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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방으로 다스리는 호흡기 건강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코와 기관지는 현대인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호흡기 문제 중 하나로 미세먼지와 대기오염 바이러스로 인한 감기 같은 요인들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건조한 환경과 실내 공기 질의 저하도 호흡기 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호흡기 질환은 폐와 관련된 문제로 보이는데 폐기능이 떨어지고 담(痰)이 쌓이면 기침, 가래,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본다. 폐는 본래 건조한 것 보단 적절한 습도를 유지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장기이므로 습도가 부족한 환경이나 찬바람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호흡기가 쉽게 손상될 수 있다. 한의학에선 호흡기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한다. 한약 처방이 대표적이며 폐의 기운을 보강하는 맥문동탕이나 갈근탕 같은 처방이 자주 사용된다. 맥문동탕은 폐를 윤택하게 하여 마른기침을 완화하고 갈근탕은 폐에 쌓인 열을 내려 염증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담이 많고 가래가 끈적거리며 배출이 어려운 경우에는 반하후박탕을 활용하여 담을 제거하고 기침을 줄일 수 있다. 기관지 질환은 증상이 유사하더라도 환자의 체질과 병력에 따라 원인이 다를 수 있으니 반드시 한의사의 진료를 통해 맞춤 처방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코 안의 염증인 비염 축농증 같은 류의 병들엔 한약뿐만 아니라 약침 요법을 활용 할 수도 있다. 약침 요법은 한약 성분을 직접 경혈에 주입하여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법으로 특히 초음파를 활용하면 정확한 위치에 약침을 투여할 수 있고 또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자율신경까지 조절할 수 있다. 비염과 축농증 등으로 코가 막히는 질환은 익구개 신경절에 직접 약침을 주사하면 코와 눈 주변의 자율신경이 조절되어 막혀 있는 코가 뚫리고 잘 낫지 않는 비염이 개선된다. 성상신경과 미주신경에 약침을 주입하면 자율신경이 조절되어 피로함이나 수면장애 소화 장애 등이 개선되어 면역력이 향상 된다. 생활습관 개선도 호흡기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실내 습도를 적절히 유지하고 먼지나 곰팡이 등의 유해물질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뜻한 차를 자주 마시는 것도 호흡기 건강에 도움이 되며 도라지차와 배즙은 폐를 보호하고 가래를 삭이는 효과가 있다. 생강차나 귤껍질차도 호흡기를 따뜻하게 하고 기침을 완화하는데 사용된다. 냉 음료 섭취를 피하고 찬바람을 직접 맞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평소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폐활량을 키우고 면역력을 증진시키는 것도 호흡기 건강 유지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한의학에선 질병을 단순히 증상만으로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평소 폐의 기운을 강화하는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유산소 운동으로 심폐기능을 강화 하고 아프면 한약과 약침 치료 등의 한의학의 도움을 받는 것만 아니라 올바른 생활 습관을 같이 실천한다면 호흡기 건강을 효과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 건강한 폐와 기관지는 단순히 호흡기의 문제를 넘어 신체 건강과 면역력 향상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기관지 건강을 위한 꾸준한 관리와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025-04-09

입암서원(立巖書院)

가사천 물소리 맑으니 과연 세거(世居)할 만한 곳이다 안과 밖으로 닦아 문장(文章)과 산남의진(山南義陣)이 이렇게 교차하는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향나무 냄새 쑥떡보다 깊다 우리가 불천위(不遷位)를 바라는가 망연한 불후(不朽)를 꿈꾸지 않고 오직 실용적으로 살자고 다짐한다 형식적인 솟음이 아니라 의지의 표상으로 뜻을 세움이라 헛것에 들썩이지 말고 오직 정좌(正坐)하여 정진하며 읽고 또 읽으리라 뼈에 새겨 각고라 했으니 성리(性理)가 사람의 길에 삐끗한다면 새로이 갈아치울 기개를 배우고 시대에 동참하는 열린 생각을 배우는 것이 학문의 길이 아니겠는가 귀 기울여 듣고 마음 낮추고 후세를 두려워하여 오늘을 직시하는 선비가 되는 것이 눈 밝은 조상의 가르침인 것을, 헌 신짝처럼 신념을 개량할 수 있는 것도 교조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길일 것이다 그리하여 동천(洞天)에 머물고자, 그래서 입암(立巖)이다 그래서 선비는 위태로운 사람이다. 어느 들판에서 쓰러지리라. 그 들판이 되어 벌떡 다시 일어나리라. 입신양명은 당대의 것이 아님을 명심하여 후세를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이 중요하다. 오늘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님을 진력을 다해야 한다. 보조 지눌이 말했다. 땅으로 쓰러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선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4-09

언제나 최소한의 품위

정미영 수필가 며칠 전, 길을 가다가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한 중형차와 오토바이가 부딪힌 사고였다. 다행히 큰 부상자는 없는 듯했지만, 오토바이 운전자는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차량 운전자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앉아 있었기에, 주변에서 누군가가 구급차를 부르는 듯했다. 그런데도 차량 운전자는 여전히 얼굴을 붉히며 고함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최소한의 품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종종 품위를 ‘고상함’이나 ‘우아함’이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품위라는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사고가 난 상황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다친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운전자는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채 피해자를 몰아세우고만 있었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조차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분명 차량 운전자도 놀라고 화가 났겠지만, 그 감정을 무작정 쏟아내며 피해자를 윽박지르는 모습은 나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에서 ‘어떤 처지에서도 인간의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기를’이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사고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사람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야 말로 품위라고 생각한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주변 사람들에게도 불편함과 불쾌감을 주며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무례함은 순간의 감정에서 비롯되지만, 그 흔적은 오래도록 남는다. 내가 아무리 억울하고 답답하더라도 최소한의 품위를 잃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교통사고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감정을 다스리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성숙해지는 길일 것이다. 그 운전자가 아무리 감정이 북받쳐도 잠시 숨을 고르고 차분히 상황을 정리했다면, 피해자에게도 덜 상처를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불쾌감을 주지 않았을 것 같다. 그날의 장면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나는 과연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내 감정의 민낯이 자주 떠올라 부끄러웠다. 사회생활에서는 그럭저럭 감정을 절제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가정생활에서는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기 힘든 나날이 많았다. 나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내 자녀에게는 엄격했다. 자녀를 키우면서 욕심이 앞선 탓에 아이들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킨 적이 많았다. 감정이 격해지면 쉽게 표정을 찡그렸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참다운 어른으로서의 태도나 부모로서의 품위를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품위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상황이 불편하더라도 감정을 억누르는 등의 사소한 행동들이 모여 사람다움을 만드는 것이리라. 품위와 배려,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김용균 감독의 영화 ‘소풍(2024년)’이 떠올랐다. 삶보다 죽음이 가까운 나이에 병이 든 몸이지만, 끝까지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고 주인공들은 노력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배우의 내면 연기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그 당시에도 죽음을 앞둔 인간으로서의 품위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 자신에게 물었었다. 거친 갈등보다는 조용한 방식으로 인간의 따뜻함과 배려의 가치를 탐구하는 작품인 것 같아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네 삶은 생각보다 짧고 예측 불가능하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나와 타인을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아닐까. 나 스스로에게 언제나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라고, 야무지게 당부해 본다.

2025-04-09

대전서 배우자

우정구 논설위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전광역시의 혼인 건수는 모두 7986건이다. 전년도 보다 53.2%가 증가했다. 증가폭만 보면 전국 평균치(14.8%)의 3.6배나 된다. 대전은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계산한 혼인율도 남성이 12.6건, 여성이 12.4건으로 전년보다 모두 4.3건씩 증가했다. 전국 시·도 가운데 혼인 건수와 혼인율 모두 당연히 1위다. 1990년 혼인관련 통계 작성 후 혼인율 1위는 대기업이 많은 서울과 경기, 울산이었다. 이후 행정수도가 이전해 공무원이 많이 사는 세종이 9년간 1위 자리를 유지해 왔으나 지난해는 대전이 세종시를 꺾고 1위에 등극했다. 서울과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인구추이 속에 대전의 혼인율 증가는 뜻밖의 소식이다. 인구소멸을 걱정하는 지방도시가 타산지석으로 삼아 살펴볼 내용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대와 30대 청년층 유입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SK온이나 글로벌 바이오기업 머크사 등이 대전으로 옮겨오면서 청년층이 늘었다”고 한다. 대기업의 지역유치가 관건인 셈이다. 지금 대전은 대기업 자회사와 상징기업 등이 늘면서 기업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것도 젊은이가 오는 중요 포인트다. 대전시는 신혼부부에게 일시에 500만 원을 지원한다. 또 전세자금 대출이자 지원도 은행과 협력해 돕는다. 그밖에 임산부 배려문화 조성 등도 혼인 증가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젊은이가 빠져나가 소멸 위기를 느끼는 전국의 지자체들이 본받을 내용이다. 좋은 기업이 있고 살기좋은 환경만 되면 서울이 아니더라도 젊은이가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08

TK당원들의 선택이 국힘 미래 결정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 6월 3일로 확정되면서 57일간의 조기 대선레이스가 시작됐다. 국민의힘은 지지율이 한자릿수인 후보 13~15명이 난립하는데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아직도 심각해 대선전략을 두고 고민이 많다. 부자 돈 걱정하듯이, 이재명 대표의 일극체제에 대한 비판론 확산을 우려하는 민주당과 대비된다. 한국갤럽이 지난 4일 발표한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대선주자 중 김문수 전 장관은 9%, 한동훈 전 대표 5%, 홍준표 대구시장 4%, 오세훈 서울시장 2%로, 4명을 모두 합해도 20%다. 민주당 이 대표(34%)에 비해 14%포인트나 낮다. 특히 중도층에선 보수진영 주자의 지지율 합계가 14%로 이 대표(38%)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게 갤럽 분석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국민의힘은 지난 7일 황우여 전 비대위원장을 당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선임하고 대선체제로 전환했다. 일각에선 지명도가 높은 주자들이 많아 경선 흥행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오지만, 당내 분위기는 가라앉은 모습이다. 절대 강자가 없는데다 당 내분도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끊임없이 탄핵 찬반을 둘러싼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친윤(윤석열)계 일각에서는 탄핵에 찬성했던 인사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으며 “경선에 나와선 안 된다”는 주장까지 하는 모양이다. 윤상현 의원은 지난 6일 의원총회 자리에서 당 차원의 탄핵반대 집회를 거부한 당 지도부를 향해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향후 당내 경선과정에서도 ‘탄핵 찬·반’이 주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민주당 이 대표가 가장 바라는 일이 지금 국민의힘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젠 자연인으로 돌아간 윤 전 대통령의 ‘사저정치’도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일과 5일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을 관저에서 만났다. 조기대선 얘기도 나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6일엔 변호인을 통해 “늘 여러분 곁을 지키겠다”며 대국민 메시지도 냈다. 당연히 당 안팎에서 조기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조기대선에서 친박계 인사들이 박 전 대통령 사저를 연이어 방문하면서 ‘박심(朴心)’ 논란이 인 것과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사저정치는 ‘배신자론’ 등장으로 당 내분을 가져올 뿐 아니라, 그의 탄핵에 찬성한 유권자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당별 경선이 끝나고, 본선이 치러지게 되면 보수·진보 강성 지지층은 전에 없이 결집할 것이다. 역대 대선처럼 승패는 중도·무당층이 결정하게 된다. 국민의힘이 본선에서 승리하려면 우선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 대립을 통합해 낼 수 있는 인물이 경선에서 승리해야 한다. 당내 경선 선거인단 수가 서울 다음으로 많은 TK지역 당원들의 선택이 보수정당 미래를 결정하는 주요변수가 될 것이다.

