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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개딸’과 작명

홍석봉 대구지사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이 ‘개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민주당원’ 또는 ‘민주당 지지자’로 바꿔달라고 언론 등에 주문했다. “상대 진영이 우리를 프레임해 선동했기 때문”이라는 게 개명 이유다. 나쁜 이미지가 덧칠됐다는 것이다. 개딸은 ‘개혁의 딸’의 줄임말로 당초 작명 의도는 괜찮았다. 당 대표까지 ‘우리 개딸, 개이모, 개삼촌’이라며 애정을 표시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치권과 언론 등에 폭력성이 부각된 이미지가 각인됐다. 이미 이재명 대표 강성지지자 이미지로 굳어진 명칭을 이제 와서 본인들이 원치 않기 때문에 바꾼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질지는 알 수 없다.우리 사회 곳곳에서 줄임말이 성행한다. ‘심쿵(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을 만큼 놀라거나 설렌다)’‘맛점(맛있는 점심)’‘극혐(아주 싫어하고 혐오하다)’ 등은 요즘 10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줄임말이다. 이젠 성인들까지 사용하는 등 생활 속 깊숙이 침투했다. ‘개딸’도 이런 유형의 신종 줄임말이다. 줄임말의 부작용이 적잖다.얼마 전 대구도시철도 1호선 연장구간의 신설 역사 이름이 ‘부호경일대호산대’역과 ‘하양대구가톨릭대’역으로 결정돼 논란을 빚었다. 지역과 대학 이름을 함께 넣으면 대학도시의 이미지 개선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이름 붙였다. 이후 “역 이름 떠올리다가 지하철 놓치겠다”, “역 이름이 암호같다”는 등 비난이 쏟아졌다. 이름이 너무 길어 부르기 힘들다는 지적이었다.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이름은 사람이나 물체를 상징하고 대표한다. 이름은 부르기 쉬워야 한다. 이제 작명 때 줄임말까지 감안해야 할 상황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2-13

TK의원들의 ‘先黨後私 실천’ 절실하다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의원을 비롯해 국민의힘 주류인사들의 희생결단이 시작되면서, TK(대구·경북)지역 의원들의 거취표명에 관심이 쏠린다. 혁신위의 영남권 중진 헌신요구에 대해 PK(부산·경남·울산)지역에선 연쇄적으로 응답하고 있지만, TK지역은 침묵모드로 일관하고 있어서다.여당 안팎에서 거론되는 인적쇄신의 주 타깃은 영남권, 그 중에서도 TK지역 의원들이다. TK지역 3선 이상은 주호영(대구 수성갑), 윤재옥(대구 달서을), 김상훈(대구 서) 의원 등 3명이다. 그동안 혁신위 활동에 거부감을 표명해왔던 친윤계 초·재선 의원들도 불출마 요구에 자유로울 수 없다.여권내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TK현역에 대한 물갈이 폭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지역은 역대 총선 때마다 현역 의원 교체율이 높았다. 2020년 21대 총선 때는 교체율이 64%였다. 앞서 2016년 총선 때도 대구는 75%, 경북은 46.2%에 달했다. 국민의힘 지지세가 압도적인 이 지역은 누가 나와도 당선되기 때문에 초선·다선을 가리지 않고 물갈이 대상이 됐다.올 들어 경북매일신문을 비롯한 대구경북지역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TK지역 현역의원들의 물갈이론에 대해 대부분 절반이상이 찬성하는 경향을 보였다.윤석열 정부의 운명을 좌우하는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수도권 열세를 극복하려면 ‘영남당 이미지’를 탈피하는 게 최대현안이다. 수도권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영남정치세력의 권력독점’은 보수정당을 비토할 만한 이유가 될 수 있다.총선이 현 판세대로 진행되면 야권은 수도권을 석권할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민주당이 지금처럼 과반의석을 넘으면 입법·사법에 이어, 행정부까지 손아귀에 넣는다.특검과 해임, 탄핵이 이어질 것이고, 현 정부의 3부 기능은 거의 마비될 것이다. 그 책임은 현재의 여권 주류와 TK지역에 향하게 돼 있다. 이 지역 현역의원들의 선당후사(先黨後私) 정신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2023-12-13

세계적 불황 속 善戰한 대구경북 수출기업

이차전지와 자동차부품 기업이 주도하면서 대구와 경북은 올해 역대급 수출실적을 올렸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국내 수출이 1년가량 마이너스 성장해 왔음에도 지역의 기업이 역대급 실적을 올린 것은 지역산업의 역동성이 상대적으로 좋아졌다는 반증으로 보여 뿌듯한 일이다.12일 열린 제60회 무역의 날 대구경북 행사는 축제의 장이었다. 대구와 경북에서 134개 기업이 수출의 탑 수상을 하는 영광을 안은 데다 실적도 역대급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는 작년보다 수상 기업이 17곳(41%)이 늘었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0억 달러가 넘는 수출 실적을 올려 수출증가율 전국 2위를 기록했다.지역의 수출 업종이 이차전지와 자동차부품 등으로 옮겨진 것도 반길 일이다. 과거 섬유 등 제조업 중심에서 신산업 분야로 산업이 재편되는 과정을 보여준 결과로 향후 전망도 밝게 한다.세계 최초로 니켈 함양이 90%인 이차전지 소재를 양산하는 대구의 엘엔에프는 40억불 수출탑을 수상하며 대구경북 수출 1위 기업에 올랐다. 경북서는 이차전지 기업인 포항의 에코프로 그룹 계열사의 도약이 눈에 띄었다. 에코프로이엠은 경북 최고인 20억불 탑을 받았고,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5억불 탑을 받았다. 또 포스코 자회사인 포스코퓨처엠은 10억불 탑을 수상했다.자동차 램프시장의 절대 강자인 대구의 에스엘은 2020년 8억불 탑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는 10억불 탑을 받았다. 경북의 아진산업은 2억불 탑을 받았다.우리나라 수출은 10월 들어 13개월만에 처음 반등세를 보였다. 코로나19 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악재로 수출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올 한해는 우리경제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내년도 세계경제 사정도 아직은 제한적일 거란 전망이 많다. 그런 가운데 역대급 수출실적을 올릴 지역기업의 노력에 대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내년에도 이들 기업들이 더 좋은 성적을 올리도록 지역의 수출환경을 잘 만들어가야 한다. 수출기업에 대한 대구시와 경북도의 파격적 지원이 필요하다.

2023-12-13

온몸의 사랑

성현아 문학평론가가 경향신문 11월 22일자에 기고한 글 ‘무해함에 햇살 비추기’를 감명 깊게 읽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비폭력적이고 잔잔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현상을 짚으면서 “무해함을 요구하는 독자 및 시청자에 맞춰 고통당하는 이들의 비명을 말끔히 도려낸 고요한 진공 공간만을 전시하는 작품들이 쏟아진다는 점”을 우려하는 내용이다.성 평론가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의 소극적인 무해함보다 나의 유해함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개선해 나가는 적극적인 무해함”의 예로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언급했다. 정신병동 환자들을 편견 없이 사랑으로 보살피던 간호사 ‘다은’이 우울증에 걸려 정신병동에 입원한 후 “나는 여기 있는 사람들하곤 다르다”고 호소하며 그 자신도 알지 못했던 자기 내부의 편견과 마주하는 장면에다 “편견이란 우리 몸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어둠 속에서만 살아가기 때문에 스스로 밝힌 소박한 내면의 촛불로는 결코 찾아낼 수 없다. 외부의 무엇과 부딪쳐 깨어질 때 비로소 번뜩이며 제 모습을 드러낸다”는 아름다운 문장을 겹쳤다.“무해하기만 한 서사보다는 무해함의 허상에서 벗어나 다종다양한 해로움을 조명하되, 그것에 잠식되지 않고 덜 해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독려하는 서사가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는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는 김초엽의 단편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떠올렸다. 가까운 미래에 ‘인간배아디자인’이 상용화돼 부모들은 태어날 자녀의 신체, 성격 등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된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이 기술을 활용해 성격의 결함이나 신체적 장애가 없이 탁월한 두뇌능력과 예술적 감성과 피지컬을 갖추고 태어난 이들은 ‘개조인’, 돈 없는 부모에게서 자연적으로 태어난 이들은 ‘비개조인’이 된다. 개조인들은 지구 밖에 그들만의 완전무결한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비개조인들은 가난과 질병과 전쟁으로 얼룩진 디스토피아 지구에 남는다.무해한 유토피아에서 성년이 된 개조인들은 일종의 성년식으로 조상들의 행성인 지구에 순례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 그런데 지구에 견학을 간 개조인들 중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있고, 주인공인 데이지는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추적해나간다. 그리고 알게 된다. 평화롭기만 한 유토피아엔 오히려 사랑이 없다는 것을, 지구에 남기로 결정한 순례자들은 사랑 없는 유토피아보다 사랑이 있는 디스토피아를 택했다는 사실을 말이다.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사랑의 조건으로 ‘비대칭 관계’를 제시한다. 비대칭 관계란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희생과 책임을 말하지만 상호 보완의 의미에 더 가깝다. 결핍이 없으면 채움도 없다. 나의 부족함을 당신이, 당신의 해로움을 내가 서로 감당하면서 끌어안는 것이다. 완벽하기만 한 사람들 사이에선 연민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 없다. 연민과 사랑은 타인의 연약함을 발견하는 순간에 불꽃이 튄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구정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새하얀 옷을 입고 현실이라는 땅에서 발을 뗀 채 마치 천사처럼 환하고 가볍고 평화롭기만 한 사랑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나의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8년째 누워 계신다. 이젠 눈이 보이지 않고 귀는 원래 들리지 않았으며 걸을 수도 없어 침상과 한 몸으로 지낸다.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침대 위에 스마트폰을 던져두고 조명을 끈다. 그러면 방금 던진 스마트폰을 찾지 못해 어둠을 더듬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이런 세계에 계속 갇혀 있구나’ 생각에 울컥한다. 감성이 풍부한 밤에 베개를 눈물로 적시며 할머니를 생각한다. 꼬옥 안아드려야지. 그런데 면회를 가면 이상한 국면이 펼쳐진다.생각 속에서 작고 연약하고 불쌍하던 할머니가 만져지는 눈앞의 현실에서는 작고 연약하고 불쌍하고 냄새가 나고 끈적거리는 할머니인 것이다. 나는 할머니 몸에서 나는 악취와 분비물에 얼굴을 찡그리며 안는 것도 놓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다. 그 냄새와 타액은 내게 유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냄새와 끈적거림을 참으면서 기어이, 끝까지 할머니를 끌어안는 것.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멀찌감치 떨어져서만 애틋하고 순정한 관념의 사랑이 아닌, 가까이 가 만지고 껴안고 견뎌대는 온몸의 사랑.

