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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구마라톤의 신기록 도전

우정구 논설위원 마라톤과 육상 100m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대표적 종목이다. “이 세상에 깨지지 않은 기록은 없다”는 말이 과연 맞을까. 육상 100m의 10초 벽이 깨진 것은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개최 이후 약 70년만이다. 미국의 짐 하인스가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세운 9초95 기록이 그것이다. 지금은 2009년 우사인 볼트가 세운 9.58이 세계 공인 신기록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대목은 역대 100m를 10초대 이내에 돌파한 선수 125명 가운데 흑인이 120명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마라톤의 신기록을 살펴보면 100년만에 50분 정도 단축됐다. 2009년 에티오피아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 선수가 세운 2시간 3분 50초 기록은 1908년 영국런던올림픽의 우승 기록인 2시간 55분 18초와 비교할 때 50분 정도 줄어든 기록이다. 현재까지 최고 신기록은 2023년 케냐의 켈빈 쿱툼선수가 시카고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 0분 35초다. 쿱툼 선수의 기록을 100m로 환산하면 평균 17.1초. 평균 스피드는 시속 20.9km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 당시 그는 인간의 한계로 보는 2시간 벽을 돌파할 가장 유력한 선수로 손꼽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다음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전문가들은 기후와 선수 컨디션, 도로사정 등이 최적 조건으로 맞춰질 경우 1시간 57분까지 돌파도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결과는 두고 볼 일이지만. ‘2025 대구마라톤’의 최고 기록이 2시간 5분 20초로 나타났다. 2시간 벽을 넘어서기에는 더 많은 도전이 있어야 한다. 세계 명품 마라톤을 꿈꾸는 대구마라톤의 신기록 도전에 기대를 걸어본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2-25

조기대선 출마 선언 홍준표 “TK현안 해결”

홍준표 대구시장 홍준표 대구시장이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최종 탄핵재판을 하루 앞둔 24일 “조기 대선이 열리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권잠룡’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 중 가장 빠른 출마선언이다. 조기대선이 현실화될 경우, 공직자는 선거일 30일 전까지 사퇴하면 된다. 홍 시장의 이날 출마선언은 자신의 온라인 소통채널 ‘청년의꿈’ 청문홍답(청년의 고민에 홍준표가 답하다)에서, 한 지지자의 게시물에 대한 답변형식으로 발표됐다. 홍 시장은 그동안 SNS나 방송출연 등을 통해 지지층을 넓혀왔다. 정장수 대구시 경제부시장도 이날 대구시청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지고 “홍 시장의 조기대선에 대한 입장은 초지일관이다. 시장직을 유지하고 경선에 나가는 안일한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부시장은 자신을 포함해 대구시에 근무하는 정무직 15명의 거취에 대해서도 “시장이 사퇴하면 정무직은 당연히 사퇴한다”고 말했다. 홍 시장은 며칠 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탄핵 기각으로 윤통(윤석열 대통령)의 복귀를 간절히 바라지만,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열릴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결코 윤통의 탄핵 인용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걸 당원과 국민께서 혜량해달라”고 했었다. 홍 시장은 이날 출마선언과 함께 “집권하면 TK현안은 모두 해결된다”고 했다. 이 발언은 그의 출마로 인한 대구시정 공백 우려를 불식시킨다는 차원에서 나왔지만, 당내 경선에 대비한 공약으로도 해석된다. 지난해 국민의힘 당 대표를 뽑는 7ㆍ23 전당대회에서 TK선거인단(책임당원)은 20.6%로 서울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었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현재 TK를 이끄는 대표주자는 홍 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다. 지역민들 입장에선 둘 다 대선에 뜻이 있다는데 고민이 있다. 중학교 선후배인 홍 시장과 이 지사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 간의 사전 조율 여부가 큰 관심사다. 홍 시장은 그동안 수 없는 도전과 격랑의 정치판을 헤치며 걸어왔다. 시장직까지 사임하고 당내 경선에 나서는 이 길이 어쩌면 정치에서는 마지막 도전이 될 수도 있다. 홍 시장은 그 여정에 TK 지역민들이 함께 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집권하면 TK현안은 모두 해결된다”는 그 말 속에 대구경북을 향한 애정과 바람이 다 담겨 있는 것이다. /정치에디터겸 논설위원 심충택

2025-02-24

위독한 프란치스코 교황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소탈하고 탈권위적인 행보로 가톨릭 신도만이 아닌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준 프란치스코 교황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멀리 바티칸에서 들려왔다. 최근 교황청은 “교황은 오랜 시간 천식과 호흡기 문제를 겪었으며, 호흡이 불안정해 산소 치료를 받았다. 혈액 검사 결과 혈소판 감소증이 발견돼 수혈도 받았다. 현재 의식은 있지만, 예후는 조심스럽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상태를 설명했다. 20대에 늑막염을 앓으며 폐의 일부를 절제한 교황은 매번 겨울이 되면 세균과 바이러스에 복합적으로 감염된 만성 호흡기질환에 고통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코로나19 사태’ 이후론 이런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교황의 담당 의사가 “가장 큰 위협은 호흡기에 있는 세균이 혈류로 침투해 패혈증을 유발하는 것”이란 우려를 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만 교황청은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자진 사임설에 대해선 근거가 없다며 일축했다. 덧붙여 “현재는 교황의 건강과 회복, 바티칸으로의 복귀에만 집중하고 있는 중”이라 부연했다. 가톨릭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는 올해 여든아홉 살이다. 적지 않은 나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걱정이 크다. 불치병을 안고 사는 이들의 이마에 기꺼이 입을 맞추고, 누구보다 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하며, 서민들의 아픔에 공감을 드러내곤 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진정한 권위는 봉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난하고, 약하고,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말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교황이 곧 불어올 봄바람에 힘입어 훌훌 털고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2-24

기다려지는 삼일절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삼일절, 3월 1일, 그날, 경성의학전문, 중앙고보 같은 대학생, 고등학생들은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모여 독립을 선언하고 행진을 벌였다. 삼일운동은 시민운동이면서 동시에 학생운동이었다. 그러면서 삼일운동은 삼일혁명인 것이었다. 바로 이 삼일 항거의 여파로써 중국 상해와 각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한제국, 곧 황제가 유일 주권자인 나라에서 대한민국, 온 국민이 주권자인 나라로. 삼일운동은 그래서 삼일혁명이라 불리어 마땅하다. 며칠 전 대전 서구 보라매공원 광장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전국의 시청 광장들 중에 가장 넓다는 그곳이 발디딜 틈 없었다. 느리다는 충청도 사람들이 광장에 빽빽히들 모여들었다. 방송사 뉴스들은 이도 다른 모든 것들처럼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다. 아무리 왜곡을 일삼아도 한번 방향을 잡은 불길, 물길을 막을 수는 없다. 드론이 유튜브로 송출해 보여준 광장은 탄핵 반대의 큰 물결이 바야흐로 거세게 북상 중임을 알려주고 있다. 돌이켜 보면, 계엄과 탄핵의 한 달 반은 오로지 서울 광화문에만 의지했던 것이었다. 서울 세종로 동화 면세점 앞 광화문 탄핵 반대의 인파는 주말마다 급속도로 불어났던 것이었다. 덕수궁 대한문 앞까지 꽉꽉 채우고 모자라 서울역 쪽으로 더 길게 자리를 잡은 때도 있었던 것이었다. 불법으로 발부받은 영장으로 대통령을 체포하겠노라고, 공수처가 한남동 관저에 들이닥칠 때에는 그 인파가 한남동에까지 몰려갔던 것이었다.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물결은 그러다 마침내 부산역 광장에 똬리를 튼 것이었다. 부산, 대구, 그리고 광주, 울산에 이어 대전으로 탄핵 반대의 물결이 지금 바야흐로 북상 중에 있다. 일주일 후, 3월 1일, 삼일절 날에는 이 사람들이 광화문 동화 면세점 앞에 진을 친 사람들과 하나가 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 고대, 부산대 등 전국의 대학생들이 지금 탄핵 반대의 선언문들을 릴레이식으로 낭독해 가고 있다. ‘태극기 부대’라는 오명 아닌 오명을 쓴 탄핵반대 집회는 이제 2030 청년들이 함께 하는 젊은 집회로 탈바꿈을 했다. 반면, 탄핵 찬성 집회는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하는 노래 가사처럼, 지금 숱한 깃발들만 높이 들려 있는 형국이다. 과연 탄핵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방송사 뉴스는 ‘8대 0’이라고들 한다. KBS는 한술 더 떠 부정선거를 말하는 사람들을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이 추적 아닌 추적 방송을 보고 누가 내게 해준 말. 도둑놈 보고 도둑질 했느냐 물어보고 안 했다고 하니 거 봐 안 했다잖아, 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왜 부정선거를 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졌는가. 그것은 극우 유튜버에 현혹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부정선거의 증거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이다. 기다려지는 올해의 삼일절. 이날은 부정선거라는 국민주권 유린 행위에 대한 전국민의 거부를 보여주는 날이 되어야 한다. 부정선거가 끔찍한 것은, 그것이, 현대사회의 기본 원리인 국민주권,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 표가, 제대로, 정당히 계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삼일절은 국민주권 원리를 다시 확인하는 삼일혁명의 날이어야 한다.

2025-02-24

바람, 불다

강길수 수필가 그제가 우수였는데도 소소리바람이 분다. 꽃샘바람이 더 센 친구를 데려왔나 보다. 출근길, 건물 사이를 지나는데 차고 매서운 바람(風)이 가슴속에 스며든다. 하지만, 하늘이 비취처럼 푸르고 공기도 맑아, 정신이 번쩍 든다. 마음과 몸도 새털같이 가볍다. 추워 한겨울 옷을 입었기에 사무실까지 걷기엔 지장 없다. “윙!…”. 동네 공원 나뭇가지를 훑고 내려오는 소소리바람 소리가 발걸음을 다그친다. 센 바람도 이맘때 부니 꽃샘바람이 틀림없을 것이다. 아무리 기상이변 시대이지만, 지구 별이 태양을 돌고 꽃샘바람이 봄을 시샘하는 이상 오는 봄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머지않아 북극 냉기가 제자리로 돌아가면, 하얀 머리를 내밀다 멈춘 매화 꽃봉오리가 다시 솟아 피어나고 말리라. 뒤따라 홍매화, 진달래, 개나리, 산수유, 생강나무 모두 꽃을 피워내며 오는 봄을 노래할 것이다. 꽃샘바람은 비단 명지바람에 반해 자리를 비켜주리라. 이어 벚꽃, 살구꽃, 복사꽃, 사과꽃, 배꽃과 온갖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날 터. 고향의 봄, 우리의 봄, 깨어난 국민의 봄은 이 땅에 다시 찾아와 꽃바람 불 것이다. 산 너머 남촌에서 초록 바람이 불어와, 하얀 이팝꽃에 배고픔 달래던 추억을 되새기면, 장미꽃들이 거리를 밝히는 봄, 감꽃 목걸이를 만들던 봄은 무르익어 온 누리에 푸른 생명 넘실대리라. 나는 어떤 바람들을 겪으며 살아왔을까. 유년기부터 소년기, 청장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사는 동안 참 많은 바람을 맞이하고, 겪고, 참고, 누리며 살아냈다. 겨울의 높바람, 고추바람, 칼바람. 봄의 소소리바람, 꽃샘바람, 명지바람, 꽃바람. 여름의 마파람. 가을의 하늬바람, 갈바람. 모든 바람 다 불어왔고, 불고 있다. 그뿐 아니라 태풍, 폭풍, 황사 바람, 미세먼지 바람도 겪었다. 나라가 일제 강점기에서 타력으로 해방된 후 미 군정, 제헌, 대한민국건국, 6·25 동란, 4·19학생 의거, 5·16군사정변(1987년 6월항쟁 이전엔 혁명), 산업화 시기를 망라하는 바람을 겪었다. 이어, 산업화와 민주화 시기에 3년에 걸친 군 복무, 우리나라 첫 일관제철소 취업, 첫 석탄화학업체 이직, 첫 한국 진출 수처리 업체 이직도 거쳤다. 나라 경제가 후진국에서 중진국,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바람, 민주화 바람, 산업 일선에서 피땀 흘리는 바람을 겪고, 체험했다. 요즈음, 나라에 미증유의 바람이 분다. 2020년 4·15총선 직후 시작한 ‘부정선거 척결’ 바람은 이제, 태풍이 되었다. 헌재 대통령 탄핵심리, 선관위 수원연수원 외국인숙소에 미 ‘블랙옵스(black ops)팀’ 투입,‘한·미 공조 중국인 간첩단 검거 작전’ 보도,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Association of World Election Bodies)의 부정선거 관련 보도 등이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주목적이 ‘부정선거’를 밝히는 데 있었다. 젊은 세대가 이 문제를 파고들어 진실을 밝히며, 국민 계몽령 태풍이 되어 대학가까지 분다. 나라에 부는 이 미증유의 태풍이 남촌에서 불어오는 초록 바람으로 되어, 국민이 자유 민주주의의 푸른 생명을 만끽하는 나라로 거듭나기 빈다.

