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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 아니오?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향후 모 기관 평가를 위한 주요 안건 처리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해결되지 않은 케케묵은 안건 하나가 있었는데, 마침, 회의 테이블에 올라왔다. 위원 중 한 명이 먼저 꽤 괜찮은 의견을 내었다. 그런데 회의를 주관하던 기관장이 그 의견을 들어보니, 말은 맞고 합당한데, 따르자니 본인 소관인 내부 부서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다 그렇잖아도 컨트롤이 잘 되지 않아 속앓이를 앓던 터라,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때, 좋은 방향을 생각하며, 나도 덧붙여 한마디 했더니, 다들 동요할 것 같았는지, 갑자기 기관장이 버럭, 그게 쉽지 않은 문제인데다 다들 마땅한 대책이 없는 것 같다며 서둘러 안건을 정리하려 하였다. 그 목소리 톤과 권위적인 태도에 다들 쥐 죽은 듯, 눈치만 보다가 ‘예’하고 일제히 숙이는 게 더 가관이었다. 졸속 행정, 이건 아니다 싶어, 한마디 더 하니,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못 박는 게 아닌가. 그러자 다들 아까보다 더 충성스러운 태도로, ‘예’하던 모습이란! 대책이 없는 게 아니라, 구렁이 담 넘어가듯, 교묘히 싫은 것을 감추며 일을 졸속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속이 빤히 보였건만, 다들 권위에 굴복해 버리니, 참, 마음이 헛헛했다.장탄식(長歎息)을 하고 운전하고 돌아와 지인과 저녁을 먹으며 그날 일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지인의 말이 더 가관이었다. ‘너도 참…. 세상 순진하기는! 그게 바로 인간이야. 공부한다더니, 인간 공부 안 하고 무슨 공부했냐.”는 핀잔만 잔뜩 듣고서, 허, 참. 깊어가는 가을, 많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1597년 2월, 한양에서는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에 대한 국형장이 한창이었다. 문무백관 200여 명이 모두 그를 죽여야 한다고 일제히 아우성칠 때, 심지어, 이순신을 크게 추천한 유성룡마저도 선뜻 못 나서던 그때, 혼자 ‘아니오’를 외친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영의정 이원익. 그 결과, 이순신은 살 수 있었고 풍전등화 속 나라를 구한 명장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또 연산군 때, 환관 김처선은, 감히 두려워 아무도 말 못 할 때, 이토록 음탕한 임금은 보지 못했다며 직언(直言)하다 목숨을 잃었다. 화난 임금이, 그를 죽인 후에도, 그 집안을 멸족하고, 그 이름자 중 하나인 ‘처(處)’자 사용을 금지함은 물론, 동명이인들은 개명하라는 명까지 내렸으니. 게다가 처용무의 이름도 풍두무(豊頭舞)로 바꾸고, 과거 시험에서 처(處)자를 썼다고 합격을 취소한 일까지 있었으니, 실로 ‘아니오’를 외친 댓가가 크긴 했다. 그러나 다들 ‘예’라고 할 때, 환관으로서 ‘아니오’를 외칠 수 있었던 그 마음은 대단하지 않은가.어느덧 11월이다. 모두가 ‘예’라 할 때, 아닌 것을, 아니라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용기’이다. 누군가는 이 용기가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라 하고, 또 누구는 그런 용기를 부리다 꺾이고 지쳐 너덜너덜해질 테니, 그냥 그대로 사는 게 좋다고도 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어느 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길일까? 깊어가는 가을, 나는 예? 아니오? 어디에 속할지 한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

2023-11-07

어른의 아지트, 순대국집

나의 취미는 요리다. 그렇다고 집에서 빵을 굽거나 파스타를 하는 건 아니다. 술안주를 직접 만들어먹는 게 좋달까. 코로나 시절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기 어렵다보니 집에서 혼술을 하는 취미가 생겼는데, 매번 시켜먹기가 부담스러워 간단한 요리를 해먹다 보니 생긴 취미다. 처음에는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같은 간단한 찌개 종류부터 해먹기 시작했는데, 요즘엔 유튜브에 편리한 레시피가 많아 이것저것 해먹어보는 중이다.하지만 그런 나도 집에서 도저히 해먹기를 포기한 술안주(?)가 두 개 있는데, 감자탕과 순대국이다. 둘 다 30대 남자의 소울푸드 같은 요리인데, 집에서 하자니 손이 너무 많이 가기도 하고 냄새가 온 집안에 남다보니 집에서 해 먹는 건 아예 포기했다. 하지만 소주를 좋아하는 나에게 둘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음식인지라, 감자탕이나 순대국에 혼술이 땡기는 날이면 집 근처의 가게에서 포장을 해 먹곤 한다.그러다보니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사실 순대국밥은 집에서 먹으면 맛이 없다. 감자탕은 그래도 포장을 해서 먹어도 우거지며 고기며 참 맛있게 먹고 밥까지 뚝딱 볶아먹는데(배가 아무리 불러도 볶음밥은 못 참는다. 소주 안주로 볶음밥을 어떻게 참아) 이상하게 순대국은 집에서 먹으려면 손이 안 간다. 분명 가게에서 먹을 때랑 똑같이 해먹어도 도저히 그 맛이 나질 않는다. 희한한 일이다.사실 나에게는 좋은 순대국 집을 구성하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맛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술을 마시고 할 때는 맛보다 중요한 요소가 몇 가지가 있다.하나는 냄새. 자고로 순대국 집은 돼지고기와 부속고기를 오래 삶은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색. 벽지며 천장에 살짝 누런 느낌이 있어야 한다. 세 번째로 주인이 너무 친절하지 않아야 한다. 가끔 말을 걸고 필요한 거 있냐고 묻거나 반찬을 아무 말 없이 리필해주는 경우들이 있는데 나는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 친절이라면 친절일 테지만, 이상하게 부담스럽단 말이지. 게다가 반찬을 남기는 걸 싫어하는 나로썬, 그런 친절은 정말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어쩌면 순대국의 맛이라는 건 단지 음식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그런 부수적인 요소를 통해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적당히 허름해서 격식 차릴 필요 없는 그 느낌 속에서 평소엔 잘 보지도 않는 야구를 보며 순대국을 기다릴 때의 그 여유로움. 시게 익은 김치와 깍두기를 한 입씩 먹어보고, 양파와 고추를 쌈장에 찍어 먹으면서 소주를 한 잔 따라 미리 마실 때의 그 알싸한 느낌. 펄펄 끓는 뚝배기에 담긴 순대국에 숟가락을 미리 담궈두고, 정구지와 새우젓, 다대기와 들깨가루, 모자란 간은 소금 살짝 넣고 고추기름과 마늘 다진 게 있는 집에선 그것들을 살짝 넣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재료들이 잘 섞이게 만들 때의 그 기분. 숟가락을 꺼내 입으로 슥 해주고, 그 맛에 소주를 한 잔 비우곤 국물을 마실 때의 그 따끈한 맛이란….그렇게 소주를 한 잔 한 잔 비우고 있으면 시간이 느려지는 기분이 든다. 세상 일 따위 어찌되든 상관없을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기분도 든다. 어쩌면 내가 순대국에 소주를 좋아하는 건 맛보다는 그런 일련의 느낌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 오늘 열심히 살았다, 이제 술도 한 잔 했으니까 오늘 하루는 그냥 쉬자하고, 뇌에서부터 발끝까지 늘어지는 그 기분이 너무나도 좋다. 그런 나에게 순대국집이란 지치고 힘들 때, 구석에 몰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찾는 나만의 작은 아지트인 셈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작년 이사를 했을 때에도 나는 제일 먼저 순대국 집부터 찾아다녔다. 맛과 적당한 친절과 적당한 허름함을 갖춘, 혼자를 위로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 숨어들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곳. 신기하게 그렇게 마음에 드는 순대국 집을 하나 찾고 나면, 비로소 새로운 동네와 친해진 기분이 든다. 이곳에서도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도 들고. 여기서도 이런 저런 일이 많겠지만 그럴 때마다 여기 와서 순대국에 소주 한 병 뚝딱하면 또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오늘도 순대국 집에는 수많은 혼자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문득 그 모습들이 살아고자 힘껏 힘을 내는 모습들 같아 측은한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에겐 그런 장소가 하나쯤 필요한 것 아닐까?누구도 자신을 탓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따끈한 국물과 차가운 소주에 온 몸을 느슨하게 풀어줄 시간. 그래서 나는 우울할 때 순대국을 먹으러 간다. 당신에게도 그런 시간과 장소가 하나쯤 있기를 바란다.

2023-11-07

그림 밖에 있는 사람

얼마 전, 동생이 참여한 회화전이 벨기에에서 열렸다. 여러모로 기쁜 일이니만큼 나도 동행하여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오프닝이 끝나면 프랑스와 스페인을 여행할 계획도 세웠다.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모름지기 먹고 마시고 아무렇게나 늘어지는 시간에 가깝지만, 이번엔 달랐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었다.다른 것보다 역시 가장 기대되는 건 미술관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모조리 섭렵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배낭을 짊어졌다. 다리가 퉁퉁 붓고 온몸이 지끈거려도 다음 날 아침이면 어떠한 미적거림도 없이 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오늘은 또 어떤 것들을 마주할까, 어떤 작품이 나를 놀라게 할까,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 덕분이었다.참 신기하다.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작품이 그 작가 자체를 명징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무엇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지 또 무엇을 감추고자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살아가는지. 작가는 작품 내부에서 어떤 말도 하지 않지만, 사실 모든 것을 발화하고 있다. 그 당연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 또다시 느꼈다.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박물관과 미술관을 들락거리는 내내 우리는 가벼운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책에서만 봤던 작품들이 바로 앞에 놓여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그리스 조각부터 중세 회화, 르네상스를 거쳐 근현대 미술사를 빛낸 작가들의 작품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다가 문득 발길을 멈췄다. 작품을 한참을 보고, 또 들여다봐도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빈센트 반 고흐,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앞에서였다.고흐의 그림을 실제로 본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의 작품에 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굉장한 감흥을 받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교과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매체에 이르기까지 고흐의 작품을 인용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고흐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상했다. 넘치는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작품이 슬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아름다워서, 그림 밖에 서 있는 사람의 마음이 자꾸만 그려졌기 때문이었다.‘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가 정신병동에 입원하기 일 년 전에 그린 작품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고흐는 미래에 관한 낙관을 꿈꿨다. 부서지는 햇빛이 아름다운 프로방스 지역으로 이사를 했던 것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실패만 거듭하던 예술가에게 희망적 예감은 얼마나 소중한가. 여전히 호기롭게 캔버스 앞에 서서 붓을 쥘 수 있었던 건, 캄캄한 어둠 속 저 멀리 보이는 한 줄기 빛의 존재 덕분이었으리라. 그림의 시간적 배경은 밤이다. 강변으로 늘어진 집을 밝히는 불빛이 있다. 하늘을 수놓는 별빛도 있다. 강의 표면에 빛이 눅진하게 번져간다. 멀리서 보면 강과 하늘이,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과 하늘의 별빛이 모두 하나인 것만 같다.고흐의 밤은 푸르다. 푸른 밤은 차갑다. 그리고 외롭다. 푸른 밤을 밝히는 무수한 빛이 있다. 그렇다고 쓸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극대화된다. 반짝이고 일렁이는 빛을 바라보는 관찰자는 밖에 있기 때문이다. 빛의 내부로 들어가지 못한 채로 차갑고 외로운 공간 속에 서 있다. 그저 물감을 덧칠하고 또 덧칠하면서. 어둠이 있기에 빛은 더욱 강렬하게 빛나고, 슬픔이 있기에 강가의 풍경은 눈물겹게 아름답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의 오랜 후원자이자 동생인 테오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밝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 이렇듯 그는 빛을 고통이라고 말한다. 밝고 매혹적이지만 그만큼 아프고 괴로운 것이라 생각한다. “고통스러운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고 있네. 심장처럼 파닥거리는 별빛.” 고흐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야말로 그가 해석한 빛에 가까울 것이다. 아름다우나 고통스러운 것. 고통스럽기에 아름다운 것. 마침내 그는 자신을 끈덕지게 따라다니는 하나의 질문을 꺼내놓는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거기에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흐도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붓을 쥘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렇게 덧붙인다. “나의 영혼이 물감처럼 하늘로 번져갈 수 있을까?”텅 빈 캔버스를 바라보는 한 사람의 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낙관과 무의미로 끝날 수 있다는 불안. 어쩌면 그건 삶과도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본다. 그림 밖에 서서 그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캔버스가 채워지면서 어떤 이야기가 탄생하게 될지 말이다.

