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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카전을 아십니까

용문중 포항공대 박사과정포항공대는 봄에는 교내 축제로, 가을에는 카이스트와 교류전으로 연간 두 차례 축제를 연다. 가을 축제의 명칭은 ‘포스텍-카이스트 학생 대제전’이고 줄여서 포카전 혹은 카포전이라 부르며, 해마다 장소를 번갈아 개최한다. 올해 17회째인데 포항공대가 8승 9패로 근소하게 뒤처져 있다.최종 승부는 여러 종목 승패를 합쳐 결정한다. 공대생들의 축제답게 과학 퀴즈나 프로그래밍 대결 같은 종목과 구기 종목인 야구와 축구, 농구도 있다.학부 시절, 나는 야구 선수로 포카전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 학부생 시절인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포항공대는 카이스트에 2014년 한 번 이기고 세 번을 졌다. 학부 졸업 후에 나는 야구에 관한 관심을 접고 살았다. 얼마 전 야구 동아리 선배와 밥을 먹으며 올해 포카전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최근 포항공대 야구팀 실력이 좋아졌다고 했다. 내가 야구를 하던 시절에는 팀이 매번 4부 리그에 머물렀지만, 최근에 2부리그까지 승격했고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단다. 카이스트 야구팀은 예전부터 2부리그에 참가하고 있다.포항공대는 최근 2년 야구 경기에서 연달아 패했다. 초반에 앞서다가 후반에 역전을 당했다. 팀에서 분석하며 여러 이유를 찾아보았는데 카이스트에서 투수가 내는 사인을 훔쳤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있었다. 그래서 초반에 고전하다가 후반에 점수를 낸다는 가설이었다. 선배는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포수는 엉덩이 밑 쪽으로 손을 내려서 투수에게 사인을 줘서 던질 구질을 약속한다. 이 사인은 1루 주자가 쉽게 볼 수 있다. 타자는 1루 주자에게서 사인을 받아 투수가 직구와 변화구 중 어느 것을 던질지 미리 알 수 있다.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대 팀이 사인을 훔친다면, 우리도 사인을 훔쳐야 하는가? 이에 대해 단호하게 반박할 사람이 떠올랐다. 공자였다. 논어 ‘안연’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며,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라.’ 반면, 그런 공자에게 반박할 마키아벨리도 떠올랐다. 군주론에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며 승리를 위해 어떠한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애초 상대 팀이 사인을 훔치지 않았으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지 상대 팀이 사인을 훔쳤기 때문에, 우리도 훔쳐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추어 야구 경기에서 사인 훔치기를 시도하면 평판이 나빠질 것이다. 즐기자고 하는 야구를 비신사적인 플레이까지 해가며 이기려 하는 것은 누구도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포카전 승리는 학교를 대표하는 동아리 1년의 가장 큰 목표며, 승리의 열매는 달콤하다. 특히 팀을 이끄는 주장은 승리가 더욱 간절하다. 주장으로서 한 해의 포카전을 이겼다는 자부심, 이긴 순간에 받는 헹가래, 근사한 트로피, 두고두고 자랑할 수 있는 추억이다. 게다가 이번 승리를 계기로 동아리 지원금이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 승리를 위해 무엇이든 못할까 하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선배에게 굳이 포항공대도 카이스트의 사인을 훔쳤냐고 묻지는 않았다. 다만 상대가 사인을 훔치는 행위를 막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고는 들었다. 올해는 포항공대가 초반에 고전하다가 후반에 역전승을 했단다.프로 야구에서도 사인을 훔치거나 이를 막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발전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다. 실력이 있다면 상대가 무엇을 던질지 안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포항공대 야구 실력이 최근 좋아졌고 분명 이 때문에 승리했을 것이다.지금 보면, 포카전 경기의 승패가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승리한다고 보상이 생기지도 않고, 진다고 큰 손해가 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한 경기의 승리를 위해 두 팀 모두 땀을 흘렸던 순간들이 있다. 방학에 집에 가지 않고, 자발적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했던 시간들, 고된 훈련을 거쳐 뽑힌 학생들이 학교 대표로 경기에 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포카전에서 승리하고 싶은 마음은 노력에 대한 구체적인 결과물을 보고 싶은 욕망일지도 모른다.

2019-11-10

일엽지추(一葉知秋)

일엽지추는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안다는 말이다. 이 말의 숨은 본뜻은 사물의 작은 조짐을 통해 앞날을 미루어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엽지추라는 한자 자체 의미로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기에 모자라지 않다. 온 산을 단풍으로 물들였다는 만산홍엽(滿山紅葉)과 함께 가을이 왔음을 알릴 때 한 번씩 쓰이는 멋진 표현이다.계절마다 자연의 색으로 갈아입는 산의 아름다운 자태를 표현한 말들은 많다. “산은 보랏빛이요, 물은 맑다”라는 산자수명(山紫水明)과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의 청풍명월(淸風明月)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사자성어다. 사철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자연의 변화는 인간에겐 늘 신비와 사모의 대상이다. 옛 성현은 계절마다 바뀌는 모습을 보고 그때그때의 아름다움을 간결한 말로 표현했다. 화조풍월(花鳥風月)이란 꽃과 새 그리고 산들바람과 구름 사이로 흐르는 달이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자연의 모습을 표현했다. 그밖에도 녹양방초(綠楊芳草), 녹수청산(綠水靑山), 만학천봉(萬壑千峰) 등 계절별로 바뀌거나 산세의 모습을 본 따 부른 사자성어가 있다.아침 저녁으로 일교차가 심하면서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느끼게 하는 요즘이다.“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특히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의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은 한 여름의 더위에 지친 마음을 씻겨 준다. 이번 주말에는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든 우리고장의 명산을 찾아 나들이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족과 함께라면 더 좋다. 어느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몸소 체험해 보자./우정구(논설위원)

2019-11-07

총선물갈이론의 맹점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정치권에 총선 물갈이론이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지역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겨냥한 물갈이론은 지역의원들에게 위기감을 안겨주고 있다. 지역 출신 대통령을 수차례 배출한 대구·경북지역이지만 총선 때만 되면 어김없이 물갈이론에 시달리는 지역의원들의 처지가 안쓰럽고 딱하게 여겨질 정도다.지난 5일 충청출신의 재선의원인 자유한국당 김태흠 의원은 “영남권, 서울 강남 3구 중진은 용퇴하거나 험지에 출마하라”며 ‘중진 용퇴론’을 주장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동안 인위적 물갈이보다는 통합을 강조하던 황교안 대표에게 당 운영 방식을 당장 바꾸라고 요구하고 나선 셈이다. 김 의원이 지목한 영남권과 강남 3구의 3선 이상 의원을 꼽아보면 총 16명에 이른다. 6선 김무성 의원을 시작으로 △5선 이주영 정갑윤 △4선 김재경 김정훈 유기준 조경태 주호영 △3선 강석호 김광림 김세연 김재원 여상규 유재중 이종구 이진복 의원 등이다. 이중 불출마 선언을 한 사람은 김무성 의원뿐이다. 특히 김 의원이 거론한 ‘원외 지도자’에는 내년 총선에서 영남권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홍준표 전 대표,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등 한국당 대권후보들이 포함돼 실제 지목한 대상은 20여 명까지 늘어난다.대상 의원들의 반발 역시 거세다. 부산의 4선인 김정훈 의원은 즉각 기자회견을 통해 “기준 없이 특정지역만 거론한 것은 문제”라며 “게다가 3선이상 중진들은 정치를 10년 이상 한 사람들인데, 누가 나가라고 해서 나가고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올 사람들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대구의 4선인 주호영 의원도 “현재 TK지역 한국당 의원들 가운데 초선 비율이 국회 평균 37.2%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63%인 이유도 우리 지역이 물갈이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라며 “이 같은 기조가 계속된다면 지역의 정치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대로 따른다면 향후 대구·경북의 경우 원내대표, 국회부의장, 당대표는 맡을 생각 말라는 얘기가 된다는 설명이다.정치권에선 특정지역을 겨냥한 무차별 물갈이론은 형평성이 없고, 당내 분열을 자초할 뿐 아니라 현실적인 실현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만약 한국당이 영남권 중진의원을 모두 공천에서 제외할 경우 초·재선의원만 남게 될 텐데 누가 당을 이끌고 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더구나 정치의 난맥상은 총선 물갈이율과 관련없어 보인다. 16대 국회 이래 역대 총선의 물갈이 비율은 평균 46%였고, 17대 총선에서는 물갈이 비율이 무려 72.5%로 초선의원이 187명에 달했다. 20대 국회 역시 절반 가까운 49.3%가 물갈이됐다. 오히려 과감한(?) 물갈이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이유가 뭘까 되짚어봐야 한다. 바로 자신만이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태도, 서로 타협치않는 좌우 진영논리 등이 더욱 큰 문제다. 이러니 물갈이론이 자칫 각 당의 당리당략이나 지도부의 편가르기에 악용되지나 않을까 걱정만 앞선다.

2019-11-07

왕다운 브루나이 국왕

유튜브가 세계로 향하는 창이 되어버린 요즘이다. 티브이는 보기 싫고,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혼자 돌아가게 하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문득 보니 브루나이 국왕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국왕이냐 하면, 현명하고도 자애롭고도 검소한 국왕이다.작가 김성한은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시지만 의미 있는 우화적 소설들을 세상에 남긴 작가였다.그분의 소설들을 가지고 석사논문의 일부를 삼았던 나는 나중에 그분께 전화를 드리기도 했는데, 그때는 일본으로 떠난 작가 손창섭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당신은 몸이 아프시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삶의 막바지에 와 계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도 몹시 송구스러웠지만 얼마 후 그분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자 뭣보다 그때 당신의 소설세계에 관해 여쭈어 보지 못한 것이 몹시 죄송스러웠다.그분이 남긴 소설 중에 ‘개구리’라는 것이 있다. 개구리들이 지도자를 얻고 싶어 제우스 신에게 가서 비는 이야기였다. 제우스 신은 처음에 코웃음을 치지만 하는 수 없이 통나무 하나를 내려보내 주는데, 지도자를 원하는 개구리들이 그에 만족했을 리 없다. 더 힘센, 살아있는, 왕 같은 지도자를 원하는 개구리들에게 제우스는 황새를 내려준다.개구리들은 황새에게 잡아먹히고 제우스에게 황새를 얻어온 얼룩이는 그 찌꺼기를 먹고 지도자를 청하기를 반대한 초록이는 수배자 신세가 된다….브루나이는 동남아시아 보르네오 섬 북부 해안에 위치한 인구 43만의 작은 나라로서 이슬람 술탄 국왕이 통치하는 군주제 국가다. 15세기에 이슬람 왕국이 세워진 이래 절대 군주에 의한 통치가 이어지고 있는데, 630년쯤 되었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하다.현재의 볼키아 국왕도 즉위한 지 50년 이상 된 듯한데, 그 나라 것은 ‘뭐든지’ 그의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백성들을 끔찍히 아끼고 돈도 아예 현금으로 나누어 주고 가난한 사람도 공짜로 대학 다니고 수술도 받을 수 있단다.민주주의가 뭐냐, 현대국가의 지도자란 무엇이냐 하고 따져도 답은 잘 나오지 않는다. 원유와 천연가스가 나오는 나라라서라지만, 부자라고 해서 모두 볼키아 국왕 같을 수 없음은 미국만 봐도, 중국, 일본을 봐도 알 수 있다.왕이 되려면 ‘적어도’ 브루나이 볼키아 국왕쯤 되어야 왕답다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다. 백성을, 국민을 내 몸처럼 아끼고 헌신할 줄 아는 지도자가 아쉬운 세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1-07

