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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 장의 사진

김규종 경북대 교수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든 일은 예정된 궤도와 시간 순차성에 따라 수미일관하게 진행된다. 이를테면 이렇다. 언젠가 잠시 살았던 곳 인근에 있는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차를 수리하거나 엔진오일을 교체한다. 저녁마다 방문하는 방송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4년 넘게 산 적이 있다. 열일곱 살 때 처음으로 와보았던 대구에서 30년 넘도록 인연과 관계를 맺고서 살아간다. 우연처럼 보이는 이런 인과율은 곳곳에서 작동한다.개체에서 발생하는 우연이 유기체에서 필연으로 작동한다는 명제가 있다. 소규모로 일어나는 우연이 필연으로 기능한다는 말이다. 작은 우연들의 누적이나 축적이 마침내 거대한 필연을 가져온다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눈이 아주 밝은 사람은 작은 우연을 포착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대개는 건성으로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문득 아, 하는 깨달음의 탄식이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터져 나오는 것이다.서두가 길었던 데에는 사연이 있다. 얼마 전에 ‘우연히’ 20년 전 사진과 만나게 되었다. 2002년 7월 12일 날짜가 사진 오른쪽 아래에 선명했다. 나를 포함한 열 사람이 사진에서 여러 가지 표정으로 사진 찍는 이를 응시하고 있다. 반 팔과 청바지 차림의 편안한 복장과 막걸리와 맥주가 놓인 식탁, 그 위에 자리한 마른안주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열린 창 너머로 전등의 밝은 빛이 유리창에 선명하게 비친다.세 사람의 교수와 일곱 사람의 대학원생이 한 장의 사진에 빼곡히 담겨 있다. 20년 전에 우리는 저런 얼굴과 옷차림과 마음가짐으로 여름밤을 보내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여러 감정이 찾아오는 것이다. 사진의 인물 가운데 몇몇은 소식 두절(杜絶)된 상태고, 몇몇은 여전히 추억을 곱씹는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 어떻게 그런 차이가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우연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인생 행로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종착지점은 누구에게나 다른 의미와 색깔과 무게를 가진다. 각각의 지점에서 우리는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기도 하고, 끊기도 한다. 누군가와 맺은 깊고 질긴 인연은 애별리고(愛別離苦)를 잉태하기도 하고, 원증회고(怨憎會苦)를 결과하기도 한다. 그것을 결정하는 최종적인 주관자는 나나 그 혹은 그 여자나 그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결정권 바깥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끝까지 머물 사람과 함께할 관계와 인연은 어떤 일이 있어도 최후까지 이어진다. 아무리 좋았던 인연과 관계를 맺은 사람과도 어느 날 홀연히 단절되는 경우가 생겨난다. 나의 의지도 그들의 결단도 아닌, 순전히 우연처럼 보이는 사사로운 사건과 갈등이 원인일 수 있다. 그러하되 우리는 그런 상황과 인과율의 변화양상에서 구경꾼이나 방관자 이상의 자리를 요구할 수 없다. 그러니 수수방관이야말로 최상의 선택일 수 있겠다.한 장의 사진에 들어있는 사람들과 맺은 인연과 여러 가지 사연을 떠올리면서 나의 지나간 20년을 반추한다. 삶은 언제든 어디서든 환하고 아름다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2022-06-26

어떤 고기를 먹어야 할까

유영희 작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3대 영양소이다. 그중 단백질과 지방은 콩이나 옥수수, 올리브, 브로콜리 같은 식물성 식품에도 있지만, 특히 고기에 많다. 육식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기 때문에 전 인류가 고기의 맛을 버리기도 쉽지 않고, 비타민 B1은 고기에만 있는 영양소라서 채식으로 보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내가 채식을 2년간 하다가 중도 포기한 것도 영양 불균형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축산 고기에 거부감이 있어도, 고기를 안 먹기는 참 힘들다. 그러다 보니 축산 고기 말고 다른 방식으로 단백질을 섭취할 수는 없을까 궁리하게 된다.그러다 2020년 12월 어느 신문기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싱가포르에서 세포증식 닭고기를 시중에 판매해도 된다는 승인이 났다는 것이다. 세포증식 고기는 실험실에서 세포를 배양해서 만든 고기를 말한다. 그래서 세포증식 고기는 실험실 고기라고도 하고 배양육이라고도 한다. 이후 기사를 보니, 21년 4월에는 배달 앱으로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세포증식 고기를 처음 개발한 사람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교수 빌렘 반 엘런이다. 그는 1999년에 배양육에 관한 이론적 연구로 국제 특허를 획득하고 2002년에는 금붕어에서 유래한 근육 조직을 실험실의 페트리 접시에서 배양시키는 데 성공했다. 2017년에 빌 게이츠가 미국의 인공고기 스타트업인 ‘멤피스 미트’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소식도 들린다.빌렘 반 엘런이 세포증식 고기를 개발한 이유는 동물 학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기 소비량이 1980년 1인당 1년에 11.3kg이던 것이 2017년에는 55.89kg으로 늘었고, 2020년 유럽 사람들은 81kg, 북미 사람들은 123kg을 먹었다. 이렇게 우리가 고기를 많이 먹게 된 것은 공장식 대량 축산 시스템 덕분이다. 돼지들이 우리에 빽빽하게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사진을 보면 고개를 돌리게 된다. 도축 과정도 모른 척하고 싶다.그런 데다 2006년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가축의 긴 그림자’라는 보고서에서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8%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이 수치가 과장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고기 소비율이 빠르게 높아지면 축산업이 환경을 오염시킬 것은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포증식 고기는 동물 윤리도 지킬 수 있고 온실가스 배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항생제 오남용이나 바이러스 감염 우려도 없다.그러나 세포증식 고기를 선택하는 데 망설이는 사람도 많다. 세포를 증식하려면 동물의 혈청이 필요해서 동물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값도 비싸며, 맛도 축산 고기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다.축산 고기는 맛도 좋고 값은 싼데, 동물 윤리 문제가 심각하고, 세포증식 고기는 동물 윤리는 해결되는데, 맛도 없고 비싸니,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어떤 고기를 먹을까’ 대신 ‘얼마나 먹으면 될까’로 질문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2022-06-26

염치 아는 사람

강길수 수필가 바뀐 녹색 신호등에 따라 횡단보도를 중간쯤 걸어갈 때다. 느닷없이 좌회전 소형 승용차가 스르르 앞을 가로막았다, 승용차 앞바퀴가 횡단보도의 흰 선을 한 걸음쯤 차지하며 멈췄다. 속도가 느려 놀라지는 않았지만, 황당했다.‘무슨 이런 차가 다 있어?’하고 속에서 부아가 나려는 순간, “죄송합니다!”라는 음성이 반쯤 열린 운전석 창을 달려 나와 마음을 감쌌다. 목소리는 염치를 아는 운전자의 진심을 실어와 정전기처럼 찌릿하게 가슴을 찔렀다. 마음에 일던 반감이 사르르 녹았다.조건반사같이 운전자에게 접은 우산 쥔 손을 흔들며, ‘괜찮아요!’하고 속말을 얹어 보냈다. 쳐다보니 운전자는 동년배 정도로 나이 들어 보이는 분이었다. 동병상련 같은 감정도 윤슬처럼 일었다.저분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무슨 연유로 신호등 바뀌는 시간을 잘못 헤아리고 교차로에 진입했을 터. 앞 차로에는 직진 차량이 달려오고, 돌아 지나가야 할 왼쪽 횡단보도 신호등엔 초록색 불이 켜져 사람이 걷고 있으니 말이다. 진퇴양난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기 잘못을 깨닫고 즉시, 보행자에게 진정을 담은 사과를 한 침착한 분이다. 염치를 아는 멋진 분을 출근길에 보다니, 기쁜 날이다.즐겁게 사무실로 향하는데 생각의 나래가 저절로 펴졌다. 내게 같은 상황이 생겼다면 어찌하였을까. 아마도 멈추어 서서 당황하여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못 했을 터다. 정신 차린 후에는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차도 피했고 횡단보도 보행자와도 아무 일 없었으니, 천만다행이란 생각만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거다.이어 마음의 소리가 너울져 왔다. ‘그래. 우리 서민들은 살아있는 거야. 아니,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 거야! 오며 만난 운전자 같은 분, 곧 염치를 알아 잘못을 바로 사과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반면, ‘민주’라는 탈을 쓴 지도층이란 이리떼들이 염치도 모르고 설쳐 나라를 흔드는 꼴을 그간 민초들은 많이도 보아왔다. 두고 볼 수 없는 서민들이 에스엔에스 등을 통해 시대의 선지자처럼 울부짖었다. 하지만 정치인도, 지식인도, 주류언론도, 관료도 침묵만 해온 우리 사회다.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트릴 부정선거 의혹이 선거 결과 통계치와 물증으로 드러나도 정치권과 언론계, 학계는 애써 외면만 한다, 사회정의가 사라져가고, 나라의 빚이 산더미로 늘어나도, 국민은 참된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 수년간 답답한 세월만 보냈다. 민초들의 눈에 비친 정치판과 관료집단은 말로만 ‘국민’을 팔뿐, 자기나 제 편의 이익과 유, 불리만 따지는 소인배들로 득실거렸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대인 정치인과 관료는 없는 것인가.천우신조로, 지난달 정권이 바뀌었다. 새 정권은 오로지 나라와 국민만을 위해, 무너져가는 사회정의부터 바로 세우는 데 매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사회 저변의 정직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의심받는 선거 정의부터 바로 세우는 일이 최우선과제라고 믿는다. 염치 있는 사회를 향한, ‘새 도덕재무장 운동’이라도 벌이면 어떨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그립다.

2022-06-26

시의회 의장 선출, 순리대로 이뤄져야

김락현경북부 제9대 구미시의회가 시작도 하기전에 의장단 선거로 시끌시끌하다.지난 6.1지방선거 당시 ‘오직 시민들만 바라보고 일하겠다’고 다짐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이번 9대부터 의장에게 부여된 절대 권한에만 눈이 멀어 시민들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지난 18일 국민의힘 구미을 당원협의회는 제9대 전반기 의장후보로 4선의 강승수 당선자를 단수추천했다. 그러자 경쟁자였던 3선의 안주찬 당선자는 “당협위원장인 김영식 국회의원이 의장 후보 선출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안 당선인은 의장후보 선출을 위한 당협회의 도중 회의장을 이탈한 것으로 알려졌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 당선인 5명은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의장 선출은 구미시의원 본연의 책무임에도 이를 저버리고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줄서기를 하며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김영식 의원 규탄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그렇다면 왜 국민의힘에서는 의장후보를 단수추천할까.구미시의회는 대부분의 다른 지역 의회와 마찬가지로 ‘교황 선출 방식’으로 의장단을 뽑는다. 교황을 선출하듯 이전투구나 과열 경쟁 없이 정파를 초월해 신망받는 인물을 선출하자는 의도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별도의 후보 등록 없이 전체 의원이 후보가 되기 때문에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실제 지난 2012년 한 광역 의회 의장선거에서는 다수의 의원이 1표씩을 받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했다.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대다수의 의회에서 의장단 선거 전 의장단 후보를 단수추천하고 있다. 물론 이 방식이 옳다고 할 순 없다.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시의원들 스스로가 만들어 지켜온 방식이라면 그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매번 비슷한 방식으로 의장단을 선출해 왔던 구미시의회는 경쟁자들 중 ‘양보’를 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소란은 없었다.지난 8대 후반기 의장단 선거 역시 ‘양보’의 미덕으로 별탈없이 마무리 된 점을 기억해야 한다.지금 시민들은 경기침체와 치솟는 물가 등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디 자기 욕심은 내려놓고 ‘시민들만 바라보고 일하겠다’던 그 약속이나마 잘 지키길 바란다./kimrh@kbmaeil.com

