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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소리’의 추억, 시심이 흐르는 거리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 낡은 문집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소리’라는 제목의 14쪽 분량 얇은 책자였다. 발행일이 표기돼 있지 않아 기억을 더듬었더니, 1980년 후반 포항의 풍경과 사람들이 떠올랐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손글씨에 편집은 투박하지만, 순정이 배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역의 전설, 포항의 찬가, 동명 알기, 유물과 유적을 찾아, 시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소리’는 서점 등에 무료로 배포됐다. 발행인은 20대 초반의 제철소 직원으로 필자보다 세 살이 많았다. 눈빛은 맑았고, 언행은 단아했다. 시를 잘 썼고, 해구식당 같은 선술집에서 선배 문인들의 격려를 받기도 했다. 그와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문학이 인연의 매개였던 것은 분명하다.심부름 삼아 ‘소리’를 들고 학원사, 경북서림, 종로서적 같은 중앙상가 서점에 배포하러 다녔던 기억이 어슴푸레하다. 지금 중앙상가에 서점이라곤 학원사뿐이지만, 당시엔 시민극장 앞에 종로서점이 있었고, 대로변 버스정류장 앞에는 경북서림이 손님들로 북적였다.‘소리’는 10호까지 나왔다. 그와의 만남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따금 생각이 나기는 했지만, 추억으로 묻어두고 말았다. 한참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공장 작업복을 벗고 서울의 한 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대학에 강의를 나가며, 번역 공동체와 영문학 독서모임을 이끌고 있다고 한다. 지인을 통해 올해 첫 시집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시집을 펼쳤더니 이런 말을 남겼다.“내 삶이 시가 된다고 자신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은 여전하고 뭐 그리 드러낼 만한 삶도 아니다. 그러나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같이 툭툭 차이는 그런 무수한 삶 없이 세상 있을까. 그런 나와 내 이웃들의 삶에서 나오는 숨결 같은 시가 되기를 바란다.”낙엽이 뒹구는 중앙상가의 밤길을 걸으며 스치듯 지나간 한 사람을 잊지 못하는 이유를 자문해보았다. 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 혼탁한 세상에 ‘나와 내 이웃들의 삶에서 나오는 숨결 같은 시가 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시심이 떠올랐다. 그 시심은 30여 년 전 그를 만날 때 내 마음에 무늬져 있던 것이다. 그 순수한 시심이, 그와 ‘소리’를 잊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중앙상가에는 오래 전부터 시심이 흐르고 있었다. 1950년대 말, 청포도다방을 무대로 이명석, 한흑구, 박영달 선생이 문화계를 이끌었고, 손춘익 선생이 그 뒤를 이었다. 의사인 빈남수와 최동하도 힘을 보탰다. 다방과 카페에서 시낭송회와 시화전, 회화전이 열렸고, 왕대포, 해구식당에서는 예술인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길게 보면 ‘소리’의 명멸도 이 흐름 속에 있었던 것이다.이제 누가 이 쓸쓸한 거리에 시심이 흐르게 할 수 있을까.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할 수밖에 없지만, 시심 없는 거리에 사람다운 삶이 깃들 수는 없지 않은가. 시나브로 깊어가는 가을, 그 궁핍한 시절에도 맑게 빛나던 시심이 거리에, 우리들 마음에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

2019-11-03

탈북 주민의 가족 결연식을 보면서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대구 지역에도 탈북민 670여 명이 살고 있다. 또 대구에는 6·25 전후로 넘어온 이북 5도민도 36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모두 망향의 설움을 안고 사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북 5도민들도 대부분 초기에는 온갖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 기업인으로서 성공한 사람도 있고, 그 자손들이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탈북민 중에는 아직도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어제 이북5도민회가 탈북자들을 돕겠다는 취지로 마련한 가족 결연식에 참여하고 왔다.탈북민들의 정착 과정과 양상은 매우 다르다. 어느 탈북민은 국내 굴지의 증권회사 수위로 취직한 후 증권 전문가가 되어 수십억대의 자산가가 되었다. 내가 잘 아는 여성 A씨는 북에서 교수를 하다 내려와 그의 북한 ‘준박사’ 자격증이 인정되어 박사 과정에 특례 입학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B여인은 중국을 거쳐 신병치료를 위해 탈북해 왔지만 다시 평양으로 가겠다고 절규하고 있다. 북한의 명문 김책공대를 졸업한 엘리트 C씨는 아직 취업도 못하고 공사판을 전전하고 있다. A씨를 제외하면 3분이 아직 기초 생활비 수급자로 살아가고 있다.통일 전 동독민들의 서독 정착은 비교적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동독의 트럭 운전기사는 이틀 만에 서독 운전기사로 취업되었고, 미용사는 바로 동네 미용실에 취업되었다. 통일 전 양독 간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 결과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독일과는 완전히 다르다. 독일과 달리 우리는 6·25 라는 전쟁을 겪었고, 교류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살아왔다. 체제가 너무 이질화될수록 탈북민들의 정착은 사실상 어렵다.탈북주민 중에는 남한 사회가 의외로 배타적이고 차별이 심하다고 불평한다. 탈북민 상당수가 자신의 신분 노출을 꺼리는 이유이다. 그들 중에는 이곳에서 간첩으로 오해받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기도 했단다. 어떤 탈북자는 지하철 타기부터 경쟁하는 남한 사회가 살기 어렵다고 실토한 바도 있다. 북한 수령체제의 경력과 의식 구조는 이곳에서는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경제 문제가 해결되니 북쪽 가족이 그리워 매일 잠을 설치는 사람도 있단다. 지난번 탈북 모녀의 비극적인 자살은 탈북자의 고달픈 삶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이들을 위한 종합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탈북자 3만3천 명도 포용치 못하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통일 문제를 논할 수 있을까. 선교 목적의 종교 단체의 탈북자 돕기 사업은 한계가 있다. 시민 단체의 탈북민 포용정책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진보적인 통일운동 단체의 탈북자에 대한 냉대나 무관심한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정부의 일시 정착금 지원과 임대 아파트 제공만으로 탈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들의 정착을 돕는 정부와 시민 사회의 획기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2019-11-03

철도교통 중심지 문경, 문화·관광 도시로 새롭게 비상

고윤환 문경시장문경은 석탄·시멘트 산업 등으로 우리나라 산업화의 기반이 되었다. 현재는 문경새재를 비롯한 청정하고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 역사와 문화자원을 간직해 연간 3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한국 관광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또한 문경은 백두대간 유일의 남향도시로 전국에서 가장 긴 백두대간 구간 110km와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중 희양산, 주흘산, 황장산, 대야산의 4개 명산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봉암사, 대승사, 김용사와 같은 유서 깊은 고찰을 산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중부내륙 단선전철(이천∼문경), 중부권 동서횡단철도(서산∼문경∼울진), 경북선 단선전철(문경∼김천) 등이 개통되면 문경은 열십(十)자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서울 강남을 출발해서 문경까지 1시간 19분, 전국 어디서나 2시간이면 닿는 교통의 요지가 된다. 또 관광객 증대와 도시브랜드 가치의 상승으로 지역발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해발 956m의 문경 단산에 3.6㎞를 왕복할 수 있는 단산 모노레일이 올해 말부터 운영된다. 단산은 우리 시에서 21세기형 레포츠 메카의 산으로 조성하기 위해 막바지 작업 중에 있는 곳이다. 조령산,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와 수려한 바위산인 주흘산과 운달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압권의 경치를 자랑한다. 작년부터 100억 원을 들여 조성 중인 단산 모노레일은 8인승 차량 10대, 화물 차량 2대, 승강장 2곳, 진입도로, 주차장 등의 시설이 마련·정비된다.승강장 주변 정상부에서는 단산 숲속 야영장(17곳), 단산 숲속 썰매장, 전망대 등이 조성되며, 특히 모노레일에서 전망대까지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한 무장애 데크길도 조성 중에 있어 유아, 노인, 장애인까지 문경의 맑은 공기 속에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게 되어 사회적 약자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등급별 산악자전거, 트레킹, 패러글라이딩 등의 레저 활동을 즐길 수 있어 산악인과 캠퍼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의 큰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또 문경 에코랄라는 기존에 있던 석탄박물관, 가은오픈세트장, 모노레일 등에 생태 전시관인 에코타운과 9개의 테마공간으로 구성된 자이언트 포레스트 등의 시설을 더해 업그레이드했다. 이는 녹색문화상생벨트조성 사업으로 정부가 주도한 지방육성정책 ‘국가 광역경제권 선도프로젝트’의 일환인 3대 문화권 문화·생태 관광기반 조성 사업으로 추진됐다.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 기업, 산업유산의 중요성을 돌아볼 수 있는 ‘추천 가볼만한 산업관광지 20곳’에 삼성 이노베이션 뮤지엄,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 한독의약박물관, 포스코 역사관 등과 함께 ‘문경 에코랄라’를 선정했다. 우리나라의 경제 및 산업의 과거, 현재, 미래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정받았다.우리 시는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 2019 지역특화소재콘텐츠개발 지원사업으로 제작한 문경 랄라스타즈(Ralastars) 캐릭터 개발을 완성하고 본격적인 마케팅에 들어갔다. 이달 중 개관을 목표로 문경에코랄라 에코타운 영상스튜디오 내 랄라스타즈의 노래와 춤을 따라할 수 있는 체험시설을 구축해 문경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가갈 예정이다.문경오미자를 테마로 하는 융복합 종합 문화공간인 문경오미자테마공원도 경북 최대 관광지인 문경새재 초입에 조성돼 지난 9월 개관식을 갖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문경오미자테마공원은 문경 대표 농·특산물인 오미자를 종합적으로 홍보하고, 다양한 체험프로그램과 녹지 오미자공원 등으로 힐링·휴양의 공간을 만들어서 도농교류를 활성화함과 동시에 새로운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역브랜드 가치를 높이게 될 것이다.이같은 사업들이 수도권의 많은 사람들이 문경을 찾고 이를 통해 소비가 늘고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새로운 변화가 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경은 이를 위한 사계절 체류형 관광지로의 도약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2019-11-03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김영체 진솔 산림기술사사무소 대표10월 28일 월요일이 밝았다. 지금으로부터 꼭 4년 전, 2015년 10월 27일부터 하루 한 줄씩 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날부터 시작해 오늘까지 ‘감사일지’를 쓴다. 부담없이 실천할 수 있기에 꾸준히 쓸 수 있었다.2019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는 매일 A4 한 장 쓰기를 결심했다. 글자 수 1천 자.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외근이 잦을 때는 힘들다. 늦은 시간 퇴근하면 글 쓸 에너지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도 쓴다. 업무, 일상, 관계 등 다양한 내용을 써서 블로그에 올린다.지인 K도 글을 쓴다. 고등학교 동기들이 모이는 밴드에 정치나 일상을 소재로 글을 써 올리는데, 분량이 많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K는 새벽마다 쓴 글을 공유한다. K의 글에는 소신과 사명감이 묻어있다. 글을 보면 K의 철학과 인생관을 금새 알 수 있다. 얼굴 마주하고 소주 잔을 나눈 적 없지만, 지난 3년 동안 서로 글을 읽으며 정(情) 도타운 벗이 되었다.‘사람’을 깊이 알아갈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글쓰기는 몇 가지 매력이 있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내 안에 거짓이 사라진다. 쓰는 행위는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솔직하게 표현한다. 내면의 모습을 만난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바라는 바는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다.글쓰기를 통해 치유 받은 경험도 적지 않다. 한번은 SNS에 내 주관이 뚜렷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바로 악플이 달리면서 약간 상처를 받았다. 괴로웠지만 어렵지 않게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였다. 악플을 단 사람 입장에서 글을 써 보았다. 글을 다 쓰고 나니 아픈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다.많은 이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글쓰기가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구나 편한 사람과는 거리낌 없이 말한다. 흔히 ‘수다를 떤다’고 표현한다. 수다를 떠는 순간은 어떤 부담감도 없다. 부담을 내려놓으니 물 흐르듯 말하기 쉽다. 글쓰기도 같은 윈리를 적용할 수 있다. 수다 떨 듯 내 마음을 써 내려가는 것이다. 맞춤법이 틀리면 어떻고 문법이 좀 맞지 않으면 어떤가? 앞뒤 논리나 맥락이 어색해도 상관없다. 오로지 글을 쓰는 순간 떠오르는 것을 무작정 써내려 간다.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면 부담이 줄어든다.양을 채우고 난 다음에는 마구 휘갈겨 쓴 초고를 수정한다. 글을 수정할 때도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다. 다만 오타, 문맥이 어색한 곳만 수정할 뿐이다. 꾸준히 글을 쓰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지난 7월, 두 번째 책 숲에서 길을 만들고 물을 다루다를 출간했다. 본디 책 출판을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다. 숲에서 임도를 만들고, 사방 공사를 진행하며 현장에서 느낀 생각을 수시로 써서 온라인에 올린 것이 초고로 탈바꿈했다. 글이 하나 둘 모이다 보니 전국 각지에서 일하는 임업인들과 공유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책으로 묶은 것이다. 글을 쓸 때는 굳이 책으로 출간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는 것이 좋다. 그래야 글을 쓰는 동안 문장에 집중하게 된다. 자판을 두드리는 동안 내 문장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마음이 차분해진다.말은 한번 입에서 나가면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수정이 가능하다. 말보다 느리긴 하지만, 그만큼 생각을 숙성시킬 수 있다. 말을 많아지면 가슴이 텅 빈 것처럼 허무할 때가 많다. 그 허전한 마음을 채워 주는 것이 바로 글쓰기다.글을 쓰는 날에는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쓰지 않는 날은 공허하다. 문법과 맞춤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문장의 모순을 무시하고 내 삶의 모순을 찾는다. 쓰는 만큼 내일이 달라진다. 삶의 방향을 짚고 나 자신의 가치를 읽을 수 있다. 글쓰기는 완벽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완성이라는 성찰을 이루어 가는 도구다.써 놓고 보면 글이 부끄러울 때가 많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일 쓴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라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말을 믿는다. 언젠가 내 글의 전개와 논리적 서술이 나아질 것이라 확신하며 오늘도 글을 쓴다.

