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조형미와 사유의 깊이가 공존하는 공간 속 국보 ‘반가사유상’ 프랑스서 145년 만에 돌아 온 왕실 기록유산의 정수 ‘외규장각 의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는 지금 두 개의 상설 전시가 많은 이의 발길을 이끈다. 하나는 삼국시대 국보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두 점이 안치된 ‘사유의 방’, 또 하나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로 반출됐다가 145년 만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전시다. 두 전시는 MZ세대에게도 인기 있는 핫 플레이스로 조용하고 정적인 박물관 이미지를 탈바꿈시키며 우리 문화유산이 가진 고요한 아름다움으로 시대와 세대를 뛰어 넘어 감동을 주고 있다.
‘사유의 방’ 입구 벽면에 쓰인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글에서 이미 숙연해진 마음으로 고요하고 어두운 통로를 지난다, 그 끝에 은은한 황토 빛 속, 아늑한 곡선의 공간이 숨이 멎을 듯 펼쳐지고, 그 한복판에 반가부좌로 앉아 오른쪽 손가락을 뺨에 살짝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국보 중의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그 은근한 미소를 마주한 순간, 문득 떠오르는 말.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다. 진정,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 온조왕 15년 기록에 따르면, 새로 지은 궁궐을 본 온조왕이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평을 남긴다. 이는 조선 건국 초 정도전이 ‘조전경국전’에 인용하면서 통치 철학으로 계승되었고, 현 국립중앙박물관장 유홍준 교수의 저서 ‘나의 문화유적답사기’에서도 소개되며 널리 알려진다. 우리 문화의 품격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사유의 방은 절제된 조형미와 사유의 깊이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그 자체로 명상이며 예술이다.
같은 2층 ‘외규장각 의궤’ 공간에는 145년 만에 돌아 온 왕실 기록유산의 정수가 전시 중이다. 의궤란 조선왕실의 중요한 의례, 행사, 건축 등을 글과 그림으로 상세히 기록한 책으로 왕조의 기억을 담고 있는 보고(寶庫)다. 이러한 귀중한 책들이 잦은 외침(外侵)으로 소실될 것을 우려한 정조가 안전한 강화도로 옮겨 보관한 곳이 외규장각이다. 하지만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로 상륙한 프랑스 군에 의해 외규장각의 많은 책이 소실(燒失)되고 약탈당한다.
그렇게 그 의궤들의 존재는 오랫동안 잊힌다. 그러다 고 박병선 박사가 베르사유 별관(폐지창고)에서 297권의 의궤를 발견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진다. 한국의 끈질긴 반환요구 끝에 2011년, ‘5년마다 갱신하는 조건의 영구대여’ 형식으로 돌아온다.
이는 전 세계 제국주의 국가들이 약탈 문화재를 쉽게 돌려주지 않는다는 불문율 속에서 매우 이례적인 성과다. 하지만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에 있다. 참고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에 있다.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 ‘중국서적코너’에서 한국의 고서를 발견한다. 한자로 쓰였다는 것이 중국 서적으로 분류된 이유다.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80년 먼저 인쇄되어 우리 활자 인쇄술의 정점이자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지만, 현재 프랑스는 반환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국립중앙박물관 1층에는 선사시대에서 근세까지의 유물들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전시되어 있고 2, 3층에는 다양한 기증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무엇보다 전시된 많은 유물들이 약탈한 것 없이 오롯이 우리의 것이라는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 우리가 소중히 지켜온 것, 어렵게 되찾은 것, 아직도 찾아야할 것들. 두 상설 전시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그 자체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고 주권이며, 미래를 향한 사유의 공간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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