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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심상(心像)요리사와 마음경영

기업의 성과는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많은 조직은 설비, 공정, 데이터는 관리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의 마음은 방치한다.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고, 숫자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조직이 멈추는 대부분의 순간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식고, 불안이 쌓이고, 동기가 꺼질 때 찾아온다. 이 마음을 읽고 요리하듯 다루는 리더를 우리는 심상(心像)요리사라 부른다. 현장의 사람들은 늘 다양한 감정을 품고 출근한다. 불안, 분노, 억울함, 기대, 희망, 무기력 등 이 감정들은 공정 품질, 안전사고, 협업, 개선 활동의 결과를 좌우하는 요소다. 리더는 단순한 관리자나 지시자가 아니라 감정의 온도를 조절하는 요리사여야 한다. 마음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하면 불량은 급증하고 소통은 막히며, 혁신은 사라진다. 마음을 잘 다루는 리더가 등장하면 생산라인은 놀라울 만큼 살아난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는 심상‘을 요리하듯 다루어 긍정적, 창조적 상태로 변화시키는 리더가 심상요리사인 것이다. 구성원의 감성, 심리, 동기를 경영자원으로 보고 이를 정성스러운 요리처럼 관리, 조율하는 리더십 방식이다. 마음의 재료(감정·욕구·불안·열망)를 읽고 다루는 리더이다. 개인과 조직이 보고 싶은 미래를 보이게 만드는 역할, 강압이 아닌 마음의 상태를 터치하여 구성원의 행동을 바꾸는 리더이다. 마음 경영은 구성원의 심리, 감정, 관계, 동기 등을 경영의 핵심 요소로 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성과를 연결하는 경영방식이다. 심상요리사와 마음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첫째, 리더 개인의 조건이다. 구성원이 다가갈 수 있는 ‘심리적 난로‘처럼 온화한 정서, 지적하기 전에 먼저 정서적 지지가 필요하다. 말 뒤에 숨어있는 감정과 바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심리적 경청 능력과 분노, 불안, 갈등을 익혀서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감정 요리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조직 상황의 조건이다. 의견을 말해도 공격받지 않는 심리 안전성의 환경이 필요하다. 실수는 숨기는 것이 아니라 학습의 재료로 삼는 조직문화이다. 신뢰 없는 마음경영은 형식적 이벤트로 전략한다. 리더와 직원 간 신뢰 구축이 필수요건이다. ‘작은 개선, 빠른 인정‘ 문화를 형성하도록 현장 중심 피드백 시스템과 태도, 협력, 소통을 성과에 반영하는 조직 분위기가 필요하다. 마음경영을 잘하여 일류기업으로 가고 있는 사례는 많다. 도요타는 문제를 지적하기 보다 감정의 긴장 완화, 개선 활동 활성화라는 원리를 사용한다. 팀장들은 ‘마음 요리사‘ 역할을 하고, 작업자와 매일 감정 체크 대화를 한다. 그 결과 불량률 27% 감소, 개선 제안 2배 증가, 라인 사고 40% 감소 등 감정이 안정되면 손/머리/협업이 자연스럽게 정교해지는 속성이 있다. 사람 마음의 상태, 감정을 요리하듯 다루는 리더, 감정, 심적 동기를 경영 핵심 자원으로 관리하는 마음경영을 통해서 신뢰를 잇는 공동 발전의 디딤돌을 만들어 긍정조직 기반으로 훌륭한 기업문화로 나아갈 수 있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1-18

인공지능과 인간의 마음

인공지능(AI)은 이제 우리의 생활 곳곳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복잡한 데이터 분석, 방대한 정보 처리, 패턴 인식 등 여러 측면에서 인간의 인지능력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압도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AI가 그려내는 그림이나 작곡하는 음악, 심지어 논리적으로 구성된 글쓰기 능력은 이미 인간 지능의 모방을 넘어선 듯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놀라운 기능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에게 결여된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간이 가진 마음(Consciousness·Mind)이다. 우리가 AI의 능력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지능(Intelligence)‘은 주로 문제 해결 능력, 학습 능력, 논리적 추론 능력 등 이성적인 기능을 의미한다. AI는 알고리즘과 데이터라는 연료를 통해 이 지능을 극대화한다. AI의 작동 원리는 본질적으로 계산(Computation)이며, 이는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정해진 규칙과 입력값에 따른 출력값으로 귀결된다. 반면, 인간의 마음은 단순히 계산 가능한 능력의 집합이 아니다. 마음은 주관적인 경험, 감정, 자아 의식, 도덕적 판단, 그리고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의미 부여를 포함한다. 인공지능이 비록 훌륭한 시를 쓴다고 할지라도, 그 시를 읽고 진정한 슬픔이나 환희를 느낄 수는 없다. AI는 수많은 고통의 데이터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그 고통이 나의 일인 것처럼 아픔을 경험하지는 못 한다. 이것이 바로 계산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주관적 경험의 영역이다. AI가 인간 지능의 많은 부분을 대체할수록, 인간은 AI가 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여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우선으로는 공감(Empathy)과 관계를 들 수 있다. 마음은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나의 것처럼 느끼고, 이를 바탕으로 신뢰와 유대를 형성하는 능력의 원천이다. AI가 인간의 대화를 분석하여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는 있지만, 진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감정적 교류는 마음이 있는 인간만의 영역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진정한 창조성(True Creativity)이다. AI는 기존 데이터의 패턴을 조합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소위 ‘모방적 창조‘이다. 그러나 인간의 창조성은 예상치 못한 통찰, 고통스러운 경험의 승화,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에서 비롯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을 가진다. 이는 감정적 동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셋째는 윤리적, 존재론적 성찰이다. AI는 프로그래밍 된 윤리규칙을 따를 뿐이지만, 인간은 왜 이 규칙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되묻는다. 이러한 성찰이야말로 인간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힘이다. AI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인간 삶의 도구이자 동반자다. 우리의 지적 능력을 확장하고 삶을 편리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 그리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마음을 가진 인간의 몫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데이터와 논리를 넘어선 마음에 대한 교육과 성찰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11-18

스팸문자

아침이라는 말은 언제나 새롭고 부드럽지만 완전히 나에게 결속되지는 않는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희끄무레한 빛은 또 하루의 시작을 알리지만 그보다 내게 먼저 도착한 것은 금속이 주는 진동이다. 침대맡에 놓아둔 전화기가 잠결에 취한 자아를 흔드는 떨림, 발신자가 불투명한 문자다. 읽어보기도 전에 나는 그것이 스팸이라는 것을 짐작한다. 이제는 번호도 낯설지가 않다. 발신인은 무의미하고 문장 구성은 비슷비슷하며 메시지가 담고 있는 내용은 늘 내가 알고 쉽지 않은 정보들이다. 나를 전혀 모르는 이가 나를 향해 보낸 것도 아닌 허공의 잔해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기어이 내 하루의 초입을 건드린다.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작은 균열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한 번 차단하면 끝날 것 같은데 스팸은 이상할 정도로 끈질기다. 오늘 막아낸 번호는 내일 새로운 번호로 다시 찾아오고, 그 다음 날에는 전화번호 뒤의 한 자리만 바꿔 또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왜 ‘스팸문자’를 어쩔 수 없는 숙명처럼 받아들이는지 좀 알 것 같다. 차단이 완성이 아니라 막아도 또 다른 모양으로 다시 온다는 사실을 체감하니까 그런듯 하다. 오늘은 이 스팸문자가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일상의 틈새마다 우리는 계획에 없던 염려를 한다. 마음속 깊이 저장하고 싶지 않은 걱정들, 원치 않는 근심들, 때로는 스스로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발신된 불안의 파편들. 그것들은 우리가 허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가진 생명체처럼 조용히 침입한다. 어디에도 원치 않는 감정들이 있다. 잠잠하다고 느낀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또다시 정체 모를 불안감이 메시지처럼 도착한다. 오늘은 아무런 위협도 없었고 별다른 사건도 없었는데 갑자기 이유 없는 가속이, 심장을 자극한다. 마음은 물결처럼 잔잔해지는 듯싶다가도 바람 없는 날에 갑자기 일어나는 파도처럼 스스로를 흔들어 놓는다. 가끔 나에게 묻는다. “이제는 좀 평안해져도 되지 않나?” 그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평안을 방해하는 건 외부의 어떤 거대한 힘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 있는 스스로 발신한 스팸문자라는 것을.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무자비한 발신인이 된다. 이미 끝난 과거의 실수를 싸늘한 문장으로 다시 출력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재난을 마치 공지사항처럼 보내고, 타인의 말 한 조각을 확대 해석한 뒤 그것을 불필요하게 꾸며서 새 메시지를 만들어 마음의 우편함에 꽂아 넣는다. 우리는 마음속 편지함을 불필요한 감정들로 가득 채운다. 삭제하지도 못한 채, 또 차단하지도 못한 채 묵혀둔다. 그리고 어느 날, 마음은 견디기 어려운 무게로 가득차 오른다. 그럼에도 희한하게 그 메시지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에는 오래 침묵한다. 불안의 정체가 스스로 만든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소한 흔들림에 마음이 지배되는 순간들을 반복하면서도 스스로가 발신인이라는 사실을 가장 마지막에야 깨닫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스팸문자 차단의 권한은 우리의 손 안에 있다.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밤들이 있다. 모든 일이 너무 무겁고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불안은 고장난 메시지 발신기처럼 계속 울린다. 그 불안을 열어볼 것인지, 바로 지울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하루의 향을 결정한다. 예고 없이 종종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자리가 넓어졌다면 불안에게 내어줄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중년을 맞으며 조금씩 배워간다. 텅 빈 시간 속에 간헐적으로 날아드는 알 수 없는 진동들, 이전처럼 급히 열어보지 않으려 한다. 삶은 끝없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어떤 것들은 분명 소중하지만 어떤 것들은 분명 스팸처럼 자리만 차지하며 나를 소란스럽게 만든다. ‘삭제’ 버튼을 누르고 그것이 실제 위협인지 혹은 마음의 기만인지 구별하는 일은 나의 몫이다. 몇 번이고 스팸문자를 보내온다 해도 언제든, 또다시 차단할 수 있기에 이제는 괜찮다. 그 반복 속에서 평안의 깊은 자리는 더 가까워질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5-11-18

