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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살아 있는 말을 작품으로… 가난한 미술 ‘아르테 포베라’

현대미술에서 1960년대는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전환이 진행되던 시기이다. 이미 20세기 초부터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술 형식들이 등장해 미술의 내연과 외연을 넓혀주었다. 어쩌면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이 보여준 탈경계는 반세기전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현대미술에서 이탈리아는 지금까지도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수천 년의 미술을 이탈리아가 이끌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미술에서 이탈리아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1909년 마리네티가 일으킨 ‘미래파(Futurismo)’가 그나마 꿈틀거렸다 평가할 수 있지만, 그마저 세계대전의 발발로 금세 꺼지고 말았다. 1960년대 후반 중북부 이탈리아 주요 도시들에서 포스트모던을 대표할 만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미술사는 이 움직임을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라고 불렀다.아르테 포베라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은 이탈리아 출신의 미술평론가이자 큐레이터였던 제르마노 첼란트(Germano Celant)이다. 첼란트는 미술가들이 사용한 값싼 재료에서 하나의 미술 운동으로 묶을만한 공통분모를 찾았다. 아르테 포베라를 대표하는 미술가로는 야니스 쿠넬리스,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주세페 페노네, 마리오 메르츠 조반니 안셀모 등응 꼽을 수 있는데, 이들 모두 전통적으로 사용된 미술 재료 대신 주변에서 발견되는 흔하고 평범한 재료로 작품을 창작했다.아르테 포베라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쿠넬리스 1969년작 ‘무제(열두 필의 말)’이다. 쿠넬리스는 로마에 새롭게 문을 연 아티코 갤러리 지하 창고에 살아 있는 열두 마리 말을 전시했다. 쿠넬리스의 작품은 미술계 안팎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어떤 평론가는 쿠넬리스의 작품에 대해 “동물의 물리적 현존은 저속한 냄새와 소리가 갤러리로 침투했음을 의미했다. 미술가의 개입이 없었음이 명백하고 순전히 모방일 뿐인 이 작품은 창조로서의 미술이 사멸했음을 알리는 듯했다.”살아 있는 말을 전시했다는 파격적인 발상이 평론가의 심기를 아주 불편하게 한 모양이다. 하지만 반문한다. 이미 쿠넬리스 보다 반세기 앞서 뒤샹은 남성 소변기를 작품으로 제시한 적 있고, 미국에서는 앤디 워홀이 슈퍼마켓 진열대에 놓인 깡통을 작품으로 선보이지 않았는가. 미술가의 개입 없이도 미술작품이 탄생될 수 있는 시대였고, 엄격하게 보자면 미술가의 개입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쿠넬리스가 전시를 위해 살아 있는 말을 작품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쿠넬리스는 앵무새나 선인장과 같은 살아 있는 생명체를 작품으로 전시했다.쿠넬리스는 근본적으로 스스로의 미학적 정체성을 회화에서 찾았다. 그가 선택한 말들은 일종의 ‘살아 있는 그림(Tableau Vivant)’으로 볼 수 있다. 다른 관점에서 쿠넬리스의 작품은 20세기 미술을 혁신한 뒤샹의 업적을 계승해 살아 있는 말을 새로운 개념에서의 ‘레디-메이드’로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소변기를 그것의 원래적 기능이나 목적에서 떼어내 미술이라는 새로운 문맥에 배치해 작품이 탄생될 수 있었다면 살아 있는 말을 작품으로 전시한다고 해서 전혀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쿠넬리스는 작업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전통 미술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생소한 소재나 재료를 사용한다. 석탄이나 철근처럼 산업화와 공업화를 연상하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양모나 커피가루 등 문화와 현대사회의 경제구조를 암시하는 재료로 작품을 창작했다. 쿠넬리스의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작품이 제작되고 설치되는 지역이나 국가의 문화적 역사적 장소적 맥락이다.특히 쿠넬리스는 작품을 통해 소비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획일화된 가치에서 벗어나 일상의 빈곤한 물건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삶의 본질을 좇았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2-09-05

그 길밖엔 없어 <Ⅸ>

그날의 술자리를 기억해낸 우현이 노마에게 물었다.-그래서 그날 내가 한 말을 믿고 지금 이런 일을 벌이는 거야? 나한테 미리 말도 없이?-꼭 그런 건 아닌데. 네가 한 말이 생각나기는 했지. 내 주위에 이 방면으로 아는 사람이 너 말고 없잖아. 그리고 그 늙은이한테 너도 악감정이 있지 않냐. 내가 뒷이야기 하나 더 해줄까?우현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노마가 낯설었다. 이 녀석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무슨 이야긴데?-안나 임신했다. 그 늙은이의 아이란다.-임신? 그게 가능해?-임신했다니까. 가능하냐고 물을 문제가 아니지. 이미 현실인데.우현은 늙은이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안나는 왜 피임을 하지 않은 거지? 설마 임신이 되겠어? 그렇게 생각한 건가? 우현은 안나의 생각이 궁금했다. 노마에게 다시 물었다.-그러면 아이 아빠를 죽이는 거잖아. 안나는 어떡하라고? 아이는? 안나도 알아?-당연히 안나는 모르지. 알면 날 가만 두겠냐? 아이는 일단 낳아야지. 그다음 문제는 다음에 생각하고. 늙은이의 자식인데 뭐가 걱정이야. 친자 확인하면 다 나올 건데. 걱정 안 해도 돼. 늙은이 재산이 좀 되니까 물려받는 것도 제법 될 거야.우현은 노마의 대답을 들은 뒤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창밖을 보기도 했고, 자고 있는 늙은이를 쳐다보기도 했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 뒤 노마에게 물었다.-내가 얻는 건 뭔데? 복수?-넌 얻는 게 많지. 인공 장기, 복수, 그리고 운 좋으면 안나. 장례 치르고 나면 안나에게 연락해 봐,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겠어? 아이는 안나와 네가 같이 키워도 되고 아니면 그 집안에 맡겨버려도 되고.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야. 안나 하고 상의해 봐야지. 작업을 할 차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빨리 가야 해. 좀 밟는다.노마가 속도를 높이자 우현의 몸이 뒤로 쏠렸다.-이거 너 혼자 계획한 것 아니지?우현이 다시 물었다.-너, 그리고 내가 하는 거지.노마가 대답했다.-그런 대답 말고.우현이 노마를 다그쳤다.-더 이상 묻지 마라. 넌 나까지만 알고 있는 게 좋은 거지.직원이 다시 돌아왔다.-특별한 일은 없었고?우현이 물었다.-네. 특별한 말 없었습니다. 지난번 물건들도 모두 시술했는데 작동이 잘 되고 있답니다. 참. 그것도 이식했답니다, 폐. 이제 사무실로 출발하면 되는 거지요. 사장님.신경 써 주어서 고맙긴 해. 그래도 어쩌겠나. 내 직업이 형사인 것을. 우현 씨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할 게. 얼굴 한 번 봤으면 하는데. 가능할 것 같으면 연락 줘.허 형사에게서 문자가 왔다. 우현이 허 형사에게 문자를 보낸 지 일주일 만이었다. 나는 물건을 회수하고 넘긴 것뿐이야. 이 업계에서 일을 하려면 지켜야할 비밀이기도 하지. 나는 아는 게 없는 거지. 실제로도 그렇고. 그러니 해줄 말도 없는 것이고. 그런데 왜 이리 불편하지? 목구멍에 뭔가 걸린 것 같단 말이야. 기분이 더러워. 우현은 몇 차례 헛기침을 했고 손으로 가슴팍을 두드렸다. 문득 궁금해졌다. 허 형사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우현이 허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저 우현입니다.-고마워. 그래. 만나주기로 한 거야?-네엡. 이렇게 간곡히 청하시는데 제가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대신 저를 만났다는 사실만 비밀로 해 주시면. 불법적인 일을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형사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나면 이 업계에서 끝입니다.-알았어. 걱정 마.우현과 허 형사가 마주 앉았다. 반 팔 면티와 청바지를 입은 허 형사가 갈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하아. 천하의 허 형사님 패션이. 쥑입니다요. 사모님 코디입니까?우현이 웃으며 말했다.-우리 마누라, 죽었어. 이 년 전에.허 형사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아니 어쩌다가. 가만 있자. 그러면 이식받은 지 삼 년 만에 돌아가신 거네요. 아이고. 이를 어째. 죄송합니다. 제가 그것도 모르고 실수를 했습니다. 아이고. 미인이셨는데. 아직 젊으신데. 아이고.허 형사의 눈치를 보며 우현이 호들갑을 떨었다.-괜찮아. 내가 말을 안 해 준 거니까. 좀 조용히 말해.우현의 호들갑이 신경에 쓰이는 듯 허 형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이식받은 콩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하긴 그랬으면 제게 먼저 연락을 주셨겠지만.-다른 문제로. 알겠지만 당뇨가 어디 한두 군데 이상이 생기는 게 아니잖아.허 형사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 당겼다가 내쉬었다. 회색 연기가 테이블을 벗어나 옆 테이블로 넘어갔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커플이 인상을 썼다. 우현이 허 형사 대신 고개를 숙였다.-그렇기는 하지요. 그런데 저는 왜 몰랐을까요? 인공 장기 이식받으신 분이 사망하면 저 같은 업자에게 연락이 오는데. 아마 다른 업자에게 연락이 먼저 갔나 봅니다. 이 상황에서 드릴 말씀이 아니기는 하지만, 장기 값은 받으셨지요?-장기 값. 받기는 받았지. 받은 날 저녁에 다 써버려서 그렇지. 룸에서 술 먹고 이차 가고. 그렇게 다 써버렸어. /김강 소설가

2022-09-05

어른들 이기심에 상처받는 동심 없어야

인구 50만 규모의 포항이 때아닌 ‘학군 이슈’로 연일 시끄럽다. 최근 수년간 제철중학교와 효자초등학교 내에서 발생하고 있던 위장전입과 과대학급을 두고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곪고 곪아 언젠가 터져버릴 것으로 예상됐던 문제가 이번 효자초 예비 졸업생들의 제철중 배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면서 지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누구보다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할 지역 국회의원은 그 와중에도 자신의 표심을 겨냥해 특정 지역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교육환경의 변화로 학생들이 피해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특정 지역의 편에 서버렸다. 양측을 중재하기는커녕 갈등에 기름을 들이붓는 꼴이었다.해당 발언은 효자와 지곡 분열의 커다란 기폭제가 되었고, 양측은 연일 ‘맞불 집회’를 강행하고 있다. 지속되는 비난과 비방에 양측 모두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가는 상황이다.이같은 과열 양상에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포항교육지원청과 포항시는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결국, 모든 책임은 학생 수요 예측 실패로 이같은 혼란을 일으킨 교육 당국의 무능력함과 무관심, 행정력 부재로 돌아가고 있다.대한민국의 학부모라면 누구나 자신의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하기를 소망한다. 다만, 학창시설에 어느 학교에 가던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소위 ‘일진’으로 불리는 아이, 예체능을 잘하는 아이 등 여러 아이가 존재한다. 여기서 살펴볼 점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는 어딜 가든 열심히 하고, 놀 아이는 어디서든 논다는 것이다.‘학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의 마음가짐이다. 또한 아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 한들 인성이 바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이미 제철중은 일개 중학교 학군의 의미를 넘어서 지역사회의 공간적·구조적 위계질서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하지만 위장전입과 학구위반 등 불법을 저질러서 해당 학교에 진학한다고 한들 과연 그 아이는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까.이미 제철중 내에서도 재학생들 사이에서 출신지를 나누고 그에 따라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지곡단지 내에는 ‘효자초 OUT’이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게재됐고, 이를 본 학생들은 가슴에 큰 상처를 입었다.어른들의 싸움에 애꿎은 아이들만 피해를 입게 됐다.부모가 무엇이든 앞장서서 다해 주는 아이는 무조건 부모에게 의지하려고 하고, 세상을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어려서부터 꼼수나 편법을 배운 아이는 커서도 남을 배려하려는 마음보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려 한다.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무한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일그러진 자식 사랑이 부모와 자식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오히려 고운 자식일수록 매 한대를 더 때린다는 각오로 대해야 한다. 부모들의 이기적인 욕심에 동심을 멍들게 하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한다./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2022-09-04

