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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희롱 수렁에 빠진 조국혁신당

이걸 내홍(內訌)이라 불러야 할까, 자중지란(自中之亂)이라 해야 할까? 조국혁신당이 ‘성비위’라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형국이다. 지난 4일 그 당 강미정 대변인이 당내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의 처리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탈당 기자회견을 열었다. 심각한 사안이 제기됐음에도 이규원 사무부총장은 “성희롱은, 언어폭력은 범죄는 아니다”라는 상황 파악 못한 발언으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사회적 파장과 논란이 커지자 7일 황현선 사무총장이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어 김선민 조국혁신당 대표 권한대행도 물러났다. 이로써 조국혁신당은 자의 반 타의 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됐다. 조국혁신당에서 시작된 불길은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교육연수원장에게까지 옮겨 붙었다. 성희롱을 당하고 이에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를 비난하는 듯한 최 원장의 발언은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고, 결국 최 원장도 스스로 자리를 버렸다. 그럼에도 조국혁신당 성비위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왜냐? 그 당에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고, 실질적인 소유주라 할 수 있는 조국 전 법무장관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지켜봐야 하는 게 남았기 때문. 이른바 진보 진영의 성희롱과 성폭력 스캔들은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고질적인 악재 가운데 하나다. 현재도 보수 진영은 ‘때는 지금’이라는 듯 목소리 높여 조국혁신당에 돌을 던지고 있다. 그 돌팔매를 피해가기가 쉽지 않다. 조국 전 장관은 자신의 책을 홍보하고, 향후 다가올 선거를 위한 정치적 입지 다지기에 앞서 조국혁신당 내부 문제부터 명쾌하게 해결해야 마땅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08

평창 봉평, 이효석문학관의 가을

새벽 5시. 겨우 눈이 떠졌다. 알람을 5시부터 6시까지 대여섯 개를 설정해 놓았었다. 대충 준비하고 나서자 벌써 여섯 시에 가깝다. 동서울버스터미널까지, 지하철로 한 시간 계산, 7시 10분까지 모이기로 했다. 6호선에서 3호선으로, 다시 2호선으로 갈아탄다. 택시보다 마음 편한 지하철이다. 가면서 무념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평화롭다. 평창까지 아침 일찍 출발하면 2시간 남짓이다. 춘원학회를 같이하시는 전순영 시인, 이자성 선생께서 와 계시다. 발표자들, 토론자들도 모두 제때 도착이다. 우등버스 같은 버스 안, 편안하다. 예산이 없어 쩔쩔매다 어렵게 후원을 얻어 준비할 수 있었다. 버스는 휴게소에도 들르지 않고 아침 길을 달린다. 모두 고단한 아침 잠에 빠져든 듯. 나는 장문석 선생을 붙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청한다. 그는 최근에 오무라 마쓰오 선생에 관한 책을 냈다. 오무라 마쓰오, 사에구사 도시카스, 김윤식, 1970년, 일본 좌파, 윤동주, 김지하···. 이야기는 멀리, 깊은 곳까지 흘러간다. 전순영 시인은 그 사이에 근 십 년 가까이 힘든 병을 치러내셨다 했다. 아제르바이잔 유학생 레일라는 새벽에 인천에서 출발했다. 목하, 고단한 잠에 빠져 있다. 진우동, 린커쉬도 모두 유학생, 이번 준비에 대단한 활약을 했다. 먼저 문학관에 가 플래카드도 걸고 줌 장비로 점검했다. 그러고 보니, 신주희, 김산아, 장제희, 작가들이 동승했다. 오늘 세미나에서 연구자들 발표에 질의를 해주기로 했다. 9시 반 넘어 버스는 이효석문학관 밑에 제대로 당도한다. 10시부터 시작이다. 이효석 아드님 이우현 선생과 이주리 재단 실장님이 반겨 주신다. 봉평의 이효석 문학 선양회 분들도 나오셨다. 지금은 이효석 문화제 축제 기간. 일요일인데도 문학관의 내방객이 많다. 실무를 총괄한 구자연 선생, 몹시 바쁘다. 올해의 학술행사 주제는 이효석의 문제작을 다시 해부하는 것. 발표자만 모두 여덟 명에, 질의자도 여덟, 토론자가 넷이다. 하루 행사치고는 많다. 다섯 시까지 강행군이다. 단편소설 ‘하얼빈’의 주석적 연구를 발표한 부용은 바다 건너에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야 비자가 만료된 걸 았았다던가. 줌으로 발표를 해주기로 했다. 첫 창작집 ‘노령근해’(동지사, 1931)부터 ‘해바라기’(학예사, 1939)까지, 또 장편소설 ‘화분’(인문사, 1939)과 ‘벽공무한’(박문서관, 1941)까지, 또 희곡 ‘역사’('문장', 1939년 12월)까지 발표들을 했다. 특별한 것은, 평창 작가 김도연 씨가 자신이 읽은 이효석 작품들에 나타난 평창, 진부, 봉평, 대화, 월정 같은 곳들에 대해 아주 상세하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해준 것, 그리고 정선의 시인 전윤호 씨가 와서 유머러스하고도 평온한 토론을 펼친 것. 올해 세미나 준비하면서 각별히 신경 쓴 것은 평창 분들, 내방객들까지 함께 할 수 있는 학술토론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작가와 시인들의 역할이다. 발표자들도 빠짐없이 PPT까지 준비했다. 이제 겨우 다 마쳤다. 끝나고 저녁식사하러 내려오면서, 문학관 전망대에 섰다. 낮은 산들에 둘러싸인 봉평의 푸른 들, 녹 빛들이 한눈에 너무나 시원스럽다. 학술도 학술이지만, 이 빛을 만나려고 여기 왔던 것인가. 바로 그러했을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9-08

물 맛에 대하여

순수한 물(H2O) 자체는 사실상 아무런 맛이 없다. 실제 우리가 마시는 물은 다양한 무기질과 철 망간 등의 미량 성분이 용해되어 있어 맛이 달라진다. 여기에 물의 온도, 지역, 마실 때의 상황에 따라 물의 맛이 더 다양해진다. 오래전 어떤 드라마 장면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물맛을 아느냐’라고 물었던 장면이 아직 기억에 선명하다. 물맛이 그 맛이지 따로 무슨 맛이 있겠느냐는 식의 생각이 지배했던 30대쯤이었던 것 같다. 도시의 아파트를 떠나서 시골 산자락에 터를 잡은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정원에서 하루가 시작되고 정원에서 하루가 마감된다. 따로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노동량이다. 전원생활의 절반은 풀과의 전쟁이다. 깨끗한 정원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끊임없이 풀을 뽑아야 한다. 잔디를 깎는 것도 사실은 풀을 뽑는 것과 유사한 행위이다. 꽃과 나뭇가지들도 적당하게 정리하여 주지 않으면 금방 볼썽사나워진다. 마당은 나의 헬스클럽인 셈이다. 시골에 집을 지을 때 뒤뜰 황토방을 지어주신 어르신께서, ‘공 변호사는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겠구먼’ 하시면서 빙긋이 웃으셨던 한마디가 아직 귓전에 어른거린다. 그 말씀은 사실이 되었다. 마당 일을 마치고 생수병을 들이킬 때면 문득 어른의 말씀이 떠오른다. 운동이나 육체노동 이후에는 계절을 불문하고 몸에서 열이 난다. 추운 겨울에도 노동 후에는 시원한 물을 찾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여름의 마당 일은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어떤 때에는 생수 몇 통을 들이킨 적도 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맛이 있었던 것은 갈증 날 때 마시는 시원한 물이었지 싶다. 같은 이유로 밥맛은 배고플 때가 최고이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그 뜻이리라. 현대는 물맛과 밥맛을 잊은 시대이다. 체내 수분 유지를 위해 갈증 나기 전에 물을 섭취하여야 하며, 위장에 부담을 주는 폭식을 피하기 위해 때 맞춰 밥을 먹어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먹고 마신다. 갈증 나지 않고 배고프지 않으니 최고의 맛난 물을 마시거나,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밥상의 요리도 웬만해서는 맛나다는 칭찬을 듣기 어렵다. 시원한 물맛은 필요와 충족, 결핍과 해소의 원초적인 합일이다. 갈증이라는 결핍이 땀 흘린 노동 속에서 절정에 이르렀을 때, 물은 단순한 수분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그 무엇이다. 바야흐로 땀을 흘리지 않는 시대가 오고 있다. 아니 벌써 왔을지 모른다.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는 인공지능 로봇들이 인간의 물맛까지 빼앗고 있지 않은가. “노동은 최고의 사랑.” 노동으로 흘린 땀방울이 일으킨 갈증을 추구하자. 최고의 물맛을 즐기고 싶은가, 그러면 갈증을 일으켜 보라. 최고의 식사를 하고 싶은가, 그러면 굶어 보라. 땀을 흘리지 않고 시원한 물맛을 기대하는 것은, 노력하지 않고 행복을 바라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현대인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갈증이 나질 않고,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육체노동을 할 일이 없으면 운동이라도 하자. 최고의 물맛을 보기 위하여 시원한 생수 한 통 들고 운동장으로!! /공봉학 변호사

2025-09-08

길은, 디테일에 있다

처서를 지나 9월이 와도 기온이 33℃를 오르내린다. 열대야도 멈추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기후변화의 디테일이다. 기계음이 시끄럽다. 모서리를 돌자, 공원 나무 가지치기 광경이 펼쳐졌다. “저 사람들은 주민이 안중에도 없나?”하고 푸념이 난다. 하나, ‘당국이 시키니까 할 뿐인데.’란 속말로 마음을 추스른다. 주민편의, 기후변화대응 같은 디테일들을 민원 없이 당국이 챙기기는 어려울 터. 나뭇가지가 잘려 그늘이 적어진다. 준 그늘에 주민은 짜증 나겠다. 티끌 모아 태산이듯, 디테일이 쌓여 전체 되는 진리를 잊고 살기 일쑤다. 그렇다. 개인이나 가정, 사회, 국가, 지구촌의 사람 삶은 디테일이 요구된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학문, 교육, 국방, 기술 등 인간 활동은 언제, 어디서나 디테일이 함께해야 한다. ‘원죄’ 개념이 말하듯, 인간 본성은 디테일이 모자라 보인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을 포털에 검색했다. 맨 앞에, “‘신은 디테일에 있다’라는 표현에서 변형된 것”이라고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그 유래를 브리핑했다. 군 제대 뒤 제철소의 실험실에서 직장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수십 년 흐른 지금까지 줄곧 느꼈던 것이,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였다. 많게는 수십 단계를 거쳐야 하는 까다로운 화학성분 정량분석(定量分析)실험도 했다. 만일 중간에 한 번만 실수 곧, 디테일하지 못하면 결과가 없거나 틀린 수치가 나온다. 이때는,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황당한 경험도 여러 번 했다. 개인이나 가정, 적은 공동체라면 디테일이 부족해도 악영향은 그만큼 적을 터다. 하지만, 국가나 지구촌으로 확대되면 결과도 온 인류에 미치는 사실을 인간은 지금도 보고, 당하며, 체험하고 살아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국 주도 세계 관세문제, 우리의 남북관계 등 수없이 많다. 이강덕 포항시장이 9월 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앞에서, “동맹국 한국에 대한 철강 관세부과를 멈춰주세요”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관세 인하 요구 시위를 벌였다. 오죽하면 이 시장이 미국에 갔을까. 중국 저가품 공세로 어려운 한국 철강제품에 50% 관세는 살인적이다. 합의문 없이, 디테일하지 못한 8월 한미정상회담 때문이리라. 우리 사회엔 ‘총체적 불신’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다. 여러 재판을 받는 후보가 부정선거 의혹 속에 대통령이 되자, 법원이 알아서 재판을 미루는 법치주의 디테일의 몰락을 국민은 멍하게 바라보았다. 여당, 정부가 전체주의 뺨치게 밀어붙인 특검이 휘두르는 직전 대통령 부부 구속 수사란 야만의 칼날이, 국민 가슴을 가른다. 불신의 근원은 ‘부정선거 의혹’의 디테일에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존폐와 결부될 이 중대한 사안을, 우리 사회 거의 전 부문의 힘 쥔 층들은 무조건 ‘음모론 프레임’을 씌워 외면해왔다. 선거결과에 진실을 감춘 디테일이 있다는 데도, 상당수 유권자도 공명선거에 무심했다. 우리는 눈앞의 작은 이익에 홀려 진‧선‧미, 지‧정‧의, 신‧망‧애 같은 인간 근본 가치들마저 장사지내버린 걸까. 길은 디테일에 있는데···. /강길수 수필가

