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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소금이 무슨 죄?

우정구 논설위원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시중의 소금값이 폭등을 하고 일부서는 사재기 현상도 일어난다고 한다. 일본서 방류하는 오염수가 한국 해역에 도달하면 국내 수산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야당은 일본 원전 방류수와 관련 야외 반대집회에 나섰고, 여당은 야당이 과학적 논쟁은 거부하고 괴담과 선동정치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한다.지금은 흔한 식품이지만 20세기 이전만하더라도 소금은 ‘백색의 황금’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귀중한 자원이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생선과 올리브, 치즈, 고기 등을 저장하는데 소금을 사용했고, 군인의 보수를 소금으로 지급했다는 기록도 있다. 중세시대는 소금을 둘러싸고 100년 넘도록 소금전쟁을 벌인 곳도 있다.짠맛을 내는 무취의 흰색 결정체인 소금은 단순히 음식 정도가 아니고 음식 이상으로 인류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물질이다.재화로서 가치가 높은 소금의 유통을 통해 도시 간의 문화와 경제교류가 촉진됐고 소금 교역으로 ‘솔트로드’도 생겼다. 소금은 한때 지금의 석유처럼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뿐만 아니라 소금은 모든 생물체에 있어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성분이 있어 물만큼이나 생리기능에 꼭 필요한 요소다. 소금의 주요 성분인 나트륨은 소화를 촉진해 식욕을 끌어 올린다. 사람의 체온 조절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땀의 배출을 도와 체온을 식히기도 하고 반대로 체온을 유지하도록 돕는다.데이터를 내놓고 과학적으로 풀어야 할 오염수 문제를 정치적 선동으로 떠들어봐야 국민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적 공방의 결과가 소금값 폭등이라면 소금을 사먹을 국민만 피해자가 된 꼴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6-18

결혼식 풍경

김규종 경북대 교수 아주 오랜만에 결혼식에 참석했다. 나는 장례식에는 자주 가는 편이지만, 결혼식에는 부조(扶助)만 하고 대개는 아니 간다. 쓸쓸하고 슬픈 장소에는 사람이 많이 갈수록 좋지만, 환하고 행복한 자리는 조금 허전해도 견딜 만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가 결혼식에 간 이유는 나의 둘째 아들이 혼인(婚姻)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혼주(婚主) 자격으로 신랑과 신부를 위한 덕담(德談)을 하기로 했기에, 더욱 결혼식에 가야 했다. 붐비는 토요일 오후 서울 내부순환도로와 강변북로를 거쳐 강동(江東)의 결혼식장에 도달한 시각은 오후 2시 15분 무렵. 예식은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한다. 여유 있게 도착한 나와 동생 둘, 그리고 조카 둘이 호기롭게 35층 예식장으로 들어선다.어린 시절부터 나는 고소 공포증에 시달렸다. 어디든 높은 곳에 올라가면 간담이 서늘해져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35층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풍광(風光)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신선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필시 내 아들의 결혼식이 진행될 고층 건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며칠 전부터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재삼재사 생각하곤 했는데, 첫머리를 어떻게 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식을 앞두고 수많은 하객(賀客)이 찾아들고,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덕담 걱정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래, 닥쳐서 생각하면 되겠지, 하고 자신의 내면을 추스른다.활달한 성격의 신부와 씩씩한 거동의 신랑이 잘 어울린다. 젊음의 약동(躍動)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아름답고 유쾌한 노릇이다. 36년 전에 나도 저런 모습이었던가, 잠시 상념에 잠긴다. 그때 내 지도교수께서 주례하셨는데, 머리털 나고 그렇게 넘치는 칭찬을 들었던 기억은 없다. 얼마 전에 세상을 버리신 선생님의 명복을 새삼 빈다.이윽고 내가 말할 차례가 온다. 높은 단상에 올라가 신랑과 신부의 얼굴을 보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린 시절 작은아들이 보여준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 내게 경험한 낯설고 아픈 추억을 잠시 더듬는다. 고집스럽고 공부하기 싫어하고, 삶을 향한 애착이 많지 않았던 아들이 어느새 장성하여 일가(一家)를 이룰 태세라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하다.며느리 되겠다고 자청한 젊은 신부 역시 환한 얼굴로 내 덕담에 귀를 기울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4~5분 정도 말하겠다고 해놓고, 7분 넘게 너스레를 떨었나 보다. 필시 제 이야기에 홀로 도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장남(長男)을 미뤄두고 차남이 먼저 혼인하게 되었기로 적잖은 인사를 받는다. 큰아이 결혼식에서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생각한다.멀리 울산과 대구, 청주에서 올라온 벗들이 고마웠다. 이렇게 인생의 중요한 장면 하나가 스르륵 지나간다. 언젠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작은아들 내외가 오늘을 돌이켜보면서 무엇을 생각할 것인지, 궁금하다. ‘얘들아, 행복하고 멋지게 살아가렴! 뒤돌아보지 말고, 당당하게!’

2023-06-18

사람의 실수와 안전 확보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안전사고는 불안전한 행동과 불안전한 상태가 만났을 때 에너지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며 현장에 불안전한 상태가 있더라도 사람의 불안전한 행동과 만나지 않으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 P사의 지난 약 50년간의 안전사고 원인 별 분석결과를 보면 불안전한 행동이 82, 불안전한 상태가 5%, 기타가 13%로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이 절대적임을 알 수 있다.특히 불안전한 행동 중 실수는 인간 행동의 일부로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누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이 실수를 하는 이유는 오감에 의해 인지 판단 행동하는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주로 경험부족 피로나 감정적인 상태 주의력 부족과 집중력 분산 등에 기인하며 이러한 상태에서 행동해도 사고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독일의 심리학자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을 보면 학습후 20분이 지나면 58%만 기억을 하며 1시간이 지나면 44%로 떨어진다고 한다. 반복 학습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로 하루가 지나면 초기 학습 내용의 약 33%를 한 달이 경과하면 약 21% 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즉 인지 판단의 에러를 줄이기 위해서는 학습 후 망각 속도를 늦추어 장기 기억으로 되기 위한 반복학습이 필요하다. 또 사람이 잊어버리거나 인지하지 못해도 모니터링 수단이나 알람 등을 통해 인지 하도록 하는 체크 기능이 있어야 한다.인지 판단을 제대로 했더라도 최종 행동시 조치를 생략하거나 착각 착오로 인해 오조작을 하면 사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아예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작동되지 않거나 사람이 임의로 작동을 해도 안전하지 않으면 조작이 되지 않도록 하거나 최종적으로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안전이 확보되도록 작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템퍼 푸르프(Temper Proof) 풀 프루프(Fool Proof) 페일 세이프(Fail Safe)라고 한다.템퍼 푸르프는 안전장치나 기능을 제거할 경우 아예 동작을 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며 풀 프루프는 ‘어리석은 사람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라는 의미로 작업자가 실수 할 수 없도록 만들거나 만약 실수를 하여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장치를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휴대폰 충전 코드의 잭이 일치하지 않으면 아예 체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페일 세이프는 설비가 고장이나 오조작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경우 피해가 확대되거나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안전한 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일 예로 중요한 제어기의 경우 제어 유닛이 듀얼로 설치되어 상시 동일 Data를 공유하고 있다가 한 쪽이 이상시 즉시 전환하여 운전되도록 한 것이다.이렇듯 인간의 실수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설계시 불안전한 행동 자체를 원천 차단하거나 작업자가 모르고 불안전 행동을 해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거나 만약 사고가 발생해도 안전이 확보되도록 개선 하는 것이다.

2023-06-18

나의 사정을 다 말해야 하는 이유

유영희 작가 지난 6월 14일, 4년 만에 서울국제도서전에 방문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로 못 갔고, 작년에는 내 사정으로 못 갔다. 이 행사는 해마다 주제가 있는데 올해 도서전의 주제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라고 하여,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강조했다고 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취지문을 읽어 보니, 비인간은 인간이 아닌 자연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예년에는 남녀 섞어서 세 명이던 홍보대사 인원을 일곱 명으로 늘리면서 모두 여성 문인만 내세운 것을 보니 아무래도 비인간이란 남자가 아닌 존재, 여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이런 주제 때문인지 발걸음이 멈추는 곳마다 여성이 있었다. 에밀리 디킨슨 시를 전문으로 내는 파시클 출판사의 박혜란 대표의 북토크에도 참가하여 디킨슨 이야기도 들었고, 여성들의 자기 이야기가 담긴 책도 몇 권 샀다.출판사 핌의 ‘어쩌면 너의 이야기’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만난 주부들의 동화 에세이 모음집인데, 동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말하는 독특한 형식이었다. 직접 글과 그림을 다 작업한 참여자도 있고, 딸이나 남편이 삽화를 그린 글도 있었다. 자상한 시간에서 펴낸 ‘감정愛쓰다’는 그보다는 직접적으로 자기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 글을 올린 참여자들 역시 모임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나누며 글을 썼다. 담다 출판사의 ‘3923일의 생존 기록’은, 저자 김지수가 불안, 공황, 우울장애와 더불어 생존해온 기록이다. 최근 암 생존자 여성의 투병기 ‘엉망인 채로 완전한 축제’도 읽었는데, 사회 통념상 암보다 더 말하기 어려운 것이 마음의 병이라서 김지수의 고백은 더 인상 깊었다.‘파레시아’라는 희랍어는 ‘세상을 향해 다 말하다’라는 뜻이다. 본래 파레시아는 정치적 의미가 강하여, 키케로는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까지 이끈 파레시아를 ‘대담한 저항’이라고 요약했는데, 플라톤은 여기에 행복의 의미를 덧붙였다고 한다. 당시 독재자였던 디오니소스 1세가 플라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질문했을 때 소크라테스라고 대답하여 독재자에게 추방당했다고 전해진다. 플라톤의 대답에서 우리는 ‘다 말하는 것’이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파레시아를 원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억압받는 사람이거나 사회적 약자일 것이니, 이들의 말하기는 민주주의와도 통한다.황현산은 ‘밤이 선생이다’에서 내 사정은 나만 알고 있는 것이라서 사소해보이지만, 글을 쓰다 보면 그 사정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고 결국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나 역시 여성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면서 글을 통해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는 연결을 체험하고 있다.여성 문인만 홍보대사가 된 것에 대해 어느 남자 시인은 책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런 목소리를 잠재우는 방법은 여성들이 용감하게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니 움츠리지 말고, 나의 사정을 사정없이 써보자.

