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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대구시장 출마 자격 요건은 ‘주소 이전’

김부겸<사진> 전 국무총리의 대구시장 출마 여부를 가를 핵심 변수로 ‘주소 이전’ 문제가 꼽히고 있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김 전 총리의 출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실제 출마를 위해서는 선거법상 일정 시점까지 주민등록을 대구로 옮겨야 한다. 공직선거법상 광역단체장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60일 전까지 주민등록상 주소를 해당 지역에 둬야 한다. 6월 3일 선거 기준으로는 60일 전이 4월 5일이다. 다만 4월 5일이 일요일인 점을 고려하면 행정 처리가 가능한 4월 3일 금요일까지는 주소 이전이 완료돼야 한다. 주소 이전은 인터넷으로도 가능하지만 주민등록 초본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담당 공무원 확인 절차가 필요해 사실상 근무일 기준으로 마감된다. 시한 내에 주민등록을 대구로 옮기지 않으면 출마 자체가 불가능하다. 통상 주소 이전은 실제 이사를 동반하는 것이 원칙이며, 실거주지가 아니더라도 주소를 옮기려면 주택 매매나 전월세 계약 등 일정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김 전 총리 측에서는 “이사와 관련된 움직임이 아직 관측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현재 김 전 총리의 주민등록상 주소는 대구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총리는 지난 2021년 9월 보유하고 있던 대구 수성구 자택을 매각한 뒤 서울로 이사하면서 주민등록도 함께 이전했다. 당시 김 전 총리가 대구를 떠난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에서는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이후 김 전 총리는 2023년 3월 경기 양평에 주택을 신축해 이주한 뒤 현재까지 거주 중이다. 김 전 총리의 부인은 대구 거주 중이던 2021년 5월 양평 임야 618㎡를 1억9000여만 원에 매입했었다. 민주당 대구시당 관계자는 “최근 양평 주소까지 확인했다”면서도 “주민등록상 주소는 개인정보에 해당해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공천 일정 자체는 최대한 늦출 수 있지만, 법적 요건인 주민등록 이전 시한은 넘길 수 없다는 점에서 김 전 총리의 결단 시점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2026-03-17

이정현 대구 컷오프 강행 예고… 최고위 ‘거부권’ 만지작?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부산시장 후보 공천에서 한발 물러섰지만 대구시장 현역 중진들에 대해서는 ‘컷오프(공천 배제)’ 강행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이정현 공관위원장이 “당의 정수리를 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가운데, 당 지도부는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하며 제동을 걸고 나서 정면충돌이 불가피해졌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대구시장 공천 심사와 관련해 ‘현역 중진 배제’ 카드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이날 JTBC와의 통화에서 “당의 변화를 위해서는 누군가는 나서서 균열을 내야 하고 그것을 우리의 본산인 대구에서 해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정수리를 제대로 치지 않으면 당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며 “절대 지체 없이 혁신 공천을 해나갈 것이며, 변화를 위해 죽을 각오로 임할 것”이라며 컷오프 강행을 강력히 예고했다. 주호영(6선)·윤재옥(4선)·추경호(3선) 등 거물급 중진이 버티고 있는 대구를 시작으로 당내 세대교체 흐름을 본격화하려는 구상으로 읽혀진다. 앞서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을 컷오프하려다 부산지역 의원 17명 전원과 공관위 내부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전격적으로 ‘경선’을 치르기로 입장을 바꿨다. 그 후 이 위원장은 이날 예정됐던 공관위 전체 회의마저 취소하고 ‘숨 고르기’에 들어갔으나 대구만큼은 중진 컷오프를 밀어붙이겠다는 생각을 다진 것으로 보인다. 이 위원장의 거침없는 쇄신 의지에 당 지도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텃밭의 거물들을 무작정 잘라낼 경우 보수 분열과 선거 참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원내 지도부 투톱은 이미 전날부터 공관위를 향해 견제구를 날린 상태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이기는 선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경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고, 정점식 정책위의장 역시 “당헌·당규상 기본 원칙은 경선”이라며 “결국 최고위 의결을 거쳐야 공천장이 나가는 것”이라고 뼈 있는 말을 남긴 바 있다. 당내에서는 이 위원장이 당지도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구 중진 컷오프를 의결할 경우 최고위원회가 재의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장동혁 대표가 이 위원장에게 ‘전권’을 약속했으나 선거 판세가 흔들리는 상황을 좌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당 지도부와 공관위 간의 정면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세리기자 ksr1@kbmaeil.com

2026-03-17

김부겸 띄우기 나선 민주당…“지도부, 김부겸 자택 방문해 출마 요청”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시·도당위원장협의회 회의에서 대구시장 선거를 언급하며 예비후보 신청자가 없는 지역에서 추가 공모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보수의 심장인 대구시장을 겨냥해 ‘김부겸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직접 김 전 총리 집까지 찾아가 대구시장 출마를 호소했다. 국민의힘이 대구시장 공천 과정에서 중진의원 컷오프설 등으로 파열음이 나오자 이를 파고드는 모습이다. 민주당 한민수 당대표 비서실장은 17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민주당 지도부와 친명계 핵심이 김 전 총리의 경기도 양평 자택을 찾아 대구시장 출마를 정중히 요청했다’는 보도에 대해 사실 여부를 묻자 “지도부 범위를 어디까지 보느냐에 따라서 사실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전 총리 자택을 직접 찾지는 않았지만 지도부가 방문한 건 맞다는 취지다. 한 실장은 “김 전 총리는 정말 훌륭하고 능력이 있는 분이다.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이재명 정부 성공을 위해 6·3 지방선거에서 압승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 달라”며 “그동안 친분이 있던 여러 의원들이 그런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또 당 차원에서 김 전 총리를 설득하고 있다고도 했다. 민주당의 요청에 김 전 총리도 출마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르면 이번주 주말 출마 선언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김 전 총리의 옛 보좌진들이 대구에 선거 사무실과 숙소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지역 기초단체장 출마를 고심 중인 민주당 한 관계자는 “김 전 총리가 출마를 선언한다면 ‘붐업’ 차원에서 기초단체장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국민의힘이 약체 후보를 대구시장으로 공천할 경우 ‘국민의힘 심판론’이 작용해 대구에서 민주당 바람이 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6-03-17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②문예부흥의 발로 ‘일리리어니즘’

