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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동네 사랑방 같은 작은 도서관의 매력

지난 19일 오랜만에 작은 도서관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오랜만이어도 오래된 회원들이 반기는 소리와 각자가 쏟아내는 이야기는 언제나 도서관을 가득 메운다. 동네 사랑방 같은 작은 도서관만의 매력이다.작지만 작지 않은 작은 도서관을 십여 년 전부터 즐겨 찾았다. 그즈음 교육학 공부를 하고 있기도 했고 유아기인 아이들에게도 책과 가까이할 수 있는 일상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작은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그림책 강좌와 책을 사랑하는 성인들에게도 작가 강연회는 물론이고 책을 넘어 역사와 문화, 미술 등을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까지, 작은 도서관만의 알찬 프로그램들을 꾸리고 있어 내게는 당연히 자주 찾는 곳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는 온라인을 통한 수업으로 이어져 하루하루를 답답한 일상으로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이처럼 영유아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여러 연령층의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고 때론 도시의 소음과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책의 세계로 푹 빠질 수 있게 여유를 가져다주는 조금은 특별한 도서관이 내 동네 가까이에 있다면 매력적일 거라 생각한다.먼저 작은 도서관은 무엇보다 접근성이 중앙도서관에 비해서 좋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어 도서관을 갈 때 주차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아이들이 학원을 오가는 사이에 시간 활용하기도 좋다. 특히 방학 때는 아이들이나 부모들이 부담 없이 편하게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또 문화센터처럼 비용을 들이지 않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이용할 수 있다. 작은 도서관을 찾는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고 때로는 아이를 키우며 고민하는 육아에 대한 여러 생각들도 나눌 수 있다. 또 사랑방처럼 언제든지 오고 갈 수 있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소통과 공감을 하는 커뮤니티도 자연스럽게 형성할 수 있다.‘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고 하는 빌 게이츠처럼 포항에도 스마트 도서관을 포함에서 51곳의 작은 도서관이 동네 가까운 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작은 도서관을 살펴보면 포항에서 유일하게 그림책 전문 도서관인 그림책마을 도서관이 있다. 이용자들은 “어린 아이들에게 딱 맞는 적절한 크기의 도서관이기도 하고 너무 조용히 안 해도 되는 편안함이 있어서 좋다”고 입을 모은다. 또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작은 도서관인 죽장 선바위 작은 도서관은 독서회원들이 대부분 농사를 지으면서도 자발적으로 독서 모임을 결성해 책을 가까이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 가까이에서 이웃과 책을 통해 유대감을 갖고 공동체 의식을 키운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동네마다 특색을 살려 작은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용할 수 있는 요일과 시간은 작은 도서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장량참사랑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홍은미 사서는 “작은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대출하는 곳을 넘어 지역 주민들의 욕구를 충족할 여러 프로그램으로 만나고 있다. 아직 이런 프로그램들이 도서관에서 운영되는지 모르시는 분들도 계신다. 작은 도서관이 동네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위해 재능을 기부할 강사들도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허명화 시민기자

2024-03-26

종착역은 서울역입니다

1930년 만주사변이 발발하던 해 경북안동역은 준공됐다. 이듬해 경북선이 개통되고 1936년 중앙선 노선이 확정됐다. 1949년 안동역으로 개칭되고 이후 한국전쟁으로 안동역사(驛舍)는 파괴된 후 복구됐다. 안동시 운흥동 원도심에 자리해 근현대사를 함께했던 안동역은 9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복선전철화 시대를 맞아 2021년 송현동 현 안동역으로 이전했다. 기차는 많은 사람을 실어나르며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깃든 이동 수단이다. 안동역은 철도 중심의 신문화와 다양한 풍속이 들어오는 통로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지역사회 여러 영역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안동 원도심에 자리한 터라 안동 역광장은 역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의 유세 현장이자 농민과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진 참여와 저항의 공간, 시민 연대의 공간이었다. 역전 시계탑 앞에서 연인들은 약속을 하고 군입대를 하는 아들과 연인과 이별을 했던 공간이다. 학생들은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고 주말과 명절이면 입석표를 끊어 몇 시간을 내내 서서 왔던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비둘기호를 탔던 기억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안동역은 안동시내의 중심이자 상징이었다. 늦은 밤, 청량리발 기차를 타고 안동역에 내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역 앞 홀로 불 켜진 역전 파출소와 승공탑 교차로 뒤로 어둑한 시내, 기차 도착 시간에 맞춰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 풍기와 영주를 지나 한적해진 객차에서 옹천쯤 오면 가방을 한번 점검하고 임청각을 지날 때면 선반 위 가방을 내렸던 추억. 일정한 반복음을 내며 달렸던 아날로그 감성 가득했던 기억을 말이다.송현동으로 이전하고도 중앙선 기차의 상행선 종착역은 언제나 청량리역이었다. 갓 상경한 경상도 촌놈들이 ‘서울 드림’을 꿈꾸었던 종착역 청량리는 서울에서의 첫발을 내디뎠던 지역민들의 상경을 향한 상징적 공간이다.2021년 송현동으로 안동역 이전 후 KTX-이음 안동-청량리 중앙선 구간이 개통된 이래 지난해 12월 29일부터 서울역 연장 운행(하루 4차례)이 이뤄졌다. 연장된 구간의 시간은 안동에서 청량리역까지 2시간 10분, 여기에 서울역까지는 25분 정도 더 소요된다.그 옛날 홍익회 스낵카의 추억과 삶은 계란, 사이다의 추억은 없어진 대신 스마트한 이동 시간과 공간이 주어졌다. 티켓에 구멍을 뚫으며 승차권을 확인했던 시절에서 모바일 승차권의 시대에 지역민의 상행선 종착역은 청량리역 혹은 서울역이 되겠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4-03-26

곤륜산 풍경

포항에 오면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곳으로 곤륜산을 꼽는다. 정상은 넓은 평지에 인조 잔디가 깔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정상까지는 약 20분 정도(평소 운동 부족이라면 더 걸릴 수 있다.) 소요가 된다. 최근 포항의 핫플레이스로 이곳에서 탁 트인 경치를 배경으로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어떤 이는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오르고, 또 다른 시선을 가진 분이라면 서해가 아닌 동해의 노을을 보려 해질무렵 가파른 길을 오른다. 우리는 날이 그리 춥지도 덥지도 않은 포근한 봄을 기다려 올랐다. 활공장으로 올라가는 진입로는 경사가 급해 오르기 시작하면서 숨을 헐떡이게 만든다. 땀이 나니 대부분 이쯤에서 겉옷을 벗는다. 따뜻한 햇살이 막 떠오른 오전이라 소나무 사이로 비끼는 햇살에 막 피어난 분홍빛 진달래가 더 찐분홍으로 반짝였다. 쉬엄쉬엄 진달래 사진을 찍어가며 천천히 올랐다.조금 더 오르니 노란 생강나무가 길 안내를 맡는다. 뜯어 향을 맡으면 알싸한 생강 향이 나서 생강나무지만 산수유와 구별하기 좋은 방법은 정원 울타리 안에 피면 산수유, 이렇게 야산에 핀 것이면 대부분 생강나무겠지 하면 쉽다.진달래와 생강나무 사진을 찍으며 가파른 길을 몇 번 돌다 보면 어느덧 저 멀리 아파트 숲이 내려다보인다. SNS에서 뷰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인지,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 배경으로 나와서인지 찾는 이가 많아졌다. 특히 강아지를 데리고 오르는 가족이 더 늘었다. 사람도 힘들어하는 길이라 강아지도 숨을 헐떡인다.푸른 인조 잔디가 보이면 정상이다. 경사 급한 길을 오르며 뜨거워진 몸을 시원한 바람이 식혀준다. 그보다 눈이 먼저 시원해진다. 힘들게 올라온 다리에게 탁 트인 경치를 상으로 떠안긴다. 잠시 멈춰 멀리 칠포항부터 칠포해수욕장을 지나 용한리 바닷가까지 휘이 둘러본다. 가쁜 숨도 고르고 등에 흐른 땀도 식히기에 충분한 뷰다. 날이 좋은 날은 멀리 포스코와 구룡포도 보인다니 잘 살펴보아야 한다.가족끼리 한쪽에 돗자리를 펴 망중한을 즐기거나 삼각대를 놓고 추억을 저장하는 연인들, 바다 앞으로 좀 더 내려서는 아빠를 걱정하는 남자아이의 목소리에 까르르 웃는 엄마와 누나의 모습이 그림 같은 풍경이 된다. 자전거를 끌고 올라온 아저씨는 누군가 영상통화로 좋은 경치를 나눈다. 우리도 바다인지 하늘인지 경계를 가늠하기 힘든 푸르름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었다.이곳은 활공장이다. 패러글라이딩을 타려고 마련한 곳이다. 주말이면 차로 하늘을 나는 체험을 하려는 사람들을 태우고 차가 올라온다. 지난해 70이 넘은 지인 부부가 하늘을 날았다며 체험담을 이야기할 때 무척 부러웠다. 고소공포증이 심한 사람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체험이다. 바람을 타고 새처럼 활강하는 느낌은 타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산 정상을 달려 바다 위를 유유히 떠가는 비행, 하늘에서 느끼는 바람과 풍경은 땅에 발을 딛고 보는 그것과 차원이 다를 것이다.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산을 내려간다. 워낙 가파른 길이라 내려갈 때도 주의해야 한다. 반드시 발이 편한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고 오르길 권한다. 야영, 취사 행위, 인화성 물질 등의 사용을 금하고 있으니 가벼운 마음, 몸으로 오르길. 정상에는 간이 화장실조차 없으니 오르기 전 화장실을 다녀올 것, 올라가는 길은 그늘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햇살을 피하려면 선글래스나 양산을 들고 가면 좋다.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을 보니 다리가 불편한 부모님이 떠올랐다. 문경처럼 산악 모노레일이 있다면 함께 볼 수 있을 텐데, 산밑에 주창도 넓고 화장실도 깔끔해서 이용하기 편하다. 봄바람 살랑이니 포항시 흥해읍 암각화길에 자리한 활공장으로 나들이 가보길 권한다./김순희 시민기자

2024-03-26

청년 취업 성공을 함께하는 희망옷장

코로나 팬데믹은 국내외 경제에 지속적인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9년 이후 4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지만, 국내의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고용율은 낮다. 지난해 한국 경제의 성장은 1.4%로 코로나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이에 따라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막 졸업하거나 졸업 예정인 청년들은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느끼고 있다. 특히 첫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경제적인 지원이 없다면 면접 때 입을 정장도 마련하기 어렵다. 면접 한 번을 위해 몇 십 만원이나 하는 정장을 구매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이 크다.이러한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구광역시는 지역 취업 준비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희망옷장’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희망옷장은 대구시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들을 위한 무료 정장대여 서비스로, 고등학교 졸업예정자부터 39세의 청년 구직자들 중 면접에 응시하는 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대여 기간은 3박 4일이며, 년 최대 3회까지 대여가 가능하다. 동일 회사에 면접을 보는 경우 3차까지를 1회로 인정한다.신청은 희망옷장 홈페이지(fulldress.deagu.go.kr)를 통해 온라인으로 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대여를 희망하는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대구거주를 확인할 수 있는 주민등록 등, 초본과 면접 증빙서류(이메일, 문자내역 등)을 사진 파일로 업로드하여 사전예약을 할 수 있다. 예약신청시 평일 18시 이후나 주말은 승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평일 18시 이전에 예약신청을 권한다. 사전예약이 원칙이기 때문에 면접 당일 대여는 불가능하다. 승인 후 예약한 시간에 맞춰 대구행복기숙사 1층(중구 서성로20길 25)에 방문하면 된다. 방문시 세탁비 7천 원만 부담하면 이용이 가능하다.희망옷장에서는 정장뿐만 아니라 구두와 넥타이 그리고 벨트까지도 대여 가능하다. 세탁비는 대여 전에 납부해야 하며, 계좌이체만 가능하다.희망옷장은 서비스가 시작되었던 2017년 5월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용자가 늘고있으며, 만족도 조사에서는 5점 만점에 4.9점 이상의 높은 점수로 평가받았다.희망옷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앞으로도 많은 청년들의 취업 성공 소식이 들려오길 바란다. 더불어 청년 취업에 관련된 더 많은 지원이 아낌없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김소라 시민기자