가을의 시정(詩情)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가을은 시정이 넘치는 계절이다. 매연과 소음과 사람들이 북적대는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어디서나 시적 정취를 자아내는 사물들을 만나게 된다. 숲길에 들어서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햇빛이 투과하는 영롱한 빛깔의 단풍잎과 그 사이로 내다보이는 에메랄드빛 하늘, 서늘한 바람이 불 때마다 나비 떼처럼 팔랑거리며 내리는 낙엽들, 마지막 생기를 다해 피어있는 가을 풀꽃들…. 가을의 단풍과 풀꽃은 화사하고 청초해도 어딘가 모를 우수 같은 게 배어있다. 머지않아 닥쳐올 한파를 앞둔, 그러니까 이별을 예감하는 표정이 엿보여서 그런 것 같다. 아무튼 이런 계절엔 낙엽 지는 공원 벤치에라도 앉아 시집을 읽는 것도 멋과 낭만을 누리는 일일 터이다.“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습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습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레미 드 구르몽 ‘낙엽’가을이면 널리 인구에 회자되는 시다. 낙엽이 지는 가을에도 이 시 한 구절을 읊조려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정서가 메마른 사람일 것이다. 낙엽이야 한갓 무정물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묻어있다. 시몬은 여자의 이름이라는 것, 평론가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구르몽은 물론 남자이고, 젊어서 얼굴에 난 상처 때문에 평생 독신으로 칩거하다시피 살았다는 것 등이 이 시를 따라다니는 일화다.이 시를 옮겨 적기 위해 서가에서 찾아낸 시집은 1965년에 발행된 ‘잊으려도 못 잊어’라는 제목의 시선집이다. 장만영 시인이 각국의 유명 서정시들을 골라서 실었다. 이 시집에는 폴 베를렌의 ‘가을의 노래’란 시도 있다. 가을이면 구르몽의 ‘낙엽’ 못지않게 애송되는 시다. 베를렌은 시인 랭보와의 비극적 결말의 동성애로도 유명한데, 그 때문에 아내와 자식이 떠나고 말년에는 침침한 뒷골목 습한 셋방에서 폐병을 앓다 죽었다고 한다.“가을날/ 비오롱의/ 가락 긴 흐느낌/ 사랑에 찢어진/ 내 마음을/ 쓰리게 하네.// 종소리/ 울려오면/ 안타까이 가슴만 막혀// 가버린 날을/ 추억하며/ 눈물에 젖네.// 낙엽 아닌 몸이련만/ 오가는 바람따라/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이 몸도 서러운 신세.” -폴 베를렌 ‘가을의 노래’가을은 이별과 추억과 우수의 계절이다. 보내야 할 것은 보내고, 그리운 것은 그리워하고, 쓸쓸히 혼자 걷는 것도 좋으리라. 아니면 단풍과 노을빛을 따라 불그레 취흥에 젖어 스스로 한 편의 시가 되는 것은 어떤가.“가을볕에 불콰하게 산자락이 취했다./ 석양 하늘 지나가던 구름도 취했다./ 그 취기 따라가려고 술잔 거푸 기울인다.”-졸시 ‘단풍’

2019-11-07

언제까지 야유와 고함을 칠건가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최근 국회에서 벌어진 코미디를 보면서 참으로 암담한 한국의 의회 문화에 경악하게 된다. 국회 운영위의 청와대 대상 국정감사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한 ‘우기지 좀 마세요’라는 발언에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우기다’가 뭐냐”고 소리치고 반말을 하는 장면이 TV에 고스란히 담겼다. 고성이 오가자 여야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결국 자정을 앞두고 운영위 국정감사는 정회되었다. 아마도 이번 경우는 “피장파장”이란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우기다”라는 표현 대신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와 같은 좀 더 품위있고 상대방을 고려하는 표현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그렇다고 하여도 피감 기관장 뒤에 앉아 있다가 반말로 끼어들면서 고함치는 모습도 결코 정상적이거나 보기 좋은 상황은 결코 아니다.사실 야유와 고함으로 늘 얼룩지는 국감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그러한 모습은 해가 지나도 하나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국회의원을 하던 사람이 피감기관장이 되면 국감모습의 폐혜를 절실히 느끼지만 다시 국회로 돌아가면 마찬가지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다. 피감 기관장도 국회의원이 되면 피감 기관장이던 시절을 금새 잊고 야유와 고함치는 국회의원으로 변하고 있다.지금 한국 국회의 국정감사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탄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감에서 의원들이 기관장에게 질문해 놓고 답변할 기회를 안주고 윽박지르거나 인격모독적인 공격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그런 일들이 결국 이번 강기정 사태까지 일어나게 하였다.강기정 수석의 자세를 변론할 마음은 없지만 우리나라 국회의 국감, 청문회 문화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미국에는 국감제도가 없지만 미국 국회의원들이 청문회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우리 국회는 절대 배울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정책과 운영방안, 업무효율과 낭비 등 정책적인 질문을 통해 감시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처럼 개인적인 신상문제나 인격살인적인 질문을 하고 야유하거나 고함을 치지 않는다. 미국처럼 차라리 국감 제도를 없애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실상 국감은 국회의원들의 과시를 위한 존재감 알리기의‘쇼’로 전락하고 있고 피감 기관들은 어떻게든 넘기고 보자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의 청문회에서 품격있고 예의있는 질문대답과 함께 느끼는 건 국회의원들의 질문 수준이다. 매우 수준높은 질문이 오가는 걸 흔히 볼 수 있어 의원들이 평소 많은 공부를 한다는 느낌을 준다.한번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국회의원들의 의회활동 평가에 ‘야유와 고함’항목을 넣으면 어떨까? 또 ‘비속어 사용’의 항목도 넣었으면 한다. 그런 항목을 통해 국회의원 활동을 평가한다면 국회의 국정감사나 청문회의 분위기가 나아지지 않을까? 언제까지 국회는 야유와 고함의 대명사가 될건가?

2019-11-07

베스트셀러 이야기(2)

책이 서점에 깔리기까지 아무도 책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팀장은 출시 첫날 G문고 반응을 살피더군요.“광화문 점에서만 12권 팔렸습니다!” 팀장이 밝은 표정으로 들어오며 외친 말입니다. 1쇄 3천로 감당이 안되어 즉시 2쇄에 들어가야하는 상황입니다. 일주일에 만 권 이상 몇 달을 멈추지 않고 팔렸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일’에 무관심했구나, 사람들의 마음이 참 힘들었구나,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던 경험입니다.‘경청’은 발간 1년만에 50만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시대 흐름에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결과입니다. 훨씬 더 좋은 작품도 1천부도 안 팔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시대의 필요에 너무 앞서 가거나 조금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거나 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정말 운이 따랐던 거지요.경청을 쓰면서 내내 한 가지 죄책감 같은 것이 괴롭혔습니다. “나는 경청을 잘 못하는데, 경청을 쓰는 것이 옳은가?” 그때마다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쓰면서 배우고 쓰고 난 후에 잘 하자!”정말이지 경청을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온갖 논문과 기사들, 책들을 두루 섭렵합니다. 조사의 결론은 딱 한가지였습니다.“경청의 핵심은 나를 비우는 것.” 이 결론에 도달하는데 몇 달이 걸렸습니다. 스토리의 소재를 내부가 텅 빈 악기인 바이올린으로 선택했습니다. 바이올린이라는 소재가 결정되자 스토리는 아주 다양한 형태로 가지를 뻗기 시작합니다. 작업에 일사천리로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나를 텅 비우는 것. 잘 하고 계신가요? 비운다는 것은 내 이성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의 말이 내 텅 빈 마음에 스며들도록 먼저 열어두고 상대가 충분히 자신의 뜻을 전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내 뜻을 전하자는 우선순위 정하기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07

베스트셀러 이야기(1)

2006년 늦여름의 일입니다. 사오정 시리즈가 대유행하는 것을 보고 대중의 심리 기저에 자신에게 귀 기울여주지 않는 세상의 결핍을 출판사 기획자가 알아챕니다. ‘경청’ 관련 책이 시중에 어떤 것이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주로 상담을 공부하는 분들이 읽어야 하는 교재들입니다.대중을 위한 경청 서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결정하지요. “2007년 상반기에는 ‘경청’에 관한 기획서를 출간한다.” 담당 팀을 결정하고, 팀장은 어떤 저자가 이 기획에 어울릴지 고민합니다.“따르르릉” 제 핸드폰 벨이 울립니다. 2006년 8월이 막 저물어갈 무렵입니다. ‘경청’ 집필에 관한 제안을 받았을 때 놀랐습니다. 왜 하필 나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과연 그 작업을 해 낼 수 있을까? 그동안 펴낸 세 권의 책 중 하나가 팀장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당시 저는 힘든 일이 겹쳐 완전히 번 아웃 상태였습니다.“죄송하지만.” 거절하려 했습니다. 그 순간 무언가 마음속에서 울컥하는 게 있었습니다.거절의 말 대신에 이런 말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갑니다. “하루만 제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10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 인생 전환점이었습니다. 하루를 지내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는데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지만, 한 번 도전해 보자는 의욕이 삐죽 고개를 내밉니다.출판사 팀장과 식사를 나누면서 베스트 셀러가 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 들었습니다. 첫째, 기본적으로 작품이 좋아야 한다. 둘째, 출판사가 그 작품을 전적으로 밀어야 한다. 셋째, 시대의 흐름에 맞아야 한다.이 세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면 베스트 셀러가 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1, 2번은 우리가 어찌해 볼 수 있지만 3번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오직 운에 달려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06

남의 떡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인간의 이상한 심사 가운데 하나가 “남의 떡이 커 보인다!”일 것이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이 더 크고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내 손의 새 한 마리가 숲속의 두 마리 새보다 값지다”는 서양속담이 있지만, 우리는 숲속의 두 마리마저 욕망한다. 인간이 탐하는 무한욕망을 지적하는 수많은 경구와 거룩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자(他者) 소유의 대상을 부러워하는 못난이다.얼마 전에 전남대 교수들과 경북대와 전남대를 비교하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핵심은 어디가 더 좋은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거점 국립대로서 경북대의 문제점을 말했지만, 전남대 교수들은 경북대의 강점을 힘주어 강조했다. 거기서 깨달은 대목이 ‘남의 떡’이다. 명색이 가방끈이 조금 긴 먹물도 ‘남의 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는 자리였다.1년 동안 교환교수로 광주와 전남대에 있으면서 경험하고 있는 것 가운데 나는 대구와 경북대에 부재하는 것을 보고 느낀다. 그 가운데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것을 기록하고 기억하려 애쓴다. 훗날 대구로 귀환한 다음 나의 경험과 기록을 구체적인 일상에 적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반면에 대구와 경북대에 한 학기 내지 잠시 머물렀던 그이들은 전남대와 광주에 부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남의 떡’에 내재하는 것은 비교하는 마음이다. 나와 타자, 내 소유와 타자 소유, 우리 것과 그들 것을 비교함으로써 가치판단에 도달하는 행위가 ‘남의 떡’에 깔린 사유의 근간이다. 비교는 대상화(상대화)를 통한 가치우열의 기본적인 방법론이다.여기서 출발하는 것이 학생의 성적평정에 활용하는 상대평가다. 학생이 도달한 지적-정신적 수준상승 정도를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수준과 비교함으로써 평가하는 방식이다. 지난 세기 90년대를 풍미(風靡)한 이른바 ‘에이 폭격기’들로 인해 대학에 강제된 상대평가는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독약이다. 학생은 자신의 평가를 남들과 비교당하기 때문이고, 교수는 학생들의 학업 수행결과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것을 상대화하는 기술자가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전남대의 절대평가 기준은 경북대와 비교해서 관대한 편이다. 전남대 학생과 교수가 상대평가의 질곡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비교는 나와 우리의 위치평가와 미래기획에 필요하겠지만, 비교에도 넘어서는 아니 되는 선(線)이 있기 마련이다. 나와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 역사적인 존립근거와 미래의 청사진을 타자와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나는 내 식대로, 타자는 그에 맞는 잣대로 살아가면 그만이다. 아주 긴 세월 우리는 후진국과 개도국 타령 속에 날밤을 지새웠다. 3050클럽에 가입한 지금 우리는 ‘남의 떡’ 타령과 작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허구한날 나라경제가 망조가 들었다느니, 곳간이 거덜 났다느니, 국민경제가 붕괴 직전이라느니, 하고 협박하는 가짜언론이 너무나 많다. 일본은, 미국은, 유럽은, 중국은, 하는 ‘남의 떡’ 타령은 그만 둘 때다. 떡 파는 분들에게는 아주 미안한 얘기지만.