2022-06-23

개똥 장마

6월 하순부터 7월 하순까지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를 장마라 부른다. 평균적으로 30∼35일 정도를 장마기간으로 보고 있으나 이 기간동안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다.장마 시작일도 매년 불규칙하다. 일찍 시작된 해는 6월 8일(1971녀)도 있었지만 늦게 시작한 경우는 7월 5일(1982년)도 있다. 마른장마라 하여 장마철인데도 비가 없거나 훨씬 적은 비가 올 때도 있다.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한냉습윤한 오츠크해 기단과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기단에서 생기는 전선이 장마전선이다. 두 기단의 세력이 비슷하여 우리나라에 비교적 오래 정체하게 되는데 이 기간동안 내리는 비가 장맛비다.장마는 영농을 시작하는 봄의 뒤 끝에 따라오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속담도 영농과 연관된 것이 많다. “오뉴월 장마는 개똥 장마다.” 이 말은 개똥은 더럽고 하찮다는 뜻이 있지만 과거 우리 조상이 농사를 지을 때 거름으로 유용하게 사용했던 것처럼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긴 장마로 피해를 보지만 농사에 필요한 비를 내려주니 꼭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 이는 가뭄 피해보다 장마 피해가 더 크다는 뜻이다. 조상들의 농사 경험에서 나온 말로 보여진다.23일부터 전국이 장마철에 접어들었다. 이번 장맛비는 지역에 따라 최다 120mm 이상 많은 비를 내린다고 했다. 우선 오랜 가뭄으로 생육에 지장을 받던 농작물의 해갈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반갑다. 또 가뭄과 폭염 등으로 이어진 짓궂은 날씨 때문에 고생한 모든 이들이 한숨을 돌릴 수 있어 반가운 장맛비다.“개똥같은 장마”가 지금부터 시작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6-23

마침내 도마 오른 경찰권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정부 여당과 야당이 경찰권력의 통제를 둘러싸고 한바탕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부처내에 경찰관련 조직을 신설, 고위직 경찰공무원에 대한 인사권 행사를 위한 후보추천위원회를 두는 등 경찰을 직접 통제하는 내용의‘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 권고안’을 시행하려 한다는 이유에서다.야당은 23일 성명서를 통해 “경찰이 권력의 시녀가 되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지 지난 역사를 통해 모든 국민이 목도해 왔다”고 경고했다.‘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까지 소환했다.경찰 내부에서도 경찰역사를 32년 전으로 되돌려‘치안본부’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며, 군사독재정권 시절로 회귀하려는 의도라고 외쳤다.이들은 경찰 통제를 위해 필요한 것은 권력자의 입김이나 힘으로 찍어누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경찰위원회, 자치경찰위원회, 경찰인권위원회 등 시민의 통제를 확대·강화해서 실질화하는 것이 그 방책이라는 것이다.실제로 경찰은 일반적인 부처와는 기능과 역할이 다르다. 국민의 민생과 직결된 풀뿌리 민생조직이자,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해야 하는 수사조직으로 기능한다. 경찰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는 순간 경찰이 정권을 위한 경찰로 타락하게 된다. 야권의 우려도 일리 있다.그러나 정부 여당의 입장 역시 확고하다. 경찰조직은 치안을 담당하는 내각의 행정안전부 직제하에 있으므로 행안부의 통제 아래 넣겠다는 뜻이다.윤석열 대통령 역시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과 관련, “경찰보다 더 중립성과 독립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검사 조직도 법무부에 검찰국을 두고 있다”면서 찬성의 뜻을 밝혔다. 이어 “과거 경찰은 굉장히 많은 인력의 경찰을 청와대가 들여다놓고 직접 통제를 했다”면서 “만약에 저처럼 그것을 놓는다고 하면 당연히 치안이나 경찰사무를 맡고 있는 내각의 행안부가 거기에 대해서 필요한 지휘 통제를 하고, 독립성이나 중립성이 요구되는 사무에 대해서는 당연히 헌법이나 법률에 따라 원칙에 따라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예전 청와대에서는 민정수석비서관 아래 치안비서관실에서 경찰조직을 통제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민정수석실이 폐지됐으니 행정안전부가 경찰조직을 통제하는 것이 맞고, 이를 위해 필요한 조직을 헌법이나 법률에 따라 대통령령 등을 통해 설치해 운용하겠다는 취지다.유사 이래 어느 정치권력이 검찰과 경찰의 권력을 자신의 통제 바깥에 놓아둔 채 방치한 적이 있었던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야당도 그런 속사정을 잘 알면서도 무차별 견제구를 날려댄다.경찰의 민주적 통제를 바란다면 문재인 정부 당시에 논의했던대로 경찰위원회, 자치경찰위원회, 경찰수사심의위원회, 경찰인권위원회 등 경찰의 독립성·중립성·공정성 제고를 위한 제도를 제대로 운용하면 될 일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정치권의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는 국민이 없다.

2022-06-23

누리호, 우주의 길을 열다

윤영대 수필가 낮이 가장 긴 날 하지(夏至) 6월 21일 오후 4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우리나라 순수국내기술로 설계·개발된 최초의 우주발사체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자랑스러운 누리호(KSLV-Ⅱ)이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3-2-1-엔진점화-이륙’…. 하얀 연기와 황금빛 불꽃을 내뿜으며 남해의 푸른 바다를 힘차게 솟아오르는 누리호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마음 가득 환호를 외쳤고 12년간 쌓은 노력으로 난관을 뚫고 개발해온 항공우주연구소 관계자들의 가슴에는 벅찬 기쁨을 안겨주었으리라.약 2분 후 60km 상공에서 1단 엔진을 분리한 후 하얀 점을 남기며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매분 수십km씩 솟아오르며 단계적으로 추진체와 덮개를 벗어버리고 15분 후 드디어 700km 상공에 도달했다. 이어 성능검증위성을 분리하고 마지막으로 위성모사체를 초속 7.5km로 궤도에 안착시켰다는 발표를 듣고 모두 안도했다.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7번째 우주 강국이 된 역사적 꿈을 이루었다. 참으로 뿌듯하다. 30여 년간 쌓은 한국우주항공기술의 결정체가 천공(天空)을 뚫고 우주탐사전을 펼친 것이다. 지금 누리호는 지구궤도를 하루 14.6바퀴씩 돌면서 남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누리호에는 카이스트 등 국내 4개 대학이 제작한 4개의 큐브위성이 실려있다. 1주일 후부터 하나씩 우주 궤도에 내려놓으며 우리의 꿈을 위한 새싹을 심겠지. 아무쪼록 각각의 임무가 잘 수행되기를 바란다.누리호는 연소 불안정과 추진탱크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작년 10월 1차 발사를 했으나 마지막 궤도 진입에 실패하였고 이번에도 기상문제와 기체이상 발견으로 두 차례 연기 끝에 드디어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앞으로 2027년까지 약 6천9백억을 들여 4차례 더 발사할 계획이 있다 하니 항공우주청의 설립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본다. 총 중량 2백 톤, 성인 약 3천 명의 무게에 총알의 10배 속도로 우주공간을 날기 위해서 37만 개 부품으로 제작되었는데 300여 민간업체의 기술이 합쳐진 것이다. 미래 우주산업은 4차를 넘어 5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주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되며 선진 각국도 민간참여를 유도하고 있는바 우리도 그 꿈을 넓혀야겠다.90년대 초 우리별 1, 2호가 영국 기술을 보태고 프랑스제 아리안 로켓을 빌려 타고 먼 중남미 기아나 우주발사장에서 발사된 지 30년, 우리는 드디어 우리기술로 우리 발사체로 우리 땅에서 누리호를 우주로 쏘아 올렸다. 남해 고흥반도의 끝 외나로도에서 우주로의 길을 연 것이다. ‘고흥 나로도’라는 지명과의 인연도 기묘하다. 높을 고(高), 일어날 흥(興)에 ‘날다’의 발음과 비슷한 섬 이름…. 우주센터 후보지 11개 중에서 발사 각도와 입지조건 등을 고려하여 선택되었는데 포항과 울산도 후보 지역으로 나섰다고 한다.높이 일어설 나로우주센터에서 우주 강국 대한민국의 꿈과 희망을 싣고 우주의 길을 연 누리호의 성공을 빌며 외쳐본다. 누리호 만세!

2022-06-23

복잡과 단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세상이 갈수록 복잡다단해진다. 자연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사회가 그렇다는 얘기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어 급격히 발전하는 기계문명에 따라 삶의 양식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왔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편리해졌다고 하지만 그만큼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정보화시대에 들어선 지금, 노년층 서민들은 각종 생활의 정보나 기기들을 따라잡기에도 벅찬 형편이다. 그런 생활양식의 변화는 그대로 사람들의 심리나 사고에도 반영이 되어서 정신적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복잡계(複雜系) 이론이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산타페연구소의 브라이언 아서 교수는 “복잡계란 무수한 요소가 상호간섭해서 어떤 패턴을 형성하거나, 예상외의 성질을 나타내거나, 각 패턴이 각 요소 자체에 되먹임(Feedback) 되는 시스템이다”라고 정의했다. 예일대학의 제롬 L. 싱어 교수도 “복잡계란 상호 작용하는 수많은 행위자를 가지고 있어 그들의 행동을 종합적으로 이해해야만 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종합적인 행동은 비선형(Nonlinear)적이어서 개별요소들의 행동을 단순히 합해서는 유도해낼 수 없다”고 했다. 한 마디로 세상은 물리적 현상이나 사회적 현상이나 너무 복잡해서 방정식이나 간단한 논리체계로 환원시킬 수 없다는 얘기다.요즘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온갖 현상들은 그야말로 복잡계로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특히나 지난 수 년 동안 우리나라에 있었던 정치적 난맥상과 그에 따른 민심의 동요는 어떤 논리나 이론으로도 명쾌한 해석이 될 것 같지 않다. 하나의 사건이나 사안을 두고도 편을 갈라 정반대 논리와 주장으로 극렬하게 대립하는 것은 합리적 판단을 불가능하게 하는 혼란일 수밖에 없다. 특히 그릇된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무리들은 난동이랄 수밖에 없는 집단행동으로 나라 기강을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인간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복잡성은 결국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인류도 본질적으로는 단순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의 한 종이라는 사실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보듯이 복잡한 사회를 떠나서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면서도 오히려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게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간사회의 복잡성은 인위의 산물이며, 그것이 필연적이거나 최선의 선택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돌이킬 수야 없지만 반성과 활로의 모색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세상이 아무리 복잡해도 성인들이 제시하는 삶의 진리는 간단명료하다.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는 예수의 말씀이 그렇고, ‘네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씀도 다르지 않다. 불교의 팔정도나 유교의 인의예지가 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할지라도 이것이 인간사 모든 문제의 열쇠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온갖 혹세무민하는 요설과 선동에 미혹하지 않을 분별도 거기서 나온다.

