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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선시대 문인 이옥과 김려의 우정 그려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창작과 비평사 刊, 설흔 지음, 220쪽, 9천원창작과비평사(이하 창비) 청소년교양서 시리즈 첫 권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는 글에 살고 글에 죽던 조선의 두 글쟁이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창비가 지난해 개최한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교양 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고전을 바탕으로 여러 책을 집필해온 작가 설흔이 쓴 이 작품은 외형상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존 인물인 이옥과 김려의 삶과 이들이 남긴 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역사와 소설의 결합을 일컫는 장르인 `팩션(faction)`에 가깝다.이옥은 타고난 문학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정조가 일으킨 문체반정의 희생양이 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제목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역시 그의 글에서 따온 것으로, 소설가 성석제가 `맛있는 문장들`에서 멋스러운 문장으로 꼽은 바 있다. 그의 벗 김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역시 조선 후기 문학을 대표하는 문사다. 이 책에서 드러나듯 시정과 백성의 삶을 제재로 해 당대의 생활상을 예리하게 묘파하는 글을 여러 편 남겼다. 게다가 이옥의 글을 문집으로 간행해 후손에 전한 것이 김려임을 감안한다면 우리 문학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할 것이다. 이들은 고문에서 벗어난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하다 정조의 노여움을 사 과거 응시를 금지당하고 유배를 떠나는 등 고초를 겪는다. 그러나 권력에 굽히지 않고 평생 자신만의 글쓰기를 고집했다. 작가 설흔은 두 고집 센 문인의 삶과 이들이 남긴 글을 토대로 글쓰기와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엮어냈다. 여기에 시대 배경과 더불어 이옥과 김려의 문학세계를 짚어주는 한문학자 강명관 교수의 상세한 해설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4-28

수령 천년 `싸움나무` 통해 인간과 현대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한 처절한 묵시록

`천 년 동안에` 문학동네 刊, 마루야마 겐지 지음, 1·2권 904쪽ㆍ각 권 1만3천800원 일본 근대문학의 `살아 있는 작가정신`마루야마 겐지가 1996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천 년 동안에(문학동네 펴냄)`는 총 9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다. 그가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에 이어 새롭게 시도한 환상적 리얼리즘 기법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 수령이 천 년이나 되는 `싸움나무`(인간 세상의 무수한 싸움과 갈등을 상징하는 이름)를 통해 과거 천 년과 현재, 그리고 2020년까지의 미래를 가로지르며 파국으로 치닫는 인간과 현대문명을 질타하고 있다. 타락한 현대사회의 미래를 향해 던지는 처절한 묵시록으로 읽힌다.소설은 세기를 가로지르는 문명 비판의 목소리, 도도한 주의 주장이 소설 저변에 날카로운 송곳처럼 솟아 있으며 인간 문명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에 관해서도 신랄한 비판과 경고를 보내고 있다.겐지가 2년동안 집필한 이 소설은 발표 당시 일본 현지에서도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뉠 만큼 화제작이었다. 그러나 대체로 “일본 문학에서 우뚝 솟아 있다” “새로운 이야기의 탄생”이라는 평가가 내려지면서 겐지 문학의 집대성으로 여겨져왔다.이 소설은 아주 불가사의하고 기이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을 지닌 채 인생에 절망한 한 여자가 숲속에 우뚝 서 있는 거목의 가지에 목을 매달아 자살함과 동시에 남자아이를 낳는다. 아이는 이마 한가운데 별 모양 점을 지닌, 범상치 않은 기적의 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수령이 천 년인 거목인데, `싸움나무`라고 불리는 이 거목은 올해 처음 꽃을 피웠고, 딱 한 개이지만 열매도 맺었다. 소설은 거목에게 비치는 이 아이의 미래가 펼쳐지면서 향후 28년(남자아이가 스물여덟 살이 될 때까지)에 이르는 일본의 역사가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 `너`라는 이인칭 시점으로 그려진다.소설은 거목의 회상으로 그려지는 과거 천 년과 `너`의 삶의 영상으로 펼쳐지는 가까운 미래의 교차적인 구성으로 짜여 있다. 세 시공간의 교차와 전환은 아주 자연스럽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4-28

