다. 교수회의 중에 기말고사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교수들이 밥 한 끼 해먹이자 제안했다. 방송사에서 프로그램으로 만들기로 해서 일은 커졌지만 기쁘게 동참하신 교수들과 함께 김밥과 주먹밥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 준 이 행사는 그 후 매 학기말에 열리는 학교의 전통이 되었다. 2014년부터 성인학습자들이 많이 입학했다. 그들에게 재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고맙데이’를 제안했다. 나이 상관없이 함께 공부하고 도와주는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달하는 작은 파티였다. 이 또한 위덕대 평생학습자 날의 시초가 됐다.

2024-07-24

월하정인

정미영 수필가 아파트 숲 우듬지 위로 교교한 달빛 조각이 소담스럽게 쏟아져 내린다. 넋 놓고 달을 바라보다가, 간송미술전에서 기념품으로 사온 공책을 꺼낸다. 신윤복의 ‘월하정인’이 표지다. 신윤복의 풍속화에는 달을 소재로 그린 작품이 많다. ‘월야밀회’ ‘야금모행’ 등이 있는데, 달은 문학이나 회화에서 중요한 오브제임을 다시 한 번 환기해 본다.달밤에 두 연인이 담 모퉁이에 서 있다. ‘달은 침침해 밤 3경이 되었는데,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그림 속에 쓰인 글귀는 조선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김명원의 시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초롱불을 든 남자와 쓰개치마를 둘러 쓴 여인이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진다.나에게도 월하정인이 있다. 단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분에 넘칠 만큼 여럿이다. 새로 사귄 이도 있지만, 어떤 이는 오랜 기간을 달밤에 만났으니, 정분이 나도 보통 난 것이 아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남편보다 오래 붙어 있고, 때로는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그의 편을 들 때도 있다.그들은 바로 책을 쓴 작가이거나 책 속 등장인물이다. 나는 독서를 할 때면 가끔 너무 감정 이입을 하거나 상황에 몰입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눈 앞에서 작가나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몇백 년 전에 살았던 작가라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오늘처럼 달빛이 밝은 날에는 누구를 만날까? 달밤의 서정과 서사가 언어로 아름답게 표현되어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 떠오른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는 달밤의 묘사가 인물들의 격정적인 감정과 자연의 거친 아름다움을 강조하는데 쓰였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달밤의 분위기가 인물들의 상황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윤후명의 ‘달의 모양’에서는 달빛 아래에서의 사랑과 상처, 치유가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는 달밤에 등장인물이 걸으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나는 지금, 고요한 달밤에 어울리는 윤오영 선생님의 수필을 음미하고 있다. 내가 처음 선생님의 작품을 접한 것은 교과서에 실린 ‘방망이 깎던 노인’이었다. 글을 곱씹어 정독할수록 마음속에 울림의 파장이 넓게 퍼져나갔다. 그때의 밀도 높은 감동이 되살아나기를 기대하며 오늘은 ‘달밤’의 문장에 취한다.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가겠습니다”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소?”하고 물었다. “네. 달이 하도 밝기에….” “음!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윤오영 작가는 마치 한 폭의 정물화를 보듯 시골의 달밤 풍경을 수필로 그렸다. 우연히 노인을 만나 따뜻한 인정을 체험하는 묘사가 아주 뛰어나며, 도화지 위의 사물 사이 공간에 여백의 미를 표현하듯 많은 이야기를 함축해서 더욱 시적인 아름다운 글이 되었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향기로운 문자향이 내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아 황홀하다.세상은 변해도 책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리라. 일상에서 문득 느끼는 군중 속의 외로움과 좁은 시야에 갇혀 거시적 안목으로 주변을 보지 못했을 때의 불안감이 독서를 통해 희미해지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월하정인들 덕분이다. 내가 타성에 젖지 않고 지적 편식에 길들여지지 않도록 항상 나를 주시해 준다. 나는 나를 일깨워주는 그들의 말에 오늘도 귀를 기울인다.

2024-07-24

포항에 가면 심장이 먼저 나부낀다

포항에 가면펄럭이는 것은 깃발만이 아니다포항에 가면 심장이 먼저 나부낀다죽도시장 흐릿한 백열등 아래서돈보다 많은 삶의 가치를 얻어먹었다송도에 가면 그리움이 너무 넘쳐서태평양을 향해 코를 풀었다갈매기가 톡톡 찍어주던 느낌표아직 눈썹에 남아 있다포항역 육교에서 보랏빛 칸델라 불빛을 보며이별도 배웠다기차는 떠나도 사람은 남는다포항에 가면추억이 너무 많아서 몸살을 앓는다첫사랑 기다리던 골목길에서껄렁하게 앉아도 보았지코피 흘리지 않아도 되는 인생공부돌아오지 않을 시간의 강을 건넜지만포항에 가면객지의 설움이 설탕이 된다포항에 가면사람이 된다.비록 포항을 떠나 살고 있지만 항상 포항은 심장의 안쪽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자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나에겐 항상 고고(高高)하고 고고(孤孤)하다. 보수적이지만 당돌하다. 골목길 끝에서 돌을 던지고 도망가는 계집애 같은 심성이 늘 팔팔하게 살아 있다. 동해바다가 그 배경이리라.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4-07-24

청포도가 알알이 익어가는 시절이면

시인 이육사는 1904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해서 일제 강점기 무려 17번이나 경찰에 체포되면서 항일 운동을 이어간 한국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이다. 비록 그는 한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에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겨둔 삶에 대한 저항과 희망 넘치는 시들은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다. 때로는 한 편의 시가 계절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시 한 구절을 읽으면, 적당하게 짭조름하고 달큰한 가자미의 살맛이 입안에 돌기도 하고, 어떤 시 한 구절을 읽으면, 새큼한 자두의 맛과 향기가 매끄러운 입안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 때론 살갗에 텁텁한 여름의 열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햇빛을 받아 활발하게 살아나려고 애쓰고 있는 풀들의 비릿한 생명의 냄새가 느껴지기도 한다. 냄새도 아니고, 맛도 아닌, 몇 줄 글에 불과한 그것은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 계절의 인상을 불러일으킨다.사실, 몇 개의 단어의 연결에 불과한 그것이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 다름 아니라 계절의 감각을 일으키는 것은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 감각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만큼 언어를 다루는 작가의 뛰어난 솜씨 때문인가. 아니면 그토록 강렬한 계절의 인상 때문인가. 혹은 내가 언젠가 경험했지만, 잊어버렸던 감각이 뒤늦게야 손님처럼 찾아오기 때문일까. 언어의 구절과 독자들의 감수성, 그리고 계절의 감각들이 뒤섞인 어딘가에서 마치 연금술처럼 불과 몇 줄의 단어에 불과한 그 시는 계절이 된다.우리는 이처럼 계절을 상기시키는 몇 편의 시들을 알고 있다. 김소월이 ‘진달래꽃’에서 처럼 봄을 알리면서, 동시에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는 ‘진달래꽃’의 연분홍 색깔은 우리가 모두 겪었던 마음이 아린 계절을 상기하게 한다. 요즘이면 읽기 좋은 이육사의 ‘청포도’는 어떤가. 제국주의의 광풍 아래 식민지를 겪었던 한국에서 가장 핍박받았던 이육사라는 시인의 여름은, 청포도 향기로 가득하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일제의 핍박을 받아가며 독립운동을 하느라 정작 고향의 여름은 몇 번 보지 못했을 그의 여름이 마음속에 알알이 들어와 박힌다.“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분명 우리 모두는 이육사의 고향인 안동에서 그가 경험했던 여름을 알지 못할 것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낮동안의 열기나 차분해진 밤의 공기, 청포도가 익어가는 향기 같은 것을 알 수 있을 리 없다.하지만, 우리는 그가 남겨둔 구절을 통해 각자가 경험했던 여름의 감각을 소환하곤 한다. 정작 여름 안에 머물러 있을 때는 그저 다가온 더위 덕분에 계절의 인상 같은 것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내 방 안에 머물러 차분히 불과 몇 단어 되지 않는 시의 구절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여름의 인상이 나에게 손님처럼 찾아온다.하나의 언어가 우리의 마음속에 던지는 파문을 통해 우리는 각자가 마음속 깊은 안 쪽에 숨겨 두었던 경험들을 통합적으로 새롭게 경험한다. 불과 한 줌에 불과한 시가 갖는 힘이 그것이고,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야말로 그것이 아닐까.그래서 여름이면 이육사의 ‘청포도’를 읽는다. 나는 비록 그가 살았던 마을에 주저리주저리 열렸던 전설들도 알지 못하고, 그가 그토록 바랐던 푸른 바다에서 청포를 입고 고달픈 몸으로 온 손님을 기다려본 경험도 없지만, 그 언어에 가만히 집중하고 있으면, 예전 내가 경험했던 여름들이, 또한 무언가에 대한 간절한 바람들이 기억 저편으로부터 건너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 편의 시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계절이다. 분명 이육사는 민족시인이라고 해도 좋을, 우리에게 가장 상징적인 시인이지만, ‘청포도’라는 시 한 수 만으로 그는 여름의 시인이기도 하다. 그렇게 여름이 되면 언제나 이육사의 시는 그 시를 뇌이는 독자들에게 여름을 선물할 것이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4-07-23

