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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근혜 사저정치, 대구를 과거로 돌린다

심충택 논설위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달성 사저정치’가 대구를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대구의 시간이 다시 박근혜 탄핵 당시의 과거로 돌아가는 음울한 분위기다. 박 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느닷없이 대구시장에 출마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박 전 대통령은 지난 8일, 동영상을 통해 유 변호사 지지 발언을 하면서 이번 지방선거에 발을 담갔다. 유 변호사가 공개한 영상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제가 유영하 예비후보의 후원회장을 맡게 된 것은 그의 부탁도 있었지만 이심전심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 변호사가)저의 눈과 귀를 가리고 저와의 만남을 차단한다는 터무니없는 모함을 받고 질시를 받았음에도 단 한마디 변명도 없이 그 비난을 감내했다”며 유 변호사 입장을 적극 대변했다.사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수감생활을 했던 지난 5년간 생업을 뒤로한 채 그를 모시는데 전력을 쏟아왔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정은 그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평가를 받을 만 하다. 그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격려하는 것도 인지상정으로 여겨지는 측면이 있다.대구에서는 정치신인과 다름없는 유 변호사가 출마를 선언한지 보름도 채 안돼 다크호스로 부상한 것은 ‘박심(朴心)’의 영향력이 아직도 대단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최근 대구경북기자협회가 실시한 대구시장 지지율 조사에서는 유 변호사가 2위를 차지했으나 선관위가 조사방법에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며 공표금지 처분을 내렸지만, 지난 9일 내외경제TV가 비전코리아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홍준표 의원(30.2%), 김재원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25.4%)에 이어 유 변호사가 3위(14.6%)를 차지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유 변호사가 대선 경선에 출마했던 홍 의원이나 국회의원 3선을 지낸 김재원 전 최고위원을 상대로 선두권 판세를 유지할 경우, 박 전 대통령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구지역 지방자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타 지역민들도 과거에 갇힌 대구시민들의 정치행위를 도마위에 올릴 것이다. 이것은 대구·경북이 탄생시킨 윤석열 정권의 앞날에도 유익하지 않다.대구는 최근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소멸위기 구(區)가 나올 정도로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1992년 이후 계속 전국 꼴찌다. 이 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대구시민들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차기 대구시장의 책임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것이다.대구시장 선거는 국민의힘 공천을 받는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높다. 차기 대구시장은 반드시 위기의 대구를 구할 수 있는 역량있는 후보가 공천돼야 한다. ‘친박’이라는 용어가 또다시 선거판을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지금까지 전직 대통령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역사에 맡긴 채 한 명의 시민으로 돌아갔다. 박 전 대통령도 정치를 멀리하고, 존경받는 국가원로로 평화스럽게 지냈으면 좋겠다.

2022-04-12

씁쓸한 친절

조현태수필가 온 산에 들에 봄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만남을 자제하다가 이 봄을 즐기자며 지인 몇이 소풍을 제안했다. 필자 또한 싫지 않아 대뜸 동의하고 시간 맞춰 집합장소에 갔다. 소풍을 제안한 사람이 장소를 소개했다. 한적한 산 속에 아담한 집을 지어놓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어울리는 곳이란다. 다른 한 친구는 그의 닭장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장닭을 잡아 왔다. 일행 중 한 여인은 음식 조리솜씨가 매우 뛰어나서 각종 한약재와 함께 닭백숙을 끓였다. 이런 사람들에 덩달아 봄바람 난 필자는 각종 술과 음료수에 약간의 과일을 사들고 갔다.작은 별장 같은 마당에 장작불로 끓이기 위한 아궁이와 솥도 준비되어 있었으니 도착하자마자 바로 불을 피웠다. 아궁이 옆에는 원탁과 의자도 있어서 각자 취향대로 마시도록 막걸리와 소주, 여인이 마실 백세주까지 내놓았다. 거기다가 잠깐 만에 산에서 두릅순과 산나물도 조금 뜯어 왔다. 그 기막힌 분위기와 기분으로는 멀뚱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마련해 간 반찬과 산나물을 안주로 술잔이 오락가락했다. 저절로 휘파람이 나올 만큼 봄소풍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드디어 잘 익은 닭고기를 뜯어가며 맛과 흥취에 빠졌다. 제법 농담도 섞어 웃어가며 서로 칭찬했다. 어느 순간 한방 닭백숙 삶는 방법도 전문가 수준이라며 극찬하던 친구가 고기를 조금 뜯어 여인 입으로 갖다 주었고, 여인은 남이 먹여주니 더 맛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 챙겨주는 시범’이라며 두어 차례 더 고기를 건넸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 여인의 남편이 못마땅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남의 아내에게 그따위 애정행각을 하느냐고 투덜거릴 수는 없었으리라. 남편 분이 꾹 눌러 참고 있는데 막판에 솥에 남은 닭죽이 눋겠다며 친구가 물을 더 부었다. 그 순간, 닭죽 맛 떨어지게 물 부었다고 화를 벌컥 냈다. 죽이 눌어붙을 정도여서 물 조금 부어도 괜찮은데 무슨 화까지 내느냐고 여인이 설명했다. 대뜸 남편 분의 입에서‘당신은 지금 누굴 두둔하고 나서느냐?’까지 말이 나오고 말았다. 전체 분위기가 머쓱해졌다. 단순히 술 취한 탓은 아닌 듯 했다.친구 입장에서는 음식솜씨 좋은 여인 잘 챙겨주려는 친절을 장난삼아 했고, 아까운 음식 남김없이 먹자는 행동이었다. 남편 분 입장은 고기 쌈 싸 주는 자나 날름 받아먹고 맛나다고 하는 자나 똑같다 생각했겠지. 여인 입장에서는 남편 몰래 바람피운 것도 아닌데 아는 이웃끼리 뭘 그리 까탈스러울까 싶었을 터이다. 필자 입장에서 보면 솥에 물 부은 것에서 화낸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고 다른 남자가 자기 아내에게 고기쌈 챙겨주므로 기분이 나빴다고 보았다.사회 곳곳에서 이런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해 본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만으로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행위 때문에 벌어지는 난처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난처할 정도를 넘어서 치고받고 싸우거나 심하면 전쟁까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남은 결과는 쌍방피해밖에 없지 않은가.

