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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겨울 유희(遊戲)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꽝꽝한 빙판을 보면 지치고 싶어진다/ 팍팍한 세상살이 껄끄러운 마찰을 잊고/ 유착도 고착도 없이 미끄러지고 싶어진다// 숫눈의 들판을 보면 밟으며 걷고 싶다/ 낡고 찌든 세상을 덮은 순백의 전인미답/ 신생의 벅찬 설렘으로 마냥 걷고 싶어진다// 바싹 마른 풀숲에는 불 지르고 싶어진다/ 조바심으로 서걱이는 마른 풀에 불을 댕겨/ 이 세상 한 귀퉁이를 방화하고 싶어진다// 산과 들 쏘다니며 나이도 무엇도 잊고/ 걷다가 지치다가 논두렁에 불도 놓으며/ 한 마리 산짐승처럼 참 생생한 하루였다’- 졸시 ‘겨울 유희’골목에 아이들이 없다. 시골 동네에는 아이가 사는 집이 거의 없다. 간혹 아이들이 있어도 골목에 나와 놀지 않는다. 골목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던 시절에 비한다면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다. 집집마다 네댓은 보통이고 일곱이나 여덟인 집도 적지 않아서 방학이면 하루 종일 골목이 시끌벅적했다. 오죽하면 “시끄럽다, 딴 데 가서 놀아라!”라는 꾸중을 듣곤 했을까.아이들이 많다 보니 놀이도 참 다양했다. 술래잡기, 구슬치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썰매타기, 비석치기, 자치기, 땅따먹기, 딱지치기, 공놀이, 고무줄놀이, 공깃돌놀이, 원수놀이, 전쟁놀이, 눈싸움….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칠 줄 모르고 놀아도 놀 거리가 달리지는 않았다. 놀이에 소용되는 도구도 거의가 스스로 만들었다. 돈을 주고 사는 것은 구슬이나 고무공 정도였고, 초등학교 상급반이면 팽이를 깎고 연이나 제기, 썰매를 만들 줄 알았다.지나고 보니 그 때 그 놀이를 통해 많은 것을 얻고 배웠던 것 같다. 우선은 마음껏 뛰고 구르고 노는 일이 자유롭고 즐거웠다. 방학숙제 따위 까맣게 잊고 노는 일에만 열중해도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었다. 비록 먹고 입는 것이 열악해도 그것 때문에 슬프거나 괴로울 겨를이 없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단벌옷으로 겨울을 나도 방구석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지는 않았다. 놀이를 통해 우정을 쌓고 협동과 단결을 배우고 도구를 만드는 손기술을 익히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그때 배운 기술과 지혜를 바탕으로 국민소득 백 불 미만의 최빈국을 세계 십위 권 경제대국으로 밀어 올리는 기틀을 마련했다.겨울방학 동안만이라도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게 하자. 과외니 학원이니 하는 족쇄를 풀어주고 텔레비전, 컴퓨터, 휴대전화기도 던져놓고 동무들과 어울려 술래잡기도 하고 팽이치기, 연날리기도 할 수 있게 하자. 시골의 학교를 이용해서 방학동안 놀이교실이라도 열 것을 제안한다. 일주일이나 2주일쯤 도시의 아이들이 합숙을 하면서 마음껏 놀 수 있게 놀이를 가르치고 놀이기구를 손수 만드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를 바란다. 제 손으로 만든 연과 썰매, 제기, 팽이를 가지고 놀이를 한다면 그보다 좋은 체험학습이 없을 것이다. 저절로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고 정서도 넉넉해져서, 행복지수 OECD 꼴찌에다 5명 중 1명꼴로 자살충동을 경험했다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기쁨과 활력을 회복하기 바란다. 아이들은 잘 놀아야 건강해진다.

2020-01-16

그들이 기다린 이유는

미국의 어느 부둣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정기 여객선이 도착해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는 도중 배가 출렁이는 바람에 한 여자 승객이 발을 헛디뎌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목격한 주위 사람들이 모두 고함을 치면서 발을 동동 굴렀으나 선원들은 이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기만 했습니다.그러자 사람들은 이런 무책임한 선원들이 어디 있느냐며 거세게 비난하기 시작했지요. 선원들은 여자가 두 번이나 물속에 떠올랐다 잠겼는데도 여전히 요지부동이었습니다.그런데 잠시 후 여자의 힘이 완전히 소진된 것을 알고서야 한 선원이 비호같이 다이빙해서 축 늘어진 그 여자를 구해서 올라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왜 처음부터 빨리 구해주지 않았느냐고 그 선원을 나무랐습니다. 선원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답합니다. “모르시는 말씀들 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물에 빠져 자기 힘으로 살아보겠다고 안간힘을 쓸 때는 어느 장사가 구하러 들어간다고 해도 빠진 사람의 힘에 눌려 같이 빠져 죽게 됩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힘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표현이 한때 유행했습니다.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누구나 1만 시간을 투자해 노력하면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가 수준에 오를 수 있다는 말콤글래드웰의 이론입니다.최근 안데리스에릭슨은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이 이론의 문제점을 밝힙니다. 그 분야의 마스터 코치 없이 무조건 1만 시간을 채우는 행위는 큰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다는 겁니다. 여인을 구한 선원의 지혜처럼, 매사 그 분야에 가장 뛰어난 전문가의 조언과 피드백을 받으며 1만 시간을 채울 때 가장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발견이었습니다.모두가 희망으로 시작한 2020년. 우리 곁에 날카롭고 지혜로운 멘토가 등장하기를 기대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16

게으름에 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더러 억장으로 취하는 때가 있다. 나이 먹고 몸이 부실한 것도 원인이겠으나, 강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술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하곤 한다. 주독으로 고단해진 육신을 추스르다 보면 성찰의 시간이 찾아온다. 구토와 오심으로 괴로워한 적도 있으나, 요새는 그런 일이 없다. 그것도 음주 행각으로 얻어낸 작은 지혜이거나 깨달음이려니 생각한다.나른해진 몸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지난 일을 회억하거나 흐뭇한 추억에 잠기는 날도 있다. 아마 그것이 음주 다음 날의 유쾌한 선물일 것이다. 온종일 빈둥거리면서 몸과 마음을 분망한 일상과 격절(隔絶)하는 한가한 하루! 술을 싫어하거나 홀짝거리는 정도의 애주가는 빈둥거림의 미학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마다 세상과 대면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자크 러클레르크의 ‘게으름의 찬양’(1936)을 선물받았다. 버트란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1935)을 인상 깊게 읽었기로, 같은 부류의 서책이려니 짐작했다. 러셀은 모든 지구 거주자가 하루 4시간 노동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견해를 주장한다. 문제는 누군가는 전혀 노동하지 않으면서 부를 축적하고, 어떤 이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혹사당하는 것이다.세상에는 온종일, 매달, 매년, 종신토록 놀고먹는 자들이 있다. 그것도 적잖은 자들이 그런 놀라운 행운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 아무리 일해도 하루 세끼 배불리 먹지 못하는 인간도 아주 많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조국과 부모 때문에 이런 편차가 생겨난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하는 말은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그런 까닭에 우리는 흙수저와 금수저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것이 운명이나 되는 것처럼.러클레르크 신부가 게으름을 찬양하는 까닭은 근본적으로 ‘속도’에 있다. 너무 신속하게 변해가는 세상과 거기 편승해서 ‘더 빨리’를 외쳐대는 20세기 초반 유럽의 풍경을 그려낸다. 2차 대전으로 느림이 찾아왔다는 그의 생각은 무척 새로운 것이었다. 수많은 인명살상을 가져온 전쟁의 참화가 아니라, 속도경쟁에서 빠져나오도록 인도한 전쟁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혜안과 통찰! 하지만 2차 대전 직후 인간은 우주로 날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달에 도달한다. 옥토끼가 절구질한다는 항아의 달에 사람이 꿈처럼 발자취를 남긴 것이 벌써 50년 전 일 아닌가?! 결국 그것은 지구 자전속도를 능가하는 속도에서 비롯된 일 아닌가! 오늘날 우리는 300킬로미터의 시속으로 전국을 오가고, 시속 1000킬로미터 내외로 지구를 왔다 갔다 한다. 그야말로 속도에 빠져서 살아가는 인생살이가 현대인의 특징처럼 각인된 시대다.느림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해준다고 러클레르크는 말한다. “우리의 삶이 제대로 인간적이려면 거기에는 느림이 있어야 합니다.” 아주 큰 울림을 주는 구절이다. 올해에는 나도 어느 정도 빠름에서 놓여났으면 좋겠다. 그것이 궁금한 빈들거리는 하오가 느릿하게 지나간다. 여러분의 하루는 어떤가, 궁금하다!

2020-01-15

졸업이 무서운 아이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아, 망했다!” 2020년에 대한 느낌을 묻는 말에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반응이다. “왜? 중학생이 되잖아!” “중학교 왜 있어요? 꼭 가야 해요?”필자는 초등학교 입학을 학수고대하며 입학식 전날까지 가방을 안고 자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그런 아이가 벌써 중학생이 된다는 세월의 빠르기에 숨이 막혔다. 비록 초등학교 입학 전의 기대가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원망으로 바뀌었지만, 뭐든지 긍정적인 아이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절망에 가까운 부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은 처음이라 몹시 놀랐다.필자의 놀람은 금방 걱정으로 변했다. “중학교 가면 서열이 있대요. 인기 있는 애들은 선배들이 처음부터 챙겨주고, 혼자 다니거나 인기 없는 애들은 학교에서 찐따처럼 지내야 한대요. 또 선배나 친구들에게 한 번 찍히면 끝이래요! 1학년 때는 자유 학년제라 시험을 안 쳐서 다들 학교에서는 놀고, 학원 가서 공부한다는데 왜 중학교 1학년이 있어요?”서열, 찐따, 자유 학년제, 학원 등 필자가 들어도 마음이 무거운 단어들인데, 중학교 입학도 전에 이런 단어들에 노출된 아이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었다. 그리고 지금의 심상치 않은 중학교 분위기가 상상되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3년 내내 또 의미도 없는 졸업장을 따기 위해 극도의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할 아이를 생각하니 부모로서 아이의 중학교 입학이 망설여졌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해외로 나가는 부모들이 이해갔다. 할 수만 있다면 아이와 같이 그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형편이 못 되기에 아이에게 미안했다.지난주 산자연중학교에서는 2020학년도 입학과 전학을 위한 예비학교가 2박3일 동안 열렸다. 올해도 제주도에서부터 서울, 대전 등 전국에서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왔다. 비록 학년은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뭔가에 잔뜩 주눅든 모습이었다. 무엇이, 또 누가 저 아이들을 저토록 주눅들게 했는지 필자는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청와대에도, 정부에도, 그 어디에도 없다.글 오염에 가까운 사회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영혼 없는 신년사가 남발되는 요즘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2020 경자년 희망찬 새해”라고 말한다. 과연 그들은 희망(希望)이라는 말의 뜻을 알기나 하는지 궁금했다. 아무리 뻔뻔해도 최소한 이 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본다면 새해 앞에 “희망찬”이라는 수식어는 절대 붙이지 못할 것이다.절망만 가득한 이 나라와 이 나라 교육에 제일 필요한 단어는 희망이다. 그런데 대변혁이 일어나지 않고는 2020년도도 2019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희망이 부재한 이 나라 교육계는 신입생을 받을 준비가 되었을까? 필자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아이는 믿지 않는다.혹시 대통령께서 “이 나라 중학교에는 왕따, 학교폭력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모든 학생이 즐겁고 행복하게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 중학교입니다”라고 말하면 아이가 믿을까? 그런데 슬프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이 나라에는 없다.

