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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스만제국 치하 그리스 독립

그리스는 1814년에 독립을 위한 비밀결사가 ‘헤타이리아 필리케’가 조직되고 1821년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이 펼쳐진다. 그리스 독립은 유럽인들의 관심도 지대했다. 유럽 기독교인들에게 이슬람 압제에 신음하는 그리스는 유럽 역사와 문화, 더 나아가 정신적 뿌리로써 반드시 독립시켜야 할 땅이었다. 그 이면에는 오래전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비잔티움 천도를 계기로 그리스어가 표준어가 되면서 동로마가 오스만제국에 멸망하기까지 1100년 넘게 그리스어를 사용한 것도 한몫했다. 서구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그리스를 최초의 유럽으로 여기듯 그리스와 로마는 자신들 문화와 태생적 정신적 뿌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1822년 1월, 그리스는 독립을 선언하고 공화국 헌법을 제정했으나, 오스만제국이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이때 서구사회는 예술과 문학은 물론, 과학기술 발전에 진일보하면서 전쟁 무기까지 상상을 초월했고,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오스트리아와 오스만트루크 두 제국의 넓은 영토가 식욕을 자극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신성 강국으로 떠오르는 프로이센까지 두 제국에 압박을 가해왔다. 기세에 밀린 오스만제국은 점점 쪼그라들었으며, 넓은 영토를 차지한 오스만제국으로서는 서아시아 나라들과 페르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지중해 곳곳에서 터지는 전쟁도 모른척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실신 일보직전에 그리스가 독립을 선언해버린 것이다. 그리스 독립에 더욱 힘이 실린 것은 때마침 18세기 말부터 유럽에는 낭만주의란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고전적 엄격함과 사회 규범을 중시한 신고전주의에 대항해 떠오른 낭만주의였다. 일파만파, 유럽에 미치는 낭만주의 사조는 ‘그리스 사랑 운동’으로 이식되면서 그리스 독립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화두가 됐다. 그리스 독립이라는 이 영웅적인 명제에 자발적으로 전쟁 비용을 쾌척하는가 하면,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 등 스스로 전쟁에 참여하려는 젊은이들이 발칸으로 몰려들었다. 독립전쟁의 횃불을 높이 든 그리스는 ‘자유냐 죽음이냐(Eleutheria e Thanatos)’구호 아래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스 독립에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가 연합했고, 자발적 용사들이 그리스로 몰려들자 탄력을 받으면서 1827년 독립의 꿈을 이룬다. 그해 10월 20일 지중해를 접한 그리스 나바리노(필로스) 전투에서 오스만군대가 궤멸당하다시피 하면서다. 그리고 1829년 그리스가 국제사회에 정식국가로 인정받으면서 여타 민족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용기를 안겨준다. 1832년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가 참석한 런던회의에서 비잔티움제국 핏줄이면서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 출신 왕자 오톤(Othon)을 그리스 초대 국왕에 앉혔다. 전제군주국가가 된 그리스로서는 좋다 싫다 할 여유가 없었다. 비잔티움 핏줄로 왕위 계보를 이었으니 정통성을 강조한 진골 중의 진골을 환영했다. 17세 젊은 왕자는 바이에른 출신 조력자와 3천5백여 명 군인을 배에 태워서 그리스에 입성했다. 이후 영국 차관은행의 높은 이자율은 그리스 국민의 허리를 휘청거리게 했다. 더구나 그리스 정교를 믿는 나라 국왕의 종교가 로마 가톨릭이었다. 이렇게 되자 국민들로부터 위엄은커녕 군부 지지도 받지 못했고, 어느 한 구석이라도 존경받을만한 요소라곤 없었다. 덧붙이자면, 1836년 발칸반도에서 민족주의가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던 때 프랑스인이 그리스를 여행한 후에 한 말이다. “투르크족의 노예로 살아가던 그리스 사람들 모습은 실로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독립 후의 그리스는 끔찍하기만 했다. 절도와 폭력, 방화와 암살이 그리스인 삶이자 취미가 되어 있었다.” 한편 오스만터키와 오스트리아 역시 식민국가에서 불길처럼 번지는 독립 열기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와는 반대로 유럽 각국이 두 제국의 기운을 꺾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부동항 확보라는 러시아의 오래된 꿈이 서진으로 이어지며 발칸반도에 전운이 감돌았다. 러시아가 흑해를 둘러싼 발칸지역을 기습적으로 침략하자 깜짝 놀란 프랑스와 영국이 오스만제국을 돕기 위해 나섰다. 잠시 적의 적은 아군이었다. 프랑스는 물론 영국으로선 인도로 가는 무역길이 막혀버리기 때문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1853년 러시아가 두 강대국에 의해 주춤주춤 발칸반도에서 후퇴를 거듭하자 이에 만족하지 않은 프랑스와 영국은 크림반도까지 따라가 세바스토폴 해군기지를 점령하는 일이 벌어졌다. 내 땅에서 남의 군대끼리 치고 박는 모습을 지켜만 보던 오스만제국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허울뿐인 존재로 국제사회에 낙인찍힌다. 조선 구한말 당시 청나라와 일본이, 러시아와 일본이 한반도에서 벌인 두 전쟁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그 심정이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박필우스토리텔링 작가

2025-04-22

네온사인

아파트 앞 상가 간판의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온다. 붉고 푸른 빛깔이 번갈아가며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꺼져버리기도 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언뜻언뜻 다시 살아나는 그 빛은 마치 잃어버린 기억을 애써 떠올리려는 사람처럼 애달프다. 마치 마음이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것처럼 서서히 꺼져간다. 몇 년 전 해프닝으로 넘겼던 일들이 실상은 엄마의 기억의 편린들을 갉아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웃어넘겼고 엄마는 감정의 기복이 조금 많아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점점 불안정해졌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내 통장에서 돈이 자꾸 없어져. 그 은행 아가씨가 훔쳐 갔어.” 그냥 노인성 불안감쯤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엄마의 확신이 너무 집요했다. 네온사인이 꺼질 듯 말 듯 흔들리는 것처럼 엄마의 기억도 나날이 깜빡이며 흐려져 갔다. 엄마는 날마다 불편한 걸음으로 은행을 찾아가 한 명의 직원을 붙잡고 내 돈을 돌려 달라고 채근했다. 혼자의 힘으로 역부족이라 느낄 땐 경찰서를 찾아가 엄마의 힘들었던 지난 이야기와 적금을 어떤 돈으로 모아 왔고, 이 돈은 앞으로 우리 손주들 등록금 줘야 하는 용도인데 은행 직원이 엄마를 무시해서 다 가져갔고 거짓말을 한다고 신고까지 했다. 그 때까지도 우리는 엄마가 착각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분명하고 마치 우리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자식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가 은행을 찾아가 엄마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엄마의 설움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엄마의 소중한 돈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 자매는 은행을 찾았고 전산 기록을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은행 직원의 부도덕함을 찾을 수는 없었다. 엄마는 불면의 밤을 보내며 날마다 억울함을 호소했다.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찾았다. 우리가 염려했던 진단을 받고 눈물이 났다. 젊은 시절 가난에도 가족을 지켜냈던 엄마였다. 남편의 깊은 병환과 무너진 집더미 앞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엄마였다. 날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 앞에서도 우리들 옷매무새를 깔끔하게 다려 주었고 단정히 머리를 빗겨주었던 엄마였다. “내가 뭘 놓친 걸까... 내가 잘못한 걸까...” 허공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던 엄마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아무도 답을 줄 수 없는 물음이었다. 그저 그 말의 무게가,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시간의 깊이가, 가슴을 짓눌렀다. 돌이킬 수 없는 시작이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엄마가 엄마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우리가 자식이기를 놓지 않는 것. 기억은 사라져도 마음은 남고, 말은 잊혀져도 사랑은 흐를 것이기에 꺼져가는 불씨 속에서도 따스함은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이름으로, 말투로, 추억의 향기로. 엄마는 기억의 끈을 놓아가면서도 자신이 지켜야 할 무언가는 끝끝내 붙들고 있었다. 그것은 돈이 아니었고 엄마로서의 자리였다. 여전히 바쁜 딸들의 삼시세끼를 챙겼다. 손끝으로 반찬을 무치고 밥을 안치고 간을 보며 흘리는 그 작은 한숨 속에 엄마의 하루가 반짝였다. 잊어가는 와중에도 끝내 잊지 않으려 했던 그것, 그것은 우리가 아니었을까. 나는 엄마의 그 손길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꺼져가는 불빛 아래에서도 선명히 빛나는 따뜻한 엄마의 마음을. 문득 거리의 네온사인을 바라본다. 때로는 현란하고, 때로는 반짝이고, 때로는 사라지기도 하는 그 빛들 속에서 사람들의 하루와 사랑을 본다. 누구나 삶의 한구석에서 저마다의 빛을 간직하고 산다. 언젠가 흐려지더라도 그 빛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살아 남는다. 오늘도 그 작은 빛 하나하나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것은 누구의 전부일지 모르니까. 엄마는 계절을 놓쳐도 여전히 밥은 거르지 않는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모든 잎을 다 내려놓고 가지 하나 붙들고 있는 겨울나무처럼 기억의 옷을 벗어낸다. 진짜 사랑은 기억이 아니라 손끝에 남는 것이라는 걸 말하듯 오늘 저녁에도 반찬을 쓱쓱 무친다. /김경아작가

2025-04-22

‘탄핵의 늪’에 깊이 빠져드는 국힘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이 소환되면서 경선 분위기가 예민해지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20여 일이 돼 가지만 여전히 탄핵의 늪에 빠져 적전분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후보 대부분이 극성당원들의 표심을 자극해 1차 컷오프에서 살아남겠다는 궁리를 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유권자 눈에는 국민의힘 경선 과정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인기투표를 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4강 경선도 이런 식으로 치러지면 누가 본선 후보가 되든 후유증 때문에 당이 단합해서 대선을 치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우리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국민의힘 경선후보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갤럽이 가장 최근(4월 2주차) 발표한 조사에 의하면, 윤 전 대통령 탄핵 인용 판결에 대해 69%가 ‘잘된 판결’이라고 했다. ‘잘못된 판결’이라고 답한 사람은 25%밖에 되지 않았다. 국민의힘 대다수 후보들은 지금 민심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만약 헌재의 탄핵 인용에 비판적인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면 본선에서 경쟁력이 있겠는가. 국민의힘은 이번 대선에서 계엄과 탄핵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면 1년 뒤 지방선거에서도 이기기 힘들다. 최근에는 탄핵 찬반을 둘러싼 내부 총질보다 더 황당한 일들이 당 외부에서 발생하고 있다. ‘윤 어게인(Yoon Again)’ 신당 추진 해프닝과 전광훈 목사 대선출마 선언이다. ‘윤 어게인 신당’은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에 속한 김계리·배의철 변호사가 지난 17일 추진한 신당 이름이다. 윤 전 대통령의 만류로 하루 만에 취소되긴 했지만, 지난 토요일 윤 전 대통령이 사저 인근 식당에서 두 변호사와 함께 식사하는 사진이 김계리 변호사 SNS에 공개되며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윤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1호 참모이자 ‘찐윤’이라고 불렸던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조차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윤 전 대통령을 사지로 내모는 행위를 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20일에는 윤 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를 주도했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도 대선판에 뛰어들었다. 대선출마 명분은 “윤 전 대통령을 자유통일당으로 모셔오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제일 반가운 보도”라고 했다. 이게 사분오열된 보수세력의 현주소다. 국민의힘은 이번 경선 과정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맞서서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배출해야 한다. 그러려면 경선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 대립을 통합해 낼 수 있는 인물이 본선에 진출해야 한다. 본선에선 중도층 민심이 판세를 좌우할 것이라는 사실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일찌감치 ‘중도·보수’를 표방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대구경북지역은 서울 다음으로 국민의힘 책임당원이 많은 지역이다. 이 지역 유권자들이 어떤 후보를 선택하느냐가 보수정당 미래를 결정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2025-04-22