2025-09-08

이재명, 의외로 잘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선 후보 시절 “야당 대표를 가장 먼저 만나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 토론회에서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누구를 만나겠느냐”라는 질문을 받고서다. 그는 “여야 대화도 끊어지고 너무 적대화 돼 있다. 대통령이라도 시간 내고 설득해서 여야 대표, 특히 야당 대표와 주요 정치인을 만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치라는 게 혼자 잘 사는 게 아니라 나라가 잘되고, 국민이 잘되자고 하는 것”이라며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얘기하도록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그 말을 이제 실현하게 됐다. 이 대통령은 오늘(8일) 여야 대표를 대통령실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다. 오찬 뒤에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단독 회동도 할 예정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해외순방에서 돌아오면 야당 대표를 불러 설명하는 게 관례였다. 야당 대표와 단독회동을 하자는 국민의힘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을 갖췄다. 의제도 국민의힘 주장대로 제한을 없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이재명 야당 대표와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이 대표가 ‘영수회담이든, 여야 지도부 면담이든 형식은 뭐라도 좋으니, 민생을 위해 일단 만나자’라고 여러 차례 반복해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참모들에게 이 전 대표의 과거 이력을 들먹이며, “내가 왜 이런 사람과 만나야 하느냐” “범죄 피의자 아니냐”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참패하고 나서야 갑자기 영수 회담을 했다. 그러나 4월 29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수 회담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대화를 계속 이어가기는 어려웠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야당과 대화를 거부한다. 그는 지난달 말 페이스북에 “상식적으로 나를 죽이려 했던 자들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대화할 수 있을까?”라며 “나의 대답은 NO”라고 썼다. 야당 지도부를 만나면 악수는커녕 눈길도 피했다. 윤 전 대통령과 판박이다. 정 대표는 국회에서 독주한다. 무조건 다수결로 밀어붙인다. 모조건 다수결로 처리하면 국회가 왜 필요한가. 일방적인 정책을 당내는 물론 야당까지 찍어 누른다. 대통령이 다수표를 얻었다고 전횡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파시스트 정당이 써먹던 위험천만한 반민주적 발상이다. 법안 처리와 의사 진행뿐 아니다. 이제 야당의 견해를 대변해 협상하는 야당 간사마저 여당 입맛대로 정하겠다고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지나치면 부러진다. 지금 국민의힘은 동네북 처지다. 약장수 같은 유튜버들의 선동이 당대표를 결정할 정도로 줏대 없이 휘둘린다. 보수 지지자들의 마음도 당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유일한 응원군이 민주당이다. 절제라고는 모르는 민주당의 강성 모드가 극우세력에게 명분을 제공한다. 민주당의 유치한 선명 경쟁 탓에 말도 안 되는 극우적 주장이 합리적 근거를 얻고 있다. “오죽하면…”이라거나 “그래도 정청래를 응원할 수는 없지 않으냐”라는 주장이 떠나던 보수 지지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야당의 극우화가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에 유리할지도 모른다. 강성모드로 서로 자기 표를 깎아 먹어도, 전국적인 판세에서는 그래도 불리한 게 ‘윤 어게인’이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도긴개긴 극우화에 명분을 주고, 불씨를 지피는 언행은 역사에 죄를 짓는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스스로 무너질 ‘윤 어게인’이나 극우적 주장이다. 그런데 “민주당 하는 것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라는 말이 나오게 만든다. 극우 주장이 먹혀들도록 명분을 제공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공범이다. 이 대통령은 양대 노총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편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민주당의 성공도 중요하겠지만, 대한민국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로 인해 더 발전했느냐, 후퇴했느냐가 역사에 기록된다. 두려울 게 없다. 지난 정부를 따라 할 이유가 없다. 보수 인사들 사이에서도 이 대통령이 “의외로 잘하고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조금 더 포용과 관용을 발휘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9-07

그저 사사로운 나날들

그 시절 나는 세상의 무엇보다도 아버지 없는 아이가 참으로 부러웠다 안팎이 그저 고요한 사사로운 나날들이 ​ 노름판의 아버지를 찾아다니지 않고 근심으로 잠 못 드는 어매도 없고 맥없이 서성이기만 하는 할배도 없는 ​ 그토록 사소하게 지나가는 나날들이 소원이었다고, 팔순이 목전인 오라비는 아버지 산소 뒤에서 때늦은 고백을 했다 ​ 평생 지나간 일을 내어 말한 적 없는 그 뜻밖의 사건은 이를테면 누수였는데 그때는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권규미, ‘누수’ 전문 (시조21, 2025, 가을호) 권규미 시인의 ‘누수’는 그림으로 보자면 사실화이면서 내면화된 울림 또한 깊다. 담담하게 고백되는 과거의 기억은 겉만 보아서는 한없이 고요하게 서술되는 것 같지만, 내부에는 격렬한 감정의 급류가 있다. 이때 기억에 대한 모든 언술은 결국 시간에 대한 언술일 것이다. 기억이란 흘러간 시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경험이든 순간에 깊이 파인 후 시간의 흐름 속으로 말려 들어간다. 그러니 경험을 소환해 기억하려는 자는 곧 시간과 맞서는 자일 것이다. 그것이 시인의 운명이다. 가족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운명의 공동체다. 같은 맥락에서 한 작가는 “사랑은 폭력과 동의어”라고 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언술에 대입해 보지 않더라도 ‘가족’이란 기표는 가장 내밀한 관계어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감싸는 껍질이 된다. 시인과 가족들에게는 ‘누수’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 시절’이 있었다. 가령 “노름판의 아버지”가 있는 유년의 장소에는 드러내 놓지 못할 비밀이 함께 산다. 그 비밀은 평화롭지도 고요하지도 않은 경험으로 기억된다. 시인은 그 시절을 “아버지 없는 아이가 참으로 부러웠”고 “근심으로 잠 못 드는 어매도”“맥없이 서성이기만 하는 할배도 없는” 공간이 부러웠다고 서술한다. 시인의 파편적인 시점으로 가족을 기억하는 데 있어 “팔순이 목전인 오라비”의 “때늦은 고백”의 접목은 이러한 기억의 서사를 극화한다. 시인이 누수라고 정의한 이 “뜻밖의 사건”은 “아버지 산소 뒤”에서 일어나는데 “평생 지나간 일을 내어 말한 적 없는” 오라비의 고백은 누수로 인식된다. 이때 사건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아버지의 산소는 팔순이 목전인 오라비의 시간을 병치하며 단절되었던 그간의 시간을 복원한다. 그들에게 아버지와 함께한 날들은 장대한 시간을 경유한 불안한 경험이다. 그 시절 조각난 기억은 파편처럼 가족의 집은 실로 위태하게 직조된다. 발터 벤야민은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삶에서의 실제 체험이 아니라, 그런 체험의 기억을 짜는 일이라고 했으며, 낮 동안 짠 실을 밤이면 풀어헤치는 텍스트라는 개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작가는 프루스트였다고 했다. 바로 그 기억의 서사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면 권규미의 시편 또한 그 지점에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시인의 시집 ‘누가 나를 놓쳤을까’(가히, 2025)에는 체화된 기억이 순장된 신화적 공간과 접목하는 정황이 두루 포착된다. 기억은 사랑이었든 폭력이었든 돌이킬 수 없다. 이때 그들이 바라는 건 ‘대화’다. 그것이 뜻밖의 누수이었건 고백이었건 말이다. 시인이 기억을 시로 복기하기 위해 선택한 오라비의 나이는 팔순이 목전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아버지와 오라비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난 때늦은 고백은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끝내 멈추어 설 것 같지 않다. “그때는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럴 때 기억은 어떻게 깃드는 것일까.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비극적인 순간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무엇을 고를 것인가. 이것이 시인의 선택이었다. “그토록 사소하게 지나가는 나날들이 소원이었다고” /이희정 시인

2025-09-07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 철강이 다시 뜨겁게 뛸 수 있도록

철강 도시 포항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며 국가 경제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다. 세계적인 기업 포스코, 철강공단 협력기업들과 함께 성장한 포항의 철강산업은 자동차, 조선, 건설, 방산 등 ‘K-제조업’을 든든히 받치며 국가 경제를 견인했다. 하지만, 포항은 지금 생존이 달린 고립무원의 벼랑 끝에 서 있다. 글로벌 철강 공급 과잉과 보호무역주의 심화, 탄소중립 강화 등 악재가 겹친 전례 없는 위기가 지속되고 있어서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철강 수요가 줄고, 과잉 생산된 저가의 중국산 제품과 엔저 현상으로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일본산 제품들이 몰려들며 국내외 철강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50% 고율 관세 부과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철강 산업의 생존을 직접 위협한다. 내년 시행 예정인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탄소 감축 없이는 철강의 생산과 수출이 어려운 새 도전도 앞두고 있다. 산업용 전기료도 2022년 대비 지난해 75.8%나 급등해 전력 다소비 산업인 철강기업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역 경제 충격도 심각하다. ‘포항 빅4’ 철강사의 법인 지방소득세는 2022년 967억 원에서 지난해 154억 원으로 급감해 현저하게 악화한 상황을 반영했다. 철강 기업의 생산 축소와 투자 위축, 고용 불안은 소상공인 매출 감소 등 민생 경제 전반의 불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철강이 무너지면 국가 산업 전반과 관련 일자리까지 위협할 수 있다. 대한민국 생존이 달린 철강 위기 극복은 기업이나 지자체만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정부와 지자체, 기업 간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중앙정부의 강력하고 전방위적인 지원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 이에 우리시는 정부 지원의 두 축으로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과 ‘철강산업 지원 특별법(K-스틸법)’ 제정을 계속 호소해 왔다. 다행히 경북도, 정치권,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한 끝에 8월 말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돼 기업 경영과 고용 안정,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 사업이 2년간 진행될 예정이다. 이를 기반으로 철강 재도약의 계기를 확실히 마련할 실효성 있는 정책 추진을 위해 총 5734억 원 규모의 23개 세부 사업을 정부에 건의했다.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철강 산업의 친환경 대전환과 법적 지원이 필요하다. 철강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녹색철강기술로 전환하기 위한 ‘K-스틸법’ 제정이 시급한 이유다. 이 법은 철강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재정립하고, 수소환원제철 등 탈탄소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내용과 더불어 불공정 무역에 대응하는 방안 등을 담았다. 1970년에 제정된 ‘철강공업육성법’이 우리나라 산업화의 길을 열었다면, ‘K-스틸법’은 위기에 빠진 철강 산업을 살리는 대전환점이 될 것이다. 철강 산업용 전기료 인하 등 에너지 비용 절감 대책을 비롯해 전력망 확충과 수소환원제철 인프라 확보를 위한 울진~포항 에너지고속도로, 수소 배관망 구축 등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국가 차원의 추가적인 지원 정책도 지속 건의할 계획이다. 여기에다 포스코와 지역 주민, 지역 국회의원 등 정치권과의 소통을 통해 포스코 직원 기숙사를 시내 지역으로 이전할 부지를 확정했다. 800명의 청년이 거주하며 소비와 문화생활을 통해 지역의 경제 활성화와 도심 회복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철강 관세로 더는 물러설 곳 없는 포항의 절박한 현실을 미국 사회에 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는 각오로 9월초 워싱턴 D.C.를 찾았다.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국 철강 제품에 부과된 관세의 재검토를 호소하는 캠페인을 현지 한인회와 함께 진행한 데 이어 관세 인하를 호소하는 공식 건의서를 전달했다. 이를 통해 동맹국에 부과된 50%에 이르는 과도한 관세를 영국과 같은 수준인 25%로 조정하거나 제한적 쿼터 예외 적용을 건의하며, 동맹국에 대한 상생과 공존의 지혜를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했다. 포항의 용광로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단순히 철을 녹이는 불이 아니다.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을 뛰게 하는 원동력이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갈 희망의 불씨다. 시민, 기업, 정부와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 산업의 심장인 철강 산업이 다시 뜨겁게 뛰어 대한민국 경제 재도약을 이끌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계속하겠다. /이강덕 포항시장

