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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주 발전 이룰 적임자 뽑아야

김맹희 경주시·자영업 제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바로 코 밑이다.위기의 지방자치를 구하는 방법은 우수한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일이다. 지방자치는 저절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현재 경주시장 선거에는 국민의 힘 주낙영 현 경주시장과 더불어민주당의 한영태 경주시의회의원 두 사람이 경주발전의 적임자라며 시민들의 한표, 한표를 호소하고 있다.경주는 세계적인 역사문화관광도시이자 자동차 산업 등 경제산업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한수원, 원전, 방폐장 등 원전산업이 점차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원전 메카이기도 하다. 이러한 반면에 인구 감소 위험이 높은 관심지역이며, 우량기업, 대학 등 부재로 젊은 층 인구가 외부로 유출되는 등 점차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또한 기업지원 등 타 지역에 비해 기업지원 전문연구센터를 유치해 지역 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경주경제의 활성화도 간과할 수 없다. 하나하나 찾아보면 미래를 바라보는 경주가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일들이 산더미이다.이러한 지역의 여러 현안을 해결해 나가고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으로 연계되기 위해서는 처음도 끝도 무엇보다 시민들의 욕구가 뭔지, 현재 경주의 현실을 파악하고 타파해 나갈 인물이 가장 중요하다. 경주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그리고 지방정부의 한계는 돈이다. 예산이 없이는 아무리 좋은 계획도 성사되지 않는다. 주민을 위해 4년간 경주 살림을 살아갈 리더는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듯이 경주가 새롭게 변모하기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시민들의 가려운 등을 긁어 주고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또한 유권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시민과의 약속 이행이다. 예비후보자가 제안한 지역발전 공약과 정책을 바꾸거나 변경하지 말아야하며, 부득이한 경우에는 시민과의 협의를 통해 갈등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에 우리 유권자들은 허황된 공약보다는 좀 더 건설적이고 실현 가능성 있는 자에게 한 표를 행사하고 싶어한다.이러한 여러 가지 희망사항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려면 풍부한 경험과 시민과의 공감 및 소통능력이 확실한 후보가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한번 결정을 하면 4년을 가야한다. 지금까지 우리 손으로 선출한 단체장을 지켜볼 때 탁월한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능력을 통해 지역발전에 밑거름이 되도록 한 것을 보면 이번 경주시장 선거 역시 그런 능력을 갖춘 후보가 선출되기를 많은 시민들이 바랄 것이다.그동안 경주발전을 위해 쏟은 많은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경주가 그 어느 도시 보다도 행복하고 잘 사는 누구나 살고 싶은 경주가 되기를 희망하지 않는 시민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경주가 앞으로 새롭게 변화하고 여러 가지 역경을 이겨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다. 가정에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식구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가장의 역할이듯이 우리 시민들이, 우리 경주가 힘들 때 과감하면서도 강한 추진력으로 잘 마무리 하는 것이 시장의 역할이다. 이런 결실을 얻으려면 그에 응당한 사람을 우리 손으로 뽑아야 되며 이것이 우리 시민들이 해야 할 책무이다.4년이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 그래서 경주가 꼭 필요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능력없는 사람을 뽑으면 그 4년은 우리 모두에게 지겹고 힘든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다. 지금 경주가, 그리고 미래의 밝은 경주를 위해서는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는 유권자들은 깊은 고민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시민들은 소중한 한 표가 앞으로 4년을 넘어 희망 가득한 미래경주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2022-05-22

보물 하나를 보태다

고래불에 처음 간 날, 바람이 몹시 불었다. 하늘로 오르려는 모양의 전망대로 향하는 우리 일행을 휘감았다. 바람 혼자였다면 뚫고 지났을 텐데, 하얀 모래가 덩달아 신이 나서 방파제를 오르고 있어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명사 이십 리에 가득한 모래가 하도 고아서 바람을 타고 얕은 담을 넘어 배가 정박한 항구의 영역을 침범했다. 다른 날 또 오리라 다짐하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얼마 후, 대학 동기 언니들이 동해를 따라 드라이브하자고 해서 나섰다. 그 말에 바람이 길을 막던 고래불부터 들르자 했다. 날이 좋아서 입구의 구멍 숭숭 뚫린 고래 조형물 위에 사람이 함께 유영하듯 매달렸다. 누가 봐도 고래불 해수욕장이라는 안내문 같다.전망대를 보러 방파제로 향했다. 바닥에 물 위에 햇살이 일렁이는 무늬가 그려져 파란 바다 위를 걷는 듯하다. 그 위에 지난 바람에 슬쩍 담을 넘은 모래가 둔덕처럼 쌓였다. 가만히 보니 바닷가에 오래 살았던 바람이 솜씨를 부려 모래에도 바다의 물결을 그대로 그려 놓았다. 모래에서 샤라락 파도 소리가 들릴까 싶어 몸을 낮춰 사진을 찍었다.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고래 전망대에 올랐다. 빙글빙글 계단을 오르자니 내부 벽에 귀신고래와 망치고래를 그려 놓았다. 몇 발짝 더 오르니 밍크고래가 보이고 범고래도 곧 물을 내 뿜으며 숨을 내쉴 품새다. 향유고래 이름과 설명을 읽다 보니 꼭대기에 다다랐다.고래불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둥그런 모래사장 뒤로 소나무 숲이 검게 보였다. 그 모양이 낮게 엎드린 고래 모습이다. 고려의 학자 목은 이색이 상대산에 올라 고래가 뛰노는 것을 보고 경정이라 하였다. 경정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고래가 뛰노는 벌이다. 고려인의 눈이 되어 바다를 보자니 햇살이 눈이 부셔 손차양을 하고 휘 돌아보니 맞은 편에 빨간 등대가 섰다. 병곡 방파제 테트라포드는 회색 시멘트색인 다른 곳과 달리 빨강 파랑이 뒤섞여 독특했다.조선의 실학자 이규경은 글에 고래가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만 산모에게 미역을 먹도록 하는 이유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전한다. 바닷가에서 한 사람이 헤엄을 치다가 갓 새끼를 낳은 어미 고래가 숨을 들이쉴 때 고래 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고래 뱃속에 미역이 가득 붙어 있고 장부의 좋지 않은 피가 녹아서 물이 되고 있음을 보았다. 간신히 고래 뱃속에서 나와 고래가 미역으로 산후의 보양 삼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렸다. 사람들도 비로소 그 좋은 효험을 알아 이후 산후에 미역국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첫아이를 낳고 삼 칠 동안 친정엄마가 끓여주시는 미역국을 하루 네다섯 끼를 먹었다. 많이 먹어야 회복이 빠르다고 배가 꺼지기도 전에 상을 내 앞에 밀었다. 옛 어른들 말이 틀린 게 없다며 오래 끓여 깊은 맛이 나는 국물을 들이켰더랬다. 태어나서 엄마 젖을 통해 그렇게 먹었던 미역국을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먹는다. 고래에게 배운 깊은 깨달음을 먹는 것이다.고래불은 영해면 대진해수욕장과 이웃한 해수욕장이다. 울창한 송림에 에워싸여 있으며, 금빛 모래는 몸에 붙지 않아 예로부터 여기서 찜질을 하면 심장 및 순환기 계통 질환에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해변 길이가 8km에 이르고, 동해인데도 얕은 수심이라 아이들과 헤엄치기 안성맞춤이다.고래불 가까이 일곱 개의 보물을 간직한 칠보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찾아가는 길이 구불구불 소나무 가득한 숲길이다. 따로 예약하지 않았기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로를 따라 오른다. 여러 코스가 있지만 우리는 전망대까지 걸었다. 시인들의 시를 한 편씩 읽다 보니 정자가 나타났다. 날이 좋아서 푸른 능선 너머로 고래불이 보였다. 하~ 좋다. 밤을 휴양림에서 보낸 사람들은 푸른 고래불에서 뜨는 붉은 일출을 보겠지. 칠보산의 일곱 개 보물에 숲에서 보는 바다라는 풍경 하나를 더해 팔보산이라 이름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김순희(수필가)

2022-05-22

대통령 취임사, 자유주의의 주적인 반지성주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5월 9일 국회의사당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윤 대통령은 내외 귀빈과 4만여 명의 축하객 앞에서 16분의 취임사를 하였다.취임사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비전을 볼 수 있어 국민적인 관심을 끈다. 취임사 초안은 정치 철학 전공의 윤모가 교수가 작성한다고 알려졌으나 언론은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보도하였다.이 취임사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라는 단어를 35회나 반복함으로써 자유를 국정의 핵심지표로 삼겠다는 뜻으로 비쳤다. 이와 함께 자유의 주적이며 장애물인 ‘반지성주의’를 강력히 질타하였다.취임사의 핵심인 자유주의와 반지성주의는 일반 국민들이 알아 듣기에 상당히 무거운 개념이다. 정치학을 전공한 필자도 무척 생소한 개념으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의 상임고문인 어느 원로 정치인도 대통령 취임사는 논문을 대하는 것처럼 너무 추상적이라고 비판하였다.취임사의 키워드인 자유부터 살펴보자.우리가 흔히 쓰는 자유는 그리 간단치 않은 복합적 개념이다. 자유는 평등이 전제되어야하는 상보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결국 민주주의가 추구해온 최고의 가치이며 자유의 역사는 바로 민주주의의 쟁취사이다.취임사에서 대통령의 ‘자유’ 강조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자유 과잉이나 일탈을 비판한 것이며, 자유주의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결국 취임사의 자유는 시카고 대학 교수 출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M. Freedman)의 자유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듯하다. 1979년 프리드먼의 명저 ‘선택된 자유’를 윤대통령은 선물로 받아 읽었다는 소식도 있다.프리드먼은 저서에서 정부의 권력을 최소화하고 분산시키는 것만이 자유를 유지하는 원천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자유의 확산과 발전을 위해 ‘큰 정부’를 ‘작은 정부’로 어떻게 바꿀 지는 미지수다.취임사에서 대통령은 자유, 인권, 공정, 연대를 국정의 지표로 제시하였다. 전자인 자유와 인권 보장이 궁극적 목표라면 공정과 연대는 방법론적 가치이다.이번 취임사에서 등장한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m)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이 용어는 1963년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사용했던 개념이다. 객관적으로 증명된 이론이나 진실이 어떻든 간에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는 잘못된 사상풍조이다. 흔히 집단의 정체성을 내세워 지성을 배제하고 상대를 적대화 하고 악마화 하려는 그릇된 사회적 풍조를 일컫는다.취임사에서 이를 강조한 것은 다수가 상대를 억압하고 비판하는 우리의 포퓰리즘적 정치 현실을 비판하기 위함일 것이다. 한국의 양극화된 정치 풍토 역시 반지성주의적 소산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반지성주의는 어느 한쪽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칭 촛불세력도 태극기 세력도 양측 모두 자유를 남용한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우리 사회의 보수 측은 ‘자유민주주의’(liberal domocracy)를 민주의의의 핵심적 이념으로 여기고 사회민주주의는 철저히 비판 배격한다. 사실 자유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 보장을 최고의 가치로 두면서 이를 보장하기 위한 방식이나 제도의 차이에서 구분되는 개념이다. 정의를 위한 자유주의와 공동체 주의의 대립과 마찬가지인 것이다.혹자는 참된 민주주의를 위해 민주주의의 형용사나 수식어를 없애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전체주의를 민주주의로 위장하고 유신 독재로 둔갑한 ‘한국적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한국의 보수우파 측은 자유민주주의를 자신들의 전유물로만 착각해서는 안 된다. 양심적인 진보 측은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폐기하고 자유민주적 질서를 옹호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우리 사회는 새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아직도 대선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대선이 끝났지만 6·1 지방선거가 반지성주의 프레임 정쟁을 격발시키고 있다. 지층과 반대층은 서로 상대를 반지성주의로 매도하고 있다. 서로 상대를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로 구분해 싸우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하루 빨리 찾아야 한다. 이 나라 정치에서는 참된 보수와 진보는 사라지고 사이비 보수와 진보끼리의 분별없는 대립과 갈등만 계속될 뿐이다. 이번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유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한국 보수 우파 정당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기 위함일 것이다.이런 위기적 상황에서 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메시지는 제시할 수는 없었을까. 대통령 취임사에서 협치와 화합의 메시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자유의 적인 반지성주의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정치 보복이라는 단어는 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야권의 각성도 중요하지만 정권을 가진 자들의 양보의 미덕을 보여야 할 시점이다.

