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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동국제강 포항공장, 원가 압박 속 ‘맞춤형·친환경’ 전략 가속

동국제강 포항공장(이하 ‘동국제강’)은 변화하는 철강 환경 속에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소품종 대량생산 제품뿐만 아니라 고객 맞춤형 제품 개발에도 적극적인 행보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D-메가빔’과 ‘그린바’가 대표적이다. 초대형 건축에 적합한 D-메가빔은 최대 3m까지 제작 가능해 설계 자유도와 시공 효율성을 높였고, 비전도·내부식성 소재의 그린바는 철도 궤도나 전기차 인프라 등 차세대 시장에 대응 가능한 강점을 지닌다. 동국제강은 물류 부문에서도 AI 기반 최적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적재 순서와 동선을 효율화해 물류비를 절감하고 출하 속도를 향상했다. AI는 수천 건의 데이터를 학습해 안전과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안을 제안하며 현장 작업의 정밀성을 높인다. 인력 구조 측면에서는 구조조정 이후 협력업체 인력의 정규직 전환 확대로 고용 안정성을 강화했다. 전 협력업체 인력의 95% 이상을 직접 고용해, 1994년 무파업 선언 이후 지금까지 분규 없는 현장을 유지해왔다. 이 같이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김상재 포항공장장은 지속가능한 산업 전환을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탄소 저감과 에너지 효율 향상 설비 지원은 국산·외산 여부보다 실효성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검증된 고효율 설비 도입을 통해 전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각 기업이 강점을 살릴 수 있도록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의 큰 그림을 제시하고, R&D 지원과 제도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속적인 기술 고도화와 상생을 위한 기반 마련은 포항 철강 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한다. 동국제강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미래 경쟁력을 키워가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스틸데일리 김영대 기자 kyd@steelnsteel.co.kr

2025-08-18

미래를 준비하는 힘 ‘체인지업 그라운드 포항’

포항이 다시 한번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오랫동안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심장’으로 불리던 이 도시는 이제 산업 구조와 경제 체질을 새롭게 바꾸려는 거대한 흐름 속에 서 있다. 전통 산업의 구조조정, 신기술 도입, 벤처 생태계 확장까지 과거의 영광을 지키면서도 미래를 향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편집자 주> △ 입주와 졸업, 그리고 선순환 체인지업그라운드는 창업 초기 기업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사무공간, 연구 인프라, 멘토링, 투자 연계를 종합 지원한다. 현재 포항에는 70여 개 기업이 입주해 실리콘밸리에 견줄 유니콘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스코에 따르면, 체인지업그라운드는 2020년 서울, 2021년 포항에 이어 2025년 말 광양에도 개소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183개 기업을 육성, 1900여 개 일자리를 창출했고, 입주·졸업한 기업가치 총합은 2조 3000억원에 달한다. 무엇보다 다수의 입주기업이 졸업 후에도 포항에 정착하고 있다. 특히 기술력과 시장성을 갖춘 기업들은 지역 고용 창출과 세수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 벤처 육성센터, 왜 포항인가? 포스코는 입지보다 첨단 기술과 연결된 인프라를 중시한다. 신물질·신약 개발,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활용한 AI 연구 등에서 포스텍(POSTECH)은 체인지업그라운드의 든든한 후원자다. 축적된 연구성과와 기술력은 입주사의 문제 해결에 큰 힘이 된다. 포스텍 중심의 세계적 연구 인프라, 수도권 대비 저렴한 임대료와 생활비, 지자체·기업이 함께 마련한 지원 프로그램이 창업 성장의 기반이 된다. 특히 소재·에너지·바이오·해양 등 특화 산업과 연계된 창업 생태계는 산업 클러스터와 시너지를 확대하고 있다. △ 또 하나의 포항의 미래 체인지업그라운드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포항에서도 가능하다.” 철강산업이 여전히 도시 경제의 중심이지만, 포항은 이제 기술 창업이라는 또 다른 성장 엔진을 장착했다. 앞으로도 포항시와 포스코는 체인지업그라운드를 기반으로 창업–투자–기술 상용화의 선순환 구조를 강화하며, 철강과 벤처, 신산업이 어우러진 복합 경제도시로 도약할 계획이다. 철의 도시에서 혁신의 도시로 변모하는 포항,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체인지업그라운드가 있다. <체인지업 그라운드 포항 외관 및 실내. /스틸데일리 박현욱 기자> /스틸데일리 박현욱 기자 phw@steelnsteel.co.kr

2025-08-18

산업도시서 미래도시로… 포항 ‘새 100년 도약’ 본격화

포항시가 반세기 넘게 지역경제를 지탱해온 철강산업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신산업 중심 도시’로의 전환에 본격 나섰다. 2025년을 ‘산업·도시 대개편 원년’으로 선포한 포항시는 이차전지·수소·AI(인공지능)를 축으로 한 혁신 삼각축과 관광·사회적경제를 아우르는 다층적 정책을 병행하며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산업구조 다변화와 도시 공간 재편,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경제 활성화가 맞물려 ‘산업도시에서 미래도시’로 전환하는 ‘포항 르네상스’의 청사진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포항시, 이차전지·수소·AI·관광·사회적경제 ‘5각 혁신축’ 가동 산업 다양화·도시공간 재편·일자리 등 지속적 산업생태계 구축 관광·문화 도시브랜드 재창조… 혁신·재생 결합, 성장기반 강화 △ ‘신산업 드라이브’로 포항 경제 새판 짠다 포항시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산업전환 1축은 이차전지와 수소산업이다. 배터리 핵심 소재부터 생산, 리사이클링까지 전주기 생태계를 구축하며 ‘배터리 허브’로 도약을 노리고 있다.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 등 국내 대표 배터리 소재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포항 배터리 리사이클 규제자유특구’ 2단계 실증사업을 통해 배터리 해체·금속 회수 기술 고도화가 추진되고 있다. 수소산업은 ‘그린 수소 경제권’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항시는 블루밸리국가산단을 중심으로 수소환원제철, 수소연료전지 실증, 수소모빌리티 인프라 구축을 집중 지원해 생산-저장-활용의 수소 클러스터 완성을 서두른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 철강산단 스마트화·AI 융합도시 조성 기존 철강산단도 ‘산단 대개조’ 사업을 통해 친환경·저탄소 기반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고로 중심의 전통적 생산 방식을 에너지 고효율 설비와 스마트 물류 플랫폼, 폐열 회수 인프라 등으로 혁신해 ‘탄소중립 선도 산단’ 시범지구로 지정받았다. 이에 맞춰 철강 생산 공정의 디지털 전환도 가속화된다. 포항시는 AI 가속기센터를 중심으로 지역 대학, 연구기관, 기업이 연계한 민관협력 모델을 구축해 AI 융합도시로의 도약을 추진 중이다. 생성형 AI 행정시스템 시범 적용, 데이터 산업 인프라 조성, 청년 인재 육성 체계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포스텍·한동대·포항테크노파크 등이 AI 창업 거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디지털 전환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 해양관광·문화산업으로 도시 브랜드 리모델링 포항은 해양관광 인프라 확충으로 도시 브랜드 재구축에도 힘쓴다. 18년 만에 재개장한 송도해수욕장을 단순한 관광지 복원 차원이 아니라 해상 짚라인, 야간 경관 조명, 지역상권 연계 프로그램을 가미해 체류형 해양관광 거점으로 탈바꿈시킨다. 영일대해변과 운하 관광, 영일만항 해양레저복합단지 조성도 단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또 호미반도를 중심으로 복합 관광레저타운의 조성계획도 차질없이 순항중에 있다. MICE 산업 육성에도 속도를 낸다.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는 대규모 국제행사 유치의 핵심 거점으로, 유엔기후변화 글로벌 혁신허브 등 굵직한 행사를 유치할 발판으로 활용된다. 원도심 재생과 연계한 철길숲, 중앙상가 등 관광 콘텐츠도 ‘100년 도시 설계’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았다. △ ‘일자리 창출’과 ‘사람 중심’ 정책 집중 포항시는 2025년 일자리 창출 실행계획에 6000억원 이상을 투입, 3만 3800개 일자리 마련을 목표로 한다. 신산업 분야 전문인력 양성, 청년·여성·신중년 등 계층별 맞춤형 일자리 확대, 디지털 직업훈련 체계 정비 등이 주요 전략이다. 특히 청년 창업 활성화에 주력한다. 청년창업LAB, 포항청춘센터 등 인프라를 활용해 단계별 취·창업 지원을 강화하고 ‘로컬솔루션 프로젝트’, ‘일자리공감페이’ 등으로 청년의 지역 정착을 유도한다. 일자리종합센터, 자투리시간 거래소 운영, 연례 취업박람회 개최 등 고용 매칭 플랫폼 구축도 병행해 정책 실효성을 높이고 있다. △ 사회적경제 자립 생태계 구축 본격화 포항시는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조직 육성, 시민 참여 확대, 실무 역량 강화 등 3대 전략과제를 중심으로 새 계획을 수립했다. 정부가 직접지원에서 간접지원으로 정책을 전환하는 상황에 발맞춰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2025년 추진계획에는 전문교육, 컨설팅, 사회적기업 네트워크 활성화 프로그램이 포함된다. 국비 확보와 공공기관 협업 강화를 위한 모니터링 체계도 별도 구축한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가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정책 핵심 과제로 선정한 만큼 국비 연계 사업과 공공기관 협업사업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 ‘규제자유특구 2.0’·APEC 연계 글로벌 도약 모색 포항시는 배터리 리사이클링과 이차전지 소재 실증 R&D의 질적 고도화를 위한 ‘규제자유특구 2.0’을 추진 중이다. 2025년 APEC 정상회의 유치를 지역발전 기회로 삼아 글로벌 투자 유치에도 박차를 가한다. 바이오 특화단지, 포스텍 의과대학 설립, 스마트 병원 건립 등 의료·바이오 산업 기반도 조성 중이다. 전국 최초 민관 상생형 소상공인 금융지원 모델도 시범 시행하며 사회적·경제적 포용성을 확대한다. 청년친화도시 지정, 대학·기업 연계형 청년고용 플랫폼 확충 등도 인재 기반 구축의 주요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단기 일자리에서 장기 생태계로의 전환을 꾀한다. △ 전문가들 “포항은 지방혁신 실험장” 산업구조는 철강에서 이차전지·수소·AI 등으로 다변화되고 도시공간은 관광·문화·정주 인프라로 재편되고 있다. 정책 집행도 시민 중심 일자리와 사회적경제에 집중돼 ‘산업도시 탈피→미래복합도시’ 전환 전략이 구체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포항은 단순한 산업 다각화가 아닌 지방혁신의 실험장”이라고 평가한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철강의 도시를 넘어 미래도시로 도약하겠다”며 “산업전환과 시민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실현해 지속가능한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 ‘철강산업 위기 극복’ 특별법 청원 열기 확산 포항상공회의소 나주영 회장은 지난 7월 ‘철강산업 지원특별법 제정’ 청원을 제안해 약 열흘 만에 7000명 이상 동의를 얻었다. 이 법은 급변하는 통상환경과 탄소중립 압박에 직면한 철강산업을 맞춤형으로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대전환을 요구한다. 나 회장은 “철강산업은 국가경제 기반산업으로, 친환경·디지털 전환에 천문학적 투자와 장기 인내가 필요하다”며 “특별법은 산업 붕괴를 막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긍정적 검토 의사를 밝혔다. 철강산업은 국가 제조업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0%를 차지한다. 친환경 전환 없이는 국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며, 철강 경쟁력 약화는 산업기반 붕괴로 직결된다. 특별법 제정은 산업과 지역의 동반 전환을 위한 국가 의지의 상징이라는 평가다. 포항시는 전방위적 혁신 전략을 통해 산업 위기와 도시 쇠퇴의 벽을 넘고 있다. 신산업 육성, 도시 재생, 일자리 창출, 사회적경제 활성화, 국제화 전략이 맞물려 지역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중이다. 철강도시의 틀을 깨고 ‘미래도시 포항’으로 거듭나는 변화의 흐름이 주목된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08-18

1만4900명 일하는 지역경제 근간… 폐업 공장 흉물 방치

스틸데일리는 지난 7월 포항철강산업단지 입주 기업과 관계 기관을 찾아, 지역 철강업계가 직면한 현안과 포항시·정부에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 청취했다. 관리공단과 포항시청, 그리고 스크랩·봉형강·판재·스테인리스·강관 등 다양한 철강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가동률 하락·유휴부지 방치 심각 수십억대 환경 관리 투자비 부담 철강 부진 인근 상권 침체로 직결 공단 전체 국가산단 승격 필요성 통상 공동 대응·수출 시장 다변화 △ 포항철강산단, 347개 공장 및 1.5만 명 근로자 근무 포항철강산업단지 관리공단(이사장 전익현, 이하 ‘철강공단’)은 산업 단지의 효율적인 관리·운영과 입주 기업체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업무 수행으로 국가와 지방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포항철강산업단지(이하 ‘철강산단’)의 총 면적은 약 1318만㎡(약 400만 평)로, 347개 공장과 1만4900여 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는 ‘대한민국 철강 산업의 심장’이다. 철강공단 운영에는 포항시의 철강 대기업·관련 업체가 참여한다. 현재 17명의 이사와 2명의 감사를 두고 있으며, 당연직 이사 3명(경북도 공항투자본부장·포항시 부시장·포스코 포항제철소)을 비롯해 현대제철, 동국제강, 세아제강 등 14명의 비상임이사가 참여한다. 감사는 성진철강과 조선내화가 맡고 있다. 단지는 1~4단지와 청림지구로 구성되며, 2단지가 4005천㎡(104개 사 입주)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어 1단지(3930천㎡, 74개 사), 3단지(2612천㎡, 75개 사), 4단지(2047천㎡, 98개 사), 청림지구(589천㎡, 4개 사) 순이다. △ 가동률 저하·유휴 부지 확산…환경·법적 제약까지 최근 철강산단은 철강 경기 둔화, 환경 규제, 통상 리스크 등 복합적인 압박에 직면했다. 철강산단은 반세기 동안 지역 경제의 근간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가동률 저하와 업체 폐업 등 구조적 어려움이 가시화되고 있다. 먼저, 가동률 하락과 유휴 부지 확산이 심각한 상태다. 단지 내 철강 업체들의 평균 가동률은 60~70%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폐업이나 휴업을 선언했다. 이로 인해 대형 부지마저 장기간 비어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여파는 협력업체를 비롯해 물류·서비스업 등 연관 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환경 관리 부담도 크다. 오염 저감 설비, 오염수 재활용, 완충 조류 설치 등의 개선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수십억 원대에 달하는 초기 투자비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개별 중소·중견기업이 자체적으로 설비 투자와 인력 확충을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다음은 국가산업단지 지위의 불균형 문제다. 일부 단지만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돼 세제 혜택과 각종 지원을 받고 있지만, 나머지 단지는 일반 산업단지로 분류돼 지원에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 단지를 국가산단으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스마트화 참여의 장벽도 존재한다. 철강산단에서는 스마트 물류 플랫폼, 에너지 관리 시스템, 안전 모니터링 등이 일부 추진되고 있지만, 영세 기업은 초기 투자 부담으로 참여율이 낮은 상태다. 현장에서는 공동 물류창고, 스팀·압축공기 공동 공급 등 기반 인프라를 우선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 철강산단 입주 기업들의 외침 “교통·주거·통상…현실적 지원 절실” 철강산단 입주 기업과 상권 관계자들은 교통·주거 인프라, 통상 대응, 설비 투자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먼저, 교통·주거 인프라 개선 요구가 나왔다. 강관 제조업체 A사는 산단에 입주한 기업들이 직원들의 출퇴근 편의를 위해 현재 버스 노선과 정거장 확대, 직원들의 포항 거주 유도를 위한 6개월~1년 단위 주거 지원 혜택 도입을 요청했다. A사 관계자는 “교통과 주거가 개선되어야 인력 확보가 수월해지고 현장 안정성이 높아진다”라고 힘주어 설명했다. 통상 대응력 강화도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강관 제조업체 B사는 미국의 50% 고율 철강 관세로 미국으로의 강관 수출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율 관세가 사실상 미국 내 생산을 강제해 국내 제조업 기반을 흔들고 있으며, 정부의 대미 협상력이 불충분하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B사 관계자는 “강관 수출의 경우 하반기에 집중되는 업계 특성상 주 52시간 제도의 유연성 확대 없이는 수출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라고 호소했다. 철 스크랩 업체 C사 관계자는 “포항 철강 업계는 포스코 중심으로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으며, 이로 인한 제조업 가동률 하락·스크랩 발생량 급감·건설 수요 부진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 중”이라며 “업종을 막론하고 포항 내 산업 분위기 반전이 예상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D사 관계자는 “외국산 고효율 설비를 도입할 때 정부의 R&D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있어 개선될 필요가 있으며, 국내 개발 장비만 지원 대상이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탄소중립 목표와 연계해 전력 절감, 탄소 저감 설비 도입 등은 기업만의 책임이 아닌 정부와의 공동 대응할 필요가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항 철강 업계의 어려움이 장기화되면서, 포항시 소재 소상공인의 매출 타격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철강산단의 침체가 인근 상권 침체로 곧장 연결되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실제로 철강공단내 한 카페 운영자는 “최근 1년 새 매출이 약 30% 감소했으며, 철강사 직원들의 회식과 미팅이 감소하면서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소상공인들은 포항시가 철강 대기업과 협력 업체뿐만 아니라, 2·3차 공급망과 자영자들까지 모두를 살리는 정책을 정부·지자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호소했다. △ 포항시 “철강·2차전지 동반 성장, 산업 다변화 추진” 포항시는 철강과 2차전지 산업의 동반 침체로 지역 경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지난 7월 ‘철강산업 선제 위기대응 지역’ 지정 신청을 완료했고, 9월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포항시는 산업 다변화 전략으로 ‘3+1’ 전략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항시는 기존 철강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산업 다변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3+1 전략으로써 우선적으로 ‘2차전지, 바이오, 수소’를 육성하고, 그 외 마이스(MICE) 산업을 발전시킬 방침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포항시는 전시·컨벤션센터 1단계 공사를 진행 중(북구 영일대 인근, 2027년 초 준공 목표)으로, 향후 다보스포럼처럼 탄소중립·녹색성장 중심의 세계적 행사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언급했다. 또 탄소 중립 및 녹색 성장 목표에 한발 더 다가가기 위해 수소·2차전지·철강 산업의 연결 구조를 강화하는 동시에,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발맞춰 포항시 차원의 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밖에도 포항시는 바이오산업과 관련된 인프라는 시 차원에서 갖춰져 있는 반면에 임상·의사 및 과학자 숫자가 부족해 추후에는 대형 제약사와의 협업을 활성화할 방침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로써 포항을 ‘수소 시대의 선도 도시’, ‘녹색 성장 중심지’, ‘철강 기술의 메카’로 육성한다는 비전을 밝혔다. △ 포항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삼각축’ 포항 철강산업의 회복을 위해 철강업계는 다섯 가지 우선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포항철강산업단지의 국가산단 승격이다. 포항철강산업단지 전 구역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해 세제·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 경쟁력과 지역 일자리 창출 기회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둘째, 환경 인프라에 대한 국비 지원이다. 폐수 처리, 오염 저감, 재활용 설비 등 친환경 인프라 구축에 안정적인 국가 예산을 투입해 기업들의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셋째, 공동 물류·에너지 인프라 구축이다. 물류창고, 스팀·압축공기 공급망 등 공동 인프라를 마련해 영세 철강기업들의 스마트화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넷째, 통상 공동 대응 채널 운영이다. 미국의 고율 관세 등 통상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업계·협회가 함께하는 공동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장기적으로는 수출 시장 다변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탄력 근무제 도입 논의다. 계절별 수요 변동과 수출 집중 시기에 맞춰 노사 간 탄력적 근무제를 도입해 생산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는 제안이다. 철강업계는 이러한 법·재정·민관 협력의 삼각축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포항이 다시 ‘대한민국 철강의 심장’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포항시가 처한 현재의 복합 위기는 구조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정부·지자체·기업이 속도감 있게 협력할 때 지역 산업 생태계는 회복 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화에서는 포항철강산단의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포항 내 철강사들이 어떤 전략과 청사진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스틸데일리 이명화 기자(lmh@steelnsteel.co.kr)·곽단야 기자(ykd230614@steelnsteel.co.kr)

2025-08-17

철강 도시 포항, 지난 10년간 생산·고용·수출 모두 ‘역성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강경 관세 정책이 재개되면서 한국 철강산업의 심장인 포항이 정면 충격을 받고 있다. 철강 일변도의 산업 구조에 글로벌 무역 질서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장기 침체에 빠진 포항 경제의 ‘시계’가 멈춰가고 있다. 이번 특집은 경북매일신문과 철강전문지 스틸데일리가 공동으로 철강산업의 심장, 포항의 현재를 진단하고 희망과 미래를 조망해보기 위해 3회에 걸친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1편 ‘포항의 현실을 직시하다’에서는 철강 침체가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2편 ‘돌파구를 찾는 사람들’에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기업과 정책을 조명한다. 마지막 3편 ‘희망과 비전을 말하다’에서는 지역 지도자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포항의 비전과 성장 전략을 전한다. <편집자 주> 1970년대 발전 이끈 ‘산업의 쌀’ 美 관세·中 경쟁 등 외부에 ‘취약’ 포항 산단, 10년 새 12.8% ‘생산 ↓’ 지역 유일 ‘석유화학’만 성장 기록 산업침체 따른 인구감소 변화 심화 철강 외 산업 육성·구조 전환 필요 △10년 역성장···‘철강 중심’의 구조적 취약성 노출 1970년대 고도성장기, ‘산업의 쌀’이라 불린 철강을 공급하며 한국 제조업을 이끌어온 포항은 지난 10년간 생산·고용·수출 모든 분야에서 역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올해 들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보다 더 강도 높은 관세 정책을 시행하면서 타격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번 관세 조치는 특정 품목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철강제품에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포항 지역 기업들은 수출 단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내 판매마저 저가 중국산 철강재 공세로 잠식되고 있어 ‘내수·수출 이중 압박’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조강 생산량은 2014년 1640만t에서 2024년 1339만6000t으로 18.3% 감소했다. 연평균 감소율 -1.8%다. 설비 노후화와 재해(2022년 태풍 힌남노), 다품종 소량생산 전략 등 구조적 요인에 더해, 중국산 제품의 글로벌 시장 잠식이 생산 위축을 가속했다. 이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닌, 산업 경쟁력의 체질적 약화를 시사한다. △산업단지 전반 침체···유일한 예외 ‘석유화학’ 포항철강산업단지 총생산액은 같은 기간 17조590억원에서 14조8810억원으로 12.8% 감소했다. 1차금속(-10.5%), 조립금속(-24.4%), 비철금속(-40.3%), 기타업종(-27.5%) 모두 줄었고, 석유화학만 45.2% 늘었다. 하지만 석유화학의 규모는 전체 산업단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회복 모멘텀을 만들기엔 역부족이다. 이 같은 업종별 편차는 포항 산업구조가 특정 품목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신호다. 1차금속의 부진이 곧바로 전체 생산 감소로 이어지는 ‘원-포인트 취약성’이 드러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구조를 방치할 경우, 향후 글로벌 경기 변동이나 무역 규제 강화 시 포항 경제가 더욱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수출 부진···시장 점유율 하락 가속 산업단지 수출액은 2014년 43억9900만달러에서 2024년 33억5000만달러로 23.8% 감소했다. 주력 품목인 1차금속이 24.8% 줄어든 영향이 컸다. 석유화학 수출은 같은 기간 97% 늘었지만 절대규모가 작아 전체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포항시 전체 수출액 역시 114억2100만달러에서 92억3300만달러로 19.2% 줄었다. 반면 수입은 4.1% 증가에 그쳤다. 이는 수출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와 글로벌 수요 둔화가 동시에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철강제품의 대체재가 늘고,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포항산 철강재의 가격·품질 경쟁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늘고 있다. △고용·소비 위축···인구 구조 악화 산업 침체는 곧바로 지역 고용·소비 위축으로 이어졌다. 포항의 주택 매매 건수는 2014년 1만2057건에서 2024년 7350건으로 연평균 4.4% 감소했다. 내수 기반이 약화하면서 지역 상권의 활력도 떨어지고 있다. 그나마 지역내 내수 기반이 취약하더라도 외부로부터의 관광 등 유동인구가 늘어나면 다소 이를 보완 내지는 완충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포항 도심지의 핫플레이스로 초기에 관심이 컸던 포항운하 방문객수는 2014년 연간 43만1459명이 방문했었으나 2024년에는 89.1%가 감소한 7만7958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포항운하크루즈의 탑승객수 역시 2014년 13만5052명이었으나 10년이 지나는 동안 55.9%가 줄어든 5만9596명에 그치고 있다. 이는 지역 관광산업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거나 이를 통한 여타 관광유관산업으로 시너지효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인구 감소세는 뚜렷하다. 2014년 52만4276명이던 포항 인구는 2024년 49만9352명으로 2만4924명 줄었다. 내국인 인구는 2만7787명 감소했고, 외국인 인구가 2863명 증가해 일부 감소폭을 상쇄했다. 지역별로 보면, 남구는 10년간 2만5704명이 줄었고 북구는 780명 늘었다. 북구의 경우 인구 변동이 거의 없었던 이유는 남구를 포함한 동지역 등에서 그동안 흥해읍과 장량동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분양이 이루어지면서 지역내 인구이동이 일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북구의 경우에도 흥해·장량동 등 신규 주거지 개발로 해당 지역 인구는 늘어났지만 중앙동, 죽도동, 용흥동과 같은 도심의 ‘동’ 지역은 모두 인구가 감소했다. 이러한 결과는 결과적으로 전통시장인 죽도시장이나 중앙상가와 같은 도심 상권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실제 부동산통계정보(R-One)에 따르면 포항 중앙동의 2024년 3분기 집합상가 공실률은 32.45%에서 올해 2분기 39.08%로, 소규모상가도 같은 기간 16.32%에서 18.95%로 심각한 상태로 빈 점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남구의 인구 유출은 철강산업 위축에 따른 타지역 전출이 주된 원인으로 해석된다. 이는 단순한 인구통계 변화가 아니라 지역 소비·교육·의료 인프라 전반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철강만으론 생존 불가···산업 다변화 시급” 전문가들은 포항이 철강 의존도를 줄이고 2차전지 소재, 고부가 기계부품 등 신성장 산업으로 수출 구조를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산업 다변화 과정에서 기존 철강 생태계와의 연계, 인력 재교육, 투자 유치 등 상당한 과제가 뒤따른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중장기 로드맵과 재정·정책 지원이 필수적이다. 인구 유출 억제와 생활 인프라 확충, 고급 일자리 창출을 통한 청년층 정착 유도도 병행돼야 한다. 산업과 도시 구조를 동시에 개편하지 않으면, 철강산업 회복만으로는 포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경고다. 포항은 지금, 철강산업 재도약과 신성장 산업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 이를 놓친다면 포항의 미래 성장곡선은 다시 반등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음화에서는 이러한 포항경제의 현실 진단을 기반으로 지역내 각 경제주체가 어떠한 방향으로 새로운 미래 포항 경제를 가꾸어 나갈 것인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08-17