2022-04-12

재현과 추상의 미술사적 문제

“우리들이 예술가들에게 정말 고마워해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 너머 세상에 존재하는 예술가 수만큼 많은 세계를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이다. 그렇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예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하게 해 준다. 미술가들은 무엇을 창작(創作)하는가? ‘창조(創造)’라는 말을 일부러 피했다. 창조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것이므로 인간의 능력이 아니다. 인간은 창작할 뿐이고, 창작은 있는 것, 다시 말해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롭게 보는 행위이다. 바우하우스 교수였던 미술가 파울 클레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미술은 보이는 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클레의 말 역시 프루스트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오랫동안 미술은 보이는 것을 모방해 왔다. 아니, ‘미술이 모방에서 벗어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적확하다. 미술가들이 사물이나 대상을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자각을 한 것은 대략 한 세기 반 남짓, 모방으로부터의 해방이 이룬 미술사적 성취가 ‘추상’이다. 회화든 조각이든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이 사라진 미술작품을 추상이라 한다. 다른 말로 비구상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비대상’으로 칭하는 것이 가장 명료하다.줄곧 보고 있는 대상의 외형을 작품에 옮기던 미술가들이 모방과 재현을 포기하고 난 후, 더욱이 기계적으로 사물의 이미지를 완벽에 가깝게 재현하는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위기에 빠진 미술가들은 스스로에게 어떤 과제를 새롭게 부여했을까? 모방하는 미술가의 눈은 외부를 향한다. 그렇다면 모방하지 않는 미술가의 눈은 무엇을 향할까?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의 다른 모습을, 대상의 이면을 보게 된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미술사의 크나 큰 변혁이기 때문에 현대미술과 이전의 미술을 구분 짓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대상의 모방과 재현에서 벗어난 미술가들은 현상을 그렸다. 인상주의자들은 빛의 변화가 만들어 내는 시각현상을, 야수파 미술가들은 대상으로부터 분리된 색채의 고유한 미적현상을, 표현주의자들은 외부 세계에 대한 인간 내면의 심리현상을 화면에 담았다. 추상미술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는 음악의 작동 원리를 미술에 적용했다. 각각의 소리는 저마다의 음색을 지니고 있다. 음과 음이 이어져 선율이 만들어지고, 하나의 음이 다른 음과 부딪히면 화음이나 불협화음이 생겨난다. 속도와 리듬에 따라 음이 청자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심상이 달라진다. 칸딘스키는 색을 음으로 보았다. 색의 배열에 따라 색의 화음이 달라지고, 형태의 배열에 따라 색의 속도와 리듬이 달라진다. 음악이 청각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에 작용하는 것처럼 칸딘스키의 음악적 추상은 시각이 아니라 정신에 작용한다.칸딘스키와 마찬가지로 신지학에 심취해 있었던 몬드리안은 수직이나 수평 같은 단순한 형태와 무채색이나 삼원색 같은 기본색을 사용해 우주의 근원과 진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절대주의 미술운동을 이끌었던 러시아 미술가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보다 파격적인 추상을 끌어냈다. 흰색 바탕에 검은 사각형 하나가 그려진 1915년 작 ‘검은 사각형’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를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그림으로 검은색은 모든 색의 차이를 지워버리고 사각형은 모든 형태의 차이를 무효화 시켜버린다. 1919년 발표한 작품 ‘흰 바탕 위의 흰 정사각형’은 색을 완전히 배제시킨 가장 극단적인 추상으로 여겨진다.모방과 재현을 멈춘 미술가들은 창작의 자율성을 성취했다. 동시에 미술개념의 외연이 엄청나게 넓어졌다. 미술이 대상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을 멈추었을 때 비로소 미술은 미술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 미술가들은 가장 큰 난제를 맞닥뜨렸고 이후 한 동안 현대미술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이 문제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무엇이 제거된 대상을 대신할 것인가?’/미술사학자

2022-04-11

찰 영(盈)에 돌아볼 권(眷) 길 영(永)에 권세 권(權) <Ⅱ>

사무실로 들어가는 박 팀장의 뒤를 쫓아가며 허 형사가 말했다.-아들이 뭐?박 팀장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직계 유가족으로 아들이 하나 있는데요. 위로 형과 어머니가 다 사고로 죽었답니다. 그런데 두 번 다 사고 현장에 그 아들이 있었습니다. 유일한 목격자이기도 하고. 형이 죽었을 때는 같이 차를 타고 있다가 혼자 살았고요.-그래? 이번에 외국 출장 나갔다는 그 아들?-네.-그러면 용의자는 아니네.-그게 아니고, 인생이 참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형이 죽는 현장에 있었지요, 잠깐 다른 일 하는 사이에 어머니는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고, 이번에는 외국에 가 있는 동안에 아버지가 살해를 당했으니. 기구한 인생에 기구한 집안이지요.영권은 경찰서장과 통화를 끝낸 후 전화를 내려놓았다. 무조건 잡으라고. 그것도 빨리. 그게 당신이 할 일이잖아. 큰 소리를 내어서인지 목이 간지러웠다. 가래가 목 안쪽에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으흐헉크. 억지로 한 기침에 가래가 튀어나와 명패에 붙었다. 노랬다. 허, 좋으면 나도 하려 했는데 말이야. 그는 만식이 이식받은 인공 폐의 성능과 만식의 경과를 본 후 인공 폐 이식을 받으려 했었다. 그의 심장은 이미 인공 심장이었다. 협심증 진단을 받고 관상동맥우회로수술과 나노 로봇 시술, 스텐트 시술 사이에서 고민하던 영권에게 만식이 인공 심장 이식을 권했다. 그는 만식의 조언을 따랐고 만족했다.영권은 티슈를 뽑아 가래를 훔쳤고 안경 닦이 천을 꺼내 명패를 닦았다. 은근한 초록의 옥에 금으로 새겨진 이름. 국. 회. 의. 원. 김. 영. 권. 만식이 선물해준 명패였다. 몇 대 국회의원인지 숫자는 쓰여 있지 않았다. 계속할 건데 번거롭게 숫자를 왜 쓰나? 할 때마다 새로 만들려면 아까워. 만식은 영권과 눈을 맞추며 영권의 손에 명패를 쥐어주었다. 삼십 년 전의 일이었다. 영권은 이후로 삼십 년간 명패를 바꾸지 않았다. 값이 만만치 않은 고급의 명패라 새것으로 바꿀 필요가 없기도 했고, 삼십 년째 같은 명패를 사용하는 검소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만식에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정치인으로서 영권을 믿고 후원해준 만식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당신이 만든 정치인이니 끝까지 책임지라는 뜻이기도 했다.영권의 원래 이름은 영달이었다. 국민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정치인의 이름이 영달이 뭐냐며 만식이 권한 이름이 영권이었다.-유권자들이 물어보면 ‘찰 영盈자에 돌아볼 권眷자라 말하시게. 항상 뒤를 돌아보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채우라는 뜻입니다.’하고 대답하고. 스스로 다짐할 때는 ‘길 영永자에 권세 권權자, 영원한 권력이다.’하고 생각하시게. 권력은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네. 한 번 잡은 것은 절대로 내어놓지 마시게.영권이라 이름을 지어주며 만식이 말했었다.정치를 시작한 이래로 일곱 번의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그중 두 번의 선거를 제외하고 다섯 번의 선거에서 영권은 승리했다. 그 두 번 중 한 번은 정치권의 물갈이 열풍을 피하기 위한 불출마였고, 나머지 한 번은 국민 기본 소득 개헌 정국에서 던진 정계은퇴라는 승부수였다. 물론 그는 정계를 떠나지 않았다.선거에서 패한 적 없는 그였다. 그의 득표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올라갔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이었다. 그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선거에서 질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노인들의 표, 노인이 될 유권자들의 지지만 굳게 쥐고 있으면 될 일이었다. 영권의 소속 상임위가 삼십 년째 노인복지위원회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이제는 좀 더 큰 자리에 오르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다섯 번째 국회의원 당선 후 후원인 모임에서 한 지지자가 말했다. 그렇지. 옳소. 이곳저곳에서 찬성의 말들이 쏟아졌다. 영권이 두 손을 들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영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금 좀 더 큰 자리에 오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십 년 이십 년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오르고 나면 내려와야 합니다. 그 자리까지 올랐던 사람이 다시 국회의원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 이름이 뭡니까? 영권입니다. 영원한 권력. 지금 높은 자리에 오르면 영원한 권력이 되지 못합니다. 나중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맨 마지막에, 이번에 하고 나면 더 이상 못하겠구나, 저세상으로 가겠구나 싶을 때, 그때 높은 자리에 오르겠습니다. 그래야 제가 살아 있는 시간 중 일 분 일 초의 빠짐없이 여러분을 도와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말씀해주신 그 말들, 마음들. 기억하겠습니다. 그때까지 변치 않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그가 말을 하는 중에 여러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말을 마치자 모두들 일어나 박수를 쳤다. 후원회장인 만식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며 영권과 러브샷을 했었다. 그런데 만식이 죽다니. 영권은 아쉬웠다. 그리고 슬펐다. 잠깐, 아주 잠깐.만식은 갔지만 만식의 돈은 그대로 남았다. 장례식장에서 만식의 유일한 자식, 필립의 얼굴을 보았다. 담담한 표정이었다. 목이 쉬지도 눈두덩이 부어 있지도 않았다. 만식의 아들이 아니었던가. 이 정도에 감정이 흔들릴 집안이 아니다. 필립은 조용한 장례를 원했겠지만 영권은 그럴 수 없었다. 필립 앞에서 강한 분노와 규탄의 말을 쏟아냈다. 후원자들에게 보이는 결기였다. 필립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소설가 김강

