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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십자군 이야기1`

평화를 염원하는 `神의 전쟁` 역사서 `로마인 이야기`이야기로 잘 알려진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74·사진)가 십자군 전쟁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욕망과 의지를 다룬 `십자군 이야기`(문학동네 펴냄)`시리즈를 내놓았다. 이 시리즈는 저자가 필생의 역작이라고 말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작품으로 전체 3권 가운데 일본에서는 2권까지 출간됐으며 국내에는 이번에 1권이 나왔으며 10월께 2권, 내년 상반기에 마지막 3권이 번역돼 나올 계획이다.책은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200여년 지속된 인류 사상 최장의 전쟁이자 세계 2대 종교가 격돌했던 십자군 전쟁을 장쾌한 서사로 다루며, 권력자들이 종교와 이념을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지만 그 속에는 정치, 경제, 사회적 이익을 둘러싼 욕망이 들끓고 있음을 보여준다.이 책은 십자군이 1096년 유럽을 출발해 예루살렘을 정복한 과정과 이후 십자군 국가의 성립 과정, 그리고 1118년 십자군 제1세대가 역사에서 퇴장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힘 있는 문장은 십자군 전쟁을 지속시킨 인간의 복잡다단한 욕망을 현재진행형의 생생한 숨결로 재현한다.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종교와 이념 혹은 지역적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균형 감각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스스로 “진정한 평화주의자가 되길 희망하는 내가 온 정성을 다해 조사하며 기록해나간 전쟁 역사서”라고 했다.`십자군 이야기`에는 중세 시대에 대한 기존의 역사서에서 보이는 그런 시각과 관점에 의한 왜곡이 없다. 서구 중심의 시각이나 이슬람 중심의 시각, 혹은 보수적 시각이나 진보적 시각이라 불리는 것들에서 벗어나 그 시각 때문에 왜곡시켜 보지 않는 강점이 있는 것이다.또한 `십자군`이 가능했던 중세 시대의 물적 토대와 구조에 대한 분석은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 봉건제와 장원, 농노, 왕과 봉건 제후의 관계, 기사도,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법왕을 중심으로 한 카톨릭 교회의 갈등(비잔틴 제국의 성상 파괴 운동과 가톨릭 개혁 운동) 등 그런 것에 힘을 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그리고 있는 중세의 인간들은 어찌 보면 중세의 인간스럽지 않다. 어폐가 있는 말이지만 중세적이지 않다. 현대적이다. 그들의 신념과 이상, 욕망들이 그렇기에 생생하게 다가온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문학동네 펴냄, 시오노 나나미 지음, 1만3천8백원

2011-07-21

`내가 누구게?`

생각의 힘 키우는 한국 첫 수수께끼 동시집우리나라 동시문학의 거장, 신현득 시인의 스물네 번째 동시집 `내가 누구게?`(사계절 펴냄)가 출간됐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출간되는 `수수께끼 동시집`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동식물과 자연 현상, 인물 등을 소재로 한 37편의 수수께끼 동시가 실려 있다.시인은 어린아이 특유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작고 여린 생명, 하찮아 보이는 사물 하나하나에도 동심을 불어넣는다.`내가 누구게?`는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시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천진난만한 감성이 살아 숨 쉬는 동시집으로, 시 한 편 한 편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마치 외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조곤조곤 수수께끼 놀이를 하는 것처럼 마음 한편이 뜨뜻하게 달궈진다.무엇보다 늘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노 시인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더욱 가치 있는 책이다.신현득 시인은 “수수께끼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는 재미있는 말놀이”이며 “이런 수수께끼 형식을 빌려서 쓴 동시를 수수께끼 동시”라고 정의한다.또한 “수수께끼 동시는 우리나라에서 첫 삽을 뜨는, 동시의 새로운 갈래”이며 “비록 말놀이 형식을 띠고 있지만 엄연한 문학작품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일찍이 고(故) 윤석중 선생이 수수께끼 동시를 계획했으나 끝내 작품을 내어 놓지는 못했다. 따라서 `내가 누구게?`는 그가 살아생전 이루지 못한 뜻을 후배 시인이 이어나가는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사계절 펴냄, 신현득 글, 112쪽, 8천원

2011-07-21

`무에타이 할아버지와 태권 손자`

가족의 참의미 일깨우는 다문화가정 이야기 제4회 웅진주니어 문학상을 받은 `무에타이 할아버지와 태권 손자`(웅진주니어 펴냄)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가족의 참의미를 체험해 나가는 따뜻한 이야기다. 시종일관 아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코믹하고 사랑스럽게 묘사해 나가는 작가의 재능이 돋보인다.이 책은 제4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대상을 받았고, 경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는 우수예술프로젝트 선정작이기도 하다.이 책은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관우와 할아버지가 벌이는 유머러스한 사건이 가득하다.무에타이 고수였다는 과거와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앞니가 빠진 어눌한 할아버지의 모습하며, 한국에는 없는 겉과 속이 다른 기묘한 고추젤리 덕분에 혼쭐이 난 관우와, 할아버지의 엉터리 태권도를 무에타이인 줄 알고 기겁하는 국동섭의 일화는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돌게 한다.태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를 둔 관우. 이번에 처음으로 태국에 계신 할아버지가 한국을 방문한다. 관우는 할아버지에게 태국 무술인 무에타이를 배워, 평소 자신을 놀리던 똥국과 부하들을 혼내주기로 결심한다.그런데 비쩍 마른 데다 이까지 빠져 버린 할아버지가 과연 무에타이를 할 수 있을까?할 줄 안다고 해도 말이 안 통하는 관우가 무사히 무에타이를 익힐 수 있을까?처음에는 무술에만 관심 있었던 관우. 하지만 낯설게만 느껴졌던 할아버지가 관우처럼 라면을 좋아하고, 관우가 하는 태권도를 따라서 하는 동안, 관우와 할아버지는 서서히 진짜 가족이 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웅진주니어 펴냄, 김리라 글, 156쪽, 9천5백원

2011-07-21

세계적 시인 고은 사랑가를 부르고 시대를 얘기하다

아내에게 바치는 생애 첫 사랑시집`상화 시편 : 행성의 사랑` 창비 펴냄, 고은 지음, 292쪽, 9천5백원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시인인 고은(79)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 두 권을 나란히 내놓아 눈길이 쏠린다.고은 시인이 작품활동 53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연시집 `상화 시편: 행성의 사랑`(창비 펴냄)은 28년 전 결혼한 아내, 영문학자 이상화씨에게 바치는 시집이다.이 시집에는 사랑에 행복해하고 애달파하는, 사랑을 그리워하고 사랑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한 남자`로서의 시인의 모습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시인의 소소한 일상은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시인이 되기까지의 세월과 사유의 과정을 담은 시편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나아가 인간의 사랑 속에서 시간의 무한성과 우주의 약동으로 확장되어나가는 깊이있는 주제의식에서는 대시인의 풍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고은 문학의 또하나의 기념비적 성과라 할 만하다.“사랑하기 위해서는 / 가난해진 빈 몸으로 돌아와야 한다”`서문`에서 시인은 스스로 “80세 앞에서 사랑의 시를 쓰는 나를 이제까지의 누구도 예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시인은 지난해 자신의 대표적인 연작시집인 `만인보`를 마치고 “완만한 흐름의 강물이 갑자기 숨찬 흐름으로 바뀌는” 일에 몸을 맡겼다. 그래서 시인의 `사랑시`는 그의 삶과 문학세계가 오롯이 담긴 “삶의 최고 형태”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해가 진다 / 사랑해야겠다 / 해가 뜬다 / 사랑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 // 너를 사랑해야겠다 / 세상의 낮과 밤 배고프며 너를 사랑해야겠다”(`서시` 전문)시인은 시작부터 거침없이 사랑을 이야기한다.선 굵고 강렬한 시인 특유의 필치로 선언하는 이 사랑은 태곳적 인류의 태동과 함께 살아숨쉰, 인간이 존재하는 근거이자 존재 그 자체로서 면면히 이어져내려온 것이다.하여 연인은 시인에게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너는 먼 근원이다`)이며 `둘의 나신으로 태고의 달빛을 밀어내고 현재로 건너오게 하는`(`달밤`) 존재의 기원과도 같다.또한 시인에게 사랑은 관념 혹은 이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현실에 토대를 둔 실재하는 그 무엇이다.그런만큼 사랑은 “언제까지나 정의되지 않”는, “무수한 정의들 이전, 무수한 정의들 이후” (`아직 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것이지만 동시에 이 세계와 유구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장엄한 인연이기도 하다.`상화 시편: 행성의 사랑`에서는 고은 시인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쏠쏠한 재미도 얻을 수 있다.28년 전 결혼식의 풍경, 자택에서 보내는 부인과의 시간 등 시집 곳곳에는 시인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더불어 사랑에 울고 웃고 감동하는 범부로서의 솔직한 모습 또한 이 시집을 읽는 감흥을 더욱 드높인다.황혼에 즈음해 탄생을 노래하다``내 변방은 어디 갔나` 창비 펴냄, 고은 지음, 236쪽, 7천원`내 변방은 어디 갔나`(창비 펴냄)에서 시인은 바람 같고 폭포 같은 목소리로 우리시대의 한복판에 서서 시대와 맞서고 시대를 넘어서는 `큰` 시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끊임없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시쓰기를 꿈꾸는 시인의 모습이 중단없는 갱신과 변화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도저한 시정신을 확인하게 한다.시인은 기왕의 성과와 세월에 안주하는 일 없이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맹렬한 기세로 놀라운 창작 에너지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시집에 실린 114편의 시 한편 한편이 모두 “고여 있지 않으려는, 낡아가지 않으려는, 어떻게든 다시 태어나려는 역동성의 증거”이자, “세월이 가도 늙지 않는, 여전히 청춘으로 사는 귀신이 있는 모양”(안도현, 추천사)이라는 생각을 절로 품게 만든다. 그만큼 힘이 넘치는 시들이다.“오늘도 내 발밑에서 / 고생대 화성암 층층의 억센 함구로 캄캄할 것 / 오늘도 내 서성거리는 발밑에서 / 바스라져 / 바스라져 / 쌓여 울부짖다 퇴적암의 굳은 포효로 캄캄할 것 / (…) / 이토록 지엄한 암석의 하세월로부터 / 내 고뇌가 와야 한다 / (…) / 이 모독의 지상 여기저기 내 석탄의 고뇌가 와야 한다”(`태백으로 간다`부분)시인은 자신의 발밑에 쌓인 `지엄한 암석의 하세월`을 돌아보는 시선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즈넉한 관조의 시선과는 거리가 멀다. 시인은 석탄으로부터 곧장 수억년의 시간을 거슬러 고생대의 시간을 현재의 눈앞에 펼쳐 보이며, 그로부터 단숨에 시인의 고뇌가 와야 함을 거듭 다짐한다.부당한 시대를 향해 화살이 되어 꽂히는 시를 토해내었던 시인은 여전히 시대의 한복판에서 조금도 비켜서지 않고 시대와 맞서고 있다.모두가 중심을 향한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 시는 시대의 변방을 자처한다. 변방은 곧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곳, 우리가 오래전에 떠나온 곳이다. 하지만 그곳이야말로 우리가 두고 온 우리의 고향이며, 그곳을 통해서만 우리는 중심을 향해 비뚤어진 이 시대를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변방의 시선을 지닌 시인이 바라보는 이 시대는 `흉측망측`하기 이를 데 없어, 시인은 한탄을 금치 못한다. 삼천리강산을 초토화시키는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욱 쩌렁쩌렁하게 울린다.“오늘도 강은 강대로 죽어가고 산은 산대로 마구 죽어갑니다 // 돌아보소서 / 이 꼬라지 / 이 꼬라지가 / 할아버지 할머니 후손의 막된 나의 삶입니다 // 돌아다보지 마소서 / 더이상 나는 당신들의 무엇이 아닙니다 / 한갓 이 문명 떨거지 생핏줄 끊긴 불초막심의 삽날입니다”(`나의 삶―네 강을 걱정하며`부분)나아가 시인은 이 `막된 삶`을 낳은 모든 중심의 문명을 향해 거침없는 일갈을 날린다. “더이상 발견하지 말 것 / 다시 말한다 / 더이상 발견하지 말 것 // 불을 발견하고 술을 발견하던 시절이여 / 거기로부터 / 너무나 멀리 와버렸구나”(`포고`).그러나 시인은 시원에 기대어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시집 곳곳에 배어 있는 신생을 향한 열망과 애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시인은 끝내 세상을 내던지지 않고 끊임없이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나기를 꿈꾼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7-14

박병선 박사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

`박병선 박사가 찾아낸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 북오션 펴냄, 조은재 글 1975년 외규장각 도서 존재를 처음으로 알린 프랑스 거주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한국 여성 최초로 프랑스로 유학을 간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며 도서관 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우리 문화유산`직지`를 찾아냈고, 이것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책임을 밝혀냈다.그리고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에게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찾아내고 10년간에 걸쳐 그 내용을 연구해 해석했다.박병선 박사는 이 보물이 한국에 있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에 수십 년 동안 반환 운동을 펼쳤고, 드디어 지난달 11일 우리나라로 이 선조의 위대한 유산이 돌아오게 된 것이다.`박병선 박사가 찾아낸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북오션 펴냄)은 그런 박병선 박사의 수고와 눈물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전달하는 책이다.책을 좋아하는 어린 시절을 거쳐 뇌수막염에 걸리는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한민국 여성 유학생 1호가 되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후, 297권의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시키기 위해 박병선 박사가 펼친 노력과 헌신, 그리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다.어린이들에게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면서, 꿈을 이루게 하는 노력의 힘을 깨닫게 해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7-14