2023-11-07

이준석은 탈당하는 즉시 ‘고립무원’이 된다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지난 주말 부산까지 찾아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려 했으나 문전박대 당했다. 보수정당을 아끼는 많은 국민은 이날 인 위원장이 어떻게든 이준석을 포용해 공멸의 길로 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기대했지만, 그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이준석은 이날 자신을 만나러 온 인 위원장에게 시종 영어로 말하면서 “환자는 서울에 있다”며 모욕을 줬다. ‘서울환자’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 핵심측근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여진다. 부산시민들이 가득찬 자리에서 이준석이 인 위원장에게만 일부러 영어로 말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너는 우리 국가의 일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가 포함됐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해석이 아니더라도 멀리서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 어떻게 그렇게까지 모질게 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 대체적인 민심이다.인 위원장의 연이은 이준석 포용행위는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은 이제 보수정당을 회생시키는데 나름대로 역할을 한 이준석에게 할 도리는 다 했다는 충분한 명분을 쌓았다. 결과적으로 인요한식 ‘포용의 축적효과’가 이준석의 탈당과 신당창당 명분을 사전에 반감시키는, 보이지 않는 성과를 낸 것이다.이준석의 신당창당은 기정사실로 된 것 같다. 여당 입장에선 이제 이준석 탈당이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게 됐다. 만약 이준석이 ‘윤핵관’에 의해 쫓겨났다는 ‘피해자 이미지’를 가질 경우, 그의 신당은 여당에 일정부분 상처를 줄 수 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지지기반이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에서 발붙일 곳이 없게 되자 스스로 당을 박차고 나와 신당을 창당하려는 그에게 민심이 우호적일 리 없다.그의 손을 잡아줄 정치인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이준석이 신당창당 준비과정에서 민주당 비명계 의원을 접촉하고 있다고 밝힌데 대해 우상호 의원은 “개똥같은 소리”라며 일축했다. 금태섭 신당 ‘새로운 선택’의 곽대중 대변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에서 안되다 보니 원래 있던 당에 맞불을 놓기 위해 신당을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같이 하면 득보다는 실이 많다. 우리뿐 아니라 누구하고도 같이 하기 힘들다”고 했다.곽 대변인 말처럼, 이준석 신당론은 ‘가능성’으로 남아 있을 때에만 협상력이 있다. 여당의 끈질긴 포용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을 탈당하는 즉시 그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칼은 꺼냈을 때보다 칼집에 있을 때 더 위협적이라는 것은 꾀 많은 이준석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내년 총선에서 이준석이 출마 지역을 서울 노원구가 아닌 대구를 염두에 둔 것 같다는 일부 보도도 나오고 있어 대구시민들이 의아해하고 있다. 이준석이 말하는 신당이 성공하려면 우선 탄탄한 지역기반을 갖춰야 하고 상당한 지지세력도 있어야 하는데, 대구를 정치거점으로 삼겠다는 그의 발상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보수진영의 산실인 TK지역 유권자들이 ‘먹던 우물에 침을 뱉는’ 이준석을 국회의원으로 뽑을 순 없지 않은가.

2023-11-07

인요한發 특권 폐지

우정구 논설위원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의해 누구나 특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어떤 목적이나 사정에 따라 법률상 그 예외를 인정하는 것을 두고 우리는 특권이라 부른다.우리나라 국회의원에게는 법률상 두 가지 특권이 있다. 현행범이 아닌 이상 국회의원은 회기 중에 체포되지 않는 불체포특권과 의회에서 한 발언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특권이 그것이다.국회의원 의정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장치지만 특권 남용사례가 많아지면서 특권 폐지를 주장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최근 국민여론을 반영하여 불체포특권과 의원 숫자 감축, 세비감액 등의 특권 축소를 당에 정식 요청했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이슈로 늘 비관적으로 끝난 사안이지만 그의 요구에 정치권이 어떻게 반응을 할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그동안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위해 법률안도 여러차례 만들어졌지만 국회를 통과한 적은 한번도 없다. 아무리 비판이 거세도 기득권을 유지에는 여야가 한통속이기 때문이다.지난 4월 출범한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는 “국회의원들이 180개가 넘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정치가 난장판이 됐다”고 말했다. “권모술수를 써서라도 국회에 입성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도 특권 때문”이라며 특권폐지 운동에 국민적 참여를 호소한 바 있다.총선을 앞두고 특권 폐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높은 지금이야말로 특권 폐지의 호기다. 인요한발 특권축소 요구가 정치권에 과연 불을 지필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1-07

바로 보는, 청도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4절까지 있는 새마을노래는 한때 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노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가사를 만들었다고 하는 이 노래는 70년대를 풍미했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침마다 마을에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마을 공동의 일을 위해 모였다. 마을을 스스로 정비하고 깨끗하게 가꾸는 데 일손을 보탰다. 새마을운동이 전국으로 시행되면서 노래도 더불어 더 많이 활용되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이 단조로운 노래 그리고 새싹 무늬가 그려진 초록 모자와 기억을 공유한다.새마을운동은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의 제안으로 농촌 마을 가꾸기 운동에서 시작되었다.1969년 8월 박정희는 수해복구사업을 돌아보다 청도의 신도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다른 마을에 비해 깨끗하게 정비되어있는 마을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으며, 새마을가꾸기운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듬해 10월부터 박정희의 제안하에 정부가 주체가 되어 전국의 농촌 마을을 중심으로 새마을가꾸기운동이 실시된다. 정부는 당시 쌍용시멘트의 과잉 재고를 농촌 마을에 나눠주며, 마을 재건을 독려했다. 마을 진입로를 확장하고, 하천에 작은 다리를 건설하고,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하고, 공동 우물을 정비하며, 목욕탕이나 빨래터 등 공공장소의 건립에 활용되었다.대통령의 개인 관심에서 시작되었던 새마을운동 사업은 정부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농촌 마을의 호응도를 끌어내었다. 이에 정부는 각 마을의 성과에 따라 기초·자조·자립 마을 3단계로 나누고, 차별적 물자 지급을 하면서 마을끼리의 경쟁심을 자극했다. 물자가 배제되는 마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며 차등 지급하였다. 1970년대는 물자가 풍족한 편은 아니었고, 마을마다 공동체를 유지하던 전통이 남아있었던 시기라 의외로 성과는 매우 좋았다. 뜻밖의 성과에 정부는 농촌에서 도시와 공장까지 운동을 확산시켰고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이 시행되었다. 실제로 새마을운동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 경제의 급성장에 일조한 면이 많다.그러나 도시의 산업화로 농촌과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도시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유신 정권에 대한 격한 목소리가 나오던 때에 박정희에게 필요했던 것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시스템’이었다.1973년 박정희는 “10월 유신이라고 하는 것은 곧 새마을운동이고, 새마을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곧 10월 유신”이라 선언했으며, 초록 모자·노란 완장·새마을노래는 상징이 되어 전국적으로 추진되었다. 도시·공장·학교·마을 등 전부 새마을운동이란 이름 붙었으며, 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사람들의 노동력과 재산과 시간 등은 반강제로 동원되었다. 도로의 포장·보수, 다리의 건설, 마을 진입로 건설 등은 국가사업임에도 보상받기가 쉽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은 무료로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초기의 새마을운동이 마을을 위한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면 1973년 이후의 새마을운동은 마을 주민으로서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한 국가의 반강제적 사업이었다. 마을공동체가 자체적으로 유지하던 전통적인 공동체 생활은 국가가 주도할수록 점점 더 퇴색되어갔다. 1979년 박정희의 암살로 새마을운동은 내리막길을 걷는다.새마을운동 발상지로 자주 언급되는 청도 청도읍 신도마을에는 현재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과 기념공원, 새마을테마파크가 마을 정경과 어우러져 공존하고 있다. 기념공원의 입구에 들어서면 과거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세웠다는 신거역과 박정희 대통령의 전용 열차, 대통령 동상과 차표 동상이 보인다. 세월의 흐름을 머금은 빛바랜 열차와 물건들이 오랜 기억을 자극한다. 신거역 안에는 곰돌이가 차장으로 앉아있어 재미를 더한다. 작은 전시관으로 꾸며진 신도정미소나 교복체험관을 지나 기다란 번영의 길을 따라 걸으면 멀리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이 있다. 이곳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마을이 변화된 모습과 당시의 책자나 사진, 현재 다른 나라로 수출되고 있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정보들이 1·2층에 나눠 전시되어 있다. 신도리마을 안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산 아래 새마을테마파크가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잘살아보세관·새마을학교·시대촌·놀이터·스탬프 투어·숙박시설 등 둘러볼 거리가 많아 흥미를 더한다.새마을운동은 농촌에 불어온 근대화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잘살아보고자 하는 자발적인 마음에서 시작되었으나 국가가 주도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전통적인 마을공동체 유지 체제마저도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왔다.새마을운동은 현재 경제발전의 일환으로 여러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근대화에 성공한 결과적인 면뿐만 아니라 과도한 실적 경쟁과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시스템이었다는 부정적인 면도 간과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와 연결된 역사를 지닌 이곳을 걸으며, 새마을노래를 흥얼거려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11-06

기억과 치유의 문을 열고 닫으며

죽음은 온전히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망자를 절차에 따라 떠나 보내고 남은 자리엔 ‘정리’와 ‘상실’의 과제가 남는다. 뜻하지 않은 죽음은 ‘만약(if)’이라는 후회와 회한의 절차를 반복한다. 그 반복적인 절차 속에서 상실은 옅어지고 삶에 대한 또 다른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그 무엇도 온전히 상실의 빈공간을 채우지는 못하겠지만 무뎌지고 잊혀지면서 상실의 아픔은 아물어간다.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은 바로 이러한 ‘정리’와 ‘상실’에 관한 영화다.‘너의 이름은’에서도 그렇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에서 시작된다. 반복되는 꿈, 그 속에서 미지의 궁금증은 증폭되어 간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꿈은 모두 과거의 어느 시점에 발생한 사건을 기점으로 한다. 꿈은 조금씩 조금씩 반복되며 진행된다.꿈은 죽음과 맞닿아 있고, 그 죽음을 있게 한 원인과 연결된다. 원인은 재난이고 그 재난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상실을 어떻게 극복하고 채워갈 것인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2020년 1월 일본에 있었다. 포항문화재단의 재난을 문화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해외교류 프로젝트의 담당자로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던 후쿠시마 이와키시를 방문했다.2017년 11월 15일 포항 흥해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문화적으로 극복하고자 꾸준히 노력하였고, 그 일환으로 일본에서 활동중인 단체와 교류를 추진하게 된다.10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었지만 그날의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지진해일로 인해 적지 않은 인명 피해를 입었던 이와키시는 여전히 피해 복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원전 피해 지역에 가까워질수록 당시의 흔적은 짙게 남아 있었다. 그날의 상처는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하루 아침에 사랑하던 이들을 잃었고, 살던 집과 동네가 쓸려 내려가는 모습이 각자의 기억 속에 박혀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의 복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전작인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가 가상의 재난을 다루고 있는데 반해 ‘스즈메의 문단속’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실제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피하거나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 심연의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기억을 직접적으로 끄집어 낸다. 그날의 기억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만약이라는 가정을 끊임없이 반복해 보지만 돌이킬 수 없다는 지점에서 택한 방법은 과거의 상처를 직시하는 것이다. 물리적 피해복구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은 치유는 그 속도를 달리한다. 2020년 후쿠시마 이와키시의 방문에서도 피해복구와 다르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막연한 두려움과 긴장은 여전했었다.영화는 애도와 치유의 방법으로 실제 일어났던 재난을 끌어온다. 원인을 알 수 없지만 누군가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지만 그것이 해답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묻고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살핀다.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던 그날의 기억은 온전히 되살아나 눈앞에 펼쳐진다. 외면한 기억을 뒤돌아 마주했을 때, 기억의 문을 활짝 열어 젖혔을 때 황량했던 내면에 순풍이 풀고 꽃이 피어난다. 이유없는 재난 앞에서 스즈메의 이유를 찾기 위한 문단속은 계속되지만 사라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다.영화는 장면 장면마다 재난을 경험했을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요소들을 배치해 두었다. ‘만약(if)’의 문을 열고 닫으며 초월적인 존재의 능력을 갈구하지만 이미 발생한 재난은 돌이킬 수 없다. 각인된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영화는 손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타인의 위로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날의 기억을 직시하고 인정했을 때, 그곳에서부터 치유가 시작된다고 말한다.직간접적으로 재난을 경험했을 모든 이들에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닫음으로써 비로소 이후의 삶이 시작된다. 영화 속에서 이와키의 해변가에서 보았던 높은 방벽이 나왔을 때 울컥했던 마음과 함께 감정의 울림이 크게 여닫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잊어서 치유되는 것이 아닌 기억해서 아물어가는 상처의 치료 과정을 보게 된다./김규형 (주)Engine42 대표