2022-05-22

‘다이옥신’(dioxine)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쓰레기 소각장이나 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에서 반대하는 이유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발암 물질이 있다. 미국환경보호청(EPA) 조차도 ‘발암성 물질 중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독성’ ‘청산가리보다 더한 독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독성 화학물질이 바로 다이옥신이다.열을 이용하는 시설인 철강업체 전기로, 제지공장, 자동차 폐윤활유, 석탄 연료, 도시폐기물 소각로, 시멘트공장 소성로 등에서 주로 배출된다. 극히 미량이라도 장기간 섭취하면 피부병에 이어 간을 손상시키고 심장 기능을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심지어 기형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고 한다.환경부는 2018년 11월 29일 다이옥신을 토양환경보전법상 토양오염물질로 지정했다. 기존 토양오염물질(22가지)에 추가한 23번째였다. 올해 1월 21일에는 토양환경보전법 제4조 2항, 토양환경보전법 시행규칙 제1조 5항에 규정한 물질에 포함돼 오는 7월부터 법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토양 오염물질의 거동특성과 토양오염에 대한 이해도를 갖추고 토양오염물질 22가지를 분석하던 기존 토양 전문기관들은 측정 장비가 없고 숙련된 전문 인력이 부족해 다이옥신을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고 한다.다이옥신이 토양오염물질로 지정됐지만, 다른 토양오염물질과 달리 토양환경보전법의 토양오염공정시험기준에 다이옥신에 대한 분석법이 전혀 등록돼 있지 않다. 이로 인해 다이옥신과 관련한 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 신뢰성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논란만 가중시킬 우려를 낳고 있다.환경부는 토양환경보전법의 토양오염물질로 새로 규정된 물질에 대해 기존 토양오염에 대한 조사·분석을 수행하던 업체들을 배제하고, 잔류성오염물질분석(POPs) 업체 12곳에서만 분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토양오염조사에 대해 인력과 검사장비 등이 부족하고, 토양조사에 대한 이해력도 낮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렇듯 특정 유해물질을 특정 업체만 분석할 수 있도록 한데 이어 역량도 떨어진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데, 다이옥신 관리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이에 대해 환경부는 다이옥신은 물질의 특성상 안정화돼 있어 위험하지 않고 오염 예상 지역 조사에서도 수치가 낮아 문제가 없으며, 앞으로도 토양분석 수요가 미미할 것이란 이유로 12곳 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위험하지도 않고 오염도가 낮은 상황이며 토양분석 수요가 거의 없는 물질을 왜 토양오염물질로 등록했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어 규제물질로 실컷 등록해 놓고선 저감 등 관리업무엔 손을 놓고 있는 건 직무유기에 가깝다. 왜 갑자기 다이옥신에 대해서만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인지에 대해서도 환경부의 설명이 필요하다.현재 토양오염은 날로 대형화하고 그 오염의 심각성과 복합성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토양오염조사의 난이도 또한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런데 토양오염조사에 대해 관리 감독하는 환경부의 접근 방식은 너무 안일하다. 우리 주변의 산업단지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4만3천 가지 이상 달하고 있는 상황이고 매년 400~500가지가 더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는 미비하고, 측정 장비나 측정·분석기관이 없는 화학물질도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오고 있는 필자로선 다이옥신에 대한 환경부의 정책은 너무 우려스럽다.ESG 경영의 확대로 기업의 환경윤리 측면이 강조되고 있어 앞으로 토양오염조사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생활주변에서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측정·분석기관 및 전문 인력의 확보는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때문에 환경부는 이에 대한 방향 설정을 보다 정교하게 해야 한다. 환경부는 여태껏 수질오염과 대기오염에 대한 대응 실패를 토양에선 절대 반복해선 안 된다.규제가 시작되면 예상하지 못한 분야에서 부하가 발생할 것이다. 이를 대비해 측정 기관과 인력 확보를 위한 대책과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오염물질 배출업체의 서류조작과 측정 내역 조작 사건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었다. 이런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환경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낙동강에서 1.4-다이옥산 수질 사고가 발생했을 때 환경부에 배출허용기준 설정을 요구했더니, 일부 지역에서 배출되는 물질을 환경법상 규제하기가 어렵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전국 산업단지를 조사한 결과 모든 산업단지에서 1.4-다이옥산을 배출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환경부의 전형적인 복지부동을 확인하는 대목이다.이후 환경부에 재요구한 끝에 배출허용기준을 제정하게 돼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전히 지금도 1.4-다이옥산의 배출허용기준이 턱없이 높아 실효성은 떨어진다. 다이옥신도 지금부터라도 장단기 계획을 수립해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2022-05-22

이제는 추첨 민주주의다

유영희 작가 6월 1일 8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투표 당선자가 18일 기준으로 전국에서 502명이라고 한다. 서울의 경우 구의원 373명 중 107명이 무투표 당선이다. 투표가 이루어지는 지역도 경쟁률이 전국은 1.8 대 1, 서울은 1.4 대 1이라 하니, 시민들의 무력감이 심하다.지방의회는 일제 강점기 때 시작되었으나, 박정희 정권 때 없어졌다가 1991년 재도입되었다. 처음에는 무보수로 시작했지만 2006년 보수를 책정한 데다 정당 공천도 받게 되니, 이제는 지방 선거가 중앙 선거의 축소판이 되어 버렸다.이렇게 선출된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에 대한 신뢰도도 높지 않다. 7회 지방선거 당선자 중에도 2019년 대구 시장 선거를 둘러싸고 당선 무효 된 의원이 5명이 나왔고, 작년에는 영천시 의원이 음주운전으로 당선 무효 되었다. 이번 8회 무투표 당선자 중에도 30%가 전과가 있거나 지난 8년간 내부에서 징계받았던 후보자도 있다.그런데도 의원들에게 지급되는 보수는 만만치 않다. 자치단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월정 보수는 1년에 5천만 원에서 7천만 원을 웃돈다. 거기에 회의 수당과 의정 활동비도 별도로 나온다. 그런데도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존재감은 없으니, 세금 도둑이니 돈 먹는 하마니 하는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그렇다고 시대를 역행하여 지방자치를 폐지할 수는 없다. 지방 자치는 시민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추첨제는 어떨까? 우리는 교육 수준도 높고 민주화 경험도 있어서 추첨제를 할 만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4,5년 전 어느 생협의 임원 선출위원으로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참석한 사람들 모두 연장자를 뽑아야 한다는 관습의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눈치가 보였지만 추첨 방식을 제안해보았는데, 열렬한 호응을 받으면서 실현되었다. 생협 활동 역사상 최초여서 더 뜻깊었다.이런 작은 위원회의 경험을 지방선거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민활동가이며 정치학자인 이지문의 저서 ‘추첨 민주주의의 이론과 실제’에는 이런 꿈이 구체적으로 제안되어 있다. 여기에는 고대 아테네에서 공직자를 추첨으로 선출했던 기록부터 외국의 추첨 민주주의의 역사가 나와 있다. 여기에 덧붙여 저자는 의원 1명에 시민의원단 49명을 뽑아 의원이 의원단과 소통하면서 정책을 제안하자고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참여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셈이다. 생각만 해도 설렌다.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어렵겠지만, 지방선거, 그중에도 기초의원 정도는 지금 당장 시도해볼 만하다. 월정 보수는 없애고 회기에 회의 참석비와 의정 활동에 필요한 경비만 지급한다면 뜻있는 지역주민이 참여할 것이다.추첨을 하면 세금도 절감될 뿐 아니라 뜻있는 시민이 정치 참여가 활성화될 것이고, 지역 자치를 위해 제대로 일할 의원이 선출될 것이다. 허황하다 손사래 치지 말고, 일상의 작은 모임부터 시도해보자. 그렇게 살맛 나는 참여민주주의를 만들어 보자.

2022-05-22

씀바귀, 도심에 살다

강길수 수필가 보도 가에 흐드러진 붉은 장미꽃이 사람 마음을 흔든다. 뉘라서 저 장미꽃들의 향연에 취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내 시선은, 낮은 곳 구석진 곳에서 또 다른 오월을 밝히고 있는 쪼그만 노랑 꽃에 더 머문다.내일이면 생명 찬란한 5월도 하순으로 접어든다. 한낮의 햇빛이 따갑다. 보도 곁 잔디잎들은 절반쯤 누렇다. 가뭄 타나 보다. 그런데 잔디 사이에서, 이 목마름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 노란 꽃들이 활짝 웃고 있다. 바로 씀바귀꽃이다. 잔디밭에 더부살이하면서도, 씀바귀는 움츠러들거나 가물 타지도 않고 해맑은 얼굴로 모두를 반긴다. 잔디도 씀바귀를 한 식구로 받아들여 사는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저리도 다정하게 보일 수 있겠는가.그뿐 아니다. 도심의 씀바귀는 정원에서, 보도와 담벼락 사이에서, 보도블록 사이 틈에서, 심지어 슬래브 집 옥상 구석 등 척박한 곳에서도 잘 살아내며 꽃피우고 있다. 겉보기에는 잎과 줄기와 꽃도 부드럽고 연약하기만 하다. 하지만, 강인하다. 저 강인한 생명력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씀바귀의 잎과 줄기 뿌리까지 모두 다 식용으로 또는, 약재로 쓰는가 보다.씀바귀는 흰 꽃이 피는 종 등 비슷한 몇 가지가 있으나, 모두 같은 용도로 쓰인다. 사람이 먹으면 혈관 건강, 항암효과, 간 기능개선, 면역력 강화, 노화 지연 작용을 한단다. 또 골다공증 예방, 빈혈 방지, 위장 건강, 당뇨 예방, 신경안정 같은 역할도 한다고 한다. 만병통치약 같다. 알고 보니, 씀바귀는 사람에게 무척 이로운 보물이었다.어느 날, 꽃 지고 여문 씀바귀 씨앗은 갓털 비행기에 타고 바람 따라 도심까지 날아왔으리라. 바람과 땅, 건물과 가로수, 풀, 도로 등 도시의 온갖 것과 합심하여 흙이나 먼지가 있는 틈과 공간에 착륙했을 터이다. 절망스러운 도심의 척박한 환경을 꿋꿋이 이기며 싹터 자라나, 앙증스러운 노란 꽃을 많이도 피워낸 씀바귀….씀바귀는 어찌하여 도시로 분가했을까. 푸른 산과 들, 냇가, 강가 다 두고 깡마른 도시의 구석구석으로 와 정착한 이유는 뭘까. 단순히 바람 타고 날아와 물리력으로 내려앉은 게 전부일까. 그렇지 않으리라. 자연현상 하나도 그 원인과 과정, 결과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메시지를 지니게 마련이니 말이다. 하면, 도심 곳곳 하찮게 보이는 장소에 퍼져 나지막하게 자라는 씀바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2022 지방선거 공식 운동 기간이다. 선거를 앞둔 기간에, 웬일로 눈길이 자꾸 노란 씀바귀꽃에 가는 걸까. 도시의 낮은 곳, 구석진 곳 혹은, 다른 풀, 나무들과 어우러져야만 살 수 있는 곳에 태어나 자라나서 촛불처럼 어둠을 비추는 얼굴들. 연약해 보이는 몸으로 척박한 환경 이겨내고 꽃피워 5월을 밝히는 씀바귀. 태생이 사람이나 초식동물을 위해 온몸을 바쳐 희생하여 자기를 먹는 자를 살리는 존재….문득, 노란 씀바귀꽃 얼굴이 바람에 나부끼며 수줍은 아이처럼 무슨 말을 하는 것만 같다.“그래요. 풀뿌리 민주주의의 일꾼들은 우리 씀바귀 같아야만 해요”라고….

