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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만복스럽다`

7세기 수(隨)가 무너지고 당(唐)이 설 무렵, 이세민은 형과 동생을 죽이고 황제가 됐다. 태종은 형 이건성의 참모 `위징`을 잡아왔다. “당신이 나를 쳐야 한다고 했다지?” “태자께서 내 말을 진작 들었다면 당신의 자리는 거기가 아닐 것이오” 위징은 본시 수나라 총신이었으나 수양제가 실정하는 것을 보고 반군 이연의 편에 섰고, `쓴소리의 황제`란 소리를 들었다. 당태종은 위징을 재상으로 삼았다. `한신`은 본래 초나라 항우 휘하에 있었으나, 미천한 신분의 벽에 막히다가, 한나라 유방에 귀순하면서 눈부신 전공을 세웠다. 그는 항우가 죽은 후 초나라 왕이 됐으나, 유방은 그를 두렵게 여겨 반란죄로 체포했다. “아, 괴통의 말을 들었더라면…” 무심코 내뱉은 그 말 한마디에 `괴통`이 잡혀와 심문을 받았다. “네놈이 한신에게 역모하라고 부추겼다지?” “그렇습니다”망조 든 진(秦)나라를 두고 초와 한이 팽팽하게 겨루고 있을 때 괴통은 한신에게 건의했다. “장군이 어느 편을 드느냐에 따라 대세가 결정됩니다. 장군은 중립을 지키십시오. 그러면, 3국이 `세발 솥`처럼 정립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신은 그 건의를 듣지 않고 유방을 도왔고, 결국 토사구팽됐다. 그러나 괴통은 살아남았다. 말 한마디 잘한 덕분이었다. “왜 그렇게 했느냐?” “도척의 개나 폭군 걸왕의 개가 요임금·순임금을 보고 짖는 것은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의 주인은 한신이었고, 폐하를 몰랐습니다”국정원에 공채로 들어가 32년간 정보업무를 하다가 노무현정권때 국정원장을 지낸 김만복씨가 몰래 새누리당에 입당한 후 선거때 새정련 후보를 지원했으며, 2007년 대선 전날 북한의 대남총책 김양건을 만나 “이명박 후보 당선 확실”이란 고급정보를 주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가 2년만에 사퇴했다. 그의 행보가 요즘 심심찮은 가십거리가 되고 있다. 위장 전향이냐? 고단수 전략이냐? 야당 공천으로는 국회의원 하기 틀렸다고 판단한 것인가?아무래도 위징이나 괴통 같은 인물은 아닌것 같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1-09

바둑외교

`한·중 위안부 소녀상`이 나란히 앉았다. 두 나라 조각가들이 각각 만든 것이다. 한복 입은 단발머리 소녀와 치파오 차림에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소녀상을 같이 앉히자고 제안한 중국인 영화제작자 레오스융(54)씨는 “중국도 한국과 같이 일제의 피해국인데, 한국 소녀상만 혼자 있어 너무 외로워 보였다”고 했다.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말한 것. 두 동상 옆에는 빈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동남아 다른 피해 여성들을 앉힐 자리다. 여러 나라 위안부상들이 줄을 잇게 되면 그 또한 `일본의 아픔`이 될 것이다. 독일과 달리 반성을 모르는 자에 대한 징벌이다.한국과 중국은 공동으로 위안부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난징대학살 기록은 최근 등재됐다. 일본은 갖은 방법으로 방해하다가 실패하자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 중단을 고려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분담금을 2년 이상 내지 않으면 총회 의결권도 사라지고, 회원국의 혜택도 없어진다. 그러니 `지급중단` 협박은 별 효과가 없다.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은 관련국이 공개토의를 거쳐 결정하지만 `기록유산`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비공개로 결정한다. 가해자 일본은 당연히 참여하지 못했다.시진핑 주석이나 리커창 총리는 다 바둑 애호가들이고, 급수가 상당하다. 한국은 바둑을 `두뇌스포츠`라 하는데, 중국은 `정신수양의 한 방법`이고, `처세의 교훈`이라 여긴다. 세상의 이치가 바둑판 위에 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중 양국 정상이 만날때도 석불(石佛) 이창호 9단과 중국 국수 칭하오 9단을 불러 자랑으로 삼는다. 심지어 자개 박은 나전칠기 `바둑알 담는 통`을 국빈선물로 주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과 `핑퐁외교`로 죽의 장막을 열었고, 한국과는 바둑외교로 `새동무`의 정을 두터이 한다.한·중·일 동양 3국은 다 바둑문화를 가졌다. 북한도 다르지 않다. 남북이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그것은 단연 바둑이다. 한중일에 북을 포함시켜 4국 바둑경기를 개최하는 것도 추진해볼 일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1-06

양귀비꽃(poppy)

