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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모바일 증명시대

머지않은 시일내에 종이 없이 모바일로 각종 증명서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모바일 증명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이같은 전망이 가능하게 된 것은 데이터를 투명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등장하면서 이 기술을 활용한 증명서 발급 애플리케이션(앱)이 상용화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삼성전자,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코스콤 등 7개사는 컨소시엄으로 개발을 추진해 온 모바일 전자증명 서비스 이름을 ‘이니셜’로 확정하고 연내 정식 출시한다고 최근 밝혔다.이니셜 컨소시엄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금융 기업의 강점을 융합해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전자증명 서비스를 빠르게 사업화하는 게 목표다. 기본적인 이용 방식은 이니셜 앱 안에서 발급ㆍ제출을 원하는 기관의 증명서를 선택하는 것이다. 각 기관의 웹 페이지에서 제공되는 QR코드를 이니셜 앱으로 인식하면 증명서가 발급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구현한다. 우선 전국 6개 대학교의 제증명(졸업, 재학, 성적 증명 등) 발급 사이트와 연동해 자격 증명을 발급하거나 제출할 수 있는데, 이니셜을 통해 모교에서 한 번 발급받은 증명서는 기업 채용에 지원할 때 중복으로 제출할 수 있어 여러 번 내려받을 필요가 없다. 토익 성적표 발급이나 옥션에서 예술작품의 구매확인서를 취득하는 과정도 이니셜 앱 안에서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앞으로 이니셜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기관이 늘어나면 가능한 서비스들도 더 많아진다. 개인 대출에 필요한 기업 재직증명서,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 등 자격 검증 서류도 간편하게 제출할 수 있게 된다. 실손보험금 청구 때 진료비 영수증 제출 과정을 간소화하는 서비스도 검토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0-21

누가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계급 아파르트헤이트가 생겨나고 있다”미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로버트 퍼트넘의 지적이다. 한국 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부모들의 재력과 학력, 사회적 네트워크가 아이들에게도 대물림되면서 계급 분리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 교육부 특별감사로 적발된 대학 교수들이 미성년 자녀를 논문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건만 봐도 단순히 연구윤리적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논문 공저자로 등재된 이들 자녀 다수는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갔거나 해외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부모의 인맥과 연줄, 특권이 편입학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학벌이 세습되고 계층이 대물림 되는데 대학 사회가 진앙지가 되고 있다.공평과 공정의 가치가 모두 무너지고 있다. 과거 교육은 계층의 상향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사다리였으나 이제 “고등교육은 오히려 불평등을 일구는 기제”가 되고 있다. 출신 성분과 관계없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다. 더 높은 학력과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을 갖고 있는 부모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경쟁의 장을 왜곡하고 있다. 리처드 리브스는 20 VS 80의 사회에서 “불평등은 어린 시절에 시작되며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상위 20%가 기회를 ‘사재기’하기에 다른 아이들은 공정한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사실상 전설이 되어버린 셈이다.현재 한국 사회의 불편한 문제의 본질은 ‘불평등’이다.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있어 더 큰 문제다. 공평성의 측면을 고려해 만든 수시제도가 기회균등과 지역균형, 공교육 정상화라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운영되고 있음이 극명한 예다. 학생 개인의 노력보다 학부모의 재력과 관심, 교사의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통로가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학생부종합전형을 ‘금수저’ 전형으로 부르고 있겠는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녀들의 미래 학교를 결정하고 부모의 욕망이 자식으로 전이되는 이행기다. ‘억울하면 부모 탓을 해라’는 식의 부박한 논리가 교육 현실을 잠식하고 있다. 소수의 최상위권 학생에게만 모든 것이 집중된 나머지 학생들은 차별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다.누가 계층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가? SKY 대학을 정점으로 사회적 특권이 평생 카스트처럼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묻는다. 대학이 계급격차를 해소하기는커녕 신분과 위계를 더욱 견고히 만들고 있다. 집안이 좋으면 무임승차가 가능한 밀실문화, 성적만 좋으면 모든 것을 몰아주는 성적지상주의 구조가 문제다. 오는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주관으로 고등교육의 불평등 문제를 논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캐슬의 구조와 캐슬 밖의 목소리’를 주제로 대학의 공공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의견을 나누며 해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일 터다. 승자독식의 피라미드 구조는 더 이상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을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혁명이 필요하다.

2019-10-21

평양 남북 ‘깜깜이 축구’의 내막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월드컵 지역예선 평양 남북 축구 경기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無)중계 무관중 경기로 우리를 실망시켰다. 평양 김일성 경기장의 남북 축구는 ‘깜깜이 축구’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축구팀은 남북 직항로를 포기하고 베이징을 경유하여 이틀 만에 겨우 평양에 도착하였다. 남북의 축구 대표 팀은 텅 빈 김일성 경기장에서 육박전에 가까운 거친 경기를 치른 것이다.우리는 오랜만에 열리는 남북 축구가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모든 협상을 배제한 채 관중과 중계가 없는 경기만을 허용하였다. 아시아축구연맹(AFC)도 경기 인원과 응원단의 차별 없는 비자 발급을 의무화하였는데 북한은 이를 무시한 것이다. 지난해 9·19 선언 시 문재인 대통령을 그렇게 환호하던 평양시민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북한 당국은 북미 회담이 기대되는 시점임에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이러한 태도는 많은 것을 잃게 하였다. 경기장의 무관중은 그들이 아직도 엄격히 ‘통제되는 전체주의 사회’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북한 당국이 금지시킨 중계방송도 스포츠의 보편적 보도 상식을 넘는 행위이다. 국제 축구연맹(FIFA) 규약은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을 의무화하고 있다. 북한의 처사는 북한이 언론의 자유가 없는 통제된 사회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북한 당국은 과거 정치적 필요에 따라 선수단과 응원단을 남한에 파견하여 정치적 선전의 도구로 활용하였다. 부산 유니버시아드,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지난해 평창올림픽에서도 그들은 대규모 미녀 응원단을 파견하여 선전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이번의 북한의 무중계 방침은 아무래도 이해되지 않는다.우리는 북한 당국이 이러한 ‘깜깜이 축구’를 결정한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노이 노딜 회담 이후 남한 정부의 중재자 역할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북한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다. 북한 당국은 남한의 역할에 대해 최근에도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특히 북한은 지난번의 한미 군사 합동 훈련과 최첨단 전투기 F35A등 도입에 대한 반응이다. 이들은 10여 차례의 잠수함탄도미사일(SLBM)의 시험 발사도 모자라 평양 축구 경기까지 압박용 카드로 선택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축구 실력이 남한에 현저히 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모두가 북한의 유치한 발상이다.어떤 이유건 북한의 이번 처사는 북한 스스로 ‘비정상 국가’임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북한은 중요한 외교적 담판이 있을시 소위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전술은 이를 간파한 미국이나 한국이 이제는 수용하지는 않는다. 결국 북한은 이번 ‘깜깜이 축구’에서 얻은 것은 없고 오히려 잃은 것이 많을 것이다. 북한의 처사를 비난하는 국제적 여론만 악화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과 여동생 김여정은 백두산에서 백말 타는 모습만 보이며 체제의 안정을 과시하고 있다. 정부도 북한의 ‘깜깜이 축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여야 할 것이다.

