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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일럼의 마녀사냥과 한국사회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보스턴을 포함한 메사츄세츠 주 그리고 메인 주를 합쳐서 `뉴잉글랜드`라고 부른다. 유럽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이 처음 도착한 곳이 바로 이 지역이라서 이런 이름으로 부른다. 그런 만큼 이 지역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지역들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세일럼이다. 이곳은 `마녀사냥`으로 유명한 곳으로 지금은 이것을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주민들이 먹고 살고 있다. `마녀사냥`은 세일럼에서 1692년 3월 1일에 시작되었으며, 200 여명에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마녀로 고발되었다. 고발된 사람들은 주로 여성들이었는데, 처음에는 한두 명이 마녀로 고발당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웃들을 서로 고발하기 시작했다. 최후의 단계에서는 몇 명의 노인네들 외의 대부분의 성인 여성들이 마녀로 고발당했다. 이중 재판을 통해서 총25명이 죽임을 당했는데, 19명이 처형되고, 1명이 고문 중 압사, 5명이 옥사했다.`마녀사냥`은 다수가 항상 이긴다는 집단 심리에 근거해서 힘없는 개인들을 `마녀-죄인`로 몰아서 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일단 마녀로 낙인찍히면 그 입증 의무가 본인에게 있기 때문에 고발당한 사람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보통 마녀사냥은 중세에 벌어진 일로 간주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도`마녀사냥`은 계속되고 있다. 다만 그 형태가 혐의자를 불태워 죽인다든지 하지 않을 뿐이다.현대 사회의 마녀사냥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매카시즘`이다. 매카시즘(McCarthyism)은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을 말한다. 미국 상원 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미국 공화당 당원집회에서 “미국 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암약하고 있으며, 자신은 그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사건을 계기로 일어났다. 당시는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공산군과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와 공포가 쉽게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매카시 리스트에 있었던 297명 외에도 많은 지식인들과 연예인들이 공산주의자로 기소되었지만, 많은 경우 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보아도 이 같은 `마녀사냥`이 정기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 때 정치적인 반대자를 비판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보수파 정치인들이 공산주의자를 혐오하는 대중적인 심리를 이용하여 이런 유형의 마녀사냥을 종종 저질렀다. 어린 시절 공중파 방송을 통해서 고 김대중 대통령이 반대파로부터 `용공` 혹은 `좌익`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이를 보는 대중들은 실제 당사자가 빨갱인지 아닌지이 여부보다는 그냥 그 사람이 싫으니까 그러한 비난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버린다.`마녀사냥`은 정치의 영역뿐만 아니라 일상의 영역에서도 발견된다. 가수 타블로의`스탠퍼드 대 학력 논란`, 배우 이태임을 대상으로 한 네티즌들의 공격, `세 모자 사건`에 감정이입한 네티즌들이 세 모자의 아버지이자 남편을 비난하며 경찰의 수사 결과를 불신한 사건 등도 마녀사냥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비난의 대상이 된 사람이 정말 비난받을 만한 일을 하였는지 따져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비난에 편승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끝장내려 든다.이처럼 쉽게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감정적이 되어 한 개인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우리 사회의 스트레스 지수가 상당히 높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마녀사냥`을 심리학에서는 집단적인 히스테리 증상의 하나로 보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불안, 불만족과 같은 부정적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정치의 영역에서나 일상의 영역에서나 이런 마녀사냥은 이제 그만 일어났으면 한다.

2015-08-18

한국의 소비자는 진짜 왕인가?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외국에 있다 보면 한국과 비교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미국인들의 `참을성`이다. 이들은 웬만큼 불편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대체로 묵묵히 참는 편이다. 이런 태도는 한국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면 금방 핏대 올리며 항의하거나 전화나 게시판 등을 통해 불만들을 표현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 예전에 필자는 `디트로이트`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데, 운행이 취소됐다면서 6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하릴 없이 6시간을 기다리면서 만약 한국이었다면 승객들이 삿대질하고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지인의 경우, 공항에서 수화물 창구에서 여행 가방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처음에 한 두 개만 나오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한 30분 동안 아무 말 없이 기다리다, 한 승객이 공항 직원 쪽을 향해 `기침`을 했다. 그 때야 직원이 화물이 나오는 곳으로 가서 살펴보았는데, 큰 짐이 입구에 걸려서 못나오는 바람에 다른 짐들도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짐을 손으로 끌어내자, 승객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고 한다.또, 이베이와 같은 쇼핑몰에서 물건을 샀다가 문제가 생겨서, 고객센터에 문의전화를 하는 때가 있다. 그러면 적어도 3명 정도의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한다. 뒤로 갈수록 좀 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과 연결되는 것 같은데, 문제는 영어가 서툰 필자가 같은 말을 적어도 세 번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큰 문제가 없는 한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대체로 다 해결되는 것과 많이 차이가 난다.택배 배달도 그렇다. 한국에서 소비자들의 불평불만이 많은 것 중의 하나가 `택배`서비스인데, 미국의 택배는 더하면 더하지 덜 하진 않다. 미리 언제 물건을 배달하러 온다는 연락도 없고, 물건을 주러왔다가도 문 앞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택배사 직원은 `언제 다시 오겠다, 혹은 사무실로 물건을 수령하러 오라`는 종이만 남긴 채 가버린다. 며칠 그런 일을 반복하다가 지쳐서 결국 사무실로 물건을 직접 가지려 간다.요즘은 미국도 한국처럼 서비스 만족도 조사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전화나 웹사이트 등으로 문의를 하거나 물건을 사고 나면 꼭 상담자를 평가해달라거나 서비스에 만족하는지를 평가를 해달라는 문자나 e-메일이 온다. 이렇게 고객 만족 평가를 심하게 하는 것을 보면 미국도 한국처럼 힘이 없는 말단 직원들을 괴롭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상담자 자체의 자질이 문제가 아니라 일처리가 되는 시스템이 매우 불편하고 번거롭게 되어 있는 것을 고치는 것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처럼 소비자에게 친절한 사람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이런 친절함은 한국 사람들의 양은냄비 같은 급한 성격과 자기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갖는 공격적인 태도 덕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의 매스 미디어에 자주 오르내리는 `갑질 논란`이나 `감정 노동자` 학대 문제 등은 모두 소위 고객들의 거친 행태가 일반화됐음을 보여준다.보통 미국은 `소비자의 천국`이라고 말한다. 맥도날드나 담배회사를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몇 십억을 손해 배상 받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하지만 일대일로 대면하는 서비스에서 소위 고객이 종업원에게 공격적이거나 무례한 일은 매우 드물다. 그들은 예의바르게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일이 해결되기를 기다린다. 어떤 일이 잘 해결되지 않을 때 그것은 내가 직접 상대하고 있는 직원의 문제라기보다는 회사의 시스템적인 문제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소비자들은 매일매일 (대)기업에게는 지면서도, 그 말단 수행자에 불과한 직원들에게만 이기려 든다. 한국의 소비자가 실질적인 힘을 갖게 될 때 아마 이런 일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2015-08-11

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어떻게 정해지나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며칠 전 하버드 가제트(Harvard Gazette)를 보다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가 최근에 발표한 논문에 대한 소개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승진이 당사자에게 항상 좋게 생각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승진은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의 능력과 성취 때문이 아니라 회사의 전략이 갑자기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 스티브 잡스가 두 번째로 애플의 최고 경영자가 되었을 때, 디자이너들은 예상치 못한 우대를 받게 된 반면에 엔지니어들은 그 전보다는 못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승진을 한 사람들은 자신의 승진이 덜 운이 좋은 동료들에게 상처를 줄 것이라는 것과 같은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혹은 쉽게 승진한 만큼 쉽게 밀려난다는 불편한 사실과 부닥치게 된다. 어제 뉴욕 타임즈에서도 이런 연구 결과와 비슷한 보도가 있었다. 시애틀에서 신용카드 결제시스템 회사를 운영하는 젊은 사업가가 자신의 급여를 90% 삭감하는 대신 전 직원의 연봉을 최소 7만 달러(약 8천200만원)로 올려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이로 인해서 경영의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한다. 우선 기존에 연봉 7만 달러를 받고 있던 직원들은 왜 자신들이 경비원이나 전화상담원과 같이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과 같은 봉급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했고, 유능한 직원 2명이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또한 고객들도 이런 결정이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은 임금 노동자들이 승진이나 봉급 인상 등에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 따르는 보상을 받았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회 통념상 자신이 한 성취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을 때 사람들은 이것을 기뻐하기보다는 이 기회를 잃게 될지도 모를 미래에 대해서 걱정한다. 회사의 정책변화로 인해서 갑작스럽게 승진한 사람들이 그러한 승진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것은 더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 충분히 납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조직 내에서 어떤 업무가 다른 업무보다 더 중요하다거나 덜 중요하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현재 사회에 있는 수많은 직업들은, 혹은 그 어떤 직업에 따른 직무는 그것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전화교환원이나 경비원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거기에 고용되어 있다. 타인의 일이 자신이 하는 일보다 덜 중요하기 때문에 적게 받아도 된다는 생각은 상당히 자의적일 수 있다. 회사의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에 의해서 벼락 승진이 이뤄지는 사례에서 보듯 그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고 유동적인 것이다.또한 사람들의 임금에 대한 기대는 자신의 업무에 대한 절대적인 평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상대적 비교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사람들에게 봉급이 많아진다는 것은 자신이 하는 업무의 중요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만큼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면 임금을 더 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보다는 덜 중요한 일을 하면 임금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하지만, 일의 중요도나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한 평가가 CEO의 교체나 회사 정책의 변화에 따라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사회나 직장 내에서 어떤 업무가 더 중요한 혹은 가치 있는 것이고, 다른 것을 상대적으로 덜 그렇다는 식의 판단을 바탕으로 사람이 받아야 할 임금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보다는 최소한 모든 노동자가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수준에서 임금이 결정되어야 한다. `최저 임금`에 대한 접근도 이런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5-08-04

