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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법사와 도사가 날뛴 정권의 말로

누가 뭐래도 21세기는 합리와 이성의 시대다. 이를 부정하는 건 그 사람의 정신이 전근대를 살고 있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과학의 발달로 머지않아 인간이 우주를 여행하게 되고, 최첨단 AI가 일상화돼 생활 속으로 들어온 오늘. 합리·이성과는 무관한 무속인에게 길흉화복을 묻는다는 건 우매한 행위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의 아내 김건희 씨는 유독 역술인, 법사, 풍수전문가 등과 가까이 지냈다. 윤석열 씨 파면 이후 각종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은 이제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는 상식이 됐다. 대통령 업무 공간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고, 대통령 부부의 순방 때 어떤 행사장을 가거나 가지 않는 걸 결정하고, 특정 종교가 김건희 씨에게 전달하려 했던 값비싼 목걸이와 명품 가방을 중간에게 브로커 역할하며 건네고…. 이 모든 기이한 행위와 범죄 혐의에 무속인의 이름이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천공, 건진법사, 풍수전문가 백재권 등이다. 이쯤 되니 대체 윤 전 대통령 부부는 누구와 논의해 국사(國事)를 결정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진나라의 첫 번째 황제 조정(趙政)은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유명하다. ‘책을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하도록 명령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역사학자들 사이에선 전혀 다른 주장도 존재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던 진시황이 땅에 파묻은 건 유학자가 아닌 혹세무민을 일삼으며 나라와 백성을 농락한 사이비 무속인들이라는 것. 2200년 전 중국 왕도 믿지 않던 무속인들의 허무맹랑한 말을 금과옥조로 섬겼고, 그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이곳저곳에서 날뛰게 방치했다는 의심만으로도 국민들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25

국가 자본주의와 국가 사회주의

한국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이 물음 앞에서 생각해 본다. 일제 강점이 말기로 접어들어 1940년이 되자 신체제론이 대두된다. 생산과 소비를 국가주도로 행한다는 것인데, 천황을 극점으로 해서 개인이 국가의 수족이 되는 체제를 구축하려 한 것이었다. 이 일본식 통제경제가 당시의 한국인들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했는가는 채만식이나 김남천의 몇몇 사소설 계열 작품에 흔적이 남아 있다. 일제는 강점기 내내 조선총독부는 사회주의자들을 가혹하게 다루었고, 그들의 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염상섭의 ‘무화과’나 심훈의 ‘불사조’ 같은 장편소설에 검열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경찰서 내 고문 같은 가혹행위 장면이 나타난다. 박헌영이나 제4차 공산당수 차금봉 같은 이들이 혹독한 고문 끝에 실성 단계에까지 이르고 또 죽어버리기까지 한 것은 그 시대의 야만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도 사회주의를 적대시하고 추적하고 적발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들의 천황제 파시즘이라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이 추종한 레닌이즘의 좌익 전체주의와 양상이 얼마나 달랐던가는 미지수다. 생산과 유통 소비에 이르는 과정을 국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한다는 것, 계획통제한다는 점에서 천황제 파시즘이라는 국가자본주의는 소비에트 국가사회주의와 다를 바 없었지 않을까? 그때 천황제 파시즘 아래서 사람들은 어떤 실질적인 자유도 누리지 못했다. 국가자본주의는 그 통제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국가사회주의와 다를 바 없어진다. 나중에 백군을 진압한 레닌은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신경제정책을 구사했다. 그것은 전시공산주의의 철저한 통제를 풀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좌익 전체주의 정권이 시장 원리를 도입하면 적어도 외견상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와 완전히 다르다고는 말할 수 없게 된다.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라면 오늘날의 한국사회도 얼추 이에 들어맞는지도 모르겠다. 한참 이른바 변혁론이 유행할 때 그 논자들 중에는 한국사회가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도 말했었다. 한국 자본주의는 체질상 확실히 국가 주도적 성격이 강했고, 지금 그 성격이 변화되고는 있지만 대기업, 재벌기업도 아직까지 국가가 이렇게 저렇게 불러낼 수 있는 것을 보면 국가자본주의에서 크게 멀지 않다. 문제는 이 국가자본주의 한국사회의 권력 구성 방식에 지금 심대한 변화가 야기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변화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고 결코 내적, 자율적이지만은 않은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1987년의 국민주권 혁명으로 획득한 자유가 무척 컸고 세대에서 세대로 그 자유를 충분히 누려왔기 때문일까. 자유에 ‘취한’ 국민들은 어떤 기이한 선거 ‘절차’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세상이 변한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런 이들이 많다. 확실히 지난 6월 3일의 이상한 일까지 경험한 작금의 한국 사회는 바야흐로 ‘국가적 자본주의’를 넘어 어디로 가는지 모를 길에 접어든 느낌조차 없지 않다. 무섭고 두려운 느낌. 이것은 단지 몇몇 사람들만의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8-25

‘갈이천정’ 포항시, ‘반면교사’ 보여주길

최근 영일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퇴역 경주마가 소음에 놀라 산책하던 60대 남성을 밟아 크게 다치게 한 사고가 있었다. 피해자는 종아리와 어깨 골절상을 입어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재수술도 했다. 순식간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신세가 된 피해자는 사고 전 건강했던 순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호소했다. 평생 후유증을 달고 살 수 있다는 의료진의 조언에 우울감이 심해져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고 한다. 사고의 근본 원인은 뭘까. 일단은 포항시 조례의 부실을 들 수 있다. 해수욕장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는 말의 백사장 출입을 금지하고 있으나 포항시는 조례에서 이 부분을 빠뜨렸다. 말이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가십거리의 기사 대신에 이번에 법과 제도를 깊이 살펴보고 취재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례에 분명한 기준이 없다보니 포항시 공무원들 또한 사고 책임 소재를 두고 ‘핑퐁 게임’을 벌여 볼썽사나웠다. 시 해양산업과장은 “해수욕장 내에 말 출입은 제한된다”라고 한 뒤 연락이 끊겼고, 담당자는 “조례상 말 출입 금지 조항이 없기 때문에 해수욕장 내 말 출입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해양수산국장은 “관련 법과 조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혼란은 장상길 부시장이 정리, 잠재워졌다. 포항시 조례에 말 출입 금지 조항이 빠져 있음을 질타하고 조례 개정을 통해 말 출입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으라고 담당과에 지시한 것. 영일대 도로에 말을 탄 모습이 목격된지는 꽤 오래됐다. 처음엔 신기한 모습이었지만 이내 위협으로 다가왔다. 특히 말이 소음에 놀라 육중한 몸을 흔들 때는 시민들이 혼비백산하는 광경도 자주 보였다. 언젠가 무슨 사달이 날 것 같은 생각은 그때부터 들었다. 이번 사고가 없었다면 말은 여전히 해수욕장 내를 걸었을 것이다. 자칫하면 더 큰 사고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그저 아찔할 뿐이다. 갈이천정(渴而穿井)이란 말이 있다. ‘목이 말라야 우물을 판다’는 것인데 시는 이번에 사고가 나자 조례 개정 등 여러 대책을 서둘러 내놨다. 여러 필의 말이 줄지어 해수욕장을 걷는 것을 보고 시나 시의회의 누군가가 ‘저러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또 시민들은 그동안 왜 민원을 제기하지않았을까. 그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본지 보도 이후 영덕군과 울진군이 백사장에 말 출입을 금지하는 조례 개정에 나섰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이미 조례에 해수욕장 백사장 말 출입 금지를 담은 경주시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백사장내 말 사고는 이미 벌어진 것이다. 반면교사 삼아서 앞으론 사소한 사고라도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포항시에 보내는 말이다.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2025-08-25

정권만 잡으면 면죄부를 쥐게 되나

우상호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치인 사면으로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은 이재명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사면 이후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진 데 대한 해명이다. 기세 좋던 지지율이 눈에 띄게 꺾이니 ‘피해자’라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사면의 피해자라니 어불성설이다. 정치는 권한과 책임이다. 권한이 있는 만큼 책임을 진다. 이 대통령이 누군가의 협박을 받아 통치행위를 했어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이 대통령 몫일 수밖에 없다. 권력을 누구나 원하고, 부러워하지만, 그 책임을 나눌 수는 없다. 권력이 크면 클수록 책임이 커진다. 대통령의 책임이란 무한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피해자라니…. 우 실장은 “대통령 임기 중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사면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정무적 판단을 먼저 했다”라면서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취임 초에 하는 것이, 한다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해서 사면을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조 전 대표는 형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가석방 요건도 안 된다.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의 근거를 알 수 없다. 굳이 곧바로 꺼내주려고 결심한 이유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나온다. 우 실장은 사면하면 국정 지지율이 4~5% 하락할 것이란 대통령실 내부 보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면했다는 것이다. “무슨 이익을 보기 위해 (조 전 대표를) 사면한 게 아니고, 피할 수 없다면 사면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이 대통령이) 고뇌 어린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더 떨어졌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2주만에 12.2%P가 추락했다.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건 무슨 뜻인가. 국민 여론은 사면을 반대한다는 말이다. NBS조사에서 조 전 대표 사면에 대해 부정 의견이 54%로 긍정 평가(38%)보다 16%정도 높았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부정평가의 첫 번째 이유로 특별사면(21%)를 꼽았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 뜻을 거스 른 ‘결단’이 무슨 영웅적 ‘고뇌’이고, ‘희생’인지 공감할 수가 없다. 사면은 사실 지극히 예외적인 조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삼권은 서로 존중하며 분립한다. 사법부의 결정을 뒤집기 위해서는 충분히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은 국민통합과 민생 회복을 내세웠다. 그러나 사면 명단을 보고도 이런 명분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사면 제도는 정치보복을 해소하고, 억압과 차별을 해소한다는 왕의 자비다. 왕은 관대함으로 존경받고, 정치적 반대자까지 왕의 통치에 복종하게 만들었다. 이번 사면에도 야당 정치인을 포함했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들러리다. 더군다나 청탁 사실이 노출되면서 야당의 반대 목소리마저 군색하게 됐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은 배제했다지만 누가 믿겠는가. 같은 진영에 대한 대폭 사면은 정치적 관용과는 거리가 멀다. 조국 전 대표, 윤미향·최강욱 전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등을 풀어주는 게 국민 화합에 도움이 될까. 이들은 본인들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다. 일반 시민이면 잡범 취급당하며 형기를 채워야 했을 범죄를 정치 탄압이라고 포장한다. 오히려 개선장군인 양한다. 죄를 지어도 권력만 쥐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통을 만드는 꼴이다. 이 대통령도 야당 시절 “국민 통합에 저해되는 특혜 사면은 전면 철회돼야 한다”라고 주장했었다. 이 정부는 검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를 정치적으로 편향된 표적 수사로 몰았다. 검찰도 정치권에 줄을 서는 잘못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검찰도, 경찰도, 심지어 법원까지 신뢰가 무너졌다. 재판을 받아도 사법 정의를 믿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정의는 법이 아니라, 권력을 쥐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차지한다. 재판이 아니라 권력만 잡으면 무죄가 되는 전통을 만들면 정의가 설 땅이 없다. 결국 가진 것 없는 사람만 감옥에 남고, 권력 있고, 돈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큰소리치게 된다. 대통령만 되면 수백 명, 수천 명의 재판을 무효로 만들고, 같은 패거리 정치인을 모두 풀어주는 이런 사면을 언제까지 계속 해야하나.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8-24

가슴 울리는 ‘골 때리는 그녀들’