일회용과 멀어지기

젊었을 적 어머니에게 보자기는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손가방을 대신하는 것이었고 필요한 찬거리를 담아 나르는 든든한 함지와 같았다. 움켜쥐면 한 줌도 되지 않는 보자기는 시장을 볼 때도, 친정에 다니러 갈 때도, 학교 운동회 날에도 불룩한 보따리가 되어 어머니와 함께했다. 어쩌다 종이에 싼 날생선이 들어있는 날은 보따리 한 귀퉁이가 축축하게 젖어있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아무도 모르게 보따리를 쌌다가 잠든 자식들을 보고 마음을 바꾼 적도 있다고 하셨다. 어머니에게 낡은 보자기는 세월의 애환이 깃든 물건이기도 했다.장바구니가 흔해지면서 어머니는 더 이상 보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팔에 끼거나 어깨에 멜 수도 있는 장바구니는 묶었다가 풀었다가 머리에 이는 보자기의 불편함을 덜어주었다. 장바구니 안에는 더러 비닐에 싸인 물건이 들어있기도 했는데 대부분 물기 있는 것들이 담겨있었다. 그 무렵 우리 마을엔 집집마다 짓던 밀 농사를 그만두었고 자연스레 방앗간에 길게 줄을 서서 국수를 빼던 일도 사라지게 되었다. 점방에 가면 색이 뽀얀 밀가루 포대며 예쁘게 포장된 말린 국수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편안함에 길들여졌고 거친 국산 밀가루보다 수입한 부드러운 밀가루가 더 좋다고 여기게 되었다.마을 어른들은 봄과 가을로 나누어 경치 좋은 곳으로 희추(야유회)를 하러 갔다. 풍물을 앞세우고 솥단지며 양은그릇들을 이고 지고 떠났다. 희추를 하는 날만큼은 힘든 농사일을 잊고 놀이에 푹 빠져들었다. 신록 우거진 숲에서 목청껏 노래도 부르고 흥이 오르면 강에 나가 유람선도 탔다. 마을 공동으로 쓰는 그릇이 있어 가득 모인 사람들의 끼니를 해결하는데도 무리가 없었다. 두레 자금으로 마련한 그릇은 마을의 잔치에도 요긴하게 쓰였다. 푸짐하게 준비해 간 음식들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버리고 오는 쓰레기가 없어 마음 홀가분했다. 그 시절엔 모두가 먹거리를 하늘처럼 소중하게 여겼고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까닭이다.살기가 좀 나아지면서 일회용이란 말이 심심찮게 쓰였다. 대표적인 게 나무젓가락과 종이컵이었다. 나들이 때가 되면 일회용은 필수품처럼 따라다녔고 한 번의 쓰임이 있은 후 가차 없이 버려졌다. 음식을 주문할 때도 일회용품은 예외 없이 따라왔다. 건너 마을에는 나무젓가락 공장이 있었다. 공장 마당에는 아름드리나무가 길게 누운 채 그득 쌓여있었는데 그 많은 나무가 사라지기 바쁘게 또다시 새로운 나무가 그득 쌓이곤 했다. 더 가까이엔 화장지 공장이 있었다. 공원들은 라면 먹은 그릇을 물 대신 일회용 휴지로 쓱쓱 닦아낸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떼로 몰려나와 점방에 외상을 긋고 공장장 흉을 봐 가며 주전부리를 했다. 일회용 물건을 만드는 그들 머리엔 어지간한 바람에도 꿈쩍 않는 하얀 먼지가 켜켜이 앉아있었다.80년대 중반쯤 일회용 비닐팩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급격히 비닐과 친해졌다. 깨끗이 소독된 위생적인 비닐이란 이유로 마구잡이로 비닐을 애용했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그릇들은 뚜껑 대신 비닐을 뒤집어쓰게 되었고 아예 비닐에 음식을 담아 보관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시장에선 장바구니 든 사람을 찾아보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빈 손으로 장을 보러 가도 상인들은 비치해 둔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주었다. 비닐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 되었고 지구는 대책도 없이 버려지는 그것들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2020년 기준 우리나라 비닐봉지 소비 발자국은 총 276억 개, 1톤 트럭 55만 대가 훨씬 넘는 양이다. 1인당 533개, 약 10.7 킬로그램이라고 한다.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꼭 1장 반을 소비한 셈이다. 비닐은 자연분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땅에 묻으면 토양에 산소 공급을 방해하고 강한 불에 태우면 다이옥신이란 유독 물질을 대기 중에 배출한다. 그러한 문제뿐만 아니라 바다로 흘러들어 가 바다 생물들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비닐이 지구를 뒤덮고 있다는 자각으로 인해 2008년 7월 3일 ‘세계 일회용 비닐봉지 없는 날’이 만들어졌다. 과연 단 하루만이라도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 일은 가능할까. 나는 습관처럼 비닐봉지에 든 채소를 사고 허기진 배를 달래느라 이중으로 포장된 즉석식품을 사 먹는다. 박월수 수필가 장마철이 돌아오니 쏟아지는 집중폭우가 예전 같지 않다. 해마다 그 정도가 강해진다. 지구가 몸살 앓는 시기를 지나 중병으로 가고 있다는 걸 절감한다. 덜컥 겁이 난 나는 노모를 위해 장 보러 가는 길에 바구니부터 챙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회용은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어머니는 구순의 고개를 넘고 있는 중에도 여전히 당신 혼자서 식사를 차려 드신다. 먹을 만큼의 음식을 단출하게 만들고 어쩌다 남은 음식은 뚜껑을 덮어 보관한다. 비닐팩이란 말은 어머니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가져온 비닐이 집안에 있으면 씻어서 말린 후 재사용하기 위해 접어서 보관한다. 사십 년은 족히 지났을 밥상보를 여전히 즐겨 쓰시는 어머니 곁에 누워 심상찮은 폭우 소리를 듣는다. 일회용과 멀어지는 연습을 더 많이 해야겠다.◇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박월수 수필가

2024-07-23

부드러운 직선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아시아에서 미주까지 태평양 항해 길은 선장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좌초 될 수 있고 목적지까지 순항 할 수 있다. 기업에서 보면, 리더의 리더십은 절대적이다. 목적지를 향해 방향과 전략을 수립하고 조직원의 공감대 형성을 통해 원활하게 나아가는 것이 바른 길이다. 공대를 나온 사람의 리더십은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다. 공대 출신의 MBA(경영 석사)를 거친 사람의 리더십은 아스팔트를 달리는 것과 같이 멀리 보고 부드럽게 리딩한다. 기업에서 경영자로 가는 코스가 되고 있다. 아는 지식과 경험으로 조직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속성 때문이다. 물론 유연한 사고로 경청을 통해 의사 결정을 잘 하는 경영자도 있다. 좋은 리더십은 무엇이 있을까.스무스 커브(Smooth Curve)는 미적분학과 기하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개념으로 주어진 구간 내에서 연속적으로 미분 가능한 직선을 의미한다. 곡선의 모든 점에서 기울기가 존재하고 곡선이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지는 않는 특징과 매끄럽게 변화하는 성질을 갖는다. 부드럽게 자율성을 가지고 가되 관리 범위 안에서 제어된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직선은 스무스 커브와 유사한 의미로 비포장과 포장 도로가 섞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을 이끄는 필수 요소인 카리스마와 유연한 사고의 리더십이 담겨 있는 목표를 향해 항해하되 스무스 하게 효율적으로 가는 조직의 모습인 것이다.리더십은 사람들을 목표나 비전에 도달하도록 영감을 주고 이끌어가는 능력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과 태도에 영향을 미쳐 공동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지원하며 스스로 하게 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하다. 팀원의 신뢰를 얻는 것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단력 있게 의사 결정하는 능력이다. 팀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마음껏 일 할 수 있는 마당을 열어가는 것이다. 구성원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 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리더로서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현대 리더십은 비전과 카리스마를 통해 조직을 변화시키고 목표를 달성하는 변혁적 리더십, 리더가 먼저 봉사하는 태도와 구성원들이 성장 발전을 지원하는 서번트 리더십, 구성원의 감성을 터치하는 감성 리더십이 대세를 이룬다. 이제 관리의 시대는 끝났다. 리더는 일의 성과를 높이는 것 외에 구성원들과 좋은 관계를 통해 긍정의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실제 리더십 흐름을 보면, 방향과 목표 제시 없이 상황에 대한 인식 오류나 충동적 의사결정, 특정인을 케어 하여 조직의 균형을 깨뜨리는 리더는 위험하다.리더십은 조직원을 정해진 시간에 목적지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며, 효율적인 리더십을 위해서 비전, 의사소통, 신뢰, 결단력, 동기부여, 공감 능력, 책임감이 필요 조건이다. 리더십의 개념은 권위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전통적 리더십에서 과학적 접근, 행동과 상황 이론을 거쳐 현대에는 변혁적, 감성, 공감 리더십으로 발전해가야 한다. 부드러운 직선의 리더십은 카리스마와 유연성으로 리더가 갖춰 가야 할 길이다.