2019-11-03

창맹설(倉氓說)

권필이라는 조선 중기 때 문인이 있어 벼슬에 나가지 않고 평생을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나는 그를 한문소설 ‘주생전’의 작가로 먼저 알았다.박희병 선생 등의 논의에 따르면 16,17세기에 한문 단편소설의 큰 변화가 일어났으니,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대규모 전쟁이 삶의 변화를, 그리고 연이어 소설의 변화를 야기한 탓이다.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는 광해군 때 자신이 쓴 시가 문제가 되어 해남 땅으로 귀양 떠나던 중에 길가의 사람들이 건네주는 술을 너무 마셔 이튿날 그만 세상을 떠나버렸다고 한다.과연 일세의 풍류객이었듯한데, 그가 남긴 석주집의 글들 가운데 하나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이 ‘창맹설(倉氓說)’이라는 글은 관가 창고 옆에 살던 도둑의 이야기다.옛날에 관가 옆에 사는 한 백성이 있었는데 장사도 하지 않고 농사도 짓지 않는데 집에 돌아올 때마다 늘 쌀을 가져 왔다. 덕분에 식구들이 굶지 않았지만 집은 텅 비어 있었다.그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아들을 불러 은밀히 알려 주었다. 관가 창고 몇 번째인가 기둥에 손가락 하나만한 구멍이 있는데, 나뭇가지로 살살 긁어내면 쌀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 다섯 되 이상은 빼내지 말라 했다.아들은 처음에는 아버지의 말을 따랐지만 점차 욕심이 생겼다. 쌀을 더 많이 얻어내고 싶은 나머지 나무기둥의 구멍을 넓히니 마침내 감시하는 눈에 띄어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고 한다.석주 권필은 선조, 광해군 조를 살다간 인물이니 전쟁과 정쟁으로 얼룩져 있어 나라의 어지러움이 한도를 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조선시대가 당파싸움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어느나라나 피비린내 나는 내부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오늘날 우리 사회도 어지러움이 극에 달하기는 마찬가지인 상황에 나랏도적도 아래위로 적지 않은 듯하다.생각하기를, 작은 허물은 누구나 있으되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면 그래도 무사할 수 있겠다. 과욕은 그러나 큰 화를 부르는 법, 옛 사람 권필이 일찍이 이를 알아 스스로는 벼슬에 나가지도 않았으면서 벼슬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여 주었다.세상 삶의 큰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리고 어찌 벼슬살이하는 사람들 뿐이랴. 분수를 알고 거기 맞게 산다면,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분들은 못 되어도 큰 화는 입지 않으려니 한다. 가뜩이나 돌, 칼이 어디서 날아들지 모르는 세상에 말이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0-31

아르헨의 반면교사

아르헨티나는 남미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면적이 넓은 나라다. 셰일가스 매장량이 세계 1위인 자원부국이다. 경제 규모도 남미에서 2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최근 빈곤율이 35%에 달하고 인플레이선율이 50%를 넘어서면서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에 봉착해 있다. 우리나라와는 오랜 수교를 해왔으나 그리 친숙한 편은 아니다.제2차 세계대전 후 대통령에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페론은 대중영합주의자로서 알려진 인물이다. 노동자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그는 과도한 임금인상 등 무분별한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면서 민중의 지지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독재정치를 펼치다 아르헨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자 망명한 인물이다. 그의 포률리즘 정치를 페론이즘이라 한다. 포률리즘을 우리말로 대중주의, 민중주의라 한다. 대중의 견해를 대변하는 정치적 사상과 활동을 뜻한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와 미국의 농민운동이 그 기원이다. 권력과 정치적 지지 세력을 얻기 위해 비현실적 정책을 내세우거나 국민이 아닌 특정 집단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많다.아르헨티나는 과거 70년간 주로 좌파 포퓰리즘 정권이 집권해 한때 부자였던 나라 살림이 거덜난 상태다. 경제 개발보다 임금인상 등 선심성 복지에 예산을 퍼붓는 바람에 그동안 8번의 디폴트를 선언했고, 지금도 IMF의 금융구제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복지의 단맛에 빠진 국민은 4년 만에 또다시 좌파 정권을 불러 들였다. 미래를 전혀 기약할 수도 없는 처지이면서 국민은 우선 먹기 좋은 무상복지에 눈이 멀어 국가부도 앞에서도 포퓰리즘을 선택했다. 복지의 단맛은 한번 빠져들면 헤쳐 나오기가 정말 어렵다. 복지 경쟁을 벌이는 우리나라가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대목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10-31

오십보백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인재영입과 당내 쇄신에 한창이다. 조국 사태가 조 장관의 자진사퇴로 끝난 직후인지라 여야의 행보는 더욱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그 와중에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행보를 지켜보노라면 중국 고사에 나오는 ‘오십보백보’를 보는 듯하다.먼저 조국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조 전 장관 지키기’에 올인했던 더불어민주당의 한발늦은 사과 기자회견이 구설수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달 30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민주당이 검찰개혁이란 대의에 집중하다보니, 국민, 특히 청년들이 느꼈을 불공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은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며 “이 점 여당 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번 일은 검찰이 가진 무소불위의 오만한 권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고, 검찰개혁을 향한 우리 국민들의 열망도 절감하게 됐다”고 궁색한 해명도 함께 내놨다. 이 대표가 조 전 장관 사퇴에 대해 공식석상에서 사과한 것은 당 지도부가 조 전 장관 옹호로 일관해 민심과 괴리된 길을 갔다는 일부 초선 의원들의 책임론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철희 의원은 최근 불출마를 선언한 뒤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무기력해진 책임의 상당 부분이 이해찬 당대표에게 있다”며 이 대표의 리더십을 문제삼았다. 그러나 민주당내 더 이상 다른 메아리나 반향은 없었다. 민심이나 여론에 무신경한 민주당 내 분위기가 여실히 드러났다.광화문 촛불시위와 국정지지도에 반영된 민심탓에 조국 사태의 늪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자유한국당 사정도 녹록치 않다. 조국 사태가 마무리된 직후 조 전 장관 공격에 앞장섰던 유공자를 표창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자유한국당이 이번에는 내년 총선을 겨냥한 인재영입에 나섰다가 역풍을 맞았다. ‘공관병 갑질’논란이 있었던 박찬주 전 대장 영입이 적절치 않다는 여론의 반대에 부딪친 것. 박 전 대장 영입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은 조경태·김광림 의원 등 최고위원들이 민심의 동요를 이유로 보류를 건의했고, 황교안 대표가 건의를 받아들여 결국 영입이 보류됐다. 내년 총선에서 외연확장이 절실한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20, 30대 젊은 청년들의 반감을 산 박 전 대장을 고집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논리가 뒤늦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장은 지난 2013∼2017년 공관병에게 전자팔찌를 채우고 텃밭관리를 시키는 등 가혹한 지시를 했다는 혐의 등으로 검찰수사를 받은 바 있다.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당의 내부 비판 기능은 살아있다는 평가는 다행이지만 당 분위기 쇄신에 앞장설 만한 인재에 목마른 데다 당내 여론수렴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한국당의 사정이 딱하다는 생각이다. 이러니 다음 선거땐 오십보백보의 행보를 보이는 두 정당 가운데 어느 당을 지지해야 하나 그저 고민스런 요즘이다.

2019-10-31

이상(理想)과 현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를 이상(理想)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같을 수는 없을 터이니 저마다 꿈꾸는 이상향(理想鄕)도 다를 것이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의 천국과 불교의 극락이 이상향일 것이며, 개인적으로는 재물과 권세, 명예, 건강 등이 다 충족되어 더 바랄 것이 없는 상태를 낙원(paradise)이라 할 것이다.하지만 그런 이상의 실현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천국이나 극락에 이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종교인들이 얼마나 될 것이며, 이 땅의 낙원에서 살고 있다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불가에서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하고 기독교 역시 타락한 인간들의 죄악과 고통이 만연한 세상이라 한다. 이상이란 한갓 실현가능성이 없는 신기루 같은 게 아닐까.그럼에도 ‘꿈과 희망’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자 인류 역사의 원동력이었다. 인생이란 판도라 상자에서 나온 온갖 재앙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하나 희망 때문에 인생은 살만한 것이 되는 것이다. 꿈과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삶과 세상을 긍정한다는 것이고,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된다. 그래서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고, 철학자 키엘케골의 말처럼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인 것이다.희망 역시 욕망의 일종이지만 맹목적이거나 무분별한 욕망과는 다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진선미(眞善美)에 대한 욕망이라야 희망이라 할 수가 있다. 불의한 욕망이나 탐욕은 희망보다는 절망에 이르는 길이 된다. 돈과 권력과 명예에 대한 열정과 욕망으로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것을 자주 본다. 그들의 그토록 강렬한 바람은 그러니까 희망이 아니라 욕심이었던 것이다.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상은 이상일 뿐 실현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희망은 무모하고 부질없는 꿈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진선미에 대한 희망은 그 자체로 삶의 긍정과 활력이라는 가치와 의미를 갖는다. 기쁨과 보람이란 바라던 것을 성취했을 때 얻는 마음의 보상일진대, 꿈과 희망이 없는 곳에는 기쁨과 보람도 없을 터이다. 또한 꿈과 희망이 다 실현되어 더 이상 꿈도 희망도 없는 상태를 과연 낙원이라 할 수 있을까.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다는 말도 있고,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도 있다. 꿈이라고 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이란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이지만, 그것이 헛된 망상이거나 그릇된 욕망이어서는 오히려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예술과 종교는 이상을 좇지만 정치는 보다 현실적이어야 한다. 사회, 경제, 문화, 종교, 예술 등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을 총괄해야 하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정치가는 이상주의자이기보다는 현실주의자라야 하는 이유다. 모든 개인의 꿈과 희망까지도 현실에 적용해야 하는 것이 정치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적 이념과 이상으로 나라를 망칠까 우려한다.

