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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피아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에 마피아의 정의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근거로 한 강력한 범죄조직, 자국에 정치적 폭력을 행사하고 도박, 금융 따위에 관련된 거대한 범죄조직”이라 표현했다.우리가 통칭 사용하는 마피아는 폭력적 집단이며 불법적 범죄 조직이란 뜻이다. 흔히 정치 마피아, 법조 마피아, 관피아 등의 호칭을 쉽게 사용하지만 마피아란 말의 뜻을 찬찬히 따져보면 상당한 모독적 의미가 담겨있다.정치권에서 특혜시비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드러난 법조인의 모습을 보면 법조 마피아라는 말이 그냥 나오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법관, 변호사 등 우리사회를 선도해 나갈 법조계의 역할을 생각하면 국민에게 안겨준 실망감은 크다 할 것이다.원래 마피아의 발상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를 중심으로 활약한 비밀결사대 혹은 조직 폭력배를 이르는 말이다. 1900년 초중반 이 조직이 미국으로 건너와 국제적 범죄조직으로 명성을 알리게 된 것이다. 지금은 기업형 범죄조직이란 보통 명사로 쓰이는 말이다. 일본의 폭력 조직인 야쿠자를 일본 마피아로 부르는 것 등이 이런 케이스다.1972년 상영된 영화 ‘대부’는 마피아 조직의 단면을 볼 수 있었던 영화로 유명하다. 범죄 영화로서 역사상 최걸작으로 평가된다. 영화 속의 마피아가 지나치게 미화돼 비판도 제기됐으나 마피아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한 공로는 크다.정치권의 대장동 개발 특혜시비 공방 속에 여당 대선후보의 국제 마피아 연루설까지 등장, 논란을 키우고 있다. 대선전의 품격이 떨어진 느낌이다. 사실 여부야 밝혀지겠지만 혼탁해진 대선전을 보는 국민의 마음은 어둡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21

이재명 vs 윤석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유력주자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한 사람은 능수능란한 언변과 순발력으로, 또 한 사람은 ‘1일 1실언’으로 곤욕을 치르는 후보다. 바로 여당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얘기다.여당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번 주초 현직 경기도지사 자격으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대장동 개발특혜의혹과 관련, 야당의 집중포화를 받아냈다. 이 지사는 특유의 달변으로 정면돌파를 시도, 일정부분 성공한 듯 보인다. 확신에 찬 말투와 안색으로 대장동 개발은 단군이래 공공이익을 최대로 공익환수한 모범사업이라는 자화자찬이 이어졌다. 청산유수처럼 매끄러운 말솜씨에 여유로운 얼굴 표정으로 야당 의원들을 농락했다. 대장동 개발을 주도하고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당한 유동규가 측근 중의 측근임이 확연한데도 측근이 아니라고 잡아뗐다. 새로 제기된 조폭과의 연루설에 대해선 첨부한 돈 사진이 다른 데서 쓰였던 사진이니, 모두 헛소리라 치부했다. 푼돈으로 급조한 법인에 수천억원의 초과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초과이익 환수조항이 빠진 계약서를 결재하고도 “환수논의가 있었는 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초과이익 조항을 추가하자는 직원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대장동 개발사업을 자신이 설계했다고 해놓고, 유동규가 구속되자 개인의 범행으로 몰고 관리책임을 인정하는 선에서 덮으려한다. 이미 과거 형수에게 쌍욕을 한 것은 욕 할만하니 했다고 넘어갔고, 여배우와의 염문설도 터무니없다고 잘랐다. 그의 화법은 나치시대 선동가인 요제프 괴벨스를 연상시킨다. 괴벨스는 “선동은 문장 한둘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고 했다.이에 반해 국민의힘 대권주자 가운데 선두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올해 정치판에 뛰어든 정치초년병이다. 토론회나 기자회견에서 말하는 걸 보면 아마추어티가 역력하다. 카메라만 보면 긴장돼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습관 하나 고치려 해도 잘 안된다. 잇따른 설화사건도 그렇다. 정치권 언어에 익숙하지 못한데다 비유를 들어 생각을 설명하려다 꼬투리 잡히는 일이 너무 잦다. 정치판에서는 앞뒤말 자르면 오해하기 쉬운 말들은 경쟁자들에게 공격의 빌미가 되지만 그걸 체득하고 실천하기엔 물리적 시간이 너무 짧았다. 억울하다 싶은 사안을 해명할 때 얼굴색이 붉게 달아오르고, 어떻게 대답해도 곤란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질문에도 굳이 대답하려 애쓴다. 구렁이 담넘듯 동문서답 하는 일이 없다. 너무 다른 두 후보를 견줘본다. 말을 잘하는 게 좋지만 자신의 허물을 가리는 데 쓰이니 오히려 감점이다. 귀는 움직이나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그러니 필자는 달변보다, 서툴게 더듬거리는 눌변(訥辯)에 더 마음이 가는 셈이다. 진솔한 마음에서 우러난 말이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건곤일척의 선거에서 이기려면 표심을 얻어야 한다. 과연 두 후보 가운데 누가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얻을 지 두고볼 일이다.

2021-10-21

요행과 확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대략 815만분의1 정도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당첨이 안 될 확률이 99.99…%라는 얘기다. 벼락을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배나 낮은 것이 로또복권 일등 당첨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도 매주 8백만 매 이상 복권이 팔린다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그만큼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위험부담이 적으면 버리는 셈치고 해보게 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심리일 것이다.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는 데도 요행을 바라고 투기를 하는 것은 남달리 사행심이 강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일 터이다.‘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세계적인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거액의 빚을 지고 삶의 막장으로 몰린 사람들이 456억 원이라는 거액에 눈이 멀어 0.2%의 확률에 목숨을 걸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이 드라마의 내용이다. 전혀 아무런 탈출구가 없다가 일확천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풍족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이성을 마비시켜버린 거라고나 할까. 아무리 돈이 절박하더라도 죽을 확률이 99.8%인 게임에 목숨을 건다는 건 정상적인 심리상태가 아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인 오늘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세상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건 너무 끔찍한 현상이 아닌가.카메라 앵글은 최후의 승자인 주인공을 쫓아가지만 그동안 죽어간 사람들은 아무런 해결도 없이 더 참담한 결과만 남겼을 뿐이다. 참가자 456명 중에 455명이 죽고 단 한 사람이 살아남는 건 사회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가 비록 거액의 상금을 손에 쥐었다 한들 456명 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사람들 말고는 대다수가 처참한 일을 당한 사회라면 그게 바로 지옥이 아니고 뭐겠는가. 지금 한반도의 북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도 거기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오징어게임’ 만큼이나 매스컴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게 ‘대장동사건’이다. 일확천금이라는 점에서는 양자가 닮았지만, 한 쪽은 목숨을 걸고 수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은 데 비해 다른 쪽은 땅 짚고 헤엄을 쳤다는 점에서는 천양지차다. 몇 사람이 수천억 원의 돈을 챙기면서 남을 죽이기까지 한 건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편취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징어게임’ 승자가 차마 그 돈을 쉽게 쓰지 못한 것과는 달리 대장동사건 관련자들은 6년 근무 직원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주는 등 로비자금이다 고문비용이다 흥청망청 광란의 돈 잔치를 벌인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사행심이나 한탕주의가 횡행하는 사회는 분명 병든 사회다. 의식주가 절박하던 시절에 비해 몰라보게 경제사정이 좋아졌지만, 그것이 물질적 속박을 벗어나게 한 것은 아니었다. 물질에 집착하고 예속되는 현상은 오히려 더 심해진 게 아닐까 싶다. 물질문명에 경도되어 정신적 가치를 등한시해서는 삶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가 없다. 풍요롭고 균형 잡힌 사회로 가려면 교육이나 언론도 중요하지만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지금의 대권후보들 중에는 그런 인성과 지성과 품격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2021-10-21

점입가경(漸入佳境) 의 대선 레이스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옛 중국에 전국에서 그의 그림을 구경하러 올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리는 고개지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런데 그는 사탕수수를 늘 단맛이 적은 줄기부터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친구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고개지가 “갈수록 더 좋은 경치를 보고 싶은 것처럼, 갈수록 더 단맛을 느끼고 싶어서 그렇다네”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점입가경은 어떤 일이나 풍경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재미있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내년 3월 9일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의 레이스가 점입가경의 맛을 주고 있다.이번 경기도 국정감사는 경기도지사인 이재명 여당의 대통령 후보를 놓고 흡사 대선 토론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막을 내렸다.공익환수를 더 철저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와 그 원인이 야당에게 있다는 방어로 불꽃 튀는 설전을 벌였다. 대장동 사업에 대한 이 후보의 역할에 대한 비난과 그에 대한 정당성 방어가 팽팽히 맞선 가운데 국민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은 듯하다. 어쨌든 경기도 국정감사는 끝났고 여당의 최종 후보인 이 지사의 대선 행보는 많은 화제를 뿌리면서 본격화할 전망이다.이런 가운데 야당의 최종 후보 선발을 위한 긴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두 번에 걸친 압축과정을 겪어 최종 4명의 후보가 마지막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이 2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서 둘 중에 한 명이 최종 주자가 될 확률이 높은 상태에서 여론은 팽팽히 갈라지고 있다.윤 전 총장이 아직 정치 초보인 건 맞지만, 새로운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는 것은 과거 그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직성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하는 실언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가 국회의원도 한번 해본 적 없는 신인이라는 점에 오히려 점수를 주고 있다.반면 홍준표 의원의 오랜 의원직 경험과 지사로서의 행정 경험을 높게 사는 사람들은 ‘홍카콜라’라는 별명처럼 바른말을 속 시원하게 잘 던지는 모습을 좋아한다. 정치 행정 경험이 풍부한 것도 그의 장점이 될 수 있다.그런 면에서 20, 30대 젊은 표가 행방을 가를 전망이라는 관측도 있다.점입가경인 것은 미세하지만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윤 전 총장이 그의 입지를 굳힐 수 있을지, 홍 의원 등 다른 후보들이 반전을 해낼 수 있을 지가 관전의 포인트다. 앞으로 다섯 번의 토론을 더 한다고 하고 그리고 11월 5일 전당대회를 열고 최종 대선 후보를 발표한다고 한다. 이후 4개월간의 여당, 야당 두 후보의 대결은 더 흥미로울 것이다. 이것은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민주주의를 가진 국가의 국민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이다.정정당당한 대결을 통해 국민의 결정이 내려지고 한국의 민주주의의 모습이 세계인에게 존경받는 그런 모습을 기대해 본다.