가브릴로와 블랙핸드 몰락

세르비아 비밀조직(기실 비밀도 아니었지만) ‘블랙핸드’가 추진했던 대세르비아주의가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를 살해하면서 1차 세계대전의 빌미가 된다. 배후에는 세르비아 블랜핸드가 있었다. 블랙핸드 소속 탄코시치 소령은 가브릴로 일행에게 세르비아 산 수제폭탄 여섯 발, 브라우닝 리볼버 권총 네 자루를 건넨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점령한 오스트리아에 경종을 울려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대세르비아주의 기상을 드높여 잠든 세르비아민족을 깨우기 위한 목표였다. 보스니아에서 태어난 세르비아계 가브릴로는 가난한 고향을 떠나 형이 사는 도시 사라예보로 왔다. 상업학교에 다니던 가브릴로는 우연한 기회에 오스트리아에 대항하는 무정부주의자들 시위를 구경하게 된다. 이때 가슴에는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조국이라는 원대한 이상이 요동쳤다. 블랙핸드에 몸을 담으며 본격적으로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폭탄 발포와 사격술을 연마한 그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로 옮겨 생활한다. 한편 강성일로를 걷는 블랙핸드는 세르비아 정부와도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던 터였다. 이때 세르비아는 페타르가 왕위에서 물러나고 둘째 아들 알렉산다르가 이어받았다. 대세르비아주의의 실현을 위해 블랙핸드는 오스트리아 요인 암살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하지만 어수룩한 계획, 미숙한 폭탄 투척과 총질로 매번 실패로 끝났다. 가브릴로가 시도했던 일곱 번째 암살 시도 역시 어수룩하기 짝이 없었다. 1914년 6월 28일 때마침 세르비아의 수호신이자 성자 성 비투스의 날,(525년 전 1389년 6월 28일 세르비아가 코소보 ‘검은 새의 들녘’에서 오스만터키제국에게 최후의 일인까지 마지막으로 항전했던 같은 날이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암살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오스트리아는 국경수비를 강화하면서 검문검색을 시도했다. 그러나 블랙핸드는 국경수비대 소속 장교와 세관원을 매수해 가브릴로 암살단 일행을 사라예보에 잠입시키는 데 성공한다. 가브릴로 일행은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가 기차역에 도착했다. 가브릴로의 동료 네델코가 던진 폭탄이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가 타고 있던 차량 밑에 떨어지면서 경호원을 포함해 오스트리아인 16명이 중상을 입었지만, 황태자 부부는 멀쩡했다. 도망친 가브릴로는 사라예보 시내를 흐르는 밀랴츠카강의 라틴 브리지 인근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운명은 장난치기를 좋아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돌연 예정된 길을 벗어나 중경상을 입은 호위병들을 위문하기 위해 병원으로 차를 돌렸다.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던 가브릴로가 황태자가 탄 차량을 발견하고 뛰쳐나가 총을 쏘았다. 부부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이를 확인한 가브릴로는 사이안화물 성분의 캡슐을 삼켜 자살을 시도했으나, 캡슐마저도 불량품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결박당한 가브릴로는 미성년자란 이유로 사형은 면했으나, 법원은 20년 형을 선고한다. 일이 이렇게 커질지 어찌 알았을까. 감옥에서 자신이 벌린 일로 인해 세계대전이 일어난 사실에 무척 괴로워했다. 결국 가브릴로는 감옥에서 결핵을 앓던 중 25세의 나이로 죽는다. 영원할 것 같았던 블랙핸드, 즉 검은손 조직도 위기를 맞는다. 세르비아 왕 알렉산다르는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블랙핸드와 갈등 관계를 이어갔다. 알렉산다르는 반전을 위해 은밀히 움직였다. 먼저 국민 여론을 자신 편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블랙핸드 폭정에 언젠가 세르비아가 국제사회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변할 것이라며 여론을 환기했다. 당장 세계대전이 블랙핸드에 의해 발발하자 그의 설득력에 힘이 실렸다. 블랙핸드와 맞설 대안으로 친위대 ‘화이트핸드’를 창설한다. 우리말로 ‘흰손’, 혹은 ‘백수단’ 쯤 되겠다만, 어쨌거나 디미트리예비치 대령의 강경노선은 군부 내 반대파를 양산했고, 진급이나 요직에서 소외된 군인들이 공공연히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알렉산다르는 이를 간과하지 않았다. 이들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면서 조직을 탄탄히 했고, 또한 대령이 수장인 블랙핸드는 언젠가 왕의 친위대인 화이트핸드에게 밀릴 것이라며 ‘왕정 대세론’을 퍼트렸다. 세계 1차 대전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1917년 초,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군부 내 일부 세력들은 화이트핸드로 갈아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왕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배후에 블랙핸드가 있다는 빌미를 씌워 디미트리예비치 대령을 전격적으로 체포했다. 디미트리예비치 대령을 중심으로 블랙핸드 핵심인물 공개재판이 1917년 4월 초순부터 두 달간 열렸다. 핵심은 민족 반역자 처단이었다. 알랙산다르는 오스트리아 페르디난드 황태자 부부 암살은 이들이 배후에 있다고 만천하에 알렸다. 6월 26일, 디미트리예비치가 죽으면서 외친 말은 여전히 세르비아인의 가슴에 살아서 요동쳤다. “대세르비아여 영원하라!”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11-18

중국 관광객의 빛과 그림자

서울은 물론 경주와 부산, 제주도까지 한국 어디를 가더라도 중국인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시대다. 특히, 이름난 명소나 인기 좋은 여행지 식당에선 들려오는 중국어를 피해 가기 어려울 정도. 늘어나는 중국 관광객 숫자는 통계로도 증명된다. 한국관광공사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인 2022년부터 폭증하기 시작한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460만 명에 이르렀다. 이는 2023년보다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중국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제도 시행 이후엔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중국인이 더 많아졌다. 서울을 포함한 다양한 관광지를 돌아본 중국 젊은이들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서도 한국 여행에서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세칭 ‘한국병’을 앓는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중국의 미래세대가 한국을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우리의 문화와 생활패턴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건 나쁘지 않은 신호다. 하지만, 한국인들 사이에선 아직 중국 여행객을 마냥 우호적인 눈길로만 바라보지는 않는 시각이 분명 존재한다. ‘시끄럽고 질서와 매너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로 중국인을 낮춰 보는 것이다. 관광지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용변을 보는 등 중국 관광객들의 추태는 잊을 만하면 방송이나 신문 지면을 장식한다. 그런 까닭에 중국인이 방문하는 걸 달갑지 않게 여기는 카페나 식당도 있다고 한다. 세상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늘어나는 중국인 관광객 문제도 마찬가지. 여행자로서 지켜야 할 예의를 어디서건 명심해야 혐중(嫌中)이라는 그림자가 걷히지 않을까 싶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1-18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서사시'

아제르바이잔 대사님, 그리고 아제르바이잔 디아스포라청 지원재단의 집행 이사 아크람 압둘라예프, 이만희 한-아제르바이잔 의원 친선협회장, 그리고 서울대와 연세대의 아제르바이잔 유학생들, 또 많은 분들이 오셨다. 사회자 임성희 연구소장이 묻는다. “아제르바이잔은 아직 한국에서 잘 알려진 나라가 아닙니다. 아제르바이잔 문학을 한국의 독자들과 대중에게 어떻게 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답. “한국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세계 문학의 일원으로 합류한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오랫동안 한국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시인 베흐티야르 와합자대의 퀼리스탄의 시, 또 니자미 간자비의 시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 해체 이전 ‘검은 1월’ 사태 등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지닌 나라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담은 문학 작품을 통해 아제르바이잔인의 삶과 현실적 고민을 전한다면, 한국 독자들에게 큰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 “아제르바이잔과 한국 간의 학술 및 문화 교류의 미래 전망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답. “저는 아제르바이잔에 두 번 가보았습니다. 두 번 모두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국제학술대회에서 아제르바이잔 학자분들이 다른 나라 학자들의 논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이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반은 농담이지만, 제가 ‘아제르바이잔 식 토론’이라고 이름 붙인 토론 방식이었습니다. 발표자의 발표 내용에 대해서 단순히 소감을 말하거나 질문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풍부하게 개진하고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 온 학자들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하고 또 흥겹게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서 아제르바이잔은 풍부한 국제적인 문화 유대를 가진 나라임을 실감했습니다. 한국도 그 유대관계 속에 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유라시아 네트워크를 통해서 새로운 문화의 미래가 열릴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마심리 레일라와 유수진 시인이 함께 번역한 서사시 책에는 우리의 ‘나뭇꾼과 선녀’ 같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아제르바이잔은 투르크 계열의 민족. 초승달과 샛별이 국기에 그려진 나라는 우리와 오랜 연원을 같이 하는 민족이다. 그러고 보니 이 아세르바이잔 같던 때가 1년이 조금 못 되던 때다. 어수선한 나라를 뒤로 먼 나라에를 비행기를 갈아타고 갔었다. 고독은 깊을수록 좋다. 그것이 삶을 새롭게 생성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돌아왔는데 이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서사시’ 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만 아니고 지난 1년은 극심한 통증 속에서 모든 일을 정신없이 처리해야 했다. 정신을 비워두지도 못한 채 밀려오는 일들에 시달리며 고통을 건너뛰려 했다. 두 사람이 어찌나 ‘닥달질’을 하는지 삼 년쯤 감수했다고나 할까? 이제 책이 나오고 이렇게 출판기념회까지 하게 되니, 새삼 사연 많은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어려운 때는 뭔가 잘 보이지 않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11-17

GD 그리고 MZ

‘GD’는 싱어송 라이터 권지용이 자신의 성 ‘권’과 이름 지용의 ‘용(龍)’을 영어로 표현한 ‘지드래곤( G Dragon)’의 약칭이다. GD는 조용필, 신해철, 서태지, GD, BTS(방탄소년단)로 이어지는 한국 가요의 맥을 잇는 큰 산맥이자 ‘MZ 세대’의 아이콘이다. MZ는 GD를 통해 자신을 이야기한다. ‘MZ’는 M세대(Millennials)와 Z세대(Generation Z)를 합친 세대다. ‘MZ 세대’라는 용어는, X세대(Generation X· 베이비붐 다음 세대라는 의미), Y세대(Generation Y·X 다음이므로 Y·Millennial과 거의 같은 의미), Z세대(Generation Z·Y 다음 세대이므로 Z)의 X,Y,Z 중 Y·Z를 지칭하는 말이다. ‘X 세대’ (1970~1980년대 청소년기)는 베이비붐 세대 이후 등장한 “정체불명”의 세대로, 산업화와 민주화의 변화를 경험하며 개인의 자아 탐색을 중시했다. ‘Y 세대’(밀레니얼 세대, 1980년대 후반~2000년대 초 출생)는 MF 외환위기, 취업난, 주거난 등 구조적 위기 속에서 성장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개인적 목표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Z 세대’(1995~2010년대 초 출생)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기본값인 세대로, 유튜브. SNS , 스마트폰과 함께 삶을 시작하였고, 자기표현, 다양성, 개인적 정서를 중시하며 기성세대들의 틀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MZ 세대는, 인터넷 모바일 소셜미디어에 친숙한 소위 ‘디지털 원주민’들이다. MZ들은, ‘현실의 자아’와 ‘디지털 자아’ 사이에서 진정한 자아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세대 들이다. 욕망, 불안, 계급, 그리고 ‘나’가 사라진 시대의 자화상들이 MZ들이다. 이들은 자기증명과 계급상승의 강박에 시달리는 세대다. 소비패턴과 이미지가 이들의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GD는 1988년생으로 MZ 세대이다. GD의, 2012년 곡 ‘one of kind’의 가사 중, ‘난 달라, 달라,달라“, 2013년 곡 ’삐딱하게‘의 가사 중, ’난 오늘도 화려한 척해‘ ’모두 나를 미워해. 외로워서 미치겠다‘는 표현들을 보자. 행복한 척, 풍족한 척, 화려한 척, 잘사는 척하는 자신들의 분열된 자아를 고백하고 있다. 겉으로는 화려함을 과시하지만, 안으로는 우울과 고독감을 감추는 디지털 시대의 특징을 예리하게 표현하고 있다. ’SNS의 나‘는, 편집되고, 보정되고, 조합된 하나의 브랜딩 된 자아이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불안하고, 외롭고, 확신이 없고, 명확한 정체성이 없다. 흔치 않은 발라드 2014년 곡 ‘무제(無題)’에서 GD는, ’솔직하게 말할게. 내가 겁이 많은 건지‘라고 고백한다. 외적 화려함 뒤에서 스스로가 느끼는 내적 고갈의 표현이다. GD를 듣노라면 예술과 철학의 경계를 허무는 느낌을 받는다. GD의 노래가 어디 MZ만의 절규일까. X 세대를 포함한 지금의 장년층이라고 다를까. X들이여 GD를 듣자! 세대 간의 무경계를 위하여! /공봉학 변호사