2019-10-31

도시의 얼굴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선진국과 후진국을 비교하는 여러 가지 잣대가 있다. 국민소득, 무역거래 규모나 교육수준 등은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지만 특이한 방법 중에 하나가 거리의 간판의 품격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은 거리의 간판이 간결하면서도 모양새가 있고 품격이 있는 반면 후진국들의 간판은 지저분하고 어지럽게 벽을 도배하다시피 뒤덮고 있어 품격이 떨어진다.포항도 예외가 아니다. 포항의 거리를 걸을 때면 어지럽고 요란스러운 간판으로 어지럼증을 느끼기 일쑤다. 벽을 뒤덮은 간판으로 인하여 도대체 도시의 품격을 찾아볼 수가 없다. 21세기 환동해권 중심도시, 세계적 대학과 기업이 있는 글로벌 도시의 얼굴은 간판으로 볼 때는 수준 이하이다.간판은 도시의 얼굴이다. 도시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거리의 간판이다. 간판은 회사명·상점명·상품 또는 서비스영업 종목 따위를 표시한 것으로, 광고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광고물이고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간판의 역사는 상거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인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그리고 로마 시대부터 사용됐다고 한다. 장사꾼들이 상품 안내를 위해 벽에 하얀 도료를 칠하고 게시판을 만든 것이고, 1400년대 영국 상인들은 자신들의 상점을 알리기 위해 고유한 간판을 달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간판에 대한 규제가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16세기부터 파리와 런던에서는 여행자의 편의를 제공하는 여인숙 간판을 제외하고는 모든 간판에 대해 건물 정면에 붙여 달도록 했다.우리나라에서는 세종실록에 보면 종루에서 광교통에 이르는 상점에 간판을 달아서 쉽게 알 수 있도록 할 것을 왕에게 건의했다고 나와 있다. 대한제국 말 개항 이후에 간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09년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기사를 보면 “상업에 제일 긴요한 것은 간판이라 고로 외국 상업인은 한 가옥상에 간판을 하나·둘·셋을 달았다”라고 되어 있다. 해방 후 명동 등 번화가에 간판이 난립하면서 간판규제의 개념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간판규제는 줄다리기식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도시의 미관을 더 해쳐왔다.어쨌든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간판이 이젠 한국에서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괴물로 변했다. 특히 포항에선 더 그 정도가 더 심하다.몇 년 전부터 서울 등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아름다운 간판’달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간결하고 깔끔한 간판들을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다.포항도 우선 시범적으로 한두개의 거리를 지정하여 정말 선진국 수준의 간판거리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일단 시범 거리를 통해 좋은 평을 받으면, 도시 전체로 확대하여 선진국형 도시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도시의 얼굴을 이토록 내버려 둘 것인가?

2019-10-31

관포지교(管鮑之交)(2)

관중이 임종할 즈음, 환공이 찾아와 관중의 후계자, 즉 재상 자리를 의논합니다. 환공은 포숙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관중은 뜻밖의 답을 내놓습니다. “아니 됩니다. 포숙은 강직하고 괴팍하며 사나운 성품을 갖고 있습니다. 백성을 난폭하게 다스리고 괴팍하면 인심을 잃으며 사나우면 백성들이 일할 용기를 잃고 맙니다. 두려운 것을 모르는 포숙은 환공 보좌역으로 마땅치 아니합니다.”환공은 포숙 대신 수조, 개방, 역아 세 사람을 중용합니다. 아부하며 권력을 잡았던 문고리 3인방이었지요. 관중은 그들의 임명을 반대했지만 환공은 결국 그들의 아부를 이기지 못하고 최고 권력을 허락합니다.제나라는 세 간신 때문에 극심한 위기에 처합니다. 환공이 죽은 후 67일 동안 시신을 방치할 정도로 잔혹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이 집권한 기간에 포숙은 제나라 명문 대부로 인정받고 이후 10대에 걸쳐 명성을 떨칩니다.이것이 어찌 된 일일까요?관중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던 겁니다. 간신들이 권력을 잡을 것이 눈에 보이고 만약 그 상황에서 포숙이 재상 자리에 있으면 권력 다툼에 밀려 비참한 최후를 맞을 것으로 예견한 겁니다.겉으로는 관중이 포숙을 해코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친구를 사랑하는 깊은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겁니다. 오해를 불사하고 친구 미래를 위해 험담까지 서슴지 않았던 관중의 속 깊은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누구나 수없이 많은 친구 명단을 갖고 있는 시대입니다. 수백 명 수천 명 친구 가운데 과연 나의 포숙과 관중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나를 부끄럽게 해 줄 돌직구 날리는 친구. 언제나 내 곁에 있어 내가 펼쳐 주기를 바라는 친구. 변함없이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친구. 사람에게 실망하고 세상이 우리를 좌절하게 할 때, 우리 곁에는 변치 않는 친구 ‘책’이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31

대학서열화를 부추기는 대통령과 정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정말 제발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필자는 교육개혁만큼은 제발 당·정·청이라는 특정 이데올로기의 침범을 받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다.그런데 현실은 언제나 필자의 기원과는 반대로 움직인다. 공정이라는 말에 갇혀버린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국민을 핑계로 교육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틀 안에 가두고 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뉴스 제목이 있다. ‘특목고 일괄폐지’ 고교 평준화로 방향 잡은 고교서열화 해소! 고교서열화가 왜 생겼는지 대통령은 정말 모를까? 교육 붕괴의 주범은 대학서열화인데, 왜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할까?사회 모든 분야 중에서 가장 순수해야 할 분야는 교육이다. 어느 나라든 학생들이 어떻게 성장하는가에 따라 그 나라의 미래가 결정된다.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국민들의 삶의 질도 높고, 더불어 국가의 미래도 밝다. 반대 이야기 또한 항상 참이다.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안타깝게도 당연히 후자다. 학생들의 교육행복지수는 늘 세계 최하위이다. 그러기에 국민들의 삶의 질 또한 높지 않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출산율이다. 출산율 0%대! 출산을 포기한 사람들은 “희망은 없고, 오로지 소모성 경쟁만 존재하는 이런 끔찍한 사회에 아이를 살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런 불행한 삶은 우리만으로도 충분합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에 어떤 부정도 할 수 없다.나라의 희망이어야 할 교육이 해가 거듭될수록 절망의 축이 되고 있으니, 출산율 0%대가 아니라 출산 수 0명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최근 결혼을 하거나 결혼을 앞 둔 지인들은 필자의 이런 슬픈 예감에 대해 증인으로 자처하고 나섰다. “선생님 도저히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지금과 같은 교육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를 좋아하던 제자의 말에 필자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대통령이나 정치인 교육부 장관은 이런 사정을 알기나 할까? 일개 범부인 필자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돌아가는 교육 이야기는 만담(漫談)보다 더 웃기다. 대학 입시가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정상적인 국민 여론 수렴 한 번 없이 대통령 말 한 마디에 대입제도를 바꾸겠다고 우왕좌왕하는 이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대입 무시험 전형”을 그렇게 외치던 이해찬 대표는 왜 다음과 같은 대통령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정시가 능사는 아닌 줄은 알지만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차라리 ‘정시가 수시보다 공정하다’라는 입시 당사자들과 학부모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대통령은 능사가 아닌 줄 알면서 왜 이 나라 교육을 더 혼돈스럽게 만들까? 0교시 부활 등 지금보다 훨씬 더 큰 혼란을 예상 못하는 걸까? “수능성적 비관 자살”이라는 안타까운 뉴스가 벌써부터 들리는데, 오로지 총선에 목매달고 있는 당정청 사람들에겐 남의 일인 것 같다.“당정, 수도권 대학 정시 확대 검토”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바로 대학서열화를 더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또 이 말은 학생들을 입시 지옥으로 몰아넣겠다는 것이다. 정말 대통령의 악수(惡手)가 이번에도 꼭 거둬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2019-10-30

10·26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 총성이 울려 퍼진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이다. 안 의사가 발사한 세 발의 총탄에 맞은 이토 히로부미는 20분 만에 절명한다.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수행하던 3인의 일본인을 추가 저격한 후 “대한만세!”를 외치며 현장에서 검거된다.안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 ‘여순(旅順)감옥’에서 순국한다. 거사 이후 꼭 5개월 뒤의 일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 총성이 울려 퍼진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와 차지철을 저격한 것이다. 와이에이치 사건, 신민당 총재 김영삼 의원직 박탈, 부산-마산 시민항쟁 같은 사회-정치적인 소요의 와중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10월 28일 전두환이 김재규를 체포하여 내란목적살인과 내란미수죄로 사형을 언도한다. 광주항쟁이 핏빛으로 진압되기 사흘 전인 1980년 5월 24일 김재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안중근 의사는 수감 중에 ‘동양평화론’을 저술해 한국과 중국, 일본이 서양세력에 공동으로 대항할 것을 제안한다. “한-중-일이 ‘여순’에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한다. 3국 공동은행을 설립하고, 공용화폐를 발행한다. 3국 공동군대를 창설하고, 타국의 언어를 가르친다. 조선과 청국은 일본의 지도 아래 상공업 발전을 도모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동양평화론’은 1929년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대중의 반역’에서 유럽연합 창설을 주창한 것과 견주어 봐도 뒤지지 않는다. 공동은행과 공용화폐, 공동군대와 언어교육은 요즘 생각해도 시대를 앞서가는 사유와 인식이다. 다만, 일본의 지도를 받아 조선과 청나라가 상공업 발전을 도모한다는 내용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명치유신으로 근대화된 일본은 ‘탈아입구’와 ‘정한론(征韓論)’에 기초하여 조선을 병탄하고자 혈안이었기 때문이다.김재규의 박정희 저격은 영화 ‘그때 그 사람들’(2005)에서 단편적으로 다루어졌을 뿐, 김재규의 사상과 저격배경은 미궁에 있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전개된 시민항쟁을 계엄령과 위수령으로 강제 진압한 박정희를 김재규가 저격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고, 광주학살을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일당이 10·26을 신속하게 처리함으로써 사건의 실체는 가려지고 말았다. 김재규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는 말을 남겼다.그는 “만약 내가 복권되면 ‘의사 김재규 장군지묘’라고 묘비에 적어달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다. 그가 묻힌 경기도 광주시 엘리시움 공원묘원 추모비에 새겨진 ‘의사’와 ‘장군’ 네 글자는 심하게 훼손되어 10·26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웅변한다.70년을 사이에 두고 같은 날 벌어진 사건은 역사를 돌이키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안중근 의사 덕분에 한국인들은 일제 강점기를 꿋꿋하게 싸우며 버텨왔다.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김재규는 유신의 종말을 앞당기려 목숨을 던졌다. 일제의 잔혹한 식민통치를 망각해서도, 민주주의를 유린한 유신통치도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10·26의 소회다.