2024-03-21

봄보다 더 큰 기적은 없다

드디어 봄이 왔다. 긴긴 겨울을 지나 마침내 봄이 왔다. 눈매 고운 매화가 피어나고 노오란 산수유꽃이 깨어났다. 바깥세상은 봄소식으로 분주한데 이상하게 주변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 어느 누가 상처 없이 사는 사람 있으랴마는 가까이 연을 맺고 사는 이들의 상처에 덩달아 생각이 많다. 돈 때문에, 사랑 때문에, 가족 때문에, 자식 때문에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속울음을 우는 사람들. 그들의 아픔에 동화되어선지 꽃샘추위 같은 몸살을 몇 날 앓기도 했다. 지난날 돌아보면 난 나만 상처투성이 어린 짐승인 줄 알았다. 혼자 웅크리고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죽을 듯이 끙끙 앓았다. 몸에 병이 들고 나서야 그게 전부 스스로 만든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나보다 더 아픈 이들이 많은 것도 알았고 내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뀜을 비로소 알아챘다. 그래서 달라지고자 마음 먹었고 달라졌다. 내가 달라지자 가족이 바뀌고 주변이 바뀌었다.“당신이 누구든, /외롭든 그렇지 않든,/그건/중요하지 않아.//중요한 것은/단 하나/당신과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봄 나무들이 어린잎들을 내고/가을 곰들이 살을 찌우며 겨울잠을 준비한다는 것,//칠흑 같은 천 개의 밤을 혼자 견딘다 해도/당신, 울지 마!/천 개의 밤에 기댈 곳이 오직 차가운 벽일지라도/당신, 울지 마!//결국 새 날들이 올 테니,/웃어 봐!/춤추고 노래를 해 봐! (장석주 ‘당신,울지 마!’)칠흑 같은 천 개의 밤을 혼자 견딘다 해도, 차가운 벽만이 의지할 곳이라도 살아있음을 감사하라고 시인은 말한다. 살아있음에 고통도 있는 것이고 살아 있음에 그 고통을 재료로 영혼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어떤 과제가 주어졌던 결국 새날은 올 것이고 내일의 태양은 떠오르게 마련이다.어떤 명상가는 말했다. 먹구름이 모이면 비가 오는 게 당연하고, 쓰레기가 있으면 파리가 오고, 짜증내고 있으면 나쁜 기운이 모이는 것이라고. 어려움이 왔을 때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왔는지 돌아보라는 말이다. 그 말은 즐거움이 있는 곳에는 불행이 오지 않는다는 말일 수도 있고, 우리가 느끼는 어려움이 꼭 불행만은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삶에서 어떤 일이 안 일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우리 삶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는 말이리라.그대 오늘 마음이 괴롭다면 즐거운 음악을 듣고, 마음을 잡아당기는 시를 읽어라! 울면서 세상을 한탄하는 것보다 그대를 백 배는 더 행복하게 하리라. 그리고 눈을 들어 막 번져가는 봄을 느껴 보시라. 점점 부드럽게 변해가는 바람의 촉감과 따스함이 묻어나는 햇살, 잠 깨는 꽃들을 바라보라. 봄만큼 큰 기적이 어디 있으랴. 울지 마시라, 세상의 모든 당신들! 세상은 지금 봄이다./엄다경 시민기자

2024-03-21

‘봄의 전령사’ 쑥 이야기

지난 10일은 음력 2월 초하루인 이월 명절로 쑥떡을 먹는 날이었다. 겨우내 고요하던 대지에 봄 햇살로 분주해진 냉이, 달래, 돌나물, 봄동, 쑥 등 많은 봄나물이 산과 들에서 자리다툼으로 와글와글한 음력 2월 초하루가 되면 아직 여린 쑥을 뜯어 떡을 만들어 먹는다. 이 날 쑥떡을 먹으면 봄의 시작을 알리는 쑥이 겨우내 움츠렸던 몸에 기운을 돋게 해주어 아무 탈 없이 일 년을 보내며 그 해 농사도 풍년이 들게 한다고 믿었다. 동월(蕫越)의 ‘조선부(朝鮮賦)’에 의하면 3월 3일 쑥 잎을 따서 찹쌀가루에 섞어 쪄서 떡을 만드는데, 이것을 쑥떡이라고 하였으며, 중국에는 없는 것이라 하였다.이월 초하루는 바람을 관장하는 신인 영등할머니가 천계에서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는 날이다. 풍신(風神)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의 삶과 연계시킨 영등할미가 스무날 머물다 천계로 올라가는 날 어머니들은 부엌이나 장독대에서 소지를 올리며 가정의 안위와 소박한 우리네 삶이 평안하길 빌었다. 경북 일원은 영등할미에 기원해서 풍신제(風神祭)를 지내며 액운을 면하고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 떡과 과일을 볏짚에 올려놓기도 했다.음력 2월 초하루에 쑥떡을 먹는 또 다른 유래로는 겨우내 농한기가 끝나고 봄을 맞아 이제 일을 시작해야하는 머슴들과 노비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상 차려 먹이며 기운을 돋게 하는 쑥으로 떡을 만들어 함께 먹게 했다.쑥떡은 액땜의 의미도 가진다. 동국여지승람과 중국 송사(宋史)를 보면 고려에서는 상사일(上巳日)에 쑥떡을 먹는다고 했다. 삼짇날 쑥떡을 먹는 것은 옛날 사람들은 상사일에 겨울잠을 자던 뱀이 깨어난다고 생각했다. 뱀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마당 곳곳에 뱀이 싫어하는 말린 쑥을 널어놓곤 했는데 상사일에 쑥떡을 먹는 것도 이런 풍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옷날 쑥떡을 먹는 것도 액땜을 의미한다. 6세기 풍속서인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5월은 나쁜 기운이 넘치는 악월(惡月)이라 금기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5월 5일 단옷날은 다섯 가지 독이 뿜어져 나오는 날이라고 풀이했다. 오독(五毒)이란 봄이 완연해지는 단오 무렵 독이 잔뜩 오른 해충을 두고 말한 것으로 전갈, 뱀, 지네, 거미, 두꺼비 독을 말한다. 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벌레와 해충을 쫒는 약초로 쓰였으며 악령이나 귀신을 몰아내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신령한 약초로 여겼다. 진나라 때 역사책인 여씨춘추(呂氏春秋)전에도 단오절에 창포와 쑥으로 목욕을 해서 나쁜 기운과 액운을 쫒는다고 했다. 고문헌에서 쑥이 부정한 기운을 몰아낸다고 한 것을 현대적인 관점으로 보면 해충들의 활동이 왕성해지는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어떻게든 해충들을 쫒아내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오늘날에도 봄이면 쑥떡은 제철 음식으로 사랑받는다.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마늘과 쑥을 주며 100일을 버티라고 하는 단군신화를 읽으며 우리는 이미 쑥과 친숙하다. 따뜻한 성질을 가진 쑥은 동의보감에서 위장과 간장 등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하고 뜸이나 찜질 등의 약재로도 쓰이며 지혈에도 효과가 있다. ‘7년 된 병을 3년 묵은 쑥을 먹고 고쳤다’는 속담도 있다. 그러나 쑥은 뿌리를 이용해 토양 속의 중금속을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오염이 의심되는 곳에 난 쑥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봄철 보양식으로 쑥떡만큼이나 도다리 쑥국도 별미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4-03-21

황터마을 부녀회, 재활용품을 수거하다

봉화군 춘양면 황터마을 부녀회에서는 매년 3월 초 재활용 자원 모으기를 진행하고 있다. 농약용기, 비료포대 등 영농폐기물과 농가에서 나오는 헌옷, 고철, 빈병, 박스 등 재활용품을 수거해 농경지 오염을 방지하고, 청정 마을 환경 조성에 앞장서 나가고 있는 것.50여 가구의 작은 산골 마을인 이곳은 급속한 고령화로 부녀회도 대부분 60대 이상이지만, 올해도 지난 11일 부녀회 회원과 노인회 등 남녀노소 모두가 오전 6시부터 재활용품 수거를 시작하였다.이 마을에서는 평소 헌옷이나 빈병 고철 등을 1년 동안 가정이나 부녀회 창고에 모아두었다가 재활용 수거하는 날을 정해 판매하고 있다. 우수와 경칩이 지났지만 아직 날씨가 차가운데 마을 어르신들도 소주병 농약병 비료포대 등을 힘들게 들고 나오고 그나마 젊은 부녀회 회원들은 분리작업에 바쁘게 움직인다.이 마을 부녀회 회원들은 평소에 농경지나 마을 주변에 농약 빈병이나 비료포대, 빈병 등 재활용품이 보이면 부녀회 창고로 수거해 보관한다. 영농폐기물은 자연을 오염시키고, 불법 소각 등으로 인한 산불 발생, 지하수 오염 등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마을부녀회의 수거 활동은 깨끗한 마을을 가꾸는 데 작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또한 영농폐기물과 재활용품 판매 수익금은 부녀회 기금과 마을 대소사에 보탬을 주고 있다. 영농폐기물 가운데 발생량이 가장 많은 폐비닐과 농약용기는 수거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영농폐기물은 수거보상제를 통해 일정액의 보상금이 나오고 있고, 폐비닐은 마을 집화장에 보관했다가 출하한다. 농약용기 중 제초제 병과 살충제, 살균제 농약병은 분리해 보내야 한다. 제초제 병뚜껑은 노란색, 살충제는 녹색, 살균제는 분홍색으로 분리하기 편리하도록 농약 제조회사에서 만들어져 나온다. 다만 농약과 혼합 사용하는 영양제 병은 농약병과는 구분이 돼 일반 재활용으로 분리해야 한다.폐비닐은 농가에서 마을 공동 집화장에 보관하고, 농약 용기는 농가에서 보관하다가 수거일에 수집해 한국환경공단 수거사업소로 이송한다. 일반 소주병, 맥주병 등 빈병과 헌옷 비료포대. 고철, 박스 등은 일반고물상으로 이송 판매를 하고 있다.농사 후 발생하는 폐비닐과 농약 빈병을 제외한 것 외에는 폐기물이다. 토양피복용 부직포, 과수원에 사용하는 반사필름 등은 군 쓰레기장까지 농민 스스로 이송해야 하는데, 고령화로 처리하기에 어려움이 많다고 안용대 노인회장은 말한다.이날 황터마을 부녀회에서는 농약 빈병 3천여 개, 소주, 맥주 빈병 2천500여 개 고철 2t, 헌옷과 박스, 비료포대 등 모두 3t을 수거해 판매했다.언제나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깨끗한 마을 환경을 위해 앞장서는 이정이 부녀회장은 “재활용품을 수거하고 분류, 선별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마을 주민 모두가 동참해 주었기에 즐겁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또한 “버리면 쓰레기가 되지만 그것을 모으면 자원이 되고 부녀회 기금을 마련하니 1석3조의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으니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미소를 짓기도 했다./류중천 시민기자