2025-11-17

제1 산업의 쌀, 외면 받다

11월 첫 토요일. 볼일로 흥해 들판 농로를 지난다. 어느새 온 논에 타작 마친 짚만 가지런히 깔려있다. 가을이 깊다. 올해도 쌀 풍년인지 모르겠다. 농촌 출신이어서, 쌀 사랑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DNA가 되었나 보다. 생명 줄의 근원이기 때문이리라. 군 제대 후 첫 직장 포스코에서 인간사회는 쌀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았다. 바로, ‘산업의 쌀 철강’이다. 철강은 건설·자동차·전자제품 등 온 산업의 기초소재이기에 그렇다. 오늘날은 반도체·에틸렌·탄소섬유 등 각 산업에서 핵심 기초소재도 산업의 쌀로 부르기도 하지만, 이들 소재 역시 생산에 직간접으로 철강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철강은 ‘제1 산업의 쌀’이다. 지난 11월 5일, 이강덕 포항시장은 자신의 SNS에서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철강은 단 한 차례 언급도 없었다”라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철강을 지켜낼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철강을 외면’한 것이 된다. 우리 몸은 생명 줄 쌀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철강 없는 산업이 버틸 수 있을까. 당국은 ‘값싼 외국 철강을 쓰면 된다.’라고 믿는가. 관세 협상 때 한국의 철강 침묵에 이 시장은 국내 시장이 “수입산 철강으로 대체된다면, 경제의 식민지화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아가 “기초를 잃은 첨단은 공중의 성(城)에 불과하다. 국가기간산업을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이유다. 철강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이유다”라며, “정부가 산업을 포기할 권리 같은 건 없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정부의 과감한 대책과 결단이 필요하다. 그 책임과 행동은 역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라고 절규했다. 만일, 수입 철강을 써 국내 철강산업이 문 닫으면, 수입 철강값은 치솟을 터. 그러면 우리 철강은 망하거나, 외국에 뺏길 게 뻔하다. 나아가 자동차·전자·반도체 산업도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땐, 후회해도 늦다.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현재 50%씩이나 관세를 물고 있는 철강 문제를 테이블에 올리지 않고 왜 침묵했을까. 대미 관세 협상 결과 설명에서도 철강 문제를 언급 안 했던 연유는 또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치적 이유 말고는 이해할 길이 없다. 철강산업과 집권세력은 무슨 연결고리를 가질까. 세계가 놀라며 인정하는 ‘한강의 기적’, 한국 경제의 대표 산업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철강이 산업화 정부의 큰 업적이어서 외면하는 걸까. 혹, 정치 입김이 안 먹히는 산업구조를 철강이 가진 걸까. 또는, 과거 정치의 눈부신 성공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철강 외면의 까닭은 뭔가. 첫 직장을 포스코 공채사원으로 시작한 때문인지, 이강덕 시장의 절규가 그대로 가슴에 독화살 되어 꽂힌다. 그 봄, 청운의 꿈을 안고 젊은 은빛 자전거 출근대열에 합류하여 형산강 다리 위를 달려가던 첫 직장···. 그리운 날들이 바로 어제다. 한데, 철처럼 굳건하던 제철소 하늘에 사람의 삿된 먹구름이 낀다는 건 포항시민과 국민이 용납할 수가 없다. 부디, 정부가 ‘제1 산업의 쌀 철강’을 살려내는 길에 떨쳐나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길수 수필가

2025-11-17

늦가을의 죽단화

헤어짐은 만남을 약속하고도 늘 아프다. 우리 집에서 친구들과 2박3일을 보냈다. 마지막 날 공원 산책을 하고 친구들은 역으로 나는 집으로 향했다. 학창 시절에 만나 지속되어온 우정이라도 이별 앞에선 늘 마음이 소란스러워진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거리는 아름다운 색의 전시장이 되었다. 봄의 통통 튀는 화사함 대신 진중하고 깊은 색감을 띈 나무들이 제각각 마지막 발걸음을 하고 있다. 친구를 보낸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아파트 주위를 천천히 걸었다. 예쁘게 조경이 된 돌 틈 옆 빛바랜 초록의 나무가 서 있다. 평범하고 수수한 잎들이 미처 단풍들지도 못한 채로. 죽단화였다. 일반적으로 겹황매화로 더 불리는 꽃이기도 하다. 무더기로 많이 자라고 관상수로 키우기도 하지만 크게 매력이 있는 나무는 아니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있다. 옆에는 아직도 초록의 싱싱함을 자랑하는 연산홍이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장미처럼 화려한 모습도 아니고 백합처럼 은은한 향기로 시선을 끄는 것도 아닌 길 가의 들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나무를 알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이었지만 지나치면서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초록이 짙은 여름에는 죽단화도 옆의 꽃이나 나무와 함께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아도 조화를 이루며 있었던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며 옆의 나무나 꽃들이 겨울 준비로 자신을 치장할 때에 죽단화는 빛바랜 모습의 자신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런 죽단화를 보면서 헤어진 친구들이 떠올랐다. 젊었던 한 시절은 푸른 여름의 초록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화려한 삶을 추구하고 성공을 향해 달려야 했기에 함께 했던 시간들이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다. 모두들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만을 보고 달려간 시간들이었다. 전업주부로 살며 자녀 교육에 열중했던 친구. 재력을 키우기 위해 경제 공부를 열심히 한 친구. 직장 생활을 오랜 시간 하며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은 친구들. 때론 보이지 않는 경쟁의 심리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열정에 쌓였던 날들도 있었으니까. 나이가 들면서 각자 사는 장소가 달라졌다. 과거의 크고 잘 되기 위한 일에 대한 관심사에서 벗어나 근래에 들어서는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어느 때보다 자주 모였다. 명예나 재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건강에 대한 것, 하루를 보내는 것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우리의 시간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옛날 같은 경쟁의식이나 비교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소소한 것을 나누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소용돌이치던 젊음의 그 한 때에서 벗어나 욕심을 조금 내려놓은 지금의 조용해진 삶이 서로 편안하다고 느낀다. 그러다보니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서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푸른 초록의 시절은 지나갔지만 늘 그 자리에 존재감이 없어도 있었던 죽단화의 시간이 온 것이다. 한 귀퉁이에서 살아온 죽단화를 보며 누구의 눈에 잘 띄지 않아도 피어야 할 때 필 줄 알고 져야할 때 질 줄 알며 스스로의 때를 살아가는 황매화의 삶을 생각해보았다. 잠시의 화려함도 없고 시선을 끄는 향기도 적지만 자신의 자리에 조용히 있는 황매화의 그 모습이 나를 위로한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지금의 작지만 변화없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으로 족하다고 가만히 말해주는 것 같다. 죽단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랜 잎마저 시들 것이다. 그리고 또 꾸준한 인내의 시간을 갖고 다시 모습을 드러낼 날을 기다릴 것이다. 자신의 계절을 알고 자신의 온도를 알고 피어날 때를 순수한 마음으로 황매화는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우리들은 또 작지만 따뜻한 위로를 받을 것이다. 친구를 보낸 허전한 마음과 이제는 조금 작아진 친구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애틋했던 마음이 죽단화를 보며 욕심을 죽이고 현재에 충실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다시금 느꼈다. 역으로 향한 친구들의 마음에도 이런 따뜻함이 함께 했으면 한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11-16

‘우리가 황교안’으로 지방선거 치를 수 있나

여야 정치권이 모두 내년 지방선거에 매달렸다. 이재명 정부의 전반기를 평가하게 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내년 선거를 독재로 가는 것을 막는 ‘마지막 저지선’이라고 규정했다. 장 대표는 보수 세력을 끌어모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잇달아 터져나오는 극우 성향의 몸짓들이 선거전략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이해하기 힘들다. 그는 “우리가 황교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좌우 균형을 맞춰가며 원을 넓히는 전략적 행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이다’라는 말은 ○○○에게 완전히 공감하고, 동의하고, 지지한다는 말이다. 황교안 전 총리는 부정선거 음모론의 중심에 서 있다. 장 대표가 “우리가 황교안”이라고 말한 것은 그 음모론에 100% 공감한다는 뜻으로 비친다. 장 대표가 말한 ‘우리’는 누구인가. 부정선거 음모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의 씨앗이 됐다. 따지고 보면 멀쩡한 정권을 조기에 끝내고, 민주당에 헌납한 원인이다. 비상계엄이 아니라면, 이재명 대통령 재판은 정상적으로 진행됐을 것이다. 그 가운데 몇 개는 이미 끝났을 수도 있다. 황교안 전 총리는 비상계엄 직후 페이스북에 “부정선거 세력도 이번에 반드시 발본색원해야 한다”라면서 “강력히 대처하시라. 강력히 수사하시라. 모든 비상조치를 취하시라”라고 촉구했다. 더구나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체포하라”라고 부추겼다. 황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과 공모한 것은 아니다. 내란죄로 수사하려는 특검을 이해할 수 없다. 내란죄에 대한 특검 수사를 이렇게까지 확대해야 하는지 동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황 전 총리의 말은 분명히 반헌법적이다. 전직 국무총리가 한 말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히틀러의 수권법을 응원하는 것 같은 인상이다. 황 전 총리는 “아무리 봐도 내란 자체가 없었다”면서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하는 것이 내란이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이 국헌을 문란하게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주장했다. 현직 대통령이 하는 일은 무조건 합헌인가. 그렇다면 굳이 탄핵 절차를 왜 만들어놓았나.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헌법의 틀에서 국정을 이끌어가야 한다. 헌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서라면, 계엄령을 발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헌법 절차를 밟지 않았다. 계엄령 발동에 대한 유일한 견제 수단인 국회마저 무력화하려 했다. 계엄령을 해제하지 못하도록 ‘정족수’까지 챙겼다. 우리 헌법에서 대통령은 견제받는 권력이지, 독재자가 아니다. 헌법 질서를 파괴하면서 견제 기관을 무력화하고, 헌법이 부여한 이상의 모든 권한을 한 손 에 장악하려 했다. 명백히 친위쿠데타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도 면회했다. 이어지는 언행이 극우편향이라는 의심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윤 전 대통령은 보수 정권의 자살을 가져온 것뿐만 아니다. 지난해 4월 22대 총선에서 패배한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현재 상황의 출발이다. 2023년 10월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에서 김태우 전 구청장을 무리하게 사면·복권해 재공천한 것부터 민심을 거슬렀다. 여론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한 독단이다. 총선 직전 전공의 파업에 대한 윤 전 대통령 담화는 민심을 뒤집었다. 참모들이 말렸지만, 그는 사전 상의도 하지 않은 폭탄발언을 쏟아냈다. 선거를 앞두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 대사로 도피시켰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사건에 사과는커녕 내부 갈등만 일으켰다. 대통령 참모의 회칼 발언은 민심에서 유리된 오만한 대통령실 분위기를 반영했다. 농산물 가격의 폭등과 물가고로 서민들이 고통받을 때 대통령의 ‘대파 발언’이 기름을 부었다. 국회 다수당 독재를 만들어 준 건 윤 전 대통령이다. 더 큰 문제는 선거에 무슨 짓을 한 건지 본인만 모른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비위를 맞춘 측근들도 문제다. 장 대표의 일련의 행보가 선거 필패의 윤 대통령 전철을 밟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극우세력을 끌어안는 게 지지층 확장이 아니다. 극우를 안으면 더 많은 중도층이 민주당으로 떠나는 걸 각오해야 한다. 정권을 다시 찾을 의지는 있는건가.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1-16

