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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동·임하댐 물 활용, 물 문제 해결 시발점 되길

홍준표 대구시장과 권기창 안동시장이 안동댐과 임하댐 원수(原水)를 대구 수돗물로 공급하는 사업에 원칙적 합의를 했다. 두 사람은 지난 11일 대구 시청사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함으로써 대구시 취수원의 낙동강 상류지역 이전을 둘러싼 해묵은 과제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지 관심이다.홍 시장은 이와 관련 “이번 상생 협력이 대구시민의 먹는 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초석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고, 권 시장도 “물은 모두가 공유해야 할 공공재”라며 “두 지역간 발전을 만드는 큰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두 단체장이 공식적으로 합의한 데다 낙동강 상류 댐 물을 원수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도 강력해 국무총리실 주재로 6개 기관이 합의했던 구미 해평취수장 이전문제는 사실상 백지화될 공산이 커졌다. 홍 시장도 “더 이상 구미에 사정하고 읍소하는 식으로 물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그러나 안동댐·임하댐 물을 원수로 사용하려면 두 기관이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안동·임하댐 물을 원수로 사용하려면 영천댐과 운문댐으로 연결되는 도수관로를 깔아야 하는데 여기에는 1조4천억의 막대한 사업비가 든다. 공사비용의 70%를 부담해야 하는 수자원공사와 협의를 벌여야 하고 정부 예산에도 이를 반영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또 안동댐 일대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지역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며 우려하는 안동시민들의 여론도 잘 수렴하고 설득해야 관문을 넘을 수 있다. 안동댐의 중금속 오염을 주장하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명을 해야 한다.대구시민들의 수도 요금 부담도 가급적 줄여야 한다. 대구시는 현재 1인당 1천원 정도라고 밝히고 있으나 부담을 최소화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대구취수원 이전문제는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이후 30년동안 논란을 벌여 온 지역 숙원이다. 지난 4월 맑은 물 나눔과 상생발전에 관한 협정으로 실마리를 푸는듯 했으나 구미지역의 반대여론에 밀려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이번 두 기관의 합의가 30년 끌어온 지역 숙원을 푸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2022-08-15

집권여당의 대혼돈, 리더십 부재가 원인

윤석열 대통령과 친윤계 국회의원을 겨냥해 작심 비판을 쏟아냈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기자회견을 둘러싸고 후폭풍이 거세다. 여권 내부에서 “레드라인을 넘었다”, “망언”이라는 비난이 쏟아져 나오자 이 대표가 즉각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내분이 격화하고 있는 모습이다.이 대표의 지난 13일 기자회견 후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나는) 개고기를 판 적이 없다”며 불쾌해했고, 전당대회 출마를 고민 중인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며 이 대표를 비난했다. 초선인 김미애 의원도 “윤석열 대통령이 개고기냐”며 비난전에 가세했다. 이 대표도 가만있지 않았다. 자신의 SNS에 당원 가입 독려 글을 올리며 “기자회견을 봤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데 다들 뭐에 씐 건지 모르겠다”고 맞받았다.이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은 본인은 물론, 당과 국가를 위해서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여당의 대표를 지낸 사람이 대통령을 향해 거친 언어를 쓰며 직격탄을 날린 것은 좀처럼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당 윤리위의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가 절차의 정당성 측면에서 억울한 부분이 있겠지만, 홍준표 대구시장이 “왜 그런 욕을 먹었는지도 생각해보라”고 언급한 부분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내일(17일) 취임 100일을 맞는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회견내용에 분노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심정으로 소화를 시켜야 한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윤 대통령이나 정무라인이 이 대표를 만나 그동안 쌓인 감정을 풀었다면 이런 험악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내일은 이 대표가 낸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의 첫 심문이 열리는 날이다. 이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이 만약 법원에서 인용된다면 국민의힘은 당 대표가 2명이 되는 대혼돈의 상황이 온다. 이러한 혼란은 여권이 사전에 수습해야 한다. ‘주호영 비대위’의 역량이 주목된다.

2022-08-15

포항의 걸출한 문인, 한흑구 선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40여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당시 고교시절 문예실 주간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포항문학’ 창간호. 그 책에 실린 ‘한흑구 선생 특집’란의 글을 읽고 흑구(黑鷗) 한세광 선생을 우연찮게 알게 됐다. 그리고 지난 주, 포스코국제관에서 열린 한흑구 문학의 장르별 조명과 한국현대문학사의 의의를 다룬 ‘한흑구 문학연구 학술대회’에서 한흑구 선생의 진면목이 뇌리에 각인됐다. 한참의 세월을 거슬러 책을 통해 본 문인을 학술대회에서 제대로 알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기만 했다.한흑구 선생은 명작 ‘보리’ 수필 외에도 시, 소설, 평론, 번역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문학세계와 명징한 작품을 창작했음에도 문학작품과 공적이 제대로 조명, 평가되거나 예우받지 못한 은둔의 문학인으로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에 평양과 미국을 오가며 선구적 지성과 폭넓은 문학관으로 한국문학을 새롭고 풍요롭게 만들면서도 단 한 토막의 친일 문장을 쓰지 않은, 의지와 불굴의 지사형 문학가였다. 또한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주도한 흥사단의 활동가로서 민족독립을 위해 1년여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일제식민지 시대에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길을 걸었던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특히, 한흑구 선생의 수필은 시적 언어를 구사하는 독특함으로 우리나라 수필문학 성립기의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수필은 말 그대로 독백의 문학이기에 자신을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것에 우의(寓意)하여 객관의 세계를 묘사하게 되는데, 선생은 나무를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고 바다를 통해 우주를 설명하며 시적인 비유와 상징, 풍자의 수사법으로 서정성과 간결성을 더해 수필의 완숙도를 높였다. 60, 70년대의 교과서에 2편의 수필이 실린 정도로 선생은 민족혼을 일깨우며 자연애와 시적인 수필세계로 근대 수필론 정립에 크게 기여한 걸출한 문인이요 관조적 사색가였다.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한흑구 선생의 생시나 현재까지 그의 문학적 업적을 제대로 평가, 인정받지 못했고, 그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거니와 정부에서조차 추서한적이 없으니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서울 중심의 중앙문단에서 벗어나 외진 포항에서 주변 장르인 수필을 주로 발표한 변방성으로 인해 대중의 관심과 문단의 비평에서 다소 벗어났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탄생 100주년인 지난 2009년, 민충환 문학평론가에 의해 ‘한흑구 문학선집 1·2권’이 출간돼 한흑구 문학의 꽃이 부분 개화되는 계기가 마련됐다.이에 ‘한흑구문학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2022년 3월 출범, 포항시와 함께 선생의 문학세계와 문학사적 의의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하여 문학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본격적으로 기획·추진 중이라 하니,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사상, 철학, 문학에 대한 다층적인 탐색과 깊은 연구를 통해 ‘한흑구문학관 건립’ ‘한흑구 문학 정본전집 발간’ 등 의미있는 사업추진으로 포항의 뿌리깊은 문화자산과 정체성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정표가 돼야 한다. 한세광 선생은 포항문학과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2022-08-15

일류기업으로 가는 지식경영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기업 수준은 사람이 결정하며, 직원이 일류 사원이 되면 일류 기업이 된다. 일류 사원은 지혜를 갖춘 것이고 지혜는 지식에서 나오며 지식이 없는 이들이 모인 조직은 집단지성의 지혜가 나올 수 없다. 지혜는 지식을 활용하는 기술인데 기업에서 보면 산적한 문제해결과 미래 성장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지혜로운 경영자는 미래를 예측하고 통찰력을 가지고 전략적 경영을 수행한다. 80년대초 구미에 있는 삼성전자를 간 적이 있다. 전자부품 조립공장 복도의 벽에‘가방에 지갑은 놓고 다녀도 책은 넣고 다녀라’라는 하얀 천에 쓴 붓글씨가 떠 오른다. 복도 가판대에 책이 진열되어 있고 직원이 원하는 책은 다 볼 수 있다. 라디오를 조립하는 일이지만 전직원이 늘 손에 책을 놓지않는 삼성전자는 미래 일류기업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은 사람, 문화, 제도와 조직, 시스템으로 구성되고 그 근간은 지식 프로세스가 있다. 지식 프로세스는 지식의 변환과 활용,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 연속적인 순환과정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를 함으로써 고객에게 만족도를 높여주고 기업에게는 이윤을 가져다 주는 구조를 말한다. 미국의 컨설팅업체 델파이그룹이 말하는 지식경영의 요소를 살펴보면, 첫째,지식의 획득으로 기업은 외부에서 지식을 획득하거나 연구나 경험을 통해 내부적으로 지식을 창조한다. 둘째, 지식의 공유로 기업이 언제 어디서든 지식에 접근 가능하도록 만든다. 지식의 공유를 통해 조직의 학습능력을 크게 증진한다. 셋째, 지식의 레버리징(Leveraging)으로 기업의 지력을 이용하여 지식을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넷째로 지식의 공급으로 지식을 제품에 체화시켜 제품의 가치를 증진시킨다.지식이 없는 기업의 특성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거나 업무가 중복되고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하지 못한다. 또한 소수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신제품 출시가 늦어지는 등 기업경영 손실의 큰 요인이 되는 것이다.성공적인 지식경영을 위해선 미래에 대한 개인, 조직에 대한 비전과 동기부여를 강화하고, 창조적 도전으로 인한 실패는 용인될 수 있도록 한다. 지식경영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으로 결과의 분석보다는 적용하는 행동이 선행해야 한다. 지식경영이 강한 P사를 보면, 학습동아리 기반으로 학습조직이 구성되고 개인 노하우를 등록하고 조직의 지식으로 만드는 암묵지를 형식지화 한다. 가령, 설비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학습하고 등록하면 온라인으로 토론이 벌어져 지식공유가 깊이 있게 되는 것이며, 분야별 전문가를 만드는 기술명장 육성 등 지식근로자를 양성하고 있다. 현장에 강한 지식근로자가 되면 깊이 있는 문제를 발굴하는 능력과 해결 가능한 인재가 육성돼 지식경영의 기반이 되고 조직의 인적수준이 일류기업의 측도가 되는 것이다.일류기업으로 가는 길은 모든 직원이 지식근로자가 되어야 하고, 지식근로자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식공유와 지식창조가 우선시 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기업이 생산하는 것은 제품보다 새로운 지식이고 기업 경쟁력은 지식의 생산성에 좌우된다.