이재명, 떳떳하면 검찰에 가라

김진국 고문 “전쟁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보좌관이 보낸 문자를 노출했다. 민주당은 ‘정치 보복’, ‘야당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죄 없는 김대중(DJ)을 잡아갔던 전두환이나 죄 없는 이재명을 잡아가겠다는 윤석열이나 뭐가 다른가”라고 말했다.‘이재명의 민주당’이 되었으니 충성 경쟁을 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DJ에 비유하는 건 DJ를 욕보이는 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80년 서울의 봄 이후 정치권의 유력인사를 모두 묶었다. 군사재판에서, 없는 죄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해 집권당을 쑥대밭으로 만든 법원이다. 이재명 대표의 혐의는 일반 국민이 보기에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은데다 제대로 해명을 안 하고 있다.이재명 대표는 “국민이 맡긴 권력은 민생을 챙기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수사하지 말라는 말이라면 지나치다. 민생을 챙긴다고 수사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이 대표에 대해서는 이미 큰 의혹이 드러나 있다. 이 대표를 위해서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정치로 풀어야 할 건 사법부에 미루고, 법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정치 쟁점화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정치를 더 위기로 몰아넣는다.민주당은 ‘왜 6일이냐’라고 항의한다. 추석 밥상 이야깃거리로 만든다는 것이다. 선거법 위반 사건 공소시효가 9일이라 더 미룰 수 없다는 검찰의 해명이 일리가 있다. 대통령 선거 때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뒤에는 지방선거가 있었던 데다 이 대표도 보궐선거 후보로 나섰다. 바로 이어 민주당 대표 경선이 있었다. 그러니 검찰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보인다. 제1야당 대표이니 서면 조사를 해도 되지 않느냐는 불만도 있다. 검찰은 서면 조사를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접촉할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이재명 대표는 “먼지털이 하듯이 털다가 안 되니까 엉뚱한 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았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소환한 건 선거법 위반 혐의 세 가지다. 수사 중인 다른 혐의들은 아직 꺼내지 않았다. 그러니 ‘꼬투리’로 끝난 것 같지는 않다. 또 말꼬투리라기엔 범죄를 전면 부인하는 중요한 말이다. 정직은 정치인을 판단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하는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하나는 백현동 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를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 상향해준 특혜 의혹과 관련이 있다. 이 대표는 “국토부가 (용도 변경을 안 해주면) 직무 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남시 주거환경과는 2014년 12월 국토부 질의를 거쳐 ‘단순 협조 요청’이라고 당시 이재명 성남 시장에게 보고했다. 용도 변경 신청을 계속 반려하다, 이 대표의 측근이 개발사에 참여한 뒤 이듬해 5월 요청보다 2단계 더 높여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했다.두 번째는 이 대표가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자인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9박 11일 해외 출장 때 수행한 사진이 나왔다. 세 번째는 대장동 초과이익 환수 조항 삭제와 관련한 이 대표의 지난해 국정감사 발언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직원의 환수 조항 추가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가 이틀 뒤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들은 바 없다”고 뒤집었다.정치 보복을 위해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면 안 된다. 하지만 그게 무서워 정치인의 범죄를 무조건 덮을 수는 없다. 가뜩이나 불신받는 정치권을 비리 덩어리로 방치하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특히 선거법은 엄격하다. 사소한 거짓말로 당선 무효가 된 판례가 있다.이게 끝이 아니다. 대장동·백현동 본안과 변호사비 대납, 법인카드 불법 사용 의혹 등이 기다리고 있다. “내복은 쌍방울을 잘 입고 있다”라는 말장난으로는 국민의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 당당하게 진실을 소명해야 국민도 안심한다. 무리한 정치 탄압이라면 그때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9-04

세상을 바꾸는 ‘긍정의 힘’

신현국 문경시장 문경시는 민선8기 슬로건을 ‘긍정의 힘! yes 문경’으로 확정했다.‘긍정의 힘! yes 문경’ 슬로건에는 1%의 가능성에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희망의 마인드와 시 발전을 향한 강한 의지, 완성될 문경 건설의 자신감을 함축해 담았다.‘Yes!’, ‘긍정의 힘!’은 공직 사회와 우리 시 전체를 역동적인 분위기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그 힘은 얼마나 큰지, 취임 1달 만에 체감할 수 있었다.지난 한 달간 우리 시는 4건의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1천억 원이라는 큰 금액이 투입되고, 39만평(129만㎡) 규모의 골프장을 조성하는 버드힐 문경CC 조성사업, 항공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경비행장 훈련장 유치를 위한 항공테마파크 조성사업에 지난 7월 8일과 12일에 각각 업무협약을 맺었다.또한, 7월 25일에는 영화종합촬영소 설치와 영상산업 기반 구축을 위해 경상북도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 영화촬영업체인 봄내영화촬영소와 업무협약을 맺었다.3일 뒤인 28일에는 패러글라이딩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연이어 맺었다. 문경 단산활공장은 한때 국내외 패러글라이딩 선수와 관계자들이 1번지로 손꼽을 만큼 풍광과 활공조건이 우수했고 관련 대회도 자주 열렸던 곳이다. 활공 1번지의 옛 명성을 되찾고, 각종 대회를 유치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힘을 쏟고자 한다.각종 체육대회에서도 문경의 ‘긍정의 힘’은 어김없이 발휘됐다. 역대 경북도민체육대회에서 우리 시는 인구, 선수단 구성 등이 모두 열악하여 만년 꼴찌를 면치 못했었다. 하지만 지난 제60회 경북도민체육대회에서는 꼴찌를 탈피해 9등을 했고, 8등과는 1점차, 7등과도 3점차에 불과한 성적을 거뒀다. 게다가 1천500m 달리기가 주 종목인 한 육상 선수는 남자 단축마라톤에 출전해 국내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를 꺾고 1위를 달성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제59회 대통령기 전국 장사씨름대회에서도 우리 문경팀은 창단 3년 만에 첫 단체전 우승을 기록했고, 개인전 또한, 3명의 선수가 1위를 기록하는 큰 성과를 이뤘다. 놀라운 결과였다.행동은 우리의 생각 속에서 시작된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어렵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부정적인 생각에 나 자신이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문경을 살릴 길은 개발과 유치에 있다.소극적인 행정, 부정적인 행정으로는 민간의 대규모 투자 사업을 유치하기 어렵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행정만이 대규모 투자로 연결되고, 지역 발전을 이끌 수 있다.인간의 역사 역시 1%의 가능성에 확신을 가지고 도전했던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 왔다.천재 과학자라 불리는 에디슨은 백열전등을 만드는 데 무려 1천200번이나 실패하였고, 친구가 포기하라고 했을 때에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실험해 1천201번째에 성공했다. 아인슈타인 다음의 천재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21살 때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고, 2년 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병과 싸워 이겨 냈고, 읽고, 말하고, 쓰는 것이 다 어려운 상태에서도 이론 물리학의 중요한 업적들을 출판했다.행정에서도 모든 일에 긍정의 마인드를 갖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 업무에 정성을 다하고, 현장을 찾아 답이 나올 때 까지 고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작은 것 하나, 민원인 한 명, 한 명을 소홀히 대하지 말아야 한다.‘문경 발전’이라는 의지를 시민들에게 인정받아 11년 만에 다시 문경시를 이끌게 됐다. 그동안 문경 곳곳을 누비며 시민과 소통하고 문경 발전과 화합에 대해 고민한 그 노력에 시민들이 지지를 보내주신 것이다. 이젠 그 지지에 응답할 차례이다.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문경에 도움이 되는 일은 무조건 도전해 문경에 긍정의 새 바람, 새로운 도약을 일으킬 것이다.

2022-09-04

금붕어는 살아있을까

진한 커피로 식곤증을 몰아낸다. “쾅” 대포 소리같이 우렁차지만 짧은, 몇백 년 된 나무가 한순간에 쓰러질 때나 나는 소리였다. 덜덜덜 책상이 마구 흔들렸다.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지진인가, “움직이지 마” 아이들에게 소리 질렀다.나는 있는 힘을 다해 책상을 붙들었다. 꽉 잡은 손에도 아랑곳없이 책상은 책을 흩뜨리고 연필을 굴렸다. 두려움에 확장된 아이들의 눈동자가 나에게 쏠렸다. 눈빛으로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도 한 아이의 눈동자가 파르르 요동치자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울음을 터트리려 한다. 어디선가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어항 유리에 금이 가고 있었다. 그 순간, 금붕어 한 마리가 어항 밖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고는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물살에 휩쓸린 다른 금붕어는 바닥으로 쏟아졌다. 바닥에는 금붕어들이 파닥거리며 뛰어올랐다. 흔들림이 진정되었다.휴대전화, 지갑, 자동차 열쇠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겁에 질린 아이들을 다독이며 계단을 내려가는 길은 한층 한 층이 십층을 오르내리는 만큼이나 힘이 들었다. 휴대전화가 요란스럽게 들썩거렸다. 놀란 학부모들이다. 아이의 안위를 묻고는 당장 데리러 오겠단다. 내 전화기에도 불이 났다. 아들과 딸이 엄마의 안부를 챙기느라 전화기가 뜨겁다.나는 자동차를 공터에 주차하고 이곳저곳을 서성거렸다. 문득, 파닥거리며 물을 찾고 있을 금붕어가 생각났다. 하루에도 수십 번 어항 속을 들여다보았다. 먹이를 줄 때나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을 걷어 낼 때도 살폈다. 커피잔을 들고서도 어항 앞을 서성거렸고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어항을 보았다. 금붕어가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다가가 어항을 건드려 보기도 했다. 그러면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모습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수시로 안부를 물으며 눈길을 보낸 금붕어였다.몇 시간이 지나고 집에 들어가 먼저 금붕어를 살폈다. 바닥에 널브러진 금붕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길쭉한 타원형의 물방울 안에 쓰러져 있다. 다행히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이 바닥에 있었다. 어항이 깨지면서 쏟아진 물이었다. 한 마리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기운을 차렸는지 꼬리를 들었다가 다시 떨어뜨렸다. 급한 대로 투명한 볼에 수돗물을 받았다. 축 늘어진 금붕어를 그릇에 담고 물을 넣었다. 그런데 꼼짝하지 않는다. 급하게 하느라 물의 온도에 신경 쓰지 못했다. 낯선 물의 온도에 놀라고 몇 시간째 방치된 몸이 회복하기에는 힘이 드는가 보다. 그런데도 한 가닥 희망을 품고 금붕어가 살기 바랐다. 투명한 볼에 두었던 금붕어가 꼬물꼬물 헤엄을 치고 있었다. 위독하던 자식이 살아난 양 기뻤다.수족관으로 전화했다. 좀 더 넓은, 환경이 좋은 새집을 구해주고 싶었다. 모래, 자갈, 수초 등 새 친구를 들인 수족관은 반들거리며 빛이 났다. 이렇게 살아난 금붕어가 새로 마련한 수족관에서 여유롭게 헤엄친다. 금붕어도 살아났고 일상도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후유증은 남았다.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도 안절부절못한 일이 자주 생겼다. 윗집에서 청소기 돌리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 몸이 경직되고, 윗집 아이들이 거실을 뛰어다녀도 집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했다. 휴대전화의 진동 소리에도 지진이 일어난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아이들이 잊지 않고 물었다. 물에서 벗어난 금붕어는 어떻게 숨을 쉬었는지, 금붕어가 놀랄 때는 어떤 반응을 하는지, 금붕어도 우리처럼 소리에 놀랐는지, 아파하는지. 아이들도 금붕어가 살아남았다는 소식에 환호를 질렀다. 생명은 무엇보다 귀하다. 나, 아이들, 금붕어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만약 금붕어가 죽었다면 또 다른 후유증이 되어 한참 나를 괴롭힐 것이다. ‘금붕어야. 살아주어서 고맙다’

