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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신의학 즉문즉답-공황, 공황발작, 공황장애

사공정규 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2012년 이후 유명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공황장애에 대해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최근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한 박항서 베트남 감독이 공항장애 진단 사실을 공개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수석코치로 대한민국 4강 신화를 이끌었던 박 감독은 이후 부산아시안 게임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승승장구할 줄 알았지만 당시 3위라는 성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경질됐다. 이후 포항스틸러스와 상무 감독을 맡으며 감독직을 이어갔지만, 이 과정에서 성적 압박에 따른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박 감독은 “상주 상무 감독을 하면서 쇼크가 두 번 와 응급실에 실려간 적 있다. 정밀검사를 받으니 공황장애라고 하더라. 오래전부터 온 건데 인지를 못한 거였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약은 지금도 복용 중이다”라고 털어놨다.이처럼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인, 직장인들 사이에 공황장애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지면서 이제는 ‘공황장애’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됐지만 공황, 공황발작, 공황장애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와 편견이 많다.심지어 과거에는 ‘공황장애’를 ‘공항장애’로 잘못 알아들어 공항 가는 것을 무서워하는 병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공황장애’를 ‘공항장애’로 알던 시절, 공황장애 환자는 4번 놀란다.마치 심장마비로 또는 뇌졸중이 발생한 것처럼 죽을 것 같은 공황발작 증상에 놀라고, 신체적 질병인 줄 알았던 공황장애가 정신건강의학과 질병임에 놀라고, ‘공황발작’이라는 ‘발작’이라는 단어에 놀라고 ‘공황장애’의 ‘장애’라는 단어에 놀란다.공황은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상황에서 누구에게서나 나타날 수 있는 갑작스러운 급성 공포 불안으로 정상적인 정신·신체 반응이다.예를 들면, 밤에 혼자 외진 길을 가다가 호랑이가 바로 앞에 나타났다고 상상해 보자.누구나 심장이 급격하게 두근거리고, 숨이 턱턱 막히며, 진땀이 나고, 손발이나 온몸이 떨리는 등의 반응을 보이면서 ‘내가 죽을 수 있겠구나’하는 엄청난 공포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실제 위험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불안은 위협적인 환경에 적응하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반응이며 우리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게 도와주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위험한 상황에서 아무런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위험할 것이다.공황과 공황발작은 어떻게 다른가?공황은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공황발작은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갑작스러운 급성 공포 불안으로 비정상적인 정신·신체 반응이다.예를 들면, 호랑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호랑이가 있는 것과 같은 공황을 느끼는 비정상적 반응이다.그러나 공황발작이 한 번 일어났다고 해서 모두 공황장애로 진단되는 것은 아니다.공황발작이라는 단어에서 ‘발작’이라는 단어 느낌은 어떤가? ‘발작’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느낌을 갖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그러나 ‘발작’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병증세가 갑자기 나타났다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사라진다”는 의미이다.공황장애는 예상치 못하는 공황발작이 반복적으로 있어야 한다.또한 추후의 공황발작에 대한 예기 불안이나, 공황발작의 파국적 해석 오류나, 공황 발작과 관련된 회피 행동 중 하나 이상을 보이며 부적응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일생을 살면서 한차례 이상 공황발작을 경험할 확률은 약 30% 가까이 된다.공황장애는 공황발작 경험자들의 약 10%, 전체 인구의 약 3%가 공황장애로 진단된다. 다시 말해 공황발작이 곧 공황장애는 아니다.덧붙여 공황장애라는 용어에서 ‘장애’라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자. 일반인들은 공황장애에서의 장애(disorder)를 장애(disability)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장애(disability)도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 번째는 태어날 때부터 신체나 정신 능력에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있고 두 번째는 치료를 하더라도 정상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의미도 있다.공황장애에서의 장애(disorder)는 장애(disability)의 의미가 아닌 병이라는 의미이다.병은 원래는 정상적이었으나 어떤 이유로 몸이나 마음에 문제가 생겼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말한다. 감기도 병이다.오늘 필자가 드리고 싶은 말은 공황장애를 편견(偏見)으로 보지 말고 정견(正見)으로 보자는 것이다.공황은 정상적 반응이며, 공황발작은 비정상적인 반응이나, 모두 공황장애는 아니며, 공황장애는 장애(disability)가 아닌 병으로 전문적인 정신의학적 치료를 받으면 당연히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2022-07-10

허니문 없는 새 정부의 과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집권 2개월째가 맞나?” 윤석열 대통령을 뜨겁게 지지했던 인사들을 만나면 쉽게 들을 수 있는 푸념이다. “벌써 1년은 지난 것 같다”는 총평에는 불안감이 어른거린다.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정치로 국민들의 마음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기를 기대했던 게 엊그제같다. 벌써 지지층의 마음이 실망감으로 돌아서고 있나. 2개월이면 허니문의 달콤함에 빠져있을 시점이다.그런데 긍정보다 부정여론이 높은 데드크로스라니….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그 원인을 두고 말들이 많다. 종합해보면 서민물가 상승과 주식시장 침체 등 경제문제, 내각 인사실패, 그리고 이준석 대표를 둘러싼 당 내홍 등의 문제가 주 요인이다.경제문제는 심각하다 못해 위기상황이다. 코로나 팬데믹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고, 미국발 금리인상에 이어 경기가 침체되면서 서민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부동산 가격은 다행히 오르지 않고 있지만 대출규제속 전·월세 아파트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도 서민들에게는 괴롭다.새 정부의 장관인사 검증실패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도 적지않다. 야당이 새 정부의 부실인사 논란을 제기하자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장관 인사는 어땠나”며 역공하는 모양새도 나빴다. 새 정부가 전 정부탓을 하는 것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셈이다.민생과 경제를 챙겨야할 여당 지도부는 이준석 대표의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의혹을 둘러싸고 윤리위에서 징계를 내리느니 마느니 실랑이가 한창이다.대통령실은 나토정상회의 직후 야당으로부터 인사비서관 배우자 동행이 이해충돌에 해당된다느니 윤 대통령 친인척 최모씨가 부속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하며, 제2부속실 역할을 하고 있다느니 하는 의혹 보도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여당 전체가 분주함과 혼돈에 빠져있다.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낮은 지지율이나 국민적 관심을 일거에 돌려놓을 만한‘한 방’이 없다는 데 있다.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이른바 ‘윤석열표’정책의 부재다.그렇다고 글로벌 경제 침체와 미일·중러 신냉전 시대 속에 나라경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경제정책을 콕 집어 약속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국민에게 더 나은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어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는 액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당장 해답을 찾지못해도 좋다. 위기가 해소될 때까지 집무실에 야전침대라도 갖다놓고 전심전력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서민경제가 무너지는 판에 경제부총리에게만 경제를 맡겨놓은 것도 한가해 보인다.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관하겠다고 나서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서민 살림살이 형편을 살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국가지도자라면 국가 위기극복을 위해 국가적 자산과 능력을 총동원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게 허니문 없는 새 정부, 새 대통령이 시급히 해야 할 과제다.

2022-07-07

인사가 만사

윤석열 정부는 아직도 1기 내각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국정 차질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내각 구성이 완성되지 못한 이유를 야당의 비협조 탓이라 생각한다.야당이 비협조적인 것은 맞지만 꼭 그것 때문이라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선 윤 대통령의 인사가 적절했는지 여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 정부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질렀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이 인사문제에 기인한다. 언론도 그렇게 평한다.윤 대통령은 취임 초 능력위주 인사를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출신 인사로 편중되면서 능력위주의 본래 취지가 많이 퇴색됐다. 장관임명 과정에서 부적절했던 부분이 걸러지지 않은 것도 지지율 하락으로 반영됐다.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인사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전 정부의 불통인사가 그랬다.공자는 천재불용(天才不用)이라 말했다. 즉 “덕이 없이 머리만 좋은 사람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인품이냐 재능이냐는 인사권자가 선택할 권리이지만 이 문제를 두고 늘 딜레마다. 인품이 좋으면 재능이 부족하고 재능이 뛰어나면 인품이 모자란다. 둘 다 좋기는 어렵다. 윤 대통령의 능력주의가 잘 먹히지 않는 이유다.삼국지에 등장하는 마속은 제갈량이 후계자로 삼았으면 하는 재능가다. 그러나 그가 자기 재능을 믿고 제갈량의 명령을 듣지 않다가 전투에서 크게 패해 목숨까지 잃게 된다. 읍참마속의 유래다.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국정수행을 무난히 잘하려면 대통령 인사에 대한 비판여론도 잘 새겨들어야 한다. 인사가 만사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7-07

아, 대한민국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이 장차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것’이라는 예언가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예언들 대부분은 대한민국이 오늘과 같은 성장과 번영이 있기 전에 있었다. 당시에는 황당하게만 들리던 것이 나라의 위상이 현격히 높아진 지금에 와서는 상당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제3의 물결’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앨빈 토플러 같은 세계적인 미래학자도 일찍이 한국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내다보고, 20여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에게 ‘21세기 한국사회의 비전 보고서’라는 장문의 보고서를 전달하기도 했다.우리나라에 오늘과 같은 날이 올 거라곤 우리도 예측을 하지 못했다. 일제 가전제품들이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시절에는 우리의 전자제품이 일본을 추월한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더구나 삼성전자 하나의 매출이 일본 10대 전자산업의 총매출을 훨씬 웃돈다고 하니 실로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IT산업 외에도 조선, 자동차, 원전기술, 의료, 건설업 등 세계 일류의 기술을 가진 업종이 많고 문화·예술과 스포츠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가 속출하고 있다.그러나 무엇보다 뿌듯하고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우리의 공공시설이나 국민들의 높은 시민의식을 부러워하고 선진국의 한 모델로 평가를 한다는 사실이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교통수단의 편리함과 특히 화장실문화가 세계 최고라는 칭찬에는 절로 어깨가 으슥해진다. 시위가 끊이지 않은 나라이면서도 약탈이나 방화 같은 범죄를 동반하지는 않는, 치안의 모범국이라는 사실도 그만큼 시민의식이 높고 국민성이 선량하기 때문일 터이다.예언가들과 미래학자들의 전망처럼 과연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 국가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은 그 가능성으로 한국인들의 지적능력과 근면성, 그리고 높은 영성(靈性)을 꼽는다. 무엇보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건국이념으로 가진 나라야 말로 전 인류를 이끌어갈 자질을 갖춘 것이 아니겠냐는 평가다. 하지만 나라의 운명이란 결국 국민 스스로 결정짓는 것이다. 우리에겐 남다른 자질과 능력이 있다는 건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최대한 발휘했을 때 밝은 미래가 열리는 것이다. 그릇된 선택과 자중지란에 휩쓸릴 때는 그 반대의 결과도 올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지금 우리나라는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가중되는 북핵 위협과 혼란한 국제정세, 골이 깊은 남남갈등, 심각한 경제위기 등이 산적한 위험요소로 상존한다. 이쯤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자기성찰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 대한 냉철하고 정확한 분석과 판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정치인들이 갈라놓은 좌우 양편의 대립과 갈등의 골이 너무 깊다는 것이다. 특히 진영논리에 함몰돼 상대편을 무조건 악마화하고 내로남불, 적반하장, 후안무치가 판을 치는 것은 조선말의 당파싸움을 방불케 하는 망국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건 분명 정상이 아니다. 우선 법치를 바로 세우고, 양식을 갖춘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조악하고 비뚤어진 민심을 바로잡는 일에 힘을 모아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

2022-07-07

젊은 영재들이 이룬 영광

윤영대 수필가 무더워지는 여름날, 마음 시원한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계 수학자인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허준이 석학교수가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Fields)상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한국인의 천재성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이 필즈상은 1936년 제정되어 4년마다 수학계에 뛰어난 업적을 이룬 40세 미만의 젊은 학자에게 수여해 왔으며 이번 수상은 한국인 최초의 일이고 한국수학계의 쾌거이다. 허 교수는 50여 년간 난제로 알려진 ‘리드 추측’ 등 10여 개 문제를 대수기하학과 조합론을 이용하여 해결하였고, 국제수학연맹(IMU)이 한국의 수학 국가등급을 최고등급인 그룹5로 격상시킨 것도 우리의 자랑이다.허 교수는 어릴 때, 구구단을 외우는 것을 힘들어해서 대학교수였던 부모님이 많이 좌절했고 청소년기에는 시인과 기자를 꿈꾸었다고 하지만, 대학 때 자신을 만족시키며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수학자의 길을 택하고 꾸준히 스승과 친구들과 공동의 관계를 유지하며 수학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기쁜 소식은 또 있었다. 지난달 18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지휘자가 눈물을 훔칠 정도의 뛰어난 연주로 대회 역사상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이 콩쿠르는 1962년 시작되어 4년 주기로 개최되고 있으며 2017년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우승한 후 2연속 우승이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임윤찬은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18세 학생으로 이 대회에서 청중상, 신작 최고연주상 등 2개 부문 특별상도 받았다. 7세 때 태권도 대신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여 신동, 천재로 불렸으며 15세 때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해당 음악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고 좋은 스승을 만나 훌륭한 가르침을 받은 결과라고 한다.체육계의 기다렸던 경기장면도 있었다. 우리나라 축구계의 왕자 손흥민 선수가 아시아인 최초로 유럽 프리미엄 리그(EPL)에서 시즌 최다 23골을 넣어 득점왕의 골든 부츠 트로피를 들어 올린 모습은 경기장에 모여 함성을 보낼 수 없었던 우리에게 시원한 낭보였다. 2010년 독일 함부르크SV 팀에 입단 후 꾸준한 활약으로 경기장을 누비며 골을 넣을 때마다 그의 특유한 찰칵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환호하는 모습은 그가 축구를 시작했을 때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혹독한 기본훈련을 잘 이겨내었던 덕분이지 않을까.‘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말처럼 세계 1인 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꿈을 위한 강한 의지로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 밑바닥엔 부모님의 소망과 믿음이 담긴 격려와 자상한 사랑의 교육이 깔려있는 것은 물론이다. 젊은 영재들의 생각과 창의성을 존중하고 고양시켜 이 나라를 ‘동방의 등불’이 되게 하자.

