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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생각이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힘들고 어렵다. 거친 세상에 버티고 서 있는 일마저 버거울 지경이다. 사람마다 삶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안간힘을 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여기까지 오느라 허덕였던 굽이굽이가 보이지만, 앞으로 헤쳐갈 날들도 그게 어디 쉬울까.우리에겐 좁은 땅에 사람이 또 많아 어쩌면 곱절로 힘들었을까. 여유가 없고 위로가 없으며 칭찬이 없고 격려가 없다. 경쟁과 아귀다툼으로 가득한 끝에 혐오와 차별, 질시와 반목이 넘치는 세상. 정치와 종교, 언론과 교육에 화합보다 편가름이 주제가 되고 소통보다 단절이 화두가 된다. 갈라진 편들끼리 모인 집회에서 ‘우리가 이겼다’는 환호가 들리고, 생각이 다른 상대를 향해서 ‘얻어맞지 않은 게 다행’이란다.우리는 왜 그럴까. 힘이 없던 시절 남들이 갈라놓은 민족의 운명이 역사의 덫이 되었다. 남과 북이 헤어진 것이 이토록 질긴 질곡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나뉜 둘이서 다시 뭉치면 될 줄 알았겠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아버렸다.그런 처지는 마음에도 들어와 박혀 사람들의 생각마저 갈라놓았다. 세상은 이념의 벽을 넘어섰다지만, 한반도는 갈등의 굴레에 맴돌고 있다. 이제는 역사를 놓아줄 방법이 없을까. 겨레가 갈등에서 헤어날 방도가 없을까. ‘이게 나라냐’는 물음이 내 마음대로만 돌아가는 나라를 기다리는 것일까.이긴 편과 진 편이 끝도 없이 험담과 욕설을 날리는 나라는 정상국가가 아니다. 싸움에 이겨서 좋은 게 아니라, 정말로 나라가 잘 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생각이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방법이 달라도 같은 방향을 겨냥한다. 그래서 만나고 겨루며 토론하고 협상하는 것이 아닌가.나만 언제나 맞고 상대는 항상 틀린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조절하고 수정하며 보완하고 협의하며 나아가야 한다. 완벽한 사상은 있을 수 없으며 다 틀린 생각도 불가능하다. 누구에게도 정답은 없으며 지혜는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다. 절대선을 기대해서도 안 되고 절대악으로 깔아뭉갤 일도 없어야 한다. 오른쪽도 귀하고 왼쪽도 소중하다. 새는 두 날개로 나르지 않는가. 서로 도와야 하고 함께 보태야 한다.좌우가 첨예하고 맞선 정치판에서 ‘우리는 어차피 한 편이 아니냐’라던 미국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의 생각이 보이지 않는가. 냉전이 물러간 세상에 우리만 무한경쟁에 시달린다면, 이젠 좀 겸허하게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같은 산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오르고 있었던 그 산이 다른 곳이 아니었음을 깨우쳐야 한다. 대한민국이 잘 되어야 하고 우리 국민이 행복해야 한다. 정치와 종교, 언론과 교육은 나라와 국민이 편안하고 행복한 길을 준비해야 한다. 다툼과 경쟁에 몰두하기보다 화합과 소통을 만들어내야 한다.나라 안에 대화가 통하고 격려가 넘쳐야 한다. 한 편이 쓰러지는 경기판보다 모두가 살아나는 한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같은 산’을 새기며 나아가야 한다.

2020-01-22

쥐의 해 ‘쥐’ 대신 ‘미세먼지 잡는 날’ 어떤가요?

금년 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힘이 아주 센 ‘흰쥐의 해’라고 한다. 쥐는 생명력이 강한 동물이라 먹을 복과 강한 생활력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어두운 곳에서도 활동력이 뛰어난 습성을 가졌으니 난관을 재치있게 해결하는 행운이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과거 60~70년대의 쥐는 사람들의 삶에 있어 해를 입히는 존재여서 ‘쥐잡는 날’이 있었다. 당시에는 저녁 6시가 되면 사이렌 소리가 온 동네를 울렸다. “오늘은 쥐약 놓는 날입니다. 동민 여러분은 일제히 쥐약을 놓아 주십시오.” 한달에 한번씩 같은 날에 전 주민이 동시에 쥐약을 놓아 효과적으로 쥐를 잡았다. 그런데 이제는 당시의 협동 정신과 지혜가 미세먼지를 해결하는 데 쓰여야 할 것 같다.미세먼지(PM10, PM2.5)는 WHO 지정 1군 발암물질대구경북 초미세먼지 나쁨일 수 많고, 12~3월에 집중국가기후환경회의 거쳐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시행관계부처 합동 ‘미세먼지관리 종합계획’ 역대 최강미세먼지 대구시민원탁회의 통해 합리적 대안 도출□ 고농도 미세먼지에 국가적 ‘사회재난’으로 대응작년 2019년 1월과 3월에 유례없는 고농도 미세먼지가 장기간 지속되어 미세먼지의 심각성이 어느 때보다도 크게 높아졌다. 그래서 미세먼지가 해롭다는 인식은 하게 되었지만 주배출원, 조성성분, 자연과 인간에 영향 그리고 삭감대책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잘 알지 못한다.미세먼지는 대부분 대기오염물질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고, 크기가 매우 작아서 몸속 깊이 침투하여 호흡기, 심혈관 질환 등을 유발하여 세계보건기구(WHO)는 2013년에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2014년 한 해에 미세먼지로 인해 기대수명보다 일찍 사망하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무려 700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지난해 3월 국회는 재난안전법에 미세먼지를 화재, 폭발, 교통사고 등과 같은 ‘사회재난’에 포함했다.2018년에 관측된 시·도별 초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를 보면 대구와 경북지역이 각각 22㎍/㎥와 24㎍/㎥로 전국 최대농도를 보인 충북(27㎍/㎥) 보다는 낮았으나 중상위의 농도였다. 국가에서 설정한 환경기준 농도인 15㎍/㎥보다도 매우 높다. 이와 같은 원인으로는 미세먼지 축적이 유리한 분지지형과 적은 강수량에 있고 대구경북 지역내 산업체에서의 높은 배출량도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대구경북지역을 포함한 전국의 초미세먼지 연간 농도변화를 보면 겨울과 봄철 농도가 높으며, 특히 12~3월 중 월평균 농도는 연평균 대비 매우 높은 수준(30~32㎍/㎥) 이다. 고농도일수는 연간 10~18일 발생하였는데 12~3월 중에 50~100% 집중하였다. 이러한 12~3월의 고농도 현상은 작년 1월 14일과 3월 5일에는 서울기준 일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129㎍/㎥과 135㎍/㎥로 치솟아 2015년 관측 이래 최고치를 보였다. 이에 따라 미세먼지가 국가 최우선 해결과제로 부상되었다.□ 12~3월 고농도 미세먼지에 ‘계절관리제’로 강력 대처정부는 근본적인 미세먼지 해법을 도출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 국가기후환경회의(위원장 반기문 전UN사무총장)와 국무총리소속 미세먼지특별대책위원회(국무총리·민간 공동위원장)를 조직하였다. 이들 협의체가 중심이 되어 지난 연말 관계부처 합동의 미세먼지 고농도시기(2019년 12월~2020년 3월) 대응특별대책과 미세먼지관리 종합계획(2020~2024)을 수립하였다.두 계획은 지금까지 정부에서 내어놓은 미세먼지 대책 중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의 대책들을 포함하고 있다. 미세먼지 고농도시기(2019년 12월~2020년 3월) 대응특별대책은 ‘계절관리제’로 약칭되고 있는데, 비상저감조치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고농도 극복에는 미흡하다는 판단에서 수립되었다.비상저감 조치는 고농도 미세먼지가 일정시간 지속될 경우 단기간 국내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된다. 공공기관 차량 2부제, 배출가스 5등급 차량(대부분 15년 이상 경과된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사업장·공사장 조업단축 등의 조치를 포함한다.‘계절관리제’ 기간에 고농도 미세먼지 지속 또는 악화 시에는 단계별로 기존 비상저감조치보다 더욱 강화된 추가조치가 시행된다. 추가조치는 산업·발전·수송·생활 배출원별 추가삭감, 한·중협력강화, 위기관리체계구축 등으로 고농도 상황을 최대한 완화한다는 것이 기본방향이다. 미세먼지관리 종합계획(2020~2024)은 이전 대책의 체감효과가 매우 미흡하여, 12~3월에 특화된 ‘계절관리제’뿐만 아니라 연중 국내 감축량을 획기적으로 증대하는 방향으로 사업이 추진된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적극적 동참 의지 보인 대구 시민작년 11월 25일 “시민과 함께 ! 잡아라 미세먼지, 숨 쉬는 맑은 대구”를 모토로하여 ‘미세먼지 대구시민원탁회의’가 개최되었다. 대구광역시내 8개 구군에 거주하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약 250여명이 참가하여 열띤 토론을 통해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다년간 축적된 원탁회의 노하우를 살려 참가자 의견을 효율적으로 취합하여 공유하고 합리적인 토론으로 정책 당국이 참고할 만한 대안이 제시되었다.이번 원탁회의는 미세먼지 ‘계절관리제’에 대한 참가자의 인식과 석탄발전소(미세먼지 최대배출원) 운행중단과 전기요금인상, 배출가스 5등급차량 운행제한 및 차량 2부제 등 ‘계절관리제’핵심제도의 세부시행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의하였다.집계결과 미세먼지 ‘계절관리제’에 대해 알고 있는 참가자 비율은 64%로 상당히 높았다. 미세먼지를 감축하기 위한 효과적 방법에 대한 질문에는 5등급차량 운행제한(34%), 석탄발전소 운행중단과 전기요금인상(25%), 차량 2부제 시행(24.5%) 순으로 높게 응답하였다. 4인 가구당 전기요금 추가부담 가능 금액으로는 월 1천200원(33%), 월 5천원(30%) 순이었고 부담을 반대하는 응답자는 23% 정도로 낮았다. 5등급 차량 운행제한 방법에 대한 질문에는 전지역 44%, 시내일정지역 22%, 특정시간대 18%의 순으로 높게 응답하였고, 반대는 13% 정도로 낮았다. 차량 2부제 시행방법은 민간부문확대 37%, 민간부문 자율확대 37%, 공공부문만 시행 17%의 순으로 높게 응답하였고 반대는 7% 정도로 낮았다. 이상에서 참가한 시민들은 미세먼지의 획기적 감축을 위해 유례없이 강력한 제도인 ‘계절관리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대구형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집중분야에 대해서는 교통수단의 전환(전기차, 대중교통), 시민인식 확산 캠페인(미세먼지 잡는 날), 에너지 생산방식의 전환에 대해 높은 찬성의견이 나왔다. 이상의 원탁회의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동참하는 방법에 대한 의견은 매우 다양하고 반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의 건강권을 우선시하면서도 자영업자 등 이해당사자들의 피해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올해 경자년 흰 쥐의 해에 추억의 ‘쥐잡는 날’을 떠올리며 시도민이 힘을 합쳐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미세먼지를 완전히 몰아내는 계기가 될 ‘미세먼지 잡는 날’의 원년을 만들어 보자./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남광현 고려대 석사, 경북대 토목·환경공학 박사, 일본국립환경연구소 공동연구원, 대한환경공학회 대구경북지회장 역임, 한국환경공단 기술자문위원, 포항시 환경정책위원,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환경문제 해법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환경인으로서 활동중이다.