2024-07-23

정겹고 이색적인 포구다방 시화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한적하던 어촌의 한 켠이 분주해졌다. 야트막한 처마 밑에 제비집이 지어진 어느 작은 다방 안팎으로 사람들이 오가며 물건을 나르고, 칸막이와 현수막을 설치하며 작품을 내거는 등 각자의 역할분담으로 어떤 작업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재바른 몸짓과 익숙한 손놀림으로 이리저리 옮기고 작품을 배치하며 조정하는 일들이 순식간에 이뤄져, 다방의 실내는 금세 멋진 미니갤러리로 탈바꿈했다. 이름하여 ‘포구(浦口) 다방-모두의 어촌여행’이란 주제로 항구 주변에서 열리는 시화전의 준비작업이다.전시장이나 갤러리가 아닌 다방에서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이 다소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그것도 발길 뜸하고 비좁은 ‘옛날식 다방’에서 빼곡하게 쓰여 지고 그림까지 그려진 시화전이라니? 모종의 우려와 설마 속에 진행되는 이색적인 포구다방 시화전은,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에 소소한 볼거리와 숨겨진 스토리를 낳으며 잔잔하면서도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듯하다.도시나 농어촌을 막론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여유롭게 차 한잔을 마시며 다담(茶談)을 나누고 휴식하는 가운데, 눈 앞에 보이는 작품을 부담없이 감상할 기회가 생긴다면 색다르고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지역의 자연경관을 노래하고 짭조름한 삶의 얘기나 처해진 현실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을 일상 속에서 마주할 수 있다면 한결 구미가(?) 당겨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사람들이 동네다방으로 모여들어 다향(茶香) 속에 살아가는 얘기나 신세타령을 듣고 나누다가 바로 곁의 시화작품을 눈요기로 즐기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정겹고 이색적인 분위기에 젖어 들게 될 것이다.어쩌면 그러한 컨셉으로 어촌다방 시화전이 기획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구의 고령화 추세에 출어(出漁)의 감소, 삭막해져가는 어촌마을의 현실과 공통의 문제를 다루면서 지역의 소멸위기를 극복하고, 공존과 상생을 위한 새로운 비전의 주제가 담긴 시와 시조를 시화작품으로 만들어 전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쇠퇴해가는 어촌마을에 조금이나마 생기를 불어넣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경북문화재단 예술거점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포구다방’ 시화전은 경상북도 권역 별 특색있는 공연·전시 및 네트워크 형성을 기획·운영·지원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참여형 단체에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재단에서 제시하는 주제를 바탕으로 거점단체에서 전시프로그램을 총괄기획·추진하게 되며, 2권역에 속하는 포항·영덕·울진에서는 이번에 두번째로 ‘포구다방’을 테마로 시화전을 열게 된 것이다.이러한 취지에서 2권역의 3개 단체(한국문협 영덕지부·맥시조문학회·진심문학회)가 7월 20~30일까지 천혜의 아름다운 축산항 한 켠의 ‘그야말로 옛날식’ 고려다방에서 합동으로 출품한 시와 시조를 서예·캘리그라피·디자인을 곁들여 족자·부채·판넬·실사출력 등의 다양한 형태로 만든 작품 40여 점을 아기자기하게 선보이고 있다. 축산항 개항 100주년의 또 다른 세리머니(?)로 여겨진다.

2024-07-23

‘교육·월급양극화’가 낳은 사회병리현상

심충택 논설위원 매일 막장드라마를 연출하는 정치권 영향 때문인지, 우리사회 모든 분야가 뒤숭숭하다. 법과 도덕, 규범이 무너지면서, 특히 사회 분위기에 민감한 고교생이나 청년들이 정상적인 일상생활에서 일탈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지난해 자퇴 등으로 학교를 떠난 고교생이 2만5792명(대구경북 2410명)에 달한다고 한다. 대부분 성적이나 교우관계, 규칙 적응 등에 어려움을 겪다가 학업 중단을 선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교사들은 “무리하게 설득하려다가 인권 침해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학부모가 ‘자퇴에 동의했다’고 하면 더는 말릴 수가 없다”고 했다.우리나라 대졸 청년 수백만명이 니트(NEET)족으로 살고 있다는 통계도 충격적이다. 니트족은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말한다.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1월부터 6월까지) 월평균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가 405만8000명에 이른다. 대구의 경우 22만5000명이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만1000명이나 늘었다. 대구는 코로나가 대유행하던 2020년 상반기에 20만명을 넘어선 이후 계속 증가추세다.백수로도 불려지는 비경제활동인구는 통계상 실업자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이들이 취업이나 창업 준비를 하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자포자기한 상태로 놀고 있다면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을 낳을 수 있다.우리나라에서 고교생 자퇴나 니트족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회양극화 탓이 크다. 의대정원 확대 이후 서울 학원가를 중심으로 개설되고 있는 ‘초등 의대반’을 떠올려 보면 교육분야 양극화는 쉽게 이해될 것이다. 학생들이 중학교 때까지는 동급생과의 학력격차를 크게 인식하지 못하다가 고교에 진학하면 충격을 받는 케이스가 많다고 한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월 수백만원을 써가며 과외수업을 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간의 성적 격차는 줄이기가 어렵다.취업을 포기하는 대학 졸업생이 증가하는 이유는 아마 ‘월급 양극화’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의 억대급여나 성과급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는데, 청년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중소기업에 취업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요즘은 대기업들이 수시·경력 채용을 확대하면서 대졸자들의 취업문은 더 좁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평균연봉 1억대인 현대차가 10년 만에 실시한 생산직 공채에 수만 명이 몰려 채용 사이트가 마비된 건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들의 기대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말해준다. 설상가상 올들어 내수와 건설경기 부진으로 청년층 고용시장의 찬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고 있다.사회 각 분야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것은 정부책임이 크다. 상속세나 종부세 개편과 같은 ‘부자 민원’에 민감한 정권이 들어설수록 양극화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학업이나 취업의욕은 한 번 떨어지면 여간해선 회복하기 어렵다. 사회양극화가 지금처럼 제동 없이 진행될 경우, 학교에 적응 못하는 고교생이나 백수로 살아가는 청년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24-07-23

세계인의 축제 파리 올림픽

우정구 논설위원 오는 26일 개막되는 33회 파리 하계올림픽에는 전 세계 200여 개 나라에서 1만500명의 선수가 참가한다.중동전쟁 등 각국의 예민한 이해관계를 떠나 이들 선수는 나라의 명예를 위해 오직 스포츠 정신만으로 경기에 임하게 된다.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의 해결에 스포츠만큼 유용한 수단도 드물다. 1894년 근대 올림픽이 최초로 시작되면서 올림픽은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차별 속에서 꾸준히 세계인의 평화를 위해 이바지해왔다.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탱은 올림픽 정신은 “이기는 것이 아니고 참가하는 것”이라고 말해 스포츠를 통한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기원했다.이번 파리 올림픽은 1924년 이후 100년만에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다. 개최지 파리는 개막을 이틀 앞두고 각국 선수단들이 속속 입국하면서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다.파리 올림픽 조직위도 코로나로 맥이 빠졌던 도쿄 올림픽 때와는 달리 프랑스의 자존심을 걸고 이번 올림픽이 지구촌의 축제로 거듭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올림픽 개최 사상 처음으로 주경기장이 아닌 파리 센강에서 개막식을 가지는 것은 파리 올림픽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또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선수비율을 50대 50으로 맞춰 양성평등 올림픽을 실천했다. 특히 친환경 올림픽 구현을 위해 상징적이나마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는다. 행사기간 중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었다.날로 긴장감이 높아지는 국제정세 속에 치러지는 파리 올림픽이 세계인의 축제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행사가 되었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23