2022-08-15

그 길밖엔 없어<Ⅵ>

-왜 이러냐? 로봇 관리사가 힘들어? 우리 회사에서 영업이나 뭐 그런 거 할래? 내가 취직시켜줄게. 지금이라도 차 돌려서 올라가자. 너 이렇게 한 번 발들이면 못 돌아온다. 너 지금 네 목소리가 떨리는 것 느끼지? 그거 오랜만에 담배 피워서 그런 것 아니야.우현이 앞좌석으로 고개를 내밀며 녀석에게 말했다. 녀석은 힐끗 우현을 한 번 돌아보았다.-저 인조인간을 차에 태울 때 벌써 발을 들인 거야. 저 인조인간 나 알아. 이미 돌아가긴 글렀어. 아, 몰라. 이미 우리는 직진이야. 직진. 이 길밖엔 없어 그러니 네가 나 좀 도와줘야겠다. 너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고.-거기에 왜 나를 가져다 붙여. 나 물건 네 개 정도 없다고 사는 게 힘들어 지거나 그러지 않아. 이런 경우 말고도 물건은 널렸어. 도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냐? 어? 이런 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우현이 앞좌석을 잡아당겼다 놓으며 흔들었다.-그게 꼭 인공 장기만의 문제는 아니야. 잘 봐. 누군지 알겠어? 하긴 네가 얼굴을 보고 누군지 알기는 힘들겠지. 기억 나냐? 올더앤베러 최 회장이라고. 안나를 마이걸로 만든 늙은이. 내가 처음 너에게 말했을 때 네가 찾아가 죽여 버릴 거라고 했었잖아. 그 늙은이야. 팔십 일곱 살짜리. 그때 네가 이야기했었지. 니들 둘 사이에 있었던 일들. 안나가 나에게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내가 물었었잖아? 진짜로 죽일 수 있냐고.안나가 고등학생이었을 무렵 우현은 대학생이었다. 전공 과제를 하느라 노마의 집에 들렀던 우현이 안나를 보았다. 교복을 입은 안나가 아니라 평상복을 입은 안나는 우현에게 학생이 아니라 여자였다. 우현은 안나를 마음에 품었다. 핑계거리만 생기면 노마의 집을 찾아왔다. 과제 때문일 경우도 있었고, 그저 놀기 위해 온 날도 있었다. 저녁밥을 얻어먹고 안나가 귀가하는 늦은 시간까지 기다렸다. 노마와 같이 거실에 앉아 있는 우현이 안나에게는 낯설지 않았다. 가끔은 노마와 우현, 안나가 섞여 같이 주말을 보내기도 했다.곁눈질로 안나를 보기 시작했던 우현이 안나의 얼굴을 마주하는데 익숙해질 즈음, 셋이서 새로 나온 영화를 보러 갔다.-남매가 영화 보러 가는데 내가 왜 끼어?-얘랑 둘이서 가면 무조건 싸워. 다른 사람 한 명 있어야 돼.노마가 한 번 더 권했다.-같이 가요. 오빠.안나까지 나서서 잡아끌자 못 이긴 척 따라나섰다. 안나를 중심으로 노마와 우현이 좌우로 나누어 앉았다. 영화를 보던 중 노마가 화장실에 갔다. 안나가 우현에게 귓속말을 했다.-우현 오빠, 겁쟁이구나.잠시 후 우현은 안나의 손을 잡았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영화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안나의 손이 무척 부드러웠다는 것. 우현이 안나의 손을 움켜쥐자 안나가 우현의 손을 풀고 다시 깍지를 끼었다는 것만 기억했다. 영화가 끝나고 들렀던 카페에서도 안나의 눈은 우현을 향했다.집으로 돌아와 노마와 우현은 맥주를 마셨다.-내가 마실 것은 없잖아.안나가 노마에게 말했다. 노마가 음료수를 사러 간 사이 안나와 우현은 첫 키스를 했다.-처음 보았을 때부터 너를 좋아했어.우현이 안나에게 고백을 했다.-알고 있었어요.안나는 우현의 입술을 손으로 닦아주었다.며칠 후 우현은 차를 빌렸다. 안나의 학교 정문 앞에서 안나를 기다렸다. 지나가는 길에 생각이 났고 마침 하교 시간이라 그저 한 번 기다려보았다는 우현의 변명을 들으며 안나가 웃었다.-오빠, 저 보러 왔다고 말해도 돼요.우현은 안나의 집 근처 골목에 차를 세웠다. 트렁크를 열어 준비했던 꽃다발과 편지를 안나에게 건넸다.-정식으로 고백을 하고 싶었어. 안나. 너를 좋아해. 안나, 네가 대학생이 되면 너의 남자 친구가 되고 싶어.우현이 수줍게 고백을 했다. 안나가 대답했다.-오빤 벌써 내 남자 친구인걸요.안나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우현은 인공 장기 회사에 취직을 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남자 친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았다. 동급생 남자들이 밥과 커피를 사줄 때 우현은 여행을 같이 갈 수 있었고 남자 선배들이 영화를 보여줄 때 우현은 뮤지컬 표를 들고 나타났다. 안나가 졸업을 하면 안나의 부모와 노마에게 정식으로 말할 생각이었다. 안나와 결혼 하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우현은 그날을 상상하며 혼자 연습을 하곤 했다.사건이 터졌다. 리베이트 사건이었다. 우현의 회사는 인공 장기를 공급하면서 거래가격의 십오 퍼센트 정도를 담당 의사에게 현금으로 되돌려 주었다. 불법이었지만 익숙한 관행이었다. 의사들은 의례히 받는 것이라 여겼고, 회사는 어차피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이라 여겼다. 주는 쪽, 이를테면 영업사원들이 퇴사하면서 리베이트 장부를 가지고 회사를 협박한다거나, 협박하다 여의치 않으면 경찰에 투서를 한다거나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출발점이 달랐다. 리베이트를 주는 쪽이 아니라 받는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 한 종합 병원의 이식 외과에 제공한 리베이트를 그 과의 과장이 혼자서 유용을 했다. 과에 속해 있던 의사들이 공정한 분배를 요구했다. 과장은 과 전체의 이름으로 들어온 것이니 과장이 알아서 관리하겠다며 맞섰다. 언쟁과 날카로운 신경전이 반복되던 중 회식 자리에서 서로에게 술잔을 던졌고 주먹다짐을 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고 술이 깨지 않은 한 의사의 입에서 리베이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폭력 사건에서 리베이트 사건으로 바뀌었다. /김강 소설가

2022-08-15

근대의 베스트셀러, 추월색의 시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라는 자본주의 문화상품으로서 출판된 책을 가리키는 개념들은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서점의 서가에 요즘 많이 읽히는 책들에는 관심을 갖게 마련이지 않는가. 도시 중심의 커다란 서점에서 많이 팔린 순위대로 진열해둔 책들을 보면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여론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한 것들로 구성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가늠할 수 있던 지금보다 조금 더 단순한 시대에 베스트셀러의 의미는 좀 더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우리가 읽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를 말해준다, 는 인식이야말로 베스트셀러의 시대를 지탱하던 가장 큰 밑바탕의 사고는 아니었을까. 가끔은 그렇게 조금 더 단순했던 시대가 그리울 때가 있다. 사실 그때보다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글을 읽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무엇을 읽고 있는가 하는 것은 지금도 활발하게 스마트폰 속 인간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저장하고 있을 구글의 서버밖에 알지 못한다. 포털의 검색어 순위가 제공해주는 요즘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단어들은 너무나 직접적이고 말초적이어서, 베스트셀러들의 순위가 주는 낱말과 낱말의 연결로서의 서사, 그 속에 들어 있는 독자와 독자들 사이의 얽힘과는 전혀 다르다. 이제는 책에 대한 홍보 수단으로서의 의미밖에 찾기 어려운 베스트셀러가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였을까. 베스트셀러는 결국 그 책이 얼마나 팔렸는가 하는 기준에 따른 것이니, 그 책이 얼마나 팔렸는가 하는 것을 계산할 수 있는 도구로서 판(edition)이나 쇄(printing) 같은 개념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근대적인 출판 이전에 베스트셀러를 거론하기는 어렵다. 조선시대에도 필사본이나 방각본 등으로 발간된 소설들이 세책가를 통해서 활발하게 읽혔다고는 하지만 이들을 베스트셀러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최초의 근대적인 의미의 베스트셀러라면 결국 한국에서 근대 출판이 시작된 이후인 딱지본으로 출판된 책들을 그 시작으로 거론해야 할 것이다. 딱지본이라고 하면, 1907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해 해방 무렵까지 이어졌던, 손바닥만한 작고 가벼운 페이퍼백 형태의 울긋불긋한 표지를 가진 출판물을 가리킨다. 페이퍼백과 비슷한 형태라고 해도 당시 한국에는 서양식의 코덱스(codex) 제본의 하드커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드커버에 대비되는 페이퍼백은 아니라 보통 입구화로 사용되는 컬러 그림을 표지로 끌고 나와 간소하지만 화려한 표지로 꾸민 책을 가리킨다.문학사에서 소설의 양식으로 거론하는 새로운 소설이라는 의미의 ‘신소설’이란 사실 문학의 양식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 이 딱지본으로 출판되는 과정에서 전래의 ‘구소설’과 대비되는 창작소설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었다. 일제 강점을 전후로 새로운 창작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이인직이나 이해조 등이 신문 연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가였다면, 최찬식이나 김교제 등은 딱지본 출판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가였다. 이인직이나 이해조의 창작소설들도 신문 연재 이후 딱지본으로 출간되어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이해조의 베스트셀러는 다름 아니라 ‘심청전’을 각색한 ‘강상연’이나 ‘춘향전’을 각색한 ‘옥중가인’이었다. ‘강상연’은 12판 정도, 옥중화는 17판 정도를 냈다. 사실 당시에는 판(edition)이라는 개념을 지금의 쇄(printing) 개념으로 썼기 때문에 인쇄 활자에 큰 변화가 없어도 판 교체를 표시하였다. 당시 서점(출판사)으로서는 이 정도 베스트셀러를 갖고 있다는 것이 큰 자부심이었기 때문이다. 신소설, 즉 창작소설로서 최초의 베스트셀러는 바로 최찬식의 ‘추월색’이었다. 22판 정도가 확인된다. 읽으며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근대적인 대중소설 양식이 탄생했던 것이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2-08-15

지방의원 연수 ‘놀러간다’는 지적 안 나와야

지난 1991년 부활한 지방의회의 국내·외 연수 투명성 문제가 30여년간 논란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대구경실련 의정감시단은 지난 10일 대구지역 지방의회의 국내 교육·연수(의원역량개발비) 편성 내역과 1인당 연수 예산을 공개하면서 “지방의회 관광성 연수가 이번 지방의회에서도 그대로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일부 기초의회의 연수 계획이 ‘단체여행’으로 의심할 만한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대구경실련은 “수성구·남구·달서구의회는 각각 연수장소를 여수와 부산, 대구로 정해 연수목적이 명확하지만, 일부 의회는 참가의원 이탈을 방지한다는 이유를 들며 연수장소를 제주도로 선택했는데 목적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지방의원들의 국내·외 연수가 말썽이 된 것은 공부보다는 관광에 치중하는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지난 6월에는 대구·경북을 포함해 상당수 전국 기초의회 의원들이 임기를 한 달여 남겨놓고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나려다 사회적 파문이 일자 부랴부랴 일정을 취소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지난달 출범한 제9대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이후 처음 개원했다. 법 개정으로 인사권한이 커지면서 의회사무처(국) 직원들에 대한 인사를 의장이 독립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정책지원관도 의원정수의 절반만큼 신규 채용할 수 있다. 지방의회의 권한이 커진 만큼 고유기능인 집행부 견제와 감시에 대한 책임감도 커졌다. 이번에 당선된 지방의원들은 초선 비중이 높아, 공부하고 연구하는 의회상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지방의회의 행정사무감사 과정과 예·결산 심사 방법 등은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수 있다. 지방의회는 지역민들로부터 ‘의원들에 대한 국내·외 연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연수일정을 자질강화에 초점을 두고 짜야 한다. 특히 내년 1월부터는 그동안 자율에 맡겨졌던 지방의원들의 의정활동이 의무적으로 공개된다. 이제 공부하지 않고 놀 생각만 하는 지방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 혹독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2-08-11

대구시 원스톱지원, 국내 성공 모델로 만들자

행정기관이 기업의 투자를 돕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기업이 느낄만큼 속도감 있는 지원체제를 구축하기가 쉽지 않다. 법령에 따라 집행해야 하는 현실적 규제 문제가 너무 많이 존속하기 때문이다.그러나 행정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면 못할 것도 없다. 대구시가 원스톱 투자지원단 협의체를 구성해 기업투자 지원에 적극 나서기로 해 관심이다. 기업유치를 위한 홍준표 대구시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협의체 결성이란 점에서 유독 관심이 더 간다. 대구시 원스톱 투자지원단 협의체에는 8개 구군청과 한국산업단지공단 등 모두 15개 기관이 참여한다.지금부터 기업이 대구시에 투자를 결정하면 부지 선정에서부터 건축 인허가 등 모든 행정절차를 대구시가 한번만에 신속하게 해결해주게 된다. 대구시 관계자는 최근 대구 투자의사를 밝힌 다국적 기업 이케아와 프랑스의 발레오 등이 원스톱 투자지원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인허가 과정에 6-10개월 걸리던 것이 2개월 정도로 줄어든다고 한다.홍 시장은 지난달 실국 업무보고에서 “공무원의 갑질시대는 끝났다”면서 “대구에 돈을 가지고 오면 물심양면으로 돕겠다”는 생각으로 행정의 원스톱 시스템 구축을 잘 하라고 했다고 한다. 특히 경북도의 100조원 투자유치 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도록 당부도 했다고 하니 기업유치에 대한 그의 의지가 강함을 짐작케 한다. 기업유치는 도시의 경제발전과 인구증가 등 도시 활력화와 직결되는 문제다. 대구시의 원스톱 지원체제 구축은 과거 여타기관에서 말하던 원스톱 지원체제와는 다르게 실제적으로 기업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끔 운용돼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구시가 마음먹고 시작한 원스톱 지원체계가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 모델로 운용되길 바란다.80세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에서 날아와 한국의 삼성전자 평택공장부터 먼저 찾았다. 기업유치에는 지위도 의전도 중요치 않다. 미국은 공장 지을 땅을 거저 줄 정도로 기업유치에 적극적이다. 대구시가 전국에서 기업하기 가장 좋은 도시로 알려진다면 대구의 경제 전망은 밝을 수밖에 없다. 홍 시장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대구시의 원스톱 지원체제가 전국에서 가장 성공한 제도로 이어지길 바란다.