강물, 들녘이 웃고 산과 하늘이 웃는다

시집 `경쾌한 유랑` 문학과 지성사 刊, 이재무 지음, 7천원 “신(神)은 과거나 미래에 존재하지 않는다. 신의 거처는 현재의, 일상 속에 있다. 또 신은 외부에 존재하지 않고 우리 몸속에 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는 하루, 하루의 삶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생활은 촛불이다. 언제든 꺼질 수 있다. 촛불이 타오른다. 촛불은 타오르는 동안만 촛불이다.”(이재무 시인의 시집 `경쾌한 유랑` 들어가는 말 중)1983년 `삶의 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난고문학상, 편운문학상, 윤동주상 문학 대상을 수상하며 시적 기량을 펼쳐온 이재무(53) 시인의 아홉번째 시집`경쾌한 유랑`(문학과 지성사)이 최근 출간됐다.시인은 그동안 이향(離鄕)에 따른 근원 회귀의 열망, 현실 천착과 생태적 사유의 결합을 지나 실존적 반성과 자기 탐색의 흐름을 면면히 이어왔다.이번 시집은 이러한 흐름을 완만하게 이으면서도 `스스로 흔들리며 가는 삶`이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것이라는 투명한 전언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오랜 격정의 시간과 들끓던 내면의 열망을 충분히 가라앉히면서, 중년 이후 삶의 형식을 깊이 묻고 사유하는 반성적 성찰의 기록이 바로 시집`경쾌한 유랑`이다.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돌``빈 항아리``붙박이 나목`등의 자연 사물과 내면 사이의 합일을 일관되게 추구한다. 이는 세계와의 치명적 불화를 발화하는 데 주력하는 최근 일각의 흐름과 대비되는 그만의 시적 화법이라 할 수 있다.“맹렬한 적개심으로 존재를 불태웠던질풍노도의 서슬 퍼런 날들이 가고돌들은 흩어져 여기저기 땅속에 처박혔다돌 속에서 비칠, 어칠 사람들이 나오고비로소 돌로 돌아간 돌들저마다 각자 장단 완급의, 고요한풍화의 시간 살고 있다”(`돌로 돌아간 돌들`부분)이 시에서 등장하는, 일상 속에서 흔히 마주치는`돌`은 시인의 세계로 들어와 고요한 “풍화의 시간”을 살아내는 존재로 전환된다. 이재무는 이번 시집에서 사물의 `겉`과 `속`의 긴밀한 유대를 통해 세계의 긍정과 생의 슬픔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러한 시적 작업은 물(物) 속에 숨겨진 은밀한 내부까지 들여다보게 만들고, 시인을 `감각적 현존`이라는 본연의 위치로 회귀시킨다.이렇듯 시인은 존재를 깊이 있게 투시해 그 심부에 내재된 열정을 매개하고 표현한다. 그는 세계 이면에 존재하는 타율적 기제들을 우리의 눈앞에 드러내며, 사물 속에 담겨 있지만 일상의 눈으로는 간과하기 쉬운 견고하고 항구적인 질서와 힘을 풍자한다. 노여워하며 고발하는 것이 아닌 풍자와 자조로, 이재무는 이 세계의 부정성을 전환시키는 경쾌한 유랑을 꾀한다.“웃음의 배후가 나를 웃게 만든다(…)웃다가 웃다가 생활의 목에웃음의 가시가 박힐 것이다(…)가로수가 웃고 도로가 웃고 육교가 웃고지하철이 웃고 버스가 웃고 거리의간판들이 웃고 티브이, 컴퓨터가 웃고핸드폰, 다리미, 냉장고, 식탁,강물, 들녘이 웃고 산과 하늘이 웃는다동심원을 그리며 번져가는그러다가 돌연 사방팔방 안팎에서떼 지어 몰려와두부 같은 삶 물었다 뱉는,가공할 웃음의 저 허연 이빨들웃음의 감옥에 갇혀 엉엉 웃는다(`웃음의 배후`부분)시인 이재무는 웃음에도 배후가 있다고 말한다. 웃음이 계속 비어져 나와 “가로수” “도로” “육교” “지하철” 등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번져”가지만, 그러다가 “생활의 목에/웃음의 가시가 박힐 것”만 같이 느끼는 그다. 이는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인의 팍팍한 삶에 대한 회한(`첫인사`)일 수도 있고, 이제 중년이 되어버린 자신의 허무함(「주름진 거울」)일 수도 있다. 살아간다기보다는 살아지는 것에 가까운 삶의 감옥, 즉 “웃음”의 감옥에 갇혀“엉엉 웃는” 시인의 초상은 독자에게 찌릿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웃음의 틈새로 번지는 슬픔의 중압감으로, 우리는 우리가 처한 삶의 폐쇄성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시인은 삶을 지배하는 타율적인 기제들을 새로운 존재로 전환시켜 꿈꾸는 서정적 처방을 내리고자 한다.“새벽 공원 산책 길에서 참새 무리를 만나다저들은 떼 지어 다니면서 대오 짓지 않고따로 놀며 생업에 분주하다스타카토 놀이 속에 노동이 있다저, 경쾌한 유랑의 족속들은농업 부족의 일원으로 살았던텃새 시절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경쾌한 유랑`전문새벽 산책 길에서 만난 참새 무리들. “스타카토 놀이 속에 노동”이 있듯, 힘들고 고단한 삶에도 “발랄 상쾌한 살림 어질고 환하고 눈부시다”. 시인은 표제작`경쾌한 유랑`에서처럼 세계의 부정성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며, 그 자체를 발랄한 놀이로 전환시키는 시의 힘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이재무는 이번 시집에서 정직한 내면 토로와 투명한 사물 묘사를 통해, 서정적 귀환에 골몰한다. 동시에 일상적이고 물리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시인의 열망을 이번 시집에 고스란히 담았다.시집`경쾌한 유랑`은 격정의 깊이를 언어 뒤편에 숨긴, 그 내밀하고도 단단한 목소리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자유롭고 경쾌하게 본원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이 `역동의 고요`에, 이제 우리가 귀 기울일 차례이다이재무는 이번 시집에서 정직한 내면 토로와 투명한 사물 묘사를 줄곧 결속하면서, 서정적 귀환을 통한 자기 탐색에 골몰한다. 일상적이고 물리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열망의 기록이 시집 `경쾌한 유랑`이다.시인은 격정의 깊이를 언어 뒤편에 숨긴, 그 내밀하고도 단단한 목소리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자유롭고 경쾌하게 본원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이 `역동의 고요`에, 따사로운 봄날 귀 기울여 봄직하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4-21