1805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육군은 아드리아해의 북쪽 이탈리아와 경계를 이루는 이스트라반도와 달마티아 해안지역을 접수해버렸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두브로브니크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사바강 남쪽지역과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까지 접수한 나폴레옹은 이 지역을 통째로 묶어 ‘일리리아’라며 식민지배의 속주라고 분명히 했다. 그런데 나폴레옹의 이러한 역사적 무지가 이상한 방향으로 바람을 탔다. 추호의 의심도 없이 슬라브민족 그들의 선인이 일리리아인이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고대 로마와 비잔티움제국 당시에 이곳에서 살아가던 고대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이름을 도매금으로 몰아서 붙여버린 것이다. 자칫 남슬라브민족 전체가 일리리아민족에서 파생된 것처럼 되어버렸다. 이즈음에서 크로아티아인을 일리리어니즘으로 일취월장 시키는 일이 일어났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 이곳을 점령한 합스부르크제국마저도 이곳에 괴뢰정권을 만들어 왕국 이름을 ‘일리리언왕국’이라며 역사를 우습게 만들고 말았다. 뒤이어 크로아티아 언론이 한발 더 나아가 ‘일리리어니즘’을 핵심 주제로 각 지역의 지식인들의 주장을 시리즈로 싣는다. 모든 슬라브인이 살아가는 땅은 일리리아인 혹은 크로아티아인 영토라는 주장까지 대두된다. 이를 계기로 스스로 발칸반도 선주민을 받아들이면서 원 뿌리를 더 먼 과거까지 박아버린 셈이다. 그들로서는 나폴레옹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었을 법하다. 용기백배한 크로아티아 지식인들이 도서관을 개관하면서 문예부흥에 기치를 세우고 성직자들을 동원해 일리리아 음악과 전설과 설화까지 샅샅이 뒤져 살려냈다. 일리리아인의 전설을 동원해 흙으로 돌아간 지 수천 년이 지난 전사를 일으켜 세워 크로아티아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마치 광개토대왕이 중국인으로 변신해 되살아나고, 알렉산드로스가 하등 상관없는 지금의 마케도니아공화국 민족영웅으로 되살아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인과 세르비아인, 그리스인들 복장 터지는 일일 게다. 크로아티아 귀족은 물론 중산층까지 지지에 나서며 크로아티아 전역은 물론 슬로베니아와 가만히 있는 보스니아까지 합쳐 일리리아 남슬라브의 나라를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19세기 초, 언론인들까지 가세한 ‘일리리아운동’은 언어의 통일로 일련의 성공을 거두면서 정치와 종교,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크로아티아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자 이들의 꿈이 확대되면서 남슬라브 단일국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이들의 이상은 크로아티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분포해 살아가던 세르비아인과 슬로베니아인, 슬로보니아지역, 달마티아까지 지지를 이끌어 냈다. 실로 나폴레옹과 일리리아의 힘이었다. 그리고 크로아티아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1835년 ‘크로아티아 신문’이 발행된다. 뒤이어 문학잡지까지 세상에 빛을 보면서 남슬라브어의 통일과 남슬라브민족의 이상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설정되고 힘을 얻는다. 이에 귀족들까지 합세하자 크로아티아의 넓은 지역과 심지어 세르비아까지 즐겨 사용하던 ‘쉬토방언’으로 쓴 논문 등을 통해 미래의 크로아티아 통일국가에 대한 청사진까지 세상에 빛을 본다. 남슬라브민족 쉬토방언이 표준어로 성은을 입은 것이다. 크로아티아의 일리리아주의와 슬로베니아의 그들만의 리그는 세르비아의 입장에서 하룻밤의 꿈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아티아가 일리리아주의를 버리지 않았던 것은 민족의 단합에 이보다 더 좋은 꺼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1848 파리혁명과 독일혁명이 일어나고, 이를 지켜본 크로아티아인은 헝가리와의 충돌을 피하지 않았다. 남슬라브족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슬로베니아는 물론 세르비아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스스로가 주역이 되어야 한다며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늘 자국 내 이익과 시류에 휘둘리는 인간들이 있게 마련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어쭙잖은 것을 벤치마킹해 크로아티아의 전 지역에서 헝가리어를 학교와 관공서에서 공식어로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며 법안까지 만들어 통과해버렸다. 기가 막힌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은 오스트리아에 달려가 징징 짜면서 하소연 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빈 정부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네 말도 맞고, 저들 말도 맞다 했다. 이를 비판하는 세력도 있게 마련이었다. 1843년 크로아티아 이반 쿠쿨레비치를 비롯한 정치가와 지식인들이 크로아티아 국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현실과 정체성을 장탄식했다. 그리고 남슬라브민족의 단결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고, 단합을 위한 민족회의를 최초로 개최했다. 이반 쿠쿨레비치의 연설이 대 헝가리 투쟁의 전환점이 된 것이다. 그의 간절한 호소와 노력으로 1845년 크로아티아 자치정부가 부활을 맞았고, 헝가리에 빼앗긴 주권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민족의 자존심인 종교 역시 헝가리교구에서 벗어나 자그레브 주교관구의 대주교관구 승격도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6-03-17

7만 원의 회귀(回歸)

6개월 전, 어느 퇴색한 보도블록 위에서 마주쳤던 무구한 물질의 부름을 기억한다.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낙엽처럼 떨어져 나와 길 위를 부유하던 7만 원. 그것은 누군가의 소소한 성찬(盛饌)이었을 수도, 혹은 팽팽하게 당겨진 가계부 한 귀퉁이의 절박한 단추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무연(無緣)의 재화를 집어 들며, 그것이 내 소유가 아님을 인지하는 찰나의 도덕적 긴장을 느꼈다. 욕망의 사행성(斜行性)은 언제나 달콤한 속삭임을 동반하지만, 나는 그 서늘한 유혹을 뒤로하고 인근 지구대의 문을 밀었다. 낡은 지폐들이 경찰관의 손을 거쳐 장부의 건조한 기록으로 바뀌던 순간, 나는 비로소 그 돈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것은 도덕적 결벽이라기보다는, 타인의 상실감을 나의 횡재로 치환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윤리적 예의였다. 시간은 계절의 결을 따라 묵묵히 흘렀다. 초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만추(晩秋)의 낙엽으로, 다시 엄혹한 동토(凍土)의 침묵으로 이어지는 동안 길 위의 기억은 망각의 심연 속으로 서서히 침잠했다. 대가 없는 선의는 잊혔을 때 비로소 순수해지는 법이다. 나는 그 7만 원이 누군가의 품으로 돌아갔으리라 막연히 짐작하며, 그 선량한 결말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오늘, 휴대폰 화면 위로 날아든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고요한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관할 경찰서에서 온 연락이었다. 6개월의 유실물 공고 기간이 만료되어, 법적 절차에 따라 그 재화의 소유권이 습득자인 내게 귀속되었다는 전언이었다. 잊고 있었던 소식이 전령처럼 찾아온 순간, 내 마음속에는 예기치 못한 봄기운이 차올랐다. 이 7만 원의 회귀는 물질적 증식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6개월이라는 시간의 숙성 과정을 거쳐 내게 돌아온 일종의 ‘철학적 이자’와도 같았다. 내가 사회라는 거대한 유기체 속에 던져 넣었던 작은 신뢰의 씨앗이 반년의 겨울을 견디고 마침내 내 집 앞마당에 피어난 한 송이 봄꽃 같았다. 우리는 흔히 세상이 각박하다고 말하며 타인을 경계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러나 이번 일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선의의 그물망’이 여전히 견고함을 증명해 주었다. 법이 정한 6개월이라는 기간은, 진정한 주인을 찾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자 동시에 습득자의 정직함을 시험하는 정화(淨化)의 시간이었다.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이제 이 돈은 ‘길에서 주운 횡재’가 아니라 ‘정당한 기다림 끝에 얻은 보상’이라는 새로운 명분을 입게 되었다. 창밖은 어느덧 연두색 생명이 움트고 있다. 목련의 봉오리가 부풀어 오르고 산수유의 노란 웃음이 번져가는 이 계절, 7만 원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화폐 단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마치 자연이 내게 건네는 뒤늦은 세뱃돈 같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바르게 살아가려 애쓰는 선량한 시민에게 하늘이 내리는 소박한 격려사처럼 느껴졌다. 삶은 수많은 우연의 중첩이다. 하지만 그 우연을 어떤 빛깔로 채색하느냐는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다. 6개월 전 내가 그 돈을 사유화했다면, 그것은 찰나의 유희로 사라졌을 것이며 내 마음 한구석에는 씻기지 않는 앙금 같은 부채감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적인 신뢰의 영역에 그 돈을 기탁함으로써, 나는 반년 동안 ‘정직’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마음의 금고에 예치해 두었던 셈이다. 뜻하지 않은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번 소식은 나로 하여금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타인의 작은 친절들, 혹은 내가 세상에 던졌으나 잊고 있었던 사소한 배려들이 어쩌면 지금도 시간의 터널을 지나 내게로 돌아오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믿음. 그 믿음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이제 나는 경찰서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려 한다. 그곳에서 만날 7만 원은 반년 전의 그 낡은 지폐들이겠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봄의 전령으로 보일 것이다. 나는 이 돈을 단순히 소비의 도구로 쓰지 않으려 한다. 이 기분 좋은 소식을 기념하기 위해 작은 일부라도 다시 세상의 그늘진 곳에 나누는 ‘선의의 연쇄 작용’을 고민해 본다. 꽃향기가 만개한 봄날, 길 위에서 시작된 작은 인연이 이토록 아름다운 회귀로 마침표를 찍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김경아 작가