2022-09-04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김규종 경북대 교수 교과서에 실린 안톤 쉬나크(A. Schnack·1892∼1961)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학창 시절에 여러 번 읽었다.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 그리운 이의 인적은 끊어져 거의 일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이렇게 시작하는 미문(美文)의 결정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깊이 물든 선홍색 단풍잎처럼 마음이 내려앉아 있을 때, 나는 쉬나크의 글을 읽었다. 더러는 깊은 한숨을 동반하고, 더러는 이국적인 풍광과 습속으로 인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랬던 박박머리 소년은 청년을 지나 중년의 기나긴 터널을 거쳐 초로의 입구에 있다. 쉬나크가 절절하게 써 내려간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 내겐 없다.장 자크 루소는 ‘에밀’(1762)에서, 레프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1869)에서 인간을 괴롭히는 두 가지를 지적한 바 있다. 그 하나는 양심의 가책이고, 그 둘은 육체적 고통 혹은 질병이다. 톨스토이가 프랑스어 원문으로 ‘에밀’을 읽고 난 기억을 더듬어 소설에서 루소와 같은 생각을 피력했다고 나는 짐작한다. 육체적 고통과 질병은 표현만 다를 뿐 같은 성질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둘을 제외한 모든 고통은 상상의 결과라고 말한다.우리가 깊은 괴로움에 시달리는 이유를 돌이켜보면 그들의 사유가 타당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이트 이후 정형화된 이른바 ‘트라우마 이론’은 고통의 원인을 모두 과거에서 유추하는 원인론 혹은 인과론이다. 과거에 깊은 슬픔이나 마음의 상처 또는 육체적 고통을 겪은 사람은 예외 없이 지금도 괴롭고 죽기 전까지도 괴로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이런 생각을 하면서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에서 쉬나크의 글을 떠올린다. 그러다 홀연히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생각이 미치는 것이다. 나이 먹은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젊은 날의 치기 어린 광기나 어리석음일까, 비난의 칼날로 상대를 괴롭힌 일이었을까, 아니면 명절에도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은 불효였을까?! 아니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놓고 없던 일처럼 치부해버린 후안무치였을까?!영원히 사라져버린,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나락으로 떠나간 시간과 관계와 사건을 돌이킴은 어리석은 노릇이다. 하지만 그런 반추와 성찰에 담긴 어둑한 자신과 나누는 대화에는 분명 치유 이상의 힘이 있다. 오래전부터 나를 아프게 했던, 하여 기억의 씨줄과 날줄에 깊이 새겨진 고통의 현장을 눈앞에 끄집어내서 용감하게 대면하는 일이야말로 다가올 날들을 예비하는 현명한 자세 아닐까, 한다. 나를 아프게 하는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것은 아마도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진실하지 못했던 자세 아니었을까. 지금이라도 그들과 대면한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차분한 9월 초순의 아침나절이 고요히 지나간다.

2022-09-04

초강력 태풍 힌남노, 빈틈없는 대비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역대급 태풍이 한반도쪽으로 북상하면서 전국이 비상이다. 역대급으로 불리는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최악의 태풍으로 꼽히던 2003년 매미와 1959년 사라호 태풍을 능가하는 위력이라 한다. 철저한 대비가 없으면 큰 피해가 우려된다.기상청은 “태풍 힌남노가 세력을 키워 현재 한반도쪽으로 접근 중에 있다”고 밝히고 “내일 새벽 2시쯤 서귀포 동쪽 해상을 지나 이날 아침 9시쯤 부산경남 해안에 상륙해 오후 동해안을 거쳐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고 600mm의 호우와 초속 60m에 달하는 폭풍이 동반된다고 했다. 태풍은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위력이 강한데 힌남노의 중심기압은 950ha로 사라와 매미보다 낮다. 기상청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피해가 날 수 있다”며 철저한 대비를 당부했다. 2003년 9월의 태풍 매미는 비바람을 몰고 한반도에 상륙해 영남지역을 초토화한 바 있다. 119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실종됐으며, 4조2천억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이재민 수가 6만명을 넘었다.태풍의 진로를 바꾸는 것은 사람이 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의 노력으로 피해는 줄일 수 있다. 역대급 태풍이라지만 당국과 주민의 철저한 사전 대비와 노력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이번 초강력 태풍 영향권에 가장 근접한 남부지역과 동해안지역은 대체로 취약지가 많은 곳이라 큰 피해가 우려된다. 특히 경북 울진, 영덕 등 동해안지역은 매번 태풍 피해를 경험한 지역이어서 침수와 범람 등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다시 없도록 하여야 한다.침수가 예상되는 곳에 양수기 등을 미리 배치하고 사전 점검을 통해 농작물과 과수 및 농업시설물에 대한 안전조치도 서둘러야 한다. 많은 비가 예상되면서 하천 범람, 산사태 등으로 인한 피해도 예상된다. 특히 인명피해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배수로 정비나 간판과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고정하는 작업도 필수다. 재난 대비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준비하는 것이 좋다. 당국과 주민의 철저한 대비가 피해를 줄이는 최선책이다.

2022-09-04

팬덤소비

우정구 논설위원 팬덤(fandom)은 특정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영어의 광신자를 뜻하는 퍼내틱(fanatic)과 영지(領地)를 뜻하는 덤(dom)의 합성어다.팬덤문화는 TV가 널리 보급되면서 연예계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와 경제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연예인에 대한 열렬팬 경지를 넘어 극성 지지층 형태로 바뀌어 논란도 잦다.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형적인 팬덤 정치인이다. 그의 팬덤 추종자가 벌인 의회 난입사건은 팬덤정치의 진면목이다. 국내서도 노사모에 이어 개딸(개혁의 딸) 등으로 불리는 팬덤정치가 유행하고 있다. 지난 20대 대선 이후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극성 지지층이 대표적인 팬덤이다.팬덤 정치는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민심보다는 극성 지지자의 입장과 이득만 반영하는 정치란 점에서 비판도 거세다.BTS의 세계적 인기도 팬덤현상의 하나다. 오프라인 활동 하나없이 유튜브에 뮤직 비디오만 올렸을 뿐인데 메이저 차트를 모두 점령해 버린 것은 팬덤소비의 위력 덕분이다.명품 매장에서나 볼 수 있던 줄서기를 최근에는 동네 편의점서도 구경할 수 있었다. 포켓몬빵을 구입하려는 소비자의 극성 구매행위를 두고 소비에서도 팬덤이 등장했다는 평가다. 소비자의 선호가 가격이나 효용성보다는 즐거움이나 재미를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물건 자체의 가치보다 재미가 가미돼야 소비자가 지갑을 연다는 분석이다.개성이 존중되는 MZ세대 중심으로 소비시장의 흐름이 급변하고 있다고 한다. 세대 격차를 실감할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9-04

경북도 ‘시스템 반도체’ 핵심기지 꿈꾼다

한국 근대화의 산실인 경북도가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으로 우리 경제의 미래동력을 만들어 내겠다고 선언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1일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 반도체 산업 전략에 발맞춘 경북 반도체 산업 발전 방안을 발표했다. 2031년까지 10년간 반도체 산업의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 편중에서 벗어나 전문가 2만명을 양성해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분야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내용이다.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경우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14%로 세계 2위이지만,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3.0%에 불과하다. 출판업을 예로 들면 책을 기획하거나 집필하지는 못하고 인쇄만 대신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파운드리 시장도 1위 TSMC와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고, 후발주자인 인텔의 도전도 받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시스템 반도체 기술이 선진국의 서열을 가리는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경북도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시스템 반도체 인력을 대거 양성해 미래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우선 지난달 4일 시행된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 따라 정부로부터 구미반도체 특화단지 지정을 받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해당 법은 정부가 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지정하면 그에 대한 인·허가 및 기반시설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나노 반도체 융합연구원’을 설립해 차세대 모빌리티 반도체 소자, 설계 등의 기술을 개발할 방침이다. 시스템 반도체 전문가 2만명 양성을 위해서는 특성화고, 대학, 대학원 등에 산업 현장 인력 수요에 대응한 재직자 맞춤교육과 계약학과 개설 등을 준비하기로 했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SK 최태원 회장을 만나 경북도반도체클러스터 조성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으며, 상당부분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도지사의 ‘경북 반도체산업 초격차전략’ 구상이 현실화돼 경북도가 시스템 반도체 생산의 국제적 허브가 되길 기대한다.

2022-09-04

누이이며 어머니인 지구

강길수 수필가 8월 마지막 주일. 주보(週報)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가 요약, 게재되어 있다.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개된 주일미사 때부터 미사 전 주보를 읽는 버릇이 생겼다. 빨리 와야 성당 내에 앉을 수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유행 전에는, 주보를 공지 사항 위주로 대강 보고 넘어갔다. 신문도 관심 가는 기사 이외에는 제목으로 대충 흐름만 파악하곤 했다.담화를 읽는다. 둘째 단락 첫 문장이 가슴에 와 박힌다. “우리의 ‘누이’이며 ‘어머니’인 지구가 울부짖습니다.”라는 구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 받으소서’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가톨릭신문을 통해 전에 본 적이 있으나, 그 내용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다. 환경 분야에서 일해 왔고, 자칭 생태론자로 믿기에 내용은 비슷하리라 여겼었다.한데, 주보의 담화문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자신의 안일과 타성을 질책하고, 깨부수는 마음이 뒤따른다. 지구가 바로 우리의 ‘누이’라는 말 때문이다. 전에 ‘가이아 이론’이나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의 편지’ 등을 읽으면서, 대지와 지구가 ‘우리들의 어머니’란 비유는 보았으나 ‘누이’란 은유는 오늘 처음 만난 것이다.웹사이트를 검색해보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7년 전 발표한 회칙 이름 ‘찬미 받으소서’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에서 따온 것이었다. 자연과 소통하며 동물들과 대화했다는 성 프란치스코는, 9세기나 앞선 생태주의 선각자였으리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할 인간의 삶을 몸소 실천하여, 본으로 살아낸 성자 프란치스코…. 그가 새 떼들과 말하며 함께 사는 옛 영화의 한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누이’와 ‘어머니’란 두 말에서 어떤 어감의 차이를 느끼는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차이는 ‘누이’가 ‘어머니’보다 더 곱고, 아련하며, 가련하다. 어머니는 약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이는 어머니가 되기 위해, 커가는 여린 나무이지 않은가. 지금 우리 지구는, ‘가련한 누이의 처지’일 것이다. 때문에 ‘누이’란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기후변화로, 북극의 빙하와 영구동토가 녹는 현장을 답사한 방송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영구동토 해동은, 지구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라 했다. 해동에 따라 동토층에 묻힌 메탄 등 가스가 분출되고, 모르는 미생물들이 유출된다. 이런 현상들이 기후와 생태계에 미칠 영향은, 미증유의 재난이 될 것이란 결론이었다.슬프게도 우리의 누이 지구는, 중병이 들었다. 제 몸에서 난 게 아니라, 인간에 의해 큰 병에 걸렸다. 개발을 앞세워 무분별한 환경훼손을 일삼고, 온실가스 과량 배출 등으로, 인간은 지구 누이에게 코로나19보다 더한 악성 바이러스가 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교황이 말씀하는 ‘지구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면서’ ‘생태적 회개’를 하고, 그 개선 내용을 실천해야 한다.‘우리 누이 지구’가, 하루빨리 중병에서 일어나 해맑게 웃을 수 있도록….