2020-01-22

올빼미야 도와줘

어느 환한 대낮. 숲 속에 사는 올빼미와 여우, 원숭이가 건넌마을 토끼의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앞이 안 보이는 올빼미가 나뭇가지에 앉아 여우와 원숭이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앞이 안 보여. 나 좀 도와줘.”“어휴, 이런 멍청이는 대체 왜 태어난 거야!”원숭이와 여우는 올빼미를 비웃으며 원숭이의 머리에 앉혀 토끼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재미있게 놀다가 깜깜한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여우와 원숭이는 앞이 안 보여서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고 야단이었습니다. “올빼미야, 우리 좀 도와줘.” 올빼미의 인도로 원숭이와 여우는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원숭이와 여우는 남의 약점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린다 리처드 에어 부부는 ‘자연에서 배우는 행복의 기술’에서 꽃게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꽃게를 잡아 얕은 양동이에 넣으면 금방 밖으로 빠져나옵니다. 그런데 게 두 마리를 같은 양동이에 넣으면 서로 빠져나가겠다고 싸우다 결국 두 마리 모두 나오지 못합니다. 꽃게는 서로 끌어내리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양동이를 꽃게로 가득 채워넣으면 게들은 밖으로 나오려고 기를 쓰지만 결국 한 마리도 나오지 못하는 거지요.구룡포 호미곶에는 해마다 새해 첫 떠오르는 태양을 맞으려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그곳 바다에 불쑥 나와 있는 손 조형물을 기억하십니까? 이 조형물에는 ‘상생의 손’이라는 작품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바다 안에는 오른손이, 육지에는 왼손이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전시되어 있지요. 우리 각자는 서로 바다와 육지처럼 다른 성격과 외모, 개성을 갖고 있지만, 상생의 정신으로 서로 지지하고 격려할 때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설 명절이 내일부터입니다.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의 기운을 받아 서로 돕고 사랑하면서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의 2020년을 기대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22

겨울이 교육에게 말하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겨울을 지내보아야 봄 그리운 줄 안다”라는 속담이 있다. 겨울의 다양한 의미를 잘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 이 속담이 가지고 있는 함축적 의미는 겨울은 성찰과 준비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겨울이 되면 하늘은 성찰과 준비에 집중하라고 기온을 점강적으로 내려 자연의 성장점을 잡는다. 그러면 나무를 비롯한 자연은 겨울로 거울 벽을 만들어 면벽 좌선에 들어간다.면벽에 든 겨울나무의 깨달음이 깊어질수록 겨울은 더 엄동(嚴冬)으로 향한다. 무념무상에 든 자연은 겨울을 보낸 힘으로 봄을 그린다. 욕심 없는 자연이 그린 그림은 겨울을 난 모습 그대로이다. 바로 이것이 봄이 아름다운 이유이다.그런데 그런 겨울이 사라졌다. 겨울 실종 소식으로 전국이 야단이다. 겨울 축제를 준비한 지자체와 단체들의 울상은 통곡 수준이다. 이상 기후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그 심각성이 위험 수준을 넘었다. 겨울 추억이 바뀔 날도 멀지 않았다.필자는 2020년 1월 7일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그날 필자는 한겨울에 여름 장맛비를 보았다. 이튿날 모든 뉴스의 머리기사는 겨울 홍수 피해 소식이었다. 정말 물 폭탄이 따라 없었다. 더 놀란 건 그날의 기온이었다. 그날 밤은 분명 겨울이 아닌 봄이었다.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기온은 영상 16도를 웃돌았다. 세찬 비와 함께 강한 바람이 불었는데 그 바람은 모든 봄꽃이 만개한 5월 하순의 따뜻한 바람이었다. 1월에 느끼는 5월은 낯섦이 아니라 공포였다. 그런데 우리에겐 실종된 것이 또 있다. 바로 교육이다. 겨울다운 겨울이 없듯이 우리에겐 교육다운 교육이 실종된 지 오래다.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 교육은 특정 정치 이데올로기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누더기가 되었다. 본질을 잃어버린 교육은 흉기로 둔갑하였다. 정부가 휘두르는 교육 흉기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치명상을 입고 있다. 필자의 말이 믿기지 않으면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된다. 종잡을 수 없는 교육정책은 학생들을 사교육 현장으로 내몰았다. 많은 학원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방학 특수를 누리고 있다.필자는 교육에 상처받은 많은 이들과 지난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든 공교육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수도권에서 산자연중학교를 찾은 한 학생에게 물었다. “학생에게 학교는 무엇인가요?” 학생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고 작정한 듯 입을 열었다. “학교는 무섭고, 불안하고, 슬프고, 재수 없는 곳이요.” 학생의 눈엔 살기에 가까운 증오가 가득했다.아프지만 필자는 그 눈빛이 낯설지가 않다. 우려되는 것은 눈빛의 강도가 매년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지금의 학생 문제와는 비교될 안 될 끔찍한 사건들이 우리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지 않을지 걱정이다. 유난히 따뜻해 공포스럽기까지 한 1월 중순, 인간들의 이기심에 본질을 잃어버린 겨울이 정치 편향 교육 관료들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학생 없이 지내봐야 학생 그리운지 아는가! 억지 교육 정책들로 학생의 봄을 빼앗지 말라!”

2020-01-22

살처분과 공장축산

김규종 경북대 교수세종은 젊어서부터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했다고 한다. 세종실록 2년 8월 29일 기록이다. 하지만 세종은 상사(喪事)를 당하면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 달 넘도록 고기반찬 없는 소찬(素饌)으로 일관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수많은 고기로 넘쳐난다. 소와 돼지, 닭과 오리는 물론 바다에서 잡고 기른 허다한 어류가 밥상에 오른다. 5천년 한민족 역사에서 이토록 먹을거리가 풍요를 구가했던 때는 일찍이 없었다.새옹지마(塞翁之馬)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세상에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우리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고 불귀의 객이 되어야 하는 수많은 생명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다. 더욱이 각종 전염병 때문에 살처분된 숱한 생명을 돌이키면 가슴이 먹먹하다.보도에 따르면, 2010년 구제역 발생 이후 2018년까지 여덟 차례 구제역으로 38만 마리의 소와 돼지, 일곱 차례 조류인플루엔자로 6천90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었다고 한다.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살처분된 돼지 47만 마리까지 더하면 지난 10년간 7천만 마리의 생명이 가축 전염병 예방이라는 목적으로 죽임을 당해 이 땅에 묻혔다.어디 그뿐인가. 2010년 이후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에 소요된 비용만 4조원에 이른다. 농가 피해보상 외에도 가축사체와 오염물을 소각-매립하고, 전염병 발생지역의 소독과 매립지 관리에 거금이 소요된 것이다. 여기에 매몰지에서 발생하는 사체 침출수 유출로 인한 토양과 수질오염이 추가된다.요즘에는 살처분 가축을 묻을 매몰지를 구하는 일도 어렵다고 한다.살처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트라우마도 우심하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가축매몰 참여자 트라우마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상자의 76%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사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2011년 충남의 축협 직원이 살처분 작업으로 인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생명을 산 채로 땅에 묻어야 했던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이 눈에 밟힌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대안(代案)을 찾아야 한다.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수십만 수백만 마리의 가축을 생매장하는 하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그것은 생명을 존중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일 것이다. 가축 전염병 창궐은 멧돼지나 야생조류뿐 아니라, 공장식 밀집축산에도 있다. 가축 전염병이 급속도로 전파되는 이유는 공장식 밀집축산에 있기 때문이다. 비좁은 축사 안에 대규모로 가축을 양산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올리는 것도 좋겠지만, 인간과 가축이 공존하는 토양은 마련해야 한다. 인간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도살되고 매몰되는 가축이 아니라, 기본적인 동물복지라도 준수하는 환경이 요구된다. 세종이 드신 소와 돼지, 닭과 오리는 평온한 환경에서 자란 가축이었을 터다. 우선 거기까지라도 가면 어떨까.

2020-01-22

무엇을 담고 있을까?

1890년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던 아들이 크게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 당시 자전거 바퀴는 나무와 무쇠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타는 자전거는 작은 충격에도 심하게 흔들렸고 다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아들의 상처를 치료하던 아버지는 더 안전한 자전거가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아들이 축구공에 공기를 좀 넣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때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전거 바퀴에 공기 타이어를 사용하면 훨씬 안전하고 안락할 수 있을 것 같은데….”아들을 지켜 주고 싶은 마음과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공기타이어를 만들었습니다. 이 공기 타이어는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갔지요. 미국 포드사와 독일의 벤츠사도 이 타이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아버지가 세계 최초로 공기 타이어를 개발한 던롭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위대한 발명품이 나온 셈입니다.마음은 저수지와 같습니다. 안에 담은 것을 내 줍니다. 좋은 것을 나누어 주려면 먼저 마음속에 좋은 것을 채워야 합니다. 과거 독일이 분단 상태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한번은 동베를린 사람들이 쓰레기 더미를 서베를린 진영으로 쏟아 부었습니다. 서베를린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합니다. 쓰레기를 모아 다시 동베를린 쪽으로 투척해 복수할까 했지만 결국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기로 정했습니다. 오히려 덤프트럭 한 대에 통조림과 또 쉽게 부패하지 않을 식량을 채워 동독으로 가서 멋지게 쌓은 후 그 옆에 표지판을 하나 세웠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준다.”쓰레기를 소유한 사람은 상대에게 쓰레기를 주고, 음식을 소유한 사람은 음식을 줍니다. 선한 말, 진실한 마음을 나누려면 먼저 마음을 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21

배려의 각도

박화진전 경북지방경찰청장민족의 명절인 설날이 다가왔습니다. 설을 준비하는 모습도 많이 변했습니다. 방앗간 가레떡, 장터 뻥튀기, 설빔 같은 것들이 흑백 영사기가 돌리는 빛바랜 모습이 된 것 같습니다. 완성된 제수용품을 마트에서 준비하는가 하면 심지어 차례를 대행하는 업체까지 생겼습니다. 조상님께서 제대로 적응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설 명절은 즐겁고 행복한 날입니다. 그런데 가끔씩 즐겁고 행복해야할 명절에 형제간 말다툼, 부모와의 갈등으로 예기치 않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평소 왕래가 뜸한 핵가족 시대에 익숙한 탓인지 모처럼 대가족 행사가 서로에게 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혹시 가족, 친지간 잘못된 배려로 생긴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장면1(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월남전에서 돌아온 일가친척 아저씨, “이 놈 많이 컷구나!”라며 당시 5살인 나의 여린 갈비뼈가 짓눌릴 정도로 잡고서 번쩍 들어올렸다. 아저씨의 사랑표현에도 불구하고 빨리 내려놓기만을 기다렸다. 이후 갈비뼈 통증 트라우마가 생겼다. 조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이었을 것이다(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서 얘기를 하는 어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장면2(기분 좋아 회식하자는 서장님)아침 회의시간, 서장님께서 상부로부터 칭찬 전화를 받고 과장들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회의 분위기는 급상승하고 서로 수고했다는 덕담을 나눴다. 서장님께서 자축하는 의미라며 그날 저녁 회식제안을 불쑥 던졌다. 회의실 안은 갑자기 정적이 감돌았다. 서장님은 과장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회식을 제안했다(과장들 중 일부가 동창모임, 결혼기념일 등 개인 일정이 있었다).# 장면3(오! 아버지 같은 원사님)어느 신병훈련소, 훈련병 A는 겨울날 찬물로 식기를 세척하고 있었다. 옆을 지나가던 하사는 A에게 “식당에 가면 더운 물이 있으니 가져와서 씻어”라고 했다. A는 감읍하고 식당으로 달려가 더운물을 찾았다. 취사반장으로부터 “쫄병이 군기가…”라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다시 찬물로 식기를 씻던 A를 본 원사님, “손 씻으려는데 식당에 가서 더운 물 좀 가져와” 이후 일사천리로 물공급이 진행돼 원사님 앞에 대령된 더운물 한 바케스, “응 이걸로 식기 씻어”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면 누구나 약자를 향해 마음을 엽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잘못된 배려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배려한다는 것은 남에게 우월적 지위에서 내려 보며 베푸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수평적이거나 오히려 위를 보며 이뤄져야 합니다. 남에게 배려함은 상대의 입장에서 해야 합니다. 위의 장면 #1, #2처럼 배려받지 않은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배려는 각도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명절에 대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서로를 위한 배려는 세심하게 해야겠습니다. ‘가족이니까’ 쉽게 생각하며 내 위주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잘못된 배려가 가족관계를 배리게할 수 도 있지 않을까요?“설겆이 다했냐? 수고했다! 가족화목을 위해 즐겁게 윳놀이 한판하자”“…….”