2024-03-19

사교육 부추기는 사회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 이상 사교육(학원, 과외 및 개인 교습 등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안 시킬 수도 없는 사교육, 부모들의 이런 고민과는 상관없다는 듯, 해마다 사교육비(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 27조1천억원)는 고공행진 중이다. 또 사교육 참여율 또한 계속 높아지고 있고 지난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5.8%(43만4천원) 늘어났다. 대구 경북지역에서도 사교육비는 증가했는데 대구는 6대 광역시 중에서 참여율도 80%가 넘었고 경북은 31만5천원(전년도 보다 7.1% 증가)으로 광역도 중 3번째로 사교육비가 많았다.이렇듯 사교육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는 아이들 대다수가 접하고 있는 현실이다. 영유아 사교육비가 대학 등록금을 훌쩍 넘는다는 이야기와 유아가 3개 이상 사교육을 받는다는 등의 이야기는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아이들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사교육비 지출은 해마다 꺾이지 않고 있다. 형편이 어려워도 아이들 교육비는 맨 마지막에 줄인다는 말처럼 아이 교육은 늘 화두인데 누군가는 저출산에 가장 심각한 것 중 하나가 사교육비라고도 한다.지역 엄마들의 커뮤니티에서도 사교육을 얼마나 시켜야 하고, 또한 그에 대한 비용은 늘 관심거리다. 주변의 엄마들 이야기기에 괜히 아무것도 안하는 자신의 아이만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러다 자존감까지 떨어질까 걱정 된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다.한 부모는 “저희 아이는 아직 어리지만 주위 지인들을 보니 초등학생인데도 100만 원 가까이 들고 있다. 또 아이 학원비 때문에 대출까지 받는다는 이야기는 충격이다. 친구가 하기 때문에 따라 하는 경우도 많고 비용 때문에 아이에게 테스트 해보기도 겁나는데 앞으로 나도 고민될 것 같다”고 말했다.이제는 부모뿐 아니라 아이의 하굣길에 모인 할머니들의 이야기도 손자·손녀의 학원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장면도 자주 눈에 띈다. ‘아이가 집에서만 놀아 걱정되고 힘들다고’. 이처럼 사교육이 전 세대에 걸쳐 여러 가지 문제를 포함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부모의 경제 상황에 따라 자녀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가정형편이 좋을수록 사교육비와 참여율은 높게 나타났다. 과도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보일 때가 많지만 선행을 요하는 분위기에서 확실히 사교육을 벗어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긴 하다. 사교육에도 분명 정답은 없어 보이는데 맹목적이고 싶지 않아 책이나 교육 강사 이야기도 들어보지만 무언가 확실한 해법은 없어 보인다. 한편으로는 사교육이 비용은 들지만 편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사교육. 현실이 어렵기는 하지만 이럴수록 아이와 기준을 잘 잡아야 할 것 같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4-03-19

경주 최부자댁의 봄을 만나다

경주 최부잣집 사랑채 앞에 산수유가 활짝 피어 있다.봄은 노랑이로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하는 시인 이장희의 시 ‘봄은 고양이로다’ 제목을 따라 해 보았다. 따스한 햇살에 온몸이 나른해져 오는 봄을 색으로 표현하면 노란빛이다. 개나리, 민들레, 노란 병아리, 봄을 상징하는 것들의 색깔이다. 그중에 이번 주가 절정인 꽃이 산수유다.경주 최부잣집 사랑채 앞에 키가 높은 산수유 한 그루가 관람객을 반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는 사람마다 금방 산수유 아래로 쪼르르 달려가 사진을 찍는다. 노란 꽃잎을 가득 맺은 가지가 기와지붕과 어우러져 더 환하다. 하늘은 파랗게 꽃의 배경을 담당한다. 사랑채 앞으로 늘어진 산수유 가지가 창호지와 문살에 어른거려 이곳에 살았던 후손들의 봄이 얼마나 고왔을까 짐작되었다.안채로 들어가는 문턱은 옹이가 그대로 있는 울퉁불퉁한 나무로 마감했다. 들어서자마자 마당 가운데 집안 살림살이를 담당한 안주인이 머무는 곳이라 단지가 가득한 장독대가 놓였다. 문살의 모양도 방마다 다양해 잘 가꾼 살림집의 모습이다. 높이 솟은 붉은 벽돌의 굴뚝이 흔한 가정집의 굴뚝과 달랐다. 궁궐이나 큰 절에서 봄직한 크기와 모양새다.비가 오면 처마 아래로 다니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드나드는 손님을 배려하는 것은 이 집안의 전통이다. 툇마루 밑에 물그릇을 놓아둔 것은 동네에 오가는 길냥이들 목을 축이라는 뜻일 게다. 사람뿐 아니라 이 집에 들어오는 동물 한 마리도 보살피는 모습에 고개가 끄덕여졌다.최부잣집은 경주 최씨 가문이 17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300년 간 부를 이어왔다. 12대로 대대손손 가훈을 지켜가며 부를 쌓았고, 나그네나 거지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고 밥을 먹여주는 좋은 선행을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다. 소작료를 수확한 곡식의 반만 받고 중간 관리자인 마름도 두지 않았다.거름을 쓰는 시비법과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수확량을 크게 늘렸다. 최국선이 대를 이었을 땐 이미 최부잣집은 조선 최고의 부자였다. 흉년이 들어 농민들이 쌀을 빌려 간 것을 못 갚게 되자 안타까워하며, 아들 최의기 앞에서 담보문서를 모두 불살랐다. 소작 수입의 1/3을 빈민구제로 쓰는 풍습이 생기면서 200년 후인 최준 대에까지 이어진다. 해방 후엔 전 재산을 모두 털어 대구대학(현재의 영남대학교)과 계림학숙을 세웠다.바로 옆은 350년 역사의 교동법주이다. 국가 무형문화재 제 86-3호 국주(國酒) 중 하나라고 하니 더 의미가 있어 보였다. 경주 교동법주는 유통기한이 한 달 채 되지 않는다. 전통 국주이기에,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아 유통기한이 길지 않다. 찹쌀로 죽을 쑤고 누룩을 섞어 오랫동안 발효시켜 밑술을 만든다. 이 밑술에 찹쌀 고두밥과 생수를 혼합해 본 술을 담근 후 찌꺼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무려 50일이라는 시간 동안 독을 바꿔가며 숙성시킨다. 모두 다섯 개의 독을 거치면서 술을 담는 방법으로 백일 이상의 시간이 지나야 마실 수 있다.이렇게 400년 가까이 이어온 가문의 소장 자료가 국사편찬위와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가 자료를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협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을사늑약 이후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을 국민 모금으로 갚고자 했던 국채보상운동 관련 자료를 비롯해 근현대 문서도 포함됐다. 자료는 추후 국사편찬위 전자 사료관 시스템 등을 통해 일반 시민이 볼 수 있도록 한다고 하니 봄꽃처럼 반갑다.경주 최부자댁 관람 시간은 오전 9시 30~오후 5시 30분이며 매월 마지막 월요일과 명절 당일엔 휴관이다./김순희 시민기자

2024-03-19

인생 최고의 기회 ‘한국방송대’

2월 말 한국방송통신대학 대구·경북지역 신·편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왔다. 졸업생 자격으로 새로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성공담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방송대와의 인연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고를 졸업하기 전 취업에 성공한 나는 졸업 후 바로 은행에 출근했다. 대부분 상고 출신인 은행원 다수가 못다 한 공부를 위해서 야간 대학에 진학했다. 업무를 마치고 서둘러 학교로 가는 그들이 부러웠지만, 일찍 혼자되신 엄마가 가끔 눈물 흘리는 모습을 봐 왔기에 공부하고 싶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야간 대학에 비교해 등록금이 싸고 학교에 나가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방송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입학 원서를 썼다. 당시만 해도 방송대는 졸업도 입학도 모두 어려웠던 터라 입학 통지가 오자 안도했다. 그렇게 86학번 영어영문학과 학생이 되었다.그해 서예도 시작했는데 학원에서 남편을 만났다. 연애를 시작하자 공부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당시만 해도 열악했던 방송대 학업 환경에 혼자 공부하기도 어려웠고, 연애하느라 공부할 시간을 내지도 못했다. 결국 1학기 기말시험을 치고는 포기하고 말았다.남편과는 그해 말 결혼했다. 아이들을 낳고 육아에 신경 쓰느라 공부에 대한 열망과 나의 꿈과 이상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작은 아이가 중학교에 2학년 때였다. 생활도 안정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다시 부족했던 공부에 대한 그리움이 찾아왔다. 아이들에게도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방송대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혼자라 쉽게 포기한 것 같아 친구와 함께 지난번과 같은 학과에 등록했다. 이번에는 꼭 졸업까지 가리라 친구와 손을 걸었지만 환경은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아들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엄마의 부재에 힘들어하던 아이가 ‘엄마도 할머니와 똑같네. 내 말은 들어 보지도 않고’라고 말하곤 했다. 아들의 방황이 시작되자 온통 아들에게만 집중했다.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힘들었던 일들이 정리되고 생활이 안정되자 조금씩 취미 활동을 시작했다. 귀농한 남편을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고 SNS를 시작하면서 글의 부족을 느꼈다.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의 수필 강좌를 기웃거렸다. 남편이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정식으로 배워보기를 권했다.2019년 드디어 세 번째로 방송대와 인연을 맺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학년 대표를 맡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학생회 활동을 했다. 학우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부지런히 자료도 찾았다. 학창 시절 어떤 직책도 맡은 적 없었던 내가 학년 대표로 2년, 학생회장으로 2년 맡았다. 전국연합회에서 대구·경북 국어국문학과를 대표해서 활동했다.그렇게 세 번째 도전에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적극적인 학생회 활동과 가족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 이미 60세가 넘은 나이였지만 배움의 시간은 많은 변화를 주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대학 영어를 맛보고, 대학 도서관에서 논문도 찾아보는 학생으로서의 4년은 세상을 읽는 눈을 달라지게 했다.올해도 방송대에는 많은 사람이 지원했다. 못다 한 학업에 대한 미련으로 또는 궁금했던 학문을 위해 2차 3차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저마다 각기 다른 사정으로 방송대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 새로운 시작의 자리, 학과 오리엔테이션에서 후배들에게 들려줄 성공담을 준비하면서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첫 번째, 아니 두 번째 도전에서 성공했더라면 나의 진로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목표한 바를 이루고 다시 공부하는 노후의 삶을 시작할 수가 있어서 기쁘다.졸업식에서 백발의 아들이 아버지의 졸업을 축하하며 사진을 찍어주던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70대 중반의 동기 큰언니는 입학 후 불면증과 우울증이 단번에 사라졌다고 했다. 고령의 나이에도 4년 만에 졸업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방송대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2024년 현재 방송대는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국어국문학과를 비롯한 총 24개 학과의 4년제 대학으로 손색없는 위치에 당당히 선 한국방송통신대학, 관심 있으신 분들, 잘 살펴서 망설임 없이 도전해 보시길 빈다./손정희 시민기자

2024-03-14

‘코로나19’… 그 후 4년

4년 전인 2020년, 1월 20일에 첫 국내 확진자가 나오고 2월에 대구지역 첫 확진지가 나오면서 코로나19는 급속도로 퍼졌다. 긴 역사 속에서, 전쟁에도 장은 열리고 학교를 갔지만 코로나19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식당은 문을 닫고 방학 중이던 학교도 개학을 미뤘다. 초·중·고 개학은 연기를 거듭하다 그해 4월 9일부터 학년별로 순차적으로 온라인 개학을 했다. 학생들은 졸업식도 못한 채 헤어지고 입학식도 못한 채 신입생이 됐다. 축제 취소에도 관광객이 몰릴까 염려한 지자체가 꽃을 자르고 축제장을 폐쇄하는 등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루어졌다.코로나19 이전에도 마스크는 우리에게 익숙한 물건이었다. 황사와 잦은 미세먼지로 마스크를 쓰다가 코로나19로 정점을 찍게 됐다. 처음엔 약국마다 길게 줄을 서 마스크 대란이 일었다. 제주도의 어느 가게에서는 마스크로 대신 결제가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귀한 몸이었고 거리에는 마스크를 기부 받는 구세군이 등장할 정도였다. 이후 2월 27일부터 우체국, 농협, 약국을 통해 정부가 공적 마스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주민등록번호 끝자리로 5부제를 시행해 1천500원짜리 마스크를 일주일에 2매씩 구입이 가능했다.다가올 4월 10일에는 22대 총선이 치러진다. 4년 전 코로나 팬데믹 시기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다. 투표장에 발열 체크 후 입장해 신분증 확인 때 마스크를 잠깐 벗었다가 다시 쓴 후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투표를 했다.후보자와는 악수 대신 주먹을 맞대고 인사를 했고 대기 시에는 앞뒤 사람과 일정 간격을 유지했다.4년의 세월이 흘러 코로나19 엔데믹 시대를 맞았다. 몰랐을 때 두려웠던 코로나19는 이제 감기 정도의 취급을 받는다. 사람들은 미뤄뒀던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마스크 없는 일상에 복귀했다.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자유와 여유가 있는 소중한 일상이 돌아온 것이다. 꽃샘추위가 찾아왔지만 경칩이 지났으니 조용히 봄을 기다려본다./백소애 시민기자