선택적 회피 사회

강길수 수필가 사람은 선택적 동물이다. 잠에서 깬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매 순간 무엇을 선택할지 요구받는다. 만일, 어떤 이가 아무것도 고르지 않는다 해도 그게 선택이 되는 기막힌 운명에 놓여있다.이러한 선택의 숙명은 생태계 아니, 존재계 전체를 관통하는 법칙이기도 하다. 불교의 연기론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은 선택에 따라 벌어지는 현상이니까. 그렇다면 인간사회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를 이 법칙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어떨까. 아마도 얼핏 보아서는 모르는 일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우리나라는 사실상 명·청을 상국으로 모셨던 조선 시대를 차치해도, 구한말 위정자들의 선택에 따라 일제 강점기를 거쳤다. 해방도 자력이 아니라, 열강들의 결정에 따라 선택되어 졌다. 그 후 남북분단과 6·25 동족상잔의 휴전협정까지, 외세가 개입한 우리나라 역사의 선택 문제였다.반도 국가의 특성 때문일지 몰라도 의존적 선택 기질이 우리의 디엔에이에 있는 것만 같다. 작금의 우리 사회를 선택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선택적 회피 현상’이 사회 저변에 흐른다. 특히, 그래서는 안될 분야까지 오염되어 보인다. 이를테면 언론계, 입법·행정·사법은 물론, 교육, 종교 분야까지 망라된다. 온전한 데가 안 보인다. 하여, 선택의 현미경을 볼 줄 아는 국민은 답답하고, 미칠 지경이다.예를 들어, 가수 K씨 교통사고사건 전개를 보자. 시쳇말로 화풀이 대상의 시범케이스에 걸려든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가 잘했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제기불능을 언급하면서까지 뭇매를 때릴 사항인가. 사건 발생 두 달 만에 속전속결 재판이 진행되는 것도 정치권의 이해할 수 없는 재판 지연과 비교하면 너무나 이상하다.우리나라는 삼세번 문화사회다. 삼세번 심성을 가진 우리가 한 번 실수를 한 사람을 완전히 매장당하도록 선동하고, 동조하는 게 현실 모습이라 생각하면 힘 빠진다. 선택적 회피가 없는 사회라면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가 ‘유권력 무죄, 무권력 유죄’로 확대되었다 하면, 원래 그런 건데 순진한 소리 말라고 할지도 모른다. 정말 그랬으면 나도 좋겠다.제1야당 전 대표, JK혁신당 대표 같은 인사들의 해괴한 재판 과정은 국민을 열불 나게 한다. ‘선택적 회피가 작동’하지 않고서야 어찌 자유민주주의 사법 체계하에서 그렇게 질질 끌고, 되지도 않는 이유로 이런저런 기각을 일삼을 수 있다는 말인가. 왜, 판사가 재판에 정치적인가. 상식이란 눈으로 보면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다.침묵하는 다수 국민의 희망 거울에 비친 우리 사회와, 언론· 입법· 사법을 주무르는 자들의 행태를 비추는 거울에 드러나는 그것의 모습은 너무 다르다. 왜일까. 바로 선택적 회피를 휘두르기 때문이다. 하늘 무서운 줄 알고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해서는 안 될 야만의 횡포들이 일상이 되어가니 말이다. 5·18, 세월호, 전직 대통령 탄핵, 이태원, 선거 부정 등 꼭 비추어야 할 중차대한 일들이 부디 선택적 회피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4-07-22

웹소설의 매력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웹소설이란 장르가 있다.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웹소설 등에 연재되는 소설로 스마트 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소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중적으로는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더 유명한데, ‘김비서가 왜 그럴까’ ‘재벌집 막내아들’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간 나에게도 웹소설은 드라마의 원천 소스이자 스낵컬처로 인식되었다.최근 2년간 입학사정관을 하며 읽게 된 우리 학과에 입학하고자 하는 학생의 고등학교 기록에는 웹소설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웹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국문과 진학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예전에는 고전을 읽고 국문과 진학을 결심했다면, 요즘 학생들은 웹소설을 읽고 국문과 진학을 꿈꾸는 셈이다. 한편 지난 학기에는 웹소설 연구를 하겠다고 대학원에 두 명의 학생이 진학했다. 웹소설에 대해 단 한 번도 학문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그들에게 별로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지만, 비로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웹소설에는 대중들이 공감하는 어떤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자 웹소설 매출이 1조를 훌쩍 넘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며칠 전 드디어, 웹소설의 고전인 ‘전지적 독자 시점’을 완독했다. 이 소설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이란 재미없는 인터넷 소설을 유일하게 끝까지 읽은 ‘김독자’가 소설이 현실이 된 사회에서 벌어지는 서사를 담고 있다. 소설의 서사가 재현되는 현실에서 김독자가 미래를 알 수 있는 절대적 무기를 가지고 주변을 제압하는 과정과 생존자들의 격투를 채널로 구경하며 코인을 주는 성좌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가상 세계가 현실이 되었다는 설정, 가상 세계 속 캐릭터와 실존 인물이 성좌에게 받은 코인으로 자신의 능력치를 업그레이드하며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이 몰입감을 준다.그렇지만 가장 큰 즐거움은 현실의 독자가 이름도 독자인 ‘김독자’에게 몰입하는 과정이다. 게임 회사의 인턴사원이지만 정직원 전환에 실패한 김독자는 고등학교 시절 집단 따돌림을 당한 트라우마도 가지고 있는 정글 같은 현실의 패배자다. 이런 그가 멸망한 세계의 구원자가 된다는 설정, 그 자체가 현실의 수많은 김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김독자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계를 소설의 예정된 결론이 아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세계로 만들려는 의지를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생존하기 위해서 코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현실에서 종종 코인을 선택하지 않고 사람을 선택하는 다른 등장인물의 모습은 현실과 겹치며 우리의 선택을 되돌아보게 한다.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쇼츠에 빠져드는 아이들을 보면 일정 부분 사실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미디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직된 사고가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아닐까.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형식의 문학 시스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웹소설은 우울한 미래를 돌파할 가능성을 가진 미디어다.

2024-07-22

단종과 계유정난(癸酉靖難)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왕조시대. 왕의 손자로 태어났다는 건 금수저를 물고 세상에 나온 정도가 아니었다.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었다’고 해도 감히 누가 이견(異見)을 내놓을까? 그것도 조선 초기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불리는 세종의 손자였다.본명 이홍위(李弘暐), 우리에겐 단종(端宗)으로 더 익숙한 조선의 6대 왕. 583년 전 오늘인 1441년 7월 23일은 단종의 음력 생일.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조선의 5대 왕)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어린 시절의 행복은 짧았다. 단종도 모르고, 조부와 부친도 몰랐으며, 백성들 누구도 알지 못했다. 겨우 만16세에 숙부 수양대군(조선의 7대 왕 세조)에게 죽임을 당할 줄은.‘비운의 소년 왕’으로 불리는 단종은 최고 권력자들의 축복 속에서 태어났지만 외로움은 그에게 숙명과도 같았다. 모친 현덕왕후는 산후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조부 세종과 조모 소헌왕후도 단종이 아이였을 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문종 역시 병약했고 마흔이 되지 못하고 죽었다.겨우 열 살에 왕위에 오른 단종. 아직은 후견인이자 보호자가 돼줄 사람이 필요한 나이였다. 아버지 때부터의 신하였던 김종서와 황보인 등 원로대신이 곁에 있었으나 결국은 혈족이 아닌 남.수양대군은 문종의 동생이다. 그러니, 단종은 수양의 조카. 옹알이를 하고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종을 형 문종과 함께 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을 몹시 가까운 혈족인 숙부라는 이야기. 그러나, 권력을 틀어쥐고 독점하기 위한 역사 현장은 살벌했다. 피붙이고 뭐고 없었다.1453년 ‘계유정난’으로 단종을 보호하던 신하를 모조리 숙청한 수양대군은 4년 후엔 조카까지 죽인다. 때론 왕조의 역사가 눈물겹고 서글프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22