아이의 행복한 미래 위해 부모가 바른 길 안내해야

“언제나 학교 공부가 최우선이고, A보다 낮은 성적을 받아서는 안 된다. 수학에서 동급생들보다 두 학년은 앞서 가야 하고, 메달을 딸 수 있는 특별활동만 하되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한다.” 예일대 로스쿨 교수 에이미 추아가 두 딸을 키우면서 적용한 교육 원칙이다. 중국계 이민 2세대인 에이미 추아는 `더 나은 미래`를 아이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믿음`과 `사랑`을 토대로 `아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정해 줘야 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이러한 교육법의 결과로 에이미 추아 자신과 그녀의 여동생들은 모두 예일대와 하버드대를 나와 저명한 학자가 됐고, 추아의 큰딸은 카네기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재능을 뽐내고 있다.`타이거 마더`(민음사 간)가 지난 1월 미국에서 출간됐을 때, 이 책은 단숨에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또한 `타임` 표지기사를 장식해 전 세계적으로 격렬한 교육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스푸트니크 순간(Sputunik moment)`을 거론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와 점점 뒤처지고 있는 미국을 대조하면서, 아시아의 성장을 이끈 원동력 중 하나인 엄격한 동양식 교육법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뭐든 잘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재미없다는 것이 중국인 부모들의 사고방식이다. 뭔가를 잘하려면 노력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의 결정이 아이의 선호보다 우선해야 한다. 항상 처음이 가장 어렵다. 하지만 제대로 시작만 하면 중국식 교육은 선순환 효과를 낸다. 연습, 연습, 또 연습, 끈질긴 연습만이 잘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일단 뭔가를 잘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수학이든 피아노든 야구든 발레든, 아이는 칭찬을 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무척 만족해한다. 그때는 자신감이 생기고 한때 재미없었던 것도 재미있는 것으로 바뀐다.”―`타이거 마더`본문 중에서에이미 추아는 아이들은 `알아서`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들을 위한 길을 함께 모색해 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의 두 딸에게 엄격한 규칙을 적용한다. 큰딸 소피아가 곱셈 빨리하기 시험에서 2등을 했을 때 집에서 나머지 공부를 시켜서 그다음부터는 1등을 놓치지 않게 했고, 두 딸에게 매일 두 시간씩 중국어 공부를 시켜서 두 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에게 무거운 물건을 나르게 하거나 집안일을 시켜서 노동의 소중함도 알게 했다. 그녀는 남들보다 두 배로 더 노력해서 앞서 가는 사람이 되어야 이 치열하고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런 `힘`을 길러 주려고 애쓴다. 이것이 `타이거 마더식 교육법`의 핵심이다.요즘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이 상처 입을까 봐 두려워서, 아이들의 권리를 침해할까 봐 무서워서 하고 싶은 말을 꾹 참는다. 그 대신 그들은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놔두는 편이 인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유롭게 풀려난 그 아이들은 페이스북이나 컴퓨터게임에 시간을 허비하며 전혀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그 아이들이 올바르게 갈 수 있도록 부모가 길을 안내해 줘야 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4-14