2022-05-22

풀뿌리 민주주의

우정구 논설위원 풀뿌리 민주주의란 의회제에 의한 간접 민주주의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주민이 직접 정치에 관여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뜻한다. 1935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이 말이 처음 사용됐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기초로서 지방자치를 의미하는 뜻으로 주로 사용된다.우리나라는 1952년 지방자치를 처음으로 시작했으나 5·16 군사정변으로 중단됐다. 이후 30년만인 1991년 군의회와 시도의원에 대한 선거가 다시 시작됐고, 1995년부터는 기초단체장, 시장·도지사 선거가 시작되면서 전면적 지방자치가 부활했다.6·1 지방선거가 9일 앞으로 다가왔다. 전국에서 17명의 광역단체장 및 교육감, 기초단체장 226명, 광역의원 779명, 기초의원 2천602명을 뽑게 된다. 그야말로 지방의 살림살이를 맡게 될 지역일꾼에 대한 지역민의 선택이 있을 예정이다. 새롭게 뽑힐 지역일꾼들이 지역을 위해 어떻게 일하느냐에 따라 지역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방선거가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전례없이 무투표 당선자가 많이 나와 김빠진 선거가 됐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3명의 기초장과 40곳의 시도 광역의원이 무투표 당선됐다. 그들의 공약이나 자질을 검증할 여지조차 없어 풀뿌리 민주주의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는 평가도 나온다.특히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80여일 만에 열리는 지방선거가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동시에 실시됨으로써 대선 연장전 성격마저 짙어 지방선거의 참뜻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지역주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칠 풀뿌리 민주주의의 참뜻을 살릴 지역민 현명한 선택이 있어야 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5-22

포항에 다녀와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 살다 보면 의지와 무관하게 일이 겹치는 수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중얼거린다. 참, 재미있네. 그런 유쾌한 일이 지난주와 그 전주에 있었다. 2주 전 금요일 오후에 포항으로 승용차를 몰았다. 30년 인연을 맺어오는 졸업생을 찾아가는 길이다. 바다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 집을 구한 그가 집을 말끔하게 수리하고 난 다음 나를 초대한 것이다.나는 가끔 내 집을 찾아오는 그와 늦은 시각까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이번에는 내가 그의 집을 찾아간 게다. 그가 안내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식탁에서 예의 정담을 이어간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행복한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좋은 사람과 늦은 시각까지 격의 없이 대화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일은 얼마나 우리를 평온하게 하는가?!지난주 금요일에는 다섯 사람이 포항에 간다. 집에서 10미터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자리하고 있는 해변이다. 죽도시장에서 준비한 광어회와 멍게, 전복이 돼지고기와 더불어 차례로 상에 오르고, 선선한 바닷바람이 운치를 돋군다. 흉중에는 사심이 없고, 대화는 미리 설정한 방향 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오랜만의 양주가 내장을 간질이고, 바다 건너에서 반짝이는 등불이 언젠가의 은성(殷盛)한 추억을 소환한다.옥상에서 거실로 자리를 옮긴 그들이 노래를 청한다. ‘그래, 대구에서 가져온 기타와 노래책이 있었지.’ 악보대(樂譜臺)가 없어 종이상자로 대신하고, 슬로우 고고와 트로트, 왈츠, 스윙을 곁들여 가면서 예전 노래들을 하나둘 불러낸다.어떤 노래는 다 함께 부르기도 하고, 어떤 노래에는 내 경험에 기초한 작은 이야기가 덧대지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이 시나브로 흐르고, 우리는 세월과 인생과 술로 마음을 주고받는다.하필 금요일 오후와 밤에 포항에서 사람들과 인연과 추억과 시간을 함께한 것일까, 하는 생각에 잠시 포항을 더듬는다. 열일곱 살 고교 수학여행에서 처음으로 만난 바다는 해병대 일일 입소(入所)에서였다.짠 남새가 넘치고, 가슴에 들이닥치는 바닷바람이 그렇게 상큼할 수 없었다. 얼마나 짠지 조금 먹어본 바닷물의 맛은 여전히 기억에 있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을 연신 되풀이하면서 우리에게 담배를 권했던 까만 얼굴의 병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한다.일일 입소를 마친 이튿날 우리를 태우러 포항제철에서 15대의 버스를 해병대로 보내왔다. 고교 선배 한 분이 버스 한 대에 분승하여 포철을 돌면서 설명해주었던 놀라운 시간대가 핑, 하니 사라져간다.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 포철에 오면, 저기 서 있는 캐비닛 크기의 쇳덩어리를 주마. 얼만지 알아?! 삼백만 원이야.” 당시 고등학교 석 달 등록금은 6천 원이었다. 그런 추억을 안겨준 포항의 추억을 지난주에 새삼 돌이킨 것이다.세상의 인연은 의지만으로 엮이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처럼 누가 나에게 다가오는 게다. 그리하여 두 눈이 서로 마주치면서 인연은 시작된다. 포항의 낮은 속삭임이다.

2022-05-22

대나무꽃을 보았다

윤영대수필가 대나무가 꽃을 피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꽃을 보았다. 그것도 바로 우리 집 뒤뜰 작은 언덕에서…. 60~100년 만에 한 번 핀다는 그 ‘신비의 꽃’을 보았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다.기계 읍내를 조금 벗어난 ‘소금실’이란 한적한 마을 안쪽에 작은 집 한 채를 갖고 있다. 퇴직 후 조용히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면서 마음을 닦으려고 마련한 집인데, 봄이면 예쁜 꽃들이 피고 특히 울창한 대나무 숲은 사철 푸른 잎새의 기운을 불어주는 곳이다. 그런데 초록의 장막을 높이 두른 듯 하늘대던 대나무 숲이 작년 봄, 이맘때쯤인가 왠지 생기를 잃고 눈에 띄게 누렇게 변해갔다. 5월이면 초록색이 더 짙어 보여야 하는데 엷은 연두색이었다가 누렇게 또 갈색으로 변해갔었다. 비탈진 언덕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사군자(四君子)를 그릴 때면 힘있게 표현되는 잎들 대신에 털이 부숭숭한 모습이다.대나무는 뿌리가 땅속으로 뻗으며 번식하는 것이기에 어디서 새로운 품종이 기어들어 왔나 염려도 되고 갑자기 무슨 병이 들었나 하고 의심하며 바라만 봤다. 그런데 해가 지나고 이번 봄에도 새잎들이 돋아나지 않아서 가까이 가보니 줄기도 누렇게 말라서 모두 죽어가고 있었다. 몇 개를 베어 눕혀보니 보리가 마디마디 엉겨 붙은 듯 잎새가 이상하다. 뭘까? 하고 검색을 해보았다. 대나무꽃이라고 한다. 아! 대나무도 꽃이 피는가? 처음 듣는 이야기고 또 꽃이라면 예쁘고 올망졸망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전혀 아니다.대나무는 외떡잎식물로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목질이 단단하여 나무라고 한다. 특히 대나무가 한번 꽃을 피우면 그 줄기와 땅속뿌리가 죽고 따라서 숲 전체가 죽게 되는데, 이후 숨은 눈이 자라서 다시 죽순을 올리고 숲 회복에는 10년 이상 걸린다는 사실도 알았다, 땅속뿌리로 번식하니 씨앗이 필요 없겠지만 자연현상으로 또는 토질환경으로 영양분이 모자라서 더 자랄 수 없을 때 꽃피우고 씨앗을 퍼뜨린다는 것이라니 생존의 본능일까. 이렇듯 한 번 꽃피우고 죽기에 꽃말은 정절, 지조, 절개 등이지만 우리는 두 가지 정반대의 해석을 택하고 있다. 하나는 번식과는 무관하게 수십 년 만에 개화하여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반면에 꽃피면 한꺼번에 모두 죽어 숲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재난을 염려하는 말들도 있다. 대나무 꽃에 대한 운명의 해석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매란국죽(梅蘭菊竹) 사군자의 하나이고 온실가스 흡수량도 소나무의 약 3배이며 다양한 건강효과를 우리 몸에 준다고 하니 대나무꽃을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보자. 옛날 질병과 가뭄을 사라지게 한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전설처럼, 대나무꽃이 무리지어 노래하니 이제 코로나 역병도 사라질까. 꽃 지면 열매도 맺히리니 그 먹이 찾아 봉황도 날아오겠네.근래 전국 곳곳에 대나무꽃이 핀 소식이 들린다. 국가에도 가정에도 좋은 일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22-05-19

상식의 재건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난 25일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는 1차로 국민운동을 실천해야 되는 몇 가지 사항을 발표하였다. 우리 어린이가 꼭 알아야할 일은 ①아침·저녁 인사에 ‘재건합시다’를 불러야 되며 ②농사 돕기를 서로 권하고 ③자기 일은 자기가 하고 ④산과 들을 잘 가꾸고 ⑤푼돈을 모아 저금을 하며 ⑥교통질서를 잘 지키고, 버스나 전차에서 나이 많은 사람이나 앓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등의 운동을 일으키게 하자는 것이다.” 1961년 7월 30일 자 부산일보의 기사다. 아마도 195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기억을 할 것이다.물론 ‘재건국민운동’은 어린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운동이 아니었다, ‘재건국민운동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복지국가를 이룩하기 위하여 전 국민이 민주주의이념 아래 협동단결하고 자조자립정신으로 향토를 개발하며 새로운 생활체제를 확립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7가지 실천요강은, 용공중립사상의 배격, 내핍(耐乏)생활 실천, 근로정신 고취, 생산 및 건설의식 증진, 국민도의 앙양, 정서순화, 국민체위 향상 등이었다. 구체적인 세부항목에는 민족긍지의 앙양, 수입 내 지출, 창의력 앙양, 협동적 생산활동, 부정부패 배척, 국민단합, 전통계승 등을 담고 있었다.얼마 전 텔레비전으로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보다가 참 오랜만에 ‘재건’이라는 말을 들었다. “저는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혁명공약을 연상케 하는 이 말은 지금의 시대상황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초에 쓰였던 재건이라는 말이 지금 다시 소환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이다. 지난 9일에 퇴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짐한 여러 공약들 중에 단 한 가지만을 달성했다는 게 과반수 국민의 중론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그것이다. 그 ‘한 번도 경험하니 못한 나라’는 한마디로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나라였다. 그릇된 이념으로 경제와 외교를 망친 것도 모자라 법치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정권이었으니, 나라를 정상화한다는 의미의 재건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한 형편이다. 물론 60년 전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으니 이 시대에 필요한 재건운동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새 정권은 지나친 의욕이나 영웅심으로 대단한 업적을 이루려는 것보다는 상식을 회복하는 일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거짓과 위선, 조작과 공작, 포퓰리즘과 프로파간다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내로남불, 후안무치, 적반하장, 자화자찬이 상식인 양 횡행하는 나라를 바로 잡으려면 대통령부터 영웅이나 혁명가가 아니라 건강한 상식을 가진 진솔하고 소탈한 인품이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진정성으로 국민 앞에 서기 바란다. 잘못된 정책이나 제도를 고치는 것 못지않게 무너진 상식을 재건하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2-05-19

훈민정음 넥타이

우정구 논설위원 넥타이는 남성 정장패션의 완성이다. 특별하고 중요한 날이면 남성은 넥타이를 매야 상대에 대한 최상의 예를 갖추는 게 된다는 것이 통상의 인식이다.넥타이는 1600년대 루이 14세를 호위하기 위해 프랑스 왕궁으로 간 크로아티아 용병들이 목에 착용했던 비단 천 조각인 크라바트(cravat)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탈리아어로 넥타이를 크라바트라 부른다.당시 용병들의 목에 맨 크라바트는 전쟁에서 무사 귀환할 것을 바라는 아내와 혹은 애인이 부적처럼 목에 걸어주었던 천이다. 루이14세가 관심을 보이면서 프랑스에서는 어느덧 유행처럼 번져 옷 장식이 됐고, 영국으로 건너가서는 심플한 디자인으로 바뀌어 넥타이로 불렸다고 한다.한동훈 신임 법무장관이 취임식 날 매고 등장한 넥타이를 두고 네티즌 사이에 화제다. 깔끔한 그의 옷차림과 잘 매치된다며 넥타이 제품에 대한 품평도 이어졌다. 그가 맨 넥타이는 조선 세종 때 훈민정음으로 쓴 최초의 작품인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이 디자인된 제품이다. 시중 유사제품 가격이 9천원짜리로 알려지면서 온라인에서는 “명품 부럽지 않다”는 댓글까지 달리며 화제를 낳았다.전 정권 아래서 네 번이나 좌천당했다는 한 장관에 대한 관심은 넥타이 말고도 그의 취임식 동영상 조회에서도 입증됐다. 장관 취임식 조회 100만회는 아주 이례적이다.특정인의 넥타이 하나에도 네티즌이 열광하는 것은 온라인 문화의 특성이다. 그러나 한 장관에 대한 관심은 특정인에 대한 관심을 넘어 사회적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그의 향후 움직임에 따라 나타날 네티즌의 반응이 사뭇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5-19

아! 임을 위한 행진곡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지난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진풍경이 벌어졌다.보수와 진보세력은 물론이고 지난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까지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함께 목청높여 불렀기 때문이다. 기념식 말미에 의자에 앉아 있던 윤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윤 대통령은 양옆 참석자들과 잡은 양손을 반주에 맞춰 힘차게 아래 위로 흔들며 노래했다.윤 대통령의 왼쪽엔 박병석 국회의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박지현·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여영국 정의당 대표 등이 나란히 섰다. 이준석 대표와 박지현·윤호중 위원장, 여영국 대표는 정면을 응시한 채 주먹 쥔 오른손을 어깨높이로 들고 아래위로 흔들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종섭 국방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박진 외교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도 양손을 잡고 함께 흔들며 제창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김한길 인수위 국민통합위원장 등도 행진곡을 입모아 불렀다.과거 보수 정부에서 이 노래를 식순에서 제외하거나 참석자가 다 함께 부르는 제창 대신 합창단 합창으로 대체하던 것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었다.‘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1년 백기완 시인의 시 ‘묏비나리’를 소설가 황석영이 다듬어 가사로 만들었고,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전남대학생 김종률이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전남도청에서 숨진 윤상원과 1979년 겨울 노동 현장에서 들불야학의 선생으로 일하다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작곡한 민중가요다.80년대 대학을 다녔던 필자 역시 시위·집회때면 ‘애국가’인 것 마냥 목청높여 불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되는 가사는 당시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서 민주화를 주장하는 대학생들의 애국심을 한껏 고양시키곤 했다.그래서였을게다. 80년대 금지곡으로 지정됐던 이 노래는 ‘불법 테이프’를 통해 널리 퍼졌고, 2000년대 이후에는 촛불집회를 비롯한 대중 집회에서 널리 불렸다.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른 것은 5·18정신을 헌법가치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혔다. 국민통합을 위해 바람직한 행보다.다만 일각에서는 5·18민주화 운동 당시 군부정권의 지시에 따라 진압에 나섰다가 숨진 군인과 경찰들이 학살자로 매도되선 안 되며, 이 문제에 대한 재조명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멀고 험한 통합의 길을 열고 있다.