2019-10-30

관포지교(管鮑之交)(1)

제나라 임금 양공(襄公)이 죽자 노나라에 망명 중인 첫째 동생 규(糾)와 거나라에 체류하던 둘째 동생 소백(小白)이 왕위 계승 후보에 오릅니다.두 사람은 한시라도 빨리 제나라에 도착해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지요.관중은 첫째 동생 규를 모시고 있었고 포숙은 둘째 동생 소백을 보필하던 중입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갑니다. 관중이 꾀를 냅니다. 경쟁자인 소백 일행을 노상에서 처치하고 왕위를 홀가분하게 차지하자고 제안합니다.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소백 일행이 나타나자 관중이 화살을 날리지요. 소백은 정통으로 화살에 맞아 쓰러집니다.관중은 유일한 경쟁자를 제거했으니 제나라 왕 규를 모시고 느긋하게 수도로 향합니다. 소백은 죽지 않았습니다. 화살이 허리띠에 꽂히는 바람에 목숨을 건집니다. 소백 일행은 전속력으로 제나라에 도착해 수도를 점거하고 왕위를 획득합니다. 소백이 제나라 환공(桓公)입니다. 천하에 명성을 떨친 임금이죠. 뒤늦게 도착한 규와 관중은 노나라로 재빨리 도망칩니다. 환공은 그들을 보호하는 노나라에 통보하지요.“규는 형제이므로 내 손으로 죽일 수 없다. 노나라에서 처단해 주기 바란다. 관중을 죽여 소금에 절이지 않는다면 내 직성이 풀리지 않으니 신병을 인도해 달라. 거부하면 전쟁도 불사한다.”제나라의 통보에 약소국 노나라는 어쩔 수 없이 규를 처형합니다.관중은 자기 발로 제나라로 향합니다. 이때 관중을 구출한 것이 포숙입니다. 환공은 포숙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습니다.결국, 환공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관중을 품는 배포를 보입니다.여기까지는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로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관중이 생명의 은인 포숙을 배반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한비자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30

플랫폼 비즈니스

플랫폼 비즈니스는 외부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만드는 비즈니스를 가리킨다. 휴먼 네트워크 비즈니스라고도 불리는 플랫폼 비즈니스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지배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면 에어비엔비는 단 하나의 부동산도 갖고 있지 않지만 전세계인들이 찾는 숙박플랫폼으로 성장했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역시 자체 콘텐츠는 전혀 없지만 가입한 사람들에 의해 커뮤니티가 생성되고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우버 역시 택시를 단 하나도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5년도 안돼 5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알리바바나 아마존 역시 재고가 하나도 없는 거대한 쇼핑통신망이다.에어비앤비의 창업자인 브라이언 체스키와 조 게비아는 신참 디자이너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살기로 한 아파트의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파자마 차림으로 인맥쌓기를 제안, 주말동안 머물 손님 3명으로부터 1천달러를 벌어서 다음달 임대료를 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아파트 공유경험이 119개국가에서 사업을 펼치는 거대기업 에어비앤비로 발전, 현재 원룸아파트에서 성에 이르기까지 50만건 이상의 숙소가 등록돼 있고, 서비스 이용자가 1천만명을 넘어섰다. 또 스마트폰 기반 차량서비스 기업인 우버 역시 마찬가지다. 2009년 3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우버는 벌써 전세계 200개 이상 도시에서 전통적인 택시산업에 도전장을 내밀고 아예 택시산업을 대체할 기세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자신들이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않은 자원을 활용해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전통적 비즈니스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한다. 최근 택시업계와 마찰을 빚고 있는 타다 역시 플랫폼 비즈니스의 대표적 사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0-30

무엇을 꿈꾸었을까

장규열 한동대 교수502년 전 오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어 올렸다. 그는 왜 그랬을까. 무엇이 못마땅하여 무엇을 바꾸기 위하여 그런 용기를 내었을까. 비르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조 의견서’를 내걸었을 적에, 그는 어떤 세상을 꿈꾸었을까. 교황과 교회가 신의 생각을 대신한다면서 사람들을 쥐고 흔드는 일이 불편하였다고 한다. ‘면죄부’를 돈받고 팔면서 지은 죄까지 용서한다는 만용과 권력에 저항의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하늘의 생각과 말씀을 교황의 손에서 옮겨 보통 사람의 손에 올려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가 바로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트 교회였다. 오백 년이 지난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다른 결들이 있다고는 하나, 지면에 오르내리는 오늘 교회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프로테스탄트’가 저항의 마음을 담기는 하였으나, 폭력과 막말을 권한 적이 없다. 이성과 성찰을 거듭하며 화합과 평강의 하늘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세상보다 높은 가치를 실현하고 싶었지만, 차별과 혐오를 주장한 적이 없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을 믿음의 문을 통하여 화합과 소통을 이루고 싶었겠지. 한 사람의 주장에 휘둘리는 세상은 공평과 정의에도 어긋난다. 생각을 모으고 모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누리는 세상을 만들려 하지 않았을까.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운다는 저 겁박은 면죄부를 팔았던 그 교황과 무엇이 다른가. 말씀의 힘과 생각의 영향력은 누군가의 권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바로 나의 손과 삶에 달린 게 아닐까.사람은 모두 부족하다. 무엇이 모자라도 모자라고 어느 구석이 부족해도 부족한 게 인간이다. 모자라고 불편한 가닥을 핑계삼아 덜어내고 차별하며 편가르고 담장을 쌓노라면, 끝내 상처와 아픔만 가득한 세상이 되고 말지 않을까. 신학자 데이브 톰린슨(Dave Tomlinson)은 ‘모든 사람들이 그 어떤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환영받으며, 희망과 꿈을 나누고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였다. 종교가 세상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할 수 없으며, 믿음을 보수와 진보로 갈라 해석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루터의 용기와 생각을 다시 살펴, 사람들이 돌이키고 회복하며 이웃과 함께 힘을 내고 다시 삶으로 나아가게 북돋우는 믿음의 터전을 만나고 싶다.세상이 어둡다. 빛을 잃은 세상에 희망을 던지는 교회를 만나고 싶다. 거친 언사와 휘두르는 주먹은 그만 보았으면 한다. 내뱉는 욕설과 거북한 막말도 그만 들었으면 한다. 그것이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모습은 아니었으면 한다.굴곡진 세상을 힘내어 건너게 하는 다리가 어디 없을까. 무너지고 흩어진 세상을 모으고 꿰매는 손길이 혹 어디 없을까. 미움과 단절의 그늘이 사라져야 한다. 나눔과 대화의 마당이 늘어나야 한다. 조금씩 달라도 어차피 사람이다. 조금만 달리 보면 누군들 함께 못할까. 루터가 꿈꾸었던 세상은 그런 게 아니었을까.

2019-10-30

개를 바라볼 때 가지는 치유 능력

외로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자주 반려견에게서 위안을 받는다고 말한다. 개는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받아들인다. 개들과 눈을 맞추면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때문이다. 엄마가 아기의 눈을 바라볼 때 옥시토신의 수치가 높아지는데 놀랍게도 개를 키우는 주인과 반려견도 눈을 서로 바라보면 옥시토신 수치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연구는 2015년 사이언스에 실려 주목을 받았었는데, 사람과 강아지가 친밀하게 지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과학적으로 밝힌 연구결과가 되었다. 이 연구의 중요한 의미는 인간과 다른 종 사이에서도 호르몬에 의한 유대가 발생한다는 것을 처음 보여준 것인데,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의 눈을 바라본 개의 옥시토신 수치도 높아진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개도 사람의 눈을 보며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개를 기르는 주인과 개가 닮는다는 통설이 있다. 개주인과 실제 살고 있는 개의 사진, 같이 살고 있지 않는 사진 40장을 500명에게 보여준 결과 80%의 사람들이 실제 개주인과 살고있는 개의 사진을 맞추었다. 틀린 비율이 20%에 불과했다. 개 주인과 함께 살고 있는 개가 사람과 닮는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사람과 강아지의 얼굴 중에 입을 가린 사진을 보여주니 사람들의 정답 비율은 73%였다. 눈을 가린 사진을 보여주니 정답비율이 급격히 떨어졌는데, 답을 맞추어도 우연히 맞추는 수준이었다. 즉 눈을 가리니 개와 개주인의 닮은 점을 알 수 없었다는 뜻이 된다.서로를 바라보며 사랑을 키운 사람과 개는 닮아가는 모습이 있는 것일까? 이것을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순 없지만 개의 눈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정보가 들어있다고 표현된다.강아지의 눈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데 눈짓 하나로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헝가리 로란드대학교의 과학자 아담 미클로시는 생후 9주가 되지 않은 새끼늑대와 강아지가 닿을 수 없는 위치에 먹이를 두고 먹이를 먹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먹는것에 실패가 거듭되자 강아지와 새끼늑대가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강아지는 옆에 있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강아지들은 본능적으로 사람의 눈을 쳐다보았고, 새끼늑대들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강아지들은 본능적으로 사람의 눈을 바라보면 도와준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강아지들은 일상생활에서 번갈아 보기(gaze alteration)의 방법을 알고 있는데, 자신이 원하는 것에 닿을 수 없으면 이 방법을 흔히 사용한다. 맛있는 간식이 식탁 위에 있는데 올라가지 못할 때 강아지는 원하는 것을 보았다가 그다음은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그 동작을 반복한다.이동훈사이가 좋지않은 사람들끼리는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 하루에 단 한번도 서로의 눈을 안보는 가족들도 세상에는 많이 있다. 개와 눈을 맞추며 돌보는 일은 사람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게 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사람의 감정이 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로써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게 되는 것이다. 미국 덴버의 교도소에서는 ‘교화훈련K-9 반려프로그램’이라는 개 훈련 프로그램을 실시중이다. 개와 함께 지내고 개를 훈련하고 개들에게 최고의 삶을 선사하는 일을 책임지게 하여 재소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주는 것이다.자존감을 되찾고 바깥세상에서 새 삶을 준비하려는 수감자들은 방치된 개 집단을 다루고 돌보는 과정에서 사람과 개의 유대관계가 가져다주는 긍정적 효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들은 개들과 눈을 맞추며 큰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개를 바라보며 가지게 되는 치유능력을 우리사회에서도 잘 활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서라벌대 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10-29

과학은 야박해!