2025-02-24

활동적 이동과 지속가능한 도시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따스한 봄바람이 도심을 감싸는 3월을 앞두며, 시민들은 어떤 이동 방식을 선호하게 될지 궁금하다. 최근 ‘활동적 이동(active travel)’이라는 용어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자동차나 대중교통처럼 동력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걷기, 자전거 타기, 스케이트보드 등 신체 활동으로 이동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방식은 단순히 목적지에 도달하는 수단을 넘어서 건강증진, 스트레스 해소, 대기오염 완화 및 온실가스 감축에도 큰 효과를 보인다. 대구시는 오랜 기간 자동차 중심의 문화와 폭염, 한파 같은 기후 제약으로 ‘활동적 이동’이 연중 활성화되기 어려웠지만, 이제 시민의 건강과 도시 지속가능성을 위해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0년 기준, 대구광역시의 관리권한 온실가스 총 배출량은 약 1,160만 톤이며, 이 중 지역내에서 배출되는 직접 배출량은 543만 톤으로 집계된다. 특히, 수송 부문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약 379만 톤으로 직접 배출량의 70%나 되어 자동차 의존도가 매우 높은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대구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동 수단의 전환이 절실함을 시사한다. 최근 개최된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9)에서도 ‘활동적 이동’의 확대가 온실가스 감축과 시민 건강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걷기와 자전거 같은 친환경 이동수단을 적극 도입하면, 대기질 개선과 함께 에너지 소비를 줄여 도시 전체의 환경 부담을 경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부산, 인천 등 다른 대도시들은 이미 자전거 전용도로, 보행자 우선 인프라, 대중교통 연계 시스템을 통해 ‘활동적 이동’이라는 친환경 이동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다. 해외에서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호주 멜버른은 자전거와 도보를 일상화하여 도시 내 교통 혼잡과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인 모범 도시로 손꼽힌다. 이들 도시는 인구 규모나 도시 특성이 대구와 유사하면서도,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동 인프라를 구축해 ‘활동적 이동’ 생활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대구도 이러한 우수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지역 특성에 맞춘 맞춤형 인프라와 다양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면 기존의 자동차 중심 이동 체계를 ‘활동적 이동’으로 효과적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구시는 기후변화와 자동차 중심 문화라는 기존의 제약을 극복하고,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활동적 이동’을 전도시 규모로 확산시켜야 한다. 도심 내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전용 구역, 대중교통 연계 인프라를 강화하고, 시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한다면,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시민 건강 증진에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결국, 2050년 탄소중립과 지속가능한 글로벌 도시로 나아가는 대구의 미래는 ‘활동적 이동’으로 전환하는 우리 모두의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활동적 이동’의 활성화에 시민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지속가능한 대구를 함께 만들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2025-02-24

이륜차도 차다

나는 이륜차를 탄다. 이륜차는 흔히 오토바이, 바이크, 모터사이클이라고 칭하는 두 바퀴 달린 자동차를 칭하는 도로교통법상의 용어다. 내가 타는 것은 배달 오토바이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125cc 스쿠터이다. 그렇다고 배달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레저를 목적으로 타는 것도 아니다. 외부 일정이 있을 때 단순히 이동수단으로 타고 다닌다. 이륜차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동차는 이와 구분지어 사륜차라고 써야 옳겠으나, 편의상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표기하도록 하겠다. 오토바이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 운송수단이다. 우선 내가 타는 것은 배기량이 적기도 하고 차체도 무겁지 않은 편이어서 이동할 때 연료를 적게 소모한다. 자동차에 비해 압도적으로 경제적이고 환경을 덜 파괴한다는 이야기다. 작은 부피를 가진 만큼 좁은 길을 통과하는 데 유리하다. 따라서 모세혈관처럼 좁은 골목들이 구석구석 퍼져 있는 도심을 주행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주차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잠시 길가에 정차를 하는 일이 있더라도 다른 이들의 통행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오토바이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기후의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날씨가 춥거나 눈, 비가 내리는 악천후에는 운행을 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다소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 위험성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다. 오토바이는 왜 위험한가.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타는 사람이 위험하게 타기 때문이다. 헬멧이나 장갑 등 보호 장비를 잘 갖추지 않은 채로 운전을 하는 경우, 그리고 운전 자체를 난폭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오토바이의 헬멧은 당연히 얼굴을 많이 가릴수록 안전하다. 그런데 일부 라이더들은 번거로운 착용과 답답한 기분 때문에 대충 바가지 같은 패션헬멧이나 심지어 자전거 헬멧을 착용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단속을 피하기 위함이지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다. 난폭운전에 있어서만큼은 라이더들 스스로의 자성이 필요하다. 차 사이를 이리저리 통과하며 달리는 경우, 갓길이나 인도로 주행하는 경우, 과속방지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속하는 경우, 각종 곡예주행을 하는 경우 등. 상당수가 생업을 위해 배달이나 퀵서비스 용도로 오토바이를 타기 때문에 시간이 곧 돈이 되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가 있더라도 난폭운전을 하는 것은 자신 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오토바이가 위험한 두 번째 이유에 대해 말하려고 이 글을 쓴다. 수많은 자동차들로부터의 위협이 바로 그것이다. 앞서 말한 난폭운전자들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자동차 운전자들은 도로에서 오토바이만 발견하면 기분이 나빠지곤 하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내가 모는 오토바이 역시 한 대의 차량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차선 하나를 차지하고 달린다. 125cc 저배기량 스쿠터이지만 나름 시속 100km/h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으므로 도심을 달릴 시 도로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일도 없다. 그런데 뒤따라오는 자동차는 연신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려대거나, 심지어 무리하게 속도를 올리며 거의 스칠 기세로 동차선 추월을 감행하기도 한다. 차선을 차지하지 않고 차량 사이로 운행하면 무개념 라이더가 된다. 그런데 차선을 차지하고 달리면 또 그게 못마땅하다는 이유로 상대를 위협한다. 차체가 작다는 이유로 앞뒤로 함부로 끼어드는 일은 너무 익숙해서 별로 화도 안 난다. 주차에 있어서도 난감한 점이 있다. 오토바이는 이륜차. 명백히 자동차에 속한다. 그런데 주차장의 한 칸을 차지하고 주차를 하면 반드시 항의를 받게 된다. 아까운 주차 자리에 감히 오토바이가 주차를 했다는 이유로. 그렇다고 주차장 칸 바깥에 주차를 하면 또 주차 공간이 아닌 곳에 주차를 했다고 항의를 받는다. 오토바이는 어디에 주차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인가. 마음 같아서는 배낭에 넣어서 짊어지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에도 왜 오토바이를 타냐고 타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인종차별의 이유를 차별받는 이에게 전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모든 부당한 차별은 차별하는 이의 잘못이지 차별당하는 이의 잘못이 아니다. 날이 풀리고 다시 두 바퀴로 달리기 적당한 계절이 오고 있다. 이륜차 역시 다른 자동차들처럼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바퀴 수에 상관없이 모두가 즐겁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길 바란다.

2025-02-24

하나의 점으로도

이것은 지난 칼럼을 마감하며 벌어진 슬픈 일화다. 글 쓰는 사람이 텅 빈 눈으로 모니터 커서를 응시하고 있다면, 둘 중 하나의 상황에 해당한다. 마감 시간이 임박했는데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거나, 애써 쓴 글을 날려 버렸거나. 멍청한 행동을 해버리고 말았다. 모든 문서를 강박적으로 저장하던 시절의 결의 따윈 내다 버린 것일까. 백업 시스템을 철저히 믿은 것이 잘못인지도 모른다. 완성된 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원고지 3매 분량의 초안만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기분이란!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하늘을 원망하고 나의 아둔함에 혀를 차고…. 인터넷을 뒤져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해 보았으나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애석하군요. 아이클라우드를 믿다니….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는 파일 관리에 신중을 기하길 바랍니다.’ 정녕 방법이 없단 말인가. 절망에 절망이 더해지면 눈물보단 실소가 나온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허파에 구멍 난 것처럼 웃다 보면 절대 풀리지 않을 것처럼 엉킨 마음이 느슨해진다는 것도. 어차피 모든 문장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손을 빠르게 움직이면 똑같이 구성할 수 있겠다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신년운세에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성공운이 따른다고. 만일 원고지 1천 매에 육박하는 장편소설이 사라졌다면 어쩔 뻔했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일련의 사건이 굉장한 행운처럼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능숙한 연주자처럼 키보드에서 줄기차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몇몇 문장은 어렴풋이 떠올라 나름대로 비슷하게 구성할 수 있었지만, 모든 문장을 완벽하게 구현해 내기는 불가능했다. 미로를 헤매다가 다른 길에 들어서기를 반복, 결국 제목부터 결론까지 다른 완전히 새로운 글이 탄생하고야 말았다. 신기한 일이다. 쓰는 사람도, 쓰려고 하는 내용도 같은데, 어째서 이렇게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온 것일까? 그 짧은 시간에 내가 변화하기라도 한 것일까? 물론 그럴 리 없다. 언어는 이상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단 하나의 마침표, 쉼표만으로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눈 밑에 점 하나를 찍으면 다른 사람으로 변모하는 막장 드라마처럼. 하나의 점으로도 한 세계가 뒤바뀐다. 정말이다. 온점과 반점을 고민하는 일, 단어를 교체하고 형용사와 부사를 넣고 빼는 일, 백스페이스와 스페이스를 누르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애초에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을 때도 많다. 방향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기우뚱대다가 엉뚱하게 완결짓기도 한다. 마침표를 찍은 문장 뒤에 이어지는 문장이 반드시 유의미할 수 없다. 새롭게 적은 문장이 이전의 것보다 훌륭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므로 모든 글은 늘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지난번처럼 불운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다분히 자의적으로 내 글을 휴지통에 버리기도 한다. 소설의 경우 쓰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훨씬 더 많다. 편안하게 적는 문장 하나하나에 자기 철학이 눅진하게 담겨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내겐 아직 그러한 능력이 없다. 뭔가에 관해 닿아보고 싶다면 일단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쓰고 버리고, 다시 쓰고 버리고. 이 무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메일함에 들어가 전송 버튼을 누르는 것뿐이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보라. 체력적 한계 따윈 없다. 만족할 때까지 새로운 문장을 끊임없이 내어준다. 나라는 존재는 육체도 정신도 너무 빨리 지쳐버린다. 미숙한 판단으로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오류로 점철된 기능을 가진 존재에 불과하면서 어째서 이러한 일을 반복하고 있는가. 이토록 비효율적인 일에 일말의 재미를 느끼는 나 자신이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글이 사라져도 즐겁게 다시 쓰면 될 걸, 왜 이렇게 길게 한탄을 늘어놓고 있느냐는 어퍼컷이 날아올 수도 있겠다. 나는 그 주먹을 가뿐히 피하며 답한다. 이미 끝낸 노동을 처음으로 돌아가 또 하고 싶은 노동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활자 노동자의 푸념을 받아 주시죠? 억울하지만 방법이 없다. 파일이 날아가도 다시 쓰고, 문장이 엉망이어도 다시 쓰고, 하나의 점을 잘못 찍어도 다시 쓴다. 그렇게 매일매일 앉아 쓰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나저나 글을 날려 먹은 일화로 새로운 글을 쓰다니. 다시 생각해도 글쓰기란 참 재미있지 않은가.

