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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죽도시장 할머니 막걸리집

그 한 평도 안 되는 막걸리집팔 십 생애의 생업(生業)찐 계란과 소금밖에 없다한 놈이 한 병 시켜먹으면 오 백 원이지만잔술 넉 잔 팔면 팔 백 원이다나는 적당히 계산적이다앉아 마실 자리도 없으니집세 걱정도 상대적으로 적으며알아서들 챙겨 마시고 간다나는 최소한 의자 몇 개는 준비하고 있으며누군가를 기다릴 줄 안다, 그 가난의 자리날품팔이의 고단함 대신할 십시일반의개념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저렇게 알아서 마시고 길을 나서니나의 권력도 적당하고 정당하다들락날락 온갖 잡놈들 종일 바쁘다허리가 아파도 사람구경이 좋다지랄하는 놈, 외상하는 놈 일체 없다인생에 있어 공짜라는 것이 없지 않겠는가사람은 기본적으로 싸가지가 장착되어 있다바닥이라고 바닥을 치지는 않는다배워서가 아니라 선험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그 가치를 스스로 지향하고 있다우리는 남루해서 눈부시고 그렇게 살아간다가치를 부여하지도 않고 그 의미도 모른다덧셈 뺄셈 구구단 정도면 충분하다인생의 일몰이 분주해서 행복하다이만한 남는 장사 또 없으리.원고료가 두둑하면 늘 가고 싶은 곳이 죽도시장 할머니 집이다. 더 돈을 버는 느낌이다. 천천히 한잔 마시면서 내가 생산한 결과물들에 대해 심도 있게 비평한다. 쓸데없이 진지하다. 수없이 많은 입술들이 닿았을 저 잔에 노을이 슬쩍 걸터앉는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3-05

'김두한기자의 시선/울릉도 '명이'명칭, 육지사람들 이젠 울릉에 돌려주는 게 맞다'

경북부 김두한 기자 '명이'는 울릉도 심심 산골 눈 속에서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봄에 싹을 틔워 울릉주민들이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북돋아 주는 봄철 최고의 특산품이다. 그 명품  `명이`가 내륙지방에서 대량 재배돼 유통되면서 울릉도 고유명인  ‘명이’ 이름을 잃어가고 있다. 울릉도 명이는 자라는 환경과 토질이 전혀 달라 육지 산마늘과는 비교가 안 된다. 쌉싸래하면서 맵고 달콤한 그 맛은 독특,  육지에서 대량 재배되는 생산품과는 에초부터 차원이 다르다.   '명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울릉도로 이주해 온 개척민들이 이른 봄 먹을 것이 없자 명이를 먹고 명을 이었다 해서 지어 졌다. 60년대 만해도 마늘처럼 생긴 명이의 뿌리는 말린 뒤 가루를 만들어 다양하게 음식재료로 이용했고,  줄기는 김치로 잎은 쌈을 싸서 먹었다. 울릉도 토속 주민들은 명이나물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명이(맹이)라고 부른다.  생명을 이어준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이름에도 격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지금도 '명이'하면 웬지  마음이 찡하다. 향토 식물로 울릉의 섬 애환을 같이 해 왔기 때문이다.  그 '명이'가 육지에서 지금 고유의 맛을 잃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다. 돌아보면 '명이'가 이 지경이 된데는 울릉주민들의 책임도 크다. 우선은 울릉은 '명이'라는 상표등록을 했어야 했다. 그걸 안해 놓은 탓에 명이가 돈이 되자 뿌리가 육지로 무분별하게 반출됐고  시험재배들을 거쳐 본격적으로 대량 수확되고 있다.  뒤늦게 원래 이름을 유지하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차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이 됐다. 울릉도 명이는 생채로 먹어야 독특하고 신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해상교통이 원활하기 전 명이의 생채 반출이 어렵자 절임을 통해 대량 반출시킨 장본인들도 울릉주민들이다.  특히 명이 절임을 위해 설탕, 간장 등 각종 조미료가 들어가면서 육지에서 생산된 산마늘 절임과 맛이 큰 차이가 없게 됐다. 명이는 산마늘과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결국 조미료가 맛을 내도록 해 분별력이 크게 떨어져 버린 것이다. 울릉도 명이는 화산섬에서 겨우내 2~3m가 넘는 눈 속과 나무가 우거진 그늘에서 어렵게 자란다. 하지만, 육지 산마늘은 주로 시설하우스에서 재배되거나 산에서 자생한다해도 산새가 험하고 그늘지고 습한 화산섬 눈 속에 자라는 울릉도 명이와 식생환경이 전혀 다르다.  때늦었지만 '명이' 제이름 찾기가 시급하다.  울릉군에서 본격 나서줬으면 한다.   육지에는 산마늘이라는 학명이 있다. 그걸 사용하는 것이 합당하다. 작금 육지에서 사용하는 '명이'라는 명칭은 솔직히 상표 도용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당국의 허술한 대처로 등록은 못했지만 겨우내 굶주렸던 울릉도 개척민들의 허기를 채워주며 생명을 이어줬던 '명이'의 고귀한 이름을 본래 제 자리로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지난 2019년 최혁재 창원대 교수, 한국한의학연구원 양성규 박사, 국립수목원 양종철 박사, 러시아의 니콜라이 프리센 박사가 참여한 공동연구팀이 전세계에 분포하는 10여 종의 자생 산마늘을 조사한 적 있다.  그 결과  ‘명이’는 울릉도가 생성된 직후인 약 157만 년 전부터 울릉도에 자생하기 시작한 고유종으로,  ‘Allium ulleungense’라는 학명의 새로운 종으로 학계에 보고돼 육지의 산마늘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게 밝혀졌다. 산마늘이 육지 어느 곳이든 생산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재배 여건과 환경이 완전히 다르고 종자도 다른데 '명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은 맞지 않다. '명이'는 울릉도에서만 사용되는 고유 명칭으로 육지 산마늘과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또한, 울릉군이나 농협, 명이 농가도 명이 상품 차별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스스로 명이와 산마늘을 구분할 수만 있으면 구태여 '명이' 이름을 찾지 않아도 산마늘이 명이로 변할 수 없을 것이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5-03-05

혁신 인프라를 보면 길이 보인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기업의 혁신 활동은 여러 제약 요소로 제동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노조, 근무제도, 조직문화, 편중 된 운영, 직원 사고 등 많은 요소들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준다. 기업 혁신 인프라는 기업이 혁신 활동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물리적, 기술적, 조직적, 제도적 기반을 의미한다. 기업 혁신 활동 성과에 영향을 주는 인프라 요소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물리적 인프라이다. 연구개발(RD) 시설, 생산설비, IT 시스템 등이다. 생산에 연구개발 인프라가 연계되어 있으면 새로운 미래 소재 강종개발이나 공정 기술개발로 새로운 강종을 생산 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생산에서 일어나는 각종 Data를 가공 할 수 있도록 신뢰성이 있는 IT시스템이 필요하다. 둘째, 기술적 인프라이다. 품질분석시스템, 라인 자동화, 수작업 자동화, AI 활용한 지능화 등이다. 품질 불량 등 생산 상태를 분석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공정 문제를 감지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셋째, 조직적 인프라이다. 기업 내 혁신 문화, 조직 구조, 협업 방식 등 기업의 내면에 흐르는 문화가 성과에 영향을 준다. 특히, 수평적 조직구조와 운영이 중요하고 화학, 철강 등 연속 생산라인에서 4조 2교대 등 근무제도 요건이 조직문화와 혁신 인프라 구성에 영향을 준다. 넷째, 제도적 인프라이다. 법적인 규제, 지원 정책, 특허 및 지적재산권 보호 등이 영향을 줄 수 있다. 필자가 기업 혁신 컨설팅을 할 때 활동 인프라를 먼저 보게 된다. 시간, 손 발이 움직이는 활동 인프라를 보고 그에 맞는 기획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행력이 없는 기획은 무의미하고 갈등과 고급 낭비가 된다. 12시간 교대 근무자에게 개선활동을 하라면 저항에 부딪치게 되고, 휴무날 출근이나 근무 중 틈나는 대로 하게 되는 데, 연속성의 한계로 큰 개선은 쉽지 않다. 수리 날에는 2인 1조 활동 등 안전 법규 준수로 한계가 있다. 기업 혁신은 현업 활동 인프라를 감안한 기획이 되어야 한다. 회사의 방향인 비전을 설정하고 경영 목표, 전략, 추진계획, 인프라에 맞는 운영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가령, CEO의 생각과 경영 철학을 운영 제도에 담고 직원 공감대 형성과 각 조직의 Top이 정기적인 회의체를 통해 활동 현황을 공유하고 이슈를 개선해주는 것이다. 또한 MZ세대가 대세를 이루는 요즘 생산 흐름에 직원의 동기부여 강화가 제도적으로 필요하고 조직 수장의 모범적인 솔선과 진정성 있는 소통, 격려, 포상이 따라야 한다. 기업 혁신 인프라는 물리적 자원뿐만 아니라 조직문화와 제도적 요소까지 봐야한다. 이러한 인프라가 잘 구축될수록 기업은 지속적인 개선 활동을 통해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 시장 경쟁력 확보 등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혁신 성공을 위한 기업 활동 인프라는 최신 기술을 도입하고 조직 구조를 혁신하며 무엇보다도 직원들이 공감하는 제도 운영이 길을 열어준다. 기업의 활동 인프라를 보고 운영 제도를 기획하면 성공의 길이 보인다.

2025-03-04

남도의 봄 마중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을 재촉하는 비가 전국적으로 내리는가 싶더니, 강원·충청지방에서는 밤사이에 눈으로 둔갑해 소복이 쌓였다. 3월에 내리는 눈은 대부분 무거운 습설이라 농가 비닐하우스 등 시설물 피해나 설해목을 초래해 걱정이 앞선다. 한 달 전 입춘 무렵의 한파와 영하권의 날씨가 경칩까지 이어져 꽃과 나무들의 개화시기가 늦춰지는 바람에 지자체별로 고심하고 있다고들 한다.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는 매화축제가 매화는 없고 축제만 있는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대충 난감’이 따로 없을 정도다. 그만큼 기후변화는 이상기온과 예측불허로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더디 오는 봄을 마중이라도 하듯 남도로 향했다. 섬처럼 군데군데 야트막한 등성이가 솟아 있고 바닷물이 빠졌다가 다시 채워지는 갯벌에서 묻어나는 비릿함이 인상적인 ‘녹차수도 보성’의 득량만이다. 전남 벌교읍과 장흥군 사이의 연안에 서당항, 군농항, 율포항 등의 고만고만한 항ㆍ포구들이 이어져 있고, 멀리 고흥군과 보성군 사이의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득량도를 품은 곳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5년 후인 정유재란 때,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고 배설이 감춰둔 12척의 배가 있는 장흥 회진포로 가던 중 군량미를 얻었다 해서 붙여진 득량(得糧)이기도 하다. 보물(寶)같은 고장(城)답게 전남에서 평균고도가 가장 높은 보성군은 바다와 산, 섬이 어우러져 발길 닿는 곳마다 테마와 먹거리, 스토리가 많은 곳이다. 그다지 높지 않은 천혜의 산자락 일대에는 차밭이 많아 전국 녹차 생산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산 아래 도강과 영천마을에는 서편제 판소리 명창이 많이 배출되었는가 하면, 동쪽 벌교의 꼬막과 서쪽 회천의 낙지 등의 먹거리가 풍부해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남도의 연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그곳 보성에서 ‘어디에도 없는 득량만’의 오묘함에 매료되어 시절인연처럼 일림산 기슭 삼의당에 5년째 칩거하며 글을 쓰고 살아가는 한 소설가가 있다. 세상의 풍찬노숙을 달관한 듯 해맑은 웃음이 여유롭고 ‘측간수인(厠間囚人)’을 자처하며 호탕하고 분방하게 글을 쓰고 시를 읊으며 지역의 문화적인 소통과 교류에도 한몫하고 있다. 밤낮없이 집필하고 고뇌하며 유유자적 행운유수로 수행하듯이 살아가며 때때로 세상을 향한 일갈도 서슴지 않는 그는, 어쩌면 요즘 보기 드문 기인(?) 같고 달인같은 모습이랄까? “커피 앞에서/바다를 마신다/고깃배 선창에 떠맡기고/집으로 돌아간 사람들/꼬막 낙지 주꾸미 갯 것 건진다고/칼바람 맞서며 짠물 삼켰다/사나운 시간이 잠들면/검은 머리 갈매기 날개를 접고/먹이를 찾느라 뻘짓 바쁘다//바다 앞에서/커피를 마신다/철게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숨어버리는/생을 찾는다” - 양승언‘커피 바다’전문 썰물과 밀물이 드나드는 율포항 언저리에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커피 바다’ 시를 감상하는 기분은 어떨까? 그리움처럼 멀어져가는 썰물에 내 마음 뻘처럼 고스란히 드러나 속내를 보이지만, 두고두고 사무치는 마음 나지막이 밀물처럼 살며시 다가오면, 한결 넉넉하고 푸근하게 삶을 다독이며 세상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남도의 봄은 그렇게 잠방잠방 오고 있었다.