2020-01-21

스마트폰 세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참으로 편리해진 세상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손가락 하나로 세상 만물과 지구 곳곳을 더듬어볼 수 있으니, 과연 문명의 총아답게 스마트폰은 생활의 이기(利器)를 넘어 삶의 필수품이 아닌가 여겨진다. 유선에서 무선전화로, 이동전화에서 스마트폰으로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생활양식과 사회문화, 사람들의 세태는 눈부신 변모와 판이한 양상을 띠게 됐다.요즈음의 남녀노소 대부분 하루하루 휴대폰에 사로잡혀(?)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눈 뜨고 활동하다가 눈 감고 자기 전까지 항상 옆에 있거나 갖고 다니는 휴대폰.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를 얻고 지인들과 연락을 하고 게임이나 오락을 즐기며 드라마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쇼핑을 할 수도 있으니, 휴대폰은 현대인의 지극한(?) 애용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 10명 중 9명이 보유한 휴대폰을 하루에 보는 시간이 평균 3시간 이상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20대는 하루 4시간 이상이나 된다 하니 수면시간을 제외한 하루 활동시간의 1/4을 휴대폰에 얽매여있는 셈이다. 길을 걸어가면서도 문자를 주고 받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식사를 하면서까지 틈만 나면 저마다 각양각색으로 스마트폰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스마트폰 사용 인구가 4천만명을 넘어서고 사용 시간도 길어져서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이 단 몇 시간만 곁에 없더라도 60% 이상이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열어보는 것이 습관화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에 중독되거나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필요하거나 궁금해서, 심심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수시로 휴대폰을 열어보는 횟수가 하루 평균 80여회, 직장인의 경우 150~200회까지 된다 하니, 과연 스마트폰은 시공(時空)의 감초라도 된다는 말인가.‘손 끝의 토닥거림에 별천지가 열리는/문명의 진화는/편리함의 덫이다/갈수록/메말라가는 정(情)/고립을 자처한다//말 수가 줄어들고 생각조차 얕아져/단조롭고 귀찮음/모나게 길들여져/저마다/웅얼거리며/낚는 것은 그 무엇?’ -拙시조 ‘스마트폰 세태’ 전문스마트폰과 인터넷, 첨단 디지털 기기의 등장으로 사회의 비약적인 변혁과 획기적인 기술의 진보가 이뤄졌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과잉과 편리함의 이면에는 부작용과 폐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으로 눈의 피로도가 증가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효율성이 떨어지며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자극적이고 충동적이며 대화가 줄어들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느리게 변화하는 현실에 무감각해질 수 있다. 결국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이라는 촘촘한 그물망에 갇혀 무미건조한 쳇바퀴질을 일삼으며 고독한 군상이 돼가는지도 모른다.문자 대신 엽서나 손편지를 써보고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드는 시간을 늘려보면 어떨까? 풍경을 바라보며 걷기와 사색을 즐기고, 현재 하는 일에 몰입하기, 대화로 마음 챙기기, 주변 환경 인식하기 등의 활동으로 마음 근육을 키워나갈 때 핸드폰을 사용하고픈 충동은 현저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2020-01-21

문패, 말과 삶의 결을 새기다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문패가 사라졌다.1970~80년대만 하여도 집집마다 철문이나 나무문의 기둥에 문패가 걸려 있었다. 지방은 어땠는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서울의 주택가 골목골목에는 집주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문패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이웃하여 살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조선 말기 우편제도가 발달하고 편지의 내왕이 빈번해짐에 따라 문패는 꼭 있어야 할 필수품이 되었고 1897년경에는 집집마다 문패를 달도록 법으로 정하기까지 하였으며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하여도 가끔 문패달기를 사회계몽운동으로 벌이기도 하였다고 한다.골목길을 헤매다 지인의 이름이 적힌 문패를 찾아내었을 때, “잘 찾아 오셨네요. 나 여기 있어요.”하며 반기는 듯한 문패는 그 자체로 집주인의 대체물이었고, 찾은 이에겐 적잖은 기쁨이었다. 아주 드물게 두 개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문패를 발견하였을 때는, 그 집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나 혈육의 돈독한 정을 엿보는 듯하여 마음 한 켠이 반짝, 환해지기도 하였다.그런데 동네 골목에서 언제부터인가 문패가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 대신 주소만 적힌 작은 양철판이 문기둥을 벗어나 대문 한 귀퉁이에 부착되었다. 그러다가 도시 농어촌을 가릴 것 없이 하늘을 찌르는 듯한 아파트가 솟아올라오면서부터는 주소를 적은 이 작은 판마저 떨어져 나갔고 여러 겹 안전장치로 무장한 아파트 현관문 밖에는 층수와 호수가 덩그마니 적힌 숫자판이 자리를 잡았다.우리는 이제 ‘이 아무개’씨라는 이름이 아닌 ‘190X호 사장님, 60X호 아기엄마’라는 호칭과 지칭으로 살아간다. 앞집, 아래윗집에 누가 사는지 몰라도 된다. 위층에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정겹다고? 퉁탕거림을 듣는 게 고역이다. 아랫집에 위대한 피아노 연주가가 산다는데 뿌듯하지 않냐고? 초저녁잠 방해받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층간 소음, 담배 연기로 다툴 일이 없다면 그걸로 족하다. 문패가 사라지자 이름이 없어지고, 얼굴이 가려지고, 인정이 증발하였다.‘달골말결’이라는 이름을 새겨 이 글자리 문패를 걸었다. 어렵단다. 뭔 말인지 머리에 쏙 들어오지 않는가 보다. 한자로는 ‘월곡언문’(月谷言紋)이 된다. ‘월곡’은 내가 나가는 대학이 있는 동네 이름이다. ‘글월’과 ‘무늬’라는 뜻을 가진 文을 써서 ‘言文’으로 적을까 하다가 무늬 紋을 써서 ‘言紋’이라 하였다. 이를 풀어쓴 게 ‘달골말결’이다. 내가 가르치는 ‘독서, 글쓰기, 말하기’ 등의 교과목은 인문학의 기초이자 세상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되는 것들이다. 나는 인문학을 사람의 무늬, 사람의 결을 다루는 학문으로 여긴다. 많은 이들이 인문학을 배고픈 학문, 위기의 학문이라 하지만 사람의 결을 곱게 하고 가다듬는 학문이라는 사실이 배고픔을 잊게 하고, 위기 상황을 견뎌내게 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생활의 무늬, 삶의 결을 그려나가고 보여준다. 내 생활의 무늬는 아름다운지, 내 삶의 결은 가지런한지, 내 말과 글을 살펴본다.내 문패를 달고 나니, 결 고운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따뜻한 그 얼굴을 보고 싶다. 집집마다 걸려있던 문패가 새삼 그립다.

2020-01-21

중장년의 졸혼관

결혼은 인간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음을 자각하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제도다. 그래서 결혼만큼은 매우 성스러운 행위로 여기는 것이 동서양의 일반적 개념이다. 결혼 당사자도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남녀가 결합하는데 동의하고 그를 실천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벌인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될 때까지 행복하게 살라”는 백년해로(百年偕老)가 그것이다.졸혼(卒婚)은 2004년 일본의 한 작가가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된 신조어다. 결혼을 졸업하다는 뜻이지만 이혼과는 조금 다르다. 혼인관계를 유지하되 서로의 삶을 간섭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즐기자는 것이다. 혼인신고만 유지할 뿐 사실상 이혼에 가깝다. 재산과 자녀문제 등을 고려한 결혼 형태라 볼 수 있겠다.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37살에 부인과 해혼(解婚)을 했다. 그의 해혼 제안을 받은 부인은 고민 끝에 동의했고 해혼한 간디는 고행의 길로 갔다고 한다. 인도에서 해혼은 그렇게 낯선 문화가 아니다. 결혼의 굴레에서 풀어준다는 뜻으로 사용되며 자유의 몸이 된 사람은 다수가 숲으로 들어가 수행을 한다고 한다. 인도의 종교적 영향이 큰 것으로 본다.우리도 영화배우 백일섭씨의 졸혼 이야기가 TV에 소개되는 등 졸혼과 관련한 유명인의 사생활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어느 시인은 TV에 출연, “졸혼도 삶의 한 형태”라고 당당히 말하기도 한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이 ‘대구 신중년 결혼생활 실태분석’에 따르면 “졸혼을 해도 불편하지 않을 것”이란 물음에 28%가 긍정적 답을 했다. 남성보다는 여성의 긍정 동의가 더 높았다. 시대가 바뀌어 결혼관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싶다. 하나 이혼, 해혼, 졸혼 등 다양한 삶의 형태가 사회규범마저 무너뜨릴까 두렵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1-21

청소년 유권자가 온다

“선거는 드러나지 않는 국민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제도다.”데이비드 트루만은 말했다. 선거는 시민들이 정치의 장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통로다. 이제 18세 청소년들이 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인정받는 최소한의 정치참여로서 선거권이 주어졌다. 2005년 만19세로 내려진 선거 연령이 다시 14년만에 만18세로 낮아져 21대 총선에서 53만명의 청소년들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이다. 전체 유권자의 1.2%에 불과하지만 청소년 유권자들이 2020년 한국정치의 미래를 새롭게 여는 마중물이 되지 않을까?현재 한국사회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정당정치의 부실이다. 정당이 정치의 중심이 되어야 하건만, 극한적인 여야 대립으로 투쟁 일변도의 거리정치가 일상이 되었다. 뒤베르제는 정치는 투쟁과 통합이 공존하는 야누스의 얼굴과 같다고 하였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하고 대립하는 이면에 구성원들이 안정을 도모하면서 사회 통합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상황은 정당이 국가와 시민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기는커녕 소용돌이 정치의 근원이 되고 있다. 상식을 벗어난 정당의 꼼수도 한몫하고 있다.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 그것이다. 지난 해 말 통과된 2020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행되기도 전에 선거 결과가 가져올 유불리를 계산하여 비례자유한국당, 비례민주당 등 총선용 정당이 거론되고 보수, 진보세력이 헤쳐모이는 형국이 반복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의 혼란으로 정치적 의사가 왜곡될 수 있다”고 유사명칭 창당을 불허했지만 들은체 만체다. 계속 거대 정당의 프리미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정당의 간판을 바꾸는 일은 문제가 아닌듯하다. 선거 때만 되면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과 후보자들로 정치판이 북새통이다. 공당으로서의 책임의식은 고사하고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행태에 정치에 대한 혐오가 깊어지고 있다.그러나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정치참여에 기반한다. 더 이상 정치를 구경거리나 사각지대에 두어서는 곤란하겠다. 유권자로서 ‘제대로’ 된 정당을 선택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살리는 일이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자격을 가진 다수의 시민들의 의지가 투표로 결집되어 그것에 따라 지배되는 정치가 민주주의”라고 했던 제임스 브라이스의 언급처럼, 민주주의를 유지시키는 힘은 유권자의 수준이다.선거권은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최초의 입장권이다. 시민권의 획득이라는 점에서 올바른 투표권 행사는 중요하다. 새로운 유권자로 진입한 청소년들이 기존에 무력했던 정치의 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한 선거교육을 넘어서 주체적으로 사회문제를 인식하도록 이끄는 비판적 사고와 토론교육이 요청된다. 민주시민의 탄생을 위한 청소년 유권자교육이 교실 안팎에서 시작되어야 할 때다.

