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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한민국, 이대로 무너지는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자유우파가 또 참패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한 야권은 벌써부터 온갖 위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공공연히 ‘탄핵’이란 말을 입에 올리고 “협치란 말은 지워라”고 하는가 하면 “국회가 사법부를 통제해야 한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국회의원은 각자가 국민을 대표하는 자격을 갖는다. 의결은 다수결로 할지라도 소수의 의견도 가급적 존중되고 반영되어야 하는 이유다. 다수당이라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전횡은 그런 취지를 위배하는 폭거다.여당의 참패와 폭주하는 야권의 기세에 행정부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한껏 자세를 낮추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거에 지면 으레 하는 말이지만, 당 대표를 비롯한 다수의 범죄혐의자들과 좌편향 이념을 가진 자들을 선택한 국민의 뜻을 수용하겠다는 것은 어폐가 없지 않다. 여당과 정부가 정작으로 존중하고 받들어야 할 것은 오히려 지지해준 45%의 민의다. 민생을 위해 최선을 다함은 물론 정부가 지향하는 노선과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계도하는 일에 힘을 쏟을 일이다.국가의 체제를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가 제 구실을 못 하면 나라는 무너진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도록 공정한 판결을 해야 나라의 기강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간의 사법부는 신뢰를 잃었다. 대규모 촛불 시위와 탄핵의 바람이 불었을 때 사법부도 함께 시류에 휩쓸렸으며, 특히나 문재인 정권 때의 사법부는 우리법연구회나 민변 출신의 좌편향 판사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앉아 편파적인 판결을 자행해서 뜻 있는 국민들의 원성을 샀다. 선거법 위반 판결을 미루고 미루어서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한 재판지연이나 구속적부심의 불공정성 등 사법부의 편파성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나라의 운명은 결국 국민의 손에 달렸다. 입법, 사법, 행정부가 제 구실을 못 할 때는 최종적으로 국민이 선거로 심판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이 잘못된 이념에 물들거나 포퓰리즘·프로파간다에 부회뇌동 한다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다. 지금의 야권을 형성하고 있는 세력은 바로 그런 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위협하는 무리들이 주축이다. 공공연히 사회주의자임을 내세우거나 친북·반미 활동의 전력을 가진 자들이 대부분이다. 이제 그들이 입법부를 장악하고 그 위세로 국가 정체성을 와해시키려는 것이다.이번 총선에서 노정된 가장 심각한 현상은 국민들의 의식이 피폐해져 있다는 것이다. 비리와 부정을 저지른 자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들을 선택하는 비정상을 보인 것이다. 그게 바로 상식과 규범을 무시하는 좌경화의 특징이다. 정권이 바뀌어서 겨우 중심을 잡아가는가 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이 다시 좌측으로 몰리면서 기울어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다.

2024-04-25

의료개혁특위 출범, 의정갈등 돌파구 찾길

사회적 협의체인 대통령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25일 출범했다. 여기서는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수가 등 보상 체계 공정성 제고를 핵심으로 하는 4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구체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의대 증원 규모는 다루지 않으나 현재 심각한 상황에 빠진 의정갈등을 고려해 증원규모와 관련한 의료계의 통일된 안이 제시된다면 특위의 의제에 오를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다. 의료계의 적극적 참여 여부에 따라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백지화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특위 불참을 밝혀 의정 갈등 해소는 여전히 안갯속이다.지난주 정부는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에 따라 2025학년도 각 대학별 의대 증원 규모를 50∼100% 범위 내에서 자율모집토록 허용했다. 정부는 의료공백으로 인한 환자 피해를 방지하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민과 환자의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자율조정의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지역의 경북대는 학장 회의를 통해 내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정부 발표의 50%만 반영한 155명으로 결정했다. 영남대와 계명대는 증원분의 100%를 반영키로 했으며 대구가톨릭대도 100% 반영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와 별개로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반대해 지난달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했던 의대교수들이 25일부터 순차적으로 병원을 떠난다고 밝혀 의료대란이 불가피하다. 지역의 5개 의대에서는 아직 구체적 움직임이 없으나 내부적으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여 불안한 상태다.정부가 2000명 증원에서 한발 물러서는 등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의사단체들은 의대증원 원점 재검토만 되풀이하고 있어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의정 갈등이 두 달을 넘기면서 환자들의 불편과 고통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알 수 없다. 의료개혁특위 출범을 계기로 의정갈등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어느 누가 승리해도 승리가 아닌 것이다.

2024-04-25

野 ‘입법폭주’에 무기력한 여당, 집권당 맞나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초강경 기류로 온 나라가 혼돈상태에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이 ‘식물 정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 민주당은 여당의 반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독으로 ‘채상병 특검법’을 비롯한 쟁점법안을 21대 국회에서 모두 처리하겠다는 태세다. 이러한 민주당의 강경 자세 때문에 이번 주 계획됐던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마저 깨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민주당은 다음 달 2일 본회의를 열고 윤 대통령이 그동안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되돌아온 법안(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쌍특검법, 이태원참사 특별법 등 9개 법안)을 비롯해 ‘채상병특검법’, 전세사기피해특별법 등 쟁점법안을 단독처리할 예정이다. ‘여야 협치’의 첫걸음으로 인식됐던 영수회담도 민주당의 과도한 의제요구로 회담 날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양측은 지난 23일 첫 실무회담 후 ‘민생 문제 해결’을 의제로 삼겠다고 발표했으나,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각종 특검 법안(이태원 참사·채상병 사망 사건·양평고속도로 의혹·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및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거부권 자제 등을 요구해 협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22대 국회에서는 야권의 강경노선이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총선기간 중 ‘대통령 탄핵’이 거론됐을 정도로 강경성향의 인물들이 대거 원내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야권과의 소통을 강화해 작은 협조라도 얻어내야 할 여당이 무력감에 젖어 있는 것은 문제가 많다. 지금 국민의힘 분위기를 보면, 역대 최악의 총선 성적표를 기록한 여당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한가하다. 보수정당 존립을 위한 반성은커녕 다시 친윤 원내대표를 뽑아 총선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민주당이 민심을 내세워 국회권력을 남용하는 것도 비판대상이 되지만, 여당의 안이한 자세는 더 큰 문제다.국민의힘은 앞으로 민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국정이 마비된다는 현실을 철저히 깨닫고, 여야 협치를 실현하는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4-04-25

기본소득 25만원

우정구 논설위원 기본소득이란 재산이나 소득이 많든 적든 일을 하든 안 하든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지급하는 돈이다.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복지 개념이다.2016년 스위스는 전 국민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급할지 여부를 물었다. 전국민 투표 결과, 국민의 76%가 반대했다. 18세 이상 성인에게 매달 2천500 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지급하고, 어린이·청소년에게는 650 스위스프랑(약 78만원)의 기본 소득을 나눠주자는 것인데 반대가 훨씬 많았다.스위스 국민의 반대는 지금보다 세금을 2∼3배 정도 더 내야하고 현재의 사회복지제도 중 상당 부분이 사라질 것을 우려해서라고 한다. 소득이 없거나 경제활동을 못하는 국민에게 기본소득은 큰 도움이 된다.그러나 어느 나라든 재정상 국가가 지속적으로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기는 어렵다. 또 도덕적 해이를 어떻게 감당할지도 문제다. 기본소득으로 국민이 일할 동기를 잃어버리는 문제는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놀고 먹어도 생활할 수 있으니 땀 흘려 일할 필요가 없다. 도덕적 해이는 당연하다.대통령과 영수회담에서 민주당은 전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최우선 의제로 삼겠다고 한다. 포퓰리즘이라는 거센 비난에도 이를 관철하려는 야당의 기세가 등등하다. 국가 부채가 1000조를 넘어 빚을 내 빚을 갚는 국가 재정은 안중에 없다.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를 두고 “25만원의 합리적 근거를 대라”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가벼운 경제적 인식을 비판했다. 25만원으로 민생이 살아나기도 어렵지만 국민을 달콤한 유혹에 끌어들이는 야당의 저의가 오히려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4-25

의정 갈등 때문에 나라 골병들어서야

홍석봉 대구지사장 서울의 한 식당이 인스타그램에 “당분간 의료파업에 동참하는 관계자분을 모시지 않는다. 정중하게 사양한다”는 글을 올려 많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유명 식당이다. 반응이 엇갈렸다. 응원 댓글도 많고 별점 테러를 하겠다는 이도 있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며 평가절하 하기도 했다.식당 주는 최근 종합병원을 찾았다가 의료 파업 현장을 보고 이 글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쟁취하려는 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비판했다.타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의정 갈등에 국민의 피로도가 급상승하고 있다. 식당주의 의료관계자 입장 거부는 상징적인 사례다.병법의 교과서 격인 손자병법은 ‘전쟁을 피하라’고 가르친다. 전쟁이 벌어지면 이기든 지든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의사단체 간의 충돌로 우리 사회가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피해를 당하고 있다. 환자들은 제때 진료받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 큰 병원들은 이용객이 줄면서 손실이 천문학적으로 늘고 있다. 의료계는 의료공백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가 1만명에 달한다고 예상한다. 국민 전체가 피해자가 됐다.결국, 정부가 한발 물러섰다. 정원 조정 문제에서 발을 뺐다. 정부가 고수하던 선에서 절반 정도로 낮췄다. 그런데 의사 단체는 이마저도 원점 회귀하지 않으면 현장복귀는 없다고 으름장이다. 원점 재논의와 1년 유예까지 주장한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 정부에 백기 투항을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발 더 나가 전국 의대 교수가 사직과 휴진으로 압박하고 있다.의사에 대한 사회 불신이 쌓여만 간다. 이렇게 해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조선 망하고 대국 망하는 꼴이 된다. 손자병법의 전쟁을 피하라는 가르침을 망각한 후과가 너무 크다. 정부가 한발 물러선 만큼 의사들도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환자를 볼모 삼아 정부를 굴복시키겠다는 것은 엘리트주의의 오만이자 집단 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다.애초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묻지 않은 것이 정부의 큰 실책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 사업은 크건 작건 간에 이해당사자와 국민의 뜻을 묻지 않고는 정책시행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집단 간의 이해가 맞물려 있을 때는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시행착오가 적다.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 숙의와 공론을 거쳐 집행해야 별 탈이 없다. 일방통행은 적만 만들고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와 의사단체가 만나야 한다.의정 갈등 사태에 한발 비켜서 있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의료대란 해소 공론화 특위를 만들자”고 제안했다.의료개혁특위와 성격은 비슷하다. 정부와 의사단체는 공론화를 통해 해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자존심을 앞세울 때가 아니다. 서로 밀고 당기기에는 상황이 아주 좋지 않다. 정부가 한발 양보한 만큼 의사들도 대화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의사도 살고 국민도 산다. 의정 갈등 때문에 나라가 골병들 수는 없지 않겠나?