2022-09-04

이해하기를 멈추지 마

유영희 작가 올해 들어 건강관리를 잘 해오고 있는데 며칠 전 대수롭지 않은 운동 한 가지를 하다가 허리 근육에 이상이 와서 3일 동안 허리를 펼 수 없었다. 한의원에 가서 사연을 말하니 원장이 침을 놓아주며 이런 말을 한다. 원장의 친척 중에 무용하다가 운동 치료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령을 하나 들어도 근육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다 느낀다고 하더라. 이렇게 느끼다 보면 어떤 동작이 내 근육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고 무리하지 않게 된다. 아무리 좋은 운동이라도 내 몸에 안 맞으면 독이 된다면서 남이 좋다는 운동 따라하지 말고 자기에게 맞는 운동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또, 운동량은 많은데 근육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반동을 이용해서 하거나 동작 하나하나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그 말을 듣다가 소설의 한 장면이 단박에 떠올랐다. 테드 창의 ‘이해’라는 단편인데, 주인공 리언이 호르몬 K 요법을 받은 후 지능이 너무 높아져서 기억력도 좋아지고 어떤 것을 보아도 ‘패턴’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다. 소설에서는 패턴을 보는 능력 때문에 리언이 파국을 맞기는 하지만, 작가가 패턴을 보는 힘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주인공이 자기 몸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지면서 근육의 전기장으로 근육 내부의 긴장까지 감지하기에 이르고 자기 몸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는 대목이다. 이런 소설의 가정이 아주 허무맹랑해 보이지는 않더라는 이야기를 원장에게 하면서, 운동 중 허리에 통증이 왔는데도 멈추지 않은 나의 무지에 실소가 나왔다. 더불어 이런 무지는 관찰력 부족에서 온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관찰 대상 중에서도 특히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관찰은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을 위한 나침반이다. ‘그냥 하지 말라’의 저자, 기업인 송길영의 강연 영상을 보니, 자신을 잘 팔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유니크함,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그냥 하지 말고 숙고하면서 하라고 강조한다. 서두르지 말고 단계별 퀄리티를 충분히 수행하면 내 몸에 근육이 쌓이고, 이렇게 숙고를 통해 구축된 유니크함에는 반드시 공명하는 사람들이 다가온다고 청중을 설득한다.이제 거의 국민가수로 등극한 임영웅의 노래는 감성 장인으로 불릴 만큼 부드러우면서도 울림이 있다. 어느 블로그를 보니, 임영웅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수만 개의 조합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소리를 찾은 후에 그것이 몸에 익을 때까지 수없이 연습한다고 한다. 임영웅의 독창성 역시 자신에 대한 충분한 관찰과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냥 목소리와 창법을 따라한다고 해서 비슷한 울림을 줄 수는 없다.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는 대단한 성취를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에 우리가 이해하기를 멈출 때 몸도 다치고 일도 망치고 마음도 불행해진다. 충분한 관찰을 통해 나에게 맞는 동작을 알고, 나의 유니크함을 발견하며, 나의 목소리를 찾는 것은 건강과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2022-09-04

내부 총질과 수박 논쟁도 필요하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국민의힘 당 내부 총질문제가 당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윤 대통령의 격려 메시지와 체리 따봉이 당의 내홍으로 번지고 있다.윤리 심판원의 6개월 징계로 정치 생명이 끝날 것 같았던 이준석 당 대표의 정치적 생명은 일단 연장되고 있다. 사법부의 가처분 인용 이후 의원 총회는 5시간이나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당규를 개정하여 새 비대위를 구성한다는 방침으로 당 내분은 일단 봉합되었다. 안철수, 조경태, 하태경, 윤상현 등 당내 중진들은 새로운 비대위 구성에 반대하고, 권성동 원내대표의 우선 사퇴를 주장하고 있어 당내 반발은 심상치 않다. 긴급 의원 총회의 무기명 비밀 투표 없이 거수로 통과시킨 결정을 절차상의 문제라는 비판도 따랐다.당 대표의 징계가 형식은 성상납 무마의혹이지만 대선시의 내부 총질에 대한 응징임은 분명해지고 있다. 새 비대위 구성과 이준석 대표의 또 다른 가처분 신청이 여당의 내홍으로 이어질 전망이 높다.민주당도 지난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수박 논쟁’으로 내부 갈등은 심각하였다. 이재명 후보의 승리로 내홍은 표면적으로 진정되었으나 앞으로 재연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후보 경선 과정에서 친명 강성 지지층은 상대 후보측을 ‘수박’에 비유하여 힐난하였다. 겉이 푸른 수박을 깨보니 속은 붉어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상대를 빗댄 용어로 사용한 것이다. 상대 후보인 친낙 측의 정체성을 비난하고, 이를 친명 측의 팬덤 정치 강화에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상대의 선명성을 비난하는 전술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과거 사꾸라 논쟁과 같이 야당사에 종종 등장했던 정치 술책이다. 과거 군부 권위주의 정권시절 민주당내에서는 상대측을 ‘낮엔 야당, 밤엔 여당’하는 사꾸라로 비난하였다. 또한 정치적 라이벌을 2중대라고 비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정체성 논쟁에서 비롯된 것이다.여야의 내부 총질과 수박논쟁을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는 다를 수 있다. 내부 총질을 당하는 측에서는 그것은 당의 분란이며 선거의 패배 등 해당행위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당 지도부를 겨누어 총질하는 입장에서는 그러한 행위를 당 개혁을 위한 불가피한 애당행위로 강변한다. 수박 론 역시 당 구성원들의 상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지만 정당내 공개적 토론을 통해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 해당행위로만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내부 총질이나 수박 논쟁 등도 당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문제제기로 수용해야 할 사안이다.민주적 정당이라면 당내의 다양 다기한 주장과 문제제기는 폭넓게 포용하고 수용해야 한다. 현대의 정당은 대체로 당권파와 비당권파, 정책면에서는 강경파와 온건파,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뉘어 대립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 내부의 총질도 수박 논쟁도 그것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단죄할 것이 아니다. 당의 민주적 용광로에서 제련되어 합리적 정책으로 승화되어야 할 문제이다.우리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정당간의 정권 교체를 두 번이나 성공한 민주화의 상징 국가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당정치는 아직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내부 총질에 따른 젊은 당대표에 대한 가혹한 징계도 한국 정당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우리정치가 그간 제도적 민주화에는 성공했으나 정당정치의 민주적 질서는 수립하지 못한 결과이다.과거 3김 시대의 보스 정치, 줄서기 정치, 카리스마 정치 시대도 종식된 지 오래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아직도 상부의 눈치를 보는 줄서기 정치에 익숙해 있다. 우리의 비민주적 정당 정치는 당 발전을 위한 용기 있는 제안마저 ‘내부 총질’로 오해받고, 상대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수박 논쟁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정당의 활동까지 정치적으로 해결치 못하고 사법부의 심판 대상이 되는 현실이다. 이 모두 우리의 수직적인 경직된 권위주의적 정당 구조의 산물이며 우리 정치문화의 한계 때문이다.여야는 이번 사태를 당내 민주주의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집권 초반의 지지율 하락이나 집권 여당의 대혼란도 대통령에 기댄 당권 파, 윤핵관이 자초한 비극이다. 30대 당 대표에 대한 대통령과 당 관료의 누적된 냉소적 태도가 사태를 더욱 키웠다. 시대정신과 여론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우리의 정당정치는 아직도 과거의 보스 정당시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는 당료의 오만과 국회의원들의 침묵의 카르텔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공천을 의식하여 당 지도부나 상부의 눈치만 보면서 복지부동하는 의원들의 태도는 결코 당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내분의 수습을 위한 의원 총회에서부터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는 허심탄회한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정당은 결코 위로부터 정해진 방침이 관철되는 관료기구가 아니다. 늦었지만 당의 논의 구조부터 민주화시켜야 바람직한 당의 진로가 결정될 것이다.

2022-09-04

흔들리는 철강도시 포항, 시민 응원 절실

이금옥 PHP(포스코 우수공급사) 협의회 대표 포항시는 명실상부한 철강도시이다. 1968년 포항제철 설립 이후, 많은 철강업체들이 포항제철을 따라 포항에 모여들었고, 그 결과 포항은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굴지의 철강기업들을 보유하게 되었다.현재 포항의 철강 관련 기업은 350여 개에 달하며, 철강업 종사자는 약 3만 명에 육박한다. 철강산업이 포항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그러나 반세기 포항 경제의 주축 역할을 해왔던 철강 산업이 최근 흔들리고 있다.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철강 제품 수요가 줄고,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다 고물가·고유가·고금리의 ‘3고(高)’ 현상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 경기가 둔화되자 철강산업도 타격을 피해 가지 못하는 상황이다.철강 시황이 좋지 않은 만큼 포항철강 공단에도 불황의 먹구름이 감돌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초반 경기 악화 여파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다른 고비가 온 것이다. 포스코를 비롯해 철강공단에 설비·자재를 납품하는 공급사들의 사정도 심각하다. 실제로 포항지역 내 철강 관련 기자재 공급사들은 매출 감소와 이로 인한 고용 불안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포항철강공단 내 업체들의 가동률은 87% 수준이었다.수주가 줄어들자 휴업, 폐업한 공장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철강공단의 상시 고용인원도 전년 6월 대비 200여명 감소했다. 철강업체들에 납품하며 수익을 얻는 공급사들은 덩달아 허리띠를 졸라매며 불황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과 포스코가 한마음이었던 과거에 대한 향수가 그리워진다. 2006년 포스코가 해외로부터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될 위기에 처했을 때 포항 시민들은 몸소 주식갖기운동을 펼치는 등 ‘지역기업 지키기’에 매진했다. 당시 포항시민들의 마음에 포스코 직원들만 눈시울을 붉힌 것은 아니었다.포스코에 납품하는 공급사도 지역사회의 간절한 움직임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포스코가 지역 경제, 나아가 한국의 소·부·장(소재, 부품, 장치) 산업 발전과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런데 최근 포항 지역사회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지역 곳곳은 붉은 현수막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이다.번화가, 교차로 등 통행이 많은 곳은 어느 읍면동 할 것 없이 볼 수 있는데 현수막 색상만큼이나 내용도 원색적이고 자극적이다.급기야 포스코 직원들은 최근 회사에 대한 과도한 비방을 중단해달라며 결의대회와 인간띠 잇기에 나섰다고 한다. 회사를 지켜달라고 피켓을 든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한 회사를 이끄는 경영자로서 그 심정이 이해가 가고, 한편으로 처절하게까지 느껴졌다.포항상공회의소의 발표에 따르면 지역 기업 77개사 중 33.8%가 상반기보다 자금 상황이 어렵다고 답했다고 한다. 포스코 또한 일부 공장에서 감산에 돌입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으니 철강공단의 하루하루는 불안하고 어둡기만하다. 여기에 포스코 비방 현수막까지 줄을 잇는 모습은 실로 안타깝다.기업들이 불경기에 신음할 때마다 함께 위기를 극복했던 시민들의 응원과 격려는 사라지고, 특정 기업에 대한 불만만 가득한 공단 풍경을 볼 때면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지난 5월 美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시 첫 일정과 마지막 일정으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현대차 정의선 회장을 면담하는 등 최근 전세계 정치지도자나 지자체장들은 어려운 고용 및 경제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기업유치에 사활을 걸고 기업하기 좋은 국가, 지자체로 만들기 위해 직접 발로 뛰고 있다.우리 지역도 하루 빨리 대립을 멈추고 포항시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 투자하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해야 한다.또한 이에 호응하여 포스코를 비롯한 기업들은 포항시에 투자를 확대해서 고용과 경제 활성화를 일으켜야 한다.탄소중립 시대에 철강산업은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외부적으로는 저탄소 제품에 대한 고객의 요구가 매년 높아지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제철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기술개발과 대규모 설비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이는 포스코만의 숙제는 아니다. 포항의 철강기업들은 긴밀하게 협력하여 친환경 철강기술과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하고, 정부기관과 지자체는 낡은 규제를 타파해야 하며, 지역사회는 든든한 동반자로서 응원과 격려를 보내야할 것이다.포항이 대한민국 철강 산업을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하기까지 드러나지 않은 지원군들이 많았다.포항의 근간인 철강 산업을 지키고, 포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철강 기업들이 본업에 집중해 경제 불황이라는 파고를 넘을 수 있도록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주식 갖기 운동을 펼치며 지역 기업을 사수하던 시민들의 사랑이 부쩍 그리워진다.