2019-10-20

새(鳥)조차 귀를 기울이게 하는 남자

힘을 다해 주위 사람들을 사랑한 인물이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며 종교 권력을 이용, 탐욕을 채우려던 당시의 종교 권력층과는 정반대로 걸었던 인류의 스승입니다. 앗씨시의 성자로 잘 알려진 성 프란체스코입니다.맑고 순수한 삶의 방식으로 신과 이웃을 섬겼던 성 프란체스코의 삶에 신기한 일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자연 만물과 소통하는 능력입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해와 달, 나무와 숲, 새와 물고기, 온갖 동물들과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그들을 “사랑스러운 형제들”이라고 인격화해서 불렀습니다.한 번은 프란체스코가 새들이 떼 지어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서 새들에게 설교했습니다. “나의 새(bird) 자매들이여!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기원합니다.”그러자 새들은 눈을 반짝이고 귀를 쫑긋 세우며 프란체스코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목을 늘리거나 날개를 빼고 입을 벌려 기이한 몸짓으로 흥겨워하며 그를 응시했지요. 프란체스코는 수도복 자락으로 새들을 스치며 한가운데를 오가면서 대화했습니다. 성호를 그어 새들을 축복하자, 새들은 기쁜 듯이 몸짓을 하며 사방으로 날아갑니다.‘경청’ 책을 쓰는 과정에서 자료를 수집, 경청의 위대한 인물을 찾아 일화를 모았던 기억이 납니다. 빌 클린턴, 기업인 등 경청에 관한 유명한 일화들이 많이 있었지만, 역사상 ‘듣기’에 관한 세계 챔피언은 성 프란체스코였습니다. 그가 쓴 평화의 도구라는 시에는 경청의 핵심 원리가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게 하소서.”러시아 혁명을 주도했던 레닌은 말년에 이렇게 후회합니다. “내 생애에 성 프란체스코 같은 이가 몇 분 있었다면 나는 피비린내 나는 혁명을 일으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나를 부각시켜야 하는 고단한 세상살이, 어떻게 하면 성 프란체스코의 삶을 닮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새벽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0

미술전시 홍보의 중요성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밤낮으로 일교차가 심해지며 본격적인 가을을 실감하게 된다.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 가로수만큼이나 가을의 분위기도 무르익어 간다. 지역 화랑가에는 크고 작은 전시가 열려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문화적 풍요로움을 선물해주고 있다. 화가들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창작의욕으로 작품을 제작하지만, 정작 전시회를 알리는 홍보방법과 필요성에는 적절한 방법을 알지 못해 아쉬움을 주고 있다. 전시는 작가 본인은 물론, 작가의 창의력과 장인정신이 담긴 작품이 일반인과 호흡하는 소통의 장이다. 따라서 전시는 관람객의 존재를 필수 전제로 하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전시는 존재가치가 없으며,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작품은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고 평가받을 때 비로소 예술품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힘들게 준비한 작품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새로운 미의식과 미술양식을 관람객들이 공감하는 시간은 성공적인 전시홍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일반인들이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 전시 정보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전시가 어디에서 열리는지, 앞으로 열릴 전시는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전시장을 찾아나 설 수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미술 관계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시 정보를 얻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중 가장 널리 활용되고, 대중에게 익숙한 경로가 바로 언론매체에 실리는 미술기사나 TV방송을 통해 전시 안내이다. 여기서 말하는 언론매체의 미술기사는 홍보활동의 성과물이다. 미술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살아 숨 쉬는 정보, 유용한 정보, 작품과 세상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전시 홍보 활동도 나름의 기준과 원칙이 있다.작가들은 본인의 전시를 알리는 보도자료 작성에 대해 한번쯤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언론기자들이 요구하는 ‘전시 보도자료’는 육하원칙에 따라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바탕으로 전시회의 중요도 순서로 작성하면 좋다. 누가 봐도 간결하고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사진과 같은 시각 자료와 함께 요점을 정확히 전달하면 성공적인 전시회를 위한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보도자료는 공식자료이다. 언론홍보를 위해 언론사에 배포하는 문서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성격성을 띤다. 허위와 왜곡, 과장은 삼가야 한다. 그리고 전시 정보의 실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주제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보도자료에 전시 주제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없으면 전시의 성격과 특징을 헤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식으로 보도자료를 작성하면 된다. 홍보방법에 있어 대중매체의 세계는 다른 분야처럼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파급효과의 증대, 정보의 전문화와 다양화, 언론시장의 발전, 온라인 공간의 등장 등으로 인해 어제와 오늘의 비교가 불가능 할 정도이다. 언론매체의 중요성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커질 수밖에 없다. 정보의 중요성과 함께 홍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앞으로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절대적 수단이 될 것이다.

2019-10-20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누구나 당할 수 있다

황태일 포항남부경찰서 수사과장보이스피싱 유혹에 누구는 속고 누구는 안 속고의 문제가 아니다. 몰라서 속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능화된 범죄 수법에 노인, 학생, 지식인 등 누구든 당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보이스피싱의 피해는 지난해까지 전국적으로 19만9천여 건이 발생해 피해액이 2조원이 넘고, 피해 사례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포항남부경찰서의 경우도 피해가 지난 2017년 178건(피해액 20억원)이 발생한데 이어 이듬해는 252건(25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9월까지 200건(30억원)이 발생했다.포남서는 금융기관 등과 연계해 보이스피싱 예방 활동을 했고, 그 결과 올해 9월까지 현금 인출책 등 280명을 검거해 그중 3명을 구속, 270여명을 형사입건했다.보이스피싱의 범행 수법은 크게 범죄연루형과 대출 사기형으로 나뉜다. 범죄연루형은 당신의 계좌에 있는 돈이 범죄에 연루됐다며 돈을 인출해 자신의 집 냉장고 등에 보관하라고 안심시키는 수법이 주를 이룬다.대출 사기형은 급전이 필요한 자영업자 등을 상대로 대출상담을 하며 신용등급이 낮아 대출이 되지 않으니 거래 실적을 높여야만 대출이 된다고 속이는 수법이다. 최근에는 문화상품권 구매, 악성 앱설치 유도 등의 신종수법이 개발되는 등 날로 진화하고 있다.보이스피싱은 전화상의 목소리를 타고 범행하기 때문에 누구나 주의를 기울이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경찰과 검찰, 금융감독원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전화상으로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수사기관 또는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한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면 일단 상대방의 말을 듣기 전에 전화를 끊어야 한다. 만약 피해를 당했다면 112 신고 또는 해당 금융회사 콜센터를 통해 사기 계좌에 대한 지급 정지 요청을 해야 한다.최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순가담자가 되어 경찰서를 방문하는 사람도 있다.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통장이나 휴대폰 개설 명의를 일정액의 현금을 받고 대여해 주었다가 자신도 모르게 범행에 연류된 사례다.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시민 스스로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보이스피싱의 수법은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발전하고 있고, 피해를 당하면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는 순간 일단 보이스피싱 전화라고 의심부터 하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가족이나 동료 등 주변 사람들 일상 행동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최선의 범죄 예방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2019-10-20