2020-01-20

대전족

대전족은 자녀 교육을 위해 대치동에 전세 얻어 들어온 사람들을 가리킨다.서울 강남구 대치동은 명문 학군과 각종 입시학원이 밀집한 이른바‘학세권’으로 불린다. 어느 도시보다 발달된 사교육 인프라가 집중된 대치동에는 자녀의 대학 입시를 위해 세입자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친다. 예를 들면 서울 은평구의 50평(약 165㎡)대 아파트에서 살던 A씨는 지난해 초 이 집을 7억원짜리 전세로 돌린 뒤 대치동의 23평(전용 78.71㎡) 아파트 전세를 약 10억원에 구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12)을 대치동의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라고 털어놨다. 집이 좁아 불편하지만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7∼8년 전세살이를 감수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을 흔히 ‘대전족’이라 부른다.분당 등 수도권 지역 고교평준화가 시작된 뒤 학부모들이‘강남8학군’으로 몰려들던 2000년대 초반부터 언론 등에 오르내리던 용어지만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대전족은 대치동 주택시장의 한 주축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18년 3월부터 1년 동안 이른바 교육특구로 불리는 서초2219강남2219송파구 등 ‘강남3구’로 전입한 초등학생 수는 4천693명으로 이 기간 서울로 전학 온 전체 학생 1만8천321명의 약 4분의 1에 달한다는 것만 봐도 우리나라 교육열이 빚어낸 증상을 목도할 수 있다.최근에는 대치사거리 등에 즐비한 학원을 이용하기 위해 인근 빌라나 오피스텔 원룸에 사는‘대원(대치동+원룸)족’도 적지 않다. 재수를 선택했거나 방학을 이용해 지방에서 대치동을 찾는 학생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강남부동산 불패의 뿌리는 바로 대전족 또는 대원족을 번성케 하는 교육열에서 찾을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1-20

공인의 대공무사(大公無私)의 정신

강희룡 서예가공(公)이란 글자는 본래 ‘사(私)를 나눈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사를 나눈다는 말은 바로 가난을 같이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여러 사람과 어려움을 같이하는 것이 바로 공적인 행동이라는 풀이로 해석되며 거둬들인 국민 세금으로 생활하는 모든 공무원을 공인이라 하는 것이다.여씨춘추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고전에 인사 원칙으로 이런 기록이 실려 있다. ‘공직을 추천하는데 밖으로는 원수를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친척을 피하지 않는다. 원수를 배제하지 않았고 아들이라고 피하지 않았으니 기황양이야말로 대공무사(大公無私)하다.’대공무사란 이와 같이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냉철하고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고사성어의 내용은 이렇다. 춘추시대 진나라 평공이 기황양에게 ‘남양에 현령 자리가 비었는데 누구를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는가!’라고 묻자, 기황양은 주저 없이 ‘해호’를 추천했다. 해호는 기황양과 극히 서로 미워하여 원수처럼 여기는 사이였는데 추천하자 평공이 놀라 다시 묻길 ‘해호는 그대와 원수지간이 아닌가? 어찌하여 해호를 추천하는 것인가!’이때 기황양은 ‘왕께서는 현령 자리에 누가 적임자인지를 물으셨지, 누가 신과 원수지간이냐를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 후 평공이 다시 조정에 법을 집행할 사람 한 명이 필요하다면 누구를 추천하느냐의 물음에 기황양은 이번에는 자기 아들을 추천하였다. 평공이 자신의 아들을 추천함을 의아해 묻자, 기황양은 일에 적임자냐고 물으셨지 그가 내 아들인지 아닌지는 묻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 두 사람은 모든 공적인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여 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된 임명이라고 칭송했다.전국시대 말기의 한비자는 노자의 도론(道論)을 수용하여 법치사상의 세계관은 자연원리의 보편성과 공평무사 객관성을 주장했다. 또한 법치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 백성들의 귀천과 관계없이 평등하고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정치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사람을 기용하는 용인(用人)의 기술은 국가 통치의 중요한 방면이기에 개인적 감정을 공적인 일에 개입시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사건을 언급하면서 ‘조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었던 고초만으로도 아주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면서 조 전 장관을 둘러싼 갈등을 끝내고 이제 좀 놓아주자’고 호소했다. 범법행위로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를 사적으로 마음의 빚을 졌다고 풀어달라고 호소하는 대통령으로서의 행위는 참담하며, 불법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을 초법적이라며 국민이 준 권한을 이용하여 수사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국가 공공조직은 투명성·공정성·객관성을 기반으로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유는 특정 조직체를 넘어 한 사회의 가치 척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오늘날 한비자나 우리가 그리는 법치주의 이념이 진정으로 실현된 이상세계는 아직도 달성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2300년 전 한비자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2020-01-20

투명 기차역

마크 트웨인은 쓸모없는 발명품에 투자했다가 돈을 몽땅 날려버린 경험이 있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찾아와서 처음 보는 물건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내 일생일대의 작품이오. 나는 굳이 당신에게 이 작품에 투자해 커다란 행운을 얻으라고 강요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당신이 5달러만 투자할 수 있다면 곧 합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거요.”투자에 실패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던 마크 트웨인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이 발명품 역시 별로 쓸모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낯선 방문객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마크 트웨인을 떠났습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었습니다.눈에 보이지 않는 기차역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요? 이 역에 들어오고 떠나는 기차에 실린 것 또한 보이지 않습니다. 희망, 보람, 기쁨을 맞아들인 사람은 삶에 탄력이 있습니다. 절망, 권태, 슬픔을 맞아들이는 사람도 많은데 이들에게는 주름이 나타납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기쁨은 KTX지만 슬픔은 무궁화 열차라는 사실입니다.기회를 실은 열차는 예고 없이 왔다가 순식간에 떠나갑니다. 실패를 실은 열차는 늘 플랫폼에 머물러 있어 언제든 탈 수 있습니다. 이 투명 역에서는 한 번 탄 기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내릴 수도 없습니다.이 역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모두 행복과 기쁨과 성공을 원하기 때문에 이들을 실은 열차는 방심하고 있는 순간에 슬며시 왔다가 총알처럼 떠나갑니다. 어떤 순간에도 정신을 놓지 않는 사람, 꽃잠이 오는 새벽녘에도 깨어 있는 사람, 작은 이슬방울 하나에도 환희를 보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투명 역에서 자기가 원하는 열차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이 투명 기차역은 수평선 너머나 지평선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당신 가슴속에 있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20

유아교육,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유아교육이 중요함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다만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유아교육의 중요성만큼이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서 본 지면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유아교육은 때론 조기교육이란 단어로 대체되기도 하는데 어리면 어릴수록 교육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특히 영·유아기는 마치 물을 흡수하는 스폰지와 같이 언어를 습득하는 시기이며 습득하는 어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이다. 하지만 이를 잘못 이해하여 어린 시기부터 한글 철자를 익히거나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앞서 이야기한 대로 영·유아기에는 특정 정보에 민감한 성향이 있어서 이 시기를 민감기라고 부른다. 태어나서 두 돌이 지나기 전에 모국어의 기초적인 문법을 깨우치며 식사나 놀이와 같은 일상경험 관련된 어휘를 배우기 시작한다. 물론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거나 ‘가’와 ‘이’와 같은 조사 사용에서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데 이는 어휘와 문법을 과일반화해 생긴 오류이다. 보다 더 많은 언어 경험이 쌓이면 이 오류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스폰지와 같은 영·유아의 특성과 민감기는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논의할 때 근거가 된다. 유아교육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어떻게 유아교육을 해야 할 것인지는 늘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다.최근 뇌 발달 연구 결과를 토대로 어떻게 유아교육을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신체 운동이 뇌 구조 발달과 관련이 있으며, 많이 뛰고 신체 활동이 활발한 아이의 뇌와 신체 움직임이 적어 과체중이나 비만인 아이의 뇌는 다르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신체 움직임이 뇌 발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또한, 뇌 발달 연구에 의하면 방임이나 학대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3세 유아의 뇌 용적은 일반 동년배 유아의 뇌 용적보다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학업으로 인한 좌절이나 스트레스 역시 유아를 위축시켜 뇌 발달에도 영향 미치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정서적으로도 건강한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함을 역시 유추해 볼 수 있다.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사설 외국어 교육기관은, 놀이를 통해 외국어를 가르친다고 홍보한다.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문제점은 아이들이 일상생활 언어와 사설 기관에서 배우는 학습 언어가 다르므로 외국어 동화를 듣고 외국어로 동요를 부른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것을 놀이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놀이를 가장한 학습은 유아 입장에서 어른의 지시에 의해 해야 하는 일이고 따분하여 지속할 수 없어서 결국 좌절하게 되는 일이다. 놀이를 가장한 학습에서 아이들의 신체 움직임이 억압되고 스트레스가 유발될 가능성이 높다.누구를 위한 유아교육인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 어른들의 불안을 해소하거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2020-01-20

포효하는 사자처럼… 구미 문수사(文殊寺)

