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울릉기자 김두한의 시선) 6명 식사비를 1인 분으로 둔갑시켜 울릉도를 멍들게 한 일부 미디어

경북부 김두한 기자 울릉도의 한 식당에서 시킨 7만 원어치 백반 정식을 두고 “이게 다냐”고 항의하자, 식당주인이 “여긴 울릉도”라며 대답했다는 일부 보도가 울릉지역 바가지요금으로 비쳐져 관광지 이미지를 크게 흐리고 있다. 심지어 어느 매체는 제목을 “기가 막히네! 평생 갈일 무(無)” 를 달아 네티즌들에게 당연히 1인분 7만 원을 착각하게 했다.  관광시즌을 앞두고 있는 울릉에 치명상을 입힌 악의적 횡포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논란을 촉발시킨 첫 영상에는 울릉군을 여행하며 식당에 간 에피소드가 담겼다고 했는데도 불구,  일부 네티즌들은 울릉도는 바가지요금으로 못 갈 곳으로 낙인찍었다. 또 실제 내용은 알려진 것과는 천차만별이다.  몇달 전 6명이 모 식당에 들어가 정식을 시켰고 나온 밑반찬은 어묵, 김치, 메추리알, 멸치볶음, 미역무침, 나물, 버섯볶음, 오징어 내장 등 다양했다.  가격도 인당 1만 2000원이라고 메뉴표에 분명 적혀 있었다.  식당 주인은 6명 식사 값으로 총 7만 2000원을 받았다.   이게 바가지 요금으로 둔갑됐으니 울릉군민들이나 식당 관계자들은 속이 뒤집혀질 일이다. 특히 수년전 부터 울릉도에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 오징어내장을 구하기도 어려운 마당이다.  선술집에서 오징어 내장 합 접시에 2~3만원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감사해야 할 판임에도 일부 기사의 제목은 “이게 7만 원” 항의에 식당주인은 “여기는 울릉도야.” 고 적시했다.  다행히 같은 영상에 대구에서 관광을 왔다는 A씨(50)는 댓글을 통해  “가족들과 관광 오기 전 바가지 섬이라는 말들이 많아 걱정했는데 막상 들어와서 보니 육지보다 렌터카 가격이 오히려 저렴해 놀랐고, 소고기도 육지보다 싸고 맛있어서 매우 좋았다”고 한 평도 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이런 것들은 무시하고 자극적인 것만,  부풀려 공격해 대 울릉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돌을 던지는 사람을 장난삼아 던지지만, 개구리는 목숨이 달렸다는 말이 있다. 간단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울릉군은 몇 년 전에도 바가지요금과 1인분은 판매하지 않는다는 유튜브 방송 때문에 곤욕을 치른바 있다.  요즘 울릉군은 물가 관리 정책 등으로 지역 물가 안정에 힘쓰고, 관광지, 식당, 숙박, 렌터카 등 관계자들과 주민 모두에게  바가지요금에 대해 관광객들의 원성을 없애고자 노력하고 있다. 유튜버는 왜 하필이면 6개월이 지난 울릉도 관광시즌에 이 같은 내용을  올렸을까, 의문이 든다. 잘못은 당연히 지적해야하지만 허구를 구독자 널리기 위한 얄팍한 수단으로 사용하면 더욱 안 될터다. 울릉군의 대처도 한심하다. 유튜버에게만 항의할 것이 아니다. 보도 자료를 내고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물가는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싸면 왜 비싼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울릉도가 전국 유명관광지라고 손해를 보면서 장사를 할 수 없는 않는가. 울릉군은 물가를 잡기 위해 지원도 하고 안간힘을 쓰지만, 사건이 발생하면 대처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 관광업 종사자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울릉도는 관광을 갈 곳이 못 된다“고 한다면, 그래도 참야햐 하는가.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5-03-12

尹 석방후 더 심각해지는 ‘이념전쟁’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석방된 후 온 나라가 두 동강 난듯하다. 윤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가 임박하면서 여야 정치권이 노골적으로 보수·진보 ‘진지전(陣地戰)’을 진두지휘하는 모양새다. 아마 두 진영 모두 세력을 최대한 결집시켜 헌법재판소를 압박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니 정치권이 탄핵 선고에 대한 불복을 부추기고 있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여야의 진지전은 지난 10일 수사 기관에 대한 고발전으로 비화했다. 여당은 윤 대통령 구속 과정에서, 야당은 석방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각각 공수처장과 검찰총장을 고발했다. 앞으로 탄핵 찬반집회를 등에 업은 여야의 정쟁 수위는 매일 점입가경으로 치달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관저정치’도 진지전을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실이 말로는 “헌법재판소 선고를 앞두고 대통령이 외부 활동을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지만, 윤 대통령이 강경 보수층을 자극하는 메시지를 내놓거나, 탄핵 반대 집회에 직접 참석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 일이 생기면 가뜩이나 위험 수위로 치닫는 진지전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될 것이다. 현재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도가 오차 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것도 진지전이 격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5∼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천507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42.7%, 민주당 41.0%로 나타났다. 차기 대선 집권세력 선호도 조사에서도 ‘야권에 의한 정권교체’ 의견(50.4%)과 ‘집권 여당의 정권 연장’ 의견(44.0%)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대구·경북(정권연장 55.4%, 정권교체 36.4%)의 경우 정권 연장론이 19%포인트나 앞섰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제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에 따라 진지전이 폭동수준으로 격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지금 분위기로는 보수·진보 어느 한 쪽도 헌재의 심판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반발할 게 뻔하다. 만약 탄핵이 인용돼 조기대선 정국으로 들어가게 되면 진영 대결은 걷잡을 수 없는 단계까지 갈 것이다. 지난 6일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표한 ‘2024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갈등 유형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이념 갈등(4점 만점에 3.1점)이었다. 이 조사는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전에 이뤄졌다. 같은 조사를 지금 한다면 이념 갈등 수치는 훨씬 더 올라갈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지만, 국민 대부분이 걱정할 정도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이 이 상태까지 이른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지금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지지세력에 편승해 내 편을 집결시키고 세를 불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이런 극단적인 당리당략이 완충장치 없이 가속하면 윤 대통령 탄핵심판 이후의 한국사회 통합은 요원해질 수 있다. 국가미래를 참담하게 하는 정치권의 뼈저린 각성이 요구된다.

2025-03-11

결혼 필수 아니다 60%

우정구 논설위원 “자신에게 실망하지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가수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 파티’의 일부 내용이다. 아모르 파티란 라틴어로 운명에 대한 사랑이란 뜻이다. 고통과 상처, 좋고 나쁜 것을 포함하여 내 인생에 발생하는 모든 것은 운명이며, 이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하라는 매우 심오하고 철학적인 뜻이 담긴 용어다. 독일의 허무주의 철학자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말로도 설명되기도 한다. 김연자가 부른 ‘아모르 파티’는 또 다른 구절에서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대로 가면 돼” 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구절에 가면 세상이 정말로 이렇게 바뀌어가고 있나 하는 느낌이 든다. 노래 가사의 영향을 받았을까 아니면 우리 시대의 가치관이 바뀌어가서일까. 최근 인력자원관리 회사인 리쿠르트가 젊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결혼관에 대한 조사를 해보았더니 응답자의 60%가 “결혼은 필수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남녀별로 보면 남성은 49.7%가 필수가 아니라고 답한 반면 여성은 75.3%가 필수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여성 직장인들 사이에 결혼을 필수로 여기지 않는 인식이 넓게 퍼져가는 것임을 직감할 수 있다. 또 기업 규모에 따라서도 약간의 차이가 보였다. 대기업 근무자는 56.2%가 필수가 아니라고 답한 반면 중소기업 근무자는 그보다 높은 61.3%가 필수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급변하는 사회와 여성들의 사회진출 등 과거와 달리 결혼관이 바뀔 요인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0명 중 6명이 결혼이 필수 아니라고 한다면 결혼관의 심각한 변화 아닌가. 저출산 국가에서 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11

빈 둥지

겨우내 텅 빈 둥지를 품고 있던 나뭇가지들이 다시 연둣빛 잎을 피워 올리는 3월이다. 올해는 무척 바쁜 겨울의 끝자락을 보냈다. 내 둥지를 비워내기 위해 인생의 한 챕터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분주한 봄을 맞는다. 아이들과 함께 나도 거실에 앉아 짐을 쌌다. 한 가득 꺼내놓은 아이들의 흔적들이 어느새 집 안 구석구석에서 옅어졌다. 한 달 전 잘 다니던 직장을 부모와 동의 한 마디 없이 사직서를 내고 온 아들이 이직의 기회를 얻어 다시 타지로 가게 되었고,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이 된 딸도 독립을 하여 같은 날 남매가 둥지를 떠났다. 평생 맞벌이를 하며 아이들의 일상을 챙기며 바삐 움직였던 나는, 오늘 아침 처음으로 느긋하게 커피를 내렸다. 식탁에 마주 앉아 친구들 이야기며 진로 이야기며 깔깔대며 나누던 자리도, 현관문을 다다다다 쫓아가던 발소리도 사라졌는데 습관처럼 그 쪽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대화에 맞장구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래전,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이 날을 꿈꾸었던 것 같다. 알람소리에 잠을 깨지 않아도 되고 아침마다 서둘러 밥상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날, 숙제를 챙기고 학원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느라 허둥대지 않아도 되는 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며 언젠가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조용하고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막상 그 시간이 오고 보니 익숙했던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자리는 생각보다 깊은 고요로 가득 찼다. 텅 빈 방엔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을 것 같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시간 맞춰 들릴 것만 같다. 매일매일 움직이며 아이들을 챙기던 그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묶어두고 있었던 줄 몰랐다. 자유로울 줄 알았던 이 시간이 어쩐지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침묵 속에서 나는 새로운 나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둥지가 빈다는 것은 새들이 이제 자신의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임을. 그토록 바라고 응원했던 순간이 아닌가. 어미새가 언제까지나 둥지에 머물며 새끼를 품을 수는 없다. 충분히 그 시간을 준비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아이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미흡한 어미새를 본다. 날아오를 준비를 시킨다고 했지만 정작 떠나보낼 준비는 내게 부족했나 보다. 아이들은 새로운 세상 속에서 저마다의 날개짓을 하고 있을 텐데 나는 아직도 둥지 근처를 맴돌고 있는 듯 하다. 시간이 지나면 어미새도 알려나. 둥지는 언제까지나 새를 붙잡아두는 곳이 아니라 떠날 수 있도록 힘을 길러 주는 곳이라는 걸. 아이들이 각자의 하늘을 날고 다시 돌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나는 더이상 외로운 어미새가 아니라 따뜻한 미소로 맞이할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어 있겠지. 김경아 작가 아이들에게 쏟아부었던 시간과 에너지를 이제 나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오랫동안 미뤄뒀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젊은 시절 묵혀 두었던 외국어도 배우며 나를 설레게 하는 일들을 찾아볼 것이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둥지를 만들 것이고 언젠가는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빈 둥지는 텅 비어 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채워질 순간을 기다리며 그 사이 나 자신을 채우는 시간이다. 이제는 나도 나의 날개짓을 연습하려 한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미뤄 두었던 일들, 마음 한구석에만 담아두었던 소망들을 하나씩 펼쳐본 것이다. 천천히, 꾸준히, 아이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듯 나도 내 몫을 살아가야 한다. 빈 둥지는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또 다른 쉼표일 뿐이다. 아이들의 소식을 기다리며 하루를 기다리는 대신 나를 채우며 하루를 살아가기로 한다. 그렇게 나도, 아이들도 각자의 하늘을 더 넓게 날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작가