2020-01-15

소나무의 가르침

소나무 씨앗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위틈에 떨어지고 다른 하나는 흙 속에 묻혔습니다. 흙 속에 떨어진 소나무 씨앗은 곧장 싹을 내고 쑥쑥 자랐습니다. 그러나 바위틈에 떨어진 씨는 조금씩밖에 자라나지 못했습니다. 흙 속에서 자라나는 소나무가 말했습니다. “이것 봐, 나는 이렇게 크게 자라는데 너는 왜 그렇게 조금밖에 못 자라니?” 바위틈 소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이깊이 뿌리만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태풍이었습니다. 산 위에 서 있는 나무들이 뽑히고 꺾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위틈에서 자라나는 소나무는 꿋꿋이 서 있는데 흙 속에 있는 나무는 뽑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바위틈에 서 있던 소나무가 말했습니다. “내가 왜 그토록 모질고 아프게 살았는지 이제 알겠지? 뿌리가 튼튼해지려면 아픔과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거야.”러시아 과학자들이 동물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이상적인 생활환경을 제공했지요. 풍성한 음식과 상쾌한 공기와 안락한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동물들을 괴롭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동물들은 초원을 뛰놀다가 지치면 그대로 나뒹굴었다. 몇 개월 후부터 동물들의 털에서는 윤기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두 번째 그룹에게는 걱정과 기쁨이 공존하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동물들은 초원에서 한가롭게 놀다가 가끔 맹수의 습격을 받습니다. 먹이를 얻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했고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러시아의 과학자들은 두 집단의 연구결과를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안락한 환경에서 살던 동물들이 훨씬 먼저 병들어 죽어갔다. 약간의 긴장과 노력이 건강과 장수를 보장한다.”우리에게 시시각각 멈추지도 않고 다가오는 어려움과 장애는 거침 돌이 아니라 디딤돌이라는 점을 마음에 새겨보는 새벽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15

우리 안의 불안과 경쟁: 수우족과 유록족의 이야기(1)

교육 특구를 자처하는 대구 수성구의 범어동 거리에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눈으로만 알 수 있는 표식들이 있다. 평범한 건물의 소박한 간판 뒤에 월급쟁이 부모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고액의 개인 과외와 소그룹 과외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늦은 밤,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정시 확대 결정은 수능 준비를 위해 학교를 그만 두려는 아이들까지 속출시키면서,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마냥 무겁게 보인다. 종일 무기력하게 교실에 엎드려 있다가 해질녘 학원가를 향할 아이들의 모습에 어느 원주민 부족 아이의 물음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수업에서 달리기 경쟁을 시키자, 아이는 ‘누가 이길지 아는데, 왜 달리라는 거죠?’라고 반문하였다. 그 아이에게 학교에서의 경쟁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왜 달리라고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또 달리라고 하는지 말이다. 아이의 답변에서 우리는 경쟁이라는 현상이 인류의 보편적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경쟁에 익숙해진 우리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에릭 에릭슨(E. H. Erikson)의 유년기와 사회에 기술된 수우(Sioux)족과 유록(Yurok)족의 아이들을 차례대로 만나보도록 하자.수우족은 미국 사우스다코타 지역의 초원을 지배하던 버팔로 사냥꾼이자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치던 전사였다. 넓은 초원은 그들 삶의 원천이었고, 버팔로의 고기, 가죽, 뼈, 내장, 배설물은 모든 삶의 수단을 제공해주었다. ‘관대함’은 이들의 주요한 미덕이었고, 이는 버팔로를 사냥하며 유랑하는 삶에서 최소한의 생계 도구 외의 소유나 저장은 불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식량은 바닥날 때까지 공평하게 나누어졌고, 식량이 떨어지면 그들은 팀을 꾸려 사냥에 나서거나 식량을 나눠 받기 위해 친척을 찾아갔다. 그러했기에 보호구역의 근대식 학교를 다니던 한 아이는 그의 부모가 은행을 이용한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기도 하였다.소유에 대한 개념만큼이나 수우족의 양육방식은 독특하였다. 그들은 놀라울 만큼 아이들의 양육에 관대했는데, 수유기간이 평균 3년에 이르렀다. 어머니의 초유는 짜서 바로 버려졌고, 어머니의 젖이 충분히 나올 때까지 이웃의 어머니들이 아이에게 공동으로 넉넉히 젖을 물렸다. 에릭슨은 이를 다음과 같이 추론했다. 갓 태어나 굶주린 아이가 안간힘을 다해 얻은 것이 찔끔 나온 젖 한 모금이라면, 과연 그 아이가 세상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이다. 또한, 아이들의 배뇨와 배변훈련은 매우 느슨하였는데, 보호구역의 백인 교사들은 ‘수우족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방치한다’며 분노하였다. 그러나 수우족의 아이들은 그들의 배설물이 초원의 태양과 바람 아래 잘 마르게끔 배설하도록 양육되었고, 수우족의 시각에서 본 서구식 화장실은 햇볕과 바람을 막으면서도 정작 파리 떼는 막지 못하는 신통찮은 것이었다. 에릭슨은 긴 수유기간과 너그러운 양육방식이 수우족의 미덕인 관대함의 바탕이 되었다고 추론했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수우족 아이가 근대식 학교와 교실 내의 경쟁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반면, 캘리포니아 지역에 거주하던 유록족은 대서양와 만나는 클래머스강을 중심으로 거주하던 연어잡이 부족이었다. 대서양에서 헤엄쳐 온 연어는 강의 급류를 거슬러가 상류에 이르러 알을 낳은 후 생애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산란한 치어들은 강을 내려와 다시금 대서양으로 향한다. 연어의 삶은 유록족의 삶에 깊이 녹아 있었는데, 이들에게 주요한 미덕은 ‘정결함‘이었다. 유록족은 인색하고 의심이 많으며 강박적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가령 강 상류에 사는 유록족은 다른 호전적인 부족이 강 하류의 유록족을 공격하러 가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 할 만큼 주위에 무관심했다. 이들은 사적 소유와 조가비 화폐에 익숙했고, 강을 둘러싼 수많은 강박과 금기를 가지고 있었다. 가령 사냥한 동물의 피나 사람의 분비물은 강에 섞여 들어갈 수 없었다. 또한 성관계를 갖거나 이성과 같은 집에서 잠을 잤다면, 그들은 다음날 아침 한증막에서의 정결 의식을 통과한 후 클래머스강을 헤엄치는 것으로 정화를 마무리해야 했다.유록족은 양육방식 또한 수우족과 판이하게 달랐다. 신생아에게는 열흘간 젖 대신 견과즙이 주어졌다. 수유는 6개월이 되는 어느 날 갑자기 끊겼는데, 유록족은 이를 ‘어머니 잊기’라고 불렀다. 이후 양육은 매우 엄격하였고, 아이들은 음식에 먼저 손댈 수 없었으며 더 달라고 조를 수도 없었다. 식사 자리는 위아래가 정해져 있었고, 아이들은 숟가락에 음식을 조금만 올려놓고 숟가락을 입에 가져갈 때에는 손을 천천히 움직여야 하며, 씹는 동안에는 숟가락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 과정 내내 돈과 연어를 생각하며 침묵하도록 교육받았다. 이는 유록족의 절제된 현실과 내면화된 환상 간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유록족의 내면에서 클래머스강 어귀는 연어가 밀려오는 수평선을 향해 기다림의 형태로 열려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연어 떼가 밀려와 그들에게 믿기 어려운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그 환각은 한편으로는 그들의 정결하고 절제된 일상을 유지시켜주는 환상이자, 현실에서의 예기된 보상이기도 하였다. 1년에 한 번 연어가 찾아오면 유록족은 강 양쪽 기슭에서부터 댐을 축조하기 시작하였는데, 댐이 완성되면 마침내 연어잡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열흘간의 축제가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축제 기간 동안 금기를 깨고 이교도의 의식에서나 볼 수 있는 방탕하고 난잡한 해방의 시간을 가졌다.수우족의 불안이 ‘무력해지고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 즉 이동하며 생활하는 무리로부터 낙오되는 두려움이었다면, 유록족의 불안은 ‘연어 떼가 돌아오지 않는 것’, 즉 양식이 없이 남겨지는 것이었다. 수우족이 관대함과 확대가족을 통한 긴장의 분산으로 그들의 불안을 이완시켰다면, 유록족은 연어 떼의 도래를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긴장과 불안을 자신의 몸 안에 체화시켰다. 유록족의 쪼그라든 일상의 이면에는 거대한 환상, 즉 클래머스강 어귀에 도래한 연어 떼의 환각이 열망처럼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거리두기를 마치고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와 본다. 겨울 방학에도 학원가에 늘어선 아이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수우족과 유록족의 사례는 각각의 맥락 내에서만 이해가능하며, 그들의 미덕인 관대함이나 정결함을 우리 사회의 미덕에 견주어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러나 어떤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의미한 질문과 단서를 던져준다. 우리 안의 불안이 대체 무엇이기에 혹은 우리의 환상이 무엇이기에, 우리의 일상은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경쟁으로 숨 막히게 짜여진 것일까? 우리에게 연어는 무엇일까? 자연으로부터 너무도 동떨어져 버린 우리 삶의 방식과 주기가 이제 자연을 닮지 않은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내재하는 불안과 열망을 질문하는 작업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을 넘어선 진화를 가능케 할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수우족과 유록족의 두 번째 이야기는 이러한 탐색을 계속해갈 것이다. /김은영 교수김은영 미국 텍사스AM대학에서 교육학 석사,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20-01-15

휴대폰 해킹 방지법

최근 주진모 씨를 비롯한 유명 배우와 아이돌 가수 등 연예인 10여 명의 휴대 전화 해킹으로 아주 사적인 SNS 대화들이 유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주씨는 휴대폰을 분실하거나 수리를 맡긴 적도 없고, 쓰던 폰을 판 적도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카톡 대화가 털린걸까? 전문가들은 휴대폰에 있는 전화번호부 목록이나 캘린더 일정, 문자메시지 내용 등을 클라우드에 자동으로 백업되도록 해 놓았다가 백업해 둔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클라우드 백업은 스마트폰을 분실할 경우 데이터를 카피해서 복구할 수 있기에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활용하고 있다. 다만 이 경우 클라우드 서비스가 해킹된 게 아니라 아이디, 패스워드를 도용당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통상 해킹당한 사례를 조사해보면 진짜로 해킹당한 게 아니라 여러 사이트에서 같은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쓰는 것을 해커가 알아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A라는 연예인이 영세한 쇼핑몰에서 쓰던 아이디와 비번을 클라우드와 카톡, 그리고 다른 사이트에도 공통으로 쓸 경우 보안이 허술한 사이트에서 아이디와 비번을 알아내 다른 계정을 털수 있게 된다. 따라서 휴대폰 해킹 방지를 위해서는 첫째 사이트가 달라지면 비밀번호는 바꿔 쓰고, 둘째 비밀번호 외에 생체 인식이라든가 SMS 문자 확인 등 별도의 인증 수단을 추가하는 이중인증을 켜둔다. 셋째로 스마트폰 OS나 앱을 항상 최신 버전으로 바로바로 업데이트하는 게 중요하다. 업데이트 공지가 뜨면 해커가 보고 스마트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내 하루이틀 안에 공격 코드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첨단IT기술의 발달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개개인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1-15

시운상승(市運上昇)