기부 문화와 하버드 대학교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하버드 대학교에 방문교수로 온 후 만난 법학대학원 `박사 후 과정`(post-doc) 연구생이 있다. 이 연구생의 말로는 봄 학기 중에는 법대에서 매일 발표회와 세미나가 있기 때문에 공짜 점심을 해결했다고 한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필자가 소속된 연구소만 해도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정도의 발표회가 있는데 늘 점심이 제공된다. 이런 경험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말이 하버드 대학교는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버드 대학교를 낭비에 가까울 정도로 풍요롭게 만드는 원천은 `기부금`이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버드에 있다 보면 사람의 이름을 새긴 건물들을 종종 보게 된다. 하버드 대학의 중앙도서관인 와이드너 도서관(Widener Library)도 그 중 하나이다. 와이드너 도서관은, 1912년 타이타닉의 침몰로 사망한 하버드 졸업생 해리 엘킨스 와이드너의 부모가 대학 측에 도서관 건립비를 기증해서 지어진 것이다. 1915년 6월 24일 졸업식에서 정식으로 개관됐으며, 올해 건립 100주년 기념행사가 크게 치러졌다. 건물에 새겨진 해리 와이드너의 이름은 이 도서관이 무너지지 않는 한 그의 짧은 생애와 달리 영원할 것이다.하버드 대학교에는 `Harvard Art Museum`이라는 이름의 굉장히 좋은 미술관이 있다. 아담한 삼층 건물에 동서양을 아우르는 엄청나게 많은 예술품들이 전시돼 있다. 필자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이 미술관에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소장돼 있다는 소문도 있다. 그런데 이 예술품들은 모두 기부된 것이거나 기부금으로 구입한 것이다. 이 미술관은 세 개의 미술관, 즉 Fogg 미술관, Busch-Reisinger 미술관, 그리고 Arthur M. Sackler 미술관을 합한 것으로 이 세 개의 미술관은 모두 기부자의 이름을 따르고 있다.미국인은 아니지만, 2014년에는 홍콩의 부동산 재벌 T.H 챈이 3천500만 달러를 하버드 보건대학교에 기부했으며,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이 대학원의 이름이 T.H 챈 보건대학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올 6월 초에는 헤지펀드업계의 거물 `존 폴슨`이 모교인 하버드 대학교에 4억 달러를 기부했다. 이는 하버드대 역사상 최대 기부액으로, 이것은 하버드 대학교가 돌체스터에 짓게 될 공대 캠퍼스에 사용될 예정이다. 하버드측은 이 캠퍼스 명칭을 `하버드 존 폴슨 공학응용과학대학`으로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이런 것들을 보면 많은 부자들이 하버드 대학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기부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름을 건물이나 대학의 이름 앞에 붙이기를 원해서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부자들은 기부를 통해서 하버드 대학교의 일원이 됨으로써, 이 대학교가 미국 아니 세계에서 갖고 있는 명성과 특별한 지위를 공유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럼 점은 폴슨이 2007년 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이용한 비윤리적인 치부로 인해서 생긴 불명예를 기부 행위로 상쇄하려고 한다는 비판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하버드 대학교에 쏟아지는 엄청난 기부를 보면서, 우리나라 부자들이 한국 대학에 기부를 잘하지 않는 것은 여기에는 그다지 공유하고 싶은 명성과 특권이 없기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즉, 기부를 통해 자신의 명예를 굳이 높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충분한 명예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기부에 무관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기부자가 기부를 통해서 불멸의 명예를 얻는다면, 기부한 쪽과 기부 받은 쪽 중 어느 쪽이 더 수혜자인지 명확하게 단정하기 어렵다. 이처럼 서로 이익이 되는 상황이 한국에서도 조성이 된다면 대학에 대한 기부가 점점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2015-07-28

새롭게 바뀐 미국의 의대입학자격시험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올해부터 미국의 의대입학자격시험이 바뀌었다. 보통 이 시험은 MCAT(Medical Collage Admission Test)로 부르는데, 작년까지 응시자는 생물, 물리, 화학, 유기화학, 그리고 읽기 이렇게 다섯 과목만 치면 됐지만, 올해부터는 사회학과 심리학도 쳐야 한다. 총 시험시간은 7시간 반으로, 이것은 예전보다 3시간 길어진 것이다. 그리고 심리학과 사회학의 시험 시간은 전체 시험 시간의 4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이처럼 바뀐 시험 제도는 인문, 사회계열 학생들이 의대입학시험을 치는 것에 좀 더 적극적일 수 있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이과 영역으로 생각되었던 의학대학의 입학자격 시험에 심리학과 사회학이 추가되고, 보다 다양한 학문적 경험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시험을 칠 수 있게 허용된 이유는 무엇일까? MCAT를 주관하는 미국의대연합(The Association of American Medical Colleges)은 현대의 질병이 점점 사회적 조건과의 연관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유로 든다. 예를 들어, 성장기에 총소리나 폭력 혹은 어린이 학대 등을 경험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청소년들은 비만이나 고혈압 혹은 당뇨병 등과 같은 만성 질환을 앓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이처럼 환경적 영향에 의한 만성질환이 비중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의사도 환자를 치료할 때 이러한 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의사는 또한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 환자와 신뢰를 쌓고, 환자의 생각과 결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환자의 건강이 단지 의학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수렴된다. 이에 따라 유능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질병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 환자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게 된다.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문·이과 통합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는데, 미국의 바뀐 MCAT는 어쩔 수 없이 문·이과 통합 교육을 제도적으로 요구한다. MCAT를 치는 학생들은 `제도화된 인종주의`(institutional racism) 혹은 `사회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onism)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 답해야 한다. 사회 구성주의는 “여성성이나 남성성이 완전히 사회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이것을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보는 것과 대립되는 관점이다.이러한 것들에 대해 지식과 입장을 갖는 것이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왜 중요한 것인가는 의문이 든다면, 당신은 아직도 고전적인 의학 혹은 과거의 의학에 집착하거나 정체되어 있는 것이아닐까? 새로운 MCAT가 시사하는 점은 치료를 위해서 환자라는`인간`을 좀 더 잘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이다. 이것은 의사가 상대하는 대상이 바이러스나 암 덩어리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을 강하게 환기시킨다.필자는 병원에 갈 때마다 불쾌감을 느끼곤 하는데, 그것은 의사가 필자를 끊임없이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물건 취급을 하거나, 아니면 지나친 존경과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환자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거기에는 꼭 핀잔이 돌아온다. 필자가 들은 가장 모욕적인 핀잔은 `입에 항상 사탕 물고 있나 봐요` 였다. 중성지방의 높은 것에 대한 의사의 비판(?)이었고 할까? 아마 이 의사가 원한 것은 자신이 쓴 처방전을 조용히 받고 빨리 진료실을 떠나는 것이었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처럼 권위적이고 사람을 물체로 바라보는 의사는 점점 의사의 자질이 있는지가 의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험 제도의 변화로 인해서 지원자 중 문·이과 출신의 엄격한 구분도 완화될 것이며, 좀 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사가 될 것이다. `인간`혹은 `사람` 이것을 잘 아는 것이 의사의 최고의 자질 혹은 능력으로 요구되는 시대가 점점 오고 있는 것이다.