2022-09-04

노자의 법(法)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법원에서 기각될 것이라고 자신했던 비대위원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서 국민의힘이 혼돈에 빠졌다.새 비대위 구성에 나섰지만 어떤 돌발변수가 작동할지 알 수 없다. 정당의 정치적 행위를 사법부의 판단에 맡겼으니 정치권의 예단도 의미가 없어졌다.이 대목에서 무위자연의 도를 주창한 ‘노자의 법’을 떠올리게 된다. 노자는 “가장 선한 사람은 마치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할 뿐 공을 다투지 않고 머무나니, 물은 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물은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그것을 내세우거나 뽐내지 않으며, 낮은 곳을 향해 흘러 남들이 기피하고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을 찾아든다.노자는 이를 두고 “공을 다투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또, 물은 네모난 그릇에 담기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글게 된다. 즉, 물은 결코 ‘나를 주장하지 않는다’. 물의 이런 모습에서 노자는 “물은 도에 가깝다”고 했다. 여기서 물 수(水)에 갈 거(去)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법(法)은 말 그대로 ‘물이 흐르듯 순리대로 풀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바로 ‘노자의 법’이다.하지만 요즘 ‘법대로’란 말은 순리대로 풀어나가려고 했던 일이 더 이상 해결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온다. 그렇다 하더라도 법을 만드는 입법부 영역에서 활동하는 정당의 정치적 행위를 사법부의 판결대에 올린 것은 무모했다.그래서일까. 국민의힘이나 이준석 전 대표 모두 순리를 거스른 대가를 치르게 됐다. 국민의힘은 추석 전인 8일까지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띄우기로 했다. 2일과 5일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이 사퇴할 경우 ‘비상상황’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당헌 개정안을 의결하고, 8일 신임 비대위원장 임명안을 전국위에서 의결하겠다는 구상이다. 비대위 전환 요건인 ‘비상상황’을 명시적으로 규정해 새 비대위의 사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이번 사태로 윤핵관들도 된서리를 맞게됐다. ‘원조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백의종군(白衣從軍)을 선언하고 2선으로 후퇴했고,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비대위 출범 이후 자신사퇴의 뜻을 내비쳤다. 대통령실 윤핵관 라인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을 솎아내는 인적쇄신도 한창이다.집권 1년차 민심을 가를 추석명절 밥상에 정부·여당이 ‘내홍 수습’과 ‘인적 쇄신’을 올리려 안간힘을 쏟는 모양새다. 문제는 ‘돌발변수’다. 비대위가 추석 전에 닻을 올리려면 일주일 내에 상임전국위와 전국위를 각각 두 차례씩 치러야 하는데, 당내 반발 등 돌발 상황이 우려된다.새 비대위가 꾸려져도 걱정이다. 당권주자인 안철수 의원이 ‘비대위 반대파’로 돌아섰고, 이준석 전 당대표도 ‘새 비대위 출범’을‘위장 거세쇼’라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와 윤핵관들을 직설적으로 공격하면서 적지않은 반발을 샀던 이 전 대표다. 그는 과연 국민의힘을 어디로 몰고 가고 싶은 것일까. 그에게 공을 다투지않는 ‘노자의 법’이 아쉽다.

2022-09-01

기업들 “추석경기 힘들다”…당국 손길 절실해

대구상공회의소가 지역기업 350개사를 대상으로 올 추석경기 동향을 조사해 보니 응답업체의 58%가 “지난해보다 추석체감 경기가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기업의 체감 경기가 좋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은 했으나 작년보다 더 나쁘다고 하니 걱정이다.업종별로는 건설업이 63.9%로 가장 높았고 제조업도 56.5%가 추석 경기 악화를 우려한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 사태가 3년째 이어져오고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원자재값 등이 폭등하면서 글로벌 경기가 둔화된 것이 지역업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체감경기가 악화됐다고 답한 업체의 74.8%가 원·부자재 가격상승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고, 금리인상 등의 이유로 자금사정이 나빠졌다고 대답한 업체도 57%나 됐다.지금 우리나라는 생산과 소비, 투자 등 3대 경기 지표가 모두 한꺼번에 주저앉으면서 경제 전반에 걸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 7월 기준으로 소비지수는 역대 처음으로 다섯 달 연속 나빠진 것으로 조사됐다. 대외적으로도 경기상황이 좋지 않아 내우외환의 경기침체 분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분석도 조심스레 나온다.그렇다고 추석이후 경기가 좋아진다는 보장도 현재로선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정부도 국내 시장의 경기침체를 인정하며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성장 둔화, 금리 인상 등 대외적 측면의 어려움도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게다가 물가 오름세도 역대급으로 이어져 기업은 기업대로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힘든 추석을 맞고 있다. 정부가 나서 추석 장바구니 물가를 지난해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공표했지만 고랭지 배추 등 신선식품들의 가격은 여전히 오름세다. 폭우와 폭염 등 날씨 탓이다. 기업이 어려우면 근로자도 자연 어려워진다. 특히 중소기업이 많은 지역업계는 대구시 등 당국의 조그마한 손길이라도 미칠 수 있으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큰 힘이 된다.자금사정이 어려우면 시가 나서 융자를 알선해주고 임금체불이 없는지도 구석구석 살피는 행정이 필요하다. 어려움 속에서 즐거운 명절을 맞을 수 있도록 시당국의 따뜻한 손길이 절실한 때다.

2022-09-01

경북도 원전현안, 정부가 적극 나서 해결을

경북도가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원자력산업의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실무위원회를 열었다. 이 위원회는 원전지역 발전과 주민생활 향상을 위해 지난해 구성된 ‘경북 동해안 원자력클러스터 추진위’의 실무기구다. 경북도는 이날 제시된 위원회 의견을 원자력정책에 적극 반영하도록 정부 관련부처를 설득할 예정이다.경북도가 지난 4월 원자력클러스터 추진위를 통해 정부에 건의한 원자력 관련 핵심 사업중 신한울 3·4호기 조기건설 재개와 경주 SMR(소형모듈원자로) 국가산단 조성, 원자력안전위원회 경주 이전, 글로벌 원자력 공동캠퍼스 설립,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조성 등 6개 사업이 현재 정부 국정과제로 선정된 상태다.이중 최대현안은 신한울 3·4호기 조기건설 재개다. 경북도는 환경영향평가와 건설허가, 공사계획 인가 등 각종 인·허가 절차를 최대한 앞당겨 신한울 3·4호기 착공을 2024년으로 앞당긴다는 방침이다. 경북도는 또 올 연말 국토교통부의 신규 국가산단 후보지에 경주 SMR 국가산단과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조성이 포함될 수 있도록 시·군과 함께 적극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달 26일 대구에서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 참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SMR 국가산단 조성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SK는 최근 미국의 SMR 설계기업인 테라파워에 3천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국내 원자력발전소 최다 지역인 경북도는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엄청난 물적·인적 피해를 입었다. 기피시설로 인식되는 국내 원전 24기 가운데 11기가 경북 동해안에 있다. 폐쇄된 월성원전 1기와 건설 중단됐던 신한울 3·4호기 등을 감안하면, 해당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이 입은 피해액은 수십조원에 달한다. 현재도 원전 지역 주민들은 경제 침체와 지역 소멸에 대한 불안감 등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경북도가 원전산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

2022-09-01

인류의 달 탐사

우정구 논설위원 달이란 단어의 본래 의미는 “높다” “높은 곳”을 의미한다고 한다. 매달다, 키다리, 다락 등의 단어에서 보듯이 모두가 높다는 의미에서 달이란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달동네도 달이 보이는 동네가 아니고 높은 곳에 있는 동네라는 뜻이다.달은 태양만큼이나 인류에겐 큰 영향을 미치는 우주 행성이다. 동화 속에 등장하는 달나라는 인류가 가장 가고 싶어하는 동경의 장소이자 친근한 신비의 나라다.달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다. 지구로부터 38만4천km가 떨어져 있다.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의 400분의 1 거리다. 지구 주위를 도는 유일한 자연 위성이기도 하다.그래서인지 달은 인류가 최초로 탐험한 유일한 행성이다. 미국과 소련이 우주 경쟁을 시작하면서 1959년 9월 무인 우주선인 소련의 루나 2호가 처음으로 달에 착륙하게 된다. 그 이후 1969년 7월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최초로 유인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킴으로써 인류 역사상 사람이 달에 첫발을 디디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1972년 이후 중단됐던 유인 달 탐사가 50년 만에 재개된다는 소식이다. 미국 나사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2025년에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단계적 달 탐사 작업에 돌입했다. 과거 달 탐사가 달에 발을 내딛는 게 목표였다면 이번에는 달에 장기체류용 기지를 구축하고 달의 희귀자원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당초 29일 예정됐던 아르테미스 1호 발사가 엔진 결함으로 연기됐으나 이달 2일 재발사가 시도될 것이라는 외신이다.이제 인류의 달 탐사가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본격화된다. 신비에 싸인 달의 모습이 얼마나 벗겨질지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9-01

더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윤영대 수필가 9월 달력을 넘겨보니 15개가 넘는 기념일이 보인다. 어떤 날은 하루에 2개씩이나 중첩되어 있고, 처음 알게 된 기념일도 수두룩하다. 자연순환의 날, 세계 오존층 보호의 날, 세계 차 없는 날 등 환경에 관한 날들과 사회복지의 날, 세계 자살 예방의 날, 치매 극복의 날, 세계 심장의 날 등 인류의 보건에 관한 기념일도 많다. 우리에게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보전하여 인간의 삶의 가치를 드높이자는 각오를 다지려는 것이다. 7일은 ‘푸른 하늘의 날’이다. 우리나라가 대기오염의 경각심을 높이고 청정대기를 유지하기 위한 국제협력을 제안하여 채택된 첫 유엔 공식 기념일인데 올해가 3회째이다.올 추석은 초순에 들어 좀 이른 편이다. 이번 태풍 11호 ‘힌남노’는 오키나와 남쪽 바다에서 서쪽으로 가다가 잠깐 멈칫하여 초강력 힘을 얻고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대한해협을 지날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있다. 어릴 적 추석날 덮친 태풍 사라호에 담장이 날아갔던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주말에는 가족나들이 겸 산소에 가서 벌초도 하면 좋겠다. 산길을 가다 보면 ‘살아서 몸 백 년 보존하기 힘들고 죽어서 무덤 백 년 보존하기 어렵다’는 명심보감의 말처럼, 허물어지고 잡초 무성한 묘소가 많이 보이는 것도 안타깝다. 역대급 인플레이션과 날씨 탓에 추석 상 차리기가 부담될 거라고 하지만 조상에 대한 경건한 마음과 예의만 있으면 간소하게 차린들 어떠하랴.초·중·고 각급 학교의 2학기가 시작되었다. 모든 학교가 정상 등교로 교문을 열고 대면 수업으로 그동안 막혔던 마음의 문도 열겠지만, 급식시설과 기숙사 등의 소독과 환기도 철저히 하여 방역관리의 강화도 필요하며, 학교 상황에 따라 원격수업도 유동적이다. 코로나 확진자는 8월 중순 최고점을 찍고 9월 들어 10만 이하로 감소할 것이라지만 경북 5천, 포항 1천 명을 오르내리며 우리에게 푸른 가을 하늘을 그리게 한다. 재감염률도 7%를 넘고 17세 미만이 약 40% 정도라니 아직은 방심할 단계가 아니다.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어 곡물과 에너지 공급의 길을 막아 세계는 환율과 금리인상 등의 불안에 떨고, 국내 정계는 여야 당파 간의 불협화와 대통령실의 갈팡질팡 인재 채용으로 국가위기 해결과 국제적 위상 정립은 내팽개치고 당규 싸움과 내부 분탕질이나 하고 있으니 이 고질병을 고치는 백신은 없을까…. 아! 구월이여.9월이 왔다. 가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내리는 시골집 마루에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보며 ‘멍 때리기’를 하노라면 6, 7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 영화 ‘9월이 오면’의 경쾌한 음률이 흐릿한 기억을 살린다.“저 찬란한 태양/ 마음의 문을 열어/ 온몸으로 빛을 느끼게 하소서// 우울한 마음/ 어두운 마음/ 모두 지워버리고/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9월의 길을 나서게 하소서”이해인 수녀의 ‘9월의 기도’를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9월의 꿈, 그 맑고 푸른 하늘에 들꽃의 향기를 날리고 싶다.