2025-03-04

‘감시사각지대’가 된 선거관리위원회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정치부기자 시절 대구지역 일부 선거구 총선후보자의 캠프를 출입하면서 일반인에겐 생소한 선거관리위원회의 파워가 엄청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각 선거캠프에서는 선관위직원을 저승사자처럼 두려워했다. 선거법이 워낙 까다롭고 복잡해 후보자 연설 발언이나 선거운동원 활동, 회계자료 체크 등을 조금만 소홀히 했다가는 페널티를 당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각 선거캠프는 보통 선관위 전담직원을 따로 뒀으며, 이 직원이 일일이 선관위에 질의한 후 선거자금을 쓰거나 선거운동을 했다. 선관위는 후보자의 선거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과태료 부과, 고발, 수사 의뢰 등을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주 “감사원은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 권한이 없다”고 결정함으로써, 선관위는 이제 외부기관의 감시를 받지 않는 ‘사각(死角)지대’가 됐다. 헌재는 “감사원 감사가 아니더라도 국회의 국정조사나 수사기관을 통해 외부통제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장에서 사실상 ‘갑’의 위치에 있는 선관위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국회 출입기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실제 선관위는 국회의 자료 요구에 비협조적이거나 잘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사기관도 고소·고발이 없는 한, 판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선관위를 조사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지난주 감사원이 공개한 감사결과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를 비롯해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가 최근 10년간 291차례에 걸친 직원채용 과정에서 878건의 규정위반을 했다. 간부자녀와 친인척 특혜채용을 비롯해 면접 점수를 직접 조작하는 비리도 드러났다고 한다. 김세환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의 경우,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 연락 전용 휴대폰’을 사용했다는 감사결과가 발표돼 충격을 주고 있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맡은 선관위 총 책임자가 감시대상인 정치인과 몰래 소통했다는 의혹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김 전 총장이 휴대폰 데이터를 복구불능상태로 만든 뒤 감사원에 제출했기 때문에 그가 어느 정치인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감시사각지대에서 선관위가 각종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민주당은 지난주 선관위를 감사원 직무감찰 범위에서 제외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헌재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법안이다. 헌재와 선관위, 민주당의 카르텔을 의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출신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최근 그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의 태도가 이상하다”는 글을 올렸다. 국회 입법권을 독점한 민주당이 선관위 비리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그는 “헌재의 판단으로 선관위 비리가 용인받는 것으로 호도된다면 그것은 국가에 위험하다”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해야 할 선관위의 상상을 초월한 비리행태는 국민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선관위가 앞으로 정파성이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투명하게 선거관리를 하려면 외부견제장치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

2025-03-04

청년연령 논란

우정구 논설위원 청년연령의 기준점을 두고 설왕설래가 잦다. 우리나라 청년 나이는 청년기본법에 따라 19∼34세까지다. 그러나 결혼적령기가 늦어지고 기대수명이 느는 등 사회적 변수의 등장으로 오래전부터 청년 나이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제기돼 왔다. 올들어 국회서도 청년연령을 39세까지 상향하자는 청년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제 청년연령은 시간의 문제지 사실상 상향이 기정화된 상태다. 하지만 문제는 법 개정안 발의에도 불구, 전국 지자체에서는 이미 조례를 통해 청년연령을 상향한 곳이 많다는 것이다. 행안부에 의하면 전국 226개 시군구 가운데 83곳이 40대를 청년연령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한다. 일부 지역은 49세까지를 청년으로 규정한다. 경북도내만 해도 22개 시·군 가운데 14곳이 40대를 청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청년기본법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조례를 통해 청년의 연령을 상향하면 그 지역에서는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청년들의 사회 안착을 위해 지원하는 정부 지원금이 지역마다 나이가 각기 달라 형평성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도시청년과 시골청년의 기준 연령이 다르고 경북도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청년연령의 기준이 서로 다른 모순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노령화하고 청년인구가 줄어드는 농촌 입장에선 청년연령의 상향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건강 나이가 그만큼 늘어난 것도 연령 상향의 이유가 된다. 그러나 국가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청년 나이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 개정이 문턱에 들어선 만큼 청년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한다는 차원에서 청년연령 논란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04

문경 봉명산 출렁다리는 언제 어떤 코스로 탐방해야 할까

중부내륙고속도로 상행선 구간인 문경을 지날 때다. 동쪽으로 문경 시내가 내려다보이더니, 그 우측으로 이색적인 풍광 하나가 눈 안으로 쑥 들어온다. 4층 높이의 망대와 연결된 노란색 출렁다리가 건너편의 작은 봉우리와 이어졌는데, 주변의 경관과 어울린 전경이 너무나 빼어나서다. 근래에 문경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관광지는 어딜까. 아마도 봉명산 출렁다리가 아닐까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출렁다리를 건너는 미션이 진행되면서, 시청자들에게 눈 호강을 선사하고 입소문까지 타면서 이제는 명실공히 문경의 핫플레이스이자 랜드마크로 부상되었다. 그러나 전국 언론 매체와 여행객이 주목한다고, 그것 하나만 보고 가기에는 무언가 조금 아쉽다. 그렇지만 여행이 아닌 봉명산 등산이 목적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봉명산 출렁다리를 거쳐 원점회귀로 산행한다면, 약 8.5㎞의 거리에 소요 시간만 3시간 30분이 넘기 때문이다. 이제 여행자를 위해 그 대안을 제시할 차례다. 봉명산 출렁다리는 사시사철 언제 찾아도 좋지만, 어떤 코스를 선택하고 언제 다녀오느냐에 따라 여행의 의미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막연하게 출렁다리만 왕복하기보다는 작은 높이의 봉우리에 축성된 마고산성을 오르고, 봉명산 오름길 첫 번째 데크전망대를 다녀온다면 하루 일정으로는 더없이 좋은 코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봉명산 출렁다리가 놓인 위치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마원리 산 49번지다. 주차는 문경온천이 있는 온천교 주변으로 주차할 공간이 많다. 온천교를 건너면 문경온천 조형물이 보이고 그 뒤쪽으로 탐방로가 이어진다. ‘봉명산 등산로 종합안내도’가 나타나면서 좌측으로 오름길 데크계단이 보인다. 경사가 조금 있지만, 한걸음 옮길 때마다 건강이 좋아지고 수명이 길어진다고 생각하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5분 정도면 완만한 지능선이 나타나면서 계단이 끝나고, 야자 매트가 깔린 탐방로가 이어진다. 70미터면 관산정 정자에 도착한다. 대리석으로 된 계단을 통하면, 북쪽 정면으로 문경의 명산 주흘산이 정자 기둥 사이로 들어와 마치 액자처럼 보인다. 서남쪽과 서쪽으로는 옥녀봉(636.6m), 백화산(1,603.6m), 황학산(912m), 황계산(568.7m), 잣밭산(377.3m)이 시계방향으로 병풍을 치면서 시원하게 펼쳐진다. 지척의 잣밭산은 원근감의 척도가 되고, 우측 뒤쪽으로는 멀리 조령산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봉명산 출렁다리는 관산정에서 160여 미터 더 위쪽에 있다. 산봉우리에 4층 높이의 망대를 세우고 꼭대기 층에서 건너편 석화산과 동등한 높이로 연결되었다. 망대 속을 층계로 오르면 주변으로 펼쳐지는 조망도 관산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조망이 훨씬 더 넓어지면서 광활해진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바라보는 망대 방향의 전경과 조망은 압권이다. 왜 봉명산 출렁다리가 이곳에 세워졌는지를 설명 대신에 풍경으로 대변해 준다. 출렁다리의 망대를 주축 점으로, 좌로부터 옥녀봉 백화산 황학산 잣밭산 등이 부챗살처럼 펼쳐지고 조령산과 주흘산까지 쭉 이어진다. 출렁다리가 놓인 석화산(石花山·274m)은 높이가 낮아서인지 표지석도 없다. 야자 매트와 나무 계단으로 형성된 내림 길을 5분 정도 내려서면 작은 안부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우측은 서울대학교병원 인재원으로 가는 내림 길이고, 직진의 오름길은 마고산성((麻姑山城)으로 오르는 길이다. 마고산성은 ‘증보문헌비고’에 요성(堯城)으로 나온다. 길이가 약 750m, 높이가 2~4m의 석성으로 옛날 마고할미가 앞치마에 돌을 담아 하룻밤에 쌓았다는 전설이 이어진다. 북쪽은 가파른 절벽을 활용하고, 동·서·남쪽으로 산성을 쌓았다. 오늘날 하늘재로 불리는 계립령과 문경새재, 이화령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데, 실제로는 삼국시대 때 쌓은 산성으로 추정된다. 마고산성의 최고점은 266.5m로 석화산보다 오히려 90여 미터나 더 높다. 모두가 봉명산 출렁다리의 출현을 반기지만, 상대적으로 서운함을 느끼는 존재도 있을 것이다. 바로 석화산과 마고산성이다. ‘봉황이 울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봉명산(鳳鳴山·692.1m)이 없었다면, 지금쯤 출렁다리의 이름이 석화산 출렁다리 또는 마고산성 출렁다리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출렁다리가 직접 연결된 봉우리가 석화산이고, 봉명산보다 지리적으로 훨씬 더 가까운 곳이 마고산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봉명산 출렁다리의 이름이 잘못 지어졌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봉명산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에 출렁다리가 놓여있어서다. 무너진 돌무더기처럼 보이는 마고산성 돌계단을 내려서면 작은 안부다. 이곳에서도 우측으로 탈출하는 탐방로가 있지만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진 오름길을 계속 오른다. 좌측으로 내려가는 듯한 희미한 등산로를 지나 10분이면 첫 번째 데크전망대다.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뒤쪽으로 너른 들판과 주흘산이 정면으로 보이고 조령산이 좌측에 어른거린다. 이곳에서는 잠시 후에 내려가야 할 신북천이 내려다보이는 데, 강을 가로지른 징검다리도 조망이 된다. 올라왔던 길을 잠시 되돌아 내려가, 오름길에 보았던 희미한 갈림길에서 우측 신북천으로 내려선다. 맑은 물이 흐르는 신북천의 원류는 백두대간의 하늘재로, 징검다리는 홍수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2차선 도로인 여우목로에 올라서면 도로 좌측에 데크로드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길을 왼쪽으로 줄곧 따르면 탐방 시작점이었던 문경온천 주변이다. 지홍석 수필가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초가 되면 문경은 온통 꽃의 거리로 넘쳐난다. 특히 이곳 주변은 벚꽃이 터널을 이루어, 언제 봉명산 출렁다리를 찾아야 하는지 그 해답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탐방의 시작점이자 종료 지점인 문경온천의 온천수는 약간 붉고 끈끈하며 약리 성분이 풍부하다. 국내 최우수 보양 온천으로 관절염, 신경통, 고혈압, 피부병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또한 주변에 문경약돌돼지거리가 조성되어 온천과 먹거리, 벚꽃 탐방을 한꺼번에 기획한다면 멋진 하루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걸었던 탐방로를 여유 있게 따르고 벚꽃 구경까지 겸하면, 소요 되는 시간은 약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가 될 것이다. /지홍석 수필가

