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러브버그’

올여름 수도권은 때아닌 ‘사랑 벌레’, 즉 ‘러브버그(Lovebug)’로 불리는 ‘붉은등우단털파리’의 습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짝짓기 상태로 날아다니는 독특한 모습 때문에 이런 낭만적인 이름이 붙었지만, 도심을 뒤덮은 개체 수에 시민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폭염과 잦은 비 등 기후변화로 인해 따뜻하고 습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러브버그’가 대발생한 것으로 분석한다. 수도권의 문제로만 여겨졌던 이 도시 해충의 공습이 이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최근 대구경북 일부 지역에서도 ‘러브버그’가 출현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우리 지역 역시 기후변화가 불러온 새로운 해충 문제에 대한 선제적인 대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러브버그’는 다행히 독성이 없고 인간을 물거나 질병을 옮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충 시절에는 숲 바닥의 낙엽과 유기물을 분해해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성충은 꽃의 꿀을 빨며 수분 활동을 돕는 등 생태계에서는 ‘익충’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문제가 되는 법, 도시에서의 대량 발생은 이야기가 다르다. 수십,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다니며 미관을 해치고, 건물 외벽이나 창문, 자동차 등에 달라붙어 심각한 불편을 초래한다. 특히 산과 인접한 아파트 단지나 공원 주변에서 피해가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며, 사체는 자동차 도장 면을 부식시키기도 한다. 이는 생태계 교란의 신호탄이자, 기후변화가 우리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다. 수도권 지자체들은 ‘러브버그’의 대량 발생에 방역소독 위주의 ‘사후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살충제 방역은 ‘러브버그’뿐만 아니라 꿀벌과 같은 다른 유익한 곤충까지 없애 생태계의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수십 년간 ‘러브버그’를 겪어온 미국 플로리다주는 화학적 방제보다는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관리와 시민 교육에 집중한다. ‘러브버그’가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가 자연 소멸하는 단기적 현상임을 알리고, 자동차 보호 덮개 사용법이나 친환경 벌레 퇴치법 등을 안내하며 시민들의 불안감을 줄이고 공존하는 법을 터득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접근법은 무분별한 방역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시 생태계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제 대구·경북 지역도 ‘러브버그’를 포함한 기후변화 시대의 새로운 도시 해충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이다. 단기적인 방역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선 우리 지역의 ‘러브버그’ 발생 현황과 서식 환경에 대한 정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친환경적인 방제 기술을 개발하고,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행동 요령을 제공하는 체계적인 소통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공원과 녹지 조성 시 해충의 대량 발생을 억제할 수 있는 식물 종을 도입하는 등 도시 계획 단계에서부터 생태적 고려를 포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러브버그’의 등장은 우리에게 불편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중요한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작은 곤충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도시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07-03

최고의 효심

‘禮記’에 나오는 불효의 3가지 조건을 보면 첫째, 혼인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것. 둘째,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 것. 셋째, 무조건 부모의 의지를 쫓아 부모가 옳지 못한 데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적혀있다. 어버이날이나 생일날 무조건 선물이나 안긴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덧붙인다. 선물도 네가 좋아하는 것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 와라. 고르기가 귀찮고 힘들면 그냥 돈으로 주면 안 되겠니? 내가 그 돈으로 알아서 잘 사용을 할게. 어찌 되었든 ‘효’라는 것을 잘못 해석하지 말고 빨리 시집가서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효가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아들이 없는 우리 집에 대를 잇는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은 쓰레기통에 처박은 지 오래다. 그래서 첫 번째는 ‘혼인하지 않는다.’ 는 말에 방점을 찍어 불효로 정의하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뿌린 부좃돈에 눈이 멀어 결혼을 재촉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각인시켜 준다. 그리고 너희 결혼식 때 들어오는 부좃돈은 다 부모 돈이고, 부모 장례식 때 들어오는 돈은 너희들 돈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쓸데없이 좋은 날 침 바르는 행위를 삼가기 바란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을 잘 봐라. 그 옛날에도 자식들이 부모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그만두고 빈둥빈둥하는 꼴을 싫어했다는 방증이리라. 네 놈들에게 잔소리 들어가면서 병간호 받기 싫다. 그냥 내가 아프면 예쁜 간병인 구해다 붙여주면 된다. 너희는 열심히 일해서 간병인 인건비만 보태주면 그게 최고의 효도이다. 특히 유념할 것은 내가 병실에 누웠다고 네 엄마보고 나의 병간호를 하라고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다른 의도가 있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그동안 고생했는데 마지막까지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이 아비의 간절한 망부가(望婦歌)로 알면 되겠다. 그래도 그런 짓을 한다면 이건 불효 중의 불효라고 알면 되고 돈 아낀다고 얼굴 안 보고 간병인 구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 번째 조건이 많이 헷갈릴 것이다. 요즘 덜떨어진 노인네들은 ‘충’의 개념을 이상하게 해석하는데 충(忠)의 개념이 군주에 대한 신하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고 맹자라는 분이 분명히 정의하였다. 그래서 군신이 없는 지금엔 ‘민주’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국민이 ‘충’을 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위정자들이 지네들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아주 편하게 하려고 나라를 위한 충성이라는 핑계로 교묘히 활용하고 있고 일부 어리석은 백성은 그것을 추종하는 꼴을 본다. 이와 마찬가지로 효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무조건 ‘부모 말’이라고 해서 따라선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물레 다방 김 마담에게 빠져 술이나 퍼먹고 도박을 일삼고 있으면 말려야지 아비의 권위를 위한답시고 그냥 내버려 두면 절대 안 된다는 말이다. 수천 년 전에 말이 어떻게 오늘에도 이렇게 잘 들어맞게 쓰였는지 그저 감탄할 뿐이다. 마치 ‘랜드’라는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인 그녀가 산에 간 이유가 바로 죽은 자기애가 그린 그림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일시에 엉망진창이었던 퍼즐이 맞춰지면서 나도 몰래 감탄사가 터져 나오면서 일종의 환희심까지 생긴다. “아빠, 결론이 뭐고?” “그냥 돈으로 달라는 거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03

왕들의 피서법

요즘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리게 되면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한 여름 더위를 어떻게 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어디 가나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있어 실내에 들어서만 그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으니 참으로 행복하다. 1700년대 중국 청나라 황제들은 베이징에서 수백km 떨어진 허베이성 청더시에 여름 별장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여름을 보냈다고 한다. 피서 별장으로 불리는 청더시의 여름 별장은 황제가 머무는 동안 정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외국사절의 접견도 이곳에서 행해짐으로 이곳은 여름철이면 청나라의 제2수도가 된다. 여름 별장의 규모가 564만㎡에 이르니 현존하는 중국 최대 궁궐공원이라 한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중국과는 달리 아무리 더워도 궁궐 밖에 나가는 일은 없었다. 경복궁의 경회루나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창덕궁 후원에서 더위를 피했다. 찬 계곡물에 발을 담가놓고 부채를 부치며 수박과 참외를 먹으며 더위를 달랬다고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름철 더위가 크게 다를 바 없을 터인데 임금도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 고작 이것이 다다. 조선 9대 임금 성종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수반(水飯)을 즐겨 먹었다고 전해지는데, 수반은 찬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을 말한다. 22대 정조 임금은 더위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찾아다닌다고 만족할만한 곳이 있느냐 지금 있는 장소에서 만족하고 참고 견디면 여기가 서늘한 곳이라 말했다고 한다. 연일 계속되는 찜통더위로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여름나기를 걱정한다. 문명의 이기 덕분에 옛 왕들보다 시원한 피서를 즐길 수 있는데, 그것으로 만족하면 어떨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7-03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반려 인구 1500만의 시대, 이제 우리도 인구 셋 중 하나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동물보호와 동물복지를 위한 제도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개 식용금지법이 2027년 2월부터 전면 시행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월, 이전보다 강화되는 동물보호 방안들이 담긴 ‘동물복지 종합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세부적인 동물보호 방안들을 아우르는 법 개정안이 하나 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를 규정한 민법 개정안이다. 21대 국회 본회의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되었던 이 법안은 작년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다시 발의되었지만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이 한마디가 법전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법률관계를 구성하는 권리라는 것을 다룬다. 우리 민법은 이 권리의 주체를 자연인과 법인으로, 권리의 객체는 물건으로 한정한다. 도롱뇽이 원고가 되어 제기되었던 천성산 터널 소송이 각하되었던 이유도 도롱뇽은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권리의 객체는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인데, 이것을 민법은 ‘물건’이라고 칭한다. 동물은 법률적으론 권리의 객체 곧 물건일 뿐인 것이다. 동물이 책상, 탁상시계와 같은 물건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주인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던 요크셔테리어를 차량으로 충격해 피해 견이 평생 치료받아야 할 뇌 손상 상해를 입은 사건에서 법원은 가해자에게 해당 연령의 요크셔테리어 종의 시가 약 100만 원과 정신적 손해배상금 5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할 뿐이었다. 피해 견은 15년 이상을 함께 산, 주인에게는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반려견이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어도 해당 견종의 시가를 넘는 치료비는 배상받을 수 없다. 물건을 손괴했다면 물건의 시가를 넘지 않는 한도에서만 수리비를 배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과 동물을 똑같이 취급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과 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의 상실로 정신적 고통을 겪더라도 그저 식탁 다리가 하나 부러진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를 민법에 규정하면 동물은 단순한 권리의 객체인 물건도, 권리의 주체인 자연인도 아닌 독자적 지위를 얻게 된다. 그러면 동물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피해에 대한 배상도 실제 입은 고통에 보다 부합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고, 동물이 물건 지위에서 벗어나는 만큼 동물보호나 생명존중을 위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제도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네덜란드 등 선진국에서는 법에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이 아닌 것으로 규정한지 오래다. 미국은 주인이 사망할 경우 남겨진 반려동물의 돌봄을 위한 유산 신탁 제도까지 법제화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말을 넣을 때가 되었다. 그리고 더 나은 동물보호를 위한 단계로 차근차근 나아가면 된다. 가장 약한 생명인 동물에 대한 존중과 인식 변화는 곧 사람의 생명에 대한 귀히 여김으로, 또 우리가 사는 지구와 생태계에 대한 귀히 여김으로 나아갈 것이다. /김세라 변호사

2025-07-03

MRI 한 장에 수백만 원… 반려동물도 ‘건강보험’ 사각지대

반려동물 인구 1500만 명 시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인식은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지만, 의료체계 만큼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진료비는 병원마다 들쭉날쭉하고 공적 지원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보호자들 사이에선 “동물이 아픈 게 두려운 게 아니라 병원비가 무섭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KB금융그룹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2025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은 한 달 평균 약 19만 원의 양육비를 지출한다. 사료, 간식, 배변용품, 예방접종 등 기본 비용 외에도 병원비가 가세하면 부담은 급증한다. 실제 포항에 사는 40대 직장인 김모 씨는 반려견 디스크 치료에 수백만 원을 지출했다. 그는 “사람은 MRI 촬영도 건강보험 덕에 수십만 원 선이지만, 강아지는 검사 하나에 수백만 원이 들어 대출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진료비의 법적 기준 조차 없다는 점이다. 보호자들은 진료 전 비용을 제대로 안내받지 못하고, 치료가 끝난 뒤 고지되는 청구서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단순 엑스레이 촬영조차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까지 차이가 나며, 중성화 수술도 병원마다 방식과 가격이 제각각이다. 반려동물은 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는 가정경제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구조적 부담이 큰 상황에서 치료를 포기하거나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특히 고령층이나 저소득 보호자의 경우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생명권의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선진국들은 이런 문제에 제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영국은 ‘PDSA(People’s Dispensary for Sick Animals)’라는 공공기관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무료 또는 저비용 진료를 제공한다. 반려동물 보험 가입률도 40%를 웃돈다. 스웨덴은 보험 가입률이 90%에 달하며, 정부가 진료 항목과 수가를 직접 관리한다. 일본은 민간보험사 중심으로 다양한 상품을 운용하며 최대 70%까지 진료비를 보장한다. 이들 국가는 민간보험과 공공지원의 조화를 통해 반려동물 의료의 형평성과 접근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단순히 ‘돈 있는 사람만 치료받는 구조’를 지양하고, 모든 보호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반려동물 의료의 공공성을 제도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진료비 공개 수준의 조치만으로는 부족하며, 공공의료 항목 일부에 대해 국가가 보조하거나 민간보험을 유도·지원하는 방식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동물의료보험제도는 앞으로 인구 감소시대에 가족과 반려동물을 포함한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적 복지 장치의 하나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7-03