2022-07-07

구두

정미영 수필가 수술 받았던 친정어머니의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하셨다. 병원에 함께 다녀올 요량으로 신발장에서 어머니의 빛바랜 운동화를 꺼냈다. 몇 년째 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한 켤레의 신발로 생활하다 보니 군데군데 실밥이 터지고 뒤축이 닳아 테석테석했다. 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신발에 스며든 것 같아 마음이 먹먹했다.수술 전, 어머니의 무릎 통증은 오래 지속되었다. 약을 먹어도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길을 가다보면 몇 발자국을 못가 절뚝일 때도 있었고, 겨우 발걸음을 옮기는가 싶으면 이내 주저앉았다. 가까운 곳에 볼일을 보러 가는데도 남들보다 시간이 두 배로 걸렸다. 앉을 데가 있으면 무조건 쉬어야 했고, 마땅한 데가 없으면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쉬어야만 걸을 수 있었다.늘 푸른 물이 돌 것 같던 어머니의 육신이 쇠약해져 갔다. 내 어머니만큼은 세월이 비켜가기를 빌었는데, 자연의 섭리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음이 눈물겨웠다. 보다 못해 수술을 권했지만 한사코 망설였다. 나는 자식의 입장을 먼저 걱정하는 어머니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더는 수술을 늦추기가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기에 어머니에게 퇴행성관절염 말기라는 설명을 하며 날짜를 잡았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다.어머니가 병실에 있는 동안, 나는 구두를 사러 갔다. 전부터 어머니에게 구두를 사드리려고 했는데, 내 살아가는 형편을 핑계로 계속 미루었다. 구두를 고르는데, 어머니에게 묵혔던 구두에 대한 빚이 한 순간 빗장뼈를 세워 고개를 내밀었다.초등학교 때, 우리 집 앞에 개울이 있었다. 나는 동네 친구들과 자주 빨래놀이를 했다. 그 날도 세수 대야에 비누와 신발 몇 개를 챙겨나갔다. 신발로 물을 퍼내어 대야를 가득 채우고 나서 개울에 떠내려 보냈다. 그러고는 잽싸게 뛰어가 건져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한참을 뛰어다니면 지쳤다. 헐떡이는 숨을 고를 겸 물가에 자리를 잡고앉아서 신발에 비누칠을 했다. 이왕 빨 것을 찌든 때가 있는 빨랫감이나 걸레를 들고 갔더라면 칭찬 꽤나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발에 어머니의 구두가 섞여 있었다. 가난했던 아버지가 내 입학식 때 신고 가라고 큰맘 먹고 어머니께 사다준 신발이었다. 그 뒤로 어머니가 구색을 맞춰야 하는 자리에만 신고 나갔던 하나뿐인 구두였다.나는 잠시 뒤에 알았다. 구두는 물에 빨면 안 되고, 불 옆에 두면 안 된다는 것을. 말린다고 연탄보일러 주위에 젖은 운동화와 함께 구두를 세워 두었더니 일그러지고 눌어붙어 영영 신지 못하게 되었다.정작 어머니는 야단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항상 자식 걱정이 먼저인 분이었다. 구두를 태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혼날까 봐 불안해 한다는 사실에 더 신경을 쓰셨다. 나는 오히려 그게 더 미안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어머니에게 구두를 사드려야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구두를 장만해 병실에서 꺼내 들고, 얼른 회복해 꽃구경 가자고 말씀드렸다. 자식이 마련한 선물을 귀하게 여겨 어머니는 구두를 들여다보며 흐뭇해 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나는 새삼 코끝이 찡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새 구두를 신지 못했다. 무릎이 성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새 것보다는 예전 것이 좋다며, 운동화를 신었다.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진작 구두를 사다드렸다면 좋았을 것을, 후회가 밀려들었다.“엄마, 미안해.” 내 후회의 탄식이 길게 여음을 남겼다.나는 예전에 어머니의 구두를 연탄불 옆에 두었다가 눌어붙게 했던 날의 용서를 다시금 구했다. 어머니는 이제껏 마음에 두고 있었느냐며 본인은 벌써 잊었다고 말씀하셨다.오늘도 늙으신 어머니는 자식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셨다. 세월이 흘러도 덜어지지 않는 자식에 대한 사랑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결이 소실점으로 향한다고 해도 끝없는 그리움으로 내 가슴 속에 은은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노모의 사랑이 짙어지는 오후였다.

2022-07-06

을해(乙亥)

육십갑자 중 열두 번째에 해당하는 을해(乙亥)이다. 천간(天干)은 을목(乙木), 지지(地支)는 해수(亥水)다.을해(乙亥) 일주는 일명 부평초, 즉 물 위를 떠다니는 풀잎의 모양이다. 온화하고 인내심은 강하나, 의지력은 약한 편이다. 의타심이 강한 편이고, 생존력이 뛰어나 성취를 위해서 노력하는 형이다. 강한 자존심에 비해 줏대가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따라서 자존심을 줄여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을목(乙木)을 등라계갑(藤蘿繫甲)이라 한다. 천간(天干) 중 을(乙)과 갑(甲)이 같이 있는 사주를 말한다. 을목(乙木)인 등라(藤蘿), 담쟁이덩굴이 갑목(甲木)인 소나무를 휘감아 의지한다는 뜻이다. 소나무와 같이 곧게 자라는 나무는 홀로 성장할 수 있지만, 넝굴식물은 소나무와 같은 기댈 곳이 있어야 타고 오른다. 이와 같은 이치로 명리학에서는 등라계갑(藤蘿繫甲)이라 말한다.등라계갑이 사주에 있으면, 혼자의 힘으로 어려운 출세를 하거나 재물을 모으는데 형제나 친구 등의 힘을 빌려서 취할 수가 있다. 타인을 의지한다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고난 재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부족한 면을 타인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중국 ‘경자(景子)’편에 나오는 글이다. ‘복자천’이 중국 노나라 단부지방을 다스릴 때, 날마다 거문고를 타면서 느긋하고 한가롭게 지내고 집무실에는 별로 나가 앉은 적이 없었는데도 단부를 훌륭하게 다스렸다.한편 ‘무마기’라는 사람이 단부를 다스릴 때는 날마다 하늘의 별들이 스러지기도 전에 집무실에 나가고,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하게 빛날 때가 되어야 잠자러 돌아오곤 하였다. 그는 낮이나 밤이나 편히 쉬는 날이 없이 무슨 일이든지 스스로 직접 처리해야만 했다.어느 날 ‘무마기’가 ‘복자천’에게 단부를 훌륭하게 다스릴 수 있었던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복자천’이 “내가 다스린 방법은 다른 여러 사람들의 지혜와 능력을 빌리는 것이었다네. 자네는 오로지 자기 스스로의 능력에 의지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의 능력에만 의지하는 사람은 당연히 많은 일을 혼자 힘들게 처리해야 하고, 다른 여러 사람의 지혜와 능력에 의지하는 사람은 당연히 편하고 한가롭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자기의 어깨 위에 놓인 짐을 옆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옮기는 것이다. 남에게 일을 맡길 때는 의심이 생기면 맡기지 말아야 하며, 일단 일을 맡기면 믿고 성패에 관계없이 기다려 주는 인내가 필요하다.지지(地支) 해(亥)는 11월 초겨울에 해당하며, 색깔로는 검은색이다. 동물로는 돼지다. 일명 흑돼지라 할 수 있다. 초겨울이라 을목(乙木)은 성장을 멈춘 시기라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기에 돼지에게는 배고픈 시간이기도 하다.흑돼지라면 제주도 흑돼지가 떠오른다. 2015년 3월 17일에 천연기념물 제550호로 지정되었고. 우리나라 토종 돼지 종자 중의 하나인 제주 흑돼지는 내륙과 떨어진 독립된 환경에서 다른 품종의 돼지와 계통(系統)이 섞이지 않았고 오랫동안 생존한 제주 고유의 재래가축이다.사주일주에 해(亥)가 있으면, 인복이 많고, 선천적으로 낙천적이며, 평소엔 온순하며 다정다감하나, 한 번 뒤틀려 고집을 피우면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돼지띠는 억압하며 앞으로 강제로 끌면, 감당하기 어려운 사고를 칠 수도 있으니 살살 달래며 이끌어주는 것이 이롭다.돼지모양새가 온순하며 특이하게 생겨, 잡식성이라 먹성도 좋고 순해 보이기도 한다. 돼지는 뚱뚱한 동물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뚱뚱한 사람을 놀리는 단어로 돼지가 사용되지만, 돼지와 관련된 인물이나 대상을 묘사할 때 탐욕스럽지만 머리가 좋은 개념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영국작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1945년 8월 17일 출간된 소설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조선이 해방된 해이다. ‘동물농장’을 살펴보면, ‘동물농장’에서 돼지를 농장 동물들 가운데 제일가는 지성을 갖춘 동물로 묘사했다. 농장의 모든 동물에게 존경을 받고, 가장 나이가 많고 연로한 수퇘지 ‘메이저’는 ‘두 다리로 걷는 놈은 전부 적이며, 네다리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동물은 모두 우리의 친구이다.’라며 동물을 제외한 모든 이는 적이라 이야기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돼지 외에는 글자를 몰랐던 다수의 동물들은 이러한 ‘메이저’의 주장에 동조하고, ‘인간이 없는 지상낙원’이라는 말을 동물들에게 전달하며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하며 죽는다. 마침내 농장에서 농장주 인간 존스를 쫓아내기 위해 수퇘지 스노블과 나폴레옹이 혁명을 일으킨다. 혁명에 성공한 초기 스노블이 있던 시기의 동물농장은 인간이 운영할 때보다 훨씬 살기 좋았던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스노블이 나폴레옹과의 권력다툼에서 쫓겨난 후에는 동물농장의 상황이 급격히 나빠진다.돼지 나폴레옹은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며 동물을 통제하기 시작하였으니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한다. 정의를 실현하겠다며 하위계층을 끌어들여 혁명을 일으킨 중간계층이 결국은 자신들의 신분상승 도구로만 이용한 뒤 다시 피지배계층 위에 군림하는 지배계층이 된 것이다. 동물주의 실현을 외치면서 구성원 다수의 지지를 받아 동물농장에서 인간을 축출하고 동물만의 세상을 이뤄냄으로써 완벽하게 실현한다. 나폴레옹은 결국에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로 마지막 남은 계명까지 바꾸어 버린다.동물들의 무지와 무기력함이 권력의 타락을 방조한 결과다.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 와중에도 돈을 번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면서 이 고비를 슬기롭게 넘겨야겠다. 옛 말을 소개하면 득지본유(得之本有). 얻었다고 하나, 원래 있었던 것이고. 실지본무(失之本無). 잃었다고 하나, 본래부터 없었던 것이다.

