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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코스트코 포항 유치, 청신호 켜졌나

창고형 대형유통시설인 코스트코의 포항 입점 여부가 요즘 포항에서는 최고의 관심거리다. 지난달 4일 코스트코코리아 실무진이 포항을 다녀간 뒤 4월 말 대표단과 실무진이 또다시 포항시를 전격 방문함으로써 코스트코의 포항 유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탓이다. 일부 포항시민들 사이에서는 코스트코 유치 가능성을 높게 보고 고조된 분위기까지 보인다고 한다.회원제로 운영하는 창고형 도매 할인점인 코스트코는 전 세계 14개국에 871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3위의 유통업체다. 국내서는 18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수도권과 광역시에 집중돼 시군단위에서는 이용하기가 불편하다. 경북도내는 아직 한 군데도 없다. 일부 주민들은 대구로 원정을 가 상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포항점이 생긴다면 포항, 경주, 영덕, 울진 등 경북 동해안 일대가 주요 소비권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이 된다.포항은 인구 50만명의 도시로 포항제철소와 포스텍 등 대학과 연구시설 등에 근무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또 최근에는 이차전지산업과 바이오산업 등에 대한 투자가 집중되면서 포항의 시세도 확장되는 분위기다.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코스트코 포항 유치에 관심이 많아 포항시도 유치에 적극적이다.포항시를 방문한 대표단은 이차전지와 바이오산업으로 인한 포항시의 성장 가능성과 지리적 여건 등을 살펴봤다고 한다. 특히 “지방에서의 설립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해 두 차례 포항시 방문과 연관지어 본다면 포항점 설립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짐작도 가능하다.입점 여부 결정은 기업이 하겠지만 코스트코 포항 유치를 희망하는 포항시로서는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이 있어야 한다. 23개 시·군 중 인구가 가장 많은 포항에 매장 설립을 요구하는 것은 명분이 있는 일이다. 코스트코로 인한 일자리 창출 등 경제유발효과와 정주여건 개선 등을 생각하면 코스트코 포항 유치에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한다.기업편에 서서 행정을 펴고 입점에 필요한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 원리다.

2024-05-01

누가 하마스(Hamas)가 되나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치조직 하마스의 이스라엘 영토 습격으로 촉발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의 비극이 지속되고 있다. 휴전과 개전(開戰)의 지루한 반복은 전쟁의 직접 당사자인 이스라엘 군인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아닌 어린이와 여성 등 무고한 희생자를 낳고 있는 형국. 미국 등이 종전을 위한 협상을 종용하고 있으나, 이미 100년 가까이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다퉈온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 화해가 쉽사리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인을 자신들의 영토를 강제 점령해 냉혹한 감시와 폭력을 휘두르는 상종하지 못할 이민족으로 인식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감정도 최악이다. 농장을 침탈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인 하마스를 ‘세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마’로 보고 있는 것.‘신을 위해 헌신을 다하는 군대’로 해석될 수 있는 하마스는 1987년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압제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키며 태동한 무장단체. 설립자인 아흐마드 야신(1936~2004)은 이스라엘로부터는 “군인과 민간인 가리지 않고 테러를 지시한 악마의 우두머리”로 비난받지만, 팔레스타인은 그를 “우리 민족의 해방을 주도한 지도자”로 추켜세운다. 안중근이 한국인들에겐 의사(義士)지만, 일본 군국주의자에겐 테러리스트로 인식되는 것과 마찬가지.그렇다면 대체 누가 하마스가 되는 걸까? 7개월의 전쟁에서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에 사망했다. 목이 부러져 죽은 일곱 살 여동생의 시체 앞에서 열두 살 오빠가 절규한다. “빨리 커서 이스라엘과 싸우는 하마스가 될 겁니다.” 이 아이를 ‘악마’라고 함부로 부를 수 있나? 종교와 인종이 야기한 반목이 서글프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5-01

그 많던 헌책방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모리스 쿠랑은 ‘한국서지’에서 3821종의 한국 도서를 총 9부로 나누어 정리하면서 책에 담긴 의미나 내용을 상세하게 알려 한국의 책과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야말로 한국의 서책 문화가 빛나고 있던 한 시대의 중요한 기록이다. 1890년 주한프랑스공사관에 통역관으로 근무했던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1865~1935)은 한국에서 나온 고서들의 방대한 목록을 모은 ‘한국서지(韓國書誌)’를 1894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해 1901년까지 총 4권의 책으로 완성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불과 20대 중반의 나이였던 젊은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책을 사랑하는 나라였다. 그는 자신이 모은 한국의 책에 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 한국 책에 대한 애정 깊은 목록을 완성했다.쿠랑은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보고 들었던 한국의 문화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남기고 있는데, 그는 여기에서 19세기 말 한국 한성에 있던 서점의 풍경에 대해 귀중한 기록을 남겨두었다. 당시 한성의 서점들은 종각과 남대문 사이에 모여 있었는데, 쿠랑은 아마도 고제홍이라는 사람이 열고 있던 고제홍서사라는 서점에 방문해서 그가 책을 전시하고, 책을 파는 모습에 대해 꽤 상세한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이 고제홍의 뒤를 이은 아들 고유상은 이 서점을 ‘회동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단순히 책을 파는 서점만이 아니라 출판까지 겸하면서 이른바 개화기 서적과 출판문화를 이끌었다. 온갖 새로운 지식이 책으로 엮여 소개되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기념비적인 출판사도 시작은 양반집에서 흘러나온 경서의 신판이나 고서를 다루던 서점이었던 것이다.서울의 청계천에, 동대문 평화시장에, 부산 보수동 골목에 모여 있던 고서점들을 물론이고, 거리마다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던 헌책방들은 이제는 점점 사라져 간다. 이는 서적과 출판이라는 매체를 통해 꽃피웠던 한 시대의 문화가 사라져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본질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굳이 헌책방에 들르는 것은 내가 정확하게 찾는 책을 찾으려는 목적이 아니다. 헌책방에는 내가 원하는 책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그곳에는 언제나 새로운 발견이 있다.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책의 존재를 깨닫고 새로운 자극을 받고 오는 곳. 그곳이 바로 고서점이다. 마치 몰랐던 사람의 몰랐던 면모를 알게 되는 것처럼, 새로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어, 도움이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책을 잔뜩 사 가지고 돌아오게 되는 것이 헌책방을 방문하는 의미이다.하지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지식에 있어서 새로운 발견이라는 측면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는 듯하다. 내가 원하는 지식의 내용을 원하는 만큼의 크기와 분량으로 적절한 시기에 제공받기를 바란다. 마치 우리 모두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렇게 필요한 지식 외의 새로운 변수가 될 무엇인가와의 우발적인 만남을 꺼린다. 확실히 먼지가 가득 쌓여 있는 헌책방의 서가를 하나하나 뒤져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헌책방에서 책을 찾는 것은 내가 원하는 지식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책을 찾아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이다.책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처럼 가게 바깥으로 채 정리되지 못한 책들이 빠져 나와 있기 일쑤였던 헌책방들도 거리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 많았던 헌책방들의 책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하나의 문화가 끝나고 또 다른 문화가 시작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일요일 오후에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헌책방에 들러 우연히 예상에도 없던 책들을 만나 잔뜩 사 들고 와서 뿌듯함만큼은 그냥 내버리기는 아쉬운 것이다. 오늘은 큰 마음을 먹고 동네에 아직 남아 있는 헌책방을 좀 둘러보고 싶다.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까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싶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4-04-30

습지의 봄

습지의 봄은 버드나무 우듬지에서부터 온다. 연둣빛 새순이 와글와글 피어오르면 가부좌를 하고 묵언수행에 들었던 이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만 같다. 송강 습지의 봄은 내가 가장 편애하는 풍경 중에 하나다. 봄물 든 습지 아래 잠자던 생명들 기지개 켜는 소리 들릴 것만 같다. 가까이 가 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둔다. 좋아하는 것들은 늘 아껴가며 보고 싶은 때문이다. 어천교를 지나 임하댐 초입까지 습지의 버드나무는 끝도 없이 펼쳐진다. 연두의 향연은 때로 꽃보다 아름답다.습지를 끼고 있는 반변천은 일월산에서 발원해 임하로 흘러든다. 일월산을 출발해 협곡을 따라 흐르는 물을 버드나무는 날마다 보고 자란다. 내가 보는 연두는 해와 달을 품은 일월산 산 빛을 닮았다. 이른 봄에만 볼 수 있는 눈 시린 빛깔이다. 아련한 연둣빛 시들해지면 어느새 먼 산에 등불을 켠 듯 산 벚은 핀다. 반변천이 키우는 것들 중엔 토종 민물고기인 잉어며 참붕어, 누치, 쉬리며 처음 들어보는 귀한 이름 백조어, 드렁허리 각시붕어도 있단다. 낯선 이름 앞에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화르르 인다. 어릴 땐 영국 신사라 이름 붙은 누치를 좋아했다. 날렵하게 잘 생긴 녀석을 ‘눈치’도 없이 ‘눈치’라 불렀었다.송강 습지는 임하댐 상류에 자리해 있다. 자연 생태 환경이 뛰어나다고 소문난 곳이다. 생태 자연 일 등급 권역에 든다고 하니 그 가치는 이루 말할 것도 없다. 건강한 습지에는 생물의 종이 다양하게 서식하기 마련이다. 지역 주민은 이곳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분류되는 얼룩새코미꾸리를 발견했다는 얘길 들려주었다. 어떤 녀석일까 궁금하다. 사진에서 보는 것 말고 늪에서 헤엄치는 광경을 볼 수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한다. 멸종 위기종인 노란잔산잠자리와 흰목물떼새와 물방개도 서식한다니 생태의 보고인 셈이다. 희귀한 생물들을 품은 습지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축복처럼 느껴진다. 날마다 찾아가 보듬어 주고 싶다.습지의 규모는 축구장 열아홉 개를 합친 정도다. 일 년 중, 많은 비로 인해 물에 잠기는 기간은 한 주에 그친다니 버드나무에겐 다행한 일이다. 뿌리에 숨구멍이 있어 물속에선 오래 살 수 없는 식물인 탓이다.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하고 물을 정화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예부터 우물가에 주로 심었다. 이곳 습지에 무더기로 자라는 버드나무는 수질 정화는 물론 생태이동 통로로 이용된다. 야생 동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때로 몸을 숨길 수 있는 비밀의 장소로도 쓰인다. 버드나무가 사라지면 동물들은 노숙자와 다름없는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린 새들은 더 이상 알을 품지 않고 덩치 큰 동물들은 살 곳을 찾아 떠날 것이다. 버드나무는 습지를 살아 숨 쉬게 한다.습지는 다양한 생명을 품는 일 외에 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온실 가스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한 이때 댐 생태공간의 복원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자연 생태를 기반으로 한 탄소중립을 이루는 일은 인류의 미래와도 맞닿아있다. 온갖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습지를 원래대로 돌려주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습지 내에서의 농작물 경작은 소중한 자연 생태 환경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다. 서둘러 개선되어야 하지만 농가와 수자원공사의 입장 차이가 쉬이 좁혀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군데군데 농지로 쓰이는 땅이 보이고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해 조금 더 멀리 바라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싶더니 요즘 들어 적당한 타협안이 나온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습지가 원래의 제 모습을 온전하게 찾을 날을 기대한다. 박월수 수필가 습지를 가까이 보기 위해 찰랑이는 연둣빛 속으로 발길을 옮겨놓는다. 버드나무 얇은 그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던 장끼 한 마리 사람 발자국 소리에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멀리 도망가지 않는 걸 보니 근처에 까투리라도 숨겨놓은 모양이다. 어쩌면 이곳보다 안전한 피신처는 없다고 여기는지 모른다. 자그마한 웅덩이에 정강이까지 잠긴 버드나무 몇 그루 고사한 채로 서 있다. 잘못 뿌리내린 나무로 인해 습지의 물이 오염될까 불안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두덩에 자리해 살아남은 나무는 먼저 간 나무의 몫까지 함께 살아낼 걸 안다. 웅덩이를 말갛게 만들고 그 이름처럼 멀리까지 뻗어나갈 것이다. 자연과 사람을 이롭게 하는 식물이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물러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습지가 보이는 언덕에서 일몰을 맞는다. 풀냄새 머금은 나무들이 물드는 석양을 베고 꿈꿀 채비에 든다. 아직 할 일이 남았는지 섶 비빔질 소리 나른한 풀숲에 새들의 지저귐 끊일 줄 모른다. 귀 기울여 듣고 있자니 몸 어딘가가 간질간질하다. 내 속에 든 노래 주머니가 공명하듯 퉁겨 나온다. 물옷을 입은 촌부가 해거름을 기다려 거랑 속에 발을 담근다. 유리 투망을 옆에 낀 걸 보니 다슬기를 잡을 모양이다. 반딧불이 유충의 먹이가 되는 다슬기를 싹쓸이하지는 마시라고 나는 속으로 읊조린다. 멧비둘기 한 마리 내 맘 알았다는 듯 꾸욱꾸욱꾸꾸욱 거리며 날아간다. 아름다운 시기를 지나는 습지를 등지고 나도 봄꿈을 꾸러 간다.◇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수필가