2026-03-17

AI시대, 관리자는 왜 사라지는가

산업 현장에서 회의의 풍경과 보고의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최근 산업 현자에서 인공지능의 존재감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과거 생산회의는 보고서와 경험 많은 관리자의 판단에 의존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실시간 데이터 화면이 회의를 대신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설비 가동률, 품질 편차, 안전 지표가 자동으로 분석되고 이상 징후까지 예측된다. 사람은 설명하기보다 화면을 확인하고 방향을 논의한다. 관리 방식 자체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의 확산은 단순히 업무 효율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 조직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가장 큰 변화를 맞는 영역은 ‘관리’라는 기능이다. 전통적인 관리자는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상위 조직에 보고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데이터 수집과 분석은 이제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한다. 보고를 위해 존재하던 관리 기능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많은 조직에서 관리자는 문제 해결자라기보다 정보 전달자로 머물러 있었다. 현장에서 올라온 내용을 정리해 보고하고, 지시 사항을 다시 전달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AI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순간 이러한 중간 단계는 급격히 축소된다. 정보의 흐름이 수직 구조를 거치지 않고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관리자의 소멸을 의미하기 보다 역할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제 관리자의 가치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질문하는가’ 에서 결정된다. AI는 무엇이 발생했는지 알려주지만, 왜 중요한지 판단하지는 못한다. 조직의 방향성과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제조 현장에서 개선 활동이 성공하는 조직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관리자가 답을 제시하기보다 문제를 정의하도록 돕는다는 점이다. “왜 이 공정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가”, “이 데이터가 의미하는 위험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이 조직의 사고 수준을 높인다. AI는 분석을 제공하지만, 질문의 수준이 낮으면 결과 역시 평범할 수밖에 없다. 다가오는 AGI(일반인공지능·인간 수준의 AI) 시대에는 일정 관리, 보고서 작성, 성과 분석 같은 관리 업무 상당 부분이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관리자의 필요성이 줄어든다는 의미가 아니라, 관리자의 존재 이유가 달라진다는 신호에 가깝다. 통제와 감독 중심의 관리자는 줄어들고, 방향을 설계하고 사람을 연결하는 리더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질 것이다. 결국, AI 시대의 조직은 관리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관리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게 될 것이다. 데이터를 관리하던 시대에서 사람과 의미를 관리하는 시대로 이동하는 셈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조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관리가 아니라 더 깊은 리더십이다. AI가 관리 업무를 대신하기 시작한 지금, 조직이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관리자를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관리자가 앞으로 필요해질 것인가’이다. 미래의 관리자는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묻고 사람들의 가능성을 연결하는 질문자가 될 것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3-17

경험의 밀도가 도시공간을 살린다

공실의 시대, 사람들은 왜 더 이상 오지 않는가? 공실률 70%, 구도심의 쇠퇴, 죽어가는 상권. 이제는 너무 익숙한 말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인구감소와 경기침체로 설명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의 공실은 단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20세기 공간이 21세기의 삶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겨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과거의 도시는 기능에 따라 고정되고 분리되었다. 상가는 소비를 위한 곳, 극장은 영화를 보는 곳, 사무실은 일하는 곳, 학교는 배우는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 기능을 따라 이동했고, 공간은 그 목적에 맞게 작동했다. 그러나 오늘의 삶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일하고 쉬고 만나고 소비하는 행위는 한 공간 안에서 겹쳐지고,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도 끊임없이 중첩된다. 많은 상업공간은 이런 변화에 아직도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공실이 늘어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나온다. 소비가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바깥 세상의 리듬이 초연결과 초개인화로 바뀌는 동안에도, 많은 상업공간은 여전히 진열과 판매 중심의 오래된 문법에 머물러 있다. 결국 사람들은 더 편리하고 더 빠른 방식으로 대체 가능한 기능들을 먼저 온라인으로 옮긴다. 극장은 OTT에 밀리고, 활자 신문은 인터넷 기사로 대체되며, 단순 판매 중심의 상점은 플랫폼 커머스에 흡수된다. 많은 공간이 이제 사람들에게 굳이 찾아갈 이유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바로 그 지점을 읽어내는 기준이 경험의 밀도다. 경험의 밀도란 단순히 사람이 많이 오는지를 뜻하지 않는다. 그 공간에서만 가능한 감각, 관계, 기억, 머무름, 우연성이 얼마나 두텁게 형성되는가를 뜻한다. 좋은 시장과 식당, 광장과 복합공간은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와 현장의 분위기, 장소의 기억을 함께 만든다. 사람은 상품만 사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 머물고 어떤 장면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도 그곳을 찾는다. 결국 공간의 경쟁력은 기능이 아니라 얼마나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날 미술관의 변화는 중요한 힌트를 준다. 과거의 미술관이 완성된 작품을 조용히 바라보는 공간이었다면, 오늘의 미술관은 작품이 저장되고 보존되고 운반되는 과정까지 감상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수장고형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이는 현대인이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것이 유지되고 관리되는 과정 전체를 경험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식당과 상점도 여기서 배울 수 있다. 음식을 만드는 손길, 재료를 다루는 과정, 물건이 선별되고 포장되는 장면이 드러날 때 공간은 더 깊고 풍성한 경험의 장소가 된다. 결국 공실의 문제는 단순한 부동산 문제가 아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경험의 밀도를 담아내지 못한 공간들이 비워지는 현상이다. 도시 재생의 핵심도 빈 점포에 어떤 업종을 넣을 것인가가 아니라, 사람들을 머물게 할 어떤 장면과 경험을 기획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기능만 남은 공간은 죽고, 서사와 체류가 있는 공간만이 살아남는다. 비어가는 것은 점포가 아니라 경험의 밀도다. /조관필 한동대 교수

2026-03-17

장동혁 따라다니는 ‘야당심판론 프레임’

요즘 국민의힘을 보면 선장 없는 난파선을 보는 것 같다. 대구·부산·충청 등에서 공천심사를 둘러싼 파열음이 당을 산산조각 내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리더십은 찾아볼 수가 없다. 충격적인 것은 국민의힘 공관위가 대구시장 선거에서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충북도지사 선거에서는 김수민 전 의원을 공천하기 위해 무리한 컷오프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대구시장에 출마한 주호영 의원은 “유튜버 고성국씨가 이정현 전 의원을 공관위원장에 추천했고, 이진숙 전 위원장이 고씨와 손잡고 대구에서 선거운동을 한다”고 했고, 김영환 충북지사는 “특정인을 정해놓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고 했다. 김 지사가 언급한 특정인은 장동혁 대표가 추진한 당명교체 작업 실무를 맡았던 김수민 전 의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장 대표와 관련있는 공천잡음이다. 선거에서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없을 순 없지만, 이렇게 인위적으로 공관위가 현직 도지사까지 컷오프하며 특정인 공천을 시도한다는 의혹을 산 사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지난주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모여서 ‘윤 어게인 반대’ 결의문을 채택한 것도 이러한 공천갈등을 없애기 위한 선제조치 성격이 강하다. 국민의힘은 지금 당 내분을 촉발시킬 뇌관이 곳곳에 있다. 국민의힘 윤리위에는 지난달 제명된 한동훈 전 대표의 대구 서문시장 방문에 동행한 김예지·박정훈·배현진·우재준 의원 등 친한계 인사 8명이 제소돼 있다. 그리고 서울시당 윤리위에서 ‘탈당 권유’ 중징계를 받은 고성국씨의 이의 제기 사건도 윤리위의 재심의 단계에 있다. 장 대표는 지난주 최고위원회의에서 “윤리위원회에 제소된 모든 징계 사건에 대해 지방선거가 끝날 때까지 추가적인 징계 논의를 하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그의 진의(眞意)는 달리 해석되고 있다. ‘현재 진행형’인 징계 논의는 보류하되, 이미 집행이 완료된 징계와 당내 인사에 대해서도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장 대표가 ‘절윤’의 실천방안인 한 전 대표 제명 철회와 지난주 의원총회에서 나온 윤민우 윤리위원장,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 등에 대한 인사 조치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최근 ‘혁신 선대위’ 출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를 장 대표가 아닌 새 얼굴로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흥행을 위해 장 대표를 보완하면서 유권자에게 쇄신 이미지도 줄 수 있는 인사가 선대위에 영입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지금 여권은 친여 유튜브에서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와 검찰보완 수사권 거래설’을 제기한 이후 혼란에 빠져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에 대한 반사이익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유권자 시선이 야당의 내분과 공천잡음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인적 쇄신을 통해 극우세력과의 실질적인 ‘절연’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민주당이 제기하고 있는 ‘야당 심판론’은 6·3 선거일까지 계속 기승을 부릴 것이다. 선거일이 이제 80일도 남지 않았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3-17

경북 초대형 산불 1년···불행한 일 다시 없어야

오는 22일이면 작년 경북 의성에서 시작한 경북 북부지역 대형산불이 발생한 지 꼭 1년이 된다. 2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북 산불은 산림 피해 면적만 해도 역대급이다. 축구장 6만3000개의 산림을 불태웠다. 2만명이 넘는 주민이 긴급 대피했고, 주택과 농작물, 축사, 농기계 등 농민의 생계수단도 송두리째 앗아 가버렸다. 인구감소가 가속화 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아직 그 후유증에 시달리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도 많다. 경북 북동부 5개 시군을 6일간 휩쓸고 간 산불은 성묘객의 작은 실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엄청난 재앙을 부를 수 있음을 일깨워 준 사고라 하겠다. 봄철은 등산 등 야외활동이 많아지고 기후마저 건조해 산불이 발생할 위험이 매우 높다. 지난 10년간 발생한 대형산불 중 74%인 28건이 봄철에 발생했다. 특히 지구촌 기후온난 후 기상 이변이 잦아지면서 산불발생은 대형화하는 추세다. 산불 발생의 원인은 입산자의 실화나 쓰레기 소각. 담뱃불, 성묘객 실수 등 매년 반복 지적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조금만 조심하면 피해를 피할 수 있는데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당국의 산불 예방홍보와 주민들 경각심 고취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14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정부는 ‘대형산불 특별대책 기간’으로 정하고 대대적인 산불 대응체계 점검에 나선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16일 대구와 경북을 방문해 각기관의 산불 대응체제 점검과 시민을 대상으로 한 예방 캠페인도 벌였다. 산불이 나면 산림당국과 지자체가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진압에 나서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끄는 속도보다 번지는 속도가 더 빨라 진화 효과가 더디다. 그래서 산불은 진화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경북도는 올해부터 산불 대응 미흡 시군에 대해 재정적 페널티를 부과한다고 한다. 책임있는 행정을 권고하는 조치다. 경북도도 작년 뼈아픈 경험을 교훈삼아 올해는 산불 발생 제로 해로 정했다고 한다. 각오가 큰 만큼 성과가 있길 바란다.