2021-10-21

인명 구조소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배의 침몰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해안 지역에 보잘 것 없는 인명구조소가 있었다. 몇 밖에 없는 구조원들은 밤낮으로 쉴 새 없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구조활동을 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졌다. 세월이 흐르고 이들이 구조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후원회를 조직하고 후원을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후원자들을 관리하고 친목하는 일이 구조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급기야 구조소는 후원회원들의 친목회관으로 전락하게 되고 구조소는 그 본래적 목적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뜻있는 사람이 다시 구조소 본래적 사명으로 돌아가 구조만을 위한 새로운 구조소를 세웠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지게 되었고 생명을 구조 받은 이들은 이 구조소의 후원자가 되었다. 세월이 흐르자 이 구조소 역시 회원들의 친목회관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일은 이후에도 계속 반복되었다. 웨델의 ‘인명구조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세 명의 기독교인이 나오는데 모두가 다 기독교를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부정적 내용으로 채워졌다. 80∼90년대 이전의 기독교 대중문화는 영화 ‘낮은 대로 임하소서’와 ‘사랑의 원자탄’ 등에서 보듯 대중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는 대중문화 속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교회학자는 한국교회가 양적인 성장을 통해 물질주의신앙에 빠지면서 본래적 사명을 잃어버린 겉만 화려한 무덤교회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야웨신앙에서 가장 경계했던 신앙은 바알종교였다. 바알종교는 농업이 주 산업이었던 당시에 노동력의 확보를 위한 다산과 농사와 축산을 풍요롭게 하는 부의 신이었다. 이스라엘은 이 바알종교를 함께 섬기는 혼합신앙에 급속히 빠져 들었고 점차적으로 물질만능과 물질풍요만을 쫓는 신앙이 되어 버렸다. 엘리야는 천박한 물질자본주의 바알종교를 개혁하기 위하여 목숨을 건 대결을 벌여 공의와 도덕과 자비와 믿음을 상실한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했다.한국교회의 첫 시작은 비록 보잘것없는 오두막집에서 시작했으나 인명구조를 위한 본래적 사명에 충실하였다. 하지만 오늘의 교회는 양적성장과 함께 바알종교화 되어 구조소라기 보다 회원들의 친목회관으로 변질되고 우리 사회 역시 바알종교에 물들어 버렸다. 무엇이든 확장되고 비대해지면 본질을 잃고 변질되기 쉽다는 것을 잊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2021-10-20

우리말에 녹아있는 우리네 삶

우리말은 어느 나라 말보다 감각적이다. 동작, 모양, 상태 등을 음으로 나타내는 소리글자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자음과 모음의 음운 체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글 자모의 결합으로 표현하지 못할 음이 없을 정도이다. 우리말은 보이는 모습은 물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태까지 가장 닮은 음으로 나타낼 수 있다.미쁘다, 미덥다, 살갑다, 얄궂다, 퀭하다, 애틋하다, 아련하다, 아스라하다, 시큰둥하다, 뾰루퉁하다, 아늑하다, 청승맞다, 달짝지근하다, 살뜰하다, 얼큰하다, 거나하다, 허우룩하다, 푼푼하다. 진득하다, 삼삼하다, 함초롬하다, 새초롬하다, 늙수그레하다 등, 우리말 형용사는 다른 언어가 흉내조차 못 내는 표현이 수두룩하다.몽총하다 - 융통성 없이 새침하고 냉정하다.- 박력이 없고 대가 약하다.- 부피나 길이가 좀 모자라다.‘몽총’이라는 어감을 음미해보자. ‘몽’에서 ‘몽땅하다’가 연상되고 ‘총’은 사물에서 튀어나온 오라기로 꼬리 또는 ‘짧다’가 연상된다. 또한 ‘시치미’가 연상된다. 그래서 시치미 떼듯 새침하게 굴거나 길게 이어가지 못하거나 좀 모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얼마나 기가 막힌 표현인가.가다, 오다, 먹다, 뛰다 같은 동사는 동작을 나타내므로 외국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형용사는 다르다. 우리말은 상태를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그 비유를 곱씹어보면 참 재미있다.- 눈 : 눈이 높다, 낮다. 눈 밖에 나다, 눈 코 뜰새 없다, 눈에 익다, 눈에 밟힌다, 눈 빠지게, 눈 뜨고 코 베간다.- 코 : 큰코 다친다, 코를 납작하게, 콧방귀, 콧대가 높다, 코 꿰다, 콧대를 꺽다.- 귀 : 귀가 얇다, 귀 따갑게, 귀가 뚫린다.- 입 : 입이 걸다, 입이 야물다, 입을 맞춰두다, 입안에 혀처럼 감긴다, 입방정을 떨다.- 목 : 목 잘린다, 목 빠지게 기다린다, 목구멍에 거미줄치랴,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간 : 간이 크다, 작다, 간이 부었다, 간이 떨린다, 간을 빼준다.- 손 : 손이 크다, 손이 작다, 손이 검다, 손 털다.- 발 : 발이 짧다, 발이 길다, 발이 넓다. 손발이 맞다, 발이 빠지다, 발목 잡히다.- 다리 : 양다리 걸치다, 남의 다리 긁는다, 한 다리 건넌다.- 어깨 : 어깨에 힘 주다, 어깨 너머로 배우다, 어깨(깡패).- 머리 : 머리 꼭대기에 앉아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러한 표현은 문장에서 주어의 상태를 나타내지 않는다. ‘눈이 높다’는 수준이 높은 것에만 관심을 두고 여간한 것은 시시하게 여길 만큼 거만하다는 뜻이다. ‘콧대가 높다’도 비슷한 뜻이다. ‘귀가 얇다’는 속는 줄도 모르고 남의 말을 잘 믿는다는 뜻이다. ‘발이 길다’는 음식 먹는 자리에 우연히 가게 되어 먹을 복이 있다는 뜻이다.이러한 말을 곱씹어보면 표현이 매우 직접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목이 빠지게 기다렸으니 얼마나 간절했다는 말인가. 배 터지게 먹다, 박 터지게 싸우다, 목 터지게 부르다, 눈 빠지게 보다, 쌔 빠지게 일하다, 배꼽 빠지게 웃다, 뼛골 빠지게 고생하다, 등이 이런 갈래의 말이다.이러한 말은 비유의 묘를 잘 살린다. 상태를 사람의 실제 행위로 표현해 본뜻 이외의 뜻을 은유로 나타낸다. ‘간이 크다’는 간의 크기만 말하는 게 아니다. ‘대담(大膽)하다’라는 형용사를 실제 사물로 비유한 문장이다. ‘애(창자)가 끓다’, ‘염통에 털이 나다’,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간이 떨어질 뻔하다’, ‘손끝이 맵다’, ‘입이 야물다’라는 표현도 이와 같은 비유이다.쌀쌀한 가을 이맘때면, 외롭고 허전해서 옆에 누가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을 우리는 ‘옆구리가 시리다’로 간단하게 표현한다. 잘 먹고 마음 편하게 사는 상태를 우리는 ‘배부르고 등 따시다’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우리말 관용어에는 직유가 풍성하고 은유가 넘친다.우리말은 우리 민족성의 보고이다. 은근, 풍자, 해학 같은 민족의 정서가 고스란히 말에 실려 속담이 되고 관용어가 되었다. 다채로운 정서 또한 형용사와 부사의 발달로 나타났다. 우리말은 우리네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수필가·문학평론가

2021-10-20

슈퍼 콘크리트

‘슈퍼 콘크리트’는 일반 콘크리트 대비 강도는 5배 이상 강하고, 수명은 4배 이상 긴 초고성능 콘크리트를 가리킨다.내구성이 뛰어나 콘크리트와 철근 사용량이 30% 이상 절감되고 수명이 길어 추후 보수공사 필요성도 적다. 결과적으로 일반 콘크리트에 비해 탄소 배출이 30%가량 줄어든다. 기후위기 시대에 각광받을 첨단 건축자재다. 슈퍼 콘크리트의 핵심은 ‘공극률’을 낮추는 데 있다. 이 비율이 낮을수록 콘크리트가 버틸 수 있는 무게가 늘어난다. 슈퍼 콘크리트의 공극률은 일반 콘크리트 대비 5배 이상 줄어든 2% 이하다. 공극률이 낮아지면 수명도 늘어난다. 물, 염소이온, 이산화탄소 등이 침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콘크리트의 수명은 채 50년을 넘기 어렵지만 슈퍼 콘크리트는 수명이 200년 이상이다. 최근 국내에서 개발된 슈퍼 콘크리트의 원천기술은 마이크로·나노 재료를 융·복합해 압축강도 80~180MPa, 인장강도인 19MPa, 내구수명 200년 이상에다 기존 동급의 콘크리트 대비 제조비용을 50% 이상 절감해 화제다. 이 기술은 이미 세계 건설 현장에서 쓰이고 있다.‘2018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PLACE1의 독특한 외벽 패널이 슈퍼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울릉도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리조트’(2017년)의 우아한 조개껍데기 구조도 슈퍼 콘크리트가 아니면 구현이 불가능했단다. 세계 최초 압축강도 180Mpa 초고성능 콘크리트 사장교인 춘천대교(2017년)와 교각과 교각 사이 길이가 540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콘크리트 사장교인 ‘고덕대교’(2022년 완공예정)에도 이 기술이 적용됐다. 첨단 건축자재가 아름다운 건축물로 변모되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0-20

