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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구위기의 한국

지난 11일은 세계인구의 날이다. 전 세계인구가 50억명을 넘어선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89년 유엔개발계획이 제정한 날이다. 이 날은 지구촌 인구문제에 대한 인류의 관심과 대응책 모색을 생각하는 날이다.국가 3대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인 국민은 곧 그 나라의 인구를 말한다. 인구 수의 크고 작음은 국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구가 너무 적으면 다른 나라와 비교해 경쟁력에서 밀리고 국제사회에서 발언권도 약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또 인구가 줄어들면 일할 사람이 줄고 기업이 만든 물건을 사줄 사람도 적어진다. 그래서 인구가 줄면 그 나라 경제는 종국적으로 망한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다. 세계 인구는 1804년 10억명을 돌파한 이후 1999년 60억명에 이르렀다. 그동안 세계 인구는 연평균 1.2%씩 증가했다.그러나 1950년 이후 세계인구 증가는 1%대 아래로 떨어지면서 지난해는 0.82% 증가하는데 그쳤다. 그래도 지난해 78억명이던 세계인구는 오는 11월이면 80억명을 넘을 것이라 한다. 유엔이 발표한 ‘세계인구전망 2022’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 1위권인 중국의 인구가 내년에는 인도에 자리를 내줄 것으로 전망됐다. 당초 유엔기구는 2027년쯤 인도 인구가 중국의 인구를 추월할 것으로 보았으나 그 시기가 4년이나 앞당겨진 것이다.우리나라는 2020년 새로 태어난 아기보다 사망자가 더 많은 데드크로스에 들어섰다. 출산율도 0.83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 세계에서 인구붕괴가 가장 빠른 나라로 손꼽힌다.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이 인구문제다. 인구절벽에 다다른 우리의 인구위기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7-14

쇼맨십이 필요한 이유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윤석열 정부 들어 문재인 정부와 확연한 차이가 나는 대목이 바로 국정홍보분야가 아닌가 싶다.문 정부 초기에도 우리 경제 상황은 좋지 않았다. 특히 실업 문제가 심각했다. 문 대통령은 열심히 경제를 살리겠다며 재계인사들과 각종 회의를 열었다.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일자리 수석을 신설하고, 일부 유치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일자리상황판’을 청와대 사무실에 설치, 매일 챙기겠다고 공언했다. 문 정부 임기말엔 일자리 상황판이 어디로 갔는 지 말없이 사라지는 민망함이 있었지만 그 당시엔 “정부가 일자리창출에 노력하고 있구나”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는 일단 성공한 듯 보였다.이에 비해 취임 2달 남짓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고, 지지율이 더 떨어질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많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혹자는 좌파성향의 방송 언론환경이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남탓만 해선 안 된다. 필자 생각엔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이 국민들이 가장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경제·인사문제에 대해 확실히 해결하겠다는 액션이 없기 때문이다.또 하나는 대통령이 민생을 위해 비상대책회의를 주재하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데도 국민들에게는 이런 사실들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란 말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데, 아직도 대통령은 한덕수 총리와 추경호 부총리 등 경제부처 공무원출신 장관들에게 경제를 맡겨 놓은 줄 아는 국민들이 많다.윤석열 대통령은 14일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해 민생을 살폈다고 한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가. 바로 대통령실 홍보전략의 부재다. 대통령이 뛰고 달리는 모습을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데는 언론의 속성을 고려한 홍보전략이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예를 들어보자. 대통령이 직접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며 민생을 보살피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려면 복장이나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 야전 점퍼차림에 전시체제에 걸맞는 배경음악, 특정 부서 장관에 대한 질책에 이어 뜨거운 토론 분위기…. 국무회의나 비상경제대책회의를 하더라도 언론의 스폿라이트를 받을 만한 헐리우드 액션 연출이 필요하다.나라살림이란 게 단편적 조치로 크게 좋아지거나, 나빠지지 않겠지만 정부가 민생을 위해 뛰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필요하다면 쇼맨십이라도 보여야 한다. 얄팍하게 남을 현혹해 그때그때의 효과만을 노리는 수완으로서 쇼맨십이 아니라 특이한 언행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그들을 즐겁게 하는 쇼맨십이라면 못할 일이 없다. 혼자 열심히 일하면 알아주겠지 하는 태도로는 안된다.대통령의 손짓 하나하나에 스팟 조명을 비추고, 현 정부에서 잘 하고 있는 현상들을 적극 알리고, 덕담하고, 칭찬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쇼가 필요하면 쇼라도 해야 한다. 그게 국정홍보요, 민심돌보기다.

2022-07-14

사람이 먼저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저의 대선 슬로건을 ‘사람이 먼저다’로 정했습니다. 이념보다, 성공보다, 권력보다, 개발보다, 성장보다, 집안보다, 학력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 만들어 보자는 거죠. 가슴이 뛰지 않습니까? 슬로건이 우리를 이끌고, 시대를 이끌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2012년 7월 15일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의 트위터에 올라있던 글이다. 정철이라는 카피라이터가 대선캠프 슬로건으로 만든 문구라는 ‘사람이 먼저다’는 인권변호사란 타이틀과 함께 문재인 정권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사람’이란 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보통명사가 아니었다. 자기들 편이 아니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사람’에서 배제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2019년 11월 탈북 어민 2명을 강제 북송한 사건이 다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당시 정부의 발표는 그들이 동료 어부 16명을 살해하고 도주했으며 귀순의사에 진정성이 없어 강제 송환했다는 것인데, 법적인 측면에서나 인도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들이 탈북을 결행한 진상을 파악하려면 적어도 몇 주에서 수개월은 수사를 해야 할 일인데, 고작 2, 3일 신문을 하고 황급히 북송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정치적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북쪽에서 송환 요구를 하기도 전에 강제 북송을 통보한 것은, 몇 주 후에 열릴 한·아시아 특별정상회의에 북한의 김정은을 초청하기 위해 환심을 사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서면으로까지 귀순의사를 밝혔음에도 눈을 가리고 결박을 한 채 판문점으로 끌고 가서 북한군에 넘겨준 것은 국내법은 물론 국제법상으로도 위법의 소지가 다분한 반인륜적인 처사라는 것이 사계의 중론이다. 문재인 정권이 자행한 그런 조치의 과정 어디에도 법치나 인권에 대한 고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더구나 그것을 한 번의 과오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해양수산부 직원이 표류 중 북한 경비정에 발견되어 사살 소각되기까지 방치하다 뒤늦게 월북몰이로 조작하는 한편, 당시 정황에 대한 기록을 삭제하는 등의 증거인멸까지 저질렀다는 사실도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사람이 먼저다’라는 가면 뒤에 사악한 반인도적인 얼굴이 숨어있는 줄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자기들 이전 정권에 대해서는 적폐청산이란 명목으로 온갖 무리한 죄명으로 먼지 털이씩 수사를 해놓고 막상 저들의 적폐가 드러나자 수사팀을 해체하는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수사를 방해하고 급기야는 법을 바꿔서 ‘검수완박’까지 자행한 사실을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 속에는 저들 편이 아닌 사람은 아예 없는 것이다.정권이 바뀌어서 이제 그 진상이 하나씩 밝혀지자 지난 정권 당사자들은 당연히 극구 부인하고 정치보복이니 검찰공화국이니 뒤집어씌우기에 혈안이지만, 인과응보요 사필귀정이란 말을 믿어보고 싶다. 사악하고 이율배반적인 무리들의 두 얼굴을 백일하에 밝히는 것만으로도 현 정권이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절반의 역할은 하는 것이다.

2022-07-14

더위를 이겨나가자

윤영대 수필가 잠잠해지는 듯한 코로나19의 열기가 다시 일일 확진자 4만 명 대로 확산되면서 6차 대유행을 경고하고 있다. 새로운 변형인 BA.5는 면역 회피 특성이 있어서 방역 당국도 4차 접종을 확대해 50대와 18세 이상의 기저 질환자도 포함 시켰다. 지난 5월 초, 4만 명을 기록한 후 점차 줄어들다가 2개월 만에 다시 늘어난 것이다. 매주 2배로 늘어나는 ‘더블링 현상’이 뚜렷해지며 입국자 격리면제와 국제선 항공편 증설이 주된 영향이라고 밝히고 유행 상황이 커지면 선별적 단계적 방역·의료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전염병 유행의 긴급한 상황에서는 국민 각자의 건강 지킴이가 필요하다.15일은 유둣날(流頭節)이다. 24절기는 아니고 삼복과 함께 세시풍습 중의 하나로 신라 때 유래 됐다.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 즉,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물에 머리 씻고 청결하게 몸을 가꾸는 물맞이 풍습인데, 액을 떨쳐 버리고 땀띠나 더위를 막고 무병장수를 빌어온 ‘물마리’ 즐거움도 이제는 잊혀져가는 듯하다. 봄철 내내 농사지으며 쌓인 피로를 풀 듯 목욕을 하고 햇밀, 햇보리로 떡을 만들고 애호박 잘게 썰어 버무려 부친 밀전병 등을 나누어 먹으며 유두잔치를 벌였고, 참외와 수박, 국수와 떡, 수단(水團) 등을 사당에 올려 ‘유듀천신’하며 한 해의 풍년을 비는 농신제를 지내기도 했다.요즘처럼 무덥고 습한 날씨에 갯가나 계곡을 찾아 폭포 물에 열기를 씻으며 코로나 확산 우려의 마음도 씻어보자. 형산강은 포항을 씻으며 동해로 흘러드는 큰 강이다. 그 강변에 깨끗한 물놀이터라도 있으면 이 유듀절에 더 좋은 놀이터가 될 터인데….이제 삼복이 시작된다. 1년 중 가장 무더운 계절의 시작인 초복은 하지 이후 세 번째 경일(庚日)이고 열흘씩 지나며 중복 말복이 되지만 올해 말복은 입추 전이 경일이라 한 칸 건너뛰는 월복(越伏)이다. 삼복은 중국 진·한 시대부터 유래 되었다는 사기(史記) 내용을 동국세시기는 전하고 있다. 그런데 복날을 영어로 ‘dog days’ 즉 ‘개의 날’이라는 것을 알고 신기했다. 우리가 복날 때 더위를 이기려고 개고기를 먹은 풍습을 어떻게 알고 있었나? 알아보니 마침 태양과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天狼星)가 같은 하늘에 떠오르는 이맘때쯤 옛 이집트 나일강은 홍수로 범람이 잦았고, 그래서 ‘시리우스의 분노’라고 하며 개를 상기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삼복의 복(伏) 자에도 개가 사람 옆에 있는 모습이다.삼복날은 개고기를 파 넣고 끓인 보신탕과 닭을 인삼과 함께 삶은 삼계탕 등 보양식을 먹었는데, 88올림픽 이후 보신탕이 혐오식품이 되었고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야만인’ 발언으로 논쟁이 일었고 개 식용금지가 동물보호법이나 개도살금지법 등으로 공론화되면서 줄어들고 있다.삼복, 음기가 양기에 눌려 엎드린 계절에 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끓게 만드는 코로나 열병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으니 각자 나름대로 보양식 먹으며 건강하게 이 계절을 이겨나가야겠다.‘유둣날 비가 오면 사흘 온다’는 속담처럼 이제 장마철이 본격적으로 접어든다.