항공과 우주의 꿈을 펼치는 세 친구 이야기

`하늘로 우주로 네 꿈을 쏴라!` 한겨레아이들 펴냄, 황도순·오선아·김수석 글 한겨레아이들의 `열두 살 직업체험` 세 번째 책인 `하늘로 우주로 네 꿈을 쏴라!`는 항공과 우주 분야의 직업을 항공 편, 로켓 편, 인공위성 편, 우주인 편으로 나눠 살펴보는 책이다. 또한 하늘과 우주를 향해 꿈을 꾸는 세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꿈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항공과 관련해 흔히 알고 있는 두 직업, 조종사나 승무원 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안전을 책임지는 비행기 정비사, 비행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돕는 항공 교통 관제사, 운항 관리사들도 만나 본다.또 인간과 인공위성 등을 우주로 보내는 역할을 하고 인간을 우주와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매개체인 로켓의 원리부터 하나의 로켓을 만들기 위해 어떤 분야의 연구원들이 머리를 맞대는지 알아본다.이와함께 인공위성 제작 과정을 통해 인공위성분야의 다양한 직업들을 만나보고, 마지막으로 우주인 선발 과정을 통해 우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훈련 과정들을 거치는지, 우주 관련 직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본다.이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황도순 박사는 현재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위성구조팀장으로 일하고 있고, 그동안 우리나라 최초의 위성인 `우리별 1호`와 `우리별 2호` 등 많은 인공위성 개발과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이다. 이렇듯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그동안 쌓아온 다양한 연구 성과와 자료들을 토대로 만들어져 보다 깊이 있는 정보와 내용으로 채웠다.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직업에 대한 소개를 재밌는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는 것이다.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인터뷰와 정보를 실었다.항공 분야는 파일럿, 스튜어디스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직업들이 있지만 우주 분야는 직업군이 다양하지도 않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직업군도 아니다. 이 책에는 `다짜고짜 인터뷰` 코너를 두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더불어 `궁금타파`라는 정보 코너를 두어 `공항에는 어떤 직업이 있을까?` `인공위성을 만드는 사람들` `우주 관련 직업에는 무엇이 있을까?` 등 좀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직업 이야기를 들려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7-14

세상의 모든 지식은 읽고 쓰는 즐거움이다

`젊은 소설가의 고백`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양의 책을 읽는 작가. 세계에서 가장 추앙받는 지식인 중 하나인 움베르토 에코. 그만의 독특한 지적 유머가 듬뿍 담긴 에세이가 오랜만에 출간됐다.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성공한 교수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에코의 나이는 이미 여든 살이다. 결코 젊다고 할 수 없는 그는 1980년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을 발표했으므로 소설가로서 자신의 나이는 채 서른 살이 되지 않는다고 허풍을 떨며,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은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라고 말한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등 다섯 권의 소설 외에도 수많은 비평서와 칼럼을 통해 본인이 `걸어 다니는 지식의 백과사전`임을 보여주었던 `대작가`가 이번에는 도대체 무슨 비밀 이야기를 우리에게 고백한다는 걸까? 에코의 책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독자들은 이미 예상했겠지만, 그가 말하는 고백이란 사적인 의미의 고백과는 거리가 있다. 이 책의 본문 맨 마지막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란 바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읽고 쓰는 즐거움`을 말한다.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서부터 호메로스와 단테, 보르헤스와 제임스 조이스, 톨스토이와 뒤마 등 수많은 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찬사와 더불어 소설과 독자와의 관계, 소설가와 소설과의 관계, 마지막으로 독자와 소설가와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들려주는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 첫 번째는 에코의 방대한 독서 이력이 선사하는 지식의 즐거움. 두 번째는 에코 자신이 겪었던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재미있는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 세 번째는 능청스럽고 뻔뻔할 정도로 익살스러운 유머가 주는 즐거움이다.이 짤막한 에세이는 궁극적으로 인류가 쌓아온 방대한 지식을 읽고 그것에 영향 받아 다시 쓰게 되는 행위, 즉 읽고 쓰는 행위에서 이토록 경이로운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해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위대한 작가의 깊은 내공에서 우러나온 짧은 에세이 한 편이 독자에게 얼마만큼 지적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해준다.읽는 행위가 쌓이고 쌓이면 쓰는 행위에 언젠가는 큰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이 책은 성공한 교수이자 학자로서 살고 있던 그가 왜 늦은 나이에 소설가가 되었는가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야구 경기를 관람하다가 외야에서 날아오는 하얀 공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충동적으로 결심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에코 역시 어느 순간 충동적으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열여섯 살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 베네딕트 수도원을 방문한 소년, 에코는 회랑을 걷다가 어두운 장서관 위에 펼쳐진 `성인전`(교회력 연대로 정리된 성인, 순교자의 전기집)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 깊은 적막과 어둠 가운데에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몇 가닥의 빛줄기가 쏟아지는 시간이 이어졌는데, 그의 온몸에는 전율이 흘렀다고 한다. 그리고 30여 년이 흐른 뒤,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그 순간이 의식 밖으로 뛰쳐나와 소설을 써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렇듯 창작 과정에 영향을 주었던 개인적 경험과 작품의 뼈와 살이 되어주었던 여러 텍스트들을 공개하는 첫 장은 에코의 유머가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2장에서는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벌어지는 오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들이 등장한다.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서 새로 태어난다”고 보르헤스가 말했듯이 에코 역시 “텍스트는 병 속에 넣어 바다에 띄운 편지처럼 세상에 던져졌기 때문에” 작가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지적 유희를 즐기는 독자에게만 살짝 윙크를 던지듯이 그는 작품 속에 이중코드라는 요소를 심어놓았고 그걸 알아보는 수준 높은 독자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끔찍이도 즐긴다. 좋은 작품은 두 번 세 번 읽어도 새로운 해석을 준다고 말하는 에코는 이중코드를 소설에 대한 애정과 지성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라고 표현한다.안나 카레니나, 햄릿, 몽테크리스토 백작, 베르테르, 히스클리프, 라스콜리니코프, 그레고르 잠자와 스크루지 영감. 이와 같이 가족보다도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해 서술해놓은 3장에서 에코는 소설가이자 철학자로서 허구 세계가 갖는 존재론적 의미를 되짚어본다. 친한 친구가 연애에 실패했을 때는 그렇게까지 슬퍼하지 않으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지구촌의 사람들 때문에는 그렇게까지 슬퍼하지 않으면서 젊은 베르테르의 실연에 가슴 아파하며 목숨까지 버리는 독자들의 심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에코는 이렇게 물으면서 또 이렇게 답한다. “역사 인물과 달리 소설 속 주인공들은 `피와 살을 가진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슬픔과 비극에 가슴 아파한다”창작 과정에서 필요한 날것 그대로의 재료를 전시하는 4장에서는 방대한 지식의 창고를 개방한다. 라블레와 제임스 조이스, 호메로스와 휘트먼의 목록에 자신이 뽑은 목록까지 공개하는 이 장은 언어에 대한 순수한 탐닉과 과잉에 대한 욕구를 과시한다. 자신의 저서 `궁극의 리스트`의 축소판이기도 한 이 장에서는 훌륭한 문인들의 작품에 등장했던 목록들의 컬렉션이지만, 그 덕분에 독자들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놀라운 언어의 연금술이 펼쳐지는 위대한 작가의 머릿속을 훔쳐볼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레드 박스 刊, 움베르트 에코 지음, 320쪽, 1만3천8백원

2011-07-07

소설로 보는 한국 산업화와 민주화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소설 2`실천문학사의 담쟁이교실 시리즈 중 하나인`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소설 `이 개정판으로 재출간 됐다. 이 책은 일제시대의 현진건, 채만식으로부터 1960~1970년대의 김승옥, 황석영을 거쳐 오늘의 박완서, 윤정모, 임철우, 김원일, 공선옥에 이르기까지, 우리 소설문학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작품을 매 편마다 해설을 곁들여 올바른 소설 읽기와 문학사 공부에 도움이 되도록 꾸민 책으로 1992년 출간 이후, 학교 현장을 비롯한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일제시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대표 소설 11편을 담은 1권이 먼저 출간됐고 이번에는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대표작을 수록한 2권이 출간됐다. 뒤이어 2000년대의 대표작을 선한 3권으로 개정판 `선생님과 함께 읽는 우리 소설`을 완간할 예정이다.1권이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 공간, 한국전쟁의 상흔 들이 담긴 작품이라면 2권과 3권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그늘에서 쓰여진 작품으로 우리 시대 대표작가의 대표소설을 통해 보는 한국현대사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특히 2권은 근대화를 거쳐 산업화, 민주화의 소용돌이 속에 놓인 한국사회의 단면들이 빠짐없이 담겨 있다. 환경문제를 문학으로 끌어들인 역작으로 평가되는 최성각의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 산업화 과정에서 또 다른 소외계층으로 부각된 여성문제, 특히 빈곤을 배경으로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형상화해온 공선옥의 대표작도 수록됐다. 개인화, 내면화로 요약되는 1990년대 중후반과 디아스포라의 삶이 부각된 2000년대의 대표작이 함께 묶일 예정인 3권도 기대해볼 만하다.송기원 `월행`, 윤정모 `밤길`, 박완서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임철우 `그 밤 호롱불을 밝히고`, 양귀자 `일용할 양식`, 김하기 `살아 있는 무덤`, 최성각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 방현석 `새벽 출정`, 김원일 `마음의 감옥`, 공선옥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등 10편이 실렸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실천문학사 刊, 권순긍 김진호 문재용 엮음, 398쪽, 9천원

2011-07-07

포항문인협회 `문학만` 통권 35호 발간

문학과 미술의 만남...백남준 작품 모음도 (사)포항문인협회(회장 이대환)가`문학만`통권 35호를 발간했다. 호수로 보면 `문학만`이라는 제호를 달고 독자들에게 다가간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문학만`의 편집인이자 소설가인 이대환은`문학만`통권 33호 `권두 에세이`에서 “`포항문학`은 통권 33호 발간에 즈음하는 2010년 상반기부터 반년간`문학만(Literature Bay)`으로 다시 여정을 떠났다.”며 발간 배경을 밝힌 바 있다.`문학만`통권 35호에는 기획, 비평의 시선, 특별초대, 작가의 시선, 묻혀 있는 한국의 명시, 시, 동화, 소설, 수필을 실었다. `기획`으로는 `한국문학 시인들의 문학적 경향`을 짚은 고명철(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의 `신예 시인의 시적 모험, 시의 미래적 징후`와 오창은(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수)의 `젊은 소설의 미래`다. 이 두 글은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들과 소설가들의 작품을 평가하고 그들의 가능성을 짚는 데 바쳐진 평문이다.`비평의 시선`에서는 방민호(문학평론가, `ASIA`편집위원,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일본 사소설과 한국의 자전적 소설의 비교`가 이뤄지고 있다. 방민호는 다야마 가타이,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사소설과 김명순, 이광수, 이상의 사소설 등을 분석한다. 또 다른 `비평의 시선`으로는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의 `백석 시의 영향`이다. 유성호는 백석의 시들과 백석의 영향을 받은 신경림, 문태준, 안도현, 송찬호 시인의 시들을 분석한다. `작가의 시선`에서는 소설가 이대환의 에세이 `늙고 가난한 시인의 비상금과 통일세` 외 8편이 실려 한국사회는 물론 세계사적인 현실을 예리하게 진단한다. `묻혀 있는 한국의 명시`에는 안상학 시인의 `내 손이 슬퍼 보인다`가 재수록 돼 독자들에게 소유, 폭력, 군림 등의 의미를 묻는다. 소설, 동화, 수필 코너에는 포항문인협회 회원들의 작품이 실렸고 시 코너에는 포항문인협회 회원들뿐만 아니라 고증식, 손병현, 정안면 등 외부 시인들의 작품이 실려 `문학만`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특히 2011년 `문학만`상반기호에 수록된 컬러 120여 쪽의`특별초대`는 독자들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특별초대는 지난해 포항시립미술관을 통해 세계적 이목을 모은 `백남준 특별전 : Teletopia―드로잉에서 레이저까지`의 작품들과 김갑수 포항시립미술관장의 글 등을 실었다.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자료를 제공받아 `백남준과 이경희의 사랑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인 이 특별초대에는 문학과 미술이 한 자리에서 만나고 있다.한편 포항문인협회는 포항시, 재단법인 애린복지재단에서 제작비의 일부를 지원받아 발간한 `문학만` 통권 35호 출판기념회를 지난 1일 오후 7시 장성동 솔향기에서 가졌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7-07

살인과 지진 등 미칠 듯한 상황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이야기

`미칠 수 있겠니` 한겨레출판사 刊, 김인숙 지음, 304쪽, 1만2천원 “사랑한다고 믿었다와 사랑한다의 사이에 차이 같은 건 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될 일이지만, 분명 그것은 같은 말이다.” (145~146p)`바다와 나비``그 여자의 자서전``안녕, 엘레나` 등으로 여러 문학상을 받은 작가 김인숙(48)이 신작 장편소설 `미칠 수 있겠니`(한겨레출판 펴냄)를 출간했다.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상실의 계절`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인숙은 거대 이념 보다는 여성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성차별과 성 모순의 현실, 이를 감당하는 여성의 내면에 천착하면서 공지영, 공선옥 등과 함께 90년대 여성문학의 주류로 여성문제를 초점화하거나 여성해방을 선보이며 한국 문단을 주도해 왔다.이번 소설`미칠 수 있겠니`도 그 연장선에 있다. `미칠 수 있겠니`에서 작가는 살인과 지진 등 삶의 비루한 진창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의 숭고함을 이야기 한다.이름이 같은 진과 진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 섬에 여행을 다녀온 후 한국을 떠나 섬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유진. 그런 유진을 섬으로 보낸 진. 유진을 보러 섬에 간 진은, 유진의 집에서 예전부터 써번트로 일하던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 아이는 유진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놀랍게도 아이를 가져 볼록 나온 배를 가진 채.섬의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드라이버 이야나는 우연히 개를 치어 죽인 날, 진을 만난다. 이야나는 그녀를 태우고 재래시장을 관광하고, 사람을 치료해주는 힐러를 만나러 가고, 진을 호텔에 내려다준다.친구 만을 만난 이야나는 그녀와의 전화통화 후에 그녀가 여권을 자신의 차에 떨어뜨린 것을 알게 되고. 만은 이야나에게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다음 날 진과 이야나는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야나가 투계장에 가서 구경을 하는 사이, 갑자기 땅이 흔들린다.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해안가에 있는 타운에서 일하던 옛 약혼자 수니를 찾으러 가는 이야나에게 진이 구해달라는 문자를 보낸다. 진과 이야나가 극적으로 만나는 순간, 해일이 일어나고 파도가 서로를 덮친다.기적적으로 살아난 진은 이야나와 함께 구호소에 가서 치료를 받고, 이야나는 수니를 찾아 다시 해안가로 간다.이야나는 수니와 헤어지고, 섬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병원으로 가서 진과 다시 만난다. 진과 이야나는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7년 전에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서로 연루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7년 전 감쪽같이 사라진 유진을 찾으러, 진은 유진과 함께 살던 옛집으로 간다.집 앞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기억하기 싫었지만 기억해야만 했던 일들이, 비로소 7년 전에 일어났던 살인사건의 비밀이 밝혀지는데…./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30