2025-03-11

‘악마의 채찍’ 아틸라 ②유럽의 지도를 바꾼 영웅의 최후

비잔티움제국 테오도시우스 2세는 아틸라가 강요했던 상거래 기준을 지키지 않았고, 훈에서 도망친 자들을 받아들이면서 아틸라를 또 한 번 자극했다. 아틸라로선 용서할 수 없었다. 447년, 제2차 발칸원정을 일으킨 아틸라는 군사를 둘로 나누어 비잔틴을 공격해 들어갔다. 소피아와 마르키아노 폴리스 등 성채를 정복하고, 도시를 약탈하면서 진군을 이어갔다. 그리스 중북부의 테살로니키를 지나 이스탄불 외곽에 군사를 주둔해 비잔티움을 포위했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 그때서야 자신의 성급함을 깨달았다. 급하게 정무관을 아틸라에게 보내 협상하게 했다. 아틸라는 이들의 휴전 제의를 받아들인다. 대신 ‘아나톨리아 협정’을 보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다. ‘비잔티움은 전쟁 배상금으로 금 6000리브레(약 2700kg)를 물리는 것은 물론, 매년 연공을 3배 인상하여 2100리브레(약 945kg)로 올려 바칠 것.’ 테오도시우스 2세는 경악했다. 이대로라면 비잔티움제국의 허리는 휘어질 대로 휘어져 신권마저 날아갈 판이었다. 테오도시우스는 아틸라의 암살을 계획한다. 그러나 이도 내부 배신자에 의해 실패로 끝나자 치욕적인 결과만 가져왔다. 해결책이라곤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비는 수밖에 없었다. 아틸라가 이처럼 관대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비잔티움을 둘러싼 견고한 테오도시우스 성벽 난공불락의 요새가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제국을 장악하는 황제와 신민들과의 탄탄한 결속력, 목숨을 불사할 비잔티움 군과 시민의 항전의지를 읽었다. 자신들의 군대도 얼마간 피해를 보아야 할 것은 자명했다. 아틸라는 비잔티움을 넘어 서로마로 향했다. 내분과 이민족의 침략으로 허약한 로마였다고는 하지만, 한 때 유럽을 호령했던 도시였다. 서로마는 아틸라에게 조공을 바치면서도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총사령관 아에티우스가 있었고, 주변 민족들과 우호 관계를 맺으면서 용병을 충원했다. 훈족의 군사체제를 모방해 기병을 양성하면서 새로운 전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451년 헝가리에서 서쪽을 향해 진군을 시작한 것은 훈제국의 군대만이 아니었다. 게르만족과 슬라브족 등 훈제국의 복속민 군대가 연합해 무려 20만 대군을 형성했다. 3월 중순이 되면서 세 곳으로 나눠 라인강을 건너 갈리아로 향했다. 서로마 역시 아에티우스를 필두로 프랑크족과 서고트족 등이 합세해 연합군을 형성했다. 그들 역시 20만 대군이 조직되면서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451년 4월 초순, 결전의 날이 밝았다.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두 진영이 마주했다. 40만 명의 병사가 어우러진 싸움은 막상막하, 승패가 쉽게 나지 않았다. 아틸라도 놀랐다. 그해 6월 중순이 되면서 양 진영은 더 물러서지 않았다. 더위에 질병, 군량미마저 바닥을 보였다. 마지막 전투는 꼬박 하루 동안 계속되었다. 아비규환과 하늘을 울리는 비명이 뒤섞이고,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함성, 말발굽 소리가 땅을 요동쳤다. 결국 로마 아에티우스는 훈제국의 군대에 포위당해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고, 서고트 테오도리크 1세가 전사하면서 전쟁이 끝났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흘러 강이 되면서 쌍방 16만 5천 명이 죽고 나서야 싸움을 멈췄다. 결과는 무승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서유럽 사가들은 이 전쟁을 서로마의 대승으로 본다. 로마군대가 궤멸을 면했고, 아틸라 스스로 물러났다는 이유였다. 아틸라는 지친 몸을 이끌고 남은 병사들을 독려해 한 달 가까운 긴 여정 끝에 제국의 수도 헝가리로 돌아갔다. 아틸라가 이를 갈며 인내하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훈제국의 병사들은 사기를 되찾았다. 일 년 전의 전투를 잊지 않았다. 452년 봄이 되면서 아틸라는 정예 기병 10만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드리아해 연안 이탈리아 북부를 정복하면서 서로마 황제에 오른 호노리우스가 수도로 정한 라벤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요동치는 민중을 달래기 위해 교황 레오 1세의 건의를 받아들인 황제는 사절단을 급조했다. 사절단 대표 레오 1세 교황이 아틸라를 만나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아틸라는 철군을 결심했다. 군에 질병이 돌았고, 식량도 바닥을 드러냈다. 제국으로 돌아온 아틸라의 다음 정복 대상은 사산조 페르시아였다. 그러나 그 꿈은 요원해졌다. 서로마원정에서 돌아온 후 일 년을 채 넘기기도 전인 453년 봄, 새로운 여인을 맞은 결혼식 날 밤에 피를 쏟으며 죽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60세였다. 신의 채찍 아틸라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만약 훈족이 유럽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어쩌면 유럽은 이슬람의 천국으로 변해 있지 않을까. 역사를 토대로 상상을 발휘해 스토리를 꾸며보시길 바란다. 보는 방향에 따라 무척 재미있는 역사가 전개될지 누가 아는가? ‘History If!’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03-11

사람이 새로운 미래를 연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지구촌의 미래는 기술 혁신, 기후 변화, 글로벌 협력, 인구의 변화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미래 사회는 인공 지능(AI)의 시대, 과학 기술 문명이 꽃을 피우는 시대라고 한다. 가정과 직장, 사회 생활은 인공지능 로봇이 주도하는 세상이 온다고 한다. AI 의사, 법률, 통신, 과학 기술 등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결국 설계자인 사람이 하는 일이다. 지구촌의 큰 변화와 새로운 미래는 그에 맞는 인재가 필요하다. 변화되는 세상과 그에 필요한 인재상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지구촌의 미래는 AI, 로봇공학, 바이오 기술, 양자 컴퓨터 등의 발전으로 사회 문화와 산업 구조가 크게 변화 될 것이다. 스마트 폰으로 연결 된 워치가 사람의 수면 상태와 질을 분석하여 의견을 주고, AI가 방송 앵커로 뉴스를 전하게 되는 등 우리 생활 주변을 변화시키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 배출되는 탄소가 오존층을 뚫으며 기후변화로 40도가 넘는 폭염과 폭우가 매년 속출하고 있다. 국내로 보면, 제주 감귤 농사가 추운 북부지방까지 옮겨 가고 열대 식물이 국내에서 시험 재배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전해지기도 한다. 고령화, 도시화로 노동력 감소 등 인구 변화로 인한 다양한 사회적 제도가 바뀌기도 한다. 원격 근무, 자동생산시스템, 생산과 품질의 모니터링 시스템화 등 산업과 경제적 구조도 변화를 가져 온다. 미래 인재의 조건은 첫째,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해결책과 창의적 설계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이다. AI, 데이터 분석, 프로그래밍 등 기본적인 기술 활용 능력이다. 셋째, 적응력과 유연성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학습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넷째, 협업 및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다양한 문화와 협력하는 글로벌 마인드 셋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변화의 시대에 선입견을 갖거나 내 판단이 옳다고 하는 자만은 좋은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미래 인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성공하는 기업들을 보면 인적자원관리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구글(Google)은 직원들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근무 환경도 창의적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창의 공간도 만들어 근무 중 일정 시간 자유롭게 해주고 창의적 사고로 생산성을 높여 나간다. 테슬라는 강력한 미션 중심 기업 문화로 빠른 실행과 유연한 조직구조를 통해 신기술 개발에 앞서 간 덕에 글로벌 선두 자리를 만들었고, 인재영입프로그램을 통해 반도체 기술자를 제 때에 영입해 오늘날 삼성전자의 시대를 만들기도 했다. 성공한 기업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유연한 조직문화, 지속적인 학습 기회, 강력한 비전을 제공하며 인재를 적재 적소에 활용하는 기업이었다. 구성원 각 한사람의 생각이 창의를 이끌어 내고 미래를 만들어 간다. 지구촌은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이상 기후변화와 ESG 경영, AI 시대 대응 등 창의적 사고와 유연성을 갖춘 인재가 미래를 만들어간다.

2025-03-11

옛것을 보듬는 손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저만치 다가오는 봄을 맞이라도 하듯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겨울 내내 아니, 몇 년째 방치되다시피 한 자전거의 먼지를 털어내고 정말 모처럼만에 두 바퀴를 굴렸다. 강변으로 이어지는 자전거길로 접어들자 약간 쌀쌀한 듯했지만 아침 공기는 신선했고, 오리떼들이 가볍게 날거나 물 위에 떠서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들이 활기차게 보였다. 간간이 물 흐르는 소리와 경쾌한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한 시간 여 페달을 밟다 보니 어느새 양동마을을 지나 기계면 문성리에 위치한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에 당도했다. 기온이 조금씩 올라가고 봄날이 가까워지니 이쪽저쪽에서 열리는 주말의 봉사활동 횟수도 늘어나고 있다. 환호공원과 포항운하 일대의 공공시설물을 돌보거나 가꾸고, 취약계층·복지시설의 낡은 방충망 교체와 수목 전정 조경관리 활동을 비롯, 자전거 무료 수리, 해안가 비치코밍, 수중 정화, 도배 장판 교체, 전기시설 수리 등의 다양한 재능봉사활동이 봄보다 빠른 걸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자원봉사활동은 포스코에서 십 수년 전부터 기획, 추진해온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재능봉사활동이다. 임직원들의 재능과 특기, 기술과 전문성을 발휘하여 지역사회의 취약·배려 계층과 공공에 작으나마 도움과 공익을 주는 맞춤형 밀착 봉사활동인 셈이다. 그러한 취지에서 열리게 되는 포스코 문화유산 돌봄봉사단의 당일 기계면 일대의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돌봄과 환경정화활동에 동참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애써 달려간 것이다. 봉사활동 참여를 구실로 자전거 타기 운동을 하며 문화재 답사와 반가운 사람들까지 만날 수 있었으니 나름 일거양득의 루틴(?)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탄소배출을 줄이는 환경운동에도 한몫 한 셈이니 그야말로 일석다조(一石多鳥)라 해야 할까? 어쨌든 버스를 타거나 개별 출발한 봉사단원들과 집결장소에 합류하여,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 바로 옆의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고인돌과 팽나무 보호수 탐방을 시작으로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 홍보영상 시청, 전시관 관람 등을 마치고는 작년 8월에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된 포항의 대표적인 정자 분옥정으로 향했다. ‘옥구슬을 뿜어낸다’는 의미의 분옥정(噴玉亭) 입구의 노후된 봉좌산 숲길 안내판을 봉사단원들과 함께 새것으로 교체하고, 정자 뒤편의 세이탄(洗耳灘) 개울 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며 문화재 주변을 깨끗하게 유지했다. 그런 다음 파평윤씨 시조 사당 봉강재 일대를 둘러보면서 문화재 해설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기도 했다. “세월의 더께 속엔/켜켜이 지층 같은//시간이 박제되고 사연이 스며들어//한줄기 바람결조차/소리되어 머무네//고색이 창연할수록/숨막히는 아련함//심원의 절규인가/메아리쳐 맴도는데//무연히 사그라 드는/천만 갈피 실마리” - 拙시조 ‘옛것에 대하여’전문 가까운 곳에 있는 선사시대의 유적을 비롯, 조선후기 전통가옥과 정자, 정원, 노거수, 사당 등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돌봄으로 잘 보전해야 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뜻있는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자연을 삶의 일부로 여기며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서 시문을 짓고 강학을 하며 풍류와 운치 속에 유유자적을 즐기던 선인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지는 하루였다.