2025-09-07

인생의 위기에서 만난 ‘몰라 몰라’

죽도시장에는 ‘포항의 명물 개복치’라는 간판이 큼지막하게 붙은 수산물 가게가 있다. 2대에 걸쳐 76년간 개복치를 유통해온 태영수산이다. 그곳에는 개복치에 평생을 바쳐온 이영태(70), 박정자(69) 부부가 있다. 그들을 만나 개복치와 죽도시장 그리고 그에 얽힌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영태 대표의 할아버지는 포스코가 세워진 곳에서 살았다. 170여 가구가 살았던 동네에서 제법 땅이 많았고 집에는 일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배도 소유하고 있어서 영일만에 나가 조업했는데 가자미와 아귀가 많이 잡혔다. 할아버지가 가져온 어패류를 할머니가 시장에 나가 팔았는데 어머니도 그 일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도 돛단배 두 척을 가지고 영일만에서 어업에 종사했다. 1970년대 포항제철이 들어서자 지금 포항운하가 들어선 자리로 옮겨와 어로 작업을 하며 살았다. 올해 92세인 이 대표의 어머니는 20대부터 시어머니와 남편이 잡아온 조개, 멍게, 고등어, 대게 등을 팔아서 생계를 꾸렸다. 그 시절, 노점상 이름을 ‘태영수산’이라고 지었다. 대개 장사하는 사람들은 상호(商號)를 맏아들이나 맏딸 이름으로 정한다. 처음에는 3남 1녀 중 장남인 영태의 이름을 따와 ‘영태수산’으로 하려고 했는데 손을 댄 사업마다 실패하니 주변에서 ‘영태’를 거꾸로 해 지어보라고 권했다. 그 바람에 상호를 ‘태영수산’이라 했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태영수산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죽도시장에 터 잡고 2대에 걸쳐 76년간 개복치에 평생바친 이영태·박정자 부부 바다일 시키지않으려는 아버지 만류로 오랫동안 떠났다 운명처럼 다시 돌아와 고등어·갈치 등 생선 파는 일에 점점 한계 죽도다리 지나다 개복치 잡는 장면 보며 “남이 안하는 것 하자” 품목 바꿔서 판매 점차 개복치를 포항의 명물로 만들어가 1998년 태영수산으로 등록 후 만든 간판 2006년 마침내 가건물 짓고 당당히 걸어 포항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다 이 대표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안의 일손이 부족할 때면 아버지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일을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몰래 혼자서 배를 타고 노를 저어 호미곶까지 갔다가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헤엄을 쳐서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도 그 경험을 밑천 삼아 며칠 뒤, 이번에는 친구 여섯 명을 배에 태우고 바다에 나갔다. 무사히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일행이 돌아올 때까지 학교와 집을 포함한 온 동네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이 일로 이 대표의 아버지는 “다시는 배를 타지 마라”며 크게 화를 내셨다. 또한 할아버지를 비롯해 집안 어른들은 이 대표가 바다에 나가 사고라도 당할까 봐 감시를 했다. 중학교 진학도 내륙인 대구에 보낼 정도로 바다로 이어지는 끈을 차단했다. 그 바람에 이 대표는 오랫동안 바다와 멀어진 삶을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 부품 공장에 다니기도 했고, 결혼 후에는 울산에서 한국타이어 대리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 잘못되어 사업이 망하고 말았다. 운명은 그를 다시 바다로 불러들였다. 살아갈 길이 막막해 여러 방도를 찾고 있을 때 포항 본가에서 부부를 불렀다. 이 대표의 아내 박정자 씨는 시어머니와 죽도다리 옆에서 상자에 생선을 올려놓고 팔기 시작했다. 죽도시장은 1950년대에 갈대밭이 무성한 동빈내항의 늪지대에 노점상들이 모여들어 축축한 바닥에 비닐이나 두꺼운 종이를 깔고, 그 위에 수산물을 놓고 팔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곳에서 박정자 씨는 어린 두 딸을 위해서라도 ‘내가 이걸 안 하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악착같이 생선을 팔았다. 개복치와의 특별한 인연 이 대표의 아내 박정자 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생선을 파는 일에 서서히 한계를 느꼈다. 시어머니는 주로 고등어, 갈치, 멸치 같은 유통이 빠른 생선을 취급했다. 그 품목들은 빨리 팔리는 대신에 목돈이 되지는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팔아도 그 수입으로는 두 집이 살아가기가 빠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죽도다리를 지나다가 다리 위에서 큰 물고기를 잡는 장면을 보았다. 사람 몸집보다 큰 대물(大物), 개복치였다. 아직 복개하지 않은 때여서 어시장 사거리에서 죽도시장으로 들어가려면 죽도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그 위에서 개복치 잡는 것을 본 것이다. 개복치는 포항수협에서 직접 경매로 받거나, 부산과 강구 수협을 거쳐 경매된 것을 상인들에게 공급받기도 했다. 개복치는 워낙에 커서 죽도시장 안으로 옮기기가 힘들어 죽도다리 위에서 바닥에 비닐을 깔고 팔 때가 많았다. 개복치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하는데, 그때 박정자 씨의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많은 노점상이 취급하는 생선을 팔아봐야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남들이 안 하는 걸 해야 한다. 개복치를 팔아보자.’ 박정자 씨는 그렇게 유통 품목을 개복치로 바꿨다. “빨리 팔리지만 돈 안 되는 생선보다 내 손으로 정성을 들여 다룰 수 있는 생선에 집중하고 싶었지요.” 시어머니와 본격적으로 분리한 뒤, 죽도다리 위에서 개복치를 팔았다. 생선의 신선도를 물고기 눈알로 확인하는 법, 물 온도에 대한 감각, 생물을 다룰 때의 손 압력 조절, 계절별 유통 시점 등 부모에게 배운 수산물을 다루는 체화된 노동 기술과 지식을 기반으로 부부는 점차 개복치를 전문으로 판매해 포항의 명물로 만들어갔다. ‘태영수산’ 간판을 점포에 걸다 이 대표의 어머니는 30대 중반인 1968년에 포항 수산중매인 1호가 되었다. 포항수협에서 중매인을 모집했는데 본격적으로 수산물 중매를 하고 싶어 신청했다. 당시 중매인 1호는 다섯 명이었는데 그중 한 사람으로, 중매인 59번이었다. 이 대표는 부모님이 35년간 운영해온 중개업을 1984년에 승계받았다. 예전부터 태영수산이라는 상호는 있었어도 간판 없이 시장 한쪽에서 생선을 팔았는데, 1998년 태영수산으로 등록한 뒤에는 간판을 만들었다. 아직 건물이 없을 때라 파라솔 두 개를 가지고 20여 년 가까이 장사하는 동안 간판은 좌판 옆에 세워져 있었다. 2006년 이영태 대표가 수산중매인으로 등록하고 난 후 ㈜태양수산을 설립하면서 개미수산 옆에 가건물을 지어 그토록 원하던 간판을 점포 위에 당당하게 걸었다. 죽도다리 옆에서 시작한 시어머니의 노점상 ‘태영수산’이, 죽도다리 건너편에 가건물을 짓고 난 뒤 비로소 간판에 새겨진 것이다. 개복치는? 예부터 조상들이 사계절 선호하는 수산물로, 포항에서는 결혼식, 잔칫집, 돌잔치, 장례식 등의 경조사에 빼놓을 수 없는 바닷물고기다. 복어목 개복치과로, 비늘이 없고 길이 약 2~4미터, 몸무게 약 1∼2톤에 이르는 거대한 물고기다. 한 번 산란에 2억∼3억 개의 알을 낳지만, 성체가 되는 것은 한두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개복치’라는 이름은 머리만 뚝 잘라놓은 것 같은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학명인 ‘몰라 몰라’(Mola mola)는 맷돌을 닮은 개복치의 형상을 딴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영어 이름은 ‘오션 선피쉬’(Ocean sunfish)다. 납작하고 둥근 몸체를 가지고 파도가 없는 고요한 날에는 수면에 등지느러미를 보이면서 헤엄치거나 누워 뜨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태양 아래에서 일광욕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붙여졌다. 개복치는 먹이를 씹지 않고 삼키는데 내장을 열어보면 오징어, 해파리, 멸치 등이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피부 점액질에는 독이 있어 일종의 항생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상처 입은 물고기들이 개복치 주위를 헤엄치기도 하는데 ‘바다 의사’ 노릇을 하는 셈이다. 개복치 껍질은 마치 하얀 묵 같은데, 껍질을 삶으면 우무나 곤약처럼 투명해진다. 회로 먹기도 하는 개복치살은 참치와 비슷하고 그 맛이 일품이다. 콜라겐이 풍부하고 단백질, 비타민 등이 풍부하며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춘다. 빈혈에 좋은 타우린도 함유하고 있다. 바다의 육류라고 불릴 만큼 육질이 쫄깃하고 고혈압, 당뇨병, 신경통 등 성인병에 좋으며 동맥경화 예방, 근육경화 방지, 뇌기능 향상에도 효과가 있다. /정미영(수필가)

2025-09-07

"전통시장 큰 위기⋯활성화 도모해야”

지난 7월 대구·경북지역 특성화시장 간담회를 통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지원하는 특성화시장 상인회장님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대형 산불과 급변하는 유통 환경으로 지역 전통시장이 큰 어려움에 직면했음을 알게 됐다. 전통시장의 어려움은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의 공세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2024)를 보면 온라인 유통업 매출은 전년 대비 15% 증가해 전체 유통업 매출의 절반 이상(50.3%)을 차지할 정도로 구매 패턴이 급변하고 있다. 편리한 온라인 쇼핑과 대형마트의 원스톱 서비스 앞에서 전통시장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있다. 또한, 대구를 비롯한 구미·포항·안동 등 지역도시 경제 기반 약화로 전반적인 구매력이 감소했고, 이는 지역 전통시장의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특히, 경북 북부지역은 산불로 인해 주민 생활 기반이 위협받고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지역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렇다면 지역 전통시장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변화와 혁신, 그리고 소비자 중심의 사고가 필요하다. 첫째, 온라인 접목을 통한 편리성 강화가 필요하다. 온라인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전통시장도 카드 결제 시스템을 확대하고 배달 및 배송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 또 전통시장의 정겨운 분위기나 상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온라인 콘텐츠를 개발해 홍보에 적극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기본 서비스 개선이 필요하다. 일일이 가격을 물어 보고 흥정하는 소비자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가격표시제를 정착시키는 방안도 있다. 셋째, 전통시장의 다원적 가치 발견과 특성화 전략이다. 전통시장은 대형마트·이커머스와 경쟁하기보다 고유한 문화와 지역 특색을 활용한 차별화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서울 광장시장이나 통인시장처럼 관광 명소화해 체험 공간을 제공하거나, 지역 농부와 협력해 특색 있는 상품을 판매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다. 넷째, 젊은 세대 유입을 위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야시장 활성화와 비어있는 점포를 청년몰이나 공방 등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전주 남부시장의 야시장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음식을 개발하고 비어있는 공간을 청년몰로 활용해 성공적인 사례가 됐다. 마지막으로, 협동조합을 통한 상인 자생력 강화가 필요하다. 상인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공동의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전통시장의 주요한 해법이 될 것이며, 상인간의 유대감 및 활성화를 이끌 수 있다. 전통시장 활성화는 단기간에 달성되기 어렵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상인들의 노력, 소비자의 참여가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 대구경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은 올해 특성화 시장(문광형 10곳, 디지털 5곳, 첫걸음 5곳)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며, 산불 피해가 컸던 경북 북부(안동·청송)는 국비 13억 원을 지원받는 지역상권 활력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전통시장은 단순한 거래 공간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공동체 정신이 깃든 소중한 공간이다. 지역민 여러분의 관심과 애정이 전통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이번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활용해 가족과 함께 가까운 전통시장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구경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은 전통시장이 현대적 매력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하겠다. /정기환 대구경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2025-09-07

억울하면 출세해야 하나요?