2022-07-14

책(冊)탑을 보며

거실에 책장 세 개가 모두 빈틈없다. 책꽂이 위도 앞쪽도 숨을 못 쉴 만큼 책으로 들어찼다. 딸아이 사진조차 구석으로 쏠렸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밀리고 구겨진다.일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거실의 모든 물건을 꺼내고 책들도 바닥에 쏟아냈다. 이젠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챙길밖에 도리가 없다. 어제도 그저께도 누군가로부터 책이 왔다. 지인이거나 낯선 사람이 쓴 수필집이 봉투째 책상에도 쌓였다. 수필잡지, 개인 수필집, 동인지, 목차를 보면 알 만한 사람들의 이름이 책의 곳곳에 박혔다. 때론 펼친 책자에 나의 이름 석 자도 종이 위에 무늬 진다.바닥에 쌓인 책들이 탑처럼 높아졌다. 묵직한 서사가 초석이 된다. 그 위에 처마의 날렵함처럼 잘 써진 글들이 감탄을 자아내며 층을 이룬다. 수필의 근간을 만들어 갈 수필들이 한 층, 한 층 높이를 만든다. 그리고 어떤 책은 풍탁이 되어 바람이 지나갈 때면 청아한 소리로 세상에 한 줄기 고운 바람이 된다. 탑 꼭대기에 이르러 당대에 이름 석 자를 논할 문장가가 쓴 글이 떡하니 차지한다.그러고 보니 각각의 수필은 모두 그 사람의 사상, 문학에 대한 열정, 그리고 평생의 철학이 글자를 통해 우러났다. 때론 흥미롭게 가끔 눈물을 머금게 하고 파안대소를 낳게 한다. 어디 그뿐이랴. 황제에서 철학자, 교수와 소설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써놓았다. 에세이는 바로 삶을 우려낸 곰국 같은 글이다.나의 이야기에서부터 부모, 형제, 친구와 스승의 이야기다. 이웃과 고객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주인공도 다양하다. 작고 사소한 이야기부터 큰 사상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삶의 희로애락이 그 속에서 춤을 춘다. 들판에 핀 꽃 한 송이나 길가의 은행나무나 나무 백일홍과 다르지 않을 우리의 인생이 긴 강물처럼 풀어져 흐른다.흐트러지지 않도록 빨간 노끈으로 묶어보니 결코 작은 양이 아니다. 책장 두 개 분량의 책이 나를 빤히 본다. ‘어쩔거냐고? 너 또한 세상 어느 구석진 자리 시끄러운 자리에 냄비받침처럼 쓰일 이름자 하나 갖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다. 오죽하면 냄비받침이란 책 제목을 내놓았을까. 세상을 꿰뚫어 본 혜안이 아닌가. 그 책은 차마 노끈으로 묶을 자신이 생기지 않는 동류의 아픔이 느껴졌다. 배문경수필가 혼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는 사이 책탑은 쌓여가고 내려놓지도 펼치지도 못하는 작금의 사태에 커피 한잔을 마시며 창밖을 본다. 한 사람의 전 생애가 담긴 자서전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기막히고 답답한 사연이 녹아있다. 나의 동감 없이 서운해할 누군가의 진심 어린 마음을 나누어 가져야 하지 않을까. 비슷하지만 조금씩은 다른 훈계도 있다. 삶의 지혜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곁에 많다. 따뜻한 커피 향기 같은 내용이 한 스푼의 설탕만 넣으면 하루가 행복할 그런 수필이 나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책탑을 다시 바라본다.내가 저 무거운 탑을 아파트에서 땅으로 내려놓으면 경비아저씨는 부녀회와 얘기해서 종이 무게로 몇 푼에 팔 것이다. 마음의 무게는 정녕 사라지고 활자의 무게마저 무시된 채 종이의 무게만큼 금이 그어진다. 나의 책조차 누군가에 의해 쓰레기통에서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버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온 생애가 녹아있다고 발문에 써놓았던 책은 김칫국물에 버무려져 빗물에 녹아 내려지고 구겨진 채, 아이쿠.책탑은 높아져 가는데 현관은 멀기만 하다. 지인의 북카페에 연락해서 무료 나눔을 하고 싶다고 했다. 차 한 잔 마시며 풍경 한 번 책 한 줄 읽으면 좋을 것 같았다. 차 트렁크에 실으며 그간 넘치도록 받은 관심에 감사하며 힘들게 책을 옮겼다. 카페 창가로 햇살이 한 줌 들어오더니 음악에 섞여 커피 향이 짙다. 커피와 어울리는 수필 한 편을 꺼내 읽어본다. 자리 때문일까. 글이 노랑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정원에 심어진 진분홍색 송엽국과 우단동자와 수레국화 사이를 오간다.무너진 책탑의 일부분이 꽃들 사이에서 배시시 웃고 있다.

2022-07-13

여름과 생존수영

“수도꼭지를 튼다. 그때 아주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투명한 것이 주르르 떨어졌다. 나는 그걸 곰곰이 노려본다. 손으로 건드린다.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물이…. 젤리 같으면 좋겠다. 앗, 몰랑몰랑 쫀득쫀득. 물이 모래알처럼 차르르 쏟아진다. 죽처럼 뚝뚝 떨어진다. 못처럼 쨍그랑 떨어진다. 깜짝 놀라 수도꼭지를 잠근다. 두 손으로 붙잡고 두근두근 돌린다”어린이 과학동화 ‘물은 예쁘다’의 한 구절이다. 아이들이 물을 경험하며 느낀 점을 표현한 글로, 물의 다채로운 성질들이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으로 펼쳐진다. 초등생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자 물의 또 다른 모습이 표출됐다. 아들에게는 물이 파란색이었나보다.어렸을 때부터 아이는 유난히 물놀이를 좋아했다. 양수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물속에서 편안함과 포근함을 느낀다는 육아서적의 조언대로, 욕조 한가득 물을 받아 물놀이를 하곤 했다. 소리를 지르며 물장구 치고, 또 까르르 웃던 아이는 어느덧 생존수영을 배울 나이가 됐다. 학교에서 잎새뜨기를 배운 첫 날, 아이는 처음으로 물놀이의 공포와 재미를 동시에 느낀 듯 보였다. 온 몸에 힘을 빼고 둥둥 떠서 에너지를 최소화하며, 구조를 기다리는 잎새뜨기(생존수영의 일종). “엄마, 여름바다는 갑자기 사람을 휩쓸어간데. 그럴 때 허우적거리지 말고 이렇게 누워서 떠 있으면 된대” 이안류(빠른 속도로 해안에서 바다로 흐르는 좁은 해류) 상황에서 생존수영을 배웠는지 아이는 약간의 공포를 상상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다행히도 아직 생존수영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지는 않았다.본격적인 여름이다. 땀을 흘리고, 물놀이가 일상인 계절이다. 계곡과 바다는 물놀이 온 이들로 가득하다. 서핑과 카약, 요트, 윈드서핑 등 레저 활동을 즐기는 이들로 해수욕장은 이미 만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구명조끼 착용법 등 수상안전에 관한 설명이 이어진다. 각종 리플렛과 안전구호들이 해수욕장 곳곳에서 눈에 띈다. 최근 5년간 어선 해상추락 사망자의 97%, 비어선 해상추락 사망자의 100%가 구명조끼 미착용이라고 한다. 어떤 형태의 물놀이든, 낚시든 ‘안전’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매년 100명 안팎의 소중한 생명이 해양사고로 세상을 등진다. 특히 요즘은 해양레저 활동의 증가로 그 위험도가 더 높아졌다.해양수산부가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올 여름 해양사고 예방 및 방지를 위해 ‘대형사고 예방을 위한 취약선박 안전관리 강화’와 ‘인명피해 유발 안전사고 및 빈발 선박사고 중점관리’, ‘여름철 위험요인(태풍)대비 대응태세 확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중 특히 눈여겨볼 것이 3번째 여름철 위험요인 대비 대응태세로, 찾아가는 해양안전체험시설 운영이다.해양수산부는 전국 각지에 위치한 물놀이 시설 6곳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해양안전체험시설’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구명조끼착용법과 구명뗏목 작동 및 탑승, 생존수영 등 배울 수 있다. 또 가상현실 체험장과 해양안전 전시관도 함께 설치돼있어 여객선 화재 사고 발생 시 비상탈출 등을 가상현실로 체험해볼 수 있다. 비상 상황 시 구명설비와 구명뗏목 내 설치된 생존용품의 위치와 용도도 알아볼 수 있다. 정현미작가 여름 휴가철 대비 여객선 특별안전점검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얼어붙었던 여행수요가 폭발하면서 여객선을 이용, 섬을 관광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2017년 1천690만 명을 육박했던 여객선 이용객은 코로나로 급감하다 최근에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안전에 만전을 더해야 하는 이유다. 이에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은 연안여객선 특별안전점검에 나서고 있다. 기관과 항해설비 등을 살펴보고 태풍발생 상황 등에 대비한다.사실 여객선은 우리에게 이중적인 함의로 다가온다. 섬을 잇는 낭만의 대명사이자 사고위험이 넘실대는 수단이다. 구명뗏목의 위치와 사용법을 면밀히 살피는 데에는 아픈 과거의 교훈도 숨어있다. 잎새뜨기를 배우면서 아이가 바다의 위험성을 체감했듯이, 각종 안전설비와 비상시 대피요령 등을 접하면서 우리 역시 조용한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행길에 오른다. 여객선 갑판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난다. 바다가 주는, 물이 주는 무정형의 느낌은 미지의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망망대해의 압도적인 힘에 감탄하고, 동시에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불안하다. 바다가 내어주는 품에서 마음껏 놀기만 하면 좋으련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아이는 8살 때 바다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갖기 시작했다. 뭐든 한없이 좋은 건 없는 모양이다. 곧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다. 한없이 즐기는 대신 ‘안전’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에게 뼛속까지 희극인 여름 휴가철이 되었으면 한다.

2022-07-13

교육은 어디로 가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 세상이 어지럽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정치와 끝없이 힘만 드는 경제. 약속을 저버리는 정치를 어떻게 믿으며 나아지지 않는 경제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어른도 믿을 수 없는 게 정치라면 다음세대에게 우리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게 경제라면,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나. 약속을 지키는 성실함과 차곡차곡 모으는 꾸준함이 민생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공약을 파기한 정치인들이 진정어린 사과나 진솔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경제현상이라고 해도 오르는 물가와 어지러운 집값은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어지럽힌다.다음세대를 기르는 우리의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세상모습 그대로 거짓말과 혼돈을 주입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바르고 성실하며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도록 가르쳐야 하는 학교는 날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교실에서 이야기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을 매일 만나는 선생님들은 오늘도 힘들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일하지 않는 어른들을 아이들은 눈치채지 않았을까. 교육은 학교만 하는 게 아니다. 집과 동네에서 만나고 스치며 세상을 배운다. 미디어와 언론은 아이들에게도 하염없이 열려있다. 숨길 수도 없고 감춰지지도 않는다. 세상의 부끄러움과 세상의 어두운 구석은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노출되어 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 전혀 딴판이라면, 그런 교육을 우리는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왜 학교에 가는 것일까.교육적 견지에서 사회적 각성이 일어야 한다. 사회적 가치가 바로 서지 않고는 정상적 교육이 불가능하다. 선동과 기만이 그득한 세상에서 성실과 정직을 가르칠 방법이 없다. 혼돈과 격동만 가득한 일상에서 안정과 평화를 이야기할 수가 없다. 꿈과 비전이 야심과 욕심으로 변질되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용기와 상상력이 술수와 기만으로 해석되는 가르침은 교육이 아니다. 사람을 기르는 게 교육이지만, 고르지 못한 텃밭에 온전한 교육이 설 자리는 없다. 세상을 바꾸는 게 교육이지만 교육을 잘못 이해하는 세상도 문제가 아닐까. 사람을 도구화하는 교육은 부적절하다. 교육은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야 한다.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키워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도록 이끌어야 한다.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세상이 어지러워도 흔들리지 않을 용기를 가르쳐야 한다. 눈속임이 가득한 세상에 진정어린 정직함을 길러내야 한다. 서로서로 흉내나 내는 세파에 든든한 상상력을 전해주어야 한다. 다음세대의 시선이 넓은 세상을 향하도록 길러야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우리는 좁은 우물에 갇히지는 않았을까. 세상을 등진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는 교육이 되어야 하고, 무너진 세상을 바로잡는 교육으로 일어서야 한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던지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비뚤어진 정치와 어지러운 세상에는 교육이 희망을 던져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세상이 선다.