세종대왕 아들들의 ‘태’ 묻은 태봉을 지켜오다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 끝자락에 조용히 솟아오른 꽃봉오리 모양의 작은 산봉우리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자식들의 태를 묻은 태봉이다. 그 숫자가 놀랍게도 18명의 자식과 1명의 손자란다. 그 역사 현장을 나즐로 찾아 나섰다. 자동차를 주차장에 주차하여 놓고는 안내판의 설명에 따라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태봉으로 올랐다. 솔숲을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마음이 고요해지고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마치 시간이 쉬어가는 길목이자, 자연과 인간, 그리고 기억이 만나 속삭이는 풍경이다. 오솔길의 소나무들은 사람을 맞이하는 문이자, 왕자의 영혼들이 솔바람으로 합창하는 생명의 복도 같았다. 태봉에 제 올리러오던 왕실의 사신들 선석사 드나 드는 수행자·마을 사람들 맞이하고 떠나보내고 그늘이 돼 주던 느티나무·소나무·팽나무의 가로 숲길 일제강점기 지나며 강제 이식·벌목 등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은 ‘귀한 존재’ 숲속 오솔길 돌계단을 따라 150m쯤 오르니, 세종대왕자 태실이 봉안된 태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발 258.2m의 완만한 봉우리에 조성된 이곳은 조선왕조의 혼이 담긴 성역이다. 태실은 태어나자마자 아기의 태를 담아 땅에 봉안하던 조선 왕실의 의례, 생명의 뿌리를 정성스레 모시던 신성한 공간이다. 이곳에는 세종의 아들 18명과 단종을 합쳐 19기의 태실이 모여 있다. 그중에는 다섯 왕자의 태실이 사각형의 기단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있지 않았다. 나머지는 조성 당시의 형식을 간직한 채 생명의 출발점이자, 왕실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던 한 왕조의 기원이 담겨 있어 나를 숙연하게 했다. 왕자들의 태실 앞에 왕자보다는 세종대왕이 먼저 생각났다. 말과 글이 달라 뜻을 표현하기 어려운 일반 서민에게 빛과 희망이 된 한글 창제 때문이다. 대왕께서 반포하신 훈민정음은 백성의 입술에 빛을 내려 준 글이었다. 말은 있었으나 글이 없어 침묵하던 민중의 목소리에 문을 열어 준 그 위대한 한글 창제는, 단지 소리를 기록하는 도구를 넘어서, 마음을 전하고 사유를 나누는 문학의 뿌리를 틔운 생명의 씨앗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시와 수필, 소설, 희곡 등 문학을 발전시키고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자연과 사람, 고통과 사랑, 역사와 꿈이 한글이라는 그릇 안에서 꽃을 피웠다. 조용한 백성의 가슴속에도 시심이 깃들게 한 그 위대한 애민의 문자, 그것은 조선이 우리에게 건넨 가장 고귀한 선물이자, 오늘 우리가 문학으로 세상과 이어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다리이었다. 태봉에서 내려와 선석산 아래에 있는 명찰 선석사를 찾았다. 고찰 선석사로 들어가는 가로수를 따라 걷는 길은 너무 인상적이었다. 느티나무, 소나무, 팽나무 등 오래되고 거대한 노거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가로 숲을 이루었다. 그 늘어선 나무의 모습 또한 여느 나무 못지않게 괴이한 모습이 아름답고 멋진 산사의 풍경을 연출했다. 아마 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이곳은 울창한 숲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이 나무를 심어 인공 가로 숲을 만들었다기보다 기존의 울창한 숲의 나무를 베고 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다양한 나무들로 멋진 가로 숲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길에서 문득 나무와 나무 사이로 햇살을 본다. 빗방울이 말라간 자리에 맑은 이슬이 맺혀 반짝인다. 느티나무의 주름진 껍질 사이로, 오랜 세월을 이겨낸 생명의 의지가 돋아난다. 500년을 버텨온 느티나무 앞에 섰다. 아득한 시간 속에서 자리를 지키며 사람과 계절을 품어 온 나무는, 마치 선석사로 들어서는 영혼들의 수호자 같다. 노거수는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한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 아래를 지나니, 300년은 족히 넘었을 소나무들이 바람결에 춤을 춘다. 하늘로 뻗은 가지는 자유롭고도 단정하며, 땅에서 솟은 줄기는 묵묵한 지조를 품는다. 그 모습은 마치 옛 선비의 절개처럼 서 있다. 팽나무 노거수가 해안 지방이 아닌 이곳 조용한 산사에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특별하게 남달라 보였다. 길을 따라 흐르는 개울물은 선석산에서 흘러온다. 맑은 물소리는 나무의 숨결과 어우러져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들린다. 예로부터 선석사로 드나드는 수행자와 마을 사람들, 그리고 태봉에 제를 올리러 온 왕실 사신들이 오르내리던 길이었다. 그들을 맞이하고, 떠나보내고, 비와 눈을 피할 그늘이 되어 주던 나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느티나무는 민중의 신목으로 여겨져 마을 어귀나 사찰 입구에 즐겨 심었다. 느티나무의 펼친 가지는 품처럼 넓어 누구든 그 아래에서 쉼을 얻을 수 있었고, 소나무는 절개와 기개의 상징으로 우리 국민이 선호한 나무였다. 선석사 가로 숲은 그렇게 조선왕조의 예법과 백성들의 일상이 만나는 경계에 서 있었고, 오랜 세월 그 사연들을 묵묵히 품어 온 자연 가로 숲이었다. 역사적 기록으로 보면, 이 숲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강제 이식이나 벌목의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은 귀한 존재다. 태실이 전국적으로 훼손되거나 이전될 때도 성주 태봉은 예외적으로 원래 자리를 지켰고, 그 길목을 지키는 나무들 역시 뿌리째 뽑히고 베어지는 아픔을 면했다. 가로 숲은 침묵의 저항이자 살아남은 기록이며, 조용한 수호자였다. 오늘날 그 가로 숲길을 걸으면 바람 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그 길을 걷는 이마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조용히 옮기는 이유는 어쩌면 그 숲이 기억하는 것들이 너무나 깊고도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주 인촌리 선석사 가로 숲은 단지 오래된 나무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시간, 믿음과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생명의 서사시이다. 이곳을 걷는 이마다 나무로부터 위로와 깨달음을 얻으며 많은 것을 사유하게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나뭇잎처럼 흔들리다, 바람처럼 스며든다. 선석사는 신라 효소왕 69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원래는 신광사로 불리다가 고려 공민왕 1361년, 나옹왕사 혜근이 이곳으로 옮겨오며 선석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큰 바위(禪石)가 터에서 나와 절 이름이 되었고, 그 바위는 지금도 선석사에 서 있다. 임진왜란으로 불탔다가 다시 중창된 절은 조용하고 단아하다. 대웅전과 태장전, 명부전과 칠성각, 사천왕문과 산신각이 나란히 어우러져 있으며, 대웅전은 조선 후기 다포양식의 맞배지붕 구조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선석사 경내에도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등 수백 년 된 벚나무가 살아가고 있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태실이란 왕실의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씻어서 태항아리에 담아 봉안한 곳을 말한다. 태을 묻는 과정이 장태(藏胎)는 고려 시대도 있었으며 왕의 태를 묻었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면서 왕자와 공주의 테를 묻었다. 조선 초기부터 장태 의례는 왕실의 주요 의례였으며 엄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태가 국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명당인 이곳의 태봉까지 태를 옮겨 태실을 조성한 것은 태어난 아기의 무병 장수를 기원하는 동시에 왕실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러한 장태 의례는 조선 후기까지 이어지면서 절차가 간소화되었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세종 20년 1438년에서 세종 24년 1442년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세종의 아들 18명과 손자인 단종을 합쳐 모두 19기의 태실이 모여 있다. 보통 1기씩 조성되어 따로 떨어져 있는 태실과는 달리 이곳에는 많은 수의 태실이 모여 있는데 전국 어디에도 이런 규모의 태실은 없다. 일제강점기 전국의 태실이 일본에 의해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으로 일부 옮겨졌을 때에도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제자리를 지켜 옛 모습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다. 조선 시대 태실의 초기 형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면서 왕실의 태실 조성 방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볼 수 있는 조선시대의 중요한 자료이며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태란 태반이나 탯줄과 같이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조직을 이루는 말. 봉안이란 시신을 화장하여 그 유골을 그릇이나 봉안당에 모시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는 아기의 태를 담아 모시는 것을 뜻한다.-(안내판 글 옮김)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8-13

석굴암, 제국은 어떻게 전리품으로 삼았나

■ 성전을 향하여 석굴암통일대종 전각은 물먹은 나무처럼 묵직하게 젖었다. 사방에 근원을 알 수 없는 운무가 피어 산등선을 기어오른다. 불국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짙은 안개가 혼령처럼 밀려와 몸을 묶고 시야를 가린다. 눅눅한 공기 사이로 사람과 건물이 사라졌다 보이곤 했다. 계단을 오르고 길을 따라 걷는다. 돌계단을 오르던 중 앞서 걷는 소녀를 보았다. 각자 혼자인 우리는 말없이 눈을 마주쳤다.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달라 낯설었지만 낯섦이 마냥 불편하지는 않았다. 인사를 나누고 금세 길동무가 된다. 토함산 기슭, 나무 아래 석조유물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정제되지 못한 채 흙바닥에 놓인 석물은 장맛비에 젖어 눅눅한 기운을 한껏 머금었다. 감실벽석, 감실천정석, 받침석, 석상받침대, 용도를 알 수 없는 석재들까지, 빗방울은 가만히 표면을 적신다. 푸른 이끼가 낀 단면엔 연꽃무늬 조각과 아치형 구조, 미완의 기둥, 얕게 새겨진 음각의 곡선이 드러나 있다. 표지판엔 쓰인 ‘용도불명’의 글자 앞에 서자 시간의 결이 혼란스러워지는 듯하다. 소녀는 조심스레 석물 사이로 들어가 돌 하나하나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를 따라 석조의 결을 오래 들여다본다. 산은 잠잠했다. 소녀도 나도 말이 없었다. 미처 맞물리지 못한 돌들의 옛날을 떠올리는 것처럼. 토함산 기슭 운무에 잠긴 통일대종 석굴암 산길 따라 놓인 석조유물들 유리벽 너머 정좌한 석불의 웅장함 돌기둥의 미세한 문양·솟은 천개석 염불하는 스님 등 성스럽고 아늑해 1915년 일제의 석굴암 보존 공사 후 원형 등 훼손… 파괴에 가까운 ‘보수’ 조선의 문화유산, 정복의 상징으로 ■유리벽 안의 석불 우리는 묵묵히 발끝을 세우며 젖은 돌계단을 밟는다. 계단 위, 금속판에 새겨진 석굴도 앞에서 둘 다 한참을 들여다본다. 평면도와 종단면에 나누어 새겨진 선은 복잡하면서도 질서가 있다. 석실, 전실, 통로, 본존불, 감실, 궁륭의 구조까지 세밀하게 표시해 놓았다. 소녀는 금속판을 손가락으로 더듬는다. 구조의 정밀함에 마음을 뺏긴 듯하다. 석굴암 전각 입구 관람 안내문은 정중하게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유리벽 너머로만 보라’는 당부다. 보존을 위한 거리의 간격, 허락된 틈으로 우리는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보았다. 마른 숨소리도 죽인 채 우리는, 서로 다른 눈으로 하나의 풍경을 응시한다. 누군가의 손으로 다듬어진 석불은 조명 아래 환하게 빛난다. 정좌한 석불은 숨이 막힐 듯 웅장하다. 그 앞에 앉아 염불을 외는 스님은 정중하다. 웅장한 석불과 염불 속에 어떤 경외가 인다. 숙연한 마음이 저절로 따라왔다. 석불의 눈매는 고요하다. 묵언을 수행하듯 입가엔 미묘한 미소가 번지는 듯하다. 눈꺼풀은 반쯤 감긴 듯하고, 시선은 바닥을 향해 가라앉아 있는 듯하다. 어깨는 넓고, 가슴은 잔잔하게 부풀어 있으며, 손끝은 법계를 상징하듯 가지런히 모아졌다. 옷자락은 어떠한가. 바람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매끄러운 주름을 이루었다. 돌의 결을 따라 흘러내린 유연한 곡선과 은은한 품격은, 바라보는 이의 숨을 조용히 멎게 한다. 홀린 것인가. 소녀는 말없이 서 있고, 이국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따라 마음도 흐르는 듯했다. 석실 내부는 낮은 숨결들이 모여 점점 근엄해지고 있다. 본존불을 둘러싼 감실에는 보살상들이 석불을 향해 각자의 위치에서 경배하고 있다. 돔을 따라 새겨진 십일면관음과 사천왕상은 조명이 스칠 때마다 부드럽거나 때로는 거친 입체로 떠오른다. 돌기둥 위의 문양은 살아 있는 듯 미세하게 움직이는 결을 드러낸다. 성큼성큼 걸어와 나의 죄를 낱낱이 물을 것 같이. 천장은 무게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솟아오른 천개석이 받치고 있다. 밀폐된 느낌보다 아늑함이 먼저 인다. 석굴암은 지금도 종교와 과학, 조형과 정신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머문다. 침묵이 감싼 석실 안에는 수백, 수천 번의 예경(禮敬)과 무언의 기도가 쌓였을 테다. ■‘보수·복원’이라는 이름 1912년 겨울, 데라우치 마사타케(1852~1919, 초대 조선총독) 총독이 토함산에 올랐다. 눈 덮인 봉우리 끝에서 마주한 석굴암은 폐허에 가까웠다. 돔을 덮은 봉토는 무너져 내렸고, 감실과 주실 사이에는 균열이 깊게 퍼져 있었다. 처참했다. 조선 병탄을 정당화하려 했던 제국에게, 동양 최고의 석굴사원이 무너지는 것은 자존심의 훼손이자 상징의 실추였을 것이다. 석굴암은 그해 총독의 명령 아래 ‘보수’라는 명분으로 완전히 해체되기 시작되었다. 1913년 여름, 설계 조사를 마친 총독부는 공사에 착수했다. 본격적인 해체가 시작되자 석굴암의 모든 부재가 완전히 분해되었다. 봉토는 벗겨졌고, 석실의 석재는 순서대로 땅 위에 내려졌다. 원형 그대로 남겨진 본존불과 천장을 꾸민 천개석 둘레를 비계와 작업 인부들이 둘러쌌다. 벽면을 가득 채운 감실의 보살상들은 모조리 떼어 땅으로 내려졌고, 판석들은 길게 늘어서 노출되었다. 해체된 석재 중 파손된 것들은 새로 다듬었다. 마모된 면은 치석했고, 균열 난 것은 덧붙였다. 그러나 떼어낸 감실의 석조들은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 전실 조각 배치는 흐트러지고, 원래의 유기적 질서는 재조립 과정에서 무너졌다. 아수라상은 옹벽 안에 갇혀 있었다. 일제의 보수는 파괴에 가까웠다. 전실과 진입 공간엔 시멘트와 자갈을 섞어 옹벽을 쌓았다. 돔 전체에는 1미터가 넘는 두께의 콘크리트가 입혀졌다. 그리고 흙으로 덮고 잔디를 심었다. 1915년 9월 15일, 석굴암 보존 공사 낙성식이 열렸다. 총독부 고위 관리들과 지방 관료, 기자들이 토함산 꼭대기에 모여 성대한 개안 법회를 거행했다.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저들끼리 자축하며. 석굴암 표면은 말끔해지고, 잔디 위에 심은 나무들은 자리를 잡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비가 스며들어, 콘크리트 벽면을 타고 흘렀다. 습기는 균열 사이 사이로 스며들어 곰팡이가 슬고 석태와 청태가 끼었다. 내부가 병들기 시작한 것이다. ■야욕과 훼손 1910년대 석굴암 1차 보수공사 기간 중, 총독부는 본존불 상부 천정석에 ‘日本’ 두 글자를 음각했다. 언제, 누가 새겼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공사에 참여한 관계자들의 만행이 아닌가 싶다. 조선총독부의 명시적 지시나 묵인 아래 진행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단지 나라 이름을 새긴 일이 아니었다. 제국 일본이 조선의 문화정신과 종교성 위에 자국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해 이름을 올린 만행이었다. 조선의 역사 유물을 제 것이라 여긴 자들의 야만은 침탈의 증거였고, 정신적 훼손의 절정이었다. 일제는 다 무너져 가는 석굴암을 구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새로 단장된 석굴은 완전 해체와 재조립을 하며 제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틈과 틈을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사용해 메웠다. 어쩌면 그들에게 보수는 위장이었을 것이다. 본질은 탈취된 채, 일본의 제국성을 상징하는 기념비로 만들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데라우치 총독은 경주 방문 시 ‘不二法門(불이법문)’ 2척 크기의 네 글자를 써주고 석굴 벽에 새기도록 명령했다. 자신의 글씨를 명작이라 칭하며 본토에서 석공까지 불러 새기도록 했다. 한나라의 성스러운 불전 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제국의 수장은, 문화유산을 하나의 낙서판으로 삼으려 했던 모양이다. 단순한 오만이 아니라,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몰지각한 행동이었다. 데라우치의 만행은 일본인의 눈에도 낯부끄러운 일이었다. 오쿠다 고운은 석굴암 입구 바위에 새긴 데라우치의 글씨를 두고, ‘문화재를 훼손하는 몰지각한 낙서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또한 ‘天下無雙(천하무쌍)의 名山靈地(명산영지)를 장식하려는 명필’이라는 백작의 의도는 헛되었고, 글씨는 정교하지도 않았으며, 감탄은커녕 조롱을 불렀다. (김진호역, 오쿠다 고운, ‘신라구도 경주지’, 1920, 217쪽.)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망이 불전 위에서조차 멈추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치졸한 흔적으로 남았다. 신성한 바위 위에 새긴 네 글자는 제국의 오만을 드러낸 휘호였고, 일본인조차 얼굴을 돌릴 만한 부끄러운 흔적이었다. 어디 데라우치뿐이었을까. 석굴암 관광이 시작되면서 조선인과 일본인 모두가 앞다투어 석굴암에 이름을 새기려 안달했다. 안상석 위에, 감실 곁에, 신중상 밑에 자신의 이름과 염원을 남겼다. 그들이 남긴 낙서는 신성의 자리에 남긴 치욕이었다. 일제는 석굴암을 다양하게 촬영했다. 그리고 공사 전과 후의 사진을 나란히 붙였다. 무너진 조선의 유산과 단장된 일본의 석굴암을 대놓고 대비시켰다. 사진 속 단장된 석굴암은 식민의 무대였고, 조선은 무능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제국의 위대함을 기념하듯 황족과 장군, 관리들은 석굴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석굴암은 곧 선전물로 가공되었다. 엽서로 만들어 관광객을 상대로 팔았다. 석굴암은 순례지가 아닌 볼거리로 전락했다. 성소가 아니라 전리품이 되었다. 조선의 불전은 상품이 되었고, 침탈의 증거로 진열되었다. 일본제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함부로 의미와 가치가 바뀌고 있었다. *일제가 신라 문화유산에 집착한 이야기와 석굴암을 경성으로 이송하려 했던 이야기는 (하) 편에서 계속됩니다.

2025-08-13

여행자들의 발길 이끄는 바다와 숲의 매혹적인 결합

올해 1월 1일 운행을 시작한 ITX-마음 열차는 경북은 물론, 부산과 울산에서 강원도를 여행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시간과 비용 두 가지 면에서 모두 그렇다. 그 사실을 한국교통연구원 철도교통연구본부 김경택 부연구위원의 논문 ‘동해선 개통의 영향과 교통 정책’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늘어선 기암괴석과 백사장이 아름다운 ‘추암해변’ 해돋이 명소 ‘추암 촛대바위’ 관광객들 끊이지 않아 호암소에서 시작해 용추폭포에 이르는 ‘무릉계곡’ 옛사람이 왜 ‘신선이 살던 곳’이라 했는지 절로 이해 철마다 얼굴 달리하며 관광객 반기는 다양한 명소 인심 좋은 상인들과의 만남이 여행의 즐거움 더해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ITX-마음 열차는 태화강역, 포항역, 삼척역, 동해역을 거쳐 강릉역까지 운행된다. 부산, 대구, 경주 등에서 강릉까지 교통수단별 통행시간과 비용을 살펴보면, 부산-강릉 구간은 자가용 4시간 16분(8만8600원, 톨게이트 및 연료비 포함), ITX-마음 4시간 49분(3만4900원), 시외버스 6시간 3분(4만3700원)의 순으로 나타났다. 통행시간만 보면 부산-강릉 구간에서는 자가용이 가장 빠르나, 통행비용은 ITX-마음이 두 배 이상 저렴하다. 특히 통행시간을 시간가치로 환산한 후 통행비용을 합한 값인 일반화 비용을 보면 ITX-마음이 가장 경제적인 수단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ITX-마음을 타고 포항에서 삼척으로 향한 건 지난 7월 19일. 적지 않은 비가 쏟아졌지만 기차 안은 쾌적하고 조용했다. 삼척은 기암괴석이 웅장하게 서있는 해변과 울울창창한 청정 숲을 지닌 강원도 들머리의 관광도시다. ▲삼척, 바다와 숲의 행복한 결합 이뤄내고 여행자 반겨 삼척항에서 삼척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이사부길’은 매혹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이 높고, 은빛 모래가 10리를 이어지는 맹방해변 또한 발전 가능성이 높은 관광 명소다. 소나무, 유채꽃, 벚꽃이 철마다 얼굴을 달리하며 여행자를 반긴다. 왼편으로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40여 분 유유자적 달리는 레일바이크도 삼척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기자 역시 직접 레일바이크에 올라 그 인기를 실감했다. 삼척의 환선굴, 대금굴, 이끼폭포, 소한계곡, 검봉산 자연휴양림은 바다가 가진 매력과는 또 다른 짙푸른 매혹을 여행자들에게 선물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삼척은 바다와 숲의 매력적인 결합을 이뤄낸 후 관광객을 기다리는 도시. “천만 관광도시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삼척시의 의지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느끼겠지만, 여행의 추억은 좋은 사람과의 만남으로 완성되는 법. 기자의 경험에 한정시켜 말하면 삼척엔 양심적인 태도를 가지고 진심으로 손님을 대하는 상인이 몇 있었다. 일부 지역 관광지 상인들과 달리 목소리 높여 호객을 하지 않고, 바가지를 씌우지 않은 정직한 가격으로 활어를 판매하는 횟집 주인, 성실한 태도로 음식을 만들어 점잖게(?) 판매하는 두부요리 전문식당 상인을 삼척에서 만났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개통된 동해선 철길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삼척으로 불러들일 게 분명하다. 손님이 많아지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고 시종여일(始終如一)의 자세로 장사를 이어갈 상인이 비단 삼척만이 아닌 동해선이 통과하는 도시 곳곳에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집’이 아닌 ‘길’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절대다수의 여행자가 같은 심정이리라. ▲동해 무릉계곡에서 만난 나비와 절경 자랑하는 추암해변 삼척역에서 동해선 기차를 타고 15~16분이면 가닿을 수 있는 동해역. 그 일대에도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풍경이 적지 않다. 먼저 추암해변. 어떤 곳이냐고? 간략하게 한국관광공사의 설명을 아래 옮긴다. “추암해변은 기암괴석이 늘어선 해안 절벽과 고운 백사장이 아름답다. 해변의 크기는 작지만 절경을 감상하기엔 충분하다. 추암해변은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한데, 그중 추암 촛대바위는 사계절 내내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해선 기차를 타고 동해역에 갔다면 거리가 조금 멀어도 꼭 가봐야 할 곳이 하나 더 있다. 무릉계곡(武陵溪谷)이다. 삼척의 숙소에서 일찍 일어난 새벽. 무릉계곡을 찾았다. 그리고 보았다. 너무나 화려한 색깔의 꽃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나비 한 마리를. 어떤 형용사로도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어째서 옛사람들이 호암소에서 시작해 용추폭포에 이르는 그 계곡을 ‘신선이 살았던 공간’이라 했는지 이해될 듯도 했다. 동해선 철길은 바다와 숲이 조화를 이뤄낸 삼척과 무릉계곡의 비경을 간직한 동해로 가는 길을 보다 편하게 만들어줬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강원도 관광산업의 효자’라 불러 마땅하지 않을까? 기차·도보여행 마니아가 바라본 ‘동해선’⋯ 포항에 거주하는 김대균(65)씨는 기차와 도보여행 마니아다. 동해선이 개통된 후 10여 번을 기차에 올랐고, 경상북도와 강원도 곳곳을 오갔다. 지난 7월 말. 그를 만나 동해선 이용 소감과 함께 향후 개선됐으면 하는 점을 물었다. -올해 1월 1일 동해선이 온전히 열렸다. 상반기 통계를 보면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동해선 기차를 이용했다고 한다. 당신 역시 동해선 ‘단골 이용자’라고 들었는데. “6개월간 열 번 정도 동해선을 탔다. 직장을 다녔더라면 주말에 이용했겠지만, 이젠 퇴직한 상태라 주중에 자주 다녔다. 처음엔 토·일요일만이 아니라 평일에도 예약이 쉽지 않았다. 이젠 코레일 앱 사용법을 익혀 조금은 쉽게 예약을 하게 됐다.” -동해선을 타고 경북은 물론, 강원도 각지를 다녀온 것으로 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동해선 여행지가 있다면 추천 부탁한다. “삼척, 울진, 강릉, 정동진 등 동해안 전체가 아름다운 풍경이 많은 곳이다. 어느 한 곳만을 특정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 경우엔 영덕을 추천하고 싶다. 갈 때는 포항에서 열차를 타고가 돌아올 때는 해안 둘레길을 따라 걸어서 온 적이 있다. 꼬박 1박2일이 결렸는데, 그 과정에서 동해의 자연환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하루라도 빨리 동해선이 강릉을 넘어 속초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동해선 철길을 오가는 요즘 기차와 예전 기차를 비교하면 어떤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있다. ITX와 누리로 기차는 최신형이고 깨끗하다, 연착도 거의 없다. 내가 예순다섯이다. 젊을 땐 중앙선 낡은 기차와 털털거리는 버스를 갈아타고 강원도에 다녔다. 단축된 시간과 쾌적함을 보자면 지금의 변화는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동해선 애용자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기차를 이용해 동해선이 지나는 조그만 도시를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관광지와 식당, 숙소 정보를 꼼꼼하게 담은 구체적인 여행안내서가 출간되고, 그게 역마다 무료로 비치됐으면 한다. 지역마다 있는 관광안내소 직원들이 더 친절하고 전문적인 관광 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도 이뤄졌으면 좋겠다.”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8-12

‘포항시 꿈드림’ 학교 밖·은둔 청소년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

관계 맺기, 영화 보기, 외출하기에서부터 검정고시 도전, 바리스타 등 자격증 따기···. 고립·은둔 청소년과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것들이다. 이들이 단절했던 세상과 다시 연결해주는 ‘멘토’가 있는데, ‘포항시청소년재단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이하 포항시 꿈드림)다. 포항시 꿈드림이 지난해 8월 마련한 대학 입시설명회의 풍경은 여느 설명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교복 대신 편안한 옷에 검정고시 성적표를 손에 쥔 청소년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입시 전략 특강에 나선 강사가 “검정고시 성적으로도 수시 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알리자 청소년들의 표정은 호기심에서 설렘으로 바뀌었다. 막연하기만 했던 ‘대학’이라는 단어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어서다. 교재부터 단계별 검정고시 준비… 합격 이후 대입설명회·컨설팅·개별 진로 상담 지난해 포토샵·바리스타·베이킹 등 자격증 취득 32명·직업훈련 연계 17명 성과 ‘카페데이’ ‘무비데이’ 등 진행하며 고립·은둔 청소년’ 과 지속적 연결고리 만들어 상담 부스에서는 20여 곳의 대구 ·경북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검정고시 성적표를 토대로 학과별 특성과 입시 지원 전략을 친절하게 설명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생생한 정보를 접할 절호의 기회였다. 신모양(18)은 “상담을 통해 막연하기만 했던 대학 입학 도전이라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라면서 “덩달아 향후 진로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포항시 꿈드림 관계자는 “입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은 아이들에게 ‘너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줄 수 있었다”라면서 “올해도 8월 중에 2026학년도 입시설명회를 열겠다“고 전했다. 포항시 꿈드림은 검정고시 준비부터 도와준다. 인터넷 강의와 교재 지원에서부터 대면·비대면 멘토링, 모의고사와 오답 풀이까지 단계별로 체계적으로 돕는다. 합격한 이후에는 대학 입시설명회, 컨설팅, 개별 진로 상담도 해준다. 올해 제1회 검정고시에서 초졸 5명, 중졸 17명, 고졸 68명 등 90명이 합격증을 받았다. 지난해 같은 회차 대비 12.5% 늘었다. 지난해 전체로는 검정고시 합격자 131명, 대학 진학자 30명, 정규·대안학교 복귀자 4명이라는 성과도 냈다. 포항시 꿈드림 관계자는 “낯을 가리거나 불안해하면서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했던 학교 밖 청소년들이 꾸준한 격려와 상담을 거치면서 점차 마음을 열고 검정고시 공부를 하며 자신감을 회복했다“면서 “공부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합격 통지서를 직접 손에 들고 자부심을 느끼는 아이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포항시 꿈드림은 포토샵(GTQ), 바리스타, 베이킹 등 자격증 취득도 돕는다. 경북도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경북꿈드림)가 주관하는 ‘직업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1단계 진로상담부터 4단계 인턴십까지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국민취업지원제도나 내일배움카드와 연계해 심화 과정으로 나아간다. 지난해 자격증 취득 청소년은 32명, 직업훈련 연계는 17명이다. 문화·관계 체험도 다양하다. 올해는 경주월드 수학여행(20명), 계명아트센터 뮤지컬 관람(11명), 영일대 인근 서바이벌 게임과 문화관광(10명) 등을 진행했는데, 새로운 경험과 또래 관계 형성이라는 성장의 자양분을 얻었다. 건강 유지 비법도 가르쳐준다. 9세 이상 18세 이하 청소년을 대상으로 3년 주기의 건강검진을 해준다. 지난해 35명이 검진을 받았는데, 이상 소견이 발견되면 위기청소년 특별지원사업과 연계해 치료까지 해준다. 포항시 꿈드림의 손길은 세상과 한 걸음 떨어진 고립·은둔 청소년에게도 닿는다. 포항에는 2023년 기준 431명의 학교 밖 청소년이 있고, 이 가운데 70~80명은 연락조차 끊긴 ‘고립·은둔 청소년’으로 분류된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 대상자로 관리하는 청소년은 29명이다. 전국적으로는 고립·은둔 청소년이 14만 명에 달한다. 통계청 사회조사를 보면, 사회적 고립 청소년 비율은 5.2%, 만 13~18세 인구 기준 13만 9913여 명이다.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서는 응답자 4명 중 1명이 “10대부터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고립·은둔 청소년‘과 연결 고리 만드는 것부터 쉽지 않다. 중고거래 플랫폼 광고, 행정복지센터, 클래스 상담교사, 청소년 밀집 지역 아웃리치 등으로 끊임 없이 연결 고리를 만든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 맺기’다. 고립·은둔 청소년과의 관계 형성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 데다 좀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방에 숨어 있는 경우 대면도 어렵다. 상담사들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동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찾아간다. ‘네가 필요할 때 언제든 나와도 된다’, ‘나는 늘 여기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다. 청소년의 관심사를 찾아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간식을 반기는지, 어떤 활동에 흥미를 느끼는지 세심하게 살핀다. 맞춤형 홈키트를 건네면서 심리적 거리를 조금씩 좁히고, 말없이 곁을 지키기도 한다. 노력이 쌓이면 청소년은 조금씩 마음을 열어 처음엔 현관문을 열고, 시간이 지나면서 거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상담사는 대화나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조용히 함께 머무는 것 자체가 관계 형성의 시작이다. 거실에 익숙해진 이후에는 외출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카페 데이’다. 익숙하지 않은 외부 환경에 대한 불안을 줄이기 위해 사람이 적고 조용한 카페를 고른다. 처음에는 상담사가 음료를 대신 주문하고 다음 만남에는 청소년이 직접 주문하게 한다. 사회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외부 활동은 점차 확대된다. 단순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적응을 위한 일종의 ‘리허설’이다. ‘무비 데이’는 부모와 함께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영화는 끊긴 가족의 대화를 다시 잇는 매개체가 된다. 버스를 타는 활동처럼 소소하지만, 일상적인 외출도 진행한다. 처음 가보는 장소, 처음 해보는 경험 속에서 청소년은 세상과 조금씩 연결되는 법을 배운다. 항상 순조롭게 관계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다시 문이 닫히고, 연락이 끊기는 일도 생긴다. 이럴 때 상담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다시 문 앞에 선다. 이 꾸준함이 결국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부모 상담도 필수다. 지친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고, 소통법을 배우기 시작하면 그 변화는 자연스럽게 청소년에게 전해진다. 부모가 변하면 청소년도 서서히 마음을 열고 상담에 응한다. 결국 가족의 변화가 청소년 회복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포항시 꿈드림의 다양한 사업은 ‘고립·은둔 청소년 원스톱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시행한다. 지난해부터 전국 12개 지자체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경북에서는 포항이 유일하다. 지난해 포항시 꿈드림은 체험 키트 42명, 카페 데이 23명, 무비 데이 10명, 학습 지원 6명, 부모 교육 8명, 솔루션 협의회 9회를 진행했다. 유성재 센터장은 “청소년 복지는 단순히 보호가 아니라 자립으로 가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지도“라면서 ”관계의 끈을 놓지 말아야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스스로 설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이 있다면 언제든 센터의 문을 두드려 달라”고 당부했다. /김보규기자 kbogyu84@kbmaeil.com

