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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걸음마다 한폭의 풍경⋯느림의 미학이 깃든 가가와현

5년전 일본 남부의 가가와현을 방문했을 때 일본인들의 표현을 빌어 ‘다정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다시 가가와에 왔을때도 여전히 가가와현은 다감한 느낌이 진하게 풍겨온다. 이름난 명승지도 별로 없고, 교토처럼 관광지도 아니다. 그런데도 은근하게 사람을 반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가가와현은 일본인데도 일본같지 않은 느낌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술을 좋아하고 다혈질인데다 솔직 담백한 성품까지 지닌 사람들이 사는 곳. 일본을 근대국가로 이끈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고향이기도 하고 일본 3대 우동 중 하나인 사누키 우동과 도사견의 원산지인 가가와에서 마음을 풀어놓고 느긋한 여행을 즐겨 보면 어떨까? 다카마쓰 시내 위치한 ‘리쓰린 공원‘ 연못 6개·언덕 13개·소나무 1000그루 뗏목 배 타고 뱃놀이도 즐길 수도 있어 도쿠시마에 자리한 ‘오츠카 국제미술관’ 세계 명화 1000점 똑같이 재현해 전시 작품을 만질 수 있고 사진 촬영 가능해 나루토 해협의 ‘세계 3대 소용돌이’ 등 시코쿠 섬 남쪽 맹견들의 고향 ‘고치현’ 일본 3대 우동, 인도·한국요리도 별미 △ 미학의 정점 리쓰린 공원의 절묘한 풍경 가가와현에서 가장 먼저 들린 곳은 다카마쓰 시내에 있는 리쓰린 공원이 있다. ‘밤나무 숲’이라는 의미의 리쓰린 공원은 에도(江戶)시대 초기 사누키(讚岐·가가와의 옛 이름) 지방을 다스리던 다이묘(大命)의 별장이다. 일본 정원의 느낌을 제대로 살린 곳이어서 공원이라기보다 내 집 앞에 있는 정원 같은 느낌이다. 입구에서 정원을 제대로 구경하고 나오려면 적어도 2시간 이상 걸리는 큰 규모인데도 조경감이 뛰어나고 허술한 구석이 없다. 입구의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을 반기는 소나무들은 세월에 순응하거나 혹은 세월을 이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공원에 있는 소나무만 1000여 그루나 된다. 일본 국가 특별 명승지 중 최대 규모인 리쓰린 공원에는 6개의 연못과 13개의 언덕이 있다. 공원 내 모든 것은 철저한 계획 하에 조성됐는데 그 덕분에 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평을 얻게 됐다. ‘한걸음마다 하나의 풍경(一步一景)’이란 말이 이곳에서 만들어졌을 정도다.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꽃이 핀다. 봄에는 매화와 벚꽃이, 여름에는 창포와 연꽃,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동백이 리쓰린 공원을 물들인다. 정원 중앙에는 거대한 연못이 있다. 연못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커 호수가 연상되는 이곳에 뱃사공이 모는 뗏목을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연못을 따라 천천히 뗏목이 흘러오면 그림자 사이로 일렁거리며 물결이 사방으로 퍼지고 마치 한 폭의 산수화처럼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멈춰진 것같이 보인다. 리쓰린공원 근처에는 유명한 우동 맛집이 여러 곳 있다. 가가와현의 옛 이름인 사누키는 맛있는 우동의 대명사가 됐다. 사누키 우동은 아키타의 이나니와 우동, 구만의 미즈사와 우동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우동’으로 불린다. 사누키 우동은 버선을 신고 발로 밟아서 만든다. 밀가루 틈에 한치의 기포도 없이 치대면 쫄깃하기 이를 데 없고 차진 맛이 일품인 우동이 나온다. 특히 목으로 넘어갈 때 느낌이 매력적이다. 전통적으로 일본 서부에서는 우동을 먹고, 동부에서는 소바를 즐겨 먹었다. 우에하라야(上原屋) 본점은 사누키 우동 맛집 중 으뜸으로 치는 곳이다. 우동에 어묵, 튀김까지 다양한 토핑을 얹어서 먹을 수 있고, 차게 먹거나 따뜻하게 먹을 수도 있다. 우동으로 이름난 곳이다 보니 이 자그마한 도시에 우동 가게가 900곳이 넘는다. 우동은 소중한 관광자원으로도 기능한다. 사누키우동을 즐기려는 여행객을 위해 다카마쓰 우동버스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나카노우동학교라는 이름의 우동 체험학교에서는 사누키우동 수타 체험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치댄 우동은 즉석에서 만들어 맛볼 수 있다. 대학에 우동과 관련된 수업이 개설될 정도로 가가와 사람들에게 우동은 면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 세계 명화를 도판에 그려 전시한 오츠카 국제미술관 가가와현 동쪽에 있는 도쿠시마(德島)에는 오츠카 국제미술관(大塚國際美術館)이 있다. 한국에도 지사가 있는 유명 음료회사에서 세운 미술관은 여느 미술관과는 다른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세계 명화들을 도판에 그려서 전시하는 깜찍한 발상이다. 세계 25개국 190여 개 미술관이 소장한 명화 1000여 점을 원본과 똑같은 크기로 재현해놨다. 바티칸 시스티나성당의 성화를 그대로 옮겨왔고 수천억 원에 이르는 고흐의 명작 해바라기도 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천재 화가 클림트의 대표 작품은 물론 피카소의 명작 게르니카까지 있다. 미술관은 무려 4층이나 된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모든 작품을 섭렵하려면 적어도 하루는 걸리지 않을까? 오츠카 국제미술관의 최대 장점은 전시된 작품을 손으로 만져보고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술관 작품들이 진본이 아니라 복사본이다 보니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천양지차다. 아무리 정교하게 복제된 것이라 해도 가짜는 가짜이니 이런 걸 보려고 멀리까지 왔느냐고 볼멘소리하는 이도 있고, 한자리에서 볼 수 없는 작품들을 볼 수 있으니 감동적이라는 이도 있다. △ 바다에 생기는 신기한 나루토 소용돌이 오츠카 국제미술관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미술관 인근의 나루토 해협 한가운데 발생하는 나루토(鳴門) 소용돌이(渦潮·우즈시오)였다. 세계 3대 소용돌이 중 하나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바다 한가운데 소용돌이가 이는 것은 1.3㎞의 좁은 나루토 해협이 조수 간만 차이 때문에 혼슈·규슈·시코쿠에 둘러싸인 내해인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와 나루토 해협 급류가 만나는 곳에 최대 1.7m의 낙차가 생기기 때문이다. 좁게는 2~3m, 큰 조수가 몰려오면 직경이 무려 20m 이상 되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발생한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소용돌이를 보러 간 날은 때가 맞지 않았다. 소용돌이는 시간과 날씨에 따라서도 세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소용돌이는 에도 시대를 살던 17세기 일본 사람들에게도 신기한 현상으로 느껴졌는지 당대 풍속화인 우키요에에도 그 모습이 남아 있다. 소용돌이는 배를 타고 보는 것이 가장 신비롭지만 소용돌이 위를 가로지르는 오나루토교 위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오나루토교는 나루토(시코쿠)와 이와지시마(혼슈) 사이를 잇는 2층 다리다. 1985년 개통했는데 전체 길이가 1629m에 이른다고 한다. 위로는 차가 다니고 아래층 우즈노미치(渦の道)는 사람이 관람할 수 있는 통로로 조성돼 걸으면서 소용돌이를 구경할 수 있다. 우즈노미치 곳곳에는 바닥에 투명 유리가 깔린 조망대가 있다. 조망대 아래로 바로 밑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 사카모토 료마와 도사견의 고향 고치 시코쿠 남쪽의 고치현은 예전에 도사국이 있던 지역이다. 맹견 도사견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도사견은 재래종에 불도그, 마스티프 등의 대형 개를 교배해 만든 종이다. 시코쿠의 여러 현이 있지만 고치현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과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다혈질에 술을 좋아하고 직선적이다. 오죽하면 손 안에 1000원이 주어지면 1000원을 더 보태 술을 마신다는 우스갯말이 떠돌 정도다. 고치에서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사카모토 료마가 태어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한 사카모토는 가난한 하급무사로 태어나 막부체제를 타파하고 근대 국가 건설을 추진한 사람이다. 일본 최초의 벤처기업이라고 평가받는 상거래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기도 한 그는 반대파에 의해 33세 나이에 암살당했다. 극적인 삶의 여정 때문에 소설과 영화, 드라마로 무수하게 그려졌다. 그는 일본인답지 않은 거침없는 성격과 자유분방함을 지닌 자유인이었다. 고치시 남부 해안인 가쓰라하마에는 거대한 사카모토의 상과 기념관이 있다. 고치 사람들의 호방한 성격을 확인하고 싶다면 고치에 있는 히로메 시장으로 가보자. 히로메 시장 안에 차려진 테이블에서 맥주 한 잔과 가다랑어 다다키를 먹으며 연신 대화에 빠져든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실내에는 60여 개 식당과 점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일본 요리는 물론 인도 요리, 한국 요리까지 판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오후 11시까지 문을 연다. 이곳에서 파는 가다랑어 다다키는 일품이다. 가다랑어를 볏짚에 살짝 구워 겉은 익고 속은 부드럽다. 여기에 한국인처럼 파나 마늘을 듬뿍 얹어서 먹는다. /최병일 기자 skycbi@kbmaeil.com

2025-06-30

문경시청 주변·모전동 만성 주차난, 7월 말까지만 참으세요

문경시는 늘어나는 자동차에 비해 주차 공간 확장이 비례하지 않아 만성적인 불편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10년 전인 2015년, 인구 7만 6000여 명, 자동차 3만 3566대였다. 현재 인구는 6만 6000여 명, 세대수 3만 7000, 자동차 4만 186대다. 세대 당 1대를 넘어섰다. 인구가 1만 명 줄었지만 자동차는 6620대나 늘었다. 사회복지과·청사 로비등 2·3중 주차로 늘 뒤엉켜 市 84억원 들여 2층 주차타워 건립, 7월 중 마무리 주민들 “관공서 주변 주차장화 불편, 이제야 해결 신현국 시장 “올해 6곳에 103대 규모 더 조성계획” □ 만성적인 주차난 그동안 공영주차장이 늘었지만 차량 증가 속도에 미치지 못했고, 갈수록 주차난은 심각하다. 시내 중심가에는 늘 주차가 문제다. 대로변에는 낮 시간에 단속카메라를 설치해 어느 정도 질서가 잡혀 있지만, 이면도로에는 자동차가 교행이 안 될 정도로 심각하다. 문경에서 대표적으로 만성적인 주차난으로 불편을 겪는 곳은 상가와 아파트가 밀집한 모전동 문경시청 주변이다. 그나마 모전동 지역 중 큰 주차장 규모를 지녔다는 시청 주차장마저도 총 210면으로 현재 시청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이 420여명인데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여기에 시청을 찾는 민원인과 주변 상가나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들까지 문경시청 주차장을 이용하면서 이 주차장은 늘 혼잡했다. 주차 칸이 없는 사회복지과 앞쪽 공간은 2중, 3중으로 주차해 차로 뒤엉켜있다. 청사 로비로 올라오는 정면 오르막길까지 양쪽으로 차들이 항상 빼곡하게 들어서 문경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시청 이미지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89년 점촌1동에 있던 문경시청이 모전동 현재 청사로 옮긴 것을 시작으로 비슷한 시기 한전 문경지사와 문경제일병원 등이 부근으로 이전했다. 이어 2005년 문경시법원-등기소, 2006년 문경시선거관리위원회와 국민연금공단 문경지사, 2007년 문경경찰서, 2012년 문경시산림조합과 국토정보공사 문경지사, 신문경새마을금고 등이 모전동으로 이사했다. 관공서 이전에 따라 각종 식당이나 상가도 대거 모전동으로 옮겼으며, 대규모 아파트단지도 모전동에 잇따라 들어서 이른바 신시가지가 형성됐다. 그만큼 문경시청이 있는 모전동이 행정과 상권의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혼잡지역이 됐다. □ 주차난 해결 대책 문경시는 이 같은 문경시청 주변, 모전동의 만성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2023년부터 시청권역에 주차타워를 건립해 불편 해소에 나섰다. 84억 원을 들여 시청 뒤편 모전 공영주차장 인근 부지에 193대를 주차할 수 있는 지상 2층 주차타워 건립에 들어갔고 이달 중으로 시설공사를 마무리한다. 세부적으로 보면 도비 41억, 시비 43억을 들여 연면적 4193㎡으로 만들었다. 여기에는 장애인 6면, 전기차 10면이 포함돼 있고, 1층에는 옥내 58면, 옥외 14면 계 72면이며, 2층은 모두 옥내 56면, 옥상은 모두 옥외 65면이다. 현재 문경시내 공영주차장은 노상 888면, 부설 755면, 노외 952면, 문경읍 전통시장 노외 80면, 문경새재도립공원 노외 1951면 등 4626면이다. 시민들 일상생활과 큰 관련이 없는 문경새재도립공원 노외 1951면을 빼면, 실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주차 면은 2675면으로 확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주차타워 준공은 문경시청과 그 주변의 주차난이 크게 완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주차타워는 2023년 8월 경상북도로부터 투자심사 승인을 받았고, 같은 해 10월에는 주차환경개선사업 공모에 선정됐다. 이후 2024년 설계와 건축인허가 등을 거쳐 8월에 건축공사를 착공,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7월 22일에는 준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앞으로 9월까지 주차관제 시스템 등 전체시설 시범 운영과 보완을 거쳐 행정재산으로 이관, 교통행정과가 맡아 운영할 계획이다. 건축물 사용승인 후 3개월간 주차관리 시스템 등을 점검하기 위해 주차 등록된 시청 직원을 대상으로 시범운영한다. 시설물 내 사고 발생 시 신속하고 공정한 배상을 위한 영조물 손해배상 공제보험 가입 등 안전대책도 마련하고, 특히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본 인증 절차 이행과 부대공사도 진행한다. 문경시 주차타워는 이번 시청권역 주차타워가 두 번째다. 첫 번째는 2010년경, 중앙시장에 세운 것이다. 당시 중앙시장 주차는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다. 그리고 밀집된 주상복합 시설들 때문에 어떻게 해 볼 생각도 못하던 상황. 여기에 신현국 시장은 ‘주차타워’를 생각했고, 좁은 면적에 130면을 확보했던 것이 그 시초다. 문경시청 직원인 A씨는 “그동안 시청 주차장이 좁아 월 사용료를 내고도 주차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아침 출근길 주차할 곳을 찾느라 지각할 걱정은 덜게 됐다”고 반가운 의사를 내비췄다. 문경시청 인근 주민 B씨는 “문경시청을 비롯한 관공서 주변 도로가 거의 주차장화 됐었는데 이제 주차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여 다행”이라고 말했다. 문경시는 모전동 뿐 아니라 옛 도심인 점촌동의 상권 활성화를 위해 이 지역에도 많은 주차장을 확보했다. 올해 들어 점촌동 소재에 위치한 문화의 거리에 60대 주차 규모의 주차장을 완공해 주변 상가의 주차난 해소는 물론 빵 축제 등의 행사장소로도 활용했다. 신현국 문경시장은 “매년 시내 빈 공간을 사들여 주차장으로 만들지만 늘어나는 차량 때문에 주차공간이 항상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올해도 6곳에 103대 주차규모의 작은 주차장을 만들어 주민 불편 해소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신 시장은 또 “주차타워가 완공되면 그간 주차문제로 막막했던 직원들의 출근길이 좀 더 여유로워질 것이라고 기대된다”며 “넉넉한 주차공간으로 직원들에게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함께 살기 좋은 문경을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5-06-30

“옛 영광 회복!” 쇠락한 원도심에서 역동적인 도시로 탈바꿈

민선 8기 3주년을 맞은 대구 북구는 쇠락하는 원도심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행복이 흐르는 금호강 새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건 북구는 도심융합특구와 금호워터폴리스, 문화예술허브에 이어 기회발전특구 지정까지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의 미래를 위해 문화·관광, 교육,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민과 함께 노력하고 있는 북구를 들여다봤다. 구암동고분·팔거천 정비, 역사·문화·생태도시 도약 떡볶이 페스티벌 13만명 운집, 글로벌축제로 부상 유입인구 늘리자! 저출생 극복·청년 창업 적극 지원 “금호강 르네상스 꼭 완성, 50년 먹거리 책임질 것” △ 역사·문화·생태 도시로 발돋움 대구 북구는 지역의 자산인 역사·문화 유산과 생태환경을 미래 먹거리 기반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선, 대구 북구 구암동에 위치한 팔거산성의 발굴조사를 통해 산성의 구조와 지역 고대인의 뛰어난 축성 기술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방침이다. 또 최근 조사를 마친 서문지와 곡성의 복원·정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종합 정비계획를 토대로 발굴조사와 복원, 탐방로 정비, 야간 조명 설치 등을 위한 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앞서 사적으로 지정된 구암동 고분군도 관리센터 신축, 대형 고분 복원 정비 등의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탐방코스 활성화와 고장 국가 유산 활용사업 추진 등으로 지역의 대표 문화유산 명소로 만들어 갈 방침이다. 북구는 또 수변도시로서의 면모를 강화할 하천 정비와 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홍수 예방을 위한 치수 개념이 아닌 도심하천을 일상의 힐링(Healing) 친수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방침이다. 팔거천과 동화천에 생태와 문화라는 새로운 옷을 입혀 나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팔거천 천변의 총 9.7km 구간에 보행자 산책로 및 자전거 도로, 체육시설 등을 조성했으며, 최근 야간경관 개선 사업도 진행했다. 북구는 역사·문화·생태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방침이다. △‘떡볶이 페스티벌’ 전국을 넘어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 북구는 ‘떡볶이 원조’, ‘떡볶이 성지’로 불린다. 6·25전쟁 당시 대구역을 통해 보급하던 원조 식량 밀가루가 고추장 떡볶이로 발전했다. 피난민촌이었던 북구 고성·칠성·대현동 일원에서 떡볶이가 발달하면서 역사·문화적 배경이 됐다. 30년 넘은 노포 떡볶이와 프렌차이즈 신전떡볶이 본점, 떡볶이 박물관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지자체 최초로 ‘떡볶이 페스티벌’을 열어 전국적으로 큰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2021년 온라인에서 시작된 떡볶이 페스티벌은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작년 축제에는 13만 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특히 관람객의 58%가 다른 지역에서 방문한 것으로 나타나 지역을 넘어 전국 단위 축제로 발전했다. 세계축제협회가 주관한 피너클어워드 한국대회와 아시아 대회에서 2023년부터 올해까지 부문별 금상 등 각종 상을 수상하며 세계 무대로 발돋움할 경쟁력을 입증했다. 올해는 김천 김밥축제, 구미 라면축제 및 경주 APEC과의 연계 방안을 모색 중이다. 북구는 코레일과도 협업을 추진해 지역축제로 인한 경제 및 관광 유발효과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금호강 시대를 준비하다 대구는 신천 시대를 거쳐 낙동강 시대를 맞이했지만, 아직 금호강 시대는 열지 못했다. 금호강은 대구 구간이 48㎞나 되지만 개발은 신천과 낙동강 인근에 집중됐다. 이에 북구는 대구가 도약하기 위해선 마지막 남은 금호강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경관, 여건, 접근성 등 여러 방면에서 봤을 때 금호강 르네상스는 북구 구간이 핵심이다. 북구는 시민들이 금호강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할 목표다. △저출생 극복과 청년 창업 등으로 지역 유입 인구 정착 북구는 임신·출산· 돌봄 ·창업 등 인구 유입을 위한 지속적이고 융합적인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예비 신혼부부 대상 웨딩건강검진과 임산부 건강검진 서비스 등 건강한 임신·출산의 초석도 마련했다. 영유아를 위한 북구1호 장난감도서관과 초등학생 방과 후 다함께돌봄센터을 운영하고 있다. 맞벌이하는 부부를 위한 국공립어린이집 확대와 야간 어린이집 운영, 생애주기별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전국 최초로 시행한 ‘다둥이가정 차량 무료렌탈 사업’를 확대 시행하는 등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출산친화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구는 청년이 떠난 도시는 희망이 없는 도시가 아닌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이 대구에서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발휘하고 사업에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있다. 창업놀이터와 청년 놀이터를 만들어 입주 공간과 창업 교육, 멘토링, 해외진출 등 다양한 창업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북구는 지역에서 유니콘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과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 1등급 달성 북구는 평가 결과와 상관없이 청렴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왔다. 그 결과 국민권익위원회가 주관한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2022년 1등급, 2023년 2등급, 작년 1등급을 획득했다. 청렴도 1등급은 극소수의 공공기관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청렴 문화 확산을 위해 반부패 교육과 갑질 근절 릴레이 캠페인, 청렴 골든벨, 청렴 콘서트 등 구성원이 청렴 문화 확산과 동참이 밑거름됐다. △배광식 북구청장 “신산업을 안정적으로 정착시켜 새롭게 도약할 북구의 미래 초석을 다지겠습니다.” 올해로 취임 11년째를 맞는 배광식 대구 북구청장은 초심으로 돌아가 변화된 북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배 청장은 “남은 임기 동안 민선 6기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한 도시재생사업을 완성하고 북구의 50년 먹거리를 책임질 핵심 사업의 탄탄한 기반을 조성하는 등 행복이 흐르는 금호강 시대, 이른바 ‘금호강 르네상스’를 완성하기에 매진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선 6기부터 줄곧 금호강 시대에 관해 주장해온 그는“대구 전체 지형을 보면 신천과 낙동강, 금호강이 흐르는 모습이 수학 기호 파이()와 닮았다”며 “대구 신천시대는 완성됐지만, 금호강을 거치지 않고 낙동강 시대로 넘어갔다. 금호강 시대를 맞이하려면 강변 낙후된 도심을 재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중도 개발과 신천 하수처리장을 지하화, 금호강을 끼고 있는 지자체들이 적극 협력해 순천만이나 태화강처럼 국가 정원을 목표로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 청장은 “민선 6기 첫 취임부터 ‘옛 영광을 회복하자’란 각오로 생기를 잃은 공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며 “과거 북구는 대한민국의 산업화에 공헌한 도시였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들어 대구 경제의 중심이 이동하고, 원도심의 노후화가 가속화됐다. 그 해답이 도시재생이었다. 지역별 특색 있는 다양한 도시재생사업을 펼쳐 왔고 민선 8기에 이르러 국토부 도시재생 종합평가 대상 대구시 추진실적 평가 최우수 등을 수상하며 드디어 결실을 매고 있다”고 했다. 배광식 청장은 “지역 숙원 사업인 농수산물도매시장, 운전면허시험장, 대구 소년원과 경북농업기술원의 조속한 이전을 위해 관련 기관과 원활히 소통하고 이전 후 빠른 시일 내에 후적지 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임기 중 사업 추진의 탄탄한 기반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변화하는 북구의 모습을 지켜봐 달라”고 했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5-06-30

“대구 편입·군부대 이전·TK신공항⋯100년 도시 기반 완성”

민선 8기 3주년을 맞은 군위군이 국가급 사업을 발판 삼아 ‘100년 도시’의 기틀을 본격적으로 다지고 있다. 김진열 군위군수는 ‘아름다운 변화, 행복한 군위’를 슬로건으로 대구광역시 편입, 군부대 이전, TK신공항 건설 등 초대형 사업 추진과 ‘군위형 만들기’ 등을 통한 공동체 회복으로 ‘군위의 기회’를 ‘군민의 행복’으로 연결하고 있다. 김 군수는 “민선 8기 3년의 군위는 도시의 틀과 군민의 삶을 새롭게 재편하는 대전환기에 있으며, 지금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며 군민과 함께 미래 100년을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 대구광역시 편입 2주년⋯ 지방자치사 새 이정표 군위군은 2023년 7월 대구광역시로 편입되며 대한민국 지방자치사에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웠다. 이는 1995년 이후 28년 만의 시·도 간 관할구역 통합 사례로, 단순한 행정구역 변경을 넘어 군위 발전을 위한 전략적 전환이었다. 편입 과정에서 관련 법안이 수차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며 표류했지만, 민선 8기 출범 직후 김진열 군수는 대구시·경북도·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의하고 조율하며 성사시켰다. 현재 군위군은 대구시 8개 구·군과 협력하며 ‘대구광역시 군위군 시대‘를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공항도시’를 핵심으로 산업단지 개발과 스카이시티 조성, 광역교통망 확충 등 도시발전계획을 구체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 대구 군부대 이전지 확정⋯ 국방과 지역 상생 모델 군부대 이전은 신공항 건설과 함께 군위 발전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군민들의 염원을 담아 우보면 일원이 대구 군부대 이전의 최종 부지로 확정됐다. 이 사업은 육군 제2작전사령부, 제50사단, 제5군수지원사령부, 공군 제1미사일 방어여단, 방공포병학교 등 5개 부대가 248만평 규모 부지로 이전하는, 창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군부대 재배치다. 군사 기능뿐 아니라 민군상생타운과 관련 산업시설도 함께 조성돼 향후 2만여명의 인구 유입과 청년층 증가가 기대된다. 이는 지방소멸 위기 극복과 대구 도심 재구조화에도 기여하며, 국방과 지역이 공존하는 새로운 상생 도시 모델로 평가된다. △ TK신공항과 스카이시티⋯ 미래형 자족도시로 TK신공항 건설은 군위군 미래 비전의 핵심축이다. 2030년 개항을 목표로 특별법 개정과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며, 기반 사업의 밑그림도 구체화했다. 특히 소보면 일원에 조성되는 191만평 규모 ‘제1 첨단산업단지’는 첨단모빌리티 융복합기술단지로 2027년 착공, 공항 개항 시점에 맞춰 완공을 목표로 한다. 또 325만평, 인구 14만명 수용 규모의 ‘군위 스카이시티’는 항공물류, 의료, MICE, 국제학교, 스마트시티형 주거단지가 들어서는 자족형 복합도시로 2034년까지 1단계 사업 완공을 목표로 추진된다. 김 군수는 “서부권 공항도시와 동부권 군부대 밀리터리타운을 군위의 양 날개로 삼아 지역 균형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 군민이 묻고 행정이 답한다⋯ 군위형 공감행정 실현 군위군은 민선8기 3년간 도시 기반 조성뿐 아니라 군민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감행정’을 실현해왔다. 김 군수는 사람 중심 공동체 회복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주민 주도의 혁신 사업인 ‘군위형 마을만들기’ 사업을 강력히 추진해왔다. 2023년 73개 마을을 시작으로 3년 차인 올해는 군 전체의 96%인 175개 마을로 확대되며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해 대구시 주관 ‘시정혁신 우수사례’ 장려상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균형발전 우수사례’에도 선정됐다. 청렴도 또한 크게 향상됐다. 국민권익위원회 평가에서 2022년 4등급이었던 군위군은 2024년 1등급으로 도약했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단 8곳만이 받은 성과다. 공약 이행 평가에서도 2023·2024년 2년 연속 전국 기초단체장 최고등급인 SA등급을 획득했다. 김 군수는 “군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며 총 71개 공약 중 55개를 완료하며 실질적 성과를 냈다. △ 교육 혁신과 보육 인프라 확충⋯ 지방소멸 극복 교육 혁신과 보육 인프라 확충도 민선 8기의 주요 성과다. 전국 최초로 군위군 초·중·고 전체에 IB(국제바칼로레아) 교육이 도입돼 글로벌 인재 양성 기반을 마련했다. 대구시교육청이 203억 원을 투입해 군위 거점학교 정책을 운용하며 IB교육을 지원하고, 군위군도 교육발전특구 시범사업으로 5년간 53억 원을 들여 교육과 돌봄을 강화한다. 보육환경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 군위군 보건소에는 대구·경북 최초로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을 개설했으며, 아이사랑키움터, 청소년가온누리관 등 교육·돌봄 인프라도 지속 확충하고 있다. 아울러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최대 1억 3000만 원까지 지원하는 양육 시스템을 구축해 ‘보육·교육 걱정 없는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 문화·관광·레포츠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매력 있는 체류형 도시 천혜의 자연 자원과 역사 문화 자산을 보유한 군위군은 ‘머물고 싶은 군위, 다시 찾고 싶은 군위’를 목표로 체류형 관광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팔공산과 군위삼존석굴, 인각사, 삼국유사테마파크, 김수환 추기경 생가, 화산·화본·한밤마을 등 주요 명소의 콘텐츠를 지속 확충하며 관광경쟁력을 높여왔다. 생활체육 인프라도 대폭 확대됐다. 종합운동장, 야구장, 읍면별 파크골프장 등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지속 확충하고, 전국 대회가 가능한 삼국유사야구장과 실내외 테니스장, 사회인 미식축구 리그가 열린 종합운동장은 군위의 자랑이다. 특히, 의흥면에 조성 중인 전국 최대 규모의 180홀 명품 파크골프장은 군위를 파크골프 중심지로 만들 핵심 사업으로, 1단계 81홀은 내년에 개장할 예정이다. 이러한 노력은 대구 편입과 TK신공항 개항 등으로 접근성이 향상되면서 체류형 관광객 유치에도 긍정적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 김진열 군위 군수⋯ “민선 8기 3년, 끝 아닌 시작” 김진열 군위군수는 민선 8기 3주년을 맞아 “지금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며,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완성의 시간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TK신공항 건설, 군부대 이전 등 국가급 프로젝트가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며 “공항도시와 밀리터리타운을 두 축으로 균형발전과 함께 군위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내겠다”고 밝혔다. 김 군수는 행정 시스템에 대해서도 “성과의 구조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하며 “청렴· 공감행정, 마을자치, 교육 혁신 등을 제도화해 일회성 성과를 넘어서는 ‘지속 가능한 행정’을 구축하겠다”며 “진정한 개혁은 시스템으로 정착될 때 완성된다”고 말했다. 특히 군민과의 동행을 강조한 그는 “변화의 동력은 늘 군민에게 있었다”며 “공약 하나하나를 책임 있게 실천하고, 군민과 함께 만든 도시에서 함께 미래를 누리는 길을 걷겠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군위는 지금 역사상 가장 큰 전환의 길목에 서 있다”며 “민선 8기의 남은 1년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시간이다. 군민과 함께 미래 100년의 밑그림을 그리며, 지속 가능한 군위를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상진기자 csj9662@kbmaeil.com

