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허니문

우정구 논설위원 허니문(honeymoon)은 결혼 후 신혼부부가 가지는 즐겁고 달콤한 시기를 비유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결혼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지역 국가의 신혼부부는 결혼 후 신부의 어머니가 만들어준 미드(mead)라는 꿀이 첨가된 맥주를 매일 마셨는데, 건강한 아이를 낳으라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우리는 이를 밀월(蜜月)이라 번역해 부른다.정치적으로 사용되는 허니문은 새로 당선된 대통령에 대해 의회나 언론이 그의 장도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취임 초기 짧은 기간 비판을 자제하는 관행이다. 이 기간은 잘못을 해도 크게 비판하지 않는다. 정권을 이양받은 초기라 일이 서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미국 경제가 대공황을 맞았던 1933년, 막 취임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 의회와 손을 맞잡고 경제위기를 잘 극복하게 되는데 이때 열린 의회 100일을 허니문 기간이라 불렀다.일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의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에 대해서는 허니문 기간을 주는 것이 상례다. 주식시장에서도 허니문 랠리라는 것이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정치와 경제의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사회가 안정될 것이란 기대감으로 단기적으로 주가가 오르는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두고 여야가 극한 충돌을 빚고 있다. 권력 이양조차 순조로울지 위태한 분위기다. 새 정부의 안정적 국정 수행을 위해 신구권력의 의견 조율은 반드시 있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자의 회동이 무산되면서 두 권력의 충돌은 점입가경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임기 시작도 전 충돌하는 권력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도 착잡하다. 허니문을 관행으로 받아들이는 여유의 정치가 아쉽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3-24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면 무슨 소용일까. 제 눈에는 하늘이 안 보이겠지만 하늘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문제의 본질은 해결하지 못한 채 임시방편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특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늘이 완전히 가려지지 않는다는 뜻에서 ‘진실은 은폐하려 해도 숨길 수 없다’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눈 가리고 아웅’이란 말과 흡사하다.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가 최근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 김재원 최고위원을 향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한다”고 비판했다.사건의 발단은 이렇다.지난 21일 당 최고위원들은 회의를 열고 지선 공천에서 최근 5년 내 무소속 출마 경력이 있는 경우 15%, 현역 의원의 경우 10% 감점을 적용키로 결정했다. 두 감점규정에 모두 해당하는 홍준표 의원은 총 25%의 감점을 받게됐고, 홍 의원은 크게 반발했다. 특히 홍 의원은 페널티 방식을 결정한 최고위원회에 소속된 김재원 최고위원이 대구시장 출마 선언을 한 데 대해 맹비난했다.이해당사자가 주도해서 표결에 참여한 것은 법률상 당연무효사유이며, 그 표결에 참석한 사람(김재원 최고위원)은 지선 출마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게 홍 의원의 비판요지였다. 홍 의원이 크게 반발하자 김 최고위원이 해명에 나섰는 데, 이번에는 해명과정에서 이준석 당 대표와 부딪치며 진실공방이 벌어졌다.김 최고위원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렇게 해명했다. 당대표가 갖고 온 초안이 탈당 경력자 25% 감산, 징계 경력자 25% 감산, 당원 자격 정지 처분 이상을 받은 징계 경력자 15% 감산하자는 내용이었고, 자신은 15%로 통일하자고 했다는 것.이에 대해 이 대표는 즉각 반박에 나서 “김재원 최고위원이 본인이 대구시장 출마하는 상황에서 여러 오해를 사니까 당대표에게 뒤집어 씌우느냐”라고 펄쩍 뛰었다. 이 대표는 “김재원 최고위원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당시 회의에서 당 기조국장이 안건으로 오른 공천규정안은 기획조정국 안이라는 것을 명확히 설명했고, 김재원 최고위원이 “‘아직 (나는) 출마할 가능성이 많지 않다. 이해당사자로 보지 말아달라’라고 하면서 논의에 참여했다”고 폭로했다.즉, 광역단체장 감점규정 적용에 반대를 표해온 당 대표가 해당 공천규정안을 낸 듯이 말한 것이나, 자신이 이해당사자가 아니라고 해서 공천규정 논의에 참여시켰는 데, 회의가 끝난 다음날 보란듯이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것은 묵과하기 어렵다는 게 이 대표의 비판요지였다.국민의힘 지도부 역시 홍 의원에 대한 감점규정 중복적용은 다소 과도하다는 공감대가 있어 철회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지역정치권에서는 경기에 뛸 선수가 심판노릇까지 한것은 모양새가 나쁘다는 여론이다. 무릇 공당의 공천기준은 공정해야 한다. 그게 0.73%포인트 차로 어렵사리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 정부를 밑받침할 수 있는 지방정부와 의회를 구성할 수 있는 모범답안일 수 있다.

2022-03-24

새 정부 부동산정책, 지방은 수도권과 달라야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지난 대선에서 민심을 크게 가른 핵심분야인데다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부동산경기 흐름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문재인 정부는 28차례나 부동산 관련정책을 발표했지만 실패했다. 세제 강화와 대출 제한 등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펼쳤지만 집값은 폭등하고 거래는 침체하는 비정상적 시장구조를 초래했다. 특히 최악의 집값 폭등으로 무주택자와 젊은이의 내집마련 꿈이 깡그리 무너져 민심을 잃는 결정적 요소가 됐다.윤 당선자의 부동산 정책은 주택공급 확대와 부동산관련 세제개편, 대출완화 등으로 대략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당선자의 부동산 정책은 서울과 수도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방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게 많아 이에 대한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중앙 관료들이 정책을 입안하다 보니 지방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수도권에 인구와 돈이 집중돼 있다. 지방은 사람이 떠나 도시소멸을 걱정하는 입장이다. 시장 상황이 서로 다른 중앙과 지방이 똑같은 정책을 적용받는다면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지난 1월 대구의 미분양 물량은 전월보다 86%가 늘어 3천678가구에 이른다. 경북은 5천227가구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미분양 물량을 보유하고 있다. 당선자 측은 내집마련 기회를 늘리기 위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전체적으로 70% 상향키로 했다. 그러나 총대출상환액을 연간 소득과 연계함으로써 소득수준이 낮은 지방의 근로자가 주택담보대출을 받는데는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미분양 물량 증가, 대출과정의 불합리성 등 지방이 직면한 현실적 문제가 정책에 감안돼야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안착할 수 있다. 부동산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지방은 지방실정에 맞는 정책으로 대응하는 제도도 적극 검토할 때다. 이것이 지방분권의 방향이기도 하다.

2022-03-24

박근혜 귀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퇴원해 대구 달성군에 마련된 사저로 입주했다. 이날 오전 삼성서울병원에서 환한 표정으로 퇴원한 그는 “지난 4개월 동안 헌신적으로 치료에 임해주신 삼성병원의 의료진, 그리고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짧게 언급한 후, 다른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22일 병원에 입원해 지병 치료를 받아온 박 전 대통령은 최근 통원 치료가 가능할 정도로 건강 상태를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5년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31일 새벽 영장심사 후 곧바로 구속 수감됐다가 지난해 12월 31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그는 이날 병원에서 나온 후 곧바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부친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에 마련된 사저로 이동했다. 그는 중구 삼덕동에서 태어났지만, 정치적 고향은 달성군이다. 지난 1998년부터 대선에 당선된 2012년까지 달성군이 그의 국회의원 지역구였다.박 전 대통령이 4년 9개월간의 긴 수감생활을 마친 후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동안 그의 석방과 사면을 외쳐왔던 수천명의 지지자들이 사저 입구에서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이날 “적당한 시점에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찾아뵙겠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5월 10일 취임식에 박 전 대통령을 초청할 예정이다.박 전 대통령의 귀향은 6·1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라 정치적 함의도 크다. 과거 친박 핵심인사로 꼽혔던 정치인들을 비롯해 지방선거 출마예상자들이 앞다퉈 사저를 찾고 있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친박을 앞세운 정치세력이 지방선거에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이제 대구시민들은 고향에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이 시민들과 일상을 함께 하며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어머니의 마음처럼 보듬어야 한다. 진정으로 그의 귀향을 환영한다면 그가 다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2022-03-24

서해 수호의 날에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매년 삼월의 넷째 금요일은 ‘서해 수호의 날’이다. 2016년 1월 28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방안을 낸 것을 입법예고와 법제심사, 국무회의심의 등을 거쳐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2002년 제2연평해전,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2010년 연평도 포격 등 서해에서 발생한 북한의 도발에 따른 대한민국 국군의 서해 수호를 위한 희생을 기리고, 국토수호 결의를 다지며, 국민의 안보의식을 결집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하였다. 국군이 46명이나 사망한 천안함 피격사건이 일어난 3월 26일이 금요일이어서 그 날을 기념일로 정한 거라 한다.종북 좌파들의 지지를 받는 문재인 대통령은 서해수호의 날이 별로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임기 중 처음 두 해는 기념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일각에서 원성이 일자 삼년 째부터 기념식에 참석은 했지만 북한의 도발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재발방지를 위한 경고나 대책을 말하지는 않았다. 오죽하면 천안함 전사자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가 분향하는 문 대통령에게 다가가서 “이게 북한 소행인가,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묻는 해프닝까지 벌어졌겠는가. 그때 김정숙 여사가 그 유족을 ‘무섭게 째려봤다’는 논란이 있었다. 5·18 기념식에서 눈물을 흘리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라는 거였다.어찌 서해를 수호하는 것뿐이랴.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일이야 말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최우선의 과제요 사명이 아니겠는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이 오늘의 모습으로 존속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는지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소련과 중공에 인접한 지정학적 위치의 대한민국이 공산화 되지 않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미 공산화된 반쪽까지 호시탐탐 적화통일의 야욕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체제의 안정과 성공신화를 이룩한 것은 이승만의 혜안과 의지, 미국의 도움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 과정에 무리와 과실이 없지 않았고 그에 따른 저항과 갈등도 적지가 않았지만 말이다.지금은 국제무대에서도 제법 행세께나 하는 나라가 되었지만, 오십여 년 전까지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처량하기 짝이 없는 약소국이었다, 그 약소국을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었던 것은 미국이란 세계 최강의 동맹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6·25전쟁 당시 수많은 사상자들의 희생을 무릅쓰고 적극적인 지원을 한 것도 그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생명의 은인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안보를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이라는 튼튼한 방어벽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문재인 정권의 반미친중 외교는 한미동맹을 와해 직전까지 몰아갔다. 미국보다는 북한과 중국의 손을 잡고 사회주의체제로 가려는 것이 저들의 속셈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다행히도 이제 정권이 바뀌게 되어 그들의 꿈은 좌절되고 대한민국은 다시 자유민주주의로 선회할 수 있게 되었다. 한미동맹은 물론 한·일관계도 정상화하는 것이 나라를 수호하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이다.