11월 한 달 간 영국 전역은 양귀비꽃으로 덮인다. 온 국민이 가슴에 양귀비꽃을 달고, 운동선수들은 꽃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뛴다. `1918년 11월 11일`은 4년 4개월 간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다.독일이 영국에 항복했고, 그 날 오전 11시에 영국 전역은 축포를 쏘며 승전기념식을 연다. 영국의 국화(國花)는 장미지만 양귀비꽃은 영국인의 자부심이다. 양귀비열매는 아편 원료인데, 19세기 영국이 아편전쟁에서 두 번씩이나 중국 대륙을 이겼다. 그리고 제1차세계대전과 양귀비꽃은 특별한 일화를 남겼다.1915년 봄 플란더스 들판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양측 진영은 참호속에 몸을 숨기며 대치했다. 잠시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갔을때, 참호 밖으로 목을 내밀고 들판을 바라보던 헬머 중위는 갓 피어난 양귀비꽃을 보고 그만 마음을 뺏겼다. 무심코 몸을 내밀어 꽃을 만져보는데, 독일 저격수가 그를 쏘았다. 그의 시신은 양귀비꽃이 만발한 들판에 묻혔고, 존 맥크래 중령은 “플란더스 들판에 양귀비꽃이 피었네/줄줄이 서 있는 십자가 사이로”로 시작돼 “우리는 영영 잠들지 못하리/플란더스 들판에 양귀비꽃이 자란다 해도”로 끝나는 시를 바쳤다. 이 시는 언론에 발표돼 국민을 감동시켰고, 한 교사는 종이꽃을 만들어 팔아 전쟁고아를 구호했는데, 이 운동은 불길같이 번져갔다. 영국인들은 다투어 꽃값을 기부했고, 여왕도 꽃을 사서 가슴에 달았다. 1914년에 시작된 제1차세계대전은 이렇게 감동적 모습으로 마무리됐다.영국 총리실이 공식 페이스북에 `양귀비꽃을 단 총리의 사진`을 올렸는데, 그 꽃이 진짜가 아니라 `합성`한 포토샵이란 것이 들통났다. 캐머런 총리가 시진핑 중국 주석을 모셔 극진하게 대접을 하면서 투자유치를 한 일을 두고 “아편전쟁의 자존심을 돈과 바꿨다” 비난을 받는 와중이라, 네티즌들은 “총리가 아편꽃 살 돈이 없어서” “꽃도 그저 먹으려 한다”고 조롱했다. 총리실은 곧 진짜꽃을 단 사진으로 바꿨지만, 이래저래 스타일만 구겼다. 정치·외교는 참 어렵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1-05

종가(宗家)문화

우리나라에는 종가제도가 있다. 국가에 국왕이 있는 것과 같이 씨족에는 종손이 있다. 왕이 입법·행정·사법 3권을 가지는 것 처럼 종손도 한 가문의 문제를 처결할 3권을 가진다. 종손은 “이 가문을 어떻게 잘 이끌어갈 것인가”를 궁리하고 갈등이 생겼을때 판결하고 중재한다. 종부(宗婦)가 하는 일은 주로 `봉제사 접빈객`이었다. 조상 제사와 손님을 맞는 일은 `음식`과 밀접하게 관련되므로 종부는 늘 음식 잘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고 가문의 여성문제를 관리·통제했다.최근 하회마을 충효당에서 `종손 종부 취임 고유제`가 있었다. 이를 길사(吉祀)라 하는데 조상 사망일에 엄숙히 지내는 기제사와 달리 길재는 좋은 일이 있을 때 이를 조상에 고하는 축제행사다. 절차는 다 같지만 길재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지낸다는 점, 복장을 `종손·종부복`으로 화려하게 차려 입는다는 점이 다르다. 류영하 공의 삼년상이 끝나면서 장남 류창해씨 부부가 종손·종부의 자리에 올랐음을 서애 선생 영전에 아뢰는 길재였다.가문마다 독특한 음식문화가 있다. 종부의 주된 일이 음식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달된 문화다. 여기서 나온 요리책으로 안동장씨의 `음식디미방`과 광산김씨 설월당 종가의 `수운잡방`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경북도는 이 `종가음식`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다. 전통요리법에 호텔 한식당 요리사의 첨단기술을 접목시키면 `창조경제`의 한 종목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종가 음식에는 4덕이 있다. 미(味)·미(美)·정(情)·례(禮)가 그것이다. 현대 음식은 맛과 모양 위주로 만들지만 종가음식에는 `인정`과 `예절`까지 담긴다. 그것은 `예술품 창작`과 같은 혼을 넣는 일이다.최근 안동 종가음식체험관 예미정에서 4개국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7첩반상과 9첩반상, 안동건진국수, 신선로, 비빔밥, 간고등어찜, 숙채콩가루찜 등을 선보였다. 항균기능이 있는 놋그릇을 쓴 것도 특별했다. 4덕을 갖춘 우리 경북의 종가음식이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세계로 뻗어나갈 가능성`은 충분하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1-04

남사군도

영토분쟁은 대체로 두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지만 6개 나라들이 `분쟁당사국`이 되고, 다른 여러나라들이 `이해관계국`인 경우도 있다. 남사군도(南沙群島) 이야기다. 암초지대인 이 곳은 그동안`영토` 대우도 못 받았지만 근래 이 근처에서 유증(油證)이 발견되자 주변에 있는 중국·대만·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이 서로 “우리땅이다” 주장하고 나서고, 중국은 이 암초지역을 메꾸어서 인공섬을 만들고는 “확실한 우리영토”라 주장하는데, 미국은 “국제법상 인공섬은 영토가 될 수 없다”며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이 해역이 중요한 것은 온 세계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무역항로이기 때문이다. 유럽과 동남아 사이를 오가는 무역선들이 대부분 이 해로(海路)를 이용한다. 우리나라는 무역선의 30%와 에너지 90%를 이 항로를 통해 수송한다.호주나 일본 등 수많은 나라 배들도 이 해로를 지나 다닌다. 역대로 이 바닷길의 주도권을 쥔 나라는 미국이었는데, 중국이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屈) 최근 인공섬을 건설하고 등대를 세우면서 “우리가 주인이다(起)” 하지만 미국이 “오냐. 그래라”할 리 만무하다.해상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 하는 문제는 대체로 국력(國力)에 의해 결정된다. 통일신라 후기 남해의 해상권을 쥔 나라는 신라였다. 장보고 장군이 강력한 해군력으로 해적을 소탕하고 뱃길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관청족보에도 없는 `청해진 대사`가 돼 `일본~신라~당나라` 사이의 교역로의 주인이 됐지만 `임금을 셋이나 올렸다 내렸다`하는 힘과시를 너무 한 죄로 암살을 당하면서 처절하게 몰락했다. 이후 `해양강국의 꿈`도 사라져버렸으며 신라의 멸망을 재촉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남중국해 해상권을 두고 지금 중국과 미국이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 항로를 이용하는 많은 나라들은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미국편이냐, 중국편이냐. 선택이 곤란할 때 최선의 길은 “유엔이 주도권을 쥐고 교통정리를 하라”고 공을 넘기는 것이다.유엔이 정한 법과 원칙에 따르면 평화는 유지될 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1-03

역사 적화통일?