2025-08-07

경주 최진립 장군의 충절과 청백의 정신

경주 최진립(崔震立, 1568~1636) 장군의 생가 잠와고택 충의당은 상류층의 도덕성을 얘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한국적 뿌리이다. 곧 경주 최부잣집, 명문 가문의 출발지다. 45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최씨 가문을 빛나게 한 유훈 정신의 출발 선상에는 충의당 동쪽에 있는 최 장군이 직접 심은 회화나무가 있다. 나이 450살, 키 15m, 몸 둘레 4.7m의 거대한 노거수이다. 수많은 수난의 역사를 겪었지만, 아직도 건재하게 경북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234-2번지에 생을 이어가고 있다. 회화나무 노거수에 깃들여있는 최진립 장군의 충절과 청백의 정신은 여름 더운 햇살에도 불구하고 푸른 하늘 향해 가지를 뻗고, 잎들이 바람에 손짓한다. 역사는 침묵 위에 기록된 울림이다. 그리고 그 울림은 어떤 이의 삶을 통해 더욱 맑고 깊게 퍼진다. 병자호란의 참담한 국난 속, 나이 칠십을 바라보던 한 노장은 말에 올라 창을 들었다. “내 비록 늙어 잘 싸우지는 못하지만, 싸우다 죽지도 못하겠는가!”라는 일성은 조선의 마지막 충의(忠義)를 밝힌 횃불이 되었다. 그는 바로 정무공 최진립 장군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한국적 뿌리 최진립 장군 생가 경주 잠와고택 충의당엔 최 장군이 심은 나이 450살·키 15m·몸 둘레 4.7m 거대한 회화나무가 함께해 그 나무 아래서 자란 후손들 ‘가거십훈(家居十訓)’ 유산 삼아 청부 정신 피워내 회화나무 노거수 주변은 익명의 기부자로부터 받은 돈으로 장군의 동상과 업적을 소개한 글들을 새겨놓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의병을 이끌고, 왜적과 싸웠다. 그리고 사십여 년이 흐른 병자호란, 이미 노쇠한 장군은 다시 칼을 들었다. 몸은 늙었지만 뜻은 굳세었고, 용인의 험천에서 끝내 적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순절하였다. 벼슬길에 있을 때는 녹봉을 아껴 향교를 고치고 성곽을 보수하며, 백성을 자식처럼 돌보았다. 나라는 그의 절개와 청렴을 높이 평가하여 청백리(淸白吏)로 선정하였고, 불천위로 모셔 그 정신을 길이 전하도록 하였다.” 싸움터에 쓰러진 그의 마지막 모습은 한 줄 시처럼 뜨겁고 장엄했다. 그러나 최진립의 위대함은 단지 무사의 충절에만 머물지 않았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공직자들에게 장군의 삶은 단순한 옛이야기로만 머물지 않는다. 공직은 부귀의 수단이 아니라 섬김의 자리고, 권위가 아니라 신뢰로 세워져야 한다. 탐욕이 아닌 절제, 아첨이 아닌 곧은 소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성을 향한 따뜻한 눈빛. 최진립 장군의 삶은 이러한 공직자의 자세를 온몸으로 증명한 교과서이며, 우리는 그분의 숨결을 통해 오늘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최진립 장군의 위대한 정신은 그의 생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숭고한 뜻은 혈맥을 타고 이어져 후손의 삶 속에서도 실천으로 되살아났다. 그의 아들 최동량은 집안을 다스리는 도덕적 지침으로‘가거십훈(家居十訓)’을 지어 후손들의 삶을 경계하고 이끌었다.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 말 것,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할 것, 흉년엔 땅을 사지 말 것, 과객을 후히 대접할 것, 100리 안 굶는 백성이 없게 할 것… 십계처럼 빛나는 그 가훈은 물질보다 사람을 앞세운 삶의 윤리였고, 부유하되 청렴하고 넉넉하되 절제하는 삶의 태도였다. 이러한 정신은 장군의 손자 최국선에게로 이어졌다. 그는 실제 만석꾼이 되었으나, 그 부를 권력의 사다리로 삼지 않고 백성과 나눔의 다리로 삼았다. 모내기와 시비법을 도입해 농법을 혁신했고, 흉년엔 차용 문서를 불태우며 빈민을 구제했다. 재산을 쌓기보다 ‘청부(淸富)’를 실천했고, 윤리 없는 풍요를 부끄러워했다. 이 같은 삶의 자세는 이후 400년 넘게 이어져 오늘날 ‘경주 최부자집’이라 불린 가문의 명예로 도덕적 자산이 되었다. 그 시작점, 곧 최진립 장군이 태어난 집이 바로 경주 내남면 이조리의 잠와고택 충의당(潛窩古宅 忠義堂)이다. 충의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한국적 원형이 꽃핀 공간이다. 생가 뜰에 뿌리를 내린 회화나무는 장군의 화신과도 같이 ‘부는 나눔을 통해 빛나고, 권력은 겸손을 통해 완성된다.’라는 장군의 정신을 지켜온 존재가 아닐까 싶다. 최진립 장군이 손수 심었다는 나무는 사백 해를 넘는 세월을 살아냈고, 지금도 충의당의 마당 한가운데에서 그늘을 드리운다. “임진왜란 때 최진립 장군이 갑옷을 이 나무에 걸면 나무가 능청 능청하였다.”라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바람과 비, 전란과 평화를 견뎌낸 회화나무는 이제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군의 분신이자, 가문을 지켜온 살아 있는 유산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당시의 인물들이 모두 세월에 묻히고 잊혀가는 가운데, 회화나무는 그 옛날의 장군의 기개와 정신을 일깨워 우리에게 숭고한 정신을 전하고 있다. 회화나무 아래에서 자라난 자식과 손자들, 그리고 그 후손들은 나무를 조용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 최진립 장군의 모습으로 여겨왔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데, 장군의 절개는 나무의 줄기요, 잎의 푸르름은 장군의 청백 정신으로 여겨졌다. 넓은 그늘은 후손들에게 쉴 자리와 삶의 방향을 일러주는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나무를 보면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을 보면 나무를 닮는다.”이조리의 회화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철학이고, 유산이며, 삶의 태도였다. 장군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뿌리는 나무를 타고 살아났고, 그 나무의 기품은 후손들의 마음에 뿌리내렸다. 가거십훈(家居十訓)은 나뭇잎처럼 가지마다 매달렸고, 청부(淸富)의 정신은 사계절마다 다시 피어났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회화나무는 단지 한 장군의 흔적이 아니라, 민족의 운명을 함께 품고 살아온 신비로운 생명체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해, 나무는 갑작스레 잎이 마르고 고사하여 죽은 듯 보였으나, 1945년 해방과 함께 다시 싹을 틔워 살아났다고 한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추위를 피하려고 불을 피우다 불꽃이 나무 둥치에 번졌고, 겉은 타버렸지만, 그 해를 지나 다시 푸른 잎을 피워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나라의 혼이 되살아난 징조라며 감격했고, 그 나무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이들도 생겨났다. 나무에 금줄이 쳐져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 수호신으로 동제를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몇 차례의 죽음과 부활을 겪으며 살아온 회화나무 노거수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었다. 이는 장군의 기개가 뿌리로 살아 있었고, 나라의 영혼이 가지마다 깃들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람 불 때마다 나뭇잎은 떨림이 아닌, 조용한 대화처럼 울렸고, 나무 아래를 지나던 이들은 저마다 가슴 한편에서 조상의 숨결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었다. 회화나무 노거수는 그렇게 한 장군의 철학이자, 한 민족의 의지로서 오늘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 경주 최씨 가문의 육훈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벼슬을 하지 말라. :공직은 봉사의 자리이지 부와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님을 강조.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부를 독점하지 않고 사회와 나누는 윤리.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남의 불행을 기회로 삼지 말라는 가르침. ▲과객을 후히 대접하라. :타지에서 온 손님, 특히 가난한 이들을 따뜻이 맞이하라는 뜻.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가문의 책임은 울타리 안에 있는 이웃 전체를 포괄한다는 선언.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겸손과 절약을 몸에 익히게 하는 교육.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8-06

철길 개설이 이끈 천년 고도 경주의 근대화 이면엔…

■근대의 길, 신작로 경주의 근대는 길 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신작로(新作路), 말 그대로 새로 만든 길이다. 1909년, 대구에서 경주를 잇는 길이 처음 놓였다. 대구에서 영천을 거쳐 서악과 서천교, 봉황대로를 지나 도심으로 닿는, 지금의 태종로다. 1912년엔, 경주읍성이 철거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경주를 방문한 총독 데라우치의 차량이 남문을 통과하기 어렵다 하여, 남문인 징례문(徵禮門)과 함께 성벽을 함께 철거했다 한다. 조선의 체면이 단지 통행 불편의 이유로 허물어진 것이다. 같은 해 불국사까지 신작로가 새로 깔렸다. 사람들은 그 길을 이용해 경주로 들어왔다. 경부선 기차가 대구역에 도착하면, 관광객은 오츠카 자동차회사의 버스를 탔다. 1920년대부터는 경주역 앞에서 오카모토 자동차회사의 차량이 관광객을 실어 날랐다.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향하는 수학여행이 가능해진 건 신작로 덕분이었다. 다른 지역보다 앞서 확충된 교통망 위로 경주의 근대가 달리고 있었다. 1918년 11월 경주~불국사 협궤구간 개통 현재 서라벌문화회관 자리에 역 들어서 1936년 중앙선과 동해남부선 교차점 인성동동 이전, 영남동해안 거점역할 맡아 일제의 통제·침탈 도구된 철도·신작로 신라고분·마을들 가로지르고 유적 훼손 첨성대는 증기기관차 진동·매연에 노출 2021년 12월 역사속으로 사라진 경주역 문화공간 ‘경주 문화관 1918’로 재탄생 ■쇳길, 조선을 누르다 1918년, 동해남부선과 경동선의 선로가 경주를 가로질렀다. 철로는 대구에서 경주를 지나 불국사까지 닿았다. 마을이 둘로 갈라졌다. 신라의 고분과 유적 사이를 굽어 돌긴 했지만, 유적지를 완전히 비켜 가지는 못했다. 선로가 놓였다는 건, 누군가의 땅이 잘려 나갔고, 누군가의 삶이 쫓겨났고, 누군가의 노동이 있었다는 뜻이다. 철로 개설엔 땅과 노동력, 자갈과 흙 등 많은 자원이 필요했다. 일본은 먼저 조선 정부를 압박했다. 1898년 체결된 ‘경부철도합동조약’에는 기가 막힌 조항이 들어 있었다. 선로와 창고, 공작물에 필요한 토지를 조선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빌린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자금을 빌려주겠다는 명목으로 ‘차관(借款)’을 제공했고, 조선은 그 빚을 등에 진 채 스스로 백성의 땅을 빼앗아 넘겨주어야 했다. 겉은 조선의 이름이었으나, 속은 일본의 철저한 계획하에 이루어진 강탈이었다. 평양에선 한성판윤 박의병이 토지를 평당 7전으로 일괄 매입하라 명령했다. 백성들은 반발했다. 일본 헌병이 진압에 나섰고, 지방 관리들은 기회라 여긴 듯 사기와 횡령을 일삼았다. 거간꾼들이 백성의 눈앞에 흙먼지를 흩뿌렸다. 경의선은 조선 최초로 민간의 항거가 집단적으로 터진 철도였다. 교하군에서는 수천 명의 주민이 몰려들어 강제노동을 거부했고, 일본군은 병력을 동원해 포위했다. 노동자는 하루 12시간 이상을 무임금, 저임금은 물론 중노동에 시달렸다. 욕설과 곤봉, 발길질은 허다하고, 보란 듯이 총부리를 겨눴다. 철로는 계속 계속 놓였다. 조선의 땅에 조선의 노동력으로. ■쇳길의 기억 1918년 11월 1일, 경주~불국사 간 협궤철도 구간이 개통되며 경주는 관광도시로서 첫 선로를 갖추었다. 철도는 대구에서 시작해 영천을 거쳐 경주 시내를 가로질러 불국사까지 이어졌다. 당시 경주역은 지금의 서라벌문화회관 자리에 있었다. 선로는 현재의 태종로를 따라 팔우정을 지나 불국사 방향으로 이어졌다. 시내 중심을 관통하는 철길은 일제의 경주 관광개발 전략과 맞물려 있었다. 도시의 거리 위를 협궤열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고, 철로 위엔 관광객의 시선과 일본 제국의 의도가 함께 달렸다. 1935년부터 공사가 진행되면서 선로는 개량되었다. 이듬해인 1936년 경주역은 시내 서편의 성동동 일대로 이전했다. 새로 이전한 경주역은 중앙선과 동해남부선(현 동해선)이 만나는 교차점이었다. 경부선에서 대구로 진입한 관광객은 중앙선을 타고 경주에 닿았고, 이후 포항이나 울산·부산으로 연결되는 철도망을 이용했다. 경주역은 한때 영남 동해안권 철도교통의 중간 거점이자 환승역으로 기능했다. 이 시기를 거쳐 경주는 철도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경주를 가로지른 쇳길 경동선 부설에 대한 경주의 명확한 기록은 거의 없다. 하지만 경주 사람들이 평화롭게 동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라의 고분을 지나 마을과 논밭을 가르며 들어온 철도는 지형을 틀고, 일상의 동선을 뒤엎었을 것이다. 유적의 파괴, 삶의 단절, 사라진 집들과 옮겨진 무덤 등, 그 자리에선 경주 사람들의 절망이 울렸을 것이다. 철로는 산업의 길이 아니었다. 근대화의 선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철도는 일제의 통제와 침탈의 도구였고, 조선을 수탈하는 병참의 길이었다. 조선은 철도망을 통해 일본 본토로 연결되었고, 조선의 곡식과 광물 등 많은 자원이 실려 나갔다. 경주의 철길은 유적의 숨결마저 갈라놓았다. 1918년, 동해남부선(현 동해선)과 경동선(폐지)이 경주를 통과하며 불국사역까지 뻗었다. 신라 고분군과 마을 사이를 무자비하게 가로질렀다. 사천왕사 터 일대는 철도공사로 일부 훼손되었다. 동궁과 월지도 본래 궁궐 후원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철도와 도로망의 개설로 배후 공간과 단절되면서 고립된 형태로 남게 되었다. 1910년대 개설된 초창기 신작로는 첨성대와 불과 5미터 남짓한 거리까지 근접해 있었다. 그로 인해 첨성대는 증기기관차의 진동과 매연에 노출되었다. 문화유산 보존의 관점에서는 큰 위협이었다. 1926년 서봉총 발굴이 이루어졌다. 일본인 모로가 히데오(諸岡秀生)는 서봉총 발굴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건설업자를 끌어들였다. 발굴 과정에서 퍼낸 흙과 자갈은 경주역 기관차 차고지를 매립하는데 쓰였다. 이는 ‘유적 보호’라는 명분이 ‘현대화’라는 실익에 밀려났던 당시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1921년, 경주 읍성 남문인 징례문과 남쪽 성벽이 헐린 일이었다. 읍성의 석재는 경주 시내 곳곳의 도로·관공서 건축에 사용되었다. 경주 읍성 중심의 행정 체제도 이때 완전히 해체되었다. 1902년 경주 우편국, 1908년 경찰서와 법원이 차례로 들어서며, 조선시대의 동헌(府衙)과 객사(東京館) 건물은 반복적인 개축과 철거, 행정기능의 변화 속에 원형을 잃었다. 1937년, 김유신묘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에 철도 선로 부설 계획이 있자, 김유신의 49대 후손은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에게 탄원서를 올렸다. 국보급 유적의 정기를 훼손할 뿐 아니라, 김해 김씨 삼백만 후손의 명예를 짓밟는 행위라는 항변이었다. 최소 364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선로를 조정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총독부는 “현지 지형상 선로 변경은 불가하며, 문화의 진전에 순응해달라”라고 답변했다. 이 ‘순응’이라는 단어 속에는 일방적 결정 통보만 있을 뿐, 협의와 고려는 없었다. 경주 사람들에게 신작로와 철로는 단지 근대화, 산업화의 의미만 존재했던 게 아니었다. 어른들은 조상의 머리 위로 쇳덩이가 달리니 조상이 누울 자리가 없다고 한탄했다. ■다시 경주 폐역이 된 경주역 담장 밖에 섰다. 더 이상 기차는 오지 않고, 사람의 기척도 닿지 않는다.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을 지켜온 역은 이제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났다. 플랫폼에 울려 퍼지던 휘슬 소리는 멈췄지만, 역사의 잔향은 아직 바람에 머무는 듯하다. 오랜 시간 이별과 만남, 희망과 절망이 켜켜이 스며든 불국사역은 조용히 폐허의 기억을 더듬는다. 경주는 일제가 박아 넣은 철로를 과감히 걷어냈다. 침탈의 선로 위에 놓였던 근대의 궤적은 철거되고, 잃었던 도시의 형상을 되살리려 노력 중이다. 철길은 외곽으로 옮겨졌고, 도심은 본래의 숨결을 되찾는 중이다. 발굴과 복원을 거듭하며, 경주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폐역이 된 불국사역은 낡은 역명판 아래 풀만 그림자를 무성히 드리웠다. 도심 속 경주역도 2021년 12월 28일, 역사의 기능을 멈추었다. 구 경주역은 현재 ‘경주문화관 1918’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낡은 역사의 자리에 새로운 문화가 깃들고 있다.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마침 한 여성 서예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닫힌 창구 대신 펼쳐진 화선지 위로 흐르던 필획은, 멈춘 시간 위에 얹힌 또 하나의 기록이었다. 구 경주역은 이제 기차 대신 사람과 예술을 싣고, 조용한 문화의 열차가 이 도시의 기억 속을 유영하고 있다. 경주의 철도는 멈춤이 아니라 이제 속도의 상징이 되었다. 2010년 개통된 KTX 경부고속철도의 중간 정차역인 신경주역은 중앙선 복선전철, 동해선 전철, 경부고속철도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과거 경주의 중심을 가르던 기차는 이제 외동읍 건천리 들판을 가로질러 더 멀리, 더 빠르게 질주한다. 도심에서 멀어진 열차는 더 이상 풍경을 가르지 않는다. 그러나 멈춘 자리엔 여전히 사람들이 서 있다. 닫힌 승강장 아래, 수많은 작별과 재회의 순간이 겹쳐 흐른다. 경주의 철길은 멈추지 않았다. 내일을 향해 우리의 기술과 우리의 손으로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다.

2025-08-06

울릉도 등 먼 섬 지원특별법 큰 성과…민선 8기 3주년 미래 울릉도 개발 마중물 역할

‘새희망, 새울릉’ 향해, 남은 1년도 쉼 없이 달린다. 남한권 울릉군수는 민선 8기 3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군정 추진 성과를 갈무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역점사업을 점검하는 한편 부진하거나 미비한 사업을 개선해 남은 1년의 임기 동안 올바른 군정 방향을 견지하겠다고 밝혔다. 남 군수는 지난 2022년 7월 1일 ‘새희망! 새울릉!’을 군정 목표로 출범해 지난 3년간 섬이라서 불편한 점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며, 특히 정주여건 개선에 중점을 둔 정책들의 결실이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출범 초기 정주여건 개선에 초점 5년 주기로 ‘종합발전계획’ 수립 공보의 확보 3년 연속 전국 1위 관광 공모 선정 국비 100억 확보 울릉공항 28년 개항 목표로 ‘순항’ 1700억 들여 하수처리장도 추진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결실로 ‘울릉도 등 국토외곽 먼 섬 지원 특별법’ 제정을 꼽았다. 남 군수는 “먼 섬 지원 특별법은 당장 효과가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울릉도 개발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며 “눈에 보이는 이익은 없지만, 이 법안이 주민들이 현금성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고, 섬에 사는 것이 행복과 즐거움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주여건 개선과 인구 소멸 위기 극복, △지리적 고립성과 소외지역이라는 인식 탈피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가 마련됐고, 5년 주기로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진할 초석도 다졌다고 밝혔다. 또한 육지와의 의료혜택 불평등 해소를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 3년 연속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공중보건의 16명을 배치했다. 여기에 더해 실력 있는 전문의 초빙과 응급환자 대응체계 강화를 위해 대구·경북 지역 8개 대학병원 및 대형병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중증환자의 응급처치와 정확한 진단을 위한 전문의 확보가 가능해졌고, 보건의료원 내 미개설 진료과의 전문의 파견 등 세부사업을 추진하며 의료체계를 안정화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울릉도의 의료 환경은 눈에 띄게 개선됐다. 암 환자 조기 발견 빈도가 높아졌고, 가정의학과(내과) 전문의가 상주하고 있다. 울릉도 특유의 지형으로 인해 관절염 환자가 많은 점을 고려해 정형외과·통증의학과 전문의도 배치됐다. 안과 전문의도 상주하고 있으며, 특히 소아과 전문의까지 상주하는 등 의사 구하기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전례 없는 수준의 의료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군민 만족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울릉의 미래 먹을거리 산업인 관광 분야에서도 다양한 방향 모색이 이뤄졌다. 울릉군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K-관광섬 육성 공모사업’에 선정돼 4년간 국비 100억 원을 확보하고, 사계절 체류형 관광산업 기반 조성을 본격화했다. 그 일환으로 △고아웃 하이킹 페스티벌 △솟솟클럽 △웰니스 요가 △야간 음악관광상품 등을 운영해 울릉 관광의 새로운 비전과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러한 시도는 천혜의 자연과 어우러진 콘텐츠를 통해 ‘울릉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점을 방증한 사례로 평가받았으며, 관광객 유입을 통한 숙박·외식업 등 관련 산업의 수익 창출로도 이어졌다. 이와 함께 생활물가 안정과 자영업자 지원을 통해 울릉군의 독립적 경제기반 강화에도 주력했다. 섬 지역 특성상 1차 원료와 가공품 등 대부분의 생필품이 해상 운송에 의존함에 따라, 물류비 부담으로 높아진 생계비를 낮추기 위한 정책에 집중했다. 울릉도의 고질적 문제였던 생필품, 가스, 등유 가격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며, 물가 모니터링과 지원체계 강화,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운영자금 지원 및 이차보전 사업도 확대했다. 울릉사랑상품권 유통기반을 정비하고 가맹점 확대를 추진해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도 마련했다. 향후에는 지역소멸 대응기금을 활용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을 보다 체계화할 방침이다. 지속가능한 울릉도 발전과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울릉공항을 비롯한 사회기반시설 확충에도 집중하고 있다. 군민들의 오랜 숙원인 울릉공항은 2028년 개항을 목표로 올해 케이슨 거치를 마쳤으며, 현재 약 65%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또한 공항 부지 내에는 1700억 원 규모의 공공하수처리시설을 추진 중으로, 청정섬 울릉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생활폐기물 소각시설 보강과 함께 남양·태하·천부 하수처리장도 개설돼 주민들의 정주환경이 개선됐으며, 주거환경 향상을 위한 섬 청년 보금자리, 울릉도 삶터 조성사업이 추진됐다. 올해 하반기에는 LPG 배관망 구축사업도 완료돼 준공을 앞두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인식 아래 울릉의 미래를 위한 핵심축으로 보고 세대별·단계별 맞춤형 교육 정책도 확대하고 있다. 올해 6월 공식 출범한 인재육성재단을 통해 울릉고 학생들에게 △대학교 등록금 전액 △주거비 지원 △진로캠프 △어학연수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한동대학교와 연계해 글로벌그린 U시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내년부터는 ‘울릉도 특별전형’이 신설돼 지역 학생 5명을 정원 외로 선발하게 된다. 지방소멸 대응기금을 적극 확보해 △문화센터 △도서관 △평생학습 등 전 생애 교육이 가능한 주민 주도형 학습 플랫폼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남 군수는 “남은 1년 동안 울릉공항 개항과 100만 관광객 시대를 대비한 8대 전략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교육·복지·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울릉의 미래 번영을 위해 군민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합심해 나아가자”고 포부를 밝혔다. /김두한 기자 kimdh@kbmaeil.com

