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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립할 수 없는 이미지의 공존 라벤나 ‘아리안 세례당 모자이크’

이탈리아 라벤나에는 동고트의 왕 테오도리쿠스(재위 488∼526) 통치시절인 5세기말에서 6세기 초에 지어진 ‘아리안 세례당(Arian Baptistery)’이 있다. 세례당 천장은 의례 이 시기 교회들이 그런 것처럼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색 입힌 작은 돌이나 유리조각을 배열해 이미지를 만드는 모자이크는 환상적인 방식으로 빛을 반사시켜 실내공간에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천장 전체는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는데, 반원형의 둥근 천장 가운데 부분에 크기가 작은 또 다른 원형 하나가 더 들어간 구조를 보인다. 가장 중심의 원에는 세례당에 잘 어울리도록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바깥 원에는 고대 로마 남성들이 입었던 토가를 두른 열 두 명의 사도들이 왕관을 손에 들고 등장한다.그런데 모자이크를 제작한 미술가가 표현한 세례 장면은 상당히 흥미롭다. 특히 옷을 벗고 물 속에 들어가 세례를 받고 있는 예수의 모습에서 그렇다. 미술가는 물 속에 들어 간 사람을 실감나게 그리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미숙하지만 순수함이 느껴진다. 유기적인 선들의 흐름이 강조된 훈데르트바서의 평면적이지만 화려한 색채의 그림이 연상되기도 한다. 예수는 수염 없는 매끈한 얼굴의 젊은 청년으로 그려져 있다. 동물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은 덮수룩한 수염의 세례자 요한이 예수의 머리에 손을 올려 세례를 준다. 성령을 상징하는 흰색 비둘기가 예수의 머리를 향해 내려오고 있다. 이곳에 그려진 예수, 세례자요한,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는 예수가 세례를 받는 장면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요소들이다. 그런데 이곳 천장 모자이크에는 흰 머리와 흰 수염을 한 나이든 남성 한 사람이 등장한다. 이 인물은 기독교와는 전혀 무관한, 오히려 이교적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피해야할 강의 신이다. 교회미술에서 흔치 않은 일이지만, 기독교 도상이 확립되지 않았던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는 종종 관찰되는 현상이다.모자이크를 제작한 미술가는 어떤 이유에서 예수의 세례 장면을 묘사하면서 성서가 전하고 있는 장면과 전혀 무관한 강의 신을 구태여 그려넣었던 것일까? 오히려 정통 기독교 교리에서 벗어난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 인물에 대해 어떤 설득력 있는 설명이 가능할까?기독교적 내용과 이교적 이미지가 혼영되어 나타나는 이런 미술현상은 기독교 교리나 기독교 도상이 아직 정립되고 확립되지 않았던 이 시기, 로마미술이 별다른 거리낌 없이 결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술자나 노동자에 가까웠던 당시 미술가들이 익숙하게 보아왔던 미술은 고대 로마가 남긴 유산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보아온 것들은 인물이나 건물 혹은 자연을 묘사할 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고대 로마미술에서 기독교 미술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자주 관찰된다.라벤나의 아리안 세례당 모자이크 보다 100년 앞서 제작된 유니우스 바수스의 석관을 장식하는 부조(359년경)나 비슷한 시기 제작된 라벤나의 갈라플라치디아 영묘당(425∼450년경) 벽면을 장식하는 모자이크나 로마 산타푸덴치아나 교회 앱스 모자이크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작품이 묘사하는 기본적인 내용은 성서로부터 온 것이거나 기독교적 상징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로마미술을 따랐다. 그래서 로마 미술에서 익히 등장하는 태양신 아폴론의 모습이 예수의 모습에 입혀졌고, 기적을 행하거나 제자를 가르치는 예수의 모습은 토가를 입은 로마 철학자와 매우 유사하다./미술사학자 김석모

2023-12-18

다양한 박제와 표본, 경북대학교자연사박물관

경북대학교자연사박물관은 국내 최초로 국립대학에서 개관한 곳으로 보유한 자료에 비해 전시 공간이 넓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2021년 기준으로 국내 자연사박물관이 15개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알차게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자연사박물관은 주로 지구에 존재하는 자료 및 표본을 수집하고, 수집된 자원을 보존·복제·복원·대여 등을 통해 지구의 다양한 자원자료센터로 기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외 관련 연구를 지원함을 물론 전시와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과 인문처럼 ‘우리 곁의 지구’를 이해할 수 있게 호기심을 유도한다. 이는 지구라는 주제를 큰 틀에서 이해하고, 자연 속의 인간을 인식하게 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를 알게 하는 것이다. 특히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된 표본들은 생태환경 연구에 필수적인 연수자료다. 종의 식생활이나 번식 방법·성장 속도·수명·진화의 형태 등 연구할 분야는 무궁무진하며, 생물 산업과 연구가 중요해지는 미래산업 발전의 측면에도 국가의 중요한 경쟁력으로서 든든한 발판이 된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분야는 인문과 예술에 비해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지, 현재 국내 자연사박물관의 방문객 수는 일반 박물관에 비해 높지 않게 조사되었다.경북대학교 자연사박물관은 작은 공간에 많고 다양한 표본을 전시하고 있다. 상설 전시로 물속생물관, 공룡화석관, 지질암석관, 곤충관, 식물자원관, 체험영상실, 조류생태관, 야생동물관을 운영한다. 물속생물관에서는 연체동물과 어류·파충류·포유류의 액침표본과 고래 뼈 등과 같은 골격표본과 일부 박제표본을 볼 수 있다. 특히 은은한 불빛 아래의 액침표본은 하교가 끝난 학교 과학실을 떠올리게 해 상상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공룡화석관은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과 공룡알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재현된 발자국을 보고 나서 ‘의성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 등과 같은 실제 화석을 본다면 좀 더 명확하게 무엇이 발자국인지 알화석은 어떤 형태인지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질암석관은 화강암·퇴적암·변성암 등 주요 암석과 지질 변화의 형태를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신기한 암석은 지구상 가장 오래된 화석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샤크만에서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시아노박테리아(청녹조류)가 성장하고 죽는 과정에서 퇴적물이 줄무늬 층으로 드러난다. 이 암석은 지구 초기 생명이 탄생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며, 박테리아나 미세조류의 진화 과정까지도 연구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월·인천·경산에서 이 암석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곤충관은 국내산 나비와 다양한 곤충들 그리고 외국의 화려한 곤충들의 모식표본이 전시되어 있고, 채집 관련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식물자원관은 양치식물·겉씨식물·속씨식물 등 식물에 대한 분류 설명과 식물표본 그리고 종자를 관찰하는 현미경이 마련되어 있다. 체험영상실은 자연사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거나 체험학습 및 교육프로그램을 위한 강의를 한다. 조류생태관과 야생동물관은 다양하고 많은 박제가 있다. 철새·텃새·물새·맹금류·황새·느시·수리부엉이·큰고니 등 새와 호랑이·반달가슴곰·고라니·족제비 등 동물이나 멸종위기종의 박제표본이 전시되어 있다. 이 두 전시관은 온라인 전시 ‘더브-살다’와 ‘한반도 최고 포식자’와 연계되어 있는데, 쓰레기로 죽어가는 지구와 환경보존 그리고 박제된 동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코트나 가방이 된 동물들을 보면서 환경보호에 관해 이해하고, 먹이 사슬의 강자인 호랑이와 그 먹이 사슬 아래에 놓인 동물들을 통해 생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호랑이는 앞발 펀치가 장점이라서 들소의 목을 한 방에 꺾을 수 있으며, 38킬로미터로 달리는 우사인볼트도 순식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속력을 낼 수 있다. 호랑이와 땅의 소유권을 경쟁하던 조선시대에는 호랑이발톱으로 액운을 방지하는 노리개를 제작하여 차고 다녔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호랑이의 사자후와 같은 초저주파를 활용해서 적의 구토와 어지러움증을 유발하고, 기지를 방어하기도 했다.인간의 문명과 과학기술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코끼리·여우·고래·벌·거북이·나무 등을 사라지게도 살아가게도 할 수 있다. 500년 동안 없어지지 않는 플라스틱·동물의 올무가 되는 빨대나 비닐·동물을 죽이고 뺏은 옷과 가방 등은 지구 온난화·해수면 상승·긴 장마·가뭄·물부족·미세 플라스틱 축적 등 현재 닥친 환경문제와도 직결된다. 과학 전시는 이러한 것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다만 국내 자연사박물관이 많은 편이 아니고, 규모 또한 크지 않으며, 체험이나 메타버스를 활용한 현재 박물관과 전시관의 전시 형태나 쌍방형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프로그램이 부족한 편이라는 점이 아쉽다. 전시물에 대한 적극적인 해설과 다양한 실험과 같은 프로그램도 부족해 보였다. 미래는 융합적 소양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고, 자연사박물관은 과학융합적 사고에 도움이 될 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 적극적이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의 운영으로 과학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12-18

다시 ‘이인제’를 만들 건가

신당 얘기가 계속 나온다. 집권당에서도, 야당에서도, 분당(分黨)과 신당(新黨)이 유행병처럼 퍼진다. 넉 달도 안 남은 국회의원 선거가 실감 난다. 선거를 앞두고는 정해진 순서처럼 신당 바람이 분다. 정당이 공천할 자리가 한정돼 있는데,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은 넘쳐나기 때문이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떳다방’처럼 창당 바람이 분다.요즘 신당은 그보다 심각하다. 공천장을 받기 위한 대안 정당 정도가 아니다. 내부 갈등으로 양대 정당을 쪼개려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말했지만, 선거판이 그렇다. 득표 비율로 의석을 나누는 정당 비례투표나, 연동형 선거라면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소선거구제에서는 양대 정당이 의석 대부분을 차지한다.피부에 확 와닿는 사례가 있다. 이인제 전 경기지사가 출마한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다. 이 전 지사는 신한국당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졌다. 그러나 그는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만들어 출마했다. 김대중 후보가 40.27%를 얻어 38.74%를 얻은 이회창 후보를 39만 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때 이인제 후보는 19.20%, 492만여 표를 얻었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이인제 전 지사가 경선에 승복했다면 결과는 달라졌다. 이인제 후보는 이회창 후보 표를 가져갔다.1987년 13대 대통령선거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다들 김영삼·김대중, 양 김 씨가 단일화했으면 정권 교체했다고 믿는다. 또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후보를 0.73%(24만7천77 표) 차이로 눌렀다. 이때 심상정 정의당 후보(2.37%)나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0.83%) 표가 이재명 후보에게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국회의원 선거는 더 하다. 특히 수도권은 1천표 이내로 승부가 갈리는 곳이 많다. 쪼개나가면 당선은 안 돼도, 떨어지게는 할 수 있다.민주당에서도 쪼개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 13일 SBS에 출연해 ‘신당 창당, 진짜로 할 거냐’라고 묻자, “예”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 방향은 확실하다”라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당을 1인 체제로 굳혔다. 다음 대통령선거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지난 대선에서 경쟁한 이낙연 전 대표의 기반을 깡그리 없애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 쪽 사람은 총선에서 공천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오죽하면 이낙연 전 대표는 “당이 몰아낸다면 받아야지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그러나 이낙연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도 탈당은 주저하고 있다. 탈당하면 어떻게 될지 너무나 잘 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을 때 일부 호남 의원들이 새천년민주당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호남에서도 참패했다. 새천년민주당은 사라졌다.호남 유권자들은 영남과 다르다. 전략적 투표에 익숙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을 압도적으로 밀었다. 그러나 이듬해 19대 대통령선거 때는 문재인 후보를 더 밀어 당선시켰다. 2022년 대통령선거 때도 막판까지 안철수 후보에 미련을 가졌지만 결국 이재명 후보로 몰아줬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줄곧 영남 출신 후보를 데릴사위로 삼았다. 영남 정치인을 ‘호남 후보’로 만들었다.영남 유권자들은 직선적이다. 인구가 더 많다. 선거구도 더 많다. 그러나 아주 적은 표 차로 승부가 갈리는 수도권은 다르다. 대체로 보수정당이 열세다. 그런데 여기에 전체 의석의 절반이 걸려 있다. 자기 지역에서처럼 기분대로 하려면 정권을 넘겨야 한다. 집권하고 싶으면 호남 유권자처럼 전략투표까지는 아니라도 세력을 넓히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한다. 비주류, 중도 세력을 끌어안는 건 기본이다.이준석 전 대표도 연말에는 신당을 만들 듯이 바람을 잡고 있다. ‘싸가지없다’고 진저리치는 사람이 많다. 대체 인물을 키우지 못한 집권당의 업보다. 선거가 코앞이다. 거저먹을 순 없다. 또다시 ‘이인제’를 보지 않으려면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2-17