2022-06-23

산책길 소묘(素描)

배문경 수필가 이른 새벽 산책하기에 좋은 계절이 있다. 지루한 겨울을 지난 뒤, 연초록 봄이 그렇고 녹음 짙은 여름이 그렇다.오뉴월은 뜨거움을 숨긴 채 맑고 그윽한 꽃향기를 가득 품었다. 밤을 희롱하듯이 깊게 들어온 여명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섰다. 여섯 시를 막 넘긴 시간은 한겨울엔 엄두도 못 낼 밝음으로 온 세상이 환하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타박타박 밖으로 나섰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올 거라며 까치가 꺅 깍 깍깍 나뭇가지에서 꽁지를 든 채 반긴다. 저도 누가 나오면 함께 길을 나서고 싶었던 모양이다. 까치 소리와 함께 내딛는 걸음이 한결 가볍다.푸른 잎이 투명한 햇살을 튕겨낸다. 나무 두엇을 지나자 차도가 나오고 초등학교의 계단을 내려가면 붉은 양귀비며 노란 금계국이 화단 가득하다. 오밀조밀한 보도블록을 지나는 길가에 맥문동이 이파리를 단단히 세웠다. 주어진 한 시절을 구가하는 생명의 잔치가 햇살을 받아 더욱 눈부시다.교문을 나서서 맞은편 길을 바라보며 걷는다. 이곳은 차들의 길이다. 사고로 가로등이 부서지거나 보도블록이 깨진 흔적이 낭자했던 곳이다. 인간을 위한 문명의 이기인 차가 인간을 해치는 이 아이러니는 언제쯤 사라질까. 문명은 세상을 밝히지만, 그만큼의 그림자도 생긴다는 사실을 실감한다.길을 건너 강으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낮은 담장과 낡은 건물들이 적당히 눈높이에 맞게 들어오다가 비닐하우스에 이르면 갑자기 눈이 뜨인다. 비닐하우스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푸른 부추가 자라고 있다. 자르고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저 부추의 매운 생명력이 새삼 부럽다.좀 더 걷다 보니 물을 관리하는 수문이 있다. 주의하라는 관리자의 공고문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아마 태풍이나 홍수가 나면 이곳을 여닫아 물 높이를 조절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가뭄에 강물이 많이 줄어들었다. 유속은 급하지 않고 넓은 강 중간쯤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배처럼 생긴 섬이 하나 있다.지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갈 때 나는 이곳에 서 있었다. 콸콸 소리를 내는 물은 강둑의 목까지 들어차 모든 것을 삼키며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저 나지막한 섬은 물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장마와 홍수로 인해 강둑조차 파괴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강물은 위세가 대단했다.문득 유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어린아이의 눈에 보이던 뒤꼍의 도랑이 장맛비에 살아 꿈틀거렸다. 세찬 물살에 떠내려가던 소와 솥과 나뭇가지와 잡동사니들이 흙탕물에 뒤섞였다. 소는 발버둥 치며 떠내려갔고 나뭇가지는 서로 얼기설기 엉키며 부피를 키웠다. 우르릉 천둥소리 쩌적 번개소리, 나는 엄마 옆에 붙어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도랑물이 생전 처음으로 집을 삼킬 듯이 불어나자 동네는 소란스러웠다. 아득한 기억 속의 도랑물 소리가 지금의 강물 소리와 오버랩되어 두렵기까지 하다.오십 년이 지나고서야 태풍의 이름을 찾아보니 ‘올가’라는 이름의 태풍이었다.다행이다. 지금은 태풍에 잠겼던 섬은 푸른 나무와 잡초들이 무성하다. 군데군데 꽃들이 싱겁지 않게 장식한다. 섬 주위로 물고기들이 퍼덕거린다. 은빛 꼬리를 세차게 흔들자 중심에서 번져나가는 물결무늬가 종소리를 연상시킨다. 작은 숲이 살아있어 걷는 길이 충만해진다. 살아있다는 것, 얼마나 큰 기쁨인가.나는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산책은 놓친 것을 되새김질시켜주는 힘이 있다. 때론 일상에 지쳐 머릿속이 잘 감긴 테이프처럼 끊임없이 반복될 때 잠시 멍 때리는 휴식을 위해 걷고 또 걷는다.저 눈 부신 태양의 선물과 자연의 이름으로 부여된 각각 다른 모양의 꽃과 나무와 풀들이 기운을 내뿜는다. 나는 연초록 향연에 아득히 취한다. 가슴 가득 바람을 안고 총총히 강둑을 뒤로하며 집을 향해 돌아서자, 방전되었던 심신이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된 느낌이다. 일상이 천천히 다가온다. 산책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2022-06-22

갑술(甲戌)

육십갑자 중 열한 번째에 해당하는 갑술(甲戌)이다. 천간(天干)은 갑목(甲木), 지지(地支)는 술토(戌土)다. 12지지를 10천간과 개수로 비교하면 둘이 남는다. 바로 술(戌)과 해(亥)이다. 어찌 보면 ‘윤달’과 같다. 하늘에는 없는데 땅에 있는 기운. 그래서 갑술(甲戌)에서 주인공은 술(戌)이다.술(戌)은 동물로는 개다. 개는 참으로 영리하며, 우리가 누구라는 것을 잘 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정체를 알고,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귀신을 보기도 하고, 후각이 좋아 항상 주위를 잘 경계한다.사주팔자 중에 개 술(戌)의 기운을 가진 사람들은 뭔가 배우고, 갖추고, 공부하고, 만나고, 듣고, 말하고 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아마도 천기(天氣)가 없어 지기(地氣)만으로 살아야 하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혜는 없어도 경험을 통한 지식은 엄청나게 많다. 특히 재복도 많고, 바쁘고 친하면서도 제멋대로고, 여자건 남자건 이성을 좋아하고, 종교가 있어도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다 자기와 동급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대장도 아닌 게 대장이라고 하니 밉지는 않다.갑술생(甲戌生), 개띠들은 ‘진짜 눈먼 개띠’라고 한다. 결혼운도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라서 인생 초창기는 고생을 많이 하지만 나중에는 부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고도 한다.갑술 일주는 매우 활달하고, 성공이나 출세나 여하간 남들보다 잘 되기 위해서 몹시 분주한 사람들이다. 몸이 바쁘고 고단할 정도로 나름 열심이며, 의타심이 강해 누군가 자기를 도와줄 사람을 항상 찾는다. 나쁘게는 상대방을 항상 의지하고 이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위급상황에서 자기를 희생하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 하나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임진왜란(1598년) 때 왜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일주(日柱)가 갑술(甲戌)이다. 조선 중기 유몽인(1559∼1623)이 엮은 설화집 ‘어우야담(於于野譚)’ 권1 효열(孝烈)편에 논개에 대한 글이 있다.논개(論介)는 진주 관기(官妓)였다. 계사년(1599년)에 김천일이 의병을 일으켜 진주를 근거지로 왜병과 싸우다가 마침내 성이 함락되어 군사는 패하고 백성은 모두 죽었다. 이때 논개는 분단장을 곱게 하고 촉석루 아래 가파른 바위 꼭대기에 서 있었으니 아래는 만길 낭떠러지였다. 사람의 혼이라도 삼킬 듯이 물결이 넘실거렸다. 왜병들은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지만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장 하나가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며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논개는 요염한 웃음을 흘리면서 왜장을 맞았다. 왜장의 손이 그녀의 몸을 잡자 논개는 힘껏 왜장을 끌어안는가 싶더니 마침내 몸을 만길 낭떠러지 아래로 던졌다. 그 둘은 모두 죽고 말았다.임진왜란을 당하여 관기의 경우 왜놈에게 욕을 당하지 않고 죽은 이가 어찌 논개 한 사람에 그치겠는가? 이름도 없이 죽어 간 여인들을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는 것이 한이다. 관기라 하여 왜적에게 욕을 당하지 않고 목숨을 끊었다고 할지라도 정렬(貞烈)이라 칭할 수 없으니 어찌하랴. 그러나 그런 도랑물 같은 신세로서도 또한 성화(聖化)할 수 있는 정신이 있었으니 나라를 등지고 왜적에게 몸을 바치는 것을 차마 하지 못했다면 그것을 충(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아까운 일이다.나라에 충(忠)하는 것이 오직 사대부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서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약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된다.갑목(甲木)은 솟구치려는 경향이 있고, 술토(戌土)는 홀로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개의 모습이다.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래서 갑술 일주는 활동적이며, 허허벌판에서 홀로 솟은 나무답게 독립심도 강하다. 인간 친화적인 개와 비슷하게 갑술 일주는 대체적으로 대인관계가 좋은 편이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같이 갈 도반을 소망하는 것이다. 자기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인관계가 좋다는 것은 본인의 내면이 공허한 것과는 다르다. 갑술 일주의 내면은 고독할 수 있으나 겉으로 볼 때는 남들과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다.영국의 여류작가 매리 루이스 드 라 라메의 동화 ‘플랜더스의 개’가 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가난하고 어린 넬로와 늙은 개 파트라슈의 이야기다. 화가를 꿈꾸며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성당 안에 있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자정미사가 끝난 뒤 성당 문은 잠기지 않은 채 그냥 열려 있어서 넬로와 파트라슈는 성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그림이 한 순간 찬란하게 눈에 들어왔다. 넬로는 그림을 향해 두 팔을 뻗었고, 뜨거운 환희의 눈물이 창백한 넬로의 얼굴에서 반짝였다. “마침내 그림을 봤어! 오 하나님! 이제 됐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렇게 소원하던 그림을 보고, 굶주림과 추위에 떨면서 넬로는 충실한 개 파트라슈와 함께 죽어갔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따르면, 개는 사람이 길들인 최초의 동물이다. 정확한 시기에 대한 주장은 엇갈리지만 약 1만5천년 전에 이미 가축화된 개가 존재했다는 증거도 있다. 개는 사냥과 싸움에 이용되었으며 집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도 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사람과 개는 서로 의사소통이 잘 되도록 진화했다. 사람과 개는 사람과 다른 동물의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북부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1만2천년 전의 무덤에는 50세 정도의 여자와 강아지 뼈가 들어 있었다. 강아지는 여자의 머리 가까이에 묻혔다. 그녀의 왼손은 개 위에 놓여 있었는데, 이는 감정적 유대관계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죽음의 동반자로서 애완견이 장례의식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광활한 우주에 푸른 작은 별, 지구에는 인간만이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이 서로 공존하며 풍요로운 관계로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한 해에 버려지는 개가 10만 마리나 된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2022-06-22

예천군 인사, 화합과 포용 실천하길

정안진 경북부 민선 8기 김학동 예천군수가 무투표 당선으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국민의힘 예천 후보 경선과정에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했다.당시 경선과정에 김 군수 측근의 활동이 상당했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게 정치라지만 정쟁의 상대측을 끌어안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그러나 선거로 인한 갈등과 대립의 상처를 씻어내고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를 따뜻하게 안을 수 있는 넓은 가슴을 지녀야 한다.그래서 그런지 오는 7월 예천군 인사를 앞두고 뒷말이 무성하다.5급, 6급 승진 대상자와 보직 이동을 앞둔 공무원들은 후보 경선 때 김학동 현 군수를 위해 도움을 준 척도에 따라 요직으로 발탁될 것으로 공직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는 실정이다.공무원 A씨는 “승진을 위해 업무는 뒷전이고 군수 측근들의 줄서기와 후보자 주변을 배회하는 등으로 이번 인사에서 승진과 보직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착잡한 심정이라고 소회를 털어놨다.또 군수 측근들로부터 소외된 공무원은 한직으로 밀려날 것이라고 측근들은 호언장담을 하고 있다 보니 김학동 군수의 재선 이후 첫 인사를 앞두고 공무원들 사이에 긴장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그러나 인맥이 없더라도 군민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가 인정받고 출세하는 공직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공무원 조직내에서는 투명한 인사시스템 가동을 통해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가 인정받는다는 믿음을 심어주는게 필요하다.K 전 군수는 ‘관직이란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데려다 앉히는 게 아니라, 설령 정적이고 나에게 불경한 공무원이라도 그 임무를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라고 했다.지역 발전을 위한 화합의 정치는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갈라진 틈새에 다리를 놓아가면서 ‘화해와 포용’으로 대통합 예천군을 만들어가기를 김학동 군수에게 기대해 본다./ajjung@kbmaeil.com