2023-06-18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으면 중독되나요?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일반인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중독(中毒)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평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 알코올이나 마약으로 인해 건강을 잃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사회적 폐인(廢人)이 되는 상태를 말할 것이다.그러나 당뇨병 환자나 고혈압 환자가 약을 복용함으로써 혈당과 혈압이 조절되어 정상화되고 생활을 잘할 수 있다면 치료되고 있다고 해야 할 일이지 결코 중독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또 약을 갑자기 중단하면 다시 혈당이 올라가고 혈압이 올라간다고 해서 그것이 약에 중독됐다고 할 수 없다.공황장애 환자나 우울장애 환자가 그에 맞는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함으로써 평안을 찾고 부정적 관점에서 벗어나고 자살로부터 자신의 가치와 생명을 지켜내고 행복을 찾는다면, 치료되고 있다고 해야 할 일이지 결코 중독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약을 갑자기 중단하면 다시 공황 증상이 나타나고 우울 증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이 약에 중독됐다고 할 수 없다.알코올이나 마약이 뇌를 손상하는 것과는 달리 현재 사용되는 항공황제제, 항우울제제는 오히려 뇌신경 세포의 신생을 돕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약으로 어떻게 당뇨 또는 고혈압을 치료하느냐”, “당뇨나 고혈압은 의지나 정신력으로만 고쳐야지”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에 대해서만 달리 생각하는 태도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나로서는 몹시 안타깝다.당뇨병과 고혈압은 하나의 신체 질환이다. 공황장애와 우울장애 등 정신건강의학과 질환도 하나의 뇌의 질환이다. 뇌도 신체 일부이다. 지금 공황장애, 우울장애뿐만 아니라 많은 정신과적 질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약이 중독된다는 편견으로 인한 불충분한 치료(under treatment)이다.왜 사람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으면 중독된다고 생각할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물치료를 하면 약물중독이 되어 약을 끊지 못하고 평생 먹어야 한다는 두려움의 표현일 수 있다.결론부터 말하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하는 약물치료로 인해 중독되어 약을 끊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당뇨병이나 고혈압 환자분은 오랜 기간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몸에서 혈당, 혈압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기능이 저하돼 약물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다. 그래야 합병증을 예방하고 건강수명을 늘일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질환들은 우리 뇌에서 불안, 우울 등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기능이 저하돼 약물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다.또 정신건강의학과 질환들은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비교한다면 완치돼 약을 끊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다만,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계 약물들은 약리학적으로 내성과 신체적 의존성이 있을 수 있어 약물 사용에 유의할 필요가 있으나, 올바른 처방 가이드라인을 지킨다면 문제되지 않는다.세계 최고 권위의 임상의학 학술지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임상에서 그 효과를 얻기 위해 약을 계속 늘려가야만 하는 내성의 증거가 없다”고 했다. 또 미국정신건강의학과학회 특별위원회의 보고서에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이 올바른 처방 가이드라인이 지켜졌을 때 중독되는 약이 아니다”라고 결론지었다.결국,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물치료를 받는 경우 약물중독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가끔 공황장애 환자와 우울장애 환자의 적절하고 충분한 치료를 도와야할 가족과 지인이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중독이 되어 약을 끊을 수 없다”라는 등의 무책임한 말들로 환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다. 특히, 공황장애 환자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불안하고 우울장애 환자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약에 대해 겁이 나는 말을 들으면 치료를 시작하지 않거나 먹던 약도 복용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따라서 별생각 없이 뱉은 무책임한 말들은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있는 기회를 막거나 재발하게 하는 결과적으로 환자의 건강과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다.정신과적 질환의 치료를 신체 다른 부위의 질환에 대한 치료와 동일선상에서 생각해주면 좋겠다.정신과적 질환이 다른 신체적 질환과 다르다는 편견(偏見), 정신과적 약물치료가 다른 신체적 질환의 약물치료와 다르다는 편견이 치료를 어렵게 한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질환들은 당뇨병, 고혈압 등 다른 신체 질환과 마찬가지로 치료할 수 있고 치료해야 하는 질환이다.오늘 필자가 드리고 싶은 말은 ‘정신건강의학과 약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약만을 맹신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약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지나친 거부감도 문제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편견(偏見)으로 보지 말고 정견(正見)으로 보자”는 것이다.

2023-06-18

VDT 증후군, 몸이 펼쳐지도록 하는 게 답이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VDT(Visual Display Terminal) 증후군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니터와 같은 영상 기기를 장시간 사용하여 생기는 목, 어깨 통증 등의 후유증을 아우르는 말이다. VDT 증후군은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앓는 질환 중 하나인데, 초기에 증상을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악화될 경우 다른 질환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장을 줄 만큼 불편함을 느끼는 질환이기에 빠른 대처가 중요하다. 초기증상에는 치료 시간이 짧고 스트레칭과 자세 교정 같은 운동치료로도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VDT 증후군의 증상으로는 근골격계의 이상으로 흔히 담이라고 얘기하는 근육의 뭉치는 느낌과 통증이 있는 근막통증증후군이나 요통이 있다. 또는 손목의 신경이 눌러져 손가락이 저리게 되는 손목터널증후군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근육이나 말초신경의 이상으로 목, 어깨, 팔꿈치, 손목 및 손가락에 통증이 생기고 저린 증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눈의 이물감, 충혈, 눈부심 등 안구건조증이나 근시 혹은 굴절 이상의 안과 질환이 생긴다.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VDT 증후군 관련 질병 수진자 수는 근막통증증후군이 233만 명으로 가장 많았고, 안구건조증 226만 명, 일자목증후군 220만 명, 손목터널증후군 17만 명 순으로 나타났으며, 연령대별로는 50대 수진자수가 가장 많았다.근막통증증후군은 근육 또는 근육을 싸고 있는 근막에 장시간 스트레스가 가해져 뭉치면서 근육에 통증 유발점을 생성하는 질환이다. 잘못된 자세로 인해 목과 어깨 근육이 오랜 시간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여 경직되거나 통증이 발생한다. 아픈 쪽으로 움직이려 할 때 통증이 생겨서 쉽게 움직이기가 힘들어진다.근막통증증후군 예방을 위해서는 작업환경과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바라볼 때는 눈높이를 맞춰주고, 앉는 자세를 올바르게 유지하는 게 우선이다. 또 근육이 경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시간에 10분씩 휴식이 필요한데, 이때 정적 스트레칭으로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 스트레칭의 원리는 근육의 길이를 확장하여 늘려주는 것인데, 한번 늘리는 시간은 근육의 긴장 지점에서 들숨과 날숨을 길게 5~6회 반복하거나 20~30초 정도가 적절하다.일자목증후군은 거북이처럼 목이 앞으로 구부러지면서 목과 어깨, 근육의 인대가 늘어나 신체 변형 및 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기는데, 척추의 윗부분이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아 인대가 늘어나면서 증상이 발생한다. 목에 과하게 하중이 발생하고 뒤통수 아래 신경이 압박되어 두통을 비롯해 현기증이나 어지럼증이 동반되기도 한다.일자목증후군 예방을 위해서는 머리를 위로 올리듯 바로 세우고 허리를 요추전만자세로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항중력근을 자극해 자세를 바로 잡아주고 목의 C커브를 만들어주는 심부경추굴곡근이 활성화 된다. 따라서 일자목증후군은 흉추 후만증, 다시 말해 심한 둥근 어깨로 인해서 목이 전방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자세만 바로 잡아도 어느 정도 개선이 될 수 있다.현대인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이 움직이는 신체 부위가 바로 손이다. 손과 손목은 스마트폰이나 키보드, 마우스의 잦은 사용으로 부담이 증가해 통증이 생기더라도 방치하기 쉬운 부위다. 과거에는 집안일로 손을 많이 쓰는 40대나 50대 주부 환자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전자기기 사용이 많은 10대와 20대 환자들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손목터널증후군은 손목을 과다하게 사용하여 손목의 신경과 힘줄이 지나가는 통로인 수근관의 내부 압력이 증가하거나 좁아지면서 신경이 눌려 통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엄지와 둘째나 셋째 손가락이 저리면서 무감각해지기도 하고, 손목이 시큰하고 손가락이 저리거나 손목과 손바닥에 뻐근함이 느껴지고 심할 경우 손이 타는 듯한 통증이 생겨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이 따른다.손목터널증후군 예방은 우선적으로 손을 무리하게 사용하지 않고 휴식하는 것이다. 30분이나 1시간마다 5~10분씩 휴식을 취하면서 틈틈이 손가락과 손목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이 효과적이다. 특히 손목을 아래로 심하게 꺾으면 증상이 악화되므로 손목이 꺾인 자세로 작업할 때는 중간중간 휴식 시간을 갖고 손목 스트레칭을 해주는 게 좋다. 장시간 컴퓨터 작업으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계속해서 사용하여 손목 통증이 생기는 경우에는 손목 보호를 위해 패드를 깔아주면 증상 예방에 도움이 된다.현대인의 자세는 늘 굴곡져 있다. 식사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자세를 보면 목, 어깨, 등, 고관절, 무릎 그리고 팔까지 굴곡진 자세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늘을 볼 시간이 없다. 이처럼 굴곡진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우리 몸이 펼쳐진 삶을 살도록 유도하면 된다. 틈틈이 서 있거나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스트레칭을 통해 신전 동작을 꾸준히 해주는 게 답이다.

2023-06-18

접시꽃 피는 유월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유월의 골목에 접시꽃이 피었다. 소박한 이름과는 달리 무척 화사하고 탐스러운 꽃이다. 중국이 원산이라고 하나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기르거나 자생해서 토종식물이나 다름이 없다. 야생화로 불리지도 않지만 흔하게 볼 수 있어서 귀한 대접을 받는 화초도 아니다.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좋아했다는 매(梅), 난(蘭), 국(菊)이나 연꽃, 모란 같은 품격(?) 있는 꽃의 반열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서민적인 꽃으로 보기에는 너무 화려하다. 그러면서도 마치 무슨 파수꾼인 양 담이 낮은 골목을 지키고 서 있는 꽃이다.촉규화, 덕두화, 접중화, 일일화, 단오금 등의 이름을 두고 언제부터 접시꽃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어려운 한자어와 친하지 않은 백성들이 붙인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알록달록 고운 색깔의 그 접시는 사발과 대접, 보시기, 종지 따위가 고작인 서민들의 밥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청자나 백자와 같이 사대부들의 밥상에 올리기에도 격이 맞을 것 같지가 않다. 사대부들은 체면 때문에 감추고 백성들은 고된 삶에 억눌렸던 원초적인 정념 같은 꽃에다 빗댄 접시이니 어디엔들 맞겠는가?키가 크고 꽃대가 튼실한 접시꽃은 울타리나 담장을 따라 많이 심었다. 한번 심으면 그 다음부터는 저절로 번식을 하니 일일이 돌봐줄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도 관상용 꽃으로서의 역할은 더할 나위가 없다. 마을 골목에 피어 있는 접시꽃의 그 화사한 모습은 누구나 날마다 볼 수가 있어서 고달프고 팍팍한 일상에 한 줌 향기와 온기를 불어넣는다고나 할까. 이제는 뭐든지 숨기거나 억눌러 감추는 세상이 아니다. 취향에 따라 누구든 형형색색의 접시를 일상의 식탁에 올려놓을 수 있는 세상이다. 고매한 품격이나 야한 것을 따지는 세상도 아니다.시골마을 곳곳에 쌓인 저리도 고운 접시들이 뭉클한 감회로 다가온다. 보리밥 한 덩이에 된장 한 종지, 상추나 풋고추가 고작이었던 우리네 일상의 밥상 말고, 저 고운 접시의 용도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접시꽃 보면 사무치는 그리움 같은 것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이 유월에는 저 알록달록한 접시에다 온갖 것을 담아보자. 잊혀 진 것들, 잃어버린 것들, 외면하고 하찮게 여긴 것들, 세월의 먼지를 털고 편견과 망집의 더께를 떼어내고 알뜰하게, 소꿉놀이처럼 담아보자. 그러라고 접시꽃이 피었다.오랜 세월 우리는 밥그릇 하나 챙기기에도 너무 벅찬 삶이었다. 생활에 꼭 필요한 집기들도 뚫어지고 깨어지면 때우고 붙여 쓰는 형편에 곱고 예쁜 접시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생활이 각박하다고 마음까지 삭막한 것은 아니었다. 장독대 둘레에 채송화나 봉선화를 심을 줄 알았고 울타리나 사립문 옆에 접시꽃을 심기도 했다. 그래서 들며나며 한 번씩 눈길을 주는 것으로 마음 한 편에 작으나마 마르지 않는 정서의 샘을 간직할 수 있었다.먹고 살 만해진 지금도 밥그릇 때문에 울고 웃고 걸핏하면 부모형제도 저버리는 패륜의 시절에, 접시꽃이 피었다.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고. 인생을 담을 그릇이 어찌 밥그릇뿐이겠느냐고.

