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기업경영과 사학

홍택정문명중·고등학교 이사장 최근 한 TV프로그램에서 일신프라스틱(주)의 3대 경영을 소개하는 내용이 방송됐다.이날 방송에는 아버지에서 아들과 손자까지 함께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아주 자랑스레 소개하는 내용을 남았다.또한 경영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신기술개발과 품질향상을 위한 아이디어 보완 등으로 3대의 협업을 부각하며, 그 장점을 PR했다.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문득 사립학교의 족벌경영 운운하는 사회적 비판이 어디서 연유하는지 의문이 들었다.학교경영도 경영의 기술이다. 더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일정자격을 가진 가족들이 경영하는 게 뭐가 잘못된 것인지, 합당한 반대 이유가 있어야 한다.전직 국회의장은 지역구까지 대물림을 시도하다 여론의 반대로 포기한 바 있다.더구나 무보수인 이사장과 이사들이다. 설립 時의 재산출연은 물론이려니와 개교는 100% 법인의 투자로 이루어진다.그리고 법인 직원도 아닌 교직원들의 4대 보험 사용자 부담분인 법정전입금과 특정시설 신축 시에 30%의 부담금까지 강요되고 있다.강당이나 체육관, 식당 등 학교시설의 사용자는 교사와 학생들이다.교육부와 시·도 교육감들은 사학의 마지막 보루인 인사권조차 빼앗아 가려고 획책하고 있다. 일부 사학의 채용비리가 이유다.그러나 잘하고 있는 사학조차 위탁채용을 강제하는 초법적인 규제를 시도하고 있다.이러한 채용비리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그 원인을 제거하는 연구에는 소홀하다.무보수와 부당한 법정전입금에 시달리며, 여론몰이에 의한 사회적 비난에까지 직면하고 있는 사학의 순기능적 역할은 간과되고 있다.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학교회계와 법인회계로 분리된 모순된 제도를 통합하여 법정전입금 문제와 이사장의 무보수를 해결할 대책에는 무관심하다.사학의 동의 없이 추진되는 고교무상 교육에는 반드시 민법 680조에 명시된 위탁계약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그리고 정당한 사학의 교육시설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을 받아야 한다. 이제 정치권과 교육부의 ‘사학 죽이기’ 식의 잦은 입법 발의와 규제는 지양되어야 한다.기업의 가족경영은 자랑거리가 되고, 사학의 가족경영은 족벌비리로 매도되는 어처구니 없는 풍토 역시 개선되어야 한다.

2022-04-18

찰 영(盈)에 돌아볼 권(眷) 길 영(永)에 권세 권(權) <Ⅲ>

명패를 닦은 뒤 안경 닦이 천을 서랍에 다시 넣으며 영권은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인호냐? 나다.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배경소리가 시끄러웠다.-예.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 노인 회관에 행사가 있어 나와 있습니다. 조금 시끄럽습니다.영권 대신 지역구 행사에 참석한 모양이었다.-그렇구나. 수고가 많다. 다른 게 아니고 너 최근에 필립 만난 적 있냐? 최만식 회장의 아들 말이다.인호가 대답을 했다.-아니요. 뭐, 특별히 만날 일이 없어서. 딱히 친할 이유도 없고. 아버지와 같이 만날 때 빼고는 따로 만난 적 없습니다. 나이도 저보다 열 살인가 정도 많을 겁니다. 아마.인호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영권은 이마를 찌푸렸다.-그래, 그래. 알겠다. 하여튼, 앞으로는 필립과 연락도 하고 그래라. 아무래도 나 보다는 젊은 너와 더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겠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집안이다. 알겠지?인호와의 통화가 끝난 뒤 영권은 비서관을 불렀다.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중간중간 경찰서에 연락해서 만식의 사건에 대해 확인하라 일렀다. 좀 더 자주 만났어야 해. 영권은 중얼거렸다. 영권과 만식은 일 년에 한 두 번씩 자식들을 데리고 골프를 치거나 여행을 가곤 했다. 자식들끼리 친해지라는 의미였지만, 자식들 사이에도 나이 차이가 좀 났다. 그나마 그것도 최근에는 뜸했다. 아이들 데리고 와 봤자 짐만 돼. 만식은 이렇게 말하며 혼자 왔었다. 둘이 성별이 달랐으면 결혼이라도 시켰을 텐데. 영권은 딸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인공 폐 이식 수술을 받겠다.만식이 필립에게 통보하던 날 그 자리에 안나가 있었다. 필립은 인공 폐 이식 수술을 반대했다.-어떻게 그런 문제를 상의가 아니라 통보를 하는 것입니까?필립의 목소리가 컸다.-그 연세에 마취와 수술을 견딜 수 있을지, 수술하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아직은 견딜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지금 있는 폐로도 충분히 숨 쉴 수 있으신 것 아닙니까? 암에 걸린 것도 아니고 왜 멀쩡한 장기를 인공 장기로 바꾸려 하시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얼마나…….필립이 말을 덧붙였을 때 만식은 필립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제 말씀은 다른 뜻이 아닙니다.필립이 설명을 하려 했지만 만식이 말을 끊었다.-나가라. 여기서. 지금. 당장.필립은 방을 나갔다. 만식은 손을 더듬어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방문 쪽으로 집어던졌다. 핸드폰이었다. 소파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 만식은 곁에 서 있던 안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소파의 팔걸이에 걸터앉은 안나의 배를 쓰다듬다 안나의 허리에 머리를 기댔다.-우리 아기가 많이 놀랐겠구나. 미안하구나.안나가 만식의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은 인공 장기들 덕분이었다. 그것들이 있어 만식은 안나를 만났고 안나를 안았다. 그것들이 없었더라면 살아있었을까? 젊은 안나를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신체적인 능력이 남아있었을까? 또한 그것들은 안나 뱃속 아기의 탄탄한 인생을 보장해 줄 것들이었다. 오십이 넘은 아들을 쫒아내고 아들의 머리 뒤로 핸드폰을 집어던질 수 있는 팔십 노인의 기세는 뱃속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나 스스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지속되어야 했다.-앞으로 사십 년은 더 살아야지. 우리 막내가 결혼할 때까지는 살아 있어야지. 인공 폐까지 달게 되면 가능할 게야.만식은 안나를 옆자리로 오게 했다. 오른손으로 안나의 머리 뒤 팔베개를 하고 왼손으로는 안나의 잠옷 상의의 단추를 풀며 안나의 귀에 속삭였다.안나가 가진 것 중 제일 좋은 것은 몸이었다. 균형 잡힌 몸매와 탄탄한 근육, 필요한 곳에 자리 잡은 적당한 양의 지방조직들. 아비와 어미가 안나에게 내려준 유일한 우성의 것들이었다. 안나는 좋은 몸을 보여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남학생들과 오빠의 친구들로부터 제법 많은 구애를 받기도 했고, 그들 중 일부와는 사랑 비슷한 것을 해보기도 했지만 안나는 그 중 누구와도 미래를 약속하지 않았다. 그들의 숫기 어린 고백과 치기로 가득한 맹세들은 안나가 보기에는 너무 싼 것들이었다.또래의 남자들이 안나의 미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안나가 벌어올 수 있는 약간의 돈과 몸을 원할 뿐이었다. 혼자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찌질한 인생 둘이 모인다고 더 나아지는 건 아니니까. 서로 원망이나 하겠지. 부둥켜안을수록 상처가 깊어지는 것, 난 싫어. 안나는 툭툭 던지듯 말하곤 했다./ 소설가 김강