글쓰기가 꿈이었던 직장인 순수 영혼 주제 소설 펴내

평소 글쓰기가 꿈이었던 직장인이 오랜 탈고의 끝에 순수한 영혼을 주제로 한 장편소설을 출판해 눈길을 끈다.화제의 주인공은 포스코 포항·광양제철소 계장장비와 변압기 절연유가스분석계를 납품하는 금아산전 김성문 이사.김 이사는 지난 2009년 부산 국제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모던에덴`이 당선돼 등단한 작가다.최근 그가 신간 `어느 봄 그해 여름`을 발표했다.이 책의 줄거리는 3년 전 남편을 여의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던 쉰네 살의 수연은 남편의 묘에 다녀오는 길에 자동차가 고장나는 일을 겪는다. 그리고 수연은 자신을 도와준 윤석주라는 남성과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면서 그동안 성직자의 아내로 살며 애써 잊었던 본래의 열정적인 자신을 되찾고 새로운 인생의 활력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이 책을 통해 김 이사는 “쉰 언저리의 나이쯤 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평생 가슴 속에 품고 살아온 이야기가 한두 가지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이리저리 구르며 살다보니 `나`라는 존재는 어느새 세월에 풍화 돼 다른 모습으로 변했고 아내, 엄마, 며느리의 의무감은 퇴적암처럼 무겁게 가슴을 누르고 있는 우리의 엄마, 이모, 고모 등 여성들의 삶을 통해 젊은 시절의 순수한 영혼을 일깨우고 있다”고 설명했다.김 이사는 “`어느 봄 그해 여름`은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닌 간편한 카테고리로 분류하기엔 중년의 여성들이 당면하는 보편적인 질문들이 소설의 곳곳에 녹아있다”고 밝혔다.김성문 이사는 7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평소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일, 시간과 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남들보다 잘 할 수 있으며 직장생활 은퇴 후에도 꾸준히 찾아서 할 희망의 돌파구는 글쓰기였다고 회상했다.김 이사는 “이번 소설을 쓰는 동안 손위 누이들을 생각했다”며 “누이들을 위해 그들의 발밑에 작은 촛불 하나를 켜주고 싶었고 척박해 보이는 그들의 삶 어딘가에도 사랑이 잡초처럼 끈질기게 뿌리 내리고 있을 것이고 좀 더 자세히 살핀다면 그 부근에 움트고 있는 희망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항태진기자