2024-04-30

대학 선생의 역할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근 2년 사이 우리 학과의 자퇴생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주변의 교수들과 이야기하며 대다수 학과의 자퇴생이 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문·사회계열 학과의 자퇴생이 전반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예전부터 1학년 1학기를 다니고 2학기를 휴학하며 입시를 준비해서 타 대학으로 이동하는 학생은 있었다. 우리 학과를 떠난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목표를 이룬 이런 학생은 힘껏 축하하며 보내주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은 1학년 1학기 중도에 자퇴하는 학생이 증가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이번 학기에 겪은 두 가지 사례는 이랬다. 첫 번째 학생은 상담을 위해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직감적으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불안한 눈빛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음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이미 비슷한 사례를 몇 번 겪은 나는, 침착하게 학생에게 현재 상태를 질문하고 자퇴가 아니라 휴학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학생의 의지는 강했고 부모도 동의했다는 말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두 번째 사례는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학생이었다. 가정불화가 있고 자신이 집안을 책임지기 위해 경제활동을 하다가 7년이나 늦게 대학에 왔지만, 한 달여 만에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앞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격려와 함께 힘내라는 말 밖에는 특별히 할 수 있는 조언이 없었다.위 두 사례가 극단적인 경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재학생 중에도 정신적 아픔과 경제적 아픔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많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위해 열의를 가지고 노력하며 필요한 경험을 쌓기 위해 휴학을 신청하는 학생을 만나면 행복하다. 많은 학생이 크고 작은 아픔을 가지고 뚜렷한 목적 없이 휴학한다. 과연 대학의 선생으로서 나는 이런 학생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시대가 바뀌어서 분과학문의 지식으로는 미래를 살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모집 단위 광역화를 시행하여 학생들이 다양한 지식을 학습하고 연결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한다. 사회 흐름을 반영한 멋진 말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현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아픔을 가진 학생이 왜 시간이 갈수록 가파르게 증가하는지, 또 대학은 이런 학생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단순히 대학에 상담센터를 설치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 대학의 선생은 과거처럼 학생들에게 자신이 공부한 지식을 전달하고 평가하는 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학생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고민하는 역할까지 수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역의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려 생존을 위해 더욱 학생과 교감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학생을 위해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최근 들어 교육부는 몇 가지 정책을 추진하며 대학의 변화를 이끌려 하고 있다. 눈앞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크고 작은 아픔을 가진 학생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

2024-04-30

5월을 맞으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5월의 첫날, 푸른달의 시작이다. 연록의 새순들이 일제히 돋아나며 잎새들의 잔치를 벌이다가 급기야 산야가 온통 신록으로 넘실대며 푸르름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봄 향기 그윽한 꽃이 진 자리마다 잎사귀를 드리우며 차츰 신록이 짙어지니, 벌써 여름날로 향하는 춘하의 경계인 셈이다. 알록달록 봄꽃들이 피어나며 색깔로 오던 봄날이 온갖 새들의 지저귐과 개구리의 울음이 지천에서 들리며 소리로 오는 여름날을 맞이하고 있다.소리로 다가오는 오월은 정겹기만 하다. 자명종마냥 새벽을 깨워주던 새소리가 정겹고, 잦아지는 비가 처마 끝에서 낙숫물로 떨어지는 소리가 리듬으로 다가온다. 청보리 물결로 일렁이는 이랑에서는 이삭피는 소리가 반갑게 들리는가 하면, 논배미 무논의 군데군데서 왕왕거리는 개구리들의 혼성 합창이 싫증나지 않게 들린다. 바람과 함께 춤추는 잎새들이 초록의 외침으로 나부끼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갑갑한 가슴 속을 밝히는데, 댓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풍경(風磬)의 여운으로 남기는 고운 소리가 맑고 투명하기만 하다. 이렇듯 도처에서 들리고 울리는 소리들로 오월이 열리고 있다. 어찌보면 소리에서 소리로 이어지는 일상이듯이, 5월에는 유난히 생각하고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아선지 기념일에서 시작하여 기념일로 매듭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로자의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유권자의날, 스승의날, 부처님오신날,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발명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등을 지나 바다의날, 세계 금연의 날로 마무리되니, 과연 푸르름으로 빛나는 계절에 각각의 의미를 부여해 기념일 정하고 부각시키는 것은 뜻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그러한 기념일에 으레 빠지지 않는 것이 어떤 소리나 노래, 외침 또는 함성일 것이다. 이를테면 근로자들의 연대와 단결된 힘을 보이는 노동현장의 외침이나 미래의 주역이 될 새싹들을 위한 밝고 맑은 기상의 동요, 은혜를 생각하고 기리는 차분하고 평온한 곡조, 세상의 자비와 광명을 위한 지혜로운 말씀, 그리고 민주화를 부르짖은 절규의 함성 등이 기념일의 곳곳에 잠잠히 배여있거나 묻어나고 있다. 그만큼 소리나 노래, 말씀과 울림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이처럼 소리나 울림이 잦아드는 때, 최근 포항지역의 가인(歌人)들이 시조창의 울림으로 맹활약을 펼쳐서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사)대한시조협회 칠곡군지회가 주최·주관한 ‘구상선생 추모 제8회 칠곡전국시조창경연대회’에서 포항의 시조인들이 2개 부문 장원을 차지하는 등 두드러진 성과를 거뒀다. 시조창은 우리의 전통 아악(雅樂)인 12율려(律呂)를 바탕으로 특유의 창법과 목소리를 구르고 감거나 흔드는 동법(動法)을 더해,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소리의 고저장단이 매끄러우면서도 멋스럽게 울림과 떨림 속에 끊어질 듯 이어지며 구성지게 부르는 우리 고유의 전통 대중음악이다.저마다의 존재감으로 제 목소리를 크게 내며 살아가는 시대에, 자신만의 고유한 음색과 화법을 가다듬으며 바르면서 방자하지 않고(直而不肆) 빛나지만 눈부시지 않는(光而不耀) 삶을 가꿔가면 어떨까?

2024-04-30

영수회담 계기로 ‘대화의 정치’ 복원해야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그저께 만나 정국 현안을 논의했지만 별도의 합의문을 채택하지 못할 정도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민기대에 비해 용두사미처럼 끝났다는 평가가 주류다. 대통령실은 “소통과 협치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국정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했다. 그렇지만 윤 대통령이 그간의 입장과 달리 야당 대표를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는 첫 회동이었다는 점에서 만남 자체가 성과라고 할 수 있다.회담에 배석한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와 민생 문제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합의에 이르진 않았지만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이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 대표는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두겠다”면서도 회담 내용에 대해선 실망 섞인 반응을 내놨다. 다만,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의대 증원·지역 및 필수의료 살리기 등을 핵심으로 하는 의료개혁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이 대표는 총선기간 중 “의대 증원 적정 규모는 400∼500명”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의료계에서는 “의대 신입생을 뽑는 것이 의료 체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이상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는 반응이 나왔지만, 정치권이 의정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의료 파국을 막을 첫걸음이 될 수 있다.두 사람이 서로 할 말만 하고 헤어졌지만, 협치의 물꼬를 텄다는 측면에서 영수회담의 의미가 작지 않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윤 대통령은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불통과 오만의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 남은 임기 3년간 ‘식물정부’가 되지 않으려면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야당과의 신뢰를 쌓으려면 이 대표와 자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대표도 이젠 증오의 정치를 청산하고 수권정당 대표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길 바란다. 진영논리에 매몰돼 강대강 대치를 이어온 여야 정치권도 이번 영수회담을 협치의 전환점으로 만들기 위해 대화와 소통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2024-04-30

파국으로 가는 의료대란… 정치권이 나서라

심충택 논설위원 의료대란 사태가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여권 내에서도 “정부가 이제 고집을 내려놓으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정부가 필요한 의사 규모를 못박으면서 의료개혁을 다 망쳐놨다”고 비판했다. 안 의원 지적처럼, 윤석열 정부는 의대증원 숫자에 연연해하면서 의정(醫政)갈등은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현재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를 둔 가족들은 불안감 때문에 좌불안석이다. 상태가 언제 심해질지 알 수 없는 중환자들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수술 날짜가 잡히지 않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암환자권익협의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정부는 무용지물인 의료개혁특위 대신 환자 보호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의료공백 속에서 그나마 버팀목이 돼온 대학병원 교수들도 지금까지는 장시간 중증 환자를 돌보며 정신적으로 버티고 있는 중인데, 이젠 체력적인 한계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수술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암 환자에게도 수술 날짜를 못 잡아주는 상황이 된 병원이 많은 모양이다. 수도권 빅5 병원 교수들은 피로감에 지쳐 어제(30일)부터 급한 환자가 치료되는 대로 사직하겠다고 밝혔다. 사직하기 전까지는 주 1회 휴진한다고 한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은 어제부터,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오는 3일을 휴진일로 잡았다. 전국 19개 의대가 참여하는 의대교수비대위도 당직 후 24시간 휴식 보장을 위해 주 1회 휴진하겠다고 결의했다.의료공백이 재난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정부 입장은 여전히 강경하다. 정부는 대입 전형 일정상 내년도 의대 정원 문제를 다시 논의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전공의가 이탈한 후에도 비상진료체계를 보강하고 있고, 상급종합병원 입원환자 추이와 중환자실의 변화, 수술·외래 현황 등을 봤을 때 기존의 추이와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심각한 의료공백 사태가 없다는 진단이다. 전공의 집단 이탈과 의대교수 휴진에도 불구하고 상급종합병원 의료공백 현상이 아직까진 심각하지 않다니 놀랍다. 정부가 시급성을 강조하는 ‘의대 2천명 증원정책’과도 모순되는 말이다.의료시스템의 파국을 막을 시간이 이젠 별로 없다. 전국 각 대학은 이달 말까지 학과별 정원 등 모집 요강을 발표해야 한다. 늦어도 이달 중순엔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해야 한다.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 사태도 코앞에 다가왔다. 이달에도 수업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한 해 수업 일수를 채울 수 없어 자동 유급된다.그저께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영수회담에서 이 대표는 여야, 정부, 의료계가 참여하는 국회 공론화 특위에서 함께 논의한다면 좋은 해법이 마련될 것 같다고 했다. 여야 정치권이 의대 증원에 대한 큰 틀의 합의를 할 수 있다면 의료대란을 해결할 수 있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2024-04-30