2024-03-14

마음까지 산뜻해지는 불법 전단지 부착방지시트

알록달록한 색감과 따뜻한 글귀가 골목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새로운 도전에 용기를 주는 글귀, 지쳐있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귀, 웃음을 선사하는 재미있는 글귀 등 다채로운 감정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마음을 오색빛깔 색칠한다.불법 전단지 부착방지시트는 불쾌감이 드는 경고문구 대신 아름다운 그림과 띠뜻한 글귀로 깨끗한 거리 환경과 아름다운 경관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참신한 발상으로 설치되었다. 특수 소재로 만든 이 시트는 전신주나 가로등, 신호등 등에 설치되어 테이프나 풀 등의 접착제가 붙지 않아 이와 같은 효과를 낸다. 이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불법 깨끗한 골목을 만들어주었다. 이전에 CCTV나 양심거울 설치, 법적 처벌 경고판까지 설치하여도 줄지 않던 전단지와 쓰레기들이 예쁜 장식 하나로 해결된 것이다. 그야말로 ‘깨진 유리창 이론’을 떠올리게 하는 사례이다. 떼어내고 떼어내도 자꾸만 늘어나던 불법 전단지로 골머리를 앓던 공무원들에게도, 불법 전단지로 지저분해진 거리를 다니는 주민들에게도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반짝이는 무지개 같은 존재이다.어린이보호구역 인근에는 노란색 바탕에 까만색의 큰 글씨로 ‘어린이보호구역’이라 표기되어 있어, 운전자들이 한 눈에 인지하여 속도를 조절하기 쉽다. 때문에 초등학생들에게는 등하교를 돕는 보디가드 역할을 한다.실제로 불법 전단지 방지시트가 설치된 대구 서구 비산동 일대 골목은 설치 이전에 비해 전단지 뿐만 아니라 불법 쓰레기 투기도 줄고 골목 분위기도 바뀌어 늦은 밤 귀갓길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하지만 불법 전단지 방지시트의 표면이 비나 햇빛에 약해 시간이 지나면 그 효과가 떨어져서 실효성이 없으니 예산 낭비라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점을 역이용한다면, 표면에 닳아 효과가 떨어진 시기를 예상하여 주기적으로 새로운 이미지와 문구로 재탄생 시키는 것은 어떨까? 지역 관광지 홍보, 관광 안내 큐알코드 등으로 지역의 관광명소를 홍보할 수도 있고, 지역주민들의 행복한 모습을 직접 담거나 시나 소설의 전문이나 좋은 부분을 일부 발췌하여 기록해두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늘 같은 길도 지루하지 않게 매번 새로운 길을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이전 돌기형 불법 전단지 부착방지판은 저렴하고 절연효과도 있지만, 스템플러나 청테이프는 막을 수 없었고 쉽게 더러워지며 여름철과 겨울철에는 늘어나거나 터지는 문제가 발생했었다. 그리고 뾰족한 요철에 부딪혀 지역 주민들이 다치는 일도 빈번했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지금 설치된 불법 전단지 부착방지시트가 더 경제적이고 실용성 있다고 볼 수 있다.앞으로도 불법 전단지 방지시트가 아름다운 거리를 위한 다양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란다./김소라 시민기자

2024-03-14

묵계서원에 홍매화 향 분분하다

봄은 매화와 함께 찾아온다. 남쪽 나라에 일찍부터 매향이 그윽하다는 소식을 듣고 안동으로 향했다. 은은한 향내에 붉은빛을 더해 사람들을 부르는 홍매화를 알현하기 위해서이다.영덕IC에서 차를 올려 동안동에서 내린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안동 시내 방향이 아니라 다시 영덕 방향 국도로 차를 돌려 10여 분을 달리면 길안면 묵계리에 도착한다.강 건너 만휴정으로 많은 이들이 향할 때 우리는 언덕으로 오른다. 좁은 길이라 이런 곳에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서원이 있을까 싶지만 금방 오랜 세월을 간직한 건물이 나타난다.묵계서원은 응계 옥고(1382∼1436) 선생과 보백당 김계행(1431∼1517) 선생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숙종 13년에 지었으나, 고종 6년 서원철폐령 때 사당은 없어지고 강당만 남아 있다가 최근에 복원하였다.서원 마당 가에 홍매화가 그득하다. 지난밤 꽃샘추위에 소스라치게 놀랐는지 붉은색이 살짝 바랬다.그러함에도 며칠 봄비에 흐리던 하늘이 오늘은 파랗게 깊어 홍매화의 배경으로 그저 그만이다. 파란 화면에 꽃을 가득 피운 반 고흐의 그림을 닮았다. ‘아몬드꽃이 피는 나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동양이 매화 향기 속에서 봄을 느끼듯 서양에선 아몬드꽃에서 봄을 찾고 희망과 생명력을 느낀다고 한다.고흐는 이 그림을 조카를 위해 그렸다. 그의 편지를 엮은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 따르면 고흐는 “그 애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랍니다”라고 적고 있다.고흐는 프로방스의 아를을 정말 사랑했다. 따뜻한 기후도 그렇지만 풍경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파란 배경에 아몬드꽃을 그리고, 붉은 배경에 아몬드, 또 복숭아꽃, 살구꽃을 연작으로 남겼다. 이탈리아나 남프랑스에서는 2월 정도에, 영국은 4월 정도에 아몬드꽃을 만난다고 한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에도 아몬드를 담아낼 정도로 서양의 예술가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그런데 아몬드 나무는 더 오래전 기록으로 남아 있다. B.C. 2000년부터 재배해 투탕카멘의 무덤 속에 왕의 사후 세계를 위한 물품 중에 포함됐고, 이집트뿐이 아니라 성경에도 자주 언급된다.창세기에는 야곱이 “이 땅에서 나는 가장 좋은 토산물을 가지고 가서 곡식을 얻어 오라며 아들들을 이집트로 보낼 때 아몬드와 피스타치오를 담았다”라고 기록했다.아몬드는 건강과 행복, 행운, 생명의 부활과 풍요를 상징한다. 특히 단맛을 더한 설탕에 절인 아몬드는 더 그렇다. 결혼식에서 설탕 입힌 아몬드를 나눠주는 까닭도 이런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아몬드처럼 매화도 사군자로 추앙받아 선비들에게 사랑받아 집집마다 뜰 안에 심었다. 가진 것은 청렴밖에 없다던 김계행의 뜻인지 서원 마당에 한 그루의 매화뿐이다. 가까이 가니 향이 은은하다. 혼자여도 아름다움을 채우기에는 부족하지 않다고 가지 끝까지 꽃을 피웠다. 기와를 얹은 담장 너머로 홍매화의 가지가 뻗은 모습에 상춘객들이 카메라를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홍매화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바로 옆 카페 만휴정에서 차를 사서 마루나 계단을 올라 강당에 올라도 좋다. 서원 곳곳에 찻상과 방석이 놓여있어 취향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새소리, 꽃에 날아드는 꿀벌 소리까지 음미하며 시간을 낚아도 좋다. 종택에 하루 방을 얻어 밤을 보낸 후 새벽녘에 사람들이 아직 찾지 않을 시간에 오롯이 혼자서 갓 꽃문을 여는 매화의 향을 독차지할 수도 있다. 봄이 더 깊어지기 전에 아를의 고흐처럼 묵계서원에서 홍매화의 자태를 마음에 담아가길 바란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4-03-12

우리집 화분 관리, 반려식물 치료센터로 오세요

최근 반려동물만큼이나 반려식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 식물이 피워내는 작은 잎사귀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기도 하고 기쁘게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은 관심만큼이나 식물을 잘 키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대부분 우리 집 화분 관리가 생각처럼 잘되지 않고 있다.그러다 집안에 방치되어 있는 식물을 볼 때면 또 다른 식물을 키워 볼까 고민하게 된다.식물을 키우는데는 분갈이는 기본, 병충해, 물주기, 일조량 등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럴 때 반려식물 치료센터를 찾으면 된다.식물 키우기에 재미를 느낀다는 반려인들은 반려식물 치료센터에 만족도가 높다. 반려식물 치료센터의 치료사로 참여하는 화원 사장님들은 간접홍보효과도 있어 화원을 운영하는 데에서도 인기가 좋다.반려식물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점점 더 높아짐에 따라 치료센터도 지자체마다 지정해서 사전 예약을 통해 가까운 곳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대구시에서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97%가 치료센터 이용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경주에서도 지난 2년간 2천200건에 달하는 실적을 거뒀다. 포항에서는 지난해 몇 군데의 꽃집에서 농림축산심품부에서 지원을 받아 관련 자격증을 갖춘 꽃집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포항시 농업기술센터에 전화로 문의한 결과 아직 반려식물 치료센터에 관련해서는 계획이 없다고 한다.포항의 한 꽃집 대표는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늘면서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식물진단과 치료, 상담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시에서도 이런 반려인들을 위한 반려식물 치료센터를 집 가까이서 찾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허명화 시민기자

2024-03-12

145점의 명화와 만나는 전시회

어!어!어! 3단 감탄사가 나올만한 작가들의 작품이 경주에 왔다. 2024년 한수원아트페스벌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 특별전이 경주예술의전당 4층 갤러리 해에서 열리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립미술관인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소장품으로 145점의 명화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총 아홉 개의 섹션으로 나눠져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첫 시작은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다. 페테르 클라스의 ‘게가 있는 정물’ 속 유리잔이 실제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반짝이고 있다. 그 옆으로 금방 쪄낸듯한 게가 배를 위로 하고 누워있다.당시 종교개혁, 해상무역과 도시화로 인해 부를 가진 상공업 관련 중산층의 증가, 예술애호에 대한 열정. 교회와 귀족층을 잃은 작가들은 대안이 맞물려 정물화가 유행하게 된다. 화려한 꽃들이 가득 찬 꽃병 그림의 다니엘 세이거스 작품 옆에 있는 게릿 아렌츠 반 뒤어스의 인물화도 인상적이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시선이 각기 다른 곳에 머무르고 있다. 두 번째 공간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터너의 작품으로 시작된다. 터너 특유의 하늘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음은 인상주의 이전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혁명까지로 이어진다. 신을 직접 보여주면 그리겠다는 사실주의 대표작가 쿠르베의 풍경화가 보인다. 쿠르베는 노동자와 농민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익숙한데 에트르타 백악 절벽은 풍경, 정물 등을 그리던 무렵 1869년에 완성된 유화 작품이다.인상주의 태동으로 넘어가자 루시엔 피사로의 작품이 화사하게 다가왔다. 붓 터치를 따라 구름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 같은 삶의 주인공 폴 고갱의 ‘악마들의 이야기’(1894~1895)는 공간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자아냈다. 에두아르 뷔야르의 다색 석판화 ‘모정’(1896)은 간결하지만 오래도록 인상이 남는 한편의 시 같은 느낌을 안겨주었다. 피에르 보나르의 ‘봄의 일몰’(1909)을 보며 잠시 봄을 느끼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작품 앞에서는 부러 머물렀다. 쉽지 않았던 그의 삶은 관람객의 발걸음을 잠시 동안 붙잡았다.다섯 번째 공간 인상주의 이후에서는 폴 세잔과 빈센트 반 고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진 20세기 초 아방가르드에서는 피카소의 작품들이 시작을 알린다. 앙리 마티스, 모딜리아니, 그리고 그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서점에서 샀던 작품집의 주인공 위트릴로의 작품이 보였다. 그 또한 위대한 작가이지만 수잔 발라동의 아들로도 알려져 있다.다음 코너 두 번째 20세기다. 국내에서 진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작가들이 많다 보니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통통한 주인공들로 알게 모르게 대중에게 익숙한 페르난도 보테르, 최근 국내 전시를 가진 데이비드 호크니, 대중들에게 가장 유명한 앤디 워홀, 명동 신세계 백화점 본점에도 작품이 놓여진 클래스 올덴버그, S기업에 의해 국내에서 유명해진 로이 리히텐슈타인, 팝아트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스퍼 존스 등이다. 여덟 번째 20세기부터 현재까지의 남아프리카 예술계를 거치고 나면 출구 옆 꿈에서 태어난 박물관이다.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탄생과정에 대한 설명과 인물화 세 점이 전시돼 있다. 이 작품들의 특이점은 평소 작품을 관람할 때처럼 정면에 서면 조명으로 인한 빛 반사로 인해 작품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작품 속 인물들과 눈을 마주하는 위치에 서면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측에서 설치했다고 하니 이유가 있을 터다. 전시는 2024년 5월 26일까지 계속된다./박선유 시민기자