휴머노이드 시대

휴머노이드는 인간(Human)과 유사함(-Oid)이 결합한 용어로 인간의 모습을 닮은 로봇을 이르는 말이다. 인간의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휴머노이드가 이젠 현실로 등장하는 세상이 됐다. 앞으로 전개될 세상이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로봇이 인간처럼 행동하고 반응할 수 있으려면 수많은 기술들이 통합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2000년대 초 처음 선보인 휴머노이드는 두 발로 걷고 큰 물체에 부딪히면 쓰러지지 않고 다시 중심을 잡는 정도였다. 이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물구나무 서기를 하는 인간형 로봇으로 기술이 발전했다. 테슬라가 개발한 인간 로봇 옵티머스는 손가락으로 물건을 집어들고 통에 담으며 달걀이 깨지지 않을 정도의 악력도 유지한다.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만큼 기술적으로 고도로 성장한 것이다. 옵티머스의 시간당 경비가 8000 원 정도 된다고 하니 우리나라 최저 임금보다 싸다. 사람보다 로봇을 쓰려는 기업이나 개인이 늘어날 수 있는 지경에 온 셈이다. 테슬라는 산업용 로봇을 공장에 배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가사 도우미를 대체할 로봇생산에 적극 도전한다고 한다. 향후 휴머노이드가 펼칠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가히 새로운 산업혁명이라 부를 만큼 혁신적 모습이 될 것 같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지난 19일 중국이 인간형 로봇 단축마라톤 대회를 열고 첨단기술력을 과시하자 전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두 발로 로봇이 21km를 뛰려면 정밀한 최첨단기술이 장착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인간의 일을 대신할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인데 과연 우리 사회는 문제가 없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4-22

환경을 깨끗하게, 도시를 활기차게

꽃이 피어 봄인가 했더니 꽃이 져버리자 어느새 여름인가 싶을 정도로 며칠간 초여름 같은 날씨였었다. 그에 맞춰 연둣빛 잎새는 하루가 다르게 초록의 진영을 넓혀가고, 사람들은 얇고 짧아진 옷차림새로 길거리를 활보하는 것 같다. 도심의 화단에는 온실에서 자란 화초들이 앙증맞게 손짓하는가 싶은데, 들판이나 텃밭에서는 파종과 작물 가꾸기의 일손으로 분주해지는 것 같다. 풋풋한 땅의 기운과 봄 햇살의 양기를 받아 만물이 생장하며 저마다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 봄이 되면 집을 새 단장한다거나 문을 활짝 열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안팎을 대청소하는 등 깨끗하고 산뜻하게 가꾸기 마련이다. 그래서 봄날의 춘축(春祝)으로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掃地黃金出)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開門萬福來)‘는 대련을 즐겨 썼던 것일까? 땅을 쓴다는 것은 봄처럼 부지런하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라는 의미이고, 문을 연다는 것은 마음을 열어 긍정과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 스스로의 복을 짓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집 안팎은 물론이고 골목길이며 길거리, 공원 등지에서 쓰레기를 줍고 청소하며 화단을 가꾸는 손길들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에 더하여 해안을 비(梳)로 쓸듯이 해양 쓰레기를 줍는 이른바 ‘비치코밍’을 실천하며 바다환경을 깨끗하게 만들어가는 움직임들이 있어서 더욱 인상적이다. 해변을 뜻하는 비치(beach)와 빗질을 의미하는 코밍(combing)의 합성어로, 친환경적 가치가 중요해진 최근 해안가로 밀려나온 폐플라스틱 등의 표류물이나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보호 활동으로 그 의미와 활동폭이 커지고 있다. 어린 자녀들과 삼삼오오 해변을 거닐며 모래밭의 조개껍질이나 유리조각을 줍고, 방파제 돌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폐플라스틱과 폐어구 등을 제거하는 손길들이 진지하기만 하다. 멀리서 보면 평온하게만 여겨지던 해안이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어찌나 해양쓰레기들이 많던지, 실제 몇 번이고 비치코밍을 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초여름 같은 날씨에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해변에서 100여 명이 동시다발로 환경정화활동을 펼치니, 수거한 쓰레기가 순식간에 더미를 이뤘다. 이와 같은 풍경은 지난 주말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용한리해수욕장에서 포철공고총동창회 ‘행복나눔봉사단’에서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해변정화 봉사활동 장면들이다. 40여 명의 모교 재학생들도 동참하고 멀리 광양에서까지 달려와 ‘흥해읍에서도 아끼는 용한리 해변’에서 합심으로 펼친 정화활동에 흥해읍의 공무원들도 반갑게 맞이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때마침 용한리의 자매부서인 포스코 생산기술부 직원들도 가족과 함께 비치코밍을 실시해 눈길을 끌었다. 포철공고총동창회는 2023년 4월 ‘행복나눔봉사단’을 창단해 포항 영일대 해변 환경정화, 광양 옥곡면 드림스타트 협력 소외계층 사랑의 집짓기 봉사, 연말 포항시 흥해읍 취약계층 연탄 나누기 활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추진해왔다. 포항과 광양에서 번갈아 펼쳐지는 행복 나눔봉사단의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사랑 나눔을 실천하며 영·호남 화합에도 기여하고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봄 햇살처럼 따사로이 골고루 비추면서 도와주고 챙겨주는 꾸준한 이웃사랑으로 도시가 활기차고 환경이 깨끗해지길 기원해본다.

2025-04-22

DX로 여는 미래 경쟁력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까. 현대인 삶의 70%를 차지하는 직장의 모습은 어떻게 변모할까. 클라우드, IoT, 빅데이터, AI 등 통합 기술로 미래는 여는 DX(Digital Transformation, 디지털 전환)시대는 사뭇 기대가 된다. 일반인의 생활에서도 큰 변화가 있겠지만 매일 아침 전쟁을 치르는 기업은 상상 초월의 제조 현장이 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의사결정, 생산, 품질, 설비관리 및 안전까지 DX 기술로 스피디(Speedy)하게 구현될 것으로 예측된다. 기업은 AI 기술 적용을 토대로 DX시대를 대비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 경쟁력을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기업의 DX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조직문화, 운영방식 전반을 혁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DX의 성공 요소는 첫째, 리더십의 디지털 마인드셋이다. 직책자와 아날로그 세대인 기성세대는 지나온 경험을 밑그름으로 하고 새로운 마인드 장착을 통해 미래 기업과 DX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둘째, 데이터 중심 문화이다. 일반적인 의사 결정을 할 때도 감(感)이 아닌 데이터 기반으로 하면 정확도나 신뢰수준이 높은 문화로 갈 수 있다. 셋째, 민첩한 조직 구조이다. 의사 결정이 빠르고 정확한 시스템이기에 빠른 실행과 피드백이 가능한 유연한 조직 및 협업 문화가 필요하다. 가령, 기업에서 직영과 협력사, 운전과 정비 간의 협업과 실행이 늦으면 결과는 그만큼 뒤처지는 것이다. 넷째, 기술 도입 및 통합이다. 머신러닝, AI, 빅데이터 등 최신 기술을 도입하고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통합하는 것이다. 다섯째, 고객 중심 전략이다. 소비자나 고객의 경험 개선을 통한 서비스와 제품 설계를 하여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해가야 한다. 여섯째, 지속적인 학습과 변화 수용이다. DX 기술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탐구심과 학습을 통해 변화에 대한 대응 능력이 필요하다. 제조업의 대표 격인 제철소도 DX 기술을 기반으로 Intelligent Factory를 향해 미래 경쟁력을 추진하고 있다. AI를 이용한 통합 제조 및 사무 현장 고도화로 이익 증대,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을 실행한다. 수작업의 자동화, 무인화, 지능화로 생산성을 높이고, 정형, 비정형 업무를 데이터화 하고 시스템화 하여 일의 효율성과 단순 반복 업무는 로봇에 맡기고 창의성에 집중하여 제조 비용을 줄여 나간다. 고위험 단독 설비와 저효율 반복 수작업 업무의 자동화 및 설비 로봇 점검 등으로 생산성 제고와 AI 기반 상시 모니터링으로 최적 제어하고, 지능형 통합운전체계화로 생산라인 공정 자동화를 향해 간다. 설비 고장 예측 시스템을 도입하고 품질 불량을 실시간 모니터링 하는 기술 접목 및 위험 지역 작업 자동화 등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제, AI 시대를 넘어 통합 기술의 시대로 간다. AI 기술을 포함하는 DX 통합 기술 적용을 통한 미래를 준비하는 흐름으로 간다. 급속도로 빠르게 진화하는 미래 기술을 학습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기업 경쟁력과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2025-04-22

작은 소방설비가 만드는 큰 차이

봄은 흔히 생명의 계절이라 불린다. 하지만 소방의 입장에서는, 봄이 ‘화재의 계절’이 되기도 한다. 건조한 날씨, 환기와 야외활동 증가, 전열기기 사용량 증가로 인해 화재 발생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소방본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2~2024) 봄철(3~5월) 화재 건수는 연평균 1200건 내외로, 계절별 통계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원인은 부주의, 전기적 요인, 기계적 요인이 주를 이루며 이 가운데 ‘전기화재’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전기화재는 보이지 않는 불씨에서 시작된다. 눈에 띄지 않는 아크(Arc) 현상, 낡은 배선, 좁은 전기공간 등에서 발생하는 작은 불꽃이 순식간에 커다란 피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런 화재를 막기 위해 등장한 것이 자동확산소화기, 소공간 소화용구, 아크차단기이다. 이 작은 설비들은 그 자체로는 조용하지만, 실제 화재 현장에서는 놀라운 역할을 해내고 있다. 자동확산소화기는 열을 감지해 자체적으로 소화약제를 분사하는 장비로,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보일러실이나 전기실 등에서 특히 효과적이다. 2023년 봄철, 청송군의 한 주택에서는 노후 전선에서 화염이 발생했으나 보일러실에 설치된 자동확산소화기가 즉시 작동해 불길을 초기 진압한 사례가 있다. 만약 이 장치가 없었다면, 건물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는 일반 소화기가 물리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소공간 소화용구’이다. 패드형, 캔형, 로프형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 분전반이나 배전반 내부에 설치하면, 일정 온도가 되면 자동으로 작동해 화재를 진압한다. 문경시의 한 전통시장에서는 분전반 내부에서 발화된 불씨가 이 장비의 작동으로 즉시 차단되어 인접 점포로 확산하지 않았고, 화재 규모를 최소화한 사례가 있다. 아크차단기는 말 그대로 ‘전기불꽃’을 감지하고 차단하는 장치이다. 일반 누전차단기로는 감지할 수 없는 미세 아크 신호를 포착해, 전류를 차단함으로써 화재로 이어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다. 경북 도내에서는 최근 3년간 아크로 인한 화재가 연평균 약 160건에 달하며, 이는 전체 전기화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포항시 한 농가주택에서도 아크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던 덕분에 배선 불량으로 발생한 불꽃이 즉시 차단되어 피해를 막은 사례도 있었다. 이 장비들의 공통점은 ‘화재를 발생 전에 차단한다’는 점이다. 소방차가 달려오기 전에, 사람이 대응할 수 없는 그 짧은 순간에 작동함으로써 불길을 초기에 억제하는 것이다. 설비의 설치비용도 크지 않다. 자동확산소화기와 아크차단기, 소공간 소화용구 모두 일반 가정이나 소형 점포에서도 부담 없이 설치할 수 있는 가격대로, 설치 방법도 간단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막아낼 수 있는 피해의 규모이다. 수십만 원의 장비가 수억 원대의 재산과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선택이 아니라 예방의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포항북부소방서에서는 현재 봄철 화재예방대책의 일환으로 이들 장비의 설치 확대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으며, 지역 내 취약계층과 전통시장 등을 중심으로 설치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공간에 소방의 손길이 닿을 수는 없다. 결국에 최선이자 최고의 예방은 시민 한 분 한 분의 ‘관심’과 ‘실천’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가 설치하는 작은 장비 하나가, 내 이웃의 삶을 지켜주고, 내 가족의 미래를 보호할 수 있다. 작은 불씨가 번지기도 전에 끌 수 있는 길은 분명 존재하며,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 ‘선제적 예방’에 동참하는 것이다. 봄이 주는 생명의 기운을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이 조용한 소방관 역할을 해주는 작은 소방설비들을 일상 속에 들여놓아 일상 속 안전을 지킬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25-04-21