2022-04-18

돈키호테를 위한 랩소디

돈키호테(Don Quixote)라고 하면, 우리는 바로 시대착오의 전형적인 인간을 떠올리곤 하지만,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1547~1616)가 1605년 처음 발표한 돈키호테의 1권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는 말하자면 소설의 원형이자 현대적인 소설의 문을 열어젖힌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아마 독자분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분도 계실지 모르리라. 아동문학전집이나 세계문학전집 사이에 끼워 있던 축약판의 돈키호테를 읽으셨던 분이거나, 비루먹은 말 로시난테를 몰아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기괴함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하지만, 안영옥 선생님이 완역하여 ‘열린책들’에서 출판된 2권 합쳐 천 사오백 페이지에 육박하는 소설 돈키호테를 찬찬히 들춰본다면, 아마도 풍차를 향해 돌격했던 돈키호테의 호쾌함 속에 숨겨진 의미를 얼마간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리라.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1547년 스페인의 마드리드 근방에 있는 역사도시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빚을 지고 재산을 압류당한 아버지때문에 도망다니고 감옥살이까지 하는 등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길가에 떨어진 찢어진 종이라도 주워 읽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다고 하는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독서를 통해 접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광만이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었을 것임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이때 그는 당시 가장 유행했던 로망스 장르인 기사로망스를 탐독하고 또 탐독했을 것이다. 어느 시대건 이야기만이 비참한 삶을 위로해주는 유일한 열쇠이거니와 하물며 번쩍이는 은색 갑옷을 입고 적들과 싸워나가는 기사의 이야기가 삶에 지쳐있는 그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러하듯이 말이다.사실,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라만차 지역에 살고 있는 이달고라는 인물 역시 당시의 기사소설, 즉 기사 로망스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가 쉰에 가까운 인물이었지만, 1년 중 틈이 날 때마다 기사소설을 읽었고, 자신이 읽고 싶은 기사소설을 구입하고자 물려받은 수많은 밭을 팔아버릴 정도였다.인간은 누구나 낯선 체계와 질서를 갖고 있는 세계에는 자연스럽게 끌리기 마련이라지만, 그의 호기심과 도취는 정도를 넘어선 것으로 본래의 삶까지도 내버리고 이야기 세계에 몰입해 있었다. 나아가 그는 단지 이야기 세계에 몰입해 있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그 이야기 세계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칼과 창과 투구를 손질하고, 피부병에 걸리고, 삐쩍 마른 말이나마 챙겨서 ‘로시난테’라고 명명하고,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 세계 속 기사들의 위대한 이름을 본떠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고 붙였다.이 위대한 시작이 바로 ‘돈키호테’라는 신화의 탄생에 해당한다. 그는 스스로 객줏집의 주인을 졸라 그로부터 기사서품을 받고 자신을 기다리는 모험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을, 말하자면 메타버스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를 둘러싼 세계는 귀족과 기사, 모험과 낭만이 넘치는 곳으로부터 시장과 학교에서 부르주아들이 득세하는 곳으로 넘어가 버렸던 것이다.돈키호테의 모든 행동들이 우스꽝스럽게만 여겨지는 것은 그 세계가 이미 단일한 유니버스가 아니라 쪼개진 세계, 혹은 이미 변화가 일어난 세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돈키호테’는 스스로를 제물로 하여, 기사로망스가 상징하는 한 시대의 가장자리의 봉합선 바깥쪽을 뒤집어 보여준 것이다. 어쩌면, 우리 세계에 우스꽝스러운 돈키호테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의미는 시대가 변화해가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홍익대 교수

2022-04-18

능동감시 vs 수동감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코로나19와 관련한 용어 가운데 능동감시와 수동감시의 차이는 뭘까. 우선 수동감시 대상자, 능동감시 대상자는 모두 자가격리에 해당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은 가능하나 수동감시 대상자는 스스로 임상증상을 체크하는 것이고, 능동감시 대상자는 전담 담당원이 배정돼 증상에 관해 유선체크를 하는 게 차이다.감시 강도는 자가격리>능동감시>수동감시 순이다. 여기서 자가격리는 환자가 자기 집에서 알아서 외출을 금하고 외부 접촉을 삼가는 경우를 가리킨다. 가족과도 접촉을 피하고 불가피한 경우 얼굴을 맞대지 않은 채 서로 마스크를 쓰고, 2m 이상 거리를 두는 것이 권유된다.능동감시는 국가에 의해 시설에 격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 보건소로부터 상태 등을 확인받는 것이다. 중국 우한에서 입국했으나 증상이 조사대상 유증상자에 맞지 않거나, 확진환자와 접촉한 사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수동감시는 능동감시와 자가격리보다 낮은 감시 수준이다.대상자가 코로나 확진자 밀접접촉시에 자가격리 대신 실시하는 것으로 코로나19 증세가 있으면 스스로 거주지 보건소로 연락해 관할 보건소가 제시한 권고 및 주의사항을 자율적으로 지키면서 코로나19 감염방지에 애쓰는 것을 말한다.일정기간 동안 본인 건강상태 직접 모니터링, 증상이 있는 경우 검사받기, 외출 자제 및 생활수칙 준수하기 정도다. 또 출근하거나 불가피하게 외출할 경우에는 KF94 마스크를 상시 착용하고, 감염위험도 높은 시설방문을 피해야 하며, 코로나 19의심증상이 생기면 반드시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 코로나19의 박멸이 어렵다면 코로나19와 동행하는 세상의 생활수칙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을 듯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4-18