2025-06-29

염분·PH·수온·영양, AI 자동 조절⋯ 24시간 연중무휴 수확

미국 뉴저지엔 ‘에어로팜’(AeroFarms)이라는 스마트 농장이 있다. 세계 최대 아파트형 농장인 이 회사는 IoT 센서를 이용 작물의 생산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AI,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작물의 생육 상태를 최적화한다. 수십만 평의 농지가 스마트 팜 속으로 들어오면서 이 회사는 생산성을 390배나 향상시킬 수 있었다.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의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오늘 소개할 ‘스마트 김 양식장’은 에어로팜의 스마트 농장이 ‘바다 버전’으로 응용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자치단체나 식품회사들이 스마트 김 양식에 뛰어드는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급격한 해수온의 상승 탓이다. 전문가들은 김 생육의 적당한 해수온(5~15도)이 50년 이내 50일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갯병, 황백화 같은 질병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바다김 양식, 전문가들은 그 대안을 육상 양식장에서 찾는다. 한 번 대규모 시설 투자와 재배 시스템이 정비되면 계절, 수온의 제약에서 벗어나 연중무휴로 재배,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북도도 ‘육상 김양식’ 기술개발 연구계획을 수립하고 스마트 양식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2030년까지 ‘동해형 돌김 종자’를 개발하고 대량 생산기술을 확립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전국 육상 김 양식장, 자치단체, 연구소, 식품회사를 방문, 견학하며 기초자료를 수집해 연구에 반영하고 있다. 새로운 김 양식 패러다임의 변화시대를 맞아 스마트 김 양식에 뛰어든 기업체와 연구소를 둘러보았다. 충북 오송 ‘풀무원기술원’ 대형 수조 ‘바이오리액터’에 양식장 환경 재현, AI로 제어 연간 24회 이상 김 수확 가능 ◆풀무원, 바이오리액터 수조로 특화 풀무원은 2021년부토 육상 김 양식 개발에 나서 양식 김을 초기 상품화 단계까지 끌어 올렸다. 2014년부터 해조류 종자 연구를 시작해 해양 양식 전반에 걸친 데이터베이스를 이미 구축하며, 이 분야 선두주자로 자리 잡고 있다. 풀무원의 가장 특화된 기술은 바이오리액터로 분리는 대형 수조(水曹)다. 작은 드럼통 만한 이 생물반응조에 바다 환경을 그대로 재연해 해초를 생산하는 구조다. 풀무원 관계자는 “수조 안에는 바다와 동일한 김 생육 환경이 조성되었다”며 “AI, IOT(사물 인터넷) 등 스마트 시스템을 통해 빛과 수온, 염도, 수소이온농도(PH)가 자동으로 관리된다”고 설명했다. 전체 시스템의 정교한 설계는 물론 조명의 종류, 배치 간격, 수조의 재질과 용량 등도 최적화해야 된다는 것. 건물에 들어서자 연구실 한 켠에서는 수백 개의 플라스크에서 종자를 배양하고 있었다. 채묘(採苗)된 종자를 어린 묘로 양성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자란 유묘(幼苗)는 바이오리액터에 옮겨진 후 성체가 될 때까지 자라게 된다. 수조에서 바로 성체(成體)로 성장시키기 때문에 양식장 같은 거치대, 지주(支柱), 그물이 필요 없다. 생물반응조에 유엽(幼葉)을 넣어 성체를 수확하는데 약 2주 기간이 소요된다. 이런 진척도라면 단순 계산으로도 연간 24회 이상의 수확이 가능하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풀무원 측은 3년 이내 제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머지않은 미래에 육상에서 생산한 김이 식탁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김 양식 기술이 축적되면 어민들에게 종자 분양, 보급 등 양식 기술을 이전하고 이를 통해 어민들은 소득 향상을 도모하고 회사 측은 안정적인 원재료 확보가 가능해 상생 구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김제시 진봉면 ‘지평선육상김’ 200평 공장에 스마트 시설 갖춰 온도·습도·광량·살균 원격 제어 국내 최초로 양식장 특허 등록 ◆대한민국 최초 특허 등록 ‘지평선육상김’ 김제시 진봉면에 2022년 설립된 ‘지평선육상김’은 200평 공장에 자동화 기계와 스마트 온실 제어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 곳은 국내 최초로 김 양식장 특허를 취득한 곳으로 유명하다. 김 양식의 방식, 시설, 일부 공정을 특허 낸 것이 아니고 양식장 시스템 자체를 등록했다. 이 외에도 수질정화장치를 이용한 수질관리와 살균처리 시스템, 온도와 습도를 자동 조절하는 공조 시스템, 김발 자동 이송 및 수확 시스템 등 최신 자동화 기술을 도입했다. 지평선육상김은 김양식 방식의 주요 방식인 ‘지주식’(支柱式)’과 ‘부류식(浮流式)’의 장단점을 보완해서 만든 일석이조, 친환경 방식을 갖추고 있다. 지평선이 자랑하는 방식은 적층(積層)식 거치대 구조. 스마트 팜의 다단계, 수직구조처럼 거치대를 다단(多段)으로 집적해서 배치하는 구조다. 좁은 면적에 시설들을 밀집해 배치할 수 있기 때문에 양식장 공간의 효율성을 꾀할 수 있다. 3000평의 바다 양식장엔 1.8×40m 그물이 70~80책이 설치되지만 이 곳에서는 동일 면적 기준 600책 이상의 세팅이 가능하다. 연간 5개월만 생산이 가능한 바다와 달리 연중 생산이 가능해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10배 이상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지평선육상김 이정민 부대표는 “(집적화)덕분에 면적 축소, 수온유지, 사계절 생산, 최적의 광량(光量), 고품질 유기농 김생산 등 많은 장점을 도모할 수 있다”며 “이런 스마트 시스템을 통해 김 생산 기간을 기존의 3분의 1로 단축시키고, 성장률을 40배 이상 높이는 기술을 구현했다”고 강조했다. “실험 과정 거쳐 곧 상용화 단계 진입” 풀무원기술원 이다정 연구원 “하루 종일 김을 들여다보고 퇴근하면 거실 TV 화면이 김으로 보여요.” 풀무원이 국내 스마트 김 양식 분야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데는 연구원, 직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운명처럼 시작한 해조류와의 만남, 연구원들은 김과의 교류(?)를 위해 하루에 수십 장, 연간 수천 장의 김을 시식하고 있다고 한다. “5년을 공들인 김 연구인데 ‘김 새면’ 안되죠.” 불철주야 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풀무원의 이다정 연구원을 만나 보았다. △바이오리액터는 풀무원의 독자 기술인가? 바이오리액터는 원래 미세조류나 미생물 배양에 활용되는 일반적인 기술이다. 풀무원은 이러한 기존 기술을 기반으로, 김의 생육 특성에 맞춘 맞춤형 제어 기술을 접목해 김 양식에 최적화된 바이오리액터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존 해상 양식과 달리, 육상 환경에서는 수온, 광량(光量), 영양염, 유속(流速) 등 주요 생장 조건을 정밀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풀무원은 이를 활용해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생장을 유도하고, 고품질의 김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스마트 김 양식은 단순 양식의 성공에 이어 궁극적으로 고부가가치 김 생산에까지 도달해야 한다고 본다. 풀무원은 육상양식 기술을 바탕으로 김의 품종 다양화, 기능성 성분 강화, 유해물질 저감 등 고품질생산을 위한 기술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김을 단순 식재료를 넘어 건강식품, 간편식, 화장품, 의약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활용 가능한 고부가가치 소재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CJ, 대상, 풀무원 등 식품회사들과 중소기업들이 육상 김 양식에 나서고 있다. 현재 국내의 스마트 양식 기술은 어느 수준까지 와있나 국내 해조류 스마트 양식 기술은 이제 막 실증 단계를 거쳐, 상용화 기술 개발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스마트 양식은 기존 해상 양식과 달리, 데이터 기반의 생산 관리와 자동화 기술이 핵심이며, 수산업과 IT 기술의 융합이 필수적이다. 풀무원은 자체 개발한 시스템을 통해 연속 양식과 수질 제어의 안정성을 확보해 왔으며, 현재는 영상 기반 생육 모니터링과 품질 분석 기법을 단계적으로 적용해 나가고 있다. △스마트 김 양식이 대규모 시설 투자 대비 경제성,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대량 생산을 거쳐 상용화 단계로 연착륙할 수 있을까? 스마트 김 양식은 안정적인 생산환경, 품질 균일성, 연중생산, 위생관리, 기후변화 대응 등에서 기존 해상양식 대비 뚜렷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강점은 특히 해외 수출 및 프리미엄 시장 진출 시 일관된 품질을 기반으로 한 제품 차별화를 가능하게 하며, 중장기적인 경제성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 기존 어업인과의 협력을 통해 생산 규모의 단계적 확대와 경제성과 지속성을 겸비한 상용화 모델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6-29

“생활인구50만명 목표, 문화·복지·관광 전 분야서 더 멀리 도약”

민선 8기 3년을 맞은 남구는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열정의 명품 남구’라는 도시 비전 실현을 향해 지금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문화·관광, 교육,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민들이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느낄 때까지 달리겠다고 약속했다. 전국 최초 ‘무지개 프로젝트’ 발표 청년 자립도움 작년 스마트 경로당 개통, 어르신 노후 생활 개선 강당골 주차장에 신청사 건립, 남구 랜드마크로 앞산 하늘다리·빨래터 공원 ‘한국 관광 100선’ 선정 △전국 최초 인구 소멸 대응 프로젝트 가동 남구청은 작년에 전국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청년을 위한 ‘무지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무지개 프로젝트는 남구에 살면 결혼, 임신·출산, 보육, 교육, 주거, 청년·일자리, 공연문화·관광 등 7가지를 구청에서 직접 케어하는 종합 서비스다. 향후 10년간 총 15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청년들이 자립해 갈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사업이다. 시행 과정에 협업이 필요한 7대 분야 21개 실천 과제도 선정했다. 작년부터 미리 준비해 온 인구정책 사업도 올해부터 본격화 시킨다. 대표적인 사업은 신혼부부 주택구입 대출이자 지원 사업이다. 총사업비 180억원을 들여 젊은 세대들의 전입을 늘리고 그들의 안착을 도와 도시가치 상승을 꾀한다. 대구 최초로 산후조리비 지원 사업과 남구형 고품격 매입 임대주택사업 등도 동시에 벌인다. 남구는 대구시민의 최대 휴식처인 앞산이 위치해 있어 문화와 관광을 통해 생활인구를 늘이는데 유리하다. 그래서 앞산 축제와 크리스마스 축제, 해넘이 축제 등을 개발했고, 이를 지역의 대표 콘테츠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또 앞산 모노레일과 공룡공원 등도 인프라를 확충해 지역의 브랜드로 키워 나가 생활인구 50만명 달성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스마트 노인복지시대 개막 남구 스마트 경로당은 작년 9월 개통했다. 남구는 지역 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7.7%로 초고령화 지역이다. 남구의 행정에서 노인복지 정책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이다. 지역 노인들의 노후생활 질을 개선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 스마트 경로당은 기존의 경로당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화상 플랫폼을 통해 여가·복지·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어르신들의 디지털 소외감을 해소하고 건강한 생활을 지원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지난 6월 열린 ‘2025년 제1회 남구 스마트 경로당 온라인 노래 자랑 대회’ 는 남구에서 시도한 스마트 경로당 사업으로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스마트 화상 시스템을 활용해 전 경로당 72곳에 동시간 중계된 온라인 노래자랑대회는 지역 어르신들의 열정적 참여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 사업은 복지와 디지털을 접목한 성공 모델로 주목받아 타 지자체에서 벤치마킹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작년 10월 전라남도 나주시를 시작으로 올 3월까지 10여 개의 타 지자체가 남구청을 방문해 스마트 경로당 운영 방식과 장비 활용, 만족도 등을 공유했다. △남구의 새로운 랜드마크 추진과 도심 교통 개선 남구청은 현 청사의 노후화로 인한 안전문제 해소와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신청사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 25명으로 구성된 부지선정 위원회의 논의와 심사를 거쳐 강당골 주차장 부지를 최종 후보지로 결정했다. 지난 4월 행정안전부 타당성 조사 의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다. 재원은 지난 2019년부터 모아온 신청사 적립 기금 1500억 원을 이번 사업에 투입할 예정이다. 신청사는 봉덕동 강당골 공영주차장 내 2만8349㎡ 터에 지하 3층, 지상 6층 규모로 건립된다. 동시에 지난 19년간 지역 숙원사업으로 남아 있던 3차 순환도로를 조기에 개통하기 위해 대구시에 지속적으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남구는 이를 통해 도심 교통 개선과 지역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을 계획이다. 지난 1996년에 봉덕초등학교 북측에서 앞산네거리 구간 1.4km를 제외한 총 25.2km중 23.8km구간이 개통됐다. 현재 단절된 3차 순환도로 동편구간(봉덕초등학교 북측∼영대병원네거리 남측)은 오는 8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또 오는 10월 대구도서관과 2026년 평화공원까지 문을 열면 정주 여건의 개선은 물론 남구의 도시면모도 크게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숙제로 남아 있는 서편구간(영대병원네거리 남측에서 남부경찰서 교차로)의 개통은 현재 보상절차가 진행 중으로 아파트 시공사와 협의해 조기 개통하도록 할 방침이다. △조재구 남구청장. “더 멀리 도약하는 남구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민선8기 3년을 맞은 조재구 남구청장은 올해는 지난 성과들을 발판 삼아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겠다고 약속했다. 정주환경 개선과 교육지원, 앞산 관광자원 등을 활용해 생활인구를 늘리면서 더 멀리 도약하는 남구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조 청장은 “지금은 단순히 도시 기능의 확장에 그쳐서는 안되고 사람이 돌아오는 도시, 머무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지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인구정책, 신청사 건립, 3차 순환도로 완공, 디지털 복지까지 모든 정책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이것이 남구로의 인구 유입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한때 30만 명에 달했던 인구가 지금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노령인구도 27%나 돼 지역소멸을 걱정할 수준이다. 그러나 남구를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곳이 아닌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면 이런 문제들도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특히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도시로 환경을 만들어 인구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이를 동력 삼아 지속가능한 지역, 성장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대구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조 청장은 “남구는 타구에 비해 면적이 좁다보니 생산시설이 거의 없다. 주거 중심으로 이뤄진 특징을 갖고 있다”며 “대구시민의 최고 휴식처인 앞산을 중심으로 각종 인프라를 잘 구축해 볼거리가 많은 지역으로 소문나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앞산공원과 앞산 해넘이 전망대, 앞산 하늘다리, 앞산 빨래터 공원을 연계한 관광 콘텐츠가 ‘2023-2024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되면서 외부 관광객의 유입이 늘고 있다. 조 청장은 “지역상권도 모처럼 활기를 찾고 있는 분위기”라며 “관광 콘텐츠의 지속적 업그레이드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구에는 대봉배수지 일원에 조성된 물 문화공원과 대명동 대명공연거리, 이천동 고미술거리 등 소문나지는 않았지만 전통적 지역문화가 살아있는 곳이 많으니 외지인들이 많이 방문해 남구의 매력을 느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끝으로 조 청장은 “신청사 건립은 남구의 새로운 도약과 미래를 여는 상징적인 랜드마크 공간이 될 것”이라며 “지금의 변화는 시작일 뿐이다. 사람이 머물고 싶은 도시 남구의 발전 과정을 지켜봐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5-06-26

신라의 그림자 위에 펼쳐진 시간의 겹 황리단길

■경주의 또 다른 매력 황리단길 경주라는 오래된 고도(古都) 속에서, 황리단길의 출현은 뜻밖이었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이질적인 시각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황리단길(皇理團길, Hwangridan-gil)은 경상북도 경주시 사정동과 황남동에 걸쳐 있는 좁은 도로이다. 내남사거리에서 시작해 황남초등학교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길로, 원래 ‘황남동의 경리단길’이라는 의미에서 시작된 이름이다. 이 거리에는 1960~70년대의 옛 주택을 개조한 상점과 한옥 구조의 카페, 식당, 사진관, 펜션, 게스트하우스가 다수 들어서 있다. 특별한 건물 양식 없이 모양을 달리한 구조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골목마다 색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게 매력이다. 황남동과 사정동 일대를 잇는 포석로 구간, 한때는 주민들의 통학길이자 생활 도로였던 좁은 골목이, 어느 날부터 사람들의 발길을 끌기 시작했다. 그것도 외국인과 젊은이들의 발길이었다. 그렇다고 오래된 저층 주택과 상가, 한옥의 낡은 기와지붕을 허물 지도 않았다. 마을이 간직한 시간을 존중한 채, 새로운 감각이 덧씌워진 것이다. ■불과 십 년 만에 번화가로 황남동과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의 이름을 따 ‘황리단길’이라 부르기 시작한 건 약 십여 년 전이다. 경리단길처럼 개성 있는 카페와 공방, 소규모 상점이 들어서며 황리단길 골목은 스스로 생명력을 얻고 키워왔다. 옛 동네의 골격 위에 덧입힌 젊은 감각은 도시재생이 아니라 ‘시간의 공존’이었다. 황리단길을 찾는 사람들은 단지 관광을 누리기 위함이 아니다. 신라 고도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장면과 여행의 멋을 찾으려는 것이다. 한복을 입고 대릉원 돌담 앞에 선 청춘의 얼굴, 경성풍 복장을 하고 셀프 사진관을 찾는 외국인 여행자의 눈빛. 이곳에서의 ‘인생샷’은 단지 기념사진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표정을 한 컷에 담아내는 또 다른 여행 방식이다. 사진은 단지 흔적이 아니라 해석이 되고, 그 해석은 또 다른 미래를 향해 가는 여정이다. 누군가는 상점에서 파는 물건을 고르고, 또 누구는 오래된 기와와 담장의 이끼를 보며 시간의 결을 더듬는다. ■골목을 살아가는 사람 골목을 살려낸 이들은 마을 주민과 또는 외지에서 들어온 현재의 골목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황리단길을 이끌어가는 상점의 주인들은 단순히 가게를 운영하는 장사치가 아니다. 오래된 상가를 자신이 추구하는 개성에 맞게 고쳐 나갔다. 구조는 살리고 내벽을 수리하여 자신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카페, 신라 유물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굿즈를 파는 소품점, 여행자들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조용한 공간을 내어주는 책방. 그들은 지역의 고유한 감성과 외지인의 시선을 균형 있게 조율하는 숨은 디자이너를 자처했다. 누군가는 경주 토박이로, 누군가는 다른 도시에서 이주한 예술가로 거리와 골목을 살아내며 또 다른 경주의 얼굴을 만든다. 황리단길은 신라와 단절된 거리가 아니다. 첨성대에서 대릉원으로, 다시 황리단길로 이어지는 도보 여정은 하나의 선이자 하나의 공간이자 연결된 시간이다. 대릉원 고분의 봉분은 여전히 침묵하지만, 주변을 걷는 이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신라의 시간은 신라에만 정체되어 있지 않고 흐르고 흘러 지금의 황리단길에 이른다. 골목마다 세워진 안내판, 상점 이름 속 ‘황남’, ‘월성’, ‘화랑’, ‘신라’ 같은 단어는 고대가 흘러온 현재의 시간임을 증명해 준다, 굿즈 속에 재해석된 천마총의 문양은 이 골목에 세워진 신라의 기억을 복원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그 기억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불리는 법을 알고 있을 뿐이다. 황리단길을 단순히 유행의 거리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황리단길은 유행의 장소가 아니라 감각이 축적된 공간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한때를 대표하는 유행의 흐름이 아니라, 쌓이고 엉기고 머물며 완성돼 나가는 곳이다. 한때의 유행이 골목 돌담과 건물 외벽을 스치고 지나가더라도, 매일 차를 준비하고, 빵을 굽고, 요리를 하는 손길은 변함없을 것이다. ■황리단길의 표정 낡은 기와지붕 아래 담긴 계절의 빛이 묵묵하다. 이 골목의 매력은 화려함보다 차분함에 있고, 유행의 선단에 서기보다 오래된 감각을 가만히 껴안는 데에 있다. 걸을수록 느껴지는 거리의 표정은 일회성이 아니다. 한 계절의 풍경이 다음 계절을 향해 준비하고 또 다음 해를 준비하는 것으로 일상은 시작된다. 이렇게 감각은 층층이 쌓여 거리를 만든다. 황리단길은 계절마다 표정이 달라지고, 시간마다 향기가 다르다. 봄엔 산수유와 벚꽃과 장미, 여름엔 푸를 숲 아래 땀이 밴 채 대릉원 담장과 커피잔의 얼음 소리, 가을엔 핑크뮬리와 낙엽과 어깨에 내려앉는 바람, 겨울엔 고요한 기와지붕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은 첫눈까지. 이 거리의 아름다움은 장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풍경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풍경이며, 다시 걷고 싶은 장면이다. 신라의 수도가 지금의 젊음을 품어 안고 있다는 것, 그것이 경주 황리단길의 가장 깊은 정서다. 계절마다 표정이 달라지고, 시간마다 향기가 달라지는 건 황리단길 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걷는다는 건 골목을 읽는 것 대릉원 서쪽 담장을 따라 걷는다. 낮은 돌담 너머 봉분들이 물결처럼 이어지고, 그 위로 흰 구름이 무심히 흘러간다. 초록빛 잔디밭 사이로 잔잔한 바람이 지난다. 발끝에 닿는 흙길의 부드러움, 담장 아래 핀 들꽃의 향기, 어린아이의 웃음소리. 걷는다는 것은 도시의 시간을 어루만지는 일이다. 골목은 더 이상 지도의 한 줄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로 변해간다. 좁은 길 안쪽으로 접어든다. 햇살이 벽돌 담장에 부딪히고, 손바닥만 한 창문 너머로 찻잔의 시원한 냉기가 맴돈다. 붉은 벽화와 고요한 조명, 작은 의자와 나무 선반, 그 위에 놓인 손바닥 크기의 엽서. 천마총의 문양을 새긴 엽서 한 장을 집어 든다. 신라의 하늘과 오늘의 하늘이 이 작은 종이 위에서 겹쳐진다. 마음이 먼저 머무는 풍경이다. 흙, 종이, 시간, 모든 것이 가볍게 쌓인다. ■불편한 것도 새로움이 되는 거리 구름이 밀려오고 바람이 강해진다. 사람들이 서둘러 골목 안으로 몸을 들이고, 한옥 처마 밑으로 모인다. 기와가 빗방울을 받기 시작하고, 붉은 벽돌마다 동그란 물방울이 맺힌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갇혔어도 사람들은 그저 행복해한다. 기와가 빗방울을 받기 시작하고, 붉은 벽돌 바닥에 동그란 물방울이 떨어져 터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웃으며 비를 피하고 또는 비를 기꺼이 맞는다. 이마저도 여행의 또 다른 경험이 되니까. 어느 도시에 서든 비가 오고 눈이 내리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 땅의 질감과 정서를 온몸으로 겪는 경험은 단지 날씨에 대한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젖은 길과 흐려진 유리창, 축축하게 내려앉은 공기 속에서 도시의 감정은 천천히 드러난다. 이 순간이 도시를 걷는 추억이 되고 기억으로 남는다. 황리단길을 걷는 이들은 이런 평범하지 않는 이변의 순간을 통해 거리의 본모습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오래된 벽과 젊은 간판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시간을 잇는 선이 되고, 느릿하게 걷는 걸음은 현재와 과거의 결을 동시에 더듬는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장소는 잊히지 않는다. 황리단길은 그렇게 지금의 계절과 오래전의 시간 사이를 잇는다. ■경주를 걷는 외국인 오늘은 유독 외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긴 머리카락, 선글라스,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걷는 이들은 낯선 나라의 골목이 신기한 듯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때로는 외국인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한쿡 사람이에요?” 하고 물어오면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그들은 아주 해맑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넨다. 자국의 언어 대신 조심스레 내뱉는 서툰 한국어 몇 마디 속에, 이들이 얼마나 대한민국, 경주라는 도시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엿보게 된다. 이들은 단순한 관광의 한국이 아니라, 낯선 나라의 거리와 마음을 먼저 존중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 조심스러운 태도는 마치 오래전 신라의 문을 두드렸던 사신의 발걸음처럼, 낯섦 속의 예의를 담고 있다. 이방인조차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도시, 이것이 오늘 황리단길의 모습이다. 경주의 골목들을 오래 걸어왔고, 시장의 깊은 안쪽까지 둘러보았지만, 황리단길처럼 젊은 얼굴이 가득한 곳은 보기 드물다. 평일 오전인데도 카페마다 자리가 없고, 셀프사진관 앞에는 줄이 길다. 한복을 차려입은 남녀가 손을 맞잡고 걷고, 혼자 여행 온 듯한 이는 가방을 어깨에 맨 채 유물 엽서를 홀로 만지작거린다. 각자의 여행이 각자의 모습으로 교차하고 있다. 경주는 여전히 유서 깊고 고요한 도시지만, 황리단길 거리만큼은 다르게 숨 쉬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유행의 한 장면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거리를 따라 걷다 보니 단지 예쁜 가게가 아니라, 이 골목을 진심으로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수제도장 가게 안에서 열심히 인장을 새기는 손, 천마총을 닮은 디자인을 진열하는 상점 주인의 시선, 사진관에서 필름을 감는 청년의 몸짓. 이 거리의 젊음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시간을 만들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이다.