2024-04-25

바람, 불다

정미영 수필가 어제부터 강한 꽃샘바람이 분다. 겉옷이 날릴까봐 양팔로 감싸고 걷는데도 옷깃을 들추며 스며드는 바람 때문에 수시로 옷섶을 여미고 있다.나무는 나와는 달리 온몸으로 바람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 오히려 바람의 손길에 운명을 맡긴 듯하다. 그런 연유로 벚꽃 잎이 하르르 하르르 떨어지더니 길섶마다 소복하게 쌓인다.꽃잎을 밟으며 걷는데, 문득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이 생각난다. 얼마 전에 중고등학생들과 이 시로 수업할 때였다. 나는 문학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수업을 할 때에 ‘역할 바꾸기’를 자주 요구한다. 소설에서는 등장인물, 시에서는 화자와 청자의 입장이 되어 보라는 것이다.예전에는 관점을 달리해 보고 작품 속 인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웬만하면 중심인물이나 주변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옹호하고 변호를 이끌어 내는 경우가 많았다.그런데 요즘은 청소년들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진달래꽃’ 시에서의 역할을 바꿔 생각해 보라고 했더니, 도저히 공감할 수 없다는 학생들이 늘었다. 이별하는 자체도 나와 상대방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기분이 상하는데, 떠나는 임에게 꽃을 뿌리며 축복하고, 더군다나 사랑의 승화까지 기원하는 여인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감정 소모를 많이 시키고 자기들 마음에 상처를 주며 헤어졌는데, 어떻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느냐며 나에게 반문했다.민족적 한과 정서를 표현한 시인이라고 설명하면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별을 대하는 의식과 가치관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리라.“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나는 소리 내어 시를 읊어본다. 다시 한 번 가로수에서 떨어지는 꽃잎을 밟으며 한참을 걸으니, 괜스레 시 속의 애절한 화자가 되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소소리바람 탓이려나! 학생들에게 이런 내 마음을 이야기하면 가식적이라며 야유를 퍼붓겠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오늘의 모임 장소에 다다른다.포항시립미술관 앞에서 일행을 기다린다. 차량이 밀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연락이 왔다. 환호공원을 산책하면서 기다려야지. 길을 따라 걷다가 가게에서 파는 풍선을 보았다. 풍선을 보면 꿈과 자유, 희망과 순수라는 낱말이 떠오르며 정겹다. 내 유년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풍선의 모습은 놀이동산이나 유원지에서 솜사탕과 함께 한다. 노랑, 빨강, 파랑 등 색색의 풍선이 매달려 있는 실을 놓치지 않으려고 손으로 꽉 잡고 다니면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린 마음에도 풍선처럼 하늘을 자유로이 날고 싶었나 보다.미술관으로 되돌아오는 길은 호젓한 곳으로 고른다. 새소리가 간간히 들려오고, 봄 햇살 머금은 나무들이 초록 잎을 반짝거린다.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걷는데, 나뭇가지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풍선이 보인다. 어쩌나! 주변에 장대라도 있으면 구해주려는 시도라도 해보련만. 봄꽃이 사계절 동안 화사하게 피어 있는 것이 아니듯이, 풍선도 늘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나는 것이 아니다.풍선은 바람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 바람의 힘에 영향을 받아 방향을 바꾸거나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나뭇가지에 걸린 풍선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어 애처롭다.우리네 삶도 이와 같은 이치이리라. 내 가슴에 꿈을 담고 바람을 잘 이용해 더 높이, 더 멀리 날고 싶지만, 생활 속에 이따금 찾아오는 거센 태풍으로 인해 좌절하고 포기하고 두려워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변곡점 위에 섰을 때 바람이 불어온다면 다부지게 옷깃을 여미든가, 나무처럼 온몸으로 순응하든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내 몸 안의 세포와 감각을 온전히 열어 세밀하게 세태의 기류를 잘 읽고, 주변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허방을 딛지 않을 것이다.내 인생에 무시로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을 슬기롭게 이용해야겠다.

2024-04-24

입하(立夏)와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일곱 번째가 입하(立夏)다. 태양의 황경이 45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어린이날인 5월 5일(음력 3월 27일)이다. 음력으로는 4월의 절기다. 입하는 곡우(穀雨)와 소만(小滿) 사이에 해당한다.명리학에서는 동지(冬至)를 새해로 보지 않고, 입춘(立春)을 새해로 본다. 하늘은 이미 새해가 되었지만, 땅은 입춘이 되어서야 새해가 되는 것이다. 하늘의 기운이 땅으로 내려오는데 그만큼 시차가 필요한 것이다. 입하(立夏)의 입(入)은 계절이 시작됨을 알리는 절기를 표현한다. 실제로 이전 기운인 봄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다. 지구에서 여름이 되려면 한 달 반의 시간이 더 지나야 한다. 태양열이 지구를 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복사열 때문이다.입하(立夏)를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뜻으로 맥량(麥涼), 맥추(麥秋)라고 한다. 초여름으로 진입하는 시기이기에 맹하(孟夏), 초하(初夏)라고도 부른다. 입하가 되면 봄은 서서히 물러나고, 산과 들은 신록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청개구리가 여름을 알리면서 울고, 땅에 숨어있던 지렁이가 바깥으로 나오는 때다. 못자리에는 벼 싹이 터져 자라고, 보리 이삭이 추수를 기다리기에 농사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시기다.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권5 ‘시칙(時則)’에 보면 맹하(孟夏)인 입하는 음력 4월 진월(辰月)이다. 이 시기에는 초요(招搖·북두칠성 자루 끝에 있는 별)가 진(辰) 방향을 가리킨다. 이달의 방위는 남쪽이며, 수는 7이다. 맛은 쓴맛, 냄새는 그을린 내다.입하(立夏)는 불(火)의 덕이 왕성하며, 색깔은 붉은색이다. 이달의 생물은 깃털 달린 것이고, 양기가 왕성하게 작용하면 비늘 달린 것이 사라진다. 깃털 달린 것 중에는 봉황이 으뜸이다. 하늘타리가 돋아나고, 씀바귀가 무성하게 자란다.천자는 삼공, 구경, 대부들을 이끌고 몸소 남쪽 교외로 나아가 여름을 맞이한다. 궁궐로 돌아와서는 상을 내리고, 제후를 봉하고, 예악을 정리하고, 좌우 신하들을 대접한다. 태위에게 명령하여 국가의 준걸을 천거하게 하고, 벼슬과 녹을 내린다. 토목공사를 하지 않고, 큰 나무는 벌목하지 않고, 전답과 산림을 관리하는 관원에게 명령하여 농토와 들판을 순시하면서 농사일을 권장하게 한다. 또 야생 짐승이나 가축을 멀리 쫓아내 짐승들이 곡식을 상하지 못하게 한다. 냉이가 죽고 보리가 익으면 가벼운 죄를 판결하여 경범죄로 처리한다. 때에 맞는 정령을 시행함으로써 백성의 살림살이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입하 때 하는 우리의 세시풍습은 쌀가루와 쑥을 한데 버무려 쪄먹는 떡, 이른바 쑥버무리를 절식(節食)으로 먹기도 한다. 마을에 따라 색다른 음식을 마련해 농사꾼들의 입맛을 돋우기도 하였다. 속담으로는 ‘입하 바람에 씨나락 몰린다’가 대표적이다. 입하 때 못자리를 만들게 되는데, 이때 바람이 불어 볍씨가 한쪽으로 몰리게 되면 못자리의 물을 빼서 피해를 방지하라는 뜻이다.입하는 사월(巳月)의 시작에 해당하는 절기이며, 여름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나무(木) 기운을 받아 뻗어 나가던 줄기는 성장을 멈추고 화려하게 잎을 펼친다. 본격적인 불(火)의 기운이 펼쳐지기에 천지만물이 충만한 양기를 받아 성장한다. 사주에서 사(巳)가 강한 사람은 맹렬한 에너지가 돋보인다. 물러날 곳도 물러날 이유도 없어 물러서지 않는 기운이 있다. 즉,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는 기운을 가지고 있는 성격이 많다. 두려움과 거침이 없는 편이다.사화(巳火)의 상징 동물은 뱀이다. 뱀은 화려한 옷을 입고 있어서 대체로 눈에 잘 띈다. 양기가 너무 지나쳐 발이 없이도 잘 다니고 날기도 한다.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매우 강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외골수의 측면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은 소파 방정환(1899∼1931) 선생이다. 방정환 선생은 1923년 색동회를 발족하였다. 민족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양하고, 아동문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색동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문화 운동단체다. ‘어린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기념행사를 시작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이 행사에서 다음과 같은 구호를 외쳤다. “어린이들을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 그만큼 당시에 아이들에게 일상적으로 힘든 일을 시키거나, 때리고 욕하는 것이 다반사인 처참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그전에는 어린이를 ‘아동’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인식은 그 당시로는 시대를 앞서간 대단히 선구적인 생각이었다. 일종의 어린이 권리선언이다. 1946년에 5월 5일로 바뀌었다.‘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1888~1965)의 장시 ‘황무지’의 첫 구절이다. 봄은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나며, 동물이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펴는 계절이다. 하지만 길고 긴 동토에서 새싹을 피우려는 고통을 인내하면서 자라난 것이다. 모든 동식물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연에 적응한 것만 생존한다. 자연의 섭리만 있을 뿐이다.입하는 생존한 것을 보존하고 육성하기 위해 수분, 영양소와 함께 따뜻한 온기와 햇볕을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자라나는 어린이에게도 이해, 배려, 보살핌, 그리고 조건 없는 사랑이 필요하다.

2024-04-24

주목받는 경북도 AI·메타버스 영화제

경북도가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국제 AI·메타버스영화제(GAMFF)가 개막전부터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도가 지난 18일부터 한달간 영화제 작품 공모에 나선 결과, 미국 등 42개국에서 527편의 작품이 응모해와 일찍부터 대박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 영화제라는 대중예술에 AI와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한 영화제는 국내에서는 이번이 처음이고, 독특한 아이디어와 접목하고 있다는 점이 대중의 인기를 모은 비결이라 한다. 작품 공모에 응모한 사람들도 영화감독을 비롯해 AI·메타버스 전문가, 일반인, 학생까지 폭넓게 참여해 처음 시도하는 AI·메타버스 영화제에 대한 반응과 평가가 어떻게 나타날지 벌써 관심이다.인공지능(AI)과 메타버스를 활용한 디지털 분야는 이미 우리들의 생활과는 밀접한 분야다. 앞으로 이 부분이 산업과 일상에서 더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만큼 이번 영화제는 관련 분야 뿐 아니라 일반인의 관심도 높다. 국내외적으로 많은 작품이 응모한 것 또한 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결과다.경북도가 처음 시도하는 AI·메타버스 영화제는 시대 변화에 맞는 참신하고 독특한 아이디어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칭찬받을 만하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분야에서 과감한 도전을 해 흥행 대박을 얘고하고 있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이철우 지사는 AI·메타버스 영화제에 대해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창작의 장”이라 평가하고 “경북도가 그 기회의 장을 제공하겠다”고 했다.영화제가 창작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하고 디지털 분야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영화제로서 가치는 충분하다. 이번 영화제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북도는 일찍부터 메타버스 관련 부서를 신설하는 등 AI와 메타버스에 대한 행정의 관심과 비중을 높이 두었다. 예산도 많이 배정했다. 이번 영화제는 기대만큼이나 성공적 결과가 나오도록 단단한 준비가 있어야겠다. 경북도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원전 등 신산업으로 경제 동력을 키워가고 있다. AI·메타버스 영화제가 대박 난다면 경북도의 신산업 이미지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2024-04-24