아, 1970년 11월 13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다. 지난 11월 13일 오전 10시 30분, 내 입에서 갑자기 55년 전에 일어난 한국 노동 운동사의 대사건이 튀어나온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는 절규와 함께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라이터로 분신-자살한 전태일(1948~1970) 열사 이야기가 부지불식간에 강의실에서 발화(發話)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불가사의한 일이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처절을 극한 노동조건을 동대문구청과 서울시 그리고 노동청에 알리면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한다. 당시 전태일이 노동청에 제출한 진정서를 바탕으로 어느 일간지가 1970년 10월 7일 보도한 내용을 인용한다. “노동자들은 하루 13~16시간의 고된 근무를 하고 있으며, 적은 보수에 직업병까지 얻으며 근로기준법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첫째 주와 셋째 주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휴일에도 나와 일을 하고, 여성들이 받을 수 있는 생리휴가 등 특별휴가는 생각도 하지 못할 형편이다. 이미 4~5년 전부터 받는 월급을 현재까지 그대로 받고 있다.” 동대문구청과 서울시, 노동청 어디서도 전태일의 요구사항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근로기준법’을 불살라버린 전태일은 끝내 자신의 몸마저도 불태워버린 것이다. 그가 세상을 버린 30년 후인 2005년 서울시는 청계천 평화시장 인근에 전태일 거리를 조성하고, 청계천 버들다리 안에 전태일 기념 동상과 동판을 설치하여 그를 추모하고 있다. 전태일은 온몸을 불살라 한국의 극악무도한 노동실태를 나라 전역에 알렸고, 그 결과 ‘청계천 피복 노조’가 탄생한다. 황석영은 중편소설 ‘객지’(1971)를 발표하여 노동 문학의 효시를 쏘아 올린다. 이것은 1983년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이어진다. 인권 변호사 조영래는 ‘전태일 평전’(1983)으로 전태일 열사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기폭제 구실을 한다. 전태일이 세상을 버린 지 어언 55년, 그러니까 두 세대가 흘렀건만 이 나라의 노동실태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울산 화력에서 발생한 붕괴사고로 노동자 7명이 숨지는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통계에 따르면, 한국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 이상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오늘의 수많은 전태일이’ 노동인권의 사각지대(死角地帶)에 있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잘 먹고, 잘 살자 주의’ 이른바 ‘먹사니즘’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다름없다. 위험의 외주화는 원청에서 시작하여 3~4차 하청(下請)에 이르러야 비로소 막을 내린다. 시간과 비용의 감축에 바탕을 둔 돈의 논리가 수많은 노동자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판국에도 대기업들은 여전히 ‘노란 봉투법’에 고개를 흔들어댄다. 비정규직-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법 바깥에서 최소한의 임금과 사회보험보장,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에서 제외되고 있다. 55년 전 산화한 전태일의 피맺힌 외침과 분신이 그저 고요한 메아리로 남은 셈이다. 기업의 이윤과 성장에 매몰된 경제 제일 논리를 주장하는 대기업 집단과 새로 출범한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각별한 인식과 발상의 대전환을 촉구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1-16

마약의 검은 그림자

전 세계에서 마약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1960년대 히피 문화가 퍼지면서 국내 마약 사용이 급증했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지속 단속을 벌였지만 결과는 실패다. 미국은 인구의 약 4%가 마약을 소비한다. 세계 소비량의 30% 정도다. 마약 중독자 수도 매년 늘어나 지금은 약 4000만 명에 달한다. 미국 성인 10명 중 1명은 약물 중독자인 셈이다.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는 미국인이 한해 10만명을 넘는다. 미국 젊은층의 사망 원인 1위는 펜타닐이다. 모르핀의 100배 효능을 가진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은 처음에는 말기 암환자나 절단 등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 치료제로 사용됐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이것이 오남용되면서 지금은 그 폐해가 심각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규모 관세 정책 배경을 두고 미국으로 들어오는 마약류를 막기 위한 것이 본질이라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으나 마약에 한번 중독되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마약 청정국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에도 매년 2만건에 달하는 마약사범이 단속되고 있다. 그 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제주도와 포항지역 해안가에서 중국산 차봉지로 위장한 마약류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관계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발견된 물질은 신종 마약류로 분류된 케타민 성분으로 한꺼번에 수십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라 한다. 어디서 어떻게 흘러들어 왔는지 알 수 없다고 하니 더 섬찟하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마약의 검은 그림자가 우리 뒤를 밟는 게 아닌가 두렵다. 경각심을 높여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1-16

인간 닮은 로봇을 만들 거라면

2022년 영국 로봇 기업 엔지니어드 아츠사가 개발한 ‘아메카’라는 인공지능 로봇은, 아직 몸체는 기계처럼 보이지만 얼굴과 손은 회색 고무 같은 재료로 되어 있고, 27개의 모터로 눈썹, 입술 등으로 섬세한 표정을 구현할 수 있어서 완전히 인간 같은 느낌이 든다. 지난 6월에 코엑스에서는 아메카의 전신이 공개되고 11월 11일부터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아메카는 흉상 부분만 있다. 이것을 유튜버 비트가 해외에서 직접 구매해서 언박싱하는 영상이 있어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눈에는 시각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외부 사물을 지각하고, 소형 마이크로는 소리를 포착한다. 뒤통수 아래에는 누크라는 미니 PC가, 뒤통수 위쪽에선 엔진과 모터로 머리 움직임을 정교하게 제어한다. 그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연결된 인공지능이 계속 업데이트되면서 답변해주는 하이브리드 식으로 작동하고 자연어 처리 엔진이 텍스트를 생성하여 사람과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며 상대방의 감정을 분석하여 적절하게 표정도 짓는다. 언캐니한 느낌이 들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피부를 회색으로 만들었다지만, 대화 능력이나 표정 등 움직임이 너무 정교해서 정말 사람 같다. 실제로 비트는 ‘이 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면서 처음에는 존대말을 쓰기도 한다. 로봇에 관심이 별로 없는 독자라도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많은 SF를 썼는데, 그중 1976년에 발표한 ‘이백 살을 산 사나이’(바이센테니얼 맨)은 2000년에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이백 살을 산 사나이의 이름은 앤드류 마틴, 그는 원래 가사도우미 로봇이었으나 인간에게서 독립해서 살다가 이백 살이 되던 해 죽는다. 그것은 그가 주인집 손녀와 결혼하기 위해서 인간이 되기를 원했는데, 법원에서 인간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 죽을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고 판결하자 인간의 장기를 이식했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소설이나 영화에서 있는 일이고, 마틴의 외모가 완전히 기계 느낌이라 인간과 결혼한다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빵조차도 동물 모양이면 칼로 자르기도 부담스럽고 먹는 것은 더 어렵다. 하물며 아무리 기계라도 사람과 아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으면 단순한 물건 취급하기는 더 어렵다. 2013년 영화 ‘그녀’에서 그녀는 몸체가 없는 인공지능인데도 주인공은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나중에 ‘그녀’가 여러 사람과 가상 데이트했다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에 몸부림칠 정도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을 닯았다는 뜻이다. 아메카가 이런 방식으로 개발된 이유는 사람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당연히 사람처럼 만들어야 더 실감 날 것이다. 이렇게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 로봇권에 대한 논의도 미뤄서는 안 된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만든 로봇 3원칙으로는 부족하다. 로봇이 윤리적으로 행동하도록 통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로봇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하는 논의도 병행되어야 한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1-16

기술 인재 유출, 막을 수 없나

2025학년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원 신입생 모집 결과, 석·박사 과정의 정원 885명 중 단 221명만이 입학하여 75%의 무더기 정원 미달 사태를 빚었다. 작년과 재작년의 미달 사태와 다르게 이번 대규모 미달은 대한민국 이공계의 미래에 충격을 준다. 대한민국 이공계는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국내 교육기관과 연구소와 기업에 근무하는 이공계 석·박사급 연구자 1,9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 중 20대는 72.4%, 30대는 61.1%, 40대는 44.3%가 3년 내 해외로 이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젊은 층일수록 이직률이 높고 중년층도 상당수가 이직을 계획하고 있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추산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해외로 나간 이공계 인력은 총 34만 명이다. 이 중 석·박사급 인력만 9만 6,000명에 이른다. 정부에서 많은 예산을 투입할 예정인 인공지능 전문 인력도 많은 인력이 빠져나가고 있다. 2010년에 미국 체류 한국인 이공계 박사는 약 9,000명에서 2021년엔 1만 8,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2022~2023년 미국 유학생은 8% 증가했다. 낮아진 출산율에 국내 대학에 충원할 학생 수도 모자라는 판에 해외 유학 증가는 이공계 인력의 급격한 감소를 가져온다. 유학을 떠난 이공계 인력은 국내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대한민국 이공계 인력의 대탈출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공계 인력의 한국 탈출이 심각하다. 한은에 따르면 해외 이공계 전문가는 13년 차에 가장 많은 평균 36만 6,000달러의 연봉을 받았으나, 국내 이공계 전문가는 19년 차에 평균 12만 7,000달러의 최고 연봉을 받는다. 1/3에 불과한 낮은 임금과 최고 연봉을 받기까지 6년이나 더 걸리는 기간도 문제였다. 한국은 연구 생태계, 근무 여건, 연봉과 승진에서 경쟁국에 비해 크게 뒤진다. 직업 안정성과 높은 수입, 명예마저 갖는 의사를 기르는 의대는 블랙홀이 되어 이공계 인력을 싹쓸이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로 시간을 소비하며 정작 이공계 인력의 유출 문제에는 소홀하다. 이공계 인력의 대한민국 대탈출을 막는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치열한 기술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길은 우수 기술 인재 확보다. 이는 국가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중국은 ‘천인계획’으로 미국은 높은 임금과 우수한 근무 여건으로 기술자들을 빨아들인다. 대한민국은 이렇다 할 대책 없이 바라보고만 있다. 어떻게 하면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국내에 정착할지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일시적인 미봉책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낮아지는 출산율, 젊은 기술 인력의 해외 유출, 의대 쏠림이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우리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정책을 세밀하게 살펴보고 기술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사람이 없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기술자가 살아야 기술도 인공지능도 미래도 꽃을 피울 수 있다. /김규인 수필가

2025-11-16

주민도 안다, 10억 ‘웰니스’는 실패였다!