2025-06-25

“문화·경제·환경·교육 인프라 튼튼, 구민 행복지수 높일 것”

민선 8기 3년을 맞은 대구 중구는 문화, 경제, 환경,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민의 행복지수를 높이고자 노력했다. 인구가 줄어드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중구는 인구가 지속 증가하는 도시로 거듭 발전했다. 불량지구들이 정비되고 도심개발이 촉진되면서 지난 3년 중구는 대구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이룩한 지역으로 평가를 받았다. 27년 만에 구민 10만 회복, 인구 유입 3년 연속 1위 주거 환경·교통·문화 인프라 확충, 도시 재생도 역점 계산성당·약령시 등 역사 자산 활용 관광특구 도약 동성로, 뉴욕 스퀘어처럼 쇼핑·관광 융합 랜드마크로 △중구 27년만에 인구 10만 회복 중구의 가장 큰 변화는 인구 증가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던 중구가 청년층과 1인 가구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다시 성장세를 보인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대구 중구의 인구 순유입은 3년 연속 전국 1위다. 인구 증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첫 번째 이유는 삶의 만족도다. 중구에서 살아가는 내 생활이 좋아졌다는 뜻이다. 1998년 9만 9311명으로 10만명 선이 무너진 이후 중구는 27년 만에 다시 인구 10만명 선을 회복하면서 민선 8기 행정의 빛나는 성과로 자랑할 만하다. 중구청은 인구 10만 회복이라는 목표를 실현하는데 다음과 같은 정책을 펼쳤다. 주거환경 개선, 교통 인프라 확대, 문화 인프라 확충, 도시 재생사업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했고, 정책을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했다. 특히 지역 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2030청년 창업프로젝트와 북성로 청년창업 클러스터 운영 등으로 생계 기반을 회복시켜 주었으며, 동시에 지역 정착률을 높이는 데도 신경을 썼다. 또 도심 주거지로서의 매력을 높이는 전략도 꾸준히 전개했다. 복지 인프라에도 지속 투자했다. 복지누리 반다비 체육센터 건립, 시니어클럽 재건축, 구립 공공도서관 건립, 공영주차장 조성 등은 정주 수요를 높이는데 효과를 보였다. 이와 함께 어린이집 신입생 입학준비금 지원과 중구 다함께 돌봄센터 1호점 개설, 지역 최초로 북성로에 생활문화센터를 개소하며 결혼·출산·보육을 연계한 주민 맞춤형 인프라를 구축한 것도 인구 회복에 도움이 됐다. △지역의 역사자산을 활용한 컨텐츠 개발과 관광특구의 성공 중구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근대문화유산이 가장 풍부한 지역이다. 이것을 단순히 문화유산으로 만족하지 않고 미래자산으로 삼으려는 노력을 했다. 보존을 넘어 관광·문화콘텐츠로 적극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작년 동성로가 대구 최초의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이는 중구 관광정책의 성과이자 향후 중구발전의 디딤돌이 되는 전환점이 된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중구는 그동안 김광석길, 약령시, 계산성당, 3·1운동길 등 다양한 골목관광자원을 중심으로 지역 고유의 매력을 살려 전국적 명소로 만들었다. 관광특구 지정은 자원과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연결해 쇼핑·문화·숙박·음식·야간 콘텐츠를 종합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앞으로 야간관광 콘텐츠 개발, 외국어 안내 및 투어코스 개발, 동성로 관광특구 안내소 설치 등 관광객이 체류하고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을 잘 만들어 관광특구의 장점을 살려나가는 숙제가 이제 남아 있다. 중구는 동성로에 앞으로 60억 원을 투입하는 5개년 동성로 상권활성화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상권 브랜드 개발, 할인패스 출시, 소상공인 맞춤형 컨설팅, 커뮤니티센터 운영 등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도 추진한다. IM뱅크, 대구신용보증재단과 협력해 3년 연속 저금리 대출을 지원한다. 올해는 착한가격업소 총 43곳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특성화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남산동 악기점 골목과 삼덕동 3가 골목도 지역 고유의 문화 콘텐츠와 결합한 골목으로 선정해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청년 유입과 고령층에 대한 정책 중구는 청년이 살고 싶고, 일하고 싶고, 머물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데 역점을 둔다. 청년을 위한 정책으로 중구 청년지원센터 ‘잇플’은 청년의 창업과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한다. 센터는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에게 멘토링과 실무교육까지 종합적으로 제공한다. 청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데 집중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지역 최초로 시행중인 청년 대상 부동산 중개수수료 및 이사비 지원사업과 함께 청년사업자 임대료 지원, 청년 커뮤니티 활동 지원 등의 사업도 연계해 정책의 연속성과 실효성을 확보하고 있다.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노인 인구 비율 역시 높은 지역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고령 친화적 정책의 일환으로 노인 정주환경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 2007년 전국 최초로 노인상담소를 설치·운영했다. 이어 치매안심센터 운영 및 맞춤형 방문건강관리 서비스 확대 등을 통해 복지 인프라와 돌봄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노인인권학교, 중구한마음순회봉사 등 다양한 노인인권 중심 시책으로 고령층의 사회참여를 유도하고, 노인일자리 확대,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 세대통합형 프로그램 등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중구는 전 세대가 함께하는 도심을 만들기 위해 고령친화 정책을 앞으로도 지속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류규하 중구청장. “정주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중구 도심의 활력을 되찾는 데 주력하겠습니다. ” 민선 8기 3년을 맞은 류규하 대구 중구청장은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던 중구가 청년층과 1인 가구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다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중구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측면이라며 이 점을 주목해 달라고 했다. 류 청장은 27년 만에 중구의 인구 10만명 돌파에 대해 “도시개발 뿐 아니라 사람 중심의 도시를 실현하는 정책이 낳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의 삶을 살피고, 지역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기에 가능했다는 뜻이다. 그는 “이런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앞으로 정주여건 개선과 인구정책은 단기성과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인내심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며 “궁극적으로 살고 싶은 도시 중구를 만드는 것이 도시발전을 위한 것이며 중구의 인구 증가를 위한 핵심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구는 도심 중심에 위치해 있어 이런 점에서 유리하다”며 “교통, 주거, 상업, 문화, 복지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앞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한 지역”이라며 “골목관광 활성화, 근대문화유산 보존 및 콘텐츠화, 지역 상권 회복 등 에 실질적인 성과를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구 최초 관광특구가 된 동성로를 관광의 중심지로 육성해 동성로 일대를 뉴욕 타임스 스퀘어처럼 쇼핑과 문화, 미디어와 관광이 융합된 대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고 했다. 류규하 청장은 동성로 활성화와 지역 역사 자산과 연계한 다양한 지역관광 활성화 방안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내비추며 “중구는 사람 중심의 도시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주민 한 분 한 분의 삶을 살피고, 지역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주민과의 약속인 공약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며 ‘살고 싶은 중구, 머물고 싶은 중구’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말했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5-06-25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부처의 마음이 있듯이…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노거수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 펼쳐지는 농촌의 정겨운 풍경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도 있다. 내 어릴 적 추억이 떠올라 감정선이 떨리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어릴 때 일들이 가물가물 잊을 만도 한데 실상은 더욱 또렷하게 가슴 한 곳에 저장되어 아지랑이처럼 아련히 피어오른다. 물오른 나무처럼, 젊은 시절의 패기로 인한 후회와 미련은 이제 물처럼, 바람처럼 떠나보내고, 마음은 평정심으로 노년의 삶이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다니 무심한 세월을 탓할 만도 아닌가 싶다. 삼라만상의 천태만상을 보면서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움으로 관조할 수 있는 생각의 근육도 생겨 지금까지 미처 보지 못한 숨겨진 그 무엇도 보였다. 자신의 감정과 입장에서 아니라 상대의 위치에서 보고 느끼는 현상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세종 때 낙향 선비 황전 ‘첨모당’ 짓고 도토리 열리는 구황 나무 마을에 식재 갈참나무 중 천연기념물 지정은 유일 장사 ‘허 장군’ 관련된 수호석과 함께 경배의 대상으로 별도로 동제 지내와 나즐로 노거수를 찾아 나서는 일 또한 그러하다. 나무의 웅장한 자태와 그 오래됨의 역사 앞에 서면 마을의 재미나는 전설과도 만나게 된다. 전설의 실타래를 풀어보면 지난 삶의 역사와 함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언중 가슴 속으로 스며든다. 오늘만도 그렇다. 경북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 산 338번지 마을 동산에 우뚝 높이 선 천연기념물 제285호 갈참나무 노거수이다. 외형상으로 나이 600살, 키 15m, 가슴둘레 4m나 되는 거대하고 오래된 나무이다. 그러나 마을 주민과 함께한 600년이라는 장대한 세월의 삶을 어찌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는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며,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하여 오늘날까지 살아오고 있다. 천연기념물 갈참나무 노거수 앞에 서면 또 하나의 전설이 기다리고 있다. 나무는 묘하게도 마을 중심에 있는 꽤 높은 동산의 넓은 정상에 살아가고 있다.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마을 주민은 갈참나무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나무 앞에 큰 돌을 기단석 위에 세워놓고 그 앞에는 제단석을 만들어 놓았다. 돌에는 금줄을 쳐 놓은 것으로 보아 지금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보였다. 그 돌이 마을 수호석(守護石)으로 허 장군석이다. 그 유래를 보면 이렇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이 마을에 아주 힘이 센 젊은 허장사(許壯士)가 살았다고 한다. 하루는 젊은 장정들이 마을 뒤에서 제일 높은 시루봉에 올라 돌 던지기 시합을 했는데, 허장사가 던진 돌이 10여 리를 날아 이곳 병산리 마을 앞 논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허장사를 ‘허 장군’이라 불렀다. 허 장군이 던진 돌을 신성시하다가 어느 날 이곳으로 모셔 마을 수호석(守護石)으로 삼았다고 한다. 해마다 정월 초에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등 제관을 정하고 제사 음식을 정성껏 마련하여 정월보름날 자시에 수호목인 갈참나무와 함께 서낭제를 올리고 풍년 농사와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동제를 올린다고 한다.” 이 전설은 누가 봐도 허무맹랑한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돌을 들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1m도 던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러면 왜 마을 수호석으로 믿고 또 허 장군돌이라 이름 붙이고 마을 주민들이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할까. 수석처럼 특별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값나갈 것도 아니 보였다. 병산리 마을은 창원황씨 집성촌인데 황 씨가 아니고 허 씨일까. 의문은 꼬리를 물고 그 끝이 없다. 그 답은 우리 조상들의 자연관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설 속에 우리 조상들의 자연관이 고스란히 숨어 있지 않을까 싶다. 도도처처불심(到到處處佛心)이라고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부처의 마음이 있다고 하는 우리 민중 사이에 전해오는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어귀나 뒷산, 주변 어느 공간에 나무 두 그루를 심어 음양오행설에 따라 남자를 상징하는 전나무와 여자를 상징하는 느티나무를 한 세트로 심었다. 그 변천 과정에 수종도 바뀌어 여성을 상징하는 나무와 남성을 상징하는 나무 대신 돌이나 돌탑으로 바뀐 마을을 흔히 볼 수 있다. 보통 마을에서는 수호목과 돌이 한 세트로 제단도 하나인데, 병산리 마을은 별도의 제단을 두고 제사도 별도로 지낸다는 것이 좀 특이할 뿐이다. 갈참나무는 창원황씨 봉례공(奉禮公)의 황전(黃纏 1391~1458)이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마을에는 황전이 세워 지방 유생을 가르쳤다는 첨모당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갈참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도, 수호목으로 정한 것도 이 나무가 유일하다. 왜 황전은 갈참나무를 식목하였을까? 그 이유는 전해 내려오지 않고 있으니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그 이유가 전해 내려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부터 흉년이 들면 도토리가 많이 열린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흉년에 대비해 구황(救荒)의 의미로 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뭇가지가 구불구불하면서도 우산살처럼 퍼져있는 자유로운 모습의 아름다움은 절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갈참나무는 참나무로 불리는 나무 중에 한 종이다. 참나무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등 여섯 종이 있다. 나무껍질과 잎, 열매로 구분하나 일반사람이 구분하기에는 그리 쉽지 않다. 나무껍질은 회색으로 그물처럼 얇게 갈라진다. 잎은 마주나며 타원형 또는 도란형이며, 끝이 뾰족하고 뚜렷한 톱니가 있다. 열매는 도토리이며, 꽃이 핀 그해 9~10월에 익는다. 도토리는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이며, 과거에는 가루를 내어 떡이나 도토리묵 또는 죽으로 이용했다. 나무의 결이 곱고, 내구성이 뛰어나 건축재, 선박재, 가구재, 바닥재 등으로 쓰였다. 병산리 마을 동산 위에 우뚝 서 있는 갈참나무는 가지가 위로 솟기보다 손이 닿을 정도로 아래로 쳐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나뭇잎 아래에 웬 장수풍뎅이 한 마리가 조용히 졸고 있다. 첨모당(瞻慕堂)은… 황전(黃纏, 1391〜1459)이 세종 11년(1429)에 학문을 연마하고 지방 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첨모당은 선조들의 학덕과 업적을 우러러 사모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황전은 1458년에 사직하고 병산에 내려와 은거했다. 1535년 가선대부 공조참판에 증직되고 그 3년 후인 1538년에 고택을 중수하여 첨모당 현판을 걸었다. 첨모당 앞에 회화나무가 있고 그 옆에 신위를 모신 숭보사가 있다. 황전에 대한 일화가 있다. “1456년 순흥에 위리안치(圍離安置)되었던 금성대군이 사람을 보내 쌀 포대 속에 은괴(銀塊)를 몰래 가지고 와서 만나기를 청했다. 그러나 공은 병이 들어 갈 수 없다며 사양하고 또 말하기를 ‘일찍이 서로 교분이 없었을 뿐 아니라, 지위도 다르니 물건을 받을 수 없다’라고 하면서 돌려 보냈다. 이듬해 단종 복위 운동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금성대군은 물론 지역의 많은 선비들이 화를 입었으나 공은 그로 인하여 무사할 수 있었다.” 그는 조선 세종 8년(1426년)에 조회와 의식을 담당하던 통례원봉례(通禮郞奉禮)의 직을 역임, 병산 마을은 창원황씨(昌原黃氏) 황량중(黃亮仲) 7대손이 고려 공민왕 1357년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황승후(黃承厚)가 개척한 창원황씨(昌原黃氏) 집성촌 마을이다. 아들 황처중(黃處中)은 조선 초에 영일 감무(監務)를 지냈으며, 황전은 그의 아들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6-25

명품 서열다툼 치열한 ‘한우’ 조선 시대서도 귀했던 ‘문어’

아래 기사는 본지 홍성식 기자가 한국기자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재하고 있는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이다...편집자 주 토종 육쪽마늘 먹여 키웠다는 의성 한우 새콤달콤 오미자 사료로 섞는 문경 한우 좋은 육질 ‘최고 기후’서 자란 안동 한우 자투리 고기까지 혀를 녹일 맛 경주 한우 ▲경북에서 ‘가장 맛있는 한우’는 어디 있을까?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 부르던 시절 이야기다. 그러니까, 1970년대 후반. 여덟 살 동네 꼬마들끼리 ‘자랑 배틀’이 붙었다. 기사 딸린 자가용을 가진 집에 사는 친구 하나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지난주 내 생일날 아빠, 엄마랑 해운대 갈빗집에 가서 소고기를 엄청 많이 구워 먹었어. 진짜로 맛있더라.” 모여 앉아 있던 나머지 꼬마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랬다. 50년 전은 ‘소고기를 구워 먹은 것’이 자랑이 되던 시대였다. 그날 그 자리, 소고기를 구워 먹어본 적이 없던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째서 내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돼지갈비도 한 번 사주기 힘든 가난한 노동자일까, 왜 나의 엄마는 땅투기로 남편 월급의 10배를 벌어들인다는 복부인이 되지 못했을까’라며 신세 한탄을 했다면 거짓말이고. 그저 구워 먹는 소고기의 맛은 어떨지 궁금했다. 물론 우리 집에서도 가끔 소고기를 먹긴 했다. 그러나, 한 근도 아닌 국거리용 소고기 반 근을 사와 무와 콩나물을 잔뜩 넣고 큰 솥에 끓여 식구 네 명이 한 그릇씩 나눠 먹는 방식이었다. 구운 소고기를 먹기 어려웠던 건 동네 친구들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당시는 국민소득이 1000달러를 겨우 넘긴 시점. 너나없이 살림살이가 한빈했던 게 정한 이치였으니. 시간이 흘렀다. 국민소득 30000달러를 넘어선 게 벌써 오래전. 이제 소고기 구이는 샐러리맨들의 ‘그저 그런 회식 메뉴’ 정도로 인기가 하락했다. 동네마다 숯불에 철판 올리고 구워먹는 소고기 갈빗집이 흔전만전이다. 경상북도엔 한우 사육 농가가 적지 않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랑을 부른다. 당연한 수순처럼 “다른 곳과 비교하지 마세요. 우리 지역에서 기르는 소의 맛이 최고에요”라는 마케팅이 곳곳에서 횡행하고 있다. 최근 10년 가까운 시간을 경북에 자리 잡고 밥을 벌어먹었다. 여행을 좋아하니 멀지 않은 영남 각처를 돌아다니며 구운 소고기를 맛봤다는 건 구구절절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 토종 육쪽마늘을 먹여 키웠다는 의성 한우, 새콤달콤 오미자를 사료에 섞는다는 문경 한우, 기후 자체가 육질 좋은 소를 만들기 최적이라 말하는 안동 한우, 손질하고 남은 자투리 고기까지 혀를 녹일 맛이라는 경주 한우…. 그것들 중 ‘최고의 소고기’는 뭐였냐고?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러니, 답을 하는 건 잠시 뒤로 미루고. 시계를 뒤로 돌려 조선 시대로 가보자. 500~600년 전엔 소가 농경 사회를 지탱시키는 가장 중요한 아이템 중 하나였다. 사람이 하는 농사일의 열 몫 이상을 소가 해냈다. 그러니, ‘상일꾼 중 상일꾼’인 소를 도살해 먹는다는 건 용서 못할 죄였다. 이른바 우금(牛禁·소 잡는 행위를 금지함)이 생겨난 이유가 있었다. 이를 어기면 식솔 전체를 삭풍 휘몰아치는 함경도나 평안도로 쫓아내는 벌을 내렸으니 그게 전가사변(全家徙邊)이다. 소고기 한 번 구워 먹고 멸문(滅門) 당하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있겠는가? 당연히 없을 터. 조선의 ‘우금’은 1894년 갑오개혁 때까지 지속됐다. 자, 그렇다면 과연 조선 왕조를 통과하는 동안 소를 잡아먹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이는 유치한 질문이다. 당연히 있었다. 어떤 냉혹한 금기도 인간의 욕망을 완벽하게 꺾을 수 없다는 건 주지의 사실. ‘소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조선의 금기에 개의치 않았던 건 왕과 종친(宗親), 정승과 판서, 참판 등 최고위 권력자들이었다. 일례로 김옥균과 홍영식은 으리으리한 아흔아홉 칸 기와집 사랑방에서 화로에 소고기를 구워 먹으며 갑신정변을 모의했다. 젊은 참판 두 사람은 그걸 난로회(暖爐會)라 불렀다. 그들에겐 ‘우금’ 역시 깨뜨려야 할 조선의 적폐 가운데 하나였을까? 이제 경북의 소고기 이야기로 돌아와 앞서 물음에 답하자. 어느 고장의 한우가 가장 맛있었냐고? 의성 한우, 문경 한우, 안동 한우, 경주 한우 모두가 나름 일미였다. 기대한 답을 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누가 있어 감히 구운 소고기 맛의 우열을 명확히 가려낼 것인가? 동해 ‘피문어’ 큰 몸집에 ‘대문어’라 불리기도 유럽·인도 등지선 무서워하며 터부시하지만 연산군의 수라상에도 올려진 ‘별미 중 별미’ 잘 삶은 문어, 소고기나 양고기 부럽지 않아 ▲“42kg짜리 문어를 본 적이 있는데...” 한강 아래에선 가장 큰 수산물 집산지로 지목되는 경상북도 포항 죽도시장엔 문어를 사고팔며 잔뼈가 굵은 50대 중반의 사내 권순찬 씨가 산다. 그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 한 토막. “문어가 커봤자 얼마나 크겠습니까?” 심드렁하게 내가 물었다. “살아있는 걸 본 문어 중 가장 큰 게 42kg 아입니까. 단순히 무게만 들으니 실감이 안 나지예? 그 놈이 8개 다리를 쫙 펴고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으면 6인용 텐트를 펼친 것만 합니더. 내가 겁이 없는 사람인데, 아주 가끔 그런 거물(巨物)이 그물에 걸려 당겨질 때면 두려운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아마 심장 약한 분들은 무서워서 비명을 지를낍니다.” 대한민국. 동해에는 살 색깔이 붉은 피문어가 살고, 남해엔 바닷가 돌 틈에 돌문어가 서식한다. 돌문어가 많이 잡히기에 그것만 먹어본 남쪽 바다 사람들은 동해안 피문어의 크기를 쉽게 짐작하지 못한다. 피문어를 달리 부르는 명칭은 ‘대문어’. 말 그대로 무지막지하게 큰 문어라 그렇다. 앞에 언급한 베테랑 문어장수 권씨는 30kg이 넘어가는 거대한 문어를 드물지 않게 보고 살았다. 어지간한 초등학생 몸무게에 육박하는. 한국에선 문어가 싼값에 자주 맛보는 먹을거리가 아니다. 꽃처럼 예쁜 모양으로 정성스레 삶은 문어가 차례상에 올라가는 명절이 다가오면 가격이 금값은 아니지만, 은값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는다. 시간을 맞춰 잘 삶은 문어는 구수한 향기에 쫄깃한 식감이 소고기나 양고기를 훌쩍 뛰어넘는다. 식혀서 얇게 썰어낸 차가운 문어수육은 미식가들의 고급 술안주로도 손색이 없다. 맞다. 우리나라에선 비싸서 그렇지 없어서 못 먹는 게 문어다. 그런데 재밌다. 문어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나라도 없지 않다. 이건 내가 직접 겪은 체험이라 거짓말이라고 타박 받을 이유가 없다. 인도와 캄보디아가 그런 나라들 중 하나다. 2005년 인도의 바르칼라 해변과 2011년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바닷가. 던져놓은 어부의 그물에 문어가 걸려 올라오면 징그럽다는 듯 재빨리 떼어내 다시 바다로 던져버렸다. 그 광경이 이상스럽고 놀라웠던 내가 물었다. “왜 버려요? 저 맛있는 걸.” 별 해괴한 사람을 다 보겠다는 눈망울로 인도와 캄보디아 어부가 답했다. “야, 너는 크라켄 몰라?” 아... 크라켄. 결국은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 생겨난 어쩔 수 없는 ‘차이’였구나. 비단 문어를 먹는 행위만이 그런 게 아니다. 베트남 여행에서 만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게알을 티스푼으로 맛있게 떠먹는 날 보며 ‘대체 저런 괴이한 걸 왜 먹지’라는 뚱한 표정으로 바라봤으니. 크라켄은 고대 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괴물이다. 끈적이는 8개의 거대한 다리로 범선(帆船)을 휘감아 깊은 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그곳 바다에도 인간의 상상력을 위협하는 커다란 문어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선 몸의 길이가 10m를 넘나드는 문어나 오징어의 사체를 본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거기에다 유럽에선 오래 전부터 문어 같은 두족류를 혐오하고 무서워하는 경향이 강했다. 인도와 캄보디아도 북유럽처럼 바다에 인접한 국가다. 그러니, 누구도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캄캄한 심해, 거기 사는 거대한 문어를 터부시했던 게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공포는 상상력에서 잉태된다. 뭐 그건 어째도 좋다. 한국은 북유럽, 인도, 캄보디아와 달리 문어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그러니, 잘 삶아 큼직한 접시 위에 올린 말랑말랑 쫄깃쫄깃한 문어의 몸통과 머리, 다리를 거부할 이유 또한 없다. 문어는 500년 전 조선시대 때도 고관대작이 즐기던 별미였다. 모친 상실의 콤플렉스를 피와 살점이 튀는 끔찍한 살육으로 되갚음 했던 연산군 이융(李㦕·1476~1506)은 취식 스타일이 독특했는데, 그가 금덩어리처럼 여겼던 게 문어와 사슴 요리였다. 기이하게도 사슴의 혀와 꼬리, 갓 삶아내 당장 꿈틀거릴 듯한 문어를 연산군의 수라상(水剌床) 올렸다는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남아있다. 그렇다. 한국에선 문어의 맛이 왕도 매혹했던 것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6-24

“다방면 융합, 지속적인 삶 영위할 수 있는 도시 꿈꾼다”

민선 8기 3주년을 맞아 대구 수성구는 가치를 키우고 상징성을 입히고 있다. 또 교육은 물론 문화, 경제, 건축, 복지 등 다 방면에서 융합하며 ‘지속적인 삶을 영위하는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본지는 3년간 수성구의 발전상과 향후 과제에 대해서 들어본다. 도심속 힐링공간 ‘수상공연장’ 내년 6월 준공 비수도권 최대 SW·ICT 집적지 ‘수성알파시티’ 군부대 후적지 미래를 이끌 신성장 동력 기대 지역 캐릭터인 ‘뚜비’의 다채로운 활약도 눈길 △수상공연장 설립과 수성유원지의 향후 개발 계획 수성못은 서울 잠실의 석촌호수처럼 사람이 찾는 곳, 즉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이다. 이곳은 자연과 다양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으로 지역민에게는 힐링 공간이기도 하다. 수성구는 지역을 상징하는 장소인 만큼 심혈을 기울여 이곳을 개발 중이다. 수성구가 현재 진행 중인 핵심 사업은 수상공연장 조성과 수성유원지 서편 대상지에 대한 공공사업이다. 수상공연장의 경우 부지를 부분 매입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국농어촌공사와 지난해부터 지속해 협의한 결과이며, 향후 진행 절차를 논의 중이다. 지난 2023년 11월부터 2024년 3월까지 국제지명 설계 공모를 통해 월드클래스 규모의 수성못 수상공연장 설계안을 확보했고,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심의한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해 사업의 필요성 및 타당성을 확보했다. 수성구에 따르면 올 상반기까지 설계 완료 후 7월부터 착공해 2026년 6월 준공할 계획이다. 수성못 서편 수성유원지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도 높다. 현재 수성유원지는 아르떼 수성랜드, 수성파크랜드 등 일부 구간이 도시계획시설(유원지)로 결정(1969년 10월)돼 있다. 수성구는 준공 예정인 수상공연장과 연계해 대구를 대표하는 도심 속 휴식 공간인 수성못을 프리미엄 호텔 등 문화복합시설, 지역의 역사자료를 활용한 역사문화공원 등으로 조성해 수변 친화적인 문화 콤플렉스로 조성할 예정이다. △확대되는 수성구의 축⋯수성알파시티 및 대구대공원 조성사업 추진 수성구의 축도 넓어질 전망이다. 수성알파시티와 대구대공원 조성사업 등 굵직한 사업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수성알파시티는 지난 2024년 6월 기회발전특구로 지정됐으며, 330여 개의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비수도권 최대규모의 SW‧ICT 집적지이다. 특히 AI로봇 글로벌 혁신특구 후보지 선정 등 호재를 기반으로 삼덕동 일원에 2030년까지 제2알파시티 조성도 확정됐다. 오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대구연호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은 연호동과 이천동 일원에 약 90만㎡ 규모로 각종 공공기관(법원, 검찰청 등) 이전과 4개의 저수지(연호지, 연호내지, 이천내지, 당헌지)를 수변공원으로 조성하고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디자인 특화도서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대구대공원 조성사업은 163만㎡ 규모에 동물원, 산림 레포츠 시설 등 공원 시설과 공동주택 3000세대, 공공시설 등을 2027년까지 조성할 예정이다. 수성구는 향후 조성이 완료될 시 정주 여건 개선과 문화예술시설, 종합체육시설, 법률·행정시설 기능이 융합된 복합지구가 형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역 캐릭터 ‘뚜비’의 활약⋯경제생태구조 조성 올해 4월 지역 캐릭터로 자리 잡은 ‘뚜비’의 활약도 매섭다.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아지며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어서다. 수성구는 ‘뚜비’를 지속 가능하게 브랜드화 해나가는 단계별 운영을 계획 중이다. 일본 등 해외 엑스포에 참가해 외국 캐릭터들과 교류하고 인스타그램·유튜브 등 온라인 공간 활성화 및 뚜비 1주년 이벤트 개최, 캐릭터 라이선싱 페어, 찾아가는 뚜비 공연 등 뚜비와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더불어 현 수성못 모티와 할로마켓, 동성로 나그놀에서 판매하고 있는 캐릭터 굿즈를 백화점 팝업 스토어 까지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뚜비 애니메이션, 만화, 노래, 게임, 뮤지컬 등 문화·예술 콘텐츠를 제작했다. 에코 굿즈 제품군도 구성할 방침이다. 주민이 작은 경제에 참여할 기회도 준다. 지역 소상공인·단체·지역주민, 민간에서도 뚜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뚜비의 지식재산권(IP)을 보호하면서 라이선스 사업을 체계적으로 운영해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 △김대권 수성구청장 “무엇보다도 ‘머무는 도시’, ‘목적지가 되는 도시’ 이 2개가 수성구의 비전 목표입니다.” 김대권 수성구청장의 지역에 관한 생각이다. 수성구는 기회발전특구, 교육발전특구, 교육국제화특구, 문화특구에 모두 지정된 것을 계기로 주민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다. 다만 수성구에서 가장 염려하고 대응해야 할 과제를 인구 감소로 김 청장은 내다봤다. 이를 위해서는 ‘옛 방식’을 버리고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청장은 “우리 도시가 가지고 있는 차별화된 측면에서 독점권을 가지고 영역을 구축해 비교 우위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그를 위해선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전제도 깔았다. 김 청장은 “우리 지역의 경우 교육발전특구, 교육국제화특구에 지정된 만큼 교육이 강점”이라며 “강한 교육을 만들어야 지속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명문 도시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새로운 형태의 학교를 유치하고, 이에 맞는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고도 했다. 또 그는 “싱가포르나 네덜란드나 이렇게 적은 도시 국가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은 개방성 때문”이라며 “우리도 시스템 안에 붙잡아 놓은 교육보다는 세계를 받아들이고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관계 기관들의 협조 및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도 했다. 역량이 뛰어난 해외 교사를 초청해 교육 관계자도 배움을 얻고, 지속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성구가 도입한 운영 철학은 비단 교육만이 아니다. 문화·자연·건축 등 다양한 방면에서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사람이 살아가는 삶에 철학을 입혔다. 차 문화 기반에 명상 프로그램, 새로운 유학의 해석을 도입한 정신수양관, 생명과학을 체험할 수 있는 생태계획관 등을 통해 사람의 근본적인 ‘사유’를 넓히는 것이 미래 세대를 대비하는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간송미술관 개관 등이 ‘머무는 도시’로 가는 길의 첫 열쇠라는 생각도 전했다. 실제로 간송미술관을 계기로 여행 상품도 만들고 있으며, 향후 미디어아트 센터 등에 대한 구축까지 청사진으로 내놨다. 김 청장은 “우리가 문화도시로 가려는 이유는 결국 사람이 몰리는 지역을 만들기 위함”이라며 “이곳이 목적지가 돼서 대구에 2박 3일 정도 머물러도 볼 게 있고, 할 게 많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의 경제도 선순환되고 지역민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의 요구 사항에 대해서도 입장을 내놨다. 최근 이슈인 대구도시철도4호선 역사와 관련된 사항이다. 주민은 4호선 설계 시 도심항공교통(UAM) 이착륙장을 포함한 복합역사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승 시스템이 지상에 위치할 때 2개 철로선(AGT-모노레일 평면환승) 설치로 인해 지상 공간을 대부분 차지하게 되므로 일조 침해 및 도시미관이 크게 저하해서다. 이에 대해 김대권 수성구청장은 “도시철도 시설은 건설 후 개선·수정의 현실적 제약이 상당하므로 충분한 검토 후 최적의 방안 마련을 촉구한다”면서 “현행 추진 방식을 유지할 경우 도시철도 4호선 역사 상부를 활용한 도심항공교통(UAM) 버티스탑 설계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5-06-24