2015-07-21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 사회

▲ 배개화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 미국에 와서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엘프`라는 모바일 어플(app)이다. 내 주위에는 소위 식도락가들이 많아서 맛있는 카페나 식당을 찾아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이나 음료를 맛보는 것을 즐긴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집과 학교만 왔다갔다 하지 말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다니고 인생을 즐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어플을 사용해 보라고 권한다.그러면서 나온 말이 미국의 맛집 어플에 나오는 평가는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내 주위의 식도락가들은 한결 같이 한국의 맛집 평가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입소문과 실제 음식맛이 일치하는 경우보다는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분이 심각하게 사소하지만 이렇게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평가시스템이 미국의 힘인 듯하다고 말한다. 한국은 이런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한 사회라는 한탄도 뒤따른다.평가의 신뢰도에 대해 말하다보니 어제 서울대 공대에 발표했다는 공대백서의 내용이 떠올랐다. 이 백서는 “서울대는 연구성과와 세계적 인지도가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탁월한 연구성과를 내는 교수가 적다”며 “교수들에게 단기간에 성과를 보일 것을 강요하고 연구의 질보다 양을 강조하는 시스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이처럼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한국의 연구풍토는 `평가의 결과`를 신뢰할 수 없는 한국의 상황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교수의 업적평가와 관련해서 `질평가`라는 부분에 대한 신뢰도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질평가`혹은 `정성평가`라고 말하는 이 부분은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하는 부분이다. 한국에서 이 `주관`은 많은경우 정말 객관적기준이 없는 `주관`이 되기 쉽다. 즉, 학문전체의 발전이나 학교 혹은 학과의 발전보다는 `평가자`자신에게 미칠 이해득실이 평가에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사람들은 종종 `정치적판단`이라고 말한다.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서로가 `질적인평가`의 객관성에 대한 불신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결과가 수치화 될 수 있는 `양적평가`가 더 중시될 수밖에 없다. 교수업적 평가를 할 때 논문수에 따른 총점제로 순위를 매기기 때문에, `탁월한 논문 한 편`보다는 적당한 내용의 논문을 많이 써서 점수를 많이 따는 것이 좋다. 한마디로 현재의 상호평가시스템 하에서는 대부분의 교수들이 공대백서가 밝힌것처럼 `번트를 치더라도 꾸준히 1루에 진출하는 타자`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공대백서는 “학문의 세계에서는 만루홈런만이 기억”되며, “탁월한 연구성과는 언제 얻을 수 있을 지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낮은 성공확률에 도전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논문의 질평가에 대한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평가문화가 없고, 대학의 업적평가가 주로 양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만루홈런`을 기다리며 연구를 하기는 매우 어렵다. 또한, 누군가가 가령 탁월한 연구 성과를 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 타인의 탁월한 성과가 내가 누리는 명성과 권력에 위협이 된다면 언제든지 무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미국의 맛집 어플은 미국인이 일상생활에서부터 무엇인가를 평가할 때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가를 하는 것이 습관 내지 문화가 되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한국도 이러한 문화가 빨리 조성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실력이 있는 사람이 정당하게 인정을 받아 언젠가는 `만루홈런`을 칠 수 있도록 말이다.

2015-07-14

행복해 보이는 미국의 동물들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보스턴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토끼, 다람쥐, 혹은 사슴 등 야생동물들이 학교 교정이나 주택가에서 눈에 많이 띈다는 점과 이 동물들이 모두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이 겁 많은 한국의 동물들과 비교되면서, 필자는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하버드 대학교 교정을 걷고 있다 보면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동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청솔모이다. 저희들끼리 다정하게 나무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고 잔디밭을 명랑하게 가로질러 간다. 사람들이 옆을 지나가도 태연하게 서있거나 다가와 먹을 것을 구걸하기도 한다. 다람쥐에 비하면 훨씬 못생긴 녀석들이지만, 보고 있노라면 왠지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청솔모에 대해서 갖고 있던 나의 편견-토종 다람쥐를 잡아먹고 생태계의 질서를 교란하는 외래종-이 깨지는 느낌이다. 꼬리털도 풍성하고 몸 전체의 털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꼬리털도 듬성듬성 하고 비루한 느낌을 주는 한국의 청솔모와는 딴판이다.새들도 왠지 친근하다. 한 번은 아는 지인들이랑 함께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떤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나왔던 이야기가 미국의 새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말처럼 카페나 학교 교정에 있는 티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나 샌드위치 등을 먹고 있노라면, 종종 새들이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로 날아와 앉는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빵조각을 뜯어서 새들에게 주게 된다. 이런 모습이 한국의 새들과 너무 다르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한국의 공원이나 등산로에 있는 새들은 왠지 사람들을 무서워한다는 지적과 함께, 그건 한국 사람들이 새들이 가까이 오면 위협하고 쫓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이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동물 중의 하나는 개들이다. 한 번은 하버드 로스쿨 앞 잔디밭에서 개 한 마리가 주인이 던져주는 원반을 물고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원반을 물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주인에게 달려가는 개의 모습에는 `난 정말 행복해, 즐거워`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도 `아! 귀여워`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집 근처에도 개들이 산책하는 공원이 있는데, 많은 개들이 주인들과 함께 나와서 뛰어놀고 있다. 공원 잔디밭을 가로질러 뛰어다니고 개울가에 뛰어들어 물을 튀기는 녀석들의 모습에는 행복감이 물씬 풍긴다. 이렇게 행복한 개들을 보다보면, 개보다도 주인에게 더 호감이 생긴다. 즉,`도대체 개를 얼마나 사랑해주었기에 애가 저렇게 행복해보이나 정말 좋은 사람인가보다`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한 번은 지인들이랑 이런 개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미국의 길거리에 고양이가 잘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가 번졌다. 그러자 함께 있던 대학원생이 미국의 경우 길고양이들은 모두 구조되어 동물보호소에 보내지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잘 보이지 않으며, 그리고 자기도 이곳에서 두세 번 고양이들을 동물보호소에 신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국의 동물보호소의 실상을 알고 난 뒤로는, 안락사나 길거리 생활이 동물보호소에 있는 것보다 고양이에게 낫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생의 말처럼 지옥이 있다면 여기 일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동물보호소들이 가끔 인터넷 게시판이나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서 고발되기도 한다.확실히 미국의 야생동물들이나 반려동물들은 한국의 동물들보다 행복해 보인다. 이 동물들을 보면 왠지 미국이 한국보다 선진국처럼 보인다. 자기보다 작고 연약한 것들에 대해서 배려와 애정을 갖고 대하는 태도는 그 사람이나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이나 교양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청솔모와는 너무나 달라 보이는 미국의 청솔모를 보면서,`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환경의 많은 경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의식이 좀 더 확산되었으면 좋겠고, 길거리의 동물들이나 야생동물들에 대한 보호 및 구조 시설들도 좀 더 늘었으면 좋겠다.

2015-07-07

한국에서도 동성결혼 합법화가 가능할까?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미국 시간으로 지난 26일 오전 10시,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동성결혼이 합법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미 연방 대법원은 찬성 5대 반대 4로 동성결혼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으며, 이는 세계에서 21번째이다. 이번 결정으로 미국 50개 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 되며, 미국의 300만 동성 커플이 결혼 등록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합법화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 결정권`에 대한 옹호로서 합리화 되었다. 즉 헌법 자체의 원리로서 동성애자들의 결혼은 합법이라는 것이다. 동성 결혼 합법화는 중요한 `인권의 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단지 `인권`(human rights)이라는 것만이 중요한 고려사항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중요한 단서는 동성결혼 합법화에 찬성한 대법관 중 한 명인 케네디의 발언에서 포착할 수 있다. 그는 “결혼은 우리 사회 질서의 기초이다”라고 말하였다.만약 `사회 질서`라는 것이 동성애에 반대한 법관들의 주장처럼 수 만년 동안 관습화된 `결혼 제도`를 포함하는 것이라면, 동성결혼 합법화는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결정이 될 것이며, 종교적이거나 문화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동성결혼을 찬성한 대법관들이 이구동성으로 사회적 변화를 말했던 것처럼, 케네디 대법관이 말하는 사회 질서는 시간을 초월한 질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사회질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성결혼은 바로 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허용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일부일처제에 토대를 둔 가족제도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가장 작은 생산단위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은 임노동자로서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 가족을 부양한다. 그리고 여성은 남성이 벌어온 돈으로 소비지출을 주로 한다. 이런 식으로 생산과 소비가 가정을 단위로 이루어지면서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 재생산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혼인율이 현재 최저치라는 점이다. 2011년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성인 중 혼인율은 51%로, 이는 1960년의 72%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이라고 한다. 이처럼 낮은 혼인율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초단위인 가족의 재생산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이런 점에서 동성 결혼은 혼인율을 높이고, 가족의 재생산을 활성화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성간의 혼인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는데 비해, 동성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현재 300만의 동성 커플들이 결혼 등록을 위해 대기 중이다. 이들을 합법적인 결혼제도 안으로 끌어들인다면, 가족의 재생산과 사회적 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다. 또한 동성 커플들의 아이들이 좀 더 안정적인 상태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늘게 되며, 동성 커플들의 보살핌을 받는 입양아들도 늘어나게 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이 늘어나게 된다. 이것은 미래 세대의 재생산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이처럼 동성 결혼의 합법화는 자본주의적 가정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 가정에서 이뤄지는 `생산과 소비`가 반드시 이성 부부 관계에서만 일어나고, 동성 부부 관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경제[논리]는 모든 것을 이긴다.”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 하게 만든다.작년 한국의 혼인율은 1970년 통계가 작성된 이후로 역대 최저치라고 한다. 인구 1천명당 6명이 혼인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수치는 2011년 미국의 혼인율, 즉 인구 1천명당 6.8명보다도 낮은 수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 정서상 동성 결혼이 합법화될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지나치게 낮은 결혼율과 출산율은 사회가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현재 동성애를 허용한 21개국이 대부분 혼인율과 출산율이 낮았던 유럽이나 미국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동성 결혼 합법화는 예측할 수 있는 미래의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2015-06-30