2022-07-13

인류최대 우주망원경 ‘제임스 웹’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인류 최대 우주망원경 ‘제임스 웹’이 작동 이후 처음으로 관측한 우주 사진이 11일(현지시간) 공개돼 화제다. NASA가 가장 먼저 내놓은 사진은 ‘남쪽 고리 성운’이다. 약 2천 광년 떨어진 돛자리에서 죽어가는 별 주변으로 가스구름이 팽창하는 곳이다. 다음으로 공개된 우주의 신비는 춤추는 은하였다. 약 2억9천만 광년 밖 페가수스자리에 있는 ‘스테판의 오중주’(Stephan’s Quintet)를 찍은 사진이다.이 소은하군은 1877년 최초로 발견됐고, 은하 5개 중 네 개가 서로 중력으로 묶여 근접했다 멀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NASA는 별들의 요람으로 잘 알려진 용골자리 성운이 품은 ‘우주 절벽’과 아기별들의 숨 막히는 사진도 여러 장 내놓았다. 무정형의 용골자리 성운은 지구에서 약 7천600 광년 떨어져 있으며, 밤하늘에서 가장 크고 밝은 성운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성운은 태양보다 몇 배나 더 큰 대형 별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NASA는 또 웹 망원경을 통해 지구에서 1천150광년 떨어진 외계행성 WASP-96 b의 분광 자료를 분석한 결과, 수증기 형태의 물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과학계에선 웹망원경이 빅뱅 이후 초기 우주에서 별과 은하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보여주는 모습은 물론 외계 행성에서 물의 존재를 확인하는 이미지를 포착함에 따라 우주의 탄생 및 진화와 외계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규명하는 데 큰 진전을 기대하고 있다.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우주 망원경인 웹 망원경은 작년 12월 우주로 발사됐고, 올해 2월 지구에서 약 160만㎞ 떨어진 ‘제2 라그랑주 점’(L2) 궤도에 안착했다. 우주의 신비를 밝혀줄 우주망원경에 거는 기대가 한껏 부풀어오른 요즘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7-13

윈도우 스트라이크

김규인 수필가 우리나라에서 새 800만 마리가 한 에 충돌사한다. 세계에선 6억 마리의 새가 한 해에 충돌로 죽는다. 소음을 막기 위한 거대한 유리 장벽과 크고 작은 건물의 유리창에 부딪혀 죽음을 맞는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든 각종 구조물은 마음껏 하늘을 날아야 할 새에게는 넘지 못할 장벽이다.하늘 높이 나는 비행기, 전기를 나르는 고압선과 전깃줄, 고층에서 저층에 이르는 각종 건축물의 유리창까지 어느 하나 새에게 우호적인 환경은 없다. 수천 ㎞를 날아 쉬어야 할 새는 천적과 인간의 구조물에 몸을 지키는 데도 힘이 든다. 하늘은 새의 영역이다. 먹이를 찾아 먼 길을 날아와서 새끼를 부화시켜 키우고 다시 길을 떠난다. 어미 새를 따라 늘 같은 하늘길을 따라간다. 새 중에는 어미가 앉았던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먹으며 그렇게 하늘을 터전으로 살아간다. 땅 위에 삶의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 밭을 일구어 먹을 것을 얻고 불을 지펴 끼니를 때운다. 두 발로 길을 내어 집과 일터를 오간다. 야생 동물을 쫓을 때도 두 발은 땅을 딛는다. 땅에서 태어나 땅을 딛고 살다가 땅에 묻히는 것이 인간의 영역이다.하늘을 쳐다만 보던 인간이 높이 연을 날리고 별을 따려고 화살을 쏜다. 하늘로 높이 집을 올리다가 발이 땅에서 떨어진다. 인간의 욕망은 건축물의 규모를 키우고 하늘로 길을 낸다. 사람의 건축물이 높이를 더하는 날, 새와 인간의 영역이 충돌한다.새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은 인간이다. 땅을 밟고 살아야 하는데 하늘을 날고 구조물을 만들며 조금씩 침범한 것이 이제는 새가 날 수 있는 공간마저 빼앗는다. 이제 인간들은 자신들의 공간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한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 싸움을 걸지 말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인간의 이기적 산물인 유리창을 구별하지 못하는 저 선량한 생명체에게 무어라 사과의 말은 해야 하지 않을까. 지구의 모든 자연환경을 자기 것인 양 사용하는 이 무법자에게 신은 아무런 말이 없다. 인간의 염치만을 기대하며 기다리는지도 모른다.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같은 지구를 살아가는 삶의 동반자에 대한 죽음에 한마디 말도 없는 존재가 무슨 영장이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스스로 쓴다는 말인가. 신이 그러하듯 새들도 사람의 염치를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만하고 우리들의 공간을 같이 나누어 쓰자.인간들의 염치는 지금 새들의 죽음보다 더 처참하다. 염치를 지하 감옥에 유폐시켜 놓고는 광란의 질주를 벌인다. 얼마나 많이 죽이는지, 그것이 문명 선진국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친다. 탐욕스러운 자본주의는 오늘도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며 인간의 주머니만을 탐할 뿐 빈소조차 없는 새들의 죽음에는 애써 외면한다.감옥에 갇힌 우리들의 염치를 풀어주고 새에게도 날 수 있는 자유를 주자. 유리창을 새들이 볼 수 있게 하자. 소통하지 않는 인간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으로 인해 너무도 많은 지구의 생명체가 힘들어한다. 지구도 이제는 인간 편이 아니다. 모두가 너무 지쳐간다.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2022-07-13

정해진 미래와 나비 효과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며칠 전인 7월 11일은 ‘세계 인구의 날’이었다. 1987년 7월 11일에 유엔개발계획(UNDP)은 세계 인구가 50억 명을 넘자 이날을 지정해서 기념했다. 원래는 인구 증가로 인한 환경 파괴, 자원 고갈, 식량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제정했지만, 현재 선진국들은 오히려 저출산 현상을 염려하고 있다. 늘어도 고민, 줄어도 걱정인 것이 인구 문제의 딜레마이다.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지난해 국내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작년과 재작년의 출산율은 세계 198개국 중에서 연거푸 꼴찌였다. 올해 한국인의 중위 연령은 45세로 더 높아졌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인구는 2067년에 3천900만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지난달에는 필자가 살고 있는 포항시의 인구가 50만명 아래로 감소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50만 붕괴의 카운트다운은 시작됐다. 포항시는 그간 총력을 다했지만 대세를 막지는 못했다. 행정 권한과 정부 지원금 등의 축소를 막기 위해서는 2년간의 유예 기간 동안 50만 인구를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비수도권 지역이 처한 현실의 여건은 그리 녹록지 않다.인구 문제를 이야기할 때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의 조영태 교수가 말했던 ‘정해진 미래’라는 담론이 자주 사용된다. 이 말을 언뜻 들으면 비관적 결정론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조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정해진 미래’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정해진 것은 사회적 미래일 뿐, 개인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인구는 정해진 시간표대로 진행하지만, 미래를 선택하는 개인들의 삶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최근 인구 감소로 고민에 빠진 포항시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2020년에 결혼하면서 포항 시민으로 정착한 정보라 작가의 소설집 ‘저주토끼’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로 선정된 것이다. 포항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사랑에 빠져서 포항에 왔는데 어느덧 포항과 사랑에 빠져 버렸네요”정보라 작가의 부커상 수상은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현재 정 작가는 포항에서 소재를 취한 작품을 집필해 나가고 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포항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정 작가처럼 포항에 이주해서 지역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나가는 인물도 있다. 난 자리를 서운해하지 말고 든 자리를 귀하게 여기다 보면 지방의 인구 문제에 대한 해법을 의외의 장면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저출산과 고령화는 우리 사회의 정해진 미래에 속한다. 인구와 자원의 수도권 과밀화 현상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난제이다. 그런데 우리는 “포항만큼 SF에 어울리는 도시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정보라 작가의 창작 활동이 불러일으킬 나비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때로는 도시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이 지역에 대한 개인의 꿈과 열정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2-07-13

그 섬에 가고 싶다

섬, 이라고 소리 내 발음하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체온이 조금 내려간다. 한 여름 무더위와 열대야로 고생할 때 써먹기 좋은 방법이다. 섬은 나른한 꿈의 세계, 모든 생각이 평화로운 비무장지대다. 그럼에도 섬에서 나는 죄 지은 것도 없이 죄인이 된다. 수평선을 훔친 내 눈이 푸른 수의를 입고 푸르디푸른 감옥에 갇힐 때,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나기도 싫은 자발적 징역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섬에 가면 그냥 눌러앉고 싶어진다.나는 섬을 사랑한다. 내 몸에는 섬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전남 완도의 작은 마을 초평리가 엄마의 고향이다. 그러니까 섬은 일종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살면서 수많은 섬을 여행했다. 제주도, 가파도, 마라도, 지귀도, 우도, 추자도, 울릉도, 덕적도, 비진도, 사랑도, 가거도, 완도, 청산도, 보길도, 외도, 홍도, 만재도, 위도, 개야도, 녹도, 초도, 강화도, 교동도, 거금도, 식도, 금오도… 이국의 섬들도 아름다웠다. 크레타, 산토리니, 카프리, 바이칼 알혼… 그러고 보니 모두 사람이 사는 섬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 무인도에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가서는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섬이라는 운명이 혹 무인도 표류로 이어지진 않을까, 가끔 걱정하며 상상하곤 한다.“무인도에 간다면~”으로 시작하는 질문은 만국공통 게임일 것이다. 무인도에 간다면 꼭 가져갈 세 가지로 낚싯대, 라디오, 가족사진을 꼽는 나는 ‘현실 반 낭만 반’적인 사람 같다. 집이야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이용해 대충 만들고, 식수는 코코넛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명색이 전문 낚시인인데, 낚싯대 하나만 있으면 식량을 확보하는 건 자신 있다. 라디오는 세상 소식을 알기 위해 필요한 물건이지만, 음악을 듣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음악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가족사진은 그리움을 달래주고,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환기시켜줄 것이다.인터넷에 ‘무인도 가는 법’을 검색하면 인천 팔미도나 사승봉도, 실미도 관광 상품이 안내된다. 무인도도 관광지화된 것이다. 아니면 망망대해에서 표류해 기적적으로 섬에 닿는 것이 무인도에 갈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다. 둘 다 싫다. 관광 상품은 동물원에 갇힌 아프리카 코끼리를 보는 듯한 슬픔을 일으킬 것 같고, 표류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어차피 갈 수 없다. 왜냐하면 무인도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들어오는 순간 유인도가 되는 무인도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비실재의 세계다.나에게 있어 사랑이란 무인도를 무인도로 남겨두는 일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내 사랑은 혼자 하는 놀이, 혼자 앓는 열병이었다. 짝사랑의 대상에게 차마 마음을 말하지 못했다. 말하는 순간 사랑이라는 환상이 깨질까봐, 혼자 설레고 혼자 황홀한 세상이 물거품처럼 사라질까봐 그저 상상의 영역으로, 어딘가에 있다는 아름다운 섬으로 남겨두는 쪽을 택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때로는 용기를 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고백하면 그녀들은 멀리 떠나고, 나는 슬픔이라는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난파선, 아니 내 자신이 아무도 찾지 않는 무인도가 되었다. 사랑을 고백하지 않으면 그녀가 결코 닿을 수 없는 무인도로 영영 남고, 사랑을 고백하면 내가 무인도가 되어버리는 이상한 바다에서 청춘을 보냈다. 어느 시절에는 뜨겁게 연애하기도 했지만, 사랑이란 늘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우리를 추락시킨다. 멀리서는 평화롭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섬에 막상 들어가 보면 뱀, 전갈, 독거미, 불개미가 득시글하고 뜨거운 뙤약볕에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나에게 사랑이라는 섬은 잔혹했다.지난달에는 연평도에 농어 낚시 다녀오고, 통영 연화도에 전갱이 잡으러 갔다 오고, 며칠 전에는 제주도에 가서 한치 잔뜩 낚아 왔다. 다음주에는 고흥 나로도에 민어 잡으러 간다.이 섬에서 저 섬으로 신나게 낚시 다니다 보니 벌써 7월, 30대의 마지막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다섯 달만 지나면 마흔이다. 정신 차리고 연애를 모색해야 할 때다. 노총각으로, 무인도로 영영 남고 싶지 않다. 내 생이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이어선 곤란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정착할 수 있는 “그 섬에 가고 싶”다.