2025-03-04

자르려 하면 잘리지 않는다

그가 왜 초밥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언스플래쉬 칼을 쥐고 무언가 잘라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절대 잘리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긴 미스터 초밥왕. 최근 우연히 읽게 된 만화책이지만 생각보다 나는 더욱 깊게 빠져 들어 읽고 있다. 거대 초밥회사인 사사 초밥이 장악하고 있는 홋카이도 오타루시. 주인공인 쇼타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토모에 초밥은 사사 초밥의 훼방 속에서 간신히 가게를 꾸려가고 있다. 가게가 망해갈 무렵, 다시 가게를 일으킬 기회인 초밥 콘테스트를 쇼타가 나가게 되고 어딘가 미숙하지만 성장 가능성을 알아본 오오토리 세이고로의 스카웃으로 도쿄의 유명 초밥집인 봉초밥집에 입성하게 된다. 곧바로 초밥을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쇼타의 담당은 배달, 접시 닦기, 청소뿐이었고 간신히 그럴 듯한 임무가 주어지면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아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뿐이다. 하지만 쇼타는 그 어려운 도전 속에서 사람을 믿는 마음과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고 소중한 이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정진한다. 늘 새롭고도 강력한 도전자를 만나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약점이 더 도드라지지만 약점에 함몰되어 자신감을 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될지 안될지 해보지 않는 이상 모른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 꾸준함으로 나아간다. 상대의 방해와 계략에도 당황하지 않고, 대놓고 쇼타를 험담하는 상황 속에도 쇼타는 자신만의 중심을 잡고 상대의 본질과 약점을 파악하고 만다,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집중하여 근원을 찾는 쇼타는 결국 스스로를 믿는 힘에 열쇠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쇼타는 늘 성장한다. 어제보다 더 깨우치고 더 배우며, 자신보다 초밥 기술을 16년이나 앞선 라이벌의 코를 짓밟기도 한다. 쇼타는 그런 해맑고도 우직한 모습을 통해 알 수 없는 용기를 준다. 하지만 쇼타가 늘 열의에만 가득차 있는 것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강적을 만날 때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쇼타는 심히 당황한다. 두 주먹을 질끈 쥐고서 어쩔 줄 모르는 막막함과 두려움 같은 것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땅 아래로 시선을 향해 있다. 나는 그러한 상태를 요즈음 나의 모습과 계속해서 겹쳐 보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늘 쇼타의 주변인들이 나타나 한마음으로 쇼타를 응원한다. 그가 왜 초밥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 쇼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며 지지 않아야 되는 이유들에 대해 다시금 쇼타에게 알려준다. 쇼타 또한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다시금 일어나 씩씩하게 나아간다. 내가 지금 어딜 나아가고 있는지 모를 때, 믿음으로 이어진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고, 나는 그러한 믿음으로 이어진 유대감이 삶을 살아가게끔 하는 원동력이자 중요한 삶의 이유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만화는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지게 느낄 만큼 믿음과 유대로 이어진 선의 편은 늘 이기고, 증오와 미움, 거만으로 점철된 악의 무리는 늘 거만에 취해 승부에 패배하고 만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만화적인 권선징악의 주제가 좋다. 선은 어떤 방향으로든 이긴다라는 다소 유치하고 일차원적인 이 주제를 애써 믿고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세상은 언제까지고 느리고 어리숙한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는 알게 모르게 그것이 불만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내게 제일 중요한 건 한낱 응석 뿐만이 아닌, 어떤 일이 있어도 지지 않고 노력하는 마음을 갖는 것.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내 앞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다. 세상이 아주 새까맣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당혹스럽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내 주변의 믿음과 사랑을 떠올리면 된다. 최근엔 아주 어릴 적 논밭에서 작업을 하고 있단 할머니를 기다리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기에 전생이나 꿈결처럼 희미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일을 다 마치고 나서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갔던 언덕의 시골 풍경과 모퉁이의 코스모스의 길이 기억 난다. 할머니가 일을 마치길 기다리다 같이 손을 잡고 집에 가는 길은 분명히 천국의 무지개를 마주한 것처럼 따스했고 지나치게 평온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일은 무언가 급히 잘라야만 한다는 강박의 칼자루를 내려두고, 그저 현재를 지혜롭고 편안하게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 삶을 평온하게 이어나가기란 쉽지 않고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날들이지만 마음의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는 사랑의 요소를 생각하며, 오늘도 살아간다.

2025-03-03

내가 모르는 상처

부지불식간에 생기는 몸의 상처만큼 마음도…. /챗gpt 외출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무릎에 새끼손톱만 한 핏자국이 굳어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다쳤는지 모른다. 어떤 날에는 손등에, 또 어떤 날에는 정강이에, 심지어는 뺨이나 콧등에도 원인미상의 상처가 생겨 있다. 살갗이 까지거나 패인 자국, 무언가에 할퀸 자국, 어디 찧었는지 멍 자국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때마다 ‘칠칠치 못하게 쯧쯧, 조심 좀 하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한다. 마치 자동차에 난 미세한 흠집처럼, 어쩌다 다쳤는지 모르는 작은 상처들도 하나 둘 자꾸 많아지니 신경이 쓰인다. 목욕탕에서 내 몸을 보며 골똘해졌다. 격투기 선수도 아니고 유격훈련 받는 군인도 아닌데 무슨 상처들이 이렇게 많을까. 문득 내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그 미안함은 ‘차분하게 행동하자, 모서리를 조심하자, 자다가 함부로 몸을 긁지 말자’ 정도의 반성과 다짐이 됐지만 그때뿐이다. 집에 와 보니 양말 발뒤꿈치에 검붉은 자국이 나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생기는 몸의 상처만큼 마음도 어쩌다 다친 줄 모르면서 벌써 패이고 깎이고 베인 곳들이 있다. 마음의 잔상처들은 어디서 오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 어딘가에 찧거나 할퀴는 것처럼 마음도 무엇엔가 접촉하고 충돌했기에 다쳤을 텐데. 하루에도 여러 사람들과 관계하며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문자든 말이든 우리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는다. 그러는 사이 칼이 칼인 줄 모르고, 가시가 가시인 줄 모르면서 다치거나 다치게 하는 일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밖에 나가 누구와 다툰 것도 아니고 혼난 것도 아니고 손가락질 받거나 모욕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저 지극히 보통의 일상을 보냈을 뿐인데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는 날이 있다. 어느 순간에 어떤 지점에서 상처 받았는지 모른다. 아니, 알지만 그러려니 한다. 따져들면 서로 피곤해지기만 하고, 쓰라리긴 해도 심각한 건 아니니까 그냥 묻어두기로 한다. 이런 일에 일일이 스트레스 받으면 험한 세상 못 산다고, 그러니 무던해지자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스스로에게 당부하면서. 하지만 무딘 사람이 되는 건 무서운 일이다. 상처가 아예 굳어져서 더는 상처 받지 않는 바위를 보면 굳고 정한 기상이 느껴지는 대신 안쓰럽기만 하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위의 패이고 벌어진 상처에 손을 넣고 암벽을 오른다. 상처는 손을 부른다. 상처로 모여드는 손들이라고 다 치료하는 손은 아니다. 익숙하니까, 편하니까, 나한테 필요하니까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고 손을 넣는다. 내가 매달려 의지하는 사람일수록,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나로 인해 바위처럼 패인 자국을 많이 지녔을 것이다. 바위를 안쓰러워 할 시간에 사람부터 챙기자.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 안 그러는데 가장 친한 친구에게만은 늘 그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일단 ‘아니야’라고 부정하는 버릇이 있다. 수년 째 같이 운동하는 사회인야구팀에서 선발투수인 나는 외야수가 실책을 하면 허리에 손을 얹고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 노려보곤 한다. ‘설마 그런 사소한 걸로 상처 받겠어?’ 싶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죽을 것 같이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 릴케는 장미가시에 찔린 게 패혈증이 되어 합병증을 앓다 죽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직도 상처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몸”(신기섭, ‘나무도마’)을 생각하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나의 바위, 나의 나무도마인 엄마가 이제야 어른거린다. 짜증, 투정, 핀잔, 탓… 얼마나 오랜 세월 엄마는 자식의 감정 하치장이 되었나. 이제는 안 그럴 나이가 됐는데도 엄마 앞에선 여전히 ‘금쪽이’다. 엄마의 마음이야말로 시인이 말한 “상처들이 서로 엮이고 잇닿아 견고한 하나의 무늬를 이룩한 곳, 세월의 때가 묻은 손바닥같이 상처에 태연한 곳”이 아닐까. 내 상처가 대수롭지 않으니 타인의 상처도 가볍게 여겼을까. 차를 범퍼카처럼 막 굴리면서 이 정도 스크래치쯤이야 하는 사람처럼, 접촉사고를 내고서도 다 나 같은 줄 알고 뭘 이런 걸로 보험을 부르냐며 적반하장이었을까. 이제 나는 내 상처를 똑바로 보려 한다. 어쩌다 다쳤는지, 누가 아프게 했는지 찾아내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아무리 작은 흠집이라도 내 상처를 심각하게 여겨야 타인의 상처에 대해서도 진지해진다. 안 다치는 법을 알아야 안 다치게 할 수 있다. 내 상처를 잘 관리해야 타인의 상처에도 새살을 돋게 할 수 있다고, 나는 지금 까진 무릎에 바를 연고를 찾아 서랍을 뒤지는 중이다.

2025-03-03

깨진 유리창의 법칙

학원을 파하고 급히 횡단보도를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아찔하다. 차들은 바삐 오고 갔다. 아파트 옆 동 동생과 함께 저녁 산책을 다녀오며 무심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신호등을 찾았지만 없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호등이 있는 것처럼 계속 서 있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뒤로, 우리 옆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멈춰 서기 시작했다. 누군가 휴대폰을 보며 뒤따라 멈췄고, 이어서 유모차를 밀던 엄마도 정지선에 멈췄고, 손을 꼭 잡고 걸어오던 노부부도 멈췄다. 횡단보도는 그대로였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마치 당연히 기다려야 하는 장소가 된 것처럼. 나는 문득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떠올랐다. 작은 무질서가 방치되면 더 큰 무질서를 부른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거꾸로 누군가가 질서를 지키면 다른 이들도 따라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 같아도 때로는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곤 한다. 누군가가 무단횡단을 하면 뒤따르는 사람들도 별다른 고민 없이 건넌다. 반대로 누군가 오늘처럼 멈춰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멈춘다, 마치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작용하는 듯 했다. 어릴 적 우리 동네 전봇대에는 낙서가 많았다. 처음에는 작은 글씨 몇 개였는데 금세 키 큰 전봇대는 사람의 손이 닿는 모든 지점이 낙서로 뒤덮였다. 그 때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붓을 들고 페인트를 칠해 낙서를 지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의아해했지만 깨끗해진 전봇대는 의외로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새로 낙서를 하는 아이들이 줄어든 것이다. 누군가 작은 질서를 만들어 놓으면 그 질서를 따르려는 경향이 사람들에게 있는 듯 보였다. 횡단보도 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단순히 멈춰 서 있었을 뿐인데 그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다려야 한다’는 신호가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작은 변화가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순간이었다. 조금 후, 차 한 대가 멈췄다. 신호등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많아지자, 운전자가 양보한 것이다. 그곳에 서 있던 사람들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넜다. 재밌는 상황이 벌어지자 모두가 건너며 함께 웃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 앞에 또 새로운 사람이 서 있었다. 뒤에 또 다른 사람이, 그 뒤로 또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작은 행동이 가져 오는 변화, 질서를 깬 작은 요소가 혼란을 가져오듯 질서를 지키는 작은 행동도 조화를 만들 수 있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보이지 않는 신호처럼. 최근에 본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 카페에서 자리가 부족해지자 어떤 손님이 쓰레기를 테이블에 그냥 두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손님들도 자리를 정리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결국 카페 안은 금세 어질러졌고 직원이 치우기 전까지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유명한 카페라고 갔지만 정돈되지 않은 무질서에 시간 내어 찾아온 카페에 대한 불 김경아 작가 신과 후회까지 밀려왔다. 긴 시간도 아니었고 찰나에 일어난 무질서였다. 작은 행동 하나가 큰 흐름을 만들 수 있다. 무질서가 퍼지듯 질서와 배려도 전염된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는 대신 닦아내고 정돈을 시작하는 것, 지금 우리 주변에 가장 필요한 법칙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종종 거대한 변화를 원하지만 정작 변화를 만들어내는 작은 행동의 본질을 간과하곤 한다. 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있다면 그림자를 본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게 같은 행동을 하게 되고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대화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점점 그 공간은 질서를 갖춘 분위기로 변해가는 간다. 우리는 선순환의 시작점을 만드는 자리에 서야 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내딛는 한 걸음이 작은 변화가 되고 큰 바람을 일으킨다. 시간이 흐르면 긍정의 선택이 모여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 낼 것이다. 깨진 유리창을 더 박살내고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으려는 시작점에 누군가는 또 서 있게 될 것이니까. /작가 김경아