2022-09-01

나의 이웃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폭염과 가뭄을 지나온 풀들이 가을의 초입에 서 있다. 날마다 이 들판에 나와 거닐면서 나도 그들과 함께 여름을 지나왔다. 망초와 고들빼기는 벌써 제철을 마감하고 달맞이꽃도 줄기 끝에 남은 꽃을 마저 피우고 있다. 그들에게 이 가을은 한 생의 마지막 계절이겠다. 다른 풀들에 비해 대가 무른 코스모스가 가뭄을 많이 탔다. 이번 가을에는 제대로 꽃을 볼 수 있을까 조바심을 했는데, 며칠 전부터 비가 내려 지금은 제법 생기를 회복한 상태다. 노랗게 벼 익은 들판을 배경으로 코스모스와 억새가 피어있는 풍경이 좋아서 다른 풀들보다 마음이 더 간다. 도깨비바늘은 아직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고, 미국쑥부쟁이는 외래종인데도 토종 쑥부쟁이보다 이 땅에 더 잘 적응을 했다. 타국에서 한국 농촌으로 시집 와 억척스럽게 사는 여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쑥대와 명아주, 강아지풀도 쇠어가면서 가을 문턱을 넘고 있다.벼들이 고개를 숙인다. 이삭이 영글수록 더 깊숙이 고개를 숙인다. 속이 차고도 겸손한 사람을 일러 고개 숙인 벼이삭에 비유한다. 딱 맞는 말이다. 빈 쭉정이들이 오히려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 설쳐대는 세상이 아닌가. 조와 수수, 기장도 알이 차면 고개를 숙인다. 밀레의 그림 ‘만종’의 부부처럼 고개 숙인 자세에는 경건함이 감돈다. 겸허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자연에 경전 아닌 것이 없다. 흔하디흔한 들풀일수록 더 강인한 생명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이대로 가면 이 들판 벼농사는 풍년이겠지만 아직은 모른다. 작년 가을에는 태풍이 없었지만 비가 너무 자주 와서 쓰러진 벼가 많았다. 같은 품종이라면 이삭이 실한 벼일수록 태풍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기 쉽다. 소출이 적어도 키가 낮고 이삭이 작은 품종을 선택할 것인가는 농부의 판단에 달렸다. 누운 벼가 물에 잠겨 추수를 포기한 논도 더러 있었다. 거센 비바람 앞에서는 오히려 못난 벼가 잘 견딘다.메뚜기들이 날거나 뛰는 게 더러 눈에 띈다. 옛날 같으면 이맘때쯤 들길을 가면 가마솥에 콩 볶듯 메뚜기들이 튀었는데 지금은 드물게 눈에 띌 정도다. 농약과 제초제 때문에 살아남은 메뚜기들이 많지 않은 것이다. 개체수가 줄어든 것뿐만 아니라 크기도 작아졌다. 메뚜기만큼이나 흔하던 개구리도 어쩌다가 보이고, 물방개 소금쟁이 물장군 같은 물벌레들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미꾸라지도 없어졌다. 벼들만 풍년인 들판은 사람들에게만 풍요롭게 보일 뿐이다. 부지런한 농부일수록 생태계엔 더 적이다. 논둑의 풀이라도 그냥 두면 좋으련만 수시로 제초제를 쳐대는 바람에 풀벌레들이 깃들 곳이 없어졌다.날마다 들길을 걷는 것이 일과의 하나인 나에게는 들녘의 풀들이 이웃이고 그들의 안부가 주요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바람과 구름과 비와 햇볕을 한 이불처럼 같이 덮고 사는 사이다. 가뭄에 풀들이 시들어 가면 나도 목이 타서 비를 기다리게 된다. 현대를 살면서 인간사회의 사정에도 무관심 할 수가 없지만, 내 삶의 본령은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다. 자연은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법도 가지고 있다. 여름 가고 가을이 온다.

2022-09-01

나는 나를 모른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아주 짧은 시간을 제외하면 나는 나를 거의 보지 않는다. 내게 이름이 있지만, 그건 내가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남이 나를 부를 때 사용할 뿐이다.다 아는 것 같아도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한다. 남들이 보기엔 뻔해 보이는 약점도 글쎄 나는 잘 모르기 일쑤다. 언론 지면을 장식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어쩌면 저렇게 부끄러운 짓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을까 싶지만 글쎄 그는 그런 줄 모르고 있기 십상이다. 진짜로 모른다.나는 나를 그만큼 모른다. 나라가 어지러운 것도 그럴만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이 그런 사정을 까맣게 모르는 탓이 아닐까. 잘하는 줄 알고 하는 일이 아 글쎄 온 국민들에게는 걱정을 끼치는 줄 아마도 모르는 게다.물건을 만드는 사람 다르고 파는 사람이 달라야 그 물건이 잘 팔린다고 한다. 왜냐하면, 물건을 만든 사람은 공을 들인만큼 애착이 있어, 그냥 좋은 줄만 알아서 그냥 내 물건 자랑만 한다는 게다. 소비자가 어떨 때 그런 물건이 필요한지 사실은 도무지 모른다는 게다.애플(Apple) 컴퓨터를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들어 낸 사람은 물론 스티브잡스(Steve Jobs)다. 하지만, 애플이 처음부터 잘 팔렸을까? 아니, 처음엔 시장점유율이 바닥을 기었다. 잡스가 죽기 전에 남긴 회고에 따르면, ‘물건은 내가 만들었지만 팔기는 저 사람이 팔았다’는 사람이 있다.광고전문인 리클로우(Lee Clow).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잡스를 도와 애플이 만든 매킨토시(McIntosh) 컴퓨터가 공전의 성공에 이르도록 만들어낸 사람. 그는 당시 컴맹에 가까운 문외한이었다고 한다.물건을 만들었지만 ‘물건의 까닭’을 당신은 아직 모른다. 사람들이 당신의 물건을 사야 하는 그 느낌을 글쎄 모른다. 리클로우가 컴퓨터의 그림자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다르게 생각합시다’라고 말을 걸었을 때,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남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안테나를 잠에서 깨웠다. 애플 컴퓨터가 빌게이츠(Bill Gates)에게 의미있는 도전장을 던진 건 그래서 스티브잡스가 아니라 리클로우인 셈이다.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그래서 물건을 팔지 않아야 하는 게 공식처럼 되어버렸다. 내가 나를 모르듯이, 내 물건도 내가 모른다는 ‘홍보의 겸손법칙’을 배운 게 아닐까. 우리 동네, 잘 아는 것 같아도 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 사람이 서울을 가장 잘 모른다’는 통계가 있었다고 한다.그랬던 잡스가 남긴 한 마디가 있다. ‘인생은 짧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짧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내가 가장 잘할 일을 찾기도 만만치 않지만, 남이 나보다 잘할 일을 붙들고 있는 미련함은 떨쳐야 한다. 잡스가 컴퓨터 만들기를 넘어 팔기에도 매달렸다면, 어쩌면 우리는 아이폰을 구경도 못했을지 모를 일이다.나는 나를 모른다. 포항은 포항을 모르고, 경북은 경북을 모른다. 누구라도 밖에서 우리를 찾아올 까닭을 발견할 사람은 우리 안에 없다.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한다. 그게 누굴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올까?

2022-08-31

TK, 국비확보에 끝까지 역량 집중하길

정부가 내년 국가 예산을 올해보다 5.2% 늘어난 639조 원으로 편성한 가운데, 대구시 사업비는 3조7천181억 원, 경북도 사업비는 5조1천31억 원이 반영됐다. 윤석열 정부가 예산운영기조를 확장재정에서 건전재정으로 전면전환했음에도, 대구·경북은 역대급 예산이 편성돼 숙원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게됐다.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에 맞춰 전국 각 시·도별 주요예산은 전반적으로 삭감됐다.대구시는 로봇, 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 반도체, 미래 모빌리티, 의료·헬스케어 등 미래 5대 첨단산업과 SOC(사회간접자본) 분야의 신규사업들이 정부안에 반영되면서 경제혁신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지역경제 활력회복을 위한 산업단지 재구조화와 지역산업 혁신 분야의 주요예산도 반영돼 대구 산업구조 고도화 및 체질 개선도 기대된다. 대구·경북 경제공동체 조성을 위한 광역교통망 조성 사업비도 대거 편성돼 기업 물류수송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됐다.경북도는 내년 예산에 일반 국고보조금이 추가될 것을 고려하면, 2023년에는 국비예산 1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OC 분야의 경우, 경북지역 숙원이자 대통령 공약인 포항~영일만 횡단구간 고속도로 건설예산 20억 원을 비롯해 포항~영덕간 고속도로 2천771억 원, 중앙선 복선전철(도담~영천) 2천338억 원 등이 반영됐다.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혁신원자력 기술연구원 설립 354억원, 3단계 산학연 협력 선도대학육성사업 375억 원, 자동차 튜닝기술지원 클러스터 조성 137억원 등을 확보했다.대구·경북이 정부의 긴축재정에도 내년에 역대급 예산을 확보한 것은 지역 정치권과 대구시, 경북도가 중앙정부를 상대로 집요하게 설득한 결과다. 대구·경북이 사활을 걸고 추진한 신산업예산과 SOC 분야 예산이 대부분 확보된 것은 고무적이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강조했듯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정부안에 반영되지 않은 현안들이 증액 또는 추가되도록 시·도와 정치권은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2022-08-31

스피어피싱(Spear Phising) 주의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스피어 피싱은 작살(Spear)처럼 특정 개인·회사를 대상으로 사전 정보를 충분히 수집한 상태에서 정밀하게 공격하는 방식의 해킹으로, 주로 사칭 메일을 통해 이뤄진다.최근 종영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대형 온라인 쇼핑몰 ‘라온’에서 일하는 최진표 팀장이 자기소개서를 봐달라는 남동생의 메일을 받았다.최 팀장은 ‘형 말대로 자소서 다시 썼어 함 봐줘’라는 제목의 메일을 클릭하고, 첨부된 워드 문서 파일(docx)을 열었다. 하지만 문서 프로그램 속 ‘콘텐츠 사용’버튼을 눌러도 파일은 텅 비어있다. 동생과 통화하고서야 위장 메일을 받았음을 깨닫게된다.드라마는 대형 쇼핑몰이 메일 한 통으로 고객 4천만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사건을 다뤘는데, 이런 방식의 해킹이 바로 ‘스피어 피싱’해킹이다. 악성코드가 기기에 깔리면, 키로거(사용자가 키보드로 PC에 입력하는 내용을 몰래 가로채 기록하는 것)가 작동해 개인정보를 빼낸다.드라마는 지난 2016년 고객 2천54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터파크 해킹 사건을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최근에는 첫 이메일에는 정상적 업무내용만 보내고, 이후 회신한 사람들에게 악성파일을 보내는 ‘투트랙 스피어 피싱’수법으로 진화하고 있다.해커가 기존 메일을 수신자가 확인하기 전 취소하고, 바꿔치는 경우도 있어 메일을 확인하기 전 발신자에게 전화로 확인해보는 게 중요하다.무엇보다 해킹을 막기 위해서는 ‘절대로 믿지 말고 늘 확인하라’는 ‘제로 트러스트 원칙’을 기억하고, 해킹예방을 위한 메일 및 컴퓨터 관리법을 익혀두는 게 좋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8-31