2022-07-12

이상하고도 특별한

이상하다는 건 뭘까. 사전에선 정상적인 상태와 다르다, 또는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르다는 의미를 뜻한다. 유의어로는 독특하다 괴상하다, 특이하다라는 단어들이 뒤따른다.ENA 채널 드라마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선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팩트럼을 동시에 가진 변호사 ‘우영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영우는 한번 본 것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다. 5살부터 법조문과 판례문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달달 외우는 명석한 두뇌를 지님과 동시에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 수석 졸업, 변호사 시험은 1500점 이상의 점수를 받으며 천재의 면모를 보여준다.27살이 된 영우는 대한민국 최초의 자폐인 변호사란 타이틀을 따내며 법무법인 한바다에 인턴으로 입사한다. 하지만 대형 로펌에서 살아남기란 그리 녹록치 못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은 거꾸로 읽어도, 똑바로 읽어도 우영우라 소개하며, 갑작스레 고래 이야기에 푹 빠져서 대화의 흐름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길을 가다 영우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한 발자국 옆으로 비켜서서 걸을지도 모른다. 영우는 모든 감각을 과민하게 느끼기 때문에 출근길에도 극도로 예민해져선 몸에 힘을 잔뜩 준채로 어색하게 걷는다. 회사에 도착해선 회전문을 통과하지 못해 문 앞에서 서성인다. 어렵사리 회사 건물에 들어가도 자폐 스펙트럼 증상 중 하나인 반향어(상대방의 말을 따라하는 행위)를 사용하여 주위 사람을 난처하게 한다.영우를 가장 위기로 몰아넣는 건 사람들의 시선이다. 일하는 변호사가 아닌, 자폐를 가진 사람으로 많은 이들이 지나치게 영우를 배려하거나, 반대로 무시 하거나, 정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변론을 하지 말아달라는 편견과 멸시를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하지만 영우는 본인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는 동시에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 또한 잘 알고 있다. 누군가는 상식에 벗어나는 일이라 단정 지으며 사건을 그간의 규칙에 맞춰 해결하려하지만, 영우는 그렇지 않다. 정형화된 틀이나 선입견이 영우에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고 결정적인 핵심 키를 찾아 불리한 위기를 유리한 기회로 가볍게 뒤집는다.장애에 대한 시선은 영우에게만 주목되지 않는다. 1화에선 노년 여성이 등장하고 2화에선 성소수자, 3화에선 영우와 같은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지만, 지능이 높지 않은 김정훈이 등장한다. 영우는 세상의 바깥에 밀려난 이들을 같은 시선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려 집요하게 애쓴다. 그 과정에서 세상의 많은 이들이 장애를 다루는 태도나 인식이 너무나 미흡함을 극명히 보여준다.‘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지난 6월 29일 수요일에 시작했으며, 스카이TV가 운영하는 ENA 채널을 통해 방송되고 있다. 닐슨코리아 전국유료가구 기준에 따르면 1회엔 0.9%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2회에선 1.8%, 3회에선 4.0%, 그리고 4회만에 5.2%라는 이례적인 상승세를 보여주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드라마가 뜨겁게 주목받으면서 많은 이들이 영우에게서 위안을 느낀다고 한다. 거듭되는 차별과 실패로 위기를 마주해도 영우는 엉뚱하고 유쾌하게 정의된 규칙과 틀을 마구 깨부순다. 그 과정이 과장되었다거나 억지스럽지 않다. 섬세하고 씩씩하게 문제를 해결해나가며 그간 영우를 편견으로 바라보았던 주변 인물들과 시청자까지 자신의 편으로 이해시킨다.나와 다름을 인지하고 이해하려는 데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간 내가 갖고 있던 지식과 선입견을 모조리 벗어나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며 장애는 무조건 보호하고 연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무작정 선의를 내보이는 건 오히려 무심히 상처를 줄 수 있단 걸 깨달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최선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이상한, 남다른, 독특한, 이라는 프레임 안에 가두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이다.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며,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깊이 공감할 때에 세상은 아주 조금씩 변화하여 단단해진다. 이러한 드라마를 마주하면 크게 안심이 된다.

2022-07-12

국민의힘 중진, 지금 세몰이할 때인가

심충택 논설위원 요즘 국민의힘 원내모습을 보면 이준석 대표를 쫓아내고 즐기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 대표 지지자 입장에서는 집권여당에 등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과 가깝다는 당 중진들이 이 대표가 그동안 얻어놓은 민심이 돌아서는데 대해 아무 감각이 없는 것 같다.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지난 주 이 대표가 당 윤리위로부터 ‘당원권 6개월 정지’ 중징계 조치를 당한 바로 이튿날 대대적인 지지자 모임을 가졌다. 윤 대통령의 왼쪽팔이라는 그가 야유회를 하면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도대체 무엇일까. 장 의원은 윤 대통령 당선인 시절 비서실장을 하면서 ‘반(反)이준석’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그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여원산악회’가 2년 7개월 만에 다시 출발했다. 1천100여 회원이 버스 23대에 나눠 타고 경남 함양 농월정으로 향했다”는 글을 올리며, 세력과시를 했다. 남녀 회원들과 포옹하며 어깨동무하는 사진도 올렸다.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으로 당·정 모두 시름에 빠져 있는 상황을 뻔히 알면서 야유회 장면을 중계라도 하듯 스스로 홍보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지낸 안철수 의원도 이 대표 중징계 직후 기다렸다는 듯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그는 여당에 입당한 후 어제(12일) 처음으로 토론모임을 주최하기도 했다. 이 토론회는 차기 당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본격적인 세 결집에 나서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이 대표 중징계 직후의 장제원·안철수 의원 행보는 배현진 최고위원 등 일부 ‘친윤계’ 의원들의 신중한 모습과 대조된다. 배 의원은 “당내 문제로 인해 정부 운영의 동력을 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많은 걱정을 끼쳤다는 것에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 송구하다”며 자세를 낮췄다. 공감이 가는 태도다.지금 윤 대통령은 여당의 내분과 경제침체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며 위기에 빠진 상태다. 그제(11일)는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리얼미터가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천5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윤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37.0%,‘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57.0%로 나왔다. 특히 대구·경북(9.6%p)과 20대(12.9%p)의 지지율 하락 폭이 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이러한 위급한 상황속에서도, 명색이 대통령 측근이라는 당 중진들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는 일에 바빠 국민여론을 무시하는 행위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지금 집권여당 구성원 모두는 2년후로 다가온 총선승리를 위해 당의 혁신과 외연확장에 집중할 때다. 국민의힘 지지자들 중 상당수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의 1등공신인 이준석 대표가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은 것에 대해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적어도 새 정부와 국민의힘 미래를 걱정하는 당 중진이라면 민심을 정확하게 읽고 진중하게 처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2022-07-12

대구시 시차출퇴근제

홍준표 대구시장이 취임하면서 내놓은 각종 개혁조치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치가 높다,대구시 산하 공공기관의 통폐합이나 대구시 조직의 슬림화, 전문직 인사의 중용 등은 과거 민선 때와는 다른 혁신책이란 점에서 특별히 주목을 끌고 있다. 대구시민들도 이런 개혁조치가 성공적으로 이뤄져 쇠퇴일로에 있는 대구경제가 획기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홍 시장의 개혁조치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대구시 공무원의 시차출퇴근제다. 홍 시장은 대구시 공무원이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를 준수하면서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도록 권장했다.유연근무제의 일환인 시차출퇴근제 시행으로 대구시 직원들은 앞으로 오전 7시에서 오전 10시 사이 출근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됐다.특히 어린 자녀를 둔 직원의 육아문제가 시차출퇴근제 도입으로 많은 도움이 될 거란 소식이다. 홍 시장 본인도 오전 10시 출근, 오후 7시 퇴근으로 시차출퇴근제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또 대구시 공무원의 불필요한 야근과 휴일근무도 없애겠다는 방침을 밝혀 무작정 일만하는 공직사회의 분위기 쇄신에 변화가 일 전망이다.공직사회에 유연근무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경직된 조직문화 등 여러가지 이유로 그동안 실제 활용률은 매우 낮았다. 대구시의 시차출퇴근제 활용률은 3% 수준이다. 홍 시장은 제도 도입을 계기로 이를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하니 공직사회로 봐선 가히 파격적 조치라 할 수 있다.대구시의 이번 조치에 타 지자체의 관심도 높다고 한다. 시차출퇴근제도 워라벨 문화의 한 영역이라 보면 큰 변화의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7-12

정리정돈이 중요하다

조현태 수필가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는 중에 ‘부자가 되는 방법’이 화제가 되었다. 한 선배가 조금은 엉뚱하다 싶은 방법을 제시했다. ‘부자가 되려면 정리정돈을 잘 해야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니까 돈을 많이 모으려면 돈이 차곡차곡 쌓여있어야 한단다. 즉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돈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그것이 현금이든 주식이든 또는 사업이든 직장 업무이든.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현금이나 주식은 적재적소에 명료하게 사용되어야 하고, 개인사업은 빈틈없는 설계와 함께 야무지게 관리할 수 있도록 정돈할 필요가 있다. 직장 업무도 마찬가지다. 한 직원이 맡은 일이 까다롭고 복잡할수록 순서와 절차가 반드시 필요할 터이다. 그래야 업무를 처리해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될 것이요, 업무처리가 완벽할수록 능력이 인정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보면 명예나 권력이나 예술에 이르기까지 정리정돈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명예’가 포함되는 문구를 보면 명예를 높이다, - 더럽히다, - 되찾다, - 실추시키다, - 얻다, - 지키다, - 훼손하다, - 걸다, - 빛내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동사형으로 표현되는 주체가 ‘명예’라고 보면 어떤 행동 여하에 따라 모두 달라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돈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주어의 가치가 결정된다 하겠다.권력이 무엇인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을 ‘권력’이라 한다.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지닌 강제력이기도 하다. 이 또한 정돈되지 아니한 국민에게는 그 가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민중이 권력을 인정하고 수용하려면 정리정돈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에 따라 권력을 인정한다.마찬가지로 스포츠니 문화니 예술 등도 예외는 아닐 성 싶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이 예술이다. 작품에 대하여 훌륭하다며 감동하고 칭찬한들 정돈되지 아니한 수용 앞에는 별 가치가 없다. 감동과 칭찬이 뒤죽박죽이라면 온전한 예술이라 할 수 없지 않은가.돈도 명예도 권력도 백사장에 묻힌 동전만큼 찾기가 어렵지만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기도 얻기만큼 힘들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지 못하고 깡그리 잃어버리는 순간을 맞는 것은 왜인가. 당사자 스스로 정돈된 상태라고 착각하는 순간, 주변도 함께 정리된 줄로 한 번 더 착각하기 때문이다. 주변과 자신 사이에 정리정돈이 되지 못한 탓이다.예컨대 이인삼각 경주를 생각해보자.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되어야 올바른 달리기를 할 수 있다. 제각기 판단하여 옳다고 여기는 대로 행동하면 반드시 함께 넘어진다. 그러므로 구경꾼도 경주자와 일치하게 구령을 외쳐주고 다함께 뛰는 마음으로 응원한다. 그래야 목표점까지 완주할 수 있다. 발목을 묶은 두 선수는 물론이요 응원하고 진행하는 모든 사람들의 맡은 바를 잘 수행하는 그것도 정리정돈이라 할 수 있다.개인이든 국가든 지구촌이든 올바르고 아름답게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리정돈을 잘 하자고 권하고 싶다.