2019-11-06

11월 편지 - 잊힌 길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길은 이야기 박물관이다. 이야기 종류에 따라 길의 종류도 나눠진다. 이야기가 풍성한, 또 이야기를 잘 보존하는 나라일수록 길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 길을 따라 행복한 이야기들이 문화로 재탄생하고, 그 속에서 사람은 다시 더 행복한 이야기를 낳았다.우리도 얼마 전 길이 붐처럼 일어난 적이 있었다. 올레길을 시작으로 해파랑길, 금강숲길, 지리산 둘레길 등 지역마다 길에 대한 이야기를 찾고, 그 길을 복원하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는 이야기들이 뉴스의 일면을 차지하였다. 길이 복원 될 때마다 사람들은 거대한 파도를 이루어 길을 휩쓸었다. 여행사들도 앞 다투어 여행상품으로 길을 꼭 넣었다. 길의 르네상스 시대였다.어떤 길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갈 수도 없었다. 사람들의 열기에 길 주변에는 상권이 형성되었다. 그 상권을 따라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열었다. 길은 많은 이들에게 큰 희망을 선물하였다.그런데 지금은?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해도 길에 대한 그 뜨거웠던 열기는 한나절의 꿈보다 더 빨리 식어버렸다. 언제나 그렇듯 쇠락은 융성보다 더 큰 허무함을 남겼다. 길과 주변시설들은 사람들의 무관심에 흉물로 변해가고 있다. 완전한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상처투성이가 된 길은 그래도 인간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할 시간조차 아까운 것을 아는 길은 부지런히 자연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다.필자는 지난 주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2019 청소년 비즈쿨 페스티벌 참석차 광주에 있었다.도전정신과 창조적 문제해결력으로 대표되는 기업가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기에 잠시나마 혼탁의 도가니인 이 나라 실정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기상천외 한 아이디어와 적극적인 판매 전략으로 무장한 학생들의 모습은 분명 르네상스 중심에 섰던 길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그냥 좋다!”라는 말을 필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이라는 말이 무책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도 그냥이라는 말이 조건 없이 좋을 때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뭔가에 몰두해 있는, 생기 넘치는 학생들을 볼 때이다. 필자는 청소년 비즈쿨 행사장을 활보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냥 좋았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육이 뭔지를 다시 생각했다.그런데 그 모습도 잠시였다. 행사가 끝나는 토요일 오후 그렇게 생기 넘치던 학생들은 바람 빠진 풍선인형으로 변했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다가와 마음이 먹먹했다. 필자는 며칠 간 행복한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분명 꿈과 현실 속 등장인물은 같은데 표정은 완전히 반대였다. 누가 저 아이들의 힘을 빼는지 미안했다.폐장을 앞둔 부스에 혼자 앉아 있는 필자에게 건너편 부스에서 행사 기간 내내 종횡무진 했던 학생이 찾아와 인사를 했다. “선생님, 내년에 꼭 다시 뵐게요! 감사했습니다.” “그래, 너도 네가 보여주었던 활기참을 잊으면 안 된다. 내년엔 더 씩씩하게 보자!” 아이는 특유의 유쾌한 웃음을 남기고 행사장을 떠났다.필자는 이 나라 모든 학생들이 무의미한 교육에 짓눌려 각자의 길을 잊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2019-11-06

미래가 문제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누구에게나 미래가 문제다. 불확실한 내일이 걱정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보여야 하는데, 당신에게 그런 내일이 느껴지는가. 미래를 열어감에 있어 개인도 노력해야 하지만 정부가 적절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민주 정부에는 ‘삼권분립’ 개념에 생각이 숨어있다. 먼저 입법부. 국민이 직접 선출한 의원들이 나라가 바르게 운영되도록 법과 제도를 만든다. 행정부는 이를 시행하면서 오늘 나라를 운영한다. 사법부는 혹 그 운영에 잘못이 없는지 살피고 판단하며, 법과 제도가 적절한지도 헤아린다. 사법은 과거를, 행정은 현재를, 입법은 미래를 책임진다. 미래를 맡은 우리 입법부는 잘 하고 있는가. 아니면, 총선준비 운운하며 일신의 안위에 몰두하는가.세상이 변해간다. 무섭게 빠르게 변해간다. 디지털과 온라인, 4차산업혁명과 AI는 이미 우리 곁에 살고 있다. 미래가 오늘이 되었다. 예를 들어, ‘타다’서비스를 검찰이 기소하였다. 고발한 사람과 기소한 검사를 탓할 수 없다. 정해진 법과 제도에 따라서 판단하지 않았을까. 미래를 다루어야 하는 입법부는 무엇 하는가. 문제는, 빛의 속도로 바뀌어 가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우리 국회에 있다. 언제까지 당신들은 총선대책과 공천문제만 붙들고 있을 것인가. 국민의 삶과 나라의 미래를 걱정이나 하는가. 이미 시작된 미래가 넘실거리며 다가오는 동안에 우리 국회는 아직도 잠자고 있었는가. 의원들이 ‘헌법기관’인 까닭은, 헌법에 따라 국민이 맡겨준 무거운 책임에 있다. 책임을 다할 능력이 없다면, 그만 내려와 주시라.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국민을 위하여 일하지 않을 사람에게 힘을 맡기면, 민주주의는 없어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국민을 대표하여 내일을 준비하는 당신이 되어주길 바란다. 선거철로 들어간다지만 나라와 국민을 위한 섬김이 공천 여부와 선거 판세에 흔들리면 안 되지 않겠나. 언론 지면을 오르내리며 걱정을 끼치는 당신은 이제 물러서 주시라. 정치권이 젊어져야 하며 변화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글로벌시장을 꿰뚫어야 하며 디지털환경도 짚어야 한다. 여성과 다문화에도 마음을 열어야 하고 세계적 변화와 해외교민도 돌아보아야 한다. 나라의 내일과 국민의 살림을 돌아볼 양이면, 오늘 당신은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내일 국민이 평안하려면 오늘 당신이 분주해야 한다. 어제와 오늘에 매달리면 내일이 없다. 국회가 맡은 바 ‘내일’ 업무에 매진하길 바란다. ‘타다’서비스가 해결되려면 국회가 나서야 한다. 행정부와 사법부 뒤에 숨는 입법무는 자격이 없다. 세상의 모든 변화를 국회가 맡아 감당해야 한다.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국회는 자격이 없다. 자신없는 당신은 그만하시라. 준비된 다음 선수에게 양보하시라.국민이 다가온 미래를 제대로 만나기 위하여 국회가 정신 차려야 한다. 법과 제도를 잘 준비해야 나라의 미래가 평안할 터이다. 문제는 미래다. 미래는 국회의 몫이 아닌가.

2019-11-06

RCEP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한·중·일, 호주, 인도, 뉴질랜드 등 16개국의 역내 무역자유화를 위한 협정으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가리킨다.‘아르셉’이라고도 부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최근 전격 타결돼 추후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어떨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AP, AFP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한 15개국(인도 제외) 정상이 4일(현지시각)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3차 RCEP 정상회의에서 협정 타결을 선언했다.2012년 11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협상 개시를 선언한 후 수십 차례의 각국 정상과 장관들 간의 회의를 개최한 지 7년 만이다.이날 정상들은 2020년 RCEP의 각국 비준과 최종 서명을 추진하기로 약속했다. RCEP는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가 참여하는 FTA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역 장벽을 무너뜨리고 신흥국가들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과 경쟁하기 위한 투자 촉진을 목표로 추진됐다. 애초 RCEP는 중국 중심의 아시아 지역 블록이 형성될 것을 우려한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제안한 것이었다.하지만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디딤돌로 RCEP를 받아들였고, 미국 주도의 TPP를 견제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RCEP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이에 따라 아태 무역 질서를 둘러싼 미·중 간 패권 다툼 구도 속에서 우리 정부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1-06

개는 혼낸다고 화장실로 가지 않는다

이동훈개의 요관은 헐거운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개를 풀어놓고 키우면서 언제든지 볼일을 볼 수 있도록 하면 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찔끔찔끔 오줌을 눈다.배변훈련이 되지 않았는데, 집안에서 키우는 개들은 카펫, 소파, 거실 어느곳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 내키는 곳이면 어디든지 실례를 하고 다닌다.이때 개 주인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화장실 놔두고 여기다 오줌을 싸면 어떻게 해!” 큰소리로 야단치는 것은 기본이고, 실수를 한 자리에 코를 누르고 억지로 냄새를 맡게하는 사람들도 있다.하지만 주인의 이런 행동은 실수를 고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사실 주인이 개를 야단친다는 것은 개와의 관계에서 리더십이 확고하지 않다는 간접적인 증명이 된다. 개주인의 리더십이 확고하다면 야단을 쳐야하는 문제는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는다.만약 문제가 생긴다 하더라도 “안돼”라는 한마디로 제지할 수 있고, 개는 이를 이해하고 순응한다. 개 주인은 이 순간에 야단을 치느냐 치지 않느냐를 고민하기보다 원천적인 문제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개가 배변을 실수했을 때 야단을 지속적으로 맞게되면 개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오줌을 누면 사람들은 화를 내고 그 때문에 야단맞는다는 강박관념이 생길 뿐이다.또한 개가 아무데나 오줌을 누었을 때 코를 누르는 방법은 일시적인 효과가 있는 듯이 보이지만 이럴 때 개는 사람이 무서워서 일시적으로 배뇨를 참고 있을 뿐이다. 소변을 계속 참을 수는 없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펫이나 바닥에 다시 소변을 실수하게 되는 것이다.아무리 야단을 치며 가르쳐도 개가 정해진 장소에 배변을 하지 못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개에게 야단을 치면 칠수록 여러 가지 문제가 더 발생할 뿐이므로 오줌을 실례한 자리에서 개에게 냄새를 맡게 하거나 큰소리로 야단을 쳐서는 안 된다. 우선 재빨리 개를 다른 방으로 데려가고 실수한 자리는 깨끗하게 치워줘야 한다.그리고 실수의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대부분의 경우 집안에서 자유롭게 풀어놓고 키우는 것이 원인이다.해결방법은 우선 개를 집에서 키우더라도 풀어놓지 말고 개집이나 울타리와 같이 일정한 장소에서 지내게 한다.개는 개집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이뇨작용이 활발해진다. 이때 울타리를 쳐서 만들어놓은 화장실에 시트나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개를 넣어준다. 개는 사방이 막혀서 나올 수 없으므로 잠시 후 그곳에서 볼일을 볼 것이다.배뇨가 끝나면 개를 꺼내고 시트나 신문지를 치운다. 정해진 공간에 배변을 하게 하는 훈련의 순서는 집에서 꺼낸다→화장실에 넣는다→배뇨 또는 배변을 한다→화장실에서 꺼낸다→신속히 시트나 신문지를 치운다를 반복하면 개는 순응성이 좋아 화장실에서 배뇨배변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울타리를 없애도 정해진 장소에서 볼일을 보게 된다.이때 소변냄새를 묻혀두는 것이 배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상식이다.개는 자신의 소변냄새가 남아있는 장소에 다시 소변을 누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른 개의 소변위에 자기소변을 뿌리는 마킹습성이 있긴 하지만 자기 오줌 위에는 마킹하지 않는다.따라서 소변냄새를 묻혀두는 것은 다른 곳에 소변을 누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다.개집이나 울타리 없이 생활하는 개의 경우에는 개가 지내는 방전체에 신문지를 깔아주고 개가 원할 때 배변을 하게 한다. 개는 아무 곳에나 배변한 것이지만 결국 신문지 위에 배변한 것이다.우선 개가 신문지 위에 배변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인데, 서서히 익숙해 졌다고 보여지면 신문지를 조금씩 줄여나가면 된다. 3주 정도 방 전체에 신문지를 깔고 훈련을 한 다음 2∼3일 간격으로 신문지를 한 장씩 줄여나가면 된다.하지만 이 방법은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성공할 수 있다./서라벌대 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11-05