2022-04-11

수업 녹화

홍택정문명중·고등학교 이사장 공교육의 부실화로 학생과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의존하는 기현상이 사회문제로 대두된지 오래다.과중한 사교육비가 서민 가계의 큰 부담이 되어 팍팍한 서민 생활을 압박하고 있다. 부유층의 고액과외와 스펙품앗이로 인해 교육기회는 불공정한 갈등양상으로 계층 간의 위화감이 만연하고 있다.자녀들의 과중한 교육비가 저출산이란 국가적 재앙이 되어 인구감소가 확산되고 있다.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인구절벽이란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치솟는 집값과 함께 공교육의 붕괴가 대한민국의 당면 1순위 과제로 떠올랐다. 집값은 적극적으로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공교육의 부실화는 단순한 정책적인 문제로는 완전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이에 대한 대안으로 학교수업의 녹화를 제안한다. 학생들의 설문조사 결과 80% 정도가 수업 녹화를 원하고 있다. 당일 수업한 내용 중에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수업녹화를 보면서 복습한다면 미진했던 부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미 학교 현장에는 코로나로 인해 비닥면 수업을 통해 수업을 녹화할 수 있는 기본 설비가 구축 되어 있기 때문에 별다른 예산지원 없이도 가능하다.요는 교사들의 적극적인 수업 녹화에 대한 호응이 관건이다.그러나 이미 미국의 유수한 대학 강의는 인터넷으로 세계각지에 중계되고 있다.수업이 녹화된다면 교사들은 수업 내용에 대해 더욱 진지해질 것이고, 수업의 질은 한 단계 상승될 것이다.학생들은 방과 후 수업 등을 통한 비효율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그야말로 자신만의 맞춤식 복습을 하게 된다면 만족도가 배가 될 것이다.자연 맹목적인 불안감 때문에 가게 되는 학원 교육도 줄어들면 가계지출도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마이클 센덜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처럼 최소한 교육에서만큼은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서울 등 대도시의 학생들과 중소 농어촌 학생들의 사교육 기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이런 학생들을 위해서, 학습부진 학생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수업녹화가 필요하다. 더구나 인헌고 사태에서 보드시 전교조 교사들의 이념주입식 왜곡된 역사교육 방지와 차단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2022-04-11

코로나 타액진단키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타액(침)으로 할 수 있는 타액 검체 기반 자가검사키트는 감염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항원 단백질 유무를 확인하는 항원 자가검사키트라는 점에서는 기존 제품과 동일하지만, 코에 면봉을 집어넣지 않고 침을 뱉어 검체를 채취할 수 있다. 일반인이 콧구멍 앞쪽인 비강에서 채취한 검체로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자가검사키트 도입으로 피검사자의 고통은 줄었지만, 유·초·중·고 개학으로 어린이와 청소년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검사 편의성을 높인 타액 방식의 자가검사키트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타액 검체를 기반으로 하는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1개 품목의 허가 심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허가·심사 단계의 제품과 업체 이름은 정부 방침에 따라 비공개 방침이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관련 제품 개발에 성공한 바디텍메드와 에스디바이오센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바디텍메드는 자가검사용 타액 코로나19 항원검사키트의 유럽 판매를 위한 인증과 수출허가를 이미 받았으며, 성능을 개선한 제품을 개발해 4월 말쯤 국내 품목허가를 신청하려고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디바이오센서도 타액 코로나19 항원검사키트 개발을 마쳤고, 유럽 판매를 위한 CE인증을 마쳐 수출하고 있으나 국내 허가 신청 절차를 밟았는 지에 대해서는 확인해주지 않고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정식허가받은 코로나19 진단키트는 총 89개로, 36개는 유전자증폭(PCR) 진단키트, 33개는 항원검사키트, 20개는 항체검사키트다. 타액 검체 기반 진단키트는 단 한 개도 허가 받은 제품이 없다. 피검사자의 고통이 없는 타액 진단키트의 허가여부가 진단키트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전망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4-11