황당무계한 북한

얼마전 백마 타고 백두산에 오른 김정은의 모습을 세계 언론이 관심 있게 다뤘다고 한다. 백마 탄 김 위원장의 백두산 정상등정을 정치적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조만간에 북한에서 중대한 정치적 시도가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다. 북한에서 백마는 백두혈통의 상징이란 점을 안다면 김정은의 백두산 방문이 다분히 의도된 정치 게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백두혈통이란 김일성 직계가족을 일컫는 말이다. 김씨 일가로 이어지는 세습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상징적 선전물이다. 실제로 북한 곳곳에는 백마 탄 김씨 일가의 그림이 많이 전시돼 있다.세계 언론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김 위원장이 과거에도 중대 결심에 앞서 백두산을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이번 방문도 이런 점에서 곧 중대한 결정이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의 눈에는 허무맹랑한 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국의 지도자가 첫눈 내리는 날에 맞춰 백마 타고 백두산에 올라간다는 사실이 넌센스처럼 보인다. 방문 날짜도 알 수 없고 취재기자 동행도 없었던 백마 탄 사진만 두고 중대 메시지 운운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더 황당한 일은 김 위원장의 백마 탄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기 직전 북한에서 있은 남북 간 축구경기다. 축구 사상 초유의 무관중, 무중계 상태가 벌어진 것이다. 29년 만에 성사된 남북 축구경기를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었으니 이야 말로 황당무계하다. 축구경기는 욕설과 폭행이 난무해 전쟁을 방불케 했다 한다. 손흥민 선수는 “다치지 않고 돌아 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 설명했다. 한국의 평화적 제스처에도 미사일 발사만 연발하는 북한의 일탈된 행동과 축구경기에서 보여준 그들의 태도가 북한의 진면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0-20

‘입비뚤이들’의 참말

안재휘 논설위원“지금 공무원들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겠다는 심사다. 이는 내가 배웠던 충신(忠臣)의 자세가 아니다” ‘조국 대란’ 광풍에 묻혀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얼마 전 국장급 공무원 한 사람이 파면됐다. 한민호 전 국무총리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 이야기다. 그의 핵심 파면 사유는 ‘근무시간에 페이스북에 VIP(대통령)와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판했다’는 것이었다.한 전 사무처장의 이력은 특이하다. 그는 대학 시절 운동권에 몸담았다가 무기정학을 당해 간신히 졸업했다. 고등학교에서 한동안 역사교사를 하다가 ‘공산주의를 하려면 독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으로 전향한 뒤 1994년 행정고시를 거쳐 문체부 공무원이 된 인물이다. 재작년 문체부 노조 투표에서 ‘바람직한 관리자’ 부문 1등으로 뽑혔던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조국 대란’의 여파 속에 집권세력 안에서도 소위 ‘소신 발언’이라고 불리는 딴소리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국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정치인들이 자기 정당의 정파적 이익에 부합되면 ‘검찰이 잘했다’ 칭찬하고, 우리 정파에 불리한 사법 절차가 진행되면 비방과 외압을 행사한다”면서 “그런 행태야말로 사법농단”이라고 싸잡아 비판했다.같은 당 이철희 의원의 튀는 발언도 눈에 띈다. 그는 서울고법·서울중앙지법 국감장에서 지난 2017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구속영장 기각 당시를 거론하며 “2년 만에 여야가 바뀌었다. 이게 뭐냐. 창피하다”면서 “부끄러워 법사위원 못하겠고, 국회의원 못 하겠다”고 한탄했다. 이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참회록을 쓰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정부·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해 쓴소리를 내놓은 금태섭 민주당 의원의 소신 발언 또한 눈길을 끈다. 금 의원은 “전 세계 어디에도 공수처 유사 기관은 없다”고 상기하며 “수사·기소 분리가 글로벌 스탠다드이고 검찰개혁 방안도 분리하려는 것인데, 왜 공수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가져야 하냐”고 지적했다. 그는 작금 민주당 지지세력 안에서 영락없는 ‘미운 오리 새끼’ 신세다.‘조국 대란’ 한복판에서 하나의 변곡점을 형성했던 인물인 김경율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회계사)의 말은 더욱 신랄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조국 사태는 무능한 진보가 부패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고 진단하고 “진보지식인들의 무비판적 태도는 단순한 ‘분열’이 아니라 ‘몰락’”이라고 단정했다.따지고 보면 지금 뒤늦게 ‘바른말’에 나서는 집권세력 인사들은 하나같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드는데 앞장선 입비뚤이 궤변론자들이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을 바로 하랬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가증스럽기는 하지만, 이제라도 참말을 하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파면당한 한민호 전 사무처장의 항변이 여운을 남긴다. “내가 페북질로 징계를 받아야 한다면 ‘죽창가’ 등 폭풍 페북질을 하던 조국은 왜 괜찮은가.”