2022-07-12

이상한가요?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버스를 기다리다가 /‘병신인가 베’하며 쳐다보는 눈길이 / 부담스러운 날은 / 길 위에 돌부리가 / 무진히도 많이 솟아났다 // 보이는 것은 / 어느 하나 다를 게 없다 / 세상이란 다 이런 건가 보다 / 눈멀고 귀먹어 살면 그만인 것을”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최명숙 시인의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들은 절로 떠난다’(미리내, 2001)에 수록된 시 ‘희망’의 첫 2연이다. 뭔가 ‘나’와는 다른 모습, 어쩔 수 없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움직임에 던져지는 타인의 시선에 시인은 눈을 떨궈 길 위에 솟아오른 돌부리를 본다. 일상적으로 오가는 길에 돌부리가 비 온 뒤 죽순처럼 갑자기 많이 솟아오를 일이 어디 있을까마는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이 ‘유난히’ 더 부담스럽게 느껴진 날이어서 그랬을 것이다.우리가 무심결에 힐끗 바라보는 눈길이, 비하한다는 생각 없이 함부로 던지는 말이 장애를 가진 이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돌부리도 되고, 가슴 깊이 꽂히는 화살이 될 수도 있다. 안 보고 안 들으면 그만이겠지만, 보이고 들리는 것을 어떻게 할까. 눈멀고 귀먹어 살자고 장애 가진 이 스스로를 체념하게 만든다면 그것 또한 말 없는 폭언이요, 행동 없는 폭행이 아닐까?UN은 1981년에 세계 장애인의 해를 선포하고, 1992년 12월 3일부터 공식적으로 세계 장애인의 날을 시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 4월 20일에 제1회 장애인의 날 행사를 열고, 10년 뒤인 1991년 4월 20일에 장애인의 날을 법정 기념일로 지정하였다. 장애인의 날이 생긴 지 40년, 법정 기념일로 지정된 지 30년이 지났다. 사람으로 치면 기초가 세워지고 홀로 설 수 있게 된다는 이립(而立)이 지나고, 흔들리지 않고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不惑)도 지난 것이다. 그러나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도, 장애자를 돌보고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도 아직 제대로 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최근 장애인이 연기자로 등장하고, 장애인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tvN 채널에서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방영한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한지민 씨가 연기한 영옥의 쌍둥이 언니 영희의 역할을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캐리커처 작가이자 배우인 정은혜 씨가 맡아 연기했다.ENA 채널과 넷플릭스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가 주인공이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태국, 대만, 일본, 베트남,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7월 9일 기준으로 넷플릭스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장애인이 주인공인 ‘아이 엠 샘’, ‘포레스트 검프’, ‘레인맨’, ‘나의 왼발’ 등의 외국 영화와 ‘말아톤’과 같은 한국 영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이 주인공이면서 더욱이 시청률 1위를 차지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TV 드라마는 이 작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하고 이러한 드라마 또는 영화를 통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장애인들에게 돌부리나 화살이 아닌 쪽으로 한 걸음씩 더 나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2022-07-12

지구온난화와 빙하 블러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기후변화로 인한 이변이 지구 전역에 벌어지고 있다. 눈부시게 하얘야 할 알프스의 만년설이 마치 피를 흘린 것처럼 붉은색으로 변하는 ‘빙하블러드’ 현상이 대표적이다.최근 이탈리아의 알프스 돌로미티 최고봉에서 빙하가 무너져내려 등반객 수십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는 참사가 일어난 것도 이 현상과 관련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새하얀 만년설이 1년 내내 쌓여있던 알프스 산꼭대기 눈밭 수 킬로미터가 붉게 변해 마치 피가 흩뿌려진 것 같다고 한다. 프랑스 연구진은 빙하 블러드 현상의 원인으로 미세조류의 증식을 꼽았다. 연구진은 알프스 지역에서 눈과 흙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바다나 호수처럼 눈 속에서도 산구아나 등 특정 미세조류의 존재를 확인했다. 미세조류가 크게 번성한 이유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와 대기오염물질 유입 등으로 분석됐다. 알프스에서 발견된 미세조류는 붉은색인 카로티노이드라는 색소를 갖고 있는데, 강한 햇빛, 특히 자외선으로부터 미세조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즉, 빙하 블러드는 스스로를 지키려는 미세조류의 생존 본능인 셈이다. 미세조류는 근본적으로 녹색이지만, 붉은 색소를 방패삼아 뒤에 숨어 있다. 문제는 빙하 블러드 현상이 기후변화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하얀 눈밭은 햇빛을 많이 반사하는데, 붉어진 눈밭은 햇빛을 덜 반사하기에 빙하가 더 빨리 녹게 되기 때문이다. 빙하 블러드는 이산화탄소 증가라는 기후변화의 결과물인 동시에 기후변화를 더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지구촌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전 세계인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7-11

나 하나 꽃 피어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우리는 거대하고 조직화된 정치문화에 압도되어 흔히 ‘나’의 능력과 존재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무력증(無力症)에 걸려 신민화(臣民化)된 시민은 주권자의 힘과 그 역할을 평가절하 한다. 권력의 오만과 독선을 내가 막을 수는 없으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치적 팬덤(fandom)들의 광신적 행태를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한다.과연 그럴까? 시인 조동화는 “나 하나 꽃피어/풀밭이 달라지겠냐고/말하지 말아라/네가 꽃피고/나도 꽃 피면/결국 풀밭이 온통/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시인은 ‘나 하나의 힘’이 매우 중요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비록 나의 희망이 작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그것이 너의 희망과 만나서 마침내 우리 모두의 희망이 될 때 풀밭은 꽃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처럼 ‘나 하나’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나 하나’가 선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철학자·정치가·과학자들은 모두가 선견지명(先見之明)을 가지고 외롭고 힘든 길은 걸어온 선구자들이다. 소크라테스는 정의와 진리를 지키기 위해 독배(毒杯)를 마셨고, 링컨은 남북전쟁을 치르면서까지 국론분열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냈으며, 코페르니쿠스는 잘못된 우주관과 세계관을 완전히 변혁시켰다. 오늘의 이성사회(理性社會)는 이 같은 선각자들의 희생과 노력의 대가로 피어난 꽃이다.‘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영감을 얻어 고향 제주에서 ‘치유의 길’을 열기 시작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올레길이 완성되자 도보여행자들은 열광했다. 전국의 자치단체들이 제주올레를 벤치마킹하여 둘레길·해파랑길·누리길·갈맷길·바래길·생태문화길 등 600여개의 걷기여행길을 조성했고, 제주올레는 일본과 몽골에 수출까지 하였다. 한 사람의 새로운 발상과 노력이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에게도 얼마나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반면에 많은 사람들의 익명성 뒤에 숨어서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는 ‘도덕적 해이’는 개인의 능력을 떨어뜨리는 이른바 ‘링겔만 효과(Ringelmann effect)’를 초래한다. 공동체에 무임승차하려는 이기주의자들은 자신의 의무와 책임은 소홀히 하고 자유와 권리만 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 팬데믹(pandemic)상황에서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는 이기적 행동이 집단감염의 확산을 초래했음을 분명히 경험했다.이처럼 ‘나 하나’의 존재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달라진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작은 하나’에서부터 비롯된다. 그 ‘작은 하나’는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고 갈파한 석가처럼 위대한 선구자가 될 수 있다. 풀밭을 꽃밭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도 한 사람의 선구적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하나가 ‘바로 나’라면 더욱 기쁘지 않겠는가?

2022-07-11

옛 자취를 돌보는 아름다운 손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만에 내연산 계곡을 찾았다. 녹음이 깃들고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골짜기가 싱그럽기만 하다. 이른 아침부터 보경사를 찾거나 계곡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걸 보니 확연히 일상의 리듬이 되살아난 듯하다. 코로나19에 억눌린 답답함을 바람 결에 날려 보내고 얼룩진 마음을 청아한 계류(溪流)에 씻어내려는 듯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사뭇 밝게만 보인다.경북 3경의 하나로 꼽히는 내연산에는 약 14km에 이르는 기암절벽의 골짜기를 따라 다양한 형태의 12개 폭포가 줄지어 있는 아름다운 갑천계곡이 있다. 연산폭포나 상생폭포 등은 협곡 사이로 물줄기가 나는 듯 떨어지는 비경으로 겸재 정선이 그린 ‘내연삼용추도’의 배경이 되기도 했었고, 천년 고찰인 보경사에는 원진국사비 등의 보물이 있는 등 자연경관과 역사, 문화재의 보고이기도 하다. 또한 계곡 곳곳에는 사연이 깃든 옛 자취들이 또 다른 보물처럼 남아있어서 흥미로움을 더해준다. 보경사 앞을 지나 상가 쪽으로 흐르는 중산보(中山洑)가 400여년 전에 설치되고 보수한 공덕을 기린 송덕비가 길섶에서 반기고, 내연산을 지키는 남녀 산신을 모신 ‘내연산 산왕대신지위’ ‘고모당신지위’ 비석이 제단과 함께 조성돼 있는가 하면, 깎아지른 바위굴의 협암수로(挾巖修路) 유공비 등이 한적한 옛길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다.관심을 갖고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거나 모르고 지낼 수밖에 없는 옛 자취에 유독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고 가꿔 나가는 손길들이 아름답기만 하다.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문화재나 유적, 유산을 소중하게 보호하고 돌보는 것은 제대로 된 역사인식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애써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선조들의 얼과 삶을 반추하고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지식과 사유의 폭을 넓히며 답사와 학습, 돌봄과 보전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포스코 문화재돌봄봉사단(약칭 포문돌)’이 그들이다.포문돌은 포항시 지정 및 비지정 문화재 등의 문화재를 보존하여 포항시의 역사와 전통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계승하기 위해 2020년 5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주기적인 모니터링과 문화재 가치, 문화의식 함양 교육, 주변 환경정화 활동 등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이 방치, 열화, 훼손되지 않도록 유지, 보존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만해도 장기면 마현리 장사랑훈도이눌공 사적비의 이정표와 안내해설판 설치, 석곡선생 묘소 이정표 보수, 칠포리 암각화군 주변 수목정리와 해설판 설치 등의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했었다.옛것을 소중히 여겨 성의껏 돌보는 것은 단순히 문화재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옛 자취를 보듬는 손길에는 옛것을 본받고 배워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근본을 잃지 않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마음이 배여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알고 알리며 보존의 가치를 높여 나가는 의미 있는 행보에 박수를 보내며,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하기를 짐짓 기대해본다.

2022-07-11

기업과 삶의 절대 악(惡), 낭비(Waste)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은 최초의 심장박동으로 시작되며 마지막 박동으로 끝난다”라고 하였다. 사람의 심장은 태어나자마자 쉼없이 뛰고, 심장이 멈추면 죽게 되는 현상을 말한 것이다.필자는 20여 년 전 심장의 소중함을 알았고, 인생의 소중함을 배웠다.그리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낭비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답은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은 시간이다 시간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시간 관리가 답이라고 본다. “세상에서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나이밖에 없다”는 말이 있듯이 성공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나에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여 낭비되는 시간이 없어야 하겠다.어떤 회사 화장실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휴지 한 장이면 충분, 두 장이면 많다. 세 장이면 낭비다. 네 장이면 범죄(犯罪)다.’ 즉 낭비와 반대가 되는 단어인 절약을 강조하였는데 낭비 = 범죄라는 수식어로 조물주가 선물해 준 모든 것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라는 멋진 말이다.인생살이에는 많은 낭비 요소가 있다. 어떻게 낭비 요소를 파악하고, 제거할 수 있는지가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을 가져다 주리라 믿는다.많은 기업에서 낭비제거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TPS 창시자 오노 다이이치는 “낭비는 비즈니스적인 손실 그 이상으로 사회에 대한 범죄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기업에서는 낭비를 절대 악(惡)이라고 인식하고 그 낭비를 찾아 없애야 한다. 낭비를 없애면 부가가치 있는 일이 늘어나 일등 기업을 만들 수 있다.기업에 있어서 낭비는 고객의 입장에서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모든 활동이다. 즉, 낭비란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할 때 이에 대해 가치를 더하지 않는 추가로 소비되는 시간, 노동, 자재 등을 의미하며, 원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된다.수십 년간 ‘낭비 없는 포항제철소’라는 슬로건으로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이끌어 온 포스코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조직별 업무의 특성과 필요에 따라 포스코의 8대 낭비유형을 정의하고 선택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철강업의 8대 낭비는 대기, 설비, 자원, 에너지, 공정, 품질, 재고, 운반에서 발생되는 낭비이다. 이런 낭비제거 활동을 통해 제조원가는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영업 이익은 증가되어 성과를 이루었다.낭비를 뿌리채 없애려면 직원들이 개선 혼(魂)으로 무장해야 하는데 개선 혼이란, 알려면 철저히 알아야 하고 알았으면 즉시 실행하고 한번 개선된 것은 절대 원위치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낭비를 보는 눈을 키우고 내 일 속에서 낭비를 찾아 없앰으로써 가치 있는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꼭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함으로써 일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인간존중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2022-07-11