‘광인수기’를 읽은 끝에

어떤 것도 제대로 하기는 어렵다. 참으로 수백, 수천 중에 하나나 둘 있는 것이 제대로 하는 사람이리라. 갈수록 수업이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마음이 둘로, 셋으로, 다섯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 제대로 해보려 하면 어디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자만할 수 없다. 기차를 타고서, 길을 가며, 그 여성 작가를 주제로 삼은 석사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심사 때도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시간 들여 찬찬히 읽으니 그 성취가 더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때, 계속해서 공부하기 어렵다 했던 말 떠올라, 어째서 그랬던가, 대학원이 시끄러워 그랬던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가, 마음에 걸린다. 결국은 전화로 안부를 묻고, 논문 참 잘 읽었다 하고, 그때 왜 계속하지 않았던가 묻고, 사연을 듣고, 뭐라 격려라도 한 마디 전해주어야 했다. 며칠 후로, 나는 해당 수업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그 여성 작가를 읽는다. 시베리아며 청도며 훌쩍 떠나기 좋아했던 작가, 아뿔싸, 서른한 살 나이로 요절해 버린 작가, 위병을 오래 앓던 이 여성 작가를 저세상으로 데려간 것은 췌장암이라 했다. 요즘에는 시간을, 박경리 선생 말씀하신 그 ‘두루마리’로 쓰기가 너무 어렵다. 조금 나가고 다른 데 빠졌다 다시 돌아와 조금 더 나간다. ‘혼명에서’는 그 얼마나 절실한 어둠의 노래인가. 그 ‘混冥’(혼명)이란 것은 한 덩어리의 어둠이요 혼돈한 어둠이라고도 한다는데, 도대체, 어려서 독학당에서 공부를 했다는 이 작가는 절체절명의 죽음 앞에서 무슨 뜻으로 이 ‘혼명’을 말한 것인가? 이 작가, 백신애(白信愛)는 1908년 5월 19일에 나서 1939년 6월 25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혼명에서’가 발표된 것은 잡지 ‘조광’의 1939년 5월호다. 나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며 ‘최후’의 문장을 써나가는 작가의 존재를 실감치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삼엄한 죽음의 감정과 의식을 토대로 삼아 나는 이 작품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독법을 찾아낸다. 수업이 있던 금요일, 저녁에 미국서 온 시인을 만나고 일찍 귀가해서, 토요일 문학 강의를 하나 하고는, 죽은 듯이 열다섯 시간을 잠에 빠져 들었다.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알 수 없다. 몸살 때문일 수도 있고, 요즘 따라 삶이 더욱 아슬아슬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요일, 파주의 창고에 가 이것저것 꼭 필요한 책들을 챙겨오는 중에 ‘백신애 작품집’이 들어 있다. 대구 사는 문주 형이 정성 들여 엮어 놓은 선집에 ‘광인수기’가 눈에 뜨인다. ‘광인’이라. 그렇지 않아도 나는 요즘 ‘광인’에 빠져 있는 참인 것을, 이번의 ‘광인’은 일생을 참고 참으며 살아온 한 여성의, ‘광인’ 된 이야기다. 이 작가, 백신애는, 삶의 실상을, 욕망의 움직임을, 허무를 무참히도 날카로운 언어로 헤집어 보일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가둬 두고 있는 인습과 제도의 ‘사슬’로부터 한없이 자유롭고자 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문제작 ‘꺼래이’, 이 작품에 새겨진 처절한 ‘고려인’들의 사연도 그런 욕망과 ‘광기’가 빚어낸 ‘방랑’의 산물이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4-21

자유를 외치는 그대에게

우리는 군중 속에 섞여 체제와 관념에 순응함으로써, 마치 삶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난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외친다. “나는 자유다!”라고. 그러나 이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무한한 공허 속에서 울리는 메아리 없는 소리일 뿐이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에서 “자유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조건이지만, 동시에 가장 무거운 짐이기도 하다”고 자유의 본질을 꿰뜷어 보았다. 자유는 때로는 수갑이요 족쇄이다. 이들이 우리를 묶어두고 있을 때, 우리는 자유를 견디지 못하고 도피하려 한다. 우리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자유에 대해 가끔씩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야 한다.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어떤 구속에서 해방되었을 때, 불안이 사라졌을 때는 오히려 의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순간들은 자유라는 탈을 쓴 욕망일 수 있으며, 더 큰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자유야!”라고 외치는 순간, 그 자유는 사라질 수 있다. 우리의 낮과 밤을 휘감고 있는 가장 견고한 사슬이 바로 이것이다. 현자는 말한다. 낮에는 걱정거리가 있고, 밤에는 슬퍼할 일이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실제로 우리의 내면에서는 모든 것이 반쯤 뒤엉킨 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 소중히 여기는 것과 싫어하는 것, 추구하고 싶은 것과 벗어나고 싶은 것들이 한 쌍의 그림자처럼 서로 얽혀 우리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자유란, 단순히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에게 다가왔다가 사라지는 존재다. 이는 움켜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 있는가에 관한 문제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의 시선이나 인정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삶의 태도 그 자체다. 이는 감옥 안에서도 빛나고, 가난 속에서도 살아 숨 쉰다. 또한, 자유는 두 눈을 감고 침묵할 때 드러나는 내면의 움직임이며, 우리를 둘러싼 낮과 밤의 걱정조차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다. 자유는 권력, 돈, 소유, 평판으로 측정될 수 없으며, 오직 삶의 주인공으로서 살아가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소중한 선물이다. 나에게 자유를 마음껏 선물하자.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이제 그만두자. 자유를 책임짐으로써 우리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군중 속에서, SNS에서, 마치 노예가 폭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칭송하듯 자신의 자유를 외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돌아보자. 우리는 자신을 괴롭히는 폭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칭송하는 노예처럼 자신의 자유를 외치고 있지 않은가? 자유를 감당하기 어려워 권위나 무리, 체계화된 이념이나 신념 속으로 도망치고 있지는 않은가? 오히려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파괴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보자. 다시 한번 돌아보자. 자유에는 불완전함과 고통이라는 달갑지 않은 필연의 동반자가 항상 함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에 자유인은 고독할 수 밖에 없다. 타인의 삶을 사는 유령들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사는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자유를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자유인이 되어야 하며, 다시는 자유로부터 도피하지 않는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2025-04-21

비겁한 빌라도

지난 성지(聖枝)주일 성당 미사 때, 신자들이 함께 읽은 루카 복음 수난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백성의 원로단 즉,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무리가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간다. 무리는 예수가 ‘민족을 선동’하고. ‘황제에게 세금을 못 내게 막고, 자신을 메시아 곧 임금’이라고 한다는 거짓말로 정치범으로 몰아 고발한다. 식민지 이스라엘 주민의 생살여탈권을 쥔 로마 총독 빌라도는 재판 첫 신문에서 예수의 무죄를 안다. 그가 갈릴레아 사람이란 구실로 그곳 통치자 헤로데에게 보내 사건을 떠넘긴다. 예수에게서 기적을 바라던 헤로데는 그의 무대응에 조롱하고, 좋은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보낸다. 둘째 신문에서 빌라도는, “죄목을 하나도 찾지 못하였소.”라며 예수를 놓아주려 한다. 무리는 “그자는 없애고 바라빠를 풀어주시오.”하고 소리 지른다. 셋째 신문에서도 빌라도는, “나는 이 사람에게서 사형을 받아 마땅한 죄목을 하나도 찾지 못하였소.” 그래서 매질하고 풀어주겠다고 한다. ‘군중은 더 큰소리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다그친다. “마침내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정하였다.” 이로써 로마 제국 권력 실체 총독이 군중의 광기에 굴복, 불의를 택한 ‘비겁한 빌라도’가 되고 만다. 수난기의 재판 부분을 읽을 때, 웬일인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 헌법재판관들이 떠오르며 비겁한 빌라도와 오버랩 되었다. ‘헌법재판관’이란 절대 권위를 쥔 이들이 빌라도처럼 어떤 압박에 굴복, 법을 떠나 ‘정치재판’을 택해 ‘비겁한 재판관’들이 되었구나! 하는 의구심이 화살처럼 가슴에 박혔다. 집에 와 헌재 선고문을 찾아 읽어보았다. 두루뭉술한 산문 같다. 근거법 조항이 하나도 안 보인다. 그러니 ‘정치재판 선고문’이다 싶다. 선고문은 판단 근거법 조항을 밝혀야만 한다. 그래야 궁금한 국민은 법 조항을 찾아볼 게 아닌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법도 모르는 무지렁이 국민으로 취급당한 느낌이다. ‘부정선거 척결로 국민주권을 지키려 한 사실’만으로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마땅하고 옳다. 부정선거도 헌법 제77조가 규정한 ‘국가 비상사태’다. 자유민주주의를 짓밟는 국민주권 찬탈 내란 행위이므로. 대통령 측의 부정선거 증거채택을 이해 불가하게 기각한 헌재는,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 중대한 위기 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라며 증거를 회피, 외면했다. 비겁한 빌라도 같다. 전자개표기 사용 후, 선관위 발표 선거 결과 수치들이 대수의 법칙을 위반한 게 바로 부정선거 증거라는 G 박사 등 연구자들의 보고는 무엇인가. 이영돈 PD도 취재하며 부정선거를 100% 확신케 되었다고 했다. 헌재는 올 총선 전 보안 취약점을 조치했다는 선관위의 껍데기 발표(핵심인 전산 조작 대책을 뺀)만 받아들여, ‘피청구인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라고 썼다. 망발이다. 헌재 재판관들은 부정선거 세력이 장기 독재를 획책해도 된다는 것인가. 오는 조기 대선이 부디 공명히 치러져, 마음에서 비겁한 빌라도가 떠나기를 빈다.