야생진드기 감염병 주의보, 철저한 대비를

올해 첫 진드기에 의한 중증열성 혈소판감소 증후군(SFTS) 환자가 경북 상주에서 발생해 주의가 요망된다. 상주시에 따르면 상주에 거주하는 60대 여성은 4월 초 자택 인근 과수원에서 작업한 뒤 지난 16일부터 식욕부진 증상을 보여 치료를 받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발열 증상이 멈추지 않아 도내 의료원에서 입원, 검사를 받은 결과 SFTS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것.SFTS는 2009년 중국에서 최초 발견된 신종 전염성 감염병이다. 국내서는 2013년 첫 환자가 발생했다. 첫 환자 발생 후 작년까지 모두 1895명의 환자가 발생해 이 가운데 355명이 사망했다. 18.7%의 치명율을 보이고 있다. 작년 경북도내서는 20명의 SFTS 환자가 발생해 이 중 10명이 숨져 각별한 주의가 요망되는 감염병이다.진드기는 유충, 약충, 성충단계에서 각기 다른 숙주에 기생하는데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철부터 11월까지 활동을 한다. 경북 상주에서 올해 첫 환자가 발생하고 지난 26일에는 제주도에서도 환자가 발생해 진드기에 의한 중증열성 혈소판감소 증후군 환자 발생의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질병청에 따르면 국내서는 50대, 농업·임업 종사자한테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농작업뿐 아니라 등산 등 야외활동 어디서나 감염될 우려가 있다. 매개체인 참진드기는 전국적으로 서식하고 있어 야산이나 들판에서 활동할 때는 주의를 해야 한다. 백신이나 치료약이 없어 물리지 않는 것이 최선의 예방법이다.야외에서 활동을 할 때는 피부 노출을 최소화하고 귀가 후에는 목욕을 하는 것이 좋다. 만약 진드기에 물렸다면 즉시 병원에 가 치료를 받아야 한다.증상으로는 40도가 넘는 원인불명의 발열과 피로감, 식욕저하, 구토, 설사 등 소화기계통 증상이 나타나고 두통, 근육통, 림프절이 붓는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으로 모두가 오랫동안 고생을 한 경험이 있다. 각종 전염성 질병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을 맞아 보건당국의 철저한 관리와 함께 개인의 보건의식도 한층 더 높아져야 한다.

2024-04-30

책 안 읽는 사회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의 최고 부자들은 독서광이다. 주식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록펠러, 카네기, 일론 머스크 등 엄청난 부를 이뤄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는 이들은 모두 책벌레라 불릴만큼 독서광이다.워런 버핏은 “당신은 독서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명언을 던지면서 책읽기를 권한다. 그는 그의 스승으로 통하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라는 책을 19세 때 독파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책 읽기를 좋아한 세종대왕의 일화도 있다. 세종이 왕자 시절 책에 병적으로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이를 걱정한 아버지 태종이 세종 처소에 있던 모든 책을 치우기까지 했다고 한다.조선시대 22대 정조대왕은 독서대왕이라는 별명이 있다. 책을 완전히 외울 때까지 읽고 또 읽어 책 구석구석에 어떤 구절이 있는지를 줄줄 외웠다고 한다.소크라테스는 “남의 책을 많이 읽어라. 남이 고생하여 얻은 지식을 쉽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운동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고도 했다.동서고금을 통해 책은 모든 이의 스승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아무리 발달을 해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사회 진전은 어렵다. 책에서 얻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 창의력, 문제 해결 능력, 인간관계 해결 능력 등은 기계가 인간만큼 할 수 없다는 것이다.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은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지난해 국내 종합독서율은 43%로 1994년 이래 역대 최저다.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이 독서 분위기를 저해하기 때문이라 한다. ‘책 읽는 사회’를 만드는 분위기 조성이 절실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30

펠리컨

방민호 서울대 교수 펠리컨 이야기를 한다 해놓고 하이에나 이야기부터 시작하게 된다. 하이에나는 오해를 많이 산다. 남이 일껏 잡아놓은 먹이를 가로챈다거나 썩은 고기를 즐긴다는 등 말이다.주로 야간에 사냥하는 탓에, 사람들이 낮에 남의 먹잇감 뺏는 그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들씌워 놓았다던가, 심지어 오히려 사자들이 하이에나 것을 빼앗는 경우가 많다던가.펠리컨은 우리 말로 사다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 적 있다고 한다. 주머니처럼 생긴 큰 부리를 가졌다. 이 부리 아래쪽이 피부로 되어 있어 주머니처럼 부풀어 오른다. 여기에 먹잇감을 저장하기도 하고, 새끼들 먹이는 그릇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뜨거워진 체온을 식히는데 이 주머니의 넓은 표면적이 좋은 역할을 한단다.오래전 어떤 작가가 이 펠리컨을 소재 삼아 알레고리 소설을 썼다. 알레고리는 텍스트 내의 기호가 그 바깥의 어떤 의미를 가리키게 되어 있다. ‘개미와 베짱이’ 같은 우화에서. 개미는 부지런한 자를, 베짱이는 게으른 자를 가리킨다. 베짱이도 자기 할 일은 하고 살 텐데, 이솝은 자기의 우화에서 베짱이를 게으른 짐승으로 ‘불쌍하게’ 만들었다.우리의 작가도 펠리컨을 좀 불쌍하게 만들었다. 작중에서 펠리컨은 입이 큰 ‘놈’이다. 우리는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은 사람을 ‘라우드 스피커’(loud speaker)라고 한다. 비유적으로 시끄러운 사람, 제 주장이 센 사람을 가리킨다. 작중에서 펠리컨은 목소리가 큰 자, 나아가 목소리만 큰 자 같은 의미를 띈다. 이 소설에서 이 목소리만 큰 자는 민중주의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작중에 출현하는 펠리컨은 민중을 위한다고 큰 소리를 치는 사람들을 의미했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을 힐난하는 뜻으로 이 소설의 펠리컨을 기호화했다. 나는 이 작가를 아주 능력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솜씨를 이렇게 가난한 이들을 위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데 쓴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그로부터, 한정된 사람의 삶의 감각으로 보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사람은 옛날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힘들다. 특히 정치적 견해 같은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변하기가 쉽다.이렇게 말하면 애꿎은 펠리컨이 화를 낼 것 같다. 요즘 왜 이렇게 펠리컨들이 많은가? 바야흐로 펠리컨들 시대가 아니냐 말이다. 펠리컨들은 자신들이 정의를 위하고 정치적으로 옳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라고 한다. 이 펠리컨 무리를 들여다보면 그네들 발갈퀴 밑에 정말 고립되어 있고 약하고 상처 입은 물고기들이 짓밟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무서운 펠리컨들은 부지런히 제 먹잇감을, 그러니까 자신들의 정의를 위한 희생양을 찾아 그 큰 부리로 우악스럽게 물고 찍는다. 이 펠리컨들의 정의는 저보다 약해 보이는 자들을 사납게 물어뜯는 정의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는 이 무서운 펠리컨들이 즐겨 사는 곳이다.부디 힘 약한 사람들, 모질지 못한 사람들은 그곳들 출입을 조심하기 바란다. 자기 귀가 얇다고, 그래서 감언이설에 속아넘어가는 수가 많다고 늘 불안해 하는 분들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나는 이 펠리컨들이 정치적 파당의 어느 쪽에만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펠리컨은 지구상에 아시아부터 아프리카까지 아주 넓은 곳에 분포한다.

2024-04-29

외식비 두려운 가정의 달… 물가대책이 民生

가정의 달 5월을 전후해 각종 물가가 크게 올라 서민 가계에 부담이다. 특히 가정의 달 행사로 지출이 많은 5월을 앞두고 있어 가정마다 가정의 달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5월이 가정의 달로 불리는 이유는 어린이날을 비롯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가정과 관련된 기념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5월 1일 근로자의 날과 15일 부처님오신날, 성년의 날 등 각종 기념일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관련한 행사로 가정의 지출이 크게 늘어나는 시기다. 자녀 선물과 부모님 용돈, 외식비 등을 따지면 일년 중 가장 지출이 많은 달로 꼽힌다.이런 가운데 이달 들어 김밥, 치킨 등 프랜차이즈 업계를 중심으로 외식비 가격이 오른데 이어 5월 중에는 맥도날도 햄버거와 프랜차이즈 피자헛도 가격을 올린다고 한다.한국소비자원 조사에 의하면 대구경북지역의 외식품목의 가격은 1년 전보다 3%대 상승했다. 냉면이 9000원대, 김밥 4000원대, 비빔밥 9000원대 등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시중에는 이보다 더 높은 가격들이 수두룩해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가격은 더 올랐다.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3월 우리나라 외식물가 상승률은 3.4%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3.1%보다 0.3% 포인트 높았다. 외식물가 상승률이 전체 물가상승을 이끄는 모양새다.정부는 상반기 물가 목표를 3%대로 잡고 있으나 지금 추세라면 목표 달성이 힘들 것 같다. 과일과 채소류 가격이 한동안 유지될 것 같고 국제유가도 중동전쟁으로 불안요소 해소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정부가 좀 더 촘촘하고 특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물가를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민생은 없다.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물가가 올라 걱정이고, 상인들은 가격을 인상하면 손님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5월 가정의 달은 온가족이 모여 따뜻한 정을 나누는 달이다.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고 부모님에게는 바쁘다는 이유로 못했던 효도를 다하는 날이다. 정부의 물가안정이 민생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24-04-29

야권의 입법폭주 막으려면 與정상화 급하다

국민의힘이 4·10총선 20일이 지나도록 참패의 늪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선거 이후 세 번째 열린 어제(29일) 당선인 총회에서 가까스로 황우여 전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정해 지도부공백을 메웠지만, 비대위가 당의 혼란을 수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황 위원장은 임기가 정해진 시한부지만 두 달 동안 당 리더로서 전당대회 룰을 정하는 중책을 맡게 된다. 그러나 현재 전당대회 규정인 ‘당원투표 100%’ 개정 여부를 둘러싸고 당내 친윤계와 수도권 그룹 사이에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어 이를 중재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다. 그동안 당 중진들이 이 문제 때문에 너도나도 비대위원장 자리를 고사하는 바람에 구인난을 겪어왔다. 국민의힘은 22대 국회 원구성 협상 등을 책임질 차기 원내대표를 뽑는 과정에서도 심각한 내분을 겪고 있다. 다음달 3일 치러지는 원내대표 후보로는 현재 친윤계 핵심인 이철규 의원만 거론되는 상태다. 총선에서 인재영입위원장과 공천관리위원 등을 맡았던 이 의원에 대해서는 당내에서 ‘총선 패배 책임론’을 제기하는 비토세력이 많아 내분의 원인이 되고 있다.여당이 혼란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민주당은 ‘입법폭주’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이미 5월 국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했고. 다음 달 2일과 28일 본회의 개의를 추진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 되돌아온 법안, 민주당이 처리하려고 하는 법안들을 다음 달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간호법 제정안, 방송3법 등의 재입법 추진도 검토하고 있다.정치권에서는 여당의 비대위원장 인선과정을 지켜보며, 22대 국회가 전보다 더 적극성이 떨어진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당대회 준비에 두 달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 선출된 황 비대위원장을 중심으로 화력을 집중해 하루빨리 당을 수습해야 한다. 비대위는 며칠 뒤 선출될 원내대표와 함께 당장 야권의 입법폭주에 대응해야 하고, 당내 갈등과 분열을 해소할 해법도 마련해야 한다.