2022-05-19

내 가슴이 뛰니 숭어도 뛰고

정미영 수필가 봄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순천만으로 향했다. 차창 넘어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여행의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여행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 마음은 끊임없이 너울댔다.상춘객들이 많아 예정보다 한 시간쯤 더 걸려 광양에 다다랐다.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가까운 음식점으로 찾아들었다.메뉴는 그 유명한 광양불고기였다. 불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여행지에서의 들뜬 기분 때문이었을까,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고기가 살살 녹아내렸다. 색다른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여행의 멋이지만, 그 고장의 음식을 맛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리라.남편은 반주로 지역 특산품인 매실동동주를 곁들였다. 매실동동주는 섬진강변의 매화향이 빚어낸 술이라고 한다. 섬진강변의 매화. 봄이면 매화축제로 강 마을이 온통 떠들썩하다는 그 꽃! 봄바람에 하르르 흩어지던 꽃잎이 술잔에 아른거렸다. 나도 운전을 하지 않았다면 한 잔의 유혹에 빠졌으리라.드디어 순천으로 향했다. 순천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라는 문구가 먼저 눈에 띄었다. 어찌 사람뿐이겠는가. 맑은 하늘 아래 살랑살랑 흔들리는 초록나무의 몸짓 또한 아름다웠다. 드디어 대대포구에 도착했다. 자연이 만든 생명의 정원에 도착하니, 나도 모르게 야호 소리가 나왔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갈대밭의 풍경이 장엄했다. 갯바람에 물결치는 갈대밭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구의 갈대밭 저편에는 칠면초 군락지도 들어서 있었다. 계절마다 색색의 옷을 갈아입는 칠면초는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내 눈이 호사하는 순간이었다.갈대밭을 한 바퀴 돌아보기 위해 배를 탔다. 갯벌에는 새들이 군데군데 무리지어 앉아 있었다. 갯벌에 내리쬐는 햇볕을 즐기는 듯 갈대들의 수런거림에 귀를 기울이는 듯. 잘 보전된 갈대 군락은 새들에게 은신처, 먹이를 제공하여 철새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국제보호조인 흑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와 같은 조류 외에도 저어새, 황새, 흑부리오리, 민물도요 등이 서식하고 있단다.그때 갑자기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새떼가 아니라 나비 떼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 아름다운 비상(飛上)! 역동적인 몸짓이 황홀했다.물살을 가르며 배는 신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 배 뒷머리에 있던 남편이 소리쳤다.“물고기가 날아올랐다!”이게 무슨 소리인가. 뒤돌아보니 숭어였다. 장정 팔뚝만한 숭어가 배 안에서 펄떡거렸다. 숭어도 물속에서 내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을까? 여행의 기쁨으로 내 가슴이 뛰니 숭어도 덩달아 뛰어올랐는가? 숭어가 힘이 좋아 간간히 그렇게 뛰어든다며 선장은 우리에게 숭어를 선물로 주었다. 갑자기 우리에게 뛰어든 숭어는 이번 여행의 느낌표였다. 아주 크고, 아주 힘찬 느낌표….여유롭게 흐르던 물결 위로 햇살이 저물었다. 갈대밭 틈새로 땅거미가 내려앉자, 갈대도 물빛도 변했다. 장소에 따라 감흥도 달리하는 법이다.이번에는 마치 내가 순천만 갈대라도 된 것처럼 석양의 붉은 노을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 수 있도록 두 팔을 힘껏 벌렸다. 감동의 전율이 흘렀다. 물아일체가 이런 것이던가.저녁 식사로 재첩국을 먹었다. 가마솥에서 뽀얗게 우러난 재첩국물이 식욕을 돋게 했다. 숟가락 대신 대접을 들고 후후 불어 한 모금 마시니 담백하고 시원했다. 그 맛 그대로 집에 가져가고 싶어 포장을 부탁했더니, 인심 좋게 몇 국자 더 넣어주셨다. 사장님의 정까지 더해진 뜨거운 국물에 가슴까지 훈훈해졌다.여행은 삶을 따뜻하게 해준다. 혼자만의 여행도 좋지만, 나는 가족끼리의 여행을 좋아한다. 같은 추억을 만들어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다. 이번 순천만 여행은 다른 날보다 기대 이상으로 큰 수확이었다. 내 마음밭이 순천만의 갈대밭처럼 넓어진 느낌이었다.

2022-05-18

‘해양레저스포츠’, 도약의 시대가 열리다

보트쇼(Boatshow) 시대가 개막했다. 올해 3월 ‘경기국제보트쇼’가 열린 후 지난 달 ‘부산국제보트쇼’까지 이어지면서 해양레저시대의 부흥을 예고했다.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린 경기국제보터쇼에는 3일간, 5만 5천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아시아 3대 보트쇼’로 불리는 경기국제보트쇼는 정부 주최 전시회 중 최초로 국제전시연맹(UFI) 인증을 획득한, 한국 대표 보트쇼다. 올해는 한국낚시박람회와 동시 개최로 취미낚시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부산에서 열린 보트쇼에서는 전시관람과 현장체험행사가 동시에 진행됐다. 해양레저인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춰, APEC 나루공원의 수영강변에서 무료 보트투어가 열렸다. 업체관계자들의 비즈니스 공간에서 벗어나 해양레저관광의 저변을 확대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부산국제보트쇼 역시 관람객들의 높은 참여로 마리나 일대는 북적이는 인파로 성황을 이뤘다.소득 3만 불 시대가 열린 이후 해양레저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레저보트(동력수상레저기구) 등록대수는 2007년 2천400여 척에서 2020년 3만대를 기록했다. 레저보트 조종면허를 취득하려는 이들도 급증해, 2020년 신규로 면허를 획득한 인원만 2만 명에 달했다. 모터보트와 요트, 카약과 서프보드 등 기구 역시 다양하다. 많은 이들이 수상레저활동을 위해 바다로 향하고 있는 셈이다.수상레저활동 중 으뜸은 서핑이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 서핑 붐이 일면서 여름철 해수욕장 등을 중심으로 서핑객이 몰리고 있다. 부산광역시와 부산관광공사가 실시한 해양레저 체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체험객의 30%가 서핑을 즐기며 요트와 워터플레이그라운드, 패들보드가 그 뒤를 이었다. 체험객 중 60%이상이 20,30대이며 40대가 17%, 10대 이하가 12%를 차지했다. ‘혼자’, ‘수시로’ 즐긴다는 응답도 높았다. 코로나 이후 단체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나타난 현상이다.다만 이 같은 우리의 해양레저활동은 외국의 사례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과거에 비해 늘긴 했지만 수상레저활동을 즐기는 인구는 전체의 16%에 불과하다. 레저선박 1척당 인구비중도 1천788명에 달한다. 이는 미국 25명과 일본 444명과 비교해 낮은 수준으로, 해양레저보다는 해양관광에 방점이 찍힌 결과로 보인다. 우리의 레저문화가 해수욕과 해변경관 감상, 수산물 시식 등으로 아직은 체험활동보다는 관광에 머물러 있다는 방증이다. 소득 3만 불 시대를 열었지만 일상의 문화로까지는 스며들지 못했다.해양사고도 해양레저활동 저변이 확대되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사실 육상과 달리 수상레저는 역동적인 만큼 사고위험이 높다. 구명조끼착용 의무화와 구명뗏목 사용법 익히기 등의 해양사고예방법이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다. 해양레저인 사이에도 아찔한 순간의 경험담이 심심찮게 들린다. 요트 등 레저보트와 일반선 사이의 충돌 위험이 대표적이다. 세일링 요트의 경우 동력이 약해 바람이 강하게 불거나 너울성 파도가 치면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요트가 부산항 인근까지 표류해 항만청 소속 직원의 경고를 들어야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1만5천 TEU 상선의 압도적인 크기에 놀라고, 그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요트체험을 마쳤지만 위험의 공포는 육상과는 결이 달랐다.실제 레저선박의 사고발생률도 증가 추세다. 2016년 543건이었던 사고 건수는 2020년 923건으로 늘었다. 사상자 역시 5년간 253명을 기록했다. 레저선박의 등록대수와 해양사고발생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큰 폭의 변화는 아니지만 절대 적은 수치도 아니다. 더욱이 인적과실이 대부분의 원인이라 해양레저인들의 해양사고 예방교육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정현미작가 코로나 팬데믹의 종식으로 해양레저활동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움츠러들었던 여행·관광 수요가 폭발해 산과 들, 바다로 인파가 몰린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발표한 ‘휴양과 레저, 문화가 공존하는 마리나’보고서는 코로나 이후 일상이 된 거리두기가 해양레저활동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부산관광공사가 체험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혼자’,‘수시로’ 즐긴다는 분석과 맥을 같이 한다.곧 시원한 물줄기를 가르며 해양레저를 즐기는 계절이 올 것이다. 몇 년 째 폐장을 결정했던 해수욕장들도 올해는 미리 분주하게 관광객 맞이에 나서고 있다. 레저 활동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호모 루덴스(유희적인 인간)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체험에 나서는 호모 루덴스는 실제 다양한 창작품을 낳았다. 많은 이들이 해양레저활동에 나서는 근저에는 아마도 호모 루덴스의 에너지를 품고 있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코로나에 막혀 있었던 루덴스의 에너지가 올해는 마음껏 분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22-05-18

이해의 선물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최근 어린이를 비하하는 듯한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미숙한 초보자를 지칭하는 ‘~린이’라는 말을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주식 초보자는 ‘주린이’, 요리 입문자는 ‘요린이’ 등으로 부르는 식이다.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잼민이’로 폄하하기도 한다. 올해로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았지만 어린이에 대한 인식은 나아진 것이 없는 듯하다.1923년의 첫 번째 어린이날에 방정환 선생은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 그의 목소리는 백 년이 지난 지금의 어른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독립된 인격체인 아동을 ‘~린이’와 같이 비하하는 것에 대해 개선 의견을 낸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우리는 양성평등의 시각을 강조할 때 ‘성인지 감수성’이란 말을 사용한다. 친환경적인 관점을 나타낼 때는 ‘생태 감수성’이란 용어를 쓴다. 그렇다면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하기 위해서 ‘동심 감수성’이라는 말을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채널A에서 방영되고 있는 육아 예능 프로그램인 ‘금쪽같은 내 새끼’는 동심 감수성으로 많은 가정에 힐링을 주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오은영 박사는 아동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서 눈높이 상담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미혼인 2030세대에게도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불안정했던 유년기에 부모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금쪽이 스토리’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치유받고 있는 것이다.미국의 아동문학가인 폴 빌라드는 ‘이해의 선물’이란 단편소설에서 동심 감수성을 잘 보여주었다. 이 소설에서 어린 주인공인 ‘나’는 버찌씨 여섯 개로 사탕을 사려고 한다. 사탕 가게 주인인 위그든 씨는 사탕을 공짜로 주고 2센트의 거스름돈까지 내준다. 돈의 개념을 모르는 순진한 동심이 무안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어른이 되어 열대어 가게를 차린 주인공은 동전 몇 개를 내밀면서 값비싼 열대어를 주문하는 어린 남매를 만난다. 주인공은 위그든 씨가 물려준 유산을 떠올리며 2센트의 거스름돈과 함께 열대어를 남매에게 선물한다. 기억에 저장되어 있던 이해의 선물이 현재로 소환된 것이다.금년은 어린이날 100주년과 함께 성년의 날 50주년을 함께 맞은 뜻깊은 해이다. 성년의 날은 성숙한 사회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 주기 위해 1973년에 제정되었는데, 1985년부터 오월 셋째 월요일에 기념하고 있다. 성년이 된 청년들이 저마다 이해의 선물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갖고 있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건강할까 생각해 본다.이해의 선물은 부모나 스승이 주기도 하지만, 소설에서처럼 ‘누구나’ 베풀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이해와 배려를 청소년기에 한 번이라도 경험했느냐일 것이다. 이해의 선물은 받아 본 사람이 다시 전해 줄 수 있는 속성을 갖고 있다. 어린 세대에게 평생 간직할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기성세대의 고민이 깊어지는 오월이다.