2026-03-17

사교육비가 남긴 교육 격차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 교육에 대한 열망은 끝이 없다. 나는 비록 못 배웠지만 자식만큼은 반드시 공부시키겠다는 부모의 마음이 결국은 사교육 열풍으로 이어진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한 과외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과외를 전면금지한 7·30조치를 내린다. 공직자 자녀가 과외를 하면 공직자가 공직에서 물러나도록 강력한 법규까지 만들었지만 시중에는 암암리에 과외가 성행했다. 7·30 조치는 2000년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위헌판결을 내려 2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수능에 등장하는 킬러 문항이 과외를 증폭시킨다는 여론으로 한때 정부는 수능시험 문제에 킬러문항을 배제하는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 킬러문항이란 최상위권의 변별력을 높일 목적으로 출제되는 초고난이도 문제다. 학원의 도움없이는 풀기가 어렵다. 강남의 유수학원에 학생들이 몰려드는 이유라고도 한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초중고생이 쓴 한해 사교육비 규모가 밝혀졌다. 27조원 정도다. 5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여 그 원인을 두고 설왕설래다. 교육부는 초등 돌봄이나 방과 후 학교 확대 등 정책적 효과가 일부 나타난 것으로 해석을 한다. 그러나 일각서는 학령인구 감소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준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문제는 사교육비 총액의 감소에도 고소득층일수록, 학업 성취도가 높을수록 사교육비가 많이 드는 것으로 조사돼 사교육비의 사회적 폐해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성적 상위 10%가 월 66만원 쓸 때 성적 하위 20%는 월 32만원을 써 두 배 차이가 났다. 계층 간 교육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3-17

국힘의 비정상 공천, 선거흥행에 도움 되겠나

지방선거 시·도지사 공천을 놓고 국민의힘 내분이 점입가경이다. ‘이정현호’ 공천관리위원회가 대구지역 중진의원들에 이어 현직 광역단체장에게까지 컷오프(공천 배제) 칼을 빼 들자 후유증이 극한 상태로 치닫고 있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지난 16일 충북지사 후보 공천에서 김영환 현 지사를 컷오프하고 추가 공천을 접수하기로 했다. 정당 사상 현직 광역단체장이 경선 없이 탈락한 것은 사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현역 단체장을 공천에서 배제할 경우 해당 지역 선거 흥행에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정현 위원장이 추가 공천접수를 하려는 이유가 당명 교체 작업 실무를 담당했던 특정인을 낙점하기 위한 의도라는 말이 나온다. 이 위원장은 이날 부산시장 공천심사에서도 박형준 부산시장을 컷오프했다가 반발에 부딪히자 17일 다시 주진우 의원(부산 해운대갑)과 경선을 시키겠다고 결정을 번복했다. 박형준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이 위원장을 향해 “당을 망하게 하는 행위이자 망나니 칼춤”이라며 공개 반발했었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지난주 대구시장 공천 심사 때는 현역 중진 의원 3명을 컷오프 하려다 일부 공관위원의 반발로 결정을 미뤘다. 대구 정치권에서는 이 위원장이 사실상 특정 후보를 공천하기 위해 이러한 컷오프 시도를 했다고 보고 있다. 대구시장 예비후보인 6선의 주호영 의원은 채널A 유튜브에 출연해, “(이정현 위원장은)대구 선거를 망치고 민주당에 대구시장을 상납하려고 작정한 사람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17일 회의를 열어 대구시장 공천 등을 다시 논의할 계획이었지만 회의 일정을 연기하겠다고 공지했다. 현재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이정현 공관위원장에 대한 대구지역 민심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상식적인 원칙과 절차 없이 특정인을 밀어주는 듯한 공관위 회의를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으니 파열음이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이고 선거 흥행에 도움이 되는 공천심사를 하길 바란다.

2026-03-17

포항문화재단-아트플랫폼 한터울, 전통예술 현대화로 지역 문화 새 지평

포항에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문화예술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아트플랫폼 한터울(대표 김도연·이원만)과 포항문화재단(대표이사 이상모)이 경북문화재단 주관 ‘2026년 공연장상주단체지원사업’에 선정돼 지역 특화 공연예술 프로그램 공동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번 협력은 포항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전통예술의 현대적 재해석과 생태 및 역사 기반의 콘텐츠를 창출하며 지역 문화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1988년 사물놀이와 풍물놀이 단체로 시작한 한터울은 2019년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며 교육 및 공연 분야에서 독창적인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환경 문제와 전통 설화를 결합한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어 ‘지지배배(知知拜拜)’는 흥부전의 제비노정기를 조류 보호 메시지로 재해석한 창극으로, 어린이들이 판소리를 배우며 생태 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또한 ‘바다가 그랬어’는 멸종된 독도 강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체험형 워크숍으로, 공연 관람 후 바다 생태계를 탐구하며 예술과 교육의 접점을 확장한다. 한터울의 대표작인 국악 가족뮤지컬 ‘강치전’은 2023년 전국 순회공연을 통해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전국에 알린 성공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지원사업 선정을 계기로 양 기관은 5000만 원의 도비를 확보하며, ‘상생프로젝트-포항별곡’을 통해 포항의 역사, 신화, 생태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계획이다. 특히 탈, 전통연희, 동해안별신굅 등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가족뮤지컬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전통의 동시대성 확장’과 ‘지역 문화 생태계 조성’을 추구한다. 주요 사업으로는 △창작연희 ‘호랑이는 어디로 갔을까’ △우수 레퍼토리 ‘강치전’ 재개막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 ‘바다가 그랬어’ 등이 있다. ‘호랑이는 어디로 갔을까’는 탈춤, 굿, 타악연희, 현대무용을 결합한 작품으로, 사라진 존재를 기리는 굿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굿 음악 라이브 연주와 독창적인 호랑이 움직임이 관전 포인트다. 국악 가족뮤지컬 ‘강치전’은 울릉도 강치를 소재로 한 이야기로, 2019년 초연 이후 3년 연속 ‘방방곡곡 문화공감·국공립예술단체 우수공연’에 선정되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2022년에는 OST 발매와 유아문화교육사업 선정 등으로 예술의 대중화와 교육적 가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바다가 그랬어’는 ‘강치전’에서 영감을 받은 체험 프로그램으로, 공연 관람 후 바다 생태계를 주제로 한 워크숍을 진행해 예술과 교육의 연계를 강화한다. 김도연 한터울 대표는 “포항문화예술회관 상주단체로 선정돼 기쁘다”며 “전통예술의 현대적 변주를 통해 시민과 소통하고, 지역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모 포항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이번 협업이 포항의 공연예술 기반을 확장하고, 시민에게 다채로운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6-03-17