울릉도·독도 2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비바람에 머리가, 옷이 다 젖는 것도 모르고 나는, 우리는, ‘환상’ 속의 독도를 하나의 실체로 만나고 있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 둘에, 여든아홉 개의 크고 작은 바위 섬들로 이루어졌다. 서도가 동도보다 조금 더 넓고 높다.배는 섬에 오르지 못해 아쉬운 사람들을 위해 그 옆을 스쳐 돌며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얼굴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넋을 잃고 섬을 건너다 보았다. 배가 흔들리는 파도를 따라 떠밀리며 오르내리는 까닭에 섬은 생생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비바람 속의 환영처럼 일렁였다.마음 속에, 심중에 섬의 형상들을 깊이 심어두는 데 집중해야 하건만 우리는 사진을 찍는 데도 바빴다.어느 분인가 섬을 보라며 정말 사람 같다고 하셨다. 가리키시는 방향을 바라보니, 정말 생각에 깊이 잠긴 듯한 수행자의 얼굴이 옆으로 보였다. 비바람 속의 수행자는 깊은 묵상에 들어 있었다. 저게 얼굴 바위일까. 그러고 보면 섬에 가까워지면서 서도 쪽의 코끼리 바위의 선명한 모습을 보았던 것도 기억에 또렷하다.비바람 속에서 묵상에 잠긴 외로운 수행자를 뒤로 하고 울릉도로 돌아온 우리는 파김치 상태였다. 저녁식사 후 나와 이찬 선생의 숙소에 미국에서 오신 박시걸 시인 등 여럿이 모여 신원철 시인의 클라리넷 연주에 유튜브로 선곡을 해 들었다. 끊어졌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에 밤이 깊었다.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울릉섬을 돌고 나리 분지로 들어가는 순례길에 나섰다. 버스 운전 기사분이 들려주는 울릉 섬에 딸린 죽도 총각 이야기며 섬의 정확한 수치들에 관한 이야기는 재밌고도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리 분지는 섬의 한가운데 높은 곳에 들어앉은 아늑한 평지다. 고종실록에 섬에서 이 나리만이 관청을 둘 수 있으리라 했었다. 겨울 들면 출입이 어렵다는 이 독특한 화산섬 분지에서 우리는 막걸리 한 잔씩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막걸리 이름은 ‘씨껍데기’라 했다. 아하, 춘천 길에 ‘조껍데기’ 술이 있다면 나리 분지 길에는 ‘씨껍데기’로구나. 문득 시간강사 시절에 문흥술 선배한테 배운 강원도식 막걸리를 떠올리며 씨껍데기 주를 한 모금 마셔보는데, 약초 넣은 술은 전혀 달지 않고 시원스러웠다.아름다운 성불사, 가수 이장희 집, 예림원, 수토역사 전시관 같은 명소를 고루 돌아 숙소 세미나실에서 우리는 이윽고 학술 논의를 한다. ‘우리 땅과 시의 영토’라는 주제로 박덕규 선배가 사회를 맡으시고, 최동호, 유성호, 양은창 교수, 그리고 내가 학술발표를 했다. 이 가운데 최, 유 두 분의 발표는 시문학 속의 울릉도·독도를 논의한 것이고 나의 발표는 우리 역사 속에 남아 있는 두 섬의 기록, 기억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최근에 관심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새로운 역사인식, 특히 고대사 인식을 중심으로 두 섬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했다.다음날 우리는 드디어 독도박물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유치환 시인의 시 ‘울릉도’의 시비가 있다. 그는 해방 후의 어지러운 위기의 시대에 이 시를 썼다. 시는 역시 의미를 부여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2박 3일의 짧은 순례길. 나라와 역사와 시가 만나는, 시를 쓰는 사람들의 뱃길. 소중한 기억을 위해 짧게 옮겨 놓는다.

2024-07-22

노래 잘 부르는 방법

첫 앨범을 낸지도 어느덧 14년. 긴 시간 동안 가수로 활동한 것치고 나는 노래를 그다지 잘 부르지는 못한다. 많은 가수들처럼 노래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피나는 연습을 하고 데뷔를 한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모른 채 데뷔하여 지금까지도 부족한 실력을 조금씩 채워나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냐고 묻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래도 음악을 해온 세월이 있으니 당장 실력은 부족하더라도 나아질 수 있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보통 대충 얼버무리거나 “담배 끊으면 돼.” 정도로 성의 없게 대답을 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적절한 대답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부족하게나마 첫 앨범을 녹음할 때보다는 나은 가창력을 가지게 된 것에는 나름의 비결이 있다. 대단히 획기적인 꿀팁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나의 비결은 고민과 반성이다.노래를 잘 하기 위해서는 노래를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가수들의 노래를 들어봐야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고음을 가진 가수,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가수, 개성 넘치는 발성을 구사하는 가수 등등. 모두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만이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비유하자면 그런 것들은 피겨스케이팅의 트리플악셀이나 야구의 불같은 강속구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구사하지 않고도 최고의 반열에 오른 이들을 본 적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기본에 충실한 선수들인지도 알고 있다. 가수의 기본은 창작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다. 작곡가의 의도대로 정확한 음정과 박자를 구사하고, 작사가의 의도대로 감정을 표현하며 노래를 부르는 가수야말로 좋은 가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 나름 음악을 많이 듣고 분석하며 내린, 노래를 잘한다는 것에 대한 결론이다.또한 내가 어떻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 없이는 절대로 실력이 늘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부른 노래를 녹음해서 들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과연 나는 고민을 통해서 알게 된,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에 대한 정의에 부합하는 노래를 불렀는가. 음정과 박자는 정확한가와 감정 표현은 어떠하였는가에 대해 평가해야 한다. 스스로 평가가 힘들다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고 그것을 참고해 반성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이미 세 장의 정규앨범을 냈다. 그밖에 싱글들과 EP를 합치면 50곡이 넘는 곡을 녹음한 셈이다. 녹음을 할 때마다 나는 내가 부른 노래를 마주해야 하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서 다시 부르는 일을 몇 시간씩이고 반복해야 한다. 그야말로 형편없었던 실력을 지금만큼이라도 향상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이러한 고민과 반성의 과정 없이 많은 친구들이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서 코인노래방을 찾는다. 자신이 잘 부르고 싶은 노래를 몇 번이고 고래고래 불러보지만 실력은 늘지 않는 까닭은 앞서 말한 것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민과 반성 없는 연습은 아까운 성대만 혹사시키는 일이 된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고민과 반성의 필요성은 꼭 노래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도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나의 글이 어떠한가를 살피고 반성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종이와 전기세만 낭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도 좋은 대화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내가 했던 말들을 복기하며 반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이러한 생각의 범위를 확장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것 전반에도 적용시켜볼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고민하고, 지금 내 삶은 어떠한 것을 지향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없이 살아간다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실없는 사람이 될 수 있고,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허무한 삶을 살게 될 수 있다.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삶은 점점 바빠진다. 적극적이고 민첩한 행동이 미덕으로 여겨지다 보니 고민과 반성은 생략해도 좋은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빠뜨려서는 안 될 과정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24-07-22

여름의 맛

여름은 이상하게도 뜨거운 동시에 서늘하다. /언스플래쉬 어제는 온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잘하는 일이니까. 느지막한 시간에 일어나 뉴스를 정독하다가 뉴진스의 무대 영상을 찾아보고 단체 카톡방에서 친구들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키득거렸다. 함께 사는 강아지가 불만스러운 몸짓으로 내 손등을 긁었다. 산책하러 나가자는 것이었다. 창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며칠째 이어지는 폭우였다.비 오는 날은 몸이 무겁다. 어깨도 골반도 뻐근하다. 비가 오면 강아지 산책은 나갈 수 없다. 육체의 문제가 아니다. 날씨의 문제다. 올해 장마는 유독 지난할 것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산책은 어떡하지’하는 염려부터 들었다. 요즘 나의 고민은 이렇게 실존적이고 얕다.본심을 고백하자면, 장마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산책 안 가고 침대에 있는 것 너무 좋으니까! 알량한 소망을 들킨 것일까. 나의 강아지는 언짢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내가 괘씸하다는 듯 침대 시트를 맹렬하게 긁어댔고 양발로 등허리를 난타했다. 어쩔 수 없었다. 이 성질 나쁜 동물을 납득시키기 위해선 직접 보여줘야 했다. 악천후의 무서움을 모르는 강아지를 안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생각보다 강한 비바람에 우리는 오피스텔 로비를 빠져나가지도 못했다. 공동 현관 앞에 서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우개로 문지른 듯 희뿌연 공기 중으로 비 냄새가 훅 끼쳤다. 동시에 높다란 나무의 출렁이는 잎사귀가 보였다. 거센 비를 맞으면서 유연하게 흔들리는 가지를 존경 어린 눈빛으로 응시했다. 어때? 나는 강아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게 냉혹한 바깥 세계야. 내 뜻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강아지는 집을 향해 네발로 삐걱삐걱 걸었다. 헤엄치는 법을 잊어버린 물고기처럼.집으로 돌아와 미뤄둔 빨래며 부엌 청소를 했다. 집안일을 마치고 나니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고 나와 시원한 보리차를 들이켰다.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면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풍기에 대고 아아, 소리를 냈다. 오늘은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구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런 생각이 들자 어쩐지 난처해졌다. 돌아보면 나는 무수한 여름을 이런 식으로 지나 보냈다. 너무 한가해서 혹은 그럭저럭 바빠서. 흘러갔다는 것조차 모르고 흘려보내기도 했다. 여름은 한눈팔면 썩어버리는 과일 같은 것. 나중에 먹어야지 하고 대강대강 생각하다간 입도 대지 못한 채 버려야 한다. 뭐든 알맞게 달 때가 있어서 딱 그 시기를 즐겨야 하는데. 살다 보면 그런 게 잘 안된다.여름에 더욱 맛있는 맛을 떠올려본다. 무더운 날씨에 들이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살얼음 낀 맥주,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수박이나 밍밍하면서 감칠맛 도는 냉면. 그래, 역시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정수리가 뜨거워지는 감각도 팔뚝이나 발가락을 다 내놓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즐겁다.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은 간질간질한 마음이나 경쾌한 음악으로 가득 채운 플레이리스트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여름은 꽃무늬 원피스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 아닌가. 마음껏 화려해져도 괜찮은 날들. 동시에 한없이 가라앉아도 이상하지 않은 날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어떤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여름이었다’는 문장으로 끝나면 그럴듯해진다는 말이 있다. 그 또한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무엇이든 마지막을 맺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또 없는데, 단 한 문장으로 그것이 마법처럼 가능해진다니. 그러고 보면 여름은 참 이상하다. 뜨거운 동시에 서늘하다. 불같이 타오르는 날과 물같이 축축한 날이 공존한다. 시작부터 클라이맥스까지 모두 다 가능할 것만 같다. 여름엔 아무래도 열정적인 기세가 더 어울리지만, 잔잔하게 흐르며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 않아도 그 또한 훌륭한 서사가 될 수 있겠다. 어쨌든 여름이었으니까.오늘은 새벽부터 바람이 세게 분다. 역시나 어제처럼 침대에서 꼼지락대다가 겨우 책상 앞에 앉았다. 여름에 관해 쓰려고 했던 것뿐인데 어느덧 해가 다 졌다. 창밖을 본다. 비에 젖은 도로를 가르는 자동차 불빛이 물감처럼 번져나가는 것이 보인다.물기로 출 늘어진 여름은 곧 빳빳하게 마를 것이고 서랍장으로 들어가 다시 꺼내질 날을 기약할 것이다. 이 순간을 열렬하게 살아낼 자신이 없지만 그저 몽롱하게 바라만 보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 무엇이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문장이 내 손에 있으니.