2025-03-03

영혼의 맹인들을 향한 윤동주의 점자

저의 앨범에는 중학교 3학년 때 소풍을 가서 찍은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관광버스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인데요. 자세히 보면 제 손에는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들려 있습니다. 어린 저는 윤동주를 읽으며, 나도 감히 문학을 한다면 윤동주처럼 깨끗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제 문학의 출발에는 윤동주가 있었고, 문학이라는 길 위에 서 있는 지금도 윤동주는 변치 않는 ‘문학의 상징’입니다. 당연히 윤동주의 삶과 문학이 건네주는 감동은 저만의 것은 아닌데요. 사실 윤동주만큼 시공을 뛰어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문인도 드뭅니다. 윤동주의 시는 한국, 북한, 중국, 일본에서 모두 사랑받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일본에는 아름다운 시비가 세워져 있을 정도니까요. 윤동주의 그 고결한 삶을 앗아간 일본에서조차 윤동주의 문학은 수많은 일본인들의 영혼을 울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여러 곳에서는 지금도 윤동주에 대한 추모 모임이 열리고, 낭송회가 열리고, 답사 모임이 열리고는 합니다. 윤동주는 고작 27년 1개월을 이 지구별에 머물다 갔지만, 그처럼 동아시아의 다양한 공간을 두루 편력한 문인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윤동주는, 한반도의 평양과 서울에서 중학교와 전문학교를 다녔으며, 이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와 교토의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결국 후쿠오카의 차가운 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윤동주는 오늘날의 한국, 북한, 중국, 일본을 모두 중요한 삶의 공간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제가 1년간 도쿄에 머물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계획한 일 중의 하나도 윤동주의 도쿄 내 행적을 따라가 보는 것이었습니다. 윤동주는 1942년에 한 학기 동안 릿교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다녔는데요. 2025년 2월 16일은 윤동주가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2월 16일은 일요일이었기에, 저만의 조촐한 추도회를 갖는 심정으로, 이틀 앞선 2월 14일에 윤동주의 도쿄 내 흔적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윤동주가 도쿄에서 머무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다카노바바의 하숙집 터였습니다. 다카노바바에 윤동주의 하숙집이 있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밝혀낸 이는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야나기하라 야스코입니다. 수필가이기도 한 그녀는 윤동주의 릿교대 후배로서, 평생 동안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알리는데 헌신해 온 분인데요. 그녀의 조사에 따르면, 윤동주의 하숙집은 현재 일본점자도서관 근처에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 윤동주가 머물렀던 곳에 일본점자도서관이 생겼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단순한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윤동주가 영혼의 잉크로 써내려 간 시들은, 일제 말기 정신의 맹인들을 깨우치기 위한 점자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윤동주의 작은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기대하며 한참을 서성였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의 건물이나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윤동주가 한 학기를 다닌 릿교대학이었습니다. 윤동주의 하숙집이 있던 다카노바바에서 릿교대학은 대략 2.5킬로미터 정도가 떨어져 있었는데요. 스물여섯 살의 윤동주가 그랬던 것처럼, 릿교대학까지 직접 걸어가 보았습니다. 릿교대학에 도착했을 때, 고풍스러운 본관인 모리스관이 저를 맞아 주었는데요. 어딘가 낯이 익다고 생각하여 자세히 보니, 담쟁이 덩굴까지 포함하여 윤동주가 공부한 연세대의 언더우드관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윤동주가 도쿄에 머물며 릿교대학에 다닌 때는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직후여서 참으로 분위기가 험악했습니다. 그것은 윤동주가 이 무렵 삭발한 모습으로 찍은 사진에서도 잘 드러나는데요. 야나기하라 야스코에 따르면, 릿교대학은 윤동주가 입학한 직후에 “전시체제에 맞추어서 질실강건(質實剛健)한 기풍을 진작하려는 목적”으로 학생들에게 삭발을 강요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릿교대학 본관 바로 옆에는 Mather Library 기념관이 있었는데요. 그 건물의 입구 바로 오른 편에는 윤동주가 릿교대학에 다니며 창작했던 다섯 편의 시 ‘흰 그림자’, ‘사랑스런 추억’, ‘흐르는 거리’, ‘쉽게 쓰여진 시’, ‘봄’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다섯 편의 시는 친구 강처중에게 보낸 편지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인데요. 이 시들은 윤동주가 지상에 남긴 마지막 작품들로서, 윤동주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편들입니다. 도쿄에서 윤동주는 조선(인)을 참으로 그리워했던 거 같습니다. “사랑하는 동무 박이여! 그리고 김이여! 자네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흐르는 거리’)라며 애타게 벗들을 불러보는가 하면, “봄은 다 가고·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사랑스런 추억’)며 애타게 과거의 자신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결국 윤동주에게 “육첩방은 남의 나라”(‘쉽게 쓰여진 시’)일 수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 절절한 외로움 속에서 윤동주는 “홀로 침전”(‘쉽게 쓰여진 시’)하며 “슬픈 천명”(‘쉽게 쓰여진 시’)으로 주어진 시 쓰기에 열중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 속에서 윤동주는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쉽게 쓰여진 시’) 인류의 예언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상 만물은 부서지고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맑고 투명하여 애처롭기까지 한’ 윤동주의 삶과 문학만은, 2025년 2월의 도쿄에서도 변치 않는 ‘젊음의 표상’으로 영원을 살고 있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3-03

계몽이란 무엇인가?

허민문학연구자 “제가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하느라 몰랐던 민주당이 저지른 패악을 일당 독재의 파쇼 행위를 확인하고 아이와 함께 하려고 비워둔 시간을 나누어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저는 계몽되었습니다.” 윤 대통령 측 변호사의 최종변론이다. 성스러운 비상계엄으로 ‘야당의 독재 파쇼 행위’라는 성립 불가능한 상황을 인지하고 계몽되었단다. ‘윤통’의 은혜에 감복한 간증처럼 들리기도 했고, 일제 말 대동아전쟁을 거룩한 ‘성전(聖戰)’으로 선전하던 ‘총독의 소리’가 연상되기도 했다. 자기의 무지에 관해 회의할 수는 있겠지만, 왜 가만있는 대중의 지성을 시험하려는지 모르겠다. 선민의식과 노예근성, 엘리트주의와 독선이 ‘짬뽕’ 된 변종의 어용적 세계관이라 하겠다. 내란 정국에서 별의별 궤변과 요설과 망언 때문에 고달팠고, 그 과정에서 소용된 말들의 오염과 오용도 참기 어려웠는데, 그 대미를 장식해준 것 같다. 이를 기리며(?) 별안간 ‘핫’해진 ‘계몽’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몇 자 적어두고자 한다. 칸트는 “계몽이란 우리가 마땅히 스스로 책임져야 할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 정의한 바 있다. 이때 ‘미성년 상태’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면서 “이 미성년 상태의 책임을 마땅히 스스로 져야 하는 것은, 이 미성년의 원인이 지성의 결핍에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도 지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결단과 용기의 결핍에 있을 경우”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미성숙이란 다만 지성의 부재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미성숙의 상태에서 성숙으로 상승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봤다. 물론 칸트는 자신이 속한 시대를 ‘계몽된 시대’가 아니라, ‘계몽의 시대(=프리드리히 왕의 세기)’로 파악함으로써 계몽의 주체로서 이성의 공적 사용을 보증할 수 있는 힘은 왕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타인의 도움 없이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용기는 ‘계몽된 시대’의 도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둠으로써, 인간에 고유한 지성의 능력을 미래로부터 확보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칸트에게 계몽은 누구에게나 잠재된, 보편적인 능력으로서 공정하게 열려있는 유예된 성장의 기회를 의미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랑시에르는 칸트의 계몽에 관한 바로 이 노트로부터, 인간 지성에 내재된 평등의 원리를 식별해 낸 바 있다. “무언가를 혼자 힘으로 설명해주는 스승 없이 배워보지 못한 사람은 지구상에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반면 무능력이란 가르치려는 자의 가치관이 지어낸 허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나는 인간이다, 고로 생각한다”라는 인식으로 뒤집은 것이다. 이런 역전이야말로 지적 능력의 본성상 평등을 의식하는 해방이라 할 수 있겠다. 12·3 비상계엄으로 계몽된 사실이 있다면, 이는 5년 단임 선출직 공무원의 몽니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 데 있을 뿐이다. 철학의 빈곤이 야기한 허언 속에서 집단지성의 위력에 대한 대통령의 무지가 드러났다.

2025-03-03

미나리와 겨울나기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지난 겨울 초입에 야생 미나리 뿌리를 한 줌 캐 왔다. 들에 자생하는 미나리는 기온이 내려가면 잎은 다 시들고 뿌리만 땅속에서 월동을 한다. 아시아가 원산인 미나리는 맛과 향이 좋아 식용작물로 많이 재배되고 있다. 도랑에 저절로 난 미나리는 사람이 가꾼 것보다 질기긴 하지만 향은 더 진하다. 여름철에 수북하게 자라면 베어다가 생으로 매운탕에도 넣고 데쳐서 무치기도 했다. 적당한 시기에 자르지 않으면 장다리가 나와 꽃이 피고 쇠어서 먹을 수가 없게 된다. 반으로 자른 페트병에 물을 붓고 미나리 뿌리를 담가 놓으니 며칠 후부터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따금 물만 갈아 주는데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 올랐다. 두어 주일이 지나자 페트병을 가득 채운 미나리 파란 싹이 어둑한 내 방에 생기와 긴장을 불어 넣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오래 전에 배운 동요가 떠올라 절로 흥얼거리기도 했다.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세요./ 병아리떼 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미나리 파람 싹이 돋아났어요.’ 살면서 수시로 접하게 되는 주변의 사물과 현상들이 문득 새롭게 보일 때면 그와 관련된 동요가 떠오르곤 한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동요를 배우면서 그때까지 무심히 보아 넘기던 것들이 새롭게 인식되고 각인되어서 기억과 정서에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밤하늘을 쳐다보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이라는 동요가 떠오르고, 고향 생각을 하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 따라 나온다. 첫돌맞이 아기처럼 방싱방실 웃는 민들레, 파도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스르르 잠이 드는 섬집 아기,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가는 다람쥐, 새벽에 토끼가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는 옹달샘…. 얼마나 맑고 곱고 정감어린 동심의 세계인가. 페트병에다 미나리 뿌리 한 줌을 키우는 일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정성이나 노력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약이나 식용으로 쓸 것도 아니라서 쓸데없는 짓이라고 할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겨우내 파릇하게 자라는 미나리와 함께 호흡하고 생기를 나누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가 않다는 생각이다. 설령 수억 원짜리 명화를 걸어 놓고 날마다 쳐다본다고 한들 이보다 더 좋은 감동과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미나리 뿌리를 캐온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물이 마른 도랑에 죽은 듯 시들어버린 미나리 잎을 보고 문득 뿌리를 캐다가 방안에 두면 싹이 나올 거란 생각을 하게 된 것뿐이다. 그렇다. 우리가 평소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도 관심을 가지고 일상 속에 들여 놓으면 삶이 한층 생기롭고 깊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미나리 싹이 자라는 걸 볼 때마다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셔요’ 동요를 흥얼거리며,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나이도 잊고 아이처럼 순진무구해져서 겨울을 지나왔다. 이제 봄이 왔으니 다시 들녘으로 돌려보낼 테지만, 어둡고 긴 겨울 동안 더없이 해맑고 싱그러운 이웃이 되어준 미나리 싹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2025-03-03