2023-11-06

‘윤심’이 아니라 ‘민심’을 받들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속담에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고 했다. 정부·여당이 강서구청장 선거에 올인 했으나 참패하자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이다. 이제야 윤 대통령은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나부터 반성하겠다”고 했고, 여당은 환골탈태하겠다면서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총선을 앞두고 저승이 어른거리니 겁이 나서 허둥대는 모습이 측은하다.필자는 이미 본 칼럼을 통해 여러 차례 정부·여당에 고언(苦言)을 했다. “제주 돌담이 대통령에게”(2022년 8월 9일),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보라”(2022년 9월 6일), “당심·윤심·민심”(2023년 1월 31일), “공정과 상식, 그 표리부동에 대하여”(2023년 2월 28일), “중도층의 표심이 두렵지 않은가”(2023년 10월 10일) 등이 대표적이다. 유사한 비판과 충고들이 다른 언론에서도 수없이 지적되어왔음은 물론이다.그럼에도 모른 채 하더니 총선이 다가오자 이제야 호들갑이다. 쇄신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혁신과 변화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인식이다. 내년 총선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평가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여당은 사실상 ‘용산의 출장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권력은 민심을 받들면 살고 거스르면 죽는다. 윤 대통령은 “민심이 곧 천심”이라고 했지만 말 뿐이었다. 오만·독선·불통으로 무너진 전 정권을 닮아가고 있다. 청와대를 떠나 용산으로 이전할 때의 초심은 어디로 갔는가? 소통이 막혔으니 왜 청와대를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민심이다. ‘59분 대통령’이라는 별명은 불통의 상징이다. 참모들에게 “소통을 강화하라”고 지시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나부터 반성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위기 모면용’이 아니길 바란다. ‘반성이 기만’이 되면 민심은 폭발한다. 보선 참패는 대통령이 자초했고, 총선의 승패도 대통령의 변화에 달려 있다. 정치초보가 오만해서 폭주하면 사고 친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민심은 부정평가가 긍정평가의 두 배를 넘나들고 있다.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총선은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다.여당의 쇄신 역시 시급하다. 용산만 쳐다보는 무력한 당이나 ‘혁신 시늉만 내는 혁신위원회’는 없는 게 낫다. 보선 참패의 책임으로 물러난 ‘윤핵관’ 사무총장을 20일 만에 다시 총선 핵심직책에 중용(重用)한 것이 혁신이란 말인가? 위장된 혁신은 역풍을 불러온다. 또한 정당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 당내 비판은 ‘내부 총질’이 아니라 ‘충언(忠言)’이다. 총선 승패는 중도층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중도 확장성이 있는 당내 비판세력을 존중해야 한다. 이들이 탈당 또는 신당을 창당할 경우 수도권 선거는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대통령이 민심을 오독(誤讀)하거나, 당이 ‘윤심’만 살피면 ‘떠난 민심’이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공천에 ‘윤심’이 작용할 수는 있겠지만, ‘당락은 민심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2023-11-06

‘희망 고문’ 된 공공기관 지방이전

홍석봉 대구지사장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지역이전이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연기됐다. 과열 경쟁과 사회적 공감대 미형성이 이유다.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지역이전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국토부는 올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 상반기 내 기본계획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2차 이전 대상은 300곳 이상이다. 전국의 광역 및 기초단체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경제적 파급력이 크고 직원 수가 많은 우량 공공기관이 대상이다.돌발 변수가 생겼다. 혁신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우리도 유치하겠다”고 뛰어들었다. 유치 과열이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속도조절에 나섰다.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은 “총선 전에 바람을 타서 화약고를 건드리기보단 준비를 철저히 한 뒤 이전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 국토교통부와 조율했다”며 이전 연기를 공식화했다. 수도권 민심을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 일었다.상주시 등 전국 80여 자치단체장들은 지난 2일 비혁신·인구감소 도시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혁신도시특별법 개정’ 촉구 결의를 했다. 지자체장들은 혁신도시 위주의 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으로 비혁신도시는 균형발전 측면에서 미흡했기 때문에 공공기관 이전을 지방소멸과 인구 위기를 극복하는 정책적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정부와 국회에 촉구했다. 상주시는 제천시와 균형발전위원회를 방문, 비혁신도시로의 공공기관 이전 당위성이 담긴 공동성명서를 전달하기도 했다.이러다간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가 모두 공공기관을 우리 지역으로 이전해 달라고 요구할 판이다. 공공기관 배정에 목을 매고 있는 혁신도시 단체장과 주민에겐 ‘희망고문’이다. 저마다 당위성을 내세운다. 주무부서는 떡 갈라주듯 할 수도 없고 머리를 싸매야할 터이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1-06

‘마당개’를 아십니까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개를 마당에 묶어서 키우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절의 개들은 도둑이 들거나 낯선 사람이 침입하는 것을 경고하는 ‘경비견’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허름한 잠자리와 짧은 목줄은 당연했고, 주위에는 제때 치워 주지 않은 똥오줌이 널려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당연히 산책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고, 복날 즈음해서 개장수에게 식용으로 팔려 가는 일도 흔했다.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된 오늘날에도 이런 처지에 놓인 개들이 적지 않다.1m 내외의 짧은 목줄로 마당에 묶여 생활하는 개를 ‘마당개’라고 한다. 공장에서 경비용으로 묶어서 기르는 개를 뜻하는 ‘공장개’라는 표현도 있다. 농어촌 지역이나 공장지대를 지나가다 보면 이런 마당개와 공장개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사람이 반가워 날뛰는 녀석, 경계심을 표출하며 사납게 짖어대는 녀석 등 반응도 제각각이다.2022년 조사에 따르면 도시 지역보다 농어촌 지역에서 마당개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미비한 탓이다. 보호자와 함께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즐기는 도시 지역의 개들과, 온종일 짧은 목줄에 묶여 지내는 마당개와 공장개들은 같은 개라고 하기엔 ‘팔자’ 차이가 너무 커 보인다. 인간이라면 어떨까? 어떤 사람이 짧은 줄에 묶여 행동반경을 제약당하고, 배변조차 줄에 묶인 채 그 자리에서 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심각한 학대이자 인간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것이다.보도에 따르면 지난 11월 2일, 경주시는 안강읍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24마리의 개를 구조했다. 오물과 쓰레기와 뒤엉킨 채 방치된 개들은 기생충과 피부병에 감염되어 있었다. 이처럼 적절한 환경과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많은 동물을 사육하는 사람을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라고 한다. 이 또한 심각한 동물 학대 행위이다.개정된 동물보호법은 ‘반려동물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질병을 유발하는 행위’와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현행법으로 이러한 동물 학대 행위를 예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상해나 질병, 죽음 같은 실제적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깨끗한 생활환경을 제공하고 다치거나 아플 때 반드시 치료해주는 등 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를 설정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법적제재가 가능하도록 동물보호법이 추가 개정되기를 바란다.법제도의 개선과 함께 동물권에 대한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페미니즘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반려종 선언’에서 반려종이 성립하려면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종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썼다. 인간은 개를 길들여 반려동물로 삼았지만, 개 또한 휴머니티(인간성)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반려동물은 정복과 지배, 사육의 대상이 아니라 또 다른 우리이기도 하다. 마당개에게서 보이는 풍경은 짧은 줄에 묶여 있는 동물이 아니라, 주체의 신화에 속박당한 우리 자신이다.

2023-11-06

사회 자정작용 시스템

강길수 수필가 10월 하순, 후덥지근하던 가을 날씨가 소슬해진다. 어제와 오늘은 습도가 20%대까지 낮아졌다. 그래선가. 보도의 벚나무 낙엽들이 절반은 부서졌다. 샛노랗거나 새빨간 벚나무 낙엽을 줍던 즐거움도 올핸 못 누릴까 보다.낮은 습도에 벚나무 낙엽이 쉬이 부서지듯, 자연물들은 서로 반응한다. 그들의 상호 반응이 내겐 자정작용(自淨作用)으로도 보인다. 발생하는 오염물들을 자연은 끝없이 자정작용으로 정화한다. 공기나 물 등 무생물들도 물리, 화학적 자정작용을 한다. 살펴보면, 자연은 자정작용이 점철된 시스템이다.인간사회는 어떨까. 당연히 자정작용시스템을 갖는다.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는 결국 자정작용시스템이다. 인간사회의 정치제도 중 자정작용의 결정체는 무얼까. 바로 ‘자유민주주의’라 본다. 지구촌 대부분 나라가 사실상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한 것을 봐도 그렇다. 자유민주주의는 사전이 말하듯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다.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는 허울이나 말장난에 불과하다.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룬 것은 행운이다. 75년의 짧은 기간에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사회를 국민과 지도자가 해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자정작용시스템은 무엇일까. 언론, 관습, 문화, 윤리, 도덕, 나아가 입법, 사법, 행정 등 사회 제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신성한 자정작용시스템은 바로 공명정대한 선거다. 주권이 국민에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2020년 4·15총선 직후 부정선거 소송이 126건이나 제기됐다. 이후 많은 분이 부정선거퇴치 운동을 한다. 저작가 G 박사는 2017년 대선부터 올 강서 보궐선거까지 8차례에 걸쳐, 통계학 대수법칙을 위반하는 부정선거를 선관위가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또 H 교수는 올 강서 보궐선거 사전투표 결과가 나올 확률은 무려 5.7경분의 1이라 한다. 오랫동안 품질 수치를 다뤘던 나도 사전투표 결과를 보는 순간, 조작된 수치임을 직감했다.숫자는 진실이며, 증거다. 10월 강서 보궐선거의 득표율은 당일 투표 여당 47.12%, 1야당 48.46%, 차이 1.34%다. 반면, 사전투표는 여당 30.61%. 1야당 65.68%, 차이 35.07%다. 투표자 기준 사전투표율은 46.51%다. 따라서 비슷한 두 모집단의 투표결과는 거의 같아야 한다. 상식적, 통계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결과다.앞에서 보았듯 우리나라는 신성한 사회 자정작용시스템인 선거가 거악 오염시스템으로 전락해버렸다. 부정선거 획책 세력이 국민을 깔보고, 사회 체제 전복을 암암리에 도모한다는 의심이 짙다. 전쟁은 외부침략이고 부정선거는 내부침략이다.대통령과 정부, 정치권, 사법부, 언론은 이제부터라도 부정선거를 발본색원하여 나라의 자정작용시스템을 회복시켜내야 한다. 혁신, 변화 다 좋지만 선관위 발표 거짓 선거 숫자에 바보처럼 승복하여 어릿광대놀음만 해서는 안 된다. 여당 혁신위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부정선거를 막는 일이다. 이는 나라를 지키려는 국민의 뜻이다.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존속 여부가 걸린 문제니까.