한개마을 저잣거리

홍석봉 대구지사장 ‘저자’는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가게, 작은 규모의 시장을 이르는 말이다.‘저잣거리’는 가게가 늘어서 있는 거리라는 뜻이다. 가방(街坊), 시항(市巷) 등으로도 불렸다.저잣거리는 원래 서울시 마포구 밤섬에 있던 마을 이름이다. 조선시대 나루터가 발달한 곳에 저자가 형성됐다. 지금은 이름만 남았다. 전국 민속 마을에 저잣거리가 조성되고 있다. 조상의 생활상과 정취를 맛보게 할 목적이다.충남 아산시 외암마을은 16세기 중반에 조성된 예안 이씨 종족마을이다. 민속문화재 등 전통 가옥이 많은 충남 지역의 대표적인 민속 마을이다.아산시는 이곳에 저잣거리를 조성했다. 외암 저잣거리는 먹을거리와 즐길거리에 옛 문화 요소를 가미, 조선 시대 서민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인기다.전남 강진에는 다산 정약용이 귀양 와 머문 사의재 주변에 2018년 저잣거리가 조성됐다. 이곳에선 강진의 역사와 인물을 재현한 문화 관광 프로젝트가 펼쳐지며 아마추어 배우들이 마당극을 공연한다. 주모가 다산에게 차려주던 아욱국 등 특색 있는 먹을거리, 초의선사와 메롱 무당 등 흥미진진한 캐릭터들이 조선 시대를 재현,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성주 월항면 성산 이씨 집성촌 한개마을은 전통 한옥과 토석 담이 잘 보존돼 있다. 경북도 문화재인 건축물 등 75호의 전통 가옥이 남아 있다. 한개마을에도 저잣거리가 조성된다. 최근 용역 보고회를 가졌지만 관광센터와 식당, 주차장 등 편의시설 조성이 고작이다. 너무 빈약하다. 이야기와 문화를 덧입히고 고유한 색깔을 내야 한다. 다른 저잣거리를 벤치마킹, 한개마을 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관광객이 온다. 돈만 들인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24

교육이 민생이다

장규열 고문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마주 앉는다. 만시지탄이지만 반갑다. 두 사람 모두에게 국민과 나라를 위한 진정과 진심을 기대한다.시대정신과 역사담론은 차차 살피더라도, 급한대로 민생을 돌아보는 공감과 배려가 나타났으면 한다. 시장이 한산하고 가게에 사람이 없다. 도시마다 도심이 사라졌고 마을마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시내버스가 빈 차로 달리고 지역공동체가 활력을 잃었다. 경제적으로 힘이 빠지고 문화적으로 생기가 없다. 누구 탓이라 할 것 없이 사회 일반이 가라앉는 느낌이다.대통령과 정부가 심기일전의 각오로 경제와 민생을 살피고, 야당과 비판세력은 실질적 대안과 담론을 이끌어야 한다. 생각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모두가 한 팀이 되어야 한다.국민은 기대한다. 여와 야가 공감대를 발견하여 국민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빚어내길 바란다. 들어설 적에 소통을 강조했던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가 귀를 열길 바란다.오래 기다린 야당 대표는 국민을 향한 진심을 담아 제의하길 바란다. 만남에서 결실이 컸으면 좋겠지만 그간의 분위기로 보아 국민은 거기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반목과 대결이 대화와 소통으로 바뀌기만 해도 환영할 터이다. 어려움을 올려놓고 함께 고민하는 테이블이 마련되길 바란다.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할 까닭이 없고 불화를 자초하며 목소리를 키울 명분도 없다. 국민의 하루하루가 처절한 난관에 봉착한 오늘, 두 사람은 절체절명의 각오로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대화의 기회가 정쟁과 분란의 빌미가 된다면 현명한 국민은 그 책임의 소재를 눈치채고 말 터이다.무엇을 나눌 것인가. 야당이 대국민 사과, 채 상병 특검, 거부권 자제와 25만원 국민지원금을 포함한 3+1을 주장하겠다고 한다.야당으로서는 그간의 아쉬움과 기대를 엮어 요청할 만한 대목들이다. 총선이 보여준 국민 과반의 생각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국가수반다운 모습으로 나서야 한다.우선, 소통의 창구를 상시화하겠음을 천명하여 국민이 안심하도록 했으면 한다. 구시대적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겠음을 밝혀 미래를 향한 나라의 지향성을 알렸으면 한다. 어느 진영에 묶이지 않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임을 확인하면서 선이 굵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면 좋겠다. 세세한 입씨름 거리에 묶이지 않고 큰 획으로 나라의 어려움을 헤쳐가는 장수의 모습으로 나섰으면 한다.누구도 말하지 않는 가닥이 있다. ‘교육’을 돌아보는 지도자를 기대한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매일 겪어야 하는 민생은 바로 교육이다. 만5세 초등교육과 유보통합의 가능성을 말했던 정부가 아닌가.의정갈등 소용돌이에도 대학입시와 고등교육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디지털과 온라인이 폭주하는 현실에서 백년대계 교육의 현장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이 상징적인 협의체를 넘어 구체적이며 실증적인 대안을 도출하도록 바꾸어야 한다. 나라의 내일이 바뀌려면 교육이 오늘 바뀌어야 한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두 지도자의 현명한 통찰이 교육을 소재로 드러났으면 한다.

2024-04-24

포항시의 ‘국회의원 푸대접’ 의전, 정상적이냐

포항시가 주최한 ‘제44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국회의원 의전문제가 제기돼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9일 포항체육관에서 열린 기념식 행사 과정에서 주최 측은 이강덕 시장과 김일만 시의회 부의장 축사에 이어, 4·10총선에서 3선에 성공한 김정재 의원(포항 북구)과 이상휘 국회의원 당선인(포항 남구·울릉군)을 경북도의원, 포항시의원과 같이 단상에 불러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인사말을 하도록 했다. ‘지방의원급’ 예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두 국회의원으로선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의전이었다.행사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국회의원을 너무 홀대한다”는 말과 함께 “시장과 국회의원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다고 한다.행사 후 이상휘 당선인이 참지 못하고 포항시 담당자를 불러 의전 문제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한 것을 두고,‘국회의원 갑질’ 논란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일선 시·군 행사 때마다 내빈 의전문제가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경북도에서는 특히 경북도의원들이 푸대접을 받는 단골손님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경북도의원들의 경우 시·군이 주관하는 행사 때마다 초청장을 받고도 가야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자리배치나 축사순서 등의 의전에서 기초의원에 밀리는 수모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사소한 축사 순서 문제로 소인배처럼 화까지 내느냐는 비판을 할 수도 있겠지만, 포항시는 입장을 바꿔 의전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손님 예우를 하기 싫으면 초청장을 보내지 않는 것이 맞다. 정상적인 내빈예우도 하지 않으면서 행사 외관을 그럴듯하게 하려고 정치인이나 기관단체장 등에게 초청장을 남발하는 행위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전국적으로 상당수 시·군에서는 행사 시간을 축내지 않기 위해 축사나 인사말 같은 의전 순서를 과감히 생략하는 곳이 많다. 포항시도 과거 의전 절차를 간소화한다는 차원에서 시 주최 행사 초청자를 최대한 줄이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었다.

2024-04-24

치매예방을 위하여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사후 시신기증서를 썼다. 2000년 어느 봄날이었다. 죽으면 없어질 몸이다. 땅에 묻기 전, 불 속에서 타기 전, 의대생들의 공부에 도구로 쓰이는 것이 더 유용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내 몸이 공부용으로 쓰일 것이라 생각하니 더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되도록 온전히 그들에게 넘겨주기 위해선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되도록 내 몸의 병력도 제대로 기록해 두어야 할 것 같아서 수술할 일 있을 땐, 가능한 한 시신기증한 병원에서 했다.그때 아들들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서명을 받으면서 동시에 유언 비슷한 얘기도 남겼다.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으니 나의 무덤을 만들지 말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으니 제사를 지내지 마라. 만약 죽기 전에 내가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거나 스스로 판단을 못하게 된다면 지체없이 시설에 맡겨라.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을 상상도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아픈 노부모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은 더구나 상상도 하지 못하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24년 전에 오늘날에는 당연시되는 노후나 사후의 문화를 예견했나 싶기도 하다.당시 15살의 아들은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갈 수 있는 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명절이나 제사 때라도 가족이 모이면 좋지 않아요? 눈 깜빡하지 않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네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해라. 가족들이 모이면 그 때 어디 놀러라도 가렴. 그 곳이 외국이라면 그날 아침을 먹기 전에 잠시 생각해주면 되겠네. 아들은 볼멘소리를 툭 던진다. 난 제사음식이 맛있단 말이에요. 그러자 난 목소리의 톤을 더 높여 말했다. 그럼 네가 만들어 먹든가….그 당시 실제로 내가 가장 우려한 것은 사후의 일들이 아니었다. 늙어 죽지 않은 채 스스로 판단력을 잃고 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치매라는 큰 병이 가장 무서웠고, 지금도 그렇다. 평소에 깜빡깜빡하는 건망증이 자라 치매가 될까 끔찍하고 두렵다. 50대 일찍 돌아가신 선친도 84세에 돌아가신 어머니도 초롱초롱한 기억력을 가지셨기에 가족력으로는 무결하지만, 내가 부모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한다면 어찌 장담하랴.평소 치매예방에 좋다는 처방을 들으면 반드시 시도해 본다. 무엇보다 책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려 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머리맡에 책과 신문을 두고 읽으셨다. TV 보기 대신 두뇌운동에 좋다는 놀잇감을 찾아본다.예전에 주말신문에 꼭 있었던 십자말풀이를 즐겨했는데 최근 그와 유사한 모바일게임을 발견했다. 제목조차도 어쩌면 ‘치매야 잘가라’인 것이, 딱 내가 찾던 치매 예방게임이었다. 구독을 해두고 알림 설정까지 해 두고 ‘좋아요’도 누른 후 게임을 즐기고 있다. 무의미한 글자를 가로세로 24자 정도 나열해두고, 상하좌우 또는 대각선으로 세 글자 또는 네 글자의 유의미한 단어를 조합해 찾는 게임이다. 휴대폰을 많이 보는 것도 유해하다 싶으면 퍼즐을 다시 찾는다. 한 번 빠지면 밤을 새워 문제지만 취미로 즐길 만큼 자주 한다.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아 치매예방이 되기만 하면 더없이 좋으련만….

2024-04-24

위장 건강하게 만들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물과 에너지가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식물과 동물도 방식만 다를 뿐 물과 에너지를 이용해 살아간다. 사람도 입으로 음식과 물을 섭취해서 살아간다. 이건 선택하는 문제가 아닌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일이다. 먹어야 하기 때문에 위장의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입으로 들어온 물과 음식은 식도를 통과해 위장으로 들어가서 분해된 후 소장 대장을 거쳐 대변으로 나가고 또 물은 소변으로 배출된다.이 필수적인 과정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가 위장의 문제이다. 음식이 들어가면 필연적으로 위장 소장 대장을 통과해야 하고 위장에선 강력한 위산이 들어온 음식물을 분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들어온 음식물들이 가볍고 자극적이지 않으면 위장에 부담이 적고 무겁고 많이 들어오고 자극적이면 위장에 부담을 준다. 위장의 움직임이 순간 멈춰 체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위장벽에 염증이 생기거나 위장벽이 푹 패여 닳는 궤양이 생길 수도 있다.현대인의 대부분은 위장병을 달고 산다. 소비수준이 높아 예전 보다 많이 먹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다. 우리나라 음식은 매운 고춧가루가 대부분의 음식에 깔려 있고 또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매운 음식은 위장벽을 자극하고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위장만이 아니라 소장 대장을 거쳐 대변으로 나올 때까지 우리 몸의 육부를 긁어 버린다. 우스개 소리로 변비가 있으면 아주 매운 음식을 먹어 설사를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고춧가루는 장에 아주 큰 자극을 주고 문제를 일으킨다.현대인은 자극적인 음식을 먹을 뿐만 아니라 먹는 음식의 양도 아주 많고 자주 먹는다. 위장이 음식 처리하느라 쉴 시간이 없다. 음식 칼로리도 높아 대부분은 음식을 과다 섭취 한다고 보면 된다. 적게 먹어도 칼로리가 높은 음식들은 위장에 부담을 준다. 식사 후 중간 중간 간식을 먹어 위장이 쉬는 시간도 없다. 위장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적게 먹고 위장에게 쉬는 시간을 줘야 한다.위장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적게 먹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먹고 하루 두 번 혹은 세 번만 먹으면 된다. 너무 쉽다. 이 쉬운 걸 못해서 전 국민이 위장병을 앓고 있다. 현재 위장이 좋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적게 먹고 자극적이지 않게 먹어야 한다. 위장이 안 좋은 것은 모두 자기 책임이다. 많이 먹고 여러 번 먹고 자극적이게 먹어서 위장이 나빠진다. 내가 만든 병이다.내가 만든 병이라 내가 치료할 수 있다. 위장의 상태에 따라 죽을 먹어도 되고 적게 먹어도 된다.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무조건 피해야 하고 밀가루 음식도 피한다. 커피 음료수 과자 등등은 먹지 않는다. 좋은 약을 써서 위장을 치료해줘도 내가 음식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다시 위장병은 돌아온다. 큰 병이 있는 환자는 음식을 극도로 가린다. 그 병이 낫고 나서도 음식을 극도로 조심한다. 적게 먹고 자극적이지 않게 먹는다. 그래야만 병이 재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병이 나기 전에 음식 관리를 해 위장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2024-04-24