2025-04-08

화재를 막기 위한 안간힘, 화재막이 풍수

지난 달 21일부터 영남지방에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하여 열흘 가량 전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유래 없는 재난을 겪었다. 가히 단군 이래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는 혹심한 피해를 입었다. 집과 마을이 불타고, 사람들이 타죽고, 국가문화유산을 간직한 천년 고찰이 속수무책으로 소실되는 장면을 보면서 모두가 공포에 떨었고, 대재앙 앞에 선 인간의 무기력함에 탄식을 쏟아내야 했다. 불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지만 잘못 다루면 한 순간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드는 재앙이 되고 만다. 그래서 화마(火魔)라 했다. 그러기에 먼 옛날부터 조상들은 화재를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왔다. 서울 광화문 앞에는 돌로 조각한 해태 한 쌍이 있다. 이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조선초 경복궁을 지을 때 풍수지리설에 의해 만들어 세운 것이다. 경복궁의 정남향인 관악산이 불꽃 형상이어서 궁궐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므로 관악산 꼭대기에 연못을 파고 구리로 만든 용을 넣어 두는 한편, 화기를 잡아먹는다는 전설상의 동물인 해태를 관악산을 향해 세워 둔 것이다. 불은 물로 다스려야 한다. 관악산의 모양이 불꽃 형상이니 꼭대기에 연못을 파고, 수신인 용을 만들어 넣는 한편, 대궐 앞에는 관악산을 향해 화기를 억누르는 해태상을 세움으로써 이중, 삼중의 방재 장치를 해 둔 것이다. 산꼭대기에 소금을 묻어 화기를 누르는 곳도 있다. 해인사가 내려다보이는 매화산 남산제일봉(1100m)에 소금단지 묻는 전통이 그러한 예이다. 불꽃 형상인 해인사 남쪽 남산제일봉의 화기가 사찰로 날아들어 불이 자주 난다는 풍수설에 따라 해인사에서는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단오에 맞춰 바닷물로 불기운을 잡는다는 뜻에 따라 소금단지를 묻어오고 있다. 해인사에서는 1695년부터 일곱 번의 화재가 났다. 특히 여섯 번째인 1817년 화재 때에는 팔만대장경이 들어 있는 장경판전을 제외한 모든 건축물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해인사에서 화재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소금은 바닷물을 증발시킨 후 남는 물질이다. 이는 곧 바닷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포항시 흥해읍 북송리는 화재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마을 남쪽 산꼭대기에 간수를 묻는 의식을 행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정월 보름날 달이 뜰 무렵, 마을 앞산 정상에 묻혀 있는 간수병을 파내어 간수를 채워 넣는 의식을 행한다. 이러한 의식이 생긴 것은 다음과 같은 유래 때문이다. 조선 철종 때 마을에 큰 불이 나 가옥들이 전소되다시피 했는데, 한 풍수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 남쪽 동산이 ‘불 화(火)’자 형상이어서 마을에 불이 자주 나며, 불이 나면 반드시 연이어 세 번 난 뒤에야 그친다”고 했다. 주민들이 어떻게 하면 화재를 막을 수 있느냐고 묻자, 산 정상에 구덩이를 파고 간수를 묻어 화기(火氣)를 눌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해마다 정월대보름 날 저녁에 산으로 올라가 간수병에 간수를 채우고 달맞이를 하게 되었다 한다. 이 유래담에 의하면 마을에 자주 발생하는 화재의 원인을 마을 앞산에서 내뿜는 화기 때문으로 여기고, 그러한 화산(火山)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간수를 묻는다는 것이다. 마을의 화재를 막기 위해 간수나 바닷물을 병이나 단지에 묻는 의식은 포항시 송라면 광천리, 영덕군 남정리 등지에서도 발견된다. 북송리에서는 지난해 대보름날 묻은 간수병을 이듬해 대보름날 파 보는데, 병 속의 간수가 많이 줄었을 경우 지난 해 많이 가물었다고 인식하며, 앞으로 시절이 좋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런 해에는 마을 사람들이 특별히 행동을 조심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간수 묻기가 방화(防火)와 함께 한해(旱害)를 막기 위한 기원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화재와 가뭄은 다 불의 기운이 강한 데서 생기는 현상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는 풍수상 화기가 강한 곳에다 바닷물을 묻어 화기를 눌러야 한다는 의식이 반영된 모습이다. 박창원수필가 사람들은 바닷물이 화기를 누르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간수가 늘 차 있어야 한다고 보고, 해마다 정월 보름에 간수를 보충하는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간수는 소금에서 추출한 물이지만 엄연히 바닷물이다. 그러나 간수병에 들어가는 간수는 평범한 바닷물이 아니다. 그 물은 용의 신비스런 생명력을 간직한 신격화된 물이다. 따라서 간수는 살아 있는 용으로서, 비를 내려 마을에 풍요를 가져다주고 화재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신격의 의미가 있다. 그렇게 보면 간수병은 이 마을을 화재와 가뭄으로부터 지켜 주는 수호신 구실을 해온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신앙도, 현대의 과학화된 장비도 이번의 산불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산불이 번지면 산림에 인접한 어떤 마을도, 그 어떤 사찰도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또 50년 이상 땀흘려 가꾼 울창한 이 땅의 산림이 도리어 재앙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 앞에서 우리는 혼란스럽다.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04-08

포어스(4us), 포스코와 한동대의 아름다운 교육기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청명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완연한 봄날이 온 듯하다. 겨울의 초입에 별안간 내려진 12·3 비상계엄령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던 나라가,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현직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파면시키자 혼란과 불안이 종식되고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봄날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탄핵 찬반의 대치가 극에 달하고 돌연한 화마의 상흔이 참혹한 가운데 사필귀정의 결정이 내려져서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이제는 암울과 갈등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안도와 평온의 일상 속에 저마다 본연의 역할과 과업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본다. 날씨가 맑고 밝아 좋아서 청명(淸明)이라 했던가? 청명절에 날씨가 좋으면 봄에 막 시작하는 농사일이나 고기잡이가 수월해지고 잘돼 그 해의 풍작과 풍어를 점치며, 들판에서는 봄 논, 밭갈이를 하고 어촌에서는 그물코를 손질하는 등 본격적인 생업활동을 펼치게 된다. 일이 비록 작더라도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듯이(事雖小 不作不成), 봄에 밭을 갈아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곡식이 없어 후회한다(春不耕種 秋後悔)는 의미를 되새기며 시기와 때에 맞춰 일을 하고 준비하곤 했었다. 학업의 시기도 비슷하여 때를 놓치지 않고 배우고 익혀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배워서 남주나’는 말도 있지만, 사람의 일생은 어쩌면 배움의 과정으로 다양한 학습을 통해 성장·성숙하고 나아지며, 배움을 체득하면서 결국 그 자신의 삶을 바꿀 수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배움의 모티브(motive)는 긴요하고 중대하여 어떤 계기나 기회에 배움의 실마리를 찾아 탐구하고 궁구하여 학습효과를 배가시키며 변화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면, 진정 의미 있고 가치로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측면에서 지난 주말, 포스코와 한동대가 산학협력을 통해 2년째 펼치고 있는 ‘글로벌 교육기부 프로그램 포어스 제2기 발대식’은 상당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다문화가정이나 취약계층 청소년들의 진학과 취업을 지원하는 ‘포어스(4us)’ 프로그램은 포스코1%나눔재단의 기부금과 한동대학교의 교육 인프라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고교생 멘티와 대학생 멘토의 1:1 멘토링을 중심으로 학습 및 취업 지원, 진로체험, 방학 진로캠프 등 다양한 테마로 학습활동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즉, 포어스는 서로가 만나 배우고 알아가는 성장 과정으로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고 꿈을 구체화시키며 가능성을 열어가는 큰 힘이라 할 수 있다. 배워서 나눌 수 있고 그러한 나눔의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된다. 포어스는 배움과 깨달음으로 새로운 꿈을 찾아 함께 떠나는 가능성의 여정이다. 그것은 곧 병아리와 어미닭이 알의 안과 밖에서 부리를 모아 동시에 껍질을 깨어 새 생명이 탄생되는 즐탁동시(559E啄同時)의 계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조력으로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참여와 헌신의 동시성으로 함께 성장, 변화하여 포항지역과 철강분야의 미래 인재육성에 기여하는 포어스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5-04-08

빈국에서 부국의 희망으로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한 나라의 문화와 사상은 혁신의 중요한 토양이 된다. 혁신은 사람의 생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미얀마는 불교가 뿌리 깊이 내린 나라로 국민의 삶과 정신세계,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민의 88%가 테라와다(상좌부) 불교를 믿으며, 태국, 라오스, 스리랑카 등과 함께 남방불교의 기반을 두고 있다. 수도 양곤에 지상 60m의 황금탑으로 유명한 쉐다곤 파고다는 시민들의 휴식처이고, 이승의 고단함은 잠시일 뿐 영생의 행복을 기원한다. 이런 사회문화에 변화와 도전을 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가 P사 미얀마법인을 컨설팅 갔을 때 거리의 모습은 우리의 70년대 수준 정도였다. 트럭에 매달려 출근하는 광경과 동자승들이 줄지어 상가를 들러 보시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다나(dana)’ 사상으로 대표되는 보시와 자선의 미덕이 강조되고 불교 사원과 승려를 지원하는 문화가 강했다. 불교의 업(業) 사상과 무상(無常) 사상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명상 수행이 일반적이고 자기 성찰과 내면 수양이 중시되는 감성적 문화로 보였다. 새마을 운동이 도입되어 밀림의 밀짚으로 지은 초가를 일반 도금판으로 바꾸는 작업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미얀마 법인의 제품은 대형 트럭이 줄을 잇고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작업 환경은 열악하고 위험이 상존해 ‘안전하고 깨끗한 작업장 만들기’라는 기치를 걸고 시작했다. 개선 마인드 셋을 위한 교육 때 일 방향 보다 다양한 질문을 통해 공감대 형성에 집중했다. 변화에 지극히 소극적이든 사람들이 ‘나와 동료를 위한 개선 활동’이라는 인식이 들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 직원들을 5~8명씩 활동팀을 조직하고 자신의 작업장을 깨끗하고 안전하게 개선하는 활동들을 사진으로 공유하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활발히 움직여 공장 전체 Clean 작업장을 이룰 수 있었다. 월급을 받으면 한 달 살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법인장이 ‘지금 이 시대에 한국에 태어나 살고 있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라’라는 말에 조금은 의아해 생각했다. 자동차를 자체 생산하지 못하는 미얀마 경제 구조에 인근 국가의 중고차를 사들여 이동 수단으로 삼는 현실이었다. 수도 양곤에서 22년된 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 1시간 40여 분 달리니 시골 마을이 나왔다. 외국인에 호의적이었으나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니 수질과 거주 환경 등이 열악했고 평균 수명이 세계에서 짧은 나라에 속한다고 했다. 사회 의료시스템이나 먹는 물과 생활 환경, 경제적 한계 등이 수명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양곤 수도 시내 큰 호수 두 곳이 있고, 호수 언덕에서 저녁을 맞이하는 분위기는 색다르게 느꼈다. 하늘은 별이 초롱초롱 하고 고요한 호수 분위기는 우리 시골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람과 조직을 변화하는 일도 잊은 채 미얀마의 시골 정취에 취했다. 기업 혁신은 종교, 사상 등 구성원의 생각을 지배하는 요인이 토양이 되고 토양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혁신은 성공 할 수 없다.