2022-08-11

반지하의 민낯

외신들은 서울의 반지하 주택을 이렇게 표현했다. semi-basement(절반지하층), underground apartment(지하아파트) 또는 우리말로 풀어 banjiha라고도 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반지하는 낯설고 어설펐다.서울의 물난리가 나면서 반지하층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참변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외신들은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벌어진 참사를 일제히 보도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주택 구조에 살던 가족이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며 한국사회의 반지하 주택을 또 한 번 도마 위에 올렸다. 이곳은 빈곤층이 많이 사는 곳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반지하 주택은 옥탑방과 함께 한국의 열악한 주거공간을 대표하는 장소다. 햇볕이 부족해 눅눅하고 곰팡이가 냄새가 나는 주로 저소득층이 기거하는 주거공간이다.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기생충’의 배경이 된 집이다. 한국사회의 빈부격차 문제를 지적한 이 영화로 외국서도 우리의 반지하 주택이 조금은 알려져 있다.우리나라 반지하 주택의 시작은 1970년대다.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남북분단의 상황에서 반지하를 대피소로 활용하면서 생겨났다. 이후 서울로 인구가 대거 몰리면서 주택난이 심화되자 지하 1층을 주거공간으로 허용한 것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2020년 현재 32만가구 정도가 아직 반지하층에 살고 있다. 이번처럼 폭우가 쏟아지면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열악한 환경에서 많은 사람이 여전히 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서울의 민낯이다.정부가 반지하에 대한 주거 대안을 찾겠다고 하나 당장 해결책은 없다. 매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인구의 서울 집중을 막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8-11

세상에 공짜는 없다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 출범과 이준석 대표 측의 반발로 혼란에 빠졌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책임당원들의 모임‘국민의힘 바로 세우기’(국바세)에서 11일 책임당원 1천558명이 신청인으로 참여한 가처분 신청을, 12일에는 일반시민과 당원 2천500여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연달아 법원에 제출한다니 파급효과가 적지않을 듯 싶다. 국민의힘에서는 이 대표와의 물밑협상으로 극적 타결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TK출신 5선중진 주호영 의원이 이 대표에게 정치적 해결을 촉구하며 적극설득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주 위원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도 “정치적 문제를 사법 절차로 해결하는 것은 하지하의 방법”이라며 물밑협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친이준석계로 분류됐던 인사들도 당 혼란 조기 수습을 위해 비대위 체제 전환을 수용하면서 이 대표에게 법적 대응 자제를 촉구했다. 이 대표와 별개로 비대위 전환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했던 김용태 최고위원은 전국위 당일“효력 정지 가처분은 신청하지 않겠다”고 선언, 사실상 비대위 체제를 수용했다. 비윤계 광역단체장인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은 혼란 조기 수습 필요성을 이유로 이 대표에게 법적 대응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3선의 조해진 의원 역시 정치적 해결을 촉구했고, 정미경 최고위원도 이 대표의 법적 대응 자제를 주문했다. 현재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 정치 현안을 법정으로 끌고 갔다는 비난을 감내해야 하고, 당의 혼란을 부추긴 책임을 져야한다. 최악의 경우 정치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가처분신청이 인용된다 해도 현실적으로 이 대표가 당 주류인 친윤석열계의 견제를 뚫고 당 지도부로 복귀해 당의 혼란을 수습할 지도력을 발휘하기는 불가능하다.당내외 인사 모두 한목소리로 ‘법적대응 자제’를 주문하는 데도 이 대표 측이 법적대응을 결행한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 상임고문인 이재오 의원의 말처럼 당이 비대위로 전환된 데는 내 잘못도 있다고 반성하고,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도록 한 발 물러서면 본인이나 당에도 좋을텐데 말이다. 이 대표의 입장은 확고하다. 그는 선출직 당대표를 몇몇 정권 실세들이 윤리위를 통해 흠집을 만든 뒤 비대위 전환이란 편법으로 강제 퇴진시킨 것은 민주주의 정당정치에 있어선 절대 있어선 안될 일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그는 다음주 중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기각한다해도 끝까지 정치적으로 싸울 태세다. 사상최초로 30대의 젊은 나이에 보수야당 대표가 됐던 이 대표가 정권탈환에 성공하고도 축출된 점을 국민들에게 읍소하겠다는 것이다. 이러니 물밑협상은 이미 물건너간 듯 보인다. 그에게 남은 것은 정치적 투쟁뿐이다. 이제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상당기간 내홍에 시달릴 수 밖에 없게됐다. 당을 주도하는 실세들이 당 대표를 내쳤으니 후유증도 그들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다.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했다.

2022-08-11

교육은 백년지계(百年之計)

윤영대 수필가 지난 8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전격 사퇴를 했다. 취임 후 35일 만의 일이다. 10일 전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만 5세 입학’이라는 학제개편안을 느닷없이 발표하며, 지역별 집중 조사·연구를 통해 실행 가능한 학제개편안을 연내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교육계뿐만 아니라 학부모 등의 반발이 거세게 일고 공론화 과정도 없는 졸속한 제안이라는 반대 여론에 밀린 탓이다. 교육 정책은 향후 맞딱뜨리게 될 사회적 변화에 민감한 만큼 국민의 정서와도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아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발달 정도와 사회와 가정 상황들이 많이 차이가 있는 만큼 신중한 추진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학제개편론의 반대 이유는 ‘서열화와 사교육 경쟁’, ‘선행학습 추진 열기 우려’ 등이지만 현재도 조기교육은 가능하다.조기교육 제도는 OECD 38개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영국, 호주 등 4개국은 만 5세 미만 입학이고 한국, 미국, 프랑스 등 26개국에서는 만 6세 입학이다. 만약 5세로 1년 낮출 경우 돌봄 공백 등으로 인한 맞벌이 부부의 고충과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운영에 난맥상이 우려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린이는 1~6세까지를 유아(幼兒), 7~12세를 아동(兒童)으로 구분하고 있다. 3세부터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고 6세가 되면 젖니(幼齒)가 빠지고 그 이후엔 스스로 행동하게 되는 인격체로 보게 된다고 발달심리학에서 언급하고 있다. 영·유아 단계에서 국가가 책임지는 대상을 확대한다는 방침으로 유보통합 방안도 마련한다고 하지만 반대가 심한 현실이다.학령인구 감소의 심각성은 대학교육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60년 초반 베이붐 세대는 약 100만명이 출생했지만 1980년대 ‘1자녀 갖기’ 캠페인으로 80만명 선이 붕괴하였고 2000년 들어 저출산 기조가 시작되어 50만명 이하로 낮아졌다. 2020년엔 30만명 선도 무너졌다.그런데 대학 정책은 엇길로 갔다. 1990년대 중후반 입시지원자가 줄어들어 지방고교로 입시홍보를 다닐 때, 20년 후에는 사정이 어떨까? 하고 그 당시 출산율을 보았더니 약 60만으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육 당국은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실행하며 매년 수십 개씩 신설을 허가해 주었고 2011년까지 63개 대학이 신설되어 현재는 전국 407개 대학(전문대학 포함)이 있다. 입학정원도 2002년 65만6천명으로 정점을 찍고 차츰 감소하여 작년에 약 50만명이 됐다. 앞으로 이런 추세라면 15년 후 입학정원 1천5백 명 정도의 대학 100여 개가 폐쇄되지 않을까 걱정이다.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국가의 교육 소명이다. 교육은 국민의 기본 권리이며 적령기가 있기에 교육기관의 설립과 제도운영에도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교육은 백년지계(百年之計)’란 말은 긴 세월 심사숙고하라는 말은 아니고 미래를 예측하며 깊은 논의를 통해 계획하라는 것이다.‘만 5세 입학’ 정책 발표는 강력한 추진 의사 없이 너무 서둘렀나 보다.

2022-08-11

대통령 발목잡기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지 석 달이 지났다. 집무실을 용산으로 정하고 청와대를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정책을 철폐한 것과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 기울어진 외교·안보·법치를 정상화 하겠다는 의지와 행보를 보여준 것이 그간의 대표적인 업적이었다. 일견 당연한 일을 한 것 같지만 지난 좌파정권의 정책노선에 대한 전면적 개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처럼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한 나라에선 어느 쪽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지난 정권이 잘 보여주었다. 야권 좌파세력들의 필사적인 윤 대통령 발목잡기는 충분히 예견한 일이었다. 발목을 잡는 정도가 아니라 할 수만 있으면 탄핵을 해서라도 끌어내리고 정권을 되찾고 싶은 것이 저들의 염원일 터이다. 상대를 꺼꾸러뜨리기 위해서는 사사건건 어떤 시비와 훼방과 중상모략도 서슴지 않는 것이 저들의 생리고 전략이라는 건 익히 보아온 바다. 소기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온갖 비리·범죄에 연루된 인물을 당대표로 뽑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걸 보아도 법치나 정치도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집단임을 알 수가 있다.정권이 바뀌었으나 지난 정권의 잔존세력들이 곳곳에 포진하여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나 좌파노조가 장악한 언론매체의 발목잡기는 여간 심각한 장애가 아니다. 전 정권에서는 어용 편파방송을 일삼던 공영방송까지 현 정권에 대해서는 작은 꼬투리라도 잡으려고 안달이다. 하나의 흠결이 열 가지 장점을 상쇄하는 것이 소문에 대한 민심이다. 매스컴이 기본적으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파급효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지게 마련이다. 사실만을 보도한다고 할지라도 긍정젹인 사실은 무시하고 부정적인 사실만을 다룬다면 그게 바로 악의적인 편파보도라는 걸 대다수 민심은 눈치를 채지를 못 한다.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여권 내부에서도 온갖 분탕질로 발목잡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여당의 대표가 나서서 이토록 해당행위와 정권의 발목을 잡은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다. 제1야당이나 여당의 대표쯤 되는 인물이라면 마땅히 나라와 국민에 대한 일말의 소명의식이나 책임감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오로지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소인배로는 그 폐해가 막심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나라와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이 오로지 당권 다툼에만 혈안이 되거나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해 어디에 줄을 댈지 눈치 보기에 급급한 여당 국회의원들도 결국 대통령 발목잡기에 한 몫을 하는 것이다.윤 대통령은 아직 정치판이나 언론의 생리에 익숙하지 못하다. 통치자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치행위고 정치적 파급력을 갖는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대통령의 소신이나 감정은 반드시 정치적 여과를 거쳐서 표출되어야 한다. 올바른 소신과 철학을 갖는 것만으로는 정치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그것을 어떻게 관철하느냐 까지가 정치적 역량이다.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발목에 기름칠이라도 해서 붙잡으려는 손들을 매끄럽게 빠져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