이재명의 실용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신년기자회견에서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을 인용하여 실용주의를 주장했다. 나아가 2월 10일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탈이념·탈진영의 실용주의가 성장발전의 동력”이라면서 실용정치를 거듭 역설했다. 심지어 당의 이념 정체성까지도 ‘중도·보수’로 규정함으로써 스스로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왜 갑자기 ‘우(右)클릭’해서 실용주의자로 변신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지지율 정체로 인해 조기대선이 실시될 경우 승패를 결정짓는 중도층에 대한 외연확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실용주의 정책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특히 진영정치가 판치는 우리의 현실에서 실용정치는 타협의 가능성을 제고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재명의 실용주의에는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말’과 ‘행동’이 달라서 ‘진정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말로는 ‘우파 실용주의’를, 그리고 행동은 ‘좌파 포퓰리즘’을 추구하는데 누가 믿겠는가. 그가 주장하는 ‘국가주도 성장과 개혁’이라는 것은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키노’와 같은 형용모순이다. 민주당에서도 왼쪽으로 분류되던 그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당 내부에서조차 ‘진보의 자기부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말로는 덩샤오핑을 표방하면서 행동은 마오쩌둥(毛澤東)을 닮았으니 양두구육(羊頭狗肉)이다. 더욱이 그의 실용주의는 ‘일관성’이 없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을 포기하겠다.”고 한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추경에 포함시켰고, 전향적 검토를 약속했던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 예외허용’도 없던 일이 되었다. ‘진보적 기본사회’를 외치다가 갑자기 ‘보수적 성장론’으로 선회하고, 다시 반발이 나오면 이 둘을 적당히 버무려 붙인다.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가 불리하면 뒤집고, 주한미군을 ‘점령군’이라고 한 그가 요즘은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치행태는 실용주의자가 아니라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이다. 이재명의 실용주의는 중도확장전략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선거가 끝나면 부도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위해 민주당의 정체성까지 ‘중도·보수’로 규정하고 있지만 당내 반발이 거세다. 당의 이념 정체성도 통일하지 못하면서 보수의 성장담론을 추구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실용주의가 거짓이 아니라면 민주당 강령부터 중도·보수로 바꾸는 동시에 실제 정책의 추진에서도 그 진정성이 증명되어야 한다. ‘이념으로 분열’된 나라는 ‘실용으로 통합’의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집권에만 혈안이 된 이재명의 ‘정략적인 오락가락 실용주의’로서는 통합을 기대하기 어렵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실각당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깊은 통찰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025-03-03

청년들 죽음 내몬 ‘전세왕’의 형량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30대에겐 전세보증금이 전 재산이나 다름없다. 그걸 사기에 의해 모두 잃는다고 가정해 보자. 크나큰 절망감과 견디기 힘든 고통에 빠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니, 그런 사기를 주도하거나 조력한 자들의 죄는 결코 작지 않다. 3년 전, 다수의 청년 세입자를 패닉에 빠뜨린 이른바 ‘전세 사기’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사회 문제가 됐다. 몇몇 청년들은 대출 등으로 겨우 마련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통곡했다. 그때 사기 혐의로 검거된 이들을 세상은 ‘빌라왕’ ‘전세왕’이라 불렀다. 최근 그 악질 전세 사기범들이 줄줄이 재판 후 형을 선고받고 있다. 그런데, 형량이 국민들의 법 감정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전세 사기 주범은 10년 안팎의 징역형, 사기를 방조하거나 도운 공인중개사 등은 집행유예나 무죄를 받은 것. 일례로 인천 미추홀구에서 세입자 191명을 기망해 전세보증금 148억원을 가로챈 60대 사기꾼 남씨에겐 2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됐다. 1심 형량 15년이 2심에서 절반 이상 깎인 것이다. 피해자들이 “대한민국이 사기 공화국이란 걸 법원이 선언했다”며 반발한 건 당연지사. 법조계에선 "현행법상 사기죄 가중 처단형은 징역 15년이다. 입법 한계가 있어 높은 형량을 선고할 방법이 없다"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한다. ‘사기죄의 양형 기준을 대폭 고치거나, 국회가 사기죄를 엄벌하는 형법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국민과 피해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외면해선 안 될 때가 된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03

불교가 처한 현실

탄탄 스님(전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장) 한국불교가 처한 상황은 매우 암울하다. 한치 앞을 볼수도 없는 지경이다.  사회적 이슈나 문제가 불교안에서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시점이라 해야 한다. 신도들의 고령화는 이십년도 더 전부터 꺼내들던 아젠다 였으니 이젠 초고령화를 넘어 50대 40대 신도조차 아예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는 지경이며, 승려들간의 부익부 빈익부의 문제도 보통의 수사로는 표현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항간에 널리 퍼진 수백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고 사찰의 염불과 의식을 맡고 있는 부전스님들은 하루 몇 시간을 공 염불을 하며 그야말로 불안한 노후나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이 하루 하루 연명할 뿐이다. 불교의 고질적 병폐는 전국의 교구 본사에서 맹위를 떨치는 몇몇 권승들이 군웅할거하듯 나눈 이권과 종단의 거대한 이익을 앞두고 벌이는 이합집산이 원인이다. 한줌도 안되는 그들의 이해관계와 힘의 논리에 대다수의 대중스님들은 생존 자체도 버거운 현실이다. 그러나 어두울수록 검푸른 밤하늘에 별이 밝게 빛나는 법이다. 이 시대의 어둠에 처한 불교에는 진정한 스타가 없다. 고작 가볍고 천박하거나 철학의 빈곤한 또는 빈약한 사상으로 무장한 이들이 회통을 치는 '아수라 판'이라고나 해야할 시점이다. 세상이 나날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으로 첨예화 지고 계급 모순이 발생하듯 부처의 평등사상을 실천하다는 구실로 출가를 한 승려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시급해 부수어야 한다. 불교 위기의 극복은 부자 절과 가난한 절의 주지 임기를 2년 정도로 하여 순환하고 두만기 세만기씩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노름장의 잭팟 터지듯 상상할 수도 없는 수십억대 사찰의 주지는 전권을 다가지고 거액을 사유화 해도 어떤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제도적 문제에서 발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원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여져야 함에도 비 민주적이고 몰지각한 권승들의 권력구조 개편 없이는 불가능하고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종단 행정의 전면적 혁신 없이는 불교 개혁이나 당면한 현실적 대안도 부재된 상황이다. 교구의 맹주몇,교구장 이십여명,교구를 대표한다는 중앙종회의원, 상원격의 원로의원,종단의 실,부장급고위직 승려 등 채 백여명 남짓한 대표적 권승들의 작태로 불교가 망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세속보다 더 세속적인 불교는 가라 앉고 있지만,권승들은 태연자약하게 멀뚱이 가라 앉는 불교에서 그들위 먹거리인 재물과 자리만 탐하고 있다. 전면적인 체질 갸선을 위해서는 조직적이고 혁신적인 불교 시민 사회 운동이 개진 되어야 한다. 다 쳐부수지 않고는 불교 본연의 가르침은 마구니와 그들을 따르는 잔당들의 이권 카르텔에 더욱 잠식할 것이며 이시점에서 양식 있는 불자들은 이들을 고사시키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계획하여 전면전을 선포해야 마땅하다. 한 대오를 만들고 힘을 모아 전력 질주하여 불교 개혁의 기치를 올려야 할 마지막 시점이다.

2025-03-01

청도의 가짜 조각품 소동

우정구 논설위원 인구 4만 정도의 청도군에서 군을 상대로 한 가짜 조각품 소동이 벌어져 화제다. 가짜 조각품 소동은 자칭 파리 7대학 교수를 역임한 세계적 유명 조각가가 자신의 어머니 고향에 작품을 기증하고 싶다고 군에 접근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의 호의가 발판이 돼 군은 그의 작품을 구입하게 됐고, 3억원 가까운 예산을 쓰게 된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의 고향도 청도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특히 이번 사기 사건은 특이하게 행정기관을 상대로 가짜 예술품을 팔았고 청도뿐 아니라 똑같은 피해가 전남 신안군에서도 발생했다는 점에서 매스컴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신안군은 청도보다 앞서 19억원의 예산을 들여 조각 작품을 납품받았다고 한다. 그가 납품한 조각품은 모두 중국 공장에서 만든 중국산 수입 조각상으로 밝혀졌다. 청도군은 그를 사기죄로 고발하고 집행된 예산을 되돌려 받기 위해 민사소송까지 제기했으나 예산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주민 다수는 행정기관이 어떻게 그렇게 깜쪽같이 사기 수법에 넘어갈 수 있었는지 의아심을 표하고 있다. 청도군은 집행과정에 이견도 나왔으나 한번 더 검증하는 기회를 갖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잘 수습할 수 있을 지가 걱정이다. 사기를 친 당사자는 법원의 판결로 유죄를 받았지만 군으로부터 받은 돈을 이미 다 써버렸다면 예산 찾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공공기관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인 사람이야 당연히 처벌받겠지만 주민이 낸 세금을 헛되이 쓴 행정당국의 책임은 누가 지나? 가짜가 판치는 세상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2-27

영동할매 내려온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벌써 2월의 끝날, 차가운 날씨가 조금 풀려 봄이 저만치 고개를 내미는 듯하고 이번 주말과 삼일절 연휴에는 전국적으로 약한 비가 예보되어있기도 하다. 음력 2월은 영동달(영등달), 제석달이라 하여, 초하룻날은 영동할매가 하늘에서 내려와 농사를 돌아보고 가정의 평온을 가져다주는 날이라고 한다. 예부터 경상 전라의 남도 지방에서는 영동할매를 맞이하기 위해 정성 들여 굿을 하거나 마을마다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지금도 시골 마을 노인들은 새벽에 정화수 떠놓고 집안 두루 복됨을 비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농촌에서는 풍년을 빌며 농업신으로 받들어 영등고사를 지내고 제주도와 해안 지방에서는 풍신에게 풍어를 빌며 영등굿을 하곤 했다. 영동할매는 바람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음력 2월 초하루에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내려와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보름날에 하늘로 올라 가버린다는데, 며느리를 데려오면 깨끗한 다홍치마가 얼룩지도록 비를 내리고 딸을 데려올 때는 봄바람을 살랑살랑 불어서 예쁜 치마가 휘날리도록 한다는데, 영동할매도 며느리가 미웠나 보다. 그런데 며느리 치마를 젖게 한 비에는 풍년이 들고 예쁜 딸 자랑하려던 바람에는 흉년이 든다 했으니 ‘우순풍조(雨順風調)’, 즉 비가 때맞추어 고르게 내리고 바람이 곱게 불도록 영등제(靈登祭), 풍신제(風神祭)를 잘 지내야겠다. 그래야 봄이 오는 길목, 농한기가 지나서 밭 갈고 씨 뿌리는 계절이 평온할 것이 아닌가. 어릴 때 봄학기가 시작될 즈음, 학교에 가려고 나서는 나를 붙잡고 “영동할매 내려온다. 바람 부니까 조심해서 다니거래이….” 하시며 뺨을 부비고 옷을 추려주시던 우리 할매의 손길이 그립다. 그래서 ‘영동할매’라고 알고 있었는데 ‘영등할매’로도 부른다. 그때 엄마는 새벽녘에 우물가 장독대 위에 밥 한 그릇, 나물 한 접시, 물 한 사발 떠놓고 꿇어앉아 두 손 비비며 가족의 복을 빌었고 얇은 종이를 태워 날리며 높이 날아가라고 손을 휘저었던 소지(燒紙) 모습….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없는 우리 민속이지만 상상 속의 영동할매 모습이 보고 싶다. 이날을 머슴날, 노비날, 구럭달개 등 많은 방언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올해는 영동할매가 곱고 착한 며느리와 딸을 데리고 와서 따뜻한 바람과 함께 봄비를 듬뿍 뿌려 온 가정에 평온과 함께 사랑이 넘치게 하고, 어지러운 이 나라에 밝은 기운을 뿌려주고 올라가면 좋겠다. 음력 2월 영등절을 맞아 국가 안위에 두 손을 모아 본다. 지난 25일 대통령 탄핵 심판의 최종 변론이 종결되었다. 11차 변론까지 거치면서 엎치락뒤치락 말싸움을 해왔던 양측은 아직도 합당한 결론으로 이끌지 못하고 재판부의 평의를 거쳐 추후 3월 중순경 고지할 것이라 하는데 만장일치의 인용을 할지 기각, 각하 등의 심판이 내려질지는 예측이 어렵다.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2심도 시작되었으니, 두 싸움이 잘 풀려서 새로운 봄날이 피어나야 될 텐데. 2월 말 지나 다시 추워질 수도 있다는 꽃샘추위도 온다지만, 이제 농한기도 지나고 있으니 쌓인 눈 녹이고 새싹을 틔우는 따뜻한 비와 바람을 보내주시기를…, “영동할매, 부탁해요.”