‘환경-기후-지구위기시계’

남광현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해 9월 8일 우리나라의 환경재단과 일본의 아사히 글라스 재단(The Asahi Glass Foundation)이 공동으로 발표한 2021년 한국의 환경위기시각은 9시38분으로 2020년보다는 18분 앞당겨져 위험 수준으로 발표했다.환경위기시계는 0시~12시까지가 있는데 시계가 0시에 가까울수록 오염이 안 되어서 살기 좋고, 12시에 가까울수록 오염이 되어서 살기 나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매우 인식하기 좋게 만들어 준다.이들이 동시에 발표한 세계환경위기 시각을 보면 9시42분으로 우리나라 보다는 4분 정도 늦고 있으며, 환경위기 시각이 가장 빠른 지역은 아프리카로 8시33분이고 가장 늦은 지역은 10시 20분인 오세아니아인데, 전세계가 매우 심각하고 불안한 시간에 있음을 보여준다.지난해 4월 동대구역 3번 출구 앞에 2019년 독일 베를린, 2020년 미국 뉴욕에 이어 세계 3번째로 기후위기시계를 설치했다.기후위기시계는 전세계 평균기온 1.5℃ 상승까지 남은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로 1.5℃ 상승까지 사용할 수 있는 탄소예산(Carbon Budget)을 바탕으로 제작되며, 이것을 다 소모해 버리면 그때부터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고 한다.탄소예산이란 우리가 지금 수준으로 석유, 가스, 석탄을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지구 기온 상승폭이 1.5℃에 도달하기 전까지 우리가 대기 중으로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말한다.이날 보여준 기후위기시계의 시각은 6년 261일 6시간 정도로 적어도 2028년이 끝나기 이전에 지구온난화를 임계값 아래로 유지하기 위한 최대한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금년 1월 20일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발행하는 원자 과학자 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는 지구종말시계의 분침(分針)이 자정(子正·밤 12시)까지 100초 남아있다고 발표했다. 지구종말시계는 일러스트 시계로 핵전쟁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시계로 알려져 있으며, 운명의 날 시계라고도 한다.처음에 지구종말시계는 자정의 7분 전에서 출발했다가 1953년 미국이 수소폭탄 실험을 했을 때 2분 전으로 자정에 가장 가까워졌다. 1991년 미국과 러시아가 전략무기감축협상에 서명하고 핵무기 보유국들 사이에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당시에는 17분 전까지 조정되어 가장 안전한 때였다.그러나 이후 시계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하고 핵무기 보유국들이 핵감축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면서 계속 자정에 가까워졌고 해결되지 않는 북한의 핵문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지속되는 기후위기로 인해 지구종말시계는 100초전으로 다시 조정된 것인데, 이는 1953년 이래로 지구종말에 가장 가까운 시간을 나타낸다.바쁜 현대생활에 환경위기, 기후위기 그리고 지구종말 시계 모두가 종말로 다가가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이 시계들을 우리의 노력을 통해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2022-04-11

아, 그런가?!

김규종경북대 교수 세상이 작게 보이는 때가 있다! 그래, 뭐 그리 대단해서 괴로워하고 미워하며 끔찍하게 생각할 게 있냐는 생각에 너그럽고 관대해지는 때가 있다. 딱 이맘때 일이다. 지지 않았으면 하는 벚꽃이 바람에 날리고, 라일락 향기가 오가는 바람에 내년을 기약하는 이즈음 일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철모르고 둥지 만들어 뻐꾸기의 탁란(托卵)을 허하던 때다.거친 바람, 괘씸한 바람 불어, 가슴이 바싹 조여오면 하늘과 나무와 구름장 들여다본다. 저리 작은 목숨 지탱할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밤 지나가는 때 있다. 사람 마음이야 언제나 항상 같지 않기에, 관대함과 여유로움이 악착같음과 치졸함 하나로 얽히는 법. 지나면 비로소 우연함과 느닷없는 너그러움 대하(大河)와 대양(大洋)으로 이해되는 바 있으니, 이런 어처구니없음은 지금도 안타깝기 그지없다.며칠 전 일이다. 멀쩡하게 달리던 뒤쪽 승용차가 한 자도 아니 되게 뒤꽁무니에 되우 붙더니 이리저리 몸 뒤척이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편도 1차로에서 어쩌자는 것인지, 뒷거울로 보이는 행각이 실로 가관이다. 마음 같아서는 없는 길 만들어 양보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 하되, 좁아터진 길에서 속도 만들며 구부러진 행로 단축하면서 질주해보는 게 고작이다. 하되, 뒤차는 재촉에 재촉을 거듭한다.사정이 이럴진대 이쪽에서도 내장이 뒤틀림은 인지상정이리라. 이윽히 다가온 4차로에서 문득 참았던 분노 일시에 폭발하니 질주 본능과 과시 본능 한 데로 어울려 폭주한다. ‘그래, 따라올 수 있으면 해보라’ 하는 심사로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이다. 뒷거울에서 홀연히 지워지는 염치없는 차량을 확인하며 쾌재를 부르는 것이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진대, 잠시 돌이키며 ‘60 넘은 놈이 한심하군!’ 생각한다.같은 일이어도 너그러운 성정이 작동하지만, 어느 땐 악착(齷齪)같은 마음 일어남은 알 길 없는 모순이라. 깊고 너른 이성의 대양과 문득 마주하는 모순 어쩌지 못하는 일 다반사라! 그럴 즈음 확인하는 ‘아하, 내 마음의 주인이 내가 아니로군!’ 하는 사실이다.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라면, 흔들리거나 말도 아니 되게 망령(妄靈) 되는 행동 하지는 않을 것이라. 그러하되, 항시 비틀거리고 흔들리며 뒤뚱거리는 것이 이 마음 아닌가?!하여 다가오는 사유와 인식의 다발은 이것이다. ‘너의 마음은 어디 있는가?! 너의 육신은 그대의 것인가?!’ 젊은 날의 대답은 매양 그렇다, 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나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흉중(胸中)이 어디 있는지, 나의 몸뚱어리가 나의 자유의지와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명징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나의 몸과 마음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지는 터다.낮과 밤이 하나였던 한 주가 스러지고 바람마저 사라진 터에 사위도 고요한 시점이라. 개도 고양이도 그 주인들도 기세가 풀려버린 시절에 새삼 묻는다.그대들의 기특한 사념과 애틋한 연련(戀戀)함은 아직도 무상하며 건강한 것인지, 지나간 꽃잎 새삼 묻는다.