2023-11-06

서울공화국은 곤란하다

김진국 고문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 문제로 정가가 어수선하다. 경기도 분도(分道) 시민공청회에서 이런 제안이 처음 나온 것은 이해할 만하다.김포시민이야 서울 편입을 원할 수 있다. 그걸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당론으로 받아들였다. 김 대표는 지난달 30일 김포골드라인 교통 대책 시민 간담회에서 김포시민이 의견을 모은다면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김 대표는 “생활권·통학권, 직장과 주거지 간 통근 등을 봐서 서울시와 같은 생활권이라면 행정 편의가 아니라 주민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다. 그는“원칙적으로 서울과 출퇴근이 공유되는 곳은 서울시에 편입하는 것을 당론으로 정하고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김포뿐 아니라 고양·부천·광명·구리·하남 등 서울 인근 도시들이 모두 들썩인다.김 대표 논리대로라면 수도권 전체가 서울이다. 대구·부산·광주 등 전국에서 중환자는 서울 대형병원으로 간다. 콘크리트 아파트 한 채에 30억~40억 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편치 않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렇다고 전국을 서울로 집어넣을 수는 없다. 집중도를 낮춰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경기(京畿)’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려 현종(1018) 때다. 고려 초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왕도(王都) 주위 오백 리에 ‘적현(赤縣·京縣)’과 ‘기현(畿縣)’을 설치했는데, 이를 통합하면서 경기라고 부른 것이다.경기도는 원래 서울과 한덩어리다. 조선 시대 이후 서울 중심이 더 강화됐다.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낸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국토교통부 균형발전현황판을 보면 서울·인천·경기,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6%다. 1960년 20.8% 수준이었던 수도권 인구 비중이 80년 35.5%, 90년 42.8%으로 치솟더니 2019년 말 드디어 절반을 넘어섰다. 면적은 서울이 전체 국토의 0.6%, 인천 1.1%, 경기 10.6%로, 합쳐서 11.8%, 10분에 1에 불과하다.그런데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서울이 4만9천680원으로 대구(2만 5천543원)의 두 배에 이른다. 수도권은 4만703원, 비수도권은 3만9천212원이다. 청년 실업률도 수도권이 4.67%인데, 비수도권은 6.36%다. 그러니 서울로 몰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뭘 더 가져다 붙이겠다는 건가.김포의 서울 편입 정책은 선거용이라는 정황이 분명하다.내년 4월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절체절명의 고비다. 레임덕이냐, 힘 있는 임기 시작이냐를 가르는 선거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통해 수도권 민심을 확인했다. 그대로라면 수도권에서 지난 총선 결과인 103 대 16보다 더 나을 수 없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안간힘을 쓰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 대계를 좌우할 문제를 선거용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린벨트를 설정하고, 수도 이전을 구상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면 아무리 다급해도 그런 꼼수를 부렸을까.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종시 이전 공약으로 선거 때 ‘재미 좀 봤다’라고 말했다.좋은 구상이라도 선거에 연결하면 왜곡되기 마련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지역 특성과 전체 연결을 고려하지 않은 나누어 먹기가 되면서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치적 거래, 그 이후 선거 때마다 이용되면서 표류하고 있는 새만금은 전형적인 득표 미끼가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코로나 지원금도 선거 전 현금 살포에 이용됐다.선거를 계기로 기발한 정책들이 발굴된다.평소 관료 조직의 경직성을 뚫기 힘든 과감한 정책도 선거를 계기로 실현되는 일도 있다. 미국의 뉴딜정책도 선거를 통해 나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국가 미래에 대한 거대한 디자인에 맞춰져야 한다. 당장 기존의 지역 발전 구상은 어떻게 할 건가. 여야를 막론하고 비전은 없고, 잔꾀만 느는 것 같아 걱정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1-05

만원

독거 할머니, 할아버지 스무 분께 생일상을 차려 주기로 한 날이다. 복지관에 들어서니 10시였다. 12시까지 오시면 된다고 했는데 어르신들이 벌써 와 계신다. 어르신들께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드렸다.“아이구야, 고맙네. 고마워.”흔하고 흔한 게 커피인 것을. 커피 한 잔에 어르신들은 마음을 다 내놓으신다. 할머니들은 나의 손을 붙잡고 고맙다며 연신 인사를 한다. 배가 고파서 일찍 와 계신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고파서 일찍 와 계신다는 것을 나는 어르신들의 한마디에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무엇엔가 홀린 듯, 내 부모를 대할 때처럼 온기를 가득 담은 시선을 보내 주었다. 12시가 되기도 전에 어르신들은 모두 도착했다.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혼자 먹는 것은 맛이 없다고 하신 어느 어르신의 말씀이 가슴이 찡했다.밥을 먹다가, 나는 빨간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 한 분께 시선이 멈췄다. 할머니는 미역국을 드시다 말고 미역 줄기처럼 긴 눈물을 흘리셨다. 미역귀 같이 갈라진 손으로 눈물을 훔쳤으나, 어느 누구도, 아무도, 말이 없었다. 말은 없었지만, 우리는 모두 그 침묵에 공감하고 있었다. 할머니 곁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그리고 두텁고 거친 손마디를 꾹, 잡았다. 할머니는 무겁게 입을 여셨다.“내, 시집와서 3년 되던 해, 영감 죽고 50년 만에 처음 받아보는 생일상….”시집오던 첫 해에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 줬는데 미역국을 보니 영감 생각이 너무 나서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늙으니 자식도 소용없다 하시며 영감 보고 싶어서 빨리 영감 곁으로 가고 싶다며 눈물을 훔치신다.“할머니 제가 할머니 영감 해 드릴게요”“진짜가? 진짜가?”할머니는 못 미더운 듯 자꾸 확인을 하셨다. 할 일이 많았지만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주기로 했다. 할머니의 살아온 안타까운 이야기부터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 한 번도 찾아 주지 않는 자식들 이야기는 몇 번씩 반복되었다. 그 많은 이야기 중에 내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새댁아, 나는 세상에서 나무가 최고 부럽대이.” 할머니는 뜬금없이 나무가 부럽다고 하신다. 출세한 자식도 아니고, 등 긁어줄 영감도 아니고 그저 나무가 되고 싶다고 하신다. “봐래이, 나무는 봄에 꽃 핀다고 사람들이 보러 오제, 여름에는 덥다고 나무 밑에 모이제, 가을에는 늙어도 단풍 본다고 너도나도 찾아 주지 않나?”할머니가 왜 나무가 제일 부럽다고 하는지 알고 나니 나는 스스로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도 바쁜 일을 핑계 대며 부모님을 찾은 지 오래다. 마음과 몸이 따로 놀고 있으니, 나 또한 빨간 스웨터 할머니 자식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내 얼굴은 할머니의 스웨터에 반사된 듯 붉어지고 있었다. 김경아 작가 “제가 이제 할머니 보러 갈 테니 저의 나무가 되어 주세요. 저는 사시사철 갈게요.”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까르르 웃으셨다. 행사가 끝나고 짐을 챙겨 나오는데 빨간 스웨터 할머니가 갑자기 다가와 내 손을 꼭 잡더니 무언가를 건네주고는 부랴부랴 도망치듯 가버렸다. 아무리 불러도 영감님을 만나신 듯 뒤도 보지 않고 달려가셨다. 꼬깃꼬깃 구겨진 만 원짜리 하나가 내 손바닥의 지문을 물고 있었다.‘할머니, 할머니’ 혼자서 열 번도 더 불러보았다. 눈물이 났다. 어쩌면 전 재산 일지도 모르는 만 원에 할머니의 지난 세월이 다 들어있었다. 나는 가로수의 은행잎에 시선을 멈추었다. 어디를 보며 여기까지 왔을까. 앞으로 내가 바라보아야 할 곳이 어디일까. 무관심의 세상에 나도 일조를 하고 있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누가 죽어 나가는지. ‘나 좀 봐 달라’는 가련한 소리를 어쩌면 우리는 돈으로, 옷으로, 음식으로 잠재우거나 아예 무시하지 않았던가. 전 재산일지도 모르는 돈을 쉬이 내게 주었던 할머니의 마음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내 마음에 오버랩 되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큰 재산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2023-11-05

안동의 전통문화, 바이오·관광 황금알 낳다

권기창 안동시장 안동의 전통문화가 바이오·관광 산업으로 변신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일궈내고 있다.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유교문화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추로지향의 도시로 일컬어지며 미래 천년을 선도하는 인문 정신을 널리 공유하는 곳이다. 전국 최다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이자 서울과 경주 다음으로 문화재를 많이 보유한 고장이다. 서애 류성룡, 석주 이상룡, 이육사 등 시대를 막론한 구국의 정신이 이어지고 퇴계 이황, 학봉 김성일 등 유학을 근본으로 한 인문 가치가 오롯하다.800년 역사의 한국 전통마을 하회마을이 품어 온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지난 20년 동안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라는 국제적 축제의 향연을 만들어 내며 지역경제 활성화의 효과까지 끌어내고 있다. 또한, 하회선유줄불놀이는 올해 드라마 악귀에 나오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관광객 발길을 이끌었다. 또한, 천년을 이어온 차전놀이와 놋다리밟기는 올해 처음으로 ‘차전장군 노국공주 축제’로 개최되며 국내외 관광객의 큰 환호를 얻었다.비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봉정사 도산서원뿐만 아니라 안동의 살아 숨쉬는 전통문화가 소위 ‘힙’한 관심을 받고 있다. 종가 며느리의 손으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주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형성하며 백화점 등 고급 식당 등으로 납품되고, 특히 안동소주는 스카치위스키에 버금가는 세계적 명주의 비전을 그리며 미국, 일본 등 새로운 수출 판로를 열어가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가 쓴 백여 가지가 넘는 음식 조리서 ‘수운잡방’은 영국, 프랑스 등으로 소개되며 한국의 전통을 알리는 한편, 웹툰, 영화 등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되며 이목을 끌고 있다.퇴계의 고향 도산에는 안동국제컨벤션센터가 세워져 국제회의·포럼 등이 열리며 서양의 다보스포럼의 위상을 지향하는 인문정신의 중심지로 널리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또한, 퇴계 이황의 인문사상과 철학이 녹아든 마지막 귀향길을 따라 지난 9월 전국 백패커 500명이 참여한 ‘제1회 고아웃 슈퍼하이킹’이 개최돼 문화유산과 천혜의 자연 속에서 힐링할 수 있는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로 불리며 전국적인 명성을 쌓았다.안동은 천년 역사의 대마 주산지이기도 하다. ‘100번의 손길이 가야 안동포가 만들어진다’는 옛말처럼 안동사람들은 천여 년의 역사 동안 대마를 재배하고, 삼을 짜 베로 만들어 내는 ‘길쌈’의 명맥을 이어왔다. 여기에 2020년 8월 지정 경북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헴프에 있는 CBD, 즉 칸나비디올이라는 성분을 추출해 연구,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안동에서 열리며 대한민국 의료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창출해내고 있다. 현재 총괄 주관기관인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30개의 국내 기업과 4개 기관이 헴프규제자유특구 실증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현대에 들어서도 다양한 역사문화가 신산업 콘텐츠로 이름을 알려가고 있다. 1976년 안동댐 수몰로 고향(예안)을 잃은 도산면 서부리에는 마을주민과 지역작가가 협업해 예끼마을을 만들어 관광 핫 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영해·영덕 지역에서 잡은 고등어에 소금을 뿌린 뒤 등짐과 우마차에 실려 250리를 이동해 안동에 도착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안동간고등어가 됐다. 또한, 안동 출신 권정생 동화작가의 유작인 ‘엄마 까투리’는 국내를 넘어 세계로 수출되는 인기 애니메이션이 됐다.안동은 인간 생명과 존엄을 중시해온 인문 본향의 전통을 마중물로 글로벌 바이오생명 산업의 최적지로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백신·헴프 등 바이오 산업 기술개발부터 제품생산까지 원스톱전주기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며 백신 생태계 클러스터를 완성했다. 기회발전특구, 글로벌혁신특구, 바이오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등에 지속 도전하며 글로벌 바이오 허브로 도약해나가고 있다. 안동인의 숨결이 담긴 전통문화유산의 잠재력이 문화관광을 넘어 경제산업 분야에까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지역발전의 탄탄한 주춧돌이 되고 있다.글로벌 한류 열풍 속에 한국 전통의 매력으로 국내외 관광객을 이끌고, 백신·헴프 등 바이오 클러스터 집적화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중심의 바이오 도시로 도약하겠다.

