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5월3일까지 전시회… 신라시대 출토품 등 다양
국립경주박물관은 을미년 양의 해를 맞아 옛사람들이 만든 다양한 양들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를 마련했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17일부터 5월 3일까지 을미년 특집진열 `아름답고(美) 착한(善) 동물, 양(羊)`전시회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는 신라 4세기부터 6세기에 축조된 대형 능묘 출토품 가운데 양머리 모양이 달린 청동제 초두(자루솥)들이 출품된다. 특히, 경주 황남대총과 천마총, 서봉총 출토 초두를 한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와 함께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경주 내남면 화곡리 무덤 출토의 토제 양, 용강동 무덤 출토 청동제 양, 표면에 십이지를 부조로 새긴 성동동 출토 청동제 추(錘) 등이 선보인다.
양은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여덟 번째 동물로 남남서쪽을 가리키며 오후 1시~3시에 해당한다. 양은 온순한 성질로 인해 예로부터 평화와 순종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美(미), 善(선), 義(의), 祥(상)처럼 羊(양)이 들어간 한자에는 좋은 뜻을 지닌 글자가 많다. 오늘날 양이라고 하면 곱슬거리고 부드러운 털이 몸에 가득 난 초원의 면양(綿羊: sheep)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면양은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양의 한 종류이다.
십이지의 미(未)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토종 양은 면양보다는 염소와 닮은 산양(山羊: goral)에 가깝다. 본래 양(羊)이란 한자도 면양과 함께 산양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599년에 백제가 양 두 마리를 일본에 보내 일본에서 양 기르기가 시작됐다고 기록돼 있다.
일본후기에는 신라 헌덕왕(재위 809~826년) 때인 820년 고양(염소로 추정) 두 마리와 백양(白羊) 네 마리, 산양(山羊) 한 마리 등을 일본에 보냈다고 기록돼 있다. 이들 기록으로 미뤄 당시 우리나라에 여러 종류의 양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918~1392년) 정종(재위 945~949년) 때는 개경 근처에서 왕실의 식용으로 양을 기른 기록도 있다. 1116년(예종 11년) 요(遼: 916~1125년) 나라의 유민이 양 수백 마리를 갖고 투항했고 1169년(의종 23년)에는 금(金: 1115~1234년)나라에서 양 2천 마리를 보내온 기록도 있어 당시 북방 민족과의 교류로 양이 들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1392~1897년)에는 양장(羊場)을 두어 양을 길렀고, 제물로 썼다는 기록도 전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양을 대규모로 사육하진 않았지만 고기와 젖, 가죽과 털 등을 주는 헌신적인 동물로 변함없은 사랑을 받아 왔다.
/정철화기자 chhjeong@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