챙겨 보는 TV프로그램이 딱 하나 있다. SBS에서 방영중인 ‘골 때리는 그녀들’이다. ‘골때녀’라고도 부르는 이 프로그램은 2021년 6월부터 현재까지 방영중인 축구 예능이다. 여성 출연진들이 팀을 이루어 축구(엄밀히 말하면 풋살에 가까운)경기를 펼치는데 보통 한 주에 한 경기씩 방영 해 주곤 한다. 한 팀에 6명씩 등장 예정인 팀을 포함하여 11팀이 등장하며 각각의 팀은 국가대표팀 출신 전직 축구선수들이 감독을 맡아 이끈다. 나는 요즘 방영하는 그 어떤 TV쇼보다 이 프로그램에 더 열광하고 있다. 프로그램에서는 각각의 출연자들을 ‘선수’라고 일컫는다. 합당하지 않은 표현일 수 있다. 출연자들 중에는 ‘구척장신’팀의 허경희, ‘국대패밀리’팀의 박하얀, ‘액셔니스타’팀의 정혜인과 박지안, ‘원더우먼’팀의 마시마 유 같은 에이스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동호인인 그들을 엘리트 선수들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선수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그다지 민망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들이 축구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이 ‘선수’들은 본인들이 정말로 선수인 것처럼 축구에 미쳐있는 것 같다. 훈련이 많은 팀은 거의 한 달 내내 모여서 훈련을 한다고 하고, 경기시간 동안 이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어깨를 부딪치고 몸을 날린다. 무릎이 깨지고 얼굴에 멍이 들고 코피가 나도 이들은 이내 털고 일어나 그라운드를 누빈다. 아깝게 골을 놓치면 월드컵 16강이 걸린 경기에서 골 포스트를 맞추는 슛을 때린 양 분개하고, 골을 넣으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골을 넣은 듯 진심으로 환호를 한다. 모두가 이렇게 축구에 진심인데, 선수라는 호칭 좀 붙여주는 일에 굳이 인색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전원 모델로 구성된 구척장신 팀의 주장이자 스트라이커인 이현이. 어느덧 불혹을 넘은 그는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함께 하고 있는, 골때녀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출연자다. 지금이야 출연자들의 전체적인 실력이 매우 향상되어 있지만, 프로그램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초보 수준의 축구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이현이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무섭게 성장하더니 지금은 다른 모든 팀들이 두려워하는 공격수가 되어 있다.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누구보다 뜨거운 선수이기 때문이다. 큰 눈을 희번덕거리며 긴 다리로 경기장을 겅중겅중 누비는 그의 모습은 가끔 감탄을 넘어서 애처로움마저 자아내곤 한다. 다리에 쥐가 나면 주먹으로 내리치며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고 모두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보이면 크게 소리치며 팀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곤 한다. 이기면 누구보다 뜨겁게 기뻐하고 지면 누구보다 서럽게 눈물을 흘린다. 그런 모습을 보며 그가 샤넬, 구찌, 에르메스 등의 패션쇼에 등장하던 탑모델이라는 사실이나, 두 아이를 기르고 있는 엄마라는 사실을 기억해내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각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가장 뜨거운 가슴으로 뛰어들었던 어느 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 역시 그의 땀과 눈물을 보면 시인을 꿈꾸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 머리를 쥐어뜯던 어느 밤과 밤새 합주를 하다가 손끝과 기타 줄에 맺힌 피를 닦아내던 어느 새벽의 감각이 떠오르곤 한다. 개개인의 열정 외에도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동료애다. 지난 주에는 ‘월드클라쓰’ 팀과 ‘개벤져스’ 팀의 경기가 방영되었다. 이 경기에서 진 팀은 당분간 리그에서 퇴출되어 경기를 뛸 수 없게 되는 것이었는데 분전 끝에 ‘개벤져스’가 김혜선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패배했다. 팀에서 가장 열심히 뛰었던 김혜선은 경기가 끝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지 져서 분했기 때문이 아니라 팀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임이 분명했다. 동료들은 패배로 쓰린 자신의 마음을 챙기기보다는 먼저 김혜선을 끌어안고 어떻게든 위로하기 위해 애썼다. 그 모습을 보며, 주로 개인 작업에 골몰하곤 하는 내가 한때 밴드 동료들과 웃고 울던 시절이 떠올랐다. 함께 웃고 울어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누군가의 뜨거웠던 어떤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가슴에 잠들어있던 어떤 마음을 다시 깨워내는 것은 모든 문학과 음악의 꿈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그들은 공 차는 행위를 통해 매주 해내고 있다. 그들은 매주 내게 한 주 동안 필요한 만큼의 도파민과 어떤 문학과 음악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모든 선수들이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고 오랫동안 뜨거운 경기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강백수(시인)

2025-08-24

낭만 끝에 마감

소설 쓰신다고요? 낭만 있네요. 최근 어떤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업무를 하면서 늘 문장을 다루고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 사이에만 있다 보니 작가라는 직업이 대단할 것 없이 느껴졌는데, 전혀 다른 업에 종사하는 그에게는 글 쓰는 직업이 신비로운 일처럼 다가온 모양이었다. 어느덧 일상의 지루한 노동이 된 글쓰기가 누군가에게는 낭만의 영역으로 다가갔다는 것이 흥미로우면서도 묘한 슬픔이 함께 밀려왔다. 상념은 나를 교실 속으로 데려간다. 일주일에 두 번 강의를 나가는 예술고등학교에서 나는 지금 고3 수험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언젠가 보았던 푸릇푸릇한 아이들의 두 눈. 작가가 되겠다던 열망으로 반짝이던 눈빛이 원고지와 씨름하는 나날 속에서 묘하게 흐릿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가끔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의 눈빛처럼 공허하게 번져 보이기도 하는데, 그 속에서 나는 이 아이들이 낭만 대신 지루함과 지난함을 먼저 배워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 마음, 왜 모르겠는가. 부딪치고 또 부딪쳐도 영영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벽 앞에 서 있는 기분. 소설 쓰기는 쉽게 열리지 않는 문과 같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좌절하게 순간은 새삼스럽지 않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릴 기미가 없는 문 앞에 놓인 무력감. 어쩌면 글쓰기의 본질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는 감각에 있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창작 이론 대신 백지와의 눈싸움을 더 빨리 습득해 버렸다. 온종일 문장과 씨름하다가 책상 위로 풀썩 쓰러지는 것은 기본. 연필을 빙글빙글 돌리며 손톱을 잘근잘근 씹기도 하고 가끔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뿜어 내기도 한다. 내게 획기적인 방법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참 난감하다. 마치 일부러 비기를 숨기고 일부러 제자를 괴롭히는 스승이 된 것 같다. 그러나 더 좋은 소설을 쓰는 방법은 계속해서 읽고 책상 앞에 앉아 고민하는 것뿐인 걸. 지루함을 견디고 한 줄을 써내는 힘.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창작 기술이다. 만일 그날 그에게 소설을 쓰는 과정에 관하여 설명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삶과 예술에 관한 심도 있는 토론을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아쉬움을 달래보자면 이렇다.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는 것으로 글쓰기는 시작된다. 멀리서 봤을 때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수많은 단어가 머릿속에서 서로 치고받는 중이다. 마침내 그중 하나를 골라 쓰면 곧바로 후회가 따라붙는다. 필연적으로 다시 지우고 고치기를 반복. 한 문장을 고르기 위해 열 문장을 버려야 하고 가끔은 쓴 걸 모조리 날려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선택과 후회의 굴레 속에서 결국 남는 건 단 한 줄의 문장이다. 어린 시절 내가 상상한 소설가는 경쾌한 손가락의 움직임을 가졌더랬다. 건반을 두드리듯 빠른 속도로 소설 한 편이 완성되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상상했던 삼십 대의 모습이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듯, 작가가 된 내 모습 역시 맞춤법조차 헷갈리는 허술함으로 가득하다. 그런 나 자신을 미덥지 않아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그 허술함이 내 글의 출발점이 된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을 이어가며 허공에 대고 말을 걸듯 문장을 적어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 불 꺼진 방에서 키보드를 타닥타닥 치는 모습은 분명 누추한 이미지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어떤 희열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언제나 글쓰기는 손익 계산의 바깥에서 작동한다. 수익과 손해로 따져 보자면 낭비의 극치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현대 사회에서 시간은 곧 돈이고 돈은 곧 생존이니까. 굳이 한 문장에 몇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라니. 주식이라면 진즉 손절하고도 남았어야 옳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런 계산법이 통하지 않는다. 더딘 성과를 받아 들여야 하는 노동. 쓸모없는 것들의 총체. 그리고 그 무용함 속에 인생의 쓸모를 발견하는 시선. 이런 점에서 쓰는 행위는 정말 낭만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함을 기꺼이 껴안고 책상 앞에 앉는 마음. 그러한 집념 자체가 곧 낭만일 수도 있겠다. 낭만 혹은 지루한 노동. 둘 중 무엇으로 명명하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낭만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마감조차 반짝여 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그가 그러한 대사를 내뱉는 순간 어찌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날 나는 웃음으로 답하며 속으로 생각했었지. 아, 이번 주 칼럼은 이걸로 쓰면 되겠다! /문은강(소설가)

2025-08-24

“악마가 아무리 검다 해도”

학창 시절 나와의 주먹질에서 패배했던 친구가 차에 치여 죽었을 때 난 알았다 내가 진 것이었다 상갓집에서 육개장을 앞에 놓고 맥없이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눌러도 고개를 드는 오래된 죄책감에 대해 누구에게 말 한마디 못 하고 혼자 미안해하다 다시 영정 사진을 올려다봤다 속엣말로 미안하다고 사실은 내가 졌다고 독한 척했던 내가 사실은 더 겁쟁이였다고 아직 앳된 상주의 어깨를 다독이며 상갓집을 걸어 나오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절대적으로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때 그 친구의 얼굴 표정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득의양양한 나를 올려다보던 그 영양의 눈빛 그날 나는 사악했다 상갓집을 나와 걷는 길 등 뒤에서 찬바람이 오고 기억들이 폐지처럼 몰려날아다니고 있었다 ―허연, ‘패배’ 전문 (‘우리는 언제 노래가 되지’, 2020, 문학과지성사) “눌러도 고개를 드는 것”이 있다. “악마가 아무리 검다 해도” 결코 이기지 못하는 게 있다. 지고도 “득의양양한” 그것은 어디에나 있다.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그 영양의 눈빛”이란 기표만으로도 말이다. 이기고 지는 것이란 무엇인가. 시인은 “그날 나는 사악했다”라는 기표로 오래된 패배를 독백하며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돌아보게 한다. 인간은 어리석다. 위기 앞에 자신의 약함을 들키지 않으려 “독한 척” 위악을 하거나 달아나는 것으로 비겁을 일삼는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와 그 작품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을 떠올려 보면 분명하게 보인다. 이 세계는 평범한 사람, 패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대체로 인간은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나 아름다운 한순간에 박제되기를 원하는 욕망에 굴복되기 쉽다. 한편으로, 시인의 인용되지 않은 시에는 “악마보다 힘이 센” ‘그것’이 있다. 시인은 그것을 ‘눈물’이라고 했다. 눈물은 “한적한 골목/ 자전거에 실려 가는 파 한 단 앞에서도/허물어진 폐가 귀퉁이/버려진 앨범 앞에서도 충분히” 흐른다고 했다. 자신이 노래하는 줄도 모르고 노래하는 새처럼 “눈물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나 흘리는 대책 없는 생의 밀도”로 시인의 인간 이해는 인간과 악마 사이의 전통적 거래 방식을 비틀어버린다. 이때 시인은 “오래된 죄책감”에 대해 “원했든 원치 않았든 / 절대적으로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반추하는데,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며 오래된 친구의 얼굴 표정을 떠올리며 자신의 사악함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이 시는 인간에 대한 조야한 비관주의로만 끝을 맺는 것인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조차 인간성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인간은 여전히 스스로를 발견할 기회를 가진다. 그것이 시인의 고백 ‘패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하여 허연 시인의 시는 육성에 가깝다. 박형준 시인의 말처럼 시인의 시에는 “김종삼의 후신이라 느껴질 정도로 담백하고 슬픈 기운”이 서려 있다. 시인의 정신과 가슴이 맞닿은 시 앞에 서면 글과 삶에 대한 간절함과 어떤 부끄러움 같은 게 깔려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 인간은 인간을 속이거나 빠트리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의지를 과대평가하고, 자신은 남과 다르다고 믿는 것으로 자신을 속인다. 이때 사람은 기억을 가졌다는 것으로, 혹은 고백만으로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 ‘부끄러움’이라는 인간성을 지졌기에 점점 더 밝은 쪽으로 나은 쪽으로 나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등 뒤에서 찬바람이 오고 / 기억들이 폐지처럼 몰려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희정 시인