2023-06-15

노인 학대를 예방하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6월 15일은 ‘노인 학대 예방의 날’, 노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노인 학대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인복지법에 따라 2017년에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을 ‘노인’이라 하며 올해 2월 기준으로 900만 명 이상인 ‘고령화 사회’가 되었고, 2025년에는 20% 이상 즉,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83세, 건강 수명은 66세라고 한다.20세기 후반 인구 고령화의 세계적 추세에 따라 노인 복지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UN은 2006년부터 그 인식에 대한 활동을 추진하게 되었고, 노인을 위한 원칙으로 자립, 참여, 돌봄, 자아실현 및 존엄성을 제안했다. 즉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고 지식과 기술 등을 활용할 수 있게 하며 건강 보호와 관련 시설 등의 확충으로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고 또 교육, 문화, 여가 프로그램 참여로 잠재능력을 키울 기회를 줌으로써 학대로부터의 자유와 공정한 대우를 받게 하여 노인의 삶의 질 향상과 노인 보호 네트워크 확충 및 사회인식의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노인복지법에 ‘노인은 후손의 양육과 국가 및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여 온 자로서 존경받으며 건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노인은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경제발전을 이루고 가족들을 위해 헌신해 왔다. 그런데 최근 자료를 보면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최고이고, 노인 자살률도 1위라는 슬픈 사실에 놀란다. 통계청 자료에는 10만 명당 노인자살률은 60대가 30.1명 70대 38.8명 80대 이상은 62.8명으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노년기 자살은 사회적 지위 상실과 실업에 따른 경제적 결핍과 건강 악화, 배우자 사망 등 가족 문제의 우울감이 주된 이유이다.이러한 이면에는 노인학대라는 사회적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노인학대는 ‘노인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성적 폭력 및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 행위를 하거나 유기 또는 방임을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노인학대 실태를 보면 노인 10명 중 1명이 고통을 받고 있으며 1주일 1회 이상이 36.5%, 매일 23.1%로 정서적 학대가 가장 많고, 가정 폭력이 88%이다. 여기서 학대 행위자는 배우자가 46%, 아들-딸이 49%라는 통계도 있는데 이는 대가족 문화가 붕괴하고 있는 일면이다. 학대 사실이 인지되면 노인보호 전문기관 1577-1389로 신고하거나 ‘나비새김 앱’을 통해 알리면 된다. 2022년도 전국 노인보호 전문기관에 신고된 것은 1만4천여 건이며 이 중 3분의 1이 학대로 판정되었다. 그러나 자식들의 학대 아픔보다 신고할 경우 자녀의 피해를 우려한 부모의 마음으로 하지 않은 경우도 많겠지만 최근 5년간 노인학대 건수는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경찰청 발표도 있다.우리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 이제 국가와 사회는 존엄하고 안전한 노년을 위하여 경제적 어려움에 편견과 차별, 건강 돌봄 문제 등 노인 복지에 더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23-06-15

홍준표의 국량(局量)

홍석봉 대구지사장 홍준표 대구시장의 광폭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꼭 필요한 사람만 만나고 찾던 홍 시장의 보폭이 크게 넓어졌다. 가급적 외부 행보를 자제하던 그였기에 변화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대구시장 취임 1년을 앞두고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라는 것이 지역 정치권과 관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치 훈수도 크게, 멀리 보고 있다. 관심사는 노동, 국제 문제까지 확대됐다. 종교와 성소수자 문제까지 들여다본다. 폭 넓어진 그의 관심사와 시각이다.홍준표 시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지도부가 하는걸 보니 내년 총선이 걱정된다”며 여당에 선대위 조기 구성을 촉구했다.그는 보수정당이 지역별 맞춤형 인재 발탁으로 해방 후 처음 수도권에서 승리한 1996년 총선의 기억을 소환했다. 10개월이 채 남지 않은 내년 총선의 여권 인재난을 지적하며 무능한 당 지도부를 질타했다. 진영논리에 갇힌 채 논쟁만 일삼는 정치권의 무기력을 비판했다. 지지율 바닥인 윤석열 대통령에겐 힘을 실어주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정 없이 비판한다. 후배 정치인들의 힐난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옳지 않다고 판단하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까뭉갠다.최근 관심사가 일본과 중국 문제로 확대됐다. 때마침 중국대사가 주제넘은 발언으로 지탄받는 상황이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내정간섭’ 발언에 “방자하기 이를 데 없다”며 “꼭 하는 짓이 문재인 정권때 한국 정부 대하듯이 한다”고 매섭게 쏘아붙였다.같은 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문제를 놓고서는 ‘세계인들의 건강권 문제’라며 “일본의 자해행위”라고 경고했다.방류를 용인하는 대통령실 및 여권과는 결이 달랐다. 주위에서 걱정하자 “다양한 의견이 여당 내에서도 있어야 한다”며 일축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속이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다.종교와 문화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소신을 밝힌다. 홍 시장은 지역의 이슬람사원 건립을 반대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입장을 밝혔다. 종교 폄훼와 배척은 안 된다며 특정 종교 세력이 주민을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론적인 입장 표명이지만 한쪽을 두둔한다는 인상이 짙다. 자칫 갈등을 부추기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대구에서 열리는 퀴어 문화축제와 관련, ‘성다수자의 권익도 중요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통 협조도 않겠다고 했다. 호불호가 분명하다.그간 거리를 두던 한국노총과도 정책간담회를 갖고 노정 갈등의 중재자를 자처했다. 민감한 사회문제에는 조정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얼마 전에는 불편한 관계에 있던 대구상공회의소의 행사에도 참석했다. 이처럼 최근들어 그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다. 홍 시장의 광폭행보에 TK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홍 시장의 업무 추진력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에 비판은 용납않는 모습을 보여 반대론자를 끌어안는 아량과 포용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강과 바다는 개울물도 마다하지 않는다(江海不擇細流)’고 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홍준표 시장의 국량을 대구시민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2023-06-15

靑松의 매력

우정구 논설위원 푸른 소나무란 뜻의 청송군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지질공원은 그 지역의 생태계가 가진 과학적 중요성, 희귀성, 시각적인 아름다움, 교육적 가치 등을 종합 평가해 결정된다. 청송군이 보유한 자연생태가 고고학으로나 역사학적으로 가치가 매우 훌륭하다는 뜻이다.청송군은 2017년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두 번째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고 올해는 유네스코로부터 재인증도 받았다. 청송군은 경북의 오지지만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뛰어난 자연환경 등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백악기 시대 형성된 주왕산과 사진작가들이 즐겨찾는 주산지,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 등이 있고, 청송사과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 전국에서 산소포화도가 가장 좋아 ‘산소카페’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공해에 찌들린 대도시와 대비되는 자연주의를 도시 컨셉으로 삼은 것은 청송의 자랑이다.이곳에서는 나이와 주소와 상관없이 누구나 시내버스를 무료로 탈 수 있다. 관광객 유치 효과를 기대하나 그보다 군이 직접 무료버스를 운영함으로써 자동차로 인한 공해를 줄일 수 있다니 청정도시다운 발상이다.2011년 청송은 국제슬로시티에 가입했다. 공해없는 자연으로 돌아가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슬로시티운동은 자연주의를 표방한 국제사회 운동이다. 세계적으로 많은 도시가 슬로시티에 가입했으나 청송은 유일하게 바다를 끼지 않은 산촌형 슬로시티라는 게 특징이다.청송은 유네스코가 인증한 지질학적 가치를 잘 보존해 글로컬 관광도시를 지향하겠다고 한다. 경북의 오지 청송이 추구하는 순수자연도시로의 성공을 기원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15

커피, 아침을 열다

정미영 수필가 “당신이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가져다 드릴게요.”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나오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대사다. 내 나이 20대 초반에 주인공 마리아가 로버트 조던에게 이 말을 속삭이며, 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 한동안 눈에 선했다.커피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집집마다 인스턴트커피, 프림, 설탕을 티스푼으로 덜어서 아껴 먹던 때였다. 그런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이 건네주는 커피 한 잔으로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였다.요즈음은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이 어렵지 않다. 1999년 스타벅스 1호점이 문을 연 이후 원두커피가 본격적으로 퍼졌기에, 드립커피를 직접 내리는 집도 늘었다. 편의점이나 아침에 문을 여는 카페도 있어 부지런히 움직이면 모닝커피는 손쉽게 마실 수 있다.그러나 나는 이제 누군가가 건네는 모닝커피의 여유를 기대하지 않는다. 영화처럼 낭만적으로 살고 싶었지만, 현실은 강퍅한 드라마일 때가 많다는 것을 자각해 버렸다. 그렇다고 커피 마시는 일을 생활에서 지울 수는 없기에, 스스로 커피를 챙겨 마시며 새맑은 하루를 기대한다.커피를 음미하는 것은 삶에 여백을 만드는 일이다. 아로마가 풍부한 최상급의 커피가 아니어도 괜찮다. 그동안 시간의 눈금에 편승해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온 나였다. 방향을 잃은 채 속도에만 치중했던 일도 부려놓고, 마음에 쉼표를 찍으며 잠시나마 위안을 받는다. 마음을 채우기보다 비워서 여백을 만드는 시간이 커피를 마시는 순간이다.그렇지만 비우고 싶다고 마음이 어디 내 뜻대로 비워진 적이 있던가. 오늘도 베토벤을 따라해 본다. 그는 아침마다 60알의 원두를 분쇄해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나는 글감이 막막할 때면 그의 예술적 영감이 시공간을 초월해 나에게 전해지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그를 흉내 내어 종종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공한 적이 없어 애석할 따름이다.알맞은 굵기로 커피를 갈기 위해 그라인더 버튼을 조절한다. 그라인딩 정도와 추출 도구에 따라 같은 커피콩이라도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추출 시간이 길수록 커피를 거칠게 갈아야 하고, 추출 시간이 짧을수록 곱게 갈아야 한다.분쇄된 가루를 추출한 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쓴맛과 신맛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입안에 가득 퍼진다. 모든 커피가 부드럽고 감칠맛이 나는 게 아니므로, 커피 봉지에 적힌 블렌딩 비율을 훑어본다. 복숭아의 달콤새콤한 맛과 은은한 꽃향기가 어우러진 화려한 커피, 라는 문구와 커피잔에 담긴 커피를 번갈아 눈에 담는다. 커피원두는 품종마다 서로 다른 맛과 개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 가지만으로는 종합적인 맛을 즐길 수 없다. 원두가 지닌 특성을 균형 있게 배합하여 깊은 향미와 풍미를 지닐 수 있게 섞는 과정을 블렌딩이라고 하는데, 내가 마시는 커피는 배합 공정이 잘된 것 같다.문득, 우리네 사람살이와 닮은 듯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질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려면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야 할 때도 있지만,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순간도 필요하다. 완벽한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가끔은 부족한 부분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줄 수 있어야 한다. 블렌딩이 잘된 커피가 부담이 없듯이.커피에 취하면 마주앉은 상대도 다정스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실제로 미국에서 부부 1만 쌍을 대상으로 “처음 두 사람을 사랑에 빠뜨린 때는 언제인가요?”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커피 한잔 하실래요?”라고 말한 순간이었다고 한다.나는 내 주변이 정(情)으로 가득 넘치기를 바란다. 애정이든, 우정이든. 오늘 아침, 가까운 이와 새뜻한 하루를 시작해야겠다.‘커피 한잔 하실래요?’