2011-04-14

신작 시집 `종이`를 펴낸 시인 신달자

`종이` 민음사 刊, 신달자 지음, 124쪽, 8천원 “종이 시집을 내 보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 그런데 종이가 사라진다는 목소리가 커져 갔다. 종이가 죽었다는 말도 나왔다. 마음이 급해졌다. 문명은 나를 편안하게 했지만 그만큼 정신은 삭막해졌다. 나는 인간의 선한 본성, 그 아름다움에 종이라는 사물을 대면시켜 보고 싶었다. 따뜻함, 영원함, 영성적 노동, 가득함, 화합, 평화, 사랑, 모성, 순수, 고향, 우직함, 이런 충돌 없이 잘 섞이는 감정의 물질들을 하나의 원소로 종합한 것을 `종이`로 표현하고 싶었다.” (`시인의 말`중)종이책은 수명이 다했다고, 전자책에 길을 내어 주라고 말하는 요즘, 한국 문학의 여성 시를 대표하는 시인 신달자가 `종이`를 주제로 전작 시집을 냈다.시인은 7년 전부터 이 시집을 마음에 품었다. 그에게 종이의 죽음은 곧 인간의 소중한 가치들이 사라지는 것과 같았고, 그 안타까움은 펜을 움직였다. 썼다가 지우고, 넣다가 빼기를 거듭하며 7년, 바로 지금이 종이를 이야기할 때라는 확신으로 마침내 그간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시 76편을 거뒀다. 종이가 걸어온 길(`페이퍼 로드`)부터 삶과 글이 하나였던 보르헤스의 삶(`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까지, 시 한 편 한 편에 담긴 종이의 이야기가 다채롭다. 자연의 모든 것에서 종이를 노래하는 그의 시편에는 파괴돼 가는 자연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라져 가는 감수성에 대한 슬픔이 구석구석 배어 있다. 그러나 “다만 이 시집은 인간의 따뜻한 본성을 그리워하고 그 본성을 되찾아 보려는 한 톨의 씨앗”이라는 말처럼, 시인은 인간 본성의 따뜻함에 대한 믿음만은 결코 거두지 않는다. 모든 것이 빨라지기만 하는 시대, 맨눈이 아니라 스크린으로 세상을 보는 이 시대는 종이가 필요하다. 인간의 향기가 필요하다.이 시집에서 모든 사물은 종이로 수렴된다. 여름 나뭇잎은 바탕이 너무 진해서 붓을 밀어내는 진초록 종이고,(`진초록 종이`) 파도는 마구잡이로 구겨 놓아도 다시 일어서고야 마는 푸른 종이고,(`파도`) 가을 들은 바람도 다소곳하게 지나는 고요한 종이고,(`가을 들`) 폭설은 지상의 검은 종이를 덮어 버리는 하얀 순은의 종이다.(`폭설`) 이렇게 신달자는 하얗고 텅 비어 있고 그래서 무얼 느끼기 어려운, 밋밋하다고 어설피 생각해 버리기 쉬운 종이에 살아 움직이는 감각적인 이미지를 부여한다. 생의 모든 것에서 종이를 보는, 생의 모든 것에서 종이의 정신을 느끼는 아름다운 시인의 눈이 경이롭다.종이의 정신은 또한 인간이 회복해야 할 따뜻한 본성, 즉 인간다움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김인환은 종이에 대한 시인의 일관된 애정은 “교환 가치가 절대 가치로 작용하는 마케팅 사회에 종이가 부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기실 종이와 종이의 정신이 처한 사정은 녹록지 않다. 기술에 잠식당한 현실은 `예`나 `아니요`로 답할 수 있는 질문만을 질문으로 인정하고, 시장 논리 외에 다른 삶의 원칙을 알지 못하는 개인은 자신과 자신의 카드를 혼동하며 생활한다. 기계화된 문명 속에서 인간은 감탄할 줄 모르는 맥 빠진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이다.“너무 바빠, 시간이 없어, 말을 줄여글로는 왜 써!그 안에는 마법의 바람 부나그 안에는 인간의 심장을 뇌를영원한 본질을 갉아먹는 이빨이 사나손들엇!쓰러지는 것은결국 우리들의 정신119를 불러라”― `119를 불러라`에서기계 만능, 시장 만능 사회는 겉으로는 번듯하고 잘 정돈된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는 심장의 고동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죽은 세계다. 이러한 현실을 노래하는 신달자의 목소리는 사뭇 준엄하다. 시인은 우리가 삶의 요청에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밀번호도, 지문도, 음성도 아닌 “밤낮 열어 두는/ (중략) 정 깊은 사립문”(`아날로그`)에서 살갗과 살갗을 맞대는 직접 체험이야말로 마음속의 내밀한 감성을 깨운다. 그 감성과 상상력은 곧 인간성의 핵심이다.아날로그의 감수성은 종이에도 고스란히 전이된다. “찢기기도 하는 닳기도 하는 퇴색하기도 하는 문자가 흐릿해지기도 하는/ 만져지기도 하는 소중하여 한 번 더 읽으려고 귀를 접기도 하는/ 졸다가 가슴에 얹기도 하는 두어 권 베개로 귀로 읽기도 하는 그 편안한/ 본성”(`종이책`)에서 우리는 어머니의 품 같은 포근함을 느낀다. 어둠까지 끌어안아 더욱 따스하게 빛나는 신달자의 시편들은 각박한 사회에서 피폐해진 우리네 마음을 으늑한 눈빛으로 토닥일 것이다.인생은 글이 적혀 있는 종이다. 사람들은 그 종이에 글을 쓰고 짓고 다시 쓴다. 신달자는 더 나아가서 세상을 커다란 도서관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을 커다란 종이라고 생각한다. 가을 하늘은 하느님의 종이고, 여름 나뭇잎은 너무 진해서 붓을 밀어내는 진초록 종이고, 파도는 아무리 구겨 놓아도 다시 일어서고야 마는 푸른 종이다. 갯벌, 갈대, 습지, 흑두루미,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이 모든 것들이 시인이 읽어야 할 글자들이다. 그는 자연의 부름에 대하여 정성을 다해 응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모든 걸 내어 준 사람의 얼굴에 깊게 파이는 주름은 깊은 계곡과 같다. 그곳에 지어 놓은 절은 물살에도 바람에도 떠내려가지 않는다. -김인환(문학평론가)/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4-07