2022-03-24

꽃샘바람이 분다

윤영대수필가 춘분이 지났다. 낮과 밤, 추위와 더위가 반반이니 진정 봄날이다. 긴 겨울을 견디며 하늘과 땅의 좋은 기운을 빌어온 농부들은 봄보리 갈고 채소 씨앗 뿌려 춘경(春耕)을 시작하며 허물어진 담장을 고치고 파릇한 봄나물 뜯어 먹으며 한해의 풍년을 비는 철이다.‘춘분에 비 오면 병자가 드물다’고 했는데, 겨울 가뭄을 씻어버리듯 비가 내렸으니 역병인 코로나도 사라지겠지, 견뎌 보자. 이맘때면 남에서 봄바람이 꽃내음 싣고 오는 데 꽃샘추위가 봄이 오는 길목에서 심술부리니 멈칫멈칫 꽃망울을 펴지 못하고 있다.이 나라도 하늘의 기운을 닮아가는지 대선이 끝나고 좀 밝고 맑은 나라를 기대해 보려니 새 정치를 위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를 두고 시끄럽다.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고 청와대를 개방하여 국민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윤 당선인의 꿈을, 안보 공백이 우려되고 천문학적 이전 비용이 든다며 예산편성을 거부하는 문 정권의 트집으로 갈등을 빚으며 평화롭게 이어 나가야 할 대통령직 인수인계가 난맥상이다. 향기로운 꽃바람 불어오려는 봄날에 이를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밀려와 가벼운 가슴으로 꽃길을 걷고 싶은 상춘객들에게 다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아쉬움이다. 겨울에 입었던 두껍고 무거운 옷들을 빨아 넣고 가볍고 밝은 옷을 꺼내 입으려던 마음도 멈칫하고 창밖 하늘을 올려다본다.코로나 역병이 창궐한 지 2년 2개월 넘어 16일 확진자 62만 명의 최고점을 찍고 22일에는 누적확진자 1천만 명을 넘었다. 국민 5명당 1명이 코로나바이러스 바람을 맞은 셈이니 한 가족 한 명꼴이다. 봄이 왔건만 꽃잔치와 꽃놀이도 못하는 억울한 마음인데 날씨마저 아직 겨울의 차가움을 밀고 있으니 더욱 봄날이 그리워진다.마음을 달래려 창포마을 뒷산에 올랐더니 드문드문 하얀 매화꽃과 노란 산수유꽃은 만개했고 숲속 진달래는 발그레 눈만 뜨고 있었는데 봄꽃 바람이 좀 서둘렀나? 꽃샘바람이 늦게까지 질투를 하는 것인가? 그래도 남쪽에서 많은 꽃소식이 들려온다. 오히려 개화 시기가 평년보다 앞당겨 이번 주말쯤이면 봄의 전령사 벚꽃도 경주 엑스포공원에는 화려한 벚꽃 터널을 만들 것이란다. 산길 내려와 철길숲을 걸으니 노란 개나리가 환하게 웃고 붉은 홍매화가 얼굴을 붉히며 서서 답답한 마음에 산책 나온 시민들의 눈길을 끈다. 코로나로 많은 봄축제가 취소된 이 봄날, 자연의 심술이 못마땅하다.전국적으로 꽃 소식은 평년보다 좀 빠를 것이라는데 예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면 뭘 하나! 꿀벌이 갑자기 없어졌다는 ‘집단 실종’의 슬픈 소식이 들려오는데…. 전국에서 최소 77억 마리가 사라졌고, 이상 기후와 해충 응애 벌레 탓이란다. 지난 겨울 고온화로 꽃이 일찍 피어 서둘러 꿀을 모으러 나섰던 힘 빠진 벌떼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해 폐사됐다는 얘기. 왜 이리 자연도 왔다 갔다 갈피를 못 잡는 걸까.‘정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는 속담처럼 요즈음 새 정부 출범 앞에 날아오는 현 정부의 어깃장이 소중하게 익혀온 김칫독을 깨는 것은 아닌지….탐스럽게 피어나는 흰 목련꽃 보며 사랑을 노래하고 싶은 계절이다.

2022-03-24

학교폭력 예방, 꽃으로라도 친구를 때리지 마라‘

2022년도 새학기가 시작되어 아이들의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코로나19를 물리치는 백신의 희망소리 같다. 따뜻한 3월 새로운 선생님, 친구들과 적응하면서 학교폭력도 평소에 비해 높게 발생되므로 일 년 중 가장 주의를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학교폭력은 학교내·외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력,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 모욕, 공갈, 강요, 강제적 심부름, 성폭력,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 폭력 등 신체 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요즘은 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sns를 통한 폭력으로 범위가 더욱 확산 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카카오톡등을 이용한 욕설, 인신공격, 협박등의 방법으로 신체적 상처는 없지만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힐 수 있는 폭력행위를 각별히 조심해야한다. 학교내·외에서 친구들을 괴롭히는 것은 절대 용납되지 않으며, 목격한다면 학교 혹은 117 학교폭력 신고로 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여 빨리 해결하는 것이 좋다.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평생 씻을수 없는 상처로 남으며 가해자 또한 당장의 처벌은 물론 세월이 흐른후에도 인생의 오점으로 영원히 남는다, 꽃으로라도 친구를 때리지 않도록 하자. / 영덕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경장 정지인

2022-03-23

제사보다 잿밥에 정신 팔려서야

심한식 경북부 한동안 전국을 달구며 민심을 양분했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정치권과 지역의 관심이 오는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옮겨지며 예비후보들의 선거전이 한창이다.예비후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기존 정치 무대에서 놀던 인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정치 신인들도 눈에 들어온다.정치는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고 서로 이해를 조정해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는 사전적인 의미를 생각해보면 정치의 가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정치는 지역과 지역민을 늘 생각하다 떠오르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행정에 접목시켜 미래를 준비하는 국민과 지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도구로, 이쯤이면 자치단체장에 도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허망한 생각으로 예비후보 등록을 하는 수준 이하의 정치꾼들도 있다.현행 선거법은 지방자치단체장 피선거권을 지역 거주 60일 이상에 법적인 하자가 없다면 200만원의 공탁금만 걸면 누구나 예비후보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이와 같은 이유로 최영조 시장이 3선 연한으로 출마하지 못하는 경산시장직에 현재 12명의 국민의힘 예비후보가 등록했고 유력후보로 꼽히는 A 도의원도 예비후보 등록을 준비하고 있으며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예비후보가 등록하면 14명의 인물이 경산시장에 도전한다.이들 중에는 선거철만 되면 이름을 올리거나 이쪽저쪽 선거에 참여하는 인물들이 눈에 보인다.지역 정서상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얕은 생각에 지역민이 아닌 정치권에 줄을 대고 유력인사와 친분을 과시하는 행태도 꼴불견이다.기자는 정치는 신념과 지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한순간의 분위기로 출마를 결심하는 불상사, 나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모든 선거에 출마하는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예비후보 대부분은 스스로 사퇴하거나 경선을 통해 정리되겠지만, 지역민에게 사랑받는 정치가 자리 잡으려면 뜨내기 정치인, 선거를 도구로 생각하는 정치인이 사라져야 한다.‘나’보다는 ‘너’를 먼저 생각하고 다음으로 ‘우리’까지 생각하는 정치인들로 가득한 선거를 기대해 본다./shs1127@kbmaeil.com

2022-03-23

생강나무와 수필가

배문경수필가 봄은 노란빛을 뿌리며 온다. 겨우내 메말랐던 땅속을 뚫고 산수유가 노란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하자 담장 울타리에도 노란 개나리가 ‘나도 여기 있어요’라며 손을 흔든다. 또 한 개의 노랑은 생강나무 꽃이다. 산수유가 익숙하다 보니 숲에서 만난 생강나무를 보고도 산수유일 것이라 짐작하는 사람이 많다. 아마도 생강나무는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 이들에게 섭섭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산수유는 열매를 약으로 쓰기 위해서 중국에서 들여온 나무다. 그래서 대부분 집 근처에 심었다. 하지만 생강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무로 주로 산에서 자란다. 그러니 두 나무를 구분하는 기준점은 어디에 사느냐이다.또 생강나무와 산수유나무는 꽃 생김새로 구분을 하는데 산수유나무는 꽃 한 송이에 암·수술이 함께 있는데 반해 생강나무 꽃은 암·수꽃이 각각 따로 있다. 생김새와 향기가 각각 다른 두 나무를 이제 숲에서 보면 노란 꽃이라고 성급히 산수유라 부르지 말고 생강나무라 불러주자.나무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해서 생강나무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의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여름부터 겨울눈을 만들기 시작해 잎눈과 함께 좀 더 큰 꽃눈을 만든다. 많은 꽃이 피기 전에 먼저 벌과 나비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생강나무, 벚나무, 목련, 진달래, 매화나무, 산수유가 모두 이런 선택을 했다. 이 꽃들은 성질이 급하다.김유정 소설 ‘동백꽃’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와 생강나무처럼 성질 급한 점순이가 “산 중턱에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라고 나온다.알싸하고 노란 동백꽃이라고 분명 작가가 써 놓았지만, 독자들은 남쪽 지방의 빨간 동백꽃으로 흘려 읽었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라고 부른다.장기읍성에 갔을 때도 노란 꽃이 피어 있기에 산수유인지 생강나무 꽃인지 잠시 헷갈리다 통합검색을 통해 겨우 알아냈다. 노란빛은 비슷할지 몰라도 모양은 확실히 다르다. 생강나무 꽃은 가지에 바짝 붙은 채로 둥글게 뭉쳐있고, 산수유는 꽃자루가 길어 활짝 펼쳐서 핀다. 또, 줄기 끝이 녹색이고 갈라지지 않았다면 생강나무고 줄기가 갈색이면 산수유다.경주에도 산수유가 무더기로 피어나 봄 소풍 가기에 좋은 곳이 있어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온통 노란 세상이다. 햇빛조차 무더기로 피어났다. 건천 백석암으로 가는 길에 오래된 산수유나무가 온몸을 다해 피어 올린 노란 꽃들이 환호성을 불러일으킨다. 무채색의 겨울이 끝났다고 누군가 세상을 향해 노란 물감을 흩뿌린 듯하다.꽃은 필 때마다 각 각의 이름으로 봄을 빛낸다. 우리는 그때마다 잠시 고개를 끄덕일 뿐 더 기억에 담아두지 않는다. 꽃이 피어야 겨우 저 자리에 그 나무와 꽃이 있었음을 다시 상기하게 될 뿐이다. 대충 보아 넘기고 어설피 보아왔다는 뜻이다. 그때는 기억해도 시간이란 저장창고는 자꾸만 망각의 공간을 넓힌다.수필집을 출판하며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잘 받았다는 인사가 되돌아 왔다. 몇 해가 지나 우연히 만나자 어르신들은 “아이쿠, 배시인!”이라고 인사를 건넨다. 나는 멋쩍게 ‘수필가입니다’ 라고 한두 번 정정해 드리지만, 다음에 만나면 또 시인이라 불렀다. 일 년에 한 번 뵐까 말까 싶으니 그것 또한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어 웃고 만다.내심 나는 수필가로 불리기를 원하지만 나를 자세히 모르는 이들은 나를 시인으로 불러준다. 그런데 수필가면 어떠하고 시인이면 어떠랴. 산수유도 생강나무도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피어 있는 것은 아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많은 이들에게 자연의 혜택을 선사하듯 나 또한 그리하면 될 것이다.수필가(隨筆家)가 생강나무 꽃 같다. 시인이나 산수유로 대치되어 버리는 상황이 조금은 아쉽다. ‘아쉬워 마라. 나는 평생 산수유로 불렸다’며 생강나무를 못 알아보는 나를 나무라는 듯해서 봄의 말을 노랗게 새겨듣는다.