2025-08-24

김천, 혁신도시 시즌2 - 균형발전과 경제도약 거점으로

경북 김천혁신도시가 국가균형발전의 핵심 거점으로 출범한 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김천시는 인프라 확충과 지역 특화 전략을 통해 정주여건을 크게 개선했으며, 이제 ‘선택과 집중’ 전략 아래 단순한 공공기관 이전지를 넘어 지속 가능한 신성장 거점으로 도약하고 있다. 김천혁신도시는 2007년 착공, 2016년 ‘경북드림밸리’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범했다. 총 381만㎡ 부지에 12개 공공기관 이전을 완료했고, 현재 9,605세대, 23,407명이 거주한다. 초기에는 공기업 3곳, 확장성이 제한된 정부기관 7곳, 공익 기능 중심 기타 공공기관 2곳으로 구성돼 산업 유치와 경제 파급효과에 제약이 있었으나, 김천시는 이를 기회로 삼아 정주환경 개선과 미래 산업 육성을 병행하며 교육 중심형 특화도시로 발전시켜 왔다. 정주여건 개선, 문화 인프라 확충 김천시는 ‘소통하는 김천, 함께 여는 미래’를 비전으로 김천혁신도시에 생활밀착형 사업과 성장동력 연계형 정주 기반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육아종합지원센터는 연간 3만 명 이상이 이용하며 양육 가정의 필수 거점이 됐고, 율곡시립도서관은 독서·학습 공간을 넘어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녹색미래과학관은 상반기 교육프로그램 참여자가 16만 명을 돌파하며 전국 과학문화 허브로 부상했고, 청소년테마파크는 놀이·문화·체험 공간을 통해 지역 청소년과 관광객 모두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127억 원을 투입한 율곡동 국민체육센터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건립 중이며, 반려동물 가구 비중이 높은 지역 특성을 살린 반려동물 놀이터도 조성해 반려동물 친화도시 기반을 마련한다. 미래 모빌리티 튜닝산업 육성 김천시는 한국교통안전공단과 협력해 자율주행, 전기차 전환, 드론·UAM 등 미래 모빌리티 산업 육성에 힘쓰고 있다. 튜닝안전기술원는 2023년 12월, 드론자격센터는 2024년 9월에 준공했으며, 전기차 튜닝·안전기술 실증, 미래차 애프터마켓 부품산업 기반 구축, K-드론지원센터 조성 등 사업을 추진 중이다. 현재 조성 중인 모빌리티 튜닝산업 지원센터, 자동차 주행시험장, 미래차 부품 친환경 소재 전환지원센터는 연구개발·실증·상용화를 한 곳에서 수행할 수 있는 산업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김천시는 이를 기반으로 첨단 튜닝산업 클러스터의 중심지로 도약할 계획이다. 스마트도시 ‘MObility DO Everything!’ 올해 6월 김천시는 국토교통부 주관 ‘2025년 강소형 스마트도시 조성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총 160억 원을 투입해 ▲모빌리티 서비스 ▲도시케어 ▲산업지역 ▲데이터 등 4대 핵심 분야를 추진한다. 특히 혁신도시와 원도심을 연결하는 DRT(수요응답형 교통) 서비스와 친환경 자율주행차 도입으로 교통 편의성을 높이고, 교통·물류·안전·복지 서비스가 통합된 스마트도시 모델을 구현한다. 교육·연구·산업 연계 복합지식도시 김천혁신도시는 교육·연구·산업이 결합된 복합지식도시를 목표로 한다. 조달교육원(연 1만 명), 국제종자생명교육원(연 2,400명), 첨단자동차검사연구센터(연 1만 명 이상 교육) 등 전문 교육기관이 집적돼 있으며, 경북ICT이노베이션스퀘어는 2024년 이용자가 4,000명에 달했다. 2025년 7월 개소한 K-하이테크 플랫폼 공동훈련센터는 제조업 중심의 디지털트윈 교육을 진행 중이며, 올해 하반기 완공될 국토안전교육원은 연 6,000명의 교육생을 유치할 전망이다. 동물보건 교육·실습센터도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전문인력 양성에 나선다. 지속 가능한 발전 ‘혁신도시 시즌2’ 김천시는 공공기관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도록 정주여건 개선과 상생 기반 구축에 힘써왔다. 공공기관은 이제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상생 파트너이며 공공기관 2차 이전의 조속한 추진과 전략 마련에 힘을 모아야 한다 2016년 준공 이후 ‘선택과 집중’ 전략 속에서 성장한 김천혁신도시는, 이전 공공기관과 함께 ‘혁신도시 시즌2’라는 새로운 도약기에 들어섰다. 김천시는 앞으로도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 도약을 동시에 실현해 나갈 계획이다. /배낙호 김천시장

2025-08-24

관종인가 연결인가

이름 대면 알 만한 상담전문가가 SNS에 올린 글을 읽게 되었다. 알고리즘으로 뜬 모양이다. 그의 남편이 암으로 병원에서 투병하다가 재택 임종을 원해서 집에 왔는데 맥주를 너무 먹고 싶어 해서 무알코올 맥주를 건넸다는 이야기다. 남편이 침대에 누워 맥주를 들고 있는 사진까지 올렸다. 몸통만 보였는데 너무나 앙상해서 불치병 환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사진까지 올린 그 상담전문가의 용기가 놀라웠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맥주 건넨 것을 잘했다는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아플 때 먹고 싶은 것을 금지했던 일을 후회한다는 댓글도 많았다. 나 역시 그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우리 부모님도 모두 재택 임종하셨다는 댓글을 달아 위로했다. SNS는 현대인의 생존 방식이자 중요한 소통 창구이다. 실종된 딸을 오직 딸의 SNS 흔적만으로 발견하는 영화가 나올 정도이다. 그래서 SNS에 올라온 글은 정보 창고이기도 하고 사람을 연결해주는 끈이 되기도 한다. 상담전문가의 SNS의 글도 그런 사례에 속할 것이다. 글쓴이는 재택 임종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싶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 자신도 많이 두려울 것이다. 말로는 맥주를 주는 것이 남편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했지만 무알코올 맥주를 마신 후 상태가 악화될까 걱정하면서 후회와 자책이 밀려올 수도 있다. 그런 힘든 마음을 SNS에 고백하면서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무너지고 있는 자신을 부여잡기 위해서, 글이 아니면 아무런 생의 목표도 없이 흩어져 버릴 것 같아서 글을 쓴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행동이 몹시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그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어떤 분이 돌아가신 후 지인이 그분의 생전 모습을 SNS에 올렸는데 약간 취한 모습이라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그분이 살아있었으면 틀림없이 그런 영상은 내리라고 했을 것이라면서 혹시 그분과의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올렸나 의심하기도 했다. 심지어 부모님 시신 앞에서 슬퍼하는 자신의 모습을 셀카로 찍어서 올리는 사람도 봤다면서 SNS에는 밝은 모습만 올리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그동안 경험으로 보면, 아무래도 자기 개방을 많이 한 글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연결고리를 만드는 경향이 많다. 봄 학기에 50대 후반의 여성 수강생이 대학 시절에 자기의 입술이 키스를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키스할 때 안 지워지는 립스틱을 바르면 안 된다는 글을 발표했다. 그때 모든 수강생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강의실 분위기가 화사해진 느낌이 들었던 것 역시 비슷한 경우다. SNS 글쓰기는 현대인의 필수 소통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관종인가 연결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수용자가 주관적으로 판단할 뿐이다. 글을 쓰는 이가 글쓰기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내면을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있는가만 중요하다. 덧붙여 그 글들이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주고 서로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 글은 온전히 잘 쓰인 것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8-24

나라는 염치도 없나

소년병, 6・25전쟁 시 징집 의무가 없던 청소년들이 전쟁터로 끌려간 수가 3만 명에 이른다. 6・25전쟁 74주년을 맞은 지금 앳된 얼굴은 백발노인이 되었다. 법에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예우와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소년병들은 하나둘 죽어간다. 국가가 이들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은 가지고 있는 건지, 그렇게 시간만 흘러간다. 소년병뿐만 아니라 소녀병도 있었다. 국방부 군적에 남은 소녀병 수는 467명이다. 군번이 없다는 이유로 어린 소년과 소녀를 전쟁터로 내몰던 국가는 염치도 없이 두 손을 놓고 있다. 나라가 다급할 때는 길 가던 아이들을 붙잡아 전쟁터로 내몰고서는 이제 와서 모르쇠로 일관한다. 국가보훈부가 2016년부터 지자체나 학교에 건립한 명비 중에 소년병을 위한 건 하나도 없다. 명비가 없음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로부터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소년・소녀병들의 슬픈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법으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들이 겪은 아픔을 이제 국가가 위로해야 한다. 6・25 참전 소년병 이수행 씨는 위기에 처한 국가와 부모님에 대한 효도 사이에서 인간적인 갈등이 많았다. 그런데도 나라의 어려움에 총을 선택한 소년병이다. 3만 명에 이르는 소년병의 참전으로 전쟁은 휴전하고 대한민국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제는 국가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헌법재판소는 소의 제기가 늦었다며 소년병들이 힘을 모아 신청한 헌법소원을 각하했고, 소년병 지원에 관한 법률은 16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법률로 제정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만을 되풀이한다. 22대 국회에서도 소년병 지원에 관한 3법을 발의했지만, 이것 또한 자동 폐기 될지도 모른다. 소년병 강제 징집의 위법 여부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검토 중이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집단 이익이나 의원 개인의 필요가 있을 때만 움직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십 년간 법률안 발의만 하고는 폐기를 반복할 리가 없다. 그나마 대구시의회는 6·25 소년소녀병 예우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의 중요내용은 소년소녀병 관련 기념행사 초청 및 의전 예우, 저소득 소년소녀병 및 유가족 위문·격려, 명예 회복과 사회적 지원을 위한 시책 마련 등이다. 국가에서 법으로 제정한 건 아니지만 관심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이 소년소녀병들의 피와 땀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노고에 대해 국가 차원의 인식이 필요하다. 전쟁 중에는 급해서 어린 소년소녀들까지 전쟁에 동원했지만, 끝까지 모른 척할 수 없지 않은가. 이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당한 대우를 해 주자. 국가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줄 때 국가를 위해 국민이 나선다. 모든 건 때가 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모두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는 죄인으로 남는다. 국가 스스로 역사적 오점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이제 더는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자. /김규인 수필가