장규열 한동대 교수포항이 가라앉았었다. 지역 경기침체와 더불어 이 도시는 초유의 지진까지 겪으며 지난 몇 해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진 진원지 흥해를 중심으로 한 도시의 북부 지역을 비롯하여 도시 는 몸살을 앓았다. 부동산 경기의 침체와 함께 전반적인 도시경제와 분위기는 활력을 잃었던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것일까. 눌리고 낮은 기운이 도시를 감싸고 돌았다. 기다리던 새벽녘에 한꺼번에 햇살이 비취듯이 해를 넘기면서 좋은 소식이 도시에 들려왔었다. ‘포항지진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기대할 수 있어 구체적인 활로를 모색하게 되었다. 도시와 지역의 재건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터이다.문화도시가 되었다. 수년을 공들여 준비한 끝에 포항은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되었다. 지난 세월동안 지켜온 산업도시의 역할에 더하여, 지역의 이미지 기반을 ‘문화’로 이어가는 새로운 비전이 시동을 건다. 문화도시와 더불어, 포항은 ‘배터리도시’가 되었다. 포항에 설정된 규제자유특구에 ‘배터리 리사이클링 제조시설’을 유치하여 미래 먹거리사업으로 지정하였다. 철강이 과거산업의 쌀이었다면, 배터리는 미래산업의 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대통령이 축하하며 전한 메시지는 포항의 경제산업적 특성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기개를 언급하며 지역의 자긍심을 높여주었다. 즉, 경북에서 처음으로 삼일운동을 시작한 곳이 포항이며 한국전쟁 때에는 학도병들이 목숨으로 전선을 사수했던 보루였다는 것이다. 산업과 문화를 든든하게 담는 지역이 된 셈이 아닌가.수년 전에 한동대의 한 프로젝트 과목에서 포항시 ‘도시브랜딩프로젝트’를 과제로 수행하였다. 당시 학생들이 추천한 바에 따르면, 포항의 이미지를 ‘충전도시’로 차별적으로 브랜딩하여 디지털환경과 4차산업혁명에 걸맞는 도시로 만들어가자고 하였다. 마치 포항이 ‘배터리도시’가 될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며, 실제로 배터리와 충전을 함께 활용하여 도시브랜딩의 새로운 모습을 개발해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치고 피곤하여 배터리가 방전된 모습을 한 현대인들에게 충전과 회복을 경험하는 도시로서 포항을 마케팅하고 소개한다면! 관광과 도시 홍보에도 큰 기여를 할 소재가 아닐까 여겨진다. 충전도시와 함께 포항은 축제도시로서 강점을 가진다. 포항국제불빛축제가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어 지속적인 성공을 이어가는 중이다.터널을 지나 빛이 보인다. 포항에 새벽이 찾아왔다. 이제는 올라간다. 도시가 깨어나 기지개를 켜면서 문화도시, 충전도시, 배터리도시, 축제도시가 되어 날아오를 터이다. 올라가는 길에 혹 어려움을 겪는 이웃 도시들이 보이면 기꺼이 지혜와 슬기를 나누는 넉넉한 도시가 되어야 한다. 글로벌지평에도 손색없는 도시가 되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지역이 되어갈 것이다. 포항, 2020년은 포항에게 시운상승(市運上昇)의 해가 아닌가. 포항, 파이팅!

2020-01-15

작은 친절의 경제학

(사례 1) 비바람이 몰아치는 늦은 밤, 필라델피아의 한 호텔에 노부부가 들어왔습니다. 젊은 직원은 도시에 컨벤션 행사가 있어 호텔에 남은 방이 없으니 다른 호텔을 알아보겠다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느 호텔에도 객실이 없답니다. 비도 오고 새벽 1시나 되었으니 나가라고 말씀드리기도 어렵군요. 누추하지만 제 방에서 주무시면 어떨까요?”노부부는 다음날 아침 이렇게 덕담을 합니다. “당신은 미국에서 제일 좋은 호텔 매니저가 되어야 할 사람 같군요. 언젠가 당신을 위해 호텔을 하나 지어 드리지요.”2년 후, 직원은 왕복 비행기표와 함께 노신사의 편지를 받습니다. 뉴욕에 도착한 그를 노신사는 궁전같은 호텔로 데리고 가서 말합니다. “2년 전 내가 당신에게 약속했던 호텔이요. 오늘부터 당신은 이 호텔의 총지배인이요.”그 호텔은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의 시초인 월도프 호텔이었고 노신사는 윌리엄 월도프 아스토(William Waldorf Astor)였습니다. 젊은 직원 조지 볼트(Gorge C. Boldt)는 이 호텔의 첫 번째 지배인이 되었습니다.(사례 2) 노신사가 은행을 찾았습니다. 만나야 할 직원이 출장을 가고 자리에 없어 주차카드를 창구 여직원에게 내밀며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여직원은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은행에서 업무를 본 경우에만 주차증에 도장을 찍어 드립니다.” 신사가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여직원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신사가 물었습니다. “아무 업무라도 보면 주차카드를 확인해줄 수 있습니까?” 여직원은 그렇다고 짧게 대답했습니다.신사는 예금인출서를 건넸습니다. 통장에 든 모든 예금을 인출하겠다고 기록했는데 액수가 100억 원이 넘었습니다. 직원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잠시 후에 은행지점장이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노신사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14

3.0과 4.0의 차이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스마트시티 연구를 하다 보니 소위 ‘4차 산업혁명 관련 내용’으로 강의해 달라는 요청을 더러 받게 된다. 학생, 기업, 공무원, 일반 시민 등 강의 대상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청중들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4차산업혁명이나 스마트시대는 자동화 시대의 연속이거나 아직 막연히 먼 미래 아닌가요? 얼마 전까지도 이제 곧 모든 게 자동화될 거라며 세상이 떠들썩했는데 주변을 보면 갈 길이 멀지 않은가요?”떠들썩했던 3.0 시대의 등장을 기억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앞세운 3.0의 시대는 마치 폭주하는 마법사처럼 ‘자동화’의 마술지팡이를 휘두르며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변화시켜버릴 기세로 우리 삶 속으로 날아 들어왔었다. 산업, 시장, 리더십, 조직, 일자리, 웹, 미디어 등 우리에게 익숙했던 거의 모든 것들에 유행처럼 3.0이라는 숫자가 붙었다. 신기하게도 3.0이라 불리게 된 순간, 마법에라도 걸린 듯, 그 이전의 것들은 일제히 낡고 무능해 보이기 시작했다. 증기기관이 이끈 산업혁명의 시대를 1.0으로, 조립생산 라인이 가져온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를 2.0으로, 누가 봐도 오래된 것임이 명백하도록 선을 딱 그어 놓은 다음 주인공처럼 마지막에 등장했으니 그럴 만 했다.그러나 3.0시대가 불러온 보다 의미 있는 변화는 그 이후에 시작되었다. 강력한 컴퓨팅 파워에 힘입은 자동화의 물결은 산업현장에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그 결과, 제품을 만들면 팔리는 공급자가 ‘갑’인 시대는 끝났고, 시장에서는 기업들 간의 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이나 소비자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을 시장, 혹은 단순한 소비의 주체로만 바라보던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무모함을 반성하게 되었고, 이제 사용자를 이성과 감성, 취향과 영혼을 가진 전인적 존재로 인식하고 ‘고객’이라 칭하며 모시기 시작한 것이다.3.0시대로의 변화가 아직 미치지 못한 산업 분야도 적지 않은데, 이미 세상은 4.0의 시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고 하니, 3.0과 4.0의 차이가 ‘허상’으로 느껴질 만도 하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3.0과 4.0은 순차적인 개념이 아니라 서로 효능이 다른 ‘마술지팡이’로 봐야 한다. 3.0시대의 마술지팡이가 사람의 역할을 대체할 자동화 대상을 찾아내는 데 주로 쓰였다면, 4.0시대 마술지팡이의 효능은 연결성과 지능화의 대상을 찾아 사람이 하는 일을 돕는데 있기 때문이다.자동화를 무리하게 추진하여 생태계 내의 저항이나 마찰을 야기하는 ‘자동화의 늪’에 빠져 실패하는 기업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자동차 업계는 미래차의 전략적 방향성을 무인차가 아닌 자율주행차로 조정하여 운전자 탑승여부가 아니라 연결성과 지능화를 통해 차량이 스스로 판단하고 주행하는 기술에 집중함으로써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자신의 분야가 지금 비슷한 난관에 부딪혀 있다면 서둘러 마술지팡이를 바꿔 드는 것을 권하고 싶다. 3.0시대의 지팡이를 과감히 버리고 4.0시대의 지팡이로 갈아탄다면 더 쉽고 확실한 답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2020-01-14

해외 어학연수를 떠나는 엑소더스에 대한 단상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지난 1월 초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출장을 다녀왔다. 뉴질랜드는 남반구에 있어 한국과 계절이 반대여서 1월이면 그곳은 여름이다. 오클랜드 시내에는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어학원과 사설 어학원 등 영어교육 기관과 관련 업체들이 많다. 뉴질랜드는 한국 학생들이 어학연수를 위해 많이들 가는 나라중의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뉴질랜드 시내 곳곳에는 한국 학생들을 비롯하여 많은 아시아계의 학생들로 가득했다. 시내 여기저기에 보이는 한국어 간판과 도처에서 들리는 한국어 말소리로 여기가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온 외국이라는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지금은 방학이라 초, 중, 고, 대학생들이 해외로 어학연수를 많이 떠나는 시즌이다. 문득 필자는 한국 학생들이 어학연수를 위해 전 세계에 뿌리는 돈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과연 한국에 돌아와 취업을 하게 되면, 업무를 진행하는데 실제 영어를 사용하는 인력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과거 영어공부라면 책으로 문법을 공부하고 소설을 읽고 하는 것이 유일했다. 당시의 시청각 교재는 영어회화 테이프, 그리고 주한미군 방송이었던 AFKN, 그리고 외화가 전부였다. 요즘은 멀티미디어로, 온라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영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공부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3까지 총 9년을 공부하지만, 여전히 말못하는 영어를 배운다는 것이다. 흰 와이셔츠에 명찰을 달고 한국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는 미국의 선교사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한국어를 유창하게 한다.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으로 온 외국인노동자들도 한국에 온 지 몇 년 되지 않았는데도 한국어를 곧잘 한다. 그런데 왜 한국인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그리고 대학에 와서도 영어로 인해 학교를 휴학하고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는 것일까? 전국에 초, 중, 고, 대학생들이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으로 어학연수를 가서 쓰는 학비와 생활비는 과연 얼마나 될까? 가히 천문학적일 것이다.10여년 전 필자가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 오기 전에 근무하던 대학교에서의 일이다. 영어 원어민 교수들에게 한국의 실제 수능영어 문제를 시험삼아 치르게 해보았더니 이들은 독해지문을 보고 그 어려움에 혀를 내두른다. 이것은 영어 문제가 아니라 시험을 위한 문제, 그리고 영어로 쓰여진 철학 문제라는 것이다.외국어를 학습하는 궁극목적은 의사소통이다. 통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현재의 난해한 영어지문 해독 방식은 누가 어려운 영어단어를 잘 알고, 누가 어려운 영어문장 퍼즐을 잘 풀어내는가 하는 것을 평가하는 것이다. 필자는 해외로 컨텐츠를 배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수단인 영어를 배우러 가는 한국 학생들의 엑소더스(exodus)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정말 이제는 누구나 말을 잘할 수 있는 영어, 통할 수 있는 영어, 그냥 어렵기만 할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전달하기 위한 실용적인 영어를 가르치도록 바뀌어야 할 것이다.