2019-10-20

청년에게 희망과 미래를

최영조경산시장경산은 경북에서 5년 이상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유일한 시로 15∼29세 청년층 비율은 18.6%로 경북에서 두 번째로 높고, 평균 연령도 40.6세로 젊은 도시이다.인구의 유입은 택지개발과 대중교통망의 확충, 산업단지를 통한 일자리창출 등이 주요 요인이다.특히 2022년까지 준공될 경산지식산업지구는 차세대 건설기계부품특화단지 등 6개 대형 국책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중이며 화장품산업, 경북권역재활병원 등 경산 전역에서 미래 신성장 사업들을 야심차게 추진해 가고 있다.여기에 더해 2017년부터 ‘경산발전 10대 전략’을 신형엔진을 가동하며 10개 대학에 170여개 연구소를 가진 지역특색을 살린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있다.또 2030년대를 준비하기 위한 ‘희망경산 4.0’이라는 중장기 발전계획을 전문기관 용역으로 수립 중으로 경북의 중심으로 비상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그러나 경산에도 강점과 기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자·전기·자동차부품 등을 제조하는 뿌리산업이 80% 이상으로 대부분 대기업에 납품하는 산업구조로, 최근 내수부진 등에 따른 제조업의 성장세 약화, 전기자동차의 시장변화로 주력산업인 자동차부품 산업의 위기를 맞고 있다.지역대학 정원감축과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위기에 소득의 역외유출, 부자와 창조계급의 유출이라는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이러한 문제에 대해 경산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먼저, 기존 뿌리산업은 RD기관을 유치해 탄소, 타이타늄 등 첨단 신소재를 활용한 복합재 기술개발 지원 등 기술고도화와 수요처 다변화를 꾀하고 사물 무선충전 산업과 디지털 뷰티산업 등 새로운 신전략 산업을 육성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착실히 대응하고 있다.특히 경북도의 메가 프로젝트 신산업과 연계해 전기 차량, 드론, 사물 무선충전 등 사업을 추진한다.주거와 상업, 문화, 교육, 레저기능을 갖춘 고품격 복합 주거공간을 조성하고 청년인구와 신혼부부, 중장년과 노년을 위한 도시조성을 개발전략으로 삼고 있다.대학의 어려움을 대학발전협의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파악하고 대학 일자리센터지원 사업,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경산시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선도사업이다.경북글로벌게임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게임 산업 지원에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 양성사업을 추진하고 웹툰 창작체험관을 개관하는 등 게임·방송·만화 등의 콘텐츠산업 등 청년 일자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사업들도 하나둘씩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새로운 직업군으로 주목받고 있는 유튜버를 육성하는 ‘청년 소셜창업 크리에이터 아카데미’에서 지난해 교육받은 6명이 이미 유명회사와 계약해 활동하고 있으며,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 창작공간도 9월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공유주방에서 고정비용 없이 외식업 창업의 모든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청년들의 부엌’이 지난 8월부터 운영 중이며 최종 2개 팀이 개별 주방에서 마지막 실전영업과정을 진행하고 있다.청년들의 유망 스타트업 아이템을 발굴 육성하는 ‘경산 청년희망 창업 오디션사업’도 순항 중이다. 지난해 선발된 7개 팀 중 6개 팀이 아이디어를 상용화해 판매 중이고 1개 팀도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청년 창업가들이 시제품을 바로 만들 수 있는 청년 공동작업장과 청년벤처를 위한 공유오피스 또한 내년 상반기까지 조성해 나갈 예정이다.이는 청년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더 넓혀 가기 위한 단계에서 필수 공간이다.청년문화와 창업·커뮤니티 거점을 육성하는 사업이 최근 경북도의 ‘청년행복뉴딜 프로젝트 선도 사업’으로 선정되어 내년부터 4년간 73억원을 투입해 서울과 수도권 못지않은 생태계를 대학 주변 2곳에 조성한다.경산이 지향하는 미래 도시 모습은 청년이 자신의 꿈을 펼치며 행복을 누리고 모든 시민이 살기 좋은 글로벌 스마트도시다.

2019-10-20

끄적이는 삶이 내게 준 선물

박현미 회사원종이에 낙서하듯 끄적이는 게 좋다. 수업 시간에도 회의 시간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적어가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곤 했다. 본격적으로 습작을 시작하면서 쓰는 행위는 나를 자유롭게 풀어내는 시간이자 동시에 사유를 깊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희열을 느끼고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욕구 또한 충족되는 기분이 든다.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그냥 쓰는 것,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평가 따위는 더더욱 필요하지 않은 시간이며 나를 회복하는 순간이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자신에게 그 어느 때 보다 진솔할 수 있다. 어떤 것에도 종속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다. 누군가 내 글솜씨를 알아주거나 감탄해주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 이야기를 주절주절 연습 삼아 써 내려가고 나 자신과 자유로운 대화를 하면서 감정을 배출하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글이 명확해져 간다는 것은 나 역시 구체화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들여다보며 나 자신에게 좀 더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게 관심을 가지면 더 잘 보고 더 사랑하게 된다. 초점을 내게 맞추고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일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제삼자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며 답을 구해야 한다. 최대한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해 보려 애를 써본다. 이런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유하는 힘이 조금씩 길러지고 편협한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상한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면역력도 조금씩 늘어갔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막연한 문제들이 점점 명료해지는 것을 느낄 때도 많다. 뚜렷이 알 수 없는 불안으로부터 안정을 찾기도 했다. 이렇게 쓴 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알 수 없는 용기 비슷한 것이 불쑥 생기기도 했다.처음 나를 향한 질문의 글들은 대부분 부정적 감정을 배설한 밭이었다. 그것들을 거름 삼아 씨앗이 뿌려졌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씩 긍정의 힘을 가진 이야기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천천히 싹이 자랐나 보다. 이것은 실로 내게 큰 기쁨이자 벅찬 감동이 아닐 수 없다. 하루를 시작하는 매일의 짧은 글쓰기는 조금씩 나를 성장시키고 힘을 더해주고 있다. 글을 끄적거리고 있는 동안 나는 특별한 존재로 자신을 반기며 마중한다. 의식하는 나와 무의식의 내가 비밀을 공유한 친구가 된 기분이랄까? 써 내려간 글을 보며 만족에 빠진다. 나는 내가 가장 친애하는 독자이자 작가다. 일상 속에서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때도 내 글은 공허함을 덮어준다.이렇게 내 끄적거리는 글쓰기는 비밀스러운 대화의 추억으로 쌓여간다. 이 보물은 자신감의 밑바탕이며 기죽지 않되 거만하지 않은 나로 성숙시켜 준다. 내게 이런 끄적임은 강하면서 유연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행위이자 의식이다. 멈출 수도 멈추어서도 안 되는 일과로 변했다.운동하고 여행을 가고 맛있는 것을 먹는 모든 행위가 치유의 순간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회복의 계기가 되어 준 것은 읽기와 쓰기였다. 다른 이의 글을 먹으며 커갔고 내 글을 먹으며 딱히 표현하기 어려운 단단함이 생긴 것을 느낀다. 소심하고 차분하던 일상의 글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거침없기도, 대담해지기도 했다. 이 모든 시간과 함께 나도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삶이라는 마라톤에서 승리하기 위한 완벽한 방법은 있지 않을 것이다. 공감받지 못하는 크고 작은 고민 속에서 방황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만의 이야기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화려한 글을 쓸 필요는 없다. 대단한 글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 꼭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매일 일정 분량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짧게라도 의지적으로 시간을 내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여야만 한다. 바쁜 일과 중 미뤄지거나 건너뛸 수도 있지만, 하루에 한두 줄 나에 대한 기록을 놓지 않으려 한다. 나만의 노트에 써 내려가는 기록은 나 자신을 새롭게 하고 빛나게 해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쓰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9-10-20