과학자와 실천적 지성인의 삶 조명

`라이너스 폴링 평전` 실천문학사 刊, 2만원세계 최초로 노벨화학상과 노벨평화상을 동시에 수상한 미국 과학자 겸 사회운동가 라이너스 폴링(1901~1994)에 대한 평전 `라이너스 폴링 평전`(실천문학사 펴냄)이 출간됐다. 라이너스 폴링은 `과학`과 `사회운동`이라는 두 개의 실천적 삶을 하나로 조화시킨 인물이었다.20대에 양자물리학을 복잡한 분자 연구에 응용했고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아인슈타인에 견주어지기도 했던 천재 과학자이기도 한 반면, 냉전시대의 매카시즘 광풍 속에서 학자의 양심을 지키며 야만적인 국가 폭력에 대항했던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과학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바탕한 실천적 지성인의 삶을 살았다.온갖 역경 속에서 한 개인의 앎이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주체적 삶이 될 때 전 세계 인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이 책은 냉전 시대 이후의 “불확실성, 부도덕성, 지속적 갈등이 난무”하는 지금 이 사회를 향해 `라이너스 폴링`이라는 보편적 영웅을 제시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대답을 들려준다.라이너스 폴링은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친구인 제프레스의 집에 차려진 실험실에서 우연히 보게 된 화학반응에 매료돼 화학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여섯 살의 나이에 오리건농과대학에 진학해 체계적으로 과학 수업을 받지만 그곳의 과학 강좌는 폴링의 학구열을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폴링은 이후 칼텍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받고 양자역학을 이용해 화합결합의 비밀을 밝혀 미국의 젊은 화학자에게 수여하는 랭뮤어 상을 받는 등 세계적인 과학자로 발돋움해 명성을 얻는다. 1939년에 20세기 가장 중요한 화학 저서 중 하나로 꼽히는`화학결합의 본질`을 출간했고, 그에 대한 연구로 1954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45년 적혈구 모양이 변형되는 유전병의 원인을 밝혀낸 데 이어 단백질의 나선 구조를 설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체에 침투해 질병을 일으키는 항원(세균, 바이러스)과 그것을 죽이는 항체의 결합 성질을 알아내며 분자생물학의 장을 열었다. 이렇듯 화려한 폴링의 과학적 삶의 여정은 20세기 과학사의 일면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사회운동가로 폴링의 삶은 암울했던 세계 현대사의 한 대목에서 한 사람의 신념과 평화를 향한 이상이, 꿈으로 그치지 않고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사회운동가의 면모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던 폴링이 사회운동가로서의 자의식을 싹틔우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히로시마 원폭 사건이었다. 이때 폴링은 과학자로서의 양심과 사회적 책임을 절실히 느껴 반전 운동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아인슈타인이 의장으로 있는 핵과학자 비상위원회에 가입해 원폭 반대운동 및 반핵 시민운동에 참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핵무기 사용을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정부와 우익 단체는 이런 폴링을 `공산주의 동조자`라고 비난하며 공격했다. 하지만 그는 `평화`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고 대기 중 핵실험에 의한 낙진 위험성을 세계에 알렸다. 전 세계 과학자 1만 1천 명에게 서신을 보내 핵실험 금지 서명을 받아내며 국제 사회의 여론을 환기시켰다. 그럴수록 폴링은 매카시즘 희생양이 될 뿐이었다. 칼텍에서조차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정부로부터 여권 발부가 거부돼 출국 금지를 당했다. 급기야 핵정책위원회에 침투한 공산주의자 색출 명목으로 국내 안전보장법 행정감시소위원회 소속 상원 의원인 토마스 도드에 의해 미 상원 소위원회에 소환되기까지 했다. 거기에서 폴링은 핵실험 금지 서명 작업을 도와준 명단 제출을 요구받았으나 그는 끝내 밝히기를 거부했다. 1963년, 냉전의 기운이 서서히 거치면서 미 · 소 핵협정이 이루어지자 폴링의 반핵 운동은 공로로 인정돼 화학상에 이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윤희정기자

2011-06-30

운명과 같은 소년과 소녀의 만남 글로 나타낸 풋풋한 사랑의 소묘

`숨은 밤` 문학동네 刊, 김유진 지음, 208쪽, 1만원 젊은 소설가 김유진(30)의 첫 장편소설 `숨은 밤`(문학동네 펴냄)이 출간됐다.2004년 단편소설 `늑대의 문장`으로 문학동네를 통해 문단에 나온 김유진은 당시 신선한 상상력과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묘사로 문단에 화제를 낳았다.`80년대 생(生)`인 김유진은 한유주, 김태용 등 일군의 작가들과 2000년대 젊은 문학의 한 흐름을 대표한다. 이 흐름은 이른바 `서사 파괴의 소설`이다.이번 소설은 김유진 특유의 단단한 문장들이 담고 있는 시적 분위기는 한층 안정되고 아름다워졌다는 평이다.한 소년과 한 소녀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여관에 맡겨진 소녀와 그곳에서 일하는 소년의 만남. 고아나 다름없이 마을에서 이방인 생활을 하는 이들의 불안과 분노를 그림 그리듯 그려내고 있다.작가는 특유의 몽환적 이미지와 여운 가득한 문장으로 소년과 소녀가 느끼는`사랑`의 전조(前兆)를 한 폭의 회화처럼 곱게 빚어냈다.여기, 희미한 아이들이 있다. 한 아이는 어느 날 헛간의 썩은 볏짚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그 소년의 이름은 `기(基)`이다.다른 아이는 트럭을 끌고 장사를 하러 다니는 아버지가 여관에 맡겨두었다. 그 소녀는 기가 일하는 여관의`404호`에 산다.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그들은 여름 휴양지로 반짝 성수기를 이루는 이 마을에서 거의 유일한 이방인들이다.첫사랑을 시작하려는 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제 마음 안에 왕국이 만들어졌다 무너지는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그들은 마을에 안착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이윽고 분노한다. 그리고 소년은 마을에 불을 지른다.하지만 소설의 끝에선 소년과 소녀가 서로의 손을 잡음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며 그것은 놀랍게도 `사랑`이라는 눈부신 단어로 매듭지어진다.“너는 누굴 싫어해?사람들. 거의 모든 사람들.그럼 누굴 좋아해?나는 너를 좋아해.”(203쪽)소년과 소녀가 숨어든 한 동굴에는 커다란 뿔을 들이밀며 자세를 낮추고 있는 황소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제 몸보다 큰 황소에게 망설임 없이 죽창을 겨누는 용맹한 전사가 그려져 있다.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기원은 도대체 무엇인가.우리는 여전히 미흡하고, 어쩔 수 없이 미완성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좋아`한다. 견딜 수 없는 세상을 견디고 극복하는 작가의 해답은 이토록 아름답다.“제목은 `빚 뒤에 숨은 어둠`이란 뜻이에요. 모닥불에 가장 근접한 곳이 어둡잖아요. 회화에서도 가장 밝은 부분을 그릴 때 역광을 넣고요. 이 소설을 쓸 때는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랑의 전조를 쓰고 싶었죠. 나타났다 사라지는 감정, 태어나기 전에도 사라지는 감정을 보여주려고 했어요.”/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30

아랍 작가로부터 듣는 재스민 혁명의 안과 밖

2006년 여름호로 창간호를 발간한 계간 문학지 `ASIA`(발행인 이대환)가 창간 5주년 기념호로 2011년 여름호를 발간했다. 통권 21호까지 45개국 461명 작가들이 이 잡지에 필자로 참여했다. 모두가 아시아의 작가들은 아니다. 아시아 48개국 중에서 몰디브, 부탄, 브루나이, 아제르바이젠 등 6개국의 작품을 싣지 못했고 아프리카, 아메리카, 호주의 작가들이 참여했다.`ASIA`는 포스코청암재단(이사장 박태준)이 아시아펠로십 사업들의 하나로 선정해 `편집에 전혀 간섭하지 않는 발간 지원`을 결정함으로써 창간될 수 있었으며,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발행인 이대환(작가)과 방현석(작가, 중앙대 교수), 방민호(평론가, 서울대 교수), 김재용(평론가, 원광대 교수), 전승희(평론가, 하버드대 연구원) 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ASIA`가 무엇보다 소중히 추구하는 가치는 `아시아의 문학을 통한 아시아의 내면적 소통이다. 이 정신은 발행인의 `창간사`에 잘 드러나 있다.“사실 아시아의 언어들이 서로의 내면으로 대화를 나눈 경험은 아직까지 딱할 정도로 빈약하다. 상대의 언어 안에 피처럼 흐르는 정서와 영혼과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아시아의 연대와 공존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는 인류사회가 새롭게 기획해야 할 평화의 질서를 위해서도 절실한 일이다.`ASIA`는 어떤 힘의 중심을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 굳이 중심이란 소리를 듣게 된다면, 아시아의 다양성이 동등하게 만나고 섞이는 `소통의 중심`이란 평가를 가장 영광스럽게 받아들일 자세를 갖춰야 한다.”지난해 여름호(통권 17호)에서 팔레스타인문학 특집을 꾸리는 등 중동 아랍권 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ASIA`는 이번호에서 그동안 교류해온 현지 작가들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재스민 혁명`의 현지 작가 목소리와 아랍권 단편소설과 시로 아랍혁명의 특집을 꾸렸다.우리나라에 구제역 광풍이 휘몰아치던 지난겨울,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튀니지를 시작으로 이집트, 리비아, 모로코, 예맨, 요르단 등 아랍 국가들에서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세계는 들불처럼 번져나가던 이 혁명을 주목했다. 그것은 한 국가를 넘어 `아랍`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뒤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혁명을 바라보는 시선은 `국가` 차원의 단편적 분석에 머무르거나, SNS라는 새로운 매체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데 치우쳐, 혁명이 가진 정당한 의미로부터는 다소 먼 뉴스들이 한동안 이슈가 됐다. 이에 `ASIA`는 혁명의 주체인 현지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혁명을 아랍의 안과 밖의 시선으로 다시 고찰해 보고 있다.이번 특집에는 인도 출신의 A. J. 토머스, 요르단의 파크리 살레, 이집트의 살와 바크르의 산문을 실어 그들이 현지에서 바라본 혁명을 소개하고 있다. 이 글들은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에서 일어난 혁명의 생생한 모습들을 담고 있기에, 외부인이 바라본 것과 현지인이 겪은 경험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이 글들과 함께 실린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의`중동 ― 격변의 역사와 그 문화`는 우리나라 일반 독자들이 중동이라는 지역을 만나는 데 가장 친절한 길잡이가 돼 줄 것이다.이와함께 대담을 실었다. 아랍 세계에는 `바니팔(Banipal)`이라는 잡지가 있다. 이 잡지는 아랍 작가들의 작품을 영어권 국가에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가령, “수단에는 어떤 소설이 있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들려주는 매체다. 현재 바니팔의 편집인으로 있는 사무엘 시몬과 안도현 시인이 중동의 민주화와 관련해 대담을 진행했다. 이 대담에는 영어권 국가에 아랍권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해 온 바니팔의 지난 여정과, 중동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세계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여러 작가들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노벨 문학상 선정 위원회는 1988년 선정 발표문에서 이집트 작가 나기브 마푸즈를 위와 같이 소개했다. 현대 아랍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나기브 마푸즈와 그의 20년 후배 작가 가말 알 기타니의 인터뷰를 실었다. 나기브 마푸즈는 아랍 지역의 유일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게벨라위의 아이들`(1959)`도적과 개들`(1961) `미라마르`(1967)와 같은 문제작들을 발표했다. 이 인터뷰는 마푸즈의 93세 생일을 기념하여 진행한 것으로 심층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질문을 통해 아랍 세계와 현대 문학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인터뷰 뒤에는 마푸즈의 소설 `제7 하늘`을 발췌 수록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집인 `제7 하늘`은 마푸즈의 생애 마지막 30년 동안 써진 중단편들을 가장 긴 작품에서 가장 짧은 작품 순으로 배열한 것으로, 이는 코란의 구조와 비슷하다. 부제로 붙여진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말하듯 사실주의의 관습을 초월한 작품들을 모았다.이외에도, 아랍 현대 문학의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아도니스, 자히르 알 가프리, 사우키 사피그의 아름다운 시들을 실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아도니스의 시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가프리, 사피그의 시는 하나의 놀라움이다. 엘리사 파르코, 이브라힘 알 코니, 살레 알 데임스의 소설은 영미권, 일본 소설에 익숙한 우리나라 독자들의 취향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23