2022-08-11

폭염과 해양기후변화

연일 폭염이 기승이다. 뙤약볕에 잠시만 서 있어도 습하고 더운 열기가 아찔하다. 여름은 더워야 한다는 속설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이들도 줄었다. 한여름 최고기온 경신 소식이 이젠 낯설지 않다. 2018년 폭염이 대표적이다. 공식적으로 41도(강원도 홍천군)를 기록할 당시, 폭염과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등의 용어들이 어지럽게 통용됐다. 요즘도 푹푹 찌는 열기가 며칠째 이어지면 내일은 또 얼마나 더울지 걱정부터 앞선다.2018년 폭염이 진짜 두려웠던 이유는 매일 쏟아지던 비극적 뉴스 때문이었다. 오늘은 또 몇 명이 열사병과 사투를 벌이며 쓰러질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시기였다. 밭일을 하다가,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택배 배달을 하다가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생업에 종사하며 열기에 쓰러져갔다. 자연재해는 사회구조상 가장 약한 고리부터 끊어낸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리어카를 끌고 폐지 줍던 노파와 공사장 인부의 사망 소식은 한없는 무기력감을 안겨줬다.요즘도 폭염과 가뭄으로 낙동강 녹조발생이 잦아진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된다. 당장은 낙동강을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이들의 피해로 국한되겠지만, 결국은 낙동강 변에서 농사짓고 낚시하는 이들과 낙동강 주변 생태계 전체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시선을 바다로 돌리면 산적한 문제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고수온으로 인한 양식장의 피해가 대표적이다. 여름바다의 고온현상은 일상이다. 가두리양식 대표 어종인 넙치의 경우, 25도 안팎의 수온에서도 거뜬히 살아있다고 한다. 한때 수온 25도씨는 마(魔)의 경계였지만 환경적응을 통해 생존력을 높인 것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넙치의 생존력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바다수온이 높아지고 있다.집단폐사 소식도 낯설지 않다. 고수온의 변동 폭은 생존과 폐사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인 셈이다. 갯녹음 현상도 눈에 띈다. 드론으로 촬영한 연안해역의 암반지역은 흰색 투성이다. 해조류가 사라지고 석회조류가 붙은, 일종의 바다 사막화 현상이다. 바다 생태계는 석회조류를 통해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어떤 형태로든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절실한 움직임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블루카본(blue carbon)이다. 블루카본은 간단하게 말해 해양과 연안 생태계에 의해 포집되는 유기탄소로, 맹그로브와 해초류 등이 여기에 속한다.맹그로브 등은 해양탄소 흡수원으로 육상 식물에 비해 탄소 격리율이 높아 열대 우림의 동일 면적당 2~4배 많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IPCC(유엔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이 같은 블루카본의 온실가스 저감기능을 확인, 2013년부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공식적인 탄소 감축원으로 인정했다.블루카본 생태계가 탄소저감을 일으키는 효율 역시 엄청난 것으로 알려졌다. 맹그로브 등 블루카본 생태계는 해저면적의 1% 가량이지만 블루카본의 50%이상, 많게는 70%까지 차지한다고 한다. 특히 2050탄소중립을 선언한 우리나라는 해양탄소흡수원인 블루카본 생태계가 절실한 상황이다.다만 한국은 IPCC에서 인정한 맹그로브와 해초류 등의 서식지 분포는 적은 편이다. 대신 해조류와 산호초, 미세조류, 갯벌 등이 많아 이들의 IPCC 국제인증 작업이 필수적이다. 해조류와 산호초 등이 블루카본 흡수원으로 인정받게 되면 우리나라의 탄소배출 감축량을 늘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기후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정현미작가 이에 현재 해양수산부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제1차 갯벌 등의 관리 및 복원에 관한 기본계획’을 통해 갯벌생태계복원에 나서고 있다. 실제 2020년에 진행된 블루카본 평가체계 구축 및 관리기술개발에 따르면, 우리나라 갯벌은 매년 26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있으며 이는 자동차 11만 대가 배출하는 양과 비슷하다고 한다.한편, 동해안에 많이 서식하는 해조류와 산호초 역시 블루카본 흡수원이지만 공식 인정은 받지 못하고 있다.특히 해조류의 탄소흡수원 연구가 미약한 상황이라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얼마 전에는 ‘제주형 블루카본’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제주연구원은 ‘제주형 블루카본’ 대상으로 해초류와 염습지, 해안사구, 해조류와 패류를 선정하고, 연간 8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앞으로도 블루카본 생태계에 관한 다양한 연구와 활용 방안들이 소개될 것이다. 이로 인해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 발생 빈도를 낮출 수는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이제 생사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에 대한 장기적인 혜안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2-08-10

다리, 잇다

양태순수필가 여름을 이고 가는 여행이다. 집을 떠나면서 잡다한 생각을 구겨 넣고 문을 잠갔다. 따라오지 못하게 빗장까지 질렀다. 태양이 조각조각 쏟아져 대지를 굽는 열기에 코끝이 후끈해도 짜증이 나지 않는 것은 기분 탓일 거다. 잠시 일상으로부터 비켜서는 홀가분함에 마음이 부푼다.목적지는 신안 퍼플섬이다. 가고 오는 길이 멀지만 더 늦기 전에 다녀오자는 말에 친구들이 기껍게 찬성했다.차가 출발하자마자 수다가 폭발했다. 학교 때의 친구라 서로의 친구가 겹치기도 해 이야기의 소재는 풍성했다. 때로는 서로의 수다가 허공에서 얽혀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샘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과거에서 현재를 넘나드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흥미진진했다. 간간이 튀어나오는 고향 사투리가 이야기를 더 찰지게 녹여냈다. 이야기의 대상이 들으면 언짢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사는 것이 이 맛이라는 듯 웃으며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훌쩍 지나 천사대교에 이르렀다.천사대교는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다리로 신안군이 천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특성을 반영한 이름이다.입구에서 본 다리는 장관이었다. 다리의 주탑에 연결된 케이블은 은실로 짠 주렴처럼 아른거리고 바다와 하늘 사이로 천천히 달리는 차가 천사 날개를 지날 때는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듯했다. 파란 물을 잔뜩 머금은 하늘을 콕 찔러보고 싶은 아찔한 설렘이었다.몇 개의 짧은 다리를 더 지나 퍼플섬에 도착했다. 안좌도, 만월도, 박지도로 연결된 다리는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보라색 일색인 집과 건물들이 빚어내는 풍경은 신비스러웠다.보이는 곳마다 포토존이어서 그곳에서 만난 여행팀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추억을 쌓았다. 전동차를 타고 반월도를 둘러보는 내내 길가에는 버들 마편초가 한들거리며 반겨주었다. 원래는 자생하는 도라지꽃이 많아서 퍼플이었지만 지금은 오래 볼 수 있는 버들 마편초로 바꾸었다고 한다.비탈진 밭에는 고구마와 참깨가 많았다. 참깨를 보며 꺼낸 친구 이야기가 대박 사건이었다.들어보니 참깨를 받은 사돈이 전화를 해서 ‘사돈, 방앗간에서 중국산이 섞였다는데 아니지요?’ 했더니 ‘사돈이라서 중국산을 쪼매만 섞었니더’ 했단다. 솔직한 사돈 때문에 우리는 기막혀하면서도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퍼플교를 걷는 내내 포즈 잡으며 시시한 이야기로 깔깔거렸다. 그러는 동안 서로를 향한 다리는 더 단단해졌다.다리는 사이를 이어준다. 뭍과 섬, 섬과 섬, 길과 길,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게 한다. 이미 열린 길을 거리는 더 가깝게 마음은 더 두텁게 해주는 역할이다. 다리가 오래도록 튼튼하려면 오가는 이의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이번 여행은 새 다리를 놓기도 했다. 내 마음에서 신안으로 퍼플섬으로 다리를 놓았다. 많은 다리를 지나며 쌓은 이야기들이 기억 저장고에서 반짝이고 있을 게다. 언제든 꺼내면 2022년 여름과 함께 아련한 시간으로 피어날 것이다. 방송에서 또는 다른 사람의 여행 경험담에서 희미해진 다리가 다시 진해지기도 할 테지만 말이다.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는 자칫 끊어지기 쉽다. 사소한 실수가 쌓이거나 친하다고 번번이 예의를 무시하면 그 틈으로 의심의 물이 스며든다. 추억으로 이어진 줄에 어느덧 구린내가 날 때면 위험한 순간이다. 재빨리 귀를 세우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자만에 빠져 눈치코치 모른다면 자기도 모르는 새 다리는 없어지고 만다.아름다운 다리를 건넌 친구들과의 다리는 더욱 견고해졌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서로의 마음을 잇는 다리를 덧대고 삐걱대지 않도록 속마음 헤아리기와 배려란 기름칠을 꼼꼼하게 했다. 같이한 세월만큼 우정도 추억도 돈독해지는 너와 나, 우리의 다리가 오래 이어질 것을 믿는다.친구들, 참깨에 중국산 참깨는 섞으면 안 된다. 그것만 명심하자.

2022-08-10

여당 비대위체제… ‘先公後私’ 마음 가지길

국민의힘이 지난 9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이준석 대표와 친윤계 간의 극심한 갈등 끝에 윤석열 정부 100일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비대위를 출범시키는 상황까지 간 것이다. 비대위 위원장은 대구에서 5선을 한 주호영(63) 의원이 임명됐다. 주 의원은 판사 출신으로 별명이 ‘스님’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도를 걷는 인물이다. 2020년 21대 총선 직후 원내대표를 맡아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함께 총선 패배 이후의 당을 안정시킨 경험이 있다. 주 위원장은 이번에 또다시 난파선과 다름없는 국민의힘을 명실상부한 수권정당으로 수습하는 책임을 지게 됐다. 비대위 최대 현안은 두말할 필요없이 당 구성원 간의 갈등과 분열을 조속히 해소시키는 것이다. 지금처럼 윤핵관을 중심으로 한 당 중진들이 계속 권력투쟁을 하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의힘은 2년후 총선을 앞두고 좌초될 수밖에 없다.일단 주 위원장이 이준석 대표 체제에서 출범한 당 혁신위원회를 지속시키겠다고 밝힌 것은 국민에게 신뢰감을 준다. ‘공천시스템’을 비롯해서 차기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 꾸려진 혁신위는 당의 외연확장을 위해 꼭 활성화돼야 하는 기구다. 윤핵관을 향해 “현 상황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비대위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은 것도 잘한 일이다.대표직에서 자동해임된 이준석 문제와 관련해서 주 위원장이 “빠른 시간 안에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주 위원장이 이 대표와 만나 어떤 타협점을 찾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문제는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매듭을 지어야 한다. 현 분위기로는 윤 대통령이 먼저 이 대표에게 손을 내밀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면, 이 대표가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준석 대표는 오세훈 서울시장도 언급했듯이, 선공후사의 마음으로 자중자애해야 할 때다. 당의 비대위체제 전환에 대해 부당하고 억울한 감정을 누르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현재 이 대표와 가까운 사람들도 모두 ‘자중하라’고 말리는 상황이 아닌가. 이 대표가 여기서 더 나가면 당의 혼란은 수습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2022-08-10