2022-07-06

투자 권하는 사회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전남 완도에서 실종된 유나 양 가족이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지난 5월 유나 양 부모는 제주도 한 달 체험학습을 신청한 뒤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학교는 체험학습 기간이 끝나도 유나 양이 등교하지 않고 부모와도 연락이 닿지 않자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경찰 조사를 통해 유나 양 아버지가 광주의 전자상가에서 조립 컴퓨터 판매를 했으나 작년 7월 폐업했으며, 이후 가상화폐 투자에 실패하고 큰 빚을 진 사실이 알려졌다. 가상 화폐 ‘루나’ 상장폐지 사태와 맞물려 유나 양 아버지가 루나를 검색한 사실이 집중 보도되었다.많은 사람들이 유나 양의 죽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표시했다. 유나 양은 부모의 자살 결정에 그 어떤 의사도 표시하지 못하고 함께 죽었다. 이것을 동반 자살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지만, 명백히 유나 양을 죽인 범인은 부모이다. 자식을 죽일 만큼 고통스러웠을 부모의 마음은 감히 짐작하기 어렵지만, 살인은 살인이다.그렇다면 부모의 죄는 어떻게 물어야 할까? 법적으론 가해자가 죽었으니 죄를 묻지 못하는 상황이다. 유나 양 가족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의 정비도 더욱 꼼꼼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2020년까지 2017년을 제외하고 OECD 국가 자살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살률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던 것이 아닌데, 왜 조금도 좋아지지 못한 것일까?이번 사건을 보도한 기사의 댓글 중 ‘일확천금을 바라는 마음이 결국 죽음을 불러온다.’에 눈길에 꽂혔다. 아마 성실하게 일하지 않고 가상자산으로 가정을 지키고자 한 사람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이런 비판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우리의 금융 시스템을 생각한다면 적절하지 못한 것이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는 불과 2년 만에 실거래 가격이 정확히 두 배가 상승했다. 2년 만에 월급이 몇 억씩 상승하는 사람은 드물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레버리지를 이용해서 자산을 몇 배씩 불리는 사회에서, 성실하게 일하라는 조언은 ‘벼락거지’가 되라는 말로 들릴 뿐이다.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 문화는 2000년에 생겼다. 이것은 곧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경제 시스템이 길어야 20년 정도 되었다는 의미다. 금융 자본주의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산업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출발한 것이다. 부채, 신용 등의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2000년 전후다.문제는 바로 이런 경제 시스템이 개인의 몸과 마음에 미친 영향이다. 벼락거지가 유행처럼 떠도는 시대에 노동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모순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심리·육체적 질병과 높은 자살률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런 물음에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오로지 경제 성장을 위한 법 제도 정비의 결과를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최근 법원은 주식, 가상화폐 투자 빚을 없는 걸로 쳐주겠다는 결정을 했다. 투자자 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유나 양 부모의 죄는 누구에게 물어야할까?

2022-07-06

잃어버린 국민

오낙률시조시인·국악인 시골길을 가다 보면 야생화 군락을 만날 때가 있다. 그중 가장 흔히 만날 수 있는 야생화 군락이 코스모스 군락이거나 유채꽃 군락이다. 이 꽃들은 본디 야생화의 범주에 들지 않는 꽃임에도 불구하고 하천 변이나 인간의 관리 손길이 닿지 않는 길가 잡초밭에서 뿌리를 내리고 예쁜 야생화 군락을 이룬다.필자는 가끔 이러한 야생화의 군락을 보며 야생과 야생이 아닌 것의 경계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꽃의 세계에서도 인간 신분의 그것처럼 그 종류에 따라 야생화와 야생화가 아닌 것의 경계가 분명히 구분 지어져 있으니 하천가에서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는, 과거에는 야생화로 불리지 않던 그 꽃들이 이제 인간의 보호 손길을 받지 못하고 야생으로 피었다고 필자의 입으로 그들을 야생화라 부르기가 좀 그렇다.인간 사회에도 야생화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군락이 있다. 그들은,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야생화로 전락해가는 코스모스나 유채꽃처럼, 자기 점포 하나 가지지 못하고 오 일 장터를 전전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재래시장 노점상 상인들이다. 그 살벌했던 코로나 위기에서도 국민 누구 하나 그들에게 마스크 한 장 지원해 주자는 사람이 없었고 정부의 수차례에 걸친 소상공인 지원 대상에서 단 한 번도 거론조차 되지 못한 사람들이다.그들은 상행위를 정식으로 허가받지 못한 ‘노점상’이라는 이름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그나마 노점상조차 못 하게 될까 봐서 눈치만 살필 뿐, 불만을 입 밖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그들은 지역화폐 발행에서도 깡그리 무시를 당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이 대량으로 발행되어 사용되는 과정에서 가맹점 허가를 가지지 못하는 탓에, 시장에서 돈 대신 받은 상품권을 은행에 직접 입금할 수 없었고 고객에게서 받은 상품권을 모아 두었다가 웃돈을 주고 현금으로 교환하여 사용하는 등의 불편을 겪었다. 그들에겐, 어쩌면 지역화폐가 노점상을 퇴출하려는 의도로 발행하는 화폐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각계의 정치인들은 재래시장으로 몰려가서 장사를 못할 정도의 유세 방송을 그들의 귓가에 칠갑하듯 퍼붓곤 하는데 필자는 그런 그들의 행위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야생화로 전락해가는 코스모스나 유채꽃의 화려했던 과거처럼, 그들도 한때는 우리나라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받치며 살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그 삶이 곤두박질치면서 노점상 상인으로 내몰렸을 뿐인데 국가나 자치 행정에서는 어찌하여 철저히 저들의 존재를 잊어버렸을까 싶다. 잃어버린 국민의 무리가 전국 곳곳의 재래시장에서 엄청난 규모로 야생화 군락처럼 살아가고 있는데, 국가행정은 도무지 그들의 존재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들은 누구처럼 서울역사의 노숙자가 아니었고 나라에서 일일이 그 삶을 보살피느라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무리도 아니다.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아니하고 자력으로 삶을 회복하려는 의지의 재래시장 상인들이야말로 세상의 주목과 응원을 받아 마땅한 그런 인간의 꽃 무리가 아닌가 싶다.

2022-07-06

문화로 도시를 살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지역의 인구문제가 심각하다. 저출산고령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수도권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동네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학령인구가 격감하면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늘어난다. 지역에서 젊은이들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기만 하다. 대학들이 있어 청년들이 지역에 있기는 해도, 거의 모두 졸업과 함께 떠날 채비를 한다. 사회진출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지역을 떠나는 까닭을 물으면, ‘지역에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거나 ‘지역에 문화기반이 부실하여 지역에 머물 재미가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들이 장래를 걸만한 비전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일상을 이어갈 정주여건이 부실한 터이다. 인구문제는 사람 머릿수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이들의 마음을 묶어낼 매력을 만들어야 한다.문화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여러 생각이 가능하겠지만, 문화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어야 한다. 전통문화를 찾아내어 아름답게 보전하는 일이 중요한 만큼, 우리가 발딛고 사는 곳에 어떤 문화적 매력을 심을 것인지 생각을 모아야 한다. 문화는 독특하고 흥미로우며 이곳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지역의 정체성’이어야 한다. 한국문화는 한국에만 있듯이, 포항문화는 포항의 정체성이어야 한다. 지역의 정체성인 문화가 외지로부터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찾아와 살고싶게 만들어야 한다. 정주여건과 연계한 문화인식이 필요한 까닭이다. 다른 지역을 흉내내어서도 안 되고 다른 지역이 따라할 수도 없어야 한다. 독특한 정체성을 확보한 지역문화는 도시브랜딩의 기초가 된다.차별적이며 흥미진진한 지역문화를 일으키면, 우리만의 지역문화를 홍보와 마케팅에 활용하는 도시브랜딩에 적용하게 되고 사람을 당기고 청년을 머물게 하는 인구정책에 기여할 수 있다. 늘어나는 지역의 인구는 다시 다양한 문화적 저변을 발굴하고 창출하게 하고 지역의 문화적 지평을 넓히게 하여, 선순환적 문화정책과 도시정책이 가능해질 터이다. 청년들에게 지역을 왜 떠나느냐고 따져 물을 게 아니라, 지역이 먼저 전향적으로 풍요하고 재미있는 문화적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외치지 않아도 찾아오는 도시를 만들어야 하고 붙들지 않아도 떠나지 않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문화가 ‘정주여건’의 필수요소임을 명심해야 하며, 행복과 기쁨은 일상에서 만나는 문화의 풍성함과 흥미로움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산업화의 결실이 사람을 당기는 외형적 유인이었다면, 문화적 풍요는 사람을 머물게 하는 매력의 열쇠인 셈이다. 문화도시로 선정되었음에 만족할 일이 아니며, 문화가 구체적으로 지역의 지속적인 발전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고심해야 한다.오래된 고전이 물론 훌륭한 문화자산이지만, 오늘 일상에서 만들고 경험하는 재미와 향기는 우리 도시만의 문화적 매력과 긍지가 된다. 산업화로 여기까지 왔다면, 문화로 새 날개를 달아야 한다. 나라와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브랜딩을 문화를 테마로 시도해야 한다. 글로벌시티로 다시 태어나는 포항이 되어야 한다. 문화를 살리면 도시가 깨어난다.

2022-07-06

한국 최초의 달궤도선 ‘다누리’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지구궤도에 완벽하게 올려진 이후 한국형 달 탐사선 계획의 1단계 사업으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해 오는 8월 3일에 발사되는 대한민국 최초의 달 궤도선 다누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다누리는 달 궤도를 돌며 달을 탐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국형 달 궤도선’이다. 미국 스페이스 X의 로켓에 실려 발사될 다누리는 달 궤도까지 사흘이 걸리는 지름길 대신, 150만 km를 돌아가는 최대 135일의 기나긴 여정을 선택했다.태양 쪽에 있는 무중력 지점까지 갔다가 지구와 태양의 중력에 이끌려 달에 도착하는 방식으로, 다른 궤적에 비해 이동 거리가 길지만, 지구와 태양의 중력을 활용해 이동하므로 연료를 상당량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달에 도착하는 시점은 오는 12월이다. 그 때까지 다누리와 교신하며 길잡이 역할을 해줄 초대형 안테나는 직경 35m, 무게 700t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심우주 지상 안테나다.고해상도 카메라를 비롯해 6개의 탑재체가 실린 다누리는 1년 동안 달 상공 100km를 하루 12바퀴씩 돌며 자원을 조사하거나 착륙 후보지를 찾고, 자기장·감마선 측정 등 달 과학연구와 함께 우주 인터넷 기술도 검증한다.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과 협력해 다누리에 미 항공우주국(NASA)의 탑재체인 극지방 촬영 기기를 싣고, NASA는 다누리의 심우주 통신과 항행을 지원한다.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0년 초반 우리 발사체로 달 착륙선을 보낼 계획이다. 한국형 발사체에 이어 달 탐사선 발사가 꼭 성공해 우주항공시대가 열리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7-06

기초의회의 주인은 누굴까

심한식 경북부 경산 경산시의회가 5일 제9대 경산시의회 전반기를 이끌어 갈 의장단을 선출했다.의장은 시중에 떠돌던 소문처럼 국민의힘 박순득 의원이 전체 15표 중 12표를 얻어 선출됐다.제9대 경산시의회 개원을 앞두고 지역 국회의원이 박순득 의원을 지원 사격하는 전통을 돌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회의원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시민들 사이에 조성되기도 했으며 의회에서도 부의장 선출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이경원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으로 이 사실을 거론하기도 했다.지역 국회의원이 기초의원을 자기의 수족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관행을 여실히 보여 준 사례로 경산시의회 15명의 의원 중 14명이 정당의 공천으로 시의회에 입성했으며 12명이 국민의힘 소속이다.이러한 현상은 제9대 기초의회 전반기 의장단을 선출하는 기초의회 곳곳에서 나타났다.정당의 공천은 정당에 필요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일 뿐 유권자의 바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지역 국회의원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만약 누군가 “경산시청이 공무원의 것이다”고 말한다면 대부분이 이 말에 찬성하지 않고 비웃으며 “경산시민의 것이다”고 이구동성으로 답했을 것이다.그럼 경산시의회의 주인은 누구일까?경산시청의 주인이 경산시민이듯 경산시의회의 주인은 국회의원도, 시의원도 아닌 경산시민이라는 답이 정답이다.경산시의원도 한 명의 시민이며 객관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격체다.지역 국회의원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수하가 아니라 존중받으며 스스로 지역민을 위해 봉사하는 귀중한 자리라는 것을 시의원들은 생각해야 한다.지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자신의 입으로 “지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시민을 주인처럼 섬기겠다”고 밝혔다는 사실을 기억해라.그 말처럼 지역민을 주인으로 삼고 군림자가 아닌, 국회의원의 수하가 아닌 인격체임을 명심하라.이제 의장단 선거는 지나갔다.이번 의장단 선거의 교훈을 잊지 않고 건전한 사고를 자랑하는 제9대 기초의원들의 활약상을 기대해 본다.경산/ shs1127@kbmaeil.com