2025-04-08

윤석열과 ‘불치하문’

홍성식(기획특집부장) 4월 4일 오전 11시 22분부로 윤석열 씨는 이름 앞에 ‘전 대통령’이란 단어를 붙이게 됐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후 최고 권력자에서 필부(匹夫)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 것. 늦은 나이에 사법시험을 거쳐 검사가 되고,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국민적 관심을 모았으며, 영화를 방불케 하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 대통령에 오른 그는 임기 5년을 채우지 못하고 권좌에서 밀려났다. 지난해 12월 3일 밤 갑작스런 비상계엄 선포와 이어진 국회의 탄핵 의결, 탄핵 찬성과 반대를 놓고 극단적으로 대립했던 국민들, 그리고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판결. 어느 때보다 긴장감 넘치는 숨 가쁜 시간이었다. 적지 않은 미래 계획과 발전 정책을 세우고 시작된 윤석열 정부가 허망하게 무너진 이유는 뭘까? 국민들로선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을 터.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윤 전 대통령의 통치가 ‘귀’가 아닌 ‘입’으로 행해졌다는 게 아닐지. 남의 이야기를 진지한 자세로 듣고 거기서 배울 것을 찾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의 기본이다. 그래서다. 중국 고대 철학자들은 “백성의 고충을 듣는 귀를 가지는 것이 권력자의 최고 덕목”이라 설파했다. 명령하는 ‘입’이 아닌 듣는 ‘귀’를 가지기 위해선 불치하문(不恥下問)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무언가를 묻는 걸 부끄러워해서는 현명한 왕도, 좋은 대통령도 될 수 없는 법. 아집과 독선만으론 타인을 설득할 수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불치하문의 태도’를 가졌던가? 돌아보니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모든 몰락에는 이유가 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07

어지러움 속에서, 시간을 들여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12월 3일부터 4월 4일, 넉 달의 시간이 흘렀다. 나 또한 평온한 일상만을 살아갈 수 없었다. 일상 속에 어떤 비극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늘 함께 한 나날들이었다. 어지러움 속에서 어떻게든 해야 할 것은 해내야 했기에 공부든 글이든 전에 없이 무겁고 어렵게 다가오기도 했다. 12월, 김윤식의 카프 연구에 대해서는 끝내 완결된 글을 쓸 수 없었다. 아제르바이잔에 가서 발표한 동아시아론에 대해서도 주석을 붙일 여유를 얻지 못했다. 12월에서 1월까지 앞이 캄캄하다시피 했다. 나라의 앞날이 그렇게 암울해 보일 수 없었다. 2월에 간신히 ‘맹목과 통찰-임화의 해방공간’을 쓰고, 시인 김규동을 김기림에 연결지어 발표한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임화의 해방공간의 활동에 대한 조명은 지금이 곧 해방공간을 방불케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학사적 교훈과 힌트였다. 김규동은 김기림 문학이 해방과 6·25 전쟁 이후의 문학사에 연결되는 중요한 고리요 매개 역할을 했다. 하나 더, 가람 이병기 선생이 해방 직후에 펴낸 ‘가루지기 타령’ 교주본을 검토해 본 것은 현대 소설사 인식에 더할 수 없는 도움이었다.‘가루지기 타령’의 ‘리얼리즘’은 ‘소설’이 시대를 어떻게 투영할 수 있는지, 그 수사학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숙고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어지러움 속에서 억지로 쥐어진 것 같은 공부들을 해나가는 가운데 한 가지 얻은 생각이 있다. 역시 공부는 공부대로 침잠하는 시간 없이는 충분한 논리와 증명에 이를 수 없음이다. 어떤 빛살 같은 영감을 얻었다 해도 이에 빛나는 형체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무를 유로 변신시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시간을 충분히 들이지 못한 논리와 증명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긴다. 결국 그 미진함에 애를 태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시간을 쓸만큼 써 매달리지 않는 한 허점은 언제까지나 제대로 메울 수 없다. 이제 모든 것이 막막해진 시점에 나는 최근 공부의 ‘마지막’ 주제에 도전한다. 카프카의 작품들에 대해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 권말에 일종의 비평적 주석을 가했다. 카뮈에 따르면 카프카 문학은 현대의 인간조건을 ‘상징’으로 제시하는 소설적 문법의 한 전통을 가리킨다. 이 소설적 문법을 익히 알고 있던 한국의 작가는 장용학과 최인훈이었는데, 아주 최근에 이 소설적 전통에 접맥된 한 사람의 남성 작가가 나타났다. 이 비평적 주제를 충분히 소화해 내려면 카프카와 카뮈를 새롭게 읽는 작업을 피할 수 없다. 지난 해는 그렇지 않아도 카프카 서거 100주년이었다. 난공불락의 요새 카프카의 ‘성’, 여기서 카뮈의 ‘이방인’으로 연결되는 계선에 대한 공부 없이 제대로 된 글은 쓰이지 못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카뮈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 문학의 진로를 막아섰던 난해한 ‘성채’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느낌, 그 시절 거기에 카프카도 함께 서 있었다. 다시 한번 시간을 실하게 들여 공부해야 하리라. 지독한 시대의 어지러움 속에서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2025-04-07

사유의 부재, 그 위험한 종착역

한때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는 존재였다. 말에는 질문이 깃들었고, 눈에는 의심의 빛이 머물렀다. 그러나 이제 말하되 묻지 않고, 듣되 반성하지 않으며, 결론을 구하되 성찰하지 않는다. 도시는 여전히 북적이지만, 그 안의 정신은 고요히 사라졌다. 우리는 정보를 삼키지만, 그것을 씹지도, 되새기지도 않는다. 진실은 속도의 희생양이 되었고, 깊이는 비효율이란 이름으로 밀려났다. 이제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가 보다 누가 말했는가에 반응하고, 무엇이 진실인가 보다 나의 기분에 맞는가를 묻는다. 우리는 진영이 요구하는 확신 속으로 조용히 길들여지고, 수용되고, 마침내 사라진다. 생각! 인간이라는 종들로 하여금 창백한 푸른 점의 주인으로 우뚝 서게 한,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이 신비한 능력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생각은 나를 천국과 지옥을 하루에도 수천 번 왕래하게 하는 환상특급이다. 내가 생각이요, 생각이 나다. 환상특급의 승객에게는 티켓예약이 필요 없다. 목적지도, 승하차 시간도 랜덤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탑승하고, 하차하게 된다. 휴게소에 들러도 쉴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출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다음 역에서 내려야 돼요!’라는 절규를 들어주는 승무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름도 풍경도 알 수 없는 이 정거장에서 저 정거장으로, 빛의 속도로 돌아다닐 뿐이다. 생각이라는 환상특급에 승차하지 않을 권리 따위는 민주공화국 헌법 조항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대부분은, 생각이라는 환상특급의 ‘승객’으로, 가끔씩은, ‘기관사’로 탑승한다. 환상특급의 기관사는 어떻게 열차를 운전하여야 하는가. 기관사로서의 역할이 주어진 경우의 생각. 그것은 ‘열차를 안전하게 목적지로 운행하기 위하여,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이리라. 바른 생각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견해를 내려놓고 생각하기!’ 이것이 전부이다, ‘견해들-이데올로기, 편견, 개똥철학, 증오, 시기, 따위들’은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다, 견해로부터 시작한 생각은 이해타산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라. 견해라는 기초위에 세워진 생각이라는 건축물은 욕망과 집착이라는 이름의 방으로 가득차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된다. 그 방을 떠도는 증오, 폭력, 잔인성이라는 유령들을 보라. 사유의 부재라는 열차는, 편견과 증오를 자양분으로 피어난 악의 꽃밭을 지나 폭력과 잔인성으로 물든 종착역에 도달한다. 한나 아렌트가 본 악은 왜 그다지도 ‘평범’하였을까. 600만 유대인을 살상한 전체주의의의 근원은 사유의 부재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분노가 진정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흘린 독을 받아 삼켜서인지 사유해야 한다. 편견과 증오로 범벅된 몰염치의 광장에서 탈출하자. 질문하고, 의심하고, 천천히 결론에 이르는 길. 이 길만이 우리의 환상특급을 안전하게 목적지로 데려갈 수 있으리라.

