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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국민의힘과 TK

홍석봉 대구지사장 기껏 좋은 일을 해놓고도 사소한 잘못으로 되레 원망을 들을 때 ‘뭐 주고 뺨 맞는다’라는 말을 한다. 지금 TK(대구·경북)가 꼭 그 모양이다. 4년마다 되풀이되는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낙하산에 지역민들이 단단히 ‘뿔’이 났다.TK는 지난 박정희 정권 때부터 정권의 창출지이자 보수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해왔다. 보수의 원조이자 보수 지킴이였다. 이후 5, 6공화국을 거쳐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보수의 터전이 됐다. 그러다가 3김 때부터 영·호남으로 편이 갈리며 ‘망국병’이라는 지역주의의 한 축이 돼버렸다. 이후 선거 때마다 TK는 지역 보수 정당에 표를 몰아주며 성원했다.하지만, 돌아온 것은 처참한 배신이었다. 매번 뒤통수를 맞고 땅을 치는 일이 벌어졌다. 걸핏하면 낙하산 공천으로 지역을 물 먹이기 일쑤였다. 그래도 TK는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듯 선거 때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표를 줬다. 그만큼 당했으면 외면하거나 돌아서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렇게 하질 못했다. TK는 ‘바보’, ‘못난이’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수 십 년이 흘렀다. 하지만, 또다시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4·10 총선 국민의힘 TK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 지역민들의 바람은 철저히 배척당했다. 오히려 지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지역의 재선 이상 다선 대부분이 공천 열차에 무임승차했다. 잡음 없이 가려는 당 지도부와 공천관리위원회의 안전 운영 기조 탓이려니 했다.그게 아니었다. 공천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자 감동과 혁신 없는 공천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다급해진 공관위는 국민추천제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대구 동·군위갑과 북을 등 국민의힘 강세지역 5곳에 회심의 카드로 내밀었다. 밀실 공천과 전략 공천 우려가 나왔다. 결국, 지역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사들이 벼락 공천을 받았다. 5·18 폄훼 발언으로 공천을 번복한 대구 중·남구도 의외의 인물을 낙점했다. 지역이 부글부글 끓었다.보수의 안방이자 윤석열 정부 탄생에 절대 공헌을 한 TK의 공로와 헌신은 안중에도 없었다. 당 지도부가 해당 분야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생면부지의 인사를 낙하산으로 꽂았다. 당 지도부가 영입인사는 우대하고 지방 정치인은 무시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만만한 것이 홍어 X’라고 궁지에 몰리기만 하면 TK에 칼을 들이댔다.결국, 현 정권과 국민의힘을 여태껏 밀어주고 지지한 대가가 TK 홀대로 되돌아왔다.헛물을 켠 TK의 자존심만 형편없이 구겨졌다. TK 유권자 무시와 다름없다.다른 선택지만 있어도 이만큼 허탈하지는 않았을 터다. TK의 정치 냉소와 ‘해보나 마나 한 선거’만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힘을 지지하자니 속이 뒤집힌다. 민주당엔 더더욱 눈길이 안 간다.기대했던 제3지대는 지리멸렬이다. 판을 뒤집을 수도 없다. 자칫 투표권 행사 포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민의힘의‘갑툭튀’에 TK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TK는 지금 조건 없는 국민의힘 짝사랑과의 결별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2024-03-21

행복한 나라

우정구 논설위원 핀란드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과 함께 북유럽 선진국의 하나다. 유럽국가 중 면적은 3번째로 크나 인구는 554만명에 불과해 인구밀도가 유럽국가 중 가장 낮다.지구의 북쪽에 위치해 1년의 절반 가량이 추운 겨울인 나라다. 유럽의 극지여서 겨울엔 해가 뜨지 않는 날도 많다. 일부 지방의 12월은 해가 오전 10시에 떠서 오후 2시면 진다.핀란드가 UN산하기구인 UN지속가능발전해법 네트워크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행복도 조사에서 올해도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정됐다. 연속 7번째다. 세계 150여 개국 대상으로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기대수명, 부정부패지수 등의 자료를 근거로 설문 조사한 결과다. 한국은 52위로 지난해보다 5단계 올랐다.상위권에는 핀란드를 포함 덴마크 등 북유럽국가들이 많이 포진했다. 우리나라는 2022년 기준 경제규모가 세계 13위나 행복도 순위는 그보다 훨씬 낮게 나타났다.경제 규모 3위인 일본도 행복도는 51위에 그쳤다. 부자나라 미국은 23위, 독일은 24위로 조사됐다.행복이 소득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국민이 만족하는 행복감은 소득 이외에도 정치적 안정감, 부패없는 나라, 사회적 신뢰도, 소득불평등 해소 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핀란드가 7년 연속 행복도 1위를 유지한 이유 중 하나 눈여겨볼 것은 높은 사회적 신뢰다. 국가와 국민, 나와 이웃 간의 신뢰가 나를 행복하게 했다는 것이다.거짓과 불신, 막말 등이 판치는 우리 정치를 보면 우리 국민이 행복해질 날이 올 지 걱정이 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3-21

TK 신공항 건설사업 출발점에 섰다

대구시가 대구경북신공항 건설과 후적지 개발을 맡을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을 위한 절차 작업에 본격 들어갔다. 대구시는 20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공항공사, 대구도시개발공사, 대구교통공사, 경북개발공사와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 및 종전부지 개발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지원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또 21일에는 산업은행, 대구은행 등 8개 금융기관과도 같은 내용의 업무 협약을 맺었다.이로써 SPC 구성 문제 등 지지부진하던 대구경북 신공항사업이 드디어 본궤도에 오르게 된다. 정장수 대구시 경제부시장은 “6월 말 민간사업자와 공공 전체가 포함되는 SPC 법인 구성이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하반기에 SPC 설립을 완료하고 기본 및 실시설계, 토지보상 및 착공 등의 절차를 거쳐 2025년에는 착공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신공항 부지 결정과 특별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은 신공항 사업은 대구시 계획대로라면 내년에는 착공이라는 대역사를 시작하게 된다.대구경북의 미래를 바꿀 신공항 사업에 대한 지역민의 기대가 현실화되는 순간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공공기관의 협약은 TK신공항 건설의 기폭제가 되는 출발점”이라 말했다. 특히 대구시가 주도하는 기부대양여사업이지만 국가가 모든 문제를 보증하는 국가보증사업으로 격상됐기 때문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며 “신공항 사업의 성공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했다.공공기관과 금융기관 등의 참여로 대구경북 신공항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지만 대구경북 대역사인 만큼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다. 신공항 건설사업의 주관사 선정 등 대기업 참여와 건설 경기 장기침체도 넘어야 할 과제다.또 대구시가 계획한 대한민국 남부권 거점공항으로 완성되기 위한 전략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대구경북의 경제를 획기적으로 바꿀 공항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시와 경북도의 노력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지원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역 정치권도 신공항 조성이 성공할 수 있도록 헌신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

2024-03-21

정부는 의대증원이후의 문제, 감당할 수 있나

정부가 지난 20일 기존보다 2천명 늘어난 2025학년도 의과대학 학생정원 대학별 배정결과를 발표하면서, ‘의정(醫政)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의사들은 정부가 ‘2천명 증원’을 발표하자 “정권퇴진 운동에 나서겠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연세대 의대교수들은 ‘정부는 의대생 2천명 증원 배정안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통해 “의대 증원 졸속 정책은 우리나라 의사 교육을 후진국 수준으로 추락시킬 것이다. 사직서를 내고 휴학계를 제출한 (전공의·의대생 등) 후속 세대 1만5천명을 포기하며 진행하는 의대 증원은 아무런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고 밝혔다.이번 의대 증원 배분의 핵심은 예고했던 대로 지역의대 우선이었지만, 지방대 의대는 당장 크게 늘어난 학생을 제대로 가르칠 교육 여건과 수련병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로 떠올랐다. 의대 정원 배정 결과를 보면, 비수도권에 증원분의 82%를 배정하고, 경기·인천지역에 나머지 18%를 배분했다.정부가 2027년까지 국립대 의대 교수를 1천명 늘리는 한편, 기자재 확보 등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지만, 각 의과대학에서는 늘어난 인원을 당장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올해 입시부터 나타날 ‘의대블랙홀’ 현상도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2천명 증원 규모가 4대 과학기술원 입학 정원을 합친 것보다 많아서 ‘이공계 인재 유출’이 심각해질 수 있다. 외신에서도 한국정부가 의대증원을 밀어붙이면서 경제 분야, 특히 반도체산업이 타격을 입고 있다는 분석을 할 정도다.학원가에서는 올해부터 의대 진학을 위해 ‘N수’에 나서는 이공계 재학생, 직장인 등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의대정원 확대는 가장 민감한 이슈인 ‘사교육비 뇌관’을 건드리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걱정도 이만저만 아니다. 앞으로 갑작스런 의대증원으로 인해 나타날 의료공백과 교육·사회·경제적 후폭풍을 윤석열 정부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국민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2024-03-21

꽃샘추위의 3월에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반도 동쪽의 저기압과 서쪽의 고기압 사이로 차가운 북서풍이 불어온 탓이다. 또 건조주의보까지 내려져 있는데 강풍까지 불어오니 산불도 염려되고 화재의 발생도 우려된다. 그런데 다음 주까지 빗방울이 떨어지겠다고 하니 수상한 3월의 봄날이다. 길가의 개나리와 계곡의 산수유, 산기슭의 생강나무들이 서로 노란 꽃잎을 피워올려 진달래의 연분홍 잠을 깨우고 있다.3월 22일은‘서해수호의 날’이다.‘제2연평해전’과 ‘천암함 피격’ 그리고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도발로 희생된 ‘서해수호 55 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3월 넷째 주 금요일로 정한지 벌써 9주년이다. 20일부터 전국 각지에는 ‘불멸의 빛’이 켜지며 국립대전현충원에서는 오후 8시부터 55분간 3개의 큰 빛기둥이 사흘간 쏘아 올려진다. 지금도 북한은 장거리포 등을 발사하며 싸움을 걸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추모행사에 관심 없는 듯 불참이 많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참석하여 55인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는 등 열의를 보였으니 사상이 반대일까 궁금하다.23일은 ‘세계 기상의 날’이다. 세계기상기구 WMO가 1950년 세계기상협약을 제정하였었고 우리나라는 1956년 68번째로 가입하여 기후 위기 대응과 기상이변 등에 협력하고 있다. WMO의 올해 주제는 ‘기후 행동의 최전선에서’인데, 여기서 ‘기후 행동’이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개인, 정부, 사회의 모든 노력’을 말하며 일상 속에서 1회용 사용을 줄이는 것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활용을 통하여 탄소중립을 실현해야 한다.지표면의 온도상승은 150여 년 전 산업혁명 이후보다 섭씨 1.1도나 올라 최고치를 기록하였고 남극의 얼음양은 자꾸 줄어들고 있다. 잦은 태풍과 가뭄도 인류에게 두려움을 준다. 북아프리카의 폭염은 섭씨 50도를 넘었었고, 기상이변도 심해져 미국은 한파와 폭우가 덮쳤고 유럽에서는 이상 고온·저온 현상으로 기후가 요동쳤다.또 23일은 ‘세계 물의 날’이다. 그 주제는 ‘함께 누리는 깨끗하고 안전한 물’이며 인류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로 물 부족뿐만 아니라 강이나 바다가 오염되면서 먹을 수 있는 물이 줄어들고 있다. 가뭄과 홍수가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으니 물 자원을 잘 관리해야 할 것이다.이제 총선도 20여 일 남았다. 각 당마다 후보자를 선정하는데 무척 시끄럽고 뭐가 뭔지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진흙탕 속 싸움을 보면 참된 국가의 미래가 암담해지기도 한다.의대 정원도 확정되었다. 2천 명 중 대구·경북 지역 5개 대학은 289명을 배정받아 640명이 됐고, 동국대 분교는 71명, 경북대는 90명이 증원되어 ‘지역의 필수 의료를 살리는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환영하지만, 의사가 된 후 몇 명이 지방에 남을지는 의문이다.그러면 작년 11월부터 범시민 결의대회와 서명 운동으로 연구 중심 의대설립을 요청해 온 포항시의 꿈은 깨졌는가. 가속기연구소와 바이오 기반 시설이 많은 포스텍이 스마트 병원을 구상해 온 것도 헛꿈이 되었는가….희망찬 3월, 꽃가루 날리는 광장에 서서 국가의 밝은 미래를 그려 본다.