2024-07-22

김성춘의 시론, ‘현곡(玄谷)에서’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요사이처럼 시시(屎屎)한 시가 난무하는 때가 있을까? 인구 비율에 따른 시인들의 숫자가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많은 기이한 시가 천국인 나라가 한국이다. 심지어 시인들을 배출하는 시인학교가 곳곳에서 난립하고 그것으로 밥을 벌어먹는 가난뱅이 시인이 넘쳐난다.그런데 한 번 시인이 되면 마치 큰 벼슬이나 한 듯, 세상살이를 제 혼자 다 알고 있는 현자인 듯, 정치 패거리에 앞장서고 이념의 프로파간다로 자진 나서서 세파의 정치 물결을 타는 진짜 시시한 시인(屎人)들이 넘쳐난다.경주에 사는 원로 김성춘 시인은 그 어느 시인보다 시가 어떠해야 하며, 또 시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사려 깊은 생각을 하는 몇 안 되는 시인 가운데 한 분이다. 특히 엄청나게 늘어난 시인들, 그리고 품새가 떨어지는 시를 쓰면서 스스로 자신의 문학적 지위를 가늠하지 못하는 시인들의 현 세태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한다. “친구야 앙 그렇나? 시에 명답이야 많지마는 정답은 딱히 없는 기라/우리 삶이나 시나 생각하모 엇비슷 항기라 그래 어떤 시인은 말했잖/나 시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시에 무슨 근사한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사람들은 낡은 사람이라고 요새 시가 당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말을 너무 비틀어서 난감할 때가 참 만타카이 그거 다/‘낯설게 하긴’가 뭔가 그거 때문에 그렁 거 아이가 낯설게 하기 그거 다 씰 데 없는 소리 아이가/아 하늘 아래 새로운 기 어딨노 생각해 바라 마카 다 거기서 거기 아이가 사는 거나 시나 마카 다 그런 거지 요는/사물의 본질 그 내면을 잘 봐야 하는 거 아잉가베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을 보면 되것나 앙 그렇나? 그러니 시란 자기가 찾/아서 자기가 깨닫는 묘한 거 아이가// 그런데…. 뭐라꼬? 낯설고 새로운 시가 아름답다꼬? 쉬운 서정시는 진부/해서 독자들이 식상해 한다꼬? 그건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한 말이재,/산다는 거 잠시 꿈꾸다 아지랑이처럼 가는 거 아이가, 지금 당신 곁에 시/가 있는지 몰따 우짜든지 단디 해라이!” 김성춘의 ‘현곡(玄谷)에서’김성춘 시인은 찐한 경상도 사투리로 자신의 곡진한 목소리를 그대로 호소하고 전달하고 있는데, 시인에 대한 한탄과 아쉬움이 가득 담겨져 있다. 거창하고 무거운 시론이 무슨 필요가 있나 싶게 솔직한 말이 가슴을 후빈다. 너무나 진솔해서 옳다구나 맞장구를 치고 싶은 시다. “우짜든동 단디 해라”고 경상도 말로 당부하는 원로 서정 시인의 호소가 묘하고도 실감난다.문학이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게 단순한 물질문화와 문명 변화의 요인도 있겠지만 김 시인은 그 결정적인 이유를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덜 다듬어진 시인들이 너무 많으며 시 같지 않는 시를 발표하는 잡지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예술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에 시든 신음의 비명을 내어지르는 시인(屎人)이 너무나 많은 현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언어는 무수한 대화가 만들어낸 브리콜라주다. 지역어를 소멸시키지 않아야 할 이유 중 하나다. 김성춘 시인은 시인의 역할을 암시해 주고 있다. 바로 자신의 생생한 목소리인 살아 있는 방언으로 이 시대의 시론을 요약해 주고 있다.참 시인이 할 일은 언어 속에 압축된 여러 갈래의 오랜 대화를 풀어내는 고난한 작업이며, 그러한 작업 과정에서 조그만 별꽃의 몫을 해내는 일이 시인이 해야 할 숙명적인 몫이다. 재미없는 시는 독자들이 외면하고, 엄숙한 교훈시는 재미없다.독자들은 말도 안 되는 기상천외의 언어 표현 때문에 그 시를 재밌게 느낀다. 21세기는 참으로 난해한 시대이다.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 이후 인간중심의 문명론 시대가 열리는 듯 했으나 이 또한 크리스퍼 N. 캠블이나 토머스 네일과 같은 과학철학 쪽의 반격을 받아 자연 전체 존재가 영원히 유동 상태라는 블랙홀 유물론이 등장하였다.이러한 시대에 앎의 방식이나 존재 방식도 부정형 쪽으로 기울고, 왜소해진 문학인의 나갈 길은 점점 협소해지고 있다.김성춘 시인의 자전적 시론 “시 비슷한 시들이, 또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난해한 시들이, 진짜 시 인양 시의 탈을 쓰고 착각하는 시들이 넘쳐난다. 너무나 무거운 시들, 별것 아닌 내용을 심각하게 쓰고 있는 시들도 문제다”라는 말에 귀 기울인다.