침수차량 피해 줄이는 법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110년만의 사상 최대 폭우로 물폭탄을 맞은 서울에서 침수차량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차량 침수피해를 줄이기 위해 행동요령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먼저 침수가 예상되는 지역은 우회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물이 불어난 구간을 불가피하게 지나야 한다면 변속을 피하고 저속으로 주행하는 것이 좋다. 시속 5~10km 미만의 속도로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다. 변속 과정에서 머플러 배기로 물이 유입될 수 있다. 도로 위에 불어난 물이 바퀴의 반 이상 높이라면 해당 구간은 피하는 게 좋다. 통상 자동차는 50cm 내외의 물웅덩이를 지날 수 있도록 방수처리 한다. 전기차도 가장 중요한 배터리를 포함해 주요 전원부를 방수처리 한다. 감전 등의 우려는 없지만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는 게 좋다. 특히 불어난 물로 주행 중인 차량의 엔진이 꺼질 경우 절대 시동을 걸면 안 된다. 침수차에 시동을 걸면 엔진 내부로 공기가 아닌 물이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유입된 물은 주변의 전자부품까지 손상시켜 엔진을 교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자칫 1천만원 이상의 수리비가 발생할 수 있다. 만일 차량이 침수됐다면 수해차량 특별정비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를 활용하면 수리비의 최대 50%까지 할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는 자연재해로 피해를 본 고객을 대상으로 10월 말까지 ‘수해차량 특별정비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대차그룹은 연말까지 수해차량 수리비를 최대 50% 할인하기로 했다. 르노코리아자동차는 9월 말까지 호우 피해 고객 관련 특별 서비스를 제공한다. 피해 고객은 보험수리 시 자기부담금(면책금)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다. 천재지변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8-10

수도권 강타한 폭우, 대구·경북 남의 일 아냐

서울·경기 등 수도권과 강원지역에서 8, 9일 이틀 동안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16명이 실종 또는 사망하고 수많은 재산 피해를 냈다. 서울에서는 한달동안 내릴 비가 하루 만에 쏟아지면서 중랑천 등이 범람하고 산사태도 발생했다. 지하철 일부 구간의 운행이 중단됐나 하면 도심이 마비되면서 시민들은 출퇴근길 교통대란을 겪어야 했다. 경기도와 강원도 곳곳에서도 통행이 통제되는 일이 빈발했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의하면 10일 오전 현재 사망자 9명을 포함 16명이 사망·실종됐으며 398세대 570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주택상가 2천676동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피해 규모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역에 내린 강수량은 1907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115년 만에 최고라 한다. 지구촌 기후변화로 이 같은 기록적 폭우는 앞으로 갈수록 잦아질 가능성이 크다. 기후변화 시대에 대응할 새로운 재난대책이 절실하다. 대구지방기상청은 중부지방에 집중적으로 폭우를 쏟아낸 정체전선이 남하해 대구·경북 지방에도 11일까지 20∼200mm의 비를 내릴 것으로 예고했다. 기후변화를 동반한 폭우에 대비해 일선시군의 빈틈없는 준비가 필요하다.대구에서는 2010년 집중호우로 금호강변 노곡동이 침수돼 마을주택 140가구가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작년 7월 11일에는 달성군 일대에 시간당 49.5mm의 비가 쏟아지면서 구지면 도동터널 사면이 유실되는 일도 있었다. 경북에서는 2020년 태풍 하이선과 마이삭으로 영덕과 울진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 추석을 전후해 해마다 발생하는 가을 태풍이 올해라고 오지말라는 법이 없다.자치단체들은 긴장감을 갖고 호우에 대비해야 한다. 수도권 사례에서 보듯이 반지하주택 등 취약계층이 살고 있는 곳에서 먼저 피해가 발생한다. 관내 중 취약한 주거시설과 산사태 위험지구, 상습침수 지역에 대한 사전 점검은 필수다. 또 재난사고에 대비한 제반 사항을 면밀히 점검하고 현장관리를 강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예산도 확보해 두어야 할 것이다. 유비무환이다.

2022-08-10

완벽한 평소에 위기를 상상해야

장규열 한동대 교수 물난리가 났다. 여름 가뭄을 탓하며 기다리던 비였는데, 하루저녁 쏟아부은 물 폭탄은 문명이 쌓아 올린 도시를 어려움에 빠뜨렸다. 인간의 똑똑함이 자연의 손아귀에 다시 한번 장난감이 되어버렸다.신참 교수로 부임했던 미국대학에서 열정과 기량을 펼치며 열심히 일하리라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다른 나라 출신 교수가 끼어들어 무엇 하나 할 일이 없어 보였다. 한 선배 교수와 마주 앉아 낙담한 내용을 고백했더니 돌아온 충고는 나름 충격이었다. ‘그래도 더 좋게 바꿀 일이 분명히 있을 게야(You can always make it better)’ 할 일은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없다면 생각하면 없다.위기를 지나며 생각을 한다. 인간은 보기보다 게을러서 어려움을 꼭 겪어야만 무엇이라도 집중해서 궁리하고 의미있게 바꾸곤 한다. 치수관리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했고, 더욱 많은 예산을 들여 대비했어야 하는 등 허점들이 이제는 보인다. 전문가들의 지적질에 이제 귀가 열리고 보통 사람들의 질곡이 드디어 조금씩 보인다. 자연이 안겨주는 어려움이긴 해도 사람이 준비하는 데에 따라 얼마든지 고난의 강도와 밀도를 조절할 수 있다. 어려움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려워도, 경험과 과학의 지혜를 모아 준비하고 훈련하여 다가올 고통을 최소한으로 제어해야 한다. 정작 위기에 봉착하여 피해와 복구에 임하려면 일의 순서와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아 실패와 패착을 거듭하기 마련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여 평화로울 때 오히려 위기를 걱정하며 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2017년 가을, 평온했던 포항에서 지진을 만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지진의 충격 앞에 교수와 학생들은 미리 알고나 있었던 듯 모두 건물을 신속히 벗어나 중앙운동장으로 모여들었고 흥분과 불안 가운데 다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자칫 공포와 전율로 아수라장이었을 지진의 충격을 무사히 겪어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였을 평소에 위기를 생각하며 준비한 덕이 아니면 무엇이었을까.휴가와 여행의 즐거움으로 들뜬 승객들에게 비행기 탑승 후 첫 경험은 객실승무원의 ‘위기대피요령안내’가 아닌가. 완벽해야 할 그 순간에 왠지 어색한 상상마저 하게 하지만, 아무도 승무원을 탓하지 않는다. 위기는 평소에 지켜야 한다. 위기를 닥치면, 언제나 늦다.위기가 가져올 위험을 잘 견뎌야 하지만, 위기를 지나면서 건져 올릴 기회는 혹 없을까. 그렇게 많은 물 때문에 모두 힘들었지만, 그 물을 붙들어 활용할 방법은 혹 없었을까. 별일 없어 보이는 완벽한 평소에 위기를 상상하고 해결책을 구상하며 남다른 실력도 길러야 한다.위기를 상상하는 준비태세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군인과 공무원 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완벽한 평소에 극심한 위기를 상상하며 준비하는 태도를 지닐 때, 사회와 공동체는 상생과 협력, 공감과 배려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젖어들지 않을까. 다가올 어려움의 언덕을 함께 넘을 용기와 기백으로 나라는 든든해지지 않을까. 완벽한 평소에 위기를 만나야 한다.

2022-08-10

삶에 질문을 던진다

김규인 수필가 김제시의 고위 공무원이 아들 카페 개업식에 직원들을 대거 동원하여 징계 처분받을 예정이란다. 그가 불러낸 시의 직원들은 카페서 과일을 깎고 청소하며 답례품 포장하였다.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을 사사로이 부리는 불공정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고 해석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사사로운 생각이 맨몸으로 사람들 앞에 서면 덕지덕지 묻은 욕심이 드러난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한 번만 더 돌아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물건을 살 때 유럽연합은 만드는 과정이 오염을 배출하지 않는 해가 적은 방식으로 만든 것만 산다. 만드는 과정이 문제가 있는 제품은 사지 않는다. 더 나아가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한 과정을 따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물건은 만든 사람의 격이 다른 삶의 철학을 품는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배경에는 그들의 성장 과정은 SNS를 통해 사람들과 공유한 데에도 있다. 땀 흘리며 연습하는 일과를 보여주며 팬들과 함께 성장한 것이다. 성공한 모습이 아니라 정상에 우뚝 서기까지의 모습을 나눈 사람들은 그들의 든든한 응원군이 된다. 솔직하고 성실하며 색다르게 접근한 그들의 진심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사람들은 늘 살기가 힘이 든다고 말한다. 살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것은 삶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삶이란 것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나타난다. 좋은 일은 기분 좋게 그냥 지나가지만 나쁜 일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힘든 기억으로 늘 삶이 힘이 든다고 말한다. 이렇게 물가도 오르고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는 세상의 끔찍한 일들은 사람을 메마르게 한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불안정한 상황도 나 혼자만이 겪는 어려움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렇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유모차에 폐지를 실은 할머니가 차가 달리는 도로 위에 섬이 되어 선다. 할머니를 본 오토바이 운전자가 급히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도로를 달리는 차량을 세워가며 안전하게 할머니를 건너편으로 건네준다. 오토바이 운전자의 선행이 우리를 흐뭇하게 한다. 현장을 지켜본 사람이나 기사를 읽는 사람들이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엄지를 치켜세운다.잘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뒤돌아본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지만,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말아야 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도 오토바이 운전자처럼 따뜻한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장관 임명 과정에서 과정의 문제로 낙마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 그러하다. 과정이 어떤가에 따라 평가받는 요즈음이다. 어떻게 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가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두 건의 일을 마주하면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 삶이 바쁘고 사회가 어려울수록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삶의 결이 다른 철학을 담고 싶다. 보다 밝은 내일을 위해.

2022-08-10

우영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묻다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극복해 나가는 자폐인 변호사의 성장과 사랑 스토리에는 특별함이 있다. 1%가 갖는 천재성이라고 하지만, ‘우영우’로 인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그런데 ‘우영우’를 자폐 장애의 관점에서만 보면 또 다른 핵심 주제를 놓칠 수 있다. 이는 주인공이 선배 변호사에게 냈던 고래 퀴즈와 유사하다. “22톤의 암컷 향고래가 500킬로그램의 대왕오징어를 먹고 1.3톤짜리 알을 낳았다면 이 향고래의 몸무게는 얼마일까요?” 이 질문의 정답은 “포유류인 고래는 알을 낳을 수 없다”이다. 무게에만 초점을 맞추면 문제의 핵심을 놓친다는 것이 퀴즈의 의도이다. 해법을 찾기 위한 프레임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우영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프레임으로 볼 때 주제가 더욱 명확해진다. 이 드라마에서는 ‘서울대’라는 실제 명칭이 유독 강조되고 있다. 또한 서울대 출신 등장인물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주인공과 그녀의 부모, 소속 로펌의 대표와 주요 변호사들이 모두 서울대 동문이다. 어린이해방군 총사령관을 자처했던 인물도 서울대를 나왔다. 이 드라마에서 서울대는 사회의 상층을 형성하고 있는 엘리트 집단을 상징하고 있다.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특혜와 책임’이란 책에서 분석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상층은 1만5천여 명 정도이다. 전체 인구 대비 약 0.03%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송 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상층은 있는데 상류사회가 없고, 고위직층은 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다고 일갈한다. 그 전형적 예로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정치인, 관료, 법조인 등을 들고 있다.‘우영우’에서 서울대는 왜 에둘러 지칭되지 않았을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덕목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을 수 있다. 그 중심에 서울대 로스쿨 수석 졸업자이자, 자폐인 변호사인 우영우가 있다. 장애인의 핸디캡을 극복해 나가면서 그녀는 변호사의 도덕적 책무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는다. 이 드라마가 강조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양쯔강돌고래’편에서 주인공은 대형 로펌 변호사로서 사회적 강자를 주로 변호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고민한다. 우 변호사는 상대편 인권 변호사를 바다가 아닌 강에서 살다가 멸종된 양쯔강돌고래처럼 느낀다. 그렇지만 멸종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함께한 자리에서 그 변호사는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을 낭송한다. 이 시에는 변호사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질문의 답이 암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우영우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해 묻는 질문은 현실의 사회 지도층에게도 부여되는 것이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는 시구에서부터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우영우의 질문은 천재성이 아닌 진정성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우영우 현상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상류층의 자각과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2022-08-10