겨울은 문수사를 비켜가고 있었다. 햇살이 죄다 문수사에 몰려와 반짝이고 절은 무언가 밝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적막감이 감도는 여느 사찰과는 다르다. 젊은 연인이나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 오듯 드나드는 가족의 모습도 이채롭다.문수사의 전신인 납석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고종 2년에 폐사되었다. 산 너머 의성으로 가는 열재에 산적과 도둑이 들끓어 그로 인해 폐사되었을 거라 추측한다. 그 후 혜봉 선사가 초가삼간을 짓고 수행하다 꿈에 문수보살을 본 후 그 때부터 절 이름을 문수사로 하였다.절은 크지 않지만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극락보전이 나타나고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문수사의 사계가 담긴 사진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별한 행사가 열린 줄 알았는데 늘 손님이 많다고 어느 처사님이 귀띔해 주신다. 천년고찰도 아니고 절의 풍광이 유달리 빼어난 것도 아니기에 그 속살이 궁금하다.주지 스님 뵙기를 청했다. 불자와 차담을 나누시다 흔쾌히 시간을 내 주는 주지 월담(月潭) 스님, 첫인상이 참 좋다. 과하지 않은 미소도 아름답다. 꾸밈없고 편안한 웃음과 농담을 곁들인 화술에는 오랜 수행이나 숙련된 노력이 따랐으리라. 스님은 스승 혜향 스님에 대한 존경심부터 풀어내신다.가난하던 시절, 불자들의 시주에 의존하지 않고 손수 농사를 짓고 양봉법을 배워 동네 분들에게 전수해 주며 평생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신념을 지키며 절을 키우셨다고 한다. 유일한 제자인 월담 스님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20여 년 선방을 찾아다니며 수행에만 전념하다 혜향 스님이 입적하자 어쩔 수 없이 문수사 주지를 맡게 된 것이다.“주지가 되면서 종교를 논하지 않고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도량을 만들고 싶었어요. 틀을 깨지 않으면 소통이 되질 않고 절도 살아남지 못해요. 절이나 집, 회사도 주인이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돼요.”문수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남다르다. 편안한 가운데 눈빛은 빛나고 말씀은 흐트러짐이 없다. 할 일 많은 스님이 참 행복해 보인다. 직관적으로 기운이 맑고 성실한 분이란 게 느껴진다. 추임새를 넣듯 울어대는 풍경소리마저 경쾌하다.한때는 고색창연한 사찰의 적막한 고독을 좋아했었다. 고찰만이 풍기는 고즈넉함에 젖어들다 보면 찌든 마음이 씻겨 내려가고 심란함도 잠든다. 그 하나만의 이유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절집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산사에 대한 애정이 깊어갈수록 그토록 좋아하던 고즈넉함은 대책없는 쓸쓸함으로 다가왔다. 불심이 떠나버린 법당의 썰렁함이나 처량한 풍경소리에 나는 때때로 슬퍼졌다.무작정 변화에 편승하는 사찰을 보면 더 심란하다. 산사 음악회나 비슷비슷한 행사에 치우치는 사찰은 오히려 정체성을 잃고 본질만 훼손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문수사의 변화가 성공적인 것은 주지 스님의 흔들림 없는 목적의식과 성실함 때문이다. 시주를 떠나 진심으로 베푸는 마음에서 존경심과 신뢰감이 묻어난다.“중은 하루에 세 번 자기 머리를 만져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결코 중의 신분을 잊지 마라는 뜻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자꾸 게을러져서 편한 것만 찾게 되거든요. 스님도 사람이니까요.”산중 생활은 속세보다 더 나태해지기 쉽다. 어디에서든 스스로 깨어 있지 않으면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고 마는 법이다. 두어 시간은 걸어야 도착한다는 스님의 농담 한 자락을 걸치고 사자암으로 향한다. 적당한 크기의 소나무들이 자라는 솔숲 사이로 ‘솔바람길’이 친절하다. 바람은 장난치듯 소나무 사이를 빠져나가 저 아래 들판으로 달려가다 문수사를 되돌아본다. 나도 잠시 나무 벤치에 앉아 바람소리를 듣는다. 아주 작은 것들이 나를 즐겁게 해준다.드디어 커다란 암석에 기댄 반쪽자리 전각, 사후전(獅吼殿)이 보인다. 사자의 형상을 한 사자암을 중심으로 지장전과 산신각, 야외 테라스, 어디에서도 멋진 경관은 함께 한다. 사자의 울음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조낭희 수필가셀프찻집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빈자리가 없다. 와불 형상의 큰 암석 앞에서 책을 보는 아이들, 준비된 다과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이곳에는 묵언을 강요하는 엄숙한 부처님은 없다. 그저 편안하고 친근한 부처님이 함께 할 뿐이다. 테이블마다 정갈한 다기들과 푸짐한 다과가 손님을 맞고, 찻값은 성의껏 지불하면 된다. 통유리창 너머로 기웃대는 햇살도 오늘은 귀중한 손님이다. 차이와 경계가 없는 곳.내 안에 차향보다 더 깊고 진한 향기가 돈다. 사후전 석가모니 부처님도 유난히 행복해 보인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보다 책임을 다하는 성직자를 만나면 감동이 배가 된다. 나는 사후전 난간에 서서 빈 몸으로도 하염없이 반짝이는 겨울 들녘을 바라보았다.“늘 깨어 있어라.”그제서야 포효하는 사자 울음이 들린다. 아주 지척에서.

2020-01-20

서양미술사 한 눈에 들여다보기

미술이 순수하게 창작자의 미학적 관념을 담고 있다는 생각은 아주 현대적인 발상이다. 미술가의 자율성이라는 것도 역시나 마찬가지이다. ‘중세’의 천년을 두고 보자면 미술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형태와 색을 통해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고 미술의 기능도 달라진다. 이제 미술은 믿고 있는 것을 그리기보다 보고 경험한 것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바로크 시대’의 미술은 권력과 권위를 찬양하는 수단으로 적극 이용되었다. 바로크의 색채가 그토록 화려하고, 바로크의 형태가 그토록 왜곡되어 현란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바로크 시대에 접어들어 정부가 통제하는 미술학교가 생겨났다. 루이 14세의 명에 의해 왕립미술원(1648)이 설립되었다. 프랑스 왕립미술원은 국가의 통제 하에 국가를 위한 예술가를 길러내기 위한 최초의 제도적 교육기관이었다. 프랑스를 모범으로 스페인에 왕립미술원(1744)이 세워졌고, 얼마 후 영국 역시 왕립미술원(1768)을 설립해 미술가들을 길러냈다.미술이 권력의 통제를 받으면서 자율성 보다는 통제하는 주체의 목적에 적합한 이론적 장치들이 규정과 규칙이 되어 이른바 미술의 ‘모범’이 생겨났다. 주어진 규범과 틀을 벗어나서는 미술가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가장 경직된 틀로 미술가들의 상상력을 제한했던 시대가 ‘신고전주의’였다는 것이다. 신고전주의는 혁명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유럽에 유행했던 양식이다. 절대왕정, 귀족문화, 계급주의를 대변하는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를 지나 시민사회로의 대변혁이 일어났음에도 신고전주의가 만개한 것은 아주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신고전주의 미술은 영웅들의 위대한 이야기를 거대한 화면에 서사적으로 담아낸다. 작품의 주제가 충분히 드러나도록 웅장해야 하지만, 표현에 있어서 절제와 논리성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신고전주의 영웅들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당하더라도 개인의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J.J.빙켈만이 고대 ‘라오콘 군상’에서 발견했듯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을 지니도록 신고전주의의 영웅들은 그려야 했다.인간의 감정을 발견한 시대는 ‘낭만주의’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접어들자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며 자유분방한 미적 세계를 탐구한 미술가들이 등장했다. 대체로 역사가 그렇듯 미술의 역사 또한 권력의 자기 증언과 큰 맥을 함께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현대미술에 가까워질수록 미술사의 변혁은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이루어진다. 고전주의자들이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구도와 색채를 사용했다면 급진적 낭만주의자들은 자유롭고 속도감 있게 붓을 움직였다. 작품의 주제도 그렇다. 잘 알려진 신화보다는 잊힌 북방의 신화들을 다시 불러내거나 신비로운 오리엔트의 이국적 여인들을 작품에 담아낸다. 또 어떤 낭만주의 미술가들은 숭고한 자연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게 한다.낭만주의가 발견한 인간의 감정은 미술이 그 자체만으로 미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이 본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미학적 실험으로 이어지면서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 주었다. 이제 그 누구도 미술에게 권력에 충성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이제 그 누구도 미술은 이래야 하는 것이라며 절대적 가치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미술은 과연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2020-01-20

중진국 함정

중진국에 들어 선 국가가 선진국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저소득 국가로 퇴보하는 현상을 ‘중진국 함정’이라 한다. 세계은행이 2006년 아시아경제 발전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처음 제기한 용어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 포퓰리즘에 심취한 중남미 나라가 대표적 사례다. 중진국 함정의 원인으로는 짧은 기간 안에 경제성장을 주도한 압축성장 국가의 경제관료의 생각이 경직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한다.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구조로 바뀌면서 시장 경제 도입을 소홀히한 것도 원인이라 한다.14억 인구의 중국이 지난해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넘었다. 등샤오핑의 선부론을 필두로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지 40년만이다. 당시 중국의 1인당 GDP는 381 달러,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가난한 나라였다. 중국의 GDP 1만 달러 돌파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뜻하는 중국몽(中國夢)을 외쳤던 시진핑 주석에게는 지지기반을 다지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결과다. 실제로 중국의 GDP 규모는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지금의 환율로 계산하면 3위인 일본보다 2.8배나 높다.하지만 중국 내에서는 평균이 주는 착시에 빠져 환호하지 말고 심각한 빈부격차 해소와 국민 실질구매력 확대에 정진하라는 비판적 목소리도 있다. 1인당 GDP 1만 달러 돌파로 중국 내 심각한 빈부격차가 시 주석에게 새로운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세계은행은 1인당 GDP 1만2천375 달러 이상인 국가를 고소득국가로 분류한다.중국이 GDP 1만 달러 돌파 후 고소득국가로 진입할 것인지는 또다른 관심사다. 일부학자는 사회주의 체제가 있는 한 선진국 진입은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지켜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1-19

‘참붕어’ 죽이기

안재휘 논설위원4·15총선을 저만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했다. ‘1호 공약’이네, ‘인재영입’이네 하고 터져 나오는 뉴스가 선거철에 다다랐음을 한결 실감 나게 하고 있다. 총선 시장은 조만간, 나라 곳간 사정은 염두에 두지 않은 온갖 선심 공약들로 폭포를 이룰 것이다. ‘진보’의 기치를 걸고 있는 여당이 먼저 치고 나갈 것이고, ‘보수’ 야당 또한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될 공산이 크다.안철수가 돌아왔다. 정계 복귀를 선언한 그는 앞서 지난 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미지 조작에만 능하고 민생 문제 해결보다는 국민 세금으로 자기편 먹여 살리기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로 현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촌철살인의 어법을 구사한 바 있다. 정치권 포퓰리즘의 시발점은 대중은 대의(大義)보다는 소리(小利)를 좇는다는 확신이다. ‘소금 먹은 놈이 물 켠다’는 속설은 그들의 굳건한 신앙이다.이미 이 나라의 청년들은 그냥 청년이라는 사실만 같고도 정부로부터 공돈을 받는다. 말하자면, 지지세력이 될 확률이 높은 유권자에게 ‘복지’ 내지는 ‘수당’이라는 나랏돈 봉투를 만들어 퍼주고, 국민은 그 보은으로 부지불식 간에 해당 정치세력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 메커니즘에서 나라의 미래, 후세들이 짊어져야 할 과도한 조세 부담 따위는 고려요소가 되지 못한다.더불어민주당은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사회복지 전문가·전직 소방관·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스타트업 기업대표 등을 차례로 영입했다. 자유한국당은 목발 짚고 탈북했거나 체육계에서 미투 선언을 했던 인사들을 영입 인재로 발표했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단골 패션쇼인 만큼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기자들 앞에서 당 대표와 사진 찍어가며 온갖 찬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끝이다. 1회용 광고모델 콘테스트보다도 못한 쇼 정치다.공천 시즌이 지나면서 몇몇은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지역구 선거에 나가거나 전국구 순번을 타게 될 것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렇게 정치권으로 시끌벅적 영입된 인재들이 이 나라 정치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감동적인 증거는 없다. 십중팔구 유권자들의 표심을 현혹하는 데 써먹는 선전용 포장지로 효용을 다하는 존재들이다.정당들은 그런 ’영입 쇼’ 행위를 ‘물갈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건 ‘물갈이’가 아니다. 진정 ‘물갈이’를 할 의지가 있다면, 참신한 인재들 데려다가 분 발라 앉히고는 그 지명도와 명성만 발라먹은 뒤 거수기 놀음이나 시키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 차고 넘치는 국가적 난제를 해결할 의제(議題)와 대안을 공모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중무장해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비전을 밝히는 일부터 먼저 하는 게 맞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추잡한 가짜정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게 백번 옳다. 비극적 ‘참붕어’ 죽이기 레이스가 안타깝다.