2024-03-21

선거판의 몰이성(沒理性) 현상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선거를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제도라는 말일 터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국가권력에 직접이든 간접이든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나라도 민주주의국가이므로 국민투표권과 공무담임권 같은 참정권을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선거는 국민 개개인의 정치적 의사 표현일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선택으로 모든 국민의 다양성을 아우르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제도다.그러나 선거는 독재자를 탄생시키는 산파역을 하기도 한다. 독일의 전신인 바이마르공화국 국민들은 보통·평등·직접·비밀이 보장되는 민주적인 선거를 통하여 전폭적인 지지로 히틀러의 나치를 탄생시켰다. 왜곡된 집단기억, 주류정치권의 실책, 경제위기, 반세계화·반민주 정서, 진영갈등 등의 이유로 국민들이 분노와 혼란에 빠져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 그런 결과를 낳았다는 후일의 분석이다. 그 밖에도 선거를 통해 집권한 독재자들이 적지 않지만, 최근 러시아에서 치러진 선거에서는 80%를 넘은 압도적인 지지로 블라디미르 푸틴의 장기집권을 선택했다. 그에게 선거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지금 한창 열기를 더해가는 우리나라 총선 정국도 그리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다. 아름답기는커녕 역대 어느 선거판보다 추한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우선은 그 선거판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들의 자질과 인성이 과연 국민을 대표할 만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제일야당의 공천권을 쥐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경우, 4건의 전과는 차치하더라도 성남시의 대장동과 백현동의 개발사업에 관련된 혐의와 성남FC, 대북송금, 위증교사 등에 관련된 범죄 혐의로 기소된 사건만도 9건이나 된다. 이런 인물을 국민의 대표로 선출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될 수 없는 일인데도 상당한 지지를 받으며 선거판을 누비고 있다.어디 그뿐인가, 업무방해·청탁금지법 위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1심과 2심에서 징역 2년형을 받은 조국 전 장관이 비례정당을 만들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3년 형을 받은 황운하 등을 영입한 것에도 국민 상당수가 지지를 하고 있다. 곧 감옥에 가야할 범법자들이 정당을 만든 것도,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도 정상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이런 병적인 현상이 극심해진 것은 가뜩이나 뿌리 깊은 이념 대립이 상존해 있는데다 정치인들의 편 가르기가 주된 원인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정치인들이 가장 손쉽게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데는 편 가르기 만큼 좋은 전략이 없다. 일단 편을 갈라놓고 한 편에서 싸움을 부추기면 절반은 아군이 되어 피터지게 싸워주는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지금 선거판에 횡행하는 이런 몰이성적이고 반지성적인 행태들이 나라를 어디로 몰고 갈지 불안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2024-03-21

손목 건초염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손목 통증은 잘 낫던가 잘 낫지 않던가 확연하게 둘로 나눠진다. 잘 낫는 손목 통증은 오래되지 않고 손목의 틀어짐이 없는 경우이다. 이럴 땐 환자의 통증이 심하지 않고 잘 낫는다. 잘 낫지 않는 경우는 오랫동안 아팠거나 손목의 틀어짐이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이 손목 건초염이나 삼각섬유연골복합체(TFCC) 통증이다.대부분은 일시적으로 손목을 쓰고 나서 아파서 내원하는데 일반 통증은 정확하게 아픈 부분을 찾아서 치료하면 빠른 시간 내에 회복이 된다. 오래된 통증이 잘 낫지 않는 경우는 손목 안쪽 요골 부근의 압통이 심한데 드퀘르뱅 건초염이라고 하는 손목 건초염일 확률이 높다. 손목 바깥쪽 척골 부근이 아프면서 걸레질이 힘들고 손이 부어 손가락이 쥐어지지 않는다면 손목 TFCC 쪽의 문제일 수 있다. 드퀘르뱅과 TFCC는 적합한 치료가 병행되지 않으면 수개월 혹은 수년간 고생을 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손목 통증이 심하고 움직임도 제한된다.일반적인 손목 통증은 대부분 부항으로 피를 뽑고 기본 약침으로 주변 힘줄을 풀어주면 4~5회 안쪽으로 좋아지나 드퀘르뱅이나 TFCC는 그렇지 않다. 손목 통증이 심한 환자들은 손목 전체가 아프다고 표현을 하기 때문에 꼼꼼히 살피지 않고 치료를 하면 엉뚱한 곳을 치료를 하게 된다. 그래서 의사는 꼼꼼히 살펴 손목 안쪽이나 바깥쪽이 아프지 않은지 양쪽 손목의 요골과 척골의 끝 부분을 비교해 더 튀어나와 있지 않은지 틀어지지 않은 지를 비교를 하고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해야한다.드퀘르뱅과 TFCC 등의 건초염이나 혹은 다른 심한 손목 질환은 일반적인 침치료에 더해 초음파 약침을 쓰면 효과적이다. 직접 손목의 힘줄을 보고 어느 힘줄 주변이 부었는지 확인을 한 후 그쪽으로 약침을 놔주면 빠른 효과를 보인다. 초음파로 보면 손목의 어느 힘줄이 부어 있고 물이 차있는지 혹은 어떤 신경이 눌러 있는지 보이기 때문에 정확히 치료를 할 수 있다. 한 달 동안 일반 치료 하는 것보다 한 번의 초음파 약침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손목은 다른 부위와 비교해 약침으로 힘줄과 신경이 눌린 곳을 분리해주면 더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손목 통증은 기본적으로 사용을 금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쓴다고 하면 손목을 둘러쌀 수 있는 보호대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걸레를 짜거나 바닥을 짚는 것은 절대 금해야 한다. 치료는 시간이 되는대로 자주 하는 것이 좋으며 일반적인 치료에다 직접 보면서 약침을 놓는 초음파 약침으로 하는 것이 몇 배 더 효과적인 치료다.보통 잘 낫지 않는 질환에는 이름이 붙는다. 테니스 엘보 드퀘르뱅 터널증후군 흉곽출구 증후군 디스크 등등 병명이 있는 질환들은 잘 낫지 않는 질환들이다. 손목 관련 질환에도 많은 병명이 붙는다. 가장 많이 쓰는 부위고 또 소흘히 하는 몸의 부분이 손목이다. 사용 후엔 손과 손목 그리고 팔뚝으로 이어지는 근육과 힘줄부를 마사지 해주는 것이 좋다. 평생 써야 할 소중한 몸의 부분이니 스스로 잘 관리하고 아프면 근처 한의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2024-03-20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온 책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은 영국의 여성작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의 수필집이다. 그녀가 1928년에 영국의 두 개의 여자대학교에서 한 강의를 기본으로 1929년에 출간한 책이다.여성의 지적 생활이나 사회적 역량은 경제적인 뒷받침과 자기만의 독립적 공간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향후 백년 후면 여성의 지위는 놀라울 정도로 발전할 것이며, 사회적·문화적·경제적으로 남녀가 평등한 세상이 도래할 것도 예견했다. 그녀 사후 80여 년이 지난 지금 과연 우리는 그녀의 예언대로 되어있는가.한 평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시대가 바뀌어 여성의 지위는 많이 향상되었으나 지금도 자기만의 방을 애타게 갈구하는 여성, 그 방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는 여성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1993년, 박사 학위를 받은 이듬해, 여성학을 더 공부하고 싶어 대구가톨릭대 대학원 여성학과에 입학했다. 영미여성소설론 수업 때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버지니아의 통찰력과 예지력과 용기있는 목소리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덕에 나는 페미니즘과 양성평등에 제대로 눈을 떴다.그로부터 2년 후인 1996년, 위덕대 교수로 임용이 되면서 나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 ‘자기만의 방’인 연구실을 얻는 동시에 버지니아가 말한 ‘지적 자유의 물적’ 토대인 급여생활자가 되었다. 그녀의 예언인 100년보다 더 빠른 68년만에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경제적인 능력을 획득했다. 임용 당시 나는 나를 사회적 인격으로 가능하게 한 위덕대를 위해 뼈를 묻어도 좋겠다는 다짐을 했고, 정말 열심히 강의와 연구와 봉사를 하는, 사회적으로 충실한 삶을 살았다.나의 연구실, ‘자기만의 방’은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할 필요없이 출입문과 창문을 제외한 벽과 천장까지 가득 빼곡하게 책으로 메워졌다. 25년이나 지나자 책은 책장마다 이중으로 꽂힐 수밖에 없을 정도로 넘쳤다.2020년 12월, 25년간의 학교생활이 끝날 즈음 저 책을 어쩌나 걱정되었다. 집엔 이미 남편의 책들로 가득했다. 대학 도서관에 기증한 1만권의 책을 덜어내고도 방방마다 넘쳤다. 나보다 2년 먼저 퇴직한 남편은 서재를 마련했지만, 난 그럴 여력이 없었다. 그때 마침 의성에 사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그가 사는 시골마을에 작은도서관이 생겼는데, 책이 없다는 것이었다.마침맞게 서로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접점이 생겼다. 그 많은 책을 싣고 가다가 트럭의 타이어가 터졌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잠시 헤어지자 생각했던 나의 책들은 4년 동안이나 의성에 가 있었다. 가끔 필요한 책이 있으면 의성까지 가서 가지고 오곤 하면서 책들에게 한없는 미안함이 있었다.지난 달 이사하면서 여분의 방이 생기자 남편의 첫마디가 “당신 책 가져오자”였다. 10개의 책장을 새로 사들였고 이사까지 남편이 주도해주었다. 그렇게 나의 책들은 무사히 돌아와 나의 ‘자기만의 방’에 안착했다. 잠 오지 않는 밤이나 일찍 잠 깬 새벽에 책으로 둘러싸인 방으로 가서 돌아온 나의 책 냄새를 즐긴다. 제자리를 찾은 책들이 기뻐하며 수런거리는 소리도 듣는다.