여류시인 유안진·신달자 `두 빛깔`로 담아낸 인생 여정

한국 문단의 대표적 여류 시인인 유안진·신달자 시인이 신작 시집과 에세이를 각각 펴냈다. 특유의 고백적인 문체와 종교적 경건함으로 어머니의 품을 보이는 유안진(70) 시인은 `둥근 세모꼴`(서정시학 펴냄)이라는 짧고 간결한 극서정시집을 내놓았다.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올해로 문단생활 47년을 맞은 시인이 짧지 않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길어 올린 내면의 이야기들이다.`우리 시대 감성시인`이란 호평을 받으며 정지용문학상 소월문학상 등 여러 결실을 낸 바 있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지치고 힘든 우리들의 일상과 삶속에서 시적 감수성을 찾아내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가치판단력을 높여가는 시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소재의 시를 빚어냈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은 요즘 젊은 시인들의 장황한 산문시와 달리 짧게는 두, 세 문장의 시로 간결하면서 담백한 서정의 세계를 선보인다. 종교와 신화, 예술과 페미니즘 이외에도 옛 애인과 흘러가는 세월 등 일상생활 속의 다양한 재료들로 위트 넘치면서도 깊은 성찰의 결과를 선보이고 있다.“예술은 민주주의가 아니다오히려 천상천하유아독존주의天上天下唯我獨尊主義다다수결多數決은독창성獨創性의 적敵이라서.”― `시도 다수결이 아니다` 전문“만인에게 나눠줄 떡이 될 몸이라서지명地名이 떡집인 곳은 베들레헴뿐이라서.”― `그 아기씨는 왜 거기까지 가서 태어났을까?` 전문“신문이 빈 벤치에 앉아 자꾸 손짓한다가 앉아 펼쳐드니 은행잎들 자꾸 떨어져 가린다읽을 건 계절과 자연이지시대나 세상이 아니라면서.”― `노랑말로 말한다` 전문교육학 박사이기도 한 그가 한 권의 시집을 통해 전하는 넉넉함과 따스함은 초여름의 사색과 낭만의 추를 드리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최근들어 자신의 솔직한 인생경험담, 문학과 인생에 대한 초청 강연과 방송을 통해 청중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하고 있는 신달자 시인(68)은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담은 에세이`여자를 위한 인생 10강`(민음사 펴냄)을 펴냈다.이번 에세이는 그동안 시인이 수많은 강연과 상담을 통해 이야기했던 것들 중에서 핵심만을 추려 여성들에게 전하는 열 가지 메시지를 담았다. 알 수 없는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자꾸만 뒤처지는 것 같고, 사회통념과 부딪쳐 깨지고,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여자들은 외롭고, 아프고, 슬프다. 이 책은 그런 여성들에게 열 번의 실패도 인생에선 작은 숫자이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도전하라고, 외로움과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길 때, 나이 든다는 것은 단순히 늙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 나이와 함께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라고, 그렇게 행복은 여자가 창조하는 신화라고 말한다.인생과 사랑, 가족, 꿈, 행복 등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 자신의 생생한 경험담과 수많은 예화 등 시인 특유의 입담으로 여성들에게 잔잔한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다.행복은 결코 그냥 오지 않는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행복할 수 있는 소질`을 계발해야 한다. 시인은 매일매일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무엇을 했다`라는 결과보다 `무엇을 하고 있다`라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된다고 말하며,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 돈보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서 하루에 한 시간만 해도 인생이 달라지는 기적을 체험할 거라고 말한다.신달자 시인이 전하는 10가지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1강 열 번의 실패도 인생에선 작은 숫자다2강 척박한 땅에서 핀 꽃이 더 향기가 짙다3강 물은 1도만 모자라도 끓지 않는다4강 늙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다5강 행복은 여자가 창조하는 신화다6강 여자가 웃으면 세상도 웃는다7강 마음속 자궁으로 남자를 품으라8강 하루에 한 시간, 인생이 달라진다9강 일어나라, 하고 싶은 일도 일어날 것이다10강 그대의 꿈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23

고독한 현대 도시인의 이야기 두 원로작가 소설 서점가 강타

황석영 최인호. 한국 문단에서 개성적 성취를 이룩한 원로 문인 두 명이 나란히 신작 장편소설을 냈다. 어느덧 나이 예순 중반에서 일흔에 이른 이들이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백하게 들여다 본다. 자본주의와 도시의 속성, 자기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현대 도시인의 고독을 이야기 한다. 이들의 작품은 출간 1~2주일만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또한 이런저런 매체에 연재했던 것을 모으지 않고 전작으로 소설을 완성했다는 공통점도 눈길을 모은다.무엇보다 50~60년 동안 한국 문단을 지키며 왕성한 필력을 자랑해온 이들의 그치지 않는 문학열정을 만나 볼 수 있어 반갑다.소설은 늘 우리를 새로운 세계와 사람들에게로 데려간다. 올 여름 우리의 시공과 시야를 확장시켜 줄 좋은 작품들이다.■`낯익은 세상`소설가 황석영(68)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국내 대표적 소설가.`낯익은 세상`은 개발이 지상과제였던 80년대 난지도를 무대로 그곳에서 성장한 10대 소년이 주인공이다. `딱부리`라는 열네 살 소년이 폐품 수집꾼으로 일하는 엄마를 따라 쓰레기 매립지인 `꽃섬`에 들어와서 겪는 일을 그렸다. 쓰레기장인 꽃섬(난지도의 옛 이름)을 터전으로 삼은 빈민들의 이야기는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비가 삶의 목적이 된 지금, 쓰레기는 매립지로 오기 전까지 생산과 소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인간들의 욕망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또 딱부리의 눈을 통해 이곳이 도시문명에서 얼마나 고립된 낯선 세상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욕망과 소비와 폐기가 반복하는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하고 낯익은 것인지를 날카롭게 꼬집는다.소설은 쓰레깃더미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체의 축제처럼 행하는 식사, 어른되기가 어렵거나 어른되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천진성, 자연의 질서에 대한 샤머니즘적 믿음, 전원시적인 농촌의 이미지…. 무엇보다도 세계의 마법을 기억하는 동화적 이야기구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작가의 말`에 표제의 의미가 곡진히 밝혀져 있듯이, 이 소설의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는 삶의 목적이 되었고 온 세계가 그것을 위하여 모든 역량과 꿈까지도 탕진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이다. (……) 체르노빌처럼 후쿠시마처럼 `매트릭스`로서의 그 세계는 바로 우리 지척에 있다.” (`작가의 말`에서)■`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침샘암으로 투병중인 소설가 최인호(66)는 이 소설을 통해 지난 30여 년 동안 몰두했던 역사·종교소설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최인호`라는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린 현대소설로의 회귀를 선언했다.`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느닷없는 소음에 주인공 K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범적인 가장으로서, 의사 친구와 가깝게 지내며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스스로의 도덕적 결함을 견디지 못하는 제도적 인간으로서, 그리고 주일마다 미사에 반드시 참석하는 견실한 신앙인으로서 K는 생의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일상이 조작되고 현실에 균열이 생기며, 그로 인해 환상과 실재의 공간을 오가면서 K는 사실 조작된 것은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주변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급기야 처음에는 자신의 행세를 했을 것이라 믿었던 또 다른 `K`에게 순순히 `참 자아`의 자리를 내주고 만다. 자신이 쌓아온 견고한 삶이 생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생은 때때로 허물어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 자신이 만든 견고한 삶은 하나의 무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거기에 `진짜 삶`은 없었다.이 소설의 주인공인 K는 자신의 배역과 역할에 충실한 동안 정작 자신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한다. 도덕적이고 합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세상에 떳떳하다는 것은 인간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제도에 순응함으로써 갖게 된 스스로의 착각일 뿐이다. 그 단단할 것 같은 일상에 금이 가면서 K는 자신을 의심한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그는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된 또 다른 삶을 목격하는 것이다.“우리가 본래의 우리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일상의 틈을 통해서다. K가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순간은 지진의 균열이 일어날 때와 일치한다. 디디고 선 땅이 물렁해지는 이 의심의 순간은 진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심을 통해 만나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건 일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이리라. (…) 현실은 언제든 그처럼 붕괴될 수 있다는 점, 그게 바로 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거대한 별사(別辭)인 동시에 어떤 붕괴에 대한 보고서랄 수 있다.”_발문, 김연수(소설가)/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16

“미움도 집착도 버리고 강처럼 흐르라”

`어떤 그림으로 우린 다시 만났을까` 마음의 숲 刊, 성전 스님 지음 불교방송 `행복한 미소` 진행자. 라디오 스타. 불교계의 글쟁이. 아름다운 문장가. 미소 스님. 남해 용문사 주지 스님…. 법정 스님을 잇는 불교계 최고의 문장가로 알려진 성전 스님에게는 따라붙는 수식어가 참 많다. 그가 세속에서 대중들과 함께 참 말씀을 나누고 전하면서 생긴 꾸밈말이다. 스님은 이런 말들에 그저 벙긋이 웃는다.“내 꿈은 그냥 깊은 산속 오두막에서 사는 것이에요.”스님이 최근 펴낸 `어떤 그림으로 우린 다시 만났을까`(마음의 숲 펴냄)에도 자주 나오듯이 스님은 산속에서 혼자 사는 현자들, 꽃과 나무와 같이 홀로 있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그들을 이야기하며 그리워한다.`어떤 그리움으로 우린 다시 만났을까`는 별을, 산중에 홀로 핀 이름 없는 꽃을, 정신이 명료해지는 산사의 겨울바람을 그리워하다 다시 그들을 자연 속에서 만난 기쁨을 노래한다. 저자는 말한다. 하늘에 구름으로 흐르던 물방울들이 빗방울로 내려와 만나는 찰나의 순간 속에 영겁의 기쁨이 들어있다고. 즉 이 책은 꽃과 바람과 나무가 쓴 짧고도 청량한 자연의 경전이다.스님 특유의 아름다운 문장, 자연과 삶에 대한 찬미로 가득 찬 이번 새 책에는 나무와 구름이 만난 이야기, 바람과 햇빛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 밤하늘의 수많은 별과 지상의 꽃들이 서로 그리워하는 이야기 등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마음 놓고 쉬어 갈 수 있는 초록 그늘의 쉼터를 내준다. 또한 영혼의 쉼과 함께 자기성찰과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게 해 주는 깨달음의 글들로 가득하다.“강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냥 흐를 뿐이라고. 강에겐 모든 것이 현재이고 지금입니다. 지금 흐르는 것 외에 강에겐 어떠한 대답도 생각도 없습니다. 강은 다만 흐름에 마음을 다 모을 뿐입니다. 그래서 강은 흘러도 지치지 않습니다. 우리들 인생도 그냥 그렇게 흘러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전부라 말하며 흘러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강은 그냥 흐를 뿐`중에서)너무 미워하지도 말고 집착하지도 말고 그냥 강처럼 흐르라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바다에 이르는 길이라고 전한다. 이처럼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모든 문제들, 아픔, 슬픔, 힘듦, 어려움, 시련, 고통을 치유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자연뿐이며 심지어 죽음마저도 자연 속에서 답을 얻어낼 수 있다고 한다.결국 이 책은 강, 구름, 바람, 햇빛, 별, 꽃, 산에게 저자 스스로가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고뇌하고 반성하며 답을 얻은 자연의 경전(經典)이다. 의외로 이 경전은 어렵지도, 길지도 않다. 새벽별을 바라보며 혹은 노을 앞에 무릎 끓고 자각하며 기도하는 저자의 풍경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삶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 일깨움이 꽃처럼 아름답고 가볍다. 명쾌하고 간단하다.이 책은 자연을 대전제로 모두 4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한 편, 한 편이 짧은 잠언으로 구성돼 있지만 각 장의 주제가 유기적으로 구성돼 마치 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서사시처럼 유려하게 펼쳐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16

나 자신이 나를 가장 잘 안다

사람들은 `사회적인 시계`의 영향을 크게 받아 특정한 행동이나 태도에 어울리는 `올바른 나이`가 있다는 암묵적인 믿음으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평가한다. 하지만`마음의 시계`(사이언스북스 펴냄) 저자인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엘렌 랭어(64) 박사는 실제로 어느 나이에 신체 상태가 어떻다라는 절대적인 기준이란 의학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다분히 상대적이면서 고정 관념에 불과할 뿐인 나이에 대한 인식은 곧 질병과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를 불러일으켜, 우리는 당연히 50세가 넘으면 무리한 운동을 하기에는 체력이 떨어지고 시력 및 청력의 감퇴를 경험하게 되며, 70세가 넘으면 기억력이 나빠져 자주 깜박깜박하며 너무 쇠약해 홀로 지낼 수 없다고 단정한다.랭어 박사는 1979년 정신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를 실행한다.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의 노인 8명을 시골 마을로 보내 1959년인 듯 살게 한 것이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산지 일주일 만에 놀랍게도 노인들은 실제로 젊어졌다. 시력과 청력, 기억력, 악력이 향상되고 체중이 늘었으며,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걷기 힘들었던 한 노인은 심지어 꼿꼿한 자세로 걷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과 후의 노인들 사진을 찍어 제3자에게 보여주자 모두가 일주일 후의 사진을 더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생각했다.이들 노인들 또한 처음 도착할 당시만 해도 사회와 고정 관념이 부과한 사고와 행동이 몸에 배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마음의 시계`는 이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를 진행했던 랭어 박사가 지난 30여 년간의 연구 성과를 담아낸 책이다.`긍정의 심리학` `가능성의 심리학`을 다듬어 온 저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들을 담은 이 책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 질병이나 노화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마음가짐이 우리 육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랭어 박사의 여러 계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러 심리 실험에서도 잘 나타난다.저자는 노화가 인간 발달상의 한 단계일 뿐 쇠퇴나 상실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 과정이나 결과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듯 미리 결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는 나이 듦이라는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사고, 노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인 것이다. 80세 남자는 더는 50세 때만큼 테니스를 칠 수 없다는 데 좌절하지만 어쩌면 문제는 그가 더는 똑같은 방식으로 경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테니스를 치려고 애쓴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하지만 우리 사회가 조성한 물리적 환경(젊은 선수에 맞춰진 경기장과 경기 시간 등)과 정신적 환경(고정 관념)은 80세 테니스 선수와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노화하고 있는 탓에 더 이상 예전처럼 경기를 펼칠 수 없다는 데에만 사고를 고정시켜,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전략으로 경기를 펼칠 생각은 애초에 떠올리지도 못하게 거대한 마음의 벽을 쌓아 버린다.랭어 박사는 노화와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몸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몸무게를 3kg 감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일로 느껴질지 모르나 30g을 뺀다는 생각에 기가 죽을 사람은 별로 없다. 저자는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리고 지혜롭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30g만큼의 치유법만 찾으면 된다고 말한다. `마음의 시계`가 제안하는 30g의 치유법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나이라는 숫자에 굴복하지 마라그간 얽매여 있던, 우리의 잠재성을 제한하는 문화, 언어, 사고방식을 버리자.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들, 의학계가 인간의 육체와 질병에 붙여 놓은 이름표들이 우리의 사고를 제한하고 부정적인 인식을 부채질한다. 나이라는 숫자, 질병이나 노화라는 이름표를 벗어던지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삶을 되찾을 수 있다.▲사소한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든다일상에서 소소한 선택의 기회를 주고, 물리적인 환경을 약간만 변화시켜도 우리의 건강과 행복은 향상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평균이라 가정되는 특정 집단을 지향해 젊은이들에 의해 고안되고 설계된 세계이다. 계단 옆에 손잡이를 달고, 현관 앞에 선반 하나를 두는 등 각각에 맞는 조그만 변화로도 크나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내 몸과 마음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자어제의 진실이 오늘은 거짓으로 판명될 수 있다. 의학계에 절대적인 진실, 확신이란 없으며, 우리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아는 이는 의사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의학계에, 전문가 집단에 무심코 넘겨주던 통제권을 되찾아 우리 몸의 사소한 변화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스스로의 건강을 좌우하는 결정에 적극 참여한다면, 선택의 힘, 그리고 그 힘으로 인한 개인의 통제력 증가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랭어 박사는 우리 몸에 불가피한 상처를 남기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질병들이 사실은 되돌릴 수 있으며, 의식을 집중해 자그마한 변화에도 주목하며 건강을 학습하는 자세로 우리 몸을 대한다면, 몸과 마음, 삶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고 젊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 말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09