中 `민주화 전사` 류샤오보의 아내에게 바치는 `사랑의 詩`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 시선집 `내 사랑 샤에게`(글누림 펴냄)가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됐다. 류샤오보와 그의 아내 류샤의 시를 함께 실은 이 책은 2000년 홍콩에서 출간된 `류샤오보 류샤 시선` 중 류샤오보의 시만 골라 번역한 책이다. 중국 인권을 위해 투쟁해온 인물인 류샤오보는 지난 2008년 민주화 요구를 담은 `08헌장`발표를 주도했다가 11년 형을 선고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류샤오보의 투쟁과 문학은 6·4 천안문 민주화 운동과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류샤오보의 시 85수와 `08헌장`·`나는 적이 없다-나의 최후 진술`·`나의 무죄 변론` 등의 글은 모두 6·4 투쟁 정신에 입각해 있다. 류샤오보는 중국 당국이 1970년대 말부터 추진해온 개혁·개방 책이 인간의 권리를 박탈하고 인성을 부식시키고 인간의 존엄을 파괴해온 재난의 과정이었다고 비판하면서, 자유·평등·인권이라는 인류 공통의 보편 가치에 바탕을 둔 민주·공화·헌정의 현대 정치를 시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당 독재의 특권을 없애자는 것은 국민들에게 정권을 돌려주자는 정치 개혁을 요구한 것이고, 최종적으로 `국민이 권리를 가지고(民有), 국민이 다스리며(民治), 국민이 권리를 향유하는(民享), 자유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나의 무죄 변론` 6·4 피의 참극에 대한 류샤오보의 분노가 그의 시의 출발점이라면, 그의 아내 류샤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은 그의 시의 모든 것이며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다. 6.4 추모시를 제외하고 그가 쓴 모든 시의 제목에는 아내 류샤에게 바치는 작은 제목이 달려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류샤오보의 모든 시는 아내 류샤에게 바치는 애정시이다. “지금, 나는 감옥에 갇혀 있어 그대의 손발을 녹여줄 수 없다 그러나, 그대에 관한 기억은 모두 빙설(氷雪)과 인연을 맺고 있다….” -`그대는 줄곧 추위에 떨고-추위에 떠는 작은 발에게` 일찍이 루쉰은 지명수배자로서 살아가는 자신과 아내 쉬광핑의 사랑을 `이말상유(以沫相濡)`라는 말로 비유한 적이 있다. `장자(莊子)·대종사(大宗師)`편에 나오는 이 말은 매우 처절하고도 슬픈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가슴 아픈 내용은 이렇다. “샘물이 마르면 물고기들이 땅 위에 서로 함께 놓이게 되는데, 입으로 습기를 서로 불어주고 작은 물거품으로 서로 몸을 적셔준다.” 류샤오보와 그의 아내 류샤와의 사랑도 `이말상유(以沫相濡)`라는 성어보다 더 적절한 묘사의 어휘를 찾기가 어렵다. 앞의 `시서(詩序)`에서 저우중링(周忠陵)이 지적한 것처럼 아내 류샤에 대한 류샤오보의 사랑은 너무나 섬세해 어떤 면에서는 매우 여성스럽기까지 하다. “지금 그대는 하느님의 손아귀에서 꿈을 받길 갈망한다 하나는 초콜렛이 녹아내려 기억의 꿈이 되리라 또 하나는 눈물이 흘러내려 애도의 꿈이 되리라….” -`하느님의 손아귀로부터-아내에게`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1-06

맥시조문학회 동인지 30집 `음표로 돋는 새싹`

경북 시조문학의 변천사 한눈에 포항지역에 본거지를 두고 우리 민족의 고유한 시조의 튼튼한 맥이 되기 위해 부단히 활동하고 있는 맥시조문학회(회장 김두섭)가 동인지 30집 `음표로 돋는 새싹`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회원 신작 시조 76 편과 30집 기념 특집 김우연 회원의 맥시조문학회 30년사 및 연간 활동화보 등을 엮었다. 길섶에 자라는 들꽃에서도 예쁜 꽃이 피어나 각기 다른 냄새와 향기로 아름다움을 뽐내듯 김두섭 회장은 책 머리에서 “우리 맥시조 회원은 3장 6구의 운율 속에서 우리 정형시의 맥을 이어 어여쁜 시어를 발굴하고 개척하며, 서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면서 황망한 대해를 헤쳐 나아갈 것이다” 고 했다. 김우연 회원은 맥시조문학회 30년사에서 경북문학 100년사를 통해 본 시조문학의 변천사를 논하며 “경상북도는 시조의 발상지로서 고려말~조선시대~개화기~광복 이전을 거치면서 많은 시인묵객이 배출됐으며, 현대 들어 시조 부흥과 등단, 작품 발표, 동인활동 등에 활기를 띠어 현대시조의 모색기, 정립기, 격변기, 혁신기, 확산기의 단계로 성장, 발전되어 왔다”고 전제, 현대시조의 격변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대 말에 창립된 맥시조(비화)문학회는 `낙강` `나래` `오늘` 등의 단체와 동인활동을 함께 하면서 시조인구의 저변확대에 기여해왔다”고 하며, “1990년대부터 가장 활발한 동인활동과 경북시조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맥시조문학회의 새로운 도약과 부활을 꿈꾸며 30년사를 정리한다”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2010-11-26