2025-03-11

불씨 하나가 숲을 삼키듯 부주의가 삶을 태운다

심학수 포항북부소방서장 봄은 따뜻한 햇살과 함께 찾아오지만, 그 따뜻함이 때론 위협이 되기도 한다. 건조한 공기와 강한 바람이 불길을 키우는 계절, 우리는 크고 작은 화재 소식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화목보일러와 아궁이로 인한 화재가 급증하면서 그 위험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불씨 하나가 집을 태우고, 나아가 산불로 번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올해 1~2월, 포항을 포함한 전국에서 화목보일러 화재가 전년 대비 840% 증가했다. 주택과 창고, 음식점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고, 특히 오후부터 저녁 시간대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 부주의가 원인이 된 경우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는 점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화목보일러 주변에 가연성 물질을 방치하거나, 연통 청소를 소홀히 하면 작은 불씨가 큰불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특히 송진이 많은 나무나 비닐 같은 부적절한 연료를 사용하면 불길이 예측할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또한, 한꺼번에 많은 연료를 넣거나, 타고 남은 재 속 불씨가 바람에 날려 화재가 발생하는 사례도 많다. 이제는 더 이상 ‘설마 내 집에서 불이 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화목보일러나 아궁이를 사용할 때는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가연물은 보일러에서 최소 2m 이상 떨어진 곳에 보관하고, 연료 투입구는 꼭 닫아야 한다. 연통은 3개월에 한 번씩 청소하고, 지정된 연료만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소화기를 가까운 곳에 비치하는 것도 기억하자. 포항북부소방서에서는 봄철 화재 예방을 위해 마을 단위 현장 지도를 강화하고 있다. 의용소방대와 함께 주택을 직접 방문해 안전 점검과 예방 지도를 하고, 마을 방송과 SNS 등을 활용해 화재 예방수칙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관심과 실천이다. 봄철 화재는 한순간의 부주의에서 시작된다. 작은 불씨를 가벼이 여기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한 주택이 아니라, 가족의 안전이자 삶의 터전이다.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 모두 화재 예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불씨 하나가 숲을 삼키듯, 부주의가 순식간에 삶을 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경각심을 갖고 대비한다면, 올봄은 더 안전하고 평온할 것이다.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실천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화재 예방, 지금 바로 나부터 실천하자.

2025-03-10

1억원이 높인 출산율?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큰 액수의 돈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면 곤두박질치는 출산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아직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관해 섣불리 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가 특정 도시에서 확인되고 있는 듯하다. 최근 언론사의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1년간 서울시와 6대 광역시 중 한 도시를 제외한 나머지는 인구가 모두 줄었다. 그렇다면 인구나 늘어난 곳은 어딜까? 인천이다. 10일 발표된 인천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인천시의 주민등록인구는 302만7854명. 전월과 비교해 4205명이 증가한 수치다. 이는 전국 17개 시·도 중 인구 증가 1위의 기록. 뿐 아니라 인천은 작년 출생아 수 증가율도 전국 1위였다. 지난해 인천의 출생아 수는 1만5242명으로 전년보다 11.6%가 늘었다. 전국 평균 3.6%를 3배 이상 웃돈다. 그렇다면 한국 대다수의 지자체가 고민하는 ‘인구 증가’와 ‘출산율 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인천시의 묘수’는 뭐였을까. 전문가들은 ‘아이플러스 1억 드림’과 ‘천원주택’에 주목하고 있다. 아이플러스 1억드림은 인천에서 태어나는 아이에게 18세까지 1억원을 지원하는 정책. 인천시 천원주택은 월 3만원의 임대료를 받고 신혼부부 등에게 최대 6년간 주택을 임대하는 사업이다. 출산율을 높여 인구를 증가시키려는 인천의 통 큰 지원이 실질적인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 것일까? 금전 지원이 출산율을 높인 사례는 부영그룹의 ‘출산장려금 1억원 지급’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어쨌거나 어떤 방법을 사용하건 아기들의 환한 웃음을 더 많이 봤으면 좋겠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10

정치를 문학적으로 생각함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때로 나는 문학주의자가 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여긴다. 나는 현실 정치보다 삶 전체 또는 근본적인 삶에 집념을 발휘하는 문학주의자의 길을 귀하게 여긴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사람의 삶은 노동하고 예술 작품을 ‘제작’하고 정치적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라 한다. 문학주의자는 예술적인 작업에 집념을 품은 자다. 이 예술의 기억 행위는 삶 전체에 걸쳐 있어 사회적 결정에 ‘집단’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정치적 결정 행위와 다르다. 그리하여, 문학이 정치에 관여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는 어느 파당에 들어 그 파당의 목소리를 ‘문학적으로’ 내는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그 단적인 사례다. 이때 문학은 문학 아닌 것, 정치적이다 못해 정치주의적인 차원의 것에 떨어질 수 있다. 해방공간 때 프롤레타리아 시인 임화는 바로 이 함정에 빠져 비극적인 생애를 마감했다. 그는 ‘당원’의 시를 썼고 그 ‘당원’의 실천에 뛰어들었고, 자신의 문학을 싸우는 ‘전선’의 문학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정치에 관여하는 다른 방식의 문학이 있다. 그 좋은 사례들로 작가 최인훈과 손창섭이 있다. 최인훈과 손창섭의 정치는 ‘파당’의 정치가 아니라 단독자의, 곧 ‘한 사람’의 ‘정치’였다. 자기 한 사람으로 ‘1인 정당’의 당원 또는 ‘1인 공화국’의 주권자가 되어 자신만의 목소리를 추구한 것이다. 최인훈은 6·25 전쟁 중 ‘원산철수’ 직전까지 북한의 회령과 원산에서 살았고,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손창섭은 평양 태생이지만 일본에 일찍 건너가 대학까지 다녔고, 한국사회를 ‘방법론적’ 외부자의 시선으로 냉연하게 관조할 수 있는 ‘거리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최인훈과 손창섭은 1950~1970년대의 한국 사회를 누구보다 비판적으로 해부해 본 작가들이었다. 그들은 좌익·우익 또는 보수와 진보라는 ‘낡디 낡은’ 진부한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자신들만의 사유능력을 발휘해 한국인들의 삶의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자 했다. 나는 그들의 문학의 길에서 작가는 얼마나 고독해야 하는가를 깨닫곤 한다. 문학은 정치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 걸까? 나는 정치를 넓게 보는 방법을 찾는다. 정치를 넓게 보는 것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우선 정치를, 그것을 둘러싼 더 넓은 맥락에서 보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넓은 맥락에서 살필 수 있는가? 그것은 정치를 현실에 결부된 파당 대결만의 차원에서 벗어나 보다 문명론적인 차원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단지 옳고 그름, 단지 사실에 부합하거나 왜곡되어 있음을 떠나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해결해 가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가를 묻고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적 투쟁에 골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흔히 권력투쟁, 계급투쟁의 차원에서 논의되곤 한다. 사회를 갈등과 반목의 차원에서 보는 이들에게 정치는 집단적 투쟁 그 자체이고 상대편을 ‘쳐서’ 내 편을 살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런 정치에서는 ‘적’이라는 관념이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 작동한다. 나는 세력과 파당의 대결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을 더 낫게 해 줄 수 있는 삶의 길을 찾고자 한다. 이것이 내가 정치를 문학적으로 대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2025-03-10

폐지 리어카, 기다리다

강길수 수필가 인도 한쪽, 가로등 지주 곁에 지날 때마다 쳐다보는 리어카가 있다. 폐지가 가득 실렸다. 바퀴엔 숫자 다이얼식 자물쇠도 잠겨있다. 한데, 리어카는 지난 겨우내 이 자리에서 기다린다. 짐 실은 모습이 다른 폐지 리어카들보다 깔끔해 처음부터 눈여겨보았다. 폐 골판지 상자를 접어 바닥에서부터 바퀴 보호대 한 뼘 정도 위까지 차곡차곡 실었다. 그 위에 접은 장난감 포장 상자 같은 작은 폐지들을 가득 담은 커다란 골판지 상자 너댓 개를 싣고, 고무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폐지들은 긴 시간 햇빛에 색이 바래고, 비도 맞고, 바람과 공기에 부대껴 제법 상했다. 이 리어카의 주인, 폐지 줍던 분은 어찌 되어 어디로 간 걸까. 아마도 지나치는 길에 한두 번은 만났을 연로한 분이리라. 지난 늦가을, 환절기에 건강에 이상이라도 온 것일까. 바퀴에 자물쇠를 채우고 간 것을 보면, 갑작스러운 사고나 자리보전은 아닌 듯하다. 자녀들이 폐지수집 그만하라고 종용이라도 한 것인가. 그렇다면, 리어카가 여기 있지도 않았을 터다. 아무래도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 같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요즈음은 어찌 된 일인지, 폐짓값도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다. 가끔 집에 모아 둔 신문지를 묶어 고물상에 가져가는 날, 아내는 옛날의 반값밖에 안 된다고 구시렁거리곤 했다. 웹에서 폐짓값을 찾아보았다. 2025년 2월 전국평균 폐지 가격은 ㎏당 신문지가 135.1원, 골판지는 91.0원이었다. 이러니 실제 폐지 수집자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골판지의 경우, 50원/㎏ 정도나 될까. 폐지 줍는 분이 하루에 얼마큼 줍고, 얼마를 버는지 모른다. 하루에 골판지 300㎏을 주워 50원/㎏에 판다면, 그 벌이는 1만5000원에 불과하다. 매일 같은 양을 줍는다는 보장도 없다. 리어카 주인이 올 기초연금 평균 월 34만 3000원과 폐지 주워 받는 돈으로만 산다면, 뼈 빠지게 일해도 최저생활 하기가 어려움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 저변의 절실한 민생문제의 하나다. 그 많은 지자체 의원과 국회 의원 나리들과 보좌관들, 관련 공무원들이 이런 현실을 알고 제대로 쳐다보기나 할까. 정치꾼들은 자신과 정파의 이익에 필요할 때만 ‘국민, 민생’을 들먹이고, 실제는 안중에도 없음을 국민은 다 안다. 폐지뿐만 아니라, 사람이 배출하는 폐기물은 대부분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자원 재활용은 제2, 3, 4의 광산이자 석유요, 천연자원이다. 자원 순환시스템의 활용률을 올리는 일은, 인류의 생존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민생문제들을 이슈화하는 정치인의 보도를 요즈음엔 본 바가 없다, 가로등 지주 곁에서 리어카는 폐지를 가득 실은 채, 오늘도 주인을 기다리며 기도한다. 그가 돌아와 녹슬어가는 뼈대를 닦아주고, 함께 고물상에 가 무거운 짐도 내려주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몰라도, 리어카는 텔레파시로라도 소통해 주인의 행방과 처지를 알 터. 그러니 올 한겨울을 오롯이 턱 버티고 서서 주인을 기다린 게지…. 오는 봄 어느 날, 주인장이 쨍하고 나타나 자물쇠 풀면 리어카도 덩달아 하늘을 나는 기분이리라.