2025-08-24

‘시절 인연’에 대하여

살면서 문득 돌이키는 한 가지가 시절 인연이다. 시절 인연은 불교의 업설(業說)과 인과응보설에 따른 것으로, 사물과 관계는 특정한 시공간 환경이 만들어져야 일어남을 뜻한다. 하필 그런 때와 장소에서 그 사람과 만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 시절 인연이다. 정해진 장소와 시기에 누군가와 운명처럼 인연을 맺게 되는 근본 동인이 시절 인연인 셈이다. 시절 인연의 근간으로 작동하는 것이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라는 업설이다. 전생과 현생에서 내가 지은 업이 선과 악으로 나뉘면서 그것의 결과로 작용하는 것이 인연이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적-사회적 환경에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에게는 좋은 인연이 찾아오고, 그 반대의 경우엔 나쁜 인연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업설을 달리 말하면, 인과응보설 혹은 인과응보(因果應報)라 할 수 있다. 인과응보는 우리의 행위에 담긴 선과 악이 그 결과를 받게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자연물을 포함한 타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언젠가 명백한 결과를 잉태하는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사자성어도 인과응보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맺는 인연의 배후에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필연의 불문율(不文律)이 작동한다. 오늘의 행복과 고뇌의 근저에는 그에 합당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 불가(佛家)의 해석이다. 나이 들수록 얼굴이 환하고 걸음걸이가 반듯하며 언어에 품격이 넘치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되는 사람도 적잖다. 그가 지은 현업(現業)이나 지난날의 업장(業障) 때문이다. 루소는 1762년 출간한 ‘에밀’에서 인간이 당면하는 괴로움의 두 가지 근원을 밝힌다. 그 하나는 육체적 고통이고, 그 둘은 양심의 가책이다. 우리에게 닥치는 숱한 질환이 불러오는 육신의 고통과 정신적 통증을 유발하는 후회의 상념이 인간을 촘촘하게 옭아맨다는 얘기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1869)에서 이것을 질병과 양심의 가책으로 변용하여 표현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육체적 고통의 일차적인 원인 제공자는 우리 자신일 경우가 많다. 우리의 생활 습관이 장시간 축적된 결과가 만성적인 고질병이나 급성질환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번민과 고뇌의 낮과 밤을 불러오는 양심의 가책도 알게 모르게 우리가 저지르는 파괴적인 악행과 폭언에 근거한다. 모든 것의 원인은 결국 ‘나 자신’이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나 역시 수많은 인간적인 결함과 실수를 저질렀다. 누군가는 나의 폭력적인 언사와 행위로 인해 분명 괴로웠을 것이다. 그때그때 사과하면서 살아왔지만, 성에 차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윤동주 시인처럼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지 못한 인간이다. 그것이 오늘날 내가 경험하는 쓰라린 양심의 가책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경이로움으로 전율한다. 정말 대단한 인생 행로를 걸어왔구나, 하는 찬탄의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부끄러움과 양심의 가책을 줄이고자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창밖에 매미가 맹렬하게 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8-24

‘처서 매직’

지난 주말인 23일은 처서다. 24절기 중 열 네번째 절기인 처서(處暑)는 한자말 그대로 해석하면 더위가 멈춰 선다는 뜻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체험적으로 터득한 기상에 대한 깨달음을 각종 속담 등을 통해 여러 가지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예를 들면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서 오고 하늘에서는 뭉개구름 타고 온다”고 말했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모습을 이렇게 섬세하고 예쁘게 표현했다. “처서가 지나고 나면 참외 맛이 없어진다”고 하는 말이나 “매미 소리가 자취를 감추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는 말은 경험적으로 느낀 계절의 변화를 말로 표현한 것이다. 또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말도 있다. 계절의 변화를 우리 조상들은 유머적 감각까지 동원해 재치있게 표현했다. ‘처서 매직’은 처서를 기점으로 더위가 마법처럼 사라진다하여 붙여진 합성어다. 북쪽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뜨겁고 습한 공기를 밀어내어 온도가 하락하는 현상을 마술에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처서가 되면 여름 더위는 이젠 갔다며 가을 수확 준비에 모두가 바빠진다. 그 시점이 양력으로 8월 23일쯤이다. 자라던 풀도 성장을 멈추고 누렇게 변해 집집마다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하는 것도 지금부터다. 그러나 수 년전부터 처서이후 기온이 되레 상승하는 역주행 현상이 나타났다. 지구온난화 탓이다. 처서인 지난 주말 대구의 낮기온은 최고 37도를 기록했다. 전국 대다수 지역에 폭염주의보도 내려졌다. 기상청은 처서가 지났음에도 당분간 찜통 더위가 이어질 것을 예보했다. ‘처서 매직’이 무색해졌다. /우정구 논설위원

2025-08-24

노인과 소방관의 건강 보호 시급하다

지난 3월 22일부터 28일까지 경북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등 5개 시·군을 휩쓴 산불은 149시간 만에 주불이 진화됐으나, 피해 규모와 파급력은 대한민국 산불 역사상 전례가 없었다. 특히 사망자의 대부분은 불길이 아닌 산불 연기에 의한 질식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태는 경북 산불 연기에 노출된 노인층과 소방관의 건강 보호가 단기적 재난 대응을 넘어 장기적이고 과학적인 건강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노인층은 산불 연기에 특히 취약하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서부 지역 노인 1036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높은 산불 연기에 노출되면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입원이 증가했다. 하버드대 연구팀도 노인이 단기간이라도 산불 연기에 노출되면 폐 기능 저하, 심혈관계 부담 증가 등 뚜렷한 건강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천식이나 만성 폐쇄성 폐 질환을 앓는 고령층은 연기 속 독성 물질로 인해 호흡 곤란이 심화하고, 혈관 염증과 혈압 상승으로 심혈관 질환 위험이 더욱 커진다. 소방관들도 안전하지 않다. 이번 경북 산불처럼 장기간 이어진 화재 진압은 소방관들을 고농도 산불 연기에 반복적으로 노출시킨다. 여러 연구에서 소방관은 평균 폐 기능이 낮아 이러한 상황에서 호흡기 질환에 더 취약하다고 보고된다. 장기적인 연기 흡입은 암·폐기종·만성 기관지염·심혈관 질환 등 여러 질병의 위험을 높인다. 여기에 심리적 스트레스·수면 부족·강도 높은 신체 활동이 겹치면 그 위험은 더욱 커진다. 폐 기능을 개선하고 강화를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운동 처방과 체계적인 재활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규칙적인 중등도 이상 유산소 운동은 호흡근을 강화하고 심폐 기능을 향상해 산소 공급 효율을 높인다. 여기에 개인별 맞춤형 근력 및 신전 운동을 병행하면 폐 주변 근육과 흉곽의 유연성이 향상되어 호흡 효율과 회복 속도가 더욱 개선된다. 해외 사례에서도 이러한 접근이 적극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독일과 스위스는 산불 예방뿐 아니라 연기 피해 대응을 위해 고령층 대상의 체계적인 폐 기능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독일의 ‘자가 15분 호흡 운동’, ‘호흡 테라피’, ‘최고의 호흡 훈련’ 등이 대표적 사례로, 산불 연기로 인한 건강 피해를 완화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경상북도는 대형 산불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노인층과 소방관을 대상으로 한 ‘폐 기능 보호·강화 종합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연기 노출 위험군에 대한 사전 폐 기능 검사, 호흡법·유산소·근력․신전 운동을 결합한 맞춤형 훈련, 심혈관·호흡기 질환 예방 교육 등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결국, 산불 피해 대응은 단기적인 진화 활동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연기에 취약한 노인층과 소방관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지속 가능한 건강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재난 안전 정책의 핵심 축이 돼야 한다. 이러한 체계가 자리 잡으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대형 산불에도 지역사회가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박성률(동국대 의대 연구초빙교수·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

2025-08-21

‘윤 어게인’의 이유? - 추종의 원리

헌정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구속됐다. 12·3 비상계엄 이래 한국 사회가 받아들여야 했던 거대한 손실을 생각하면 통쾌해야 마땅하겠으나 외려 수치심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윤 어게인’ 따위를 외치며 극우적인 행태를 보이는 자들이 제1야당을 점령하고 있는 꼴을 봐야 한다는 게 괴롭기도 하다. 한국 보수 정치의 수준이 이토록 처참했나 싶다. 대체 저이들은 어떤 이유로 구치소에 갇힌 대통령 내외를 여전히 지지하는 것일까? 무엇을 근거로 ‘윤건희’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런 광경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도 ‘박사모’나 ‘태극기 부대’, ‘어버이 연합’ 등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나라를 팔아먹어도 오직 한 정당만을 혹은 특정한 권력자만을 바라보겠다는 ‘어용 국민의 탄생’에 관해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를 다시금 실감하고 있다. 거의 신앙에 가까운 반지성적 추종의 원리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는 “파시즘의 대중심리”에 관해 연구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지도자가 대중들의 민족 감정에 조응하여 실제로 민족의 화신이 될 때 대중들은 지도자와 개인적 유대를 생성한다고 한다. 그 지도자는 대중 개개인에게 정서적인 가족적 유대를 형성하면서 엄격하지만 보호를 제공하는 아버지상을 구현한다. 독재자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보호를 받으려는 대중의 이러한 태도와 지도자에 대한 신뢰감이라는 것이다. 이때 문제는 대중들 개개인이 ‘지도자’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데 있다. 보호에 대한 아이와도 같은 욕구는 지도자와 하나가 된다는 감정의 형태로 더욱 위장된다. 이런 동일시 경향이 민족적 나르시시즘, 즉 개인들이 ‘민족의 위대함’에서 빌려온 자존심의 심리적 토대가 형성된다. 이제 대중은 지도자와 권위주의적 국가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동일시에 기반하여 그는 자신이 ‘민족성’과 ‘민족’의 방어자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어버이들’ 역시 대체로 산업화의 주역으로서 자기에 대한 자부심을 ‘제왕적 카리스마’를 내세운 통치권자에 대한 순종적 존경으로 이행시키곤 한다. 나아가 바로 그렇게 형성된 지지의 확장을 역으로 자신들의 권위로 인식하는 전도된 상상에 의존하며 남은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 어게인’을 외치는 오늘날의 (특히 남성) 청년들의 정신 구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최근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공정 담론의 보수적 귀착이 문제일 수도 있겠다. 공정이란 경쟁을 사회 발전의 자명한 이치로 받아들여야만 작동하는 가치형태이다. 경쟁의 조건은 갈수록 열악해지는데, 다툼의 시장엔 상대가 너무 많다. 여성 혹은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의 사회적 지분이 과거에 비해 너무 커진 것 아니겠나. 진보 진영은 전통적으로 이런 현상을 부추길 뿐이니 가장 보수적인 세력에 대한 ‘쏠림’이 증가한다. 물론 그 보수화가 극우로 나아간다는 것은 다른 층위의 문제기도 하다. ‘윤 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의 정신구조는 학술적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08-21