2022-04-10

중원에 내리다

남편의 추억을 되짚는 여행이었다.안성에 터를 잡은 아들을 데려다주고 차를 돌려 내려오는 길, 충주휴게소에 들렀다. 졸음도 쫓을 겸 벤치를 찾아 잠시 쉬려고 고속도로에서 내렸는데 휴게소 벤치는 흡연석이 된 상태였다. 어디로 가나 하며 두리번거리다가 톨게이트를 발견했다. 충주는 신기하게도 휴게소에서 바로 아파트가 즐비한 동네로 내려설 수 있게 쪽문을 내놓은 것이었다. 느림의 미학 충청도 사람들의 또 다른 배려인듯싶었다.남편은 한 곳만 들렀다 가자며 내비게이션에 중앙탑을 찍어보라고 했다. 사실 포항에서 경기도까지 다녀가며 길만 보는 것이 아쉬워 역사탐방이라도 하자고 조르고 싶었지만 오랜 시간 운전대를 잡아야 할 남편에게 미안해서 입을 떼지 못하던 참이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충주에 내려서길래 얼른 조수가 되어 검색에 나섰다. 중앙탑공원이 6분 거리에 있었다. 아파트 숲을 벗어나자마자 들이 보이는 시골풍경이 펼쳐졌다.역사교육학과를 나온 남편은 학창시절 매해 수학여행을 다니는 행운을 누렸다고 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들과 역사학자를 가이드로 모시고 대형버스를 맞춰 1년에 한 번씩 여행을 간다는 건 역사교육학과 학생만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만리장성을 쌓는 것도 큰 재미였단다. 여행에서 돌아와 팀을 나눠 주제발표 했던 장소가 여기였다며 남편은 눈빛이 아련해졌다. 그 눈길 따라 저어기 탑 하나가 뾰족이 고개를 내밀었다.남한강을 옆에 둔 너른 공원이다. 그 한가운데 칠층탑이 홀로 섰다. 절 마당에 사리를 넣기 위해 세우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곳 유적지에 대하여 아무런 기록이 없으므로 사찰명은 알 수 없다.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국보 제6호이다.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 ‘중앙탑이 본명 같지만 별명이고,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이 본명이다. 지금은 이곳이 중앙탑면이라고 하니 탑이 유명해 동네 주소까지 바꾼 경우다.중앙탑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설화 가운데 통일신라 원성왕(재위 785∼798)과 관련된 설화는 탑의 건립 시기와도 관련된다. 내용은 원성왕 때 신라 국토의 중앙 지점을 알아보기 위해 남북 끝 지점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보폭을 가진 잘 걷는 사람을 정하여 출발시켰더니 항상 이곳에서 만났기에 이곳에 탑을 세우고 중앙임을 표시했다고 한다.탑 근처에 국사책에 나오는 더 유명한 비석이 있다. 정식 명칭은 충주 고구려비이지만 학창시절에 달달 외웠던 것은 중원 고구려비다. 장수왕의 남진 순수비(南進巡狩碑)로, 화강암으로 된 사면에 예서체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국보로 넓은 들판의 중앙이라는 뜻의 ‘중원’을 썼으니 중요한 곳임이 분명하다. 찾아가니 멋진 박물관을 지어 비석이 더이상 비와 바람을 맞지 않게 방을 만들어 주었다. 한 방에는 광개토대왕릉비의 탁본이 있는데 워낙 높아서 반쯤은 뉘어놓았다. 6미터가 넘는 높이라니 상상만으로는 그 웅장함을 다 느끼지 못했다. 고구려 유적은 대부분 북한 땅에 있어서 아쉬운 마음뿐이지만 충주 고구려비도 이제야 알현하니 미안함에 한참을 비석 주위를 맴돌았다.박물관 마당에 비석을 발견한 곳을 표시해 놨다. 자신이 처음 이곳에 왔을 적에는 산밑으로 나지막한 집들이 붙어있던 시골 동네였는데 지금은 산책로와 전망대까지 갖춘 공원으로 변했구나 한다. 30여 년을 지나며 멋진 집 한 채 마련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앞으로 학생들에게 낡은 사진이 아니라 현장감 넘치는 자료를 보여주겠다고 더 자세히 본다. 남편의 얼굴에 20대 청년의 미소가 스친다. /김순희(수필가)

2022-04-10

부인 문제부터 숨통을 틀 수는 없을까

김진국 고문 우크라이나에서 여성과 어린이에게 가해지는 잔혹상이 세계의 분노를 자아낸다. 죽음과 학대와 모욕…. 전쟁이 벌어지면 여성과 어린이가 가장 비참하게 희생된다. 정치판도 비슷한 면이 있다. 폭력에 무방비한 약자고, 선전 효과도 크다.지난 대선에서도 최대 쟁점이 여성이었다. 후보보다 후보 부인의 과거가 더 큰 논란이었다.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분노와 증오와 조롱과 흑색선전의 대상이었다. 윤석열 당선인 부인 김건희 씨의 쥴리 의혹, 주가조작 의혹….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 씨의 정부 법인카드 유용 의혹, 공무원 사적 이용 의혹….거기에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의상과 액세서리 구매에 청와대 특활비를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 씨는 부산대 의전원과 고려대 입학이 취소됐다. 최서원(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처럼 고졸자다. 그들이 잘했다는 말이 아니다. 굳이 여기서 다시 거론할 필요도 없이 본인의 잘못이 크다. 법의 심판을 피할 특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남편이나 부모가 정쟁의 중심에 있어 더 가혹한 비난의 대상이 된 것도 사실이다. 남편이나 부모가 사과 대신 정치 반격에 이용해 수습의 기회를 놓치고, 사태가 점점 더 나빠졌다.선거는 평화적인 전쟁이다. 선거 때는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된다. 이제 대통령선거는 끝났다. 물론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일부 보궐선거도 함께 치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언제까지 후보도 아닌 가족을 진영 대결의 희생물로 삼을 순 없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선거 직전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중단했다. 그 배경을 두고 여러 주장이 있지만 첫 여야 정권 교체에 도움을 준 건 틀림없다. 후보의 잘잘못을 가려야 유권자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검찰의 선택적 수사가 선거 결과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 나쁜 관행은 바꿔야 한다. 진심을 담은 사과도 필요하다. 하지만 특정인에 대해 정치적 이유로 모든 책임을 떠안기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갑옷론이 나온다. 대장동 사건, ‘법카’ 수사를 앞두고 불체포특권이 있는 국회의원이 되려고 정치 재개를 서두른다고 한다. 대선이 끝난 지 겨우 한 달 만에 조기 등판하는 명분을 검찰수사에서 찾은 것이다.국회는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다. 민주당 의석이 172석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지만, 현재는 국민의힘 110명, 무소속 1명, 국민의당 3명을 제외한 186명이 반(反) 국민의힘이다. 개헌을 제외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2년간 윤석열 정부가 아무것도 못 하게 표류시킬 수 있다. 국민의힘과 3분의 1씩 비슷하게 득표한 선거 결과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왜곡된 결과다. 대통령선거도 24만7천77표 차이로 승자가 모두 갖는다.이런 제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감정으로 푼다. 정치권만이 아니라 민심도 쪼개졌다. 선동세력은 선거 불복을 부추긴다.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승자의 시간을 주던 미덕이 사라졌다. 선거가 끝나도 당선인의 지지율은 그대로다. 이대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동화 ‘여우와 두루미’는 모두 아는 이야기다. 둘이 함께 식사하려면 음식의 종류, 그릇을 의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서로 배려해야 한다. 여우에게 호로병에 든 음식을 주는 건 먹지 말고 굶으라는 말이다. 국민의힘 정부에 민주당 정책을 추진하기에 적합한 정부 조직을 강요하면 국민의힘은 일을 못 한다. 발목을 잡는 꼴이다.민주당이 국민의힘 정책을 지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면 적어도 임기 초 당선인이 자신의 정책을 추진할 여유는 줘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꽁꽁 묶어놓고, 검찰과 경찰은 뒤늦게 이재명 후보 쪽에 칼을 겨눈다. 협치를 위해선 출구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하지만 당장 숨통부터 터야 한다. 가족 문제는 가장 감정을 건드리는 문제다. 퇴로가 없다. 국민의힘은 대장동과 ‘법카’를 제외하고, 고소·고발 대부분을 취하했다. 여기에 더해 부인들 문제도 진정한 사과와 함께 빨리 털어낼 방법이 없는가.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김진국 본사 고문