대구지방조달청, 대구 엑스코서 ‘양방향 밀착 컨설팅’⋯조달기업 원스톱 지원

대구지방조달청이 17일, 18일 양일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2026 원스톱기업지원박람회’에 참가해 조달기업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양방향 밀착 컨설팅’을 실시한다. 이번 박람회에서 대구지방조달청은 조달시장 진입을 희망하는 기업과 계약 행정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 및 공공기관의 애로사항을 현장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할 계획이다. 특히 조달 입문 기업을 위해 ‘공공조달 길잡이’ 전담관을 배치한다. 해당 제도는 기술력은 있지만 정보가 부족한 기업을 대상으로 조달시장 진입부터 성장까지 전 과정을 1:1로 지원하는 맞춤형 서비스다. 벤처나라 등록과 혁신제품 지정 등 기업 상황에 맞춘 ‘성장 사다리’를 제공해 지역 기업의 판로 개척을 돕는다. 또한 올해 2월 도입된 ‘국가계약 고충처리반’도 함께 운영된다. 이 제도는 계약 체결 및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규정 해석 문제나 기관과 기업 간 분쟁 가능성을 사전에 진단하고,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박람회 참가 기업들은 별도의 기관 방문 없이 조달청 부스에서 조달시장 진입 지원부터 계약 관리, 사후 고충 해결까지 전반적인 조달 업무에 대한 상담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다. 윤경자 대구지방조달청장은 “공공조달 진입을 돕는 ‘길잡이’와 갈등 해결 ‘해결사’를 통해 지역 기업 성장을 지원하겠다”며 “현장 중심의 밀착 컨설팅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6-03-17

대구북부소방서 119구조대, ‘전국 최강’ 입증⋯2년 연속 최우수 선정

대구북부소방서 119구조대가 전국 최고 수준의 구조 역량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대구소방안전본부는 소방청이 주관한 ‘2025년 전국 구조대 평가’에서 대구북부소방서 119구조대가 최우수 구조대로 선정됐다고 17일 밝혔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최상위 성적이다. ‘전국 최강 구조대’ 평가는 2023년부터 매년 시행되는 구조 분야 최고 권위의 평가로, 시·도 대표 구조대를 대상으로 △구조 활동 전문성 △장비 운용 능력 △팀워크 및 현장 지휘 △안전관리 등 재난 대응 전반을 종합 심사한다. 대구북부소방서 119구조대는 건물 붕괴, 교통사고, 수난 사고 등 다양한 대형·복합 재난 상황을 가정한 실전형 고강도 훈련을 상시화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개인 역량을 넘어 체계적인 시스템에 기반한 조직적 대응과 팀워크를 바탕으로 실제 현장에서 신속하고 정확한 구조 활동을 펼친 점이 주목받았다. 엄준욱 대구소방안전본부장은 “2년 연속 전국 최우수 구조대 선정은 대원들의 헌신과 노력의 결과”라며 “앞으로도 시민이 위급한 순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신뢰받는 소방이 되도록 현장 대응 역량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6-03-17

2027학년도 지방 의대 지역학생 선발 1698명 전망⋯5년 전보다 2.2배

2027학년도 지방권 의과대학의 지역학생 선발 규모가 1700명에 가까운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5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로 지방 의대 입시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입시업계에 따르면 2027학년도 전국 지방권 27개 의대의 지역학생 선발 규모는 지역인재 전형 1232명과 지역의사제 466명을 합쳐 총 1698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는 2022학년도 766명과 비교하면 932명 늘어난 것으로 약 121.7% 증가한 규모다. 지방 의대 전체 모집 인원 가운데 지역학생 선발 비율도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지방권 의대 지역학생 선발 비율은 2022학년도 38.0%에서 2023학년도 47.9%, 2024학년도 50.7%, 2025학년도 59.9%, 2026학년도 61.0%로 꾸준히 상승했다. 2027학년도에는 68.2%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2028학년도에는 69.6% 수준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권역별로 보면 2027학년도 지역학생 선발 규모는 호남권 440명, 부울경 403명, 충청권 360명, 대구경북 292명, 강원권 154명, 제주권 49명 순으로 예상된다. 지역학생 선발 확대에 따라 지방 일반계 고교의 의대 합격 규모도 늘어날 전망이다. 지방권 일반고 기준 학교당 의대 합격자는 2026학년도 평균 1.2명 수준에서 2027학년도에는 1.7명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분석된다. 권역별로는 제주권이 학교당 평균 1.0명에서 2.2명으로 가장 큰 폭의 증가가 예상되며 강원권은 1.1명에서 1.8명, 충청권은 1.3명에서 1.9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대구경북은 1.2명에서 1.6명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선발 규모 확대에도 불구하고 경쟁은 오히려 더 치열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방 의대의 지역학생 선발이 늘어나면서 재수생 등 N수생 지원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지방권 의대 지역학생 선발 규모가 크게 확대되면서 지방 일반고의 의대 합격 기회도 늘어날 수 있다”면서도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N수생들이 대거 지원할 가능성이 있어 실제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 의대의 경우 수도권 의대보다 N수생 합격 비율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며 “지역인재 전형 규모 유지 여부와 지역의사제 선발 규모가 향후 합격선과 경쟁률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6-03-17

대구 학교폭력 피해응답률 1.0%⋯전국 최저 수준

대구시교육청이 실시한 ‘2025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대구지역 피해응답률이 1.0%로 전국 평균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교육청은 2025년 9월 22일부터 10월 21일까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49개 표본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피해응답률이 1.0%를 기록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는 전국 17개 시·도 평균 3.0%보다 2.0%p 낮은 수준이다. 이번 조사에는 대상 학생 9567명 중 92.2%인 8825명이 참여해 전국 평균 참여율(76.6%)보다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학교급별 피해응답률은 초등학교 1.3%, 중학교 0.9%, 고등학교 0.5%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피해 유형은 언어폭력이 41.7%로 가장 많았고 이어 집단 따돌림 21.1%, 신체폭력 12.2%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사이버폭력은 3.9%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가해 응답률은 전체 0.4%로 조사됐으며, 가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학생 가운데 58.7%는 상대방에게 사과했다고 응답했다. ‘학교 선생님 지도를 받았다’는 응답은 20.1%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응답도 8.5%로 나타났다. 학교폭력 목격 응답률은 2.7%였으며 목격 당시 감정으로는 ‘도와주고 싶었다’는 응답이 32.4%로 가장 많았다. 이어 ‘가해자에게 화가 났다’ 21.2%, ‘도와줄 수 없어 속상했다’ 17.6% 등이 뒤를 이었다. 학생들이 인식한 학교폭력 발생 원인은 ‘장난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가 26.0%로 가장 높았고 ‘강해 보이려고’ 17.0%, ‘피해학생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16.3% 순으로 조사됐다. 학교폭력 발생 시 대처 방법으로는 ‘학교 선생님에게 알리겠다’가 28.2%로 가장 많았으며 보호자에게 도움 요청(17.4%), 신고센터·앱 이용(11.1%), 경찰 신고(10.7%) 등이 뒤를 이었다. 예방 활동과 관련해서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처 방법 교육’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꼽혔으며, 향후 필요한 대책으로는 ‘학교의 관심과 지도 강화’ 요구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피해응답률이 전국 평균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언어폭력과 집단 따돌림 비중이 여전히 높은 만큼 예방 교육과 학교 차원의 대응을 지속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6-03-17

대구시교육청, 탄소중립 실천 중심 환경교육 강화⋯3만 2000명 참여

대구시교육청이 고유가와 글로벌 에너지 위기 상황에 대응해 학생들의 탄소중립 실천 역량을 키우는 환경교육을 강화한다. 시교육청은 대구녹색학습원을 중심으로 학교·가정·지역을 잇는 ‘탄소중립 실천 환경교육’을 확대 운영한다고 17일 밝혔다. 핵심은 학교급별 맞춤형 체험 교육이다. 녹색학습원은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 성장 단계에 맞춘 ‘창의융합환경체험활동’을 통해 에너지 절약과 자원순환을 체험 중심으로 교육한다. 2026년에는 약 3만 2000명의 학생이 참여할 예정이다. 특히 단순 체험에 그치지 않고 학교 복귀 후 실천 사례를 공유하고 지역 환경 문제 해결 방안을 발표하는 등 ‘체험-실천-공유’로 이어지는 교육 구조를 구축한 점이 특징이다. 환경교육 인프라도 강화됐다. 2025년 전면 개편된 녹색학습원의 ‘녹색환경탐구관’에서는 대구 생태와 생물다양성,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자원순환과 에너지 전환 등 3개 주제, 35개 체험 콘텐츠를 운영한다. 이곳에서는 지역 생태계와 멸종위기 생물을 주제로 한 체험은 물론, 실감영상과 증강현실(AR)을 활용한 생태 관찰 프로그램을 통해 기후위기와 에너지 문제를 생생하게 학습할 수 있다. 학생 주도의 실천 활동도 확대된다. 시교육청은 ‘탄소중립 학생위원회’ 공모를 통해 초·중·고 30개 팀을 선정해 학교 단위 활동을 지역사회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참여 학생들은 환경 과제를 직접 선정·해결하며 에너지 절약 실천을 가정과 지역으로 확산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가족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녹색학습원은 주말과 방학을 활용해 기후환경 체험, 친환경 물품 만들기, 저탄소 가족요리 교실 등 16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체험형 콘텐츠인 ‘탄소중립 방탈출 프로그램’도 운영해 생활 속 실천을 유도할 방침이다. 강은희 교육감은 “고유가와 에너지 위기는 학생들이 직면한 현실 문제”라며 “실천 중심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배운 내용이 가정과 지역으로 확산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6-03-17