자연을 닮으려는 노력 속에서 과학기술은 발전해왔다. 넓은 견지에서 보자면 옷은 동물의 가죽을, 비행기는 새를, 전기는 번개를 모방하려는 노력의 일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은 자연을 모방하는 낮은 차원에서 시작해서 자연을 개선해 자연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해 나간다. 그렇게 과학기술은 도약한다.유물론자인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발전 5단계설을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이렇게 단계를 구분한 이유는 단계를 거칠 때마다 생산력이 급격히 증대되었으며, 이러한 생산력 증대를 가능하게 만든 새로운 형태의 생산수단이 출현했고, 이를 중심으로 한 사회관계가 새롭게 형성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이란 말 그대로 생산을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이며, 사회관계란 그 도구를 소유하는 사람과 소유하지 않은 사람의 관계다.역사발전의 제1단계에 해당하는 원시공산사회는 생산력이 가장 낮은 단계였는데, 생산수단이라 할 만한 도구가 따로 없었다. 인간의 육체가 곧 생산수단이었는데, 남성은 사냥을 하고 여성은 채집을 했다. 이러한 생산수단은 모두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계급없는 무계급의 사회였다.제2단계인 고대노예제사회에서 생산수단은 토지였으며, 토지를 소유한 사람은 주인으로 군림했다. 그래서 고대노예제사회에서 핵심적 사회관계는 노예와 주인의 관계였다. 이 시기부터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가 대두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중세봉건사회에서 영주가 착취를 하고 농노가 피착취의 대상이었으며, 생산수단은 장원이었다.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대가 자본주의 사회다. 공장을 생단수단으로 하여, 공장을 소유한 자본가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대립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시대에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은 필연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자본가들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은 지나치게 많이 투자하거나 지나치게 많이 축적하게 되어 결국에는 경제공황을 낳으며 스스로 자멸해 갈 것이라 보았다.마르크스의 역사 5단계설은 두 가지 잘못을 범하고 있는 듯하다. 우선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가 점진적으로 발전한다는 아주 순진한 생각을 했다. 인간의 역사나 인식은 발전하기보다는 변화한다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인간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기도 하며, 특정한 국면에서 비인간적이며 야만적인 일을 저지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때 독일이 유대인에게 행한 것이나,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서 벌인 다양한 전쟁범죄들은 차마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으며, 차마 인간으로 저지를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변화한다. 그리하여 퇴보를 향하기도 한다.다른 하나는 마르크스가 과학기술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증기기관이 기술의 최대치로 보았던 것 같다. 노동자 중심의 공장이 노동자들을 단결시켜 혁명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전 같으면 1천명의 사람이 일해야 했다면 이제는 100명 아니 10명으로, 더 나아가서는 무인공장으로 바뀌고 있다.오늘날 생산수단은 더 이상 공장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심 역시 중요한 생산수단이 될 수 있다.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많은 욕구가 분출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인간이 밀접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은 그렇게 많지 않으며, 1천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 또한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인터넷에 마련된 플랫폼에는 수천 만, 수억 명의 사람이 몰려든다. 이러한 가상의 공간이 새로운 생산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발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과학기술이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다시 마르크스로 돌아가 보자. 마르크스는 역사의 발전단계를 5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마다 혁명이 있었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혁명이라고 불리는 것들에는 러시아혁명, 명예혁명, 미국독립혁명, 청교도혁명, 프랑스 혁명, 쿠바혁명, 4.19 혁명, 문화혁명 등이 있다. 이러한 혁명은 기존의 나쁜 지도자를 몰아내거나 새로운 정치체제를 도입했을 때, 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뀔 때를 일컫는다. 이런 식이라면 혁명은 많아도 너무 많다.그러나 과학기술은 혁명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아낀다. 예컨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는 엄청난 인식론적 전환 앞에 대해서도, 문명발전의 기반이 되었다고도 해도 좋을 전기가 상용화 되었을 때도 혁명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다. 인간에게 엄청난 편익을 제공한 자동차나 컴퓨터가 발명되었을 때에도 혁신(innovation)이라고 부를 뿐, 혁명이라고 명명하기를 꺼린다. 과학기술은 크게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 국한하여 혁명이라는 지위를 허락하고 있다. 왜 이렇게 과학은 혁명이라는 말에 야박한 것일까? 과학에서 말하는 혁명은 특정한 변화가 인간 개개인의 삶을 바꿀 뿐만 아니라 집단의 변화로 나아가는 현상, 그리하여 기존의 삶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이 등장하게 될 때를 혁명이라고 부른다.

2019-10-29

진정한 철강경쟁력의 원천에 대하여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세계 각국은 글로벌 경제가 활력을 잃거나 자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될 경우 가장 먼저 보호에 나서는 산업 중 하나가 철강 산업이다. 이는 ‘철’이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정도로 해당국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공산품의 경쟁력을 담보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간 18억t이라는 세계조강생산량의 절반인 9억t 가까이를 생산하는 중국도 각국의 수입규제조치로 2015년 9천713만t의 수출초과를 기록했던 강재무역이 2018년에는 45.56%가 감소한 5천287만t으로 급감하였다.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초과 물량도 2015년 935만t에서 2018년에는 65.56%가 줄어든 322만t에 그쳤다.그런데 이처럼 세계시장에서 막대한 강재수출초과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이 지속적으로 수입초과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일본에 대한 중국의 강재 수입초과물량은 2015년 시점 433만t에서 2018년에는 8.77%가 증가한 471만t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경기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각국의 철강 산업에 대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됨에 따라 중국의 세계 시장에 대한 강재수출이 빠르게 위축되자 자국 철강 산업의 보호에 나선 중국임에도 유독 일본산 강재 수입만큼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오로지 일본산 강재만이 고품질, 고부가가치제품이기 때문일까. 이는 피상적인 분석에 불과하다. 일본 철강 산업이 지닌 경쟁력의 원천은 따로 있다. 일본 철강업체가 중국으로 수출하는 강재 대부분은 일본의 자동차, 건설기계 등 철강재를 소비하는 전방산업에 해당하는 일본기업의 중국 현지공장들과 처음부터 끈끈하고 치밀하게 연결된 글로벌 공급 사슬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일본 철강업체들은 개도국에 일관제철소를 지어주는 동안 수출실적을 늘릴 수 있는 일시적인 전략은 거의 채용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해당 국가에서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명목으로 철강에 대한 보호주의를 발동하게 되어 제 발목을 잡는 행위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해외시장 진출 전략은 일견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철강기업 단독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노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보다는 자동차, 기계금속, 조선 등 자국 철강수요산업의 기업들과 항상 소통하면서 그들의 해외 공장 설치 단계부터 가장 적합하고 필요한 강재의 필요물량을 가늠하여 현지 조달에 어려움이 없도록 부분품이나 중간재 생산을 지원하는 맞춤형 동반진출 전략을 선호한다. 그러한 전략은 일본 국내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신제품 개발을 추진하는 기업에 필요한 강재를 공동개발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철강업체는 강재개발단계부터 판로를 확보하고 연구개발비까지 절감하는 일석이조를 거두는 셈이다.포항의 철강 산업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연구개발을 통한 고품질, 고부가가치 강재를 개발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부터라도 국내외 수요기업들과 보다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강재를 개발, 공급하는 맞춤형 공급 사슬을 형성하여야만 포항 철강 산업의 경쟁력이 원천적으로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2019-10-29

기대치를 낮추면

기대치 위반 효과(Expectancy violations theory)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그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 더 큰 실망과 분노로 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인간관계는 상대방이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것이라는 심리적 계약을 맺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약이지만 이런 기대치가 충족이 되지 못할 때 실망감이 형성되고 관계는 더 이상 발전되지 않습니다. 능력에 벗어나는 일을 장담하거나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함부로 꺼내지 말아야 하겠지요.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을 때 애매모호한 태도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행동도 지혜롭지 못합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관계가 악화되는 이유는 상대가 나에게 실망하거나 내가 상대에게 실망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원인은 각자의 기대치에 서로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기의 맑은 미소를 떠올려 보세요. 왜 우리는 갓 태어난 아기 모습에서 즐거운 감정을 느낄까요? 당장 이 아이가 어떤 훌륭한 행동으로 나를 만족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서로 행복한 거지요. 아기도 웃고 나도 방긋 웃으며 화답합니다.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욕심이 끼어들지요.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온갖 기대치가 매일 마음을 파고듭니다. 잔소리를 하게 되고 맑은 미소와 행복감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합니다.무언가 베풀고 있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상대 반응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게 마련이고 실망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기대치를 낮추면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감사를 느끼며 좋은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눈빛 하나에도 기쁨이 오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아낌없이 베풀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깨끗한 마음이 관계의 지혜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9

지역미술계의 새바람 ‘대안공간’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최근 대구 수성아트피아 갤러리에서는 2010년을 전후해 대구·경북에서 결성된 ‘B커뮤니케이션’과 ‘보물섬’이란 대안공간의 소속작가들 작품과 그 동안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전이 함께 마련되었다. 이를 통해 동시대 지역미술의 방향성과 젊은 미술그룹이 갖는 시대적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지역 신진작가의 그룹 활동에 대한 방향성 모색’이라는 세미나도 개최되어 10년간 지속해 온 두 단체의 활동내역과 성과, 지역미술계에 끼친 영향 등을 되짚어 보는 토론의 장도 가졌다.1990년대 국내 대안공간이 미술시장과 전시문화의 환경 변화에 의해 자생적으로 개관되었다면, B커뮤니케이션과 보물섬은 2010년 전후 전시기획과 아트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큐레이터의 기획부터 활동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창작활동과 전시기획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에는 제한된 사회적 여건과 개인중심의 작가 창작환경으로 턱없이 부족함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젊은 기획자의 열정과 용기만으로는 다변화되어 가는 미술문화와 작가들의 요구를 수행해 나가기에 더없이 많은 한계를 스스로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이번 기회를 빌려 그들에게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기획자 정세용은 2009년 ‘별의 별 시장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방천시장과 인연을 맞은 후 B커뮤니케이션이라는 작업실을 마련해 다채로운 창작활동과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하며 대안공간 운영을 시작했다. 2013년 ‘RUN+8展’에 이은 2015년부터의 ‘Bcom Artist Run Space展’은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발표의 장이 되었다. 지금은 동성시장 프로젝트와, 방천예가 운영까지 믿으며 대안공간의 발전가능성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대구와 인근 지역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을 중심으로,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전시활동을 위해 2010년 결성된 ‘썬데이페이퍼’그룹은 전시 기획자 최성규에 의해 운영되어오다 2016년 해체되었다. 그리고 미술중심공간 ‘보물섬’을 경산시장 인근에 새롭게 마련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국내 대안공간의 역사는 짧지만 대부분 상업화랑에 반발해 비영리 전시공간을 표방하며 활동 중이다. 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정부 지원금이나 기업체 기타 단체 등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특징으로 인해 나날이 인기는 높아지는 추세이다. 이러한 대안공간들의 운영체제는 재능이 있는 신진작가들을 발굴·육성하고 이를 통해 동시대 미술이 국제적 현대미술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는데 일조하려는 자발적인 미술운동이기도 하다. 이들 두 단체가 한국미술의 흐름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설립됐거나 정치적 배경 속에서 결성된 그룹이 아님을 익히 알고 있기에 그들의 활동이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그리고 두 단체의 기획전과 이를 통해 배출된 작가들의 작품성향, 창작활동 영역은 지난 10년간 지역미술의 발전에 절대적 공헌을 한 점 역시 지극히 고무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2019-10-29

교육개혁, 또 방향을 잘못 잡은 것 아닌가?