이성의 노동을 통해 지혜를 얻는 철학

`철학연습` 민음사 刊, 서동욱 지음, 332쪽, 1만5천원 삶의 골칫거리들과 현대철학의 고민거리들은 어디서 어떻게 만나나?철학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기쁨, 슬픔, 질투, 고통, 불안)이 깊숙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찾아내, 그 원인들과 당당하게 마주하게 하기도 한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진짜로 대면해야 할 문제들을 밝혀주기도 한다. 늘 새로운 것이 출몰하는 현대의 삶에서, 정말로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는 것도 바로 철학이다.철학자이자 시인인 서동욱씨가 펴낸 `철학연습`(민음사 펴냄)은 현대철학의 핵심적 내용을 성실하게 소개하고 있다.학생부터 주부까지,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마옴속에 간직한 이들이라면 누구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썼다. 쉽게 썼지만 현대철학이 품고 있는 깊이를 무시한 채 단순화하고 도식화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저자의 생각과 마음을 통해 철저히 소화된 이야기만을 실었다. 또 철학자들이 고심했던 문제를 소개할 때, 그 치열함과 진지함을 가능한 한 생생하게 전달한다. 가령 스피노자나 키르케고르 철학이 당대의 네덜란드와 덴마크 사회와 어떤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는지,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문장으로 귀결되는 `의식의 익명성`에 주목하게 된 것이 어떤 경험과 연관돼 있는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통해 알 수 있다.“이렇게 네덜란드는 자유와 예속의 체험 모두를 통해 스피노자의 사유를 자극했다. 스피노자가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당한 파문을 감수한 것,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 초빙을 거절한 것 등은 모두 그의 삶 전체가 예속에 맞서 자유를 획득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루어낸 하나의 작품임을 알려준다.”(31쪽)“의식은 말을 통해 대상에 의미 부여를 하고 의미를 통해 대상을 규정하는 일을 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사르트르가 자신의 성장에 관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 다시 태어났다. 글을 쓰기 전에는 거울 놀이밖에는 없었다.” 거울 놀이 속에서 자기 시선을 통해 자기자신을 규정하는 소극적인 방어를 했던 어린이는, 이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의식 바깥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규정하려고 한다.”(96쪽)이렇게 철학자들의 사유가 발을 디딘 현장을 목격하게 하는 장치 역시 이 책이 깊이를 양보하지 않고서도 쉽게 읽힐 수 있는 비결이다.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식을 얻듯이, 그렇게 이성의 노동을 통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책은 현대철학에 대한 쉬운 안내서일 뿐만 아니라, 저자의 독창적인 에세이라 할 수 있다.책은 1부 `이론`과 2부 `연습`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현상학(실존주의)과 구조주의(탈구조주의)라는, 현실에 특별히 밀착했던 두 흐름을 중심으로 주요 철학자들을 살핀다. 각 꼭지 뒤에는 철학자들의 핵심 개념과 저작에 대한 설명, 더 공부할 때 도움이 될 만한 국내외 자료들이 나온다. 철학자들의 대표 저작 목록을 백과사전을 참조해 정리한 자료가 아니라 저자가 20년 이상 공부해온 내용을 압축해 알짜배기만 담아놓은 노트나 마찬가지이다. 한 줄의 설명에도 저자의 내공이 스며들어 있다.2부에서는 주제를 앞세워 생각을 전개시키는 에세이들이 등장한다. 존재와 무, 차이와 환대, 진리, 진짜와 가짜 등 고전적인 주제에 관한 논의들을 현대철학 버전으로 재정비한 글들이 준비운동을 돕는다. 그러고 나면 돈, 사랑, 외모, 스마트폰 시대의 책읽기와 글쓰기 등 현대적 삶의 국면이 철학의 언어와 만나는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책 곳곳에 실린 컬러 사진들은 이러한 철학적 사유의 즐거움, 혹은 괴로움을 최대한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09

서른 살의 위기에 옛 친구 찾아 떠나는 여행기

`서른 살의 인생 여행` 민음사 刊, 대니 월러스 지음, 496쪽, 1만6천원`서른 살`을 키워드로 하는 도서들이 강세다. 사회 초년생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가거나 또는 혼란을 겪으며 자신의 미래를 다시 모색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인생의 중요한 시기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서른 살에 반드시 알아야 할 처세술, 재테크 비법, 인생의 지혜 등을 알려 주는 여러 책들이 최근 다수 등장했다. 서른 살에 겪는 심리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하거나 그들에게 위안을 전하는 책들도 인기다. 하지만 서른 살의 위기를 좀 더 재기 발랄하고 즐겁게 넘길 수는 없을까? `서른 살의 인생 여행`(민음사 간)은 전작 `예스 맨`에서 기발한 아이디어와 과감한 행동으로 위기를 오히려 행복의 기회로 만든 유쾌한 괴짜 대니 월러스가 자신이 겪은 서른 살의 위기를 다룬 아주 특별한 인생 실험 다큐멘터리다.저자 대니 월러스는 서른 살 생일을 앞둔 어느 날 자신이 어른이 되어 가고 있으며, 더구나 평범한 중년 남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어릴 적 물건을 모아 둔 상자 속에서 낡은 주소록을 발견한 그는 옛 친구들 역시 서른 살을 앞두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그들도 나처럼 어른이 되는 것이 불안할까?` 하는 물음이 떠오른 그는 소중한 친구들의 이름만 적어 놓았던 그 특별한 주소록의 열두 친구들을 직접 만나 보기로 결심한다. 여러 난관을 헤치고, 어쩌면 대단치 않지만 어쩐지 실행에 옮기기 힘든 이 프로젝트를 해내며 대니 월러스는 여러 가지 인생의 깨달음을 얻어 간다. 그리고 똑같이 나이를 먹어 가는 친구들의 인생을 자기 인생과 함께 나란히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서른 살의 인생 여행`은 서른 살을 앞두고 막연한 불안에 떠는 20대 후반의 사회 초년생들, 결혼을 하고 어느덧 안정된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이것이 과연 내가 원했던 것일까` 의문을 품기 시작한 30대들 모두를 위한 책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친구 100만 명보다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단 한 명의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진정한 소셜 네트워킹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독특한 실화 에세이는 서른 살의 위기를 넘기는 특별한 방법을 제안한다.30대가 되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은 나뿐일까?”와, 정말 백만 년 만에 생각 난 이름이었다. 이 친구들은 모두 어디 있을까? 지금쯤 뭐가 되어 있을까? 모두들 행복할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들도 서른을 앞두고 있다. 그들은 서른이 되는 것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그들도 나와 같은 기분일까? 그들도….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을까? (62쪽)20대 후반에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서글픈 마음으로 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른 즈음이란 “또 하루 멀어져” 가는 청춘을 아쉬워하며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누구나 고민하는 시기이다. 새로운 사춘기로 떠오르는 불안한 이 시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 대니 월러스 역시 30대가 되는 것, 이제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민을 해야 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멀어져만 가는 그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서른 살의 인생 여행`은 서른 살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어떤 거창한 방법론이나 대단한 조언이 필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자신을 이해하고,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친구란 언제나 불안한 인생살이를 옆에서 지지해 주는 존재로서 그 소중함을 증명하지만, 옛 친구가 소중한 것은 그들이 나의 특별한 역사를 기억하고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옛 친구의 존재를 기억하고 그들과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은 내 뿌리를 잊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소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기 힘들 때가 많다. 주변 환경에 맞춰 사회적 요구에 따라 사고를 하고 행동을 하다 보면, 문득 `이건 내가 아닌데.`라는 좌절감이 들기 마련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고 그것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은 일이다.`서른 살의 인생 여행`은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을 기억하고 중심을 잃지 않는 방법으로, 옛 친구를 만나 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예전의 소중했던 관계를 잘 유지해 볼 것을 권한다. 어쩌면 정말 좋은 우정이라면 영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우정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과거에 비틀거리고 넘어지는 걸 지켜보았고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아는 그 친구들이 계속 곁을 지킨다면, 어떤 인생의 위기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서른 살의 인생 여행`은 정말 소중한 소셜 네트워킹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옛 친구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깨우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02

수묵화 같은 자전적 일상의 노래

포항제철소 근무 정헌종 첫 시집 `붉은 파도` 아르코 刊, 115쪽, 7천원 포항제철소에 근무하는 정헌종(42) 시인이 첫 시집 `붉은 파도`(아르코 간)를 발간했다.정헌종 시인은 포항제철소에 근무하면서 꾸준히 시인으로 활동해 `한국문학정신`에 `까치` `오디`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정 시인은 평범한 직장인이면서 부드럽고 쇳물처럼 뜨거운 제철소의 시인이다. 직장인과 시인의 신분을 오가며 틈틈이 옥토를 개간하듯 자신만의 언어로 시를 써오고 있다.그의 시는 고향 전북 익산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과 고향을 떠나 포항에서 유학와서 생활했던 자신의 일상들을 이야기 식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시적 소재는 사람과 사물이다.정 시인은 “난해할수록 자기만족에 가깝고 쉬울수록 자기고백에 가깝다.”며 시를 독자의 관점에서 너무 어렵지도, 쉽지도 않게 표현한다.정 시인의 작품들은 잘 읽히고 이해하기 쉬워 시가 어렵지 않다. 독자와 소통하려는 흔적들이 작품 곳곳에 나타나며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표현들을 절제하면서 일상적인 시어를 통해 사물을 수묵화처럼 그려내고 있다.이 시집의 해설을 쓴 윤석홍 시인 역시 포항제철소의 직원으로 등단 20년이 넘는 중견시인이다. 윤석홍 시인은 “정헌종 시인은 자기 경험을 통해 독자에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적 공간을 들려주고 있다”며 “그의 시에서는 그만의 언어로 서정적 표현을 그려내고 있다”고 평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02

의지와 상관없이 농부가 된 이야기

`그곳은 평화롭겠지` 헤르브란트 바커르 지음, 신석순 옮김, 364쪽, 1만2천원“내가 아버지를 싫어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내 인생을 망쳐놓았기 때문이에요. 난 아버지가 내 인생을 더 망쳐놓는 것이 싫어서 의사도 부르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몰라요, 헹크가 나한테 얼마나 소중했는지. 헹크하고 난 쌍둥이잖아요. 아버진 쌍둥이 형제가 어떤 건지 알기나 해요?” (246쪽)“지난 10년 동안 발간된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을 썼다”는 찬사를 들으며 데뷔와 동시에 여러 문학상을 받고 네덜란드 문단의 기대주가 된 헤르브란트 바커르의 장편소설 `그곳은 평화롭겠지`(문학과 지성사 펴냄)가 출간됐다.이 소설은 네덜란드 국내는 물론 여러 해외의 유명 잡지들에서도 각종 찬사를 받았으며, 이미 영국·독일 등 10개국에서 번역 출간됐을 뿐 아니라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영어판 `쌍둥이`는 `2010년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송하는`그곳은 평화롭겠지`는 초록 잔디밭과 물, 새 그리고 고랑과 호수를 메운 얼음판, 소, 양, 고분고분한 당나귀 두 마리, 또 어느 뿔까마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광활하게 펼쳐진 그 자연은 인간을 외로움 속으로 빠뜨릴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농부가 되고 만 헬머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아비는 쌍둥이 동생 헹크를 편애했고, 그래서 동생이 아비의 농장을 물려받을 예정이었지만…. 어느 날 아비의 뒤를 잇는 운명이 헬머를 덮친다. 헹크가 사고로 죽은 것이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문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헬머는 학업을 포기하고 동생을 대신해 농장에 남는다.반평생 동안 쌍둥이 동생이 살았어야 하는 인생을 대신 산 헬머. 그의 삶이, 미지에 대한 동경이, 과거에 대한 향수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샴쌍둥이라도 되어 한 몸이 되고 싶었던 동생과 함께 보낸 나날들은 돌아올 수 없는 그리운 과거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동생을 잃음과 동시에 자신의 인생마저 빼앗겨버렸다. 반쪽짜리가 되었다고 느끼면서 수십 년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다니…. 그렇지만 이 책은 슬픔을 호소하지 않는다. 그저 동생을 대신해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산 한 남자의 삶을, 그의 상념을, 그가 있는 네덜란드의 전원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려낼 뿐이다. 마지막으로 온전히 혼자가 되는 순간까지.이 작품은 인간의 상처, 상실, 그리고 그리움과 갈망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자신에게 딱 맞는 인생을 살지는 않는다. 인생은 스스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외로운 여정일 뿐이다. 하지만 쌍둥이는 태어날 때부터 혼자가 아니다. 헬머는 늘 동생 헹크를 그리워했고, 농가에서 일하는 얍을 그리워했고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아비와 단둘이 농가를 지키는 동안 헬머는 아비의 일손이 되었다. 그러다 아비가 병이 들어 몸져눕자 그는 스스로 농가의 주인장이 됐다.물기가 흥건한 농토, 소들의 숨소리와 양들의 우는 소리만이 이따금씩 정적을 깨우는 전원에서 헬머는 농장의 가축들과 늙은 아비를 묵묵히 돌본다. 아비를 위로 `치워버리고` 아래층 거실과 안방을 분주하게 새단장하는 책의 초반부는 사뭇 뭔가를 새롭게 시작해보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농가라는 자리는 헬머가 꿈꾸는 자리가 아닌지라 헬머의 마음은 그다지 가다듬어지지 않는다. 농장에, 병든 아비 곁에 묶여 세상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공상밖에 할 수 없는 헬머. 그가 갈망하는 땅, 덴마크.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방에 덴마크 지도를 걸어놓고 매일 밤 자기 전에 지명들을 읽어보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6-02