인사가 혁신과 성과에 미치는 영향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인사는 조직 내 혁신과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좋은 인사정책은 직원들의 창의성과 열정을 촉진하여 혁신을 유도한다. 효과적인 리더십과 인재 관리는 직원들의 역량을 향상시켜 기업의 성과를 높이는 것이다. 인사는 조직의 문화와 성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잘 구축된 인사 전략은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킨다. 세계 선진기업들은 경영 비전과 전략에 맞춰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인사에서 제시하고 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혁신의 모멘텀도 인적자원관리에서 기인되며 기업 문화로 간다.최근 4차 산업혁명에 전기차가 부상하면서 자동차 배터리 생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기에다 수소 차가 친환경 공법의 미래 차로 떠오르면서 두 차의 동력으로 배터리가 중요해졌다. 필자가 4년 간 컨설팅 했던 포스코퓨처엠은 배터리 원료를 생산한다. 포항에 본사를 두고 있고 제철소 용광로 내벽에 들어가는 내화벽돌을 만들어 공급하고 구미와 세종은 양극재와 음극재를 생산하여 LG화학에 전기차 배터리 원료로 공급한다.혁신은 생산 공정에 낭비를 줄여 생산 프로세스를 최적화 하고 경쟁력을 확보하여 지속가능 경영을 만들어 나간다. 포항 청림에 위치한 내화물 사업부는 물류 개선과 공정별 생산 조건 불합리를 찾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내화물사업실장은 연초부터 7가지 혁신 전략을 밝히며 4개 공장 각각의 특징에 맞춰 실행 안을 수립하고 직책 간부 변화관리와 현장 진단을 통해 개선 지원을 했다. 구미 양극재 공장은 좁은 공간에 창고가 부족하여 생산 물류 흐름의 효율성이 약했다. 새로운 품종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고객사인 LG화학의 3번의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그때마다 다량의 원료와 중간재를 옮기는 낭비가 발생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6주간의 물류 분석과 개선안을 도출해 해결하기도 했다. 포항 광양 로재사업부는 수작업이 대부분이고 열악한 작업장은 많은 위험이 노출되어 있었다. 일의 편리성과 효율성,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며 즐거운 문화가 될 혁신 명품 12선을 선정하기도 했다.퓨처엠은 16개 공장과 부의 혁신활동을 7월 중간 진단과 11월 최종 진단을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승진, 유지, 보직 이동 등 인사에 반영된다. 조직의 혁신 모멘텀이 인사에서 시작되고 이를 바탕으로 전 직원이 스스로 참여하여 아이디어를 내고 개선하는 조직 문화가 형성되었다. 혁신활동이 잘 되는 기업은 시너지를 창출하게 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하는 기업이 된다. 이것은 혁신에 인사를 매칭하여 제도화 하고 시스템화 하여 조직과 기업 문화의 모멘텀 역할을 해준 성과라 할 수 있다.인사가 만사이고 일류 기업은 일류 사원이 만든다. 전 직원이 생각을 넣어 자기 생산 공정에 끊임없이 개선하지 않으면 기업의 미래는 없다. 선진 기업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도요타자동차의 개인 성장 비전은 인사에 의해 제시되고 평가되며 ‘개선하러 출근한다’라는 문화가 형성될 정도다.

2024-04-23

초록빛 챙김으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온통 초록빛 세상이다. 눈길 닿고 발길 닿는 곳마다 연두와 초록이 손 흔들며 반기고 있다. 앞서거니뒤서거니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는가 싶더니, 대지는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과 연둣빛의 싱그러움으로 여울지고 있다. 겨우내 당당한 상록수의 잎새들이 군데군데 진초록으로 자리잡고, 그 언저리에 연초록의 잎사귀가 겹쳐서 피어나며 일제히 초록빛으로 출렁거리는 듯하다.헐벗게 보이던 산과 들도 봄날이 깊어지면서 산뜻하고 생기 넘치는 초록의 새 옷으로 갈아입은 셈이다.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새싹과 잎사귀는 왜 하필이면 초록빛일까? 도대체 초록색의 비밀은 무엇이길래 식물과 작물, 나무의 잎사귀가 투명한 초록으로 빛나고 생장하며, 사람들은 싱그러운 초록을 만끽하고 가까이하려는 것일까?식물이나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보인다는 것은 하얀빛에 포함된 수많은 빛의 색이 나뭇잎에 흡수 또는 방출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식물의 광합성작용 시 필요한 파란색과 빨간색 등의 파장이 빛을 흡수하고, 남은 초록빛은 다시 반사되어 우리가 보는 잎사귀의 초록으로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초록빛이 식물의 생장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적다는 의미이며, 다른 빛들 중 초록파장의 빛이 잎사귀에서 가장 많이 반사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라//사슴이 풀 뜯으며 뒤돌아본다는 건/두려워해서가 아니다/죽음에 대한 경계가 아니다/겨우내 벗은 채 서있던 산의 능선이/초록으로 물든 탓이다/훌쩍 커버린 능선이 등 뒤에서/출렁이고 있는 탓이다//파도처럼 뒤에서 슬픈 사랑이 덮쳐 온다/파도치게 하는 건/길들여지기 전의 일들이다/…./뒤돌아보는 사슴의 눈동자에/눈록(嫩綠)의 함성과 태양의 절기가 담겨있다’ -손창기 시 ‘뒤돌아본다는 것’중에서생명의 나무는 어쩌면 영원한 초록빛이 아닐까 싶다. 새로 돋아나는 어린 잎의 빛깔과 같이 연한 녹색의 눈록이나 엷고 여리기만 한 연둣빛의 잎새가 앙증스럽게 손짓하는 나무는, 한 편의 서정시가 따로 없을 정도로 눈부신 생명의 아름다움을 구가하고 있다. 담록이나 황록, 연초록이나 진초록으로 생명의 잔치를 노래하며 신록으로 넘실대는 산과 들은 이미 도도한 기운생동의 흥겨운 춤사위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초록빛은 싱그럽고 설레며 다채롭고 아름다운 생기를 우리에게 보여준다.식물에서의 생명력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초록빛은 건강과 환경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 절약과 물품의 재활용, 일회용품 줄이기, 대중교통 이용, 차량운행 최소화, 자전거 타기, 식물기반의 식사 등 친환경 저탄소를 위한 일련의 노력들은 모두 초록빛을 꾸준히 챙겨 나가는 일들이라 할 수 있다.언제나 평온함과 안정감을 주는 자연처럼 쾌적하고 아름다운 풍미를 돋보이게 하는 초록빛은, 환경을 보호하고 건강에도 도움을 주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줄 것이다. 탄소중립의 화두를 초록빛 챙김에서 찾아야 하는 다양한 의미이기도 하다.밝은 초록빛 수풀이 투명한 푸른빛 바다처럼 일렁이는 4월의 들판에서, 사람도 나무처럼 영롱한 초록빛이 될 수 없을까 다시금 생각해 본다.

2024-04-23

보수정당 지상과제는 ‘중수청 외연확장’

심충택 논설위원 집권여당 사상 유례없는 총선 참패를 두고 빚어진 윤상현 의원과 권영진 당선인(대구 달서병) 간의 설전은 국민의힘 향후 진로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 의원은 여당의 험지인 인천 출신이며 이번에 5선고지에 올랐고, 권 당선인은 재선 대구시장 출신에다 이번에 재선 국회의원이 됐다. 둘 다 당의 미래를 이끌고 갈 중진이다.설전은 윤 의원이 지난주 “영남 중심당의 한계가 총선 참패의 구조적 원인이며, 이들이 공천에 매달릴 수밖에 없어 당 지도부나 대통령에게 바른 소리를 전달하지 못했다”고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권 당선인은 “선거 때만 되면 영남에 와서 표 달라고 애걸복걸하고, 무슨 문제만 생기면 영남 탓을 한다. 참 경우도 없고 모욕적”이라고 반박했다. 권 당선인은 차기 당 대표를 노리는 윤 의원이 정치적 야심을 채우기 위해 ‘영남책임론’을 거론한 것으로 보고 있다.이번 총선에서 TK(대구경북)는 25석 전석을 석권하고 PK(부산울산경남)는 6석을 제외한 34석을 획득해 국민의힘이 개헌 저지선을 가까스로 지킬 수 있었다. 영남권 여당 정치인들은 윤 의원이 영남책임론을 거론한 데 대해 충분해 섭섭해할 수 있다. TK지역에서는 ‘우리가 동네북이냐’는 소리도 실제 나온다.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당 내분이 생겨 안타깝긴 하지만, 나는 윤 의원이 던진 메시지에 공감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인요한 혁신위’를 꾸려 다양한 혁신과제를 내놨지만, 당 주류인 영남권 중진들이 혁신 흐름을 끊어 놓은 건 사실이다. 혁신위가 ‘중진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공식 제안했지만, 영남중진들 중 이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 입장에서 보면, ‘영남정치세력의 당내 권력독점’은 보수정당을 비토할 만한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여권 지지자들은 다들 걱정이 많다. 야권이 정치권력을 입맛대로 행사하는 상황에서 집권당의 ‘영남 자민련화’는 당연히 TK와 PK지역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역감정이나 소외감 같은 감정적인 부분을 떠나 현실적인 지역현안 해결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지역구 전체를 석권하면서 TK지역은 수많은 현안을 직접 받아줄 입법창구가 사실상 없어져 버렸다.더 큰 문제는 국민의힘이 영남당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할 경우, 2026년부터 2028년까지 10개월 여의 간격으로 잇달아 치러지는 지방선거·대선·총선에서도 승산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보수정당의 ‘영남 자민련화’를 막기 위해 ‘영남보수당’과 ‘수도권보수당’을 따로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도권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루빨리 ‘중수청’ 위주의 지도부 체제를 구성해서 당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지 않으면 국민의힘은 재기할 동력을 아예 상실하게 된다.늘 강조하지만, TK정치권과 유권자들은 이제 보수정당의 건강성과 외연 확장을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할 때가 됐다.