천재소녀 해프닝에 대하여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몇 주 전 신문기사에서 하버드 대학교와 스탠포드 대학교에 동시 입학한 천재소녀에 대한 신문기사가 났다. 이 기사를 접하고, 나를 포함한 주위의 한국인들은 모두 대단한 일이라고 같이 기뻐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경향각지 신문에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새로운 기사가 보도되었다. 그 직후, 이 소녀의 실명이 사진과 함께 공개된 채, 신문 보도가 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논란 기사가 나왔지만, 이 소녀의 아버지와 최초 기사를 낸 미주중앙일보 기자의 사과가 보도 되면서, 이 모든 내용이 거짓임이 밝혀졌다.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KJY 학생이 왜 이런 거짓말을 했는가 하는 의아함과 함께, 과연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이 아이가 원만하게 미국 대학에 입학할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이 소녀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미국에서 상위 24등 안에 드는 좋은 고등학교이고, 학생들의 대부분이 아이비리그에 입학한다고 한다. K양도 조금 인내심을 갖고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면 분명히 좋은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았을 것이고, 자신과 부모님을 만족시켰을 것이다. 학생이 입학증을 위조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경쟁이 치열한 고등학교 생활이 주는 성취에 대한 강박관념과 주위 사람들의 기대 등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 아닌가 한다. 혹자는 이를 학벌주의의 폐해라고 지적하기도 하였다.이처럼 어린 학생을 병적 성취욕에 시달리게 한 것은 환경적 요인들이나 가정적 요인 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을 비난하기보다는 그가 정상적인 심리 상태로 돌아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그의 아버지 말대로 치료를 하는 것-이다.그런데, 이 사건을 다루는 한국 신문들의 보도 내용을 보면 정말 `목불인견`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소녀의 실명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리플리 증후군`이니 하면서 학생의 병적 심리를 분석하거나, 천재소녀의`소름끼치는 또 다른 거짓말`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서 그녀를 계속해서 문제 인간으로 몰아간다.하지만, 미국 신문들의 보도 태도는 많이 다르다. 우선 많은 네티즌들이 온라인상에 퍼 날랐던 K양 고등학교 동창의 글만 보아도, 그는 K양의 실명 대신 닉네임으로만 그녀를 부를 뿐이다. 심지어는 그녀의 국적이나 인종도 밝히고 있지 않다. 다만 한국의 독자들은 이미 각종 신문을 통해서 이 천재소녀의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닉네임만으로도 이게 누구의 이야기인지 짐작할 수 있다.또한 19일(현지시간) 워싱턴 포스트에서 보도된 이 소녀 관련 기사, `명문대 동시합격 해프닝, 성공압박이 낳은 비극`도 그녀의 신상을 적시하지 않았다. 즉, 이 신문은 단지 이 소녀를 `Sara`라고 부를 뿐 그녀의 성이나, 그녀의 국적 혹은 인종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 기사는 한 교사의 말을 빌려 “자신의 학업적인 성공 기준을 대학 합격증에서 찾는 학생들”이 있으며, “성공에 지나치게 집착한 학생들이 좌절을 맛봤을 때 생기는 혼란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일 수도 있다.”라는 원인분석에 치중하고 있을 뿐이다.이러한 보도 태도는 이 기사를 인용할 때조차도 소녀의 실명을 적어서 보도하는 한국 기사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 소녀는 거짓말로 많은 사람들을 속였다. 하지만, 이 거짓말로 누가 피해본 사람이 있나? 이 천재소녀 해프닝이 훌륭한 가십거리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존속살인자도 이니셜로 보도되는 이 나라에서, 그녀의 실명이 신문 기사에서 자꾸 오르내리는 것은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의 입장으로서 매우 불쾌하고 걱정스럽다. 이런 일이 내 학생에게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그 학생을 보호할 수 있을까? 그런 근심이 앞선다.

2015-06-23

여성의 충분조건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많이 낮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세계경제포럼(WEF)이 작년 8월에 발표한 `2014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은 142개국 가운데 117위를 기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성 평등 지수는 20위였다. 둘을 단순 비교해보면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성 평등 지수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 특히 남성이 지배적인 지위를 누리는 직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말로 늘 듣던 이야기를 영어로 듣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사실 나는 지금은 아니지만 한 때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대학원 석사과정 첫 수업에서 한 교수님이 원탁에 앉아 있는 여학생들을 둘러보며, 공부도 중요하지만 결혼도 중요하다고 걱정하는 이야기를 하셨다. 수업 첫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왜 저런 말씀을 하시지 하는 의아함과 불쾌함이 떠올랐다. 이후 대학원을 다니면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남자들은 가정을 책임져야 하지만, 여자들은 결혼하면 남편이 책임져주니까, 남자가 우선 취직되어야 한다, 혹은 여자와 함께 일하면 불편하다. 여자들은 가정생활을 핑계로 일을 남자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이었다.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내 하버드 지인 중에 한 사람에게서 또 듣게 된 것이다. 그녀는 최근 하버드 의대를 나와 의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녀는 의사가 주로 백인 남성들이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며, 남자 의사들이 여자 의사와 일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여자들이 가정 일을 핑계로 일을 남자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이다. 또한 정년 보장을 받은 여자 부교수가 있는데, 의대 안에서 그 여교수는 주로 성적인 코드로만 회자될 뿐 매우 경시당하고 있다는 것이다.아니면, 자신의 여성성을 최대한 억압해야만 한 자리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여기서 정년 보장을 받은 한국학 하는 여성학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결혼은 해도 괜찮지만 아이를 낳은 경우에는 정년 보장을 받은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있으면 학과에 대한 충실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덧붙였다. 물론 이것을 모든 여성학자의 경우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녀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인 듯했다. 어쨌든 이런 이야기를 듣노라면 한국만 아니라 미국도 여성에게는 가혹한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또 다른 예로는 이런 것이 있다. 미국에 유명한 육상 선수로 `브루스 제너`(Bruce Jenner)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1976년 올림픽 게임에서 육상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 시절 그는 매우 잘 생기고 근육질의 남성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 사람은 `카이틀린 제너`(Caitlyn Jenner)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아마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 Caitlyn이 왠지 여자 이름 같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성기` 제거만 하지 않았을 뿐 트랜스젠더로서 살고 있다.이 사람이 하는 말에 따르면 자신이 브루스로 살아갈 때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여자일 때 기대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브루스일 때는 주로 자신의 능력이나 성격 등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카이틀린이 된 후로는 외모가 주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는 것이다.나는 솔직히 여성의 예쁜 외모와 좋은 성격은 결혼뿐만 아니라 직장 생활에서도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사회가 바라는 것이 단지 이것뿐이라면 나는 매우 절망스러울 것 같다. 여성이기를 강요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제적, 사회적 성취 혹은 경쟁의 장에서 여자들을 배제시키는 이런 이중성은 이제 그만 없어졌으면 한다.