2024-03-12

말의 힘

사람은 말을 통해 소통을 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소통의 도구는 말이고 말을 통해 인간관계가 이루어진다. 말 하는걸 들어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나 직업과 성격이 대충은 드러난다. 그만큼 말은 중요하고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말에 관한 실험은 이미 여러 매체에서 다루고 있는데 똑같은 토마토나 양파를 심어놓고 한 쪽에는 ‘사랑해’‘고마워’ ‘넌 이뻐’같은 말을 해주고 다른 한 쪽은 ‘넌 못생겼어’‘미워’‘바보야’같은 말을 매일 반복했을 때 좋은 말을 들은 식물은 싱싱하고 튼튼하게 자라고 나쁜 말을 계속 들은 식물은 시들시들 시들어서 제대로 자라지 못함을 볼 수 있다. 일본의 에모토 마사루의 물 결정 사진 또한 유명하다.물에 사랑과 감사의 말을 들려주면 아름다운 모양의 결정을 형성하고 악마나 짜증난다 같은 말을 들려주면 결정이 깨지며 이상한 모양으로 변하는 사진이다. 과학의 발달로 이젠 눈에 보이지 않는 말의 힘이 얼마나 큰지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비!/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느낌표를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황인숙 ‘말의 힘’)‘깨끗하다’‘싱그럽다’‘신선하다’‘달콤하다’‘사랑하는’ ‘소중한’, 시인이 들려주는 이런 말을 들어보라. 금방 기분이 좋아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머리 속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로 가득 차서 공중을 붕붕 떠오를거 같다. 이 신선한 느낌을 만지고 핥고 깨물고 터뜨려 보라고 시인은 속삭인다. 이 말들은 다정한 연인의 눈빛처럼 너무나 사랑스럽다. 지금 눈을 들어 잠깐만이라도 창밖을 보자. 시인이 말하는 아름다움이 바로 거기에 다 있다. 하늘이 있고 구름이 있고 바람이 있고 꽃이 있고 나무가 있다.말이란 세상에 내뱉는 순간 대자연에 고하는 하나의 축원이 된다고 했다. 자신은 뜻없이 뱉은 말이라도 그건 절대 사라지는 것이 아닌 하나의 기운이라고 했다. 그만큼 말의 힘이 무서운 것이다.4·10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움직임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말은 정치인들의 잠재적 덕목이라고들 했다. 정치인들의 발언이나 말실수는 곧잘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하며, 두고두고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정치인이 상황에 따라 본래의 입장을 바꾸는 소위 ‘플립플롭(Flip-Flop)’현상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들은 귀는 천년이요, 말한 입은 사흘이다”라는 말을 기억하자. 말하는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말이 비수가 되어 오래도록 가슴에 박혀 있기도 한다. 말은 형태가 없지만 세상에 내놓는 순간 생명력을 가지니 말이다.선조들은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절대 해서는 안 되고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도록 버릇을 들였다. 내가 만들어 가는 세상 이왕이면 좋은 말 아름다운 말을 하면서 살자. 그래야 내 삶도 좋아지고 사회도 행복해지는 것이 순리일테니. /엄다경 시민기자

2024-03-07

초등 1학년 습관이 초등 6년을 결정한다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출산율은 0.65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72명으로 OECD 38개국 중 출산율이 한 명 미만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교수가 한국은 심각한 저출산으로 ‘1호 인구 소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저출산에 따른 학령 인구감소 여파로 입학생 없는 초등학교도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는 입학생 없는 초등학교가 3년 전 대비 40% 넘게 늘어나 전국 157개 곳이다. 전북이 34곳으로 가장 많고 경북 27곳(포항 2곳), 강원 25곳 순이다. 광역 대도시 부산 1곳, 대구 3곳, 인천 5곳인 반면 서울, 광주, 대전, 울산, 세종은 한 곳도 없었다.더 소중해진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을 졸업하고 유아기를 벗어나 아동기에 접어들면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많은 변화가 오고, 이 시기에 자녀를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 시키는 부모들은 아이들 보다 더 긴장하며 걱정이 많아진다.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학습은 잘 따라갈 수 있을지, 담임선생님의 준비사항을 잘 적어 올 수 있을지 걱정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초등학교를 입학해 좋은 습관과 올바른 사고로 1년을 잘 보내고 나면 많은 감정의 변화로 우울증이 오기 쉬운 청소년 시기까지도 긍정적 사고로 무난히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이 시기 아이들의 특성을 제대로 알고 관리해 주어야하는 부모와 선생님의 관심은 필수이다.자녀를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시키는 새내기 부모를 위한 도서인 ‘초등1학년이 6년을 결정한다’는 막막하게 걱정만하는 부모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저자 박성철 선생님은 오랜 기간 사립초등학교에서 1~2학년을 가르치며 쌓은 경력으로 90여 권의 책을 썼다. 이 책은 부모들이 그 시기에 맞는 아이의 특성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아이가 자신이 아는 것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물어보는 것은 알고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서이거나 잘한 것을 정말 잘한 것인지 확인받고 싶어서이고, 빨리하는 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쓰기, 그림그리기, 문제집 등 무엇이든 꼼꼼히 잘 마무리 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의 공부습관, 생활습관, 1학년 아이의 특성까지 1학년 학부모를 위한 체계적이면서도 다양한 정보가 가득 담겨있는 책이다.인생의 중요한 전환기인 청소년기는 감정 변화가 심하다. 이 시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복잡한 심리를 이기지 못해 우울증을 앓는 청소년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청소년기 성장 통에도 밑거름이 되는 초등 1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저출산과 맞물려 전국 초등학교 신입생 모집 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는 작년대비 3만명 감소한 36만9천441명, 내년 31만9천935명, 2026년 29만686명으로 가파르게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와 더불어 지자체와 뜻있는 기업까지 많은 지원정책이 나오고 있다. 지자체별로 시행되고 있는 초등학교 입학 지원금도 그 중 하나이다.포항시는 초등학교 입학 지원금은 없으며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학생에게 30만원이 지원되고 있다.지난 3월 4일 많은 초등학교가 입학식을 했다. 설렘도 있고 조금은 낯설겠지만 좋은 부모와 선생님 그늘에서 우리 미래인 아이들이 밝고 맑게 잘 자라주길 바래본다./박귀상 시민기자

2024-03-07

계획을 계획대로

만물이 깨어나는 3월이 왔다. 학생들은 입학과 신학기 준비를, 동식물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따사롭게 피어날 준비를 한다. 모두가 새 일상 새 마음으로 깨어나는 이때에 혹여나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던 1월에 세운 계획이 틀어졌더라도 다시 세워보는 건 어떨까?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지속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계획을 이루어 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우선, 계획을 세울 때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하도록 세우는 것이 좋다. ‘다이어트’처럼 큰 주제를 설정한 후, 1년 동안 목표한 체중 감량과 식단, 운동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정한다.계획의 방향성을 정했다면, 그에 따라 계획을 세분화한다. 1년 계획을 월 단위, 주 단위로 나누어 계획을 세분화하여 실행 가능한 단계로 나눈다.그리고 세분화 된 계획에 따라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자주 점검하는 것은 목표한 바를 잃지 않는 좋은 방법이다. 하루, 한 주, 한 달 단위로 스스로 점검 할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시간을 정해두고 점검한다.계획에 따른 끊임 없는 행동력을 위해서는 동기부여도 중요하다. 동기부여 요소가 없다면 쉽게 질리거나 포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루 하루 계획을 성취 할 때마다 적절한 보상을 주거나, 계획을 달성했을 때 긍정적으로 변화된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혹여나 중간에 실패하더라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생각으로 좌절하지 않고, 실패를 양분 삼아 재도전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실패할 때 한숨 쉬고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으로 실현 가능한 계획으로 수정하여 재도전에 임한다.혼자 해내기 힘든 계획이 있다면 나와 계획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과 함께 계획을 공유하고 점검해주는 것도 계획 성취에 큰 힘이 된다.이제 연필과 종이를 들고 새로운 마음으로 올 한 해 계획을 세워보자. 성취하지 못했던 계획이 있다면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해보자. 2024년은 모두가 자신의 계획을 성취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김소라 시민기자

2024-03-07

‘건강한 밥상·그릇’으로 주목받는 봉화 유기

예쁜 그릇에 담은 음식은 더 맛있다. 한정식은 놋쇠 그릇에 정갈하게 담긴 반찬이 더 고급스럽게 보이고, 비빔밥은 놋그릇에 비벼 먹어야 제격이다.놋그릇(유기)이 건강한 밥상, 건강한 그릇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기는 놋쇠로 만든 생활 도구로 꽹과리, 징 등을 만들 때도 사용하고, 옛날 사람들은 유기그릇을 놋그릇으로 부른다. 단아하고 기품 있는 유기는 우리 조상들의 멋이 살아있고 고급스럽다. 닦으면 닦을수록 광택이 난다. 유기는 무공해로 인체에 해가 없으며, 벌레가 근접하지 않고 보온과 보냉 효과가 뛰어나 웰빙식기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봉화유기는 1830년대 봉화군 신흥리에서 제작이 시작됐다. 제련에 필요한 맑은 물이 흐르는 내성천이 있고, 금강소나무 군락 지역으로 쇠를 녹이는 질 좋은 숯을 구하기 쉬웠으며, 해변과 내륙을 오가던 내성장 보부상들이 전국으로 유통하니 봉화유기가 번창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봉화유기는 1920년대 전후로 유기의 7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명성이 대단했고, ‘안성맞춤’으로 널리 알려진 경기도 안성유기도 봉화유기장에서 기술을 배워갔다고 한다. 안성유기, 평안북도 정주의 납청유기와 봉화유기는 조선 후기 전국 3대 유기로 명성을 얻었다.조선팔도에 이름이 난 봉화 놋그릇 공장은 봉화읍 삼계서원 건너편에 있다가 신흥마을로 옮겨졌다. 신흥이란 지명은 유기로 새로 일어난 마을이라고 지금도 신흥리라 불린다. 봉화의 유기산업 번성은 개가 돈을 물고 다닐 정도로 경기가 좋아 ‘흥청망청 내성장’(봉화장 옛이름)이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했다.전성기에는 신흥마을 70가구 중 40가구가 유기를 생산할 정도였다. 1994년 봉화유기 고태주 유기장과 내성유기 김선익 유기장은 경상북도 무형무화제 제22호로 지정되었고, 봉화유기와 내성유기 두 기업은 2015년 경상북도 향토뿌리기업으로 지정됐다.봉화유기는 창업주 고창업, 2대 고해룡, 3대 고태주로 이어졌고, 내성유기는 창업주 김학수, 2대 김용법, 3대 김대경, 4대 김선익, 5대 김형순으로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장인과 놋쇠, 불, 물의 조화로 탄생하는 것이 방짜유기다. 주물유기는 구리에 아연을 넣은 주동으로, 방짜유기는 아연 대신 주석을 넣은 황동으로 만든다. 구리와 주석을 정확하게 78%, 22% 비율로 1600도 열에 녹여 만든 놋쇠를 달구어 수백 번 두들기고, 담금질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쇠는 더욱 강하고 견고해진다. 방짜유기의 주요 소재인 황동은 내구성이 뛰어나고, 박테리아 성장을 억제할 수 있는 항균 특성을 보인다. 또한, 열전도율이 높아 온도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기 때문에 따뜻한 요리에 적합하다. 스테인리스그릇, 양은그릇, 유리그릇, 플라스틱그릇이 일반화되면서 놋그릇은 우리의 밥상에서 사라져버렸다.하지만, 요즘 들어 건강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음식을 만드는 재료뿐 아니라 음식을 담는 그릇도 안전한 것을 많이들 찾고 있다. 이에 놋그릇이 다시 웰빙그릇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놋그릇은 보온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은은한 광택과 온후한 멋, 그리고 품위를 지녀 우리 민족이 애용해 온 그릇이다. 그 멋스러움으로 인해 구식 그릇으로 외면 받던 봉화유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류중천 시민기자