2022-07-05

오타쿠, 세이브 더 월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년 소녀들의 성장 드라마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차원 우주에서부터 초능력, 소련의 스파이와 미 정부의 비밀 실험 등 갖가지 음모론을 버무려놓은 작품으로 청소년판 X-파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매 시즌 새롭게 등장하는 음모와 그 안에 감춰진 세계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추리물과 액션을 훌륭하게 조합하면서 특유의 레트로적인 분위기를 살리고 있어 굉장한 몰입도를 자랑한다.하지만 내가 이 드라마를 챙겨 보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즐기는 ‘던전드래곤’이라는 게임 때문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게임은 흔히 TRPG라 부르는 게임의 일종으로 전사, 마법사, 성직자, 도둑 등 각자의 역할에 맞춰 연기하는 일종의 상황극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마스터는 캠페인을 만들고 상황을 조율하며, 참여자들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적절한 퀘스트와 보상을 제공한다. 반대로 게임의 참여자들은 자신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연기를 수행하며 공동의 목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가운데 ‘던전드래곤’은 그 가운데 검과 마법이 발달한 세계인 ‘포가튼 렐름’을 주 무대로 삼는 캠페인 세계관으로,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데모 고르곤과 마인드 플레이어, 베크나 역시 이 세계에 등장하는 유명한 악마와 괴물, 마법사의 이름이다.요즘 등장하는 RPG 게임의 기본 틀을 만들어낸 ‘던전드래곤’이지만 사실 이 게임에 대한 처우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테이블에 앉아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 때문인지, 이 게임은 ‘너드’,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오타쿠’들이 하는 게임이라는 인상이 강했던 탓이다. 때문에 드라마에서도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급생들의 처우는 흔히 말하는 ‘찐따’ 취급에 가깝고, 그런 만큼 아이들은 서로를 더 의지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이들에게 ‘던전드래곤’이란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이들에게 검과 마법이 난무하는 ‘던전드래곤’의 세계는 현실에 억눌려 있던 자신의 자아와 신념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세계이며, 그런 서로를 의지하고 인정해주는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어 외롭지 않은 세계이다.덕분에 아이들은 이성적으로는 해석될 수도, 해결될 수도 없는 사건들 앞에서도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마치 하나의 캠페인을 마주하듯 자신들의 방식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해결해나가고자 시도한다. 얼굴이 갈라지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에게는 ‘데모고르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의 마음을 조종하는 알 수 없는 괴물에게는 ‘마인드 플레이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런 행동들은 어른들의 눈에 아이들의 소꿉장난처럼 비춰지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나가는 것은 그와 같은 아이들이다. 어른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체념하고 슬퍼할 때, 아이들은 그와 같은 상상력을 통해 현실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해결해낸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재밌는 건 아이들의 이 과정에 있어 ‘던전드래곤’이 현실의 이해와 해석, 문제의 해결을 위한 중요한 참조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세계를 경유하여 현실을 바라보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모든 문제들이 자신들의 손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서로에게 다짐한다. 마치, 그들이 플레이하던 캠페인인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들만의 세계를 경유해 현실을 바라보며, 그렇게 현실의 문제에 대처하는 나름의 방법을 배워나간다.조금 먼저 성숙해버린 아이들로부터 현실에서 ‘찐따’ 취급을 받던 아이들이 세계를 구해낼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공동체 속의 누군가가 특수한 취향을 가지거나 혹은 그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것에 야유하고 그들을 배척한다. 단지 취향을 이유로 하는 배척 속에서, 아이들은 은연중에 사회를 배워나간다. “남들과 다른 것을 원하지 말라.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남들이 원하는 것을 똑같이 원하는 척 따라가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배제될 것이다.” 하지만 ‘기묘한 이야기’는 그와 같은 독특함과 취향이 오히려 세계를 구하는 열쇠라고 속삭인다. 기묘하고 괴이한 것은 이 세계이지 당신이 아니며, 당신은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당신에게는 단지 당신만의 서사가 있을 따름이며, 그건 결코 괴이하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는 다정함.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 ‘기묘한 이야기’에 담긴 아이들의 성장 서사에 열광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2022-07-05

우리는 서로의 등을 맞대고 자

‘등을 지다’는 말처럼 서운하게 느껴지는 문장이 또 있을까. 그것은 나의 시선이 더 이상 당신을 향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우리라는 관계를 떠나 반대의 방향으로 가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상대의 등을 바라보는 행위는 애달프다. 돌아보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과 끝내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떠오른다. 등이라는 신체 기관은 어긋남에서 오는 슬픔의 상징일지도 모른다.내게 자신의 등을 보이는 존재가 있다. 팔뚝만 한 크기의 작은 개다. 보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 친구는 조용히 다가와 자신의 등을 내 몸에 밀착시키곤 한다. 그러면 뜨거우면서 말캉한 감정이 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게 느껴진다. 작은 소리에도 날카롭게 반응하는 동물이 다른 종의 동물에게 아무렇지 않게 등을 보인다니.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이전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우리는 서로의 등을 맞대고 잔다. 취침 시간이 되면 이부자리를 정돈하면서 보리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옆자리를 툭툭 친다. 나의 작은 개는 손짓을 따라서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오른다. 나는 보리의 배를 긁어주기도 하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이어지는 털의 결을 따라 가만가만 쓰다듬어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잠에 빠져든다. 웅크리고 자는 중에 등 뒤에서 따뜻한 기운이 닿는다. 둥글게 말린 척추가 느껴지면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 뒤를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그 신비롭고 이상한 사실에 관하여.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감정적 부분이 있을 것이다. 개가 인간에게 주는 사랑과 기쁨이 있지만 그만큼 굉장한 책임감을 져야만 한다. 한 생명이 자라날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은 당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훈련하고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가끔 개와 관련된 사건사고가 들려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캐롤라인 냅은 자신의 저서인 ‘개와 나’에서 말한다. “나는 개에 대해 감상적이지는 않다. 모든 사람이 개를 키운다고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개와 주인의 관계가 언제나 건강하고 유익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순간의 선택으로 개를 키우게 된 저자는 개와 함께 사는 삶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개는 우리를 정답고 온화한 세계로 이끈다’는 말이 황당하게 느껴졌다. “개는 정답고 온화할 때도 있지만, 무서울 때도, 짜증 날 때도, 혼란스러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공격적이고 고집불통에 제멋대로이기도 하다.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또 주인에게 책임감과 강제성, 그리고 의존성에 대해서 온갖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그녀의 말대로다. 개와 함께 산다는 건 아름답지만은 않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만큼이나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적확한 문장으로서만 마음과 마음이 닿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보리와 나는 같은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 우리는 손짓이나 뉘앙스로 소통한다. 그러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오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어린 시절 상상했던 드넓은 마당에서 개와 함께 뛰어노는 목가적 풍경은 내 것이 아니다. 나의 개는 동화에서 본 것처럼 아름답고 충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실질적인 문제를 제공한다. 내가 아끼는 물건을 마구잡이로 물어뜯어 놓고, 나의 말을 깡그리 무시하기도 하며, 오줌을 싼 자리에는 지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별것 아닌 일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구는 면이 있다. 보리는 내가 꿈꾸던 완벽한 반려견이 아니며 나 역시도 보리에게 있어서 완벽한 반려인이 아닐 것이다.그렇지만 밤이 되면 우리는 동시에 같은 자리에 눕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등과 등이 맞닿는다. 내 뒤통수는 내 시선이 닿지 못하는 곳. 내가 볼 수 없는 곳을 지켜주는 존재가 내 곁에 있다. 위안과 안도, 그리고 약간의 슬픔이 찾아온다.나의 작은 개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한다. 너는 나의 뒤에서 무엇을 보는 거냐고. 우리는 서로의 내부로 들어갈 수 없기에 등과 등이 맞닿는 것으로 안심한다. 안희연의 시 ‘그의 작은 개는 너무 작아서’에는 이런 시구가 있다. “한 존재를 끌어안고 너무 깊이 와버렸기 때문에/ 자신이 끌어안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대로라면 행복하다고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서로가 있기 때문에 충분한 밤을 보내고 아침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척추뼈의 감각에서 사랑을 읽는다.

2022-07-05

한계·부실 대학에 평생교육 발상은 잘못

이명균창원대 명예교수 학령인구의 절대적 감소로 대학에 진학할 학생 수가 대학정원보다 훨씬 적어서 생겨나게 될 많은 정원미달 대학들에게 고령자 재교육 또는 평생교육기능을 담당케 하여 대학 위기극복의 실마리를 찾게 하자는 말들이 있는데, 이는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20여 년 전부터 저출산 인구감소는 벌써 예측된 것인데, 그동안 아무런 대책이나 노력도 없이 기득권만 누려오다가 이제 와서 전혀 엉뚱한 방안의 제시는 납득하기 어렵다.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위기 상황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대학의 수와 대학정원 수를 줄임과 동시에 전공학과와 단과대학이나 대학원 등에 대한 과감한 구조개혁이 따라야 마땅하다.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전공 학과에 학생들을 모집하여 방만하고 안일하게 운영해오던 대학들은 인구감소와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없어지는 것이 합리적이고 순리다.최근 어느 언론 보도에 의하면 청년 일자리가 없다하기보다는 대학교육과 산업계 일자리의 부조화로 인하여 청년실업이 더 심해진 것이라 한다. 인력난의 근본원인은 대학이라는 곳이 청년학생들과 그들을 수용할 사회에 필요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교수들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란다. 세상은 무섭게 변하는데 낡은 교과목을 붙들고 철밥통으로 삼는 교수가 너무 많으며, 이들의 기득권 지키기 저항으로 학과 간 정원조정 조차도 번번이 무산된단다. ‘2021 세계 인적자원 경쟁력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교육과 실제 직업의 연계성이 OECD 주요 30개국 중 꼴찌다. 대학진학률은 세계적으로 높지만 대학에서 배출하는 인력은 일자리 수요와 심하게 어긋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철밥통을 잘 지켜오다가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이 존폐위기에 놓이니, 이제는 평생교육 재교육 운운하며 기존 특권을 어떻게든 유지하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존속 능력과 필요성이 없는 대학들을 평생교육 등을 구실로 국민세금을 들여서 억지로 유지시켜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령화 사회에서 은퇴자 고령자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고 필요한 교육내용들이 있다면 한계·부실대학을 살리려는 측면이 아닌 고령자 재교육의 필요성과 효과의 관점에서 충분한 연구검토를 거쳐 내실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은퇴자나 고령층 사람들에게 평생교육을 통해 생동감을 불어넣는다는 핑계로 한계·부실대학의 존속을 노리는 것은 잘못이다.한편 대개 외곽지대에 있는 대학이라는 곳은 고령자들의 접근이 쉽지 않을 것이며,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대학건물까지 찾아가 배우겠다는 고령자들은 더더욱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나 공공도서관 등에서 지자체나 국가예산으로 성인들을 대상으로 많은 무료 평생교육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마저도 교육내용과 방법에 대한 평가나 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상당히 부실하게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고령층 교육의 필요와 중요성에 대해서라면 이런 프로그램의 내용과 운영부터 잘 정비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2022-07-05

흐름도 역사다

조현태수필가 남극에서 빙하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이상한 현상을 목격했다. 바다에 떠 있던 얼음 조각들이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에 떠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바람에 밀려가는 방향에 반대로 거슬러 움직이는 얼음 덩어리가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이상하게 생각하여 조사해 보았다. 어렵지 않게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바람을 거슬러 거꾸로 움직인 것은 빙산이었던 것이다. 빙산은 수면위로 드러난 부분이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물속에는 엄청난 크기의 얼음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비교적 덩어리가 작은 얼음조각들은 바람이 부는 대로 떠밀려가지만 바다 속에 엄청난 크기를 가진 빙산은 바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닷물의 조류에 의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바람도 조류도 따지고 보면 위치가 이동하는 현상이다. 그 위치의 이동 방향이 일치하지 않은 곳에 부유물이 있다면 당연히 이동에너지가 큰 쪽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여기서 얼음조각이든 빙산이든 바다에서는 부유물이다. 결국은 부유물 자체의 이동에너지가 바람이나 조류를 감당할 만큼 크다면 이미 부유물이 아니다.우리는 바람과 조류가 공존하는 세상에 떠있는 부유물이기도 하다. 왜냐면 세상의 흐름에 역행할 수도 없거니와 자신이 엄청나게 크고 돌같이 단단하다 싶지만 세상 속에서 티끌일 뿐이기 때문이다.이럴 때는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코스모스’가 또 떠오른다. 우주 속에 태양계가 얼마나 작으며 태양계에서 지구가 얼마나 보잘 것 없으며 지구에서 한 사람이 얼마나 미약한지 절실히 느끼게 했던 책이다.전자공학 교과서에 광속(전파 속도)을 1초당 30만km씩 날아가는 속도라고 했다. 흔히들 1초에 지구 일곱 바퀴 반을 도는 속도라고 한다. 그 속도로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약 8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대충 계산해도 1억4천400만km의 거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지구 위에 ‘나’란 존재는 마치 수박에 앉은 먼지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항간에는 자신이 빙산처럼 방대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래서 웬만한 바람이나 촐랑거리는 물결에는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버틴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의 요동치는 역사가 그를 송두리째 이끌고 간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궁금하다. 전쟁하여 이기면 되고, 자원쟁취가 전쟁의 원인이고, 자원이 곧 빙산이라고 설명할지도 모른다.우리는 어떤 흐름에 따라 살아야 할까? 누리호 2차 발사에 성공하여 온 국민의 감격과 칭찬이 조류만큼이나 한결같았다. 더욱 자랑스러운 모습은 연구원들과 기술자들이 모두 자신보다 주변 사람에게 ‘고생했다, 축하한다, 감사하다’며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는 인사였다.전쟁과 분단의 참혹한 환경에서 세계 7대 우주강국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는 감동스러운 조류가 흐른다. 누리호에 쏟은 연구와 기술이 작은 얼음조각이면 어떻고 빙산이면 어떠랴.