2025-08-06

끊어진 철길 이어지니 ‘핫플 관광지’로 거듭나는 경북동해권

장기화되는 경제 불황에 중국산 저가 철강의 덤핑 공세. 여기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주도하는 ‘관세 압박’ 등의 악재가 겹친 2025년 오늘. 포항시는 고민에 빠져 있다. 철강업체 포스코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포항 경제의 등뼈다. 그게 휘청이고 있는 것. 그렇기에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먹을거리를 준비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은 포항시민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제 위기의 해법은 뭘까? 전문가들은 첨단산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21세기형 유망산업’으로 불리는 관광업의 활성화가 유효한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올해 초. 부산과 강원도 강릉을 잇는 동해선 철도가 완전 개통됐다. 포항시는 동해선 철길을 지나는 경상북도 도시 중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 규모 또한 가장 크다. 포항은 동해선을 통해 유입되는 관광객들을 어떤 방법으로 도시 발전에 접목시키고 있을까? 관광·비즈니스 두 토끼 잡기 나선 포항 풍부한 관광자원 활용한 새 활로 모색 외국인관광객 유입 위한 편의시설 확충 전시컨벤션센터 건립 등 경쟁력 키워가 울진·영덕, 반짝이는 아이디어 속출 관광시설 이용료 일부 ‘지역화폐’로 환급 관광 명소 방문 미션땐 성공 기념품 지급 요금 60% 지원해주는 ‘관광택시’ 운영도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적지 않은 관광 자원...‘드라마의 인기’가 포항의 인기로 일단 관광 인프라 차원에서만 보자면 포항시는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 동해선 철도는 물론,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KTX와 SRT 열차가 운행되고 있으며, 영일대해수욕장을 필두로 시원스런 해변도 적지 않게 가지고 있다. 청정 계곡이라 불러도 좋을 내연산과 운제산에 자리한 보경사와 오어사는 드라마틱한 설화를 간직한 고찰(古刹)이다. 현대인은 건강관리를 위한 가장 쉬운 방편으로 ‘걷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흔하다. 영일만 북파랑길과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걷기 운동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포항의 보물’ 같은 관광자원. 이외에도 동해선 철도를 타고 포항을 찾는 이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공간은 적지 않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 포항운하에서 즐기는 크루즈, 경상북도수목원,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어시장인 죽도시장…. 게다가 얼마 전부턴 ‘갯마을 차차차’ ‘동백꽃 필 무렵’ 등 인기 높은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도 각광받는 게 포항이다. 드라마가 종영된 후엔 평일에도 수천 명의 관광객이 촬영이 진행된 장소를 찾는다. 청하시장과 구룡포 석병리, 곤륜산과 월포해수욕장 등이 그렇게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된 곳들이다. 동해선 개통과 함께 관광산업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포항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 확충과 해외 마케팅 전략 수립, 여기에 관광과 비즈니스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전시컨벤션센터의 건립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이 이와 관련된 포항시청 관광산업과의 설명이다. 어쨌건 현재 포항은 철강업계의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미래 유망산업인 관광의 활성화를 위해 시민과 공무원이 머리를 맞대고 활로를 모색 중이다. 그런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울진군과 영덕군도 동해선 특수...지역 경제에 긍정 효과 지난달 중순. 포항에서 출발하는 누리로 기차를 타고 울진을 향했다. 상쾌한 느낌을 주는 하늘색으로 디자인 된 기차는 1시간 30여 분을 달려 울진역에 기자를 내려놓았다. 낚시꾼들에게 ‘은어 낚시의 성지’로 불리는 왕피천에 가면 청정한 자연 풍광을 내려다보며 즐길 수 있는 케이블카가 있다고 했다. 울진역에서 멀지도 않았다. 기대감을 안고 택시에 올랐다. 울진에서 오랜 시간 택시기사로 일해온 유인수 씨는 “1월에 동해선이 완전히 뚫리면서 승객이 조금씩 늘어가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울진군 차원에서도 관광객 유입에 신경을 쓰고 있다. “울진에선 관광택시가 운영되고 있다. 여행자가 원하는 곳을 데려다주고 시간에 따라 요금을 받는 시스템인데, 군청에서 금액의 60%를 지원해주니 이용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 자가용이 아닌 기차를 타고 울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안성맞춤인 서비스”라며 유씨가 환하게 웃었다. 지난 7월 22일엔 동해선 철도 개통을 기념해 ‘1만원 관광열차’도 운행한 곳이 울진군이다. 강원도 강릉역을 출발해 울진의 주요 관광지와 전통시장을 둘러보고, 울진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즐길 수 있었던 이 여행상품은 사용자들의 호평을 얻었다. 왕피천 케이블카의 이용 요금은 1만2000원. 티켓을 구매하면 지불한 돈의 절반인 6000원이 담긴 카드를 준다. 그 카드를 제시하면 울진군 관내에서 음료나 기념품을 사거나 할인받을 수 있다. 이 또한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울진군이 만들어낸 좋은 아이디어로 보였다. 방문객들이 늘어나면서 ‘지역 맛집’이 ‘전국 맛집’으로 신분 상승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울진역에서 도보로 5~10분이면 도착하는 한 식당은 ‘얼큰한 짬뽕’으로 또 하나의 울진 명물이 됐다. 평일에도 점심시간이면 가게 앞에 긴 줄이 만들어질 정도. 맛은 어땠냐고? 명불허전(名不虛傳). 유명해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영덕 역시 동해선 철길이 지나는 아름다운 해변도시 가운데 하나다. 달콤한 복숭아와 다양한 해산물이 있고, 사파이어빛 바다와 맑은 하천이 출렁이는 영덕군은 이미 예전부터 이름난 관광지였다. 지난 5월엔 산불로 인한 고통에 신음하는 영덕을 위해 코레일 대구본부가 ‘영덕 마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동해선 영덕역을 방문한 관광객이 지역 관광 명소 일곱 곳에서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기념품을 주는 행사였다. 영덕군 또한 사전 예약을 하면 역을 출발해 주요 관광지를 돌아본 후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영덕 관광택시 타보게’ 사업을 선보이고 있다. 울진군과 마찬가지로 영덕군이 금액의 60%를 내고, 관광객은 이용 요금의 40%만 부담하는 시스템이다. 지난 시절 한때 ‘철도교통의 불모지’로 불리던 경상북도의 소도시들이 동해선 완전 개통을 계기로 ‘관광 도시’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바람직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동해선 개통 맞은 포항시, 향후 계획은? 야간 관광상품 개발 등 다양한 마케팅 펼쳐 경주·울진·영덕·울릉 4개도시와 박람회 참가 등 공동 홍보도 총력 새로운 환경에선 그 환경에 맞출 새로운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포항시는 ‘동해선 완전 개통’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고, 향후 어떤 비전을 준비하고 있을까? 포항시청 관광산업과 윤천수 과장과 신세영 마케팅팀장을 만나 이에 관해 물었다. -동해선 개통 이후 방문객 추이는? “포항역 승·하차 인원은 매월 1만8000여 명으로 집계된다. 설 명절이 포함된 1월과 가정의 달인 5월엔 연휴 효과로 이용객 수가 다소 늘기도 했다. 향후 연계 관광 상품 개발 등의 마케팅으로 동해선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 -포항을 거쳐 가는 동해선의 매력은 무엇이라 보는지. “아름다운 동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포항시는 이런 매력을 극대화하고 관광객의 체류를 유도하기 위해 ‘야간 관광상품’을 운영 중이다. 포항은 낮은 물론 밤도 아름다운 도시다. 그 매력을 많은 이들이 느꼈으면 한다. 특히 해상 누각이 있는 영일대의 야경과 예술성과 조형미를 갖춘 스페이스 워크의 밤 풍경을 추천하고 싶다. -동해선으로 이어지는 다른 도시와의 협력은? “경북 동해권 관광진흥협의회를 통해 포항, 경주, 울진, 영덕, 울릉 5개 도시가 함께 공동 홍보를 추진하고 있다. 박람회 참가, 홍보영상 및 홍보물 제작, 수도권 지하철 광고 등을 통해 동해선 관광 마케팅을 전개 중이다. 강원도와는 관광안내 책자를 상호 비치해 여행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려 한다. -동해선 철길이 불러온 긍정적 시그널은 무엇인지. “그간 동해안 지역은 7번 국도에만 의존해온 탓에 교류와 왕래 기능에 한계가 있었다. 동해선 개통은 포항을 방문할 수 있는 접근 경로가 다양화됐다는 걸 의미한다. 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포항을 방문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따른 상승효과가 적지 않다. 철도 여행을 선호하는 여행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제공된 것이기에. 앞으론 관광 콘텐츠 고도화와 철도 관련 기반시설 확충에도 눈길을 돌려야 할 듯하다.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8-05

역사·문화 품은 힐링 관광지 청송에서 특별한 추억 만드세요!

‘산소카페’라는 별칭을 가진 청송군이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무더운 여름철 최고의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를 품은 힐링 관광지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청송군의 관련된 부연이다. 여름에도 꽁꽁 얼음이 어는 신비로운 계곡, 삼림욕이 가능한 울창한 숲, 고즈넉한 한옥에서의 웰니스, 건강을 더해주는 약수탕에 맛있는 음식까지…. 이 모든 걸 갖춘 청송군은 번잡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심신을 효과적으로 달래줄 최적의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아래에서 올 여름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특별한 힐링 여행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청송군이 내세워 자랑할 수 있는 여름 관광지들을 간략하게 요약한다. 한여름에도 얼음 어는 ‘얼음골’ 웰니스 여행지 선정 ‘한바이소노’ 10리길 등산 순환로 청송휴양림 백자전시장서 도자기 제작 체험 여행 후엔 달기약수탕서 몸보신 ▲ 한여름에도 시원한 얼음골과 국립공원 주왕산 주왕산에서 영덕 옥계계곡 방면으로 가다 보면 시원한 인공폭포가 펼쳐지는 ‘얼음골’과 즐겁게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외부 기온이 32℃를 넘는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고, 계곡물은 빙수처럼 차가운 것이 특징이다. 또한, 계단식으로 층층이 이어진 얼음골 계곡은 수심이 얕고 물이 맑아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 안성맞춤. 물고기 잡기, 다슬기 채집, 물장구, 발 담그기 등 다양한 놀이가 가능하며, 주변 곳곳엔 시원한 그늘이 많아 무더운 날씨에도 부담 없이 피서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얼음골 내부는 바위로 둘러싸여 천연 에어컨이나 선풍기의 느낌을 준다. 실제로 내부에 들어가면 긴 팔 셔츠가 필요할 정도로 서늘하다. 이는 바위틈과 지하의 기류 차로 인해 발생하는 냉기 효과다. 아이들에게는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특별한 체험이 될 수 있다. “얼음골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며 몸과 마음을 식히는 순간, 진정한 여름 힐링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이 청송군 관광 담당 공무원의 설명이다. 청송에 와서 주왕산을 가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당연지사 없다. 한국의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주왕산은 기암괴석과 수려한 계곡이 어우러진 관광지다. 탐방로를 따라 기암, 연화봉, 시루봉, 학소대 등 수많은 암봉과 절경이 펼쳐지고, 용추·절구·용연폭포 등이 한여름 더위를 식혀준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탐방로는 경사가 완만해 유모차를 끌고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가족 여행지로도 그저 그만이라는 게 다녀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라다. 특히 여름철엔 가을 단풍철보다 비교적 여유롭게 자연을 만끽할 수 있어 마음 속 평화를 원하는 여행객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청송 제1경 신성계곡과 웰니스 여행지 ‘한바이소노’ 신성계곡은 청송 8경 중 제1경으다. 절경과 맑은 물, 빽빽한 소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방호정에서 고와리 백석탄까지 이어지는 계곡 전 구간은 유네스코 청송 세계지질공원 지질 명소 4곳(공룡발자국 화석산지, 방호정 감입곡류천, 백석탄 포트홀)을 품고 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발견된 400여 개의 공룡 발자국 화석과 공룡 모형 소공원은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도 제격이다. 조선시대 선비 조준도가 어머니의 묘를 바라보며 지은 방호정, 알프스 스타일의 암석 지형과 옥수(玉水)가 흐르는 백석탄 포트홀은 청정 자연과 문화유산이 잘 어우러진 최상의 여름 여행지가 아닐 수 없다. 청송을 대표하는 웰니스 관광지인 ‘한바이소노’는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특히 청송 고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통 한옥 스테이를 중심으로, 숲길을 따라 여유롭게 걷는 솔빛정원 트래킹 코스가 주목받고 있다. 하루를 차분하게 시작하는 아침 명상 프로그램, 키즈 아카데미와 민속놀이 체험 등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다채로운 웰니스 콘텐츠를 제공되기에 한 번 찾은 관광객들이 다시 찾는 명소로 호흥도가 높아지는 중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이곳을 ‘2024 웰니스 관광지’로 선정하기도 했다. ▲자연휴양림과 청송백자 전시장도 빼놓으면 서운 백두대간 자락에 위치한 청송자연휴양림은 빽빽한 숲과 4km 순환등산로가 매력적이다. 여름의 신록, 가을 단풍, 겨울 눈꽃 등 사계절 경관이 빼어나며, 전국에서 공기가 가장 맑은 곳으로 손꼽힌다. 피톤치드가 풍부한 이곳은 현대인에게 진정한 치유와 쉼의 시간을 선물하고 있다. 청송에서 생산되는 천연 도석으로 만든 ‘청송백자’는 조선 후기 4대 지방요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역사성과 예술적 가치가 빼어나다. 전시관에서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청송백자와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직접 물레를 돌려 자신만의 도자기를 만들어보는 체험도 가능하다. 최근엔 가족 단위 체험 관광객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늘어나고 있다고 청송군은 귀띔한다. ▲남관생활문화센터를 들른 후엔 달기약수탕으로 청송이 낳은 추상미술의 거장 남관 화백을 기리는 복합문화예술공간 남관생활문화센터에선 11월 30일까지 ‘상상, 그 너머의 세계’ 특별 전시가 열린다. 또한 8월 30일과 31일엔 ‘2025 문화가 있는 날–구석구석 문화배달’과 ‘산소카페 문화나들이’ 행사가 열린다. 야외 어린이 물놀이장, 공예·요리 체험, 인형극, 버블·마술 공연, 미디어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으니 찾는다면 예상치 못한 큰 즐거움과 조우할 수도 있을 듯하다. 130여 년 전 수로공사 도중에 발견된 달기·신촌약수탕은 철분 함량이 높아 건강에 좋은 천연약수로 알려져 있다. 이 약수를 사용한 ‘약수 닭백숙’은 여름철 대표 보양식으로 손꼽힌다. “담백하면서도 속이 편안한 음식”이라는 게 사람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청송의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가족·연인과 함께 특별한 추억을 만드시길 바란다”는 말을 전한 윤경희 군수는 “앞으로도 청송군은 다양한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고, 유망한 관광자원을 발굴해 다채롭고 풍성한 관광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종철·홍성식 기자

2025-08-04

숲길과 꽃길 사이, 평창에서 쉼을 찾다

이제는 덥다는 말로는 부족한 여름이다. 여름을 이기는 게 힘들면 즐기는 편이 낫다. 물놀이를 하거나 영화관이나 미술관 같은 실내로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무엇보다 휴가를 가면 제일 좋다. 휴가의 휴는 실 휴(休)자다. 나무 그늘에 사람이 들어가는 모양의 글자다. 그러니 올여름은 나무 그늘이 많은 평창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편집자 주> 평창은 산이 대부분인 곳이다. 푸른색이 많아서 차를 타고 어디를 가도 눈이 편안하다. 평균 해발 고도 700m라는 것을 이용하여 ‘Happy 700’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서늘한 여름 휴양지로 홍보하고 있다. 겨울이 길고 설질(雪質)이 좋아 스키 하기 좋은 곳이다. 눈도 많이 오고 게다가 겨울에는 -30℃ 가까이 내려가기도 한다. 여름 역시 고원 지역답게 굉장히 시원한데 평창 전역의 모든 관측소에서 열대야가 기록된 적은 단 1번도 없다. 대한민국의 몇 없는 냉대 습윤 기후 지역이라 1년 내내 시원하고 추우며, 평창읍을 제외하고 폭염 특보가 거의 없고 아예 없는 해도 자주 있다. 겨울도 굉장히 길어서 이곳 스키장들은 매년 전국 최속으로 시작해 4월까지도 영업하는 개장하기도 했다. 포항의 밤 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여름이라 평창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픈 심정이다. 올해로 4년째 평창으로 2박 3일 휴가를 떠났다. 해발 700m의 열대야 없는 여름 자연과 산 어우러진 치유 여행지 이동 편리한 드라이브 코스 가득 경사 낮은 ‘발왕산 천년주목숲길’ 오대산 월정사·상원사 사찰 탐방 개망초 활짝 핀 육백마지기에 매료 조선왕조실록박물관 등도 볼거리 첫날, 발왕산 케이블카를 탔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이용객이 적어 우리가 조용히 즐기기에 더 좋았다. 발왕산 천년주목숲길은 ‘2023 한국관광의 별 무장애 관광지’ 부문 선정지로 발왕산 정상에 조성되어 있다. 유모차, 휠체어 등의 보조기구가 완비되어 있으며, 경사도 8% 이하의 완만한 코스로 데크길을 설계하여 관광 약자인 장애인, 영유아, 임산부, 고령자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높은 산에서 자라는 나무들과 아름드리 주목이 여러 이름표를 달고 우리를 맞는다. 나무 가까이 가면 남녀 성우의 목소리로 이름이 생긴 이유와 뜻과 나무마다 특성을 들려준다. 들으며 사진을 찍고 나무를 우러러보기도 했다. 그중에 마유목은 연예인 박경림이 들려 주어서 더 반가웠다. 그렇게 풀꽃 이름도 구경하며 걷다 보니 발왕산 정상에 올랐다. 샬라라한 원피스 차림인 나를 보고 지나는 여행객이 치마를 입고 오를 수도 있구나하며 지나갔다. 그만큼 평탄한 산책길이었다. 무엇보다 선선해서 민소매로 올라온 분은 춥다며 몸을 움츠렸다. 케이블카 타는 곳에 식사할 수 있는 카페가 있다. 멋진 뷰까지 더해진 음식값이 만만치 않아서 우린 핫도그와 요거트로 뱃속을 달래고 내려왔다. 둘째 날, 새벽에 일어나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을 맨발로 걸었다.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걸으니 후두둑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더 정겨웠다. 이른 시간이라 숲길의 주인은 우리였다. 밤새 비가 와서 계곡에 물이 가득해 쏴아아~~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오대산은 언제 보아도 편안하다. 월정사 탑은 수리를 끝내고 수려한 모습을 드러냈고, 경내는 이른 아침이라 고요하다. 우리는 물소리를 더 즐기려 상원사로 향했다. 월정사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골짜기를 따라 산속 더 깊이 들어갔다. 비포장이라 비가 오지 않는 날엔 먼지 나지 않게 천천히 달려야 한다. 좀 전까지 비가 내려 먼지는 없어도 길에 다람쥐가 먹이를 먹으러 내려와 있으니 더 조심해서 운전해야 한다. 이 길은 늘 천천히 숲 구경 물 구경 다람쥐 구경하며 오르는 길이다. 상원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는 적멸보궁이고 안동에서 이 멀리 가져 온 동종이 유명하니 꼭 보고 와야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월정사가 나라에서 입장료를 받지 말라고 하니, 주차비라는 이름으로 6천 원을 받는다. 시정해야 할 일이라 본다. 내려오다 월정사 입구에 조선왕조 실록박물관이 있다. 실록과 의궤 등 중요한 기록을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의 기록이 담겨있다. 역사를 기록한 실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보관되었는지 영상과 실물이 있으니 볼만하다. 어린이 박물관에는 체험도 가능하니 더 좋다. 로비는 책 읽기에 좋은 카페뷰다. 책 몇 권 들고가서 한나절 읽고 나와도 좋을 분위기다. 박물관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안겨준다. 나오는 길에 위치한 캔싱턴호텔 자수 정원은 프랑스 빌랑드리 성의 정원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초록 잔디에 어린 왕자가 꽃다발을 들고 있어서 인증샷을 찍었다. 새파란 미로 정원에서 시원한 분수 소리를 즐길 수 있어 아름답다. 평창은 차를 타고 달리다 눈 돌리면 딥한 녹색의 파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또 초록빛의 당근밭이다가 배추밭이 이어진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키고 바라보니 밭에 노란꽃이 폈나했더니 알타리무 뽑아서 담는 플라스틱 상자였다. 밭뷰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마지막 날에는 육백마지기에 올랐다. 6월엔 샤스타데이지가 하얗게 덮었다는데 여름엔 개망초가 육백마지기 가득 피었다. 하얀 꽃송이들을 흔들며 바람이 분다. 언덕에 선 바람개비가 돈키호테에 나오는 풍차처럼 웅장하다. 무지개빛 계단을 내려가면 두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교회가 있다. 마주 앉아 가족의 건강을 기도했다. 대관령 하늘목장과 전나무 숲 쉼터 밀브릿지는 내년에 보기로 하고 남겨두었다. 숙소는 지난 3년은 알펜시아에 포스코에서 운영하는 연수원이 있어서 가족 찬스로 이용했었다. 그 주변에도 호텔과 리조트가 많아서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특히 공연장과 구경거리도 있어 안성맞춤인 곳이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이용할 수 없어서 평창군 대관령면 소재지에 호텔을 예약했다. 너른 평창군 여기저기로 구경 가기 좋고 먹거리도 많은 곳이라 선택했다. 황태구이와 황태국을 아침 식사로, 옹심이와 감자전을 점심으로 저녁은 오리구이를 먹었다. 다만 평창이 목장에 풀어놓고 키우는 한우를 맛보려니 소시민이 먹기엔 너무 비쌌다. 한우는 돌아오는 길에 안동에서 먹었다. 휴가를 떠날 때마다 캐리어에 책 한 권을 넣어 간다. 올해 책은 마스다미리의 ‘주말엔 숲으로’와 ‘밤하늘 아래’였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소소한 일상을 슥슥 대충 그린 것 같은 그림체 속에 슬쩍 건네는 등장인물의 한마디가 가슴에 남는 그런 책이다. 호텔이나 카페에서 피식 웃으며 보기 딱 좋다. 지난여름엔 ‘제철 행복’을, 2023년에는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은 먹었다’ , 2022년에는 ‘돈키호테’를 가져갔다. 읽다가 잠들기도 하고 또 좋은 문장은 옆지기에게 읽어주기도 하면 더 맛있는 휴가가 된다. /김순희 수필가

2025-07-31

폭염에 지친 당신을 토닥여줄 포항의 ‘실내 문화·예술 공간’ 6選

매일매일 숨 쉬는 것조차 힘이 드는 요즘이다. 파도치는 바다를 품은 포항도 예외가 아니다. 작열하는 태양이 뿜어내는 폭염을 피할 공간이 절박하다. 시원한 바람 맞으며 역사와 과학, 음악, 미술 콘텐츠를 고상하게 즐길 수 없을까. 포항에는 바다만큼이나 매력적인 ‘실내 피서’ 명소들이 있다. 새로운 ‘피서 명당’이자 문화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포항의 문화·전시 공간 6곳을 소개한다.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마련된 미술관 등대 변천사 엿볼수 있는 전시와 체험 일제시대 역사적 잔상 간직한 日건물 박물관서 과메기의 모든 것을 한눈에 책과 음악 함께 즐길수 있는 도서관도 관공서 이미지 탈피 미술·체험 공간 등 포항 바다만큼 매력적인 실내 명소 눈길 ◇ 포항시립미술관, 한자리에서 만나는 예술 (북구 환호공원길 10 / 관람료 무료 / 월요일 휴관)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통유리 외벽이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건물이 나온다. 포항시립미술관이다. 입구를 지나자 찬 공기가 열기를 밀어내고, 전면 유리창 너머로는 푸릇한 잔디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2025 스틸아트작가조망전: 물성, 감각하는 철’ 전시는 포항의 정체성인 ‘철’을 예술로 풀어낸다. 철근, H빔, 철판 조각들이 최옥영 작가의 손끝에서 조각상으로 탈바꿈했다. 붉게 녹슨 철 표면에는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형물 앞에 서자 철의 차가움 대신 온기 어린 감각이 피부로 전해졌다. 장두건 화백의 ‘투계’ 시리즈도 눈길을 끈다. 푸른 물감을 휘갈긴 닭의 형상은 역동적이면서도 유쾌한 생명력을 품었다. 이은지씨(31)는 “해수욕장 대신에 미술관에 오길 잘한 것 같다"며 "여러 전시를 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어 유익했다”고 말했다. ◇ 국립등대박물관, 등대의 빛으로 만나는 해양사 (남구 호미곶면 해맞이로 150번길 20 / 관람료 무료 / 월요일 휴관) 호미곶 해맞이광장을 지나 도로 끝 언덕을 오르면 거대한 렌즈처럼 생긴 국립등대박물관은 천장 가까이 설치된 1등 회전렌즈가 압도적인 위용을 뽐낸다. 독일과 일본에서 제작된 이 렌즈들은 백 년 가까이 동해의 밤바다를 밝혀왔다. 박물관에는 1903년 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호미곶등대를 시작으로 속초, 묵호, 울릉도의 등대 변천사를 따라가는 전시가 이어진다. 조선총독부 시절의 수동 점등기에서 현대 자동 제어 장치까지, 기술 진화의 궤적이 한눈에 담긴다. 관람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무선표지장치, 등부표, 구조용 조명탄 등 해양 안전 장비도 만날 수 있다. 2층 해양안전체험관은 아이들에게 인기다. ‘신호기 맞추기’, ‘해상 탈출 퀴즈’ 등 체험형 콘텐츠 덕분이다. 여름방학 기간에는 하루 평균 400명 이상이 방문하는데, 8월 중순까지는 오후 7시까지 연장 운영한다. ◇ 구룡포 근대역사관, 목조 건물에 서린 겹겹의 기억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길 153-1 / 관람료 무료 / 월요일 휴관) 구룡포항 뒷골목에 가면 이국적인 일본식 2층 목조 건물이 있는데,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지은 주택이다. 지금은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쓴다. 좁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삐걱거리는 마루 소리와 함께 시간의 문이 열린다. 1층에는 일본식 주방, 욕실, 거실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다. 낡은 찻장과 목제 가구는 그 시절의 생활상을 말없이 증언한다. 구불구불한 계단을 오르면 2층 접객실과 딸의 방, 발코니가 이어진다. 후지산이 새겨진 창틀과 조각된 창살 문양이 일본 전통 건축의 정서를 그대로 전한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역사적 잔상을 간직한 채 관람객을 맞는다. 한 관람객은 “구룡포라는 작은 동네에 이렇게 깊은 역사가 있는 줄 몰랐다”며 감탄했다. ◇ 구룡포 과메기문화관, 과메기로 만나는 바다 문화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길 117번길 28-8 / 관람·주차 무료 / 매주 월요일 휴관) 불어오는 해풍 덕에 겨울 과메기로 이름난 구룡포. 여름철에도 과메기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구룡포 과메기문화관’은 과메기의 역사와 제조 과정, 지역 문화까지 아우르는 체험형 박물관이다. 지상 4층 규모의 건물은 층마다 주제가 다르다. 1층은 과메기 관련 전시와 기념품 판매장이며 2층에는 수족관과 가상해저체험관이 마련돼 있다. 살아 있는 물고기를 눈앞에서 관찰하거나 디지털 화면 속 바닷속 생물을 따라 손을 움직이며 체험하는 공간은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다. 3층 선장 체험관에서는 어선 조타 장비를 활용한 생생한 항해 체험을 할 수 있다. 4층에 마련된 모션센서 기반 영상 체험관에서는 ‘바다스케치’, ‘제트스키’, ‘모션샌딩’, ‘모션슈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든다. ◇ 포은흥해도서관, 책과 음악으로 떠나는 실내 피서 (북구 흥해로81번길 46 / 관람료 무료 / 둘째·넷째 월요일 휴관) 포항 흥해읍 중심가에서 도보로 10분 남짓, 유려한 곡선의 지붕과 넓은 유리창이 인상적인 건물이 눈에 띈다. 지난 3월 정식 개관한 포은흥해도서관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원한 냉기가 한낮의 열기를 순식간에 식혀준다. 내부는 층마다 주제가 뚜렷해 도서관이라기보다는 복합문화공간에 가깝다. 1층에 마련된 어린이자료실은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아 그림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책장 사이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펼치고 앉아 있는 모습이 정겹다. 2층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음악자료실에서는 LP와 CD 등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나무 벽면을 따라 늘어선 장서 속에서 마음에 드는 음악을 골라 이어폰을 꽂고 감상하면, 도서관은 어느새 고요한 음악감상실로 변한다. 책장 너머 작은 감상실에서는 태블릿으로 영화를 보는 이들도 눈에 띈다. 3층 일반자료실은 긴 책상과 독립형 좌석이 조화를 이루는 전통적인 열람실 구조로 조용하고 집중하기 좋은 분위기다. 통유리창 너머로는 흥해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부드럽게 스며드는 자연광 속에서 독서와 공부에 한층 더 몰입할 수 있다. 방문객 김세현씨(38)는 “도서관인데 하루 종일 머물고 싶을 만큼 다양하고 쾌적하다”며 “무더운 날에는 이곳이 가장 시원한 피서지”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 북구청 문화예술팩토리, 관공서 속 열린 문화놀이터 (북구 삼호로 36 / 관람료 무료 / 주말·공휴일 휴관) 북구청 3~6층은 예상 밖의 공간이다. 딱딱한 관공서의 이미지 대신 세련된 조명과 설치미술, 체험 부스가 어우러져 복합문화공간을 이루고 있다. ‘문화예술팩토리’다. 3층 입구에 들어서면 2025 귀비고 기획전 연계 전시 ‘달을 그리다’가 진행 중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린 그림들이 가지런히 전시돼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4층 아트갤러리에서는 여름방학 기획전 ‘우당탕탕! 지구탐험대’가 한창이다. 바위, 숲, 바다를 소재로 한 설치작품들 사이로 아이들이 책을 읽고, 만지고, 뛰어다니며 오감을 깨운다. 3D펜 체험, VR 체험, 북퍼퓸(책 냄새 향수) 체험, LP 음악 감상 공간 등도 마련돼 있어 세대별로 다양한 관심사를 충족시켜 준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5-07-31