2025-03-10

기후변화와 반려동물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완연한 봄이 찾아오면서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많이 띈다. 따스한 햇살 아래 반려동물들이 꼬리를 흔들며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1500만 명을 넘어섰으며, 많은 가정에서 강아지와 고양이를 가족처럼 여기고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늘어날수록 사료 생산, 배변 처리, 용품 소비 등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반려동물과 인간이 함께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식에 대해 고민할 때다. 반려동물의 주요 탄소 배출 요인은 사료와 배변 처리다. 반려동물 사료는 대부분 육류 기반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가축 사육과 관련되어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킨다. 소고기와 닭고기 생산에서 나오는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으며, 반려동물의 소비량이 많을수록 온실가스 총 발생량 증가로 인한 환경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또한 반려동물의 배변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메탄가스가 발생하며, 비닐봉투나 플라스틱 배변 패드 사용은 환경 오염을 가중시킨다. 이에 따라 친환경적인 반려동물 사료 개발, 배변 처리 방식 개선, 지속가능한 반려동물 용품 사용 등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일부 사료 회사들은 곤충 단백질을 활용한 친환경 사료를 개발하고 있으며, 천연 성분으로 만든 배변 봉투나 재사용 가능한 패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들이 아직 일반 소비자들에게 널리 퍼지지 않은 만큼 더 적극적인 홍보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반려동물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곤충 단백질 기반 사료가 상용화되었고, 미국에서는 반려동물 배설물을 퇴비로 활용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도시도 있다. 또한 네덜란드에서는 재생 가능한 소재로 만든 반려동물 용품을 판매하는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으며, 친환경적인 반려동물 카페와 호텔도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친환경 반려동물 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반려동물 배변을 분해하여 퇴비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고 있으며, 몇몇 스타트업 기업들은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한 반려동물 용품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제로 웨이스트 반려동물 양육’이 점점 인기를 끌며, 친환경 사료와 재사용 가능한 용품을 선택하는 보호자들이 늘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지속가능한 반려동물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친환경 반려동물 사료와 용품의 접근성을 높이고, 배변 처리 시스템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보호자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한 교육과 캠페인을 확대하고, 관련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변화한다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작은 실천을 할 수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반려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친환경적인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2025-03-10

모두 원하는데 왜 개헌 못하나

김진국 고문 난리다. 비상계엄령에, 탄핵에, 내란죄까지…. 21세기의 한복판,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이 맞는지 혼란스럽다.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왜 연이어 터졌을까. 대통령과 의회 권력의 충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포고령 1호에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라고 명령했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의회 권력까지 장악하겠다는 말이다. 물론 비상계엄은 특별한 환경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를 상정한 대목이다. 법원의 일부 권한에 대해서도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헌법은 의회에 대해서만은 어떤 조치도 허용하지 않았다. 독재자를 막는 안전장치다. 재적 국회의원 과반수가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즉시 해제해야 한다. (헌법 제77조 제5항)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뒤집으려 했다. 윤 대통령의 불만도 이해는 간다. 이 정부 들어 민주당은 29번이나 탄핵안을 발의해 13건을 헌법재판소에 보냈다. 헌정사상 탄핵 심판이 모두 16건인데, 13건이 이 정부에서 벌어졌다. 대통령 관심 예산은 무조건 깎였다. 대통령 부부를 겨냥한 특검법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관심 법안, 예산안은 반복해서 밀어붙였다. 대통령이 됐지만 아무일도 못 하는 신세다. 극단적인 수단이라도 동원하고 싶었을 법하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여소야대(與小野大)가 처음도 아니다. 총선을 망친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 본인에게 있다. 권위주의 시절의 군인 출신 대통령도 여소야대에 이렇게 대응하지는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통일방안을 만들면서 세 야당 총재가 모두 자기 의견대로 만들었다고 믿을 정도로 의견을 수렴했다. 그랬기에 아직도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으로 남아 있다. 취임하고 나면 모든 국정이 대통령 책임이다. 야당이 치어리더가 되는 건 일당독재나 가능하다. 의견이 달라도 대통령이 야당을 달래고, 설득해야 한다. 양보할 건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게 정치다. 아무리 정치 초보라도 윤 대통령은 너무 정치와 담을 쌓았다. 윤 대통령만큼 야당을 무시하는 대통령은 보지 못했다. 제도보다 운용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국민이 가장 불신하는 게 정치인이다. 그래도 제대로 굴러가는 제도여야 한다. 윤 대통령 사태를 봐도 제도가 중요하다. 개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일 전직 국회의장·국무총리·정당 대표 등 정치 원로들이 서울대에 모여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을 분산할 수 있도록 통치 구조를 개편할 개헌 적기”라고 입을 모았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민주화의 상징이다. 그러나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는 데만 집중했다. 3김 씨와 같은 정치력이 사라지면서 피로가 누적됐다. 대통령과 의회가 극단으로 대립했다. 한쪽은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고, 다른 쪽은 ‘의회 독재’라고 한다. 권력의 분산과 효율적인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정치인도, 학자도 공감한다. 그런데도 개헌론이 제기된 지 20년이 넘도록 번번이 실패했다.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개헌 논의가 자신의 임기를 허비한다고 싫어한다. 임기 후반에는 차기 경쟁에서 앞선 후보가 반대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임기 말 위기를 맞아서야 개헌을 제안했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여야가 모두 개헌하자고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만 침묵이다. 사실상 반대다. 탄핵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핑계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개헌할 수 있다. 대통령 자리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대세는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방향이다.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에게는 거북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주장을 포용하는 제도다.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하는 제도다. 한 사람, 많은 사람이 메시아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편일 때 메시아다. 반대 경우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제도도 마찬가지다. 지역구 투표에서 50.56%를 얻은 민주당이 175석(58.3%), 45.08%를 얻은 국민의힘이 108석(36%)을 차지했다. 국민의힘이 고집한 승자독식 탓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답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3-09

성실과 농담

유영희 작가 몇 년 전 작고한 고려대 황현산 교수가 ‘푸른 양’의 해를 맞아 쓴 에세이 ‘변화 없다면 푸른 양이 무슨 소용인가’를 읽었다. 이 에세이에서 황현산은, 양이 푸를 수는 없으니 ‘푸른’이라는 수식어는 농담이라고 하면서도 새로운 농담은 변화를 위한 상상력이므로 푸른 양의 해에 변화를 꼭 이루자고 다짐하고 있다. 새로운 농담은 어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쉽게 기적을 일으킨다는 대목에서는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지레 포기하지 말라는 행간의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에세이에 눈길이 간 것은 올해가 마침 푸른 뱀의 해이기 때문이다. 10간은 다섯 가지 색으로 분류되고 각각의 색은 2년씩 계속되어 작년에는 푸른 용이었던 데다 새해가 시작한 지 두어 달이 지난 터라 새삼스럽다고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푸른 양은 존재하지 않아도 푸른 뱀은 세상에 실재하니, ‘푸른 뱀’을 들먹이는 것은 의미 없다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푸른 뱀과 육십갑자의 푸른 뱀은 같은 것이 아니고, ‘푸른’이 가지고 있는 변화의 의미는 퇴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의 상징이라는 의미에서는 푸른 양보다 허물을 벗는 푸른 뱀이 ‘푸른’의 이미지에 더 적절하다. 최근 2, 3년 간 우리 사회 중요 지표는 연속 하락하고 있다. 민생과 직결된 경제 지표를 보면 특수한 상황 세 번을 제외하고 1961년 이래 우리 경제 성장률은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항상 높았다. 그러나 2023년에는 우리가 1.4% 성장하고 세계는 2.8% 성장하는 역전이 일어난다. 2024년에는 조금 올라 2% 성장했지만 세계 경제는 3% 이상 성장했으리라고 하니 나아진 것은 아니다. 2024년 폐업한 자영업자가 100만 명에 육박한다는 소식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내가 사는 곳은 지난 30년간 상가 공실이 전혀 없었는데 작년부터 새 주인을 찾지 못해 셔터문이 내려진 상가가 여럿 보인다. 정치는 더 심각하다. 3월 3일 한국기자협회 신문에 의하면, 지난 2월 27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Democracy index 2024)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총점 순위가 작년보다 10단계 하락하고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 사회 지표가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지금은 황현산이 저 에세이를 썼던 2015년보다 더 절실하게 새로운 농담이 필요한 때다. 마침 코미디언 이경규가 최근 발간한 책 제목이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이다. 그가 45년 동안 활동하는 비결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발맞추어 시청자를 위해 새로운 농담을 꾸준히 계발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덕목으로 성실을 꼽는 인터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폭력배와 손잡는 정치인들, 부자만을 위한 경제정책 입안자들에게 더 이상 새로운 농담을 기대하기 어렵다. 푸른 뱀처럼 우리 사회가 성장과 변화를 이루려렴 지도층의 성실이 필수다. 그런 정치인을 보고 싶다.

2025-03-09

시급한 것이 연금개혁 뿐일까

김규인수필가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5~2072년 장기재정전망’ 보고서에서 재정 전망이 어둡다며 경고했다. 2025년 우리나라 GDP 성장률은 2.2%에서 2072년에 0.3%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2072년 국가채무는 7,303조 6,000억 원으로 현재의 5.7배 수준으로 크게 늘어난다. 경제성장 엔진은 힘을 잃고 국가 지출은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2072년에는 나랏빚이 7,303조 원, 국민연금 재정수지 적자도 2,90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발표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민연금 재정적자 규모가 60%를 넘어선다. 연금 개혁이 시급한 이유이다. 시기를 놓치면 빚은 눈덩이로 불어나고 연금 재정은 파탄 나고 더 이상 연금 지급은 불가능하게 된다. 이에 비해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25년 3,591만 명에서 2072년 1,658만 명으로 크게 떨어진다. 반면에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같은 기간 1,051만 명에서 1,727만 명으로 늘어난다. 생산인구는 줄어들고 부양이 필요한 노령인구는 늘어나 국민연금 부족을 더 부추기게 된다. 정치권에서 국민연금 개혁은 아직 적절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3월 이후 대선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연금 개혁은 시급하다고 말한다. 여야는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4%로 하는 것은 합의한 것 같다. 그러나 아직 자동조정장치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연금개혁은 100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짜야 한다. 누가 더 손해를 보거나 더 이득을 보는 경우가 생겨서는 안 된다. 공평한 법안이 만들어질 때 온 국민의 동참을 끌어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여하는 모두가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표를 의식하여 선심 쓰듯이 계획을 세워서도 안 된다. 다음 세대가 빚을 떠안거나 하는 일도 생기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다수의 사람이 만족하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대외적으로 헤쳐 나가야 할 일이 많은데 국내문제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시간을 허비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문제는 산적하고 세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모두가 발 벗고 나서는데 우리만 뒤처지는 것 같다. 미국의 영향으로 오늘도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언제까지 세상의 흐름을 우리가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만 갈 것인가. 차곡차곡 준비만 제대로 한다면 우리에게 기회는 다시 찾아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려운 시기에 무엇이 있어야 할까. 정치도 협의도 양보도 없는 사회에서 이루어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회사는 어려워도 데모는 계속하고 내 것만을 차지하면 그만이란 말인가. 모든 것을 잃고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단결하고 힘을 모아도 헤쳐 나갈지 걱정스러운데 자기만을 내세울 때 얻는 것이 있을까. 시급한 것이 어디 연금개혁 뿐일까. 세계의 흐름에 편승하여 살아남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살아남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2025-03-09