2020-01-14

복세편살과 安分知足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새해 새날의 여명 속에 경자년이 밝았다. 찬란한 태양이 온 누리 밝고 푸른 희망의 빛살로 다시 떠올랐다. 새해 첫날이 열리는 해를 보며 사람들은 한 해의 소망이나 다짐을 하곤 한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지만 사람들은 처음과 새로움에 대한 느낌과 의미를 부여하며 새해는 보다 희망적이고 발전적이기를 빌고 기대를 해보는 것이다.작년에 이어 불안정한 국내외 정세와 바닥권 경기, 사회적인 갈등 등으로 올해도 여전히 격동과 변화의 소용돌이가 거세질 것으로 짐작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각자의 처한 위치에서 차분하게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알고 동요되지 않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추스려야 한다고 본다. 서로의 관계와 이해, 협업과 상생의 고리를 지속적으로 엮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여겨진다. 나의 관념이나 주장만 고수하고 선과 악, 득과 실의 타산만 따지는 편중된 사고방식이나 흑백논리는 직장이나 시민사회, 나라에 있어서 융화와 호전 보다는 해악과 퇴보만 끼칠 따름이다.이른바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과 안분지족의 삶이란 어떤 삶일까? 필자는 하루하루를 안분과 지족으로 살아가면 저절로 복세편살이 되리라고 본다. 안분(安分)이란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는 것이다. 분수, 즉 자기 신분이나 능력, 한도에 맞게 처신하며 욕심 없이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즐겁게 살면 그 자체가 복세편살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복세편살과 안분지족은 긍정과 배려, 감사를 실천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잡다단한 세상을 나름 편하게 살려면 작더라도 자기의 생활에 만족해야 하고, 사소한 것에라도 긍정적으로 감사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매사에 만족할 줄 알고(知足), 분수를 알며(知分), 멈출 줄 아는(知止) 지혜야 말로 긍정과 감사,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선현(先賢)들은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족상락(知足常樂)의 삶을 늘 추구하지 않았을까?시대의 가치와 변화의 격랑이 심해질수록 자신의 분수를 지키고 작은 것에 만족해하며, 주어진 환경에 고마워 하고 맡은 일에 성심성의를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타인을 신뢰하고 배려하며 동료들과 협력해나가는 노력이야 말로 융합의 시대에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본다. 단순하지만 개인의 안분지족과 복세편살이 가정을 화목하게 가꾸고 사회를 안정시키며 나라를 평화롭게 만드는 근간이 아닐까 여겨진다.삶의 변화란 나부터, 주위의 가까운 곳에서부터 찾고 이뤄나가야 한다. 삶의 작지만 소중한 가치들을 인식하며 서먹하고 무관심했던 사람들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과 교감을 통해 자신과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에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안분지족의 마음으로 작은 베풂과 나눔, 긍정과 감사를 실천하고, 복세편살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삶을 추구해 나갈 때 우리 모두가 보다 밝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경자년의 부신 햇살이 모두에게 꿈과 희망의 빛살로 비춰 일년 내내 웃음과 기쁨이 가득하기를 기원해본다.

2020-01-14

청와대 불상의 귀환

김영삼 대통령 때 이야기. 보물 제1977호인 청와대 불상(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을 두고 세간에는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소문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때마침 일어난 대형 참사가 개신교 출신 장로인 김 대통령이 청와대 불상을 치웠기 때문이라는 것. 청와대는 사실 여부를 밝히기 위해 기자를 대동하고 경내 있던 불상을 전격 공개하는 해프닝까지 벌이게 된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청와대 불상의 존재감은 더 확실해진다.청와대 불상은 1912년 경주에서 조선총독 관저로 옮겨졌다. 당시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경주 순시 때 환심을 사려는 현지 일본인 유지가 갖고 있던 불상을 밀반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불상을 일제 강점기 문화재 수난사의 대표 유물로 평한다. 불상은 시원한 이목구비와 딱 벌어진 어깨, 유연하게 흘러내린 법의 자락 등이 석굴암 본존불을 닮았다 하여 미남불(美男佛)로 불린다.벌써 경주를 떠난 지 100년 이상 세월이 흘렀다. 청와대 경내서만 80년을 보냈다. 그동안 변화무상한 권력을 묵묵히 지켜보았지만 존재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2018년에 와서 문화재청이 서울시 유형문화재에서 보물로 승격한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석불 중 보기 드물게 불상 전체가 온전히 보존돼 있고, 다른 불상에서는 찾기 힘든 사각형 대좌로 만들어져 통일신라 불상의 대표적 수작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경주시 도지동 이거사(移車寺)가 원출토지로 보고 있다. 최근 문화재청은 최초 출토지가 이거사로 확실시됨에 따라 불상의 경주이전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언이다. 일제 강점기에 함부로 옮겨진 불상이 100여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것만으로도 뜻 깊은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1-14

쥐구멍에 볕들 날

박화진전 경북지방경찰청장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떠오르는 새해 첫날의 해를 맞으며 새해에는 더 나은 삶을 소망해 봅니다. 연례행사 같은 해맞이를 하면서도 새해 첫날 아침은 늘 설레고 기대를 가져봅니다. 우리 가족은 물론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새해 첫날의 다짐과 소망들이 꼭 성취됐으면 합니다.올해는 10간의 일곱 번째 ‘경’(庚)과 12지의 첫 번째 ‘자’(子)가 합쳐져 경자년(庚子年)입니다. ‘경’(庚)은 흰색을 의미하고 ‘자’(子)는 쥐를 상징하기 때문에 ‘흰쥐 띠’의 해라고 합니다. 쥐 중에서도 흰 쥐는 우두머리 쥐이자 매우 지혜로워 사물의 본질을 꿰뚫고 생존 적응력까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실, 근면, 지혜, 총명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성실하고 근면한 우리 민족의 기질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해인 것 같아 기대를 해봅니다. 하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있어 들뜬 기대만큼 마음이 마냥 가볍지는 않습니다. 민생을 책임져야할 정치권은 선거를 앞두고 대화와 타협보다는 극한 대립으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밝지만 않은 경제전망들은 골목안 자영업자의 긴 한숨을 새해에도 잦아들게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자리를 찾으려는 청년들의 핏발서린 눈을 보듬어줄 희망찬 정책들도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매주말이면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누어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고 외치는 쪼개진 민심은 언제쯤 봉합될지 종잡지 못하겠습니다. 남북간 긴장과 대치상황도 제대로 풀리게 될까하는 의구심이 생기게 되어 남아있던 희망조차 흐릿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마냥 주저앉아 체념과 낙심에 빠져 있을 수만 없습니다. 저 멀리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돌이켜 볼 것도 없이 우리 국민은 금모으기 운동이란 경이적인 한마음 한뜻 운동으로 그 어렵다던 IMF체제의 파고를 넘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가 놀란 월드컵축구 4강의 신화를 이룬 대한민국입니다. 쥐의 해를 맞이하여 생각나는 속담이 있습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속담입니다. 몹시 고생을 하는 삶도 좋은 수가 터질 날이 있다는 뜻입니다. 고난 속에 희망을 갖게 하는 속담인 것 같습니다. 쥐구멍은 아주 작은 공간을 빗댄 말입니다. 햇볕도 잘 들지 않아 동물이 서식하기에는 열악한 환경입니다. 그럼에도 쥐는 그 속성처럼 근면과 성실성으로 생존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좁은 공간으로 볕이 들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찮은 동물의 삶에도 희망의 끈이 있는데 세계를 놀라게 한 저력의 대한민국이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흰쥐처럼 근면, 성실은 물론 지혜와 총명으로 헤쳐나갈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 때 유행했던 ‘해뜰 날’이라는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새해에는 반드시 ‘쨍’하고 해뜰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오늘도 어김없이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런 마음을 다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태양이 내려주는 밝은 빛과 따스한 온기를 그늘진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주변 이웃과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0-01-13

간디 망국론(亡國論)의 교훈

강희룡 서예가정치세력 간 갈등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조선후기의 당쟁과 세도정치가 유독 거센 비판을 받는 데엔 그 이유가 있다. 왜란과 호란이라는 큰 전쟁의 와중을 겪은 후에도 지배층은 국가나 백성은 안중에도 없이 그들의 영욕만을 위한 권력다툼을 벌인 탓이다. 이러한 지도층의 갈등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일상화됐다. 조선후기 국왕의 위임을 받아 정권을 잡은 특정인과 그 추종세력에 의해 행해지던 세도정치는 사회변화를 바탕으로 한 조선의 전통적 지배체제가 전반적으로 한계를 드러내자 마지막으로 도달한 정치운영의 한 형태였던 것이다. 조선후기는 진주민란을 계기로 한 전국적인 ‘임술민란’에 나타나듯이 민중의식이 성장하고 상업이나 농업경영을 통한 새로운 성격의 경제시스템을 통해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력을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던 민중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처할 역량이 없던 부패한 지배계층은 오히려 그들의 낡은 지배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쪽으로 권력을 집중시켰던 결과가 망국으로 귀결된 것이다.인도 건국의 아버지이며 인도 민족운동의 지도자라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는 나라가 망하는 데는 일곱 가지 원인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원칙 없는 정치, 둘째, 도덕이 빠진 상업, 셋째, 노력 없는 부(富), 넷째, 인격이 빠진 교육, 다섯째, 양심이 마비된 쾌락, 여섯째, 인간성 없는 과학, 마지막으로 희생이 빠진 종교’가 그것이다. 이중 ‘원칙 없는 정치’를 망국의 으뜸으로 꼽았으며 이러한 정치는 부패한 권력을 낳아 망국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에서 한국처럼 법의 해석과 적용이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념은 무조건 옳고, 상대조직의 이념은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진영논리로 흘러 국가의 통치력으로 객관적 법치의 원칙을 파괴함으로 이미 그 기능을 잃어버린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조국일가의 범죄행위와 하명수사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선거공작이라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 수사선상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모두 청와대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로 밝혀지자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취임과 동시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조직을 개혁이라는 명분을 들어 법과 상식을 벗어난 인사이동을 감행했다. 이 인사의 내막엔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행위에 대한 수사가 좁혀오자 검찰개혁으로 포장해 수사조직을 공중분해시킴으로써 사건 자체를 덮으려는 속셈과 보복성 인사의 성격도 담겨 있다고 보겠다. 원래 검찰은 국민의 안전보장과 국가기강 확립,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부패척결과 약자보호 그리고 인권보장에 그 사명을 두고 있다. 이 사명완수를 위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검찰조직을 정부와 여당이 요구하는 입맛에 맞게 칼을 마구 휘두르는 현실을 보면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는 애초부터 없는 원칙이 무너진 좌파정치의 민낯을 보고 있다. 간디가 설파한 망국론이 요즈음 한국 사회의 자화상으로 다가옴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나라 안팎으로 처한 불확실한 시국에 대해 절망과 분노를 넘어 이제 국민의 권리인 저항권을 행사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2020-01-13

절망에서 생기는 용기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 벅은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느 해 그들이 사는 지역에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먼 여행으로 집을 비운 사이 마을에는 외국인 펄 벅의 어머니가 하늘을 분노하게 만들어 가뭄이 계속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분노로 변해 어느 날 밤 사람들은 펄 벅의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소식을 들은 펄 벅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찻잔을 모두 꺼내 차를 따르게 하고 케이크와 과일을 접시에 담게 했습니다. 대문과 집안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을 성대하게 준비한 것처럼 어린 펄 벅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하고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들어 바느질을 시작했습니다.잠시 후 거리에서 함성이 들리더니 몽둥이를 든 중국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그들은 활짝 열린 대문을 통해 단숨에 거실까지 쳐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굳게 잠겨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문이 열려 있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집안 구석구석을 들여다봅니다.“정말 잘 오셨어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서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드세요.” 말하며 어머니는 폭도들에게 정중히 차를 권했습니다. 그들은 못 이기는 척 방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었습니다. 천천히 차를 마시며 그들은 구석에서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냥 돌아갔습니다.그날 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촉촉하게 내렸습니다. 훗날 어머니는 어른이 된 펄 벅 여사에게 그날의 두려움을 들려주며 만약 도망칠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다면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입버릇처럼 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고 말했는데, 이후 펄 벅 여사는 인생을 살며 절망적인 순간을 맞을 때마다 항상 그 교훈을 떠올렸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13