2025-04-07

생명의 등불

강길수 수필가 1시간만 지나면 2025년 4월 3일이 된다. 우리나라의 올해 3월은 지금껏 겪은 같은 달 중에 ‘가장 잔인한 달’이 되고 말았다. 역대 최악의 산불 때문이다. 미국 시인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그의 시 ‘황무지’에서 읊었다. 이제 한국은, ‘3월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속말이 올라온다. 산불 피해자와 진화대원, 봉사자, 공무원, 온 국민이 함께 절규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잔인한 3월을 우리 사회가 만들고 말았다는 사실 앞에 멍할 뿐이다. 보도에 따르면, 3월은 24일 오전 6시까지 전국에 43건의 산불이 났다. 하순에 접어들며 21일 산청, 22일 울주, 23일 의성 순으로 큰 산불이 발생했다. 산불 진화에 연일 사투를 벌인 결과, 월말이 되며 주불은 순차적으로 다 끄고 잔불 정리에 단계에 들어갔다. 4월로 바뀌며 잔불 재발화 소식이 없으니 이젠 다 껐나 보다. 우리 경북의 경우, 4월 2일 밝힌 잠정 산불 피해 집계현황은 사람 사망 26명, 산림 4만5157ha, 주택 3766동, 농작물 3414ha, 시설 하우스 364동, 축사 212동, 농기계 5506대, 어선 16척, 문화재 25개소로 밝혔다.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 규모다. 불길에 유명을 달리한 분들, 다친 분들, 집과 농작물, 어선을 잃은 분들의 불행을 어떻게 위로, 치유해 나아가야 한단 말인가. 사람들의 사소한 실수, 방심, 무심, 건조한 날씨, 거센 바람, 또는 알 수 없는 원인이 모여 역대 최악의 초대형 산불로 커지고 말았다. 우리 사는 세상은 왜 이리도 처절한 인과(因果)로 얽혀 있을까. 기상학자 로렌즈(Lorenz, E. N.)의 ‘나비효과’란 말이 대변해 주듯 지구상 아니, 온 우주의 모든 것은 한둘의 사소한 요인이나 실수, 의도가 엄청난 해악을 끼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스도교의 원죄 교리만큼이나 인간에겐 억울한 현상이다. 엘리엇은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1차 세계대전 후 유럽 문명의 붕괴와 인간 존재의 허무를 다루며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다. 더하여 전통과 현대의 충돌, 신화와 현실의 교차를 통해 정신적 황폐와 구원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반면, 우리 박목월은 시 ‘4월의 노래’에서 멀리 떠나와 비를 타거나, 별을 볼 때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렇다. 사람은 지구촌에 생긴 이래 끊임없는 자연재해와 인재(人災)의 재난을 겪으며 생존, 발전해 왔다. 재난을 그냥 당하며 존재해 왔을 뿐인 동식물과 다르다. 따라서, 모든 것을 삼킬 듯이 불탔던 산불로 죽을 만큼 쓰라리고, 괴롭고, 슬퍼도 우리는 다시 4월을 맞는다. 4월에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또 힘을 내어 일어나야 한다. 불탈 때부터 시작된 각계의 온정의 손길들이 희생자, 부상자들과 재산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도와주고 있다. 엘리엇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같이 되어버린 우리의 ‘가장 잔인한 3월’. 피해자들을 돕는 봉사자들 손길이 번지며 치유의 4월이 되고 있다. 이 땅에, 목월과 우리가 염원하는 ‘생명의 등불을’ 계속 밝혀 들기 위하여….

2025-04-07

아직 ‘계엄의 바다’ 못건넌 TK… 현안은 어쩌나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선고로 대구경북(TK)은 정치·경제적으로 아노미 상태에 직면해 있다. TK 현역 의원 중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친윤(윤석열)계로 분류되는데다, 대부분 지역민들도 아직 ‘계엄의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있다. TK지역의 이러한 강성 보수성향은 두달 뒤로 다가온 조기대선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고, 이 지역 인적·물적 자본확충을 위한 각종 사업과 정책추진에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조기대선이 현재 거론되는 대로 6월 3일 치러진다면 당장 다음달 12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뽑는 당내경선은 다양한 변수가 있겠지만, 본선에선 중도층 민심이 판세를 좌우할 것이라는 사실은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일찌감치 ‘중도·보수’를 표방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탄핵정국 때처럼 강성지지층을 의식해 중도층 민심 흐름을 외면하다가는 이번 4·2 재보궐선거에서 나타난 ‘TK지역만의 승리’라는 성적표를 또 받게 된다.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이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보수·중도층의 찬반 대립을 어떻게 통합해 낼지는 모르겠지만, TK지역 당원들의 표심은 경선결과에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TK지역이 탄핵 소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견지한 주자(안철수·오세훈·유승민·한동훈)들과 탄핵 반대를 고수한 주자(김문수·이철우·홍준표)들 중 어느 편에 설지 주목된다.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TK지역의 미래가 걸린 사회간접자본(신공항건설, 대구 군부대이전사업, 포항 영일만 앞바다 유전개발 등) 확충과 규모의 경제(TK 행정통합) 실현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 지역 현안추진을 주도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데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마저 대선출마를 위해 사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홍 시장은 그동안 조기 대선 시 ‘시장직 조기 사퇴’를 여러 차례 밝혔고, 이철우 지사도 지난 5일 SNS를 통해 “자유우파가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저부터 온몸을 바치겠다”며 출마의지를 드러냈다. TK 행정통합은 탄핵·계엄정국 속에서 브레이크가 걸린 지 오래됐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올해 말을 TK행정통합 특별법 제정 마감 시한으로 잡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와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진전이 없는 상태다. 17조4000억 원이 들어가는 신공항 건설 사업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재원마련을 위한 법적 근거인 ‘TK신공항특별법 2차 개정안’은 국회 국토위 교통법안심사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거대 야당을 설득하기가 어려운데다, 재원확보의 결정권을 쥔 기획재정부도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상태다. 대구 도심 군부대 이전 사업도 직격탄을 맞게됐다. 사업 성격상 국방부와의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인데, 계엄 사태로 김용현 전 장관이 면직된 상태라 사업추진이 불투명하다. 포항 영일만 앞바다 가스전 개발사업(대왕고래 프로젝트)도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첫 시추공 주변의 다른 6개 유망구조에 석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추가 시추를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지만, 민주당은 프로젝트 자체가 사기극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현안들은 TK지역으로선 미래가 걸린 문제지만, 조기 대선 정국에서 유력 대선주자들이 적극적으로 공약하지 않으면 해법을 찾기가 어렵게 됐다. 가장 큰 문제는 사실상 국정을 장악한 민주당이 대놓고 TK지역을 패싱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북 북동부지역의 끔찍한 산불피해 지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민주당이 ‘받고 더’ 식의 포커게임 하듯이 제동을 건 게 단적인 사례다. 만약 산불피해가 ‘야당텃밭’에서 발생해도 민주당이 이런식의 태도를 취하겠느냐고 섭섭해하는 TK지역민이 많다. 이번 조기대선 당내 경선과정에서 TK지역 유권자들이 어떤 후보를 선택하느냐가 이 지역 미래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2025-04-06

교양과 권력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보스턴과 뉴욕에서 출간된 ‘웹스터 사전’(1995)에 나오는 교양(culture)의 두 가지 정의(274쪽)는 다음과 같다. “교육을 통해 사회적, 도덕적, 지적인 능력을 발전시키는 행위”가 그 하나이고, “지적이고 미학적인 훈련으로 형성된 고도의 세련과 취향”이 그 둘이다. ‘우리말 큰사전’에 나오는 교양의 정의는, 미안한 말이지만, 너무 터무니없기에 도저히 인용할 수 없다. 첫 번째 정의에 따르면, 교양은 가정과 교육기관이 담당하며, 세 가지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에 주안점이 있다. 사회적 능력은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영위 능력을 가리킨다. 나와 내 아내, 자식들만 소중한 게 아니라, 남과 그 가족 역시 같은 정도의 가치와 의미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을 전제해야 사회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능력은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최소한의 양심과 윤리를 소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와 내 아내와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동물적’ ‘가축적(家畜的)’ 사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나의 지나친 탐욕과 억제할 길 없는 분노(격노)를 자제하여 타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바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적인 능력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21세기는 지식과 정보가 지구촌 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자리하고 있는 경이로운 시대다. 사유와 독서, 토론과 글쓰기 같은 작업을 일상적으로 유지해야 과학기술이 제공하는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의미의 지적인 능력이 교양에 속한다. 두 번째 교양의 정의는 각자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기에 논외로 한다. 새삼 내가 교양을 운운하는 데에는 분명 까닭이 있을 터다. 지난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인 전원일치로 현직 대통령을 파면했다. 이로써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파면 이후 8년 만에 다시 한국 대통령이 파면되는 우울하고 참담한 헌정사 기록이 남게 되었다. 더욱이 수인번호 503호 박근혜 이전의 이명박은 2018년 각종 비리로 투옥되어 수인번호 716호를 부여받고 감방살이를 하다가 2022년 특사(特赦)로 풀려났다. 이른바 자칭 보수 출신 전직 대통령 2인이 파면당하고, 1인이 징역 17년을 선고받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왜 이들 최고 권력자는 파면과 형사재판 그리고 구속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것일까?! 그들의 공통점은 무교양, 부패, 무능, 타락, 패거리주의로 무장했다는 사실이다. 권력의 사유화를 통해 물적인 이권을 취하고(이명박), 세월호 대참사로 고교생 딸 유민을 잃어버린 아버지 김영오씨의 대면 요청을 차벽(車壁)으로 막아버리는 냉혹함을 과시하고(박근혜), 입만 벌리면 구라로 일관하면서 검찰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흔든 파렴치한(破廉恥漢)(윤석열). 저급하고 부도덕하며, 불의하고, 역사의식도, 국민을 최우선으로 받드는 공동체주의도 없는 자들을 수장으로 떠받들어 온 타락한 정치세력의 중핵 역시 똑같은 수준의 인간들이다. 이참에 진짜 사회 대개혁을 실행하여 최소한의 교양을 갖춘 이들만을 정치 지도자로 삼았으면 한다.

2025-04-06

경제가 먼저다

우정구 논설위원 탄핵 정국이 막을 내렸지만 한국 경제가 걱정이다. 한국 경제의 비관적인 전망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OECD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5%로 수정 발표했다. 이는 작년 12월 발표한 전망치 2.1%보다 0.6% 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그럼에도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인 JP모건은 한국경제의 성장률을 1.2%에서 0.9%로 낮추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면서 경제 전문기관의 경기 전망치가 수시로 바뀌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8%로 제시한 바 있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 이 선을 지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 5일부터 트럼프 대통령 발 관세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국을 상대로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로 세계가 비상이다. 세계경제 성장 전망치가 0.49%나 떨어질 거란 예측도 나왔다. 한국 경제계도 초비상이다. 한국은 GDP의 40%를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다. 미국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수출시장이다. 지난해 무역흑자만 557억 달러가 발생한 나라다. 이번 조치는 미국과의 무역마찰 수준을 넘어 한국경제에 충격적 타격을 준다는 면에서 긴장감이 높다. 정치적 혼란을 겪는 한국경제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윤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경제계는 “경제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달라”고 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특히 소상공인단체는 내수부진으로 속절없이 무너지는 소상공인을 도와 달라고 했다. 국민에게 민생없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정치보다 경제가 먼저임을 알아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06