2022-06-22

원죄(原罪)의 경계에서 사는 삶

오낙률시인·국악인 원죄라는 말은 5세기 아우구스티누스가 확립한 기독교의 대표적 교리로 알려져 있다. 원죄라는 말의 의미는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아마도 오늘날 현대인이 받아들이기 편한 참 의미가 아닐까 싶다.필자는 농촌 생활을 하며 가끔 이 원죄라는 단어에 대해 농민의 삶을 연관 지어서 사색하곤 한다. 농민의 삶이라는 것이, 끝없이 생명을 빚어내고 또다시 그 생명을 거둬들이는 일이고 보면 농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사색 행위가 어쩌면 나 자신을 향한 연민 또는 번민의 발로라 해도 틀린 생각은 아닐 것 같다.살면서 원죄라는 단어를 생각하다 보면 ‘죄(罪)’라는 단어의 참 의미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된다. 일반적 개념의 ‘죄’라는 단어는 ‘나를 위해 타자를 해치는 행위’로 정의하는 게 보편적 상식이다. 약육강식이라는 생태 질서의 순리로 놓고 볼 때, 여타 생명의 무리에게는 ‘나를 위해 타자를 해치는 행위’ 그 자체가 자연적 삶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공동체를 이루며 문명 생활을 하는 우리 인간에게는 ‘죄’라는 개념의 철저한 의식화만이 원만한 공동체 생활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 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죄’라는 단어는 우리 인간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교육적 개념을 내포하는 중요한 단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사회생활 근본은, 죄가 되는 행위와 죄가 되지 않는 행위로 대별 되는 이분법 그 속에서만이 존재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가끔, 대다수 농민이 도시 사람보다 못 사는 이유에 대하여 사색할 때가 있다. 농민이 도시인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못 사는 이유를 앞에서 언급한 원죄라는 단어와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대다수 농민의 농사행위 자체가 원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행위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자연이라고 함은 물의 원활한 순환 활동을 위해 꾸려진 하나의 조직 이름쯤이라 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인데, 나는 그 조직원이면서도 늘 농사를 짓는답시고 끊임없이 물의 순환 활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잡초마저 필요 없다는 간단한 원리를 모르고 끝없이 밭고랑이나 논밭 둑 또는 생활 주변의 공터에 자란 잡초들을 못살게 굴고 있었다. 농촌 생활이란 겨울을 빼고는 늘 잡초와의 전쟁에 놓인 셈이니 농민의 삶이란 대자연의 순환 활동에 정면으로 위배 되는 원죄의 대표적 행위가 아닐까 싶다.일찍이 인간 사회에서 죄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종교 또한 인류의 삶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죄라는 단어는 종교라는 사회적 집단을 생겨나게 한 배경이 되기도 하고, 유지 발전케 하는 에너지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혐오의 대상이 될법한 단 한 글자 ‘죄’라는 단어 하나가 이렇게 인간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일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지상에서 가장 길고도 짧은 글자 ‘죄’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마다 옷깃이라도 여미며 예를 취함이 어떠할까 싶다.

2022-06-22

벚꽃 피는 순으로 망한다?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2022년 현재.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한국 대학은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수도권에 있는 ‘SKY’ 중심의 소수 대학과는 무관한 일이지만, 지방에서는 그 위기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 벚꽃 피는 순으로 망한다는 비유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국립대학은 그나마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지방 사립대와 전문대를 중심으로 학과 통폐합 혹은 폐과가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물론 지방 대학 위기의 원인이 학령인구 감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에 집중된 양질의 일자리와 젊은 세대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지역의 인프라 등은 지방 대학 신입생 충원율이 떨어지는 중요한 이유이다. 지자체, 대학, 기업이 연대한 ‘공유 대학’이 출범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위기는 기회다. 지방 대학이 처한 지금의 상황은 변화를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몇 년 지역의 국립대학이 젊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사립대가 퇴직 교수의 후임을 안 뽑거나 비전임으로 채용하는 동안 국립대학은 빈자리를 빠르게 채웠다. 필자가 속한 학과의 최선임 교수는 50대 초반이며, 최선임 교수가 40대 후반인 학과가 주위에 다수 존재한다. 앞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퇴직이 마무리되면 지방 국립대학 교수들은 50세 전후가 중심이 될 것이다.필자는 최근에 오는 8월 정년을 맞이하는 교수의 고별 강연에 참석했다. 그분은 1981년에 진주로 내려오셔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자신의 연구를 기반 삼아 지역 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하셨다. 필자가 알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 교수들의 서사도 이와 유사하다. 한 마디로 지역에서 동학들과 학문 정진에 힘쓰고 그 능력을 바탕으로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교육에 매진하는 삶의 이정표가 살아 있는 세대였다.이제 신임 교수들이 학교와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일해야지만 현실은 막막하다. 과거와 다르게 학계·사회의 경계가 명확해진 점, 신임 교수들의 개인주의적 성향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역과 연고가 없는 신임 교수들이 지역과 연계되어 활동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해당 지역 혹은 특정 대학 출신 교수들이 장악한 기득권을 넘어서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나는 우리 대학에 부임하며 지역과 학교 발전에 대한 나름의 계획과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입사 1년 차에 치러진 총장 선거에서 ‘조교수 협의회’를 만들겠다는 후보자에게 투표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어느 것 하나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무능력이 가장 큰 탓이겠지만,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카르텔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특별한 반전이 없는 이상 학령인구는 계속 줄어들 것이고 지방 대학의 위기감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제까지의 역사가 보여주듯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정해진 미래임에도 중앙과 현장, 모두 우왕좌왕하고 있다. 젊어진 대학의 주체들을 제도 혁신의 일꾼으로 이끌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2022-06-22

‘원숭이 두창’ 경계령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원숭이 두창은 1950년대 아프리카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된 인수 공통감염병을 말한다. 1958년 연구를 위해 사육된 원숭이들에서 수두와 비슷한 질병이 발생했을 때 처음 발견돼 ‘원숭이두창’이란 이름이 붙여졌다.증상은 두창과 유사한데, 감염되면 수두와 같은 발진이 손과 얼굴에 나타나며 발열, 근육통, 임파선염, 오한, 피로감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치사율은 변종에 따라 1~10% 수준이다. 원숭이두창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천연두 원인인 두창바이러스(variola virus)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초기 증상도 기존처럼 열부터 나는 게 아니라 입과 항문 등에서 발진이 시작돼 다른 부위로 번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감염은 주로 성관계 등 밀접한 신체 접촉을 통해 이뤄지며, 감염자가 이용한 옷이나 침구·수건을 만지거나 감염자의 기침 등을 통해서도 전염될 수 있다.1970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처음 보고됐으며, 이후 가봉, 나이지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코트디브아르, 콩고공화국, 카메룬 등 중·서부 아프리카 국가에서 풍토병화됐다.그러나 2022년 5월 이후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을 중심으로 발생하기 시작, 미국 등 풍토병이 아닌 국가에서 이례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우리나라는 지난 6월 원숭이두창을 2급감염병으로 지정하고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지난 22일 방역당국은 원숭이두창 의사환자(의심자)인 외국인 1명과 내국인 1명에 대해 검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혀 ‘원숭이 두창’ 경계령이 내려졌다. 특히 신생아, 어린이, 면역저하자 등에서는 심각한 증상으로 진행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6-22

교육에 관한 한, 대통령은 다시 생각하시오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통령이 선언하였다. 그는 “교육부가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면서 혁신을 수행하지 않으면 교육부가 개혁 대상이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현대문명에 과학기술이 차지하는 자리를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부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해할 만도 하다. 한발 더 나아가 “교육부도 경제부처”라는 대통령의 표현이나 “교육이 곧 안보”라는 총리의 인식에는 걱정이 앞선다. 사람을 무엇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 쓸 연장쯤으로 보는 게 아닌가. 사람에게 일을 시켜 나라가 돈을 벌거나 사람을 앞세워 나라를 지키겠다는 발상은 해도 되는 것일까.교육부는 그 명칭조차 부침을 겪었다. 한때 ‘교육인적자원부’였으며 ‘교육과학기술부’가 되어 거의 사라질 뻔도 하였다. 오늘 대통령과 총리의 주문에 따르면, 다시 벼랑 위에 섰는가 싶다. 호연지기(浩然之氣)로 가득한 ‘사람’을 기르기보다 쓸 만한 연장을 만들어 나라를 도와야 하는 처지에 몰린 게 아닌가.반도체가 긴요한 산업임을 누가 모를까. 그렇다고 교육부가 하루 아침에 온통 과학기술과 반도체에 매몰되는 저 모습은 처연하기만 하다. 교육을 그저 행정행위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철학과 소신도 없이 교육을 관리만 해 온 끝자락인 셈이다. 이제 어찌할 터인가. 교육을 모르는 대통령에게 필요해 보이는 연장만 찍어낼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교육을 교육답게 다시 세울 것인가.세상은 끊임없이 흐르고 바뀐다. 공학만 해도 토목공학과 전기공학은 정말로 원자력공학과 반도체공학에 밀려났을까. 방금 성공궤도에 들어선 우주공학은 아직도 뒷자리일까. 생명공학과 의학은 벌써 쓸모가 시들었을까. 과학기술의 지평은 ‘반도체’밖에도 너무나 넓다.대통령과 총리는 조급한 심사를 벗어야 한다. 반도체와 과학기술이 물론 긴요하지만, 나라를 세울 덕목의 리스트는 그 외에도 차고도 넘친다. 나라를 이끌면서 좁은 한 우물에만 빠져서야 되겠는가. 방금 성공의 깃발을 올린 우주공학은 어찌 되는가. 레드카펫에 우뚝 선 대한민국의 영화와 세상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이끄는 BTS. 손흥민은 유럽의 축구를 흔들고 임윤찬의 피아노는 세상도 놀랐다는데. 나라의 다음세대에게 반도체만 가르칠 것도 아니면서 교육부의 생명이 반도체와 인재육성에 달렸다니!교육은 할 일을 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교육은 사람을 길러야 한다. 파도치는 세상에 그 파도가 멎기를 기다리기보다, 폭풍우 속에라도 당당히 헤쳐갈 슬기와 용기를 길러줘야 한다.나 혼자 성공하여 외롭게 서기보다, 벗과 함께 이웃과 함께 따뜻하고 멋진 세상을 열어갈 측은지심도 길러줘야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이병주의 ‘행복어사전’은 이렇게 적는다. “파사데나의 젊은이들은 우주정복을 꿈꾸는데, 꽃은 한 번 밖에 피지 않는다.”우리 교육은, 어떤 사람을 기를 터인가.