죽도동 연하실비 주점

조금 구라를 때려 칠엽굴(七葉窟)*에 버금가는 난장의 소굴(巢窟)이라 할 만하다 좌측과 우측이 침을 튀겨며 싸워도 그 독성의 곰팡이가 꽃으로 피는 곳 맑은 피가 난무하는 따스한 광장 이기심이 배려로 바뀌는 희한한 유전인자를 내재한 약간의 돌연변이들이 꼼지락거리며 시대를 노려보고 있다 독재에 가까운 주인의 횡포와 무례를 쌍욕으로 잠재우는 단련된 내공에 아무도 항거하지 않는다 묵묵히 제 길을 가라고 부축하기 때문이다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한 나날들이 소금으로 설탕으로 고춧가루로 온갖 음식에 녹아 있어 계절의 변화와 파도의 향기까지 누릴 수 있는데, 헛소리하다가는 본전도 못 건진다 이런 선한 강적에게는 얼른 굴복하는 것이 최선임을 나는 배운다 세상에 술집은 많고 개소리는 송도바다에 가서 풀면 되기 때문이다. *칠엽굴 : 인도 왕사성 부근 비파라산에 있는 석굴로 부처 당시 500여 명의 비구들이 모여 경(經)과 율(律)을 합송함으로써 제1차 결집이 이루어진 곳. …… 이곳은 주인의 독재에 아무도 항거하지 않는다. 알아서 챙겨주기 때문이다. 잘못 씨부리면 욕도 엄청 먹을 각오도 해야 한다. 바르게 살아온 자신감이 충만한 예쁜 교만이 가득하다. 마음이 늘 쓸쓸한 우리에게는 감추어둔 최후의, 비장의 장소 혹은 무기가 된다. 아무에게도 소개하지 않고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만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실상은 온갖 잡놈들이 다 모이는 광장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 잡놈들의 대장이자 ‘따까리’임을 자처한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7-02

청보리 바람이 머무는 섬

바람결마저 푸르렀던 5월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사는 섬 중 가장 낮은 섬인 가파도에 다녀왔다. 가파도는 이름에 얽힌 설이 여럿 있었다. 파도가 섬을 덮었다고, 생긴 모양이 가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물결이 더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가파도는 섬의 특성상 바람과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날씨가 화창해도 섬에 들어갈 수 없는 날이 많다고 한다. 나는 운 좋게도 모슬포 운진항에서 출발하는 그날의 마지막 연락선을 탈 수 있었다. 출렁이는 수면 위로 뱃머리가 천천히 나아갔다. 저 멀리 구름 아래 떠 있는 섬이 서서히 가까워지자 내 가슴은 기대감으로 설렜다. 상동포구에 다다라 배에서 내리자마자, 제주올레 10-1코스인 ‘가파도 올레’를 걸었다. 그러나 마음에 닿는 곳이 보이면 샛길로 빠져 해안도로를 걷기도 하고 마을길을 걷기도 했다. 오솔길 따라 쉬엄쉬엄 걷다가 숨이 멎을 듯한 청보리의 물결을 보았다. 푸름이 바람에 밀려왔다가 밀려가며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풀잎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포항에서 살아온 나는 해마다 봄이 오면 구만리 보리밭에 간다. 언덕 위에서 바다를 향해 살랑살랑 나붓거리는 보리를 보며, 늘 겨울의 끝이자 봄의 시작을 체감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의 물결이 계절을 지나가게 하고, 보릿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이 어느 시절의 꿈처럼 다가오곤 했다. 나에게 들숨마다 봄의 향기를 실어 나르는 푸른 숨결인 보리를 섬에서도 만났다. 가파도를 뒤덮은 푸르름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반가움이었다. 봄빛을 머금은 청보리는 바람 따라 쉼 없이 출렁였다. 마치 바다 위에 또 다른 바다가 피어난 것 같았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보리의 이마는 가볍게 눌렸다가 다시 일어섰다. 그 질서 있고도 유연한 움직임을 바라보며, 나는 한흑구 선생님의 수필 「보리」를 떠올렸다. ‘아지랑이를 몰고 가는 봄바람과 함께 온누리는 푸른 봄의 물결을 이고, 들에도, 언덕 위에도, 산등성이 위에도, 봄의 춤이 벌어진다. 푸르른 생명의 춤, 새말간 봄의 춤이 흘러넘친다. 이윽고 봄은 너의 얼굴에서, 또한 너의 춤 속에서 노래하고 또한 자라난다.’ 한흑구 선생님께서는 수필은 시의 정신으로 창작되어야 하고, 철학이 그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실제로 그의 수필집 ‘동해산문’을 읽어 보면, 시적인 명문장들이 빛을 발했다. 보리 사이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어느새 내가 섬 안으로 스며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람은 내 등을 떠밀지도 앞서 끌고 가지도 않았다. 그저 함께 머물렀다. 한참을 걷다 보니,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인 소망전망대가 나왔다. 높은 곳이라 해도 해발 20.5m로 언덕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뜻밖에도 크고 넓었다. 보리와 바람, 낮고 둥근 지붕들, 그리고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제주 본섬과 한라산은 감동적이었다. 가장 낮은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을 본다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그 순간, 마치 땅끝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발밑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밭이 펼쳐지고, 시선 끝에는 구름을 이고 선 한라산이 조용히 서 있었다. 모든 것이 말없이 하나로 엮여 있는 섬은 오래된 시간처럼 존재했다. 바다와 바람 사이에 떠 있는 가파도에서, 나는 높이와 깊이의 감각을 동시에 느꼈다. 멀리 있는 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듯했고 나의 마음은 고요한 풍경 속으로 천천히 침잠했다. 가파도에서 만난 섬사람들은 말수가 적었다. 그들은 밭일을 하다가도 바다에 잠시 눈길을 주다가 곧바로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보리처럼 허리를 숙이고 살아가는 강인한 눈빛의 사람들을 보니 내 가슴이 뭉클했다. 섬의 바람을 이겨내고 있는 것은 보리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도 함께였다. 섬사람과 청보리는 바람에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뿌리를 더 깊게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섬에 머무는 동안 나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나는 더 머물고 싶었지만, 머무름의 끝이 곧 떠남이라는 것을 알았다. 돌아오는 배에서 뒤돌아보니, 섬은 점점 멀어지고 청보리는 점점 작아졌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남은 보리는 더 넓고 깊게 자라고 있었다. /정미영 수필가

2025-07-02

만성 통증, 교감신경의 비명

몸이 아플 때 우리는 흔히 근육이 뭉쳤다, 염증이 있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특히 어깨, 목, 허리, 무릎 등 일상에서 자주 겪는 만성 통증은 ‘자세 탓’, ‘노화’, ‘디스크 때문’이라며 넘기기 쉽다. 그러나 자세를 고치고 치료를 받아도 통증이 계속되고 재발한다면 단순한 구조 문제가 아닌 더 깊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바로 교감신경의 항진이라는 자율신경계의 이상 신호다. 우리 몸은 자율신경계를 통해 내장, 혈류, 호흡, 체온, 호르몬을 조절한다. 이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나뉘며, 교감신경은 긴장과 활동을, 부교감신경은 회복과 안정을 담당한다. 현대인은 스트레스, 수면 부족, 과로, 정신적 긴장 속에서 거의 24시간 교감신경 항진 상태에 놓여 있다. 교감신경이 항진되면 말초혈관이 수축하고, 근육이 긴장하며 심박수는 증가하고, 위장 기능은 억제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근육으로의 혈류 공급이 나빠지고 노폐물과 젖산이 쌓이면서 만성적인 통증이 유발된다. 목과 어깨가 결리고 허리가 뻐근하고 턱이 뭉치고 머리가 조이듯 아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나아가 교감신경의 과도한 항진은 수면장애, 소화불량, 안절부절 못함, 가슴 답답함, 안면홍조, 잦은 소변 등 다양한 자율신경 실조 증상을 함께 동반한다. 결국 통증은 단순한 국소 문제라기보다는 교감신경의 비명이자 몸 전체가 보내는 구조신호인 셈이다.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이와 같은 전신 상태를 기울, 간기울결, 담음, 어혈 같은 개념으로 설명해왔다. 스트레스로 기가 정체되면 간의 소통 기능이 저하되고 열이 위로 치받으며 혈류가 막히고 담음이 쌓인다. 자율신경의 교란이 말초에 미치는 영향을 풀어낸 한의학적 표현이다. 치료의 핵심은 통증 부위를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율신경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침 치료는 경혈을 통해 교감신경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한다. 초음파 가이딩 약침을 활용한 자율신경 치료는 성상신경절과 미주신경 등에 작용하여 교감신경의 과흥분을 진정시키는 데 탁월하다. 몸의 전신적인 자율신경만 조절 가능한 것이 아니라 비염이나 턱관절 두통 요통 등 몸의 각 부분의 문제와 통증도 그 부위의 자율신경을 자극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한약 역시 중요한 치료축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간기울결에는 소시호탕에 치자를, 울화가 열로 변한 경우 황련이 들어가는 처방을, 불면과 심계에는 산조인탕이나 천왕보심단을, 담음과 어혈이 얽힌 통증에는 반하백출천마탕, 계지복령환 등을 체질과 증상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진통이 아닌 자율신경을 조절하는 방식의 접근이다. 우리는 종종 통증을 참고 넘긴다. 그러나 지속적인 통증은 교감신경의 과흥분이라는 경고일 수 있다. 통증을 단순히 불편한 증상이 아니라 몸의 균형이 깨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한의학은 신체와 정신, 구조와 에너지, 자율신경까지 통합적으로 바라보며 균형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교감신경의 비명을 듣고 제대로 응답할 때 통증은 비로소 가라앉는다.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도움을 받는 것이 몸을 살리는 길이다. 오늘 당신의 통증도 자율신경의 언어일지 모른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7-02