노래는 늙지 않는다

어느 가을날, 한 문화재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작사 클래스를 함께 개발하고 운영해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해 주셨다.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지역의 문화재단이니만큼 지역에 거주하는 예술인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을 텐데, 어째서 그들이 아니라 타지역에 사는 나에게 그러한 제안을 건네는 것인지. 재단 직원은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노인들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맡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남들이 마다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나는 잠시 생각해보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고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두 가지 정도가 떠올랐는데 첫 번째는 세대차이로 인한 소통의 문제였고, 두 번째는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보다는 배움의 속도가 느리다는 문제였다. 그런데 내게는 그것들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먼저 소통의 문제는 내가 우리 할머니와 오랜 시간 같이 살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배움의 속도가 느리다는 점은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진행하면 수업의 회차는 늘어날 것이고 그렇다면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강의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재단의 제안을 수락했고, 총 16주에 걸친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첫 시간, 수강생들을 처음 만나며 느낀 점은 생각보다 젊다는 것이었다. 나는 노인이라고 하면 우리 할머니처럼 등이 굽고 머리가 새하얀 분들을 생각했는데, 딱 우리 아버지 연배인 65세부터 75세 사이의 분들이 주로 모여 주셨다. 사실 우리 아버지도 따지고 보면 노인으로 분류가 될 연세이신데 내가 그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많게는 80대 초반의 수강생도 계셨는데, 옷차림도 세련되고 활력도 넘치셔서 전혀 그 연배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려온 노인의 이미지가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노인은 과거 우리가 생각하던, 맥없이 떠날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전히 젊은이들 못지않은 에너지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새로 만난 노인 수강생들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차근차근 노래를 만들어갔다. 개강 전에는 사실 선생님들께서 어떤 이야기를 가져오실지에 대해서 큰 기대가 없었다. 대부분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거나 무색무취한 일상의 나열일 뿐이겠지. 그런데 그것 역시 나의 오산이었다. 선생님들이 가져 오신 이야기들은 그들의 삶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한 선생님은 자신의 이상형 배우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사로 만들어 오셨다. 또 어떤 선생님은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다시 한 번 헌신적으로 사랑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시기도 했다. 노래를 만들던 시기가 가을이어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노래하신 선생님들도 있었다. 외롭다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열망이다. 노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성이고 남성인 이 분들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청춘들에게 뒤지지 않는 뜨거운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는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젊은 나로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깊이 있는 이야기들 들려주신 선생님들도 있었다. 사별한 남편에게 건네고 싶은 말들을 적어 내려간 노래는 내가 쓴 어떤 이별이야기보다도 절절했고 한편으로 뜨거웠다. 어떤 선생님은 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자신이 경험했던 전쟁의 참혹함을 떠올리셨다. 그리고 지금 한가로이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평화로움에 감사하는 내용의 노래를 만드셨다. 수많은 경험들이 켜켜이 쌓이지 않는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노래가 되었다.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이다. 노인 복지는 아주 중요한 이슈이다. 나는 노인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노인들을 떠날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로 여기고 있다. 아무런 동력도 남아 있지 않은, 이 사회가 떠안아야 하는 비용으로 취급하곤 한다. 그러나 내가 만난 노인들은 여전히 젊은이들 못지않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면서, 젊은이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깊이를 지니고 있는 분들이었다. 아직 맡을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 있는 분들이다. 나는 사회가 이런 분들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서로에게 배우자는 취지에서였다. 우리는 정말로 서로에게 가르칠 것이 있고 배울 것이 있다. 내가 만난 노인들은 가르치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젊은이들은 어떤가.

2025-04-06

희망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했다. 멈춰 있던 제도가 다시 작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이 사회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나아가 민주주의가 더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 안에서 발화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감각할 수 있었다. 언제나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온 주체였다. 광장에서, 일상에서, 제도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그렇게 축적된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결정 또한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에겐 여전히 오래된 피로와 불신이 남아있다. 법적 판단이 우리 앞에 놓인 모든 불안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 신뢰는 단번에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끝이 아니라 이야기를 시작하는 자리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돌고 돌아 다시 출발선에 섰다. 신발끈을 꽉 묶고, 앞으로 다가올 다음 장을 펼쳐야 한다. 그것은 글을 쓰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언제나 도입부에선 망설임이 먼저 떠오른다. 막상 쓰기 시작한 서술도 자꾸 지우게 된다. 적확한 표현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과 언어 사이의 거리감은 좀처럼 좁히기 힘들다. 본격적인 흐름으로 나아가기까지는 무수한 시행 착오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만큼은 다르다. 마침표가 가까워졌다는 확신은 이전에 쌓아 올린 문장들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무언가를 끝냈다는 안도와 함께 해방되는 듯한 감정이 따라온다. 우리는 오늘의 장면을 마지막처럼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정말 마침표를 찍어도 되는 것일까?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일까? 누구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겨우 첫 문장을 넘긴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불안하고 막막한 것은 당연하다. 방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은 구체적인 상상에서 시작된다. 더 나은 사회를 떠올리는 바람. 아직 오지 않은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힘.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태도다. 상상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바꿀 수 있다’는 상상은 증명되었다. 그것은 낙관이 아니라 일종의 증거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제도의 권위가 아니라 결국 시민의 손이라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오랜 시간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해왔다. 추운 날 광장에서 함성을 보탰고 조용한 일상에서도 무게를 견뎠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말 없는 연대 안에서 지난한 시간을 보내왔다. 실망과 피로가 반복되며 어떤 희망에도 쉽게 기대지 않는 태도가 굳은살처럼 마음에 자리잡을 때도 있었다. 그것은 냉소였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태도였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회복을 다시 배워야 한다. 들끓는 다음은 이성의 테두리에 담아내고 무뎌진 감정은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 상처는 질문이 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의문을 쏟아냈다. 사유가 공론의 언어로 이어지고 제도로 연결될 때 희망은 지속된다. 정치가 제때 응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반복되는 피로 속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시민이 쓴 문장을 정치가 지워서는 안 된다. 사사로운 욕망이 우리의 언어를 가로채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대통령이 헌재 판결로 물러난 것은 우리 헌정사에서 두 번째다. 그 숫자의 무게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단 한 번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결코 가벼운 일로 끝나지 않았다. 이 숫자는 우리가 마주한 실패의 수가 아니다. 쉽지 않은 세상을 쉽지 않게 바꿔 가는 시민이 존재해 왔다는 증거다. 법이 움직이기 전 움직인 것은 언제나 우리들이었다. 동시에 우리는 어떤 결론도 쉽게 믿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 문장은 계속하여 번복되어 왔고 너무 자주 진실이 지연되어 왔다. 가끔은 말보다 침묵이 더 정직하다고 믿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써 내려갈 것이다. 그것은 환호도 단죄도 아니라고. 결국 일상의 지속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단어를 놓아갈 뿐이다. 우리 사회의 다음 장면이 희망의 형태를 띠고 있기를 바란다. 바꿀 수 있다. 바로 이 첫 문장을 토대로 우리는 다음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희망은 언제나 이러한 문장들 위에서 시작되었다.

2025-04-06

“그런 날들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이희정시인 작고 예뻐서 데려온 애가 남천이었어요. 어디서나 잘 자란다고 하고. 한동네 살다가 이사간 금천이라는 애도 생각나고. 그래서 잘 키워보고 싶었죠. 생각날 때마다 창문 열어 주면서 물 주면서 그랬는데 시들해요. 일조량이 부족했을까요. 금천이가 중학생이 되어 놀러왔을 때 엄마 뒤로 숨던 일이 생각납니다. 동네에 그애가 있다 생각하면 신나면서도 그랬어요. 그런 날들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물건을 돌려주러 가는 길에 그애가 자란다면 딱 이렇겠구나 싶게 엄청 크고 무성한 남천을 봤어요. 이 집에서는 밖에 내놓고 기르는 모양이더라고요. 남천을 잘 키우면 이렇게 되는구나. 정신이 번쩍 드는 겁니다. 키우던 애가 커서 키우는 마음이 뭔지 아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왜 자꾸 잊을까요. 얼른 가서 남천을 봐야겠어요. -임승유,‘중요한 역할’전문 (‘생명력 전개’, 문학동네) 흔하디 흔한 남천(havenly bamboo)이라는 식물이 있다. 영하 17도의 추위를 견디며 꽃과 열매, 잎이 모두 사계절을 살아낸다. 점입가경, 전화위복 등의 꽃말로 가을에 성숙해져서 겨울로 갈수록 더욱 붉어진다. 오가는 거리 건물 앞이나, 갓길 화단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다. 임승유 시인의 시선은 흔한 것에서 낯섦의 형식으로 나아간다. 시집 해설을 변용해 이렇게 달리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되기 위해 필요한 나와 그러나 그 나란 그 자체로 온전한 나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 무의식적인 행동, 그것에 대한 시선들이 얽혀 있는 나 그리고 알파라는 형식 말이다. 어떤 요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재료가 당연히 필요하듯, ‘나’에 대해 말하기 위해 ‘나’의 시선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시선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이 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은 식물과 공생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시간이 아닌 식물의 시간으로 삶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보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낯선 시선으로 나를, 일상을, 삶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삶을 헤쳐나가는 방법 하나쯤은 강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동네에 가끔 들리는 카페가 있다. 카페 이름이 좋아서, 혹은 카페 주인이 금천이와 같은 친구여서. 다 떠나서, 그 작은 카페 통창 밖으로 작은 화단이 있다. 담장에 우드 울타리를 타고 남천이 자라는데 생명력이 남다르다. 화자가 말하는 것처럼 “엄청 크고 무성한 남천” 이를테면 식물의 상태가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다. 얼마 전 작은 화분에 옮겨와 서재에 두고 보는데 시들하다. “생각날 때마다 창문 열어 주면서 물 주면서” 돌보는 데도 마음만큼 좋지 않다. 처진 생명을 보는 일은 슬프다. 지난 계절 시린 영혼을 보는 것처럼 덩달아 아프다. 시인의 시에서 남천이라는 이름을 만나고, 키우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남들이 다 가고 없는 겨울 화단, 늦은 계절 점입가경의 염을 담아 남천이라는 이름을 올린 태초의 사람, 키우는 자의 마음에 대해. 식물이든 사람이든 생명을 만지는 일은 어렵다. 제 살던 곳에서 조금만 환경이 바뀌어도 낯설어도 다치기도 쉽고 상하기도 쉬운 언어여서 말이다. 이만큼의 봄이 왔다, 순서대로 피고 또 질 것이다. 해마다 교정의 벚꽃 터널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며, 같은 듯 보여도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구성원들을 발견한다. 생명의 연이란 그래서 귀하다. 얼른 가서 서재에 두고 온 남천을 돌봐야겠다.