지난 4일 조국혁신당 대변인의 탈당 기자회견이 있었다. 조국혁신당 고위 당직자들의 성추행 사건을 처리하는 조국혁신당의 늑장 대처에 실망을 넘어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는 내용이다. 조국 전 대표의 침묵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도 애절한 데다 눈물을 흘리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창당할 때 보여준 당찬 모습은 어디 가고, 배신감에 흐느끼는 모습을 보니 그이가 느낄 참담함에 절로 공감이 되었다. 기자회견 내용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내용은 ‘그래도 나는 기득권이 있어서 기자회견을 한다. 그러나 심한 성추행을 당한 어린 피해자들은 기자회견 할 기회도 없다.’는 말이었다. 기자회견 후 혁신당에서 바로 반박 기사를 내보낸 것 역시 강미정의 지위를 말해준다. 그렇다고 일부 언론에서 강미정 사태라고 하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강미정 대변인 탈당 기자회견이 있을 때까지 이 사건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타임라인을 따라가 보았다. 처음 언론 보도는 4월 30일인데, 피해자가 혁신당 내부에서 비위 신고를 한 것은 4월 14일과 17일이라고 한다. 혁신당에서는 바로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되었다고 밝혔지만 피해자들의 말은 다르다. “조사 개시와 외부기관 선정이 지체되고 번복되는 납득할 수 없는 과정이 있었고, 가해자와 업무상 분리 조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기사를 추적해보면 피해자 말에 신빙성이 더 많다. 혁신당은 5월 1일, 당이 이 문제를 인지한 지 약 2주 만에 가해자로 지목된 고위 당직자 ㄱ씨를 전날 직무 배제했다고 밝혔는데, 결국 4월 30일 언론보도가 나오고 나서야 이루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나서 접수 70여 일 만에야 가해자 1명은 제명(당적 박탈 및 출당), 다른 한 명은 당원자격정지 1년 처분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5월 2일 기사에서 더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혁신당에서 이 가해자 말고도 다른 당직자에 대해서도 직장내괴롭힘과 성 비위 등으로 3건이 접수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추행은 신고하지 않는다는 관행을 볼 때 작은 당에서 신고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당내 성인지 감수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조국 전 대표의 태도다. 조국은 강민정 대변인의 탈당 기자회견이 있던 날 저녁에서야 입장을 밝혔다. 조국은 ‘비당원 처지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남 얘기 하듯 말했다. 그러자 혁신당 피해자 대리인은 ‘비당원이 의전 받으며 현충원 참배를 하느냐’며 조국 말의 모순을 지적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1969년 영화가 있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높은 직급에 오른 남자 이야기다. 1965년에 나온 같은 제목의 고봉산 작곡의 열심히 일하라는 교훈적인 노래도 있다. 그러나 강미정 대변인의 탈당 기자회견을 보노라니 부당함을 시정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지위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직급 없는 사람의 억울함은 어떻게 풀 수 있을지 암담하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9-07

여로(旅路)의 끝

세상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생성과 소멸에 내재한 숙명 같은 것이다. 그것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자연적인 대상이든 인위적인 존재든, 크든 작든,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자리한다. 안톤 체호프는 단편소설 ‘사랑에 관하여’에서 “세상에서 가장 적절하게 끝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쓴다. 최고로 적당한 시점에 세상일이 끝난다는 주장이다. 13박 14일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지 일주일이 흘러간다. 시차 적응도 문제려니와 언어로 형언하기 어려운 지나친 더위와 습기로 육신의 정기(精氣)가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다. 어느새 찾아온 노화(老化)의 위력을 절감하기도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솟구치는 아련한 우수(憂愁)가 일상의 순조로운 운용을 막아선다. 어쩌면 이것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유품인지도 모른다. 여정을 시작하면서 나는 휴대전화에 내장된 메모 기능을 활용하기로 작심한다. 그것의 대체재로 두툼한 필기용 공책을 가져갔는데, 무겁고도 쓸모없는 공책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지나친 준비는 때로 과도한 피로를 수반한다. 어느 때는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혹은 다음 날이나 그다음 날에 미진한 내용을 휴대전화에 기록하고, 사진을 동봉하기도 했다. 이번에 실현한 여행은 사실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경북대 노문학과 졸업생들의 유쾌한 성화(?)가 사건의 발단이다. 모스크바 한국문화원 원장으로 재직하는 94학번 졸업생은 청도 이서 출신 촌놈이다. 그는 틈나는 대로 내게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 여행을 권하곤 했다. 연극과 오페라, 발레와 함께하는 문화 기행을 말하곤 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그가 잠시 들른 청도 이서의 허름한 식당에서 광복 80주년 기념행사를 설명한다. 모스크바가 아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구현하는 의미심장한 행사의 주빈(主賓)으로 나를 초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89 졸업생의 현황 파악에 따르면, 경색(梗塞)된 한러 관계 때문에 러시아 직항은 없었다. 그런 연유로 블라디보스토크 일정은 날려 보내야 했다. 그렇지만 일단 발화(發話)된 여행 기획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짧지 않은 여정으로 실현되기에 이른다. 벌써 일주일 전에 종결된 일정의 후유증이 아직도 나의 몸과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그 사이에 있은 두 차례의 학부 강의가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작년부터 시작한 대중 강연을 어떤 양상으로 마쳤는지도 알쏭달쏭할 지경이다. 저녁놀이 내릴 무렵이면 휴대전화기를 들고 허위단심 들길로 나서서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산과 들과 내 마음을 사진기에 담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상념은 날개를 타고 모스크바로 페테르부르크로 트빌리시로 소리 없이 날아가곤 하는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 함께했던 사람들과 풍광, 술과 음식 그리고 사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나서 부드럽게 나를 감싼다. 이번 여정을 역순(逆順)으로 기록함으로써 기억을 환기하고자 한다. 기록의 핵심에 자리하는 것은 인간과 사건과 인연일 것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벌써 정신 차리고 치열한 일상의 모퉁이로 귀환했을 터다. 삶은 때로 순서가 무용(無用)할 수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9-07

왜 지하댐인가

지하댐이라고 하면 다소 생소한 표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몇몇 군데서 운용되고 있는 저수 시설이다. 일본은 1964년 한 학자의 주장으로 제기돼 현재 전국에 18개의 지하댐이 건설돼 있다. 유네스코 산하 국제지하수자원평가센터 자료에 의하면 현재 세계 50여 개국에서 1200개가 지하댐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사막에 지하댐을 만들어 도시로 용수를 공급한다. 지하댐이란 땅속 깊이 물막이 벽을 설치해 지하수를 모아 생활용수 및 농업용수 등으로 사용하는 시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어촌공사가 극심한 가뭄에 대응하고자 1984년 경북 상주에 지하댐을 만든 것이 최초다. 그러나 댐의 활용 면에서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땅속 깊이에 지하수를 모아둠으로써 증발이 되지 않아 손실이 적고 기존의 댐보다 건설이 용이한 장점이 있다. 강릉의 가뭄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대안으로 지하댐 건설이 부상하고 있다. 특히 강원도 속초시는 강릉과 비슷한 기후조건에 놓인 도시이면서 물 부족난을 지하댐 건설로 해결해 극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속초시는 1998년 주요 취수원 하천인 쌍천 일대에 지하댐을 건설해 취수원 용량의 절반을 해결했다. 이후 2021년 두 번째 쌍천 지하댐을 건설해 수십만t의 지하수를 저장하는 물 부자도시로 변모했다. 지난 7월에는 물 축제까지 벌일 정도였다. 강릉시는 생활용수의 80% 정도를 오봉저수지에 의존하고 있다. 저수지 물이 마르면 대안이 없다. 무더운 여름에 제한급수로 주민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우리나라 인구 1인당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8분의 1 수준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대책의 하나로 지하댐도 검토해볼만 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07

전기 안전, 가족을 지키는 약속

전기는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필수 에너지다. 우리의 일상은 전기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그러나 익숙하다는 이유로 방심하는 순간, 작은 부주의가 화재나 감전사고로 이어져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실제로 주변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안전사고 가운데 상당수가 전기로 인한 사고이며, 한순간의 실수로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특히 전력설비가 밀집해 있는 건설현장이나 도로 작업장은 사고 위험이 훨씬 높다. 재작년 파주시에서는 낚싯줄이 전깃줄에 걸려 감전으로 이어진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진 단 한 번의 방심이 가족과 사회 전체를 슬픔에 빠뜨린 것이다. 정부는 최근 ‘죽지 않는 사회, 안전한 사회’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산업재해와 안전사고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신속히 보고하는 체계를 강화하고,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현장에 대해서는 엄정히 제재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전력공사 역시 이러한 국가적 기조에 발맞추어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기는 반드시 안전 속에서만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수칙이 있다. 전력선 근처에서 건설 작업이나 이삿짐 운반을 할 경우, 작업 반경 3m 이내에 전력선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만약 작업에 지장이 예상된다면 반드시 한국전력에 사전 연락을 하여 안전 확보 조치를 취해야 한다. 태풍이나 집중호우와 같은 기상재해가 예보될 경우에도 전기시설을 미리 점검하고, 취약한 부분은 즉시 보수해야 한다. 차단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하며, 집안이 침수되었을 때는 배전반 전원을 내린 뒤 물을 퍼내야 한다. 도로변 가로등이나 신호등이 침수된 경우에는 절대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순식간에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 요소이기 때문이다. 레저 활동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낚시나 캠핑, 휴가철 피서지에서 낚싯대, 안테나, 금속 막대 등이 전선에 닿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해변이나 계곡 주변의 임시 영업장, 전기배선 시설 역시 안전 점검이 필요하다. 만약 끊어진 전력선을 발견했다면 절대로 접근하거나 손대지 말고, 국번 없이 123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 작은 호기심이나 무모한 행동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다. 전기 안전은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생활 속 작은 주의와 실천이 모여 큰 사고를 막는다. ‘위험’, ‘고전압’, ‘접근금지’와 같은 표식이 붙어 있는 전력설비는 절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에는 가전제품의 플러그를 뽑아두는 것만으로도 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멀리 있는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작은 습관이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최선의 안전망이 되는 것이다. 전기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만 동시에 언제든 위험으로 돌변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의 관심과 실천이 필요하다. 생활 속 작은 주의가 모여 우리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을 지켜낸다. 전기 안전은 거창한 기술이나 특별한 지식이 아니라, 늘 곁에서 지켜주는 약속이며 책임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작은 실천을 생활화하는 것이 진정한 안전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한국전력공사 박경수 경북본부장

2025-09-05

장기 후일담의 시대

후일담 문학이란 장르 개념이 있다. 후일담이란 말 그대로 어떤 시기가 지났다는 사후(事後)의 의식을 전제로 성립하기 때문에, 시대의 이행과 전환을 사고하려는 시도로부터 반복적으로 출몰하거나 호명되는 서사 양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국근현대문학사에서 후일담 문학은 1980년대의 변혁운동에 관한 기억을 담은 1990년대의 문학군을 주로 통칭해 왔다. 즉 1990년대의 후일담은 1980년대, 정확히는 운동권의 경험과 실천, 논리가 함의하고 있던 정치 지평이 이제 만료해 버렸다는 다분히 의식적인 판단의 산물로 여겨져 왔다는 것이다. 후일담을 새삼 떠올린 건 지난 주말에 우연히 보게 된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덕분이었다. ‘80s 서울가요제’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내용이었다. 80년대 가요를 요즘 가수들이 부른다는 콘셉트가 조금 식상하지 않나 싶었는데, 막상 노래를 들으니 나쁘지 않았다. 다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일까? 지지부진하던 시청률도 많이 올라 토요일 예능 부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사실 후일담 문학이란 작가 자신이 내세우는 개념은 아니었다. 후일담은 대체로 평단의 다소 부정적 어감을 함의한 평가 규준에 가깝다. 변혁운동으로부터 이제는 한발 물러난 운동권 출신의 허무주의와 패배 의식, 회환과 죄책감의 토로에 함몰된 장르로 평가절하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후일담에 가까운 회고의 양식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찾아오는 것 같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는 오늘날까지도 적지 않은 규정력을 발휘하는 ‘과거’의 지속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때 그 ‘과거’란 때론 ‘87년 체제’라 불리며 정치경제적 레짐이나 실정적인 힘으로 작동하기도 하며, 때론 ‘386’ 혹은 ‘586’이라는 세대/계층 의식과 그 헤게모니에 입각한 사회사적인 의제를 형성키도 한다. 또한 ‘뉴트로’라 불리는 사회적인 현상의 배후에서 정치와 일상을 매개하는 문화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대의 오늘을 ‘장기 후일담의 시대’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1980~90년대의 정치경제적 의제는 물론 그 사회문화적 함의에까지 여전히 긴박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이제는 1980년대의 변혁운동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당시의 문화적 열기에 대한 회고와 향수가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와 ‘토토가’를 비롯한 1980~90년대의 문화를 추억하거나 해당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상물들이 범람한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한편으론 유튜브로 대표되는 미디어 플랫폼으로 과거 문화를 동시대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기술적 조건이 구비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정치 변혁에 대한 전망의 상실로부터 미래를 모색하지 못하고 과거의 문화적 활기를 희구하며 현재의 비참을 상상적으로 회복하려는 사회적 무의식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절에 대한 향수, 그러니까 ‘아네모이아(Anemoia)’가 상품으로 소비되는 사회에서 1980~90년대의 성취와 좌절을 어떻게 적확하고도 정당하게 마주할 수 있을지 더욱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09-04