2024-07-22

일본의 대표적 군사도시였던 히로시마

4월 26일 아침, 이 날의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호텔 로비에 내려갔을 때 그곳은 수많은 외국인들로 북적였습니다. 특히 백인들이 무척이나 많았는데요. 그래서일까요?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마저 전통 일식 식당과 양식 위주의 식당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으로 상징되는 평화도시로서의 국제적 위상이 수많은 외국인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걸로 보였습니다. 이렇듯 평화도시로 널리 알려진 히로시마지만, 한때 히로시마가 일본의 대표적인 육군도시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날의 일정은 히로시마가 제국주의 시절 가졌던 군사도시로서의 성격을 알아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히로시마는 근대 일본의 군사화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성장한 도시입니다.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지 3년 후인 1871년에는 진제이 진대 제1분영이 설치되었고, 1888년에는 제5사단 사령부가 설치되었습니다. 특히 육군도시 히로시마의 역할은 청일전쟁 시기에 가장 크게 발휘되었는데요. 당시 히로시마는 거의 일본의 수도 역할을 할 정도로 중요한 위상을 차지했습니다.청일전쟁(1894.7.~1895.4.)의 발발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9월 8일에, 일본 군부는 도쿄에 있던 대본영(육군과 해군을 모두 통솔하던 최고군통수기관)을 히로시마로 옮깁니다. 보급거점과 사령부는 전선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당시의 전쟁상식에 비춰볼 때, 도쿄는 전쟁터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의 수많은 도시 중에 히로시마가 대본영 자리로 선정된 이유는 ‘전쟁터로부터 가까워야 한다’, ‘병력을 전쟁터로 보내기 위한 항구가 있어야 한다’, ‘병력을 이동할 수 있는 철도망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앞의 두 가지 조건을 갖춘 도시는 여러 곳이 있었지만, 마지막 조건까지 갖춘 곳은 당시 일본에서는 히로시마가 유일했습니다. 청일전쟁이 발발하기 두 달 전에, 히로시마에는 일본 혼슈의 최북단인 아오모리까지 연결된 산요(山陽)철도가 완성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1894년 9월 13일에는 대본영이 도쿄로부터 히로시마로 이전했으며, 그로부터 이틀 후에는 메이지 천황이 히로시마로 옮겨와 이듬해 4월 27일까지 머물렀습니다. 메이지 천황은 청일전쟁의 거의 전과정을 히로시마에 머물며 지켜보았던 것인데요. 제7회 제국의회도 히로시마에서 소집되었고, 총리대신을 비롯한 정부의 고위관료도 모두 히로시마에 모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히로시마는 명실상부하게 청일전쟁 기간 내내 일본의 수도였던 것입니다. 청일전쟁 당시 히로시마를 거쳐 대륙과 한반도로 간 일본군은 무려 17만 1098명에 이른다고 합니다.청일전쟁은 일본 입장에서는 거의 횡재에 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청으로부터 무려 은화 2억냥에 이르는 배상금을 받았는데, 이 액수는 당시 일본 국가 예산의 4년치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습니다. 이 돈으로 일본은 철도, 전화, 금융과 같은 인프라를 완비하고, 수많은 기업에 사업자금을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이익도 결코 경제적 이익에 모자라지 않았는데요. 천년 이상 패권을 쥐고 있던 중국을 무릎 꿇리며, 자신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임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일본은 요동 반도(삼국간섭으로 곧 반납)와 타이완을 식민지로 만들었으니, 바야흐로 청일전쟁은 일본을 식민지까지 거느린 명실상부한 제국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이네요.그렇기에 청일전쟁의 침략적 성격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은 당시 히로시마를 비롯한 일본 어디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895년 4월 21일 청일전쟁의 종결에 따라 히로시마 대본영은 해산되었지만, 이후에도 히로시마는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군사도시로 계속 성장하게 됩니다. 1945년 8월 원폭의 비극을 겪게 되기까지 히로시마는 침략의 병참기지이자 파병기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난 시절 히로시마가 체험한 군사도시로서의 놀라운 성장은, 동시에 전대미문의 비극을 향해 가던 거대한 아이러니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저희 일행이 청일전쟁 당시 대본영을 비롯한 많은 군사시설이 설치되었던 히로시마 성을 방문했을 때는 오전 10시가 막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본래 히로시마 대본영은 2층짜리 목조건물로 서양식의 웅장한 자태를 자랑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원폭으로 인해 전소되고 앙상한 기초석과 초라한 안내비만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평일의 이른 시간이어서일까요?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이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것과 달리, 이 곳은 방문객도 거의 없어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전쟁이 한때의 번영과 영광을 가져다줄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결코 영원할 수는 없다는 진리를 말없이 웅변해주는 듯한 풍경이었습니다. 현재 히로시마시에는 어떠한 군사시설도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평화의 히로시마’가 언제까지나 계속되길 바라며, 우리 일행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다음 행선지인 구레시로 향했습니다.

2024-07-22

미친놈들의 시대

김진국 고문 ‘미친놈 전략’(madman strategy)이라는 게 있다. 미친놈처럼 보여 상대가 합리적 대응을 못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미친놈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바둑에도 ‘정석’이라는 게 있다. 오랜 세월 경험을 통해 대응 수순이 정해진 경우다. 고수들도 그 정석을 벗어나면 손해본다고 믿는다.미친놈은 정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음 수순을 예측하기 어렵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장기 전략을 짜기는 더욱 어렵다. 미친놈의 착수를 보고서야 다음 수를 준비할 수 있다. 전략적으로 크게 손해보고 들어가는 셈이다. 또 미친놈은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만큼 무서운 놈이 없다. 결국 그런 미친놈을 만나면 공포를 느낀다. 처음부터 지고 시작한다.미친놈 전략은 헨리 키신저가 베트남 전쟁에서 써먹었다. 키신저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북베트남에 화가 난 미치광이라 핵무기를 쓰려고 한다는 가짜정보를 흘렸다. 소련이 북베트남에 협상을 종용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이다. 결과는 실패였다. 협상의 대가라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성공했다. 트럼프의 선택은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 미치광이는 정말 미친놈이라고 인식될 때 효과가 있다. 핵무기가 종이호랑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용하기 어렵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 사용을 시사하자 전 세계가 두려워했다. 푸틴이니까 사용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가장 잘 써먹는 사람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고모부를 고사포로 처형할 정도로 미친놈임을 보여줬다. 어리다고 얕보던 북한 고위층이 모두 납작 엎드렸다. 김정은이 어떤 어떤 이유로 숙청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사소한 지적이라도 당할까 봐 두려워했다. 핵무기도 김정은이라면 쓸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도 걱정한다. 전쟁 결심도 없이 미군까지 주둔하고 있는 남한의 민간인 지역을 포격하리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그는 연평도에 포탄을 170여 발이나 퍼부었다.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이 자신을 기다린다고 말했다.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은 법사위를 전무후무하게 자기 방식으로 진행한다. 상임위는 여야 간사 합의로 진행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여당 간사 선출 없이 밀어붙였다. 관례는 무시하고, 국회법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적용했다. 청원을 구실로 탄핵청문회를 열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은 청원에서 제외하게 돼 있는 국회법은 무시했다. 필요한 법만 인용한다.증인들에게 갖은 온갖 모욕을 줬다. “가훈이 정직하지 말자인가”, “귀신 잡는 해병이 부하 잡는 해병이 됐다”라고 압박했다. 증인 선서와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는 증인들에게 ‘10분간 퇴장’ 명령을 내렸다. 회의장 밖에서 10분간 벌을 서고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퇴장당하자,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퇴장하면 뭐 더 좋은 거 아니에요. 쉬고. 한 발 두 손 들고 서 있으라 해야지”라고 조롱했다. 대한민국을 지킨 예비역 장군들을 그렇게까지 모욕할 수 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위원장석으로 나와 항의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는 ‘퇴거 명령’을 내리고, “불응하면 퇴장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의원님 성함이 뭡니까”, “국회법 공부 좀 하고 오세요”라며 여당 의원들의 발언을 뭉개버렸다. 곽규택 의원에게는 “계속 저를 째려보고 있다. 의사를 진행하는데 상당히 불편하다”라면서 발언권을 박탈했다. 법사위 직원에게 “계속 째려보는지 안 보는지 촬영하라”는 지시도 했다. 코미디 같은 진행이 연일 주목받는다.국민의힘 의원들은 무대책이다. 항의하다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정 위원장 페이스에 말려들어 끌려간다. 청문회 증인들도 국민의힘 의원들을 보며 적응해 간다. 증인 선서를 거부하다 선서하고, 답변도 적극적으로 한다. 정청래 위원장의 미친놈 전략이 통한 것이다. 트럼프, 김정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정청래 위원장, 게다가 자폭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정석, 예의를 찾으려는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7-21

시민환경운동에 대한 새로운 관점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대표 최근 환경운동도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때문입니다. 변화의 방향은 탄소중립 친환경 경제활동입니다. 그래야 당면한 지구온난화, 기후위기를 극복해 낼 수가 있습니다.포항지역사회에서도 탄소중립경제를 일으키는 산업활동이 활기차게 일어나길 바랍니다.현재는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이 그 핵심 사업입니다.요즘 날씨는 지구온난화 현상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구기후변화로 인해, 기후위기, 기후재난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문제는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대처 방안입니다. 에너지절약, 차 안타기, 플라스틱 사용 안하기 등 이러한 도덕운동, 환경운동만으로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더욱이 시민의 대다수는 경제활동을 해야만이 가족들과 함께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환경산업, 환경경제도 이제 현실을 존중, 그 틀 안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특히 친환경 탄소중립 활동을 통해 일자리가 생겨나는 전(全)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그런 점에서 포항에서 진행되는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이라는 큰 사회적 경제적 아젠다는 작금 공론화가 필요합니다.포항시민들이 스스로 수소환원제철소의 필요성과 탄소중립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대중적 토론영역을 활성화 시켜 볼 시점이 된 것입니다.물론 탄소중립 실천에 있어 환경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에는 중요한 전제 조건은 변함없는 도덕적, 환경적 정신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하고 더 큰 역할은 가족의 생계와 생존을 위해 경제활동과 일을 하도록 하는 탄소중립 경제의 기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이 더욱 효과적으로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한편으로는 이번 포럼을 기점으로 포항지역사회에서 환경운동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포항시민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지구온난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논의할 수 있는 공적토론영역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 책임있는 사회운동가로서 지역사회에 대한 헌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24-07-21