특권에는 특별한 까닭이 있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국회의원은 특권을 가진다.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그는 현행범이 아닌 이상 회기 중 국회의 동의없이는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않는다. 국회에서 직무상 발언하고 표결한 바에 대해 민사상, 형사상 및 행정상 그 어떤 법적 책임을 지지않는다.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표하여 국정을 살피고 입법함에 있어 외부의 압력이나 위협을 받지않고 소신껏 발언하고 행동하도록 보장한다. 그의 행위와 발언이 진정과 진실을 담고있을 것이라는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발언의 내용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거나 행위의 기저에 불법이나 비리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국민은 그들을 믿거라 하면서 국회로 보낸 셈이다.신뢰가 무너지면 기초부터 흔들린다. 발언이 명백한 허위사실을 담고 있었다면, 그 발언에 기초한 내용과 논지를 국민이 수용할 방법이 없다. 거짓말을 믿어줄 국민이 어디 있는가. 어쩌다 이처럼 딱한 일이 벌어졌을까. 국민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분명하게 확인하지 않고 발설한 의원에게 명백한 책임이 있다. 국민이 특별한 권리를 제공할 때에 의원은 특별한 책임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을 대표하고 국익을 우선하여야 할 자리에서, 정당만 대표하며 당략에만 몰입한 나머지 벌인 패착이 아닌가. 국민은 진실을 원할 뿐이다. 허위와 과장을 담은 발언과 주장에 넘어갈 국민은 없다. 거짓이 드러나면 지지하던 국민들도 생각을 달리하지 싶다. 의원 본인은 물론 소속정당도 부정적인 국민여론에 시달리지 않겠나.권리는 소중하다. 특별하게 부여받은 권리일수록 특별하게 다루어야 한다. 특권을 함부로 여기면 국민저항을 만난다. 해당발언을 접한 국정조사장에서 당장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 사람 의원이 저지른 뼈아픈 실수가 국회가 소신있고 책임바르게 국정을 수행할 소중할 권리를 손상하고 박탈당할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다. 국회의 위상을 무너뜨리고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릴 위기국면이 아닌가. 세상이 변하여, 같은 편이라면 무조건적인 신뢰를 가지고 거짓과 왜곡도 믿어삼키던 시절이 더는 아니다. 내 편일수록 철저하고 세심하게 살펴 확인한 정보를 기반으로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국민은 어찌해야 하는가. 나를 대표하라고 보낸 국회의원의 행위에 거짓이나 기만이 없는지 부단히 경계해야 한다. 팩트와 진실이 넘쳐야 할 자리에 허위와 날조가 들어서면, 나라와 민생은 갈 길을 잃는다. 국민은 국회가 있어 편안해야 한다. 국민에게 걱정을 끼치는 국회는 상상에도 없다. 오로지 진실에 기초하여 나라와 국민을 섬겨야 한다. 발표와 토론에 동원하는 자료는 모두 사실에만 근거해야 한다. 사실확인을 토대로 나누고 알려야 한다는 원칙은 국회뿐 아니라 언론에도 마찬가지다. 팩트에 힘이 있다. 거짓에 의지하면 무너질 뿐이다. 확인없이는 팩트가 죽는다. 진실이 흔들리니 특권이 도전받지 않는가. 진실이 드러나야 나라가 산다. 팩트가 확인되어야 국민이 편하다.

2021-10-20

‘특별함’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2년 반을 사귀다 마침내 늦깎이 결혼을 한다며 준비가 한창이던 지인 하나가 갑자기 무슨 수가 틀렸는지 안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알고 본즉, 결혼할 사람이라고 또 사랑하니까 많이 퍼주고 하다가 결국 덩그러니 밑둥치 하나만 남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신세가 돼버린 것이었다. 소설 속 나무는, 그래도 노년이 돼 돌아온 소년과 짧은 시간이라도 보냈지만, 현실 속 나무들은 만신창이가 된 자신과 마주해야 하니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그런데 왜 사람들은 잘해 주는 상대를 그리 헌신짝 대하듯 할까?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상대의 ‘베풂’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거나 예전만큼 베풀지 않으면 도리어 서운해하거나 화를 내고 심지어 상대를 무시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애초부터 인성이 시쳇말로 ‘글러 먹어서’ 그렇다면 할 말 없지만, 평범한 이들조차 사실 그런 경우도 많은 것은 왜일까? 그것은 바로 상대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대한 존중/존경은, 타자와는 다른 그 사람만의 특별한 가치를 발견할 때 자연스레 생겨나는 법이다.옛말에, ‘夫婦有別’이라는 말이 있다. 이때 ‘別’은, 조선조 대학자인 한원진과 정약용이 “각자 제 남편/아내를 두고서 난잡하지 않은 것”이라 해석한 데서 보듯, 성 윤리에 대한 단서다. 즉, 남자 또는 여자로서의 성 역할에 대한 ‘구별’보다는, 상대방을 ‘각별/특별’히 인식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선조들은 내 짝에 대한 특별한 감정은 타인에 대한 마음과 같을 수 없다고 보아, 다른 아낙/남정네들과의 情事를 극도로 꺼렸으며, 설사 그러한 일이 발생하면 윤리에 어긋난다고 보아 크게 지탄하기도 했던 것이다.그런데 상대에 대한 이 ‘특별함’은, 발견하는 사람의 안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갖추기 위한 사람의 노력 또한 중요하다. 조선조 학자 유희춘의 아내 송덕봉이, 서너 달 다른 부임지에서 기생을 멀리함을 자랑한 남편의 편지에, ‘이를 두고 고결하다며 덕을 베푼 생색을 낸다면 당신도 분명 담담하여 사심없는 사람은 아닐 터. 마음이 깨끗해 밖으로 유혹을 끊고 안으로 삿된 생각이 없다면 어찌 꼭 편지를 보내 공치사를 한 뒤에야 남들이 알아주겠습니까?’라며 일침을 가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신이 나를 아내로서 ‘특별히’ 여긴다면, 기생을 안 만남이 당연한데, 뭐 그리 자랑삼느냐는 명확한 태도에서 여성으로서의 기품과 범접할 수 없는 품위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처럼 ‘특별함’은 바로 스스로가 스스로의 바운더리를 명확히 하고 그 가치를 지키는 데서 빛나는 법이다. 오래 전 사석에서, 모 사업가가 애인 없어 속상하다는 푸념을 하자, 다들 ‘요즘 시대에 애인 없으면 바보’라며 놀린 일이 있었다.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배우자에 대한 특별함을 망각한 시대의 한 단면이라 웃프지 않을 수 없었다. 바야흐로 10월, 몸도 마음도 풍성한 이 멋진 계절 가을엔, 그동안 소홀히 해 왔던 내 짝에 대한 ‘특별함’을 한번 발견해 보면 어떨까? 또 나만의 ‘특별함’을 가꾸는 노력도 한번 해 보면 어떨까?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인간관계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2021-10-20

메타버스와 디지털 격차

김규종 경북대 교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용과 주근깨 공주’를 보고 느끼는 점이 많았다. 모든 연령대가 함께 볼 수 있는 만화영화지만, 어른들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시간에 영화관에 들어온 아이는 한 명이었다. 아이는 영화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교차함에 따라 몰입도에 차이를 보였다. 가상세계에 완전히 몰두하되, 현실세계에는 시큰둥했다.호소다 마모루의 2009년 만화영화 ‘썸머 워즈’를 보고 아주 놀란 적이 있다. OZ라는 가상세계를 일본 농촌의 대가족과 연결하는 내공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저런 상상력을 가진 감독이 여전히 일본에 있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 것이다. 12년이 지난 2021년에 그가 보여주는 가상세계는 훨씬 진화한 공간으로 다가온다.감독은 ‘메타버스’를 영화의 전면에 배치한다. 어린 시절 엄마를 잃은 상처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으면서 세상과 단절한 여고생 스즈. 제한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좋아하는 노래도 못하던 스즈. 그런데 메타버스의 가상공간 U에 접속하자마자 스즈는 놀라운 가창력을 가진 아바타로 재탄생한다.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벨’이란 아이디로 새롭게 탄생하여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스즈. 가상공간 U의 가입자는 50억! 순식간에 1∼2억의 가입자를 매료시키는 벨. 여기서 스즈와 벨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일본의 평범한 고교생 스즈와 가상공간을 매혹하는 새로운 스타 벨의 정체성이 뒤섞여진다는 얘기다.가상공간에서 만나는 용의 상처와 고통을 동정하는 스즈는 실제 현실에서 그를 찾아내려 한다. 스즈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현실의 ‘케이’를 만나고, 그를 보호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가상공간과 현실세계의 조화롭고 경이로운 만남이다. 아바타의 세계를 현실로 인도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인간다움의 영역을 확장하는 호소다 마모루!만화영화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깊은 한숨이 나온다. ‘썸머 워즈’에서 가상공간과 실제 현실은 따로 존재하는 개별적인 공간이다. 그런데 이번에 ‘용과 주근깨 공주에서 두 공간은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서로 이어져 있다는 차별성을 보여준다. 가상공간의 경이로운 진화가 이루어진 셈이다.‘메타버스’는 단순한 3차원 가상공간이 아니라, 가상공간과 현실이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공간이며, 현실과 가상세계의 교차점이 삼차원 기술로 구현된 세계라는 말이 실감 나는 영화가 ‘용과 주근깨 공주’다. 저런 세계가 바로 옆에서 펼쳐지고 있건만, 한국의 노인들은 그저 그런 드라마와 빤한 노래자랑에 열광하며 세월을 보낸다.공공장소에서 울려 퍼지는 전화기도 끌 줄 모르는 노인들. 그들이 조만간 경험하게 될 디지털 격차가 두렵다. 메타버스가 일상화하는 시점이 온다면, 세대 간의 상호이해와 소통이 얼마나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더 늦기 전에 노인 세대를 위한 디지털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1-10-19