2023-06-14

을사일주

육십갑자 중 마흔두 번째는 을사(乙巳)다. 천간(天干)의 을목(乙木)은 아름다운 꽃이나 유연한 나무다. 지지(地支)의 사화(巳火)는 계절적으로 여름의 시작이다. 어린나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동물로는 푸른 뱀이다.을사일주는 뜨거운 태양 아래 화려한 꽃밭처럼 밝고 명랑하다.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동산처럼 사고에 부드러움과 유연함이 있다. 외모는 화초같이 밝고 아름답고, 성격은 세심하고 상대를 배려하므로 주변으로부터 인기가 많다. 때론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성향으로 인하여 가벼워 보일 수가 있다.기본적으로 유쾌하고 명랑한 성격을 갖추고 있다. 말하는 능력이 뛰어나 자기표현에 능하다. 사회적 교섭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많다. 말싸움 해서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감정도 풍부하지만 희로애락의 표현이 분명하다. 상상력이 탁월하고 이성적이며, 멋을 잘 부리며, 기분파 기질이 있다. 사치심이 있는 것이 흠이다. 남녀 모두에게 인기와 매력이 있는 사람들이다.특히 순발력과 임기응변이 뛰어나며, 기존의 틀을 깨는 기획을 잘한다. 하지만 지구력이 다소 떨어지고, 상대를 은근히 무시하며 자기주장이 강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가 있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항상 바쁘게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시작은 잘하지만 마무리가 부족하여 항상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을사일주는 순수한 아이처럼 보여도 내면적으로 냉정하며 현실에 잘 적응한다. 그렇지만 흔들리는 꽃이라 감정의 변화가 심하며, 인내와 지구력이 약한 단점이 있다. 하지만 표현능력이 좋고 끼와 화려함이 겸비되어 있어 이성과 동성에게 호감을 주는 장점이 있다. 옷도 센스 있게 잘 차려입는다.중국 전국시대 양주가 송나라에 가서 어느 여관에 묵게 되었다. 여관 주인에게는 첩이 두 명 있었다. 한 여인은 얼굴이 예쁘고, 다른 여인은 못 생겼다. 그러나 못 생긴 여인이 오히려 총애를 받고 있었다.양주가 그 까닭을 묻자 여관의 젊은 주인은 “아름답게 생긴 여인은 자기가 예쁘다고 뽐내고 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못 생긴 여인은 자기 스스로 못 생겼다고 겸손하게 낮추고 행동하여 나는 그녀가 보기 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양주는 제자들에게 “자네들도 이 일을 잘 기억해 두어라. 스스로 잘났다고 내세우는 태도를 떨쳐버리고 품행이 훌륭하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지 않겠는가?”라고 당부하였다. ‘장자’ 외편 산목에 나오는 이야기다.양주의 당부는 지금도 강한 생명력이 있다. 물건에는 명품이 있듯이 말과 행동에도 품격이 있다. 언행이 일치할 때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은 호소력과 감동을 준다. 품격 있는 말과 행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자기개발이 필요하다.을사일주의 사화(巳火)는 뱀이기에 따뜻한 인정과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뱀은 따스함과 차가움을 함께 가졌고,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오묘한 동물이다. 거기에다 뜨겁고 큰 불이 더하니, 자신을 공격하거나 해를 입히는 사람은 냉정하게 잘라내는 성향이 있다. 실제로는 자기중심적이기에 혼자서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물상으로는 ‘풀밭에서 바쁘게 활동하는 뱀’이다.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을 휘감아 큰 먹잇감도 그대로 삼켜버린다. 어떠한 곤란에도 굴복하지 않고 이겨내는 능력의 소유자다. 자기방어 이외에는 사람을 잘 공격하지 않는다.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은 생존하며, 성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여 살아간다.남녀 모두 이성에게 인기가 많아서 이성문제가 잘 발생하는 일주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의 경우는 외모가 뛰어나며, 예술적인 감각과 매혹적인 목소리로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낼만한 매력의 소유자다.화려하고 향기 나는 꽃에는 항상 벌과 나비가 있다. 19세기 미국 작가 나다니엘 호손(1804∼1864)의 소설 ‘주홍 글씨’를 읽어보자. 17세기 엄격한 청교도들이 지배하는 미국 뉴잉글랜드지방(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죄를 다루었다. 주인공 헤스터 프린은 키가 크고 젊은데다 아름다운 용모를 겸비한 상류사회 여자였다. 헤스터는 나이 많은 남편을 영국에 두고 홀로 미국으로 이주한다.그녀는 보스턴에서 유능하고 촉망받는 젊은 목사와 사랑에 빠져 임신하게 된다. 청교도 사회에서는 여자의 행실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있었다. 간음은 그 사회에서는 죄에 해당한다. 헤스터는 생후 3개월 된 딸을 안고 처형대에서 간통을 뜻하는 주홍 글씨 A를 가슴에 달고 야유를 당하는 벌을 받는다.헤스터는 자신의 주홍글씨를 당당히 내보이며 죄를 극복하려는 진취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외곽에 머물며 탁월한 뜨개질 솜씨로 동네에 힘들게 사는 여자들에게 접근한다. 그녀는 타고난 의연함과 봉사정신으로 가난한 이웃과 병든 사람을 돌보게 된다. 죄를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당당히 드러내고 속죄를 통해 타인을 보듬고 위안을 준다. 아기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그녀의 사심 없는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전해져 가슴에 찍힌 주홍글씨 A는 Adultery(간음)이란 의미에서 차츰 Able(능력 있는 여자)로 인식되었고, 결국에는 Angel(천사)로 받아들여진다. 죄를 숨기고 거룩한 목사로 행세하는 젊은 딤스테일 목사는 점점 병들어가고 쇠약해져 간다. 목사는 설교를 통해 도덕과 사랑을 강조하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는 신임 총독 취임식장에서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죽는다.주홍 글씨는 세상의 멸시와 조소를 받는 죄의 낙인으로 쓰였다. 헤스터는 이를 존경과 극복의 상징으로 바꾸어 버린다. 죄는 목사이건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극복했을 때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인가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머리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랑은 머리가 아닌 마음의 일이다. 그렇기에 사랑을 선악의 범주에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사랑은 선악의 판단 이전에 인간 본연의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랑의 행위는 선악의 피안에 있다.

2023-06-14

여름철 숙면 중심체온 관리에 달려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올해는 유난히 여름이 빨리 다가오는 느낌이다. 여름에 열대야가 시작되면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확 늘어난다. 날씨가 더운데 왜 잠을 못 자는 걸까?사람의 수면은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생리활동이다. 바이오리듬과 비슷한 ‘일주기 리듬’에 따라 잠이 들고 잠이 깨는데, 대체적으로 지구의 낮과 밤 주기와 비슷하게 움직인다. 수면 뿐 아니라 혈당 조절, 각종 호르몬 합성 조절 등 수많은 생리 기능이 일주기 리듬과 연관되어 있다.사람의 체온도 일주기 리듬을 따라서 움직인다. 항상 36~37.5도 사이를 유지하는 중심체온(몸 속 중심부의 온도)은 저녁 7시경 가장 높고, 새벽 5시경 가장 낮다. 일주기 리듬을 따라서 체온과 수면의 패턴을 관찰해보면, 밤 10시를 전후해서 중심체온이 높은 상태에서 낮은 온도로 떨어질 때 졸음이 오고, 수면중에는 조금씩 떨어지면서 낮은 상태를 유지하다가 새벽 5시경 가장 낮은 온도에 도달하고, 이후 서서히 중심체온이 오르면서 잠이 조금씩 깨게 된다.심장, 간 등의 내장이 활동하느라 생긴 열은 중심체온을 높이는데, 이것이 사람마다 달라서 중심체온이 높은 사람도 있고 낮은 사람도 있다. 중심체온이 높아지면 이 열을 밖으로 빼내려고 혈액이 피부쪽으로 많이 이동한다. 그런데 여름이 되어 바깥이 더워지면 피부 쪽으로 이동한 혈액이 열을 많이 내보내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중심체온이 잘 낮아지지를 못하게 되고, 중심체온이 낮아지지 못하면 잠을 잘 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즉, 속이 더우면 잘 잘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여름이 아닌데도 중심체온의 발산이 잘 되지 않아서 불면증이 오는 경우에는 심장의 열을 줄여주는 황련, 치자 등의 약재와 간의 열을 줄여주는 황금 등의 약재가 배합된 황련아교탕, 갈근황금황련탕, 치자시탕 등의 처방이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반면에 한방에서 양허라고 부르는 저체온자나 고령의 노인들, 체력 허약자가 깊은 잠을 못 자는 경우도 있다. 이는 애초에 중심체온이 상승하지를 못하기 때문에 중심체온이 떨어지는 현상도 없어서 잠을 들기도 어렵고 깊은 잠도 못 자게 된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중심체온을 높여주는 인삼, 건강, 부자 등이 배합된 처방을 사용해야 몸이 따뜻해지면서 잠을 더 잘 자게 된다. 이런 이유로 열체질과 냉체질인 부부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은 때로는 곤혹일 수도 있다.위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 기침이나 복통, 심장병 등의 질환으로 인해 체온의 변화와 상관없이 못 자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는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노력과 기저 질환에 대한 치료가 병행 되어야 불면증이 없어지게 된다.불면증이 심하고 장기화 된 경우 한방의 불면증 치료는 중심체온을 조절하고 신경의 화를 식혀 주어 자연스레 수면패턴이 안정되게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회복력을 키우기 전까지는 불면 증세가 금방 좋아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 회복하면 재발의 확률이 적고, 수면 뿐 아니라 전반적인 건강 상태도 좋아지니 인내심을 가지고 한방 치료를 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2023-06-14

‘영화 WITH’ 프로젝트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년 전 4월쯤으로 기억한다. 동네 행정복지센터에 갔다가 지산종합복지관에서 ‘영화 WITH’의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팸플릿을 얻었다. 은퇴 후 온갖 문화강좌 수강을 별렸으나 코로나19 탓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답답하던 차였다. 신청서를 정성껏 써서 인터넷으로 제출했다. 면접 후 대상자 선정을 한다길래 떨리는 맘으로 연락을 기다렸다. 며칠 후 면접 전화가 왔다.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나, 왜 신청하였나 등등의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무엇보다 수강의 간절함을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 영화 덕후라고 했더니 무슨 장르를 주로 보냐, 왜 좋아하느냐는 등 꽤 긴 시간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하여튼 며칠 후 선정되었다고 연락이 왔고, 5월부터 20주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강생은 20대부터 60대까지 나잇대도 다양한 남녀 20명 정도였다. 이번이 세 번째 수업인 분도 몇 있었으나 대부분은 나처럼 영화 공부인 줄 알고 오신 분들이었다. 그러나 강좌명과 같이 실제 영화감독이신 강사의 지도로 수강자들이‘함께 영화를 제작하는 프로젝트’였다. 2019년부터 시작된 ‘영화 WITH’는 첫해에는 2편, 2회째는 한 편의 영화를 이미 만든 저력이 있었다.첫 수업 때, 영화 끝의 엔딩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짜릿할 건가를 기대한다며 내 소개를 했다. 20주 후 영화시사회에서 그 바람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매주 수업은 영화제작 실습이었다. 첫날부터 컷촬영 실습, 두 번째 수업엔 휴대폰으로 5컷짜리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기획, 촬영, 편집 등의 영화 실무 공부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단 한 번의 수업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이크, 카메라, 오디오 장비들을 다루는 법을 모든 수강생들이 실습해 보면서 15분 내외의 단편영화 제작 준비를 했다.다양한 단편영화들을 감상하는 동시에 우리가 만들 영화 주제에 대한 의견을 제안하고 상의했다. 대강 정해지자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배우, 연출, 촬영, 스크립트, 오디오, 붐마이크, 슬레이트, 메이킹필름, 소품 등의 영화 스태프는 수강생들이 자원하거나 타천으로 결정했다. 나는 소품 담당을 자원했는데 감독님의 요청으로 시나리오 작성에도 다소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시나리오가 거의 완성된 후 몇 주간은 배우들의 시나리오 읽기와 연기 연습이 이어졌다.촬영일자와 로케이션 장소도 상의했다. 촬영은 하루만 하기로 정했으나 실제 배우들은 보충 촬영을 할 정도로 쉽잖은 작업이었다. 촬영 내내 촬영장의 현장 분위기를 맛보고, 영화 한 편이 얼마나 어렵게 탄생되는가를 체험하였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단편영화 ‘선물’의 시사회는 흥분과 보람의 시간이었다. 영화 상영 후, 엔딩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의 감동은 전율감 그 자체였다. 그 감동을 잊지 못해 작년에도 참여하여, ‘엄마 찾아 칠십 리’라는 단편영화제작에 붐마이크를 들었다. 아, 우리집 강아지 베리도 특별출연하는 기쁨도 있었다. 올해도 절반의 수업이 지났다. 영화 주제는 만남, 내 역할은 시나리오 정리로 이미 정해졌다. 완성도 높은 작품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기대반 걱정반이다.

2023-06-14

아직도 어른을 찾는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다.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 공동체에서 발생한 폭력은 일반 사회에서 벌어진 폭력과 다르기는 하다. 가장 중요한 가닥은 아마도 가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가 많으므로, 교육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까닭이 있겠다.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 범죄가 발생해도 피의자가 미성년인 경우에는 특별하게 다룬다. 학교에 교육이라는 명제가 있다지만, 사회에도 교정과 회복이라는 까닭이 있다. 학교폭력이라 하여 과도하게 다르게 바라보고 특별하게 다루어야 할 까닭이 그리 분명하지 않다. 사회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때 공식적인 수사, 기소와 재판이라는 정교하고 치밀한 제도적 접근방법이 정비되어 있는 반면, 학교폭력이 절차에 있어 시스템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지는 오히려 미지수다. 학교폭력도 당연히 폭력이다.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맞서는 우리의 태도는 어찌해야 할까. 일본이 바다에 버린다는 물을 사람이 마셔도 괜찮을 것인지를 묻는다. 물에 오염되었을 방사능으로 인간이 건강을 해칠까 하여 불안하다. 방류의 결과가 안전하다면 일본은 왜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바다에 버린다는 것인지, 가장 중요한 질문에 속시원한 답이 아직껏 없다. 실은, 한 가지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오염수로부터 인간이 안전할 것인지를 묻기 전에 방류가 바다와 자연을 혹 무너뜨리는 것은 아닌지 누구도 묻지 않는다.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다. 물고기와 바다는 어찌 되는 것인가. 하나뿐인 지구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국제사회는 일본에 물어야 한다. 환경을 보호하고 바다를 보전하기 위하여 일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방류가 자연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관하여 일본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방사능에 아무런 까닭없이 피폭을 당해야 하는 물고기들과 저 멋진 바다는 어찌할 것인지.다가오는 여름이 엄청 무덥겠다는 예측이 있다. 정부가 보다 분명하게 사안을 짚어내어 국민을 안심하게 하고 환경훼손을 최소로 하도록 접근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있다. 경륜이 깊고 덕망도 높은 인사들이 왜 침묵을 지키는지 안타깝기도 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적에 그런 분들이 논란의 매듭을 풀어내는 데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나라 안에 그런 분들이 사라졌다기 보다 오히려 생각깊은 사람들이 오히려 많아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다. 교육과 지식수준이 한층 높아졌으며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이해도 우리 안에 편만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건너온 사회적 집단 경험치도 대단히 높다. 예전에 역사와 민족 앞에 깃발을 들었던 소수의 지도자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열어가는 수많은 어른들이 나라 안에 가득하다. 당시에 대결과 타도로 난제를 돌파했다면 이제는 토론과 협상으로 논리적인 해결을 이어가야 한다. 더 이상 우리 앞에 설 어른을 찾지 말아야 한다. 겪을만큼 겪었고 배울만큼 배운 당신이 이제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한다. 건강한 집단지성으로 가득한 사회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2023-06-14