연말 결산에 추가해야 할 항목

유영희 작가 뉴스를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 정치인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밀 때도 많고, 폭력, 사기, 산업 재해 등 사회면 기사에도 울분이 치밀어 오를 때도 많다. 뉴스에 딸린 댓글도 유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가끔 사이다 같은 댓글을 만나기는 하지만, 그 댓글의 내용도 분노나 조롱인 경우가 많으니, 내 마음 역시 그들처럼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상태일 것이다.그러나 잠시 이성을 찾고 생각해보면, 이런 분노나 울분이 문제 해결에 도움되기는커녕 갈등만 증폭시킨다. 무엇보다 분노가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해를 입는 것이 내 신체이다. 분노에 휩싸이면 맥박이 빨라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런 신체의 반응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감정에 휩싸여 공격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많다. 증오심에 가득차서 악플 달기를 계속하거나 대놓고 물리력을 가하면서도 자신의 신체 감각이 불편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쾌감으로 느끼는 경우도 있다.요즘에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체에 해를 가하면서도 그것을 쾌락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알콜 중독을 비롯한 각종 중독은 자신의 신체가 망가지는 일인데도 감행하는 사람이 늘어간다. 게임을 하며 몸을 한껏 긴장 상태에 몰아넣고 즐겁다고 착각한다. 도파민 중독은 더 미묘해서 신체에 얼마나 해가 되는지 알아차리는 사람이 드물다.‘소통하는 신체’를 쓴 우치다 타츠루는, 우리가 자신의 신체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뇌의 지시를 따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는 감각을 차단하거나 자기 생각대로 몸에게 명령하며 신체를 침묵시킨다. 이렇게 신체적으로 둔한 사람은 사회적으로도 둔감해져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뎌지게 되고, 가해하기도 한다. 우치다는 무뎌진 신체 감각을 민감하게 하려면, 지금 나의 신체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얼마만큼 먹고 싶어 하는지, 얼마만큼 자고 싶은지, 어떤 목소리를 듣고 싶은지 몸에게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뇌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 역시 느낌은 몸과 뇌와 마음을 연결하는 항상성의 기초라고 하면서 느낌 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내 신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 신체가 보내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 것은 나의 신체에 경의를 표하는 일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몸에게 묻지 않는다. 경쟁 사회의 불안과 공포에 휘둘리다 보면 몸에게 물을 겨를이 없고, 내 편만 옳다고 고집하며 상대편 공격에 몰두해도 내 몸이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12월은 연말 결산하는 때다. 결산이라고 하면 일의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하지만, 나의 신체에 얼마나 경의를 표했는지 점검하는 것도 연말 결산 항목에 추가하면 좋겠다. 요즘 침대 옆에 화이트보드를 세워놓고 아침에 깨자마자 내 몸이 더 누워있고 싶은지 물어보거나, 느낌을 점검하여 아주 짧게 기록하고 있는데, 항상성 유지에 도움 되고 있다. 민감한 신체 감각을 갖는 것은 소모적인 대립을 완화하는 데도 유익하다. 자기 신체에 좀 더 자주 경의를 표하자.

2023-12-17

관점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현재 내 주위의 모든 물건은 생각의 산물이다. 지금의 삶의 내 모습도 생각의 결과물이다. 생각과 삶의 가치관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진다. 생각을 가공하면 관점이 되고 관점에 따라 삶의 가치관이 형성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느껴지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는 비결은 다른 관점을 갖는 것이다. 같은 일을 겪고도 어떤 사람은 해결 방법을 찾아내고 어떤 사람은 문제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바로 관점이다.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른다.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능력의 차이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았느냐?’에서 기인한다. 관점을 바꾸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필자가 P사의 말레이시아 해외법인 첫 컨설팅을 갔을 때 일이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시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여 처음 간 곳은 이슬람교 큰 사원이었다. 호텔에서 식당으로 가는 길에 사원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따라 40여 분 걸어가니 큰 사원이 나왔다. 손을 씻고 대웅전에 들어가보니 코란이 있고 벽을 보고 기도하는 모습이 새로웠고 짧은 영어로 담소를 나눴다.현지 주재원과 첫 인터뷰를 했을 때 말레이계 직원은 내성적이고 적극성이 부족하고 부지런하지 않다고 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사실과 달랐다. 말레이계 직원과 대화를 했을 때 첫마디가 공장 내 기도실에 거울과 손 씻을 수도를 설치해달라는 평범한 얘기였고 그들에게는 소중한 일이었다. 하루 5번의 기도를 하는 이슬람교의 직원들을 바라보는 주재원의 관점이 관리운영 방식에 오류가 생기고 소통의 벽을 만드는 형국이었다. 이런 관점을 바꾸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세번째 방문 때 250명의 직원들이 28개 활동팀으로 나누어 개선활동의 시작인 ‘즉실천 경진대회’를 실내체육관에서 실시했다. 비슷한 내용이라 지루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올림픽경기처럼 입장하는 것부터 다양한 모습을 꾸며 재미를 더했고 28개팀 발표자는 250명 청중을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밝고 재치가 넘쳐 흘러 모든 주재원들의 말라이계 직원을 바라보는 관점이 일순간 바뀌었다. 주재원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소통이 원활해졌고 밝은 분위기 속에 개선활동도 잘 되어 연말에 혁신활동 해외 부문 큰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그 비결은 인식의 오류를 해결하고 상대 관점에서 생각하고 사회문화, 종교, 생활습관 등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우리가 보는 많은 것 중에는 그 이면까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 우리는 오랫동안 보아왔다는 이유로 ‘당연함’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세상을 보는 것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고 똑똑한 사람이 지식의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 위험한 일이 된다. P사 말레이시아 법인처럼 종교의 특징과 사회문화를 이해하면서 하나가 되듯 고정관념을 버리고 관점을 바꾸면 새로운 미래가 보인다.

2023-12-17

경북 시·도민이 염원하는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

주낙영 경주시장 경주시 인구의 6배에 육박하는 146만 3874명이 2025년 한국에서 열릴 APEC 정상회의 경주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이 같은 숫자는 지난 9월 초부터 11월 말까지 불과 석 달도 안 되는 기간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 유치 서명운동’에 참여한 인원이다.인구 300만 명의 경쟁도시 인천이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석 달 간 111만 여명의 서명을 이끌어 내는데 그친 것과 비교해도 과히 놀랄만한 성과다.이는 APEC 정상회의 유치를 향한 경주시민, 경북도민의 간절한 염원을 넘어 전 국민적 관심이 경주를 향하고 있다는 것 뿐 아니라, APEC 위상 또한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그 이상으로 높아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APEC 회원국들은 전 세계 인구의 40%, GDP의 52%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전 세계 교역량의 절반을 점유하는 세계 최대 협력체로 자리매김했다.한국은 APEC이 출범할 당시 12개 창설 회원국으로 참가하면서 현재는 회원국들과 최대 무역 및 투자 파트너로 삼아 한반도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이처럼 국민들이 APEC 정상회의 국내 개최를 반가워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대한민국은 앞서 18년 전, 부산에서 열린 2005 APEC 정상회의를 통해 그 효과를 맛 본 적이 있다.국가의 위상을 몇 단계 높였을 뿐 만 아니라, 부산 APEC의 결과물이었던 ‘부산선언’과 ‘부산로드맵’은 전 세계인들에게 생생히 전달됐다.당시 전 세계에서 몰려든 취재진들은 부산 APEC 정상회의 모습과 함께 한국의 수준 높은 문화와 아름다운 모습을 세계 전역에 보도하면서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줬다.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부산이 유치 도전에 나섰던 ‘2030 세계박람회’ 또한 APEC 정상회의를 개최했던 도시였기에 가능했다.이처럼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한 도시는 ‘한강의 기적’과 맞먹는 상전벽해의 기회를 얻게 되면서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의 반열에 오르게 됨은 물론 수 조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까지 부수적으로 따라온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를 놓고 지자체들의 경쟁이 치열한 건 당연지사다. 물론 경주와 경쟁 관계인 인천과 제주, 거기다 두 번째 유치를 노리는 부산까지 모두 만만치 않은 상대다. 인천과 제주는 공항과 회의시설 등 이미 구축한 기반을 내세우며 일찌감치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2030 세계박람회 유치에 실패한 부산은 뒤늦게 조직을 재정비하며 유치전에 뛰어들었다.이에 발맞춰 정부는 이달 중 공모 절차를 시작해 내년 4월께 개최 도시를 결정한다는 입장인데, 앞으로 지자체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경주는 2015 세계물포럼 등 대규모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노하우와 APEC 미래 비전인 ‘포용적 성장(소규모 도시개최)’에 가장 적합한 도시임을 내세우며 유치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국가적으로 최적의 선택지가 경주임을 어필하는 차별화 전략은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도시라는 상징성을 부각하는 건이 개최지 선정의 최대 관건이다.혹자들은 유치 경쟁에 있어 정치 논리를 꺼내곤 한다.앞서 경주는 태권도공원을 유치하기 위해 도전했다가 실패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태권도의 발상지이자 역사문화도시인 경주에 오는 것이 당연했지만 정치적 논리에 밀려 유치에 실패하고 말았다.절대 이런 일이 절대 되풀이 되서는 안 된다. 경주가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 선정을 총선 이후로 미뤄 달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유치서명 운동에서 보여준 시·도민들의 뜨거운 의지와 열망을 바탕으로 경주는 경북도와 함께 APEC정상회의 유치를 위해 남은 기간 총력을 다 할 것이다.