2023-11-05

더이상 늦추어선 안 된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OECD 보건통계를 근거로 볼 때, 한국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천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에 이어서 두 번째로 적다고 한다. OECD 국가 평균 임상 의사 수는 3.7명이라고 한다.인구 1천명당 임상 의사가 많은 국가는 오스트리아(5.4명)와 노르웨이(5.2명)이고, 임상 의사가 적은 국가는 한국(2.6명)과 일본(2.6명, 2020년), 멕시코(2.5명)라고 한다.한국의 이러한 의사 부족과 함께 과학자 양성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가 18년간 묶여있던 의대 정원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과기 특성화 대학의 의전원 설립 가능성은 이전보다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의대가 증원되면 당연히 포스텍, 카이스트가 ‘의사 과학자 양성’을 위해 추진해 온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설립도 승인되어야 한다.의사과학자는 의사 면허를 가진 과학자다. 진료보다는 임상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를 연구하고, 이러한 연구 성과가 환자 치료나 의약품, 의료기기 개발에 활용될 수 있도록 돕는다. 줄기세포 치료제, 인공장기, 유전자검사, 면역항암제 등 바이오산업과 의료 분야의 최신 연구와 기술 개발을 맡고 있어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릴 핵심 인력이 의사 과학자이다.최근 25년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37%가 의사과학자이고, 세계적인 제약회사의 대표과학책임자 70%도 의사과학자인 것으로 알려졌다.미국 의과대학의 경우 한해 졸업생 4만5천명 중 3.7%가량이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는다. 매년 1천700명가량의 의사과학자가 배출된다.미국은 연구중심 의대를 별도로 운영한다. 이런 의대들은 공과대와 협업하거나 아예 공과대가 의대를 설치해서 신약개발이나 바이오산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이에 비해 한국은 의대 졸업생 중 의사과학자가 되는 이들이 1%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 모집정원이 3천58명이므로 30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이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바이오산업, 첨단의학 기술의 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그는 “의사과학자를 키우려면 의과대학 교육에 공학을 집어넣은 트랙을 만들어야 하는데, 기존 의대를 바꾸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과기의전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협의 반대 논리는 이렇다. 의사과학자 가운데 일부가 임상의로 이탈할 가능성이 있고, 이들 대학의 경우 부속병원이 없어 임상과 연구의 긴밀한 연계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의협은 의사이건 의과학자의 절실한 증원과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사수를 묶어놓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의사의 희소성에 의한 의사의 높은 봉급을 즐기려는 게 의협의 목적처럼 보인다.여기서 의대 광풍의 사회문제도 한번 짚어보자. 의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고교가 서울대라는 농담도 있다.요즘 이공계 대학의 저학년에서 휴학하고 의대 진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로 학교를 못가고 비대면 수업을 하는 경우가 늘면서 이러한 현상은 가중되고 있다고 한다. 이공계 학생들은 친구들의 의대 입시 공부로 친구 만나기도 꺼린다는 소문이다.의대에 최상위권 학생이 쏠리는 현상은 받아들인다 해도 그러한 배경에는 안정된 수입에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의대 내의 세부 전공에 지망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환자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수입이 보장되는 전공으로 몰리는 것은 장기적 의학발전 관점에서 큰 걱정이다. ‘수만 가지 의약품 중 한국이 개발한 건 하나도 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의대 약대가 함께 관련된 문제이겠지만 한국의 의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신약개발 같은 분야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포스텍, 카이스트 중심으로 의과학자 양성 방안으로 공과대가 주도하는 연구중심 의대 신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의미가 있어 보이는 이유이다.의대 열풍은 그 열풍이 단순히 개인의 수입과 영달이 모티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감이 바탕이 된다면 의과학의 연구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또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돼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신약은 엄청난 숫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의대 열풍’은 그 자체가 이공계의 다른 학문에 위협이 된다. 그러나 의과학 발전이 병행된다면 그러한 위협은 상쇄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다.언제까지 의협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몰입할 것인가? 의사 부족으로 병으로 고생하고 숨을 거두는 환자들, 그리고 의과학자 부족으로 의과학 후진국으로 신약 하나 개발 못하는 나라로 창피를 당하는 이런 상황에서도 밥그릇 지키기 위한 의사증원 반대를 계속 할 것인가? 의대 광풍을 즐기는 게 그렇게 기쁜 일인가?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된다.

2023-11-05

누구나 마음처방전이 필요하다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많은 사람은 정신질환이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또 정신질환은 드문 병이고 쉽게 발생하지 않는 병으로 생각한다.그런데 ‘2016년도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18세 이상 성인의 주요 17개 정신질환에 대한 평생 유병률은 25.4%로 분석됐다.평생 유병률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에 걸리는 사람의 비율을 의미하는데, 25.4%라는 건 4명 중 1명이 주요 17개 정신질환을 평생에 한 번 이상 경험한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정신질환은 흔한 병이라는 말이다.그러나 실제 정신질환의 평생 유병률은 이것보다 훨씬 높다.왜냐하면, 우리가 현재 주로 사용하고 있는 정신질환의 진단 기준인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SM-5)에 의하면 300여 개의 정신질환이 있는데, ‘2016년도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는 조현병 및 관련 장애, 양극성장애(조울증), 주요 우울장애, 공황장애, 범 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강박장애 등 주요 17개 질환만 조사했기 때문이다.신체 질환은 나와 무관할까요?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한, 신체의 문제가 없을 수 없다.인간이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정신의 문제 즉 마음의 문제가 없을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생로병사를 겪게 된다.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이를 피할 수는 없다.신체든 정신이든 모두 내가 돌봐야 할 소중한 나이기에 예방과 치료, 재활을 피하지 말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디지털 시대가 현대인에게 신생활 문화를 선물했지만, 더불어 건강의 적인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스트레스는 요즈음 현대 의학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이다.스트레스를 잘 관리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불면증, 불안증, 우울증 온갖 정신적 질환뿐만 아니라,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 심지어 암 등 온갖 신체적 질환이 발생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필자가 2006∼2007년 미국 하버드의대 메사추세츠 종합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MGH) 우울증 임상연구프로그램(Depression Clinical Research Program, DCRP) 연구원으로 있을 때, 심신의학의 대가 하버드 의과대학의 교수인 허버트 벤슨 박사의 프로그램에 연수한 바 있다.허버트 벤슨 박사는 병원을 찾는 환자의 25%만이 약물치료, 수술 등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고 나머지 75%는 심신의학을 통해 심신관리를 잘해 자가 치유력을 높이면 나을 수 있는 환자로 분류했다.심지어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25%의 환자조차도 심신의학을 통해 심신관리를 잘해 자가 치유력을 높이면 더 큰 의학적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신체적인 질환이든 정신적인 질환이든, 병에 걸리면 그에 합당한 치료적 도움을 받아야 한다.그러나 그 어떤 치료도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병에 걸리면 치료가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치유여야 한다.그렇다면, 치유는 무엇일까요?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치료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치료는 의사가 병을 고치려고 하는 행위를 말하고 치유는 자기 스스로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병의 원인을 낫게 하는 활동을 말한다.치료는 질병을 가진 환자가 대상이고 전문가에게 위임될 수 있으며 치료받는 특정 기간의 개념이다. 반면 치유는 우리 모두가 대상이고 위임될 수 없으며, 자신이 일생 지속하는 평생 과정의 개념이다.신체가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심신의학에서 말하는 치유 처방, 운동도 하고 좋은 식습관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운동 처방전과 식이 처방전은 소위 생활습관병인 당뇨병과 고혈압 환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운동 처방과 식이 처방을 받고 평생 실천하는 것이 치유이다.정신이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심신의학에서 말하는 치유 처방, 스트레스 관리 즉 마음 관리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마음처방전은 정신질환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마음 처방전을 받고 평생 실천하는 것이 치유이다.우리는 살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지만, 마음의 상처를 마주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다.그런 우리에게 마음처방전은 건강을 위한 치유를 넘어 인생의 지혜이다.

2023-11-05

지방 균형 발전 외치더니 서울을 확대한다고요?

유영희 작가 지난 10월 말,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김포를 서울시에 편입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구리, 하남 등 서울과 인접한 다른 도시도 서울시 편입을 요구하자, 주민 합의를 전제로 서울에 편입하는 것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하면서 메가시티가 세계적 트렌드라며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경기도를 경기남도 경기북도로 나누는 과정에서 불거진 이 논의에 김포시장은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고 하지만, 주민 설문 조사 보고서 한 장 없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어 그 배경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갑작스러운 이 소식에 국민들 모두 총선용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고, 도시공학자 등 전문가들은 그 나름대로 도쿄나 뉴욕의 메가시티화는 행정구역을 편입시키는 방식이 아니라면서 김포시의 서울 편입에 대해 부정적인 상태다.양천구, 강서구의 서울 편입 선례 역시 군색한 변명이다. 김포시는 인구 50만 명이 대도시인 데다 서울과 동심원을 그리는 상태도 아니고 마치 열쇠 모양처럼 길죽한 형태라서 도시 이용 효율성마저 엄청나게 떨어진다. 어떻게 보아도 서울시 인구나 면적이 세계의 다른 나라보다 작지 않은 상황에 서울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의 정당성은 찾기가 어렵다.김포시의 서울 편입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서울시 편중 심화를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메가시티와 서울의 확장은 개념이 다르다. 메가시티 구상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려면, 전국적으로 메가시티를 어디에 어떻게 몇 개를 건설할 것인지 큰 단위에서 행정구역 개편 논의와 맞물려서 이루어져야 한다. 게다가 인접 도시까지 주민만 합의하면 서울 편입을 적극 고려하겠다니, 이것이 책임 있는 여당에서 일하는 방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서툴고 위험하다.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은 김포시의 서울 편입 발표가 있은 지 며칠이 안 되어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11월 1일부터 3일간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지방시대 엑스포’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 행사에서 있었던 ‘제1회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 기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중앙정부는 쥐고 있는 권한을 지역으로 이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10월 29일 지방자치의 날은 2012년에 정했던 것인데,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로 올해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에 제1회가 된 것이다. 이것만 보면 정부가 지방 균형 발전의 의지가 꽤 있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이번 서울을 메가시티로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보면서 과연 이런 명칭 변경과 엑스포 행사가 진정성도 없고 그저 형식적으로 행사만 치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방보다 경제보다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공자의 말도 있듯이, 신뢰는 정치의 근본이다. 당리당략으로 졸속 정책을 발표하는 방식은 구시대적 발상일 뿐 아니라 성공하기도 어렵다.장기적인 국토 균형 발전 계획을 세워서 지방의 인구 소멸도 막고 국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2023-11-05

성공을 위한 꿈, 이미지트레이닝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대한민국이 배출한 불세출의 공격수 손흥민 선수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022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은 물론 올해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고 있는 토트넘의 주장 손흥민! 이번 시즌 초반 8골을 넣으며 EPL 득점 순위 2위에 올랐고, 9월은 통산 4번째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다. 그는 지구촌 전체의 슈퍼스타이자 ‘월드 클래스’이다. 토트넘 감독 포스테코글루는 “토트넘의 손흥민 주장 선임은 옳은 선택이다. 그는 뛰어난 리더가 될 모든 자질을 갖췄다는 사실에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요즘은 손흥민의 리더십이 뜨고 있다. 그의 리더십에 대해서 Chat-GPT에 물어 요약해 보니 공격적인 스타일과 활짝 웃는 모습에서 동료들의 주목을 받고, 팀의 성공을 위해 개인적인 명예나 성과보다는 팀워크와 협력을 중요시하며, 항상 최선을 다하고, 소임을 신중하게 수행하며, 경쾌하고 긍정적으로 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동료들을 격려하고 배려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또한, 그의 축구의 장점을 물어보니 첫째, 빠른 속력과 뛰어난 기술이다. 그의 스피드와 기술은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고 수비선을 찢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골을 넣고 득점 기회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전진한다는 것이다. 셋째, 양발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공을 콘트롤하고, 슛을 날릴 수 있는데 이는 양발을 활용하여 공격력과 전술적 다양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기업의 기본활동, 꾸준함, 전략과 전술 또한 기업 성장에 핵심요소이기도 하다.다른 관점에서 그의 성공의 한 축으로 이미지트레이닝을 말하고 싶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TOP3 인물로 호날두, 박지성, 메시를 들었고, 항상 그들의 축구 영상을 보면서 따라 하고, 배웠다는 것이다. 그들처럼 돼야겠다는 성공의 꿈은 혹독한 부친의 축구 훈련을 견디어 냈으리라 판단한다.이미지트레이닝(Image Training)은 올바른 기술 따위의 습득을 위하여 머릿속에 그 운동이나 동작을 그려 보는 연습법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팔이나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근육을 강하게 수축하는 상상 이미지트레이닝 훈련만으로도 실제 근육이 15%나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명한 선수들은 휴식시간에도 이미지트레이닝을 통해 연습한다고 한다.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베트남 전쟁 포로로 무려 7년간 독방에 수감되었던 미국의 조지 홀 대위는 그곳 독방에서 매일 머릿속으로 골프 코스를 떠올리며 한 라운드씩 상상으로 골프를 하였다고 한다. 7년의 세월이 흘러 귀환 후 첫 라운드에서 그의 골프 실력은 완벽에 가까웠다는 것이다.성공을 상상하면서 동시에 실제 상황에 가깝게 계획된 ‘연습’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좋은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이미지트레이닝 방법들을 적절히 조합하고, 개인의 상황에 목표를 맞게 적용한다면 성공을 위한 기반을 확립할 수 있다. 주장 완장을 찬 손흥민이 토트넘을 이끌고 커리어 최초 리그 우승을 기록하길 기대해 본다.