2025-04-06

APEC이 바꿀 경주의 미래, 세계가 경주를 주목합니다

주낙영 경주시장 2025년, 경주가 또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바로 이곳, 경주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아시아·태평양 21개 회원국 정상은 물론, 아세안 사무국, 태평양경제협력회의(PECC), 태평양도서국 포럼(PIF) 등 주요 국제기구들이 함께해 세계 경제의 미래를 논의합니다.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경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지역 발전을 이끌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정부와 국회, 민간도 경주를 응원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근 대통령 권한대행이 경주를 직접 방문해 APEC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철저한 사전 준비를 당부했습니다.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이 자리에서, 경주가 세계와 만나는 관문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밝혔습니다. 국회 역시 여야 합의로 ‘APEC 정상회의 지원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회의의 성공적 개최와 이후 지역 발전 전략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초당적 협력이 만들어낸 이 특위는 APEC을 통해 경주가 더 큰 도약을 이루는 데 든든한 힘이 될 것입니다. 민간에서도 발 빠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7일,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경주를 방문해 APEC 경제인 행사 준비 상황을 직접 점검하며 민간 차원의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대한상의와 딜로이트 컨설팅이 공동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APEC 정상회의로 발생할 경제적 파급효과는 약 7조 4,000억 원, 고용 유발 효과는 2만 2,634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강력한 성장 동력이 될 것입니다. 경주시는 이러한 기회를 반드시 살리기 위해 전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부 및 유관 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회의 운영은 물론, 도시 기반 정비와 이미지 제고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첫 결실로 지난 2월 24일부터 3월 9일까지 경주에서 열린 제1차 고위관리회의(SOM1)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회의 기간 동안 약 2,000명의 APEC 관계자들이 경주를 찾았고, 숙박과 식음, 관광 활동 등을 통해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에서도 대규모 국제행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하며, 경주가 국제회의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가 됐습니다. 회의 기간 운영된 청년 감성 팝업스토어, K-콘텐츠 홍보관, 참가자 맞춤형 관광 프로그램은 큰 호응을 얻으며 경주의 매력을 국내외에 알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경주시는 오는 10월 정상회의 본행사를 앞두고 도시 전반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주요 도로와 교통망 정비는 물론, 숙박 및 관광 인프라 현대화를 통해 방문객들에게 보다 편리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APEC 이후를 대비한 중장기 전략도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감포에 건립 중인 문무대왕과학연구소는 올해 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동경주IC 일대에는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한 소형모듈원자로(SMR)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경주는 원자력 기술 기반의 미래 산업도시로 성장하며, 지속 가능한 일자리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입니다. 경주시는 APEC을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이를 계기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앞으로도 국제회의 유치, 민간 외교 확대, 문화 교류 활성화를 위한 전략을 꾸준히 추진하겠습니다. 찬란한 역사문화 자산 위에 첨단 기술과 산업을 더해,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새로운 도시 모델을 만들어가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도약은 시민 여러분의 참여와 협력이 있을 때 완성됩니다. 깨끗한 도시 환경 조성, 친절한 손님맞이, 경주의 문화 알리기 등 일상 속 실천이 곧 세계를 향한 민간 외교입니다. 시민 한 분 한 분의 자부심과 환대가 세계인의 기억 속에 남을 ‘경주다운 경험’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경주시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이번 APEC 정상회의를 가장 성공적인 국제행사로 만들겠습니다. 세계 속 경주,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길 위에 선 경주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2025-04-06

헌법재판소의 판결 범위는 어디까지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4월 4일 온 국민이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헌재가 있는 안국 역을 비롯해서 근처 광화문역까지 지하철 운행을 통제하고 365일 영업하는 교보문고까지 휴업하는 등 만일에 있을 사태를 대비해서 그런지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다. 법 조항으로 볼 때 이번 대통령 탄핵소추안 판결은 단순한 사안이다. 12·3 비상 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하여야 한다’는 조건에 전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판결에서 8명 재판관 모두 탄핵소추 5개 사유에 대해 만장일치로 인용했다. 그러나 2월 25일 최종 변론 후 30일이 훌쩍 넘어도 판결이 나오지 않자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과 인맥을 문제 삼으며 헌재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는 주장이 나왔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에서 3분의 2 동의를 얻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임명직 재판관 몇 명이 결정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제 대통령 파면 판결로 이런 논란은 잠잠해졌지만, 나는 이것을 계기로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숙고하게 되었다. 유시민을 비롯해서 탄핵 찬성 쪽 국민들이 판결문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꼽은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다’는 대목에 대해 나는 이것이 헌재가 판결 기준으로 삼을 항목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국민의 신임 여부’라는 근거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가까이는 한덕수 총리 탄핵 판결에서부터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 박근혜 두 대통령의 탄핵 판결에도 나온다. 2004년 헌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기각’ 결정문에서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벗어나거나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자격을 상실한 경우라고 했고, 이것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국민의 신임 여부가 헌재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기능이 더 많다. 이런 식으로 되면 국민의 신임 배반을 판단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오남용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한덕수 탄핵소추만 보아도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는 의견이 5명이었는데도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4명인 것은 위헌을 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힘들다. 작년 12월 18일 어느 매체에서 언급했듯이, 헌법재판의 본질이 ‘정치적 사법 작용’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국민의 신임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는 ‘여론’이니, 찬반 여론전에 국민의 반목만 심해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65조에서 탄핵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국민의 신임 배반’이라는 조항은 없다. 그러니 파면 여부를 결정할 중요한 키는 국민의 신임이 아니라 위헌이어야 한다. 앞으로 헌재는 피소추인의 헌법 조항 위반 여부만 신중하고 신속하게 판단해서 국론 분열과 국력 낭비를 줄여주기 바란다.

2025-04-06

‘우리’를 되살릴 수는 없을까

김규인수필가 나라가 산불을 진압하느라 긴 시간을 보냈다. 전국 열한 곳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산불처럼 계엄선포에 따른 좌우의 극심한 대립도 강풍을 만난 듯 커져만 갔다. 온 나라가 재난과 좌우 대립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불길은 하늘이 잡았고 극심한 논쟁과 시위는 파면으로 끝을 맺었다. 하늘을 쳐다보아도 건조한 바람만 불고 텔레비전을 켜도 극심한 대립만 보였다. 대외적인 통상의 어려움에도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한다. 강대국이 휘두르는 관세의 철퇴에 방향을 잡지 못한 대한민국호는 흔들리기만 한다. ‘하면 된다’는 생각보다는 산불로 인한 불안과 정치적인 혼란과 경제적인 어려움만이 우리 주위를 맴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노점상 김정순 할머니의 선행 기사가 있어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자신의 어려운 삶에도 평생 모은 1억 원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무작정 전남대학교를 찾은 할머니. 자신이 공부하지 못한 한을 더는 주위의 어려운 학생들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 마음을 적신다. 할머니가 선뜻 내민 많은 돈은 우리를 위함이었다. 나의 욕심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를 위해 손을 내민 것이다. 어쩌면 사회지도층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온갖 추한 모습을 보이며 싸움질할 때 할머니가 우리 사회에 내민 선물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야 할까. 그동안 우리는 남을 배려하기보다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는 데에 혈안이 된 건 아닌지. 어쩌면 우리 사회를 이끄는 것은 이런 선한 마음들이다. 지난 3월 25일, 산불이 난 경북 영덕군 축산면 경정3리 마을에서 나이 드신 주민들을 업어서 대피시킨 인도네시아 국적의 선원 수기안토(31) 씨의 사연도 감동을 준다. 남의 나라에 돈 벌러 와서 자신이 다치면 고국에 남은 가족들이 염려되었을 건데도 불길을 헤치고 “할머니”라고 부르며 나이 드신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다. 불꽃이 강풍을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데, 몸이 재산인 외국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선행을 베푸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와 함께 사람들을 구한 마을 이장 김필경(56), 어촌계장 유명신(56) 씨 같은 분의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극심한 정쟁으로 사회에서 ‘우리’는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 대한민국이 가진 강력한 힘의 원천인 ‘우리’를 되살릴 수는 없을까. 노점상 할머니가 남긴 우리의 씨앗을 살리고 여기에 수기안토 씨의 인류애를 더한다면 ‘우리’라는 공동체 문화를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극단적인 싸움과 이기심 뒤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마주 보고 서서 상대를 향해 고함을 지르기보다, 이웃을 위해 내미는 손이 필요하다. 서로의 가슴에 든 가뭄을 정으로 적셔나가야 한다. 갈라진 마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서로에 대한 원망과 한숨만이 주위를 맴돌 뿐이다. 우리 이웃이 남긴 소중한 씨앗을 꽃 피우는 데 함께하지 않으려는가. 사회가 어려울 때 우리를 지켜낸 건 주위의 이웃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 손을 잡을 때 온기가 사회로 퍼져나갈 것이다.

2025-04-06

행정은 대구염색단지에 관대한 것일까

최근 대구염색단지 내 하수관로로 보랏빛 염료로 추정되는 물질이 유출된 것과 관련해 인근 주민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단속할 관계당국이 매뉴얼이 없어 사실상 원인 규명과 진원지를 찾을 수 없다는 말에 허탈해 하는 반응이다. 누가 밤사이 몰래 염료 등을 흘러보내도 된다는 것인지 의아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구염색산단에 대해 행정당국이 유독 관대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대구염색산단은 1981년 설립 이후 대구경북의 경제 성장을 이끈 산업역군으로 누구도 부정 못한다. 지금도 그런 점에서 그들의 경제활동에 대해 응원한다. 비록 예전같지 않은 경기로 어려움을 겪지만 산단의 중요성이 변할리가 없다. 다만 환경문제가 우리 삶의 질과 관련해 중요 과제로 대두되면서 주민들은 기업도 환경기준에 맞는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대구 서구청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후 대기방지시설 교체를 진행했다. 73%는 염색산단에 집중했다. 그 결과, 서구청은 2019년보다 지난해 9월까지 주요 악취 물질인 암모니아 수치와 황화수소 수치가 감소하는 성과를 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노후시설 개선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대구염색산단은 환경문제 유발로 2030년까지 군위군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목표대로 이전이 되지 않으면 정부의 탄소중립정책에 맞춰 석탄화력발전소를 친환경 에너지로 바꿔야 하는 큰 부담도 안고 있다. 하수관로 이물질 유출 사건이 비록 미제로 남았으나 산단 주변 주민들에게는 기업에 대한 불신으로 남았을 소지가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5-04-04