코로나19, 풍속을 바꾸다

박창원​​​​​​​수필가 우리가 만들어가는 물질문화는 빠르게 변한다. 걸어 다니다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2,3년마다 휴대폰을 바꾸고 하는 것은 물질문화의 변화다. 전 세계인이 이 변화의 물결 속에 별 거부감 없이 동참한다. 그러나 풍속, 종교, 의식주 같은 정신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법으로도 바꾸기 어렵다. 억지로 변화시키려 하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긴다.우리 사회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대다수 사람들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다. 혼례, 장례, 제례 같은 생활풍속이다. 절차가 복잡하고 허례허식적 요소가 많아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지켜 온 미풍양속이라는 수식어를 등에 업고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는 문화로 존속해 왔다.내 집안의 경우 명절 때마다 고향 어머니 댁에 대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해 오다가 지난 추석에 대구의 맏형 댁에서 형님 가족만 모인 가운데 차례를 지냈다. 나는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 해 추석, 올 설에 이은 세 번째다.그렇게 공고하던 우리의 생활풍속이 최근에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조사의 경우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직접 가지 않고 온라인으로 축하를 하거나 문상을 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혼례에 관한 한 우리는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다. 모처럼 맞은 주말에 지인 자녀의 혼례식이 있어 예식장에 간다. 어렵게 주차를 하고 식장으로 올라간다. 줄을 서서 혼주에게 눈도장을 찍고, 축의금을 식권과 바꾼 다음 여러 손님이 뒤섞인 뷔페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온다.장례는 또 어떤가? 누가 상을 당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퇴근하자마자 곧장 장례식장으로 달려간다. 수십 개의 조화가 줄지어 있는 복도를 지나 빈소에 도착하면 이미 많은 문상객이 와 있다. 빈소에서 고인에게 예를 표하고 상주에게 몇 마디 위로를 건네고 부의금을 건넨 다음, 접객실로 이동하여 지인들과 인사를 하고,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1시간 남짓 시간을 보낸 뒤 집으로 돌아온다.이처럼 우리는 친지, 동료, 사회적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데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인다. 한국인들의 독특한 생활풍속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다. 정부에서 1969년 1월에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바꿔 보려했지만 실패했던 이 풍속이 지금 변하고 있다. 청첩이나 부고를 할 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축하나 조문을 제한한다고 하고, ‘마음 전할 곳’이라는 난에다 혼주나 상주의 계좌번호를 적어두는 추세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주 가까운 친척이나 친한 사람 아니면 축의금을 계좌로 보내게 되는 것이다.이 변화를 이끄는 주체는 정부도, 시민단체도 아닌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이 현상으로 인한 팬데믹이 종료되더라도 제례나 경조사는 우리 의도와 상관없이 소가족 단위로 축소되고 절차도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코로나 이전(B.C, 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C, After Corona)’라는 시대 구분은 이처럼 우리의 생활풍속에서도 예외가 없어 보인다.

2021-10-19

사색의 계절

언제부턴가 한국인이 선호하는 계절이 가을에서 봄으로 바뀌었다.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국민을 상대로 선호 계절을 조사해 보았더니 2014년 조사에서는 가을이 1위로 선택됐다. 그러나 5년 후 같은 내용으로 다시 조사를 했더니 이번에는 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조사기관은 이유는 명확지 않으나 벚꽃 열풍과 많아진 봄철 축제와 무관치 않을 거라 풀이했다.그러나 성별 조사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갈라졌다. 남성은 가을(40%), 여성은 봄(45%)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봄과 가을은 기온이 비슷한 계절이지만 느낌은 다르다. 채근담에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하라는 말이 있다. 춘풍추상(春風秋霜)이 바로 그것이다. 봄은 따뜻한 바람에, 가을은 찬 서리로 비유한 것이다.어느 작가는 봄을 상쾌한 아침에 비유했고, 가을은 차분한 저녁으로 표현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가을은 영혼의 계절”이라 불렀고, 헤르만 헤세는 가을은 “더 높은 삶으로 들어가는 계절”이라 말했다. 서정주 시인은 ‘국화옆에서’라는 자신의 시에서 서리 속에 홀로 피는 가을 국화를 강인한 생명력으로 표현했다.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가을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를 다시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라는 것이다.독서의 계절, 그리움의 계절, 사색의 계절, 낭만의 계절이라 불리는 것 등은 나름 가을의 특징을 잘 드러낸 말이다. 누구나 시인이 되고 싶은 계절이 돌아왔다. 시끄러운 세상일 뒤로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깊은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19

옛 노래의 추억과 한류의 빛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1920년 6월에 창간된 천도교 청년회의 기관지인 ‘개벽’ 1922년 1월호에 실린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의 전문이다. 단 4연으로 된 짧은 이 시는 처음에 작곡가 안성현에 의해 가곡풍의 노래로 만들어졌다. 안성현은 월북하여 북한의 공훈예술가 칭호까지 받았고 2006년 북한에서 세상을 떴다. 안성현의 곡으로 된 ‘엄마야 누나야’는 작곡가의 월북 탓인지 지금은 거의 불려지지 않는다.이 시는 KBS의 초대 악단장이었던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인 김광수에 의해 다시 노래로 만들어졌다. 지금 불리는 노래는 거의 김광수 작곡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작곡가의 영향이 컸던지 안성현 곡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꽤 많다. 김광수 작곡의 동요풍 노래인 ‘엄마야 누나야’는 성악가가 부르기도 하고 대중가수가 부르기도 했는데, 나에게는 도쿄국제가요제, 아테네국제가요제, 칠레가요제에서 상을 받은 국제적 가수 정훈희가 부른 대중가요로 기억되고 있다.대중가요의 힘이 큰 때문일까? 서울 한강변의 작은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지금은 한강서 좀 떨어진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는 이따금씩 이 노래가 귓가에 맴돌곤 한다. 아들만 주르륵 넷인 집안의 셋째이기에 누나는커녕 누이동생도 없지만, 어린 시절 한강 백사장에서 모래를 만지며 놀던 기억 속에서 있지도 않은 어여쁜 누이가 늘 함께 하는 것은 이 노래 탓이리라.이른바 ‘글로벌 슈퍼밴드’ 구성을 목표로 한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2’가 지난 6월 21일에 시작해 지난 4일에 막을 내렸다. 아들 덕에 보게 된 이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나는 가끔씩 전율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렇게 노래도 잘하고 연주도 멋들어지게 하는 젊은이들이 많은지. 혼신의 힘을 기울이기도 하고, 제 흥에 푹 빠져 즐겨가면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그 열정은 또 얼마나 대단하던지.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문외한의 눈과 귀여서 그랬나, 최종 수상자는 말할 것도 없고 초반에 탈락한 지원자들까지 기량이 떨어지는 이들을 찾기 힘들었다.비틀즈의 노래를 즐겨들으며 자란 7080세대의 나는 BTS와 블랙핑크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을 보며 한국 가요, 한류의 힘에 새삼 놀라고 있다. 이들 아이돌그룹은 연예기획사의 치밀한 기획과 투자와 노력이 만들어낸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결과물, 최고의 상품(또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우리나라 가수가 부른 노래의 세계적 열풍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에서 올라온 슈퍼밴드 출연자들의 면면에서 나는 그 열풍의 단초와 빛줄기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 겨레의 몸과 혼 속에 스며있는 음주가무의 전통이 한류의 빛의 시발점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그나저나 부동산업계에선 김소월을 두고 한강변 아파트의 폭등을 예견한 시인이라는 농담이 떠돈다는데, 젊은 시절에 대중가요만 듣고 있지 말고 일찌감치 한강변에 자그마한 아파트 하나를 마련했어야 하나?