문화산업과 국가브랜드가치

△패션: 문화의 정면패션은 아주 미묘하며 미세한 차이 속에서 탄생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에서 앤 해서웨이가 입은 스웨터의 색은 푸른색이지만, 정확히는 ‘세룰리안 블루’다. 푸른색만 해도 수백 가지에 이른다. 여기에서 세룰리안이라는 수식어가 왜 블루 앞에 붙은 것일까? 그것은 수백 가지의 다른 블루와 구별하기 위해서다. 즉 세룰리안 블루는 푸른색의 한 부분이다.푸른색이 이렇게 많다 보니 특정한 옷에 어떤 색이 더 나은지를 고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훌륭한 디자이너는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골라내고야 만다. 그것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고객이 그것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자신만의 미적 가치를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디자인을 찾아서 그것을 실제 제품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디자이너의 안목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곧 대중의 안목이며, 그 사회와 문화의 안목이다. 유명한 디자이너란 대중의 감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며, 학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대중의 감각을 하나하나 습득한 사람일 것이다.더 정확히는 한 사람의 디자이너가 가진 탁월한 안목과 감각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속한 사회의 문화적 수준이 만들어놓은 결과물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패션이나 디자인은 단지 옷의 모양, 색감, 질감을 고르는 차원이라고 할 수 없다. 패션은 그 사람의 경험 전체, 나아가 그 사람이 발 딛고 있는 땅의 문화 전체가 녹아들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패션의류산업이 기술적으로 선진국에 뒤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패션을 선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와 관련이 깊다.그렇다면 이제 분명해진다. ‘우리나라에서 정책적으로 세계 수준의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정책’은 불가능하다. 그런 정책을 펼치는 것보다 우리나라를 세계인이 호감을 갖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 세계인이 호감을 갖는 나라란 쿠웨이트와 같이 국민소득 수준만 높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국가경영능력과 위기 대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가안전을 보장하고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나라, 소득수준이 높으며 그에 비견되는 사회 문화수준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리하여 세계의 많은 사람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 결국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일 것이다.△국가브랜드가치한 나라의 인지도를 결정하는 호감도, 신뢰도 등 유·무형의 가치를 총합하여 수치화한 것을 국가브랜드지수 혹은 국가브랜드이미지라고 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한 동안 각국의 브랜드이미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조사의 내용은 이렇다. 여러 나라가 동일한 제품을 만들었고, 그 소비자 가격이 100달러로 동일하다고 했을 때 얼마를 주고 이 물건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2012년의 경우 미국,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소비자 가격인 100달러를 주고 사겠다고 세계인은 응답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20% 이상을 할인한 76.6달러에 사겠다고 했다. 2006년에는 66.3달러였던데 비해서 15.5% 상승했지만, 여전히 한국 제품은 다른 나라들보다 저평가받고 있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우리의 한복을 생각해보자. 한복은 아름답고 우아하다. 하지만 한복에 대해서 세계인은 문외한이었다. 그런데 2015년에 열린 ‘샤넬2015/16 크루즈 컬렉션’에서 한복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샤넬 크루즈 컬렉션’ 쇼는 2000년부터 매년 열려 왔다. 휴양지 옷차림과 간절기 패션을 선보이며 이듬해 봄·여름 패션 트렌드를 미리 점쳐볼 수 있어서 세계 패션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이 쇼는 파리, 로스앤젤레스, 베니스, 베르사이유 등의 도시를 돌았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두바이를 거쳐 한국에서 세 번째로 열렸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직접 참여한 이 패션쇼에 300명이 넘는 기자가 초대되었다. 라거펠트는 한복의 전통미와 서구적 세련미를 접목시켜 이제까지와는 다른 한복을 탄생시켰다.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한복은 우리 것인데도 불구하고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은 외국 유명 디자이너를 통해서 소개되어야 비로소 세계인의 관심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브랜드가치는 이 정도 수준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라거펠트가 중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니고, 한국의 전통 옷을 대상으로 디자인했다는 것, 그것이 곧 한국의 브랜드가치가 향상되었다는 것을 방증한다.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기관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집중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다. 경제적 수준이나 군사적 수준과 같은 하드파워 뿐 아니라 문화나 사회제도, 국민의식과 같은 소프트파워도 함께 갖추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 부와 국민의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군사력이 갖춰지는 것은 물론 높은 문화수준을 바탕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때 세계인은 대한민국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우리의 문화를 모방하고, 우리나라에서 살고 싶어할 때 우리나라가 세계인의 가슴속에 새겨질 것이다. 여기에서 세계인을 끌어올 수 있는 그런 창조적 문화의 힘이 생성될 것이고, 그때 우리나라의 패션이 세계를 리드하게 될 것이다.

2019-11-05

逆피라미드형의 재앙

90세 인구가 20세 인구보다 많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지금은 아마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통계청이 추정한 2050년 우리나라의 인구 구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90세 노인의 인구가 20세 인구보다 많을 뿐 아니라 65세 이상 노인층의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무려 40%를 차지한다. 14세 이하 유소년의 인구 비율이 8.9%에 그친다는 추정이다. 가히 놀라운 인구 수의 변화다. 정상적 연령별 인구 구조인 피라미드형이 사라지고 역피라미드형 인구 구조가 탄생하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며 14세 이하의 유소년은 눈 닦고 찾아봐야 할 정도다.우리나라의 저 출산율은 세계 최고이다. 한 여자가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 출산율이 지난해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1명 이하(0.98명)로 떨어졌다. 두 사람이 한명의 아이도 낳지 않는다는 뜻이다.1970년대 초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201개국 중 74번째였다. 40여년 사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한 것이다.인류가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출생률은 최소 2.1명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인구의 자연감소가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말이다. 인구의 연령별 분포는 나이가 낮을수록 많고 높을수록 적어지는 피라미드형이 정상이다. 그러나 사회적 요인에 의해 인위적 인구 제한이 이뤄지면서 피라미드형 구조가 깨지고 있다. 2050년의 우리나라는 재앙에 가까울 만큼 역피라미드형이 만들어진다. 깜짝 놀랄만한 일이다. 아직 실감을 못하는 국민이 대다수다. 정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1-05

‘타다’사건이 의미하는 것

박준섭 변호사검찰이 ‘타다’를 불법으로 결론짓고 기소를 하였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타다를 비롯한 플랫폼 업계 및 택시 업계 사이에, 나아가 신산업과 기존의 산업 사이에 경쟁과 출동의 여지가 있는 문제라며 이의를 제기하였다. 차량 공유 서비스 ‘타다’에 대한 법적 쟁점은 타다가 운전기사를 관리·감독하는 주체로서 여객운수사업법상의 사업자에 해당하여 면허를 받아야 하는 사업자인지, 아니면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차를 임차하는 사람은 운전기사를 알선할 수 있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상의 예외규정에 따라 면허없이 사업을 할 수 있느냐이다.검찰은 ‘타다’가 승객과 운전기사를 단순히 연결만 하는 사업이 아니고 택시와 유사한 서비스로 본다. 검찰은 ‘타다’와 ‘타다’운영사 ‘쏘카’가 드라이버를 지정된 시각에 출근시키거나, 앱을 통해 승객과 운전자를 연결한 뒤 앱에 저장된 승객의 신용카드 정보로 결제되도록 한 것은 운전기사를 관리·감독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있는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차를 임차하는 사람은 운전기사를 알선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에 따라 사업을 적법하게 해온 것으로 주장한다. 흔히 알려져 있듯이 독일의 해석학 이론서에 의하면 예외 조항이라고 해서 항상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외 규정도 확대해석을 하거나 유추적용 등 의미를 확대할 수 있다. 따라서 예외조항에 근거를 둔 사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불가능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형벌규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형벌법규의 명확성이라는 죄형법정주의원칙이라는 산도 넘어야 한다.우리는 이 사건이 법적용에 대한 문제라는 인식을 넘어 이번‘타다’사건으로부터 반드시 인식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미래를 선도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라는 인식이다. 우리는 식민지 시대에 독일 등 서구로부터 일본이 배워온 법체계를 거의 그대로 계수하면서 근현대를 만들어 왔다. 이 법체계는 인간의 자연적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국가가 규율하고자 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관련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를 한 뒤 예외적으로 이를 해제하여 허가하거나 아예 특별한 권리를 만들어 특허를 주는 방식으로 규율해 왔다. 이제 새로운 문명의 시대인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법적 규율을 어떻게 새롭게 할 것인지는 과거와 달리 이제 배워올 곳이 없다. 아직 우리보다 이 분야에 약간 앞선 나라가 있어서 참고할 법률이나 법적 규율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세계도 아직 실험적 법률을 만들면서 탐색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신산업에서 규율하는 입법은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영역이고, 이것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미래와 함께 세계의 미래도 책임진다는 새로운 지혜와 사명감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번 ‘타다’사건이 신산업과 구산업의 이해충돌, 플랫폼 사업자와 택시운전면허 사업자, 택시운전자들의 이해충돌을 넘어 대한민국이 이제 선도자로서 세계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상징적 사건이 되기를 바란다.