벌써 처서란다

입추가 지나도 더위가 가시지 않더니만 때늦은 장마라면서 연일 비를 퍼붓는다. 동남아 여행 때나 듣던 우기(雨期)라는 말을 우리나라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지구 온난화라고 떠들어 댄 지 수십 년은 된듯하고 수도권 농장에서 바나나를 수확한다고 하니 이젠 별반 놀랄 일도 아니다. 곧 지리산 열대 밀림을 보게 될 날이 몇 년 남지 않은 느낌이다. 새벽에 선풍기도 끈다는 처서가 곧 온다. 조금 있으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겠구나 싶다. 그리고 곧 크리스마스 캐럴도 울려 퍼지겠지. 국방부 시계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노인네 많은 복지관 시계도 쉼 없이 움직인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 처서(處暑)의 뜻은 가을이 온다는 이야기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엄연한 순행을 드러내는 때이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처서 이후엔 풀이 자라지 않기에 추석 성묘를 대비해 벌초를 가야 한다. 시간 없다고 처서 전에 벌초하는 사람을 본다. 성묘 때 절할 자리도 없이 풀이 자란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게 될 것이다. 햇볕이 강하면 돌아서면 풀이 엄청나게 자라는데 괜히 생고생할 필요가 없다. 날을 잡아도 알고 잡아야지 무턱대고 빈 시간에 맞추다 보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집안에서 제법 어른 축에 속한다 싶으면 주위에 귀를 열어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알고 옛날 속담도 주워 담아 ‘어른다움’을 가져야지 식솔들이 말을 듣는다. 이런 말 한마디가 권위를 부른다. 엉뚱한 이야기나 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입 냄새 풀풀 풍기며, 했던 이야기 또 하며 남들 다 아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떠들어 봤자 나중에 채신머리없는 늙은이로 전락하고 말뿐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면서 이상한 유튜브만 보다가 젊은이들에게 타박이나 받지말고 시대를 역행하지 않고 순행하는 멋진 삶을 생각해 볼 일이다. 입은 다물고 지갑만 열라는 이야기가 그냥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집안 양반 피가 그래도 몸속에 조금이라도 흐른다면 처서가 오면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책 정리이다. 음건(陰乾)이나 포쇄 (曝曬) 같이 어려운 용어까지는 몰라도 습기 먹어 냄새날법한 책을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할 건 정리를 해야 하는 시기이다. 집에 책이 너무 많아 정리를 하긴 해야 한다. 더 쌓아놓을 공간이 부족하다. 돈도 못 벌어오면서 책만 쌓아놓는다는 질책이 쏟아지기 전에 뭔 조치를 해야 할 판이다. 눈치 줄 때 알아서 기어야 한다. 아침에 새마을 금고에 갔다가 이사장에게서 젊디젊은 전무가 중풍이 와서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전날까지 멀쩡했는데 기가 막힐 일이다. 업무를 보다 갑자기 쓰러졌고 119 불러 조치를 했음에도 몸이 엉망이 되었단다. 아직 찬 바람 부는 날씨는 아닌데 중풍이 웬 말인가. 요즘 다리에 쥐도 자꾸 나고 뒷골도 당기는 게 중풍 전조증상이 아닌가 싶어 갑자기 살짝 긴장된다. 쉼 없는 계절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 몸도 같이 상하고 있다는 것에 한없이 슬퍼지는 가을맞이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8-21

대구의 ‘모나리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떠오르고 한국의 간송미술관 하면 신윤복의 ‘미인도’가 생각난다. ‘모나리자’와 ‘미인도’가 자주 비교되는 것은 두 작품이 각국을 대표하는 미인상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뛰어난 예술적 가치에 더해 시대적 상징성을 갖춘 것도 닮아 두 작품은 자주 비교돼 회자된다. ‘모나리자’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 통한다. 다른 작가들에 의해 모방도 되고 상업적 목적으로도 많이 활용되는 작품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간판 스타로 통하는 ‘모나리자’ 작품 앞에는 항상 수많은 인파들로 붐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조선시대 ‘미인도’ 가운데 최고 걸작이다.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런 명성 덕에 전시 때마다 관람객이 전시장 앞에 줄을 선다. 단아한 여성의 모습과 여인이 취한 다소곳한 자세, 그리고 가제를 얹혀놓은 잘 빗질된 머리, 정돈된 옷매무새 등은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잘 묘사하고 있다. 신윤복 이전에는 이런 식의 전신상을 그린 ‘미인도’가 거의 없어 조선시대 풍속을 아는 미술사적 의미도 크다. 대구시가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대표작 ‘미인도’를 내년부터는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상설 전시한다고 밝혔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대구의 대표 문화 콘텐츠로 삼을 생각이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대구의 모나리자가 될런지 기대를 한번 걸어보자. /우정구(논설위원)

2025-08-21

촉법소년

어렸을 때 필자는 장난전화를 많이 했다. 재밌었다. 포항 청림동에 살고 있었는데 심심하면 아무 번호나 눌러 장난전화를 걸고 끊어버리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애 장난전화 단속 좀 시키라고 연락이 왔다. 청림동은 군부대 아파트라 집집마다 전화 추적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땐 부모님께 된통 한번 혼나고 말았지만 지금 같으면 이렇게 원치 않는 전화를 계속 거는 것은 스토킹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 처음 고백하는 건데 조금 더 어렸을 땐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을 훔쳐 먹은 적도 있다. 더 고백할 것들이 많지만 여기까지만 하겠다. 어쨌든 만약 필자가 그때 스토킹 처벌법 위반과 절도로 전과자가 됐으면 어땠을까? 아마 인생은 암울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변호사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준법의식과 인지능력이 성숙하기 전에 저지른 일을 무조건 형사처벌 하자는데 동의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소년의 교화와 보호, 사회비용 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촉법소년 제도의 존재 이유이다. 우리 형법은 만 14세 미만인 자는 어떤 행위를 해도 형사처벌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이 14세의 촉법소년 기준은 1953년 제정 형법에서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얼마 전 서울 한 대형 백화점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반복적으로 올라와 그 일대가 발칵 뒤집혔다. 백화점 본관 건물 1층에 폭약을 설치했고 오후 3시에 폭파될 예정이라는 꽤나 구체적인 협박 글이다 보니 경찰 특공대와 소방대가 투입되었다. 백화점 이용객 4천여명이 대피하고 백화점 영업은 3시간 동안 중단됐으며 인근 상가들도 문을 닫고 대피했다. 이 일에 따른 영업손실은 백화점 측의 추산으로만 6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범인을 잡고 보니 제주도에 사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공공이 모이는 특정 장소를 폭파하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형법상 공중협박죄가 되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범인은 만 14세가 안된 촉법소년이므로 형사처벌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촉법소년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촉법소년 제도는 필요하지만 그 연령 기준을 개정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70년 전 14세와 2025년의 14세는 육체적 정신적 성숙도가 다른데 1953년에 만든 기준으로 여전히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촉법소년이라면 형사처벌은 못 해도 소년법상의 보호처분은 가능하다. 소년법상 보호처분은 최대 소년원 구금까지 가능한 처분이므로 청소년을 무조건 전과자로 만들기보다는 지금의 촉법소년제도를 유지하되 소년법의 적용이나 다른 방법으로 교화 기능을 대신하자는 반대 의견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법과 범죄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다. 이 중학생이 협박글을 올리는 것은 공중협박죄라는 중범죄 행위이고 인터넷에 올려도 다 추적이 가능하며 너의 부모가 큰 돈을 물어줘야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 미리 배웠다면 어땠을까?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학교에서 영어 수학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중고사이트 사기, 성범죄, 스토킹, 명예훼손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좀 가르칠 필요가 있다. /김세라 변호사

2025-08-21

공연을 마치고 난 후

오늘 정호승 시인의 문학강의가 있는 날이다. 나는 그의 시로 여는 시낭송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 강의는 신경을 많이 썼다. 시인은 필요한 이것저것을 요구했으며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깐깐하다고 생각한 점은 시작하기 전부터 빔을 설치해서 화면을 보며 강연을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미술관에는 전혀 그런 것이 준비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디.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이라는 고집을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며칠 동안 멤버 중의 한 명이 고생해서 겨우 완성한 상태였다. 당일이 되어 강의가 시작되자 시인의 생각은 현실적으로 옳았다. 강의장에 도착한 정호승 시인을 마주했다. 75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어 보였다. 시인들이 대부분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맑고 깔끔한 이미지가 십 여 년 전에 봤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인사와 함께 추억을 남기고자 줄을 잇는 사람들 틈에 나도 끼여 한 장의 추억사진을 찍었다. 함께 시낭송을 하게 된 지인은 본인이 십 오년 전에 사무국장을 하면서 선생님과 찍은 사진을 보여 주기도 했다. 세월은 언제 또 이렇게 흘러 여기까지 온 것일까. 정호승 시인의 특강은 프리젠테이션이었다. 그의 강의는 간결하면서 핵심을 사진과 함께 설명이 이루어지는 형태였다. 시는 은유다. 시는 개인의 창의성을 보여야함을 강조했다. 그의 시처럼 이해하기 쉽고 음악적 리듬을 살린 시어와 문장이 와 닿았다. 백여 명의 사람들이 고요히 그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경주에 외가가 있었고 대구 사람이고 외할머니의 추억을 얘기 할 때는 오래된 사진을 보는 느낌이었고 에밀레종 속에 들어간 개구쟁이고 정말 귀엽다는 생각과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기억과 추억과 그리고 사물의 독창성을 깨닫고 시어를 찾아내는 무한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정호승 시인이 낸 시집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시를 쓰는 작가로 굳건한 이미지로 본다면 시인의 강의처럼 연기자로써 살아온 김혜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두 사람 다 정점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영화배우 김혜자는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할 때 했던 말들이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책을 펴낼 만큼 작가의 기량을 갖고 있던 그녀는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두고두고 나는 그녀의 대사를 기억하려 한다. 놓친 기억의 일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가져온 구겨진 메모지를 꺼내 읽는 것도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여든이 넘은 그녀가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란 작품을 통해 84세의 나이를 뛰어 넘는 연기력과 마지막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가슴 뭉클했다. 자상한 어머니로 사랑스런 아내로써 치매를 앓는 노인의 역할까지 무수한 역할을 수없이 많이 하면서도 전혀 질리지 않는 그녀의 탄탄한 연기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정호승 시인의 많은 저서를 통해 그의 탄탄한 시어들의 탄력성과도 유사하게 느낀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살아간다는 것은 익히 하던 일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이 어제 같은 일상이더라도 살면서 우린 나 자신이란 몸에 에너지를 넣으며 하루를 비슷하지만 다른 연속된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생애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정호승 시인이나 김혜자 배우처럼 자신의 길을 걸으며 길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일, 그것이 바로 참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들을 통해 나 또한 잔잔하게 나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던 정호승 시인의 시 낭송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낭송 시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라고 표현한 것은 그의 섬세한 내면을 잘 담고 있다. /배문경 수필가

2025-08-20

조손공감(祖孫共感)