2024-03-05

시대의 눈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좋은 그림 전시가 있다는 소식을 이제야 들었다. ‘한국근현대명화전-시대의 눈’이라는 제목의 대규모 전시로, 한국 미술의 초석인 작품들로 엄선했다. 고려대학교박물관의 소장품으로 20세기 한국 미술의 변천을 살펴보는 의미를 담았다. 급변하는 근현대사와 발맞추어 성장한 한국 미술은 일제강점기, 6·25 전쟁, 군사정부, 민주화 등의 굵직한 역사 속에서 시대를 느끼고 대중과 소통하며 미래에 메시지를 남겼다.이번 전시는 작가 54명의 작품 61점을 시대별 5개의 키워드 ‘계승, 수용, 혁신, 자립, 융합’으로 구성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화가의 작품이 걸렸다니 늦기 전에 먼 거리라도 단숨에 달려갔다.구미를 여러 번 갔지만 문화예술회관은 처음 방문했다. 주차장을 찾으러 주변을 한 바퀴 돌며 붉은 건물의 앞뒤 풍광을 다 보았다. 포스가 남달랐다. 앉은 폼이 벌써 예술을 담았다고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누가 지은 것일까 검색해보니 김수근 건축가의 유작이었다.주변 건물들에 가려져 있지만 문화예술회관은 눈길을 끄는 붉은 벽돌의 성처럼 단연 돋보인다. 1989년 완성된 이 건물은 지방 도시 최초의 문화예술회관으로 기록되었다. 타 도시보다 먼저 건립된 것은 그 당시 전자산업도시로서 도시가 빨리 성장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문화예술회관 건물은 장중한 화강석 외장의 건물인데 구미문화예술회관은 오래된 유럽의 성당 같은 분위기다. 공연장 로비 홀 벽면에는 설계 당시 건축가의 콘셉트 스케치가 남아 있다.김환기의 ‘월광’, 노수현의 ‘송하관월도’, 박수근의 ‘복숭아’, 이중섭의 ‘꽃과 노란 어린이’, 장욱진의 ‘나무가 있는 풍경’, 천경자의 ‘전설’, 이숙자의 ‘청맥’, 배찬효의 ‘의상 속 존재-신데렐라’등 주옥같은 명작들을 전시했다.61점의 작품이 모두 눈길을 끌지만, 그중에 더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은 이응노의 ‘등나무’였다. 그의 30대 후반 작품으로 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대문을 통해 들여다본 한옥의 한 장면이다. 한때는 살림 규모가 제법 컸을 것 같은 기와집에 할머니가 어린 두 손자를 돌보고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낡은 집에는 어울리지 않게 비현실적으로 화사하게 핀 등꽃과 어울려 가슴이 싸하다. 낡은 대문에 붙은 태평양전쟁 포스터가 아픈 시절을 대신 전해주는 듯하다. 4월이면 초등학교 운동장마다 보랏빛 등꽃이 피어 향기를 흩뿌리고 바람에 홀연히 낙화하여 바닥을 또 물들인다. 등꽃이 마르기 전 전쟁에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길 기도하게 하는 그림이다.또 하나의 작품은 이종구의 ‘명환 아저씨’다. 그림 설명이 궁금해 가까이 가 읽어보니 1987년에 부대 비닐에 유채로 그렸다고 한다. 농부의 주름진 얼굴과 한껏 차려입고 장에 가는 길에 만난 모습, 가슴 부분에 초록색으로 ‘찐 눌린 밀쌀’이라고 상표명이 선명하다. ‘찐 눌린’이라는 글자가 고단한 농부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 같아서 한동안 그림 앞에 서 있었다.그 외에도 2021년에 작고한 김창렬 화가의 물방울 그림도 보고 2층으로 올라가면 체험 공간을 마련해놨다. 주의 깊게 살펴보기란 제목의 안내장을 펼치고 책상에 앉아 미리 놓아둔 그림 도구로 이종우의 ‘응시’를 보고 느껴진 감정이 무엇인지 낱말을 찾아보았다. 그 아래 박수근의 ‘복숭아’의 화면에 돌의 거친 질감을 느껴보고, 이대원의 ‘농원’은 색색의 점에서 색깔을 찾아내는 경험도 했다.이 모든 전시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며, 전시해설 프로그램은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4-03-05

대학생들 천원의 아침밥, 초·중·고로 이어지길

대학생들의 든든한 아침 한 끼, ‘천 원의 아침밥’이 올해도 계속된다. 고물가 시대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은 대학생들에게 인기 있던 든든한 아침밥이 예산 부족으로 지난해 2학기부터는 축소 위기를 겪는 등 중단위기에 처했지만 올해는 정부에서 지원 단가를 천 원에서 이천 원으로 인상함으로써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됐다.‘천 원의 아침밥’은 2017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지난해 초부터 인기가 크게 높아졌다. 처음에는 쌀 소비 촉진을 위한 목적과 청년층의 결식률(2022년 기준 59%)을 낮추기 위해 시작되었는데 고물가에 식비 부담을 느낀 대학생들의 반응도 높아져 오픈런을 하는 등 천 원의 아침밥을 이용하는 학생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이처럼 대학생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천 원의 아침밥’이 한편으로는 성장기에 있는 초·중·고 학생들에게도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초·중·고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결식률(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중·고등학생은 2~3명 중 1명꼴로 아침을 거르는 것으로 나타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지난해 교육부와 질병관리청의 청소년 건강 검사 표본 통계와 건강 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 5일 이상 아침을 거르는 청소년이 10명 중 4명으로 조사됐다. 청소년들의 아침 결식률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온 문제지만 최근에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 이유를 보니 ‘시간이 없어서’가 가장 많았다. 아침 식사는 어느 시기에 있던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특히 성장기의 학생들에게는 아침 식사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청소년기에는 아침밥을 먹음으로써 음식을 씹는 행위가 뇌 활동을 활성화해 집중력을 높이는데 큰 도움을 주고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또 우울감과 피로감도 줄일 수 있다.대학생들에게 ‘천 원의 아침밥’은 올해도 뜨거운 반응을 보일 거라 예상한다. 하지만 그동안 청소년들의 결식률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간과된 느낌이다. 몇몇 지자체나 교육청에서 청소년들의 아침 식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시간이 없어서’ 아침을 못 먹는다는 청소년들에게 공교육 안에서 건강한 아침 식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허명화 시민기자

2024-03-05

늘봄학교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

곧 새 학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새 학기의 설렘보다 초등 늘봄학교(늘 봄처럼 따뜻한 학교) 이야기로 뜨겁다. 현재 이 늘봄학교를 두고 각자의 위치에서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이 있다. 3월부터 늘봄학교는 2천여 학교가 초등 1학년부터 시작해 2학기 때는 전국으로 전면 시행된다. 2026년에는 초등학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다. 교육부 통계를 보면 올해 1학기 늘봄학교 운영 비율은 전국 평균 44.3%로 나타났다. 대구와 경북에서는 각각 30.2%, 32.1%로 초등학교 222곳에서 운영되는데 전국 평균보다 아래다.늘봄학교는 먼저 학부모의 돌봄 부담을 줄이고 저출생과 여성의 경력단절, 사교육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학교에서 하던 기존 돌봄에 방과 후 활동이 더해진 것이다. 또 기존 정규교육 과정 이외의 정해진 시간에 하는 돌봄이 아니라 등교 전 늘봄(오전 7시)을 시작으로 학교 수업 종료 후 늘봄과 저녁 늘봄(오후 8시) 까지 이어진다. 당연히 프로그램 이용비는 무료다. 여기서 돌봄 공백 해소를 희망하는 부모님들은 반기고 있지만 아이들이 늦게까지 학교에 머물러야 해서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늘봄을 할 인력 문제와 늘봄 공간, 기존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나는 등 혼란스럽기만하다.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올해 늘봄학교를 운영한다는 한 학부모는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7시 반까지 늘봄이 이루어지는데 간식과 저녁까지 주니까 괜찮아서 신청하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아이가 너무 학교에 오래 있는 것아 안쓰럽기도하다. 학부모들이 얼마나 신청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다른 학부모는 “근처 지역아동센터에도 오후 5시 되면 아이들이 집에 간다. 아이들이 힘들 것 같은데 늦게까지 운영된다고 해도 그 시간에 아이들이 많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지역의 한 초등교사는 “돌봄이 들어오면 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되고 교사의 업무 부담 또한 늘어날 것으로 본다. 또 학교마다 운영하는 프로그램에도 차이가 많다. 도시와 농어촌 지역 등 고려할 게 여러 가지다. 단위 학교가 아닌 늘봄학교 통합센터가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이런 가운데 경북에서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온종일 돌봄을 위한 ‘우리동네 돌봄마을’을 통해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 어디서든 돌봄이 가능하게 하는 경북형 늘봄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지역의 대학과도 협업해 늘봄학교에 필요한 인적 자원 양성에도 힘쓴다.경북은 교육청의 늘봄학교 운영을 강화하고 중소기업에 다니는 학부모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자녀가 초등학교 2학년까지 아이 돌봄 시간도 지원한다. 등하교 동행 시간 도입, 아이 동반 근무 사무실 별도 운영, 자녀 돌봄 친화 근무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등의 학교와 지역사회를 잇는 거점형 돌봄센터도 갖춘다. 이를 통해 경북형 완전 돌봄이 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한 학부모는 “내 집 가까이서 아이의 늘봄이 이루어진다면 부모의 입장에서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고 정말 좋은 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 돌봄이 아니라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학교 밖의 지역의 공동체 자원을 활용한다면 수요자 중심의 멋진 늘봄학교가 될 것 같다”고 했다./허명화 시민기자

2024-02-27

봉평 신라비와 냉수리 신라비

울진 여행 중이었다. 죽변의 해안 스카이레일을 타려고 가다가 ‘봉평리 신라비’라는 안내판을 보고 차를 세웠다. 드넓은 주차장에 들어가니 신라비 전시관 건물이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신라의 비석이라 하니 구석에 돌로 된 비 하나 섰겠지 하는 우리의 예상이 빗나갔다.신라비의 중요성 때문인지 전시관 규모가 상당했다. 주차장에 공중화장실과 도서관이 함께 있었고, 입구에 울진 곳곳에 있던 비석들을 한곳에 모아 놓아 비석거리를 조성하였다. 여기 비석들은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 평해 군수, 울진 현령 등을 지낸 지방관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세운 선정비와 불망비 송덕비였다.제1전시실에서는 울진 봉평 신라비가 발견된 이야기와 1500년 전 신라의 어느 날을 상세히 적어 놓았다. 1988년 1월 죽변면 봉평 2리 118번지 논을 갈기 위해 작업을 하던 중 발견하여 신라 비라고 확인했다. 오래 땅속에 묻혀 있었던 까닭으로 비문의 일부가 마멸되어 정확한 판독이 어려우나 신라 법흥왕 11년(524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신라가 영토확장으로 동해안 지역에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곳 거벌모라(居伐牟羅·봉평)지역을 새로 편입함에 따라 주민들의 신라 부속 반대를 위한 항쟁사태가 일어나자 신라가 이를 응징하기 위해 육부회의(六部會議)를 열고 대인(大人)을 파견하여 벌을 주고, 다시 대항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편 및 신라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비를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비는 사각장방형의 자연석 화강암에 한 면을 다듬어 비문을 새겼는데, 규모는 작지만, 형태는 고구려 장수왕 2년(414년)에 세운 광개토대왕비와 유사한 고구려계의 특징을 보인다. 비문은 예서풍의 10행 398자로 완벽한 판독문이 제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당시 신라가 동해안 지역에까지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노인법, 장형의 기술로 볼 때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연결된다. 또한 육부회의가 이때에도 행해졌음을 알 수 있고, 법흥왕을 매금왕(寐錦王)이라 했으며 각 부의 신료들과 함께 명령을 내려 당시 신라 왕권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비는 당시의 신라영토, 율령 체제, 왕권의 한계, 관료제도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크다. 국보 제242호로 지정되었다.제2전시실에서는 역사를 엮는 석비가 곧 역사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석비의 종류와 어떻게 만드는지, 한국, 중국, 일본의 것을 비교했다. 6~7세기 신라의 석비 연표체험실은 봉평리 신라비 모형을 만져보며 신라비에 대하여 좀 더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벽에 그려놓은 연표를 보자니, 반가운 ‘포항’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봉평 신라비 보다 더 연대가 빨랐다. 사진은 신광면행정복지센터 마당에 있는 냉수리 신라비였다.냉수리 신라비의 의의는 첫째, 현재까지 발견된 신라시대의 비 중에서 포항 중성리 신라비 다음으로 연대가 빠르다는 점, 둘째, 한 인물의 재산 소유와 상속 문제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이 시기 경제 관계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 셋째, 6부·갈문왕·사라·관등·촌주·도사 등 정치·제도사와 관련된 중요한 내용을 다수 보인다는 점, 넷째, 국어학적으로 이두(吏讀)의 성립 시기와 성립 과정을 추정하게 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특히, 이 비는 울진 봉평리 신라비와 긴밀한 상보적 관계이다. 이렇게 중요한 국보가 비는 겨우 피하나 바람은 고스란히 맞는 한댓잠을 자는 신세다. 봉평리 신라비는 큰 지붕을 이고 훤한 조명 아래 사진도 함부로 찍지 못하도록 고이 모셔놓았는데 말이다. 포항시에서 번듯한 살림살이를 마련해 이사하도록 애써야 할 중요 문화재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4-02-27