4월의 이야기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시인 박목월은 ‘4월의 노래’에서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며 꿈의 계절을 노래했는데, 영국 시인 엘리엇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고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일깨우는 무엇이 있어서일까? 그러고 보니 우리의 4월에는 가슴 아픈 기억의 날들이 많다. 해방 4년 후 터진 제주 4·3사건은 탄압과 학살로 제주도민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고, 4·19혁명은 민주화로 나라의 운명을 바꾸었으며, 10여 년 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학생들의 꿈을 노란 리본에 묶어버린 충격적인 사건이다. 참으로 잔인한 4월의 기억들이지만 이러한 마음의 상처를 보듬듯 화사한 봄의 정령이 우리 앞에서 하늘하늘 춤추고 있다. 청명날 맑은 공기 마시며 풍년을 빌어야 하고, 한식에는 예의를 갖추어 조상님 묘소를 돌봐야 하는데 이날은 또 산불 조심도 해야 한다. 지난 3월의 대형 산불로 인해 넓은 산림과 많은 마을이 새까맣게 잿더미가 되어 버린 기억은 아직도 마음속 잔불을 정리하고 있는데, 마음이 타고 있을 이재민에게 각계각층에서 보내준 온정의 손길이 이들을 치유해 주기를 바란다. 곧 식목일이다. 울창한 산림을 위해서 나무를 심는 것과 함께 관리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목일은 1949년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산림복구’라는 국가적 과제를 잘 수행하여 50여 년 전만 해도 황폐된 산림의 ‘복구 불가’ 판정을 받은 나라가 2020년 10월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로부터 최근 25년간 산림 증가율 세계 1위, 산림 크기 4위라는 ‘기적의 나라’로 판정받았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식목일은 1949년 법정 공휴일로 정해졌었다. 60년 ‘사방(砂防)의 날’로 폐지되었다가 다음 해 복귀되었고, 2006년 다시 제외되어 법정기념일로 되었다. 그런 탓인지 식목에 대한 국민 인식이 줄어든 듯하니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 및 생물 다양성 감소 등에 대한 인식 전환과 참여로 식목일이 국민 마음에 다시 살아나도록 힘쓰자. 공휴일이 아니더라도 단체 나무 심기 등으로 산림 보호에도 신경을 써야겠다. 4월은 축제의 달이기도 한데, 이번 산불로 여러 지자체에서 예정된 식목 행사가 취소되었고, 포항도 이달 중순에 계획되었던 해병대 축제를 비롯하여 호미곶 돌문어 축제와 장량떡고개 벚꽃 문화축제도 연기되었다. 그러나 4월에는 부활절이 있다.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혔던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듯, 산불 피해를 입어 잘 곳과 생활 터를 잃은 주민들에게 사랑의 성금과 봉사활동으로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부활의 의지를 줘야겠다. SNS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식목일이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었고 4월7일이 임시공휴일로 결정됐다고….‘끝까지 읽어보세요’ 한다. 뜻밖의 일이라 쭉 읽어봤더니 아! ‘오늘은 만우절’이라는 거짓말 6행 시였다. 남을 속이려는 ‘빨간 거짓말’은 아니고 그렇다고 남을 편안하게 하는 선의의 ‘하얀 거짓말’도 아니고 자신의 죄를 덮으려는 ‘까만 거짓말’도 아닌데…. 만우절에 회색 거짓말일까? 4월은 그래도 봄꽃이 화려한 행복의 꽃밭이기를 기다려 본다.

2025-04-03

강요하지는 마라

노병철수필가 누군가가 내 생각과는 전혀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한다. 나의 관점에서 보면 논리가 없고, 궤변이다. 왜 저런 생각이 나올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설득해 보려 노력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이미 확정 편향적 시각으로 모든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에게 그 어떤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안다. 오직 자신의 사고에 몰입되어 생각이 다른 타인을 경멸한다. 세대 간의 간격이 넓어 서로의 사고 폭이 좁다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동시대 같은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하긴 쌍둥이라도 의견차는 존재한다니깐 크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삶의 부조리란 개인의 욕구와 사회 현실의 불일치에서 오는 것이며, 이 부조리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인간의 기본조건이라고 말한다. 말을 이렇게 하니 참 어렵다. 하지만 쉽게 풀이할 마땅한 말도 없다. 오늘 대통령이 탄핵당하든 기각이 되든 어떤 결론이 헌법재판소에서 나올 것이다. 그 결과를 보고 이해관계나 이데올로기 성향에 따라 반 미치는 사람들이 속출해 난리가 날 것 같다. 이들은 개인의 욕구와 사회 현실의 불일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울분을 토하고 과격해질 조짐이 보인다. 이미 여러 곳에서 좋지 않은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갈수록 흥분도는 더해갈 것이다. 일반적인 윤리의식과 통상적 일반인의 상식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니 어안이 벙벙하다. 마치 카뮈의 이방인이란 작품 속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보고도 슬퍼하지도 않고 살인을 저질러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주인공을 보는 것처럼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사태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분노에 휩싸여 폭력까지도 불사할 정도로 흥분한다. 모두가 나만의 사고에 몰입되어 있다. 자기가 제일 똑똑하고 자기 생각이 매몰되어 빠져나오지 못한다. “내 마음 같지 않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서나 들을 법한 말을 요즘 사람에게 들으면 조금 뜬금없다. ‘생뚱맞다’라고 표현해야 하나. 사람 마음이 똑같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정반대인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사람들은 절대 한 방향만 바라보지 않는다. 문제는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서 물리적 힘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냄새나는 홍어를 먹기 싫은데 누군가가 총이나 칼을 얼굴에 들이대면서 먹으라고 강요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마누라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해서 밥상을 엎거나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것을 보고 ‘맞을 짓 했다’라고 이야기할 것인가. 그 누구도 타인의 생각을 강요받을 이유는 없다. 난 냄새 나는 홍어가 먹기 싫다. 맞아가면서 먹는 것은 더 싫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물리적인 힘을 사용해서 강요하는 것은 파쇼적 사고방식이다. 이런 방식의 끝이 그렇게 좋지 않았음을 우린 배웠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실은 늘 극단주의자들에게 선동당하고 급기야 폭력적으로 변하고 만다. 참으로 참담하고 안타까운 현상이다.

2025-04-03

상부상조 정신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 민족에게는 바쁜 농사철에는 일을 서로 나눠 하는 좋은 전통 관습이 있다. 마을 공동체가 공동으로 조직한 두레나 품앗이 등이 그것이다.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필요할 때 부르고 달려가 도와주는 상부상조 정신의 협동조직이다. 농업이 주된 기반인 농촌사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마을 단위의 협력조직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사회가 형성되면서 어려울 때 남을 돕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가치다. 이런 상부상조 정신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본심이 선량하기 때문이다. 십시일반이라는 말도 있다. 여러 사람이 한 숟가락씩 모으면 한 그릇의 밥이 된다는 뜻이다. 여러 사람이 조금씩 힘을 보태면 한 사람을 돕기가 쉽다는 말이다. 역시 상부상조 정신과 통하는 표현이다. 영남지역 산불의 피해복구와 이재민을 돕기 위해 100억 원을 쾌척한 기업이 있어 화제다. 다단계 기업인 애터미(주)는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 100억 원을 전달했는데, 지금까지 모금회에 전달된 성금 중 역대 최고라 한다. 원래는 애터미 직원들의 자조 모임에서 산불 피해 회원을 돕기위해 시작한 것이 회사가 참여하면서 100억 원대로 커진 것이라 한다. 경북 산불피해가 알려지면서 각계의 성금들이 줄을 잇고 있다. 포스코 그룹이 20억 원, 포항의 삼일가족이 1억 원을 기부했으며 기업과 공공기관, 금융기관, 연예인, 개인 등 성금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국채보상운동의 본거지인 대구와 경북의 상부상조 정신이 경북 산불 피해주민에게도 전달되고 있다. 성금이 피해주민들에게 희망의 불빛이 되길 기원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03

한 사람만을 위한 법 해석이 가능한 나라

김세라 변호사 형사소송은 크게 수사와 공판 절차로 나누어진다. 수사기관이 수사를 해 범죄 혐의를 밝혀낼 증거를 확보하면 피의자를 기소하고, 공판이 시작된다. 수사 방법 중 체포·구속·압수·수색 같은 강제수사는 국가의 힘으로 국민의 신체를 제압하고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이기에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강제수사의 요건을 엄격히 정하며, 체포·구속 기간도 명확히 정해두고 있다. 형사절차에서 기간이 문제될 때 법률에 시(時)를 기준으로 규정한 것이 있고, 일(日), 월(月)을 기준으로 규정한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피의자를 체포한 때부터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하는 것이 시(時) 기준이라면, 검찰 구속기간에 대해 최대 20일이라고 정해놓은 것은 일(日) 기준, 기소 후 법원의 구속기간을 2개월 단위로 정한 것은 월(月) 단위 규정이 되겠다. 이런 시, 일, 월 단위의 기간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우리 법은 자세히 규정한다. 일, 월, 연 단위로 규정해 놓은 것은 역(曆)에 의해 계산하되 구속기간의 경우 초일을 산입하라고 한다. 밤 11시 59분에 구속되었어도 1일 구속한 것으로 치라는 뜻이다. 또 피의자가 법원에 체포·구속 적부심을 청구하면 그 적부심 재판을 위한 기간은 체포 구속기간에 넣지 말라고 한다. 수사기관의 수사기간을 보장하고 피의자가 적부심 청구를 남발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이상의 내용들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래 70년 이상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별다른 이견 없이 적용되어 온 것이고, 이를 통해 수많은 피의자가 구속 또는 석방되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취소 사건에서 법원은 이와 전혀 다른 판단을 하였다. 검찰단계에서 피의자 구속기간은 20일이라는 일 단위로 규정되어 있지만 이를 시간 단위로, 그러니까 480시간으로 해석하라는 것이다. 적부심 청구로 법원에 계류된 시간도 시간을 재서 480시간에서 빼라고 했다. 결국 이 새로운 해석에 따라 구속이 취소되었고 윤석열 대통령은 석방되었다. 구속기간 관련한 법원의 첫 해석이자, 그에 따라 석방된 최초 사례가 되었다. 물론 법령의 최종 해석 권한은 법원에 있는 것이므로 이제는 판례가 바뀌었다 볼 수도 있었다. 검찰이 구속취소 결정에 대해 항고해서 대법원에서도 동일한 판단이 내려졌다면 앞으로 구속 피의자들의 구속기간은 시간 단위로 계산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례적으로 쿨하게 항고를 포기하고, 전국 검찰청에 종전 방식대로 구속기간을 ‘시’가 아닌 ‘일’ 단위로 계산하라는 공문을 보내기에 이른다. 구속기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한 이 해석이 오로지 윤석열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한 해프닝이었음을 검찰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필자는 한동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형사소송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제 검찰 구속기간을 20일이라고 가르쳐야 하는가, 480시간이라고 가르쳐야 하는가. 너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이 법이라는 것이 단 한 사람만을 위해 단 한번만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는 것이라고는 차마 가르치지 못하겠다.