2020-01-19

달빛열차엔 제동장치도 없다

김형렬 전 대구 수성구청장대한민국의 운명을 실은 달빛열차가 철로가 끊긴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달린다. 주저하지도 않는다. 적폐청산, 개혁의 미명아래 자갈을 물리고 혼을 뺀 언론, 검찰, 경찰, 사법부, 입법권력과 전교조, 민노총 등 홍위병들과 문빠들을 1등석에 태우고 2등석엔 달빛열차를 믿고 탄 국민들을 태우고 달리고 있는 것이다.열차의 고장난 제동장치를 고치려던 사람들을 강제 하차시키고 마냥 앞으로만 달린다. 열차를 움직이는 자들은 거침없이 달릴 수 있다고 좋아하지만 진작 그들은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탈선할 것이라는 앞날을 못보고 있다.처음 달빛열차를 믿고 탄 소상공인, 자영업자와 종업원들은 이제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있다. 수많은 저소득근로자들은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달빛열차를 탔으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주들이 경영악화를 이유로 노동시간을 줄여 오히려 소득이 감소하였으며, 자영업자들은 소비가 늘어 소득도 늘 것이라는 장담과는 달리 오히려 저소득층으로 전락했다. 폐업도 속출한다.열차를 타려했던 중산층들은 안전한 다른 나라 열차표로 바꾸려 한다고 한다.아무리 지켜봐도 기관사나 열차운행자들이 정상인 정신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했고, 열차 푯값이 날이 갈수록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치솟기 때문이다. 달빛열차가 미친 열차인지 아는 사람들은 차라리 걷는 게 낫다고 열차에 타려 하지 않는다.공정역, 평등역, 정의역, 소득주도성장역 등 애초 내건 달빛열차의 정착지엔 서지도 못하고 승객들은 난폭 주행 열차에 실려 있다. 내려야 할 역에서 내리지 못한 승객들은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 내려 아까운 목숨을 잃거나 부상자가 속출한다.그런데도 달빛열차의 기관사는 신년기자회견에서 달빛열차는 잘 달린다고 뿌~하고 기적소리까지 내고 있다. 2여년 전 달빛열차 운전대를 잡은 기관사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5천2백만 승객 앞에서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은 불공정했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게 세상만사에 알려졌다. ‘가족사기단 영화인 기생충’을 연상시키는데 일등공신이 된 조국 부기관사의 민낯이 드러나자 그는 ‘조로남불’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하는 뻔뻔함을 보여줬다. 달빛열차가 중대한 문제를 안고 미친 듯 달리는 데도 기관사는 부기관사의 공로가 컸다고 떠들고 있다.그 다음 임명받은 안전담당 부기관사는 부임하자마자 차량을 손볼 철도원들을 쳐 내는데 첫걸음을 내디뎠다. 열차 점검원들은 낡고 망가진 부품을 제때 교체해야 열차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정상 운행할 수 있다고 진언하나, 묵살하거나 아예 망가진 부품을 볼 수 없도록 손발을 묶어버렸다. 몇몇 용기 있는 철도원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허공에 맴돌기만 한다.안전을 책임져야할 철도원들까지 하나 둘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있다. 볼트가 빠져도, 녹이 슬어도, 객차 연결고리가 풀어져도 관심이 없다. 열차를 세우기 위해 바리케이드라도 쳐야 할까? 열차충돌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라도 있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그럴만한 장비도, 장치도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달리는 열차를 보며 열차가 가고 있는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국민의 고함소리에 기관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이동풍(馬耳東風) 그 자체이다. 국민들을 개, 돼지로 보는지 짖어라 열차는 간다는 식이다. 이대로라면 탈선, 전복은 불보는 듯 훤하다.달빛열차가 탈선, 전복되지 않으려면 열차를 세워야 한다. 힘으로라도 열차를 세워야 하는데 무슨 힘으로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과연 방법은 없을까? 있다. 그것은 바로 달빛열차를 움직이는 동력을 차단하고 새로운 연료로 동력을 교체하는 것이다. 달빛열차는 이제 4+1이라는 살아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유해한 합성연료로 달린다. 4+1이라는 검증 안 된 합성연료를 태워 달리다보니 온갖 유해물질들이 쏟아져 나온다. 제동장치 등 주요 부분에 대한 철저한 사전검사와 보수가 이루어지고 승객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실 수 있으려면 열차가 탈선, 전복되기 전 반드시 세워야하고 그럴려면 달빛열차의 동력원을 4+1이라는 유해한 합성원료 대신 친국민연료로 바꾸어야 한다.미친 듯 달리는 달빛열차의 동력 전원을 끊자! 바로 4월 15일, 제20대 총선이 그 동력을 끊는 날이다.

2020-01-19

정중동(靜中動) TK 민심… 갈 길이 바쁘다

우정구 논설위원19일 정종섭 의원(대구 동구갑)이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TK 현역의원에서도 불출마 선언자가 최초로 나왔다. 그동안 TK 현역의원들은 보수 세력의 거듭된 불출마 선언 요구에도 그냥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정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당장 면피는 한 셈이 됐다.그러면 그동안 왜 그들은 버텼을까. 그 이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첫째는 대구경북에서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확실시되는 분위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과 지역에 대한 푸대접이 가져 온 지역 정치인의 반사이익 부분이다. TK 정치권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또 하나는 핑계로 보일 수도 있으나 자신의 지역구를 이을 예비후보가 모두 약체라는 판단이다. 경선을 붙어도 질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당장 유권자의 눈총은 받지만 조금만 버티면 공천을 거머지고 당선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나보다 모두 못하다는 일종의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다.공교롭게도 대구 출마가 예상됐던 홍준표 전 대표와 김병준 전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같은 거물급 인사의 등장이 대구에는 없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호재였던 셈이다. 이와 연관지어 지역에 출마한 예비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참신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대개 전직 국회의원 출신이거나 행정관료 출신 혹은 지방의원 출신이며 그 중에 고령자의 얼굴도 간간이 눈에 띈다.어쨌거나 TK 현역의원에 대한 보수 세력의 불출마 요구는 당선 가능성이나 예비후보와의 경쟁관계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한국당의 쇄신책의 일환으로 국민의 지지도를 회복하는 해법의 하나로 요구한 것이다. 이미 한국당에서 용퇴를 결정한 다수 의원들은 당의 쇄신에 도움을 주기 위한 용단이라 말하고 있다.한국당이 죽느냐 사느냐를 심판받는 막중한 선택지의 하나인 것이다. 특히 TK 정치권에 요구하는 용퇴론은 20대 총선에서 잘못된 공천을 받은 수혜자로서 불출마를 통해 당의 쇄신에 기여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김병준 전 한국당 비대위원장은 지난주 대구의 한 포럼 행사에 참석, “서울과 부산, 경남에서 다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잘못된 공천의 수혜자가 많은 대구경북에서 왜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느냐”며 “이 분들이 정리되지 않는 한 문재인 정부의 폭정을 막을 수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대구경북민의 자존심을 구기게 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같은 날 이언주 의원도 “한국당 등 기성 보수 세력이 성찰과 반성을 할 줄 모르는 것이 문제”라고 TK 의원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범보수 세력은 한국당의 변신은 물과 물고기, 물통까지 다 바꿔야 산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대구경북 현역의원의 분위기는 “나는 아니다”는 생각인듯한 모습이다. 다만 향후 공천 작업이 개시되면 불출마 선언자가 뒤늦게라도 나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버티다 당이 정한 쇄신기준에 의해 공천에 탈락하게 되면 모양새는 구겨질 것이 뻔하다. 현재 한국당은 물갈이 폭을 50%로 보고 있다. 이 기준대로라면 대구는 5명, 경북은 6명의 현역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 당이 대구경북에다 쇄신에 무게를 더 두게 되면 더 많은 물갈이가 가능할 수도 있다.대구경북 현역의원들이 버티는 모양새의 배경에는 ‘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앞서 설명했다. 이 말을 잘 새겨들으면 대구와 경북의 민심이 전례 없이 한국당에 많이 쏠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설적이지만 문 대통령의 거듭된 실정은 대구경북의 민심을 더 똘똘 뭉치게 한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가능하다.그렇다고 대구경북의 민심이 무턱대고 한국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는 다르다. 문 정권 집권 후 진보세력이 보인 일방적이고 독주적인 통치스타일을 통해 많은 학습을 한 후 나타난 변화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당은 지지한다. 하지만 사람은 바꾸라는 요구다. 한국당이 얼마나 지역 민심을 만족시킬지는 알 수 없으나 앞으로 대응하는 과정은 지켜볼만 한 일이다.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대구경북의 민심은 지금 한국당에 일방적이다. 문 정부의 견제를 위해 과거보다 더 결집력이 좋아질 수도 있다. 지역의 한 인사는 TK 민심에 대해 “어떤 측면에서 더 뭉친 측면도 있다. 한국당이 이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그 힘이 새 방향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새 방향이 민주당은 아니라 본다고 했다.TK의 민심은 지금은 정중동(靜中動)의 분위기다. 보수통합의 결과에 따라 본격적인 움직임도 예측해 볼 수 있다. 과거보다 결집된 TK 민심이 어떻게 표심에 작용할지 판단하는 것은 아직은 성급하다.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 개념의 하나다. 유권자가 정치 과정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정치 참여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짧은 민주화 과정을 거쳤지만 학습 효과는 늘 높았다. 유권자가 더 똑똑해졌다. TK 표심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2020-01-19

보수와 진보의 진영 편견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이념 갈등이 우리처럼 심각한 나라는 드문 것 같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는 서로 상대를 적으로 간주한다. 촛불과 태극기 집회 이후 그 갈등은 더욱 증폭되었다. 대의 민주주의의 불신에서 비롯된 광장 민주주의가 초래한 비극일지 모른다. 보수와 진보 진영은 서로를 부정하고 거부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한다. 자기편은 항상 선이고 상대는 악이다. 자신은 정의이고 상대는 불의이다. 이러한 풍토에서는 국정에 대한 올바른 비판도 경쟁도 있을 수 없다. 네 편 내편이라는 감정의 골만 깊어져 정치판이 어지러워진다.보수진영의 일반적 편견부터 살펴보자. 보수진영은 항상 자신들만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분단 상황에서 철저한 반공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보수 우익만이 자유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 정치사에서 부패한 보수 권력이 몰락한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이승만 보수 정권의 부정 선거,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는 정권의 종말로 끝나 버렸다. 개혁하지 못한 보수는 결국 부패로 망한다는 교훈이다.진보진영의 편견도 이에 못지않다. 진보진영에서는 보수를 개혁을 거부하는 방해 세력으로만 간주한다. 보수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며 역사를 후퇴시키는 부패세력으로 치부한다. 진보 진영은 보수를 ‘수구반동’ ‘수구 꼴통’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이 역시 보수의 참 가치를 모르는 편견이다. 진보는 자신들만이 자주성이 강하고 보수는 외세 의존적이라는 독단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사는 급진적 개혁이 떼르미도르의 반동으로 몰락했음을 보여주었다. 지구상에는 개혁과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좌익독재가 무수히 인권을 탄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편견은 어디에서 유래할까. 무엇보다도 한국 정치의 보수와 진보라는 고질적 적대관계가 이를 증폭시켰다. 우리 정치의 여야의 부정적인 네거티브 게임은 편견을 증폭시켰다. 선거의 승자는 정의가 되고 패자는 모든 것을 상실한 결과이다. 이 모순된 정치가 시민사회를 양분시켜 버렸다. 이런 진영싸움에서 중도 온건층은 설 자리를 잃어 버렸다. 이러한 보수와 진보 진영의 편견에는 이 나라 언론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정치를 비판하고 견제해야할 언론마저 진영논리에 편입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적대적 구도가 시민 사회를 분열시키고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구도가 되어 버렸다.이러한 보수와 진영 간의 편향적 시각은 무척 극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를 방치하고 국민 화합이나 통합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정당간의 정권 교체도 두 번이나 경험하였지만 정치 문화는 여전히 후진적이다. 우리의 보수와 진보는 하루 빨리 진영논리를 극복하여야 한다. 보수와 진보 정당은 체질부터 개혁하여야 한다. 개방사회의 모든 정당은 이념보다는 실용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극단적 보수와 진보의 논리는 결국 정치적 허무주의로 연결된다.이 나라 정당은 언제쯤 보수와 진보라는 이데올로기적 허위에서 탈피할 수 있을까.