2025-02-24

소통의 풍경

채팅방 내게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있다. 시험을 끝낸 아이들의 표정이 안쓰러워 밥을 사 주겠다고 했다. 식당에 6명이 모였다. 메뉴를 정하려고 하는데 음성적 언어가 무음 상태다. 정확히 말하면 목소리는 고요하고 손가락이 바빠졌다. 나의 휴대 전화가 진동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단체 채팅방에 초대되었고 그 방에는 주문할 메뉴가 나열되어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이 낯선 메뉴 선택을 선택한 아이들의 소통 방식이 당황스러웠다. 눈앞에 메뉴판이 있는데, 서로 마주 보며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 모두가 한 공간에 붙어 앉아 있는데, 굳이 채팅으로 주문해야 할까. 잠시 멈칫하는 사이 아이들은 마치 처음이 아닌 듯 자연스럽게 화면 속에서 소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문득 생각해 본다. 내가 이 아이들만 했을 때의 풍경을 소환해 보면 예전엔 메뉴가 많지도 않았을뿐더러 지갑도 늘 얇아서 메뉴판이 굳이 필요 없기도 했다. 혹이라도 누군가 좋아하는 메뉴를 말하면 또 다른 아이들이 반응하며 이야기가 이어졌고 그 밥상머리에는 음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깔깔거림과 맞장구가 곁들여져 풍경이 완성되곤 했다. 지금은 화면 속에서만 이야기하고 소리는 없고 이모티콘만이 엉덩이를 흔들며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월이 변했고 문화가 변했으니 어쩌면 이들에게 우리들의 이야기가 꼰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자신들만의 소통방식인 것을. 우리 세대는 대화 속에서 눈빛과 표정을 읽었지만 아이들은 채팅 속에서 미묘한 텍스트의 뉘앙스를 파악하고 반응하는 것이 신비로웠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단절이라 하겠으나 이들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연결일 수 있을테니 우리의 방식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했다. 화면 속 말풍선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무엇인지. 그저 조용한 주문 목록을 공유하고 있을 뿐인지.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서로를 보며 주문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은 다른 문화를 접하는 듯 어색해했다. 한 아이가 용기를 내어 피식 웃으며 메뉴판을 집어들고 말했다. “우리 하나씩 말해 보자. 난 떡볶이” 다른 아이들도 말을 보태기 시작했다. “나는 김밥” “우와 이렇게 주문하니 진짜 주문하는 기분이 나요.” 아이들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메뉴를 정하는 동안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었고 작은 농담도 오갔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대화의 리듬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김경아 작가 음식이 나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갔다. 학교 이야기, 좋아하는 가수, 주말에 있었던 소소한 일상, 휴대전화 화면이 아닌 우리 앞의 식탁 위에서 서로가 서로의 화면이 되어 소통이 이어지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면 한 주문이 마중물이 되어 아이들의 수다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나지 않았다. 음성으로 주고받는 말 속에만 감정이 존재할까. 채팅방 속 이모티콘의 열열한 움직임 속에도 감정의 무게가 존재하는 걸까. 아이들이 나눈 눈빛처럼 말보다 더 깊이 전해지는 것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 틈에서 옛 사람이 된 나는 궁금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밖으로 나오니 저녁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휴대전화를 잊은듯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와 노을 예쁘다.” 모두가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로의 얼굴과 같은 하늘을 공유했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화면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닌, 같은 자리에서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였다. 아이들이 저녁노을처럼 따뜻한 오늘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길을 걸으며 뒤를 돌아본다. 아이들은 여전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저녁 공기 속에서 하늘과 바람과 나무를 타고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 울림은 아이들 마음속 깊이 스며들 것이다. /김경아 작가

2025-02-24

‘악마의 채찍’ 아틸라 ① 훈족 유럽을 유린하다

“전쟁의 신 아레스(Ares)의 검이 아틸라에게 주어지다” 앞선 ‘도미노게임 민족의 대이동’에 대해 살짝 간만 보고 넘긴 탓에 미련이 남아 역사를 거슬러 잠시 돌아가기로 한다. 4세기 중반, 카스피해 북쪽에 훈족이 나타났다. 이들의 생김은 흉노족을 똑 닮았고, 흉노와 발음도 비슷했다. 러시아에서 카스피해로 흐르는 볼가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은 아시아, 서쪽은 유럽으로 나뉜다. 유럽인들 눈에는 흉포하게 생긴 사람들이 말을 휘몰아 괴성을 지르며 불쑥불쑥 나타나자 그야말로 공포에 질렸다. 이들은 그 옛날 중국 한나라에 밀려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한 후 종적이 묘연해진 흉노의 후예들이었다. 훈족이 카스피해 북쪽에서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나라와 힘을 합친 남흉노에 패한 서흉노 잔존 세력은 고배의 쓴 잔을 삼키며 서진을 이어갔다. 따뜻한 바람이 불고, 넓은 평원이 펼쳐진 곳을 찾아 이동을 계속했다. 이들은 대략 2세기 동안 이동하면서 힘을 길렀다. 투르키스탄 서쪽 일대에 도착한 이들은 그동안 사라져가던 문화와 민족의 동질성을 어느 정도 회복하는 데 성공한다. 서진 과정에 여러 잡다한 주변의 종족들과 합병하거나 정복하면서 힘을 키웠다. 특히 서아시아와 동유럽에 살던 게르만족과도 피가 섞인다. 그러다 기후변화와 목축 등 그 장애가 나타나자 재차 서쪽으로 이동해 카스피해 북쪽에 자리 잡았던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훈족은 4세기 중반이 되면서 가장 먼저 볼가강과 돈강 유역에서 한가롭게 살아가던 ‘알란(Alan)’을 침략했다. 뒤이어 도나우강 동쪽, 즉 동유럽의 동고트를 정복한다. 서쪽으로 서진을 계속한 훈족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남서부와 몰도바 북부를 흐르는 드네스트르강을 건너 서고트족마저 짓 뭉겨버린다. 이 소식은 바람처럼 전해지면서 전 유럽에 확산되고, 공포는 동쪽으로부터 밀려들고 있었다. 게르만민족 대이동의 서막이 열리며 로마의 앞날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훈족은 장장 80여 년간 유럽의 판도를 뒤흔들며 역사를 주물렀다. 375년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된 해다. 즉 동고트족, 서고트족, 프랑크족, 반달족, 앵글족, 색슨족, 부르군트족, 유트족 등 유럽에 이동의 역사가 시작됨과 동시에 일대 피바람이 불면서 폭력과 약탈의 역사가 이어진다. 훈족은 오늘날 발칸반도의 루마니아 중서부 지역인 트란실바니아에 훈왕국을 세운다. 378년 봄, 훈 군대는 게르만족을 몰아내면서 서진을 이어갔다. 쫓겨난 게르만족들이 로마제국의 영토로 몰려들었다. 헝가리 티사 강변에 살고 있던, 나름 야만족이면서 용맹하다고 소문난 반달족이었지만, 훈 군사에 의해 서쪽으로 쫓겨 가면서 멀고도 먼 이베리아반도까지 이동해 그곳에 반달왕국을 세워 훗날 서로마 유린에 앞장서기도 한다. 당시 로마는 사실상 동서로 분열되어 갈등으로 치닫고 있었을 때였다. 395년 무렵,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고 본격적으로 동·서 분열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던 로마에 훈족의 침략이라는 악재가 닥쳤다. 400년경이 되어서도 훈족의 원정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부터 명실공히 훈왕국에 욕망의 상징 ‘제국’이란 이름을 붙인다. 트리키아 총독이 훈족과의 평화를 구걸하러 찾아왔을 때다. 훈제국의 황제 울드즈는 이렇게 말했다. “태양이 뜨는 곳에서 태양이 지는 곳까지 우리의 영토로 만들 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폭력의 자만이 가득 찬 인간의 본능이 이어졌다. 그랬던 야망 덩어리, 훈제국의 걸출한 인물 울드즈가 410년에 죽었다. 그렇지만 유럽의 패권은 여전히 훈제국의 손에 있었다. 아레스가 파괴와 살상을 일삼고, 피를 보기를 즐기는 전쟁의 신이라는 점에서 아틸라를 그에 대입시켰다는 것은 그만큼 광폭한 존재로 여겼다는 뜻이다. 433년, 28세에 왕위에 등극한 아틸라는 거침없었다. 아틸라는 어린 시절부터 숙부 루아를 따라다니며 숱한 전쟁을 치렀으며, 각 도시의 지리와 통치방식까지 익혔다. 아틸라의 지도력 아래 이민족으로는 유럽 가장 깊은 곳까지 밀고 온 훈족을 사람들은 ‘신의 응징’으로 불렀다. 유럽 전역과 로마제국을 벌벌 떨게 만든 아틸라는 걸출한 지도력과 그를 따르는 부하들, 부족장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등 단기간에 세계를 장악한 그의 능력은 탁월했다. 밀려드는 게르만족으로부터 굳건하게 걸어 잠그는데 성공한 비잔티움제국과는 달리, 서로마는 도미노처럼 일어나는 민족의 대이동에 의해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서로마 영내를 마음대로 들락거리는 이민족은 약탈을 일삼으며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침략에 노출된 농민들은 급기야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로마의 명장이자 서로마 총사령관이었던 아에티우스는 급하게 훈제국의 아틸라에게 SOS를 타전했고, 아틸라는 불감청고소원이라, 이에 응하면서 농민반란을 진압하였다. 유럽은 이제 아틸라의 공포에 숨을 죽여야 했다. 하지만 비잔티움제국의 테오도시우스 2세는 달랐다. (계속)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02-24

윤 대통령이 ‘통합의 정치’할 수 있을까

김진국 고문 지난 주말 대도시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서울 시내 중심가는 물론 대전, 인천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탄핵 찬성과 반대 집회가 가까운 거리에서 경쟁적으로 벌어졌다. 대구에서는 동성로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집회와 탄핵하라는 집회가 차례로 열렸다. 홍준표 대구 시장은 지난 11일 자신의 SNS에 “광장 민주주의가 득세하면 대한민국도 남미처럼 나락으로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는 “(윤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으로 돌아오시면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좌우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달라”고 주문했다. 역사 강사 전한길 씨도 집회에서 “지역·세대·성별·노사 간의 갈등을 넘어 국민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동화면세점 앞 국민변호인단집회에 참석한 석동현 변호사를 통해 “빨리 직무 복귀를 해서 세대 통합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겠다”라고 말했다. 양 진영이 모두 국민 통합을 주장한다. 그럴수록 갈등은 점점 더 심해진다. 말로는 통합을 외치지만, 방향은 다르다. 헌법재판소는 오는 25일을 마지막 변론기일로 잡았다. 윤 대통령의 최후 진술도 시간제한 없이 허용하기로 했다. 노무현·박근혜 대통령의 전례를 참고하면 내달 중순쯤 선고가 내려질 전망이다. 탄핵이 인용된다, 기각된다, 주장이 팽팽하다. 예단은 일단 접어두자. 탄핵을 인용하면 탄핵 반대파가 수용할까. 전국에서 규탄 집회가 벌어질 것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와 같은 난동이 다시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이는 탄핵 반대운동을 이끌어온 정치·종교·사회 지도자다. 지금처럼 날을 세워서는 격분한 군중을 진정시키기 어렵다. 탄핵이 기각되면 또 어떨까. 마찬가지로 전국적인 항의 집회, 하야 운동이 벌어진다. 윤 대통령이 말한 대로 통합의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은 야당을 정치적 파트너로 상대한 적이 없다. 민주당이 기각 결정을 수용할까. 윤 대통령에게 협조할까. 오히려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특검과 국무위원 탄핵공세로 몰아붙이지 않을까. 어느 쪽으로 가도 나라가 두 쪽 날 판이라 걱정이다. 그래도 탄핵이 인용되면 대통령 선거가 정국을 압도하게 된다. 그 대선에서도 탄핵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겠지만,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 탄핵이 기각되면 더 큰 숙제가 뒤따른다. 윤 대통령이 헌재로부터 비상계엄이 합법이라고 공인받는 셈이다. 그렇다면 비상계엄 카드를 다시 꺼내지 않을까. 민주당은 절대다수 의석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여기에 대응수단으로 비상계엄 카드를 빼어 들 가능성이 크다. 자칫하면 비상계엄이 국회를 통제하는 상시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때 비상계엄은 이번과는 다를 것이다. 예행연습을 해봤다. ‘재수(再修)’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지 못할 수 있다. 리스트에 있는 정치인들을 싹 다 잡아들이는 데도 성공할 것이다. 그 뒤에 민주당 대통령이 등장하면 어떻게 될까. 민주당 대통령도 비상계엄으로 국민의힘을 무력화하고,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하려 하지 않을까. 그때는 보수세력이 저항운동을 벌이겠지만, 계엄이 일상화하고, 나라가 다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후퇴한 대표 사례로 세계 정치학자들의 연구 대상에 오르내릴 것이다. 어느 쪽이건 윤 대통령이 말하는 ‘통합’은 쉽지 않다. 탄핵 반대운동 세력을 세대별로 확산하는 건 진영 내 결속일뿐, 국민통합은 아니다. 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층이 국민의힘을 떠나 민주당으로 대거 이동했다. 국민의힘은 한 주 전보다 10% 떨어져 22%, 민주당은 5% 올라 42%였다. 거의 갑절차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의 윤 대통령 감싸기가 선을 넘은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조국 사태 때 이미 경험했다. 지금 국민통합을 위해 필요한건 무엇일까. 홍 시장 주장처럼 광장의 목소리가 국민 통합의 답이 될 수는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2-23