2025-04-21

영화는 극장이 아닌 집에서?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게 최고의 오락이던 시절이 있었다. 화제를 모은 영화를 보기 위해 긴 줄의 마지막에 서는 걸 마다하지 않았고, 그래도 영화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다가와 정가의 2~3배 가격에 “암표를 사라”고 속삭이는 이들도 흔했다. 극장에서의 데이트도 20세기 연인들에겐 즐거움이었다. 청춘남녀가 팝콘과 콜라를 나눠 먹으며 캄캄한 객석에서 은근슬쩍 서로의 손을 잡던 기억들. 둘의 손바닥에 촉촉하게 배어 있던 땀. 그런데, 시대의 변화 탓인지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달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643만7886명. 한 해 전 같은 달의 관객 수 1169만7143명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운 45%가 줄었다. 당연지사 매출액 역시 반토막이 났고, 이를 걱정하는 극장 사업자의 한숨이 깊어졌다. ‘영화의 르네상스, 극장의 전성시대’가 끝나간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가속화될 전망이라는 게 영화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극장의 위기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원인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괄목할 만한 약진이 아닐지. 올해 1분기만 봐도 극장에 걸린 영화 중에는 눈에 띄는 대형 히트작이 드물지만, OTT가 내놓은 ‘폭싹 속았수다’ ‘오징어게임 시즌 2’ ‘중증외상센터’ 등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극장이 획기적인 회생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이제 영화 제작과 감상 시스템의 주도권을 OTT가 쥘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영화를 극장이 아닌 집에서 보는 게 보편적인 시대가 곧 올 듯하다. 아니, 이미 왔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4-21

대선마저 지난 총선 꼴로 만들 건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오랜 친구다. 전 전 대통령은 자기가 거친 자리 다섯 가지를 노 전 대통령에게 물려줬다고 회고록에 썼다. 구체적으로 열 거해 놓았다.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민정당 총재, 그리고 대통령이다. 대통령직을 넘겨준 뒤 두 사람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다. 전 전 대통령은 회 고록 2권 후반부에 노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과정을 상당 부분 할애 했다. 6·29선언이 나오는 배경을 설명하면서 친구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표현 했다. 두 사람은 6·29선언을 서로 자기가 결단했다고 주장한다. 전 전 대통령 회고 록에서 노 전 대통령은 소극적이고 겁이 많으면서 무리하게 양보를 요구하는 친구로 묘사돼 있다. 노 전 대통령 회고록에서 전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꿈 꾸고, 대통령직을 물려준 뒤에도 상왕이 되기를 노리는 권력욕이 넘치는 위험 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대체로 전 전 대통령의 말이 정설로 돼 있다. 누구 말이 사실이든, 전 전 대 통령이 후계자에게 자신을 밟고 가도록 허락한 것은 사실이다. 두 사람 다 물 러난 뒤에야 서로 공을 다퉜지만, 선거 때는 6.29선언이 완벽하게 노태우 후보 의 훈장으로 가슴에 달려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사면해, 양 김 씨(김영 삼·김대중)를 분열시켜 노 후보가 이기도록 구도를 짠 것도 전 전 대통령이다. 거기에 비하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자기 이후의 보 수정당에 대해 애정이 없다. 강력한 통치자였던 전 전 대통령도 ‘나를 밟고 가 라’고 했는데, 윤 전 대통령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지난해 총선 때도 앞 장서 표를 떨어뜨려 공룡 야당을 만들어줬다.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의대 증원 이 오랜 진료 차질로 여론이 나빠졌다. 총선 직전 담화에서 수습책을 제시할 것으로 다들 기대했다. 그런데 오히려 강경한 어조로 기름을 부었다. 굳이 선 거를 앞두고, 출국금지 된 이종섭 전 장관을 호주 대사로 황급히 내보낸 것도 상식에 맞지 않았다. 탄핵 뒤 윤 전 대통령은 서초동 사저로 돌아가면서 “다 이기고 돌아왔다”, “3년을 하나 5년을 하나”(다를 게 없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상식만으로 해 석하기 어렵다. 대통령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거나 절제하는 모습 은 눈을 비벼도 보이지 않는다. 당장 위기 앞에서 보수 지지층이 뭉쳤다고 이 긴 게 아니다. 지난 17일 윤 전 대통령을 변호한 젊은 변호사들이 신당 추진 기자회견을 예고했다가 4시간 만에 취소했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4일 저녁 식사를 함 께하던 변호사들이 “청년 지지층에 구심점이 필요하다”라면서 신당 계획을 꺼 내자, 윤 전 대통령이 “중요하지. 해봐”라며 청년들의 정치 참여 활동을 적극 지지하고, 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의힘에서 난리가 났다. 선 거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윤 전 대통령이 “지금은 힘을 하나로 합쳐 야 할 때”라며 보류하라는 뜻을 전달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지금은’이라는 말은 대선을 앞두고 있어 적절한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이 아닌 ‘나중 어느 때’에는 신당을 만들 ‘때’가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총선에서 ‘친박연대’처럼 ‘친윤’ 정당으로 나설 수도 있다. 대 선에서 지고, 국민의힘이 당권 싸움에 빠져도, 이 구상이 다시 떠오를 수 있 다. 윤 전 대통령은 탄핵 이후 “새 길을 찾겠다”라며 “대한민국을 위해 미력하 나마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었다. ‘윤 어게인’(Yoon again)이라는 말은 윤 전 대통령을 다시 권좌에 앉히자는 말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옥중 편지에서 처음 사용해 탄핵 반대 시위 자들의 구호가 됐다. 개헌해 다시 대통령이나 내각제 총리가 될 수도 있고, 보 수 집권 세력의 상왕이 되려 할 수도 있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파괴했다. 형사재판 피의자 다. 그런데 국민에게 사과 한 마디 없다. 오히려 영향력을 키우겠다고 한다. 지난 총선처럼 나서면 나설수록 보수세력을 고립시키고, 분열시키고, 표를 깎 아 먹는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걸까.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4-20

​“공이 뭐라고”

분명한 마음이 있었는데요 사라졌습니다 고장 난 사람처럼 야구만 보았습니다 공이 뭐라고 공은 분명한데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니까 개의 마음을 알 것 같고 공의 궤적만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야구를 보는 동안 아픈 사람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공을 보는 개의 마음은 알아도 나를 보는 아픈 사람들의 마음은 모르겠는데 엄마는 내가 멀쩡해 보여요? 아름다움처럼 모르겠는데 나 없이 내게로 오는 그 마음들은 (…) 온 힘을 다하여 야구를 보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공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조금만 참아달라고 하던 사람들이 사라질 때까지 매일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던 전화기를 잊을 때까지 (….) 내가 어리석었던 것 같습니다 어리석지 않으려면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요 포지션이 없으면 게임이 안 되고 응원하는 팀이 없으면 야구가 재미없습니다 (….) 야구가 끝나면 아픈 사람에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답장합니다 사회보장제도를 알아보자고 말합니다 의사가 알려준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에 따라서 (….) 맥주가 지겨워요 사라진 마음이 지겹습니다 공은 왜 자꾸 돌아와? ―남현지,‘실업자가 야구 보는 이야기’부분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2024. 창비) 고장 난 사람처럼 공만 바라보고 있다. 공이 계절을 물고 몇 바퀴를 돌고 도는 동안. 인용 시의 중략 부분처럼 보다가 잠시 멈추는 식으로 내내 반복된다. 그것은 관람객만의 문법이 아닐 것이다. 감독에 가까운 투수였던가 포지션은 중요치 않다. 프랜차이즈 스타도 아니었는데 늘 이해하는 팬의 입장처럼 말이다. 남현지 시인은 부조리한 어떤 풍토나 공간, 시스템 혹은 대상에 대해 무감한 듯 반응한다. 시집 전체에 두루 포진해 있는 화자들은 “어딘 가의 직원” “일행” “관람객” “모르는 사람” “관리인”의 포지션으로 일관된 보법을 보인다. 한 시인은“당근 거래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라고. 가장 짧은 대면의 순간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무례하지 않으면서 거래 후 그 즉시 “몰랐던 사람”으로 총총 사라져야 하는 것. 자본주의적 인간과 인간이 대면 하는 방식이다. 최근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을 일컫는‘자낳괴’라는 신조어가 낯설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남현지 시에는 구조적으로 불화가 내장되어 있지만, 그는 첫 번째 시부터 마지막 시까지 시종일관 개입하지 않는다. 이러한 거리두기 혹은 객관화의 방식이 외려 독자를 부조리한 공간에 밀착하게 만드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래서인지 시집 해설에서 전승민은 “시가 우리를 위무하는 방식이 아닌 외려 “우리가 시를 위로할 수 있지도 않을까?”를 타전하고 있다. 가령 “그가 자신의 숨은 마음을 열어두는 행위는 고작 누설에 그치고 마는데, 그의 들끓는 마음은 모든 시의 상연이 끝난 뒤에도 안전하게 밀봉되어 있을 따름”이며,“그 감금이 발휘하는 거대한 고독을 감지할 때 우리는 화자가 제발‘덜’건강해지기를, 나아가 급진적으로 아픔을 호소하기를, 시가 불손해지기를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인용되지 않은 시 “행복의 문턱”에서의 다음 구절처럼. “개나리를 터뜨린다, 내가 개의 목줄을 밟고 지나간다, 그대의 개가 짖는다”