경북 기업·공공기관 ‘협치의 힘’으로 약자 위한 촘촘한 ‘복지그물’ 만든다

지역사회와 상생하며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려는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중이다. 그 중심에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지역사회공헌 인정제’가 있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기업과 기관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고 그 성과를 인정하는 이 제도는 단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넘어 지역과의 실질적 연대를 구축하는 기반 역할을 한다. 특히 경상북도는 공공기관, 민간기업, 금융기관 등 다양한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복지를 증진시키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도내에서의 지역사회 공헌 인정제 승인 추세는 눈부시게 증가하면서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경상북도환경연수원 ‘공감환경교육’ 구미도시公 ‘찾아가는 환경과학교실’ 영천시시설관리公 이웃돌봄 봉사 등 환경·교육·복지·안전 등 다방면 활동 2019년에는 단 6개소에 불과했던 승인 기관 수는 2020년에 7개로 소폭 증가했으며, 이후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14개소로 두 배나 늘어났다. 2023년에는 동일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2024년에는 대폭 증가해 총 35개 사가 지역사회 공헌 인정제를 획득하게 됐다. 이러한 급격한 증가는 경북 지역 내 기업과 공공기관의 사회공헌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특히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해 주민들 삶의 질 향상과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하는 활동들이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경북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노력의 결실로 평가될 수 있는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숫자의 증가를 넘어, 지역사회의 진정한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환경복지 구현을 통한 도민 행복시대 전개’를 목표로 하는 (재)경상북도환경연수원은 환경교육을 통해 취약계층의 삶에 따뜻한 변화를 불어넣고 있다. 원예치료, 업사이클링, 향기 테라피 등 자연친화적 체험으로 구성된 ‘공감환경교육’은 다문화 가정, 장애인 청소년, 소외계층에게 신체적·심리적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교육청, 다문화가족센터 등과의 협업을 통해 접근성이 낮은 계층에게 환경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교육 대상자의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 운영으로 환경 인식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숲속 오감 체험부터 친환경 생활 실천까지, 이론과 체험이 결합된 교육은 ‘탄소중립 실천’이라는 국가적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구미도시공사는 ‘같이 Plus+’ 사회공헌 브랜드 아래 지역사회 맞춤형 인재 양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중 대표 프로그램인 ‘찾아가는 환경과학교실’은 관내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하수처리 원리와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교육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이다. 현미경 관찰, 업사이클링, 환경 분석 시험 등 다양한 실습과 함께 정규 수업 외 체험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며, 초등학생의 생태 감수성과 실천 의지를 높이고 있다. 특히 경북구미교육지원청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관내 전체 초등학교로 교육을 확장하며, 환경교육의 접근성을 높이고 공사의 ESG 경영 실천에도 기여하고 있다. 영천시시설관리공단은 ‘ESG 경영’을 지역사회와 함께 실천하기 위해 ‘영천시소 실무협의체’를 구성했다. 영천시 3개 부서와 자원봉사센터, 장애인복지관 등 5개 유관기관과 협력해 아동, 장애인, 노인 대상의 다각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홀로 노인에게 찾아가는 밥상 지원, 주거환경 개선 봉사, 장애인 대상 IT 활용 교육, 다문화 가정 아동 대상 체험 활동 등 다양한 실천으로 지역사회의 돌봄 사각지대를 메우고 있다. 전 직원이 참여하는 이 활동은 연간 수백 시간의 봉사로 이어지며,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과 ISO26000 최고 등급 획득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들 외에도 경상북도는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금융기관 등 다양한 주체들이 지역사회공헌 인정제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환경, 교육, 복지, 안전 등 다방면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지역과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경북에서는 한국전력공사 경북본부, 국립해양과학관, 한국수력원자력(주), 포스코스틸리온(주), 한국교통안전공단, (주)포스코이앤씨, 한국전력기술, (주)영신관광, 예성신협, 경상북도장애인체육회, 포항시시설관리공단, 영천시시설관리공단, 안동시시설관리공단,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재)경상북도환경연수원, 이비덴그라파이트코리아, 한국국학진흥원, (주)포스코디엑스, 경상북도개발공사, 포스코퓨처엠, 경상북도호국보훈재단, 포스코엠텍, LG이노텍 구미사업장, 한국도로공사, 대경신협, 김천신협,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주)엘비루셈, 경일신협, 김천시시설관리공단, 경주새마을금고, 포스코휴먼스, 경북신용보증재단, 경주시시설관리공단, 구미도시공사 등 35개 기관 및 기업들이 지역사회와 밀접한 신뢰를 쌓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성이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은 “지역사회공헌 인정제는 단지 제도적 ‘인정’을 넘어, 공공기관과 기업이 지역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단순한 사회공헌을 넘어 지역이 정말 필요로 하고 필요한 곳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며 “이들이 실천하는 가치들은 곧 지역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토대가 된다. 앞으로도 경상북도 내 더 많은 기업과 기관들이 이 흐름에 동참해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지속가능 경북’의 모습을 완성해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역사회공헌인정제’란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 속에서 기업과 기관의 사회적 책임이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회장 김성이)는 보건복지부(장관 조규홍)와 함께 2019년부터 지역사회공헌인정제를 도입해 지역사회 발전과 주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을 발굴하고 인정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지역사회공헌인정제는 비영리단체와 협력해 지역사회 공헌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친 기업과 기관의 노력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관점에서 평가하고, 엄격한 심사를 통해 그 공로를 인정한다. 선정된 기업과 기관에는 보건복지부장관 표창과 상이 수여되며, 이는 단순한 사회공헌 평가를 넘어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한다. 참여를 원하는 공공기관, 민간기업, 기타 단체들은 온라인 플랫폼(http://crckorea.kr/csrcommunity)을 통해 매년 7월 1일부터 8월 14일까지 신청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조직의 사회공헌 수준을 진단받고 건강한 사회공헌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6-23

‘하운드유스호스텔’ 경주 관광의 새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것

천년고도의 역사와 문화, 빼어난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경주시는 오랜 시간 한국 관광의 중심지로 사랑받아 왔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광 산업 전반에 새로운 변화와 도전이 닥치며 경주는 다시금 지역 관광산업의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 가운데 자동차 부품 제조업을 중심으로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온 대승그룹 백승엽회장이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경주 지역 관광 레저 산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목받고 있다. 그는 고향 불국사를 황리단길에 버금가는 불리단길의 명소를 만들기 위해 먼저 오는 2025년 9월,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인근에 고급 유스호스텔 ‘하운드유스호스텔’을 오픈하며 레저 산업에 본격 진출한다. 대승그룹의 ‘하운드유스호스텔’은 경주의 전통미와 현대적 편의성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레저 신운(新雲)으로, 경주 관광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미래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전망이다. 2012년 창립 이후 자동차 부품 제조분야서 탄탄한 성장세이어와 2020년대 들어서 관광산업 진출 모색, 호텔·레저 분야 집중 투자 불국사 인근에 ‘하운드유스호스텔’ 건립, 프리미엄 숙박 공간 조성 “지역과 상생” 장애인·아동 등 소외계층 위한 나눔 활동도 펼쳐   □ 제조업 강자에서 관광·레저 기업으로 대승그룹은 2012년 대승㈜ 설립 이후 꾸준히 자동차 부품 제조 분야에서 성과를 쌓아 왔다. 디에스코리아㈜와 디에스글로벌㈜, ㈜건우금속 등 여러 계열사를 보유하며 국내외 자동차 부품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아왔다. 특히 지속적인 기술 투자와 품질 관리에 힘쓰며 ‘제조업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관광산업의 성장 가능성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승그룹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 성장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분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한다. 대승그룹 백승엽 회장은 “기업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고객의 요구에 발맞춰야 한다”면서 “경주의 풍부한 관광 자원을 기반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고자 호텔·레저 분야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 ‘하운드유스호스텔’ - 경주 관광의 새로운 랜드마크 ‘하운드유스호스텔’은 기존 유스호스텔 건물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해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프리미엄 숙박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경주의 고유한 전통미를 살리는 동시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인테리어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총 50객실로 구성된 이 호스텔은 스탠다드, 디럭스, 프리미엄 객실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스위트룸까지 준비해 다양한 고객층의 수요에 대응한다. 특히 각 객실에 설치된 대형 창문을 통해 사계절 내내 불국사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점이 큰 매력으로 꼽힌다. 또한, 투숙객 전용 프라이빗 스파, 수영장, 피트니스 공간(러닝머신 및 요가룸), 넓은 주차시설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춰 고객 편의와 만족도를 극대화했다. 이처럼 하운드유스호스텔은 ‘숙박’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체류형 관광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 뛰어난 입지와 접근성… 관광 허브 역할 기대 하운드유스호스텔이 위치한 경주시 진현동은 불국사와 도보로 10분 거리에 불과해 역사 문화 관광의 중심지로서 큰 강점을 지닌다. 불국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국내외 관광객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대표 명소다. 이뿐만 아니라, SNS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토함산과 감포 바닷가, 천년숲정원, 풍력발전소 등 경주권 내 주요 관광지와도 차량으로 20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뛰어난 접근성을 갖췄다. 이는 가족 단위 관광객, 중장년층, MZ세대 등 다양한 연령층과 취향을 가진 관광객 모두에게 편리함을 제공한다.   □ 지역경제 활성화와 시너지 효과 기대 대승그룹의 레저 사업 진출은 경주 지역 관광산업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숙박 인프라 확충은 관광객 체류 기간을 늘리고, 지역 내 소비 증대로 이어져 소상공인과 관련 산업 활성화에 기여한다. 또한, 호텔 운영에 따른 고용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지역 인재 채용과 함께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한 전문 인력 양성도 병행해 장기적으로 관광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할 방침이다. 대승그룹 관계자는 “제조업에서 쌓은 체계적인 경영 노하우와 기술력을 토대로 관광과 레저 분야에서도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며 “하운드유스호스텔이 경주 관광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경주 관광산업에 부는 새로운 바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주는 비대면 관광과 체험형 레저 산업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변화를 맞았다. 대승그룹의 하운드유스호스텔 오픈은 이러한 변화에 발맞춘 신호탄이다. 전통문화와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체류형 숙박시설은 관광객들의 새로운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경주시는 향후 다양한 관광 인프라와 연계해 국내외 관광객 유치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 미래를 향한 도전과 혁신 대승그룹은 단순히 사업 다각화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책임 경영’에도 힘쓰고 있다. 지역 자원을 활용한 관광 상품 개발, 지역 주민 참여 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경주 관광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승그룹은 그간 끊임없는 기술 혁신과 품질 개선에 집중해 국내외 완성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왔다. 특히 글로벌 수요에 부합하는 정밀 가공 기술과 품질관리 시스템을 앞세워, 중견기업 이상의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이러한 성장은 백승엽 회장의 ‘사람 중심’ 경영 철학과 현장 중심의 소통 리더십이 바탕이 되었다. 백 회장은 “회사의 성장은 직원들과 함께 이룬 결과”라며 구성원과의 신뢰를 강조해왔다. 실제로 대승그룹은 젊은 기술 인력을 적극 육성하고, 지역 청년 고용에도 앞장서며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대승그룹의 사회적 책임 활동도 눈길을 끈다. 백 회장은 장애인 복지, 아동 지원 등 지역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나눔 활동을 실천해 왔으며, 이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꾸준히 확장해 나가고 있다.   대승그룹의 행보는 ‘기업가 정신’과 ‘지역 상생’,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전’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백승엽 회장은 “기업은 지역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며 “하운드유스호스텔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관광 경쟁력 강화를 이끄는 신성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2025-06-23

바닷바람이 만드는 ‘해풍국수’… “북동풍 불어야 면발 쫀득”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한 골목에는 바닷바람이 소금기 섞인 냄새를 안고 들어온다. 매일 오전 5시 50분, 마을 끝자락 오래된 국수 공장의 문이 천천히 열린다. 온밤 숙성된 반죽을 다시 꺼내 마당에 널어야 할 시간. ‘해풍국수’ 이순화 장인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내가 올해 여든셋이요. 스물아홉살부터 국수를 만들었으니까 벌써 몇해째인지도 가물가물할 때가 됐네요” 장인은 나이를 셈하듯 덤덤하게 말했다. 공군에서 제대한 남편과 결혼하고 그 길로 국수를 시작했다. 처음엔 매일이 전쟁이었다. 국수를 널어두면 바닷물이 들이쳐 반죽이 바닥에 퍼졌고 면발이 마당 끝까지 쓸려가던 날에는 장사를 접어야 했다. 그 시절 이 좁은 골목길엔 국숫집이 일곱이나 있었다. 포항 구룡포서 스물아홉에 국수 만들기 시작… 처음엔 힘든 날의 연속 최소 2~3일 바람에 자연 건조… 덜 말리면 퍼지고, 너무 말리면 끊어져 아들 하동대 씨, 고향으로 돌아와 ‘감각’ 더한 전통 방식 국수공장 운영 어머니 손맛 전국서 인기… 국수 맛에 반한 손님 90% 이상 주문으로 “나는 제일 늦게 시작했지. 기술도 없고, 장사도 처음이고. 그래도 기술자 붙여서 2년을 배웠어.” 어렵게 익힌 손기술. 남편은 술을 좋아했고 살림은 가벼울 날이 없었지만 그래도 국수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의 해풍국수가 만들어졌다. 이 집 국수 맛은 바람에서 온다. 북동풍이 불어야 면이 곱고 탄력이 생긴다. 구룡포 앞바다에서 육지로 불어오는 해풍은 생면을 국수로 바꾸는 결정적인 재료다. “옛날엔 바람 이름도 따로 있었어요. 샛바람, 칼바람, 하늬바람… 북동풍이 제일 곱게 면발을 말려요. 다른 바람이 불면 국수가 꾸글꾸글해져.” 장인은 지금도 새벽 4시면 국수공장 기계실 문을 연다. 반죽은 하루를 자고 나와야 한다. 아침 8시 반쯤 생면을 널고 오후 2시에 재단을 한다. 모든 공정은 바람과 온도, 습도를 살펴 가며 맞춘다. “국수는 잘 말려야 해요. 덜 말리면 퍼지고 너무 말리면 끊어져요” 그래서 해풍국수는 하루 만에 만들 수 없다. 대형 공장처럼 열풍기로 뽑아낼 수도 있지만 장인은 “그건 국수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면은 반나절 반건조 후 다시 창고에서 하룻밤 이상 숙성시키고 최소 이틀은 바람에 말려야 한다. 장인의 방식은 느리고 번거롭다. 그래서 정직하다. 지금은 아들 하동대씨가 공장을 함께 운영한다. 그는 현대·기아차에서 20년 넘게 일한 뒤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릴 적엔 그저 엄마가 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달랐다”고 했다. “이건 단순한 일이 아니에요. 계절마다 바뀌고 반죽도 다 달라요. 엄마는 손으로 알아요. 온도계 보다 빠르죠.” 아들은 일부 기계를 도입해 효율을 높였다. 하지만 본질적인 공정은 어머니가 하던 그대로다. 창문을 여닫아 바람을 조절하고, 밤에는 창고에서 숙성시키고, 마감 땐 손으로 반죽을 눌러보며 국수의 익힘정도를 가늠한다. “바쁘다고 생략할 수 있는 공정은 하나도 없어요.” 그는 어머니의 방식이 ‘기술’이 아니라 ‘감각’이라고 말한다. 아들도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감각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기계를 더 들여야 할까. 하지만 그는 결국 어머니의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가장 오래가는 건 결국 사람 손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는 장인이라는 말 대신 ‘습관’이라는 단어를 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들을 반복해온 사람, 그 반복 속에서 터득한 섬세함, 그게 어머니의 진짜 기술이라는 것이다. “엄마는 손에 반죽을 딱 쥐어보고 ‘오늘 밀가루가 좋다’거나 ‘어제보다 물을 조금 줄여야겠다’고 말해요. 그런데 그 말이 꼭 맞아요. 과학도, 공식도 아니에요. 몸이 아는 거죠.” 이 집 국수는 전국 각지로 나간다. 과메기를 사러 왔다가 국수를 맛본 관광객들이 집에 돌아가 택배를 주문하고 그중 90% 이상이 다시 국수를 찾는다. 어느 날은 서울에서 온 부부가 손 편지를 보내왔다. ‘이 국수는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 한 줄에 장인은 한참 동안 면발을 바라봤다. “국수를 누가 그렇게 좋게 봐줄 줄 몰랐지요.” 단골도 있다. 아이 때 먹고 자라 어른이 돼 다시 오는 손님, 부모 따라왔다가 혼자 주문하는 손님, 그런 손님 하나하나가 장인에게는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기운’이었다. 하지만 해풍국수에는 방송 출연을 알리는 사진도, 버젓이 내건 ‘자랑 현수막’도 없다. 100번 넘게 TV에 나왔지만 가게 벽은 텅 비어 있다. “방송 나왔다고 도배하듯 붙이는 집도 있잖아요. 나는 그런 거 안 해요. 맛있다고 다시 오는 손님이 제일 고맙지.” 그의 철학은 분명하다. 음식은 사람이 먹는 것이고, 맛은 말이 아니라 혀로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국수 공장도 여러 곳 다녀봤다. 부산 구포, 고령, 전남 광양 등 이름난 곳도 둘러봤다. 창도 없는 공장에서 열풍으로 하루 만에 면을 말린다는 설명을 듣고 그는 조용히 돌아섰다. “그렇게 만들면 면이 퍼져요. 맛이 없어요.” 장인은 여전히 전통 방식대로 창문을 여닫고 바람을 맞으며 국수를 만든다. 비가 오면 3일, 맑으면 이틀. 날마다 다르다. 왜 하필 구룡포였을까. “나는 태어나 보니 집이 국수 공장이었어요. 그냥 하던 거지요. 근데 가만 보면 이탈리아든 일본이든, 국수 잘 만드는 데는 다 바닷가더라고요.” 구룡포는 그에게 뿌리이자 재료다. 바람, 습도, 기온. 그 모든 것이 이 집 국수의 구성 요소다. 같은 반죽도 계절 따라 달라지고, 창문 여닫는 것 하나로도 맛이 달라진다. 국수는 그에게 생업이자 삶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식들에게 “이어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왔다. “내 자식이 안 하더라도 괜찮아요. 지금 이 국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맙지요.” 장인의 하루는 철저히 바람과의 약속으로 움직인다. 해가 뜨기 전, 새벽 공기를 가르며 공장 문을 열고 기계실에 들어서면 바닥에 습기가 얼마나 올랐는지 반죽의 상태는 어떤지 눈으로 보고 손으로 확인한다. 면을 뽑는 작업도 결코 단순하지 않다. 국산 밀은 풍미가 좋은 대신 점성이 약해 끊기기 쉬워 적절히 배합해야 쫄깃한 식감이 나온다. 염도와 수분 함량도 매번 확인해야 한다. 기계를 돌리기 전에 장인은 꼭 한 번 손으로 직접 반죽을 치댄다. 손끝으로 눌러보며 오늘 면이 잘 뽑힐지 미리 점치는 것이다. 하동대 씨는 이 과정을 처음엔 비효율적으로 여겼다. 하 씨는 “기계로 맞추면 되지 왜 굳이 손으로 또 만질까” 싶었다. 하지만 그 손의 감각이 어느 날 확연히 느껴졌다. 바람이 건조했던 어느 날 자동 조절된 습도는 정상이었지만 국수는 푸석하게 마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날 생면을 널지 않고 기다렸다. “오늘은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치보다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이더라고요.” 단골 손님들 중에는 국수를 ‘계절 음식’ 처럼 여기는 이들도 있다. 여름에는 덜 말리고, 겨울에는 더 오랫동안 바람을 맞힌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순화 장인은 요즘도 국수를 널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오늘 바람이 살살 도네.” 그 말 한마디에 하루치 국수의 표정이 결정된다. “국수는 성질이 있어요. 잘 마를 놈, 안 마를 놈, 꾸불꾸불해지는 놈. 다 달라요.” 국수 한 가닥이 쫄깃하게 익는 동안 그 속엔 바람과 시간, 사람 손의 감각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그건 구룡포 해풍이 이순화 장인의 손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주는 맛이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5-06-23

경주, 세계와의 새로운 연결을 시작하다

오는 10월 말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주 무대가 된다. 한반도 역사의 중심이었던 경주는 이제 국제외교의 중심지로 도약할 전환점에 서 있다. 세계 21개국의 정상과 경제 수장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회의는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경주의 위상과 미래 비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 국회의원과 정부 고위 관료들이 잇따라 경주를 방문해 현장을 점검하고 시민들과 소통에 나서는 등 국가적 관심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편집자 주> 亞太 주요국 정상•언론•경제 대표 등 2만 여 명 방문 “첫인상이 도시이미지 좌우한다” 환경정비 총력전 황룡사9층목탑 디지털 콘텐츠•첨성대 라이트업 등 신라 문화 현대적으로 해석한 다양한 콘텐츠 마련 보문단지 일원 ‘국제행사 복합지구 지정’ 함께 추진 일회성 아닌 지속가능한 관광도시 도약 기회로 삼아 □ 국제도시 경주, 세계 외교의 심장으로 경주시는 2021년 7월, 전국 최초로 2025년 APEC 정상회의 유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어 지난해 6월, 외교부 APEC 정상회의 준비위원회가 공모한 개최지 모집에 응모했고, 인천과 제주 등 경쟁 도시들과의 치열한 경합 끝에 같은 해 7월, 최종 개최지로 확정됐다. 이로써 경주는 천년 고도의 위상을 넘어 국제회의 도시로 도약하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APEC 주요 회의는 보문관광단지 내 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릴 예정이다. 경주시는 이를 계기로 국제회의 복합지구 지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유엔 기후총회 등 대형 국제행사 유치를 위한 기반도 함께 마련하고 있다. 정상회의에는 미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국 정상과 장관급 인사, 언론, 경제계 대표단 등 약 2만 여 명이 경주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경주시는 관광, 숙박, 교통, 치안, 의료 등 도시 전반에 걸친 인프라 정비와 종합적인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4년 11월 28일, 국회는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경주시 명칭이 명시된 최초의 특별법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및 인력 지원, 행사 기반시설 확충, 기념우표·기념주화 발행 등을 법적으로 뒷받침한다. 아울러 중앙 정부 차원의 준비위원회 설치도 명문화됐으며, 이 법률은 2026년 6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효력을 가진다. □ 도시 전역이 변신 중… 환대와 품격으로 경주시는 2025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기반시설 정비에 총 336억 원을 투입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부로부터 135억 원의 국비를 추가 확보했다. 현재 보문관광단지, 경주역, 경주IC 등 주요 진입로와 회의 동선을 중심으로 도로 포장, 교통섬 정비, 가드레일 교체, 가로등 개선 등 도로환경 정비가 한창이다. 불국사, 경주IC 방면 등 5개 주요 노선에는 총 247억 원이 투입되며, 이 가운데 보문관광단지에는 110억 원을 들여 음악분수광장과 산책로 정비, 미디어파사드 설치, 야간 경관조명 강화 등 품격 있는 경관 조성 사업이 진행 중이다. 주요 진입로 주변의 노후 주택 및 담장 정비도 함께 추진된다. 울산·포항·경주IC 방면 도로변 노후 건축물과 담장 25곳에는 경주의 전통미와 현대적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는 경관 디자인이 적용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시는 지난 2023년 12월, 노선별 사전 조사를 마친 바 있다. 경주시는 “첫인상이 도시의 이미지를 좌우한다”는 인식 아래, 전 세계에서 찾는 정상급 손님들을 맞이할 도시 품격 제고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렇듯 경주시는 도시 환경과 이미지 또한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경쟁력임을 강조하고 있다. □ 신라 천년의 문화로 여는 세계의 관문 경주시는 이번 APEC 정상회의를 통해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황룡사 9층 목탑 디지털 복원 콘텐츠, 동궁과 월지 미디어파사드 쇼, 첨성대 라이트업, 신라복 체험, 국악 공연 등 신라 천년의 역사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정상 배우자들을 위한 전통문화 체험 코스와 유적지 탐방 프로그램도 기획됐다. 보문호 둘레길 산책, 월정교 야경, 대릉원 별빛투어 등을 통해 경주의 고즈넉한 정취를 각국에 소개할 방침이다. 관광 앱 ‘경주로ON’을 활용한 스탬프 투어, 경품 이벤트, 지역 상생 마켓도 함께 운영돼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 분위기를 조성한다. 문화예술 도시로서의 위상 강화를 위한 대형 문화행사도 진행된다. 외교부는 지난 5월, 공연 연출가 양정웅 씨를 문화공연 총감독으로 위촉했으며, 신라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개폐회식 공연과 정상 배우자 초청 프로그램 등을 준비 중이다. 한국방송공사(KBS)는 주관방송사로 선정돼 중계와 미디어 대응을 맡으며, 국내외 언론 취재를 위한 전용 미디어 인프라도 구축된다. 이로써 경주는 단순한 개최지를 넘어, 대한민국 문화 콘텐츠를 발신하는 중심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정상회의를 앞두고 진행되는 리허설과 예행연습에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행사에 대한 공감대와 자긍심을 함께 키워가고 있다. 아울러 경주시는 매월 넷째 주 수요일을 ‘APEC 클린데이’로 지정하고, 민관이 함께하는 손님맞이 운동을 펼치고 있다. 웃는 얼굴로 인사하기, 내 집 앞 정돈하기, 꽃 화분 놓기 등 ‘시민과 함께하는 10대 실천과제’를 추진하며 환대와 품격이 살아있는 도시 분위기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APEC 그 이후를 준비하는 경주 경주시는 이번 APEC 정상회의를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도시 전환의 결정적 기회로 삼고 있다. 시는 보문관광단지 일원을 국제행사 복합지구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향후 유엔 기후총회, 글로벌 문화포럼 등 다양한 국제행사를 유치하기 위한 전담 기구 설치도 검토하고 있다. 감포항, 양남 주상절리, 문무대왕릉 등 해양·자연 관광자원과 황리단길, 교촌마을, 월성, 대릉원 등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한 ‘글로벌 관광벨트’ 조성도 본격화되고 있다. 이를 통해 경주는 내·외국인이 고루 찾는 지속 가능한 관광도시이자, 친환경 스마트 국제도시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민간 투자 유치를 통한 고급 숙박시설 확충, 복합 쇼핑몰 개발, 대중교통 정비, 통합 관광플랫폼 구축 등 도시 전반의 경쟁력 제고 전략도 함께 추진 중이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2025년 APEC 정상회의는 경주가 세계와 본격적으로 연결되는 역사적인 계기”라며 “천년 고도의 품격과 매력을 세계에 알리고, 이를 토대로 다음 1,000년을 준비하는 도시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5년 APEC 정상회의는 경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교차하는 역사적 전환점이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경주는 이제, 세계를 향한 힘찬 도약을 시작한다. /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2025-06-22