“모든 액살 소멸이요”

2024 갑진년 정월대보름 달맞이행사가 최근 안동시 낙동강변 둔치에서 열렸다. 안동문화원 주관으로 지신밟기, 제기차기, 투호놀이, 연날리기, 풍물놀이, 윷놀이, 쥐불놀이 등의 민속놀이체험과 액막이쓰기, 기원제, 달집태우기, 소원빌기 등의 달맞이행사가 열렸다. 또한 명원문화재단 안동지부가 준비한 오곡밥, 약밥, 안동식혜, 전통차, 부럼 깨기, 귀밝이술 등의 음식체험과 복조리 나눠주기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됐다.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음력 정월(한 해의 첫째 달) 15일에 액운을 씻고 풍요를 기원하는 세시 풍속을 이어왔다. 정월대보름에는 새벽에 귀밝이술을 마시고 부럼을 깬다. 부럼은 딱딱한 열매류인 땅콩, 호두, 잣, 밤, 은행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부럼을 깨물면 한 해 동안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전해온다. 집집마다 약밥, 오곡밥, 찰밥을 만들어 먹었으며 시래기, 가지, 호박고지 등 가을 겨울 내 말려두었던 묵은 나물을 삶아서 기름에 볶아 먹기도 했다.또, 만나는 이들에게 “내 더위 사가소”라고 먼저 말을 해야 그해 더위를 떠넘길 수 있다고 한다. 정월대보름에 누군가 이름을 부르면 모르는 척 하거나 먼저 선수 쳐서 더위를 팔아야 한다.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달맞이를 했는데 짚이나 솔가지 등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고 피어오르는 연기와 더불어 보름달을 맞이하는 ‘달집태우기’가 백미다. 또한 그해의 새싹이 잘 자라 전답의 해충이 사라져 한 해 농사가 잘되도록 쥐불을 놓는 ‘쥐불놀이’를 즐겼다. 안동시에서도 이를 재연해 쌓아둔 솔가지에 ‘모든 액살 소멸이오’라는 현수막과 함께 안동시 24개 읍면동의 액막이 문구와 소원 문구를 걸어두고 달집태우기를 했다.정월대보름은 지신밟기, 윷놀이,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등 농경사회 마을사람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축제였다. 한 해의 액운을 물리치고 시민들의 무사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옛 조상들의 지혜와 한겨울에도 흥겨움을 더하는 전통문화가 돋보인다.‘대보름’의 달빛은 어둠,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밝음의 상징이라고 한다. 어둠과 재앙에 맞섰던 선조들의 지혜와 바람대로 갑진년 새해, 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4-02-27

‘바람의 언덕’에서 눈과 만나다

재난문자가 연이어 울렸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 많은 눈도 내리니 조심하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언제부터인가 경주엔 눈이 내리지 않았다. 아니 경주 시내권이라고 표현하는 쪽이 맞겠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시내권을 제외하고 제법 큰 눈이 내렸다. 참고로 경주시는 경북에서 안동시에 이어 행정구역 면적이 두 번째로 넓다. 그래서 어느 동은 비가 내리는데 어느 동은 해가 날 때도 있다. 좁은 시내권만 생각한다면 경주가 전국에서 외국인 비율이 두 번째로 높다는 사실만큼 외지인들에겐 낯선 소리일 것이다. 먼 기억에 의하면 겨울 즈음 처마 밑에는 눈밭으로부터 어린 발을 보호하기 위한 부츠가 대롱대롱 매달려 말려지고 있었다. 눈은 용케 작은 부츠 안으로 들어와 매번 양말을 축축하게 만들었다. 장갑도 부츠도 눈에 젖어 제 기능을 못할 땐 아랫목으로 뛰어들어 언 손발을 녹였다. 분명 기억엔 눈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뜸해지더니 감감무소식이 되었다. 그렇다 보니 먼지처럼 날리는 눈에도 기뻐하게 됐다.아이에게 눈은 새벽녘 갑자기 깨어나 두 손으로 만져본 게 전부였다. 놀이공원 속 인공눈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래서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며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느낌을.눈 소식이 전해진 날부터 SNS에는 사람들이 올린 눈 사진이 가득했다. 후보지로 두 군데를 선정했다. 첫 번째로 고른 곳은 암곡이었는데 도착했을 때는 이미 거의 다 녹아 맛보기 차원의 경험만 하고 돌아와야 했다.아쉬움에 다음 목적지를 골랐다. 바람의 언덕. 경주 풍력발전 단지다. 친환경 청정에너지 생산을 위해 한국동서발전과 동국SC가 건설한 상업용 풍력발전 단지로 총 7기의 풍력 발전기가 가동 중이다. 이곳은 무료로 개방 중이며 멋진 풍경과 산책로로 인기다. 사계절 내내 인기지만 초록이 가득한 계절에 경풍루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특히나 멋지다. 주차장과 화장실도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단 주변에 상가나 식당이 없다 보니 노약자를 동반할 때는 미리 간단한 요기 거리를 준비하면 좋다. 취사는 불가다. 단점으로는 대중교통으로는 이동이 어렵다는 점이다.평소 장거리 운전을 내켜하지 않지만 눈에 대한 집착으로 내비게이션을 켰다. 대략 40~5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30여분 달리자 본격적인 난코스가 등장했다. 아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묵꼬치 같은 길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다들 서행 중이었다. 긴장 속에 십여 분이 지나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온천지에 눈이다. 서둘러 부츠를 신기고 눈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눈과 찬바람이 만나 코끝이 시리다. 쨍하게 차가운 겨울바람. 그리웠던 느낌이다. 부러 눈이 깊게 쌓인 곳을 골라 밟아보았다. 뽀드득 소리가 난다. 눈이 내린지 이틀이 지나다보니 녹은 부분은 미끄러워 산책은 포기하고 한 곳에서 놀기로 했다.작지만 눈사람을 만들고 모형틀로 이런저런 모양들을 찍어내다보니 시간이 꽤 지났다. 눈싸움을 하고 싶었다는 아이의 말에 눈을 뭉쳐 던져댔다. 내내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들 즐거워보였다.오후가 되자 해가 들기 시작하면서 풍력 발전기를 덮고 있던 뿌연 안개도 걷히기 시작했다. 젖어든 장갑과 옷들이 집으로 갈 시간을 재촉했다. 모처럼 찾아든 하얀 눈 덕분에 아이도 엄마도 모두 만족한 하루였다./박선유 시민기자

2024-02-27

봄의 전령사 변산바람꽃을 만나다

절기상 입춘이 지나면 기온과 상관없이 대지는 이미 봄을 준비한다. 겨우내 대지의 품속에서 부지런히 생명을 잉태한 봄꽃들은 가을꽃과 다르게 대지를 나설 때 꽃망울을 입에 물고 올라온다. 복수초, 변산바람꽃, 노루귀, 깽깽이, 할미꽃 등등 사랑스럽도록 여리고 앙증맞은 우리 풀꽃들은 낙엽 쌓인 마른 산야에 고요하면서도 힘차게 꽃망울을 밀어내며 봄을 알린다.2월 중순 즈음하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오는 봄꽃 중 눈 속을 뚫고 올라오는 복수초가 가장 먼저이고 이어 변산바람꽃, 노루귀 등이 올라온다. 입춘이 지나면 포항에서 가까운 금곡사와 오어지 댓골, 보현산 천문대 등지로 봄의 전령사들을 맞으러 간다. 매년 만나지만 여전히 설렌다. 눈에 잘 띄지 않아 혹여 발에 밟힐세라 낙엽 위를 조심조심 거닐다 언뜻 그들과 마주하게 되면 절로 심장이 멎는다. 그 작고 앙증맞은 변산바람꽃의 속이 비좁도록 옹기종기 들앉은 한 무더기 우아한 꽃 수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경이롭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절로 깨우쳐지는 기분이다.이렇게 사랑스런 우리 풀꽃들도 나라 뺏긴 설움을 함께 했다. 일제(日帝)로부터 광복된 지 80년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곳곳에 잔재가 남아있고 우리의 작고 앙증맞은 풀꽃들의 이름에서조차 예외는 없었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시인 이윤옥님이 쓴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에서는 아직도 일제를 벗어나지 못한 식물용어와 국어사전에서조차 알아듣기 힘든 일본말 그대로의 설명이 많음을 밝히며 앙증맞고 예쁜 우리 풀꽃들의 이름에도 음흉하고 질 낮은 일제 잔재의 흔적이 숨겨져 있음을 개탄했다.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개불알꽃과 며느리밑씻개는 꽃을 보는 순간 이렇게 예쁜 꽃에 누가 이렇게 흉측한 이름을 지었는지 의아해진다. 일본인들이 한반도 식물을 채집, 조사하던 일제강점기 당시는 학자들도 우리 풀꽃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기가 힘들었다. 개불알풀은 앙증맞도록 예쁜 꽃을 두고 굳이 작은 열매가 불알을 닮았다고 개불알로 지었다. 예쁜 우리말 이름인 ‘봄까치꽃’으로 검색을 해도 ‘개불알풀’로 뜬다. 며느리밑씻개의 일본 명칭은 ‘마마코노시리누구이’이다. 마마코(繼子)는 의붓자식, 시리누구이(尻拭い)는 볼일 본 뒤의 밑씻개를 뜻하는 것으로 일본에서도 의붓자식은 작은 가시가 촘촘히 박혀있는 풀로 밑씻개를 해 줄만큼 미웠나본데 그걸 하필 며느리로 번역 했다. 우리 어머니들의 고된 시집살이가 꽃 이름에서도 나타난 것이 더 아프다. ‘개’자가 붙은 식물들 대부분도 일부러 격을 낮춰 부르거나 폄훼한 것들이다. 개나리, 개암나무, 개벚나무 등은 원래 이름 앞에 붙었던 ‘조선’이 ‘개’로 번역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야생화 도감을 비롯하여 넘쳐나는 풀꽃과 들풀의 사진첩 대부분이 아무 문제의식 없이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유래를 알 수 없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다행히 봄을 알리는 변산바람꽃은 전북대 선병윤 교수가 1993년 변산반도에서 채집하여 처음으로 세상에 알리며 학명을 변산바람꽃이라 명명했다. 한국 특산종인 변산바람꽃은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의하면 일본학자가 먼저 발표한 일본 바람꽃(節分草)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져 일본학자에게 선취권이 주어진 듯하다. 같은 종이 일본에 있다하더라도 변산바람꽃은 우리 산야에서 그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봄을 알리는 우리의 야생화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에서는 부르기 민망스럽고 욕처럼 들리는 식물명을 순화하여 예쁜 우리말 이름으로 바꾸자는 활동을 하고 있고, ‘창씨개명 된 우리 풀꽃’의 저자 이윤옥 시인은 관계 기관이 유기적으로 일제 잔재가 있는 풀꽃 이름을 대대적으로 정리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는 곧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도 하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4-02-22

‘춤바람’