2023-12-12

나는 완벽하지 않아

최근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내가 완벽주의자임을 깨달았다. 스스로 완벽한 상태가 존재하다고 믿으며, 달성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기준을 세워 그것을 실패할 때마다 번번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나는 검사지를 보며 이정도 스트레스는 현대인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수준이 아니냐며 반문했지만 선생님은 그 정도가 다르며, 노력이 실패할 때마다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며 우울감으로 빠져 들기 쉽다며 짚어 주셨다.사실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적 공허함은 기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실은 내 스스로 만든 완벽한 기준치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에서 온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정말 내가 완벽주의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많은 사람들이 내게 칭찬을 할 때마다 그들이 하는 말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음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칭찬을 하는 이유는 그저 예의상 건네거나 또는 분위기상 듣기 좋은 말을 골라 건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들이 말하는 칭찬의 정도까지 내 스스로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아직 부족한 게 참 많다고 늘 스스로 여겨왔으며 어떠한 성과를 보여도 남들 하는 만큼 했을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최근에서야 점점 깨닫고 있는 건, 완벽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은 받아들이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많은 의사들이 권하는 방법은 바로 완벽주의를 인정부터 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일의 효율을 높이고 좋은 성과를 이끌어 오는 긍정적인 성격도 있기에 건강한 완벽주의의 장점을 바라보고 오히려 이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그리곤 건강이나 외모, 성공이나 행복에 관한 기준을 적어보고 지금 조금씩 이룰 수 있는 목표만을 놔두고 과감히 지워버려야 한다고 한다. 실현 가능한 목표만 지향하여 성공 확률을 높여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계속해서 심어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어도 되고 실패해도 된다.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선 실수는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므로 새로운 시도 앞에서 실패는 반드시 따른다.두려움의 뿌리는 과연 내 깊은 곳 어디까지 침범했을까 생각하다보면 아득해진다. 나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완벽을 추구하며 노력했을 뿐인데 친구관계도 사회생활도 늘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늘 실패에 가닿을 때마다 나의 노력과 운이 부족했을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실패의 이유는 나 자신에게서 더는 찾을 수 없다.요즘 일을 할 때에도 나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었다. 그래서인지 늘 목표를 내 기준치보다 훨씬 더 높게 잡곤 했다. 높게 잡은 목표를 어떻게든 혼자서 잘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애썼으나 일의 경험이 적은 내가 혼자 잘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이 잘 안 풀리는 시점부턴 주위 타인들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럽던지.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자책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듯싶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하지만 이번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내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자각하게 되었고, 실은 내가 지금 당장 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 직시를 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 사실을 알자마자 왜 그토록 일을 할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는지, 왜 해결할 수 없는 일의 굴레에 갇혀 있었던 것만 같은지, 집에 돌아가자마자 온 기력이 빠져서 잠에 들기 바빴는지 이 모든 게 차차 이해되기 시작했다.나는 완벽할 수 없다. 특히 혼자서는 더욱 완벽해질 수 없다. 스스로 지금 당장 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만을 세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때론 실패할 수 있고 실패에 가까워지더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뻗으면 된다. 좋은 사람이라면 분명 도와줄 것이고 나 또한 그 도움을 받아 일을 잘 해결하면 된다. 서로 간의 도움을 통해 우리 사이의 신뢰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일과 사람이지만 점차 조금씩 나와 타인을 믿으며 나아가다보면 점차 더 나은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완벽한 상태는 존재 하지 않지만 스스로 만족할만한 온전한 상태는 존재할 것이다.

2023-12-12

‘장제원 희생’이 여권혁신의 계기되길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그저께(1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 지도부·중진·친윤(친윤석열) 의원들의 총선 험지출마 또는 불출마를 핵심으로 하는 6개 혁신안을 전달하고 활동을 종료했다. 당초 성탄절까지 활동시한으로 정했지만, 이날 조기 종료한 것은 여당 기득권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국민의힘 혁신위의 출발은 화려했다. 김기현 대표는 “혁신위에 전권을 주겠다”고 공언했고, 이를 실제 믿은 인요한 위원장은 “와이프와 아이 빼고 다 바꾸겠다”며 강도 높은 혁신을 예고했다.친윤핵심인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3선)이 어제 국회에서 총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지만, 인요한 혁신위의 성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40여 일간의 혁신위 활동은 여당 메인스트림의 구조화된 카르텔과 헌신정신 결여, 위기에 대한 무감각 등을 확인한 채 막을 내리게 됐다.당내 비주류 의원을 중심으로 ‘쇄신대상 1순위는 지도부’라며 공개저격하고 있음에도, 김기현 대표는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혁신위를 마치 ‘지나가는 소나기’로 인식하며 기득권을 붙잡는 모습을 TV중계처럼 지켜보는 유권자 마음은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현 지도부체제가 공천권을 행사할 경우 내년 총선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시즌2’로 갈게 뻔하다.최근 국민의힘이 자체 분석한 총선 판세분석 결과가 이를 여실히 대변하고 있다. 서울 49석 가운데 우세 지역은 강남과 서초, 송파 일부 등 6곳 정도라고 하니 충격적이다. 2020년 4·15총선 당시 서울 8석보다 당세(黨勢)가 더 쪼그라들었다. 당 기획조정국이 그동안 언론에서 발표한 각 정당 지지율과 지역별 지지율 등을 기준으로 판세를 분석한 데이터라고 한다.민주당은 지금 내년 총선에서 200석 확보를 거론할 정도로 자신만만하다.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드는 일을 주도한 이해찬 상임고문은 “지난번처럼 180석을 먹느냐가 관건”이라고 했고, 정동영 상임고문도 “수도권을 석권하면 200석 못 하리라는 법도 없다”고 했다.이들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로 판세분석을 하는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도 4년 전(민주당 180석 획득)과 비슷할 것”이라고 진단했다.민주당은 지금 내부에서조차 “도덕성은 평균이하고 당내 민주주의는 실종됐다”는 자조적인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흐름에 밝은 당 상임고문들이 총선 석권을 자신할 정도로 민심을 얻고 있으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여당에 대한 실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혁신위 조기종료 과정에서도 보듯, 여권은 강서구청장 참패 이후에도 달라진 게 별로 없다.윤석열 대통령도 현 지도부 체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니, ‘여권 카르텔’은 갈수록 강화될 것 같다. 국민의힘 혁신위가 내놓은 과제는 민심을 반영한 것이다.여당이 이 과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않고는 현 판세를 바꿀 동력을 찾을 수 없다. 장제원 의원 불출마 선언이 여권의 고강도 혁신에 드라이브를 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2023-12-12

총선 시작됐지만, 선거구·룰은 아직 ‘깜깜이’

내년 4·10 총선 예비 후보자 등록이 어제(12일)부터 시작됐다. ‘예비후보’는 현역 정치인과 정치 신인 간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공식 선거운동 기간 전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제도다. 이번 총선부터는 일반 유권자도 ‘어깨띠’를 두르고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있어, 벌써부터 대구·경북 주요 거리는 선거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다. 예비후보들은 이번 총선부터는 온라인 선거운동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 경찰이 가짜뉴스 유포를 집중 단속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현재 온라인에서 유포되는 글, 영상 등의 조작 여부를 집중 확인하고 있으며, 허위사실로 판명되면 엄중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특정인의 낙선을 목표로 하는 가짜뉴스는 처벌 강도가 세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예비후보들은 이번 총선에서도 뛰어야 할 운동장과 선거룰을 모른 채 후보등록부터 해야 했다. 국회는 지금 당리당략에 얽혀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을 계속 지연시키고 있다. 일각에선 고의적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현역의원은 정치신인에 비해 조직력이나 지명도가 월등하게 앞서 선거운동기간이 짧을수록 유리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는 지난 5일 지역구 선거구 수를 현행대로(253개) 하는 내용의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이 획정안에 대해 민주당이 “국민의힘 의견만 반영된 편파적인 안”이라며 거부의사를 밝혀 최종 선거구 획정안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얼마 더 걸릴지 예상하기 어렵다.비례대표를 희망하는 정치신인들도 게임의 룰인 선거제 개편이 확정 안 돼 갈팡질팡하고 있다. 비례대표 의석배분 방식과 위성정당 방지법 도입을 둘러싸고 여야가 아직 입장정리를 못해 협상이 공전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병립형을 고수하고 있고, 민주당은 지도부의 병립형 회귀움직임에 소속의원들이 반발하며 당론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선거구 획정과 비례대표 선출방식을 둘러싼 거대 양당의 행태가 국민의 정치혐오와 불신을 더욱 깊게 하고, 유권자의 참정권도 방해하고 있다.

2023-12-12

경북대 통합논의 무산됐으나 혁신의 길은 가야

국립 경북대와 금오공대간 통합 논의가 경북대 학생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없던 일이 됐다. 이달 초 경북대와 금오공대는 정부의 글로컬대학 추가 지정을 앞둔 가운데 두 대학이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통합 필요성에 공감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구체적 실행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한 경북대 학생들의 반발이 일면서 논의 자체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학생들은 학과 점퍼 수 백벌을 본관 앞에 벗어두기도 했고, 통합반대 온라인 운동도 벌였다.학생들은 “구성원의 의견 수렴 없는 통합은 반대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학 측은 “애초부터 구체적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라며 통합 논의를 마무리 지었으나 뒤끝이 씁쓰레하다.두 대학의 통합 논의는 정부의 글로컬대학 지정과 함께 학령인구 급감으로 벼랑 끝 위기에 몰린 지방소재 국립대학의 생존문제와 연관돼 나온 발상이다. 현재와 같은 학령인구 감소 속에 학생들의 수도권 대학 선호가 이어진다면 20년 후에는 지방소재 대학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만으로 전국의 학령인구를 모두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글로컬대학 지정은 이런 지방의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다. 일종의 지방대학 구조조정 정책으로 보아도 좋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학을 육성해 지역사회와 함께 동반성장을 이뤄가자는 전략이다. 담대한 혁신을 한 대학은 매년 1천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비지정대학은 각자도생의 길로 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가 뻔한 현실에 대학이 선택할 길은 별로 없다. 경북대가 금오공대와의 통합이 무산됐더라도 대학 혁신의 길을 찾지 않으면 존립을 걱정해야 할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국립 부산대 등 일부 국립대는 통합을 전제로 글로컬대학 지정을 받고 대학혁신의 길에 이미 나섰다. 지역 대표 국립대인 경북대의 변신 노력에 많은 지역민이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다. 지성의 대표인 대학의 발전이 곧 지역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북대의 담대한 혁신을 기대한다.

2023-12-12

남우충수(濫竽充數)

우정구 논설위원 2001년부터 교수신문이 매년 12월에 발표하는 사자성어는 우리 시대 사회상을 잘 반영한 표현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산다.교수신문은 2023년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선정했다.“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올바름을 잊어 버린다”는 뜻이다. “사회 지도층이 공동체의 의로움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교수들이 추천한 올해의 사자성어 중 비록 1등은 못했지만 우리 정치인의 부족함을 빗댄 말로 ‘남우충수(濫竽充數)’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넘칠 남(濫), 피리 우(竽), 채울 충(充), 숫자 수(數)의 ‘남우충수’는 분수에 넘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관대작들의 잘못된 태도를 꼬집는 표현이다.유래는 이렇다. 중국 제나라 선왕이 300명의 악사를 모아 피리 합주를 자주 들었는데, 이때 남곽이라는 자가 피리 연주를 할 줄도 모르면서 악사 틈에 섞여 매번 흉내만 내면서 높은 녹을 받았다. 그러나 제왕이 죽고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합주보다 독주를 좋아해 연주자 한사람 한사람을 불러 연주케 했는데, 이를 안 남곽이 미리 도망쳐 버렸다는 고사다.실력이 없으면 언젠가는 탄로가 나기 마련이라는 의미로 재능이 없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비유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특권도 폐지하자는 국민의 원성이 잦다. 임기 4년 내내 존재감 없이 이 눈치 저 눈치보며 지내는, 존재감 제로의 국회의원들에게 딱 어울리는 사자성어다.언젠가 홍준표 대구시장은 “하루를 해도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 좀 뽑자”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능력 없이 자리만 지키는 국회의원은 뽑지 말아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12

왜 우리나라 SF 영화는 흥행하지 못할까?