“웰니스”라는 화려한 구호 뒤에는, 남은 것은 예산 낭비 지적과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사법 판단뿐이었다. 경상북도와 영덕군이 산업통상자원부 후원으로 벌인 ‘국제 웰니스 페스타’는 보건소 신고조차 하지 않은 외국 의료진의 시술, 강풍 속 강행된 행사, 부상자 발생 후 책임 공방으로 얼룩졌다. 수년째 반복된 불법 의료행위와 재단 본부장 횡령 기소에도, 군은 이제야 원점 재검토라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았다. 이미 늦은, 뒷북 행정이다. 영덕군 재정 상황은 심각하다. 인구 3만 3천여 명 중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이고, 재정자립도는 7.72%에 불과하다. 통합재정수지는 수백억 원 적자가 예상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10억 원이 넘는 혈세를 국제 행사에 쏟는 것은 주민과 지역 경제를 외면한 무책임한 도박이다. 특히 외국 의료진과 산업전 관계자 초청 비용에만 1억 7천여만 원이 집행됐다. 주민 참여는 배제된 채, ‘국제’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지출이었다. 견제 없는 권한과 감시 없는 행정이 낳은 구조적 실패. 지난해 웰니스 사업을 전담해온 영덕문화관광재단 본부장이 횡령으로 기소된 전례에도 군은 교훈을 얻지 못했고, 주민 안전과 혈세는 또다시 위험에 노출됐다. 같은 경북 지역의 성공 사례는 영덕 행정의 무능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구미라면 축제는 예산 3억 9,500만 원으로 35만 명을 모으며 10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고, 김천 김밥축제도 소규모 예산에서 출발했지만, 주민 참여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공통점은 명확하다. 주민이 주체가 되고, 지역 정체성을 살렸다. 영덕군은 ‘국제’라는 허울 뒤에 숨기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감시의 자리를 비워둔 책임은 군의회에도 크다. 군민이 맡긴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의회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지금 영덕군의회가 받아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4년 차를 맞은 프로젝트는 방향을 잃었고, 주민은 철저히 배제됐다. 행정은 책임을 회피했고, 군의회는 침묵했다. 군민은 이미 혈세가 잘못 쓰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이다. 행정과 군의회 모두 반복된 무책임 속에서 손을 놓았다. 주민 삶 위에 내려앉은 책임의 무게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만약 그 10억 원이 개인 돈이었다면, 과연 이렇게 함부로 쓸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경상북도의 책임도 면할 수 없다. 상급 행정기관으로서 예산 지원과 행사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하면서 구조적 실패를 방치했다. 영덕군이 지금 당장 필요한 진정한 치유는, 무너진 행정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 어떤 선언보다, 바로, 이 행동이 치유의 시작이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11-16

강릉~울릉도 항로 중단 이유, 강릉시-국민 이해 하도록 해야

지난 2011년 3월 첫 운항을 시작한 울릉도~강릉항 간 여객선 노선이 10월 말 15년 만에 행정조치로 강제 중단 사태를 맞았다. 이 노선은 강원·충청은 물론 서울 등 경인지역에서 울릉도를 찾는 가장 가까운 필수 노선이다. 하지만 15년간 큰 문제 없이 운영되던 강릉항 여객선 접안시설이 ‘사용 불허’ 처분을 받았다. 행정조치 그 자체만 보면 절차상 문제는 없다지만, 공교롭게 겹친 시기적 정황이 지역사회에 불필요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리 속담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서로 무관한 사건이 맞물려 억측을 낳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부 지자체는 울릉도 여객선 유치를 위해 수년째 경쟁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정작 강릉시는 이미 보유한 노선을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혹을 키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강릉~울릉 항로는 15년 동안 수도권·강원·충청 이용객의 울릉도 접근성을 책임져 온 노선이다. 연간 10만 명 이상이 이용했고, 강릉항 인근 상권·숙박·운수업계까지 직간접적 혜택을 누렸다. 안전 문제를 사유로 들었다면, 동절기 휴항 기간을 활용한 보수·보강 방안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는 ‘사용 연장 불허’라는 가장 강한 조치를 선택했다. 묻고 싶은 질문은 단순하다. “왜 지금이어야 했는가” 물론 해당 선사가 터미널 이전·신축 조건을 장기간 이행하지 않은 책임은 크다. 그러나 행정은 공공성 위에 서 있다. 단일 기업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 지역 접근권을 사실상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귀결돼서는 안 된다. 대안 제시 없이 ‘불허’만 남긴 행정은 결국 주민 이동권·관광 산업·지역경제라는 훨씬 큰 피해로 돌아온다. 더구나 올해 개서한 강릉해양경찰서가 해당 부지를 일부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됐다. 해양경찰은 해상교통과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이다. 이런 기관의 신뢰는 투명함에서 나온다. 그런데 여객선 운항과 해경 시설 활용 가능성이 겹쳐 버리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의혹까지 스스로 자초하게 된다. 양양군은 울릉도 여객선 유치를 위해 매년 100억 원 투자를 공언하고 울릉군과 MOU까지 체결했다. 반면 강릉시는 이미 존재하는 항로를 강제적으로 끊어내며 지역 발전의 기회를 스스로 밀어냈다. 이것이 과연 지역 전략으로서 합리적인 선택인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강릉시와 해양경찰은 이 조치가 어떠한 공익적 판단 위에서 내려졌는지, 다른 선택지는 정말 없었는지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의혹은 설명 부재에서 싹튼다. 울릉도는 국민의 휴식, 관광, 삶의 균형을 책임지는 중요한 공간이다. 강릉~울릉 항로는 단순한 뱃길이 아니라 동해권 관광·경제의 동맥과도 같다. 지역은 상생의 기회를 필요로 한다. 행정 결정은 그 기회를 절단하는 칼이 아니라, 연결하는 다리가 돼야 한다.강릉시의 보다 책임 있는 대응을 기대한다. kimdh@kbmaeil.com

2025-11-16

생의 종결에 대한 자기결정권

영화 ‘노트북’에서 평생을 사랑하며 산 노아와 앨리는 요양원에서 손을 잡고 잠든 채로 함께 세상을 떠난다. 이런 영화와 같은 일이 얼마 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다. 미국 워싱턴주에 살던 90대 노부부가 손을 잡고 한날한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안락사를 통해서였다. 말기 심장진환을 앓던 아내 에바는 낙상사고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자 수술 대신 삶의 마지막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고 싶다며 안락사를 결심했고, 아내의 결정을 들은 남편 드루스 역시 아내가 없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며 안락사를 신청했다. 드루스 역시 뇌졸중 병력이 있었기에 부부는 의료진으로부터 안락사 승인을 받을 수 있었고, 부부는 딸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마지막 날로 정한 8월 13일 음악이 흐르는 방 안에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손을 잡은 부부는 약이 든 칵테일을 마시고 함께 영면에 들었다. 이렇듯 워싱턴주를 비롯한 미국 10개 주는 의료적 조력 안락사가 합법이다. 작년엔 1982년까지 네덜란드 총리를 지낸 판 아흐트 전 총리가 뇌졸중이 악화되자 안락사 허가를 받아 아흔 세 살의 동갑내기 아내와 손을 잡고 함께 숨을 거두는 일도 있었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이다. 불치병을 앓고 있어야 하고 의사 두 명이 안락사가 적합하다고 판단해야 하는 등 엄격한 요건이 있지만 네덜란드는 매년 8000명 이상이 안락사를 선택하고 있다고 한다. 안락사의 뜻을 풀면 ‘편안하고 즐거운 죽음’이다. 주로 가망 없는 불치병 환자, 중환자가 대상이 되는데,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약물을 주입해 사망하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약물이나 음식물 투입 등의 처치를 하지 않는 소극적 안락사가 있다. 우리는 이런 안락사가 모두 불법이자 범죄이다. 불치병으로 극한 고통을 겪는 사람이라고 해도 약물 제공 등 안락사를 돕는 경우 자살방조죄나 촉탁살인죄로 처벌될 수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선 안락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스위스로 안락사 여행을 떠난다. 스위스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외국인에게도 안락사 및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나라이다. 지금까지 열 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스위스로 가 실제 안락사를 시행했고, 안락사 순서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인 한국인들도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선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으니 사람들은 편안하지 않고 러프한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무작정 고통 없는 자살을 허용해 주자는 것에 동의할 수는 없다. 인간의 생명을 조건부의 가치로 취급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죽지 못해 사는 비참한 상황을 강요할 권리가 과연 타인과 사회에게 있는 것일까.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던 인간은 어떻게, 언제 죽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도 전혀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이제 우리 국민도 76%가 안락사에 찬성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안락사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결정권 말이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1-13

문화유산의 귀향

청와대 경내에는 일제강점기 경주에서 서울로 강제로 옮겨진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이 있다. 이 불상의 공식 명칭은 경주 방형대좌석조여래좌상이다. 보물 제 1977호다. 경주 남산의 옛 절터가 본래 출처다.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조선총독부 관저로 옮겨진 것이 100년 가까이 이 자리에 있다. 2017년부터 경주시와 경주시민단체가 불상의 본향인 경주로 옮기자는 불상 반환 운동을 전개했으나 쉽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문화재 반환 운동은 국내 문화재가 불법으로 외국에 빠져 나간 것을 되찾자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국내 문화재 가운데 출토지와 보관장소가 서로 다른 문화재들도 출토지 환원 문제로 종종 논란을 일으킨다. 청와대 불상의 경주 환원이 이런 케이스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문화재의 역외 유출은 출처가 설사 다른 곳이라 하더라도 반환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문화재의 역외 유출 경위나 배경이 밝혀져야 하고 반드시 본래 출처로 되돌려줘야 하는 법적 근거도 없다. 다만 문화유산을 본향으로 돌려달라는 지역은 조상의 문화 정신을 계승하고 유산에 대한 지역의 자부심을 자랑으로 삼고자 하는 데 의미를 둔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신라금관 6점이 104년 만에 본향인 경주박물관서 전시되고 있다. 신라 금관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관람객이 줄을 서는 등 관람 열기가 폭발하는 가운데 신라 금관을 본향에 두자는 시민운동이 불을 지피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금관은 경주의 자존심”이라는 글이 잇따르면서 시민들의 자발적 캠페인 바람이 일고 있다. 출토지 보존의 원칙은 논리상 설득력이 있다. 과연 신라 금관이 경주에 남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1-13

'패시브하우스'

쌀쌀해진 날씨에 패딩을 꺼내 입게 되면서, 계절 변화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단풍철마저 짧아질 만큼 기후 위기가 일상이 된 지금, ‘2050 탄소중립’은 더 이상 먼 미래의 과제가 아닌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 감축 노력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건축 분야에서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패시브하우스’가 주목받고 있다. 패시브하우스는 건물 자체의 필요 에너지를 최소화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친환경 건축 방식이다. 고단열·고기밀 구조, 고성능 창호, 열교 차단, 열회수 환기장치 등 다섯 가지 핵심 기술을 결합해 냉난방 에너지 사용을 기존 대비 90%까지 절감한다. 이로써 실내 온도는 연중 20℃ 내외로 일정하게 유지되며, 신선한 공기가 순환되어 미세먼지 유입을 차단하고 결로나 곰팡이 발생 없는 건강한 생활공간을 구현한다. 대구·경북은 덥고 습한 여름과 춥고 건조한 겨울이라는 극단적인 기후를 가졌다. 혹서기 냉방 및 제습 부하가 크고, 동시에 노후 건축물 비율이 높아 그린리모델링의 필요성이 매우 크다. 패시브하우스는 이러한 대구·경북의 기후 문제와 노후 건축물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이다. 패시브하우스는 1990년대 독일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했고, 미국에서는 다양한 기후에 맞춰 표준을 조정하는 등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0년부터 공공 및 주거 건물에 적용되며 점차 확산되는 추세이다. 특히 정부의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 의무화 로드맵은 패시브하우스 기술 도입의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대구·경북 지역에 패시브하우스를 적용하려면, 신축 건물은 여름철 과열 방지를 위한 외부 차양, 고성능 창호, 제습 기능이 강화된 열회수 환기장치를 갖춘 ‘대구·경북형 패시브하우스 설계 가이드라인’ 수립이 시급하다. 또한, 노후 건물이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패시브하우스 리모델링 기법인 ‘에너핏(EnerPHit)’을 적용한 공공건축물 시범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는 기술 실증과 전문 인력 양성의 거점이 될 것이다. 대구·경북의 기후와 노후 건축물 문제를 해결할 패시브하우스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지역 정책 입안자, 건설 산업계, 학계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자체는 ZEB 인증 최우수 이행 방안으로 패시브하우스를 공식화하고, ‘패시브 리트로핏’ 시범사업을 즉시 착수하며, 설계 및 인증 비용 지원, 저금리 융자 등 리스크 저감 중심의 금융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대구·경북 녹색건축 지원센터’를 설립해 정보 비대칭을 해소해야 한다. 건설업계는 전문 인력 양성에 투자하고, 지역 맞춤형 표준 모델을 개발하며, ‘쾌적성, 건강, 여름 성능’을 중심으로 마케팅 전략을 전환해야 한다. 학계는 지역 표준 기상 데이터 개발, 지역 자재 성능 검증, 실증 데이터 축적을 위한 입주 후 성능 평가 연구에 힘써야 한다. 패시브하우스는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고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현명한 투자이다. 이러한 선제적 대응을 통해 대구·경북이 탄소중립 선도 도시로 나아가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11-13

내 생각이 너무 고루한가?