꽃샘추위

우정구 논설위원 1년 24절기 중 봄의 절기로 보는 시기는 입춘, 우수, 경칩, 춘분, 곡우까지다. 입춘(5일)과 우수(18일)가 지났지만 여전히 겨울 추위가 우리 주변을 차갑게 맴돌고 있다. 지난 주말은 중국 북부지방에 발달한 찬 대륙성 기압으로 경북 북부와 경기, 강원, 충청 일부 지방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졌다. 울릉도와 독도, 서해안 일대는 눈까지 내렸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나라 속담에 “꽃샘추위는 꾸어다 해도 한다”라는 말이 있다. 꽃이 필 초봄 무렵이 되면 추위가 한두 차례 반드시 찾아온다는 뜻이다. 기상청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꽃샘추위도 2014년을 기점으로 한풀 꺾인 듯하다는 설명이다. 지구 온난화 탓으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꽃샘추위가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꽃샘추위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에서도 나타나는 기후 현상이다. 겨울철 내내 냉기를 불어넣던 시베리아 기단이 봄이 되어 서서히 물러나면서 한번씩 심술을 부려 나타나는데, 이를 우리는 꽃샘추위라 한다. 북한에서는 꽃 질투추위, 일본에서는 꽃추위를 뜻하는 하나비에, 중국에서는 춘한(春寒)이라고 부른다. 꽃샘추위가 오랫동안 머물며 기승을 부리는 해에는 농작물이 냉해를 입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감기 등으로 고생을 할 때도 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곧 봄이다라는 뜻이다. “새벽이 오기 전 가장 어둡다”는 말처럼 긴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의 문턱에 들어서는 시기다. 이번 봄에는 국가나 개인 모두에게 나쁜 기운이 싹 걷히고 좋은 소식만 들렸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2-23

어느 젊은 여성의 가르침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오랜 세월 내가 해온 일이라고는 책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글 쓰고, 여러 사람과 토론한 것이 전부다. 나의 독서 범위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영역까지 다채롭다. 특정 분야에 제한된 독서와 작별한 지 오래다. 그것은 나의 지나친 지적(知的) 욕구에서 비롯되거나,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대단한 독서가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다. 40대 후반에 논어를 읽다가 ‘더 일찍 논어를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한 적이 있다. 만약 30대에 논어를 필두로 한 동양 고전과 만났더라면, 인생 항로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 같다. 하지만 러시아문학과 동서양 희곡 연구를 필생의 과제로 여기고 달려온 인생살이는 그런 가능성을 일축해버렸고,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논어를 만났던 게다. 논어를 여러 차례 숙독하면서 경탄한 대목이 여럿 있지만, 나이 들수록 와닿는 구절 하나가 ‘불치하문(不恥下問)’이다.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모르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공자는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걸 감추려 드는 짓이 부끄러운 노릇임을 강조한다. 지난해 12월 11일 부산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서 울려 퍼진 젊은 여성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선연하다. 자신을 노래방 도우미라고 소개한 그녀는 휴대전화에 기록해온 내용을 차분하되 열렬하게 읽어내려감으로써 수많은 청중의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았다. 그이가 조리 있게 전개한 논지의 핵심은 주변의 소외된 시민들과 정치에 대한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20∼30대 남성들과 70대 이상 노인들이 탄핵 국면에서 어째서 내란 세력에 동조하는지를 물으면서, 그녀는 시민교육과 적절한 공동체의 부재를 원인으로 제시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젊은 남성 세대와 70대 이상 고령층의 동조(同調) 현상이 현저하다. 큰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세대와 조카나 손자의 동조 현상은 매우 이례적(異例的)이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으로 표현되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여성 우대정책과 남성의 군 가산점 폐지가 맞물리면서 양성 대결로 번진 기억이 새롭다. 껍데기만 남은 여성가족부의 심란한 현주소와 군 가산점 제도를 부활하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시도로 양자의 대립 양상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런 문제가 슬기롭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젊은 양성의 공존은 쉽지 않아 보인다. 날이면 날마다 청춘과 그 육신을 찬미하는 우리 사회의 상업적인 풍토 역시 고령층의 소외와 고립을 심화하는 주범 가운데 하나다. 평생교육이라는 국가과제는 뒷전이고, 가진 자들만을 위한 부자 감세와 각종 혜택으로 밀려난 도시빈민과 농어촌 거주 노인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을 문화와 예술 그리고 교육 공동체로 끌어들이려는 의지는 어디서고 찾기 어렵다. 이런 까닭에 그녀는 정치와 소외된 계층을 향한 관심을 아프도록 촉구한 것이다. 그녀의 경이로운 연설을 들으며 깨우치는 바 있었다. 나이 든 내가 생각지 못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통찰하고, 대안을 제시한 그녀에게 ‘불치하문’의 교훈을 얻은 게다. 고마운 인사 전한다.

2025-02-23

희망은 있다

유영희 작가 학원 폭력은 그저 청소년기의 통과의례가 아니다. 드라마 ‘소년 시대’ 마지막 주인공의 대사에도 나오듯이, 맞는 사람이 느끼는 공포는 시간이 지난다고 잊혀지는 일도 아니거니와 피해자의 인격 전체를 부정당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 같은 작품에서 학교 폭력을 소재로 사용된 데서 알 수 있듯이, 학원은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두 작품은 학교 폭력을 군사 독재에 비유했다. 그래서 소설이나 영화 같은 작품에서 학원 폭력이 해결되는 과정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은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보다 17년 전에 나온 ‘아우를 위하여’는 화자 김수남은 군대 가는 동생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그 안에는 자기가 어렸을 때 겪은 학교 폭력 이야기가 들어 있다. 수남은 피난지에서 교생 실습 온 병아리 여선생님에게서 나쁜 짓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고 반에서 군림하던 이영래를 굴복시킨다. 이영래가 아이들의 항의 몇 마디로 너무 쉽게 몰락하여 감흥은 크지 않지만, 폭력에 맞서는 아이들의 용기가 돋보인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학교 폭력 주동자 엄석대의 2인자 노릇을 하던 한병태가 어른이 되어 엄석대를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끝나서 뒷맛이 씁쓸한 작품이다. ‘소년 시대’ 역시 주인공이 학교 폭력 주동자 정경태에게 처참하게 맞다가 결국 물리치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폭력 장면이 보기 싫었지만 어떻게 결말이 나나 궁금해져서 보게되었다. 예상대로 해피엔딩이지만, 결말에 이르는 과정은 이전의 학원물과 확실히 차별되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를 몰락시키는 사람은 6학년 담임선생님이었고, ‘아우를 위하여’에서는 김수남의 뒤에 병아리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었다. 그러나 ‘소년 시대’의 폭력 주범 정경태는 이영래나 엄석대와는 급이 다르고, 피해자 장병태에게는 담임선생님이나 병아리 선생님도 없었다. 장병태에게는 여자 친구의 응원만 있을 뿐 그는 오로지 자신의 꾀와 힘으로 정경태를 물리친다. 이것은 확실히 앞의 두 소설보다 진보한 방법이다. 찰진 사투리나 복고풍의 ost 등도 시청자의 시선을 끄는 데 한몫 했다고 하지만 정병태의 이런 주체적인 활약이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 허구적 작품에 나오는 낙관적 결말이 현실의 희망이 되기는 어렵다. 이제 현실의 악은 교묘해져서 정경태처럼 직접 물리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물리력을 행사하고도 발뺌하기 일쑤다. 힘 있는 고위 공직자가 세금을 펑펑 써도, 가족이 뇌물을 받거나 불법을 저질러도, 전세 사기범이 거리를 활보해도, 주가 조작으로 피해가 극심해도, 이런 악을 한두 사람의 힘으로 응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교묘한 논리와 궤변으로 아무리 핍박해도 당당하게 오롯이 맞서는 증인들을 보면 희망이 있음을 믿게 된다. 한 명의 장병태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한 명이 두 명 되고 두 명이 열 명 되고 열 명이 백 명 되는 희망이 매일 실현되고 있다.

2025-02-23

용서받을 시간이 없는데

김규인 수필가 배우 김새론이 16일 사망했다. 25살의 젊은 나이다. 집을 방문한 친구가 119로 연락해 쓰러진 김새론을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이미 숨졌다고 밝혔다. 경찰은 조사 결과 타살 흔적은 없다며 자살로 결론 내렸다. 재능 있는 한 여배우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김새론은 2022년 5월 18일, 서울 강남에서 음주 운전으로 가드레일과 가로수, 변압기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전기가 끊겨 인근의 상점 등이 손해를 보았다. 소속사인 골드메달리스트가 손해배상금을 변제했고, 이어 전속계약 기간의 만료로 소속사를 잃었다. 음주 운전 혐의로 팬들의 신뢰를 잃었고 영화계 활동에 치명타를 입었다. 2001년 한 살 때 잡지 표지 모델로, 2009년 9살 나이에 ‘여행자’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 영화로 프랑스 칸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2010년에 영화 ‘아저씨’에서 주연을 맡아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2014년에는 ‘도희야’로 다시 칸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타고난 연기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은 것이다. 그런데도 한 번의 실수는 그를 끝없는 나락으로 끌어내렸다. 시간이 흘러도 김새론을 향한 악플은 달라지지 않았다.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김새론에 대한 악플은 계속 따라다녔다. 그가 무엇을 해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힘든데 그만들 좀 하면 안 돼요?”라는 김새론의 호소는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사람이 죽어야만 악플을 멈추는 것인지. 당사자는 그 악플로 괴로워하는데 정작 가해자는 태연하다. 어쩌면 악플인지 모르는 것은 아닌지. 남의 일이라고 하여 함부로 말하는 것은 이제는 그쳐야 한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 하나에 다른 사람이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돈벌이에만 신경 쓰는 유튜버들에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연예인 기사는 좋은 먹잇감인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는다. 통장에 꽂히는 돈의 액수에만 관심을 보인다. 개인 방송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의는 지켜야 한다. 이는 큰 신문이나 방송도 마찬가지다. 자극적인 기사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만 신경 쓴다. 악플에도 이름을 바꾸어가며 재기를 노린 한 여배우의 노력이 애달프다.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도 뮤직비디오를 찍어도 영화에 출연해도 그들 눈에는 악플의 대상이고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김새론이 겪은 마음의 고통은 아무도 모른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언제까지 이런 사태를 보고만 있어야 할까. 사람이 죽는 것이 일상인 양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가 또 지나간다. 유가족의 아픔은 치유 받을 길이 없는데, 무심한 하루는 그렇게 또 지나간다. 누가 누구를 나무랄 수 있을까. 아무 죄책감 없이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은 젊은 한 사람의 마음을 누가 헤아려 줄 수 있을까. 조금 더 차분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을까. 좋은 일만 하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죄를 짓고 용서받을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