산사 가는 길

오염되지 않은 산세를 자랑하는 청정지역 봉화, 호랑이가 걸터앉은 형국을 지닌 북지리 호거산 자락에 지림사가 있다. 신라 문무왕 13년(673) 의상대사가 지림사에서 산쪽을 바라 보다 멀리 서광이 비치는 곳에 지금의 축서사를 지었다고 전한다.지림사 일대는 ‘한절’이라 불리는 큰 사찰과 부근에 27개의 사찰이 있어, 수도하는 승려가 500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 조선 정조 때 저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지림사는 문수산에 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 중후기까지 사찰이 존속하며 법통을 이어온 것을 알 수 있다.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 혹은 ‘축서사로 인하여 사세가 기울었다’는 등의 이유로 폐사되었다고 한다.그러다 1949년경에 한 승려가 법당을 세우고 수월암이라 불렀다. 땅속에 묻혀 있던 마애불여래좌상을 발견하여 지림사라는 이름을 되찾아 다시 불사하여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부석사 가는 길목, 너른 들녘을 외다리 물새처럼 지림사가 지키고 있다.지림사에는 7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높이 4.3m 부조형식의 거대한 마애여래좌상(국보 제 201호)이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우리나라의 마애불은 모두 195점으로, 이 가운데 국보는 7점뿐이다. 그 중 하나가 북지리 마애불여래좌상이다. 자연 암석을 파서 만든 감실은 무너지고 보호각 속에서 태백산을 바라보듯 눈길은 동북쪽으로 향한다.일주문이 없는 경내에 들어서자 멀리서도 마애불상이 눈에 띈다. 새로 지은 전각들은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 너른 마당은 더 황량해 보인다. 단조로운 절 풍경이 마애불의 존재감을 훨씬 크고 웅장하게 한다. 거침없이 위협적으로 불어오던 바람도 지림사 마당에서는 포복하듯 엎드리고, 척추를 곧추세운 이들조차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 없다.가까이 가서 보니 그 장중함이 더 놀랍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 몸이 먼저 저기압의 신호를 감지하듯 불가항력적인 힘에 이끌려 절부터 하게 된다. 나의 기도가 하루살이의 무심히 내젓는 날갯짓과 무엇이 다르랴만, 흔들림 없고 끝없이 아늑하면서도 평온한 기운에 사로잡힌다.나를 따라다니던 수식어들이 일제히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가볍다. 태생의 동물들만이 갖는 징표인 배꼽 한가운데 앉아 있는 기분이다. 모체와 분리되는 최초의 단절, 불안은 그곳에서 시작되지 않았던가. 삶의 젖줄이며 생명줄이 되어준 나의 모든 기도가 돌아가는 곳이기도 하다.상처투성이 마애불이 내뿜는 아우라에서 슬픔이 묻어 나온다. 마애불을 쳐다볼수록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외경함에 찬탄할 뿐이다. 온갖 고난과 아픔을 이겨낸 세월이 안겨준 훈장을 모를 리 없다. 마애불의 장엄한 위엄 뒤로 인간적인 고뇌가 크게 다가온다. 움츠러든 어깨와 풍화와 훼손으로 떨어져 나간 오른손, 보일듯 말듯 한 미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묵직하게 가슴을 헤집는다. 일상의 번잡함과 흔들림을 내려놓고 나를 찾던 여느 때와 달리, 나는 하나의 미약한 생명체가 되어 마애불을 바라본다.얼마나 많은 비바람이 다녀갔을까? 나는 마애불의 사라진 미소를 찾아 헤맨다. 숨은 그림을 찾듯 세상 빛을 보던 날의 온화한 표정을 상상하기도 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실눈을 떠보지만 좀처럼 잡히질 않는다. 군데군데 깨지고 뭉개진 자리에는 민초들의 한과 슬픔이 두껍게 녹아 흐른다. 처음 누군가가 혼을 불어 만들었을 그 옛날의 선명한 미소가 그립다.조낭희 수필가수천 년 전, 누군가의 간절한 불심에 의해 존재감을 드러낸 마애불, 순수한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 경외의 옷을 입는 순간 고난은 시작되었으리라. 무릎을 꿇고 간절함을 호소하는 기도가 바람이 되어 밀려든다. 마애불의 가슴을 툭 치면 역사가 남기고 간 수많은 아픔들이 선혈처럼 쏟아져 흐를 것만 같다.길고 긴 옹이진 세월을 건너왔을 마애불의 심경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언어의 경계 저쪽 너머에서 마애불은 무심히 앉아 있고, 사람들은 보물을 찾듯 숨어 있는 미소를 찾아낸다. 그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하고 쉬운 일이 나에게는 번번이 어렵고 힘들다. 때가 되면 누구나 돌아가야 할 가장 근원적인 곳, 언어가 없는 그 길목에도 마애불이 있을 것 같다.바람을 동무 삼아 할머니 한 분이 걸어오신다. 자그마한 육신과 소박한 몸놀림, 더 이상의 욕심도 없어 보이는데 더 내려놓을 것이 있으랴. 쇳소리가 날 것 같은 무릎관절은 절을 허락할 리 없다. 선 채로 삼배를 올리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거친 세월의 숨결이 선명하다. 할머니께 물었다. 아프지 않고 좋은 곳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하셨는지를.“살아온 대로 가는 길도 정해져 있지. 엉터리로 살아놓고 이제와 그런 기도하면 못써. 그건 도둑놈 심보야.”합죽한 웃음 한 자락 흘려놓고 또 법당을 향해 걸음을 옮기신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잔잔한 겨울 햇살 같은 미소가 걸려 있다. 그것은 여유와 달관이 빚어내는 마애불의 미소였다.

2020-01-13

객관화 돼가는 주관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은 상대의 장점을 나의 목소리를 통해 보여준다. 알고 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의 괴리는 그 독백이 끝나는 시점부터 균열을 일으킨다. 함께 살아가야할 수백 가지의 장점들. 그 속으로 함께 살아가지 못할 하나의 단점이 고개를 들고 일어난다.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는 분명한 장점들 속에서 흐릿한 단점이 점점 명징해지는 시간을 그린다. 그리고 하나였던 것이 분화되고 세분화되면서 모든 장점들을 깡그리 무너뜨리고 ‘이혼’이라는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의 영화다.처음 시작은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사랑했으며 그 결과로 무엇을 남겼는가 아름답게(?) 헤어지는 것으로 약속한다. 하지만 현실은 누가 누구를 더 사랑했는가로 끝나지 않고, 누가 누구를 더 미워하느냐의 싸움으로 진입한다. 법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혼의 과정을 준비하던 부부 사이에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이혼은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와 서로를 괴롭힌다. 아름다운 이별이 치열한 ‘승리’의 문제로 바뀌고, 감추어야할 것과 드러내야할 것들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함께 살아왔던 지난날은 어지럽고 서로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누가 더 사랑했었던가’는 이제 누가 더 상대의 치부를 까발릴 용기, 더 솔직한 용기를 가졌는가의 척도가 된다. 사랑의 깊이는 그대로 누가 더 상대방에게 좀 더 큰 상처를 안겨주느냐의 문제가 된다.뉴욕에서 시작된 영화는 LA로 옮겨간다. 결혼이 시작된 뉴욕에서 결혼이 끝나고 영화가 끝나는 장소 LA가 된다. 미국의 동부와 서부, 양극단의 물리적 거리만큼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다. 이는 영화 속에서 아들 헨리의 양육권을 다투게 되면서 법적 주거지인 뉴욕과 현실의 실거주지인 LA가, 과거의 삶과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규정되어지는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우리’의 집이, ‘누구’의 집이 되는 과정이며, ‘너’의 집과 ‘나’의 집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통해 잔잔한 감정에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부부는 ‘소송’이라는 사법제도를 활용함으로써 감성적이었던 관계가 냉정한 이성적인 관계로 돌아서고, 주관적이었던 것들은 모든 객관적인 것들로 치환된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기 위해 개인의 섬세한 감정을 쓰다듬기 보다는 거두절미하고 냉정하리만큼 물리적인 객관성을 유지할려고 한다. 법의 특성에 의해 상대의 감정에 이입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나의 현실적인 이익에 충실하도록 강요한다.개인적인 선택이겠지만 그래서 후련하고 만족하느냐의 깔끔한 결과로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 찰리가 아들 헨리와 장난을 치고 하던 작은 칼. 그 칼이 한 번의 실수로 어떤 상처를 남기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은 ‘결혼 이야기’의 뒷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소한 사실들은 변호사의 변론을 통해 날카로운 날을 가진 무기가 된다. ‘우리’였을 때,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너’와 ‘나’가 됐을 때 상처가 되어 두고두고 남는다.‘이혼’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영화제목을 ‘결혼 이야기’라고 한 것은 반전이나 역설의 의미보다는 두고두고 다스리고 지니고 가야할 상처, 시작보다 중요한 마무리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 이혼과정에 사랑, 양육, 과거와 미래, 성취와 돈의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등장하고 얽힌다. 그렇다고 치졸하거나 막장으로 치닫지 않는다. 어느 부분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섬세하며, 자연스럽다. 다양한 요인들이 등장하지만 복잡하지 않고, 날카로움이 오고가지만 불쾌하지 않다. 슬프지만 애처롭지 않으며, 끓어 오르지만 태우지 않고 은은하다. 탄탄하게 짜여진 내용 속에 예술영화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아담 드라이버와 폭넓은 연기변신을 보여주고 있는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야기의 현실성, 그 현실성을 더해주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누구나 공감할 ‘이혼’을 다루는 ‘결혼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김규형*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는 서울·부산 일부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20-01-13

정치의 계절이 오면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총선 예비후보로부터 북 콘서트 초청장이 왔다. 현역 국회의원은 의정보고서라는 이름의 총선 출마 홍보물을 보내왔다. 분열된 보수의 통합이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 체류 중인 안철수 전 의원이 정치재개를 선언하면서 향후 정당의 이합집산이 예상된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함께 공부하던 동기들의 단톡방에서도 정치적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시나브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그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다. 선거 승리를 위하여 정당과 후보자들은 포퓰리즘(populism) 공약을 남발함으로써 유권자의 표심을 왜곡한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경쟁자에 대한 중상모략과 허위사실 유포도 서슴지 않는다. 연고주의가 만연하는 한국정치에서는 혈연·지연·학연이 총동원되어 ‘내편 네편’으로 나누어 ‘유치한 편싸움’이 벌어진다. 선거가 끝나면 유권자들은 다시 현실정치로부터 소외되어 방관자가 된다. 민주주의 꽃이요 축제라는 선거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정치의 계절이 오면 유권자는 눈을 더욱 크게 부릅뜨고 각 정당과 후보자의 행태를 주시해야 한다. 정치적 무관심은 민주주의의 반동화를 초래하여 독재정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권자는 정치적 관심의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수호할 의지가 있는 정당과 인물을 찾아내야 한다. 민주주의 가치가 내면화되어 있어야 민주정치를 할 수가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는 흑백논리나 ‘사회적 패권의 교체’를 주장하는 혁명논리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국민의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선동정치는 독재자의 혁명전술이다.국가적 당면과제인 ‘안정과 혁신’을 도모할 수 있는 정당과 인물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북한의 핵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여 국가안보를 확고히 하는 한편,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경제혁신을 통해 미래의 번영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치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은 자신의 출세에 목적을 둔 정치꾼(politician)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봉사하려는 정치인(statesman)으로서의 소명의식이 투철해야 한다. 베버(M. Weber)가 지적한 것처럼 “직업으로서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는 책임의식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거 때는 유권자에게 머리를 조아리지만 권력을 잡으면 목에 힘을 주면서 돌변하는 정치꾼들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민주주의에 대한 링컨(A. Lincoln)의 명언, 즉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에 의한 정부”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정부를 선택하는 것이며, 그 선택의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국민이 현명하면 ‘훌륭한 정치인’을 선택할 것이요, 국민이 어리석으면 ‘교활한 정치꾼’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정치의 수준’은 곧 ‘국민의 수준’이다.