제조 본원경쟁력을 높이는 방법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코로나 이후로 식당들을 보면 꾸준하게 잘 되는 곳이 있고 같은 위치에 몇 번이나 상호가 바뀌는 곳이 있다. 경기가 어려워지고 소비가 줄어 장사가 안되니 주인이 계속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때 잠시 주춤하였다가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고 더 번성하는 식당도 있다. 이러한 식당들은 기업으로 치면 나름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기업이든 식당이든 본질(本質)은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이 안되면 업계에서 퇴출되고 사회 기여도 할 수 없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남보다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들어 고객이 필요할 때 공급하는 품질·원가·납기(Quality·Cost·Delivery)의 힘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본원경쟁력이다.Q·C·D에 대하여 남보다 우위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품질의 확보이다. 우리가 음식점도 손님이 많거나 자주 가는 곳을 보면 맛이 있는 곳이다. 맛이 없으면 한두 번은 어쩌다 갈 수 있지만 다음에 또 가자고 하면 모두가 손사래를 친다. 맛이 있거나 비슷하다면 그 다음은 가격이다. 최근 물가 상승으로 인해 모든 식당들이 가격을 올리다 보니 맛이 있고 저렴한 가성비를 최우선으로 따지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품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양품을 만들어 내는 가공의 원리와 조건을 알아야 한다. 가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료의 조건이 맞아야 하며 재료를 잡아주는 지그(Jig)와 가공을 직접 담당하는 도구(Tool)를 연결하는 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여야 하고, 물 질소 산소 등과 같은 가공 보조제의 조건들이 정상 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가공을 위한 재료와 도구 설비 보조제의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오랜 경험으로도 알 수 있지만 학습을 통해 가공 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누가 작업해도 양품이 나오도록 하는 표준과 숙련된 기능이 필요하다.품질이 확보 되었다면 그 다음은 가격이다. 가격은 다른 곳에서 만들지 못하는 우리만이 생산할 수 있는 제품과 수요가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 많이 쓰이는 소비재는 일반적인 것으로 누구나 생산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경쟁력은 만드는 과정에서 누가 더 비용을 적게 들이는가 가 경쟁력이다. 원가를 줄이는 방법은 만드는 과정상에서 원가 만을 상승시키는 정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주로 정체는 재료의 불량이나 결품, 설비의 고장과 능력차, 품명교체, 사람의 능력차나 재해, 정보의 변동 등과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다.즉 생산과정의 원가만 상승시키는 가치 없는 부분을 모두 제거하여 더 이상 제거할 수가 없어 가치 있는 공정만 남은 완벽한 상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완벽한 상태는 대부분 돈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공의 원리를 이해하고 설비와 사람의 작용을 바르게 알면 돈을 들이지 않고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돈을 들이는 개량 보다는 지혜를 사용하는 개선을 하는 것이 기업은 돈을 벌고 개인도 성장하면서 모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길인 것이다.

2024-07-21

미래세대는 실험 대상이 아니다

유영희 작가 지난주 12주간 진행한 글쓰기 강의를 마치며 학습자들의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들었다. 편집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삽화도 넣고 싶어져서 간단한 이미지는 무료 일러스트나 이미지를 구해 쉽게 넣었다. 그런데 제목이 ‘코’라는 두 소설의 독후감에 넣을 이미지가 영 마땅치 않았다. 일본 작가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단편 ‘코’의 주인공 젠치 스님의 코는 턱까지 늘어져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식사하기도 불편할 정도인데, 이렇게 코가 긴 얼굴 이미지를 찾기가 어려웠다. 고골의 ‘코’에 나오는 코 없는 남자 얼굴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만드는 문집이 아무리 비매품이지만, 이미 출판되어 나온 이미지를 그냥 갖다 쓸 수 없어서 고심 끝에 인공지능의 힘을 빌렸다.나처럼 인공지능 활용도가 떨어지는 사람조차 이렇게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작은 그림이라도 그리는 상황이 되었다. 노래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유명 가수 두 명이 짧게 한 소절 부른 노래가 인기를 끌자 그들이 부르지 않은 파트를 인공지능으로 생성해서 마치 그들이 곡 전체를 다 부른 것 같은 영상이 돌아다닌 적이 있는데, 그들의 완곡을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었다. 얼마 전에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이 챗지피티를 이용해서 일상생활에 도움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웃에 사는 경계선 지능 학생의 부모에게 알려주었더니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받았다. 실제로 어느 경계선 지능인은 챗지피티가 자신의 제2의 뇌라고 고백한다. 이렇게 인공지능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그러나 모든 일에는 빛과 그늘이 있는 것처럼 인공지능의 발달에도 빛과 그늘이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직업을 잃게 될 사람도 많고, 기술이 악용될 여지도 많다. 내가 인공지능으로 그린 이미지를 보고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는 ‘선생님마저 이렇게 인공지능을 이용할 줄 몰랐다’며 불안해했다. 아차, 싶었다. 이렇게 사소한 상황에서도 불안을 느끼는 그이의 마음에 바로 감정이 이입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대회에서 대상을 받을 만큼 정교해지고 있다. 결국 무료로 쓸 수 있는 간단한 코 일러스트를 골라서 대체했다. 목소리 역시 전화에 ‘여보세요’ 같은 한두 마디만 해도 인공지능 기술로 목소리를 생성해서 보이스피싱에 악용될 수 있다고 한다.이렇게 인공지능 같은 과학기술에는 양면이 있으니 어느 한 편을 들어 옹호하거나 비판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편리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 도입은 신중하게 서서히 적용해야 한다. 몇 주 전, 내년부터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사용한다는 정책에 우려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될 것 같다. 지난 17일 뉴스에 나온 ‘AIDT 프로토타입’이라는 ‘AI 디지털교과서’의 교사 연수용 버전 상태가 심상치 않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은 붙었지만 엉성하기 짝이 없다. 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더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2024-07-21

국뽕인가, 사실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벌써 한 달이 넘어가는 듯하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유튜브 가운데 한국과 한국인을 칭찬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동영상 얘기다. 처음에는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자꾸만 보고 듣다 보니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요컨대 한류(韓流)의 세계적인 유행과 더불어 한국인과 한국을 찬양하는 국제적인 유튜버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오는 26일 개막되는 제33회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프랑스에서 건너온 여기자의 유튜브 방송이 그런 본보기 가운데 하나다. 그녀는 파리를 흐르는 센강에 입수(入水)하겠다고 공언한 파리 시장과 프랑스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한다. 지난 2년 동안 센강에 쏟아부은 3조 원 넘는 돈이 말짱 도루묵이었다고 위정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그녀는 36년 전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맞이한 한국과 한국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심층 탐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한다. 거기서 그녀가 도달한 결론은 새삼 놀라운 것이었기에 잠시 소개한다. 한국인들은 당시 하나 되어 한강은 물론 낙후한 화장실을 말끔하게 손봄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화장실 문화와 깨끗한 수질의 한강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반면에 거액을 투입했지만, 센강은 회복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고, 정치인들은 올림픽이 끝나고 난 다음 센강 입수를 고려해보겠다고 말을 바꾸었다고 한다. 파리 시민들은 여전히 노상방뇨(路上放尿)를 감행하여 곳곳에서 지린내가 등천하고, 오물이 강변을 뒤덮고 있다 한다. 이런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궁금했던 그녀에게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 이는 한국인이었다.국가와 공동체가 마주한 중대사를 위해 소중한 개인의 자유를 뒷전으로 미루고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해 한국인들은 손에 손을 맞잡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 개최에 부정적인 파리 시민 가운데 일부는 올림픽 보이콧까지 주장하며 노상방뇨와 쓰레기 투척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의식 차이가 결정적이라는 결론이 도출된 셈이다.이와 같은 결론은 두 가지 쟁점을 초래한다. 그 하나는 개인의 권리와 공공성의 충돌이 발생하면 어느 선까지 누가 물러설 것이냐, 하는 것이고, 그 둘은 그런 차이를 가져오게 만든 사회-정치-역사적인 맥락을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따라서 간단명료하며 지극히 명쾌한 단답형 결론 도출은 불가능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공론장(公論場)은 이런 경우 꽤 유용하다. 하나의 의견을 제시하고 대중의 사유와 인식을 열린 토론 마당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정해진 결과를 향해 질주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과 견해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상호 이해와 인식의 교환을 일상화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실험장이자 건강한 시민의식의 발현 공간이다.뜻하지 않은 유튜브와 대면함으로써 나의 인식과 사유가 전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분명 기분 좋은 현상이지만, 혹여 빠뜨린 대목은 없는지, 주변 사람들과 토론하고 있다. 거기서 나오는 목소리가 우리 사회의 열린 공론장 형성에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2024-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