북한의 모든 교과서는 국정(國定)이다. 검인증이란 말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곳이다. 19세기적 `세습김씨조선`인 북한에서 `민간업체가 역사책을 만들고 정부가 승인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자기들은 국정을 하면서 남한쪽에 대고는 국정한다고 시비다. 좌파를 잘못 편들다가 자가당착·모순에 빠졌다. 북한교육위원회 대변인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해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동족의 대결의식을 주입시키려고 발광하는 보수패당의 망동”이라 했다. 국정으로 가면 `역사 적화통일`의 목표에서 멀어지니 그야말로 `발광`을 한다. 그들은 또 “파쇼독재와 친미 친일 사대매국으로 얼룩진 치욕스러운 과거를 미화하고 부활 시키려는 전대미문의 역사쿠데타”라고 했다. 좌파 역사교과서를 제작한 집필진들의 주장과 흡사하다. 그러니 `북의 발언`은 `공개지령문`이란 소리를 듣는다.남북한간의 역사관은 전혀 다르다. 한국은 왕조사 중심으로 기술하는데, 북한은 민중사관에 입각한다. 홍경래난, 만적의 난, 임꺽정의 난 같은 반란사가 중심이고, 고산자 김정호 같은 벼슬하지 않은 민중 지리학자의 일대기를 중요하게 다룬다. 북한 역사책을 보면 `이야기책`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집필자의 감정`이 그대로 들어 있다. 명성황후 민비에 대해서는 `여자가 감히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민비년`이라 쓴다. 민중전이 왜병에 의해 시해당한 `을미사변`과 그에 촉발된 의병활동에 대한 기술도 없다. 의병활동을 주도한 주체가 양반계급이기 때문이다.새누리당은 “종북성향과 좌파성향을 지닌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교과서는 왜곡되고 편향될 수밖에 없다”면서 “좌편향 교과서가 친북 사상을 퍼뜨리는 숙주”라 한다. 문재인 새정련 대표는 이 공격에 대해 이렇게 방어했다. “북한은 우리 역사교과서에 개입하지 말라”면서 “북한이야 말로 역사 국정교과서 체제를 민주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훈수했다. 이것은 불가능한 요구란 것을 문 대표 자신이 더 잘 알 것인데, `공개지령문`이란 말을 덮으려는 의도인 듯./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1-02

좌파 몰락시대

중남미에 있는 12개국 중 10개가 좌파정권이라 여기서 해방신학이 탄생했고, 도시산업선교회를 수출하기도 했으며 남미 좌파경제학을 신봉하는 교수들이 아직 있다. 그런데 이 국가들이 하나 둘 오른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최근 3개국이 대선을 치렀는데, 좌파의 몰락이 현저하다. 1차투표에서 1, 2위를 뽑고 2차 결선에서 당선자를 가리는데 과테말라는 결선에서 우파가 당선됐고, 1차투표를 치른 아르헨티나와 아이티에서도 우파가 약진했다.브라질 현 대통령도 위기를 맞고 있다. 경기는 안 풀리는데 불법 선거자금 의혹으로 탄핵을 받을 처지에 몰렸다. 칠레 현 대통령도 과거 80% 지지율에서 20%로 폭락했다. 한 신문은 “경제위기에 봉착한 중남미에 권력형 부정부패까지 겹쳐 `도미노식 정권교체`가 시작됐다”고 썼다. `나눠먹기·퍼주기` 포퓰리즘이 중남미대륙을 빈곤으로 몰아간다는 반성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파이를 키우자”란 소리가 점점 높아진다.과테말라는 중미에 있는 작고 가난한 나라인데 문맹률이 60% 가깝고 빈부격차가 심하다. 국민 대부분이 커피농사로 근근히 살아가는데 상위 5%만 흥청망청이다. 이번 결선투표에서 정치경험이 전무한 코미디언 출신의 40대가 당선됐다. 대형비리를 저지른 집권세력이 스스로 주저앉은 것이다. 모랄레스 당선자의 선거구호는 “나는 도둑이 아니다. 국민이 최소한 울지는 않게 하겠다”였다. 빈곤과 부패에 신물이 난 국민들이 `말`을 갈아탄 것이다. 그는 지난 20년간 TV에서 정치풍자 코미디를 했고, 4년전 작은 도시의 시장선거에 나섰다가 나가떨어진 것이 정치경험의 전부인 `초짜`다.핏대 올리며 고래고함이나 치는 정치9단`싸움닭`들은 이제 `구식`이다. 안철수 의원이 양보나 하고 이용만 당했지만 한때 그의 `신선함`이 박수를 받았다. 이번 대통령의 시정연설때 `구호문자`를 노트북에 내걸지 않은 유인태·황주홍 의원, 연설이 끝난 후 기립해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를 한 조경태 의원 등은 시대의 변화를 잘 읽는 정치인들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30