2022-05-18

MZ세대에서 베이비붐 세대로

김규인수필가 “필요 없는 것을 왜 사?”제주에 사는 딸아이가 장 보러 가서 하는 말이다. 딸아이의 살림살이는 간단하다. 가구고 생필품이고 필요한 것만 산다. 그래서인지 필요한 것만 갖춘 아이의 단출한 살림살이와 수십 년 묵어 창고마다 가득한 나의 것은 비교가 된다. 밀레니얼(M) 세대인 딸아이는 컴퓨터에 익숙하다. 놀이기구를 즐겨 타고 혼자 해외여행을 떠나고 활동적으로 취미생활하고 책을 읽고 글도 쓴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을 싫어하고, 공정하지 못한 일에는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SNS를 즐겨하고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산다.세컨슈머는 ‘제2의(second)’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다. 현재의 편리함보다는 지속 가능한 삶에 초점을 맞추는 소비자를 뜻한다. 소유보다는 공유에 관심이 많고 중고 거래로 저렴하게 물건을 산다. 중고 물건을 거래하는 당근이나 중고나라의 성장을 이끄는 것도 MZ세대가 중심이 된 세컨슈머다. 투자에도 관심이 많아 중고 거래를 통해 재테크를 한다. 불필요한 물건은 버리지 않고 내다 판다. 포장한 빈 박스도 팔 것을 염두에 두고 모아 둔다. 싸게 물건을 구매하여 중고 거래 플랫폼에 올려 되파는 리셀이 성행한다. 그들의 영향으로 중고 거래 시장을 이용하는 연령층도 어린 학생들에서 60대 이상으로 그 폭이 넓어진다.코로나19로 일회용품의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일회용품 배달을 위해 택배가 활성화된다. 늘어난 쓰레기는 연료로 쓰는 것은 태우고 나머지는 쓰레기 매립지를 메운다. 재활용 비중은 너무나 낮다. 쓰레기가 냇가를 덮고 강을 덮더니 태평양 한가운데에 플라스틱 섬을 이룬다. 사람의 손만 닿으면 자연은 어김없이 파괴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쓰레기 산이 국토를 잠식하고 있다. 매년 쏟아지는 쓰레기를 받아내느라 악취를 풍기면서도 사람들의 요구에 자연은 말없이 따른다. 이제는 자연 보전을 위한 사람들의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활동도 늘어난다.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이 그러하고 스킨 스쿠버들의 수중 정화와 집 주위를 청소하는 착한 비질이 그러하고 자신의 쓰레기는 되가져오는 작은 손길이 늘어난다. 게다가 세계적인 비영리 환경보전기관(WWF) 활동은 활발하다.누군가는 이러한 노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끌어주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의견을 모으고 건강한 환경보호 정책을 실행하고 언론은 부족한 부분을 계속 긁으며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은 환경보호에 동참하며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 자가용을 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물을 아껴 쓰고 요리할 때는 뚜껑을 닫고 육식보다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한다. 재활용이 가능한 포장재는 반납하고 중고나 재활용품의 사용을 폭넓게 늘려야 한다. MZ세대에서 시작한 작은 실천이 X세대를 거쳐 베이비붐 세대로 지속 가능한 활동으로 이어가야 한다.

2022-05-18

교육과 폭력이 한 자리에 있다니!

장규열 한동대 교수 학교에는 늘 폭력이 넘실거렸다. 선후배 질서를 잡겠다는 선배들의 주먹은 공포 그 자체였다. 불량기로 가득한 폭력집단들이 학교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학교폭력이 넘실대는 가운데 학교는 언제나 위기의 연속이었다. 동급생이 폭력배가 되고 교실 안팎이 격투장이 되는 학교에서 온당한 교육은 불가능하였다. 폭력도 일상이려니 받아들이는 학교는 배움보다 공포로 가득하였다.그런 세상이 달라졌는가 했더니, 학교폭력은 아직도 위세를 부리며 우리 곁에 똬리를 튼다.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디지털 세상에서 만나는 사이버폭력은 지능적인 강도가 오히려 높아 피해학생들의 고통이 극심하다. 정신적으로 가해지는 언어폭력과 집단광기가 춤을 추는 조직폭력마저 교육현장을 어지럽힌다.학교폭력은 당하는 피해자에게 평생을 두고 고통과 여파의 그늘을 남긴다. 가해자는 가맣게 잊어버린 기억을 피해자는 생생하게 간직하며 힘들게 지낸다. 충격과 억압의 경험은 남들을 향한 보복행태를 빚어 사회적 악영향으로 번지기도 한다. 장난으로 시작하여 거대폭력으로 이어졌던 도미노현상이 학교폭력에서 비롯되었다는 기사도 보지 않았던가. 피해자들의 건강한 일상을 회복하고 가해행태는 뿌리부터 막아내는 사회적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학교다운 학교가 세워지기 위하여 학교폭력부터 제거해야 한다. 연예계와 체육계에 번지는 ‘학폭미투’는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학교폭력의 뼈저린 뒷모습을 보여준다. 수도권 문화계와 지역의 관련단체들이 ‘학교폭력방지를 위한 캠페인’에 나서기도 한다.피해자들과 가족들을 위로하고 회복을 돕는 이들이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를 만들었다. 지역에서 보다 적극적인 도움의 손길을 펼치기 위해 ‘포항경북센터’가 문을 연다고 한다. ‘우리아이행복프로젝트 지역센터’로 포항에 터를 잡아 학교폭력의 어두움을 거두어 내고 평화로운 학교를 가꾸어가도록 마음을 모은다. 지역의 대학생들로 구성한 ‘멘토들’이 피해학생들을 손수 만나서 함께 어려움을 걷어낸다. 가족들이 함께 겪는 답답함과 억울함은 유경험자 위로상담가들이 적극 위로하고 극복하도록 이끈다. 힐링가족캠프와 치유서비스를 제공하며 학교폭력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빠르게 회복하도록 격려한다. 피해부모 커뮤니티도 조성하여 스스로 일어나는 노력을 지원한다. 교육부의 지원을 토대로 벌어지는 모든 서비스는 모두 무료로 진행된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지역 간 협력시스템마저 구축했다.아이들이 행복해야 한다. 학교가 평화로와야 한다. 교육에 폭력이 깃드는 순간, 모든 수고는 물거품이 된다. 배움이 가득할 학교에 억울한 짓눌림이 사라져야 한다. 이미 벌어진 폭력은 지체없이 제거되어야 한다. 입은 피해로부터 조속히 회복하도록 도와야 하고 함께 신음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해야 한다. 지역에 센터가 설정되어 한결 기대를 높인다. 학교폭력이 사라지고 행복한 학교를 일으켜야 한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다. 폭력이 사라져야 학교가 산다.

2022-05-18

키오스크와 ‘디지털 디바이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코로나 여파로 인해 비대면서비스가 당연시되면서 각종 매장, 상업시설에서 키오스크의 등장과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디지털 디바이드’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디지털 디바이드’는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처음 사용하게 된 용어로, PC와 휴대폰의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시대에 나타난 계층간 정보격차 현상을 가리킨다. 주로 고령층의 노인들이 디지털 기기 조작 미숙으로 정보격차를 느끼며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에 직면하게 된다.특히 웬만한 식당이나 매장에 설치된 키오스크는 이런 정보격차 현상을 피부에 와닿게 한다. 말로 하는 주문이 익숙한 50대 장년층 이상에게 키오스크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자칫 우물쭈물하다가는 타인에게 민폐를 끼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일부 고연령층은 주문을 하지 못한 채 다시 줄의 맨 뒤로 가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경우도 있다. SNS에서도 키오스크 사용에 애를 먹었다는 내용의 글들이 부쩍 늘었다. 어떤 이는 “어머니가 ‘내가 이제 햄버거도 혼자 못살 정도로 나이가 들었나?’라고 속상해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토로했다.실제로 국내 민간분야 키오스크 운영수는 2019년 8천587대에서 지난 해 2만6천574대로 3배 넘게 증가했다. 그만큼 언택트 바람을 탄 키오스크 도입은 대세가 된 셈이다. 이에 따라 접근성이 좋은 주민센터 등에 키오스크를 설치하고, 정기적인 교육을 늘리는 등 지자체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가 고령층을 대상으로 디지털 교육을 실시해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건 당연하다. 문명발달에 따른 소외현상은 현대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정보격차 역시 마찬가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5-18

한동훈 인사청문회의 효능(?)

음식점 벽면에 ‘○○의 효능’이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는 걸 자주 본다.보양식으로 알려진 흑염소나 삼계탕, 장어를 파는 집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순대국밥집에는 ‘순대의 효능’, 삼겹살집에는 ‘돼지고기의 효능’, 족발집에는 ‘족발의 효능’이 붙어 있다. 대개 기력을 보충하고, 위장을 따뜻하게 하며, 피부미용에 좋다는 상투적인 얘기들이다.음식점뿐만 아니다. 사우나나 찜질방에 가면 ‘황토방의 효능’, ‘해수 목욕의 효능’, 심지어 ‘세신의 효능’도 있다. 산림욕장 입구에는 ‘산림욕의 효능’, ‘맨발 걷기의 효능’이 있고, 헬스클럽에는 ‘피트니스의 효능’이, 지하철 계단에는 ‘계단 오르기의 효능’이 있다.이쯤 되면 그야말로 ‘효능의 민족’이 아닌가 싶다. 몸에 좋다더라, 어디에 효과가 있다더라 하면 사람들은 관심을 보인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효능’들이 태어나고 있다.하도 효능, 효능 하니까 궁금해서 검색해봤다. 과연 이런 것들도 효능이 있을까?햄버거의 효능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칼슘이 고루 들어 있어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고, 피자의 효능은 “암 발생 억제 효과가 뛰어나고, 피부미용과 다이어트에 좋으며, 영양학적으로 완벽하다”는 것이다. 떡볶이는 “위장 건강을 개선하고 소화를 촉진”하고, 비엔나 소시지는 “당질의 대사를 도와 에너지를 만들어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고, 판토텐산 성분이 동맥경화와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준”다. 콜라는 “위장의 산성도를 낮추어 위장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라면에는 “신경통, 관절염, 편두통, 난청, 야뇨증, 변비, 만성피로를 예방하고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며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몸에 좋은 음식들을 왜 정크 푸드라 불러온 걸까? 저 휘황찬란한 효능들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햄버거, 피자, 떡볶이, 소시지, 콜라, 라면에게 사과해야 한다.이쯤 되니 호기심이 더 깊어진다. 소주의 효능은 다음과 같다.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대변을 굳게 하며, 기생충을 없애주고, 뭉친 것을 흩어주며, 가래를 삭히고, 습한 것을 말리고, 한기를 없애준다” 그럴듯하다. 담배의 효능도 있다. “구강 점막을 경화시키며 궤양 점막을 유발하는 입안 세균을 사멸시켜 구내염을 예방한다”고 누군가 적어놨다. 심지어 코인노래방의 효능도 있다. “피부가 탱탱해진다, 여자는 S라인이 되고 남자는 정력이 좋아진다, 칼로리 소모로 살이 빠진다, 우울증이 해소되고 얼굴이 동안이 된다, 득음이 가능하다, 연예기획사에 캐스팅될 수 있다, 남녀가 함께 들어갈 시 ‘썸’을 탈 확률이 높아진다” 등이다. 효능에 미친 ‘효능 공화국’을 유쾌하게 풍자한 것이다.세상 모든 것은 저마다의 존재목적과 가치를 갖는다는 범우주론적 믿음이 수많은 ‘○○의 효능’들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나는 얼마 전 ‘인사청문회의 효능’을 제대로 체험했다. 정치 혐오론자, 정치 회의론자인 내가 정치인들 덕분에 웃은 것이다. 웃음에는 “코티솔 수준을 낮추고 면역계를 촉진하여 스트레스에 의한 면역억제 작용을 상쇄하고, 카테콜아민이나 엔도르핀처럼 사람들을 활기차고 건강하게 하는 물질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인사 검증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최강욱, 이수진 의원이 보여준 ‘개그 콘서트’가 많은 이들을 웃겼으니, 감사하다. 국민들을 활기차고 건강하게 만들어준 게 아닌가. 이들은 각각 ‘이모 교수’를 엄마의 자매인 이모로 오해하고, ‘한국3M’이 한동훈 후보자의 딸이라 억지 부리고, 술에 취한 듯 고성을 버럭버럭 질러댔다. 오해, 억지, 고성에는 어떤 효능이 있는지 궁금하다.웃음에 효능이 있다지만 쓴웃음에는 아무런 효능도 없을 것이다. 인사청문회를 보다가 결국 쓴웃음을 짓게 됐다. 쓴 약이 몸에 좋다던데, 쓴웃음도 쓸 데가 있지 않을까? 대통령 뽑은 게 엊그제인데 며칠 뒤면 또 선거다. 선거에는 어떤 효능이 있기에 저토록 공천에 매달리고 당선되려 사력을 다하는 걸까? 나에게 있어 선거의 유일한 효능은 공휴일이라는 점이다. 아침 일찍 그나마 덜 웃기는 사람한테 투표하고 낚시나 다녀와야겠다. 낚시에는 스트레스 해소, 체력증진, 제철생선 섭취 등의 효능이 있다.