2015-06-16

문·이과 통합 교육이 필요하다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작년에 교육부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은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문과와 이과를 선택하여야 하는데, 앞으로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 통합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도입하기로 정한 이유나 그 취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최근 한국 대학에서 대세가 되고 있는“융합”이라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문과, 이과의 엄격한 구분을 고등학교 때부터 꼭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최근 만난 하버드 대학생들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내가 알고 지내는 학생 한 명이 하버드 메디컬 스쿨을 졸업하였다. 최근 그녀의 관심사 중 하나는 의사들에게도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고, 사람을 정확하게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들과의 소통과 이해가 필요한데, 이과 출신의 의사들은 이런 자질이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 그녀의 의견이었다. 이런 대화 중에 나는 그녀가 학부 때 심리학을 전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원은 컴퓨터 공학 쪽으로 진학했고, 이후 다시 의학 전문대학원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한다.이처럼 문과, 이과의 구분이 느슨하고 전공 변경이 쉬운 것은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요즘 만나고 있는 하버드 학부 3학년생의 경우, 지금까지 전공을 3번이나 바꿨다고 한다. 그녀는 1학년 때는 수학을, 2학년 때는 생물학을, 그리고 3학년 때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처럼 잦은 전공 변경에 대해서 그녀는 아직까지 미래에 무엇을 할지 정하고 싶지 않고, 다양한 학문 분야를 두루두루 경험한 다음에 자신이 미래에 하고 싶은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또한 많은 하버드 학부생들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며, 대학졸업 직전까지 최대한 많은 학문 분야를 경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한국의 경우, 대학에서 문·이과의 구분은 엄격하다. 일반적으로 대학의 학제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그리고 공학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인문학과 사회학끼리, 그리고 자연과학과 공학끼리의 복수전공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공대학생이 인문학을 복수전공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엄격한 문·이과 구분은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대학 입학과 함께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공대생들 중에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복수전공을 하려고 해도, 문과 복수 전공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과 자체를 바꾸거나 대학원 진학을 문과 쪽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인문, 사회계열 학생이 자연과학이나 공학계열을 복수전공하거나 대학원을 이쪽으로 진학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내 하버드 지인들처럼 인문사회계열 학생들도 대학 졸업 후, 공대나 의대 대학원으로 진학을 하고 싶은 경우가 있을 테지만, 현재와 같은 대학 체제하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고등학교 때부터 실시되는 엄격한 문, 이과 분리교육 때문이다.이과는 주로 높은 수준의 수학 및 생물, 물리, 화학 등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는데, 문과 학생들의 경우 무엇보다 `수학`이라는 장벽에 가로 막혀 학제 간 구분의 벽을 넘기 어렵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렇게 문·이과 사이의 전공 변경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학생이 소위 `수학을 포기한 학생`이 되지 않아야 하며, 과학에 대한 통합적인 지식도 갖고 있어, 좀 더 심화된 학습을 하는데`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현재 우리나라와 같은 교육 체제하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직업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문·이과를 엄격히 구분하고 차별화된 수학, 과학 교육을 실시하고, 이로 인해서 학생들이 학제 간 구분 없는 다양한 전공 탐색이나 대학원 진학을 할 수 없는 것은 사회 전체로 봐서도 손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최근 공대 교수들이 주도하는`융합`담론들을 실제로 대학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도 문·이과 통합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5-06-09

자연은 어떤 인공물보다도 아름답다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얼마 전 캐나다의 토론토를 짧은 일정으로 갔다 왔다. 여행 목적은 토론토 대학의 한국학 교수를 만나는 거였지만, 토론토가 나이아가라 폭포와 가깝기 때문에 겸사겸사 여기도 함께 다녀왔다. 토론토의 시외버스정류장(Coach Bus Terminal)에서 메가 버스를 타면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1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다. 나는 함께 간 일행과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의 간이 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 이곳에서 나아이가라 폭포까지는 또 한 30분 정도 걸어가거나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너무나 조용하고 한적한 거리에 단층집들이 길을 따라 나란히 서 있었다.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미국과 캐나다를 연결하는 다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너머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나이아가라 폭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폭포의 위용은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하고,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폭포의 실물을 직접 눈으로 보니, 새롭고 신기한 것을 접하는 듯한 황홀한 마음이 밀려왔다.하지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100퍼센트 즐기고 가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 온 관광객이 반드시 해보아야 하는 것은 관람용 배 타기이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이슬비처럼 내리기 때문에, 그냥 타면 옷이 젖는다. 그래서 탑승자들은 반드시 우비를 착용해야 한다.갑판에 빨간 우비를 입은 사람들을 태운 배는 폭포를 향해서 점점 가까이 가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탑승객은 모두 감탄사를 연발하며 폭포를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점점 배가 말굽 모양의 폭포 바로 밑으로 가까이 가자 강물에 부딪혀 튀어 올라오는 하얀 물방울들과 위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서로 섞여 옷과 얼굴에 쏟아졌다. 배가 폭포에 가까이 갔을 때는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듯이 물이 얼굴과 몸으로 쏟아졌다. 우리들은 물의 습격을 피해 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폭포가 선물해준 물 폭탄을 맞으면서 우리 중 한명이 갑자기 “I`m happy”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은 내 입에서 또 다른 사람의 입으로 도미노처럼 번져갔다. 폭포수가 떨어지면서 만들어내는 바람과 얼굴과 목 그리고 손등으로 떨어지는 무수한 물방울들의 차가운 그리고 시원한 느낌들은 우리들 마음속에 순수한 기쁨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 동안 `행복해`라는 이 말은 오랫동안 우리 마음속에서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관람선에서 내린 후, 우리 일행은 나이아가라 폭포의 상류로 향했다. 상류 쪽은 폭포의 위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깊지는 않지만 넓은 강폭을 따라서 하나는 직선, 하나는 말굽 형의 절벽이 형성되어 있고, 이 절벽 위에서 아래로 강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흘러내려와 떨어지는 물줄기들은 햇볕을 받아 에메럴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관람객들이 만들어내는 소음들이 모두 소거된 채, 나와 강물만이 그곳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나는 함께 간 일행에게 “미술관의 어떤 그림보다도 이게 더 아름다운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어떤 예술품도 현실을 완전히 재현하지는 못하지”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내 느낌은 그랬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았던 모나리자도 뉴욕의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보았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도 에메럴드빛의 강물 색만큼 더 아름다운 색깔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순수한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이런 감정들은 인공물보다는 자연물을 보았을 때 그 강도가 더 큰 것 같다. 축적된 문서적 평가나 어떤 종류의 비평의 역사도 없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수많은 비평과 찬사가 바쳐진, 그래서 그것이 몇 권의 책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예술 작품들보다도 더 아름답고 장엄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재현불가능`한 아름다움에 속하기 때문이리라.

2015-06-02

명목만이 아닌 실질적 융합학문을 기대하며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한국 대학에서 요새 유행하는 용어로 `융합`이라는 것이 있다. 서로 다른 분야의 학문들을 결합 하는 학제 간 연구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온 것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융합`이라는 단어가 학제 간 연구라는 단어를 대체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한국에서 `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주도하는 쪽은 주로 `공대`이다. 내가 재직 중인 단국대학교의 경우, 작년에 공과대학의 이름을 `융합기술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대학에서 융합학문이라고 명백히 인지할 만한 학문 분야가 뚜렷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하지만, 하버드 대학의 경우 `융합 학문`이라는 것의 의미를 뚜렷이 알 수 있는 학과들이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하버드 의대에 있는 `bioinformatics and computing biology`라는 학과이다. “바이오인포메틱스(bio-informatics)”는 생물정보(공)학으로 번역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컴퓨터와 분석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생물학적 데이터를 얻고 이를 분석하여 생물학적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응용과학의 한 분야`이다. 1990년대 인간 게놈(genome) 염기서열이 판독하고 이를 정보, 처리하는 것과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로서, 하버드 대학교는 이런 염기서열 연구를 주도해온 대표적인 학교이다.그런데 하버드 대학의 바이오인포메틱스는 이제 좀 더 실용적인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질병 정보를 모아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많은 환자들의 질병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함으로써 유사한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치료에 참고사항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달리 말해, 유사한 질병의 사례를 통계적으로 참조할 수 있게 함으로써 질병의 진단을 쉽게 하고, 유사한 증세의 환자들에게 잘 듣는 약들의 통계 자료를 구축함으로써 약 처방을 효과적으로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실제 바이오인포메틱스의 교수들을 살펴보면 의학과 함께 정보처리 분야에서 많은 경험과 기술을 갖고 있는 학자들이다.`소셜 뉴로사이언스(Social Neuroscience)`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융합 학문의 하나이다. 보통 뉴로사이언스는 한국에서 `뇌 과학`으로 번역되고 있다. 뇌 과학은 뇌의 신경체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써 생물학의 한 분야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간 뇌의 신경체계를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연결시키는 학문이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응용생물학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것을 주도하는 학자들은 주로 심리학자들이다. 이들은 뇌 공학에 기초하여 인간의 특정한 사회적 행동, 예를 들어서 도덕적 판단을 하거나 이타적 혹은 이기적인 행동을 할 때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 되는지를 뇌의 MRI 촬영을 통해서 확인하고, 그러한 행동이나 판단의 신경학적 원리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최근 소셜뉴로사이언스는 법학자들의 관심도 받고 있다. 하버드 법대에서도 뇌과학자들을 불러서 연합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근대법은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이라는 것을 대전제로 성립된 법률 체계이다. 하지만 `뇌 과학`은 인간의 도덕 판단이나 행동은 신경학적인 원리에 의해 설명하려고 하며, 이것은 근본적으로 `자유의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이처럼 상반된 전제 위에서 성립된 두 학문 영역이 만나서 서로 토론을 한다는 것은 범죄 심리를 좀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다루는 것에 대한 법학자들의 관심과 필요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이처럼 하버드 대학의 경우, `융합`이란 단어는 단순히 당대의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수사로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에 합당한 연구를 진행하는 학과와 연구 분야가 존재하고 있다.그런데 하버드에서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학부 때 다양한 전공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학과의 경계가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대학원 졸업 이후에도 자기 전공과 다른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한국도 이런 분위기와 조건이 마련되어 `융합`을 실제로 실행하는 학과나 연구 영역이 실제로 한국 대학에서도 많이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