좌편향 교사들

크메르 루즈정권의 폴 포트는 프랑스에서 원시공산주의를 배워 교단에 선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는 담임을 맡은 한 반을, 다음에는 한 학년을, 그리고 한 학교를 공산화시켰고, 나중에는 한 나라를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며 캄보디아 국민 3분의 1을 죽였다. 그래서 `미친 공산주의자`로 명명됐으며, 국제형사재판에 제소되기는 했지만, 재판도 엉성해서 `사형` 당하지 않고 병사(病死)했다. `블루유니온`이 운영하는 `선동·편향수업 신고센터`에 접수된 사례는 지난 4년간 총 468건이다. 이승만 건국대통령과 박정희 국가중흥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수업시간에 싸잡아 비방하면서, 북한 세습 독재정치를 찬양한 교사들이 많았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는 “박근혜 대통령은 동생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니 본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했다. 최근 박근령씨가 일본 한 방송사와 `친일적 인터뷰`를 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박정희는 농업을 붕괴시키고 쿠데타와 독재로 빈부격차를 심각하게 벌였다”고 했고, 한 역사 교사는 “김일성은 민족의 영웅”이라 찬양했다.신고된 사례들을 분류해보면 “이 나라에 충성할 필요 없다” “우리도 사회주의로 가야한다” “북의 민족주의를 본받아야 한다” “목함지뢰는 북한이 설치한 것이 아니다” “국정교과서는 우리를 속이는 농간이다” “일본에 감사하는 교과서가 나올 것이다” “멍청한 여자(박 대통령)때문에 괴롭다” “박정희가 박근혜를 낳기 전에 죽었어야 했다” 등등인데, 이 나라에 아직 RO(혁명조직) `이석기 키즈`들이 설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정부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발목잡고 딴지 거는 자들이 바로 이들이다.역사학계도 양분돼 있다.“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역사학자들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국정화밖에 길이 없다”고 하는 학자가 있고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고 명예를 회복시키려는 게 분명하다”며 국정교서를 비난하는 쪽도 있지만 “역사교육 정상화의 열쇠는 교과서에 있지 않고 교실에 있다”는 말이 가장 현실적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29

효율성과 비효율성

홍콩은 230개의 섬으로 이뤄진 도시다. 1차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1841년 홍콩을 영국에 넘겨주었고, 2차아편전쟁에서 이긴 영국은 인근 구룡섬 등 몇개의 섬을 더 차지했다. 이때부터 홍콩은 영국의 주요 무역항이 됐고, 극동지역의 경제적 군사적 거점이 됐다. 1941년 태평양전쟁때 일본이 접수했으나 패전후 다시 영국 소유가 됐다. 중국이 청나라를 끝으로 황제체제에서 공화체제로 전환되다가 모택동의 혁명에 의해 사회주의체제를 굳혔던 1984년 중국과 영국은“1997년 홍콩을 중국에 이전한다”는 조약에 서명하고 그 해 7월 1일 자정을 기해 홍콩은 중국땅이 됐다.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살던 홍콩사람들은“통제 심한 사회주의 밑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하자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채택한다. 나라는 한 나라지만, 홍콩은 기존의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홍콩은 홍콩사람이 다스린다”란 원칙을 정했다. 그래서 홍콩은 지금도 `중국땅에 영국제도`를 가진 도시고 중국 젊은이들이 꼭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이상향이 됐다.중국과 영국은 이같은`묘한 역사`를 가진 묘한 관계다. 이번에 시진핑 주석이 54조 규모의 봇따리를 들고 영국을 찾았는데, 이것은 과거의 치욕을 돈으로 갚는 일이 되었고 남중국해 해상 주도권을 두고 미국과 각축을 벌이는 와중에 우군(友軍)을 얻어보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시 주석은 의사당에서 연설을 했는데, 의례적인 박수도 없었고, 연설 끝난 후의 관행적인 기립박수마저 없었다. 과거 승전국의 자존심을 버리고,`돈에 팔린 아첨외교`나 한다는 비아냥을 들은 후라`경제적으로는 아쉽지만, 정치적 자존심은 있다`는 시위였다.그러나 시 주석의 연설 마지막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영원히 강한 나라도, 영원히 약한 나라도 없다. 법을 강하게 만들면 강국, 약하게 만들면 약체국이 된다” 중국의 강한 통제와 효율성, 영국의 느슨한 법과 비효율성을 비교하며`늙고 병든 영국`을 조롱하는 말이 아닌가./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28

史家의 편향성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77)의 `고조선 연구`를 보면 광대한 만주땅이 한민족의 영역이었다. 윤 교수는 지난 40년간 조선 고대사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연구원 시절 중국 사서와 북한쪽 사서를 접하고 아연실색했다. 2천300여년의 `고조선` 역사를 처음 발견하고, 기절초풍한 것이다. 윤교수는 저서 서문에 “고조선이야 말로 한민족 사회와 문화의 원형을 지니고 있다”고 썼다. 그러나 우리는 그 `뿌리`를 잃어버린 역사를 배워온 불쌍한 민족이다.`규원사화`는 조선조 숙종시절 `북애노인` 이라는 재야 사학자가 평생을 바쳐 수집한 자료를 취합해 써낸 한국고대사서. 그는 서문에 “먼 훗날 동지를 만나 훼손되고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데 쓰인다면 넋이라도 한없이 기뻐하겠다”라고 썼고, 책의 마지막 장에 “역사를 바로잡아 자주성을 되살리지 않으면 조선은 인접국가에 의해 패망할 것”이라 예언했는데, 그 말이 적중했다.일제가 우리의 고대사서 20만권을 모아 불태울때 양주동 선생이 이 책을 입수해 `국보처럼` 감추어둔 덕분에 우리의 고대사를 복원할 기틀이 됐다.우리의 역사는 중국과 동일한 5천년이고, 일본의 역사는 고작 1500년에 불과하다. 3분의 1도 안 되는 역사를 가진 나라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를 속국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초등학생이 대학생을 가르치는 격`이니, 그 `역사 열등의식`때문에 조선고대사 말살에 광분했던 것이다. 여기에 이병도의 진단학파가 거들어 고조선의 역사를 `신화`로 만들었고, 우리 학생들은 아직도 `역사의 원형이 없는 역사` `자랑스러운 2300년이 사라진 역사`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지난 24일 한문화연구회(회장 제갈태일)가 `한국고대사 다시 써야 한다`란 주제로 제7회 포럼을 개최했다. 잃어버린 고조선을 되찾아 민족자긍심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친일 사가(史家)들은 고대사를 죽이고, 친북 사가들은 6·25 전범들을 찬양하니, 이래저래 우리 역사는 걸레가 돼간다. 최소한 편향성 없는 역사교과서라도 만들어야 하겠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27