계간 문학잡지 `아시아` 창간 3주년 기념호 발간

`다문화의 산물` 인도 문학작품 집중 조명 아시아 지역 지식인들의 문화예술적 소통과 연대를 진중하게 모색하는 계간 문학잡지 `아시아`(발행인 이대환 작가) 창간 3주년 호 통권 제13호가 나왔다. `아시아`는 창간 3주년 호를 내면서 변화를 시도했다. 이번 통권 제13호를 시작으로 매호마다 언어 및 문화가 다른 아시아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그 처음으로 `아시아`는 인도로 향했다. 인도는 국민이 사용하는 주요 언어만 해도 20여 개가 넘는 다문화 사회로 언어 외에도 지역·민족·계급의 다양성이 어우러진 사회다. 이러한 인도를 한 호, 한 권에 모두 담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 거대한 다양함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가려는 작가들의 내밀함과 치열함은 양보다는 질에서 담보할만하다. 소설과 시는 물론, 산문과 아시아 교류사 등을 고루 실었다. `작가의 눈`에서는 `문화의 다양성으로 살펴보는 인도의 정체성`을 주제로 수크리타 폴 쿠마르를 소개한다. 수크리타 폴 쿠마르는 `인도의 문화 다양성·다언어, 그리고 언어와 문학의 상호작용`에서 루슈디와 같은 `거장`의 문학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다양성으로 어우러진 인도 문학이 가진 특징과 그 속에 내재된 인도 문학의 긍정적 가능성을 역설했다. 식민지시기를 거치면서 `영어`라는 엘리트 언어가 등장하고, 이에 따른 작가들의 태도와 그 변화가 현재의 인도 문학에서 미치는 영향과 함께 `서발턴 문학`의 등장과 그에 대한 기대를 엿본다. 아시아의 거장을 만나는 이번호 `볼록렌즈`는 인도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거주하는 로힌턴 미스트리의 문학을 조명해 본다. 수록한 단편 `세입자`는 한 주거 단지 내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인도인에게 계급과 종교가 어떻게 일상에 내제하는지를 실감있게 보여준다. 닐루퍼 E. 바루차의 `종족의 울타리, 초민족적 공간, 다문화주의`는 로힌턴 미스트리론이면서 동시에 인도계 영문학의 현황과 그에 연관된 현대문학의 제문제를 날카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일본에서 불고 있는 고바야시 다키지 읽기 바람을 `전쟁과 문학- 지금 고바야시 다키지를 읽는다`의 저자 이즈 도시히코가 진단했다. 프리터 족을 비롯한 현재 일본 사회에서 `문제아`로 지적 받는 젊은이들에 대해 시종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면서 이들 젊은 세대가 짊어진 현재의 짐이 어떻게 구세대에서 물려졌는지, 그리고 그들의 삶은 어떻게 공선과 비교되는지 담담하게 서술했다. 수천 년에 걸친 인도와 중국의 거대 역사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이 조명했다. 전혀 다를 것만 같은 두 나라가 어떻게 오랜 시간에 걸쳐 교역과 교류를 이루어왔는지 흥미롭게 관찰했다. 터키 작가 터키 작가 파트마 카라비이크 바바로소글루와 한국 작가 이시백의 촌철살인과 같은 미니픽션을 함께 실었다. 현재 터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파트마 카라비이크 바바로소글루는 `사랑받기를 예약하는 아이`에서 순진한 어린 아이의 시선을 통해 `바쁨`으로 점철된 어른들의 사회를 비춰준다. 이시백의 `가난한 입`은 수사를 자제하고 단문으로 쓰여, 읽기의 즐거움도 만끽해 볼 수 있다. 한국 박용하 시인의 신작 시와 아랍에미리트 누줌 알가님 시인의 시를 수록했고, 지난 호에 이은 저층서사의 대표소설 `우리들의 길` 연재를 마무리하고 있다. 도서출판 아시아 간.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09-07-16