과학자의 은퇴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포스텍의 은퇴 과학자 교수는 이미 100명을 넘어섰다. 1986년 설립 초기 해외에서 귀국한 교수들의 대부분은 30대였고 그 교수들의 은퇴행렬이 절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한국의 산업 발전을 이끌어온 50년대와 60년대 초반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는 당시 초등학교 교실은 한 반에 90명이 공부를 했고 교실이 모자라 오전반, 오후반이 있을 정도로 붐비던 시절이었다. 이들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문제는 인문계도 문제이겠지만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인력·기술 공백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내년까지 500여 명의 연구자가 정년퇴임하고 전국대학의 이공계 교수는 1천명이 넘는 과학자가 정년퇴임할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전국 4대 과학기술원 및 포스텍의 이공계특성화 대학은 10년 내 퇴직하는 교원이 30%에 달한다고 한다.해외에서 유치해 수십년간 연구비를 지원하여온 고경력 과학기술인들이 교육과 연구 현장을 떠나는 건 국가 인력 활용 면에서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최근 20년간 노벨과학자 수상자 중 60대가 80%에 달한다는 통계와 금년 노벨과학상 화학 부문에서 최고령 수상자(존 B. 굿이너프·97세)가 탄생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현재 60대 초중반으로 되어 있는 과학자와 교수들의 은퇴는 이른감이 있을 뿐만아니라 전문성을 도외시한 법이다.미국대학의 경우 교수와 과학자의 강제적인 은퇴가 없다. 스스로 은퇴시기를 결정할뿐 제도적으로 연구력이 왕성한 교수와 과학자를 강제로 은퇴시키지는 않는다. 얼마전 스탠포드 대학을 방문하니 80년대 필자를 가르쳤던 교수들이 지금도 70∼80대의 나이로 강의도 하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한국의 경우 대학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다. 특임교수나 연구교수로 남아 강의나 연구를 계속하거나 다른 대학이나 연구소로 가서 계속 강의와 연구를 하는 경우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 취업을 하거나 벤처회사를 창립하는 경우도 있다.반면 연구소에서 은퇴한 과학자들은 많은 경우 충분히 그 전문성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과학자들이 최근 은퇴 후에도 연구 및 산업 현장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본다.은퇴 과학자들의 활용 방안을 장기투자가 절실한 부분에서의 RD(연구·개발)지원이나 자문, 고급인력이 기피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자문 등이 있다.대학에서는 기초과학과목에 대한 강의 등을 들 수 있고 학생들의 진로 및 미래상담 등에 오랜 경험과 경륜을 활용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인증 실사 업무 등에선 평가자를 못 구해 안달이라고 한다. 이런 곳에 은퇴 과학자들을 쓰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미국처럼 당장 은퇴나이를 없앨 수는 없다고 해도 퇴임 과학자, 교수의 전문성과 경험이 여러 가지 정책과 제도 수립을 통해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전문성에 있어서 강제적 퇴임 자체의 개념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

2019-10-17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장님 코끼리 만지기’란 말이 있다. 불교 열반경의 일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인도의 경면왕(鏡面王)이 여러 맹인들에게 코끼리를 만져보게 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 보라고 했다. 상아를 만져본 사람, 귀를 만져본 사람, 머리를 만져본 사람, 코를 만져본 사람, 다리를 만져본 사람, 배를 만져본 사람, 꼬리를 만져본 사람이 저마다 다른 대답을 했다. 그들 각자는 직접 생생하게 체험을 한 것이니 누가 다른 소리를 하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옥신각신 서로 제 말이 옳다고 싸운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런 노릇이겠는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제 손으로 직접 만져본 구체적이고 생생한 체험이 오히려 사실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낳을 수 있으니 과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겠다.대한민국이라는 코끼리에 대해서도 맹인모상(盲人摸象)식의 편견과 왜곡이 난무하고 있다. 자신이 겪어 알고 있는 부분을 전체인 양 일반화하거나 이념과 진영논리에 빠져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사람들끼리 세력을 형성해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악으로 몰아 적대시하는 대결구도로 치닫고 있다. 대한민국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정부 수립 당시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방면에서 어느 정도의 발전과 성과를 거두었는지 따져 보면 성장과 성공을 한 나라인지 실패와 퇴행을 해온 나라인지를 알 수가 있다. 또 한 방법으로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를 해보고 상대적인 평가를 내리는 방법이다. 대한민국이 출발할 당시에 비슷했거나 오히려 나은 나라들이 지금은 어떠한지를 비교해보면 성패에 대한 판단이 나올 것이다.어느 경우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세계가 놀랄 정도의 성공을 한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독재니 혁명이니 쿠데타니 하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그런 분쟁과 부작용도 결국에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성장과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그것은 지난 정권들에 잘잘못이 있었지만 과보다는 공이 더 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소위 좌파들이 내세우는 혁명이니 개혁이니 하는 논리는 기왕의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국사태’로 드러난 좌파세력의 민낯은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망상이고 자가당착인가를 알게 한다. 심지어 일부 교수나 작가들까지 ‘조국’을 비호하고 나선 것은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편향성이 얼마나 심각하게 최소한의 정의나 윤리마저도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접근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김일성 일족을 신(절대존엄)으로 떠받드는 사이비종교집단에 불과한 것이 북한이라는 코끼리의 실상일진대, 김정은 일당은 대화나 타협의 상대가 아니라 수백만 원혼들과 칠천만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할 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19-10-17

시간에 대하여

일주일은 168시간입니다. 새로운 계획에 참여하자고 설득하면 대부분 이렇게 반응합니다. “정말 좋겠는데, 시간이 없어서요.” 화장품 업체 매리 케이(Mary Kay)사 회장 매리 케이 여사가 신입 사원들에게 항상 들려주는 조언이 있습니다. “30분만 일찍 일어나세요. 1주일이면 210분을 벌 수 있습니다. 3시간 30분이죠? 1년은 52주니까 182시간을 확보하는 셈이에요. 우리 회사의 1주일 근무시간이 40시간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매일 30분 일찍 일어나 독서나 자기 계발에 투자할 수 있으면 연간 4.5주의 새로운 근무 시간을 얻는 셈이에요. 한 달 조금 넘지요? 매일 30분씩 일찍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1년을 12개월이 아닌 13개월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이 조언은 젊은 시절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새벽 30분이면 1달 근무시간과 맞먹는 새로운 시간을 준다고? 만약 3시간을 투자할 수 있으면 6개월을 벌 수 있겠어!” 매력적이었습니다.그런데 이 이론과 정반대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성 언론인 로라 밴더캠입니다. “시간을 아껴서 원하는 삶을 만드는 게 아니고 원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면 시간은 저절로 아낄 수 있다.” 즉, 사람들에게 시간이 부족한 근본적인 이유는 시간을 쥐어짜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시간은 탄력적인 생물에 가깝습니다. 쥐어짜려 하면 실패하지만 정말 필요로 하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그 필요는 우리 마음이 선택하는 법이고 무엇을 간절히 마음으로 원하면 그 원하는 곳에 시간을 쓰게 되어 있는 법이기 때문이지요. 시간을 못 만드는 이유는 그만큼 절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내게 주어진 168시간을 어떻게 채웠는지 돌아보는 시간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7

입단속

‘신상구(愼桑龜)’라는 말 속에는 전해오는 고사가 있어 소개한다.옛날 효자로 소문난 젊은이가 목숨이 경각에 달한 아버지의 병 구완을 위해 오래 산 거북이가 영험하다는 말을 듣고 거북이 잡이에 나섰다. 한달쯤 됐을 때 천년은 됨직한 거북이를 잡았다. 젊은이는 집으로 오던 중 뽕나무 아래서 잠깐 쉬면서 잠이 들었다. 이때 잠결에 거북이와 뽕나무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된다.거북이가 먼저 말했다. “나는 영험해서 나를 솥에 넣어 끓여도 죽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거북이 말을 들은 뽕나무가 가당치 않다는 듯 말했다. “너무 큰소리치지 말게 자네가 아무리 신기한 거북이라도 뽕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워 끓인다면 당장 죽는다네”라고 했다. 효자 젊은이는 집으로 돌아와 거북이를 가마솥에 넣고 삶았으나 정말로 거북이가 죽지 않았다. 이때 뽕나무 아래서 들었던 말이 기억나 뽕나무를 잘라와 불을 때자 거북이는 금방 죽고 만다. 거북이 덕분에 아버지의 병은 말끔히 낫게 된다.우리 속담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했다. 거북이의 만용과 뽕나무의 교만이 없었다면 거북이도 살고 뽕나무도 온전했을 것이라는 일화다. 입 조심하라는 교훈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감는다고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남을 헐뜯고 비방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성찰한다고 한다. 말이 난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독설과 막말이 오가며 상대에게 많은 상처도 입힌다. 그러고도 반성은 커녕 독설을 자랑하는 잘못된 세태다.유튜브 방송으로 논란을 일으킨 유시민의 알릴레오가 출연진의 성희롱 발언으로 홍역을 치른다는 소식이다. 유 이사장의 사과에도 당사자의 반발은 여전히 거센 모양이다. 입 단속하는 지혜부터 배워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10-17