2022-06-22

이것은 나의 몫, 나의 책임

사람들은 모두 꿈을 꾼다. 불완전한 자신을 벗어나 완전하고 충만한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 더 나은 삶, 더 즐거운 인생, 더 나은 ‘나’의 모습을 꿈꾸며 저마다의 미래를 꿈꾼다. 그래서 꿈은 모두 제 갈래의 길로 갈라져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는 공통된 목적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가닿는 방법은 모두가 다르다. 같은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설혹 비슷한 미래를 꿈꾼다 할지라도.이렇게 말하자면 모두가 다른 꿈의 조각을 앓으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같은 꿈의 조각을 앓고 있다. 지금의 나에 대한 불만족으로부터 비롯되는, 더 나은 내가 되는 꿈 말이다. 어느 누구도 지금의 자신을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제 각각의 불완전함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꿈이 모두 나름의 색으로 칠해져 있어 제각각의 색으로 빛나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원하는 건 사실 꽤나 단순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무언가, 자신의 삶을 충만하다 느낄 수 있게 해 줄 무언가다.어렸을 때,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줄 알았다. 내가 원하는 걸 마음껏 꿈 꿀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가난과 화목하지 않은 가족 속에서, ‘나’의 꿈은 실현 불가능한 미래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그 무렵 나는 음악이 하고 싶었다.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나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믿었고, 얼마든 열심히 할 수 있고 또 잘 해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돈과 시간이었는데, 가난했던 우리 가족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다. 그게 밉고 싫어서, 나는 학교도 가지 않은 채 매일을 떠돌아다녔다.나는 진심을 다해 나를 둘러싼 환경을 마음껏 원망했다. 세상에는 자신이 무얼 원하는 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토록 허다하게 많은데, 하고 싶은 일을 찾았음에도 그걸 할 수 없게 만드는 무능한 가족들이 미웠다. 나의 삶이 비극으로 끝난다면, 그건 나의 환경 탓이리라고 진심으로 믿었다.어느새 20년 가까이 지난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씩 그 무렵의 감정을 생각한다. 그때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만약 내가 정말로 음악이 하고 싶었다면,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주말이면 레슨을 받고 했다면 됐지 않았을까? 정작 학교를 관뒀을 때 지독한 무기력감에 시달렸던 건 왜였을까? 왜 나는 내가 스스로 해내지 않고, 부모님에게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도록 ‘전부’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던 걸까. 그들이 결코 내어줄 수 없으리라는 걸 그보다 더 어렸을 때에도 잘 알고 있었으면서.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에 가닿게 된다. 나는 정말 음악이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정말로 음악이 하고 싶었던 걸까. ‘나’라는 인간이 사실은 그저 평범하고 아무런 재능도 없으며, 죽기 살기로 노력해야 겨우 평범한 수준에야 이를 뿐인 지극히 보통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건 아닐까. 그렇기에 ‘음악’이라는 닿을 수 없는 꿈을 목표로 설정하고 스스로의 결핍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타인의 탓으로 돌렸던 건 아니었을까.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아마 답은 없을 것이다. 그건 이미 20년이나 지나버린 과거이고, 그때의 열정은 그때의 나만이 알고 있을 것이므로. 어쩌면 그건 오로지 ‘나’만의 탓도 아닐 것이고, 오로지 ‘부모’의 탓도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공평하게 무능했고, 공평하게 비겁했던 것 같다. 할 수 없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것이 공평하게 뒤섞여,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만약 그때 정말로 음악을 시작했더라면, 부모님께서 나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었다면, 나는 그만큼 음악을 열망하진 않았으리라는 거다. 적어도, 나의 음악에 대한 열망은 그만큼 순수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다만, 여전히 나는 방법을 모른다. 단 하나 아는 것이 있다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이 실현될 수 없을 때, 그걸 남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건 나의 삶이 타인에 의해 규정되도록 만드는 생각이니까. 환경이 나의 삶을 규정하도록 내버려두는 짓이니까.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어야만 했다. 내가 나의 욕망을 실현시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건 타인의 탓이 아니라 나의 무능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이다. 오직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만이, 나의 삶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게 점점 나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2022-06-21

이야기의 힘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해야 했다. 익숙한 환경을 뒤로한 채 낯선 세계에서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학생을 향한 조건 없는 환대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자주 교실에 홀로 놓였다. 같은 반 친구들과 나누는 시답지 않은 대화. 짝을 지어야만 하는 체육 시간. 삼삼오오 모여 급식소로 향하는 경쾌한 발걸음. 그러한 일상은 내게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대로인데 나를 둘러싼 세상은 완전히 변해있었고 그 간극을 메우는 방법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책은 내게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만화나 게임기는 가차 없이 압수하던 선생님이 소설만큼은 허용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나 발자크 같은 작가의 이름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두드려주기까지 했다. 그 격려가 나의 유일한 자부심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도서관에 들러 어려워 보이는 책을 찾았고 모든 문장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끝끝내 읽어내기 위해 노력했다.그러니까 소설을 읽는 행위는 중학생이었던 내가 행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의 방식이었다. 육체는 교실에 있지만 정신은 머나먼 곳을 유영하면서 일종의 자유로움을 느낀 것이다.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는 생생한 체험으로 다가왔으며 강렬한 방식으로 나를 매료시켰다. 어느 순간부터 소설은 단순한 도피처가 아닌 나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다.인간은 상상하는 동물이다. 이 괴상한 능력 덕분에 인류는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작가들은 상상의 영역으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계를 그린다. 그것은 희망적인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고 섬뜩하고 두려운 형태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는 작가의 결심에 달려 있다. 놀라우리만치 디테일한 세상을 그려낸 올더스 헉슬리, 조지 오웰, 그리고 마거릿 애트우드처럼.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전체주의 국가를 상상한다. 소설의 배경은 21세기 중반이다. 전 지구적 전쟁과 환경오염으로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하게 되고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되면서 ‘길리아드’라는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남성 권력자 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 사회로 구성원들의 활동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모습을 보여준다.이토록 끔찍한 국가에서 가장 희생당하는 건 여성이다. 그들은 기능대로 옷의 색이 정해져 있으며 여성의 역할은 가임과 출산에 국한된다. 이러한 체제를 옹호하는 자는 말한다. 과거의 사회는 선택권이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차고 넘치는 선택의 여지에 죽어가는 사회’였다고. 그러니 지금의 상황이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고. ‘세상에는 자유가 한 가지밖에 없는 게 아니야. 목표를 향한 자유가 있는가 하면 무언가로부터의 자유가 있지. 무정부 시대의 자유는 무엇을 행할 자유였어. 하지만 지금 여러분들에게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거야.’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자유를 박탈당하기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며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이것을 내가 꾸며내는 이야기로 믿고 싶다. 만일 내가 꾸며낸 이야기라면, 결말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언젠가 끝이 나고, 진짜 삶은 그 후에 이어질 것이다. 끝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허구의 인물은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도 그것이 허구이기를 바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우리는 너무나 명징한 현실을 발견하게 된다.그런 면에서 이야기는 신비하고 이상하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일수록 그렇다. 선명하게 흘러가는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완전히 빠져들게 되고 그러다가도 순식간에 모든 것이 휘발되며 백지상태가 되기도 한다.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고 한 시대를 뒤흔들 수 있는 거대한 가치를 마주하다가도 하등 쓸모없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애트우드는 이야기를 쓰는 행위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어둠, 그리고 욕망이나 충동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 들어가서 운이 좋으면 어둠을 밝히고 빛 속으로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오리라는 욕망 또는 충동 말이다.’막막한 외로움에 어쩔 줄 모르던 과거의 내게 세상의 모든 낙관적인 단어를 모아 건넸다 한들 어떤 위로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도서관에 꽂혀 있는 무수한 소설책 또한 완전한 위로의 방식이 될 순 없었다. 늘 그렇듯 소설은 해답을 주지 않으니까. 하나의 이야기를 그저 보여줄 뿐이니까. 거기에서 빛나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것은 결국 스스로가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라는 전언이며 그 무심하면서 다정한 언어야말로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의 놀라운 힘이다.

2022-06-21

이젠 영주시 발전 힘 모아야

김세동 경북부·영주 공명지조(共命之鳥)는 불교경전에 나오는 상상의 새로 몸 하나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로 하나가 죽으면 또 하나가 따라 죽는다.공명지조 한 머리가 낮에 좋은 열매를 찾아 먹자 이를 질투한 또 다른 머리는 독이 든 열매를 먹어 두 머리는 결국 죽었다고 한다.서로 생각과 행동이 달랐기 때문이다.공명지조는 분열된 사회를 상징하는 의미로도 해석 된다.영주시도 마찬가지다.지난 1일 지방선거가 끝나자 지역의 발전을 위해 주민 화합이 우선 돼야 한다는 시민들의 바람을 뒤로한 채 일부에서는 근거도 없는 공과를 평하는 모습이다.‘저사람은 누구를 도왔다’, ‘또 이사람은 우리 편이다’, ‘저기 누구는 양다리를 걸쳤다’는 이야기가 나돈다.이런 평가를 받는 이들 중 다수는 현직 공무원들이다.지방선거에 당선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지역 발전을 위해 이들 공무원들과 함께 일을 해 나가야 하는데 취임도 하기 전 공무원들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정치나 사회, 문화 등 각자의 이야기와 생각을 추구하는 것은 서로의 관념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영주시는 공동운명체다.그러기에 각자 다른 생각들을 모아 하나로 만들고 좋은 것을 택하며 이를 시행하는 과정이 우리가 발전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선거는 끝났다. 승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임무를 완수하고 주변에서는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해줘야 한다.내가 승자의 최고 핵관이라는 허울을 앞세워 남의 인생을 관여하는 것은 절대 안된다.특히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이들은 영주발전을 위해 최전선에 서 있기 때문이다.지역 발전을 위한 진정한 마음은 상호간의 질투는 없애고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서로가 이해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핵관, 핵관, 핵관이 아닌 시민, 시민, 시민, 하나의 시민이 되길 바란다.시작하는 이에게 주변인들이 부담이 되어서는 안된다.공명지조처럼 생각이 다르다고 서로 공멸하는 사회는 만들지 말자./kimsdyj@kbmaeil.com

2022-06-21

가까이 있지만 가깝지 않은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담쟁이가 싫었다 / 무엇이든 엉망으로 휘감는 넝쿨식물이 싫었다 // 곁을 둔다는 말 / 곁은 조금 떨어진다는 말 / 시든 풀포기를 심어도 되살아 오를 것 같고 / 차 한 잔 놓아두고 싶은 곳 / 반쯤이나 손을 내밀면 닿을 거리”배냇정서는 농촌이고 감각은 도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전영관 시인의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세계사, 2012)에 수록된 시 ‘곁’의 1연과 2연이다. 쌉사래하면서 달짝지근한 칡물처럼 그의 시구를 몇 번 곱씹으니 처음에는 갸우뚱하던 의미가 은근히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와 박힌다. 담쟁이는 곁을 두지 않는다. 무엇이든 그냥 휘감거나 붙어서 자라고 살아간다. 차 한 잔 놓아두고 싶은 정도로, 손 내밀면 닿을 정도로 조금은 떨어져 있는 것이 마음 편한데, 담쟁이는 그렇지 못하다. 시인은 여유 없이 휘감고 들러붙는 담쟁이 같은 존재들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곁’은 ‘어떤 대상의 옆 또는 공간적·심리적으로 가까운 데’를 뜻하기도 하고 ‘가까이에서 보살펴 주거나 도와줄 만한 사람’을 뜻하기도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로 중국과 일본이 있다. 이 두 나라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시나 우리에게 이들 나라는 시인이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했던 담쟁이와 같은 존재는 아닐까?1965년 6월 22일에 한일협정이라고도 불리는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되었다. 조약의 조인과 함께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어업에 관한 협정’, ‘문화재·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 네 개의 부속 협정이 함께 체결되었다. 이로써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이후 20년 동안 단절된 상태에 있었던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졌다. 이 조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일본이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일본의 북한 접근을 견제한 것이다. 한일기본조약은 5·16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의 정당성 확보와 안정적 정착에 기여하였다고 평가되고 있다.조약이 체결된 지 57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어떠한지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양국의 공통의 복지 및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고 국제평화 및 안전을 유지하는 데 양국이 국제연합헌장의 원칙에 합당하게 긴밀히 협력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라는 조약의 문구가 과연 잘 이행 되고 있는가? 추상적 선언의 문구니 왈가왈부해서는 안되는 것인가?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나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도 그렇듯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 사이에는 정치 경제와 사회 문화적인 갈등과 긴장이 상존한다지만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여느 나라들보다 더욱 복잡미묘하다. 부속협정인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1966년부터 10년에 걸쳐 도입된 5억 달러의 대일청구권자금으로 한국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강제 징용 피해자의 배상 등 전후 배상의 문제는 완결되지 못한 채 갈등 속에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가까이 있지만 결코 가깝지 않은 일본. 새 정부는 어떻게 한일 관계를 풀어갈지 궁금하다.