2015-05-26

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은 여성, 위안부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지난 토요일 하버드 메디컬 스쿨을 다니는 영어 튜터(tutor)와 만났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위안부 문제가 화제가 되었다. 원래 서로 대화하려고 한 것은 한 인도계 미국인이 인도의 델리에 출장을 갔다가 유산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인도의 의료 현실에 관한 것이었다. 인도에서는 부유한 여성들은 좋은 병원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들은 병원은커녕 치료를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 하다 보니, 최근 우리나라에 보도되어 큰 관심을 끌었던 인도 여대생에 대한 집단 성폭행 사건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가난한 나라일수록 여성의 지위가 매우 낮고 여성의 복지도 매우 열악한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여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의 화제는 얼마 전 있었던 케네디 스쿨 앞에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다국적 시위와 `하버드 크림슨`에 실린 기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위안부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Vagina Monologue(여성의 독백)`라는 책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보여주기까지 했다. 이 책은 Eve Ensler가 쓴 에피소드 연극 모음집으로 여기에는 `위안부를 위하여(for the comfort wom en)`이라는 시도 포함되어 있다.“우리의 이야기는 오직 우리들의 머리에, 우리의 황폐한 몸속에, 전쟁의 시간과 공간속에, 그리고 공허 속에 있다”로 시작되는 이 시의 하이라이트는 종군 위안부들이 “파괴되고, 도구가 되고, 불임이 되고, 구멍이 되고, 피가 되고, 고기가 되고, 유배되고, 침묵 당하고, 혼자가 되고, 그들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부분이다. 전쟁터의 창고에서 위안부들은 일본 군인들의 성욕을 채우는 도구로, 구멍으로, 고기로서 다루어졌으며, 병, 자살, 혹은 구타 등이 그들을 기다리는 미래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단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상실한 `성 노예`였을 뿐이다.작년에 우리 국민들은 인도 여대생이 인도 남성들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하는 것을 뉴스 보도로 접하고 몹시 분노했고, 더구나 그러한 집단 성폭행이 그녀의 탓으로 돌려질 때 인도 사회에 대해서 경멸에 가까운 기분을 느꼈었다.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은 저 여대생과 같은 경험을 매일매일 끝이 없이 겪어야 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세상의 눈을 피해 숨어살았고,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신음하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들은 인도 여대생 사건만큼도 날카롭게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신의 원한과 고통에 대한 적절한 위로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살아계시는 분들에게도 적절한 위로와 보상이 주어질지 의문이다. 이 분들은 아베 수상이 말한 것처럼 `인신매매의 희생양`으로서 불쌍하고 동정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속임수에 당한 죄 없는 처녀들`이었다. 이점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자신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 위안부 할머니들이 바라는 것이다. 이 사과는 가엾은 사람에게 보내는 어떤 우월한 제스처가 아니라, 동등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진심 어린 것이어야 할 것이다.`위안부`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발생한 일이지만, 현재는 세계 여러 곳에서 문화적, 종교적, 혹은 경제적 이유로 고통 받는 여성들의 상징이 되었다. 고통 받는 여성들을 떠올릴 때 `위안부`보다 더 고통 받는 여성을 떠올리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간혹`위안부`문제에 대한 신문보도-결국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보면 이를 일본에 대한 정치 공세나 기사의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상업용 아이템으로 취급하는 경향도 있어 보인다. 만약 이런 면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모두 떨어버리고, 우리 국민 모두가 이 문제를 정말 가슴으로 생각하고 `위안부`들이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사과와 보상을 받는 데 힘을 보탰으면 좋겠다.

2015-05-19

아베 총리, 하버드서 위안부에 대해서만 말했나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지난달 27일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에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의 강연이 있었다. 이후 한국 언론은 그의 강연 내용과 당시 강연장의 분위기 등에 대해서 지속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오늘만 해도 하버드 크림슨에 실린 아베 총리 관련 기사가 한국신문에 보도되었다. 관련 기사들은 대부분 `조선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의 발언을 보도하고 있다. 나는 입장표 추첨에 당첨이 돼서, 다행히 그가 `위안부`들을 `인신매매`의 희생자라고 말하는 현장에 있을 수 있었다.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서 케네디 스쿨 정치학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많은 하버드 학생들이 모여서 침묵시위 중이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Justice for Comfort Women,” “Truth for Survivors” 등과 같은 글귀들이 씌어 있었다. 또한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도 현장에 참여해서 학생들과 함께 침묵시위를 하고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참석한 것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언제까지 이런 가슴 아픈 장면들을 보아야 하나 하는 슬픔이 밀려왔다.참석자들이 많은 탓에 나는 3층 한 구석에 간신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다. 그의 강연의 주요 내용은 `태평양 지역의 안정화,` `미국과의 에너지 동맹 강화,` `일본 학생들의 미국 유학 및 다른 나라 학생들의 일본 유학 촉진` 그리고 `일본 경제의 활성화` 및 `2020년 일본하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등에 대해서였다.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수상의 발언은 본 강연에는 없는 것이었고, 하버드대 2학년 조셉 최(최민우) 학생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을 물은 것에 대해 대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아베 총리는 “인신매매에 희생되어 헤아릴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당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아프다”면서 이 문제에 대한 `고노 담화`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은 여성의 인권 옹호와 신장을 위해서 수백만 달러의 돈을 국제 사회에 기부해왔다는 점을 언급하며, 위안부에 대한 직접 사과와 보상 문제는 회피하였다. 이러한 회피는 그가 위안부의 고통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고노 담화를 지지한다는 발언이 단지 외교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다.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위안부 문제는 그의 강연의 중심내용은 아니었다. 그의 연설에서 우리는 `태평양 지역의 안정화`와 `미국과의 에너지 동맹 강화`라는 두 부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태평양 지역의 안정화란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력이 강화되는 것을 견제하겠다는 말이고, 미국과의 에너지 동맹 강화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발 중인 세일 가스(shale gas)를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하겠다는 뜻이다.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S오일 직원의 말에 따르면 비싼 운송비로 인해서 세일 가스를 미국에서 구매하는 것이 중동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더 경제적이지는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과의 에너지 동맹 강화`란 결국 많은 돈을 미국에 퍼주고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동맹국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겠다는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 즉,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대리하여 중국의 군사적 확장을 억제하는 데에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이러한 점은 그와 오바마 대통령과의 회담 및 의회 연설 등에서도 확인되었고, 한국 신문들도 이점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표하는 기사들을 보도하였다. 아베 총리의 하버드 연설은 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의 발언을 중심으로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 부분은 정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연설의 중심 내용은 `과거사`의 문제를 넘어서 현재와 미래의 동아시아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일본이 미국을 대리하여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실질적으로 견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그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어떤 안보적 이익과 불이익을 당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2015-05-12