책을 읽다 한 대목이 눈에 확 들어온다. 춤에 관한 내용이다. 나는 음정도 문제지만 박치다보니 그동안 노래방 가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몸치까지 가졌으니 춤은 내겐 더 요원한 일이다. 그런데 춤이 내 눈에 들어온다. 지금 내 나이도 갱년기를 살아가고 있다. 변화하는 몸, 욕망하는 자아….‘월경 끝’그 이상, 여성 호르몬의 불규칙과 감소로 인한 본인만이 느낄 수 있는 상실감은 더 커졌다. 곧 노화의 길로 급격히 들어서는 길이라 생각하니 우울해진다.나도 치매기가 있는 엄마가 겪었던 기억력 감퇴, 늘어가는 주름, 안면 홍조, 수면 중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 땀, 불면증이 따라붙는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이 많아진다. 우울한 마음을 벗기 위해 책을 파고든다. 나이 많은 남녀가 춤을 춘다. 나는 그들의 춤을 들여다보았다.그들의 몸짓에 리듬이 있다. 얼굴 가득 담긴 흥을 보니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누군가가 들려준 콜라텍 이야기들을 들을 때 마다 유치하고 저질스럽고, 일명 날라리, 제비들이 모이는 곳으로만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들은 중장년층들의 권리인 양 행복에 겨워하며 춤추는 모습을 보여준다. 샤방샤방한 옷을 입은 여자들과 정장을 차려 입은 신사들이 화려한 조명 불빛 아래에서 춤을 춘다. 내가 그 속에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갑자기 흥분이 되었다. 내 몸이 움찔움찔 기분이 막 좋아짐을 느꼈다. 나도 언제가 한번쯤은 해보리라는 생각만으로 가득찬다.도전해 보기도 전에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진다. 나도 그들과 함께 있다면, 음악과 함께 흥이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심장이 붉게 뛰는 것 같다. 특정한 언어형식에 묶이지 않은 몸의 언어에 대한 흥미로운 시사점을 안겨준다. 다시 말하면 몸이 말해주는 소통과 표현을 가능케 해주는 매체임을 알게 해준다. 춤은 도구나 수단이 필요 없는 예술 행위이며, 몸 정체성의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파격적인 자기표현이다.늙음이란 혼자가 되는 과정이다. 현실을 똑바로 직면할 용기와 현실 너머를 꿈꿀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고독 속에서 자신을 전면적으로 만나는 삶이다. 외로움이 아니라 ‘외톨이’라는 불안하고 고통스런 고립의 감정은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의미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자신과 전면적으로 만나는 고독의 시간은 공허나 고립, 불안을 동반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라고 하지 않는가. 홀로이면서 함께 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필요한 지금, 나는 잠시 춤바람에 마음이 설렌다.친구에게 전화했다. 조금 전 내가 느낀 마음을 얘기하자 그녀가 박장대소를 한다.“니가?” /김영주 시민기자

2024-02-22

버려진 양심

곧 터질듯한 꽃망울과 새순, 경쾌하게 흐르는 물소리에 즐거운 비명이 절로 나온다. 대구에 나온 남편과 아파트 옆 욱수천 산책로를 걸었다. 남북으로 길게 흐르는 천변 산책로 중에 오늘은 남쪽 욱수골로 방향을 잡았다.청송 우리 마을 앞 개천도 이렇게 잘 정비하면 얼마나 좋을까. 차로를 따라 걷는 위험도 없이 즐겁게 산책할 수 있을 거라고 남편과 이야기했다. 욱수골 묵 집에서 두부와 파전에 막걸리를 기분이 좋게 마시고 다시 천변을 걸었다.군데군데 검정 비닐이 나무에 걸려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풍경이었다. 좀 더 내려가니 천변의 기울어진 언덕에 여기저기 흩어진 비닐과 휴지, 깡통이 보였다. 왜 저기만 저렇게 쓰레기가 많을까 싶어 자세히 보았다. 그 위로 벤치가 몇 있었다.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시설이 되어있는 곳이었다. 주변을 보니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았다. 숲이 어우러진 계절에는 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쓰레기가 나무들이 앙상한 지금 그대로 노출이 되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유독 쓰레기가 넘쳐난다. 쓰레기통이 없어서 양심까지 얹어서 버린 것일까.그 풍경을 보면서 청송 집 마을의 일이 떠올랐다. 집 앞에는 제법 넓은 폭의 잘 정비된 하천이 있고 다리가 있다. 예전에는 하천과 지면의 차이가 크지 않았는데 강바닥에 쌓인 흙을 파내면서 점점 깊어졌다.가끔 동네의 아낙네들이 힐끔힐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면서 도로를 건너 다리 옆으로 가서 뭔가를 던진다. 못 본 척 있다가 그녀가 가고 나서 그곳으로 가 보았다. 음식물 쓰레기와 나물 다듬은 찌꺼기 등이 버려져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와 오물들을 왜 다리 밑에 가져와 버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흥분한 나에게 남편은 몇 번을 이야기해 봤는데 고쳐지지 않았다고 했다.며칠 전에 다시 확인해 보았다. 여전히 쓰레기 투척은 그대로였다. 남편은 그냥 있으라고 하지만 동네의 깨끗한 하천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 쓰레기 투척 금지라는 팻말을 만들어 붙이거나 벌금을 매기든지 강제적인 방법도 좋을 것 같다.결혼 초기에 하천에서 미꾸라지, 골뱅이를 잡았던 일이 그립다. 지금은 생활하수와 쓰레기로 더러워져 물에 들어갈 생각도 못 한다. 마을 입구 강에서 고기도 잡고 식구들 모두 물놀이하던 때로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이제라도 동네 앞을 흐르는 하천은 마을 주민이 앞장서서 깨끗하게 관리해야만 한다. 이 하천이 우리 세대의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내 자식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뺏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우리 세대가 자식 세대에게 강도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할 것이다.마을 주민들이여 부디 쓰레기는 자기 집에서 처리하기를 제안한다. 또한 마을마다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봄맞이 하천 대청소는 어떨까. /손정희 시민기자

2024-02-22

등산객 산악사고 응급 대응력 문제없나?

바야흐로 봄철이 시작되었다. 이 비가 그치면 사람들은 봄을 느끼려 산행하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아직은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시기이다. 모든 것이 부드러워지는 봄에 비해 움츠렸던 사람들의 신체와 정서는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시기일수록 각 개인은 산행하기 전에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고 등산 설명서를 한 번 더 숙지하고 산행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사전 준비를 한다 해도 예기치 못한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사고에 대비하여 경북소방본부가 포항 내연산과 청송 주왕산에는 안전한 등산을 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산악안전 지킴이 배치와 산악위치 표지판을 설치하여 안전사고 시 대응능력을 예전부터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효력이 불시에 사고를 당한 시민들에게 대단한 도움이 되고 있기에 고생하시는 소방 안전 관계자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다.지난해 가을 포항의 한 시민이 내연산 향로봉을 등산하고 내려오다 삼지봉 근처에서 미끄러져 발목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었다. 걸을 수 없는 상태라 주위 나뭇가지와 손수건으로 나름 부목을 만들어 자체 응급조치를 한 후 119에 응급구조 요청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옆 산행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소방본부에서 설치한 산악위치표지판에 적혀있는 지번과 안내에 적힌 것을 119에 신속하게 신고한 덕분에 사고 위치를 공유하는 데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다. 사고를 당한 시간은 오후 3시쯤이었는데 구조대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쯤이었다. 신고에서 도착까지 2시간이 소요 되었다. 응급 구조대가 삼지봉 인근까지 올라오는 시간은 아주 잘 훈련된 119구조대원이기에 망정이지 이렇게 빨리 올라오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구조대원들도 개인의 체력 차이도 분명히 있었을 것인데 모두 같이 뛰어온다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고 죄송하였다.사고 후 2시간, 부상한 사고자의 처지에서는 그 시간은 긴 기다림이었다 한다. 한편 온몸이 온통 땀범벅이 되어 올라온 구조대원을 보니 다친 고통보다 미안함이 더 컸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날씨는 좋았지만, 오후가 되니 약간의 저체온증도 오고 부상 후 오는 두려움으로 정신은 혼미해지고 그 공포는 엄청났었다고 한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리라 싶다.이런 사고자들을 위해 119구조대가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최대한 빨리 접근하여 고통과 두려움의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안은 없겠는가? 더구나 사고자 부상을 신속히 조치하여 진행을 멈추어 주거나 나아가 위급한 상황의 황금 시간을 놓치지 않아 귀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좋은 방안은 없을까. 험한 산악 속에서 사고자를 도우려고 출동하는 구급대원들의 안전과 노고를 덜어 주는 방법은 없을까.그날 사고를 당했던 시민은 말한다. 포항의 내연산의 경우 구조대가 더 빨리 오는 방법이 있다. 이는 삼지봉 인근까지 임도가 나 있다. 산악구조 차가 있었다면 이 임도를 따라 구급대원들의 접근성과 기동성이 높아져 앞서 말씀드린 사례처럼 2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위급한 상황에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황금 시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 해 산이 많은 충청북도소방본부에서는 도내 5개 지역에 산악구조 차를 배치하여 산악사고 조난구조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우리 경북도에서도 그리고 포항시와 의회에서도 충분한 논의를 하여 하루빨리 인근 내연산에서 산악구조 차가 누비고 다니며 인명을 구하는데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박효조 시민기자

2024-02-22

독립운동가 넋 서린 봉화 바래미 마을

봉화군청에서 영주시로 나가는 도로변 우측엔 기와지붕을 눌러쓴 고택들이 준엄하면서도 어진 선비의 모습으로 앉아있다. 마을 앞 내성천 물보다 낮은 곳에 마을이 있다고 ‘바다 밑’이라는 뜻의 바래미라 부르는 의성 김씨 집성촌이다.시간이 멈춰버린 기와집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찾는 이의 몸가짐을 경건하게 해주는 풍경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전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헌납하고 목숨 바쳐 독립을 외쳤던 마을. 우국지사들이 살았던 이곳 바래미마을 전체가 독립운동가들의 고택으로 묵묵히 역사의 무게를 깔고 앉았다.대를 이어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을 했다는 이유로 3대에 걸쳐 36년 옥살이를 한 사람들.‘파리장서’ 초안을 작성한 영남 유림의 요람이 바로 바래미마을이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바래미마을 100여 가구 주민들이 만회고택 명월루에 모여 항일운동을 시작한다.3·1운동이 일어나던 해인 1919년 이 마을 출신 심산 김창숙 선생이 바래미마을을 찾아오고 파리만국평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파리장서) 초안이 만회고택 명월루와 혜관구택 사랑채에서 작성됐다. 독립청원서 서명에 앞장선 사실이 발각돼 바래미마을 김건영, 김순영 등 원로들이 끌려가 고초를 겪은 게 ‘제1차 유림단 사건’이다. 이 사건은 3·1운동과 쌍벽을 이룬 중요한 독립운동으로 평가받는다.제1차 유림단 사건 이후 상해로 갔던 김창숙이 6년 뒤 귀국, 바래미마을에 들어와 독립운동 자금을 거둬 전달한 것도 발각돼 모금에 앞장선 김홍기, 김창근 등 8명이 옥살이를 했다. 이것이 ‘2차 유림단 사건’. 이후에도 항일단체인 독서회를 조직해 김중문, 김덕기 등 5명은 구속돼 3대째 수난을 겪었다.이런 사실을 증명하듯 바래미마을에서는 12명이 독립운동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바래미마을은 300년 전통의 선비 마을답게 옛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개암종택, 팔오헌종택, 학록서당, 추원사, 단사정, 명월루 등이 그 옛날 반촌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 이중 대표적인 마을 안쪽 만회고택은 순조 30년(1830) 과거에 급제해 승정원 우부승지를 지낸 만회 김건수의 고택이다.1910년 한일 강제병합으로 나라를 잃은 민족은 좌절감에 빠졌지만, 곧 다시 일어나 독립을 향한 의지를 불태웠다.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파리장서를 숙의하고 초안을 작성한 바래미마을은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독립청원서에 서명한 봉화 출신 9명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고, 국가 보훈처는 봉화군에 있는 한국유림파리장서비를 현충 시설로 지정했다.가족과 가문의 안위를 뒤로 하고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몸과 재산을 바쳐 헌신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호국정신을 계승해야 하는 게 우리의 책무일 것이다. 옛이야기들이 들릴 듯 시간이 멈춰버린 고택 너머로 흐르는 내성천 물줄기엔 바래미마을의 독립정신이 녹아 흐르고 있다. /류중천 시민기자

2024-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