영묘사를 찾다

영묘사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처음 신라에 불법을 전하겠다는 아도에게 그의 어머니 고도령이 일러 준 칠처가람 중의 하나일 정도로 중요한 절이었다. “신라에는 부처 이전에 이미 일곱 군데의 절터가 있다. 흥륜사, 영흥사, 황룡사, 분황사, 영묘사, 사천왕사, 담엄사이며, 불법의 물결이 길이 흐를 곳이다. 네가 그곳으로 가서 불교를 전파하고 선양하면 석존의 제사가 동방으로 향해올 것이다.” 영묘사는 선덕여왕과 인연이 깊은 절이다. 선덕여왕이 창건했을 뿐 아니라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첫째는 ‘선덕왕지기삼사’ 에피소드다. 어느 겨울날 영묘사 옥문지에 개구리가 많이 모여 삼사일을 울었다. 겨울에 개구리가 우는 것이 이상하다고 여긴 사람들이 왕에게 보고했다. 왕은 듣자마자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각간 알천과 필탄은 정병 2천을 뽑아 속히 서쪽 교외로 나가 여근곡으로 가라. 그곳에 적병이 숨어있을 것이다.” 여왕의 지시로 여근곡에 숨어있던 백제 군사 5백 명을 모두 없앨 수 있었다. 선덕여왕의 지혜로움의 하나로 거론되는 일화다. 또 하나는 ‘지귀설화’다. 선덕여왕은 영묘사(靈廟寺)에 자주 행차하였다. 절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윗대 조령과 당시 삼국전쟁의 영령들을 모신 절이기 때문이었다. 혜공이라는 신이한 능력을 가진 스님이 영묘사의 화재를 미리 알고 새끼줄을 가져와 금당과 좌우 경루, 남문의 회랑에 둘러 묶고 3일 후에 풀라고 당부한다. 3일 뒤 선덕여왕이 행차하시고, 지귀의 가슴에서 불이 나서 그 탑을 태웠으나 오직 줄을 묶은 곳만은 면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다. 이 이야기는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유통되어 전승되었고, 고려시대 ‘수이전’, 조선의 ‘대동운부군옥’에 심화요탑이라는 제목의 설화로 전하고 있다. 지귀는 선덕여왕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를 짝사랑을 하였고 상사병으로 몸이 점점 여위어 갔다. 그러한 지귀의 소문은 널리 퍼졌고 소문을 듣고 지귀를 불렀다. 어리석은 지귀는 탑 밑에서 여왕을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여왕이 자신의 팔찌를 빼어 지귀의 가슴에 놓고 돌아가셨다. 잠에서 깬 지귀는 그 팔찌를 보고는 여왕이 다녀갔음을 알았다. 이에 사모의 정과 자신의 어리석음에 불귀신으로 변해 버렸다. 영묘사는 신라의 위대한 조각가인 양지가 장육존상을 만들었으며, 이때 성안의 남녀가 다투어 진흙을 날라 도왔다고 했으며 사람들은 신라 향가 ‘풍요’를 불렀다고 했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슬픔 많은 우리 무리여 공덕 닦으러 오다.” 그러나 현재 영묘사는 경주의 지도에 없다. 칠처가람 중 절이나 절터로라도 남아있는 다른 절과는 달리 영묘사는 흥륜사에 가야만 그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 몇 년전 흥륜사 주변에서 영묘사(靈廟寺)라고 적힌 기와 조각도 나왔고, 여기서 발굴된 ‘신라인의 미소’라 불리는 기와에도 명문이 있다. 현재 흥륜사는 사적 ‘경주 흥륜사지’로 지정돼 있으나 학계와 지역에서는 흥륜사지가 사실은 ‘영묘사지’라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며칠전 선덕여왕경모회에서 찾은 흥륜사 경내엔 마침 절터 발굴 중이었다. 영묘사가 제 자리에서 제 이름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7-02

7월 3일, ‘록의 정신’이 죽은 날

50대 이상 한국의 중년, 그 가운데 록음악을 조금이라도 들으며 살아온 이들에게 짐 모리슨(Jim Morrison·1943~1971)은 인간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상징 기호’로 다가온다. 54년 전 오늘은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한 날이다. 27년7개월의 짧은 삶을 살다갔지만, 그가 전 세계 청년문화에 미친 영향은 ‘노래로 미국을 점령했다’고 이야기되는 영국밴드 ‘비틀즈’ 이상이었다. 록밴드 ‘도어스’의 보컬리스트이자, 시인, 영화감독이기도 했던 그는 경직된 기독교문화가 지배하던 시절 미국에서 태어났다. 자신이 밴드를 결성해 술과 마약에 취한 채 생의 허무함을 노래할 때, 또래 청년 수십만 명이 ‘일그러진 전쟁’이라 불러 마땅한 베트남전에 끌려가 목숨을 잃는 것을 본 그는 분노했다. 중고교 시절부터 초현실주의 문학에 심취했던 짐 모리슨의 초기 노랫말은 염세적이고 난해하다. 그러나, 국익이란 허울뿐인 미명 아래 미국과 베트남 젊은 군인들이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는 비극과 참상을 인식한 이후엔 그의 가사가 바뀐다. ‘반전(反戰)’과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인본주의’의 메시지가 담기기 시작한 것. 이는 잘못된 미국의 정책에 저항했다는 의미다. “하늘은 재주가 승한 자를 부러워해 그를 일찍 데려간다”는 이야기는 동양만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통했나보다. 청년들 사이에서 드높았던 영향력을 이용해 베트남전 반대운동의 핵심으로 우뚝 설 수도 있었던 짐 모리슨은 베트남전이 끝나기 4년 전 숨을 거둔다. 록의 기본 정신은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 아닐지. 그러니, 1971년 7월 3일은 록의 정신이 사라진 날로 기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02

목적지인가 연결점인가

최근 포항이 숙원사업으로 추진해 온 영일만대교의 예산이 정부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되었다. 지역 여론은 크게 실망했고,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낙후된 지역에 대한 배려가 없다며 지역균형발전의 약속을 저버렸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 이를 다른 각도에서 조망해본다. 이번 삭감은 포항의 도시 정체성을 다시 묻고 지역의 미래 전략을 재구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대전과 대구. 두 도시는 한때 지역의 중심으로서 독자적 정체성과 상징성을 가졌었다. 대전은 충청권의 교육과 행정중심지로, 대구는 경북권의 산업과 정치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놓이고 이어 KTX를 비롯한 전국 고속교통망이 발전하면서 이들은 더이상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가 되어 버렸다. 수많은 사람과 물류가 스치듯 지나가지만 머무르지 않는 도시. 고속도로와 철도라는 선형적 교통망 속에서 이들 도시는 도달하는 지점이 아니라 연결하는 지점, 곧 중간 기착지로 재편되었다. 이에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던 도시의 정체성은 희미해졌고, 고유한 색깔도 사라져갔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영일만대교가 실제로 건설되어 동해축을 따라 부산에서 강릉, 서울까지 잇는 새로운 초고속 도로망이 완성될 경우, 포항 역시 같은 길을 걷지 않을까. 교통망이 ‘연결되는 지점’으로 전락한다. 물류와 관광 측면에서 일정 부분 효과는 있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도시’에 머물게 될 경우, 대전과 대구가 겪는 위기와 정체성의 혼란은 포항에도 예외일 수 없다. 대안은 무엇인가? 포항은 수년 전에 ‘북극항로 거점항만’이라는 담대한 비전을 내걸었다. 기후변화로 북극항로가 현실화되는 시대, 동북아 물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포항은 이 흐름 속에서 종점이 되는 지리적, 전략적 조건을 갖춘 도시다. 북극에서 내려오는 해상물류의 남단 도달지로서 영일만은 항구일 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의 최종 종착점이 될 수도 있다. 도시의 정체성을 새롭게 설계하고 해운업의 공공플랫폼인 수산·해양 관련 R&D 기관과 업체를 유치하며, 항만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도시는 물리적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도시는 사람과 기억, 시간과 의미가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도시는 ‘어디로부터 오고 어디로 가는가’에 따라 그 운명이 갈린다. 종점이자 중심이던 도시들이 교통망 발달 이후 중심을 잃고 스쳐가는 공간이 되어버렸듯, 포항도 ‘연결’만을 추구하다 도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포항이 가진 ‘종점성’을 더욱 뚜렷하게 살리는 전략을 선택하여 미래도시로서 경쟁력을 쌓아가야 한다. 물론 영일만대교는 포항시민들의 오랜 염원이자 지역의 물류와 관광인프라에 있어 중요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공을 들여왔으므로 포기할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균형 잡힌 우선순위다. 영일만대교를 집중하여 추진하되 포항이 가진 종점적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 ‘북극항로 거점항만’ 전략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선택은 도시의 손에 달려있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7-02

밥상의 온도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끊임없이 부딪히고 기대고 때로는 등을 돌리며 우리는 서로의 삶에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따뜻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인연은 차가운 물처럼 등을 타고 흐르고, 어떤 인연은 마주 앉은 밥상처럼 온기를 나눈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많은 사람과 얽혔다. 시댁 식구, 남편, 아이들, 그리고 나 자신, 그 많은 얽힘 속에서도 나를 위한 밥상 하나는 늘 부재였다. 결혼 후 생일이 되면 외식을 하거나 케이크에 초를 붙여 불었던 적은 있으나 생일상을 받은 적은 없다. 젊은 날 고생한 엄마는 치매 초기로 이제 막내딸 생일조차 가물가물 기억해 내지 못했고, 무심한 시어머니는 그런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남편은 늘 맛있는 걸 사 준다고 밖에서 먹자고 했고 나도 대개 그러자고 했다. 나도 바빴으니까. 누구 하나 잘못한 사람도 잘못한 일도 없지만 어릴 적 엄마가 차려주던 따뜻한 밥상은 늘 내 마음속에 허기를 느끼게 했다. 며칠 전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가까이 지내던 언니가 일을 잠시 쉬게 되었다며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생일도 아닌데 밥상을 차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식당에 가도 된다고 했지만 언니는 “그건 네가 받는 밥상이 아니잖아”라며 웃었다.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현관문을 들어선 그날, 나는 밥상이라는 것이 품을 들여 차려지는 관계의 온기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식탁에는 미역국이 놓여 있었다. 나를 위한 생일상 같았다. 갈비찜이 메인 요리로 놓였고 잡채, 김치, 나물 몇 가지 고추와 장아찌, 그리고 김이 바삭하게 얹힌 밥 한 공기. 하나하나 정성이 담겨 있었다. “너 요즘 스트레스 많잖아. 그냥 같이 밥이나 먹자”며 무심하게 말했지만 그 무심함 속에 눈물이 찔끔 날 뻔 했다. 밥은 배만 채우는 도구가 아니었다. 마음의 허기, 관계 속의 고독, 그리고 나조차 외면하던 나를 위로하던 한 끼였다. 따뜻한 국물 한 숟갈에 내 안의 오래도록 말라 있던 감정의 샘이 스르르 풀렸다. 말없이 전해진 온기가 말로는 닿지 못했던 속마음을 어루만졌다. 온기는 마음 깊은 곳의 메마름을 적시며 오래된 틈의 공간을 채워주었다. 생일은 달력에 적히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은 예정 없이도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마음이라는 것이 꼭 기념일이나 큰 사건이 있어야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한 날의 뜻밖의 배려가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무 약속도 없던 하루였기에 그 밥상은 더 특별했고, 아무 말도 없이 건넨 마음이었기에 더 진하게 스며들었다. 밥 한 공기의 온기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데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느꼈다. 밥상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언니는 손맛으로 나를 다독였고 나는 그 따뜻한 마음을 씹고 또 삼켰다. 한 그릇의 국, 한 젓가락의 나물이 단지 음식이 아니라 관계의 은유로 다가왔다. 진심은 늘 크고 분명한 형태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의 틈새에 스며든다. 그날의 밥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문장을 품고 있었다. ‘네가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힘을 내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의 문장들이 반찬 사이사이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조용히 받아먹으며 일상을 다시 불러올 감각을 되찾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마음을 데워주는 밥상은 몇번이나 있었던가. 인간관계는 결국 밥상처럼 차려지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국 하나 없이도 나를 배부르게 하고, 누군가는 온갖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도 내 마음을 비워놓는다. 언니의 밥상은 내게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말없이 일깨워 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언어 없는 시, 몸으로 읽는 위로였다. 온기를 나누는 밥상은 사람을 살린다. 오늘도 누군가는 밥상을 차리고, 누군가는 그 밥에 마음을 얹는다. 나도 누군가의 밥상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온기 있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고 싶다. /작가