2024-03-20

말 많을 절

말을 많이 한 날은 왠지 속이 텅 빈 것 같다. 내 속의 무언가를 다 끄집어내 보여준 것 같아 기분마저 가라앉는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나눌 때도 있다. 그런 날은 가슴이 꽉 차게 느껴지지만, 나 혼자 떠든 것 같은 날은 왠지 마음 한 쪽 구석에 찬바람이 휭 하니 지나간다. 주책없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왜 했을까?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어 괜히 머리만 쥐어박는다. 나는 말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한자를 찾아 옥편을 뒤적이다 획순이 가장 많은 글자는 무슨 자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획순 따라 가장 뒷면을 펼치니 총획수가 64획이나 되는 ‘말 많을 절’이 있었다.용(龍)자가 네 개나 붙어 있는 글자다. 한 마리만 해도 획수가 많은데 위 아래로 포개듯이 네 마리나 있으니 그 수가 좀 많겠는가. 그런데 왜 용이 많으면 말이 많을까? 낙관(落款) 같은 글자의 모양에 관심이 일었다.용은 우두머리를 뜻하지 않을까? 우두머리 넷을 한 글자에 담았다는 자체에 생각이 머물렀다. 용이 넷이나 되니 서로 자기가 최고라고 자칭하게 될 것이고, 그러자면 자연 말이 많아 시끄러울 것이라는 쪽으로 마음이 갔다. 같은 용이지만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차이가 나지 않을까? 위에 있는 것과 아래에 있는 용이 다를 것이고, 좌청룡 우백호를 따지는 입장에서 보자면 같은 위에 있더라도 직책은 다를 것이다. ‘말 많을 절’자 안에는 같은 용이지만 네 가지의 계급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생각이 꼬리를 물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글자 안의 용들이 꿈틀거린다. 누가 더 힘이 셀까? 네 마리의 용의 모양은 같지만, 품성은 다 다르게 보인다. 네 자리 중 서로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물고 뜯는다. 서로를 비방하고 모함하며 모두 제가 가장 잘났다고 내세우기에 바쁘다. 남의 얘기는 들으려 하지 않기에 나와 상대를 비교분석 해야 한다는 것은 애초에 없다. 단지 내가 아니면 안 될 이유만 말 할 뿐이다.그 글자 안에는 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욕심도 많다. 세상과 단체를 위한다는 대의명분 속에 감춰진 마음을 조금도 버릴 수가 없어 한 치의 양보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진정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을 누가 더 갖추고 있는지 차근차근 따져, 나보다 더 나은 한 마리의 용에게 선뜻 여의주를 넘겨주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남은 세 마리의 용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 추천된 용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다면 아마 그 글자는 처음부터 ‘말 많은 절’자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윤명희 수필가 용(龍)은 하나일 때 빛이 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용이 될 수 없다. 그저 ‘말 많을 절’자에 불과하다. 말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들은 모습만 용일 뿐 이무기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자신을 용이라 하겠지만, 멀리서 보는 내 눈에는 그들이 말 많은 한 무리로 보일 뿐이다. 여의주를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용들로 인해 그 글자는 지금도 복잡하다.좁은 내 생활의 테두리 안에도 작지만 용의 자리는 있다. 예전, 어느 단체에서 잠시 네 마리의 용 틈에 있었던 적이 있다. 지나고 보니 그 자리였지, 정작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한 사람이 계속 다른 사람들의 험담을 내게 해서 마음이 복잡했다. 그가 다른 이에게 내 말을 하는 것을 안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른 체 이상해져 가는 단체 분위기에 갈팡질팡했다. 말 속에 있는 내가 싫어 그 단체를 나왔다. 시간이 흘러, 한 발짝 뒤에서 보니 그녀가 단체장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것을 알았다.뉴스에서 보는 정치가들의 모습이 내가 속한 단체에서 보였다. 서로 화합하면 재미있을 일이 누가 회장이냐에 따라 갈라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네모난 낙관(落款)처럼 생긴 ‘말 많을 절’자를 가슴에 찍는다. 다만, 내가 그 속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용 뒤에서 비록 내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2024-03-20

석굴사원의 효시, 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

군위 부계면에 가면 기암절벽 아래 세워진 사찰과 서원 그리고 잘 조성된 소나무길에서 풍기는 솔향을 물씬 느낄 수 있다.솔향이 이끄는 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경주 토함산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신라 시대의 석굴사원이 보인다.제2의 석굴암이라 불리는 이곳은 험준한 팔공산자락의 하나를 칼로 동강을 낸 듯한 학소대 절벽의 아랫부분에 아파트 한 동 크기의 자연동굴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석굴사원이다. 멀리서 보면 절벽 아래쪽 중앙에 자연 동굴의 동그란 모양과 그 안에 평평한 장소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삼존불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는 가까이서 볼 수 있게 설계된 계단이 통제되어 있어서 강 건너 멀리서만 볼 수 있다.군위 아미타여래삼존불상은 본래 지역민에게서는 불암-부처바위-으로 불렸다. 대략 7세기 중엽에서 말경 신라의 원효대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공적으로 조성된 경주 토함산 제1의 석굴암보다 규모는 작지만 시기는 100년을 앞선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석굴의 높이는 4.25m이며, 본존상인 아미타불은 2.18m, 우협시 관세음보살상 1.92m, 좌협시 대세지보살상 1.8m나 된다.협시보살은 대체로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형상을 지녔으며, 본존불은 인자함보다는 진중한 인상으로 석굴 안에 봉안되어 있다. 원효대사는 이 동굴에 아미타여래삼존불상을 조성해서 봉안하고, 미타정토신앙을 우리나라 최초로 포교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다.본존불인 아미타불은 무량수불·무량광불과 같은 말로, 줄여서 ‘미타’라고도 불린다. 서방 극락세계의 부처를 의미하는데, 아미타불은 성불하기 전 법장보살이었을 때 48개의 서원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 중 ‘선하고 바르게 살면서 내 불국토에 오고자 하는 이는 모두 극락에 왕생한다.’, ‘어떤 중생이든지 지극한 마음으로 내 불국토를 믿고 좋아하여 와서 태어나려는 이는 내 이름을 열 번만 불러도 반드시 왕생한다.’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서, 중생에 대한 넓은 포용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정토사상을 가장 먼저 신라에 도입한 원효대사의 자취와 그 뜻을 군위의 아미타여래삼존석굴에서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다.특히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상징하며, 손가락으로 땅을 짚은 항마촉지인을 취하는 최초의 불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아미타불 왼쪽의 관세음보살은 관음보살·관자재보살과 같은 말이다. 대개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전이나 무량수전에 모셔져 있지만, 워낙 우리나라에서는 하층민과 상인 등에게 인기가 있는 보살이라 관음전·원통전·보타전 등으로 독립되어 모시기도 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잘 외워도 극락에 가까워질 수 있고, 현세의 고통에 시달리는 중생을 자비로 구제한다고 하니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보살이다. 또 관세음보살은 손과 눈이 각각 천 개씩 있다하여 천수천안으로도 불린다. 재미있는 것은 불상이나 탱화에 천 개를 전부 표현할 수 없기에 대개는 약식으로 42개만 표현한다고 한다. 광배에 수많은 손이 있고, 그 손마다 눈도 하나씩 달려 있다면 관세음보살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아 자애로운 어머니로 불리기도 한다. 사실은 성별이 모호하여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할 수 없다.대세지보살은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위치하며,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독립적으로 봉안된 경우는 드물고 삼존불상에서만 주로 찾아볼 수 있는 보살이다. 머리에 쓴 보관의 꼭대기 위에는 한 개의 보배병을 이고 있는데, 이 보배병 안에는 세상을 비출 지혜의 광명이 담겨 있다. 대세지보살은 세상의 모든 중생을 자신의 독특한 지혜광으로 비추기도 하고, 삼천대천세계와 마귀의 궁전도 뒤흔들릴 정도의 힘으로 발을 구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후기까지 만들어지다가 조선 초에는 유행에 밀려 만들어지지 못했다. 다시 16세기에 이르러 제작되는데, 이때는 꼭 보배병을 이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주로 삼존불의 오른쪽 협시보살이면서 연꽃을 들고 있다면 대체로 대세지보살로 여긴다.솔향이 풍기는 길의 끝, 기암절벽의 아래쪽 가운데 사람의 손이 닿기 힘든 동굴 안에 아미타여래삼존이 모셔져 있다.7세기 초반에 창건되었다는 삼존석굴사와 9세기의 양식을 보이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본래는 3층이었으나 지역민의 손으로 재건되었던 독특한 모전석탑도 볼 수 있다. 근처에 조성된 소나무길과 복원된 양산서원까지 군위의 부계면에는 옛 불교의 자취가 남아있다./최정화 스토리텔러◇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4-03-20

정치, 흐르는 물처럼

장규열 고문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사건 이후로 물은 공공재라기보다 소비재가 되었다.공적으로 공급되는 수돗물이 있지만 병물을 사다 마신다. 홍수가 일면 물이 무섭다가도 평소엔 아직도 가벼이 생각하는 게 또 물이다.지구표면이 71퍼센트가 물이라거나 사람 몸무게의 70퍼센트 가량이 또 물이라면 놀랍기도 하다. 천체물리학자들도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평가할 적에 그곳에 물이 있는지를 먼저 살핀다고 한다.물은 과연 생명의 원천쯤 되는가 싶다. 대기오염과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파괴와 문명 훼손은 급기야 물을 오염하게 만든다. 산업화와 물질문명은 물길을 자연스럽게 놓아두지 못하였다. 물이 망가진 결과 그 물을 인공적으로 가공하고 다시 만들어 병물로 사다 먹는 꼴이 된 게 아닌가.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World Water day 2024)’이다. 국제연합(UN)이 제정하고 선포한 올해의 슬로건은 ‘물은 평화를 위하여(Water for Peace)’라고 한다. 물이 오염되고 부족해 지면 나라와 공동체 간에 갈등이 생기고 분쟁이 일어난다.기후변화가 극심하고 인구문제가 격화되면서 나라 안팎에서 물이 가장 중요한 자원임을 인식하고 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가 분명해진다. 공공보건, 환경보전, 식품과 에너지 시스템의 안정적 관리 등에 있어 깨끗한 물을 확보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물은 이제 사용하고 확보해야 할 자원일 뿐 아니라 모든 생명의 근원임을 자각하고 인권보호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게 국제사회의 공통된 시각이다. 물은 국가 간 분쟁의 씨앗이기도 하고 평화를 가져오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물이 성장과 번영을 가져오기도 하고 갈등과 파괴를 초래하기도 한다.총선 정치로 접어들면서 물의 날을 맞는 감회가 있다. 물 흐르듯 놓아두었으면 자연스러웠을 터에 억지로 구부려 화를 맞는 미련함을 우리 정치가 피해야 한다. 곧 후보 등록을 마치고 본격 선거전에 돌입하면 유권자들에겐 혼돈의 시간이 찾아온다.공약이 남발되고 확성기가 동원되면서 선심과 회유가 춤을 춘다. 물같이 흐르던 일상이 멈추고 흐트러지며, 억지춘향 악수세례와 믿지못할 약속공세가 쏟아진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뜬히 건너온 국민들을 아직도 우습게 보는 후보들에게는 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민심을 보여주어야 한다.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과 겪어온 날들을 차분히 평가하는 날카로움을 드러내야 한다. 헌법에 적힌 대로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었음을 확인하는 자랑스런 총선이 되어야 한다.경쟁을 화합으로 이끌며 갈등을 협력으로 몰아가는 정치가 되었으면 하는데, 정치의 실상은 늘 반대로만 치닫고 있어 국민이 걱정하고 염려한다. 국민이 편안하고 민생이 안정되는 일상을 만나고 싶은데, 정쟁과 다툼만 파도치는 정치를 너무 오래 보고만 있다. 유권자의 표심이 평정한 수심으로 나타나 정치인들이 크게 각성하는 이번 총선이 되었으면 한다. 물처럼 흐르는 정치를 만들어 주시라.