공직사회의 혁신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바뀌고 나니 공직 사회가 조금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연일 회의 때 대통령의 지적을 받는다. 핑계를 대다가 혼이 나기도 한다. 그냥 대충 굴러가다가 제대로 임자 만난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동안 놀고먹었다는 느낌까지 드는 것은 왜일까?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이 어느새 힘들어 공무원 못 하겠다면서 퇴직하는 젊은 공무원들이 넘쳐난다는 소식을 접한다. 정말 그럴까? 괜한 의문이 든다. 얼마 전 코로나 시절을 떠올린다. 전 국민의 대부분인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이들의 생활을 떠올리게 된다. 생계가 막막해져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라 한 커피점 사장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며 닫고 있던 가게 문을 열었다. 중소기업은 직원을 내보내는 것으로 버텨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공무원 월급은 제날짜에 꼬박꼬박 나와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월급은 국민 세금으로 지급되기에 조금은 빈정 상한다. 그런 공무원이 월급이 작아서 혹은 업무가 과다해서 일을 그만둔단다. 이해가 참으로 가지 않는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이란 말은 공무원들 일하는 태도를 보고 자주 사용했다. 무사안일(無事安逸)도 마찬가지다. 일을 만들면 번거롭기만 해서 시키는 일만 하는 척하면 된다. 절대 잘할 필요도 없고 괜히 잘난 척 앞서 나갈 이유도 없었다.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 일만 늘어날 뿐이지 금전적 보상이라든지 이런 건 없다. 때 되면 진급만 제대로 시켜주면 큰 불만도 없다. 그럭저럭 지내다가 동장(洞長)하다 동에서 마련한 전별금 두둑이 챙기고 정년퇴직하면 된다. 그래서 또 하나 이름이 붙었다. ‘철밥통’이란 말이다. 공무원들 비하하는 말인데 이게 공무원들조차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죽도록 일해서 벌어먹는 소상공인이나 일반 소규모 공장에 다니는 파리 목숨인 사람들로서는 상상조차 못 하는 복지혜택을 누리기에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쉽사리 그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어떻게 된 공무원인데 쉽게 포기하겠는가. 거의 고시처럼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곳이 아닌가. 그런데 공무원들과 자주 접하다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일부 고참 공무원들의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 업무행태가 젊은 세대들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뭔가 제대로 해 보려고 하지만 주위 벽이 너무 높아 좌절한다. 그런 기득권을 가진 이들 때문에 젊은 공무원들이 빠져나가지 않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출직 공무원들이 요즘 인사권을 쥐고 흔들어 그나마 움직이는 척이라도 하는 게 요즘 분위기라지만 그래도 선출직 입에선 관료주의 때문에 일이 안 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행시주육(行尸走肉)이라는 말이 있다. 걸어 다니는 시체와 뛰어다니는 살덩어리라는 뜻이다. 배움이 천박해 쓸모없고 무능한 사람을 비유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어디서 이런 대접은 받지 않고 제대로 인정받으면서 살고픈 게 우리네 인생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공무원 월급은 나온다. 국회의원 월급도 나온다. 판사 검사 월급도 딱딱 챙기면서 호의호식하면서 산다. 우리는 이들 월급 주려고 오늘도 뼈 빠지게 열심히 일한다. /노병철 수필가

2025-09-04

학교폭력, 사과의 시효

배우 송하윤이 과거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는 의혹에 휘말리며 연예계와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피해자는 당시 90분 동안 폭행을 당했고 이로 인해 송하윤씨가 강제 전학까지 갔다고 주장하는 반면, 송하윤씨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강경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누구 말이 진실인지는 수사를 통해 가려져야겠지만 이번 사건은 학교폭력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 하나를 상기시킨다. 적정한 시기에 사과와 합의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법적인 구제수단은 공소시효나 소멸시효라는 한계가 있다. 폭행죄, 상해죄에 적용되는 공소시효는 5년 또는 10년이고 민사적 손해배상청구권도 10년의 소멸시효가 있다. 송하윤 배우의 사건처럼 십수 년이 지난 사건이라면 피해자는 더 이상 법적인 구제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법률적 시효가 지나도 피해자의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의 기억은 또렷해지고 사과조차 받지 못한 억울함은 더욱 단단해진다. 학창시절 나에게 폭력과 고통을 안겼던 가해자가 수십 년 뒤 배우가 되어 좋은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활동하는 것을 보는 피해자의 고통이 어떠하겠는가. 연예계에는 학폭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한 인물들이 많다. 배우 지수, 르세라핌 전 멤버 김가람 등이 대표적이다. 학폭의 가해자였다는 점 외에도 이들의 공통점은 사과와 합의의 시기를 놓쳤다는 점이다. 학폭을 가한 이후, 혹은 의혹 제기 후에라도 피해자와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고 사죄와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피해자들이 “제때 사과만 있었더라면 공론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사과하지 않았던 이들에겐 결국 법의 심판 대신 사회적 심판이 내려졌다. 실제 학교폭력 사건에서도 가해자 학생과 부모의 사과 한마디만 있었더라도 결과가 완전히 바뀌었을 것 같은 사건들이 있다. 변호사라는 게 결국은 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여러 형사사건, 학교폭력 사건을 다루다 보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이 담긴 사과였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교통사고 피해자들이 사고 직후 가해자의 내가 뭘 잘못했냐는 말 한마디에 울분이 맺혀 합의는커녕 가해자와 끝까지 만나려 하지 않기도 한다. 자녀가 학교폭력을 당했어도 아이들 일이니 가해 아이가 사과하면 문제 삼지 않으려 기다리다가 결국은 어떤 연락도 없어 어쩔 수 없이 학폭신고를 접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과와 합의가 이루어진 사건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 처벌의 수위도 천지차이다. 물론 피해자가 입은 고통의 잔여 정도도 천지차이일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사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어떤 사람들에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인가 보다. 뉴질랜드와 캐나다는 학교폭력 같은 청소년 범죄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직접 대화하고 화해하는 것을 돕는 회복적 사법 절차를 제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형사사건에서 형사조정절차가 있듯 학교폭력 사건에서도 사과와 합의를 도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학폭 사건을 징계 수위로만 볼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장래와 이후 학교생활을 위한 회복과 화해에도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때론 사과의 타이밍이 정의이다. /김세라 변호사

2025-09-04

교육 수장의 덕목

교육부 장관의 덕목은 아주 고결하고 특별한 것일까. 새 정부 들어 교육부 장관 후보에 처음 올랐던 이진숙 후보자가 중도에 낙마하고 난 뒤, 한 언론사는 교육계의 중지를 모아 바람직한 교육부 장관의 덕목을 정리해 보도한 적이 있다.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한가지는 교육가로서 전문성 그리고 도덕성, 다른 하나는 소통 능력이다. 잘 알다시피 전문성은 다양한 교육경험에서 나오는 탁월한 식견과 교육적 안목을 뜻한다. 도덕성은 교육자로서 부끄럽지 않는 청렴성과 정직성 등이다. 소통 능력이란 다양한 교육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직접 소통하고 갈등을 다스리는 교육 리더로서의 능력을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은 세계가 알아줄 정도로 유명하다. 청년층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OECD 국가 중 1위다. 더 놀라운 사실은 치맛바람을 일으킬 만큼 우리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지구상 최고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고도 최교진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장관 후보자로서는 부적절한 과거 행적과 언사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장관직을 수행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팽배해지는 분위기다. 음주운전 이력이나 논문표절 의혹, 정치적 편향성, 부적절한 언사 등이 장관직 수행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의 거센 반대에도 다수당인 여당이 수용않으면 장관은 여당 뜻대로 간다. 여당은 여당 뜻대로 하더라도 교육부 장관의 덕목은 한 번쯤 살펴보면 좋겠다. 자식의 교육을 국가에 맡기는 부모의 안목이 교육에 관한 한 정치보다 더 높다는 사실도 직관할 필요가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04

왕관보다 빛나는 마음

모나코 성곽 위에 서자, 붉게 물든 하늘과 반짝이는 바다가 맞닿았다. 성벽 너머에는 그레이스 켈리가 레니에 3세와 결혼식을 올렸던 성당이 조용히 서 있었다. 영화 속 장면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현실의 공간은 시간을 담담히 품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녀의 선택과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움과 책임, 사랑과 의무가 얽힌 서사가 공간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저녁 빛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그녀의 삶을 닮은 깊은 빛으로 다가왔다. 성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나는 왕비로서 그녀가 맞이했을 하루하루를 상상했다. 할리우드의 스포트라이트와는 다른, 무겁지만 고요한 시선이 성 안을 채웠으리라. 화려한 왕관 대신 마음으로 세상을 비추는 법을 배워야 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선택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길 위에서 자신만의 빛을 찾아냈다. 바람이 잔잔히 불어오는 테라스에 섰다. 모나코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작은 나라의 도시가 품은 위엄과 고요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켈리가 이 공간 속에서 느꼈을 떨림과 기대는, 바다 위 파도처럼 잠잠하지만 쉼 없이 흘렀을 것이다. 나는 계단을 걸으며 공간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은 흔적이지만, 성의 무게와 조명, 바닥의 반짝임이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는 듯했다. 성당 앞마당에 멈추었다. 결혼식 날의 장면이 마음속에 그려졌다. 하얀 드레스가 바람에 흩날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던 순간에 그녀는 단순히 아름다운 배우가 아니라 국가와 사랑, 선택 사이에서 마음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한 인간이었다. 그 장면을 떠올린 뒤에 나는 내 삶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얼마나 스스로의 선택을 믿고 걸어왔는지, 얼마나 나만의 길을 진정으로 지켜왔는지 물었다. 그레이스 켈리가 견뎌낸 빛과 무게를 생각할 때, 나 또한 마음의 왕관을 조심스럽게 손에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랑과 책임, 자유와 의무 사이에서 흔들리며 걸어야 하는 길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무게, 선택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순간마다 마음속에서 반짝이는 빛이 있다는 사실을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문득 그녀가 남긴 흔적은 단순히 영화나 왕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을 비추는 거울임을 깨달았다. 바닷바람에 섞인 파도 소리가 마음을 가득 채웠다. 영화 속 그녀는 스크린 안에서 빛났지만, 현실 속 그녀는 선택의 무게 안에서 빛났을 것이다. 행복이란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길 위에서 발견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에서 바라본 도시와 항구, 반짝이는 배들이 그녀의 삶과 나의 감정을 포개어 주었다. 영화에서처럼 극적인 장면은 없었지만, 실제 공간은 시간과 사람의 흔적을 담아 내 마음을 울렸다. 자유와 책임, 사랑과 의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녀가 느꼈을 감정을 나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저녁이 깊어져 갈수록 성벽 위의 그림자는 길어지고, 바다는 한층 더 어둡게 반짝였다. 그레이스 켈리의 삶은 단순한 동화가 아니었다.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빛나던 순간은 짧았지만, 그녀가 택한 길은 끝없이 이어진 책임과 사랑의 연속이었다. 그 길 위에서 발견한 마음의 빛은 왕관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깊게 반짝였을 것이다. 나는 성을 내려와 항구를 걸었다. 그레이스 켈리가 길을 걸었을 때 느꼈을 설렘과 두려움, 기대와 희생이 오롯이 내 마음에 전해졌다. 모든 것이 시간과 공간 속에 남아 조용히 내 마음을 흔들며 감동시키고 있었다. 모나코를 떠나며 나는 생각했다. 사랑과 선택, 책임과 행복이 뒤섞인 삶 속에서 진정 빛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보여준 왕관보다 빛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화려함이 아니라 선택의 무게 속에서도 스스로의 길을 밝히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은 오늘도 공간과 시간 속에서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정미영 수필가