호미반도 국가정원, 예타통과에 온 힘 모아야

경북도와 포항시가 한반도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호미반도 일원을 국가해양정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으로 신청했다.호미반도 국가해양정원 조성사업은 내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1천730억 원을 투입하는 포항시의 야심 찬 계획이다. 습지복원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 조성된 국가정원 1호인 순천만국가정원과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에 버금가는 해양정원을 조성해 생태계 보전과 더불어 관광활성화, 오래갈 지역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구상이다.특히 영일만대교와 울릉공항이 완성되면 환동해안의 새로운 관광 기원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 대상지인 구룡포와 호미곶, 동해 장기는 동해의 해맞이 명소로서 상징성과 대표성이 높다. 또 이곳은 역사적, 지질학적, 인문학적 지역자산이 풍부한 곳이어서 입지적 조건도 우수하다. 경북도와 포항시가 제출한 국가 해양정원 조성사업은 기재부 등의 심사를 거쳐 오는 11월쯤 대상 사업의 선정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가치가 있어도 이를 쓸모 있게 잘 다듬어야 가치가 빛나는 법이다. 경북 동해 호미곶 일대에 계획한 국가해양정원 사업은 예비타당성 통과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이미 포항시 차원에서 상당한 준비가 진행되겠지만 예비타당성 통과를 위해 지금부터 더 분발 노력해야 한다. 동해의 해양생태계 보전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경제성 확보 방안을 마련하는 등 치밀하고 꼼꼼한 준비로 반드시 예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이강덕 포항시장은 “호미반도 국가해양정원 사업은 영일만 횡단대교 건설과 더불어 포항이 철강 산업도시에서 해양생태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민선 8기 첫 번째 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시장의 구상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기대를 갖고 있는 만큼 호미반도 국가정원사업이 국가사업으로 선정될 수 있도록 총력을 쏟아야 한다. 경북도와 포항시뿐 아니라 지역 정치권도 힘을 보태 포항의 이미지를 바꿀 역사적 사업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2022-08-31

낭산(狼山)의 말(言)

배문경수필가 말이 씨가 된다. 바닥에 떨어진 말 한마디가 뿌리를 내리고 잎을 무성히 달아 꽃을 피우기도 한다. 말의 힘을 느끼며 나는 낭산(狼山)을 오른다. 도리천(忉利天)으로 가는 길에 여름 웃자란 소나무와 나무 백일홍이 길을 연다. 어디서 후드득 날아오르는 새들이 낯선 이의 방문에 저들끼리의 언어로 숙덕인다.413년 8월에 낭산에서 구름이 일어났다. 형상이 누각 같았고 향기가 가득 퍼졌다. 실성왕이 ‘지금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놀고 있다. 복 받은 땅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낭산에서 나무를 베는 것을 금지했다. 훗날 고승 명랑법사는 ‘신들이 노니는 숲’이라 해서 낭산의 남쪽을 ‘신유림(神遊林)’이라고 말했다.낭산은 높지도 깊지도 않다. 사람이 오르며 하늘을 보기 좋은 곳이다. 더위에 숨을 헐떡이며 닿은 곳에는 푸른 잔디로 곱게 단장된 큰 봉분이 있다. 아귀가 맞는 돌을 능을 쌓기 위해서 주위에 일 이단으로 둘렀다. 단지 비석에 선덕여왕릉이라고 하니 이곳이 내가 찾던 그 곳이다. 항공사진으로 찍힌 선덕여왕의 능은 신비하고 신성했다. 이곳에 신라의 여왕이 자리 잡고 환생을 꿈꾸며 누워계실지도 모르겠다. 숱하게 본 영화, 드라마에 선덕여왕의 이야기는 들어도 질리지 않는 묘한 내용들이다. 왕(王)과 왕(王)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야말로 자신의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만들고야 만 대단한 여왕이 아닌가.“아무날 내가 죽을 것이니 도리천(忉利天)에 장사지내라”삼국유사에 따르면 그곳은 낭산의 남쪽이라 했다. 그날에 이르러 세상을 떠나니 낭산 양지에 장사를 지냈다. 30여년 후 문무왕이 여왕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 四天王寺)를 지었다. 사천왕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니 선덕여왕의 신령함을 알게 되었다. 지혜롭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여왕이 죽음을 예견하고 사천왕이 떠받칠 곳에 무덤을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심금(心琴)을 아련히 울려줄 것까지 계산에 넣은 것은 아닐까.말은 말하는 사람에서 시작되지만 듣는 사람과의 교감을 통해 더 큰 의미나 가치가 된다.후배가 소원을 말했다. 그녀는 스페인에 가보고 싶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정확히 3년 뒤에 스페인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순할 순順에 여자 희姬자를 쓴다. 본인은 까칠한 성격이지만 남들이 그렇게 불러주니 순하게 살아진다고 말했다.나는 글월 문(文) 서울 경(京)의 이름을 쓴다. 신라의 서울인 서라벌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의 힘이란 상상 이상일 수도 있겠다. 자꾸 불러주고 들려주면 알게 모르게 그리 된다. 누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는 글밭으로 한 걸음씩 가고 있었던 셈이다.선덕(先德)은 대방등무상경의 선덕바라문에서 유래하였고, 도리천의 왕이 되길 바라서 선덕이란 이름을 썼다.진평왕릉과 선덕왕릉이 낭산 일원에 들어서면서 낭산은 왕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신들이 머무는 공간에 왕이 다른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 신라인들이 평안을 빌던 낭산이 이제 염원을 이루게 해줄 기도처로 자리매김한다.‘이리 낭(狼)’자를 쓴 ‘낭산(狼山)’이다. 이리가 엎드린 형상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사마천의 ‘사기’는 “동쪽의 큰 별을 ‘랑(狼)’이라 한다”. 그래서 왕궁(월성)의 동쪽에 있는 산이라 ‘낭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란 다른 설도 있다. ‘남산’의 오자가 아닌 ‘낭산’은 분명 경주 시내에 있는 해발 100m의 구릉이다. 짐승의 형상이든 큰 별을 의미하든 낭산은 그곳에서 선덕여왕의 능이 세상의 중심에 있게 한 산이다.선덕여왕도 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신라의 튼튼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분황사며 영묘사, 황룡사 9층 목탑 등의 사찰을 지었다. 첨성대를 올리고 반월성을 거닐며 신라의 백성을 위해, 국가의 안전을 부처님께 빌었을 일이다. 영험한 여왕의 기도가 곳곳에 남아있을 법하다.낭산에서 내려가는 길에 산새가 길을 열고 솔솔 바람 한 점 시원하게 아미(蛾眉)를 훑고 지나간다.

2022-08-31

기묘(己卯)

육십갑자 중 열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기묘(己卯)다. 천간(天干)은 기토(己土)요, 지지(地支)는 묘목(卯木)이다. 천간 기토(己土)는 만물을 포용하고 생산하는 전원의 흙으로 표현하며, 묘목(卯木)은 늦은 봄의 기운을 의미한다. 물상으로 보면 봄의 논과 밭을 나타낸다. 기본적으로 만물을 생육(生育)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기묘(己卯) 일주는 마치 푸른 대지를 뛰어다니는 토끼처럼 평화로운 모습이며,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다. 자기 방어능력이 부족하여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주위 사람들과 융화되기 쉬운 성격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활발하며, 온순하다. 개성이 뚜렷하고, 창의적이며, 주변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하는 인정이 많은 성향이다.기묘(己卯) 일주는 물상으로 나무 위에 흙이다. 위치가 반대라 기묘한 사람들이 많다. 그야말로 기기묘묘(奇奇妙妙)하다. 겉모습과 속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속은 의리의 사나이 김두환도 저리 가라할 협객이며, 겉은 항상 고개를 숙이고 겸손한 기(己)를 나타낸다.우리는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장승인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안다. 천하대장군은 하늘시계 기(己)을 상징하며 지하여장군은 땅의 담당자 토끼 묘(卯)다. 그래서 별주부전의 토끼처럼 엄청 똑똑하고 계산이 팍팍 돌아간다. 반면에 천하대장군 기(己)는 갑, 을, 병, 정, 무로 쭉 양기 발산이 쭉 이어지는 시기였으나 기(己)부터는 그 양기를 음기가 수렴하기 시작하는 전환점을 말한다. 이어 음기는 경, 신, 임, 계로 이어진다.기묘(己卯)는 기기묘묘하다. 기묘 일주, 년주, 월주를 가지신 사람은 한 마디로 ‘동백 아가씨’다. 동백(冬柏)의 동은 겨울 동(冬)이고, 백(柏)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나무라는 뜻이다. 즉 천하대장군의 기운은 아직도 차디찬 겨울 같아 보이지만, 고개 숙인 겨울이고 꽃은 아름답게 피어 모든 것을 함유하고 있다.그래서 기묘 일주, 년주, 월주는 몹시 아름다운 성품과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본인도 아주 겸손하지만 겉으로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모습이다. 그래서 기기묘묘하다. 아마 기묘일주를 가진 아내와 살면 집안 걱정은 없지만 남편은 집에다 에어컨을 끼고 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아무리 춥고 더워도 진짜 동백처럼 지내야 한다.그래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도움을 받으려면 마음을 맑게 가지고, 서둘지 말고, 입 다물고, 잘난 체 말아야 한다. 동백은 추운 얼음장 같은 매화와 진달래, 개나리 사이에 피는 꽃이기 때문이다. 마치 옛날 장가가는 새신랑이 말 위에 올라 속으로는 색시가 엄청 보고 싶어도 마부가 모는 말을 타고 천천히 그냥 가기만 하면 저절로 색시를 만나듯이 그렇게 기다리면 된다.여자의 경우, 기묘일주는 일지가 ‘편관’이므로 자존심이 강하고, 자립심도 강하다. 여린 마음씨를 가지고 있어 꾸미기를 좋아한다. 박학다식하고, 현침살의 영향으로 상대에게 정곡을 찌르는 말들을 잘한다. 말은 적은 편이며, 체격이 작고, 귀여운 미녀가 많은 편이다.기묘일주는 ‘일지도화’로 이성에 관심이 많고 성적이다. 이성관계가 복잡할 수 있으나 자기관리를 잘하면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가 있다. 여성의 경우 ‘관살혼잡’(정관과 편관이 혼재. 여성에게 관성은 남자고 배우자다)이라 남편 복이 없다, 이성관계가 복잡하다, 혼자 사는 경우가 많다라면서 불안정하고 흉한 기운으로 보았다. 과거에는 여자의 이성 관계가 복잡하면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일부종사를 금과옥조로 여기던 조선시대의 일이다.하지만 현재는 여성이 다방면으로 재능을 발현하는 세상이다.리더십과 포용력이 뛰어나고 매력적이라 주변의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능력이 우수하다. 마음이 안정되지는 못하는 단점은 있으나 직업적인 측면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플라톤의 ‘향연’에 아리스토파네스는 에로스(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원래 지금 모습의 몸 두 개가 결합된 형태다. 한 몸에 머리가 두 개, 팔이 두 개, 다리가 네 개, 그리고 성기가 두 개 달려있다. 그리고 결합의 방식은 세 가지, 곧 남남, 남녀, 여녀 쌍이 있었다. 그림으로 그려보면, 두 개의 머리에 네 개의 눈이 사방을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고, 그 힘은 지금의 두 배보다 훨씬 더 세다. 산은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릴 정도다.특히 속도는 장난이 아니다. 여덟 개의 사지를 펴서 수레바퀴 구르듯 엄청난 쾌속으로 달릴 수 있다. 이들이 점점 번성하고 강성해지자 제우스는 위협을 느끼고 급기야 없애버릴 궁리를 하였다. 류대창명리연구자 배꼽은 이런 고민에서 만들어진다. 제우스는 인간을 반으로 쪼개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동강이 난 인간의 절단면을 추슬러 고기만두 빚어내듯이 한 군데로 모아 묶었다. 그것이 바로 ‘배꼽’이다. 배꼽은 인간이 원래 형태에서 둘로 쪼개져 동강났던 아픈 추억의 증표다. 그때부터 인간들은 동강난 채 떠도는 나머지 자기 반쪽을 찾는 일에 매달렸다. 떨어져 나간 자기 반쪽에 대한 열망, 그것은 인간에게 가장 강렬한 갈망이 되었다. 마침내 떨어져 나간 반쪽을 찾으면 하나가 되기 위해 떨어질 줄 몰랐다.에로스(성)는 인간의 조각난 두 쪽이 서로를 갈망하게 하며, 원래의 형태와 본성을 회복하게 해준다. 그렇게 조각난 두 쪽이 만났을 때 인간은 진정 인간성을 회복하며 행복을 누릴 수가 있었다.오늘날 동성애에 대한 문제가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다. 쾌락에 대해 무관심하고, 당연히 맛볼 기쁨을 맛보려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무감각한 것은 인간적인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동물들조차 음식물을 가려서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한다. 성(性)의 다양성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는 요즘이다. 정말로 세상은 기기묘묘하다.