2024-04-29

패륜과 유류분(遺留分)

홍석봉 대구지사장 지난 2019년 가수 구하라 씨가 숨지자 10년 넘게 연락을 끊고 살던 어머니가, 돌연 유산을 나눠달라며 나타났다. 구하라의 오빠와 가족은 키워 준 것도 아니고 고인에게 해 준 것도 없는데 유산을 줄 수 없다며 반발했다. 소송 끝에 어머니는 유산 일부를 받았다. 당시 민법상의 유류분 제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20대 국회에서 ‘구하라법’이 발의됐다.‘유류분(遺留分)’ 제도는 국내 민법이 처음 제정됐던 1955년에는 없었다. 1977년 도입됐다. 장남이 유산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했다. 배우자와 자녀, 형제자매까지 유산을 나누는 비율을 법으로 정했다.헌법재판소가 47년 만에 유류분 제도의 일부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 폐지하고, 일부는 법을 고쳐야 한다고 결정했다.패륜 행위를 한 사람에게 유류분 권리를 상실시키고 반대로 ‘독박간병’과 같이 돌아가신 분을 특별히 부양한 상속인에게는 기여분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패륜아까지 유산을 나누는 건, 지나친 재산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국회의 후속 입법이 필요하다. 유류분권 상실 사유를 빨리 법제화 해야 한다.유류분은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등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유언의 자유가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미국도 대부분의 주에서 유류분과 유사한 ‘유족부양청구권’을 인정한다.평균 수명과 1인 가구의 증가 등이 유류분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반면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는 보장받게 됐다. 시대 흐름이다.유류분 소송은 지난해에만 2000건을 넘었다. 상속 다툼을 벌이다 소송까지 가고 결국은 가족의 연을 끊는 경우가 허다하다. 패륜의 끝은 소송과 절연인 셈이다. 일생에 한번 이상은 겪는 상속, 잘 풀어야 한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29

허영선의 제주 해녀들의 노래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허영선 시인의 시집 ‘해녀들’(문학동네 시인선 95)은 21명의 제주해녀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사랑을 품지 않고 어찌 저 바다에 들겠는가”라는 주제시 21편과 산문 한 편으로 엮었다. 제주의 바다는 단 한 번도 누워있질 못한다. 늘 물거품을 일으키며 세로로 일어서려고 몸부림친다. 물의 깊이에 따라 흰색에서 푸른색, 검푸른 색으로 끝없이 펼쳐진 제주의 바다를 일터로 삼은 해녀들의 노래이다.허영선 시인은 “내 안에 오래도록 꽉 차 있던 소리/숨이 팍 그차질 때 터지는 그 소리/숨비소리/그 소리를 따라 여기까지 왔다.”며 해녀들이 깊은 바다 속에서 참을 대로 참다가 내뱉는 가쁜 숨소리인 숨비소리에서 가슴에만 담아오며 단 한 번도 내뱉지 못한 제주의 한 많은 역사의 소회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허영선 시인의 눈에는 제주바다가 푸르지 않고 붉다. 심장을 드러낸 칸나같은 붉은 빛이다. 4·3항쟁의 아픈 희생을 입 밖으로조차 표현하지 못한 제주토박이들의 한을 해녀의 숨비소리로 형상화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제주방언, 제주의 소리, 제주의 토박이 언어로 자신들의 삶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는 어느 한 군데도 원한에 찬 언어는 없다. 오히려 죽음이라는 위험과 맞바꾸어온 벅찬 생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해저 깊이 납덩어리를 차고 잠영하는 제주의 여성들, 둥그런 태왁을 안고 풍덩 거꾸로 내려잠수하는 해녀와 그들이 채취해온 ‘ㅁ·ㅁ’의 동그란 모양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제주의 아픈 역사가 불그레 물든 제주의 바다에서 숨이 찰 때까지 물질로 걷어낸 아픔과 슬픔으로 끓인 ‘ㅁ·ㅁ국’ 한 사발로 추위와 고통을 풀어낸다. 4·3항쟁 당시 450여 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북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북촌 해녀사’를 읽어본다. “남자들이 모두 핏빛 바다로 떠난 그날 이후/북촌 여자들은 물질할 수 없으면/바다를 떠나야 했다//그날 이후/북촌 여자들은 온통 바위섬을 건너야 했다//(중략)모두가 대군/물질 끝나 돌아가던 통통배/순간 한 치 눈치챌 수 없이 매복하던/강골의 바람살이/물귀 물 아래 위태위태하더니/엎어지고 까무라치고 부서지더니//북촌 해년 너도 나도 혼 줄 모아/기댔다 두렁박 하나에/등대처럼 기다리는 힘 하나/파도 건너 또랑또랑/어린 입, 입들.” 파도에 휩쓸려 죽음을 이겨야 하는 해녀, 그녀들은 왜 물질하는 해녀가 되었으며 집에 남겨둔 아이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품지 않고는 어이 저 컴컴한 죽음과 같은 바다 속으로 들어갔겠는가?“우린 몸을 산처럼했네”에서는 물질을 하여 ‘ㅁ·ㅁ’을 산처럼 채취만 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다시 팔러 나선 해녀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얘기한다. “깊은 바다 그것이 미욱거릴 적/물결 따라 스러져 너울거릴 적/우린 맹렬하게 구애를 했지/몸이 베이는지/몸이 베이는지/ㅁ·ㅁ 삽서/ㅁ·ㅁ 삽서/밀어닥친 흉년에도 우리 몸으로 ㅁ·ㅁ을 했네”에서처럼 제주어에 남아 있는 고어 ‘아래아’를 현대어로 옮기면 ‘ㅁ·ㅁ’이 ‘몸’이 되어 ‘모자반’을 채취한 것인지, 아니며 물질하는 해녀 자신의 신체, 즉 몸을 벤 것인지 모를 정도다. 열심히 모자반을 채취하여 이것을 “ㅁ·ㅁ 삽서, ㅁ·ㅁ 삽서” 외치며 팔러 다닌다. 밀어닥친 흉년에도 굶을 수는 없어 깊은 바다 속으로 몸을 던져 ‘ㅁ·ㅁ’을 건져 올리는 제주 여성들의 고달픈 삶이 선연하다.삶이라는 사랑을 가슴에 품지 않고서야 우주의 분홍 젖꼭지를 드러내며 너울거리는 심연의 바다 속으로 뛰어 들 수 있을까? 빈 몸통으로 깊은 숨을 쉬었다가 깊은 고통이 가득 차오르면 겨우 숨통을 틔우는 해녀들. “어디서 징징징 쇠북소리 울리거든/붉은 칸나가 심장을 드러낸 채 바다로 가거든/한번 돌아보셔요/먼 바다 바람타고 떠나가는 내가 보일 거예요.”“우리 애기 울면 젖 호끔 멕여줍서”에서는 거친 물결에 휩쓸려 죽기 직전 “저 차귀섬 위 큰 마당까지 헤쳐갔다지/물 터지면 올라오지 못해/몸은 자꾸 아래로 허우적허우적/금릉인가 어디까지 막 밀려갔다지 순간,//그 여자 막숨 하나 부여잡고 소리쳤다지/“우리 애기 울면 젖 호끔 멕여줍서”/라고 외치며 죽어간 김녕 해녀의 눈물 쏟는 이야기를 전한다. 허영선 시인의 제주 해녀들의 힘들고 벅찬 삶의 순간순간을 제주의 생생한 목소리와 눈물로 써서 우리에게 전한다. 허영선은 늘 세로로 일어서려는 붉은 제주 바다를 거닐고 있다.

2024-04-29

시코쿠헨로를 아시나요?

1월 28일부터 1월 31일까지 이루어진 이번 마쓰야마 학술기행은, 일본고전문학을 전공한 Y교수가 자신의 전공과 밀접하게 관련된 시코쿠헨로(四国遍路) 학술답사를 계획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흔히 오헨로(お遍路)라 불리기도 하는 시코쿠헨로는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 사찰을 참배하는 순례길을 말하는데요. 전체 거리는 1450㎞에 이르며, 보통 걸어서는 40일 정도가 걸리는 그야말로 길고 긴 순례길입니다.88개의 사찰은 모두 일본의 고승인 고보다이시(弘法大師, 774-835년)와 관련돼 있는데요. 고보다이시는 시코쿠에 있는 지금의 가가와현에서 태어나 장래가 보장된 엘리트 코스를 밟아 나가다가, 어느 날 깨달은 바가 있어 출가합니다. 그는 이후 당나라에 유학하여 2년간 불교를 더욱 깊이 있게 공부하고 돌아와 전설적인 고승이 되는데요. 진언종을 창시한 고보다이시는 수많은 사람들을 제도하다 고야산에서 입적합니다.저와 C교수는 미리 시코쿠에 도착하여 88개 사찰을 답사하던 Y교수와 1월 28일에 마쓰야마 공항에서 만난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마쓰야마의 여러 곳을 돌아보던 중, 시코쿠헨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미를 지닌 이시테지(石水寺)를 함께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이시테지는 728년에 쇼무 천황의 요청에 따라 창건되었으며, 오랜 역사를 가진 진언종의 대표 사찰입니다. 1318년에 지어진 니오몬(仁王門)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이외에도 본당, 삼층탑, 종루 등의 국가중요문화재가 산재한 명찰인데요. 시코쿠 88개 사찰 중에서는 51번째에 해당하는 사찰이기도 합니다.시코쿠헨로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요, 그 중의 하나는 헤이안 시대 오늘날 에히메현의 호족이었던 에몬 사부로가 순례길을 떠난 것에서 시작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전설은 저희 일행이 방문했던 이시테지(石水寺)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기도 합니다. 에몬 사부로는 부자이며 권세도 있었지만, 탐욕스럽고 포악했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 자신의 집을 찾아온 승려에게 자선을 베풀기는커녕, 그만 대나무 빗자루로 승려의 발우를 여덟 조각으로 부숴 버렸다고 하는데요. 그날 이후로 사부로가 애지중지하던 여덟 명의 자식들은 차례로 죽어나갔고, 뒤늦게 사부로는 자신이 박대했던 승려가 바로 고보다이시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큰 충격을 받은 사부로는 대사에게 사죄하고자 시코쿠헨로를 시작합니다. 다행히도 사부로는 순례길에서 대사를 만나지만, 이미 중병에 걸린 사부로는 “다음 생애에는 고노 가문에 태어나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뜻을 대사에게 밝히고 죽습니다. 이에 대사는 돌을 주워 거기에 ‘에몬 사부로’라 새겨 사부로의 손에 쥐어주었다고 하는데요. 이듬해 그 지역의 부유한 집안인 고노 가문에 한 남자아이가 태어나고, 신기하게도 그 아이는 꽉 쥔 오른손을 펴지 않습니다. 당황한 아이의 부모는 안요지(安養寺)를 찾아가 기도를 올린 후에야 아이의 손을 펼 수 있었는데요. 거기에는 ‘에몬 사부로’가 선명하게 새겨진 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인요지라는 절은 에몬 사부로 이야기에 따라 ‘돌의 손’이라는 뜻을 가진 이시테지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는데요. 이시테지에는 이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절 입구에서부터 에몬 사부로의 석상이 세워져 있고, 절의 박물관에는 설화 속의 돌이 전시돼 있습니다. 시코쿠헨로를 대표하는 슬로건은 ‘동행이인(同行二人)’입니다. 1450㎞의 길을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의미인데요. 이 때 누군가는 말할 것도 없이 고보다이시입니다. 이와 관련해 이시테지에서는 멀리서부터 사람들의 눈을 한눈에 사로잡는 거대한 조형물이 하나 있었는데요. 이경재 숭실대 교수 절이 자리한 뒷산 정상에 있는 고보다이시의 석상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놀랍게도 이 조형물은 전체 높이가 16m이며, 얼굴 길이만 2.4m, 붓 길이는 3m에 이릅니다. 더군다나 이것은 산의 정상에 있기에 더욱 웅장하게 보이는데요. 고보다이시의 몸은 그가 유학했던 중국의 시안(西安)을, 얼굴은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를 향해 있다고 합니다. 이 거대한 고보다이시 석상은 이시테지로부터 3㎞ 떨어진 마쓰야마성에서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요즘 전세계적으로 순례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오늘 소개한 시코쿠헨로 이외에도 일본의 구마노고도, 포르투갈의 파티마, 스페인의 산티아고, 미국의 세도나 등에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사람들이 영혼의 갈증에 시달린다는 증거겠지요. 본래 여행이란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갔다가, 그 곳에서 새로운 힘을 얻어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는 인간의 오래된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일상의 질서와는 확연히 다른 신성과 신비로 가득한 성지를 다녀오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는 궁극의 여행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4-04-29