검찰수사권 폐지논의에 대한 단상

권기욱대구지방검찰청 총무과 검찰주사 최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검찰수사권을 폐지하는 이른바 ‘검수완박’에 나서는 방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각종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돌이켜보면, 검찰에서도 과거 권위주의적인 모습에서 탈피하고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하면서 잘못된 수사관행을 폐지하고, 피의자와 피해자의 인권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시대적 변화에 따라 검찰에 대한 기대요구가 한층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해 결국 외부에 의해 검경 수사권조정이 강제적으로 이행됐고 이제 검찰수사권 폐지 논의에까지 이르게 됐다.검찰에서 수사 관련 업무를 20년 넘게 담당해 온 검찰 수사관의 입장에서 지난날 주어진 사건들에 대해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해 몰두에 온 지금까지의 수고가 수사권폐지로 모두 헛되고 부정되는 것 같아 그저 황망할 따름이다.하지만, 지난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검찰권 행사로 인해 작금의 상황이 초래됐음을 검찰에 속한 일원으로서 반성하고 자숙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반면, 검찰수사를 담당해 온 사람으로서 검찰수사권 폐지로 인한 검찰 수사에 대한 순기능마저 없어져 앞으로 형사사법기능 저하에 따른 폐해가 힘없는 일반 국민에게 전가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앞서게 된다.일반 서민, 경제범죄 관련 경찰 송치사건을 처리하는 검찰청 형사부에 주로 근무한 경험에 비춰보면, 최근 경찰에서도 실체적 진실발견에 부합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수사해 완성도 높은 수사기록이 송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경찰 내 일선 수사부서의 인력부족과 정해진 사건처리기한 등 녹록지 않은 현실 상황에서 복잡하거나 쟁점이 많은 사건에 대해서는 부실하거나 증거관계가 왜곡되는 등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건이 송치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일례로 수사한 경찰송치 사건 중 건설현장에서 함바식당을 운영하던 신용불량자 A씨가 노령의 피해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사기를 친 사건이 있었다.세상 물정에 어두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고, 피의자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등 명확한 증거가 없어 무혐의로 송치됐다.당시 피해자는 노령의 여성으로 평생 모은 전재산을 A씨에게 사기당한 후 실의와 절망감에 병석에 누워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고, A씨는 혐의가 없다며 기고만장한 상태였다.검찰에서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면서 추가조사를 진행한 결과, A씨의 혐의가 확인돼 A씨를 상대로 재조사를 진행하자 그때서야 범죄사실에 대해 자백했고 이후 법정에서 실형까지 선고된 적이 있었다.만약, 이 송치사건을 검찰에서 직접 수사할 수 없었다면 송치기록에 드러난 증거자료만 보고 사건을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A씨는 현재도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다니면서 어디에선가 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범죄 수사는 누가 잘하니까 거기 다 맡겨두자는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경찰이 잘 할 수도 있고 검찰이 잘 할 수도 있지만, 누구나 오류를 범할 수 있다.경찰이 일차적으로 수사한 사건을 검사가 다시 한번 검토해 수사한 후 죄가 있는 사람에게 그에 상응한 처벌이 가해지도록 하고, 억울한 사람은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검찰수사권 폐지와 관련된 논의는 국민의 관점에서 선량한 국민이 범죄로부터 보호받고 범죄자는 죄에 상응하는 법의 집행을 받는 방향으로 논의돼야 할 것이지 지금과 같이 졸속으로 진행돼서는 안된다.

2022-04-18

최순실, 조국, 정호영뿐인가

윤석열 정부가 선보인 인사에 감동이 없다. 윤석열 당선인은 “능력과 인품을 겸비해 국민을 잘 모실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능력주의’를 인사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일부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은 간단치 않다.윤 당선인은 “공동정부라는 것은 훌륭한 사람을 함께 찾아서 임무를 맡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김종필(DJP) 연합식의 내각 할애를 생각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관심을 보인 보건복지부 장관에도 정호영 후보자를 내정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40년 지기’에 대한 ‘의리 인사’다. ‘아빠 찬스’ 의혹도 제기됐다.정권 교체의 가장 큰 배경이 ‘공정’이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 내내 정권 교체 여론이 절반을 넘었던 것은 ‘공정’ 가치를 훼손한 ‘내로남불’ 탓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를 2년이 넘도록 끌면서 비난을 자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조국 장관을) 임명하지 않으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윤석열 당선인도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의혹만으로 교체하라는 건 사실 무리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정 후보자의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의혹을 검증할 책임은 임명권자에게 있다. 나중에 사실로 드러나면 결국 임명권자가 짐을 떠안아야 한다. 조국 전 장관의 의혹은 법원이 사실이라고 확정했다. 문 대통령이 개인적 ‘마음의 빚’에 얽매여 망설이다 ‘20년 집권론’은커녕 ‘10년 주기설’도 채우지 못했다.윤석열 정부는 민주당에 대한 반발로 만들어진 정부다. 문재인 정부가 ‘최순실 사건’의 충격으로 정권을 거저 주운 것과 비슷하다. 그럴수록 민심을 잘 살펴야 한다.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민심이다. 정호영 후보자에게 쏟아진 의혹은 조국 전 장관의 경우와 너무 닮았다는 게 부담이다.박근혜 정부를 뒤집는 결정적인 방아쇠는 최순실 씨 딸의 대학 입학 특혜 의혹이었다. 공정 문제를 건드려 젊은 층이 일어섰다. 전 국민이 국정 농단 의혹을 ‘내 문제’로 실감하게 됐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조국 전 장관 의혹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반성하지 않으면 동정심을 가진 사람조차 돌아선다.그 덕분에 정권을 잡은 윤석열 정부도 같은 길을 가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의혹이 제기되면 바로 공직 후보자를 교체했다. 그러했기에 후보자의 도덕성이 정권에 부담을 주지는 않았다. 정 후보자는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상당히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국민이 충분히 이해하느냐다.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면 억울해도 그만둬야 한다. 그게 정 후보자를 발탁해준 윤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다. 야당이나 언론의 문제 제기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로 검증하고, 책임을 물을 때 정권의 도덕성이 유지된다.사실 더 큰 문제는 제도다. 어떻게 내리 세 번의 정권에서 비슷한 의혹이 불거지나. 전임 정권이 민심을 잃는데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일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인의 첫 번째 인사를 위해 철저히 검증해도 막지 못한다. 정 후보자의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정도면 상류층의 고질적인 적폐로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일반 서민은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좁은 진학과 취업의 문 앞에 선 젊은이들이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하지도 않은 봉사활동을 했다고 증명하고, 쓰지도 않은 논문을 썼다고 이름을 올리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정 후보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하지 않는 아이들은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기 싫어서 포기하는 건가. ‘돈도 실력’이고, ‘아빠 찬스’ ‘엄마 찬스’도 실력이라고 인정하고, 좌절해야 하는가.입시제도는 흙수저가 계층 상승할 유일한 사다리다. 사교육이 판친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복잡한 제도들이 결국은 ‘찬스’를 위한 샛길로 이용된 꼴이다. 최순실, 조국, 정호영 씨의 의혹이 사실이건 아니건, ‘아빠 찬스’ ‘엄마 찬스’가 개입할 여지가 너무 많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겨우 남은 이 사다리마저 걷어차지 말아야 한다. 김진국 고문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2-04-17