사색의 산책길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초선 국회의원은 국회내 다니는 길을 알고 나면 임기가 끝난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이같은 우스갯소리가 나온 데는 국회를 방문하는 방문객들의 출입이 통제되는, 국회의원회관과 국회 본관, 그리고 국회도서관을 잇는 지하통로의 존재여부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일반인들은 알기 어렵고, 출입도 안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방공호를 겸한 듯 보이는 이 통로는 적막감이 들 정도로 조용해 ‘사색의 산책길’로 일컬어져도 좋을 법하다. 이 지하통로 가운데 국회 본관과 국회의원회관을 잇는 길은 본회의나 상임위 회의 및 당무관계로 의원회관 사무실과 본청을 오가는 국회의원들과 보좌진, 그리고 취재진들이 주로 지나다닌다.며칠 전 국회에 들렀다가 이 통로를 지나다보니 한쪽 벽에는 우리 국토 최동단인 독도의 전경, 일출과 일몰때의 신비한 풍경이 담긴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바로 그 맞은 편 벽에는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서예작품들이 줄지어 걸려있었다. 작품을 내건 주체들도 다양하다. 국회부의장을 지냈던 6선의 중진 의원으로부터 19대 총선에서 처음 당선된 재선 의원까지, 선수(選數)와 당색(黨色)을 달리하는 의원들의 작품이 다채로운 개성을 뽐내고 있다.장경순 전 의원이 쓴 매월당 김시습의 글귀에서는 불운한 시대의 천재가 내뱉은 시대의 탄식을 되새기게 한다. 바로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어찌 봄이 다스리랴 구름이 가고 오더라도 산은 다투지 않는다(화개화사춘하관 운거운래산부쟁/花開花謝春何管 雲去雲來山不爭)’이란 대목이다. 김시습은 학식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였으나 벼슬은 하지 않았다. 그가 잘못된 고관 인사를 보고 ‘이 백성이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사람이 이런 자리를 맡게 되었나’하고 탄식하며 지은 한시다. 지금의 국회 역시 국민들로 하여금 김시습의 한탄을 자아내고 있다.4선의 바른미래당 주승용 국회부의장은 서산대사의 한시인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로 후세의 경계를 삼았다. 전문은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눈 내린 들판 걸어갈 때 발걸음 함부로 딛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이다.산민(山民) 문희상 국회의장의 ‘태산불양토양 하해불택세류(泰山不讓土壤 河海不擇細流)’라는 글귀도 의미심장하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꺼리지 않고, 강과 바다는 실개천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큰 당과 큰 나라는 인재의 출신과 성분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다.무엇보다 현 시점에선 청강(靑江)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임오년(2002년)에 쓴 ‘대도재중화(大道在中和)’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큰 도는 중용과 화합에 있다는 뜻이다.여당에 있었을 때도 정부에 쓴소리를 하며 치우치지 않았고, 야당에 있었을 때도 무작정 발목잡는 반대만 하지 않고 중용의 처신을 보여주려 노력했던 그의 처신이 새삼 아쉬운 요즘이다. 이러고 보니 극한대립의 조국 정국을 지나 ‘포스트 조국’ 해법이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사색의 산책길에 걸린 지혜가 우리 정치판에 넘쳐 흐르기를 소망한다.

2019-10-17

인텔리겐차의 자유

최근 세태를 보면 인텔리겐차(intelligentsia)는 설 자리가 없다. 옛날에는 지식인 대접을 그래도 좀 했던 것 같고 받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절대 아니올씨다, 다.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 먼저, 돈, 자본, 금권이 옛날보다 훨씬 더 세졌고, 이에 따라 지식, 지식계급, 지식인은 이것을 치장하는 용도 같은 것으로 떨어져 버렸다. 지식은 큰 회사 사장 집무실 뒤 서가의 금장 책들처럼 금권을 더 빛나게 하는 장식품 같은 것이 된다.다음으로, 권력이 옛날 같지 않다. 옛날 옛적에는 ‘삼고초려’하는 것이 있어 어디 훌륭한 사람 숨어 있나 찾아다니기도 하고 통치자의 덕성을 드러내느라 일부러라도 학계 사람을 모셔가기도 했다. 다 옛날 말이다. 노무현 정부 이래 통치는 오로지 자기 사람들로나 거행된다. 그룹에 들지 못하면 아무 것도 없다.이런 것들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인텔리겐차들 스스로 타락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옛날 옛적이 인텔리겐차들은 자신들의 존재 의미를 자기 자신을 위한 ‘사업’에 두지 않았다. 그들은 지식 자체를 위해 존재해야 했고 나아가 자신들을, ‘민중’ 같은, 비록 추상적이기는 해도 어떤 대의를 위해 쓰여야 하는 것으로 믿었다.1980년대에 한국의 통치체제는 러시아 짜리즘 같은 것으로 상상되었고 많은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러시아의 인텔리겐차 계급처럼 민중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상의 훌륭함 여부는 그 내용이 얼마나 올바른가에 의해서뿐 아니라 그것을 밀고 나가는 태도가 얼마나 순수한가에 의해서도 ‘결정’된다.지식인은 몸이 감금되어 있을 때조차 자유로울 수 있으니, 그들은 본래 스스로를 정신적인 존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물질과 돈과 육체성, 권력에 스스로 거리를 둘 때 그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그러니, 어떻게, 요즘 지식인들이 자유로울 수 있으랴. 의식이 이미 대부분 금권과 권력의 노예니 몸이 자유로울 수 있을 리 없다.러시아 ‘브나로드’ 운동 같은 것은 얼마나 성스러웠던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쓴 체르니세프스키는 얼마나 고매했던가?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논리를 미워해서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써서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수정궁’ 같은 세계는 인간 세상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하지만 체르니세프스키는 투명한 이상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는 1862년에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고 1883년에 풀려나 곧 세상을 떠났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0-17