불화하는 아름다움

화가 르네 마그리트 작품 ‘사람의 아들’. 이따금 내 존재가 잘못 놓인 바둑돌 같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기능하는 와중 나 홀로 삐걱대는 것 같을 때 특히 그렇다. 이런 기분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드라마가 왠지 모르게 따분하고 유명 평론가가 극찬한 작품에서 어떠한 감흥도 느껴지지 않을 때.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들이 내겐 너무 커다란 이벤트처럼 다가오거나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을 건너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이 지구라는 배경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처럼 여겨지면, 현실을 추동하는 모종의 질서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대부분의 하루는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지만 어쩐지 불안은 떠나질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과 별 탈 없이 하루를 끝마친 것에 감사하려 노력하다가도 문득 어떤 의심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렇게 사는 거, 조금 이상하지 않나?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에 질문을 던지면 나를 둘러싼 세계가 낯설게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분은 찰나에 그치는 것이며 당장 몇 시간 뒤의 현실이 등을 떠미는 중이니까.그런데 만약 눈앞의 현실을 거부하고 일상의 걸음을 멈추면 어떻게 될까? 원활한 도로에서 급정거한 자동차처럼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흰 토끼를 따라간 앨리스처럼 미지의 세상과 조우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트 여왕이나 모자 장수를 만나 나 자신보다 훨씬 더 이상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수도 있다. 어떤 결과를 낳듯, 외부 세계로 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처럼 낯설고 불쾌한 기분은 그저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마크 피셔는 본인의 저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에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을 문화적 사례를 토대로 설명한다. 특히 H. P. 러브크래프트는 ‘기이한 것’을 설명하기에 탁월한 작가다. ‘기이한 것’이란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것이 공존”하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을 포함한다. 어떤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떠올려보자. 이를테면 바다 위를 부유하는 거대한 야자수나 공중을 떠다니는 낙타 같은. 가능해선 안 되는 것이 가능한 존재도 이에 해당한다. 르네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을 예로 들 수 있겠다.‘기이한 것’은 단지 환상적인 영역이 아니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을 보자. 그것들은 워낙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소를 재결합한 것에 불과하기에 어떤 기이한 감각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기이한 것’이 되려면 완전히 낯설면서도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평범한 회사원이 어느 날 갑자기 중세 시대의 기사가 되는 것보다 게으른 상사의 정수리에 해바라기가 피어나는 것이 훨씬 더 ‘기이한 것’으로 다가온다. 우리 주변의 세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로 “무한하고 무시무시한 미지의 것”을 보려고 하면 오히려 따분해질 우려가 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러브크래프트는 공포 소설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매혹적이다. 소설의 주된 배경인 뉴잉글랜드는 완전히 불가능한 외부 세계가 아니며 친숙한 현장이다. 거기에 난입한 기이한 존재는 허구의 것이나 현실 안으로 들어와 더욱 새로워지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불쾌한 것을 향해 끌리는 충동, 이례적인 사건을 바라보는 즐거움, 일상적인 현실 속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순간 느껴지는 묘한 해방감까지.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기도 하다.이렇듯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을 나란히 놓았을 때, 우리는 기이한 감각과 동시에 낯선 끌림을 느낀다. 그런 면에서 나와 세계가 불화할수록 빚어지는 오묘한 아름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책상 위 반듯하게 펼쳐진 책보다 모래사장에 파묻힌 텍스트가 더욱 궁금하지 않은가. 왜 거기에 놓였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오히려 깊이 탐구하고 싶어지는 충동. 재미있는 사건은 그런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결국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어딘지 모르게 뒤틀리고 엉뚱한 생각이 튀어 오를 때야말로 삶이 가장 강렬해지는 순간이 된다. 낯선 기분과의 조우가 항상 유쾌할 순 없지만, 그것이 가진 특이성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 아니겠는가.

2024-04-29

거절을 딛고 일어나는 능력

농업 종사자들에게 농번기와 농한기가 있는 것처럼 공연 예술인들에게도 바쁜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가 있다. 우선 1월부터 3월까지 공연계는 꽁꽁 얼어붙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날씨가 춥기도 하거니와 지자체와 기업, 재단 등 공연을 기획하는 곳들의 예산이 확정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매년 새해가 밝으면 3개월간의 한가하고도 궁핍한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그렇다면 1월부터 3월까지 공연 예술인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봄과 여름을 겨냥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국가 지원 사업에 응모하기 위한 지원서와 각종 기획서, 제안서 등을 쓰며 시간을 보낸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한 해 동안 경제적 어려움 없는 나날을 보내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힘든 해를 보내기도 하는 것이다.문제는 이 지원사업의 응모나 제안들이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창작 자체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은 물론, 공연비를 지원하는 사업, 예술인의 다양한 활동을 주선하는 사업 등의 경쟁률은 매우 치열하다.그래서 공연 예술인들은 여러 곳에 응모와 제안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상당히 많은 양의 서류들을 작성하며 비수기를 난다. 그리고 3월 중순부터 4월까지 그 결과를 통보받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성공률이 높지 않기에 거절의 말들을 마주하기 일쑤이다. 그러다 보면 아쉬운 마음도 들고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은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이런 것에 무뎌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단지 빨리 털고 일어나 다시 창작이나 새로운 기획에 몰입하게 되는 속도가 빨라질 뿐.예술 활동은 거절의 연속이다. 앞서 말한 방식의 거절도 흔하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거절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작가가 책을 내기 위해서는 글을 쓰기 위한 인내심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출판사로부터의 거절을 견뎌내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그렇게 책이 탄생해도 그 책이 대중들로부터 거절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야구선수가 3할만 쳐도 준수한 선수라고 했듯이, 한 출판사 관계자는 내게 ‘작가는 2할만 쳐도 훌륭한 작가다.’라고 귀띔을 해 준 적이 있다. 나머지 8할은 숱한 거절 앞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가수들의 음반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친다. 오디션에 붙는 배우들보다 떨어지는 배우들이 훨씬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극장에 걸린 영화 중 박스오피스의 정상을 차지하는 작품들이 그렇지 못한 작품들보다 적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어쩌면 예술인들은 이러한 거절에 맞서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잘 된 사람들도 없지는 않으나, 거절을 당하더라도 다시 굳세게 일어서서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며 결국 살아남아 걸작을 만들어내는 이들도 존재한다. 지금은 대중가요계의 정점에 올라 있는 BTS와 아이유 같은 가수들에게도 당시에는 대중들에게 거절을 당하고 만 초창기 작품들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첫 작품도, 박찬욱 감독의 첫 작품도 마찬가지다. 예술인의 성공이란 무엇일까. 마스터피스를 남기는 것도 성공이겠지만 대부분의 예술가에게는 생존 그 자체가 현실적인 꿈이다. 오래 생존한다면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확률도 올라간다는 점에서 그 생존이라는 것이야말로 예술가가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일 수 있다.그것을 위해 갖추어야 하는 자질 중에는 남다른 예술적 재능도 있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도 있고 영민한 비즈니스 능력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거절을 견뎌내는 능력을 이야기하고 싶다.혹시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예술인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다. 당신 앞에는 무수히 많은 거절과 거절들이 존재할 것이고, 그것에 걸려 고꾸라지는 일은 일상다반사가 될 것이라고. 중요한 것은 거절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거절을 뒤로하고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라고.

2024-04-29

보수 정당은 어떻게 정권 재창출할까

김진국 고문 국민의힘 홈페이지를 열면 “국민의 회초리 겸허히 받겠습니다”라는 큰 글자가 뜬다.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받들겠다는 뜻이다.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은 무엇일까. 국민은 무엇을 나무라며 회초리를 든 것일까.선거는 유권자가 갖고 있는 개인 성향과 각 정당의 활동, 시대 상황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물이다. 더구나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집중돼 있고, 아주 적은 표 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소선거구제라 조금만 민심이 흔들려도 결과는 천양지차가 된다. 그러니 표를 찍었건 아니건, 국민 전체가 회초리를 들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그러면 무엇에 회초리를 들었나. 선거운동을 시작할 무렵 국민의힘이 우세하다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비명횡사’ 공천으로 민주당이 혼란스러웠다. 이낙연 전 대표와 비주류 의원들이 나가고, 박용진 의원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파문으로 절정에 달했다. 연합공천과정에 진보당, 시민단체가 공천한 인물들이 파문을 일으켰다.민주당이 공천 파문을 수습할 무렵 국민의힘에서 계속 사고가 터졌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동영상이 폭로됐다.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하자는 의견을 야당 프레임에 말렸다고 생각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로까지 번졌다.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했다. 한 달만 기다리면 될 것을 굳이 선거기간에 출국금지까지 풀고 내보냈다.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기자들 앞에서 “MBC 잘들어”라며 1988년 정보사 군인들의 언론인 회칼 테러를 들먹였다. 누가 봐도 협박이다. 그런데 뭉개다 뒤늦게 경질했다. 이 과정에도 윤-한 갈등이 있었다.의정 갈등이 길어지자, 대통령 담화를 준비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말한 내용은 비서실이 준비한 것과 달랐다. 강경했다. 여론이 들끓었다. 정책실장이 급하게 TV에 출연해 “그게 아니고요”라며 ‘번역기’를 돌렸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담화가 됐다.윤 대통령이 농협 하나로 마트에 갔다. 대파를 들고, 가격표를 보며 “875원이면 합리적 가격이라고 생각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선거의 상징이 됐다. 권장 소비자가격은 4250원. 정부 지원금 두 가지와 자체 지원금까지 붙어 할인됐다. 가뜩이나 고물가에 지친 국민이 분개했다.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야당의 프레임에 말려든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한 전 위원장이 ‘대통령이 잘못했다’라고 인정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바람에 여론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차기를 노린 이미지 전략이라고 비난한다. 눈만 감으면 이미 벌어진 일이 사라질까. 그나마 선거 막판 민주당의 양문석·김준혁 후보의 몰염치한 전력이 드러나 국민의힘이 개헌선은 지켜냈다.홍준표 대구 시장 인식도 비슷하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만찬 뒤 한 전 위원장을 저격했다. 그는 “우리에게 (총선 참패의) 지옥을 맛보게 했던 정치검사였고, 윤 대통령도 배신한 사람”이라며 “더 이상 우리 당에 얼씬거리면 안 된다”라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윤 대통령과 홍 시장의 4시간 술자리에 한 전 위원장이 안주였다는 말이 나온다. 개 목걸이 소문도 나돈다.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의 냉랭한 관계가 이어진다.윤 대통령은 많은 사람을 버렸다. 대통령 선거 직후 이준석 전 대표를 몰아냈고, 대표 경선 과정에는 초선의원들의 연판장까지 돌려 나경원 의원을 궁지에 몰았다. 안철수 의원에게 ‘이념 정체성이 없다’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라고 비난했다. 김기현 전 대표도 ‘격노’해 강제로 끌어내리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세웠다. 양파처럼 계속 갈라내 무엇을 남기려는 걸까.윤 대통령은 무엇을 지키려 할까. 보수 이념에 충성하는 걸까. 검사로서 그는 이념을 가리지 않는 전문 칼잡이였다. 그는 여주 지청장 시절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기용설은 중도 확장을 노린 걸까. 아니면 이념과 상관없는 지인 챙기기일까. 보수정권 재창출을 고민하는 걸까. 총선 참패로 식물 정권이 됐다. 보수 유권자들마저 편을 갈라 책임론 공방을 벌이는 동안 집권당은 회복될 수 없게 무너져 간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4-28