세계 최고, 울릉도 리조트 코스모스

홍석봉 대구지사장 울릉군 추산리에 있는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는 개장 당시부터 화제를 뿌렸다. 호화 시설과 빼어난 건축미 때문이다. 2021년, 2022년 연속 ‘월드럭셔리 호텔 어워즈 럭셔리 허니문 리조트’ 부문 최고상을 받았다. 2017년 10월 문을 연 후 4년 만에 세계 최고의 호텔로 등극한 것이다. 세계의 아름다운 건물 20개 중 7위에 오르기도 했다. 코스모스는 코오롱 그룹이 김찬중 건축가에게 맡겨 설계했다. 건축가는 버킷리스트를 꿈꾸며 현실로 만들었다.코스모스는 울릉도를 단숨에 세계적 여행 명소 반열에 올려놓았다. 오직 이 건축물을 보기 위해 울릉도를 찾는 사람이 적잖다고 한다. 콘크리트 건물로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유려한 곡선미와 인근 송곳 산의 경치가 어우러져 신비감마저 자아낸다.숙박비는 엄청나다. 특급 풀빌라(객실 5개)는 1박 숙박비가 1천만 원을 넘는다. 식사와 교통편, 관광 등 여행경비 일체가 포함돼 있다. 펜션 형태의 숙소(객실 8개)도 1박에 40만~70만 원대로 가격대가 만만찮다. 이마저 객실 수가 적어 예약이 쉽지 않다. 예약돼도 섬의 특성상 풍랑으로 이용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식사 때는 울릉도 특산물인 명이나물과 부지깽이 나물을 활용한 파스타, 호박 아이스크림 등 특선 메뉴들을 맛볼 수 있다. 코스모스는 울릉도 고릴라 캐릭터를 만들고, 야간 레이저 쇼를 선보이는 등 울릉도 관광 면모를 확 바꿔놓았다.리조트 코스모스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외교결례와 내정간섭 논란의 주인공인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코오롱 그룹으로부터 리조트 코스모스 이용 편의를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고급 호텔 이용권이 접대 수단이 되는 시대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6-14

‘~답게’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지인의 어린 딸아이가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애국’을 주제로 글쓰기 과제를 학교에서 받아 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해마다 쓰는 내용이 식상하기도 하고 도무지 쓸 거리도 없는데 매년 학교에서 그런 과제를 형식적으로 내니 애국은커녕 반감이 생겨 오히려 매국하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 웃픈 이야기를 듣고서,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사실 6월은 현충일을 비롯해 한국 전쟁, 제2연평해전 등이 모두 일어난 달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곳곳에서 온갖 행사가 행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며, 지극히도 무심히 6월을 보내는 일상 풍경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이는 호국보훈의 달이라 하여 각종 행사에 형식적으로 물적, 인적 투자를 해 온 그간의 관례 탓도 있고, 또, 일반 범부(凡夫)로서는 국가를 위해 한 몸 바쳐 충성하고 희생한 이들의 삶이 너무도 고결하여 감히 근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심적 거리감 때문이기도 하다.그러나 국가를 위해 무언가 큰 희생을 하는 것이 꼭 호국보훈이요, 충(忠)은 아니다. 충(忠)은, 중(中)과 심(心)이 합쳐진 글자로, 중심이 바로 잡힌 마음 상태, 지극하고 진심을 다하는 마음 그 자체를 의미한다. 즉, 국민의 국가를 향한 일방적인 희생, 의무를 강요하는 복종 개념이 아니라 어딘가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바로 잡고 선 상태, 하려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논어에서도 충(忠)을 ‘진기(盡己)’라고 표현하였다.진기(盡己)는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다른 말로, ‘~답게’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모두 각자 처한 위치에서 이러한 ‘~답게’를 진정으로 잘 실천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君君臣臣 父父子子).‘~답게’가 잘 실천되는 사회, 곧 충(忠)이 제대로 실현된 사회일수록 ‘나’를 넘어 ‘너’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가 될 수 있는 법이다.나폴레옹 점령 당시 총칼 대신 독일의 민족정신을 살리고자 독일어 사전 편찬 작업과 각지에 흩어져 있는 민담을 수집해 책으로 엮어내 세계 문학사의 한 획을 그어 놓은 그림 형제나 풍전등화 같은 국가적 위기 속 조선의 운명을 짊어지고 왜적과 고군분투하다 장렬히 전사한 이순신 장군, 독립투쟁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르고 대전 교도소를 나오며 이제 뭘 하겠느냐는 일본 경찰의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한 도산 안창호 등은 모두 학자, 장수, 독립투사로서 주어진 자리에서 ‘~답게’를 실천하다 간 인물들이었다.이처럼 충(忠)은, 호국(護國)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답게’를 진실된 마음으로 올바르게 실천하다 보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나라에 미치게 되어 마침내 충(忠)을 실현하고 애국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 6월은, 다들 스스로를 돌아보며, 진정 ‘~답게’ 살며 나만의 애국을 실천하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으면 싶다.

2023-06-13

마당극으로 조명한 해녀의 삶과 미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스름이 내리는 도심 속의 정원에서 한바탕 놀이판이 열렸다. 꽹과리와 장구 등의 장단에 바람소리 같은 파도소리가 간간이 철썩이고, 갈매기 날갯짓따라 흰구름이 떠가는 구룡포 바닷가를 배경으로 조곤조곤 해녀이야기와 몸동작이 사뿐사뿐 이어졌다. 때로는 느긋하고 다급하다가도 때로는 긴장되고 애절하기까지한 연희(演戱)가 시종 재담과 해학으로 흥미롭고 드라마틱하게 펼쳐진 것이다. 이 같은 공연은 전통연희컴퍼니예심 단원들이 포항철길숲 오크정원에서 보여주고 들려주는 지역의 향토역사 구룡포 해녀이야기 ‘명랑바다-숨비소리’ 마당극이다.해녀라는 고단하면서도 숙명적인 물질을 통해 여인의 삶, 어머니의 삶, 고령화돼 가는 위기의 해녀를 오롯이 지켜가는 사람들의 질박하고 따스한 이야기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마당극 특유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다양한 춤사위, 폭소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대사와 노랫말에 곡을 붙여 간절한 듯 신명나게 부르거나 연주하고, 출연한 배우들의 열연과 사물(四物)의 장단, 관객의 추임새까지 더해진 흥겨운 한마당이었다고나 할까? 거기에 즉석에서 샌드아트로 그려지는 평온한 바닷가의 풍경과 물질의 미래 이야기 등이 영상으로 비쳐지니 한결 이채롭기까지 했다.일찌감치 공연장 주위에 둘러 앉은 관객들은 이색적인 마당극에 젖어 들어 저절로 감흥이 일고, 철길숲을 오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춰 서서 삼삼오오 넌지시 마당극에 빠져드는 분위기였다. 연극 같으면서 창극(唱劇) 같고, 뮤지컬 같으면서도 독창적인 마당극으로 펼쳐지는 해녀의 레퍼토리가 궁금해선지 지나가던 바람도 주변에 맴돌고 별빛마저 서둘러 내려앉는 듯했다.시민들의 쉼터이자 만남과 소통의 공간인 포항철길숲에서 펼쳐진 ‘구룡포 해녀이야기’ 마당극이 작게나마 해녀들의 실태와 척박한 해녀 환경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경북은 제주도 다음으로 해녀가 많아 1천300여 명이 동해안 중심으로 나잠(裸潛) 어업활동을 하고 있으며, 경북 최다의 해녀도시인 포항은 타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해녀문화의 정체성을 띄고 있다. 그러나 해녀는 연안어업의 주요한 생산자이자 해양생태계의 수호자 역할을 하고 있으나, 종사자의 64%가 40년 이상 나잠어업에 종사한 것으로 나타나 고령화, 소득감소 등으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다.갈수록 심각해지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의 위기에 어촌의 소멸위험은 어촌 주민들의 삶을 크게 위축시키기에 해녀들의 복지환경 개선과 실질적인 대안제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공연 시작 전 35년 동안 바닷속을 텃밭 삼아 온 구룡포리 어촌계장의 화두처럼 해녀의 존재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젊은 해녀, 해남을 위한 ‘해녀 비즈니스타운’ 건립추진 등으로 보다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말이 결코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구룡포 해녀의 역사와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해녀들의 애환을 대중적인 문화콘텐츠로 담아낸 걸작이었다. 이를 계기로 재조명된 해녀들의 실상과 처우가 보다 전향적으로 개선되어 포항의 해녀문화가 차츰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3-06-13

포항과 포스코 갈등, TK의 위기일 수 있다

심충택 논설위원 포스코그룹이 포항에 본사를 둔 것은 한국 근대화를 견인한 TK(대구경북)의 자존심이다. 대기업 중 본사 소재지가 비수도권에 있는 기업은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중공업(울산), 카카오(제주), 대우조선해양(경남) 등 한손으로 꼽을 정도다. 실질적인 본사기능이 서울에 있다고는 하지만, 포스코가 포항을 산실로 해서 다국적 기업으로 커 나가는 것은 TK로선 큰 자랑이다.포스코가 요즘 포항시민들과 현안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겪는 모습은 안타깝고 위험한 일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중소기업 하나라도 더 유치하려는 타 도시가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일 것이다. 갈등의 주요 요인인 포항제철소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의 경우 포스코로선 생존이 걸린 현안이다. 이 프로젝트는 아쉽게도 첫 단계인 주민설명회부터 일부 시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사업 인·허가 절차가 마무리돼야 수소기반의 생산체계 기술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포스코는 현재 고로 8기(포항제철소 3기, 광양제철소 5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고로를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유럽연합(EU)과 미국에서는 탄소배출 규제안을 강화하고 있어 포스코가 고로를 탈피하지 못하면 결국은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지금 포스코의 라이벌인 해외 철강기업들은 정부지원을 받아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스웨덴의 사브(SSAB)와 독일의 잘츠기터(Salzgitter)는 천문학적인 재정지원을 받고 있으며, 일본은 최근 철강 분야 탄소중립을 위해 10년간 3조엔(약 28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포항이 위기감을 느껴야 할 부분은 전남도가 현재 ‘광양홀대론’을 제기하며 포스코 미래기술연구원내 수소저탄소 에너지연구소를 광양으로 이전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점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여유부지가 있는 광양에 수소환원제철소를 지어야 한다는 소리로도 해석된다.포항은 지금 내일(15일)로 예정된 포스코 범시민대책위의 집회를 앞두고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포스코 지주사와 미래기술연구원의 실질적인 포항 이전, 최정우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다. 이들이 요구하는 실질적인 본사기능의 포항이전 문제는 쉽게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최근들어 주요 대기업들은 수소·인공지능(AI)·이차전지 등 미래 신산업 주도권 선점을 위해 박사급 우수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 RD 연구소를 수도권에 경쟁적으로 설립하고 있다. 포스코라고 예외일 수 없지 않은가.경북도가 서둘러 대규모 TF를 구성해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사업 인·허가를 돕기로 한 것은 아마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만약 포스코가 일부 포항시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수소환원제철 사업부지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여유부지가 있는 광양제철소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고로를 통해 철강을 생산하는 시대는 곧 마감되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시간에 쫓겨 광양에 수소환원제철소를 건설하면 포항은 물론 TK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게 된다.

2023-06-13

경찰도 극한직업?