대한민국의 교육 백년지계 암기 아닌 창의성에 달렸다

`우리아이 창의력 엄마하기 나름이다` 푸른길 刊, 이용석 지음, 328쪽, 1만5천원 최근 교육계 곳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지난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대담한 제목으로 시작한 일명 김예슬 선언에 이어 얼마전 한국 최고의 대학인 카이스트에서 몇 명이나 되는 학생과 교수가 스스로 아까운 목숨을 끊었다.이용석 오메가창의교육연구소장이 최근 경북매일신문에 1년반 동안 연재한 글들을 모아 펴낸 `우리아이 창의력 엄마하기 나름이다`(푸른길 펴냄)는 이제는 우리가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전반적인 사항을 비판적으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을 위한 창의력 교육 지침서가 될 것이다.30여년 동안 학교 현장에서 체험적으로 알게 된 내용들을 이 책에 정리했다는 저자는 우리의 교육은 과연 백년지계의 제역할을 다 하고 있는가? 대학 진학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인가? 우리의 교육은 다른 나라의 교육처럼 아이의 개성을 마음껏 뽐내게 하고, 저마다의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핵심은 바로 `창의성 교육`이라고 주장한다.“안타깝게도 우리의 교육은 입시라는 한 목표에 치중돼 있다. 하나의 문제를 두고 여러 가지의 방안을 함께 논의하기보다는 정해진 답안을 무작정 외우는 주입식 교육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이런 교육 방식은 입시 그 자체에는 주효할지 몰라도, 입시 이후에 맞닥뜨려야 하는 다른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명문대에 입학을 하고도 적응을 못해서 낙오되는 학생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시험 문제 하나도 서술형으로 출제되는 대학 시험에서부터 지원자의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취업 현장, 에세이라고 불리는 논술로 이루어지는 외국 대학 수업에 이르기까지 학습자의 지식보다는 창의성을 요구하는 곳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창의성 교육, 과연 우리는 학생들의 창의력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저자의 교육법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지향하는 교육법은 한번 배워서 잠깐 써먹는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그는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운동 선수가 기술을 배우듯 장기적인 안목을 두고 조금씩, 천천히 생각의 근육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한다.그가 생각하는 `교육이 잘 된 인간`이란 그저 공부만 잘 하는 우등생이 아니다. 교과서에만 파고드는 공부벌레는 저자의 눈으로 볼 때 우수한 학생이 아니라 조금 `문제가 있는` 학생이다. 창의성을 기르려면 그만큼 많은 것을 접하고, 규칙을 벗어나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며,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의견 교환을 통해 창조적인 산출물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교과서에만 매달려 외우는 데만 여념이 없는 학생은 그런 능력을 기를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저자는 창의력 학습법 OMEGA 5를 제안하고 있다.첫째, Open Mind(열린 마음)이다.Open Mind는 말 그대로 마음을 여는 것이다. 마음을 여는 활동은 상대편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자기의 새로운 것을 표현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Open Mind를 통해 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가벼운 게임, I-message 대화법, 감정 코치법, 토론법 등의 활동이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Open Mind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활발한 토론은 창의력 신장에 크게 도움이 된다.둘째, Multiple Thinking(다면적 사고)이다.우리는 그동안 하나의 정답을 찾는 공부를 해 왔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기보다는 정답을 좇아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면 핀잔을 받는 분위기에서는 남다른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창의성을 키우려면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다면적으로 바라보고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셋째, Embodied Knowledge(체화된 지식)이다.창의력을 발휘하려면 풍부한 바탕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때의 지식은 암기 위주로 얻는 객관적 지식이 아니라 직접 경험을 통해서 얻는 주관적 지식을 말한다. 직접 고민하면서 경험을 통해 얻는 지식은 문제 상황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므로 체험적 지식을 많이 얻어야 한다.넷째, Goal-Oriented Learning(목표 지향 학습)이다.창의성에는 크게 지식, 경험, 기능, 성향 등의 네 가지 영역(Category)이 있다. 이 영역 속에는 24가지의 요인(Factor)이 있다. 이 요인들을 세분하면 다시 114개의 요소(Element)가 있다. 창의성을 기른다는 것은 각 요소들을 자극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창의성을 기른다고 막연하게 영역이나 요인에 해당되는 큰 덩치에 접근할 것이 아니라, 세부 요소들을 자극하는 목표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다섯째, Aha, Product(새로운 산출물)이다.사람은 새로운 것을 생각하거나 놀라운 것을 보게 되면 `Aha!`라는 탄성을 지르게 된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의성 교육에서도 `Aha!`라는 탄성이 자주 나오게 해야 한다. Aha 경험을 많이 하게 하기 위해서는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에 가 보고, 새로 나온 것과 자주 접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해 보는 활동을 많이 해야 한다. (본문 p70~71 중에서)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창의성을 길러 줄 수 있을까? 부모라면 한번쯤 고민해 보는 숙제다. 그러나 저자 이용석씨는 창의력이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에게 이미 내재된 힘이라고 강변한다. 이 책에는 생각의 확장을 도와 줄 브레인스토밍, 스캠퍼 기법과 ASIT, 감정 코치법 등 다양한 교육법이 소개돼 있다. 교육법이라고 하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겠지만, 이 책의 특징은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 혹은 아버지라면 언제든 가정에서 간편하게 꾸밀 수 있는 놀이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로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 혹은 가족이 다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평소보다 조금은 다른 생각 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 새 자녀의 상상력이 몰라보게 자라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5-26

고향 포항의 역사와 문화·미래를 조명

`나의 삶 70년, 그리고 포항` 도서출판 새암 刊, 배용일 지음, 384쪽, 1만5천원 “나의 삶 70년은 포항인과 역사학도로서 제 2차 세계대전과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6·25전쟁, 4·19와 5·16,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련 등 근현대사의 격변을 경험하며 민족적, 시대적 아픔이 컸던 만큼 시련 극복의 희망과 기쁨도 충만했던 보람의 여정이었다. 이 자리를 통해 지난날들을 회고 성찰하며, 앞날의 밝은 삶을 조망하고 싶었다. 나아가 포항시민과 함께 `선진 일류도시, 글로벌 포항` 창출을 위해 광명정대한 개척과 화합의 진취적인 포항정신(일월정신)을 오늘에 계승하여 미래화 하는 염원을 담고자 하였다.”(배용일 교수의 `나의 삶 70년, 그리고 포항`책머리 중)향토 사학자인 배용일(70) 포항대학 초빙교수가 `나의 삶 70년, 그리고 포항`(도서출판 새암 펴냄)을 출간했다.배 교수는 자신의 고향인 포항에서 평생 교직생활을 했고 퇴직 후 고희를 맞은 지금까지 포항의 역사연구에 온 정열을 쏟고 있는 사학자이다. 특히 배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인`박은식과 신채호 사상의 비교연구`를 읽어보면 그의 학문 방향과 연구 성향이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세속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번에 출간한 배 교수의 저서는 민족주의 사학의 대표인 신채호와 박은식 선생의 역사사상을 연구한 역정과 이와 연관되는 사연을 담담하게 서술할 뿐만 아니라 배 교수가 그토록 사랑하고 자랑하는 포항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적기(摘記)하고 있다.이 책은 배 교수가 어떻게 역사학자의 길로 들어서서 왕성한 연구활동을 했는 지 전 과정을 숨김없이, 그리고 아주 진솔하게 서술해 놓았다. 어느 면에서 형식과 저서 내용을 일별하면 자서전의 양식처럼 보일 수도있지만 그러한 양식을 저변에 깔고 있으면서 포항의 역사를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제별로 논지를 전개시키고 있다. 자세히 내용을 살펴보면 사론적 의미가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어 단순한 자서전의 성격을 뛰어넘고 있다.이 책은 내용의 성격에 따라 크게 3부로 구성돼있다. 이 책이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포항의 역사와 미래를 연관 지으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려고 심혈을 기울인다는 사실이다.포항의 현재를 과거의 역사와 문화에서 연원을 찾고 현재의 새로운 포항의 활력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미래지향적으로 포항 문화의 진취적인 힘을 강조하고 있다.먼저, 이 책의 1부는 배 교수가 어린 시절부터 포항에 정착해서 70년 세월을 교학생활에 전념한 자세한 역정을 서술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의 요약 부분이 될 것 같다.이 책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첫째, 박은식과 신채호의 역사인식을 연구한 학자답게 민족주의 사관을 저변에 깔고서 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애정 어린 시각에서 서술했다.둘째, 포항의 정신적 뿌리를 일월(日月)정신으로 보고, 그 연원을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 세오녀 일월신화에서 찾고 있다. 저자는 이 기사를 주목해서 이들이 영일지역 근기국의 인물로 일본에 건너가 길쌈과 제철기술 등 선진문화를 전파하고 그곳에 왕과 왕비가 됐다고 주장한다.저자는 연오랑 세오녀에 대한 연구끝에`영일읍지`(김용제) 자료를 통해 포항시 남구 오천읍 세계리 당평마을에 연오랑 세오녀가 집을 짓고 살았다는 사실을 주장하며 사실에 접근하는 업적을 보이고 있다.셋째,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호미곶을 꼽고 이 해맞이 행사가 포항의 축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축제로 승화되길 기원하고 있다.넷째, 포항에는 제철보국의 기치를 건 포항제철이 자리잡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굴지의 기업으로 발전하였다. 저자는 이 모든 현재의 여건이 역사와 문화의 소산으로 간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에는 인문학의 상황은 열악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다섯째, 우리나라의 향토사 연구가 부진한 가운데 배 교수의 저서가 출간된 것은 사실에 입각한 향토사는 새롭게 조명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키고 있다. 역사연구와 서술에는 중앙의 역사만이 대상이 아니며 한국사 실상을 바로 알려면 향토사의 연구결과는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자료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5-26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꾼 이름없는 고수들 이야기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6권` 창작과 비평사 刊, 유홍준 지음, 456쪽, 1만6천500원 1993년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로 시작된 유홍준 교수(명지대 미술사학과)의`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출간과 동시에 일약 화제가 되면서 전국적인 답사열풍을 몰고 온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다. 제1권이 120만부 판매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국내편 세 권과 북한편 두 권까지 모두 260만부가량이 판매돼 우리 출판사상 흔치 않은 기록들을 갈아치운 `답사기`가 10년 만에 신간(제6권) `인생도처유상수`(창작과 비평사 펴냄)로 최근 나왔다. 이와 함께 기존의 제1~5권이 개정판으로 새단장해 출간됐다. 수록사진들을 전면 컬러로 교체하고 본문 디자인을 새롭게 하면서, 내용상의 오류를 바로잡고 변화된 환경에 맞도록 정보를 추가하는 등 전면적인 개정작업을 거쳐 신간과 함께 출간된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신간의 부제는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이다. 옛 시인의 시구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에서 원용한 이 문구는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이름 없는 고수들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삶의 도처에서 숨은 고수들과 예기치 않게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언급한다.“답사에 연륜이 생기면서 나도 모르게 문득 떠오른 경구는 `인생도처유상수`였다. 하나의 명작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무수한 상수(上手)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것의 가치를 밝혀낸 이들도 내가 따라가기 힘든 상수였으며,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필부 또한 인생의 상수들이었다. 내가 인생도처유상수라고 느낀 문화유산의 과거와 현재를 액면 그대로 전하면서 답사기를 엮어가면, 굳이 조미료를 치며 요리하거나 멋지게 디자인하지 않아도 현명한 독자들은 알아서 헤아리게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오랜 세월 답사를 다니다보니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탐구뿐 아니라,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며 혹은 남들이 모르는 깨달음을 얻은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익히 `상수`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저자는 신간 전반에 걸쳐 그들을 소개하고 그들과의 에피소드를 그려내는 데 공을 들인다. 경복궁 근정전 앞뜰의 박석이 지닌 가치를 발견해낸 경복궁 관리소장, 일반인들은 절대로 알지 못하는 봄나물을 줄줄 꿰고 있는 무량사 사하촌 할머니들, 광주비엔날레 대상 수상작의 의미를 천연덕스럽게 해석해내는 촌로, 노비 출신의 비천한 신분으로 경회루의 대역사를 이뤄낸 박자청 등 학식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경험과 연륜에서의 상수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답사의 현장에서 만난 고수들과의 에피소드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데서 두 배의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또한 이 책에는 저자가 4년간 문화재청장으로서 재직하면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스며 있다. 서울을 대표하는 광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광화문광장 시안을 마련해 정부 부처와 서울시를 바쁘게 오갔던 사연, 문화재 보수에 필요한 박석을 마련하기 위해 박석 채굴 광산을 찾아나섰던 이야기, 광화문 현판글씨에 얽힌 논란과 후일담, 종갓집 맏며느리 간담회 이야기, 개방금지를 능사로 아는 문화재 관리행정을 깨고 경회루 등을 개방한 일화, 전국의 아름다운 돌담길을 선정해 보수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던 에피소드 등이 등장한다. 전권들에서 보여준, 미술사학자로서 문화유산 보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서 그치는 입장이 아니라 직접 관리자의 위치에서 경험한 바를 술회하기도 하고 여전히 아쉽고 앞으로 더 개선된 후일을 기약하는 회고의 고백도 담겨 있다.신간에서는 서울의 상징 `경복궁`과 `광화문`에 얽힌 숨은 이야기, 양민학살로만 알려진 `거창`의 진면목, 사계절 아름다운 절집의 미학을 간직한 `선암사`, 고도 `부여` 구석구석에서 발견하는 백제 미학의 정수, 인문정신이 빛나는 달성의 `도동서원`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경복궁과 광화문 이야기로 시작한다. 조선시대 건립돼 화재로 소실되고,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그 자리와 위용을 잃어야 했던 우리 역사의 곡절을 상징하는 광화문이 오늘날의 모습을 되찾기까지의 과정과, 궁궐로서의 품위와 아름다움을 풍성하게 간직하고 있는 경복궁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의의가 있다.`부여·논산·보령` 편에서는 저자의 개인적 경험이 듬뿍 밴 에피소드와 부여 근교 구석구석에 감춰진 백제 미학의 흔적들을 꼼꼼하게 좇는 답사의 기록을 만날 수 있다. 저자가 5도2촌의 생활을 시작하며 부여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 터전을 닦은 사연, 예순의 나이에도 마을 `청년회원`을 못 벗어난 사연, 봄이면 한껏 풍성해지는 산나물 이야기, 1권 `남도답사 일번지`의 무위사 편에 소개되어 일약 명물이 된 개를 연상시키는 대조사의 꽃사슴(해탈이)과 진돗개(복실이) 이야기 등은 단순히 그 지역 문화유산을 소개하거나 해설해주는 데에 그치지 않는 유홍준 특유의 사람 냄새나는 답사기의 일면을 보여준다. 괴이하고 못생긴 모습으로 지역민들에게 안쓰러움의 대상이었던 관촉사 은진미륵의 조형성을 고려시대 불교미술의 양상과 연관지어 적극적으로 해석해내는 저자의 모습은 지역문화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넘어서 그들과 함께 환경과 문화를 공유하는 아름다운 사례이기도 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5-19