2024-03-20

군 사격장 민원

홍석봉 대구지사장 사격 훈련은 군인의 전투력 증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 실전 같은 연습이야말로 승리와 생존을 보장한다. 국민의 안전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군 사격장이 소음과 진동 민원으로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다.경북 포항시 장기면의 수성 사격장과 산서포병훈련장이 주민 반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방부와 국민권익위원회까지 나섰지만, 주민 간 이해가 엇갈리면서 주민들이 사격훈련 반대 집회를 여는 등 반발하고 있다. 군은 사격 훈련을 못 하고 있다.지난 1953년 미군이 설치한 공군의 낙동강 사격장도 지역 주민들의 소음과 오폭 위험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이전 요구가 드세다.군 사격장 민원의 대표적인 사례는 경기 화성의 매향리 사격장이다. 매향리 주한 미 공군 전용사격장은 한국 전쟁 당시인 1951년 조성돼 사격 소음과 오폭 등의 사고로 주민들이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시위가 이어졌고 대법원의 배상판결로 종결됐다. 매향리 사격장은 2005년 8월 폐쇄됐다. 이곳엔 현재 유소년 야구장인 화성드림파크와 평화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2020년 11월 ‘군용비행장·군 사격장 소음 방지 및 피해 보상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이에 따라 K2 등 군용 비행장 41곳과 5군단 사격장 등 군 사격장 60곳 인근 주민들이 2022년부터 소음 피해를 보상받고 있다. 구역별로 1인당 월 3만∼6만원의 소음 피해 보상금을 받는다.남북 대치 상황에서 군 사격장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사격장 인근의 주민들은 소음 등 피해를 안 입을 수가 없다. 정부의 소음 피해 최소화를 위한 조치와 함께 적정한 보상 및 주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군대가 있는 한 사격장은 없앨 수 없다. 분단국가의 숙명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3-20

자중지란 빠진 여권, 총선승리위해 원팀돼라

4·10 총선을 불과 3주 앞두고 국민의힘이 ‘용산발 리스크’와 ‘비례사천’ 논란에 휩싸여 난장판이 됐다. 1980년대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했다가 집중포화를 맞은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은 20일 자진사퇴했지만, ‘해병대원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연루된 이종섭 주호주대사에 대한 조치를 놓고는 당정갈등이 여전하다. 국민의힘 비례용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공천명단을 둘러싼 당 지도부 간 갈등도 심각하다. 대표적 친윤(윤석열)계인 이철규 의원이 비례명단에 호남·당직자가 배제됐다고 지적하면서 “바로잡기 바란다”고 직격탄을 날리자,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원하는 사람, 추천하는 사람이 안 됐다고 해서 그걸 사천이라고 얘기하는 건 굉장히 이상한 프레임 씌우기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지금까지 잠복해 있던 양측의 갈등이 선거일이 임박하면서 다시 격화하는 양상이다. 국민의힘으로선 대통령실의 입장 변화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용산의 분위기는 강경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수도권 판세가 여당에 불리한 쪽으로 악화될 경우 당정 간의 불협화음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자중지란에 빠져 있는 여권을 바라보는 민심은 싸늘하다. 수도권에선 4년 전보다 의석수가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소리도 공공연히 나온다.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수도권 의석 121석 중 16석(서울 8석, 경기 7석, 인천 1석)만 차지했다.한 위원장이 “이번 총선에서 지면 윤석열 정부는 집권하고 뜻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끝나게 될 것”이라고 한 말은 공연히 한 소리가 아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혁신당 대표가 최근 ‘정권심판론’을 강조하면서 윤 대통령 탄핵을 암시하는 발언을 자주하고 있지 않은가. 한 위원장도 언급했듯이,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게 되면 대한민국은 큰 혼란에 빠지면서 종북세력이 주류를 이루는 나라가 될 것이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을 비롯한 여권은 역사적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면서 지금부터라도 총선 승리를 위해 원팀이 돼야 한다.

2024-03-20

새 대구상의회장에 지역경제가 거는 기대

대구상공회의소 신임 회장에 케이케이(주) 박윤경 회장이 선출됐다. 대구상공회의소 118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회장이 탄생했다는 점에서 경제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또 2000년 이후 추대 방식으로 유지해오던 대구상의 회장 선출이 24년 만에 상공인이 직접 회장을 뽑는 방식으로 바뀐 것도 화제가 됐다.시대 변화의 흐름에 따라 여성 회장의 등장도 바람직하다. 경선에 따른 상공계 분열 등을 우려도 하나 경선이 가진 장점도 많아 25대 대구상의 회장 선출은 이래저래 지역경제계에 새로운 분위기를 안겨주었다.특히 박 회장은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기업의 대표며 개인적으로는 할아버지부터 아버지를 거쳐 3대째 대구상의와 인연을 맺어온 집안이다. 그래서 그의 상의 회장 선출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대구상의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대구민의소가 모태다. 다른 지역과 달리 특별한 전통과 역사가 있다. 대구상의 118년 역사 속에는 이런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왔다. 상의가 지역 상공인의 이익 도모를 목적으로 하지만 지역경제계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해야 할 일도 많다.무엇보다 30년 가까이 GRDP 전국 꼴찌의 대구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업이 성장할 좋은 토양을 만들고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도 많이 이끌어와야 한다. 대구경제의 볼륨을 키우는 데는 대구시가 할 일이 있고 대구상의가 할 일이 따로 있다.지금 대구는 큰 전환기에 있다. 섬유 등 전통산업이 줄어든 대신 첨단미래산업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산업구조 변화에 지역 신생기업이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치밀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신임 회장도 밝혔지만 신공항 개항에 앞서 대구가 대한민국 남부권 신산업 거점도시가 될 수 있도록 치밀하고 착실한 준비도 해야 한다. 박 회장은 “경제단체 수장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혁신과 도약을 통해 지역경제 발전을 이뤄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구상의가 지역경제를 혁신할 수 있도록 새 회장의 출발에 지역상공계도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2024-03-20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소통의 기술은 상호 작용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청취, 이해, 발언, 그리고 적절한 피드백을 포함한다. 소통의 기술을 향상하는 데는 적극적으로 듣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을 잘 이끌어 나가려면 피드백을 잘해야 한다. 피드백의 효과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태도와 기술에 달려 있다. 소통과 피드백을 못하면 조직 동맥경화 현상에 걸린다.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탑금속은 포스코의 냉연 제품을 가공하는 고객사로 혁신 지원을 했다. 기업 혁신은 인사조직부터 진단한다. 조직은 사람으로 보면 몸의 구조이고 몸통과 팔이 잘 연결되어야 손 기능이 된다. 사람의 몸에 살을 붙이고 동맥과 정맥 혈관을 연결하는 것이 혁신이다. 자사 금형 기술로 자동차 문을 만드는 탑금속은 123개 긴 생산공정에서 중간재 34.3% 리사이클 되는 것을 줄여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16년 된 노조위원장은 처음 방문 스케줄에 반응이 없어 약속없이 찾아갔다. 노조위원장 반응은 ‘내가 저 양반을 왜 만나야 하는가’였다. 이 때 물러나면 혁신은 방해를 받아 실패한다. “위원장님, 저기 봉달이 커피 한 잔 안 주시렵니까?” 이에 “커피야 한 잔 드리지요”로 시작해서 상대 관점의 많은 대화 속에 혁신의 문을 열었다.조직 진단에서 탑금속은 2개 사업본부가 있고 두 사업본부 간 두꺼운 벽이 있었다. 서로 간의 소통이 어려웠고 직책 간부와 현장 직원, 협력사 등 인터뷰에서 조직 동맥경화 현상을 알 수 있었다. 특히, B본부장은 첫 상견례 자리에서 습관처럼 부하직원 욕하는 모습을 보고 조직 흐름을 가름할 수 있었다. 10분의 임원과 인터뷰 했을 때 금형기술이사와 총무이사는 혁신에 대한 저항이 컸다. 중소기업의 열악한 환경에 전 직원의 혁신 공감대 형성을 위해 즉실천대회를 하고자 생산라인을 세워야 한다고 했을 때 B본부장이 반대했다. 22년 치과의사를 한 사장은 ‘지금 하루 세워 치료하면 되는 일을 병이 생겨 한 달 세우게 되면 책임질 수 있겠느냐’라며 의사 결정을 내렸다.28개 즉실천팀의 현장 개선은 시작되었고 매월 사장과 임원 변화관리 교육을 이어갔다. 조직 상하 간 막힌 혈을 뚫기 위해서다. 3개월여 시간이 지날 즈음 금형기술이사는 프로젝트 기술지도를 하겠다고 나섰고, 총무이사는 노동조합 실무를 담당하며 열린 노사관계 기반을 만들어 갔다. 욕을 못하게 하니 울화통이 터질 것 같다고 했던 B본부장도 변화되는 현장을 보며 긍정조직문화의 선두에 섰다. 생산 프로세스 123개 공정을 23개 공정으로 재정립하고 생산 과정에 중간재의 손상 원인들을 분석해서 5%대 이하로 개선했다.이명박 정부 시절 P사 회장과 중소기업협회장이 동반성장 산업 3.0 발대식을 탑금속에서 했다. 혁신 성공비결은 임원들의 혁신 인식 변화로 긍정 조직 기반이 형성되었고, 사장의 적극적 리더십, 매월 톱(Top) 진단과 경청, 이해, 적절한 피드백을 통한 신뢰를 쌓고 변화를 이끌어 냈다. 한 부서를 책임지는 직책보임자의 혁신에 대한 인식은 조직 흐름을 결정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2024-03-19