2020-01-19

시간을 훔쳤습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자작시를 낭송했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미국인들 사이에 ‘국민시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한번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프로스트가 그 청을 수락하고 연단에 서자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서 시인이 되셨습니까?”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 대부분은 글을 쓸 시간이 없어서 시인이나 작가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프로스트는 질문을 던진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이 강의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비밀을 지켜줄 수 있습니까? 그러면 저만의 방법을 알려 드리지요.”사람들은 무조건 비밀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프로스트는 정말 큰 비밀이라도 고백하듯 소곤소곤 말했습니다. “나는 도둑놈처럼 시간을 좀 훔쳤습니다. 식사 시간도 훔쳐 오고, 잠자는 시간도 좀 훔쳐 오고, 사람들과 잡담하는 시간도 훔쳤습니다. 그리고 훔쳐 온 시간을 용감하게 휘어잡고 시를 썼습니다.”사람들이 할 말을 잊고 무어라 대꾸를 못하자 프로스트는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늘 바쁘다고 생각하지만 필요한 시간이란 언제라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겁니다.”1860년, 안톤 루빈슈타인이 지도하는 제1기 음악교실에 행색은 초라하나 눈빛이 살아 있는 20대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광산에서 일하는 가난한 광부의 차남인 이 청년은 누구보다 시간을 아까워하며 음악공부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무의미하게 허비하는 시간을 가장 싫어했던 인물로 종종 나태해지려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서두르자. 시간이 없다. 내 영혼에 있는 이 아름다운 선율을 그대로 놔둔 채 죽을 수는 결코 없다.” 이 청년의 이름은 표도르 차이코프스키, 러시아의 보배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1-19

모두 행복한 것 같아, 나만 빼고

김현욱 시인영화 비트는 1997년 5월 3일에 개봉했다. 당시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고, 대구 동성로의 한 극장에서 영화 비트를 봤다. 1997년은 정초부터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부도, 도산하며 한국 외환 위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해였다. 12월 3일, 한국은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의 혹독한 관리에 놓이게 된다. 경제 관료와 재벌, 정치인, 언론, 기득권층의 도덕적 해이와 위선으로 수많은 서민이 영문도 모른 채 해고와 실업으로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다. 그러니까, 1997년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무가 큰 도끼에 찍혀 휘청거리던 해였다. 크고 작은 벌레들은 배를 불렸지만, 가냘픈 나무초리와 이파리들만 우수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하지만, 한국 영화계는 1997년을 기점으로 명작들을 쏟아낸다. 비트, 초록물고기,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박하사탕, 공동경비구역 JSA, 동감, 파이란, 번지점프를 하다, 봄날은 간다, 친구 등이 그것이다. 영화 제목만 보고도 그때 그 당시의 장소와 상대를 추억으로 소환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특히, 영화 속 명대사는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접속의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고 들었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봄날은 간다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버스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는 수십 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명대사다.최근에 영화 비트를 다시 보다가, 로미(고소영)의 대사가 귀에 쏙 들어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먼저야.”와 “사람들이 행복해 보여, 나만 빼고.”였다. 97년 당시에는 감각적인 영상에 휘둘려 대사를 음미할 여유가 없었는데 이십여 년이 흘러 다시 보니 곱씹어 볼 만한 명대사, 명장면이 많았다. 입시지옥에서 친구를 잃은 우등생 로미는 요양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큰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돈을 벌겠다는 목표로 분식점을 차린 환규(임창정)는 사기를 당하고 인부를 칼로 찌른다. 감옥에서 나와 환규가 다시 한 일도 역시나 포장마차를 여는 것이다. 폭력 조직에서 중간 보스로 승승장구하던 태수(유오성)도 배신을 당하고 끝내 죽음을 맞는다. 태수를 구하러 갔던 민(정우성)도 만신창이가 된다.그 누구도 행복한 사람이 없는 영화다. 1997년의 청춘과 2020년의 청춘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명문대에 진학하려는 이유도, 돈을 벌려는 이유도, 조직에서 승진하려는 이유도 모두 행복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명문대에 진학하면, 돈을 많이 벌면, 승진하면 행복할까? 그때도 “모두 행복한 것 같아, 나만 빼고.”라고 아니 말할까? 지인의 SNS를 훔쳐보면서 부러움과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들보다 더 자랑거리가 많아지는 것일까?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정말, ‘행복’일까?

2020-01-19

‘다꾸’를 시작했습니다

이미하 영어 강사요즘 ‘다꾸’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예쁜 신상 ‘마테’랑 스티커 사느라 두부 20모쯤 되는 돈을 쏟아 부었나 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분이 대부분 아닐까 짐작한다. ‘다꾸’는 다이어리 꾸미기를 뜻하고 ‘마테’는 알록달록하게 디자인한 예쁜 마스킹 테이프를 줄인 말이다. ‘다꾸’에 열성을 보이는 10대 청소년이나 20대 여대생들이 흔히 쓰는 표현이다. 학원을 운영하며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쓰는 언어에 익숙해진다. 왠지 이런 표현을 쓰면 마음까지 살짝 젊어지는 기분이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작년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푸른색 커버에 2019 숫자가 음각으로 찍힌 다이어리를 구입해 업무를 중심으로 스케줄 관리를 위해 사용했다. 1년이 지난 후 다시 펼쳐본 낡은 다이어리는 흉측했다. 검은색 볼펜으로 찍찍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메모들, 바빴던 스케줄 중심의 건조한 기록들로 가득한 다이어리는 그냥 버린다고 해도 미련을 둘만한 아무런 미적, 정서적 가치도 없었다. 올해는 나만의 가치를 담은 색다르고 예쁜 다이어리를 만들고 싶었다. 일 년 동안 내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낼 예쁜 다이어리를 꾸미기에 의미를 부여하자 부질없는 시간 낭비로 보였던 장난 같은 ‘다꾸’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다이어리부터 바꾸었다. 작년까지 사용했던 푸른색 커버 대신 투명 비닐 커버의 노트처럼 생긴 캐주얼한 다이어리이다. 올해 받은 탁상 달력 속 노란색 뽀글 머리에 큰 눈을 가진 소녀 캐릭터가 사랑스러웠다. 달력을 포기하고 오려내 다이어리 앞. 뒤 표지에 붙인 후 꽃 스티커로 장식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다이어리가 탄생했다. 표지 장식을 끝낸 후 거금을 투자한 스티커를 이용해 월간 계획을 꾸미기 시작했다. 매달 컨셉을 잡아 어울리는 스티커로 전체를 장식하고 기억해야 할 중요한 날은 특별히 눈에 잘 뜨이는 스티커를 붙였다.1월은 상큼한 출발을 다짐하며 레몬에 다양한 표정을 담은 스티커로 꾸몄다. 개나리색 형광펜으로 ‘좋은 일만 가득해라’ 소망도 써 두었다. 음력 내 생일과 양력 아들 생일이 겹치는 신기한 일이 있어 삼단 케이크 스티커와 빨간 하트 풍선을 쥐고 달리는 소녀 스티커로 꾸몄다.2월 월간 계획표는 한 편의 추상화다. 단순한 모양에 예쁜 파스텔 톤의 꽃과 나무 스티커를 곳곳에 배치하니 세련된 멋이 넘친다. 화요일 오전의 독서 모임 외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허전해 보이는 2월, 어떤 내용으로 빈칸을 채워갈지 기대 가득하다.새 생명이 약동하는 3월의 다이어리에는 온통 사슴들이 뛰어논다. 모진 추위를 견디고 생명이 움트는 계절, 사슴처럼 순수하고 맑은 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드러난 모양이다. 3월에 있는 아버지 생신을 잊지 말자고 파란 별 스티커를 붙였다. 계절의 여왕 5월에는 다이어리에도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정성껏 꾸민 분홍, 보랏빛 예쁜 꽃 스티커에서 향기가 진동하는 느낌이다. 5월 8일 어버이날 칸에 빨간 하트 스티커를 붙이고 사인펜으로 진하게 눌러쓴다. 사랑해요! 감사해요!7월 다이어리는 온통 푸른색이다. 화요 독서모임 회원 중 문구점을 운영하는 분이 내가 ‘다꾸’하는 걸 알고 스티커를 여러 장 선물했다. 그중에서 조개, 불가사리, 고동, 유리병 스티커로 시원한 여름 바닷가의 모습을 연출해 본다. 즐거운 여름 휴가가 기다리는 7월, 올여름 휴가는 어디로 갈까? 동남아? 중국? 벌써 마음이 설렌다. 휴가지를 결정하면 그곳 풍물이 가득한 스티커를 사서 꾸미려 한다.재미삼아 시작했던 다이어리 꾸미기는 점점 의미 있는 일로 변했다. 매달 그달의 컨셉을 잡고 꾸미는 일은 한 달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희망이며 약속을 시각화해 자연스럽게 그날을 의미 있게 보내려는 다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들었다. 소중한 날들을 미리 예쁘게 꾸며 놓았기 때문에 마음 든든하다. 아직 꾸미지 않은 빈칸이 많이 남아 있다. 바라기는 더욱 다채로운 스티커들과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2020 나의 다이어리가 꽉꽉 채워져 소중한 삶의 기록으로 오래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20-01-19

에티오피아에 칠곡군 마을이 있다?

백선기 칠곡군수올해는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군 13만 8천여 명과 유엔군 3만 7천여 명이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북한군에 맞서 싸우다 전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국방부는 2000년부터 무려 20여 년 동안 6·25전쟁 전사자 유해를 발굴해 왔고, 지난해 칠곡군에서만 30위의 유해가 수습될 정도로 전쟁은 참혹했다.우리 국민은 미국, 영국 등의 전통적인 우방국의 참전은 알고 있어도 커피의 나라로 알려진 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 유일의 전투병을 파병한 참전국이란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있다.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는 “이길 때까지 싸워라. 이기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라는 명령과 함께 자국의 장병을 파병했다. 3주간의 긴 항해 끝에 지구 반대편 낯선 나라의 전투에 참여한 6천여 명의 에티오피아 장병들은 120여 명이 전사하고 5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하지만 황제의 명령처럼 이기든 죽든 하나만 선택했기에 참전국 중 유일하게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다. 253전 전승이라는 무패신화를 쓰며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데 앞장선 에티오피아 전설의 부대, 그래서 그들은 ‘초전박살’이란 뜻의 ‘각뉴부대’라고 불린다.그런 형제의 나라 에티오피아가 1970년대 공산화되면서 각뉴부대 영웅들은 반역자로 전락했다. 6·25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유로 재산이 몰수되거나 손가락질을 받으며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필자도 2014년이 되어서야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혁혁한 전과를 자세히 알게 됐다.이러한 사실을 지역민에게 전파하자 호국과 보훈을 도시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칠곡 군민은 보훈에는 국경이 없다는 신념으로 에티오피아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낙동강세계평화 문화대축전’에 평화의 동전밭을 마련했다. 동전밭을 통해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고귀한 희생이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지자 2015년부터 에티오피아 지원에 주민들의 본격적인 동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지역 유치원과 초등학생 5천여 명은 용돈을 모아 에티오피아 돕기에 나섰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군민은 물론, 기초 수급자와 장애인 등 도움이 필요한 주민도 참여해 매월 1천200여 만 원을 모으기 시작했다.이러한 군민의 자발적인 정성을 모아 에티오피아 디겔루나 티조 지역을 칠곡평화마을이라 부르고 7년 동안 교육과 식수 사업 등을 펼쳐왔다. 현지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해 지원의 효과를 높이고자 2015년과 2017년에는 칠곡군 방문단을 구성하고 직접 티조 지역을 방문했다. 이를 통해 칠곡평화마을 제막식과 초등학교 준공식을 가지고 식수시설을 탐방했다. 또 과거 한국이 가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새마을 운동을 전파할 수 있었다.이뿐만 아니라 에티오피아 6·25전쟁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우리 군은 2016년,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를 초청해 그들의 무훈을 널리 알렸다.지역 독지가는 에티오피아 영웅들이 칠곡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사비를 털어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참전 용사임을 알아본 상인들은 제품을 원가로 판매하거나 각종 생필품을 선물했다. 이밖에도 낙동강세계평화문화 대축전에 에티오피아 홍보 부스를 마련해 지역 사회에 그들의 전통 문화와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전파하고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과 ‘문화·관광·보훈 분야 MOU’를 체결해 외교적 차원의 지원 방안도 모색하기 시작했다.칠곡군민의 위대한 발걸음은 올해에도 멈추지 않는다. 오는 2월 24일부터 28일까지 세 번째로 에티오피아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 방문에서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해 한국전 참전용사를 만나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또 한국전 참전용사 마을을 방문해 의약품, 장난감, 축구공 등을 전달한다. 특히 지난 7년간의 군민의 성원으로 꿈과 희망을 되찾은 티조 칠곡평화 마을의 자립을 선포하고 짐마게네티를 방문해 또 하나의 칠곡평화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군수로서 한 것이라고는 군민을 대표해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고 진심 어린 마음을 전달한 것뿐이다. 지난 7년간 호국과 보훈의 가치를 올곧게 세우며 이역만리에 칠곡평화마을의 현판을 내건 우리 군민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칠곡군민에게 아낌없는 박수가 필요하다.