2023-12-17

망개떡

전화기 벨이 울렸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안 받기로 하고 전화기를 가방 속으로 넣었다. 조용한 카페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칠 수 없었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불가능하다. 아버지는 나이가 드시면서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청각 장애 판정을 받으셨다. 어지간히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통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잠시 아버지와의 통화를 미뤘다.나는 막내딸이다. 아버지 나이 사십에 얻은 막내딸이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죽음을 선고 받았다. 지금까지 살아 계신 이유는 내가 아버지의 살아야 할 이유였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그런 절박한 사랑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많은 아버지가 그렇듯 표현이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자율 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내 옆엔 항상 무서움과 외로움이 나란히 했다.대학교 2학년 때다. 음악 연주회로 외국을 나갔다 며칠 만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지친 몸을 끌고 어두운 길을 터벅터벅 걸어 왔다. 우리 집으로 가려면 긴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 다리는 내게 외로움의 절정이었다. 그런데 그날 다리 위 가로등 밑에 너무나 익숙한 걸음걸이가 보였다. 내 쪽으로 뚫어져라 보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학교 앞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는 부모님들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스스로 낮아지고 작아진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나를 기다려 준 사람은 없었다. 그런 이유였는지 나를 기다려준 아버지가 기쁘기보다 오히려 어색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옆에서 같이 걸어 주니 내가 높아지고 커진 것 같아 무섭지도 않고 당당하게 걸을 수 있었다.아버지와 나는 참 어색했다.그저 집으로 가는 것이 목표인 양 열심히 걸었다. 외국인과 걷는다 한들 이렇게 부자연스러울까. 아버지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고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목에서 아버지와 나는 말없이 망개떡 한 개씩을 먹으며 나란히 걸었다. 집에 도착 할 즈음 아버지는 겨우 한 마디 하셨다. ‘차 조심 하고 다녀’ 라고. 어디선가 아카시아 향이 망개떡 냄새와 함께 코를 스쳐갔다.3년 전의 일이다. 학부모가 학원을 하는 내게 망개떡을 가져 왔다. 나뭇잎에 새 색시처럼 하얀 살을 감추고 있는 망개떡이었다. 처음 보는 그 떡이 예쁘기도 했지만 맛이 좋아 아버지께 갖다드렸다. 아버지는 떡을 드시면서 옛일을 떠올리셨다. 전시에는 항상 군인들의 식량이 문제인데 상하지 않아야 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라고 했다. 망개이파리는 부패를 방지하는 성분이 있다고 했다. 일본에도 비슷한 떡이 있지만 우리나라 망개떡과는 의미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며 추억에 젖어 행복하게 드셨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전화를 하신다.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길고 여운이 있다.“갱…. 아….”“망개뗙 먹고 싶다” 김경아 작가 항상 맨 뒤의 단어가 길다. 할 말만 하시곤 내 대답은 상관없이 전화를 뚝 끊으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식이 나 혼잔가 하며 투덜대지만 외면할 수 없다. 망개떡을 샀다. 친정으로 향했다. 저 멀리 아버지의 자전거가 보인다. 자전거 뒷좌석에는 직접 키운 상추랑 고추랑 파가 가득 실려 있다. 열심히 페달을 밟으신다. 순간, 이전에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처진 어깨와 페달을 밟는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나를 발견하고는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으셨다. 귀가 잘 안 들려 엄마랑 소통이 잘 안 된다. 늘상 소리 지르는 엄마에게 섭섭한지 그때부터 아버지는 무표정으로 살았다. 그러나 나를 보면 말 대신 활짝 웃으신다.그것은 또 다른 언어였다. 20년 전, 다리 위에서 평생에 한 번 나를 기다리셨던 아버지. 망개떡을 함께 먹으며 차 조심 하라고 하신 아버지. 그 한 마디는 딸에 대한 아버지만의 사랑이었다. 또, 망개떡이 먹고 싶다는 말은 딸이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또 다른 언어였다. 망개떡은 아버지와 나만의 소통이었고 사랑이었다. 나뭇잎에 싸여 있을 땐 망개떡의 맛도 모습도 알 수 없다. 아버지의 겉모습은 망개 이파리처럼 뻣뻣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망개떡처럼 부드럽고 사랑이 가득했다.

2023-12-17

포스텍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몇 일 전 한 언론이 포스텍에 대한 충격적인 기사를 실어서 포스텍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포스텍의 구성원이 깜짝 놀라는 사건이 발생하였다.이 기사는 입시와 대학 발전에 관심이 있는 모든 국민들을 놀라케 한 사건이었다.한국대학을 걱정하는 일반 기사는 종종 접하고 그 기사에서 특정대학이 거론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한 개의 특정대학을 집중적으로 난타하는 기사는 전무후무한 기사로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입시계의 SNS에서도 설왕설래가 되고 있다. 특정대학을 공격하는 기사 자체가 언론의 정도가 아니지만 그 기사에서 인용된 대부분의 데이터들이 오류 투성이라는게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포스텍의 교원 1인당 논문 실적에 관하여 언급하였는데, 해외 유수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 목표인 포스텍에 한국연구재단 등재지(KCI)를 기준으로 하는 ‘국내 논문 실적’을 들이대고 부진하다는 기사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포스텍, 카이스트 같은 연구중심대학은 KCI 보다는 해외 저널 논문을 훨씬 더 중요시하고 있고 이러한 기준으로 교수 1인당 논문이나 인용 수는 포스텍은 한국에서 최고의 수준을 달리고 있다.또한 타 대학 등과 논문숫자를 단순 비교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연구력을 평가할 때는 교수 1인당 실적을 비교하는 게 과학적으로 맞는 것이고 절대수를 비교 한다면 칼텍(CalTech)과 같은 세계적인 대학도 미국의 대규모 주립대보다 낮을 수 있는 것이다. 교수 1인당 논문 실적은 포스텍은 국내 타 대학, 과기대들보다 단연 앞서고 있다.기사는 포스텍의 중도탈락률에 관하여도 언급 하였는데. 중도탈락률은 의대광풍 등으로 중도탈락률이 다소 증가한 것으로 보이나, 역시 타 과학기술원과 비교할 때 최저 수치이고 엘리트 대학 평균치보다 낮다. 중도탈락률의 상승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포스텍은 물론 전국 대다수의 대학이 처한 시대적 특수상황을 견강부회 형식으로 끌어다가 기자는 보도하였다.세계 대학 평가도 현재 새로운 지표들이 문제가 되어 QS 등도 지표를 수정한다고 선언했으며 잘못된 지표에 의해 일시적으로 하강 된 것이고, THE의 올해 소규모대학평가(재학생 5천명 이하)에서는 포스텍이 칼텍에 이어 2위로 평가되었다. 기사는 ‘서카포’는 옛말이라고 폄하했지만 인용한 김박사넷 SNS에서는 서카포, 영어로는 오히려 SPK가 일반적으로 이공계 최고의 대학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세계적인 대학육성의 글로컬 대학의 이슈도 서울대, 연고대, 카이스트 등은 응모할 자격이 없어서 안한 것이지 자격만 주어진다면 당연히 했을 것이라는 게 SNS상에서 지배적인 의견이다. 포스텍이 대학 선정과 재단의 새로운 투자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려는 중요한 때에 이처럼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가 게재되었다는 건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입시관련 SNS상에서는 해당 언론이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누가 보아도 특정대학을 폄하하기 위하여 허위 데이타를 끌어쓰는 방식에 대하여 그 의도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대학 차원에서 해당 언론사와 기자에 대해서는 명백한 사실에 근거하여 강경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것으로 알고 있다.이와 함께 대학이 계획하고 있는 포스텍의 미래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외에 홍보하며, 구성원들이 더욱 대학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포스텍은 과거 세계 28위(THE 랭킹)로 단연 한국대학의 선봉장이었고, 카이스트와 홍콩과기대, 로잔공대 등을 누르고 ‘설립 50년 이하대학’ 세계 1위로 3년 연속 랭크된 대학이기에 전 세계 교육계의 관심도 당연히 함께 하고 있다.최근 추진되고 있는 의과학자 양성 의대 설립추진도 학교의 위상을 올리는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학교의 위상이 의대 설립과 함께 크게 고취될 수 있고 뒤처진 한국 의과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포스텍은 그냥 하나의 대학’이 아니다. 포스텍은 이제 30년을 넘어 반세기를 향하고 있다. 그 세월동안 그 정성과 땀을 바쳐온 교수와 구성원들에게는 포스텍은 그냥 ‘아무나의 직장’은 아닐 것이다. 그냥 하나의 대학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없었던 황량한 땅에 포스텍을 세울 때 외국에서 귀국한 교수들과 그리고 직원들에게는 또한 위험을 안고 포스텍을 선택하였던 졸업생들에게는 포스텍은 ‘아무나의 대학’은 아니었을 것이다. 먼훗날 우리는 “아무나가 아닌” 우리 한국의 과학과 경제발전, 그리고 지역과 연계한 창의를 통해 세계에 이름을 떨친 포스텍을 위해 우리가 정말 옳은 일을 하였구나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총장의 새로운 시작에 거는 기대는 정말 크다.포스코의 슬로건중에 “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는 구호가 있다. 마찬가지로, “포스텍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포스텍은 절대 흔들어서 흔들리는 대학은 아니다.37년 전 서울중심의 이땅에 지역에서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겠다는 꿈은 하나씩 실현되어 왔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 꿈의 실현은 세계로 나아가는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승리로 기억될 것이다.

2023-12-17

건강수명 연장, 나가노현에서 배운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올해 우리나라 만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950만 명에 이르고 전체인구의 18.4%를 차치하고 있다. 고령인구의 비중은 2025년 20.6%를 기록한 뒤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이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증가 속도는 전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경상북도는 노인 인구 증가 속도가 더 가파르다. 경북의 고령인구는 62만 5000명으로 전체인구의 24%를 차지해 이미 2019년부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지역별 고령인구 비중이 전남(25.17%)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특히 경북 의성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의 41% 이상을 차지해 전국 시군구 중 고령인구 비율이 가장 높다. 머지않은 2045년에는 경북 전체인구 중 43.9%가 고령인구에 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오래 사는 것은 만인의 염원이자 축복일 것이다. 하지만 수명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오히려 ‘장수 위험’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노후에 건강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면 자칫 오래 사는 게 불행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아픈 상태로 오래 사는 ‘유병장수(有病長壽)’ 시대가 도래했다. 의료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켜준 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아픈 기간이 오래 지속된다면 서민들에게 고액의 의료비와 간병비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따라서 보건의료정책이 치료 위주에서 예방 중심으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 또한 건강보건정책의 핵심을 예방과 진단, 맞춤형 건강법의 보급에 두고 있다. 보건의료 서비스가 예방 중심으로 바뀌고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으로 변해야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 등 전반적인 각종 보건 의료정책이 계획대로 순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제는 국민 스스로 예방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맞춤형 건강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생명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세다. 남자가 80.5세, 여자가 86.5세로 남녀 간 6년 차이가 난다. 그러나 건강수명은 73.1세로 10년 정도 짧다. 건강수명에서도 여자 74.7세, 남자 71.3세로 여자가 3.4년 더 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기대수명과 건강수명도 80.5세, 70.3세로 10년 차이가 난다. 노인이 건강한 진정한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간의 격차를 줄이는 정책과 대책 마련 또한 시급한 실정이다.건강수명의 대명사가 된 일본 나가노현이 대표적인 사례다. 칼슘이나 비타민 D가 풍부한 우유나 유제품, 해산물, 콩류 등을 적극적으로 섭취하도록 하는 식생활 개선과 함께 노인을 대상으로 체조와 스트레칭, 근력운동 등을 쉽게 할 수 있는 환경과 프로그램을 제공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거기에다가 지자체의 주민센터, 보건소, 복지시설, 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노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골다골증 등 건강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산책로, 둘레길, 체육시설 등에 ‘맞춤형 운동’을 집중적으로 보급했다는 점도 눈여겨볼만하다.70대는 일생에서 신체 기능이 크게 약해지는 분기점과도 같은 시기다. 뼈와 근육 소실로 키와 힘, 체중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노화 관련 연구 결과들을 모아 보면 40대 이후 키는 10년마다 약 1cm씩 줄어들다가 70대에 들어서면 그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진다. 근력은 60세 이후 연간 3% 정도 감소한다. 따라서 가벼운 낙상 사고에도 심한 부상이나 골절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장기의 기능도 약해져 고혈압이나 당뇨병, 치매 등의 만성질환이 발생하기 쉬운 나이다.노년기 신체 기능 향상 및 만성질환 예방에 가장 손쉽고 이로운 방법이 운동이다. 체조와 스트레칭 운동은 몸의 구석구석을 자극시켜 신진대사 촉진에 도움이 되고, 빠르게 하면 유산소운동의 효과, 아주 천천히 하면 유연성 및 근력 향상과 재활에도 효과가 있다.규칙적인 체조 운동으로 체력이 향상되면 근력과 움직임의 향상, 심장의 수축력 증가, 당대사능력의 향상, 지방의 과다축적 방지 등의 효과뿐 아니라 우울증과 불안증 개선 등 이차적 효과도 있다. 이에 더해 체조와 스트레칭은 나이에 맞는 속도로 천천히 진행하면 골밀도 강화는 물론이고 목이나 무릎 등 관절 부위인 근골격계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 게다가 심장에서 가장 먼 데서부터 하는 순서여서 심장이 약한 고령자들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그런데 기존 ‘국민체조’는 동작이 너무 단순하여 다소 운동 효과가 적으며 딱딱 끊어지기 때문에 다치기 쉽고, 또한 ‘새천년건강체조’는 국민체조에 비해 동작이 다소 복잡하여 혼자 동영상을 보고 외우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태권도에서 따온 옆차기 등은 고령자가 따라하기에는 난이도가 너무 높다.노년기에 자신의 건강 및 체력 수준에 맞게 동작의 난이도 및 운동 강도를 상·중·하로 구분하여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체조가 나가노현과 같이 우리 지역에서도 하루빨리 개발 보급됐으면 한다.