상업주의에 내몰린 한국문단

포항문인協 `포항문학 30호 기념호` 발간권두기획 `…한국문학을 생각한다` 눈길 포항문인협회(회장 김만수 시인)가 `포항문학` 30호 기념호를 발간했다. 지난해부터 반연간지로 변모를 시도한 `포항문학`은 지난 1981년 창간호 발간 이후 그동안 다른 지역에서 그 지역의 이름을 달고 발간되는 문학지와는 달리 책의 면모나 내용에서 전국적 문학지를 지향하는 가운데 지역 거주 회원들의 신작도 충실히 담아내면서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포항에서 중요한 거점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번 30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오늘의 한국문학을 생각한다`는 권두 기획. 과연 오늘의 한국문학은 새로운 시대적 조건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가, 야합하고 있는가, 아니면 창조적 대응의 가능성을 드러내며 그 길을 열어 나가고 있는가? 이 엄중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이 기획에서는 현재 한국문단에서 주목 받는 문학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는 방민호(서울대 교수), 유성호(한양대 교수), 고봉준(`문학수첩` 편집위원) 3인이 오늘의 한국문학이 당면한 심각한 병폐를 진단하고, 이어 한국의 진보적 문학비평을 선도해온 문학평론가 염무웅(전 영남대 교수)과 이번 30호에 특별히 편집책임을 맡은 소설가 이대환의 에세이가 오늘의 한국문학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 존재에 대한 이 근원적 물음에서부터 출발한 방민호의 사유는 1930년대 임화, 김기림, 김환태의 세계를 섭렵한 바탕 위에서 오늘날 한국문학의 커다란 문제로 대두된 인생비평, 문명비평으로서의 비평정신이 작가에게나 비평가에게나 똑같이 고갈 또는 퇴행된 것이라는, 숨길 수 없는 부끄러운 곤혹과 직면하고, 더 나아가 파시즘의 징후들이 다시 출현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직시한다. 이러한 눈으로 읽어낸, 황석영 등 우리 시대의 주요 작가들에 대한 비판은 문학이 왜 총체적인 인생비평과 문명비평이 되어야 하는가를 똑바로 가리킨다. 유성호는 `오늘의 한국 시단에 대한 단상`을 통해 1980년대의 진영 개념이 소멸된 `백가쟁명`의 우리 시단이 개별성과 보편성을 통합적으로 형상화하는 현실 지향의 시정신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비롯해 인간을 배제한 자연숭배의 속성, 인간의 존재 조건에 대한 탐색의 빈곤, 신성한 존재와의 소통 부재 등을 지적한다. 또 그는 텍스트 해석의 정확성 견지·서구 추수성 극복·상업주의(문단권력)와의 밀월관계 청산을 전제로 하는 비평의 적극적 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고봉준은 `한국문학의 빅 브러더`에서 지나간 계몽의 시대에 문학이 누렸던 특권적 지위가 해체되고 오히려 문학의 존재 자체에 대한 냉소의 분위기가 무르익은 이 자본주의 상품시스템 안에서 가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품`의 하나로 전락해가는 문학의 운명을 직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문학과 필생의 인연을 맺게 된 사연에서 출발한 염무웅의 `미지를 향한 모험-서구문학의 자장 안에서 돌아본 반세기`는 우리 근대문학에 대한 회고를 넘어 `서구문학의 자장 안`에 갇혀 그 미혹의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한 우리 문학의 난관에 대한 사색을 담은 귀중한 글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09-06-30

남명학파의 작품세계 연구서

조선중기 퇴계학파와 더불어 영남사림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남명학파. 조식(曺植)으로부터 시작된 학문인 남명학의 세계관과 현실 인식을 남명문학 속에서 살펴보는 책 `남명학파의 문학적 상상력`(역락 간)이 출간됐다. 이 책은 남명문학의 특징, 연구사적 검토, 개별 작가론, 통일적 의식구조를 심도있게 살펴본다. 특히 남명학파의 문학적 상상력이 다양하면서도 통일적 맥락을 갖추고 있으며,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빛깔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명학파는 현실문제에 대해 실천적으로 자각하는 현실에 대한 응전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노장사상에 대하여 비교적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부조리한 현실을 강력하게 비판했고, 나아가 대안적 세계를 꾸준히 모색했다. 이러한 남명학파의 사상은 그들의 문학작품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다양한 남명학파의 저작물을 분석함을 통해 현실에 대한 응전력을 기르기 위한 남명학파의 문학적 고민과 그 해결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제1부는 남명학파를 가능하게 했던 조식의 학문적 특성과 그 학파의 대체적인 규모를 살펴 논의의 토대를 마련했고 제2부는 남명학파의 문학이 그동안 어떻게 연구되어 왔으며, 연구자들 앞에 놓인 과제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검토했다. 제3부는 개별 작가론을 통해 남명학파의 문학적 상상력과 그 행방을 다각도로 추적하여 남명정신의 다기한 계승을 알 수 있게 했다. 제4부는 남명학파의 통일적 의식구조를 당대 문인들의 사물관 및 남명문학에 나타난 현실에 대한 참여와 초월의 이중구조와 결부시켜 분석했다. 마지막 5부는 남명학파를 연구한 대표적 저작물을 들고 이것에 대한 서평을 실었으며, 남명학파에 대한 연구목록을 실어 이 분야 연구자들의 편의를 도모할 수 있게 했다. 저자 정우락씨는 “이 책은 남명 조식의 문인집단인 남명학파를 문학적 측면에서 총괄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단행본”이라면서 “남명학파의 몰락을 의미하는 인조반정(1623년) 이후에도 조식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움직임은 지속됐다. 1970~80년대의 민주화운동 등 시대적 현실과 맞물리면서 조식의 우민의식(爲民意識)과 그 문인집단의 실천적 자각은 우리 시대의 유의미한 요소로 특별히 부각됐다”고 덧붙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09-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