2022-07-05

‘이준석 왕따’ 대통령에게 도움될까

심충택 논설위원 이준석 당 대표를 축출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는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징계심의가 내일(7일) 열린다. 이 대표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리위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주려는 시도가 있다고 윤리위원들이 호소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진석 부의장이나 김정재 의원, 배현진 최고위원 같이 실명으로 공격하는 사람도 있지만, 익명의 가면에 숨어서 인터뷰하는 ‘여권관계자’를 경멸한다”고 말했다. ‘여권관계자’라는 익명으로 그를 비판하는 정치인의 배후에 어떤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국민의힘 윤리위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를 운영하는 강용석 변호사가 지난해 연말 이 대표를 ‘성상납 의혹’으로 제소한 게 발단이 돼 개최된다. 강 변호사는 6·1 경기도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당 김동연 후보를 당선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국민의힘 윤리위가 이 제소를 수용한 이유가 ‘성상납 관련 증거인멸 교사 의혹’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 시효가 끝난 10년전의 사건, 그것도 실체나 증거가 없는 사건을 심의대상에 올리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다.특히 윤리위가 징계심의의 직접적 원인으로 발표한 ‘증거인멸 교사 의혹’도 현재 경찰수사가 진행중이다. 모든 공공기관이 그렇듯이, 징계혐의가 적발되더라도 수사가 진행되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징계심의를 늦추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이러한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이 대표로서는 내일 ‘무혐의’ 외에 다른 어떤 징계처분이 나오더라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당 대표 토끼몰이’로 불려지는 이번 사태는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정치인(친윤계)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2년 후의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6·1 지방선거 직후 청년 중심 당원배가운동 등을 위해 당 혁신위원회를 만들어 공천 룰을 개정하겠다고 공언해 왔다.실제 혁신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첫 회의를 열고 정식 가동에 들어갔다. 혁신위원인 천하람 변호사는 이와관련 “이 대표가 남은 1년의 임기 동안 결코 조용히 있지 않겠구나, 이런 판단이 나오니까 전체적인 친윤계 반응이 더 차가워진 것이 아닌가 해석한다”고 언급했다.다음 총선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지난 대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승리해 수권정당이 되었지만, 총선에서 과반을 획득하지 못하면 지금처럼 야당에 끌려다니는 정당으로 남는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도 국회 의석이 받쳐주지 않으면 허약하기 짝이 없다. 아마 윤 대통령이 가장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윤계’로 지목되는 정치인들이 ‘윤 대통령 보란 듯이’ 학교 교실에서나 볼 수 있는 ‘왕따 가해자’로 앞다퉈 나서고 있으니, 기막힌 상황이다.국민의힘이 차기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2, 제3의 이준석 같은 인물이 배출돼 당을 혁신시키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다음 총선에서 만약 집권당에 대한 중도층 민심이 멀어진다면 그 즉시 심각한 레임덕이 온다는 것을 윤 대통령이 깨달아야 한다.

2022-07-05

지방정부시대 열어야

우리나라는 중앙정부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지방정부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지방정부는 자치분권을 중시하는 일부 학자들이 학술적 의미로 쓰는 용어일 뿐이다. 법적인 공식용어는 지방자치단체이다.지방자치란 일정지역을 기반으로 주민이 선출한 인물이나 단체가 통치하는 정치 제도다. 주민의 의사를 직접 반영한다고 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라고도 부른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전국 17개 시도와 226개의 시군구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새로 선출됐다.새 단체장의 취임으로 도시마다 기대와 활기가 넘치나 기대만큼 지역의 발전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1995년 전국 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지 벌써 27년 세월이 흘렀다. 우리의 지방자치가 세월만큼 성숙해졌는지는 의문이다. 중앙집권적 행정구조가 여전히 상존하고, 취약한 지방재정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지난해 우리나라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48.7%였다. 특히 군단위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17.3%여서 자치라는 표현을 쓰기가 민망할 정도다. 중앙정부에 예산을 의존하지 않으면 관내 공무원의 봉급도 못줄 판이니 자치는 간판뿐이고 중앙정부의 예속기관이나 다름없다.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를 두고 ‘천수답 행정’이라 표현했다. 중앙정부의 예산지원만 바라보는 지방의 서글픈 현실을 빗댄 말이다. 중앙정부만 바라보고 있으면 지역의 발전은 요원하다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민선 8기 지방자치의 최대 과제는 누가 뭐래도 모든 지역이 골고루 잘사는 지방시대를 여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를 ‘국정과제’로 삼았다. 민선 8기가 나아갈 방향이 이제 더 분명해진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7-05

올림퍼스의 노예들 <Ⅷ>

필립은 술을 잘 마셨다. 훨씬 젊은 노마와 대작을 하면서도 쉽게 취하지 않았다. 취해서 내뱉는 말인가 싶어 들어보면 앞뒤도 맞고 과하게 나가지도 않았다. 마치 준비해 두었던 말처럼 부드럽고 막힘이 없었다. 취기가 오른 노마가 필립을 형님이라 불렀다. 필립은 새엄마의 오빠니 노마는 외삼촌이고 자기는 조카가 아니냐며 농담을 했다. 그러고는 노마에게 술을 사라, 외삼촌이 술을 사야 한다 말하고는 껄껄 웃었다.-외삼촌, 하시는 일은 어떻습니까? 편합니까?-몸이 편하고 안 편하고는 중요한 게 아니지요.노마는 붉은 얼굴을 이리저리 흔들며 대답했다.-내가 조카, 아니 형님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요. 나이 든 사람들, 노인들 말이에요. 내가 나이 좀 먹었네 하는 사람들 모두 신 같아요. 신 알아요? 영원히 사는 것들. 올림퍼스 산 꼭대기에 있다가 내려 온 거죠. 아니지, 올림퍼스 산 전체를 땅으로 끌어내린. 그러면 나는 뭐냐? 신들을 먹여 살리는 노예죠. 죽어라 일하는 노예. 그 노예의 꿈이 뭔지 아세요? 신이 되는 거예요. 어렵지 않아요. 일찍 죽지만 않으면, 시간만 보내다 보면 저절로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고 신전에 들어가 있겠지요. 힘센 신이든 이름 없는 신이든. 형님이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데, 하긴 오늘 내가 형님 기분 살피면서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 형님의 아버지를 인조인간이라 불렀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형님의 아버지, 그러니까 최 회장님은 그저 단순한 인조인간이 아니에요. 신이죠. 힘이 아주 센. 아, 그걸 내가 이제 알았네요. 이제 알았어.노마는 혀가 꼬인 채 이야기했다. 술잔을 빙글빙글 돌렸고 테이블 밑으로 떨어뜨릴 뻔했던 술잔을 필립이 잡았다.-우리가 좀 많이 마셨지. 이제 일어날까? 더 마실까?-아니, 형님. 이제 시작이죠. 그런데 형님은? 형님은 뭐랄까? 아닌데? 신의 아들 느낌은 안 나는데. 형님은 뭐죠? 형님, 형님은 정체가 뭐예요?-나? 나 최만식의 아들 최필립이지. 힘도 없고 뭣도 없는 노예. 참, 그러면 내 친구 한 명 부를까? 술은 세 명이 먹어야 맛이 나거든. 불러도 되지?-친구요? 형님이 부르신다면 저야 뭐.-인호, 인호라고 있어. 국회의원 쫄따구이자 아들, 평생 쫄따구.다음날 안나가 노마에게 전화를 했다. 필립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엇을 얻었는지 물었다. 노마는 필립이 좋은 사람이라 대답했고 안나는 그게 뭐냐며 화를 냈다. 노마는 다시 만나기로 했으니 그때 다짐받으면 된다고 안나를 달랬다. 안나는 노마의 말이 끝나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걱정 하지 마, 잘 될 거야. 내가 알아서 잘 할게. 오빠만 믿어. 노마는 안나에게 문자를 보냈다.허 형사는 이 사건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어떻게 끝이 나든 중요하지 않았다. 인공 장기의 ‘인공’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이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가 생각났다. 허 형사의 아내는 당뇨병 환자였다. 인슐린을 분비하지 못하는 1형 당뇨.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녀가 그렇게 태어났을 뿐.허 형사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당뇨병 환자가 겪게 될 합병증들에 대해, 환자들의 가족이 감당해야 할 것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깟 당뇨병 따위야.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완치할 수 없다지만 인슐린 주사 맞으며 잘 관리하다 보면 완치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겠지. 개발되지 않아도 되고. 조금 불편할 뿐이지. 당뇨병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다.어느 날부터 아내의 몸이 붓기 시작했다. 가끔은 숨이 차다고도 했다. 발등부터 시작된 부종이 정강이까지 올라왔을 때 의사가 보호자를 찾았다.-콩팥 기능이 한계에 다다라갑니다. 투석이든 인공 콩팥이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생체 신장 이식을 받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요즘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늘어난 거지요.허 형사가 의사에게 물었다.-자기 콩팥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나요?의사가 대답했다.-어차피 무슨 선택을 하든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미리 준비하시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옛날에는 자기 콩팥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쓰다가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다른 방법을 찾았지만 요즘은 트렌드가 바뀌었습니다. 인공 콩팥이 워낙 잘 나와서요. 가능한 빨리 하는 것이 다른 장기의 합병증을 예방한다는 보고도 있고.혈액 투석을 권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일주일에 두세 번씩 병원을 방문하는 것, 쉽지 않는 일입니다. 게다가 환자의 심장이나 다른 혈관에 부담을 주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투석을 시작하면 평균적으로 십 년 뒤에는 결국 사망하거나 혹은 이식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니까요.의사는 인공 콩팥 이식을 권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허 형사의 월급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시술비나 인공 콩팥의 가격도 그리고 보험 여부도 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서. 나이라도 많다면 인공 장기 회사에서 지원을 받거나 새로 나온 모델을 시험하는 조건으로 달아 보기라도 할 텐데.의사는 미안한 듯 말끝을 흐렸다.-병을 치료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김강 소설가