이국에서 맞는 봄눈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 마중이 한창이다. 산수유와 매화나무는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고, 남도에선 목련꽃의 하얀 자태가 이른 봄의 전령(傳令)인 듯 서서히 피어나며 멀지 않은 봄날을 예고하고 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만물이 다가오는 봄날을 채비하고 있는데, 아직도 겨울잠에서 못 깨어난 듯 동토의 계절엔 하얀 눈이 날리고 수십 차례 내린 눈의 층계가 만년설 마냥 육중하게 버티고 있다면? 남극·북극이면 극지방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나라와 가까운 곳에 그러한 곳이 있다면 의아심과 함께 호기심(?)을 부추기기에 충분할 것이다.그렇게 떠난 곳이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최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마름모꼴의 섬으로 대한민국 면적의 약 80%에 달할 정도로 크고 위도 상으로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과 비슷하며, 동쪽과 북동쪽에는 사할린섬과 쿠릴 열도가 인접해 있다. 홋카이도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사람들의 성향과 문화 등이 각각 달라서 오키나와 지역과 더불어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지역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 내에서도 관광과 거주하고 싶은 지역 1위를 나타나는 이국적인 특성을 띠고 있는 곳이다.또한 고위도(북위 41~45°)에 위치해 섬 전역이 한랭하고 냉대 습윤기후가 나타나 겨울철에는 추위가 매우 심한 폭설지대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선 3월의 눈구경은 드물고 강원도 등 일부 산악지대에 눈이 짧게 내렸다가 금세 녹기도 하지만, 홋카이도의 겨울철에 내려서 쌓인 눈은 이듬해 4월까지 가는 등 강설이 잦고 설경이 아름다워 우리나라를 비롯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눈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안고 떠났었는데, 과연 북해도에 당도한 첫날부터 함박눈이 펄펄 내리니 이방인의 심경이 오죽했으랴.‘따사로운 삼월엔/가지마다 물올라//망울이 부풀고/잎새가 도드라지는데//여태껏//동면 꾸러기//옴짝달싹 못하는 곳//설마하고 떠난 걸음/듬성듬성 손내밀다//저녁답 때를 맞춰/수만 꽃잎 나부낌//수 천리//이방객을 반기며//갈채로 내려앉네’-拙시조 ‘이국에서 맞는 봄눈·Ⅰ’ 전문정말 설국(雪國)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눈길 머물고 발길 닿는 곳마다 온통 백색의 세상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희끗희끗한 잔설의 여운이 아쉬운 듯싶었는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펑펑 쏟아지는 눈발은 유객(遊客)의 심사를 한결 설레게 하고 동심에 빠져들게 했었다. 실로 몇 십년만에 눈 다운 눈을 맞으며 눈길을 거닐어 보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행은 설경에 젖어 들어 눈밭을 뒹굴거나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온갖 포즈를 취하며 눈의 환희를 만끽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이렇듯 일상을 벗어나면 도처에는 뜻밖의 행운이나 우연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다만 떠나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림 속의 떡(畵中之餠)일 뿐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되듯이 여행의 즐거움도 어디론가 떠남에서 비롯된다. ‘여기에서의 행복’이 여행이라면,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맛보며 즐기는 자유여행은 단순관광 그 이상의 매력과 묘미를 안겨다 줄 것이다. 홋카이도의 눈 내리는 저녁의 설렘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리라.

2024-03-19

‘의과학과 신설’로 醫政갈등 풀어보라

심충택 논설위원 의정(醫政)갈등의 핵심요인인 ‘2천명 의대증원 숫자’에 조금의 여지나마 줄 수 있는 대안이 나와 주목된다.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과학과 정원 등을 활용하면 의대 정원 2천명을 늘리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보건의료분야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인물이다. 그의 제안은 전공의들의 반발을 해소하기 위해 내년에 바로 정원을 2천명 늘리는 대신, 2026학년도부터 국가현안인 의과학과 신설 등을 통해 의대 정원을 확대해 나가자는 내용이다.서울대가 최근 의정갈등을 감안해 내년도 의예과 증원인원을 15명만 신청하면서, 새로 신설할 의과학과에 50명을 따로 신청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동안 임상의사가 아닌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서울대는 “의과학과가 신설될 경우 서울대의 바이오·헬스 관련 학과 및 첨단융합학부와 연계하는 교육·연구를 통해 우수인력 양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박 교수는 서울대뿐만 아니라 카이스트와 포스텍(포항공대)에도 의과학과를 신설할 수 있도록 정원을 확대해줘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포스텍의 의과학과 신설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현안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경북도와 포항시는 과학공학 분야 인재가 몰려있는 포스텍에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왔다. 의사과학자는 의사면허를 갖고 있지만 환자진료가 아니라 새로운 의료기술, 신약, 첨단의료장비 연구개발에 전념하는 사람들이다. 코로나 당시 백신이 빠른 속도로 개발된 배경에도 의사과학자의 역할이 컸다. 세계최고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서울대나 카이스트, 포스텍에서 의사과학자가 배출된다면 한국의료계로서도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닌가.출구없이 격화하고 있는 의정갈등은 앞으로 현 정권에 엄청난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 중에는 ‘의대 정원 확대’가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의 한 치 양보 없는 강경자세가 대통령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외신에서도 한국정부가 의대증원을 밀어붙이면서 경제 분야, 특히 반도체산업이 타격을 입고 있다는 분석을 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한국의 많은 학생들이 (의대증원으로)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취업을 보장하는 한국 최고의 공과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거부하고, 의료 분야에서 더 나은 직업 안정성과 더 높은 급여를 받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고 했다.의대 증원을 두고 전공의가 지난달 19일 사직서를 내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갔다. 전공의의 90% 이상이 아직 복귀하지 않고 있어 대형병원 의료진의 피로가 극에 달하고 있다. 이 와중에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내고 진료 현장을 이탈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의료시스템이 더 망가지기 전에 정부는 2천명이라는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파국을 막을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2024-03-19

내 집 마련 꿈 짓밟는 부실시공 강력 대처를

작년부터 대구지역에는 건설 자재 수급 불안정과 건설현장의 파업 등으로 공사가 지연된 아파트가 늘었다. 특히 입주 예정자들의 사전점검 전에 공사가 마무리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 입주 예정주민들의 민원이 자주 발생했다.대구시도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작년 12월 입주자 보호대책으로 입주자 사전점검제도 개선책을 마련 발표했다. 검사권자가 사전방문 중에도 공사가 완료되지 못할 경우 공사 완료 후 추가 방문을 실시토록 했다. 또 시군구 점검단은 하자 조치 확인 후 준공 처리하도록 했다.그러나 시의 제도 개선에도 여전히 사전 입주 점검과정에서 주민 민원이 발생하고 있어 보다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지난 16일 대구시 북구 고성동 힐스테이트 대구역 오페라아파트 입주예정 주민 300여 명이 모여 “날림공사 준공거부” 등의 피켓을 들고 집단 시위를 벌였다. 주민들은 입주가 한달 정도 늦어진 데다 사전점검이 완료된 상태지만 타일 파손, 창틀 누수 및 미시공, 견본주택과 다른 마감재 사용 등의 하자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대구지역은 부동산 경기 침체가 오래 지속되면서 신규아파트 공사가 늦어지거나 심지어 공사가 중단된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1만세대가 넘어서면서 아파트 부실시공에 대한 우려도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극심한 분양경기 침체가 공사 부실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권익위에 의하면 2020년 6월부터 2023년 5월 사이 아파트 부실시공 관련 민원은 전국적으로 41만여 건에 달했다. 대구에서도 같은 기간 5만3천여 건의 민원이 있었다. 잘 알다시피 광주 화정동 신축아파트 붕괴나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와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대구시는 작년 대구복합혁신센터 부실시공과 관련, 해당 업체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한 바 있다. 부실시공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한 감독을 시행해야 한다. 불황일수록 부실시공 우려가 높다. 행정기관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반드시 필요하다.

2024-03-19

여당 낙하산공천이 ‘TK격전지’ 만든다

내일(21일)부터 이틀간 4·10총선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선거전이 펼쳐진다. TK(대구·경북)지역에서는 국민의힘이 지난 주말 25개 지역구 후보자 공천을 끝냈으며, 민주당은 인물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19개 선거구에만 후보자를 낸다. 지역민의 지지세가 강한 무소속 출마자도 15명(경북 10명·대구 5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관심을 끄는 TK선거구는 여당이 ‘국민추천’ 또는 ‘공천번복’으로 후보자를 확정한 대구동·군위갑과 북구갑, 중·남구 지역이다. 동·군위갑과 북구갑의 경우, 현역 류성걸 의원과 양금희 의원을 컷오프(공천배제)시킨 것을 두고 민심이 동요하고 있다. 동·군위갑에 공천된 최은석 후보자(전 CJ제일제당 대표이사)나 북구갑에 공천된 우재준 후보자(변호사) 모두 대구시민에겐 낯선 인물들이다.류성걸·양금희 의원 모두 공천결과에 승복했지만, 당 지도부에 대한 지지자들의 불만이 높다.대구 중·남구에서는 5·18폄훼 발언으로 공천이 취소된 도태우 변호사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 지역구에 공천된 김기웅 전 통일부 차관 역시 지역민에겐 생소한 사람이다.TK지역 최대 격전지로 분류되는 곳은 박근혜 대통령 시절 경제부총리를 지낸 최경환 전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한 경산이다. 여당에선 이곳에 대통령실 출신 조지연 전 행정관을 공천했다. 지금까지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최 전 부총리에 대한 경산시민의 지지가 상당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국민의힘이 막바지에 단행한 TK지역 낙하산 공천은 상당한 민심이반 현상을 가져오고 있어 선거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국민추천과 공천 번복을 합성한, ‘국민호떡 공천’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공천에서 탈락한 한 여권 인사가 “공천받은 인물이 누구인지, 뭘 하는지, 어떤 훌륭한 일을 해서 추천받았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당에서 추천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한 말에 백번 공감이 간다.