2019-11-05

가장 쓰기 어려운 글 (2)

읽기 쉬운 글이 가장 쓰기 어려운 글입니다. 헤밍웨이 친구들이 단어 6개만 사용해서 자신들을 울릴 만한 소설을 써 볼 수 있느냐고 장난삼아 내기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헤밍웨이는 타자기를 두드립니다. 1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아기 신발 팝니다.)이 여섯 단어 소설은 독자들의 두뇌에 상상을 모락모락 피어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여자 아이가 태어납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뽀얀 피부, 귀여운 옹알이를 하며 건강하게 자랍니다. 남편은 야간 근무도 자청합니다. 엄마는 젖을 물리고 눈을 마주칠 때마다 꿈을 꾸는 듯합니다. 하루는 수당을 듬뿍 받은 남편이 예쁜 신발을 사옵니다. 부부는 아기가 어서 자라 신발을 신고 공원에 함께 산책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아이가 이상합니다.”독자는 이런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여섯 단어입니다. 헤밍웨이는 말합니다. “작가가 충분히 진실하게 글을 쓰고 있다면 독자는 그것들을 세세하게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히 강렬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빙산의 위엄은 오직 팔 분의 일에 해당하는 부분만이 물 위에 떠 있다는 데 있다.”헤밍웨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빙산이론(Iceberg theory)입니다. 그는 팔분의 일, 즉 물 위에 노출되어 있는 부분만을 간결하게 서술합니다. 팔분의 칠은 물속에 감춥니다. 행간에서 독자들이 읽어내야 합니다. 헤밍웨이 단편은 빛나는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짧지만 울림이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느끼려면 함께 토론하면서 그 맛을 느껴야 합니다. 팔분의 칠을 행간에서 각자 찾아오고 이 퍼즐을 서로 맞춰 가며 전체 그림을 그리면 여섯 글자 소설의 슬픔처럼, 헤밍웨이 작품의 위대한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05

질투와 포용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며칠 전의 일이다. 늘 생글생글 웃으며 밝음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후배 한 명이, 다짜고짜 전화 와서는 팔공산 단풍 구경이나 가자고 했다. 직감적으로 또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었다. 사연인즉슨, 사내 새 프로젝트를 같이 한 팀원들끼리 언제 회식하기로 한 모양인데, 잘나가던 후배만 쏙 빼놓고 나머지 팀원들끼리 카톡방을 만들어 서로 회식 날짜를 조율하더란 것이다. 한 명이 주도해서 이루어진 일인 데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늦게 초대를 받긴 했지만, 암튼 과정을 다 알고 나니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는 것이다.예전 같으면 선배랍시고 알게 모르게 네가 혹 미운 짓 한 게 없느냐고 다그쳤을 법했다. ‘인(仁)이란, 마치 활쏘기와 같다. 활 쏘는 사람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고 활을 쏘는데, 활을 쏘아 적중 못시키면 나를 이긴 사람을 원망 않고, 도리어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을 뿐이다(仁者如射 射者 正己而後發 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矣)’라는, 맹자 공손추의 한 구절을 들먹거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가 잘못한 것이 없다 하고, 심지어 얼마 전엔 파격적인 승진과 보너스까지 받아서 멋진 식사까지 팀원들을 대접할 때만 해도 다들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러니 본인이 더 당황스럽다고 했다.그 순간 문득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떠올랐다. ‘남의 고통을 함께 슬퍼해 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남의 성공을 진심 축하해 주기 위해서는 남다른 인격이 필요하다’라는. 사실 그렇다. 본인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어느 순간 상대가 저를 이유 없이 미워하거나 거리를 두면 그것은 100% ‘질투’일 가능성이 크다. 질투는 ‘내’가 갖거나 가져야 하는 것을 ‘네’가 갖고 있다는 데 대한 불편함, 곧 결핍의 감성이다. 그렇기에 질투를 하면 할수록 그것은 ‘나’의 결핍을 온 천하에 드러내는 일이 될 뿐이다.이와 관련해 이이가 쓴 김시습전에는 재미난 일화가 하나 전한다. 어느 날, 당시 국사(國士)로 칭송받던 서거정이 조정에 들어가려고 앞길의 잡인들을 물리칠 때였다. 거지같은 차림의 김시습이 갑자기 ‘剛中(서거정의 字)아! 너 요새 편안하구나’하며 백성들 앞에서 어릴 적 친구였던 서거정을 무안케 하였다. 그러자 서거정은 화를 내는 대신 도리어 웃으며, 수레를 멈추고 이야기를 나누니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내용이다.5세 신동이라 불리며, 후에 금오신화를 창작해 고소설사의 한 획을 그은 유명한 문인이었건만, 안타깝게도 큰 벼슬길엔 오르지 못한 김시습의 질투도 재미있지만, 이를 분노나 응징이 아닌 웃음으로 응대한 서거정의 모습도 대단히 인상깊다. 그의 이러한 대인배적인 마음이, 아마 세종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무려 여섯 왕을 모시면서 파란만장한 정국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동력은 아니었을까?만일 살면서 질투와 질시의 대상이 된다면, 결핍으로 똘똘 뭉친 그들의 감성에, ‘분노’ 대신 서거정처럼 따뜻한 ‘웃음’을 지그시 한번 보내보면 어떨까? 아마 우리네 삶에서 스트레스가 절반은 확 줄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2019-11-05

포항형 청년창업생태계를 조성하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우리는 어떠한 일을 하려고 생각하면 일단 주변부터 살피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언론에 대서특필하는 특정 지역이나 단체의 성공담을 듣게 되면 순간적으로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에 따라 사업을 성공시킨 그 지역이 지닌 장점이나 그 지역의 특수성을 함께 분석하기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춘 벤치마킹을 토대로 ○○형 ××사업을 추진하기 마련이다. 요즈음 각 지역이 주목하는 청년창업도 마찬가지다.지난 9월 미국 스타트업 게놈(Startup Genome)사는 올해도 세계 주요 도시별 창업생태계를 조사 분석한 보고서(Global Startup Ecosystem Report 2019)를 발표했다. 2018년 기준 세계 창업생태계 1, 2위 지역은 여전히 실리콘밸리와 뉴욕시가 차지한 가운데 중국의 베이징이 한 계단 올라 런던과 공동 3위를, 순위 변동이 없는 상하이는 8위를, 새롭게 추가된 홍콩은 25위를 차지하였다. 세계 30위까지 우리나라의 어떤 도시도 포함되지 못하였다. 이는 사실상 포항시가 창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벤치마킹을 할 만한 지역은 국내 어디에도 없음을 의미한다. 청년 창업을 지원, 육성하기 위한 포항만의 아이디어가 절실한 시점이다.위의 보고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적인 창업생태계가 조성된 지역의 결정요인 가운데 정책적인 분야는 사실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요인만 꼽는다면 역시 ‘자금’이다. 스타트업은 자금 조달에서 일반 기업이 100이라면 불과 5 정도로 불리하다. 때문에 창업생태계의 핵심은 스타트업에 대한 ‘펀드’의 활성화 여부다. 따라서 포항이 우수한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의 꿈을 지닌 청년들의 ‘꿈의 도시’가 되려면 ‘펀드’문제를 우선 해결해야만 한다. 포항은 창의적이고도 독자적인 ‘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창업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고 본다.지금도 포항에는 수많은 은퇴자들이 창업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피점, 편의점, 선술집 등에 눈을 빼앗겨 5천만 원 이하의 소자본으로 용감하게 창업하였다가 폐업하는 악순환에 가세할 뿐이다. 이들의 실패는 도심의 빈상가 숫자를 보태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부(富)를 축소시킨다. 만약 은퇴자금을 무계획적인 창업과 폐업으로 소비하지 않고 십시일반으로 모아 ‘펀드’를 조성하여 지역에서 창업을 꿈꾸는 자들의 ‘꿈의 펀드’로 만들면 어떨까. 이를 위한 신뢰성은 포항의 행정이나 정책기관이 나서면 된다.만일 이와 같은 시민들이 조성한 ‘창업펀드’가 제 기능을 한다면 은퇴자들의 귀중한 자본소비를 억제함은 물론 신뢰할 수 있는 검증시스템만 거친다면 이 펀드에서 창업지원이 가능한 포항형 창업생태계가 절로 조성될 수 있다. 단 한건이라도 성공사례가 나타나게 되면 유니콘을 꿈꾸는 우수한 청년인재들의 포항유입도 가능하다. 창업공간도 차고 넘친다. 행정이 나서 구도심의 빈 점포를 우선 제공하면 된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지역에 눈을 돌리지 말고, 우리 스스로 다른 지역에서 찾아와 벤치마킹할 수 있는 포항만의 창업생태계를 만들자.

2019-11-05

품격 잃은 정치행태

강희룡 서예가지난 2010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에 발가벗은 어린이가 주요 부위를 식판으로 가리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무상급식 광고포스터를 만들어 논란이 됐다. 당시 서울시에서 만든 이 포스터는 전면무상급식을 강행하면 학교보건시설 확충, 저소득층 급식비지원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교육현장 예산을 삭감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어린이 모델을 나체로 기용한 것에 문제가 일자 해명에 나섰고, 해당 사진은 얼굴과 몸이 합성 사진이었음이 드러났다. 당시 무상급식에 찬동하는 네티즌들은 해당 포스터 얼굴에 오세훈 시장 얼굴을 합성해 풍자했다. 논란이 일자 ‘시장을 나체로 만들어 올린 무상급식 지지 포스터는 문제가 없는가!’라는 질문에 당시 조국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공인의 경우 비판, 야유, 풍자의 대상이 되므로 이러한 포스터는 민형사상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각 언론의 만평만화를 생각해보시면 될 듯,’이라는 글로 문제없다는 입장을 냈다. 2017년 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주최한 시국풍자 전시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풍자 누드화가 국회에 전시됐다.이 그림은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하여 이구영 작가가 세월호가 침몰되는데 나체로 잠을 자고 있는 박 대통령과 옆에 꽃을 들고 있는 최순실의 모습을 그린 풍자화로 ‘더러운 잠’이란 제목으로 걸려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10월 28일 자유한국당 공식 유튜브 계정인 ‘오른소리’에 ‘양치기 소년 조국과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애니메이션 두 편이 업로드 됐다. 내용 구성은 안데르센이 쓴 동명의 원작과 비슷하다. 벌거벗은 임금님 편에는 문 대통령으로 보이는 캐릭터가 벌거벗은 채 간신들이 가져온 안보자켓, 경제바지, 인사넥타이를 매고 즉위식에 섰지만 실제로는 벌거벗은 상태다. 대통령을 닮은 캐릭터가 속옷만 입고 등장하는데다 특히 인사넥타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조국 전 장관이 경찰차 앞에서 수갑을 차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일부 막말에 가까운 대사들이 영상에 담겨 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극에 달한 천인공노할 내용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한국당이 지난달 30일 문 대통령 모친 상 중인 점을 감안해 영상을 일시 비공개 조치했지만 한국당 내에서도 품격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정경심 교수의 동양대 총장 명의 위조의혹이 있는 표창장과 국민들은 안중에 없고 ‘공은 우리끼리’라는 느낌을 주는 조국 장관 사퇴에 공이 있는 전·현직의원들에게 준 자화자찬의 나경원 표창장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가치 없는 표창일 것이다. 이 표창장을 받으며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희희낙락하던 그들의 모습은 교만의 극치를 보는듯 했다. 조국 사퇴는 고위직 인사 참사에 대한 지극히 평범한 국민들에 의해 밑바닥에서부터 만들어진 여론이 부정적인 것이 원인이 되어 낙마한 것인데 그들만의 능력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외면한 이런 품격 잃은 정치행태를 많이 자행하는 정당에 대해 국민들은 차기선거에서 준엄한 심판을 보여 줄 것이다.