2025-07-01

세르비아, 상처만 남은 도시들 ② 옛 헝가리 땅 노비사드

세르비아 제2의 도시, 베오그라드 북부 노비사드에 도착했다. 이곳 역시 도나우강을 끼고 형성된 도시이자, 철도망과 도나우강 운하를 통하여 중부 유럽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다. 그런 만큼 파괴를 부르는 전쟁의 역사에서 비껴가지 못했다. 그 옛날 중부유럽을 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복해야 할 땅이라는 뜻이다. 요새에서 시작되어 확장을 거듭한 도시라 이민족 방어의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페트로바라딘 성채가 견고하게 남아 있다. 도나우강을 1차 자연방어막으로 두고 그 뒤에 튼튼한 성벽을 높게 쌓아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이곳 노비사드의 역사적 특징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헝가리 땅이라는 데 있다. 나치 침략으로 어쩔 수 없이 주축국에 가담했고, 패전을 당하면서 헝가리의 국토를 좁게 만든 원인이었다. 현재도 노비사드에는 헝가리 사람이 40%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를 거슬러 보면 오스만제국이 발칸의 맹주로 떠오르자, 베오그라드 주민이 오스만을 피해 이곳 노비사드로 이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요새취락이 형성되었다. 그래선지 노비사드는 세르비아말로 ‘새로운 정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스만트루크 술탄 쉴레이만 1세가 베오그라드를 점령한 뒤 90km 떨어진 노비사드를 그냥 둘리 없었다. 놀랍게도 쉴레이만 대제가 가톨릭 세계 본거지 오스트리아 빈을 침략할 때 소수 병력을 첨병으로 보내 페트로바라딘을 순식간에 점령해버렸다. 성벽의 견고함이나, 지형지물을 보았을 때 그리 쉽게 공략당할 성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그랬다고 하면 그런 거다. 18세기가 되면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 지배에 들어가면서 절정기를 맞았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이곳으로 보이보디나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이주민이 몰려들면서 도시가 순식간에 확장되었다. 그런 이유로 노비사드에는 정교 사원을 비롯해 유대교 사원, 가톨릭 성당 등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17개의 사원이 사이좋게 서로 하늘을 향해 서 있다. 일명 세르비아의 아테네로 알려진 노비사드 중심가이자 번화한 광장 ‘슬로보데(Slobode·자유) 거리’는 역사를 반대로 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해가 저물기도 전에 남녀노소 누구랄 것도 없이 광장에 모여서 즐긴다. 사람들 얼굴에는 즐거움이 넘치고 웃음꽃이 만개했다. 레스토랑에 북적임도 한 몫 더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와 춤, 축제랄 것도 없는 이들 일상이다. 생소하게 생긴 길손은 귀동냥으로 흥을 얻어 어깨춤이 들썩였다. 그러던 중 파란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한 눈의 중년 여성과 마주쳤다. 이방인을 향한 더없는 미소에 낯선 인간의 향기가 스며든다. 광장 맞은편 네오르네상스식 시청사의 웅장한 건물이 무척 매혹적이다. 중심부에 지상 60m 높이, 뿔 같은 탑이 불쑥 솟았는데, 도시 경관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다. 개방 시간이 지난 탓에 이방인은 은혜를 입지 못했다. 이때 구름에 잔뜩 가렸던 하늘이 열리고 뾰족한 첨탑의 ‘성 마리성당’이 명암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반겼다. 하늘이 하나를 닫으며 하나를 열어 보인 게다. 파란 하늘과 성당 건물의 네거티브한 선이 매혹적이다. 구름이 심술을 부리기 전에 앵글에 담았다. 단 한 컷! 구름이 하늘을 급하게 닫는다. 상념을 깨듯 일렬횡대로 행진하듯 걸어오는 남녀 아이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하나 같이 손과 입에는 담배를 물거나 들었다. 그 중 한 명은 채 여섯 살도 안 돼 보였다. 기이한 장면에 동방의 이방인은 이 땅에 난립한 신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어린 시절이 떠올라 그만두어야 했다. 즈마이 요비아 거리 역시 매일 축제날이다. 끝을 모르는 골목, 즐비하게 들어선 레스토랑의 이국적인 정취는 이방인을 더 외롭게 만든다. 요반 요바노비치 드래곤(1833~1904)의 동상이 이방인의 발길을 잡는다. 의사이자 서정시인인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이곳 거리를 산책하였다. 1984년에 그를 기리고자 그때 모습을 재현된 기념비다. 이내 도나우공원 녹색의 한적한 공간을 지나면 도나우강 너머 페트로바라딘 요새가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 은빛 물길이 반짝이는 이 아름다운 곳이 피의 역사가 자행된 역사의 현장이다. 강변에 서 있는 ‘희생자조각(Raid The Family)’이 그날의 아픔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1942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월 21일부터 3일간 행해진 헝가리 파시스트들의 만행, 이들은 세르비안, 유대인, 집시 등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이곳에서 살육을 했다. 지구촌 어디에도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의 현장, 동상에서 눈을 감으면 더욱 생생하게 잔상처럼 나타나는 상상의 기억에서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한다. 이처럼 비극적인 역사를 노비사드 출신 조각가 요반 솔다토비치(1920~2005)가 조각했다. 밝고 경쾌하기만 한 세련된 도시에 이처럼 아픈 과거가 있다니? 숙연한 마음으로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인간은 창조보다 폭력에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떠올린다. /스토리텔링 작가

2025-07-01

침묵의 살인자 ‘폭염’… 녹지공간 확장은 선택 아닌 필수

찜통 더위, 살인적인 폭염, 지속적인 열대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듣는 말이다. 매년 7월과 8월의 여름을 대변하는 표현이 이제 6월부터 등장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점점 더 실감한다. 작년에도 그랬고, 내년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극한 더위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유럽도 미국도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지가 지난 30일자로 보도한 유럽 국가들의 더위에 관한 기사에 따르면 극심한 더위가 유럽 남부를 휩쓸고 있으며, 스페인에서는 최고 기온이 섭씨 46도에 달했고, 프랑스 본토 거의 전역이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극심한 더위가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를 강타했으며, 남부 유럽은 6월에 여름 첫 번째 극심한 더위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폭염 현상을 다양한 시각에서 진단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인 구테흐스는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으며, 위험해지고 있다”며 “어떤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고 정의했다. 기후학자는 폭염의 원인을 고기압과 뜨거운 공기가 모여 형성되는 열돔(heat dome)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여름 기온 상승은 매우 새로운 현상이다. 유럽은 산업화 이전 시대보다 섭씨 2도 이상 더 높은 온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열돔이 발생하면 더욱 심각한 폭염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의사들은 폭염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잘 관리할 것을 권장하며,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과 노약자들은 특별히 건강 리스크 관리에 특별히 신경 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위협적인 언어로 ‘침묵의 살인자(silent killer)’로 규정하기도 한다. 폭염으로 인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사고 발생률이 높아지고 때로는 대형 산불까지 유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터키에서는 산불로 인해 5만 명이 넘는 주민이 대피했으며, 프랑스 남서부에서는 여름 첫 산불이 발생해 400ha가 불에 탔고, 100명 이상이 집을 떠나야 했다. 더운 날씨로 인해 매년 전세계에서 약 50만 명이 사망한다는 통계도 있다. 더위는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기 보다 대체로 간접적인 요인으로 여겨지지만 심장, 폐, 신장 질환 등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더위에 취약해 폭염이 사망을 촉진할 수 있다. 여름철 재난이다. 폭염 재난에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의사의 권고에 따라 낮 중 가장 더운 시간에는 외출을 피하고, 집이나 근처의 시원한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게 좋다. 조용한 독서 공간인 공공도서관과 도시 숲을 찾는 곳도 좋은 선택이다. 도시의 녹지 공간이 많을수록 도시의 기온을 낮출 수 있다. 녹지는 기분을 개선하고 자존감을 향상시키며, 심지어 질병 회복을 가속화한다는 연구도 있다. 녹지 공간이 많을수록 스트레스를 줄이고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보고 듣고만 있을 수 없다. 도시의 녹지공간을 더욱 확장하고 예산을 증대하라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그 방법이다. 도지사, 시장, 군수, 그리고 기초 및 광역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사이트를 방문해 글을 남기자. ‘침묵의 살인자를 방치하지 말자! 이제 기후위기의 방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양만재 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장

2025-07-01

빅데이터, 예측 경영 시대가 온다

인터넷 이후 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 빅데이터(Big Data)이다. 미래는 빅데이터 활용 능력에 달려있다. 세상에 데이터는 많아졌다.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도구들도 많아졌다. 빅데이터 기반 예측 경영(Predictive Management using Big Data)은 기업이 내부 외부의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의사결정하는 경영 방식이다. 단순한 과거 분석을 넘어,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를 예측해 경영 전략과 실행을 조율한다. 고등학생인 딸이 출산용품 광고 메일을 받자 아버지는 매장을 찾아가 항의한다. 지점장도 마케팅 팀의 실수라 생각하고 사과한다. 하지만 얼마 후 그동안 딸의 임신 사실을 숨겨온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부모도 모르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광고 메일을 보낼 수 있었는가 놀랄 일이다. 월마트 등 유통업체들은 수많은 고객의 구매 이력을 분석해 임산부가 보이는 특이 패턴을 찾아내는 예측 모형을 가동하고 있다. 이 사건은 예측 모형에 의해 빚어진 실제 사례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빅데이터 시대’ 단면이다. 이미 세계의 많은 선진기업들은 미래 경영의 해법으로서 빅데이터 분석과 기술 개발에 투자를 하고 있다. 빅데이터 예측 경영의 절차는 첫째, 전략 정의다. 제품 수요 예측을 통한 생산계획, 불량 예측과 생산량 설정 등 예측하고 싶은 핵심 KPI(핵심성과지표) 정의를 정하는 것이다. 둘째, 데이터 수립, 연결이다. ERP, MES, CRM, IoT 등 다양한 시스템의 통합 관리를 통한 이상치 제거, 결측치 보정, 정규화 등 원하는 데이터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셋째, 분석 모델 설계이다. 머신러닝, 시계열 모델, 통계 모델 등 예측 알고리즘을 선택하는 것이다. 넷째, 예측 실행 및 시각화이다. 예측 결과를 대시보드화하여 직관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다섯째, 지속적 개선이다. 예측 정확도 모니터링과 피드백으로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예측 경영 기반을 확보하는 일이다. 예측 경영의 기술적 접근 방법으로는 계절성 추세를 반영한 수요, 매출 예측의 시계열 분석(ARIMA), 품질, 이탈, 고장 가능성 등 다중 분류 방법의 머신러닝, 설비 센서 분석 등 복잡한 시계열 예측의 딥러닝이 있다. 고객 유형 분류, 제품 사용 패턴 그룹화 등 클러스터링 및 분할, 강화 학습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생산라인 조건 자동 최적화 제안 등이 있다. 필자가 컨설팅 하고 있는 P사는 설비 예지보전 및 품질 예측에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공정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 생산 조건과 불량 패턴을 찾아 생산 제품 품질을 예측하고 대응한다. 설비 고장 가능성을 사전 감지 등으로 품질 민감 공정의 불량률 30% 이상 감소, 설비 가동률 향상 등이 있다. 특히, 1990년대부터 오랜 시간 MES, ERP, IoT 센서, CRM 데이터 등 시스템 생산을 구현해왔다. 이런 종합 데이터를 활용하여 제철소 제선, 제강, 압연 등 메인 공정의 연결 및 개별 공장의 생산 최적화를 구현하고, 생산 경영 효율화, 예측 경영을 실현하여 미래 경쟁력을 확보 해나가고 있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7-01

새로운 문화 아이콘 ‘詩뜨락’