2021-10-19

공정과 평등이라는 게임의 룰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넉넉한 환경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여러 문화들을 어떠한 제한 없이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용 컴퓨터가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하고 고속 인터넷이 보편화된 덕분에 우리 세대는 일찍이 경험할 수 없었던 문화들을 아주 손쉽게 향유할 수 있었다. 만화, 영화, 음악, 판타지 소설 등 다양한 문화들이 인터넷 공간을 통해 공유되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 나의 10대를 사로잡은 것은 게임이었다. 삼국지, 영웅전설, 랑그릿사, 울티마 등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게임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화려한 그래픽과 비장한 스토리에 사로잡힌 우리는 꼼짝없이 밤을 새어가며 전국의 통일과 세계의 안위를 위해 싸우는 주인공이 되어갔다.내가 게임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건 사실 이유가 있다. 1등을 강요하지만 어떻게 1등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고, 나의 노력보다 늘 더 노력하는 누군가로 인해 경쟁 속에서 뒤처지기만 했던 현실과 달리 게임의 세계는 공정과 평등을 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노력을 통해 우리는 얼마든 강해질 수 있으며, 노력은 결과와 늘 일정하게 비례했다. 다른 것 필요 없이 단지 컴퓨터만 있으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이 세계를 현실보다 사랑했던 건 당연한 결론일지도 모른다.그런 의미에서 게임의 세계는 현실보다 공정했다. 노력을 하고, 그 노력에 따라 공평한 결과를 분배받을 수 있는 세계. 모든 기회가 평등하게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세계. 물론 ‘리니지’와 같은 MMORPG 게임에서는 빈부의 격차와 힘의 논리에 따라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또한 게임의 룰에 따라 얼마든, 언제든, 누구든 뒤집을 수 있었다. 필요한 건 게임의 구조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노력 두 가지 뿐이었다. 우리가 그 세계 속에서 노력을 할 수 있었던 건 이와 같은 게임의 룰이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이 또한 이젠 옛날의 얘기에 불과하다. 게임의 룰은 더 이상 모든 유저에게 공평하고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현실의 자본력이 게임 속 판도를 결정하는 가운데, 게이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남들보다 많은 지식이나 노력이 아니라 게임 밖 현실에서의 재력이다. P2W(Pay to Win)이 기본 법칙이 된 게임 속에서 플레이를 통해 강해지는 것보다 같은 시간 돈을 벌어 그 돈을 게임에 쏟아 강해지는 것이 더 효율적이게 된다면, 과연 이것은 무엇을 위한 게임일까? 이와 같은 구조는 게임의 룰이 왜곡되고 변형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게임의 룰은 모든 유저에게 공정하고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게임의 룰 또한 유저의 자본력에 의해 그 적용이 얼마든 달라진다.90년대와 2000년대의 게임사가 유저 친화적 입장에서 게임을 디자인하고, 유저를 하나의 새로운 세계에 정착시키고 그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과 달리, 이제 게임사는 유저들에게 더욱 경쟁을 부추기며 그러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으로 과금을 강요한다. 그 과정에서 게임의 룰은 더 많은 재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되며, 이와 같은 과정은 유저들을 지치게 만든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가뜩이나 수저 계급론이 팽배해진 현실 속에서 게임 속 세계마저 현실과 유사하게 돌아가도록 구성된다면, 이를 환영할 게이머는 과연 몇이나 될까? 최근 나타난 NC소프트의 부진은 이와 같은 게임사의 태도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게이머들이 예전과 같은 게임의 룰을, 공정과 평등이라는 기본적 원칙이 지켜지는 세계를 원한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게임의 룰이 공정하고 평등할 때, 그리고 이것이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믿을 수 있을 때 게임 속 세계는 나름의 합리성을 통해 지속된다. 그와 같은 게임의 룰이 깨질 때, 유저들은 게임을 떠나버리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고전 게임의 향수에 빠지거나 클래식 버전의 게임에 몰입하는 건 단순한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공정과 평등이라는 게임의 룰이 지켜지는 세계를 원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게임이 현실을 닮아가는 것이 유독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에게 도피할 곳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는 선언과 같기 때문인 것일까. 그렇다면 이 글이 게임에 대해 말하고 있음에도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다.

2021-10-19

예술과 우울

예술가의 뇌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뇌와 비슷하다는 견해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미미한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우울한 감정이 창조성을 발휘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정신 분석가들의 결론이 아니더라도 이것은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다. 역사상 위대한 예술가로 칭해지는 이들은 때때로 우울증을 앓았다. 빈센트 반 고흐, 슈베르트, 말러, 헤밍웨이…. 이들의 작품은 섬세하며 이성적인 동시에 감정을 건드리고 추동력이 있으며 한없이 경계가 넓어지는 경험과 함께 강한 충격을 안겨주기도 한다.에트바르트 뭉크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대표작으로 칭할 수 있는 ‘절규’를 보고 있노라면 시각적 이미지로 국한되지 않고 청각과 촉각적 지점까지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그림에서 얼굴에 손을 대고 있는 인물은 정면으로 관객을 향하고 있다. 관객에게 자신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형태다. 거기에서는 공포가, 절규가, 찢어지는 것과 같은 비명이 흘러나온다. 같은 주제로 그린 그의 소묘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덧붙여 있다.“두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처럼 붉어졌고 나는 한 줄기 우울을 느꼈다. 친구들은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나만이 공포에 떨며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질러 가는 것 같았다.”정수리 위로 해가 내리쬐는, 별다를 것 없는 일상적인 날, 친구들과 길을 걸어가던 뭉크는 문득 공포를 느낀다. 그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관찰한다면 볼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니다. 내적으로 발동된 잠재된 불안과 두려움에 가깝다. 그러나 뭉크에게 그것은 분명 실재하는 감각이었을 것이다.그와 함께 같은 거리를 산책하던 친구들은 느끼지 못했던 원천적인 고통과 슬픔. 뭉크에게 그토록 섬세한 감정의 파동을 일게 했던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뭉크에게 죽음은 머나먼 추상적 개념이 아니었다.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나를 폐렴으로 잃었고, 같은 해 남동생 역시 같은 병으로 죽었다. 강압적으로 그를 통제하던 아버지 역시 세상을 떠났다. 뭉크는 “나는 인류에게 가장 두려운 두 가지를 물려받았다. 하나는 신체적인 허약함이고, 하나는 정신병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과도한 불안증세와 심지어 환각 증세까지 겪게 되면서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던 전적도 있다.그의 작품을 그의 삶과 연결시키지 않더라도 그는 다른 사람보다 확실히 예민하게 감각하는 사람이었음은 확실하다. 그의 내면에서는 강렬한 추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명명하기에는 부족한, 정신이 망가졌다는 것으로 국한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뭉크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표현해내려고 노력했다.그건 뭉크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 유령처럼 속삭이는 텅 빈 목소리를 듣게 된다. 삶의 무용함, 혼란, 외로움, 불가능한 이해와 관계, 붙잡을 수 없는 감정들…. 그것을 듣는 일은 분명히 고통스럽다. 불가해하고 어리석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표현해내는 것 역시 그러하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러나 그것을 듣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예술가들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위대한 작품들은 개인의 고통스러운 투쟁의 결과인 것이다.우리의 생각의 끝은 어딜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리하여 그 생각의 끝에 도달하게 되면 거기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결코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매번 생각의 과정 중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결코 완성할 수 없는 피안의 세계. 그것을 단지 ‘죽음’이라는 관념으로 치환할 수는 없다.예술가들은 그곳에 끝끝내 가닿기 위해 늦은 밤 혼자 책상 앞에 앉아 마음껏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 불분명하고 고통스러운 행위가 그들을 좌절시키고 또 기적처럼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2021-10-19

그림 때문에 분열된 동·서방교회

서양미술사에서 13세기는 중세에 속하며 고딕양식이 서유럽 전역에 확산되던 시기이다. 13세기를 이탈리아어로는 두에첸토(Duecento)라고 부른다. 1200년대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의 두에첸토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들은 비잔틴 미술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었다. 1054년 기독교는 정치적, 신학적 입장차 때문에 교황 중심의 로마 가톨릭과 비잔틴 제국의 동방정교로 분열되었지만 비잔틴 미술은 이탈리아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비잔틴의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 미술을 마니에라 그레카(maniera greca)라고 부른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그리스 풍’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비잔틴 양식을 가리킨다.로마 가톨릭과 비잔틴 교회는 수백 년 넘게 갈등과 반목을 이어왔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로마제국 단독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콘스탄티누스 대제 사후 그 이름에 따라 콘스탄티노플로 불림·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으로 옮겼기 때문이다.비잔티움이 군사적, 경제적 측면에서 분명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수도의 이전은 중심의 이동이자 권력의 이동이다. 그리고 그 권력에는 종교 권력도 포함된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최고의 머리는 성인 베드로의 대를 잇는 로마의 교황이다. 그런데 수도가 비잔티움으로 옮겨가면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권력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로마 교황과 대립하게 된다.동·서방교회 충돌의 불씨가 된 것은 성화 사용에 대한 입장차였다.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칙령으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되기는 했지만 기독교 교리가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 여러 신학적 쟁점들이 종교회의에서 다퉈지고 있었다. 교회에서의 미술품 사용을 두고 찬반의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을 한다. 대(大)교황 그레고리우스는 그림 사용에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읽지도 쓰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교육적 목적으로 그림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미술품 사용 반대파는 우상숭배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 성서의 가르침을 이유로 내세웠다. 교황의 지침에 따라 서방교회는 적극적으로 미술품을 수용했던 반면 비잔틴의 동방교회는 교회에서의 미술품 사용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파괴했다. 이 사건을 가리켜 ‘비잔틴 성상파괴운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술품 사용을 둘러싼 두 교회 간 분쟁의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476년 게르만의 침략으로 서로마제국이 몰락했다. 게르만족은 원활한 통치를 위해 토착 로마인들과의 유대 및 결속이 필요했고, 그러한 이유로 기독교를 적극 수용했다. 로마 가톨릭의 입장에서 야만족들을 개종시키는데 미술품은 용이한 수단이었다. 반면 비잔틴의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하다. 비잔틴 제국은 그리스의 학문적 전통을 이어가면서 각 지역별로 다양한 신학적 이론들이 생겨났고, 교리에서 벗어난 이단적 사상으로 비잔틴교회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숭배 문제와 직결된 그림 사용에 대해 완고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서방교회는 로마제국 황제의 정통성을 이어가던 비잔틴에 명목상 종속되어 있었다. 730년 비잔틴의 황제 레오 3세가 성상금지령을 내렸고, 이를 이유삼아 서방 교회가 콘스탄티노플에 바치던 세금 납부를 거부하면서 서로간의 골이 깊어졌다. 로마 가톨릭의 속내는 성상금지령을 빌미로 비잔틴의 정치적 간섭과 규제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것이었다. 로마 가톨릭은 비잔틴과 거리를 두는 대신 야만족들이 세워 왕성한 힘을 키운 프랑크 왕국에 손을 내밀었다. 교황 스테파누스 2세는 754년 파리 북부 생드니 대성당에서 프랑크의 왕 피핀 3세를 위한 축성식을 개최했고 그 자리에서 그에게 ‘프랑크의 왕이자 로마의 대군’이라는 직위를 내렸다. 이로써 프랑크의 왕은 교황으로부터 지배와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았고, 교황은 프랑크 왕의 힘을 등에 업고 비잔틴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미술사학자