2022-07-04

읽기라는 축복, 혹은 저주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 인간이 무언가를 기록하여 남기려 했던 필사문명의 시대로부터 인쇄문명의 시대로 이어지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던 문자를 중심으로 한 글쓰기와 읽기라는 인간 지식의 관행은 이제 또 다른,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곳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와 그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매체에 의해 새롭게 도래된 구술문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만 같다. 모두가 ‘지금 현재’에 붙들려 그것을 소비하는 시대에, 인간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문학이나 역사, 철학은 과연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혹은 질문을 바꾸어, 인간이 문자를 가지고 읽고 쓸 수 있다는, 기록하고 독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류에게 주어진 축복이었을까, 혹은 우리에게 씌워진 천형과도 같은 저주일까. 유튜브 어딘가에 지금도 영상 이미지들이 쌓여가고, 더 이상 책을 읽고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시대에는 이런 질문조차 새삼스러워질 것인가.독일작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Bernhard Schlink)가 1995년에 쓴 ‘책 읽어주는 남자(Der Vorleser)’는 바로 이 문자를 읽고 쓰는 인간의 문제에 답하고 있는 좋은 사례다. 주인공인 미하엘 베르크가 남긴 한나 슈미츠라는 여성에 대한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불과 열다섯 살에 불과했던 미하엘이 서른을 훌쩍 넘긴 한나라는 여성을 만나 연애 관계가 되는 자극적인 소재 아래 나치의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와 인간이 읽고 쓰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보여준다.소설 속에서 미하엘은 한나를 만나 그가 갖고 있는 풍요로운 감각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것은 문자에 앞서 그 자체로 자기를 드러내는 세계다. 시각과 청각을 발동시키는 세계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미각과 후각, 촉각이 발동되는 세계. 문자로 그것을 기록하려 해도 결국은 추상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체성들의 세계이다. 한나는 미하엘을 씻기고 먹이고 같이 잠을 잔다. 미하엘은 그 앞에서 마치 한 마리의 동물이라도 된 듯, 그 구체성의 감각들을 탐한다. 물론 윤리나 도덕 같은 것을 빼고 어떤 대상을 판단한다는 사실 자체가 무리겠지만, 만약 그것을 뺄 수만 있다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언어를 통해 만들어낸 담론 이전에 인간의 몸과 그 사이의 교섭이라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발간된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의 표지. 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가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한나는 미하엘이 책을 읽어주는 것은 좋아하고, 그것을 바란다.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야 드러나지만, 읽어나가면서 어느 정도는 알게 되는 사실은 한나가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문맹이라는 것이다. 한나는 전형적으로 구술만으로 살아왔던 사람이 갖는 마련인 즉각적이면서 비논리적인 논쟁을 통해 미하엘을 공격하기도 하고, 미하엘이 남겨놓은 쪽지를 읽지 못해 없애버리고 시치미를 떼기도 한다. 미디어학자 마셜 매클루언이 ‘구텐베르크 은하계’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구술언어 중심의 인간은 타인과의 교섭이나 세계 이해에 있어서 전혀 다른 지평을 갖는 것이다. 현실 상황이 지나가버린 뒤 기억을 매개로 글쓰기하는 관행에 익숙한 논리에 얽매이는 문자인간이 생리적으로 사고하는 구술인간을 논쟁으로 이길 수 있을 리 없다.소설의 중반부, 한나는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두 사람이 재회 아닌 재회를 하게 된 것은 아유슈비츠 나치부역자 재판이 이뤄지는 곳에서였다. 지멘스에서 일하고 있던 한나는 수감자를 선별하는 일을 맡게 되었고, 그 수감자들의 학살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미하엘이 지켜보는 와중에 한나는 자신이 문맹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자백하고, 종신형을 받게 된다. 인간에게 읽고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소설은 치열하지만 담담하게 인간이 쌓아올린 글쓰기 문명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2-07-04

지식과 지혜 그리고 개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가 학교를 다니고 평생 배워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아마도 살아가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잘 해결하여 인생을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면 꼭 학교를 다니고 지식을 많이 습득해야 인생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가라고 물으면 답은 아니다 이지만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있으면 살면서 문제에 봉착할 때 휠씬 유리할 수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지식이 많다고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문제해결에 있어 지식과 지혜는 매우 중요하다. 필자도 개선활동을 지도할 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며 학습을 통한 지식 습득의 중요성도 강조하지만‘한 사람의 지식 보다 열 사람의 지혜를’ 말하면서 지혜의 중요성을 휠씬 더 많이 강조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지식(知識·Knowledge)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로 정의하고 지혜(智慧·Wisdom)는‘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으로 정의한다.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고 할 정도로 제조현장의 개선에 있어 세계적 기업인 일본 도요타자동차 연수 시 들은 이야기를 소개하면 지식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고, 지혜는 신이 만물에게 공통으로 부여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원숭이는 원숭이, 소는 소 나름의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개선은 지혜의 보고라고 하며 상사는 직원이 지혜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질문을 잘 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도요타자동차에서는 고객이 주문한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이동, 대기 등 아무 가치없이 단순히 움직이는 동작(動)을 낭비로, 부품을 가공, 조립 등 제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움직임을 일로 정의하고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지혜를 발휘하여 가치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 간다는 의미로 사람인(人) 변에 움직일 동(動)자를 합하여 ‘일할 동(50CD)’자를 일본식 한자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또한 자동차 조립을 시작에서 완성될 때까지 전 과정에 대한 순서와 시간을 빠짐없이 나열하여 자동차 한 대가 생산되는 시간인 1분 전후로 나누어 한 사람의 작업량을 구분하고 그 한 사람의 작업에 대해서 고객 입장에서 가치가 없는 단순한 움직임(動)은 줄이고 가치를 부여하는 동작인 일(50CD)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작업 순서와 시간을 표준작업으로 만들어 가치 있는 동작의 비율을 100%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끊임없이 개선하고 있다.많은 회사에 도요타 사례를 이야기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건 자동차 회사니까’‘우리 회사는 다르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이것은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고 취득한 지식이 이를 응용하는 능력인 지혜의 발휘를 방해하는 대표적인 ‘헛 똑똑이’의 전형인 것이다. 지식이 많고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변화와 개선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2022-07-04

친환경 예술의 관점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이른 무더위에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니 저마다 분주해지는 모양새다. 코로나19의 안도 속에 일상회복의 움직임이 많아지고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그간 참고 미뤄왔었던 일들이 도처에서 자주 보이고 있다. 국내외 여행객들의 증가세가 뚜렷해지고 각종 행사나 레저활동, 문화예술 전시, 공연 등도 눈에 띄게 많아지며 사회 전반적으로 활기를 되찾아 가는 모습들이다.이미 예보가 있었지만 올 여름도 유례없는 폭염과 가뭄, 홍수, 태풍 등으로 만만찮은 여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후는 자연과 환경의 파괴로 자원순환사회의 메커니즘이 어긋나면서 예측불허와 악화일로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기후변화가 심각하고 중요하며, 자연재난의 예방과 대응에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걷잡을 수 없는 기상이변이나 환경오염, 생태환경의 급변은 결국 인간사회에 대한 경고이자 역습으로 작용해 급기야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어쩌면 이러한 심각성으로 인해 신음하는 지구를 지키고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친환경 예술이 대두된 것인지도 모른다. 비단 친환경 예술뿐만 아니라, 이미 10여년 전부터 기업에서는 지속가능한 기업활동을 영위하기 위한 ESG경영이나 재생에너지 활용, 탄소중립 등의 현안은 전 세계적인 관심과 화두가 되고 있다. 그만큼 코 앞까지 다가온 기후위기가 환경오염과 생태구조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친환경 예술은 이러한 측면에서,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환경 친화적인 요소로 생태와 환경, 재생 이슈를 예술적인 콘셉트로 재해석해 환경사랑을 실천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즉, 차고 넘치는 쓰레기와 폐기물 등으로 인한 환경오염문제나 환경이슈 등을 예술적인 관점에서 대중과 교감하고 소통하며 환경보호 실천을 도모하는 친환경 예술활동인 셈이다. 이를테면 캔과 페트병 등을 활용해 자원순환을 강조하는 예술품과 재생품을 만든다거나 나뭇잎 간판, 이끼로 만든 벽화, 친환경 소재의 예술조형물 등을 통해 환경자원을 다양하게 활용해 친환경 예술 프로젝트로 연계, 확장시키는 개념이다.‘아트따릉이’는 2021년 시민공모로 선정된 디자인으로 서울시 공공인프라를 활용해 각광받은 친환경 예술 프로젝트다. 또한 포스코 ‘1%나눔 아트스쿨’은 지역사회 아동들에게 4년째 친환경 테마의 예술체험교육과 창작활동 지원으로 환경의식과 실천의지를 심어주고, 예술활동 콘텐츠를 활용해 작지만 지역사회의 문제해결과 변화에 기여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러한 시도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공무원과 임직원들의 재능 나눔과 봉사, 기업체의 지속적인 메세나 활동의 선순환고리로 이어져 활동의 결과물이 결국 지역사회로의 환원과 유지발전을 도모하는데 주안점이 있다 할 것이다.친환경은 단순히 줄이고 다시 쓰는 것도 좋지만, 환경자원을 도덕적, 윤리적인 개념을 포괄하여 제대로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 친환경 예술은 우리의 소중한 환경을 지키면서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적극적인 방법임이 분명하다.

2022-07-04

‘블루카본’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위키백과에는 ‘블루카본(Blue Carbon)’은 세계 해안가의 해양생태계, 맹그로브 숲, 염생습지(갯벌), 해초류 그리고 해조류에 의해 흡수되는 탄소를 뜻한다고 되어있다. 해양에서 블루카본으로 흡수되는 탄소량은 내륙의 열대와 아열대 숲에서 흡수하는 양에 비하여 무려 수십배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매년 엄습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적인 폭염, 가뭄과 폭우 등 자연재해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팬데믹, 대형 산불 등 엄청난 사회재난이 줄을 잇는 등 우리 인류에게 닥친 기후위기 시대에 ‘블루카본’은 마치 해난사고에 던져진 구명튜브와도 같은 존재다.지난 6월 10일 세계 해양의 날(6월 8일)을 기념해 열린 ‘제10회 경북해양수산활성화 국제심포지엄’에서는 ‘블루카본’을 확대하기 위한 동해안 바다숲 조성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됐다.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논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동해안은 해안선이 길어 남쪽은 아열대, 북쪽은 아한대 기후대에 속하는 등 다양한 지형적 특성에 의해 조류의 종 다양성이 풍부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동해안에 길게 연접한 경상북도는 지역 내 온실가스 배출사업장을 조류자원의 고밀도 대량 배양을 위한 탄소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며, 2050 탄소중립 경북을 위한 안정적 흡수원으로 활용이 기대된다.동해안 바다숲 조성에 주요한 해초류로 잘피가, 조류로는 홍조류 개도박이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들은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육지의 잡초와도 같은 존재들이다. 오래전부터 우리가 동해 바다로 여행을 가게 되면 무심코 바닷속에 무수하게 보이던 것들이며, 언제 부턴가 연안의 무분별한 개발과 산업화와 함께 오염물질의 배출로 인해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다. 이 해조류가 사라지고 그 자리는 석회 조류가 달라붙어 새하얗게 변하는 바다 사막화 현상인 백화현상(갯녹음)이 급속히 전개되고 있어서 이의 확산 방지를 위해서도 바다숲 조성이 필요하다.2018년 기준 경상북도 온실가스 총 배출량은 8천536만톤인데(전국 지자체중 배출량 규모 4위) 이중 주력산업인 철강 등 산업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은 무려 5천62만톤으로 경상북도 총 배출량의 약 60%나 된다.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중 산업부분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36% 정도인 것에 비하면 경상북도의 산업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의 비중은 매우 높다. 따라서 경상북도에서는 우리나라가 2050탄소중립과 함께 전세계에 약속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인 40%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산업부분에서 획기적 감축사업의 전개와 함께 산림과 같은 탄소흡수원 확장과 CCUS(이산화탄소 포집, 저장, 활용) 사업의 확대가 불가피하다.마침 경상북도는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포항, 경주, 영천 등 동해안 지역의 노후공단을 대상으로 ‘탈탄소 스마트산단 대전환’ 사업이 시작되었고, 이와 연계하여 동해 연안을 따라 바다숲 조성과 ‘블루카본’ 산업생태계 조성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어 2050탄소중립 경북 실현이 한층 기대된다.