2024-04-23

코로나 졸업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코로나19 대응 교훈보고서를 발간하면서 한국을 모범사례 중 하나로 소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과정 중 얻은 교훈을 전 세계적으로 공유해 향후 팬데믹 가능성이 높은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하자는 취지로 만든 이 보고서에 한국의 코로나 극복과정이 모범사례가 된 사실은 자랑할만한 일이다.코로나19가 4년 3개월 만에 엔데믹 상황을 맞는다. 작년 8월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을 계절성 독감과 같은 4급으로 분류한 정부는 5월부터는 사실상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다.병의원 등에 남아있던 실내 마스크 착용의무가 사라지고 정부 차원의 대응조직도 해체한다.2020년 1월 20일 국내서 첫 환자가 발생한 코로나는 세계적 유행을 일으키면서 국내서만 3만5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국내 누적 확진자가 3400여만명으로 국민의 67.4%가 코로나19에 한번 이상 감염되는 가슴 아픈 경험을 했다. 사망자가 급증할 때는 화장 차례를 며칠씩 기다려야 하는 기막힌 일도 있었다.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의무화, 사적 모임 인원제한, 상업시설의 영업시간 규제 등 과거 한번도 겪어보지 일들이 우리의 일상을 압박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이 코로나 우울증을 겪었다.그런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대구는 시민들과 함께 70일의 사투 끝에 팬데믹 상황을 극복하는 기적을 일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ABC 방송은 “코로나를 이겨낸 이 시대 삶의 모델”로 극찬을 했다.엔데믹은 전염병이 풍토병으로 정착한다는 뜻이다. 공포와 아픔으로 끔찍한 기억을 안겨준 코로나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한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23

장인화號의 혁신…‘초일류 포스코’ 기대한다

지난달 21일 취임한 장인화 회장이 한달여 만에 포스코그룹의 혁신방안을 구체화했다. 그저께 발표된 ‘7대 미래 혁신과제’에는 철강 부문에서 매년 1조원 규모의 원가를 절감하고, 3년 내 유망기업 인수합병(MA)을 추진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룹 내실 다지기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장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미래기술 전략, 생산기술, 인사 등 각 분야 전문가 20여 명으로 구성된 ‘포스코 미래혁신TF’를 가동하면서 회사 경영 현황 전반을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7대 미래혁신 과제를 종합해보면, 포항시에 집중된 철강과 이차전지 소재 ‘투톱’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유연한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시장 신뢰 회복을 추구하겠다는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포스코는 우선 실행 가능한 과제는 즉시 실천에 옮기는 한편, 저탄소 생산체제로의 전환과 MA 같은 대형 과제는 오는 2026년까지 순차적으로 실행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재계에서는 포스코홀딩스가 작년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6조6708억원이나 보유하고 있어 대규모 MA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장 회장은 앞으로 과제 실행력을 높이고 성과를 조기달성하기 위해 사업회사 사장 또는 본부장이 책임지고 과제를 추진하도록 하고, 본인이 직접 주기적으로 진행사항을 점검할 계획이다.장 회장은 현재 취임사에서 밝힌 ‘100일간의 현장 경영’을 실천 중이다. 장 회장의 현장경영 첫 방문지는 포항 냉천범람 당시 피해가 컸던 포항제철소 2열연 공장이었다. 장 회장은 그동안 포항을 비롯해 광양, 송도 등 계열사 작업현장을 돌면서 직원들의 다양한 얘기를 듣고 복장자율화, 호칭변경 등 파격적인 조직 문화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맨’이라는 애칭으로 불려지는 장 회장이 3년 임기 내내 포항제철소를 비롯한 계열사 현장을 자주 찾아 직원들의 생생한 얘기를 들으면서 경영체제 전반을 혁신해 포스코그룹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길 바란다.

2024-04-23

방폐물 특별법 5월 임시국회서 처리되나

우리 미래세대와 원전지역 주민을 위해 임기 종료를 앞둔 21대 국회가 반드시 해결하고 가야 할 과제 중 하나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관리 특별법의 제정이다. 20대 국회에서 한차례 폐기된 경험이 있는 이 법안이 21대 국회에서 또다시 폐기된다면 이것이야말로 21대 국회가 직무유기를 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21대 국회가 처리할 시간은 5월 중 열릴 것으로 보이는 임시국회가 마지막 기회다.다행히 여야가 이 문제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인다는 관측이 나와 21대 국회 내 처리에 대한 기대감을 주고 있다. 특별법은 원전가동으로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에 관한 세부적 규정을 명기한 법안이다. 1978년 고리원전 가동 후 쌓인 사용후 핵연료가 1만8천t에 이르러 더이상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 자칫 원전을 멈춰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한 법안이다.지난 2월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정부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고준위 방폐물인 사용후 핵연료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저장시설 확보가 시급하다”며 법안의 국회 통과를 호소한 바 있다. 그는 “한빛, 한울, 고리원전은 10년 내 방폐물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 최악의 경우 원전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정부는 앞으로 국내 32기 원전에서 4만4000t까지 사용후 핵연료가 나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당장 시작한다 해도 37년이 걸린다고 하니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경북 경주시 등 원전소재지 주민들은 고준위 특별법이 불발되면 자칫 임시저장 시설이 영구시설화되는 것 아닌지 우려를 표하고 있다,이미 이와 관련해 주민들은 특별법 제정을 위한 항의를 수 십차례 벌이기도 했다. 특히 원전 수출 등 다시 불붙은 원전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법안의 통과는 서둘러져야 한다.세계 원전운전국 상위 10위권 내 국가 중 영구방폐장 건설에 착수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뿐이다.5월 중 열릴 21대 국회 종료를 앞두고 탈원전 친원전 등의 이념적 논쟁을 떨쳐내고 여야는 국가의 장래를 내다본 대승적 차원의 결정을 반드시 해야한다.

2024-04-23

강릉에 개관하는 솔올미술관

미술관 건축은 건축 이상을 의미한다. 미술관은 미술을 담는 공간이지만 미술관 건축은 그 자체로도 예술이다.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지, 어떤 전시를 기획하는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미술관의 첫 인상은 미술관 건축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미술관에 대한 기억에 있어서도 다름 아닌 건축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파리의 루브르하면 유리 피라미드,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하면 나선형 계단, 파리 퐁피두센터하면 외부로 노출된 설비시설이 떠오를 정도로 미술관의 기억은 곧 미술관 건축에 대한 기억이다.예술성, 기능성, 상징성, 공공성 등 다양한 측면이 섬세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미술관 건축이다. 그런 만큼 건축가들에게 미술관 건축은 큰 도전이지만 또한 건축가 개인이 일생동안 맡을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프로젝트일 것이다. 미술관 건축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권위,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는 건축가에게 미술관 건축이 맡겨지지만 미술관 건축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건축가는 손에 꼽힐 정도다. 지난 세기 미술관 건축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건축가는 ‘백색 건축’의 거장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이다.마이어 건축의 트레이드 마크는 ‘백색’이다. “백색은 모든 색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색이라고 생각한다. 무지개의 모든 색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리처드 마이어). 백색에 대한 그의 고집은 그것이 지닌 ‘절대성’ 때문이다. 백색은 건축의 순수한 시각적 형태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마이어가 추구하는 건축 철학을 명확히 보여준다. 백색은 모든 기하학적 형태의 미학적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무엇 하나 더함이나 덜함 없는 정갈함과 명료함. 백색과 간결한 선 그리고 형태의 완벽한 조응은 마이어 건축의 고유한 ‘백색 미학’이다.마이어를 상징 짓는 또 다른 건축 요소는 유리파사드이다. 마이어 건축의 보임새를 지배하는 것은 백색의 정렬된 패널과 그로부터 생성된 격자형 그리드이다. 반복된 사각 패턴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 자칫 과도할 수 있는 엄격함은 유리라는 투명한 재료와의 접목을 통해 변주되어 한층 경쾌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넓은 유리창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마이어의 공간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지속성과 연결성을 강조한다. 공간과 공간의 연결성, 공간과 사람의 연결성, 주변 환경과 건축의 연결성. 연결성에 대한 마이어의 건축적 해석은 항상 흥미로운 부분이다. 특히나 연결성은 미술관 건축의 본질과 밀착된 문제이기도 하다. 미술관은 미술과 미술, 미술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이어야 한다.재료적 특징, 형태적 특징과 함께 마이어 건축에서 빠트릴 수 없는 조형 요소는 빛이다. 공학적 기술이 건축을 완성한다면, 빛은 건축을 미학적으로 완결 짓는다. 빛은 마이어의 백색 건축에 변화와 움직임을 부여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은 건축 공간 곳곳으로 스며들어 예상하지 않은 움직임을 유발함과 동시에 절제된 조형미를 극대화 한다.한국의 아름다운 도시 강릉에는 현재 마이어의 건축디자인을 계승한 마이어 파트너스의 솔올미술관이 지난 2월 14일 개관했다. 솔올미술관의 건축 역시 마이어의 순수한 백색 미학과 간결한 형태가 자연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 되었다. 솔올미술관은 국내 미술관으로는 처음으로 국내외 추상미술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계획이며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이 만나는 미학적 담론의 장이 될 것을 기대한다. 이 같은 미술관의 방향성을 충분히 건축에 녹여내기 위해 계획 단계에서부터 긴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미술을 매개로 세계와 소통하고자 하는 솔올미술관의 비전이 장소와의 관계성, 내부와 외부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마이어의 건축 철학으로 조화롭게 시각화되어 국내미술관 생태계에 의미 있는 좌표를 찍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김석모 미술사학자