노벨동산을 바라본다

중국인으로서 노벨과학상을 받은 사람은 모두 8명이다. 올해 수상자 투유유는 `순종`이지만 다른 7명은 `중국계 미국인`이다. 자유로운 연구환경을 찾아 이민을 택한 과학자들이다. 투유유는 저온추출법으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만들어냈다. 키니네 같은 약에는 이미 말라리아균이 내성(耐性)을 가졌으니, 개똥쑥 치료제가 요긴했다. 해마다 모기에 물려 죽는 사람이 50만명이고, 그중 90%는 아프리카인이고, 또 그 중 80%는 5세 이하의 아이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똥쑥은 이름이 좀 그렇지만 `인류에 끼친 공로가 지대한`풀이다. 일본인의 노벨상 수상자가 올해 21명을 넘었다. 일본은 20세기 초 명치유신을 통해 적극적으로 서양의 선진문물을 배워 국가체제를 바꾸고, 과학 연구에 상당한 국력을 기울였다. 그 성과가 오늘에 나타나는 것이다.그에 비해 우리는 일본에 합방돼 출발도 한참 늦었지만, 분단상황과 6·25 전쟁을 치르며 `먹는 문제` 해결에 급급했고, 남북 체제경쟁과 이념분쟁에 휘말려 노벨상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그러나 올해부터 정부가 노벨과학상을 겨냥한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매년 젊은 과학자 100명씩을 선발해 5년간 연구비를 지급하는 정책을 향후 10년간 지속한다. `30대 안팎의 과학자`를 지정한 것은 `지난 10년간 노벨과학상 수상 논문`을 분석해보니 그 절반이 `20대·30대에서 수행한 연구업적`이었다. 그래서 과학계에는 “40대는 이미 환갑”이라 한다. 새로운 것을 이뤄내려는 열정이 많이 감소한 나이이기 때문이다.울산과학기술대에는 `9개의 무명 다리`와 노벨동산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면 그 이름을 붙일 다리이고, 노벨상 수상자를 초청해 강연하면서 기념식수를 한 곳을 노벨동산이라 이름 붙였다. 포스텍에도 노벨동산이 있고, `미래의 한국 과학자`라 새겨진 `빈 좌대`가 있다. 수상자가 나오면 그의 흉상을 올려놓을 자리이다. `젊은 과학자에 연구비 지원 정책`을 보면서, 우리는 포스텍을 바라본다. 더 힘을 내주기 바라면서…./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26

정치의 어려움

모택동이 죽자 등소평은 “공산주의보다 경제가 더 중요하다. 흰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면서 개혁 개방의 길로 들어섰다. 이때 북한 김일성은 “난장이 똥자루 만한 것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공산주의를 망친다”며 등(鄧)의 생김새를 빗대 욕을 퍼부었다. 김정일은 평소 김정은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중국놈들 말 듣지 마라. 개혁 개방하고, 핵무기 포기해라, 꼬드긴다. 지도자 생활은 참 어렵다”황장엽씨와 함께 1997년 망명한 김덕홍씨가 최근 회고록을 펴냈다. 책에서 그는 “김일성은 늘 `우리는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다`며 연막을 쳤지만 사실상 1955년에 원자 및 핵물리학 연구소를 설립, 핵개발에 착수했다”면서 김정일은 1987년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핵탄두를 탑재할 인공위성 개발을 명령했다고 증언했다. “위성만 개발하면 무서울 것이 없다. 미국놈들도 꼼짝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죽기 살기로 해야할 일이다”라고 했다는 것.김일성이 “난장이 똥자루….”운운했던 `시장경제와 수정주의` 도입은 현재 북한의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다. `경제와 핵위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자면 `등소평 노선`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중국 단동(丹東)에 북·중 호시(互市)를 열었다. 북한 상인들이 국경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관세 없는 자유무역을 시작했다는 것은 `장마당의 번성`과 함께 북한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북한이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이란 것이 생활필수품이나 미술품·공예품이 고작이지만 “얼음은 일단 녹기 시작하면 금방 다 녹는다”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 개혁 개방이란 처음 결단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시장경제 도입으로 재미 본 선배들이다.이병호 국정원장은 국감에서 “10월 현재 한국에 귀순한 북한 외교관 등이 20명이고, 상당한 엘리트도 있다”고 했다. `지도자 생활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면 `핵위성의 짐`을 내려놓으면 될 것인데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아직 좀 더 시간이 가야할 모양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23