2020-01-19

정치권 인재 영입

인재 영입과 관련한 고사(故事)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유명하다. 뛰어난 지략가며 불세출의 영웅 제갈량을 모시기 위해 유비는 자신보다 스물 살이나 어린 제갈량의 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 그를 감복시킨다. 훌륭한 인재를 맞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정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삼국지 영웅 조조도 인재를 중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수하에 수많은 인재가 운집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는 “오직 재능만이 추천의 기준(唯才是擧)”이라 했다. 능력만 있으면 남에게 욕을 먹거나 말거나 주저 없이 발탁하는 것이 그의 특별한 인재관이다.일본의 전기회사 파나소닉을 세운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통한다. 그는 “사업은 사람이 전부다” 라고 말했다. 동서고금을 둘러봐도 인재 등용의 중요성을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일의 중심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최근 기업이 인재를 얻기 위해 인재가 근무하는 기업 자체를 인수하는 새로운 경영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한다. 주로 기술인력 스카우트가 치열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인재확보 전쟁에 불꽃을 튕기고 있다.4.15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인재 영입바람이 한창이다. 여야는 좋은 인재 확보를 위해 물밑 경쟁도 마다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이 발표한 영입 인재에 대한 평가는 노력에 비해 별로다. 장애인, 권익운동가, 극지탐험가, 경력단절 워킹맘 등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을 했지만 국민 눈높이를 채우지 못한 탓이다. 구태 정치인은 그대로 두고 인재만 영입해봤자 포장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일회용, 추잉껌” 등의 악평도 나왔다. 눈가림보다 내부혁신이 먼저라는 뜻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1-16

서로 다른 경제지표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은 문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하고, 답을 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회견이 끝난 뒤 참석한 기자들 상당수는 왠지 현 정부에 우호적이거나 온건한 성향의 기자들이 많이 지명된 것 같다는 의구심을 털어놨다. 또 질문자로 지명된 기자들이 거의 대부분 회견장 앞 첫째 줄과 둘째 줄에 포진해 있었던 사실 또한 우연한 일이었을까 의심스러웠다. 기자회견 시작하기 약 1시간 전에 영빈관에 입장해보니 이미 회견장 앞 둘째줄까지 꽉 차 있었던 점도 이상했다. 당시에는 “무척 부지런한 기자들이 많구나” 하고 지나갔지만 돌이켜보면 청와대측의 고육지책은 아니었을까.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살아있는 답변을 통해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국민께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대통령의 질문자 지명 이벤트는 지난 해에 이어 재연했지만 청와대측은 지난 해 생방송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벌어진 악몽을 되풀이할 수 있다고 우려했을 수 있다. 지난 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한 지역 방송기자가 문 대통령에게 “나라 살림살이가 어려운 데 무슨 자신감으로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냐”는 공격적인 질문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더구나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 이어 이날도 우리 경제지표 개선을 이유로 ‘많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지난해 신규 취업자가 28만명 증가해 역대 최고 고용률을 기록했고, 청년 고용률도 13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수출과 관련해서도 “지난해 우리는 미·중 무역 갈등과 세계 경기 하강 속에서도 수출 세계 7위를 지켰고, 3년 연속 무역 1조달러, 11년 연속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고 말했다.그러나 취업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세금으로 늘린 노인 공공 일자리가 크게 반영됐고, 40대 이하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고, 초단시간 취업자가 급증하는 등 일자리 질은 오히려 급속히 나빠졌다. 수출상황도 마찬가지다. 순위나 수출액은 맞지만 지난 해 우리나라의 수출은 10.3% 감소해 세계 금융 위기 때인 2009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고, 무역 흑자는 372억달러로 전년에 비하면 반 토막이 됐다. 이런 부정적인 지표는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년사에서) 긍정적인 지표를 많이 말하고, 부정적인 지표를 말하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말한 내용은 전부 사실”이라고 했다. 신년사 이후 언론의 따가운 비판이 잇따랐던 걸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객관적인 경제지표에 대해 의도적인 거짓말을 했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우면 어렵다고 인정해야 새로운 개선책이 나올 것 아닌가. 영세자영업자들을 포함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는 데, 대통령과 정부가 경제지표가 나아지고 있다는 식의 안이한 인식을 보이는 현실은 국민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2020-01-16

어머니

설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설이라고 해도 어렸을 때 같지는 않아서 나이가 들수록 즐거움보다는 의무감이 앞선다.가만 있자, 내 나이가 얼마나 되었더라? 하고 생각하니 실로 어마어마하다. 수십년전 대학원에 들어가 무서운 선생님 연세가 얼마나 되셨나? 했을때 바로 그 분이 지금 내 나이셨다.그러니 내 아버지, 어머니는 지금 얼마나 연세가 드셨을까. 아버지 서른두살, 어머니 스물일곱살에 결혼해서 이듬해에 내가 세상에 나왔다. 나오기는 부모님 덕분에 나왔는데, 그후로 부모님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나이 들어서도 내 좋은 것만 찾아다녔지 부모님 생각에 밤을 지샌 적은 없다.여름 지나서 어머니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키에 비해서 체중이 좀 되시기 때문에 허리에 부담이 되시는 것이려니 했다. 또 허리 아픈 데는 내가 왠만한 선수쯤은 우습게 보는 처지인지라 아프시면 얼마나 아프시랴 했다.그 사이에 학교 일이 무척이나 힘들고 바빴다. 민족에 관한 국문학 쪽의 논의를 둘러싸고 어떤 절박한 생각이 떠올라 그 일에 쫒기기도 했다. 유월부터 나도 얼마나 몸이 힘든 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고 지낸 것도 같다.십이월이 되자 겨우 정신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의 허리 상태는 앉지도 서지도 못 할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이 아플 때 구해줄 수 있는 의사 만큼 귀하고 고마운 존재는 없다. 결국 어머니는 동생 병원에 계시다는 명의로부터 수술을 받으시게 되었다. 어머니가 의사며 수술을 그렇게 무서워 하시는 줄 이제서야 알았다. 기왕 하기로 한 것 마음 놓으시라고 몇번이나 안심시켜 드렸지만 다가올 큰 일이 내내 걱정이신 모양이었다.그동안 내가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잘해야겠다고 대전, 서울을 매일같이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수술 날이 닥쳤다.아침 일곱시 반에 어머니는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아홉시 반까지 수술 준비를 하셨다. 열시 반이 되어서야 나는 아버지와 막내 동생이 기다리는 수술실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기차 안에서 잠이 든 나는 대전을 지나 동대구 역까지 갔다 되돌아 온 것이었다.열한시반, 열두시반, 한시반, 그리고 두시가 되어서야 어머니의 수술은 끝이났다. 전광판에 어머니의 이름 옆에 회복실이라고 써 있었다. 드디어 수술실 밖으로 참을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났다.허리 수술 만큼 아픈게 없다는데.나는 참 못나고도 나쁜 놈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구제불능, 천하의 불상놈 밖에는 안 될 것이었다. 사람의 사랑 가운데 어머니 사랑만큼 지극한 것이 없다. 나는 그 사랑을 받은 자식인 것이었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0-01-16

상식이 통하는 나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요즘 많은 이들이 여야로 나뉘어 “한번도 경험 못한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고들 말한다.여당 지지자들은 과거 보수정권의 독재적 통치와 비교하여 대통령을 자유롭게 비판하는 현재의 상황을 한번도 경험못한 나라의 한 축으로 여긴다. 반면 야당 지지자들은 장관 임명의 일방적인 결정과 검찰의 수사팀 교체, 원전해체, 자사고 폐쇄 등 일방적인 독재가 더 심하다고 주장한다.얼마 전 한국의 특성화 과학기술대학교 중에 하나인 유니스트 졸업식에만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과학기술계는 매우 놀란 적이 있다.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의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야당은 선거개입이라고 하고 여당은 일상적 대통령의 선택적 통치의 일환이라고 한다. 속단하긴 어렵지만 수사는 공정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여야가 모두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수사하는 검찰의 모습은 국민의 성원을 받기에 충분했다. 사실상 정의를 추구하는 정부는 그러한 정의로운 수사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수사가 진행되기 힘들 정도로 최근 검찰의 수사팀이 급속히 해체되고 있는 모습이 상식과는 배치되지만 과거 검찰이 검사출신 범법자에 대한 관용으로 국민들로부터 검찰의 불신을 불러온 것도 사실이다. 검찰개혁도 기본적으로 필요한 정책일 수 있다. 그러나 검찰개혁을 찬성하는 국민들도 수사팀 해체는 찬성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검찰 개혁 등 권력기관 개혁은 권력의 견제와 정치적 독립성 보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슬기롭게 전개되어야 한다. 검찰도 일부 제식구 감싸기라는 상식적이지 않은 수사에서 벗어나 정의로운 검찰의 모습을 보이는 반성이 필요하다.교육자로서 현재의 이념 편향적 교육의 기조도 문제이다. 대부분의 학부모와 국민들이 이념편향 교육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고, 자사고·특목고 등의 폐쇄로 상징되는 획일적 사회주의적 교육정책 방향은 전교조 이념교육을 오히려 강화하고 자유민주주의적 원칙에 반하고 있다. 일부 자사고, 특목고들이 입시위주의 교육을 시켜온 것도 일부 사실이라면 그러한 점만 수정하도록 하고 차별화된 영재교육이나 특성화 교육은 계속 되어야 한다.외교 국방도 현재의 상황은 위중하다. 우리가 외쳐대던 한반도 운전자·중재자 외교는 북한의 조롱으로 되돌아 왔고, 대한민국의 대외적 외교적 입지는 크게 약화되고 있다는 평이다. 북한 핵 위협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으며 한국은 북한에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는데도 한국의 북한에 대한 짝사랑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의 외교 버팀목인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여 중국과 북한에 의연히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선거전략, 자기당 이익만을 정치적 목적의 통치가 아닌 상식이 통하는 사회, 국가가 그립다. 답답한 마음이다. 여야로 나뉘어 서로 나름대로 해석하며 “한번도 경험 못한 나라”라고 자화자찬과 비판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은 “상식이 통하는 한번도 경험 못한 나라”를 진정 원하고 있다.

2020-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