2025-02-27

울릉도 나리마을 유엔대표 관광마을 선정돼야…천혜의 보고 세계유례를 찾을 수 없는 마을

경북부 김두한 기자 울릉도 나리분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자연 자원을 갖고 있다.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활화산 분지 안에 마을이 형성돼 그 가치만으로도 세계를 대표하는 관광마을이다. 나리분지는 신생대 제3기 말의 화산활동으로 인해 점성(粘性)이 강한 조면암·안산암·응회암이 분출되면서 칼데라 화구(火口)가 함몰, 형성된 화구원(火口原)이다.  울릉도에서는 유일하게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나리분지의 규모는 동서의 폭이 1.5㎞, 남북의 길이가 2㎞, 면적이 1.5∼2.0㎢크기다. 나리분지는 주변에 해발고도 약 500~1000m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 중 가장 높은 곳이 남쪽에 있는 성인봉(987m)이다. 분지 안에는 북남쪽으로 치우쳐 알봉(611m)이 위치하고 있다. 알봉의 남쪽 산록에는 지름 100∼200m, 깊이 10m 전후의 작은 분화구있다. 분화구 속 분화구인 셈이다. 이곳에서 흘러나온 용암(조면암)이 100m 정도의 두께로 쌓여, 화구원을 북동쪽의 ‘나리마을’과 남서쪽의 ‘알봉마을’로 분리시키고 있다.  나리분지는 겨울철 눈이 녹아 스며드는 물과 빗물이 외부로 나갈 출구가 없어 집중호우에는 일시적으로 호수를 형성하지만 즉시 빠진다.  지하로 스며든 물은 북쪽 사면 250m 지점에서 용출(용출소)돼 추산발전소의 원천은 물론 울릉도 전역에 깨끗하고 맑은 풍부한 물을 공급하고 있다. 약 60만평 규모의 나리분지가 울릉도 수원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리분지는 형성 과정 등이 백두산 천지연, 한라산 백록담과 거의 엇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차이점이라면 나리분지는 오랜 기간 흙과 먼지 나뭇잎 등이 퇴적되면서 땅이 기름지다보니 이곳을 일궈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나리분지는 무억보다 750종의 식물을 품은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특히 나리분지내에 조성된  나리마을은 울릉도 지역의 자연경관과 농업유산, 지역특산물과 특화 체험을 핵심 구성요소로 세분화하고 있다.  장점은 나열이 어렵다. 칼데라 분지의 아름다운 자연을 연계한 경사가 아주 원만한 트레킹 코스도 있는가 하면  자생하는 식물을 활용한 음식 브랜드화, 눈꽃잔치 등 다설지 특색을 반영한 액티비티 개발 등 다양하다.  나리분지를 포함한 지질공원의 우수성도 갖췄다.   제9호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 울릉 화산섬 밭 농업 등의 문화자원, 1차 산업 강화 및 특산물도 나리마을만의 상품이다.   나리마을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분화구 속 마을이라는 점과 지질의 우수성, 신령수 생명의 숲길, 다양한 생물자원의 보고 등의 차별화된 특성을 갖추고 있어 세계 최우수마을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고 세계적인 지질 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곳인 이 나리마을이 유엔이 지정하는 최우수관광마을로 선정돼 많은 외국인도 나리마을의 자연과 신비성, 우수성을 체험하고 함께 공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5-02-27

대학의 새로운 역할, 전세대 교육

장규열 고문 저출산이 한국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깊어진다. 여파가 대학에까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신입생 숫자가 급감하고, 일부 대학들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벚꽃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표현이 현실이 되어 간다. 위기를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대학이 그 역할과 기능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대학은 지난 세기 동안 산업화와 세계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국가발전에 기여했고, 국민의 평균적인 교육수준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고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간다. 저출산과 디지털혁명은 대학이 과거의 방식대로 운영될 수 없게 만들었다. 디지털환경의 변화와 AI기술의 발전은 산업과 직업의 형태를 빠르게 바꾼다. 한번 습득한 지식과 기술만으로 생업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4차산업혁명은 누구나 여러 번 직업을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지속적인 학습과 재교육이 필수가 되었다. 대학이 여전히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청년들만을 대상으로 교육을 제공한다면, 대학의 역할은 점점 더 축소될 터이다. 대학은 ‘젊은이들의 배움터’에서 벗어나, 전 생애에 걸쳐 학습을 지원하는 교육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모든 세대를 위한 평생교육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4년제 학위중심 학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산업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짧은 기간에 특정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모듈형 과정과 마이크로크레덴셜(소규모 인증과정)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성인학습자들이 언제든지 돌아와 대학의 교육과정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성인학습자에게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크다. 온라인과 대면교육을 결합한 유연한 학습방식이 필요하다. 기업과 협력해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직장인들이 부담없이 학습할 수 있도록 야간·주말 과정과 단기집중 과정을 운영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기술변화로 인해 기존 직무가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등장한다. 대학은 단순히 학위수여기관이 아니라 직장인과 경력전환을 원하는 이들에게 실무중심의 재교육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AI, 데이터분석, 디지털마케팅, 헬스케어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과정 등이 필요하다. 대학이 산업과의 연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기업과 협력하여 현장실습,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인턴십 등을 포함한 실질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 교육과 시장 간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기업과 대학이 공동으로 학위 과정을 운영하거나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변화를 주도하지 않으면,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사라질 수도 있다. ‘전세대 학습을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대학은 더 이상 학위를 따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속적인 배움과 전세대의 성장을 지원하는 마당이어야 한다. 대학의 위기가 현실이 되었지만, 새로운 역할을 찾아간다면 넓은 기회의 터전이 펼쳐질 것이다.

2025-02-26

OECD 국가 중 거의 꼴찌 한국인 삶의 질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당신은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는가? 이처럼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또 있을까. 그러나, 존재하는 개별 인간은 누구나 거의 매일 스스로에 묻는다. “난 행복한 것일까? 내 삶의 질은 높은 걸까?” 이 물음에 관한 답변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최근 통계청은 ‘국민 삶의 질 2024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의 의하면 202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4235만원. 전년 대비 2.1% 증가한 수치다. 가구별 순자산도 1년 전보다 300만원 증가했다고 한다. 개발도상국에 비하면 높은 소득과 증가한 자산이 있음에도 한국인은 스스로를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다. ‘삶의 만족도’가 4년 만에 하락한 것. 조사가 진행된 해 ‘한국인 삶의 만족도’는 6.4점으로 이전에 비해 0.1점 낮아졌다. 반면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은 27.3명으로 높아져 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삶의 만족도는 소득이 적을수록, 연령이 높을수록 낮아지는 형태를 드러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이 행복을 느끼기란 쉽지 않고, 나이를 먹으면 누구 할 것 없이 생을 추동하는 에너지가 희미해지는 법. 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국인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평균을 밑돈다. 순위로 말하면 38개 국가 중 33위. 함께 발표된 ‘가족 관계 만족도’와 ‘하루 평균 여가 시간’도 낮아지거나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지갑은 두둑해졌지만, 행복을 느끼는 감각은 갈수록 무뎌지는 이 세태는 어떤 방법으로 극복이 가능할까? 누가 나서도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2-26

일에는 스토리가 있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일에는 스토리가 있다’는 말은 모든 일에는 그 자체의 맥락과 배경이 있으며,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과정과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일이 단순한 반복적인 노동이 아니라 사람들의 경험, 목표, 감정, 가치 등이 담긴 하나의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스토리가 없는 일이나 활동들은 물거품처럼 사람의 뇌리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사라진다. 모든 일에는 배경과 이유가 있고 과정이 있고 결과가 있다. 그 일이 어디에 기여했는지 가치를 인증하게 되면 좋은 인식과 기억 속에 남게 된다. 생각을 넣어 또 다른 발전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일에 스토리를 만드는 필요성과 효과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는 동기부여를 줄 수 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찾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둘째, 팀워크 강화이다. 조직 내에서 공통의 스토리를 공유하면 협력과 소속감을 높일 수 있다. 셋째, 창의성과 혁신적 사고 유도이다. 단순한 업무 수행이 아니라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더 나은 방식과 아이디어를 찾게 된다. 넷째, 브랜딩과 마케팅이다. 제품이나 서비스에도 스토리가 있으면 고객이 더 공감하고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기업에서 컨설팅을 할 때 ‘1234 스토리 법칙’을 자주 얘기한다. 1은 하는 이유이고, 2는 일을 하는 시작과 과정을 말한다. 3은 성과를 말하고 4는 그 성과가 기업의 비전과 목표, 전략 등 어디에 기여하는가이다. 일에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조직의 가치와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가령,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와 철학이 명확하면 직원들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스토리를 돌아보며 문제 해결의 실마리와 방향성을 찾을 수도 있다. 고객과의 관계 형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는 데, 스토리가 있는 제품과 서비스는 소비자의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한다. 스토리를 잘 만드는 기업이 성공하는 사례는 많다. 애플(Apple)은 단순한 전자기기 회사가 아니라, ‘혁신과 창의성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철학과 비전이 제품과 기업문화에 반영되면서 고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스타벅스는 단순한 커피 판매가 아니라, 집과 직장 외에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제3의 공간 제공’이라는 스토리를 내세워 고객의 생활과 연결시킨 성공한 케이스다. 일론 머스크는 단순한 자동차 회사를 운영하기 보다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든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테슬라를 경영한다. 나이키(Nike)는 ‘누구나 자신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Just Do It’이라는 스토리를 통해 고객들에게 도전과 열정의 의미를 전달하며 공감대를 높였다. 어떤 일이든 스토리를 부여하면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 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자신의 일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목적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때 더 큰 성취와 신뢰를 얻어 발전할 수 있다. 일에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개인의 성장과 회사의 발전에 영향을 준다.

2025-02-26

봄과 다이어트 음식관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봄이 왔다. 겨우내 두툼한 옷에 가려졌던 몸을 드러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다. 그동안 다이어트 관련 글에서 말했듯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탄수화물을 줄이고, 채소와 고기를 중심으로 식단을 구성하는 것이다. 단순히 먹는 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먹는 순서까지 고려하면 다이어트 효과는 더욱 커진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 체중의 10% 감량을 위해서 달려 보자. 첫 번째 원칙은 채소를 먼저 먹는 것이다. 식사를 시작하면 우선 채소를 충분히 먹는다.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는 위를 적당히 채워주고, 혈당 상승을 억제해 폭식을 방지한다. 상추, 깻잎, 브로콜리, 오이 같은 녹색 채소뿐만 아니라, 양배추, 당근, 파프리카 같은 다양한 색의 채소를 곁들이면 영양 균형도 맞출 수 있다. 나물로 먹어도 좋고 샐러드 형식으로 먹어도 좋다. 애피타이저 느낌으로 식사를 할 때 채소를 먼저 모아 먹는 것이 좋다. 티비를 보면서 우적우적 10~20분 가량 씹어 먹을 분량을 준비해서 먹자. 채소를 다 먹고 난 뒤 단백질을 섭취한다. 닭가슴살, 소고기, 돼지고기, 생선 등 다양한 단백질원을 선택할 수 있다. 단백질은 근육을 유지하고 신진대사를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단 조리법이 중요하다. 튀기거나 양념이 과한 고기는 피하고 구이, 삶기, 찜 등의 조리법을 선택해야 한다. 너무 퍽퍽하다면 올리브유를 살짝 곁들이거나 향신료를 활용하면 맛을 살릴 수 있다. 채소위주로 먹다가 고기를 반찬 식으로 곁들여 먹자. 마지막으로 탄수화물을 먹는다. 이때 탄수화물은 최소한으로, 그리고 좋은 탄수화물을 선택해야 한다. 정제 탄수화물인 흰쌀밥, 빵, 국수보다는 비 정제 탄수화물이나 당지수가 낮은 현미, 고구마, 퀴노아 같은 복합 탄수화물이 적합하다. 탄수화물을 너무 극단적으로 제한하면 에너지가 부족해지고 폭식 위험이 커질 수 있으니, 활동량에 맞게 적절히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식사법에 한방 다이어트를 병행하면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 한방 다이어트는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체질을 개선하고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데 집중한다. 한약을 활용하면 식욕을 자연스럽게 조절할 수 있고, 몸속 순환을 원활하게 만들어 지방 연소를 돕는다. 요즘은 먹기 좋게 환으로 만들어 처방을 하니 부담 없는 가격에 근처 한의원에서 처방 받을 수 있다.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다이어트 방법이 한방 다이어트란 건 이미 검증된 바가 있다. 살을 빼는 것만이 아니라 나의 건강을 위해 한방의 도움을 받아보자. 봄은 다이어트를 시작하기에 최적의 계절이다. 활동량이 늘어나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작정 굶거나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면 지속하기 어렵고, 요요 현상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올바른 식단을 유지하면서 한방 다이어트 같은 방법을 활용하면, 건강하게 체중을 감량할 수 있다. 이 방법을 꾸준히 실천하면 여름이 오기 전까지 탄탄하고 가벼운 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살을 뺀 후 건강해지는 나의 육체와 정신은 덤이다.