2022-07-04

살모넬라 식중독 주의보

최근 냉면집 집단 식중독으로 60대가 사망하면서 여름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 주의보가 내려졌다. 지난 해에도 전국의 김밥집에서 발생한 살모넬라 식중독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바 있다.살모넬라균 감염증은 가열시 사멸하고, 치명률이 그리 높지 않다. 살모넬라 식중독은 보통 날달걀, 오염된 육류 등 균에 오염된 음식을 먹어서 감염된다. 살모넬라균은 장티푸스와 비장티푸스성 균으로 구분되며, 최근 문제된 것은 비장티푸스성 살모넬라균이다.이 균은 열에 의해 사멸되므로 음식은 63~74도 이상의 온도로 조리하면 된다. 다만 지단이 덜 익혀졌거나 교차오염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살모넬라균에 감염되면 보통 6~72시간 후 경련성 복통, 발열, 메스꺼움, 구토, 두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며칠간 설사가 지속된다.대부분은 5~7일 후 회복이 가능하다. 다만 설사로 인한 탈수 방지를 위해 적절한 수분섭취가 중요하다.발생빈도에 비해 사망률은 그리 높지 않지만 영유아와 고령층은 주의해야 한다. 합병증으로 패혈증이 동반되면서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예방을 위해서는 조리위생이 중요하다. 항간에 “계란을 세척해서 보관하면 좋다”고 하지만 꼭 맞는 말은 아니다. 세척 중에 껍질의 막을 손상시켜 균이 침투를 더 잘하게 하는 위험이 있다고 한다.세척보다는 63도 이상의 온도에서 조리하고, 먹기 직전에 조리하고, 고기·가금류·계란 등 식재료를 다룬 후 조리된 식품을 만지기 전에 손을 깨끗하게 씻어 교차오염의 위험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여름철 식중독의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7-04

정치적 낙하산은 임기제의 위선 버려야

김진국 고문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말라고 통고받았다. 윤 대통령은 “비공개 논의도 많이 하는 데 굳이 올 필요 없는 사람까지 다 배석시켜서 국무회의를 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이 정도 말하면 나가라는 뜻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1년 남은 임기를 다 채우겠다고 한다. 두 사람만이 아니다. 350개 공공기관장 가운데 약 70% 정도가 윤 대통령과 1년 이상 함께 일해야 한다. 공기업 36곳 중 30곳 기관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았고, 절반이 2년 이상 남았다.이 문제는 처음으로 정권 교체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고민한 것 같다. 곽해곤 대한한의사협회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각각 일하고, 청와대 근무도 했다. 실무자가 김대중 당선자에게 “공공기관장들 사표를 모두 받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김대중 당선자가 되물었다. “과거에는 어떻게 처리했어요?” “노태우·김영삼 정부 때는 과거 정부 출신 인사들이 일제히 사표를 인수위에 제출했습니다.” “관행인가?” “불문율이었습니다.”김대중 당선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민주 정부에서 과거처럼 법을 무시하고 사표를 내라고 할 수 없으니, 임기가 올해 안에 끝나는 사람은 그대로 두고, 임기가 내년 이후에 계속되는 사람은 올해 안에 사직서를 내는 방향으로 의논하면 좋겠다. 우리가 이런 관행을 세워 다음 정권에서도 이렇게 처리해 주면 좋지 않겠는가.” 역시 어느 정도 말미를 주고 정리했다.정권을 승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3개월이 지난 2004년 5월 정찬용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은 “이제 어지간히 하신 분들은 스스로 거취를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1년여 말미를 주고 사퇴시켰다. 이명박 정부 때는 53%를 교체했다. 문재인 정부로 넘어가면서도 37%가 물러났다. 이때 사퇴를 강요한 것이 범죄가 됐다. 산하기관장에게 사퇴 압박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지난 1월 대법원이 징역 2년 실형을 확정했다. 검찰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공공기관장 임기제는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통령 측근과 선거 공신들의 포상용으로 전락하는 걸 우려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치적 중립을 위해 임기를 보장한 자리를 가장 정치적인 인물들이 차지해왔다. ‘늘공’(직업공무원)도 정무직은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한다. 그런데 공공기관장은 위선적으로 운영된다. ‘외부 공모’도 미리 내정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더구나 새 정부의 핵심 정책에 반대 견해를 보인 사람도 임기를 지킨다고 버틴다. 선거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는데, 일부 공공기관은 이재명 후보의 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거다. 세금으로 대통령 발목 잡는 일을 시키는 꼴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지난 2월 탈원전의 핵심인사를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에 알박기했다. 대선 때 여야 후보가 모두 비판한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입안한 측근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에 대못으로 박아놨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북 정책, 외교정책을 현 정부와 정반대 방향으로 추진해온 인사들이 관련 기관장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한덕수 국무총리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새 정부와 너무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을 2년 넘게 유지하는 게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고, 정부가 망하라고 방해하는 꼴이다. 새 정부는 구조 조정해 관련 기관을 없애버리거나, 평가를 통해 물갈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 먼지 털이식 비리 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불법과 편법을 줄타기하고, 비효율을 반복해야 하나.이 기회에 공공기관장과 정권의 임기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여야가 위선을 버리고 타협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같은 처지다. 정무적으로 임명할 자리와 중립성이 필요한 자리를 구분해 임기 문제를 재정비해야 한다. 당장 정부의 방향과 관련된 자리, 정치성이 심한 낙하산 인사는 교체하도록 협조해야 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7-03

과거·현재 공존하는 역사·문화관광지로 거듭날 중구

류규하대구 중구청장 주말과 현충일을 거친 연휴 마지막 날 저녁, 신천변은 마스크 없이 걷기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과 가족과 함께 선선한 여름밤을 즐기기 위해 나온 가족단위 시민들로 북적였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쳐 일상을 점차 되찾아 가고 있는 요즘, 민선8기 시작을 앞두고 구민이 진정으로 행복한 중구를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무엇보다도 중구민들이 지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데 주력할 것이다.이를 달성하기 위한 역점사업으로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사업과 창조적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완결하는 일이다. 그래서 중구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역사 공간 및 문화관광지로 변모시켜 더욱 업그레이드된 도심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재개발·재건축과 같은 도시 정비사업과 달리 지역 특색을 유지하면서 노후 주거지와 쇠퇴한 구도심을 활성화시켜 주민의 삶의 질과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도시 균형발전’을 목표로 2012년 도시활력증진사업으로 시작했으며, 2017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돼 추진되고 있다.도시재생을 추진해 성공한 해외 사례로는 스페인 빌바오 지역의 문화주도형 도시재생사업이 대표적인데, 스페인 정부는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랜드마크인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을 건설해 공업도시를 문화도시로 탈바꿈하는 문화주도형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한 결과, 매년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성공했다.또 다른 사례는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진 미국의 하이라인 파크 도시재생사업이다. 당시 뉴욕을 가로지르던 철도 하이라인은 1980년대 다른 교통수단의 발달로 운행이 중단돼 20년 간 도심의 흉물로 방치됐다. 뉴욕 시민들은 과거 산업시대 유물인 하이라인 위를 걸어보는 것이 근사한 일이라 생각하고, ‘하이라인 친구들’과 같은 단체를 창립해 방치된 철도를 개조해 공원을 만들었다. 도시의 흉물이던 하이라인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여유와 안락함을 주는 도시 공간으로 새롭게 재탄생됐다.대구 도심은 400여년간 영남의 정신적, 지리적 중심지로 한국 전쟁의 피해가 적어 근대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격동의 근현대사에 얽힌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분포된 공간과 사람이 공존하는 곳이다. 특히 중구는 구도심으로서 역사가 깃들고 문화적 보존 가치가 높은 건물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는 반면, 노후주택과 좁은 골목이 산재돼 있어 보존과 개발, 재생과 정비의 양면성에 직면하면서도 ‘도시 균형발전’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지역의 재활성화를 추진해 왔다.대표적으로 ‘대구읍성상징거리조성사업’을 비롯해 ‘동인삼덕지구 생태문화골목길 조성사업’, ‘남산하누리 행복공간조성사업’ 등 5개의 도시재생사업을 완료했다. 2019년부터 추진 중인 ‘북성로, 동산동 일원 도시재생뉴딜사업’과 2020년 선정된 ‘남산3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성공적으로 완결해 건축자산의 보전과 활용을 통한 원도심 활성화를 조성해 중구만의 차별화된 문화관광 도시로 도약할 것이다.중구가 생각하는 도시의 발전은 단순히 물리적 재생뿐 아니라 구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회·경제적 재생, 마을 공동체 회복, 주민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지속 가능한 종합적이고 역동적인 도시재생이다.이제 중구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도약하고자 한다.대구를 찾는 외국인의 80%가 방문하는 동성로의 관광특구 지정을 추진해 특구가 갖는 포지티브한 상징성을 부각시키고, 관광진흥법 제21조에 따라 향후 카지노업의 허가가 가능하며 관광객 유치에 필요하다면 관광진흥개발기금 지원으로 동성로 홍보 및 편의시설 확충, 관광자원 개발, 상가시설 기금 대여 및 보조 등이 가능하다.또한, 식품위생법 제43조에 따른 특구 내 영업시간 및 영업행위에 제한을 받지 않으며, 건축법 제43조에 따라 일반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해야 하는 공개 공지를 연간 180일 이내의 기간동안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공개공지를 사용해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공연 및 음식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이를 통해 국·내외 관광객 방문을 유도하고, 동성로 스마트 쇼핑관광 플랫폼(DDS)을 통해 5개 국어 지원과 동성로 도보네비게이션, 다양한 상품의 소개, 핸즈프리 등이 지원돼 외국인 개별관광객은 부담없이 동성로를 방문하고 쇼핑과 관광이 용이해 더 많은 외국관광객의 유입이 가능하다.다시 뛰는 민선 8기,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 나가는 중구의 모습을 기대해 주길 바란다.

2022-07-03

모정 한 줌 더하다

물길 거슬러 걷는다. 강가 너럭바위에 듬성듬성 누군가가 나지막이 돌을 쌓아놓았다. 탑 하나, 탑 둘 헤아리다 보니 지금까지 보지 못한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속살을 조금씩 드러내는 노추산은 먼 길을 온 길손에게 무엇을 보여줄까.궁금증이 저만치 앞서가는데, 길을 가로지르던 다람쥐가 빠끔 쳐다본다. 나를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돌탑을 돌아 숲속으로 사라진다. 돌탑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아 노추산에서는 나무만 숲이 되는 게 아닌가 보다. 돌탑도 숲을 이루어 한 발 한 발 들어갈수록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깊숙한 곳에 들자, 하늘이 텅 비어 있는 곳에 높고 낮은 탑들이 사방에 빼곡하다. 누군가의 간절함이 이루어낸 역사 앞에서 나무들조차 나붓이 엎드렸다. 나 또한 마음을 낮추고 돌아보는데, 무릎 높이만 한 움막이 반평생 여기서 돌탑을 쌓은 어머니의 내력을 전설한다.어머니는 서울에서 강릉으로 시집왔다. 가정을 이루어 4남매를 두었지만, 아들 둘을 잃었고 그 후로 남편은 마음의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았다. 끊이지 않는 우환이 어머니의 죄 때문인가 싶어 마음이 무거운 어느 날, 산신령이 꿈에 나타나 돌탑 삼천 개를 쌓으면 가정에 어려움이 사라질 거라고 이른다. 어머니는 숙명인 양 돌탑을 쌓기 위해 영험한 터를 찾아다녔다.어머니는 노추산에서 솟아나는 기운에 이끌려 조그마한 움막을 지었다. 길가에 아무렇게 널브러진 돌, 제 모양대로 계곡에 굴러다니는 돌, 땅속에 묻혀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돌을 주웠다. 작은 돌은 치마폭에 안고 큰 돌은 머리에 이고 한 걸음 두 걸음 옮겼다. 발목이 접질리고 허리가 아파도 돌을 날랐다. 숱한 비바람과 한설이 숱하게 다녀간 지 이십육 년, 일념으로 탑을 쌓으며 자식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전한다.세상의 어머니들은 탑을 쌓는다. 당신이라는 주춧돌 위에 정성을 하나 둘 쌓아 올린다. 어머니의 행적을 가만히 짚어보면 삶의 길목마다 탑이 있다. 어머니 생각이 간절할 때 눈을 감고 ‘엄마’라고 가만히 불러보면 마음속에서 모습을 나타낸다.탑 길에서 만난 돌들은 세상의 자식들이다. 자연의 몸을 빌려 만들어졌지만, 그 쓰임은 제각각이다. 주변의 것들과 어울리지 못할 만큼 큼직해 혼자 위풍당당하고 잘난 체하는 것도 있다. 때로는 너무 작아 눈에 띄지 않고 하물며 뒤돌아 있어 어둡고 습한 곳에 볼품없이 놓여 있는 돌들도 있다. 어떠한 돌도 어머니라는 이름을 만나면 아무렇게나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정의 탑에서 다시 본다.탑에 찬찬히 눈 맞춤을 한다. 둥글납작한 돌은 돌탑의 아랫부분에서 버팀돌이 된다. 울퉁불퉁 곰보돌도 버팀돌위에 얹으면 위를 잘 떠받든다. 작고 얇은 돌은 넓적하고 평평한 돌 사이에 살짝 밀어 넣으면 굄돌이 된다. 모나고 삐뚤어진 돌도 사이에서 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얹고 얹히고, 기대고 떠받치고, 세상의 돌들이 모여 어떤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 탑을 이루었다.높이 곧추섰다고 해서 노추산인가. 돌탑을 다 수직으로 세우면 노추산 몇 배의 높이가 될 것이다. 돌 하나둘 쌓아 탑 하나가 되고, 탑 하나둘 쌓아 하늘에 닿기까지 어머니는 한시도 쉬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더는 기력이 없어 마지막 돌 하나를 놓고 나서 하늘에 진인사(盡人事)를 알렸으리라. 그러곤 자신의 목숨은 대천명(待天命)했으리라.내 자식뿐만 아니라 모든 자식이 어딘가에 쓰임새가 있는 돌들이다. 이러한 돌들을 모은 어머니는 온몸으로 ‘塔’이라는 상형문자를 삼천이나 쌓았다. 어머니인 나는 이 세상의 자식들을 위해 무엇을 했을까. 생각의 꼬리를 잡고 거니는 사이 어느새 산 그림자가 어깨까지 드리운다.모성의 높이를 재고 돌아가는 길, 한없이 낮아진 나는 길쭉한 돌 하나를 주워 소망의 탑에 살포시 올린다.     /이순혜 수필가