능력있고 정직한 사람을 선택하자

안의종 전 청송군수 우리나라에서는 왕비를 선택할 때마다 전국에 왕비 간택령을 내려 우수한 반가의 규수를 왕비로 간택을 했다.이번에도 왕비 간택령이 내려지고 이에 따라 전국의 규수들이 모여들었다.대왕대비 마마는 전국에서 모여온 규수들에게 쌀을 1되씩 나누어 주면서 앞으로 한 달 동안 이 쌀로만 밥을 지어 먹고 한 달 후에 이 곳에 다시 모이라고 지시를 했다.이 명에 따라 한 달 후에 모인 규수들은 하나같이 비쩍 말라 있었으며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몰골을 하고 있었으나 한 규수만은 살이 통통하게 올라서 씩씩한 걸음을 걷고 있었다.이를 이상히 여긴 대왕대비께서 그 규수를 불러 그 이유를 물으니 그 규수의 대답인즉 슨 ‘대왕대비 마마께서 주신 쌀 1되를 가지고 떡을 만들어 시장에서 팔아 그 돈을 가지고 다시 쌀을 사서 떡을 만들어 파니 쌀 1되가 2되가 되고 2되가 4되가 되고 하여 삼시세끼 밥을 배불리 먹고도 돈이 남아 돈을 가져왔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이 답변을 들은 대왕대비 마마께서는 무릎을 치면서 “네가 과연 이 나라의 국모감이다”라고 하시면서 만조백관들이 보는 앞에서 이 규수를 왕비로 선택하는 결정을 내렸다.같은 방식으로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도 왕비를 간택하게 되었다. 대왕대비께서는 왕비가 되기 위하여 운집한 많은 규수들에게 해바라기꽃 씨앗을 한 알씩 나누어주면서 이 꽃 씨앗을 잘 길러서 3개월 후에 가져오는 자 중에서 꽃을 제일 잘 키운 규수를 왕비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이에 씨앗을 받은 모든 집안에서는 씨앗을 심고 3개월 동안 정성을 다해 해바라기를 길러서 3개월 후 해같이 아름다운 꽃을 들고 왔는데 유독 한 규수는 해바라기가 없는 빈 화분을 들고 있으며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이에 대왕대비 마마께서는 다른 화려한 꽃을 든 규수들은 다 물리치고 꽃이 없는 빈 화분을 든 이 규수를 왕비로 선택한다는 결정을 선포했다.이에 많은 대신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자 이 대왕대비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스코틀랜드는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왕비로는 정직한 사람이 요구되고 있다. 내가 3개월 전에 나누어준 해바라기 씨는 모두 삶은 것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싹이 날 수 없다. 따라서 해바라기를 들고 온 규수들은 양심을 속인 자들이기 때문에 왕비가 될 수 없으며 해바라기가 없는 빈 화분을 들고 온 이 규수를 왕비로 선택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우리는 지방화시대를 맞이하여 다가오는 6월1일에는 우리의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우리는 지도자로서 쌀 1되를 가지고 떡을 만들어 배불리 먹고도 돈을 남긴 처녀와 같이 융통성 있는 능력의 소유자를 원한다.청송은 농촌이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되의 쌀을 갖고 한 달을 살기 위하여 죽을 쑤어먹거나 미숫가루를 만들어 먹는 지도자보다는 작은 예산이지만 융통성을 발휘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를 가진 지도자를 원한다.모두들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퇴임 후에는 모두들 챙길 것은 다 챙기고 양심을 속이고 물러나는 정직하지 못한 지도자들을 많이 보아 왔다.우리는 이번에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누가 우리 지역의 지도자로서 적합한지 잘 살펴서 위의 두 왕비같이 능력 있고, 정직한 사람을 우리의 지도자로 뽑는 지방선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2-04-17