‘측근정치인’이 윤대통령에겐 毒이다

심충택 논설위원 비대위 상황까지 갈 정도로 심각해진 국민의힘 내분의 본질은 ‘권력투쟁’이다. 제22대 총선(2024년)을 2년여 앞두고, 공천권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당·정 지도부간의 파워게임이 여당의 중병(重病) 원인인 것이다. 어제(9일) 당 대표직에서 ‘자동해임’된 이준석의 경우,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의 총선공천 개입을 막기 위해 무리하게 혁신위를 가동시키려다 당에서 밀려나는 신세가 됐다. 지난 6월 3일 혁신위원장으로 선임된 최재형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어떤 개인의 힘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예측 가능한 공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언급한 것이, 헤게모니전의 대략적인 분위기를 말해준다.이준석의 대표직 해임으로 여당 혁신위원회는 이제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물론 이준석이 시도하려던 차기총선 ‘시스템 공천’도 좌초된 것과 다름없다. 이준석의 축출은 당 개혁주체의 실종, 그리고 윤핵관의 세상이 됐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당내 상당수 인사들이 윤핵관을 향해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국민의힘 김근식 전 선거대책위 정세분석실장은 “윤핵관들이 스스로 2선 후퇴하는 결단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진정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일 것”이라고 최근 말했다. 구체적으로 윤핵관의 핵심인물인 권성동 원내대표는 비대위가 출범한 만큼 최소한 원내대표 재신임 절차는 밟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엊그제 고용노동부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권 원내대표 선임보좌관 출신을 임명한 것도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시절 비서실장을 맡아 인사 업무에 관여한 장제원 의원도 대통령실 인사실패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만약 윤핵관들이 당 내분에 대한 반성없이 비대위체제 구성이나 차기 공천권 주도권을 행사할 움직임을 보인다면, 국민의힘은 파산될 가능성이 크다.지금은 윤 대통령이 직접 여당이 처한 총체적 난맥상을 극복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설 때다. 윤 대통령의 최대 리스크가 여당이기 때문이다. 이 리스크 소멸이 바로 대통령 국정지지율 반등의 해법이다. 윤 대통령은 당과의 관계를 설정할 때 항상 차기 총선에서 민주당이 또다시 다수당이 될 경우를 상상해 봐야 한다. 아찔한 생각이 들면서 민심을 살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서둘러 할 일은 대통령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며 민심을 갉아먹는 인사들을 과감하게 내치는 것이다. 대신 외연확장을 위해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당내 인사들에게 지도부를 맡겨야 한다. 이미 구성돼 있는 당 혁신위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윤 대통령은 이제 야당에게도 협조를 구할 때가 됐다. 야당의 합리적인 요구는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야권인사를 내각에 과감하게 중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만약 전면적인 쇄신 조치 없이 이 상황을 적당히 넘기겠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윤 대통령은 집권 초반 이런 문제가 불거진 것을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만들어야 한다. 수습하고 보완할 시간은 충분히 있다.

2022-08-09

대구 디지털산업 혁신거점 육성 기대감 높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기자들과 만나 “대구 수성알파시티가 디지털산업의 혁신 거점으로 육성될 것”이라고 밝혔다.홍 시장은 이와 관련해 과기부 차관이 이달 말 대구에 내려와 상세한 내용을 밝힐 것이며 현재 알려진 바로는 2030년까지 대구 수성알파시티에 2조2천억원을 투자해 대구를 국내 ABB(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분야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ABB는 대구시가 집중 육성하려는 5대 미래산업(UAM, 반도체, 로봇, 헬스케어, ABB) 분야의 하나다. 과기부 발표에 따라 향후 추진과정 등이 세세히 밝혀지면 대구 관련 산업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ABB산업은 제조업 분야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핵심적 촉매기술로 알려져 지역 제조업계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야다. 무엇보다 2조2천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됨으로써 파생할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홍 시장은 애초 디지털진흥원(DIP)을 대구테크노파크에 통폐합할 예정이었지만 ABB산업 육성을 담당할 DIP의 존치를 과기부가 요청함에 따라 통폐합 대상에서 제외시켰다고도 밝혔다. 수성알파시티는 전국적으로 경기도 판교에 버금갈 만큼의 입지가 좋은 곳이다. 수성알파시티를 ABB산업의 메카로 육성하겠다는 과기부의 생각은 산업입지를 떠나 국가균형발전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다행히 대구의 수성알파시티는 입지가 좋아 관련기업의 유치에도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대구 5대 미래산업은 향후 대구시민이 먹고 살아갈 전략적 산업이다. 신공항과 연계할 UAM(도심항공교통)과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유치로 발판을 마련한 로봇산업에 이어 ABB산업에도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다면 대구는 산업재편 효과와 함께 일자리도 많이 창출될 것이다.미래 먹거리인 ABB 산업의 혁신적 성장을 위해선 차근차근한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체계적인 인재양성에 신경을 써야 한다. 대구경북 지역 내 많은 대학과 연계해 ABB 인력을 양성하는 노력을 지금부터 병행해 나가야 한다. 수성알파시티에 디지털 인재가 모이면 지역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2022-08-09

쇄신론

우정구 논설위원 쇄신(刷新)의 사전적 의미는 “나쁜 폐단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혁신(革新)과 비슷하나 혁신이 기존의 제도나 습관 등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 본다면 쇄신은 주로 조직의 사람이나 기구의 구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정치 체제나 사회 제도 같은 것을 뜯어고친다는 뜻의 개혁(改革)도 비슷한 용도로 함께 쓰이고 있으나 개혁은 합법적으로 바꾸어갈 때 쓰는 말이다.쇄신이든 혁신이든 개혁이든 모두가 잘못된 관습이나 조직과 사람 등을 바꾸는 데 목적이 있다. 그 결과는 조치 이전보다 훨씬 좋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어록 가운데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치열한 국제 경쟁사회에서 세계 일류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한 조직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그의 혁신 의지를 드러낸 대목이라 하겠다.이처럼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기업이든 개인이든 새로운 도약을 꿈꾸기 어렵다. 기술의 고도발달로 세상이 급변하는 지금은 눈 깜짝할 사이 일류와 이류가 자리를 서로 맞바꿀 수 있다.정치도 마찬가지다. 사회 전반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는 변화와 쇄신을 거듭해야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휴가 후 복귀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 지지율 급락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처방이 궁금해서다.윤 대통령이 어떤 쇄신책을 내놓을지 알 수 없다. 역사적으로 나라의 안정은 민심을 떠나 존립할 수 없었다. 쇄신도 국민의 마음에서 출발해야 성공하는 법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8-09

포항, 배터리산업 선도도시로 인정받았다

포항시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가 전국 29개 특구 중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내 3년 연속 우수 특구로 지정됐다. 배터리 리사이클(재활용) 산업은 폐 배터리를 분해한 다음 순수자원(리튬·니켈·코발트·망간 등)으로 다시 쓰거나,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재활용하는 방법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분야다. 앞으로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배터리 수명이 평균 10년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이 산업의 경제적 전망은 밝은 편이다. 포항시는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지난 2019년부터 배터리(이차전지)산업의 핵심기업인 에코프로, 포스코케미칼, GS건설 등으로부터 3조3천972억 원의 투자유치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배터리 리사이클링 산업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중앙부처(중소벤처기업부, 기재부, 환경부) 공무원들의 발길도 잦다. 특히 지난해 포항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에 들어선 ‘이차전지 종합관리센터’는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의 수거·보관·성능검사·등급분류 등의 종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 우리나라 이차전지 리사이클링 산업의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포항시는 앞으로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자원순환 클러스터 조성사업과 ‘인라인 자동평가센터’ 구축사업도 순차적으로 추진해 포항을 명실상부한 국가 배터리 자원순환의 허브지역으로 만들 계획이다. 포항에는 현재 이차전지 산업의 주요기업이 모두 들어서 있는데다, 포스텍(전문연구인력 양성), 방사광가속기 연구소(배터리 소재 RD 기관), RIST 이차전지소재연구센터, 나노융합기술원 등 배터리산업의 인프라가 타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하게 구축돼 있다. 포항시는 향후 ‘이차전지 인력양성 플랫폼’을 따로 구축해 산업 현장인력을 배출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정부는 포항시가 갖춘 이러한 배터리 산업 인프라를 활용해서 ‘청년 일자리 창출’의 모델도시로 집중 육성할 만하다. 포항시가 정부지원을 받아 배터리산업 분야 일자리를 대거 마련하고, 이에 맞춰 현장인력도 배출할 경우 청년들이 머물기를 원하는 비수도권 도시의 모델이 될 수 있다.

2022-08-09

슬픈 우승과 나가사키 팻맨, 그리고 진정한 광복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그대들의 첩보를 전하는 호외뒷장에 /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못할 감격에 떨린다! / 이역의 하늘아래서, 그대들의 심장속에 용소슴 치던 피가 / 이천삼백만의 한사람인 내혈관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듯 찢어질듯. / 침울한 어둠속에 짓눌렸던 고토의 하늘도 / 올림픽의 거화를 켜든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한자만 한글로 바꾸고 원문 그대로 옮김)1936년 8월 11일자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심훈의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마라톤에 우승한 손, 남 양군에게-’ 1연과 2연이다. 시가 실리기 이틀 전인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남승룡 선수가 동메달을 땄다. 이 소식은 신문 호외로 식민지 조선 전역에 바로 퍼져나갔다. 내선일체를 내세운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절망으로 내리닫던 조선 백성들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기쁜 소식이었을 터. 소설 ‘상록수’와 시 ‘그날이 오면’을 쓴 심훈 역시 이날의 감격을 호외종이 뒷면에 시로 쏟아냈다.그러나 기쁨을 만끽해야 할 우승자 손기정은 정작 그러지 못했다.“나는 이기었습니다, 2시간 29분 19초 2의 올림픽 신기록이었습니다.…. 언덕에 다다르니 우리나라 일장기가 나를 응원하여 주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 승리는 결코 내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전 우리 일본 국민의 승리라고 할 것이외다.” 우승 당시 그의 인터뷰 내용이다. ‘일장기의 응원, 일본 국민의 승리’를 말하는 목소리에서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듯한 슬픔이 역력히 느껴진다. 실제로 인터뷰 중간에 “크게 읽어.”라고 강요하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있다.우승 직후 손기정은 친구에게 엽서 한 장을 보낸다. 올림픽 마크가 그려진 엽서에는 “슬푸다!!?”라는 단 한마디 말이 느낌표 두 개, 물음표 하나와 함께 적혀 있을 뿐이다. 올림픽에서 우승했지만 한국(대한제국)인이 아닌 일본인 ‘기테이 손’으로, 가슴에는 일장기를 달고 시상대 위에 서야 했던 심경이 이 엽서에 처연히 담겨 있다. “내 소원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손기정으로 기억되는 것이다.”라고 한 손기정은 해방 후 올림픽 공식 기록의 국적과 이름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손기정의 ‘슬푼 우승’ 9년이 흐른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팻맨(Fat Man)’이라는 이름의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히로시마에 첫 번째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투하된 지 사흘 뒤의 일이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다음 날인 8월 10일 일왕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 의사를 표했다. 그리고 8월 15일. 우리는 광복을 맞았다.며칠 전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그의 방한에 따른 대통령과 국회의 의전에 대해 말들이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놓인 우리의 미묘한 처지가 노정된다. 이제 일장기를 달 일은 없다. 태극기 아닌 그 어떤 것도 우리 가슴에 달려서는 안 된다.오늘 다시 진정한 광복을 생각한다.