강지우 SF평론가 우리나라 SF 영화 ‘더 문’은 왜 흥행에 실패했을까? 국내 최초 달 탐사 영화로 개봉 전에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최종 관객은 50만 명에 그쳤다. 시각 효과는 손색없었지만,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위기 상황이 극의 긴장과 감동을 반감시켰다는 평이 많았다. 지난해 개봉한 ‘외계+인 1부’에서는 흥미로운 설정 속에 김태리 등 배우들의 명연기가 감탄을 자아냈지만, 산만한 구성과 어색한 대사가 영화의 완성도를 해쳤다. 내년 초 개봉할 2부에서는 흥행 부진을 만회할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이런 작품들을 팟캐스트에서 소개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우리나라 SF 영화는 흥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줄곧 품었던 의문에 대해 지난달 18일 개최된 ‘제2회 포스텍 SF 데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제2회 포스텍 SF 데이’에는 김초엽 작가, 김겨울 작가, 이다혜 기자가 연사로 초청되었다. 많은 청중의 열띤 참여가 행사를 알차게 완성했다. 1부 북토크에서는 예비 작가들의 질문이 이어져 그야말로 ‘쓰고 싶은 나’를 발견하는 여정이 펼쳐지기도 했다. 2부 시네마 토크에서는 이다혜 기자가 ‘SF 영화의 휴머니티’를 주제로 강연했다. 보통 한국 SF 영화의 실패 원인으로 꼽히는 ‘휴머니즘’이 알고 보면 ‘인터스텔라’ 등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SF 블록버스터의 중심 주제라는 이야기였다. 나도 은연중에 왜 한국 SF 영화는 ‘신파’를 못 넣어 안달이지? 라고 불평했던 터라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실제로 휴머니즘을 탐구하는 SF는 요즘 한국 SF 문학계의 주된 흐름으로, 국내외에서 평론가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결국 과하거나 세련되지 못한 휴머니즘만이 한국 SF 영화의 문제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SF 영화에는 큰 자본이 투입되기에 새로운 시도 보다는 기존의 공식을 따르는 시나리오가 채택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특수효과 등 시각적, 기술적 부분에 치중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분위기가 더해져 이야기에는 그만큼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도 한다. 결국 화려한 옷을 입었지만 속은 진부하고 빈약한 뼈대의 SF 영화가 나오게 되는 환경인 것이다.그러나 모든 한국 SF 영화가 이런 문제를 갖고 있다고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다. 역설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직 우리나라에 SF 영화가 충분히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경향을 파악하기에는 절대적인 작품 수가 부족한 것이다. 미국 SF 황금기를 이끈 작가였던 시어도어 스터전의 말을 빌리자면, 어느 장르에나 뛰어난 작품보다는 모자란 작품이, 성공하는 작품보다는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작품이 훨씬 많다. SF 또한 그렇다. 다종다양한 SF 영화가 만들어져야 경험이 축적되고, 더 과감하게 경계를 여는 작품도 시도할 수 있으며, 결국에는 성공 사례가 나올 수 있다. 또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칭찬이든 비판이든 관객들의 꾸준한 관심도 필요하다. 앞으로도 용감한 한국 SF 영화들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2023-12-12

사진과 기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이런저런 송년모임도 많아지고 소소한 만남도 잦아들게 된다. 대설 지난 겨울날씨답잖게 며칠간 봄날같이 포근하다가 하룻밤새 비바람이 휘몰아치며 흔들어댄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 분위기에 가뜩이나 뒤숭숭해지는 마음인데, 날씨마저 어설프고 변덕을 부리니 거리엔 귀가를 서두르는 발걸음이 다급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날씨를 핑계삼아(?) 일찌감치 식당이나 주점에 눌러앉아 차나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두런두런 얘기꽃을 피우며 더 오래 송년 분위기에 젖어들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대부분의 직장인이나 사회인, 동창·동문 모임, 계모임, 친구 등과의 모임에는 으레 연말에 한 차례씩 송년회 또는 망년회의 명목으로 각종 만남을 가지게 된다. 지내온 한 해 동안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왔으니 뒤도 옆도 보면서 가쁜 숨을 고르고, 자주 연락이나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만남의 자리에 살아가는 얘기와 한 해를 돌아보며 애환을 나눌 수 있다면 한결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한 해 동안 있었던 온갖 괴로움과 불행을 잊어버리자는 뜻으로 갖는 모임의 망년회(忘年會) 보다는, 세월의 저편으로 한 해를 보내야 하는 길목에서 아쉬움과 고마움을 나누기 위한 모임의 송년회(送年會)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그러한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사진이다. 모처럼 만나는 반가운 얼굴과 정겨움을 나누는 오붓한 분위기를 사진은 고스란히 담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아련한 예전의 모습과 현재의 실상을 비교하여 세월의 주름 같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사진이다. 시간의 지층 속에 촬영 당시의 단면을 확연히 보여주기에, 세월이 지날수록 흐릿하고 잊혀져 가는 기억과 생각을 다시 소환해주는 매개체로서의 사진은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사진 한 장에 아련한 추억과 얽혀진 스토리가 배여 있기에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고 하는 걸까?사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기록이다. 기록은 역사의 원천이며 지식의 보고이다. 무엇이든지 쓰고 그리거나 기호로 나타냄으로써 보거나 알게 되고 소통하고 기억하게 된다. 사진이 영상이나 이미지로 추억을 소환한다면, 기록은 문자나 기호로 생각이나 기억을 일깨워준다. 사진에 나타나지 않는 부분을 글자로 기록하고, 글로 기록하기 어려운 요소를 이미지로 드러낸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모바일 매체가 일반화된 현대는 빡빡한 양식의 문서보다는 글과 그림, 도표, 도형 등으로 간략 명쾌하고 단순하게 표출하는 이미지 메이킹을 필수적으로 여길 정도다.하루하루 쏜살같이 지나가는 일상을 추출하여 뉘엿뉘엿 세모의 나이테에 기록으로 남기고 사진으로 담아둔다면, 생생하고 풍부한 삶의 일면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기록을 통해 기억하고 사진 속에서 좋은 추억을 아로새길 수 있을 때 연륜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2023-12-12

‘무탄소연합’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조홍식 기후환경대사가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지난 12월 2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엑스포 시티에서 개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국제사회에 한국이 주도하는 ‘무탄소연합(Carbon-Free Alliance)’의 결성을 제안했다. 그 배경으로 기후변화 대응이 효과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하므로 진보된 기후 기술에 의해 추진되는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외에도 각 국가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탄소가 없는 모든 청정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것을 제안했다.COP28이 시작되고 여섯째 날인 12월 5일은 ‘에너지와 산업, 정의로운 전환, 원주민’을 핵심주제로 한 날이었다. 이날 한국의 산업통산자원부와 한국이 주도하여 결성한 ‘무탄소연합’이 주최한 무탄소에너지 계획 원탁회의를 그린존 B6 구역에 마련한 한국관에서 개최했다. 한국의 ‘무탄소연합’의 대표이자 무탄소에너지 특임대사인 이회성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한국의 글로벌 위상에 걸맞게 무탄소에너지 인증체계 등 글로벌 규범 정립에 주도적 역할을 할 때가 되었다”고 하였다.이렇게 우리나라가 COP28에서 ‘무탄소연합’의 필요성을 국제사회에 주장하고 적극적으로 동참을 호소하는 부분에 대하여 국제사회의 반응은 아직 뚜렷하지는 않다.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RE100 (Renewable Energy 100)’ 즉,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국제적 기업간 협약 프로젝트가 이미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전개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9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제연합(UN)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무탄소에너지의 국제적 확산과 선진국-개도국 간 기후 격차 해소를 위한 오픈 플랫폼(개방형 작업 공간)으로 ‘무탄소연합’의 결성을 이미 제안하였고, 이번 COP28에서 또다시 강조하고 동참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지난 10월 19일 제30회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는 ‘무탄소에너지 이니셔티브’ 추진계획을 정부 차원에서 더욱 구체화했다. 이 계획의 추진 배경으로 전세계적인 에너지 분야의 탈탄소화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전·수소 등 다양한 무탄소에너지를 활용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탄소중립을 추진해야하고 기업부담도 경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CF(무탄소) 인증체계 구축 및 국제표준화 추진, ‘무탄소연합’ 출범, 글로벌 확산과 국제공동연구, 개도국 무탄소에너지 전환지원 등 협력 강화를 통해 국제적 ‘무탄소에너지 이니셔티브’를 주도해나갈 계획이다.대구경북에서는 2030년 이전에 신공항을 조성하고, 배후산단과 에어시티를 조성할 계획인데, 여기에 필요한 새로운 에너지 공급방안은 ‘2050탄소중립 로드맵’ 아래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원자력과 수소 등에 의존도가 특히 높은 대구경북에서는 정부의 ‘무탄소연합’ 추진에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2023-12-11

연말 재계 최대 관심사된 ‘포스코 회장 선임’

오는 19일 열리는 포스코그룹 이사회를 앞두고 차기 회장 인선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현재 ‘선진 지배구조 TF’를 가동하면서 회장 선임 절차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이날 이사회에서 회장 선출을 위한 ‘룰 세팅’을 마무리한다. 최정우 현 회장은 이사회를 앞두고 추가 연임에 도전할 것인지, 이번 임기를 끝으로 퇴진할 것인지 거취 표명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 맞춰 임기가 끝나는 최 회장은 사규에 따라 임기 종료 3개월 전인 이달 중하순까지는 진퇴 의사를 밝혀야 한다. 지난 2018년 7월 그룹 회장에 오른 최 회장은 2021년 3월 연임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5년 5개월째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룹 경영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위해 최 회장이 이례적으로 한 차례 더 연임에 도전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그러나 최 회장이 포스코그룹 최초로 2연임 완주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3연임까지는 무리하게 도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지난해 8월 포항제철소를 흙탕물로 뒤덮은 태풍 힌남노 사태 당시 ‘최 회장 책임론’을 거론하며 관치논란을 빚었던 정부는 일단 “차기 회장은 내부에서 결정해 선출할 일”이라며 관여 가능성을 일축했다. 과거 포스코그룹의 경우, 새 정권이 들어서면 핵심 권력들이 회장을 사실상 지명하는 관행이 있었다. 이로인해 회장직을 욕심내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정권 실세들에게 접근하는 부작용이 발생했었다.포스코홀딩스는 최대주주(국민연금공단)가 6.7%의 지분만 가지고 있을 정도로 소액주주비율(75.5%)이 높다. 이 때문에 중요의사결정에 이사회가 갖는 권한이 절대적이다. 현재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최 회장 외에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 정탁 포스코인터내셔널 부회장, 정기섭 포스코홀딩스 사장 등이다. 외부에서 거론되는 인물도 여럿 있어 경쟁이 치열한 상태다. 철강사에서 미래종합소재 그룹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대한 시기에 누가 포스코 지휘봉을 잡을지 연말 재계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다.