백만 원의 행복

둘째가 첫 월급을 탔다. 하고 싶은 게 많은지 저축은 몇 달 뒤부터 하겠단다. 설레하는 아이를 보며 수년 전 일이 떠올랐다.첫아이가 아르바이트 한 달 되는 날이라며 기대하는 눈치였다. 주꾸미 집에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을 했다. 처음 며칠은 발바닥이 아프다며 두꺼운 양말을 찾기도 하고, 손목이 저리다고도 했다. 어떤 날은 어린아이 손님이 식당 안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데려온 엄마들은 왜 야단을 안 치냐고 잔소리를 했다. 한 달에 두 번만 쉬니 매일 출근하는 일도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그러다 일주일이 지나니 적응을 하는지, 가게에서 같이 일하는 이모님들과 나눈 이야기도 집에 돌아오면 내게 조곤조곤 들려주었다. 역시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며 사장님은 부모님이 식사를 해도 돈을 받는 프로라며 “아버지는 절대로 장사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보탰다. 허투루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아르바이트는 돈만 버는 일이 아니었다. 일을 통해 여러 사람도 만나게 되니 인간관계를 배우게 했다. 가족이 함께 고깃집을 갔을 때였다. 반찬을 가져다주는 아주머니께 큰아이는 감사하다고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평소엔 부끄러워 눈길을 피하던 녀석이 말이다. 모자란 반찬을 더 달라고 종업원을 부르자 시킬 것 있으면 한꺼번에 부탁하란다.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힘들더라고 이왕이면 동선을 줄여주라며 배려하는 것이다.그렇게 아들에겐 지루한 한 달이 지나갔다. 아침부터 언제 월급을 주나 싶어 설렜다고 한다. 3시가 되자 돈을 세는 사장님을 보고 오늘은 인사도 더 깍듯하게 해야지 마음속으로 되뇌었단다. 봉투를 받아들고 나와 세어보니 사장님이 이만 원을 더 넣었다며 내게 전화를 했다. 두툼한 봉투에서 느껴지는 그립감이 장난이 아니더라며 걸어오는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단다. 세뱃돈과 함께 통장에 넣으니 잔액이 백만 원이 넘었다. 어찌나 기쁜지 카드 기계 앞에서 인증샷을 찍었다고 했다. 열심히 고생해서 번 돈이라 그런지 백만 원이 정말 큰돈 같다고 말이다.아들과 같은 나이에 나도 아르바이트 인생이었다. 고3 친구들이 학력고사를 치던 날에도 시험장이 아닌 곳에서 일했었다. 원서를 내긴 했다. 대학을 가지 말라던 엄마 몰래 대학교에 직접 가서 내고 왔었다. 전형료와 그곳까지 가는 차비는 언니가 보내주었다. 하지만 시험날이 되기 전부터 엄마는, 합격했는데 못 보내주면 더 마음이 아프니 시험 치러 가지 말라고 매일 나무랐다. 그러면서 나를 한 사무실에 취직시켰다. 시험날, 하루가 어찌나 길었던지 아는 누군가를 길에서 볼까 봐 사무실 심부름으로 은행에 갈 때도 나는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전기대학은 그렇게 놓쳐버렸다.교사가 되고 싶었던 나는 마지막 방법을 썼다. 집에서 가까운 전문대학 유아교육과에 원서를 썼고 엄마에게 한 번만이라도 시험을 보고 싶다고 졸랐다. 엄마는 도시락을 싸주며, 몇 달 공부를 손에서 놨다 치는 시험이니 떨어질 거라며 혀를 찼다. 하지만 엄마의 바람과 달리 나는 덜컥 합격해버렸다. 학교 다니는 내내 낮에 일하고, 밤에는 공부했다. 졸업 후 첫 직장에서 받은 월급이 십만 원을 고스란히 부모님께 드렸었다.그때의 나보다 부자인 큰아이에게 월급날이니 한 턱 쏘라고 했다. 만 원 이상은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도 통장 잔액을 생각하며 내내 즐거워한다. 내 돈 보태 탕수육을 얻어먹으며 지헌이가 백만 원의 행복을 오래 기억하길 바란다./김순희(수필가)

2022-04-17

BTS와 노병(老兵)

정상호경북취재부장(국장대우) 방탄소년단(BTS)의 병역면제 여부가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BTS는 월드 스타다. BTS가 공연 할 때는 전 세계 팬들이 열광한다. BTS를 통해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화되고 그로 인해 자연스레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이로 인해 BTS에 대한 병역면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거론됐다.국위선양을 한 만큼 병역면제를 해주자는 이야기를 일부 정치인들이 제기했지만 성사단계 까진 가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BTS 관계자가 해외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 냈다. “병역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멤버들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다”며 “국회에서 어느 방향이든 조속히 결론을 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멤버 중 최연장자인 92년생 한 명이 병역법 개정이 불발되면 내년에 입대할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다급해진 소속사가 이 문제를 들고 나선 것 같다.정치권은 즉각 화답하는 모양새다. 여야는 이달 임시국회에서 이들을 위한 병역특례법처리에 공감대를 이뤘다고 한다.찬성하는 의원은 “BTS가 군대에 가지 않고 계속 공연을 할 수 있게 놔두는 것이 국익에 더 부합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찬성하는 쪽 만큼 반대의견도 만만찮다. 특히 2030세대들은 “국위선양 기준이 뭐냐” “명백한 특혜고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발하는 분위기다.“아무리 월드스타라 해도 엄연히 대중가수인데, 돈은 돈대로 벌고 거기에 병역면제 혜택까지 주는 것은 공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참혹한 전쟁을 경험하고 남북으로 갈라져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병역문제는 가장 뜨거운 이슈다.최근 경북매일신문에서는 6·25전쟁 당시 영덕 ‘장사상륙작전’에 참전했던 생존 노병들을 찾아 그들의 잊혀진 전공을 재조명하고 있다.‘장사상륙작전’은 6·25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밑거름이 된 작전이다. 일종의 성동격서(聲東擊西)다. 700여 명의 학도병들이 이 작전에 동원됐다. 이들은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전장에 투입됐지만 상륙작전의 임무를 100% 완수해 냈다. 군번이 없기에 훈장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백척간두에 섰던 조국을 내 손으로 지켰다는 가슴속 자부심은 훈장보다 더 값질 것이다. 꿈 많은 앳된 10대 학생이었던 이들 중 지금 남아있는 생존자는 거의 90대다. 어느 참전용사는 100살에 한 살 모자라는 고령이다.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나이가 어려 입대를 피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자원입대했다는 점이다. 이영희 옹(91·전 옥천교육장)은 대구로 피난 온 아버지가 가문을 이어갈 금쪽같은 장남인 자신에게 입대를 권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회고했다. “다른 학생들이 모두 조국을 위해 싸우는데, 내 아들만 군대에 보내지 않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고. 수면 위로 떠오른 BTS 병역면제 찬반논란의 와중에 ‘장사상륙작전’ 노병들의 애국심이 새삼 오버랩 된다.