2022-03-23

무진(戊辰)

육십갑자 다섯 번째 무진(戊辰)에서 천간(天干)은 무성할 무(戊)요, 지지(地支) 진(辰)은 동물로 용(龍)이다.용(龍)은 실존하는 동물이 아니다. 하늘의 무궁무진한 변화를 나타낸다. 그리고 ‘하늘 기운의 농축액’인 ‘물’이 지상에 생명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땅에 무궁무진한 변화를 만든다. 바람을 부르고 비가 내리게 하는 하늘과의 영감이 가장 뛰어난 그 무엇을 상징하여 ‘용(龍)’이라고 한다. 임금은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용상(龍床)에 앉아 일체 만물 중생을 다스린다.옛 사람들은 사주에 ‘용(龍)’이 있으면 누구를 다스린다고 했다. 할 일이 없으면 벌통이라도 키우고, 아니면 동장, 반장이라도, 그것도 아니면 계모임에 ‘계주’라도 해야 그 빛이 난다고 했을 정도로 어찌되었건 앞에 나서려고 한다.무진일주(戊辰日柱)를 가지고 계신 분은 그야말로 무진장(無盡藏·불성은 넓고 크고 무궁하며 신묘한 작용이 끝이 없다)한 에너지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다.통상적으로 ‘산의 정상’이라고 하고 웅지를 숨기고 때를 기다리다가 홀연히 ‘천시’를 만나 크게 성공한다고 한다. 그러나 찌질하게 꿈이 작으면 하는 일마다 시작은 있으나 마무리가 없는 격이다.주역 건괘(乾卦)에 초구(初九)에 잠룡물용(潛龍勿用)이라 했다. 이것은 물에 잠겨 있는 용이니 쓰지 말라는 뜻이다. 즉 용이 물에 잠겨있으며 아직 자신을 밖으로 드러낼 때가 되지 않음을 말한다. 험난한 세상에 아직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때이다.‘설원’정간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흰 용이 맑고 깨끗한 연못에 내려와서 물고기로 모습을 바꾸어 헤엄치고 있었다. ‘예차’라는 고기잡이가 작살로 그의 눈을 쏘아 맞추었다. 흰 용은 하늘로 올라가서 천신에게 그 사실을 고해 바쳤다.천신이 그 용에게 “그때에 너는 어디에 있었으며, 너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느냐?”라고 물었다. 흰 용은 “맑은 연못이 있기에 내려가서 물고기로 변해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천신이 “물고기라는 것은 원래 고기잡이가 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예차’에게 무슨 죄가 있겠냐?”라고 말했다. 사람은 자기가 있어야할 곳에서 말과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면 화를 자초한 경우가 많은데 경거망동을 경계한 것이다.용은 한 번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기 위해 물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때를 기다린다. 즉 출세하기 위해서다. 출세는 원래 ‘세상에 나간다’라는 뜻이다.‘등용문’이라는 말이 있다. ‘용문에 오르다’는 뜻으로, 입신출세의 관문에 들어서 출세를 위한 기회를 잡게 됨을 말한다.‘등용문’이 출세를 의미하게 된 것은 중국 황하의 거친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는 잉어의 모습에서 유래했다. 원래 용문(龍門)은 황하 상류의 협곡 이름으로 이 근처는 물살이 매우 빨라 아무리 큰 고기일지라도 웬만해서는 여기에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한 번 오르기만 하면 그 물고기는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이처럼 각고의 난관을 뚫고 입신출세를 하게 되는 것을 ‘용문에 오르다’라고 하였다.논형 ‘봉우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중국 낙양지방인 주나라에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라의 벼슬을 하고 싶었지만 한 번도 기회를 만나지 못한 채 나이만 먹어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어느 날 그가 큰 길가에서 목을 놓아 울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왜 우시오?”라고 물었다. “벼슬을 하고 싶었소만, 한 번도 그런 기회를 만나지 못한 채로 이렇게 나이만 먹어, 이제는 완전히 때가 지난 것 같소. 그래서 마음이 아파 우는 것이요”라고 대답하였다.또 어떤 사람이 “벼슬을 하고 싶었다면서 어째서 한 번도 기회를 만나지 못했단 말이요”라고 물었다.“내가 젊었을 적에 글과 사무를 배워 상당한 수준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벼슬을 찾아 나서려고 했으나 그때의 임금님은 나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셨소. 나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시던 임금님이 돌아가시고, 그 다음으로 자리에 오르신 임금님은 무예를 익힌 사람을 좋아하셨소. 나는 생각을 바꾸어서 글공부를 그만두고 무예를 배웠소. 무예를 상당하게 익히게 되자 무예를 좋아하시는 임금님도 돌아가셨소. 지금 자리에 계시는 임금님은 젊은 사람을 좋아하시는데, 나는 이미 늙어 버렸소. 결국 나는 한 번도 기회를 만나지 못하고 만 것이오”라고 대답하였다. 벼슬을 한다는 것은 때가 있는 것이고, 억지로 구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류대창명리연구자 한나라 유방 시절 한신은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며 치욕을 참으면서 때를 기다렸고, 제갈량이 와룡선생으로 은둔해 있을 당시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해서 등용시켰다. 결국 때가 무르익었음이요, 나라를 경영하는데 참모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진토(辰土)’는 습토(濕土)다. 봄의 촉촉한 땅이며 많은 생명을 키워낼 수 있는 대지라고 한다. 진(辰)을 형상화 한 용(龍)은 물을 주관하는 신이다. 가뭄이 들면 비를 내려달라며 용신제를 지낸다. 역시 용(龍)은 물과 관련이 깊다.중국 당나라 유우석(劉禹錫·772∼842)의 누실명(陋室銘) 첫 구절에 “山不在高(산불재고) 有仙則名(유선즉명), 산은 높지 않으나, 신선이 있으면 이름이 나고. 水不在深(수불재심) 有龍則靈(유용즉령), 물은 깊지 않으나, 용이 살고 있으면 신령스럽다”고 했다. 누가 그곳에 거처하느냐에 따라 귀하고 천한 것이 결정이 된다.

2022-03-23

교육, 백척간두에 서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통령이 새로 뽑혔지만, 여전히 시끄럽다. 건강한 내일을 향한 토론과 담론으로 북적거렸으면 하는데,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정치과몰입 현상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난데없이 청와대 이전이 논란거리가 아닌가. 상상과 창의로 비전이 나누어지고 미래를 겨냥하는 지향성이 선명했으면 하는데, 날마다 들리는 소리는 전혀 비생산적인 아귀다툼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6월이면 동네마다 새로운 일꾼들을 선출해야 하는데, 나라는 온통 하릴없는 말싸움과 신경전에 빠져있으니 국민에게 희망은 언제 안겨주려는지.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전국에서 열일곱 교육감들도 새롭게 선출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초중등과 대학교육은 나라의 미래가치를 오늘 기른다는 의미만으로도 중차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교육감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판에 우리 교육이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구도 진정성을 실어 고뇌하지 않는 우리의 교육은 어쩌다 이런 모양이 되었을까. 대통령인수위원회 조차 인사에서 교육계를 패싱하였다 하여, 교육부를 다른 부처와 통합하거나 심지어 폐지할 것이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현 정부의 실책 가운데 백년대계 교육에 대하여 분명한 철학과 미래지향을 바르게 세우지 못한 점은 뼈아픈 부분이다.다음 정부에도 희망적인 기대가 걸리지 않는 것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면 심대하게 우려되는 바이다. 심지어, 국정쇄신의 증거로 교육부폐지카드를 건다는 예측은 ‘다음세대’를 위하여 불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교육은 어디로 가는가.미국의 흑인민권운동가 말콤엑스(Malcolm X)는 급진적인 사회운동을 하였지만, ‘교육은 미래로 가는 여권과 같다. 왜냐하면, 내일은 교육으로만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산적한 교육 관련 현안들 앞에 교육철학도 분명히 수립하지 못한 채, 업무를 이리저리 분산하거나 해체하는 모습은 자라나는 새싹들을 가벼이 생각하고 홀대하는 게 아니면 무엇인가.새 정부의 교육홀대가 교육 전면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지면 국가의 미래는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초중등 교육도 문제지만, 켜켜이 쌓여온 대학입시제도와 대학교육실태의 문제들은 어찌 되는가. 미래지평을 향한 전반적인 담론이 태부족인 오늘, 교육마저 뒷전으로 물려진다면 ‘내일을 위한 준비’는 누가 하는가. 공교육의 효능을 높이고 시급한 교육이슈들을 중심을 잡으며 다루기 위하여 교육부는 반드시 존치해야 한다.교육이 백척간두에 섰지만, 누구도 신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혹여라도 부정과 비리가 교육계에 스며들면 나라의 뿌리마저 흔들릴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이제라도 생각을 돌이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헤아려야 한다. 나라의 백년대계를 무겁게 여긴다는 상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교육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미국작가 부스캘리아(Leo Buscaglia)는 ‘변화야말로, 모든 배움의 결과물’이라고 하였다. 평생 배워도 다하지 못할 교육에 나라의 마음이 실려야 한다.