2022-08-31

폭력의 구조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뒤늦게 넷플릭스에서 ‘소년심판’을 보았다. 자식을 잃었지만 가해자가 촉법소년이란 이유로 제대로 처벌되지 못한 아픔을 간직한 심은석 판사와 소년원 출신 차태주 판사를 중심으로 몇 개의 에피소드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서 총 10회를 정주행하고 말았다. 드라마는 소년들의 불행한 환경에 초점을 맞춰 옹호하거나 그들의 범죄를 파고들어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지도 않는다.‘소년심판’은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라는 사실을 전달한다. 차태주를 교화하여 판사가 되는 것에 결정적 역할을 한 강원중 부장판사는 ‘문광고 시험지 유출사건’에 아들이 관련되어 본인의 정계 진출에 걸림돌이 되자 사건을 편파적으로 진행한다. ‘무면허 뺑소니’ 사건에서 백미주는 몰카 사건의 피해자이지만 무면허 뺑소니 방조 혐의에 자유롭지 못하다. 곽도석은 백미주를 위해 몰카 사건을 해결하려다 죽음에 이른 피해자이지만, 무면허 운전으로 누군가를 죽게 만든 가해자이기도 하다.한병철은 ‘폭력의 위상학’에서 오늘날 폭력은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실재성에서 잠재성으로, 육체성에서 심리성으로 이동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현재의 폭력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전이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소년심판’의 강원중과 그의 아들이 교육 시스템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된 배경에는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나와 내 주변을 지키려는 욕망이 놓여있다. 그 절박한 목적 앞에 누군가의 고통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에 사는 세 모녀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살하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2014년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과 판박이로 우리 사회의 복지 시스템이 갖는 허점을 보여준다고 한다. 왜 이런 비극은 되풀이될까? 복지 시스템 미비를 거론하는 것은 문제의 절반만 바라보는 것이다. 가령 완벽한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을까?안타깝게도 비극은 되풀이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폭력은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시스템은 인간의 내면을 장악하여 자신을 폭력의 가해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의 주춧돌인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고정된다. 이런 구조에서 좀 더 나은 환경에 올라타고 싶다는 욕망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이 공동의 목표가 될 때, 자본의 궤도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은 혐오의 시선을 견디다 자신을 파괴할 수 있다.‘소년심판’의 소년들은 가난한 집안 혹은 부유한 부모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 성장했다. 후자의 부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과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자식을 외면한 부류이다. 그래서 소년들은 외친다. 부모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환경이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사회적 폭력의 가해자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죽음 앞에 월세를 내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 드는, 바로 그 내면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022-08-31

어느 성적표

오낙률시인·국악인 처서가 지난 들판에 갓 피어난 벼 이삭이 가지런하다. 자세히 보면, 벼알마다 하나씩 한들거리는 아주 작은 족두리 모양의 하얀 벼꽃은, 청순하고 예쁜 아가씨들의 두 볼 너머에서 한들한들 빛나는 보석 귀걸이 같다. 머지않아 추석 명절이 지나고 먼 산 단풍 소식이 체 들리기도 전에, 저토록 청순하고 푸르기만 하던 들판은 온통 황금빛으로 바뀌며 인류의 풍요와 번영을 선언할 것이다.태초에 농경 생활이 시작되면서 인류는 번창하기 시작했고 오늘의 찬란한 인류 문명이 있기까지 농경문화가 그 뿌리 역할을 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치 못할 사실에 해당한다. 그러나 어찌하면 좋을까? 온 국민이 농경에 매달려서 살던 시대가 끝나고 이제는 농경이 하나의 작은 직업군으로 분류된 오늘에 이르러 국가 경제의 뿌리를 가꾸던 농민이 다른 직업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가난한 빈곤의 대명사가 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도시민의 눈에 비치는 농업의 이미지는 거의 3D업종으로 비치고,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흘러 세대가 젊은 층으로 내려갈수록 더 굳어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이렇게 주저앉아 울고 싶은 사람들이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온 나라 국민을 먹여 살리던 농민들인데, 이제는 경제부흥을 이룰 만큼 이루었는데, 국가는 어찌하여 아직도 농정을 국정의 최하위에 두는 건지, 다 같이 잘 먹고 잘사는 사회의 울타리 안에 과연 농민도 포함하는지 궁금하다.필자의 유년 시절인 60년대만 해도 한 가정에서 성장한 형제가 사회생활을 할 때가 되면 맏아들은 부모님의 가업을 받들고 차남들은 객지로 돈벌이를 떠나는 게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은 삼시 세끼만 해결되어도 요즘 사회의 중산층 개념에 드는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 그때는 자갈논 몇 마지기만 있어도 부자라는 소리를 듣던 세상이었고 부잣집 가난한 집 할 것 없이 맏아들은 부모님이 계시는 농촌을 지키며 농업을 이어 가고 장남을 제외한 형제들은 하나같이 고향을 떠나 객지살이를 시작했었다. 그들의 객지살이는 대부분 크고 작은 도시의 상가나 공장 생활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엔 부잣집 맏아들을 부러워하던 시절이었다. 그것은 맏아들에게 유산 상속을 많이 물려주던 당시의 상속에 관한 풍습 같은 게 사회에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었다.맏이는 농촌에 남고 차남은 객지로 제 살길 찾아서 떠나던 시절에 대한 삶의 성적표 같은 것을 작금의 우리 사회는 받아들고 있다. 가끔 언론에서 억대 농부 운운하며 소개되는 농민도 있긴 하지만 그건 우리나라 전체 농민 중에서 극히 일부 농민이고 그 범주에 드는 농가라 할지라도 대부분 부부가 협업하는 농장이다. 그 억대 농부라는 말은 실제로 도시직장인처럼 한 사람의 농업인을 두고 하는 호칭은 아닐 것이며 또 그들의 수입을 도시 직업인과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 중산층의 범주에 겨우 들까 말까 한 수준이다. 그러고 보면, ‘오! 통제라!’ 60년 대 70년대 우리나라 어머니 아버지께선, 당신이 그리도 아끼시던 맏아들에게 멍에 같은 가난을 물려준 셈이 되고 말았다.

2022-08-31

경북의 헴프산업

우정구 논설위원 안동포로 유명한 안동지역이 산업용 대마(헴프) 생산의 중심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2년 전 정부로부터 산업용 헴프규제자유특구로 지정받고, 대마를 활용한 바이오산업 육성에 기업과 행정이 온 힘을 쏟고 있다.경북도의 산업용 헴프규제자유특구는 마약류인 대마의 합리적 산업화 방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일반특구와는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다. 70여 년 동안 마약류 관리법에 의해 규제되던 대마를 국내 최초로 산업화한다는 것과 바이오 산업과의 연결을 통해 지역산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는 면이 새롭다.대마의 잎과 꽃에서 얻어지는 마약류 물질을 대마초 혹은 마리화나라 한다. 이를 의료용이나 산업용으로 사용하면 이름을 헴프로 달리 부른다. 그동안 대마 사용의 유용성을 놓고 오랫동안 찬반의 논란이 이어져 온 게 사실이다.대마 사용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대마 사용 자체를 범죄시 말라는 것과 대마에 대한 지속적 법률적 규제가 맞서 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세계 상당수의 나라가 대마 사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최근 미국에서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성인이 담배를 흡연하는 이들보다 더 많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었다. 미국 내에는 주마다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곳이 늘고 있고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곳의 주택가격이 올랐다는 보도까지 나올 정도다. 20·30 젊은이도 마리화나 관련기업 주식에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한다는 분석도 나온다.경북의 헴프산업은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이라지만 아직은 규제영역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마약류관리법 규제를 풀어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대통령에 건의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8-30

포항 제철중 입학 과열, 학교신설로 푼다

포스코교육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명문사립인 제철중학교의 과밀·과대학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포항교육지원청이 남구 효자동에 새로운 중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효자중(가칭)이 들어설 부지로 논의되고 있는 곳은 효자초등학교 인근 경북도 교육청 소유지(7천498.6㎡)와 국유지(4천497.1㎡) 1만1천995.7㎡다. 포항교육지원청은 “중학교 설립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지만 학령인구 진학시기에 맞춰 연쇄적으로 과밀학급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는 만큼 이같은 방안을 모색하게 됐다”고 밝혔다. 학교설립 기준상 중학교를 설립하려면 최소 6천∼9천세대 이상의 인구가 필요하지만, 효자지구내에 위치한 아파트(SK아파트, 자이아파트, 상도코아루센트럴하임 등)의 경우, 5천320세대밖에 되지 않는다. 포항시 남구 효자동 일대는 오래전부터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효자초등학교 졸업생이 급격히 늘어, 제철중 입학을 두고 포스코 직원들이 거주하는 지곡동 주민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최근에는 제철중학교가 포항교육지원청에 시설인프라 부족과 학급 과밀화 등을 이유로 효자초등학교 졸업생 중 70%만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현재 효곡동 내 3개 초등학교(제철지곡초, 제철초, 효자초) 졸업생들을 모두 수용하고 있는 제철중학교는 재학생수 1천560명으로 전국 1위의 과대·과밀학교가 됐다. 제철지곡초, 제철초, 제철중학교는 포스코 직원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됐다.포항교육지원청이 추진하는 효자중 신설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행법은 학교 설립이나 학급 증설을 할 때 ‘학령인구’를 반영해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령인구라는 잣대를 적용하면 출산율 감소로 인해 포항뿐 아니라 비수도권 어느 도시에서도 학교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의 중앙투자심사위원회 심사를 통과하는 것이 관건이다. 사실 제철중학교 입학을 두고 발생하는 주민들간의 갈등은 학교 신설 외에는 별다른 해법이 없어 보인다. 포항시와 경북도교육청의 ‘솔로몬 지혜’가 요구되고 있다.

2022-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