헛되고 헛되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저녁 산책길에 나섰다가 홀연 찾아든 생각이 있다. ‘전도서’ 1장 2절이다. “헛되고 헛되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사노라면 누구나 몇 번씩 겪는 허망함이 불쑥 고개를 내민 것이다. 허망함의 원인은 개별자에게 고유한 것이어서, 그것을 특정 영역이나 대상으로 한정함은 불가능하다. 하기야 아까 낮에 보았던 싸움 장면도 원인 제공자 가운데 하나일 터다. 어제 내가 정리한 옆집 공터에서 두 마리 고양이와 두 자 남짓한 뱀 사이에 치열한 투쟁이 있었던 게다. 어지러운 낙엽과 작은 나뭇가지들 때문에 뱀의 형상은 잘 보이지 않았으되, 고양이가 보여주는 날카롭고 치명적인 발놀림에서 공격 대상이 뱀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자명한 것이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뱀에게 들이닥친 고양이의 급습은 가공(可恐)할 만한 것이었으리라. 이렇다 할 반격도 하지 못한 채 30여 분만에 뱀은 축 늘어져 버렸다. 뱀의 사체를 장난감처럼 들었다 놨다 하면서 고양이는 전리품을 한껏 자랑하는 눈치였다. 경칩 지난 지 사흘 만에 불귀의 객이 된 뱀에게 불시에 찾아든 사신(死神)을 어찌하겠는가?! 지난주 개강한 대학의 교정은 활기에 넘쳤으나, 반갑게 대면한 교수의 전언(傳言)은 우울했다. 2월 한 달 새에 세 분의 집안 어른을 잃었다는 것이다. 친가와 외가의 두 삼촌과 부친을 연이어 멀리 떠나보냈으니, 그 심사를 어찌 가늠할 수 있겠는가! 20대 청춘들의 활기와 명랑한 태도를 노년과 상가(喪家)의 우울하고 처연한 분위기와 병립시키기 자못 어려웠다. 한쪽에는 생을 구가하는 살아남은 자들이 있고, 맞은 편에는 죽음과 대면하는 자들이 있다. 생과 사의 갈림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행운과 불운, 얻음과 잃음, 건강과 질병, 웃음과 눈물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음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단맛만 추구하는 인간의 심사에는 쓰고 거친 맛은 자리하지 못한다. 단선적이고 단편적인 주관에 저 스스로 갇혀버리는 까닭이다.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타자들과 맺은 관계와 인연 안에서만 존립 근거를 가질 뿐이다. 이탈리아 양자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나가르주나(용수)를 인용한 대목을 보자. “사물은 자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 덕분에, 다른 것의 결과로서, 다른 것과 관련하여, 다른 것의 관점에서 존재한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178쪽) 여기서 용수가 말하는 사물의 범주는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것에 확대 적용할 수 있다. 인간이 애지중지하는 자아와 그를 둘러싼 인간들과 그 관계를 들여다보면 사태의 핵심이 분명해진다. ‘나’를 독자적이며 지극히 가치 있는 유일자(唯一者)로 규정할 방도가 어디 있는가?! 내가 존재하도록 원인을 제공해준 부모와 형제와 아내와 남편과 자식을 잠시 돌이켜 보시라! 허망하고 쓸쓸하며 괴로운 지경에 처해 있다면, 그 배후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 대척적인 존재와 가치를 깊이 묵상했으면 한다. 빛과 그림자, 있음과 없음, 길고 짧음, 선과 악의 상호 보완성에 우리의 사유와 인식이 미친다면, 삶은 그렇게 허망하거나 헛되지 않을 것 같다.

2025-03-09

빵과 장미의 날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 주말인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올해로 117주년 되는 기념일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 노동자의 희생을 기리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1만5000여 명이 참여한 시위대는 정치적 평등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임금인상 등을 요구했다. 당시 미국 여성들은 먼지가 가득한 최악의 작업 환경에서 하루 12∼14시간씩 일을 했지만 노동조합 결성권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권리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남녀차별 철폐와 여성 지위향상 등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1977년 유엔이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하게 된다. 1908년 시위에 나선 여성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여기서 빵은 남성과 비교해 저임금에 시달리는 여성의 생존권을 의미하고 장미꽃은 참정권을 뜻하는 표현이었다고 한다. 한국은 1985년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날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했다. 해마다 이 날이 되면 일부 단체는 지역의 근로자, 시민을 대상으로 빵과 장미꽃을 나눠주는 행사를 벌인다. 빵과 장미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양성평등의 상징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권익은 경제 대국이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많이 미흡하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 여성의 고용률은 61.4%로 OECD 38개국 중 31위다. 20년째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성별 격차 지수에서 한국은 세계 146개국 중 94위로 조사됐다. 한국의 양성평등 문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3-09

경산 프리미엄 쇼핑몰 유치를 바라보며

조현일 경산시장 경산은 지금 최선을 다하면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도저히 성공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경산지식산업지구에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의 유치에 성공하고 지난달 28일 경산지식산업개발(주)과 현대백화점 계열사인 한무쇼핑(주)이 분양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경산지역에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 유치는 2020년 9월 경산시와 경북도,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등이 경산프리미엄 아울렛 조성을 위한 투자유치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지역의 경제를 일정부분 견인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사업허가권을 가진 정부가 첨단산업을 육성하고자 조성한 단지에 유통과 쇼핑을 위한 공간이 조성되는 것은 지정 목적에 어긋난다는 입장에 난관에 부딪혀 실현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민선 8기 경산시장으로 당선되자 지역의 산업구조를 바꿀 것으로 평가받은 경산지식산업지구에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이 입점하면 지역 경제에 큰 힘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신발을 구두에서 운동화로 바꾸어 신고 중앙정부와 정치권을 상대로 개발계획 변경의 필요성과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 유치의 당위성 설득에 집중했다. 시민들도 2020년 12월 10만 명 유치 서명운동에 들어가 16만 명의 서명부를 관계기관에 전달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했다. 이러한 정성과 주변 여건이 맞물리며 지난해 4월 산업통상지원부가 비록 경산지식산업지구 1단계에서 2단계로 장소도 변경되고 규모도 축소되었지만, 와촌면 소월리 유통상업시설 용지 10만9228㎡의 개발계획변경을 승인하고 12월 실시계획 변경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경산지식산업개발(주)이 지난해 12월 20일 유통상업시설용지 입찰 공고에 나서 지난 19일 한무쇼핑이 기준가 565억8000만 원보다 420억 원이 많은 994억5000만 원의 입찰가로 사업자로 선정되고 28일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경산시는 계약자인 한무쇼핑(주)에 큰 기대감을 걸고 있다. 경산을 바탕으로 현대백화점이 영남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자 함을 이번 분양계약에서 피부로 느껴 일명 ‘김현아’로 불리는 김포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처럼 (가칭)경산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도 아낌없는 투자로 ‘경현아’로 이름을 날릴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의 아낌없는 투자에 반응하고자 경산시도 경산지식산업지구 2단계의 상업용지 활성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 더 많은 이용객이 현대 프리미엄을 찾아 현대백화점과 지역에 이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2028년 하반기에 문을 열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은 다른 지역 쇼핑몰과의 차별화로 쇼핑뿐만 아니라 장시간 체류하며 즐길 볼거리와 문화가 있는 공간이 돼 경산을 찾는 쇼핑관광객이 지역의 명소와 먹거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한무쇼핑(주)의 과감한 투자는 현재 62% 분양을 보인 경산지식산업지구 2단계 분양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지난달 20일 분양 공고된 산업용지 11필지의 분양가가 평당 114만 원으로 평당 300만 원 수준에 분양된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의 효과를 톡톡히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의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부지 분양은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다시 한 번 시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기에는 시간과 물적 자원의 영향으로 포기하기도 해 경산시도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 유치 과정에서 포기할 뻔도 했다. 자치단체장의 최우선 목표가 지역민의 행복임을 각인시키며 달려왔고 앞으로 달려갈 것이다. 아직 내 발에는 구두가 아닌 운동화가 신겨 있지만, 임기 내내 구두를 신을 일은 없을 것이다. 지역민의 행복은 현재보다는 내일이 중요하고 앞으로의 밝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려면 현장을 누비는 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유치에 온 정성을 쏟아부은 시민들과 공직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힘을 보태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한무쇼핑(주)에도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할 프리미엄 아울렛 조성에 더 많은 관심을 둘 것을 요청한다.

2025-03-09

기대고 싶은 것들, 여기에

이희정시인 기대고 싶은 것들 전봇대 아래 모였다 이 빠진 그릇이며 다리 빠진 의자며 쓸모에 목숨 바친 뒤 여기 죄다 나앉았다 한철 영화 무색하게 주눅이 폭삭 들어 내일 없는 얼굴들 통성명 필요할까 묶인 몸 달그락거리니 길짐승들 킁킁댄다 찌그러진 몸 위로 햇살들 놀다 가고 휘청대던 취객이 피로를 내던지는 이별이 왁자한 이곳에 배경이 시들고 있다 ― 홍외숙, ‘여긴 이별이 와글대요’ 전문 (‘제 19회 오늘의시조시인상’ 수상작) 시인의 다짐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아파하고 있는 것들, 버림을 당한 것들, 도와 달라고 내미는 손들에게 마음이 가는 계절, 지켜봐 주는 모든 평범함에게 감사와 사랑을 나눠야겠다”는. 그런 시인의 눈길이 닿은 곳은 흔하디흔한 일상의 풍경이다. 정작 보고도 모른 척, 설령 눈빛이 머물라치면 외면하기 십상인 불편한 모습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공간에 머문 시인의 눈빛을 그들은 다시 호출한다. 이제 그렇게 호출된 것들이 다시 우리를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이 시는 재현된다. 도입부 “기대고 싶은 것들 전봇대 아래 모두 모였다”는 첫수의 진술은 사뭇 눈길을 끈다. 지나치기 쉬운 누추한 풍광을 ‘전봇대’라는 완충재가 견인하며 제목 ‘여긴 이별이 와글대요’의 정황을 내밀한 서경으로 떠받치고 있기에. 이 시를 지탱하는 핵심 관계는 전봇대에 기댄 “이 빠진 그릇”이며 “다리 빠진 의자” 따위의 ‘쓸모를 다한’ 것으로 이제 더 이상 꼿꼿하게 자력으로 설 수 없는 것들과의 연민이며 연대이다. 이들의 씁쓸한 외경을 시인은 절묘하게 내면의 정경에 대입해서 풀어내고 있다. 결국 “쓸모에 목숨 바친” 캐릭터들이 지닌 특별한 힘은 존재의 ‘버려짐’에서 발원하고, 그들 사이의 연대는 동병상련의 상처로 조우 하는 것에 있다. 해서, 이 시가 거둔 성과는 만만치 않다. 헐한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상태를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시가 지닌 고유의 역할을 담담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런 때 ‘문학이 하는 일’에서 김영찬식으로 말하자면, “이즈음 예술인들이 대체적으로 공유하는 문학 혹은 글쓰기는 현실에 대한 물신주의적 부인(否認)이며, 현실을 알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같은 태도에 있다. 그러니까 이 시를 높이 평가했던 지점은 더럽고 보기 힘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가 의식의 ‘건강함’과 리얼리즘적 기율에 대한 충실함일 것이다. 그것으로 환기와 제언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기에. 사람은 누구든 언제가 되었든, 결국은 파기될 운명 앞에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실존적 상처를 내장하고 있다. 종내 이 씁쓸한 내면 풍경을 “길짐승마저 킁킁댄다”는 더할 나위 없이 사실적인 이 묘사적 상황 앞에 우리의 감정은 다시 걷잡을 수 없는 환멸에 치닫게 된다. 시인은 이러한 상황마저 다소 해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이는 시조의 율격이 주는 율동성에서 기인한다. 이렇듯 시인은 아픔을 아프게, 상처를 상처답게, 무심한 듯 유정하게 기댈 수 있는 전봇대라는 기율에 기대어 상처들이 상처들의 주체가 되어 서로를 보듬고 있다. “이별이 왁자한 이곳에”