고용 확대·주거 지원·출산 혜택⋯구미 ‘청년 도시’로 거듭난다

구미시가 젊은 세대들이 살고 싶어 하는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도시여건 조성을 위해 △고용창출 확대 △청년 주거지원 △출산장려제도 및 아이돌봄시설 확충 △청년문화공간 조성 및 신세대 축제 확대 등 정책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특히 구미시는 청년·여성 친화도시를 표방하면서 맞춤형 종합정책으로 청년들의 일자리·주거· 결혼과 육아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청년 인재 유출 막고 정착 유도” 대학·고교·기업 18곳 업무협약 전국 최초로 공실 원룸 리모델링 젊은층에 생활 주거 지원 늘려 라면축제·야시장 축제 등 확대 문화·낭만 충만한 도시로 변신 □ 청년 고용창출 확대 지난해 구미시 출생아 수는 전년 대비 6.4% 증가한 2014명을 기록했다. 이는 12년 만의 첫 반등이다.같은 기간 혼인 건수도 14% 늘어난 1705건으로 집계됐다. 2023년 1316명 줄었던 청년 순이동 수치는 2024년 845명 감소로 35.79% 개선되며 청년인구 유출 문제에 긍정적인 신호가 보이고 있다. 구미시는 지난달 14일 청년 인재 유출을 막고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대학과 마이스터고, 기업 등 18개 기관과 함께 ‘청년 지역 정착 인턴십 지원’ 사업을 가동했다. 취업까지 연계되는 ‘채용형 인턴십’을 특징으로 한 이 사업은 다음 달 초까지 참여 기업별 면접을 통해 대학생 30명과 실업계고 40명 등 70명을 선발해 최대 4개월간 지역 기업에서 인턴십을 받게 된다. 또 청년들의 창업기반 확대를 위해 지난해 2억여원의 예산을 투입한 ‘청년스타트업 지원사업‘을 통해 978명이 창업 관련 교육을 수료했다. 이밖에 금오시장로 일원에 조성된 ‘청년예술창업 특구’는 예술분야 예비창업인에게 총 2500만 원의 창업지원금과 교육, 컨설팅을 추진하고 있다 □ 청년주거 부담완화 및 출산지원 구미시는 지난달 9일 주거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구미시는 전국 최초로 공실 원룸을 청년 주거 자원으로 전환한 ‘청년근로자 지역정착 행복원룸사업’을 시작했다. 구미시는 건물 노후화와 슬럼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지역에 청년 인구의 정착을 유도하고 장기간 방치된 공실 원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과 민간이 협력한 빈집 주택 해결 모델을 만들었다. 공실률 50% 이상이며 구미시에 주소를 둔 원룸 소유주에게 최대 100실의 원룸에 대해 도배, 장판 등 리모델링 비용을 1실당 최대 40만 원까지 지원하고 청소 용역 지원, 보안 시스템 구축 등 건물 환경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사업에 참여한 원룸은 시세 대비 70~80% 수준으로 월세를 내려야 하며, 사업 기간 중 월세를 인상할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청년월세지원’사업으로 국토부의 청년월세 사업에서 제외된 청년들을 위해 대상자를 34세에서 39세까지 확대하고 소득 기준을 당초 60%에서 120%까지 확대해 더 넓은 범위에서 주거비를 지원하고 있다. 향후, 청년 신혼부부 및 출산 가구를 대상으로 한 주거 구입 지원도 검토 중이다. 구미시는 또 지난 달 24일 구미 국가산업단지 근로자를 위한 오피스텔형 임대주택인 청년드림타워 착공식을 개최했다. 청년드림타워는 정부의 지역 활성화 투자펀드 1호 사업으로 대표적 노후 산단인 구미 1국가산단에 지하3층~지상 18층, 459호실 규모의 복합 주거시설로 2027년 완공될 예정이다. 구미시는 청년 근로자들에게는 결혼 장려금을 최대 100만 원을 지급해 경제적 부담을 낮추고 지역 혼인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출산과 양육 부담을 덜기 위해 올해부터 산모에게 30만 원의 산후조리비를 지원하고, 신생아집중치료센터 병상을 기존 6병상에서 8병상으로 확충한다. 돌봄 공백이 없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24시 마을돌봄터와 365돌봄 어린이집을 확대 운영하며, 아이돌보미 인력도 200명 추가 채용해 대기 기간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구미시는 경북도내 지자체 중 단독으로 운영 중인 임산부 전용 교통 서비스인 ‘K맘택시’를 운영 중이다. 지난 달까지 모두 2043명의 임산부가 3만2000여회 가량 이용했다. 임산부는 1100원에서 최대 3000원만 내면 구미시 전역을 이동할 수 있으며, 월 10회까지 목적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호출 가능하다. 특히, 올해부터 신청 방법을 방문 및 온라인에서 앱 신청으로 전환한 이후 보름 만에 84명이 새로 가입하며 서비스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다. □젊은세대 문화 낭만이 충만한 구미 구미시는 산업도시 이미지를 탈피하고 정주 매력을 높이기 위한 문화 인프라도 확충하고 있다. 구미국가산단은 ‘문화산단’으로 지정되며 지난 5월부터 본격적으로 콘텐츠·창업·여가가 융합된 청년친화형 복합지구로 조성 중이다. 구미시는 특히 특히 섬유산업의 역사성을 간직한 ‘방림부지’를 랜드마크로 조성해, 첨단산업과 청년문화, 정주환경을 아우르는 신(新)융합 거점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또한 대구권 광역철도 개통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곡역에서 1공단로와 낙동강 변을 연결하는 구간에는 아름다운 거리 조성을 통해 경관과 공간 환경을 개선할 예정이다. 산단 내 일부 건축물 외벽에는 산단 콘텐츠를 전시할 수 있는 미디어 월과 파사드를 설치하고, 산단 근로자를 위한 축제와 공연도 개최한다. 이처럼 문화 콘텐츠를 확충함으로써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한 문화핵심거점을 조성하고, ‘밤’과 ‘낭만’이 있는 산업단지를 구현할 방침이다. 올해 하반기 개소 예정인 ‘구미영스퀘어’는 구미역 안에 위치해 웨딩테마 라운지, 팝업스토어, 공유오피스 등 청년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다. 지난해 10대 20대 등 청년층을 주축으로 60만 명이 넘게 방문한 라면축제를 비롯 △낭만야시장 △푸드페스티벌 △힙합페스티벌 등 청년 취향에 맞춘 대표 축제가 정례화되며 도시 매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젊은 세대들이 모여들어야 미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다”며 “청년층을 겨냥한 다양한 우대정책으로 청년층 확대에 힘쓸 것”이라 말했다. /류승완기자 ryusw@kbmaeil.com

2025-07-31

100년의 시간이 더께더께 쌓여있는 철길을 거닐다

불국사역은 한옥 지붕을 인 채 웅크리고 있다. 오래된 절집처럼 인기척 끊긴 역사(驛舍) 곳곳엔 적요만 가득하다. 역사 마당에 들어서니 나무 아래, 목줄을 맨 개가 낮잠에 깊이 빠져 있다. 인기척을 느꼈을까. 이따금 꼬리만 흔들 뿐 눈을 뜨거나 짖지는 않는다. 역사 곳곳에 ‘출입금지’ 문구가 색이 바랜 채 붙어 있다. 역사 문은 굳게 닫혔고, 자물쇠는 ‘폐역’답게 오래된 ‘정지’를 각인시킨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나는 밖에 발목이 잡힌 채 너머를 생각한다. 역사 뒤 플랫폼으로 향하는 곳에도 철문이 가로막는다. 단절을 알려주듯 풀만 무성히 자란다. 선로를 덮은 잡초는 저들 세상인 양 빼곡히 자라 어깨를 맞대고 있다. 바람이 불면 사라진 열차의 기척에 응답이라도 하듯 한 방향으로 몸을 흔든다. 플랫폼을 따라 줄지어 선 가이즈까 향나무가 먼저 눈에 든다. 불국사역 영업 개시를 기념해 5~10년 된 나무를 심었다는 명찰을 매달아 두었다. 백 년 넘은 나무들은 폐역을 그대로 지키고 섰다. 한때 역에 울려 퍼지던 기적 소리와 사람들의 북적이던 모습을 회상하며, 나무는 여름을 견고하게 버티며 늙어가는 듯하다. 불국사역은 1918년 영업을 시작해, 1936년 지금의 역사로 단장되었다. 오랜 세월 경주 남쪽을 오가는 통로였던 불국사역은 2021년 12월 28일, 중앙선 이설과 함께 마지막 열차를 보내며 문을 닫았다. 한 세기를 넘긴 시간이었다. 언젠가 나는 뜯겨 나가는 경주 철길 위를 따라 걸었던 적이 있다. 도시를 가르고 숲을 가르며 달려 나간 철로 위에 100년의 시간이 더께더께 쌓여있었다. 경주를 지나는 선로는 단순히 기차가 지나던 길이 아니었다. 유적을 딛고 놓인 철로의 시작은 처음부터 강제였고, 위협이었다. 중앙선 이설과 함께 한 세기 넘긴 시간을 마무리한 불국사역, 이젠 적막함만 대한제국의 의지서 시작된 한반도 철도… 일제 침략으로 수탈 역사로 점철 선로는 수탈 수단에 그치지 않고 유적 훼손 … 식민 권력 상징적 행위 분석도 ■한반도 철도 시작은 대한제국 한반도의 철도는 일본이 아닌 대한제국 의지에서 시작되었다. 경인선(1899), 경부선(1905), 경의선(1906) 모두 대한제국 시기(1897~1910)에 개통되었다. 초기 부설권은 미국과 프랑스 자본에 맡겨졌다. 1896년 2월, 아관파천에서 환궁한 고종을 찾아 미국 공사 제임스 모스(James R. Morse)가 경복궁으로 들어섰다. 그해 봄, 모스는 두 개의 권리를 손에 쥐었다. 하나는 한양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 철길, 하나는 평안 북녘의 금맥이었다. 조선이 외국에 내준 첫 특허였다. 고종은 서양 열강과의 협상을 통해 자주적 근대화를 시도했으나, 일본은 외교력과 군사적 압박으로 부설권을 강탈해 갔다. 대한제국은 1904년 ‘서북철도국’을 설립해 독자적 철도망 구축에 나섰으나, 러일전쟁을 틈탄 일본의 개입으로 좌절되었다. 대한제국은 이미 자체 철도계획과 건설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가 없었더라도 근대화의 길은 이어졌을 것이다. 철도는 침략의 선물이 아니라, 대한제국이 그려낸 근대의 선로였다. 조선 땅 곳곳에 낯선 쇳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철로는 시작부터 조선을 위한 길이 아니었다. 철로를 깔기 전부터, 일제는 먼저 조선을 위협하여 침묵하게 만들었다. 1904년 제정된 ‘대한시설강령’은 철도와 통신망의 장악을 식민 지배의 핵심으로 규정했다. 거기엔 ‘철도 사업은 한국을 경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어 발표된 ‘군용 전선 및 군용 철도 보호에 관한 군령’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군용철도에 손해를 끼치면 사형, 가해자를 숨겨도 사형, 대신 고발하면 20원을 포상한다’는 조항이었다. ‘사형’, 누구도 선로에 대해 거스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법령 아래에, 철길 공사는 선포였고, 명령이었다. 일제는 1909년 지금의 단둥인 안동과 봉천(선양) 등 만주의 철도 부설권을 확보했다. 1911년 압록강 철교를 완성한 뒤, 이를 경의선과 연결해 압록강을 건너 대륙으로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그 흐름의 중간에 경주의 선로가 놓였다. 한반도 남쪽인 부산에서 북쪽 신의주까지 곧장 치고 갈 수 있는 철길이 완성된 것이다. ‘경동선’, 침략의 쇠줄이 한반도 땅 위로 뻗어갈 때 경주도 그 길 위에 얹힌 셈이었다. ■경주의 철길 경주 철길은 1918년, 동해남부선의 일부로 개통되었다. 일제는 조선의 동해안 지역에 매장된 철, 구리, 석탄 등 지하자원을 효율적으로 반출하기 위해 동해남부선을 기획했다. 경주~포항 구간은 자원 수송의 핵심 통로였다. 일제는 조선총독부 직할의 철도국을 통해 경주 중심부를 관통하는 철도를 설계했다. 일본인 기술자의 설계와 일본 군 감독하에 조선인 강제 동원된 노동자의 손으로 철길을 밀어붙였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노동자들은 저임금 혹은 무임금에 가까운 조건으로 강제로 끌려왔다. 철도는 경주 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월성동·사정동·노서동 일대를 절단했다. 문제는 선로가 단지 수탈을 위한 운송 수단에 그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학계에서는 동해남부선의 경주 구간이 의도적으로 사천왕사 터 중심부를 관통하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라는 지적한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민족의 정기를 훼손하고 정신적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식민 권력의 상징적 행위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사천왕사 터를 비롯해 능지탑 터, 옥산사 터, 대릉원 주변 고분군 등 신라 유적이 선로 공사로 훼손되었다. 당시 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인식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굴착과 침목 설치 과정에서 수많은 유물과 절터가 파괴되었다. 더욱이 철로는 경주의 고대 도심을 두 개로 나누며, 도시 공간을 단절시키는 물리적 경계가 되었다. 철길 서편은 대부분 주거지와 농촌지역으로 남았고, 동편은 문화유산 중심의 관광지로 재편되었다. 교량이 없던 시기에는 철도를 건너는 것조차 쉽지 않아 일상의 이동에도 큰 장애가 되었다. 어디 이뿐이랴. 일제는 철로를 통해 불국사·석굴암 등지에서 수습된 유물은 포항항을 거쳐 일본 본토로 반출했다. 불경, 불상, 금속공예품, 건축 부재 등이 포함되었으며, 대부분은 공적으로 보고되지 않은 채 밀반출되었다. 일본의 박물관이나 사찰에 지금도 남아 있는 몇몇 유물들이 증명하고 있다. ■경주역, 불국사역 개통, ‘기차’를 처음 본 경주 사람들 1918년 11월 1일, 쇠붙이가 땅을 울렸다. 경주 사람들은 들녘을 지나 역 앞으로 몰려들었다. 포항과 불국사로 이어지는 경동선 개통일이었다. 기차는 짐승도, 마차도 아닌 거대한 괴물처럼 느껴졌다. 화통에서 연기를 뿜어내자, 바퀴는 쇠를 긁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스스로 굴렀고, 증기엔진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대지를 울렸다.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는 철도 공사에 동원되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고된 노역으로 쌓인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자신들이 깔았던 선로 위로 저토록 위압적인 물체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정에 젖었다. 처음 보는 문물 앞에 신기함과 놀람과 두려움이 뒤엉켰을 것이다. 기차 위에 일장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감격과 경외가 아닌, 어딘지 모를 위협과 복종의 기운이 먼저 주눅 들게 했을 것이다. 쇳소리는 경주의 너른 고요를 깨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말 없는 정적 속에서 기차가 뿌리고 간 연기 냄새를 맡으며 처음으로, 자신들의 마을이 외부의 어떤 거대한 질서에 편입되었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철길은 단순한 교통의 선이 아닌, 도시의 심장부를 가르는 긴 흉터처럼 긋고 지나갔다. ■철로 개설과 문화유산 경주에 철길을 내는 건, 유적 파손을 전제하는 일이었다. 경주는 천년 신라의 도읍이었고, 땅속 깊이 무수한 유구가 잠들어 있었다. 도로를 내고 건물을 세울 때도, 굴착의 깊이가 역사에 닿는 일이 빈번했다. 철도처럼 직선화와 효율을 중시하는 인프라가 도입되었을 때, 지하에 숨겨진 문화유산이 손상될 가능성은 훨씬 높았다. 경주는 그런 피해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한 도시였다. 동궁과 월지 동북쪽, 발굴지는 한때 철도가 지나던 곳이었다. 동해남부선이기도 했던 이 구간에서, 신라시대 수세식 화장실 구조가 확인된 바 있다. 이 유구는 2000년대 이후 확인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철도 부설 당시 이미 훼손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주의 철로는 유독 기이하게 굽이치며 놓였다. 일제는 철길을 동궁과 월지의 ‘앞’이 아닌 ‘뒤’로 굽혀 놓으며 시각적 유적 훼손을 피하려 했겠지만, 잠든 유구까지 고려하지는 못했다. 경주는 철도가 어느 쪽으로 지나가든, 흔들리고 깎이고 파였다. 직선을 생명처럼 여기는 기찻길이 경주에서만큼은 예외를 드러낸다. 동궁과 월지 앞에서 급격히 휘어진 선로는 불국사역으로 향하며 두 번 더 꺾인다. 한 번은 사천왕사 터와 신문왕릉 사이에서, 다시 한번은 성덕왕릉 부근에서다. 이 꺾임은 단순한 기술적 곡선으로 보기 어렵다. 아마도 국도와 나란히 지나며, 최소한의 물리적 파괴를 피하려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본다. 일제는 철도 부설 과정에서 때로 유적을 피했고, 때로는 관통했다. 사천왕사 터 중심을 가로지른 선로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선택도 있었고, 동궁과 월지처럼 두 번이나 급격한 방향 전환을 감수하며 피해 간 구간도 있었다. 일제가 유산을 전적으로 아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전면적으로 파괴하려 했다고도 단정할 수 없는 대목이다. *‘천년 고도(故都) 경주의 근대화와 철길’ 이야기는 (하) 편에 이어집니다.

2025-07-30

숲, 가장 오래된 기억에서 깨어나는 생명의 서사

숲, 가장 오래된 기억에서 다시 깨어나는 생명의 서사이다. 나무들이 모인 곳, 숲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힐링 되는 기분이다. 숲은 모임의 장소, 만남의 장소, 삶의 터전이며 시장과 같은 생명체가 모여드는 공공의 장소이다. 숲은 많은 동물과 식물도 마찬가지겠지만, 인간이 태어난 최초의 자궁이다. 4억 년 전 숲이 지구에 생겨난 후,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200만 년 전, 인류가 처음으로 숲의 품속에서 첫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첫울음 소리를 내질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시절의 인간은 거대한 숲의 품 안에서 열매를 따 먹으며 살았다. 나무 위는 적들로부터 피난처였고, 숲속의 바위 아래에서 눈비를 피했다. 뇌는 작고 언어도 없었지만, 본능은 또렷했고, 바람과 빛, 동물의 발소리를 기억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숲은 도시였고, 나무는 집이었고, 물은 길이었으며, 짐승은 두려움의 대상이자 친구였다. 인간의 가장 깊은 무의식 속에는 그 숲에서 살아온 기억이 고스란히 세포의 유전자 DNA에 담겨 남아 있다. 조선시대 주막을 운영한 김설보 여인 월포만 해풍 막기 위해 조성한 비보림 홍수 때 마을 구한 역사적 사실로 기록 노거수회 이삼우 회장, 숲의 가치 발굴 ‘여인의 숲’이라 이름 짓고 기념비 조성 공동체 위한 헌신·공익 위한 정신 상징 원초적 기억은 문명이 발달해도 오늘날까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직립보행을 하며 불을 다루고, 언어를 익히고,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인류는 점차 사유하는 존재로 진화해 갔다. 그때부터 숲은 단지 생존의 터전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을 품는 공간이 되었다. 사계절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숲의 풍경은 인간의 정서를 풍요롭게 했고, 존재의 의미를 되묻게 했다. 숲의 자연은 사람을 안정시키고 또한 깨우치며, 아름다움을 형성했다. 숲은 인간 삶의 그 모든 기능을 수행해 온 최초의 스승이자, 인류 정신의 뿌리였다. 이처럼 숲은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다. 그 깊은 연대감은 단순한 상징이나 은유를 넘어, 실제적인 구원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경북 포항 하송리 ‘여인의 숲’이 바로 그런 사례다. 경북 포항 하송리 ‘여인의 숲’을 아내와 함께 찾았다. 낙동정맥이 동해를 향해 마지막 숨을 고르는 포항-울진 간 7번 국도변에 인접한 포항시 청하면 하송리 마을에는 오래된 인공 숲 하나가 있다. 숲에는 봄이면 녹색 잎의 꽃을 피우고, 여름엔 짙은 녹음 아래 새소리가 적막을 깼다. 가을엔 누렇게 익은 들녘 곁에서 단풍이 붉게 타오르고, 겨울이면 가지마다 나뭇잎을 떨꾼 채 하늘 향해 팔을 벌렸다. 하지만, 숲이 진정 위대한 것은 이런 계절의 풍경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의로운 여인의 용기와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선 말기, 관동에 찰방이 주둔함에 따라 외역이 되어 번성했던 하송리 마을에는 김설보라는 여인이 있었다. 주막을 경영하며 큰 부를 쌓게 된 그녀는, 마을을 향한 사랑과 책임으로 한 가지 결단을 내린다. 월포만에서 불어오는 거센 해풍을 막고 마을이 배 형태인 고로 풍수 사상에 따라 ‘수구막이 숲’을 조성한 것이다. 참나무, 쉬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 활엽수를 심어, 마을 앞으로 열려 있던 자연의 틈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마을의 생명과 복을 지키는 숭고한 장벽의 비보림 숲이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어느 해 거대한 홍수로 안청계리 소재 저수지가 범람하여 마을과 전답을 덮쳤다. 이때 이 숲이 그 걸름막 역할을 하게 되었다. 떠내려가던 가구랑 볏단이며, 가축, 그리고 사람들까지 이 숲에 걸려 살아났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그 숲을 ‘식생이 숲’ 곧 생명을 살린 숲이라 불렀고, 간편하게 ‘외역숲’이라고 불렀다고 하는 이야기다. 이는 그냥 전설이라기보다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름도 사라지고 기억도 희미해졌을 무렵, 노거수회 이삼우 회장이 숲의 가치를 다시 발굴했다. 김설보 여사의 공덕을 기리며 숲의 존재 가치를 고무시키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그 숲을 ‘여인의 숲’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단순히 여성이 만든 숲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름에는 공동체를 향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사적인 부를 넘어 공익을 위해 나선 담대한 기부 실천이 담겨 있다. ‘여인의 숲’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한 풍수적 기능이나 홍수 방지책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곧 ‘공동체적 기억의 공간’이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한 여인이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다는 이야기와 그녀의 결단이 자연을 이기려 하지 않고 품으려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마을 주민과 홍수에 떠내려가는 가축 등 뭇 생명을 구했다는 감동적인 전설은 지금 시대에도 잔잔한 울림을 준다. 오늘날 우리가 다시 ‘여인의 숲’을 찾는 이유는 단지 자연을 보기 위함이 아니다. 그 숲에 깃든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마음을 닮고자 함이다. 포항 하송리 ‘여인의 숲’은 바로 그러한 이야기의 보고다. 그늘에서 참나무 씨앗인 도토리를 두 손으로 품에 안고 기도하는 다람쥐를 보며, 우리는 숲을 만든 한 여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여름의 녹음 아래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가을에 누렇게 익은 풍성한 벼들을 바라보면서, 겨울의 쓸쓸한 가지 틈으로 하늘을 올려다볼 때, 고요한 침묵 속에 여인의 용기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름에는 단지 여성이 조성한 숲이라는 뜻만이 담겨 있지 않다. 그것은 사적인 부를 넘어 마을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내어준 한 여인의 용기 있는 실천 그리고 생명을 품은 결단의 기록이자, 우리가 숲에서 다시 배워야 할 고귀한 정신을 상징한다. 도시는 숲을 떠났지만, 인간은 끝내 다시 숲을 찾고 있다. 이는 단지 쉼의 욕구가 아니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생태계의 법칙을 무시해 온 인간이 그 법칙 앞에 다시 무릎 꿇는 과정이다. 숲은 지금도 스스로를 가꾸고, 생명을 순환시키며, 인간이 잃어버린 질서를 조용히 되돌려주고 있다. 포항 하송리 ‘여인의 숲’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숲과 인간의 관계를 상징하는 현재형이다. 나무 아래 드리운 그늘에서 우리는 김설보라는 이름의 손길을 느낄 수 있고, 가지 사이로 비치는 하늘을 보며 삶의 의미를 되묻는다. 숲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나무들은 오늘도 이렇게 속삭이고 있다. “김설보의 숲은, 아직도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인간에게 되돌아올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 수구막이 숲, 생명을 품은 ‘여인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도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깨닫게 해 주고 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설보 여사 송덕비는… -김설보(金薛甫) 여사: 본관은 청풍김씨(淸風金氏), 헌종 7년(1841) 12월 30일생, 고종 37년(1900, 광무4년, 更子年) 1월 18일 60세를 일기로 사망. 그해 9월 8일 내연산 계조암에 논 5두락(5마지기, 약 1500평 정도)을 시주하였고, 남편 윤기석 공의 영정이 보경사에 봉안. 묘는 현재 포항시 북구 송라면 방석1리 뒷산에 남편 윤기석 묘역 내에 있다. -송덕비 : 出身坡平尹公琦碩妻淸風金氏薛甫不忘碑(출신파평윤공기석처청풍김씨설보불망비) 出義捐財 壬年我藪 百堵頌德(출의연재 임년아수 백도송덕) 罕覩基人 幾滅更新 銘此采隣(한도기인 기멸갱신 명차채린) 光武元年丁酉九月日外一二三洞立(광무원년정유구월일외일이삼동립) 재물을 희사하여 임년에 조성한 우리 숲을 백대로 송덕하노니 보기 드문 그 분이 거의 사라질 뻔한 것을 새롭게 하였으매 옥돌을 캐어다 이를 새겨 두노라. -남편 윤기석 : 여인의 남편 윤기석(尹琦碩)은 무과에 급제해 부사과(副司果, 조선시대 종6품 무관 벼슬)를 지냈으며, 고승 대덕의 영정만이 안치되는 보경사 원진각에 영정이 봉안될 정도로 예우를 받았다. /자료 제공: 이삼우 노거수회 명예회장

2025-07-30

4차 산업혁명 흐름 맞춰 디지털·스마트농업 생태계 기반 마련

예천군 농촌은 지금, 깊은 변곡점에 서 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 농촌 일손 부족이라는 삼중고는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비대면 소비 확대, 1인 가구 증가 등 소비 트렌드의 급변은 기존의 농산물 생산과 유통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람의 손과 농기계에 의존해 온 전통농업은 한계에 봉착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농촌의 기반은 약화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예천군은 농업의 대전환을 준비 중이다. 단지 농산물을 생산하는 곳이 아닌 기술과 데이터, 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농업의 산업화를 이끄는 중심지로 도약하려는 전략이다. 예천군은 지속 가능한 농업 구조를 위해 청년 창업농 유입, 농업 디지털화, 산업 생태계 구축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맞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스마트 기술이 접목된 첨단 농업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RE100 기반의 친환경 농업시설과 같은 지속 가능한 시스템도 함께 도입하여, 농촌 재도약의 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다. “농촌 위기 극복” 대전환 프로젝트 준비 청년 창업농 유입 등 농업종합계획 수립 ‘디지털 혁신 농업타운’으로 영농 첨단화 200억원 투입 곤충양잠산업단지 추진 임대형 수직스마트농장에도 100억 투자 농업 구조 전환 넘어 지역 혁신 모델로 □ 예천 디지털혁신 농업타운 이 같은 배경 아래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예천 디지털혁신 농업타운’이다. 농업의 첨단화를 기반으로 한 이 거점 단지는 단순한 시설 조성을 넘어 청년 농업인 육성과 농업의 산업화, 그리고 농촌의 재도약까지 아우르는 미래 농업의 플랫폼을 지향한다. 지보면 매창리 일원 20ha 부지에 구축되는 이 혁신 단지는 곤충양잠산업거점단지, 임대형 수직농장,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이라는 3대 핵심 축으로 구성된다. □ 곤충양잠산업 거점단지 예천군은 국내 최초로 곤충엑스포를 개최하고 곤충연구소를 운영하는 등 이미 곤충도시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져왔다. 이러한 기반 위에 총 사업비 200억 원 규모로 혁신지원센터, 곤충먹이원보급센터, 곤충 스마트농장, 가공지원센터 등 곤충산업의 전 주기를 아우르는 핵심 인프라가 집약된다. 혁신지원센터는 유통지원실, 교육전문실, R&D 실을 갖추고 산업화 기반을 제공한다. 곤충스마트농장에서는 갈색거저리, 흰점박이꽃무지 등의 사육이 진행된다. 생산된 산물은 가공센터에서 식품·소재로 가공되어 유통까지 연계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는 농가 중심 구조에서 전문기관과 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로 전환하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대한민국 곤충산업의 전진기지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 임대형 수직농장 디지털농업의 또 다른 축은 임대형 수직농장이다. 총 사업비 100억 원이 투입된 이 시설은 수직 공간을 활용해 엽채류, 허브류 등을 생산하는 스마트 농장으로,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완전 제어형 시스템이다. 생산동 3동과 교육연구동 1동이 조성되며, 청년 창업농에게 저렴한 임대 형태로 제공된다. 교육연구동은 단순한 교육시설을 넘어, 자동화 수직농장 모델 개발 및 신작물 실증연구까지 가능한 복합시설이다. 이를 통해 청년 농업인은 생산과 경영에 필요한 역량을 체계적으로 갖추고, 안정적으로 농업에 안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 임대형 스마트팜은 청년 창업농에게 가장 실질적인 영농기회를 제공하는 핵심 시설이다. 총 200억 원을 들여 2ha 부지에 스마트팜 2동(총 8구획)을 조성하며, 각 구획당 4320㎡(약 1300평)를 3인 1팀 청년농업인이 임대 운영하게 된다. 생산 작물은 딸기(2구획), 토마토(6구획)로, 향후 오이, 파프리카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청년 농업인은 예천군 관내에 주소를 두거나 또는 이주 예정자 중 보육사업 수료자에게 우선 제공되며, 기본 3년, 최대 6년까지 임대가 가능하다. 이는 초기 진입장벽이 높은 농업 분야에서 청년들이 자산을 축적하고 안정적으로 창업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사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 예천형 디지털농업 혁신 예천 디지털혁신 농업타운은 단순한 농업시설 조성을 넘어 지역사회 전반에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 낼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청년층의 유입이다. 스마트팜, 수직농장, 곤충산업 단지 등 각 시설은 청년 농업인들에게 안정적이고 실질적인 창업 기반을 제공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귀농·귀촌을 촉진하고, 고령화된 지역 인구 구조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직농장과 스마트팜 같은 첨단 농업시설의 도입은 고정비용을 절감하고 계절의 제약 없이 안정적인 생산을 가능하게 하여 농가 소득을 안정화에 기여한다. 곤충양잠산업의 경우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가공과 유통까지 연계된 구조로 전환함으로써 농업의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농업 분야의 산업화는 지역 내 관련 기업를 촉진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연관 산업(가공, 물류, 교육 등)의 활성화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는 단기적인 성과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예천군 전체의 농업경제 체질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농업 혁신타운은 예천의 기존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곤충도시에서 첨단농업 중심지로의 전환은 예천의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고, 타 지역과의 차별성을 확립하는 전략적 자산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예천군의 디지털농업으로의 혁신은 농업의 구조 전환을 넘어, 청년 유입, 경제 활성화, 도시 이미지 개선까지 아우르는 총체적인 지역 혁신 모델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안진기자 ajjung@kbmaeil.com