2022-06-21

원래의 모습

조현태수필가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지독하게 가난했다. 한 때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기계를 고치러 다니는 일도 했고,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사과를 팔기도 했으며, 산동네 판자촌을 돌아다니며 양말을 팔기도 했다.그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림을 사주는 사람이 없었다. 마로니에 공원과 도서관 앞에 그림을 펼쳐 놓았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져 주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았다.그는 그림 다음으로 글쓰기를 좋아했다. 야간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7년에 걸쳐 글을 썼다. 나중에 책이 출간되면 절반은 가정을 돕고 절반은 가난한 이웃에게 선한 도움을 주고 싶다고 기도하면서 썼다.원고 뭉치를 들고 출판사를 돌아다녔지만 그의 글을 사 주는 곳이 없었다. 다섯 번이나 거절을 당했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그가 낙심하지 않은 이유는 어딘가 자신의 글을 알아 줄 출판사가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찾아간 출판사에서 그의 글을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독자들을 울린 베스트셀러 ‘연탄길’이 출간되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지만 ‘아픔’이 스며있는 책. 그 ‘연탄길’에 그가 그린 그림이 실려 있다. 이철환 작가의 이야기다.그는 ‘곰보빵’에서 낙심하지 않은 이유를 고백한다.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있을 때도 나는 프란츠 카프카를 읽었고 아무도 사지 않는 그림 옆에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때도 나는 알프레드 까뮈를 읽었다. 도스토엡스키와 말라르메, 스타니슬라프스키와 헤르만 헤세가 있어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사람을 꿈꾸게 하는 것은 기쁨이 아니었다. 아픔이었다. 나는 지금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평화롭고 행복하다. 아름다움의 원래 모습은 아픔이었다.”그는 이런 일도 고백하고 있다. 어느 지하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화장실 풍경이 몹시 낯설었다. 남자들만 사용하는 소변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어리둥절 하는 순간 여자 화장실로 잘못 들어간 것을 깨달았다. 깜짝 놀라 화장실을 급히 빠져나가려는데 공교롭게도 한 여성과 입구에서 마주쳤다. 그 여자 분도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죄송하다’는 말을 강조하며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남자화장실로 잘못 들어간 그 여자를 향해 ‘죄송합니다. 거긴 남자 화장실입니다’ 라고 소리치고는 도망쳤다고 한다.그의 실수 때문에 그 여자 분만 애꿎게 봉변을 당하게 되었으니 몹시 죄송했으리라. 물론 앞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 뒷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아픔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는 있어도 실수는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되돌리지는 못한다. 다만 실수로 인한 아픔이 클수록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누구인들 낙심하지 않을 수 있으며, 실수가 없을 수야 있겠냐만 절망하지 않는 아픔과 도망치지 않는 아픔이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이런 원래의 모습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2022-06-21

R의 공포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나라 경제가 I의 공포에서 R의 공포로 넘어간다는 경고가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물가는 오르고 화폐가치는 떨어지는 인플레이션(Inflation) 단계를 넘어 우리 경제가 경기침체(Recession)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뜻이다. 특별하게 인플레이션의 I와 경기침체의 R 뒤에 공포를 붙인 것은 그 정도가 심각함을 강조한 것이다.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나라마다 경제상황이 악화일로다. 한국도 예외 없이 어렵다. 오일쇼크 후 50년만에 스태그플레이션을 겪는다는 분석도 나왔다. 경제부총리가 “경제전쟁의 대장정을 시작하자”고 언급할 정도니 경제 사정이 긴박한 건 분명하다.윤석열 대통령도 “세계 경제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며 민생 안정을 주문하고,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상당수가 우리 경제를 비관적으로 본다는 결과가 나와 모두가 걱정이다.지난달 19일 스리랑카가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국가부도의 직접적 원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가와 식량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가와 기업, 가계가 이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우리 경제는 기초체력이 괜찮아 스리랑카처럼 갈 일이 없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국가채무가 1천조를 넘고 가계부채가 국가 총생산보다 많아 금리가 인상되면 취약층을 중심으로 빚을 갚지 못할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전망이 있다. 간과할 일은 아닌 것 같다.정부의 물가 잡기 노력에도 빠르면 이달 물가상승률이 6%를 넘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경기침체에 대한 두려움 이른바 R의 공포가 서서히 엄습하는 분위기다.서민가계가 걱정이다. 경제 불황의 시작은 본래부터 없는 집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6-21

권력자의 부패범죄 덮일 수가 없다

심충택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아침 용산 대통령청사 출근길에 취재진과 주고받는 인터뷰 내용이 매일 주요뉴스가 되고 있다. 이제 TV를 통해 지켜보는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국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식되고 있다.아마 대통령 본인은 취재진이 안 보이는 출입구를 따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대단할 것이다. 언론의 본질이 권력에 비판적인데다, 종편방송은 거의 온종일 공격적인 패널을 동원해 비평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으니, 출근길이 상쾌하진 않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대통령이 매일 아침 기자들과 마주치면서 즉석 질의응답을 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해 ‘권력자의 권위의식’을 그만큼 낮춘 것이다.윤 대통령은 지난주말 출근길에는 기자들에게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의원 관련 수사가 정치 보복이라는 말이 민주당에서 나온다’는 질문을 받았다. 이전에는 해당수사를 담당하는 부서 간부가 검찰청 출입기자들에게 받던 질문이다. 이에대해 윤 대통령은 “정상적 사법시스템을 정치논쟁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나”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당장 비난이 쏟아졌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윤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했던 국정농단 수사가 정치보복 수사였다고 주장하는 것인가”라고 비꼬았다.윤 대통령의 출근길 발언으로 전 정권 수사를 둘러싼 본격적인 진영싸움이 시작됐다. 지금 당장 이슈가 되는 문재인 정권 수사는 2가지다.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대장동·백현동 비리 사건이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에는 문재인 정부의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핵심 피의자로 수사받고 있다. 백 장관은 부하공무원을 시켜 산하 발전사 사장과 공공기관장에게 사표를 종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장동·백현동 비리 사건은 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성남시장을 할 때 벌어진 일이다. 대장동 비리는 특혜 수천억원과 뇌물 수백억원이 오간 부패범죄다. 최근에는 전 정부가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건을 은폐·왜곡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윤 대통령은 지난 2월 대선후보시절에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처럼 집권하면 적폐청산 수사를 할 건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해야죠, 돼야죠”라고 단언했다. 현재 전 정권과 관련해 수사나 재판이 진행중인 사건은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대장동·백현동 비리 사건 외에도 울산 시장 선거 공작, 원전 경제성 조작, 대통령 딸과 관련된 이상직 비리사건 등이 있다. 모두 실정법 위반 혐의에 따른 사법 절차가 진행중이다.전 정부 권력자와 야당이 반발한다고 해서 진행 중인 수사를 덮을 수도 없고 덮이지도 않는다. 범죄 행위에 대한 단서와 고소·고발이 있으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수사기관은 야당에서 ‘먼지털기식 수사’ 또는 ‘보복수사’를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광범위한 증거자료를 확보해 범죄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2-06-21

‘완전사회’는 도래할 것인가 ?

인류에게 있어 ‘과학’이라는 단어는 마법술과 같이 언제나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기능해 온 것만 같다. 우리가 모두 느끼고 있듯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이란 언제나 예측불허이고, 결정 불가능성 속에 놓여 있게 마련이라, 마찬가지로 그렇게 불안하고 두려운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럴 때마다 거대한 문자로서의 ‘과학’은 인간이 그런 삶에 일말이나마 단단한 확신의 토대를 마련해온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적자생존!”이라는 선명한 선언을 인류 사회로 옮겨 제국주의 시대를 여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던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떠올려보라. 그것이 점유했던 가장 강한 적자만이 생존한다는 그것이 ‘과학’이라는 담론이야말로 시대적인 당위성에 대한 예감으로 식민지 정복전쟁에 나서고 있던 청년 군인의 두려움을 절박한 미래의 확고한 전망으로 대체해주는 것이 아니었겠는가.이처럼 언제나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전망이 떠오를 때마다 ‘과학’은 그 불안함을 확실한 당위 내지는 절박함으로 바꾸는 중요한 힘으로 기능해왔다. 맬서스의 인구론이 가져온 공포가 뒤덮고 있던 시대,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전망과 함께 ‘과학’이, 혹은 과학에 대한 상상이 떠오르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한국 최초의 과학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김동인의 ‘K박사의 연구’(1929)가 비대해가는 인구에게 도래할 식량 생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친 과학자’의 노력을 다루고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과학은 언제나 유토피아적인 장밋빛 미래 전망과 연결되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가장 우울하고 가장 비관적인 디스토피아적 미래 전망과 접속한다. ‘과학’은 언제나 사회에 대한 미래적 불안의 배후에서 출현해서 ‘움직이고 있다’.어쩌면 과학기술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들은 대부분 이렇게 당시에 존재하고 있는 시대적인 불안의 징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 최초로 창작된 에스에프(SF), 즉 사이언스픽션(Science Fiction) 장르의 작품인 문윤성(1916~2000)의 ‘완전사회’를 읽으며 그 소설 속 알레고리로 들어 있는 시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물음과 관련되어 있다. 당연하게도 1967년에 출간된 이 작품 속에는 한국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 4·19를 겪으며 민주주의의 분위기로 팽배해 있다가 독재사회로 넘어가게 될 무렵의 시대적 전망이 배경으로 펼쳐져 있는 것이다.이 소설은 인간을 냉동시켜서 보존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그를 위해 완전인간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한국인 우선구는 바로 이 완전인간에 선발되어 냉동되었다가 161년만에 깨어나게 되는데, 그가 눈앞에 맞이한 세계는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완전사회’였다. 이 사회는 한글과 영어 알파벳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언어 하나만 쓰이고, 인류는 여성만이 존재하고 남성들은 모두 화성으로 추방당한 사회였던 것이다. 이 완전한 사회 속에 유일하게 남성으로 존재하는 옛날 인간 우선구는 철저한 감시의 대상이 되면서 곤란을 겪지만, 협력자들과 협력하면서 스스로 완전사회에 균열을 내는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한다.이 소설에서 작가가 쌓아올린 161년 후의 ‘완전사회’라는 것은 꽤 놀랍고 정교하다. 여성이 사회의 유일한 젠더가 되는 과정도 가상의 역사로서 잘 구현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과학이 부여해온 기대와 두려움이 점이적 영역이 드러난다. 젠더와 언어가 통합된 완전한 사회, 그것이 또 다른 전체주의 파시즘의 시대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의 다른 편에, 민족주의가 소멸한 유토피아적인 미래상이 펼쳐져 있다. ‘과학’은 그저 놓여 있을 뿐이지만, 그를 둘러싼 우리의 사회는 그것을 매개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2-06-20