뉴욕, 뉴욕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3박 4일 일정으로 뉴욕으로 단체 관광을 가게 되었다. 14년 만에 가는 뉴욕이라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렜다. 미국에는 수많은 도시들이 있지만, 나에게는 보스턴 다음으로 뉴욕이 특별한 느낌을 준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비롯한 수많은 미술관 및 박물관, 뮤지컬 극장, 그리고 쇼핑센터 등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곳이 바로 뉴욕, 맨해튼이다. 첫날 도착해서 짐을 풀고 저녁 먹기 전에 걸어서 타임 스퀘어에 가니, 타임스퀘어 중앙전광판에 현대 자동차 선전이 떠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관객의 시선을 끄는 것은 건물 여기저기 가득 붙어 있는 뮤지컬 광고판들이다. 아무래도 뉴욕을 가장 매력 있게 만드는 것들 중의 하나가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이 아닐까 싶다.나는 여행의 둘째 날 저녁에는 `맘마미아`를, 셋째 날 저녁에는 `오페라의 유령`을 보았다. `맘마미아`는 아바의 노래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고, `오페라의 유령`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창작 뮤지컬이다. 이 두 개의 뮤지컬은 크게 성공하여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다. 둘 다 모두 좋고 아름다운 뮤지컬이지만, 아무래도 내 취향은 `오페라의 유령`이었다.뮤지컬의 전체적인 내용이 원작과는 조금 달라졌고, 2004년 12월에 개봉됐던 영화의 내용과 거의 일치하게 재구성되어 있었다. 원작에서 관객의 몰입감을 느슨하게 하는 장면들이 삭제되어, 극의 구성이 더욱 치밀해졌다. 이미 영화 DVD로 반복해서 봐서 거의 외우다시피하고 있는 각 장면들의 노래들을 마음속으로 따라 부르면서, 뮤지컬을 보는 재미도 꽤 괜찮았다. 더욱이 공연이 끝났을 때 대부분의 관객들과 함께 일어나서 박수를 쳐주다보니, 이날 공연이 왠지 더욱 특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간 중국학자가 뮤지컬의 몇몇 부분을 흥얼거리며, 함께 보자고 해준 것에 대해서 고맙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녀는 뉴욕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면서, 영원히 뉴욕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뉴욕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든가 하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뉴욕에는 영원히 살고 싶은 느낌이 드는 매력 있는 요소들이 많은 곳이기는 하다.뉴욕을 특별한 곳으로 만드는 것 중 하나는 미술관이다. 둘째 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갔다가, 시간이 허용되는 대로 이집트 관과 19세기말 20세기 초 유럽 미술을 중심으로 보고 왔다. 미술관의 십분의 일도 채 보지 못하고 두 시간 만에 나왔을 때는 너무 죄책감에 가까운 아쉬움이 들었다. 나머지 부분을 보고자 하는 욕망도 내가 뉴욕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이유가 될 것 같다.단체 여행의 일정에 쫓겨 허겁지겁 미술관의 보물들을 스치듯 보고 지나가는 것보다는 혼자 가서 마음이 꽂히는 그림들이나 보물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듯이 보고, 느끼고 하는 것이 더 좋다. 미술관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같이 가서 보는 곳은 아니며, 혼자 몰입하고 즐기는 장소이다. 이것은`빨리빨리`를 요구하는 현대의 템포와는 많이 다른 것이기에 미술관은 관람객들에게 어떤 해방감과 편안함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어떤 점에서 문화는 곧 `돈`의 문제이기도 하다. 경제력이 높아질수록, 교육받은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문화의 수준은 점점 높아지는 것이다. 서울과 뉴욕-특별히 맨해튼을 비교해 봐도 이런 점은 눈에 띤다. 서울도 문화의 도시로 점점 좋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전 세계인들이 오고 싶어 하고,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그런 곳은 아직 아닌 것 같다. 서울도 언젠가는 이런 곳이 되기를 꿈꿔본다.

2015-04-28

한국의 이미지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사람들이 해외에 나가서 살다보면 내 나라가 세계에 어떻게 비춰지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나 역시 보스턴에 와서 생활하면서 외국인들이 갖고 있는 `한국의 이미지`를 접할 기회가 많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14년 전 미국에 왔을 때 내가 느꼈던, 외국인의 한국 이미지와 현재의 한국 이미지가 많이 차이가 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하기는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01년 9월에 하버드 대학교에 한국 대학의 박사 준비생 자격으로 잠시 유학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때는 1998년 IMF 사태 이후라 전체적으로 한국의 경제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았고, 환율도 1달러 당 1천300원으로 매우 높았다. 그래서인지 미국 물가가 무척 비싸게 느껴지기도 하고, 하버드 대학교의 건물들과 수업 등이 모두 너무 호사스럽게 느껴졌었다. 특히 날씨 좋은 날, 학교 옆에 있는 찰스 강가에 앉아서 강을 바라보노라면 뭔가 천국에 와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그런데, 내 마음에 비친 미국에 비해 이곳 사람들 마음에 비친 한국은 뭔가 `한국전쟁` 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당시 하버드 대학교의 동아시아 문명 및 언어학과에는 한국 역사 및 한국 문학 담당 교수들이 각각 한 명씩 있었는데, 이 분들은 모두 1960년대에 미국의 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분들이다. 이 분들에게 한국은 `반찬이 김치`뿐인 저녁, 혹은 비 온 뒤의 진창길 등으로 회상되었다. 또한 TV에서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1970년대 드라마 매쉬(M·A·S·H)가 여전히 방영되고 있었다. 거기서 한국인은 움막집에 사는 매우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로 묘사되었다.하지만, 지금은 한국인에 대한 미국인의, 그리고 다른 외국인의 인상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우선 한국인과 미국인들의 한국 문화 교류 모임에서 만난 미국인들-주로 20대 초중반의 젊은 여성들-은 한국에서 살다온 경험도 있고, 한국의 쇼핑 문화를 매우 사랑하고, 한국 드라마나 대중음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한국어를 잘 하고 싶어 했고, 또 한국 남자와 사귀고 싶다고도 했다. 동양계 남자가 미국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것을 고려할 때 한국 남자의 인기는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아시아 여자들 중 한국인이 제일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한마디로 한국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외국인의 호감도가 높다는 말이다.또한 `가난한 나라` 한국, `미국의 원조를 받은 나라` 한국이라는 이미지도 많이 없어진 것 같다. 1인당 GNP가 작년 기준으로 2만4천 불 정도 되면서, 전체적인 나라의 이미지도 소위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보다는 경제적으로 훨씬 부유한 나라라는 인상을 분명하게주고 있는 듯했다. 한번은 내가 방문학자로 있는 연구소의 중국학자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내가 중국인은 돈 버는데 천재적인 DNA가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한국인이 돈은 더 잘 벌지 않느냐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 다른 유학생들도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자비로 유학 오는 한국 학생들이 많다보니 그런 인상을 주는 듯했다.14년 전에는 한국이 원래 경제 규모나 수준에 비해서 그다지 좋은 인상을 외국인에게 주지 못했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응당 그래야 할 수준의 평가를 외국인에게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출퇴근 버스에서도 승객의 절반 이상이 삼성 스마트 폰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런 저런 것들이 조금씩 쌓여서 한국의 이미지가 점점 좋아지고 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14년 전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가난했던 한국의 이야기를 미국인으로부터 들으면서 기분이 언짢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의 젊은 세대에게 한국은 세련되고 사귀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나라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2015-04-21

미국의 성폭력 관련 법, `타이틀 나인`(title 9)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며칠 전 하버드 로스쿨 석지영 교수의 `런치 토크`(lunch talk)을 듣게 되었다. 내용은 미국의 `성폭력 관련 법`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성폭력과 성희롱을 바라보는 것과는 매우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고, 학내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등에서 여러 가지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학내 성폭력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울대 수학과 교수가 학내 성폭력으로 파면되었다. 그는 또한 200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모두 11차례에 걸쳐 여학생 9명을 성추행한 혐의(상습 강제추행)로 지난해 12월 구속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고려대에서도 교수가 대학원생을 성추행했다가 사표를 제출하였다. 서울대 교수의 경우 성폭력으로 처음 구속된 사례라 더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성폭력 문제는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서 다뤄지며, 이 법은 주로 성폭력의 방지와 피해자 보호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이 문제는 `title 9`이라는 시민의 권리에 대한 법으로 다루고 있다. `title 9`은 1972년에 개정된 미국 교육법의 한 부분이며, 2002년에는 `the Patsy Mink Equal Opportunity in Education Act`로 이름이 수정되었다.석지연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성폭력`은 성에 근거한 기회의 배제 및 차별의 문제로 간주된다고 한다. 즉 성희롱이나 성폭력으로 인해서 그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업무을 원만하게 수행하지 못하거나 회사 출근 자체를 기피하게 된다면, 이는 그 사람을 직장으로부터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내 성폭력이나 성희롱도 학생을 학업이나 각종 혜택으로부터의 배제와 차별 행위로 간주된다.또한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 방법에서도 역시 `미국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경우 학내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면 학내의 `인권 센터`나 `성폭력 방지 위원회` 등을 통해서 학교에 진정이 들어가고, 될 수 있으면 외부로 소문이 나서 학교의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도록 조용히 교수의 사표를 수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각계 관계자들의 피해자에 대한 회유, 협박 등이 개입하기 때문에, 실제 가해자가 학교로부터 해임이나 징계를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는 성폭력 방지와 문제 해결을 위한 학교의 의무를 강하게 규정하고 있다. 만약 학내에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학교가 이를 해결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점이 적발이 되면, 정부는 `title 9`에 근거하여 연방 재정 지원을 끊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학교는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금이나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필자는 석지영 교수가 한 여러 가지 말들 중에서 이 부분에 가장 귀가 솔깃했다. 한국에서 `사립대학 총 수입에서 국고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16.7%`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수치는 국고보조금이 대학 수익활동의 중요한 원천 중의 하나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학내에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학교가 이를 은폐하거나 잘 처리하지 못하고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할 때, 정부가 국고보조금 지원을 중단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고보조금의 중단은 학교 재정에 큰 타격을 줄 것이므로, 학교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학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될 것이다.최근 학생들과 학내 생활과 관련해서 정말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대화에서 교수로서 내가 아는 학교와 학생들이 아는 학교가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성폭력 문제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학생들은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미국에서 성폭력을 `차별 금지 및 기회균등`의 침해행위로 다루고 있는 것을 참고하여, 정부와 교육부는 단지 성교육이나 피해자 보호와 같은 소극적인 대처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 보호`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면 한다.