2025-07-30

푸른 쉼표 하나 ‘콕’ 찍어가는 회색빛 공업도시 울산의 대반전

어쩔 수 없다. ‘회색빛 공업도시’라는 선입견을 뗄 수 없는 명찰처럼 달고 지내온 도시가 울산광역시다. 지난 세기. 한국 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온 주역 가운데 하나지만, 칙칙한 ‘주홍 글씨’를 쉽사리 지워내지 못했다. 기자의 생각도 보편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보지 않고, 여행해보지 않은 이들에겐 울산에 관한 선입견과 주홍 글씨의 색채가 더 강하게 의식을 지배해온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러나, 최근 부산광역시(부전역)에서 출발해 강원도 강릉시로 가는 동해선 기차가 멈추는 곳 가운데 하나인 태화강역 인근에서 이틀을 머물며, 울산을 돌아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울산은 관광도시로의 성장 가능성이 어느 지역보다 크다’는 느낌을 받은 것. 그런 감정을 실질적으로 증폭시킨 울산의 여행지를 딱 2곳만 꼽으라면 ‘대왕암 출렁다리’와 ‘장생포 고래박물관’ 일대를 지목하고 싶다. 왜냐고? 아래가 그 이유다. 포항역~울산 태화강역 1시간5분 소요 ‘장생포고래박물관·대왕암 출렁다리’ ‘태화강 국가정원’ 시티투어 2개 코스 비수기엔 3000원으로 투어버스 이용 아슬아슬 낭만 쌓는 ‘대왕암 출렁다리’ 고래잡이 재현한 ‘장생포 고래단지’선 반세기 전 어촌 풍경 산책하듯 감상 ‘고래문화마을~영상관~고래박물관’ 1.3㎞ 모노레일 위에선 울산이 한눈에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상반기 이용객 100만 명, 부정할 수 없는 동해선 인기 최근 한국철도공사는 근래 개통된 6개의 기차 노선 이용자 숫자를 조사해 발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고의 인기를 누린 노선은 다름 아닌 동해선. 6개 노선 이용객 250만 명 중 동해선 기차에 오른 여행자가 100만 명에 육박한 것이다. 조사 대상이 된 노선은 강릉과 부전, 강릉과 동대구를 운행하는 동해선을 필두로, 서울·청량리에서 부전을 오가는 중앙선, 판교와 문경을 잇는 중부내륙선, 홍성에서 서화성으로 가는 서해선, 홍성-평택-천안-홍성 구간을 차례대로 순환하는 포승·평택선, 대곡과 의정부를 보다 가깝게 만들어준 교외선이다. 이 가운데 동해선이 이용자 숫자 면에서 단연 수위를 차지했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동해선 기차를 타고 부전-강릉 사이를 오간 여행자는 1일 평균 5500명이다. 그러니, 누적 승객이 99만2000명에 이른다. 주말이면 동해선 기차 티켓을 구하기 위한 ‘예약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었던 것. 지난 15일 포항역에서 출발하는 ‘ITX-마음 1252 열차’를 타고 울산 태화강역을 향했다. 소요 시간은 1시간 5분. 날렵하게 디자인된 빨간색 기차의 깔끔한 객실은 쾌적했고, 도착도 예정 시간에 정확히 맞춰줬다. 6월 중순 일본에서 타본 신칸센이나 선더버드 기차 못지않았다. 태화강역엔 울산의 주요 관광지를 효율적으로 이어주는 시티투어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태화강 국가정원 일대를 순환하는 버스와 장생포 고래박물관과 대왕암 출렁다리 등을 오가는 또 다른 버스가 있다. 동해선 기차를 타거나, 자동차를 이용해 울산을 찾은 관광객들은 이 2가지 코스 중 자신의 취향에 맞는 걸 선택해 지역 주요 명소를 보다 손쉽게 돌아보는 게 가능하다. 시티투어 버스의 승차권 가격은 7월 현재 3000원. 비수기라 50%가 할인되고 있으니, 시내버스 2번 탈 돈으로 하루 종일 5~6군데의 관광지를 돌아보는 게 가능한 셈이다. 이른바 ‘가성비’도 좋다. ▲기차 타고 울산 대왕암 출렁다리를 찾은 청춘들은… 울산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대왕암 일대와 고래박물관을 오가는 시티투어 버스에 탔다. 한산한 평일이었으니 주말에 비해 관광객은 적었다. 그럼에도 여행하는 사람의 즐거움이 줄어들지는 않았을 터. 울산을 찾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빼놓고 싶지 않은 관광지 대왕암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짙푸른 바다가 사람들을 반긴다. “울산 최초의 출렁다리이자 동구 최초의 대규모 상업관광시설. 대왕암공원 내 해안산책로의 햇개비에서 수루방 사이를 연결하며, 길이 303m, 높이 42.55m 규모로 만들어졌다. 중간 지지대 없이 한 번에 연결되는 방식이다. 전국 출렁다리 중 경간(徑間) 장로의 길이가 가장 길며, 바다 위로 이어진 다리이기에 대왕암 주변의 해안 비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한국관광공사의 설명은 과장이 아니었다. 고소공포증만 없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긴 다리는 사파이어 빛을 닮은 동해와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했다. 기장역에서 기차를 타고 울산에 왔다는 20대 젊은 연인이 출렁다리 가운데서 장난을 친다. 남자친구가 짐짓 다리를 흔들 것처럼 폼을 잡으니, 조그만 키의 여학생이 놀라며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정작 얼굴은 겁을 먹은 게 아니라 웃고 있다. 청춘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빛나고 아름다운 것. 이런 시 한 편이 절로 떠올랐다. 제 힘에 이 무거운 다리 흔들릴 리 없건만 끙차, 소년은 다리를 흔든다 까짓 다리 위 흔들림이 무서울 까닭 없지만 꺄악, 소녀는 비명을 지른다 청춘의 연애는 출렁다리 위에서 유치하고 유치해서 아름답고. ▲울산에 갔다면 ‘고래의 고향’ 장생포를 빼놓으면 서운하지 동해선 기차의 유유자적한 낭만과 대왕암 출렁다리의 아슬아슬한 낭만을 함께 맛보며 환하게 웃는 청춘남녀를 뒤로 하고, 고래박물관과 장생포 일대를 편하게 앉아서 조망할 수 있는 모노레일이 있는 울산 장생포 고래관광단지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울산, 그 가운데서도 장생포는 ‘고래의 마을’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포경업(捕鯨業)이 금지되기 전엔 적지 않은 고래를 잡아 해체하는 풍경이 드물지 않게 펼쳐진 곳. 고래잡이배(捕鯨船)의 작살수와 고래 해체 전문가는 한때 의사와 변호사도 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렸던 직업이다. 울산의 어르신들은 아직 그 기억 속에서 살고 있다. 2015년 조성된 울산 고래문화마을은 예전 장생포 고래잡이 어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방문자들의 탄성을 불러낸다. 익살스런 인형과 낡은 건물들이 하모니를 이루며 만들어낸 반세기 전의 어촌 풍경은 정겹고 애틋하다. 기자 역시 거기에 매료돼 오랜 시간 머물며 산책하듯 관광을 즐겼다. 실물 크기의 고래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얼마 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반구대 암각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야외 공간도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래박물관 지척에서 티켓을 구입해 모노레일에 올랐다. 고래문화마을-입체영상관-고래박물관으로 이어지는 1.3km 노선. 30여 분 남짓 모노레일에 타고 있으면 출렁이는 장생포 바다와 고래문화마을, 울산대교와 울산공단까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자가 거길 찾은 건 7월 중순. 아직 꽃잎을 채 떨구지 않은 수국이 푸른색 전등처럼 반짝이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샛노란 단풍이 수국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하니, 어느 계절에 찾아도 좋을 듯했다. 조그만 전시관에서 커다란 고래를 해체하는 사진을 보던 80대 어르신이 곁에 선 아내에게 말했다. “세상 좋아짔고 울산도 좋네. 기차 타모 1시간이믄 온다 아이가. 살아있으모 내년에 또 오자.” 두 분은 부산에서 온 관광객이 분명해 보였다.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니 원시의 동해처럼 아득해졌다.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9

자연이 빚은 찻사발··· ‘람사르습지’ 등재되며 세계 명승지로

‘문경돌리네습지’는 자연이 빚은 찻사발이다. 산이 움푹 파여 문경 찻사발 같다. 이렇게 산이 찻사발처럼 움푹 파인 것을 ‘돌리네(doline)’라고 한다. 지하의 석회 기반암이 지하수에 의해 용해돼 형성된 지형적 요지(凹地)를 말한다. 이런 돌리네가 문경에는 50여개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부분 물이 없다. 석회암의 무른 특성으로 구멍이 생겨 물이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경돌리네습지는 물이 빠져나가는 구멍에 점토가 막아 습지를 형성하고 있어 매우 특이하다. 이런 돌리네습지는 세계에서도 6개 밖에 없다. 산북면 굴봉산 자락 15만평 규모 여름엔 물놀이장 겨울엔 썰매터 주민들에겐 ‘서것바다’로 불려 2011년 항공촬영때 돌리네 발견 ‘습지’ 지정 때 주민들 전격 동의 ‘람사르’ 인정되면서 글로벌 명성 □ ‘노아의 방주’ 같은 전설 전해져 ‘문경돌리네습지’는 문경시 산북면 우곡리 읍실마을에 있다. 문경의 오지 중 오지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내려오는 문경산맥 중간 쯤, ‘배너미산’ 앞 ‘굴봉산’ 자락에 있다. 면적이 0.494㎢( 15만여평)에 이른다. 이곳은 읍실마을 사람들이 농사짓던 생활 근거지였다. 논과 밭을 일궈 자식 키우고, 집안을 일구던 터전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서것바다’라 했다. 마을 뒤로 가파른 사면을 넘어가야 했다. 그 재가 ‘돌재’다. 지금 해설부스가 있는 곳이다. 아이들에게는 여름 물놀이장이었고, 겨울 썰매장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습지’라는 말은 없었다. 그저 돌재 넘어 서것바다에 가서 놀았고, 서것바다에 가서 일했다. 돌재에서 보이는 ‘배너미산’의 신비한 전설에 상상력을 키웠다. 태초에 이곳은 바다였고, ‘배너미산’ 2개의 봉우리 사이로 배가 넘어 다녔다는 전설. 노아의 방주 같은 이야기가 이곳에서 대대로 전해왔다. 서것바다에 나던 버드나무를 꺾어다가 ‘키’, ‘채반’을 만들어 산북장, 산양장으로 팔러 다녔던 그 이전의 생활들이 전설로 박제되기 시작했다. 70호 집들이 20호로 쪼그라들면서 사람들은 늙었고, 마을은 점점 소멸의 길로 가라앉고 있었다. 마을은 1450년대에 영월 엄씨가 약초 캐러 왔다가 정착해 살면서 시작됐고, 임진왜란 때 평해황씨가 자기 조상 위패를 모시고 피난 와 옥련정에 모셔놓고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 읍(揖)을 했다고 읍실이라고 전해온다. 서것바다에는 미나리, 달래, 냉이 등등 철마다 갖은 나물들이 나왔고, 가축들에게도 먹이의 보고였다. 이곳에 소를 갖다 놓으면 도망을 안 가고 이 바닥에서만 놀았다. 그런 서것바다에 비가 오면 물이 차올라 농사에 큰 지장을 주었다. 물 빠지는 구멍은 자꾸 막혀 작아졌다. 그러면 물 빠질 때까지 두 달을 기다려야 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두 달을 기다릴 수 없었다. 물이 빠지는 구멍을 정으로 뚫어 넓혔다. 그러면 인천 채씨들은 밤에 와서 그 구멍을 막았다. 조상 산소들이 많았는데, 산소 밑에 물이 있으면 명당이라며 그 물이 빠져 나가지 않도록 해야 했다. 서것바다 물은 구멍으로 빠져 어디로 갈까. 6~70년대 사람들도 그것이 궁금했다. 그때 어른들은 왕겨를 물에 부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왕겨가 서것바다 서쪽 넘어 호계면 선암리로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20여 년 전에는 외지 연구자들이 소금하고 색소를 넣었더니 마찬가지였다. 그 거리는 1km정도. 단양 고수동굴이 1.3km니까 서것바다 밑에도 그런 동굴이 있는 것으로 마을사람들은 믿는다. 마을사람들은 거기에 동굴이 2층으로 있다고 믿는다. 위에 있는 동굴은 선암리로 가고, 밑에 동굴은 호계면 부곡리 암굴, 수굴로 이어졌다고. 서것바다 높이가 해발 290m. 부곡리 암굴, 수굴 높이가 해발 145m. 직선거리로 3km 남짓하니, 마을사람들의 믿음이 허황하지는 않다. □ 천지개벽, 세계적 관광지 부상 그러던 이 마을 생활터전이 2011년 환경부 국립생태원의 항공촬영으로 ‘돌리네’다, ‘습지’다 하면서, 대단히 희귀한 연구가치가 있다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공무원들이 드나들고, 박사들이 왔다 갔다 했다. 마을사람들은 ‘습지’로 지정하는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주민설명회 2번으로 100% 찬성했다. 우리나라 습지 지정하는데 이런 사례는 흔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라에서 습지지구에 들어가는 토지를 사들이는데도 보상가격에 토를 달지 않고 15만평을 다 내주었다. 그러자 2017년 우리나라에서 스물세 번째 산지형 습지로 지정을 받았고, 돌리네습지로는 유일했다. 마을은 이때부터 천지개벽이 시작됐다. ‘서것바다’라는 이름이 ‘문경돌리네습지’로 개명됐다. 도로가 넓어지고, 상하수도시설이 놓이고, ‘돌재’는 등산하는 사람들의 코스로 변하고, 다른 곳으로 새로운 길이 훤하게 뚫렸다. 자동차가 올라가고, 전동차가 드나들고, 탐방센터가 들어섰다. 탐방객들이 주말이면 2~300명씩 찾아와 마을이 북적거렸다. 집집마다 지붕이 개량되고, 마을 안길도 예쁘게 다듬어졌다. 서것바다에 가면 불통이었던 휴대폰도 돌리네습지에 가면 팡팡 터졌다. 지난해에는 ‘람사르습지’로 인정돼 세계화로 나갔다. 24일에는 문경시가 ‘람사르습지도시’가 됐다. 습지로서 써야할 월계관은 모두 쓰게 됐다. ‘문경돌리네습지’에는 세계 돌리네습지 6개 중에 유일하게 750평의 논농사를 짓고 있다. 전통방식으로 초등학생들이 와서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도리깨로 탈곡한다. 그러면 체험한 학생들에게 나락을 찧어 쌀 2kg씩 보내준다. 가을철에는 학생들이 와서 메뚜기체험도 한다. 처음 조사할 때는 이곳에 생물 다양성이 731종이었었는데, 땅을 사들이고 농약을 안 썼더니, 2020년 조사한 걸로 보면 천연기념물,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 등을 포함해 932종이나 됐다. 논농사를 지으니까 지금 멸종위기종으로 국외반출 승인대상인 물방개도 나온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5-07-29

형산강 절벽, 금장낙안의 아름다움에 젖다

가파른 비탈을 따라 땀 훔치며 오르니 형산강 품은 거대한 누각 전신 드러내 시내 전체 훤히 보이는 지형적인 이점 임진왜란 땐 조선군 군사 지휘본부로 절벽 아래 북천·형산강 만나는 ‘예기소’ 얽힌 이야기 김동리의 ‘무녀도’ 모티브 강물 굽이치는 절벽에 앉은 기러기 떼 금장낙안 전설은 ‘팔괴’ 중 하나로 꼽혀 ■산책하기 좋은 금장대습지공원 막 해가 솟았다. 강 표면을 가늘게 감싸던 물안개가 서서히 흩어진다. 안개 너머로 나무의 실루엣이 드러나고, 그림자는 물속으로 가 겹겹이 번진다. 물속에서 흔들리며 다시 태어나는 나무, 그렇게 나무는 제 모습을 가만히 관조한다. 잎사귀 하나가 파르르 물결에서 흐려지고, 이내 찰랑대며 떠내려간다. 바람이 스치면 그림자는 부서졌다가도 다시 이어져, 강은 나무의 또 다른 형상이 된다. 공기는 눅눅하고 맑으며, 습지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고요하다. 습지의 고요를 깨우는 건 숲 어디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소리다. 풀숲이 갈라지고, 한 마리 뱀이 몸을 낮춘 채 지나간다.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나쁘지 않은 생물이다. 나 역시 해할 의도는 없다. 이따금 철새가 날아든다. 갈대숲 깊은 곳,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어디에 둥지를 짓고 알을 품는다. 물 내음과 바람 사이로 새의 숨결이 이어지고, 물 위로 부는 바람이 둥지를 스치며, 새벽 습지를 다정하게 어루만진다. 강 한가운데, 깊지 않은 수면에 갑작스러운 파문이 인다. 물 위로 튀어 오른 거대한 생물, 잉어다. 상상조차 하지 못할 크기다. 물결이 퍼지며 길에 선 나그네의 사유를 흔든다. 놀란 눈동자가 잉어가 사라진 물가에 꽂힌다. 강은 이내 다시 고요해진다. 방금의 소란도 습지의 익숙한 장면처럼 안개 속에 잠긴다. ■금장사터에 지은 누각, 금장대 낮은 산자락에 난 길로 발을 들인다. 금장대는 생각보다 높지 않은 언덕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다. 금장대로 오르는 길은 묘한 사색을 부른다. 오래된 소나무 사이로 난 흙길을 따라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면, 이따금 강물 소리가 바람을 타고 올라온다. 오래된 시간을 통과하듯 짧지 않은 20여 분의 길. 이 길 위에서는 말수가 줄고 마음속 기억들이 하나둘 걸음을 맞춘다. 가파른 비탈을 따라 땀을 훔치며 오르니, 마침내 나무 사이로 금장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붕 선 하나, 이내 용마루가, 다시 다섯 칸 정면과 네 칸 측면의 거대한 누각이 전신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놀랍다. 눈앞에 펼쳐진 누각은 상상보다도 크고 묵직하다. 커다란 누각이 마치 형산강 물줄기를 다 품겠다는 듯 버티고 서 있다. 사방을 휘감은 나무와 강마저 누각의 위용에 움츠러든 듯하다. 금장대는 형산강 물줄기를 굽어보며 그 흐름을 한껏 껴안는 형국이다. 고개를 들고도 시야는 지붕 끝까지 단번에 닿지 못한다. 서너 걸음 물러서야 비로소 전체의 윤곽이 잡힌다. 단순히 물리적 건물이 아니라, 시간을 이고 선 하나의 산세 같다. 금장대는 1996년 복원된 것이다. 신라시대 금장사 터였던 이곳은, 발굴을 통해 석축 기단이 확인되었다. 안압지 건축양식을 반영해 단청을 더했다. 처마 선마다 새겨진 문양은 하늘 아래에서도 빛바래지 않고, 기둥은 세월을 견뎌내는 등뼈처럼 굳건하다. 신라의 숨결이 다시 누각으로 세워진 셈이다. ■조선군 군사지휘본부 마루에 올라서면 사방이 활짝 열린다. 북쪽으로는 알천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형산강 본류가 둥글게 휘돌아 들어온다. 두 물줄기는 마주 부딪히며 깊은 소(沼)를 만들고, 강물은 마침내 한데 섞여 동쪽 영일만으로 흘러간다. 물이 바위벽을 치고 맴도는 곳, 예기소에서 물이 뒤섞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형산강은 스스로 길을 꺾고 휘돌며 곡선의 강변을 빚어낸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곡선은 물길을 따라 유연하게 이어진다. 마치 붓끝이 비단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동양화의 선 같다. 선은 물안개와 들풀 사이를 은근히 적신다. 누각 마루에 서니 경주 시내가 한눈에 담긴다. 크고 작은 지붕들이 어깨를 맞대고, 사이사이 불국사와 대릉원, 황룡사지, 황성공원 같은 옛 터가 점처럼 흩어져 있다. 금장대 위에 서면 시간이 달라진다. 사람의 시간은 낮게 흘러가고, 땅의 시간은 깊게 내려앉는다. 그 둘이 겹치는 순간, 금장대는 더 이상 누각이 아니라 기억의 언덕이 된다. 어떤 시간은 바람처럼 가볍고 얕게 흐르는데, 땅의 시간은 나무뿌리처럼 천천히, 그러나 지워지지 않게 스며든다. 저 아래 강은 쉼 없이 움직이지만, 그 곁의 들판과 고분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발아래 펼쳐진 풍경은 마치 오래된 경전의 한쪽처럼 조용히 말을 건다. 문득 깨닫는다. 금장대는 단지 풍류의 자리가 아니라, 사라진 것들과 남은 것들이 함께 머무는 기억의 언덕임을. 이 누각은 단지 경관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함락된 경주읍성을 되찾기 위해 조선군이 금장대를 군사지휘본부로 삼았다. 시내 전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형적 이점을 살려 방어선과 공략로를 살피기에 유리했다. 그때 이 누각은 병사들의 발걸음과 명령, 수군의 함성이 뒤섞인 요충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의 탄식도, 북소리도 사라지고, 강물만이 그 기억을 밀고 흘려보낸다. ■김동리의 ‘무녀도’와 신라 기생 을화 절벽 아래엔 북천과 형산강이 만나는 깊은 소(沼)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자비왕(신라 제20대 왕) 시절, 기생 을화가 왕과 연회를 즐기다 이 절벽에서 실족하여 빠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 자리가 ‘예기소’라 불리는 곳이다. 이 이야기는 훗날 김동리의 ‘무녀도’의 모티브가 되었다. 예기소(예기청소, 藝技淸沼)는 한번 빠지면 깊이와 소용돌이로 인해 헤어나 올 수 없다고 한다. 사람과 동물 가리지 않고 삼켜버린다고 해서, 경주 사람들은 ‘애기도, 청년도, 소도 빠져 죽는다’ 하여 ‘애기청소’라 부르기도 했다. 무녀와 목사, 딸과 어머니의 갈등이 이 깊은 물 아래 깃들어 있는 듯, 소설의 무대는 그렇게 강물처럼 삶과 죽음, 믿음과 슬픔을 흘려보냈다. 조선시대 시인과 묵객들은 이 누각에 올라 ‘금장낙안(金藏落雁)’이라 불리는 풍광을 노래했다. 기러기가 앉는 들녘과 강이 어우러지는 이 장엄한 조망 앞에서, 인간 삶의 덧없음을 읊고 또 읊었다. 물의 유속이 바위에 부딪혀 일으키는 포말은 그 시절 한 사람의 울음처럼 짧고, 바람은 세월을 넘겨 오늘의 시간까지 닿는다. 풍경은 달라졌다. 사람도 길도 옛 모습은 아니지만, 고요히 스며드는 정취만큼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눈앞의 세상이 달라져도 마음에 닿는 울림은 여전히 오래된 그때와 맞닿아 있는 듯하다. ■신라 삼기팔괴(三奇八怪) 중 하나 경주에는 예로부터 신령한 기이함이 풀리지 않는 물건과 괴이함을 간직한 땅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삼기팔괴(三奇八怪)’라 불렀다. 하늘에서 내린 금척과 바다에서 얻은 만파식적, 불을 피운 수정구슬은 신라 왕가에 전해진 세 가지 기이함이자 신권과 왕권의 상징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통한 힘이 왕에게 깃들었고, 그 힘은 병을 고치고 나라를 지켰으며, 혼란을 잠재웠다. 그러나 기이한 것이 하늘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땅에는 땅의 신비가 스며 있었다. 여덟 가지 괴이한 풍경은 경주 곳곳에 흩어져 있고, 그중 하나가 바로 금장대다. 형산강이 굽이치는 절벽 위, 기러기 떼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떼 지어 내려앉았다는 금장낙안의 전설은 이곳을 경주의 8괴 중 하나로 세웠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높이에 기러기들이 무리 지어 내리는 모습은, 자연의 이치 너머에 있는 조화로움을 보여주는 듯하다. 금장대는 단순한 누각이 아니다. 금장대에 서면 하늘의 기이함과 땅의 괴이함이 하나의 시선에 포개진다. 그 순간 금장대는 시간이 쌓인 누각이자, 하늘과 땅의 신비가 깃든 자리로 다시 태어난다. ■청동기 시대 새겨진 석장동 암각화 금장대를 내려와 바위 앞에 섰다. 청동기 암각화를 보겠노라 여러 차례 왔지만, 매번 바위는 침묵했다. 풍화가 깊었다. 형체는 쉽사리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오래된 바위만 있을 뿐, 시간은 모든 흔적을 지운 듯 보였다. 그러던 오늘, 바위가 불쑥 말을 걸어온 게다. 눈에 익지 않은 무언가가 음영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흐릿한 곡선에서 어떤 발자국이 이어진다. 동물 발자국이다. 도토리와 칼, 꽃 같은 형상이 모두 99점이라는데 아직 그들은 침묵 중이다. 모든 그림이 정교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하나하나가 삶을 향한 바람처럼 느껴진다. 청동기 사람들은 이 바위에 풍요와 다산을 빌었다. 기도였고, 염원이었고, 흔적이었다. 그림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그들은 바위가 시간이 되어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무수한 세월이 그림을 마모시켰지만, 언젠가 다시 누군가의 관심에 의해 ‘툭’ 살아날 것만 같다. 들리지 않던 이야기들이 바위에서 피어오르는 듯, 마음이 먼저 선을 따라 움직인다. 다시 내려간다. 내리막길은 오르막보다 짧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길어진다. 금장대를 내려서는 동안 형산강의 굽이진 물줄기와 도시의 옛사람들이 남긴 발자국이 아득히 따라온다. 강은 지금도 흐르고, 이야기는 지금도 이어진다. 금장대는 단지 높은 누각이 아니라, 수천 년의 시간을 굽어보는 눈이다. 그리고 그 눈길 아래, 잠시 멈춰 선다. 현재로 되돌아가는 길목에서, 오래된 시간이 한 번 더 등을 어루만진다.