2025-04-20

각자의 바다, 하나의 배

그리스 신화 중 ‘아르고호 원정대’의 서사를 좋아한다. 황금 양모를 찾아 나선 이아손과 그를 따르는 항해자들이 같은 배에 오르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개성 강한 영웅이 등장한다. 펠레우스, 오르페우스, 헤라클레스… 멀리서 볼 땐 그럴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꽤 엉망이다. 리더는 불확실하고 멤버는 오버 스펙이며 계약서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배는 바다로 나간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는 법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를까? 악의 반대편에서 싸우고 모두가 물러날 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나서며 인류 전체를 끌어안는 사람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면 영웅이라는 칭호는 꽤 부담스럽다. 위험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타인을 지켜줄 수 있는 강한 힘과 용기를 가져야만 하니까. 누군가 내게 그런 책임을 부여한다면 최선을 다해 거절할 것이다.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소시민의 삶이 편안해서요. 아무래도 칼보다 장바구니가 더 익숙하거든요. 공동체는 영웅 하나의 힘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노를 젓는 사람이 언제나 더 중요하다. 아르고호에서 헤라클레스가 이탈한 장면을 봐도 그렇다. 항해 중 그의 절친한 친구인 힐라스가 요정들에게 납치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헤라클레스는 주저 없이 배에서 내리고 친구를 찾겠다며 아르고호로 돌아오지 않는다. 신보다 인기 많다던 스타 영웅이 하차했지만, 이야기는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항해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다른 쪽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공동체보다 더 중요한 어떤 감정을 선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언제든 자신만의 이유로 배를 빠져나갈 수 있는 세상. 우리는 그런 사회를 건너고 있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배에 탄 것에 가깝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힘을 합치던 신화 속 원정대와는 다르다. 각기 다른 목적지와 출발선을 가진 채 아주 거대한 배 위에 함께 올라타 있는 것이다. 개인을 둘러싼 우주는 다채롭다. 누군가의 우주는 회사와 집 두 행성 사이만을 맴돌고 누군가는 주거 비용이 중력보다 무겁다고 느낀다. 매일 아침 울리는 알람이 빅뱅처럼 터지기도 한다. 자신만의 궤도를 돌고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 그들의 바다는 같지 않고 물살도 다르다. 노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졌다. 성적 지향, 가족을 구성하는 방식, 노동의 형태와 일의 윤리. 모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다. 한 사람의 경험은 다른 이의 경험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세분된 바다를 유영한다. 물길이 다른 것은 이상하지 않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각자만의 바다를 건넌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 것에 있다. 다양성은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때로는 그 다양함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누구도 같은 항로를 지나지 않기에 공감은 더욱 어렵다. 타인의 고통이 심각한 문제로 느껴지지 않고 누군가의 외침은 나를 향한 언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너도 나도 각자의 길을 걸어가느라 바쁘니까. 힘들고 숨이 턱 끝까지 차니까. 그 깊이와 위태로움은 서로에게 설명되지 않는 질감의 것이다. 방향을 잃은 항해에는 등불을 켜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때는 장바구니를 든 소시민도 영웅이 될 수 있다. 각자의 고단함을 인정하면서도 모두가 흩어지는 순간 다시 모일 수 있는 힘을 기억하는 사람 정도면 영웅의 자질이 충분하다. 잠깐의 기다림과 안부 묻기, 당신을 이해한다는 속삭임 같은 것. 그 작고 조용한 목소리가 우리가 함께 있다는 증거가 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각자의 바다를 인정하면서도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를 함께 상상해보는 감각인지도 모르겠다. 황금양모까지는 아니더라도 퇴근길 버스 자리에 앉는 행운 정도는 손에 쥐게 될 지도 모르니. 아니, 꼭 뭔가를 쥐지 않아도 괜찮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 캔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모험은 즐거워질 테니까. 참 고생하십니다. 내일은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 정도의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라면, 함께 항해하는 데 부족하지 않은 동료가 아닐까. /문은강(소설가)

2025-04-20

함께 인공지능 시대를 열어야

오픈AI사의 이미지 생성 AI 모델 출시에 따라 챗GPT 가입자는 5억 명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챗GPT에 시리까지, 인공지능이 인간 사회 깊숙이 파고든다. 인공지능 TV, 자동번역 프로그램, 자율주행차, 음성 비서, 챗봇 등 우리는 이미 많은 부분에서 인공지능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생활 방식과 경제의 틀도 바꾼다. 효율을 중시하는 많은 산업 분야에서 인공지능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의료, 교육, 금융, 데이터 처리를 기반으로 하는 분야 등에서 효율을 높여 비용 절감에 기여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함께함으로써 보다 많은 기회를 얻고, 불필요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며 새로운 발전을 맞이할 수 있다. 반면에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인터넷 범죄를 양산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의 발달에 따라 일자리를 잃었고 잃을까 봐 걱정한다. 특히 인공지능을 이용한 가짜 뉴스와 인권침해는 정부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늘어나는 추세이다. 심지어 인공지능에 의존성을 높여 우리의 사고능력까지 무력하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공감 능력 저하와 사고력 약화를 걱정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공지능의 위험성만을 지적하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시대의 흐름을 알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창의성을 높이고 인간의 감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급변하는 기술을 이해하고 평생 학습의 자세로 끊임없이 배우고 다양한 네트워킹을 통해 협업해야 한다. 비판적 사고력을 높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인공지능을 다스릴 수 있다. 사람이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사회를 위해서 국가는 국가대로 할 일이 많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를 완비하고 인공지능을 이용한 범죄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또한 인공지능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도 마련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경제의 틀을 바꿀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건 기술 개발자의 윤리와 인간 중심의 기술이 중요하다. 로봇의 3가지 법칙이 그러하듯 인공지능은 절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인간을 위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자칫 인간이 로봇의 도구가 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쓰는가는 인간에게 달렸다. 인간에게 득이 되거나 해가 되게도 쓸 수 있다. 인간이 그동안 이룩해 온 산업의 발전을 계속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그들에게 달렸다. 인공지능이 가진 막대한 정보와 힘을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인류에게 해를 가하고자 할 때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미래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잠재력을 확장 시킬 수 있는 도구이다.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미래를 위해 인간은 더 많이 배우고 익히며 함께 번영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이 더디고 힘들더라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의젓한 자세로 변혁의 시기를 맞이할 때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번영의 시대가 올 것이다.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이유이다.

2025-04-20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서 좋겠다고요?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하나 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서 좋겠다는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벌어먹고 사는 건 실로 축복이라 생각한다. 최근 보고 있는 OTT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주인공 애순이 그렇게도 되고 싶어 했던 시인. 나는 그게 되어 글밥을 먹고 있고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일 또한 밥벌이에 보탬이 되니 그야말로 요즘 말로 하면 ‘갓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잡고 싶은 오해가 하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산다는 오해.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해내기 위해 해야 하는 하기 싫은 일들이 무척 많다. 우선 이 예술이라는 업종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게 되기까지 해야 했던 다른 일들이 참 많았다. 사무보조, 주방 보조, 홀 서빙, 야구장 스태프, 텔레마케팅, 배달, 편의점, 전단지, 과외교사, 학원 강사. 퍼뜩 떠오르는 일만 이 정도. 남들보다 특별히 고생하고 산 것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 두어 가지를 가슴에 품고 살다 보니 일정하게 한 직장에서 일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 생활비를 좋아하는 일로 벌어들일 수 있게 되기까지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다 운 좋게 글 쓰는 일과 노래하는 일로 사치는 부리지 못하더라도 아껴 쓰면 먹고 살 돈 정도를 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나가야 했다. 직접 해보기 전에는 몰랐다. 예술가로 산다는 일 안에는 예술을 창작하는 일 말고 다른 수많은 일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작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청탁 받은 원고를 쓰기도 하지만 투고를 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각종 공모에 응모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노래로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도 내게 찾아오는 고마운 무대들 외에도 누군가가 먼저 그 자리를 선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무대를 직접 찾아 치열하게 차지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온갖 문화재단과 지자체 사이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정보전을 펼쳐야 한다는 것을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엔 알지 못했다.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서, 또는 강연이나 공연을 하기 위해서 처리해야 하는 행정적 처리들도 있다. 사전에 여러 장의 서류를 요구하는 곳도 있고, 이후에 돈을 받기 위해서 여러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들도 있다. 소속사가 있던 시절에는 이런 업무들을 처리해 주는 이들이 있었지만 혼자 일을 해 나가야 하는 지금은 다소 번거롭더라도 혼자서 여러 행정처리들을 해내야 한다. 가까운 과거에는 세무업무까지 혼자서 다 해내야 했다. 이 일도 사업이라면 사업인지라 다양한 곳에서 경비가 발생하고 이를 제대로 기록하고 신고하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하이라이트는 기획서와 제안서, 그리고 각종 지원사업을 신청하기 위한 신청서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일이다. 예술업이란 필연적으로 기업이나 국가기관과도 관계를 맺음으로서 이어나갈 수 있는 일이다. 여러 사업가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지원사업에 도전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매년 초마다 취업준비생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소개서, 기획안 등을 준비해야 하고 그것들이 통과되면 면접에도 응해야 한다. 보름 사이 양복을 빼입고 면접장 대기실에 앉아 초조하게 내 순서를 기다린 일만 네 번 있었다. 사실 타인에게 선택받기 위해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이 일을 선택한 것도 있었는데, 이 일 역시 그런 일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마주한 현실이었다. 그 외에 함께 작품을 만들 인력을 섭외하는 일, 스스로를 홍보하고 마케팅하기 위해 SNS나 유튜브를 운영하고 보도자료를 쓰는 일, 다양한 대인관계를 쌓는 소위 ‘영업’이라고 하는 일, 날짜가 되어도 도무지 입금을 해주지 않는 클라이언트에게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독촉을 하는 일, 강연이나 공연을 위해 장거리 운전을 하는 일까지. 모두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할 수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마치 수면 위 모습은 우아하지만 물속에서는 쉴 새 없이 물갈퀴 달린 양발을 휘젓는 백조처럼, 나를 비롯한 예술인들도 수많은 자잘한 업무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비록 사람들은 우리가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두고 노트북으로 고생하게 원고를 쓰거나, 오후 햇살을 받으며 악보를 앞에 두고 기타를 튕기는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무엇도 거저 먹을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 예술인들도 예외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강백수(시인)

2025-04-20

가족 요양을 다시 생각한다

주변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분들이 많다. 보수는 많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취업이 쉬워서 그런지 5,60대가 많이 지원한다. 지원자의 나이가 5,60대라도 기대수명이 길어져서 부모님이 8,90세로 살아계신 경우가 많아 부모님 병간호를 위해 자격증을 따는 분도 많다. 부모님이 집에서 투병할 때 자식에게 간병비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차피 부모님을 돌봐야 할 상황이라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을 가족요양보호사라는 이름으로 공식적 제도에서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70대가 노화의 갈림길’이라는 와다 히데키의 책에서 가족 요양을 반대하는 주장을 보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와다 히데키는 일본의 노인 전문 정신의학과 의사로, 수십 년간 많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발견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검색해보니 한국에 번역된 것만도 30권이 넘는다. 몇 권 읽어보니 중복되는 내용도 많지만 책마다 새로운 정보와 주장도 있어서 배운 것이 많다. 치매 같은 병에 걸렸을 때 대처하는 법은 물론이고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다른 노인 의학 전문가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노년들에게 운전을 권장하는 것도 새로웠다. 다른 하나는 가족 요양에 대한 신중한 태도다. 돌봄을 받는 사람이나 돌보는 사람이나 모두 피폐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발간된 MSD 매뉴얼을 보니, 부모와 자녀가 아프면 본인이 간병하고 싶어하면서도 본인이 아플 때는 가족에게 부담 줄까 전문 간병인을 쓰고 싶다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한다. 그러나 간병하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은 모든 사람이 비슷할 테니 아픈 부모나 자녀도 가족 요양을 원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는 가족 요양을 긍정적으로 보는 모양새다. 아무래도 남에게 맡기는 것보다 가족이 더 좋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재 너무 열악한 가족요양보호사의 처우를 개선하여 제도를 보완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가족 요양일 때는 1일 60분과 90분만 인정되는 데다 급여는 대체로 최저시급에 가까워서 월 20일 기준 60분일 때 20만 원을 조금 웃도는 정도다. 일반 요양사에게 지급되는 중증 환자 추가 수당도 없다. 하지만 가족 요양에 조심스러운 와다 히데키의 주장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싼값으로 간병을 떠맡기는 모양새가 되면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특히 나이 든 사람이 감당하는 가족 간병은 더 위험하다. 한국간병인협회에서도 가족 간병을 선택할 때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서울시를 비롯한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조부모 돌봄 수당’ 제도를 도입했다. 이 역시 돌봄의 책임을 조부모에게 과도하게 지운다는 비판이 있다. 가족이 가장 좋은 돌봄의 주체이기는 하다. 그러나 가족에게 심한 부담을 지우면 가족을 파괴할 수도 있다. 사회적 돌봄을 더 고민할 때다.