2025-09-03

생(生)의 방법

첫사랑이라는 이름을 곱씹다가, 초심(初心), 순수(純粹) 좋다,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가? 그때의 아무 것도 없는 비루한 황무지에서 단지 사랑한다고, 어금니 꽉 다문 다짐,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을 무모하고 단순한 용기, 그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 오히려 지금 필요한 생활의 장치(裝置) 알겠다, 나의 편지는 결코 배달되지 않는다 살아감의 혹독한 진행형의 삶이 결국 보답이고 앙갚음이다 지나간 시간을 모독하는 사랑의 후회를 항변하는 삶의 법정에서, 오직, 나는 파면이다. … 기억은 퇴색(退色)이 되어도 다시 채색(彩色)이 된다. 불행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덧칠은 자제해야 한다. 자서(自敍)가 서사(敍事)가 될 수 있고, 미시(微視)가 거시(巨視)의 바탕이 될 수는 있다. 발전을 지향하되 퇴행적 변명은 단죄되어야 한다.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라는 틀에서 머뭇거리며 찌질거리는 것은. 노예의 도구이며 시대적 방관자로서의 교묘한 처세, 좀 영혼이 없는 지칭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뻔뻔한 직업적 소명에 충실한 놀라운 적응력을 구사한다. 합리와 규정과 기본과 기득의 영역에서 쟁취한 권력에 취해 버린 부패의 구린 냄새를 향기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미 적응이 된 듯.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喝!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9-03

생색내기

서울 아들네가 방학이라 며칠 내려오겠다고 했다. 광복절 끼워 2박 3일 연휴가 가능해서라고 했다. 두 번의 명절, 두 번의 방학, 그리고 어린이날 연휴가 길면 오기도 해도, 많아야 1년에 다섯 번 정도밖에 못 만나는 그리운 손녀들이었다. 그날부터 몸도 마음도 분주해진다. 가장 먼저 할 일은 2박 3일의 스케줄을 잡는 것. 마침 8월 15일과 그 다음날이 큰손녀와 큰아들 생일이니 합동 생일파티를 하면 되겠다 싶었다. 대구 애들과 합하면 10식구이니 움직이는 일이 만만찮다. 집에서 간단히 파티 준비해야지. 마침 집에 와 있는 손주 둘과 같이 생파 이벤트를 의논했다. 며느리들에게 계획을 알렸더니 모두들 손사래를 친다. 더위에 절대 고생하지 마시라. 허무하게도 생일파티는 취소, 외식으로 결정이 났다. 집에서 가까운 뷔페를 예약하고, 또 볼링을 치기로 했다. 대신 케이크커팅은 집에서 하자. 둘쨋날 스케줄은 남편이 제안했다. 경주 미술관 투어를 하자. 경주예술의전당에서 ‘근현대 4인의 거장전’, 오아르미술관에서 무라카미 타카시의 ‘해피 플라워’를 보면 손녀들이 좋아할 거다. 경주문화관의 ‘고흐전’도 보자고 결정했다. 가장 힘들고 고된 일은 손님맞이 청소다. 가장 먼저 이불 빨래를 하고, 방 청소하기, 주방도 정리 좀 해 두어야 오랜만에 보는 며느리에게 책잡히지 않지. 화장실 청소는 맨 나중에 하자. 작년에 쓰고 그냥 넣어두었던 까슬한 여름용 차렵이불을 꺼내 빨았다. 빨다 보니 우리가 쓰던 이불과 베갯잇도 빨아야지 싶어 모두 내어 빨고, 건조하고, 햇볕에 바싹 말리고, 속통도 건조대에 걸쳐 말리고 소독했다. 네 개의 방 중 정작 남편과 내가 쓰는 방은 거실과 안방뿐이다. 그러나 10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모이면 안 쓰던 방도 침실로 사용해야 한다. 책방의 먼지부터 깨끗이 턴다. 큰아들 내외가 특히 그 방을 좋아하니 걸레질도 꼼꼼히 한다. 방학 중 손주들이 아지트로 꾸민 뒷방도 양해를 구해 잠시 철거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네 명의 손주들이 합심해서 또다시 아지트로 꾸밀지언정···. 엉망진창 어질러진 컴퓨터방도 손대야 했다. 창틀의 오래 묵은 먼지까지 훔치고 닦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아 난 왜 평소에 털고 닦고 걸레질하는 습관이 안돼 있을까 자책한다. 다시는 이렇게 먼지 쌓아두지 말고 평소 청소 습관을 길러야지 아주 잠시 결심하지만 난 날 믿지 못한다.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 뻔하다. 연닷새 집안일을 했더니 거의 탈진 지경이었다. 결국 화장실 청소를 제때 못하겠다 싶었다. 내가 이불 빨고 청소하고 주방 정리하며 부산을 떨어도 안마의자에 앉아 책 읽고 TV 보는 남편에게 화장실 청소를 부탁했다. 웬일로 남편은 벌떡 일어나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며 화장실로 갔다. 락스와 솔을 찾는 남편에게 과탄산소다를 가져다주며 뜨거운 물을 쓰라고 일러주고 안방으로 가 누웠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았다. 서울 애들이 곧 도착한다는 전화에 잠에서 깼다. 거의 동시에 대구 손주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왔어요.” 남편은 막 안방 화장실 청소를 마친 모양이었다. “건아···. 화장실 구경해 봐···. 할아버지가 깨끗하게 청소했어.” 화장실 청소한 생색을 저리도 내고 싶은가 보다. 슬그머니 웃음.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9-03

커피와 에너지 음료, 왜 두근거림과 불면을 부를까

카페인은 현대인의 생활과 뗄 수 없는 기호 성분이다.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 시험이나 야근 때 찾는 에너지 음료 심지어 초콜릿에도 카페인이 들어 있다. 카페인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덜어주는 듯한 효과를 주지만 본질적으로는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는 화기(火氣) 성질의 물질이다. 한방에서는 이런 성질을 가진 음식이나 약물을 화기 식품이라 부르는데 이런 식품을 섭취하면 일시적으로 힘이 나는 거 같지만 이를 장기간 섭취하면 몸의 균형이 깨지고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교감신경은 긴장과 각성을 담당한다. 카페인을 섭취하면 아데노신 수용체가 차단되어 뇌가 피곤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교감신경이 항진된다. 그 결과 심장이 빨리 뛰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잠이 잘 오지 않고 불안이 심해진다. 특히 갱년기나 화병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원래부터 체내의 열과 긴장이 높아져 있기 때문에 카페인 섭취 시 증상이 훨씬 심해진다. 얼굴이 붉어지고 사소한 일에도 화가 치밀며 가슴 답답함과 불면이 악화되기 쉽다. 카페인과 에너지 음료는 순간적인 힘을 주는 대신 장기적으로 자율신경 불균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런 경우 한약 치료가 도움이 된다. 황련, 시호, 치자, 석고 같은 약재는 가슴의 울체된 열을 꺼주고 흥분된 교감신경을 진정시킨다. 황련은 심장의 열을 내려 불안을 가라앉히고, 시호는 간울을 풀어 가슴 답답함을 덜어준다. 치자는 화기를 내리고 불면과 초조를 진정시키며 석고는 강한 열을 식혀 두근거림과 상열감을 줄인다. 이러한 약재들이 배합된 한약을 복용하면 교감신경 항진 상태가 안정되고 부교감신경 기능이 회복되어 수면의 질과 자율신경 균형이 개선된다. 직접 시술로는 자율신경 약침 치료가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성상신경절과 미주신경 자리에 약침을 시술하면 교감신경 흥분이 줄어들고 부교감신경의 기능이 강화된다. 교감신경이 조절되면 불안, 불면, 두근거림 같은 증상이 개선되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심신이 안정되고 소화 기능과 수면 그리고 몸의 회복이 좋아진다. 초음파를 활용한 정밀 시술로 안전성을 높일 수 있으며 한약 복용과 병행할 때 치료 효과가 배가된다. 실제 임상에서도 카페인 과민이나 갱년기 불면 화병으로 인한 가슴 답답함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약침 치료 후 증상이 빠르게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생활 관리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카페인과 에너지 음료를 찾는 습관을 줄이고 규칙적인 수면과 식사, 가벼운 운동을 실천해야 한다. 교감신경 항진 상태에서는 아무리 오래 누워 있어도 몸이 쉬지 못하지만 자율신경 치료와 생활습관 교정이 함께 이루어지면 몸은 본래의 리듬을 되찾는다. 카페인과 같은 화기 식품은 순간적으로 힘을 주는 듯 하지만 결국 교감신경 항진과 불안 불면을 불러온다. 생활관리와 함께 가슴의 열을 꺼주고 신경의 균형을 바로잡는 한약과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을 직접 조절하는 약침 치료가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자율신경은 안정되고 몸은 진정한 회복을 향해 나아간다. 결국 건강은 순간적인 자극이 아니라 균형과 안정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9-03

전한길의 과대망상

“나를 품는 사람이 내년에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고, 향후 국회의원 공천도 받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다음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한 말일까? 그는 이런 큰소리도 쳤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내 대학 선배다. (다음) 대구시장은 이진숙 위원장이 맡아야 한다. 만약 내가 공천을 받는다면 이 위원장에게 무조건 양보하겠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반대론자들에게 주목받으면서 전 역사강사 전한길 씨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때론 정치학자이자 미래를 예측하는 유사 점술가 같은 행태도 보인다. 얼마 전부턴 ‘전한길 뉴스’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스스로를 언론인이라 부르고 있기도 하다. 파토스 넘치는 전씨의 음성과 격정적이고 직설적인 어법에 지지자들은 열광하지만, 그와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은 비난의 손가락질을 보내는 게 지금의 상황.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부풀려지고 터무니없는 헛된 생각을 지속하는 걸 우리는 ‘과대망상(誇大妄想)’이라 부른다. 심리학자들은 자기 확신과 주관적 신념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이 과대망상증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한국처럼 매일매일 상황이 변하는 정치 환경에서 2026년에 열릴 지방선거의 구체적인 결과를 확언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그러니, 그보다 더 훗날의 일인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에 관해선 더 말할 것도 없다. 개인의 과대망상이 개인의 불행으로 끝난다면 과하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러나, 이미 전씨는 ‘한 개인’의 범주를 벗어난 정치적 영향력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위험해 보인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 지도부가 전한길 씨의 과대망상에 부화뇌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9-03