서사시의 운율을 가진 매혹적인 영화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그린 나이트’는 질문이 많다. 하나의 질문이 풀리기도 전에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어떤 질문은 반복되기도 한다. 이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이다.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모든 상황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하나의 선택이 낳은 결과로 인해 다음의 원인이 되고 또 다른 선택이 주어진다. 선택의 과정, 죽음에 이르는 여정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택의 과정이기도 하다.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앞에 나무 형상을 한 녹색 기사가 연회장에 나타나 자신의 목을 치는 가장 용맹한 자에게 명예와 재물을 주고 1년 후 똑같이 자신의 도끼날을 받을 것을 제안한다. 원탁의 기사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아서왕의 조카인 가웨인이 도전에 응하고, 1년 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녹색 기사를 찾아 나선다. 숱한 무용담을 가진 원탁의 기사들과 달리 젊은 가웨인은 방탕한 생활 속에서 기사로서의 품위나 명예, 무용담 하나 없는 풋내기일 뿐이다.죽음을 건 게임에 응하게 되면서 가웨인은 기사들의 중심, 무용담의 주인공이 되지만 1년 후 명예를 지키기 위한 죽음의 여정에 나선다. 녹색 기사를 만나기 위한 여정은 순조롭지 못하다. 유혹과 금기, 고난과 역경의 과정, 수수께끼같은 사건에 휩쓸리면서 성장해가는 한 청년의 성장기처럼 보인다.1년이라는 한시적인 기간 동안 명예와 재물이 주어졌지만 그것을 온전히 완성하는 것은 게임의 규칙인 나의 목을 내놔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있다. 이 조건에 충실히 임했을 때 기사도의 중요한 덕목인 명예와 무용담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거래’의 균형이다. 주고 받는 거래의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였을 때, 그것이 기사의 명예와 도덕, 충성심으로 치환된다.가웨인이 녹색 예배당으로 녹색 기사를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들은 ‘거래’를 기반으로 하고 있 다. 내가 받은 호의, 잠자리와 음식, 사냥감과 안식처 등이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지 못함으로해서 고난을 겪고, 곤경에 처하며 여정을 이탈해 다른 길로 빠져든다. 적절한 대가는 등가의 법칙에 따른다.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다. 나의 만족이 아니라 상대의 만족이 동반될 때 거래는 성립되고, 다음 단계로 원만하게 나아갈 수 있다.영화는 이것의 어긋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반복한다. 누적된 불공정(?) 거래와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이 중첩될 때, 요행으로 비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준다. 아서왕의 여동생이며 가웨인의 어머니인 마법사 모건은 아들의 여정에 앞서 녹색 허리띠를 건넨다. 이 녹색 허리띠를 착용하면 어떠한 칼날과 도끼도 막아낼 수 있는 것으로 가웨인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소품이기도 하지만 약탈과 거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우여곡절 끝에 녹색 예배당에 도착한 가웨인은 녹색 허리띠를 착용하고 녹색 기사와 마주한다. 순순히 그의 목을 내어줄 것인가, 뒤돌아 나가 달아날 것인가. 아니면 녹색 허리띠를 풀고 순순히 도끼날을 받을 것인가.영화는 14세기 영국의 작자 미상의 서사시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를 원작으로 한다. 서사시가 그러하듯 풍성한 은유와 상징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분위기로 가득하다. 거기에 주고 받는 거래와 비겁함과 용맹함, 자연과 문명, 종교와 이교, 삶과 죽음의 이항대립들이 촘촘히 놓여 있다.극적인 플롯보다는 상징과 은유, 모호함이 가득한 영화다. 질문을 던지고 답하지 않는다. 한 예로 녹색 기사를 소환한 것은 가웨인의 어머니 모건이었다. 어머니가 왜 아들의 목숨을 걸고 게임을 시작했는가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서사시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시적인 흐름을 갖는다. 질문이 주어지지만 그 해답은 행간의 의미에서 찾아야하는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영화의 전개는 촘촘히 배치된 상징과 은유는 운율을 갖는다. 영화를 보고나면 가득했던 녹색의 이미지 사이에 펼쳐졌던 환상적이며 아름다운 장면들이 남는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2-07-11

그 길밖엔 없어 <Ⅰ>

-결국 인공 콩팥 시장의 최대 소비자는 노인들이니까요. 생체 시험이라는 것이 결국은 소비자와 비슷한 조건에서의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거든요. 젊은 사람한테 인공 신장을 달았더니 부작용 없이 오래 살더라. 이런 결론은 당장은 의미가 없는 거지요. 그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길고. 지금 인공 장기회사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육십오 세 이상 혹은 칠십 세 이상 환자들에게 시술했더니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좋고, 오래 살더라.’ 같은 결론이지요. 또 있습니다. 인공 콩팥 이식 수술을 받고 나서 치명적인 결과, 예를 들면 수술 받은 사람이 죽는다든지 하는 일이 생겨도 노인이면 다른 이유를 가져다 붙이기 편하잖아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시장이 포화되면 그때는 고개를 돌려 젊은 환자들도 쳐다보겠지만. 뭐, 세상이 그렇습니다.의사를 만나고 돌아온 허 형사는 컴퓨터에서 우현에 관한 자료를 찾아냈다. 우현은 허 형사가 조사했던 사건의 주범이었다. 인공 장기 회사에서 자사의 인공 장기를 사용해 달라 부탁하며 인공 장기 금액의 십오 퍼센트를 현금으로 의사에게 제공했던 사건이었다. 그 돈의 배분을 두고 의사들 사이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을 조사하다 드러났다. 우현은 그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우현의 단독 범행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우현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체 금액이 컸었다.허 형사가 우현에게 다시 전화를 했을 때는 우현이 실형을 살고 나온 뒤였다. 경찰에서 조사받는 동안 내가 제법 잘 대해 줬었지. 녀석이 혼자 뒤집어쓰려는 게 눈에 보였지. 우현이라면 아내의 인공 장기 이식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허 형사의 전화를 받은 우현이 다음 날 허 형사를 만나러 왔다.-그렇지 않아도 언제 한 번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려 했었는데, 먼저 전화를 주시다니. 감사합니다.-좋은 일로 만났던 것도 아닌데. 내가 잘못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마워요.허 형사가 우현을 보며 말했다.-아닙니다, 아닙니다. 좋은 일, 나쁜 일이 어디 있습니까? 허 형사님과 저와의 인연이 있을 뿐이지요. 그것보다 사모님 몸이 좋지 않다 하셨지요.우현이 서둘러 말을 꺼냈다.-사모님이라 할 것까지는 없고. 집사람이 1형 당뇨 환자야. 그런데 콩팥 기능이 한계에 다다랐다 하더라고. 의사가.허 형사가 그동안의 일을 우현에게 이야기했다. 아내의 증상, 의사가 했던 말들, 선택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허 형사가 이야기하면 우현은 그렇지요, 아, 맞는 말씀입니다, 하고 맞장구를 치며 들었다. 허 형사가 하는 이야기를 끊지 않고 모두 들은 우현이 말했다.-전화 정말 잘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인공 장기 이식입니다.감옥에서 나온 뒤 우현은 인공 장기 거래 업체를 세웠다.-허 형사님도 짐작하고 있으시겠지만, 어디 그 일이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참, 허 형사님을 믿으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지금 이거 사건 조사하시는 것 아니지요? 저를 다시 잡아가려는 건 아니겠지요?-오늘은 형사가 아니라 환자의 보호자로 상담하는 거야.허 형사가 답을 했다. 우현이 말을 이었다. 당시 회사에서 우현에게 내건 조건에 관한 이야기였다.-회사에서는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저 혼자 뒤집어쓰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기를 원했습니다.우현은 그 대가로 무엇을 줄 수 있는지 회사에 물었다고 했다.-그랬더니 겨우 오 년 치 월급을 퇴직금 조로 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는 못 한다고 했지요.우현이 요구한 것은 회사로 들어오는 중고 인공 장기의 거래를 독점할 수 있는 권리였다. 회사에서 수거한 중고 인공 장기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인수해서 외국에 다시 되팔거나 국내에 공급할 수 있는 독점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회사와 우현은 십 년간의 독점권과 삼 년 치의 월급, 정상적인 퇴직금 지급으로 합의를 했고, 우현은 감옥으로 들어갔다. 감옥에서 나온 우현은 인공 장기 거래 업체를 세웠다.-중고?허 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네. 누군가가 한 번 쓴 것이니까 중고지요. 하지만 기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안전도 그렇고.우현은 입술을 삐쭉거리고 양쪽 어깻죽지를 들어보였다.-그래도 누가 한 번 쓴 건데. 다른 것도 아니고 몸에 들어갔다 나온 건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허 형사가 우현에게 다시 물었다.-네. 그렇다니까요. 세척을 하거든요. 세척을 하고 나면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세포 하나, 단백질 한 조각 남겨놓지 않거든요. 제가 이거 한 지가 올해로 만 오 년이 다 되어 갑니다. 문제가 있었으면 벌써 난리가 났겠지요. 저는 벌써 이 사업을 접었을 거고. 주로 중국 쪽으로 많이 넘어가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제품의 질이나 부작용 관련해서 컴플레인을 받아 본 적 없다니까요.우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허 형사는 중국이니 그런 것 아니냐, 노인들한테 쓴 것이니 부작용이 생겨도 알지 못했던 것 아니냐며 물었다./김강 소설가