2024-04-23

커피가 감미롭지만은 않은 이유

커피콩 가는 소리가 들리면 함께 사는 강아지는 바빠진다. 손님이 온다는 걸 눈치 빠른 강아지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재빨리 창문 쪽으로 다가간다. 목을 길게 빼고 손님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좋은 향이 날아가기 전에 손님이 빨리 왔으면 싶다. 나는 언젠가부터 손님이 오지 않는 날은 커피를 내리지 않는다. 지구별에 보내는 내 작은 성의다.커피만큼 사람을 휘어잡는 것이 또 있을까. 주변에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셔야 산다는 이들이 꽤 있다. 헤어날 수 없는 커피의 마력에 빠진 이들이다. 악마의 유혹에 이끌린 사람들로 인해 거리엔 카페가 넘쳐난다. 자고 나면 생겨나는 건 카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밥보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의 역할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밥을 먹고 나면 당연히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범국민적 공감대가 카페의 부흥에 가장 큰 디딤돌이 되었을 수도 있다. 어떻든 커피는 감미로운 향과 맛으로 팍팍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무한다.내가 커피와 가까워진 건 스무 살 무렵이었다. 커피나무나 커피콩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때였다. 설탕과 크림을 듬뿍 넣은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짬 모르게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담배 냄새가 짙게 밴 다방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맛도 모르는 커피를 줄기차게 마셔댔다. 서둘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때로는 선배들이 하는 대로 다방 탁자에 놓인 소금을 집어넣어 보기도 했다. 소금 커피는 달달한 커피보단 못했다. 어른이 되려면 아직 먼 듯했다.서른이 가까워오자 블랙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쓴맛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었으므로 의도적으로 마셨다. 산다는 일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것들과는 거리가 있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때였다. 그러다가 차츰 매혹적인 커피의 향에 눈뜨게 되었다. 쓴맛에서 느껴지는 커피 본연의 맛을 음미할 줄 알게 되면서 저절로 철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독약처럼 쓰다는 그것이 마음 맞는 친구 하나를 얻은 것처럼 나를 편안하게 했다. 그런 커피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줄곧 이어졌다.하나 요즘 들어 커피로 인한 고민이 생겼다. 마시면 마실수록 죄를 짓는 기분이 따라다닌다. 지구의 허파 구실을 하는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있는 건 커피가 원인이기도 한 까닭이다. 전 세계 커피 인구가 늘어나면서 돈이 되는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위해 열대우림은 마구잡이로 파괴되었다. 그 속에 깃들어 살던 수 만종의 동식물들도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구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던 열대우림이 지금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곳으로 변했다고 한다. 지구가열화에 열풍기를 튼 격이다. 곰곰이 따지고 들면 그렇게 된 원인 중엔 오랜 세월 커피를 즐기는 나도 들어있는 것이다.커피의 탄소발자국은 소고기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서 21g, 커피콩 1kg에서 15.3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커피 원두가 전 세계로 운송되는 과정에서 또다시 많은 탄소 발자국을 남긴다. 물 발자국 역시 제품이 생산되어 쓰이고 버려지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물이 사용되는지 나타내는 환경 관련 지표를 말한다.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커피나무를 키우고 열매를 수확하고 커피콩을 볶아서 전 세계로 유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려면 130ℓ의 물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 커피 소비량은 지난해 1인당 405잔을 마셨다는 통계가 있다. 전 세계 평균의 두 배가 훌쩍 넘는다.내 폰에는 지난해 생일에 날아든 스타벅스 커피 쿠폰이 몇 장 있다. 소읍에는 스타벅스 매장이 없어 도시에 갈 때 써야지 했는데 매번 바빠서 아직 쓰지 못했다. 그곳에서 나눠주는 사은품이 탐이 나거나 혹은 주변에 선물을 하느라 미리 한 묶음의 커피 쿠폰을 구입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소비자가 언제 마실지 모를 커피값을 미리 지불해 놓을 정도니 업자 측에선 커피 원두를 확보하느라 바쁘겠다. 그들이 지구 환경까지 관심 가질 여력이 있을까. 인터넷 쇼핑몰에 필요한 물건을 주문했더니 사용 후기를 올리면 100% 당첨된다는 커피 쿠폰 안내 쪽지를 보내왔다. 그야말로 우리는 커피를 빼놓으면 어딘가 허전한 시대를 살고 있다. 박월수 수필가 우리와 친숙한 커피는 우리 뇌를 혹사 시키는 역할을 한다. 커피에 든 카페인은 피곤한 상태에서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는 착각을 일으킨다. 뇌로 하여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피곤할 땐 쉬어야 하지만 커피의 힘을 빌려 업무를 보는 이들이 주변에 흔하다. 커피는 피로회복제가 아니며 제대로 된 휴식만이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걸 기억하자.지구별의 신음 소리가 곳곳에서 커져가고 있다. 최근 남미의 기록적인 폭우와 그로 인한 홍수, 이상고온은 뭇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갔다. 내가 사는 산골에는 이상 기온으로 인해 사과나무의 꽃눈이 잎눈으로 변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꽃이 오지 않으면 열매 역시 기대할 수 없는 건 뻔한 이치다. 사과 농가의 수심이 깊어만 간다. 지금부터라도 지구별을 위한 작은 실천을 해야 할 때다. 우선 모임 자리에서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 대신 몸에 좋은 우리 차로 바꿔 보자.◇ 박월수 수필가 약력 ·2022년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2022년 경북문협 작가상 등 수상·수필집 ‘숨, 들이다’·청송문인협회장/박월수 수필가

2024-04-23

4·10 숫자들의 향

강길수 수필가 4·10 총선 전 어느 아침.옆 아파트 담장 안쪽에서 보랏빛 꽃을 앙증스레 피워내는 한 그루 라일락을 올해도 만났다. 너무 반가웠다. 아니나 다를까. 라일락 향기가 몸과 마음의 온 세포를 윤슬처럼 일렁이게 했다. 대체 라일락은 어떤 유전자를 가졌기에 저토록 자기 삶에 정직, 진실할까.식물은 거짓을 모른다. 본능대로 살며 꽃피우고 열매 맺는다.한데, 자칭 만물의 영장(靈長) 인간은 어떤가. 영적 존재, 윤리, 도덕, 진선미, 지정의, 신망애, 과학기술 등을 앞세워 가장 진화했다고 자화자찬해온 인간이다. 화성에서 인간의 헬기가 뜨는 시댄데, 지구촌은 전쟁이 참혹하다. 또, 우리나라는 ‘부정선거’란 경천동지할 칼춤이 벌어져도, 다수가 모르쇠다. 나라 사랑은 어디에 팔아먹었나.올 ‘4·10 총선도 부정선거’라고 G 박사 등 전문가들이 주장한다. 부정선거로 55명 이상의 당선자가 낙선자로 바뀌었단다.하면, 이번 선거는 진짜 여당이 이겼고, 무효가 아닌가. 나도 선관위 홈피에서 포항 북구 ‘개표 단위별 개표 결과’를 내려받아 계산, 분석해 보았다. 시간상 흥해읍, 장량동, 죽도동의 결과만 가중평균하여 관내 사전과 당일 투표율을 산출, 북구 결과로 삼았다. 통계적 표본이 크기 때문이다. 관외 사전투표율 계산은 받은 데이터를 썼다.그 결과, 후보별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사전 44.7% 당일 55.3%, 국민의힘 사전 32.6% 당일 67.4%, 무소속 사전 37.0% 당일 63.0%로 나왔다.사전투표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이 타 당보다 7.7~12.1% 높다. 이는, 큰 표본은 통계적 추정 정밀도가 높다는 대수의 법칙을 위반하는 수치다. 어떤 개입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결과다.한편, 비례대표 득표율은 통계적 변칙이 더 심하다. 각 당의 득표율은 더불어민주연합 사전 41.8% 당일 58.2%, 국민의미래 사전 33.3% 당일 66.7%, 녹색정의당 사전 36.2% 당일 63.8%, 새로운미래 사전 36.4% 당일 63.6%, 개혁신당 사전 42.5% 당일 57.5%, 자유통일당 사전 20.4% 당일 79.6%, 조국혁신당 사전 48.1% 당일 51.9%로 나타났다.비례대표는 더불어민주연합과 개혁신당, 조국혁신당의 사전투표율이 다른 정당들보다 5.6~14.8%까지 높다. 자유통일당은 너무 낮다. 왜일까. 비례대표득표율도 지역구처럼 대수의 법칙을 위반한 통계적 이상 수치다. 누군가의 의도적 개입이 추정된다. 다른 군소 정당 계산은 생략했다.라일락꽃이 향기 나듯, 숫자도 향이 난다. 거짓이 없는 향이다. 우리는 4·10총선 개표 결과 숫자들에서도 향을 맡을 수 있다.앞의 포항 북구 선거 개표 결과와 계산 숫자들도 향이 짙다. 총선 전 핀 라일락꽃이 오늘도 향기를 사방으로 뿜어낸다. 나는 그 향기에 더해, 이번 총선 숫자의 향도 음미한다.이 향이, 우리나라에 진실하고 정직한 공명선거를 꽃피우는 향기로 거듭나기 바란다.

2024-04-22

팔공산 깃대종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해 12월 ‘당사국총회 COP28’이 개최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다녀오면서 사 온 선물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중동의 대표적 동물인 낙타 모양의 귀여운 인형이었다.만약 호주로 여행을 갔는데, 호주에서만 서식하는 캥거루나 코알라를 사정상 볼 수 없었다면 얼마나 섭섭할까? 우리는 날마다 새롭고 첨단화되는 핸드폰, TV나 자동차를 선호하지만, 한편으로는 변함없이 인간과 함께해온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 같은 동물들에게도 열광한다.이처럼 인간이 일부 동물을 좋아하는 사례는 인간의 감성적인 필요성 일부이지만 지구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 그리고 식물, 곰팡이 그리고 심지어 미생물까지 망라되는 생명체들이 그 다양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이러한 상태를‘생물다양성’이라 하는데,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식량, 신선한 물, 목재 등의 자원을 풍부하게 받을 수 있고 토양을 비옥하게 유지하고 물을 정화하는 데에 꼭 필요하다.‘생물다양성’은 경제적 가치도 높여주는데, 특히 농업과 관광, 의약품, 생명공학 산업은 ‘생물다양성’에 크게 의존한다. ‘생물다양성’이 높으면 식물과 동물로부터 신약을 개발하는 데 유리하고 생태 관광도 유리하다. ‘생물다양성’이 높으면 문화적으로도 풍부해지는데, 많은 문화에서 특정 동식물은 신성하게 여겨지거나 문화적 정체성의 일부로 인식된다. 이는 그 지역의 ‘생물다양성’이 문화적 유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인류가 직면한 절체절명의 기후위기에 ‘생물다양성’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그로 인한 충격에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높여준다. 다양한 유전자와 종으로 구성된 생태계는 기후변화나 질병과 같은 특정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할 수 있다. 결국, ‘생물다양성’의 보존과 증진은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다양성’의 보존은 인류의 지속 가능한 개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우리나라에는 50000여 종 이상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한국의 고유종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산림, 습지, 해양, 하천 등에서 다양한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산림은 국토의 약 64%를 차지하며, 생물다양성의 중요한 보고이다. 정부는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해 여러 법적, 정책적 조처를 하고 있다.예를 들면, 멸종위기종 보호 및 복원을 위한 활동,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한 국립공원 확대 등이다.4월 17일 국립공원공단은 지난해 5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팔공산의 생태·문화·지리적 특성을 대표하는 ‘깃대종’으로 ‘담비’와 ‘국화방망이’를 선정했다. 전문가 의견과 국민 참여 선호도 조사를 통해 선정된 이들 ‘깃대종’은 대구·경북 시도민의 관심과 사랑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무척 기대된다.

2024-04-22

온몸의 이행, 세월호 세대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Pixabay 기울어진 선체가 캄캄한 물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고작 52시간은 수십 년처럼 막막하고, 차가운 바다에서 학생들이 죽어갈 동안 땅의 어른들이 헛되이 버린 골든타임 72시간은 억겁처럼 까마득했는데 10년은 참 빨리도 갔다. 너무 빨리 지난 10년이 섬뜩하다. 나는 가끔 악몽을 꾼다. 안개가 자욱한 바다 위에 섬인지 유령선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검은 형상이 어른거리는 꿈을. 회색 바다 위로 뒤집힌 배의 구상선수 부분만 떠 있는 이미지는 우리 모두에게 강력한 상징이 됐다. 그것은 곧 어른들의 탐욕과 국가의 부재, 세계의 부조리함을 지시한다.작년 9주기 때 희생자 이영만군의 형은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영만아, 밖은 아직도 차고 깜깜하다. 시간이 갈수록 잊혀가는 것 같아 무섭다. 9년 동안의 다짐이 모두한테서 희미해지는 것 같아 너무 무섭다”고 했다. 1년이 지나 이제 10년이다. 10년은 기억과 기념의 단위다. 하지만 세월호는 희미해지고 잊혀졌다. 물밑에 잠겨 있던 선체가 인양됐지만 다시 침몰하고 있다. 이쪽에서 아무리 새기고 기억하려 해도 저쪽에서 지우고 덮고 그만 하라 한다. 그만 하라는 말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10년 동안 세월호는 어떻게 다시 가라앉았나.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대통령이 탄핵됐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한 새 대통령이 당선됐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임기를 마쳤다. 진상 규명은 불충분하고, 국가 책임자 중 처벌 받은 이는 단 한 명뿐이다. 현 대통령은 10주기 기억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기억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사 표현이다. 대통령의 빈자리는 뒤집힌 배의 구상선수처럼 오히려 불쑥 솟아 있었다. 그 배는 이미 재작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침몰했다.그만 하라고, 지겹다고, 해상교통사고일 뿐이라고, 다른 고귀한 죽음들을 기억하라고 윽박지르는 말들이 너무 드세고 거칠어 기가 죽는다. 세월호가 희미해지는 건 이런 드센 말들이 중심 없거나 여린 다수의 마음을 흔들어 여론이라는 걸 잘못 만든 까닭이다. 단원고에 다니는 이윤지 학생은 말한다. “어떤 어른들은 이제 잊으라고 해요. 하지만 그럴수록 더 악착같이 세월호를 떠올릴 거예요. 그래야 더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테니까요”라고. 우리 사회의 집단 망각 아래서부터 악착같이 세월호를 띄워 올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들은 아니다. 어른들이 MZ라 부르는 세월호 세대가 바로 그들이다.얼마 전 한 기업의 채용공고에 ‘모집인원 0명’이라고 적힌 문구가 화제였다. 10명 이내 한 자리수를 채용하겠다는 통상적 의미다. 이게 갑자기 문해력 논란으로 번졌다. 0명을 정말 ‘0명’으로 이해해 문제 삼은 누리꾼들을 향해 어른들은 “모르면 배울 생각을 하라”고 충고했다. 충고로 시작해 비난으로 끝난다. 어른들은 MZ세대를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며 혀를 찬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이 없다고.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의 20대들은 10년 전 친구들이,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잘 들어서 죽은 걸 생생하게 봤다. 승객들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선원들이 팬티 바람으로 제일 먼저 탈출하는 걸 똑똑히 봤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국민을 어떻게 버렸는지, 사회라는 곳이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매몰찼는지 다 지켜봤다. 그런데 말을 들으라니, 책임감이라니, 감히 공동체라니.계몽과 훈육이라는 자기도취적 우월감으로 ‘MZ’ 비아냥거림을 일삼는 어른들이여, 세월호를 정치 이데올로기의 화두로 만들어 욕보인 이들이여. MZ세대가 아니다. 세월호 세대다. 당신들의 위선과 거짓, 무능력, 탐욕이 가득한 세상에서 세월호 생존 학생들 중에는 진로를 바꾼 이들이 있다. 유아교육과에 가려다 응급구조사가 된 장애진씨도 그중 한 명이다.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기 위해 캄캄한 바다에 다시 들어갔을 때 너무나 무서웠다고 한다. 몸서리쳐지는 트라우마와 맞서서 끝내 이겨낸 힘은 “누군가를 구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하늘나라의 민지와 민정이에게 다짐한 바로 그 약속이다. “친구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고 응급구조사로서 열심히 일을 한다”는 애진씨는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게 한다. 세월호를, 돌아오지 못한 304명의 얼굴과 이름을, 그들과의 약속을, 그 약속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김수영)임을.