2022-04-14

무소유와 에세이

배문경수필가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마하트마 간디가 했던 말을 시작으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수필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은 법정스님이 향년 77세로 입적하신지 12년이 되었다. 넘치는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번들거리는 세상의 욕망에 맑고 향기로운 스님의 정신을 느껴보고 싶다.밝은 성격의 단짝 친구가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 어두운 시절, 사회의 등불로 혜성처럼 나타난 법정 스님이었다. 그의 ‘무소유’와 ‘서 있는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발간된 에세이집은 사회적인 갈등과 반목에서 벗어나는 시원한 사이다 느낌이었다. 많은 매스컴과 입소문은 큰 화제가 되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새 책이 나올 때면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는 친구에게 법정 스님은 신적인 존재였다. 절친의 손에 들려있던 ‘무소유’를 나도 받아 읽었다. 나는 책을 읽고 친구만큼 감동을 받지는 못했지만, 친구는 좀체 마음을 다잡지 못하더니 2학년 여름방학에 승려가 되겠다며 승가대학엘 들어갔다.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고야 말 것 같은 느낌에 친구에게 필요한 것까지 준비해 주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절에 들어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집으로 되돌아왔다. 아마도 간호사가 되어 다시 오라는 승가대학의 요구에 실망하여 집으로 되돌아온 듯 했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서야 비구니가 되기 위해 운문사 승가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다.친구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달려가 상을 치른 후 친구 집 서재에서 ‘무소유’를 다시 읽게 되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정말 친절하고 특별히 나를 잘 챙겨주신 분이었다. 책을 읽으며 삶의 집착과 소유하는 마음을 덜어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세월은 급류처럼 흘러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바쁘게 살았다.법정 스님의 글에서는 맑은 바람과 은은한 난향이 느껴졌다. 난을 애지중지하다 결국 집착에 끌려 다닌다는 생각에 타인에게 주는 순간 이미 스님의 그 마음은 난 향기로 가득해졌을 것이다. 집착에서 벗어난 것이다. 세속에 사는 나에게도 욕망에서 벗어나길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넌지시 공감하도록 설득하는 글이었다. 매력적이었다.문장은 군더더기가 없다.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놓여있는 문장과 문장이 돋보였다. 깊이 사유한 글이란 이런 것이란 느낌도 받았다. 뒷 문장이 앞 문장을 설명해주고 깔끔하니 담백하고 모든 글이 더 이상 줄일 수 없도록 적절했다. 오랜만에 다시 펼친 법정 스님의 글은 세월 탓인지 문장이 옛 글의 느낌이다.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아직 그대로 나의 가슴에 먹먹한 메시지를 던져준다.또 승려라는 신분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더욱 정확하게 자신을 수련할 수 있다는 점은 글에서도 읽혔다. 혼자 기거하는 불일암에 한여름 더위에 낮잠이라도 잘 수 있으련만 스님은 계율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나무를 뾰족하게 깎기도 했다. 남이 아니라 나를 흐트러지지 않게 지키기 위한 노력은 놀라웠다. 그리고 스님은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했다. 세속과 절집이 어떻게 균형을 잡고 스님과 신도들이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는지 그 길을 알고 계시는 듯했다. 33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간 초대형 베스트셀러인 ‘무소유’가 세상에 나오자 김수환 추기경마저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 할 만큼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 후 친구는 법진이란 이름으로 운문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승려의 길을 걷게 되었고 나는 동국대학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각자가 맡은 일을 하면서도 법정 스님이란 화두를 안고 출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고심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수학 방정식처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녀를 승려의 길로 제시한 사람이 법정 스님이라면, 수필이란 글이 내게로 와 닿아 큰 숙제처럼 날마다 끙끙거리는 것 또한 법정 스님의 책 인연 때문이다.돌이켜보면 한 사람의 인생에 씨알 하나 던져 놓는 일,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법정 스님이 아니라 다른 누구였다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주제를 생각하며 만드는 연(聯)과 연(聯) 사이에서 넘실대는 푸른 보리처럼, 유난히 빛나는 벚꽃 잎처럼 세상에 청량한 바람 한 점 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2022-04-13