2025-03-09

학교에서 배웠더라면 좋았을 것들

최근 몇 년간 나의 인생은 큰 폭으로 두 번 변화했다. 2022년 결혼을 하며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었고 2024년 아들이 태어나며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 사건들은 다르게 말하자면 내가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나는 누군가가 가정을 짊어지고 이끌어간다는 뜻인 가장이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결혼을 하며 아내와 내가 서로의 보호자가 된 것과 아들을 만나며 내가 그의 보호자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내가 몸이 아플 때 일시적으로 나는 아내를 책임져야 하고 아들이 자립하기까지의 오랜 세월동안 나는 많은 부분에서 그를 챙겨야만 한다. 다른 이를 책임지고 챙길 때 나는 나 자신만을 건사하는 때보다 더 꼼꼼해지고 야무져져야하는데, 나는 아직도 여러 방면에서 서툴기만 하다는 게 속상할 때가 있다. 요 며칠은 아들이 기관지염으로 고생을 했다. 새벽 내내 콧물을 줄줄 흘리고 기침으로 고생을 하는 작은 존재를 앞에 두고 병원 문이 여는 아침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름 초·중·고등학교 교육을 성실하게 받았고 대학을 거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공부도 했건만 그러면 뭐하나, 정작 삶에서 필요한 중요한 지식과 지혜는 갖추지 못한 헛똑똑이에 불과한 것을. 그러나 이것은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내게 아이를 기르는 방법과 누군가를 간호하는 방법 같은 걸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세상에는 미분과 적분, 직유법과 은유법, to 부정사와 동명사 같은 것보다 더 필요한 지식들이 많은데 정작 그런 것들이 정규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거나 입시 교육에 밀려 가볍게 지나치게 되는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모두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육아 상식은 누구나 조금씩은 알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육아 상식을 가르친다면 살면서 그것을 써먹을 확률은 미분과 적분을 배워 써먹을 확률보다는 분명히 높을 것이다. 부모가 되지 않더라도 부모가 된 다른 사람과 자라나는 어린 존재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공감하는데 분명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신생아는 몇 시간 마다 먹여야 하는지. 아기가 우는 이유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각각의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야해 하는지를 미리 배워 알고 있었더라면 시행착오는 훨씬 줄었을 것이고, 부모와 아기 모두 고생을 덜 해도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주 기초적인 의학 교육이 정규교육에 포함된다면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간호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데에도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어떤 증상이 생겼을 때 적어도 그것이 심각한 상황인지 가볍게 넘겨도 되는 상황인지는 빠르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구급법이야 가끔 학교에서 배우기도 했던 것 같지만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밖에도 손발목이 삐었을 때 뜨거운 찜질을 해야 하는지 차가운 찜질을 해야 하는지, 함께 복용하면 오히려 몸에 해로운 약은 어떤 것이 있는지, 평상시와 감기가 걸렸을 시에 집안의 온도와 습도는 각각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정도는 학교에서 비중있게 가르쳐준다면 어떨까 생각을 해본다. 자동차의 대략적인 구조와 간단한 정비 기술 같은 것을 학교에서 가르치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자동차 경고등의 종류와 해당 상황에서 어떤 조치들을 할 수 있는지. 엔진오일을 비롯한 소모품들은 어느 정도 주기로 갈면 되는지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불의의 사고나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차가 고장날 때마다 정비업체에서 부르는 가격을 의심하고 때로는 뒤늦게 배신감을 느끼곤 하는 일들도 많이 줄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기초적인 법률 상식을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면 어떨까. 지갑이나 휴대폰을 주워서 돌려주는 이에게 어느 정도의 사례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취업을 해서 직장생활을 할 때 어떠한 법률을 통해 어떤 부분을 보호받으며 일할 수 있는 것인지, 이사를 갈 때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교과과정을 통해 교육한다면 사회의 질서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밖에 기본적인 가사노동 스킬이라거나, 연애를 할 때의 에티켓이라거나,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하는 예절 같은 실용적인 것들이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보다 심도 있게 다루어진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공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이전에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나가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2025-03-09

내가 나를 나로 인정하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이 유쾌할 리 없지만…. /언스플래쉬 작법 수업을 할 때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일인칭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며 주어를 남발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 일인칭은 필연적으로 ‘나’일 수밖에 없으므로 불필요한 단어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그런 면에서 ‘내가 나를 나로 인정한다’는 말은 참으로 거추장스러운 듯하다. 하나 마나 한 표현을 덕지덕지 붙여 만든 단조롭고 식상한 표현이다. 그리고 그 식상함이야말로 이 문장의 본질이기도 하다. 내가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은 칼럼을 쓸 때다. 세상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나의 시각을 명확히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마감일이 다가오면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더라? 경북매일신문에 신설되는 코너 ‘2030, 우리가 만난 세상’에서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얼마나 두려웠던가. 첫 번째 글을 송고하며 덜덜 떨던 기억이 선연하다. 어느덧 나는 ‘20’에서 ‘30’으로 넘어왔고 눈빛이 조금 흐리멍덩해진 것 같기도 하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손을 번쩍 들던 나는 어디로 갔나. 원고 쓰는 일을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책상 앞에 앉는다. 좋게 보면 여유가 생긴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게을러진 셈이다. 특히 요즘 그와 같은 권태로움이 커지고 있는데, 어쩐지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그런 듯하다. 몇 년째 함께하는 필진이 정말이지 대단해 보인다. 아니, 아직도 할 이야기가 남아있단 말이야? 그들의 글을 읽으며 나의 게으름을 반성하고 비척비척 노트북 전원을 켜 슬픈 리듬으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을 땐 내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썼나 들춰 보기도 한다. 매우 수치스러운 작업이다. 손가락으로 눈을 반쯤 가리고 후루룩 읽어도 탁 걸리는 몇몇 문장에 얼굴이 홧홧해진다. 아주 가끔이지만 꽤 기특한 부분도 보인다. 그래? 이런 생각을 했단 말이지? 물론 그러한 마음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이 글 역시 나의 부끄러움이 될 것을 알지만, 뭐, 별 수 없지. 내가 차곡차곡 써 온 글을 바라보노라면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한때 나는 인간이란 나이를 먹을수록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성장해 가는 존재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생이 꼭 점진적인 상승의 구조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삶은 하나의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성취와 소유만으로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려 하면,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나’를 찾는 과정에 관해 무수한 철학자들이 한 마디씩 내어놓지 않았던가.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 장자는 사회적 규범이나 외부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아의 발견이라고 말했다. 니체는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가정할 때 과연 지금처럼 살 것인가 자문하도록 했고, 라캉은 자아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통해 형성된 오인된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현자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광장에 모일 필요 없는 세상이다. 훌륭한 사상은 도처에 범람하며 우리는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토록 좋은 말을 우격다짐으로 뱃속에 넣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 건 왜일까? 아는 것과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니. 그 괴리가 클수록 ‘나’라는 사람은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유쾌할 리 없다. 예쁘지도 않고 어느 때엔 천박하기까지 하다. 두피를 벅벅 긁으며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문장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내게서 떨어져 나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인정의 순간이 하나의 깨달음이다. 그렇게 쌓인 고민이야말로 ‘30’으로 가뿐히 넘어온 내가 얻은 값진 흔적이다.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촘촘한 계획을 세우는 것을 포기했다. 하루를 정성껏 닦는 정도로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느슨한 분투 속에서 만나게 되는 세상을 글로 적고 번번이 미궁에 빠진다. 이전에는 혼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눈물 콧물 쏟아내며 발을 굴렀다면 이젠 바닥에 벌러덩 누워 하늘이나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무엇보다 나는 단 한 번의 마감도 펑크내지 않은, 성실한 노동자가 아니던가!

2025-03-09

봄을 알리는 두꺼비 행렬

우정구 논설위원 두꺼비는 행운과 변화를 상징하는 동물로 표현된다. 우리나라 민화나 전설에도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보통 두꺼비 꿈을 꾸게 되면 사람들은 길조로 여기는 경향이 많다. 특히 황금두꺼비를 꿈에서 보았다면 재물운이 크게 상승할 것이란 말을 듣는다. 몸길이 60∼120mm 정도의 두꺼비는 개구리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모양이나 행동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다. 개구리는 녹색 피부를 가졌지만 두꺼비는 갈색 피부를 가지고 있다. 특히 두꺼비는 머리가 몸통에 비해 크고 몸 등면에는 많은 피부 융기가 돋아있다. 두꺼비는 주로 육상에서 생활하면서 곤충과 지렁이 등을 잡아 먹고 산다. 산란기에는 늪과 같은 습지에 모여 알을 놓는다. 대구시 욱수동 망월지는 국내 최대 규모 두꺼비 산란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매년 이맘때면 1000여 마리의 성체 두꺼비가 산란을 위해 망월지로 이동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올해는 늦추위 탓에 예년보다 조금 늦게 산란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보통 암컷 두꺼비 한 마리가 약 1만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이곳 망월지서 깨어난 새끼 두꺼비는 5월이면 서식지인 산으로 다시 이동하게 되는데, 이 또한 광경이 놀랍다. 보존가치 문화유산 운동을 펼치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10년에 망월지를 꼭 지켜야할 자연유산에 선정했다. 관할 구청인 대구 수성구는 자연생태 보존을 위해 망월지 일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두꺼비의 이동이 시작됐다는 소식은 곧 봄이 온다는 말과 같다. 계절의 변화를 깨닫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두꺼비의 행렬이 반갑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06