2022-03-23

대구경북 주택시장 급랭, 빨리 손써야 한다

주택거래절벽으로 대구·경북지역 미분양아파트 물량이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최근 미분양 아파트가 급증하고 있는 포항과 경주지역을 대상으로 보증심사를 강화하는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해당 지역에서 주택을 짓는 건설업계의 부실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포항시내 미분양 아파트는 지난해 11월만 해도 40여가구에 그쳤으나 올들어 2월 말 현재 흥해· 오천읍을 중심으로 3천240가구로 증가했다. 경주지역도 2월말 현재 미분양물량이 1천770가구로 늘어났다. 미분양 물량 증가는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경북도와 대구시가 유독 심각하다. 경북도와 대구시내 전체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각각 6천여가구, 4천여가구에 육박하고 있다.원인은 뻔하다. 정부가 거래자체를 묶어버리는 조정대상지역 지정을 남발하고 있지만, 건설업계는 지난해의 주택시장 활황세에 편승해 수요도 고려하지 않은 채 분양물량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조정대상지역으로 선정된 지역은 중과세와 대출규제로 아파트를 팔기도 사기도 어려워진다. 일단 주택 거래 때 최대 75%까지 양도세를 내야 하는 게 최대부담이다. 그리고 소유주택 수가 많으면 종부세도 추가로 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9억 원 이하 50%, 9억 원 초과 30%로 제한을 받는다. 이러니 주택시장이 거래절벽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부동산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미분양 물량 증가를 이대로 지켜볼 경우, 이 지역 경제가 위기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도 지난해부터 국토부를 수차례 방문하며 규제해제를 건의해왔다. 부동산 경기 위축은 지역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 만약 아파트 분양 시행사들이 부도라도 나면 시공사들의 공사가 중단되고, 가계대출로 분양을 받은 시민들의 피해가 속출하게 된다. 이 위기를 넘기려면 우선 건설업계 스스로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분양물량을 조절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도 규제일변도 정책을 펼 것이 아니라, 미분양 물량이 심각하게 쌓인 지역만이라도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할 필요가 있다.

2022-03-23

확진자 1천만 돌파…정점은 아직 모른다는데

23일 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천만명을 넘었다. 지난달 6일 누적 확진자 100만명을 넘긴 지 45일만에 1천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100만명 돌파하는 데 2년도 더 걸린 누적 확진자가 불과 두달 사이 900만명 늘어난 것이다.이처럼 확진자가 급증한 것은 지난해 말 시작한 오미크론 변이의 영향이 컸다. 델타보다 3배나 전염력이 강한 오미크론이 델타 변이를 제치고 우세종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의 방역완화 조치까지 더해지며 확진자가 급증한 것이다.정부는 오미크론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인 1월 17일부터 식당과 카페 등의 영업시간을 네차례 연장했다. 오미크론의 치명률과 위중증화율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오미크론에 대한 당국의 경고 메시지가 약해지면서 국민의 방역의식도 상대적으로 약해진 것도 문제였다. 지금도 오미크론에 감염되는 것을 감기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문제는 확진자가 늘면 위중증환자나 사망자도 더 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하루 10명대 발생하던 사망자가 지금은 하루 400명 안팎 발생하고 있다. 갑작스런 사망자의 증가로 화장시설이 부족해 불가피하게 장례 일정을 연장하는 사례까지 속출한다.미국과 유럽 등은 확진자가 전체 인구의 20% 정도일 때 오미크론 정점기를 보냈으나 우리 보건당국은 아직 정점기를 예단키는 어렵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전염력이 센 스텔스 오미크론이 확산하기 시작하고 있어 정점기가 더 늦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에 따라 하루 사망자도 600∼700명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동안 정부의 유행 예측이 모두 틀려 국민의 불신이 컸다. 하루 확진자 3만명을 정점으로 보다가 37만명까지 수정을 했지만 지난 17일에는 62만명이 확진돼 예측이 빗나갔다.확진자가 급증으로 먹는 치료제가 부족하고 약국에서 파는 감기약도 품귀다. 코로나 정점을 알 수 없는 깜깜이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투명한 대응이다. 그것이 국민 불신과 불안감도 해소할 수 있는 길이다.

2022-03-23

블레임룩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블레임룩이란 ‘비난하다’라는 뜻의 블레임(Blame)과 ‘스타일’이라는 뜻의 룩(Look)이 합쳐진 말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인물의 패션이 주목을 받거나 이를 대중이 따라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세계적인 비판을 받고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값비싼 명품 의상을 입고 모습을 드러내 ‘블레임룩’으로 떠올랐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루즈니키 경기장에서 열린 크림반도 합병 8주년 축하 콘서트에 이탈리아 하이엔드 브랜드인 ‘로로피아나’ 패딩을 입고 나왔다. 패딩의 가격은 150만 루블로 한화로 약 1천700만원. 또 패딩 속에 입은 흰색 목폴라는 이탈리아 브랜드 ‘키튼’의 제품으로, 이 역시 가격이 32만 루블(380만원)이었다. 로로피아나를 보유 중인 프랑스 명품 그룹 LVMH 측은 이미 지난달 초 러시아 매장을 폐쇄한 상황이어서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도 블레임룩으로 화제가 된 사례가 있었다. 2020년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을 제작해 유포한 조주빈이 스포츠 브랜드 F사의 티셔츠를 입고 포토라인에 서자 해당 브랜드 측은 즉시 로고를 모자이크 해달라며 대응했다. 2016년엔 국정농단 의혹을 받던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가 검찰청사로 들어갈 때 최씨의 신발이 벗겨지면서 프라다 로고가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다. 2017년에 정유라 씨가 덴마크에서 체포될 당시에는 ‘정유라 패딩’이 등장했다. 이 밖에도 탈옥수 신창원의 미쏘니 티셔츠, 신정아의 알렉산더 맥퀸 티셔츠 등이 블레임룩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블레임룩으로 주목 받은 제품들은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이미지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명품 브랜드입장에서는 블레임룩은 결코 달갑지 않은 불청객인 셈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3-23

중도지대와 소통의 리더십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이 윤석열 당선인으로 결정됐다. 차점자인 이재명 후보와는 불과 0.73% 포인트 차이다. 24만7천77표가 박빙의 승부를 갈랐다. 선거 전문가들은 31만766표 차이를 보인 서울을 승부처로 꼽고 있다. 강서구를 제외한 한강벨트 전역에서 윤 당선인이 승리한 것이 주효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그렇다면 이번 대선 결과를 거시적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자. 주목할 만한 사실은 서울에서의 1, 2위 간 득표율 차이가 충청북도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서울과 충북의 1, 2위 득표율은 소수점 이하를 생략하면 50%와 45%로 같다. 승부처인 서울과 대선의 풍향계인 충북의 유사한 득표율은 흥미롭다.충북은 정치적으로 명실상부한 중도지대이다. 지금까지 모두 13번의 대통령 직접선거에서 12번이 충북의 선거 결과와 일치했다. 선거 때마다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는 충북 지역은 남한 국토만 놓고 보았을 때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충북의 지정학적 위치는 변화하는 정세, 시대적 흐름을 읽어내기에 유리할 수 있다.정치, 경제적으로 수도 서울은 대한민국의 중원이다. 이번 대선에서 서울은 충북과 같은 숫자상의 표심을 나타냈다. 서울과 충북은 윤석열 당선인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중도의 균형 감각을 요구하고 있다. 중도의 균형감은 끊임없는 소통의 의지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최근 윤석열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 문제로 소통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라 있다. 광화문 시대를 열고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던 선거 공약이 용산 시대 개막으로 급하게 방향 선회를 했다. 일사천리로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행이 추진되고 있다. 물론 유현준 홍익대 교수가 ‘공간이 만든 공간’이란 책에서 말했듯이, 새로운 생각은 때로는 지리적 환경이 만들어낼 수 있다.그동안 청와대는 구중궁궐로 불리워졌다. 미국 백악관의 웨스트 윙처럼 대통령이 참모들과 공간적으로 가까워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런 측면에서 용산의 대통령 집무 공간에 집무실·비서실·기자실 등을 함께 두겠다는 발상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물론 기존의 청와대 건물 구조를 그와 같이 리모델링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윤석열 당선인이 집무실 이전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국민과의 소통이다. 윤 당선인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 시대를 마감하고자 한다면, 집무실 이전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결정에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모순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윤석열 당선인은 보수 진영을 대표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출발해야 하는 자리는 중도지대에 가깝다. 역대 최소 표차로 당선된 윤 당선인은 무엇보다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중도지대는 태풍의 눈과 같아서 잠잠해 보이지만 민심의 향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공간의 이전에 몰입하느라 겉으로 보이지 않는 국민의 마음과 소통하는 것에 소홀하지 않기를 새 대통령 당선인에게 바란다.