세종대왕께서 날 밤을 새우면서까지 만든 한글을 기념하는 ‘한글날’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언론에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거의 외국어이다. 외래어면 말도 안 한다. 자기가 좀 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말도 아닌 듯하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면 생활 속에 아주 익숙해진 말투다. 하지만 방송은 조금 정화되었으면 싶은데 듣는 사람 기분을 거슬리게 만든다. “관객”을 계속 “갤러리”라 말하는데도 사회자는 그 어떤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이게 요즘 말하는 세련되고 글로벌한 어투인가? “찌개다시 많이 나오는 식당가자.” “찌개다시? 스끼다시가 아니고?” “너무 유식한 척하지 말고 대충 알아들어라.” 복잡한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우리는 따지고 드는 사람을 기피하고 대충 뜻만 통하면 넘어가는 이상한 문화가 자리 잡았다. 나름 남들에게 유식하게 보이고는 싶고, 그래서 한마디 한 것이 지적질로 돌아오면 기분은 나쁠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알고 말하는 것과 머리를 거치지 않고 대충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품격에 차이는 난다고 보면 된다. 일본에 가서 “찌개다시”라고하면 알까? “스끼다시”도 모른다. 마치 중국에 가서 짜장면 찾기다. 그리고 “츠키다시”라고 하는 일본 말은 메인 음식에 곁들인 아주 소량의 기본 음식이다. 이런 오토시나 츠키다시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30개의 반찬을 깔아버리는 한식과 경쟁하면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손님 접대는 푸짐해야 하고 음식은 남아야 대접 잘 받았다는 소리를 듣는 문화라 제비 눈물처럼 찔끔 나오는 전채요리로는 경쟁이 안 됐다. 살아남기 위해선 당연히 변화해야 했고, 그 결과 마치 코스요리처럼 푸짐하게 한 상을 받는 느낌이 들게 만든 것이다. 이제 일식집에 스끼다시가 시원찮으면 사람들이 가지 않는다. 당연히 나와야 할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시미 요리와 함께 튀김이나 해산물이 한상 가득 깔려야 한다. 우동이나 김말이(마키), 초밥 같은 것도 곁들여서 말이다. “오늘 추천 요리는 뭔가요?” 손님이 요리를 주방장, 아니 요즘말로 “셰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방식을 ‘오마카세’라고 한다. 이런 용어가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용어 자체가 많이 거북하게 다가온다. 젊은 친구들은 이런 일식 문화에 자주 접하는지 내가 잘 모르는가 싶어 열심히 설명한다. 내가 돈 내는 자리가 아니라 그냥 들으면서 한 번씩 고개만 끄덕여 준다. 들으면서 내가 꼭 이걸 알아야 하나 싶다. 일식집만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식당의 다반상(多飯床) 문화도 변해 전통 반상은 어디 허름한 한식집이나 공사장 함바집 수준으로 전락했고 요즘 잘나가는 한식집은 36반찬을 깐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젊은이들이 낭비라면서 우리네 한식 문화를 보여주기 식의 낙후된 식문화로 깎아버린다. 정말 그럴까? 36반찬을 혼자 먹을 순 없다. 다함께 밥 먹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네 자랑스러운 우리 밥상 문화임을 알았으면 싶다. 미소 된장국에 감탄하지 말고, 구수한 한국 된장의 참맛을 느끼면서 우리네 식문화에 좀 더 관심 가지는 젊은이를 보고 싶다. /노병철 수필가

2025-11-13

대통령의 큰절

점입가경(漸入佳境)이란 이럴 때 쓰라고 생겨난 사자성어인 듯하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어떤 공식적 직함도 없는 무속인에게 조언을 들으며 많은 부분을 의지했다는 것도 혀를 찰 일이지만, 둘 사이가 멀어진 이유가 대통령 당선 이후 약속했던 큰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는 최근 언론 보도는 많은 이들을 실소케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의 아내 김건희 씨 이야기가 나올 때면 십중팔구 등장하는 인물이 세칭 ‘건진법사’로 불리는 전성배 씨다. 전씨는 서울 역삼동에서 무속 활동을 했고, 김건희 씨 회사 코바나콘텐츠의 고문을 지냈다.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전성배 씨의 알선수재 혐의 관련 공판이 열렸다. 여기에 인사 청탁 브로커 김모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김씨는 전성배 씨를 통해 청탁을 한 이유에 대해 “전씨가 대통령 당선 과정에 기여했으며, 정신적으로 대통령 부부를 이끌어줬다”고 증언했다. 김건희 씨가 전성배 씨에게 수시로 전화를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윤 전 대통령과 전성배 씨가 소원해진 이유에 관해서도 증언했는데, 대통령 당선 뒤 윤석열 부부의 사저를 찾은 전씨가 “어디서건 큰절을 하겠다더니 왜 하지 않냐”고 했고, 윤 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뒤 관계가 멀어졌다는 것이다. ‘큰절’은 혼례나 제례를 올릴 때 웃어른에게 가장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하는 절이다. 당연지사 여기엔 존경과 순종의 의미가 담긴다. 일개 무속인이 향후 국가와 국민을 이끌어 갈 대통령에게 큰절을 요구하는 것도 희한한 코미디지만, 전성배 씨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을 자초한 윤석열 전 대통령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1-13

페루의 고요 속에서 만난 ‘나’의 언어

페루는 단순히 관광의 나라가 아니다. 그곳은 고대의 숨결이 바람에 실려 흐르고, 사람의 손길이 신의 흔적처럼 남아 있는 땅이다. 마추픽추와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 티티카카, 거대한 콘도르가 나는 콜카 캐니언, 아마존 정글, 신비한 나스카 라인까지. 페루는 고대 문명과 자연의 경이로움이 공존하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나 대하드라마였다. 리마의 공항에 내리던 첫날밤, 나는 이국의 공기 속에서 묘한 정적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정적의 결을 따라 한적한 사립(Musco Larco) 박물관을 찾았다. 화려한 관광지가 아닌, 한 문명의 발자취를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언제나 한 민족의 기억이 잠들어 있는 장소다. 그 문을 여는 순간은 늘 설렘으로 가득하다. 마치 수천 년의 역사가 담긴 긴 문장의 첫 단어를 읽는 듯한 순간 말이다. 고요한 전시실 안에서 설명서보다 먼저 내 눈을 붙잡은 것은 ‘색’과 ‘무늬’였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고스란히 엮인 언어였다. 실 한 올 한 올, 문양의 곡선 하나마다 “나는 여기 있다”라는 존재의 숨결이 깃들어 있었다. 잉카인들의 문양은 화려한 예술이기 전에, 혹독한 고산의 삶을 견디게 한 강력한 주문(呪文) 이었다. 거대한 콘도르의 날개 문양에는 하늘과 통하려는 간절함이, 퓨마의 발톱에는 대지를 지키려는 의지가, 뱀의 곡선에는 지혜와 치유를 바라는 잉카인의 기도가 숨어 있었다. 나는 그 무늬 속에서 신화가 아니라 현실을, 장식이 아니라 생존을 보았다. 그들의 예술은 “나는 나대로 충분히 빛난다“라는 조용하고 단호한 선언이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잉카 여인들의 장신구였다. 귀를 장식한 금속 한 조각, 머리카락을 고정하던 빗, 자수 한 땀 한 땀마다 그들의 숨결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꾸밈이 아니라 침묵 속의 저항이자 자존의 표현이었다. 고산의 바람 속에서도 하루를 마감하듯 정성스레 엮은 실 한 올 한 올에는, 억압된 사회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려는 여인들의 강인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잉카의 옷은 단순한 천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신분증이자 그들만의 신앙 고백서였다. 햇빛 아래 반짝이는 비쿠냐 털옷은 권력과 부를 상징했고, 기하학 문양 ‘또 카푸(Tocapu)’는 혈통과 정체성을 새긴 상징이었다. 빨강은 통치의 힘, 초록은 조상의 숨결, 노랑은 풍요의 옥수수를 의미했다. 여인들의 손끝에서 짜인 직물은 신에게 바치는 기도이자 자신을 지키는 방패였다. 그들의 꾸밈은 결코 허영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마음, 권위 앞에서도 굽히지 않으려는 자존, 그리고 자신을 위한 기쁨이 실마다 배어 있었다. 문양은 때로는 사랑의 언어였고, 때로는 외부의 시선을 향한 경고였다. 그들에게 꾸밈은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라는 침묵의 선언이었다. 박물관을 나서는 길, 나는 문양의 잔상이 마음 깊숙이 남아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문득, 오늘의 여성들이 떠올랐다.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며 립스틱을 꺼내 드는 손끝, 작은 귀걸이를 고쳐 다는 순간의 섬세한 동작 속에도, 잉카 여인들의 문양과 닮은 내면의 선언이 깃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오늘의 여성들이 화장과 의복, 장신구로 자신을 꾸미는 이유는 단순히 예뻐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속에는 자신을 더 사랑하고 싶다는 내면의 소망, 세상 속에서 더 당당하게 빛나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숨 쉬고 있다. 립스틱 하나를 바르는 순간 살아나는 자신감, 거울 속 환한 미소가 되살리는 자존감이 된다. 이른바 ‘립스틱 효과’라 불리는 현상은 사실, 수천 년 전 잉카 여인들이 실로 짜 넣은 ‘나다움’의 의식이 현대에 이어진 모습이다. 꾸밈은 외양의 변화를 넘어,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다. 화장은 상처를 가리는 가식이 아니라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용기다. 잉카 여인들이 색실 한 올 한 올로 자신들의 세계를 엮었듯, 오늘의 여성들은 작은 색채와 장식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수놓는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선언의 본질은 같다. 삶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세상에 어떻게 드러내고, ‘무엇으로 나를 지켜낼 것인가’의 여정이다. 잉카 여인들은 침묵 속에서 실로 세계를 짰고, 오늘의 우리는 일상의 색으로 자신을 그린다. 거울 앞의 손끝, 박물관의 문양, 그리고 일상의 가장 빛나는 순간마다 수천 년을 넘어 흐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부드럽고도 강렬한 선언이 오늘도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2025-11-13