2021-10-18

문두루비법을 행하다, 사천왕사

경주 사천왕사(四天王寺)에 대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문헌기록에는 유독 신성스럽고 기이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12 신라본기12 경명왕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3년(919년)에 사천왕사의 흙으로 만든 불상(塑像)이 들고 있던 활의 줄이 저절로 끊어지고, 벽화의 개가 소리를 냈는데 마치 짓는 것 같았다”.삼국유사 권2, 기이2, 문무왕법민(文武王法敏)에는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행하자, 갑작스런 풍랑이 일어 당나라군의 배가 모두 침몰하였다..” 이 구절은 어느 소설에 등장할 법한 말은 아니다. 바로 사천왕사와 관련된 기록이다. 사천왕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앞서 사찰이 위치한 낭산(狼山)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할 것 같다.낭산은 세 개의 봉우리가 남북방향으로 긴 능선을 이루는데 삼국사기 권3 실성이사금조에는 “12년(413년) 가을 8월 낭산에서 구름이 일어났는데 바라보니 누각과 같았고, 향기가 가득 퍼져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왕이 말하기를 ‘이것은 반드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노는 것이니 마땅히 이곳은 복 받은 땅이다’라고 하였다.이때부터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처럼 낭산은 신라왕실은 물론 신라인들에게도 신성한 신유림(神遊林)으로 인정받았고 그래서인지 사천왕사의 창건은 물론 주변으로 망덕사지, 황복사지, 선덕여왕릉 등 다수의 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이렇듯 낭산은 당시 신라사람들에게 복된 땅이자 신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사천왕사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닐까?사천왕사와 관련된 창건기록으로 이야기를 되돌아가 본다. 삼국유사 기록처럼 사천왕사는 당나라군의 침입을 물리친 영험을 계기로 창건되었다. 당나라군이 침입한다는 소식에 왕은 여러 신하들과 방어책을 논의했는데 명랑법사(明郞法師)가 아뢰길 “낭산 남쪽 신유림이 있으니, 그곳에 사천왕사를 세우고 도량을 여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그러나 사찰을 짓기에는 급박하자 명랑은 다시 “채색 비단으로 절을 임시로 지으십시오”라고 답한다. 이에 명랑을 우두머리로 하여 문두루비밀법(文豆婁秘密法)을 지으니, 당나라와 신라 군사가 싸우기도 전에 풍랑이 크게 일어 당나라의 배가 모두 침몰하였고, 그 후 절을 고쳐 짓고 사천왕사(문무왕 19년·679년)라고 했다 한다.문두루비법은 산스크리트어 무드라의 음을 딴 밀교의 비법으로 불단을 설치하고 다라니 등을 독송하면 국가의 재난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급박하게 임시로 만든 후 탄생한 사천왕사는 고려시대까지 문두루비법과 관련된 단석(壇席)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혹시 이 흔적이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동·서 단석지가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다.사천왕사와 관련해서는 기록뿐 아니라 발굴조사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발굴조사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이루어졌고 강당지-금당지-탑지 등의 가람배치를 밝히는 중요한 성과가 있었다.그 중 주목할 만한 것은 금당지 앞에 동·서로 대칭을 이루고 서 있었을 탑지이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쌍탑의 석탑으로 정착되는데 목탑에서 쌍탑의 석탑으로 변화하는 가교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사천왕사이다.흔히 중국은 전탑, 일본은 목탑, 한국은 석탑이 많은 나라라고 하는데 물론 한국에서도 목탑과 전탑이 있었다. 황룡사 구층목탑과 목탑의 흔적으로 볼 수 있는 사찰이 여러 곳 존재한다. 아쉽게도 남아있지 않아 삼국시대 목탑의 원형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목탑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탑지에 심초석과 사천주가 있느냐에 따라 알 수 있는데 사천왕사에서는 동·서 탑지에서 모두 목탑지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발굴조사 당시 주목된 것은 탑지 기단면에서 확인된 벽전이다. 바로 녹유신장벽전이다. 이 벽전은 명칭부터 논란이 있었는데 사천왕상, 신장상, 신왕상, 소조상, 팔부중상 등 어떻게 불러야 옳은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여기에서는 녹유신장벽전으로 부르고자 한다. 정여선 ​​​​​​​학예연구사 녹유신장벽전은 목탑 기단부 한 면에 6점씩 모두 24점이 배치되었고 따라서 동·서 탑지를 합하면 모두 48점인 셈인데 얇은 녹유를 시유한 것으로 복원결과 높이 90cm, 너비 70cm, 두께 7~9cm로 확인되었다. 이 벽전은 아치형의 감실에 갑옷을 입은 눈을 부릅뜬 신장상으로 두 악귀위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매우 실감 있고 자세하게 표현된 부조상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각각의 벽전 모습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얼굴의 모양과 바라보는 방향, 머리에 쓰고 있는 관(투구)의 모양, 갑옷의 모양, 앉아있는 자세 등이 달라 총 3종류로 구분된다. 특히, 목탑지 한면의 중앙에는 계단이 있고 이 계단을 기준으로 3종류가 1세트를 이루어 한 면에 2세트씩 배치된 것인데 이 상들의 얼굴 방향이 첫 번째는 좌측, 두 번째는 중앙, 세 번째는 우측을 응시하고 있다. 이는 조각에 있어 뛰어난 불교예술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배치에 있어서도 매우 계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녹유신장벽전은 통일신라시대 우수한 조형기술로 제작된 것으로 이처럼 목탑기단면에 장식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혹시 녹유신장벽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세 종류의 벽전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각각 어떻게 다른 자세와 모양을 취하고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사천왕사를 이해하는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2021-10-18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

강길수 수필가 젊은 날, 성당에서 ‘레지오 마리애’란 소공동체 활동을 시작했었다. 창단 단원으로 출발하여 오늘 해단할 때까지, 오랜 기간 참여했다. 해단 사유는 단원들의 수가 줄어, 더는 소공동체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단원이 줄어든 원인은 개인 사정도 있었지만, 다른 지역 전출이 주된 요인이었다. 전출은 타 시도로 가는 경우와, 같은 지자체에 살면서도 주거지 이동으로 거리가 멀어져 떠나는 경우의 두 가지로 대별 되었다. 우리 성당이 기존 시가지에 있어서 전입자보다 전출자가 많은 요즈음의 사회 여건도 작용했다.새 교우 영입, 혼성체제 도입, 상위 단체 지원요청 등 자구책을 쓰면서 버티어 왔다. 40주년을 반년 남짓 앞두고, 남은 단원이 한 명밖에 안 되었다. 결국, 해단하기로 했다.젊을 땐 인구가 유입되며 선교가 잘 되어, 분가(分家)를 걱정해야 할 때도 있었다. 간부 맡을 이가 모자라서다. 하지만, 반세기도 안 된 해단 앞에서 ‘긴 세월 동안 함께해 고마웠고, 행복했다’라고 카톡 인사를 보냈다. 격세지감과 회한, 어떤 슬픔도 가슴에 여울져 왔다.알파와 오메가란 말이 있다.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자 알파(α)와 끝 자 오메가(ω)를 말한다. 주로 그리스도교에서 신앙대상의 영원한 존재성을 말할 때 많이 사용해 오다가, 요즈음은 일반적으로도 많이 쓰고 있다. 일반적 뜻은 처음과 끝 혹은, 어떤 무엇의 전부를 뜻하는 말이리라.무릇 만사는 시작과 과정, 그리고 끝이 있다.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 살다가 죽는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먼지 한 알부터 흙, 돌, 바위, 지구 등 자연은 물론, 나아가 원자에서 태양계, 우주에 이르는 물질계도 같다. 바로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명체와 물질계의 존재 양태는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 안에 있다’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당연히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에는 ‘시간’이란 야릇한 존재, 변수 또는 개념이 그 몸이다. 시간은 물리학이나 철학에서 끊임없이 다루어 왔지만, 명쾌한 답은 아직도 못 얻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생로병사의 과정을 살면서, 거부할 수 없이 처절하게 당하며 겪어내야 할 괴물이 시간이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한다’라든가 ‘세월 앞에 장사 없다’란 속담만 보아도 그렇다. 시간의 절대 폭력 앞에 던져진 것이 모든 존재이다. ‘유종의 미’란 말도 있다. 목표를 끝까지 잘 이루어 내는 일이리라. 그렇다면 앞 소공동체 활동은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일까.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에서 보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 무엇도 언젠가는 끝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출발한 다른 단체는 계속되므로 그렇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결국, 만사는 꿈보다 해몽이란 말인가.오래 활동한 성당 소공동체의 알파와 오메가 법칙 결과가 이럴진데, 사회와 국가의 그것은 어떠해야 할까. 정권이 나라를 한 번도 겪지 못한 길로 막무가내 끌고 가는 우리 사회…. 그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이, 주권자 국민인 내게 실망을 주고 있다.