2025-04-20

4월의 바다

어떤 글은 사람의 마음을 푹 찌르고, 어떤 글은 따사로운 웃음이 나게 하며, 또 어떤 글은 침묵을 몰고 오기도 한다. 고3 국어책에서 읽은 나도향의 ‘그믐달’은 처연하되 기억에 오래 남는 산뜻함을 지녔다. 학부 1학년 <교양 국어>에 실린 심훈의 ‘5월의 바다’는 식민지 조선을 살아갔던 젊은 엄마의 처절한 가난과 출구 없는 삶을 그려낸 명문(名文)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독자의 영혼과 심장에 비수를 내리꽂는 글을 쓰고 싶을 터.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경험은 쉽지 않다. 2015년 4월 이맘때 나는 먼 길을 향해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대지엔 연초록 물결이 넘쳤으며, 거리거리엔 생기가 넘실거리던 시절. 하지만 장정(長程)에 오르는 내 마음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 대략 300km에 이르는 멀지 않은 길이지만, 쉬지 않고 달려도 5시간이 소요되는 고된 여정이었다. 초행(初行)이었기로 전남 광양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인근에 자리한 식당에서 대충 점심을 마치고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출발 여섯 시간 만에 도착한 그곳은 시퍼런 바닷물이 넘실대는, 거친 파도가 일렁이고, 차가운 바닷바람이 몰아닥치는 진도 팽목항이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노란 리본이 죽은 원혼들처럼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며 애처롭게 호곡(號哭)하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 속을 걸어 분향소로 걸음을 옮긴다. 별로 크지 않은 곳이었지만, 300여 영정 사진이 빼곡하게 걸린 공간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영정 사진을 본 적이 없었기로 속은 막막하고 콧날은 시큰해지고, 눈물이 핑돈다. 분향소 안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밖으로 나와 높은 파도 일렁이는 먼바다 응시한다. 그래, 작년 이맘때 여기서 너희들이 죽었구나, 혼자 속삭인다. 17살 고교 2년생 어린 철부지들이 영문도 모른 채 불귀의 객이 되어야 했던, 벌건 대낮의 날벼락 같은 죽음들! 차마 발길이 쉽게 돌려지지 않는다.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하릴없이 승용차로 다가간다. 2014년 4월 말 나는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깊이 머리 숙여 사과했다. 나이만 먹은 놈이 세상을 잘못 만들어 어린 넋들을 스러지게 했다고 눈물로 사과했다. 차마 학생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끝내 돌아서서 벽을 바라보며 숨죽인 채 눈물을 닦아야 했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죄스러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리고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2019년 4월 광주는 추모 물결로 넘쳐났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하는 현수막이 초중고교는 물론, 서구청사까지 내걸렸다. 아, 여기는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같은 시각 대구 어디에도 광주에서 본 현수막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구 8개 구청과 군청 어디에도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현수막은 걸리지 않았다. 세월호 대참사 11주년을 맞이한 지난 16일 조기(弔旗)를 걸다가 10년 전 진도 팽목항을 다녀온 기억이 떠올랐다. 살았다면 28살 청춘들일 텐데, 하는 헛헛한 생각만 떠돌 뿐.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시정과 국정 책임자를 한시바삐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2025-04-20

전국 동시 소등의 날

세계에서 가장 최악의 해양 기름 유출 사고는 2010년 멕시코만에서 일어난 딥워터 호라이즌 폭발 사고다. 바다 속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채취 탐사하던 배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기름이 유출된 사고다. 이 사고로 해양생물 피해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지역경제에 미친 악영향은 상당 기간 오래 지속됐다. 내일(22일)은 지구의 날이다. 1970년 미국의 한 상원의원이 1969년 캘리포니아주 해상에서 대규모 해상 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난 것을 계기로 지구의 날 제정을 주창한 것이 계기가 돼 만들어진 날이다. 1972년 스웨던 스톡홀름에서 113개국 대표가 모여 민간환경 선언을 했고, 1990년에 와서 세계적 규모의 시민운동으로 발전했다. 유엔이 정한 세계환경의 날(6월 5일)과는 다르게 순수 민간운동으로 출발한 날이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도 이에 동참하고 2009년부터 지구의 날 전후 일주일 간을 기후변화 주간으로 지정, 운영한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저탄소 생활실천을 위한 행사도 벌인다. 특히 환경부 주관으로 매년 4월 22일을 전국 소등의 날로 정해 오후 8시부터 10분간 소등행사를 권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 일대 빌딩과 자치단체에 따라서는 대형육교와 타워 등의 불도 잠시지만 꺼진다. 대기업들의 소등행사 참여도 늘고 있다. 지구의 날 선언문에는 “인간의 환경파괴와 자원낭비로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전통적 가치가 파괴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환경의식을 일깨우고 지구의 날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소등행사다. 많은 이들의 동참이 필요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4-20

포항 장성동 미군반환공여구역,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인가

미군기지 반환 이후 지역 발전과 주민 보상을 위해 제정된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이하 미군공여구역법)’이 시행된 지 18년이 지났다. 그러나 포항 장성동(약 12만평) 미군반환공여구역 개발은 수년째 지연되고 있다. 왜 이럴까. 이는 행정 절차의 지연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구조적인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먼저, 미군이 사용하던 부지가 반환되면 곧바로 지자체가 개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반환된 땅은 여전히 국방부가 소유하고 있고, 지자체가 이 땅을 사들여야만 개발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토지 매입비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고, 국방부와의 협의도 매우 더디게 진행된다. 행정 절차도 복잡해서, 실제로 개발이 시작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포항의 장성동 반환공여구역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곳은 1960년대 미군 저유소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오랜 기간 재산권을 침해당했고, 도시 발전에서도 소외되어 왔다. 미군이 떠난 뒤에도 국방부와 지자체의 협의가 지연되면서, 아직까지 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이 부지를 어린이테마공원, 상업시설, 주거단지 등으로 개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답보 상태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데에는 중앙정부의 지원 부족도 한몫을 한다.‘미군공여구역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실제 토지 매입비는 일부만 지원될 뿐, 개발에 필요한 공사비나 조성비는 지자체가 부담토록 하고 있다.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지방정부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해외에도 미군이 사용하다 떠난 곳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이라면 신속하게 후속 개발이 된다는 점이다. 독일이나 일본 오키나와가 그 단적인 예다. 두 나라는 정부 차원의 전담기구를 만들어 미군 반환공여구역 개발을 신속하게 추진했었다. 질질 끌고 있는 우리와 너무나 대비된다. 우리는 국방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지연 사태가 빚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실시된 설문조사에서도 국방부가 개발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포항 시민들이 개발을 강하게 원하고 있는 장성동 구 미군저유소 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국방부가 소유한 반환공여지를 지자체에 무상으로 넘기거나, 아니면 반환 당시 가격으로도 매각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 중앙정부가 토지 매입비뿐 아니라 개발에 필요한 예산을 더 넉넉하게 지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체계적인 사업이 추진되도록 국방부가 아닌 행정안전부나 국무총리실 등에서 미군 반환공여구역 개발을 총괄하는 전담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시스템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지자체와 국방부 간의 협의 절차를 더 간소화해야 하며, 실무 협의체를 만들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 줘야 할 것이다. 과거 미군기지 등은 대부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었던 만큼 반환공여구역이 지역 발전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는 각종 규제 완화 조치가 뒤따라야함은 당연지사다. 이는 2024년 12월‘한국지방행정학보’제21권 제3호에 필자가 게재한‘주한미군 반환공여구역 관련 현황 및 이슈 연구’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포항을 위해서도 장성동 미군반환공여구역 개발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이는 한 지역의 개발을 넘어, 오랜 기간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권리 회복과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중요한 과제이다. 정부와 지자체,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협력해, 신속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때가 됐다. 포항 시민들의 오랜 기다림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도록, 이제는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2025-04-17

법률의 언어, 법률가의 언어

25년 전 법대에 입학해 첫 수업으로 민법총칙이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해당 수업의 교과서는 민법서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곽윤직 교수의 “민법총칙”이었다. 법대생이 되었다는 부푼 마음으로 교과서를 펼쳤지만 읽을 수가 없었다. 교과서의 대부분이 한자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법전을 펼쳐 보았으나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한자였다. 시간은 흘러 시험기간이 되었지만, 교과서를 이해하기는커녕 제대로 읽을 수조차 없으니 큰일이었다. 옥편을 들고 고군분투하다가 급한 마음에 포항 집에 SOS를 쳤다. 성경도 한자 성경만 보시던 아버지가 법대 간 딸이 혹시 시험을 망칠까 봐 걱정하시며 “민법총칙” 교과서의 시험 범위 부분을 복사해 한자 밑에다 색깔 볼펜으로 한글을 써 보내주셨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중간고사를 보게 되었고 칠판에 크게 적혀있던 시험문제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法源. 이 한자 두 글자가 법대에서의 첫 시험 문제였다. 그렇게 그때는 교과서도 법전도, 법대의 수업과 시험문제도 한자가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법전의 한글화 작업이 진행되어 지금은 법학 교과서도 법전도 모두 한글로 쓰여 있다. 그러나 여전히 법률용어 중엔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는 일본식 한자 단어가 많다. 문장 면에서도 법원의 판결문들을 가만히 보면 부정문의 부정문 같은 어려운 문장이 많다. 변호사들이 쓰는 서면도 마찬가지다. 15년째 변호사 생활을 하다 보니 몸에 베인 것인지, 내 입장에선 평범하게 쓴 서면이라 생각했는데도 나중에 의뢰인으로부터 이게 무슨 말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여전히 법률가들의 말은 일상에서 쓰는 말과 괴리가 있는가보다.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이 있었다. 이 때 헌법재판소가 낭독한 결정문에 대해 “쉬운 말로 간결하게” 쓴 “논리정연한” 명문이라는 평이 많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법원 판결문을 많이 들어봤는데 중간에 휴대폰을 한 번도 안 쳐다보고 들어보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또 요즘 필자는 처음으로 지인들로부터 “나도 법대 갈걸 그랬다” “자녀에게 법 공부해 보는건 어떻겠냐 제안했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늘 판사, 변호사하면 AI 시대에 제일 먼저 없어질 직업 아니냐는 소리만 듣다가 이런 긍정적 이야기들을 들으니 신기하다. 며칠 전 이국종 교수의 “조선반도는 입만 터는 문과 놈들이 해 먹는 나라다. 떠나라”라는 신랄한 비판에 마음이 아팠던 터라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 헌재 결정이 그나마 긍정적 평가를 받는 이유는 그 논리가 쉽고 편안하게 국민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리라. 헌재는 대통령 파면 결정이라는 결과물을 쉽고 간결한 언어라는 그릇에 담아 내어주었고, 이에 국민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받아들였다. 20년 전 한문에서 벗어나는 한 단계를 넘은 법률, 법률가의 언어는 쉽고 간결한 말과 문장으로 나아갈 두 번째 단계를 넘을 시기에 다다른 것 같다.   △포항여자고등학교 고려대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현재)한동대 겸임교수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5-04-17