2025-02-23

포항 두무치 마을의 천제

동해안에는 아직도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동제가 전승되는 마을이 많다. 동제와 함께 하늘, 즉 천신(天神)께 제사를 지내는, 이른바 천제(天祭)를 지내는 곳이 있어 주목된다. 바로 포항시 북구 두무치 마을이다. 두무치는 현 포항시 북구 두호동의 옛 이름이다. 1980년대 이후 영일대해수욕장, 환호공원, 설머리물회지구 등의 개발과 맞물려 관광지로 변한 곳인데, 이곳에는 천제당(天祭堂)이라 부르는 신당이 있고, 매년 이곳에서 천제를 지내고 있다. 대체 두무치의 천제당은 어떤 모습이고, 제의는 어떻게 전승되고 있을까? 두무치 천제당의 연원과 관련해서는 ‘포항시사’(1987)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예부터 두무치에는 천제당(天皇神位堂)을 비롯하여 용왕당, 골목당, 총각당, 소머리당이 있었다가 해방 전 일제 때 후자의 4당을 합쳐서 선황당(골목당 : 골매기당)으로 통합하여 천제당과 함께 두 제당을 형성하였다. 이후 종전과 같이 해마다 제관을 선임하고 봄과 가을 2회로 날을 받아서 풍어와 동의 안녕을 기원했는데, 동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에는 흥해고을 원이 참여하여 지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차 동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자 급기야 작년에 천제당을 신축하여 선황당을 합당하면서 종래 1년에 두 차례 택일하여 제사 지내던 것을 가을에 택일하던 음력 9월 2일날을 아예 동제일로 정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 마을에는 원래 천제당인 천황신위당(天皇神位堂)과 함께 용왕당, 골목당, 총각당, 소머리당 등 4개의 신당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천제당을 제외한 4개의 신당을 하나로 통합, 선황당(仙皇堂)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했다. 현재 스페이스 워크로 가는 길옆에 선황당 터가 남아 있다. 그러다가 1986년에 천제당을 중건하면서 선황당을 이곳에 통합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천신을 상징하는 천황후토신위(天皇后土神位)와 옛 선황당에서 모시던 골매기신을 상징하는 원두호동후토신합위(元斗湖洞后土神合位)를 모시고 있다. 통합 후에는 매년 9월 2일(음)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두무치 천제당의 정식 명칭인 ‘천황신위당’은 ‘천황의 신위를 모신 당’이란 뜻이다. ‘천황신위’의 ‘천황’은 ‘하느님’이란 뜻이다. ‘후토(后土)’는 원래 ‘토지의 신’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별 의미 없이 ‘신’이라는 의미로 쓰인 듯하다. 그러기에 ‘천황후토신위’는 ‘하느님 신위’이란 뜻으로 봐야 한다. 골매기신의 위패인 원두호동후토신합위(元斗湖洞后土神合位)의 ‘후토’도 그냥 ‘신’이란 뜻으로 쓰인 것으로 판단된다. ‘원(元)’은 ‘원래’란 뜻이다. 합위(合位)는 4분의 신위를 통합한 위패란 뜻이다. 그러니 원두호동후토신합위는 지금의 두호동이 아닌 옛 두호동의 통합신위란 뜻으로 1994년 천제당으로 통합하기 전 옛 선황당에서 모셔온 4위의 신을 의미한다. 두무치 천제당은 두무치 마을에서 약 300m 정도 떨어진 뒷산 언덕(두호동 산18-1)에 위치한다.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목조와가 형태의 당으로, 출입문이 따로 있으며, 이 문 처마에 天皇神位堂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천제당 내부 정면 벽에는 좌우에 감실이 있고, 감실 안에 신앙의 대상인 신격을 탱화와 위패로 모셔 놓았다. 옥황상제 형상을 하고 있는 천황은 흰 수염에 흰 눈썹을 한 노인 형상에 곤룡포를 입고 보관을 쓰고 있다. 천황 오른쪽에는 호랑이가 호위하고 있다. 탱화 앞에는 天皇后土神位라 적은 위패가 있다. 천황 탱화 바로 옆에는 같은 규격으로 그린 장수 형상을 한 탱화가 1점 걸려 있다. 장수 탱화는 가운데 화려한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장수를 중심으로 5명의 호위무사가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장수의 형상은 사찰의 신중탱화에 등장하는, 흔히 동진보살(童眞菩薩)이라고도 부르는 위태천(韋駄天)의 모습에 가깝다. 이 장수 형상의 탱화는 천황을 호위하는 장수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천황 탱화 오른쪽에는 마을신인 선황 탱화도 걸려 있다. 현재의 두무치 천제당은 천신인 천황후토신과 동신인 원두호동의 골매기신을 함께 모시는 공간이지만, 원래는 이 마을에 천제당 외에 용왕당, 골목당, 총각당, 소머리당 등 4개의 신당이 따로 있었다. 4개의 신당이 별도로 있을 때 천제당은 이들 4개 신당의 상당(上堂)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두무치 천제당은 포항 지역에서 천신의 위패와 탱화를 봉안한 유일한 사례다. 조선시대 천제당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에는 흥해고을 원이 참여하여 지낸 경우도 있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심한 가뭄이 닥쳤을 때 흥해군수 주관으로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박창원 수필가 두무치 천제당 제의는 오랫동안 주민들이 직접 지내왔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와 제관 선정의 어려움 때문에 스님에게 위탁하면서 제의의 형식과 내용은 두무치 천제의 본래 모습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는 21세기 두무치 천제당 제의의 지속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제의는 9월 2일(음력) 새벽(0시)에 천제당에서 천황제와 선황제를 지낸 다음에 마을 축항으로 내려와 용왕제를 지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용왕제는 두호동 어민들의 해상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의인데, 이 역시 스님이 주제하고 있다. 따라서 두무치 천제단 제의는 천황제를 비롯하여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선황제, 해상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제 등 3가지가 혼합된 복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02-23

다가오는 삼일절, 애국가를 다시 대한민국의 함성으로 만들자

칠곡군수로 취임한 후 한 행사장에서 애국가가 연주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입만 움직일 뿐,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았다. 이러한 광경은 비단 그 자리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의 체육대회, 기념식, 국가 행사에서도 애국가는 반주만 흐를 뿐, 정작 힘차게 부르는 모습은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태극기가 걸리고, 국가가 연주되지만, 우리는 애국가를 부르는 것에 점점 익숙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애국가를 부르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을까? 우리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사라졌을까? 애국가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역사이며, 민족의 숨결이며, 우리를 하나로 묶는 힘이다. 전쟁터에서, 월드컵 경기장에서, 올림픽 시상대에서 애국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리였다. 6·25전쟁 당시 포탄이 쏟아지는 참호에서도, 해외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는 동포들 사이에서도 애국가는 우리 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은 감옥에서도 애국가를 부르며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고, 군인들은 먼 타국에서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애국가를 부르며 조국을 떠올렸다. 어려운 순간마다 애국가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하나로 만드는 힘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애국가는 점점 형식적인 절차로만 남아가고 있다. “국기에 대한 경례, 바로. 애국가 제창….” 사회자의 안내가 들리면, 사람들은 입을 살짝 움직이며 따라 부른다. 애국가가 국가 행사에서도 명목상의 절차로만 남아 있는 현실은 우리가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엄숙한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애국가가 침묵 속에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부터 애국가를 힘껏 불렀다. 행사에 참석한 한 분이 “군수님 목소리는 다섯 명이 부르는 것보다 더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칠곡군은 ‘애국가 크게 부르기 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의 목소리를 되찾아야 할 때다. 애국가는 듣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부를 때 의미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호국도시 칠곡군은 전국 지자체 최초로 ‘애국가 합창단’을 결성해 젊은 공무원들이 공식 행사에서 애국가를 선창하도록 했다. 공식 행사와 정례 조회에서 합창단이 애국가를 선창하면, 공무원과 주민들도 함께 따라 부르며 나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 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을 더욱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칠곡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애국가 부르기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온라인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국민들이 애국가를 입만 방긋하며 소극적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고 힘차게 제창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애국가는 알아야 하는 단순 의무가 아니라 애국심을 표현하는 중요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SNS를 활용한 ‘애국가 힘차게 부르기 챌린지’를 통해 국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각자가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촬영해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올리면, 이를 공유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방식이다. 참여자 중 우수한 영상을 선정해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한다. 영상 속에서 애국가를 힘차게 부르는 모습과 함께 칠곡군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으면 가산점이 부여된다. 젊은 세대가 이번 챌린지를 통해 애국가를 친숙하게 접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SNS와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또 전국 지자체에 협조 공문을 보내 챌린지를 널리 알리고, 더 많은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추진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애국가 부르기가 단순한 캠페인이 아닌, 국민이 함께하는 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다가오는 삼일절, 모두가 함께 애국가를 힘차게 불러 보자. 한 사람의 작은 변화가 대한민국 전체에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 낼 것이다. 작은 실천이 모이면, 대한민국이 하나 되어 울려 퍼질 것이다. 우리가 함께 목소리를 낼 때, 애국가는 더 이상 형식이 아닌 대한민국의 자부심이 될 것이다. 이제 침묵을 깨고, 대한민국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자. 삼일절, 온 국민이 함께 애국가를 부르며 대한민국의 하나 된 울림을 만들어 가자!

2025-02-23

산수이발관

이발관. /네이버 제공 가끔씩 그리운 곳이 있었다. 고교 시절 살던 집으로 여러 번 꿈에서도 나타났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언덕길이 보였다. 오른쪽으로는 구멍가게 하나와 낮은 높이의 집 몇 채, 왼쪽으로는 이발관이, 언덕길 끝에는 교회가 있었다. 그 옆으로 난 세 갈래의 길 중에서 구불구불한 좁은 길을 가다보면 비슷한 모양의 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잘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꽤 넓은 마당이 있던 집이었다. 동생이 좋아하던 강아지를 키웠다. 하교 길에 사온 병아리도 가끔씩 삐약거리고 있었다. 화단에는 나팔꽃과 분꽃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잘 꾸며진 잔디가 있거나 조경이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러운 모습이 더 정감 가는 곳이었다. 밤에 마루에 누우면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눈길을 사로잡던 곳. 별을 보며 막연히 목성을 여행하는 꿈도 꾸고 달의 여신 셀레네의 전설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글도 쓰곤 했다. 많은 것을 상상하며 꿈꾸던 시절이었다. 나만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나 싶어 동생에게 물었다. 역시 그 집이 그립다고 했다. 우리 자매는 틈을 내어 그 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왜 진작 가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서로를 탓하면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서 기억 속의 그 언덕길을 올라갈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것같이. 언덕길 중간 왼쪽 편에 이발관이 보였다. 어린 시절에 봤던 그 이름 그대로이다. 산수이발관. 몇 십 년의 시간이 훅 되돌려 감아졌다. 기대감이 들었다.오른쪽 편에 있던 자그마한 구멍가게는 그 자취도 남기지 않고 다 없어져버렸다. 언덕 위에 예전에 있었던 교회가 보였다. 기억 속의 모습이다. 비 오는 날 분홍색 우산을 들고 교회를 다니던 어린 소녀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우리가 살던 집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교회에서 눈을 돌린 순간 우리는 ‘아’하는 소리만 냈을 뿐이다. 기억 속의 골목은 사라지고 쭉 뻗은 길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갈 때는 둘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갔었다. 키우던 강아지 얘기, 피어있던 꽃들, 아버지에게 혼났던 일들을 주고 받으며 킥킥거렸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서로 얼굴만 가끔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그 날 살던 곳을 갔다 온 다음부터 그 집에 대한 꿈을 다시는 꾸지 않는다. 재건축되어 정비된 깨끗한 아파트의 모습이 좋아 보이기도 했지만 나의 아름다웠던 한 시절이 몽땅 옮겨져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 같은 허전함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외국인들이 배워 익숙하게 쓰는 한국어 중에는 빨리빨리가 있다. 가전 AS도 빠르고 인터넷 설치나 배달이 세계적으로 알아 줄 정도의 빠름을 한국은 자랑한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지금의 발전을 이루는데 작은 원동력도 되었다. 그만큼의 적극성과 부지런함, 추진성이 있었으니 말이다. 전영숙 시조시인 얼마 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사동과 종로의 오래 된 곳을 찾아가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방영되었다. 인사동의 백 년이 넘은 최초의 필방에서는 옛 선조들이 쓰던 대나무 벼루, 옥으로 된 이동용 벼루를 소개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오래 된 설렁탕집이 마지막으로 3대째 이어온 한의원이 소개되었다. 그 프로를 보면서 옛것을 잊지 않고 지켜가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한 시대의 작은 역사가 그 가게 안에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무형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문득 산수이발관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이용했었고, 많은 서민들이 이용하며 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고여 있을 그곳. 대부분의 가게가 영어와 외국어를 섞어 쓰고 있는 요즘에 몇 십 년의 이름을 그대로 쓰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발관의 뚝심을 배우고 싶다. 발전을 위한 빠른 변화도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대를 넘어가며 그 자리를 지켜가는 그런 가게들에서 연륜과 지혜와 역사를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조만간 그 이발관을 다시 가보고 싶다. 어쩌면 아름다운 추억 한 토막이 다시 떠오를 것도 같다. /전영숙 시조시인