2024-04-22

동그란 사랑

혼자 사는 집의 동거인이 된 반려 식물. 혼자 살던 집에 동거인들이 생겼다. 바로 작고 작은 반려 식물들이! 하나 둘 씩 모으던 식물이 점차 수를 늘려가며 벌써 다섯이 되었다.집안일을 다 끝낸 무료한 주말엔 집 근처 식물 가게에 간다. 처음엔 분명 구경을 하러 가는 것이지만 왜인지 나올 땐 식물이 하나씩 손에 들려 있다. 아마 식물 가게 주인의 엄청난 영업 실력 덕분이지 않을까.내가 제일 처음에 들인 식물은 스파티필름이다. 어린잎이 하나둘씩 자라더니 갓 파마를 마친 할머니 머리처럼 바글바글 풍성해졌다. 현재는 꽃차례에 하얀 불염포를 피우고 있는데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어린 아이의 말랑한 손가락을 보는 것만 같아 신기하고 설렌달까.그 뒤로 들인 식물은 아스파라거스 나누스, 홍콩야자, 스킨답서스 실버리안이다. 아스파라거스 나누스는 솜털 같은 형태의 보송하고 가느다란 잎을 머리카락처럼 길게 늘어뜨리고, 홍콩야자는 우산 모양의 초록 잎이 길게 자란다. 그 중 애정하는 스킨답서스 실버리안은 벨벳 재질 형태의 잎과 은은한 실버 색상이 눈에 띄는 독특한 식물이다. 다행히 세 식물 다 우리 집 환경이 잘 맞는지 어린잎을 계속해서 내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내가 보지 않는 시간에도 반짝반짝 잘 자라 나를 놀라게 하는 것, 이게 바로 식물을 애정으로 키우게 되는 이유이지 않을까.가장 최근에 데려왔지만 골머리를 앓게 하는 녀석은 유주나무다. 작은 귤과 흰 꽃이 달리는 과실나무라 계속해서 벌레가 꼬이는데다 햇빛 양이나 물주기가 잘못된 탓인지 살짝 건들기만 해도 잎이 우수수 덜어진다. 힘없이 축 늘어진 잎을 보면 얼마나 눈길이 가는지. 영양제도 꽂아보고 뿌리 파리 벌레를 물리치는 트랩이나 각종 약을 뿌려도 오히려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빛이 잘 들지 않는 집이라 겨우 빛이 집 안에 드는 시간대면 유주나무의 자리를 빛이 드는 곳으로 옮겨 둔다. 인터넷 글을 보니 누군가는 이년 내내 아픈 유주나무를 보살피다 어느 샌가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하던데, 넉넉한 시간은 물론 정성과 관심이 없으면 참 어려운 일이다.앞 식물과는 달리 유주나무는 돌봄 난이도가 있는 편이라 하루라도 빛과 바람, 물주기를 신경써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시들해진다. 조금만 눈을 떼면 금방이라도 죽기 쉬운 식물이라 참 애간장을 녹이는데, 또 작은 귤 열매가 새롭게 맺힌 것을 볼 때마다 만 평 대지에 흉년이 든 것처럼 기쁘다. 아직 초보 식집사라 그런지 내게 유주나무는 아픈 손가락이지만 그래도 요즘 나를 바삐 움직이게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랄까.일주일에 한 번, 물주기가 비슷한 식물을 모아 잎에 쌓인 먼지를 닦아 내고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천천히 물을 준다. 이제 막 물을 주어 싱그러운 식물을 따라 편안하고 천천히 호흡해본다. 조금씩 시간이 느려지고 상기되었던 얼굴도 누그러진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그러다 최근 갑작스레 돌아가신 지인분이 불현듯 떠올랐다. 짐을 정리하다 우연히 그의 메모장을 본 적 있었는데, 그곳엔 온통 불교 경전의 말씀이 가득했다. 필사는 왜인지 긴박히 서두르는 듯 보였고, 특이하게도 ‘ㅇ’ 모음마다 빨간색 동그라미가 덧대어 그려져 있었다. 왜 ‘ㅇ’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고 또는 아무 이유도 없을 수 있겠으나 빨간색 동그라미를 그려내며 각지고 날카롭고 뾰족한 마음을 둥글고 부드럽게 다듬고 싶었던 걸까. 동그라미의 틀, 동그란 잎의 식물들, 둥그런 화분의 입구, 동그란 유주나무의 열매, 둥글둥글해지는 마음. 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세시 정도였고, 일요일의 오후가 조금 더 남았다는 것에 안심하며 끼니를 챙겨 먹기 위해 천천히 일어섰다.조금씩 빛이 드는 자리에 앉아 마음의 파동을 일으키는 대상을 가만히 생각해보는 것이 내겐 사랑이고, 이 사랑으로 채워진 시간이 오롯이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함을 안다.평온함의 오후, 물 빠진 식물은 다시금 제자리에 돌려놓고 유주나무는 한 번 더 벌레가 기어 다니지는 않는지 체크한 뒤 놓아준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내내 눈길이 가고, 떨어져 있을 때면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지, 괜찮은 건지 생각하며 저릿하고도 무력한 마음 같은 것이 나는, 사랑이라 믿는다.

2024-04-22

허수경의 ‘진주 저물녘’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허수경 시인은 고고학자가 되고 싶어했고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고대동방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허 시인은 유적발굴을 위해서 1년의 절반 이상을 이집트와 시리아와 이라크로 떠돌며 살아왔다.유목민같은 삶을 살다가 독일에서 얻은 암으로 이승을 떠났지만 그녀는 자신의 시를 오래된 유적처럼 이 땅에 남겨 두었다. 녹슨 청동 구릿빛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그녀를 기리는 이는 더 늘어날 것이다,허수경은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에 그의 꿈을 소리와 문자로 새겨두고 우리곁을 떠났다. 시집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진주 저물녘’이라는 시에서 그는 서쪽 바람이 일으켜 놓은 황혼의 고향을 시의 그물로 당겨놓았다. 이 시에는 경남 진주의 토박이말이 걸쭉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경상도 전역에서 두루 쓰는 방언인 ‘문디’를 만나니 반갑기도 하다.방언은 추상화된 보편 언어가 아니다. 관념과 같은 무중력의 언어가 아니라는 말이다. 방언은 현실 세계에서 지역에 따라, 계급에 따라, 그리고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파생되고 갈라지다가 그 ‘곳’에 자리를 차지한 민들레 씨방과 같은 존재다. 그러면서 방언은 공동체 안에서 그들끼리만 소통함으로써 내부적 결속을 강화해주기까지 한다. 표준화된 무채색의 언어인 표준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대상과 사건의 신비로운 숨결까지 방언에 깃들어 있다.“기다림이사 천년같제 날이 저물셰라 강바람 눈에 그리메 지며 귓불 부콰하게 망경산 오르면/잇몸 드러내고 휘모리로 감겨가는 물결아 지겹도록 정이 든 고향 찾아올 이 없는 고향/문디 같아 반푼이 같아서 기다림으로 너른 강에 불씨 재우는 남녘 가시나/주막이라도 차릴거나/승냥이와 싸우다 온 이녁들 살붙이보다 헌출한 이녁들/거두어나지고/밤꽃처럼 후두둑 피어나지고”, -허수경 ‘진주 저물녘’허수경은 스스로 “남녘 가시나”라고 고백한다. 가난에 쫓겨 어디 주막의 작부노릇이나 할까보다고 생각하다가 “기다림으로 너른 강에 불씨 재”운다. 이 시집의 발문을 쓴 송기원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허수경을 두고 “세상의 모든 남정네들에게 버림받고, 그렇게 버림받아 자유로운 몸이 되어, 드디어 세상의 모든 남정네들을 제 살붙이로 여기는 진주 남강이나 혹은 낙동강 하류의 어느 가난한 선술집의 주모를 떠올렸다”고 표현했다.좀 더 깊이 성찰해 보면 일본 왜장을 끌어안고 진주 남강 물에 뛰어든 정열의 기생 논개를 연상하다가 진주 남강 너른 강 같은 마음에 기다림의 불씨로 그 망상을 손질한 것일 것이다. 진주 시가지를 휘돌아가는 남강과 일본의 침략군 적과 싸우다 죽은 숱한 양민들의 피가 저녁노을처럼 붉게 물든 진주성의 저물녘과 역사성이라는 그물의 코로 이어있다.가끔은 폐병에 걸린 남성과 사랑에 빠져보고 싶은 내면적 충동을 시로 쓴 ‘폐병쟁이 내 사내’에서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이라도 쳤을 터이지만,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오르는 물 거두어주고 싶었네”라며 20대 젊은 여성의 내면적 욕망을 변주하고 있다.“산가시나가 되고 백정집 칼잽이가 되어 폐병에 효험이 있다는 뱀과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후, 후 불며 먹이고 싶었네/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선한 물같이 맛깔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었네/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어디 내 사내뿐이랴”에서는 눈빛이 타오를 듯 고혹적인 사내를 위해 헌신한 우국충절의 논개가 되고 싶은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는데, 나의 어머니, 아니 나의 할머니부터 나에게 이어 내려온 강렬한 정념을 포효하고 있다.폐결핵이 걸린 사내라도 잎차같이 함께 눕고 싶어한다. 후후 불어 더운 보양국물 먹여 가며 그 사내가 흘린 식은땀을 후후 마시고 싶다. 그 여인 슬픈 눈길로 사내를 내려다보며 땀과 눈물 닦아줄 것이라는 환영에 빠진다.