2020-01-13

따뜻한 겨울

따뜻한 겨울이 전세계를 놀라게하고 있다.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3주 동안 알래스카와 북서 태평양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겨울이 ‘동면’에 들어간 수준이며, 지난달 말부터 미국 동부 날씨는 3월·4월의 봄 날씨에 가까웠다고 보도했다. WP는 따뜻한 겨울의 원인으로 유난히 강한 ‘폴라 보텍스’(Polar Vortex·극 소용돌이) 때문이라고 했다.폴라 보텍스는 북극이나 남극 지방의 대류권 상층부부터 성층권까지에 걸쳐 형성되는 영하 50∼60도의 한랭 기류를 말하는데, 이것이 극권의 차가운 공기와 그보다 낮은 위도에 위치한 따뜻한 공기 사이의 경계를 따라 흐르는 제트기류의 영향으로 중위도 지방으로 남하하지 않고 북극 주변에만 집중되는 바람에 따뜻한 겨울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한랭 기류가 북극 일대에 집중된 탓에, 오히려 북극해 인근의 덴마크령인 그린란드 등에서는 오히려 기록적인 추위가 찾아왔다. WP에 따르면 지난주 그린란드의 대륙 빙하 온도는 화씨 영하 87도(섭씨 영하 66도)까지 떨어졌다. 이는 지난 11년간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온도였다.우리나라도 이상 기후로 남원 남꽃축제·평창 송어축제·안동 암산얼음축제 등 전국의 겨울축제장이 직격탄을 맞았고, 가장 유명한 겨울축제 중 하나인 화천 산천어축제도 두 차례나 개막이 미뤄졌다.일본 북부 섬 홋카이도에도 올해 기록적으로 눈이 오지 않아 오는 31일 개막을 앞둔 삿포로 눈축제를 위해 삿포로 교외 지역에서부터 행사장으로 눈을 옮기느라 진땀을 흘릴 정도다.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가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가 된 지 오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1-13

죽으려고 해야 살고 놓아야 잡을 수 있다

김형렬전 대구 수성구청장문재인 정권 5년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2년 반 동안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집권진영은 전광석화처럼 사회 구석구석을 편 갈랐고, 그 흐름은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김정은의 평화쇼로 지방선거를 싹쓸이 했고, 무혐의로 판명난 공관병 갑질논란으로 군(軍)을 장악했다. 검경수사권 조정이란 당근으로 경찰력을 움켜쥐었고, 우리법연구회 출신 등의 대법관 대거 기용으로 사법부마저 내편으로 만들었다.서민생활과 밀접한 부동산대책은 또 어떠한가?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라고 자랑했으나 시장이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집값이 폭등하자 무려 18번이나 부동산대책을 냈다. 그 과정에서 집 없는 서민들은 전세 값 폭등이라는 계산서를 받아 놓고 있다.‘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란 북한의 비아냥을 귓전으로 들어야 했고, 한국형 원전 정지를 포함 통일·외교·국방·안보·교육 등 어디 성한 구석이 하나 없었다.경제인들을 만나보면 현실을 더 직감할 수 있다.사업을 키우기보다는 언제쯤 접을까를 고민하고 외국에 나가 새판을 벌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국가의 동력은 추락이 확연히 보이나 여론조사 결과는 현 집권층에 우호적으로 나온다. 그러니 국정지지 여론조사 결과도 못 믿겠다는 층이 늘어나고 있다. 2년 반 동안 정말 혼돈의 연속이었다.정치란 국민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형국이다. 이렇게 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당연히 1차 책임은 현 집권층이다. 그렇다면 야당은 책임 없을까. 필자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면책될 수 없다고 본다. 솔직히 결코 자유스러울 수 없다. 며칠 전 자유한국당은 국회의원 108명으로는 숫적 열세로 이러한 폭거를 막지 못했다고 변명했고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했다. 그리고선 21대 총선에선 현역의원 50% 물갈이를 하겠다고 했다. 현역의원 절반을 교체하려면 지금쯤 총선 불출마가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4월 총선에 안나오겠다고 한 의원은 9명이 고작이다. 더불어민주당 20명의 반도 안 되는 숫자다. 특히 가장 혜택을 많이 본 TK에서는 단 한건의 불출마 선언도 없다. 과연 국민이 자유한국당의 진정성을 믿어줄지 의아스럽다.또한, 의원직 총사퇴까지 결의했지만 현 상황에 비추어보아 민주당과 문희상 국회의장이 사퇴처리를 받아 줄 리 없다. 약속대로라면 4월 총선까지 세비는 국고에 반납하는 것이 도리나 그렇게 할지도 의문스럽다.자유한국당 TK 의원들을 만나보면 자기를 제외한 다른 의원의 불출마를 은근히 기대하는 모습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나만 금배지를 달면 그만이라는 생각일 뿐인 것이다.대권프레임에 갇혀 자기희생의 의지는 없이 험지보다 양지를 찾으며 자유한국당 지도부를 연일 내부에서 총질하는 정치인을 보면 이게 썩은 보수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보수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노력은 커녕 지도부 책임론에 자신의 정치적 재기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을 국민들은 과연 모를까.자유한국당이 보수의 중심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선 자기 반성 위에 혁신을 거듭해야 함은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나름의 3가지 제안을 해보면, 첫째는 지도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먼저 실천하라는 것이다.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총선 불출마선언부터 해야 한다.나라가 이 지경에 처해있고 초대형 예산과 2대 악법 통과에 따른 것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국민도 자유한국당에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질 것이다. 책임지는 모습은 지도부 개개인의 험지 출마라는 정치적 꼼수가 되어서도 안 된다. 패배가능성이 높은 선거구에 출마함은 정적(政敵)들을 이롭게 할 것이고 조금이라도 승리 가능성이 있는 선거구에 출마함은 결코 물갈이대상 의원과 당협위원장에게 개혁공천을 이해, 설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나경원 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총선에 불출마하면서 상상을 초월한 개혁적인 공천을 단행하고 선대위원장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 총선결과로 향후 거취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총선의 결과로 대권을 그려가야지 대권을 설정해 놓고 총선의 수(手)를 두어서는 안 된다.둘째는 의원들도 자기희생적인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로워진 모습으로 개혁공천을 실현해야하며, 칼질을 당하는 모습보다 총선불출마 선언으로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의(大義)를 위해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의원 개개인의 자기희생적인 용단을 보여주는 의원이 줄을 설 때 중도의 국민까지 관심을 보일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이 의원 배지가 아니고 보수의 재건이라면 진정성을 먼저 보여 주어야 한다.의원직 사퇴와 같은 구태의 코스프레말고 총선 불출마선언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그리고 총선 불출마의원은 비례자유한국당의 산파가 되고 비례자유한국당 후보는 청년·여성·장애인 등 소수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으로 공천이 되어야 한다. 비례의석을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한 의원의 활로로 삼는 정치적 꼼수를 둔다면 치명적인 악수가 될 뿐이다. 잘리기 전 먼저 던져야 명분이라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버티면 실리도 명분도 모두 잃을 뿐이다.셋째는 보수통합의 헛된 꿈에 힘 빼지 말고 웰빙정당의 체질부터 혁신하라는 것이다. 현명한 국민은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범보수 통합이 쉽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도 60% 이상의 국민들이 보수통합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총선, 대선의 계산법이 서로 다르고 자기희생의 의지가 없기에 통합은 어려운 것이다. 통합이 된다 하더라도 물갈이 없는 보수통합, 새누리당 의원이 다시 합치는 양적 통합이라면 국민의 박수를 못 받는다.통합을 위한 시간도, 의지도 없기에 보수통합은 이루어진다고 해도 총선 이후라야 가능할 것이다. 4+1협의체가 만들어 놓은 선거법의 필연적 결과로 예상되는 다자구도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선 총선시 보수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되 개혁적인 공천과 변화와 혁신으로 체질을 혁신해 간다면 국민들은 자유한국당을 보수의 새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선택할 것이다.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정권심판론보다 양당심판론이 우세하고 여당 심판론보다 야당 심판론이 강하게 나타난 것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정당들은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국민에게 찍어달라고 구걸하지 말고 국민이 찍어주고 싶도록 행동하라는 것이다.오는 4월 15일. 이날은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린 선거일이다. 국민들은 그간 지켜보며 판단한 상황에다 지금부터 선거 때까지의 변화, 다시말해 여야 중 누가 국가를 잘 이끌고 갈 것인지를 눈여겨보며 주권을 맡길 것이다.야당의 몫을 다하려면 자유한국당은 완전한 환골탈태의 모습으로 등장해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2020-01-12

TK 정치권 물갈이 압박 계속된다

우정구 논설위원연초부터 정국이 급변하는 분위기다. 지난주는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현역의원 교체라는 핫 이슈가 정가의 화제였다. 혁신적 공천을 희망하는 지역민의 염원과는 다르게 TK의원들의 소극적 움직임이 눈총을 받는 시간이었다.자유한국당 전국 당협위원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당무감사 결과가 공교롭게도 TK정치권의 약점을 건드렸다. 당무감사 결과 내용은 TK 현역의원 교체 요구가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는 TK 중진은 물론이고 초·재선 의원까지 100% 물갈이를 해도 될 만큼 교체 요구가 강렬했다는 내용이다.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가뜩이나 불출마 요구로 불편해 왔던 TK의원들이 입장 표명도 제대로 못한 채 난처했다는 후문이다. 일부 TK 정치권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발표다” 등 반발도 했지만 어쨌든 변화를 요구하는 현실을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야 했던 대목이다.TK 현역의원 물갈이는 새해 초 주요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도 핫 이슈로 등장했다. 특히 대구경북지역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현역의원의 물갈이는 매우 높은 호응도를 보인 것으로 조사돼 주목을 끌었다. 모 일간지의 경우 대구경북민의 60% 이상이 현역의원 교체를 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불과 3개월 전 조사 때보다 교체지수가 더 높아진 것이 확인됐다. 지역민들은 시간이 갈수록 지역 현역의원 교체희망 요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일간지 여론조사에서도 TK지역 현역의원의 지지율이 전국 평균 지지율을 크게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의 한 일간지는 대구경북만 대상으로 총선관련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도 지역민은 여야를 떠나 현역의원 교체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그 방법으로 혁신적 공천을 1순위로 제시했다.TK 현역의원의 물갈이가 전국적 관심으로 떠오른 배경은 대구가 보수정치의 심장인 데다 만약 이곳에서 물갈이론이 일어난다면 상당한 폭발력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서울 정가에서도 TK 현역의 물갈이론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TK 현역의원의 물갈이론은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도 전국적 관심 속에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가장 많은 혜택을 본 지역의 정치인이 먼저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한국당 TK 현역 의원의 불출마 선언자는 아직 아무도 없다.TK지역은 한국당 안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고 안정적인 텃밭이다. 그럼에도 이 지역에서 인적 쇄신 요구가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은 이례적일 수 있다.그러나 따져보면 뻔한 답이다. 지역의원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표출이다. 문재인 정부의 거듭된 실정에도 TK의원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다는 뜻이다. 국회의원으로서 역할은 고사하고 투쟁력조차 보이지 못한 것에 대한 지역민의 실망이 이렇게 되돌아온 것이다. 이에 대해 TK의원 나름의 항변도 할 수 있겠으나 각성도 있어야 할 부분이다.모 일간지 조사에서 지지정당이 없거나 모른다는 사람이 대구경북에서만 30%를 넘겨 자유한국당 지지와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이 무당층은 지역의 정서를 고려해 본다면 한국당의 역할에 따라 몰릴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는 표다. 한국당은 지지한다. 하지만 지금의 인물에게는 표를 줄 수 없다는 여론조사 결과와 맞물려 생각해볼 무당층 비율이다. 여차하면 표심이 바뀔 수 있다는 것 아닐까.