때 이른 폭염의 기세가 만만찮다. 초복은 고사하고 소서마저 코앞인데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위가 연일 대지를 후끈 달구고 있다. 장마가 주춤하는 틈새를 타고 잽싸게 파고드는 더위에 벌써부터 열대야가 나타나고 매미소리가 들리면서 올 여름의 폭서를 예고하는 듯하다. 암록(暗綠) 속에 붉은 등을 밝히듯 능소화가 처연하게 피어나는 어느 뜨락에서는 때 이른 무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진지함의 열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담쟁이 넝쿨이 늘어지고 감나무와 모과나무 잎새가 반겨 맞는 뒤뜰에서는 악기의 잔잔한 선율이 흐르고 시낭송의 목소리가 다소곳이 피어나며 간간이 웃음과 환호, 박수 소리가 터지면서 정겹고 흥겨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도심 속의 작은 쉼터 같은 그곳에서는 사람과 문학이 만나고, 예술과 정담이 이어지며 어울리고 교감하는 낭만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른바 ‘詩뜨락(시가 흐르는 뜨락)’으로 일컬어지는 시낭송 문화마당이 누리달 끝자락에 소담스레 펼쳐진 것이다. ‘시뜨락’은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경향의 문인을 작은 뜨락으로 초대해 시낭송회를 열고, 시에 대한 이야기와 문학의 삶을 나누며 독자와 소통하는 시낭송 북콘서트이다. 즉, 활자로 된 시를 목소리와 음향을 곁들인 소리예술로 풀어내면서 시에 담긴 은유와 감동을 더해주고, 초대시인과의 대화를 통해 문학과 예술적의 삶을 공감하고 소통하며 새로운 시낭송 문화를 일궈가는 작은 발돋움이라 할 수 있다. ‘시의 행간에 목소리가 스며들어/그림을 그리듯 날개를 달아주니/비로소 시의 꿈이 피고 맵시마저 곱구나//···.//꿈결같은 시가 흐르는 뜨락에는/바람의 몸짓으로 시흥(詩興)이 어우러져/새로운 문화의 요람 향기 짙게 울리네’ -拙시조 ‘시가 흐르는 뜨락’ 중 그러한 ‘시뜨락’ 북콘서트가 벌써 열번째를 맞아 다양한 레퍼토리로 풍성하게 열렸다. 특히 올해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집, 김소월의 ‘진달래꽃’ 발간 100주년을 맞아 시인의 삶과 시 세계를 재조명하고 시낭송·시극·시노래·우정 시낭송 등으로 다채롭게 펼쳐졌다. 특히 어린이 출연진과 기타·아코디언 반주를 곁들인 소월 시노래를 관객들과 함께 부르며 교감하고, 100년 전의 ‘진달래꽃’ 시를 초판 그대로 충청도·전라도·함경도·경상도 사투리 버전으로 낭송하며 시극 퍼포먼스를 펼쳐 보일 때는 청중의 탄성과 환호가 연발했다. 그리고 시낭송 출연진들이 일일이 붓으로 쓴 시화작품을 뒤뜰의 소나무~감나무 사이의 줄에 매달아 바람 결에 살랑거리고, 또한 소월 시와 초대시인의 시를 붓글씨로 활달하게 시서(詩書)작품을 길거리에 미니 전시해 이색적인 시회(詩會) 분위기를 물씬 자아냈다. 그야말로 한국 현대시를 기적처럼 꽃 피운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시뜨락에 그득해지며 청중들에게 문학과 음악, 예술이 어우러지는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었다고나 할까? 문학과 문화는 이렇게 독자와 청중이 교감하고 호흡하며 다양한 테마로 새로운 시도를 보일 때, 지속가능한 힘과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책으로 엮은 시를 복합적인 콘텐츠로 살아 숨쉬게 하는 ‘詩뜨락 북콘서트’가 지역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길 기원해 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7-01

자율주행 자동차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교통수단의 발달은 인류 생활의 편의를 높이고 거리를 단축시키면서 인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람들의 활동 범위가 확대되고 짧은 시간에 많은 공간을 누리게 됨으로써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 동물을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역사에서부터 배, 기차, 자동차.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끊임없는 도전은 우주 공간까지 넘나들게 했다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가 자율주행 기술로 신차 배송에 성공했다는 발표를 했다. 텍사스 공장을 출발해 고속도로를 거쳐 30분 거리의 차주에게 차량을 배송했다고 한다. 운전자 없이 고속도로에서 최고 116km 속도를 내고, 교통신호등을 완벽히 소화하며 차주 집 앞까지 도달한 것이다.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차량 내부와 원격조작 모두 일절 사람이 개입하지 않은 완전 자율주행으로 운행됐다”며 이런 경우는 업계 최초라 자랑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1970년대 후반부터 초보 수준의 연구가 진행됐으나 아직 완벽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각종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자율주행차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차 운행 성공은 자율주행차 시대를 알리는 예고편이다. 자율주행차가 본격 보급되면 운전자 부주의에 의해 일어나는 교통사고는 확 줄어든다. 현재 교통사고의 95%가 운전자 부주의에 의한 사고다. 또 교통 정체가 감소하고 교통경찰과 자동차 보험이 필요 없어지는 시대가 도래할 지도 모른다. 교통혁명은 늘 기술을 넘어 인류의 생활방식에 변화를 안겨주었다 자율주행차 시대 역시 인류의 생활방식에 또 다른 변화를 줄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01

무기력한 국힘, TK민심도 심상찮다

국민의힘에 대한 대구·경북(TK) 민심 이반현상이 심각하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를 보면, 정당지지율이 민주당에 뒤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전에 없던 일이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TK지역 정당지지도 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이 40.7%로 국민의힘(35.4%)을 5%p 이상 앞섰다. 전국적으로도 민주당(50.6%)이 국민의힘(30.0%)을 압도했다. 지난달 27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TK지역 정당지지도 조사에서는 국민의힘(31%)과 민주당(28%)이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을 보였다. 전국적으로는 민주당 43%, 국민의힘 23%였다. 국민의힘으로선 당 지지도 하락보다 더 위기의식을 가져야 될 부분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인 TK민심이다. 갤럽 조사에서는 TK지역에서도 이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한다’(44%)는 응답이 ‘못한다’(33%)를 10%p 이상 앞섰다. ‘친 이재명 정서’가 TK지역에서도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은 대구 23.22%, 경북 25.52%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최근 정당별 지지도를 종합해 보면,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 격차가 20% 정도로 굳어지는 것 같다. 중도층의 야당 외면에 보수 지지층의 이탈이 맞물린 결과다. 국민의힘 내에서조차 “대선 패배 이후 당이 한 달 동안 쇄신안 하나 내놓지 못하고 퇴보적인 걸음을 한 걸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라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이 당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는 깊은 기득권 구조가 있다면, 그 기득권이 당의 몰락을 가져왔으면서도 근본적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면, 국민의힘에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고 했다. 옛 친윤(친윤석열)계를 비롯한 구(舊)주류 세력을 겨냥한 발언이다. 국민의힘은 지금 계엄과 탄핵 사태, 뒤이은 대선 패배까지 겪고도 반성은커녕 국민에게 어필할 개혁안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탄핵 반대 당론’ 철회 등 김용태 전 위원장이 내놓은 혁신안들은 그가 퇴임하면서 흐지부지돼 버렸다. 옛 친윤계와 영남권 의원 지지로 당선된 송언석 원내대표가 등장한 이후로는 당이 쇄신보다는 당권 경쟁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이에 비해 이재명 대통령은 진영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적인 행보를 하면서 국정 지지도를 견인하고 있고, 민주당은 여전히 국회에서 독주하고 있지만 지지도는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이제 기댈 곳은 민심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리더십으로 자기 파괴적 수준의 내부 개혁을 하지 않는 이상 지지율 반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특히 ‘친윤 정치’ 청산은 불가피하다. 김용태 전 위원장이 퇴임식에서 밝혔듯이, 지금 보수 야당은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국민이 외면한다. 윤석열 정권의 유산이라는 굴레에서 자유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이 친윤계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면 TK국회의원들이 당 혁신에 가장 앞장서야 한다. 강성 보수 지지층의 ‘배신자 낙인’을 겁내서는 갈수록 당이 위축될 뿐이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7-01

돌발가뭄·불기둥·녹조 경보… 기후위기, 재난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기후 위기의 심화로 전통적인 재난 개념이 송두리째 재편되고 있다. 장기적인 가뭄이나 계절성 장맛비 같은 익숙한 현상 대신 불과 수일 만에 전국적 타격을 주는 ‘돌발가뭄(flash drought)’, 불기둥처럼 치솟는 화염 토네이도, 그리고 이른 시기의 녹조경보 등 전대미문의 극한상황들이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다. 최근 안동댐, 임하댐, 영천댐, 운문댐 등 주요 수자원에 ‘돌발가뭄’이라는 용어가 언론과 전문가 사이에서 급부상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낸 김승완 한국에너지공대 교수는 비영리 기후연구단체 ‘넥스트’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의 돌발가뭄은 기존 예·경보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경고했다. 극한 재난의 양상은 비단 가뭄에 국한되지 않는다. 2023년 예천, 문경, 영주 등에서는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23명이 숨졌고, 청양에는 단 이틀간 540mm의 폭우가 쏟아지며 천년 빈도의 기록을 경신했다. 서울 강남은 2022년 ‘물 폭탄’으로 불릴 만큼의 폭우에 침수됐다. 산불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3월 경북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은 일명 ‘불 폭탄’과 함께 불기둥 비화(화염 토네이도)까지 동반해 1조1306억 원 규모의 피해와 함께 2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는 캐나다, 미국, 호주, 유럽 등 세계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구 종말처럼 타오르는 산불’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기온도 점점 오르고 있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국내 평균기온은 평년 대비 1.7도 상승했고, 기상이변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4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낙동강 오염도 결국 기후변화와 일맥 상통한다. 지난해 대구에서 부산까지 녹조 경보가 발령되며 낙동강 전 구간에서 중금속과 독성 미생물 마이크로시스틴으로 인해 문제가 대두되면서 1300만 명의 생명줄인 식수원이 위협받고 있다. 또 하나의 ‘기후 재난’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기상 전문가들은 “기존 일기예보 방식으로는 이러한 기후 재난들을 예측하거나 대비하기 어렵다”며 “산과 들에 7만 개의 소규모 저수지를 분산 설치해 400억t 규모의 홍수 유실수를 보존하고, 사계절 안정적인 수자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환경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안전망을 위협하는 요소”라며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선 정책, 경제, 교육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이상 고온과 집중호우 등 기상이변이 반복되는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형 담론이 아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체감되는 재난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재난의 정의조차 새롭게 써야 하는 지금,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시민단체 ‘기후정의안동’의 박선영 대표는 “더 이상 탄소중립을 말로만 외쳐서는 안 된다”며 “지역 기반의 에너지 전환과 친환경 교통 인프라 확충에 대한 실질적인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5-06-30