2023-12-11

비석 문화

홍석봉 대구지사장 비(碑)는 특정 사실을 기록, 후세에 전하는 조형물이다. 주로 돌로 만들었다. 비는 주(周)나라 황후의 능을 조성하고 묘광(墓廣)에 시신을 하관할 때 밧줄을 도르래에 걸어 안전하게 내리기 위해 설치했던 장치의 기둥인 비목(碑木)이 기원이라 전한다. 비목이 비석으로 발달했다. 한대(漢代)에 문자를 새겨 각석(刻石)이란 말로 쓰였다. 우리나라의 비석은 장례와 관련한 분묘 건축에서 대부분이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의 입구에는 죽은 이의 평생 사적을 기록한 신도비를 많이 세웠다. 우리나라 비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다. 함무라비법전이 새겨진 비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통일신라시대는 태종무열왕릉비 등이 남아 있고 고려시대는 고승들의 탑비가 많다. 조선시대 왕릉에도 신도비를 세웠다. 비석은 원래 종교적, 제의적 의미가 강했다.비의 종류는 송덕비, 하마비, 공적비, 열녀비, 효자비 등 다양하다. 진흥왕 순수비와 대원군의 척화비도 유명하다. 포항 중성리와 울진 봉평리의 신라비, 문경새재 도립공원의 산불조심 비석 등 특정 목적의 비석도 있다.대구근대역사관이 ‘의연공덕비’를 상설 전시 중이다. 2003년 대구의 한 민가에서 발견돼 대구 종로에 세워져 있었다. 비석의 가치와 중요성이 알려지면서 대구근대역사관에 안치됐다. 대구에서 발생한 화재 피해자를 돕기 위해 의연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과 의연금 사용 내역 등이 기록돼 있다. 1900년 세웠다. 지역사 자료로 활용가치가 높다. 문화재 등록도 할 예정이다.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출발한 국채보상운동도 한푼 두푼 낸 성금으로 이웃을 돕는 대구시민 정신에서 출발했다. 의연공덕비가 지역 이웃사랑의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2-11

도심 속 낙후지역으로 꼽히는 대구 서·남구

대구지역 9개 기초단체인 시군구의 발전 전망이 인구 수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지역간 발전 편차가 기초자치단체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켜 일부 지역은 도심속 낙후지역으로 바뀔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대구 서구와 남구는 작년말 기준 인구가 10년 전 보다 27.4%와 16.1%가 각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시기 동구 0.75%, 북구 3.9%, 수성구 10%, 달서구 11% 등의 감소세와 비교할 때 감소폭이 훨씬 높다.특히 출생아 수는 인구 감소폭을 훨씬 뛰어넘는 72%를 기록했다. 또 인구 1천명 당 출생아 수를 뜻하는 조출생률은 지난해 기준으로 2.5명으로 전국 평균 4.9명의 절반 수준이다.이에 따라 이들 지역의 노령화도 상대적으로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2021년 대구지역의 노령화지수(15세 미만 유소년 인구대비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는 147.2%이나 서구는 305.3%, 남구는 310.6%다. 공단조성 등으로 인구 유입이 많은 달성군의 경우는 76.0%로 노인보다 유소년이 더 많아 서·남구와 대비를 이루고 있다.서구와 남구의 노인인구 비중은 서구가 25.6%, 남구는 25.1%로 이미 두 지역 모두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으며 독거노인 비율도 시군구 중 가장 높다. 또 재정자립도는 서구가 14.9%, 남구는 12.3%로 수성구 29.8%, 달성군 29.7%, 중구 27.6%와 비교할 때 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지난 8월 대구시가 대구시민의 삶의 질을 파악하는 지표로 활용하는 대구의 사회지표(2022년) 조사 발표에서 자신을 하층으로 인식한다는 의견을 보인 사람이 서구에서는 46.8%로 조사됐다. 수성구의 18.0%와 비교할 때 삶의 질을 인식하는 정도가 지역간 큰 격차를 보인 것으로 해석돼 주목을 받았다.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인구소멸 위험지역에는 대구의 서구, 남구와 새로 편입된 군위군도 포함돼 있다. 인구문제만으로 기초단체간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는 어렵다. 광역단체 차원의 다각적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2023-12-11

짜가가 판친다

강길수 수필가 추위가 서너 번 지나갔음에도, 학교 담장의 장미꽃은 잘도 버틴다. 어떤 가지는 아예 새순을 뽑아 올리기도 한다. 환경변화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12월 초에도 꽃을 피워야 하는 절박함으로 드러난 게 분명하다 싶다.지난 1일, 두 장 남았던 달력에서 한 장을 뜯어냈다. 올핸 유달리 달랑 남은 마지막 달력 한 장의 무게감이 크다. 11월 달력 한 장을 뜯어내며, 30년 전 히트했던 한 가수의 유행가 가사가 가슴에 여울졌기 때문이다. 가사 일부는 이렇다.“세상은 요지경/요지경 속이다…./야 야 야들아/내 말 좀 들어라/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짜가가 판친다….”올해 12월을 맞으며, 1993년 대유행했던 노래의 가사가 왜 되살아 난 것일까. 내 마음에 비친 올 우리 사회의 모습이, 12월에 핀 장미꽃의 절박함과 닮았기 때문이리라. 인터넷에서 당시 노래 동영상을 찾아 다시 시청해 본다. 노래하는 가수의 초점을 잃은 듯한 눈, 백치미를 연상케 하는 표정과 몸 율동이, 내내 풍자와 해학으로 넘쳐나 보인다.그 야릇한 모습이, 문민정부가 출범했던 그해 우리 사회상보다는, 오히려 요사이 우리 사회의 초상(肖像)을 더 풍자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내 잠재의식은 이 가사를 소환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시대 어떤 사회든 일부의 짜가 곧, 가짜가 사람들을 속이고 괴롭히며 때론 타인 삶을 불행하게도 해왔다.하지만, 그런 게 인간사회의 주현상은 아니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정말, 예전보다 ‘많은 짜가가 판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나라의 헌법기관 선거관리위원회가 국민적 불신의 늪에 빠진 것이다. 2017년 대선부터 선거마다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한 짜가 사전선거 데이터를 계속 발표해 놓고도, 많은 국민의 부정선거 제기에 대해 통계적 해명 한 번 못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기 때문이다.올해 ‘도둑놈들’, ‘비밀지령 2-∞’ 등 대한민국 부정선거 연구서들이 연이어 나왔다. 또 ‘왜(歪) 더 카르텔’ 같은 다큐멘터리 영상물들도 나왔다. 이런 증거물들은 한결같이 ‘부정선거는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국난’이라 경고하고 있다. 이쯤 되면, 주류언론들이 ‘거악(巨惡) 청산의 혁명적 사회개혁’을 요구해야 정상 나라일 것이다. 한데, 그 주류언론들은 비겁한 침묵만 일삼고 있다. 대체, 왜일까.산업현장에서 일하며 정치에 무심히 살아왔던 나도, ‘부정선거’라는 말에 분기탱천했다. 나라 주인 국민이 선거주권을 빼앗기면, 국민 뜻이 아닌 가짜 체제가 서는 엄청난 반역이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통해 부정선거의 진실을 파악했다. 부정선거로 뽑힌 공직자는 짜가 곧, 가짜다. 가짜들이 국민을 수탈대상으로 삼는 온갖 악법을 만드는 광대놀음, ‘짜가가 판치는 요지경 세상’을 언제까지 두고만 봐야 할까.12월의 장미꽃들이 내게 말한다. ‘국민이시여, 이제 짜가에 놀아나지 말고, 초겨울에도 꽃피는 우리 장미들의 민감한 반응을 따르세요. 그게 꽃길이랍니다. 무얼 근심합니까. 세상일은 시작이 반인데!’라고….

2023-12-11

대중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최근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 소속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이 연예인들의 싱글 라이프를 다루는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출생율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하여 논란이 되었다. 서 의원은 지난 5일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나 혼자 산다’, 불륜·사생아·가정 파괴 드라마가 너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며 방송사가 따뜻하고 훈훈한 가족 드라마를 많이 개발해서 사회 분위기 조성에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이처럼 대중문화를 사회의 질서를 교란하고 미풍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무차별 살인이나 폭력 등의 강력 범죄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자동차 도둑의 시점에서 플레이하는 게임인 ‘GTA(Grand Theft Auto)’나 ‘둠(Doom)’, ‘서든 어택’, ‘배틀그라운드’처럼 총기를 사용하는 일인칭 슈팅 게임들이 원인이자 원흉으로 지목된다. 범인이 이렇게 ‘폭력적인’ 게임에 심취하여 폭력성을 배양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1년,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게이머들의 폭력성을 알아본다’는 명목으로 PC방의 전원을 강제로 내린 뒤, 비속어로 불만을 표시하는 게이머들의 반응을 그대로 보도하기도 했다.지배 문화, 주류 문화의 시선에서 대중문화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휴식을 주는 ‘오락물’에 불과하다고 이야기된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문화가 기성의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도 한다. 불과 1년 전에도 성소수자를 긍정하는 메시지를 담은 남성 동성애자 아이돌 그룹 ‘라이오네시스’의 신곡 ‘It’s OK to be me’가 ‘동성애’를 이유로 MBC에서 방송 금지 판정을 받기도 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저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대체 대중문화와 그 소비층을 얼마나 무시하는 걸까? 필자가 어릴 때 어른들은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니까 오래 보면 바보가 된다’고 했다. 이런 발상의 기저에는 대중을 한없이 수동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시선이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대중에게는 스스로 생각할 능력도, 비판적 사고력도 없기에 대중매체가 발신하는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내면화해 버린다고 믿는 것이다.문화연구의 선구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문화는 일상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문학이나 예술처럼 ‘고상한’ 것만을 문화라고 여기는 엘리트주의적 문화관을 비판하였다. 노동자 계급, 서민 계급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대중문화야말로 인간의 삶에 녹아들어 있는 문화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의미는 대중문화 작품 안에 완결된 채로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과 경험과 만나 ‘디코딩(decoding)’ 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 정치가 고민해야 할 일은 대중문화에 대한 ‘저격’이 아니라 국민들이 생각과 경험을 넓히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삶을 긍정하도록 돕는 것이다.