2023-11-05

안동 가는 길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10월 28일 노문과 졸업생 초대로 포항에서 하루 묵고 왔다. 포항에 간 김에 구룡포에 있는 일본인 거리와 구룡포항 그리고 횟집에 들렀다. 자연산 횟감과 신선한 안주를 푸짐하게 내오는 인심 좋은 주인을 졸업생이 잘 알고 있었다. 이래저래 눈도 마음도 육신도 풍요롭고 넉넉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귀로(歸路)에 오른 것이다.구룡포항과 포항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이어주는 신작로가 돌아오는 길을 상쾌하게 동반한다. 불과 25분 만에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달리다 보니 ‘안동’으로 연결되는 도로 표지판이 얼굴을 내민다. 그 순간 무엇인가 가슴을 ‘쿵’ 소리 나게 두드린 것 같다. 삽시간에 가슴이 아프고 곧이어 눈시울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대체 이건 뭔가?!그것은 지나간 날들의 상념과 장면이 갑작스레 들이닥친 까닭이다. 큰아이가 어느 대학 무슨 과를 갈 것인가, 고민할 때 나는 안동대 민속학과를 추천했다. 21세기는 동아시아의 세기이며, 그 중심에 우리나라가 자리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것은 나의 확신이자 예감이며, 어떤 강렬한 계시 같은 확증이 심중을 관통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어리석고 무능한 군왕과 서글픈 사대부들과 한심한 신료(臣僚)들 때문에 숱한 고초를 겪어야 했던 조선 백성은 민주주의 시대에 제대로 빛을 보기 시작한다. 신분 제약의 사악한 족쇄(足鎖)가 풀리자 민초(民草)들은 하늘로 비상(飛翔)했다. 독재자들과 학살자들의 등쌀을 뚫고 21세기 20년대 우리는 세계의 빛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하지만 16년 전 큰아이는 내 결정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런 아들을 다독여 민속학을 공부하도록 하면서 틈나는 대로 안동대를 찾았다. 언젠가 안동대 정문에서 아이를 만나서 즉시 영덕 강구항으로 차를 달렸다. 대게를 먹는 철도 아니었지만, 둘이 한 상 푸짐하게 받아들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했다.그 당시 나는 맛난 걸 먹게 되면 모친에게 택배로 부쳐드리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먹은 것보다 많은 양을 서울 모친댁으로 부쳤다. 그래야 속이 편하고 유쾌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나와 출장을 가는 동료 교수들은 안절부절도 유만부동이다. 제주도에 가면 갈치나 돔, 여수에 가면 말린 생선을, 장흥에 들르면 돼지고기를 부친 까닭이다.그래봐야 10만원이면 충분하다. 그 정도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런 마음의 선물을 보낼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 얘기를 동료들에게 하곤 했고, 몇몇 사람은 나와 함께 택배 행렬에 동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나의 택배를 받아줄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아니 계시다. 그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안동 가는 도로 표지판을 보았을 때, 큰아이와 어머니 그리고 나의 16년 전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가 사라져간다. 그래서다. 내 마음과 눈시울이 순간 커다란 변화와 마주했던 까닭은 그래서다. 저 멀리 떠나간 시공간과 언어와 인연이 하얀 일광(日光)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2023-11-05

겨울철 진객 과메기

우정구 논설위원 경상도의 과메기와 전라도의 홍어는 냄새 나는 생선을 그대로 먹는다는 점에서 곧잘 비교된다. 과메기가 경상도의 겨울철 별미라면 홍어는 전라도의 겨울철 별미다. 강한 암모니아 냄새가 풍기는 홍어에 비해 그래도 과메기는 그보다 냄새가 훨씬 덜하다.청어, 꽁치, 고등어 등 어류는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에는 보관방법이 늘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염장, 건조, 훈제 등의 방법이다. 소금에 절인 안동 간고등어가 대표적 예다.포항을 중심으로 경상도에서 주로 먹는 과메기는 바닷가 덕장에 청어나 꽁치를 매달아 바닷바람에 얼렸다 녹였다 반복해 생산한 이 지역 특산품이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고문서에 “생선 눈을 관통했다”는 뜻의 관목(貫目)이라는 말이 등장한 시기로 보아 18세기 후반으로 짐작을 한다.본래 과메기는 청어를 가지고 만들었으나 1960년대 이후 청어의 생산량이 줄면서 꽁치로 대체됐다.겨울철 진객 과메기 철이 찾아왔다. 포항 구룡포에서는 18∼19일 과메기축제가 열린다. 이에 맞춰 벌써부터 많은 관광객이 과메기를 맛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는 소식이다.과메기가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나 빠르게 시장을 넓혀 지금은 전국적 명물이 됐다. 겨울철 별미로 식당이나 주점의 안주로 큰 인기다. 특히 과메기가 품고 있는 오메가3, 아스파라긴산, 비타민 D 등의 각종 영양가치 때문에 소비자들의 관심을 더 끌고 있다.올해는 최근 논란이 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를 덜기 위해 포항시가 식약청 지정의 수산물품질관리센터까지 운영한다니 식품으로서 안정성도 더 높아진 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1-05

멧돼지 소동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해 여름. 스페인의 한 해변에 멧돼지가 물속에서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이곳에 있던 많은 관광객이 혼비백산 도망친 소동이 벌어졌다.우리나라도 멧돼지가 주거지 도심까지 나타나 소동을 피우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지난 29일에는 포항에서 서울로 가던 KTX 열차가 경주시 갑산리 터널에서 멧돼지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열차는 긴급 정지하고 승객 200여 명은 다른 열차로 옮겨타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몇 년 전 울산의 한 아파트단지에는 멧돼지가 아파트 현관문을 부수고 달아나는 일이 벌어졌다. 멧돼지 등장시간이 오전 9시 30분쯤으로 사람의 왕래가 많은 시간이라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도 했다.멧돼지는 보통 몸무게가 150kg 정도나 큰 것은 400kg까지 나간다. 날카로운 이빨까지 겸비했으니 멧돼지와 갑자기 마주치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다.농촌에도 멧돼지의 잦은 출몰로 농사를 망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큰 산 인근의 농촌마을에는 거의 매일 멧돼지가 나타나 이제는 고구마를 심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정성들여 지은 농작물을 망쳤으니 화나지 않을 농민이 없다.멧돼지의 잦은 출몰은 지금이 짝짓기철로 먹이 활동이 왕성해진 탓이라 한다. 원래 먹이사슬의 중간쯤이던 멧돼지가 천적인 사자와 호랑이 등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올랐다. 호랑이 없는 골에 왕 노릇 하고 있는 꼴이다.번식력이 좋은 데다 산림녹화로 서식환경도 좋아져 국내는 35만마리 정도 멧돼지가 서식 중이라 한다. 주민피해 등으로 당국이 엽사를 동원, 포획을 하고 있지만 개체 수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멧돼지 출몰을 줄이는 묘안은 없는 것일까. /우정구(논설위원)

2023-11-02

‘발등의 불’ 된 험지 출마

홍석봉 대구지사장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최근 정치권에 일고 있는 험지 출마 논란은 정당 공천과 연관이 깊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5개월여 앞두고 있다. 정치인들의 마음은 온통 콩밭에 가 있다. 현역 의원은 물론 출마 희망자들은 중앙당과 용산 주변에 안테나를 꽂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이 험지 출마 논란으로 뜨겁다. 험지 출마는 금배지를 오래 달았고 많은 특혜를 누린 이들은 이제 뒷전으로 좀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신호다. 그런데도 눈치없이 무거운 궁둥이를 비비적거리며 일어설 줄 모르는 이들이 대상이다. 통상 3선급 이상이 해당된다. 유권자들의 피로감도 한 몫한다.부산 출신 3선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출마를 선언, 험지 출마론의 불씨를 당겼다. “제 살길 찾는 것”이라는 혹평도 없지 않지만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결단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거기에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주호영 의원과 김기현 대표를 콕집어 “서울 험지에 와야 한다”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는 언급에 영남 의원들이 발끈했다. 여당 중진에게 ‘험지 출마’가 발등에 불이 됐다.험지 출마는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다. 정당의 지지세가 약한 지역이 타깃이다.20대 총선때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텃밭을 떠나 사지나 다름 없는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홍의락 전 의원도 대구 북을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이들은 보수 텃밭에서 당선돼 정치 위상을 크게 높였다. 지역주의가 판 치는 우리나라에서 험지 출마는 총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단골 메뉴다. 험지 출마는 위험 부담이 크지만 성공하면 정치권의 스타가 된다.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울 종로구에서 당선된 후 다음 총선때 부산에서 출마, 낙선했다. 이후 ‘바보 노무현’ 별칭이 붙었다. 그의 정치 생명을 건 도박은 대통령 당선에 교두보가 됐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2020년 21대 총선 때는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 대표가 등 떼밀려 종로에 출마했다가 민주당 이낙연 총리에게 고배를 마시고 정치 인생을 마감해야 했다. 이번 국민의힘 혁신위에서 사면 대상자로 거론된 3선의 김재원 의원도 상주·군위·의성·청송을 떠나 서울 중랑을에 나섰다가 분루를 삼켜야 했다.반면 험지 출마 요구에 반발,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 출마했던 홍준표 대구시장은 당선됐다. 정치 재기의 기반이 됐다.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의 5선 주호영, 3선 윤재옥·김상훈 의원과 부산·울산·경남의 3선 이상 중진들이 험지로 등을 떼밀리고 있다. 험지 출마는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다.험지 출마는 당 쇄신을 위해,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공천을 둘러싼 파워 게임 성격이 짙다. 위험 부담이 크지만 정치적 도전과 쇄신을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고 했다. 정치인에게 후진을 위한 자리 양보는 숙명이지만 고통이 수반된다.

2023-11-02

법을 무시하는 판사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선거범과 그 공범에 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하여야 하며, 그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의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공직선거법 제270조(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규정)의 법조문이다. ‘강행규정’으로 못 박아 놓은 것은 판사가 재량의 여지없이 법규대로 처리하라는 취지일 것이다. 그런데도 버젓이 이 법을 무시하는 판사들이 있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8년 울산시장선거에 대한 재판과 2021년 대선기간 이재명 후보의 허위사실공표 혐의에 대한 재판이다.2018년 6월 울산시장선거를 앞두고 발생한 선거법 위반 사건은 크게 세 갈래였다.문재인 대통령의 친구로 알려진 송철호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상대 후보인 김기현 시장에 대한 표적수사를 경찰에 지시한 것과 청와대 고위공무원들이 송 후보의 선거공약을 지원해주었다는 것, 그리고 민주당 내 경쟁 상대가 경선에 출마하지 않도록 매수한 혐의 등이 수사 대상이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피고인들은 최상위 권력기관을 동원해 경쟁 후보를 표적 수사하고, 상대 공약을 흠집내고, 당내 경쟁자의 출마 포기를 종용하는 등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며 “대한민국 선거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최악의 반민주 선거였다”고 주장했다.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위반 사건은 지난 대선 후보 시절 대장동 개발사업 실무자였던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해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와 지난 2021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부지 용도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가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 허위로 답변한 혐의다. 울산시장선거 관련 재판은 2020년 1월 29일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후 3년 7개월여 만에 재판 절차가 종결됐다. 1년 넘게 공판준비절차로 공전하다가 2021년 5월에서야 정식 공판이 열려 2년 넘게 진행된 것이다. 그 사이 송철호 시장은 지난해 6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고, 그 사건에 연류되었지만 재판지연으로 국회의원이 된 황운하와 한병도는 내년 5월에 임기가 끝난다.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위반 재판 역시 일 년이 넘도록 결심공판도 열리지 않고 있다.사법부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위한 최후의 보루다. 판사가 외부의 압력이나 영향을 받지 않고, 개인적인 선입견이나 주관적인 의견도 배제하고, 차별이나 편견이 없이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해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선거법 위반 제판을 지연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 행위다.더구나 위의 두 사건처럼 정치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일 경우는 그 죄과가 더욱 크다. 판사가 이념에 치우치거나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법을 무시하는 행위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조속히 마련되기를 바란다.