2024-03-19

스트롱맨의 득세

우정구 논설위원 강경 성향의 지도자 또는 군사정권의 지도자를 지칭할 때 보통 스트롱맨이라는 말을 쓴다. 스트롱맨은 독재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철저히 우선시하는 극단주의적 정치 성향을 띄기도 한다.2000년대 들어 대표되는 스트롱맨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필리핀의 두테르테,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 주석, 북한의 김정은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2000년대 등장한 인물들이어서 국제사회는 지도자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을 한다.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4년 러시아 대선에서 87%의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을 확정지었다. 5선이 확정된 푸틴은 2000년 처음 집권 후 30년간 러시아를 통치하게 된다. 특히 2020년 개헌으로 2030년 대선에도 출마할 수 있어 이론상 그는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정권을 연장할 수도 있다.푸틴의 당선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의 정당성이 확보됨에 따라 이곳에서의 전선이 더 강력해질 수 있다. 또 서방과의 대립도 더 날카로워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스트롱맨으로 지칭되는 푸틴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또다른 스트롱맨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지난해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상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했다. 국가 주석에 오른 그는 첫 방문지로 러시아를 선택, 푸틴과의 스트롱맨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최근 김정은의 푸틴 방문도 같은 맥락으로 읽혀진다.또 하나 강력한 스트롱맨인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4년만에 재집권을 노리고 있다. 스트롱맨들의 연이은 등장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3-19

사람들과 개가 함께하는 풍경

김규인 수필가 모델이자 배우인 배정남의 전신마비 반려견인 벨이 1년 7개월간의 재활 끝에 돌아왔다는 보도가 나온다. 인터넷에 벨을 끌어안은 배정남의 기사가 뜬다. 사진이지만 재활의 기쁨을 나누는 배정남의 좋아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유튜브를 통해 벨의 재활 과정을 올리는 모습까지 더해진다.신천을 걷다 보면 유모차에 개를 태우고 걷는 사람을 아이를 태우고 걷는 사람보다 더 자주 본다. 개와 보조를 맞추며 걷는 사람, 벤치에 개와 나란히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 반려견의 개똥을 치우는 사람은 이제 생활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일상이다.인터넷에서 반려견을 검색하니 반려견 장례식장, 반려견 동반 자연휴양림, 반려견 무료 분양, 반려견 종류, 반려견 등록 방법, 반려견 산책, 반려견 동반 펜션, 반려견 보험, 반려견 사망신고, 반려견 안락사 등 사람이 필요해서 한 시설들이 이제는 개를 위한 시설로 바뀌고 사람들의 관심사도 개에 관한 이야기다.선거철을 맞아서인지 국회의원의 공약 사항으로 ‘반려견 놀이터 건립’, ‘1만2천명 영등포 반려동물 가족 함께’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개를 키우는 유권자의 표심을 공략하는 내용이지만 개에 사람들이 밀려난다는 생각마저 든다.개를 키우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늦은 시간에 퇴근하면 발소리만 듣고도 집안에서 현관으로 달려 나오는 애완견의 소리를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가족들은 자기 일을 하느라 아무도 나오지 않는 것과 비교되어서 개를 한 번 더 껴안게 되고 먹을 걸 챙겨주게 된단다.지자체에선 반려견 산책 지역 안전관리 사업을 추진하고 반려견 관절 영양제를 광고하고 사람들은 자신도 먹지 못하는 고가의 식품을 사서 먹인다. 반려견 수술을 위한 혈액 부족 문제를 이야기하고 화재 현장에서 한 소방관이 강아지들을 구하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한 이야기가 떠돈다. 개에 밀려 사람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아이들이 타야 할 유모차를 빼앗고 노인들을 산보시킬 자손들의 옆자리를 개들이 차지한 지 오래다. 소아과병원이 개를 돌보는 병원으로 바뀌고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 개를 위한 시설로 바뀌는 요즈음이다. 다리 밑의 벤치에서 산보하는 개를 바라보는 노인들은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을 그저 바라만 본다.사람과 개를 키우는데, 나에 대한 충성심의 잣대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자식을 키우는 일이 때로는 개를 키우는 일보다 힘이 들지라도 보람된 일이 아닐까. 성장한 자식이 옆에 설 때 듬직함은 자식을 가져본 사람만이 안다.매번 개의 짧은 생명으로 안타까움을 더하기보다는 자식이 있는 풍경이 멋있지 않을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손잡아 주는 건 사람이고 모든 걸 사랑한 당신의 고귀한 유전자를 남기는 것은 자식이다.개를 몰고 다니는 사람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향해 조건 없는 충성심을 보이는 동물 앞에 먹이를 내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이야 숨길 수 없겠지만 그 옆에 사람이 설 수는 없을까. 사람들과 개가 함께하는 풍경이 더 좋아 보여서다.

2024-03-18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2002)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은밀한 내면을 드러낸 말이다.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유독 저 대사만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되어 있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괴물로 변하는 주위 사람을 목격하며 사람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기 때문이다.지금 대학가에서는 생존을 위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그 출발은 합계출산율의 급감이란 상황이다. 서울에서도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교대의 인기가 예전과 다른 것이 현실이다. 초등학교에 닥친 위기가 몇 년 뒤 대학에 들이닥칠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예정된 미래였지만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고, 위기를 눈앞에서 목격하고야 바빠지기 시작했다.얽히고설킨 매듭을 하나씩 풀기보다는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이 현명하듯 그간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이해당사자의 말을 듣기보다는 결정권자가 강하게 밀어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마 부분적인 진실을 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는 특정 집단이 자신의 이익만 탐하는 극단적 이기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성립할 때 설득력을 얻는다.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다시 유명해진 ‘하나회’를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해체했듯 말이다.이 정권의 교육 정책은 대학 구성원을 마치 ‘하나회’ 보듯 한다. 정권의 교육 정책을 따르지 않으면 자기 이익 지키기에 급급한 이익 집단으로 취급한다. 자율과 혁신이란 이름으로 ‘글로컬 대학’‘무학과 단일전공’ 등을 추진하며 정작 현장의 목소리는 잘 듣지 않는다. 누군가의 머리에서 나온 정책을 불도저처럼 밀어내기에 바쁘고,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인물로 낙인찍고 있다. 어느 순간 감정적으로 격화되고 있는 의대 정원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하지만 나는 정부를 비판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아무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정부 정책이 사람을 선동하는 방식과 돈 앞에 괴물로 전락해 버리는 우리들의 초상이다. 모든 정책은 지원금을 동반한다. ‘돈’이란 당근으로 정책에 따르길 요구하는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물결 앞에 생명이 위태로운 대학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대학의 보직을 맡으면 평상시 모습과 모순되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유독 돈 앞에 모멸감을 느끼는 횟수가 많아지는 요즘이다. 눈앞의 몇 푼에 부끄러움 따위는 잊은 지 오래인 사람이 많은 사회가 정상인 사회라 할 수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두렵다.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영화 속 대사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 뿐 별다른 대책을 세울 수 없는 무기력만 남게 되는 현실이 말이다. 출산율 급감이 웅변하듯, 이미 우리는 이 사실을 직관적으로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4-03-18

책을 다시 돌보려는 마음

방민호 서울대 교수 꿈을 꾸었다. 무슨 일인가로 나를 잡으려는 사람들에게 쫓겼고, 나중에 잡혔는지 그러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꿈 한가운데 있던 일만 선연히 남았다.어느 큰 파도가 치는 바다로 달려가 뛰어들었다. 밀려오는 파도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나는 마치 서핑을 하는 사람처럼 그 파도 굽이쳐 감기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치 서핑을 하는 사람처럼. 파도는 한없이 크다 해도 좋은 정도였다. 내 키를 열 곱 스무 곱 넘도록 거대하게 솟아오른 파도 속, 그 아래로, 아래로 나는 끝 모르고 파도의 물기둥 벽을 타고 내려갔다.파도는 검푸르다고도, 소랏빛이라고도 할 수 없이 신비로운 어둠에 물들어 있었고, 나는 태양빛을 푸른빛 셀로판지처럼 막아주는 거대한 물기둥 아래로, 아래로, 자꾸만, 빨려들 듯 내려가는 것이었다.또 다른 내가, 그렇게 아득히 멀어져 가는 내가 마치 하나의 점처럼 작아졌다고 느낄 즈음에 꿈이 깼다.아침이 이미 아주 늦도록 잠들어 있었다. 어제는 하루종일 이광수를 이야기하는 학술대회 자리에 있었고, 그저께는 수업을 하고 박사논문 발표하는 학생들과 밤 늦게까지 함께 있었다. 그 전에는 어땠더라? 잡지 ‘맥’을 교정을 보고 모자란 부분을 기웠다. 그 전에는 우정권 선배가 목월 시 유작들 발굴하는 일, 기자회견 자리에 있었고.눈을 뜨면서, 오늘은 꼭 파주에 가봐야 한다고 생각한다.책들이 어떻게 되었을까?대학원 학생들에게 다음 주에는 꼭 ‘노동해방문학’ 창간호부터 끝날 때까지 누락된 것 없는 열 몇 권을 다 갖다 보여주겠다고 했다. 벌써 몇 번을 찾아보았는데, 없다. 몇 년 전 학교 건물 4층을 리모델링 한다고 전부 비우라고 할 때, 어디로 갔을까? 파주였을까? 아니면 단체로 보관해 준다는 창고에 휩쓸려가 사라져 버린 걸까?파주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처음 책들을 갖다 둘 때는 주말에는, 2주일에 한 번, 아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가서 옮겨놓은 책들을 돌볼 작정이었다. 미련스러운 것이 사람, 욕심껏 사들이기는 했는데, 둘 곳 없을 것은 내다보지 못했다.되도록 햇빛 받지 않도록 하려 했지만 벌써 몇 년째 아직도 유리창에 햇빛 차단용 셀로판 지를 붙이지 못했다. 몇 개 미닫이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먼지에도 속수무책인 책들. 들이는 것만 일이 아니요, 책도 식물을 기르듯, 화초를 기르듯 물 주고 돌봐야 하는 것을, 몰라도 너무 모른 무지의 나날들이었다.어디로 갔을까? ‘노동해방문학’은 무크지 황토빛 ‘실천문학’도 낙질은 있지만 분명 잘 두었었는데….그런데, 있다.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던 책들이 오늘 책장 맨 하단 구석에 그대로 꽂혀 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 바로 이런 일을 두고 말함인가 한다.내친 김에 어지럽게 꽂혀 있는 아이들을 이제는 다시 마음 잡고 돌보기로 한다. 앞에서 물을 준다 했지만, 이 아이들은 습기도, 햇빛도, 추위도, 먼지도, 몹시 힘겨워 하는 애들이다.나의 삶의 증명 같은 아이들. 나와 같이 깊은 바닷속 같은 심연을 향해 함께 가는 아이들. 이제 다시 물을 주고 돌봐 주기로 한다. 더 알뜰하게 가꿔 보기로 한다.

2024-03-18

TK 낙하산공천은 ‘묻지마 투표’가 낳은 産物

국민의힘이 전국 254개 지역구 후보 모두를 확정하면서 4·10 총선 공천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번 공천에서 현역 의원 114명(비례대표 23명 포함) 중 40명이 공천을 받지 못해 35.1%의 교체율을 기록했다. 21대 총선 때의 현역 교체율 43.5%보다 크게 낮아 현역 위주 공천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TK(대구경북)지역도 사실상 현역 중심으로 공천이 마감됐다. TK지역 현역 교체율은 역대 최저인 36%로, 지난 21대 총선 교체율 64%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인요한 혁신위’ 출범 당시부터 중진희생론이 강조됐지만, 대구의 3선 이상 중진 의원과 경북의 재선 의원들도 모두 공천장을 받았다. 용산 참모 출신 중에는 강명구 전 대통령실 비서관(구미을)과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영주영양봉화), 조지연 전 대통령실 행정관(경산) 등 3명이 공천을 받았다.TK지역 공천은 막판에 ‘국민추천 프로젝트’와 ‘재공천’이라는 명분으로, 유권자들이 듣도 보도 못한 인물들을 대거 공천하면서 낙하산 공천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주말 이뤄진 대구 북구갑과 동구군위갑 국민추천 후보와 중남구 재공천 후보는 대부분 대구시민에겐 낯선 인물들이다. 지역에서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TK지역은 누구를 공천해도 당선이 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약속했던 ‘시스템공천’과는 거리가 먼 여당의 막바지 공천 결과를 보면서 TK지역민이 느끼는 실망감은 크다.같은 영남권이면서도 PK(부산경남울산)지역과는 다르게 정치적 획일성이 강한 TK지역의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와 21대 국회를 장악한 야당에 대한 평가를 하는 선거다. TK지역 유권자들도 이제 정치적 소외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묻지마 투표’를 지양할 때가 됐다.각 당이 내놓은 후보자 중 누가 민심을 잘 대변할지를 꼼꼼히 분석한 후 투표를 해야 한다.