2022-08-09

억지관객

조현태수필가 얼마전 양동민속마을에 국악공연이 있었다. 오후 7시에 공연을 시작하는데 4시 경에 도착하여 장비와 소품들, 음향에서 조명까지 부산하게 움직였다. 체험관 마당이 제법 넓은데 마당에 의자를 가득 늘어놓았다. 오후 7시면 관광객은 거의 없고 양동 마을사람들뿐인데 관객이 얼마나 될까 걱정스러웠다.필자는 관람료를 지불해가며 공연을 찾아다니기도 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무료공연을 한다니 놓칠 수가 없었다. 각종 장비와 시설을 배치한 후 최종 리허설을 하면서부터 필자는 휴대폰으로 동영상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대단히 기대를 하며 앞자리에 앉아 본 공연을 기다렸다. 예상보다 많은 관객이 모여서 빈 의자가 없었다. 알고 보니 마을 이장이 미리 공연한다는 방송을 했는가 보았다. 이런 공연이 자주 있는 마을이라 웬만하면 주민들이 거의 다 참여하는 모양이다. 드디어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필자는 이때부터 실망하기 시작하여 마칠 때까지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선 공연 시각부터 관광객이 아무도 없는 저녁시간이다. 이왕이면 관광객도 함께 공연을 보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 양동마을 심수정에서 잠깐 국악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공연과 별 차이가 없었다. 똑같은 내용으로 한 마을에서 다섯 차례나 공연한다면 그 공연의 가치가 기립박수를 받을만한 공연인가 하는 생각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마을에서 행해지는 행사라서 마을 주민들이 마지못해 참여하는 인상을 강하게 느꼈다. 더구나 사회자는 틀에 박힌 듯한 강요를 연거푸 했다. 제청을 해야 한다는 둥, 추임새를 큰 소리로 넣어달라는 둥, 주민들이 외치는 추임새나 박수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둥, 그러면서 연습 삼아 ‘얼쑤’, ‘좋다’ 등을 따라하게 한다. 이건 아니라고 본다. 공연을 잘 하면 저절로 환호성과 함께 박수갈채가 나오지 않던가. 추임새나 박수를 강요하고 연습한다고 공연의 질이 좋아지는가 하는 질문을 하고 싶다.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공연자들은 국악 분야 예술인이다. 그런데 6월 18일부터 10월 22일까지 기간에 14차례나 공연한다는 프로그램 일정이다. 이 예술인들이 공연비 한 푼도 받지 않고 그 많은 일정을 즐겁게 소화할 수 있을까? 이러고도 공공기관은 문화도시, 예술의 고장으로 경주를 자랑할 것인가. 짐작컨대 관에서 적당한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 가능하다고 본다. ‘사랑이로구나’하는 타이틀의 경주국악여행 프로그램은 허울뿐이고 유명무실한 이벤트에 불과하지는 않는지 고민해볼 일이다. 어쩌면 마을 주민뿐인 관객이기 다행이지 예술에 관심 많은 관광객이 이러한 공연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다.어차피 공공재원을 들여 이벤트를 하려면 차라리 관광객이 붐비는 낮 시간대에 관객과 함께 어우러져 즐길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하회마을의 탈춤처럼 사물놀이나 농악 같은 프로그램으로 관객도 참여하여 어우러지면 더 문화적이지 않을까. 관객의 자세를 강요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재미있고 신이 나면 칭찬하고픈 마음이 자동적으로 생기지 않을까 한다.

2022-08-09

트렌드, 욕망의 획일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기가 엄청나다. 예정된 수순으로 촬영지도 덩달아 인기다. 이럴 줄 알았다. ‘우영우 팽나무’가 있는 경남 창원 동부마을이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드라마 속 팽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도로 개발 계획에 의해 사라질 뻔한 마을을 구해낸다. 소박한 시골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 크고 울창하게 서 있는 500년 수령의 나무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우르르 몰려갈 일인가 싶다. 하루에 수백 명씩 찾아오는데, 농기계가 다니는 좁은 이면도로에 함부로 주차를 해놔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중이다. 주차뿐이겠나. 안 봐도 뻔하다. 쓰레기에 소음에 담배에…… 온갖 꼴불견일 거다.벤야민이 말한 ‘아우라’는 “어떤 사람이나 장소에 서려 있는 독특한 기운.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성”인데, 미디어가 발달한 기술복제시대에는 실제 현장보다 영상이나 사진이 오히려 아우라를 갖는 반대 국면이 펼쳐진다. 영상기술로 표현해낸 드라마 속 팽나무의 아름다움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 팽나무는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상상계의 기표가 된다. 드라마 속 ‘소덕동 팽나무’와 현실의 ‘동부마을 팽나무’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는 것이다.대중에겐 받아들이는 문화만 있고, 창조하는 문화는 없다. 대중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때, 문화는 획일화된다. 채널만 돌리면 나오는 트로트 방송들이 대표적인 예다. 트로트가 싫은 게 아니라 여기도 저기도 온통 트로트판인 획일화가 짜증나서 티브이를 꺼 버린다. 남의 노래를 트로트 가수들이 뽕짝풍으로 부르는 것도 그만 듣고 싶다. 원곡은 영 들리지 않고, 조악하고 저급한 편곡만 판친다. 대중이 수동적이면 결국 개인의 독창성, 다양성, 개성 위에 집단적 유행이 군림하는 세상이 된다. 트렌드라는 것은 미디어의 생산자가 조작하기 쉽고, 그렇게 만들어진 유행은 사람들의 생각마저 조작한다.대중은 정보를 원하면서 정보를 얻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문화예술을 누리고 싶어 하면서 문화예술을 향해 스스로 나아가지 않는다. 똑똑하고 싶지만 지식을 탐구하진 않는다. 누가 만들어 놓은 것, 설명해둔 것, 기성품을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방송에 나온 제주도 돈까스집 앞에 텐트를 치고 밤새 기다리는 건 그래도 귀엽다. 규격화된 아파트, 무채색 세단, 연예인이 입은 옷, 성형수술, 남들 다 하는 거, 남들 보기 좋은 거, 남들이 부러워하는 거… SNS에는 비슷한 트렌드들이 전시되고, 사람들은 그것을 욕망한다. SNS를 도배하는 명품 가방, 브랜드 아파트, 비싼 골프채, 풀빌라에서 즐기는 호화로운 휴가, 주식 수익, 인맥 따위는 사회로부터 학습된, 타자화된 욕망들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의학 유튜브 채널이 권하는 식단으로 아침을 먹고, 국민 헬스 트레이너를 따라 운동하고, 점심엔 백종원 식당에서 밥 먹고, 오후엔 오은영 상담 방송을 보며 고개 끄덕이고, 저녁엔 인스타 맛집을 찾아다닌다. 인기 드라마를 보고, 채널을 돌리다 마감 임박 홈쇼핑 상품을 주문한다. 잠들기 전엔 인문학적 소양을 쌓기 위해 김창옥이나 최진기의 강연 방송을 보거나 정치 팟캐스트를 듣는다. 그럴 수 있다. 다만 이게 요즘 우리 사회의 표준 인간이라는 게 문제다.하루 동안 ‘생각’이라는 걸 스스로 하는 순간이 있긴 할까? 대중은 타인의 생각을 생각하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건 파스칼 시절 얘기다. 인간은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오직 갈대가 되어야만 생각한다. 하지만 대중은 갈대가 되길 원치 않는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건 여간 괴롭고 불편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스노비즘은 결국 주체에게서 개성과 취향, 주체성을 앗아간다. 욕망이 비슷해지면 생각도 서로 닮는다. 물신주의가 강한 지배력을 가진 사회일수록 대중들은 스스로 사유하는 대신 자본화된 욕망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미디어나 정치 선전에 쉽게 현혹된다. 획일화는 정신의 마비 상태다. ‘트렌드’라는 달콤한 이름 안에는 마약 성분이 있다. 인생을 흔히 여행에 비유한다. 스스로 지도를 펼쳐 걸어 나가는 여행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인생 전체를 단체 패키지 관광으로 만들 것인가?

2022-08-09

나를 더 잘 아는 방법

퇴사를 한 뒤의 나의 하루 일과는 단순해졌다. 여섯시 반쯤 일어나 물을 한컵 마시고 몸무게를 잰 다음, 냉장고 앞에 서서 아침은 무얼 먹을까 생각한다. 밤새 틀어놓은 선풍기 때문에 배가 차게 느껴진다면 따뜻한 국물 요리를, 요리하기 어려울 만큼 집이 너무 덥다면 가성비 좋은 식당에 가서 끼니를 해결한다.오전 여덟시쯤 되면 노트북과 안경 간단한 필기구를 챙겨 카페로 나간다. 그리곤 재취업을 위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를 손본다. 초중고 학교 이력, 각종 자격, 전에 어떠한 일들을 했는지 몇 줄의 문장들과 사진으로 나를 설명하다 보면 나는 과연 쓸모 있게 증명될 수 있는 사람인지 의구심이 든다. 그렇게 빈약한 이력서를 횡설수설 고치다보면 어느덧 오후 세네시가 된다.집으로 돌아가 간단한 식사를 하고 나면 문제의 ‘그 시간’이 찾아온다. 운동을 해도, 밀린 집 청소를 해도, 또는 새로운 게임을 하거나 좋아하는 지인을 만나도 무기력함과 지루함을 쉽게 감출 수 없다. 이렇게 일상이 희미하게 지워지는 것 같거나, 삶의 주도권이 어딘가에게 뺏긴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에는 나 자신을 철저히 객관화 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번아웃을 앓는 내게 작은 도움이 되고 있는 건 규칙적인 생활습관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리추얼 라이프란 생활 습관을 알게 되었는데 리추얼이란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으로, 일상 안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패턴을 뜻한다. 물 2리터 마시기, 일어나서 이불 정리하기 등 자신이 정한 생활 습관을 반복하며 나를 의미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전에 언급했던 ‘갓생 살기’의 목표 설정은 단순히 행할 수 있는 것과 그에 따른 성취감과 행복 추구였다면, ‘리추얼’은 반복적인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식화하는 습관’에 가깝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 물 한잔 마시기를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복 물 한잔에 의미를 부여하여 의식하고 정서적 활동을 더하여 나의 긍정적인 일상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리추얼 라이프의 실천을 돕는 플랫폼인 ‘밑미’는 구경만으로도 재밌다. 육아 일기 쓰기, 피아노 연주 기록, 주말 제철 식재료 요리, 플레이리스트 만들기 등 최소 6인에서 20명까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공통된 리추얼을 행하고 기록을 남긴다. 리추얼을 통해 나의 취향과 생각의 틀을 확고히 굳히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수행을 공유한다.성공이나 행복에 대한 강박은 내려놓고 내가 지루하다 생각하는 시간에 이름을 붙여주고, 키워드를 정해주다 보면 어느덧 긍정의 기운이 찾아온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시너지는 배가 된다.두 번째로 도움이 되었던 건 ‘갤럽 강점 검사’다. MBTI가 성격유형 검사라면 갤럽 강점 검사는 개인의 타고난 소질이나 재능을 알려주는 유료 검사다. 총 177개의 질문을 20초 안으로 대답해야 하고 총 검사시간은 35분이 걸린다.강점과 약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강점이 될 수도 있고,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쩔쩔 맬 때엔 약점이 되기도 한다. 나는 가장 첫 번째 특성으로 ‘공감’이 나왔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마치 나의 감정처럼 느끼고, 상대방의 감정을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특성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좋게 말하면 이해와 배려심이 넘치는 타입이라 볼 수 있겠지만 나는 공감이란 감정을 약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특히 사람이나 외부에 잘 동화되는 특성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가진 부정적인 기운을 그대로 흡수하여 나의 기분까지 흐트리는 경향이 있었다.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미안해서 곤란한 일을 맡을 때엔 혼자 도맡아 처리하기도 했다. 이러한 나의 강점을 잘 알아두면 해결책을 찾기도 쉬워진다. 긍정적인 시너지를 주고받는 사람들을 주위에 채워 영향을 주고받는 것과 일이 많은데 부탁해서 미안하지만, 이라는 대화로 선 공감 후 부탁을 요청하여 건강한 방법으로 해결해보잔 솔루션을 찾기도 했다.내가 가진 특성 중 어떤 것을 잘 활용해 볼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어떻게 적용시켜 볼지 생각하게 된 좋은 계기였다. 일과 관련된 방향과 삶의 전반적인 방향 또한 조금 더 뚜렷해 진 것 같아 마음의 짐이 조금 덜어졌다.