2019-11-04

가장 쓰기 어려운 글 (1)

1899년 7월 21일. 부유한 가정에 남자아이가 태어납니다. 엄마는 음악가 출신으로 진취적이고 호방한 성격이지요. 의사였던 아빠와 달리 엄마는 거침없습니다. 딸을 갖고 싶었던 엄마는 아들에게 자꾸만 여자아이 옷을 입힙니다.아들은 엄마와 담을 쌓기 시작합니다. 남성적인 아빠에게 빠져들고 아빠를 평생의 롤 모델로 삼습니다.가정의 주도권은 엄마가 쥐고 있었고 아빠는 사냥, 낚시 등을 하며 집 밖으로 나돌았지요. 미국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소설가 헤밍웨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헤밍웨이와 어머니의 악연은 끈질깁니다. 한 번은 헤밍웨이 생일에 어머니가 선물을 보냈는데, 권총 한 자루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살할 때 사용한 총입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헤밍웨이는 만사 제쳐두고 달려갔지만, 어머니가 죽었을 때는 “난 글을 마저 써야 한다. 돈을 부치면 가족들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말했습니다. 슬픈 가족의 이야기입니다.헤밍웨이의 문체를 하드보일드(Hard-Boiled Style)라고 합니다. 잡다한 수식이 없고 간결합니다. 관찰자 시점으로 무덤덤하게 감정의 개입이 없이 나열합니다. 예컨대 이렇습니다.“캐서린은 계속해서 출혈을 하는 모양이었다. 의사는 그것을 멎게 하지 못했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캐서린이 죽을 때까지 같이 있었다. 캐서린은 줄곧 의식이 없었고, 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헤밍웨이의 문장들은 쉽고 간결해서 읽기 편안합니다. 왜 대 작가가 이렇게 간결한 문장을 사용한 것일까요? 윌리엄 포크너가 한 번은 헤밍웨이의 문체를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그의 책에는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나오질 않지요.”헤밍웨이는 반박합니다. “어려운 단어를 써야만 감동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언어와 절제된 묘사만으로도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04

학교 진로상담에 대한 오해와 현실

조현명 시인흔히 학교에서 진로상담은 전문상담과 같은 범주의 상담일 것이라고 오해를 받는다. 상담이란 단어 때문에 같은 것이 아닐까 치부되기도 한다.그러나 먼저 상담의 대상부터 다르다. 전문상담은 불안과 우울 혹은 정서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내담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로상담은 아직도 진로를 정하지 못했거나 정했어도 성숙하지 못한 내담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게다가 출발점도 미묘하게 다르다. 전문상담은 내담자에게 말을 많이 하게 유도해서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밖으로 내어놓게 하는 게 출발점이다. 그것으로 자신을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진로상담은 역시 자기 이해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자기이해는 깨달음과 성숙이라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라 오랜 기다림과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내담자의 이야기를 아무리 들어준다 해도 그 시간동안 깨달음과 성숙이 일어나기 힘들므로 별 진전이 없는 상담이기 쉽다.성숙하지 못한 학생에게 계속 진로상담을 하는 일은 전문상담보다 훨씬 뜬구름을 잡는 일이다. 그 학생이 직업을 가지는 때가 되어야 비로소 무언가 깨닫고 성숙에 이를 것이기 때문에 자욱한 먼지 같은 안개 속에서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일이다. 게다가 직업을 가지더라도 깨달음과 성숙에 이르지 못한 경우도 있을 텐데 결과를 후회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진로상담은 ‘내담자에게 언젠가 다가올 깨달음과 성숙을 기다리며 같이 고민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요즈음 학교에서 진로상담은 진학상담에 더 치중하고 있다. 그러니까 과정보다 결과에 초점을 맞춘 상담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학생의 깨달음과 성숙에 맞추어지는 순수한 진로상담은 찾아보기 어렵다.왜냐하면 내담자가 그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내담자의 부모나 주변 또한 그런 것은 상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대학입시설명회에 몰리는 학부모 학생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특별한 정보나 학습방법들이 진로상담의 주 내용이 되었으면 바라고 있다.최근 대통령의 국회 연설로 시작해서 교육부가 대학입시에서 정시전형을 확대하고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확보하는 방안 등을 11월 중 발표하기로 예정하고 있다. 이렇게 대학입시가 바뀌게 되면 진로상담과 진학상담 부문은 다시 요동친다.그러면 나는? 내 아이는? 이것이 학생과 학부모가 요구하는 진로 진학상담의 내용의 전부가 되어버린다. 내 자녀에게 어떤 깨달음이 있는지? 그건 어떻게 올 수 있는지? 깨달음이 찾아온 사례가 어떤 게 있는지? 진로성숙도는 어느 정도인지? 진로성숙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러한 진로상담의 중요한 핵심의 필요성은 사라져버린다.이런 현실에서 학생들의 깨달음과 성숙을 관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진로를 설계하게 한다는 학교 진로상담의 목표는 허상이다. 전문상담과의 오해와 잦은 입시정책변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교육풍토에서 학교 진로상담과 그것을 담당하는 진로전담교사 제도는 결국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2019-11-04

때로는 서해에, 때로는 동해서나타났다 사라졌다 ‘오리무중’

지난 칼럼에서 청어, 꽁치 이야기를 썼다. 정확하게는 ‘관목’ ‘관목어’ ‘과메기’ 이야기였다. 여전히 사람들은 ‘청어 과메기가 원형’ 혹은 ‘원래는 청어 과메기인데 청어가 잡히지 않으니 꽁치 과메기로 대체했다’라고 말한다. 그간 잡히지 않던 청어가 슬슬 나타나고 있다. 왜 청어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어린 새끼 솔치를 너무 많이 잡아서 개체가 사라지고 있는 걸까? 혹은 남획으로? 중국 배의 불법적인 노략질로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해류의 영향? 수온? 도대체 어떤 이유로 청어는 사라진 것일까?청어는 오리무중이다. 청어 새끼는, 흔히, 솔치라고 부른다. 솔치는 대중적이지 않다. 솔치가 남획되어서 청어가 사라졌다고 말할 바는 아니다. 중국 배가 불법 어획? 조선 시대에 더 심했다. 청어는 조선 시대에도 오리무중이었다. 많이 잡혔다가 사라지고, 때로는 서해안에 나타났다가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일이 반복되었다.조선 후기, 중국 배의 노략질이 지금보다 더 심했다. 평안도, 황해도 앞바다에 무시로 나타났다. 일부는 내륙까지 침범, 약탈, 부녀자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 배라고 해서 ‘당선’이라고 불렀고, 정체불명의 배라고 해서 ‘황당선(荒唐船)’이라고도 불렀다.힘이 약한 조선은 속수무책이었다. ‘대국’인 중국과의 외교 분쟁이 두려웠다. 정부가 확실한 방침을 정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사이, 지방 관리들도 손을 놓고 있었다. 청어 등 수산물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이고 인명 피해까지 있었다.‘승정원일기’ 고종 10년(1873년) 5월17일의 기록이다.(전략) 상이 이르기를, “물고기는 어느 곳에서 많이 나는가?” 하니, 서원보가 아뢰기를, “청어(靑魚)는 장연(長淵), 풍천(豆川), 옹진(甕津), 강령(康翎), 초도(椒島) 등지에서 많이 나고 석어(石魚, 조기)는 해주(海州)와 연평(延坪) 바다에서 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당선(唐船)이 바다에 들어와 고기를 잡는 곳이 어느 지역인가?” 하니, 서원보가 아뢰기를, “당선은 오로지 고기를 잡기 위해 오기 때문에 매양 장연 등 다섯 곳의 해양입니다.” 하였다. (중략) 상이 이르기를, “당선이 바다에 들어와 석어를 잡는가?” 하니, 서원보가 아뢰기를, “석어는 연평에서 나는데 당선은 본래 이곳에 와서 잡는 일은 없습니다.” 하였다. (후략)이때 참찬관 서원보(1807년~?)는 67세, 정3품 당상관으로 황해도 관찰사 직을 거쳤다. 노신하와 갓 스무 살을 넘긴 젊은 국왕은 태평스럽게 “(황해도, 평안도 앞바다에서) 중국 배들이 청어잡이를 한다”고 말을 나눈다. 중국 등주(登州), 발해만 등에서 출발한 불법 중국 배들의 침탈은 심했다. 평안도와 황해도 해역은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었다. 중국 배들은 주로 청어를 챙겼다.불과 9년 후인 1882년 11월27일(음력 10월17일).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 우리와 중국 사이에 이른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이 맺어진다. 종주국 행세를 하는 청나라와 이미 무너진 조선 사이의 불평등 조약이었다.조선은 1876년 일본과 이미 불평등 조약을 맺었다. 다급한 청나라가 임오군란(1882년 6월)을 빌미로 조선에 진출, 종주권을 행사했다. 청어와 관련하여, 기가 막히지도 않는 조항이 있다.(전략) 조선의 평안도, 황해도와 청나라의 산동, 봉천 등 성(省)의 연해 지방에서는 양국의 어선들이 내왕하면서 고기를 잡을 수 있고, 아울러 해안에 올라가 음식물과 식수를 살 수 있으나, 사적으로 화물을 무역할 수 없다. (후략)우리는 청나라 산동, 봉천 일대에서 물고기잡이를 할 수 있고, 청나라 어선은 한반도 평안도, 황해도 앞바다에서 생선잡이를 할 수 있다. 철저한 불평등이다. 불법을 합법으로 바꿨다. 발해만 일대나 중국 해안에서는 애당초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중국 배들이 한반도 서해안까지 온 것은 청나라 바다에서 생선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조선 후기, 중국인들이 청어를 탐욕스럽게 대한 이유가 있다. 이 무렵 중국인들은 청어를 처음 만났다. ‘성호사설 제6권_만물문_청어(靑魚)’의 내용이다.(전략) 지금 생산되는 청어는 옛날에도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해마다 가을철이 되면 함경도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형체가 아주 크게 생겼다./추운 겨울이 되면 경상도에서 생산되고 봄이 되면 차츰 전라도와 충청도로 옮겨 간다. 봄과 여름 사이에는 황해도에서 생산되는데, 차츰 서쪽으로 옮겨짐에 따라 점점 잘아져서 천해지기 때문에 사람마다 먹지 않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징비록(懲毖錄)》에, “해주(海州)에서 나던 청어는 요즈음 와서 10년이 넘도록 근절되어 생산되지 않고 요동(遼東) 바다로 옮겨 가서 생산되는바, 요동 사람은 이 청어를 신어(新魚)라고 한다.”고 하였다./이로써 본다면 그 당시에는 오직 해주에서만 청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이 물고기 따위는 매양 시대의 풍토와 기후를 따라 다니기 때문에 요즈음 와서는 이 청어가 서해에서 아주 많이 난다고 하니, 또 저 요동에도 이 청어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후략)청어에 대해서, “도무지 알 수 없다”고 표현한다. 서애 류성룡(1542~1607년)의 ‘징비록’은 임진왜란 시기인 1592년부터 1598년 사이를 기록했다. 1601년부터 썼다. ‘징비록’을 따르자면 16세기 말에는, 그동안 많이 잡혔던 청어가 황해도 해주 일대의 앞바다에서 사라졌다. 대신 청어가 전혀 잡히지 않았던 요동반도 앞바다에 나타났다. 중국인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생선이 나타나니 이름을 ‘새로운 물고기’ ‘신어(新魚)’라고 불렀다. 청나라 사람들은 ‘신어’를 잡으러 한반도 바다를 불법 침범한다.성호 이익(1681~1763년)이 쓴 ‘성호사설’은 18세기 초반의 상황을 기록했다. ‘징비록’과는 약 120년 이상이 차이 난다. 이때도 성호 이익은 “(요즘은) 청어가 서해에서 많이 나는데, 요동반도에서도 아직 청어가 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청어는, 혼란스럽지만, 요긴한 생선이었다. 흔히 ‘조선의 4대 생선’으로 ‘청어, 멸치, 조기(석수어), 명태’를 손꼽는다. 청어를 두고 ‘종묘(宗廟)에 천신(薦新)한 귀한 물고기’라고 표현한다. 조선의 가장 귀한 곳이 왕실 조상을 모신 종묘다. 천신은 계절마다 새롭게 생산되는 산물들을 제단에 바치는 것이다. 그래서 귀하다? 틀렸다. 계절마다 새롭게 나오는 생산물들은 죄다 올렸다. 종묘에 천신한 것은 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흔했기 때문이다.우리보다 더 청어가 흔했던 유럽 각국은 청어를 빌미로 전쟁도 일으켰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영국과 ‘청어전쟁’을 일으킨다. 영국 트롤선이 네덜란드 해역을 침범, 불법 청어잡이를 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부흥은, 북해에 나타났던 청어가 남하하여, 네덜란드 해역에서 많이 잡혔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냄새가 고약하기로 악명 높은 스웨덴의 ‘수르스트뢰밍(surstr·mming)’은 청어 절임, 청어 발효식품이다. 염장 청어를 통조림으로 만든다. 통조림 상태에서 끊임없이 발효, 숙성한다. 깡통이 부풀어 오르고 간혹 폭발하기도 한다. 스웨덴에서도 오래 묵은 수르스트뢰밍 통조림은 폭발물로 여긴다.‘홀란서 뉴어 하링(Hollandse nieuwe haring)’은 네덜란드 전통음식이다. 매년 5월에서 7월 사이, 북해에서 잡은 햇청어로 만든다. ‘홀란서 뉴어 하링’ 중에서도 지방 함량이 가장 높은 6월 중순의 청어는 ‘코닝이네하링(Koningi nneharing)’이다. 청어 음식 중 최상급. ‘코닝이네’는 여왕을 의미한다.지금도 청어는 네덜란드의 주요 산물이다. 매년 약 200억 마리의 청어가 ‘홀란서 뉴어 하링’으로 가공되며, 이중 약 8천500만 마리는 네덜란드에서 소비된다(두산백과).동해안, 포항으로 청어가 돌아온다. 청어, 꽁치 따지지 않고, 과메기를 포함, 새로운 청어 요리, 꽁치 음식을 기대한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11-04