친구도, 적도 없는…

19세기 중엽 청나라와 영국은 교역을 시작했다. 청은 영국에 차와 목화를 팔고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팔아 무역균형을 유지했다. 중국이 마약중독에 빠져들자 청은 단속을 강화하고 영국 마약상을 추방하니 영국은 우수한 무기로 난징(南京)을 점령하고 `난징조약`을 체결, 무역항을 5곳으로 늘렸다. 이것이 1839년부터 1842년까지의 제1차 아편전쟁이다. 그후 중국의 개항이 만족스럽지 못하자 영국은 다시 프랑스와 함께 청을 공격했고 청진을 공략하면서 `아편무역 합법화와 기독교 공인`을 조건으로 `청진조약`을 체결했지만 후속조치가 미진하자 다시 전쟁을 일으켜 `베이징조약`을 맺었다.이것이 1856년에서 1860년까지 이어진 제2차 아편전쟁이다. 이 두 차례 전쟁에서 청이 패하면서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시작됐다.중국과 영국은 170년이나 적이었으나 국제정치에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2005년 후진타오 주석이 영국을 국빈방문했고 10년이 지난 올해 시진핑 주석이 다시 영국에 갔다.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친필초청장에 의해 이뤄진 우호관계이다. 2012년 캐머런 총리가 달라이라마를 초청했다가 잠시 영·중관계가 냉각됐으나 중국이 주도하는 AIIB에 영국이 제일 먼저 가입해서 갚았다.중국이 영국에 풀어놓은 선물보따리는 120조원이나 된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 고속철도 건설사업 등 150가지의 경제협력 합의서를 체결하게 된다. 중국도 아무런 정치적 목적 없이 돈봇따리를 풀지 않는다. 영국을 이용해 미국을 견재하는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의도가 숨어 있다. 영국은 시 주석에 `최고의 예우`를 했다.보통 정상 방문에는 21발의 예포를 쏘지만, 시 주석에게는 무려 103발이나 쐈다. `여왕전용 마차`를 타고 여왕 주최 만찬을 받았으며 캐머런 총리는 자신의 별장에 모셨다.175년 전 아편전쟁의 `빚`을 갚고 G2 중국의 투자를 얻어내려는 영국에 대해 `아첨외교`라 비하하는 소리도 있지만 국제정치란 본래 그런 것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22

역사전쟁

단국대 사학과 김원모(81) 명예교수가 `자유꽃이 피리라`를 펴냈다. 춘원 이광수 연구서이다. 춘원은 `민족개조론`에서 “한민족은 민족성을 바꿔서라도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1938년 `사상전향서`를 일본법원에 제출하면서 친일파가 됐다. 그러나 김 명예교수는 “춘원을 친일파로 모는 것은 `모략사관`이다”라며 그 근거를 이 책에 담았다.1944년 `청년정신대 사건`이 발각됐다. 이 비밀조직은 청년 혁명 결사로 “결정적인 순간에 거사를 할 계획”이었는데, 그 지휘자가 춘원이었다. 그가 사상전향서를 낸 것은 `위장`이었고, 사실상 `정신대 획책안`을 썼으며, 조직내에서도 일본식 이름 `가야마 미쓰로`를 사용했다. 일제의 감시와 의심을 피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는 말이다.한일합방후 일제가 처음 한 일이 `조선사 왜곡`인데, 그 편찬위원회에 최남선이 들어갔다. 만해 한용운 등은 종로 한복판에서 `육당 장례식`을 거행했다. “조선 민족을 죽이는 역사를 만드는 일에 최남선이 들어갔으니,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며 “애고 애고” 곡을 하며 위패 실은 상여(喪輿)를 메고 행진했다. 그러나 육당은 후에 이렇게 말했다. “조선사 편찬위원회가 무슨 짓을 할지 내가 왜 모르겠는가. 나라도 나가서 비록 다 막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쾌히 욕을 먹을 것이네. 호랑이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호랑이를 잡겠는가” `위장 친일파`가 이렇게 많았다.지금 `역사전쟁`이 치열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금 한국 국사학자 90%가 좌파로 전환돼 부정적 사관으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이다”고 했고, 새정련 문재인 대표는 “두 분(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선대가 친일, 독재에 책임 있는 분들이다 보니 그 후예들이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미화하려는 것이 이번 교과서 사태의 배경이고 발단”이라 했다.`청년실업 7포시대`에 역사전쟁이나 하며 세월을 보낸다. 정치인들은 당장 화급한 과제를 미뤄두고 `싸움닭 기질`만 과시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21

황성 옛터

경주에는 신라 천년 왕궁터 월성(반월성)이 있고, 개성에는 고려 500년 왕궁터 만월대가 있다. 왕이 항상 거주하는 정궁(正宮)이 있고, 유사시에 왕이 잠시 이주하는 행궁(行宮)이 있는데, 월성과 만월대는 `정궁`이고, 건축기법도 같다. 흙과 돌로 높은 대(臺)를 쌓고 그 위에 덩그러니 전각을 지었다. 다만 월성은 남천 강가에 지었으나, 만월대는 산기슭에 지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고, 두 곳 다 `천성대`가 잘 보존돼 있다는 점도 같다. 왕의 중요 업무 중 하나가 “천문을 잘 관측해서 농사를 지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경주 월성에 관한 시조 중에는 그리 유명한 시가 없는데, 만월대에 관한 시조는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른다. 태종 이방원의 스승 원천석의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석양을 지나는 나그네 눈물겨워하노라” 포은의 스승 이색의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어저브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두 `고려충신`의 시조는 많은 이들이 외울 정도로 유명하고, 영천 출신의 시인 왕평이 글을 짓고 이애리수가 노래한 “황성 옛터에 밤이 드니 월색만 고요해/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주노라….”는 나라 잃은 지식인의 심회를 폐허에 빗대었다.만월대 발굴작업이 지난 8년간 이어졌는데, 남과 북의 고고학자들이 함께 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통일징검다리`구실을 한 것이다. 개성출신의 고유섭(1905~44) 선생은 `개성박물관장`도 지냈고 `경주박물관장`도 지낸 고고학자인데 그는 개성시절 만월대를 자세히 실측한 자료를 남겨 이번 발굴에 큰 도움이 됐다. 공교롭게도, 만월대 발굴작업이 진행중인 가운데 반월성 발굴작업도 진행되고 있으니 두 궁성은 아무래도 `깊은 인연`의 끈이 맺어져 있음이 분명하다.만월대에서 발굴된 유물 전시회와 학술토론회가 서울과 개성에서 열리고 있다. 비정치적 문화행사와 분단 이전의 역사는 남북을 이어주는 끈끈이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20