올림퍼스의 노예들 <Ⅵ>

물론 부모가 돈이 많으면 조금 편하기는 하겠지. 없는 부모를 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하지만 그건 우리가 녀석들에게 주고 싶은 만큼만, 내려주는 만큼만이지. 내가 어느 정도 내려줄지 나도 알 수가 없지. 어쨌건 뭔가 위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건 옳은 자세가 아니잖아? 누군가 내려주기만을 바라는 것 말이지. 마치 당연한 듯 말이야. 쉽지 않겠지만 스스로 구해야지. 우리처럼. 그러다 또 안 되면 어때. 나이 들 때까지 버티면 되지.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명칭인데, 노년 기본 소득보다는 노년 기본 수당이 조금 더 마음에 들어. 기본 소득이라고 하면 뭔가 공짜로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기본 수당, 이렇게 부르면 과거든 현재든 나의 공헌에 대한 대가, 당당하게 요구해도 되는 뭐 그런 것. 알잖아? 그런 기분.방송에서,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대화에서 반복되고 덧붙여지고 재생산되는 이야기였다. 노마의 아비는 어디선가 누군가로부터 들었을 이야기를 자기 것인 양 했다. 당신이 만든 이야기가 아니지 않느냐 굳이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복습을 하듯 들었다. 자신들의 편안한 노후가 자신들의 과거로부터 전해진 것이라 믿었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선 아들과 딸이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아이들? 우리의 시절보다 훨씬 나은 시절을 사는 거지. 그렇지 않아? 그들은 그렇게 여겼다. 그들의 아비 어미가 살았던 세상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더 낫다고 굳게 믿는 것처럼.신이네, 신. 시동을 걸고 네비게이션 검색을 하던 노마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예전엔 혹은 우리도 예전에는’과 같은 탄생 신화를 가지고 ‘너희가 뭐라 해도’라는 힘으로 세상을 움직이며 ‘너희도 언젠가는’이라는 희망을 몸소 나타내는 신. 그리스 로마의 신과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그 수가 많았다. 전체 인구의 40%가 신이다. 나는 신전을 관리하는 시종 말단이거나 올리브 농장의 일꾼 정도 되겠네. 아니, 노예인가? 노마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끼익, 소리가 났다.노마는 최 회장의 아들을 만나면 먼저 화부터 내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최 회장 아들 정도 되는 사람의 눈에는 교양 없는 행동으로 보이겠지만 이럴 때는 무식하게 나가는 것이 더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젊은 여자 배를 부르게 해 놓았으면 책임을 져야지. 뭐라고? 아이는 내 아이가 맞는데 결혼은 할 수 없다고? 그게 말이야? 노마는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는 상상을 했다. 최 회장 아들이 얼굴을 붉히며 ‘일단 앉으시지요.’라든지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자리를 옮기시지요.’하며 어정쩡한 자세로 마주 선다면 더욱 기세를 올려도 된다. 내가 말이야. 회사 사옥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할 참인데 그 전에 통보라도 해주려고 보자 그랬어. 이렇게 말을 던지는 거다. ‘무슨 일인 시위까지.’하며 굳은 얼굴로 쳐다보겠지. 아니, 이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게 없나. 이게 일인 시위할 일이 아니면 뭐가 일인 시위할 일이야. 사람이 죽어 나가야 되는 거야? 찻잔을 집어 던지거나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쳐야 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 안 된다. 이건 기선을 잡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화풀이를 하려고 만나는 것이 아니다. 화풀이가 목적이었으면 안나가 마이걸이 되었을 때, 최 회장의 아이를 가졌을 때 했어야 했다. 당당해야 한다. 노마는 정장이 아닌 작업복을 입고 나온 것이 잘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내 직업이 어때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노동자와 부자 아버지를 둔 금수저의 만남이 되는 거지. 게다가 그 부자 아버지는 노동자의 어린 여동생을 임신시켰고.-혹시 안나 씨 오빠?노마의 옆으로 한 중년 남자가 다가와 섰다.-네, 그런대요.고개를 돌린 노마가 처음 본 것은 검은 벨트의 황금색 H자 버클이었다. 회색 양복바지를 동여매고 있었다. 바지가 내려가지 않게 붙잡고 있는 것인지 아랫배가 쳐지지 않게 버텨주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무슨 일이 생기건, 언제 어느 때 건, 그게 무엇이든 꽉 붙잡고 있을 것은 분명했다. 작은 키와 삼각형의 상체. 노마는 최 회장의 아들이 대리인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변호사를 보낸 건가? 이러면 버럭 하고 화를 낼 수 없다.-아드님이 직접 나오시는 줄 알았는데.‘아드님’이라니. ‘나오시는’이라니. 노마는 자신이 뱉은 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콧등과 이마를 찌푸리고 있는 노마에게 중년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최 회장 아들 최필립입니다. 기대했던 모습이 아닌 가 봅니다.-아, 아. 네에. 저는 아드님이라 해서 저보다 나이가 약간 많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짐작보다 연배가 훨씬 높아 보이셔서.노마는 화를 내지 못했다. 얼굴을 본 첫 순간부터 공격적으로 나갔어야 하는데, 상대방이 당황하게 만들었어야 하는데.-하하. 그렇군요. 저희 아버님 연세가 여든 일곱입니다. 저는 오십 둘이고. 제가 서른둘이면 되겠습니까? 이해가 되시지요? 하긴 안나 씨 뱃속에 있는 아이도 우리 아버지의 자식이니 아버지의 나이로 자식의 나이를 짐작할 수는 없겠군요.필립은 짧은 미소를 보인 후 테이블 위 놓인 노마의 찻잔을 들여다보았다./김강 소설가

2022-06-20

다국적 나라 공통 언어가 되어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 65%, 중국계 22%, 인도계 9%, 기타 소수민족 등 다민족국가로 구성되어 있고, 말레이계 국민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공장을 짓기 위해 건축설계 허가를 받으려면 기도실이 있어야 한다. 근무 중에도 하루 다섯번은 기도를 하고 금요일은 인근 사원에 들러 기도를 하는 문화다. 이슬람교를 믿는 국민들은 술을 마실 수 없고 돼지고기, 소고기는 할랄 의식을 거친 허락된 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다. 맥주 두 잔 마신 말레이계 국민이 곤장을 맞는 종교재판이 권위가 있는 사회문화의 나라다.필자가 P사의 말레이시아 해외법인 컨설팅을 갔을 때 일이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시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 처음 간 곳은 이슬람교 큰 사원이었다. 호텔에서 식당으로 가는 길에 사원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따라 40여 분 걸어가니 큰 사원이 나왔다. 손을 씻고 대웅전에 들어가보니 코오란이 있고 벽을 보고 기도하는 모습이 새로웠다.현지 주재원과 첫 인터뷰를 했을 때 말레이계 직원은 내성적이고 적극성이 부족하고 부지런하지 않다고 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사실과 달랐다. 말레이계 직원과 대화를 했을 때 첫마디가 공장 내 기도실에 거울과 손 씻을 수도를 설치해달라는 평범한 얘기였고 그들에게는 소중한 일이었다. 문화와 인식의 차이가 관리운영 방식에 오류가 생기고 소통의 벽을 만드는 형국이었다.M법인은 250여 명의 직원 중 61%가 네팔, 방글라데시, 미얀마, 파키스탄 등 외국인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어 소통하려면 영어, 각국 언어, 한국어 등 3중 통역을 하므로 일이 원활하게 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효율도 떨어졌다. 현장 낭비를 사진으로 보여주고 찾는 방법, 사례를 소개하고 실습을 시켰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말이 안 통해 묵묵부답의 일상이었던 외국인 노동자들의 눈빛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후에 ‘SeeFeelChange’란 모토로 말레이, 중국, 인도계, 외국인 노동자 등 모두가 대화하고 토론하며 현장의 큰 변화가 시작되었고 일하기 쉽고 편리하고 쾌적한 생산현장으로 변모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눈으로 보는 관리’ 체계를 만들고 개선 수준도 높여 나갔다. 어렵게만 생각했던 다국적 다민족국가, 사회문화와 다양한 종교, 회사 조직도 중국계, 인도계가 스태프를 맡고 생산직은 말레이계와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는 요건에서, 소통과 좋은 직장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그 비결은 상대 관점에서 생각하고 사회문화, 종교, 생활습관 등이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복잡하게 접근하기 보다 Simple of Best로 작업개선을 통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며, 통하면 무엇을 하려 해도 성공적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최근 기업에서 MZ세대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새로운 시대의 생활과 문화, 사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해답을 찾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과도기 시대를 살아가는 기성세대의 관점을 바꾸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2022-06-20

잊혀지는 것들에 머무는 시선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새들은 유유히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펄펄 뛰는 자유롭고 활달한 나날이다. 보리는 누렇게 익어 타맥장(打麥場)이 펼쳐지고, 풀과 잎새가 더욱 짙어가는 하지초목심(夏至草木深)이다. 청보리가 익어 하지 무렵에 거둬들이니, 여름날에도 가을철의 추수처럼 보리나 감자를 수확하는 이맘 때를 맥추(麥秋)라 하기도 한다. ‘하짓날은 감자 캐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는 말도 있듯이, 하지 무렵 감자를 캐어 밥에다 하나라도 넣어 먹어야 감자가 잘 열린다고 해서 요즘도 풋감자를 자주 삶아 먹거나 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향그런 꽃 저버려 온 산 푸른데/가랑비 오는 속에 뻐꾸기 울음 울다/봄날 시름은 풀처럼 자라거늘/어느 때 낫을 얻어 마음의 뜰 베리오(芳花謝了滿山靑 細雨970F970F布穀廳 春日傷悲如草長 何時得91E4刈心庭)’- 강성위 한시집 ‘하늘에 두 바퀴의 달이 있다면’중‘봄을 보내며(送春)’중자연현상이나 사람 사는 일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 산길이나 뜨락은 사람이 다니거나 가꾸지 않으면 금세 풀이 자라 무성해지듯이 사람의 관계도 소통이나 만남이 없으면 어느새 소원해지고 서먹해지게 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또는 헤어져 가는 사람은 하루하루 멀어지고 오는 사람은 날로 친숙해진다(去者日以疎 來者日以親)는 시구처럼, 절친했던 사람도 멀리 떠나면 점차 멀어지고 자주 만나거나 접하는 사람은 친하고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닐 듯싶다.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시간이 지나고 듣거나 눈에 띄지 않게 되면 조금씩 잊혀지고 기억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망각은 결코 이성능력의 부족이나 타성력이 아니라 삶에 필요하고 삶을 가능케 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수없이 접하고 수집되는 정보가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컴퓨터의 저장장치나 외장하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날이 갈수록 안 좋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밀어내어 정신적 질서와 안정을 찾게 되는 기능을 하게 된다. 이러한 망각작용에 의해 인간은 건강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그러나 사람들은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억하고 반추함으로써 만족과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울분과 참회의 계기로 삼기도 한다. 어릴 적의 추억이나 희미한 옛사진을 보며 회상에 젖어드는가 하면, 치 떨리는 고난의 기억을 접해서는 한사코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다짐하고 맹세하게 된다. 그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도 없다는 말이 생겨난 것일까? 옛 것이나 지난 날들의 시비 속에는 얼마든지 지혜나 교훈으로 삼을 일들이 무수히 많다. 다만 그것을 발견하고 되새기는 것은 가치와 관점에서 비롯되는 안목일 것이다.6·25전쟁이 발발한지 72년째지만 아직도 찾지 못하고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하다. 어느 무명용사의 넋이 원혼으로 떠돌아 초연이 쓸고 간 6월의 초목이 저리 짙푸른지도 모른다.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것들에 머무는 따스한 시선으로 관심과 챙김, 정리와 기억의 손길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2022-06-20

‘물순환’

남광현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물순환’은 하늘에서 내린 강수(눈이나 비 등)가 지표수와 지하수로 되어 흐르다가 하천, 호수, 늪, 바다 등으로 흐르거나 저장되었다가 증발해 다시 강수로 되는 연속된 물의 흐름을 의미한다.과거 농경 중심의 촌락단위 분산형 사회에서의 ‘물순환’의 모습은 도시화된 현재에서는 그 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했다.대구, 포항, 안동 등 대구경북의 주요 도시에서 일어난 ‘물순환’의 변화를 보면, 바다를 제외한 하천, 호수, 늪 등 물의 저장소는 거의 사라지고 그 위를 도로나 건물 등으로 완전히 뒤덮여 버렸다.조선 후기의 기록을 보면 팔공산, 비슬산, 앞산 등 웅장한 산과 낙동강, 금호강, 신천 등이 유유히 흐르는 분지 지형의 대구는 저수지가 거의 100개에 이를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저수지를 보유한 물의 도시였다고 한다.현재 달성고등학교와 광장타운이 있는 곳은 감삼못, 남구의 교대 앞 영선시장 일대는 영선못, 수성구청과 대구여고 자리는 범어못이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물이 있어야 할 공간이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 실감이 나게 한다.저수지뿐만 아니라 대구의 하천 지도를 보면 대구 도심에는 금호강과 합류되는 달서천 말단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하천 표시가 전혀 없다.이렇게 물의 도시 대구가 산업화와 도시화로 콘크리트 도시로 변모하면서 물의 저장공간이 사라져 ‘물순환’이 끊어졌는데, 기후변화 마저 심해져 해마다 폭염과 열대야 그리고 미세먼지에 시달리는 도시로 변했다.대구뿐만 아니라 경북지역의 ‘물순환’ 상황도 유사하게 변화해 가창댐, 운문댐 등 주요 식수원의 저수율도 자주 바닥 수준으로 떨어지는데, 금년에도 강우량이 부족해 심각한 가뭄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또한 지난 3월에 일어난 역대 최대의 울진군 산불과 이어 계속된 많은 산불도 ‘물순환’이 끊어져 초래한 심각한 장기 산악 가뭄이 원인이다.‘물순환’ 파괴의 심각한 영향은 가뭄 뿐만 아니라 지난 2020년 7~8월 무려 54일간 계속된 사상 최장의 장마 기간 많은 강우량으로 인해 초래한 수도권과 부산지역의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에서도 알 수 있다.다행히 이때는 대구경북이 상대적으로 적은 강우량으로 피해가 적었지만, 이번 여름은 동일한 형태의 장마가 발생해 많은 강우량이 우리 지역에 내릴지 모를 일이다. 따라서 과거 ‘물순환’ 형태로의 복귀는 작게는 나와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며, 크게는 기후위기 극복과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물순환’ 파괴로 몸살을 앓았던 선진국의 주요 도시는 건전한 ‘물순환’ 회복을 위해 ‘저영향 개발기법(LID)’을 도입하고 ‘그린 인프라(GI)’를 확대함과 동시에 불투수면적에 비례해 빗물유출부담금(빗물세)을 부과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대구와 경북의 주요 도시는 낙동강 유역 내 불투수 면적률 상위지역으로 자리매겨지고 있어 이러한 ‘물순환’ 회복 노력이 시급하다.