한국, 6월의 과제

2025년 6월, 마지막 토요일이다. 75년 전 이달 25일은, 북한이 선전포고 없이 기습 남침하여 전쟁을 벌인 날이다. 3년 1개월을 끈 전쟁은 사상자만 475만 명이 넘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끔찍한 비극, 동족상잔이자 아직 휴전 중인 과제다. 만일 유엔군의 참전이 없었더라면, 우리 자유대한민국은 그때 사라지고 말았으리라. 한반도를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야욕에 미친 북한 김일성은 소련과 중공 즉, 외세의 묵인과 지원을 업고 동족에게 살인총구를 들이댔었다. 자력보다 외세의 도움으로 일본 강점에서 해방되자마자 나라는 남북으로 갈렸다. 분단 5년이 되어갈 무렵, 이 강토에 6‧25 동족상잔 전쟁 참화가 벌어진 것이다. 북한은 이제, 남한을 별개 국가로 취급하며 휴전선에 방호벽을 쌓고 소통하던 도로들도 끊었다. 반면, 한국은 이달 6‧3대선에서 믿을 수 없는 개표 결과로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했다. 부정선거 의혹을 받는 세력이 입법, 사법, 행정부를 다 장악함으로써 내부 체제전쟁이 더욱 치열하게 되었다. 거리에는 한 정당이 “가짜 대통령인 줄 미국도 안다.”라는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한국, 6월의 과제가 더 깊어진 것이다. 부정선거 척결운동이 일어난 지 5년이 지났어도, 정치꾼들은 무심하다. ‘선관위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의원 나리’들은 가련한 소인배일 뿐이다. 이영돈 PD와 전한길 강사도 처음엔 ‘정보통신 강국에 부정선거는 있을 수 없다’라고 믿었는데, 선거 실상을 캐볼수록 의혹이 커졌고, 선관위 발표 선거 데이터를 보고 부정선거를 확신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직장에서 품질관리 업무에 숫자를 다루었던 나는 선거 데이터를 보는 순간, ‘이건 가짜다!’란 속말이 절로 나왔었다. 부정선거 의혹만 제기해도, 정치권이나 언론 등에서 근거 없이 ‘음모론자나 확증편향자’로 매도한다. 이달 중순, 이곳에서도 한 변호사가 “사회를 피폐하게 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이란 칼럼을 신문에 실었다. 한 독자가 장문의 댓글로 “다양한 전문가들이 합리적인 증거와 분석”으로 하는 주장을 “무조건 외면하고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것”이 “지성인일까요?”하고 물었다. 나도, 이번 대선 선관위 발표 데이터로 직접 계산한 포항 북구 사전-당일의 투표득표율 댓글을 썼다. 관외 관내가 각각, 이재명 +16.99%, +21.75%, 김문수 -26.71%, -22.98%, 이준석 +8.96%, +1.37%라는 사실을 밝히며 “이를 상식적 국민이 어찌 받아들일까요?”라 묻고, 음모론 주장 전에 선관위 홈피에서 개표 데이터를 뜯어 보기를 권했다. 포항 북구 1, 2위 득표자의 사전-당일 투표득표율 차이는 이재명이 김문수보다 관외 43.70%, 관내 44.73%가 높다. 이 값은 과연, 무슨 진실을 품었을까. 이제, 한국 부정선거 문제는 국제 문제로 커졌다. 6‧3대선에 국제선거감시단(IEMT)이 한국에 와서 조사한 결과의 기자회견이,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26일 오전 11시(현지시간, 한국시간 27일 0시)에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이 사실을 우리 주류언론은 보도를 않는다. 암튼, ‘한국, 6월의 과제’가 국익에 도움 되는 쪽으로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강길수 수필가

2025-06-30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지금은 베이지안 시대!’ 인공지능 시대를 함축한 한 줄 문장이다. 어느 날 갑자기 목이 간질거리고 몸이 으슬으슬 떨리면, 우리는 ‘감기에 걸렸을 수도 있다’ 는 가설을 세운다. 그런데 이어서 열이 나기 시작하고 기침까지 나오면, 우리의 믿음은 더욱 강해진다. 이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가설을 수정하고, 믿음을 조정하며 살아간다. 좀 어려운 이야기지만, 인간은 기존에 의지하였던 절대적 진리나 확실성을 버리고, 더 나은 예측과 점진적 갱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삶을 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즉, 확실성을 추구하던 시대에서 불확실성을 계산하는 시대로, 고정된 진리에서 유연한 믿음의 조정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한 것이다. 흄은, ‘우리는 확신없이 살아간다’ 고 말했고, 포퍼는, ‘우리가 틀릴 수 밖에 없다’ 라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베이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라고 말한다. 베이즈의 정리에 따르면, 인간은 ‘확률로 사유’한다. 우리는 외부 세계를 직접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만든 가설모델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예측하고, 감각과 실재 차이를 줄이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측한 것’을 본다. 현대 신경과학은 이 베이즈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인간의 뇌는 베이지안 기계’ 라는 주장을 펼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엘런 튜링, 폰 노이만, 존 내쉬 그리고 토마스 그리피스 같은 학자들에 의하여 확률, 정보, 게임이론, 심리학과 인공지능을 통합하여 생각하는 시스템에 대한 수학적 모델을 구축하게 했다. 이러한 학문적 기풍은 이후 캘리리포니아, MIT, 그리고 옥스퍼드 등지의 베이지안 인지과학과 인공지능 모델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예측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려 하며, 예측 오차를 줄여 자기 보존을 시도하는 기계이자 지능’이라는 ‘프린스턴의 자유에너지 이론’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이처럼 우리의 뇌는 예측하는 기계이다. 베이지안은 불확실성을 계산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예측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고, 이에 필요한 자유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하여 행동하고, 학습하고, 감각을 조절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 인공지능의 학습 방법이 이것이다. 인공지능은 예측하는 존재이다. 단순히 계산하는 기계를 넘어 예측하고 추론하며, 자기 상태를 갱신한다, 인공지능은 확률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며, 스스로 데이터를 수용해 새로운 믿음을 형성한다. 우리는 베이지안 시대에서 살고 있다. 프린스턴이 남긴 자유에너지의 길 위에서 행복한 삶을 예측하는 존재이다. 더불어, 인공지능이라는 진화하는 새로운 지성과 동행하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도 인공지능도 같은 방식으로 예측하고 진화한다. 한 시대가 가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자! 도로교통법이 존재 하지 않는 세상. 자동차의 소유가 필요 없는 세상. 차로 인하여 사람의 목숨이 좌우되지 않는 세상.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가!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오차를 줄이고, 갱신하므로 존재한다’ 토마스 베이즈와 일런 머스크를 위하여 건배!! /공봉학 변호사

2025-06-30

매운 닭이 만든 ‘10조 라면’ 신화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K-00 열풍’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K-팝’은 아시아와 유럽은 물론,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까지 한국 보이밴드와 걸그룹을 흉내 내며 춤추게 한다. 나라 이름조차 한국인들에겐 생소한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한국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10대 소년들을 직접 본 기자는 그들의 ‘K-팝’ 사랑에 놀라기까지 했을 정도. 성장세가 다소 꺾이긴 했으나 ‘K-뷰티’의 인기도 태국과 베트남, 중국과 라오스 시장을 넘어서고 있다. 고가의 명품 화장품이 만들어지는 프랑스에서조차도 한국 화장품으로 한국 연예인의 화장법을 따라하는 소녀들이 생겼다고 한다. ‘K-푸드’에 주목하는 외국인은 이제 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사실 한국 음식을 사랑한 해외 스타들은 이전에도 적지 않았다. 1980년대 ‘팝의 황제’라 불렸던 마이클 잭슨은 비빔밥 마니아였고, 둘째가라면 서러울 할리우드 최고 인기 배우 톰 크루즈가 한국을 찾을 때마다 ‘음식 기행’을 다니는 판이니. 한국 여행을 계획하는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 음식의 맛이라고 한다. 수천 가지 재료와 수십 가지 조리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마법 같은 ‘K-푸드’의 매력. 바로 이 매력이 한국의 한 식품기업 시가 총액을 10조 원으로 만들어줬다. 삼양식품이다. 얼마 전부터 그 회사 주식은 ‘황제주’로 불린다. 매운 닭볶음 양념에 면발을 비벼 먹는 스타일의 라면은 미국과 중국에선 없어서 못 파는 제품이 됐다. ‘매운 닭이 신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6-30

'내면성'에 대하여

‘내면성’은 독일어로는 ‘인너리히카이트(Innerlichkeit)’, 이를 영어로 옮기면, ‘인테이어리티(interiority)’, 한자로 ‘內面性’이다. 문학의 ‘내면성’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는 날들이다. 어찌 되었든 번역어처럼 느껴지건만, 그럼에도 나는 이 말에 어떤 밀착감을 느낀다. 요즘처럼 이 문제가 심각하게 생각되는 때도 없었던 것 같다. 근대문학, 곧 현대문학은 내면성의 문학이다. 이 내면성은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Die Theorie des Romans)에서 그 의미가 잘 개진되어 있다. 거기서 이 말은 단순히 심리의 안쪽 측면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 말은 “세계로부터 소외된 주체의 존재 방식, 주관적 진리, 정신적 고뇌”와 같은 의미를 띤다. 그는 말한다. 옛날, 저 그리스적 고대에 있어 사람들은 서로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다. 그네들의 삶은 일종의 ‘원환성(Rundheit, roundness)’을 뗬다. 원환적이라는 것은 둥그렇다는 것, 비유적으로 서로 공동체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는 어감을 선사한다. 완결되어 있고, 조화롭게 통일되어 있다는 뜻을 갖는 ‘게쉴로센하이트(Geschlossenheit)’는 그 개념적 의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루카치는 말하는데, 공동의, 공통의 가치를 나누어 갖지 않는다. 특히 ‘문제적 개인(das problematische individiuum, problematic individual)’은 공동의 가치라 믿어지는 것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품은 자다. 현대사회에서 이 공동의 가치란 한갓 환상이거나 거짓된 믿음, 속물적·속류적 믿음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쉬운 공동의 가치를 믿지 않는 자는 이 ‘공동 환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런 질문, 일제강점기에 작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물음을, 최근 들어 더 빈번하게 스스로에게 던져보곤 한다. 참 많이도 힘들었을 것이다. 체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일본은 전쟁에서 늘 승리하고, 그러니 조선이 해방될 날은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권력의 힘에 떠받쳐진 잘못된 논리, ‘거짓된 진리’가 ‘백주대낮’을 지배하는 것이다. 작가들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쓸 수도 없다. 직접적인 정치적 폭력이 일차적 원인이라면, 다른 하나는 대중의 압력이다. 방향성 없는, 잃은 대중의 심리는 요원한 미래를 알지 못하기에, 다른 말을 하는 자를 믿지 않는다. 미쳤다고 한다. 이름하여 채만식 소설 ‘소망(少妄)’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젊은데도 벌써 미쳐 버렸다. 그는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고 광화문 한복판에 나가 서서 너무 춥다고 한다. 오늘날 문학의 내면성은 이 춥다는 외침조차도 잃어버린 단계에서나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은 숱한 말들을 쏟아내지만 진짜 내면성의 문학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어쩌면 지독하게 내면적인 작가들은 차라리 발표할 말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니, 감추고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아니, 이런 내면성은 차라리 축조되지 못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침묵에 가까운, 진정한 말을 생각한다. 꿈꾼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직 덜 외로웠던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6-30

잘 달릴수록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힘이 세질수록 책임도 커진다. 어린아이가 갑자기 거인의 힘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무심코 흔든 팔에 크게 다칠 수도 있다. 학교 총기 사고가 잦은 미국에서 10대 청소년의 총기 소지 허용 여부가 논란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주 최부잣집은 가진 것이 많을수록 책임을 크게 진 좋은 사례다. 1년에 1만 섬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고,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지 말며,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자손들에게 남겼다. 가문에 시집온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만 입게 했다. 며느리에게도 가훈을 몸으로 받아들일 시간을 준 것이다. 집안 어른이 잔소리를 한마디 하면, 그것이 전달될 때는 두 마디, 세 마디로 늘어난다. 시장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주무관에게는 엄청난 압력이 될 수 있다. 시장이 의논하려고 한마디 하면 그것을 결정 사항으로 받아들이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자리가 높을수록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고 한다. 하물며 대통령이 하는 말의 무게는 비교할 수 없이 무겁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의견이 64%였다. 잘못하고 있다는 의견은 21%에 불과했다. 덩달아 정당 지지도도 민주당이 43%, 국민의힘은 23%로 절반에 불과했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에서만 국민의힘(41%)이 민주당(27%)을 앞섰을 뿐, 나머지 모든 시·도에서는 모두 민주당에 밀렸다. 부산·경남도 민주당이 우위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홈페이지 참조) 내년 지방선거 결과가 눈에 보인다. 그러나 ‘부자 몸조심’이란 말이 있다. ‘잘 나갈 때’, ‘가진 게 많을 때’ 절제해야 한다. 민주당의 기세는 국민의힘 덕분이다. 민주당이 잘했다기보다 국민의힘이 잘못한 탓이다. 자만할 때가 아니다. 그걸 알아서인지, 이 대통령은 내년 선거에 전력을 다한다. 그는 부산에 해양수산부를 연내 이전하라고 지시했다. 부산 시장 출마가 유력한 전재수 의원을 장관으로 지명했다. 추경으로 전국민 소비쿠폰을 뿌린다. 그렇지만 정권을 장악했다는 자만심을 감추지 못한다. 언행이 거칠다. 민주당은 지난주 국회의 핵심 상임위원장을 일방적으로 선출했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야당과 협의해 온 전례를 무시했다. 국회의장과 나누어 맡던 법사위원장도 일방적으로 차지했다. 예결위원장, 문체위원장, 운영위원장도 선출했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증인·참고인을 한 명도 부르지 않고 끝냈다. 야당이야 뭐라건 이번 주에 임명할 태세다. 상법·양곡관리법·노란봉투법 등 쟁점 법안을 포함해 40개 법안을 모두 밀어붙일 예정이다.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다. 대통령도 같은 당이다. 거칠 것이 없다. 이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를 대통령실에 초청한 자리에서 국민의힘 김용태 비대위원장에게 “젊은 비대위원장을 털면 안 나올 것 같냐”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 요청에 대한 답변이다. 아무리 젊어도 국민의힘의 대표 자격이다. 대통령 말은 야당 의원이 하는 말과 다르다. ‘제왕’이라고까지 불리는 막강한 권력자다. “너도 한번 당해 볼래”라는 위협으로 들 릴 수밖에 없다. 김민석 후보자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을 장관으로 추천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국민 검증 받으실 좋은 기회 얻으시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과 비슷한 뉘앙스다. ‘너도 털릴 각오 해라’라고 주 의원을 위협하는 것으로 비친다. 주 의원도 그렇게 항의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27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부동산 대출 규제 방안을 “대통령실 대책이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실과 금융위가 별개의 정부인가. 취임하는 순간 대한민국 정부의 조치는 모두 이 대통령의 책임이다. 역대 대통령의 지지도를 보면 모두 취임 이후 내리막이다. 취임 직후가 가장 인기를 누렸다. 내리막을 막을 수는 없었다. 추락 정도를 얼마나 늦추느냐가 관건이다. 원인은 대부분 스스로 만들었다. 실언과 실책으로 점수를 잃었다. 경계할 것은 야당이 아니다. 자신의 오만과 무절제가 적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6-29