[창간 35 특집] 온전히 연결된 동해선, 남은 문제는 ‘관광 인프라’ 만들기

지난 시절 철도는 물류 운송의 동맥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세상과 시대가 달라졌다. 운송 수단과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이제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는 보고 싶은 관광지, 즐기고 싶은 여행지를 잇는 역할에 더 큰 방점이 찍히고 있다. 지난 1월. 부산-울산-경북-강원을 잇는 동해선(東海線)이 완전 개통됐다. 향후 이 철로가 지나는 도시에 적지 않은 관광객이 찾아들 터. 본지는 울산매일, 강원도민일보와 함께 ‘동해선 K관광의 미래-로컬 매력을 잇다’라는 주제 아래 많은 것이 바뀌게 될 동해안 철도여행 트렌드를 취재·분석·예측해 보도할 예정이다. 오늘 게재된 기사는 그 기획연재의 프롤로그 격이다. / 편집자 주 1900년 대 초반 일본 ‘식민지 수탈’ 목적으로 건설 해방 후 일부 구간만 북부선·남부선 나눠 운영하다 올해 포항~삼척 18개 역 잇는 ‘중부선 166.3㎞’ 개통 첫달에만 18만명 이용… 울진·영덕 관광시장 ‘단비’ 전문가·상인들 “완전 개통된다면 지역경제 큰 호재” 동해선 철도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이전,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해선의 역사엔 유구함과 동시에 슬픔이 촘촘하게 서려있다. 사실 1900년대 초반엔 동해선을 포함한 한국 철도 대부분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 수월성’을 목적으로 건설됐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학자들과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동해선의 역사와 역할, 구체적 건설 과정 등을 설명하고 있는 각종 문헌과 자료를 종합한 ‘위키백과’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동해선은 초창기엔 사립철도였던 조선철도 경동선이라는 이름으로 1910년대부터 일부 구간이 운영에 들어갔다. 1920년대 조선총독부의 간선철도 부설안에 포함되면서 동해선 구간 공사가 시작됐으나,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면서 동해선 전체 노선 중 일부 구간만이 동해북부선과 동해남부선으로 나눠 운영됐다....(중략) 1945년 해방 이후 동해선을 이으려는 노력은 계속됐고, 그 결과 1970년대 부산진역과 포항역을 잇는 동해남부선이 개통됐다. 2000년대엔 단절된 동해선 북한 구간을 연결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마침내 2016년에는 동해선 광역전철이 개통됐고, 2021년엔 태화강역까지 동해선 광역전철이 연장됐다. 연이어 2018년엔 부분적으로 영덕역까지 이어졌으며, 2025년 1월 1일 마침내 영덕역-삼척역 노선이 개통됐다.” 지난 1월 이후 완전 개통된 동해선의 인기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포항을 출발해 영덕, 후포, 고래불, 울진 등 18개 역을 거쳐 삼척에 가닿는 166.3㎞의 동해중부선 철길 위로 개통 첫 달에만 18만 명의 이용객들이 몰렸다. 기차는 1일 8편 운행이 정해져 있는데, 하루에 6천 명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타려했다. 그러니 주말엔 기차 예매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상황까지 발행했다. “운행 열차를 증편하라”는 이용객들의 요구가 이어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전문가·상인 입 모아 “동해선 개통, 지역 관광산업에 긍정 영향” 동해선 철길이 지나는 울진과 영덕은 지난 3월 대폭 늘어난 봄맞이 관광객의 숫자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지역 경제에 긍정적 효과가 미친 것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울진군과 영덕군은 공히 대게가 맛있기로 유명한 지역. 그곳에서 20년 이상 식당을 운영해온 한 상인은 “동해선 철도 연결이 아들보다 더 큰 효자 노릇을 했다”며 웃었다. 두루뭉술한 상인의 말만이 아니다. 전문가 역시 동해선 개통이 가져온 긍정적 효과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아래는 한국교통연구원 철도교통연구본부 부연구위원 김경택의 논문 ‘동해선 교통의 영향과 교통 정책’의 일부다. “2025년 1월 1일 동해선 포항-삼척 구간이 정식으로 개통되면서, 부전역, 울산역, 동대구역 등에서 포항을 거쳐 동해안을 따라 강릉까지 철도여행이 가능하게 됐다. 이번에 개통한 동해선 구간 중 포항-영덕 구간은 2018년 1월에 이미 개통됐으나, 무궁화 열차의 폐차와 동해선 전철화사업 지연으로 잠시 열차 운행이 중지됐다. 이번에 전철화 사업이 끝나면서 이제 ITX-마음과 누리로 열차를 통해 기차 안에서 동해안을 바라보는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해선의 하루 평균 이용자 수는 6045명, 개통 이후 한 달 동안 누적 이용객은 18만 명을 달성했다. 실제 관광객들이 집중되는 기간(금~일) 동안 부전역과 동대구역에서 강릉역으로 가는 누리로와 ITX-마음은 열차 매진으로 인해 표가 부족한 실정이다.” ▲관광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본지가 위치한 포항시의 관광산업 관계자와 지역 상인들도 동해선 철도 완전 개통이 가져올 경제적 긍정 효과에 대한 기대가 크다. 포항은 경상북도 동해안 최대 도시인 동시에 적지 않은 관광 명소를 지녔지만, 외지인들의 인식 속에선 아직 ‘회색빛 공업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까닭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푸른 동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스페이스 워크의 위용과 내연산 푸른 숲의 맑은 공기, 비학산 자연휴양림이 선물하는 편안함을 느껴보며 포항의 진면목을 확인하길 원하고 있다. 바로 그게 ‘문화와 관광을 매개로 하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 가닿는 길이다. 바로 그 길을 동해선 개통이 탄탄하게 닦았다고 표현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앞서 철도를 통한 여행이 보편화된 나라다. 일본 역시 우리처럼 급격한 지역 소멸과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다. 일본 철도는 이러한 난제를 푸는데 어떤 도움을 주고 있을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8일부터 16일까지 일본 현지 취재를 진행했다. 벤치마킹의 대상과 반면교사(反面敎師)해야 할 것들을 두루 살폈다. 오는 7월 첫 주부터 이어질 연재기사를 통해 동해선의 미래를 그려보고, K관광의 성공 열쇠를 찾아가려 한다. 독자들의 애정 어린 질책과 성원을 기대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6-22

뇌혈관 전문병원들, 의정 갈등 속 의료전달체계 중추적 역할

보건복지부는 2005년부터 두차례 전문병원 시범 사업을 진행한 후 2011년부터 전문병원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이 제도는 특정 진료 과목이나 특정 질환에 대한 난도 높은 의료 행위를 하는 병원을 3년마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를 통해 의료의 질을 향상하고, 환자들에게는 더 나은 치료와 효율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이다. 특히 보건복지부 전문병원 중 뇌혈관 전문병원은 최근 1년간 의료계에서 큰 두각을 나타냈다. 2024년 정부와 의료계 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의료계의 큰 혼란이 일어났고, 그 영향으로 여러 병원에서 전공의 집단사직이 발생하며 수술과 진료에 큰 차질이 생겼다. 이같은 상황에서 전국 4곳의 뇌혈관 전문병원들은 어려운 시기에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에스포항병원, 명지성모병원, 대구굿모닝병원, 청주효성병원 등 전국 4곳 뇌혈관 전문병원은 각 병원 소재지 지역은 물론 그 이상의 권역에서 발생하는 환자까지 도맡았다. 이들 병원은 지난 1년간 발생한 뇌혈관 질환 환자들을 대상으로 치료 공백을 메웠고, 보건복지부가 내세운 전문병원 역할과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는 방법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전문병원이 의료 이용 격차 해소와 대형 병원 쏠림 완화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 가려진 현실적인 문제점도 함께 나타났다. 최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마련한 미디어아카데미 강연에서 김문철 에스포항병원 대표병원장은 이 부분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필수 의료 공백이 심화하고, 대형 병원에 환자들이 집중되는 현상이 악화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전문병원의 활용이 적절히 돼야 하지만 현행 정부 정책, 규정 및 평가에서는 의료 수요 흐름과 분야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불리한 기준들이 너무 안타깝다”며 이를 다시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환자들을 최종 치료할 수 있는 뇌혈관 전문병원이 주변에 있지만, 응급 119 후송 규정은 행정적인 구획과 지역 응급의료기관이라는 현실 반영이 되지 않은 문제가 드러났다. 이때문에 환자들이 거리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에서는 혈전 등으로 뇌세포가 죽는 뇌경색으로 연간 60만 명이 병원을 찾는다. 이들 중 골든타임 내 병원에 찾은 뇌경색 환자는 26.2%(22년 기준)에 불과하다. 이같은 현상은 119 후송 규정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초래한다. 뇌졸중 치료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과거에 비해 크게 확산하는 상황에서 환자 후송 규정이 현재의 의료 환경에 맞지 않게 설계된 바람에 환자들은 적기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결국 생명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는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인 초고령화 진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속에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신속한 치료가 중요한 뇌졸중 환자들에게는 119 후송 규정이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 뿐만 아니라 전문병원은 실제 평가 분야에서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의료의 질 평가 지원금은 뇌졸중 치료에 특화된 뇌혈관 전문병원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평가 지표로 돼 있다는게 중론이다. 신생아 중환자실 유무, 결핵 검사 실시율 등 뇌혈관 질환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무의미한 항목들로 평가받고 있어 전문병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에 견줘도 손색이 없는 전문 인력과 인프라를 구축해 의료전달체계에서 중요한 해결책이 됐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지원 정책으로 전문병원은 늘 배제되는 불이익을 받고 왔다. 뇌혈관 질환 치료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전문병원의 의료진들은 사실상 ‘사람 살리는 의사’라는 사명감 하나로 버티고 있다. 에스포항병원을 포함한 전국의 뇌혈관 전문병원들이 의료공백 사태를 빚은 지난 1년간 실시한 전체 뇌혈관 수술 및 시술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뇌혈관 전문병원의 전체 수술 환자 증가율은 의정 갈등 전인 2023년 대비 2024년도 36.8% 증가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에스포항병원의 경우 2023년도 688건에서 2024년도 928건으로 34.9% 증가했고, 대구굿모닝병원은 2023년 682건에서 2024년 981건으로 43.8% 늘어났다. 또 명지성모병원은 2023년 552건에서 2024년 774건으로 40.2%, 청주 효성병원은 같은기간 453건에서 567건으로 25.2%의 수술 증가세를 각각 보였다. 의정 갈등이 본격화한 2024년 4월 이후의 수술 통계에서는 무려 43.3%의 수술 및 시술 환자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큰 증가폭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러한 수술 통계는 전국 4곳의 뇌혈관 전문병원들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을 수용하고 진단하고 치료했는지, 현행 의료전달체계에서 얼마만큼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에스포항병원도 지난 1년간 지역 내 뇌졸중 환자들과 지역사회의 안전망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병원 소재지인 포항 뿐 아니라 경주, 영덕, 울진, 울산 등 환동해권 지역에서 발생하는 뇌졸중 환자 1600여 명 중 절반 이상을 치료할 정도로 많은 환자가 에스포항병원을 찾았다. 경북 이외에 대구, 마산, 창원 등 다른 지역의 환자들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결과는 병원의 치료 성과와 수술 실력, 전문병원의 사명감에 대한 환자들의 긍정적인 신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이는 환자들이 비록 먼 거리를 이동하더라도 전문병원을 선택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현실적으로 여러 제도적 어려움이 있지만, 뇌혈관 전문병원은 상급종합병원에 버금가는 치료 서비스와 진료 성과를 유지하며 의료 질을 향상시키려는 병원운영의 방향성은 변함없다. 환자들은 적시에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병원의 치료 역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환자 이송 지침과 제도적 불합리성을 현실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생명을 지키고 누구나 어디서든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 변화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2025-06-22

“정비인으로서의 책임감과 개선 의지, 설비를 더욱 견고하게”

미국의 관세 장벽, 중국의 과잉공급 등 녹록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포스코를 비롯한 국내 철강업계는 수소환원제철 등 미래를 위한 대규모 투자와 함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다음 100년을 이끌어갈 젊은 인재들이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창간 기념으로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들을 조명하는 ‘STEEL THE NEXT’ 시리즈를 준비해 월 2회 주기로 모두 12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FM 파트 근무, 열연공정의 마지막 단계 제품 두께·표면 품질 결정짓는 중요 역할 냉천 범람때 포스코 단 100일 만에 복구 위기 상황 발휘되는 대응력과 협업 특별 “내가 한 일이 의미 있는 변화 만들때 보람 전문성을 갖춘 정비인으로 성장하고파” - 자기소개를 해달라 △포스코 압연설비1부 열연정비섹션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근형 사원이다. 2022년 7월에 포스코에 입사해서 이제 3년 차인 저근속 사원으로, 열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는 중이다. 아직은 회사에서 새내기지만, 미래를 책임질 인재로 성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포항에서 자라며 포스코는 언제나 내게 가까운 존재였다. 어릴 적 학교에서 포항제철소 열연공장을 견학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거대한 설비와 코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언젠가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이후 울산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에서 학업을 마치고, 전기와 전자 분야의 지식을 쌓았다. 이렇게 쌓은 전공지식은 현재 포스코의 첨단 설비와 시스템을 이해하고, 실제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어린 시절 꿈꿨던 바로 그 열연공장에서 근무하게 되어 더욱 큰 보람과 책임감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포스코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점은, 포스코가 단순히 철강을 생산하는 제철소를 넘어 혁신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점이었다. 이러한 매력에 이끌려 포스코에 입사하게 되었고, 현재는 열연정비섹션에서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며 실무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 큰 도전에 나서고, 회사와 함께 ‘내일’을 만드는 철강인이 되고자 한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열연정비섹션’과 맡고 있는 업무에 관해서 소개를 해달라. △스테인리스 냄비처럼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품부터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고층 건축물까지, 포항제철소에서 생산되는 열연 제품은 다양한 곳에 쓰이고 있다. 이러한 제품들이 최고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 팀은 열연공장에서 사용되는 각종 설비의 안정적인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꼼꼼히 점검하고, 노후 부품을 교체하는 등 설비 상태를 항상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제품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2열연 FM(Finishing Mill) 전기 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다.FM 파트는 열연공정의 마지막 단계로, 제품의 두께와 표면 품질을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FM 전기 파트에서는 설비의 전기적 시스템을 관리하고, 자동화 장비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특히, 정기적인 점검과 예방 정비를 통해 설비의 신뢰성을 높이고,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원인을 파악해 조치하고 있다. 또한, 설비 효율 향상과 에너지 절감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Roll의 속도 패턴을 조정해 에너지를 절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이 과정에서 실제로 에너지 사용량이 줄어드는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고, 공정의 효율성도 한층 높아졌다. 앞으로도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설비 운영을 최적화하고, 에너지 절감과 품질 향상에 기여하고 싶다. -정비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정비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비의 상태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작은 이상 신호에도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세심한 관리와 빠른 조치가 쌓여 설비의 안정성을 높이고, 예기치 않은 고장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정비는 단순히 고장난 부분을 수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설비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개선과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재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과 방법을 탐구하여 현장에 적용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다. 정비인으로서의 책임감과 개선 의지는 설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제품의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는 곧 회사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현장 곳곳을 세심하게 살피고,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며 발전하는 정비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입사 이후 가장 도전적이었던 순간이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면 공유해달라. △입사 이후 가장 도전적이었던 순간은 2022년이었다. 8월, 신입사원으로 부서 배치를 받자마자 냉천 범람으로 인해 열연공장이 침수되는 상황을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공장 내 여러 설비의 모터가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신속한 복구를 위해 전 직원이 총력을 다해 대응해야 했다. 나는 당시 정비 업무의 핵심인 FM 파트의 모터 교체 업무를 맡게 되었다.짧은 기간 동안 수백 대에 달하는 모터를 교체하면서 각 설비의 위치와 특성을 빠르게 파악해야 했고, 인입 및 인출 절차를 정확하게 숙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작업 과정에서 항상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설비 관리에 대한 실무 역량을 키울 수 있었고, 정비 업무에 대한 책임감도 한층 더 깊이 새길 수 있었다. 특히 공장 설비가 침수된 위기 상황이었지만,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의 모터를 직접 수리하고 교체해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재난 상황이었지만, 그 경험 덕분에 현장에서 실질적인 정비 기술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다.이 경험이 앞으로 정비인으로서 성장하는 데 든든한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포스코의 조직문화는 어떤 점에서 특별하다고 느끼는지? 정비업무 특성상 협업이 필요한 경우가 많을텐데, 팀원들과 어떻게 협력하며 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앞서 경험한 냉천 범람 사태처럼, 나는 포스코의 조직문화가 위기 상황에서 발휘되는 강한 대응력과 협업 정신이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포스코는 단 100일 만에 복구를 완료하고 정상 가동에 성공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단 한 건의 인사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포스코가 안전과 협업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직문화는 정비 업무를 수행하는 현장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정비 업무의 특성상 다양한 부서와의 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나 역시 주로 운전부서와 협력하여, 그들이 제공하는 설비 이상 정보를 바탕으로 정기 점검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설비의 이상을 사전에 예방하고 있다. 또한 운전부서에서는 점검 통로와 안전시설물 개선을 통해 우리의 점검 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이처럼 제철소에서는 각 부서가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상생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비 업무는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팀원들과의 협력에서는 서로의 강점을 이해하고 각자의 역할을 넘어 유연하게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팀은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각자의 업무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이처럼 팀원 간의 긴밀한 협력은 정비 업무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엔지니어로서 언제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고, 그 과정에서 본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경험이 있었는지? △엔지니어로서 가장 큰 의미를 느꼈던 순간은 Cobble Pusher Drive(압연 공정에서 불량 소재를 라인 밖으로 밀어내는 장치의 구동부를 의미한다) 설비 이중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했을 때였다. 이 프로젝트는 설비 장애 복구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었다.기존의 단일 시스템에서는 설비에 오작동이 발생할 경우, 이를 복구하거나 정상 상태로 되돌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해당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수리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나는 이 프로젝트에서 기획부터 실행까지 전반적인 역할을 맡아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이중화 시스템의 설계와 구현 단계에서는 동료들과 긴밀히 협력하여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최적의 방안을 도출하는 데 집중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맡은 역할이 팀과 회사 전체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았다. 또한, 기술적 역량뿐만 아니라 팀워크와 문제 해결 능력의 중요성도 실감하였다. 무엇보다, 내가 한 일이 실제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큰 성취감과 보람을 느꼈다. -포항제철소에서 일하면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순간은 언제인지? △포항제철소에서 2열연 합리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점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설계, 도면 수정, 신호 점검, 시운전 등 다양한 업무를 맡았다.설계 단계에서는 시스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기술적 요구사항을 꼼꼼히 반영하며 최적의 방안을 찾는 데 집중했다. 도면 수정 시에는 사용하지 않는 설비를 정리하고, 기존 설계의 오류를 바로잡아 시스템이 더 명확하고 안전해지도록 했다. 신호 점검 단계에서는 각종 센서와 장치가 제대로 연결되어 있는지, 신호가 정확하게 전달되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며 시스템의 안정적인 작동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운전 단계에서는 설계한 시스템이 실제로 의도한 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하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해결했는데, 여러 단계를 거쳐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마무리되었을 때 정말 큰 보람을 느꼈다. 특히 팀원들과 힘을 합쳐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20년에 한 번 있는 합리화 작업을 직접 해냈다는 점이 나에겐 큰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국내 철강업계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로서, 앞으로 어떤 변화나 발전을 기대하고 있는지? △포항제철소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로서, 기술적 혁신과 조직 문화의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최근 국내 철강산업은 글로벌 경기 침체,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공급 과잉, 그리고 탈탄소 흐름에 따른 수출 구조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강 생산 공정의 자동화와 디지털화를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저탄소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인텔리전트 팩토리의 구현은 생산성과 품질을 한층 높일 수 있으며, 이러한 기술적 혁신이 포스코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조직 문화를 함께 만들어간다면, 포스코는 현재의 도전을 극복하고, 철강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하여 글로벌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철강사로 우뚝 설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앞으로의 포부나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앞으로의 포부는 전문성을 갖춘 정비인으로 성장하여 회사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술 역량을 강화하고, 변화하는 산업 트렌드에 발맞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특히 설비 관리와 안전 관리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더욱 심화시켜, 효율적이고 안전한 작업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또한, 팀원들과의 협력을 통해 혁신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완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롤모델이 될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인정받는 포스코 명장이 되어 개인의 성장을 넘어 조직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인재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06-22

[창간 35 특집] “새 옷 입는 대구시청, 역사와 문화적 가치 품은 건축물로”

대구 지자체 3곳이 지역 발전을 위해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진행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대구시청, 수성구청, 남구청. 이들의 공통된 고민은 노후화된 시설과 공간 부족 등이다. 또 주차 역시 문제가 커 많은 민원이 제기됐기에, 주민은 새로운 청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3곳 신청사에 들어갈 예상 비용은 약 8450억 원이다. 규모가 크다 보니, 각 지자체는 신중을 기해 하나씩 매듭을 풀고 있다. 본지는 창간 특집을 통해 현재 이들이 어디까지 발걸음을 옮겼는가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국제적 감각 갖춘 건축물 기대 ‘대구시청’ 대구시는 옛 두류정수장 일원에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신청사 건립을 추진 중이다. 시는 지난달 대구의 미래 행정 중심지 설계를 위해 신청사 건립사업 설계 공모를 공고하고 건축설계안을 접수하기 시작하며 건립에 물꼬를 텄다. 앞서 신청사 건립은 오랜 기간 우여곡절이 많았다. 부지 문제를 포함, 건립 재원 확보의 어려움과 건설 방식을 놓고 발생한 갈등 등으로 한동안 사업이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최근에는 신청사 건립을 두고 북구와 달서구의 마찰도 있었다. 당시 북구 측은 신청사 설계 공모 시점을 내년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고, 달서구 측은 “대구시가 시민과의 약속을 흔들림 없이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가 시청 신청사 건립을 둘러싼 구청 간 대립 양상에 ‘시민 주도의 숙의 과정’을 강조하며 논란을 일축했고, 건립 일정은 다시금 진행됐다. 무엇보다도 대구시는 이번 신청사 건립에 약 4500여억 원이 투입되는 만큼 효율적인 공간 활용은 물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대구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랜드마크 건축물이라는 설계 방향을 제시했다. 대상부지는 옛 두류정수장 터로 대지면적 7만2023㎡, 연면적 11만6954㎡ 규모로 건립될 예정이다. 예정 설계비는 142억 원이다. 특히 대구시는 국제설계공모를 진행하는 만큼 국내외 우수 건축가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집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당선작은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9월 중 최종 발표된다. 2026년 9월까지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같은 해 말 착공, 2030년 준공을 목표로 속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시에 따르면 신청사 건물 터를 제외한 약 7만3000㎡의 부지는 시민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명품 공원으로 조성된다. 주변 도로의 확장도 병행해 시민들의 접근성과 편의성도 함께 개선할 예정이다. 또한, 신청사를 품게 된 달서구의 경우 신청사 부지 인근 두류공원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처럼 바꾸는 사업을 추진 중이기에 신청사 일대가 대대적으로 바뀔 전망이다.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행정부시장)은 “신청사는 시민들의 오랜 염원이 담긴 공간으로 대구의 미래를 대표할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 명소화 위해 랜드마크적 디자인 선보일 ‘수성구청’ 옛 학교 건물에 빽빽이 앉아 업무를 보는 공무원의 모습, 민원을 보러 왔지만 주차할 곳이 없어 30분째 수성구청을 돌고 있는 주민. 현재 수성구청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수성구청은 청사 공간이 부족해 5개 부서 100여 명이 외부에서 근무한다. 현 청사 면적은 청사 기준(1만4061㎡)의 77%에 불과하며, 직원 1인당 공간 면적(6.6㎡) 또한 전국평균(9.67㎡)과 법적 기준(7.2㎡)에 크게 미달하는 현실이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청사 노후로 인해 유지보수 예산이 10여년 간 60여억 원이 소요됐다. 주차면 수가 133면인 수성구청에 행정 차량이 123대이기에 수용에도 역부족인 대체로 난감한 상황이다. 이에 수성구는 오랜 기간 숙원을 풀기 위해 신청사 건립을 준비했다. 구체적인 얘기가 나온 것은 건립 예정지가 확정·발표되면서다. 수성구는 지난 2023년 4개 후보지(범어공원, 연호GB, 법원 후적지, 현청사) 중 범어공원으로 신청사 예정지를 확정했다. 지난해에는 행정안전부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고, 올 하반기 지방재정 투자심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수성구는 내년까지 국제공모 및 실시를 설계하고, 2027년 착공에 들어가 2029년 준공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나빠진 부동산 경기로 인해 자금 확보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수성구청 현 부지 매각이 지연되고 있어서다. 신청사는 범어공원 일원 지하 2층·지상 9~10층 규모로 지을 계획이다. 사업비는 총 2848억 원으로 추산된다. 부대비용까지 합치면 사업비는 3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수성구는 이 비용을 현 청사 부지 매각 대금으로 충당할 생각이다. 부지 규모 가치는 2000억 원 후반에서 3000억 원대 초반으로 추산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기부대 양여방식과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등 기관을 통한 간접 개발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수성구는 신청사 건립에 독특한 철학을 입힐 계획이다. 지역 역사성·상징성을 담은 인문학적 디자인을 건축에 입혀 독창적이고 창의적은 건물을 건축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도시 명소화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또한, 기후변화 시대에 지속 가능한 공공건축 비전을 제시하고, 스마트 업무공간 및 이용자 친화적인 공간 역시 조성한다. 아울러 미래 확정성 및 수요 응답형 공공청사를 만들 계획이며, 자연과의 순응도 높은 디자인 및 재료를 써 신청사 건립에 투자할 방침이다. 김대권 수성구청장은 “2029년까지 신청사가 준공될 수 있도록 타당성 조사 및 투자심사, 설계 공모 및 실시설계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예정”이라며“ 신청사가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랜드마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실용성에 지역 역사와 미래 담다 ‘남구청’ 현 남구청 청사는 1971년 건립 후 1981년부터 남구청사로 활용됐다. 그러나 노후화로 인한 안전 문제, 공간 부족, 주차난 등을 겪으며 주민 불편을 초래했다. 남구는 주민을 위해 청사 밖 별관 등에 부서를 옮기며 분산해 업무를 추진했지만, 불편함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결국 남구는 스스로 기금을 마련하며 신청사를 짓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남구는 기존 1212억 원의 신청사 건립 기금에 예산 300억 원을 추가 적립했고, 이자 수입 약 91억 원을 더해 약 1604억 원을 모았다. 남구가 계획한 총사업비는 1116억 원 규모다. 남구는 2019년부터 모아온 신청사 적립 기금 1500억 원을 이번 사업에 투입할 예정이다. 남구는 부지 선정도 신중히 했다. 주한미군 부대 캠프 조지 터가 반환될 경우 남구 신청사, 남부소방서, 제2국민체육센터가 들어서는 ‘행정복합타운’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지난해 7월부터 캠프 조지 반환을 무기한 기다릴 수 없다고 보고 새로운 건립지를 물색했다. 이후 현 청사와 강당골 공영주차장 부지를 후보지로 두고 적정성 검토, 전문가 토론 및 의견 청취, 주민 여론조사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 3월 넓은 부지 면적과 토지 적합성, 앞산과 연계한 지리적 상징성 및 확장성 등에 경쟁력을 보인 강당골 공영주차장 부지를 선택했다. 또 다른 후보지인 현 청사 터(6501㎡)와 다르게 건물 철거 절차와 임시 청사를 확보할 필요가 없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지가 선정되자 남구의 행보는 빠르게 진행됐다. 지난 5월 남구는 신청사 건립을 위한 건축 기본 계획안을 마련해 ‘신청사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구상 용역 최종 보고회’를 마무리했다. 남구에 따르면 신청사는 봉덕동 강당골 공영주차장 내 2만8349㎡ 터에 지하 3층, 지상 6층 규모로 건립된다. 또 지하 주차장을 조성해 346면의 주차 공간을 확보할 계획이며, 남구의회는 신청사 건물 2개 층을 사용하게 된다. 신청사 오는 2027년 12월 착공해 2029년 신청사 준공이 목표이다. 입주는 2030년 예정이다. 조재구 남구청장은 “사업 초기 단계다 보니 설계가 일부 변경될 수도 있지만 실용성과 남구의 역사, 미래를 담아 신청사를 건립하겠다”며 “지역의 역사와 미래를 함께 담은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신청사 건립과 더불어 후적지 개발 방안 마련에도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2025-06-22