우정구 논설위원 영화 ‘극한직업’은 마약단속반 형사들이 수사과정에서 겪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터치한 수사물이다. 불철주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범인 검거실적이 오르지 않아 애태우는 모습이나 잠복근무 모습 등 비록 영화 속이지만 경찰관의 고된 업무를 잘 묘사하고 있다.경찰은 국민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회의 공공질서와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을 한다. 옛날부터 이름은 달라도 국가에서 관장하는 치안을 담당하는 부서는 상존해왔다. 조선시대는 치안을 담당하는 부서를 포도청이라 불렀다. 포도청 산하의 포졸들은 육모방망이를 휘두르며 도둑을 잡는 등 서민의 보호자였다.그러나 말이 좋아 ‘민중의 지팡이’지 하는 일은 고단하기 짝이 없다. 사건이 터지는 현장마다 쫓아 나가지만 위험 부담도 적지 않다. 범인을 잡고 수사하는 과정에서 칼에 찔리거나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경찰 관계자는 “주취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는 동료 경찰관도 많다”고 전한다.멕시코의 한 NGO단체가 밝힌 보고서에 따르면 멕시코에선 하루 1.65명꼴로 순직하는 경찰이 발생한다고 한다. 대부분 근무 중 피살된 경우로 멕시코 경찰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군으로 손꼽힌다.멕시코 경찰처럼 목숨을 잃는 경우는 아니지만 국내서도 해마다 퇴직하는 경찰관이 크게 늘고 있다. 경찰청이 국회 행안위에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한해동안 3천500여명의 경찰이 옷을 벗었다. 4년 전 2천421명보다 46.3%가 증가한 숫자다.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열악한 처우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고 한다.민중의 지팡이는 온데간데없고 극한직업에 시달리는 경찰 이미지만 남은 것 같아 안타깝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6-13

오보(誤報)의 사회적 비용

5월 31일 아침을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비명 같은 위급 재난 문자 알림음과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이라는 섬뜩한 문자 내용, 그리고 사방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 습관처럼 네이버에 접속하려는 데 접속이 되질 않자 무언가 일이 크게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마치, 재난 영화 속 한 장면에 내가 던져진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이건 현실이었고, 나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헌데, 무엇을?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같은 생각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패닉에 빠져 있었다.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이라는 행정안전부의 문자가 올 때까지.비록 20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 순간에 느낀 공포를 말로 형용하긴 어려울 것 같다. 공포라는 말도 왠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 아마 무력감에 더 가까웠지 싶다. ‘그래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무력감 말이다. 그렇게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 뒤엉킨 채로 아침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인사처럼 참 특별한 아침인 것 같다고, ‘수령님의 모닝콜’ 덕분에 지각생이 없는 것 같다는 비틀린 농담을 던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이 모든 감정의 폭풍이 ‘오보’로 인해 초래되었다는 건 꽤 의미심장한 일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 문자는 허술한 점이 참 많았다. ‘대피하라’라는 술어에도 불구하고, 문자는 무엇으로 인해 대피해야 하는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말도 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무작정 쓰인 ‘대피하라’는 말은 꼭 영화 ‘미스트’ 같았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었고, 우리에게는 최소한의 답이나 혹은 습관이라도 있어야만 했다. 수없이 많은 참사와 재난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재난에 취약하다. 그게 전쟁이든, 혹은 자연재해든, 우리는 어떤 상황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더불어 문자에서는 어떤 상황인지조차 명확히 말해주지 않았고.사실 많은 사람들이 느낀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 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단지 대피하라는 말 뿐, ‘왜’와 ‘어떻게’를 생략해버린 문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란을 부추길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더불어 그런 상황에서 네이버와 같은 대형 포털 사이트가 접속자 초과로 인해 먹통이 되어버린 건 의미하는 바가 큰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습관적으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사태를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고, 그건 우리의 삶에 있어서 특정 사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문제적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정부를 불신하고, 그와 같은 불신을 사기업의 정보망을 통해 보충하려 하고 있는 건 아닐까.비슷한 일은 얼마 전에도 있었다. 4월 28일 종로에서 있었던 지진 경보 오발송이다. 그때 나는 종로3가의 한 술집에 있었는데, 그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4월 28일 21:05 지진발생/추가 지진 발생상황에 유의 바람-종로구’라는 문자를 받은 사람들은 건물 밖으로 대피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부터 찾기 시작했다. 술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나는 그 광경이 꼭 만화 ‘일본 침몰’의 한 장면 같아 소름이 돋았다. 눈앞에 닥친 위기가 현실임을 인지하지 못해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재난에 휘말리는 사람들. 그런데 그게 정말 그 사람들만의 탓일까?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오보’가 갖는 위험성이 바로 이것이다. ‘오보’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에 치명적인 효과를 미친다.‘오보’는 우리가 가진 위험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실제 상황이 터졌을 때 잘못된 대처를 하도록 만든다. 그때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잘못된 낙관주의가 습관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잘못된 정보가 초래하는 효과가 정정문자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까닭이다.더불어 이번의 경계경보 오발령 사건은 북한과 엮여 있다는 점에서 사태가 더 복잡하다. 북한의 위성 발사실험이 사전 고지된 사항이었음에도 이것을 이례적인 것처럼 이슈화시키고, 정보를 왜곡하여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고전적인 북풍 공작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이건 지레짐작에 불과할 것이다. 오보는 오보여야만 한다. 그럼에도 오보가 단지 오보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어쩌면 이런 잘못된 정치적 상상도 오보에 대해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인 것일까? 여전히 많은 의문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2023-06-13

산책하면서 보는 것

강아지와 산책하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 이를테면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얼마나 많은지. 씹다 뱉은 껌이나 음식물 쓰레기가 잔디와 얽히면 얼마만큼 끔찍한 일을 야기하는지. 죽은 새나 몸통이 훼손된 쥐 같은 것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 나의 반려견 보리는 목적지까지 우아하게 걸어가는 법을 모르고, 흥미로운 냄새가 나는 온갖 곳을 향해 코를 킁킁댄다. 덕분에 나도 거리의 무수한 주변부를 탐색 중이다.그렇게 걷다 보면 산책하는 다른 강아지와도 자주 만나게 된다. 요즘처럼 좋은 날씨엔 더욱 그렇다. 시간과 동선이 겹쳐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만나는 강아지도 있다. 그러면 강아지의 이름이나 나이, 취향까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저 멀리서 아는 강아지가 다가오면 묘한 내적 친밀감이 든다. 강아지들이 인사할 동안 반려인들은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 새로운 형태의 우정이 새록새록 싹트는 것만 같다.최근 새롭게 알게 된 강아지가 있다. 이름은 초코. 갈색 털을 가진 푸들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강아지였다. 초코는 너무나 순하고 사람을 잘 따랐다. 초코야, 안녕? 인사하면 벌러덩 누워 배를 보여주기도 했다. 다른 강아지와도 사이좋게 잘 지내서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고 동네 아이들도 초코야, 초코야,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 애교를 부렸다.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보리와 산책하던 중이었다. 초코의 견주인 할머니가 혼자 벤치에 앉아 계셨다. 초코가 안 보이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 할머니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그리고선 초코가 죽었다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초코가요? 갑자기요?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이냐고 묻자, 차에 치였다고 했다. 아, 그때의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순식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마음이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할머니는 오프리쉬, 그러니까 강아지의 목줄을 차지 않고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최근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강아지의 리드줄 미착용에 관한 규제가 생겨났다. 줄을 차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이다. 그러나 동네를 산책하면 여전히 줄을 착용하지 않고 산책하는 강아지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할머니와 초코 역시 그랬다.초코의 죽음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에게 “그러게, 목줄을 하셨어야죠.” 하면서 쏘아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할머니의 무책임함으로 목숨을 잃은 강아지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러나 사랑하는 반려견의 죽음 앞에서 누구보다 슬픈 것은 그녀라는 것을 알기에 어떤 말도 함부로 꺼낼 수 없었다.내게는 책임이 없는가? 나는 반려견의 리드줄 착용이 의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줄 없이 돌아다니는 강아지가 위험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면 할머니에게 리드줄 착용의 중요성에 관해 알리고 당장 내 것이라도 건넸어야 했다.이럴 때 나는 완전히 비겁해진다. 이를테면 개집에 묶여있는 강아지들을 볼 때. 행동반경이 이미터도 되지 않는 그곳에서 먹고, 자고, 배변하는 생명과 내 품에 안긴 반려견을 번갈아보면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눈을 꾹 감는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것들도 있다고 고개를 저으면서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우리는 다른 세상을 살았다. 할머니와 나도. 초코와 보리도. 나는 다른 국가처럼 모든 반려인이 반려견에 관한 의무교육을 받기를 원하고, 개를 키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입양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러면 동시에 할머니의 외롭고 쓸쓸한 어깨가 떠오른다. 할머니와 초코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을 것이다. 초코는 할머니에게 넘치도록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그 어떤 강아지 못지않게 행복했을 것이다. 할머니가 주었던 사랑과 서로의 유대감은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이니까.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면서도 주변부에 놓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섣부른 감정만으로 세상은 작동되지 않고 법의 잣대만으로 모든 이를 판단할 순 없다. 이것이 힘들다는 걸 알지만 한 번이라도 더 살피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오늘도 나의 반려견 보리는 자기만의 보폭으로 산책한다. 전봇대 앞에 멈춰 냄새를 맡고 잔디밭에서 마음껏 구른다. 보리의 배변을 치우려고 하니 개똥들이 보인다. 무책임한 개 주인을 원망하다가 한숨을 쉬고 눈에 보이는 것을 치운다. 고개를 드니 다른 분이 자발적으로 공원을 청소하는 것이 보인다. 그래, 세상은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천천히, 차근차근.

2023-06-13

여성은 약하지 않다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세이렌(Sire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다. 상반신은 인간 여성,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선원들을 유혹해 잡아먹는다는 이 괴물은 여성을 숭배하면서 동시에 혐오했던 남성 중심 문화의 상상물이다. 오늘날 ‘위험을 경고하는 장치 또는 소리’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사이렌(siren)이라는 단어 또한 여기서 유래했다.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사이렌 : 불의 섬’은 이 괴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따왔다. 이 프로그램은 경찰, 소방관, 군인, 경호원, 스턴트맨, 운동선수 등 높은 신체능력을 요구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외딴 섬에 모여 펼치는 생존 경쟁을 다룬다. 각 직업군들은 네 명씩 팀을 이뤄 다른 팀의 기지를 점령해야 한다.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전략전술과 연합과 적대의 구도가 무척 흥미로우며, 일일 소비 칼로리를 화폐로 사용하여 필요한 아이템을 구입한다는 설정도 참신했다. 무엇보다도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뛰어난 신체능력과 정신력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그리스 신화의 세이렌과는 달리 ‘사이렌’의 참가자들은 유혹할 남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스스로의 성취를 위해 생존하고 경쟁한다. 이 프로그램은 세이렌이 갖는 ‘위험한 여성’의 이미지를 살리면서도, 남성에게 숭배 받을 이유도 필요도 없는 여성들 사이의 대결과 우정이라는 취지를 잘 부각시켰다.참가자들이 고통을 무릅쓰며 승리를 갈구하는 모습에는 특별한 감동이 있다. ‘무한걸스’, ‘언니들의 슬램덩크’처럼 여성이 활약하는 예능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이처럼 ‘강인한 여성의 몸’, 그리고 ‘여성들 사이의 신체적 대결’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은 없었다. 기존 여성 예능이 여성 멤버들의 화합을 강조했다면, ‘사이렌’은 화합과 경쟁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함께 보여준다. 팀원 간의 협력과 단합이 매력의 한 축이라면, 다른 팀을 상대할 때 드러나는 경쟁의식과 승부욕은 또 다른 측면의 매력이다. 승리에 대한 참가자들의 집념은 ‘남성 못지 않다’라는 표현이 실례가 될 정도로 강렬하다.연출자인 이은경PD는 ‘우정’, ‘무력’, ‘승리’라는 스포츠 만화의 매력을 여성이 활약하는 프로그램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기획의도를 밝힌 바 있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경기가 끝나면 친구가 된다’는 스포츠 만화의 가치관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대학 진학, 취업과 창업, 경제적 우월감 획득을 위해 무한히 경쟁해야 하는 우리의 삶은 경기가 끝나지 않는 스포츠 만화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는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상대와 우정을 쌓을 여유가 필요하다. 후회 없이 경쟁하고 뒤끝 없이 서로를 인정한 ‘사이렌’의 참가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여성은 약하지 않다. 진짜 약한 것은 여성에게 ‘여성다움’을 요구하고, 거기 기대지 않으면 존속되지 못하는 사회구조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을 세이렌으로 낙인찍으며 그들의 가능성과 능력을 억압해 왔는가. ‘사이렌’이 보여준 강하고 멋진 여성들의 모습을 스크린 밖, 일상 세계에서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23-06-12