2023-11-02

겨울을 준비하며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달력을 또 한 장 넘겼다. 겨울의 초입, 11월이다. 그런데 날씨는 푸근하다. 주말부터 전국적으로 소나기가 오겠다는 예보도 있는데…. 달력을 살펴보니 공휴일이 없어 좀 쓸쓸한 달이지만 1일부터 청송 사과축제가 열리고 3일에는 포항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포항음악제가 시작되며 10일에는 구룡포 씨푸드축제가 준비되고 있다.저녁 먹고 영일대 바닷가로 나갔다. 40여 일째 해오고 있는 해변가 ‘맨발로 걷기’를 하기 위해서다. 바다시청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두고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에 서니 하루의 일과가 머릿속에 정리된다. 붉게 물든 큰 보름달이 수평선 위에 떠 있고 많은 사람이 깨끗한 모래 위를 걷고 있다. 나는 찰방찰방 물을 밟으며 영일대 쪽으로 걷는다. 많은 사람이 스치며 조용히 뒷짐 지고 걷거나, 팔을 크게 흔들며 걷는다. 대부분 혼자서 걷는 사오십 대가 많고 노년의 부부도 조용히 얘기하며 걷고 몇몇이 놀러 나온 젊은이들은 불꽃도 터뜨리고 사진도 찍는다. 무릎 깊이의 물속에서 발가락을 꼬무락거리며 조개를 줍고 있는 아줌마가 있는가 하면 모래사장에 해초와 함께 밀려 나온 조개를 도로 바다로 던져주는 아저씨도 있다.영일대 부근까지 오니 스페이스워크가 알통을 재는 것 같은 포즈 위로 달이 보인다. 집을 나설 때는 춥지는 않을까 하고 따뜻하게 입고 나왔으나 물속에 발을 담구어 보면 차갑지가 않다. 요즘은 바람도 잔잔하다. 해변에 서 있는 스틸아트 이정표를 보니 먼 나라 도시 10개 정도가 거리가 표시되어 있는데 뉴욕이 약 1만1천km이고 서울은 270km이다. 되돌아 오면 포스코의 휘황 찬란한 불빛이 포항의 힘을 빛나게 하고 있다. 남쪽 끝 여객터미널 앞까지 와서 체조를 하며 잠깐 쉬고 되돌아간다. 이렇게 약 3천500 보 2.5km를 걷는다. 오늘도 버스킹 그룹 몇 개가 노래를 들려주고 큰길 옆 식당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카페에는 연인들의 모습이 조용하다.이처럼 바다는 맑고 깨끗한데 근래 갑자기 들려오는 ‘럼피스킨’이라는 소 전염병이 전국 74곳이나 발생하였고 약 5천 마리가 살처분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다행히 경북은 아직 피해가 없다니 다행이다. 이 병은 모기 따위가 옮긴다는 데 또 빈대가 출몰하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도 들린다. DDT(다이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에테인) 뿌려서 1970년대에 없어진 줄 알았던 빈대가 또 말썽이다. 아마 해외에서 유입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맨발 걷기를 마치고 모래밭을 나와보니 스틸아트 작품들은 거의 철거되고 몇 개만 남겨두었는데, ‘Time’의 흰 딱따구리는 기둥을 쪼고 있고 ‘비상(飛上)’의 20마리 포항갈매기들은 하늘을 향해 뜨겁게 날아오른다.집에 와보니 땀이 조금 났다. 이제 여름철 옷은 빨아 넣고 길고 두꺼운 겨울옷을 꺼내야겠다. 벌써 마음먹고도 행하지 않았던 에어컨 청소도 전기 코드는 이미 빼놓았지만 필터도 닦고, 이방 저방 흩어져 있는 선풍기도 씻어 넣어야지. 시골집 뒷간도 정리하고 황토방에 불을 때어 주어야겠다. 곧 겨울이 들어선다는 입동(立冬)이니 더 추워지기 전에 주위를 정리하고 마음 조용히 11월을 맞이하자.

2023-11-02

아키는 여전히 슬프다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베리의 마지막 날. 병원 예약시간에 맞추기 위해 바삐 준비했다. 이동용 켄넬을 깨끗이 씻어 희고 폭신한 새 수건을 깔았다.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베리의 몸을 정갈하게 닦았다, 연노랑의 옷을 입혔다. 한손으로도 가뿐히 들 만큼 가벼운 베리. 평소 좋아하던 장난감과 함께 켄넬에 들였다. 아키를 베리 앞에 데려가 마지막 인사를 하게 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 켄넬을 들고 내려갔다.남편을 기다리며 주차장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괴로움의 숨소리만 가쁘게 들릴 뿐 베리는 기척이 없었다. 그때였다. 웬 늑대울음 소리가 들렸다. 집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얼른 뛰어 올라갔다. 현관문을 여니 세상에나…. 아키는 아까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하울링을 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도 꼼짝않은 채, 얼마전까지 베리가 있었던 안방을 향해 고개를 돌려 더욱더 크게 늑대 소리로 울고 있었다. 나도 울음이 왈칵 터졌다. 아키를 껴안았다. 너도 베리와의 이별이 슬프구나. 아키의 목줄을 찾아 일단 데리고 내려갔다.베리의 켄넬 옆에 두자 울음을 그쳤다. 작년 4월, 베리가 입원했을 때 식음을 전폐한 아키의 증상을 얘기했더니 문병을 허용해 준 수의사에게 전화했다. 이번에도 아키의 동행을 허락받았다.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놀라고 애달파했다. 아키는 남편에게 안겨서, 내 품에 안겨 숨을 거두는 베리를 다 지켜보았다. 아키는 베리의 마지막까지 함께했다.빗속을 뚫고 도착한 장례식장에는 베리의 빈소가 마련돼 있었다. 미리 보낸 베리의 사진이 TV모니터로 보였다. 강아지 간식이 들어 있는 조그마한 제기, 그리고 조화이긴 하지만 예쁜 꽃들도 장식되어 있었다. 또 한 켠 벽엔 베리의 사진으로 만든 가랜드도 걸려 있었다.화장이 진행되는 두세 시간을 우리 부부는 베리의 사진이 반복적으로 바뀌는 TV모니터만 지켜보며 말이 없었다. 그런데 아키는 달랐다. 우리 둘 사이에 앉아있다가 사람 기척이 나면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아키를 본 사람들이 몇 마디 말을 걸고 애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다시 조문실로 들어와 우리 곁에 앉는다. 그러다 문소리가 들리면 또 튀어나갔다가 그들과 잠시 지내고 들어오곤 했다. 넋을 잃고 앉아있다가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키의 행동이 마치 조문객을 맞는 상주의 그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말없는 남편에게 내 생각을 얘기했더니 남편도 슬쩍 웃음을 보였다.작은 보자기에 싸인 베리의 한 줌 뼈를 들고 집으로 온 그날 이후, 이웃 분이 날 붙들고 긴한 얘기를 하겠단다. 여태껏 강아지가 둘이나 있어도 우는 소리도 안 들렸는데 요즘은 매일 하울링 소리가 들려 이상하네요. 베리의 마지막 날, 목청 높여 하울링하던 아키였다. 내가 집 비운 사이 슬픔을 못견디어 울었나 보았다. 베리와의 슬픈 이별, 그로 인한 분리불안증 때문일까. 평소 베리와 아키는 깊이 의지하던 사이였고, 어쩌면 우리들보다 훨씬 더 애착관계였을 터. 아직도 슬픔을 삭이지 못한 아키를 혼자 두어선 안되겠다 싶어 웬만하면 어디든 데리고 다닌다.

2023-11-01

무릎통증과 예방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무릎은 우리 몸의 체중을 대부분 지탱하면서도 운동을 하는 관절이다. 관절도 크고 그 기능은 단순히 앞 뒤로만 운동이 가능하다. 어깨나 다른 관절처럼 다방향 운동이 안되고 오직 앞 뒤로만 움직인다. 체중의 대부분을 지탱하면서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어깨처럼 다방향으로 움직이면 불안해지고 그럼 이에 따른 다른 관절이나 몸의 균형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기에 선택된 진화의 결과이다.일반적인 인간이 서 있을 때 골반은 앞으로 살짝 넘어가는 전방경사가 되어 있고 허리뼈는 신전 되어 있으며 허벅지 뼈와 종아리 뼈는 안쪽으로 내회전 되고 발목은 평발처럼 되어 있다. 장애가 있거나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모든 인간은 서 있을 때 이 상태로 몸을 지탱한다. 톱니바퀴가 서로 딱딱하게 맞물려 있는 것처럼 서로를 당겨주고 받쳐주면서 허리부터 하체의 균형이 유지된다.이중 어느 하나라도 과사용, 손상, 질병 등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톱니바퀴 전체의 균형에 문제가 생기고 통증이 발생한다. 보통은 허리쪽에 무리가 많이 가고 발목이 이런 부하를 대신 받아 삐거나 하지만 무릎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무릎은 구조적으로 닳기 때문에 무릎 쪽에 무리가 많이 간다.무릎은 무리가 가기 시작하면 염증이 생기고 파열이 되고 닳기 때문에 허리나 발목처럼 다시 회복되는 게 쉽지 않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하기 때문에 걸으면서 다시 무릎에 무리가 가는 악순환이 생긴다. 그래서 무릎은 아프기 시작하면 빨리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시간 지나면 회복되겠지 생각하고 방치하면 회복이 되지 않았을 때 더 심해진다. 처음엔 단순히 무릎 쪽 인대나 근육의 문제로 시작된 것이 붓게 되고 압박이 심해지면서 지속적인 염증 반응과 함께 무릎이 조금씩 닳게 되는 구조적 문제로 진행된다.무릎의 치료도 역시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일시적인 통증과 부분적인 통증은 통상 1~2주 이내의 치료로 좋아지나 부어 있으면 기본 한달 정도는 열심히 치료해야 만족스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나이가 많거나 닳아서 무릎이 울퉁불퉁한 경우는 완치는 힘들고 통증을 줄이고 보행을 편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치료를 해야 한다. 몇 달은 기본으로 치료 해야 하고 심한 경우 한약과 병행을 해야지 효과를 볼 수 있다.개인이 해줄 수 있는 운동은 가능하다면 허벅지쪽을 단력시킬 수 있는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계단 오르기나 자전거 타기 스쿼트 같은 운동을 무리가지 않는 선에서 하면 된다. 통증이 있을 때 걷기운동은 좋지 않다. 달리기나 등산도 무릎에 큰 무리가 가니 무릎이 아픈 사람은 하면 안 된다. 치료가 되고 무릎 염증이 사라지고 통증이 사라지면 걷기 달리기 등산을 하면 된다.음식은 단백질 섭취를 위해 육식 위주로 해야 한다. 근육량을 늘리려면 육류 위주의 식사를 하고 밥과 빵 국수 등의 탄수화물 섭취는 줄인다. 그리고 물은 일부러 많이 먹지 않는다. 무릎 통증이 심한 사람은 보통 무릎이 부어 있는데 이때 몸에 좋다고 수분을 과다 섭취하면 무릎 부기가 가라앉지 않으니 물을 일부러 먹는 것은 삼가야 한다.

2023-11-01

한국교회에 묻는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506년 전 엊그제, 약관 34세 독일 청년이 세상을 바꾸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은 교회를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세상의 물줄기를 소용돌이치게 하였다.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교황의 부당한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개신교의 출발을 알렸다. 루터 자신은 ‘종교개혁’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본인의 소신과 하나님의 이끌림에 따라 하는 수 없이 한 일이라고 술회하였다. 1517년 10월 31일 아침에 95개의 문장으로 적어 교회 정문에 내걸었던 선언문에도 그의 다짐과 경고는 물론 누구와도 토론하겠다는 의지를 함께 담았다. 개신교가 태동했으며, 사회와 역사가 크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오늘 우리 교회는 어떤가. 웬일인지 교회는 권력과 금력 앞에 무릎을 꿇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루터의 개혁은 교회를 ‘돈’의 그림자로부터 떼어내지 않았는가. 당시 면죄부로 상징되는 교황의 금권을 반성경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 종교개혁을 시작하였다. 우리 교회가 권력을 탐하고 돈을 좇는 모습을 언론에서 만날 때, 목사님과 교회를 믿고 따르는 착한 교인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걱정이 된다. 교회는 개인의 복락만을 추구하는 기복(祈福)의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렵고 힘든 민생을 이어가느라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을 찾아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전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으로 부당하고 문화적으로 왜곡된 이슈들에 대하여도 윤리적 도덕적으로 반듯한 목소리를 만들어 전해야 하지 않을까.우리가 목격하는 한국교회는 사회적 담론 형성의 권위를 스스로 잃어버렸다. 오늘 들리는 교회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앞서 돈과 힘을 따라 세상에서 성공하여 행복하길 바라는 욕망을 전할 뿐이 아닌가.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정치적으로 건강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교회로부터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오백 년 전 독일 청년이 꿈꾸었던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전의 교회로 다시 돌아간 모습이 아닌가. 사람과 이웃을 섬기는 목사가 아니라, 교인들과 주변으로부터 대접받는 목사. 동네의 여느 집들보다 화려하게 우뚝 선 교회 건물들. 힘없는 이들을 보살피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힘있는 자들을 따르는 교회. 사회의 건강을 돌보기 보다 개인의 행복에만 천착하는 메시지.구석구석에서 선한 목회를 펼치는 목사님들도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 싱싱한 포부와 멋진 믿음으로 신학에 도전하는 젊은이들도 많을 터이다. 16세기 독일 청년의 용기와 도전을 21세기에도 만나보고 싶다. 저렇듯 무너져 내리는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 앞에 든든한 믿음으로 무장한 기개와 다짐을 목격하고 싶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두 번째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는 없을까. 이대로는 안 된다. 착한 교인들이 불쌍하고 수렁에 빠진 사회가 심각하다. 마지막 보루 한국교회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나라에 치유와 회복이 깃드는 날이 어서 찾아왔으면 한다.