또 포퓰리즘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포퓰리즘. 6·3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이 또 고개를 들고 있다. 주 4.5일제 근무 도입을 두고 여야가 경쟁이다. 지난 2월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주 4일제를 제안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국민의힘이 주 4.5일제 근무를 공약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 경제 형편에 주 4.5일제가 적합한지 여부는 깊이 더 살펴볼 문제다. 국민 여론도 참작돼야 할 문제다. 역사학자 가운데는 로마멸망 원인의 하나로 포퓰리즘을 꼽는 이도 있다. 로마제국의 귀족들이 시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일을 안해도 빵을 주고 원형 경기장에서는 검투사 대결과 같은 축제를 연일 열어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했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재정 낭비가 결국 로마멸망의 원인이 됐다는 이론이다. 남미의 쿠웨이트로 불리며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하나였던 베네수엘라가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것도 포퓰리즘 때문이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국가 재정의 73%를 무상복지에 쏟아부어 2017년 이 나라는 국가부도를 맞는다. 정책의 현실성이나 옳고 그름을 외면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치는 앞의 사례처럼 국가부도로 종결된다. 무상급식과 같은 정당한 일부 정책이 정치 다툼으로 포퓰리즘으로 매도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선거를 앞두고 반드시 등장하는 포퓰리즘, 국민적 경계가 필요하다. 3년 걸렸던 군 복무 기간이 선거 몇 번 거치는 동안 18개월로 줄었다. 병장 월급 200만원 역시 포퓰리즘 산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유권자의 냉정한 평가가 미래의 불행을 막는다. 국가부채 1200조 원 만해도 감당하기 힘든 우리나라 아닌가. /우정구(논설위원)

2025-04-17

문학과 법: 헌재 판결을 보고

문학의 언어와 법의 언어는 조금 다르다. 문학이 사건이나 현상, 개인의 마음 따위를 반영하거나 재현할 수 있다는 신뢰에 기초한 언어의 투명성에 의존한다면, 법은 발화되는 순간 관철되는 언어의 수행적 힘에 입각해 있다. 문학의 언어가 허구와 모방, 내면성을 특질로 한다면 법의 언어는 사실과 실현, 공공성이란 축을 통해 구성된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에 이르게 한 이번의 헌재 판결문은 나에겐 문학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가령 이런 문장들이 있다.   “한편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결의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은 어디까지나 헌법에 의하여 부여받은 것입니다.”   위헌적인 비상계엄이 해제된 건 대통령의 의지가 아니라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 군경이 소극적일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들이 성숙한 ‘시민다움’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헌재는 역사의 주체로 시민을 인준했으며, 부당한 권력에 저항할 권리가 헌법 정신의 기초라는 사실을 다시금 판결했다.   법질서란 사람들이 그것을 준수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거해서만 성립한다. 대통령의 권한도 헌법에 의해 부여받은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단순히 대통령 권한의 남용이 아니라 법에 대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탄핵에 찬성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집단적 의지는 법을 어긴 통치권자에 대한 처벌을 구하는 게 아니라 민주공화국 주권자의 실력 행사라 할 수 있다.   법의 언어가 아무리 수행적 힘을 발휘한다고 해도, 그러한 힘이 법의 어떠한 정신과 내면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항구적인 심문이 필요하다. 법이 법으로 존재하거나 기능할 수 있는 내력을 살피는 작업은 분명 문학적인 관점을 요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학은 국가의 공식적인 기록보다는 역사의 심연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인용한 헌재 판결의 취지는 헌법 정신의 발현은 시민들의 저항권에 기초해있다는 사실의 확인이었다.   근래 뜯어고치자고 제안되는 87년 체제 헌법조차 시민들이 6월 항쟁을 통해 가까스로 쟁취한 결실 아니었나. 개헌을 겨우 내란 정국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처럼 운위하는 행위 그 자체야말로 헌정질서 문란에 해당한다.   우리는 법기술자들의 법리 운용만이 아니라 그들이 법의 정신을 어떻게 표상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의 이름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감시해야 한다. 법을 문학적으로 파악한다는 건 정확히 이런 의미다.

2025-04-17

도박의 무서움

누군가가 나에게 ‘훌라’를 할 줄 모른다고 놀려댄다. 난 훌라를 할 줄도 모르고 배울 마음도 별로 없다. 승부 근성은 있어 돈 따먹기라면 뭐든 하는데 이상하게 훌라는 흥미가 별로 없다. 같은 모양이 나오면 그냥 먹어 점수 나는 게 아니라 빼고 더하고 하는 게 복잡한 것 같아서다. 워낙 단순 무식형 인간이라서 그런지 깊이 생각하기 싫은 성격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친구들이랑 놀러 가서 밤새도록 훌라를 치고 있기에 개평이라도 뜯어 맥주 마시러 나갈까 싶어 기웃 되다가 웃음이 피식 나왔다. 이건 내 어릴 때 치는 ‘나이롱 뻥’과 똑 같지 않은가. 카드로 하면 ‘훌라’이고 화투로 하면 ‘나이롱뻥’이다. 난 또 마작같이 아주 고급스러운 노름인 줄 알았더니 한낱 나이롱뻥인 것을 알았으면 나도 익혀 놓을 걸 그랬다. 나는 지금도 친구들이랑 모임에서 화투도 치고 포커게임도 한다. 물론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따면 개평도 주고 기분이 즐겁다. 명절 때도 꽤나 오랫동안 친척들 간에 화투를 치기도 했지만, 요즘은 다들 바쁜지 제사만 지내고 뿔뿔이 흩어지는 통에 그 흔한 윷놀이 한판 할 시간도 없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모르겠다. 어릴 적 농한기 때 화투판이 벌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민화투와 육백 같은 화투 놀이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다들 즐겼던 놀이였다. 조선 시대 때부터 투전이란 놀음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가만히 보면 오늘날 ‘짓고땡’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노름이다. ‘구구이’ ‘사륙장’이란 용어가 자연스럽게 입에 붙을 정도로 숫자계산에 능해야 하는데 다섯 장 화투 들고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는 데 세월 다 보내고 있으면 욕이란 욕은 다 먹게 된다. 그래서 머리 나쁜 인간은 절대 못 하는 짓고땡은 별로였다. 그래서 나와 많은 돈이 오가는 도박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큰 소득을 올리려는 인간의 속성이 도박 속에 찌릿한 맛으로 자리 잡고 있기에 그 맛에 한 번 길들여지면 사람이 정신 줄을 놓는다. 돈 잃고 인간성 다 보여주는 게 바로 노름이다. 중독 또한 심각하다. 국내 도박 시장 규모가 GDP의 9%에 달하고 국내 성인의 10%가 도박중독자이고, 도박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80조 원으로 추정된단다. 도박이 주(酒)·색(色)보다 더 위험하다고 한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남자가 조심해야 할 것은 첫 번째는 여자이고 두 번째는 술이고 세 번째는 도박이라고 누누이 강조하셨다. 어머니는 우리 자식들이 성직자가 되기를 바라시지는 않은 것 같은데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당시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어머니의 걱정은 여자, 술 그리고 도박 순인데 도박의 무서움을 간과하신 것 같다. 봄맞이 집 청소를 하는데 장롱 속에서 난데없는 화투 한모가 툭 떨어진다. 몇 번 치지 않은 듯 제법 깨끗한 화투였다. 집사람의 눈빛이 심상찮게 변한다. 어머니도 안 계시는데 한판 치자는 신호를 보낸다. 내 주머니에 돈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몇 시간 안 가서 다 털렸다. 그날 뉴스에 대규모 도박단이 검거됐다는 방송이 나온다. 그중 40명이 주부란다. 집사람과 내 눈이 마주쳤다. 씩 웃는 그 모습에 오줌 지릴 뻔했다.

2025-04-17

영덕군산림조합 감사 제대로 이뤄져야

산림조합중앙회가 14일∼16일까지 3일에 걸쳐 영덕군산림조합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고 돌아갔다. 이번 감사는 내부직원들로부터 출장비 상납, 인건비 허위 청구, 송이공판 감량률 조작에다 회계 비리 의혹 <본지 2025년 4월 1일자 5면 보도 등>이 잇따라 제기된데 따른 조치라고 한다. 회계 자료를 확보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한 감사팀은 “현재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며 “감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히고는 있다. 하지만 영덕군산림조합 비리의혹이 워낙 방대함에도 중앙회 감사가 3일 만에 마무리되자 뒷말이 무성하다. ‘처삼촌 벌초하듯 한 감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제대로 된 감사가 된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런 회의적인 시각은 산림조합중앙회장을 142개 일선 시군의 산림조합장들이 선출하는 시스템과도 무관치 않다. 영덕군산림조합도 중앙회장 선거에 1표를 행사하는 마당인데 감사팀이 이를 의식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각에선 일선조합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중앙회가 그냥 있을 수도 없고 하니 마지못해 그냥 형식적으로 내려 온 감사가 아닐까하는 소리까지 나왔다. 이런 지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중앙회 감사팀은 전력을 기울여 감사 결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영덕군산림조합은 앞서 산림청으로부터도 지난해 연말부터 올 초까지 특별감사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아직까지 그 감사 결과를 알 수가 없다. 산림청이 미공개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다. 저렇다는 등의 온갖 설과 말만 가득하다. 그런 마당에 산림청은 감사 결과 공개 대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방법을 선택해 조합원들의 궁금증만 더 키웠다. 영덕군산림조합의 여러 의혹은 조직이 정상 가동된다면 자체 감사로도 확인이 가능한 부분이다. 조합원들이 선출한 감사가 자체 감사에 나서거나 외부회계감사 의뢰 등으로 시시비비를 조기에 가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합집행부가 감사자료 제출 거부는 물론 자료 조작에다 직원들에게 일절 협조하지 말 것을 지시하면서 감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심한 대립을 하던 집행부와 대의원들은 시간이 지나자 더 아슬아슬해졌다. 마주 보며 달리던 열차는 끝내 멈추지 않고 충돌했다. 집행부와 대의원들은 서로 이사진 해임, 고소 고발 등 막판을 보여주면서 맞섰다. 중심이 흔들리는 사이 이번에는 직원들 간에도 파열음이 났고, 결국은 안팎의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더니 내부 비리 제보 등으로 이어지며 자체 폭발해 버렸다. 만신창이가 된 영덕군산림조합은 이제 경찰 수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염려되는 것은 경찰수사가 제대로 될까하는 부분이다. 일단, 수사는 경북경찰청과 영덕경찰서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영덕 경우 지역사회가 좁다보니 조사담당 경찰관들과 영덕군산림조합 임직원들과는 평소에도 너무나 잘 아는 사이여서 시원하게 파헤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 조사가 예상외로 지연되면서 시중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일어난 산불로 영덕이 큰 피해를 입은 부분도 경찰의 조사를 멈칫거리게 할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산림 복구과정에 영덕군산림조합의 역할이 적잖은데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쪽에선 조사를 지연시키기보다 빨리 마무리,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산불피해복구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도 있다. 지금 상태로는 조합 업무와 주어진 일이 먼저가 아니라 산림조합 상하 직원 모두가 향후 수사 방향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어 제대로 된 업무 진행이 안된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가 끝나 후 조직을 재정비해야 본격적으로 일이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이다. A 조합원은 “한때 전국에서도 모범적이었던 영덕군산림조합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면서 “일부 조합장들과 간부들의 일탈로 지역에서도 고개를 들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합이 차제에 재도약하려면 다소 아프더라도 이번에 문제가 된 부분을 확실하게 도려내는 길 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산림청과 산림조합중앙회, 경찰은 영덕산림조합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한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04-17