봄볕 아래 드러난 이름들⋯“숭고한 희생, 기억으로 남다”

17일 오후, 대구 남구 낙동강 승전기념관. 부드러운 봄볕이 기념관 마당을 감싸는 가운데,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보훈가족들과 제복을 갖춰 입은 참전유공자들이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행사장 한켠, 흰 천으로 가려진 커다란 명비 앞에는 이미 잔잔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숭고한 호국 영령의 넋을 기립니다.”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묵념과 함께 장내는 숙연해졌다. 이어진 국민의례와 경과보고, 축사 속에서 참석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명비가 세워진 자리로 향했다. 이날 열린 ‘6·25 참전유공자 명비 제막식’에는 조재구 남구청장과 김종술 대구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해 보훈가족과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국전쟁 당시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되새기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강당에서 진행된 공식 행사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야외 명비 앞으로 이동했다. 바람이 살짝 스치고, 햇살이 비석 위를 비추는 순간, 제막식이 시작됐다. 천천히 흰 천이 걷히자, 검은 돌 위에 새겨진 수천 개의 이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장내는 다시 한 번 조용해졌다. 누군가는 모자를 벗어 들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한 노년의 보훈가족은 명비 앞으로 다가가 손끝으로 이름 하나를 짚어 내려갔다. 손길은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이어졌다. 이름을 따라가던 그의 눈가가 붉어졌고, 옆에 서 있던 가족은 말없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번에 건립된 명비에는 남구 출신 6·25 참전자 2144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가로·세로 2.4m, 높이 3.34m 규모의 비석은 단단한 돌의 질감 위에 빼곡히 새겨진 이름들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류영봉 6·25참전유공자회 남구지회장은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웅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보훈가족 문승련 씨(72·여·남구)는 명비를 한참 바라본 뒤 “이제야 제대로 기억되는 것 같다”며 “참전용사와 가족 모두에게 큰 자긍심이 될 것”이라고 조용히 말했다. 김종술 대구지방보훈청장은 명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단단한 돌 틈에서 피어난 국화처럼, 전장의 상처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과 헌신을 상징합니다.” 짧은 설명이었지만,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비석을 바라봤다. 이름은 많았고, 이야기는 더 많았지만, 그날 그 자리에서는 누구도 길게 말하지 않았다. 대신 침묵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 침묵은 슬픔이면서도, 동시에 기억의 방식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각자의 사연을 품은 이름 앞에서, 봄볕은 여전히 따뜻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한편, 국가보훈부는 지난 2016년부터 지방자치단체 및 학교 등과 협력해 6·25 참전유공자 명비 건립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글·사진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6-03-17

“회사보다 학군”⋯ 대구 수성구로 몰리는 교육 이주, 사교육비 부담은 ‘최고 수준’

대구 수성구가 ‘대구판 강남’으로 불리는 현상이 현실로 굳어지고 있다. 자녀 교육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이른바 ‘교육 이주’가 확산되면서 지역의 인구 흐름과 주거 시장, 사교육 구조까지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이다. 최근 수성구로 이사한 40대 학부모 A씨는 “직장과의 거리가 멀어졌지만 교육 환경을 고려해 이사를 결정했다”며 “아이를 위해서라면 생활 불편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군을 중심으로 거주지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면서 수성구 쏠림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5만 8000원으로 전년보다 감소했다. 그러나 사교육에 실제 참여한 학생 기준으로는 월평균 60만 4000원으로 증가하며 처음으로 60만 원을 넘어섰다. 특히 고등학생의 경우 월 70만 원대 후반 수준까지 올라 입시 시기에 비용 부담이 집중되는 구조가 확인됐다. 전체 평균이 감소한 것은 학생 수 감소와 일부 참여율 하락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학부모들이 체감하는 부담과는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수성구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지역 학원가에 따르면 고3 수험생의 경우 주요 과목 수강과 입시 컨설팅을 포함한 사교육비가 월 150만~200만 원 수준까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국어·영어·수학만 해도 기본 100만 원이 넘는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갈 정도다. 일정 수준 이상의 사교육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 지출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수성구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단순한 비용 수준 이상의 구조적 특징이 자리하고 있다. 학원 밀집도, 외부 지역 학생 유입, 입시 중심 교육 시스템, 고액 프로그램 확대 등 교육 환경 전반이 서울 강남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성구 일대 학원 수는 약 3000개에 달해 비수도권 최대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일부 학원은 수도권 유명 강의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사실상 ‘강남식 교육 시스템’을 지역에 이식한 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다. 교육 쏠림 현상은 주거 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성구는 대구에서 아파트 가격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로, 특정 학교 인근 단지를 중심으로 ‘학군 프리미엄’이 형성돼 있다. 자녀의 학령기에 맞춰 수성구로 이주하는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집값을 지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구 흐름에서도 차이가 확인된다. 대구 전체적으로는 인구 감소가 지속되고 있지만 수성구는 상대적으로 유입이 유지되는 지역으로 꼽힌다. 교육을 중심으로 인구가 재편되는 모습은 서울 강남권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집중 현상이 지역 간 격차를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과 인구, 자본이 특정 지역에 몰리면서 다른 지역과의 교육 여건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교육비 상승이 단순한 가계 부담을 넘어 지역 양극화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수성구는 대구에서 가장 높은 교육 경쟁력을 갖춘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학부모에게 가장 큰 경제적 부담을 요구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한 학부모는 “아이를 위해 선택한 곳이지만 사교육비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가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6-03-17

개강 맞은 대학가, 활기 대신 ‘공실’ 늘었다

새 학기를 맞은 대학가 풍경이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북적이던 개강 시즌의 활기는 찾아보기 어렵고, 빈 점포와 임대 현수막이 거리를 채우고 있다. 고물가로 인한 생활비 부담이 학생들의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대학가 상권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17일 오후 지역 한 대학 인근 거리. 개강 후 보름이 지났음에도 교문 앞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분위기는 급격히 한산해졌다. 점심시간 일부 식당에만 잠시 학생들이 몰릴 뿐, 대부분의 거리에는 사람 발길이 뜸했다. 곳곳에는 ‘임대’와 ‘매매’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나붙어 있었고, 심지어 건물 전체가 비어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나마 운영 중인 점포들도 변화가 감지됐다. 무인 복사점이나 뽑기방, 무인 판매점 등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업종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과거 학생들로 가득 찼던 카페와 음식점 상당수는 문을 닫거나 업종을 전환한 상태다. 대학가 상권의 중심이었던 식당들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개강 시즌 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게 상인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한 식당 주인은 “예전에는 신입생 환영회나 모임이 많아 저녁까지 손님이 이어졌지만, 요즘은 단체 손님 자체가 거의 없다”며 “술 소비도 줄어 매출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변화는 학생들의 소비 패턴에서도 확인된다. 대학생 이모 씨(21)는 “월세, 식비, 교통비까지 다 올라서 고정지출이 너무 부담스럽다”며 “외식이나 모임을 줄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친구들과 만나도 카페 대신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학가 침체가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닌 구조적인 변화일 가능성에 주목한다. 고물가 장기화와 함께 학생들의 소비 여력이 줄어들면서 기존 ‘대학생 중심 상권’ 모델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분석했다. 특히 무인화 확산이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영업자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키오스크나 무인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아르바이트 자리가 줄고, 이는 다시 학생들의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상권이 살아나려면 임대료 조정과 함께 업종 재편이 필요하다”며 “대학생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나 외부 수요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전략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지자체 역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한 골목 상권을 ‘골목형 상점가’로 지정해 온누리상품권 가맹 혜택 등을 제공하는 등 지원책을 확대하는 추세다. 다만 현장에서는 체감 효과가 아직 제한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글·사진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6-03-17