2025-07-23

‘객주’ 청송의 왕버들, 전설 간직한 채 살아나

소설가 김주영 선생의 고향이자 소설 ‘객주’의 배경이 된 경북 청송군 진보면과 인접한 파천면 관리 721번지, 한적한 도로변에는 오랜 세월을 말없이 견뎌온 왕버들이 전설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여름에는 무성한 잎으로 몸을 감싸지만, 겨울에는 잎을 모두 떨군 나목의 몸으로 세찬 바람과 마주 선다. 그 곁엔 오래전부터 함께한 마을 공동 우물이 있고, 한때는 나란히 선 소나무 노거수 한 그루도 있었다. 마을 공동 우물터와 왕버들, 소나무라는 소재로 구성된 한 세트의 농촌 풍경은, 겉보기와는 다른 청춘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아픔이 얽힌 이야기의 증인이며, 전설의 무대이자 마을의 심장이었다.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스러져간 사랑, 그리움이 나무가 되어 뿌리내린 이야기이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전설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해지는 삶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1968년 천연기념물 제193호 지정 18필지 땅에 뿌리 내린지 470여 년 높이 18m 부챗살처럼 퍼진 가지들 한 총각이 사랑하는 여인의 부친 대신 전쟁터에 나서며 심었던 ‘약속의 나무’ 조선시대 청춘남녀의 변치 않는 사랑 오랜세월 이겨낸 ‘철인’ 같은 왕버들 그 옆에 새순 돋아난 소나무 ‘만세송’ 민속과 사랑의 전설 간직한 자연유산 청송 관리의 왕버들은 1968년 3월 9일 천연기념물 제193호로 지정된, 민속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는 자연유산이다. 나이 470살, 키 18m, 몸 둘레가 5.7m, 앉은 자리 폭 23m로 그의 넓은 품은 키보다도 5m나 더 크다. 품고 있는 토지가 무려 18필지나 된다고 한다. 왕버들은 1560년경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원줄기에 난 굵은 가지는 태풍에 부러지거나 잘려 나갔으며, 원줄기에서 바로 뻗은 가지들이 부챗살 모양의 수형을 이루며 하늘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이다. 오랜 세월 속에서 줄기 속이 동공되어 외과수술을 받아 이물질을 안은 채 통증을 견디며 여전히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철인 같은 인상을 준다. 왕버들은 한 총각이 이웃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처녀의 늙은 아버지 대신 대리 출정을 나서며, 훗날을 기약하며 심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채 변치 않는 약속의 상징물로 남아 있다. 우물과 함께 마을의 시간을 지켜온 산 증인이며, 신분을 뛰어넘어 애틋한 사랑을 지켜낸 한 여인의 정한이 깃든 존재이다. 오래된 공동 우물은 예부터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자 교류의 장소였고, 사랑이 움트고 이별이 고여 있던 공간이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소나무 노거수는 생을 마감하였고, 어린 후계목 소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나무는 조용히 한 편의 전설을 떠올린다.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끝내 이루지 못한, 조선시대 청춘 남녀의 슬픈 이야기이다. 마을에 채씨 성을 가진 예쁜 처녀가 늙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는 정숙하고 곧은 심성으로 마을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나라에서는 의병을 모집하게 되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60세가 넘은 아버지 채 노인에게 출정 징집 명령 영장이 왔다. 이미 환갑을 넘긴 노인이 어찌 전쟁터에 나갈 수 있으랴. 딸은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당시 여인의 입장으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걱정만 하고 있던 터에, 이웃 마을에서 머슴살이 하던 젊은 청년이 찾아왔다. 그는 검게 그을린 손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가난한 총각이었다. 평소 처녀를 흠모해 왔던 총각은 신분 차이를 알면서도 감히 그녀에께 마음을 품고 있었다. “제가 대신 출정하겠습니다. 부친을 지키는 일은 그대의 몫이고, 나라를 지키는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그 말에 처녀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진심이 담긴 말에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전쟁이 끝나 돌아오면 부친의 허락 아래 백년가약을 맺기로 약속했다. 처녀는 오직 한마음으로 총각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기로 굳게 결심했다. 출정을 하루 앞둔 전날 밤, 두 사람은 우물가에서 남몰래 만났다. 그때 총각은 손에 들고 온 어린 왕버들 한 그루를 처녀에게 보이며 “이 나무를 우물가에 심어 놓고 가겠으니, 날 보듯 고이 길러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총각이 떠난 뒤 매일 나무에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그를 기다리는 마음은 날마다 한결같았다. 왕버들은 점점 자라났지만, 총각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딸이 처녀로 늙어가는 것이 안타까워 다른 사람과의 혼인을 서둘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처녀는 총각이 떠날 때 심어 놓은 나무를 어루만지며 상념에 젖었다. 드디어 결혼식 전날이 다가왔다. 마지막 순간까지 약혼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깊은 밤중에 아버지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 아버지께 용서를 빌고는, 불효막심한 이 여식을 용서해달라는 유서를 남긴 채, 명주 수건으로 왕버들 가지에 목을 매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단 하나의 사랑만을 간직한 채,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왕버들 옆에서 새순 하나가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도 그곳에 나무를 심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한 그루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소나무가 처녀의 일편단심 그리움이 환생한 것이라 여겼다. 전쟁터로 떠나면서 총각이 왕버들을 날 보듯 가꾸어 달라고 부탁했기에, 그 누구도 왕버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소나무는 처녀의 넋이 환생한 것이며, 한결같은 기다림이 나무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고지순한 사랑은 세월에 묻혀 사라지고 없지만, 지금도 왕버들과 우물터, 후계목 소나무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죽은 처녀의 넋이라고 전해지는 소나무는 ‘만세송’이라 불리다 2006년경 고사 되었다. 두 나무 모두 마을의 당나무로서 음력 정월 14일 동제를 지내고 있으며, 이때 사용한 종이로 글씨 연습을 하면 글씨를 잘 쓰게 된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이처럼 애달픈 전설을 간직한 왕버들은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이다. 소나무와 왕버들, 두 나무는 서로를 바라보듯 나란히 서 있다. 거대한 왕버들과 그 곁에 조용히 선 소나무. 이 두 나무는 세월을 이긴 풍경이며,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이야기이다. 왕버들은 말한다. 사랑은 신분을 넘고, 죽음을 넘으며, 기다림은 뿌리가 되어 세월을 감싼다. 그리고 지금의 인연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이다. 왕버들은 여전히 푸르고 우람한 모습으로 서 있고, 처녀의 넋이라 전하던 만세송은 세월 앞에 스러졌지만, 후계목으로 인해 그 기억은 잊히지 않았다. 나무는 말하지 않지만, 침묵 속에 많은 것을 전한다. 버들가지에 매달린 약속, 소나무에 스며든 그리움, 그리고 우물가에 흐르던 눈물까지도 나무는 기억하고 있다. 살아 있는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오늘의 사랑을 더 간절히 품어야 한다. 기다림이 뿌리가 되어 하늘을 향해 자라는 나무처럼, 삶 또한 그리움과 약속의 뿌리 위에서 피어난다. 왕버들과 만세송이 전하는 이야기는 단지 옛사랑의 전설이 아니라, 지금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조용한 울림이기도 하다. 만세송(萬歲松) 기념비의 내용은… 우리 지역의 예나 지금이나 산자수명하여 골짝 굽이굽이 늘 푸른 소나무가 많기로 유명하다. 이런 연유로 우리 군의 군목은 역시 소나무다. 생각컨대 옛 조상들이 청송이라 칭한 심오한 뜻이 어찌 없으랴. 문헌상 많은 기록이 있지만 이를 깊이 생각하고 정리 해 보면 아마 청(靑)은 오색지수(五色之首)이며 송(松)은 만수지장(萬樹之長)이라 하여 우리 지역 지명을 청송이라 칭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헤아려 보면 우리 지역의 지명을 청송이라 칭하고 군목을 송(松)으로 삼은 지가 어언간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우리 군을 표징하는 장송(長松)이 없었다. 이에 우리 군민의 뜻을 모아 한데 모우고 우리 청송을 더욱 빛내기 위해 고을 안에 있는 소나무 중 가장 크며 고송(古松)인 이 나무를 우리 군의 수호목으로 삼아 그 이름을 만세송이라 짓고, 나무 주변 땅을 매입하여 먼 후대까지 길이길이 보호하고 관리코자 여기에 이 비를 세워 그 뜻을 기록해 둔다. -1995년 5월 6일 입하(立夏) 청송군민 일동.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7-23

추억은 맛과 향기로부터… 기차여행 먹거리 다시 풍요로워지길

미나토 쓰루가 플로트 홀(Minato Tsuruga Float Hall). 쓰루가 산차회관(山車會館)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여기엔 화려하고 거대하며, 독특한 수레 3대가 전시돼 있다. 그걸 ‘산차(山車)’라고 부른다. 5000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높이가 10m에 가까운 산차가 앞뒤로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가을 초입 쓰루가 6개 마을의 자존심을 건 ‘야마’들 귀한 재료로 장식한 ‘야마막’ 두르고 퍼레이드 장관 도야마 시내 한복판을 순환하는 노면전차(트램) 자동차와 나란히 달리는 모습 그 자체로 구경거리 ‘역에서 파는 도시락’ 에키벤, 장식부터 맛까지 일품 포항 ‘물회’, 영덕과 울진‘대게’, 겨울 강릉 ‘도루묵’ 등 동해선 특산물 도시락 상상만으로도 입맛 다시게해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만약 가을이 시작될 때 쓰루가를 여행하게 된다면… 산차의 윗부분엔 중세시대 일본의 유명 장수를 형상화한 인형이 놓인다. 내가 유심히 본 산차엔 화려한 갑옷을 입고 긴 칼을 든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의 인형이 올라있었다. 이시다는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령으로 조선을 침공한 병사들의 우두머리 중 하나. 한국인이 볼 땐 ‘우리 조상들을 욕보인 악당’이지만, 일본에선 섬기는 이들이 적지 않은 학자(學者) 스타일 장수였다고 한다. 가을의 초입인 매년 9월 4일이 되면 쓰루가의 6개 마을이 자존심을 걸고 ‘산차’를 장식해 일본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게히신궁(氣比神宮) 앞에 모인다. 이어서 장관이라 부를 만한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그 도시 최고의 마츠리(祭·축제)다. 쓰루가 시민들은 물론, 많은 외국인이 행렬을 보려 몰려든다고. 산차의 앞뒤와 좌우를 장식하는 ‘산차막(山車幕)’은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수십 명의 사람이 짧게는 보름, 길게는 3개월에 걸쳐 10~15자(3~4.5m) 크기의 천에 수를 놓는다. 금과 은, 희귀한 염료가 다량 사용될뿐더러, 일본의 신화(神話)와 구전(口傳)을 한 폭의 막(幕) 속에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것이라 가격이 한국 돈 1~2억 원을 넘는 것도 있다고. 그렇기에 오랜 시간 ‘산차막’을 만들어온 사람은 한국의 무형문화재급 대접을 받는 장인(匠人)들이다. 만약 당신이 오사카나 나고야에서 기차를 타고 축제가 열리는 9월 초순 쓰루가를 방문한다면 위에 열거한 정보를 염두에 두고 ‘산차 행렬’을 지켜보면 어떨까? 세상 무엇이건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조용하고 한산해서 평화로운 여행지 도야마(富山) 도야마는 오사카, 교토, 나라, 쓰루가와 함께 이번 취재에서 기차를 타고 돌아본 도시들 중 하나다. 언급된 다섯 개의 여행지 중 가장 조용하고 한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또한 평화롭게 보였다. 한자로는 ‘富山(부산)’이라 쓰는, 먹을거리와 볼거리 많은 관광지 도야마는 어떤 내력을 가진 곳일까? 이 궁금증에 ‘나무위키’가 답한다. “남쪽에는 일본 알프스 중 하나인 히다 산맥이 위치하고 있다.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고카야마의 갓쇼즈쿠리 마을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히다 산맥과 가미이치마치와 다테야마마치에 걸친 쓰루기다케(劔岳)는 해발 2999m에 달한다. 일반 등산객이 오를 경우 위험도가 가장 높은 산이다.” 신오사카역을 출발해 쓰루가역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도야마역에 도착하려면 3시간이 걸린다. 포항역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시간보다 조금 더 길다. 오전 11시경 오사카를 출발했으니 점심을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큰 기대 없이 신오사카역 상점가에서 도시락을 하나 구입해 기차에 올랐다. 일본인들은 이 도시락을 에키벤(えきべん)이라 부른다고. 도야마를 찾았던 때는 6월 중순. 그럼에도 햇살은 눈이 부셨고, 날씨는 한국의 7월 같았다. 도야마역 주변은 밝고 환하면서도, 괴괴한 정적이 맴돌고 있었다.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느닷없는 무더위를 피해 숙소에 잠시 누웠다가 이른 저녁을 먹으러 거리로 나섰다. 도야마는 메밀국수(soba)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했다. 마침 역 지척에 이른바 ‘도야마 메밀국수 맛집’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도야마 시내를 돌아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때 눈에 띈 게 트램(tram)이다. 모양과 색깔이 조금씩 다른 여러 대의 노면전차(路面電車)가 자동차, 버스와 나란히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구경거리였다. 도야마역 관광안내소로 들어가 트램 티켓을 판매하는 곳을 물었다. 그리고, 5분 후엔 도심 번화가를 30분가량 순환한 후 출발지인 도야마역으로 돌아오는 트램에 올라섰다. 쓰루가에 도시의 주요 관광지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빙글빙글 쓰루가 버스’가 있다면, 도야마엔 백화점·대형 마트·관공서·은행·우체국 등이 밀집한 시내 한복판을 순환하는 노면전차(트램)가 있었다. 폭염 속에 땀을 흘리면서라도 ‘걸어서 낯선 도시의 곳곳을 돌아보고 싶다’는 여행자는 그렇게 하면 된다. 반면 ‘나는 편하고 빠르게 도시를 파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관광객이 있다면 도야마에선 ‘순환선 트램’ 탑승을 권한다. 도야마엔 비단 도심 순환선만 있는 건 아니다. 또 다른 2~3개의 노선에서 트램이 운행 중이니, 어느 노선을 선택하건 한국에서라면 경험해보기 쉽지 않은 ‘노면전차 타기’를 즐기시길. ▲일본 기차여행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준 ‘에키벤’ ‘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의미하는 에키벤을 처음 맛본 건 신오사카역에서 쓰루가역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였다. ‘소고기덮밥’이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도시락 아래 달린 실을 잡아당기면 발열제가 작동해 데워 먹도록 해뒀으니, 따끈하게 즐길 수 있어 더 좋았다. 몇 번의 일본여행에서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자들처럼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곤 했다. 그것들도 가격에 비해 만족도가 높았다. 하지만, 에키벤은 편의점 도시락과는 레벨이 달랐다. 에키벤은 보통 한국 돈 1만5000원에서 2만5000원 정도로 값이 형성돼 있는데, 싸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격이지만, 먹다보면 그런 생각이 눈 녹듯 사라진다. 또 먹고 싶어지는 것. 에키벤에 매료된 기자는 도야마역에서 오사카역으로 돌아올 때도 ‘새우튀김 에키벤’을 샀고, 심지어 쓰루가에 머물 땐 일부러 역까지 걸어가서 ‘장어구이 에키벤’을 사와 숙소에서 먹기도 했다. 하나하나의 도시락 모두가 장식에서부터 맛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해본 60대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조그만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아주던 ‘대전역 가락국수’를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추억은 향기와 맛으로부터 온다. 일본인들에겐 기차여행의 즐거움이 에키벤에 있다면, 20세기 한국 기차여행의 행복감 속엔 사이다와 삶은 계란, 맥주와 훈제 소시지가 있었다. 세기가 바뀌었고, 젊은 세대의 입맛도 변했다. 20세기의 운영 방식으로 한국 기차여행의 먹을거리가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 없다. 동해선 기차여행의 인프라 확장과 프로그램 개선 방안 가운데 하나가 ‘지역 특산물을 재로로 만든 도시락 개발’이 돼야 마땅한 이유다. 울산-포항-영덕-울진-삼척-동해-강릉. 동해선 기차가 달리는 도시엔 갖가지 물고기와 벌건 등이 입맛을 다시게 하는 대게 등 싱싱한 해산물이 얼마나 많은가. 포항역에선 ‘물회 도시락’, 영덕역과 울진역에선 ‘대게 도시락’, 겨울의 강릉역에선 ‘도루묵 도시락’을 사서 동해선 기차에 올라타는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 기자 하나만일까?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7-22

‘주식회사 예천군’ 캐치프레이즈로 새로운 공공행정 모델 확립

“지자체를 기업처럼 경영해야 합니다. 저는 영업부장이고, 공무원들은 직원이며, 군민은 주주입니다” 최근 TV 대담프로그램에서 한 김학동 군수의 말에서 ‘주식회사 예천군’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구호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공공행정에 기업경영 마인드를 접목해 지방자치단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그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행정에 기업 경영 마인드 접목 지자체 운영 새 패러다임 제시 사회안전망 평가서 ‘전국 1위’ 도청신도시-원도심 균형 모색 ‘생활인구 1천만 명’에도 도전 □ 새로운 공공행정의 추진모델 ‘주식회사 예천군’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종종 기업경영 방식을 언급하지만, 실제로 이를 체계적으로 도입해 성과를 내는 사례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민선 8기 3년차를 맞은 김학동 예천군수의 ‘주식회사 예천군’ 운영 방식은 눈여겨볼 만하다. 김 군수는 행정을 공익비즈니스로 접근하며, 과거 공직사회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해 실적과 성과를 중요시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형식과 절차를 지키되, 결과 중심의 행정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취임 후 김 군수가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조직문화 혁신이었다. 경직된 수직적 조직을 유연한 수평적 조직으로 바꾸고, 부서 간 협업을 강화했다. 공직자들에게는 주인의식을, 군민들에게는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접근법이 특징이다. □ 숫자로 증명된 성과, 군민들의 삶이 달라졌다. 김 군수의 경영 마인드가 빚어낸 변화는 객관적 지표로 증명됐다. 예천군은 2023년 사회안전지수 평가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군부 전국 1위를 차지했다. 또한 2024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지역발전지수 평가에서는 주민활력 분야가 10년 만에 153위에서 59위로 급상승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공약이행 평가에서 4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된 것이다. 6대 분야 총 44건의 공약사업 중 현재 73.9%의 이행률을 보이고 있어, 민선 8기 임기 내 100% 달성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성과는 김 군수가 강조하는 ‘예산 확보 노력’에서 비롯됐다. 그는 취임 후 공직자들과 함께 국회와 정부 부처를 수시로 방문하며 적극적인 예산 확보와 공모사업 유치에 나섰고, 이는 다양한 사업 추진의 원동력이 됐다. □ 도청신도시-원도심 균형발전 전략 경북도청 이전으로 형성된 도청신도시는 예천군에 역사적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동시에 원도심 공동화라는 도전과제도 가져왔다. 김 군수는 두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한 전략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 도청신도시에는 복합커뮤니티센터, 범우리공원 숲속놀이터, 태교숲, 송평천 수변공원 등 생활편의시설을 신속히 확충했다. 경북인재개발원, 경북체육회, 경북도립예술단 등 주요 기관의 이전도 순차적으로 진행 중이다. 산업 기반 마련을 위해 KT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유치했고, 도시첨단산업단지와 e스포츠국가대표훈련센터 등도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북도와 함께 돌봄융합특구사업으로 영유아창의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송평천에는 가족친화영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용역을 준비중에 있다. 또한 경북도, 안동시와 함께 경국대학교 의대 신설과 부속병원을 도청신도시에 건립하기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장기적인 경기악화로 인해 지연되고 있는 2단계 개발지역에 계획된 4000 여 세대의 공동주택도 연내 분양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원도심에는 단샘어울림센터, 청년센터, 아이사랑 안심케어센터, 희망키움센터, 평생학습센터 등 주민 편의시설을 구축했다. 전선지중화사업과 간판현대화 사업으로 도시 경관을 개선하고, 읍면 소재지마다 기초생활거점사업을 통해 주민 여가시설을 확충했다. □ ‘생활인구 천만 명’을 향한 야심찬 도전 예천군의 주목할 만한 전략 중 하나는 ‘생활인구 천만 명’ 목표다. 2030년까지 달성을 목표로 한 이 계획은 단순히 정주인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관광과 업무 등 다양한 목적으로 예천을 찾아 머무는 인구를 증가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 군수는 이를 위해 스포츠 마케팅, 체류형 관광, 축제와 먹거리 개발이라는 세 가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스포츠 마케팅분야에서는 양궁과 육상에서 국제대회를 비롯, 크고 작은 다양한 대회를 개최하며 전지훈련으로 많은 선수단과 관계자들이 예천을 방문하고 있다. 육상교육훈련센터와 양궁훈련센터 건립으로 최적의 전지훈련장소로 지위를 확고히 다지고, 다양한 종목의 생활체육대회도 적극 유치할 계획이다. 특히, e스포츠 국가대표훈련센터는 미래 스포츠 산업의 핵심 시설로 예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전망이다. 관광 분야에서는 우선, 관광지를 권역화하고 완성도를 높인다. 또한 방문객들의 동선을 각 권역에서 신도시와 원도심으로 이어지도록 해 체류형 관광으로 전환을 목표로 한다. 삼강과 회룡포를 전동차로 연결하고 대형 전망대를 건립하는 등 각 권역별 관광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원도심의 남산공원 야관경관단지 ‘벅스루미나’와 신도시의 도립미술관 건립을 통해 원도심・신도시로 관광객을 유인해 지역경제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곤충축제, 활축제, 농산물축제 등 대표 축제의 콘텐츠를 강화해 매력도를 올리고, 예천 한우특화센터를 중심으로 한우를 비롯한 지역 특색을 살린 먹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한 고장이 되도록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 예천군의 미래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축은 청년정책과 가족복지다. 김 군수는 청년정책이 지역 발전과 직결된다는 관점에서 청년들이 예천에 정착해 경제활동을 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청년센터와 희망키움센터를 통해 청년들의 취업, 창업, 자산형성, 주거지원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도시첨단산업단지와 디지털혁신농업타운을 통해 IT 기반 일자리와 첨단농업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또한 미혼 청년들을 위한 커플매칭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출산부터 육아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내년 개원 예정인 공공산후조리원을 비롯해 아이사랑 안심케어센터, 다함께 돌봄센터, 24시간 운영 돌봄센터 등 시설을 확충했다. 경북도의 융합돌봄특구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된 것도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은 결과다. 돌봄 사각지대 없는 복지도시 구현을 위해 김 군수는 복지정책의 수준이 도시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분야별 맞춤형 복지서비스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노인복지 분야에서는 독거 어르신을 위한 맞춤형 돌봄과 행복도우미 사업을 추진하고, 노인사회활동지원사업으로 활기찬 노후를 지원한다. 특히 70세 이상 어르신 대중교통 무료화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아이사랑 안심케어센터, 다함께 돌봄센터, 지역아동센터, 공동육아나눔터, 24시간 운영 돌봄센터 등 다양한 돌봄 시설을 확충해 ‘돌봄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있다. 경상북도의 융합돌봄특구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된 것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예천군은 전국 최고 수준의 돌봄 체계를 갖췄다고 자부하고 있다. □ 미래인재 육성을 위한 ‘명품 교육도시’ 전략 예천군 인구 유입과 지역 발전의 핵심 요소로 교육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김 군수는 인구 이동의 중요 요인 중 하나가 교육이라며, 아이를 낳아 돌보고 교육하기 좋은 도시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 문제를 지역사회 전체의 과제로 인식하고, 교육청, 학교, 지자체, 주민의 협력 체계를 구축한 점이 돋보인다. 교육장, 군의장, 군수가 공동위원장을 맡는 ‘예천교육발전협의회’를 발족해 지역 교육 현안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했다. 예천군은 경북도교육청과 함께 미래교육지구사업과 교육발전특구사업에 선정되어 다양한 방과 후 학습프로그램, 영어원어민 교육, 해외 연수 기회 등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특히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들을 위한 ‘희망아카데미’와 1 대 1 맞춤형 진학컨설팅을 제공하는 ‘입시카페’는 지역 학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경북도와 공동으로 창의과학 수업을 진행하고 창의과학교육센터 건립을 추진해 도청신도시를 창의과학교육지구로 발전시키는 계획도 진행 중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장기적 투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주식회사 예천군의 남은 과제 예천군 경영은 지방행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 경영 기법을 단순히 도입한 것이 아니라 공공성과 효율성을 조화시키는 균형 잡힌 접근법으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군민들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나온 다양한 정책들은 높은 체감도와 만족도로 이어지고 있다. 생활인구 확대, 청년 지원, 복지 강화, 교육 투자 등 주요 정책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e스포츠국가대표훈련센터, 도시첨단산업단지 등 미래 성장동력이 될 핵심 사업들의 차질 없는 진행과 의대 부속병원 유치를 통한 의료 인프라 확충, 그리고 인구 유입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상황이다. 또한 도청신도시와 원도심 간 균형발전을 넘어 실질적인 통합과 상생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도 앞으로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김 군수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자연재해의 위기 속에서도 예천군은 힘차게 전진해 왔다”며, “어려운 시기이지만 군민들의 이해와 협조, 그리고 공직자들의 열정이 있다면 예천군은 반드시 발전하고 신도시와 원도심의 상생발전으로 우뚝 성장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정안진기자 ajjung@kbmaeil.com

2025-07-22

‘관광특구 1돌’ 대구 동성로, 젊음과 낭만으로 물들어 간다

대구 동성로가 지역 최초로 관광특구로 지정된 지 1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7월 대구시가 동성로를 관광특구로 지정하며 옛 명성을 회복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으나, 아직까지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태다. 이는 그동안 사업이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올해부터 대구시와 중구청이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서면서 점차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을 겨냥한 문화·예술 공간 확충과 거리 경관 개선 사업을 통해 젊음과 낭만이 공존하는 활기찬 동성로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본지는 관광특구 지정 1주년을 계기로, 지난 1년간의 성과와 향후 계획을 점검해봤다. 문화관광·상권·교통·도심공간 4개 분야 ‘르네상스 프로젝트’ 추진 중 올 39개 신규 사업 116억 투입… 지역경제·관광산업 중심지 발전 도모 다양한 외국어 통역 해설사 호평 ‘골목 투어’ 하루 평균 100∼200명 발길 △동성로, 대구 첫 관광특구에 지정되다 지난해 7월 대구시 중구 동성로·약령시 일원 1.16㎢가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관광특구는 기초단체가 신청하면 광역단체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해 지정한다. 중구는 지난 2021년에 동성로 관광특구 지정에 도전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실패한 바 있다. 외국인 관광객 기준은 최근 1년간 외국인 관광객 수 10만 명 이상이어야 하지만 코로나19 등으로 그 수를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2023년 동성로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13만 명을 넘어서면서 기준을 충족했다. 관광특구에 지정되면 관광진흥개발기금 우대금리 융자지원, 관광특구 활성화 국비 지원사업 추진, 옥외광고물 허가기준 완화 등 다양한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침체된 동성로에 활력을 대구시는 관광특구에 지정된 동성로 일대를 ‘서울 홍대 거리’처럼 문화관광의 핵심지로 조성하려 한다. 대구시는 앞서 2023년 7월부터 ‘동성로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문화관광·상권·교통·도심공간 등 4개 분야로 나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동성로 공실의 대구·경북권 대학 도심 캠퍼스 활용, 버스킹 무대 마련, 옛 중앙파출소 광장의 랜드마크화 등 젊은이들을 모으는 방안이다. 특히, 관광 인프라 확충과 축제 개최에 중점을 두고 계획을 추진 중이다. 대구시는 지난 5월 한 달간 동성로 일대에서 축제를 진행했다. 약령시 일원에서 ‘대구약령시한방문화축제’, 국채보상로 일대에서 국내 대표 퍼레이드 축제 ‘파워풀대구페스티벌’,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대구생활문화제’, 그리고 동성로 일원에서 ‘동성로축제’를 진행했다. 동성로 인근 전체가 하나의 무대가 되는 축제를 만든 것이다. △동성로 상권 활성화 사업 본격화 대구시는 올해 ‘동성로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인 ’동성로 상권 활성화 사업‘의 2차 연도 사업을 본격화하고, 콘텐츠 강화에 나섰다. 앞서 지난해 60억 원 규모의 5개년 사업으로 상권 활성화 구역 고시와 상권관리기구를 지정하는 등 기반 조성을 마쳤다. 올해는 공동브랜드 홍보, 팝업스토어 운영, 점포 컨설팅, 동성로 패스 발행 등 체감도에 중점을 뒀다. 중구청도 올해 동성로 관광특구를 지역 경제와 관광산업의 중심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39개 신규 사업에 총 116억6000만 원을 투입한다. 중구청은 글로벌 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로컬 관광콘텐츠 개발 △지역 관광인프라 구축 △관광 협력체계 강화 △관광 홍보 마케팅 차별화 △관광편의 서비스 향상이라는 5대 전략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또 동성로에 뉴욕 타임스퀘어처럼 미디어 거리를 조성하기 위해 기반 시설을 신설 및 정비하고, 동성로 주요 구간을 ‘옥외광고물 특정 구역’으로 지정해 지역 브랜드를 강화할 계획이다. 특정 구역에 지정되면 옥외광고물 크기, 수량, 설치 위치 등 관련 기준이 완화된다. 관광특구 활성화를 위해 ‘분과별 관광특구 행정협의체’와 ‘민관 관광특구 협의회’를 구성한다. 이를 통해 관광 콘텐츠 개발과 사업 추진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고 발전 방안을 여러모로 모색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동성로 인지도 향상을 위해 국내외 박람회 참가, 홍보용 쇼츠 영상 제작, 동성로 관광안내소 설치해 외국어 해설사를 상시 배치, 외국인 취향 맞춤형 테마관광 코스 개발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큰 인기 ‘골목 투어’ 대구 중구의 ‘골목 투어’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골목 투어는 10인 이상의 단체관광객들이 사전에 예약을 신청하면 문화해설사가 무료로 지원된다. 특히, 영어, 중국, 일본어 등 다양한 외국어 통역이 가능한 해설사가 배치돼 있어 대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호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골목 투어는 5개 코스(제1코스 경상감영달성길,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 제3코스 패션한방길, 제4코스 삼덕봉산문화길, 제5코스 남산100년향수길)로 구성돼 있다. 각 코스마다 주제가 뚜렷하고 체험행사도 마련돼 있다. 체험행사는 투어 곳곳의 실내에서 무더위를 잠시나마 식힐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마련돼 더욱 인기다. 지난 18일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 투어에 참여한 라이언(21· 미국 버지니아대)씨는 “투어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알게 됐다”면서 “빌딩 숲속과 역사적 공간이 조화롭게 이뤄져 있어 대구의 성장과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해설사의 유창한 영어 실력에 놀랐다. 한국의 역사와 대구의 역사를 모르는 외국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같은 날 골목투어에 참여한 봉백초라나이(21·여·캄보디아)씨도 “3·1운동 벽화를 인상 깊게 봤다. 내가 한국의 중요한 역사 현장에 와있어 너무 놀라웠다”고 전했다.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골목투어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면서 하루 평균 100∼200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대 골목 투어는 지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네 차례나 ‘한국 관광 100선’에 뽑혔다. 또 2015년 ‘한국 관광의 별’ 선정에 이어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로컬 100(지역문화 매력 100선)’에도 포함되는 등 여러 곳이 관광명소로 이름을 올렸다. “새로운 생태계 조성과 상권 활성화 온힘” 인/터/뷰 이준호 동성로 상점가 상인회장 “동성로 관광 특구 지정 1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합니다.” 지난 2020년부터 동성로 상점가 상인회를 이끌어 온 이준호(57) 회장의 말이다. 그는 쇠퇴한 상권을 되살리고 상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꾸준히 활동해 왔다. 이 회장은 “대구에서 처음으로 지정받은 동성로 관광 특구는 사업 초기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현재는 조금 주춤한 거 같다”며 “스마트폰을 예로 들며 앱의 부족한 콘텐츠를 채워 나가야만 기능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재 그 과정이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구청과 동성로 상인회는 기반을 열심히 만들었고, 현재 사업의 일부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특구 전담 인력 및 예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콘텐츠 개발로 동성로 활성화의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다. 관광특구 지정 이후 첫 동성로 축제가 ‘파워풀페스티벌’과 연계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또 동성로 상권 및 관광 활성화를 위해 ‘동성로 놀장 축제’를 지난 5~6월 총 네 차례 시범운영을 했었다. 축제는 시민들 호응에 힘입어 소위 대박이 났다. 동성로 놀장 축제는 오는 12월까지 ‘동성로 보행자전용도로(CGV 한일~동성로28아트스퀘어~관광안내센터)’의 약 300m에서 매주 주말 오후 1시부터 밤 9시까지 열린다. 이 회장은 “이 거리는 평소 밤 8시가 넘으면 상점이 문을 닫아 껌껌했지만, 야간 조명을 밝히고 먹거리와 볼거리, 체험 등 행사가 열려 밤늦은 시간까지 사람들로 넘치는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외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유학생, 이주 노동자, 구미, 경산 등 손님들이 대경선과 대중교통을 이용해 동성로를 찾는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면서 “동성로의 쇼핑거리를 탈피하고 보행자 전용 도로를 활용해 안전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는 관광지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상인들과 불법 간판, 주차 등 환경 개선을 이어갈 방침이다. 4년째 장기표류 중인 대구백화점 본점 매각에 대해선 “건설 경기가 활성화되면 당연히 매각될 것이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철거와 신축을 하게 되면 약 5년가량 동성로는 공사판이 될 것”이라면서 “대구시 등이 인수해 공익적인 용도로 이용되는 것이 제일 좋은 방안”이라고 했다. 끝으로 이준호 회장은 “관광특구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동성로의 새로운 생태계 조성과 상권 활성화를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5-07-21