2025-02-23

이철우 지사 ‘TK 적장자’ 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면서 여권 대선 주자들의 경쟁 구도가 드러나는 가운데, 최근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지난 19일 국회 소통관을 찾아 긴급기자회견을 하면서 “국민의힘은 조기 대선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온몸을 던져야 한다”며 탄핵에 반대하는 강성 보수층을 겨냥한 메시지를 냈다. 그는 대선출마를 염두에 둔 회견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기자들은 사실상 대선주자로서 ‘보수적자’ 경쟁에 뛰어든 것으로 받아들였다. 기자회견 후 각 여론조사기관에서도 이번 주말부터 실시되는 향후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 이 지사를 포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사의 기자회견문은 △사상누각의 대한민국 △대한민국 내부에서 진행되어 온 연성(軟性) 사상전 △시대과제 △국민의힘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온몸 던져야 등의 소제목으로 구성됐지만, 핵심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체제가 반국가세력에 의해 위기를 맞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는 현 탄핵정국을 대한민국 수호 세력과 반국가 세력의 충돌로 봤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은 계엄행위에 대한 적법성 판단이 아니라 반국가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은 국민의힘이 조기대선이나 중도 확장을 운운할 상황이 아니고 탄핵 심판으로부터 대통령을 지키는 일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는 게 이 지사의 지론이다. 그는 반국가 세력은 누구를 지칭하느냐는 질문에, “효순이·미선이 사건, 광우병, 사드 괴담, 제주해군기지 사건 등 이 모든 세력이 일치된 세력”이라고 했다. 앞서 이 지사는 지난 8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민주당이 집회에 참석한 이 지사를 고발하겠다고 하자 온라인에는 다양한 SNS 계정(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이 개설되면서 ‘나도 고발해주세요(애국가)’라는 이름의 영상이 경쟁적으로 올라왔다. 이 지사가 집회에서 부른 고음(高音)의 애국가는 그 자체로도 화제가 됐다. 이 지사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대선주자 반열에 이름이 올랐다. 이 지사가 대선 도전에 나설 수도 있다는 시각은 정치권에서 일찍이 있어 왔다. 도백으로 있으면서 한 행보도 자주 그런 쪽에 맞춰지기도 했다. 그러나 홍준표 대구시장이 이미 대선을 사실상 출마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여서 TK 두 수장이 동시에 뜻을 내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것 등으로 고민을 거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재선 경북도지사를 지낸 그는 누구보다 정치를 잘 알고 있다. 처음 국회의원이 될 때도 다들 어렵다고 했지만 보란 듯 뛰어들어 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정치는 타이밍이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해 온 그이기도 하다. 지금 국민의힘 유력주자들은 ‘명태균’이라는 덫에 걸려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이 지사의 19일 국회에서의 긴급기자회견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기 전만 하더라도 자주 통화하며 소통했다. 용산 참모들도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지사가 긴급기자회견을 한 배경에 용산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만에 하나 대선이 치러진다면, 중도층 흡수 없이 보수만으로는 승리가 어렵다는 것을 파악한 용산이 그 인물로 이 지사를 밀고 있다는 것이다. 올 가을 경주에서 열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도 이 지사에겐 기회다. 최근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의 초청을 받은 자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간곡히 요청했으며 미국 측 대리인을 통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APEC 회의 참석을 희망하는 친서를 보내는 등 APEC를 발판삼아 역량을 발휘하며 인지도를 높여 나가고 있다. 이 지사는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있으면서 굵직굵직한 많은 시책들이 내놓았고 상당 부분은 국가 의제에도 채택시켰다. 돌아보면 그 또한 큰 자산이고 힘이다. 국민의힘 텃밭은 대구 경북이다. 이 지사는 그곳에서 3선 국회의원과 재선 광역단체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쌓아온 성과와 리더십을 바탕으로 지지기반을 넓혀온 이 지사가 앞으로 대선정국이 펼쳐질 경우, 어떤 묘수를 낼지, 또 대구경북의 ‘적장자’임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정치에디터겸 논설위원

2025-02-20

여행찬가

노병철수필가 다리 떨리는 나이엔 여행을 가고 싶어도 못 가니 가슴 떨릴 때 길을 나서라는 말이 있다. ‘죽어서 명당 찾지 말고 살아서 좋은 곳을 다녀라.’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집사람이 먼저 집을 비우기 시작한다. 젊었을 땐 허락을 받는 척이라도 하더니 지금은 현지에서 문자 한 통으로 끝낸다. 어디 있으니 그리 알아라. 언제 들어갈지는 모른다는 내용이다. 집구석 엉망으로 돌아간다고 욕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난 이게 더 좋다. 나도 언제든지 여행 갈 수 있으니 말이다. 피차 서로 구속하면서 살 나이는 지났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중국과 수교도 되기 전에 여행을 갔다. 북경반점을 보고 짜장면집이 되게 크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반점이 호텔이라는 사실을 알고 귀국해서 중국을 다 아는 체했다. 총무를 비서장이라고 하고 사장을 총경리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곁들여서 말이다. 그 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중국 여행을 다니게 되었고 중국 여자들이 겨드랑이털을 깎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밥 먹기 위해 반찬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반찬부터 먹고 밥 먹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된 것도 여행을 통해서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의 크기를 말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이 사는 우물이란 공간 밖으로는 나가 본 적이 없기에 베이징에서 톈진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본 끝없는 평야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여름벌레에게는 얼음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하루살이에게 내일이란 것을 설명할 수 없듯이 말이다. 글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한다. 경험이 부족하면 사고가 틀에 매이게 되고 연산하는 폭이 극도로 좁아진 상태라 했던 말만 계속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수필 작가이자 교수이고 외국물도 먹은 박사로 평생 교단에서 존경받고 살다가 퇴직 후 나름 자신의 지식을 통한 수준 있는 작품을 내놓으려 하다 식겁하고 자중하는 분이 있다. 그분의 이야기는 설득력 있는 글, 읽히는 글을 써야 하는데 자꾸 전문 지식이 그것을 막는다고 한다. 장자 추수 편에 보면 시골 훈장에게는 진정한 도를 설명할 수 없다고 나온다. 자신이 배운 것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습성이 있다고 했던가. 평생 한 우물을 팠다고 전문가 소리는 들을 지은 정 밖으로 나가면 개구리라는 소리를 피하지 못하게 되는 원리렷다. 여행을 통한 폭 넓은 경험만이 좋은 글을 내어놓을 수 있다고 스스로 체득한 것을 알려준다. 어느 나라에 가든지 마사지라는 것을 거의 강제로 받는다. 그리고 장사치 앞에 앉아 물건 사기를 강요받는다. 싸게 여행 가려면 패키지여행을 선호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손해 보는 장사는 누구도 하지 않는다. 옵션을 걸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돈을 각출해 낸다. 이런 것 때문에 해외여행을 가기 싫다는 사람을 봤다. 먹는 것이 입에 맞지 않고 향신료 때문이라면 어찌 말은 된다고 하지만, 가기 싫다는 핑계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외국 여행이 싫으면 국내 여행도 괜찮지 않은가. 여행을 구차한 핑계를 대면서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다가 일생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다. 움직일 수 있을 때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올해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싶다.

2025-02-20

국제사회에서의 패싱 우려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입춘이 지난 지도 스무날이 되어가는데 날씨는 여전히 봄날이 되지못하고 있다. 봄날이 올까를 기다리지 말고 두툼한 옷 입고 감기도 조심해야겠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4일이면 3년이 된다.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및 자기들의 땅 돈바스를 보호한다는 변명 아래 자신있게 밀어부친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최대 전쟁이 되어 이미 양측의 전사자는 10만 명을 넘었고 우크라이나 주민 4만명도 피해를 입었다. 그동안 미국은 약 5천억 불을 지원했고 유럽연합도 약 1400억 달러를 지원했으며 러시아는 북한군의 지원을 받아 전투를 계속하고 있어서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은데 미국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평화조약을 권고하며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러시아와 종전 협상을 시작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영구적 중립을 바라며 NATO 가입을 반대하고, 침공으로 장악한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려는 의사를 주장하고 있으나 정작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그동안 원조를 아끼지 않은 EU를 배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안전이 보장되면 영토협정 등에도 긍정적이라 하지만 협정에서의 패싱은 아쉽다. 러시아는 그동안 국제 외톨이가 되었던 무대에서 복귀하는 듯하지만 유럽은 정상회담을 통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미·러 정상회담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정전협정에 전쟁 당사국이 제외되는 것은 우리도 경험했었다. 70여년 전 한국전쟁 당시 38선을 3번이나 넘어다녔지만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 이때도 유엔을 대표한 미국과 중국 북한 등 3개 국가만 서명했고 정작 피해국인 남한은 빠졌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작전권을 미국 맥아더 장군에게 이양한 탓이라고 하지만 약 120만명의 사상자를 낸 당사국으로 참여하지 못한 슬픔도 있다. 정전이냐 휴전이냐 논란도 있지만 약소국의 발언권이 없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유엔군의 막강한 전투력에 힘이 빠져버린 중공군이 휴전선 긋기에 동의한 것이다. 나라는 강해야 한다. 트럼프의 고집으로 무역전쟁도 예고되고 있다. 관세 폭탄부터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 수출에도 관세가 부과되는 등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의 전략에 속수무책인 듯하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가? 계엄과 탄핵으로 국가기능이 거의 마비되는 듯 헐떡이고 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수감되어있고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은 궐석이고 육군참모총장도 없고 경찰청장도 탄핵 대상이며 감사원장도 없다. 나라가 이 꼴인데 국회는 야당 천지가 되어있고 얼어붙어 있던 미국과 러시아는 정상화되는 듯 리셋되고 있다. 바야흐로 관세전쟁이 시작되고 있어 철강 알루미늄에 이어 자동차와 반도체까지 몰아붙이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고 이끌어야 할 정부가 공백 상태이니 누가 우리를 보호할 것인가. 미국은 현지 투자를 유치하려는 전술이니 우리 기업들이 관세 폭탄에 몰려 그곳으로 가버리면 국내 산업은 어찌될 것인가? 대책이 세워져야 할 것인데 미·중·러 강국의 사이에서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코리아 패싱이 되지 않도록….

2025-02-20

대구국제마라톤의 굴기

우정구 논설위원 뉴욕, 보스턴, 런던, 베를린, 시카코, 도쿄 등에서 열리는 국제마라톤대회를 세계 6대 빅 대회로 손꼽는다. 그중 미국 보스턴마라톤대회는 역사가 가장 깊어 마니아들이 많이 가고 싶어하는 대회다. 보스턴대회는 1896년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이 성공적으로 개최된 다음해인 1897년 시작했다. 올헤가 128년째 되는 해다. 상금, 참가선수 규모 등에서도 최상급이다. 해마다 4월에 열리는 이 대회에는 국내외서 3만여 명의 마라토너가 참가한다. 우리나라는 서윤복, 함기웅, 이봉주 선수가 이 대회에서 각각 우승을 한 바 있어 인연이 깊은 대회다. 영국 런던대회는 명품 코스로 유명하다. 템스강 주변과 웨스트민스터, 버킹엄 궁전 등 세계적 명소를 보고 달리는 코스다. 뉴욕 마라톤은 세계 각국에서 많이 와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체험할 수 있는 대회로 정평 나 있다. “마라톤을 왜 하냐?”고 물으면 많은 이가 “자신을 극복하고 성취하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라톤 현장에는 “나를 위해 달린다”는 문구가 자주 눈에 띈다. 대구국제마라톤이 23일 개최된다. 4만명이 넘는 마라토너가 신청해 역대급 대회가 될 전망이다. 대구시는 대구국제마라톤을 세계 7대 명품 마라톤 자리에 올리겠다고 한다. 우승 상금도 세계 최고로 걸었다. 기록만 잘 나오면 세계 최고 대회가 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최근 열리는 마라톤대회는 단순한 건강 대회가 아니다. 수많은 마니아가 만나 즐기고 의기를 투합하는 축제장이다. 대구마라톤이 세계 최고가 된다면 그것이 대구가 굴기하는 것이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2-20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가?