2023-12-17

‘네모난’ 나사못

김규종 경북대 교수 사노라면 뜻밖의 행운이 찾아들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을 가리켜 ‘망외(望外)의 소득’이라 한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굴러들어온 행운이라고나 할까!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 덕분에 나도 청춘들처럼 유튜브와 친해지고 있다. 양자역학과 천문학 같은 자연과학 분야와 영성(靈性)과 관련된 영상 그리고 인문학이 나를 끌어당긴다.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하다가 문득 귓전을 때리며 지나가는 구절이 있다. “그는 동그란 구멍과 맞지 않는 네모난 나사못 같은 사람이었다.” 19세기 말 잉글랜드와 프랑스에 만연한 천편일률적인 사회 분위기를 ‘동그란’ 구멍으로 일반화하고, 그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 찰스 스트릭랜드를 ‘네모난’ 나사못으로 표현한 것이다.주지하듯이 서머셋 모옴(1874∼1965)은 ‘인간의 굴레’와 ‘달과 6펜스’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이자 극작가다. 자전적 요소에 기댄 ‘인간의 굴레’와 달리 ‘달과 6펜스’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와 원시주의를 대표하는 폴 고갱(1848∼1903)의 삶에서 소재를 발굴했다고 알려져 있다. 40살 나이에 다섯 아이와 아내,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화가의 길에 들어선 낯선 사내 고갱.화가들이 대개 열여덟 살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너무 늦은 시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인간. 그는 무엇 때문에 세간(世間)의 비웃음과 의혹을 뒤로 한 채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에 들어섰을까! 그를 인도한 등대는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은 재능이 아니라, 그림을 하고 싶다는, 그림을 해야 한다는 내면의 강렬한 목소리였다.불과 15년의 생을 그림에 투척한 고갱의 작업은 훗날 앙리 마티스를 대표로 삼는 야수파와 파블로 피카소를 선두주자로 보는 입체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그의 인생이 흥미로운 까닭은 머나먼 미지의 남태평양에 외롭게 떠 있는 섬 타히티에서 열렬하게 타올랐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지도를 보면 타히티는 호주의 시드니와 칠레의 산티아고,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삼각형 가운데에 자리한다.서머싯 몸은 타히티의 고갱을 그저 그런 유럽인들과 확연히 다른 인간으로 그려낸다.그는 내 남 할 것 없이 누구나 ‘거기서 거기’ 가는 삶을 살아간 유럽인들과 달리 자신만의 고유한 생을 천착한 특별한 인간으로 고갱을 묘사하고 있다. 당대를 풍미한 지배적인 삶의 풍조를 비웃으며 ‘마이 웨이’를 외친 인간이 고갱이라고 몸은 주장한 것이다.소설 제목이 주는 엇박자가 낯선 독자를 위한 몸의 친절한 서한(書翰)이 있다. “땅에 떨어진 6펜스를 찾다 보면 하늘의 달을 보지 못한다.” 6펜스는 지상적(地上的)인 것, 물질적인 것, 현세적인 것, 일상적인 것, 무상한 것 그리고 지금과 여기를 의미한다. 달은 천상적(天上的)인 것, 정신적인 것, 영원한 것, 추상적인 것, 불멸하는 것과 영원무궁한 것을 뜻한다.날이면 날마다 땅만 보고 사는 인간이 아니라, 천상의 달과 천체를 보며 영원을 꿈꾼 인간 폴 고갱이 ‘네모난’ 나사못이 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리라. 오늘 밤에는 무슨 달이 뜨려는가?!

2023-12-17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시행령도 서둘러야

올 6월 국회를 통과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으로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그러나 법 시행 6개월을 앞두고 있지만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후속 법령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전기요금 차등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세부실행 방안 마련이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이철우 경북지사는 “KTX 요금이 거리에 따라 요금이 다르듯 전기도 생산지와 거리에 따라 요금체계가 달라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문제가 제기된 내용이다. 전기발전소 주변지역 주민은 각종 규제와 재산권 행사 제한 등으로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 게다가 수도권으로 가는 송전비용을 함께 부담하면서 사회적 갈등도 적지 않게 발생했다. 진작 제도가 마련돼야 했으나 늦게라도 법안이 마련됐으면 세부실행 방안을 만들어 서둘러 시행에 들어가는 게 옳다.경북은 국내서 원자력 발전소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다. 경북의 전력 자급률은 200%를 넘는다. 수도권은 전력 수요의 40% 이상이 집중돼 있으면서 전력 자급률은 미미하다. 우리나라 전력은 생산은 비수도권, 소비는 수도권이라는 양극화된 구조다. 그러면서 요금은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으니 사회적 갈등 등 많은 문제가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영국 등은 전기세 거리 병산제를 실시해 이런 모순점을 해소하고 있다.이날 정책 토론에 참석한 이 지사는 전기요금 차등제 시행을 앞당기면 값싼 전기료를 찾아 기업이 내려올 수 있어 지역소멸 문제 해결에도 도움된다고 했다. 실제로 반도체, 이차전지, 데이터센터 등 대량의 전력이 필요한 첨단산업은 전기료가 싼 지역에 공장을 지을 가능성이 높다. 국토균형발전도 자연스럽게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분산에너지 특별법이 우여곡절 끝에 내년 6월부터 시작된다. 이에 맞춰 지열별 전기요금 차등제가 바로 실시될 수 있도록 하위법령 준비에 정부가 적극 나서길 촉구한다.

2023-12-17

적자늪에 빠진 영일신항만, 活路를 찾아라

지난 2009년 8월, 20여 년간의 공사 끝에 개항한 (주)포항영일신항만(PICT)이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어 걱정이다. 신항만 측은 올들어 대형선사와 물류전문기업을 대상으로 매각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부채가 걸림돌이 돼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PICT의 최대주주는 대림건설(29%)이며, 포스코건설과 코오롱건설 등 국내 6개 건설사, 그리고 경북도와 포항시(각 10%씩 지분보유)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신항만 측 내부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매출액은 51억6천여만원이다. 국내 항만산업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지만, 부산 항만사들과 비교하면 매출액 규모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부산항만공사와 부산신항만(주)의 지난해 매출액은 각각 3천357억원, 2천904억원이다.PICT의 지난해 영업 순이익률도 ·146%로 뚝 떨어지면서, 2022년말 기준 부채(1천655억3천여만원)가 자산(1천95억6천여만원)을 훨씬 초과하고 있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물동량 확보를 위해 연간 35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신항만측은 매년 45~85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조달하기에도 급급한 상태다. 재무능력이 한계상황까지 온 것이다.PICT가 ‘돈 먹는 하마 신세’로 전락한 원인은 근본적으로 대구·경북지역 컨테이너 시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일신항만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5만8천443TEU를 기록했다. 감가상각비를 충당할 수 있는 마지노선(20만TEU)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신항만 물동량의 30%를 차지했던 쌍용 완성차의 분해 수출이 루블화 폭락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단된 탓도 크다.PICT가 재무건전성을 확보하려면 지자체와 협력해 선박 물동량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2009년 창업정신으로 돌아가 컨테이너 물동량이 비교적 많은 구미지역 기업을 비롯해 대형화주들을 대상으로 맨투맨식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해외시장의 경우 지금처럼 러시아나 중국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미주지역 원양항로 개척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2023-12-17

은둔형 외톨이 청년

우정구 논설위원 2020년대 들어 일본에서는 고령의 부모가 자녀를 부양하는 8050문제가 핫이슈가 됐다. 80대 부모가 50대 자녀를 부양한다는 뜻의 8050은 이제 일본선 9060문제로 넘어가는 시대 상황을 맞고 있다.일본말의 히키코모루는 ‘틀어 박히다’는 뜻이다. 히키코모리는 히키코모루를 명사형으로 바꾼 신조어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은둔형 외톨이’다. 자녀가 취직을 못하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고립형 청년을 두고 일본서는 이렇게 부른다.며칠전 우리 정부는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고립청년을 지원하는 정책이 일부 시행되고 있으나 정부가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다시 말하자면 우리도 은둔형 외톨이 청년의 실제 상황이 매우 심각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고립·은둔 위기의 청년이 약 5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9∼39세 연령층 인구의 5% 수준이다. 이들 청년은 취업할 생각도 않고 집에 박혀 동영상 시청 등 온라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75% 이상이 대졸 이상 학력자다. 고립 은둔하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 등 직업관련 어려움이 24.1%, 대인관계 어려움을 꼽는 사람이 23.5%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이 신체건강이 좋지 않다고 대답했고, 75%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고립·은둔형 자녀가 늘면서 관련 부모단체가 만들어지고 “나는 은둔형 외톨이 엄마입니다”라는 책도 출간됐다.만시지탄이나 정부가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지원책 마련에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일본의 전철을 밟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17

대구지검 “김태오 피고인, 대구은행 신뢰 실추”

대구지검이 지난 13일 대구은행 해외 자회사인 DGB SB의 상업은행 인가를 위해 캄보디아 현지 공무원에게 전달할 로비자금을 브로커에게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태오 DGB 금융 회장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징역 4년과 벌금 82억원의 중형을 구형했다. 벌금은 로비자금의 2배다. 범죄행위로 얻은 이익이 5억원을 초과할 때에는 그 이익의 2배 이상 5배 이하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다. 선고공판은 내년 1월 10일 열린다.김 회장 등 피고인(당시 대구은행 글로벌 본부장과 사업본부장, 캄보디아 현지 특수은행 부행장) 4명은 지난 2020년 DGB SB의 상업은행 인가 취득을 위해 캄보디아 금융당국 공무원 등에 대한 로비자금 350만 달러를 캄보디아 현지 브로커에게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DGB 특수은행은 여신업무만 취급하지만, 상업은행은 수신, 외환, 카드 등 종합금융업무가 가능하다.김 회장에 대한 검찰의 중형구형으로 대구은행은 투명성과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피고인들은 직무윤리를 망각하고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러 대구은행과 대한민국의 신뢰도를 실추시켰다. 김태오 피고인이 최종책임자로서 가장 중대한 죄책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김 회장은 “내가 불법을 저지를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변론했지만,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게 되면 DGB금융은 ‘연속적인 CEO 불명예 퇴진’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된다. 김 회장 직전 CEO였던 박인규 전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도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사법처리됐다. 현재 시중은행 전환을 서두르는 대구은행은 그룹CEO의 사법리스크로 또다시 위기를 맞게 됐다. DGB금융은 최근 고객 동의 없이 예금연계 증권계좌를 무더기 개설한 혐의로 금융감독원의 집중조사를 받았었다. 금융기관의 생명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투명성과 고객신뢰성이다. 현재 차기 CEO 임명 절차를 밟는 DGB금융이 어떻게 고객신뢰를 회복할지 주목된다.