2025-04-03

쉼의 통점

배문경수필가 새벽에 잠에서 깼다. 어둠 속에서 곁에 둔 핸드폰을 더듬어 누르자 한 시다. 배가 아파서 잠결에 깬 것인지, 갱년기 불면증인지 겨우 한 시간 눈을 붙였다. 이즈음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한두 시간 잤다 싶으면 번쩍하고 눈꺼풀이 걷히면 이후 잠들 수가 없다. 잠들기 전 일이 떠올랐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몰려왔다. 동시에 위가 비틀리며 따갑게 통증을 유발했다. 손바닥으로 통증 부위를 둥글게 문질렀다. 위가 부은 것인가. 위액분비가 심한가. 원인을 찾다 수년 전 그녀를 만나던 장면으로 생각이 날아갔다. 연말에는 행사가 많았다. 대구 K 호텔은 화환이 입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서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소속된 문학회의 화환도 눈에 띄었다. 사람들의 열기가 추위를 녹여내고도 남았다. 이미 얼굴이 익은 사람들과 안부를 묻고 이 큰 행사를 주관하는 홍 선생님과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리허설 중에 있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낭자했다. 진행 관계자가 이럴 때는 시간에 쫓겨 걱정스럽기도 하겠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밝고 화사한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잘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화색 좋은 그녀들을 보며 경주에서 온 서너 명인 우리 일행들도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며 나는 그녀를 찾기 위해 눈동자를 굴렸다. 그때 급하게 들어서던 그녀를 봤다. 적당히 틀어 올린 머리카락과 정돈된 옷이 잘 어울렸다. 그녀의 꽤 잘 쓴 글을 접한 이후 스타를 쫓는 팬처럼 올 때마다 그녀를 먼저 찾아 인사를 나눴었다. 반갑다고 다가가는 순간 그녀의 발에 슬리퍼가 눈에 띄었다. 남색 플라스틱에 흰 줄이 두 줄 그어져 있는 실내서 싣는 신발, 이 추위에 그녀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정장을 한 모습이었다. 중학교 과학 교사라고 전해 들었다. 별것 아닌 듯이 “아~ 슬리퍼 신었네요. 인주샘!” 그제야 자신의 발을 보더니 잊고 그냥 나왔다며 멋쩍게 웃었다. 나도 마주 보며 그럴 수 있다며 마주 보고 웃었다. 이미 그녀는 자신의 문학 장르에서 큰 상을 받고 두각을 나타냈으며 촉망받는 작가였다. 나는 잘 가던 대구로의 행보가 쉽지 않아지고 기억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한 번씩 떠올랐지만 바쁜 일상으로 종종걸음을 치다 보니 시간은 그렇게 거리를 만들었다. 그래도 문득문득 그녀의 소식이 바람결에 날려와 내게 소식을 전했다. 문득 일상을 마감할 즈음에 그녀가 뇌리에 와서 박힌 건 이상했다.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 석 자를 치자 수상 소식과 아름다운 모습도 몇 컷이 보였다. 지인의 홈피가 열리고 그녀의 글이 실려 있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녀의 이름 아래에 괄호 속에 생몰 연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태어난 해와 생을 마감한 해가 다 적힌 건…, 믿기지 않아 전화를 돌려 지인에게 확인을 시도했다. “아까운 사람이지. 스트레스로 인한 위암이었어.” 시인으로 우뚝 서고 싶었던 그녀는 높은 서울로의 진출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때론 무엇에 꽂히면 앞뒤 좌우 없이 앞만 보고 달릴 때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엇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어찌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인지,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 이루지 못한 꿈과 좌절감으로 시커멓게 속이 탔을 그녀를 암으로 몰아넣은 모양이었다. 새벽 위통을 견디기 위해 물을 들이켰다. 위액이라도 중화시켜야 속이 덜 아플 것이었다. 근래 전에 없던 위통이 왜 새벽 한 시에 나를 깨운 것인가.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은 멀리 달아나 버린 상태였다. 나의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보였다. 수시로 굶고 수면 부족에, 이곳저곳에 있는 행사에 초대되거나 직접 치러내야 하는 일들 속에서 종종거릴 때가 많다. 나의 뇌리를 스친 그녀의 기억은 나의 현재 상황을 일깨웠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는가. 바쁜 일상에서 내가 놓치고 빠뜨린 것은 무엇인가. 소중한 것들을 잊고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은 꼬리를 물고 나를 쳐다본다. 어떡할 거냐고 무슨 대답을 바라는 듯이, ‘쉼 때론 쉼이 필요해’라고 뱃속의 무엇인가가 여행도 하고 너를 위해 오직 너를 위해 너를 사랑하라고 타일렀다. 내일 이른 시간으로 위내시경을 예약하며, 오직 나를 위한 쉼 시간도 예약했다.

2025-04-02

오어사(吾魚寺)

경북 포항 오천 항사리에 가면 오어사라는 절이 있다 한 놈의 땡중 때문에 한때 구설수에도 올랐지만 흠없는 사람 어디 있으랴 눈 질끈 감고 용서해야지 그래야 서로서로 사람이 되지 그밖에는 모든 것이 이쁜 절 부처가 아무리 부처라 해도 인간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는 모양이라 운제산(雲梯山)은 장구해도 덜 떨어진 인간 하나 감당 못했네 오어사, 이리저래 그냥 절하라고 있는 절, 업보가 없으면 사람이 아니지 쌓고 닦으며 평생을 수행하지 성불은 무슨, 그냥 닦는 거지 장작을 패는 마음의 인간의 따스함, 삼팔광땡 같은 후광과 온기가 있어 그것으로 충분하리. 능엄경에서 읽었다. ‘사마타’는 마음의 본래 자리인 집을 보는 단계로 돈오를 일컫는 말이다. ‘삼마다’는 집의 대문을 통과해 집에 들어서는 단계로 점수를 가르키는 말이다. ‘선나’는 집 안마당을 거쳐 방 안까지 걸어가는 단계로 불이(不二)를 말한다. 이 말을 나는 껌을 씹듯 중얼거리곤 한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4-02

이성과 감정의 조절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인간의 뇌는 감정과 이성을 조절하는 두 가지 주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전두피질은 논리적 사고, 판단, 충동 조절 등의 기능을 담당하고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과 같은 감정 반응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 두 영역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균형이 깨질 경우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스트레스와 불안 반응이 증가하면서 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이는 심박수 증가, 근육 긴장, 호흡 속도 증가 등의 신체적 반응을 일으키며 지속될 경우 만성 스트레스, 불안장애, 수면 장애 등의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전전두피질이 충분히 기능하면 감정 조절 능력이 향상되어 편도체의 과도한 반응을 억제하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신체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심박수가 낮아지고 호흡이 깊어지며 근육이 이완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한의학적 치료 방법으로는 한약 요법과 초음파 약침 치료가 있다. 한약은 전전두피질과 편도체의 균형을 맞추고 자율신경계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약을 환자의 증상에 맞게 처방하면 전전두피질의 기능이 강화되어 스트레스가 조절되고 또 편도체의 과활성을 억제하여 불안과 긴장을 완화 할 수도 있다. 이는 신경계의 균형을 맞추어 감정 조절과 수면 개선에 도움을 준다. 한약 처방은 개인의 체질과 증상에 맞춰 처방되므로 한의원에 가서 한의사의 처방을 받아야한다. 초음파 약침 치료는 성상신경절에 약침을 주입하여 교감신경의 과활성을 조절하는 방법이다. 성상신경절은 교감신경 과항진을 억제 하는데 한약재를 증류한 약침을 놓으면 편도체의 과도한 반응을 억제하고 전전두피질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 초음파를 이용하면 성상신경절의 위치를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어 치료의 안전성과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성상신경절을 치료 하면서 부교감 신경을 제어 하는 미주신경까지 같이 약침 치료를 할 수 있다. 명상은 전전두피질과 편도체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명상을 하면 편도체의 활동이 감소하면서 감정적 반응이 완화되고 전전두피질의 기능이 활성화되어 충동 조절과 이성적 판단력이 향상된다. 또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하여 심박수를 낮추고 호흡을 안정화시키며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효과가 있다. 복식호흡을 통한 명상은 편도체의 반응성을 낮추고 스트레스 저항력을 높이는 데 유용하다. 규칙적인 명상 습관을 유지하면 전반적인 신경 균형이 개선되면서 긴장 완화에 지속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전두피질과 편도체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한약 치료와 초음파 약침 치료를 병행하고 명상을 통해 뇌의 구조적 변화를 유도하면 더욱 효과적인 자율신경 조절이 가능하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치료를 넘어 일상 속에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규칙적인 실천이 건강한 신체와 마음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25-04-02

내 인생의 ‘스위트 스팟(Sweet Spot)’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골프나 배드민턴, 야구 등의 스포츠에서 골프채, 라켓, 배트 등으로 공을 칠 때,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멀리 빠르게 날아가게 만드는 최적 지점을 스위트 스팟(Sweet Spot)이라고 한다고 했다. 최적의 타격면이라는 뜻이라는데, 원래 스포츠 분야에서 나온 용어인 걸 검색해서 알았다. 야구선수는 배트에 공이 이 스위트 스팟에 딱 맞는 순간 공이 제대로 멀리 날아갈 것을 안다고 했다. 스포츠 용어인 ‘스위트 스팟’은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로 좋은 시기나 부분, 한 마디로 최적화된 상태를 나타내는 의미로 폭넓게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경제 분야에서의 스위트 스팟은 경제가 이례적으로 호황을 누리는 시기를 의미하고 마케팅에서는 소비자가 기업에 가장 매력을 느끼는 시점 혹은 그 느낌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 단어를 샘 리처드 교수(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 사회학과)가 쓴, 최근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으로 접했다. 유튜브의 숏츠나 채널로 종종 리처드 교수를 만났기에 그가 쓴 책이 궁금해서 사 읽었다. 리처드 교수의 강의실은 특별했다. 간편한 티셔츠나 청바지 차림의 교수는 계단식 큰 강의실에서 주제를 말한 후 여러 학생들을 앞자리로 불러 앉힌다. 자발적으로, 혹은 불려 나온 학생들은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었다. 교수가 질문하고 학생들이 답하는 형식의 그 강의는 ‘SOC 119’라는 유튜브 채널로 전 세계에 방송되며 교육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2017년엔 ‘그런 말은 하면 안돼요’라는 제목으로 인종과 피부색에 대한 수업을 진행해 미국 에미상 교육·학교 프로그램 부문 최고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는 뉴스도 들은 적이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인종과 성별, 문화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는 가운데 학생들이 편견과 고정관념을 벗어나 타인의 관점으로 사고하도록 지도하는 강의다. 교수가 질문하고 학생이 답하는 혁신적인 방식인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이 5만 명이 넘었다고 했다. 리처드 교수는 한국문화와 한류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강의를 자주 해서 한국인들에게 매우 친근한 대표적인 학자다. 리처드 교수는 인생에도 ‘스위트 스팟’과 같은 지점이 있다고 말한다.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의 시점에 맞닥트리게 되고 그 중 인생 최고의 순간이 바로 ‘스위트 스팟’이라는 것.‘스위트 스팟’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 있으며, 어쩌다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스스로 찾아내고 느끼는 것이라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스위트 스팟’이라는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은 이 단어를 ‘타이밍(timing)’ 혹은 ‘줄탁동시(5550啄同時)’ 정도로 치환했더니 훨씬 더 이해가 잘 되었다.‘타이밍(timing)’은 어떤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순간, 적절한 좋은 시기를 뜻하는 것이고, ‘줄탁동시(5550啄同時)’는 병아리가 안에서 쪼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는 순간 알에서 깨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이 역시 최고의 순간이라는 뜻 아닌가. 내 인생 최고의 순간, ‘스위트 스팟’은 언제나 열려 있다. 매 순간일 수도 있다.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202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