2022-04-10

엔데믹 논란

엔데믹(endemic)은 주기적으로 발병하거나 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을 이르는 말이다.일정 수준의 사람에게 계속적으로 질병이 발생하나 관리가 가능한 경우다. 말라리아, 뎅기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엔데믹은 감염병이 사회 각 기능이 작동하는데 큰 차질을 주지 않을 정도로 파괴력이 낮다는 뜻도 포함한다.팬데믹(pandemic)은 우리말로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다. 역사적으로 중세기 유럽을 거의 전멸시킨 흑사병이나 20세기 초 발병한 스페인 독감 등이 팬데믹 사례다.최근 정부가 사적모임 10인, 밤 12시 영업으로 거리두기를 완화하자 코로나가 엔데믹 상황으로 전환할 거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우리나라가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세계 첫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해 이런 가능성을 더 짙게 한다. 또 18일부터 실내마스크를 제외하고는 모든 방역조치가 해제될 거란 전망도 나오면서 코로나19 종식을 기다린 국민의 관심이 온통 정부의 엔데믹 선포에 쏠려 있다.그러나 의료계 일각에서는 코로나 하루 확진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마당에 엔데믹 선언은 섣부르다고 평가한다. 정부가 엔데믹 검토에 나선 가장 큰 이유가 치명률이 낮다는 것인데 3월 한달 사망자가 9천명에 육박하는 상황을 도외시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그러나 정부는 엔데믹이란 말보다 포스트 오미크론이라는 표현을 하면서 조심스레 엔데믹 쪽으로 무게의 추를 옮기는 모양새다. 코로나로 인한 그동안의 사회경제적 손실이 너무 큰데 대한 부담 때문으로 보인다. 국민건강과 국가적 손실을 모두 건질 묘안은 쉽지 않다. 새로운 변이 발생 가능성도 여전하다. 정부가 선뜻 엔데믹이라 선언하지 못하는 고민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4-07

기사(己巳)