[창간 35 특집] 세계적 철강도시서 ‘글로벌 국제회의 플랫폼 포항’으로

포항시가 글로벌 마이스산업 중심도시로 도약하고 있다. 포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시그니처 국제회의 ‘세계녹색성장포럼(WGGF)’가 지난 달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의 신성장엔진으로 육성중인 마이스산업의 허브가 될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POEX)도 차질없이 건립되고 있는 것. 지난 반세기 포항은 세계적인 철강도시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탄소 배출량이 많고 대내외적 위기에 취약한 단일 산업구조라는 한계가 있어 최근 산업구조 다변화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에 발맞춰 지속가능한 도시의 발전 동력 확보를 위해서다. 지난달 포항형 마이스 신호탄 ‘WGGF’ 성공 개최 POEX 연계 ‘녹색전환 시그니처 국제 행사’로 각인 2500개 도시 참여 ‘2027 ICLEI 세계총회’ 유치 신청 이재명 대통령 공약 ‘COP33’ 유치전도 본격 돌입 이강덕 시장 “글로벌 아젠다 주도할 도시 자리매김 그 결과 글로벌 스탠더드(세계적 기준)에 부합하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성장 가능성이 크고 탄소중립에 부합하는 신산업인 ‘이차전지‧수소‧바이오’ 분야의 신산업 생태계 조성을 통해 대규모 기업 투자에 유치에 성공하고,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3관왕 등에 선정되는 등 차별화된 신산업 육성 역량도 인정받았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녹색도시 비전인 ‘그린웨이 프로젝트’도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녹색도시 조성의 성공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그린웨이의 일환으로 미세먼지차단 도시숲, 둘레길, 맨발로 등의 조성사업을 시행해 76만㎡에 달하는 녹지공간을 확보했다. 그린웨이의 성과는 국내는 물론 국제 녹색도시 평가에서 연이어 수상하며 그간 글로벌 탄소중립 선도도시로 거듭나려는 포항시의 노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제 포항은 글로벌 ‘마이스(MICE)’ 도시 도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포항만의 ‘우수한 산업 역량’과 ‘녹색도시 전환’이라는 비전과 정체성을 든든한 토대로 삼았다. 마이스는 관광, 숙박 등 연관 산업 발전과 여성‧청년이 선호하는 일자리 창출까지 도모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굴뚝없는 황금산업’으로 미래 성장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포항에는 포스코와 에코프로 같은 글로벌 기업, 포스텍과 한동대 등 세계 수준의 첨단 인재 양성기관, 포항가속기연구소와 아태이론물리센터 같은 세계적 연구기관이 밀집해 마이스산업이 급성장할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포항형 마이스산업의 신호탄’이자 ‘국제회의 플랫폼 도시 도약’의 이정표가 될 세계녹색성장포럼(World Green Growth Forum‧WGGF)’이 지난 달 ‘라한호텔 포항’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미래를 위한 녹색 전환, 도전 속에서 길을 찾다’를 주제로 기후 위기의 해법을 찾는 공유의 장으로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며 포항이 글로벌 녹색 전환 중심도시로 도약하는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럼에는 당초 예상보다 두 배가 넘는 국내외 환경·산업·도시 분야 전문가와 국제기구 관계자 600여 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특히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녹색성장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 김상협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사무총장, 최재철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WGGF의 성공적인 개최는 지방도시도 글로벌 아젠다를 주도하고, 국제 정책협력의 한 축으로 충분히 자리매김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세계적인 수준의 국제 행사를 유치하고 발굴하는 노력을 계속 기울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WGGF는 올해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 ‘K-컨벤션 공모사업’에서 ‘지역 시그니처 국제회의’ 분야에 선정돼 국비를 확보하고, 글로벌 성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 국제회의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포항시는 WGGF를 2027년 개관 예정인 POEX와 연계해 녹색성장 아젠다를 주도하는 국제포럼으로 규모와 위상을 더욱 확대하고 정례화 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 스위스의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WEF)과 같이 포항을 세계적인 녹색전환의 메카로 각인시킬 시그니처 국제행사로 육성할 방침이다. 시는 그동안 마이스산업 육성을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 빈틈없이 준비해 왔으며 WGGF의 성공 개최를 디딤돌 삼아 국제규모 행사의 안정적인 운영과 개최에 대비해 중앙부처, 국제기구 등과 네트워크를 더욱 확장하는 등 육성에 한층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포항시는 또 2015년 지속가능성을 위한 세계지방정부협의회(ICLEI)에 가입한 이후 다양한 연구와 실천에 참여해 왔다. 포항시는 ‘ICLEI 2027 세계총회 유치’를 위해 신청서를 제출했다. ICLEI 세계총회는 2500개 도시가 참여하는 세계 최대의 지속가능성 국제회의이다. 따라서 세계총회 유치는 ‘포항이 탄소중립과 지속가능 도시 전략에서 국제적 기준을 충족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 달에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산하의 유엔글로벌혁신허브(UGIH)가 주관하는 시스테믹혁신워크숍(S.I.W.)이 포항 영일대 일원에서 열린다. 철강, 이차전지, 에너지 분야 전문가 등이 폭넓게 참여해 도시 차원의 기후위기 대응 전략과 산업전환 로드맵을 공유할 예정이다. 이어 8월에는 포항 포스코국제관에서 저탄소 철강 워크숍이 개최된다. 이 행사는 포항시와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포스코가 공동 주최하며, 산업통상자원부 국제박람회, APEC 에너지장관회의 등과 연계해 세계 60여 개국 정·재계 인사가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워크숍을 통해 저탄소 철강 분야의 글로벌 지식이 공유되고, 정책 결정자와 산업 리더가 산업 탈탄소화를 이끌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장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같은 국제협력 기반을 바탕으로 포항시는 야심차게 제3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3) 유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시는 이미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준비를 바탕으로 COP33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COP33 유치를 국가적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포항시의 유치 노력이 더욱 탄력을 받는 상황이다. COP 총회는 전 세계가 모여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위기 대응을 논의하는 가장 권위 있는 국제외교회의이다. 개최 도시에는 뛰어난 국제적 위상 뿐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외교적·환경적 효과가 뒤따른다. 약 5만 명이 2주간 참가하고 100여 개 기관이 전시 및 부대행사를 운영해 고용과 생산 유발 효과 또한 상당하다. 이를 위해 포항시는 작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COP29에 대표단을 파견해 각국 정부, 국제기구, 글로벌 민간기업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오는 11월 브라질 벨렘에서 열리는 COP30에서도 포항의 선도적 기후대응 사례와 전략을 국제사회에 홍보하며 유치 기반을 더욱 다질 계획이다. 포항시는 앞으로 지역 전략 산업은 물론 기후변화 등 다양한 아젠다를 논의하고, 국제 협력을 강화할 국제 포럼과 비즈니스 행사들을 끊임없이 발굴‧육성해 나갈 방침이다. 이강덕 시장은 “포항은 지금 산업과 환경, 지역과 세계 등을 두루 연결하는 세계적인 도시로 전환해나갈 중요한 시기에 서 있다”면서 “포항만의 준비된 역량과 잠재력을 모두 활용해 글로벌 마이스 중심 도시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석윤기자 lsy72km@kbmaeil.com

2025-06-22

[창간 35 특집] 온종일 완전돌봄 지역공동체 돌봄 K-아동 프로젝트 확산

“저출생과 지방소멸은 통합적으로 해결하는 창조적 사고가 필요하다. 경북을 거대 실험실로 만들어 사람을 끌어당기는 프로젝트를 먼저 시행해 보고 전국으로 확산시킬 예정으로 새 정부 국정과제에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저출생 극복을 위한 핵심사업 ‘K-아동 프로젝트’를 마련하면서 한 말이다. 경북도 저출생극복 정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편집자주> 완전돌봄·안심주거,일·생활 균형·양성평등 4개 분야 지난해 전국 최초로 10대 핵심·35개 실행과제 발표 출생아 감소 추세 9년 만에 멈추고 출산율도 플러스 정부, 경북도 ‘소상공인 육아휴직 대체인건비 지원’ ‘육아기 근로자 임금 보전’ 등 국가적 차원 적용 언급 ‘코리아 아이 천국+공동체 회복’ 과제도 국정 반영 국립 인구정책연구원·스마트 돌봄 밸리 조성 추진 경북도, 저출생 주요 원인으로 수도권 집중화 분석 지역맞춤형 정책 직접설계 실행 ‘예산 재분배’ 요구 경북도는 지난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대대적인 정책 패키지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완전 돌봄, 안심 주거, 일·생활 균형, 양성평등 등 4개 분야에 걸친 10대 핵심과제와 35개 실행 과제를 발표했다. 당시 경북도는 저출생 극복을 위한 전 도민 붐업(Boom-Up) 운동을 전개하며, 정부와 협력하여 전국적으로 정책을 확산한다는 계획 아래 온종일 완전 돌봄을 핵심 전략으로 삼아, 조기퇴근 돌봄, 경북형 학교 늘봄, 심야돌봄 등의 돌봄 정책을 강화했다. 특히 육아기 단축 근무 활성화, 24시간 어린이집 확대, 아픈 아이 긴급 돌봄센터 운영 등의 지원책과 우리동네 돌봄마을 모델을 도입해 지역 공동체가 돌봄을 함께 책임지는 방식을 추진했다. 이 같은 정책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출생아 수 감소 추세를 9년 만에 멈추게 만드는 전환점이 됐다. 지난해 경북의 출생자 수는 1만467명으로, 2023년보다 35명 증가하며 처음으로 플러스로 전환된 것. 또한, 합계출산율도 0.86명에서 0.91명으로 상승하며 출산율 개선의 신호를 보였다. 주요 정책 성과를 살펴보면 만남 주선 분야에서 청춘동아리(매칭율 46%)와 솔로 마을(매칭율 35%)을 통해 총 118명이 인연을 맺었다. 행복 출산 분야에서는 예비 부모와 초보 부모에게 책 선물(3604명), 가족 여행 지원(252명)을 제공했으며, 임산부 건강 회복 지원(5600명), 방문 건강 관리(8896명), 콜택시 이용(3582건) 등의 혜택을 시행했다. 완전 돌봄분야는 24시간 공동체 돌봄(1만6680명), 긴급 돌봄(950명), 시간제 보육(4597명) 등으로 돌봄 공백을 줄였다. 안심 주거 분야로는 청년 월세 특별 지원(1만4332명), 다자녀 가구 이사비 지원(442가구), 청년 신혼부부 주거환경 개선(7가구)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일·생활 균형으로는 소상공인 대체인력 인건비 지원(145명), 육아기 근로 단축 급여 보전(91명), 출산 농가 영농 도우미 지원(60명)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양성평등 분야는 아빠 교실(5259명), 다자녀 가구 농수산물 구매 지원(6만3122가구), 아동 친화 음식점 운영(340개소)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올해 ‘저출생과의 전쟁 시즌2’를 통해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특히, 3578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기존 100대 실행 과제에서 150대 실행 과제로 확장했다. 또한, 조부모 손자녀 돌봄 수당 지급, 남성 난임 시술비 지원, 다자녀 가정 큰 집 마련 지원 등의 신규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저출생 극복 도민 모니터링단’을 구성해 도민들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모니터링단은 미혼 남녀, 예비부부, 다자녀 가구 등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 신규 저출생 극복 정책을 제안하고 기존 정책을 평가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경북도는 중앙정부와 협력해 전국적인 정책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경북도의 저출생 극복 정책이 국가 정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출산율 반등을 위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을 강조하며, 단기 성과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출산율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기 위해 매년 5%씩 출생아 수를 늘리는 목표를 설정, 이를 위해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9월 정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주관하는 회의에서 경북도가 추진한 저출생 정책과 관련 소상공인 육아휴직 대체 인건비 지원, 육아기 4시 퇴근 근로자 임금 확대 보전 사업 등 전국 최초로 시행한 정책을 소개하면서 다자녀 가정 혜택의 전국적 통일 필요성을 강조, 국가 차원에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현재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정책은 방향은 출산·육아 지원 강화, 일·가정 양립 지원, 주거 안정, 사회적 인식 개선 등 경북도의 저출생 정책과 그 결을 같이 하면서 사회적 인식 변화와 경제적 지원을 병행해 출산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최근 경북도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추진하는 핵심 사업인 ‘코리아 아이 천국+공동체 회복 프로젝트’를 국정과제에 반영하기 위해 11개 과제를 선정했다. 이 프로젝트는 육아 걱정 없는 환경 조성, 공동체 회복, 저출생 극복 정책 확산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를 강화하고 있으며, 국립 인구정책연구원 설립, 스마트 돌봄 밸리 조성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수도권 집중 완화를 위해 지방 거점도시를 육성하고, 저출생 부담을 줄이기 위한 국민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코리아 아이 천국+공동체 회복 프로젝트’는 3대 분야 11개 과제로 구성돼 있다. 먼저 ‘Kids First, 육아 걱정 없는’ 아이 천국 프로젝트는 △규제 Free-zone 개념의 저출생 극복 융합 돌봄 특구 △세계 어린이 장난감박물관 △어린이 전문 통합의료센터 △국립 청소년 디지털 교육관 등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아이 천국 기반 조성에 중점을 뒀다. 공동체 회복 프로젝트는 △아이 천국+육아 친화 두레마을 △한국판 Sun City 은퇴자 공동체 복합단지 △창의·과학 인재 키움 지구 △여성창업 허브 꿈 키움 라운지 등 아이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고 온 세대가 함께 성장하는 환경 조성에 초점을 뒀다. 저출생과 전쟁 국가확산 프로젝트는 △스마트 돌봄 밸리가 융합된 지방 거점도시 육성 특구 △국립 인구정책연구원 △저출생 부담 타파 국민 운동 전개 등 수도권 집중 완화 및 국가 백년대계인 인구문제를 지속 전문적으로 연구할 기관 설립 필요성에 방점을 뒀다. 경북도는 K-아동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기 위해 프로젝트 과제별 연구용역을 시·군과 협력해 추진 중이며,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6~2030) 등 정부 상위계획에 반영하고 새 정부 국정과제에 담기 위해 정부 부처, 국회 등을 방문해 건의하고 있다. 정부는 경북도의 이 같은 정책이 현장 중심의 실질적인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특히 의료 취약지 임신·출산 환경 개선, 난임부부 지원 확대, 공공산후조리원 확충 등의 정책이 효과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아파트 1층에 마련된 K-보듬센터, 아픈 아이 긴급 돌봄 확대, 방과 후 특화 프로그램 운영 등 초등 돌봄 정책에도 주목하고 있다. 새롭게 들어선 이재명 정부도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경북도와 협력해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이재명 정부는 저출생 문제를 단순한 출산 장려가 아닌 사회·경제 구조 전환을 위한 국가적 과제로 접근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합계출산율이 높은 지자체에 더 많은 재원을 배분하고, 교부 기준에 저출생 항목을 신설해 출산·양육 분야에 지속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경북도의 저출생 극복 프로젝트를 국정과제에 반영 스마트 돌봄 밸리 조성, 국립 인구정책연구원 설립, 저출생 부담 타파 국민 운동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재명 정부의 저출생 주요 정책은 △신혼부부 대출 후 자녀 수에 따라 원리금을 차등 감면 △육아휴직 확대, 직장 내 보육시설 확충 등 육아와 일 병행 지원 △난임 치료비 지원 확대 및 의료 접근성을 개선 △저출생 부담 타파 국민 운동 전개 등 국가적 차원의 해결책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경북도는 수도권 집중이 저출생 문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보고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가 지역 맞춤형 저출생 정책을 직접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지방정부가 실질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예산 재분배를 요구하고 있다. 이철우 지사는 “저출생 극복을 위해서는 지방 현장의 목소리에 기반한 정책 추진이 중요하다”며 “정부도 지방에서 추진해 성과가 있는 정책에 대해서는 예산 지원, 제도 개선 등을 통해 협력해 달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북도의 저출생 정책은 정부 차원의 정책과 연계해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으며, 향후 국가 정책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높을 것이라는 것이 경북도의 시각이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5-06-22

[창간 35 특집] 볼 건 많은데 머무르지 않는 ‘경북’… 관광객 잡기 과제

“10년 전이랑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포토존도 많고 예쁘긴 한데 딱 거기까지인 것 같아요” 청도와인터널을 찾은 박지은(35·회사원 서울)씨는 터널 입구에서 사진을 찍은 뒤 금세 발길을 돌렸다. 경북 청도군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청도와인터널은 1904년 경부철도로 쓰였다. 지금은 폐선된 철도 터널을 개축해 만든 공간이다. 최근까지 청도와인터널은 경북지역 대표적인 체험형 여행지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2025년 와인터널은 예전 같은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머물면서 즐길만한 콘텐츠가 부족하다 보니 사진만 찍고 가는 경유형 여행지가 돼 아쉽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비단 청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구·경북권 관광 전반이 노후화되고 단조롭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역관광전문가들은 “지역 내 주요 관광지들이 10~20여 전 조성된 것이 대부분이고, 새로운 투자나 콘텐츠의 확장 없이 관성에 의존해서 운영되어 온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나마 경주나 포항처럼 관광객 유치와 콘텐츠 다각화에 힘쓰는 지자체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자체가 인구소멸, 생산소득감소 등 지역 현안에 매몰되면서 제대로 된 관광정책을 세우거나 관광마케팅을 전개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관광 현안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현상은 지방재정이 넉넉지 못한 대다수 지자체의 공통적인 현실이지만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경북도가 관광 매력도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 기억에 남지 않는 관광지로 전락 ‘경북관광’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전통 도시? 유교의 고향? 자연 여행지? 하지만 이는 외래 관광객이나 젊은 세대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관광지 간 통합된 이미지 전략도 없고, 지역 특산물이나 경험 요소가 연계되지 않아 체류 시간이 짧고 소비도 적다는 것이 경북도 관광의 문제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지역관광 전문가들은 “경북은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정작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잃어버렸다”며 “예를 들어, 전북은 ‘슬로우시티’와 전통음식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강원은 ‘자연과 힐링’으로 표방하지만, 경북은 여전히 ‘역사’만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주 황리단길, 대구 근대골목처럼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다수의 유적지와 명소들은 관람 이후 ‘기억에 남지 않는’ 관광지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경의 ‘문경새재 도립공원’은 조선시대 관문이자 드라마 촬영지로 주목받았지만, 현장 해설이나 디지털 콘텐츠가 부족해 1시간 코스를 도는 동안 관광객의 머릿속엔 아무런 이야기도 남지 않는다. 안동의 유명한 ‘하회마을’도 경북도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이지만, 디지털 콘텐츠나 스토리텔링이 부재한 것은 매한가지다. 양진당, 충효당, 병산서원 등 역사적인 의미나 뒷배경을 알면 더 흥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곳도 관광안내판만 놓여 있다. 물론 매시간 문화관광해설사가 무료로 해설해 주지만 최소 10명 이상이 모여야만 들을 수 있다. 게다가 전형적인 패턴의 해설이어서 흥미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 관람객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소규모 여행이 일상화되고 첨단 AI가 관광에도 깊숙하게 파고든 상황에서 디지털 기기 등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관광 안내나 관광지 해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서원석 경희대학교 호텔관광학과 교수는 “변화된 관광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 지금은 해석의 시대다. 아무리 유서 깊은 장소라도 오늘날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설명해주지 않으면 관객은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경북 지역 대부분의 관광지가 단순한 유적 소개에 머무르며, 체험·스토리텔링·감성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관광콘텐츠를 개발하고 다양화해야 할 경북 도내 관광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경북도 내 관광 관련 공공기관 및 유관 단체에 등록된 ‘관광전문가’는 전체 직원의 약 12.8% 수준(2023년 기준). 대부분은 일반 행정직으로, 콘텐츠 기획이나 고객 경험 설계에 대한 전문성이 낮다. 이 때문에 지자체에서는 관광을 여전히 ‘이벤트기획’ 수준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에 수많은 축제가 이름만 다를 뿐 행사 프로그램이 거의 비슷한 것도 이 때문이다. △숙박 및 편의시설 부족도 심각 숙박편의시설 등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도 대구경북 관광의 해묵은 과제다. 실제로 대구·경북권의 특급호텔(5성급)은 대구권은 메리어트 호텔과 호텔인터불고, 대구 엑스코 인터불고가 다고 경북권은 경주에 힐튼 경주와 라한셀렉트 경주뿐이다. 굳이 특급호텔이 아니어도 관광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 등의 숙박시설도 현저하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경북권은 모텔과 여관을 제외하고 관광호텔은 62개 일반호텔은 143개에 불과하다. 대구권은 일반호텔 70개 관광호텔 33개다. 대구·경북지역에 특급호텔이 수도권이나 강원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전문가들은 수도권과 강원도의 관광지와 비교하여 대구·경북은 상대적으로 알려진 명소가 적고, 교통 편의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관광수요를 증가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여행객 유치가 어려워 특급호텔의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구·경북권을 찾는 관광객들이 내국인 비중이 높고 개별여행객이 많은 점도 특급호텔 건립에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관광지 간에 이동이 불편한 것도 관광객 감소의 주요 원인이다. 경북도의 거점도시인 포항이나 경주, 안동 같은 도시는 고속철도도 있고 도시 안에서도 이동하기 편하나 대부분의 도시들이 주요 관광지들 간의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 이동이 불편하다. 예를 들어, 경주와 안동, 문경을 잇는 대중교통은 하루에 몇 차례만 운행되며, KTX나 고속버스를 이용해도 연계성이 떨어진다. 그나마 대구 시내와 가까운 관광지들은 고속버스나 택시를 이용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관광지는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지역간 교통망 강화와 주요 관광지 연계 중요 그렇다면 대구경북 관광의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먼저 대구 경북 지역의 교통망을 확장하는 것은 관광객 수를 증가시키는 데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대구와 경북 지역 간의 교통망을 강화하고, 특히 주요 관광지를 연계하는 교통수단을 늘려야 한다. 경북권에서는 포항·울진· 삼척을 거쳐 강릉을 잇는 동해선 열차에 많은 기대를 품고 있다. 실제로 동해선 열차가 개통하면서 관광객 유입 효과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연계 교통 인프라가 부족해 개통 효과가 극대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경주, 포항, 영덕 보다 삼척, 동해, 강릉 등의 강원도 권에 반사이익이 더 크다는 지적도 높다. 포항시 관계자는 “동해선 개통에 맞춰 관광수요를 새롭게 창출하기 위해 관광택시, 시티투어 등을 연계한 할인 프로모션을 준비하고 숙박플래폼과 협업을 통해 다양한 할인이벤트도 준비중” 이라며 관광객 유치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는 “경북권은 관광지 간의 이음과 연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외지관광객이 경주면 경주, 포항이면 포항 식으로 한 곳만 여행하고 돌아오는 경향이 많아 머무는 여행이 되지 못한다는 것. 나 대표는 “예를 들어 안동 하회마을 본 관광객이 바로 청송으로 건너가 고택 체험을 하고 군위나 의성에 묵으며 지역특산물을 즐기는 식으로 경북도간의 이음과 연결이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역권 단위의 통합관광패스(숙박·교통·입장 통합권)도 시행해볼 만한 정책이다. 현재 경북도에서는 경북투어패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지역 관광지를 묶어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수준에 멈추고 있다.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교통과 숙박할인을 포함한 포괄적인 범위의 투어패스를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스토리텔링 기반의 콘텐츠 개발 절실 대구·경북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잘 풀어낼 수 있는 스토리텔링 기반의 콘텐츠가 절실히 필요하다. 경주의 황리단길은 경북에서 유일하게 콘텐츠 중심의 관광 재생에 성공한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젊은 창업자들이 전통 한옥을 개조해 카페·소품 가게를 만들고, SNS 홍보와 감성 콘텐츠로 지역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제2의 황리단길을 조성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경주 황리단길 최초 기획자인 손명문(건축사) 씨는 “관광객이 지역으로 모이게 만드는 힘은 사람 냄새 나는 콘텐츠”라며 “유적만 바라보는 관광이 아니라 경주 특유의 로컬감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창의력을 보태서 보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경북 관광을 업그레이드할 관광 전문가 양성도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 관광산업 관련 교육과정을 활성화하고, 관광업계와 협력하여 지역 인재들이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관광산업의 질적 향상을 위해 지역 관광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하는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지역관광이 성공하려면 지자체 단위를 넘어 연대와 협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며 “관광성과 지표를 관광객 수 중심에서 체류일수 중심으로 바꾸고, 지역문화와 연계한 차별화된 관광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2025-06-22

[창간 35 특집] 수온 상승·해양 오염 걱정 NO, 스마트 김양식시대 활짝!

바다의 로또, 해양 반도체로 불리는 김이 산업 대전환 시대를 맞았다. 해양 오염, 해수 온난화라는 복병을 만나 김 산업 전반이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이제 정부, 양식업자들은 전통적 바다 양식에서 벗어나 스마트 양식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점을 모색하는 ‘바다의 반도체 김, 스마트 양식 시대를 열다’ 시리즈를 준비했다. 김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부터 국내 김 산업의 변화, 일본의 양식장 탐방기까지 5회에 걸쳐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웰빙시대 맞아 힐링푸드 새롭게 주목 ‘바다의 반도체’ 불리며 작년 수출 1조 K-컬처 열기 타고 미·일·유럽서 인기 최근 해수온 상승·해양 오염 ‘복병’ 등장 바다 양식장 황폐화로 어민 수입 급감 전통적 양식 한계 극복 육상 재배 시도 정부 350억 투입 스마트 김산업 장려 지자체·식품업계 ‘육상김’ 본격 경쟁 투자대비 경제성 확보 사업 성패 좌우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의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흰 쌀밥에 김 한 장 얹어서 먹는 맛이란...’ 김은 오랫동안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는 미식(味食) 코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아왔다. 수많은 음식 중에 김이 이렇게 ‘국민 푸드’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우리 민족과 정서적 공감을 함께해 왔음을 뜻한다 하겠다. 그렇다고 인류사 측면에서 김이 항상 양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각국에서 김은 한때 해양 쓰레기, 가축 사료 취급을 받으며 식탁에서 멀어졌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ESG, 웰빙 요리시대를 맞아 김은 ‘힐링푸드 아이콘’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으며 우리 식탁 맨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경제, 산업적 가치도 뛰어나다. 현재 한국에서 김은 ‘바다의 반도체’로 불리며 작년 수출 1조 원(7억 8000만 달러)을 돌파하며 코리아 슈퍼푸드의 대명사인 라면을 앞질렀다. 이처럼 꽃길을 걷던 김 산업에도 그림자가 드리웠으니 바로 해양 오염과 해수 온난화다. 현재 한국 김의 주산 생산지인 남해안에서는 수온 상승으로 생산량이 급감하고 미세 플라스틱 등 오염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이에 정부와 각 자치단체는 김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로 ‘육상 김 양식장’이다. 경북도도 돌김 양식장 개발, 동해안 특성에 맞는 종(種) 배양에 나서고 있다. 게장과 함께 밥도둑으로 유명한 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보자. ◆K푸드 김밥, 세계의 소울푸드로 등장 2023년 미(美)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모녀가 김밥을 먹는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음식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세라 안(安)씨가 올린 이 영상은 조회 수 1100만회를 넘기며 K푸드 김밥의 화려한 데뷔를 알렸다. 세라 안씨가 김밥을 즐기는 장면이 방영된 후 미국 ‘트레이더조’ 냉동 김밥은 순식간에 매진을 기록했다. 트레이더 조는 미국 전역에 500개 매장을 둔 식료품점. 당시 매진 사태로 식재료를 공급하느라 한바탕 소란을 떨어야 했다. 이 덕에 이곳 냉동 김밥을 납품하던 구미의 식품업체 ‘올곧’이 초대박을 터트렸다. 올곧은 김밥 250톤 초도 물량을 순식간에 완판 시킨 이 사건 때문에 주문 물량을 맞추느라 한 달 넘게 철야 근무를 해야 했다고 한다. 한국 김밥이 갑자기 미국에서 터져(?)버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그 전조(前兆)를 1980년대 후반에 나타났던 일본인 관광객들의 ‘김 사재기’를 든다. 당시 TV에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 시장에서 ‘김매장 털이’를 하는 장면은 사실은 K-푸드 김의 데뷔를 알리는 서막 이었던 것이다. 거친 방사형(放射形)에 두꺼워 식감이 질겼던 일본 김에 비해 얇고 감칠맛이 나는(가격도 30% 수준인) 한국 김에 관광객들이 열광했던 것이다. 일본인들이 불을 지핀 한국 김 열기는 K-컬처 인기에 힘입어 미국,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스낵을 먹는 듯한 바삭한 식감과 환상의 조미(調味)는 단숨에 세계인들의 입맛을 빼앗아 버렸다. 때마침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해조류 열풍과 건강식에 대한 열기도 단숨에 한국 김을 판매고 최상위에 랭크시키는 데 기여했다. 김 요리와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2021년 한국 김 스낵을 950만 달러나 수입했는데, 이는 전년도보다 53%나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물량 공세를 앞세우는 중국산 제품의 추격에 맞서 아직도 ‘아마존 프랑스’ 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수온 상승으로 바다-스마트양식장 전환 120여국에 수출되며 K푸드 위상을 떨쳤던 한국의 김 산업은 뜻밖의 복병을 만나며 주춤하게 되는데 바로 온난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이다. 보통 김은 5~15도 수온에서 생육되는데 1년 중 이 온도가 유지되는 기간은 10월부터 다음에 4월까지 약 150일 정도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해수온이 상승하면서 채묘(採苗) 시기가 9월 초에서 9월 말로 2~3주 늦춰졌다. 이는 김 생산 시기가 한 달 가량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해 어가(漁家) 수입도 20% 가량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기후 변화로 인한 해양 재해가 발생함에 따라 김을 바다가 아닌 육상에서 재배, 양식하기 위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스마트 김 양식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바다 양식이 기후, 수온 등에서 제어가 불가능한 데에 비해 육상에서는 수온은 물론 염도, PH, 영양분 등 재배 환경을 자유롭게 콘트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해양수산부가 2024년부터 5년간 350억 예산을 투자해김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개발에 착수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김 육상 양식은 황색화, 갯병 등 감염을 예방할 수 있고 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100배 이상 높일 수 있어 경제성에서도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불붙은 육상 김 양식 전쟁, 대기업들도 앞다퉈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먼저 CJ제일제당은 2018년부터 육상 김 양식 개발에 참여해 국내 최초로 육상 양식 전용 배지를 개발했다. 대상(주)도 2023년부터 고흥군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5년간 20억 원을 투자한다. 바이오리액터로 불리는 수조를 이용해 김양식에 나선 풀무원도 이미 월 10kg의 실험용 물김을 생산하고 있다. 풀무원의 이다정 연구원은 “양식장에 AI, IOT(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같은 스마트 기술이 접목되면서 생산 효율화를 앞당겼고 스마트 센서 기반 모니터링으로 노동력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실험실 환경에서 많은 진척을 이루고 있는 스마트 김 양식이 과연 대량 생산을 거쳐 상용화로 이어질지가 앞으로 과제로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생산량을 늘리려면 대규모 공간이 필요하고 초기 시설투자비가 많이 들어갈텐 데, 과연 투자 대비 아웃-풋(경제성)이 나와줄 지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사시대부터 인류와 함께한 김 유럽 고대 인골서 해조류 흔적 일본 조몬시대 패총서 김 발견 ‘연오랑세오녀’ 설화에도 등장 해조류의 일종인 김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우리 식탁을 지켜왔다. 2023년 영국 요크대학은 유럽 전역의 28개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견된 74명 유골의 치아를 분석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이 유골 치석(齒石) 분석에서 이들 대부분이 선사시대부터 이미 해조류를 섭취해왔음이 밝혀졌다. 이는 이제까지 김 소비의 주축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극동지역보다 3000년 이상 앞선 것이어서 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일본 조몬(繩文)시대 패총 유적지에서도 해조류의 흔적이 발견돼 기원전 1만3000년 무렵 일본에서도 김이 식용으로 이용됐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인류들이 강가, 해안가에 거주하며 어로, 채집 생활을 했다고 볼 때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인다. 중국의 고대 문헌인 산해경(山海經)에도 ‘고대 중국인들이 해조류를 식용했다’는 기록이 자주 나타난다. 우리 사서(史書)에 김이 처음 등장하는 건 삼국유사. 제1권 ‘연오랑세오녀’편에는 ‘연오가 바닷가에서 해초를 따던 중 갑자기 바위가 그를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보인다. 물론 김을 뜻하는 ‘해의’(海衣) ‘해태’(海苔)라는 단어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이 ‘해초’(海草)가 전후 문맥으로 김, 미역 등을 지칭한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 기록을 통해서 볼 때 서기 157년 경 동해안 에서는 김이 식용으로 채취되었고 원시적 형태이지만 일본과 무역, 상업적 유통도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6-22

지방 소멸 위기 속 청년 친화·역사 관광 도시로 힘찬 도약!