2015-04-14

미국의 현금 인출기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우리나라 신문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이야기가 보이스피싱이다. 검찰청이니, 우체국이니 등을 사칭하여 피해자에게 전화를 해서 계좌 정보를 알아내거나 계좌 이체를 유도해 입금을 받은 뒤 ATM 기로 돈을 인출해 나가는 것이다. 나도 직장 전화나 핸드폰으로 보이스 피싱 전화를 몇 번 받은 적 있다. 한 번은 보이스 피싱 사기단의 연변 사투리를 지적했다가 `내가 무슨 사투리를 쓰냐`고 항의를 받기도 했다. 정부에서 보이스 피싱 피해를 대비해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기는 하지만, 보이스 피싱 사기가 끊이지 않는 것은 왜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최근에 사용했던 현금 인출기가 보이스 피싱을 막기에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내가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은행 계좌는 Bank of America(BOA)이다. BOA의 ATM 기계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서 하나는 거액 인출기이고, 다른 하나는 소액 인출기이다. 소액 인출기는 주로 체크카드를 이용하여 소액의 금액을 인출하는 것으로 인출 화폐 단위는 20달러이다. 한 번 인출할 때 800달러까지 인출이 된다. 그런데 100 달러 권으로 인출할 때는 고액권 인출 ATM기를 사용하게 된다. 이 기계를 사용할 때는 신분증을 ATM기에 부착된 스캐너에 스캔 한 뒤 인출을 한다. 만약 신분증이 없을 때는 기계에 부착된 화상통신 기계를 사용하여 은행원과 대화를 한 후 달러를 인출할 수 있다.나도 얼마 전 집 월세를 내기 위해서 1천500불을 인출하게 되었다. 소액 인출기를 사용하면 여러 번 출금해야 하고 20달러권이기 때문에 지폐수가 많아 불편할 것 같아, 고액권 인출기를 이용했다. 체크카드를 넣고 1천500백 불 인출을 요청하니, 기계에서 인출금액이 너무 많아 인출할 수 없다는 안내가 나온다. 그러면서 은행 직원과 연결하겠느냐고 질문한다. 그래서 Yes를 눌렀더니 바로 화상통신 기계를 통해서 은행원과 직접 연결되었다. 은행원은 나에게 얼마를 출금하기를 원하는지 물었고, 내가 원하는 출금액을 대답했다. 그러자 은행원은 자신이 직접 출금액을 승인하여 내가 사용하고 있는 ATM에서 돈이 출금이 되도록 조치하였다. 이 사람은 내가 출금 확인증을 받은 것을 확인한 후 화상 통화를 종료하였다.내가 현금을 인출한 시기는 은행이 문을 내린 5시 이후였다. 그럼에도 나는 ATM기를 통해서 은행원과 화상으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또한 고액권을 인출할 경우 신분증을 확인하거나 직접 화상 통화를 통해서 본인인지를 확인하여 출금이 가능하다. 만약 이런 출금 시스템이 한국의 은행에도 도입된다면, 지금과 같은 보이스 피싱이 기승을 부릴까 의문이 들었다.보통 보이스 피싱은 피해자의 정보를 탈취하여, 범인이 피해자의 계좌에서 돈을 직접 인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대포 통장 등으로 입금을 하게 한 후에 은행 ATM기를 통해서 돈을 인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백만 원 이상의 고액의 돈을 ATM기를 통해서 인출하려고 할 때 미국처럼 화상 통신을 통해서 직접 통화를 하거나 신분증을 확인하는 과정 등을 거친다면, 보이스피싱 사기단이 ATM을 이용하여 돈을 인출하려는 빈도가 낮아질 것이라고 판단된다. 자신의 얼굴이 직접 노출되는 것을 감수하고 돈을 인출하려는 대담한 도둑은 없을 것이라고 추측되기 때문이다. 또한 위조한 신분증을 사용할 경우에도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것보다는 범인을 추적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된다.보이스 피싱 금융피해의 핵심은 사기단이 피해자에게 입금을 받았다는 사실보다는,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깨닫기 전에 입금 받은 돈을 인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만약 ATM기를 이용한 현금 인출을 까다롭게 한다면 보이스 피싱 사기도 줄지 않을까 한다. 피상적인 대책이 아닌 ATM기를 이용한 불법 현금 인출을 근절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2015-04-07

미국의 비밀병기?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미국 동부의 보스턴-케임브리지 지역은 하버드, MIT, UMASS 등 유명한 대학이 많다. 학벌을 몹시 밝히는 한국인이다 보니, 이 지역에도 많은 유학생들이 있다. 유학생들 중에는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교수가 되거나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미국 취업 후 이민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도 많다. 취업 시 평균 10만 불부터 시작하는, 미국의 엔지니어 연봉은 한국 기업의 연봉과 비교할 때 큰 차이가 난다. 또한 한국과는 다른, 자유롭고 평등해 보이는 듯한 직장 분위기도 한국 졸업생들이 미국 기업 취업을 선호하게 한다. 그런데 2007년 말 미국의 금융 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지고 실업률이 높아지자, 미국 내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는 불법 이민자들을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래서 제2기 오바마 정부는 `이민 개혁법`을 추진하였는데, 그 주요 쟁점 중 하나가 전문직(H1B) 비자의 발급 요건을 까다롭게 해서 취업 이민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3년 5월 말 이민 개혁 법안을 심사해온 상원 법사위원회는 전문직 비자 발급 요건을 애초 안보다 완화하는 선에서 합의점을 찾았다. 즉, 전체 직원의 15%를 넘지 않는 선에서 기업의 H1B 비자 발급 신청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이처럼 미국 의회가 H1B 비자의 발급 요건을 완화한 이유는 2011년 한 토론회에서 있었던 일본계 미국인 과학자인 `미치오 카쿠`의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미국의 과학 교육이 붕괴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과학 기반이 경쟁력을 잃지 않는 이유는 “H1B 비자라는 비밀병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극단적으로, 그는 H1B 비자가 없으면 구글(google)이나 실리콘벨리(Silicon Valley)도 없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실제로 실리콘벨리에는 인도, 중국, 한국, 그리고 유럽 출신의 엔지니어가 다수라고 한다. 내가 아는 선배 오빠도 이민 목적으로 미국 대학에 유학을 가서 실리콘벨리에서 직장을 얻었다.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죽 써서 개 준다`는 속담이 문득 생각났다. 우리나라의 엄청난 교육 열풍의 과실이 미국의 실리콘벨리를 살찌우는 데 쓰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교육부가 통계청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2014년 초.중.고 학생의 1인당 월평균 명목 사교육비는 약24만 원이었으며, 연간 총 사교육비는 약 18조 2천억 원이었다. 한국 경제의 디플레이션 경고가 울리는 중에도 우리나라 부모의 돈지갑은 최소한 사교육에 대해서는 `화수분`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덕분인지 우리나라 중, 고등학생들은 세계수학올림피아드에 가서 1~2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처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들여 키워낸 우수한 학생들은 많은 경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그런데 이 인재들은 미국에서 박사 졸업장을 따게 되면 우선적으로 미국 기업에 취업을 하려고 하고, 실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한 때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공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국식 교육의 우수성을 칭찬하기도 하였다. 주입식이던 어쨌든 한국의 교육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수학, 과학 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키워서, 미국 사회에 그대로 갖다 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부모 등골을 빼먹으면서 길러진 한국의 인재들을 아주 적은 사회적 비용으로 이용하는 것이다.최근 정부나 정가에서는 외국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유치할 수 있도록, 우수 인재 이민 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외국의 우수 인재들을 받아들여 우리 산업 발전에 활용하면 좋다. 하지만 이보다 더 쉬운 방법은 우리나라 인재를 외국으로 유출시키지 않는 것이 아닐까? 기술자들과 과학자들에게 좀 더 좋은 연봉과 생활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우수한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기업에서 일하게 하는 것이 우리 경제를 더욱 발전시키고, 소위 `국부 유출`을 막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생각된다.

2015-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