훌륭한 노인 되기

조금 불쾌한 일이 있었다. 프로듀싱 하고 있는 음원이 있어서 처음 가 보는 스튜디오에 방문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스튜디오 사장님께 주차를 문의드렸고, 사장님은 건물 앞에 공간이 비어있다면 주차를 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건물 앞에는 내 차가 겨우 들어갈 만 한 협소한 공간이 있었고 나는 여러 번 차를 왔다 갔다 하며 힘겹게 주차를 마쳤다. 그런데 내 차가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부터 따가운 시선을 보내던 노인이 한 명 있었다. 차에서 내리려고 안전벨트를 풀자마자 노인은 다가와 짜증스럽게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왜 여기다가 차를 대, 차 빼(요).” 내가 ‘요’라는 글자를 괄호 안에 넣은 이유는 그 ‘요’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애매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반말과 존댓말 사이를 가로지르는 그 퉁명스러운 말에 나도 기분이 상했다. 스튜디오 사장님이 여기 대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거기는 세입자고, 내가 건물주요. 빨리 차 빼(요).” 건물주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것도 짜증났고 저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모를 명령조의 말도 짜증났는데 거기에 노인은 다시 왔다 갔다 하며 차를 빼고 있는 내게 혼잣말을 가장한 훈계와 재촉을 뱉어대고 있었다. 차를 다른 곳에 주차하고 돌아와 여전히 거기서 짜증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노인에게 선생님께서 건물주건 하느님이건 내가 반말과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으니 예의를 갖추어 이야기를 해 달라고 말을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내 뒤통수를 향해 노인은 뭐라 뭐라 소리를 질러 댔는데 굳이 귀기울여 듣지는 않았고, 해프닝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아마 그 노인은 내가 스튜디오를 떠난 뒤 스튜디오 사장님을 찾아가 내 이야기를 하며 버르장머리니 싹수니 하는 말을 꺼내며 욕을 해댔을 것이다.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장유유서’라는 말이 존재하고 연장자에 대한 공경을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많은 연장자들이 공경을 복종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공경이라 함은 존경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공손한 태도일 것이다. 연장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존경하기 힘든 언행 앞에서마저 깍듯이 대하길 바란다면 그것은 공경이라는 말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가 좀 더 그릇이 큰 사람이었다면 상대의 무례마저 너그러이 품어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 정도의 인간은 되지 못한다. 내가 갖고 있는 아량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에게 베풀 것들을 아끼고 아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게 중요한 사람들을 좀 더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하는 데 사용해야 하는 처지이다. 하필 그런 내가 예의 없는 노인을 만났고, 노인 입장에서는 하필 간장종지 정도의 그릇을 가진 나를 만나는 바람에 서로가 그 날의 상당부분을 불쾌한 마음으로 보내게 된 것이다. 여러모로 못난 구석이 많은 나이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이 세상에 먼저 와서 나보다 먼저 삶을 일구고 산 사람들을 공경하고 싶은 마음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들이 일군 세상이 비록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더라도 어쨌거나 그곳에서 내가 자랐고 그들의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 속에서 가르침을 얻으며 부족하게나마 성장하여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를 차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가급적이면 앞선 세대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어린이들에게 그런 마음들이 가치 있는 것이라 가르치는 나라이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게 존경하는 마음과 공경하는 태도를 받아내기가 비교적 쉬운 나라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는 전쟁영웅이 되어야 하고 산업역군이 되어야 하며 거기다 고매한 인품과 현재의 훌륭한 사회적 지위까지 갖추어야 받아낼 수 있는 것들을 이 나라에서는 아주 약간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 아니 그저 무례하지 않게 대하는 것 정도로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어려서부터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만 배웠지, 어른이 된 다음에도 훌륭한 노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것은 배워본 적이 없었다. 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라는 말은 있는데 착하고 건강하게 잘 늙으라는 말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노인을 규정하는 연령대를 상향시키는 논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어쨌거나 사회는 급격하게 고령화되고 평균수명은 늘어나 노인으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아마 인생의 순간순간 좋은 인간인 상태를 유지해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나이와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지 않을까. /강백수(시인)

2025-06-29

좋은 사람들

당신은 당신을 기꺼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흔한 수사적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지 않은 것. 그것으로 충분할까? 더 적극적인 선의는 대체 무엇일까? 이렇듯 막상 좋은 사람의 기준을 정하려면 막막해진다. ‘좋음’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해 보려는 순간, 자신을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이 어쩐지 민망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쁜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당신은 머리에 뿔이 돋았거나 사악한 웃음을 짓는 만화 속 악당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혹은 등 뒤로 욕망을 감춘 음흉한 얼굴, 삐딱하게 구부러진 자세 같은 것들을 조합하며 어디서 본 듯한 악인의 상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이것은 꽤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끔 매일 마주치는 동료 모습 속에서 그 단서를 발견하는 날이 생긴다. 점심 메뉴를 독단적으로 정하는 직장 상사에게서 ‘사실은 이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되는 순간도 찾아온다. 재밌는 것은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인 이유를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나쁜 사람’이라고 선언하는 일도 꽤 어렵다는 점이다. 타인을 선악의 기준에 두는 것보다 나 자신을 그 안에 놓는 것이 훨씬 더 껄끄럽다. 선과 악의 경계는 언제나 흐릿하고 상황과 입장에 따라 흔들리기 마련이다. 나는 나의 서사와 당위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므로, 나 자신을 정의하는 일은 언제나 유보되고 만다. 미국 문학의 거장 코맥 매카시는 이러한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다. 그의 대표작 ‘로드’는 문명이 붕괴한 세계를 배경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남쪽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을 그린다. 실제로 매카시에게는 늦은 나이에 낳은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아홉 살이던 해 그는 아들과 여행을 떠났다. 호텔 방에서 아이는 곁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고 그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떠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 순간 그가 본 세계는 폐허였다. 치솟는 불길에 모든 것이 전소된 세상과 자신의 옆에서 잠든 아들. 소설 ‘로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설 내부에서 중요한 상징 가운데 하나는 ‘불’이다. 그들이 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설정을 넘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지점으로 작동한다. 추위와 어둠 속을 걷는 이들에게 불은 실제로도 생존의 수단이다. 동시에 이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라는 남자의 말은 단순한 생존 의지를 넘어서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어떠한 신념에 가깝다. 그러나 모든 것이 무너진 세계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고 약탈하며 인간성을 잃어버렸다. 그들을 마주할 때면 남자는 망설이지 않는다. “내 일은 널 지키는 거야. 하나님이 나한테 시킨 일이야. 너한테 손을 대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죽일 거야.” 그러자 소년은 묻는다. “우리는 지금도 좋은 사람들인가요?” 그러한 질문에 남자는 거침없이 대답한다. “그래. 우린 지금도 좋은 사람들이야.” 소년에게 남자가 반복해서 들려주는 말은 실제로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보증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소년은 계속 질문한다. 이유는 하나다. 그 말이 진실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다. 선함은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어야만 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끔찍한 소식이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선언은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게 어디 있어, 하고 냉소하는 편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먹구름에 가려져 앞을 가늠할 수 없을 때에도,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건 각자의 마음속에 남은 작은 불이다. 그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야. 그것은 불을 최초로 발견한 인간이 어둠 속에서 중얼거렸을지도 모를, 인류가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최후의 주문인지도 모른다. 분노와 단죄가 팽팽하게 맞서며 서로를 잠식하는 시대에 그 말은 더 이상 증명되지 않는 가치이며 동시에 증명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제 당신은 기꺼이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그 머뭇거림이야말로 당신을 선함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만든다. 어렵지만 간절히 바라는 일이지 않은가. “누구도 해치지 않는 불을 꿈꾸었다(안희연, ‘불이 있었다’)”라는 시인의 문장처럼. /문은강(소설가)

2025-06-29

“그런 건 없는 줄 알지만”

하필 거기서 발을 접질릴 일은 아니었다고 했다 매일 걸어서 다니던 길이었다고 아는 길이었다고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언제 다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수없이 내치던 당신의 등이 떠올랐다 어디로 쏟아져야 하는 걸까 나는 결정을 미루는 사이 발목은 사라지고 택시를 불렀다 누구도 생각나지 않아서 마음을 놓아도 되는 사람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런 건 없는 줄 알지만 네가 좋아하는 섬세한 각도 15도 경사가 나는 공포라 했다 -주향숙,‘경사로’전문 (‘너는 야구를 좋아하는 걸까 야구공을 좋아하는 걸까’, 2025. 시인동네) 어떤 고통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에게 접질린 상처는 처방전이 없는 것일까. 화자는 사람의 관계에 있어 안전에 대한 침해가 어떤 상처로 남는지 보여 준다. 특히 심리적 안전이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은 무엇보다 화자가 필요로 했던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화자의 존엄에 가해진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인한 부정적 힘이‘하필’이라는 경사를 인식하게 한다. 사람마다 어김없이 접질리는 각도가 있다면, 여기서 주목해야 할 ‘섬세한 각도’는 “아는 길이었다고 /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사실에 있다. 화자의 하필을 읽으며‘나의 하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접질리는 일’ 자체가 공포라기보다는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인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이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어떤 경사지에 위험이라는 팻말을 붙여 두고 경계의 선을 그어야 한다면 그곳은 마음의 전쟁터가 될 것이기에. 트라우마는 사후적이다. 이를테면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언제 다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 수없이 내치던 당신의 등이 떠올랐다”는 언술처럼 당시엔 알아차리지 못했다가 시간을 거슬러보았을 때 사고로, 폭력으로 인지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어디로 쏟아져야 하는 걸까/ 결정을 미루”게 된다는 언술은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느먼의‘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의 빠른 판단과 느린 판단 사이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닌 그것이 왜 생기고 어떻게 작용을 하고,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주목하게 한다.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인격을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수단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칸트가 말한 존엄이다. 건강한 상호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 공동체 전체의 사회적 친밀감과 연대감을 낳는다.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좋은 상호성은 오로지 가족이나 부부같이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만 행해지곤 한다. 대칭적 상호성이‘적당한 신뢰감과 적당한 거리감’에 있다면 화자가 추체험한 합법적 경사 15도의 각도는 대칭성을 갖기 어려운 하필의 경사가 되는 것이다. 지진으로 무너진 자리, 폐허를 딛고 시립도서관이 개관했다. 주향숙 시인의 인용되지 않은‘풍장’이라는 시편에서 “심장은 도려내어/ 까슬까슬 바람에 내어 말려야겠다”는 기표를 읊조리며 “택시를 불렀다 / 누구도 생각나지 않아서”때마침‘트라우마센터’가 도서관과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다. “마음을 놓아도 되는 사람을 갖고 싶다고” /이희정 시인