2023-12-14

붕어빵

우정구 논설위원 동네 버스정류장 부근 모퉁이 등에 등장하는 붕어빵 노점을 보노라면 겨울이 왔음을 느끼게 된다.붕어빵은 한국인에게 겨울을 알리는 대표 간식거리다.원래 일본 도쿄 어느 가게에서 시작된 타이야끼(도미) 빵이 원조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도미는 비싸고 귀한 생선이어서 도미 모양으로 된 빵이라도 만들어 먹자고 생겨난 것이 시초가 됐다고 한다. 도미빵이 붕어빵 모양으로 변경된 것이 지금 우리 동네서 파는 붕어빵이다.193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져 벌써 90년 세월이 흘렀다.미국에서 밀가루가 많이 지원되던 6·25 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국내에서 많이 유행했다. 저렴한 가격 탓에 서민들의 점심 대용으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붕어빵 노점은 쇠퇴하는 듯했으나 IMF 외환위기 이후 또다시 우리 사회에 등장했다.붕어빵은 쇠틀에 밀가루로 만든 반죽과 단팥소를 넣어 간단히 구워먹는 풀빵이다. 가격이 워낙 저렴해 불황기에 잘 등장한다. 경기가 좋아지면 붕어빵 장사가 없어지고 경기가 나빠 실업자가 양산되면 길거리에 붕어빵 노점이 늘어난다고 소문이 났다. 그래서 일종의 불황을 알리는 지표로 보기도 했다.올겨울 사라졌던 붕어빵 가게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젊은층 중심으로 붕어빵 장사에 나서는 이가 눈에 띄게 늘었다. 노점도 하지만 작은 구멍가게의 숍인숍 형식의 점포도 늘고 있다. 대구에서 붕어빵 1개 가격은 700원이 주류다. 원재료값 상승으로 10년 전 보다 가격이 크게 올랐다. 옛 추억을 느껴 볼 붕어빵이지만 서민경제가 나빠져 불쑥 등장한 것 같아 썩 반갑지만은 않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2-14

‘공천 물갈이’ 얼마나 되어야 할까

홍석봉 대구지사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여당의 위기가 내 책임”이라며 13일 사퇴했다. 친윤석열계 핵심인 3선의 장제원 의원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여당의 공천 물갈이 물꼬가 왕창 터졌다. 정치권의 ‘물갈이’ 신호탄이 됐다. ‘물갈이’는 정당 공천의 핵심이다. 현역 의원 대신 정치 신인을 전략 공천한다. 거물급의 불출마 및 공천 탈락과 명망 있는 정치신인의 등장은 그만큼 극적이면서도 유권자들에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공천 물갈이’는 어느덧 총선 승리의 공식으로 굳어졌다.물갈이는 유권자의 요구다. 일부 직업이 된 묵은 정치인에 대한 경고다. 각 당 지도부는 총선 때마다 물갈이 수준을 고심한다. 국민이 이해할만한 정도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총선 이후 당의 주도권 및 대통령선거 경선구도 선점과도 관계가 있다.최근 4차례 총선에서 정당의 인적 쇄신 효과는 컸다. 대부분 승리로 이어졌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치러진 21대 총선을 제외한 3차례 총선에서 확인됐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현역 의원 물갈이율 33.3%였던 민주당이 32.8%의 새누리당에 간발의 차로 승리했다. 2012년 19대 총선 때는 교체율 41.7%의 새누리당이 37.1%의 민주당을 이겼다. 2008년 18대 총선 때도 현역 교체율 38.5%의 한나라당이 19.1%의 민주당을 이겼다. 현역 물갈이 폭이 승리 보증수표 역할을 했다.물갈이는 텃밭인 TK(대구·경북)가 주 대상이다.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한 TK에는 누가 공천돼도 당선된다. 당 지도부가 초선과 다선을 가리지 않고 물갈이했다. 21대 총선 때 TK의원 교체율은 64%였다. 2016년 20대 총선 때는 TK의원 물갈이 비율이 52%였다.22대 총선을 앞두고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5월 경북매일 여론조사에서 ‘다른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응답이 51.2%에 달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줄기차게 지역 의원 절반 이상 물갈이를 주장하고 있다.역대 물갈이의 가장 큰 희생양은 TK다. 최근 당 지도부에 진출, 활약하는 지역 의원들이 꽤 있다. 하지만, 지역민들이 체감하는 존재감은 떨어진다.각종 지역 현안사업을 챙기고 새로운 사업을 끌어오기엔 힘이 부친다. 중량급 인사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이다. 매번 정치 신인으로 교체하다 보니 다선 의원 부재를 실감한다.참신한 인물로 교체하는 인적 쇄신은 국민에겐 신선감을 주고 정당엔 개혁과 변화 이미지를 준다. 선거전에 그만큼 유리하다.하지만, 지역 정치권 일각에선 물갈이 대세론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 지도부의 명분만 앞세운 섣부른 물갈이는 자칫 ‘공천 학살’로 비칠 수 있다.탈당과 무소속 출마 등 후폭풍이 만만찮다. 초선 의원은 국회에서 ‘거수기’ 취급을 받을 만큼 존재감이 떨어진다. 정치력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임위원장은 아예 꿈도 못 꾼다.국민의 요구와 정치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교한 세팅 작업이 필요하다. 물갈이 해법 찾기가 지난해 보인다.

2023-12-14

포항을 양극재 생산 글로벌 기지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그저께(13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차전지 전주기 산업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강화 방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차전지산업 전분야에 걸쳐 앞으로 5년간 38조원 이상의 정책금융을 지원한다. 또 내년 중 사용후 배터리 산업 생태계 육성을 위한 지원법을 마련한다는 것과 이차전지 특허심사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등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 등이다.앞으로 정책금융을 통해 중소기업의 활로를 열어주고,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제품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한편 각종 규제 해제로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초고속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다. 2020년 461억 달러의 시장이 2030년에는 3천517억 달러 시장으로 10배 정도 성장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국내 이차전지산업의 육성과 인프라 확대는 시급한 과제다. 특히 정부는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의 이차전지 공급망 확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국내 관련산업에 대한 인프라를 보다 확대하겠다는 것이 이번 방안이 나온 배경이다.포항은 대한민국 최고의 이차전지 선도도시다.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 지정 후 전국 29개 특구 중 최고의 성과를 낸 곳이다.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 등 글로벌 이차전지 기업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명실공히 전국 최고 배터리 전진기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정부의 이번 정책에는 포항을 국내 최대 양극재 생산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이차전지 도시로 탈바꿈을 시도하는 포항으로서는 기대되는 바가 크다. 특히 재활용기업의 국가산단 진입이 허용되고, 자원순환 클러스터 조성사업으로 이차전지 생태계를 튼튼히 할 수 있다는 것은 이차전지 글로벌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에게 큰 힘이 된다.지금부터 이차전지 도시로서 최적의 여건을 갖춘 포항에 더 많은 기업이 찾아오도록 하고, 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생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포항시와 관련단체가 적극적 지원 방안을 찾아야 한다.

2023-12-14

하느님이 보우하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난 11일,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식이 있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지 두 달 만이다. 다수의석의 야당이 이번에도 또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 부결시키지 않을까, 가슴 졸인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또다시 부결되어 대법원장 자리가 공석인 상태로 가면 내년 초의 법관 인사는 물론 총선에도 상당히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데, 천만다행으로 조희대 후보자는 결격사유가 될 만한 흠결이 없어 야당도 차마 부결시키지를 못 했다.조희대 대법원장의 취임을 보면서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애국가의 한 소절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작금의 시국이 하도 혼란하고 위태롭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수립 후 70년 세월은 애국가 가사처럼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역사였다. 미국의 일본 원폭으로 극적인 해방을 맞은 것에서부터, 비록 반쪽이긴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것, 기적적인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확립으로 세계 10위 안에 드는 강대국을 이룬 것은 천지신명의 도움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삼권분립을 기본 체제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는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를 위한 마지막 보루다. 사법부가 부패하거나 편중되어 제구실을 못하면 정의와 법치는 무너지고 혼란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런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 것이 바로 지난 정권 시절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근간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사법독립을 포기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편파적이고 관례를 무시한 코드인사와 고의적인 재판지연 등으로 공정과 정의를 무시하는 등 사법부와 법관의 위상을 바닥까지 실추시켰다. 이제 새로운 대법원장의 취임으로 누적된 병폐들을 일소하고 법치 확립의 근간이 되는 사법부로 환골탈태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떠받치는 세 기둥인 입법, 사법, 행정 중 어느 하나도 건실하지 못해서는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지금의 거대야당 행태가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마치 국회 다수의석의 야당이 어디까지 행패를 부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산더미 같은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방탄을 위해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고, 결과가 뻔한 데도 묻지마 식으로 탄핵을 남발하고, 정부의 국회동의안을 온갖 구실로 부결하고, 터무니없는 구실로 정부 예산안에 비토를 놓는 등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패악질은 끝이 없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이 좌파정권의 연장을 막은 것처럼, 조희대 대법원장이 좌경화 법관들이 장악한 사법부를 바로 세울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하나 남은 것은 입법부의 정상화다. 좌파 정당이 국회의 다수를 차지해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내년 총선에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좌파 정당이 국회의석의 과반수를 넘지 않기를 빈다. 그래야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할 수 있다.

2023-12-14

정치가, 정치인, 정치꾼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계묘년을 보내며 교수신문에서는 전국 대학교수 1천315명을 대상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를 설문조사 했는데 30% 정도가 ‘견리망의(見利忘義)’를 택했다고 한다. ‘눈앞의 이익을 보고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으로 고위 공직자를 비롯한 정치인의 현 세태를 꼬집은 것이라 본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올바른 책무를 팽개치고 권리를 주장하며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생각들을 대변한 것이리라. 다음으로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을 골랐다. 자기 또는 자기편의 언행에는 나 몰라라 하면서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린다는 것, 즉 국정운영의 책임은 정부 탓, 언론 탓을 해댄다는 것이다.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우리나라 정계는 그야말로 국가의 미래, 국민의 행복 따위는 관심이 없는 듯 자기들만의 이전투구(泥田鬪狗)에 뛰어든 모양새다. 정치를 하는 사람 즉, 정치인이란 ‘국가공무원법’에서 정무직 공무원으로 정의하는 사람으로 국가원수, 장관, 국회의원 등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그들은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이익 도모를 실천하는 나라와 국민의 일꾼이다. 우리는 그들의 언행을 보며 정치가, 정치인 또 정치꾼이라 부르고 있다. 영어로 굳이 구별한다면 정치가는 Statesman, 정치인은 Politician이다. 정치가는 ‘국내 정치나 외교에 관한 언행이 공정하고 존경받는 사람’이라면, 정치인은 ‘자신 또는 자기편의 이익만을 쫓는 모사꾼 즉 정치꾼’으로 폄훼되고 있는 느낌이다.프랑스 조르주 퐁피두는 “정치인은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람이고, 정치꾼은 자신을 위해 나라를 이용하는 사람”이라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많은 정치인은 정치꾼들로 보여진다. 자기 당 우선이고 국민권익은 나중이라는 태도로 공약을 쉽게 뒤집고 정당한 근거도 없이 상대방을 비난하고 의견을 짓밟고 있다.정치가의 자질은 도덕적이며 준법의식을 갖고 미래 지향적인 개혁을 통해 국가 번영을 지향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을 좀 낮추어 정치인이라 한다면 사소한 거짓말이 탄로가 나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비도덕적, 비윤리적 행위를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우리나라는 정치인이라면 주로 국회의원을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정치에 대한 논리적 능력을 가진 사람 즉 정치외교학, 법학, 행정학, 사회과학 등을 전공한 자가 얼마나 될까? 언론인과 공무원으로 재직하다가 정계로 뛰어드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보좌관을 9명씩이나 데리고 있으니 전문성을 띤 사항은 그들에게 맡기면 되겠지만 정치인으로서 업적을 쌓아 특정 분야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정치엘리트가 많아야 국가백년지계를 설계하는 의로운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의 근대사에 정치가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오히려 귀에 익은 정치인 거의 모두를 정치꾼이라 불러도 될 듯하니, 과연 정치가로서의 꿈을 갖고 있기나 한 것일까? 우리나라는 정치꾼들의 저질스러운 행태로 안보와 경제가 걱정스러우니 앞으로 참다운 정치개혁을 통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훌륭한 정치가들을 뽑아야 할 것이다.