“아이 워즈 어 고스트 우아 워즈 얼론 어두워진 앞길 속에 아이 르브드 두 라이브즈, 트라이 투 플레이 보스 사이즈(I was a ghost, I was alone 어두워진 앞길 속에I lived two lives, tried to play both sides)”. ‘케이팝데몬헌터스(케데헌)’의 노래에 푹 빠진 손녀의 공책이다, 이렇게 노래 가사를 한글로 적어 보면서 노래한다. 무슨 뜻인제 아느냐고 물으니 모른다며 해맑게 대답하는 손녀. 제 딴에는 노래한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읽기에 급급한 듯하니 귀엽고도 우습다. 이 노래는 애니메이션 ‘케데헌’의 OST ‘골든(Golden)’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전 세계적 인기를 얻었다는데 우리 손녀까지도 이렇게 열광(?)하니 과연 맞나보다. 이 외에도 여러 곡이 더 있다. 손녀가 “You‘re my soda pop, my little soda pop“이라고 ‘소다팝’을 흥얼거릴 때면 옆에 있던 나와 손자까지도 같이 따라 할 정도로 중독성 있는 멜로디니 참 인기가 있을 수 밖에 없겠다 싶다. 지난달이었다. 손자가 ‘케데헌’을 봤느냐고 물었고, 그게 뭐냐 되물었더니 자기는 세 번이나 봤다고 자랑하면서 TV로 넥플릭스를 켜서 같이 보자고 했다. 애니메이션이라 시큰둥했지만 장면 장면을 가리키며 워낙 아는 체하길래 대충 보는 척을 했다. 케이팝을 부르는 세 명의 걸그룹이 악귀를 잡는 능력으로 귀마인 사자보이스라는 남자 그룹을 물리친다는 내용이었다.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한국이라는 것이 내 흥미를 끌었다. 거리의 간판이 한글로 쓰였고, 서울의 잠실 올림픽경기장, 삼성역 전광판, 북촌 한옥마을, 낙산공원과 남산타워, 명동 등이 배경으로 등장해서 서울시장이 ‘케데헌’ 제작진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뉴스를 접한 바는 있었는데, 과연 그랬다. 목욕탕과 한의원 등도 등장하니 K-컬처를 제대로 홍보하고 있는 셈이다. 내용은 그렇다 치고 배경이 흥미로워 자세히 보게 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OST에는 또 관심 없었다가 손녀 덕분에 흥얼거리게 되니 참 이렇게 조손이 공감하는 접점이 있기도 하나 보다.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도 월요일 밤의 ‘가요무대’는 챙겨본다. 내가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생각하면서 보는 프로그램이다. 어제 ‘가요무대’를 볼 때 손녀는 옆에서 공책을 보며 ‘케데헌’의 소다팝을 흥얼거리고, 손자는 과학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내가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니 애들은 하던 짓을 멈추고 나와 TV를 번갈아보며 이런 표정을 짓는다. 할머니가 노래를 하네? 손자가 책을 던지고 일어나 노래에 맞춰 설렁설렁 춤추는 시늉을 하자 손녀와 나도 일어나 서로 안고 빙빙 돌았다. 조손공감이 이렇게도 가능하구나. 아이들에게 노래방에 한 번 가자고 했더니 노래방이 뭐야? 되묻는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번 방학 버킷리스트 하나 더 추가한다. 노래방 가서 각자 좋아하는 노래 목청껏 불러보기. 점수에 따라 내기도 하면 재미있어 하겠지.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8-20

노화 방지를 위한 한의학적 생활 관리

노화는 인체의 모든 조직과 기능이 서서히 약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그 속도와 양상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고 생활 습관과 체질 관리에 따라 상당 부분 조절이 가능하다. 한의학에서는 노화를 단순히 피부의 주름이나 머리카락의 변화로만 보지 않고 오장육부의 기능 저하와 기·혈·정의 소모라는 전신적인 관점에서 이해한다. 한의학 고전인 황제내경에서는 신은 선천의 근본이라고 하였고 신장의 정을 노화와 직결된 핵심 요소로 보았다. 정은 생명 에너지를 저장하고 성장, 발육, 생식, 회복을 담당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또 간은 혈을 저장해 눈과 피부의 윤택을 유지하고 비위는 영양을 전신에 공급해 근육과 피부를 튼튼하게 한다. 결국 신, 간, 비의 균형과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노화 방지의 기초라 할 수 있다. 음식은 한의학에서 약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신장을 보하는 검은콩, 흑임자, 검은깨, 검은쌀 같은 흑색 식품은 기와 정을 보강해 노화를 늦추는 데 도움을 준다. 간과 혈을 보하는 대추, 구기자, 당근, 시금치 등은 피부의 윤기를 회복시키고 눈의 피로를 줄인다. 비위를 튼튼하게 하는 현미, 기장, 고구마, 호박은 소화력을 높여 영양 흡수를 돕는다. 반대로 지나치게 기름지고 단 음식 과도한 음주는 습열과 담을 쌓이게 하여 피부 노화를 촉진하므로 멀리하는 편이 좋다. 노화를 늦추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과 수면이 필수다. 특히 밤은 음이 충만해지고 정과 혈이 회복되는 시간인데 현대인들처럼 늦게 자거나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신장과 간의 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노화가 빨라진다. 가능하면 밤 11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어 7시간 내외의 숙면을 취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일정한 생활 리듬은 자율신경계 안정에도 도움이 되어 피부 탄력과 면역력 유지에 유리하다. 이와 함께 계절에 맞춘 생활 습관이 필요하다. 여름에는 땀을 어느 정도는 흘려야 면역력이 올라가고 겨울에도 적당하게 산책을 해 면역력을 올리는 것이 좋다. 너무 덥거나 춥다고 에어컨 바람만 쐬거나 따뜻한 집에만 있으면 면역력이 더 떨어지게 된다. 기혈 순환이 원활해야 피부와 모발이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 하루 30분 이상 가볍게 땀이 나는 운동을 하거나 스트레칭, 기공, 태극권처럼 완만한 움직임을 꾸준히 하면 기와 혈이 잘 순환된다. 목과 어깨, 등 근육이 굳어 있으면 얼굴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어 안색이 칙칙해지므로, 평소 자세를 바르게 하고 근육을 풀어주는 습관이 필요하다. 마음가짐 역시 노화 속도에 영향을 준다. 한의학에서는 희로애락 같은 감정 변화가 오장육부의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본다. 특히 스트레스는 간기울결을 일으켜 혈류 흐름을 막고 피부 트러블이나 탈모, 노화를 촉진한다. 명상과 복식호흡, 취미 활동을 통한 정서 안정은 신체 회복력과 피부 건강을 함께 높여준다.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한의학적 생활 관리로 그 속도를 늦추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신, 간, 비의 균형을 유지하고 올바른 음식과 수면 규칙적인 운동 마음의 안정을 실천한다면 외형뿐 아니라 내면까지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를 더해갈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8-20

트럼프의 미국, 기로에 서다

미국은 ‘Make America Great Again(MAGA)’을 외치며 세계질서를 흔들고 있다. 보호무역과 자국 이익 우선을 내세운 관세강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일부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표면적 승리를 얻은 듯 보일 수 있다. 길게 보면, 세계 곳곳에서 미국발 일방적 관세정책에 고통받는 국가들의 원성이 있고 뿌리째 흔들리는 국제질서가 있다. 미국이 쌓아온 ‘신뢰 자본’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결정적인 자산의 침식이 자리 잡고 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 각국의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고관세를 부과했다. 캐나다, 유럽연합, 일본 등 동맹국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철강업계는 환영했지만 동맹국들은 깊은 당혹감과 분노를 드러냈다. 캐나다는 보복관세로 맞섰고 유럽연합도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대응에 나섰다. 함께 가자던 오랜 파트너들이 각자도생의 태도로 돌아섰고 미국의 지도력은 도전받기 시작했다. 동북아시아의 경우는 더 복잡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가 매겨지자, 한국과 대만, 베트남 같은 중간재 수출국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스마트폰과 가전,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의 글로벌 공급망이 뒤틀렸고, 중소기업들은 무역 차질로 문을 닫았다. 한·중·미 간의 삼각무역 구조 내에서 미국의 변화무쌍한 무역정책은 외교적 마찰을 넘어 각국의 생존에 위협이 되었다. 중국은 발빠르게 대응했다. 브라질, 러시아, 동남아 국가들과의 교역을 강화하며 미국 중심의 무역의존도를 낮추었다. 미국의 관세정책은 상대국의 항복을 끌어낸 것이 아니라 ‘디커플링’을 초래했고 미국 중심의 글로벌 가치사슬은 서서히 이완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포스트-미국’ 무역 질서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무역 규범이 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WTO 분쟁해결기구의 상소기구 판사 임명을 거부하면서 국제무역 규범의 수호자 역할을 스스로 포기했다. 다국적 규칙 기반의 질서 대신에, 국력에 의존한 양자 협상 체제가 부상했다. 무역뿐 아니라 국제 정치 전반에서 불확실성을 키우게 되었다. 세계는 갈수록 더욱 ‘미국 없는 세계질서’를 상상하게 되고 대안적 리더십을 모색하는 중이다. 흐름의 저변에는 미국이 축적해 온 ‘신뢰 자본’의 자멸이 있다. 신뢰 자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산이다. 오랜 기간 세계의 조정자이자 경찰 역할을 자임하며 쌓아온 정치적 신뢰, 경제적 예측 가능성, 국제규범의 준수자라는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그 자본을 스스로 갉아먹으며 소모하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소중한 신뢰 자산을 깎아 먹는 셈이다. 미국이 위대한 나라로 다시 서려면, 보호무역과 자국 중심의 승자 독식 전략이 아닌, 다자 협력과 신뢰 회복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관세라는 칼을 휘두를 때마다 파편은 온 세계를 향하지만, 가장 깊은 상처는 미국 자신의 리더십에 남는 법이다. 짧은 안목으로 거둔 이익이 긴 미래의 전략적 손실이 되지 않도록, 미국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세계는 미국을 주목하고 있다. 세상의 시선이 기대와 존경일지 아니면 실망과 의심일지는 미국의 손에 달렸다. 국제관계는 멀리 넓게 보아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8-20

문재인의 실패한 ‘자식 농사’

풍수지탄(風樹之歎)을 말하면 ‘이상한 아저씨’로 취급받는 세상이 왔다. 그 옛날 자식들은 아버지 뜻을 거스르고, 어머니를 부끄럽게 만드는 행위를 극히 경계했다. 그게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바 효지시야(孝之始也·인간이 할 수 있는 효도의 시작)였으니. 세상이 바뀌었다. 자랑스럽게 내세울 아들이나 딸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사고나 치지 않으면 다행인 시절이 21세기다. 전 경기지사 남경필과 국회의원 이철규의 아들은 마약사범으로 처벌받았고, 그게 남우세스러워 아비가 고개를 들지 못한 게 오늘의 한국. 선거를 통해 뽑힌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 자식이라고 아버지의 뜻대로 될 리가 없는 모양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문다혜는 지난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채 운전대를 잡아 세상의 손가락질 대상이 됐다. 음주운전은 미필적 고의의 살인 행위다. 대통령인 아버지는 부동산 문제 해결에 골머리를 앓는데 딸은 ‘갭투자’로 억대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는 비난도 받았다. 뿐인가? 무혐의 처분되긴 했지만 자선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기로 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아 입건까지 됐다. 문재인 씨를 지지하는 이들은 “성인인 자식의 행위를 왜 아버지가 책임져야 하느냐” 묻는다. 일견 타당한 이야기다. 그러나, 자식 하나도 통제 못하면서 5천만 국민에게 정직하고 바른 삶을 말했던 아버지의 부끄러움은 어떡할 것이며, 문씨를 대통령으로 인정하며 5년을 살아온 이 나라 국민들의 수치심은 누가 없애줄까?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는 낡았기에 버려야 할 농담이 아니다. 단 아홉 글자로 지향해 마땅한 통치자의 모습을 이처럼 제대로 형상화한 경구를 본 적이 있는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20