2021-10-18

미안하다고는 안 할 게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고1 때다. 어쩌다가 응원 밴드에 들게 되어 큰북과 심벌즈를 담당했다. 음악 선생님이 몇 번 쳐보라고 하더니 두 악기를 내게 맡겼다. 피아노를 잘 쳤던 친구는 어코디언을 맡았는데, 바로 연주를 잘했다.시내 공설운동장에서 학교 대항 응원이 끝나고 그 친구가 내게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화를 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때는 피아노 잘 치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고, 그 부러운 마음만큼 큰북이나 심벌즈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피아노 잘 치는 애가 나를 칭찬하니까 열등감이 폭발한 것이다.그 날의 일이 가끔 생각난다. 이렇게 아무 때나 갑자기 생각나는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내가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선영의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에는 신경이 예민해지는 정도, 때때로 일어나는 걱정이나 생각, 불안해질 때 하는 행동, 그것들이 일어나는 빈도,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 느낌 등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일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참거나 조절하려고 하는 것은 성공하기 힘들다.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나 자책 역시 그것을 통제할 수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서 후회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대로 그런 감정은 내가 통제할 수 없고, 그런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해도 그때의 나라면 똑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면 후회 역시 아무 소용이 없다.‘그때 내가 너한테 한 말, 미안하다고는 안 할게. 그런데 이제는 너 원망 안 해. 그때 나는 남편 없이는 숨도 쉴 수 없었어.’ 요즘 인기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15회에서 나온 대사다. 5년 전 친하게 지내던 형이 주인공 대신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자 누나(형의 아내)가 주인공 홍두식에게 ‘네가 죽었어야지, 왜 형이 죽어.’라고 했던 말에 대해 사과 아닌 사과를 이렇게 한 것이다.드라마 작가가 ‘수용’의 의미를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는 그랬어’라는 누나의 말은 그 말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제 누나는 홍두식이 죄책감 느끼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 아이에게 홍두식을 삼촌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니 모두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허지원 교수 역시 ebs2의 ‘무덤덤한 심리학’ 강의에서 ‘그때는 내가 취약했지’라고 받아들이고, 지금은 ‘내가 어떻게 하면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 나 스스로 나를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내가 지금 알아가고 있다. 이것이 나의 삶이다’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그렇다고 이런 수용이 대오각성하듯이 단번에 깨달아지는 것은 아니다.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행동을 자기도 모르게 할 수 있다. 그럴 때는 과거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때 왜 그랬는지 분명하게 알 것, 그리고 지금 내가,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 나가면 된다.

2021-10-18

부스터샷

부스터샷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자의 면역효과를 높이기 위해 추가접종하는 것을 말한다. 코로나19 돌파 감염이 계속되면서 백신 부스터샷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겁다. 미국, 유럽, 영국 등은 이미 부스터샷 접종을 실행하고 있다.올해 7월 화이자 백신으로 면역저하자 대상 3차 접종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부스터샷을 통해 전 연령층에서 재감염률과 중증 악화율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부스터샷은 고령층의 중증 악화나 입원을 예방하는 효과가 5~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4차 접종을 위한 백신 물량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모더나 백신의 부스터샷 효과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병원과 프랑스 연구진이 지난 8월 각각 NEJM과 JAMA에 게재한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토론토 대학병원 연구팀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마치고 2개월이 지난 장기 이식 환자를 대상으로 부스터샷 접종을 진행했는데, 3차 접종을 마친 집단의 바이러스 중화율 중앙값이 71%에 달했다. 3차 접종을 하지 않은 집단은 바이러스 중화율 중앙값이 13%에 불과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경우, 부스터샷을 접종한 사례는 없다. AZ 백신과 같은 바이러스벡터 방식의 얀센 백신의 부스터샷 효과 임상시험 결과는 있다. 얀센 백신 제조사인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은 초기 임상시험 결과 얀센 백신을 접종한 지 6개월 지난 참가자들에게 두 번째 백신을 투여한 결과 이들의 항체 수준이 최초 접종 4주 뒤와 비교해 9배 높았다고 발표했다.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얀센 백신 접종자에 대한 부스터샷 접종계획 수립을 지시한 것도 국민들의 불안감을 고려한 조치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아무리 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0-18

인간은 부정성 편향이 있다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당신이 거리를 걷고 있는데 거리 반대쪽에서 아는 사람을 보았다. 당신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가버렸다”면 당신의 감정은 부정적일까? 긍정적일까?아마 부정적인 감정이 들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이 당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화가 났을 것이다.그러나 나중에 그 사람이 말기암 진단을 받고 망연자실해 당신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그 사람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고 적어도 화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이 상황은 정신의학적으로 사건 자체는 중립적이라고 본다.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생각과 해석에 따라 감정과 행동은 달라진다. 다시 말해 감정과 행동 반응은 그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왜 인간은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을 가질까?원시시대 인류의 이야기로 거슬러 가보자. “밀림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놀고 있다. 그때 저 멀리 숲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 부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 놀고 있었고 한 부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맹수라고 생각하고 미리 피신을 했다” 어떤 인류가 생존할 가능성이 높을까?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피신을 하지 않았던 인류보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맹수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미리 피신했던 인류가 생존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우리는 생존한 자의 후예이다. 그렇다.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은 원시시대 직접적 위험에 많이 노출된 환경에서 생명을 지켜 내고자 한 생존 본능에서 기인한 인지적 기제이다.인간의 뇌는 변연계 특히 편도체가 이를 위험인자로 느끼게 해서 위험상황에서 일단 피하도록, 다시 말해 부정적으로 사고하고 해석하도록 설계되도록 진화됐고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본능으로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좀 전에 제시한 예로 다시 돌아 가보자. 숲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사실은 맹수가 아닐 가능성이 훨씬 크다. 바람 소리일 수도 있고 아주 작은 동물이 지나가는 소리 알 수도 있다. 그렇다. 많은 경우 위험 상황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특히 현대에는 원시시대와 같이 맹수가 나타나서 목숨을 잃는 위험요소는 사실상 거의 없다.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사건조차 인생에서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정도이다. 우리는 이러한 목숨을 담보하는 잠재적 위험 때문에 더 이상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할 필요성이 사라졌다.그러나 인간이 진화하는 속도는 시대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에 우리는 시대가 변했어도 여전히 우리는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속에서 살고 있다.그래서 우리는 중립 상황이나 애매한 상황을 부정적으로 사고하고 해석한다. 또 긍정적인 정보와 부정적인 정보를 동시에 접하게 되었을 때,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내용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예를 들면, 우리는 웃는 얼굴보다는 화난 얼굴, 타인의 선한 행동보다는 악한 행동,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 칭찬보다는 비판, 긍정적 경험보다는 부정적 경험에 더 반응한다.그렇다면, 우리가 가지는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해야 할 것인가?먼저,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해서 느끼는 감정, 다시 말해 자꾸 부정적으로 내달리는 기울어진 감정은 대개 병리적인 반응이 아니라 생존 본능에서 유래한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다시 말해 우리의 부정적 사고, 부정적 감정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훨씬 크다. 우리가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는 안경을 끼고 자신, 타인, 세상,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므로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값을 제거하고 바라보아야 사실에 근접한다는 것이다.특히 정신적 스트레스의 과부하에 있는 현대인은 과거에 대한 부정적 해석으로 인한 우울감, 미래에 대한 부정적 해석으로 인한 불안감이 흔히 있을 수 있으나, 우울감과 불안감 대부분은 우리가 두려워할 병리적인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럴 수 있는 또한 지나가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점이다.결코, 우울감과 불안감이 당신의 정체성일 수 없다.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값을 제거한 새로운 해석, 새로운 의미 부여를 통해 창조적 동기와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또 극심한 부정적 사건을 겪었을 때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가 아닌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을 이루기도 한다. 극심한 부정적인 사건조차도 새로운 해석, 새로운 의미 부여를 통해 자신의 더 나은 성장을 이룰 수 있다.

2021-10-17

인구 소멸은 대한민국 소멸이다!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대한민국 인구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지난해엔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처음 발생했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보다 많아 인구가 자연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이다.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OECD 198개 회원국 중 7년째 꼴찌다.산모가 첫째 아이를 출산하는 시기도 OECD 국가 중 가장 늦다. 첫째 아이 출산 연령을 공개한 OECD 국가(30개국)의 평균 나이는 29.3세(2019년 기준)다. 하지만 한국은 이보다 2.9세 많은 32.2세다. 지난해엔 이 연령이 32.3세로 1년 새 0.1년 더 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는 추세가 두드러지면서 출산율 감소는 갈수록 심화할 것이다. 이 추세라면 30년 후엔 대한민국 인구는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정부는 심각성을 깨닫고 2006년 저출산 대책을 처음 발표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국회 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정부가 2006년 이후 16년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책정한 예산만 총 380조2천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작금의 출산율은 오히려 감소했다.이유가 뭘까. 예산이 쓰여야 할 곳에 쓰이지 않고 비효율적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유아를 직접 지원하는 예산은 크게 감소한 반면, 저출산과는 상관없는 사업에 예산이 투입됐다. 지난 16년간 책정된 저출산 예산 중 아동, 청소년, 산모를 지원한 규모는 전체 절반을 가까스로 넘는 수준이었다. 이에 반해 청년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저출산 예산의 43.0%를 차지했다.이런 현상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심화됐다. 대책 첫 해인 2006년 76.8%에 달했던 영유아 대상 예산 비중은 지난해 31.5%, 올해 26.1% 등으로 크게 줄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자녀 양육 가구를 지원하는 사업만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했지만, 3차 저출산 대책이 시작된 2016년부터는 청년의 일자리와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사업도 저출산 대책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올해 저출산 예산엔 △프로스포츠팀 지원 △돌봄노동자권리보호사업 △게임기업 지원 △기술인력 지원 △에코 스타트업 지원 △폐업예정 소상공인 지원 △협동조합 종사자 지원 △지역 문화 기획자 지원 등도 포함됐다. 이들 사업은 저출산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가족 여가 진흥이 저출산 대책이라며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데 지원하는가 하면, 대학에서 인문학을 강화하는 프로그램도 저출산 예산으로 둔갑했다. 이러니 저출산 예산을 두고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수도권 집중 현상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과 인천, 경기를 포함하는 수도권의 면적은 전체국토의 11.8%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인구는 50.1%로 전체 절반을 웃돌았다.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선 것이다. 지방의 청년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가 몰려 있는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서울공화국’, ‘서울민국’, ‘수도권공화국’이란 말이 등장한 지 오래다.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지역은 심각한 인구 유출에 허덕이면서 수도권과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청년들은 수도권 과밀로 지나친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서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경향이 뚜렷하다. 결혼 후에도 주택문제나 교육비, 육아비용 등의 부담으로 출산을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고령 인구’, ‘초고령 인구’ 중심사회로 치달으면서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지방소멸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여러 가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지방분권이니, 지역균형발전이니 하는 갖가지 정책들이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들고 있으나 자리를 만들고 예산만 축내면서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사고 있다.내년에는 제20대 대통령 선거(3월9일)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6월1일)가 치러진다. 그러나 국가의 존립 기반 자체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인구소멸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공약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대장동’, ‘화천대유’, ‘천하동인’, ‘고발사주’, ‘손바닥 왕(王)’ 등 온갖 비리 의혹과 고자질, 무속 논란으로 대선 키워드가 점철되고 있다.후보들은 이제라도 인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국민 앞에 공약해야 한다. 구호에만 그칠 수 있는 경제정책과 주택안정, 일자리 창출, 지역균형발전 공약은 곤란하다. 그동안의 정책들을 점검하고 예산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의견을 수렴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는 게 완성도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인구 소멸은 대한민국 소멸이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2021-10-17