2023-12-11

치열했던 공방전, 영천전투

영천은 한국전쟁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자 치열한 전쟁터였다. 1950년 파죽지세로 밀려 내려온 북한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영천전투는 보현산을 넘어 영천을 점령하려 한 북한군 제15사단을 국군 제2군단 예하 제7사단과 제8사단이 9월 5일에서 13일까지 전력을 다해 공방전을 펼치고 끝내 영천을 확보하여 승리한 전투이다. 이 전투는 한국전쟁에서 처음으로 국군과 연합군이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한 대승리로 평가받고 있다.1950년 7월 14일 북한군이 금강 방어선을 넘자 워커 장군은 낙동강방어선을 말하며, ‘만약 이 선에서 적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하면 연합군과 한국군의 반격 작전은 실패할 것’이라 강조했다. 북한군은 8월에 다부동과 대구에 대한 공격이 실패하자 영천을 점령 후 다시 대구나 경주로 진격하고자 했다. 만약 영천이 점령되면 다부동 일대의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방어선을 지키기 어려울 수 있으며, 만약 경주로 진격한다면 부산교두보가 위협받을 수 있었다. 영천은 낙동강방어선을 형성하는데 핵심이 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비가 쏟아지던 9월 5일 새벽 1시, 북한군 제15사단은 전차 5대를 앞세워 총공격을 해왔다. 국군은 북한군에게 밀리다 분산 철수를 단행한다. 육군은 속절없이 뚫린 제8사단의 배속을 제1군단에서 제2군단으로 변경하여 병력을 보충한다. 9월 6일, 영천은 완전히 북한군의 차지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국군은 북한군에 밀렸음에도 다시 공격하여 영천을 탈환해 낸다. 또한 신녕의 317고지에서도 북한군을 방어해 낸다. 영천과 신녕을 차지하지 못한 북한군 제8사단은 전멸 상태로 패퇴하였다. 9월 7일, 국군은 일대를 수색하여 북한군 보급 차량 30여대를 파괴하고, 제73연대를 격멸하며, 139고지-130고지를 차지한다. 9월 8일, 북한군 제15사단이 다시 총공격을 감행하나 국군의 방어로 실패한다. 9월 9일, 국군 제8연대는 대구로 향하던 북한군을 저지하고 영천 시내로 진격한다. 이 과정에서 제5연대가 임포터널에 숨은 북한군 제15사단 포병연대를 섬멸한다. 9월 10일, 영천에서 경주 사이의 도로를 확보한 국군 제2군단은 영천 방면의 북한군을 격퇴하기 위해 반격을 시작한다. 제7사단과 제8사단을 중심으로 자포동·도림동·완산동으로 진출했다. 또한 제19연대와 제21연대에서 적의 연락군관 2명을 생포하여 북한군 사령부의 위치를 파악한다. 9월 11일, 대의동에 위치한 북한군 제15사단의 사령부를 성공적으로 공격한다. 9월 12일, 북한군 제15사단은 전차·자주포 그리고 병력의 반을 상실한 상태가 되었다. 국군은 이를 계기로 자천을 탈환하였다. 9월 13일, 영천에서 북한군의 위협이 사라지자 국군 제8사단은 전술지휘소를 영천으로 북상시켰다. 9월 15일, 기다리던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영천전투는 미군이 북한군의 8월 공세 후 인천상륙작전에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과정에서 허를 찔려 발생한 공방전이다. 북한군이 전력을 특정하여 집중하던 8월과 달리 9월에는 여러 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가해 혼란을 유발했었다. 전달과 다른 전략으로 인해 처음에는 한국군이 고전을 면치 못했고, 영천을 비롯해 낙동강방어선이 밀려 위험해졌었다. 그러나 한국군이 북한군의 전략을 파악하고, 가용 전력을 끌어모아 반격을 시작하자 북한군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물러나게 된다. 이러한 영천전투의 승리는 낙동강 등 병참선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했고, 이는 앞으로 수행될 국군과 유엔군의 작전 성공 가능성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불리는 국군과 유엔군의 북한군에 대한 총반격도 낙동강방어선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영천전투는 한국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영천에는 전투와 관련된 장소가 여럿 마련되어 있으며, 언제든 방문하여 그들을 기릴 수 있다. 한국전쟁의 참전용사들을 비롯한 영웅들이 영천호국원에 잠들어있고, 전투호국기념관에서는 그 치열했던 역사를 둘러볼 수 있다. 또한 창구동 산자락에는 영천전투를 체험할 수 있는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가 있다. 전투전망타워 1층에서는 간략하게 영천전투의 역사를 살피고, 2층 전망타워에서 영천시가지를 한눈에 담아본다. 야외에 마련된 시가전체험장·연병장·고지전체험장·국군훈련장에서 군사훈련과 서바이벌게임을 체험하며, 공원에 마련된 길을 따라 민족통일염원비·영천지구전적비·영천지구전승비·충혼탑을 둘러보며 참전용사들을 기린다. 다만 아쉬운 점은 체험프로그램이 단체 위주로 편성되어 있어 개인이 참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영천전투와 관련 있는 장소를 방문하고 체험한 이들은 오랫동안 전쟁영웅들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체험의 문이 개인에게도 활짝 개방되는 날을 기다려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12-11

탁자 위에서 스멀거리며 자라나는 공포

어떤 이야기는 우리를 끝도 없는 공포의 감정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참혹하고 무서운 장면을 담고 있는 영화나 게임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공포를 불러오지만, 무서운 이야기는 그것을 듣는 우리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씨앗을 돋워 올려 좀 더 근원적인 공포와 마주하도록 한다. 어린 시절 누군가가 들려주었던 무서운 이야기가 주는 오싹함에 코 끝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으리라.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따뜻하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괴담 같은 공포를 주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공포란 언어를 통해 전달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감각인 까닭이다.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는 에드거 앨런 포 이후, 미국 문학계에서 글쓰기를 통해 전달하는 공포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작가였다. 그가 1898년에 크리스마스 시즌에 적합한 유령 이야기로 쓴 중편의 이야기 ‘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은 귀신이나 유령을 직접적으로 다뤘던 흔한 괴담에서 벗어나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공포라는 감각의 본질에 대해 보여주는 작품이다.이 소설은 겨울 난롯가에 앉아서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나누면서 긴 겨울밤을 채우고 있다. 누군가 어린 아이에게 나타난 유령에 대해 이야기하자, 더글러스라는 남자는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자신이 40년 동안이나 비밀로 해 두었다는 자신의 조카인 두 어린 아이에게 나타난 유령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아이들의 가정교사였던 여자가 죽기 전에 직접 써서 남긴 원고 속에 들어 있다. 더글러스는 크리스마스의 난롯가 앞에서 그 원고를 낭독하기 시작한다. 모두들 일정한 기대를 가지고 그것을 듣는다.이야기는 한 여성이 블라이라는 시골에 가정교사가 되어 오게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가 맡게 되는 아이는 마일스라는 남자아이와 플로라라는 여자아이 두 명이다. 그녀에 앞서 가정교사로 있던 제셀이라는 여성이 죽어 새롭게 가정교사를 찾게 된 것이라는 사정을 알게 되지만, 아무도 이전 가정교사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두 어린 아이는 예쁘고 똑똑해서 나는 그들을 가르치는 일에 만족하게 되지만, 그녀에게는 점점 이상한 일들이 생긴다. 마일스와 친했던 피터 퀸트라는 죽은 하인의 환영을 보기도 하고, 플로라와 유독 친했다던 예전 가정 교사 제셀의 환영을 보기도 한다.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는 인간들처럼 내 앞에 간혹 나타나 무언가 의도를 가지고 있는 시선으로 쳐다본다.이 작품은 이처럼 낯선 가족에 들어온 가정교사에게 나타난 유령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누군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현실의 가장자리를 매만지면서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를, 있을 법하게 들려주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갖는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는 공포는 그것만은 아니다. 헨리 제임스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가능성들의 빈틈이 존재한다. 가정교사는 결국 점점 미쳐가게 되는데, 누구도 그녀가 보는 유령을 보지 못한다. 과연 유령은 실재하는 것인가. 단지 나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기엔 그가 아름다운 필체로 꼼꼼히 적어나간 이 글쓰기가 갖는 존재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들이 가진 순진무구함이자 가끔씩 그들에게서 튀어나오는 사악함이나 잔인함은 유령이 그들을 잠식했다는 징표인가 아닌가. 나사(screw)는 회전할수록 우리의 마음을 조이고, 나선들 사이의 틈 속에서 공포는 자라난다. 귀신이나 유령이 실재해서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틈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공포로 조여지는 것이라는 것을 헨리 제임스는 보여준다. /홍익대 교수

2023-12-11

집권 후반기는 안정될 수 있을까

김진국 고문 국회의원 선거가 꼭 4개월 남았다. 내년 4월 10일이 22대 총선이다. 내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을 할 수 있다. 예비후보가 되면 합법적인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이제 현수막이 숨이 막히게 나붙게 된다.그런데도 아직 예비후보들이 출마할 선거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난 5일 선거구획정위원회는 253개 선거구획정안을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전체 지역구 수는 고정해놓고, 인구에 맞춰 조정한 정도다. 그런데 선거구가 줄어든 지역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관련 법 개정안을 내고, 법을 고쳐서라도 선거구 축소를 막겠다고 한다.선거일 1년 전에 선거구 획정 등 선거와 관련한 기본 규칙을 정하도록 공직선거법에 못 박아놨다. 그런데 소용이 없다. 선거 때마다 한 달여를 앞둔 시점에 선거법과 선거구를 확정했다. 그러니 예비후보 등록과 실제 출마 선거구가 바뀌기도 한다. 선거구는커녕 선거법의 큰 틀도 합의하지 못했다. 소선거구제로 한다는 원칙만 세웠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어떻게 할지, 비례대표를 어떻게 뽑을지 논란만 벌인다.현행 선거법은 거대정당들이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추한 경험을 안고 있다. 선거제도에서 ‘연동형’은 유권자의 투표와 정당이 차지하는 의석이 비례하도록 배분하기 위해 고안됐다. 21대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33.4%,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33.8%, 정의당 9.7%다. 그러면 국회에서 각 정당이 차지하는 의석도 득표 비율에 비례하게 나누어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지역별로 1등과 2등의 표 차가 매우 다르다. 영호남처럼 1등과 2등의 차이가 큰 선거구가 있는가 하면, 서울·경기에서는 1천 표 이내의 적은 표 차로 당락이 갈린다. 당선자는 3분의 1 득표로 당선되고, 절반 이상의 유권자가 자기표의 가치를 얻지 못한다. 이런 경향이 비슷하다 보니 서울에서 지역구 후보가 얻은 표는 민주당 53.5%,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41.9%였지만, 실제 얻은 의석수는 민주당 41석(83.7%), 미래통합당 8석(16.3%)이었다. 경기도에서도 민주당은 53.9% 득표로 86.4%(51석)의 의석을 얻었다.이 결과를 보면 어떤가. 국민의힘이 연동형을 하자고 하는 것 아닌가. 정당투표에서 얻은 표(33.8% 대 33.4%)를 보면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이겼다. 완전한 연동형이라면 국민의힘이 원내 제1당이다. 그러나 비례 의석을 줄이고, 그 중에서도 연동되는 비례 의석은 더 줄여 ‘준연동형’으로 바꾸었다. 더구나 위성정당을 주도함으로써 사실상 제 발등을 찍었다. 탄핵을 몰아붙이는 3분의 2에 가까운 민주당 의석은 국민의힘이 만들어준 꼴이다.연동형은 군소정당이 목을 매는 제도다. 어떻게든 원내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정작 선거법에 결정권을 가진 양대 정당은 부정적이다. 자기 의석을 줄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양대 정당에서 목소리가 큰 텃밭 출신 의원들은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압박 요인이 있는 연동형을 싫어한다. 연동형의 효과를 높이려면 비례 의석을 늘릴 수밖에 없고,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구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사실상 개인적인 정치적 계산들이다. 포장만 그럴듯하게 한다. 윤석열 정부가 곤욕을 치르는 건 선거법 협상에 실패한 결과다. 지금도 국민의힘 지도부는 환상을 판다. 소선거구제로, 비례 의석을 줄이고, 연동형을 배제한 병립형으로 과반수를 차지한다고 선전한다.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선거법 협상과 관련해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했다. 현행 준연동형으로 가서 위성정당을 만드는 여지도 열어뒀지만, 그보다는 국민의힘과 손잡고 병립형으로 가자는 속셈이다. 20대 총선과 같은 제도다. 국민의힘이 자체 분석한 서울 판세는 21대 총선(41곳 중 8곳 당선)보다 더 어렵다(6곳 우세).위성정당을 막지 못하면 21대 총선꼴이 된다. 그러나 위성정당만 막는다면 윤석열 정부 후반기가 더 안정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과반을 얻어 독주한다는 환상보다, 야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않도록 막는 게 더 다급한 현재 판세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2-10