2025-02-26

서로의 문장을 해독하는 중

정미영 수필가 딸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늘 소파 한쪽에 기대어 책을 읽었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반복해서 읽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글자를 삐뚤빼뚤 따라 적는 모습도 앙증맞았다. 아이가 자라서 이제는 두꺼운 책도 제법 막힘없이 읽는다. 나는 그런 딸을 보면 흐뭇했다. 딸은 책 속 등장인물들의 상황을 잘 이해했기에, 학교생활에서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헤아릴 수 있을 것만 같아 안심이 되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소통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학교가 아닌, 나와의 소통에 문제가 생겼다. 나는 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완전 짜증나는 일이 있었어.” “무슨 일인데?” “아, 말해도 몰라.” 딸의 대답은 짧았고, 표정은 쉽게 변했다. 웃다가도 갑자기 화를 냈고, 어떤 날은 하염없이 한숨을 쉬며 침묵을 지켰다. 엄마인 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았지만, 딸은 나를 밀어내듯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읽히기를 거부하는 책처럼. 나도 갱년기라는 변화무쌍한 강을 건너고 있는 중이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났다.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게 나도 싫었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건 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전에는 딸의 마음이 또렷하게 읽혔다. 목소리를 듣거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딸은 사춘기가 되었고, 나는 갱년기가 되었다. 우리의 대화는 암호문을 해독하는 것처럼 어려웠다. 딸의 말은 나에게 난해한 시처럼 다가와 해석되지 않았고, 나의 말은 딸에게 낡은 서체의 흐릿한 활자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엄마, 왜 이렇게 예민해?” 딸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엄마인 나의 감정 문장이 고리타분한 글처럼 느껴졌는지 읽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한숨을 쉬어도 딸은 그저 고개를 들어 나를 한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다시 시선을 고정시켰다. 나는 나의 마음을 딸이 읽지 못하는 게 서운했다. 하지만 어쩌면, 나도 딸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난독증이 있는 사람들은 특정한 서체를 사용하면 읽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명조체를 고딕체로 바꾸면 문장이 선명해진단다. 한 글자 안에서 초성-중성-종성의 간격과 줄 간격, 글자 간의 간격이 모두 넓으면 읽기가 수월하다. 나도 딸의 마음을 읽기 위해 노력하고 싶었다. 먼저 딸의 말에 쉼표를 두기로 했다. “왜 그래?” 하고 다그치듯 묻는 대신에 “괜찮아?” 하고 기다려 보았다. 질문의 형태를 조금 바꾸었을 뿐인데도 딸은 훨씬 덜 부담스러운 듯했다. 가끔 딸이 좋아하는 소설을 슬쩍 펼쳐 보았다. 어떤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지 살펴보며, 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헤아리기도 했다. 내가 변하기 시작하자 딸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몰라도 돼.”라고 말했던 아이가, “엄마, 내가 좀 예민한 거 같아.” 하고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나는 그럴 때 가만히 듣기만 했다. 활자의 간격을 넓히듯 딸의 말을 서두르지 않고 읽어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여전히 딸의 마음을 완벽히 읽지 못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딸의 마음을 읽고 싶어 노력한다는 점이다. 딸도 아직은 내 감정을 쉽게 해석하지 못한다. 그러나 가끔 내 옆에 앉아 “엄마, 오늘은 괜히 피곤해 보여.” 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 속에서 딸이 나를 읽으려 애쓰는 모습을 엿본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읽는 중이다. 어쩌면 우리의 글씨체는 평생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조급해 하지 말고 활자의 간격을 넓혀 문맥을 살피리라.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두 사람의 마음을 또렷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같은 문장을, 같은 속도로, 읽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나는 희망한다. 그때까지 서로의 책장을 계속해서 넘길 것이다.

2025-02-26

검정고무신-오천초등학교 가을운동회

신새벽 찬물 한 그릇 마시고 안개를 뚫고 어제 씻어 놓은 찹쌀떡처럼 찰진 검정고무신을 신고 양철대문을 밀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직도 걷고 있습니다 식구들에게 여러 모로 미안스럽지만 결코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뻔뻔하기도 하고 많이 닳았지요 때는 덜 타지만 도무지 멋대가리 없는 검정고무신이 아직도 신작로를 걷고 있습니다. 이슬에 미끄러지는 것이 약점이고 빗물에 강한 것이 장점이지만 어정쩡한 위상(位相)과 얕잡아 보는 시선에는 속수무책이었지요 난들 왜 기차표 운동화이고 싶지 않았겠어요 단지 질기다는 경제적 이유로 발바닥과 열을 낸 나날들 그렇게 소모되어도 따뜻한 것이 되고 싶었지요 가끔 송사리를 가두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했음이 너무 기특했어요 아직 걷고 있음이 사양하고픈 축복이지만 그렇지만 날이 저물어도 우리는 가야 해요 열심히 달리면 공짜로 공책과 연필도 생기는 그 화려한 축제는 가을 하늘에 고스란히 남아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해요. 소풍과 더불어 운동회는 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둘러앉아 음식을 나눈다. 알싸한 사이다는 왜 그리도 달콤한지, 세상을 다 얻은 듯 했다. 펄럭이는 만국기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뛰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꿈이 얼마나 원대한 것인지 절실히 느껴진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2-26

대구 염색공단 무단 방류, 이대로 괜찮은가

황인무 대구본사 대구 서구에서 염료로 추정되는 폐수 유출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직선 거리로 약 1㎞ 거리의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이 사고로 불안에 떨고 있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와 염색산단이 인접해 있는데다 그 주변에는 각종 환경기초시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더 문제는 주민들이 가진 행정당국에 대한 불신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에도 비슷한 폐수방류 사고가 일어났으나 행정당국이 아직까지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인근 다른 구로 편입됐으면 좋겠다’, ‘구청의 방관으로 염색공단 업체들이 법을 어기며 계속 운영한다’, ‘당국이 원인을 파악해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구환경청, 대구시, 서구청, 대구염색산단관리공단,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 달서천 사업소가 원인 규명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로선 속 시원한 결과가 나올지 의문이다. 알다시피 지난번처럼 흘러나온 폐수가 하천으로 떠내려가 원인 규명할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도 폐수가 흘러간 이후 뒷북 조사로 원인도 찾지 못하고 사실상 흐지부지된 모양새다. 이번에는 지난번 보다 기관간 협조와 초동 대응이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달서천사업소와 북구청이 시료채취나 간이검사, 현장상황 전달 등으로 기민하게 대응했지만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왜일까. 사고발생에 대한 체계적인 사전준비가 없었던 탓이 아닐까. 제3의 폐수 방류사고가 또 다시 생긴다면 행정이 요란하게 움직이다가 원인 규명을 못한 채 끝나는 일이 반복될 지 우려된다. 이번에도 지난달처럼 원인 규명을 못한다면 주민들의 원성이 더 커질 것은 뻔한 일이고 관련기관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질 것이다. 당국의 끈질긴 점검과 조사로 이번에는 반드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행정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him7942@kbmaeil.com

2025-02-25

고군산군도 핫플레이스, 말도·보농도·명도를 가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도면에는 수많은 섬이 있다. 이름하여 ‘고군산군도’다. 63개 섬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에 16개가 유인도다. 경관이 빼어난 유명 관광지로, 국가지질공원이기도 하다. 화산암으로 이뤄진 섬 하나하나를 다 소개하기에는 벅차다. 그래서 선별한 섬이 말도, 보농도, 명도다. 지난해 고군산군도 섬 중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3개의 섬으로, 2025년에도 그 여세를 몰아 가장 뜨겁게 부상되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가능성이 농후해서다. 차를 타고 장자도 선착장으로 가는 길도 화려하다. 새만금 방조대와 야미도,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를 거친다. 배에서 조망하는 ‘무산십이봉(無山十二峯)’은 또 어떤가.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을 고군산 8경이라 부르는데, 방축도, 명도, 말도의 12개 봉우리가 마치 무사들이 도열 한 것처럼 보여 붙여진 명칭이다. 세계 최초로 다섯 개 섬을, 4개의 순수 인도교로만 연결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제1교는 말도~보농도, 제2교는 보농도~명도, 제3교는 명도~광대섬, 제4교는 광대섬~방축도로 총연장 1,278m이다. 이와는 별도로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이들 도서에서, 힐링·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명품 트레킹 코스도 조성 중이다. 현재 미연결 구간은 제3교인 명도와 광대섬을 잇는 477m 뿐이다. 나머지 구간은 다 연결되었지만, 갑자기 문제가 터졌다. 보농도와 명도를 연결한 다리가 준공검사가 끝난 상황에서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통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은, 그곳을 다녀와 수많은 후기를 올렸다. 그곳에는 과연 어떤 경치가 펼쳐지는지, 그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한다. 오전 10시 40분, 장자도항에서 명도와 말도로 가는 1항차 고군산카훼리호를 탔다. 배는 출발하면서부터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선박 우측으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 펼쳐지는 지척의 대장도 대장봉과 그 뒤쪽의 선유도 망주봉이 탐방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도 남는다. 선상에서 만끽하는 전망치고는 극치에 가깝다고나 할까. 배는 10분이면 ‘관리도’에 닿는다. 해안에 곶이 많아 곶지도(串芝島)였는데, 화살을 꽂아댄다고 ‘꽃지섬’이 되었다가 한자를 음으로 읽어 다시 ‘관리도’가 되었다고 한다. 깃대봉과 투구봉을 연결하는 등산로 주변에는 바다에서 융기한 듯 솟아오른 바위벽과 기암들이 금강산을 방불케 하는 곳이다. 두 번째 기착지는 방축도, 관리도에서는 배로 10분 정도 걸린다. 정면으로 보이는 방축도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말도와 보농도, 명도와 광대도가 도열하고, 우측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횡경도가 바다 위에서 뱀처럼 꿈틀거린다. 파도가 강한 섬으로 독립문바위와 시루떡바위 등 기암괴석을 구경할 수 있다. 배에서 조망하는 볼거리는 방축도의 랜드마크인 독립문바위다. 장자도 항을 출발한 지 약 30 여분이면 명도다. 말도와 방축도 중간 지점에 자리하는데, 마치 달과 해가 합해져 있는 것같이 물의 맑기가 깨끗하다 하여 명도라 부른다. 선착장을 지나면 좌측으로 화장실 건물과 안내도가 보이고, 마을 안쪽으로 연결된 임도를 따른다. ‘구렁이 전설 전망대’를 지나 봉우리 하나를 더 오르면 철탑과 더불어 데크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보농도와 말도, 그리고 주탑 두 개가 세워져 있는 인도교가 그림처럼 다가와 펼쳐진다. 인도교가 가까워질수록 주변 해벽들도 절경이다. 다리가 정식으로 개통되지 않았음인지 작은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제외하면 부족함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10여 년 가까이 지체되고 있는 인도교의 전면 개통도 시급하지만, 용역 결과에 따라 케이블 등의 대대적인 정비나 전면 재시공에 대한 검토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무인도인 보농도는 암릉과 숲길로 이루어졌다. 자연 그대로의 등산로도 있지만 오름길과 내림 길의 대부분은 가파른 데크계단이다.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말도로 연결된 제1 인도교는 보는 것만으로도 환상적이다. 다리로 내려설 때와 건널 때도 마찬가지다. 말도로 올라서면서 뒤돌아보는 경치는 이번 탐방 최고의 절경이다. 독수리 모양의 달섬과 천연기념물인 주변의 습곡구조로 이루어진 책갈피 바위도 볼만하지만, 한꺼번에 펼쳐지는 보농도와 명도, 대장도와 선유도의 비경은 그 어느 것과도 비견할 수가 없다. 말도는 고군산군도의 끝에 위치해 ‘끝섬’으로도 불린다. 30여 가구가 거주하는 섬으로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큰 등대가 들어서 있어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1909년에 세워진 것으로, 등대 불빛을 발하는 등명기는 37km 거리에서도 불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단도와 등대 사이의 도끼섬은 갈매기의 서식처로, 천년송이 자라고 있어 꼭 한번 가까이에서 살펴볼 만하다. 지홍석 수필가 말도와 명도로 가기 위해서는 배편 예약이 필수다. 하루에 두 번 운행하는 배 시간 때문이다.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정원은 178명, 이 중에 온라인으로 150명, 현장 발권은 28명에 불과하다. 섬 탐방에 주어지는 시간은 세 시간 남짓이다. 1항차로 들어가 명도에서 내려 트레킹을 시작하거나, 말도에서 내려 주변을 돌아보고 2항차의 말도 배시간(14:20)에 맞춰 여유 있게 빠져나오는 것이다. 명도에서 시작하는 총 트레킹 거리는 약 3.11km로, 2시간 전후가 소요된다. 꼭 섬에 내려서 탐방하지 않더라도 정기 여객선을 타고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워낙 비경이 펼쳐지는지라 충분히 그 가치를 하고도 남는다. 제2 인도교인 명도~보농도 구간은, 케이블 절단 및 뒤틀림 문제로 인해 공식적으로는 다리의 통행이 불가하다. 2024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알음알음 다녀오기도 했지만, 사전에 꼭 확인해 보고 다녀오길 권한다. 말도, 보농도, 명도, 광대도, 방축도를 연결하는 연도교와 트레일은 2025년 6월에 완성될 예정이다. 방축도에서 시작해 다섯 개 섬을 연계한다면 서해 최고의 히트상품이 될 것은 자명하다. 명품 트레킹 코스를 겸비한 K-관광 섬 육성사업의 주요 관광자원이 되어, 고군산군도의 핫플레이스로 부상할 수 있음을 의심치 않으며 몇 달 후를 기다린다. /수필가 지홍석