2022-05-17

아주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집 주변 조금만 돌아다녀도 노숙자를 흔히 만난다.몇몇 분들은 낯이 익기도 하다. 그들은 거대한 쓰레기봉투나 낡은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안에 잡다한 물건을 넣어 다닌다. 끌고 다니기 버거울 정도로 물건이 충분해 보이는 데도 혹시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쓰레기통을 하염없이 뒤적인다. 그렇게 쓰레기통을 헤집다가 일과를 끝낸 듯 또다시 벤치에 앉아 멍하니 세상과 멀어진다. 두 눈이 텅 빈 채 묵묵히 앉아 있는데도 이상하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인다.나 포함해서 사람들은 그들을 배경의 일부처럼 여기고 지나친다.눈에 자꾸 밟히고 마음에 걸리는 것도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선뜻 도와주기엔 무섭다. 내 도움이 오히려 우스워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과 사실 내가 죄책감처럼 여기는 이 감정이 감히 누군갈 딱히 여기려는 가식이나 거짓일까 두렵기 때문이다.하지만 한 번 마음이 쓰이니 계속 외면만 할 수 없었다. 점점 거리에 앉아 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갑에 있는 현금을 끌어 모아 주기엔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고, 또한 이 낯설고도 불편한 감정을 너무 쉽게 해결해버리는 것 같아 싫었다. 게다가 거리에 놓인 이들을 대하는 이 알 수 없는 이질감을 위선이나 가벼운 동정이라 간단히 치부하고 싶지 않았다.혹시 도움의 손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까 싶어 인터넷에서 몇 번 검색하고 여러 단체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눈길이 머무는 곳이 한 곳 있었다. 그곳은 일주일에 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방문하는 이들에게 어떠한 조건 없이 음식을 대접하는 곳이었다. 2003년 4월부터 문을 열어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는데, 간판은 아주 작아 지나치기 쉽고 위치 또한 찾기 어려운 곳인데도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게다가 신기하게 식사를 하기 위한 줄을 서지도 않는다. 기다리면 언젠가 자신 차례가 되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방문하는 이들을 환대하며 식구라 부르는데 누군가 입을 열어 말을 꺼내면 그 이야기를 듣고 필요 물품을 제공한다. 옷, 신발, 핫팩, 찜질방권을 주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의지가 있다면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기도 한다.어떠한 조건이나 대가 없이 그들에게 내어주면서 정부 지원이나 예산을 위한 프로그램 공모, 후원회 조직은 일절 받지 않는다.특히나 생색내는 기부자나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돈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거절한다. 그러면서 늘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다. 그래서일까. 매년 개인 후원자나 기부금이 끊이질 않는다. 자원봉사하러 오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그곳의 기록이 담긴 블로그 글을 읽으며 나는 노숙자들의 딱한 상황을 불쌍히 여기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듣고 싶었다는 걸 확신했다.텅 빈 눈으로 시간을 견디던 그들은 사실 그 누구보다 삶을 살아내고 싶은 바람이 있었으며, 배경을 이루는 npc가 아닌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니 안심되었다.거리에 앉은 이들의 생애는 가늠할 수 없이 아득하고 복잡한 이야기였고, 현대사회 어느 한 곳에선 선의를 행하고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번 기부가 의미 있게 다가 왔다.세상은 내가 보는 것만큼 결코 단순하고 온전하지 않음을 알았으니 더욱 과감히 시선을 넓히고 행동해야 겠단 생각을 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또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었다.너무 잡다한 물건, 너무 많은 욕심, 너무 많은 회피와 주저함, 나를 괴로움으로 내모는 물건은 전부 버리고 포장도 뜯지 않는 이불이나 컵라면 박스는 택배 박스에 담아 문 밖에 내놓았다.필요한 곳에서 딱 필요한 만큼의 나눔을 담으며.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향하니 그제야 편했다.기부는 내가 가진 것의 전부를 주는 희생도 아니고 여유가 있을 때에 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주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목적이나 대가 없이 나누며 줄 수 있는 것에 기쁨을 찾아야겠단 생각을 오래 했다.

2022-05-17

예측가능과 희망의 사회를

이명균창원대 명예교수 이탈리아의 대문호 단테(Dante Alighieri)는 그의 대표작 ‘신곡’(La Divina Commedia)의 ‘지옥편’에서 지옥의 입구 문에는 “여기 들어오는 자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라는 문구가 있다고 묘사한다. 이는 단테가 내리는 ‘지옥’의 정의는 인간에게 ‘희망이 없는 곳’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한국행정연구원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년 5명 중 1명이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 한다’고 생각하며 사회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됨으로써 좌절감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청년들 20%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지 못함과 동시에 사회를 불신한다는 뜻이다. 한편 사업이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요사이는 무엇을 해도 되는 일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사회든 가정이든 미래의 예측이 가능하고 그에 따른 노력으로 희망이 보일 경우엔 현재가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딜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고난에서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굳게 각오한다면 오히려 용기와 힘이 생기게 마련이며 그것을 이겨내고 뜻이 이루어지면 성취감과 함께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 앞이 보이지 않고 변화나 개선의 희망이 없다면 용기도 의욕도 생기지 않은 채 늘 불안하고 괴로워 지옥 같은 삶이 될 것이다.새 정부는 국민들로 하여금 지금은 비록 고생스러워도, 앞날에 대해 예측이 가능한 사회가 되게 해주기 바란다. 코로나 상황까지 겹쳐 그동안 많은 국민들이 힘들었다 해서 당장 전시효과를 내기 위해 퍼주기 식 같은 선심정책을 펴지 말고 국민들 각자가 자기 나름의 계획에 따라 열심히 노력하면 나아진다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국정을 이끌어주길 바란다.옛날을 돌이켜보면 정부가 하는 일들에 떳떳치 못하거나 국정운영에 자신이 없을 땐 얄팍한 이벤트성 정책들을 내걸어 과오나 약점을 가리면서 국민들의 환심을 사려 한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권의 허점을 덮거나 특정 집단만을 의식하며 전시효과 정책을 이용하는 약한 정부가 돼선 안 된다. 정부는 국가 장래를 생각하며 국민들을 옳은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이끌어가되 일부 유권자들에게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선거기간 중에 내건 공약들 가운데 타당성이나 합리성이 떨어지는 사항들이 있다면 약속을 지키겠다는 생각보다는, 다소의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국민들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설득하는 용기로 국정을 효율적으로 바로 이끌어야 한다. 당시엔 상대 경쟁자를 의식하여 꺼낸 무리한 공약들이 있었다면 약속에 대한 책임을 꼭 지키겠다는 오기를 부려서도 안 되며 또한 지켜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져서도 안 될 것이다. 정책의 실용성과 필요성에 대해 설득하고 이해시켜서 국민들이 믿고 따르게 하는 것도 정부역량의 중요한 몫이다. 새 정부가 다 할 수 있고 다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상식과 공정의 원칙이 사회전반에 정착되고 일반화되게 하여 성실한 국민들이 희망을 가지고 노력할 의욕이 생기게 해주길 바란다.

2022-05-17

포도나무 소천하다

조현태수필가 오늘은 재미난 이웃 친구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친구가 정년퇴직을 하여 이태 전부터 놀고 있다. 아직 농사철은 이르고 하여 시간 보내기가 어중간한 모양이다. 수시로 집에 찾아오는데 마땅히 대접할 음식이 없으니 쉬운 대로 봉지커피를 마시고는 했다. 그런데 오늘은 봉지커피 백 개 들이 한 통을 사들고 왔다. 자꾸 얻어 마시기가 미안했나보다. 내 입장에서는 자주 찾아오는 친구가 반가울 뿐인데 왜 미안해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가져온 커피니 두루 나눠 마시겠지만 사람 귀한 농촌에 자주 보는 것만도 고마우니 이러지 말자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커피 물을 끓였다.하던 일이란 어제 뜯어온 산나물을 손질하는 일이었다. 퇴직 친구(이하 퇴직)가 산나물은 어디서 났느냐고 묻기에 택시 친구(이하 택시)랑 죽장 가서 뜯어왔노라고 했다. 택시의 비번 날이라 소풍 겸 산속을 두루 다녔다고 설명했다. 옛날부터 퇴직과 택시가 유난히 친하게 지내는 사이었다. 그런데 퇴직에게는 언급도 하지 않고 나를 불러 같이 다녀왔으니 심통이 났나 보았다. 입술을 약간 실룩거리더니 택시에게 전화를 했다. 다짜고짜 퉁명스러운 말투로 나무라기 시작했다.“현태 집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돈만 벌고 다니면 되겠나? 에라 이 인정도 의리도 없는 놈아” 괴상한 소리에 황당해진 택시가 반문했다. 어제 종일 같이 있어도 아무런 낌새조차 없었는데 무슨 희한한 소리냐고 하자 퇴직이 다시 다그쳤다.“내가 지금 기계에 와 있는데 현태 집에 문상 가야 하니 나 좀 태워다 주라” 그 시각이 점심때쯤 됐다. 안강에서 기계로 가려면 우리 집 주변을 지나게 되므로 택시가 우리 집에 먼저 왔다. 어제까지 멀쩡했는데 무슨 변고냐 싶어 상황파악 차 온 모양이었다. 그러나 퇴직은 나와 방에 앉아 한가롭게 커피나 마시고 있으니 그제야 속은 줄 알고 웃으며 삿대질을 했다. 의리고 인정이고 간에 커피 마시며 노닥거리는 문상도 있느냐고 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퇴직이 기다렸다는듯 표정을 굳히며 일갈했다. ‘포도나무가 소천 했으니 문상해야지’실상은 문상에 관한 화두가 따로 있었다. 우리 집 마당 가장자리로 나무를 심었었다. 감나무, 대추나무, 엄나무, 포도나무 등등. 그런데 포도나무 두 그루 중에 한 그루가 죽었다. 작년에도 포도를 많이 따 먹었는데 올 봄에 싹을 내지 못하고 말라버렸다.그러니까 퇴직이 택시를 불러서 점심이라도 같이 먹고 싶은데 마땅한 구실이 없나 생각하다가 문상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포도나무 문상으로 치면 내가 상주 격이다. 그러니 두 친구와의 점심값은 상주인 내가 지불해야지 했다. 거기다가 퇴직은 스스로 점심을 사고 싶어서 일부러 일을 꾸몄다. 또한 택시는 아직 돈벌이를 하고 있으니 점심을 사야 한다고 서로 우겼다서로 보고 싶고,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이 지내고 싶은 애틋한 인간관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런 관계였으면 좋겠다.