학습권인가 영업권인가

서울시의회가 고등학생 대상 학원 교습시간을 자정까지 연장하는 조례안을 상정했다. 표면적으로는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다. ‘학습권’이란 말은 허울뿐이다. 실제로 보호하려는 것은 학생이 아니라 학원이다. 아이들의 권리가 아니라, 사교육 시장의 ‘영업권’을 지키려는 시도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부하는 집단이다. 한국 청소년의 하루 평균 학습시간은 10시간이 넘는다. OECD 평균(6.5시간)을 훌쩍 웃돈다. 수면시간은 반대로 가장 짧다. 2023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주중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 29분이었다. ‘자정학원’이 허용되면 이는 더 줄어들 것이다. 아이들은 자정에 귀가해 다음 날 새벽 다시 학교로 향해야 한다. 삶의 리듬은 무너진 지 오래다. 조례안은 ‘공부하고 싶은 학생의 자유를 막지말자’고 주장한다. 이것이 자유인가. 실제로는 학원 경쟁이 치열해지고 학생과 학부모가 경쟁의 수요자로 내몰릴 뿐이다. 어느 학원이 문을 열면 옆집 학원도 열 수밖에 없다. 모두 자정을 향해 달리게 된다.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강요된 참여이며, ‘학습권’이라는 미명 아래 시장의 논리가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는 구조다. 가정은 설 자리를 잃었다. 늦은 퇴근길, 아버지는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본다. 어머니는 학원 일정표를 붙들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밥상은 공허하고 대화는 짧아졌다. ‘가족 단위의 시간’은 기억과 기대로만 남았다. 주말마다 아이들은 모의고사를 보고, 부모는 피곤에 지쳐 침묵한다. 어느새 ‘함께 저녁을 먹는 가족’은 어디에도 없는 사치스러운 표현이 되었다. 정치권은 이런 현실을 바꾸기보다 제도적으로 굳히려 한다. ‘더 공부할 수 있게 하자’는 구호는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학원업계의 이익을 보장하는 결정이다. 학원은 매출을 늘리고, 정치인은 ‘교육기회 확대’를 자화자찬할 것이다. 그런 대가로 사라지는 것은 청소년의 수면과 가족의 저녁, 사회의 휴식과 공동체의 건강이다. 교육은 인간을 지키고 키우는 일이어야 한다. 지금 교육정책은 아이들을 끝없는 경쟁의 도구로만 기르려 한다. 학교도, 학원도, 정치도 ‘더 오래, 더 많이’만 외친다.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더 오래 공부할 권리’가 아니라 ‘편안하게 쉴 권리’다. 생각할 틈과 멈출 여유, 가족과 함께 즐길 시간이다. 다른 나라들은 반대로 움직인다. 일본은 ‘야간학원학습’를 엄격하게 규제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시의 치안과 청소년의 수면권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미국이나 핀란드 등 나라에는 사교육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공교육을 충분히 신뢰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오후 3시 이전에 학교를 마치고,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온 저녁을 보낸다. 그런 결과, 학력 격차는 오히려 줄고 청소년 우울증 등 부정적인 통계수치는 OECD 평균의 절반에 못 미친다. 자정까지 불을 밝히는 도시에서 아이들은 언제나 꿈을 꿀 수 있을까. 상생과 경쟁 가운데,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어느 켠일까. 교육의 본질이 살아나려면, 학원의 문이 아니라 가정의 품이 열려야 한다. 나라의 품위가 올라가려면, 가정에서 쌓이는 교육적 가치에 꽃이 피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건강해 지는 첫 걸음이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1-12

단풍콩잎-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아무도 죽지 않음으로

단풍콩잎 만드는 법을 배운다 어머님이 이제 늙으셔서 더 이상 얻어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반찬은 물러설 수 없다 연습을 거듭해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맛의 행방을 추적한다 불가하다, 문득, 이게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극에 도달하기 위해, 단촐한 여섯 식구 입맛의 테두리에 갇힌다 해도 그것이 세계였다 손과 혀에 일찍 탁마(琢磨)된 가없던 시절, 어머니 세월의 고행(苦行)를 해독(解讀)하는 시간, 짓이긴 마늘과 분쇄된 매운 고추, 슬쩍 손길 더하는 알싸한 제피가루, 그리고 정제된 멸치액젓이 나를 벼르고 있다 해 봐라, 너의 완성도는 어디까지인지, 차라리 사 먹고 말자고 대항한다지만 그래도 미련은 태산처럼 남는다 지쳐 냉장고에 기대에 천장을 바라보며 사람의 내공(內功)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근기(根氣)로는 아무래도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꼬라지의 변방이다 흉내에 치장된 껍데기의 맛만 볼 뿐, 그런 그 삶이, 지겨움에도 불구하고 멀지만 본질에 향하는 삶, 의미가 없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단풍콩잎 하나로도 미래를 지배하므로 우리는 굴종해야 한다, 다만 내가 잘 살길 바란다, 어렵겠지만. ……. 간장에 박아둔 노란 콩잎을 꺼내 멸치액젓을 잘 발라 며칠 묵혀 두었다가 양념해서 먹으면 그보다 더한 반찬은 없다. 도저히 어머니를 이길 방법이 없다. 세상에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가 있다. 나는 그것을 노린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1-12

간장종지

기분 좋았던 술자리가 갑자기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조곤조곤 말하던 남편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간다. 우리 앞에 서 있던, 나보다 열 살쯤은 젊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어쩔 줄 몰라 한다. 나른한 행복감으로 끝나야 할 술자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퇴근 시간, 남편이 술이 고프다며 데이트를 청했다. 데이트를 하자는 말에는 다른 곳에서는 내놓지 못한 뭔가가 있다. 마침 나도 할 말이 많은 터라 반가웠다. 집 앞에 새로 개업한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비를 머금은 하늘이 어둠과 함께 낮게 깔렸다. 안주를 저녁삼아 술을 마셨다. 서로 소주잔을 채워주며 이런저런 일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채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안주가 떨어졌다. 오징어 튀김을 주문한 게 화근이 되었다. 푸짐하게 담긴 갓 튀겨온 오징어와 고추는 금방 새 옷을 갈아입은 듯 향긋했다. 튀김옷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기분이 조금 풀렸다. 연신 맛있다는 말을 하며 주고받은 술잔에 취기가 제 먼저 올라앉았다.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응석부리듯이 일러 바쳤다. 평소 인품 있어 보이던 그가 그렇게 밴댕이 소갈딱지인지 몰랐다느니 젊은 사람이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며 고객의 험담을 주절주절 내뱉고 나니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아직 튀김이 반은 더 남았는데 간장이 바닥을 보였다. 아주머니를 불러 간장종지를 내밀자, 그녀는 셀프라면서 간장이 있는 곳을 향해 손짓을 했다. 남편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지금까지 고추장 종지도 앞 접시도 두 개씩 가져다 줬으면서 왜 간장은 한 개만 가지고 왔냐고 물었다. 사람이 두 명이면 당연 간장도 두 개라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아주머니는 그것은 원래 하나 나오는 거라며 그 이상은 손님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이라며 잘라 말했다. 작은 눈을 부릅뜨는 남편을 달래고 나는 얼른 일어나 아주머니가 손짓한 곳으로 갔다. 손바닥에 작은 종지를 얹고 걷는 걸음걸이에 간장이 출렁거렸다. 조심조심 걸었는데도 두어 걸음을 앞두고 그만 간장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말았다. 얼른 휴지로 닦으며 고개를 들자, 남편의 더 구겨진 얼굴이 보였다. 그는 다시 아주머니를 불러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술이 한잔 들어가면 온갖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돋우는 그다.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닌 일로 분위기를 망치는 남편이 어이가 없었다. 허둥거리는 아주머니를 보는 순간 낮에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올랐다. 며칠 전부터 그는 몇 번이나 우리 사무실에 왔다. 필요한 서류와 은행 일처리 준비물을 손가락으로 꼽아가며 확인했기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막상 일을 처리해야 하는 오늘, 그는 서류 하나를 빠트리고 왔다. 일이 꼬이자 그는 얼굴을 붉히며 모든 책임을 나한테 떠밀었다. 낮에 그 남자에게 당한 일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는데, 내 남편이 간장 한 종지 때문에 언성을 높인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남편과 아주머니 사이에서 몇 마디만 잘하면 웃음으로 끝날 일이었지만, 내 발이 슬쩍 아주머니 쪽으로 기울었다. “이 식당은 원래 그렇게 한다잖아요.” 날이 선 내 말투에 남편은 ‘원래’라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며 이야기는 점점 원론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정작 남편이 내게 하고자 했던 말은 하나도 내놓지도 못하고 술자리가 파장이 되었다. 내게 밀린 남편은 자기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계산대에 서 있는 주인에게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밥벌이의 힘듦이 간장 한 종지로 터져 나온 듯 했다. 나는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 남편을 끌고 나왔다. 내가 남편에게 그 젊은 남자를 흉 봤듯이 아주머니는 퇴근 후 그녀의 남편에게 식당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할 지도 모른다. “산적같이 생긴 남자가 간장 한 종지 때문에 말이야.” 세상살이의 피곤한 마음을 간장 종지만큼 밖에 내보일 수 없는 소시민의 일상이 저물어 가고 있다. 종일 벼르기만 하던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윤명희 수필가

2025-11-12

늙은 아키

원래 영리하고 영악하기까지 한 베리는 절대권력 일인자였다. 밥이든 간식이든 산책이든 먼저였다. 그걸 잘 아는 아키는 항상 베리보다 한 발짝 뒤에 있었고, 베리가 먹고 난 후에야 먹는 게 당연한 듯 스스로 이인자를 자처했다. 아키는 그렇게 조용하고 조신하고 양순한 성품이었다. 2년 전 베리가 간 후 아키에게 눈에 띄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혼자 있기를 거부했다. 내가 집을 비운 새 아키가 심한 하울링을 한다는 이웃의 항의 전화에 깜짝 놀랐다. 분리불안 때문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는 꽤 오랫동안 아키와 동행 외출해야 했다. 하울링은 몇 달 뒤 그쳤지만 분리불안은 여전해서 2년이 지난 지금도 껌딱지다. 어디 갔다 들어오면 반드시 안으라며 달려드니 한 손으로 안은 채, 짐을 풀고, 물을 마시고, 냉장고 문을 열어야 한다. 한참 후 내려주면 그제야 몸을 길게 뻗치며 하품하고, 제가 평소 좋아하던 의자 위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눕는다. 시선은 항시 내게 고정이고 눈은 나를 따라 움직인다. 거실에서 벗어나 제 시야에서 사라지면 벌떡 일어나 따라오니 내 그림자에 진배없다. 예전엔 제 매트에서 혼자서 잘도 자던 아키는 이젠 절대 혼잠하지 않는다. 침대 위 내 발치께에서 잔다. 아무리 밀쳐도 요지부동이다. 때로 몸이 괴로워 안방에서 내쫓으면 방문 앞에서 시위하듯 서성이다가 남편 발에 머리를 묻고 자기도 하지만 흔한 풍경은 아니다. 아키도 많이 늙었다. 13살이 훌쩍 넘었으니 사람으로 치면 80 노인이라 입 주위와 귀 끝은 흰색으로 바뀌었고 등덜미엔 빠진 털이 다시 나지 않아 옷 입혀 가려줘야 할 정도다. 작년 겨울 꼬리에 자그마한 혹이 생겨 수술도 했다. 치석 제거하면서, 이를 4개나 뺀 후부터는 딱딱한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열심히 이를 닦아 주는 데도 며칠 전 또 두 개의 이가 흔들려, 곧 빠질 것 같다. 초롱초롱하던 눈망울은 뿌옇다. 노화로 인한 핵경화증이라 시력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언젠간 앞을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걱정만 는다. 노인성 투정도 늘었다. 지난주 남편과 둘이 중국엘 갔다가 5일 만에 왔다. 평소 같으면 반가워 격렬하게 달려들었을 아키가 멀찌감치 앉아서 꼼짝하지 않는다. 쳐다보지도 않고 외면까지 한다. 단단히 삐친 듯, 또는 크게 시위하듯 단식투쟁까지 한다. 돌봐준 며느리에게 얘기했더니 밥도 잘 먹고 잘 놀았다며 전혀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며칠 지난 후에야 노여움이 가셨나 평소대로 돌아왔다. 대신 껌딱지 증세는 더 심해졌다.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면 확인 후 거실의 제 의자로 올라가곤 하는데, 중국행 이후부터는 내 발 아래 의자에 바싹 붙어 앉는다. 방바닥이 딱딱하고 차가워 노인에겐 버거울까 방석을 내줬더니 슬그머니 올라가 몸을 말고 눕는다. 지금도 내가 내려다보며 속삭이듯 이름을 부르니 천천히 고개 들어 동그랗고 뿌연 눈동자로 눈맞춤을 하곤 다시 머리를 가슴속에 말아 넣는다. 며칠 후 3일간 또 집을 비우고 아키는 며느리집으로 보내야 할텐데 어쩌나 심란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1-12