교사의 사상

`블루유니온`은 선동·좌편향 수업을 신고 받는 보수단체다. 최근 경악할 사례가 들어왔다. 한홍구(56) 성공회대 교수가 동영상을 만들었는데 `세월호를 통해 본 한국 현대사`란 제목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로당 활동을 하다 체포됐을 때 당시 수사본부장이던 김창룡이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정작 죽여도 될 사람 하나를 살려줬다. 박정희가 그때 죽어버렸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죠. 우리 언니(박근혜)는 태어나기 전이라 태어나 보지도 못하는 자였는데 살려줬다”고 저주하고, “반민특위가 깨진 날, 이승만이 돌아와 폼 잡은 날, 그때부터 세월호 죽음의 항로가 시작된게 아닌가”라고 했다. 이 동영상을 서울 강남구의 한 고교 영어교사가 교실에서 틀어주고 학생들에게 감상문을 써내라고 했다. 그것을 본 학생들의 머리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가 박혔을까. 제 나라 대통령들에 대한 저주를 학생들 뇌리에 심어주는 교사가 교단에 서 있다. 한홍구 교수는 미국 위싱톤대에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 독립 투쟁사`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도서출판 일조각의 창업자인 한만년씨의 아들이고,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고려대 총장의 외손자다. 명문가·명문대 출신의 엘리트지만, 생각 한 번 잘못하면 이런 인간이 돼버린다.`한국에서의 학살`이란 제목의 그림이 있다. 6·25를 소재로 한 피카소의 작품이다. 프랑스 공산당이 반미(反美) 선동을 위해 당시 공산당원이던 피카소에게 부탁한 것이고, 피난민들을 줄세워 놓고 미군들이 총을 발사하는 장면이다. 좌파들이 만든 교과서에 이 그림이 들어갔고, 시험에 “이것이 무슨 사건인가”하고 묻는 문제를 출제했다.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우매한 사람은 실제로 해봐야 알고, 지혜로운 사람은 역사를 보고 배운다”고 했다. 좌파들이 역사교과서 국정을 사생결단 저지하는 것은 `유력한 투쟁무기`를 뺏기지 않으려는 악다구니다. 교과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교사의 사상`이다. 마음대로 지껄이고 멋대로 시험문제를 내는 교사가 교단에 서 있는 한 우리 학생들은 안전하지 못하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19

돈과 정의와 진실

UN의 모든 기구들은 회원국들의 분담금으로 운영된다. 유네스코 운영비도 미국이 3천여억 달러로 전체의 4분의 1을 내고, 일본이 그 절반 정도, 중국은 여섯 번째이고, 한국은 13위로 2천790여 억 달러를 낸다. 우리나라는 1950년 6월 14일에 처음 유네스코 회원국이 됐지만, 열흘 뒤 6·25가 터졌다. 그러나 우리는 혜택을 입었다. 유네스코 본부건물 1층 로비에는 `초등학교 4학년 자연교과서` 한 권이 전시돼 있는데, “유네스코가 인쇄기계와 용지를 지원해주어 3천권을 찍을 수 있었다”란 설명이 붙어 있다. 미국은 4년째 분담금을 내지 않고 있어서 총회에서의 투표권도 잃고, 아무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이빨 빠진 호랑이`란 소리를 듣는다. 2011년 10월 팔레스타인이 유네스코 회원국이 되면서 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내법에 “미국에 적대하는 국가가 가입된 국제기구에 대한 지원은 금지된다”란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계와 언론계를 쥐락펴락하는 세력이 유대인이라 그런 법률이 만들어진 것이고, 그 때문에 유네스코는 지금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져 구조조정을 하는 중이다.중국이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를 유네스코기록유산에 등재하자, 치부가 노출된 일본이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협박한다. 비판은 국내 언론에서 먼저 터져나왔다. 아사히신문은 “책임 있는 정치가의 언동이 아니다. 졸렬하고, 난폭한 처사다” 마이니치는 “도를 넘었다. 반론방식에도 절도가 필요하다”고 했고, 한 교수도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지위가 손상됐다. 치졸하고 품위를 잃었다”란 칼럼을 신문에 기고했다.일본의 치졸한 태도에 중국은 오히려 쾌재를 올린다. 묵직한 돈봇따리를 끼고 G2국이 된 중국은 UN에 영향력을 더 많이 행사할 기회를 잡게 됐다. 그리고 한국 등 신흥 `BRICKs` 국가들이 분담금을 올려 낼 기세다. `반성과 사죄를 모르는 일본인의 잔인성`에 많은 나라들이 격분하면서, “돈으로 정의와 진실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16

동의학(東醫學)의 미래

중국 전설의 제왕 신농(神農)은 한의학의 조상이다. 그후 의성(醫聖) `편작`과 `화타`가 나오고 `신농본초경`과 `황제내경`같은 고전들이 저술된다. 큰 전쟁이 나면 많은 사체들이 생기고 그때 마다 의학이 발전해서 새로운 의서(醫書)가 발간되는데 춘추전국시대 이후 중국의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조선조에는 `임진왜란과 한 천재의 만남`이 천하명저를 탄생시켰다. 광해군 시절 허준의 `동의보감`이다. `전쟁과 사체`가 허준의 해부학을 이뤘다.중국 `중의학연구원` 투유유 교수가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특효약을 찾아낸 85세의 할머니다.개똥쑥은 강력한 향내가 나는 야생초인데 “꺾어다가 집에 두면 모기가 덤비지 않는다”는 옛의서에서 힌트를 얻어 꾸준히 연구한 결과이다. 중국인들은 굴기(屈起)란 말을 잘 쓰는데 “개구리는 멀리 가기 위해 몸을 움추렸다가 뛴다”란 뜻이다. 그동안 스웨덴 한림원은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반체제 인사`들을 `받지도 못할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는데 이번에 처음 한의학자를 골랐다. 중국인들은 “굴기를 상징하는 경사”라며 반긴다.`동의보감`의 유산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한의학 노벨상`은 먼 나라 이야기다. 서양의학은 동양의학 폄훼에 바쁘다. 밥그릇싸움에 한의는 늘 밀린다. `천연물의학`이라는 한의학의 한 분야가 있는데 최근 감사원과 한 국회의원이`과잉투자`라며 딴지를 걸었다.`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기`를 잘 하는 공무원들이 이 분야 예산을 깎을 것이니 기초의학 연구는 동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환자 치료와 돈 벌이`만 생각하고 `연구`에는 관심이 없으니 `굴기`란 싹수조차 없고 그나마 생긴 것마저 서리를 맞는다.`기초의학 연구자 양성기금`을 만들어야 한다. `청년희망펀드`도 조성하는데 그만한 투자를 못할 이유가 없다. 중국은 전통의학의 현대화를 위해 수천억원씩을 투자한다. `한의학 깎아내리기`는 결국 `꼬시래기 제 살 뜯어먹기`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15