2023-12-14

제자 찬스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할매카페는 성업중이었다. 이화회, 매월 두 번째 화요일의 만남은 결성 이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맛있는 음식과 풍성한 공감의 대화로 화기애애했다. 한 달에 한번 그리운 이 만나 듯 기쁘게 만나지만 단 4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은 항상 아쉬웠다. 하루 말미를 얻어 가까운 경주로 가서 문화산책을 감행한 적도 있었다. 시간을 늘인 만남과 대화는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한 번 더 도발을 해봐요? 의기투합했다. 여전히 손주들을 돕는 임무가 끝나지 않은 상황인지라 이리저리 잴 것이 많았지만 도모하기로 했다. “이번엔 해외로 뛰죠.” 9월 모임에서 뜻을 모았다. 12월로 멀찌감치 날짜를 잡고 스케줄 조정을 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말을 끼워 날을 잡았다. 어디로 갈까? 너무 먼 곳은 시간이 허락잖고, 가까운 곳은 거의 다 경험한 터였다. 간 곳이라도 또 가면 돼죠. 어디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랑이 중요하다잖아요? 모두들 동의하고 내가 제안했다. 베트남의 하롱베이 크루즈여행 어때요? “제자찬스를 써 볼까요?”응웬휴비엔은 내게 가장 의미있는 제자다. 재학 내내 센스있고 영특해서 큰 기쁨과 보람을 안겨주었고 탁월한 성적으로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어능력시험 6급도 독학으로 취득했다. 졸업 후 베트남에서 꽤나 탄탄한 중견기업의 영업부장직을 수행 중인, 성공한 제자다. 비엔은 내게 베트남 사랑을 가르쳐주기도 해서 난 한 예닐곱 번 베트남을 여행하거나 방문했다. 그럼 어떠랴? 이화회 멤버와의 여행은 또 특별할 것이었다. 바로 메시지를 넣었고 단번에 환영의 콜이 왔다. 그 자리에서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필요경비를 모았다. 막힘없이 일사천리였다. 베트남의 일정은 바쁜 비엔에게 맡겼다. 옵션은 럭셔리하되 할머니들임을 감안해 너무 고단하지 않게, 센스만점 비엔은 야무진 일정표를 메시지로 보냈다. “사랑하는 이정옥 교수님 베트남 여행 일정”.제자 찬스는 성공적이었다. 공항에서부터 시작된 특별대우는 여행 내내, 하노이를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덕에 우린 정말 단 한 번도 경험 못한 호사를 누렸다. 최고의 레스토랑, 전망좋은 호텔, 하롱베이 크루즈의 반짝이는 야경, 섬에서 맡는 바람의 향기는 패키지 투어로는 절대 경험 못할 여행이었다. 비 오는 하노이의 격한 환영이라는 비엔의 센스있는 유머까지도 즐거웠다. 그저 우리는 카르페디엠. 현재를 즐겨라.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 거둘 수 있는 행복을 만끽하면 되었다. 여유로운 수다로 웃고 또 웃었다. 웃음소리는 고스란히 사진에 담았다. 골치아픈 정치 얘기도 연예인의 선정적 가십도 우리의 대화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우린 여행 내내 단 한 번도 TV를 켠 적이 없었다.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우린 또 하나의 동질성을 발견했다. 그 흔한 면세점 쇼핑을 어느 누구도 않는 거였다. 손주들 줄 과자 몇 봉지 살 뿐임에도 더없이 풍성한 여행이었다. 이렇게 품격있는 우리의 여행은 모두 나의 자랑스러운 제자 덕분이었다. 비엔 정말 고마웠어.

2023-12-13

인체 중심부와 사지말단의 온도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사람의 체온은 36.5℃ 정도이고 중심 체온은 37℃ 전후로 유지된다. 피부쪽은 34℃ 가량으로 유지되고 사지말단으로 갈수록 온도가 떨어진다. 심장에서 멀수록 피가 먼 곳을 가야 하기 때문에 사지 말단으로 갈수록 온도가 낮아진다. 정상적인 인간은 항상성을 유지하므로 사지말단의 온도도 개인차에 따라 다르겠지만 크게 낮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몸이 선천적으로 마르거나 약한 사람, 나이가 들거나 허리가 안 좋거나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사지말단의 온도가 정상인에 비해서 더 낮다. 실제 적외선 촬영을 하면 온도가 더 낮을 뿐만 아니라 심한 사람은 차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닌 시리다고 표현한다.특히 다리로 혈액순환이 안 되어 종아리나 발이 차고 시린 사람들은 겨울을 싫어한다. 평소에도 하지 쪽으로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종아리나 발이 저리거나 쥐가 자주 난다. 겨울이 되면 피부가 차가워지고 몸의 근육들이 수축해 혈액순환이 나빠져 증상이 더 심해진다. 심한 경우는 실제로 동상에 걸리는 경우도 있고 하루종일 발이 따뜻해지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경우는 시리다는 감각을 느끼는 건데 이럴 때는 온몸을 칭칭 감아도 시려워서 바람을 쐬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 밖에 나가지 않게 된다. 시리다는 감각은 난치질환이고 치료가 쉽지 않다. 오랜 시간에 걸쳐 치료를 해야 한다.차거나 시린 증상은 결론적으론 혈액순환이 안되어서다. 따뜻한 심부 쪽의 혈액의 흐름이 하지로 원활하게 오지 못해서 혹은 양이 부족해서 막혀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발쪽으로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니 차가워지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각각의 사람마다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을 해줘야 한다. 약하고 마른 사람은 좀 더 강하게 만들어 주고 살이 찌게해줘야 하고 나이가 들어 하지로 혈액순환이 안 되는 사람은 보약을 써야 하며 산후로 시리거나 찬 증상이 있는 사람은 몸의 찬 기운을 날리는 약을 써 산후풍을 해결해줘야 한다.위에서 말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그 외의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보통은 몸이 약하고 마른 사람들이 이런 증상이 많다. 집에서 해줄 수 있는 첫 번째는 삼겹살처럼 지방이 있는 고기를 많이 먹어야한다. 살이 찔수록 몸의 부피에 비해 체표면적이 적어져 열의 손실이 줄어들고 마를수록 체표면적이 늘어나 열의 손실이 늘어난다. 덩치가 커져야지 열의 손실이 줄고 지방과 근육량이 늘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러려면 살과 지방이 두루 잘 섞인 고기를 밥이라 생각하고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근력 운동을 해서 근육량을 늘려야 한다. 또 수정과 같은 계피를 달인 차를 자주 복용하면 좋다. 계피와 대추 생강을 섞어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심하지 않는 경우는 한의원에 방문해 피부 쪽에 피를 내는 자락관법을 여러 군데 해주고 태반 약침이나 그에 맞는 약침치료를 10회가량 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노인들이나 오래된 경우 혹은 심한 경우는 약처방을 3~6개월가량 길게 복용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쉬운 소리지만 몸이 찬 사람은 쉽게 해결이 안되니 개인의 노력이든 치료든 아주 오랜 시간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노력하는 자에게 보상은 찾아온다.

2023-12-13

대한(大寒)과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24번째가 대한(大寒)이다. 태양의 황경이 300도에 위치한다. 다가올 대한(大寒)은 2024년 1월 20일(음력 12월 10일)이다. 대한은 24절기의 마지막이다.대한은 한 해를 마감하고, 입춘(立春)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절기다. 사주명리에서도 입춘을 기점으로 띠가 바뀐다. 대한(大寒)의 한자 뜻을 보면 ‘큰 추위’지만, 실제로는 추위가 서서히 물러가는 시기다. 오히려 소한보다 춥지 않은 편이다. 대한에서 15일이 지나면 입춘이기 때문이다.대한은 음력으로 본다면 연말에 해당한다. 옛날 사람들은 대한을 계절이 바뀌는 때라 여겼다. 이날 밤에는 방이나 마루에 콩을 뿌려 악귀를 쫓아내고, 무사히 새해를 맞이하는 ‘해넘이’ 풍습이 있었다. 또한 ‘대한 끝에 양춘(陽春)이 있다’는 속담도 있다. 대한의 다음 절기가 입춘이므로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더라도 이를 극복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찬 메시지다.제주도에는 새해 풍습으로 신구간(新舊間)이 있다. 대한 5일 후부터 입춘 3일 전까지를 말한다. 이 기간에는 지상에 내려와 있던 신들이 하늘로 잠시 올라간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에 금기로 생각하던 일을 해도 아무런 탈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집수리, 나무 베기, 묘소 고치기, 이사 등 생활 주변을 정리했다.명리에서 음력 12월은 축월(丑月)이다. 소한과 대한이 축월에 해당된다. 주역으로는 지택림(地澤臨)괘다. 상괘 곤(坤)은 대지를, 하괘 택(澤)은 연못을 상징한다. 대지에서 연못을 내려다보는 형상이다.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모습으로, 군주가 백성을 대하는 모양이다. 소위 군림(君臨)하는 형태다. 대지와 연못의 물이 서로 의존하는 친밀한 관계를 말한다. 마치 끝없이 백성을 보호하고 포용하는 모습이다.괘 위에는 음효(陰爻) 4개가 있고, 아래로는 양효(陽爻) 2개가 올라오는 형상을 하고 있다. 임(臨)은 크게 형통하니 바르게 하면 이롭다고 해석한다. 아직도 강한 음(陰)이 남아있어 양(陽)이 정지한 것 같지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실력을 쌓는 시기임을 말하고 있다.명리에서 축월(丑月)에 태어난 사람은 대개 몸의 기운이 찬 경우가 많다고 한다. 차다는 것은 응축하는 성향이 있어 억울한 감정이나 우울한 기분을 배출할 수 없어 벙어리 냉가슴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전진하는 태도가 가장 큰 장점이다. 조금만 더 참으면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사주에 축(丑)이 있으면 이와 같은 성향이 있어 끈기와 지구력이 좋은 편이다. 늘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지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으며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많다.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권5 ‘시칙(時則)’에 보면 12월 말이 되면 태양은 12차(次)를 돌고, 달이 기(紀)를 다 돌며, 별자리가 하늘을 일주하면 1년의 운행을 마친다고 한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황도 부근을 따라 12개의 성수(星宿)를 정해 놓고 이들 각각을 차(次)라고 했다. 기(紀)는 달과 태양이 만나는 시점을 뜻했다.그러므로 이 시기에 농민들을 조용히 지내게 하면서 부역 같은 데 동원하는 일이 없게 한다. 천자는 공경대부들과 국가의 제도나 법을 정비하고, 시령(時令)을 논의하면서 새해를 기다린다. 그 당시 법은 세상의 규범이자, 통치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기준이다. 법을 세우는 것은 법을 어기는 자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고, 상을 주는 것은 마땅히 상을 줄 자를 위한 것이었다.법이 정해진 이후에는 규정에 합당한 자는 상을 주고, 규정을 어기는 자는 벌을 준다. 이때 존귀하다고 벌을 가볍게 해서는 아니 되며, 비천한 자라고 해서 형벌을 무겁게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공적인 길이 열리고, 사적인 길은 막히게 된다.그래서 추운 12월에 가을의 정령(政令)을 시행하면 때에 맞지 않게 이슬이 내리고, 갑각류 동물에게도 재앙이 미친다고 생각한다. 자연계의 변화는 인간사회에 나타날 수 있고, 인간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이 자연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다. 계절에 맞는 정령을 시행하는 것이 그 당시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였음을 엿볼 수 있다.그러므로 통치자는 곤궁한 사람을 구제하고 부족한 사람을 채워주면 이름이 나고, 이로움을 일으키고, 해로움을 제거한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를 징벌하고, 포악한 자를 막으면 공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주로 국가의 재난이나 그해 농사의 풍년이나 흉년에 대비한 것이다.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이 그 시대에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2023-12-13