네덜란드에 가면 유독 눈에 띄는그림들

튤립과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 산이나 낮은 구릉조차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곳에서는 땅과 바다의 높이가 거의 동일하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임과 동시에 극복해야할 불리한 자연조건이었다. 바다의 물이 넘쳐 낮은 땅들을 삼켜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에 범람한 물들을 퍼내기 위해 발달한 것이 풍차이다.땅이 낮다보니 유독 네덜란드의 하늘은 높아 보인다. 하늘에는 언제나 뭉게구름이 장관을 연출한다. 구름 사이를 비집고 부서지는 햇빛은 네덜란드만의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그래서 그런지 네덜란드의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종류의 그림들이 있다. 바로 풍경화, 인물화 그리고 풍속화이다. 사실 전통 회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게 평가되었던 장르는 ‘역사화’이다. 성서나 신화 혹은 역사적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역사화라 부른다. ‘위대한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역사화는 주로 교회나 왕실 혹은 귀족들의 주문에 의해 제작되었다. 그런데 플랑드르로부터 독립해 세워진 네덜란드에는 왕이나 귀족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 이후 칼뱅주의가 널리 전파되면서 가톨릭에 반대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성화로 교회를 장식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더욱이 네덜란드의 집들은 협소한 땅에 지어졌기 때문에 거대한 크기의 그림을 걸 만큼 충분한 공간이 없기도 했다.이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주문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던 화가들은 생계를 위협받게 된다. 종교화를 주문할 교회도 없었고, 역사화로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할 왕족이나 귀족도 없었기 때문이다. 미술가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미술시장을 개척해 간다. 주문 생산 방식에서 벗어나 먼저 작품을 제작해 구입할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어떤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그림을 걸어두고 판매하는 상점을 경영하기도 했다.17세기의 네덜란드를 가리켜 ‘황금시대’(golden age)라고 부른다. 새로운 선박의 개발과 항해술의 발달로 대서양의 지배권을 차지한 네덜란드는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땅이 좁았기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투자가 튤립에 집중되면서 튤립 알뿌리 하나가 집 한 채의 가격만큼 치솟기도 했다. 이 무렵 크기는 작지만 고가였던 그림이 활발하게 거래되면서 미술시장도 빠르게 발달하게 되었다.상업이 발달했던 네덜란드에는 ‘길드’라는 동업조합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길드들이 미술가들에게는 중요한 고객이었다. 길드 회원들의 모습을 담은 단체 초상화 주문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렘브란트의 그 유명한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년)나 ‘야경’(1642년)도 길드에서 주문한 단체 초상화였다.네덜란드에서 발달한 또 다른 회화 장르는 풍경화이다. 화가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그림에 담았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네덜란드 풍경화의 특징은 나지막하게 뻗어 있는 지평선과 넓은 하늘 그리고 그곳에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변화무쌍한 구름이다. 바다를 끼고 살았던 네덜란드 화가들이 잘 그렸던 풍경의 모티브 중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다풍경이다. 물 위에 유유히 떠 있는 배를 그렸는가 하면 폭풍에 곧 뒤집힐 듯한 혼동의 순간도 그림으로 남겼다.네덜란드 회화하면 섬세한 세부묘사와 해학이 넘치는 풍속화로 유명하다. 화가 피터르 브뤼헐(1525∼1569)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17세기 활동했던 요하네스 베르메르와 얀 스텐과 같은 화가가 풍속화가로 명성을 떨쳤다. 네덜란드에서 풍속화가 발달한 것에도 이유가 있다. 풍속화는 단순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항상 근면이나 절제 혹은 도덕적 삶을 독려하는 경고나 교훈적 이야기가 숨어있다. 종교개혁 이후 ‘직업소명설’을 주장하며 근면과 성실 그리고 도덕적 삶을 강조하던 칼뱅주의가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미술은 시대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아무리 미술가들이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이 미학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운명처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그들이 속한 시대이다. 시대와 역사라는 조건들을 통해 그 예술적 산물인 작품들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았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고 모호했던 시대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다가오기도 한다./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19-11-04

애틋한 만남, 아름다운 별리… 상주 남장사(南長寺)

노악산 아래 사하촌은 붉게 익은 감들이 선한 이마를 드러내고 마을을 밝힌다. 계절의 아름다움은 늘 거기에 새로운 모습으로 있어 마음이 시리다. 어느 집이라도 문 열고 들어서면 가을볕에 그을린 얼굴들이 반겨 줄 것만 같다. 빈틈없이 가을이 들어차 있는 노악산 골짜기 멀지 않은 곳에 천년고찰이 숨어 있다.남장사는 경상북도 팔경 가운데 하나로 신라 흥덕왕 7년(832년) 진감국사 혜소가 창건하여 장백사라 하였다가 고려 명종 16년(1186년) 각원 화상이 지금의 터에 옮겨 짓고 남장사라 하였다. 보물이 네 점이나 있는 유서 깊은 절이다. 일주문이 보수중이라 보광전으로 통하는 옆문으로 들어서니 지방 방송사에서 취재를 하느라 분주하다.돌담길을 따라 내려오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경내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스님의 예불 소리에 조용히 타오르는 엄숙한 기도들, 소란스러움을 잠재우는 무구한 눈빛들이 싸하게 가슴을 적신다. 대적광전 열린 어간문 안으로 보이는 젊은 스님의 뒷모습이 유난히 고독하다. 숨죽인 탑과 나무들, 허공조차 불심으로 물들어 툭 건드리면 유채색 물감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천년고찰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으며 올곧은 정신을 지켜온 남장사는 층층시하 위계 질서가 느껴지는 전각들의 배치조차 권위적이지 않으며 건축물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편안하다. 내실을 다져온 명찰다운 풍모 속에는 안온함이 흐른다. 극락보전 앞에 일촌의 역사를 가진 탑들조차 천년 고찰에 어울리는 것은 나무 한 그루에도 불심의 역사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리라.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제 1635호)이 봉안된 극락전 안에서는 떠난 이의 영혼을 달래는 제(祭)를 지내는 중이다. 은행나무가 유난히 슬퍼 보인다. 영산전 오르는 나무테크 위로 떨어지는 샛노란 이별의 몸짓들, 스님의 경 읽는 소리가 애잔하다. 법당에서 슬픔을 정리하는 가족보다 모든 풍경을 바라보고 서 있는 내게 더 큰 쓸쓸함이 쌓인다.누구라도 가장 아름다웠던 한 때를 품고 이승을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제 누군가는 하염없는 부재의 기다림과 그리움을 안고 해마다 남장사를 찾아오리라. 가을날의 평화가 망자의 영혼에도 깃들길 기도하며 보광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천년고찰 가슴팍 위로 쏟아지는 햇살들이 나를 살며시 일으켜 세운다.얕은 가을볕이 배를 깔고 누운 보광전 법당에서 나는 기도한다. 가을날의 섬세한 숨결같은, 그런 사람 되게 해 주소서.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 990호), 후불탱으로 봉안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제 922호) 두 보물의 시선이 두런두런 바깥으로 쏠린다. 서둘러 보광전을 빠져 나왔다.고려 시대에 제작된 맷돌이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어 관심을 모으는 중이다. 현존하는 최대 크기로 민속학적인 가치가 상당할 거라는 전문가들의 설렌 기대감과는 달리 상부맷돌의 창백한 얼굴빛과 마주하는 순간, 내 몸은 통증을 일으키며 딸꾹질을 해댄다. 응이진 그리움이 하얗게 출혈이라도 한 걸까. 상부 맷돌의 몸은 섬뜩하리만큼 희다.세월의 때가 켜켜이 앉은 하부 맷돌의 다부진 몸체와 절제된 눈빛에 비해 극락보전 옆 계단에 거꾸로 엎어진 채 살아온 상부 맷돌의 불안한 눈빛은 자꾸만 가슴을 헤젓는다. 계단석이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상부 맷돌임을 알게 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이라도 일으킨 걸까. 눈빛이 안쓰럽다. 숱한 시간과 세월의 농간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둘의 어색한 만남 앞에서 광란하듯 타오르는 단풍들, 세상은 지나치게 무겁거나 지나치게 가벼운 것 투성이다.만남과 이별은 한 몸이다. 모든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 극락보전 안에서는 애틋한 별리의 슬픔을, 보광전 앞 마당에선 감격적인 맷돌의 만남을 남장사는 말없이 지켜본다. 예불소리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이 진실한 순간에도, 우리는 온전한 내가 아니라 누군가의 무엇으로 회자되어 기억 속을 떠돌 것이다.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뜬금없이 남편에게 문자도 보낸다. 갓 태어난 손녀와의 소중한 새 인연도 가슴 한켠을 밝힌다. 순간순간의 감동을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나의 일부가 되어 가슴 적셔줄 인연이다.조낭희 수필가남장사는 보물만큼 주지 스님에 대한 존경심도 남다르다. 여든이 넘은 성웅 주지 스님을 예약 없이 뵙기는 곤란하다. 보광전 옆 주지 스님이 머무시는 요사채를 향해 공손히 합장하고 절을 나서는 한 처사님의 모습이 가을빛만큼 아름답다. 가슴 찡한 예법을 따라 나도 두 손 모은다. 주지 스님의 건강과 남장사의 평온한 질서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남장사에는 보물보다 더 반갑고 그리운 것들이 살아간다. 극락전 대들보 위에 조각된 서수 두 마리와 소중한 한쪽을 돌아보게 한 맷돌, 남장사 입구를 지키는 해학적인 돌장승, 모두가 내 영혼을 밝혀준 보물이다. 참으로 따뜻했던 시월 하순 어느 날의 인연이다.