‘하늘이’를 잃고 우린 무엇을 고치려 하는가

김세라변호사 최근 여덟 살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피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과 교육부는 ‘하늘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법안을 제시하고 있다. 여당은 교원 임용 전후 정신질환 검사를 의무화하고, 증상이 발견되면 업무에서 배제하고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반면 야당은 정신질환을 이유로 휴직 및 복직 시 엄격한 심사 기준을 적용하고, 별도의 면담 및 평가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또한, 교사의 직무 수행 적합성을 평가하는 위원회에 학생과 학부모가 참여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지만, 안그래도 교권침해 이슈가 큰 요즘 교사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이 ‘하늘이법들’의 내용을 보면 하늘이 사건의 본질을 잊은 것은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와 보자. 하늘이 사건의 첫번째 원인은 돌봄교실 운영지침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돌봄교실 운영상 돌봄학생은 돌봄교실 종료 후 그 보호자 또는 대리인에게 인계되어야 하는데 그 지침이 지켜지지 않았다. 지침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건 지키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하늘이는 돌봄교실이 끝난 늦은 오후 홀로 교실에 남아 있었고, 가해교사의 눈에 띄어 범행이 이루어진 시청각실까지 유인되었다. 돌봄교실 학생, 특히 하늘이 같은 저학년 학생들에 대한 보호자 등 대면 인계 조치가 철저히 지켜졌더라면 하늘이는 평소와 다름 없이 미술학원 차를 탔을 것이다. 두 번째, 이 사건은 가해 교사의 정신질환은 밝혀내지 못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거의 정신질환은 오히려 아주 충분히 드러나 있었다. 우울증을 이유로 이미 8차례 이상 휴직과 복직을 반복한 사람이었고, 2024년 12월 복직하자마자 학교에서 동료 교사를 폭행하고 컴퓨터를 부수는 등 폭력성과 반사회성을 여러번 드러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교육청에 그에 대한 휴직처리를 요청할 정도였지만 교육청에서 그를 휴직시키지 않았다. 성인에 대해서 폭력성 등을 충분히 드러낸 교사가 어린 학생들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학교에 버젓이 출근을 해 돌아다니는데도 이를 막을 수 없었던 시스템이 이번 사건의 원인인 것이다. 하늘이를 잃고서야 우린 외양간을 고치려 하고 있다. 아프고 부끄럽지만 하늘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린 그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부서진 외양간을 고치는 것에 집중해야할 이 시점에 외양간 옆의 부엌, 옆집의 지붕을 고치는 일 따위에 시간과 비용을 낭비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아이들이 등교부터 하교까지 철저히 안전할 수 있도록 돌봄교실 운영지침과 이에 대한 준수 강제가 정비되어야 한다. 폭력성과 반사회적 인격장애성 등이 드러난 학교 구성원에 대해서는 즉시 분리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며 학교 복도에 씨씨티비도 촘촘히 설치되어야 한다. 학원차량기사가 하늘이가 차를 안탔다고 연락했을 때 학교에서 바로 하늘이가 사라진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다면 하늘이는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다시는 하늘이를 잃지 않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눈을 똑바로 떠야 할 것이다.

2025-03-06

개성시대

노병철 수필가 “아메카노로 주시고요 따뜻하게 원샷으로 부탁드립니다.” 커피 주문을 하는데 앞에 여자가 한 말이다. 무슨 소리 하는지 잘 못 알아들었다. 대충 마시면 될 것을 무슨 서양 음식 먹으러 온 식당에서처럼 “뭐 넣고 뭐 빼고 해서 주세요”하는 식으로 주문한다. 꽤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까탈스럽게 보였다. 어른 말대로 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 “최고의 맛은 개인의 특별한 취향에 맞는 맛이다.” 그렇다고 자기 취향에 맞게 주문할 수는 없지 않은가. 동태탕 먹는데 파 빼고 무 빼라면 그 집에서 그렇게 끓여 줄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런 주문이 가능하고 종업원들도 이런 주문에 더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카푸치노를 주문하면서 탈지분유로 만들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 준다는 것이다. 왜 카푸치노에 탈지분유를 넣어야 하는지 이해 가지 않지만 그렇게 마셔야겠다는 독자적 취향을 맞춰준다는데 기가 막힐 뿐이다. 우린 이런 손님을 ‘진상’으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맛있다고 하면서 가장 많이 찾는 것이 최고의 맛이다.” 우린 개인의 특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튀는 놈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고상한 척한다며 따돌림받기 일쑤이고 “마카다 짜장면”에 익숙한 우리 문화는 혼자 튀는 것을 철저히 부정한다. 우리의 전통은 까라면 까야 하는 획일성에 기초한다. 이 전통은 예와 효에 근거한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절대 대들면 안 되고 상급자에게, 선배에게는 항상 복종해야 하는 문화이다. 그래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 “너는 아비 어미도 없나”라는 말이다. 개인보다는 철저하게 단체나 조직이 우선된다는 것이다. “저는 회를 못 먹어요.” 이제 세상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자신의 취향이 존중받는 세상이 온 것 같다. 직장 회식을 가자고 하면 회를 못 먹어서 이번 회식엔 빠지겠다고 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그냥 따라와서 튀김이나 몇 개 먹어주는 배려 따위는 기대하기 힘들다. 자기주장이 정말 뚜렷하다.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가치 기준이 너무나 명확하다. 여기에서 기성세대들과의 마찰이 발생한다. 나와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들은 젊은 세대들을 ‘이기적’이라고 표현하는데 마다하지 않는다. 더불어 살기에 우리네 교육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언제부터인지 내 머리엔 ‘일사불란’이란 단어가 아주 깊숙이 꽂혀있다. 내가 명령을 내리면 그대로 따라와야지 반기를 들거나 어영부영하고 있으면 가차 없이 그 대가를 치르게 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요즘 하다간 노동부에 끌려가 아주 된통 당하고 말 것이다. 의견이 다른 것에 대해 귀 기울이고 소수자로 불리는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뭔가 특별함을 인정해 주는 그런 사회가 왔다. 그래서 나이 든 분들이 혼란에 빠진다. 아직 충과 효에 빠져나오지 못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나와 다름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나 혼자 거부해 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 더불어 살기 위해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철저히 그네들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살아야 할 때이다. 지금은 개성시대이니까.

2025-03-06

생명이 움트는 3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3월 초순, 봄이 오는 길목이다. 그런데 훈풍에 화사한 꽃비가 내려야 좋을 계절에 영동할매의 심술인지 전국에 강풍을 동반한 차가운 눈비가 내렸다. 강원 영동에는 나흘째 폭설이 내렸고 제주에는 강풍이 불고 있다니 봄의 시작이 스산하다. 경칩에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겠지만 일찍 깬 개구리는 얼어 죽지는 않을까. 예부터 개구리 첫 울음소리에 농사의 길흉과 식복(食福)을 점쳤다고 하는데…. 다음 주에는 맑은 날씨를 회복하여 따뜻한 봄날이 될 것이라고 하니 겨울 가뭄에 바짝 마른 동해안은 그동안 내린 눈이 녹아 산불 염려도 한숨 돌리게 하고 파란 새싹을 움트게 할 것이다. 농촌에서는 밭갈이 나설 테고 옛날에는 임금님이 적전(藉田)에서 직접 농사지으며 선농제도 지냈다지만 올봄의 이 나라는 정부와 국회 모두가 국민의 삶은 뒷전인 듯하다. 각급 학교가 개학을 했다. 초등학교는 올망졸망 귀여운 아동들의 발걸음에 밝은 웃음소리가 가득할 테지만 입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전국 184개 학교로 작년보다 27개교가 증가했고 경북도는 42개교로 잠정 집계되어 전국 최고이다. 거기에다 입학생이 1명만 있는 ‘나 홀로 입학식’을 한 학교도 수십 개가 된다고 하니 출산율 감소와 수도권 집중 및 농어촌 공동화에 따른 지방소멸로 통폐합 또는 ‘줄폐교’가 늘어나고 있음은 나라의 미래를 볼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의대 정원도 해결하지 못한 정부의 고민도 크겠지만 교육체계 전반에 대한 백년대계를 세워야 할 것이다. 국제관계도 걱정이다. 한반도에 동쪽 해양의 저기압과 서쪽 대륙의 고기압이 마주치면 난기류가 형성되고 비바람이 불 듯, 미국의 일방적 관세정책으로 중국 등이 반발하며 글로벌 무역전쟁이라는 암운이 예견되는 가운데 우리는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한다. 미국과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무관세 교역을 하고 있는데 평균 관세가 4배라고 우기고 있으니 큰일이다. 더구나 트럼프의 광물 협정을 젤렌스키가 평화에 대한 의지로 받아들여 종전된다면, 그동안 현대전을 익힌 북한이 우리에게 어떤 도발을 할지도 모르는, 봄도 봄 같지 않은 날을 맞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우리 아파트 정원수들은 벌써 전지(剪枝)를 했다. 시원스레 잘려나간 가지들은 묵묵히 봄을 기다리며 조용하다. 불량 가지, 죽은 가지뿐만 아니라 서로 엇갈리는 가지, 혼자 쭉 뻗은 가지, 밑으로 자란 가지 등을 잘라내니 통풍과 채광이 잘되고 목련꽃 망울도 부풀고 있다. 시골집 배롱나무와 가죽나무도 가지치기하니 그 옆에 있는 매화꽃 망울이 눈을 뜬다. 서울 여의도 정원수들도 전지를 해야할텐데…. 올해 제21회 죽장 고로쇠 축제는 긴 겨울 가뭄으로 수액이 많지 않을지 걱정이다. 그러나 3월 초, 사흘간 열린 울진 대게축제는 6만여 명의 인파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고 14일부터 강구 해파랑공원에서 열리게 되는 영덕 대게축제도 새로 개통된 동해중부선을 타고 오는 봄바람으로 흥청대는 풍성한 먹거리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생명이 움트는 3월, 정녕 봄처녀가 꽃향기 흩날리는 맑은 봄이 오리라.

2025-03-06

젤렌스키에게 배운다

장규열 고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나눈 대화는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대한민국도 이 사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를 놀라고 경계하게 만들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외교적 문제로만 볼 일이 아니다, 우리 입장에서 교훈을 챙기고 대비책을 고민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지원에 전폭적으로 의존하였다. 두 대통령 사이의 대화가 공개되면서 일방의 지원이 언제든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이 분명해졌다. 뜨거운 동맹이라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차가운 현실을 새삼 상기시켰다. 대한민국도 미국과 오랜 동맹관계를 가지지만, 미국이 항상 우리의 입장을 십분 지지해 줄 것이라고 여기는 일은 위험하다. 역사적으로도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과정에서 우리와 충분한 논의없이 독자적인 결정을 내린 사례가 있다. 외교전략을 수립할 때 그들의 지원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다각적인 외교노선을 구축할 필요가 있음이 분명해졌다. 두 지도자의 모습과 대화는 전 세계 미디어를 통해 공개되었고, 우크라이나의 외교적 입지마저 흔들게 되었다. 국가지도자의 언행은 외교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한마디의 실언이 큰 파장을 불러오기도 한다. 국제무대에서의 발언은 전 세계가 듣고 분석하는 메시지가 된다.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신인도를 결정하고 경쟁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 수년간 우리 지도자들이 해외정상들과의 대화에서 예기치 못한 논란을 빚었던 사례도 있다. 국가수반의 언행이 신중해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겪으면서 러시아, 유럽 각국과 미국 사이에서 외교적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동시에 러시아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대통령들의 대화가 외부에 공개되면서, 외교적 입장은 더욱 복잡해졌다. 대한민국 역시 미·중 갈등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경제적 실리도 고려해야 하는 현실이다. 한쪽에 의존하는 외교정책은 위험하다. 젤렌스키와 트럼프의 대화에서 보듯이, 특정 국가에 대한 지나친 신뢰는 언제든 예상치 못한 위험으로 돌아올 수 있다. 대한민국은 독립적이며 자주적인 외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되, 중국, 유럽, 동남아 등 다양한 외교 파트너와 협력을 강화하며, 군사적, 경제적, 기술적 자립도를 강화해야 한다. 국제정치에서 군사적 동맹이 실제 전쟁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목격하였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만, 직접적인 군사개입은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자체적인 방위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독자적인 방위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번 사건을 타산지석 삼아, 외교와 군사정책을 돌아보아야 한다. 맹목적인 신뢰보다는 다각적인 외교전략을 구축하고, 자주적인 국방력과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2025-03-05