무대

정미영 수필가 푸른 하늘 아래 단풍비가 내리는 느긋한 오후다. 바람 따라 흩날리는 붉은빛의 나뭇잎이 내 가슴에 날아와 침전된 감정선 위에 앉는다. 기분 전환 겸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어느덧 형산강변이다.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안무를 연습하고 있다. 근처 중고등학교에서는 12월에 축제가 열리는데, 반별로 대부분 학생들이 참여한다고 들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땀 흘리며 열중하는 모습이 어여쁘다. 무대 위에서 즐길 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보는 동안, 추억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사노라면, 크든 작든 가슴속에 지녀 온 이야기를 문득 풀어놓고 싶은 날이 있다. 내 말을 경청하는 이가 없어도 독백을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자기 할 일을 끝낸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바로 오늘일까?내가 대학을 다닐 때, 우리 학교에는 유명한 밴드가 있었다. 스콜피온스(Scorpions)의 록 발라드 곡인 ‘Holiday’나 ‘Still Loving You’ 그리고 ‘Wind Of Change’를 보컬이 부를 때면 음색이나 창법이 원곡자와 비슷해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스틸하트(Steelheart)의 ‘She’s Gone’을 열창하면 그의 성량과 고음에 거듭 열광했다. 리드 싱어의 노래는 축제 때 더 빛이 났다.관객이 무대라는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는 이들의 움직임에 끌림과 설렘을 갖지 못한다면, 공연하는 이들은 얼마나 공허할 것인가. 그런 면에서 관객들은 보컬의 섬세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들으며 감동과 전율을 느꼈으므로 밴드는 뿌듯했으리라.밴드의 열정과 관객의 환호가 최고조 접점에 다다르면 축제도 공연도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1990년대를 살아내야 했던 수많은 20대 청춘, 마냥 즐거운 시절은 아니었다. 학업이나 취업, 사랑 등 저마다 가슴 한 켠에 아픈 상처를 간직한 채 하루의 고된 생활을 이어나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막막하고 우울한 일이 겹쳤던 친구일수록 목청껏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며 응어리진 감정을 발산했다.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Poetics)’에서 비극을 정의할 때 처음으로 카타르시스 즉 정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대학 밴드의 음악은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절규했던 내 주변의 젊은이들에게 보컬과 교감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행위를 통해 감정을 표출하게 했고, 개별적으로 치유를 받는 귀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길고도 열렬한 여운을 남기며 밴드의 공연은 끝났다. 취향에 따라 누군가는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운동장에 즐비했던 포장마차 중 주점에 들렀고, 나와 친구들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학과 선후배가 운영하는 ‘일일찻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곳에서 교양 과목 교수님을 뵈었다. 나를 보고 빙그레 웃으시며 “무대의 화려한 환상에 속으면 안 돼”라고 말씀하셨다.이유인즉, 밴드 여성 보컬이 같은 과 친구였다. 축제가 열리기 얼마 전에 밴드 동아리실에 놀러오라고 해서 간 적이 있었다. 노래 연습하는 것을 보고 왔는데 리드 싱어가 나에게 호감을 느꼈단다.친구는 나에게 자기 체면을 봐서 다가오는 축제 때 그에게 꽃다발을 주면 좋겠다고 성화였다. 친구의 간절함에 못 이겨 장미꽃 한 송이를 공연 때 건넸다. 그 장면을 교수님께서 보신 것이었다.그 시절 무대에 서는 일은 용기 있는 자만이 오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몇몇 여학생들의 장래 꿈이 직업인이 아니라 신사임당처럼 ‘현모양처’였던 시절이었으니, 타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쭈뼛거리며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요즘 학생들은 어린이집에서부터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일이 빈번하다. 타고난 기질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무대에 올라 당당하게 공연을 펼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지금 형산강을 배경으로 춤추고 있는 저들이 앞으로 각자 자신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말고, 주인공으로 멋지게 살아가기를 응원해 본다.

2023-12-13

이제는 문화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60년대에 상업창부(商業創富)라 하였다. 장사로 얼른 돈을 벌어야 했다. 80년대가 되자 과기창신(科技創新)이라 외쳤다.과학기술로 새로운 걸 만들자고 했다. 21세기로 들어오면서 문화창의(文化創意)의 기치를 걸었다. 이제는 문화로 뜻을 만든다는 것이다. 중국 이야기다. 중국이 공산사회주의롤 기조로 하면서도 시대마다 유연성을 유지하면서 국가를 경영해 오는 기조를 그렇게 바꾸어왔다. 지난 세기를 건너오면서 상업과 과학기술에 운명을 걸었고 이제는 문화로 승부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실제로 중국정부는 문화산업을 핵심산업으로 지정하고 국민총생산(GDP)대비 5퍼센트 정도를 문화로 채우고 있다. 그런 가운데,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문화확장정책의 한 가닥으로 눈에 뜨이고, 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연결하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사업에도 문화가 적지않은 부분을 차지한다.21세기는 문화가 이끄는 시대임을 선포한 것이며, 여러 방면에서 풍성한 문화정책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정치와 경제, 외교와 국방이 나라를 운용하는 기본수단이지만, 문화의 텃밭이 넉넉해야 새로운 시대를 자신있게 열어갈 것임을 알아챈 것이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문화의 중요성에 눈을 돌리는 세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혼란했던 시절에 고국으로 돌아온 김구 주석이 이렇게 적었다.‘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그토록 어지러웠을 국가현실의 한 가운데에서 어떻게 문화를 떠올렸을까. 어떻게 문화를 ‘힘’이라 적었을까. 그는 사람이 푯대로 삼아야 할 여러 지향점들 가운데 문화가 가장 높은 경지임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의 것이라 내세울 문화가 우리에게 있는가. 문화를 힘으로 만들어 내는 일에 얼마가 생각을 기울이는가. 정치와 경제로만 사람의 삶이 행복하지 않으며, 국방과 외교에도 한계가 있다. 독특하고 분명한 문화적 품격을 길러야 한다. 우리 스스로 이를 살피고 발굴하며 다듬어야 한다.지역은 어떠한가. 지역에 고유한 문화원형(文化原形)을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활용하여 지역만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는 모두 옛날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고루하다. 문화는 지극히 자연발생적이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 언제든 새롭게 피어나고 저절로 변화해 간다. 오늘 우리의 모습에서 남들과 다른 독특한 문화자산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문화다. 문화로 승부하고 상상력으로 겨루어야 한다. 이전과 다르고 남들과 다른 나라가 되고 지역이 되어, 문화가 힘이 되는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어려웠을 때 문화를 떠올렸던 까닭을 새겨야 한다.

2023-12-13

‘개딸’과 작명

홍석봉 대구지사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이 ‘개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민주당원’ 또는 ‘민주당 지지자’로 바꿔달라고 언론 등에 주문했다. “상대 진영이 우리를 프레임해 선동했기 때문”이라는 게 개명 이유다. 나쁜 이미지가 덧칠됐다는 것이다. 개딸은 ‘개혁의 딸’의 줄임말로 당초 작명 의도는 괜찮았다. 당 대표까지 ‘우리 개딸, 개이모, 개삼촌’이라며 애정을 표시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치권과 언론 등에 폭력성이 부각된 이미지가 각인됐다. 이미 이재명 대표 강성지지자 이미지로 굳어진 명칭을 이제 와서 본인들이 원치 않기 때문에 바꾼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질지는 알 수 없다.우리 사회 곳곳에서 줄임말이 성행한다. ‘심쿵(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을 만큼 놀라거나 설렌다)’‘맛점(맛있는 점심)’‘극혐(아주 싫어하고 혐오하다)’ 등은 요즘 10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줄임말이다. 이젠 성인들까지 사용하는 등 생활 속 깊숙이 침투했다. ‘개딸’도 이런 유형의 신종 줄임말이다. 줄임말의 부작용이 적잖다.얼마 전 대구도시철도 1호선 연장구간의 신설 역사 이름이 ‘부호경일대호산대’역과 ‘하양대구가톨릭대’역으로 결정돼 논란을 빚었다. 지역과 대학 이름을 함께 넣으면 대학도시의 이미지 개선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이름 붙였다. 이후 “역 이름 떠올리다가 지하철 놓치겠다”, “역 이름이 암호같다”는 등 비난이 쏟아졌다. 이름이 너무 길어 부르기 힘들다는 지적이었다.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이름은 사람이나 물체를 상징하고 대표한다. 이름은 부르기 쉬워야 한다. 이제 작명 때 줄임말까지 감안해야 할 상황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2-13

TK의원들의 ‘先黨後私 실천’ 절실하다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의원을 비롯해 국민의힘 주류인사들의 희생결단이 시작되면서, TK(대구·경북)지역 의원들의 거취표명에 관심이 쏠린다. 혁신위의 영남권 중진 헌신요구에 대해 PK(부산·경남·울산)지역에선 연쇄적으로 응답하고 있지만, TK지역은 침묵모드로 일관하고 있어서다.여당 안팎에서 거론되는 인적쇄신의 주 타깃은 영남권, 그 중에서도 TK지역 의원들이다. TK지역 3선 이상은 주호영(대구 수성갑), 윤재옥(대구 달서을), 김상훈(대구 서) 의원 등 3명이다. 그동안 혁신위 활동에 거부감을 표명해왔던 친윤계 초·재선 의원들도 불출마 요구에 자유로울 수 없다.여권내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TK현역에 대한 물갈이 폭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지역은 역대 총선 때마다 현역 의원 교체율이 높았다. 2020년 21대 총선 때는 교체율이 64%였다. 앞서 2016년 총선 때도 대구는 75%, 경북은 46.2%에 달했다. 국민의힘 지지세가 압도적인 이 지역은 누가 나와도 당선되기 때문에 초선·다선을 가리지 않고 물갈이 대상이 됐다.올 들어 경북매일신문을 비롯한 대구경북지역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TK지역 현역의원들의 물갈이론에 대해 대부분 절반이상이 찬성하는 경향을 보였다.윤석열 정부의 운명을 좌우하는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수도권 열세를 극복하려면 ‘영남당 이미지’를 탈피하는 게 최대현안이다. 수도권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영남정치세력의 권력독점’은 보수정당을 비토할 만한 이유가 될 수 있다.총선이 현 판세대로 진행되면 야권은 수도권을 석권할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민주당이 지금처럼 과반의석을 넘으면 입법·사법에 이어, 행정부까지 손아귀에 넣는다.특검과 해임, 탄핵이 이어질 것이고, 현 정부의 3부 기능은 거의 마비될 것이다. 그 책임은 현재의 여권 주류와 TK지역에 향하게 돼 있다. 이 지역 현역의원들의 선당후사(先黨後私) 정신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2023-12-13

세계적 불황 속 善戰한 대구경북 수출기업

이차전지와 자동차부품 기업이 주도하면서 대구와 경북은 올해 역대급 수출실적을 올렸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국내 수출이 1년가량 마이너스 성장해 왔음에도 지역의 기업이 역대급 실적을 올린 것은 지역산업의 역동성이 상대적으로 좋아졌다는 반증으로 보여 뿌듯한 일이다.12일 열린 제60회 무역의 날 대구경북 행사는 축제의 장이었다. 대구와 경북에서 134개 기업이 수출의 탑 수상을 하는 영광을 안은 데다 실적도 역대급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는 작년보다 수상 기업이 17곳(41%)이 늘었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0억 달러가 넘는 수출 실적을 올려 수출증가율 전국 2위를 기록했다.지역의 수출 업종이 이차전지와 자동차부품 등으로 옮겨진 것도 반길 일이다. 과거 섬유 등 제조업 중심에서 신산업 분야로 산업이 재편되는 과정을 보여준 결과로 향후 전망도 밝게 한다.세계 최초로 니켈 함양이 90%인 이차전지 소재를 양산하는 대구의 엘엔에프는 40억불 수출탑을 수상하며 대구경북 수출 1위 기업에 올랐다. 경북서는 이차전지 기업인 포항의 에코프로 그룹 계열사의 도약이 눈에 띄었다. 에코프로이엠은 경북 최고인 20억불 탑을 받았고,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5억불 탑을 받았다. 또 포스코 자회사인 포스코퓨처엠은 10억불 탑을 수상했다.자동차 램프시장의 절대 강자인 대구의 에스엘은 2020년 8억불 탑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는 10억불 탑을 받았다. 경북의 아진산업은 2억불 탑을 받았다.우리나라 수출은 10월 들어 13개월만에 처음 반등세를 보였다. 코로나19 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악재로 수출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올 한해는 우리경제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내년도 세계경제 사정도 아직은 제한적일 거란 전망이 많다. 그런 가운데 역대급 수출실적을 올릴 지역기업의 노력에 대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내년에도 이들 기업들이 더 좋은 성적을 올리도록 지역의 수출환경을 잘 만들어가야 한다. 수출기업에 대한 대구시와 경북도의 파격적 지원이 필요하다.