교육 개혁의 희망 경북도의회!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잦은 태풍 소식에도 자연은 자신의 할 일에 최선이다. 나무들은 10월의 언어인 단풍으로 대화의 문을 열었다. 그 문으로 때론 누군가의 가슴 저린 첫사랑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귀 밝은 감나무는 가지마다 그들을 저장했다. 길이를 늘리기 시작한 가을밤에 감들은 그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몰래 펼쳤다. 그리고 홀로 붉어졌다. 그 붉음에 자연은 더 풍성해진다.풍성한 가을과는 달리 이 사회는 더 흉악해지고 있다. 독단과 독선, 고집과 아집만이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 순수는 예전에 죽었다. 순수가 죽은 자리엔 추악함이 자리했다. 한때 가장 순수했던 촛불도 이젠 아니다. 오염된 촛불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멀게 만들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이 떼로 외치는 소리는 소음에 불과하다. 소음만 가득한 도로에서 정의는 죽었다.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목적도, 과정도 순수해야 한다. 그런 개혁만이 모두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개혁은 명분은 있지만 방법은 틀렸다. 당정청(집권당, 정부, 청와대)이라는 말은 특정 이데올로기와 동의어이다.당정청이 개입된 개혁의 방향은 그들의 특정 이데올로기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이런 개혁에 순수는 없다. 교육 개혁에는 제발 당정청이 개입하지 않기를 바란다.당정청 타령만 하는 중앙 정치를 보면 이 나라 미래는 0% 출산율보다 더 암담하다. 그래도 이 나라가 버티는 것은 경북도의회처럼 일하는 지방 의회가 있기 때문이다.필자는 지난 6년 동안 당정청은 물론 교육부, 도교육청, 인권위원회, 권익위원회 등에 대안학교 학생들이 받고 있는 차별을 철폐해달라고 수십 차례 읍소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필요성은 알지만으로 시작하는 행정기관 특유의 미꾸라지 어조의 빈정거림뿐이었다. 그 사이에 많은 학생들이 교육기회를 놓치고 학교 밖 청소년이 되었다. 교육행정기관들은 늘 뒷북만 쳤다.그런데 드디어 경북도의회가 교육행정기관들의 앵무새 화법을 끊는 조례개정안을 발의 통과시켰다. 교육청 실무자들과 6년 동안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번 일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아니 사건을 넘어 개혁에 가까운 일인지 안다. 교육 개혁의 서문을 연 조례개정안은 “경상북도 사립학교 재정보조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경상북도교육청 학업중단 예방 및 대안교육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재도 의원)이다. 다음은 전자의 개정 사유이다.“경상북도교육청에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을 근거로 하여 일부 사립학교(각종학교 포함)에 대한 재정지원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고 있으나, 교육부에서는 시행령 자체가 교육청의 재정지원 여부를 구속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음. (중략) 사립학교 재정보조사업에 단서조항을 두어 재정지원이 필요한 사립학교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됨.”교육 평등권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 경북도의회가 보여준 초당적인 모습이 당리당략에 빠져 있는 중앙 정부는 물론 편협한 교육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교육 관계자들에게 큰 울림이 되길 바란다. 그 울림이 교육 개혁의 신호탄이 되어 희망을 잃어버린 이 나라 교육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2019-10-16

설리의 죽음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실제 내 생활은 너무 구렁텅이인데 여기 바깥에서는 밝은 척하는 게… 너무 이게 사람들한테 내가 거짓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든 다 뒤에 어두운 부분이 있는데, 바깥에서는 안 그런 척하고 사는 거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살지 말라 해서. 그냥 되게 양면성 있게 살아가고 있어요. 지금.” 10월 14일 스물다섯 나이로 세상과 작별한 설리가 ‘악플의 밤’ 방송에서 남긴 말이다.공감 가는 말이다. 세상에 그늘진 구석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솔직하게 터놓고 살기 어려운 사회가 우리나라다. 다른 사람 눈치 보면서, 안색 살피면서, 비위 맞춰가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러다보니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적잖다.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입각해서 타자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한국인은 없다.혹은 그럴 여건이 아직 불가능한지도 모른다.가수이자 연기자로서 설리는 강인한 내면을 가진 청춘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자신의 견해를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게 밝히는 면모를 보면서 ‘허, 당찬 친구일세!’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힘차고 용감한 젊은이가 늘어나면 우리도 유럽의 청춘 남녀들처럼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아까운 청춘 설리가 세상을 버린 것이다.본디 죽음은 무겁고 무서우며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삶은 죽음보다 가볍고 유쾌하며 견딜만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왔으니 허무하다. 빛과 그늘이라는 양면성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죽음의 길로 들어섰으니 말이다. 그런 연유로 설리가 선택한 죽음은 그녀가 견뎌야 했던 삶보다 가볍고, 견딜만하며 무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진정 그러한가?!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그토록 가벼운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왜 이리들 황망하게 지상의 삶과 인연을 끊어버리는 것일까?!어제 설리가 생을 뒤로 하더니, 오늘 10월 15일에는 거제 단칸방에서 일가족 3명이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39세 아버지와 6세, 8세 두 아들이 동반 자살했다는 것이다. 아이들 엄마는 혼수상태로 위독하다 한다.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은 또 무엇인가?!나라 한쪽에서는 권력 잡겠다는 정파(政派)의 대표자들이 태극기 동반한 칼춤을 추고, 정의로운 검찰은 사법정의를 앞세워 장관을 바꾼다. 태극기와 정의가 막지 못하는 이런 죽음을 어찌 하랴. 권력도, 돈도, 대통령도, 감찰총장도, 법무장관도, 서초동도, 광화문도 결국 부질없는 것이다.그 모든 것의 앞자리에 인간과 생명과 자유와 평등과 형제애가 우뚝 서야 한다. 그래야 죽어나가는 청춘과 가족이 생겨나지 않는다.죽음을 가벼이 여기고, 삶을 견딜 수 없을 만큼 무겁고 한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한국사회의 전면적인 혁신과 재생이 절실하다. 최소한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인권국가의 면모를 되살리지 않으면, 이 나라의 미래도, 권력도, 돈도, 검찰총장도, 태극기도, 칼춤도 없기 때문이다.

2019-10-16

소리의 발명가

음악을 좋아하는 소년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 때 잠수함을 발명한 사람입니다. 정전기장 이론으로 우주 연구의 기초를 놓은 과학자이지요. 소년은 피아노를 배우면서 바흐와 베토벤에 빠집니다. 하지만, 악보대로 연습해 완벽하게 연주하는 일에 싫증을 냅니다. 처음 본 악보를 연습 없이 즉석에서 연주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낍니다. 그에게는 늘 새로운 악보가 필요했습니다.소년은 세상 누구도 해 보지 않은 시도를 하지요. 피아노 위 뚜껑을 열고 피아노 줄 사이에 다양한 물건을 끼워 넣기 시작합니다. 털실, 포크, 나무 빗장, 플라스틱, 지우개, 볼트. 마침내 소년은 아버지를 뛰어넘어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소리의 발명가’ 세계에 입문합니다. 존 케이지 이야기입니다.그는 1951년 세상에서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공간을 찾아 나섭니다. 그가 발견한 장소는 하버드 대학 녹음실이었습니다.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는 방음 공간입니다. 존 케이지는 그곳에서도 소리를 듣습니다. 먼저 자기 숨소리를 듣습니다. 호흡을 가라앉히자 이번에는 심장 소리가 들려옵니다. “쿵, 쿵, 쿵…”문득 영감이 떠오릅니다. 아무리 차단해도 어딘가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오선지에 악보를 끄적입니다. 순식간에 완성한 이 작품이 존 케이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됩니다. 어제 편지에 설명한 4분 33초가 바로 그것입니다.나다운 삶은 멈춤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온갖 소음과 자극으로부터 나를 분리하는 일로 시작합니다. 내 심장 소리, 호흡 소리. 저만치 아래 내 의식의 심연 깊은 곳에 가두어 두었던 내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진정한 내 삶을 시작하는 법입니다. 상대방 마음의 소리를 듣기 시작할 때, 아름다운 공명이 일어나 질적으로 완벽하게 새로운 너와 나의 관계 또한 시작할 수 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6