인도의 고정관념 깨고 진실을 말하다

`인도에 관한 열일곱 가지 루머` 도서출판 사람들 刊, 이상문 지음, 352쪽, 1만4천원 “복잡하고 다원적인 인도가 쉽게 읽힌다.`인도는 신비하다`는 고정관념이 허물어진다. 해박한 인문학적 상상력이 바탕에 깔린 이야기 문체로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도 느끼게 한다”오지여행가 이상문씨가 인도인의 삶을 긍정적 시각으로 그려낸 여행 산문집 `인도에 관한 열일곱 가지 루머`(도서출판 사람들 펴냄)가 나왔다. 그동안 출판된 각종 기행서와는 달리 인도의 역사, 문화, 민속의 중요한 장면을 포착해 서술함으로써 인도 사회 전반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저자는 이 책에서 인도에 관한 온갖 선입견을 부정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 `시간이 멈춘 나라`, `명상과 신비의 나라`로 인식된 인도에 대한 선행지식을 모두 부정하고 그 모든 것이 인도인의 멀쩡한 종교적·관습적 일상이라는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다.예컨대 여행자를 상대로 끊임없이 바가지와 사기를 일삼는 상인들이나 혼자 다니는 여자 여행자를 지분대는 인도 젊은이들의 모습을 생존의 방법론이거나 무료한 일상을 달래는 돌파구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인도의 새로운 면과 진실을 부각하는데 주력했다”고 밝혔다.그러나 이 책 전체에는 다른 인도관련 책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가난하고 고단한 인도인의 삶과 낯선 문화와 종교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저자의 가난했던 유년에 대한 기억이 인도 이야기와 수시로 교차하면서 인도인의 현재의 삶을 경험론적 애정으로 싸안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중심에 흐르는 주된 감성은 고통·가난 속에서 허덕였던 과거의 우리와 현재의 인도인에 대한 휴머니즘과 과장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시각을 견지하려는 리얼리즘이다.모두 17개 소주제로 구성된 이 책은 뭄바이, 델리, 콜카다, 바라나시 등 익히 알고 있는 대도시에 대한 저자의 새로운 시각과 리시케쉬, 반바사, 자이살메르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에 대한 문화적 접근이 시도된다. 그래서 여행을 주제로 했지만 단순한 신변잡기가 아니라 재미난 이야기책, 쉽고 해박한 인문학 서적처럼 읽힌다.타지마할의 도시 아그라에서 만난 거지여인에게 품었던 연정은 한 편의 단편소설과도 같고, 힌두 성지 리시케쉬에 비틀즈가 인도를 방문했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동서양인의 사유세계의 차이에 대해 설명한 대목은 문화비평론과도 같다.암소와 카스트, 빈곤과 자존 등 인도인의 가장 대표적인 삶의 모습과 태도에 대해서도 냉정한 시각을 견지한다. 전문가의 객관적 주장을 끄집어내 연결함으로써 설득력을 더했고 일부 여행자들이 부풀린 정보를 경계하라는 경고도 서슴없이 날린다.저자 이상문씨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그러나 이미 오지만 골라 50개국 이상을 여행한 배낭여행 1세대임을 자처한다. 이 책은 그동안 여행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을 풀어내는 작업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이 책에는 자신의 장애로 겪은 일들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엘로라 석굴에서 벌떼의 습격을 받고도 도망가지 못하고 고스란히 당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것이 장애의 탓이 아니라 인간의 오만에서 비롯된 보편적 형벌이라고 항변한다. 저자가 가진 가난과 장애는 인도인의 불편한 삶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그 속에서 고통과 정면 승부하는 인간의 꿋꿋한 의지를 형상화해 내고 있다.언론인 김병길씨는 이 책에 대해 “딱히 편한 곳으로만 떠나지 않고 기록해낸 이상문의 이번 인도 여행 산문집에서 또 다른 세상과 마주서는 법을 가르쳐 주고 우리의 심신에 `긍정의 힘`이라는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고 평가했다.`인도에 관한 열일곱 가지 루머`에 등장하는 열일곱 가지 이야기는 루머가 아니다. 루머처럼 떠도는 인도에 관한 정보를 비교적 정확하게 교정하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우리가 평소 생각해 왔던 인도에 관한 온갖 왜곡된 선지식을 바로잡는 새로운 인식의 문이 열리도록 도와준다.저자 이상문씨는 울산제일일보의 취재 1부장으로 현직 기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래서 기자가 바라보는 객관적 관찰력이 돋보이고 가이드북과 차별화된 인도여행의 노하우도 담겨 있어 이미 인도를 다녀왔거나, 인도여행을 계획하거나, 인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 모두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5-19

보고 듣고 느낀 삶의 비애 노래

하품 나는 간접의 세계 벗어나고달픈 직접의 세계로 나아간`삶의 시` 이자 `몸의 시` 1998년 `시와반시`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꾸준히 자신의 음역을 넓혀온 유홍준(49) 시인이 세번째 시집 `저녁의 슬하`(창비 펴냄)를 펴냈다. “독자적 인 발성법으로 해체시와 민중시 사이에 새로운 길 하나를 내고 있다” 고 평가받은 첫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로 한국시인협회 제정 제1회 젊은 시인상을 수상한 데 이어 두번째 시집`나는, 웃는다` 로 제1회 시작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껏 물이 오른 시인은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한층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감각으로 우리 삶을 더욱 농밀하게 그려낸다. 삶의 의외성과 돌연성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거침없는 시세계가 대담하면서도 경쾌하다.유홍준의 시는`삶` 자체이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비루한 삶의 비애를 고스란히 시 속에 녹여낸다. 그 중심에는 “눈꺼풀을 밀어버린 눈으로 세상을 뚫어지게 바라”(`유리창의 눈꺼풀`) 보는 시인이 있고, “아무데나 픽 꽂아놓아도 사는/버드나무 같”(`버드나무집 女子`)은 이웃과 가족이 있다.“사람이란 그렇다/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냄새가 난다, 삭아/허름한 대문간에/눈가가 짓물러진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사람을 쬐다`)비스듬한 시선으로 고단한 삶의 풍경을 담아내는 시인은 자신을 “사람의 얼굴을 한 까마귀”(`나무까마귀`), “웃통을 벗어던지고 자는” 고기(`도축장 옆 아침`), “인간의 머리를 달고 온몸을 뒤틀어”대는 지렁이(`붕어낚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몽상가”(`연잎 위에 아기를`)라고 일컬으며 자학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참, 지랄 같”기는 해도 일흔네살에 자궁을 들어낸 어머니(`어머니의 자궁을 보다`)나 “분절의 말들”이 굴러다니는 곳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토록 오래, 모여, 밥 같이 먹고 잠 같이 자”(`폐쇄병동에 관한 기록`)고 “목줄에 묶인 개처럼//링거줄에 묶여 화장실 다녀오는”(`오후의 병문안`) 폐쇄병동의 환자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은 애잔하기 그지없다.“내가 입던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백명의 정신병자들,/나는 흠칫 놀라 움츠리곤 한다/아니다 아니다 그게 아니다 너무나 친숙하고 너무나 익숙해서 나는 웃는다/정신병원 복도를 걸어다니는 백명의 나에게/농담을 건네고 악수를 하고/포옹을 한다”(`내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자들`부분)뭇 생명을 대하는 시인의 눈길 또한 사람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애틋하다. “성대가 잘려나간” 개(`저녁`), “못 박는 총으로/쏘아//머리에 못이 박힌” 고양이(`네일 건`), 인공수정을 당하는 “멍청하고 슬픈 소의 눈망울”(`인공수정`)을 바라보는 시인은 “쓸모만을 향해 질주하는 세계의 불모성과 폭력성”(손택수, `추천사`)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위로한다.“겨드랑이까지 오는 긴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애액 대신 비눗물을 묻히고/수의사가/어딘지 음탕하고 쓸쓸해 보이는 수의사가/꼬리 밑 음부 속으로 긴 팔 하나를 전부 밀어넣는다//나는 본다 멍청하고 슬픈 소의 눈망울을/더러운 소똥 무더기와/이글거리는 태양과/꿈쩍도 않고/성기가 된 수의사의 팔 하나를 묵묵히 다 받아내는 소의 눈망울을//(…)(`인공수정`부분)유홍준의 시는 “대담하고 활달하고 개구지고 거침없다.”(김언희, `발문`) 그의 시에서 보이는 가벼움과 수월성은 “용암의 뜨거움을 거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가벼움, 제 안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난 다음에야 도달하게 되는 무서운 가벼움”이다. 관념적인 언어로 치장된 사유보다는 의외의 발상과 감각적인 이미지로 삶의 전경을 찍어내는 그의 시는 남다른 감동을 자아낸다.“고인의 슬하에는/무엇이 있나 고인의 슬하에는/고인이 있나 저녁이 있나/저녁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저 외로운/지붕의 슬하에는/말더듬이가 있나 절름발이가 있나/저 어미새의 슬하에는/수컷이 있나 암컷이 있나/가만히/돌을 두드리며 묻는 밤이여/가만히 차가운 쇠붙이에 살을 대며 묻는 밤이여/이 차가운 쇠붙이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이 차가운 이슬의 슬하에는/무엇이 있나/이 어긋난/뼈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이 물렁한 살의 슬하에는 구더기, 구더기, 구더기가 살고 있나”(`슬하` 전문)이전 시집에서 불행한 가족서사와 죽음의 시학을 천착했던 시인은 이제 “지루하고 하품이 나”는 `간접`의 세계가 아닌 “힘들고 고달”프긴 하지만 “재밌고 즐거운” `직접`의 세계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다(`시인의 말`). 그의 시는 머릿속에서 관념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몸 가는 데”로 가는 `삶의 시`이자 `몸의 시`이다. 이제 그 `몸`이 어디로 갈지 자못 궁금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5-12