2022-06-20

지구촌 ‘블랙아웃’ 위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낮 기온이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유례없는 폭염이 미국과 유럽, 인도 등 지구촌을 덮쳐 지구촌이 블랙아웃 위기에 빠졌다.올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에너지 수급이 불안정한 와중에 냉방 수요 폭증이 겹쳐 에너지대란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이미 스페인과 프랑스 등 유럽은 때 이른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는 지난 17일 최고기온이 섭씨 39도에 육박했다. 1950년 이후 6월 기온 중 사상 최고치다. 프랑스 남부 르벨(40.2도), 피소스(41.7도)의 기온이 40도를 돌파하는 등 도시 수십 곳이 역대 6월 최고기온 기록을 줄줄이 경신했다.미국에선 고기압이 한 지역에 정체돼 뜨거운 공기가 갇히는 ‘열돔 현상’이 발생, 기록적 폭염이 예고됐다. 지난 3월 122년 만에 최악의 폭염이 닥친 인도에선 지난달에도 수도 뉴델리의 기온이 49도를 넘어섰다.열돔 현상은 화석연료 사용 증가로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가 제트 기류에 영향을 주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더 큰 문제는 폭염에 따른 전력난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프랑스에선 전체 전력의 70%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 중 일부가 가동 중단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폭염으로 강물 수온이 급격히 높아지면 원전 냉각수로 끌어다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도 수력발전이 전체 전력의 10%를 차지하는데, 가뭄으로 강물 수위가 낮아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미국에선 대규모 블랙아웃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오하이오주에선 지난 15일 18만 가구에 전력 공급이 일시 중단됐다.지구온난화의 재앙을 막기 위한 지구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6-20

김건희 여사의 외출을 허하라

김진국 고문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연일 입길에 오른다. 한 마디로 “조용히 내조만 한다더니 왜 나서느냐”고 한다. 김 여사의 사생활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의 문제라 차분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전례를 봐도 윤 대통령의 성공 여부에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다.민주당 소속인 한 방송 토론자는 “내조만 한다더니 과거 영부인들은 왜 예방하느냐”라고 비난했다. 김 여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까지 차례로 찾아갔다. 김정숙 여사도 만났다. 같은 자리를 경험한 원로는 찾아 뵙는 게 예의고, 그분들로부터 조언을 듣고, 모범으로 삼는 것은 칭찬할 일이다. 이것까지 선거 때 발언을 들먹이며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모는 데는 “꼴 보기 싫으니 보이지 마라”는 날 선 감정이 느껴진다.아무리 근신하더라도 대통령 부인이 골방에 갇혀 있을 순 없다. 외국 정상 부인이 왔는데 일도 없이 안 만나는 건 실례다. 상식에 맞고, 예의에 맞는 일을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시비하는 건 옹졸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김 여사에게 “정상의 자리는 평가받고 채찍질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많이 참으셔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런 상황까지 헤아린 게 아닐까.물론 김건희 여사의 행보에 불안한 구석도 있다. 윤호중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공개한 건 예의가 아니다. 윤 전 위원장을 궁지로 몰았다. 이런 식으로는 야당의 협조를 얻어낼 수 없다. 윤 전 위원장의 ‘잇몸 사진’을 공개한 것이나, 대통령집무실에서 찍은 사진 등을 팬카페에서 공개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면 사과하는 게 옳다.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라오스 공항에서 대통령보다 앞장서 카펫 위를 걸으며 손을 흔들었다. 대통령 선거 뒤 “경인선 가자”라고 한 말이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대통령 없이 혼자 공식 외교 목적으로 인도를 방문하고, ‘버킷리스트’가 있다는 의심까지 받았다.박근혜 전 대통령은 영애 시절 ‘새마음 운동’에 앞장선 일이 있다. 최태민 목사가 영애를 앞세워 전국적 조직을 만들어 영향력을 휘둘렀고, 여러 가지 의혹과 구설을 낳았다. 심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보기관까지 나서 단속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지는 문제들이다. 모두 되새겨보아야 할 선례다.힘 있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꼬인다.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모리배가 더 많다. 전직 대통령의 가족이 연루된 비리 사건을 많이 봤다. 본인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고, 정의감과 애국심에 이름만 얹어놓았다 이용당하기 일쑤다. 본인이 청탁하지 않아도 이름을 팔고, 명함 한 장으로 호가호위하는 세상이다.세간에는 벌써 ‘김 여사 줄을 잡아 영전했다’라는 식의 근거 없는 소문까지 나도는 형편이다. 권양숙 여사가 “(윤 대통령) 뒤에서 조심스럽게 걷는 모습도 너무 잘하셨다”라고 한 칭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 부인이라는 자리는 아무리 몸을 사려도 지나치지 않다.김 여사가 제 역할을 하려면 두 가지를 당장 정리해야 한다. 첫째 보좌조직을 둬야 한다. 나라를 위해 무엇이 옳은지 여야가 다 동의하는데 후보 시절 내뱉은 한 마디에 매달릴 건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핵심은 ‘최순실’이라는 ‘비선’이다. 어릴 때부터 도와준 사람이라 당연하게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은 투명한 공조직 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인으로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투명하게 통제할 수도 있다.둘째, 외부의 사적 지원 조직은 정리해야 한다. 야당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무속인 문제는 최태민 목사를 연상시킨다. ‘건희사랑’이라는 팬클럽은 회장의 욕설로 구설에 올랐다. 윤 대통령을 돕는다는 게 부담만 되고 있다. 코바나컨텐츠는 사기업이다. 그 직원에게 공적인 업무를 맡길 순 없다. 적어도 대통령 임기 동안은 이런 사적 인연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크게 억울한 일을 각오해야 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6-19

코로나19 후유증과 운동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우리나라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천8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3명 중 1명 이상이 코로나에 걸린 셈이다. 확진자 상당수가 격리기간이 끝난 뒤에도 후유증을 겪고 있다.이미 미국, 영국, 독일 등 여러 국가에서는 코로나19 후유증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연구를 진행하거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회복에 대해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영국 국립보건연구원(NIHR)에서는 코로나19 환자의 퇴원 후 회복과정을 돕고,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증상 완화를 위해 운동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코로나19에 걸리면 4~5일 이내에 발열, 목통증, 기침, 근육통, 몸살, 미각 또는 후각 상실,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경미한 경우 7~10일 이후에 증상이 사라지지만 심각한 증상의 치료는 3~6주 정도 소요된다. 코로나19 완치 후 유전자 증폭(PCR) 검사에서 음성반응이 나오더라도 별다른 이유 없이 호흡곤란과 숨 가쁨, 우울, 불안, 인지 저하, 피로, 탈진(exhaustion) 수면장애 또는 불면증 등의 증상이 몇 주에서 몇 달간 지속되는데, 이를 코로나19 장기 후유증이라고 한다.국외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입원치료를 받은 환자의 87%와 입원이 불필요한 환자의 35%가 코로나19 장기 후유증을 앓고 있고, 이들 중 32%는 1~2가지 증상을 가진 반면, 55%는 3가지 이상의 증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또한 코로나19 감염 빈도는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고, 코로나19 장기 후유증은 남성(20.7%)보다 여성(23.6%)이 더 많이 발생한다. 특히 고혈압 등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은 1.3배 이상, 비만인 사람은 2.3배 더 높은 빈도로 후유증이 발생한다고 한다.코로나19 후유증은 200여 가지에 이르는데, 흔히 발생하는 후유증은 피로(58%), 두통(44%), 집중력 저하(27%), 탈모(25%), 호흡곤란(24%), 후각상실증(21%), 기침(19%) 등이 있고, 혈관계 이상, 기억력과 판단력 감퇴, 수면장애, 위장장애, 시력저하, 근골격계 이상 등의 증상도 보고된다. 코로나19 후유증 중 비율이 가장 높은 피로 증상은 코로나19 감염 증상 발현 후 100일까지 이어질 수 있고, 1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감염 후 1~2개월이 지났는데도 증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병원 방문을 고려하고, 3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전문적인 치료를 받길 권장한다.운동이 코로나19 감염 예방과 회복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세계보건기구에서 권장하는 일주일 동안 150분 이상의 중등도 강도 운동 또는 75분 이상의 고강도 운동을 수행한 사람과 미국의 ‘2018 신체활동지침’에 따라 근력운동을 수행한 사람은 코로나19에 감염될 가능성이 낮고, 감염이 되더라도 중증으로 악화되거나 사망으로 이어질 확률이 낮다고 한다.아직은 코로나19 장기 후유증에 대한 운동의 이점과 관련된 데이터나 연구가 부족하지만, 여러 학자나 전문가들은 개인에 맞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운동이 각종 질환을 예방하는 것과 같이 코로나19 후유증 회복에도 맞춤형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최근 국외 저명 의학 저널에 게재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회복을 위해 유산소운동과 균형운동 및 근력운동 등으로 구성된 복합운동프로그램을 적어도 주3회 4주 또는 주2회 6주 동안 실시할 필요가 있고, 1회 운동 시 숨은 차지만 대화는 할 수 있을 정도의 중등도 강도로 1시간 이상 지속해야 한다고 한다.한편 영국 국립보건연구원에서는 단계적으로 운동 강도를 증가시키는 점진적 과부하 운동이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중 피로 증상 완화를 위한 운동처방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다시 말해 경미하거나 중증도의 환자에게는 점진적 과부하 운동을 추천하지만, 중증인 환자에게는 증상을 고려한 환자 맞춤형 운동이 포함된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최근 대통령인수위원회가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관련 방안이 포함된 ‘코로나 100일 로드맵’을 발표했고, 서울 성동구 등 자치단체에서 ‘코로나19 후유증 클리닉’을 개설했으며 서울의료원 등 종합병원에서도 코로나19 후유증 치료를 전담하는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부경대학교에서도 코로나 확진을 받은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극복을 돕는 운동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과 같이 세밀하고 촘촘한 연구 진행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결과적으로 코로나19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지도하에 증상이 재발하지 않도록 자신의 건강과 체력 및 회복속도를 조절하여 꾸준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실시해야 하며, 효과적인 운동의 종류와 강도 및 빈도 등 적정 운동량에 대한 기준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연구를 통해 과학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