맹견 사육허가제

우정구 논설위원 이달 24일 이탈리아 남부 살레르노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생후 15개월 된 남자아이가 맹견 핏불테리어 2마리에 물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이 사고는 마을 외딴 이층집 마당에서 일어났는데, 아기의 어머니가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순식간에 벌어졌다. 아기의 어머니는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해당 맹견은 동물보호소로 옮겨져 안락사 여부를 결정받는다고 한다.일반적으로 맹견이라함은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개를 말한다. 특정한 상황이나 자극에 과도하게 반응하여 사람이나 동물에게 심각한 위협을 주는 개다.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탠퍼드셔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등이 해당되며 우리나라에선 동물보호법에 따라 해당 맹견이 외출시에는 반드시 입마개를 해야 한다.4년 전 서울 은평구 한 골목길에서 입마개를 하지 않은 맹견 로트와일러가 산책 나온 소형 스피츠를 물어 죽인 사고가 발생했다. 스피츠는 로트와일러의 공격을 피해 견주 뒤로 숨었으나 끝내 물려 숨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마개를 하지 않은 견주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줄을 이었다.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 27일부터 맹견을 기르는 사람은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또 맹견에 대해서는 책임보험 가입, 동물 등록, 중성화 수술의 요건을 갖추도록 법을 강화했다.미국서는 개에 물려죽는 사람이 매년 500명 정도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서도 매년 2000건 이상 개물림 사고가 벌어진다. 맹견이 아니더라도 개는 일반적으로 공격성을 갖고 있다. 맹견관리를 강화한 조치는 잘한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28

인문학 강연 소회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언제부턴가 불어닥친 인문학 열풍이 요즘도 상당하여 곳곳에서 다채로운 강연이 펼쳐지고 있다. 수많은 사립대학이 앞장서서 인문대학을 폐하고, 인문학 전공 교수들을 저잣거리로 내몰고 있는 상황과 현저히 모순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인문학의 뿌리이자 근본인 인문대학이 사라지는 형국이니, 인문학 열풍도 머지않아 스러질 것이 자명하다.세계 곳곳에 이른바 ‘한류열풍’이 분다고들 입에 게거품을 물지만, 그것은 상업주의와 결탁한 부분적인 성공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세기 90년대 중반에 몰아닥친 세계화 광풍이 신자유주의 바람을 후폭풍으로 동반한 결과가 물신-배금주의 풍조다. 물적(物的)으로 풍족하지 못한 시절에도 잊지 않았던 정신과 영적인 가치와 의미가 급속도로 퇴락의 길을 걷고 있다.그 무렵 전국 인문대학장들이 시대를 통탄하고, 인문학의 가치를 고양해야 한다는 선언문까지 작성하여 배포하지만, 상황은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걸어왔다.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하고, 전국의 철학과와 국문과가 간판을 내리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런 풍경이 요즘엔 일상사가 된 것이니, 새삼 돌이켜보면 가슴에 생채기만 깊어질 따름이다.그런 와중에도 전국적으로 시작된 인문학 열풍은 도회와 농어촌을 가리지 않고 불어와 곳곳에 강연회가 성행한다. 나 역시 2008년부터 지금까지 멀리는 경기도 오산부터 가까이는 창녕과 부산까지 강연하러 다니고 있다. 거기서 만나는 청중은 크게 두 부류로 갈린다. 호기심으로 들른 사람들과 알고자 하는 열망으로 참가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전자는 한두 번 강연회에 왔다가 ‘핫바지 방귀 새듯’ 사라진다. 삶과 일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문학의 고담준론(高談峻論)에 아까운 시간과 정열을 낭비할 이유가 없어서다. “삶을 돌이키지 않는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설파한 소크라테스의 2400년 전 가르침이 여전히 유효하구나, 하는 깨달음을 불러오는 사람들이 그들이다.후자는 계 모임 하는 사람들처럼 무리 지어서 이곳저곳으로 사냥감을 찾듯 배회한다. 그들은 인문학 강연에 빠짐없이 출근한다. 그런 성실성과 근면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그것은 귀만 가지고 강연회에 오면 별로 남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오직 듣기만 하여 그 자리와 작별하면 피와 살이 될 자양분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만일 고전 그리스의 서사시와 비극이 강연 주제라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야’, 그리고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은 미리 읽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강연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전제를 소화한 청중과 그냥 참여한 청중 사이의 거리는 측량 불가다. 특히 강연이 끝난 뒤 가슴이나 의식에 남은 기억은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다.낯익은 청중과 만날 때면 그들에게 조용히 말한다. “강연을 듣는 것도 좋지만, 책을 꾸준히 읽고 기록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훨씬 쓸모가 있습니다.” 강연을 듣는 일은 쉽지만, 책을 읽는 것은 굳은 의지의 소산이다. 독서와 청강의 양립이 인문학 소양 습득의 지름길이다.

2024-04-28

與野, 오늘 영수회담을 ‘협치’의 계기로 삼길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오늘(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영수회담을 한다.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 공식 회동을 하는 것은 2022년 5월 취임 이후 처음이다. 회담은 오찬이 아닌 차담(茶談) 형식으로 오후 2시 열린다. 난항을 겪었던 두 사람의 회동은 ‘이 대표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윤 대통령 뜻과 ‘의제 합의를 접어두고 먼저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이 대표의 의지에 따라 성사됐다. 관심사는 이 대표가 제안할 의제다. 이 대표는 우선 주요 총선공약이었던 ‘전 국민 1인당 25만원 지급’과 이를 위한 추경편성, 그리고 ‘해병대 채상병 특검법’을 비롯한 각종 특검수용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 문제를 직접 거론할지가 주목된다. 최대현안인 ‘의료공백’과 관련한 의제도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표와 민주당도 의대증원 필요성에는 공감하기 때문에 의료파국을 피하기 위한 대안이 전격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의 경우, 첫 회담에서는 이 대표의 제안을 경청하는 것으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 쟁점 법안에 대한 합의는 여·야·정 협상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오늘 두 사람의 회동에 대한 국민기대는 크다. 그동안 ‘얽힌 실타래’와 같았던 현안이 풀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서다. 첫 회담에서 실질적 성과가 나오긴 어렵겠지만, 이제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사실상 국정 파트너로 인정한 만큼 두 사람이 자주 만나 대화하는 것 자체가 ‘증오정치’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윤 대통령으로선 오늘 회담이 그동안 국민에게 보여준 오만·불통 이미지를 바꿀 주요 기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으로선 민심의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하고,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려면 야당과의 협치가 기반이 돼야 한다. 이 대표도 21대 국회가 ‘협치’로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대통령실, 그리고 여당과의 대화와 소통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은 첫째도 둘째도 민생을 살리라는 것이다.

2024-04-28

경산에 대형 아웃렛, 지역경제 마중물 돼야

경산시의 오랜 숙원 중 하나인 경산지식산업지구 내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 유치가 가능권에 들어왔다.산업통상부는 지난주 경제자유구역위원회를 열고 대형 아웃렛 유치가 가능한 경산지식산업지구 개발계획 변경안을 심의 의결했다고 밝혔다. 당초 연구개발(RD) 및 제조업 위주의 산업시설단지에서 지식산업, 서비스, 유통 등이 가능한 복합경제산업시설로 개발계획안을 변경한 것이다.경산지식산업지구는 2008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후 경산시 하양읍 대학리와 와촌면 소월리 일대 약380만㎡ 규모에 산업단지를 조성 중이다. 현재 166개 기업과 7개 국책연구기관이 들어와 있다.하지만 문화와 여가생활을 영위할 정주 여건이 미비해 인근에 10개 대학 10만여명의 학생들이 있음에도 우수한 인력자원들이 대도시로 매년 빠져 나가고 있다.경산시와 경자청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사업지구 내 일부시설의 변경을 산자부에 건의했고, 2020년에는 신세계사이먼과 투자양해 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신세계사이먼은 1200억원을 투자해 2023년 개장을 목표로 프리미엄 아웃렛을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그러나 유통상업시설 유치는 본래 목적과 다르다는 이유로 산자부가 반대해 대형 쇼핑몰 유치는 오랫동안 지지부진했다. 이번에 산자부가 계획안을 변경함으로써 드디어 이곳에 대형 프리미엄몰 유치가 가능해진 것이다.조현일 경산시장은 26일 쇼핑몰 조성을 공약으로 내세운 조지연 22대 국회의원 당선자와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쇼핑몰 입주와 연계해 경산지식산업지구를 청년들이 머무는 성공한 복합도시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프리미엄 쇼핑몰 입점이 가능해지면서 국내 대형유통업체들의 물밑 경쟁도 예상이 된다. 경산시는 이곳에 전국 최고 수준의 프리미엄 쇼핑몰을 조성한다는 각오로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곳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마중물이 돼야 함은 물론이고 나아가 지역대학생들의 취업기회의 장으로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또 인구소멸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경산지식산업지구가 성공리에 마무리돼야 할 것이다.

2024-04-28

낭비와 헛일 그리고 행복

신일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주어진 시간과 자원을 헛되이 사용할 때 우리는 “낭비했다 또는 헛 일 했다”라고 이야기 한다. 열심히 무엇인가를 했는데 원하는 결과가 도출되지 않을 때 실망감과 허탈감 속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라는 재생불가능한 소중한 자원이 아깝기도 하고 그 시간 속에 투입된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서 더욱 아쉬울 것이라 생각된다. 미국 달러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 중 대통령이 아닌 인물은 10달러의 알렉산더 해밀턴과 100달러의 벤자민 플랭클랜 두 사람 뿐이다. 1706년 양초를 만드는 집안의 15번째 아들로 태어난 벤자민 프랭클린은 인쇄업에 성공하였고 정치인이자 과학자 그리고 발명가로서 두루 많은 업적을 남겨 ‘미국인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8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기 자신을 완벽히 다듬어 나가기 위해 침묵과 결단, 절약과 근면 등 13가지의 덕목을 정하고 매일 이를 확인하고 지켜나갔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소지하고 있는 프랭클랜 다이어리(일상 기록부)로 개인의 목표 설정과 시간별 일정관리를 돕기 위해 프랭클린의 덕목을 기반하여 고안되었다.상대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 이외에는 필요없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고 모든 일은 시간을 정하고 지키며, 결심한 일은 반드시 실천하는 것을 기준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라는 원칙하에 하루하루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새해 계획 등 무수히 많은 계획을 세우고 포기하고 일부는 바꾸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걷다 보니 제자리”라는 생각을 매년 가지게 된다. 그 이유는 목표를 잘못 세웠거나, 이를 구체화하는 실천계획을 마련하지 못하거나 계획을 수립했더라도 실천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루 하루의 삶을 영위할 때 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하는가? 인생의 절반을 회사에서 보내는 직장인들에게 시간관리는 매우 소중하다. 그 구성은 연간 목표를 세우고 이를 분기계획으로 다시 월간 계획으로 세우는 구조이다. 일상행동으로 묘사되는 주간 계획이 매일의 활동계획으로 연결되면 이러한 목표의 체계적인 달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시간의 흐름과 변화속에 우리는 어떠한 가치를 싣고 지혜를 발휘해야 할까?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리의 걸음걸이도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이동해야 하고, 조금씩 변화가 보여야 한다. 이런 변화가 하나씩 쌓여 크고 작은 목표를 이루고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자아 성취는 가치 있는 인생의 산 결과물의 하나이고 이를 통해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은 일주일에 168시간으로 구성돼 있고 이중 하루 평균 7시간의 수면시간을 제외하면 119시간이 활동하는 시간이다. 시간은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이 시간과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 가는 개인의 인식과 판단으로 결정된다. 분명한 것은 흐르는 시간이라는 배 위에 자원을 활용하여 어떠한 가치를 만들고 인생이라는 항로는 개척해나가야 할 것인가를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 “나는 잘살고 있고 행복하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2024-04-28