K-양심을 보면서

김규인수필가 러시아 관광객의 300만 원이 든 지갑을 시민과 러시아어 특채 경찰관에 의하여, 500만 원이 든 중국 관광객의 샤넬 가방이 시민의 도움으로 주인을 되찾았다. 어쩌면 한류 문화의 진앙인 대한민국을 보고자 찾았다가 어려움을 겪을 뻔했는데, 그들의 여행에 한국인들의 마음을 함께 담을 수 있어서 기쁘다.외국인 여행객이 두고 내린 최신 맥북, 아이패드와 돈이 든 가방이 지하철 안에서 18시간을 실려 다니다가 지하철역에 보관됐다는 소식도 인터넷에 떠돈다. SNS를 통해 더 많은 한국인의 양심과 정직함을 경험한 외국인들의 이야기가 K-양심으로 세계로 퍼져나간다.K-양심은 외국인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여러 날을 집 앞에 둔 택배물이 안전하고 1천만 원의 돈을 찾아준 택시 기사 이야기를 본다. 택시에 두고 내린 2억이 넘는 아파트 판매 대금이 든 가방을 찾아준 시민의 미담은 우리 사회가 믿을 만하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양심은 개인에 따라 시대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 몇 년간 우리 사회를 관통한 공정 탓인지 아니면 어디를 가나 만나는 CCTV의 학습효과 탓인지 일상생활에 정착한 느낌이다.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를 들으면 입꼬리가 올라가다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사회 지도층이나 공직자들의 성추행, 음주운전, 금품수수는 지금 한창 떠오르는 이슈다. 단기로 입국하는 외국인 여행객들이 우리 사회의 일부만 보다가 전체를 보아도 K-양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머무르는 외국인 유학생이나 노동자들, 이민자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정직하지 못하고 앞과 뒤가 다르거나, 도덕으로 무장한 진보라 말하면서 양심을 저버린 일부 정치인들, 끝이 없는 지도층의 성추행, 음주운전은 K-양심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다. 양심을 지키는 사회 지도층의 모습을 보기는 어려운 것인지. 일그러진 모습 뒤에는 자기 합리화를 하기 바쁜 그들이 ‘K-양심’을 듣기나 한 것인지.‘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헌법은 말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양심이 중요하다는 대한민국의 기본 생각이다. 그러하기에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양심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공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지금 SNS에 떠도는 K-양심과 공직사회의 사익을 추구하는 비양심은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그들이 비난받는 것도 양심 사회로 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더구나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이 인정하는 K-양심의 나라가 아닌가. 공직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나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는 점점 양심 국가로 가고 있지 않은가. 일부 사익에 빠진 사람들이 있지만.살기 좋은 나라의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항상 순위가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뒤처진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 총합의 결과이지만 외국인들이 찾고 싶은 나라, 찾아와 기분 좋은 일들이 많은 나라가 되면 우리 삶도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누구나 오고 싶고 살고 싶은 K-양심의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다.

2023-06-12

문경 도자기, 흙으로 빚어온 시간

오래전부터 도자기는 사랑받아왔다. 도자기에는 역사·예술·삶이 어우러져 녹아있다.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과 맑고 투명한 빛깔과 그 위를 수놓은 그림과 이를 완성 시키려는 전문가의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나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한국의 도자기는 예술품으로서 그 가치가 일품으로 인정받는다.그러나 현재 도자 제작 기술은 옛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부족하기만 하다.일제강점기에 왜사기가 대량 생산되고 개인 공방이 금지되면서 백자 전승의 맥이 많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1960년 중반 일본과 교류하면서 문경에 남아있던 도자 제작 기술이 현재까지 잊히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태토와 소성용 목재를 구하기 쉬운 문경은 예로부터 관요가 아님에도 도자기로 생업을 잇는 경우가 많았다. 16~19세기 문경읍의 옛 가마터에서는 주로 서민들이 애용하던 백자나 청화백자 식기류가 발굴되었다.한때는 ‘막사발’로 불리던 그 도자기를 사려고 밤새 줄을 서는 등짐장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백색도가 낮고 두꺼워서 관요에서 생산된 도자기에 비할 수는 없지만 서민들의 식탁에서는 유용하게 애용되었다.그러나 시대가 달라지고 소비자의 취향이 변하면서 도자기의 인기는 급속도로 하락하게 된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로는 도자기를 대체할 편리한 그릇이 인기를 끌면서 문경의 가마터에서도 식기류보다 요강과 화분·칠기를 주로 생산한다. 수요가 없는 만큼 도자 제작을 생업으로 삼기에 힘들었다.가마터를 떠나 탄광으로 간 사람들도 많았는데, 1960년대 이후 문경에서 성황을 이루던 석탄산업의 역사는 ‘문경석탄박물관’에 가면 그 흔적을 확인해 볼 수 있다.거의 명맥만을 이어가던 문경 도자 제작 기술은 1960년대 중반 일본의 애호가들과 미술상들이 찾아오면서 전환기를 맞는다. 다기의 수요가 높았던 일본에서는 고려다완(찻사발)을 최고라 여겼고, 최대한 똑같은 찻사발을 갖고 싶어 했다. 찻사발은 식기용 대접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대접보다 굽이 높고 좁아 말차가루를 녹진하게 풀어낼 때 사용하기에 적당하다.일본 다도에서는 자주 활용되는 편이나 찻잎을 우려 마시는 한국 다도에서는 생소한 물품이기도 하다. ‘막사발’이라 불렸던 문경 도자기는 찻사발을 만들면서 예술품으로 인정받는다.찻사발의 다채로운 색조는 예술적 가치로 여겨졌고, 백색만을 추구하던 시선도 점점 사라져 갔다.현재 문경은 전통적인 백자가 아니라 일본에 수출한 ‘찻사발’을 문경 도자기의 대표 아이콘으로 삼고 있다. 그만큼 문경 도자기 역사에 있어서 일본과의 교류는 중요했고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1990년대에 들어 전통 기술을 보존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해진다. 이를 바탕으로 1996년 김정옥이 최초로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그의 가문은 7대째 도자 제작 기술을 이어왔고, 간결하고 절제된 포도 넝쿨 문양을 고유의 문양으로 삼고 있었다. 그를 기점으로 4명의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를 발굴하고, 1999년 ‘문경찻사발축제’를 열어 널리 문경 도자기 문화를 알린다.매년 문경새재에서 축제가 열리는데, 명장들의 뛰어난 작품뿐만 아니라 신예들의 창조적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모든 작품은 전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망댕이 가마’에서 제작된 것만 출품할 수 있다고 한다.망댕이 가마는 문경 도자 제작 문화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가마로, 약 20~25cm 정도 높이의 원통 모양 흙덩어리(망댕이)를 돔 형태로 쌓아 올려 만든다. 관음리에 남아있는 옛 가마터에서 최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망댕이 가마는 만드는 시간이 짧고 저렴하며, 내구성이 높고, 단열효과가 좋아서 적은 장작으로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다.문경도자기협동조합에서는 망댕이 가마로 도자 제작하려는 노력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잊혀져 가는 전통 기술의 보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노력이기도 하다.그러나 망댕이 가마는 현대의 전기 가마나 가스 가마처럼 아주 정확한 온도의 불꽃을 유지하기 어려워 일정한 품질의 도자 제작이 힘든 것도 사실이다.전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도자 제작의 다양한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흙으로 빚어온 시간’을 슬기롭게 이어가는 방법일 것이다.문경의 도자기는 서민과 함께 성장하고, 쇠퇴하며, 변화하였고, 현재는 예술품이 되었다. 시대적 취향이나 기호와 같은 문화가 녹아있으며, 오랫동안 이어온 시간이 깃들어 있으며, 대대로 이어온 도공의 삶도 숨겨져 있다.도자기를 빚어온 시간 안에는 역사와 예술과 삶이 녹아있다. 다도와 차에 관심이 있다면 문경에 들러, 푸르른 말차가루를 녹진하게 풀어낸 찻사발에 담긴 시간의 온기를 음미하는 것도 좋겠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06-12

작은 섬에서 펼쳐진 관계의 비유와 상징

아일랜드의 가상의 섬 이니셰린에서 막역했던 두 사람이 갈등을 빚는다. 절교를 선언한 사람과 느닷없이 절교를 당한 사람. 농담이거나, 알지 못하는 말실수이거나, 기분 탓이려니 이유를 찾아 보지만 알 수 없고 그 사실이 와닿지 않는다. 이제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이 펼쳐진다. 추측이 난무하고 어정쩡한 주변의 조언이 이어지지만 관계는 더욱 더 악화되어 간다.갈등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대수롭지 않은 이유는 첨예한 가치관의 세계로 퍼져나간다. “이유는 없어. 그냥 자네가 싫어진 것뿐이야”라고 시작했던 절교. 남은 삶을 사색하고, 작곡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절교를 당한 사람에게 와닿지 않는다. 지루한 이야기들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절교를 당한 상대는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왔던 사이에 그러한 결심이 무슨 의미를 지니며 왜 그러해야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절교를 당한 쪽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문제없었던 ‘현재’를 이야기하고, 절교를 선언한 쪽은 지금까지 변화없었던 삶이 싫다며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 ‘미래’를 이야기 한다.‘현재와 미래’라는 갈등에 “다정함은 역사적으로 기억되지 않지만 예술(음악)은 오랫동안 역사에 기록된다”는 ‘다정함과 예술’이라는 전선이 펼쳐진다. 아일랜드 본토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고 아름다운 섬 이니셰린에서 발생한 두 사람의 갈등은 일상을 흔들고 물러설 수 없는 각오와 결기로 치닫는다.영화 속 이 사건이 시작된 것은 1923년 4월 1일이다. 80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여러 차례에 걸친 독립운동을 시도했으나 번번히 좌절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16년 4월 부활절을 맞아 봉기한 아일랜드의 독립전쟁은 1921년까지 이어졌고, 그해 12월 영국 런던에서 ‘대영 제국의 지배하에서 아일랜드의 자치’를 인정하는 휴전조약이 체결되게 된다.이 조약으로 아일랜드는 남북으로 갈리게 되고,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굳어지게 된다. 영국이라는 공통된 적과 싸웠던 아일랜드는 조약을 찬성하는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려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된다. 이것이 1922년 6월부터 시작해 1923년 5월까지 이어진 ‘아일랜드 내전’이다.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아일랜드 내전이 끝나갈 무렵으로 본토와 가까웠던 이니셰린에서는 간간히 전쟁의 포성이 들려온다. ‘다정함’을 무기로 친했던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예술’과 ‘미래(남은 여생)’의 방향성을 달리하면서 본토에서 일어나는 내전과 이니셰린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간의 가치관의 전쟁이 점점 수위를 더해간다.우리는 절교의 이유가 궁금하지만 영화는 절교의 이유를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서운함과 분노, 거부와 결기가 팽팽하게 맞부딪치며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자와 그를 쫓는 자와의 일상이 강도를 더해간다. ‘다정함’과 ‘예술’이 각자의 신념이 되고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전쟁의 양태와 닮았으며, 역사적 사실이며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아일랜드 내전의 은유가 된다.아일랜드 독립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졌던 친구가 이해를 달리하면서 서로를 적대시하며 한쪽을 파멸로 몰고가는 내전에 이르러서는 서로에게 소중한 것들을 하나둘씩 잃어 갔듯이, 절교를 선언한 두 사람 사이에 남은 것은 소중한 것들을 잃고 다시는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에 이른다.신념은 상대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해와 양보를 구하지 않으며 결기로 대처한다. 결기는 비극을 부르고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같은 신탁이 내려진다. 모호한 신탁은 갈등이 강도를 더해가면서 구체화되고, 역사적 은유와 흥미로운 상징들이 작고 아름다운 섬에 가득 펼쳐진다. 1923년 4월 1일. 이 모든 것들이 만우절 농담처럼 시작된다./(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3-06-12