2022-03-23

새의 하심(下心)

김규인수필가 새는 날개를 가졌다. 하늘을 날아 먹이를 잡고 차가운 날씨를 피해 살기 좋은 곳으로 이동한다. 살아야 하기에 날아야만 하고, 날기 위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몸은 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날기 위해 익룡의 억센 이빨도 남을 공격하던 날카로운 발톱도 내려놓는다.새는 날기 위하여 조금만 먹는다. 본능적으로 언제라도 날기 위해 한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많이 먹을수록 몸은 가라앉고 날지 못하는 몸은 남의 먹이가 된다. 적게 먹으면서도 힘을 내어 맹금류를 피해 달아나고 재빠르게 몸을 숨긴다. 새는 먹는 시간도 잘게 나누어 위험을 줄이고 효율을 높여 쓴다.새는 동물 중 체온이 가장 높다. 따뜻한 몸은 근육의 효율을 높인다. 발달한 근육은 작은 에너지로도 높이 난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영양가 높은 먹이를 먹는다. 소화가 잘되고 흡수율이 높은 먹이를 찾아다닌다. 작은 몸으로 소화는 빨리하고 수시로 먹이를 먹는다. 에너지 효율을 높여 몸을 따뜻하게 하고 그 온기로 날갯짓을 한다.새의 항문인 총배설강은 소화관 말단인 직장뿐만 아니라 신장에서 연결된 수뇨관과 난소에서 연결된 수란관을 함께 연결한다. 대변도 소변도 알도 같은 내장으로 내보낸다. 내장을 단순하게 하고 길이도 짧게 줄인다. 큰창자가 짧기에 소화되고 남은 배설물을 수시로 배출한다. 하늘을 날면서도 불필요한 것은 바로 버린다. 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모두 바꾼다. 몸을 간단하게 바꾸고 찌꺼기는 바로 버리며 새는 나는 것만을 생각한다.새는 좋아하는 먹이를 잡기 좋게 부리를 바꾼다. 부리의 크기도 모양도 폭도 다르게 한다. 이빨 대신 작은 모래주머니를 달아 단단한 먹이를 부순다. 급하게 먹느라 같이 쪼아먹는 모래조차 최대한 이용한다. 모래를 통해 인과 칼슘 같은 광물질도 흡수한다. 살기 위해 부리도 먹기에 알맞게 바꾼다. 사물에 맞추어 몸을 바꾸고 이용하는 능력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날개 깃털로 하늘을 난다. 꼬리 깃털로 방향을 잡고 솜깃털로 추위를 막는다. 바람을 이용하기 위해 군살을 빼고 유선형의 몸을 만들고, 뼈를 비워 몸을 가볍게 한다. 중요한 머리조차 얇고 가벼운 뼈로 바꾸고 불필요한 부분은 날개든 뼈든 비운다. 비운 뼈의 약해진 부분을 안정적인 삼각형의 구조로 보강한다. 날고 나뭇가지에 앉기에 적합하도록 다리에 뼈를 덧대어 강한 다리를 갖는다. 빼기만을 하는 새에게 덧대는 일은 중대한 결정이다. 뼈를 비우고 덧대는 일은 어쩌면 날기 위한 마지막 작업일지도 모른다.새의 울음소리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경고의 소리요 암컷을 유혹하는 사랑의 소리이다. 소리에 마음을 담아 에너지를 많이 쓰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영역 다툼을 다툼 없이 슬기롭게 해결한다. 싸움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새의 철학을 사람은 이해할까. 애써 모은 힘을 아껴서 쓰는 새의 지혜는 사람보다 낫다.신문과 방송을 가득 메운 욕심들을 마주한다. 정말 사람이 만물의 영장인지를 의심하게 한다. 산에 불을 지를 게 아니라 자신의 가슴에 조화로운 삶을 위한 불을 지필 수는 없는지. 몸과 마음에 가득 찬 탐욕을 내릴 수는 없는지.

2022-03-23

선거운동 유감

온갖 네거티브와 마타도어가 판친 ‘비호감 대선’이라선지 선거 운동 방식도 ‘극혐’(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이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구닥다리 ‘선거차 유세’ 좀 그만 보고 싶다. 이번 대선 기간에도 경찰서에는 연일 시민들의 민원이 쏟아졌는데, 가장 많은 게 소음 관련 신고였다.선거 이틀 전인 3월 7일, 시끄러운 앰프 소리에 잠에서 깼다. 선거 유세 차량에서 크게 틀어놓은 로고송 때문이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1번도 2번도 모두 국민을 위한 정치, 민생을 살피는 정치를 하겠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아침 일곱시부터 저질 로고송 틀고 소음공해나 만드는 게 과연 국민을 위한 일인지 묻고 싶었다. 국민들의 보편적인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정치는 무슨 정치.아직 더 자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밤에 일하고 아침에 자는 3교대 근로자들도 있고, 고시 준비하는 수험생들도 있고, 아이 재워야 하는 부모들도 있고, 명상이나 독서로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타인 삶의 평화를 함부로 침해하는 이들이 어떻게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시민들이 왜 이른 아침부터 저급하게 개사한 ‘남행열차’, ‘진또배기’, ‘질풍가도’ 따위 유세송을 들어야 하는가? 옆동네에서는 ‘찐이야’, ‘찰랑찰랑’이 울려 퍼졌을 테니, 품위 없는 선거 유세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마찬가지다. 앰프를 얼마나 크게 틀었는지 온 동네가 쿵쿵거렸다. 부아가 치밀어 112에 전화 거니 1390 선관위로 연결해줬고, 선관위는 다시 내가 사는 지역구 선관위로 통화를 돌렸다. 세 차례나 민원을 넣어 항의한 덕분인지 아니면 다른 데 가서 또 그 난리를 치려는지 시끄러운 유세차량은 30분 후 물러났다.소음뿐만이 아니다. 도로 통행을 막아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일도 허다하다. 빨간 점퍼, 파란 점퍼, 노란 점퍼 입은 당원들이 떼로 모여 마치 자기들 세상인양 차도와 보행로를 점거한다. 그야말로 무법천지다. 군산에서는 국민의힘 유세 차량이 시장 골목 입구에 버티고 선 채 차량 통행을 20여분 동안 가로막아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현장에서는 고함과 욕설 항의가 빗발쳤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택시 타고 김포공항 리무진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동안 민주당 유세 차량이 고가도로 옆 편도 1차선을 점령한 채 비켜주지 않는 바람에 결국 버스 놓쳤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40분 넘게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분노가 뻗쳤다.이 볼썽사납고 시끄럽고 혐오스러운 선거 유세 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는지, 정치인들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낡은 방식을 고수한다면 유권자들로부터 외면 받을 것이다. 곧 있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서울시장 보궐 선거와 이번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를 쥐었던 2030세대 표심을 잡으려는 각 정당들의 노력이 가상하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의 권리나 이익이 침해되는 걸 견딜 수 없어 한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걸 극도로 경계하면서 자신 역시 남으로부터 작은 피해도 입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기성세대는 집단을 과시하고 공동체의 동일성 논리로 ‘우리’의 승리를 위해 소음공해나 교통 불편쯤 괜찮다고 뭉개지만, 젊은 세대는 철저히 개인이다. 집단이라는 다수의 폭력이 소수적 삶의 평화를 위협하는 걸 참지 못한다. 개인주의자들인 2030세대는 공정과 평등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고, 사회적 약자 등 타자에 대한 배려를 항상 의식한다. 웬만해서는 지하철 임산부석과 노약자석에 앉지 않는다. 위법한 호의나 원칙을 무시한 배려는 거절한다. 공공질서를 지키고, 법을 준수하는 한 사람의 성숙한 시민들이 모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고 믿는 이들이다.시끄러운 로고송 틀고, 마구잡이로 길 막으며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정당들이여 제발 정신 차려라. 이제는 음주운전이나 성범죄에 관대했던 쌍팔년도가 아니다. 여전히 구시대적 감성으로 법과 질서 따위 가볍게 무시해도 되는 줄 아나본데, 그러다 국민들한테 혼난다. 타인 삶을 함부로 침해하는 행위에 2030세대가 얼마나 엄격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음주운전 사고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옛날 같으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그릇된 온정주의가 설쳤겠지만, 요즘은 “예비 살인자, 다른 사람 죽이지 말고 깔끔하게 혼자 죽으라”고 한다. 싸구려 로고송 틀려면 실내 체육관 빌려서 당신들끼리만 들어라. 넉 달 후면 지방선거다. 지켜보겠다.

2022-03-22

포켓몬이 돌아왔다

요즘 없어서 못 구한다는 문제의 포켓몬 빵. 친구가 포켓몬 빵 사겠다며 새벽같이 일어나 편의점 순회를 돈다고 이야기 했을 때, 나는 그 옆에서 대놓고 피식 비웃었더랬다. 그런데 별 생각 없이 들른 편의점에서 우연히 포켓몬 빵을 발견한 뒤론 문제의 빵 구하는 재미에 푹 빠지고 말았다.운은 처음이 다였는지 그 다음날에도, 심지어는 보름이 넘어가는 데도 포켓몬 빵 구하기는커녕 그림자 보기도 힘들어졌다. 점점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자 어느덧 포켓몬 빵을 구하기 위해 옆 동네와 옆옆 동네 편의점까지 원정을 나서는 열정을 보이고 있었다.포켓몬 빵은 2000년대 초 캐릭터 라이선스 계약이 종료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올해 4월 22일 돌연 모습을 드러내었다. 총 7종으로 구성되어 16년 만에 고스란히 돌아온 포켓몬은 출시 2주 만에 약 350만개 판매량을 돌파했고, 편의점 빵 매출 1위 자리를 단숨에 꿰찼다. 3월 19일 기준 SNS상에선 #포켓몬빵 해시태그로 등록된 게시글만 해도 4만3천 개나 된다.2030세대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덕에 물량 구하기도 쉽지 않다.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따라가지 못하는 사태까지 발생해서 현재 편의점 당 하루 1~2개의 빵만 입고되고 있을 정도다.워낙 희귀하다 보니 천오백 원짜리 포켓몬 빵에 이만 원 가량이나 하는 초콜릿이나 사탕을 끼워 파는 상술도 생겨났다. 편의점보다 마트 물량이 더 많다고는 하지만 1인당 포켓몬 빵 구매 개수가 5개로 제한이 걸려 있는데다 마트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다 보니 이마저도 쉽지 않다.포켓몬 빵의 인기 비결은 바로 빵과 함께 들어있는 ‘띠부띠부 씰’이다. 떼었다 붙였다 하기 쉬운 스티커로 총 159개의 포켓몬 캐릭터로 구성되어 있다. 귀여운 스티커를 보며 잠시 소소한 기쁨을 맛보기도 하고 어릴 적 포켓몬 빵 하나 사며 행복해했던 추억으로 복기하는 재미도 있다. 더군다나 이렇게까지 포켓몬 빵을 사는 이유는 아무나 살 수 없단 희소성과 SNS나 친구들 사이에서 상황을 공유하여 놀이처럼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한 몫 하는 듯하다.159개의 띠부 씰을 전부 모으는 컬렉터들도 많다. 띠부 씰이 무작위 랜덤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빵을 구한다 한들 스티커가 중복되는 경우가 생긴다. 컬렉션을 다 모으기 위해선 기약 없는 빵 사기를 계속 해야 하고, 한계가 있다 보니 오히려 컬렉터들의 소유하고 싶은 심리를 자극하는가 보다.현재 인터넷 중고 장터에서 띠부씰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희소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가장 인기 많은 ‘뮤’와 ‘뮤츠’ 캐릭터 스티커는 개당 최대 5만원선으로 거래되고 있을 정도다.여러 군데 전전해본 결과 포켓몬 빵을 사기 위해선 몇 가지 간단한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집근처 포켓몬 빵을 파는 편의점을 확인해야 한다. 안파는 편의점을 제외하고선 동선을 체계적으로 짜야 하기 때문이다.또 중요한 점은 각 편의점마다 물건이 입고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제품이 들어가는 시간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고객 유입량이 적은 한적한 편의점을 노리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상황이 녹록치 못해 사람 많은 편의점 위주로 돌아야 한다면, 편의점 앱을 이용하여 해당 편의점 재고 파악을 한 뒤 가면 좋다. 물론 편의점으로 가는 사이 팔릴 수 있단 위험 리스크가 있다.기다림을 즐길 수 있다면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해 대량 구매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도 매진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기나긴 완불 대기를 감내해야 한단 단점이 있다.진심인 듯 보이지만 내게 포켓몬 빵 사기는 일종의 가벼운 취미다. 산책도 할 겸, 같이 걷는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눌 겸 이곳저곳을 열심히 걷고 있다. 다행히 날도 좋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우연히 마주친 포켓몬 빵 하나엔 어찌나 기쁜지 모른다.너무 조급하게 하루하루 생활하다 보니 가끔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 행운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듯싶다. 행운은 생각보다 가까이 머물러 있고, 만약 보이지 않는다면 이렇게 뚜벅뚜벅 두 다리에 힘주고 찾아 나서면 되는 거니 말이다. 오늘도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이곳저곳 소소한 운을 맞이하러 나가본다.