검찰개혁, 제자리인가

검찰개혁. 화두가 표류하고 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 공소청 설치, 중수청 신설이라는 큰 방향은 이미 촛불광장에서부터 제기된 국민적 요구였다. 시간이 이렇게도 흘렀음에도 구체적 제도설계와 집행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은 개혁을 기대했던 시민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핵심은 분명했다. 검사들이 독점했던 기소권과 수사권을 나누어 권력의 임의적 남용을 막고 견제와 균형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개편해 기소만 담당하게 하고, 수사는 국가수사본부나 중수청 등 기구가 맡는 구조였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방향은 국민들이 납득하는 최소한의 개혁안이었다. 국회와 정부의 움직임은 오히려 개혁의 본뜻을 흐리고 있다. 중수청을 법무부에 둘지 행정안전부로 옮길지를 두고 벌이는 줄다리기는 국민으로서는 피곤할 따름이다. 관건은 중수청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수사기관이 정치권력과 이해집단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런데도 권한 배분을 둘러싼 부처 간 이기주의와 정치적 계산이 논의의 중심을 차지하는 게 아닌가. 검사들의 집단적 반발 역시 국민을 불편하게 한다. 수십 년간 검찰은 권한을 자의적으로 휘두르며 무소불위라는 평가를 들어왔다. 정치적 편향, 피의사실 공표, 수사권 남용, 제 식구 감싸기 등 숱한 비리와 악행은 이미 국민적 기억 속에 생생하다. 검찰 구성원들이 입을 모아 개혁과정에 목소리를 내거나 자기 권력 지키기에 몰두하는 모습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신을 강화할 뿐이다. 여권의 태도도 문제다. 검찰개혁은 촛불 시민들의 가장 강력한 요구 중 하나였다. 현 정권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에도 깊이 새겨져 있다. 그럼에도 아직껏 체계적 개혁안을 확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은, 의지가 있는 것인가, 정권 내부의 이해관계가 그렇게 중요한가 등 의문을 던지게 된다. 개혁은 구호가 아니다. 개혁을 외쳤던 정치인과 집권 세력은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과는 달라야 한다. 검찰개혁의 의지를 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기획이 분명해야 하고 제도설계가 정교해야 하며 추진력과 실행력이 담보되어야 한다. 지금 논의는 추상적 원칙과 부처 간 자리싸움에 머무르고 있다. 이대로라면 개혁은 실종되고 남는 건 국민적 피로감뿐일 것이다. 검찰개혁은 특정정권의 이해를 위한 정치적 카드가 아니다. 민주사회에서 권력기관의 견제와 균형을 확립하기 위한 제도적 토대다. 원칙을 잊는 순간 개혁은 퇴색하고 국민적 지지는 사라진다. 출발점이었던 국민들의 열망을 기억한다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정부와 여당은 개혁의 본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소와 수사 분리라는 대원칙 아래 공소청과 중수청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정치적 중립성과 제도적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입안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투명한 소통이다. 개혁의 주체는 검사나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이다. 검찰개혁이 구호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용기있는 결단과 실질적 제도화가 필요하다. 촛불 과제를 완수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9-03

일본(인)은 하나의 얼굴이 아니다

7월 18일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도케이지 산문을 나왔을 때는 1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저는 5km 정도 떨어진 고토쿠인(高徳院)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요. 한해 이천만명이 찾는다는 관광도시 가마쿠라에서도 고토쿠인은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 중 하나입니다. 고토쿠인이 유명한 이유는, 그곳에 일본을 대표하는 거대 불상인 가마쿠라 대불이 있기 때문인데요. 기타가마쿠라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가마쿠라역까지 전철로 이동한 저는,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고토쿠인으로 향했습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아미타불은 12미터의 높이와 121톤의 무게로 보는 이를 압도했습니다. 전각 안이 아닌 야외에 노출되어 있어 더욱 웅장하게 느껴졌는데요. 이 청동불상은 본래 나무로 만들어졌다가, 태풍으로 파괴된 이후 1252년에 다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본래는 대불이 머무는 전각도 있었지만 15세기 무렵 자연재해로 파괴되면서 이후에는 대불만 야외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었습니다. 일본 최초의 무사 정권인 가마쿠라 시대에 만들어져서일까요? 이 청동 대불에서는 자애로움보다는 뭔가 엄격한 위엄이 느껴졌습니다. 얼마나 큰지, 50엔(500원 정도)만 내면 불상 내부에까지 들어가 볼 수도 있었습니다. 고토쿠인은 규모로 승부를 보겠다는 듯이, 가마쿠라 대불 옆의 건물에는 길이 1.8m의 짚신이 걸려 있었습니다. 대불이 “짚신 신고 일본 곳곳을 걸어다니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아이들이 만들어 기부하는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고 하는데요. 방금 전까지 토케이지의 34cm 수월관음상을 보며 ‘축소지향의 일본’을 떠올렸던 저는, 불과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이토록 크기와 규모로 사람을 압도하는 청동 대불과 짚신이 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수천년의 역사와 남한 면적의 4배에 이르는 영토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를 하나의 명제로 정리한다는 것은 애당초 인간의 영역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제가 전공하는 문학에서 다루는 ‘근대적 인간’이란, 우주보다 깊고도 심오한 내면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요. 한 명의 개인이 그러할진대, 1억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를 한두마디로 규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겁니다. ‘축소지향’과 더불어 ‘확대지향’을 지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고, 이러한 문화의 양면성과 복합성이야말로 모든 문화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날 고토쿠인을 찾은 진짜 이유는, 얼마 전에 한국 언론에도 크게 보도된 관월당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난 6월 23일 관월당이 한국에 돌아왔다는 보도를 접하셨을 텐데요. 그 관월당이 있던 곳이 바로 고토쿠인입니다. 현재 관월당은 낱낱이 해체되어 4000여 점의 조각이 파주시에 있는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관월당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단층건물로 맞배지붕 형태의 전형적인 한국 건축물인데요. 관월당이 바다를 건너 대불 뒤편에 놓이게 된 사정은 비교적 상세히 밝혀져 있습니다. 평소 일본 재계의 거물이었던 스기노 키세이(1870-1939)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던 조선식산은행이, 1924년 무렵 담보로 갖고 있던 관월당을 스기노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스기노는 일단 관월당을 메구로에 있는 자신의 집에 가져다 놓았다가, 10년 후쯤에 폐병으로 가마쿠라에서 요양과 기도를 할 무렵, 고토쿠인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고토쿠인에서 관음보살을 모셔놓은 법당으로 사용된 관월당이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던 데는, 사토 다카오 고토쿠인 주지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는 고고학 연구자로 게이오대 교수이기도 한데요. 2002년 고토쿠인의 주지가 되었을 때부터 관월당을 한국에 반환하려고 애써 왔다고 합니다. 관월당은 언제 어떤 용도로 만들어져,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가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조선 왕실의 사당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지만, 1871년 정학교(丁學敎)가 썼다는 ‘무량수각(無量壽閣)’이라는 현판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해외에 있는 문화재를 돌려받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환수를 위한 방법은 소장국가에 반환요청을 하거나 경매로 구매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반환요청을 하기 위해서는 약탈이나 도난의 증거를 제시해야 하며, 설령 도난과 약탈을 증명하더라도 소장국가에서 반환을 거부하면 그것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토 다카오 주지는 흔쾌히 관월당을 고향에 돌려보낸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반환비용 전부를 사토 다카오 주지가 부담했으며, 나아가 한일 간 문화유산 연구와 학생교류를 위한 별도기금 1억엔(10억원 정도)까지 기부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고토쿠인을 찾았을 때, 관월당이 있던 곳에는 바닥돌과 좌우 석등만이 남아 있었는데요. 관월당의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계 각국에서 모인 관광객들은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 빈터에는 곧 가마쿠라 대불은 물론이고, 관월당에 대해서도 소개하는 자료관이 세워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서울에도 멋지게 복원된 관월당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백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관월당을 보며, 우리는 그 고풍스러움과 아름다움에 취해 행복해할 텐데요. 그 행복 속에서 우리는 사토 다카오라는 한 일본인의 따뜻한 마음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9-02

비오는 날의 우산

볼일을 마치고 건물 밖을 나오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 비가 쏟아졌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햇빛이 쨍쨍했기에 우산은 아예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설마 비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비 예보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하늘은 순식간에 변덕을 부렸다. 그야말로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나기였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편의점까지 뛰어갈까 했지만 물이 땅에 닿기도 전에 튕겨 오르는 빗줄기를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빗방울은 그저 내리는 게 아니라 마치 작은 못처럼 박히는 기세였다. 나는 상가 건물 처마 밑에 몸을 붙이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골목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다들 같은 처지였다. 누구도 비를 뚫고 나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저 하늘의 변덕이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표정들이었다. 그때였다. 한 사람이 우산을 들고 내 앞에 서더니 말을 걸었다. “이거 쓰고 가세요.” 순간 무슨 말인가 싶어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는 빗속에서 서성이는 나를 한 번 힐끗 보더니 다시 우산을 내밀었다. “저도 누가 주신 거예요. 그냥 쓰고 가세요.” 그 말은 너무 짧고 무심하게 들렸지만 그 안에는 묘한 온기가 숨어 있었다. 그는 더 설명하지도 않았다. 우산을 건네주자마자 곧장 비 속으로 사라졌다. 우산을 쥔 내 손끝이 괜히 따뜻해졌다. 한낮의 소나기 속에서 뜻밖에 건네받은 건 비를 막는 우산 하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음 한 구석도 함께 가려주는 듯 했다. 우산을 펴고 집으로 향하는데 그의 뒷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누군가에게서 우산을 받았고, 다시 누군가에게 그 우산을 내어주었다는 사실이 어쩌면 그 우산은 오늘 하루만 해도 몇 사람의 손을 거쳤는지 모른다. 비 오는 날의 우산 하나가 사람들의 손을 타고 옮겨 다니면서 누군가의 발걸음을 적시지 않게 해주고 있는 셈이었다. 집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또다시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내 눈에 들어왔다. 허둥지둥 뛰어온 듯 바짓단은 이미 젖어 있었고, 그는 연신 빗줄기를 원망스럽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문득 내 손에 준 우산이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우산을 내밀었다. “이거 쓰고 가세요. 저도 누가 주신 거거든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표정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그는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하며 우산을 받아들었다. 그 순간 알았다. 우산은 단순히 비를 피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였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였다. 우리의 삶이란 것도 이와 닮아 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주고, 누군가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손을 내밀어준다. 그 손길 덕분에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받은 것을 갚는 방식은 꼭 같은 모양일 필요가 없다. 다만 그 마음이 이어지면 된다. 도움의 손길이 한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한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다니며 세상을 조금씩 따뜻하게 바꾸는 것이다. 집에 도착해 오늘 몇 번을 스쳐간 우산의 여정을 그려보았다. 아마도 언젠가 또 다른 비오는 날, 누군가는 오늘의 나처럼 서성이고 있을 것이고, 그때 또 다른 손이, 이 우산을 건네주리라. 그렇게 이어진 마음들이 겹겹이 포개져 어느새 세상을 감싸 안게 될 것이다. 오늘의 우산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나눔의 사슬이었다. 그 사슬이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가는 일,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며 앞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우산 한 자루에서 시작된 작은 나눔이 오늘은 나를 거쳐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어졌다. 비는 그쳤지만 그들이 베푼 온기는 오래 머문다.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것은 거창한 약속이 아니라 이 사슬이 끊어지지 않도록 마음으로 이어가는 일일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5-09-02

강릉의 가뭄

“가뭄이 더 무서울까” “홍수가 더 무서울까” 결론이 잘 나지 않는 질문이다. 우리 속담에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말이 있다. 가뭄에는 아무리 심해도 얼마간의 거둘 것이 있지만 큰 장마 끝에는 아무것도 거둘 것이 없다는 말이다. 또 다른 속담에는 “칠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산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도 장마의 후유증이 더 무섭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홍수는 단기적으로 큰 피해를 내지만 가뭄은 시간적으로 오래 끌기 때문에 피해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가뭄이 더 무섭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서 홍수, 폭우, 가뭄, 폭염 등이 지구촌 곳곳에서 잇따라 변괴를 일으킨다. 한쪽은 폭우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가 하면 다른 한쪽은 폭염으로 생명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올 8월 서울에는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교통두절 등 시민들이 난리를 겪었다. 그 시간 서울에서 150km 떨어진 강릉에는 50일 넘게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갈라지고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 벌어졌다. 좁은 한 나라 안에서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기후 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2년 전 중남미 우루과이에서는 100년 만에 닥친 가뭄으로 수도권 인구 340만 명의 물을 공급할 저수지가 바닥나자 생수 가격이 폭등했다. 이 바람에 물 부족 사태에 항의하는 시위가 번지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물 부족 사태를 이유로 강릉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국가재난지역으로 선포되는 사례를 남겼다. 기후 위기 시대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 강릉의 가뭄 사태를 반면교사 삼는 기회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9-02