2022-07-11

선거는 쇼지만 국정은 현실이다

김진국 고문 우리 정치가 많이 바뀌고 있다. 옛날 문법으로는 해석하기 힘든 일들이 많이 등장한다. 세대와 젠더 갈등이 이렇게 심각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59초 쇼츠’나 ‘도어스테핑’도 전혀 짐작 못한 새 흐름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즉석 문답하는 ‘도어스테핑’을 보면 ‘59초 쇼츠’가 떠오른다. 대선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원희룡 정책본부장(현 건설교통부장관)이 불편을 이야기하다 정책 대안을 제시하면 윤 후보가 “좋아. 빠르게 가!”라며 신나게 밀어붙이는 영상이다. 도어스테핑에서도 윤 대통령은 흥분된 목소리와 제스처로 자신 있게 단정적인 답을 한다.도어스테핑은 대환영이다. 전임 대통령들은 5년 임기 동안 신년 기자회견, 취임 기념 회견을 다 합쳐봐야 8번 남짓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매일 아침 대통령과 기자가 각본 없이 문답을 주고받는 모습은 신선하다. 그 질문은 기자가 국민을 대신해 던지는 것이고, 대통령은 국민과 대화하는 것이다.그런데 지난주 잇달아 출근길 문답이 중단됐다. 지난 5일 인사 실패와 부실 검증을 묻자, 윤 대통령은 “전(前)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해 보라”고 버럭 말한 뒤 들어가 버렸다.그전에도 윤 대통령의 출근길 발언이 여러 번 입길에 올랐다.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해 그는 “과거에 민변 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다. 미국에서 검사들이 정·관계에 많이 진출하는 게 ‘법치국가’라고도 말했다. “지지율에 신경 안 쓴다”, “대통령 처음 해봐서…”라는 말도 뒷말이 무성했다.도어스테핑은 사전 각본 없는 게 매력이다. 그렇지만 너무 거칠다. 생각을 감추라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엄중하다. 적어도 그 문제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고, 참모들과 먼저 정리해놓아야 한다. 들리는 말로는 참모들이 예상 문답을 준비해줘도 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듣는 시간보다 말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도 한다. 입을 열 때마다 참모들이 해명하러 다니는 일이 반복되면 국민이 불안하다.말을 잘한다고 평가받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연설하기 전에 지하 서재에서 수십 번씩 원고를 다듬고, 연습했다. 1987년 양김이 갈라져 평민당을 만들기 전에도 수개월째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걸 들었다. 그 논리를 주변 의원들에게 세뇌하듯 퍼뜨렸고, 결국 분당했다.평생을 방송인으로 산 봉두완 씨가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한미클럽 송년회에서 할 사소한 말까지 두툼하게 시나리오를 써서 들고 진행하는 걸 봤다. 말이라면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지만 준비는 그렇게 철저했다.윤 대통령은 소탈하다. 사적인 자리라면 나무랄 게 없다. 감정을 드러내는 게 더 인간적이다. 그렇지만 기자에게 하는 말은 기자가 아니라 국민에게 하는 말이다. 국민은 TV를 통해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말한다고 느낀다. 국민은 자신에게 역정을 내는 걸로 받아들인다.취임하는 순간 국정의 모든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지난 정권이 어떤 일을 했건, 우리 역사가 어떠했건, 모든 과거가 집적된 국정을 끌고 가겠다고 맡은 자리다. 과거 정권의 잘못은 국민이 이미 선거에서 심판했다. 또 국정은 상대 평가가 아니다. 비판받을 때마다 과거 정권을 들먹이면 무책임해 보인다.윤 대통령 말은 자신감이 넘친다. 답변이 시원시원하다. 그는 오만해 보이는 서울법대 출신의 대선 징크스도 깼다. 정치 경험도 없이 짧은 시간에 바로 대통령이 됐다. 모든 게 쉬워 보일 수 있다. 이 길을 조언한 사람만 믿고 싶을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쪽에는 귀를 닫게 된다. 이런 모습이 자칫 국정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네가 뭘 알아’ 하는 식의 안하무인으로 비칠 수 있다.선거는 끝났다. 선거는 흥분 속에 치른다. 그러나 잔치 뒤의 경제와 안보는 현실이다. 좀 더 진지한 고민과 중장기 구상도 함께 보여줘야 한다. 선거는 비호감의 경쟁이었지만 이제 우리 가족의 미래를 맡길만하다는 믿음을 줄 시간이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2-07-10

자영업자·직장인 모두가 환하게 웃는 경주 만들 터

주낙영 경주시장 존경하는 경주시민 여러분! 민선 8기 경주시장 주낙영입니다. 지난 4년에 이어 앞으로 4년도 저를 믿고 맡겨주신 경주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23개 경주시 행정읍·면·동에서 모두 승리한 6·1지방선거 결과는 경주시민 여러분과 약속한 모든 공약을 지키라는 준엄한 명령입니다.또한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는 시민과 소통하며 ‘위대했던 경주’, ‘찬란했던 경주’를 바라는 경주시민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경주시민 꿈꾸는 경주의 미래는 너무나 자명합니다.직업별, 성별, 연령에 상관없이 모두가 행복한 도시, 젊은이가 돌아오는 부자 농어촌, 첨단 신성장산업 육성으로 좋은 일자리가 넘치는 경주가 바로 그것입니다.경주시민 여러분이 보내주신 한 표 한 표에 담긴 염원과 명령을 가슴 깊이 새기고, 시의회와 함께, 경북도와 함께, 윤석열 정부와 함께 오직 시민만 바라보며, 경주의 미래를 위해 약속드린 경주발전 공약을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가장 먼저 관광산업 혁신을 통해 관광객 2000만 시대를 열겠습니다.민선 7기 때부터 일관되게 말씀드렸던 관광객 2000만 시대는 정치적 구호가 아닌 역사문화도시 경주시장의 존재 이유이자, 제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업입니다.특별법 제정을 통한 ‘역사 문화 관광 특례시’ 지정 추진과 2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2025 APEC 정상회의 도시 유치를 통해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위대한 경주의 르네상스를 꼭 이루겠습니다.둘째, 첨단 신성장산업 육성과 부자농어촌 만들기, 희망무지개 7대 청년정책 추진으로 좋은 일자리 늘어나는 도시, 젊은이가 돌아오는 도시를 만들겠습니다.이미 지난해 착공한 문무대왕과학연구소와 함께 차세대 과학혁신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 미래 자동차 산업 육성, 외동산업단지 대개조 등을 통해 지역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겠습니다.지역 청년들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겠습니다.청년희망 경제 프로그램, 청년 복지 행복하우스, 청년화랑고도 커뮤니티 활성화 사업 등으로 청년들이 양질의 행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또 농업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신농업혁신타운 조기 완공과 ICT기반 스마트팜 확대보급, 동해안 어촌·어항 명품화 사업으로 부자 농어촌 만들기에도 행정력을 집중하겠습니다.셋째,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지정과 여성가족부 ‘여성친화도시’ 실질 구현을 통해 ‘온 가족 행복누리 도시’를 만들겠습니다. 그동안 빠른 속도로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누군가는 소외받는 그늘이 생겼습니다.지역사회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곧 경주의 도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필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민선 8기 모든 정책은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어렵고 소외된 분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존경하는 경주시민 여러분! 25만 시민께 약속드린 ‘더 큰 경주, 더 나은 미래’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앞으로 4년, 중단없는 경주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사명감에 어깨가 무겁습니다.비록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박 등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지만, ‘소통’과 ‘공감’ 그리고 ‘화합’을 나침판 삼아 ‘사람이 몰려오고 일자리 늘어나는 경주’라는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겠습니다.

2022-07-10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영양군 반딧불이천문대. /사진제공 = 정종훈 사진작가 하늘에 수많은 별이 알알이 박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심에서는 오염된 대기와 주위의 밝은 불빛으로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먼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욱 많은 별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별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우리 인류와 함께해왔다.인간의 상상력은 별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별자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22년, 국제천문연합학회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별자리는 88개였다. 물론 이는 서양의 기준이다. 최초의 별자리는 대략 기원전 3천 년, 메소포타미아 지방 사람들이 만들어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여러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등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기원전 7세기에 이르러 처녀자리, 사자자리 등 모두 36개의 별자리가 완성되었다. 이후 서기 2세기 중엽이 되면서 알렉산드리아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큰곰, 작은곰,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안드로메다 등을 추가하여 48개로 확정 지었다. 이후 별자리는 항해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과 더욱더 밀접한 관계를 이루게 된다. 천문학 발달에 힘입어 항로를 개척하고 신대륙을 발견하는 등 인간들이 지구 반대편까지 오가면서 새로운 별자리들을 만들어낸 것이다.우리나라에도 견우직녀 같은 이야기가 있듯 이집트, 남아메리카, 인도 등지에서도 별자리에 이야기가 입혀졌다. 전설이나 신화에 바탕을 둔 서양과 달리 동양의 별자리에는 생활과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인간 세상을 하늘에 올려다 놓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예를 들어 북극성을 하늘나라 왕이라 여기면서 그를 중심으로 하늘나라 궁전 ‘자미원’, 나랏일을 돌보는 ‘태미원’, 백성이 모여 살아가는 시장 ‘천시원’, 제사를 지내는 ‘하늘사당’ 등이 그것이다. 당연히 장군과 신하별도 있다.먼 옛날,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양이 하늘의 별자리 사이를 지나는 길을 일러 황도(黃道·ecliptic)라고 했다. 태양이 지나는 길에 물고기자리, 양자리,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게자리, 사자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전갈자리, 궁수자리, 염소자리, 물병자리 등 12개가 있다. 이를 ‘황도12궁’이라 한다. 이 길을 따라 태양이 일 년에 한 바퀴를 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지구에서 보면 태양이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태양 빛이 밝은 낮에 별자리가 보일 리 없다. 그런 까닭에 태양이 움직이고 있는 뒤편의 별자리들이 차례로 바뀌는 것이다. 태양이 조금씩 기울어져 해가 지기 전에야 반대편에 별자리가 나타나기 때문에 밤하늘에는 태양의 반대편에 놓여 있는 별들만 보게 된다. 그렇게 사계절을 거치는 동안 초저녁에 나타나는 별자리들이 달라진다.하늘 전체를 사계절로 구분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의 편리함을 위해 하늘을 360도로 사등분 하여 계절로 나누었을 뿐이다. 그리고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간 뒤 초저녁 밤하늘에 나타나는 별자리를 그 계절의 자리로 정해놓았다. 따라서 밤이 새도록 밤하늘을 바라본다면 최소한 세 계절의 별자리는 확인할 수 있다.별에도 이름이 있다.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별의 이름은 대부분 별자리를 사용하며, 더욱 밝은 별일수록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렀다. 시리우스, 안타레스, 베가, 알타이르 등 그리스·로마 시대, 그리고 이슬람 문화가 번성하던 때에 붙여진 이름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별의 밝기에 따라 그리스 알파벳 순서로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입실론, 제타, 에타, 시타, 이오타 등의 순으로 부른다. 여기에 북극성과 직녀성도 속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별은 여전히 이름이 없다. 그러니 자신의 별을 정해 이름을 붙여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와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박필우(스토리텔러)

2022-07-10

유일한 구원을 찾아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황금 세기라 부른다. 다른 유럽 국가들의 문학과 비교할 때 상당히 늦게 출발했지만, 러시아 문학이 세계문학을 선도하는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이다.푸쉬킨에서 시작하여 레르몬토프, 고골을 거쳐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지나 체호프에 이르는 19세기 러시아 문학 거장들의 운항은 경이롭다.그중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1866)은 한국 독자에게도 퍽 친숙하다.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그녀의 돈을 사회의 유용한 곳에 쓰겠다는 생각을 구체화한다. 자신의 거처에서 전당포에 이르는 거리는 물론 살해수법과 소요 시간까지 주도면밀하게 계산한 그는 완전범죄를 실행한다. 바로 그때 노파의 누이동생 리자베타가 살인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예정에 없던 살인을 해야 하는 라스콜리니코프. 하지만 그가 들고나온 돈은 그야말로 푼돈이었다.그가 왜 노파를 살해하려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 밝혀진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 번식만을 위해 살아가는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과 나폴레옹처럼 진정한 인간, 비범한 인간 혹은 강자(强者)의 이분법으로 인간을 나눈다. 그가 보기에 전당포 노파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이(蝨)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인간을 죽이고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면 자신도 강자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자신의 강고한 내면세계를 확신했던 그가 마주하게 된 현실은 정반대였다. 그의 깊은 잠재의식 안에 자리하던 죄의식이 ‘섬망(8B6B妄)’의 형식으로 그를 찾아온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가족의 생계를 매춘으로 짊어진 여인 소냐를 만나게 된다. 의식적-정신적 세계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살인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존재론적이고 사회적인 의미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소냐에 강력하게 이끌린다.왜 사람을 죽였느냐는 그녀의 물음에 라스콜리니코프는 “나는 그저 시험해보고 싶었어. 그게 다야.”하고 대답한다. 수많은 사람처럼 자신이 이가 아니라, 진정한 강자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살인했다는 것이다. 자수하라는 소냐의 충고를 따르는 라스콜리니코프. 시베리아 유배지까지 그를 따라와 뒷바라지하는 여인 소냐. 자신의 온몸을 던져 가족을 먹여살리면서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던 소냐.소냐를 보면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조금씩 깨달아간다. 그 자신도 전당포 노파도 세상 누구도 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런 자명한 사실을 수긍하도록 인도한 것은 소냐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세상은 증오나 살인, 폭력으로 나아지거나 개선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강자의 철학과 실천으로 세상은 단 한 치도 바뀌지 않는다. 세상에 필요한 유일한 덕목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연대하면서 인간적인 유대를 확장하는 일이다.날이면 날마다 언론을 도배하는 숱한 물리적 폭력과 가공할 폭언과 폭력의 결과를 보노라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유일한 구원의 길, 사랑으로 걸음을 떼어야 한다.