25만원의 얼굴

유영희 작가 더불어민주당에서 총선 기간에 발의한 전 국민 25만 원 지역 화폐 지급에 대해 논란이 많다.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고 개혁신당과 민노총,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사까지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더불어민주당에서는 고물가, 고금리 상황에서 실질소득을 보충할 필요가 있으며, 지역 화폐라서 실질적인 민생 회복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코로나19 때 재난지원금 14조 원 이상을 풀었지만 전체 투입 예산 대비 26.2~36.1%의 매출 증대 효과가 나타났을 뿐이고, 고소득 계층은 소비 변화의 폭도 크지 않았다고 하면서, 전 국민을 지원하는 방식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이런 논란을 보면서, 나에게 25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기에 주면 좋지 하는 마음도 있지만, 단 1회만 주는 25만 원으로는 실질소득 증가에 큰 영향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13조 원의 예산을 이렇게 써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미 작년 재정적자가 87조 원이라고 하니 더 걱정스럽다.그래서인지 13조 원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용혜인 의원의 보충 설명이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반대입장과 맞장토론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다가 인플레이션 공부까지 하게 된다.총 6부로 진행되는 EBS1의 ‘돈의 얼굴’ 중 지난주 방영된 3부 ‘돈이 떨어졌습니다’에서는 인플레이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영상에 나오는 어느 노동자는 월급이 80만 원일 때가 더 행복했다면서 지금은 월급이 두 배로 올랐지만 물가는 더 올라서 오히려 그때가 더 좋았다고 말한다.실제로 제작진은 M사 햄버거 가격 변동을 보여주며 인플레이션의 위력을 증명해준다. 1960년에는 45센트로 햄버거 한 개를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12분의 1조각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정말 물리적으로 객관적으로 우리 삶이 팍팍해졌나 하는 의문도 든다. 이런 의문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이 영상에 흥미로운 댓글이 달려 있다. ‘지금은 부모 세대보다 노동시간이 줄었고, 지난 50년간 명목 임금은 100배 이상 올랐으며, 공산품 물가가 오르기는 했지만 임금 상승 비율과 비교하면 오히려 낮아졌다.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주요 원인은 물가가 아니라 집값, 정확하게는 땅값인데, 서울의 강남 땅값은 3천 배 올랐다. 물가가 오른 것이 아니라 욕망이 많아졌다.’ 실제로 2020년 동아일보에도 짜장면 50배, 돼지고기 133배 오를 때, 1인당 소득은 415배 늘었는데, 그래도 통장이 텅장 되는 이유는 집값과 소비 욕구 때문이라고 분석해놓은 기사가 있다.이런 자료를 보면, 25만 원이라는 지원금이 인플레이션 조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87조 원 재정적자 상황에서 13조 원은 적지 않은 금액이고, 매출 증대 효과가 미흡하다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좋겠다. 혹시나 돈을 풀어서 정부만 이득을 본다는 토마스 사전트 교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원금 방식은 더욱 신중해야 할 일이다.

2024-04-28

하여간, 뭐든지 간에

이희정 시인 안다고 우쭐할 것도 없고알았다고 깔깔거릴 것도 없고낄낄거릴 것도 없고,안다고 알았다고우주를 제 목소리로 채울 것도 없고누구 죽일 궁리를 할 것도 없고엉엉 울 것도 없다뭐든지 간에 하여간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그게 활자의 모습으로 있거나망막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거나풀처럼 흔들리고 있거나그 어떤 모습이거나사람으로 붐비는 앎은슬픔이니….― 정현종,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전문 (‘한 꽃송이’, 문학과지성사)1992년에 발간된 정현종 시인의 시집 ‘한 꽃송이’에 수록된 이 시는 어렵지 않게 읽힌다. 하여간 단박에 읽히는 행간은 읽을수록 점점 더 쓸쓸해지고 점점 더 냉소에 다가가고 있다. 아름답고 쓸쓸한 내면의 슬픈 고백이다. 이때 슬픔이라는 고백은 어떤 지향점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의 뒷걸음질 같은 아이러니한 행보와도 무관하지 않다. 말하자면 이 시는 내면의 로드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안온한 체념과 정직한 성찰의 분위기가 묘하게 공존하는 이 시는 제목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가 환기하는 정서부터 예사롭지 않다. 온통 통념에 휘둘리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관찰과 성찰을 대변하는 세계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시인이 던지는 질문들은 “활자의 모습”이거나 “망막에 어른거리는 그림”이거나 “풀처럼 흔들리는 / 그 어떤 모습”이건 모두 슬픔이라고 했다. 설령 그것이 어떤 대단한 명성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잠깐 머물거나 짧게 경험할 수 있을 뿐 결국은 사라져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 시의 정조는 내내 허무하고 쓸쓸하다. 실제 사람의 삶을 채우고 있는 것들은 본질이 아니라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사람을 좋아해서 어울리기를 즐겨하지만, 한편으로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누구든 그렇지 않을까. 지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지지 않으려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적은 없는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창과 방패를 도구로 공격적으로 맞설 것인가. 방어하는 자세로 지독한 디펜더가 될 것인가. 사람은 과도한 경쟁사회에 내몰리게 되면서 피할 수 없는 이 두 가지의 의식적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다.“사람으로 붐빔 가운데의 앎”은 허명을 단 욕망이 서로 쟁투하는 공간의 그림자를 적출해 보이기도 한다.“사람과 사람이 붐비는 앎”이 주는 피로도는 높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질이 다양한 것만큼 사람을 견디는 일은 고통스럽다. 세상의 절반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남을 조롱하지만 실은 절반이 어리석다.사람에 관해서 때로는 모른 척하는 것이 지혜이고 미덕이라고 조언하는 처세술에 관한 책들이 넘쳐나는 현실은 지독한 블랙코미디이다. “안다고 우쭐할 것도 없고 / 누군가의 사람의 치부를 알았다고 깔깔거릴 것도 / 낄낄거릴 것도” 없다. 그 상대가 경쟁자이거나 경계를 침범한 불안의 대상이라면 그 목청은 높아지기 마련일 터인데 그렇다 해도 “우주를 제 목소리로 채울 것도 없”는 것이다.시인은 자전 시론집 ‘숨과 꿈’에서 자기 자신 안에 상반되는 힘의 갈등이나 나와 타인의 갈등, 이상과 현실의 불화로 인한 갈등. 세대간 혹은 이념과 계층 사이의 갈등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여러 불화와 갈등이 사람과 사람에게 붐빈다고 했다.1965년 등단한 정현종 시인(1939)은 참혹한 이데올로기의 폭풍 속을 관통하면서도 그 한편에서 자유의지를 노래하고 철학한 시인이다. 무거운 것을 가볍게 들어 올리려는 노력이 문학의 힘이고, 시라고 했다. 그 힘은 결국 그 자신에게 나온다고. 이 시를 여러 번 반복해 읽다 보면 니체의 ‘위버멘쉬’가 자연스레 떠오르게 되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이 시의 제목이 궁구하는 세계를 인식하게 된다. 슬픔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슬픔의 그림자가 내내 일렁이는 이 시는 그러한 슬픔을 경유하는 현재를 보여주는 듯하다.“뭐든지 간에 하여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2024-04-28

지역발전은 교육에서부터

김학동 예천군수 동네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은 어김없이 도시로 떠나고 그곳에서 공부하고 그곳에서 자리 잡는다. 교육격차로 인해 발생한 인구 유출은 결국 일자리까지 이어져 지역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예천군은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교육 발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 지정과 평생학습 도시 선정 등의 성과를 얻으며 교육명품 도시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인재가 떠나지 않는 예천‘교육발전특구시범지역’ 선정으로 예천군은 대학, 기업, 공공기관 등 지역 주체들과 협력해 공교육을 발전시키고 지역 산업 인프라와 연계해 교육과 일자리가 이어지는 체계를 구축해 나간다.먼저 초등학생들의 방과 후 돌봄을 책임지는 온종일 돌봄 체계를 구축한다. 이를 위해 경상북도 교육청과 함께 경북형 돌봄거점센터 구축과 늘봄학교 운영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돌봄 공백으로 인한 사교육비 지출을 줄이고 교육 복지의 기초를 닦는다.또 K-인문 교육을 활용한 공교육 혁신모델을 정립한다. 중·고등학교 인성교육과 학력 신장을 위한 혁신 체계를 만들고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 문제해결력 중심의 IB 교육과정을 시범 도입한다. 이를 위해 먼저 IB 수업 탐구학교를 선정해 운영하고 향후 공모를 통해 확대해가며 공교육 안에서 인성교육과 학력 신장 모두 공고해지는 환경을 조성한다.또 지역 기반 산업과 연계한 인재 양성 체계를 구축해 나간다. 지역산업과 연계한 학제 개설 및 운영으로 지역산업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고 일자리로 연결해 인재들이 지역에 남아 발전을 이끌어가는 환경을 만들어간다.△ 평생 학습 기반 구축예천군은 ‘인재양성, 화합정주, 생애설계, 기회균등, 미래 창조’의 5대 추진 전략 아래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학습 욕구 충족을 위해 평생 학습 체계를 구축해 왔다.평생학습관과 경북도립대학교 평생학습원, 경북도민 행복대학교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평생교육지도자와 전문가 양성, 학습동아리 육성과 재취업 교육, 산·관·학 연계 교육, 찾아가는 마을 평생 교육 등을 통해 군민 역량개발과 미래 학습도시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또한 배움에 소외되는 계층이 없도록 청각장애인 미술 교육, 시각장애인 노래 교실 등 장애 유형별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성인 디지털 문해 교육, 읍면 행복학습센터, 노인대학, 예천군민 아카데미 등을 통해 지역민의 다양한 교육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지역 발전은 교육에서돌봄 공백이 줄어들고 공교육이 공고해지면 교육을 위한 인구 유출이 줄어들고 출생률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구는 지역 발전의 가장 근본이며, 우수한 인재 양성은 지역 경쟁력의 필수적인 요소다.예천군은 이를 위해 온종일돌봄체계 구축을 준비하고, 초·중·고 학력 신장과 함께 아이들이 꿈을 키울 수 있는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미래교육지구사업과 창의적인재양성사업으로 단샘마을학교와 봉사단을 운영해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내고장 탐방, 청소년 꿈키움 탐방, 청소년 성장캠프 등을 추진하고 있다.또 초·중학교 독서골든벨, 고등학교 맞춤형 진학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고교학점제를 대비해 다양한 공동교육 과정을 운영한다.군은 앞으로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위해 방과 후 특화 교육 과정과 대입 맞춤형 컨설팅을 추진할 계획이며, 글로벌 시대 어학 능력 배양을 위해 영어 원서 독서 교실, 원어민 영어교실 운영을 적극 검토 중이다.교육은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도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며, 최대한 배움에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할 것이다생애주기에 맞춘 교육으로 군민의 역량과 경쟁력을 높여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2024-04-28