경찰손에 넘어가는 학폭조사, 부작용 없을까

내년부터는 학교폭력(학폭)이 발생하면 피해·가해학생 조사를 교사가 아니라 ‘학폭 전담 조사관’이 담당한다. 교사가 학폭부담에서 벗어나 본연의 기능인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학폭 전담 조사관은 내년 3월부터 전국 177개 교육지원청에 2천700여 명 배치된다. 수사·조사 경력이 있는 퇴직 경찰이나 학폭·생활지도 경력이 있는 퇴직 교원을 대상으로 위촉하며, 각 교육지원청별로 약 15명씩 근무한다. 2004년 학교폭력예방법이 생긴 이후 20년 만에 학폭 처리 방식이 대폭 바뀌는 것이다.앞으로 학폭처리 절차는 전담조사관이 조사를 한 후 결과를 학교장에게 보고하면, 학교에서 자체 해결 여부를 결정한다. 학폭 당사자간 합의처리가 안돼 자체해결이 어려울 경우에는 사건을 교육지원청의 ‘학폭 사례 회의’로 보낸다. 사례 회의에는 조사관과 학교 전담 경찰관, 변호사 등이 참석하는데, 1차 조사 결과를 보완해 교육지원청의 ‘학폭 대책 심의위원회’에 넘긴다.그동안 교사들은 학폭 조사 과정에서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협박에 시달리며 엄청난 고통을 겪어왔다. 사실상 혼자서 피해·가해·주변 학생을 조사하고 객관적 사실을 입증할 자료도 수집해야 했다. 정당한 조사인데도 온갖 민원이나 시달림을 받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내년부터는 전담 조사관이 학폭 사건을 조사하기 때문에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문제는 학폭 사건 조사를 공권력에 맡기는 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냐는 것이다. 피해·가해 학생을 경찰에 넘겨 조사를 받게 하는 것 자체가 학생·학부모 모두에게 큰 스트레스다. 경미한 학폭 사건에도 조사관이 나서면 원만한 해결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사회 전체적으로 교사를 학폭 사건 조사업무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합의는 충분히 이루어져 있다. 무슨 정책이든 장·단점이 있고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앞으로 학폭 전담 조사관제도 시행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면, 즉각적인 보완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2023-12-10

전쟁 끝난 지 언젠데 아직도 지뢰밭이 있다니

과거 방공포대가 주둔해 있던 포항 호미곶면 고금산과 봉화산 일대에 아직도 300발이 넘는 지뢰가 매설된 채 방치되고 있다고 한다. 6·25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지뢰밭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놀랍고, 또 이로 인한 주민들의 안전은 어떻게 보호돼야 할지도 걱정스럽다.포항에서는 군 당국이 지난 2003년 처음으로 지뢰제거 작업에 나선 바 있고 이후 2014년과 2018년 등 수차례 더 지뢰제거 작업에 나섰지만 완전한 제거는 못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2021년 국방부가 제출한 후방지역 지뢰 매설지 및 제거 현황에 따르면 포항 호미곶면 일대에는 과거 군부대 주둔으로 설치된 지뢰가 아직 343발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군 당국은 이와 관련, 2021년 10월까지 모두 제거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추가로 제거작업이 진행된 적은 없다.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폭우나 산사태 등으로 지뢰가 유실될 가능성이 많고 유실된 지뢰가 통제가 되지 않는 민간 사유지로 밀려올 경우 폭발사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실제로 지난해 7월 강원도 철원에서는 수해복구 작업을 하던 굴삭기 기사가 폭발사고로 숨진 사고가 있었다. 국방부의 지뢰 및 폭발물 피해자 현황 실태조사 보고서(2021년 기준)에 따르면 전국의 지뢰 피해자는 1천171명에 이른다. 불발탄 피해자까지 포함하면 6천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또 사고도 종전 후 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확인돼 완전한 지뢰제거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 한 또다른 피해자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이다.사고는 미연에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국방부는 전국에 걸쳐 산재한 지뢰지대를 더이상 방치말고 조속 제거 작업에 나서야 한다. 지뢰로 인한 주민의 불안감 해소뿐 아니라 사고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지뢰매설지에 대한 안전안내문 설치 등 안전관리에도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호미곶면 일대에 지뢰가 매설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2023-12-10

이민정책에 관심을

우정구 논설위원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지목된 한국의 인구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출산율 제고며 또 하나는 이민 유입이다.올해 말 국내 출산율이 0.6명대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을 보면, 출산율 제고를 통해 인구를 늘리겠다는 정부 정책은 현시점에서 분명 한계가 있어 보인다.그렇다면 이민을 통해 인구를 늘려야 하나 외국인 인력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수반하는 문제가 적지 않다. 법적 제도적 문제뿐 아니라 국민정서 등도 심각히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복지천국으로 소문난 스웨덴이 북유럽 최악의 범죄 국가로 추락한 과정을 반면교사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은 인도주의를 앞세워 무분별하게 난민을 받아들여 현재 전체 인구(1천50만명)의 약 20%가 외국 태생의 이민족으로 구성돼 있다.문제는 이들이 제대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난민 중심의 범죄조직이 활개를 쳐 북유럽 최악의 범죄국가란 오명을 쓰고 있다. 스웨덴에 소재한 이민자 범죄조직만 50개, 조직원이 3만명이라 한다. 스웨덴 치안을 맡은 경찰 수보다 3배나 많다.이민정책은 국가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국가에 득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싱가포르 등과 같이 이민정책이 성공한 나라도 있다.정부와 여당이 이민청 설립에 적극적이다. 단일민족으로 수천 년 내려온 우리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찍을 정책이란 점에서 국민의 관심이 모아져야 할 정책이다. 인구 문제가 우리에겐 발등의 불이긴 하나 역사적 걸음을 뗄 이민청 설치에 충분한 연구와 준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10

나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 겨울인데 한낮 기온이 18℃까지 올라간다. 이래도 괜찮은가, 생각하며 커피나무를 마당에 내놓고 화분에 흙을 북돋우고 한껏 물을 준다. 일주일 내내 거실에 있어서 답답하기도 한 것처럼 너른 이파리를 한껏 흔들어댄다. 커피나무는 그나마 운이 좋아 잠시나마 밖에서 외기(外氣)와 만나는 행운을 누리지만, 거대한 덩치의 길상천은 꼼짝할 수 없다. 남들보다 크고 무겁다는 게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닌 셈이다.얼마간 미뤄둔 마당 정리를 마치고 훌훌 들로 나선다. 어느새 다가온 해거름이어서 멀리 서녘으로 길지 않은 겨울 해가 꼴깍, 소리 내고 사라지고 있다. 여름의 태양은 오래도록 하늘가에 흔적을 남기는데, 겨울 햇빛은 인색하다 못해 심술궂은 느낌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천체의 작동과 운동에 인간의 의지나 바람이 개입할 여지는 없으니 군소리 없이 바라보는 것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다.따사로운 햇살과 달리 사납게 몰아닥치는 바람이 목덜미에 선선한 흔적을 남긴 후에야 미뤄둔 문제가 머리를 쳐든다.‘그대 마음은 어디 있는가?’ 가슴인가, 머리인가, 육신 어느 다른 곳인가! 어느 양자물리학자는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육신 밖에 있다고 주장한다.인간의 뇌에 고작 0.0001%의 마음이 있을 뿐, 나머지 99.999%의 마음은 우리의 육신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아니,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탄식이 절로 나온다.두 손을 휘휘 저으면서 바람 속을 걷다 속삭인다. 그래, 나의 마음아, 너는 지금 나의 육신과 함께 가고 있느냐?!그렇다면 마음아, 너는 나의 앞에 있는 것이냐, 아니면 옆이냐, 위냐, 좌냐 우냐, 너의 위치를 알려다오. 하지만 나의 마음은 묵묵부답 고요하다. 마음은 그런 나의 질문이 귀찮은 것인지, 성에 차지 않아서 그런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상냥하게 다시 묻는다. 나의 마음아, 나와 대화하는 게 귀찮지는 않은 것이냐?!그래도 마음은 대꾸하지 않는다. 이윽고 붉게 소멸해가는 햇살과 바람에 버티고 서서 태양과 작별하는 작은 구름장과 윙윙 소리 내며 질주하는 바람과 비어버린 들판과 대지의 수호신인 양 의연히 서 있는 전봇대를 사진기에 담는다. 세 장의 사진을 찍는 데 소요된 시간은 불과 10여 초, 하지만 사진에 담긴 풍경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그 사진을 찍는 나의 마음이 사진 영상에 비친 피사체인 겨울 풍경을 변화시킨 것이다.내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나의 눈과 시각중추가 아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전권은 오직 마음이 가지고 있다. 마음이 어디를 어떻게 볼 것인지 결정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양자물리학자들이 만들어낸 용어가 ‘관찰자 효과’다. 전자는 인간이 관측하지 않으면 파동(波動)으로, 관측하면 입자(粒子) 형태로 ‘슬릿(slit)’을 통과하는 이른바 ‘이중 슬릿 실험’에서 나온 용어가 관찰자 효과다.아주 미소한 입자인 전자가 관측 행위로 인해 빛의 영향을 받으면, 파동의 성질이 입자의 성질로 바뀌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나나 당신의 마음은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2023-12-10