(가칭)경북교육역사관 건립 착수···2026년 준공 목표

경북교육청은 17일 안동시 정하동 경북교육청연구원 부지에 ‘(가칭)경북교육역사관 건립 공사 착공식 및 안전다짐식’을 개최했다. 이번 착공식은 경북교육의 발자취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그 가치를 미래 세대와 공유하기 위한 역사관 건립의 출발을 알렸다. 이날 행사에는 임종식 교육감을 비롯해 박채아 경북도의회 교육위원장, 권기창 안동시장, 도내 교육 관련 단체 대표자와 학교장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역사관 건립의 성공적인 출발을 축하했다. 총사업비 180억 원이 투입되는 경북교육역사관은 지상 4층, 연면적 3191.46㎡ 규모로 건립된다. 2023년 사업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재정투자심사와 설계 용역 등 사전 절차를 거쳐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으며, 2026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추진된다. 역사관은 도내 각급 학교에 흩어져 있던 교육 유물과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학생 눈높이에 맞춘 역사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역 교육의 역사와 가치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경북교육청은 역사관을 경북교육의 정체성과 성과를 널리 알리는 공간이자, 지역 주민이 함께 이용하는 복합 교육·문화·소통 공간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임종식 교육감은 “경북교육역사관은 단순한 과거 기록의 보존을 넘어 대한민국 교육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따뜻한 경북교육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는 상징적인 공간이 될 것”이라며 “공사 시작부터 준공까지 철저한 안전관리와 품질관리를 통해 튼튼하고 내실 있는 역사관을 건립하겠다”고 말했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6-03-17

경북도 ‘초대형 산불’ 1주기 복구 넘어 혁신적 재창조 선언

경북도가 지난해 발생한 ‘초대형 산불’ 1주기를 맞아피해 지역을 혁신적으로 재창조해 새로운 경제 거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도는 17일 실·국장회의를 열고 그간의 피해 복구 성과를 점검하고 피해지역 재건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3월 경북 5개 시·군을 휩쓴 초대형 산불은 산림 9만9417ha를 태우며 역대 최대 피해 규모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183명의 인명피해와 5499명의 이재민이 발생, 경북 전역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당시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지역 공동체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이에 경북도는 지난 1년간 행정력을 총동원해 피해 복구와 주민 지원에 나섰다. 중앙정부와 협력해 총 1조8310억 원 규모의 복구비를 확보했으며, 임시주택 2531세대를 공급해 이재민들의 생활 안정을 도왔다. 또한 특별도시재생사업, 송이 대체작물 조성 지원 등 중앙부처 일반사업비 1715억 원을 추가 확보해 피해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했다. 심리상담 2만 건 이상을 진행하고 의료기관과 연계한 심층 치료를 지원하는 등 산불 후유장애 극복에도 힘을 쏟았다. 경북도의 주도로 마련된 ‘산불특별법’은 지난해 9월 국회를 통과해 올해 1월 29일부터 시행령이 발효됐다. 이는 산불재난 관련 최초의 특별법으로 피해지원 및 재건위원회 구성, 산림투자선도지구·산림경영특구 지정 등 경북도의 요구사항이 반영됐다. 특히, 특별법은 피해 주민들의 추가 지원 심사를 위한 민·관 협력 기구를 마련하고, 기존 지원에서 제외된 다양한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사각지대 없는 촘촘한 지원 체계가 구축됐다. 현재 경북도는 피해 지역을 단순히 과거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 거점으로 재창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산림투자선도지구를 통해 민간투자와 협업을 기반으로 산림 휴양·레포츠 시설, 관광 기반을 조성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해 투자 활성화를 유도한다. 또한 산림경영특구를 지정해 영세 산주들이 협업경영체를 구성, 고소득 수종을 식재하고 가공·유통·체험·관광시설과 연계해 전문화된 산림경영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의성군 점곡면에 시범지구를 조성한 뒤 산불피해지역 전역으로 확산할 예정이다. 이철우 지사는 “복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특별법을 근거로 추진되는 혁신 사업을 차질 없이 수행해 피해 지역을 단순히 과거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혁신적으로 재창조하겠다”며 “경북의 사례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선진적 재난 극복의 글로벌 모델이 될 수 있도록 행정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6-03-17

신한국 인성대학원 2026년 1학기 개강식 열려

신한국운동추진본부 부설 인성교육대학원(원장 심후섭)이 지난 3일 담수회관 3층 대강당에서 제15기 1학기 개강식을 열고 학업을 시작했다. 이날 개강식에는 서정학 이사장과 수강생 등 총 150여 명이 참석했으며, 김도현 학봉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우정’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김 이사장은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의 우정인 ‘애학지교(厓學之交)’를 중심으로 두 사람의 위대한 우정과 두 사람의 교류 속에서 드러난 나라사랑 정신을 오늘날의 교훈으로 삼자고 강조했다. 인성교육대학원은 6월 16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총 15회에 걸쳐 강의를 진행한다. 주요 강사와 강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이관형(내일교회 담임목사) ‘갈등 극복을 위한 마음 다스리기’, 송의호(전 중앙일보 기자) ‘천원지폐 그림에 담긴 온고지신’, 김원길(안동대학교 교수 역임) ‘안동의 실화에 담긴 해학’, 최태연(전 계성고 국어 교사) ‘잘못 쓰고 있는 일상어’, 최윤대(미해군대학 및 캐롤라이나 주립대 박사) ‘자연에서 배우는 창의성’, 김구철(KBS 정치부 기자) ‘선비와 과거 제도-한국 근대화의 비밀’ 이재덕(전 연신초 교장) ‘리코더와 건강’, 김도상(행정학 박사) ‘선비 정신과 종류’, 권오춘(해동 경사연구소 이사장) ‘주역의 기초’, 이종원(대구문화지킴이 전 회장) ‘국보중의 국보 24점’, 이구동(전 경구중 교장) 아름다운 한시 여행, 이수만(전 언론인) ‘재미있는 정치 뒷 이야기l’, 박남철(도산선비문화수련원 지도위원) ‘인성교육과 공부 방법’, 김선완(전 경북외국어대 교수) ‘리더와 리더십’-누가 지역의 올바른 정치인인가. /권정태 시민기자

2026-03-17

안동의 전통국수 안동국시를 아세요

안동에는 두 종류의 국수가 있다. 건진국수와 누름국수다. 건진국수는 양반가를 방문하면 귀한 손님에게 내놓는 고급 음식이다. 안동지방에서는 국수를 ‘국시’라고 부른다. 따뜻한 국물로 내놓으면 누름국시고, 차가운 국물로 내놓으면 건진국시다. 안동국수가 타 지역국수와 다른 것은 밀가루에 콩가루를 3대 1의 비율로 섞어서 만든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일반국수는 밀가루로 만들었고, 안동의 국시는 밀가리로 만들었으며, 밀가루는 봉지에 담겨있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겼다”는 말이 있다. 안동국시에는 서글픈 사연이 있다. 맛을 즐기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니다. 일종의 구휼음식으로 시작한 것이다. 안동은 농사지을 땅이 많지 않아 양식이 넉넉하지 않았다. 특히 논이 적어 쌀은 항상 부족했다. 보리가 다 여물기 전 4월쯤에는 굶는 농가가 많았다. 덜 익은 보리 이삭을 디딜방아로 찧어서 죽을 끓여 먹기도 했다. 한 여름이면 보리쌀도 부족해 때를 늘리기 위해 국수를 많이해 먹었다. 콩가루를 섞는 것은 영양가와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함도 있지만, 국수의 양을 늘리려는 것이다. 국수 반죽을 얇게 밀어 종잇장 같이 만들면 밀가루만으로는 구멍이 난다. 이때 콩가루 반죽을 떼어서 구멍을 메웠다고 한다. 안동국수의 면은 밀가루에 콩가루를 넣어 반죽하여 아주 얇게 밀어서 가늘게 칼로 썬다. 썰어 낸 면을 다시 콩가루를 뿌려서 끓는 물에 삶는다. 삶아 낸 면을 건진 다음 찬물에 행궈 한 사리씩 소쿠리에 담아 놓는다. 이 한번 삶아 건지는 과정 때문에 ‘건진국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콩가루가 더해져서 면이 뚝뚝 잘 끊긴다. 면을 입에 넣고 씹어보면 콩가루 특유의 고소함이 느껴진다. 특히 뜨거운 국물로 먹으면 콩 맛이 강해진다. 안동국수의 국물은 종가마다 차이가 있다. 알려진 방식으로는 은어, 양지머리, 닭, 꿩 등으로 국물을 낸다. 낙동강과 그 지류를 끼고 있는 종가는 대체적으로 은어를 많이 사용하고, 지류에서 멀리 떨어진 종가는 양지머리와 닭, 꿩 등으로 대신한다. 국물에 참깨와 콩 등을 섞어 내는 국물도 있고, 건진국시는 맑은 국물이 대부분이다. 식당에서는 멸치로 육수를 낸다. 안동에서조차 은어 육수를 맛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란다. 안동국수의 고명은 은어로 국물을 냈다면 말린 은어 살을 찢어 올려내고, 양지머리로 국물을 냈다면 양지머리를 찢어 고명으로 올리거나 수육으로 낸다. 닭, 꿩도 마찬가지. 또 달걀을 황, 백으로 나눠서 지단을 만들어 올리고, 애호박을 살짝 볶아서 올린다. 간장은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다. 조선간장은 각 종가마다 맛이 미묘하게 차이가 있어 전통 안동국시에 방점을 찍는 역할을 한다. 안동국수와 나오는 음식도 귀한 음식들이다. 문어숙회, 돔배기, 수육, 흰살 생선찌짐, 배추전 등이 있다. 재료와 만드는 방법만 보더라도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래서 안동지방에서 양반 이외의 일반 평민들이 먹는 국시는 맹물이나 멸치육수를 곁들인 국시가 대부분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즐겨 먹던 국수가 바로 안동식 국수인 안동국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서울시장 재임 시절 자주 먹었다는 곳도 전형적인 안동국시집이다. 종가 제사나 불천위 제사에 밥 대신 국수가 올라오는 곳이 안동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가의 이야기이고, 실제로 안동에서 안동국시 또는 건진국시를 먹으러 가면 쌈 채소와 밥을 같이 준다. 안동은 국수와 밥을 쌈 싸 먹기도 한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3-17