박준섭 변호사지난 25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교육개혁관계장관회의 결과가 발표됐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2025년도 고교학점제 도입과 함께 일괄 일반고로 전환하고, 수시비율이 높은 서울 소재대학은 정시 수능 전형비율을 상향조정할 방침이라고 했다. 벌써부터 서울권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정시 40%선을 맞출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이러한 정책방향은 깜깜이로 상징되는 수시입시제도가 불공정하다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사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시 뿐만 아니라 정시 입시제도도 모두 불공정하다. 정시는 어릴 때부터 좋은 학원에서 선행과 무한반복으로 연습한 강남의 아이들에게 절대 유리하기 때문이다. 수시의 불공정성은 조국장관 사태에서 얼마나 불공정하게 운영되고 있었는지 국민들이 여실히 확인했다. 수시제도가 그동안 많이 개선됐다지만 깜깜이로 상징되는 불공정성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가 현재의 수시와 정시라는 틀에서 개혁의 방향을 맞추고자 한다면, 오히려 수시의 지방균형, 지역균형선발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강남과 비강남,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나누고 비수도권도 교육우세지역을 나누어 지역균형선발 비율을 획기적으로 70∼80%로 늘리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교육우세지역의 인구가 기존에 성과가 낮은 학교를 찾아 분산될 것이고, 그러면 강남 집값도 상당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 지방균형발전에 가장 유효한 정책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제도 시행 초기에는 학교마다 격차가 있겠지만 차츰 평준화되어 갈 것이다. 실제 지방균형선발로 입학한 학생들이 대학 3, 4학년에 이르면 성취도에 격차가 없다는 보고도 있다. 지방균형 선발도 학교에서 특정학생에게 혜택을 몰아주는 등 불공정 시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를 도입해 국제적 기준으로 엄격하게 내신을 평가하는 방안이 함께 도입되면 이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 방안은 미래의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는 교육제도개혁도 동시에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지금의 상태에서 자사고와 외고를 폐지하는 정부안은 강남쏠림 현상이 심해져 강남 집값은 더 인상될 것이다. 교육부가 강남과 비강남 사이의 실질적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눈감은 채 자사고와 외고 등의 형식적 차이만 보려고 하니 사태가 더 꼬이는 것이다. 외고, 과학고 등 특목고의 문제는 선행학습과 스펙으로 무장된 부유층이 아니라 학습능력은 있으나 가난한 인재들에게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는 학교로 만든다면 전혀 문제가 없다.문재인 정부의 정책목표는 공정인데도 불구하고 이번 교육개혁의 결과는 대한민국을 강남중심의 더 불공정한 사회로 만들 것이다. 정책목표와 정책시행결과 사이의 불일치가 또 한 번 일어날 것같다. 문재인 행정부는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개혁을 위한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019-10-29

외로운 섬 독도

독도(獨島)는 한자 뜻으로 풀면 외로운 섬이다. 우리나라 동쪽 끝의 섬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4km 떨어진 홀로 섬이니 외로운 섬이 맞다. 그러나 독도의 독은 홀로 독(獨)이라는 한문 표기와 상관없이 한자의 소리를 빌려 쓴 글자라 한다. 본래 뜻은 돌(石)의 서남지방 방언인 독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돌섬이라는 말이다. 바둑의 옛말이 바독인 것으로 미뤄보아 독은 돌의 고어형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최근 일본과의 무역 갈등이 커지자 독도를 찾는 국민이 급증하고 있다. 9월 현재 독도 땅을 밟은 관광객은 20만명을 넘었다. 독도 관광객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고라 한다. 독도 관광객은 한일관계가 경색을 보일 때마다 급증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무역 도발이 시작된 이후 독도 관광객이 늘어난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일본은 우리의 독도를 자신의 땅이라고 억지 주장을 한다. 시네마현 오키군에 딸린 다케시마 섬으로 한국이 강제 점령했다는 주장이다. 우리 정부는 분쟁거리조차 안 된다며 일축한다.얼마 전 정부는 관공서 및 공공기관 홈페이지에 사용된 독도와 동해의 오류표기를 긴급 수정하라 지시했다. 일부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경고도 보냈다. 독도가 우리 땅인데 대한 공공기관의 엄중한 인식을 촉구한 조치다. 그러나 독도를 바로 알리고 지키기 위한 정부의 예산은 거꾸로 가고 있다. 경북도가 신청한 독도관련 13건(323억원) 예산 가운데 겨우 6건(65억원)만 내년도 국가 예산안에 반영됐다는 소식이다. 독도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수호의지는 오간데 없는 모습이다. 독도의 실효적 지배는 예산 수반이 필수다. 독도를 외로운 섬으로 그냥 방치하겠단 것인지 정부 속을 알수 없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10-29

영조의 인재등용 지혜를 배워야

강희룡 서예가영조(1694∼1776)가 스스로를 반성하는 한편 세자를 가르칠 목적으로 유교경전과 역사서에서 수신과 위정에 관련된 내용을 주제로 자신의 견해를 기록한 책으로 어제자성편(御製自省編)이 있다.이 책에서 영조는 수신의 요체를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 보았고, 위정의 요체를 기미(幾微)를 살피는 것으로 보았다. 기미를 살핀다는 것은 선악이 나뉘는 조짐을 살핀다는 것으로 선한 인재를 변별하고 등용하여 국가를 다스리는 바탕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영조는 젊은 시절부터 노론과 소론의 격렬한 당쟁을 목도하였고, 왕세제(王世弟)가 되어서는 충신과 역적의 시비로 발생한 신임사화(辛壬士禍)의 참상을 몸소 겪었다.이를 통해 어느 당파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왕으로 즉위하자 탕평책을 시행했다. 사적인 호오(好惡)나 당파의 이익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선악에 따라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민생정치로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였던 것이다.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선생의 1569년(선조1) 부교리(副校理)를 사직하는 상소에서 인재등용에 대해 잘 기록하고 있다. 임금은 등용하려는 사람에 대해 국민 모두가 적합한 사람이라고 평가해야 하며, 반드시 훌륭한 점이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고서 그를 등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널리 자문하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등용되는 신하 역시 자신의 능력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군주와 함께 국가발전의 업적을 성취하는 것에 내 능력이 적임자가 아니라면 즉시 물러나서 자신을 수양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임금은 어진 인재를 찾는 것을 급선무로 삼아 작위와 봉록을 함부로 내주어서는 안 되며, 신하는 스스로의 지조를 지키는 것을 뜻으로 삼아 이익과 명예를 위해 과분한 자리를 받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날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서 임금이 잘못 등용하는 실수가 없기에 신하가 벼슬자리에서 놀고먹는 경우가 없었던 이유이다.자리나 재물에 대해 구차하게 얻으려고 하지 말며, 어려움을 당하여 구차하게 모면하려고 하지 말라는 예기 곡례(曲禮)편에 실린 교훈이 생각난다. 이 구차함은 크게 둘로, 하나는 밖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의식주와 같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고위직 자리나 재물을 얻으려는 것에 대해 말하면 이것들은 밖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얻겠다고 자신과 약속한 일이라면 그 일 또한 나 자신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번듯함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겉멋을 부리려든다면 그 삶이 얼마나 초라하겠는가.군부독재에 항거하여 민주주의논리를 폈던 상당수 80년대 운동권들은 짧은 고난으로 긴 영예를 누렸다.신념을 위해 권력과 싸웠던 그들이 이젠 권력의 중심에서 사실을 조작하려고 한다. 오늘날처럼 공직자의 자질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인재 등용의 중요성과 방법을 제시한 영조와 율곡의 글은 ‘조국사태’로 혼란스러운 지금의 우리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9-10-28

공부를 즐겁게 하려면?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不亦說乎(불역열호)의 공자 말씀처럼 배우고 익히면 즐거워야 하지만 실제로는 공부가 즐겁지 않은 경우가 많다. 왜 공부가 즐겁지 않을까? 공부하는 내용이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삶과 연관 있는 공부는 어떤 공부일까? 미국 위스콘신 주의 메디슨 시(市) 고등학교에서 시의 중심지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공연장, 가게, 공원, 관공서, 대학 등이 자리 잡은 작은 도시를 재개발하는 프로젝트였다. 디자인 대상인 시 중심지가 학습자에게 친숙한 장소였으며 학생들 간에 도시의 활성화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메디슨 시의 역사, 지리, 경제 뿐 아니라 물리나 건축학 같은 지식이 필요했다. 이처럼 지식 습득 자체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학습자가 자신의 삶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학습자에게 의미 있는 공부가 될 수 있다. 초등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이 글을 습득하도록 그림 그리기를 가장한 철자 쓰기, 놀이를 가장한 수 세기 등의 학습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하지만 아이들은 놀이를 가장한 공부라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아이들이 무의미하게 철자를 따라 쓰거나 숫자를 읽기보다는 생일날 친구를 초대하기 위해 초대장을 쓰고, 좋아하는 과자의 가격을 읽어 보는 것처럼 배움이 아이들의 삶과 연관될 때 더 효과적일 수 있다.혹자는 ‘학생의 일상 삶과 무관하게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지식이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식의 본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학습자가 배워야 할 지식은 달라진다. 단순하게 논의하면, 지식이 절대적인가 아니면 상대적인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지식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불변하며 절대적이라고 간주할 경우 학습자가 배워야 할 지식의 목록은 고전이나 전문가가 구성한 교과 내용이다. 하지만 지식이 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하여 상대적이라고 간주할 경우 오늘 과학이라고 믿었던 내용이 내일 사실 관계가 뒤집힐 수 있으므로 학습자가 배울 지식은 학습자가 속한 사회문화나 일상의 삶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산에 사는 아이는 식용 가능한 식물의 종류나 산을 오르내리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 반면, 바닷가에 사는 아이는 생선의 종류, 항해할 수 있는 날씨, 생선을 잡기 위한 도구를 알아야 한다. 배움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학생들을 줄 세우고 우열을 가리기 위한 것인가? 학생이 일상에서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함인가? 이 질문의 대답이 교육 방법과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일단 잘 놀아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놀이에 흠뻑 빠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저녁 무렵 골목길에서 해가 지는 것을 잊을 만큼 놀이하던 경험 말이다. 그 놀이는, 어른의 간섭 없이 여러분 방식대로 진행하던, 순전히 자기-주도적인 놀이였을 것이다. 놀이를 통해 길러진 자기주도성은 훗날 자기주도적인 학업과 책임감 있는 직장생활로까지 이어진다. 놀이에 흠뻑 빠졌던 여러분도 지금 책임감 있는 성인이 되어 있지 않는가.

2019-10-28

미소(2)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나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미소를 지은 채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 또한 그에게 미소를 보내면서 그가 단순히 한 사람의 간수가 아니라 살아있는 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도 새로운 차원이 깃들어 있었다.문득 그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에게도 자식이 있소?” “그럼요, 있구말구요.” 나는 얼른 지갑에서 나의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그 사람 역시 자기의 아이들 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앞으로의 계획과 자식들에 대한 희망 같은 것을 얘기했다.내 눈은 눈물로 가득해졌다. 나는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했다.내 자식들이 성장해 가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고. 이윽고 그의 눈에도 눈물이 어른거렸다.갑자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감옥 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나를 조용히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소리 없이 감옥을 빠져나가 뒷길로 해서 마을 밖까지 나를 안내했다. 마을 끝에 이르러 그는 나를 풀어주었다. 그런 다음 한마디 말도 없이 뒤돌아서서 마을로 걸어갔다. 그렇게 해서 한 번의 미소가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작가 생텍쥐페리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입니다. 그 미소의 기적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어린왕자’를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엘라 휠러 윌콕스는 말합니다. “웃어라 그러면 세상도 그대와 함께 웃는다. 울어라 그러면 그대 혼자 울게 된다.” 우리 안면 근육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굳어지게 마련입니다. 굴러가는 낙엽에도 깔깔거리며 웃고 말았던 어린 시절의 감성을 살려낼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밝은 웃음은 주변을 맑히고 빛내며 타인의 마음속에도 작은 행복의 씨앗을 심어주는 가장 큰 사회 공헌입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멋진 일을 시작해 볼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8

죽음마저 극복한 음악 구스타프 말러(下)