‘평범한 삶 추구’, 중국 춘추 오패의 교훈

박진홍 부국장 인류사에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높은 자리’는 항상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다.더 나아가 ‘높은 자리’는 침탈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위태로운 삶의 숙명을 가졌다.진화론에 따르면 지구 모든 생명체는 ‘번식·생존의 이기적인 본성’ 때문에 서로 충돌 하는 필연성을 보여 준다. 역사가 증명하듯,‘번식과 생존 가능성을 높여 주는 권력과 재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 역시 끝이 없다. .그러나 끝없는 욕망은 결국 불행으로 귀결됨을, 중국의 대표적인 권력 투쟁사인 ‘춘추 5패’에서 잘 드러난다.BC 1046년 중국 고대 주나라 무왕이 목야전투에서 은나라 폭군 주왕을 꺾고 중원 대륙을 차지하면서,‘중국인 마음의 고향’ 주나라 역사가 펼쳐진다.하지만 BC 771년 주 유왕은 애첩 포사의 웃음을 보기 위해 ‘외적이 쳐들어 왔다’는 양치기 소년 게임을 거듭하다, 실제 견융의 침략에 지방 제후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유린당하게 된다.유왕이 살해되고 도읍을 동쪽의 낙읍으로 옮기면서 서주의 역사는 끝이 난다.이때부터 동주와 함께 중국 춘추시대(BC 771∼BC 453년)가 시작된다. 봉건시대인 주나라 춘추시대의 특징은 힘이 약화된 왕실이 명목상 천하의 주인일뿐, 실제로는 지역 제후 가운데 회맹에서 맹주로 뽑한 패자가 천하의 주도했다.패자들의 명분은 ‘주왕실을 보호한다’는 존왕양이(尊王攘夷)였지만, 치열한 생존 경쟁은 계속됐다. BC 91년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춘추시대 300여년동안 주왕이 봉한 제후국은 140여개국에 달했다.이 중 멸망한 나라는 60여개국, 살해된 군주가 40여명, 전쟁 횟수만 1천200회가 넘는다. 오죽하면 이때를 ‘국가가 봄에 건국했다가 가을에 지는 춘추(春秋)시대’라고 했겠는가!생존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제(齊)나라 환공(桓公), 진(晉)나라 문공(文公), 초(楚)나라 장왕(莊王),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 월(越)나라 왕 구천(勾踐) 등이 당시 중국의 패자로 번갈아 등장하게 된다.중국 대륙을 호령하는 막강한 권력과 엄청난 재력을 가진 ‘춘추 오패’.하지만 이들의 속살을 들여다 보면 화려한 이면에 참담한 현실도 그대로 드러난다.‘관포지교’로 유명한 관중을 재상으로 등용해 부국강병에 성공하며 남방의 오랑캐들을 막아내 첫번째 패자로 등극한 제 환공.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제환공은 관중이 죽은 후 간신들에게 의지하다 ‘권력의 레임덕’에 빠지면서 별궁에 갇혀 굶어 죽고 만다. 두달간 장사를 못지내면서 시신의 구데기가 별궁 담장 밖으로 나올때 까지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두번째 패자 진문공의 삶도 기구하고 파란만장했다. 아버지 헌공의 젊은 애첩이 자신의 어린 아들 혜제의 태자 책봉을 도모하자, 진문공은 19년간의 춥고 배고픈 험난한 망명생활을 겪어야 했다. 이런 가운데 이복동생 이오가 먼저 왕이 됐다. 그러자 진문공은 동생의 극심한 암살 위협에 시달리다 겨우 62세에 귀국, 9년간 왕위에 올랐다.세번째 패자 초장왕의 가족사는 처절했다.초장왕의 아버지 목왕은, 그의 아버지 성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성왕 역시 늦장가로 얻은 애첩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 주려 했다.이에 목왕은 ‘이복동생이 왕이 될 경우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 목왕을 자결케 했다.왕위에 오른 초장왕은 조정 대신들의 권력과 파워게임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 3년간 주색잡귀에 빠진 척하며 간신과 충신을 가린 후 일거에 정권을 장악한다.이때 나온 유명한 고사성어가 ‘삼년동안 울지도, 날지도 않는다’는 불비불명(不飛不鳴)이다.네번·다섯번째 패자인 오 합려와 월 구천은 2대에 걸쳐, 서로 죽고 죽임에 시달리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기구한 운명이었다. 오 합려는 숙적 월나라를 침공하다 월 구천에게 대패한 후 부상으로 사망한다.이에 합려의 장자 부차는 장작 위에서 잠을 자며 오자서의 도움을 받아 월나라를 재침공해 승리한다. 오나라로 끌려간 구천은 부차의 하인으로 전락해 목숨을 구걸한 후 매일 쓴 쓸개를 핥으며 심기일전, 결국 복수에 성공한다. 구천에게 패한 부차는 자결한다.높은 자리나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은 항상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노자는 무위(無爲)사상을 통해 ‘다른 사람 보다 앞서면, 시기 질투를 받아 위험하다’며 ’아무것도 하지 말라(無爲)’고 했다.역사는 ‘평범한 삶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많이 보여준다.

2023-12-10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쫓아오던 햇빛인데지금 교회당 꼭대기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모가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겠습니다.―윤동주, ‘십자가’ 전문(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정음사) 단 한 장 남은 12월이 십자가의 그늘을 지난다. 윤동주(1917~1945)의 시를 읽고 나면 쓸쓸해진다고 했다. 비에 젖은 나무가 젖은 흙으로 뿌리를 내리듯 한 시인이 거느리는 무게감을 그저‘쓸쓸’이라는 말로 견인 할 수 있을까. 그가 떠나고 3주기 되던 해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비로소 세상의 꼭대기 첨탑에 걸리었다. 윤동주가 걸어간 자리가 그렇다.“부끄럽지 않고 슬프고도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냐”고 반문했던 시인 정지용의 서문처럼. 온 국민이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그 첫 자리에 드는 시가‘서시’인 것은 ‘별 헤는 밤’‘자화상’등 그의 시편을 대할 때마다 마치 첫눈을 보는 마음처럼 순결해지는 것과 같음이리라.학기를 마무리하며‘영화가 있는 도서관’에서 그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몇몇 학생은 영화의 내용이 지루하고 어렵다고 했다.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주는 고통과 절망의 낙차 때문일까. 학문과 사상의 자유, 양심과 표현의 자유 등 이미 우리가 성취했다고 믿는 오늘의 위치 때문일까. 그 무엇도 제 것을 가져보지 못한 시대, 주권 없는 그늘이 주는 상실의 폭은 멀고도 깊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은 몰입했고, 감상 후 학생들의 내면 고백은 뭉클한 여진으로 흔들렸다. 이희정 시인 가볍게 산책하려던 마음은 빗나갔다. 이 시를 쓴 때는 1941년 5월 31일이지만“종소리도 들리지 않는데”라는 문장은 11월경에 시를 수정할 때 썼던 얇은 펜으로 삽입되었다. 그 점에 주목해 보자, 시인‘동주’는 왜 이 문장을 삽입했을까. 쇠붙이를 녹여 무기를 만들려고 당시 일제는 쇠붙이란 것들은 죄다 쓸어갔다. 교회 종인들 남을 리가 있겠는가. 당연히“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끔찍한 상황이 되고 만다. 희망이 없는 시대에 그는 종소리 대신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린다고 했다.“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처럼 세상을,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기에 동주의 고뇌는 깊어갔다.언제나 흔들리는 곳에 십자가는 걸려 있다. 정황을 뒤집어 보면 “왜 흔들리는 곳에 십자가를 거는 것인가”라는 물음이 먼저와야 하지 않을까. 사실 그는 십자가를 남발하지 않았고, 종교 언어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 가슴속 울분은 기척도 없이 고결하게 정제되었다. 해서 우리는 그의 시를 읽으면 서럽고도 외려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거리는 빙 크로스비의 음성으로 감미롭다. 울려 퍼지는 캐롤과 성탄 트리의 빛으로 더없이 환한, 이런 때 진정으로 빛나게 하는 것은 걸어 둔 십자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아닐는지. 밖을 향한 손쉬운 단죄 대신 안을 들여다보는 깊은 자성을 택한 영혼의 힘은 여기에 있다. 종소리 없이도 더 환하게 울리는 그의 시 앞에서 시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는 한 여학생의 소감 한 줄이 첨탑을 지난다.“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2023-12-10

지방소멸,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인구소멸과 지방소멸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지금 우리에게 동시에 대두된 난제이다.대부분의 지방 시·군 등이 인구가 줄어든 지가 오래고 이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소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난리가 난 상황이지만 수도권에서는 지금도 서울의 도시 경쟁력을 위해서 김포를 서울로 편입한다, 구리를 편입한다며 서울 메가시티 논란에 정치권이 뜨겁다.과도하게 밀집된 수도 서울은 국제적인 도시 경쟁력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입장에선 수도권과 지방격차, 도농격차의 상징이다. 모든 것이 수도 서울로 몰리다 보니 서울은 끝도 없는 주택난과 교통난에 부대끼고 이럴 바에는 제주까지 서울에 편입시켜 나라 전부를 메가시티서울로 개발하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느냐? 하는 자조 섞인 말조차 나온다.지방소멸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대책들이 총선을 앞두고 앞다투어 발표되고 있다. 그 중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지역별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안도 있다. 이 정책은 특정지역, 특정기업, 특정인에게 특혜만 되고 투기만 조장할 뿐이다. 지방에 특화된 산업단지를 조성해도 이제 그곳에 일할 그 지방 사람은 없다. 공연히 외국인 근로자만 몇 명 더 늘어날 뿐이다.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항상 물이 그득한 큰 댐(중급 대도시)이 존재해야 하며, 큰 댐에 물을 공급할 수 있는 다양한 작은 수자원, 실개천이 튼튼하게 지탱해야 하는데, 그러면 아무리 큰 가뭄이 와도 들판이 살고 식물이 자라야 사막화를 막을 수 있고 소멸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지방의 사막화를 막으려면 먼저 댐을 채울 수원지, 수자원을 살려야 하는데 지금 당장 메마른 댐에 물을 보내줄 주변의 수자원으로 무엇이 있는가?특별시와 광역시를 빼고 전국 163개 시·군 등 각 기초자치단체의 면적은 대략 서울시와 비슷하다. 그런데 모든 부의 90% 가까이가 163개 시·군 중 하나와 면적이 비슷한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부의 규모는 형편없이 쪼그라든다. 서울에서 먼 지방에도 기본적인 부가 흘러넘쳐야 5일장도 살고, 각 급 학교도 살고, 사람도 살 수 있을 텐데, 산업화·근대화의 첫 번째 피해자가 지방인데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서울-지방간 격차를 줄이고자하는 근본적인 노력 없이 수도권으로 자원과 인력을 빨아들이기만 했다. 지방이 살려면 지방이라는 전통적인 수원지에 물(부)이 흐르게 해야 한다.서울의 토지는 평당 1억 호가하는 땅이 수두룩한데 지방의 문전옥답들은 평당 10만 원 이하가 수두룩할 뿐더러 ‘LH투기 사태’ 이후 농민이 아니면 농지구입을 원천적으로 막아 농지거래는 희귀한 일이 되어 농지를 통한 생산소득이나 농지거래소득이 끊어진지 오래다. 첫째는 농지생산소득 증대 방안을 찾아서 농지생산가치가 평당 100만원을 넘어서게 해야 하고, 둘째는 농지거래를 활성화시켜 외부 자본이 농촌에 흘러넘치게 해야 한다. 셋째는 그렇게 흘러넘치는 물(부, 자본)을 댐(중급 대도시)에 모아야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일본에서는 지방소멸 대책으로 거대도시 도쿄와 오사카 사이에 지역거점도시로 100만 명 정도의 중급 대도시를 적극 키우는 정책을 추진하였다.청송·봉화 사람들이 서울·부산으로 한 번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지만, 안동이 100만쯤 될 경우 청송·봉화 사람들이 안동 가서 살면 주말에 고향에 자주가게 되고 그러면 언젠가는 다시 고향 청송·봉화로 많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우리나라는 늦은 감이 있지만 안동 정도가 힘들면 현 광역시를 중심으로 댐 역할을 하도록 지역별 중심도시로 활성화시켜 나간다면 지방이 그냥 속수무책으로 소멸되지는 않을 것이다.경상북도에서 볼 때 포항·경주·영덕 정도를 하나의 경제권·생활권으로 묶일 수 있도록 선제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소멸되는 사태는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무엇보다도 지방 구석구석으로 물(자본)이 흘러들어 댐(중급 대도시)의 수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마침 태양광농사(농지태양광 발전사업)는 현재 쌀농사 기준으로 영농복합형 태양광발전 사업은 8배 이상 소득증대가 기대되고, 순수 농지태양광 발전만 할 경우 38배, 스마트팜 융복합사업을 할 경우 현재보다 310배 정도의 소득증대가 예상되므로 농촌, 지방의 획기적인 변화와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댐에 충분히 물을 채울만한 수자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농촌, 지방에 물(자본)이 흘러넘치면 지방도 풍요로워지고, 지방이 풍요로워지면 지방 소멸도 막을 수 있고, 국토균형발전도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다.재생에너지는 분산에너지라 한다. 에너지의 분산은 곧 부의 분산이고 부의 평준화이며 경제민주화의 구현이다. 적극적인 재생에너지 정책과 농지태양광 발전사업 활성화는 에너지 전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토균형발전과 빈부격차해소와 지방소멸 방지뿐 아니라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수 있는 만능 해법이 될 수 있으니 반드시 추진해야할 일이라 생각한다.