2022-03-22

‘윤핵관 일선후퇴’ 조언, 받아들여질까

심충택 논설위원 김무성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주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진숙 전 대전 MBC 사장의 선거 사무소 개소식에서 “소위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이라고 불리는 권성동, 장제원 같은 의원들은 인수위가 끝나는 대로 뒤로 물러나야 한다”며 쓴소리를 했다. 그는 “압도적 여소야대 상황인 만큼 거국 중립 내각을 구성해야만 윤석열 정부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그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했다.거국중립내각은 여야가 함께 내각에 참여해 초당적으로 정부를 운영하는 형태다. 일반적으로 국가가 갑자기 위기 상황에 처하거나 전시 등 비상시에 구성된다. 김 전 대표의 생각은 국민의힘 의원, 특히 당선인의 측근들이 내각 자리를 양보하고, 야당과 협치를 해야 국가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 의석수는 172석이며, 국민의힘은 국민의당(3석)과 합당이 이뤄지더라도 113석에 그친다. 윤석열 정부는 당장 코로나 극복을 위한 추경안 편성이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민주당 협조가 절실하다.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12월 19일 치러진 제18대 대선 막바지에 새누리당 선대위에서 지금의 윤핵관 논란과 흡사한 ‘친박(근혜)사태’가 발생했을 때 총괄선대본부장으로 발탁돼 위기국면을 수습한 경험이 있다. 당시 선거를 불과 2개월 앞두고 ‘친박감별’ 논란으로 판세가 급격하게 요동치자 박근혜 후보는 최경환 당시 후보 비서실장을 ‘읍참마속’하고, 김 전 대표를 중심으로 선대위를 전격 재구성해 당선됐다.윤핵관 사태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윤석열 후보 최측근들의 전횡에 반발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상임선대위원장직을 던지고 지방으로 잠적하면서 외부에 노출됐다. 이 대표가 지목한 윤핵관은 권성동·장제원·윤한홍 의원이다. 권성동 의원은 당시 당 사무총장과 선대위 종합지원총괄본부장직을 겸직했고, 윤한홍 의원은 당 전략기획부총장과 선대위 당무지원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장제원 의원은 지난해 11월 대선 경선 직후 윤 후보의 비서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당내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자 2선 퇴진을 선언하고 공식직함을 가지지 않았다.윤핵관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당선인의 최측근 자리로 돌아왔다. 장 의원은 지난 10일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후 사실상 인수위 구성을 진두지휘했다. 권 의원은 새정부 초대 법무부장관 입각설과 원내대표 출마설이 돌고 있다. 윤 의원은 인수위 주요보직을 맡고 있고, 6월 지방선거에 경남지사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윤 당선인이 당선 직후 장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전격 지명하자 당선인의 인사스타일에 대해 많은 말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그의 인사 스타일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척도다. 한번 믿으면 끝까지 중용한다는 ‘의리’와 주변의 ‘조언’ 모두를 중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마 새 정부 청와대와 내각, 공공기관의 주요 인사도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에 따라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전 대표의 쓴소리가 받아들여질지 주목된다.

2022-03-22

국민의힘 개혁공천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

지방선거 공천을 위한 국민의힘의 사전 작업이 본격 진행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 공천에 적용할 페널티 규정과 역량강화시험 제도를 신설하는 등 강한 개혁공천 모습도 보인다. 출마요건을 강화한 ‘공천감정 규정’은 현역 국회의원 지원시 10%,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경험이 있을 시는 15% 페널티를 준다는 내용이다. 예를들어 대구시장 출마 의사를 밝힌 홍준표 의원은 25% 페널티가 적용된다. 그는 2020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한 뒤 대구 수성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국민의힘이 이 규정을 도입한 이유는 이번 선거에서 현역 의원 공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현재 국회 민주당 의석수는 172석이며, 국민의힘은 국민의당(3석)과 합당이 이뤄지면 113석이다.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민주당과 거국내각을 구성해서라도 식물정부 신세를 면해야 하는 마당에 현역 의원들이 명분없이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일종의 해당행위로까지 비칠 수 있다.이준석 대표가 그동안 추진해 왔던 ‘역량강화시험’ 제도도 이번 지방선거부터 도입하기로 해 주목된다. 기초·광역 의원 출마자에 대해 시험을 의무화하겠다는 이 제도는 정당 사상 최초의 시도다. 기초·광역의원 비례대표 공천 신청자의 경우에는 상대평가 9등급제가 적용된다. 기초의원 비례대표는 3등급(상위 35%) 이상, 광역의원 비례대표는 2등급(상위 15%) 이상 성적을 얻어야 지원할 수 있다.문제는 국민의당과의 합당이다. 앞으로 양당 간 합당과정에서 불거질 공천 갈등은 이준석 대표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 대표가 현안을 순조롭게 풀어나가면 리더십을 인정받을 계기가 된다. 어제(22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내놓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에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면서 신구권력이 또 한 번 충돌하고 있다. 현 여권이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대치국면을 만든다는 말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로서는 출범 20일만에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국정운영 동력이 많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2022-03-22

균형발전

우정구 논설위원 국가균형발전이 국가 어젠다로 채택된 지는 꽤 오래다. 2003년 4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대통령 자문기관으로 설립되고 새로운 대통령이 나올 때마다 국토균형발전은 국정의 주요 기조로 등장했다.하지만 이같은 국정 기조에도 국토의 균형발전은 지금도 여전히 답보상태다. 불균형 발전에 대한 지방의 볼멘소리는 그동안 그치는 날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 상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인구 분포다.국토 면적 12%에 불과한 수도권의 인구가 2019년 단군이래 처음으로 50%를 돌파했다. 2000년 46.3%이던 수도권 비중이 지방으로 인구를 분산시키기는커녕 시간이 더 할수록 수도권 인구를 더 늘렸다.최근 국세청이 밝힌 ‘광역단체별 상위 1% 근로소득자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위 1% 근로소득자 100명 중 75명이 수도권에 위치한 직장에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 근로소득자 총 19만여명의 74.5%가 서울과 경기, 인천에 산다는 것이다. 이는 양질의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뜻이다. 특히 1% 상위권자 수는 대구는 서울의 20분의 1, 경북은 16분의 1에 불과했다.정부가 국토의 균형발전을 20년 가까이 국정수행 어젠다로 삼았지만 지방의 입장에서 볼 때 그동안 달라진 것은 없고 정부는 시늉만 냈다고 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균형발전을 위해 “지역이 강한 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지만 찰떡같이 약속했던 2차 공공기관 이전조차도 이행치 않았다.대체로 새 정부의 국정 기조는 대통령 취임 초기에 설정된다. 전국이 골고루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균형발전의 정신이 새 정부에서는 꼭 실행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3-22

10년 끈 영일만 대교, 포항시민 숙원 풀 차례다

동해안 고속도로 포항∼영덕 구간에 포함된 포항시 남구 동해면에서 북구 흥해읍 일원을 잇는 길이 18km의 해상교량인 영일만 횡단대교 건설에 청신호가 켜졌다.이 사업은 2008년 광역경제권 발전 30대 선도프로젝트로 선정됐으나 경제성이 낮고 국도대체 우회도로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수차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해 지금까지 답보상태에 있다. 2019년 1월 정부의 예비타당성 면제사업으로 신청했으나 탈락하면서 한때는 “사업 자체가 물건너 간 것 아니냐”는 실망감에 빠지기도 했다.그러나 경북도와 포항시, 지역정치권의 끈질긴 노력으로 해마다 정부로부터 20억원의 설계·기본조사비가 책정되면서 사업 개시의 가능성은 열어놓았다.그러던 중 지난달 27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포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교건설을 약속했고,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이제 영일만 횡단대교 건설은 실현 가능 쪽으로 무게가 옮겨졌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최근 윤 당선자를 만나 영일만대교 건설에 대한 공약이행을 건의했고 당선자도 “새 정부가 잘 챙기겠다”고 말해 오랜 지역 숙원 사업에 대한 희망의 불빛이 켜진 상태다.영일만대교는 10년 넘게 끌면서 지역민을 애태운 숙원사업이다. 바다를 낀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해상교량이 없는 경북으로서는 교통난 해소뿐 아니라 관광 인프라 확보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사업이다. 특히 북방교역 시대에 대비해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횡단대교로서 역할도 기대되는 사업인 만큼 사업성에 대한 평가도 과거와는 다르다.영일만대교 건설이 대통령 공약에 포함됐다고 안심하고 기다릴 수는 없다. 공약이 100% 실행된다는 보장도 없다. 이 사업의 성공적 진행을 위해서는 정부를 설득할 자료 등 자치단체의 만반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가급적 빠르게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는 것이 중요하다.1조원 이상의 사업비가 투자되는 영일만대교는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힘이 된다. 포항시민의 오랜 숙원이 풀릴 희소식을 기대한다.