2022-08-09

아홉살 시선으로 도시·골목·가족 추억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벨파스트’는 북아일랜드의 수도이다. 영국의 서쪽에 위치한 아일랜드 섬. 그 섬의 북쪽 영국령에 속하는 지역이 북아일랜드다. 그곳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아일랜드 공화국이다. 16세기 잉글랜드 왕국의 핸리 8세에 의해 아일랜드가 점령당하게 되면서 원주민과 이주민,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이 시작된다.가톨릭을 믿던 아이리쉬(아일랜드인)와 잉글랜드인에 의해 전파된 개신교 간의 갈등은 지배와 피지배의 권력다툼과 맞물려 오랫동안 아일랜드에 갈등을 일으키고 피바람을 불게 했다. 중세부터 시작된 잉글랜드의 지배는 수백년간 이어졌고,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픈 상처를 남기게 된다.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4월 24일 부활절 봉기라 일컫는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이 시도되지만 봉기 주모자들은 영국군에 의해 진압된다. 이후 1차 대전이 끝난 직후 1918년 12월에 실시된 영국 총선에서 아일랜드인들은 중도 좌파연합인 신페인당에 압도적 승리를 몰아주었다. 부활절 봉기에서 살아남은 지도부들은 대거 신페인당에 입당해 당선되었다. 아일랜드의 다수당이 된 신페인당은 아일랜드 의회를 구성하고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한다.아일랜드 공화국은 영국 정부에 대항해 군대를 조직하고 영국에 맞선다. 1919년 1월 21일부터 시작된 전쟁은 1921년 7월 11일 휴전할 때까지 이어진다. 이후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 6개주를 제외한 남부 26개주를 자유국으로 인정한다는 앵글로-아이리쉬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그 이전까지 지속되었던 아일랜드 공화국 북아일랜드 통합은 사실상 폐기되었고 아일랜드의 분단은 고착회된 상태로 남게된다.영연방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 평화롭고 화려한 도시를 비추던 카메라는 담장을 넘으며 1969년의 벨파스트를 비춘다. 그곳에서 버디는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다니며 골목길을 누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행인들의 발자욱 소리, 아버지를 기다리던 공간이며, 엄마가 아이들을 부르던 일상의 공간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1969년 8월 15일 벨파스트에 사는 천주교도들이 참정권과 사회적 차별대우 등의 철폐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다.이 시위는 개신교도와 천주교도가 충돌하면서 유혈폭동으로 번져가게 된다. 영화 ‘벨파스트’는 그 시작점이 된 공간이며, 9살 주인공 버즈와 가족들, 친구들이 있던 일상의 공간이 변해가는 모습 속에서 펼쳐진다. 흑백의 영화는 소년과 그 소년을 둘러싼 공간들 속에서 펼쳐지는 불안한 상황을 철저하게 아홉살의 시선으로 담는다. 파괴된 일상과 시시각각 다가오는 폭력의 기운들이 소년을 둘러싼 집과 골목, 도시로 번져간다. 하지만 그 불안의 무게는 어른들의 몫일뿐 버디의 일상은 달리진 풍경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아홉살 소년에게 벨파스트의 골목은 그가 인식할 수 있었던 세계의 전부였고, 찬란하고 아름다운 일상의 공유 공간이었다. 달라진 풍경의 무게를 알 수 없었던 버즈는 그의 세계가 흔들리며 균열이 가고 가족들과 함께 영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익숙했던 모든 것들을 뒤로 해야한다는 것에 저항한다. 그것은 딱 아홉살 소년이 이해할 수 있었고, 견뎌야했으며 기억하는 만큼의 몸부림이었다.아홉살 때 벨파스트를 떠났던 케네스 브래너 감독. 그의 기억이 남았던 그때의 감각이 그 시절의 소년이 되어 펼쳐진다. 감독의 감각 속에서 1969년의 벨파스트는‘무채색의 도시’였으며‘색깔로 기억되어지는 건 영화’였다고 한다.그래서 ‘벨파스트’는 흑백영화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몇몇 장면들은 컬러로 표현되는 순간들이 있다.영화 ‘벨파스트’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이 어떻게 보편적인 추억으로 남는가를 보여준다. 한 공간의 추억이 한 도시의 추억이 되는, 역사 속에서 뜨거웠고 아팠던 도시의 추억을 회상하는 방식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는 영화라고 하겠다./(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2-08-08

그 길밖엔 없어 <Ⅴ>

허 형사에게 문자를 보내고 난 후 우현은 핸드폰을 차의 대쉬보드 위로 던졌다. 핸드폰은 앞 유리까지 미끄러졌다. 운전을 하고 있던 직원이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려 우현의 얼굴을 보았다.-운전이나 해.우현은 앞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앉아있었다. 비가 내렸다. 좌우로 움직이는 와이퍼 사이로 이정표가 보였다.-여기서 제일 조심해야 해. 올 때마다 헷갈린단 말이야. 한두 번 와 본 길이 아닌데 말이지. 오른쪽 왼쪽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180도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고. 알지? 우리는 직진이야, 직진. 그 길밖엔 없어. 언제더라? 지난번에 길을 잘못 들어서 고생했어. 바이어는 다시 돌아가 버렸고. 안 좋은 일이 생긴 줄 알고 말이야. 그때 손해가 좀 컸어.우현의 말을 들으며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도착하면 뒷좌석에 있는 캐리어만 전해주고 와. 누군지 알지? 전에 봤잖아. 나는 오늘 내리지 않을 테니까. 혼자서 해보라고.-직접 주시지 않고요?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사람 손에 맡기신 적 없으셨는데요.힐끗 우현을 돌아본 직원이 말했다.-그냥. 오늘은 왠지 걔들 얼굴 보면 짜증이 날 것 같아서 그래. 말만 들어도 토할 것 같아. 가져다주기만 하면 돼. 돈은 이미 받았으니까. 깨끗이 씻었으니까 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우리말로 해도 알아들을 거야. 노래나 한번 틀어봐. 좀 신나는 걸로.직원이 틀어준 빠른 박자의 노래들이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첫 곡으로 돌아왔을 때 차가 멈췄다. 직원은 차에서 내려 캐리어를 가지고 갔다. 우현은 의자를 뒤로 젖혔다. 시발. 쓸데없이 전화질이야. 혼잣말을 내뱉었다. 하필 허 형사야. 알아들었겠지? 문자를 괜히 보냈나? 보내지 말걸. 취소할 수도 없고. 우현은 혼잣말을 주고받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낮은 잿빛 구름 아래로 검고 넓은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동안 내릴 비였다.그 녀석 때문이야. 녀석이 보자고 했을 때 무슨 일인지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그날 가지 말았어야 했어. 젠장.그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낮은 기온은 아니었지만 바람 때문에 제법 쌀쌀했다. 우현은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 어묵 한 그릇을 시켰다. 어묵이랑 건더기는 그대로 둔 채 국물만 홀짝거렸다.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다 와 간다. 십 분 정도 후에 도착할 거야. 화장실 앞쪽으로 나와 있어. 머뭇거릴 시간 없으니까 검정색 SUV가 서거든 바로 타. 알아볼 수 있게 왼쪽 창에 노란색 스티커를 붙여 놓았어.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녀석이 전화를 끊었다. 이런 녀석이 아닌데. 무슨 일이지? 우현은 괜히 나왔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왼쪽 창에 노란색 스티커를 붙인 SUV가 우현의 앞에 섰다. 우현이 앞 좌석의 문을 열었다. 담배 냄새가 확 하고 몰려나왔다. 차에 올라타려 하자 녀석이 ‘뒷자리’하고 말했다. 우현은 녀석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다시 짧게 말했다. 빨리.-너 다시 담배 피우냐?뒷자리에 올라타며 우현이 물었다.-오늘만 피우기로 했다.녀석이 뒤를 돌아보았다. 녀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뒷자리에는 노인 한 명이 타고 있었고 자는 듯 보였다.-뭔데?우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선물이지. 부탁이기도 하고.녀석이 가속 페달을 밟으며 대답했다.-무슨 말이야?우현은 노인과 녀석을 번갈아 보았고 녀석은 앞자리에서 작은 가방을 들어 우현에게 건냈다.-일단, 가방에서 5cc짜리 주사기 꺼내서 한 대만 놓아줘. 다 재 놓았어. 거기 보면 주사액이 채워진 주사기가 있을 거야. 중간중간 봐가면서 계속 줘. 도착하려면 제법 더 가야 하니까. 너 주사 놓을 줄 알잖아.-무슨 일인지 말해줘야 놓지.우현이 다시 녀석에게 물었다.-일단 한 번만 먼저 놓아줘. 아, 그놈. 참, 말 많네. 너 언제부터 이렇게 말이 많았냐?녀석이 우현을 다그쳤다. 우현은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내어 노인의 어깨에 주사를 놓았다.-뭐냐 하면.녀석이 이야기를 시작했다.-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다 생각해. 죽여야 하는데 그냥 죽이기에는 아깝더라고. 인공 장기가 몸 안에 몇 개 들어 있거든. 그래서 널 불렀지.-무슨 말이냐?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장기를 떼어내란 말이야. 나더러?우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녀석이 대답했다.-네가 장기를 떼어내기 전에 죽은 사람이 될 거야. 그것까지는 너에게 시키지 않을게. 걱정하지 말고. 그런데 내가 한 번도 사람을 죽여본 적 없거든. 네가 옆에서 방법을 가르쳐줘. 내가 할 테니까. 장기를 떼어내기 가장 좋은 방법으로 죽이면 되잖아. 그치?우현은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너 왜 이러냐? 나야 만나는 인간들이 원래 그런 놈들이니 놀랍지 않지만, 네가 이러는 건 좀 의왼데? 무슨 일이야? 원한이야? 아니면 뭔데?백미러로 우현의 얼굴을 보며 녀석이 대답했다.-너. 살 좀 찐 것 같다. 사업이 잘된다고 하더니만 진짜구나. 네 사업에 보탬이 되라고 내가 노력 좀 하는 거다. 거기 있는 것 안에 인공 장기 네 개가 들어 있다. 네 개나. 그러니 저게 인간이냐? 죽어야 할 때 죽지 않고 계속 사는 것. 인조인간이지, 인조인간. 그래서 내가 죽여주려고 하는 거다. 아마 죽고 나면 고마워할지도 모른다./김강 소설가

2022-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