수국 핀 길을 걸으며, 여성의 존엄을 생각하다

7월 18일. 날씨는 화창했으나 최고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이었습니다. 저는 시부야에서 쇼난선(湘南線)을 타고 기타가마쿠라역으로 향했는데요. 기타가마쿠라 일대는 명찰이 즐비한 곳입니다. 특히 나쓰메 소세키가 인생의 비의를 풀고자 참선수행했으며, ‘문’(1910)이라는 소설에까지 등장시켰던 엔카쿠지를 비롯해, 초여름이면 수국으로 유명한 메이게츠인, 국보인 범종과 동일본 최대 규모의 산문을 자랑하는 겐쵸지 등이 유명하죠. 오늘 답사지로 선택한 곳은 도케이지(東慶寺)입니다. 도케이지는 8년 전에 몇 명의 연구자와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는 일본에서 ‘비평의 신’으로 불리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무덤을 찾느라 꽤나 많은 땀을 흘렸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사찰 곳곳에 피어있던 짙은 하늘색의 수국이 무척이나 이채롭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방문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8년 만에 다시 찾은 도케이지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무덤과 수국만으로 기억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하고 깊은 의미를 지닌 절이었습니다. 1285년 창건된 도케이지는 600여년 동안 ‘여성의 피난처’ 역할을 하던 사찰이었는데요. 과거 여성이 남편의 동의 없이 이혼할 수 없던 시절에, 여성이 이 절로 들어와 2년간 머물면 이혼이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여성이 비녀나 짚신을 던져 넣기만 해도, ‘도망쳐 들어온 것’으로 인정되었다고 하는데요. ‘인연 끊는 절(縁切り寺)’로도 불린 도케이지는 오늘날의 가정폭력 쉼터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 도케이지에서 놀란 건, 이 곳에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 지식인들의 무덤이 가득하다는 것이었습니다. 8년 전에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무덤 찾는 것에만 신경을 썼는데요. 이번에 자세히 보니 이 곳에는 ‘비평의 신’ 이외에도 일본의 선(禪)을 세계에 널린 알린 스즈키 다이세쯔, ‘선(善)의 연구’(1911)로 일본근대철학의 주춧돌을 놓은 니시다 기타로, 윤리학자로 널리 알려진 와쓰지 데쓰로, 전후 일본의 교육 개혁을 주도했던 아베 요시시게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 근대 지성들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이토록 많은 근대 지성이 한곳에 묻힌 이유는, 바로 도케이지 뒤편 산자락에 마쓰가오카 분코가 만들어진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였는데요. 마쓰가오카 분코는 일종의 도서관으로, 유명한 선승인 샤쿠 쇼엔이 주도하여 설립하고, 그의 제자인 스즈키 다이세쯔가 말년에 깊은 연구를 수행한 곳입니다. 아마도 이런 인연으로 근대 일본의 수많은 지성이 도케이지에 묻히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꽃의 절’로도 불릴 만큼, 계절별로 아름다운 꽃이 피는 이 조용한 절은 영혼의 안식을 얻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였습니다. 마침 도케이지를 방문한 이 날은 한 달에 한번 수월관음보살반가상(水月観音菩薩半跏像을 일반에 공개하는 날이었는데요. 13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목조 반가상은, 편안하게 바위에 기대어 조용히 수면에 비치는 달을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의 관음상은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시대(1185-1333)에 주로 유행했다고 합니다. 제가 이 관음상을 보고 가장 크게 놀란 것은 크기였습니다. 관음보살의 전체 모습은 물론이고, 각종 장식까지 세밀하게 표현했음에도, 전체 높이가 겨우 34cm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너무나 작고 정밀하여 놀랍기까지 한 관음상 앞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오래된 명제가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최고의 일본문화론 중 하나로 꼽히는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은 일본인들이 뭐든지 ‘작게 만드는 것’에 특기가 있다고 말하는데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접이식 부채, 주먹밥, 접이우산, 도시락, 문고본, 분재, 꽃꽂이, 하이쿠 등이 모두 ‘축소지향’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일본에는 몸 하나 누일만한 공간에 호텔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인 캡슐호텔이 인기를 끌고, 수십년 전에는 ‘손 안의 오디오’인 워크맨으로 세계시장을 제패하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저서를 관통하는 방법론은 구조주의로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수많은 일본문화의 표면 현상 밑에 놓인 심층구조로서의 ‘축소한다’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이 때의 ‘축소한다’는 고메루(込める, 밀어넣는다), 오리타타무(折畳む, 접어 작게 하다), 히키요세루(引き寄せる, 가까이 끌어당기다), 니기루(握る, 쥐다), 게즈루(削る, 깎아내다), 도루(取る, 잡다), 쓰메루(詰める, 채우다), 카마에루(構える, 자세를 취한다), 고라세루(凝らせる, 집중시키다) 등으로 세분화할 수도 있는데요. 표정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34cm 크기의 관음상을 보며,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명제를 실물로서 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8년 전에 처음 도케이지에 왔을 때는, 오직 고바야시 히데오의 무덤 하나만을 찾아 한나절을 헤맸는데요.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찾은 도케이지는, 일본문화의 많은 것들을 응축해 놓은 통조림처럼 느껴졌습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짙푸른 녹음과 아름다운 새소리에 둘러쌓여, 산문을 나서는 제 머리에는 시대를 초월한 여성의 존엄과 자유, 그리고 구원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고 떠올랐습니다. /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8-19

거울 속의 나이

에스컬레이터가 한 층, 또 한 층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주말의 백화점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매장 사이로 풍기는 화장품 향과 음식 냄새가 공기 속에서 뒤섞였다.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유난히 귀에 꽂혔다. 서너 명의 어르신들이었다. 나이로만 따지면 칠순은 훌쩍 넘은 듯한 분들이었는데 말투는 묘하게 젊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들으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들려 오는 소리는 막지 못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식당에서 있었던 일로 시작되었다. 한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며 말했다고 한다. “어르신, 여기 메뉴판입니다.” 그 한마디가 문제였다. 이야기를 주도하던 분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누가 나를 보고 어르신이라고 하나? 주문 받는 자기가 나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더만. 나 아직 그렇게 안 늙었어!” 그 말에 다른 친구들이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종업원이 무심히, 혹은 예의를 지키느라 던진 호칭이 그들에게는 날카로운 침처럼 꽂힌 모양이었다. 나는 그 대화가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에 오래 남았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누가 봐도 사회가 통상적으로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연령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속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젊음이 살아있는 듯 보였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를 ‘젊다’고 여기는 감각이 그분들의 자아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몸이 늙는 것이지 마음이 반드시 늙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거울 속 주름진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 안의 시간은 여전히 예전의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서른 살이 되면 인생의 절반쯤을 산 듯 성숙해 보였고, 쉰이 넘으면 어김없이 ‘중년’이라는 무게를 짊어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면 마음은 여전히 스무 살 무렵의 감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은 나를 나이로 분류하지만 내 속의 나는 그 분류를 거부한다. 이 착각은 어쩌면 생존 본능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여전히 젊다고 믿는 마음은 무기력과 체념을 막아주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품게 만든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주관적 연령(subjective age)’이라고 부른다. 실제 나이보다 자신을 젊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건강 지표가 좋고 사회적 관계망도 더 활발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젊음에 머물러 있다는 착각’은 분명 삶을 지탱해 주는 긍정적인 힘이다. 그러나 그 착각에는 그림자도 있다. 젊음을 고집하는 마음은 때로는 나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지점에서 불필요한 분노를 만든다. ‘어르신’이라는 호칭에서 예민하게 반응한 백화점의 그분들처럼 말이다. 사실 ‘어르신’이라는 말은 존칭이다. 그 안에는 연륜과 경험을 존중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아니다’라는 내면의 방어막이 그 호칭을 곡해하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나이 듦을 존엄하게 받아들이려면 내 마음 속의 젊음과 거울 속의 나이가 화해해야 한다. 그것은 순순히 늙음을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젊음의 감각을 지키되 나이가 쌓아준 지혜와 품격을 함께 품으라는 말이다. 나 역시 나이를 계산하면 중년의 어귀에 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삼십대의 감각이 살아 있다. 거울 속의 얼굴과 마음속의 나이가 다른 채로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 불일치가 인간을 더 유연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백화점을 나서며 나는 뒤에서 들려오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오래 곱씹었다. ‘어르신’이라는 호칭 하나에 담긴 세대 간의 인식 차이, 나이듦에 대한 자기 해석,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나이를 둘러싼 심리적 줄다리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의 대화 속에 압축되어 있었다. 나이란 단순한 숫자기 아니다.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불러 주는가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언젠가 누군가 나를 ‘어르신’이라 부를 때 나는 그 말 속에 존경을 먼저 읽어내고 싶다. 내 마음속 젊음과 거울 속 나이가 그때쯤은 비로소 화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김경아 작가

2025-08-19

청년이 돌아오고, 어르신이 머무는 포항을 꿈꾸며

거리를 걷다 보면, 세대마다 다른 표정을 마주하게 된다.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청년의 얼굴에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골목길 평상에 앉은 어르신의 표정에는 그리움과 고단함이 함께 묻어난다.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힘차지만, 그 아이들이 자라서도 이 도시에서 꿈을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부모들의 마음 한편을 채우고 있다. 도시는 건물과 도로가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도시를 지탱하는 진짜 힘은 시민의 삶 속에 있다. 그래서 포항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 세대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살아 숨 쉬는 도시여야 한다. 청년이 돌아오고, 어르신이 머무르고, 아이들이 자라는 도시. 그 균형이 깨지면, 아무리 산업이 발전해도 도시는 서서히 힘을 잃는다. 포항은 한때 전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많은 청년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이곳을 떠난다. 일자리 부족, 낮은 임금, 한정된 문화·여가 공간, 주거 불안정이 청년의 발목을 잡는다. “좋은 일자리가 있다면 떠날 이유가 없다”라는 말, “월세 걱정 없이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라는 말, “퇴근 후에도 즐길 거리가 있어야 한다”라는 그들의 말을 곱씹으며 그 이유를 해결할 방안 마련에 몰두해 왔다. 청년이 돌아오는 포항을 만들기 위해서는 취업·창업·주거를 하나의 연결된 과제로 보고 종합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주력산업과 연계한 청년 전문인력 양성,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장기 거주형 청년 임대주택 확대, 청년 문화거점 조성 등은 단순한 정책 목록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 설계도인 것이다. 고령화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이 사회에서 멀어진다는 뜻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포항은 어르신이 존중받고,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의료·돌봄·여가·사회참여가 균형을 이루는 고령친화도시, 이는 복지가 아니라 품격이다. 홀로 사는 어르신의 고독사를 예방하는 생활 안전망, 경로당을 넘어서는 복합문화공간, 지역사회 멘토로 참여할 기회 등은 단순히 어르신을 돌보는 차원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다. 포항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교육 인프라, 안전, 보육 부담으로 고민이 크다. 지역의 특성을 살린 교육과 돌봄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해양과학·친환경 에너지·문화예술 등 포항이 가진 자원을 교실 밖에서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교육. 안전한 통학로, 질 높은 방과 후 프로그램,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는 보육 환경이 뒷받침된다면, 아이들은 포항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세대가 함께 행복한 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청년이 안심하고 돌아와 뿌리내리고, 어르신이 존중받으며 편안히 살아가고,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환경이 촘촘히 이어져야 한다. 그 속에서 서로 다른 세대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어울리며, 서로의 경험과 에너지를 나누는 순간들이 쌓여야 진짜 ‘함께’의 도시가 된다. /김일만 포항시의회의장