2022-07-10

설곳 잃은 지방대학

국가균형발전을 외치는 정부가 속 시원하게 균형정책을 펼친 적이 있는지 기억이 없다. 맨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모든 일이 수도권 안에서만 이뤄졌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방 시대를 열겠다”는 큰 소리는 말뿐이다. 지방은 결정적 순간에는 없다.수도권 과밀화를 막는다는 목적으로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정해 놓고도 정부는 대기업이 공장을 짓겠다면 허가를 내준다. SK 반도체 하이닉스 공장이 좋은 사례다. 수도권공장 총량규제는 있으나마나다. 필요하면 예외규정을 만들면 되니까. 이건희 미술관 건립 장소 선정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40여개 지자체가 저마다 지역의 생존 차원에서 유치전을 벌였지만 결과는 서울로 끝났다. 이를 주관한 문체부는 공론화 내지 공모 절차를 검토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서울로 결정해 버렸다. 지방은 애초부터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걸 보면 지방 균형발전은 기대 난망이라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래도 지자체들은 중앙정부가 균형발전을 위해서 뭔가 특단의 조치를 해줄 것이란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윤석열 대통령의 반도체 인력 양성과 관련, 교육부가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의 정원을 늘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지방대학총장협의회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무반응이다. 지방대학이 반대하더라도 수도권대학 증원을 강행할 눈치다.지금 지방대학은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미달과 대학재정의 부실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다. 수도권에 인기학과를 늘리면 지방대학은 바로 고사하고 만다는 게 지방대학의 생각이다.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학과 증원만이라도 지방대학의 입장에서 결정하는 것이 지방시대를 열겠다는 중앙정부의 올바른 태도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7-10

초록 풀머리

강길수 수필가 졸지에 유명을 달리한 지체(肢體)들의 한이 원혼으로 변해 빙의라도 한 것일까. 짧게 남은 팔뚝들에 숨 막힐 듯 많이 솟아난 잔가지들이, 명부에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혼령들의 초록 풀머리로 보이니 말이다.하늘로 굵은 팔들을 벌려 연록 생명을 뽐내던 곳이, 인간의 기계톱으로 갑자기 죽음의 아수라장으로 변하던 봄날의 일이 되살아난다. 석 달이 지났다. 팔뚝들이 댕강 잘려 나갔던 언저리에 초록 풀머리들이 빼곡하다. 죽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 나무가 얼마나 처절하게 몸부림쳤으면, 전설의 고향 프로에 나오던 귀신보다 더 빽빽한 풀머리를 달아냈을까.웬일인지 눈길이 자꾸 초록 풀머리에 머문다. 가지치기 전문가들은 나무의 디엔에이가 작용해 그러니, 괜한 데 마음 쓰지 말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과 더불어 살다가, 마침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의 존재다. 이를 자각한다면 온갖 생명체는 물론, 무생물 하나까지도 자연공동체의 일원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어릴 적 산골에서 자라나며 나무와 친하게 지냈다. 나뭇가지를 자치기 막대, 낚싯대, 팽이 등 놀이도구로 쓰고, 피리로 만들어 불기도 했다. 어른들은 의식주를 위해 서까래같이 나무 밑동을 톱으로 자른다든가, 뽕나무처럼 일부 가지를 치곤 했다. 그러나 도시의 가로수나 조경수처럼, 몸체에 붙은 가지를 한두 뼘 정도만 남기고 몽땅 잘라버리는 광경은 보지 못했다.내 눈엔 나무 가지치기도 인간의 욕구 충족행위로 보인다. 사람이 심은 나무도 생장과 소멸의 아름다움을 자연에 맡겨 두면 안 될까. 살아있는 식물로 인위적인 미를 추구하는 일은 결국 인간의 자연 지배욕에 닿을 것이다. 대기와 수질오염, 기후변화, 해수면 상승, 자원고갈, 쓰레기 난제 같은 참담한 환경파괴로 나타난 인간의 자연 지배욕은, 이제 지구촌의 생존 여부와 직결되고 있다.석 달 전 출근길에 만난 무자비한 가지치기는, 또 다른 인간의 전쟁터였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만 살육일까. 인간이 무분별하게 자연을 죽이는 것도 바로 살육이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사람이 이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인간도 살아있는 것을 먹어야 할 숙명의 존재인 이상,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먹을거리만 자연에서 구하거나 가꾸어 먹어야 할 것이 아닌가.무럭무럭 자라는 두 손주가 자연 품에서 웃으며 뛰노는 모습에서 두 아들 어릴 때보다 더한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어떤 불안과 걱정, 야릇한 슬픔과 죄책감이 가슴속을 헤집는다. 나도 생명이 살 수 없는 자연을 손주들에게 물려줄 것만 같은 기성세대이기 때문이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2018년 ‘지구온난화 1.5도 보고서’나 관련 전문가들이 지구 기후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곧, 회복 불능 상태 진입을 경고하며 온실가스 억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할아비는, 손주들에게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먼저 간 동기들의 빙의로 태어났을 초록 풀머리들이, 세상에 울부짖고 있다.

2022-07-10

추앙한다고요?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 없어. 겨울이 되면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예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해요. 나는 한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나를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지난 5월 말에 종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2화에서 염미정이 구씨에게 한 말이다. 염미정은 대출까지해서 전 남친한테 돈을 빌려줬다가 떼인 후 대출금 상환 독촉을 받고 있고, 어느 날 마을에 나타나 염미정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낯선 남자 구씨는,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술만 마신다. 이어서 염미정은 구씨가 겨우내 자신을 추앙하면 봄에는 자신도 그도 달라져 있을 거라고 한다.이 방송이 끝난 후 SNS에는 ‘추앙하라’가 흘러넘쳤다. 한편으로는 구씨의 상태 때문에 염미정이 그런 말을 더 쉽게 한 것 아닌가 하는 삐딱한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염미정은 추앙 말고는 다른 말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예전의 남자친구들에게 심하게 이용만 당했기 때문이다. ‘추앙하라’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일상에서는 잘 안 쓰는 단어라서 신선한 느낌도 들었을 테고, 그만큼 사랑에 지친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리라.그러나 염미정을 향한 구씨의 추앙이 아무리 멋지게 표현되어도, 채워지고 싶다는 염미정의 갈망이 아무리 간절해도, 추앙이라는 말은 위험해 보인다. ‘높이 받들어 우러러보다’라는 ‘추앙하다’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추앙하는 쪽과 추앙받는 쪽의 균형이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노파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의 추앙이 본의와는 다르게 오용되거나 남용될까봐 걱정이 앞선다. 사실 염미정이 말하는 추앙이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겠다. 추앙이라고 하면 나는 팬클럽 문화가 떠오른다. 어느 가수의 팬클럽에 가입했다가 추앙하지 못해서 팬클럽 회장에게 권고 탈퇴를 당했던 경험이 있어서 더 그럴 것이다.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미래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늘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이 ‘늘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데는 언어생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느 날 주인공 조너스가 지각한 이유를 말하면서, ‘연어 구경에 정신이 돌아버린 것 같습니다’라고 하자, 선생님은 연어 구경에 ‘정신이 돌았다’는 단어는 너무 강하다면서 ‘정신이 팔린’으로 교정해준다. 이 마을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논란거리이기는 하나, 조너스 어머니의 이런 입장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필요해 보인다.어느날 조너스가 부모에게 ‘절 사랑하세요?’ 묻자, 부모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너무 일반화된 단어라 무의미하다면서 ‘어머니 아버지는 저와 즐거우세요?’, ‘어머니 아버지는 제 성과에 자부심을 느끼세요?’와 같이 정확한 표현을 써야 마을이 원활하게 돌아간다고 알려준다. 염미정의 소망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2022-07-10

이준석과 박지현의 정치적 좌절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여야의 청년 정치인 두 명이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다. 1985년 생 이준석은 서울 과학고를 거쳐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정치 엘리트이다. 2012년 박근혜 키즈로 영입되고 2021년 한국 최초로 보수 정당의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는 당대표 선거에서 나경원 등 내노라는 다선의원을 물리치는 이변을 보였다.민주당의 청년 정치신인 박지현 역시 N번방 추적단 불꽃에서 활동하다 이재명 대선캠프에 발탁되고 20대에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공통적으로 정치적 좌절과 위기에 처해 있다. 이준석은 성상납 의혹사건으로 당 윤리 위원회의 6개월 당원 권 정지 처분을 받았다. 박지현 역시 6개월 당 경력 부족으로 당 대표 출마 자격을 얻지 못했다. 사건의 경중으로 봐선 이준석 대표의 자격 박탈이 훨씬 심각하지만 이들이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그 귀추가 매우 주목된다.이준석 대표는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와 두 번이나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선거 전이라 두 분이 형식적으로 화해했지만 진정한 화해인지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의 미봉책인지 알 수 없다. 당시 이준석 대표의 빈번한 튀는 행동은 불안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다행히 이준석 대표는 보결선거, 대선,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보수 정당에서 매우 취약한 ‘이대남’ 득표로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따랐다.민주당 박지현 역시 당 여성 부원장으로 발탁되어 이재명 캠프를 거쳐 민주당 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대녀’라는 여성 표 확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두 사람에 대한 부정적 비판적 평가도 상당했지만 그들의 역할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모두 서열화되고 경직화된 당 구조에서도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확실히 전달하였다.이준석은 지선 승리 직후 당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고, 박지현 역시 당 공동 비대원장으로 활동했지만 정치적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물론 이들의 역할을 부정적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의 역할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의 활동은 관료화되고 폐쇄적인 우리 정당 정치의 개혁의 계기를 마련한 점은 높이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정치에서 소외되어 무관심한 20∼30 청년 세대를 정치적 관심층으로 돌려놓았다. 특히 보수 정당의 이준석 대표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통해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유도했을 뿐 아니라 당 개혁에도 박차를 가했다. 지방선거 출마자의 최초의 자격시험, 배틀 토론을 통한 대변인의 선출, AI 윤석열 등 종전의 보수 정당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정책 어젠다를 관철시켰다. 그의 30대 당 대표 당선만으로도 보수 야당의 이미지를 탈색하는데 상당히 기여하였다.박지현 역시 기득권 정당으로 전락한 진보 민주당의 개혁에 상당한 자극제가 되었다. 그들의 돌출적인 언행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여야 모두 정당개혁이나 정치 개혁의 촉진제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그러나 이 청년 정치인들은 정치적 위기 앞에 흔들리고 있다. 특히 이준석 대표의 당원 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는 당 대표직 사퇴를 압박받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이준석의 기존의 정치 행태로 볼 때 그가 조용히 대표직을 사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는 벌써 당 윤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재심 청구, 법원의 가처분 신청 등 자구책을 강구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윤리위원회 징계에 앞서 오래전부터 ‘윤핵관’의 압력을 비판해왔다. 대선과 지선의 승리 후에도 그는 축하 한 번 받지 못했다고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였다.우리 정치사의 사상 초유의 당대표 중징계 결정을 그가 수용하지 않을 경우 당 내분은 명약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준석의 징계파문은 임기 초반의 윤석열 정부의 지지도 추락과 맞물려 당을 위기로 몰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그에 비해 박지현 전 공동위원장의 민주당 대표 출마 좌절은 민주당의 내홍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적지만 그 파동은 상당할 것이다.이준석 성상납 의혹은 결국 경찰의 조사 등 법에 의해 흑백이 드러날 사안이다. 여야 모두 청년 정치인의 정치적 좌절과 정치적 위기는 이 나라 정당 정치의 발전의 한계를 노출한 셈이다.청년 정치인들의 개혁 요구는 폐쇄적이고 경직화된 우리 정치 문화를 바꾸는 계기로 삼을 수 없을까. 우리의 정치는 아직도 계파 정치, 팬덤 정치, 패거리 정치의 굴레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 수준도 문화도 저만큼 앞서 가는데 우리 정치만은 아직도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대선에서는 지역갈등, 계층 갈등, 젠더 갈등에 이념 갈등까지 더하여 아직도 갈라치기 정치로 치닺고 있다. 두 청년 정치인의 정치적 좌절을 바라보면서 이 나라 청년들의 좌절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제2의 이준석과 박지현이 등장하여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동력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2022-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