육십갑자 중 여섯 번째 기사(己巳)다. 기토(己土)를 문전옥답(門前沃畓)으로 표현한다. 집 가까이에 있는 비옥한 논이며, 아주 귀한 재산을 의미한다. 사화(巳火)는 물상으로 겨울잠에서 깨어 나와 허기에 지쳐 독이 오른 뱀이다.기사(己巳)는 초여름 정원(庭園)을 상징하며 지적이고 대중적이다. 어떤 고난을 당해도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이 여유로움을 부릴 줄 아는 지혜를 갖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고집이 강하고, 불굴의 의지를 갖고, 확신에 차있는 모습이다. 때론 독선으로 흐르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이는 흙토(土)의 성질이 강하여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향으로 나타날 수가 있다.기사일주(己巳日柱)는 항시 분주다망하며, 뱀이 기어가다 머리를 세운 모습이라 활동력도 강하다. 총명하고 재주가 많기 때문에 자만심으로 빠질 수가 있다. 뱀은 혀끝이 두 개로 갈라진, 혀가 두 개인 동물이다.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며, 겉과 속이 다르다고도 한다. 호불호(好不好·좋음과 좋지 않음)가 명확하여 낭패하기도 한다. 그러나 좋음과 나쁨, 추하고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다.불경(佛經) ‘아함경’과 ‘열반경’에 ‘공덕천녀와 흑암천녀’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가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서 어떤 부잣집에 도착했다. “잠시 묵어갈 수 있겠는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집주인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요?” “저는 공덕천녀라고 합니다. 저는 주인님이 원하시는 대로 금은보석과 말, 수레, 의복, 하인 등을 얼마든지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룻밤 묵어갈까 합니다.” “호오! 그렇소? 어서 들어오시오. 환영합니다.” 그리하여 집주인은 공덕천녀를 맞아들였다. 그런데 공덕천녀 옆에는 차마 눈 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로 추악한 여인이 서 있는 것이었다. “아니 이런 경사스러운 때 나타난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자, “저는 흑암천녀라고 합니다.” “이름이 꼭 걸맞는구려. 당신이 하는 일은 대체 뭐요?” “저는 가는 집마다 재물은 없어지고, 마침내 망하게 되지요.” “썩 나가라! 우물쭈물하면 목을 베어버리겠다.” 그러자 흑암처녀는 싸늘하게 웃었다. “어리석은 주인이여! 언니가 곁에 계시는데 나를 이리 구박할 수 있소?”“그럼 네가 공덕천녀님과 자매간이란 말인가?” “그렇소, 이 분은 내 언니이며, 우리 둘은 단짝이어서 늘 함께 다닌다오.” “믿을 수 없다. 공덕천녀님! 이 여자 말이 사실입니까?” 집주인은 마침내 결심한다. “정 그렇다면 나로선 두 분 다 사양하겠소이다. 나가 주시오.”그런데 어느 가난한 집에 가자, 그 집 주인은 기뻐하면서 두 천녀를 맞아들이고 후대하는 것이었다. 좋은 걸 좋아하고, 싫은 걸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 둘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서 앞면을 가지기 위해서 뒷면을 버릴 수 없다. 부처님은 이 비유를 드신 후 말씀하셨다.“비구들이여, 여기서 공덕천녀는 행복이나 삶을, 흑암처녀는 불행이나 죽음을 의미한다.”사주(四柱)에 뱀 사(巳)가 있는 사람은 대체로 권력지향적인 경향이 있다. 승부욕도 강하고 질투심도 많다. 지혜로운 면이 있는 반면에 질투에 눈이 멀어 남들에게 날카로운 말을 해 상처를 줄 경우가 있다. 자신을 낮추어서 겸손하게 처리하면 출세할 운이 온다. 만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릇이며, 인내와 노력이 있어 성공이 따르는 성품이다.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인 추기(鄒忌)는 남들보다 훨씬 키가 크고, 아주 잘 생겼다. 어느 날 아침 그가 좋은 옷에 좋은 모자를 쓰고는, 거울을 보면서 자기 아내에게 “온 나라 사람들이 미남이라고 떠드는 서공과 나를 비교할 때 누가 더 잘생긴 것 같소?”라고 물었다. 그의 아내가 “당신이 훨씬 잘생겼어요. 서공이 어찌 당신에게 비교될 수 있겠어요”라고 대답하였다.추기는 자기가 서공보다 잘생겼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자기의 첩(妾)에게 가서 “나와 서공을 비교할 때 누가 더 잘생긴 것 같소?”라고 물었다. 첩(妾)도 “서공이 어찌 당신만 하겠어요!”라고 대답하였다. 그 다음날 어떤 손님이 추기를 찾아왔다. 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추기는 또 “나와 서공 중에 누가 더 잘생긴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다.그 손님도 “서공은 어른만큼 미남이 못 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런 다음날 마침 서공이 추기를 찾아왔다. 서공을 자세히 뜯어보니 서공보다 못함이 확실하였다. 거울을 앞에 놓고 뜯어보고, 또 뜯어보아도 서공보다 훨씬 뒤떨어졌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누워서 주위 사람들이 입을 모아 자신을 추켜 세워준 사실을 거듭거듭 생각하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나의 아내가 나를 잘 생겼다고 한 것은 나만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애첩이 내가 더 아름답다고 한 것은 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손님은 나의 도움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로구나!” 유향 전국책 ‘제책(齊策)1’에 나오는 글이다. 류대창명리연구자 추기는 한 나라의 재상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2022-04-06

대선 뒷소감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선 이후 한 달이 흘렀다.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한 나라와 백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야 한다. 박빙의 힘든 싸움을 거쳤다 해도 결과를 확인한 국민은 새 리더십에 높은 기대를 건다. 이번엔 왠지 다르다. 당선 때 획득했던 지지율을 못 미치는 국정기대치가 잡힌다는 여론조사발표가 있다. 물러가는 대통령보다 당선인에게 거는 지지율이 낮다고도 한다.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민심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선거 직전 온 국민의 마음을 졸였던 동해안 산불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당선인은 잊었을까. 지켜온 한반도의 평화는 없어도 그만일까 의아해진다. 지난 정권들이 쌓아온 선진국의 국격은 생각이나 하는가.대통령집무실 이전이 민생의 어려움에 밀려난 모양새가 아닌가. 돌려받겠다 요청한 국민이 주변엔 안 보이는데 굳이 취임식 이전에 청와대를 개방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정치보복은 없다더니 진정인가 묻고 싶다. 당사자도 아닌 딸과 어미가 빠진 질곡과 멍에는 못난 대학들만 탓해야 하는가. 일본을 대하는 태도에는 분명한 매듭이 없다. 일본이 한국민들에게 가했던 상흔과 씁쓸함은 ‘파친코(Pachinko)’가 소설과 드라마로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일본교과서의 부당한 기술 앞에 무엇 때문에 ‘입장표명이 부적절’하였을까. 지난 정부도 소홀하여 국민이 힘들었던 ‘교육’은 아예 돌아보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교육은 백년대계인가, 아니면 무려 부처폐지를 고려할 애물단지인가. 당선인과 인수위의 집행기준은 ‘민심과 미래’인가 아니면 당신들만의 정권탈취 축하행진인가.당선인은 선택해 준 국민들에게 겸허해야 한다. 박빙의 차이 0.7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1963년 대선에서 박정희가 윤보선을 면도날 박빙 15만표 차이로 이겼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승자독식이라지만, 통합과 협치를 내세운 자신의 지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오만과 독선으로 유신에 이르러 불행한 마감을 초래했던 역사를 돌아보아야 한다. 지지했던 국민과 함께 지지하지 않았던 표심도 돌아보는 지도자가 되었으면 한다.끝을 모르고 벌어지는 반목과 격차는 사회문화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하다. 나라와 국민의 분열을 걱정하였던 미국 부시 대통령이 ‘보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나라(Kinder and gentler nation)’를 구현했으면 싶다. 역량과 슬기의 한민족이 품격과 관용까지 갖춘다면 손색없는 선진국이 되지 않을까.대통령이 앞장서야 한다. 나라의 격과 국민의 마음은 앞에 선 리더가 하기에 달렸다. 국민은 당신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게 아니라 당신이 실천하는 바를 보고 겪으며 마음을 결정할 터이다. 성패의 여부는 리더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 마음의 향배에 달려있다. 그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거꾸로, 지지하던 사람들이 그에게서 멀어진다면 경고등은 이미 들어온 게 아닌가.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살림을 국정의 기준으로 삼는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리더가 잘해야 나라가 살고, 국민이 깨어야 미래가 밝다.