2020-01-12

명상 중인 철학자

김현욱 시인요즘 렘브란트 그림에 푹 빠졌다. 유명한 그의 자화상보다는 ‘명상 중인 철학자’(1632년)를 보고 한눈에 매료되었다. 구두장이 눈에는 구두만 보인다더니 명상 초보 눈에는 명상만 보이는가보다.‘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년), ‘야간순찰’(1642년)은 렘브란트가 전환기에 그린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밝음과 어둠의 차이가 분명하지만, ‘야간순찰’은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와는 달리 각각의 인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야간순찰’은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듯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다르다.바로크 양식을 기반으로 한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는 의상에서 볼 수 있는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 빛과 어둠의 대비가 명확하다. 시신과 튈프 박사, 수강생들을 충실히 표현했다. 비스듬한 다이아몬드형 구도는 해부학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긴장을 잘 드러낸다. 이에 비해 ‘야간순찰’은 렘브란트의 독자적인 구성과 표현이 엿보인다. ‘야간순찰’은 빛과 어둠 속에 인물들을 차별화하여 표현했다. 어떤 인물을 조명을 받은 듯 굉장히 환하고 자세히 그린 반면에 어떤 인물은 어둠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게 표현했다. 가로 4m, 세로 3m 이상의 거대한 크기인 ‘야간순찰’은 등장인물인 군인들이 각자 초상화 비용을 부담해서 제작되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충실히 그리지 않고 새롭게 연출하여 단순한 집단 초상화를 넘어 인물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표현하고자 하였다.렘브란트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을 보면 태양이 떠오르는 여명에서부터 마지막 빛을 발하고 사라지는 하루의 삶을 인생에 비유하여 표현한 한 편의 연극을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는 ‘명상 중인 철학자’에서도 깊이 있는 공간을 상당히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부드러운 색채가 햇살의 느낌을 잘 담아냈다. ‘명상 중인 철학자’에서 빛은 정신을 밝히고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람자는 철학자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화면에서 보여주는 빛과 그림자의 명암에서 인생의 즐거움과 슬픔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제 나도 습관적으로 아침에 일어나 창문으로 햇빛이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바라본다. 빛이 방뿐만 아니라 내 영혼으로도 스며드는 느낌을 받는다. 빛의 신비한 기운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옛 성인들은 이른 아침 동녘을 바라보고 앉아 일출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명상 중인 철학자’를 보면 렘브란트가 왜 ‘빛의 화가’인지 알 수 있다.렘브란트의 ‘엠마오의 저녁식사’(1629년)에서도 빛과 그림자의 사용이 좀 더 극적으로 강조되었다. 예수의 얼굴이나 몸 같은 세부적인 부분은 어둡게 묘사하고 예수의 뒤에서 비추는 빛만 강조하고 있다. 예수 앞에 순례자를 그리지 않고, 아주 깊은 어둠으로 표현하여 관람자가 그 자리에서 예수를 마주하는듯한 느낌을 받는다.올해는 도서관만큼 미술관에도 자주 갈 작정이다.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제로(ZERO) 전시회가 한창이다.

2020-01-12

대통합 보수 신당은 탄생할 것인가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4월 15일 총선을 3개월 앞둔 시점에서 보수 정당의 통합 문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보수 통합을 위한 혁신 통합 추진위원회가 통합의 대원칙에는 합의했기 때문이다. 통추위에 참여한 한국당과 새보수당의 대표도 보수 재건 3원칙에는 동의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황교안 대표가 이 원칙을 수용했는지는 아직도 분명치 않다. 자유한국당, 새보수당, 우리공화당, 안철수계는 과연 대통합 신당을 창당할 것인가. 유승민의 보수 재건 3원칙을 통해 통합과정의 딜레마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새보수당의 유승민은 이미 ‘탄핵의 강을 건너 보수를 개혁하여 새집을 짓자’는 3원칙을 제시하였다. 그의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주장은 탄핵에 관한 책임을 이제 묻어 두자는 것이다. 사실 새보수당 의원 8명은 당내의 비박계와 함께 박근혜 탄핵을 지지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공화당은 일찍부터 탄핵에 반대하고 그들과는 당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대통령 탄핵 시 총리였던 황교안 대표로서는 이 문제를 섣불리 다루기 어렵다. 자칫 탄핵문제 제기는 당의 내홍을 초래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통추위에서는 탄핵문제가 총선의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 합의하여 통합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두번째의 ‘보수개혁’은 명분상으로는 합의하기 쉬운 전제이다. 보수 개혁은 불가피한 시대적 소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 진영 내에도 강경보수와 온건보수, 중도보수라는 입장에 따라 개혁의 범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공화당은 보수 강경입장에서 박근혜 탄핵비판에 당 존립근거를 두었다. 한편 새보수당은 중도 보수층까지 포괄하는 보수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 문제는 보수 정당의 정체성 문제로 연결된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는 ‘보수 개혁’은 형식적 봉합과정을 거치면서 해결될 수도 있다.세번째 원칙은 기존 당을 해체하여 새집을 짓자는 입장이다. 한국당도 신당 창당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고, 새보수당도 협상용 신당 창설을 마친 상태이다. 그러나 보수 정당의 새 집이라는 신당 창당 과정에는 상당한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헤쳐모여식 신당 창당이나 빅텐트 설치는 항상 당의 헤게모니 문제가 대두되기 때문이다. 과거 합당이나 통합신당이 실패한 주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새 집의 규모와 당직 배분, 공천권 문제의 갈등은 신당 창당을 어렵게 하는 최종적인 딜레마이다.이 점들을 두루 감안할 때 보수 대통합의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아직도 대통합의 원칙에는 동의했지만 각론에는 차이가 많다. 그러므로 대통합을 위한 협상과정에는 상당한 갈등과 진통이 예상 된다.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협상 당사자들의 통 큰 결단이 요구된다. 정파 지도자들의 기득권 포기 없이는 대통합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더구나 이번 개정 준연동형 선거법은 소수 정당의 이익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 그것이 대통합 신당 창설의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보수 신당 통합과정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다.

2020-01-12

친절에 대하여

어느 전철 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전철 안의 넓은 자리는 일곱 사람 정도 앉게 되어 있지만 조금 좁히면 여덟 사람도 앉을 수 있습니다. 어떤 젊은 부인이 일곱 명이 앉아 있는 자리에 오더니 조금씩 당겨 같이 앉자고 하면서 끼어 앉았습니다. 누가 봐도 홑몸이 아닌 모양새였지요. 먼저 앉아 있던 일곱 사람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순간 스쳤습니다.잠시 후, 가장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신사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러자 자리를 좁혀 같이 앉자던 임산부 젊은 부인이 황급히 일어났습니다. 이후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중년 아주머니가 슬그머니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어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청년이 벌떡 일어납니다. 그러다 보니 긴 좌석이 한순간 텅 빈자리가 되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은 한동안 서로 앉으라느니, 괜찮다느니 하며 가벼운 승강이를 벌였지요. 결국, 그들은 모두 조금씩 자리를 좁혀 가며 앉았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이번에는 전해 들은 시내버스 목격담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버스를 탔는데 짐을 올려놓고 뒤지니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사분한테 “기사 양반 미안한데 돈이 없구려…” 계속 미안하다고 했는데 기사는 “돈도 없는데 왜 타요! 내리세요.” 소리를 질렀습니다. 출근길이라 손님들도 많았습니다. 손님 중에는 화를 내며 출발하라는 사람도 있었고, 할머니에게 내리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 한 고등학생이 만원을 꺼내 요금함에 넣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걸로 할머니 차비하고, 또 이렇게 돈 없는 분 타면 화내지 말고 남은 돈으로 그분들 차비해 주세요.”순간 버스 안은 조용해지고 기사는 말없이 차를 출발시켰답니다. 크리스티앙 네스텔 보베는 이렇게 말합니다. “벙어리가 말할 수 있고 귀머거리가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 그것은 곧 친절이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12

엇나간 민주주의의 찢어진 실루엣

안재휘 논설위원진보 정치학계의 대표적 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초 한 학술회의 기조 강연에서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은 한국 진보의 도덕적, 정신적 파탄”이라며 “한국의 진보파가 이해하는 직접민주주의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뿐 ‘전체주의’와 동일한 정치체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모든 국정운영의 중심에 놓은 적폐청산 드라이브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삼권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실현될 수 없도록 만드는 패러독스라고 지적했다.정권 중심부를 향해 사정(司正)의 칼끝을 겨누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팀 핵심 간부들이 모조리 전보 인사조치를 당했다. ‘검찰개혁의 일환’이라는 포장술이 동원됐지만, 당위성이라곤 전혀 없는 핑계로 들린다. 4월 총선이 그리 멀지 않았는데도 정권이 겁 없이(?) 던진 인사폭탄을 놓고 해석이 봇물을 이룬다. 청와대가 검찰의 칼날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얼마나 뒤가 구리면 이렇게 무리수를 두겠느냐는 말조차 나돈다.문재인 정권 초반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발탁된 윤석열은 죽은 권력, 지나간 정권에 대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펼친 정치보복의 첨병이었다. 그는 보수 정권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을 모두 영어(囹圄)에 잡아 가두었다. 그러나 지난해 검찰총장으로 발탁된 이후, 조국 등 여권 인사들의 의혹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일순간 판이 거꾸로 뒤집혔다.윤석열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낭떠러지 끝에 내몰렸다. 지난 정권 때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긴 윤석열은 이 정권에서 ‘정무 감각 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인상적인 말을 또 남겼다. 그는 자신이 불의를 수사하는 사냥개로서 우직한 본능을 지닌 검찰임을 자인한다. 박근혜도 문재인도 그를 잘못 알기는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아니, 광화문에서 패 갈라 상반된 함성을 펼치는 군중들 모두 윤석열을 오해하며 아전인수의 섬에 함께 갇힌 것은 아닐까.문재인 정권이 이렇게 막 나갈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조국 대란’이 제아무리 나라를 뒤집어 놓아도, 무도한 검찰 무력화(無力化) 공작에도 문재인 지지도는 국민 절반, 여당 지지도는 제1야당의 두 배를 유지한다. 그들이 악착같이 추구해온 ‘선악 갈라치기, 보수세력 궤멸 의지’를 앞세운 끈덕진 진영대결·청백전 정치는 성공하고 있다. 국민의 ‘옳고 그름’ 판단력을 퇴화시키려는 목적에 기어이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오늘날 민주주의는 장군들이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들, 즉 대통령·총리의 손에서 죽는다. 시민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완전히 이해했을 땐 너무 늦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위기 신호로 ‘심판매수’, ‘비판자 탄압’, ‘운동장 기울이기’, ‘무조건적 반대’, ‘권한 남용’, ‘반국가 세력 낙인찍기’ 등을 든다. 엇나간 민주주의의 찢어진 실루엣 앞에 이 나라 민주주의는 점점 더 위태로운 벼랑길로 치닫고 있다.