잠수정과 해저도시

요즘 ‘젠더 갈라치기’ 이슈가 뜨겁다. 남녀 간 입장차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화두라고 한다. 육아맘의 입장도 비슷하다. ‘여자’인 엄마 시각에서 아들은 다른 행성에서 온 생물체에 가깝다. 내 뱃속에서 나온 아들은 맞는데, 기질과 성향, 관심사 어느 하나 비슷한 데가 없다. 뼈가 부러져 병원 응급실을 찾거나, 매일 아침 다리 저는 걸 보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줄넘기 수백 번을 어찌 매일같이 할 수 있는지 이해 불가다. 아들이 이토록 이해가 안 되니 어쩌면 지금의 남녀 갈등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머릿속 끊임없는 상상이 일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그간 ‘여자’로 살아왔던 엄마의 인생 경험치를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우선은 받아들이자. 으레 어른들이 하는 ‘아들은 원래 다 저래’에 담긴 성별 차가 아니라, 아이가 가진 타고난 기질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기로 했다. 놀이터 그네 공중돌기(그네에 서서 두 줄을 잡고 공중 제비돌기)까지는 허용해주었다. 대신 극한의 묘기를 선보이는 ‘유튜브 시청’은 막았다. 국가 공식 통계가 말해주듯이 영유아기와 아동기를 포함한 생애주기 동안 남아의 안전사고 발생률은 여아에 비해 훨씬 높다. 무조건 “안 돼”를 외치는 건 지양하고 싶지만 아이가 다치는 빈도만은 정말 줄이고 싶었다.초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아들의 상상력은 좀 더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총칼과 전쟁놀이에 심취, 각종 무기의 성능과 미사일의 파괴력을 읊기 시작했다. 훗날 기억에 남는 작품집을 만들자며 시작한 스케치북엔 무시무시한 포탄과 미사일, 핵추진발사체 등이 채워졌다. 대공포와 발사체 중심이던 그림이 최근엔 핵잠수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00년 후 우리의 생활모습’을 그리는 사생대회를 준비하던 중 잠수함의 성능과 역할을 확인한 후 부터다.아이가 매료된 건 해저 공간에서 실제 상주가 가능한 사례가 ‘핵잠수함’이란 부분이었다.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자력 에너지원으로 오랫동안 심해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실제로도 해저도시를 구현할 수 있는 실마리는 잠수함 기술에 담겨있다고 한다. 세계 유일의 해저과학기지인 아쿠아리어스(Aquarius)를 운영 중인 미국이 핵잠수함 최강국이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잠수함에 이끌렸던 건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수리를 위해 잠시 올라온 잠수정을 타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수직으로 낙하하듯 들어가는 입구부터 좁은 내부와 천장 위 각종 설비들이 심상치 않았다. 바다의 엄청난 수압을 견디며 장병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공학 기술의 정수를 잠수함 장비를 통해 확인하는 순간이었다.기술력의 결정체인 ‘잠수함’ 확장 버전이 해저기지 또는 해저도시라고 한다. 아들과 함께 사생대회를 준비하면서 100년 후 해저도시로 나들이 가는 일상을 상상해봤다. 사실 일본과 중국 등 해외 여러 나라들이 몇 해 전부터 해저도시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걸 보고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실현 단계는 아니지만 계획을 보는 것만으로도 원대하고 뭔가 설렜다. 그러던 중 국내에서도 해저도시를 건설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주체는 울산시. 울산시는 지난 달 해양수산부의 ‘해저공간 창출활용 기술개발(RD)’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해저도시 건설을 확정지었다. 지난해부터 ‘미래 해저공간 건설 타당성 검토 연구’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해저도시 건설에 착수한 결실이라고 한다.울산시가 그리는 해저도시는 1단계와 2단계로 나뉜다. 먼저 수심 30~50m에 소규모(3~5명) 인원이 28일 간 체류하는 연구·관측 시설을 건설한다. 그 후 안정화 단계를 거쳐 수심 200m, 최대 30명의 사람들이 한 달 가량 머물 수 있는 기지가 구축된다. 해상풍력으로 얻은 에너지로 수소를 생성, 해저 저장시설에 보관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탄소배출 제로를 향한 그린에너지의 완결체 버전이다. 정현미작가 해저도시 건설에는 수많은 최첨단 공학기술들이 총동원된다. ‘극한공학’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만큼 건설 후 활용 방안도 다양하다. 심해환경 연구시설과 해저 데이터센터, 수중 다이버훈련시설 및 수중 쉼터 등이 먼저 거론된다. 데이터센터의 냉각 에너지를 줄이는 방안이 해저 데이터센터 건설이라고 한다. 또한 해저는 수압 외 모든 환경이 우주와 비슷해 우주인 훈련기지와 우주장비 실증기지로도 활용될 수 있다. 잠수함 기술개발이나 수중감시체계 구축 등 국가 안보시설 활용은 이미 유럽 여러 나라에서 운용 중이다.100년 후 우리의 생활 모습은 어떤 형태로든 달라질 것이다. 울산의 해저도시 건설이 성공하고 극한공학이 더욱 진일보한다면 잠수함이 여객선을 대체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상상과 공학의 만남이 잦아지고, 세상 그 어디도 없던 공간이 만들어지면 우리의 인식 체계도 달라지지 않을까. 그 결과 남녀 간 이해도가 높아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엄마의 아들에 대한 포용력은 넓어지리라 본다. 다치고 부서지고 깨지며 터득하는 내 아이의 상상력이 미래 세상의 작은 변화에 일조하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아이의 무사 하교를 기대해본다.

2022-04-13

생각보다 이 세계는 나쁘지 않아

그런 상상을 해본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내게 한 마디를 전할 수 있다면? 로또 당첨 번호를 외치는 것도 괜찮고 부동산 시장에 관해 귀띔하는 것도 좋겠다. 그러다 고개를 갸우뚱. 그게 정말 최선일까.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내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막막한 시간 속에서 힘이 될 수 있는 말. 무수한 조언들 사이에서 시간을 정면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하는 말. 그렇다면 역시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겠다.“생각보다 이 세계는 나쁘지 않아.”돌아보면 그랬다. 나는 현재에 안주하는 법이 없었고 보다 더 잘 살아가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했다. 언젠간 져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둔 채로 미래에 대한 기대는 자꾸자꾸 부풀어만 갔다. 십대에는 성인이 된 내 모습을 기대하며 수능특강을 풀었고 대학에 입학한 뒤엔 서른이 되면 경제적 자유를 누릴 것이라고 상상하며 캠퍼스를 거닐었다.서른이 되면 세상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의 힘든 일은 언젠가의 추억거리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열정이 넘치지만 불안은 가득한 이십대를 지나면서 미래에 대한 갈망을 더욱 커져만 갔다. 무엇이 되어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현실을 외면하기도 했었다. 여긴 완결된 페이지가 아니야. 더 멋진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렇게 믿으면서 삶의 어떤 부분을 미래의 나에게 미루었다. “내 꿈은 서른이 되는 것”이라며 떠들고 다니기도 했는데 친구들은 내게 너무 쉬운 꿈을 가졌다며 놀려댔었다. 그때의 내게 서른이란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의 상징에 가까웠다. 내게도 그날이 찾아온다는 건 일말의 위안이었다.물론 미래를 상상하는 건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선언했을 때, 몇몇 선배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왜 글을 쓰려고 해? 이거 쉬운 일 아니야.”나는 그런 이야기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고 나를 좌절시키려는 그들의 태도가 원망스러웠다. 소설가로서의 삶이 대부분이 평균적이라고 생각하는 삶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므로 그들의 이야기가 어쩐지 섬뜩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건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이었다.서른이 된 지금, 선배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제 나는 돈을 벌기 시작했고 진짜 어른의 세계에 들어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얻어낼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서른이 되면서 느끼는 이 흐릿한 패배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세상의 많은 부분이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내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누군가에겐 하찮은 일 중 하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자꾸자꾸 깨닫는 중이다.과거의 나를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거의 나와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후배들에게 그런 말들을 늘여놓는 것은 아닐까. ‘나 때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조언에는 그 시간을 지나온 자의 쓰디쓴 경험이 담겨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그래서일까. 이따금 소설을 쓰겠다는 후배들을 만나면 언젠가 선배가 지었던 그 표정을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된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 텐데, 하는 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러다가 고개를 젓는다. 나는 이 선택을 후회하는가? 그렇지 않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생각보다 이 세계는 나쁘지 않아. 그런 이야기는 결국 그 시간을 지나온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곳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모험의 세상도, 사랑과 낭만이 가득한 곳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명예 혹은 경제적인 부의 동의어가 아님을 알고 있다. 나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지난한 시간을 기꺼이 견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제 다시 나는 다가올 미래를 기다린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게 무슨 말을 건넬까? 현재의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역이다.가끔은 나 자신이 민들레 홀씨 같다는 기분이 든다. 목적지에 정확하게 안착하지 못하고 바람이 부는 대로 아무렇게나 부유하는 느낌이다. 무력하게 흘러갈지언정 끝끝내 어딘가에 내려앉겠지. 그리하여 꽃을 피우겠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나를 만든 과거의 나 자신이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할 수만 있다면 캄캄한 내일을 향해 고군분투하던 나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2022-04-12