2022-03-22

냄비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냄비는 삿포로 라면을 끓여낸다 / 냄비는 동원 참치국을 끓여낸다 / 냄비는 오뚜기 옥수수 스프를 끓여낸다 / 냄비는 파 마늘 햄 미역 깨소금 담고 미역국 끓여낸다 / 냄비는 모든 것을 담고 모든 것을 끓여낸다”김응교 시인의 시집 ‘씨앗/통조림’(하늘연못, 1999)에 실린 두 연짜리 시 ‘냄비’의 첫 연이다. 식구를 한국에 남겨 두고 1996년에 도쿄외국어대학에 공부하러 가서 와세다대학에서 객원교수로 강의하다가 귀국하기까지 12년 동안 일본에서 혼자 생활해야 했던 시인에게 냄비는 소중한 살림살이 도구였을 것이다. 그러니 냄비밥, 냄비국깨나 먹었으리라는 추측은 추측도 아닐 터.라면 하면 냄비다. 그중에서도 포르르 빨리 끓는 양은 냄비가 그만이다. 양은은 구리에 아연과 니켈을 섞어 만든 은색의 합금이다. 우리가 흔히 양은 냄비라고 부르는 노란색 냄비는 양은이 전혀 사용되지 않고 실제로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으며 여기에 노란색을 내기 위해 알루미나라고 하는 노란 코팅제를 입힌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냄비에 물을 끓이면 알루미늄이 용해되어 나오고, 알루미늄이나 알루미나는 모두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때문인지 집집마다 한두 개씩은 있었던 양은 냄비가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몇몇 분식집에서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값싸고 가벼운 양은 냄비의 자리를 이제는 스테인리스, 법랑(세라믹), 내열유리, 통주물 등 다양한 재질의 냄비들이 차지하고 있다. 유치한 노란색이 아닌 은은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화려한 꽃무늬로 치장한 영국제, 독일제, 프랑스제 고급 냄비들이 주방 선반 위아래에서 한껏 그 자태를 뽐내기도 한다. 양은 냄비마냥 쉬이 식지 않고 보온성 좋은 국산 냄비도 쌔고 쌨다.우리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 쓰는 말 가운데 냄비 근성이라는 게 있다. 빨리 끓기도 하지만 빨리 식어버리는 양은 냄비에 우리를 빗댄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성향은 우리나라 사람만이 아닌, 이슈에 확 관심을 가졌다가 곧바로 잊고 마는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 성향이라는 주장도 있다.새 대통령 당선자(헌법에 따르면 ‘당선인’보다 ‘당선자’가 적절한 표현이라고 한다.)는 당선된 지 10여 일만에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기로 확정하였다. 양은 냄비에 라면을 끓이는 것과 같은 속전속결 빠른 결정이었다. 광화문 시대 공약은 무색해졌다. 광화문이건 용산이건 ‘국민 속으로’라는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국민’의 여론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빠른 결정만큼 빠른 방향 전환이나 철회가 있을 수 있겠다. 반대론도 그렇다. 양은 냄비처럼 빨리 사그라들 수도 있고 뚝배기처럼 오래가거나 보온밥솥처럼 계속 뜨거울 수도 있겠다.내 머릿속에서도 말이 끓는다. 하여, “냄비는 늘 싱싱한 생선을 주는 깊은 바다 같다 / 냄비는 헉헉헉 뜨건 숨 뿜으면서도 / 냄비는 수명 다할 때까지 / 냄비는 군소리 없다”라는 시의 2연으로 ‘군소리’를 식혀 없애고 만다.그렇지만, “모든 것을 담고 모든 것을 끓여” 낼 맛깔난 정부를 정녕 바라면 안될 것인가?

2022-03-22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조현태수필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이 두 가지를 모두 했던 사람이 있었다. 1822년 독일에서 출생한 하인리히 슐리만. 그가 7살 때 아버지가 선물로 사다 준 ‘어린이를 위한 세계사’를 읽고 트로이라는 도시가 실재하는 장소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 믿음은 그의 일생에 포기할 수 없는 꿈이 되었다. 41세가 되던 해 고고학자의 삶을 시작하였고 마침내 소아시아 트로이 유적 발굴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유적 탐사의 과정에서 엄청난 보화들을 찾아냈다.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인물이지만 유명한 만큼 논란과 비난의 대상이기도 하다. ‘과학적 고고학의 아버지’, ‘새로운 학문의 선구자’로 찬란한 조명을 받는 반면, ‘더러운 도굴자’, ‘비과학적인 고고학의 초심자’, ‘문명 파괴자’ 같은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한 인물에 대해 이렇게까지 반대되는 평가가 공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슐리만은 무역과 은행업 등에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고고학을 공부하며 발굴 작업에 뛰어든 인물이었다. 1869년, 아름답고 헌신적이며 ‘일리어드’를 잘 아는 그리스 처녀와 결혼했다. 이듬해 4월, 슐리만과 아내는 조사활동을 시작하여 3년 동안 일꾼 100여명을 데리고 37m 높이 언덕에서 트럭 25만대 분이나 되는 흙을 파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오스만 튀르크 정부의 발굴허가를 받아 1871년 10월 첫 발굴을 했다.이후 20년에 걸쳐 7차례 발굴 작업을 한다. 그 결과는 전 세계에 흥분과 충격을 안겨준다. 트로이에만 너무 열중한 탓에 다른 시대 건물들을 무너뜨리거나, 중요한 역사적 실마리가 될 벽돌을 깨뜨리며 깊이 파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엄청난 실수 때문에 오히려 여섯 번째 층에 묻힌 평생소원이던 트로이가 드러나게 된다. 프리아모스 궁전이라고 믿는 돌 건물 8.5m 아래에서 어마어마한 보석이 발견된다. 팔찌, 브로치, 목걸이, 접시, 단추, 등. 금으로 만든 것이 자그마치 8천700여점과 화려한 금관까지. 결국 평생 꿈꾸어 온 트로이의 보물을 손에 거머쥔다.이 보물들은 후일 슐리만의 유언에 따라 베를린의 선사시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독일에 진주한 소련군에게 탈취당해 지금은 러시아가 보관하고 있다.슐리만의 발굴 작업 결과 히살리크 언덕은 도시의 폐허가 여러 겹으로 중첩된 고고학의 보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들이 수천 년간 번영과 멸망을 반복한 장소였다. 이 과정에서 슐리만은 도자기들과 고고학의 방법론인 층서학(stratigraphy)에 큰 관심을 가졌다. 층서학을 슐리만이 처음 고안해 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복합적이고 광범위한 스케일로 층서학을 적용하여 발굴하고 연구한 것은 슐리만이 처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 사람이 재물에 욕심이 있어서 도굴에 비견할 만한 일을 했던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많은 역사적 자료를 파괴하고 훼손한 것은 사실이지만 트로이 유적을 찾아내고 인류문명의 생생한 역사를 증명한 공로는 마땅히 인정해야 할 일이다. 어쩌면 어릴 때부터 키워온 꿈의 발현이라는 생각에 지금 시대에도 필요한 가치는 아닐는지.

2022-03-22

노송(老松) 아래 아무것도 없었다 (Ⅴ)

-수목장을 할 것입니다.필립이 말을 꺼냈다. 선산에 안장하거나 납골당에라도 모셔야 하지 않겠느냐? 작은아버지와 친지들은 입을 대고 싶었겠지만 그들은 지쳐있었다. 칠십 대 후반의 노인들이 삼일장을 오롯이 견뎌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필립의 뜻대로 될 일이기도 했다.필립은 만식을 꼭 닮아 있었다. 한번 마음을 정하면 좀처럼 바꾸지 않았다. 아집이라 말하기에는 근거가 명확했고 일방적이라 말하기에는 대화와 설득의 과정을 중시했지만, 그럼에도 결론은 자신의 뜻대로 되어 있었다. 필립의 뜻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만식이었다. 두 사람은 자주 의견이 부딪혔다. 필립의 정원에 모란을 심는 것부터 회사의 운영과 미래에 대한 계획, 투자 등의 문제까지, 거의 모든 방면에서 그들은 의견이 달랐다. 너희들은 걱정하지 말거라. 우리는 아주 조금 의견이 다를 뿐이다. 둘 사이의 의견 대립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가족들에게 만식은 말했다.나는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 내 돈으로 하는 것이지 않느냐. 어차피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지. 만식은 간단하고 유치한, 그러나 치명적인 말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필립과 마주 앉았다. 나와는 아주 조금 다를 뿐이지 않느냐. 네가 양보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만식이 물었다. 그 작은 차이가 모여 큰 흐름이 되는 것입니다. 필립은 말하고 싶었지만 번번이 말하지 못했다. 고개를 끄덕였고 만식은 주위의 가족들 혹은 임원들을 둘러보며 웃었다. 필립은 만식의 웃음이 흐뭇함인지 비웃음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너의 세상이 오거든 너의 뜻대로 해라. 만식은 필립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필립은 그 말을 믿었다. 나의 세상은 반드시 오지, 내 뜻대로 할 수 있겠지. 또 한 가지, 그 세상이 저절로 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두드리지 않고 소리가 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 가만히 있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형이 죽은 후 필립에게 주어진 것들이 늘어났다. 형이 했던 역할을 대신하는 것만큼 필립의 세상이 넓어졌다. 하지만 필립은 주어진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얻어냈다는 성취감보다는 하고 싶다는 바람이 더 컸다. 올해에는 이것이 다음 해에는 저것이 주어졌지만 기대와 욕망은 주어진 것을 넘어섰다. 눈앞에 있지만 손에 닿지 않는 것,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얻을 수 있는 것, 누군가의 손에서 나에게로 전해져야만 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커져 갔다. 만식은 너의 세상이라는 말로 필립을 달래려 했지만 만식이 인공 장기를 하나씩 달 때마다 필립의 세상은 한 걸음씩 멀어졌다.-반은 저희 집 정원에 있는 회화나무 아래에, 반은 서울 사옥 정문 앞의 소나무 아래에 모실 것입니다. 정원에 있는 회화나무는 아버지께서 손수 심으신 것입니다. 제가 모란을 심으려 했던 자리였지요. 집안에 정승이 나도록 해주는 나무라 하시며 심으셨습니다. 아직 정승이 나지는 않았지만 직접 심으신 뜻을 기리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자손이 성장해가는 것을 보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서울 사옥 정문 앞의 소나무는 오 년 전 양산 통도사 계곡에서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소나무가 버텨온 세월만큼 회사가 오래도록 위로 뻗어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이셨습니다. 건강한 노인의 상징이라고도 하셨지요. 그 아래에 모시겠습니다.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칠 년 전 여름 필립과 만식은 통도사에 있었다. 통도사의 담을 옆으로 두고 흐르는 작은 계곡 맞은 편 줄지어 선 노송을 함께 보았다. 허허, 그 참, 허허. 그 참. 만식은 굽히지 않고 하늘로 솟아 있는 노송들을 보며 연신 감탄의 말을 뱉어냈다. 오랜 세월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며 스님들의 독경 소리를 들었을 것 아닙니까? 저들이 곧 부처가 아니겠습니까? 만식은 옆에서 안내를 하던 주지스님과 필립을 번갈아 보며 이야기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한 분야에서, 한 위치에서 오랫동안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다 보면 도를 깨치게 되는 거지요. 요즘은 제가 꼭 그런 사람이 된 기분입니다. 팔 수도 없는 것이며 가져가기도 힘들 것이라는 스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만식은 계곡의 노송 한 그루를 옮겨와 심었다.그날 필립은 노송 아래의 것들을 보았다. 계곡의 노송들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 아름이 넘는 지름을 가진 노송들이 서로 간격을 두고 서 있을 뿐이었다. 이제 막 자라난 어린 소나무도, 노송의 허리춤까지 따라잡은 청년의 소나무도 없었다. 오로지 노송들만이 계곡의 깊이만큼 솟아 있었다. 그중 한 그루를 옮겨 오던 날 필립은 그 빈자리에서 자라날 새 소나무를 생각했다.