스님의 소고기

좀처럼 속내를 내비치지 않는 그녀가 남편과의 불화를 얘기했다. 나는 문제를 풀어 볼 요량으로 남편 입장에 서서 그녀가 해 주었으면 좋을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그렇게는 이미 다 해 보았다고 토로하는 그녀의 얼굴에 섭섭함이 묻어났다. 친구를 위해 한 말이 괜한 화를 불렀다. 입을 다문 그녀의 표정에 예전의 내가 보였다. 서른 즈음, 다섯 살인 딸애와 갓 두 돌 지난 아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나날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대문을 나서면, 골목 마루에 앉아 담소 중이던 아주머니들이 오늘도 시댁에 가느냐고 묻곤 했다. 나의 일상은 집과 시장을 맴돌이 하는 것과 시댁에 가는 것이 전부였다.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내게 폭탄이 터졌다. 남편의 공장이 부도가 났다. 예상치 못한 연쇄부도에 그는 우왕좌왕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화난 거래처의 전화를 받는 것뿐이었다. 밀린 자재 값이 무엇인지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갚겠다는 약속을 하고 또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댁과의 작은 오해가 부도보다 더 크게 나를 휘몰아쳤다. 풀려고 해도 꼬인 매듭의 끄트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기댈 남편마저 채권자를 피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모든 잘못은 이미 내 것이었고, 나는 혼자였다. 아이들을 친정엄마께 맡기러 갔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엄마는 내일 밭에 일할 사람들을 불러놨으니 아침 일찍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대답도 없이 대문을 나섰다. 엄마의 불안한 눈빛이 골목으로 따라 나왔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팔공산은 어스름 날이 저물고 있었다. 이십대에 자주 갔던 곳을 찾아가는 발길이 자꾸만 허방을 짚었다. 작은 절은 여느 때와는 달리 불빛 하나 없었다. 아무도 없어서 좋았다. 요사채 마루에 불도 켜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았다. 친정에 두고 온 아이들도 내 머리 속에는 없었다. 풀벌레 소리조차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한참 후, 돌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발견한 스님은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고 묻지 앉았다. 그를 보자 눈물이 먼저 말했다. 나는 두서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내게 그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게 다 내 업이라고. 그 말에 가슴이 시렸다. 억울했다. 내가 뭘 어쨌는데 다 내 탓이란 말인가. 내겐 혈육과 상관없이 오빠처럼 지낸 스님이었다. 딸과 아들도 외삼촌이라 부르는 그가 하는 말은 내가 원하는 것과는 전혀 엉뚱하게 법문처럼 들렸다. 절에는 스님만 있을 뿐 오빠는 없었다. 그 밤이 오래오래 지나갔다. 나는 여명 사이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산을 내려왔다. 내 하소연이 원하는 것은 ‘너, 참 힘들었겠구나.’라는 한마디였다.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내 생각의 서랍을 조금이나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먼 길을 찾아 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산을 내려오는 내내 나는 혼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길가에 앉아 집으로 가는 첫차를 한참 기다렸다. 정신없는 생활 속에서 점점 잊어가던 어느 날,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과 나는 약속 장소로 갔다. 뜬금없는 소고기 식당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나는 약속 장소가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하얀 고무신을 신은 스님이 먼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리는 엉거주춤 따라 들어갔다. 스님과 소고기는 뭇사람의 눈길을 받기에 충분했다. 고기를 굽는 그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고기가 익기 바쁘게 남편과 내 접시에 올려주었다. ‘어서 먹어라’는 채근에 마지못한 듯 젓가락을 들었다. 소고기가 입에 살살 녹는 듯 했다. 접시는 빠르게 비었고, 또 채워졌다. 목에 찰 때까지 먹고 나서야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그날 우리는 얇은 스님의 주머니를 바닥냈다. 그가 말했다. ‘힘내야지’라고. 나는 그제야 스님이 상추쌈만 몇 점 드셨다는 것을 기억했다. 내 인생에서 잘라버리고 싶었던 그 시절의 기억이 싱싱하게 떠올랐다. 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친구에게 했다. 너만큼 하기 쉽지 않다고, 곧 괜찮아질 거라고. 친구는 내 추임새에 한참을 더 속을 풀어냈다. 나는 빈 찻잔에 따뜻한 차를 채워주었다. 친구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손을 꼭 잡아주었다.

2025-04-16

심폐 기능 강화를 위한 유산소 운동

우리가 하루하루 숨을 쉬며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호흡을 가능하게 하는 심장과 폐의 조화는 실로 정교한 생리적 기적이다. 이 두 기관이 담당하는 심폐 기능은 단순히 생존을 유지하는 수준을 넘어 우리가 걷고 뛰며 움직이는 것부터 생각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것까지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한다. 현대인의 일상은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심폐 기능을 단련할 수 있는 기회는 적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걷기나 달리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은 필수적인 생활 습관이 되어야 한다. 걷기와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은 비교적 낮은 강도로 일정한 시간을 지속하는 것이 특징으로 근육은 꾸준히 수축하고 이완을 반복하면서 많은 양의 산소를 필요로 하게 된다. 심장은 산소가 풍부한 혈액을 전신으로 더 효과적으로 보내기 위해 더 강하게 더 효율적으로 뛴다. 이 과정에서 심장의 근육을 단련시키고 폐는 점점 더 많은 산소를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로 적응된다. 꾸준한 유산소 운동은 심박수의 안정화와 폐활량의 증가, 모세혈관의 확장을 유도하며 산소 전달 효율성을 극대화시킨다. 이러한 변화는 며칠 만에도 시작되지만 수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실천할 경우 눈에 띄는 체력 향상과 신체 내구성 증가로 이어진다. 심폐 기능의 향상이 주는 효과는 물리적 조건의 개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유산소 운동은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 특히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 조절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운동을 시작하면 교감신경이 활발히 작용해 심박수가 증가하고 혈압이 오르고 에너지를 빠르게 동원하는 등의 전투 상태가 된다. 하지만 운동이 끝나면 부교감신경이 우세해지면서 심박수와 호흡수는 서서히 안정되고 몸은 휴식과 회복을 위한 상태로 전환된다. 이 두 신경계의 교차 작용은 우리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감정기복과 수면의 질까지 개선되는 결과를 만든다. 장기적으로 보면 단순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뇌와 몸 전체의 회복탄력성을 키워주는 과정이다. 이러한 심폐 기능의 강화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매우 직접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처리해도 쉽게 지치지 않고 계단을 오르거나 장시간 걸어도 숨이 가쁘지 않으며 땀이 흐르는 여름날에도 체온 조절이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진다. 운동 직후 찾아오는 상쾌함과 안정감은 단순한 만족감이 아닌 실제로 자율신경계가 균형을 되찾으며 몸이 최적화된 상태로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다. 이 과정은 심혈관계 질환 고혈압 당뇨병 같은 만성 질환의 예방은 물론 면역력의 향상과 정신 건강의 회복에도 크게 기여한다.유산소 운동이 주는 효과는 숫자로 측정되는 것 이상이다. 매일의 삶을 조금 더 가볍게 한층 더 활기차게 만드는 변화를 만든다. 현대인에게 유산소 운동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하루 20~30분의 가벼운 걷기 혹은 일주일에 몇 번 가볍게 흘리는 땀방울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건강 투자다. 마음을 다잡고 첫 걸음을 떼는 순간 우리의 심폐 기능은 다시금 깨어나고 건강증진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2025-04-16

99 ‘콘클라베’, 나만의 영화 감상법

해마다 봄, 아카데미상 소식이 들리면 괜한 기대로 설렌다. ‘기생충’, ‘미나리’ 이전부터도 그랬다. 매달, 매주, 이달의 영화, 혹은 오늘의 개봉영화를 찾곤 하지만 특히 아카데미상 즈음이 되면 영화 관련 뉴스를 더 자주 검색하게 된다. 올해는 이런저런 바쁜 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놓쳤다가 며칠 지나 검색했다. 마침 올해 아카데미 수상작 중 상영하는 영화가 있었다. 바로 예매하고 극장엘 달려갔다. 관객이 많지 않은 극장에서 혼자서 두 시간이나 숨죽이며 ‘콘클라베’를 봤다. 최근 본 영화 중에 그렇게나 집중했던 영화가 있었던가 싶다. 콘클라베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제도이며,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검은 연기, 선출이 확정되면 흰 연기로 알린다는 정도의 상식은 있었기에 다큐멘터리 비슷한 역사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미스터리, 스릴러물로 분류되어 의아했는데 과연 그랬다. 교황으로 선출되기 위해 온갖 정치적 음모가 판치고 그 와중에 드러나는 추기경들의 비리가 난무했다. 화려한 성당에서 아름답기까지 한 복장으로 가려진 다양한 추악한 캐릭터들의 면모를 들여다보는 건 몹시 불편했다. 거기도 세속과 다를 바 없다는 메시지, 그리고 변화해야 가톨릭의 미래를 암시하는 결말이었음에도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교황과 로마가톨릭의 추한 면모를 훔쳐본 듯해서 개운치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나만의 영화 감상법이 시작되었다. 마치 연관 검색하듯 내가 영화로 알게 되었거나 알고 싶은 정보를 찾고 확인하고 또 다른 영화를 보는 방식이다. 먼저, 영화 ‘두 교황’을 찾았다. 원래 보고 싶었으나 개봉관이 많지 않아 놓쳤고, 넷플릭스에 가입해야만 가능해서 아쉬우나 꾹 참고 있었다. 다른 OTT에서는 볼 수 없을까 이따금 검색만 하거나 유튜브에서 소개하는 짧은 영상을 보면서 보고싶은 마음을 달래곤 했다. 결국 이번에 넷플릭스에 가입하여 기어이 봤다. 훌륭한 두 배우가 주인공인 두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교황과 외모적으로 매우 흡사해서 화제를 모았던 영화였다. 또 있었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콘클라베’와 같은 상황이나 내용은 정반대로 코미디 드라마로 분류된 영화였다. 이 역시 티빙에 가입하고 나서야 볼 수 있었지만 가입을 잘했다 싶을 정도로 ‘콘클라베’의 찜찜함을 달래주었다. 교황이 되기 위한 정쟁을 벌이는 영화 ‘콘클라베’의 추기경들과는 정반대로 이 영화에서는 모든 추기경들이 교황으로 선출되기를 거부한다. 그 중에서도 떠밀리듯 교황으로 선출된 주인공은 두려움을 못 이겨 교황청을 나와 인간들의 세상으로 도망쳤다. 다시 돌아와서 한 그의 첫 연설은 교황 사임이었다. 교황의 무게를 고뇌하는 추기경들의 모습이 뭉클했다. 이번에 본 영화가 모두 현 교황과 관련한 것이기에 내겐 더욱 특별하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여름 우리나라를 방문하셨고, 바로 그때 첫 손녀 윤이 태어났다. 손녀 출산 소식에 부랴부랴 도착한 서울엔 광복절의 태극기와 교황 방한 현수막이 함께 나부껴 찬란하고 눈부셨다. 우리 부부는 첫 손녀의 탄생을 축복하러 교황님까지 오신 거라며 맘대로 생각하며 감격해했다.

2025-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