신광조​​​​​​​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간이 아픈 분들이 꼭 진료를 받고 싶은 김정룡 의학박사가 계셨다. 오랜 연구 끝에 B형 간염백신을 개발했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이를 인증할 기준이 없어 보건복지부에서 인증 신청을 반려했다. 이후 1981년 프랑스와 미국이 B형 간염 백신을 인증하면서 한국은 세 번째로 B형 간염백신 개발 국가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남들이 만든 기준을 따라하는 패스트 팔로우어(Fast Follower)에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기준을 창조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큰 바다를 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장자’ 천도 편에 수레바퀴 깎는 사람이야기가 나온다. 왕은 책을 읽고 윤 편은 수레바퀴를 깎고 있었다. 윤 편은 당돌하게 왕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옛 성현들의 책을 읽고 있다.”“왕께서 읽고 있는 책은 조백(糟7CA8·술 찌꺼기) 일 뿐입니다.”“네, 이 놈, 무엄하도다.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하면 큰 벌을 받을 줄 알아라.” “저는 평생을 수레바퀴만 깎고 살아왔습니다. 조금만 느슨하게 깎으면 헐렁해서 쓸 수가 없고, 조금만 빡빡하게 깎으면 들어가지 않아 쓸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제 자신의 감각에 의존하기에, 어떻게 설명해줄 방법이 없어 아들에게도 전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왕은 윤 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노여움을 풀었다. 우리는 종종 이념이나 이론에 얽매여 살아가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사건들이다. 보편적 이념에 구속되지 않으면 주체적 사고를 할 수 있고, 독립성과 생명력을 갖게 된다. 또한, 단순히 다른 사람이 공부해 놓은 것을 읽기만 하는 것은 죽은 공부이며, 실제로는 읽고 쓰는 것이 모두 필요하다. 배우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이 배웠던 것을 습득하는 데만 길들여지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잊게 된다. 우리는 읽기와 쓰기, 듣기와 말하기, 배우기와 표현하기의 경계에 서야 한다. 기준의 수행자보다는 조그만 기준이라도 창조자가 되어야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야 눈빛에 야성이 돈다. 고정되면 죽는다. 죽은 나뭇잎 새는 흔들리지 않는다. 경계에 서서, 이 추운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것만 살아있다. 경북농정에 혁신 바람이 불고 있다. 논에는 그렇지 않아도 넘치는 벼만 심어야 하는가? 콩도 심고 사과·포도도 심을 수 있다. 인생도 2모작에서 4모작까지 가능하다. 청송은 ‘산소 자치단체’로 불리며, 울진·영양과 함께 ‘반딧불 도시’로 ‘항 노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공공임대주택 대신 ‘산소 스마트’ 주택을 청년들이 살면서 갚을 수 있도록 공급하며, 최고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빌리지를 조성하고 있다. 육아환경은 육아왕국인 일본 돗토리현 수준을 능가하며, 모든 분야에서 기준을 창조하겠다는 생각으로 할 일이 넘쳐난다. 동해안의 바다연안에 물고기들이 접근을 못하게 하는 시멘트 콘크리트 해벽을 포스코 철강 생산 부산물을 이용한 에코 콘크리트로 바꾸니 어민과 물고기, 고래가 모두 기뻐하고,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수입 요청이 쇄도하여 포항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2025-02-20

거짓말 사회

장규열 고문 법정은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곳이다. 판사는 증거와 법리를 바탕으로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며, 드러난 거짓과 진실을 토대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역할을 맡는다. 오늘날 법정에서 거짓말이 너무도 흔한 일이 되었다. 피고인과 증인뿐 아니라, 심지어 법정에 선 공직자들이 공공연하게 거짓말을 하면서 진실을 숨기고 사실을 왜곡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의 기반을 흔들고 있으며,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공직사회에 대한 믿음을 훼손하고 급기야는 국민들 사이의 관계마저 흔들리게 한다. ‘나쁜 사람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믿음과 기대가 통하지 않는다. 법정에서 밝혀지는 것은 범죄자의 진실이어야 한다. 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공직자들이 오히려 거짓말을 일삼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은 실망과 분노를 넘어 무기력감마저 느낀다. 공직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을 말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지면, 사회 전체는 도덕적 타락과 윤리적 일탈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거짓말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인가? 바로 ‘다음세대’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성실과 정직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현실에서 거짓말이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본다면 그렇게 가르칠 수 있을까. 최고위 공직자들조차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거짓을 일삼고,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겠는가. 사람은 들은대로 배우기보다 보는대로 배운다. 결국 정직한 사람이 손해보는 왜곡된 사회적 타락을 배우고 말 터이다. 사회적 진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하려면, 우리는 거짓말 문제에 대해 사회적 각성에 이르러야 한다.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거짓말이 구조적으로 용인되는 문화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법과 제도는 정직한 사람이 보호받으며 거짓말이 철저하게 배격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보통 사람들보다 공직자들에게는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이 요구되어야 한다. 공직사회의 거짓말을 사회공동체에 미치는 해악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만연하고 진실이 손해보는 현실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법과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 정직한 사람이 인정받고 보호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적 관심과 집단지성에 기초한 행동이다. 거짓말이 성공의 수단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공동체의 질서와 사회적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철저하게 징벌하며 진실의 가치를 되새기는 사회적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누구의 책임을 따지기보다 사회에 뿌리를 내리려는 탈진실의 허위를 각성하고 거짓말을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진실과 성실의 힘을 새롭게 강조하여 대한민국이 더이상 부끄러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단속해야 한다. 공직사회에는 거짓말이 절대로 통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하고 진실에 기초한 행정행위가 공직자윤리의 기초임을 확인해야 한다. 나라의 기반이 거짓말로 흔들리는 일을 더이상 두고만 볼 수 없는 지경이다.

2025-02-19

갈수록 일본에 밀리는 한국 관광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서울과 제주도는 분명 매력적인 관광지다. 하지만, 재방문 의사를 묻는다면 글쎄...” 많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말끝을 흐린다. 치안이 좋고 거리는 깨끗하지만,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음식 가격과 높은 숙박비가 부담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거기에 최근 ‘계엄 사태’에 이어진 정치적 불안정이 관광업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얼마 전 제주관광협회는 2월 1일부터 15일까지 제주도를 방문한 관광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2%나 줄었다고 발표했다. 서울 여행에 대한 외국인 관광객의 평가도 박하다. 한 숙박 플랫폼의 조사에 의하면 중국인 여행자들의 숙소 평점은 서울이 4.31점, 일본 도쿄는 4.48점이었다. 서비스, 시설, 위생 분야에서 일본에 밀린 것. 관광업계가 원하는 건 여행자의 재방문이다. 한 도시를 다시 찾는다는 건 거기서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듯하다.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재방문율은 2019년 58.3%에서 2023년엔 56.1%로 감소했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비슷한 비용이라면 한국보다 일본 여행의 만족도가 높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그걸 증명하듯 해마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재방문도 잦다. 최근 일본관광청은 지난 12월 일본을 여행한 한국인 수가 86만7400명으로 이전 역대 최고치를 뛰어넘었다고 전했다. 작년 한 해에만 일본을 여행한 한국인이 882만명에 이른다. 일본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1/4에 달하는 숫자다. 갈수록 일본에 밀리는 한국 관광. 위기를 극복할 대책이 시급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2-19

여행 준비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여행 짐 싸기가 어려운 게 아니다. 미리미리 메모해 두고, 생각날 때마다 챙겨 바구니에 던져두면 된다. 갈아입을 옷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가 챙겨 넣어둔다. 떠나기 전날 종류별로 파우치에 넣어 큰 가방에 넣는 일쯤이야 뭐 그리 힘들 일도 없다. 여행 준비보다 나의 부재에 대비한 준비가 더 많다. 곰탕 끓이는 정도는 아니다. 여행 일수 만큼 남편의 아침식사로 야채샐러드, 두유, 찐계란을 밀프랩해서 냉장고에 가지런히 넣어 두면 된다. 원래 외식을 즐기기도 하고 혼자서도 잘 사 먹는 좋은 습관이 있는 남편이다. 평소에도 하루 한 끼의 아침 준비로 참 수월하긴 한 편이니, 구태여 신경 쓰는 것은 내 최소한의 정성을 표하는 셈이긴 하다. 집안 청소도 중요한 여행 준비 중의 하나다. 나의 빈자리에서 발견될 허술한 구석이 걱정되기도 해서 남편의 행동반경 외의 안방과 주방, 앞뒤 베란다 등에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꼼꼼히 쓸고 닦는다. 청소를 미리 당겨서 한다는 심정으로 정리하니 이게 여행 준비가 맞나 갸우뚱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돌아올 집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여행이든 최종정착지는 집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행이 아니라 방랑이요, 가출일 거다. 내가 돌아왔을 때 말쑥한 집이면 더 좋지 않겠는가. 물론 그 사이 남편이 많이 어질러도 어쩌랴마는…. 여행 준비의 오랜 습관 중 하나는 손톱 정리다. 손톱에 이런저런 색으로 입히는 것을 매니큐어-잘못된 영어라고 했다-라고 했다. 요즘은 네일 케어라고 하던데, 뭐 둘 다 영어식 표현이라 좋은 우리말로 순화하면 좋겠다 싶긴 하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여름방학 때 손톱에 빨간 봉숭아꽃물을 들인 채로 개학해서 학교 갔다가 그 도발적인 빨간색에 지레 부끄러워 손가락을 오므려 못 폈던 기억이 있다. 예전엔 매니큐어를 미용실에서 했다. 미용실 바구니엔 오만가지 색의 매니큐어가 그득하니 넘쳤다. 장난 같이 발라보기도 하다가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플라스틱 대야에 비눗물을 따끈하게 데워줬다. 그 물에 손가락을 담가 손톱을 불린 뒤에 큐티클을 제거하곤 했다. 빨간 손톱칠을 하고 싶다는 충동이 가끔씩 일면 방학을 기다렸다. 수업이 없으니 어떠랴 싶었다. 한 해 여름, 빨갛고 뾰족한 긴 손톱으로 학교엘 갔다가 정교님을 만나 교수답지 않다며 힐책을 들은 적이 있어, 다시는 하지 않았다. 다만 퇴직하고 나면 내 맘대로 하리라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마냥 하지는 않았다. 며느리가 어버이날 선물로 네일아트를 예약해 주어 으리번쩍한 손톱으로 호사를 한 기억 정도. 다만 여행 계획이 잡히면 왠지 손톱 정리를 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여행이 많은 해는 제법 오랫동안 손톱이 화려했다. 지난 달 베트남여행 때는 며느리가 권해 쨍하게 붉은 와인색으로 도발했다. 한 달 남짓 되었고, 와인색 손톱이 반 이상 남아있지만 또 다른 여행이니까 다시 손질해야지. 이번엔 점잖은 색으로 골랐다. 올리브색이라고 하는데, 손녀는 아보카도 같다고 한다. 여행이 일상의 일탈이듯 손톱을 꾸미는 게 내겐 가벼운 일탈인 듯하다. 손톱정리가 나의 여행 준비요 시작이다.