국힘,‘尹 부부’에 대한 입장정리부터 하라

장동혁 대표 취임 이후 국민의힘 당내갈등이 차츰 해소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제1야당의 내분은 여당 입법독주의 핵심요인으로 작용한다. 전당대회 당권경쟁 때부터 “내부총질을 하면 결단하겠다”고 강경자세를 보였던 장 대표는 최근 연일 ‘원팀’을 강조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두고 장 대표와 사사건건 부딪혔던 6선의 조경태 의원도 지난 주말 중진회의 참석 후 “내부 갈등과 분열을 극복해나가겠다. 앞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소통을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장 대표와의 갈등을 수습하려는 의지를 표현한 말로 여겨진다. 8·22 전당대회 과정에서 마치 ‘콩가루 집안’ 같았던 국민의힘이 이제 한 가족이 된 것처럼 보인다. 의원 107명이 하나로 뭉쳐 여당 폭주에 맞서야 한다는 당위성을 공유한 듯하다. 지난주 중진의원 회동에서 지적됐듯이, 국민의힘이 단일대오를 유지하려면 우선 탄핵반대파와 찬성파가 진심으로 서로의 생각을 인정해 주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 그러자면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당의 정체성부터 선명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대구지역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열성 당원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윤 부부에 대한 특검 수사 강도에 반발심을 가지고 있다. 유죄 여부를 떠나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전직 대통령 부부에 대한 동정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정심은 탄핵 찬반과 관계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 표현이다. 대구·경북 출신 국회의원들의 경우 ‘친윤계’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민심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당내 탄핵찬성 의원들이 민주당의 내란 프레임에 동조해 이러한 동정심마저 매몰차게 걷어차면 당은 산산조각 날 수밖에 없다. 찬탄파 의원들도 국민의힘이 열성당원 없는 정당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탄핵반대파가 당의 주류라고 해서 소수인 찬탄파 인사들을 쫓아내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당심보다 민심을 얻는데 주력하고 있지 않은가.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국민 10명 중 6명이 찬성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들이 없으면 외연확장이 불가능하다. 내년 지방선거나 2028년 총선을 감안하면 한동훈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 나아가서는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와도 한솥밥을 먹어야 좁은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다. 민주당이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야당의 내분이다. 서로 편을 갈라 당심과 민심 모두를 갉아먹고 있는데, 이보다 더 좋은 정치지형이 있겠는가. 국민의힘 찬탄, 반탄 두 계파는 하루빨리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포용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최근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맞서 상임위 보이콧에 나서자 상당수 국민은 잠시나마 당이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이콧’이 정기국회 개막으로 흐지부지 됐지만, 과거처럼 당 지도부가 나서 메시지만 남발하는 모습은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기자들도 뉴스 가치가 없어 보도를 꺼린다. 국민의힘이 앞으로 ‘정청래의 민주당’과 싸워 민심을 얻으려면,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를 할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회의원직까지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9-02

책과 이야기로 만나는 해파랑문화쉼터 책담회

처서가 지나선지 바람의 결이 확연히 달라졌다. 그토록 뙤약볕을 내리쬐며 끝 모르게 대지를 달궈대던 태양도 말복을 지나면서 몇 차례 비가 내리자, 아침 저녁으로는 건들바람이 불고 한낮의 더위마저 숙지는 것 같아 벌써 가을의 느낌이 조금씩 묻어나는 요즘이다. 계절의 시계는 이렇게 적확한 것일까? 더위와 꿉꿉함에 눌려 심신마저 지쳐가는데, 차츰 또렷하고 맑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생기와 활력의 추임새를 넣어주는 듯하다. ‘때는 가을철 긴 장마 개이고(時秋積雨霽)/신선하고 서늘한 기운 교외에서 불어오네(新凉入郊墟)/등불 점점 가까이할 만하니(燈火秒可親)/서책 펼쳐 읽을 만하지 않은가(簡編可卷舒)’-한유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 중 바람 서늘하고 풀벌레 소리 청아해지는 초가을은 어떤 활동을 하거나 어딜 가기에도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그중 일상에서 편리하고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독서일 것이다. 선선해진 기온에 책 읽는 흥미로움과 마음의 양식을 쌓을 수 있는 독서는 단연 ‘가을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서늘한 가을밤은 등불을 가까이하여 글 공부하기 좋았기에 1500여 년 전 당나라의 문장가인 한유(韓愈)는 아들 부(符)에게 ‘등화가친(燈火可親)’을 시사하며 독서를 권면했는지도 모른다. 가을의 길목에서 산들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책바람’이 이쪽저쪽에서 생겨나 상당히 고무적이다. 혼자만의 독서도 의미가 있겠지만, 책을 매개로 시민들이 어울리고 소통하는 행사나 축제를 통해 매력적인 책 문화 콘텐츠를 선보이는 일들은 지역의 문화적인 품격을 높이고 도시의 가치 제고와 독서문화의 저변확대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최근 구룡포읍 해파랑문화쉼터에서 열린 ‘구룡포의 이야기를 담다-소소한 책담회’는 참신한 기획과 깔끔한 진행, 청중의 환호로 성황리에 마무리돼 눈길을 끌었다. 구룡포 어업인 자녀 공부방에서 시작해 읍민도서관을 거쳐 해파랑문화쉼터로 리모델링해 지난 6월 개관 이후 처음으로 열린 책담회는, 지역주민 스스로 기획하고 주관한 문화행사의 첫걸음이다. 구룡포에 23년간 살면서 바닷가 순정한 포구와 순정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시로 담아낸 사연을 시인의 입담으로 담담히 풀어내고, 구룡포를 노래하거나 해녀의 애환이 서린 시를 시낭송가의 특색있는 음색으로 낭송하는 등 시종 감흥과 정겨움으로 어우러지는 시간이었다. 구룡포에서 살아온 얘기를 지역주민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을 통해 ‘구룡포에서 살아가는 행복’을 되새기며 문화적인 소통과 교감을 하는 자리에 보름달마저 환하게 비춰주었다. 이러한 해파랑문화쉼터 책담회는 앞으로 다양한 책과 작가들을 소개하고 지역민들과 함께하며 문학, 인문학, 교양, 자기 계발 등의 분야에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 책과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생생한 소양과 지식을 더해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포항시는 국내 최대 독서문화축제인 ‘2024년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치른 경험을 바탕으로 2025 지역독서대전 지원사업에 선정돼 음악 특성화 도서관인 포은흥해도서관에서 강연, 북토크, 북마켓, 공연, 전시,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책과 함께하는 축제 ‘2025 포항 독서대전’을 개최할 예정이라서 사뭇 주목된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9-02

잠시 멈춤의 힘

예전에 코카콜라 광고에 나온 ‘상쾌한 이 순간’이라는 카피를 기억하는가, 성장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잠깐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그렇게 상쾌함을 되찾는 순간이 온다. 잠깐 멈추는 법을 배우면 성장이 따라올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되돌아보기의 법칙이다. 살면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것은 성장에 4가지 영향을 준다. 첫째, 되돌아보면 경험이 지혜로 발전한다. 오랜 역사 이전부터 사람들은 경험을 최고의 스승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경험은 최고의 스승은 아니다. 최고의 스승은 ‘평가를 거친 경험’이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수많은 경험을 하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데, 이는 잠깐 멈춰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잠깐 멈추는 여유는 그만큼 중요하다. 마차용 채찍 만드는 회사가 있었다. 생산 공정을 개선해 뛰어난 품질의 채찍을 만들어 내고 계속해서 개선해 나갔고 업계 선두에 섰다. 어느 날 자동차가 시장에 등장했다. 승승장구하던 말채찍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만약, 말채찍 회사 리더들이 잠깐 멈춰 경험이 주는 의미를 이해하고 진로를 바꿨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둘째, 잠깐 멈춰 되돌아볼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 새벽 명상이 주는 가치는 경험한 사람은 안다. 잠시 멈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은 격려나 동기부여보다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걸음을 멈추면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하루를 몹시 바쁘게 살아간다. 많은 경험을 하지만 정리가 안 된다. 되돌아 볼 시간과 장소가 있고, 습관화 되면 하루 일어나는 경험들이 주는 의미를 알게 되고 더 나은 삶이 된다. 셋째, 의도적으로 멈추면 더 넓고 깊게 생각할 수 있다. 세상에 영향을 끼친 위인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기업의 리더들은 보통 사람보다 바쁘게 살아간다. 1분 동안 생각하는 시간이 한 시간 동안 말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경우가 있다. 대학은 교수에게 가르치는 시간 외에 생각하고 연구하고 저술할 시간을 준다. 그것은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면 지식과 경험을 뜯어보고 합리적으로 평가해 내일을 계획할 수 있다. 넷째, 잠깐 멈출 때 활용하면 좋은 것들이 있다. 생각 속 내용은 탐구, 숙성, 각성, 실증 등 네 가지로 나아가야 한다. 새로움의 추구는 탐구에서 시작된다. 경험에서 지혜와 진리를 찾아내야 한다. 인생의 경험을 마음의 솥에 넣고 얼마 동안 찌는 것이 숙성이다. 이것은 명상과 비슷하다. 하루를 마칠 때 자신이 한 일을 되새겨보라.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자극하게 될 것이다. 각성이란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깨달음이나 지혜를 얻는 순간을 뜻한다. 실증은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는 뼈와 같다. 뼈는 살이 붙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으면 쓸모가 없다. 바쁜 현대인의 생활에서 잠시 멈추고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수많은 지식과 경험들을 바로 세우는 길이고, 미래 삶의 질로 연결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9-02

잘못된 만남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얼마나 듣기 좋은 구절인가. 듣는 순간 따뜻한 사랑이 엄습해 온다. 이웃이 정겨워진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나와 이웃은 서로를 사랑하는 따뜻한 사이인 것 같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올리고 생각해 보자. 내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 나의 이웃사랑이 진정한 헌신인지, 아니면 자기 위안 인지를. 이웃사랑이라는 감정 속에 숨겨진 동기와 욕망은 따로 있지나 않은지. 우리는 수시로 이웃(지인)을 찾는다. 우리가 이웃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고독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이웃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싶어서? 이웃에게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서? 어쩌면 우리들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여 이웃에게 달려갈지 모른다. 고독이란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자기애의 결핍을 치유하기 위해, 이웃들에게 달려간다. 이웃을 만나서 그 이웃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고, 이웃의 잘못을 핑계 삼아 나 자신을 합리화한다. 우리의 이웃을 통하여 나 자신을 정당화하고, 이웃에게 나의 증인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한다. 어쩌면 대부분의 이웃사랑은 위장된 자기애일지 모른다. 자기 내면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 타인과 관계 맺고, 관계를 꾸며댄다. 이때의 이웃사랑은 진정한 베품이 아니라, 자기 결핍이다. 오늘도 우리들은 고독과 권태, 자기 상실감에 떠밀려 이웃에게 달려간다. 이웃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나를 속이고, 이웃을 속이지는 않은지. 진정한 이웃사랑은, 이웃의 인정이나 위로에 매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견디고 그 힘으로 타인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 이웃사랑이다. 이웃을 내 결핍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닌, 하나의 독립적 존재로 존중하는 태도가 진정한 이웃사랑이다. 나의 고독을 견딜 줄 알고 타인의 고독을 존중할 때, 비로소 이웃사랑은 실천된다. ‘타인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타인을 얽어매고 동시에 자신을 정당화하는 장치일지 모른다. 좋은 말이지만 조심해야 한다. 현대 사회의 이웃사랑은 도덕적 미사여구로 소모된다, SNS의 ‘구독’과 ‘좋아요’처럼. 형식적 기부, 보여주기식 봉사활동은 타인 속에서 나를 증명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의 표출이자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타인을 끌어들이는 교묘한 위장 전술이다. 이런 것들이 이웃사랑이라면, 나는 이웃사랑을 거부한다. 이웃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이웃과 통화를 하고, 이웃의 SNS에 좋아요 누른다. 커피숍을 나설 때, 전화를 끊을 때, 좋아요를 누른 후에도 나의 이웃사랑은 그대로 인지 궁금하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근심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는다’라는 공자의 한마디가 이웃사랑의 시작일지 모른다. 이웃을 통해 나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웃은 없다. 말 안해도 다 안다. 나도 알고, 이웃도 안다. 내가. 그대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를. /공봉학 변호사

2025-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