청도, 오누이 시인의 마을 찾아

최근 근대 문화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경상북도 땅 끝 청도 유천마을을 찾았다. 화악산의 정기와 청도천을 끌어안은 그림 같은 마을이다. 다리를 건너서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근대로 여행 온 기분이다. 6~70년대나 볼 수 있었던 고풍스러운 모습에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마을 안이 괴괴하기 짝이 없다. 이층집 일본식 건물이 먼저 행인을 맞는다. 나무판자로 켜켜이 엮어 올린 벽면이 고색창연하다. 일제의 잔영이 남아있는 듯 나라 잃은 슬픔이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근대 골목을 거닐다 보니 빛바랜 옛날 나무간판이 즐비하다. 구생당 약방, 중앙소리사, 사료상회, 정미소, 극장이 차례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소리사와 극장이 눈에 띈다. 소리사 안의 널브러진 유성기 속에서 거리를 온통 메웠던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청춘 남녀가 줄지어 매표소에서 극장표를 사는 모습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고샅길에 들어서니 청동으로 만든 현대식 간판이 나타난다. 담장 너머로 말끔하게 정비된 아담한 집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이호우·영도 오누이 시인의 생가다. 입구에 커다란 감나무가 손님을 맞는다. 고즈넉한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시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본다. 시인은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고 물에 삭힌 감또개를 간식으로 즐겼을 것이다. 강변에 오누이 공원이 있다고 하여 한달음에 달려가 보았다. 은어가 노니는 명경 같은 청도천과 동창천이 만나는 둔치에 두 시인의 시비가 서 있다. 이영도 시인은 1916년 이곳에서 태어나 주로 부산 경남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통영여중 교사로 재직했으며, 폐결핵으로 남편을 잃었다. 당시 청마 유치환 시인이 같은 학교에 근무했다고 한다. 유부남인 그는 이영도의 단아한 여성미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청마는 줄기차게 정운에게 연모의 편지를 보냈다. 청마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장장 20년 동안 5000여 통을 썼다고 한다. 청마의 장례식장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성이 있었다. 5000통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다. 근대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 여기 유천 마을이다. 이영도 시인을 만나고 오누이 공원을 나오니 애틋한 감정을 삭일 수가 없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노라.’ 유치환의 고백이 가슴을 후벼 파는 심정을 억누를 수 없다. 백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고 했던가. 오천 번 찍어도 넘어가지 않았던 이영도 시인의 인내는 어디서 나왔을까. 규범과 규범의 이중 굴레 속에서 이영도 시인의 인생 승리가 공원에 잔잔히 메아리친다. 시인의 고향, 근대마을을 돌아보고 나오는 발걸음이 왠지 가볍지만은 않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3-17

대송면 vs 신광면···‘960억 복덩이’ 포항에코빌리지 입지선정위 출범

2034년 포항 호동2 매립장과 생활폐기물 에너지화시설의 사용 종료를 대비한 새로운 생활폐기물 처리시설인 ‘포항에코빌리지’를 지을 입지 선정 작업이 시작됐다. 포항시는 17일 ‘포항시 폐기물처리시설(포항에코빌리지) 입지선정위원회 위원 위촉 및 제1차 회의’를 개최했다. 위원은 주민대표 10명, 전문가 4명, 시의원 2명, 공무원 2명 등 18명으로 구성했고, 박흥석 울산대 건축도시환경학부 교수가 위원장으로 뽑혔다. 소각시설과 매립시설, 대형폐기물 처리시설, 음식물자원화시설, 재활용 선별시설, 침출수 처리시설을 갖추게 될 포항에코빌리지 부지에는 체육시설, 공연장, 도서관, 공원, 휴게시설 등 주민 편익 시설도 조성한다. 포항에코빌리지 설치비의 10%인 450억 원을 투입하는데, 최종 선정된 입지 주민협의체가 원하는 수영장, 공연장, 목욕탕, 찜질방 등을 지을 예정이다. 여기에다 30년간 폐기물처리 수수료의 수입의 10%(연간 약 17억 원씩 총 510억 원)를 주민지원기금으로 조성한다. 주민협의체가 주민지원기금으로 주민 건강검진, 초·중·고교생 장학금 지원, 노후주택 단열공사 등의 용도로 쓸 수 있다. 위원회는 지난해 실시한 입지 공모에 유치 신청을 한 대송면과 신광면을 대상으로 입지 타당성과 주민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종 입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다음 달 전문연구기관에 입지타당성 조사를 의뢰해 대송면과 신광면의 환경적·기술적·경제적 조건을 검토한다. 11월에는 조사 결과를 주민들에게 공개해 의견을 수렴하고, 12월에 최종 입지를 결정·고시할 예정이다. 박흥석 위원장은 “생활폐기물처리시설은 도시 운영에 필수적인 시설인 만큼 여러 위원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최적의 입지가 선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배준수기자 baepro@kbmaeil.com

2026-03-17

(시민기자 단상) 서로를 지켜 주는 새해

달력의 마지막 날을 짚어보며 자연스레 지난 시간을 돌아봅니다. 기쁨과 감사가 있었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걱정도 많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사회를 떠받쳤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은 그분들에게 드리는 작은 감사와 새해를 향한 조용한 다짐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경쟁의 현장에 익숙해 있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게가 성공의 기준처럼 여겨졌습니다. 우리를 버티게 한 것은 화려한 성과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배려와 책임감이었습니다. 골목 상점을 지켜 낸 상인, 묵묵히 현장을 지킨 노동자, 위험 속에서 안전을 책임진 제복 입은 공무원 그리고 가족과 이웃을 돌본 수많은 시민들. 그분들의 삶 자체가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위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진짜 소중한가.” 성장과 편리함만을 좇다 보면 공동체의 끈이 느슨해지고 서로의 상처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송년의 덕담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방향을 고쳐 세우는 약속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6년에는 조금 느려지더라도 옆 사람의 걸음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공정함과 신뢰 역시 새해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도 서로를 의심하는 마음이 가득하면 사회는 거칠어집니다. 오히려 규칙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함께 지켜야 한다는 공감이 생기면 갈등은 줄어듭니다. 공정은 누군가를 심판하기 위한 칼이 아니라 모두가 안심하고 살아가기 위한 약속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름을 품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세대 간의 생각이 다르고, 지역과 직업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의견이 충돌할 때 목소리만 높이면 결국 더 멀어질 뿐입니다. 새해에는 “내 말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겸손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기를 기대합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최고의 덕담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수고 많았다”, “고맙다”, “같이 가자.” 이 짧은 말 속에는 지난 과거를 인정하고, 내일을 함께 열겠다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이 말을 더 자주 건넬수록 사회는 조금씩 단단해질 것입니다. 새해는 누구에게나 빈 공책처럼 주어집니다. 그 위에 무엇을 적어 넣을지는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시민기자는 작은 소망을 적어 봅니다. 일터에서의 안전이 일상이 되고, 가족의 웃음이 더 오래 머물며, 이웃과의 인사가 자연스러워지는 사회. 갈등보다 신뢰가, 냉소보다 희망이 더 자주 선택되는 사회가 되기를. 한 해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부족했던 시간은 성찰로, 아팠던 기억은 나눔으로, 새해의 첫걸음은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6-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