2025-02-19

마음이 튼튼한 아이 키우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신체적 발달뿐만 아니라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인 발달이 필수적이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것이 정서적 안정을 돕는 첫걸음이다.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을 가진 아이가 더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기에 애착 형성은 아주 중요하다. 부모가 꾸준한 사랑과 관심을 보이며 감정 표현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아이는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따뜻한 스킨십과 눈맞춤 칭찬은 자존감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감정 조절 능력은 아이가 좌절감을 줄이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필수적이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읽고 이름 붙여 주며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예를 들어 ‘속상했구나’라고 말해 주면 아이가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림 그리기나 역할 놀이를 통해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기조절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충동을 조절하고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부모는 아이가 기다리는 연습을 하도록 유도하고 규칙을 정해 지키게 함으로써 자기조절력을 키울 수 있다. 또한 자기조절을 잘했을 때 칭찬하면 긍정적인 행동이 강화된다. 사회성 발달은 또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협력과 배려 타협을 배우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래와의 놀이 기회를 제공하고, 친구와의 갈등 해결법을 알려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 ‘친구가 속상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도와줄까?’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모는 결과보다는 노력과 과정을 칭찬하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형제나 친구와 비교하는 행동은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므로 적절한 해소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충분한 놀이 시간과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기회를 제공하면 아이는 정서적으로 더욱 안정될 수 있다. 육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의 스트레스 지수도 감소시키니 시간이 나면 야외 활동을 같이 하는 것이 좋다. 부모의 양육 태도는 아이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또 부모가 완벽하려고 하기보다는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부모가 실수 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도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빨리 인정하고 사과를 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잘 관리하면 아이도 심리적으로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 아동심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면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건강한 성장을 도울 수 있다. 애착 관계 형성과 감정 조절, 스트레스 관리, 부모의 양육 태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면 더욱 건강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아이는 가장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2025-02-19

민주교사 정영상

민주교사 정영상은 잠결에 웃으며 심장마비로 죽었다 모든 죽음이 마찬가지다 청량리에서 밤기차를 타고 제천에서 내려 단양으로 총알택시를 갈아타고 정영상의 죽음을 확인하러 갈 때 어둠은 아늑하게 우리의 삶을 확인해 주었다 젠장,산다는 것이 눈물 한 방울로 정점을 찍어 살아갈 목표를 확인시킨다는 것 그 무심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관(棺)을 부여잡고 운들 무엇하리 살아 죄 한 점 없었던 사람이 어린 아들 딸 남겨 놓고, 마누라만 남겨 놓고 그렇게 간 죄가 많은 사람이 되어 떠났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이유도 없이 분노했다 정작 벌을 받아야 할 나는 멀쩡히 소주를 마시며 먼 월악산을 보고 있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마음이 저승에 닿아 강물로 흐르면서, 그가 굵은 손으로 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것, 그러나 그 감촉은 가을비보다 혹독했다 상(賞)보다 벌(罰)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 정영상은 결코 죽지 않았다. 정영상은 연일읍 출신으로 공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안동 복주여중에서 근무했으며, 전교조 활동으로 투쟁 중 심장마비로 세상과 이별했다. 내가 2학년 여름방학 때 임용대기 중이던 형은 자전거 뒤에 도시락을 묶어 화실로 출근하여 나와 자주 놀았다. 도시락과 막걸리를 나눠 먹으며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큰 자양분이 되었다. 털털거리는 그 자전거 소리가 아직 귀에 쟁쟁하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2-19

어머님의 막걸리

윤명희 수필가 구순의 어머님이 차례 준비로 비좁은 주방을 이리 저리 뒤지신다. 혼잣말을 알아듣지 못한 나는 뭘 찾으시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형님이 다용도실에서 막걸리를 들고 나온다. 어제 어머님이 직접 사오셨다고 한다. 당신 걸음으로는 한참 가야 할 거리다. 빈 쟁반을 들고 들어오던 조카와 떡국의 꾸미를 챙기던 나는 아침부터 술을 찾는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설한 차례 상은 떡국만 올리면 된다. 제주로 올릴 청주병도 상 앞에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막걸리를 들고 나오시는 통에 식구들의 눈이 그곳에 모였다. 한복을 곱게 입은 터라 행여 치맛자락을 밟고 넘어질까 불안한 눈치들이다. ‘음복주 마실 텐데 막걸리는 왜 들고 오시지?’ 라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어머님은 조상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한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엉거주춤 바닥에 앉아, 손수 청주를 비우고 막걸리를 붓는다. 혼자서는 일어나지 못하시는 것을 아는 손자가 곁에 섰다. 침대에서 소파로 식탁의자로 옮겨 앉는 일이 전부인 어머님이 손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절을 두 번 하고 일어섰다. “어매 아배요, 우리 장손 장가 좀 보내주소. 영감은 거기서 뭐 하니껴” 참았던 소원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어머님은 조상님께 올리는 막걸리가 효험이 있을 거라 믿으시는 듯 했다. 차례 상 앞이 조용해졌다. 나는 곁눈질로 장본인인 조카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멋쩍게 웃으며, 같은 처지인 우리 아들을 끌어넣는다. 사촌형이 던진 장가라는 공을 얼떨결에 받은 아들이 넙죽 엎드렸다. “아이고 조상님, 할매가 부탁까지 했는데 손자들이 장가 못가면 조상님 탓입니데이” 아들의 너스레에 한바탕 웃음으로 계면쩍은 순간을 넘겼다. 차례 상을 물리고 세배를 한다. 절을 한 손자들이 할머니께 증손자 대신 얇은 봉투를 내민다. 떡국을 앞에 놓고 둘러앉았다. 이제는 두 집 식구 모여 봐야 예전 큰댁 식구보다 적다. 시집간 딸네들의 빈자리는 떡국 먹는 소리만이 채우고 있다. 그때의 설날은 집안이 아이들로 왁자했다. 가래떡을 썰고, 강정을 만들었다. 조카들의 손까지 빌려 한 광주리나 되는 콩나물을 다듬고, 몇 시간동안 전을 부쳤다. 친척들을 맞이하는 인사가 연이었고, 방마다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만큼 주방은 상차리기에 바빴다. 차례상 앞은 흰 두루마기 차림의 어른들과 양복차림의 젊은이들로 그득했다. 맨 뒤에 서 있는 아이들은 잠시 후에 받을 세뱃돈 생각에 마냥 신났다. 거실에 빙 둘러 앉아 윷놀이 판을 벌렸다. 바닥에 발을 구르며 도야, 도야 호부랑 도야를 외치며 흥을 돋우는 팀과, 모가 나오기를 두 손 모아 염원하는 팀의 목소리가 어우러졌다. 공중을 휘돌아 치며 바닥에 떨어지는 윷가락이 판세를 뒤집으면, 와아 함성 소리와 함께 시아버님의 어깨가 들썩였고 큰며느리인 형님도 춤을 추었다. 서른 명도 넘는 친척들과 함께 했던 그날들이 꿈결인 듯 아스라하다. 코로나 이후로 우리 식구는 설날 아침에 큰댁에 간다. 간단히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는다. 상을 마주하고 앉아 하는 이야기가 길지 않다. 설거지를 끝내고,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소파에 앉는다. 차를 마시며 멀거니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 몇 번이나 재방송한 드라마의 대사까지 외우다시피 하는 어머님은 장면마다 설명을 덧붙인다. 사촌형과 몇 마디 나누던 아들은 할머니 방에서 자고, 남편은 소파에 앉아 졸고 있다. 형님이 윷가락을 가지고 나온다. 해 지난 달력의 뒷면에 윷판을 그리지만, 아무도 다가앉는 이가 없다. 나는 슬그머니 그 앞에 앉아 윷가락을 만져본다. 아버님이 만드신 싸리 윷이 손안에 착 붙는다. 어깨위로 높이 던져본다. 바닥에 먼저 떨어진 세 가락이 엎어지고, 뒤늦게 떨어진 한 개가 흰 배를 내 보인다. 한 귀퉁이가 배꼽마냥 까맣게 칠해져 있다. 왔던 길로 뒤돌아 가라는 뒷도다. 오래 묵은 윷가락도 어머님의 화양연화였던 그때가 그리운가 보다. 졸던 남편이 집에 가자며 옷을 주섬주섬 걸친다. 나는 형님이 챙겨 주는 음식들을 받아들고 마지못한 듯이 뒤를 따라 나선다. 설날 하루가 길다. 우리는 남은 시간 앞에서 잠시 허둥거린다.

2025-02-19

국립경국대학교 출범 즈음하여-안병윤 경북도립대학교 총장

안병윤 경북도립대학교 총장 신학기 3월이면 예천에 자리 잡고 있는 경북도립대학교가 국립경국대학교로 새롭게 출범한다. 국가의 글로컬 30 정책에 따른 국립안동대학교와 통합을 추진한 결과이다. 2023년 3월에 통합논의가 시작되어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통합 승인을 받아 만 2년 만에 이룬 성과이다. 이러한 성과는 그간 경북도립대학교의 혁신과 변화를 위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 대학을 비롯한 지방소재 대학은 저출생에 따른 학령인구의 감소와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방소멸의 여파로 대학 운영의 어려움이 가중되었을 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급격한 사회변화에 맞춰 대학교육체제 전반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직면해 왔다. 이에 따라 우리 경북도립대학교는 선제적 대응의 방안으로 정부의 ‘글로컬 대학 30 정책’에 따라 국립 안동대학교와 전국 최초 국·공립대학 통합을 통해 지방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양 대학의 경쟁력을 제고하여 지역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양 대학의 통합을 추진하였으며, 2023년 11월 ‘글로컬대학 30’사업에 선정되었다. 이후 세부적인 통합 방안을 마련하여 새롭게 새출발하는 것이다. 국립경국대학교는 지역정책, 산업적 특성 및 수요를 반영한 캠퍼스별 특성화 분야를 도출해 안동캠퍼스는 인문·ICT, 그린바이오, 백신분야를 예천캠퍼스는 공공수요분야를 특성화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에 따라 예천캠퍼스에는 공공수요인재대학과 행정경영대학원을 중심으로 지역주민을 위한 평생교육원, 지역이 필요로 하는 해외 인력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는 경북글로벌 한글학교, 경북도 소속 연구기관 협업을 통해 지역의 발전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하게 될 K-ER센터, 그리고 도서관 등을 공공부총장과 행정지원본부를 두고 운영하게 된다. 공공수요인재대학에는 동물생명공학과(기존 축산학과), 모빌리티디자인공학과(기존 자동차과), 응급구조학, 소방방재학과의 4개 학과가 지역의 공공수요에 기반하여 인재를 양성하게 될 것이다. 예천캠퍼스는 경북도립대 총장이 공공부총장을 맡아 책임 운영을 하여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지고 통합취지에 맞는 특성화를 추진한다. 경북도립대학교라는 명칭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지만 경북도립대학교의 역사와 전통은 국립경국대학교 예천캠퍼스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그간 경북도립대학교는 농촌지역 교육양극화 해소를 위해 1997년 개교이래 약 1만여 명의 동문 들이 있다. 모두 자기의 자리에서 당당한 사회인으로 자랑스럽게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경북도립대학교는 그간 저렴한 등록금과 풍부한 장학혜택을 통해 공교육을 실현하고, 또한 높은 취업률을 자랑하는 지역의 명문대학으로 자리해 왔다.  그간 경북도립대학교 예천, 안동, 영주 등 경북북부지역 중심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여 왔다고 자부한다. 지역사회발전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의 제공과 평생교육 실시, 대학시설의 개방 등을 통해 지역사회와 상호발전해 왔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대학, 주민들이 참여하는 평생교육 중심대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가 경국대학교에서도 지속하도록 지켜나가야 할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특히 예천의 발전을 견인하는 지역대학으로서의 새로운 역할도 만들어 가야만 한다. 이를 위해 지역의 다양한 아젠다를 창출하여 토론하고 논의하는 협력 거버넌스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또한, 대학이 가진 다양한 재능기부, 시설개방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이 소통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는 대학을 아껴주고 대학은 지역사회의 발전을 견인하는 새로운 지역대학의 성공모델을 만들어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제 큰 꿈을 가지고 통합 국립경국대학교가 첫 발걸음을 디디려 한다. 예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예천 출신의 경북도립대 총장으로서 예천의 경북도립대학교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한 새로운 탄생이라는 것을 예천군민들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국립경국대학교는 경북도립대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 갈 것이며, 예천군민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드린다. 한편으로 국립경국대학교가 새롭게 성장하기 위해 예천군민들의 아낌없는 성원과 사랑이 꼭 필요하니 많이 도와달라는 말씀도 함께 드린다. 경국대학교는 예천과 지역사회의 발전을 견인하는 그래서 예천군민과 함께하고 예천군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대학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안병윤 경북도립대학교 총장

2025-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