2025-02-25

무해력(無害力)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손자가 얼굴에 잔뜩 불만과 울분을 담은 채로 내 방으로 왔다. 왜 그러냐고 깜짝 놀라 물었더니 우왕 울음보 먼저 터뜨렸다. 뒤따라 온 제 사촌누나가 사연을 얘기해 주었다. 가지고 온 토토로인형을 바다에 빠뜨렸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더 크게 울기에 일단 말없이 등만 토닥이며 울음이 그치길 기다렸다. 지난 달 1월 나의 칠순 기념으로 베트남 하롱베이 크루즈 여행 때 있었던 대사건이었다. 저희 방 뱃전의 테라스에서 가지고 놀던 인형이 바다로 떨어진가 보았다. 울음이 잦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었다. 배를 돌려 그 자리에 가서 인형을 건져올려야 한다길래 그건 불가능하다며, 다시 사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울음은 잦아들었으나 여전히 흐느끼면서 꼭 같은 걸 사려면 일본에 가야한다고 했다. 아마 지난여름 일본 가족 여행 갔다가 사온 인형이었나 보았다. 잘됐다. 한 달 후에 할머니가 일본엘 가니 꼭 같은 걸 반드시 사다 주겠다고 약속하고서야 진정되었다. 그 후에도 베트남 얘기만 하면 잃어버린 토토로가 생각난다며 입을 삐죽거렸다. 8살 사내아이가 로봇이나 자동차를 가지고 놀아야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집에 와서 잘 때면 안고 자는 인형 몇 개를 꼭 갖고 왔다.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자지 않거나 저희 아빠가 밤중에라도 기어이 가져다 줘야 잠들곤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멀리까지 인형을 가지고 갈 줄은 몰랐다. 여동생에 사촌도 모두 여형제라 동화되었나 사내답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서울 손녀들도 대구에 올 땐 저희 가방에 몇 개의 애착인형을 반드시 가지고 오곤 했으며 대구 손녀는 보드라운 질감의 작은 인형이나 말랑말랑한 촉감의 작은 캐릭터 한둘은 항상 손에 들고 다닌다. 집집마다 동물인형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음에도 장난감가게에 가면 가장 먼저 발길을 멈추는 곳이 봉제인형 코너여서 빨리 커서 인형을 찾지 않을 날이 왔으면 바라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2025년 대한민국소비트렌드를 전망하는 ‘트렌드코리아2025’(김난도 외, 미래의 창)에서 손주들이 애착인형을 품에 안고 손에서 조물거리고 놓지 않으려는 심리를 알게 되었다. 무해력(無害力)이란다. 작고 귀엽고 순수해서 해롭지 않은 것이 가지는 힘. 사방에서 온통 공격해 올 것만 같은 이 험한 세상에서 작고 연약하고 귀여운 것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으니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힘이 된단다.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해악을 주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힘이 있단다. ‘앙증깜찍 무해력’은 작아서, ‘귀염뽀짝 무해력’은 귀여워서, ‘순수대충 무해력’은 서툴러서 무해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책가방에, 아니 어른들도 백팩에 작은 동물 키링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이 바로 무해력 때문이란다. 지난 주 일본여행에서 손자의 잃어버린 무해력을 되찾아 주려 동행한 어른들이 힘을 모았다. 몇 개의 쇼핑몰에서 인형을 찾으러 이리저리 뛰었고 어찌저찌 비슷한 토토로인형을 구해 주었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손자가 실망할까 마음 졸였더니 인형을 두 손으로 받으며 활짝 웃는다. 아이고 할머니가 색깔을 착각했구나. 작아서 더 이쁘네….

2025-02-25

靜中動의 봄 채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고요와 침잠으로 이어지는 겨울의 끝자락이다. 미련인지 아쉬움인지 함부로 물러서지 않는 동장군이 벽창호 같은 몸짓으로 막바지 추위의 기세를 드러내고 있지만, 매화의 등걸에서는 이미 망울이 맺히고 섣부른 가지에서는 벌써 한, 두송이 꽃이 피어나고 있다. 한설과 북풍의 회오리에 꿈적도 않을 것 같은 대지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며 동토의 장막을 밀어내고 있다. 조용한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나 작용을 하게 되는 정중동(靜中動)의 몸짓이 일어나고 있다. 겨울은 어쩌면 정중동의 계절이다. 그토록 푸르청청하던 나무의 잎새가 떨어져 땅을 감싸며 뿌리의 활착과 번성을 조용히 돕고, 거세게 흐르던 폭포수도 온몸으로 얼어붙어 물보라의 비산을 막으며 나지막한 음조로 낙수의 흐름을 챙기고 있다. 움직이고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듯 호수 위에 떠있는 백조가 더없이 평온하게 보이지만, 수면 아래서는 쉼없이 물갈퀴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요함 속에서도 움직임이 있고 움직이는 가운데도 고요함이 스며들어 계절이 바뀌고 나무가 자라나며 세상이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산다는 것은/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일/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에게 자신을 만들어준다./이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건 사람이건,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온다./겉으로 보기에 나무들은 표정을 잃은 채 덤덤히 서 있는 것 같지만,/안으로는 잠시도 창조의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땅의 은밀한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새봄의 싹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시절 인연이 오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을/대지 위에 활짝 펼쳐 보일 것이다.’ - 법정 스님 ‘산중 한담’중 혹한의 계절에 동면이나 동안거(冬安居)에 드는 것은 결코 움츠림이나 위축되는 것이 아니다. 숨가빴던 호흡을 가누고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나름의 생존법이나 수양을 일삼으며 더 단단하고 단호해지기 위해 내밀한 힘을 키우는 시간이다. 그것은 어쩌면 망중한(忙中閑)의 여유로운 안도일 수도 있고, 한중망(閑中忙)의 새로운 시도일 수도 있다. 아무리 바쁜 가운데도 잠깐 틈을 얻어내 여유를 부릴 수 있고, 한가함 속에서도 열심으로 움직이며 뭔가를 준비하고 추구하는 노력은 전적으로 자신의 안목과 의지, 처세술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바쁘고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일수록 정중동과 망중한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가면 어떨까 싶다. 온갖 정보와 광고가 난무하고 디지털, 스마트사회를 넘어 AI시대가 도래한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차분하고 침착하게 본연의 평정심으로 주변의 사물과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루틴을 세워 ‘바쁜 듯이 느긋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스스로에게만 바쁜 듯이 대하고, 주변이나 이웃들에게는 여유를 보이며 ‘느긋하게 바쁜 듯이’ 넉넉하게 대한다면 몸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다. 우수와 경칩 사이, 아직은 바람이 여전히 차갑지만 남도 매화의 꽃 소식에 따스해지는 마음이다. 긴 겨울 깊은 적요에 들었던 만물이 정중동의 일깨움으로 차츰 봄 채비를 하듯이, 망중한의 여유로움으로 기지개를 켜며 조붓한 오솔길로 찾아오는 봄을 마중해야 하지 않을까? 봄은 출생이며 새로운 희망이다.

2025-02-25

與, 자칫 ‘중도 확장’ 타이밍 놓칠라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국민의힘에 대한 민심이 심상찮다. 최근 보수층 결집도가 느슨해지면서 최대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에서도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주말(2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TK지역 정당지지도는 국민의힘 50%, 민주당 22%로 나타났다. 여당 지지율이 우세하긴 하지만 갤럽의 그 전주 조사와 비교하면 국민의힘은 25%(75%→50%) 하락했고, 민주당은 8%(14%→22%) 상승했다. 보수안방의 ‘집토끼’가 부동층 또는 민주당 쪽으로 대거 이탈한 것이다. 이번 갤럽조사에서는 국민의힘에 대한 중도층의 민심변화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정당별 지지도는 국민의힘 34%, 민주당 40%로 집계됐지만, 중도층만 분석해 보면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20%p나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래 중도층 민심은 변동성이 크다고 하지만 충격적인 결과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공통적으로 중도층은 비상계엄에 대한 거부감이 아주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만약 지금 대선이 치러진다면, 여당 후보의 승산은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사결과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최근 여당을 극우정당으로 몰아붙이며 중도보수를 겨냥해 펜스를 넓히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상속세 감면 정책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과세표준 18억원까지는 상속세를 면제해 웬만한 집 한 채 소유자가 사망해도 상속세 때문에 집을 팔고 떠나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상속세에 민감한 청장년층을 비롯해 중도·보수표를 충분히 잠식할 수 있는 정책이다. 전통적으로 보수진영에서 공약으로 내건 ‘감세 의제’를 통해 중도층 공략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몸은 좌파이면서 입으로만 보수를 외친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실제 이에 맞설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강성 지지층을 붙잡는데 당력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내 일부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서 “강성 지지층만으론 대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소수다. 지난주 본격적인 대선 출마 행보를 시작한 안철수 의원이 “강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어 이들과 단결하면 이길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사실 수적으로는 30% 정도”라고 한 발언에 일리가 있다. 탄핵심판 최종 선고가 임박하자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지지세력을 규합하는데 올인하고 있는 당내 친윤계와 다수의 TK의원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국민의힘은 하루빨리 조기 대선 국면에 대비해야 한다. 중도층 민심을 잡을 타이밍을 놓쳐선 안 된다. 그러려면 우선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계엄의 바다’를 건너지 않고는 외연확장에 한계가 있다.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은 침묵하면서도 국민의힘 행보를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다. 당 지도부는 중도층을 공략할 구체적인 민생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꼭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야당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심어줘선 안 된다.

2025-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