2022-03-21

추상미술의 기원에 대하여

알아볼 수 있는 구체적인 형상이 없는 미술작품을 가리켜 추상(抽象)이라고 한다. 원래 추상은 여러 가지 사물이나 개념에서 공통된 특징이나 성질을 추출하여 파악하는 인식작용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연원을 밝힐 수는 없지만 추상은 구상과 대비되어 비구상적인 미술을 가리키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그렇다면 미술가들은 언제부터 추상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몇몇 미술가들이 있다. 러시아 출신으로 독일 뮌헨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바실리 칸딘스키, 네덜란드의 피트 몬드리안, 감각의 궁극을 탐구한 우크라이나 태생의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여기에 속한다. 이들 중 칸딘스키는 자칭 추상미술의 아버지이다. 그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미술에서의 추상은 고전적 미술 관념에 균열을 일으키며 현대미술을 태동시킨 여러 미술가들의 실험들이 종합되고 집결되어 나타난 미술현상이기 때문에 특정 미술가를 추상의 창시자로 지목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추상의 태동과 전개과정에서 칸딘스키의 역할과 미술사적 업적은 충분히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칸딘스키가 추상의 가능성, 다시 말해 대상을 그리지 않더라도 그림이 될 수 있다고 직감한 것은 1896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프랑스 인상주의 전시에서였다. 여러 작품들 중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끌로드 모네의 작품 ‘건초더미’였다. “불현듯 나는 마침내 처음으로 한 점의 ‘그림’을 보았다. 카탈로그의 제목을 읽고서야 그것이 건초더미를 그린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림을 보아서는 알아볼 수 없었다. 대상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 조금은 창피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화가는 어떤 권리로 이런 식으로 불명확하게 그림을 그렸단 말인가. 이 그림에서 대상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먹먹하게 느껴졌다.” 모네의 작품 앞에서 칸딘스키는 지금까지 그림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여겨졌던 대상이 사라지더라도 여전히 그림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생각으로부터 그의 추상으로의 미학적 여정이 시작되었다.칸딘스키에게 추상의 가능성을 계시한 모네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미술가이다. 인상주의는 사실주의와 더불어 고전미술의 문법을 파괴함으로써 현대미술의 빗장을 열어준 미술사조이다. 사실주의는 저널리즘의 매서운 눈초리로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한 시민사회로부터 잉태된 여러 사회문제들을 은유적 수사 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미술에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부여했다. 반면 인상주의는 미술의 내밀한 조형원리에 집중함으로써 규범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미술에 퇴적된 고정관념들을 하나씩 제거해 갔다. 아카데미즘으로 대변되는 전통미술이 고정된 관념을 닫힌 원리에 입각해 그림을 그렸다면 인상주의자들은 그들이 직접 ‘본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무엇을 보는가’하는 문제는 곧 ‘세계와 어떻게 관계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전미술이 배우고 익힌 것을 그려냈다면 인상주의는 본 것을 그렸다. 고전미술이 관념과 지식에 관한 것이라면 인상주의는 시각적 경험에 맞닿아 있다. 보는 것을 그리고자 하는 화가는 필연적으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과 대결할 수 밖에 없다. 칸딘스키가 보았던 모네의 ‘건초더미’는 이러한 근본적 물음에 대해 화가가 탐구해 가는 과정이다. 모네에게 건초더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저 황량한 벌판에 놓인 대상에 불과하다. 그가 정말로 그리려고 했던 것은 공간, 대상, 빛, 대기 등의 요소들이 시각적 경험에 작용하는 방식이다. 동일한 대상을 다른 조건에서 반복해 그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모네는 추상이 아니라 건초더미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화면에 담았지만 칸딘스키는 그 안에서 대상을 넘어선 추상 회화의 가능성을 보았다./미술사학자

2022-03-21

연기연금제도의 허와 실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초고령화시대로 접어들면서 연금수령액을 늘리는 방법은 없을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방법은 있다. 바로 국민연금법상에 있는 연기연금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현재 국민연금을 10년 이상 가입하면, 만 62세부터 숨질 때까지 매달 노령연금을 받는다. 하지만,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에도 여전히 일을 해 소득이 충분하다면, 연금을 받는 시기를 미루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최대 5년 간 연금 수급 시기를 미뤄 연금수급액을 늘릴 수 있다. 이 제도를 활용하면 매달 연금액에 0.6%씩 이자가 붙어 1년에 7.2%, 최장 5년을 미루게 되면 36%의 연금액을 더 받을 수 있다. 또한 이제까지 한 번으로 제한됐던 연기 신청이 오는 6월부터 여러 번 가능해진다. 국민연금공단이 초고령화 추세를 반영해 수급권자의 선택권을 좀 강화하는 차원에서 최장 기간이 5년인 건 변함이 없지만 그 안에서는 여러 번 신청할 수 있는 걸로 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이같은 연기연금제도 가입자 수는 지난해 약 7만8천명으로 1년 사이 33%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연기연금제도를 신청할 때 꼭 유의해야 할 점도 있다. 무엇보다 평균적인 수명보다 좀 더 이르게 사망할 경우에는 자신이 적립한 국민연금 마저 다 찾아먹지 못하게 되는 불리한 경우를 당할 수 있다. 따라서 당장 생활비가 아쉬운데 연금수령액을 좀 더 늘려 받겠다고 미루는 건 옳지 않은 선택이라는 게 연금공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민연금공단도 가입자 본인의 경제적인 소득상황과 건강상태 등을 꼭 고려해 신중하게 신청을 결정하라고 당부하고 있다.인생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 그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3-21

우크라이나 전쟁의 외교·안보적 함의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국제정치는 ‘힘의 정치’이다. 강대국들의 국익이 충돌할 때 약소국의 이익은 무시된다. 강대국 간 전략경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같은 지정학적 ‘중추국(pivot state)’은 외교·안보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유사한 지정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한국도 강대국 정치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관’과 러시아의 ‘현실주의 국제질서관’의 충돌이다. NATO의 동진(東進)을 우려해 온 러시아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는 우크라이나의 NATO가입 추진을 침공의 빌미로 삼은 것이다. 또한 우크라이나 내부의 친러파(동부지역)와 친서방파(서부지역)의 지속적인 대립과 갈등, 특히 동부 돈바스지역에서 계속되어 온 친러 반군의 분리·독립운동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우크라이나 전쟁은 한국의 외교·안보에 커다란 함의(implication)를 던져주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힘이 지배하는 국제정치 현실’을 직시하고,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것이다. ‘평화는 이상(당위론)이지만 전쟁은 현실(경험론)’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평화는 허구임을 증명했다. ‘평화는 목적이고 전쟁은 수단’이다. 국가는 국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서 전쟁을 활용하며 전쟁의 승패는 수단, 즉 전력(戰力)의 질과 양에 달려있다.동맹은 자체 방위력을 보완해주는 힘이다. 우크라이나는 방위력도 약했고 동맹국도 없었다. 북핵 위협에 직면해 있는 한국에게는 핵 억지력을 제공하는 한미동맹이 사활적 중요성을 갖는다. 경제안보 차원의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와 군사안보 차원의 한미동맹은 질적으로 다르다. 한미동맹과 한중관계의 경중(輕重)을 고려하여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한국 외교안보전략의 핵심이다.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핵무기의 중요성을 재확인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핵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영국·러시아와 체결한 ‘부다페스트 협정’으로 안전보장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그 협정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우크라이나가 ‘절대무기인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러시아의 침략도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는 핵 억지력 강화를 위해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 또는 핵 공유협정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마지막으로 국내정치에 대한 안보적 함의이다. 친러파와 친서방파의 대립은 우크라이나를 약화시켰고, 친러 반군의 무장투쟁은 러시아의 개입 명분이 되었다. 한국정치에도 엄존하고 있는 자주파와 동맹파, 친미파와 친중파의 대립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외세에 악용될 수 있다. 중추국의 위치에 있는 한국이 북핵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주와 동맹, 동맹과 균형을 둘러싼 이분법적 흑백논쟁은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내부의 분열이 외부의 침략을 불러온다.’는 사실이다.

202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