혼돈의 시대 지식인의 책무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오웰(G. Orwell)은 1949년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출현을 우려했지만, 우리는 지금 ‘탈진실(post-truth)사회’를 걱정하고 있다. 가짜뉴스가 판치고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혼탁한 세상이다. 노회(老獪)한 권력은 진실의 가면을 쓰고 거짓을 일삼고, 진리와 가치의 객관성을 포기한 정치적 광신자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나라의 사정이 이러한데 ‘진리의 최후보루인 지식인’은 어디에 있는가? 사회의 고민과 대안을 담은 지적 담론을 주도해야 할 지식인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물론 민주화시대의 ‘지사적 지식인’과 지식정보시대의 ‘전문적 지식인’은 그 역할과 책임이 다르다. 그래서 사르트르(J. P. Chartres)는 ‘지식인’과 ‘지식전문가’를 구별하고, 후자는 전자를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했다. 지식인은 지식전문가에 더해 “사회적 모순을 직시하고 그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정의와 진리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촘스키(N. Chomsky)의 지적처럼 “지식인은 진실을 밝히고 대중이 늘 깨어있도록 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생명인 ‘합리적 비판정신’은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며, 공정성·균형감·자기성찰은 지식인의 필요조건이다. 지식인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특정 이념과 진영에 구속되지 않는 ‘경계인(境界人)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아가 지식인은 반드시 ‘권력과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권력과 야합한 지식인들, 즉 어용교수·어용언론인·어용법조인 등은 권력의 주구(走狗)가 된 위선자들이다.지식인이 사익(私益)을 위해 정의와 진리를 배반하면 위선자가 된다. 그 위선과 배반은 인격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뱅다(J. Benda)는 “지식인은 이성적 사유를 통해 영원불변의 진리와 이상을 추구하는 성직자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이익에 따라 합리적 이성을 포기하고 현실과 야합하는 배신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지식인의 배반은 탈진실사회의 주범이다. 권력과 야합하여 ‘정치적 기생충’으로 전락하고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지식인들의 위선과 배반은 비판받아 마땅하다.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지식인들의 양심과 인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의 부패는 곧 지식인의 부패를 의미하며, 지식인이 병든 나라는 망국의 길을 가게 된다.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하여 매국행위를 한 이완용, 망국의 소식을 접하고 “난세에 지식인 노릇하기 정말로 어렵구나”라는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한 황현(黃玹)은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다. 오직 양심과 인격의 차이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게 했을 뿐이다.우리사회의 혼돈은 ‘지식전문가’는 많지만 ‘참 지식인’이 적기 때문이다.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직시하고 불의와 거짓에 맞서는 것은 지식인의 책무다. 지금 우리사회는 지식인들에게 엄중히 묻고 있다. 돈과 권력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정의와 진리의 편에 설 것인지를.

2023-06-12

바가지 상술

홍석봉 대구지사장 ‘바가지 쓰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요금이나 물건 값을 치르는 데 있어서 억울하게 손해를 보다’는 뜻과 ‘어떤 일에 대해 억울하게 책임을 지게 되다’는 뜻이다.‘바가지 쓰다’는 말은 개화기 시절, 일본의 화투와 함께 유행한 도박 중 하나인 중국의 ‘십인계’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노름은 패를 돌리는 사람이 1부터 10까지 숫자가 적힌 바가지를 이리저리 돌리다 엎어놓은 후 숫자를 호명하면, 도박꾼들은 숫자에 해당된다고 믿는 바가지에 돈을 거는 것이다. 도박꾼들은 대개 돈을 잃었다. 당시 노름에서 돈이 털린 것을 ‘바가지 썼다’고 했다. 이후 ‘터무니없이 손해 보는 경우’를 빗댄 말이 됐다. ‘바가지요금’도 여기서 비롯됐다.최근 경북 영양군 산나물축제장에서 옛날과자 1봉지를 7만 원이라고 한 뒤 3봉지를 14만 원에 파는 장면이 TV에 방영됐다. 방송 후 비난이 쏟아졌다. 급기야 영양군이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했다.경북 안동과 경주 축제에서도 바가지요금 논란이 이는 등 지역축제와 전통시장의 바가지 상술로 지자체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축제음식의 바가지 원인은 ‘자릿값’이다. 짧은 기간 본전을 뽑으려다보니 상인들이 엉터리로 비싼 음식을 제공, 말썽을 빚는 것이다. ‘장터’ 운영권을 입찰로 외부 업체에 맡기면서 벌어지는 일이다.축제 장터의 음식 차별화와 함께 지자체의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 관광은 굴뚝 없는 산업으로 그 부가가치가 높다. 지자체마다 축제 홍보에 안간힘을 쓴다. 잔칫집에 재를 뿌려서야 되겠는가. 모처럼 떠난 여행에서 상처받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야 한다. 외국에도 없진 않지만 바가지 악덕 상혼은 경제대국 10위 국격에도 맞지 않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6-12

적의 적은 무조건 동지가 아니다

김진국 고문 자유가 서로 충돌할 때가 있다.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를 수정헌법 제1조에 천명해놓은 미국도 이런 경우에는 일정한 범위에서 자유를 제한한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 있는 때다.전형적인 예로 ‘극장의 공포’를 이야기한다. 깜깜한 극장 안에서 누군가 ‘불이야’ 하고 외친다면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고, 아수라장이 된다. 심각한 재난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거짓으로 ‘불이야’를 외친 행동을 장난으로 넘길 수 있을까. 언론의 자유가 기본권이란 이유로 용납해야 할까. 1차대전 당시 전쟁과 징병을 반대하는 문서 배포가 문제가 됐다. 언론과 출판이 국가 기밀을 누설하거나 타인의 명예 또는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려고 하면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대법원의 판례다.복잡한 법리 논쟁은 전문가에게 맡겨놓자. 상식적으로 말하면 공동체와 이웃을 위험하게 만드는 행동은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살고 있다. 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동의하는 조건으로 우리는 보호받고 있다. 우리 손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구성한 법질서이고, 정부다.기존의 질서를 무조건 고수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잘못된 부분은 당연히 문제를 제기하고, 고쳐야 한다. 일을 잘하지 못하는 정부는 교체해야 한다. 그렇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더구나 우리 외부에 있는 세력, 우리 공동체를 집어삼키려는 집단을 위해 활동하는 것은 이적행위다. 낙랑공주가 같은 민족이라도 자명고를 찢도록 묵인할 수 없다.민주노총과 소속 산별노조 간부 4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구속기소됐다.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그의 지령에 따라 노조 활동을 빙자해 간첩으로 활약한 혐의다. 공소장을 보면 어마어마하다. 주요 국가기관의 송전선망을 차단할 수 있는 자료, 경기도 화성·평택 2함대 사령부와 평택 화력발전소·LNG 저장탱크 배치도 등 비밀 자료를 수집하라는 지령도 받았다. 민주노총 내부 통신망 ID 및 비밀번호 등도 북한에 보고했다고 한다.이런 간첩 사건은 이전에도 보아왔다. 그러나 이번에 특히 걱정인 것은 국내 정치와 시민단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민주노총을 북한이 의도대로 움직이려 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민주노총의 핵심 간부인 이들은 북한 지령에 따라 반정부 투쟁, 반미·반일 감정 등을 조장하며 민주노총을 정치투쟁으로 치닫게 했다고 적시했다.더구나 이들이 북한에 보냈다는 충성 맹세문은 기가 막힌다. 북한 선전 자료에서나 보던 유치한 표현이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 받들어 대를 이어 충성”하겠다니. 진실은 재판을 통해 가려지겠지만, 어떻게 이런 사람이 민주노총의 핵심 간부가 될 수 있는지 불안하다.그런데도 민주노총은 아무런 공식 입장 발표가 없다. ‘개인적 일탈’로 정리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지만, 그것도 개인 의견인지, 지도부의 의견인지, 아리송하다. 법원의 영장을 받아 압수 수색할 때 완강하게 저항한 것을 봐도, 이들을 민주노총과 떼어서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때 민주노총은 자신들에 대한 탄압, 공안정국 조성이라고 주장했다.간첩 몇 사람 적발한 것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민주노총이란 거대한 조직에 북한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다는 부분이다. 민주노총과 관계없는 개인적 일탈이라도, 간첩 혐의자가 이 조직을 이용하고자 침투해 핵심 간부로 활동했다면, 그것만으로도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일부 정치인’의 일탈에 대해 자신은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돌아보면 알 일이다.민주노총이 스스로 이들의 혐의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행위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진영으로 갈라지면서 ‘적의 적은 무조건 동지’라는 잘못된 생각이 퍼져 있다. 그렇더라도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세력과는 함께 하지 않는다는 선은 지켜야 한다. 그 정도의 자정 능력은 보여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6-11

포스코 수소환원제철소와 공리주의

유성찬(협동조합) 지속가능사회연구소 소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포항시민연대 공동대표 6월은 보훈의 달이다. 민족의 독립과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된 선열들을 추모하고 배우며, 희생을 제대로 보은해야 한다는 뜻이다. 포항고 재학 중 6·25한국전쟁에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상이용사로 돌아온 외숙부님이 계셨기에 필자에게는 보훈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느끼고 있다.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 있는 마음가짐과 그 혼이 이 나라를 지탱해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가족과 이웃이 확장되는 공동체라는 말이 그렇게 인간에게는 중요하다. 또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그런 생활양식을 가진 친구들이나 이웃들, 직장동료들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높이 사게 된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관점에서 사물과 업무를 파악하고 일을 하는 사람에게 존경심을 갖게 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이다.포스코가 탄소중립사회를 실현하고자 수소환원제철소를 만들기 위해 부지 확보에 나섰다.포스코는 포항시 송정동과 송내동, 동촌동, 제철동에 걸쳐있는 공유수면 일원에 약 40만평의 용지를 조성해 수소환원제철소를 건립하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포스코의 계획은 시작부터가 순조롭지 않다지난 1일 남구 호동 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1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주민설명회를 열기로 하였으나 포스코의 자료제공이 미흡하다고 항의하는 주민들로 인해 설명회는 정상적으로 시작도 못하고 파행을 겪었다.이날 설명회는 수소환원제철소 용지조성사업에 대한 산업단지 계획변경과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재해영향평가 등에 대한 주민 등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포스코홀딩스는 그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본사를 서울에서 포항으로 변경,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수소환원제철소를 건립하기에는 포항제철소 내 부지가 협소할 뿐만 아니라 시민 정서 극복이 쉽잖다며 부지가 그런대로 2배인 광양제철소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수소문하는 등 부산을 떨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포스코는 포항에 수소환원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수소에너지산업과 관련하여서는 석유화학단지가 있는 울산지역과 무관할 수 없다. 울산은 국가산업지도에서 수소에너지특구다. ‘수소’라는 가스를 만들기에 위해서는 석유화학공정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NH3), 메탄(CH4) 등에서 수소(H2)를 분리해내어야 한다.탄소제로사회, 탄소중립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포스코가 현재의 코크스제철법에서 수소환원제철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은 환경분야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수소환원제철법은 석탄이 소비되지 않는 방식으로 철강을 생산하는 친환경적인 방식이다. 또 그래야만 포스코의 철강제품을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다. 2026년부터는 이산화탄소(C02)가 대량발생하는 철강제품은 탄소국경세가 붙어서 수출할 수 없게 된다.세계에서 으뜸가는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법을 현실에서 성공만 한다면 대한민국은 지구상의 지도적 국가로 우뚝선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은 그렇게도 중요하다. 이제까지 코크스 제철소가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도록 했다면, 앞으로는 수소환원제철소가 그 선진국을 밀고 갈 것이다.수소환원제철소 부지를 확보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 이미 포항지역공동체가 소란스럽다. 포스코와 포항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포스코가 뿜어 낼 분진과 미세먼지, 환경오염물질 등으로 고통받을 피해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로 존재한다. 희생에는 보은이 있어야 하듯이 피해에는 합리적이고도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이는 지역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처사이다.주민설명회에서 보다시피 환경시민단체들과 지역주민들은 포스코가 환경영향평가업무에 있어서 불확실성을 보여줬다고 수소환원제철소 부지확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필자는 여기서 공리주의를 떠올린다. 공리주의는 19세기중반 영국에서 나타난 사회사상이지만, 현대에서 공리주의는 공직사회에서부터 시민사회에까지 업무와 목표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도덕철학이 되었다고 본다.인간은 살아생전에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그 행복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누리게 하는 것이 법과 제도이다. 또 그 법과 제도는 소수자를 보호해야 한다. 특별히 재난과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모토는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진리에 가깝다.필자는 탄소중립사회를 선도하고자 하는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을 찬동하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도덕철학이 포항지역공동체와 시민사회에서 우리의 일상생활, 경제생활에 근본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물론 공동체를 위해 희생된 피해자들을 합리적이고도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함은 필수이다.

2023-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