2023-12-13

온몸의 사랑

성현아 문학평론가가 경향신문 11월 22일자에 기고한 글 ‘무해함에 햇살 비추기’를 감명 깊게 읽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비폭력적이고 잔잔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현상을 짚으면서 “무해함을 요구하는 독자 및 시청자에 맞춰 고통당하는 이들의 비명을 말끔히 도려낸 고요한 진공 공간만을 전시하는 작품들이 쏟아진다는 점”을 우려하는 내용이다.성 평론가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의 소극적인 무해함보다 나의 유해함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개선해 나가는 적극적인 무해함”의 예로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언급했다. 정신병동 환자들을 편견 없이 사랑으로 보살피던 간호사 ‘다은’이 우울증에 걸려 정신병동에 입원한 후 “나는 여기 있는 사람들하곤 다르다”고 호소하며 그 자신도 알지 못했던 자기 내부의 편견과 마주하는 장면에다 “편견이란 우리 몸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어둠 속에서만 살아가기 때문에 스스로 밝힌 소박한 내면의 촛불로는 결코 찾아낼 수 없다. 외부의 무엇과 부딪쳐 깨어질 때 비로소 번뜩이며 제 모습을 드러낸다”는 아름다운 문장을 겹쳤다.“무해하기만 한 서사보다는 무해함의 허상에서 벗어나 다종다양한 해로움을 조명하되, 그것에 잠식되지 않고 덜 해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독려하는 서사가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는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는 김초엽의 단편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떠올렸다. 가까운 미래에 ‘인간배아디자인’이 상용화돼 부모들은 태어날 자녀의 신체, 성격 등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된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이 기술을 활용해 성격의 결함이나 신체적 장애가 없이 탁월한 두뇌능력과 예술적 감성과 피지컬을 갖추고 태어난 이들은 ‘개조인’, 돈 없는 부모에게서 자연적으로 태어난 이들은 ‘비개조인’이 된다. 개조인들은 지구 밖에 그들만의 완전무결한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비개조인들은 가난과 질병과 전쟁으로 얼룩진 디스토피아 지구에 남는다.무해한 유토피아에서 성년이 된 개조인들은 일종의 성년식으로 조상들의 행성인 지구에 순례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 그런데 지구에 견학을 간 개조인들 중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있고, 주인공인 데이지는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추적해나간다. 그리고 알게 된다. 평화롭기만 한 유토피아엔 오히려 사랑이 없다는 것을, 지구에 남기로 결정한 순례자들은 사랑 없는 유토피아보다 사랑이 있는 디스토피아를 택했다는 사실을 말이다.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사랑의 조건으로 ‘비대칭 관계’를 제시한다. 비대칭 관계란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희생과 책임을 말하지만 상호 보완의 의미에 더 가깝다. 결핍이 없으면 채움도 없다. 나의 부족함을 당신이, 당신의 해로움을 내가 서로 감당하면서 끌어안는 것이다. 완벽하기만 한 사람들 사이에선 연민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 없다. 연민과 사랑은 타인의 연약함을 발견하는 순간에 불꽃이 튄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구정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새하얀 옷을 입고 현실이라는 땅에서 발을 뗀 채 마치 천사처럼 환하고 가볍고 평화롭기만 한 사랑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나의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8년째 누워 계신다. 이젠 눈이 보이지 않고 귀는 원래 들리지 않았으며 걸을 수도 없어 침상과 한 몸으로 지낸다.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침대 위에 스마트폰을 던져두고 조명을 끈다. 그러면 방금 던진 스마트폰을 찾지 못해 어둠을 더듬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이런 세계에 계속 갇혀 있구나’ 생각에 울컥한다. 감성이 풍부한 밤에 베개를 눈물로 적시며 할머니를 생각한다. 꼬옥 안아드려야지. 그런데 면회를 가면 이상한 국면이 펼쳐진다.생각 속에서 작고 연약하고 불쌍하던 할머니가 만져지는 눈앞의 현실에서는 작고 연약하고 불쌍하고 냄새가 나고 끈적거리는 할머니인 것이다. 나는 할머니 몸에서 나는 악취와 분비물에 얼굴을 찡그리며 안는 것도 놓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다. 그 냄새와 타액은 내게 유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냄새와 끈적거림을 참으면서 기어이, 끝까지 할머니를 끌어안는 것.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멀찌감치 떨어져서만 애틋하고 순정한 관념의 사랑이 아닌, 가까이 가 만지고 껴안고 견뎌대는 온몸의 사랑.

2023-12-12

나는 완벽하지 않아

최근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내가 완벽주의자임을 깨달았다. 스스로 완벽한 상태가 존재하다고 믿으며, 달성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기준을 세워 그것을 실패할 때마다 번번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나는 검사지를 보며 이정도 스트레스는 현대인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수준이 아니냐며 반문했지만 선생님은 그 정도가 다르며, 노력이 실패할 때마다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며 우울감으로 빠져 들기 쉽다며 짚어 주셨다.사실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적 공허함은 기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실은 내 스스로 만든 완벽한 기준치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에서 온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정말 내가 완벽주의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많은 사람들이 내게 칭찬을 할 때마다 그들이 하는 말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음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칭찬을 하는 이유는 그저 예의상 건네거나 또는 분위기상 듣기 좋은 말을 골라 건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들이 말하는 칭찬의 정도까지 내 스스로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아직 부족한 게 참 많다고 늘 스스로 여겨왔으며 어떠한 성과를 보여도 남들 하는 만큼 했을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최근에서야 점점 깨닫고 있는 건, 완벽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은 받아들이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많은 의사들이 권하는 방법은 바로 완벽주의를 인정부터 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일의 효율을 높이고 좋은 성과를 이끌어 오는 긍정적인 성격도 있기에 건강한 완벽주의의 장점을 바라보고 오히려 이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그리곤 건강이나 외모, 성공이나 행복에 관한 기준을 적어보고 지금 조금씩 이룰 수 있는 목표만을 놔두고 과감히 지워버려야 한다고 한다. 실현 가능한 목표만 지향하여 성공 확률을 높여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계속해서 심어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어도 되고 실패해도 된다.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선 실수는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므로 새로운 시도 앞에서 실패는 반드시 따른다.두려움의 뿌리는 과연 내 깊은 곳 어디까지 침범했을까 생각하다보면 아득해진다. 나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완벽을 추구하며 노력했을 뿐인데 친구관계도 사회생활도 늘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늘 실패에 가닿을 때마다 나의 노력과 운이 부족했을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실패의 이유는 나 자신에게서 더는 찾을 수 없다.요즘 일을 할 때에도 나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었다. 그래서인지 늘 목표를 내 기준치보다 훨씬 더 높게 잡곤 했다. 높게 잡은 목표를 어떻게든 혼자서 잘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애썼으나 일의 경험이 적은 내가 혼자 잘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이 잘 안 풀리는 시점부턴 주위 타인들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럽던지.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자책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듯싶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하지만 이번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내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임을 자각하게 되었고, 실은 내가 지금 당장 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 직시를 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 사실을 알자마자 왜 그토록 일을 할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는지, 왜 해결할 수 없는 일의 굴레에 갇혀 있었던 것만 같은지, 집에 돌아가자마자 온 기력이 빠져서 잠에 들기 바빴는지 이 모든 게 차차 이해되기 시작했다.나는 완벽할 수 없다. 특히 혼자서는 더욱 완벽해질 수 없다. 스스로 지금 당장 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만을 세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때론 실패할 수 있고 실패에 가까워지더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뻗으면 된다. 좋은 사람이라면 분명 도와줄 것이고 나 또한 그 도움을 받아 일을 잘 해결하면 된다. 서로 간의 도움을 통해 우리 사이의 신뢰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일과 사람이지만 점차 조금씩 나와 타인을 믿으며 나아가다보면 점차 더 나은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완벽한 상태는 존재 하지 않지만 스스로 만족할만한 온전한 상태는 존재할 것이다.

2023-12-12

‘장제원 희생’이 여권혁신의 계기되길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그저께(1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 지도부·중진·친윤(친윤석열) 의원들의 총선 험지출마 또는 불출마를 핵심으로 하는 6개 혁신안을 전달하고 활동을 종료했다. 당초 성탄절까지 활동시한으로 정했지만, 이날 조기 종료한 것은 여당 기득권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국민의힘 혁신위의 출발은 화려했다. 김기현 대표는 “혁신위에 전권을 주겠다”고 공언했고, 이를 실제 믿은 인요한 위원장은 “와이프와 아이 빼고 다 바꾸겠다”며 강도 높은 혁신을 예고했다.친윤핵심인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3선)이 어제 국회에서 총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지만, 인요한 혁신위의 성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40여 일간의 혁신위 활동은 여당 메인스트림의 구조화된 카르텔과 헌신정신 결여, 위기에 대한 무감각 등을 확인한 채 막을 내리게 됐다.당내 비주류 의원을 중심으로 ‘쇄신대상 1순위는 지도부’라며 공개저격하고 있음에도, 김기현 대표는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혁신위를 마치 ‘지나가는 소나기’로 인식하며 기득권을 붙잡는 모습을 TV중계처럼 지켜보는 유권자 마음은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현 지도부체제가 공천권을 행사할 경우 내년 총선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시즌2’로 갈게 뻔하다.최근 국민의힘이 자체 분석한 총선 판세분석 결과가 이를 여실히 대변하고 있다. 서울 49석 가운데 우세 지역은 강남과 서초, 송파 일부 등 6곳 정도라고 하니 충격적이다. 2020년 4·15총선 당시 서울 8석보다 당세(黨勢)가 더 쪼그라들었다. 당 기획조정국이 그동안 언론에서 발표한 각 정당 지지율과 지역별 지지율 등을 기준으로 판세를 분석한 데이터라고 한다.민주당은 지금 내년 총선에서 200석 확보를 거론할 정도로 자신만만하다.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드는 일을 주도한 이해찬 상임고문은 “지난번처럼 180석을 먹느냐가 관건”이라고 했고, 정동영 상임고문도 “수도권을 석권하면 200석 못 하리라는 법도 없다”고 했다.이들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로 판세분석을 하는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도 4년 전(민주당 180석 획득)과 비슷할 것”이라고 진단했다.민주당은 지금 내부에서조차 “도덕성은 평균이하고 당내 민주주의는 실종됐다”는 자조적인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정치흐름에 밝은 당 상임고문들이 총선 석권을 자신할 정도로 민심을 얻고 있으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여당에 대한 실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혁신위 조기종료 과정에서도 보듯, 여권은 강서구청장 참패 이후에도 달라진 게 별로 없다.윤석열 대통령도 현 지도부 체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니, ‘여권 카르텔’은 갈수록 강화될 것 같다. 국민의힘 혁신위가 내놓은 과제는 민심을 반영한 것이다.여당이 이 과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않고는 현 판세를 바꿀 동력을 찾을 수 없다. 장제원 의원 불출마 선언이 여권의 고강도 혁신에 드라이브를 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2023-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