2022-05-17

노잼 선거

우정구 논설위원 노잼은 no+재미의 뜻으로 재미없다는 말의 신조어다. 반대말로 예스잼이나 꿀잼, 유잼이 있다.다음 달 1일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무투표로 당선되는 후보가 전국적으로 496명이나 된다. 전체 등록후보 7천616명의 6.5% 수준이다. 최근 20년 이래 가장 많은 무투표 당선자가 나와 비판 여론이 거세다. 특히 대구와 경북, 광주와 호남지역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집중 몰려 눈총을 받고 있다.두 지역 다 특정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곳이다. 광역의원의 경우 전체 의원 수 가운데 대구는 69%, 경북은 31%가 무투표 당선자다. 광주는 55%, 전남은 47%가 무혈입성한다고 하니 선출 없는 선출직의 대거 탄생이란 말이 맞다.우리나라 공직선거법 275조에 따르면 무투표 당선이 되면 후보 신분은 유지하나 선거기간 동안 선거운동을 못한다. 선거가 끝나면 바로 당선이 확정되는 것이다.투표를 해야 하는 유권자 입장에서는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모양새이니 선거 재미가 없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를 노잼 선거라 부른다.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투표 당선자가 선거운동을 못하니 후보자의 공약이나 자질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특정정당에서 자기 사람을 심거나 줄을 세우고 계파정치 행세를 할 소지가 커 선거가 왜곡될 수 있다.지역의 일꾼을 뽑아야 할 지방선거 본래의 의미가 훼손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방자치 발전의 독이 될 가능성도 있다. 특정정당에 대한 편향성이 낳은 부작용이기도 하지만 우리 정치의 후진적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등 지방선거 전반에 대한 혁신적 변화가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5-17

사회통합의 敵은 ‘반지성주의’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가 국내적으로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반지성주의”라고 언급했다. 일부 언론에서 ‘반지성주의라는 낯선 단어가 불쑥 등장했다’고 빈정댔지만, 이 취임사를 들은 많은 국민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나는 반지성주의라는 단어만큼 지금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성주의가 ‘논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사회적 현안해결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면, 우리 사회에 지성주의가 산산조각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이번 대선과정에서 대도시는 물론, 산골마을까지 전염병처럼 번진 반지성주의는 주로 대선후보 캠프 안팎에서 비롯됐다. 권력을 노리는 지식인들이 여야 후보 캠프에 대거 참여해서 우리사회의 공론장을 이성이 지배하는 소통의 장이 아니라 감정이 판치는 증오의 장으로 변질시켰다. 그들은 합리적인 논리 전개로 민심을 얻는 것이 아니라, 짧고 기억하기 쉬운 선동성이 강한 말로 대중을 휘어잡았다. 이로인해 생겨난게 팬덤정치다.일부정치인의 팬덤정치는 SNS (트위터, 카카오톡, 페이스북)를 극도로 오염시켰다. 무조건적 충성심을 가진 팬덤은 온라인 좌표 찍기, 게시판 댓글 도배, 특정인을 겨냥한 문자 폭탄을 도구로 사용하면서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휩쓸었다. 이 때문에 SNS는 상대 당과 특정 인물들에 대한 광기 어린 독설과 막말, 근거 없는 데이터 등이 난무했다.이재명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 14일 그의 열광적인 지지자 모임(개딸)에 대해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행태라고 생각한다. 참 많은 개딸, 양아들. 개이모, 개삼촌, 심지어 개할머니까지 함께 해 주셔서 큰 힘이 난다”고 말했다. 팬덤정치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도적으로 일축한 발언으로 보인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정권 초기부터 민주당 안팎에서 문빠로 불리는 팬덤의 문자폭탄이 당 안팎의 건전한 비판 기능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이를 ‘양념’이라며 묵인했다. 그는 지난 15일 경남 양산 사저 주변에서 보수성향 단체들이 집회를 하자 “반지성이 시골마을 평온을 깨고 있다”며, 듣기에 따라서는 윤 대통령이 언급한 반지성주의를 비웃는 듯한 말을 했다.나는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상대진영을 공격하기 위해 반지성주의를 언급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반지성주의가 진실을 왜곡하고,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해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현안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극단적 진영 대결, 팬덤정치, 편가르기 등으로 구체화되는 반지성주의를 민주주의의 위기 요인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윤 대통령에게 가장 결핍된 언어가 지성”이라며 되받아 쳤지만, 반지성주의가 우리사회의 국민통합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22-05-17

‘평등한 안전’을 위한 적극적인 화재예방!

권홍영 경주소방서 동부119안전센터 센터장 현대인이 생활하다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자연·사회재난이 발생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을 것이다. 태풍, 지진, 공사장, 대형병원 화재 사고 등과 같은 자연·사회재난과 씽크홀 사고, 공사장 크레인 전도사고, 승강기 안전사고와 같은 생활 속 안전사고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현대인을 위험에 빠지게 하고 이는 안전권 침해로 직결된다. 자연현상과 관련된 천재지변인 경우도 있는 반면에 용량 결함으로 인한 비상용 발전기 비가동, 스크링클러 미설치, 관계자 소방훈련 소홀등의 이유로 거동이 불편한 중증 환자와 치료환자가 속수무책으로 위험에 노출된 세종병원 화재사건과 같이 인간의 부주의에 의한 경우도 있다.여러 재난 중 가장 많이 발생하는 주택 화재를 들여다 보면, 최근 5년간 경북도내에서 단독주택과 기타주택에 발생한 화재건수가 3천512건으로 이중 전기,기계적 요인과 부주의에 의한 화재가 2천680건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사망 58명, 부상 218명의 안타까운 인명피해가 발생하였다. 공동주택은 법정 소방시설이 구비되어 있어 화재 발생시 인지가 빠르며, 소방시설 등을 이용하여 조기에 대처가 가능하나 단독주택 외 주거형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등 기타주택은 무허가 상태인 경우가 많고 소화기 등 소방시설을 갖추지 않아 화재 발생 시 쉽게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출입문 외 비상구가 없어 화재 초기 피난에 한계가 발생되며 열악한 난방·취사 등 생활 환경적 취약요인이 상존하여 화재 발생시 인명피해가 증가하고 있다.열악한 주거시설 취약계층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들을 살펴보면 첫 번째로 재난이 발생하기 전 관계자의 재난안전의식 고취이다. 주택 내 사용하는 전기시설 특히 냉·난방용품들의 안전사용이 중요하다. 에어컨 등 냉방장치나 가전제품은 안전 인증(KC 마크)을 받은 제품을 정격용량 내에서 안전하게 사용하고 전기매트, 열풍기 등 난방용품 사용 시 밟거나 꺾임 방지에 주의하며 이불이나 소파와 같은 가연성 물질은 가까이 두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아직까지 연탄 보일러 세대도 있어 사용한 연탄재를 아무곳이나 방치하지 말고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고 주변에 가연물을 없애는 등 주의가 필요하며 유류값 고공행진에 따른 화목보일러 사용 증가로 화재발생이 빈번하므로 화재 예방을 위한 소화기 비치 및 불연재로 구획된 별도의 실에 설치하고 땔감 등의 가연물은 보일러 본체로부터 최소 2m 이상 이격해서 안전한 장소에 보관해야 할 것이며, 관계자는 소화기를 활용하여 초기 화재 대응능력을 키워가야 할 것이다.두번째로 주택용 소방시설의 지속적인 보급이 필요할 것이다. 고령인 집주인이 가스레인지 위에 음식물 냄비를 올려둔 채 잠이 든 사이 불이 났는데 소방서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보급한 단독경보형 감지기의 경보음을 들은 이웃 주민의 신고로 소방대가 초기 진화를 마친 사례와 고시텔에 열에 반응하는 스프링클러보다 단독경보형 감지기가 먼저 울리고, 이를 인지한 다른 호실 거주자와 고시텔 관계인이 곧바로 전기 차단 및 소화기로 신속하게 초동 조치를 하고 이웃 거주자가 곧바로 119로 신고해 화재가 커지는 것을 방지한 사례들이 있었다.이처럼 단독경보형 감지기는 화재 초기 인명 및 재산피해 경감에 중요한 물품으로 주거시설 및 화재취약계층이 기거하는 주택에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단독경보형 감지기와 가스누설 경보기 등 주택용 소방시설의 지속적인 보급으로 화재에 취약한 소규모 주거시설에 화재위험성을 낮추는 데 더욱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마지막으로 주거시설 및 화재취약계층에 주거하는 관계인에 대해 지속적인 소방홍보가 필요할 것이다. 재난안전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선결요건 중에 하나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에 직면하기 전까지는 이에 대해 무관심하고 태만한 경향이 있다. 법령에 포함되지 않은 주거형 컨테이너, 독거노인 주택, 1인 거주 다문화 주택, 저소득층 밀집 주택, 불특정 노숙인 비닐하우스 등 주거취약 계층의 안전관리를 더욱 더 강화하여 취약계층의 안전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그 일환으로 화재 취약 주거시설의 맞춤형 소방안전컨설팅과 주거민 대상 화재 예방 안전교육 및 화목난로·전기제품 등을 안전하게 사용토록 지도하고 화재 취약요인들을 제거 해 나간다면 주거시설 취약계층의 안전관리는 이루어 질 것이다.또한 관계인의 화재 대응능력 향상과 자율안전관리 의식의 소방환경이 더해지면 더욱 더 안전한 주거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2-05-17

올림퍼스의 노예들 <Ⅰ>

노마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육아도서를 집어 들었다. 엄지손가락으로 책 모서리를 훑었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종이의 부드러운 감촉이 손가락 끝으로 전해졌다.-몸은, 음, 좋지 않지. 무거워. 우리 엄마는 어떻게 두 번이나 애를 낳을 생각을 했을까? 한 번도 이렇게 힘든데. 쌍둥이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지 뭐야. 쌍둥이 가진 임산부들 정말 존경해야 해. 아기는 잘 자라고 있대. 그런데 뭔지 말을 안 해주네.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건데. 먹고 싶은 거? 정말 많지. 많은데, 그 많은 것들 다 먹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입덧도 없다는 말이지. 나, 다 대답한 것 맞지?-그 늙은이가 잘해주는 거지? 네가 말하는 것을 보니 잘해주나 보네.-돈의 힘이지. 이것 봐라. 나 반지 받았다. 이거 다이아다. 요 며칠 우울해서 눈물샘을 살짝 비워줬지. 그걸 보더니 그 사람이 사줬다.안나는 노마 쪽으로 왼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카페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상상했던 것보다 안나는 훨씬 더 밝아 보였다. 괜한 걱정을 했나?-그 사람? 그 사람이라. 돈이 좋기는 좋네. 다이아만 사는 게 아니라 네 맘도 샀네. 그건 그렇고 이게 뭐야? 이렇게 밝아도 되는 거야? 엊저녁에는 사람을 그렇게 걱정시키더니. 지금 이 모습? 조울증이야? 아이를 가지면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더니. 그런 거야? 전화 받은 누구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는데 전화 한 누구는 마음 편하게 푹 잔 얼굴이네. 울상을 보는 것보다는 낫지만. 이러면 오빠가 허탈하잖아.안나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왼손을 접어 거둬들이며 말했다.-동생이 오빠 붙잡고 좀 울었기로서니 그걸 조울증이라 그러냐? 그러면 내가 누구 붙잡고 울까? 엄마? 아빠? 가당키나 해?노마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고개를 끄덕이다 툭 하고 내뱉었다.-하긴.안나가 만식의 마이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안나의 아비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집안을 서성이다 밖으로 나갔다. 안나의 어미는 이불을 깔고 돌아누웠다. 안나가 엄마, 하고 불렀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고, 아이고. 들릴 듯 말 듯 신음 소리만 방 안을 채웠다.저녁 무렵 밖으로 나갔던 안나의 아비가 돌아왔다.-저녁 안 먹을 거야? 모처럼 애들도 다 있는데.-당신은 지금 밥 생각이 나요?안나의 어미가 누운 채 고개를 돌려 아비를 보았다.-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우리가 이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일단 밥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 듣기도 하고.아비는 어미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앉혔다. 어미는 주방으로 가 저녁을 준비했다. 안나가 어미를 도우려 주방에 들어갔다. 말없는 어미 옆에서 멋쩍게 서 있다 싱크대 옆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짝을 맞췄다. 밥통에서 밥을 퍼 그릇에 담던 어미가 갑자기 밥주걱으로 안나의 손 등을 내리쳤다.-손 대지마. 이년아. 저리 가. 오늘 저녁이 이 집에서 먹는 마지막 밥인 줄 알아.안나는 오른손 등이 부어 수저를 쥘 수 없었다.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었다. 손은 왜 그래? 아비가 물었지만 안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노마는 밥그릇과 싸움이라도 하듯 씩씩거리며 밥을 퍼먹었고 어미는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는다며 물을 부어 말아 먹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 아비가 물었다.-최만식이라고 했나?-네.-우리가 아는 올더앤베러 회장 최만식이 맞냐?-네, 맞아요.-부자지?-네?마주보기 싫어 고개를 숙이거나 핸드폰을 뒤적이던 노마와 어미, 그리고 안나까지 아비를 보았다.-나이가 좀 많기는 하지만 나쁜 일을 해서 돈을 번 사람은 아니라 들었다.-그게 좀 많은 나이에요?어미가 끼어들었지만 아비는 말을 이었다.-우리 같은 노인들을 위해 물건을 만든다 하더라. 아마 좀 전까지 당신이 깔고 누워있던 찜질패드도 그 회사에서 만든 것이지 싶은데. 늙은 것이 죄는 아니지. 아무렴, 절대. 부인과는 사별했고 지금은 혼자고. 아들이 하나 있기는 한데 회사나 집안에서 힘을 쓰지는 못한다네. 최 회장이 좀처럼 일을 내려주지 않는다 하더라고. 게다가 최 회장이 그렇게 건강하단다. 건강 하나는 타고 났다는데, 사람들 말로는.-당신이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아요?어미가 물었다.-사람들에게 물어봤지. 예전에 같이 동업하던 박 사장, 채 사장, 김 실장한테. 그 사람들은 아직 현직에 있으니까 아는 게 있을 것 같아서. 들어보니 최 회장이 나하고 동업을 할 뻔한 적 있었더라고. 당신 기억나? 그, 왜, 있잖아, 백두산에 지열발전소 지어서 중국, 북한에 전기를 팔아보려고 했던 사업 말이야. 거기에 최 회장이 투자하는 것을 검토했었데. 최 회장이 결론 내리기 전 사업이 뭉개졌고. 그랬지. 거, 참. 괜찮은 아이템이었는데./ 김강 소설가