“젊은 고령, 힘 있는 고령”은 민선 8기의 군정 목표이자 핵심 슬로건이다. 지난 3년간 군민 중심의 군정을 위한 각 분야별 현안사업을 역동적으로 추진하는 등 고령군은 미래를 향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역량을 집중해왔다. 그 결과 민선 8기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와 대가야 고도 지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관광 도시로의 초석을 닦고 있다. 또한, 공격적인 국·도비 예산 확보와 각종 외부평가 결과 다수의 우수기관 선정 등 추진력 강한 군정 운영으로 도시경쟁력도 확보 중이다. 아래에서 군민과 더불어 그간 이뤄낸 고령군의 새로운 변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대가야 고도 지정 민선 8기 최대 성과 뮤즈하우스·문화예술창작소 등 설립 지역 청년문화 거점 마련 스마트팜 등 과학영농시스템 구축… 그린 바이오 산업도 박차 교육·문화 결합 원스톱 돌봄서비스 제공, 저출생 극복 적극 대응 ▲청년 친화도시와 역사 관광도시로의 힘찬 발걸음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의 위기 속에서 고령군은 청년행복 임대주택 및 지역밀착형 임대주택사업, 청년농촌보금자리 등 청년층을 위한 주거인프라를 구축하고, 고령청년 드루와樂, 뮤즈하우스, 문화예술창작소 등 청년문화 거점공간을 마련하였다. 또한, 청년창업공간 조성, 일자리․청년창업지원센터 운영 등 내실 있는 일자리 연계․창출을 위해 노력한 결과, 지난해 ‘지방자치경영대상 일자리창출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선 출산장려금과 산후조리비는 물론, 다자녀가정 대상 양육장려금 및 학자금을 지원하고, 소아청소년과 진료 실시, 아이조아꿈놀이터와 어린이과학체험관, 실감형 체험도서관을 개소했다. 여기에 더해 창의 융복합 프로그램 및 교복․급식․교육비 3대 무상교육을 시행하면서 저출생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정책에도 발맞춰왔다. 민선 8기 최대 성과는 뭐라 해도 ‘지산동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대가야 고도 지정’이다. 가야고분군 중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지산동 고분군이 소재한 고령군은 세계유산의 도시로 거듭났으며, 20년 만에 대한민국 다섯 번째 고도로 지정되어 고령군이 대가야의 중심지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를 통해 고령군에서는 세계유산축전, 문화재야행, 미디어아트사업 등을 시행하고, 국립대가야박물관과 세계유산 탐방거점센터 건립, 역사문화클러스터 사업, 역사문화특화지구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100대 비대면 관광지’로 지정된 다산 은행나무숲 일원에 바래미 생태레저단지와 회천변 어북실 초화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야간경관 명소화사업과 대가야 빛의 숲 조성사업을 통해 낮과 밤이 모두 아름다운 매력적인 관광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지역특산물을 활용한 고령멜빙축제를 신설하였으며, 지역의 대표축제인 대가야축제는 야간프로그램 도입과 함께 내실 있는 운영으로 ‘문화체육관광부 2024년 최우수 문화관광축제’, 3년 연속 ‘경상북도 최우수축제’에 선정되었다. ▲스마트 농업 육성과 산업 경쟁력 강화도 주요 숙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영농환경에 맞춰 고령군은 귀농․귀촌 통합플랫폼 임대형 스마트팜 및 시설 현대화사업 지원 확대, 딸기육묘장 및 실증시험포장 준공 등 과학영농시스템 구축으로 새로운 영농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국가 전략사업인 바이오산업에 대응해 그린바이오 소재 산업화시설 조성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를 통해 지역농업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키워가고 있다. 부족한 농촌인력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 등 농촌인력뱅크를 운영하고, 농기계 임대사업소를 확충하였으며, 청년복합귀농타운 및 클라인가르텐 조성, 농업근로자 기숙사 건립으로 새로운 농업인구 유입에 힘쓰고 있다. 또한, 고령딸기 농촌융복합산업지구 및 농산물 가공 종합처리장 조성 등을 추진하는 한편, 쿠팡 및 대형마트 등과의 연계를 통해 고령지역 농특산물의 경쟁력 향상과 판로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 열악한 농촌지역 생활여건 개선을 위해 새뜰마을사업을 추진하고, 기초생활거점사업을 통해 우곡 만세한마당, 개진 금천지구 온누리마당, 다산 도란도란 어울림센터를 건립해 농촌 정주여건을 향상시켰다. 고령군은 대구시와 연접한 이점으로 곽촌지구 도시개발을 비롯한 공동주택 건설, 천년건축 시범마을, 일자리 연계형 공공임대주택 등 신규 주거단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대구권 배후도시로 성장 중이다. 달빛철도 특별법 시행, 대가야 하이패스 조성, 대구․경북 대중교통 광역환승제 도입 등 광역교통 인프라 구축을 위한 이러한 사업들은 도시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일조할 뿐만 아니라, 향후 고령군을 경남북-영호남 산업/물류, 교통의 중심지로 성장케 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월성·열뫼 산업단지, 동고령IC 물류단지 준공 및 대구경북권 산업안전체험교육장 유치를 통한 대구-구미 지역 첨단산업과의 연계로 시너지 효과를 유발하고, 성장동력을 점진적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지나온 3년 고령군은 적극적인 세일즈 행정을 통해 약 1조 원의 투자유치 성과를 거두었으며, 그 결과 2023년 경상북도 투자유치대상 우수상, 2024 대한민국 지역경제대상 종합평가 종합대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모든 것의 중심은 ‘군민’ 그리고, 끊임없는 소통 고령군은 군민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주민의 목소리를 군정에 반영하는 ‘동행 행정’을 펼쳐왔다. 양질의 행정서비스 제공을 위해 쌍림 상생교류센터를 준공한 데 이어 대가야읍과 성산면 신청사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 여기에 더해 대가야읍 신청사에는 대가야권역 거점형 돌봄교육센터를 조성하여 돌봄․교육․문화 기능이 결합된 원스톱 완전돌봄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저출생 극복에 대응해 나갈 예정이다. 또, 난개발 방지와 체계적인 도시개발을 위해 성장관리계획을 수립하고, 대가야역사공원과 지하주차장, 관광순환도로 정비 및 야간경관디자인 개선, 장애인 종합복지관, 군민체육관 및 우곡문화공원, 생활밀착형 숲과 맨발걷기 길 조성 등 주민편의와 화합,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생활SOC 확충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령군은 AI, 로봇 등 4차 산업 대비 인재 육성을 위한 창의 융복합교육 제공에도 힘쓰는 중이다 대도시와의 교육격차를 해소하고자 고민 중이며, 지난 4월에는 신규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돼 일상 속 학습문화 조성과 디지털 기반 학습체계 강화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다. 여기에 지역 대학과의 연계를 통해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평생교육 기반도 조성해 나갈 방침이다.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심화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고령군은 대한민국 고도 지정, 세계유산 등재 등 역사문화도시 기반을 조성하고, 체류형 관광인프라 구축과 생활인구 유입 등 지방 소도시의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 중이다. 이를 위한 핵심사업 추진과 함께 신규 주거단지 및 산업단지 조성, 그린바이오 소재 산업화시설 추진 등 미래 성장을 위한 기반 마련에 행정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그것이 고령의 미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결정을 미루지 않는 과감한 추진력과 멈춤 없는 도전으로 작지만 강한 도시, 성장잠재력이 높은 지역으로 커가고 있는 고령군을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병휴 기자 kr5835@kbmaeil.com

2025-06-19

마을의 중심으로 600여 년 이어온 힘찬 생명력

경북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436번지, 도로변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면, 마을 어귀에 거대하고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위풍 당당히 서 있다. 키 25미터, 몸 둘레 11.7m, 동쪽으로 10m, 남쪽으로 11m, 북쪽으로 8m 뻗은 가지들은 마치 하늘을 지붕 삼아 마을을 품고 있는 듯하다. 지상 3m에서 줄기가 세 갈래로 갈라져 올라간 모습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삼 형제가 등을 맞대고 선 듯하다. 나무 아래에 서면, 그 웅장함과 경외감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400여 년 전 마을에 살던 엄 씨 성의 조상이 심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나무의 위용을 보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600여 년의 시간 속에서 뿌리내렸음을 느끼게 한다. 키 25m·몸 둘레 11.7m· 뻗은 가지 길이 10여m 삼 형제가 등을 맞대고 선 듯 우애롭게 마을 품어 매년 음력 시월 오일 동제 지내오는 경배의 대상 오일의 기운은 나무를 타고 사람에게로 전하고 사람의 기원은 나무를 통해 하늘로 닿아 보살펴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약 2억7천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그 모양을 거의 바꾸지 않은 채 생존해 왔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로 번식하며, 수꽃이 피는 봄과 수분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가을 사이의 긴 기간 동안 생명의 연결을 준비하는 특이한 생식 구조를 지닌다. 병해충과 공해에 강하고, 화재에도 잘 견디며, 생명력이 매우 강한 점은 도시의 가로수로 널리 활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무는 손자 대에 이르러서야 첫 열매를 맺는다고 하여 공손수(公孫樹)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긴 시간, 조급함 없이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이 마을의 시간과 닮아있다. 은행나무는 그 자체로도 귀중한 자원이다. 열매는 고소하고 영양이 풍부하며, 약용으로도 쓰인다. 잎에서 추출한 징코민은 현대 의학에서도 성인병 치료에 쓰일 만큼 효능이 높다. 나무의 목질은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 바둑판이나 가구, 서책 보관함으로도 많이 쓰였다. 그러나 농소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는 그 어떤 효능보다 공동체의 중심으로 존재하는 힘이 가장 크다. 농소리 사람들에게 있어 시간과 믿음, 삶과 기원의 상징이다. 특히 이 나무 아래에서는 매년 음력 시월 오일(午日)에 마을 제사인 동제(洞祭)가 열린다. 은행나무 아래서 농소리 공동체의 마을 제삿날이 다가오면,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주민은 알게 모르게 마음을 정갈히 하여 제사 지낼 준비를 한다. 그 마음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오일(午日)은 십이지 중 일곱 번째 일지(日支)‘ 오(午)’에 해당하는 날이다. 오일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인간 삶을 조화롭게 이끌고자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깃든 날이다. 하루 중 가장 양기가 강한 정오 11시에서 13시와 연결되며, 이는 곧 자연의 기운이 가장 높이 치솟는 순간이다. 오행으로는 불(火)의 속성을 띠고 있어 활력, 정화, 생명력을 상징하며, 전통적으로 잡귀를 물리치고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시점으로 여겨졌다. 특히 무오일(戊午日)은 오일 중에서도 가장 화기가 충만한 날로써, 이 날을 택일해서 혼례, 이사, 개업, 제사와 같은 중대한 일을 치르기에 길한 날로 꼽혔다. 오일(午日)이 갖는 음양 전환의 철학적 의미도 깊다. 하루 중 양기가 극에 달한 뒤 서서히 음기로 넘어가는 전환의 시점이 바로 오시(午時)이며, 오일은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날이다. 오일에 행해지는 제사는 단순한 조상 숭배를 넘어, 삶의 흐름과 자연의 조화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는 의례인 셈이다. 농소리 마을 사람들이 매년 시월 오일에 은행나무 아래 모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은행나무는 단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기도와 기억, 희망과 두려움이 스며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손주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고, 누군가는 다음 해 농사가 무사하기를 빈다. 은행나무는 마치 마을 전체의 중심처럼, 그런 소원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말이 없지만 그늘로 대답하고, 잎의 흔들림으로 응답한다. 사람들이 이 나무를 ‘신목(神木)’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전통 때문만은 아니다. 그 신성함은 수백 년의 공동체 합의를 통해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은행나무는 또한 마을의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이기도 하다. 지금은 몰라도 우리 어릴 적에만도 부모들이 자녀의 손을 잡고 나무 앞에 데려와 절을 시키고, 아이들은 자연스레 제사의 순서를 배웠다. 제례를 통해 전통은 말보다 몸짓과 공간, 향의 기억으로 전승되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제사의 형식은 같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달랐다. 은행나무의 잎은 그 자체로 언어다. 싸락눈처럼 흩날리는 노란 잎은 마치 신의 응답처럼 떨어지고, 사람들은 그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누군가는 그 잎을 책갈피에 넣고, 누군가는 머리맡에 올려두기도 한다. 그 잎은 그냥 잎이 아니다. 그해의 기도, 바람, 햇살이 깃든 하나의 축복이다. 은행나무는 계절의 흐름을 붙들고 서 있다. 봄엔 잎눈을 틔우고,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가을엔 황금빛 잎을 떨어뜨린다.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로 계절의 침묵을 견딘다. 이 모든 변화 속에서, 은행나무는 계절의 기록자이자 마을의 등불이다. 은행나무는 또한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다. 현대 도시에서는 나무로만 인식하지만, 농소리에서는 여전히 은행나무는 공경의 대상이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오일(午日)이라는 날이 특별한 것도, 그날이 인간과 자연이 서로의 호흡을 확인하는 상징적 시간이기 때문이다. 불의 기운, 말의 상징, 정오의 절정, 이 모든 자연의 요소들이 오일에 집약되어, 공동체의 정신적 중심인 은행나무 아래로 모여든다. 은행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바람이 불고, 잎이 흔들리고, 계절이 흐르더라도, 마을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오일의 기운은 나무를 타고 사람에게로, 사람의 기원은 나무를 통해 하늘로 닿는다. 이 순환이 이어지는 한, 농소리 마을과 주민은 앞으로도 평화로울 것이다. 은행나무를 통하여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인간 삶을 조화롭게 이끌고자 했던 농소리 주민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오일(午日)이란…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시간이다. 오일(午日)은 십이지 중 ‘오(午)’에 해당하는 날로, 시간은 하루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정오 무렵인 11에서 13시를 말한다. 오행에서는 ‘화(火)’의 속성을 지녀 생명력, 열정, 정화를 상징하며, 이는 인간 삶의 전환과 새출발을 의미한다. 특히 무오일(戊午日)은 화기와 양기가 절정에 이르는 날로 여겨져, 혼례, 이사, 제사, 개업 같은 중대한 일을 치르기에 적합한 길일로 사용되었다. 출생년, 즉 띠를 말할 때‘오(午)’가 상징하는 말(馬)처럼, 이날은 민첩함과 진취성, 생명의 활력이 넘치는 날로 인식되었다. 방위를 말할 때는 정남을 또한 오일은 양에서 음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으로,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시간으로 여겨졌다. 민속 신앙에서는 정화와 치유, 신령의 날로 삼아 굿과 제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오일은 단순한 달력상의 날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 기운, 인간 삶이 교차하는 전통적인 전환의 시점이다. 특히 단오의 풍속은 우리 민속에서 오일의 정수가 집약된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6-18

형상을 넘어, 마음을 빚다 경주, 고려 청자를 부르다

경주박물관, 신라의 도시 경주에서 8월 24일까지 고려청자 특별전시회 유리관 너머 상감청자·상형청자 통일신라 시대 형상토기가 기원 이야기 품은 신비로운 푸른 자기 고려시대 유물 실제로 볼 수 있어 ■경외의 비색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실 앞, 사람들의 발걸음이 잠시 머뭇거린다.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청자 특별전을 마주하기 위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함이다. 제목이 먼저 시처럼 다가온다. 전시실 문턱을 넘는 순간, 모든 소리가 묻힌다. 사방으로 튀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걸음이 조심스러워지고, 말소리는 낮아진다. 전시실 내부는 고요하지만, 고요는 비워진 것이 아니라 꽉 채워진 무게를 품고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 비색의 기물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조용히 머뭇거린다. 침묵이 아니라 경외다. ■1부 그릇에 형상을 더하다 경주박물관은 언제나 새롭다. 그러나 이번은 새롭다는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고대 신라의 숨결이 배어 있는 박물관에서, 뜻밖의 고려 형상과 마주하고 있다. 도록 속 사진으로만 접했던 귀하디귀한 상감청자와 상형청자를 처음 만난다. 유리관 안에 놓인 푸른 도기들은 하나같이 신비롭다. 어떤 이야기를 품은 듯 시선을 강하게 끈다. 흙과 불, 빛깔의 언어로 건네오는 말들 속에 사람과 동물, 식물과 신령한 존재들이 고요히 말을 걸어온다. 전시의 서두는 고려청자의 뿌리를 통일신라의 형상토기에서 찾고 있다. 월지에서, 구황동 원지에서, 딱딱하게 굳은 흙이 되어 누워 있던 사자와 오리, 새와 말의 형상들이 청자의 몸으로 되살아난다. 이런 형상들은 단지 고대의 유산이 아니라, 고려인의 사유 속에서 다시 태어난 기억이다. 지금, 나는 고대의 어떤 시간의 곁을 지나고 있다. 옛사람들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상상력이 실용을 넘어 조형미로, 조형미를 넘어 삶의 감각으로 번져가는 순간을 생생히 체감하고 있다. ■2부 제작에서 향유까지 시선은 역사의 흐름처럼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다. 그릇이 아니라 존재다. 조롱박의 부푼 곡선, 복숭아의 매끈한 살결, 석류의 탱탱한 껍질, 오리의 부리와 깃털까지도 지금 눈앞에서 생명처럼 숨을 쉰다. 고려의 상형청자들은 단지 자연을 본뜨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고, 실재하는 그릇의 형상으로 상상을 정교하게 붙잡는다. 귀룡은 비늘마다 왕의 권위를 두르고, 어룡은 물결을 가르듯 유려하게 휘어진다. 기린의 발굽 아래엔 구름이 감기고, 연꽃은 천상의 질서를 따라 피어난다. 신화의 동물들이 흙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광경 앞에서, 상상은 실재를 능가한다. 고려인의 조형 세계는 가히 경이롭다. 이처럼 눈앞에 놓인 도자기는 장식도, 단순한 생활 도구도 아니다. 그 안에는 상징과 실용, 욕망과 절제가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무늬는 정교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곡선은 아름답지만 흘러내리지 않는다. 화려함 속에 침묵이 깃들고, 과장이 아닌 균형이 선다. 청자의 선은 고려인의 마음의 질서를 말한다. 삶과 죽음, 신과 속, 세계와 자아가 그 안에서 교차한다. 나는 지금 이 푸른 그릇들 앞에 서서, 고려인의 정신이 빚어낸 또 하나의 우주를 마주한다. ■3부 생명력 넘치는 형상들 고려 사람들은 물가에 사는 오리나 물고기, 흙에서 자라는 복숭아나 조롱박 같은 자연의 형상들을 청자 위에 올려두었다. 형상은 향로가 되었고, 연적이 되었고, 술잔과 주전자가 되었다. 고려 장인들은 형상을 조각하는 동시에 삶을 담아냈다. 상형청자에 등장하는 용, 어룡, 귀룡, 기린, 사자와 같은 상상 속의 동물들은 예로부터 상서로운 존재로 여겨지며, 왕실과 귀족의 권위, 복과 수호를 상징한다. 이러한 청자는 단지 장식품이 아니라, 왕실의 의례에 사용되거나 귀족들의 삶에서 특별한 물건으로 기능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을 형상화하고, 그 형상이 다시 실용의 몸을 입을 때, 고려 청자는 상상과 실용이 만나는 신비로운 그릇이 된다. 아름다우면서도 절제된 곡선 속에 고려인의 마음의 질서가 함께 깃들어 있다. 곡선은 장인의 손끝을 넘어서, 고려인들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자 마음의 형식이다. 그 형식은 지금 우리의 시선 아래에서도 여전히 반짝인다. ■4부 신앙으로 확장된 세상 푸른 빛을 따라 전시의 깊은 곳으로 들어오자, 형체 너머의 세계가 더욱 깊게 펼쳐진다. 불상과 향로, 도교적 상징이 새겨진 기물들이 유약의 광휘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릇이라 부르기에는 무언가 다르다. 푸른 형상들은 금속도 아니고, 목재도 아닌, 연약하지만 강한 흙과 불로 빚어진 신의 언어다. 신앙이란 무엇일까. 신에게 이르는 길이자,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깊고 넓게 확장해나가는 여정 아닐까. 보이지 않는 존재 앞에서 인간은 손을 모으고, 마음을 다듬는다. 청자 위에 새겨진 곡선 하나, 그리움과 기도 사이에서 태어난 침묵의 문장이다. 신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기물 하나하나의 조용한 형상 속에, 피어오르는 향의 바람 속에 숨어 있다. 신은 없음과 있음의 경계를 나누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모호함 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더욱 자신의 내면을 일깨운다. 고려인은 흙 위에 신을 모시고,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상상과 믿음을 쏟아부었다. 이 믿음이야말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맑고 투명한 청자의 빛을 탄생시켰다. 청자는 신에게 이르는 문이며, 동시에 인간의 가장 내밀한 기도가 스며든 그릇이다. 이 맑은 청빛은 단지 ‘아름답다’는 감탄이 아니다. 인간이 도달한 정신의 가장 높은 경지에서 피어난 하나의 형상이자 빛이다. 현실과 신비, 감각과 초월이 서로 뒤섞인 채로 투명하게 드러나는 기물이다. 그 푸른 빛 앞에서 우리는 문득, 인간의 본성이 가진 가장 정제된 형태의 사유와 감정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존재를 초월한 빛이며, 언어를 초월한 고요다. 눈으로 목도한 청빛 속에, 나는 경계를 허물고 내 안의 신을 만나고 있다. ■손으로 느끼는 고려청자 전시의 끝자락, 완성된 상감청자 세 점이 놓여 있다. 손을 올리니 비색의 유약이 매끄럽게 감도는 표면을 따라 손끝이 미끄러진다. 유약의 결은 촉감으로도 반짝인다. 조각된 형상과 무늬의 결마다 고려인의 숨결이 가만히 우러난다. 흙의 기억, 불의 흔적, 시간의 결이 지금 내 손 안에서 살아나는 듯하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도기를 만지며, 나는 어느새 그 시절로 스며든다. 도공이 되어 흙을 빚고 말리고 유약을 발라 가마 앞에 선 듯, 무늬 하나를 새기기 위한 호흡이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청자의 표면을 따라 흐르는 정제된 빛은 그저 유물의 표면이 아니라, 내가 잠시 빌려 쥔 과거의 감각이다. 그 빛 안에, 나는 청자를 빚는 손을 상상하고, 그 안에 깃든 마음을 만지고 있다. 비색의 곡선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곡선은 시간을 감싸고 나를 바라본다. 고려의 상형청자는 단지 도자기가 아니라, 감각과 세계관, 그리고 고요한 사유의 그릇이었다. 이번 전시는 그 아름다움 속에서 묻혀 있던 정신의 깊이를 우리에게 비추어준다. 나는 한 줄 청빛을 품는다.

2025-06-18

‘두부와 송이버섯’ 혀와 코를 매료시킨 영남의 별미

아래 기사는 본지 홍성식 기자가 한국기자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재하고 있는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이다. /편집자 주 ▲산초기름에 구운 두부 드셔보셨나요? “먹고살 만한 시대가 오면 음식 관련 TV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난다”는 이야기가 떠돈 게 20세기 후반, 혹은 21세기가 시작되던 즈음이다. 내가 20대 말과 30대 초반을 살던 시절. 실제로 그랬다. 공중파 방송이 앞다퉈 전국의 맛집은 물론, 세계 각국의 별나고 특별한 요리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이지 듣도 보도 못한 재료를 사용해 기이한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별미가 세상엔 많고도 많았다. 헌데,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 본 수백 가지 요리 중 기억에 또렷하게 남은 건 가격부터 사람을 깜짝 놀래키는 곰 발바닥으로 만든 요리나, 염장한 북해산 철갑상어알이 아닌 우리가 익숙하게, 자주 먹어왔던 평범한 음식을 소개한 프로그램이다. 대략 20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MBC였던지, KBS였던지 흐릿하다. 늦은 밤 TV 속에 등장한 70대 노파가 카메라를 마주 보고 한숨을 쉬며 이런 말을 했다. 두부를 만들기 위해 콩을 삶던 커다란 가마솥 앞에서였다. “아이고, 내가 전생에 죄가 많아 이번 생에서 두부를 만든다 아입니까.” 무슨 말일까? 흔해빠진 두부 가게를 운영하면서 ‘전생(前生)’까지 언급할 이유가 있을까? 그땐 나도 어렸으니 생각이 단순했고, 세상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단편적일 때다. 말 그대로 동네 반찬가게에서부터 마트 식품코너까지 지천에 널린 게 두부지만, ‘제대로 된 두부’를 만들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게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알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흐른 뒤였다. 일견 단순하게 보이는 ‘두부 만들기’는 시작부터가 쉽지 않다. 두부 맛을 좌우하는 콩의 선택이 첫 번째 과제. 공기 맑은 산간 지역에서 기른 해콩을 찾기 위해 경상북도와 강원도 산간 농가를 뒤지는 일은 피곤하고도 사람을 지치게 하는 작업. 그럼에도 ‘두부 맛집’ 주인장들은 마다하지 않는다. 자, 이제부터 또 여러 난제가 등장한다. 선택된 콩을 얼마나 오랫동안 물에 불릴 것인지, 불린 콩을 삶는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간수(습기 찬 소금에서 녹아 흐르는 짠 물)로는 어떤 걸 선택할지, 부드러운 두부가 엉기고 응고될 때까지는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려면 밤을 꼬박 새우는 게 일상사라고 한다. 이쯤 되니 앞서 말한 그 할머니가 ‘전생의 죄’를 이야기하며 짙은 회한을 털어놓은 것일 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잘 만든 두부 한 모는 세계에서도 이름이 높은 와규(和牛) 맛에 뒤지지 않는다. 콩의 단백질이 고가의 소고기 단백질을 압도하는 것. 그 맛의 비결을 투여된 시간과 지극한 정성 외에 다른 어떤 방법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서너 해 전. 경북 상주의 유명 관광지를 취재하러 갔다. 밥때가 돼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을 서성거렸고, 동네 사람이 추천해준 고풍스런 옥호(屋號)의 식당 문을 열었다. 주방에서 비릿함을 누르는 잘 익은 콩의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다. 식물성 단백질에서 건강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들기름에 구운 손두부는 영남은 물론 호남과 서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음식이 됐다. 그런데, 그 집은 두부를 ‘산초기름’에 굽는다고 했다. 두부와 산초라…. 생경한 조합이다. 음식에 관해 모험가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맛은 어땠냐고? ‘천하일미’라고 하면 호들갑을 떤다고 욕을 먹을 터. 하지만, 산초기름 두부구이의 감칠맛은 아마 최소 10년은 혀와 코가 기억할 것 같았다. 딸려 나온 된장찌개와 더불어. 된장 역시 재료가 되는 건 콩이다. 허니, 그날 점심은 ‘콩의 향연’ 또는, ‘콩의 심포니’라 칭해도 무방했다. 협연자는 산초기름. 그 식당은 창업주가 40년, 물려받은 딸이 20년, 그러니 같은 자리에서 60년째 운영 중이다. ‘전생에 죄가 많은’ 두 여자의 고생이 만들어낸 ‘두부’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그저 진미(珍味)라는 흔하디흔한 표현만으로 모자랄 것 같다. ▲송이버섯, 이 향기를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아우라(aura)’는 무시무시한 단어다. 무슨 뜻이냐고? 백과사전의 설명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그 사람이 아니면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 이러니, 아우라란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카리스마(charisma)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경지를 지칭하는 것일 터. 올해 여든다섯이 된 영화배우 알 파치노. 그의 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휘는 ‘아우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하다. 시시껄렁한 싸구려 건달로 분했을 때, 뉴욕으로 옮겨간 이탈리아 마피아의 우두머리를 연기할 때, 20세기 말 세상을 절멸시키려는 악마로 등장했을 때…. 그는 배역에 따라 눈빛과 몸짓을 능수능란 바꾼다. 때론 젊은 깡패 같고, 어느 땐 조직폭력배 두목 같고, 드물게는 진짜 악마 같다. “배우로서의 그는 돌올하고 탁월하다”는 영화평론가의 말에 감히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2004년이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전인권 콘서트가 열렸다. 당시 내 나이 서른셋, 전인권은 공자가 말한 바 지천명(知天命). 쉰이었다. 대상포진으로 입술 아래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최악의 컨디션임에도 전인권은 ‘당장 죽어도 좋다’는 듯 절규했다. 그날, 전인권의 노래를 들으며 어떤 짐승을 떠올린 건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포효를 멈추면 숨이 끊기는 운명을 지닌 아마존 정글의 전설 속 맹수.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선글라스 속에선 내내 아우라가 번득였다. 전인권이 아니면 감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음식 이야기’를 한다면서 잡설이 길었다. 폐일언. 경상북도 영덕과 봉화, 울진 등지에서 귀물(貴物)로 대접받는 ‘어떤 버섯’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서설이 과했다. 이미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오늘은 ‘송이(松耳)’ 스토리다. 혀와 눈이 아닌 코로 먼저 맛보는 버섯. 서양엔 훈련된 돼지가 냄새를 맡게 해 채취하는 버섯이 있다. 참나무 뿌리에 붙어사는 트러플(truffle·송로버섯)이다. 이 버섯 역시 향이 좋기로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다. 하지만, ‘송이버섯’의 향기에 비할 수 있을까? 울울창창 짙푸른 소나무 숲에서 자라는 송이는 경북 북부와 강원도, 북한과 중국 등이 주산지인 귀한 식재료다. 버섯이지만 기이하게도 생선처럼 비늘이 있고, 옅은 갈색의 몸통은 사방 백리로 오묘한 냄새를 뿜어댄다.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이야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송이의 가장 큰 미덕은 ‘아우라가 깃들어있다’ 말해도 좋을 향기. 이게 먹는 버섯 가운데 가장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이유다. 한국엔 음식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작가가 몇 있다. 소설가 성석제도 그중 하나다. ‘숨겨진 맛집’을 찾아다닌 그의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끼니때가 한참 멀었음에도 배가 고파온다. 바로 그 성석제가 쓴 산문 가운데 하나엔 서울 신촌의 일식집에서 ‘엄지손톱만 한’ 송이버섯 조각이 발산하는 향에 놀랐다는 경험이 담겼다. 그것에 비하면 내가 겪은 ‘송이 섭식’ 체험은 스케일이 폭력적(?)일 정도로 크다. 대략 20년 전. 경상북도와 강원도 경계에 신당을 차린 늙은 무녀(巫女)를 만났다. “당신 사주를 봐주겠다” 하길래 “난 그런 걸 믿지 않는다”고 했더니, 눈가에 주름을 만들어 웃으며 “그럼 송이에 술이나 한잔 하고 가라” 했다. 달콤한 제의를 왜 거부하겠는가? 무녀가 가마솥만한 커다란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콸콸’ 붓고 어마어마한 양의 송이버섯을 가져다 넣었다. 일행 셋이서 kg당 80만 원이 넘는 송이를 족히 2kg은 먹었던 듯하다. 괴발개발 기사나 쓰는 한빈한 월급쟁이가 평생 맛볼 송이버섯을 하루에 다 먹은 셈이었다. 그 송이는 ‘놀라운 향’이 없었겠는가? 그럴 리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지난봄 경북 일대를 잿더미로 만든 산불 탓에 올해는 물론, 향후 30년 가까이 영덕, 봉화, 울진의 송이버섯을 맛보기 힘들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비단 미식가만이 아니다. 3등품 송이의 향기라도 맡고 싶은 이들의 실망감이 클 것 같다. 이 상황은 ‘아우라가 깃든 버섯의 비극적 절멸’인가? 조금 슬프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6-17