2022-04-06

리뷰알바의 폐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코로나19 대유행의 장기화에 따라 배달문화가 대중화되면서 배달의민족 등 배달전문업체들이 각광을 받으면서 자영업자들이 리뷰알바 업체들의 난립에 힘겨워하고 있다.리뷰알바업체는 SNS를 통한 영업이 대중화하면서 급격히 늘어난 업종으로, 신규로 가게를 연 업체들을 대상으로 돈을 받고 리뷰를 조작하는 ‘리뷰알바’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을 말한다. 리뷰알바 업체는 배달비와 음식값 외에 리뷰 한 건당 2천~3천원을 지급하며, 재택이 가능한 꿀 알바라는 광고로 리뷰어를 모집한다.리뷰어를 대량 모집한 업체들은 새로 개업했거나 단시간 내에 배달 건수를 끌어올리고 싶어하는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영업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확보한 리뷰어 숫자를 과시하며, 이른 시일 안에 식당 영업을 안정시켜주겠다고 광고하니, 마음이 급한 업주 입장에선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들 허위 리뷰어들이 자신들을 고용한 업체에 좋은 리뷰만 써주는 것이 아니라 배달 지역이 겹치는 경쟁업체들에 악성리뷰를 쓰는 방식으로 영업한다는 데 있다.배달 앱 업체들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과 전담 조직까지 만들어 대응에 나섰다. 배달의민족은 2020년 11월부터 허위·조작 리뷰를 자동 탐지하는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과 리뷰 작성자의 주문기록과 이용현황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알고리즘까지 적용하며 대응하고 있다. 쿠팡이츠 역시 지난해 8월부터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악성리뷰를 30일간 블라인드 처리하는 등의 대책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단속은 역부족이다. 다수의 리뷰어를 확보한 리뷰알바 업체들의 불법적인 영업행태는 정상적인 시장을 교란하고 업주들에게 피해를 준다. 리뷰알바의 폐해를 막으려면 자영업자스스로 불법업체를 이용하지 않아야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4-06

우리 집 치킨이 맛있대요

배달 라이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말 많은 음식점들을 가게 된다. 프랜차이즈 식당부터 작은 동네 가게까지, 한식, 중식, 양식, 일식, 도시락, 빵, 커피, 아이스크림 등등 메뉴도 다양하다. 워낙 인기가 많아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게 되는 식당들도 있다. 그런 가게는 직원들도 많고, 항상 분주하다. 음식을 가지러 매장에 도착하면 아예 배달 주문 음식들만 따로 한 곳에 수북하게 쌓인 걸 보곤 한다. 배달 기사가 알아서 주문번호를 확인해 음식을 찾아 가야 한다. 주방이며 홀이며 카운터며 워낙 바빠서 뭘 어떻게 물어볼 틈도 없다.반면 ‘파리 날리는’ 가게들도 있다. 홀에 손님은 하나도 없고, 배달 주문 전화도 좀처럼 걸려오지 않는다. 대부분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골목 식당이거나 단골 장사를 오래 해온 가게들이다. 아주머니나 아저씨 한 분이 음식 만들고, 홀 서빙하고, 계산까지 혼자 다 한다. 이런 집들에 배달하러 가면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진다. 안 그래도 힘든 자영업인데, 코로나 시대에 얼마나 고달프실까. 장사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음식을 받아 나올 때 늘 하는 인사인 “감사합니다” 대신 “많이 파세요”라고 크게 외치곤 한다.요식업 중에도 치킨은 가장 치열한 전쟁터다. 수많은 프랜차이즈들과 동네 골목 상권이 경쟁을 벌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메뉴가 등장하고, 온갖 광고와 프로모션이 넘쳐난다. ‘치맥’이 배달 음식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치킨 공화국’이다. 우리나라 식품 관련 자영업의 20퍼센트가 치킨집이라고 한다. 하지만 폐업할 확률이 높다. 코로나19가 지배한 최근 몇 년 동안은 매년 6~7천 개의 치킨집이 창업하고, 1만 개 넘는 집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치킨 한 마리에 2만원 시대라지만 재료비와 서비스비(배달 앱 수수료와 배달 운임)를 제외하면 매장에서 가져가는 마진은 10퍼센트, 약 2천원 정도다. 하루에 닭을 100마리 튀겨야 20만원 버는 셈이다.평촌의 오래된 아파트 상가 건물에 작은 치킨집이 하나 있다. ○○치킨. 웬만한 치킨집은 다 한번쯤 들어봤는데, ○○치킨은 정말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가을볕이 따사로운 토요일 오후, ○○치킨을 찾아 미로 같은 아파트 상가를 좀 헤맸다. 낡은 상가 건물 지하 1층 한 구석에 자그맣게 자리 잡고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끼익 끽 소리를 내는 녹슨 철문을 열고 “배달이요” 외치자 연세 지긋한 노부부께서 “거의 다 됐어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하신다. ‘배민’이냐 ‘쿠팡’이냐 묻지 않으신다. 배달 주문 들어온 게 딱 한 건인 모양이다.테이블 몇 개 없는 매장 안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겹쳐놓은 치킨 박스 더미 옆에 작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미스터 트롯’ 뽕짝 소리가 기름 끓는 소리와 어우러져 정겹다. 빈 테이블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마요네즈’, ‘튀김가루’, ‘엿기름’ 등을 적어 놓은 메모지가 널브러져 있다. 아주머니가 치킨을 튀기면 아저씨가 그걸 양푼에 담아 양념 넣고 버무린다. 맛있는 소리와 냄새가 토요일 오후를 채색한다. “아이고, 세 마리나 한꺼번에 주문이 들어와서 좀 걸렸어요. 미안해요” 아주머니는 포장 박스가 닫히지도 않을 만큼 치킨을 가득 담더니 양배추 샐러드까지 용기에 꽉꽉 채워 넣으신다. 잔뜩 무거워진 비닐봉지 세 개를 건네받고는 왠지 떠나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날 늦은 저녁, 한 건만 더 하고 퇴근하려는데 마침 배달 콜이 울린다. 어라? 아까 낮에 갔던 ○○치킨이네? 반가운 마음에 금방 달려갔다. 이번에는 헤매지 않았다. 문을 열자마자 아저씨가 “빨리 오셨네. 다 됐어요” 하신다. “저 아까 낮에도 왔다 갔는데, 오늘 두 번이나 오네요” 말씀드리니 이번엔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고개를 쓱 내밀면서 “그래요? 아 맞다. 아까 낮에 세 마리, 맞아 맞아” 하신다.“얼마나 맛있으면 저한테 두 번이나 콜이 들어 왔겠어요. 퇴근하고 집에 가서 먹게 양념 반 후라이드 반 하나만 포장해주세요. 이거만 배달하고서 찾으러 올게요” 낮부터 내 침샘을 자극한 소리와 냄새가 치킨집 안에 다시 가득 퍼지기 시작한다. 치킨을 건네받고 “다녀올게요” 하는 나를 보며 아주머니 아저씨가 해사하게 웃는다. “우리 집 치킨이 그렇게 맛있대요. 먹어 본 사람들이 다 맛있다고 그래.”

2022-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