2022-07-03

스포츠에서 배우는 경영이론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스포츠 스타들의 뉴스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린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태환 이후 11년 만에 수영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획득한 황선우, 유럽리그 최다 골을 기록하며, 세계적 스타가 되어 있는 축구의 손흥민, 올림픽 피겨 금메달의 김연아 등의 공통점은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다.유소년 시절 일찍이 스포츠를 배우는 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늦게 배워서는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유소년 스포츠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 아마 위에 언급된 스타 선수들도 이러한 문제를 경험했을 것이다.그러한 문제점과 유의점들은 사실상 경영자들이 배워야 할 유의점들과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모든 과학적 경영을 위한 노력에 수반되는 개발자와 상급자 간의 갈등과 문제점은 필자의 전공인 정보시스템 개발에도 예외는 아니다.경영자와 개발자 간의 심리적 갈등과 경영자의 경영방식은 개발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상급 경영자는 기대를 많이 하게 되고 개발의 어려움이라든가 장기적인 효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종종 개발자를 당혹하게 만들곤 한다.상급 경영자와 시스템 개발담당자가 겪고 있는 갈등은 유소년 스포츠에서 코치와 부모(상급 경영자)가 선수(개발담당자)와 겪고 있는 갈등과 유사해서 여기서 스포츠 심리학과 경영심리학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가 있다는 점이다. 각종 스포츠, 특히 개인경기인 테니스, 골프 등이 고도의 심리적인 경기인 것과 같이 개발담당자의 사기와 동기 부여 등이 매우 심리적이라는 점에서 같은 선상에 있는 개념이다.코치와 부모가 선수를 다루는 것과 상급 경영자가 개발자의 심리를 다루는 것은 아마도 교육이 필요한 부분일 수 있다.경영자들은 많은 경우 시스템 개발의 힘들고도 치열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시스템 개발을 지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다가 경영자도 경쟁의 치열성을 나중에 인식하고 혼란에 빠지면서 시스템 개발자를 다그치는 일에 매진하게 된다.개발자를 관리하는 경영자들이 유소년 스포츠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첫째, 부모코치들이 유소년에게 승부의 압박을 너무 주어서는 안 된다. 승부에 거는 기대 때문에 어린 선수들이 가장 심한 고통과 압박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경영자는 개발자에게 결과에 대한 심한 압박을 주어서는 안 된다. 압박감이 적은 상태에서 개발자가 창의력과 유연성을 발휘하여 좋은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다. 스포츠를 즐겨야 하듯이 개발 자체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둘째, 이익이 금세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코치 부모는 빨리 성공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승부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승부에의 집착은 장기적으로 큰 선수를 만들지 못한다. 경영자가 시스템 개발을 통한 이익에 너무 집착하거나 서두르면 안 된다. 언젠가는 그 효과가 빛을 본다는 확신과 개발과정에서 얻어지는 경험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셋째, 자기 이기심에 근거하여 선수들을 지나치게 재촉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시합에 패했을 때 관심과 사랑의 표현을 해주어야 한다. 경영자의 기대가 너무 크고 자신의 승진과 같은 개인적 이기심에 의해 개발자를 압박해서는 안 된다. 개발자의 심리가 부정적으로 될 수 있으며 개발이 난항을 겪을 때도 끊임없이 격려와 성원을 보내 주어야 한다.넷째, 선수의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틀에 박힌 코치는 지양해야 한다. 창의적으로 성장한 선수들이 큰 선수가 될 수 있다. 경영자는 개발 자체의 업무에 너무 심한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 개발자에게 최대한의 창의성과 자율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경영자와 개발관리자의 역할 분담이 명백해야 한다.다섯째, 게임 결과는 그들의 인간적 가치와 상호 관계가 없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개발의 결과가 개발자의 인간적 가치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도록 해야 한다. 개발자들이 그들의 능력이나 인간적 가치의 실험대에 올라와 있다고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여섯째, 마지막으로 부모코치 그리고 선수가 조화를 이룰 때 결과가 극대화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부모코치의 불화는 선수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경영자 상호 간의 불화 또는 경영사 상하 간의 불화가 개발자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경영자, 개발자의 조화에서 적절한 임무와 역할이 수행되고 결과적으로 훌륭한 개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손홍민의 부친은 어려서 경기를 시키지 않고 승부로부터 압박을 배제하고 기본기에 충실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아들의 성공에 대하여 겸손한 자세를 취하면서 더 큰 노력을 격려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제시한 모델의 일부가 상당히 적용된 듯하다. 유소년 스포츠의 성공적 모델로부터 경영자들이 많은 것을 배우길 기대해 본다.

2022-07-03

목발, 휠체어 그리고 커피숍

이재혁 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지인이 취미활동 중 발을 다쳐 목발을 사용하고 있어 계단이 많이 있는 카페나 식당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쪽 발을 다쳤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매우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시민운동가로 장애인들의 이동권에 대한 고민을 한 필자도 상당히 당황스러웠다.업무협의를 위해 계단이 없고 주차할 곳이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으며 이러한 이동의 제약은 만남을 제한적으로 만들어 장기간 또는 일시 장애를 겪는 분들의 사회활동 제약을 가져와 사회적 손실도 동반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목발과 휠체어로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가 선진국으로 평가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계단 옆에 경사로가 없거나 도로의 높은 경계석은 제도적 보완과 사회 인식의 변화로 많이 개선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계가 분명해 보였다.휠체어를 이용해 기차를 탈려면 이동 리프트를 이용해야하는데 작동이 느리고 시설 보완이 필요해 보였던 경험과 기차 내에 의자가 없는 장애인 공간을 무심하게 지났던 기억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했다.계단과 경계석이 이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 이를 무심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많은 사회는 후진국형 사회일 것이다.유튜브에서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니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영상을 찾을 수 있었다.영상에서 전동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좁은 인도를 겨우 지나 저상버스를 타는 불편함을 보았고 가장 인상적인 점은 승하차를 다른 승객들이 도와주고 장애인에게 우선권을 주는 오스트리아 승객들과 도움을 주지 않고 장애인에게 우선권을 주지 않으며 운전기사도 신경써주지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많이 부끄럽게 느껴졌다.국가인권위원회의 2019년 ‘장애인 이동권 강화를 위한 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단순히 저상버스에서 승객들의 도움과 운전기사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시설보완과 사회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함을 확인할 수 있다.주요 내용 중 저상버스 운전기사에 대하여 사전교육, 저상버스 관리 및 운행 실태를 조사한 결과 보면 저상버스 운행 전 사전교육은 대부분 운전기사만 받았고 이마저도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어 교육의 실효성을 높여야 할 필요성이 확인되었다.놀라운 사실은 저상버스 승강설비에 관한 관리와 점검이 미흡한 실정이어서 개선이 시급하게 요구된다는 점이다.대부분 운전기사는 승강설비 작동법을 인지하고 있으나 경사판 미작동 시 수동 작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인지하는 비율이 낮게 나타나(63%) 비상시 대응능력이 부족할 수 있으며 운행 중 승강설비 고장으로 승강설비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있었다.심지어 승강설비 점검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확인되었다. 그리고 ‘정류장 보도와의 단차, 정류장 근처 불법주차’가 저상버스의 장애요인과 운전기사가 어려운 점으로 응답한 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이러한 점은 목발과 휠체어 이용 승객의 저상버스 이용이 불가능한 점도 있지만 지자체가 할 일을 하지 않은 점과 시민의식이 부족한 점이 고스란히 확인된 것이다.우리나라에서는 저상버스를 바닥과 인도사이의 높이 차이가 나지 않고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형태를 함께 의미하지만, 일본에서는 버스의 바닥 높이를 낮춘 버스를 저상버스, 버스 내 계단이 없는 버스를 논 스텝(non step bus) 버스로 부르며 구분하여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1960년대부터 저상버스 도입을 시작하였다.2000년대에는 ‘고령자, 장애인 등의 이동 등 원활화 촉진에 관한법률’로 고령자, 장애인의 자립된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 보장의 중요성이 증대되면서 대중교통의 시설이나 구조 및 설비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와 도로, 통로 기타 시설의 정비를 추진했다.일본에서는 장애인과 더불어 고령자에 대한 배려는 우리도 교훈으로 삼아야 할 점이다.UN총회에서(2006년 12월 13일) 채택된 장애인권리협약은 전문에서 “장애인이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 및 건강과 교육 그리고 정보와 통신에 대한 접근성(accessibility)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하여, 접근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협약의 일반원칙 중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목발과 휠체어를 이용하여 카페와 식당을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고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여 원하는 목적지로 이동을 하지 못한다면 삶의 질은 매우 떨어진다.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며 세계적인 흐름에도 부합되지 않는다.언론을 통해 휠체어 체험을 하는 정치인들에게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조사한 결과 내용을 3년이 지난 현재 얼마나 개선시켰냐는 질문을 하고 싶다.목발과 휠체어를 이용해 카페와 식당을 가기 편한 나라가 선진국이다.

2022-07-03

어느 영화 이야기

김규종 경북대 교수 누구에게나 나름의 습관이 있다. 타인과 구별되는 버릇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좋아하는 영화가 있으면 여러 번 본다. 지겹거나 귀찮은 노릇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이렇게 대꾸한다. ‘좋아하는 음식을 한 번만 먹고 마나요?! 혹은 좋아하는 사람을 한두 번 만나고 그만 만나시나요?!’ 열댓 번 본 영화도 있다. ‘동사서독’이나 ‘천공의 성 라퓨타’가 그렇다.이런 영화는 여러 번 보아도 질리지 않는 구석이 있다. 사람을 끄는 강렬한 매력이 부설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쿠지로의 여름’은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일본의 대표적인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가 1999년 연출한 ‘기쿠지로의 여름’은 우리나라에서 2002년에 개봉된다. 일본문화를 경계하여 빗장을 채운 전임 정권과 달리 김대중 정권이 개방에 앞장선 결과다.일본 만화영화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나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어둠의 경로를 거쳐서만 볼 수 있었다. 두세 번에 걸쳐서 녹화하고 그걸 다시 녹화한 필름으로 보았기에 화질은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만큼은 선명하게 다가오곤 했다. 그런 암흑기를 거쳐서 요즘에는 한류가 외려 일본 청년들을 사로잡고 있다. 정말로 격세지감을 아니 느낄 수 없는 대목이다.각설하고 ‘기쿠지로의 여름’을 보면서 여러 상념에 젖어 들었다. ‘소나티네’와 ‘하나비’, ‘자토이치’ 같은 영화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야쿠자나 검객 같은 폭력적인 인물을 다룬다. 그런데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그는 아주 다른 질적인 변용을 선보인다. 영화 중간에 폭력적인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보름달에 반딧불이 정도다. ‘기쿠지로의 여름’에 담긴 서정성이 마음 한가득 따사로이 다가오는 것이었다.9살짜리 소년 마사오와 52살 먹은 전직 야쿠자 사내가 왕복 600km의 여정을 경험한다. 로드무비 형식을 갖춘 ‘기쿠지로의 여름’은 어째서 그들이 장도(長途)에 올랐으며, 그런 노정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풀어나간다. 아버지를 잃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 마사오가 먼 데서 일한다는 엄마를 찾아가는 것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다 보면 아, 저런 일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여러 번 찾아온다.토요하시에 거주하는 엄마가 어떤 여자애의 엄마이자 어느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마사오.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닦는 마사오를 위로하는 기쿠지로. 엄마를 만난다는 기대와 기쁨에 들떠서 머나먼 길을 어렵게 찾아왔건만 눈앞의 엄마는 다른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니, 어린 마사오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 아닌가?! 그런 소년을 달래려고 온갖 기지를 발휘하는 기쿠지로를 보면서 ‘천사’를 떠올린다.아직도 일본 사회에는 저런 순박하고 따사로운 영혼을 가진 어른이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일본은 여전히 살만한 나라일 것이고. 한 편의 영화가 전해준 따뜻함이 오래 기억될 듯하다. 올여름은 ‘기쿠지로의 여름’과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2022-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