동해에 최적화된 돌김 품종 개발, 어촌 새 수익 모델로 육성

높은 파도, 급한 경사의 해안선, 영양염류(질소, 인)의 부족, 계절에 따른 극심한 수온 변화까지…. 동해는 김 양식장이 들어서기에 불편한 조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갯벌에서 공급되는 풍부한 유기물질과 다도해 섬들이 천연 방파제를 형성해 파도에서 자유로운 환경을 배경으로 일찍이 양식장이 번창한 서해, 남해와는 대조를 이룬다. 그렇다고 동해에서 김 재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연오랑세오녀 편엔 2세기 경 김(해조류) 채취와 관련한 기록이 보이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구룡포에서 암해태(岩海苔)를 장려했다는 문헌도 나온다. 울릉도 죽암리에서 겨울철 한철 생산되는 돌김은 이미 식도락가들의 ‘Must Eat’ 필수템이 되어 있기도 하다. 김 양식업 위기가 현실화되는 가운데서도 어민 고소득 품목에 돌김 등 해조류들이 부상함에 따라 경북도에서도 지역 특성에 맞는 돌김 종(種)을 규명하고 양식 시설을 구축해 소득 작목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2024년 ‘육상김양식 개발연구’ 수립 포항·영덕등 자생 김 품종 종묘 육성 흥해 자생 ‘둥근돌김’ 유력 후보 중 하나 연안 양식 보다 스마트양식장에 무게 김양식 기술 성공 땐 민간·식품사 이전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 2024년 ‘육상 김양식 연구 계획’ 수립… 첫걸음 경북도는 스마트 양식장 등 김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해 2024년 ‘육상 김양식 기술개발 연구 계획’을 수립했다. 또 5억 원을 들여 지역 특성에 맞는 종(種) 배양 시스템 구축에도 나섰다.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경북도수산자원연구원은 지역 특성에 맞는 종자를 채취한 후 배양 테스트를 거쳐 양식장 활성화 및 기술 표준화를 순차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경북도수산자원연구원은 국립수산과학원과 전북도, 전남도, 삼척시 등 자치단체와 풀무원, 대상 등 기업연구소를 대상으로 김 양식 현장 조사를 벌이며 세부 전략을 다듬고 있다. 경북도가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울진, 영덕, 포항, 경주, 울릉 등 경북 동해안 지역에 서식, 자생하는 돌김의 품종을 분석하는 일이다. 옛날 문헌에 동해안 지역에 돌김이 다수 자생했다는 기록이 보이고, 실제로 지역별로 독특한 품종들이 많이 관찰되고 있는 만큼 종자를 복원시켜 이를 숙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도는 현재 해안가의 자생 김 채취는 ‘가내(家內) 어업’ 형태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 ‘전통어업’에서 경북도 김 양식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 현지답사 외에도 해조류와 관련된 고문헌들을 조사하며 지역 돌김 양식의 채취지역, 품종, 유통 등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 동해안 환경, 영양 수온, 식생에 맞는 품종 개발 그동안 서, 남해안의 김 샘플에 집중해 온 경북도는 최근 들어서는 경기도와 경북 동해 지역의 돌김 종자를 주목하고 있다. 남해안과 동해안의 해수 온도와 영양, 여건 등이 차이가 나 서 남해안의 종자를 무조건 들여오는 것은 다소 위험 요소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경북도가 선호하는 종(種)은 ‘긴잎돌김’과 ‘둥근돌김’종자다. 특히 둥근돌김은 포항시 흥해읍 오도리에서 채취된 것이어서 관심도가 더 높다. ‘돌김속’에 속하는 홍조류 일종인 둥근돌김은 이름처럼 둥근 주름이 많고 모란꽃처럼 포개진 형태를 하고 있다. 짙은 보라색을 띠며 크기는 3~10cm 안팎이며 깨끗한 바위 표면에 부착하여 자라는 특성이 있다. 경북도는 위의 두 종(種) 외에도 동해안 환경, 수온, 식생에 맞는 자연산 돌김 종자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현재 ‘해삼먹이생물동(棟)’을 일부 개조해 배양 시스템을 구축하고 종자 배양을 위한 기술 개발에도 들어갔다. □ 원근해 양식서 육상 김양식장으로 방향 전환 경북도는 2년 여 연구 과제를 수행해오면서 시행착오도 여러 번 겪었다. 처음 입안(立案) 단계에선 동해안 연안 및 외해(外海) 양식을 구상했었지만 여러 한계에 부딪혀 계획을 일부 수정했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실제, 연근해 양식장을 설치하려면 ‘지주식(支柱式)’이나 ‘부류식(浮流式)’을 선택해야 하는데 수심이 깊은 동해에서 장대를 꽂아 그물망을 설치하는 지주식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스치로폼이나 부표로 그물을 띄우는 부류식도 동해의 파도, 수온 상황에서는 역시 많은 약점이 있다. 경북도는 이런 동해안의자연적인 한계상황 때문에 여러 번 노선을 변경했다. 김 양식 업계와 경북 동해안 어민들 사이에선 그간 다소 에너지가 소모되긴 했어도 매우 적절한 판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북도의 돌김양식은 육상 김양식, 스마트 양식에 무게가 쏠린다. 이에 따른 대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난 회에서 소개한 부안의 ‘지평선 김양식장’같은 스마트양식장이고, 다른 하나는 풀무원처럼 대형 수조에서 김을 생산하는 ‘중성포자방식’이다. 전자(前者)의 경우 바다양식장을 육상으로 옮겨 오는 것이기 때문에 대형시설을 갖춰야 한다. 고집적, 고밀도 방식으로, 상당한 시설 투자는 필수적이다. 수온, 광량(光量), 영양염류 등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줘야 하기 때문에 AI, IoT 등 스마트 시설도 갖춰야 한다. 지주식, 부류식의 경우 유묘(幼苗) 확보를 위해 배양을 해야 하며, 이 경우 육묘를 위한 조개류나 굴 껍질을 활용한 패각(貝殼) 배양시설을 따로 갖춰야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풀무원의 예처럼 ‘중성포자방식’을 택할 경우도 육묘 배양을 위한 실험실과 성장 재배를 위한 대형 수조는 필수적이다. 이곳 역시 실내 김 양식을 위한 스마트, IT 환경 설치는 불가결 요소다. 다만, ‘중성포자방식’은 유묘들이 중성(中性)상태에서 스스로 자기 복제를 통해 번식, 성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유리사상체 배양실이 따로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 돌김계획 완성되면 민간, 식품회사에 이전 현재 경북도수산자연연구원에서는 유리사상체 배양실을 마련하고 종묘 육성을 위한 패각(貝殼)사상체 시설 설치를 서두르고 있다. 미래양식팀 이영준 팀장은 “내년부터 경북도는 본격적으로 육상 김양식 배양기술 개발과 적합한 모델 확립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도의 자체 개발 돌김 품종의 사업화 여부는 2030년 이후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경북도의 3단계에 걸친 프로젝트가 모두 끝나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면 경북도에서 개발한 김양식 기술을 민간에 이전 하고 확보된 돌김 종자를 어가(漁家)나 원하는 식품사에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경북도의 한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100년 동해 어민들을 먹여 살릴’ 우수 김 종자가 개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상국 원장도 “웰빙시대를 맞아 남해의 김이 K-푸드 시대를 열어갔다면 동해의 돌김은 거친 입자를 바탕으로 한 ‘조미(調味) 김’으로 슈퍼푸드의 새 장을 열어갈 것”이라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 정상원 경북도 해양수산국장 고대사 ‘김 자료’ 첫 등장 지역이 동해 지역 해양에 적합한 종자 육성으로 승부 “우리나라 고문헌에서 김(해조류) 채취에 대한 최초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이 경북도입니다. 국제 해양산업의 트렌드도 어획 일변도에서 벗어나 기르는 어업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습니다. 김 역사, 인문학의 태동지인 경북도에서 김 양식에 나선 것은 어쩌면 역사적으로 필연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김 양식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상원 경북도 해양수산국장을 만나 현 상황과 포부에 대해 들어봤다. -많은 해조류 어업자원 중 왜 돌김인가? △한반도 역사에서 김에 대한 자료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이 포항이다. 2세기 연오랑세오녀가 바위에서 채취한 돌김, 미역 등 해조류는 근기국에서 널리 유통되고 일본에까지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역사, 인문학적 상징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는 김에 대한 역 연구가 소극적이었다. 그 이유는 동해에서 김양식을 추진하는데 많은 핸디캡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침 스마트 김 양식에 대한 연구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경북도에서도 돌김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다. -경북도가 육상 김양식 사업에 나선 이유는? △지금 지구촌 해양산업의 트렌드는 어획 중심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해수온 상승과 산성화로 상당수 해역에서 어류 자원이 감소하거나 어장이 이동하고 있다 사물 인터넷(IoT), AI, 로봇 등 스마트 양식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흐름을 가속시켰다. 동해는 남해보다 수온이 차고 한·난류가 교차해 양식에 불리한 요인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저온성 어종이나 해조류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결국 사업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동해에 적합한 김 종자를 찾아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2012년에 국립수산과학원이 ‘김 21호’를 개발했다. 생육이 빠르고 고(高) 영양가인데다 병 저항성까지 강해 김산업 확대와 어민 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경북도도 이번 프로젝트의 승부 포인트를 우수한 종자 확보로 보고 있다. 현재 지역에 자생(自生)하는 돌김은 물론 서, 남해안의 종자들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스마트 김양식, 육상 김 양식에만 집중할 것인가? △동해안의 여러 지형, 생태, 기후, 환경적 요인 탓에 원근해 양식장 설치는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외해(外海) 양식장 설치를 포기한다는 건 아니다. 동해와 환경이 비슷한 부산시 강서구 명지동 앞바다에서 ‘명지 김’(일명 낙동김)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고, 동해안에도 후포나 구룡포, 영일만 등에 파도, 풍랑에서 안전한 곳들이 일부 있어 양식장 설치도 여러 대안 중의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0

“로봇·배터리·첨단소재 삼각 구축” 구미시, 산업지도 새로 쓴다

구미시가 로봇·이차전지·첨단소재부품 산업을 3축으로 한 첨단산업 전략을 본격화하며 미래 제조업 중심 산업도시 경쟁력 제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공급망과 탄소중립 기조에 대응하고, 침체된 제조업에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이다. 시는 △AI 기반 자율 제조 △친환경 공정 △스마트 인프라를 핵심으로 첨단산업 육성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에너지 자립률을 높여 제조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 해소로 시민 삶의 질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새정부 국정 기조 맞춰 신산업 구체화 산·학·연·관 협력 로봇산업 생태계 구축 첨단산업 고도화, 방산·항공·우주로 확장 ‘에너지 조례’ 제정 에너지 산업 기반 확대 □ 로봇산업, AI 기반 융합산업 거점으로 구미시는 지난해 7월, ‘AI 첨단로봇 융합도시 구미 비전선포식’을 열고 차세대 로봇산업 중심도시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산·학·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지역 로봇 생태계를 구축하고, 로봇산업의 전략적 육성 기반을 다진다는 전략이다. 특히 시는 ‘스마트 이송·물류 자율주행로봇 플랫폼 구축사업(2023~2025, 123억원)’을 통해 자율주행 로봇의 핵심부품 국산화와 성능 고도화에 나서고 있으며, ‘글로벌 로봇 생산거점 지원사업(2024~2026, 15억원)’을 통해 기업 맞춤형 기술개발과 글로벌 진출을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 소상공인과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로봇 보급도 확산 중이다. ‘AI 서비스로봇 보급사업’을 통해 소상공인에게 방역·서빙로봇 도입 비용을 지원하고 있으며, 도서관·과학관 등 공공시설에는 오는 9월부터 안내로봇을 도입해 실증(2025, 4억원)한다. 올해 6월에는 산업부 공모 ‘로봇플래그쉽 지역거점 구축사업(2025, 22억원)’에 선정되며 방산, 이차전지, 신공항 물류 등 다양한 산업과 로봇산업의 융복합 기반을 마련했다. 여기에 제조공정에 AI 기반 로봇장비를 도입하는 ‘AI 팩토리 시스템 개발’ 공모사업에 총 4건, 353억원의 사업비 확보를 목표로 전력을 다하고 있다. □ 이차전지, 소재부터 재사용까지 전주기 생태계 구축 이차전지 분야에서도 구미시는 소재·부품·장비부터 재사용까지 전 주기 산업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LG-HY BCM 양극재 공장 가동을 계기로 연구개발, 실증, 인증 지원, 투자유치 등이 활발하다. 2026년 설립 예정인 ‘이차전지 육성 거점센터(2023~2026, 309억원)’는 원소재, 전구체, 양극재 개발을 위한 물성 및 전지 특성 평가 인프라를 갖추고, 기업의 시제품 제작과 공정기술 고도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사용후 배터리의 재사용과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배터리 활용성 증대를 위한 BaaS(Battery as a Service) 실증기반 구축사업(2023~2027, 271억원)’도 본격 추진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준공 예정인 클라우드 서비스모델인 ‘서비스형 백엔드(BaaS)’ 시험실증센터는 사용후 배터리의 안전성·신뢰성 검증 플랫폼을 마련해 배터리 구독형 서비스 등 기업 접근성을 높일 방침이다. 사업 주관기관인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은 센터 준공 이후 대구경북본부를 구미로 확장 이전해 중소기업을 위한 R&D 과제와 맞춤형 지원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또한 ‘AI 기반 사용후 배터리 평가 및 재사용 지원 기반 구축사업(2025~2029, 234억원)’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기차, 에너지 저장장치인 'ESS, 농기계, 무인운반차량 (AGV), 선박 등 모든 분야의 배터리를 진단·평가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게 됐다. ‘AI 자율제조 기반 리튬인산철 (LFP) 수계 전극 제조 통합시스템 개발(2025~2027, 93억원)’ 사업도 추진 중이다. 이 사업은 디지털트윈 기술과 장비 간 자동화 시스템을 접목해 친환경 공정을 개발하고, 고품질 전극 생산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 첨단소재·부품 기술 고도화… 방산·항공우주로 확장 구미시는 소재·부품 산업을 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 보고 △반도체 △이차전지 △방산 △항공 △우주 등 전략산업에 대응 가능한 기술 기반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올해 1월 준공한 ‘반도체·이차전지부품용 인조흑연 테스트베드(2022~2025, 244억원) ’는 반도체 및 이차전지 필수소재인 인조흑연의 특성 평가, 성능 검증, 시제품 제작이 가능한 전주기 실증 플랫폼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와 기업 기술자립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또한 이차전지 장비의 핵심부품인 하이테크 롤의 국산화와 고도화를 위한 ‘하이테크 롤 첨단화 지원 기반 구축사업(2023~2027, 201억원)’도 추진하고 있으며, 첨단화 지원센터가 올해 11월 준공될 예정이다. 방산·항공우주 분야로의 확장도 가속화하고 있다. ‘방산항공우주용 탄소소재부품 랩팩토리 구축사업(2023~2026, 335억원)’으로 2026년 7월까지 센터를 준공하고 고신뢰성 부품 개발과 양산 테스트를 지원한다. 구미시는 이를 통해 첨단소재 기반의 방산·항공·우주 부품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기술 상용화와 시장 진출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할 방침이다. □ 에너지 자립·복지로 녹색도시 전환 구미시는 지난해 ‘에너지 기본 조례’를 제정하고, 지난 4월 ‘구미시 에너지위원회’를 출범했다. 지역 에너지 전략계획 수립 용역도 올해 내 마무리 예정으로, 에너지산업 기반 확대를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신재생에너지 융복합지원사업(2025년 10억원)’을 통해 지난해까지 811개소에 재생에너지를 보급했고, 올해는 10억원의 예산으로 141개소에 확대 보급할 계획이다. 수소경제 활성화도 박차를 가한다. 지난해 ‘수소경제 예비수소전문기업 육성지원사업’으로 중소기업 1개사에 지원해 매출 4억 원(57%) 증가 성과를 거뒀으며, 올해는 3억원을 투입해 3개사를 지원 중이다.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도시가스 미공급 지역 지원, 농어촌 LPG 소형저장탱크 보급 사업도 활발하다. 지난해 산동읍, 사곡동 등 5개소에 도시가스 공급관 1,726m를 설치했으며, 내년에는 옥계동 일대 550m 추가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 □ 새정부 기조 맞춘 미래 인재·신산업 기반 마련 구미시는 새정부 국정기조에 맞춰 신산업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AI 기반 로봇·SW 융합 인재 양성 거점’을 조성해 AI·소프트웨어 인재를 양성하고, 배터리 분야에서는 ‘차세대 배터리 전극제조 장비부품 테스트베드’, ‘수요확대형 배터리 테스트베드 구축’을 추진한다. 이는 에너지·AI·배터리 분야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미래 첨단산업 육성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며 “산업 구조의 대전환 속에서 구미가 첨단산업의 메카로 도약할 수 있도록 모든 행정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류승완기자 ryusw@kbmaeil.com

2025-07-20

왕실 숲, 천 년의 그늘에서 놀다

■발걸음을 유혹하는 그늘 지금 경주는, 초여름이지만 불볕더위가 기승이다. 땡볕은 대지를 데우고, 숨통마저 조인다. 대지가 토해내는 열기는 걷는 이들을 더욱 지치게 한다. 해는 구름을 허락하지 않고, 마른하늘은 비 한 줄 허락하지 않는다. 점점 느려지는 걸음과 기진맥진한 육신을 가까스로 이끌며 지쳐가던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나뭇잎이 흔들린다. 이쪽으로 오라는 듯. 사람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한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누구도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태양이 스러지는 경계, 나뭇잎이 엮어내는 짙은 그늘이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조용히 불러들이는 듯했다. 나도 이끌리듯 숲으로 몸을 들인다. 마치 오래전부터 누군가 기다리고 있던 곳에 도착한 것처럼. 바람보다 먼저 다가온 건 그늘이다. 숲은 아무 말 없이 나를 감싼다. 신선한 초록은 눈이 아니라 마음을 먼저 식힌다. 순간, 나는 무언가 오래된 주문에 이끌려 이상한 세계로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탈해 이사금 9년 3월의 봄밤 ‘시림숲’ 황금빛 궤짝 속서 걸어나온 사내아이 김씨 왕통 시조 ‘김알지’의 신화 간직 아름드리로 서 그늘 내리는 숲 어귀엔 신화의 기록 증명하는 표지석이 반겨 숲 끝자락서 이어지는 신라 궁전 월성 첨성대·대릉원 봉분들 한눈에 보이는 성터 능선서 옛도심 정취 가슴에 담아 ■신화의 문턱이 된 계림 대지의 열기 위에 오직 숲만 살아 있는 듯하다. 숲은 천 년의 신화가 여전히 꿈틀대는 듯, 싱그럽다. 나무들은 말없이 나를 받아들이고, 나는 비로소 숲에 섞여 든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숲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계림숲, 나무들은 모두 아름드리로 서서 그늘을 내리고, 한 줄 빛이 스치면 그늘 속에 몸을 숨긴 사람들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숲 사이로 한복을 차려입은 한 무리 앳된 청춘들이 지나가고, 신라 복장을 한 외국인들도 숲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각자의 모습을 담는다. 여러 나라 언어가 자유롭게 스쳐 가는 숲 사이로, 천 년의 시간을 건너온 바람은 오래된 나뭇가지부터 흔든다. 숲 어귀에 다다르니, 가장자리 나무 아래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계림(鷄林)’이라 또렷이 새겨진 표지석이다. 무심히 서 있는 듯한 돌은 이 숲이 언제, 어떤 전설로부터 시작된 이름임을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계림’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신화와 기록‘이 포개진 이름이다. ■계림에서 시작된 김 씨 왕통 ‘삼국사기’ 권 1 신라본기 제1 탈해 이사금 조나 ‘삼국유사’ 권 1 기이편 제2 김알지(金閼智) 설화 조에는 ‘김알지 신화’가 기록되어 전해진다. 두 기록을 간추려 이야기로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탈해 이사금 9년(65년) 봄 3월, 밤이었다. 서라벌 들판은 바람조차 멈춘 듯 고요했고, 금성 서쪽 시림(始林)의 숲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날 밤, 왕은 어떤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창 너머 어딘가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히 새벽을 울리는 닭 울음이 아니었다. 울음은 금성의 중심에서 서쪽 숲 끝자락까지 뻗어 나갔고, 왕의 가슴을 두드리며 파고들었다. 왕은 흘려듣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궁중 신하 호공에게 명을 내려 시림을 살피도록 했다. 호공은 시림으로 들어갔다. 칠흑 같은 새벽, 나무들이 웅크린 채 잠든 시림의 깊은 곳으로부터 짙은 어둠 사이로 환한 빛이 새어 나왔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꽂히고, 빛 안에 황금빛 궤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흰 닭 한 마리가 요상하게 울고 있었다. 빛은 궤에서 쏟아졌고, 숲은 그 빛을 기꺼이 받아내고 있었다. 호공은 숨죽여 궤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마치 신의 계시 같았다. 소식을 들은 왕은 직접 숲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금빛 궤짝을 조심스레 내려 열었다. 그 안에는 어린 사내아이가 곱게 누워 있었다. 왕을 보자 아이는 놀랍게도 몸을 일으켜 궤 밖으로 나왔다. 얼굴은 단정했고, 기이하리만치 용모가 빼어났다. 왕은 숨죽인 채 아이를 바라보았다. 곁에 있던 신하들도 모두 숨을 죽였다. 왕은 이윽고 조용히 말했다. “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내린 아들이 아니겠는가.” 아이는 곧 궁으로 들어와 왕의 손에서 자랐다. 자랄수록 총명하고 영특한 아이였다. 왕은 ‘어린아이’를 뜻하는 ‘알지’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또한 금빛 궤에서 나왔기에 성을 ‘김(金)’이라 삼았다. 원래 성스러운 숲이란 뜻의 ‘시림’은 이후 흰 닭이 울던 숲이라 하여 ‘계림(鷄林)’으로 불리게 되었다. 탈해 이사금은 하늘이 내려준 아이라 여긴 알지를 태자로 삼았지만, 그는 끝내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김알지로부터 여섯 대를 내려가, 마침내 김미추가 신라 제13대 왕으로 즉위하면서 김 씨 왕통이 실현되었다. 계림숲 안에 자리한 봉분은 신라 17대 왕 내물마립간의 무덤으로 전해진다. 김 씨로서 두 번째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이때부터 신라 왕권은 김씨 세습의 형태로 이어졌고, 계림은 기원이 숨 쉬는 상징의 숲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신화의 뿌리에서 궁성으로 계림숲의 끝자락에서 그늘을 빠져나오면 천 년 전 신라 궁성이었던 월성의 흙 능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낮은 언덕을 따라 성터의 능선은 부드럽게 펼쳐진다. 파사왕 22년에 쌓은 이곳은 한 왕조의 정치와 제사의 중심이었다. 지금은 땅속 깊이 잠든 유적 발굴이 한창이다. 탐방로 초입에는 신라의 얼음을 품었던 석빙고가 숨어 있고, 그 주변엔 수백 년을 산 듯한 소나무들이 바람결에 몸을 맡긴다. 월성 능선에 오르면 숲과 도시가 함께 눈에 들어온다. 첨성대의 단아한 모습과 대릉원의 봉분들이 서라벌 가운데 불쑥 솟아오르고, 그 아래로 경주의 옛 도심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이 풍경은 임금이 거닐며 나라를 생각했을 풍경이고, 지금은 여행자가 발걸음을 늦추며 숨을 고르는 자리다. 바람은 언덕을 타고 흐르며 계림에서의 전설을 이 언덕에도 조용히 건넨다. 계림이 신화가 시작된 곳이라면, 월성은 신화가 몸을 이루고 살았던 자리다. 나무 아래서 깨어난 알지가 궁궐을 품은 이 언덕을 올려다보았을 것이다. 전설이 삶이 되고, 숲이 성이 되는 흐름 속에서, 이 두 곳은 결코 나뉠 수 없는 곳이다. 지금도 숲은 왕의 숨을 기억하고, 성터는 나무들의 속삭임을 듣고 있을 것이다. 계림과 월성은 서로의 시간 속을 비추며, 신라의 심장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었다. ■천 년의 그늘에 잠시 계림숲은 겸허하다. 위대한 전설이 태어난 자리였다 해도 무엇 하나 화려하거나 거추장스럽지 않다. 그저 나무들이 사람을 맞고, 겸손한 모습으로 그늘을 내어주는 공간일 뿐이다.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높이 날아오르고, 청솔모가 나뭇등걸을 타고 사라진다. 바람이 이파리를 뒤집을 때마다 숲은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한 그루 나무 아래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신비한 느낌이 감도는 나무다. 수령이 무척 오래된 듯한 나무는 속을 훤히 비우는 중이고, 곧 소멸하려는 자세로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문득 김알지의 궤가 걸려 있던 나무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알지의 탄생 빛을 가장 먼저 목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무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날 어린 사내아이를 기억하느냐고. 황금 궤가 걸려 있던 장면이 스친다. 흰 닭이 울었다는데 멀지 않은 어디선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나무 곁으로 조금 더 다가선다. 오랜 세월을 견디느라 힘든 기색이 역력한 나무에 손을 올려 본다. 파르르 떨며 그날의 이야기를 하려는 듯하다. 누군가는 이 숲을 지나가며 자신의 기원을 되새겼을 것이다. 알지 역시 그렇게, 땅 위에 남겨졌을 것이다. 숲의 경계에 다다랐을 때 시야가 훤히 열린다. 나무 그늘은 물러서고 너른 벌판 위 첨성대가 보인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월성 언덕 능선이 그림처럼 이어진다. 계림은 전설의 첫 장이었고, 월성은 그 이야기가 머문 궁성이었다. 숲을 벗어나 성 능선에 올라선다. 성안의 바람은 숲보다 더 깊고, 침묵은 더 낡은 결을 품고 사람들을 맞는다. 언덕 위에 서니 경주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모든 시작이, 방금 지나온 계림의 그늘 속에 있었다.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