말년의 구스타프 말러.말러는 위대한 작곡가가 되기를 열망하던 친구의 비극적인 죽음을 보며 안정적인 음악가로서의 생활을 위해 지휘자가 되려고 결심한다. 그리고 당시 작곡가로보다 지휘자로서 더욱 명성을 얻는다. 그는 빈 필하모닉과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극장 등 최고의 무대에 서는 지휘자였으며 차이콥스키가 그의 오페라 ‘에프게닌 오네긴’의 초연을 직접 맡아줄 것을 부탁하는 등 지휘자로서의 커리어가 매우 높았다. 말러는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자신의 작품이 당시에는 기대만큼 평가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필자뿐만 아니라 고전적 교향곡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 말러의 교향곡을 처음 들으면 대부분 난해하여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시의 평가는 약간 달랐다. 오히려 말러가 사용했던 선율은 너무 단순하고 서민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선율이 단순한데 비해 화성의 메커니즘은 매우 복잡하고 악장의 구성이 확대되고 배치가 철학적 구성을 지니고 있는데다 연주 시간이 매우 길어 보통의 청중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예술가의 시련은 같은 렌즈를 보더라도 시력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이듯이 시대에 따라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중들의 스펙트럼이 다르다는 데 있다. 가장 복 많은 예술가는 시대의 스펙트럼과 자신의 작품이 일치하는 인물일 것이다. 말러의 작품도 당시에 외면당했으며 20세기에 들어와 유럽에 불어 닥친 반유대주의의 광풍으로 고의적으로 제외된 측면도 많다. 말러의 음악은 세기말적인 탐미주의가 가득하며 희망과 절망, 죽음과 부활, 열정과 염세주의 등 철학적이고 모순된 내용들로 가득 차 있으며 이전 교향곡 작곡가들의 서사적이고 논리적인 플롯을 완전히 벗어난다.그는 보헤미아의 유태인이었다. 당시 유태인들이 받던 차별에서 그도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칼리슈테에서 태어나 작은 농촌 마을인 이글라우에 이사해 성장했다. 이글라우는 당시 헝가리-오스트리아 제국의 군인들이 프라하에서 빈으로 이동하던 길목에 있었으며 이러한 환경적인 요소들은 말러의 음악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의 음악은 ‘교향곡 7번’ 5악장에 나타나듯 금관악기와 타악기의 ‘군악적인 요소’와 시골 마을에서 성장한 덕분에 ‘농민의 춤곡’인 란틀러(Landler)를 비롯한 민중의 춤과 관련된 요소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유태인의 종교의식인 ‘시나고그’의 영향을 받은 ‘유태인의 음악적 요소’들이 목관악기 곳곳에 나타난다. 말러는 아버지가 선술집을 운영해 거리를 떠돌던 장사꾼들이 자주 드나들어 어린 시절 그들이 즐기던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말러의 작품에는 위에서 언급한 민중들의 생활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으며 이전까지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음향으로 표현된다.필자가 가장 사랑하는 말러의 작품이 있다. 바로 말러의 ‘아다지에토’라고도 불리는 ‘교향곡 제5번’의 4악장이다. 말러는 뒤늦은 나이인 40세에 그토록 열망하던 20세 연하의 아름다운 여인 알마 쉰들러와 결혼한다. 그녀는 결혼 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작곡가였던 A.폰 켐린스키 등과 염문을 뿌리던 예술가들의 뮤즈였으나 말러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국은 결혼한다. 결혼 6년 뒤 장녀가 사망하는 등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으나 이 곡은 그녀와 결혼하고 난 후 가장 행복한 순간에 작곡된 곡이다. 바그네리안적인 대규모 편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하프와 현악 합주로만 구성돼 사랑을 노래한다. 마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계속해 노래되며 사랑을 절정으로 이끌며 행복한 사랑을 노래하다가도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한다. 현실적인 사랑을 넘어 죽어서도 계속될 것 같은 불멸을 노래한다.말러는 19세기 말 교향곡이 꺼져가려고 할 때 교향악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며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으며. 교향곡의 형식은 전통을 따랐으나 그 음악적 내용은 표제적인 모습을 담았다. 베토벤이 음악에 자유와 정신을 심었다면 말러는 그가 경험했던 인간 본연의 모습들을 음악에 담았으며. “중요한 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단호하게 가는 것이다”라고 그가 말한 것처럼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교향곡의 마지막 숨결을 이끌며 교향곡의 아름다운 가치를 묵묵히 세상에 외친 사람이다. /문양일 포항예술고 음악교사

2019-10-28

무소의 뿔은 고독하다 - 청도 대비사(大悲寺)

중년의 여자가 홀로 걷는다. 아무런 보호 장치 없는 차로를 묵직한 배낭 하나 메고 걷는 모습이 잘 여문 가을을 닮았다. 마른 꽃잎 같은 여인이 발걸음을 뗄 때마다 탑이 쌓인다.여인은 큰 길을 따라 걷고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안고 대비사를 향해 마을 어귀로 들어선다. 눈길 닿는 곳마다 해묵은 그림처럼 정감 넘치는 가을 풍경이 기도가 되어 따라온다. 그곳이 비록 초행길이라 할지라도.길은 대비지 푸른 어깨를 타고 굽이굽이 이어진다. 수심 깊은 호수에는 하늘의 낮별들 죄다 내려와 반짝이며 수다를 떨고, 일찍 물든 단풍은 무심히 붉고 외롭다. 내 안에 숱한 그리움들 몰려나와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깨달음이란 없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 호젓한 물결이 내게 속삭인다.호수와 헤어지고 골짜기로 접어들 때, 일주문과 천왕문을 대신하는 사천왕상이 길을 막는다. 심란하고 소소한 탐욕들 죄다 접어 호수 위로 띄워 보낸 뒤라, 나를 검문하는 사천왕상의 눈빛은 한없이 너그럽다. 용소루 처마 끝에서 빈몸으로 허공을 가르며 울어대는 풍경처럼 오늘은 몸도 마음도 가볍다.누하진입식의 용소루를 지나 너른 마당을 가로지르면 적당한 높이의 기단 위에서 강렬한 눈빛이 나를 맞는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의 조선 중기 건축물인 보물 제 834호 대웅전이다. 오랜 그리움 품고 피어나는 한 떨기 꽃처럼 대웅전의 자태는 단아하면서도 흔들림이 없다.텅 빈 마당에 서서 대웅전을 바라본다. 눈 밝은 사람이 아니면 찾아올 수 없는 이곳, 영겁의 세월을 외로이 떠돌았을 독백 하나, 허기진 날들을 견디고 비로소 닻을 내린다. 인연의 끈을 붙잡고 다가오는 숨결처럼, 전생에 한번쯤 다녀갔을 법한 절이다. 어쩌면 나는 이곳에 오기 위해 그토록 많은 사찰을 스쳤던 것은 아닐까.절은 신라 진흥왕 18년(557년) 한 신승이 호거산에 들어와 대작갑사(현 운문사)를 중심으로 오갑사(대작갑사, 천문갑사, 소작갑사, 가슬갑사, 소보갑사)를 지었는데 서쪽의 소작갑사가 오늘날의 대비사다. 진평왕 22년에 원광국사가 중창하며 대비갑사로 바꾸었다는데,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라는 뜻으로 지어진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 왕실의 대비가 수양을 위해 이 절에 오랫동안 머물러 대비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도 한다.호거산 품안의 박속마냥 적당한 크기의 절이 말없이 나를 안아주고 대웅전은 길고 길었던 침묵을 위로하듯 손을 내민다. 빨려들 듯 법당으로 들어가 겨우 삼배의 예를 갖춘다. 이 아늑하고 뜨거운 기운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웅전이 내 안으로 성큼 들어오고 나는 대웅전의 품에 안긴다.요사채는 인기척이 없다. 새로 지은 듯한 뒷산 선원은 가을날의 빈집을 지키듯 허공만 응시하고, 감로수 떨어지는 소리가 염불을 대신해 천년고찰을 밝힌다. 고색창연한 단아함과 깊고 그윽한 우수가 겹쳐 기품이 묻어난다. 안쓰러움이나 비굴함 따위는 결코 허락하지 않을 듯 간결하고 남성적이다. 스스로의 결을 지켜내기 위해 묵언수행하며 고독을 사랑하는 사찰이 마음에 든다.시대에 편승하며 속세와 물꼬를 트는 일에 중독된 생기발랄한 사찰들과는 달리, 사찰로서의 본질과 정체성을 놓치지 않고 도약하려는 꿈틀거림이 보인다. 절 뒤편에 우뚝 솟은 기개 넘치는 억산의 형세도 대비사와 닮았다. 대웅전의 시선은 앞산 너머 운문사를 향해 있지만, 승천하는 용의 품에 안겨 절대적인 자유를 꿈꾸고 있는 것 같다.입구를 지키는 느티나무 옆 오솔길을 따라 11기의 고승대덕들의 부도밭에 들어서면 가을이 물들고 낙엽 지는 소리가 내 안에서 들린다. 부도밭의 맑고 고요한 분위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을 즈음, 용이 되어 승천하려다 이무기로 변한 상좌의 억울한 전설을 간직한 억산 봉우리의 깨진 바위로 향하는 등산로도 한번쯤 걸고 싶다.절 뒤 숲에서 마애 아미타삼존불입상을 조성하는 돌 깎는 소리가 천년의 꿈을 안고 몇 번이나 날아오르다 숲으로 떨어져 잠든다. 그의 손길에서 태어날 마애불을 위해 날마다 정성스런 기도로 하루를 열 석공을 생각한다. 아사달의 애절한 전설만큼 불심 가득한 석공에게 간절한 염원 하나 있어, 천년을 밝혔으면 좋겠다.조낭희 수필가주지 스님은 출타 중이다. 공양주보살도 절일을 돕는 처사님도 없다. 단출한 살림에 문화재를 관리하는 분 홀로 절을 지킨다. 주지 스님을 뵈러 다음 날 다시 절을 찾았을 때, 대웅전의 눈빛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고, 주지 스님은 번잡한 만남은 피한다는 전갈만 보내 오셨다.눈 밝은 자 스스로 찾아와서 스스로 기도하고 공부하면 된다는, 문턱 높은 꼿꼿함이 싫지 않다.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 젖은 걸음으로 찾아왔을 때, 대웅전이 내게 손을 내밀듯 위무해 주시기를 바라며 천천히 대비사를 빠져 나왔다.잔잔한 호수 너머, 절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 대비사의 은혜로운 향기가 멀리까지 따라 나와 배웅해 주었다. 호수에서 놀던 뭍별들 어느 새 내 안에서 총총히 뜨기 시작하고.