2022-05-16

사적인 복수에서 공적인 정의에 이르는 과정

영화 초반 배트맨의 첫 대사는 “나는 복수다”로 시작한다. 부모님이 피살된 뒤 막대한 부를 물려받은 브루스 웨인은 고담시의 악을 응징하는 동력으로 ‘복수’를 선택한다. 피살된 부모님을 눈앞에서 목격했던 소년은 훗날 본노에 가득찬 자경단이 되어 고담시의 밤거리를 누비며 어둠 속에서 나타나 악을 응징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사회정의구현보다는 ‘사적인 복수’의 영역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갈등한다. 일면 단순할 것 같았던 그의 행동들이 파고들수록 복잡하게 꼬인다. 고담시를 둘러싼 하나의 사건이 진실에 다가갈수록 해답은 멀어지고 모호한 지점으로 이어진다.배트맨이라는 이름의 자경단으로 활동한지 2년차. 영화 ‘더 배트맨’은 그간 다루지 않았던 배트맨의 초창기 활동을 다룬다. 첨단 무기를 장착하고 세련되고 날렵한 액션을 구사하던 배트맨이 아니라 투박하고 무겁다. 여기에 더해 분노와 두려움의 경계지점에서 주저하는 모습의 완성되지 않은 고독한 영웅을 만난다.브루스 웨인의 자경단 활동(배트맨)은 결과적으로는 정의를 구현하고 있지만 그 과정은 폭력적인 복수에 가깝다.반대로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했던 악당들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배트맨과 대척점에 서있지만 출발점이 비슷하거나 목적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 다른 히어로물보다 ‘배트맨’ 시리즈는 캐릭터에 집중하는 영화다. 캐릭터의 능력보다는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등장하는 악당의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영화다. 소외되거나 사회적 약자에 가까웠던 인물이 어떻게 선과 악의 경계지점을 넘나드는가를 보여준다.영화에 등장하는 악당 리들러의 추종자를 붙잡아 가면을 벗기며 “너는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나는 복수다”라고 대답한다.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선과 악, 영웅과 악당, 정의와 복수가 아슬아슬한 경계지점에서 같은 선상에 놓여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그간 ‘배트맨’시리즈는 배트맨의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악당들이 더 선명했었다. 그러나 이번 ‘더 배트맨’에서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사건보다는 캐릭터에 집중하고 흔들리고 갈등하는 갈림길에서 어느 곳으로 향하는가에 방점이 놓여있다. 정체성과 내면의 문제, 완성형보다는 진행형의 시작점에 ‘더 배트맨’이 자리한다. 배트맨을 돕고 있는 고든 경위가 아직 청장이 되지 않았을 때이며, ‘배트맨’시리즈의 유명한 악당인 ‘펭귄’이 오스왈드로 불리던 시절이며, 셀리나가 캣우먼으로 불리기 이전의 시기. 각자의 시그니처 복장이 완성되기 이전의 영화다.그간 ‘배트맨’시리즈가 브루스 웨인의 유년기에서 본격적인 활약의 시기를 그렸다면 ‘더 배트맨’은 그 보다 훨씬 전인 아버지 토마스 웨인의 행적까지 들어간다. 현재의 고담시가 있기 이전, 현재의 악당이 등장하기 이전 이들의 출발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추적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배트맨인 브루스 웨인을 향하고 있으며,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자신의 행동을 규정지을지 모색한다. 전능함보다는 인간적인 고통과 갈등, 밝음 보다는 어둠의 영역에서 어설프고 나약한 인간으로서 밤거리의 그림자로 남은 한 사내의 성장기다. 동시에 깊은 인상을 남겼던 악당의 탄생기이기도 하다.3시간 가까운 영화는 이처럼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의 밑밥을 잔뜩 깔아 놓으며, 무겁고 어두우며 깊은 배트맨의 내면을 훑는다. “나는 복수다”라는 대사처럼 지극히 사적인 복수에서 출발해 어떻게 공적인 정의를 실현할 존재로 나아가느냐의 맥락을 이야기한다.그래서 영화는 제목에 ‘더(The)’가 붙었으며, 정의란 무엇이며, 영웅은 어떠해야 하는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액션은 통쾌하지 않고, 속도가 필요한 순간 멈칫한다. 기존에 ‘배트맨’시리즈가 보여주었던 액션의 전개와 다르다. 이는 이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도 연관되는데 배트맨의 대사 중에서 “공포는 도구일 뿐이다”처럼 속도와 타격감의 액션보다는 악을 응징하기 직전 어둠 속에서 도사리고 있으며 서서히 등장하는 그 순간의 공포를 도구로 액션의 기재가 작동한다.누군가에겐 실망스러운 배트맨이 될 것이며, 누군가에겐 모처럼 고유한 분위기의 ‘배트맨’의 탄생에 다음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주)Engine42 대표

2022-05-16

루나 포비아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가상화폐 ‘테라와 루나’코인의 폭락으로 가상화폐 생태계가 위기에 처했다. 16일 기준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에서 루나 코인의 가격은 개당 1원이 채 안된다. 이른바 ‘루나 포비아’다.테라USD와 루나 코인 생태계는‘차익거래’로 가격을 유지한다. 테라 알고리즘은 테라 1개를 루나 1달러어치로 교환하도록 설계돼 있다. 테라 1개 가격이 0.9달러로 떨어지면, 알고리즘은 테라 1개를 1달러어치 루나로 바꿔준다. 테라 10개(0.9*10=9달러)를 루나 코인 10달러 어치로 바꿔준다. 시장에 있던 테라 개수가 줄고,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테라 가격이 다시 오르게 된다.반대로 이번엔 테라 1개 가격이 1.1달러가 됐다고 가정해보자. 사람들은 1달러어치 루나를 테라 1개로 바꾼다. 루나 10달러어치로 테라 10개(1.1*10=11달러)를 사게 되니 1달러를 벌 수 있다. 이번엔 시장에 있던 테라 개수가 늘고,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테라 가격이 떨어진다. 한 때 테라는 전 세계 시총 3위, 루나는 10위를 기록했다.그런데, 지난주 문제가 생겼다. 테라 1개 가격이 무려 0.6달러 안팎으로 폭락했다. 원래대로라면 테라를 루나로 바꿔주면서 테라 수량을 줄여야 하지만 테라 가격이 너무 떨어지다 보니 너도나도 내던졌고, 시장엔 루나 코인이 넘치게 됐다.테라 가격이 올라야 루나 코인 개수를 줄일 수 있는데, 테라의 신뢰가 깨졌으니 루나 코인 개수는 계속 늘어났다.결국, 가상화폐 테라와 루나 생태계는 시장의 신뢰를 잃었고, 회복은 불가능해 보인다.‘루나 포비아’로 빚어진 가상화폐의 신뢰성 위기가 어디까지 번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5-16

북핵 고도화와 한미정상회담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윤석열 정부의 출범 직후에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는 양국의 공동관심사인 북한 핵과 미사일, 한미동맹과 대북공조, 경제안보와 지역적·국제적 현안 등 이른바 ‘포괄적 전략동맹’의 강화방안이다.한미동맹의 총론과는 달리 각론으로 들어가면 양국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에 대해 ‘미국은 전략핵과 ICBM’에 신경을 쓰지만, ‘한국은 전술핵과 단거리미사일’ 위협을 더욱 우려한다. 또한 중국과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쿼드(Quad) 참여를 기대하고 있지만, 중국이 최대 교역국인 한국의 입장에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같은 이해관계 차이를 조율하고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이번 정상회담의 과제다.우리의 입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두어야 할 의제는 북한의 전술핵 위협이다. 김정은은 이미 “핵기술을 고도화하여 소형·경량화, 전술무기화 할 것”을 여러 차례 지시했다. 나아가 지난 4월 25일 인민군 창설 90주년 열병식에서는 “핵 무력은 전쟁방지 수단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근본이익이 침탈되는 등 비군사적 상황에서도 선제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공언했다. 핵이 방어용이라는 기존 논리를 뒤집고 선제공격용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이제 우리의 관심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비현실적인 대북정책’이 아니라 ‘북핵을 억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안보전략’이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5년 동안 벌인 ‘평화 쇼’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시켰을 뿐이다. 그 결과 지금 윤석열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균열되고 약화된 한미동맹을 다시 복원함으로써 북핵 위협에 대한 확장억제력을 강화하는 것이다.특히 이번 회담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의 신뢰도’를 제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전술핵은 전략핵과는 달리 실전에서 사용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양상을 일거에 바꾸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이다. 단거리미사일이나 방사포에 탑재된 전술핵은 포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술핵을 통한 전자기파(EMP)공격’은 우리의 최첨단 전자무기들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따라서 미국의 ‘핵우산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들이 향후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의 재가동과 함께 논의될 수 있도록 그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절대무기인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이제 우리는 북한의 핵이 공갈협박수단 또는 협상용에 불과하다는 안이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김정은은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술핵의 사용가능성을 열어 둠으로써 NATO의 직접적 참전을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커다란 시사점을 얻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핵을 가진 러시아에 유린당하고 있는 이 참담한 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2022-05-16

선진기업에 이르는 길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선진기업에는 꿈과 비전이 있다. 꿈이 없는 개인, 미래가 없는 기업은 나침판 없이 항해하는 것과 같다. 글로벌 선진기업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15만 직원이 회사에서 제시하는 성장 비전을 가지고 끊임없이 선택하고 도전한다.70년대 1, 2차 석유파동으로 전 세계의 경제가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모든 기업들이 적자와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유일하게 흑자를 이어왔던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기업문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일본 나고야의 아이치현에 위치한 도요타시의 옛 지명은 고로모시이다. 1937년 도요타자동차가 설립되고 지역주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주민들의 의지로 옛 이름 대신 도요타시로 바꾸게 된다.기업에 혁신을 도입하면 초기에는 일과 혁신을 병행하게 되는데 ‘일하는 사고, 일하는 방법’이 습관화 되고 내재화 되어 기업의 문화에 이르게 되면 성공으로 말할 수 있고 일에 혁신을 녹여 낭비 없는 일 문화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혁신은 조금만 텐션을 늦추면 자전거를 달리는 것처럼 흔들거리고 멈추게 된다. 오래된 익숙함을 바꾸는 것이 혁신으로 저항이 따르기에 종합시스템화로 돌아가는 것이다. 도요타인들은 출근할 때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러 간다고 한다. 도요타자동차의 개선문화의 물밑에는 인사시스템이 돌아간다.1989년 간부인사 혁신 때 도장 찍는 관리자에서 생각하는 관리자로, 고가 항목에 부하직원의 성장비전수립을 20% 평가하는 특징이 있다. 1999년 ‘기능직 프로인재개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서 성장경로의 다양화와 현장 직원들에게도 희망과 꿈을 갖고 자신의 미래에 도전하게 된다. 즉, 14개 부문의 ‘프로인재상’을 그려놓고 최고 전문가로 인증 받는 제도로 누구든 노력하면 성장의 미래가 보이는 것이다.기업의 혁신이 제대로 움직이려면 혁신 프레임(Frame)과 운영시스템, 계층별 역할이 명확해야 하며, 그 성공 조건은 여섯 가지가 필요하다.첫째, 기업의 미래 비전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과 목표설정이다. 둘째, 탑(Top)의 지속적인 스폰서십과 혁신리더십이다. 셋째, 일의 속성과 생산프로세스의 특징을 파악하고 적합한 혁신기법을 도입하는 것이다. 실패하는 기업은 유행 따라 혁신을 도입한 경우가 많다. 넷째, 기업문화를 분석하고 혁신지향형 조직개편과 토양을 개간하는 일이다. 다섯째, 운영시스템화 하는 일이다. 여섯째, 인재육성이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일하는 사고, 일하는 방법, 문제해결 능력 수준을 높여 일하는 문화를 변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100년을 지속하고 미래가 있는 선진기업은 그냥 이루어진 것은 없다. 혁신을 도입하여 자사의 일의 속성에 맞게 진화 발전시켜 기업문화로 만드는 것이며, 도요타자동차처럼 전 세계에서 통하는 혁신웨이가 완성되는 것이다. 기업은 혁신을 통하여 조직운영체계와 일하는 사고, 일하는 방법이 내재화, 문화가 된다면 선진기업으로 가는 길인 것이다.

2022-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