보호자의 두 가지 책임

오은영과 강형욱의 공통점은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잘못된 태도를 취하는 보호자를 향해서는 확실하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이러한 행동이 아이나 반려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준다. 그와 더불어 보호자가 대상에 대해 어떤 자세와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은지 명확하게 선을 그어준다.두 사람의 이와 같은 태도는 보호자에게 한 가지 사실을 일깨운다. 무조건적인 애정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나 반려동물의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해주고, 문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무책임한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보호자는 대상을 어떤 위험이나 문제 상황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보호자는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줄 책임이 있다.아주 당연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자주 이와 같은 보호자의 두 가지 책임을 헷갈려하거나 잊어버리곤 한다. 예컨대,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할 때에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나 반려동물을 지나치게 통제하기도 하고, 반대로 통제하고 훈육해야 할 때에 ‘그럴 수 있지’라고 넘겨버리거나 무조건적으로 옹호해주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비일관적인 보호자의 태도다. 동일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떨 때에는 대상을 나무라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대상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기만 한다면, 이와 같은 보호자의 태도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조금은 우스운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오은영과 강형욱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보호자의 가장 큰 책임이란 일관성이 아닐까 싶다. 예컨대, 통제하고 계도해야 하는 상황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상황을 구분하는 것 말이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기르는 것이 어려운 것은, 자신의 감정적인 혹은 공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일관성을 유지해야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피곤하더라도, 내가 힘들더라도, 내가 슬프고 괴롭더라도 ‘나’는 보호자로서 그와 같은 일관성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조금은 잘못된 접근일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지혜를 나는 다른 관계들에 적용해 보고픈 생각이 든다. 단지 부모와 아이의 관계나 반려 동물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일상적인 관계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예를 들면 연애라거나, 직장 동료라거나, 혹은 이웃과의 관계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한 관계들이 결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한 방법을 무조건적으로 적용하기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나라고 해도, 수평적인 관계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통제하려 하거나 일방적으로 훈육하려 한다고 느낀다면 그가 나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다고 느낄 테니 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수평적인 관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어떤 지혜가 있다면, 그건 역시나 ‘일관성’이 아닐까 싶다. 내가 다소 감정적인 상황이더라도, 혹은 피곤한 상황이더라도 상대방의 태도에 대해서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사람이 짊어져야만 하는 책임감이 아닐까? 이렇게 쓰고 보니, 관계라는 건 참 어렵고도 힘든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이 든다.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타자의 행동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어려운 까닭은 또 있다. 그건, 우리 또한 타자에 대한 ‘나’의 태도의 옳고 그름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은영과 강형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건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아주 확실한 정답을 제시해주곤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솔루션을 제시하면서 자주 강조하는 사항이 있다. 그건, 어떤 방법이나 방책도 사랑과 애정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아이를 키우는 것,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은 완벽한 존재를 창조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을 지켜주기 위한 행동이다. 때문에 솔루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에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대상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사실 ‘정답’이 아니라,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에 필요한 마음가짐과 내면의 힘의 중요성이 아닐까 싶다. 어떤 관계도 한 번에 정답에 이를 수는 없다. 모든 관계는 오답들을 거치며 정답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 깨달음처럼 들려와 마음이 아프다.

2022-04-12

대통령의 안동 방문

우정구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0월 대통령 당선 후 처음 맞는 추석연휴를 틈타 안동을 깜작 방문했다. 하회마을을 찾은 그는 서애 유성룡의 유물이 전시 보관된 영모각과 충효당, 유성룡의 형인 겸암 유운룡의 대종택인 양진당 등을 둘러봤다.현직 대통령으로서는 두 번째 이 곳 방문이다. 문 대통령보다 앞서 2007년 2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곳을 찾아 “역사와 품격에 감동을 받았다”며 방명록에 기록을 남겼다. 문 대통령도 “징비 정신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새기고 만들어가야 할 정신”이라고 기록을 했다. 징비(懲毖)는 내가 지닌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서애 유성룡이 쓴 ‘징비록’의 정신을 우리 시대에도 계승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19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도산서원 성역화 사업 준공식에 참석해 기념식수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는 안동댐 호명비와 하회마을 영모각 등에 남아있다.유교의 고장 안동은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수도라 부른다. 도산서원을 비롯 유교문화와 관련한 각종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온다. 아직도 양반 정신이 존중을 받는 세태가 남아 있고 역사적으로 애국지사가 가장 많이 배출된 고장이기도 하다.가장 한국적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라는 평가 속에 1999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도 이 곳을 찾아 한국의 정취를 감상했다. 뒷날 앤드루 왕자가 다시 안동을 찾기도 했고, 미국의 부시 대통령 부자도 안동을 방문했다. 안동은 유별나게 귀빈의 방문이 잦았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대구·경북 첫 방문지로 안동을 찾아 당선 인사를 했다. 특히 이 곳 유림 어르신과의 인사를 빼놓지 않아 눈길을 모았다. 안동의 전통문화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