집권여당의 ‘대구조롱’ 어디까지 갈 건가

심충택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양기대 의원(경기 광명시을)이 지난 13일 “코로나19 대확산의 근원지가 대구”라고 말했다는 뉴스를 듣고 ‘저 사람이 정말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날 국회 국감에 출석한 권영진 시장에게 “대구가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감염사태로 코로나19 대확산의 근원지가 됐다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대구의 초기대응이 미흡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중국이 아니라 대구로 인해 코로나19가 한국에 확산됐다는 기가 막힌 주장이다.코로나19가 2019년 12월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됐다는 것은 정설로 굳혀져 있다. 당시 중국에서 매일 수천 명의 환자가 발생하자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중국인 여행객 입국 제한조치에 나섰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차단’ 필요성이 강하게 거론됐다. 그러나 정부는 세계보건기구 권고에 따른다며 ‘고위험지역(우한) 차단과 출입국 검역 강화’라는 방역원칙을 발표한 후 국제공항 입국장을 열어놓았다. 그 사이 국내에선 중국을 다녀왔거나 이들과 접촉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전파됐다. 대구에서도 지난해 2월 18일 국내에선 31번째로 첫 환자가 나왔다.국민의힘 대구출신 국회의원들은 지난주 발표한 ‘(권 의원의)망언규탄 입장문’에서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19 초기 감염자 입국을 막지 못해 대구시민들을 속수무책으로 위험에 노출시켰다. 코로나 대확산의 진짜 근원지는 문재인 정권 자신이다”고 밝혔는데, 공감이 간다.대구·경북은 신천지교인인 31번 환자가 발생한 이후 8일 만에 누적 확진자가 1천명을 넘어섰다. 양 의원이 대구시의 초기대응이 미흡하다고 했는데, 당시 방역상황은 2월 25일부터 3월 9일까지 대구에 머물며 병상과 생활치료센터 확보를 진두지휘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잘 알고 있다. 대구시민과 방역당국, 의료진은 일심동체가 돼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벌이면서 52일만에 ‘확진자 제로’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대구시민은 스스로를 봉쇄했고, 대구시 코로나19 비상대응본부 구성원들은 모두 밤을 꼬박 새우며 대구의 의료시스템을 지켜냈다. 당시 생활치료센터와 드라이브 스루 선별검사, 이동검체검사, 자가격리자 의료진관리 등 코로나19 방역의 핵심적인 노하우는 모두 대구가 만들어냈다. 초기대응이 미흡했다는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다.대구시민들이 당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양 의원처럼 집권여당과 그 지지자들은 대구에 비수를 꽂는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정부는 ‘우한폐렴’이라는 단어는 못쓰게 하면서 ‘대구발 코로나19’라는 지역비하 단어는 마구 썼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대구경북에 봉쇄정책을 시행하겠다”고 언급해 시민들은 대구가 감옥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껴야 했다. 민주당 한 청년위원은 “문 대통령 덕에 다른 지역은 안전하니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고 했다.대구 국회의원들도 입장문에서 지적했지만, 집권여당은 대구시민들을 같은 국민으로 여기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2021-10-17

마크롱의 원전회귀

지구온난화로 생존에 위협받는 동물로 코알라가 자주 주목을 받는다. 코알라는 물 대신 유칼립투스라는 나뭇잎의 물을 섭취하며 살아가는데 수분이 많이 함유된 유칼립투스 나무가 지구온난화로 생식이 부진해져 코알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코알라 개체 수는 25% 줄었다.영국의 공공정책연구소는 2005년 이후 전 세계에서 홍수가 15배 늘고 고온과 강추위 등 극한 기온도 20배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IPCC(기후변화국제협의체)는 2050년까지 지구온난화 상승폭을 1.5도 내로 유지하려면 2100년까지 대기에서 이산화탄소 7천300t을 포집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9억ha의 땅을 숲으로 복원해야 가능한 일인데 9억ha는 남한 면적의 90배다. 과연 인류의 힘으로 가능할 지 의문이다.기후변화대응이란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을 상쇄하기 위한 인류의 대응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으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거나 대기에서 온실가스를 제거하는 방법이 있다. 생활 속 실천 방법으로는 친환경 제품 사용, 물 아껴쓰기, 쓰레기 줄이기, 재활용품 쓰기 등이다.유럽 최대 원전 대국인 프랑스가 점진적 탈원전 정책에서 원전 육성 쪽으로 에너지산업의 방향을 전환 주목을 받고 있다. 탈원전을 외쳤던 마크롱 대통령은 원전분야에 총 1조4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는 원자력이 현실적으로 가장 과학적이고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유럽 10개국 에너지 장관도 “기후변화와 싸우기 위한 최상의 무기는 원자력”이라고 했다.국민 67%가 원자력 유지를 찬성하는데도 탈원전을 고집하는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 이제 짚어봐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17

포항시, 역대 최대 기업 투자 유치의 의미

이강덕 포항시장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라는 격언이 있다.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쌓은 성은 결국 스스로를 가두어 고립돼 무너지고 말지만, 길을 뚫어 소통, 교역을 한다면 발전과 번영을 이뤄낸다는 말이다. ‘길’은 기존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필요한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패러다임을 바꾸는 도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는 시민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최선봉에는 ‘기업 유치’가 자리하고 있다.우량 기업을 유치하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 등 파급 효과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기업 유치는 이제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자 저출생·수도권 집중 등에 대항하면서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를 위한 첨병으로 그 의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최근 포항시는 이차전지, 바이오, 수소 등 ‘신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역대 최대 투자유치에 성공하면서 지역 내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지난 2017년부터 최근까지 신산업 관련 기업으로부터 투자 유치에 성공한 금액은 총 6조 8천억원에 이르며, 포항시의 역대 최대 성과이다.전기자동차의 핵심 부품이자 ‘미래 산업의 쌀’로 불리는 이차전지 분야는 총 2조2천억원을 투자해 배터리 생산에서 재활용까지 집적화된 ‘포항캠퍼스’를 조성하고 있는 에코프로는 물론 포스코케미칼, GS건설 등 빅3 앵커기업과 중견기업들의 대규모 투자유치 및 공장 증설이 이어지고 있다.바이오 및 수소 분야 또한 대기업과 기술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들의 투자와 공장 건설 계획이 현실화되고 있다.이로 인해 지역 내 1만7천명 가량의 일자리 창출 효과뿐만 아니라, 19조5천억원 정도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수도권이 아닌 지방도시임에도 이처럼 대규모 투자 유치를 이뤄낸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포항시가 꾸준히 저력을 축적했기에 가능한 성과이다. 철강 일변도의 기존 산업 구조를 탈피해 이차전지, 바이오 등 다변화된 산업으로의 체질 개선이라는 한 발 앞선 과감한 ‘도전’을 통해 신성장 산업에 최적화된 생태계 구축에 성공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포항에는 블루밸리국가산단, 융합기술지구, 영일만4산단 등에 이차전지(배터리), 바이오, 수소 등의 기업 성장에 토대가 될 특구와 최고 수준의 RD시설 및 실증단지 등 우수한 산업생태계가 조성돼 있다.이는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포항시의 각 구성원들의 각고의 노력이 합쳐진 결실이다.특히 포항시는 미래 신성장 동력이 될 유망 산업을 미리 내다보며 RD 인프라 등 구축을 위한 ‘국·도비 보조사업’을 대폭 확보하면서 일찌감치 토대를 다져나갔다. 국·도비 보조사업 예산은 지난 2014년 3천527억 원에서 7년이 지난 올해는 현재까지 1조713억원으로 3배가량 증가했다. 지역 국회의원과 시·도의원들의 협력은 물론, 저를 비롯한 공무원들이 다같이 합심해 정부와 경북도 등을 수시로 방문해 사업의 필요성을 적극 설명하는 등 발 벗고 나선 열정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이를 통해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 조성을 비롯해 세포막단백질연구소, 강소연구개발특구, 철강산업재도약 기술개발사업 구축 등 미래 신산업 연구 및 산업화의 기초를 튼튼히 닦았고, 기존 산업의 경쟁력도 강화해 나갔다.또한, 포항시 구성원들과 함께 ‘절실한 마음’으로 기업 유치에 매진했다.청주에 본사를 둔 에코프로의 포항 유치를 위해 2017년에 직접 발로 뛰며 청주 본사를 방문해 인센티브 등을 설명해 기업 유치에 성공한 바 있고, 최근 연이은 기업유치에도 실무진에서의 전문적이고 신속한 행정 처리로 신뢰감을 제공하며, 경제성 검토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포항시는 반세기 전 대한민국 산업화를 주도한 철강산업의 ‘영일만 기적’을 이뤄낸 위대한 도전의 도시이다. 이제는 미래 신성장산업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투자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선도해 ‘제2의 영일만 기적’을 이뤄낼 낼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위대한 도전의 길을 우보전진(牛步前進)의 자세로 다 함께 개척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해 본다.

202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