2024-04-22

도미노게임-민족의 대이동

‘인간은 너머의 세상을 동경한다. 그러나 방향 잃은 패자의 역습이 더 큰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기원전 2세기 초, 흉노의 이동은 중앙아시아는 물론, 중국과 인도의 역사까지 바꾼다. 거대 국가를 이룩한 흉노는 한나라 고조 유방을 포로로 잡는 쾌거를 올리고, 파미르고원에서 발원해 장장 2,500여 ㎞를 흐르다 아랄해로 스며드는 아무다리야강 근처 대월지를 점령한다. 흉노로부터 남쪽으로 쫓겨난 대월지 사람들은 그곳의 ‘대하’, 즉 박트리아를 멸망시킨다. 그리고 인도로 쳐들어가 ‘쿠샨왕조’를 세운다. 도미노 게임의 시작이다.기원전 141년, 흉노족은 한무제로부터 시작해 후한에 이르기까지 몇백 년에 걸쳐 서서히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로부터 대략 200년이 흐르고, 카스피해 북쪽에 훈족이 나타났다. 모습이 흉노와 똑 닮았고, 흉노와 발음도 비슷한 이들이 유럽에 입성하자 유럽은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강력한 훈의 침략은 게르만족 일파들을 유럽 각지로 흩어지게 했다. 이탈리아 서로마 멸망을 앞당겼으며 프랑크왕국을 탄생시키고, 훗날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라는 나라로 발전하는 초석을 다진다.9세기 말, 우리가 흔히들 바이킹이라고 부르는 노르만족의 유럽 유린은 또 한 번 판도를 뒤집는다. 유럽의 북쪽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살던 북방민족 노르만족이 여름이 짧고 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추위와 척박한 땅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따뜻한 남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그들이 남으로 이동해 노르망디공국을 세우고, 아이슬란드에 정착하는가 하면, 영국의 서북쪽 아일랜드에 노르만 왕조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지중해를 뚫고 들어가 시칠리아, 나폴리왕국을 건설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동유럽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 중 한 무리는 러시아에 도착해 그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슬라브족을 몰아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간 무리는 현재 러시아의 기원인 키예프를 점령하고, 블라디미르 공국까지 손에 넣는다.노르만족으로부터 쫓기듯 밀려난 슬라브족은 남하해 발칸반도에 자리 잡고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를 세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가톨릭에 흡수된다. 그 당시 발칸반도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이들 역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대번에 뽑아버리거나 오랜 세월에 걸쳐 폭력과 희생의 토대 위에 나라를 세웠다. 민족 이동은 순차적이거나 평화적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필연적으로 폭력과 약탈이 동반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쫓기듯 도망치면서도 그 와중에 저지른 살인과 약탈과 방화는 또 다른 민족의 이동을 불렀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한 패자의 역습! 아니, 패자의 화풀이다.고등학교 역사부도 머리글에 ‘민족 대이동의 영향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다’가 쓰여 있다. 얼핏 읽으면 매우 평화롭고 한가로운 민족의 이동으로 환희에 찬 신세계를 연상하게 한다. 안타깝게도 살육과 방화, 약탈은 기본이었다. 머리를 돌에 부딪쳐 죽이고, 살아남은 자들은 끌고 가 노리개나 노예로 삼았던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되짚어야 할 의무가 있다.몽골의 칭기즈칸과 14세기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해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희대의 살육자 티무르와 유럽의 영웅 알렉산드로스와는 질이 다르다. 이 셋은 단순한 이유가 바로 목적이 되는 그들의 공통된 용어, ‘정벌’을 앞세운 살육자였다. 항복 아니면 도륙이라는 무시무시한 몽골군은 유럽인 눈에는 그저 하늘에서 보낸 악의 군대이자, 신의 채찍이었다. 사회 질서와 도덕이 땅에 떨어지자 하느님이 보낸 응징을 위한 군대였다. 사람의 머리로 탑을 쌓기를 즐겼다는 티무르는 그냥 할 말을 잊는다. 알렉산드로스 역시 페르세폴리스에서 보듯 그가 지나는 자리에 불타고 허물어진 건물잔해, 하늘에 울리는 인간들의 절규만이 남았다.세계를 자신의 발아래 놓고자 벌이는 욕망의 화신을 영웅이라고 불렀다. 유럽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영웅이고, 유럽을 짓이겼던 티무르는 왜 죽음을 부르는 악인가? 훈족 희대의 영웅 아틸라는 왜 ‘신의 재앙’으로 불려야 하는가.마치 도미노 게임처럼 벌어졌던 인류 이동의 역사가 되풀이되면서 지금의 세계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약탈자 그 이상도 아닌 폭력적인 인간을 영웅으로 미화하는 것은 마치 후대의 성스러운 의무가 되었다. 이를 넘어 어떤 민족에게는 저항의 힘으로 작용하고, 또 어떤 민족에게는 이웃에 대한 침략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단언컨대 통치제도는 통치자를 위한 것이다.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국가에도 질서와 통제를 위한 세력은 어떻게든 존재하기 때문이다.스스로 선진문명인들이 살아가는 서구 유럽이라는 개념 역시 이 과정을 거치며 생겨났다. (기실 폭력의 역사만 두고 보았을 때 문명보다 야만에 가깝지만) 일찍이 유럽이라 하는 지역 개념은 아시아를 타자화하면서, 유럽과의 대비를 통해서 형성되었으며, 그 기조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4-22

비운의 순종황제 동상

홍석봉 대구지사장 순종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다. 대구 중구는 순종이 1909년 1월 남쪽 순행 중 대구를 다녀간 일을 재현해 지난 2017년 달성공원 정문 앞 일대를 테마거리로 만들었다.어가길에 담긴 치욕을 ‘다크 투어리즘’으로 승화시켜 역사교육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였다. 낙후된 골목 개발과 원 도심 재생 및 관광 활성화가 목적이었다. 길이 2.1㎞의 어가길은 국비 35억원 등 70억원이 들어갔다. 동상 건립과 함께 차선을 줄여 교통섬 등이 들어섰다.사업은 구상단계부터 친일 미화 논란에 휩싸였다. 일제가 반일 감정 무마를 위해 순종을 대구와 부산 등으로 끌고 다닌 치욕스러운 역사라는 이유였다.어가길과 동상 조성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셌다. 대례복 차림의 순종 동상이 군복을 입고 다닌 당시 모습을 왜곡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대를 무릅쓰고 건립을 강행했다.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어가길 조성 이후 달성공원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유동인구가 늘면서 교통 혼잡 등 민원이 빗발쳤다. 보행과 안전사고 위험이 커졌다. 결국 중구는 ‘순종황제 어가 길 조형물’ 철거를 결정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순종의 후손들은 “황제를 욕되게 하지마라”며 동상 기증을 요청했다. 의미 있는 장소로 이전하자고 했다.역사 왜곡과 친일 논란까지 애써 무시하고 다크 투어리즘으로 포장한 채 세워진 대구 ‘순종황제 동상’은 고작 7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조선의 마지막을 지켜봐야했던 것만큼 서글픈 운명이다.동상 건립비와 원상 복구비로 11억원이 들어간다. 지역사회와 논의조차 제대로 않고 추진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세금낭비와 행정력만 소모했다. 10년 앞도 못 내다본 우리 행정의 현주소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22

성난 민심을 어떻게 받들 것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108 대 192’, 국민은 윤석열 정권을 무섭게 심판했다.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에 성난 민심의 폭발이었다. 이미 6개월 전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강력한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았으니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대통령은 이번에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또 다시 고개를 숙였다.무엇을, 어떻게 쇄신하겠다는 것인가? 병은 원인을 알아야 치료할 수 있다. 대통령은 참패의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검찰 중심의 측근 인사는 불통의 상징이었고, 대통령이 내쳤던 이준석·안철수·나경원은 모두 국민의 지지를 받아서 돌아왔다. 이태원·오송 등 대형 참사에서 보여준 무책임, 해병대 채 상병 사망수사와 김건희 여사의 디올 백 사건의 처리에서 보여준 오만한 태도는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대통령의 성찰·반성·변화가 시급한 까닭이다.대통령이 민심을 받들려면 국민, 여당 및 야당과 제대로 소통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소통’인데, 그것은 바로 ‘언론과의 소통’을 의미한다.대통령은 총선 참패에 대해 언론 앞에서 직접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고 국무회의 비공개회의에서 간접적으로 사과했다고 한다.“참모 뒤에 숨지 않고 잘못은 솔직하게 고백하겠다”고 한 대통령은 어디로 갔나? 분노한 민심에 진솔하게 사과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가?다음으로 당정(黨政) 소통을 위한 양자관계의 재정립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당의 주류가 합리적·개혁적 보수로 교체되어야 한다. 수구적인 보수, ‘윤심’만 살피는 보수는 시대변화에 부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변화와 혁신을 추동할 수 없다.여당은 대통령에게 고언(苦言)하는 ‘악마의 대변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대통령은 ‘검사 윤석열’이 아니라 ‘정치인 윤석열’이 되어야 한다. 검찰문화에 습관화된 상명하복의 정치행태는 불통만 키울 뿐이다.마지막으로 야당과의 소통이다. 정쟁을 중단하고 정치를 복원하라는 것이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이다. 향후 대통령의 잔여 임기 3년은 가시밭길이다.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야당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대통령의 레임덕만 재촉할 뿐이다. 이재명과 조국의 범죄혐의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사법부에 맡겨두고, 대통령은 정치적 대화를 통해 국정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여소야대의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이처럼 성난 민심은 대통령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요구하고 있다. 취임 이후 반복되어온 표리부동과 언행불일치, 선택적으로 적용해온 공정과 상식을 반성 없이 변명만 하면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다.병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데 야당을 탓하고 참모들을 질책해서 될 일이 아니다. 권력에 취해 초심을 잃어버린 것은 바로 대통령 자신이 아닌가.민심을 받드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길’은 대통령이 변하는 것이다. 오만과 불통의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소통·대화·타협의 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할 때 비로소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2024-04-22

총선참패 여당, ‘남탓’하며 자중지란 빠질 때냐

4·10 총선에서 참패를 당한 여권이 자중지란에 빠져들고 있어 안타깝다. 당이 흡사 ‘무정부’ 상태에 빠진 모습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간의 갈등이 우선 당을 혼란스럽게 한다. 총선 후 침묵을 지켜왔던 한 위원장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정치인이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국민뿐이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라는 글을 올렸다. 이날 오전 홍준표 대구시장이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글을 올린 직후였다. 한 위원장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오찬을 제안하자 건강이 좋지 않다며 거절까지 했다. 정치권에서는 한 위원장이 이참에 윤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감을 둘 각오를 했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나온다.차기 당권 레이스와 관련해 ‘영남권 책임론’도 나와 당 내분을 짙게 한다. 지난주 당내 낙선자 모임과 윤상현 의원 주최 세미나 자리에서 총선참패에 대한 영남권 책임론이 거론되자 TK정치권에서 발끈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잘 되면 내탓이고 잘못되면 조상탓이라는 속담이 있다”고 질타했고, 대구시장 출신 권영진(대구 달서병) 당선인은 “무슨 문제만 생기면 영남 탓을 한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22대 국회 권력을 모두 야권에 넘겨준 채 개헌·탄핵 저지선만 가까스로 확보한 여당이 향후 갈 길도 찾지 못한 채 내분을 겪는 모습은 국민에게 한심하게 비칠 수밖에 없다. 역대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이처럼 크게 패배한 것은 처음이다. 윤 대통령의 독단적인 국정운영이 가장 큰 패인이라는 것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는데도, 영남권 책임론 같은 뒷말이 나와 당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지도부를 하루빨리 구성해서 대통령과 야당 간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권력독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집권여당답게 대화와 타협의 여야관계가 복원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2024-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