줄어드는 아이들, 늘어나는 빈집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급격한 인구 감소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갈수록 떨어지는 출산율과 가속화되는 고령화는 전 세계가 안고 있는 공통적인 고민이다. 세칭 ‘인구 절벽’이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형국. 최근 낮은 출산율과 줄어드는 인구를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비단 농어촌 지역만이 아닌 일부 도시에서까지 초등학교 입학생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기사가 이어졌다. 강화군 삼성초교 등 인천 7곳, 춘천 당림초교 등 강원 21곳, 울산 1곳(울주군 상북초교 소호분교), 경기 1곳(여주 이포초교 하호분교), 익산 용안초교 등 전북 25곳, 여수 돌산초교 등 전남 32곳, 충북 7곳, 충남 16곳 초등학교엔 올해 입학하는 신입생이 1명도 없었다. 그러니, 입학생 없이 학사 일정을 시작할 수밖에. 신입생이 단 1명인 초등학교의 입학식 풍경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홀로 선생님과 만난 어린 학생의 얼굴이 쓸쓸해 보였다. 해마다 이맘때면 북적거리던 전국의 초등학교 입학식 모습은 이제 빛바랜 옛날 사진으로만 남았다. 아이들은 줄어드는 반면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매년 늘어간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5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빈집 수는 2023년 말 기준 153만4919호. 전체 주택 수 1954만6299호의 7.9%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난 2015년과 비교하면 빈집의 수가 43.6%나 늘어났다. “증가하는 빈집은 도심 슬럼화로 이어지고, 범죄 발생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2025년 봄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05

나이 드는 것은 성장하는 것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영화 감상이 취미인 나는 영화를 짧게 편집하며 소개하는 유튜브를 여러 개 구독하고 본다. 더러는 이미 봤던 영화를 회상할 때도 하고, 보지 못했던 영화를 만날 때도 있다. 유튜브에서 그렇게 봤던 영화를 TV로 다시 볼 때도 많다. 20년도 더 전에 책으로 봤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을 그렇게 다시 만났다. 그 당시 워낙 베스트셀러였기에 사 봤던 책이었는데 거의 동시에 영화로 나온 줄은 몰랐다. 책의 저자인 미치 앨봄(Mitch Albom)처럼 나도 일에 미쳐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던가 보다. 미치 앨봄은 미국 브랜다이스대학교의 사회학과 교수인 모리 슈워츠(Morrie Schwartz) 교수의 제자다. 둘의 관계는 제자는 교수를 코치라고 부르고, 교수는 제자의 애칭을 부를 정도로 매우 돈독했다. 미치는 대학 졸업 후 성공한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정신없이 산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나 프로포즈도 못할 정도로 바쁜 일상을 사니 자신에 대한 성찰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그때 우연히 본 유명 TV 프로그램인 ‘나이트라인’에 나온 모리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모리가 루게릭 을 앓고 있으며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미치는 모리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했다는 죄책감 속에 모리를 찾아간다. 16년만에야 다시 만난 교수 모리는 미치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고 눈물로 환영한다. 그 후 화요일마다 인생에 대한 둘만의 수업이 시작된다. 미치는 직장으로부터 해고 위협을 받고, 애인의 결별 선언을 감수하면서도 이 수업을 위해 14주나 비행기를 탄다. 세상, 자기 연민, 후회, 죽음, 가족, 감정, 나이 드는 두려움, 돈, 사랑의 지속, 결혼, 문화, 용서, 완벽한 하루, 작별 인사를 주제로 매주 강연과 토론이 펼쳐진다. 제자 미치가 모리 교수와의 그 수업을 책으로 옮겼고, 모리 교수가 죽은 후 출간되었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책장에서 찾았다. 과연 읽은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까마득하다. 오래전 책이었기 때문일 테지만 40대에서 거의 30년 가까이 지난 70살의 내게 공감되는 내용은 확연히 다르다. 감동과 공감의 포인트가 나이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24시간만 건강해진다면?”이라고 묻는 미치에게 말하는 모리의 완벽한 하루는 이런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롤케이크와 홍차로 아침을 먹고, 수영하고, 친구들과 점심 먹고, 이야기하고 싶어. 그리고 산책하면서 자연을 느끼고 저녁엔 레스토랑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멋진 파트너와 춤을 출 거야. 그리고 집에 와서 깊고 달콤한 잠을 자는 거지.” 죽음에 대한 성찰도 곱씹게 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죽음은 외투 속의 손수건처럼 아주 가까이 있다. 살아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누군가를 용서하고, 배려하고 활발하게 감정을 나누며 인생 최후의 시간을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만든 모리 교수를 배우고 싶다. 가장 가슴에 와서 콱 박히는 말은 이것이다. “나이가 드는 것은 쇠락이 아니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좀 늙었으면 하는 사람은 왜 없는 거지?”

2025-03-05

불면증 벗어날 수 있을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불안, 생활 습관 등으로 인해 교감신경이 과하게 활성화되면서 불면증을 겪는 경우가 많다. 교감신경이 항진되면 몸이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심박수가 증가하고 근육이 경직되며 쉽게 잠들지 못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려면 교감신경을 억제하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약재 중에서는 시호, 황련, 석고, 치자 등이 교감신경의 항진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시호는 간의 기운을 순환시켜 스트레스로 인한 열을 내리고 신경을 안정시키고 황련은 강한 쓴맛을 가지고 있어 심장의 열을 식히고 내리며 신경을 가라앉히는 작용을 한다. 석고는 몸속 열을 내리며 염증을 줄이는 역할을 하며 치자는 스트레스와 분노로 인해 쌓인 화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약재들은 몸의 과도한 긴장을 풀어주고 신경계를 진정시켜 숙면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황련과 치자는 불면증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로 인해 소화 장애가 발생한 경우에도 효과적인 약재들이다. 또 불안감을 해소하는 한약재로는 복령과 복신이 있다. 복령은 이뇨작용을 통해 몸속 노폐물을 배출시키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복신은 복령의 중심부에 있는 부분으로 특히 심장과 관련된 불안을 줄이고 감정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활용하면 불안으로 인해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경우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복령은 위장 기능을 강화하는 작용도 있어서 스트레스성 위장 장애를 동반한 불면증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한약재들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가장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는 방법은 한의원에서 처방을 받아서 복용하는 방법이다. 각자의 체질과 증상에 맞춰 처방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른 수면의 질을 상승 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간단하게는 차로 마시는 것이 가장 쉽고 효과적이다. 시호, 황련, 석고, 치자를 함께 끓여 차로 마시면 교감신경을 안정시키고 몸의 열을 내려줘서 숙면을 돕는 효과를 낸다. 불안이 심하다면 복령과 복신을 추가해서 차로 마시면 더욱 좋다. 한약재를 이용한 차를 마실 때는 너무 뜨겁지 않게 미지근한 상태로 마시는 것이 좋고 자기 전 30분 정도 전에 섭취하면 더욱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생활 습관도 중요하다. 자기 전에는 스마트폰이나 TV 같은 전자기기 사용을 줄이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거나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면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명상이나 심호흡을 통해 신경을 안정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기 전에 따뜻한 차를 마시며 가벼운 독서를 하는 것도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숙면을 유도할 수 있다. 수면 환경을 최적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침실의 온도를 덥지않게 18~22도 사이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이런 방법들을 한약재와 함께 병행하면 자연스럽게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을 맞추고 불안을 해소하여 편안한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꾸준한 관리와 노력이 필요하다.

2025-03-05

화양연화(花樣年華)

배문경 수필가 어둠이 삽시간에 창으로 깊게 들어왔다. 불빛과 노인 가족들의 대화가 교차하며 밤은 깊어 갔다. 이제 퇴근 시간이다. 덜 끝낸 숙제를 남겨둔 것 같은 마음으로 노인이 누운 침대 주위로 가족이 함께 있는 방을 걸어 나왔다. 매일 보는 일이지만 볼 때마다 삶이란 얼마나 가여운 것인지. 앰뷸런스에 실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면서 달리던 그 안에서도 삶과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얼마 전, 꽃진 자리에 눈꽃이 피었다.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자 양로원의 방들은 온도를 높여도 서늘한 바람이 창문 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창밖은 어둠에 휩싸여 있어도 쌓인 눈으로 인해 창백해 보였다. 노인의 몸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가족들이 이 방에서 노인을 중심으로 심각한 대화가 오갔다. 작년에도 유사한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노인은 실오라기 같은 생명줄을 놓지 않았다. 가족들은 임종을 못 본 채 조금은 어정쩡하게 자신들의 생활로 돌아갔다. 그 이듬해가 된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일 수 있다고 가족들은 생각했을까. 그래도 그들은 임종을 못 보는 일이 불효라고 여기는 듯했다. 둘러앉아 의식이 가물가물한 노인 머리맡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호흡을 살피면서 그렇게 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소중한 한 생명이 죽음을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 노인은 고왔다. 젊은 날 동네에서 미인이란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말씀도 나긋나긋 곱게 하셨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혈압을 재고 나면 괜찮으냐는 질문을 하셨다. 혈압수치가 삶의 연장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것인지, 의미 없이 고맙다는 뜻에서 그냥 하시는 말씀인지 헷갈리곤 했다.‘좋습니다.’라고 대답하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서랍에는 작은 앨범이 들어 있었다. 자녀들이 어머니를 위해 놓아둔 사진 서너 장이다. 맑은 가을, 마당에 의자를 내놓고 기와집을 배경으로 부부가 앉았고, 그 뒤를 자녀들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기와집은 제법 기품이 있었고 동네 부녀회장을 하셨다는 할머니는 아름답고 의젓했다. 아니 의기양양했다. 자녀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사진 밖으로 들려오는 듯했다. 식당에서 식탁에 앉아 자신의 숟가락을 들 수 있다면 그것이 삶이었다. 그 숟가락의 무게를 지탱할 힘이 없으면 죽으로 바뀌고 갈아진 음료가 대신 들어가야 했다. 입으로 들어가는 밥은 그냥 밥이 아니라 삶이다. 젊은 시절은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밥숟가락만 봐도 행복하다는 부모의 마음, 그 부모님이 이젠 자신의 입에 들어갈 밥을 떠 넣을 수 없고 삼킬 수가 없다. 점점 희미해지는 숨결이 거칠어지다가 조용해지기를 반복한다. 밥심이 없어서일까? 자녀들의 이야기는 옛 추억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동네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에서는 함께 웃었다.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인 어르신의 초상을 치를 때를 떠올렸다. 그래서 지금의 심정이라는 이야기가 오가는 듯했다. 살아 있는 동안 혈압을 재고 맥박을 확인하며 산소포화도까지 살핀다. 밤새 병실을 오가며 듣는 이야기가 오래전 창호지 밖으로 새어 나오던 부모님의 이야기 같아 내 마음은 아련하게 시골 동네 어귀를 거닌다. 노인이 요양원으로 들어오실 때만 해도 가족들은 모실 여건이 안 되었다고 했다. 자녀들의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부모님을 간병할 사람이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는 부모님을 거의 십 년 정도 수발했다. 결혼하지 않고 우선 부모님을 보살피고 싶었다고 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부모님을 오래도록 모시고 두 분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니 언니는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시력은 안 좋아졌고 몸은 여기저기 아픈 소리를 내 허무해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사람을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 간병에 딸의 인생은 홀연히 부모님의 세월과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부모님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른 자식이란 속담이 없는 이유다. 요양원에 들어가는 일이 유배당하는 것 같아 대부분 노인이 질색한다. 자식의 화양연화 시절을 간병으로 보낸다면 그것이 부모가 바라는 효도일까? 병원을 나서며 어르신께 “내일 또 뵈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오늘 밤도 그녀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화양연화이길 바라며.

2025-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