경주박물관 100년, 제국의 전리품에서 민족의 자존으로

■총독도 놀라게 한 경주, 민심 경주 사람들의 저항에 총독부는 당혹했다. 문화정치를 내세우던 사이토 마코토 총독조차 민심의 폭발 앞에 흔들렸다. 경북지사는 “경주 주민이 유물이 경주고적보존회에 보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문장을 보고서에 실어 총독부에 올렸다. ‘지방민의 의향을 고려해 보관을 결정하겠다’는 모호한 회신이 도착했다. 경주 사람들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진정위원이 경성으로 올라가 총독과 정무총감을 직접 면회했다. 결국 총독부는 금관의 경주 보존을 약속했다. 경주의 저항은 단순한 금관의 보존이 아니라, 역사적 정체성과 자존의 수호였다. 경주 시민의 피땀어린 모금으로 지은 ‘금관고’ 마침내 경성으로 갔던 금관 다시 돌아와 안치 금관 존치 운동 민족의 뿌리 확인시키는 계기 광복 이후 ‘국립박물관 경주분관’ 우리 품으로 1975년 7월 ‘국립경주박물관’ 인왕동 시대 열어 명칭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변경 올 10월말~11월초‘2025 APEC 정상회의’ 열려 국립경주박물관 또 한 번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시민의 모금으로 지은 금관고 ‘금관은 경주에 있어야 한다’는 경주 사람들의 외침에, 일제는 ‘보관할 곳이 없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경주 사람들은 곧장 대답했다. ‘우리가 돈을 내겠다.’ 금관고 설립을 위한 모금운동이 시작되었다. 금관고는 경주 시민이 피와 땀으로 지은 기념비였다. 일본이 설계하고 자재를 공급했을지언정, 경주 사람들의 뜻으로 세워진 저항의 건축이었다. 1923년, 마침내 금관고가 세워졌다. 조사와 기록을 위해 경성으로 갔던 금관이 다시 경주로 돌아와 안치되었다. 금관고는 침탈의 시대에 솟아오른 민중의 반격이었다. ‘우리는 위대한 왕조의 후예다’라는 의식이 비로소 구체적인 형태를 얻은 순간이었다. 금관 존치 운동은 경주 사람들의 의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후 동아일보가 나섰다. 금관의 발굴과 의미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영화사들은 신라의 유물과 예술을 주제로 영사대를 조직했고, 사진과 설명이 담긴 강연이 전국을 돌았다. ‘조선의 문화’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의 학교들이 움직였다. 수학여행 1순위로 경주를 정했다. 학생들의 끊임없는 발길이 석굴암과 불국사, 금관과 마주했고, 민족의 뿌리를 확인 시켰다. 경주는 ‘우리는 누구인가’를 물어온 눈부신 질문이자, 위대한 민족의 후예들이라는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1923년 5월까지 금관고를 찾은 관람객은 약 2만3천여 명이었다. 금관고가 주요 관광지로 자리를 잡자, 일제는 확장에 나섰다. 1926년 6월 30일, 진열관 처마 밑엔 일장기가 펄럭였고, 검은 글씨로 음각된 새 현판이 정문 위에 걸렸다.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명칭만 바뀌었을 뿐, 야욕은 그대로였다. 진열관의 유리는 윤이 나도록 닦였고, 전시장은 군더더기 없이 정리된 모습으로 손님을 기다렸다. 제복의 순사들이 절도 있게 어깨를 펴고 서 있었고, 마당엔 초대 인사들의 자리가 미리 정돈되어 있었다. 총독부 고관들, 경북의 관료들, 고적보존회의 인물들이 삼삼오오 천막 아래 모였다. 그날 경주의 하늘 아래, 신라의 기억은 일장기 그림자 속에 숨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한 남자가 그 자리의 주인이 되었다.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 제록앙웅).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초대 분장 대리가 되었다. 그의 발밑에는 조용한 약탈의 자국이 겹겹이 밟혀 있었다. 그는 1908년 조선으로 건너와 1910년부터 경주에서 사실상 도굴을 통해 유물을 수집했다. 필자가 쓴 ‘『경주의 재발견』 2편 「신라 금관(상)」’ 편에서도 언급했듯, 1921년 금관총 발굴에 직접 관여했으며, 도굴한 유물을 팔거나 고관들에게 선물하며 경주의 문화 권력자가 되었다. 결국 만행이 드러나 1933년 5월, 유물을 도굴·판매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박물관’ 개관과 함께 고적지 정비와 경주역 확장도 이어졌다. 경주의 문명화는 급속히 진행되었다. 불국사와 석굴암, 대릉원 일대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어느새 경주는 ‘조선 최고의 고적 관광도시’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는 문화유산의 힘이자, 기억이 머무는 장소가 가진 흡입력이었다. ■두 얼굴의 도시, 생계와 상처가 교차한 박물관 경주 사람들은 박물관 앞에서 복잡한 감정에 싸였다. 금빛 관이 유리 진열장 안에서 찬란히 빛날 때, 어떤 이는 조상의 영광이 되살아나는 듯 감격했고, 또 어떤 이는 무덤을 파헤쳐 세운 전시장이 야만처럼 느껴졌다. 손에 돈을 쥐고 조상의 유물을 바라보는 일은 낯설고 서글펐다. 그 유물은 원래 대가 없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들이었으니까. 진열장 앞에서 사진을 찍는 웃는 모습은 경외와 이질감이 동시에 일으켰다. 경주의 삶은 확연히 달라졌다. 진열장 주변에 골동품 가게가 생기고, 여관과 식당이 문을 열었다. 조상의 흔적이 남긴 길 위에서 삶을 도모해야 했다. 신라의 유산은 경제가 되었고, 민족의 자긍심은 상품 속에 녹아들었다. 박물관은 제국이 만든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민족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일제는 신라 유적, 조상의 유물을 제국의 전리품처럼 전시하며, 찬란함을 조선 지배의 정당성으로 포장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표면 아래에는 조선을 문명화시켰다는 왜곡된 역사 의식을 퍼뜨리려는 제국의 속셈과 야욕이 숨겨져 있었다. 경주가 ‘민족 관광도시’로 불린 건 바로 이런 두 얼굴 때문이었다. 한 손에는 생계, 다른 한 손에는 상처와 긍지가 들려 있었다. ■광복 이후, 경주박물관의 재탄생 광복의 함성이 전국을 뒤덮던 1945년 10월 7일,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이 문을 열었다. 최순봉 관장과 직원들은 일본인들에게서 박물관 건물과 유물을 인수했다. 그해 겨울, 미군정의 협조 아래 부산과 대구에서 문화유산 회수 작업이 이뤄졌다. 사라졌던 유물들이 하나둘 경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듬해부터 경주박물관은 국립박물관 체계의 일원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호우총과 은령총 발굴에 참여하며 고고학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발굴의 역할은 단지 유물을 찾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 과거를 되찾는 행위였고, 우리 손으로 역사를 쓰는 첫 줄이었다. 그러나 박물관은 위태로웠다. 경주문화원 자리에 세워졌던 옛 건물들은 대부분 한옥을 개조한 것이어서 화재에 취약했다. 유물은 늘어나고, 전시 공간은 턱없이 좁았다. 1950년대 중반, 연간 5만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며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유물을 보호하고 새로운 유물을 선보이기 위한 변화가 절실해졌다. 1961년, 온고각 뒤편에 2층 규모의 신관이 세워졌다. 경주박물관의 첫 확장이자, 자생적 발전의 신호탄이었다. 신관은 점점 복잡해지는 유물 보존과 전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금방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1960년대 중반, 도시 개발과 도로 확장이 이어지면서 경주 각지에서 유적 발굴과 함께 유물이 쏟아졌다. 유물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동부동의 박물관은 모든 것을 수용하기엔 너무 협소했다. 박물관은 더 넓고 안전한 공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966년, 박일훈 관장은 박물관 신축 계획을 세웠다. 여러 부처에 청원서를 보냈다. 1967년 4월, 대통령 지시각서 11호로 경주박물관 신축이 공식 결정되었다. 그해 가을, 새로운 터전을 위한 부지 조사도 시작되었다. 수많은 후보지를 검토한 끝에, 월성 남쪽 인왕동 들판이 새 부지로 정해졌다. 1968년 10월 4일, 첫 삽이 인왕동 땅을 갈랐다. 단지 건축의 시작이 아니었다.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새로이 담을 그릇을 만드는 일이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인왕동 시대를 열다 인왕동 들녘에 신라의 심장을 다시 세우는 박물관을 지어야 했다. 단지 유물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신라의 정신을 품은 공간이어야 했다. 건축가 이희태는 고뇌 끝에 설계도를 그렸다. 이희태는 해답을 탑에서 찾았다. 불국사의 불탑을 허투루 보지 않았다. 지붕은 신라의 기와를 본떴고, 근정전 초석의 곡선이 바닥에 깔렸다. 뒤뜰에는 모조된 석가탑과 다보탑이 상징처럼 섰다. 원본에 쓰인 돌을 찾아 경주 외동의 화강암과 울주의 응회암을 가져왔다. 돌에 생명을 불어넣은 이는 당대를 대표하는 석공 김부관이었다. 공사는 6년 넘게 이어졌다. 마침내 1975년 7월 2일, 국립경주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한 달 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인왕동 시대의 문이 활짝 열리며, 경주는 세계의 중심임을 알렸다. 1982년 7월 19일, 제2 별관인 월지관이 문을 열었다. 안압지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의 삶과 예술이 들어섰다. 2년에 걸친 발굴은 3만 점이 넘는 유물을 쏟아냈고, 그 유물을 품는 새로운 집이 월지관이 된 셈이었다. 2002년 5월엔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신라의 불교미술, 그 정갈하고 깊은 흐름을 담은 공간이 지금의 ‘신라미술관’이다. 돌과 흙에서 피어난 신라의 미학이 이곳에서 다시 숨 쉬기 시작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더는 과거의 창고가 아니다. 역사가 현재와 마주하는 살아 있는 무대가 되고 있다. 2025년 10월 말에서 11월 초, 국립경주박물관은 또 한 번 세계의 중심이 된다. 2005년 부산 회담 이후 20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국가 정상급 인사들이 모이는 역사적 회담의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경주박물관은 뜨거운 공사가 진행되는 중이다. <<하> 편에는 경주박물관 고려상감청자전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2025-06-11

마을의 과거와 미래를 품고 살아갈 생명의 상징

지속 가능한 지구 시스템에서 나무는 지구를 지키는 초병으로써 최전선에 서 있다. 지구에 나무가 없다고 상상해 보면, 지구는 의미 없는 먼지에 불과할 것이다. 생명체가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나무 덕분이다. 나무는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물과 공기, 흙을 정화해 건강한 삶을 가능케 한다. 또한 온도와 습도, 바람 등 미기후를 조절하고, 토양 유실과 홍수를 예방하여 지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나무는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생명체를 품고 키우며 지구를 부양하고 보살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며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650살·높이 20m·둘레 6m 노거수 1982년 천연기념물 제318호로 지정 고려 공민왕 때 전쟁에 나간 효자의 “나무를 자식처럼 가꿔 달라”는 전설 오늘날 마을 공동체 정신으로 이어져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나무를 사랑하고 보호해 온 민족이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깃든 숲을 ‘당산 숲’ 또는 ‘마을 숲’이라 불렀고, 그 숲의 나무를 ‘신령이 깃든 당산목’, ‘성황나무’, ‘신지핌나무’라 하여 신성시하였다. 이러한 나무는 액운이나 잡귀의 침입을 막는 마을의 신목으로 여겨졌으며, 훼손은 신체 훼손과 동일시될 만큼 금기시되었다. 이 가운데 역사적·문화적·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당산목, 정자목, 풍치목 등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이러한 법적 보호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제정된 ‘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 제6호에서 비롯되었고, 해방 이후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는 국가유산청에서 관리하며, 산림청은 100년 이상 된 노목, 거목, 희귀목 등을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1972년에는 전국의 노거수를 일제 조사하여 요건에 부합하는 나무를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보호 대상으로 삼았다. 보호수로 관리되던 나무 중 민속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승격된 나무가 있다. 바로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1428번지의 회화나무 노거수이다. 이 나무는 “나무를 자식처럼 가꾸어 달라”는 유언이 전해지는 전설의 당산나무다. 나이는 약 650살, 높이는 20m, 둘레는 6m에 이르는 노거수이다.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318호로 지정되었다. 안내판에는 나이가 400살로 기록되어 있으나, 전설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 시대(재위 1351~1374)에 심어졌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재임 연도로 계산하더라도 650년이 된다. 전설을 뒷받침하듯, 마을 중심부에 노거수가 자리 잡고 있다. 회화나무 노거수는 나이만큼이나 몸은 노쇠하여 큰 원줄기는 속이 비어 있었다. 주민들은 외과수술과 짐승이나 새, 곤충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촘촘한 방충망 설치와 나무 주변 아스팔트 도로에 유공을 뚫고 지팡이도 선물하였다. 마을 제사를 지내는 당산목임을 표시하는 바윗돌 제단과 금줄이 쳐져 그 위엄만은 아직도 건재하게 살아있었다. 육통리 회화나무 앞에 서면, 마치 한 세기의 숨결이 바람을 타고 흘러오는 듯하다. 속이 비고 몸이 휘어진 나무는 늙은 신령처럼 말없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생명이란 얼마나 질긴 것인가. 줄기 속 공동은 상처지만, 그 틈으로 햇살이 스며들고, 가지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뻗었다. 공존이란 이름 아래, 나무도 사람도 서로의 시간을 감싸 안는다. 생명은 혼자가 아니다. 나무는 말없이 이 마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품고 있다. 회화나무에는 예부터 내려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전설이라고 하지만, 마을의 한 역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려 공민왕 때에 부모님께 지극정성으로 효도하는 김영동이란 젊은 청년이 마을에 살고 있었다. 당시 북으로부터 홍건적이 침입하고 남으로부터 왜적이 침입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노략질을 일삼는 바람에 백성들은 편안할 날이 없었다. 19세의 젊은 나이로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갈 것을 결심하고 회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하며 ‘소자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나무를 자식으로 알고 잘 가꾸어 달라’라고 하였다. 그는 왜구와 싸우다가 전사하자 부모는 그 슬픔을 이겨내려고 아들의 소원대로 회화나무를 보호하고 잘 가꾸었다.” 육통리 마을에서는 전쟁터에서 잃은 귀한 아들처럼, 부모의 마음으로 오늘날에도 정월 보름날 마을에서 가장 정결한 사람을 제주로 뽑아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나무를 심고 귀한 자식처럼 보살피고 가꾸어 달라고 유언한다.” 이보다 더한 노거수 사랑이 있겠는가 싶다. 우리 조상들의 나무 사랑과 지혜는 이 고사와 전설을 통해 더욱 빛난다. 국가유산청이 시행하는 2022년 자연유산 보존에 앞장선 마을 대표에게 수여하는 ‘당산나무 할아버지’ 상을 육통리 김상동 이장이 받았다고 마을 주민 한 분이 귀띔해 주었다. 육통리 천연기념물 회화나무는 단순한 노거수를 넘어, 수백 년간 마을 사람들의 정성과 믿음을 품고 자라온 살아 있는 역사이자 문화유산이다. 고려 시대 청년의 효심과 나라 사랑에서 비롯된 전설은 오늘날까지도 마을 제사와 공동체 정신으로 이어지며, 나무를 자식처럼 보살피고 가꾸어 온 조상들의 지혜와 자연에 대한 깊은 존중을 보여준다. 국가유산청이 ‘당산나무 할아버지’ 상을 수여한 것도 이러한 공동체의 노력을 인정한 것이며, 회화나무는 앞으로도 마을을 품고 또 다른 백 년을 살아갈 생명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필자의 시 ‘회화나무 앞에서’ 바람은 묻는다 그대는 몇 해를 살아왔느냐고 줄기 깊숙이 숨은 옛 전설이 잎사귀마다 흔들린다 전쟁터에 나선 아들의 유언처럼 나무는 자식이 되고 부모는 나무와 함께 세월을 견뎠다 속이 텅 빈 몸 지팡이 몇 개에 의지하며 그늘을 나눠주는 노거수 마을의 기둥은 쓰러지지 않는다 신령이 깃든 나무 아래 주민의 기원이 피어난다 또 다른 백 년을, 육통리 마을을 품고.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6-11

이야기와 함께하면 더 깊은 맛 나는 ‘영남 음식’

아래 기사는 본지 홍성식 기자가 한국기자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재하고 있는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을 일부 수정-보완해 엮은 것이다. 홍 기자는 한국기자협회 미디어 리터러시 위원장이다...편집자 주 포항의 별미 ‘물회’… 고추장 본연의 맛으로 양념, 맹물·과일즙 부어 먹으면 일품 뱃일로 고된 시절 갓 잡은 생선에 찬물 붓고 훌훌 말아 넘긴 한끼, 삶이 담긴 음식 영남 북부 양반들이 귀하게 먹던 음식 ‘안동국수’… 고급 생선 ‘은어’로 끓인 한 그릇 투명하고 깔끔한 국물·매끄러운 면발… 별다른 고명 넣지 않아도 시원한 맛 자랑 ▲어부의 고단한 살과 일상이 만들어낸 별미 ‘물회’ ‘물’과 ‘회(膾)’는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인가? 최소한 내겐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 서른두 살이 될 때까진. 제법 열정적인 연애가 지속되던 날들이었다. 30대 초반인 사내와 20대 중반인 여자가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경북 안동까지,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짙푸른 파도 일렁이는 동해안 영덕 바다로 여행을 갔다. 대게가 맛있는 철이었다. 비싼 갑각류를 잔뜩 먹고 두주불사로 마신 다음 날. 해장 음식을 찾아 영덕 강구항 조그만 식당으로 갔다. 거기서 난생처음 ‘물회’란 걸 만났다. 크고 붉은 모조 보석이 박힌 금반지를 낀 호호백발 할머니가 잘게 썬 가자미 위에 양배추와 파, 고추장인지 초장인지 모를 시뻘건 양념을 듬뿍 올린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을 가져왔다. “시원하게 찬물을 부어 먹어봐. 속이 확 풀릴 거야.”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 마산에서 유년과 소년기를 보냈기에 회는 낯선 음식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백부를 따라다니며 자갈치와 마산 어시장에서 수십, 수백 차례 먹어본 익숙한 것이니까. 그런데, 멀쩡한 횟감에다 뜬금없이 물을 붓는다? 처음 보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게 맛이 나쁘지 않았다. 방금 손질한 날생선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지닌 회가 아닌 물컹이며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는 회라니... 색다르고 생경한 요리 체험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나도, 여자 친구도 달게 한 그릇씩 비웠다.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독특한 맛이었다. 그리고, 덧없이 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40대 중반에 삶의 터전을 경북 포항으로 옮겼다. ‘물회’로 유명한 도시다. 바닷가는 물론, 시내에도 물회를 주된 메뉴로 파는 식당이 흔전만전이다. 당연지사 거기서 살게 된다면 누구나 자주 물회를 먹게 된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포항의 물회 음식점들. 각각의 식당마다 조금씩 다른 레시피를 가졌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양념장을 만들 때 고추장, 식초, 설탕을 섞는 비율과 철마다 달라지는 생선의 종류, 횟감에 붓는 물을 만드는 방식 등. 10년쯤 살다보니 다수의 관광객들은 자극적인 ‘단맛’이 강한 물회를 선호하고, 나이 지긋한 바닷가 어르신들은 과일즙이나 청량음료를 섞지 않은 전통 방식 고추장으로 양념해 맹물을 부은 물회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두어 해 전이다. 구룡포에서 반세기 이상 뱃일을 해온 건장한 노인을 만났다. 취재를 핑계 삼아 지척에서 물결 일렁이는 포구 목로에 술병을 놓고 마주 앉았다. 그날 안주가 우연찮게도 물회였다. 서너 잔 낮술에 취한 늙은 어부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흑백 테레비를 보던 시절부터 배를 탄 사람 아입니꺼. 지금이야 이렇게 멀끔한 식당에서 물회를 먹지만 옛날에야 그랬겠습니까. 뱃일이 생각보다 무지하게 힘들어예. 새벽부터 바다 나가서 그물 내리고, 올리고를 반복하다 보믄 제대로 밥 챙겨 묵을 시간이 없지예. 그저 잡아 올린 가자미, 볼락, 청어 같은 걸 손에 잡히는 대로 뼈째 칼로 썰어서 물 붓고, 찬밥 한 숟가락 말아 훌훌 마시듯 1~2분 만에 한 끼 때웠다 아입니꺼. 힘든 시절이었지예. 그때 생각하믄 세상 참 좋아졌다 아입니까.” 말을 마친 어르신이 젊은 시절 추억에 잠긴 듯 소리 없이 웃었다. 그때서야 제대로 알았다. 물회는 지난날 바닷가 뱃사람들의 고단한 노동과 힘겨운 일상이 만들어낸 음식이란 걸. 물회에 얽힌 ‘20세기 뱃사람들의 역사’를 말해준 그를 만난 이후부터다. 포항 죽도시장 식당 테이블에 오른 양념장 얹힌 가자미회나 청어회를 보면 물을 붓기 전 먼저 마음속으로 고마움과 바람부터 전한다. “세상의 모든 생선을 우리의 식탁에 올려주는 어부들의 고된 삶에도 행복과 웃음이 깃들기를. 그들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건강하기를.” ▲‘안동국수’냐? ‘안동국시’냐? 그것이 문제로다 정확히 기억한다. 2019년 여름이다. 지금은 어울리지 않게 이름 앞에 ‘고(故)’자를 붙인 음식평론가 황광해(1957~2024) 선생과 안동역 인근 허름한 국숫집에 들었다. 점심은 먹었고, 저녁 먹기엔 이른 어중간한 시간. 뭘 모르는 내가 괜한 폼을 잡았다. “요즘은 어딜 가나 제대로 된 국수 맛을 보기 힘들어요. 밀가루 냄새가 풀풀 나서요. 그렇지 않나요?” 마주 앉았던 황 선생이 가소로운 듯 씨익 웃더니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밀가루로 만들었는데 밀가루 냄새가 안 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냐?” 그날 우리가 먹은 걸 ‘안동국수’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좀 더 지역색을 드러내며 고풍스럽게 ‘안동국시’라 불러야 될까. 무어라 칭하든 그날 내가 맛본 건 ‘생애 최고의 국수’라 해도 과장이 아닐 듯하다. 영남 북부는 이른바 ‘반가(班家)’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 곳이다. 종택(宗宅)이라 불리는 멋들어진 기와집이 적지 않고, 거기엔 아직도 조선시대 유교적 전통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섬기는 종손과 종부가 살고 있다. 안동 김씨, 의성 김씨. 진성 이씨, 풍산 류씨…. 16~18세기 이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했던 집안의 후손들이 각자 가문의 자긍심을 지키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 가문들의 종택을 찾아가 나이 지긋한 종손, 범절 깍듯한 종부와 만나는 기회를 몇 번 가질 수 있었다. 취재를 업으로 하는 기자가 누릴 수 있는 기쁨 가운데 하나였다. 먼지 한 톨 없이 걸레질 된 반질반질한 대청마루에 앉아 그해 여든셋이 됐다는 종부가 가져다준 안동식혜를 받아들었다. 식혜에 고춧가루가 보이다니…. 영남 남부에선 보지 못한 스타일이다. 그러면 또 어때. 한 모금 마시니 땡볕에 달아오른 이마부터 시원하게 식는다. “손님이 오셨는데 아무 것도 드릴 게 없어 송구하다”는 단아하게 나이 든 종부의 겸양에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시키려는 듯 쪽진 머리의 팔순 넘긴 할머니가 말을 이어갔다. 비취색 고운 비녀가 햇살에 반짝였다. “처음 시집와선 힘들었니뎌. 열여덟에 아무 것도 모르고 남편 하나 보고 여기로 왔으니까예. 사내들이 은어 잡아오믄 끓여서 국물 만들고, 밀가루에 콩가루 쪼매이 섞어 국수 반죽 밀어 철마다, 때마다 오시는 수십 명 손님상을 차려내야 했다아입니껴. 아마 젊은 양반은 모를낍니더. 우리 동네에선 제사 때도 국수를 쓴다 아입니껴.” 시간을 투자해 ‘안동국수’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찾아본 건 그 종부 할머니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을 찾아보고, 인터넷도 뒤졌다. 실제로 ‘안동국수’라 불리는 음식은 과거 영남 북부의 양반들이 먹던 별식이었다. 은어로 국물을 냈다는 것도 고문헌에 남아 있는 사실이다. 은어는 ‘수중군자(水中君子)’로 불리는 물고기. 조선 시대엔 왕에게 진상하던 생선이었다. 한양으로 은어를 특급배송(?)하는 하위직 벼슬아치가 있었을 정도. 은어 배송이 실패하면 치도곤을 맞았다는 기록도 전한다. 그 귀한 물고기를 사용해 국물을 내고, 옛날엔 지금처럼 흔치 않았던 밀가루로 면을 만들었으니 수백 년 전 국수는 지금과는 그 위상 자체가 판이했을 터. 그해 여름. 취재를 함께 간 황광해 선생을 채근해 ‘제대로 된 안동국수’를 만드는 식당에 찾아갔던 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예전처럼 은어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국물은 투명하며 깔끔했고, 면발은 더없이 매끄러웠다. 별다른 고명을 얹지 않았음에도 특별하지 않은 국수가 내는 ‘특별한 맛’에 매료됐다고 해야 할까?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하다. ‘국수’라고 이름 한 걸 만나는 끼니때면 언제나 여든셋 키 작은 안동 종부와 수중군자 은어를 먼저 떠올리는 건.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