2025-06-29

‘상상 더 이상의 경산’을 꿈꾸며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고향은 누구에게나 매우 특별하다. 남천에서 멱감고 금호강 변 과수원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 추억이 하나하나 묻어나는 내 고향 경산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는 시장이 된 지금 날마다 ‘상상 더 이상의 경산’을 꿈꾼다. 경산은 자타가 공인하는 살기 좋은 도시로 지하철과 광역철도가 연결된 사통팔달의 도시, 300만 평의 산업단지에 입주한 4천여 기업체가 일자리를 제공하고 명문고와 10개의 대학이 자리해 자녀 교육 걱정이 없고 도심은 공원녹지와 조화로 정주 환경이 쾌적하다. 편의성·심미성·문화성이라는 도시 발전 단계로 보더라도 경산은 기반 시설과 생활의 편리함을 잘 갖추어 이제 아름다운 도시, 문화·예술로 시민이 행복한 문화도시로 도약하고 있지만, 위기 요인도 공존하고 있다. 노령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소멸, 청년들이 머물 일자리 부족 등은 비록 우리 경산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반드시 대비해야 할 위기 요인이 분명하다.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아름답고 행복한 경산을 만드는 것이 ‘상상 더 이상의 경산’으로 △ICT 남방한계선 돌파로 청년 일자리 창출 △인재들이 모이는 정주 환경 구축 △시민의 일상이 즐거운 문화도시 경산 만들기 등 세 가지 전략으로 이 원대한 꿈을 하나하나 성취하고 있다. 판교가 ICT 남방한계선으로 경제적 집적 효과와 강남문화가 결합하며 청년들은 원하는 고임금 일자리를 만들 수 없는 현실에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나고 첨단기술 기업은 인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전하고 있어 경산은 역발상으로 ICT 남방한계선을 타계하고 있다. “차라리 창업의 씨앗을 뿌리자”는 생각으로 에콜42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를 서울이 아닌 지방 유일의 유치에 성공해 ‘경산42’로 AI·빅데이터 인재 양성을 시작했다. 또 AI와 ICT 산업을 일으킬 초거대 AI 클라우드 팜(인공지능 서비스 플랫폼)과 ICT 융복합 어린이 재활 기기 실증센터, 자동차 전자제어 장치(ECU) 실험실 등을 유치해 영남 최대의 창업 플랫폼이 될 디지털 기술 스타트업 벤처클러스터인 ‘임당 유니콘파크’를 조성 중이다. AI와 ICT 남방한계선을 뛰어넘은 경산은 머지않아 청년들이 선호하는 고임금의 ICT, AI 업종 창업 봇물이 터지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AI 혁신지, ICT 허브로 성장할 것이다. 우수한 기업을 유치하려면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전통적 지원보다 인재를 유치하는 전략이 효과적으로 이들은 쾌적한 정주환경과 문화 핫플레이스를 선호해 인재가 모이고 첨단기업이 오도록 쾌적한 정주 환경을 만들고 있다. 지역의 풍부한 녹지와 많은 호수를 아름다운 경관자원으로 디자인해 도심 어디서나 걸어서 10분 안에 걷기 좋은 숲길을 만나는 주거환경 등 도시미관을 꾸준하게 개선하고 있다. 아울러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도시’를 목표로 어린이 병원, 보듬 병원을 위시한 소아병원, 지역아동센터, 장난감도서관 등 육아 지원시설도 하나하나 설립하고 있다. 떠나가는 청년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청년 행복주택과 안심주택 보급, 청년 지식 놀이터와 웹툰 창작소 건립, 글로컬 대학 지정 등 청년들이 공부하고 놀며 꿈을 키우기 좋은 환경도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이제는 문화가 있는 삶으로 개개인의 행복 수준을 높이고 건강한 사회를 완성해야 한다. 문화예술로 시민 삶의 질을 높이고 경산 관광을 진흥하기 위해 지난해 말 설립한 ‘경산문화관광재단’으로 생활 문화와 예술생태계를 확대하고, 시민 생활에 문화예술이 스며들도록 하겠다. 특히 유치에 성공한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의 연인원 600만 명 쇼핑객이 경산 관광을 즐기도록 로컬관광 콘텐츠를 개발하고 기반 시설도 확충해 무엇보다 시민들이 ‘K-컬쳐 발상지 경산’에 대한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문화예술을 체험하고 향유 할 기회를 많이 만들겠다. 주말마다 다양한 공연·전시가 있고 시민들은 이를 여유롭게 즐기며 즐거운 일상을 누리는 꿈도, ‘My universe Gyeongsan’, ‘상상 더 이상의 경산’도 이뤄질 것이다. 그 꿈을 위해 오늘도 담대하게 희망을 품고 용기를 내 신발 끈을 조여 맨다.

2025-06-29

‘IMF외환위기’의 문화사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래, 한국의 경제 상황을 ‘제2의 IMF’로 수식하는 일이 빈번해진 것 같다. 국정기획위 경제1분과 첫 업무보고에서도 현재의 심각성을 ‘제2의 IMF’로 여겨달라는 주문이 있었다고 한다. 알려진 대로 IMF외환위기(1997~2001)는 국가 부도에 처한 한국이 IMF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외환유동성 위기를 뜻한다. 당시에는 ‘IMF사태’나, ‘IMF구제금융요청’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세계적으로는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 지칭되기도 했다. IMF외환위기는 체제 논쟁을 야기할 정도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제 전반의 전환을 추동한 한국현대사의 거대한 사건이었다. IMF외환위기는 이른바 ‘97년 체제’를 논의케 한 기점이 된 것이다. ‘87년 체제’가 직선제로 대표되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제도적 정착이라는 정치체제의 전환을 의미한다면 ‘97년 체제’는 그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발전국가를 완전히 해체하고 영미식 신자유주의를 전면화한, 전혀 새로운 경제체제라는 것이다. ‘97년 체제’는 정치학과 경제학, 사회학 등에 두루 걸친 학자들에 의해 한때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반면 IMF외환위기에 대한 문화론적 접근은 물론, 한국문학과 예술 전반이나 개인의 구체적 삶의 양태에 끼친 효과에 대해서는 잘 논해지지 않은 것 같다. 이는 IMF외환위기를 전후하여 변화한 대중의 감정·감성 구조와 일상성, 정치적 주체성과 그 양식, 윤리와 미학에 관해서 학술적으로 전혀 다루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하지만 IMF외환위기는 한국사회의 ‘상식’과 ‘정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시민들은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며 금모으기 운동에 참여했고, ‘절약’과 ‘근면’이라는 덕목을 재소환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동참하도록 요청받았다. 이 내면화된 윤리는 곧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담론과 접속하며, 개개인의 실패를 ‘노력 부족’으로 환원시키는 새로운 규율 체계로 기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실업, 빈곤, 사회적 배제와 같은 구조적 위기는 개인의 무능과 열등감으로 전유되었고, 좌절과 자책은 점차 정신질환이라는 형태로 표출되기 시작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를 전면적으로 서사화한 장르는 단연 문학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발표된 다수의 한국소설들은 IMF 위기 이후 등장한 새로운 주체 형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것을 다양한 서사 형식으로 재현해왔다. 이 시기 문학은 리얼리즘이나 노동자-민중 서사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고립과 분열, 우울과 강박, 자폐적 존재감각을 중심으로 한 내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의 내면이란 단순히 문학의 관심이 민족이나 민중에서 개인의 문제로 이행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일상과 마음 그 자체가 정치의 장소가 되고 있는 시대 전환의 감각이 소설적으로 포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IMF 외환위기는 정치경제적 함의만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 개인의 일상과 감정·감각 등의 전환을 야기한 사건이었다. IMF 외환위기의 문화사는 더 고찰될 필요가 있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06-29

시, 인생, 정치

‘인생은 시와 닮아서 멀리서 보면 불가해한 암호 같지만 이해해보리란 마음으로 들여다 보면 비로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지요. 나와 상월이를 한 단어로 담아보려 평생 애썼지만 모두 어딘지 넘치거나 모자라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부디 이 외롭고 다정한 아이를 시를 읽는 마음으로 바라봐주세요.’ 요즘 시청률 고공행진하고 있는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김로사가 현상월을 위해 남긴 편지에 있는 글이다. 고아원 친구 김로사와 현상월, 두 사람은 너무나 불행한 삶 속에서도 서로를 자기 몸처럼 아끼는 사이였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김로사를 현상월이 구하고 김로사는 죽기 전 현상월에게 자기 자식을 맡기며 자기 이름으로 살기를 부탁했다. 김로사와 현상월의 애닲은 사연을 여기에 옮길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인생과 사람은 시와 닮아서 멀리서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해하려고 하면 의미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시가 어렵다는 것을 경험해본 사람은 저 말을 이해할 것이다. 멀리서 보고 지레짐작으로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족조차 이해하려들지 않으면 암호처럼 느껴진다. 정치인들을 대할 때는 더 심하다. 차라리 암호라고 생각하면 다행인데, 자기 관점에서 비난하며 지지자들까지 서로 반목한다. 며칠 전 글벗 세 명이 밥을 먹었다가 어쩌다가 대통령 선거 이야기로 주제가 흘렀는데 알고 보니 투표한 사람이 다 달랐다. 경직된 우리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자칫 불꽃이 튈 수도 있었지만, 글벗답게 각자 투표한 이유를 말하다 보니 정치인 한 사람 이해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였다. 그러더니 A가 어려운 시라도 소리 내어 읽으면 이해할 수 있다더라며 시에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요즘 읽고 있는 김혜순의 시를 소개했다. 오래전 그의 ‘불쌍한 사랑 기계’를 읽고 너무 어려워서 가까이 가지 못하다가 두 달 전부터 김혜순 시집 전작 읽기를 하던 참이었다. ‘그가 핀셋으로 눈물 한 방울을 끌어 올린다. 내 방이 들려 올라간다. 물론 내 얼굴도 들려 올라간다. 가만히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으면 귓구멍 속으로 물이 한참 흘러들던 방을 그가 양손으로 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 집채보다 큰 눈이 방을 에워싸고 있다. 깜빡이는 하늘이 다가든 것만 같다.’ (김혜순 ‘눈물 한 방울’ 일부) “해 떠오르면 머리를 감는 여자 / 허벅지가 없는 그 여자가 / 머리칼 위로 모래를 한 바가지 퍼 들이붓고는 / 첨벙 모래 구덩이에 머리를 담그는구나 / 발도 없는 여자가 / 모래강 위에서 머리를 절레절레 헹구고 있구나···."(김혜순, ‘타클라마칸’ 앞부분) 그냥 보면 무슨 말이야 하고 지나치기 좋은 암호 같은 문장들이다. 이렇게 이상한 시가 이해하려고 다가가서 소리 내어 읽으니 신기하게도 시적 화자의 슬픔과 허무가 느껴진다. 시를 읽듯이 상월이를 봐달라는 김로사의 말처럼, 어쩌면 암호보다 더 이상해보이는 정치인이라도 한번쯤은 시 읽듯이 바라보자고 하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