2023-11-01

대중교통전용지구의 명암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중교통전용지구는 도로 전체를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과 보행자만 다닐 수 있도록 조성한 교통 시설이다. 자가용 통행이 24시간 차단된다. 일부 조업차량과 긴급자동차, 준대중교통만 제한적으로 진입이 허용된다. 주로 상업시설의 밀도가 높고 보행자 통행량이 많은 도심 지역에서 설치한다. 도로 폭은 왕복 2차로, 제한속도는 30km/h, 버스베이 등의 시설이 갖춰진다. 통행 위반시 과태료가 부과된다.대구시는 2009년 12월 국내 처음으로 중앙대로 반월당네거리~대구역네거리 구간을 대중교통전용도로로 지정, 시행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교통정책이었다. 시민들은 기대반 의구심 반으로 지켜보았다. 이후 보행환경개선과 상권활성화, 상징거리조성, 소음·대기오염 감소 등 도심 활력을 도모하는 효과가 컸다. 이에 서울시와 부산시도 뒤따랐다.대구 중앙로는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 이후 5년 만에 시내버스 이용객이 33.8% 증가했다. 유동인구도 17.7% 늘었다. 자가용 통행이 줄면서 이산화질소, 미세먼지, 일산화탄소, 아황산가스가 20~40% 줄었다. 소음도 낮아졌다.하지만 시행 14년이 지난 현재 중구 태평로 일대의 활발한 재건축과 재개발 등으로 교통환경이 크게 변했다. 동성로 경기가 침체됨에 따라 전용지구 검토 요구가 높아졌다. 게다가 서울과 부산시가 같은 이유로 운영 중단 및 일시 해제한 점도 작용했다. 대구시가 1일부터 대구역네거리~중앙네거리 구간의 대중교통전용지구를 해제했다. 동성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도 함께 추진한다. 도심 활력을 되찾고 동성로 상권 활성화에도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교통 환경은 유동적이다. 아쉽지만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부 해제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1-01

등대를 읽다

배문경 수필가 “햇살이 사라질 때 그 불빛은 거친 파도를 좀 더 밝은 은색으로 물들였고, 푸른색이 바다에서 밀려나가고 순수한 레몬색 불빛이 밀려들어 곡선을 그리면서 부풀어 오르다가 해안에서 부서질 때 그녀의 눈은 황홀에 빠졌고, 그녀의 마음 밑바닥에서도 순수한 기쁨의 파도가 출렁거렸다.”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중에서바다를 바라보다 등대와 눈이 마주쳤다. 멀리 있으니 작고 앙증스러워 보이는 빨간 등대다. 어쩌면 파도 그리고 바다와 저렇게 잘 어울릴까. 그 주위를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갈매기 떼는 한 폭의 그림이 된다.지금 나는 구룡포 대보 호미곶 등대박물관에 와 있다. 등대박물관이 큰 규모로 새로 지어졌다. 들어서자 맞은편 유리창으로 펼쳐지는 바다가 푸르게 다가온다. 천정에서 내려온 디지털 화면에는 일몰부터 일출까지의 풍경과 바다와 선박을 이어주는 역동하는 등대를 표현했다. 생명의 빛으로 만들어진 육각형 화면은 수시로 변화해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분수를 뒤집어 놓은 듯이 생긴 조명나무 밑에 서자 전구가 켜지고 뿌연 물방울이 떨어진다. 보물선 조타체험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페달을 밟자 시원하게 대포가 발사되어 문어괴물을 물리쳤다. 빛의 마을 캐릭터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다보니 어릴 적의 나와 조우하는 느낌이다. 그때는 이렇게 좋은 세상도 아니었다. 슬리퍼를 신고 바다의 모래사장을 헤매다보면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모래알들이 간지럽고 즐거웠다. 바다는 늘 푸른빛으로 나를 유혹했다.등대는 항로표지의 한 종류다. 빛으로 배를 안내하는 광파표지다. 바다에서 튀어나온 곳이나 섬과 같이 배가 목표지점으로 삼을 수 있는 곳에 설치한다. 그래서 해안의 긴 선착장 끝에는 육지에서 차와 사람을 조절하는 신호등처럼 등대가 있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이 빛나듯이 어둠이 짙어진 바다를 향해 불빛을 쏘는 등대야말로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이다.내 삶의 수호신은 무엇일까. 어릴 적, 연로하신 부모님과의 소통되지 않는 우울한 유년을 위로해주던 사람은 큰 오빠였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길에서 나는 오빠에게 작은 한 송이 꽃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빠는 막내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학을 다닐 때는 교수님께서 나를 지지해주셨다. 인생의 선배인 그 분은 힘든 일도 가볍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주셨고 삶의 애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소통을 함께 나누었다. 세상의 풍파에 흔들릴 때마다 등대 같은 그들이 있어 나는 난파되지 않고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 1세기에 만들어진 스페인 라코루냐등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다. 세계 수많은 나라의 유명한 등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는 인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팔미도 등대다. 크고 작은 등대가 이제는 불빛을 쏘아대며 배를 순항하도록 하는 것 외에도 자연 암초로 인해 스노쿨링으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감포항 인근의 송대말등대처럼 친근한 것도 있다.등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배를 돕는다. 캄캄한 밤, 빛을 이용해 육지를 알려주는 광파표지와 먼 바다에서 위치확인이 어렵거나 배들이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없을 때 도움을 주는 전파표지, 안개나 비, 눈 등으로 시야가 흐릴 때 음파표지, 보이지 않는 바다 속의 위험지역을 모양과 색을 이용해 알려주는 형상표지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등대이거나 누군가는 나의 등대일 수도 있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더라도 가슴속에 십자가처럼 빛나는 무엇 하나.우리 삶에 등대와 같이 어둠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의 발자취가 아닐까. 잘 들여다보면 삶을 통해 남보다 조금 더 앞서가며 역사에 오래토록 남을 발자국의 주인인 그들의 삶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등대가 아닐까. 불빛처럼 빨간색등대는 오른쪽에 장애물이 있으니 왼쪽으로 다니라는 뜻이고 흰색등대는 왼쪽은 암초가 있으니 가면 안 된다는 위험신호를 보낸다. 우왕좌왕 갈팡질팡 삶이 흔들릴 때 그들이 남긴 삶의 발자국에 슬며시 발을 올려보자.

2023-11-01

24절기(節氣)와 명리(命理) 이야기

우주의 현상과 질서인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환한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자연 변화의 규칙에 순응하여 이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천체의 주기적 변화를 관찰하여 시간을 구분하고 날짜를 매겨 기록한 것이 역법(曆法)이다. 달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太陰曆)과 해를 기준으로 하는 태양력(太陽曆)을 절충한 태음태양력(太陰太陽歷)을 지금 사용하고 있다.자연현상 가운데 풍열습조한(風熱濕燥寒)의 변화 원리를 담아낸 것이 절기(節氣)다. 절기에는 인간의 생존과 활동을 위한 조건이 되는 시간, 날짜, 온도, 습도 등의 정보가 모두 담겨져 있다. 절기는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의 황경이 0도인 날을 춘분으로 하여 15도 이동했을 때를 청명으로 구분하는 등 15도 간격으로 24절기를 나누었다. 따라서 90도인 날이 하지, 180도인 날이 추분, 270도인 날이 동지다.명리학은 계절에 따른 자연과 사람 사이의 기운을 보는 학문이기 때문에 절기는 명리학의 기준이 된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농경문화이기에 계절의 변화가 삶에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농경문화에서 절기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농사짓는 일이 계절의 시간과 흐름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절기는 양력 즉 태양력을 사용한다.명리학에서 한 해의 시작은 입춘이다. 양력으로 새해 1월 1일이 아닌 입춘일(2월4∼5일)을 한 해의 시작으로 잡는 이유는 농경사회이기 때문이다. 농사의 관점에서 새해는 봄을 알리는 때로 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절기에는 농사와 관련된 이름이 많다. 24절기는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 즉, 황하지역의 기후에 맞추어졌다.명리학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과 낮과 밤이 순환하는 자연의 원리를 인간의 삶에 적용시켰다. 어떻게 하면 풍족하고 질병이 없이 장수할 수 있을 지 긴 세월을 거쳐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음양과 오행, 계절의 순환과 반복을 관찰하고 그 경험을 축적하여 원리를 찾아내어 인간의 삶에 반영하였다.중국 고대의 천문학 자료 중 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 ‘천문’편은 가장 오래된 자료로 손꼽힌다. 천문(天文)에 대해 고유(高誘)는 “천문에 문(文)이라는 것은 상(象)이다. 하늘은 일의 발생에 앞서 먼저 조짐의 형상을 드러내 보인다. 해와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의 오성(五星), 그리고 혜성 등으로 사람에게 미리 꾸짖고 경고한다”고 해석했다.이 자료에서 우주의 생성과 발전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여기에는 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기본 요소를 기(氣)라고 보았다. 또한 자연계와 인간계의 상관관계에서 생존에 유리하기 위해서는 각 계절에 합당한 정치를 시행해야 함을 강조했다. 세성(歲星, 목성) 또는 태음(太陰, 달)의 운행에 따라 인간의 삶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우주(宇宙)를 설명하는 문헌으로는 진나라 상앙의 스승이었던 시교(尸佼 기원전 390~330)가 저술한 시자(尸子)가 있다. ‘상하사방왈우(上下四方曰宇),왕고래금왈우(往古來今曰宙)’. 위아래 사방을 ‘우’라고 말하고, 예로부터 지금까지를 ‘주’라 한다. 회남자에도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것을 ‘주’라고 하며, 사방과 위·아래를 ‘우’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우(宇)는 공간이고, 주(宙)는 시간이다. 즉, 시공간(時空間)을 말한다.시공간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성격 형성에도 계절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봄 태생은 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기운을 맞으므로 생동적이다. 여름 태생은 불처럼 확산시키고, 오지랖도 넓고 일도 잘 벌이는 것이 특징이다. 여름에 태어났음에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사주에 차가운 금수(金水) 기운이 강해서 그렇다. 다시 말해 여름 태생답지 않게 소극적이고 안전한 것만 선호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가을 태생은 결실을 맺고 열매를 수확하는 때에 태어난 것이다. 가을은 열매가 여물고 사람도 성숙해지는 시기로 목표를 완성하는 시기다. 겨울 태생은 수확한 작물을 보관하고 저장하여 다음해 종자로 사용하기 위해서 기다리는 시기다. 사람은 이러한 계절 변화에 따라 생활해야 하는 이유로 명리학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에 놓이게 된 것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안영의 ‘안자춘추’에 나오는 남귤북지(南橘北枳)는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또 귤화위지(橘化爲枳)는 귤이 변해서 탱자가 된다는 말이다. 즉,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동일한 것이라도 그 성질이 달라지는 것처럼 인간도 주위의 환경에 따라서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그만큼 태어난 장소와 계절의 중요성을 말한다.회남자 ‘인간’ 편에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변방에 사는 노인이라는 뜻으로, 세상만사에 변화가 많아 어느 것이 화(禍)가 되고, 어느 것이 복(福)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현실이 이와 같이 변화무쌍하여 앞날을 예측하기 혼란할 때는 지난날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2023-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