2023-12-10

사람 앞에만 서면 두근두근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오늘은 발표가 두렵다는 30대 K과장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K과장은 매월 1회 회사 전체회의에서 발표해야 한다. 평소 직원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괜찮은데, 많은 사람 앞에 나가서 발표할 때는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감이 엄습한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이 붉어지고 식은땀이 난다. 미리 적은 것을 읽는 것조차도 힘이 든다.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이 다가오면 전날 두려움과 불안으로 한숨도 못 자기도 하고 발표가 끝나고 나면 온종일 몸살을 앓기도 한다.K과장은 정신과적 검사와 진단적 면담을 통해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로 진단됐다. 사회불안장애는 오랫동안 사회 공포증으로 불려 왔으며, 현재는 두 명칭이 혼용되나 사회불안장애가 대표 진단명이다.사회불안장애의 핵심적 특징은 타인에게 자세히 관찰될 수 있는 사회적 상황에 노출되는 상황에 대해 극도로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며 사회적·직업적 상황 등에서 현저한 고통이나 손상을 가져오는 것이다. 사회적 불안장애에서 말하는 사회적 상황의 대표적인 경우를 살펴보면, 여러 사람 앞에서 수행(예: 발표, 노래, 연주 등)을 하거나 어떤 행동(예: 음식을 먹거나 마시는 자리)을 하는 상황, 시험 특히 면접을 보는 상황, 낯선 사람이나 권위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대화를 하는 상황, 공중화장실에서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소변을 보는 상황 등이다. 불안장애의 분류에 속하는 공황장애, 범 불안장애의 평생유병률은 각각 3%, 9%인데, 사회불안장애의 평생유병률은 10% 정도이다. 사회불안장애는 이렇게 흔한 질병임에도 진단이 잘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떨리고 긴장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므로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이라 치부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불안장애는 단순한 수줍음을 넘어 그 정도가 지나쳐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데 문제가 있다. 즉, 학교 적응, 취업률, 직업적 생산성, 사회경제적 지위, 낮은 사회적 안녕, 심지어 삶의 질과도 연관된다.만약 수줍음도 아주 심해 일상적인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사회불안장애로 진행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 어린 시절의 수줍음은 대부분 거듭된 사회적 노출을 통해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사회불안장애는 사회적 상황이 늘어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특히 사회불안장애는 공황장애, 우울장애, 알코올 의존, 약물 의존 등의 후유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불안장애는 상황이 반복될수록 자신의 불안한 예측대로 들어맞는 것만을 기억하며 점점 악화한다. 사회불안장애를 단순한 수줍음으로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우리는 사회불안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고, 사회불안장애는 약물치료나 인지행동치료로 치료가 비교적 잘 되는 질환임에도 정신과를 잘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사회불안장애의 약물치료에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는 꾸준히 복용하면 공포감, 불안감을 덜어 주는데 효과적이고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치료 초기 불안이 아주 심할 때 사용할 수 있고, 발표 공포증에 흔히 사용하는 베타 차단제(인데놀)는 신체적 증상(예: 떨림, 심계항진, 발한)을 완화하는 데 즉각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인지행동치료에는 왜곡된 생각을 고쳐주는 인지치료, 사회적 상황에 직면하여 연습하는 직면치료(노출치료), 긴장 이완을 해 신체적 증상을 조절해주는 신체조절법(이완치료법)이 있다.사회불안장애 환자는 2가지 핵심 인지왜곡이 있다.첫째, 모든 사람에게 인정, 칭찬을 받아야 한다. 완벽해야 한다는 인지왜곡이 있다.둘째, 사회적 평가에 대한 조건적 신념, 내가 실수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정적(예: 무시하거나 싫어할 것이라는 등)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인지왜곡이 있다.이러한 인지왜곡적 생각들이 두려움과 불안, 신체적 증상(예: 떨림, 심계항진, 발한)들의 증상을 일으키게 되고 증상을 줄이기 위한 방어적 시도들이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킨다. 사람들에게 사회불안에 대한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예를 들면, “나는 지금 (주요하신 여러분들) 앞에 서니 상당히 긴장되고 떨린다”고 말하면, 상대방도 존중해주고 나는 겸손해 보이며 내 긴장도 풀고 1석3조이다.오히려 사람들이 더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커진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과 같은 부족함을 발견하면 공감하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오히려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그런데 사회불안장애 환자들은 불안한데 불안을 보이려 하지 않으려 하기에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지고 더 불안해진다.오히려 자신의 사회불안을 알려라. 자연스러워진다. 덜 불안해진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2023-12-10

한계를 뛰어넘는 힘, ‘겅호’(工和)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선물’ 등과 같은 우화식의 경영서를 보면 재미도 있고, 감정이입이 잘 되어 그 메시지를 잘 전달 받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그런 책 중에서 필자가 기업에서 혁신 컨설팅을 하는데 큰 영향을 준 책이 바로 ‘겅호’라는 책이다. 16년 전 QSS혁신 컨설턴트로 올 때 자신감을 주었던 이 책의 지혜는 기업에서 조직의 변화를 불러 일으킬 때 아직도 실천하고 있는 내용이다.‘겅호’를 한자로는 공화(工和)라고 하며 ‘침체된 조직에 열정과 패기, 용기 그리고 직무 혹은 임무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한한 책임을 달성하자’라는 강한 신념의 파이팅 구호이다.이 책 내용은 윌튼이라는 쓰러져가는 공장에 페기라는 공장장이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무기력증에 빠져있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실의에 빠지지만 앤디라는 부하 직원에게 조직을 살리는 지혜를 배우게 되고 이를 현장에 실천하여 새로운 공장으로 탈바꿈하게 되고, 이후 미국 대통령상인 말콤볼드리지상을 수상하는 실화이다.무너져가는 회사를 멋지게 성장시키는 핵심요소를 세 마리 동물의 지혜로 배운다.첫째 동물은 다람쥐이고 ‘다람쥐 정신’이다. 식량을 모으지 않으면 겨울을 날 수 없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 부지런히 먹이를 모으는 것이 다람쥐 정신이다. 즉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둘째 동물은 비버이며 ‘스스로 일하는 방식’이다. 자신들의 집이 폭우에 허물어지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본 비버가 즉시 보수한다는 것이다. 즉 팀원 모두가 목표 달성에 필요한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적합한 일을 적합한 방식으로 스스로 추진하는 것이다.셋째 동물은 기러기이며 ‘칭찬과 격려의 선물’이다. 수천㎞의 멀고 먼 목적지를 여행하는 이들은 그 먼 거리를 V자로 날면서 선두에서 날던 기러기가 뒤로 처지면 다른 기러기가 선두 자리에 나서면서 다같이 힘내라고 울음소리를 낸다. 즉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에너지를 얻고 나아가는 것이다.나를 변화시키고, 동료를 변화시키고, 조직이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게 하려면 첫째 나의 삶의 터전인 직장에서 가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하고, 공동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둘째 스스로 일을 완성하는 조직은 일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최신 정보들은 공평하게 제공하고, 비밀이 없도록 해야한다. 셋째 팀원의 임무에 대하여 완료된 일의 결과에 대해서만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진행과정에서도 서로 응원하고 격려해야 동기부여가 확실히 이루어진다.동기부여에 의해 일어나는 열정(Enthusiasm)은 임무(Mission)와 격려(Congratulation)에 비례해서 증가한다고 한다. E=MC2 공식을 기억해야 한다.자신 스스로 묶여있는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다면 ‘겅호 정신’으로 무장해야 하고, 세가지 동물의 지혜를 몸소 실천해야 한다. 기업의 변화를 일으키는 혁신 구호로 “지금 할 일은 지금, 오늘 할 일은 오늘, 즐겁고 신나게,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라는 구호를 외쳐본다.

2023-12-10

가까운 사람이 기뻐해야 멀리서 찾아온다

유영희 작가 올 12월에도 작년에 이어 지방 의회를 방청하고 있다. 의원들의 질의를 듣다 보면, 일부러 검색하지 못한 세세한 지역 소식을 알게 된다. 올해는 내가 사는 지역의 출산율이 0.5명대라며 육아 환경 질의가 오고 갔다. 나 역시 몇 년 전에 결혼한 두 딸에게 아이 낳는 것을 부추겨야 할지 망설이는 상황이라 관심이 갔다. 맞벌이하면서 육아를 해나갈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잘 되어 있는지 걱정되기 때문이다.출산율 하락이 세계적인 추세이기는 하지만, 한국 출산율의 하락 추세는 더 가파르다. 전국 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했고, 서울은 3년 전에 0.5명대로 떨어졌다. 이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021년 평균 합계출산율 1.58명의 절반 수준인데, 앞으로 전망은 더욱 어둡다. 현재 인구 소멸을 걱정해야 할 지역은 인구소멸 고위험지역과 위험지역, 주의지역으로 지정된 기초자치단체를 합하면 전체 지자체 226곳 중 90%가 넘는 206곳이나 된다. 광주광역시조차 인구소멸을 걱정한다니,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취임 때부터 이민청(출입국·이민관리청) 신설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이번에 추진하는 이민청은 완전한 신설이라기보다는 기존 기구의 승격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이미 있었던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업무에 외교부,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등에 흩어진 이민정책을 모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리 업무는 1961년부터 법무부 산하에 있던 출입국관리소가 맡아 왔고, 이것이 2007년에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로 전환되어 외국인 등록이나 영주권 업무를 지금까지 담당해 왔다.이런 움직임에 대해 이주민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이자스민은 이민청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민청 설립만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다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주민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77년생인 이자스민 자신만 해도 현재 1남 1녀를 두고 있는데 필리핀에 살았더라면 더 낳았을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참고로, 2022년 필리핀의 출산율은 1.9명이지만, 2020년만 해도 2.78명이었고 그 전에는 훨씬 더 높았다.‘논어’ 자로 편에는, 섭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가까운 사람이 기뻐하면 멀리서도 찾아옵니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기록이 있다. 이민청 설립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한국이 아이 낳기 좋은 정치를 하는 것이다. 한국 젊은이들도 아이를 낳기 어려운데, 이주민이 아이를 낳고 영주하기는 더 어렵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사용하려고만 한다면 출산율 제고는 더 불가능하다.먼저 한국에서 살고 있는 미등록 외국인들부터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고급 인력이 오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한국에 온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떠나지 않게 할지 이주민 정책을 잘 세워야 한다. 이것이 이민청이 저출산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2023-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