2024-03-18

산불과 영농부산물 파쇄

홍석봉 대구지사장 매년 3, 4월이면 우리나라는 산불로 홍역을 치른다. 날씨가 건조해지면서 산불 비상이 걸렸다. 산림 당국은 지난 주 산불 경보 단계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상향하고, 산불 감시 활동 강화에 나섰다.지난해 우리나라에는 596건의 산불이 발생, 4천992ha의 면적이 피해를 입었다. 2022년엔 756건, 2만4천797ha의 피해가 발생했다. 역대 가장 많은 피해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간 연평균 567건의 산불이 발생, 4천4ha의 산림을 불태웠다. 지난해 발생한 산불 596건 중 56건이 농산 부산물을 태우다가 불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요즘 농촌에는 지난해 수확이 끝난 영농 부산물을 태우거나 잘게 부수는 작업이 한창이다. 영농부산물 파쇄는 봄철 산불의 주요 원인인 불법 소각을 하다가 내는 산불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문경시가 ‘찾아가는 영농부산물 안전처리 지원사업’을 추진, 관심을 모은다. 올해 처음으로 실시하는 ‘찾아가는 영농부산물 안전처리 지원사업’은 산림인접지, 영농 부산물 파쇄가 필요한 65세 이상 고령층 및 취약계층이 우선 지원 대상이다. 3인 1조의 부산물 파쇄지원단은 농장을 방문해 사과, 오미자 등 과수 전정가지 및 영농부산물 잔량을 수거, 파쇄를 대행해 준다.특히, 산불 발생이 많은 3~4월에 집중 추진해 산불 예방과 소각으로 인한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다. 또 영농부산물을 파쇄 후 농경지와 과수원에 뿌려 퇴비로 쓰면 토양에 유기물을 공급하고 비옥도가 높아지는 등 자원순환 효과가 기대된다. 산불과 미세먼지도 잡고 퇴비화까지 1석 3조의 효과를 보는 영농부산물 활용이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3-18

의대 증원, 안동대·포스텍 의대 신설 포함해야

도농 복합지역인 경북이 가진 가장 취약한 분야 중 하나가 의료다. 경실련이 작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경북은 지역 차별없이 같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지역으로 분류됐다. 전국 17개 시도 대상으로 책임의료기관의 의사수, 책임공공병원 설치율, 치료가능 사망률 등을 분석한 결과였다.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수를 인구 1천명당 의사수로 환산하면 경북은 0.55명이다. 전국 평균(0.79명)보다 훨씬 낮다. 치료가 시의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이뤄진다면 살릴 수 있는 죽음도 전국평균(43.8명)보다 높은 46.9명으로 조사됐다.경실련 조사가 아니더라도 유사한 자료는 많다. 서울연구원에 의하면 개인병원수 비율이 경북은 0.5%로 전국 꼴찌다. 서울은 27.1%다. 경북의 11군데 군지역은 소아청소년과가 없다. 또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도내 의사 평균연령은 서울(45.7세)보다 5.2세가 높은 50.9세다.경북도가 2026학년도 목표의 안동대 국립의대, 포스텍 연구의대 신설의 필요성과 설립 계획을 정부에 공식 제출했다고 한다. 정부가 2025학년도 신입생 기준 의대 정원을 현재보다 2천명 더 늘리기로 한 것과 관련해 두 대학의 의대 신설을 요청한 것이다.위에서 지적한대로 지역의료 취약성 보완을 위해 의과대학 설립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지역의료 불균형 해소와 인력 확보를 위해 도내 의대 신설이 필요함을 오래전부터 역설해 왔다. 특히 그는 “포스텍의 연구중심의대는 반도체나 스마트폰을 대신한 미래 바이오산업 육성과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신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세계적 명문인 포스텍은 연구중심 의대 설립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고 관련 인프라도 충분하다. 정부도 필수의료와 의료격차 해소 등을 이유로 의료계의 반대에도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전체 증원규모 가운데 80%를 비수도권에 둔 것도 비수도권의 취약한 의료환경 개선을 위해서다. 정부 의대증원 계획에 안동대와 포스텍의 의대 신설이 포함되는 것은 의대정원 확대의 명분에도 부합한다.

2024-03-18

서남 전라도 서사시 ‘그라시재라’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여항의 사람들을 탐구한 언어 풍경화가 한 권의 서사 시집으로 꾸며졌다. 조정 시인의 ‘그라시재라’(이소노미아, 2022)에서는 전라도 서남지방 할머니의 목소리가 벼랑 끝에서 살아남은 하얀 민들레 씨방의 솜털처럼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한 섞인 억양과 까칠하고 쉰 목소리의 사투리 시편을 조정 시인이 서사적 조정자로 개입하여 유장한 한 권의 신화같은 시집으로 묶었다. 전라도 할머니들의 어둔한 사투리 문법은 한 많은 삶을 끈질기게 버텨내며 살아남아 당신들의 말이 표정이 되고 시가 되었다. 갈라지고 쉰 목소리는 그대로 그림이 되었다. 판소리가 되었다.산속에서 울려오는 산바람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간이 알맞게 밴 방언 속에는 죽음보다 더 짙은 비극 속에서도 간간이 희망의 목소리가 끼어있음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어떻게 할머니들의 일상적 회상의 언어가 시가 될 수 있을까? 표준어로 변복도 하지 않은 차림으로 이 세상으로 걸어 나왔을까? 평생 이름대신 태어난 마을의 지명으로 가려진 존재였던 여자들,‘진주떡(댁)’, ‘순천떡이’, ‘화순떡이’, ‘보성떡이’로 서로 호명하는 시적 화자의 언어를 받아쓰기해 낸 조정 시인은 행간과 행간에서 눈물자국으로 얼룩진 여러 첩의 병풍 속 풍경화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념과 권력의 헤게모니 쌈박질로 굴곡진 현대사에서 검게 물든 핏빛 전라도 여항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울려 퍼진다. 때로는 역사의 흔적이 되어버려 두려운 기억들을 그리움이나 슬픔의 언어로 담담히 깨워내기도 한다.‘그라시재라’는 ‘그러믄요’, ‘그럴 수밖에요’라는 체념이 담뿍 담긴 전라도의 관습적 언어다. 동네마다 사람마다 같고도 다른 모양으로 남아 있는 깊은 상처가 이 한마디에서 이렇게 크게 울려 나오다니? 상대 존대의 화법 ‘그라시재라’는 겸허하고 수수한 전라도 토속의 정서와 태도를 한마디로 보여준다. 가래침 소리가 섞인 할머니의 낮은 자세, 내 뜻보다 그대의 뜻을 더 존중한다는 전라방언의 울림이 전라도에서 지리산을 넘어 경상도까지 넘어 온다. “천지에 아는 사램 한나 없는 디서 머슬 보라꼬 살것능가?”의 어말어미 ‘살것능가’는 경상도의 ‘살겠능개’, ‘살겠능교’로 이어져 있다. 방언은 경계를 허물고 손에 손잡고 이어져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원래 다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다만 지역과 계급을 나누어 차별하는 동안 달라졌을 뿐이다. 몸속에 숨어서 핏줄처럼 살아 있는 할머니의 방언은 원래 한가락이었다. “어야 덕진떡(댁) 자네 친정엄니는 고향이 으디시당가?/예 금정이라 어째 그라쏘?/보 성님도 이상하셌지라? 나허고 같은 생각 하셌고만이/덕진떡 엄니 말씨가 쪼깐 귀에 설드랑께요./갈에 우리집 콩 뚜듬서 이약헌디/항, 항허고 답을 허시등만/매 한말이이다 허고 봉께/아먼 그라재 헐 대목이서/항, 항 그라시드랑께”‘새야 새야 파랑새야’란 시에서 같은 전라도라도 친정이 달라 서로 말씨가 조금 다른 것을 느끼는 시적 화자들의 대화다. 서남전라방언에서는 동의한다는 의사 표현으로 ‘그라재’로 말하지만 동남전남방언을 쓰는 덕진댁의 말은 ‘항’, ‘항’이니 말씨가 서로 귀에 설게 들린 모양이다. 이 말이 태백줄기를 넘어 경상도로 들어서면 ‘하모’, ‘하머’로 나타난다. 방언학을 전공한 나에게 조정의 이 시편들은 마치 방언지도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가야와 제주지역에서만 ‘파리’를 ‘포리’하고 ‘팔’을 ‘폴’이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전라도에서도 ‘남’을 ‘놈’이라 하니 ‘아래 아’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징하게’(매우, 찡하게), ‘보타지것네’(몸이 마르네), ‘느자구’(싹수), ‘끼께’(끌리어), ‘뿌사리’(황소), ‘태끼래지다’(그릇 이가 빠지다)와 같이 전라도 방언사전 없이는 해독이 어려운 방언이 난무한다. 경계의 표지도 없고 무지해 보이기만 하는 변두리 기층민들의 말씨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묘하게 정겹고 살가운 말씨들에서 역사의 흔적과 사건의 서사가 바람처럼 드나든다. 오래된 나무에 깊이 박힌 옹이, 말의 옹이가 차진 송진을 뿜어내듯 우리 말결을 윤이 나도록 눈이 부시도록 풍요롭게 해 주고 있다. 이 책의 편집자의 말을 빌면 방언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표준말로 통일되기 전에도 이미 전국을 자유롭게 흘러다니고 있었다.” 조정 시인은 이 시집으로 표준어라는 한 가지 꽃만 피어있는 언어의 독방이 아닌 다채롭게 화석화된 방언의 깊은 지층을 우리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았다.