2025-08-19

삶의 질과 마인드 맵

일을 잘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인드맵을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 삶이나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대부분의 활동은 머리를 쓰는 일인데, 마인드맵은 우리의 머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툴이기 때문이다. 마인드맵을 활용하면 흩어져 있는 데이터, 정보, 지식 등을 논리정연하게 한 페이지로 정리할 수 있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획기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마인드맵(Mind Map)은 삶과 직장의 문제 해결이나 기획에서 사고(思考)를 시각적으로 정리하는 도구이다. 마인드맵은 한 가지 주제를 중심에 두고, 관련된 아이디어나 정보를 방사형(放射型)으로 시각화하여 창의력-기억력-문제해결 능력을 높여준다. 영국의 교육학자 토니 부잔(Tony Busan)이 체계화 한 방법으로, 두뇌의 연상 작용을 시각화 한 ‘생각의 지도’ 라고 할 수 있다. 마인드맵의 조건은 첫째, 중심 주제의 명확화이다. 하얀 종이 중앙에 삶의 목표, 직장의 과제 등의 핵심 주제를 이미지나 키워드로 표현하는 것이다. 둘째, 방사형 구조이다. 주제에서 뻗어나가는 가지로 세부 주제를 연결하는 일이다. 셋째, 키워드 사용이다. 문장이 아니라 핵심 단어, 짧은 구로 표현해 뇌가 빠르게 연상할 수 있다. 넷째, 이미지, 색상 활용이다. 그림, 아이콘, 색깔을 써서 직관성과 기억 효과를 강화하는 일이다. 다섯째, 계층적 구조이다. 큰 가지에서 작은 가지로 점점 세분화하는 체계적인 사고 전개이다. 여섯째, 개인 맞춤형이다. 정답은 없고, 본인의 사고 흐름에 맞게 자유롭게 확장하는 것이다. 가령, ‘올해 인생 계획’을 마인드맵으로 서술해보면, 건강, 가족, 재무, 자기계발 등 영역별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각 테마에 대한 종합과 목표관리를 잘 한 결과, 분산되어 있던 생각이 정리되고 실행력이 높아져 1년만에 저축 목표를 달성하는 등 생활의 여유와 삶의 질이 높아진다. 또한, 이직, 창업, 유학 등 중요한 인생 선택을 할 때 찬반 이유를 마인드맵으로 정리하여 명확히 비교,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가 있다. 기업에서는 신제품 개발 아이디어 회의에서 마인드맵을 활용하면, 팀원들이 각자 아이디어를 붙여 나가면서 단순 아이디어에서 구체적 기능과 마케팅 전략까지 한눈에 정리되고, 실제 성공적인 신제품이 출시되게 된다. 이외, 제조업의 품질 불량 문제를 마인드맵으로 생산 조건(사람/기계/재료/방법)관점 체계적으로 분류하면, 원인 파악이 빨라지고 개선 효과도 높아진다. GE,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는 회의록 대신 마인드맵을 써서 의사 결정, 정보 공유 속도와 일의 효과를 높인다. 이런 듯 마인드맵은 삶과 직장에서 ‘흩어진 생각을 구조화 하고 창의적 해결책을 찾는 도구’로 사용된다. 중심 주제를 선정하고 방사형 확장, 키워드 활용, 이미지 전개, 계층 구조화 하는 일이다. 개인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과 목표 달성, 그리고 기업의 기획, 혁신, 문제 해결을 하는 데 효과적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8-19

봉트남 마을 프로젝트

한·베트남 정상회담을 계기로 봉화군과 베트남의 역사적 인연이 새삼 화제다. 지난 11일 한·베트남 정상 만찬장에 봉화 특산물이 요리로 올라오고 베트남 당 서기장 환영연에 봉화군수가 등장하는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봉화와 베트남 간의 인연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베트남에서 직선거리로 3000km 이상 떨어진 경북 봉화에 베트남 마을이 조성된다는 사실도 한·베트남 정상회담을 기회로 더 널리 소개되기도 했다. 베트남 리 왕조의 후손 이용상이 내란을 피해 고려국에 도착한 것이 1126년이니까 베트남과 봉화의 인연은 800년이 넘는다. 이용상은 고려국으로부터 화산 이씨 성씨를 하사받고 봉화에 세거지를 이루고 살았다. 임진왜란 때는 그의 13대 후손 이장발이 19세 나이로 문경새재에서 왜군과 싸움을 벌이다 전사해 그의 공덕을 기린 충효당이 봉화에 세워졌다. 지금도 봉화에 있는 화산 이씨 집성촌에는 7가구 10여 명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1995년 한국과 베트남 수교 5주년을 맞아 화산 이씨 종친회 대표가 선조의 고향인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는 베트남 정부의 주요 요인들이 직접 나와 이들을 환영했다고도 한다. 봉화군은 베트남과의 이런 인연을 스토리텔링해 봉트남(봉화+베트남)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계획공모형 지역관광개발사업으로 이 계획이 선정돼 소멸 위기 극복의 획기적 사업이 될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지역의 역사적 사실에 스토리를 입혀 관광 사업화하고 지역성장의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자치단체의 노력이 돋보이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19

지방선거 앞둔 여야 모습, 너무 다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대야(對野) 관계에서 엇박자를 내는 게 아냐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공개석상에서 이 대통령은 ‘상생의 정치’를, 정 대표는 ‘내란세력 척결’을 이슈화하고 있어, 국민의힘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른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두 사람은 ‘내년 지방선거 석권’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면서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역할을 분담한 것 같다. 이 대통령은 ‘민심’, 정 대표는 ‘당심’ 잡기에 주력하면서 여권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겠다는 의도를 가진 듯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계속 국민통합과 민생안정 메시지를 내왔다. 민심을 의식해서다. 야당 지도부와도 여러 차례 만나 덕담을 주고받았다. 지난주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이제 정치 문화를 바꿔야 한다. 여야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상생의 정치를 만들어가자”고 했다. 반면, 정 대표는 야당을 없어져야 할 존재로 보고 있다. 그는 그저께(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16기 추모식에서도 송언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만났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국민 전체를 포용하라”는 조언이 쏟아지고 있지만, 민심보다는 강성당원을 챙기는데 올인하는 것 같다. 그는 최근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당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이러한 ‘정리된 모습’과는 달리, 전당대회를 이틀 앞둔 국민의힘은 여전히 ‘사분오열(四分五裂)’된 상태다. 지난 17일 열린 마지막 TV 토론회에서도 ‘반탄파(탄핵 반대)’와 ‘찬탄파(탄핵찬성)’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을 두고 충돌했다. 안철수·조경태 후보는 반탄파를 향해 “계엄 옹호를 해선 안 된다”, “윤 전 대통령을 버려야 한다”고 했고, 김문수·장동혁 후보는 “계엄을 선택한 것은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 “우리 당에 무슨 내란 동조 세력이 있느냐”며 서로를 공격했다. 지금까지의 합동연설회나 TV토론 과정을 종합해 보면, 비전과 혁신 경쟁은 실종된 지 오래다. 여전히 ‘반탄파’는 강성 당원 표를 노리며 한물간 ‘배신자’ 유행가를 부르고 있고, ‘찬탄파’는 끊임없이 영남권 현역의원 공격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다. 이러니 컨벤션 효과(정당 지지율 상승)를 내야 할 전당대회가 오히려 민심이반의 계기가 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모레(22일) 전당대회에서 당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새롭게 탈바꿈시킬 리더를 뽑지 못하면 당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된다. 민주당 정 대표는 최근에도 ‘국힘은 10번, 100번 정당을 해산시켜야 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처럼 집권당의 정당해산 칼끝이 턱밑까지 올라왔는데도, 국민의힘은 그 긴박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은 이젠 상대를 향해 탈당하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지난 주말부터는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를 둘러싼 극우 논란까지 더해지며 당이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전당대회 이후 당이 둘로 쪼개질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 국민의힘 앞날이 바람 앞의 등불 같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8-19

‘울릉도 물놀이장 사망사고,과연 담당공무원 혼자 책임일까’…파면까지 이른 법원선고를 보고 느낀 소회

울릉도 현포리 심층수 어린이 물놀이장 초등학교 6학년생 사망사고와 관련 법원이 2년 만에 울릉군청 담당 팀장에게 파면에 해당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울릉군 공무원 4명 중 담당팀장에게 금고 1년·집행유예 2년을, 나머지 3명은 각각 1000만~1500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팀장은 파면에 해당하는 판결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준공 이후 시설 관리 책임은 공무원에게 더 크다.”라며 공무원들의 관리 소홀을 지적했다. 법원은 이번에 관리책임을 사실상 울릉군 차원의 구조적 문제보다, 말단공무원에게만 가혹한 형사적 책임을 물었다. 전체적으로 안전 부재라는 근본적인 원인보다 일면 희생양을 만든 느낌이 든다. 더욱이 법원이 “전문지식이 없는 공무원이 우연히 담당이 됐을 뿐”이라며 공무원 개개인의 전문성 부족과 행정 현실을 인정했으면서도 판결은 책임을 조직적 차원이 아닌 개인에게만 집중시켰다. 수심이 37cm인 영유아 급 물놀이 시설은 지난 2015년 아기 낳기 좋은 울릉도, 인구 증가 정책으로 만든 것으로, 사고 전까지만 하더라도 8년째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운영됐다. 워낙 수심이 얇은 부분과 영유아시설이다 보니 보호자가 동반해 별 사고 없이 넘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23년 육지에 여행 온 초등학생이 취수구에 팔꿈치가 빨려 들어가 사망하는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 문제가 커졌다. 풀장 및 대중목욕탕을 관리하는 법령인 공중위생관리법에는 사업자에 대한 안전 책임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순환배수구 등에 대한 관리 지침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2006년 배수구 안전망 설치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보건복지부에 건의했지만, 현재까지 반영된 것이 없을 정도로 관심 밖 영역이다. 이런 가운데 공무원이 관리 소홀로 파면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물론 담당 공무원은 만에 하나 일어날지도 모를 사고에 대비해야하고 꼼꼼히 챙겨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단순히 개인의 관리 소홀로만 볼 것이냐는 부분에 들어가면 논란이 뒤따른다. 실제, 시설 준공 당시부터 취수구 안전망 미설치가 꾸준히 지적됐음에도, 군청 차원의 개선 조치는 없었다. 안전 관리 예산과 인력 부족 역시 장기간 이어진 고질적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고 당시 팀장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직장, 생업과 관련된 직장에서 그는 파면됐다. 한켠에서 다소 가혹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울릉도에는 성인용 등 해수풀장이 5곳 있다. 이곳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다면 담당 팀장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할까? 그렇다면 아무도 팀장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회피 근무는 팀원도 마찬가지일 터. 관리인이 없을 경우 풀장 등은 당장 폐쇄가 불가피하다. 설령 발령받든다해도 적극적인 행정을 펼칠 수다 없게 된다. 때문에 이번 판결을 두고 도의적 책임은 물을 수 있는지만 파면까지 책임을 지운 것은 가혹하다는 것이 군민들 시각이다. 이 사안은 어쩌면 당초 설계하고 시공한 책임자에게 더 책임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안전장치 개선은커녕 그대로 방치한 울릉군 행정에 무거운 책임이 있다. 그간 이곳 팀장을 거쳐간 10명은 이번 판결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자칫했다면 그들 중 한명이 파면의 당사자가 됐을 수도 있다. 어떤식으로든지 사망사고 같은 후진적 사건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책임 부분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목이 날아간 팀장은 다소 억울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것이 저간의 여론이다. 이번 판결은 울릉군 전체에 만연한 안전과 제도적 안전 관리 시스템 부재는 뒤로하고 말단 공무원에게 모든 책임을 물었다. 안전 불감증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 뒤집어 쉬운 꼴인 것이다. 울릉군이 적극적으로 나서 담당 공무원을 구제하고 안전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공무원이 주민을 위해 사명감으로 적극적인 행정을 펼칠 수 있다.  /김두한 기자 kimdh@kbmaeil.com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