2020-01-12

비행자동차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현실화되는 세상이다.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비행기를 타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꿈꾸었던 단순히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지금은 현실화돼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우리가 영화나 만화에서나 보았던 도심 위를 나는 비행물체가 조만간 가상이 아닌 현실화될 것 같다는 소식이다. 또한번 과학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플라잉카’로 불리는 도심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 물체는 이미 선진국에서는 상당 부분 개발에 들어간 상태다. 회사마다 에어택시, 비행자동차, 개인항공기 등 여러 용어를 사용하나 자동차와 비행기의 기능이 결합된 차세대 운송수단이라는 뜻에서는 같은 말이다.라이트 형제에 의해 최초 개발된 비행기가 발전하며 인류의 삶을 이토록 바꾸게 될지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싶다. CF영화의 장면이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지난해는 독일에서 제작된 미래차 ‘볼로콥터’는 싱가포르에서 시범 비행도 마쳤다고 한다.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박람회인 ‘CES 2020’에서 현대자동차가 세계 최초의 실물크기 비행자동차를 선보여 화제다. 현대차는 2023년 시험비행을 거쳐 2025년부터 실용화에 들어갈 예정이라 한다.비행자동차 산업의 발전 속도가 놀랍도록 빠르다. 때마침 지역업체 격려차 이곳을 방문한 권영진 대구시장이 현대자동차관을 방문, 실물크기의 비행자동차의 대구 전시를 요청했다고 한다.현대측의 긍정 답변이 있었다고 하니 올 10월 개최 예정인 대구국제미래자동차 전시회가 한층 기대된다. 도심 하늘을 나는 자동차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가./우정구(논설위원)

2020-01-12

내면의 어둠 물리치기

한효정 한동대 4년·ICT창업학부청소년 캠프에 대학생 봉사자로 참여해 진행했던 활동이 있다. 납작한 접시에 깨끗한 물을 담는다. 깨끗한 마음을 상징한다. 그 물에 후춧가루를 뿌린다. 더럽고 어두워진 마음을 의미한다. 다음 단계로 손가락에 세제 한 방울을 바른다. 어둠을 밀어내는 빛의 역할이다. 세제를 바른 손가락을 더러운 물 한 가운데 넣자 순식간에 후춧가루가 바깥으로 밀려난다.캠프에서 이 활동을 한 이유는 그날 주제였던 어둠 물리치기 Rejecting Darkness, 곧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모습을 경험적 자극을 통해 각인하려는 의도였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그때 함께 했던 이 경험이 기억에 맴돈다.최근 내 마음에는 어둠이 안개처럼 짙게 내려앉아 오래 머문다. 내면의 목소리는 나를 책망하기 바쁘고 더 잘할 수는 없겠느냐 다그치는 엄격한 검열관이 버티고 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자존감이 쪼그라들고 그런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목소리만 커지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하다.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어둠에 잠식당해 컴컴했던 마음의 밤을 물리치고 싶었다. 빛나는 새 아침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의 밤은 이렇게 시작됐다. 4학년 2학기를 맞으며 휴학을 결정했다. 숨 가쁘게 달려온 대학 생활을 잠시 멈췄으니 느긋하게 쉬려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갑자기 외국계 기업에서 인턴을 경험할 좋은 기회가 생겨 쉬려던 마음을 내려놓고 그 길을 선택했다. 버겁고 힘들었지만 애써 무시한 채 머뭇거리는 두 다리를 머리로 달래며 걸었다. 나를 위한다고 쏟아내는 엄마의 조언은 잔소리를 넘어 참견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딸을 믿지 못하겠어요?” 꾹꾹 누르던 감정이 서러운 목소리로 변해 엄마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돌아서서 자신을 자책했다. 학교를 벗어나 접하는 회사의 환경도 낯섦 그 자체였다. 긴장했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며 처음 겪어야 하는 미숙한 내 모습과 한계를 보며 당황스러웠다.이렇게 어두움이 깃든 내 마음에 빛을 비춘다면 어떨까? 내 아침은 이렇게 시작한다. 4학년 2학기를 맞으며 휴학을 결정했다. 그리웠던 내 방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기숙사에서 그토록 먹고 싶었던 집밥을 먹으며 가족들과 매일 눈 맞춤도 할 수 있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일이 있고, 출근할 수 있는 회사가 생겼다. 회사에 다녀오면 나름 쉴 수 있다. 고민이 생기면 언제든 엄마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비록 많이 서툴지만 아직 인턴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면서 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모르는 것을 친절히 알려주는 회사 분들이 고맙기만 하다.아무리 예쁜 구슬을 모은다 해도 실과 바늘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화려한 스펙과 좋은 경험이 있다 해도 내 안에 감사와 기쁨이 없다면 예쁜 목걸이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 그저 공간만 차지하여 굴러다니는 구슬일 뿐이다. 감사는 빛과 같다. 내 주변에 놓인 좋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내가 의식조차 못 하는 사이 내면을 가득 채우는 부정적인 생각은 어느새 관성이 붙어 밤과 밤을 이으려 한다. 하지만 비록 지금 밤에 있다고 해도, 결코 아침을 건너뛴 채 내일 밤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매일 어김없이 뜨는 태양이 있기에 마음을 다잡는다. 아침이 오더라도 눈을 뜨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한 어둠 속에 갇혀 있을지 모른다.재미보다 기쁨을 추구하며 살고 싶다. 영상을 보며 2~3시간 재밌게 보내는 것도 좋지만 돌아서면 공허한 그런 행위보다 30분이라도 차분히 책상에 앉아 글로 내 마음을 써 내려가며 삶의 기쁨을 채우는 시간 여행자가 되고 싶다. 혹 매일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매일 감사하며 살고 싶다. 감사한 일이 너무 많은데 몇 가지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투덜거리고 스스로 어둠 속에 잠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싶다. 감사는 어둠을 물리치는 강력한 빛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이제 두 손을 앞으로 쭉 뻗고 내 마음에게 말한다. “어둠아 물러가라!”

2020-01-12

경산의 뿌리 압독국

최영조 경산시장모든 것에는 뿌리(시작)가 있다. 경북의 3대 도시로 우뚝 선 경산시의 뿌리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압독국(押督國)이다. 압독은 경산시 압량의 옛 지명으로 예로부터 압량벌이라고 불린 넓은 들에 풍수해가 적고 일조량이 많아 사과 재배 등 농업지역으로도 최적의 조건을 갖춰 2천년 전부터 압독국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압독국과 압량소국(押梁小國)으로 여러 번 나타나며 6세기경 신라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해 직접 다스리기 전까지 대략 600여년 동안 경산지역에 있었다. 특히 신라 선덕여왕 11년(642년) 김유신이 압량주(州) 군주였다는 사실이나 불교를 일으킨 원효의 태생지가 압독이라는 기록을 보면 압독국이 망하고 나서도 이곳이 신라의 요지였음을 보여준다.영남대 맞은 편 넓은 구릉지역에 있는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과 압량면 부적리·신대리 고분군은 압독국의 유적이다. 이들 유적은 1982년을 발굴을 시작으로 실체가 밝혀졌으며 지금까지 1천700여 기의 고분과 마을 유적, 토성(土城), 소택지(沼澤池) 등이 발굴되어 사적(史蹟) 제516호로 지정되었다. 지난해 5월에는 부적리 고분군도 가치를 인정받아 압량면 부적리 331번지 일원 28필지 3만6천784㎡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임당유적에서는 금동 관, 은제 허리띠, 말 갖춤, 토기 등 2만 8천여 점의 유물과 인골, 동물 뼈, 생선뼈 등 당시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다양한 희귀자료가 출토되어 한국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임당유적의 가치가 소중한 이유는 고분뿐만 아니라 압독 사람들의 당시 생활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생활 유적이 함께 발굴되었다는 점이다. 유물을 통해 압독국의 최대 범위는 국읍(國邑)인 임당유적을 중심으로 과거 경산군 전체(대구에 편입된 고산, 안심 포함)와 대구광역시 불로동 일대까지를 포함했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왕성한 세력을 떨친 고대국가였다.지난해 하양 양지리에서도 매우 중요한 유적이 잇따라 발굴·조사되었다. 하양 양지리에서 발굴된 목관묘에서는 2천년 전 경산지역 최고 권력자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중국제 거울, 청동검을 비롯한 화려하고 소중한 유물이 쏟아져 많은 주목을 받았다. 경산시는 이러한 독창적이며 찬란한 압독국의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연구·전시·활용할 ‘압독국 유적 전시관(가칭)’을 건립한다. 경산시 임당동 632에 191억원을 들여 2024년까지 준공 목표로 내년 상반기 내에 건립공사를 착공할 계획이다. 2018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 공립박물관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에서 ‘적정’ 사업으로 선정되며 사업추진의 탄력도 확보했다. 압독국 유적 전시관은 압독국만이 가지는 독창적이고 풍부한 문화자원을 전시해 지역의 문화유산과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 줄 것이다. 시는 유적 전시관을 중심으로 압독국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정비 복원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 청년 지식놀이터와 청년희망 Y·STAR프로젝트 등 청년문화 거점을 육성해 옛 문화와 청년문화가 어우러지도록 한다.또 압독국의 풍부한 문화자원을 연구·활용하기 위해 올해 영남대 박물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압독국 문화유산 연구·활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성과물로 임당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인골을 이용해 1500년 전 압독국 귀족 여인의 얼굴을 복원하는 데 성공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압량지역은 지금도 경산의 중심지역이며 개발이 예정된 대임지구 택지개발과 어우러지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뿌리를 잊는 것처럼 불행한 일도 없다.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가 있고 현재가 있어야 미래가 존재한다. 인구 30만 명을 앞두고 있으며 자립형 도시를 추구하는 경산시민들은 역사 속에 깊게 뿌리박은 압독국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하고 후손에게 좀 더 많은 지식과 자료를 남겨야 한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경산시의 자치단체장으로 지역 역사 알리기와 한 번 더 도약하기 위한 시정을 약속한다.

2020-01-12

날씨의 역습

지난 6일은 절기상 소한(小寒)이다. 소한은 새해 들어 가장 먼저 돌아오는 절기지만 정초한파라는 말처럼 매서운 추위가 찾아오는 때다. 절기 이름으로 보면 대한(大寒)이 더 추워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소한 무렵이 연중 가장 춥다. “대한이 소한 집에서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이래서 생긴 말이다. 옛날 우리의 조상은 농사를 끝내고 소한부터 입춘까지 약 한달 간은 혹한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눈이 많이 올 것에 대비해 땔감과 충분한 식량도 집안에 비치해 둔다. 이 무렵이 그 만큼 추웠다는 뜻이다.올 소한은 포근한 기온 속에 비까지 내렸다. 겨울이 실종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온이 따뜻해 소한 같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한 겨울에 철쭉꽃이 피고 반팔 차림으로 다닌다는 사람이 눈에 띄기도 했다. 7일 제주도의 기온은 23.6℃였다. 1923년 기상관측 후 97년 만에 최고 기온을 나타냈다. 지금까지는 1950년 1월17일 낮 기온 21.8℃가 가장 높았다. 이날 전남 완도는 19.3℃ 전북 고창은 17.8℃를 나타냈으며 대구와 포항도 낮 기온이 13℃를 기록했다.지구 온난화로 지난 100년 동안 지구의 평균 온도가 1.5℃가 올라가는 등 지구촌 곳곳이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산업화의 전개로 불가피하게 에너지 사용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기상변화는 이제 인류의 삶까지 위협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혹한의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아시아권에서 홍수로 난리를 겪는다. 기후변화는 이제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 말했다. 인류의 최대 위협은 핵무기가 아니고 기후변화라고. 겨울 속에 만나는 봄이 반갑지만은 않은 것은 이같은 기후변화의 역습 때문일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