2019-11-04

용오름(Mesocyclone)

용오름은 지표면 가까이에서 부는 바람과 비교적 높은 상공에서 부는 바람이 서로 방향이 달라 발생하는 기류현상으로, 지표면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상승해 적란운이 형성되면 지표면 부근에 발생한 소용돌이 바람이 적란운 속으로 상승해 거대한 회오리바람인 용오름(Mesocyclone)이 형성된다. 이때 용오름은 상승기류의 통로가 되고 기압이 내려가게 된다.이때 상승기류를 타고 상승하는 수증기들이 물방울이 되면서 구름으로 만들어져 깔때기 모양의 구름인 벽운(碧雲)을 형성, 최종적으로는 벽운이 지표면까지 내려와 소용돌이 구름을 만들게 된다. 이때 용오름 속의 상승속도는 100m/sec 정도이며, 상승기류의 속도는 40~90m/sec 정도가 된다. 용오름의 이동속도는 대개 40~70㎞/hr 정도다. 용오름 모양은 깔대기처럼 똑바로 서있는 경우도 있고, 용허리처럼 구불구불 휘어 있을 때도 있다. 이 모습이 꼭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양같다고 해서 용오름이라 불리며, 미국의 대평원에서 자주 발생하는 ‘토네이도’와 똑같은 현상이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산이 많기 때문에 바다에서 주로 나타난다. 또 태풍이 접근할 때나 한랭전선이 통과할 때, 뇌우가 몰아칠 때 등 대기층이 급격히 불안정한 상태에서 생기며, 수직방향으로 소용돌이가 치는 모양이다.국내에서는 1989년 제주공항, 1993년 김제평야, 1994년 지리산 부근, 1997년 전남 여천 앞바다와 서해 태안반도, 2001년ㆍ2003년ㆍ2005년에 울릉도 등에서 목격됐고, 3일 오전 경북 울진군 부구 앞바다에서 용오름 현상이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 동해 앞바다의 신비롭고 경이로운 자연현상이 힘겨운 이 나라에 길조가 되어주면 얼마나 좋을까./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1-04

맞서고 지지하는 글쓰기로 나아가길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글쓰기를 ‘위한’ 교육? 글쓰기를 ‘통한’ 교육?”국립한밭대학교에서 개최된 한국사고와표현학회 전국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박정하 교수가 ‘전환기의 사고와 표현교육’이라는 주제를 풀어가며 던진 질문이다. 대학에서 글쓰기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회 선생님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고 글쓰기 교육을 통해 무엇을 하려는지, 앞으로의 사고와 표현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보도록 화두를 준 셈이다. 글을 쓰며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대학에서 글쓰기 교육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대학글쓰기 교육은 글을 잘 쓰기 위한 기술과 요령을 가르치지 않는다.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이 한 학기 수업만으로 향상될 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존재’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일이다.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쓸 것인가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고 글을 쓰는 궁극의 의미가 있다. 미국 대학의 글쓰기 교육은 ‘비판적 문화연구’가 주류라고 한다. 학생들이 글쓰기 과정을 통해 지배 담론에 대해 의심하고 비판하며 사유하는 힘을 키워가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어떤 주제나 쟁점을 자유롭게 탐색하며 자신이 생각한 메시지를 소통하는 방법으로 글쓰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자신의 작품들이 정치적 행동이었음을 말한다. 글을 쓰게 된 출발점이 불의를 감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글은 전체주의에 ‘맞서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었다.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된다”는 오웰의 말처럼 글쓰기는 자연스레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관심을 갖고 성찰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에서 글쓰기 교육은 더욱 중요한 사명을 갖는다. 남들보다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치고받는 경쟁 논리가 개인의 불안을 낳고 공동체의 가치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를 쓴다는 것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발견하는 일이다. 또한 대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깊은 숙고를 전제로 하는 일이다. 따라서 글쓰기는 변혁 기제다.이제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곧바로 이어지는 논술전형 시험을 통해 누군가는 대학의 문을 두드린다. ‘모범답안이 존재하는 대입논술이지만 그나마 논술시험 덕분에 학생들이 글쓰기 경험을 하며 뭔가 배우고 있지 않을까? 대학에 들어와 글쓰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경계 너머 타인도 돌아보며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의에 맞서고 공동체의 가치를 지지하는 시민의식은 글쓰기 교육을 통해 형성되지 않을까?라는 꿈을 꾸어본다. 여러 대학에서 글쓰기교육을 하고 있는 선후배 동료 교수들과 연대와 우정을 느끼며 글쓰기 교육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 보았던 학술대회였다. 대전 유성구의 국화축제와 동학사 가을 풍경의 여운까지 덤으로.

2019-11-04

멧돼지의 난동

멧돼지와 집돼지는 원래 같은 종이다. 개와 늑대가 같은 종인 것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돼지의 후손이 멧돼지로 생태계를 유지한다. 우리 말로 산을 뜻하는 뫼를 앞에 붙여 깊은 산속에 기거한다고 멧돼지라 불렀다.멧돼지는 보통 몸길이 1.5m 정도며 몸무게 50∼280㎏ 정도 된다. 몸무게가 300㎏을 넘는 대형 멧돼지도 있다. 목은 짧고 주둥이는 매우 길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무기로 쓴다. 화가 나면 등의 거친 털이 뻣뻣하게 선다. 깊은 산 활엽수가 우거진 곳에 살며 토끼와 들쥐, 개구리 등도 잡아먹는 잡식성이다. 덩치에 비해 놀라운 스피드를 갖고 있어 매우 위협적이다. 그러나 호랑이와 늑대가 천적이다. 특히 호랑이가 즐겨 먹는 먹잇감이다. 조선 후기만 해도 무분별한 벌목으로 민가 주변의 민둥산이 많아 멧돼지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전쟁 후 정부의 산림녹화 정책으로 전국의 산이 울창해지면서 개체수가 다시 증가했다. 우리나라에는 약 35만 마리의 멧돼지가 서식 중이라 한다.최근 전국 대도시가 느닷없는 멧돼지 출몰로 고심하고 있다. 서울, 부산, 대구할 것 없이 멧돼지가 떼를 지어 나타나 자동차나 상가점포 등을 마구 부수고 달아난다. 대구서도 지난 11일 오후 5시쯤 서구 상리동에 인근 와룡산에서 내려온 것으로 보이는 멧돼지 8마리가 출현,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짝짓기 철을 앞둔 멧돼지의 왕성해진 먹이 활동 탓이라 한다. 그러나 멧돼지는 돼지 흑사병으로 불리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옮기는 주범으로 알려져 우리를 더 불안케 한다.최근 ASF 영향으로 돼지값이 폭락, 축산농가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멧돼지의 도심 난동이 더 얄미워 보인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1-03

뻐꾸기 알 ‘손학규’

안재휘 논설위원뻐꾸기는 자기 둥지에 알을 낳지 않고 오목눈이나 노랑때까치 등 다른 새의 둥지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이를 ‘탁란(托卵)’이라고 하는데, 다른 새의 둥지에 들어가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어미 새의 진짜 알이나 갓 태어난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한사코 밀어내어 제거한다. 자연 다큐 프로그램에서 그 잔인한 얌체 짓 장면을 보노라면 부아가 저절로 치밀어오른다. 참으로 잔혹한 생태계 현실의 하나다.지난 대선과 총선을 반추하노라면 떠오르는 중대한 시대적 변화 하나가 있다. 만년 드잡이질만 하는 청백전 정치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다양해져서 무지개 스펙트럼을 형성한 게 언제인데, 여전히 민심을 두 줄로 세우려는 억지는 이제 청산돼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튼실한 제3 중도정당에 대한 갈망은 강하다.그래서 생겨난 것이 유승민의 바른정당, 안철수의 국민의당이었다. 안타깝게도 지난 대선에서 두 사람은 성공하지 못했다. 중도 안에서 중도좌파, 중도우파를 아우를만한 정치철학을 창출해내지 못하고 분열적 정치 공학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은 뒤늦게나마 두 당을 합쳐서 ‘바른미래당’이라는 새로운 반성의 몸짓을 보였다.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호남 민심’을 기반으로 대붕(大鵬)의 꿈에 취해 살던 손학규라는 또 다른 야심가가 사령탑을 장악했다. 하지만 바른미래당은 건강한 중도정당의 구축에 이르지 못했다. 그 실패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손학규식 정치의 실패를 뜻한다. 적어도 20%는 훌쩍 넘겨야 할 지지율이 투철한 좌파 정당을 표방하는 정의당에도 걸핏하면 뒤처지는 신세다.‘죽어도 개혁 못 하는’ 보수 자유한국당과 함께, 바른미래당은 ‘죽어도 패 갈라 싸우는’ 정당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그 핵심에 손학규의 흉계 내지는 오산(誤算)이 작용한다. 손학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정치 인생 마지막 승부수를 건 듯하다. 무슨 추한 꼴을 당하더라도 그것만 이루면 성공할 것이라는 자기 확신에 빠진 모습이다.그의 잘못은 첫째 온 국민의 여망인 제대로 된 중도정당의 꿈을 박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비판하는 척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문재인 정권의 예하 부대장처럼 굴어온 그의 언행이 문제다. 두 번째는 이 나라 민주화 시계를 거꾸로 돌릴지도 모르는 ‘공수처(공직자비리수사처)’를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바꿔 먹으려는 행태다. 아니, 어쩌면 원론적 취지와 달리 ‘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가 이 나라 보수와 중도정치를 모두 말살할 수도 있다.손학규는 그 화려한 정치 이력의 피날레를 이렇게 끌고 가서는 안 된다. 남의 둥지에 들어와 진짜 주인인 알들을 둥지에서 밀어내어 제거하는 뻐꾸기 알처럼 행세하는 그 모습은 온 국민의 절망거리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때가 되면 어미 뻐꾸기가 부르는 곳으로 미련 없이 날아갈 그 무정한 뻐꾸기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한때 한국 정치의 희망이던 손학규가 이래서는 안 된다.

2019-11-03

친구의 친구가 금연할 때

특정 감정 상태가 전염병처럼 퍼지는 사례는 수백 년 전부터 있었던 일입니다.14세기 독일 아헨에서 갑자기 지역 주민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무도병(Dancing Plague)이라는 독특한 병명까지 생긴 현상입니다. 무도병은 중세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에서도 자주 목격되었습니다.웃음이나 춤이 일으키는 격렬한 감정은 사람의 정서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하버드 대학의 니콜라스 리스태키스(Nicolas Christakis) 박사는 사람의 감정과 정서가 어떻게 주위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10년에 걸친 장기 연구를 시작합니다. 1971년부터 2003년까지 총 1만2천67명을 추적, 연구합니다. 수학과 의학, 과학으로 인간관계의 비밀을 입증합니다.흔히 행복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게 문학적 수사가 아닌 실제 과학적으로 입증한 겁니다. 행복은 전염된다는 것이지요.저자는 이 연구 결과를 2011년 컨넥티드라는 책으로 펴냅니다. 한국어 번역본은 ‘행복은 전염된다’. 동료 하버드 교수 제임스 파울러와 사회적 네트워크가 개인의 생활과 건강, 정서, 정치, 종교, 문화, 성적 취향에 이르기까지 서로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탐구하지요. 연구 대상은 3천명, 3만명 나아가 300만명에 이르는 규모였습니다.이 연구를 통해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금연을 할 경우 나도 금연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친구의 친구가 또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비만일 경우 나도 비만으로 변할 확률이 수치상으로 명백하게 높아진 연구 결과도 얻습니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행복할 경우, 나도 행복해질 확률이 6%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지요. 행복하고 훌륭한 삶을 위해서는 고립을 피하고 분투와 격려가 넘치는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