자연과 삶의 이치 담아

시집 `하루 또 하루` 문학과 지성사 刊, 김광규 지음, 136쪽, 7천원 1975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한 이래, 생활 세계 속의 현실 체험을 바탕으로 `일상 시`의 영역을 꾸준히 개척해온 시인 김광규의 시집 `하루 또 하루`(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시인 김광규는 녹원문학상, 김수영문학상, 편운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30년 넘게 꾸준히 시를 창작해온 한국 시단의 거목이다. 이번 시집은 그의 열번째 시집으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십진법의 기수에 1을 더한 숫자 10은 두 자리 수가/시작되는 출발점”이기에 “새로 떠나야 할 시점”인 지금, “헌 신발 끈을 다시 조여”매며 각오를 다진다. 시집 `하루 또 하루`는 총 5부로 구성돼 있으며, 자연으로부터 얻은 인상, 이제껏 사람들과 맺어온 관계에 대한 반성,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고, 여행지에서의 깨달음, 그리고 별세한 지인들에게 보내는 추모의 내용 등이 담겼다.김광규의 시에 현현되는 자연은 타자로서 관찰되는 대상이 아닌 발화의 주체이다. 그의 데뷔작 `영산(靈山)`과 `유무(有無)1` 등에서부터 일관되게 나타나온 자연과의 합일된 정서는 이번 시집에서도 완만하게 이어졌다. 특히 1부 `푸르미`에 묶인 시 속의 자연물들(뿌리, 달, 능소화 등)은 그 자체가 시인이자 시가 돼 싱싱한 푸름으로 살아나기도 하고(`푸르미`), 외로운 밤 따뜻한 위로(`나 홀로 집에`)로 다가오기도 한다. 시인은 자연을 들여다보는 태도가 아니라 스스로 자연이 돼 삶과 눈을 맞추는 자세를 취하며, 자연으로부터 받는 인상들을 통해 삶의 이치들을 깨우쳐간다.“복실이가 뒷다리로 일어서서창틀에 앞발 올려놓고방 안을 들여다본다집 안이 조용해서아무도 없는 줄 알았나 보다오후 늦게 마신 커피 덕분에밀린 글쓰기에 한동안 골몰하다가무슨 기척이 있어밖으로 눈을 돌리니밤하늘에 높이 떠오른보름달이 창 안을 들여다본다모두들 떠나가고나 홀로 집에 남았지만혼자는 아닌 셈이다”(`나 홀로 집에`전문)더하여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사람들과 맺어온 관계를 환기하며, 이에 대한 고민들을 조촘조촘 시에 새겨나간다. 김광규 시인 특유의 따뜻한 눈길로 이웃, 친구, 가족 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자신이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상처 주었던 지난날을 아프게 반성한다. 교대역에서 50년 만에 우연히 마주친 지인과 “서로 바쁜 길이라 잠깐/악수만 나누고 헤어”진 만남이 마지막이었음을(`교대역에서`), 동네 박공집 쓰레기 더미에서 자고 있는 사내를(`전망 좋은 방`), 나이 들어 잔소리하는 아내의 얼굴에서 발견한 누나의 모습을(`다섯째 누나`), 시인은 바라보고 생각하고 또다시 시로 풀어낸다.김광규는 깨어 있는 감각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 또한 잃지 않는다. 시인은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들의 박한 임금(`굴삭기의 힘`), 소형 임대 아파트 주민들의 소외(`나뉨`), 위안부 문제는 외면한 채 제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의 탐욕(`인수봉 바라보며`)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그는 시 속에서 노한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논리적으로 똑똑하게 문제 지점을 잡아간다. 문학비평가 오생근이 말했듯 김광규는 “비천한 현실을 파괴하고 해체하기보다는 현실을 적절히 비판하면서 진정한 삶을 긍정”하고 있다.마지막 5부 「쉼」에 이르면 시인이 별세한 지인들에게 보내는 추모의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소설가 홍성원과 함께 페리선 난간에 기대어 찍은 사진을 보며 그리운 마음을 토로하는 `회색 사진첩`, 소설가 이청준과 젊은 날 함께 문학에 대해 논하고 삶의 아픔을 나누던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가는 `미백 영전에` 등이 이러한 시다. 더하여 종심(從心)의 나이에 이르러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초연하게 죽음을 바라보는 노시인의 담담함도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5-05

경맥문인협회 창간호 `경맥문학` 출간

도서출판 경맥 刊, 503쪽, 1만2천원 경북중·고 출신 문인들의 모임인 경맥문인협회(회장 이원락·포항장성요양병원장)가 창간호 `경맥문학(도서출판 경맥 펴냄)`을 펴냈다.지난 2009년 10월 창립 이후 첫 동인지를 펴낸 경맥문학회는 대구, 포항, 안동, 김천, 울산, 창원, 부산, 대전 등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각지와 해외문인들까지 아우르고 있다. 회원 들 중에는 정식 등단절차를 거친 이들도 있고 그런 과정없이 훌륭한 작품을 쓰는 이들도 많다. 전업작가도 있지만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집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이번 창간호는 대구지역 회원들이 주도해 만들었으며 한국 문단에 씨를 뿌린 백기만, 이효상, 이설주 등 초기 경맥문인협회원들의 작품들을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창간 특별기획`으로 구석본의 `우리시대의 문학`, 하오명의 `경맥문화여 영원하라`, 김유조의 `근-현대 문학의 생성과 발전`, 황을문의 `한국 해양문학의 오늘과 내일`, 박희두의 `의학과 문학의 공통점`, 김성태의 `경맥문학의 원류를 찾아서`등을 실었다.`세계속의 경맥문학`으로 중남미 시인 구광렬을 실었으며 선배 경맥문인작품선집으로 백기만, 이효상, 이설주 시인을 소개했다.`경맥갤러리`에는 경북중·고 출신 화가인 황갑용, 김응곤, 곽훈, 이강소, 권순철, 정종해, 주태석, 이무형, 이윤동, 권여현, 박순국, 강종섭, 박진관씨의 작품을 실었다.또 `경맥문단`에 이원락, 홍종흠, 손장락, 김상훈, 김원길, 김상진, 이정우, 황성길, 이하석, 김우연, 배효전, 안중은, 김건우, 신평, 류정무, 김두기, 하용준, 서종택, 박양근, 이동하, 윤지관, 김범선, 권영재, 김해권, 양선규의 시, 수필, 평론, 단편소설 등을 소개했다.이외에도 모교와의 연대를 위해 재학생코너를 만들어 김종진, 김도훈, 정동우, 조혁수 학생의 시와 산문을 소개했다./윤희정기자

2011-05-05

상처받은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

`친구와 그 옆 사람` 실천문학사 刊, 이만희 지음, 320쪽, 1만1천원등단 25년의 중견 소설가 이남희가 다섯 번째 소설집 `친구와 그 옆 사람`(실천문학사 펴냄)을 펴냈다. 이남희는 1990년대 대표적인 여성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십 세`의 작가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녀가 등단 이후 작품에 담아온 한결 같은 키워드는 여성, 몸, 사랑, 그리고 관계로 귀결된다.심리학에 기초한 자기 치유의 글쓰기에 관한 강의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 작가의 상처받은 인간, 삶, 관계에 대한 깊고 따뜻한 애도의 마음이 7편의 작품에 오롯이 담겨 있다.표제작이자 중편소설인 `친구와 그 옆 사람`과 여섯 편의 단편소설에서 공통적으로 엿보이는 것은 허무에 가까운 상실감이다.`친구와 그 옆 사람`의 영우는 연하의 연인이었던 김환에게 쓰라린 배신을 당하고, `낯선 이들의 집`의 정님과 `빛의 제국`의 그녀 그리고 `세 번째 여자`의 은정은 모두 이혼녀다. `거미집`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성추행을 당한 후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 이 같은 개인적 상실이 문제적인 것은 시대적 차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기도 한데, 특히 `친구와 그 옆 사람`은 이남희의 소설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1980년대를 지배했던 이념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었던 어떤 열망, 혹은 `이념적 대타자`를 상실한 1990년이 배경인 이 작품은 `살아남은 자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상실감에 허덕이는 자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이들은 그 드러내기 곤란(!)한 상실감을 화투를 치는 것으로 채운다.주인공 영우의 시각으로 대변되는 이들의 상실감의 깊이는 `시커멓게 죽은 얼굴을 하고 화투장을 들여다보는 핏발 선 눈`과 “갓난아기의 눈이 그렇듯, 새파랗고 맑고 선명했”던 눈으로 대비되면서 “1990년”의 피폐한 현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운동권이었던 동료 부부의 이혼이나 밀란 쿤데라의 소설 역시 급작스럽게 달라져버린 시대를 의미하는 기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 주인공인 김환의 입을 빌려 작가는 인생은 결국 “한낱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과 “위대한 휴머니즘에서 촉발된 공산주의가 역사 속에 구현되는 과정에서” “괴물스럽게 변해갔”다고 말한다.한때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이들이 문까지 잠궈둔 채 벌이는 노름판은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듯 스티븐 킹의 소설 `내 마음의 아틀란티스`가 모티프이다.월남전 참전에 대한 공포를 잊기 위해 포커에 열중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작가는 1990년, 젊은 영혼들이 처해 있던 상실의 현장을 떠올렸다고 적었다.이 같은 상실감에 허덕이는 인물들의 피폐해진 정서는 사막의 이미지로 빈번하게 형상화되고 있다. 이를테면 `친구와 그 옆 사람`에서 김환의 외도 현장을 목격한 영우의 귓속에서는 “수증기를 빨아들인 기압대가 통과해 가버리고 거대한 사막만 남았어”라는 소리만 울릴 뿐이고 `남자와 여자`에서 독신녀 이은정은 “사막을 헤매다 모래구덩이에 빠진 꿈”을 꾼다. `빛의 제국`의 마지막은 “눈앞에 노랗게 메마른 사막이 펼쳐져 있는 것만 같다. 그림자 한 뼘, 물 한 방울 없는 사막. 그녀는 천천히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수분이 증발하듯 그 모습이 서서히 졸아든다”로 끝난다.이 지점에서 우리는 상실감에 허덕이는 이들을 위한 작가의 선택에 주목하게 된다.오랫동안 심리학에 기초한 `치유의 글쓰기`를 연구해온 작가의 혜안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서로를 향한 연대의 부드러운 몸짓”, 바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그 옆 사람” 나아가 `세계`에 가닿는 “애도”의 자세이다.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이경재는 이를 두고 “우리는 이 시대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또 한 명의 멘토를 가지게 되었다”고 극찬하고 있는데 이 소설집을 본 독자들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5-05

저탄소 녹색성장, 이론·정책·실천적 내용 담아

`녹색성장과 지식경영` 영남대 출판부 刊, 이성근 외 지음, 473쪽, 2만5천원 “그간 선진국들은 고탄소 이용의 자원효율성 성장국가들로 녹색성장은 전 세계적으로 아직 실현된 적이 없는 성장모델이다. 따라서 녹색성장은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전환하는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세계적·국가적 차원의 저탄소 녹색성장 패러다임의 변화는 우리사회의 전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고, 국가·지역 차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능동적으로 국가·지역발전의 새로운 기제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녹색성장에 대한 이론적 체계화와 분야별 녹색성장 전략 및 프로그램의 개발과 이해, 그리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경제주체들의 역할을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녹색성장과 지역경영` 들어가는 말 중)저탄소 녹색성장 패러다임의 변화가 우리 사회의 전 분야에 미치는 영향과 적극적 수용을 통한 활용방안들이 다각도로 검토되고 있다.최근 영남대 출판부가 펴낸 `녹색성장과 지역경영`은 저탄소 녹색성장의 지방적 실천을 목표로 학제적, 통합적, 거버넌스적 접근을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의 이론과 정책, 그리고 그 실천적 내용들을 담고 있다.이성근 영남대 행정대학원장 등 저자들은 지구환경변화, 지구온난화와 국제사회의 협력과 대응, 녹색산업, 녹색공간, 순환형 자원시스템, 녹색인프라, 녹색생활의 사회적 실천 등 일곱 가지로 주요 개념을 설정해 접근했다. 또한 각 단원별로 국내외의 다양한 녹색운동 실천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이론을 통한 실천, 실천을 통해 이론이 어떻게 전개·발전돼 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특히 녹색성장의 기본토대를 이루는 이론에 대한 체계화와 분야별 녹색성장 전략 및 프로그램의 개발, 그리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경제주체들의 역할을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저자들은 생각하고 통합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녹색성장은 환경과 경제의 조화로운 성장을 의미하며, 지구환경변화 특히 지구온난화에 대한 범지국적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동안 선진국들은 고탄소를 이용한 자원효율성 성장국가들이었기 때문에 녹색성장은 전 세계적으로 아직 실현된 적이 없는 성장모델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세계적·국가적 차원의 저탄소 녹색성장 패러다임의 변화가 우리사회의 전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어떻게 국가와 지역 차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능동적으로 국가와 지역발전의 새로운 기제로 활용해야 하는지를 다각도로 검토했다.녹색성장을 위해서는 기본토대가 되는 이론에 대한 체계화와 분야별 녹색성장 전략, 프로그램의 개발과 이해, 그리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경제주체들의 역할을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특정한 분야만 다룬 기존의 출판물과는 달리, 관련된 모든 이론과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통합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또한 저탄소 녹색성장은 글로벌 차원, 국가적 차원, 지방적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접근되어야 하고, 학문분야도 정치·행정, 경제·경영, 사회·문화, 토목·건축, 도시·환경 등 학제적 접근이어야 하며, 실천주체도 개인, 가정, 기업, 단체, 정부부문이 함께 참여하고 협력하는 거버넌스 형태의 추진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저자들은 역설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 접근방법으로 녹색 성장전략으로서의 녹색산업, 녹색인프라, 녹색생할에 대한 이론과 실천들을 체계적 정리하였고, 녹색성장실천을 위해 글로벌 국가와 지방 차원의 녹색 거버넌스 관련 이론들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제1편 지구환경변화와 저탄소 녹색성장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사회, 지구환경의 변화,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제2편 지구온난화와 국제사회의 협력과 대응에서는 지구온난화와 국제협약, 지구온난화와 주요국가의 대응, 지구온난화와 한국의 대응, 제3편 저탄소 녹색산업의 성장과 관리에서는 녹색산업, 녹색기술, 녹색농업, 녹색식품, 녹색관광을 다뤘다. 또 제4편 저탄소 녹색공간의 체계적 관리에서는 녹색국토, 녹색도시, 녹색건축, 녹색농촌, 제5편 순환형 자원시스템의 구축에서는 수자원, 녹색산림, 청정해양, 녹색에너지, 도시광산, 제6편 녹색인프라의 구축과 관리에서는 녹색교통, 녹색산업단지, 생태하천, 녹색정보, 제7편 저탄소 녹색생활의 사회적 실천에서는 녹색기업, 녹색생활, 녹색NGO, 녹색거버넌스, 녹색교육을 다뤘다.저자 이성근 교수는 서울대 행정학 박사로 현재 영남대 행정대학원장, 정치행정대학 지역 및 복지행정학과 교수, 한국균형발전연구소장, 대통령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위원회 위원·기능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그외 저자로는 이관률 충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서경규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 김상곤 경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팀장, 안성조 경북테크노파크 연구원, 김태구 한국농어촌공사 과장, 김종수 제일감정평가법인 이사, 박성환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연수원 기획지원부장, 심상운 한국토지주택공사 차장이 참여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