2024-03-18

일본 성터에서 발견한 러시아 금화

마쓰야마성에서 내려다본 마쓰야마 시내. 일본이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인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사실이었습니다.실제로 2024년 1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268만8100명) 가운데 한국인은 가장 많은 85만7000명을 기록했다고 하는데요. 이런 추세로 가면, 올해에는 일본 방문 한국인 관광객 수가 역대 최대인 1000만 명을 넘길지도 모른다고 합니다.최근에 유명 관광지인 오사카의 도톤보리나 도쿄의 센소지 등에서는 한국어가 일본어만큼이나 많이 들린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제가 실제로 한국인의 뜨거운 일본 관광열을 확인한 것은, 2024년 1월 28일 한국과 일본의 고전문학을 전공한 C·Y교수와 마쓰야마(松山) 공항을 나왔을 때입니다. 공항을 나선 저희 일행 앞에는, 무려 세 대의 대형버스가 한국인 관광객을 마쓰야마 각지로 실어 나르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에히메현(愛媛県)의 대표도시인 마쓰야마 시내로 들어서자, 가츠산(勝山) 산정에 자리 잡은 마쓰야마성의 혼마루(本丸, 성의 중심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숙소인 비즈니스 호텔의 욕탕에서도 보이던 마쓰야마성은, 마쓰야마 시내 어디를 가든 보였는데요. 3박 4일 내내 마쓰야마성을 보며,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제안한 판옵티콘(panopticon, 일망감시체제)이 떠올랐습니다. 판옵티콘은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고안된 원형 감옥을 말합니다. 이곳에서 모든 죄수들은 감시자가 머무는 중앙을 바라보지만, 감시자가 머무는 곳은 늘 어둡게 처리하여 죄수들은 감시자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죄수들은 자신들이 늘 감시받는다고 느끼게 되며, 그 결과 나중에는 감시자들이 원하는 규율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게 된다는 것인데요. 어쩌면 일본에서 성은 외적을 방어하는 목적보다도 영지에 사는 평민들에게 웅장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영주의 권력을 각인시키는 목적이 더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목적에서라면 세토나이해(瀬戸內海)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쓰야마성은 참으로 빼어난 성임에 분명합니다.이름난 무장이었던 가토 요시아키가 1602년에 축성을 시작한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완성된 마쓰야마성은 일본의 3대 연립식 평산성(산성과 평지성의 중간쯤으로 구릉지와 평지를 각각 일부씩 포함한 성곽) 중의 하나입니다. 마쓰야마성은 매우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요, 해발 132m의 가츠산 정상에는 혼마루가, 산기슭에는 니노마루(二の丸, 영주의 거주공간)와 산노마루(三の丸, 가신들의 저택)가 짜임새 있게 펼쳐져 있습니다.우리 일행은 에도 시대에 건축된 천수각으로 유명한 혼마루을 구경한 후에, 과거의 니노마루를 복원한 니노마루사적공원을 산책했습니다. 일본 특유의 정원미가 가득한 공원을 거닐던 저는 흥미로운 안내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안내판은 거대한 우물 옆에 놓여 있었는데요.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매립되었던 우물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제정 러시아 시대의 10루블짜리 금화가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금화에 러시아인과 일본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는 것인데요. 일본의 전통 정원에서 러시아 금화가 나온 것이나, 거기에 러시아인과 일본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 등이 모두 이해되지 않아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제 의문은 한국에 돌아와 박삼현 교수가 쓴 ‘마쓰야마, 언덕 위의 구름’(동아시아 도시 이야기, 서해문집, 2022)이라는 글을 만나면서 비로소 해소되었는데요. 박삼현 교수에 따르면, 러일전쟁 당시 마쓰야마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러시아군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고, 당시 마쓰야마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4천여 명의 러시아군 포로가 수용되었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마쓰야마 사람들과 러시아군 포로들의 일상적 교류도 이루어졌고, 그 결과로 마쓰야마성의 니노마루를 복원한 공원의 우물에서 러시아 금화가 발견될 수 있었다는 것인데요. 여러 조사를 통해, 금화에 이름을 새긴 러시아인과 일본인은 각각 당시 포로가 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러시아군 장교와 그를 간호하던 일본인 여자 간호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금화가 발견된 이후 마쓰야마의 니노마루공원은 연인들이 프러포즈를 하는 성지가 되었고, 2019년에는 금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소로킨이 본 사쿠라’까지 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영화는 일본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제작했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는 생각이 듭니다.니노마루공원의 바로 옆에 있는 반스이소(萬翠莊)의 곳곳에도, 반스이소에서 ‘소로킨이 본 사쿠라’가 촬영되었음을 알리는 사진이나 문구가 전시돼 있었습니다.프랑스풍 르네상스식 건물인 반스이소는 마쓰야마 영주의 자손인 히사마쓰 사다코토가 1922년에 지은 이후, 사교장으로서 그 명성을 떨쳐온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일본 중요문화재로도 지정된 반스이소를 각계의 명사들은 물론이고 천황이 방문하기도 했지요. 일본의 성터 우물에서 발견한 러시아 금화를 보며, 어쩌면 인류는 늘 깊이 연결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4-03-18

자만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김진국 고문 얼마 전 대구에 사는 지인이 전화했다. 국민의힘이 과반을 차지한다고 믿었는데, 그 많던 표가 다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 선거 초반 국민의힘이 기세였다. 민주당이 비명계를 몰아내고, 친명계 일색으로 공천하느라 비난을 많이 받았다.거기와 비교하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아이돌처럼 인기를 누렸다. 가는 곳마다 사진을 함께 찍으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 성급한 보수 지지자들은 국민의힘 과반 확보가 당연한 듯이 예측했다. 그런데 민주당 한병도 전략기획위원장은 15일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130~140석을 얻는다고 전망했다. 현재 지역구 의석은 254석, 비례대표 의석은 46석이다. 지역구 절반은 127석. 결국 민주당 계열이 과반을 차지한다는 의미다.지난주 한국갤럽 조사를 보자. 비례대표 투표 정당을 묻는 설문에 국민의미래(국민의힘 위성정당) 34%, 더불어민주연합(민주당 위성정당) 24%, 조국혁신당 19%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4%인 개혁신당을 포함해 3% 문턱을 넘은 정당에 비례의석을 나누면 국민의미래 19석,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1석, 개혁신당 2석이 된다. 민주당이 최소치로 전망한 130석만 얻어도 단독 제1당이다. 조국혁신당을 합치면 과반인 155석. 개혁신당도 윤석열 정부에 협조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지역구로 가면 더 어렵다. 같은 조사에서 ‘여당이 더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서울에서 31%, ‘야당이 더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8%다. 인천·경기에서는 32% 대 55%로 역시 민주당이 유리했다. 지역구 의석은 서울 48석, 인천 14석, 경기 60석으로 수도권만 모두 122석이다. 그 지인 말처럼 며칠 사이에 왜 흐름이 바뀌었나. 수도권은 미풍에도 판세가 뒤집힌다. 1천표 이내로 당락이 결정되는 곳이 많다. 그런데도 여권이 긴장의 끈을 놓았다.수험생이 있는 집에서는 걸을 때도 조심한다. 선거를 앞두고 출국금지 상태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왜 굳이 이 시점에 출국시키려 했을까. 한덕수 총리는 안보 협력이 긴요해 빨리 내보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최대 안보 협력국인 일본 주재 대사를 2년 반 만에 내보냈다. 당연히 의회청문회 등 절차를 모두 거쳤다. 주한 미 대사도 1년 반 만에 부임했다.영남권 민심만 따진다면 도태우·장예찬 후보를 공천하는 게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선거 전체 판세를 보고, 판단하고, 책임져야 한다. 선거는 자만하면 진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재검토를 지시하고, 공관위는 이를 뒤집고, 여론이 비등하니 다시 뒤집었다. 중도층뿐 아니라 지지층에서도 불만이 터지는 계기를 만들었다.명품백 사건도 영부인이 빨리 사과하고 털었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오히려 한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다. 전략공천하려던 김경률 비대위원만 찍어냈다. 한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이라는 선거 구도가 이재명 대 한동훈 대결로 바뀌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지방으로 다니며 윤석열 대 이재명 구도로 만드는 게 국민의힘에 유리한 걸까.의대 증원 문제도 불안하다. 의사들 주장대로 선거를 유리하게 끌어가려는 노림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혹시라도 그런 생각이 있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초반의 높던 증원 지지율이 점점 내려간다. 피로감이 쌓인다. 선거와 얽히면 야당 지지자들이 돌아설 수 있다. 진료 공백으로 인해 사고가 터지면 불만 여론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부로 향하게 된다. 자칫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 있다.황상무 대통령 시민사회수석의 폭언도 해이해진 대통령실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는 “MBC는 들어”라면서 군인이 비판적 기자를 칼로 테러한 사건을 들먹였다고 한다. 황 수석은 농담이었다고 하지만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다. 이러고도 선거에서 이긴다면 기적이다. “대통령실에 야당 프락치가 있는 것 같다”라는 한 보수 인사의 개탄이 실감 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17

커밍아웃이 필요 없는 세상

유영희 작가 ‘삼국유사’에는 임금님의 두건을 만드는 장인이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것을 혼자만 알고 있다가 죽기 전에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있다.이 이야기의 교훈은 권력자의 횡포로 읽기도 한다. 그러나 임금님 같은 권력자라도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남들이 알까, 장인이 발설할까 전전긍긍하며 두려움에 떨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권력자라도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 하거나 나만 알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이렇게 자신에 대한 정보를 혼자만 또는 아주 극소수만 알고 있다면, 그것을 지키는 데는 큰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 정보가 알려졌을 때 자신이 심한 피해를 보게 된다면 그것을 말하지 않기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는 몇 배 가중될 것이다. 그런 사람 중에는 성소수자들도 있지만, 특정 질환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들은 커밍아웃의 부담을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은 채 살아간다.치매 역시 너도나도 밝히기를 꺼리는 질환이다. 한국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 환자가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 이미 초고령사회인 일본의 대처 방법을 눈여겨보게 된다. 김웅철의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의 첫 장에는 스타벅스가 어떻게 치매와 만나는지 소개되어 있다. 그곳에서는 치매 환자의 가족은 물론, 치매 당사자와 간병인, 전문가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모여 차를 마시거나 간단한 식사 하면서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정보를 공유한다고 한다.이것은 일본 정부가 2012년부터 치매 정책 5개년 계획에 2025년까지 일본 전역에 치매 카페를 설치한다는 목표를 세운 후 일어난 일이다. 처음에는 공공시설이나 빈 가게를 활용하다가 최근에는 스타벅스가 나서서 치매 카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도쿄 근처 마치다 시에는 치매 카페를 의미하는 D-카페 푯말이 붙은 스타벅스가 8곳이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고령의 치매 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일상의 여유를 즐기는 방식이라고 한다.치매 카페에서도 이들을 특별히 따로 구분하지 않아서, 일반 손님과 자연스럽게 섞여 어울리니 주민들도 치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스타벅스는 이것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의 장소로 운영한다고 한다. 일본 상황을 잘 아는 지인에게 들으니, 일본에는 치매 환자들의 토론대회도 있다고 한다.2021년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치매 유병률은 10%, 85세 이상은 40%라고 하니, 더 이상 쉬쉬할 일이 아니다.그런데도 주변에는 검사를 받아보시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 누가 진단이라도 받는 날이면, 가족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치매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고 환자를 일상에서 배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그들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당나귀 귀처럼 생긴 귀를 가지고 있어도 기꺼이 두건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2024-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