고종황제의 꿈

고종은 서양 선진기술을 도입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1885년 9월 `한성전보총국`을 개설하고 서울과 인천을 잇는 전신선(電信線)을 가설하고 1896년 왕실에 자석식 전화를 놓았다. 왕은 이를 `전화`라 부르지 않고 굳이 영어이름 `텔레폰`을 따서 덕률풍(德律風)이라 했다. 3밀사를 헤이그에 밀파한 일이 발각나 고종이 강제퇴위된 후 즉위한 순종은 매일 덕률풍으로 부왕에게 문안인사를 올렸다. 1919년 고종이 독살되자 순종은 덕수궁 빈소와 홍릉 사이에 전화선을 가설, 상식(上食)때 마다 덕률풍에 대고 “애고 애고”곡(哭)을 했고, 능참봉은 수화기를 들고 서 있었다.1960년대에는 `백색전화`와 `청색전화`가 있었는데, 백색전화 5대면 30평짜리 강남 아파트를 살 수 있었고, 복덕방들은 `백색전화 취급`이라 써붙였다. 당시 공중전화가 유행이었는데, 100원 동전을 넣고 통화하다가 몇십원 남기고 끊으면 그 남은 돈을 전화통이 먹어버렸다. 이것을 낙전(錢)이라 했는데, 우리나라 통신산업발전의 밑천이 된 것이 바로 이 `낙전`이었다. 오늘날 스마트폰 시대에 생각하면 실로 금석지감(今昔之感)이 든다.사진기술을 처음 도입해서 첫 어진(御眞)사진을 찍은 이도 고종이었다. 1884년 미국 사진사 노엘이 찍은 것으로 그 원본은 지금 보스턴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한국인 사진사가 찍은 최초의 고종 사진은 1905년 `왕실 사진사 김규진이 덕수궁에서 찍은 고종황제 어진`이다. 본래는 흑백사진이지만 황제 곤룡포의 색깔 황색을 옷에 입히고 익선관을 보라색으로 칠했다. 이 `천연색 사진`을 고종은 미국 사절단에 선물로 주었고, 사절단은 이를 박물관에 기증했는데, 최근 `국외소재문화재단`이 뉴어크박물관 소장품을 조사하다가 발견했다.선진문물을 열심히 받아들이고 힘을 길러 망국의 한을 씻겠다는 의지를 가진고종의 모습은 `어리석은 왕`이란 평가 뒤에 가려져 있었다. 친일파와 국론분열과 일본의 교활한 침략근성을 고종 혼자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14

일본어 찌꺼기

일제가 한국을 식민통치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역사 뺏기`였고, 그 다음이 `언어뺏기`였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고대사 서적을 모조리 거두어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불을 질렀고, `조선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 우리 역사를 제 멋대로 썼다. 물론 조선인의 자존심·자부심·자긍심을 죽이는 방향이었다. 그 다음으로 한 일이 `조선언어 말살`인데, 일본어를 국어(國語)로 가르쳤다. 1942년 한 일본인 교사가 초등학생이 쓴 일기를 보게 됐다. “국어(일본어) 한 마디를 말했다가 정태진 선생에게 야단맞았다”란 귀절이었다. 조선어 말살정책이 성공했다고 믿고 있을 무렵에 일어난 일이라 일제는 큰 충격에 빠졌다. 곧 수사가 시작됐고, 한글학자 수십명이 잡혀갔다. 그때 한글학회 회원들은 조선어사전 원고를 집필 중이었는데, “그 원고의 행방을 대라”는 심문에 한글학자들은 굳게 입을 닫았고, 무참한 고문과 굶주림으로 여러 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원고는 후에 용산역 화물창고에서 발견됐고, 해방후 `조선어큰사전`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일제의 `언어교육과 조선어 말살정책`이 얼마나 집요했던지, 지금도 곳곳에 일본어찌꺼기들이 남아 있고, 우리는 무심히 사용한다. 법률에서의 일본식 용어는 고질적 수준이고, 병영에서도 구보(驅步), 수입(手入), 잔반(殘飯), 나라시, 시마이 등이 통용되고 있다. 수산용어에는 유난히 일본어가 많이 남아 있다. 사시미, 스시, 마구로, 아나고, 세꼬시, 오도리, 사요리, 대하, 다시, 쓰키다시, 하모 등 우리말보다 일본어가 더 많다. 일제가 수산자원 수탈에 광분했던 영향이다.스포츠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프로야구는 엄청 심하다. 그 날 경기의 성적표인 `기록지`는 일본식 한문 일색으로 돼 있다. 야구가 일본을 통해 들어온 탓인데, 용어는 아직 안방 차지를 하고 있다. 프로축구나 프로농구 등 다른 분야 기록지와 선수 이름 등을 대부분 한글로 적는데, 유독 프로야구만 왜색(倭色)이다. 일본어찌꺼기부터 벗겨내는 일이 극일의 길이다./서동훈(칼럼니스트)

201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