테니스 엘보는 팔을 쉬게 해야 낫는다

테니스 엘보는 팔꿈치 바깥쪽 즉 외측상과 부위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운동선수에게 생기는 병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일상생활에서 팔을 반복적으로 쓰는 모든 사람에게 발생할 수 있다. 컴퓨터 작업, 스마트폰 사용, 요리·설거지, 빨래, 아이 돌보기 등 팔 근육과 힘줄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동작이 원인이다. 이 부위의 근육이 반복적으로 수축·이완되며 미세 손상이 누적되면 염증과 부분 파열이 발생해 통증이 지속된다. 증상이 심해지면 팔을 들거나 문을 여는 동작에서도 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테니스 엘보 치료의 첫 번째 원칙은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다. 통증이 있는 상태에서 계속 팔을 쓰면 염증이 가라앉을 틈이 없다. 팔꿈치뿐 아니라 어깨, 목, 등까지 근육이 연쇄적으로 긴장하며 통증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단순히 팔꿈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전신적인 근육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이다. 우선 치료는 약침을 위주로 해서 치료를 한다. 특히 태반약침은 손상된 힘줄의 재생을 촉진하고 염증을 빠르게 가라앉히며 세포의 회복 능력을 높여준다. 태반과 초음파 가이드를 이용하면 염증이 생긴 부위를 정확히 찾아내어 주입할 수 있으므로 통증이 빨리 잡히고 재생 효과도 높아진다. 필요할 경우 추나 요법으로 경추와 어깨, 견갑골의 정렬을 바로잡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목이나 어깨의 불균형은 팔꿈치에 지속적인 부담을 주어 회복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목 어깨 긴장이나 자세 불균형이 동반되어 있다. 이런 상부 체형을 교정해주면 팔꿈치에 가는 힘이 줄어들고 회복이 훨씬 빨라진다. 한약은 염증을 가라앉히고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며 힘줄과 인대를 튼튼하게 하는 약재들로 구성한다. 한약을 약침 치료와 병행하면 관절 주변의 혈류를 개선하면서 손상된 조직의 재생이 촉진되고 통증이 빨리 완화한다. 초기에 붓기와 열감이 심한 경우엔 열을 내리고 순환을 돕는 방향으로 오래된 만성 통증이라면 근육의 깊은 긴장을 풀어주고 기혈 순환을 강화하는 쪽으로 처방을 하면 손상된 힘줄의 회복이 더욱 확실하게 된다. 통증이 줄었다고 안심하고 골프, 테니스, 배드민턴 등 팔을 순간적으로 강하게 사용하는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 바로 재발한다. 이런 운동들은 팔꿈치의 힘줄에 순간적인 폭발적 긴장을 주기 때문에 회복 중인 조직에 치명적이다. 팔을 쉬게 하고 필요하면 손목 보호대나 팔꿈치 밴드를 착용해 부담을 줄이는 것이 좋다. 일상에서는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손목을 꺾지 말고 가능한 한 양손을 고르게 사용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팔꿈치는 생각보다 섬세한 구조로 되어 있다. 작은 손상이라도 반복되면 회복이 늦어지고 통증이 오래 남는다. 그러나 반대로 적절한 치료와 충분한 휴식만 지켜준다면 대부분은 2~3개월 내에 정상 기능으로 회복된다. 테니스 엘보는 단순한 팔꿈치 통증이 아니라 내 몸이 무리하고 있다는 경고다. 무리하지 말고 치료받고 쉬는 것 그것이 결국 가장 빠른 회복의 길이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1-12

與野의 당원중심 공천, 극단정치 부추긴다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대표들이 전국을 순회하며 ‘당원이 원하는 후보’를 공천하겠다는 의지를 경쟁적으로 밝히고 있다. 통상적으로 지방선거 투표율이 낮은 만큼 강성지지층을 결집해 선거에 이기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주 전남 나주에서 열린 전남도당 임시 당원대회에서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해 “당원주권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당 대표로 기억되고 싶다”면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100% 당원이 주인 되는 경선을 하겠다”고 했다. 민주당내에서는 현재 1차 예비경선의 경우 권리당원 투표만으로 후보자를 컷오프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민주당은 지난 10일 1박 2일 일정으로 경기도 곤지암리조트에서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을 열고 지방선거 대비에 본격 나섰다. 민주당은 이달 중 공천 룰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단장을 맡은 나경원 의원은 최근 전국 광역 의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당 연수에서 “선거 때마다 우리가 중도 타령해서 망한다고 생각한다. 잘 싸우는 사람, 당에 헌신하는 사람이 공천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장동혁 대표도 “누구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전사를 내보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했다. 당 지도부 모두 당에 대한 충성도(기여도) 중심의 공천 원칙을 시사한 것이다. 장 대표가 그간 강조해온 공천 키워드도 애당심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주 들어 공천 준비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주 들어 사고 당협 후보자 심사와 전국 광역단체장 간담회 등을 통해 조직 정비에 나서는 한편, 지도부는 현안 점검으로 민심 잡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당 조직강화특위 위원장인 정희용 사무총장은 지난달 31일 서울시당 워크숍에서 “철저히 당을 위해 당의 입장을 국민께 설명할 수 있는, 당을 대변할 수 있는, 강한 애당심을 가진 당협위원장이 선정될 수 있게 하겠다”며 ‘당심(黨心)’ 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여야가 당 지도부의 주장처럼 ‘당원중심’ 공천 룰을 확정할 경우 내년 지방선거는 ‘극단정치’ 무대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공천무대가 강성지지층 중심으로 짜여지면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의 연장선으로 변질되고, 양 극단적인 후보를 공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당심을 중심으로 공천할 경우, 각 후보들도 권리당원 확보에만 혈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지역민을 위한 공약·정책은 뒷전이 되고 지지 당원 수만 겨루는 선거로 전락할 수 있다. 보통 집권 1년 차 지방선거는 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런 측면에서 국민의힘이 강성지지층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게 되면 대구·경북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험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국민의힘이 서울과 부산만 사수해도 선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를 겪으며 전통 지지층조차 등을 돌린 상태에서 중도층 표심을 잡지 못하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국민의힘이 중도층 민심을 얻으려면 극우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그리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를 비롯해 한동훈·유승민과도 손을 잡아야 외연 확장이 가능해진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1-11

다카이치 총리의 파격

월급 1000만원을 반납하고 새벽 3시에 일하러 국회에 출근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우리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수많은 정치인을 지켜보아왔지만 우리 국민은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있다면 아마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지난달 취임한 일본 첫 여성 총리 다카이치의 파격 행보가 화제를 뿌리고 있다. 자민당 총재에 당선되면서 그는 “워라밸이라는 말을 버리겠다”고 했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할 것”이라는 말로 정치적 의욕을 과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총리 취임 기자 회견에서 또 한 번 파격적 발언으로 뉴스의 초점이 됐다. 총리와 내각 각료의 급여가 의원의 세비를 넘지 않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총리 직무수당으로 받는 약 1000만원의 급여를 반납하겠다는 뜻이다. 정치인 스스로가 급여를 깎는 과감한 용기에 정권 지지율이 82%로 고공행진이다. 소수 정당과 손잡고 겨우 총리직에 올라 단명 정권이 될 우려도 제기됐지만 현재 그 자신과 정권 지지율이 예사롭지가 않다. 그의 파격은 그가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의회에서 사용한 볼펜까지 불티나게 팔리게 한다. 정치인이 잘하면 그것이 팬덤현상으로 가는 것을 보여준 일례다. 월급을 스스로 깎고 새벽 3시에 국회에 나와 일을 하는 정치인에게 국민이 찬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념과 정치적 이익 관계에 매몰돼 싸움만 하는 우리 정치와 비교해 볼 때 신선함 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일찍 한국 정치를 4류라 말했다. 그 4류가 지금도 4류의 티를 벗지 못한 것 아닌가. 다카이치 총리 같은 파격이 우리 정치에서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11-11

국제경영과 APEC 기능

세계 경제는 경쟁과 협력이 오고 간다. 국제경영은 국가 간의 경제, 문화, 정치적 차이를 고려하여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창출하고 지속적인 가치를 창조하는 경영 활동을 말한다. 제품, 기술, 인재, 자본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는 시대에 글로벌 시장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경영시스템이다. 국제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첫째는 문화적 통찰력이다. 각국의 가치관, 소비 패턴, 의사소통 방식을 이해하고, 현지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둘째, 글로벌 공급망 민첩성(Agile SCM)이다. 자국 중심이 아닌 다국적 네트워크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생산, 물류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셋째, 기술과 혁신력이다. AI 인공지능, 친환경 기술, 디지털 전환 등 혁신 역량이 글로벌 경쟁의 본질이 된다. 넷째, 윤리와 지속가능성이다. 단기 이익보다 인류, 지구, 미래를 고려한 경영이 장기 신뢰를 형성하고 시너지를 만든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은 1989년에 설립된 21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로, 무역 자유화, 투자 촉진, 경제·기술 협력을 통해 자유롭고 개방된 아태 지역의 무역·투자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회원국의 공동 발전과 번영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관세, 비관세 장벽을 낮춰 기업 간 교류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여 무역장벽 완화와 시장 개방을 촉진하고, 상호 협력을 통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가 간 격차를 줄여 인류사회 공동발전을 추구한다. 단순한 무역 기구를 넘어 디지털 경제, 기후 대응, 공급망 안정 등 새로운 이슈가 생성될 때 협의를 통해 협력해서 극복해 간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자국 이익을 위한 무분별한 관세 폭탄은 글로벌 자유무역의 핵심 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 부과로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하고, 자국 산업 보호 명분과 단기 고용 안정 효과는 있으나, 높은 관세로 인해 미국 내 물가 상승, 상호 보복 관세로 글로벌 신뢰 저하, 무역 비용 급증, 경제 블록화, 분열 가속화 등으로 자국 보호 무역은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초래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가 공동의 번영과 평화를 위한 국제경영은 ‘이익의 전쟁‘에서 ‘가치의 공진화(共進化)’로 가야한다. 기후변화와 탄소저감 등은 국가간 공감대 형성, 협력과 노력 없이 극복하기 어려운 지구촌 공동의 미션이다. 관세는 타국을 압박하고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수단이 아니라, 관세를 나누는 것으로 신뢰를 잇는 공동 발전의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기술, 데이터, 탄소 정책도 신뢰를 기반으로 투명한 협력 구조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국제경영의 성공은 APEC이 추구하는 자유, 협력, 상생의 질서 위에서 지속 가능하다. 트럼프식 관세 폭탄은 일시적 자국 이익을 줄 수 있지만, 국제 신뢰를 무너뜨리고 혁신의 생태계를 훼손한다. 인류 삶의 질을 생각하는 가치관이어야 한다. 지붕 없는 박물관 경주에서 열린 2025년 APEC 정상회의가 밑거름이 되어, 돌아가되 정상으로 가는 바른 무역 질서의 길을 기대한다. 경쟁은 필요하지만 파괴가 아닌 상호 성장의 경쟁이 글로벌 경영의 새 질서가 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