2019-10-28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된 과메기는 구룡포 과메기

‘과메기’는 관목(貫目), 관목어(貫目魚)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은 ‘다수설’이다. 관목은 ‘눈을 꿰뚫었다’는 뜻이다.‘정설’이 아니라 다수설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관목어에서 과메기가 시작되었다”라는 명확한 기록은 없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몇몇 기록에서는 ‘관목’ ‘관목어’를 다르게 설명한다. 빙허각 이 씨(1759~1824년)의 ‘규합총서’에서는 “청어 두 눈이 말갛게 서로 비칠 정도가 되는, 신선한 것을 관목이라고 한다. 청어 2천마리에서 관목 한 마리를 얻을 정도로 귀하다”고 했다. 빙허각 이 씨의 ‘관목’은 싱싱한, 그래서 눈이 맑고 투명한 청어다. 우리가 아는, 말린 청어, 혹은 꽁치가 아니다. 과메기가 관목어는 아니다.오주 이규경(1788~1856년)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관목’은 빙허각 이 씨와 또 다르다.“청어(靑魚)는 비늘 있는 물고기 중 가장 개체 수가 많다. (중략) 정조 무오, 기미년 간(정조 22~23년, 1798~1799년)에 다시 쏟아져 나오니 천해졌다. 조기[石首魚, 석수어] 정도로 크기가 작다. (동해의) 북쪽에서 시작하여 관동 바다를 따라 내려온다. 한겨울에 영남 울산, 장기(長耆) 등에서 잡히기 시작한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어상(魚商)들이 멀리 한양으로 나른다. (중략)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연창(煙窓, 연기가 빠져나가는 창틀)에 매달아 훈제한다. 하여, 이름이 연관목(煙貫目)이다. [관목은 건청어의 속명(俗名)이다.](후략)”‘만물편_충어류_어_용어’관목, 과메기를 정확하게 설명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다. “관목은 말린 청어의 속명”이라고 못 박았다. 연관목은 재미있다. 연기 쐰 관목, 훈제 과메기다.오주와 빙허각의 이야기는 명백하게 다르다. 한 사람은 말린 청어의 속명이 관목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싱싱한 청어를 관목이라고 부른다.두 사람 모두 18, 19세기를 살았던 실학자다. 오주는 물론이거니와 빙허각 이 씨 역시 실학자로는 명문 집안 출신이다. 빙허각은 친정, 시가 모두 실학자 집안이었다. 빙허각은 어린 시동생 풍석 서유구(1764∼1845년)를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살았던, 학풍도 비슷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청어와 꽁치, 어느 것이 과메기인가?청어, 꽁치도 마찬가지다. 몇 해 전부터 “원래 과메기는 청어 말린 것이었는데, 최근 청어가 잡히지 않아서 청어 대신 꽁치로 과메기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청어 과메기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 포항, 구룡포 일대에서는 청어 과메기도 선보이고 있다.청어 과메기가 원조? 일부 사실이나, 이 역시,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다.‘청어 과메기가 원형’이라는 표현은 과장이다. 원래 청어나 꽁치 모두 과메기로 만들었다. 날생선 유통이 어려웠던 시절이다. 냉장, 냉동 설비가 없었다. 생선을 말리거나 염장(鹽藏)이 보관, 유통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조기도 마찬가지. 날 것으로 옮기지 못하고, 말렸다. 굴비다. 명태도 그러하다. 겨울에 많이 잡히니, 추운 바람에 말려서 북어로 만들어 운반했다. 말리는 과정에서 발효, 숙성된다. 곰삭은, 좋은 맛은 덤이다.등 푸른 생선은 쉬 상한다. 말리거나 염장을 해야 한다. 과메기나 젓갈 등이다.청어가 많이 잡힌다. 공물 혹은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날것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려서 대도시로 옮겨야 한다. 말린 생선, 곧 과메기다.꽁치도 마찬가지. 과메기로 만들었다. 어느 날부터 청어가 사라지니, 청어 과메기도 사라졌다. 꽁치 과메기만 남았다.꽁치는 일제강점기 이후 많이 잡았다. 일본인들은 꽁치를 ‘추도어(秋刀魚)’ 혹은 ‘삼마(サンマ)’라 하고 귀하게 여긴다. 조선 시대에는 꽁치보다 청어가 대세였다. 청어는 구룡포, 장기 일대에서도 많이 잡았다.왜 구룡포 과메기인가?‘청어관목’ ‘구룡포 과메기’에 대한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비슷한 시기, 두 종류의 문서다. 두 문서 모두 1798년(정조 22년) 10월에 작성했다. 200여 년 전이다. 지역도 비슷하다. 영일현(迎日縣)과 경주부(慶州府)다. 영일현(포항 남구 구룡포, 장기 일대)과 경주는 바다와 땅으로 맞닿아 있다. 같은 지역임에도 ‘과메기’에 대한 서술은 전혀 다르다.먼저 ‘일성록’에 남아있는 경주 부윤(慶州 府尹) 오정원(吳鼎源)의 상소다.정조 22년(1798년)10월 11일(전략) 상소의 대략에, (중략) 연읍(沿邑)에 있는 해호(海戶)의 폐단은 교남(嶠南)이 가장 심합니다. 본주(경주)의 경우에는 진상하는 청어관목(靑魚貫目)과 건대구(乾大口) 등의 종류는 본래 토산(土産)이 아니기에 이전부터 인근 고을에서 사서 옮겨 왔고, 전복(全鰒)은 토산으로 채취하여 바쳤습니다. 수십 년 전부터는 몸집이 작고 색깔이 변질되었다는 이유로 감영으로부터 퇴짜를 맞아서, 다른 곳에서 사다가 바치게 되었는데 이것이 그대로 규례가 되었습니다. 오며 가며 사들이는 과정에서 해민(海民)들에게 폐단이 되고 있는데, 각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호마다 수렴하는 돈이 도합 1800냥 남짓이나 됩니다. (후략)교남은 영남이다. 경주부 ‘연읍’ 바닷가면 지금의 감포다. 청어관목과 건대구는 이 지역의 산물이 아니다. 인근 고을에서 사서 공납한다. 전복은 생산된다. 공납하는 곳은 경상좌도 감영이다. 퇴짜를 맞으면 다른 곳 생산품을 구해야 한다. 별도로 드는 돈이 엄청나다. 해민, 바닷가 사람들에게 큰 폐단이다. 생선 종류가 많지 않다.같은 시기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영일 현감(迎日縣監) 정만석(鄭晩錫)의 상소다.정조 22년(1798년)10월 13일(전략) 영일현으로 말씀드리자면, 봉진하는 물선(物膳)으로 건광어(乾廣魚), 건대구(乾大口), 반건대구(半乾大口), 전복, 건문어(乾文魚), 관목청어(貫目靑魚), 분곽 등의 종류가 있으나 유독 본현에서 생산되는 전복은 크기가 작고 색이 거칠기 때문에 반드시 제주(濟州)에서 생산되는 것을 사 옵니다. 그런데 그 본가(本價)와 노비(路費)를 계산하면 첩(貼)당 소요되는 비용이 33냥이나 되는데, (중략) 좌도 연안의 여러 읍의 상황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분곽은 미역이다. 생선 여러 종류가 토산품이다. 그중 구룡포나 장기 일대를 포함한 영일현의 산물로 관목청어를 든다. 오히려 이 지역은 전복이 말썽이다. 제주에서 생산된 것을 사 온다. 전복 1첩당, 전복값과 경비로 33냥이 든다.같은 시기에 올린 상소문이다. 지금도 지척 간인 경주 바닷가와 포항 바닷가의 해산물이 다른 것이 흥미롭다.울산부터 북쪽의 바다까지 청어는 잡혔다. 왜 청어 관목, 과메기는 지척 간인 경주 바닷가에서는 생산되지 않고, 포항 바닷가에서만 생산되었을까? 경주 부윤 오정원이 밝힌, 과메기를 사 오는 ‘인근 고을’은 울산 혹은 포항 구룡포, 장기 일대였을 것이다.과메기, ‘바람’이 만든다‘구룡포 과메기 생산’은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일 현감 정만석이 밝힌 ‘영일현 생산 해산물’은 건광어, 건대구, 반건대구, 전복, 건문어, 관목청어, 분곽(미역) 등이다. 7가지 중, 전복을 제외하면 모두 말린 해산물이다. 전복은, 생전복도 공물(세금)로 사용했다. 색깔과 모양이 좋지 않다고 했다. 모양, 색깔을 따지는 것은 생전복이다. 대구는 건대구와 반건대구로 상세히 나눴다. 굳이 ‘건복(乾鰒)’이라고 하지 않은 것은 생전복이다.경주 부윤 오정원의 상소문 내용은 정반대다. 전복은 생산되는데, 청어관목과 건대구가 문제다. 관목, 과메기와 건대구는 모두 말린 것이다.경주 바닷가와 포항 바닷가 해산물은 전혀 다르다. ‘바람’ 차이다. 구룡포 과메기의 바탕은 ‘바람’이다.과메기의 역사는 깊다. 고려 말, 목은 이색 (1328~1396년)은 “쌀 한 말에 청어가 스무 마리 남짓으로 비싸다”라고 했다. 청어 스무 마리는 한 두름이다. ‘두름’은 ‘冬音(동음)’ 혹은 ‘冬乙音(동을음)으로 표기했다. 조선 중기 무신 정충신(1575~1636년)의 ’만운집‘에는 “곶감 1첩, 관목 4두름[貫目四冬音, 관목사동음]을 보낸다”는 표현이 있다. 곶감 100개와 과메기 80마리다. 과메기는 400년 전에, 선물로 보낼 정도로 귀하게, 그러나 한꺼번에 80마리를 보낼 정도로 흔했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10-28

애슬레저(Athleisure)

애슬레저(Athleisure)는 애슬레틱(athletic)과 레저(leisure)를 합친 스포츠웨어 용어로, 날씨가 추워질수록 운동하기에 적합하면서도 일상복으로 입기에도 편안한 옷차림을 가리킨다. 즉, 스포츠웨어와 일상복의 경계를 허문 가벼운 스포츠웨어를 이르는 말로, 기온이 낮아지면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기능성 소재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애슬레저 룩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애슬레저의 유래는 1980년대 건강 스포츠가 붐이 일어났을때 생긴 말이다. 이같은 패션이 유행하게 된 데는 스포츠의 흥미로부터 일반인들도 스포츠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여 손쉽게 레저와 같은 즐거움을 맛보자는 경향때문이라고 한다. 시대에 따라 즐기는 스포츠의 유행은 조금씩 달라지는데, 배드민턴, 테니스, 조깅, 에어로빅, 볼링, 골프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애슬레져 룩을 가장 쉽게 연출하는 방법은 하의를 스포츠웨어로 선택하는 것이다. 예컨대 조거 팬츠는 조깅하는 사람을 뜻하는 조거(jogger)와 바지를 뜻하는 팬츠(pants)의 합성어로 발목 부분을 리브(lib)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레깅스, 테니스 스커트 등을 하의로 활용하면 간단하게 애슬레져 룩을 완성할 수 있다.의류업계에서는 운동복과 일상복을 구분하지 않는 분위기에 힘입어 애슬레저 상품군의 매출이 지속적으로 신장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애슬레저 상품군 중 ‘레깅스’수요가 특히 높다. 캐시미어 레깅스와 에어코튼 기모 레깅스 등 보온성을 높이는 레깅스가 인기를 끌었다. 추워진 날씨에 근육이 수축하기 때문에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따뜻한 날씨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상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을 감안, 애슬레저 룩을 즐겨보면 어떨까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0-28

한국 외교의 총체적 위기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문재인 정부의 외교가 총체적 위기이다. 북핵 중재외교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김정은으로부터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라는 조롱만 돌아왔다. 한미동맹은 북한이 요구하는 ‘우리민족끼리’식의 외교를 추진하다보니 균열이 심화되어 동맹국 간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한일관계는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국의 ‘지소미아(GSOMIA)’ 폐기로 정면충돌하면서 우리 경제와 안보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방공식별구역’을 헤집고 다니고, 특히 러시아는 독도 영공까지 침범하였다.왜 이렇게 외교 참사가 끊이질 않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최고정책결정자의 외교환경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대통령은 외교환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위하여 외교부 및 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받는다. 이 때 대통령의 ‘가치(value)지향성’이 강할수록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태도를 가지게 되며, ‘예스맨(yes man)’ 참모들은 대통령이 원하는 정보만 제공함으로써 정책결정자의 사실(fact) 인식이 왜곡된다. 외교환경을 정확히 인식해야 하는 대통령의 ‘이미지(image)라는 필터(filter)’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현 정부의 외교는 ‘목적과 수단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다. 외교정책은 설정된 ‘목적’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미동맹의 당사자인 한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외교는 ‘중재(arbitration)’가 아니라 ‘중개(mediation)’이다.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부상도 “한국은 중재자가 아니고 플레이어(player)”라고 중재를 거부하지 않았는가. 중재외교가 동맹국인 미국에 의혹을 사고 북한에는 불신당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강제징용 배상을 둘러싼 한일갈등은 일본의 경제보복과 한·미·일 공조체제의 와해를 초래함으로써 경제적·안보적 위협이 증대되고 있다. ‘수단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고려 없이 목적의 정당성에만 의존하는 외교’는 실패를 자초할 뿐이다.더욱이 ‘외교는 내정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대통령은 외교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정치공학적으로 생각한다면 남북대화는 북핵의 엄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킴으로써 여당의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반일감정이 강한 나라에서 ‘강경한 대일외교’ 역시 동일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민주당의 민주연구원에서 분석한 “한일갈등이 내년 총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대외비 보고서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사실보다는 가치’, ‘수단보다는 목적’에 치중할 뿐만 아니라, 선거승리를 위한 ‘정치공학적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총체적 위기를 자초하였다. 이러한 외교의 실패는 단지 한 정권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안보와 국민생존을 위협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있다.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냉철한 현실인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019-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