더위에 약이 되는 운동

박성률 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지난해 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는 통계가 나왔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평균 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 기록은 올해 바로 깨질 가능성이 크다. 영국 기상청은 2년 연속 새로운 평균기온 기록이 세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3~2027년이 역대 가장 더운 5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이처럼 더운 날씨와 상관없이 야외에서 매일같이 운동을 하는 마니아들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영 등 바이러스 전염성이 높은 실내운동보다는 자전거, 골프와 같은 야외스포츠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아직 4월인데 한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고 있다. 점차 더 덥고 습한 날씨가 예상되는 가운데, 고온의 환경에서 운동이나 스포츠 활동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고 해야 약이 된다.더운 환경에서 운동을 할 때는 가장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 피로다. 피로가 온다는 것은 흡수되는 수분과 염분의 양보다 배출되는 양이 더 많다는 의미다. 특히 급격한 땀 배출로 탈수현상이 생겨 심폐기능이 평소보다 빨리 저하된다. 그 결과 유산소성 운동능력이 떨어지고 결국 피로가 빨리 오게 된다. 피로는 몸이 보내는 일종의 경고 신호다.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운동이나 스포츠 활동을 계속하는 경우 열 관련 질환이 발생한다. 대표적인 열 관련 질환으로는 열경련(heat cramps), 열탈진(heat exhaustion), 열사병(heat stroke) 등이 있다.열경련은 발한으로 인해 염분이 과도하게 소실된 경우 발생한다. 더운 날씨에 축구나 농구 등을 하다가 다리에 쥐가 나는 것이 대표적이다. 땀이 많이 나는데 맹물만 계속 마시며 운동을 하면 생기기 쉽다. 일반적인 경우에 의식은 또렷하지만 피로감과 근육의 경련을 호소하게 된다. 이럴 때는 맹물 대신 소금기가 있는 물이나 이온음료를 마시면 도움이 된다.열탈진은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운동을 계속하면 땀으로 수분과 염분이 함께 소실되면서 발생한다. 그 결과 몸의 혈액량이 줄어들어 저혈압성 쇼크와 비슷한 증상이 발생한다. 빠른 맥박, 구역 또는 오심, 구토 증상을 보이며 심한 경우 실신하기도 한다. 피부가 건조하고 뜨겁지만 체온이 39도를 넘지는 않는다. 응급처치를 위해서는 서늘한 곳에서 안정을 취하고 하지를 상체보다 조금 더 위로하는 쇼크자세를 유지하고 이온음료 등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열탈진이 진행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고온에 노출되면 중심체온이 높아지는 열사병에 이르게 된다. 이 경우 체온조절 기능이 마비되어 체온이 계속 상승한다. 그 결과 체온이 41도 이상까지 오르고 땀도 나지 않으며 중추신경계 마비 증상도 나타난다. 심한 경우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열사병 환자는 우선 찬물에 몸을 담가 체온을 39도까지 떨어뜨리는 게 중요하다.노인의 경우에도 쉽게 탈수가 와서 열 관련 질환이 잘 발생한다. 특히 열에 대한 인지가 잘 되지 않아 갑자기 실신하기도 한다. 암환자도 주의가 필요하다. 암 치료과정에서 구토 및 설사를 겪고 있다면 탈수가 되기 쉬우므로 운동을 쉬거나 안전하게 해야 한다. 특히 당뇨병이나 고혈압 환자에게는 야간운동이 좋다. 뇌졸중 위험과 심장병이 있는 사람도 새벽운동을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야간운동은 불면증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수면 1시간 전에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더위에 약이 되는 운동을 하려면 본격적인 운동 전에 신체의 적응과정이 필요하다. 같은 양의 운동을 하더라도 고온 환경에서는 심장박동수와 체온이 많이 상승하여 피로감을 쉽게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신체의 적응을 위한 철저한 준비운동이 필수적이다. 준비운동은 낮은 강도에서 동적 체조나 스트레칭 등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준비운동을 하면 신체가 운동에 점차 익숙해져 혈액량이 증가하고 산소공급도 원활해진다.고온 다습한 환경에서의 운동은 갈증을 느끼지 않더라도 의도적으로 수분을 보충하는 게 필요하다. 수분뿐만 아니라 염분도 충분히 섭취하여 고온에 의한 인체 손상이 없도록 해야 한다.운동 강도와 운동량에 따라 개인차가 있겠으나 하루에 5~8리터의 수분과 3~5그램의 염분을 추가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물은 온도가 4~5도일 때 위에서 섭취 효율이 높다. 포도당, 과당 등 단당류보다는 미네랄이 함유된 스포츠 이온음료가 흡수속도가 빠르다. 그러나 알코올이나 카페인이 든 음료는 이뇨작용으로 오히려 탈수를 부추기므로 금하는 것이 좋다.곧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극한의 더위가 다가온다. 다이어트 등 운동의 효과를 높이겠다고 운동량을 늘리는 사람에게는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운동량이 적당하다. 습도가 높은 날은 운동량을 10~20% 더 줄이는 게 좋다. ‘30분 운동, 10분 휴식’ 등 개인의 건강과 체력에 맞게 운동과 휴식 시간을 적절히 조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만성질환자는 열로 인해 인체 기능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2024-04-28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례] 21세 된 남자 대학생이 초시에서 한 과목을 낮은 점수를 받아 재시를 치르게 됐다.재시를 잘 치러야 F 학점을 면할 수 있는데 “나는 실패자야”라는 생각이 들고 “나는 또 실패할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재시 준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우리는 어떤 사건을 마주할 때 전체를 바라보지 않고 어떤 한 면에만 사로잡혀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또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있을 때 그것이 사실처럼 느껴진다. 그 생각이 시키는 대로 휩쓸려 자신을 잃어버리면 그 생각을 나와 동일시시켜 그 생각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앞의 사례를 살펴보면 그는 한 과목에서만 낮은 점수를 받았지, 사실 다른 과목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았다.전체성이 없는 일부의 정보만으로 자신은 실패자라는 판단의 오류를 범했다.또한 이 ‘실패자’라는 생각도 지금 이 순간 드는 생각일 뿐 사실도 아니고 그 자신도 아니다.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어떠한 생각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生滅)하는 것이며 영원하지 않다.떠오르는 생각이 사실이거나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정신적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모든 생각은 단지 정신적 사건이고 생각들은 사실도 아니고 자기 자신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이전에는 자신의 생각을 사실이라 믿고 자신과 동일시했지만 생각이 사실이 아니며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탈동일시 할 수 있게 된다.순간순간에 경험하는 생각이 무엇이든 생각을 따라가려 하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단지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또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그저 바라보라.만약 생각이 오고 가는 것을 판단하지 않고 그냥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그 어떤 생각이 우리에게 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생각을 그냥 지나가도록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탈 동일시를 자각하게 되면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던 과거의 자동적인 반응에서 벗어나 탈 자동화하게 된다.탈 자동화를 통해 자동적 반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면, 비로소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수용하게 된다.모든 것은 지나간다. 낮이 왔다가 밤이 되고, 밤이 왔다가 다시 낮이 되는 것처럼 지나온 인생 역시 좋은 시절이 있으면 나쁜 시절도 있고, 나쁜 시절이 있으면 좋은 시절이 있었다.가슴이 벅차오르던 기쁜 일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아무리 괴로운 일이라도 결국에는 희미해지게 되어 있다.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다.그러한 마음은 일종의 착각과도 같은 것이다. 굳이 멀리서 볼 것 없이 자신의 지나온 삶을 한번 되돌아보면 된다.어떤 생각이 우리에게 왔을 때 한 발짝 물러나 그 생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고 선택할 수 있다.내 삶에서 바꿀 수 없는 부분은 의연하게 수용하고,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용기를 가지고 바꾸면 된다.지금 이 순간 자기 주체적으로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 내 삶에서 바꿀 수 있는 정말로 필요한 일에 전념하면 된다.앞의 사례에서 살펴보면 이미 초시를 잘 치르지 못한 일은 바꿀 수 없다.초시를 잘 치르지 못한 상황은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지금 바꿀 수 있는 정말 필요한 일인 재시를 잘 준비하는데 전념하면 된다.초시를 잘못 본 상황을 작은 실패라고 본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실패할 일이 많다.실패는 우리가 더 잘 배우고, 더 잘 성장하고, 더 잘 성공할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다. 사실 실패는 작은 성공이다. 작은 성공들을 저축해야 한다.자신의 실패를 또는 불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세상에 일어나지 못할 일이란 없다. 때로는 상식에 비추어 보아도 이해가 잘 되지않는 일조차 실제로 벌어진다.그런데 “반드시 성공해야한다” 또는 “그럴 수는 없다” 라는 생각 속에는 집착이 자리 잡고 있다.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고 누구든 부족함과 실수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이 아닌 불운이 올 수도 있다.“그럴 수도 있다” 고 생각하면서 자신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의연하게 수용해야 한다.“생각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은 우리가 가지는 생각의 모든 것을 사실이라 믿고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특히 부정적인 생각은 단지 그 순간의 생각일뿐, 사실이 아니고 나 자신도 아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2024-04-28

사회질서 교육이 필요하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저녁을 먹고 밤바다 모래밭을 맨발로 걷으려고 나섰다. 작은 마트 앞을 지나는데 중3 학생인 듯한 남자애 3명이 그 옆 건물의 닫힌 문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웃으며 라면을 먹고 있었다. 반듯한 차림새에 책가방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속으로 ‘참 별난 녀석들이네….’하며 힐끗 보는데, 눈이 마주치자 미안한 듯 ‘저 가게가 복잡해서요’한다. 길거리 식사, 학생 때는 그런 낭만도 있어야지 하며 웃어주었다. 그리고 해변을 한참 걷고 집에 오면서 그곳을 지나는데 계단 구석에 쓰레기가 보인다. 녀석들이 먹었던 라면 그릇과 휴지들이 버려져 있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쓰레기 버리는 곳이 있는데….그러잖아도 조금 전 해변에 즐비한 유흥음식점 밖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젊은 남녀들과 그들의 발밑에 버려진 담배꽁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광경을 보며 ‘도대체 학교에서 뭘 배웠나!’ 하고 왔었는데…. 요즘 젊은 학생들의 행태에서 예의범절이 사라진 모습을 많이 보며 우리의 교육이 어딘가 잘못이 있음을 느낀다. 그냥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는 생각으로 공부, 그러니까 지식 충전에만 열중하는 현실이 아쉽고 사회인으로서의 교양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지하철을 타다 보면 흔히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있다. 노인들이 타면 으레 노인석에 앉게 되겠지만, 자리가 없어 일반석으로 가면 아무도 선뜻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더욱이 학생들은 휴대폰에 머리를 묻고 모른 체 한다. ‘노인들은 구석진 경로석으로 가쇼’라고 말하는 듯 어떨 때는 흘낏 올려다보고는 또 머리를 묻는다. 경로 정신이 많이 부족한 탓이다.교육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또한 바람직한 인성과 체력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그 바람직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지덕체(智德體) 교육 목적은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기에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교육, 가정교육도 매우 중요하다. 참된 사회적 윤리는 훌륭한 가치를 가진다고 본다.25일은 ‘법의 날’이다. 준법정신을 앙양하고 법의 존엄성을 진작시키기 위해 60여 년 전 제정되었다. 옛날 기자조선 때는 ‘팔조금법(八條禁法)’이라 하여 8개의 조항만으로 사회질서가 유지됐겠지만 이후 불교와 유교 등의 가르침으로 도덕과 윤리가 나라의 근본 질서를 유지했었고 민주국가가 된 지금은 수백 명의 국회의원들이 제안해 내는 많은 법이 우리의 일상을 보호 또는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인간의 자유는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데 있다.’라고 프랑스 철학자 루소는 말했다. 우리들은 자유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즉, 방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느끼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우리의 교육목표는 홍익인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고, 그 교육 방향 또한 ‘백년지계(百年之計)’라 했듯이 거시적이고 장기적 안목으로 수립해야 한다. 요즘 우리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도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가르침이다. 자신을 갈고닦아 올바른 인성을 갖추고 난 후 집안을 일구고 나라를 다스려야 할 것이다.

2024-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