오픈뱅킹 시대

오픈뱅킹은 제3자에게 은행 계좌 등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고 지급결제 기능을 개방하는 공동결제시스템이다. 한마디로 은행의 금융결제망을 핀테크기업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앱 하나로 모든 은행 계좌에서 출금이나 이체를 할 수 있으며, 핀테크 사업자들도 개별 은행과 제휴를 맺을 필요 없이 결제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은행권은 이달 30일부터 오픈뱅킹 시범 운영을 시작하게 돼 오픈뱅킹 시대 개막을 앞두고 있다. 이후 12월부터 전면 시행된다. 기존에는 A은행 계좌를 조회하려면 반드시 A은행 앱을 사용해야 했지만 오픈뱅킹서비스가 도입되면 B은행, C은행 앱이나 핀테크 앱에서도 모든 은행의 계좌를 조회할 수 있고, 이체도 할 수 있게 된다. 즉 한 앱에서 모든 은행 계좌 업무 처리가 가능해진다. 오픈뱅킹에 제공되는 서비스는 모든 은행 계좌의 잔액조회와 거래내역 조회, 계좌실명조회, 송금인 정보 조회가 가능하다. 또 이용기관의 지급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해 수취인 계좌로 입금 가능하며, 출금에 동의한 고객 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해 이용기관 계좌로 집금도 가능하다.오픈뱅킹에는 모든 핀테크 결제사업자와 은행이 참여하게 된다. 참가은행은 산업은행, 농협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제일은행, 기업은행, 국민은행, 하나은행, 씨티은행, 수협은행, 대구은행, 부산은행, 광주은행, 제주은행, 전북은행, 경남은행,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18개사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시범 실시 전 내부 개발 및 전산테스트를 거쳐 제공기관으로 참가한다. 금융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발맞춰 보수적인 은행들도 디지털 경쟁력 제고에 힘써야 할 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0-16

교육, 누가 하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갈등에는 끝이 없는가. 당신은 어느 편인가 늘 궁금하다. 항상 조심스럽다. 우리 편끼리만 나누고 소통한다. 다른 편에게는 등을 돌린다. 말을 섞지 않을 뿐 아니라 만나는 일도 어색하다. 읽고 보는 매체가 전혀 딴판이니 생각의 틀도 완전히 다르다. 친구와 적이 분명히 구분되니, 칭찬과 비난도 정반대를 향한다. 다양한 의견이라 여겨 보지만, 오늘 우리의 모습은 건강한 것일까. 생각과 의견이 주장과 고집을 넘어 막말과 폭력, 차별과 혐오로 이어진다. 적절하게 조절하고 순조롭게 타협할 수 없을까. 갈등과 반목의 연속으로 보이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정치와 언론에 책임을 묻지만 뾰족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 모두 거쳐온 ‘교육’에 혹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한 아이를 기르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whole village to raise a child.)’ 나이지리아 속담이라는데, 사람을 길러내는 일에는 가정과 학교, 마을과 사회가 모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교육은 학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물론 학교가 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지만, 한 사람의 인성을 길러내는 일을 학교에만 기대할 수가 없다. 우리는 어떤가. 교육은 학교에서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아이들은 학교에 고립되어 있다. 학과목을 따라가느라,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가 없고, 삶의 맥락을 익힐 방법이 없다. 교육행정은 일반행정과 따로 진행되지 않는가. 학교에서 배운 다음 사회에 나오면 처음부터 다시 배우라고 한다. 살려고 공부했는데, 진짜로 살려면 다시 배워야 한다니!학교에서는 사회에 넘실거리는 파도를 본 적도 없다. 학교 밖 현실을 느낄 겨를이 없다. 교과목에 매달려 세상을 배우지 못한다. 그러니 주장과 선동에 휘둘리고 가짜와 막말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풍성한 생각과 다양한 태도, 다수의 접근방법과 싱싱한 토론양식을 익혀야 한다. 학교가 사회를 향하여 문을 열고 지역공동체와 함께 가르쳐야 한다. 지역에는 대학, 지방자치체, 도서관과 미술관, 그리고 다양한 직업군과 산업현장이 존재하지 않는가. 지역공동체가 연합하여 살아 숨쉬는 교육을 만들어 갈 수는 없을까. 학생들이 학창시절부터 교과목과 함께 사회를 배우고 세상을 접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어렸을 적부터 생각하고 함께 고민하며 토론하고 어울려 타협해 내도록 가르쳐야 한다.경상북도와 경상북도교육청이 함께 ‘경북형 교육협력거버넌스’를 만들기 위해 정책포럼을 열었다. 경북에서 교육이 학교 뿐 아니라 지역공동체도 함께 참여하고 기여하는 물꼬가 터진 것이다. 선생님들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어른들이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일에 나서게 되었다. 그처럼 폭넓게 배운 끝에 나라와 사회는 갈등과 반목이 줄어들고 대화와 소통이 넘실대는 곳으로 바뀌어 갈 터이다.교육은 학교만 하지 않는다.교육에 모두가 나서야 한다.

2019-10-16

통합공항 이전 방식과 철인 4인방

이창훈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대구경북지역의 최대 현안의 하나인 통합신공항 이전 후보지 선정이 겉돌고 있다. 지역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카드 패만 돌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대구경북민의 미래가 걸린 문제를 대구시와 경북도 등 상위 지자체가 의성군과 군위군의 지역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채 섣불리 끌고가려다 불거진 지역 리더십의 위기로도 볼수 있다. 즉 지역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중대 현안을 연내 부지 선정이라는 작은 목표에 쫓겨 섣부른 합의를 하고 반발이 나오자 다시 뒤집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고 있다. 시도지사가 해당 지역 군수와 허심탄회하게 4자회동을 거쳐 현안을 논의하는 것이야 말로 바람직하다.그러나 군위군수와 의성군수는 지역민의 민심이나 의사를 수렴하는 사전 내부절차가 없었다. 이런 선행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방안부터 공개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받으면 어떻게 하고 아니면 또 저렇게 한다는 방식이 수차례 반복됐다. 통합신공항은 군위와 의성군에 터를 잡는 것이지만 대구경북 전체 시도민이 이용하는 관문이 될 것이므로 여러 이해 당사자의 의사도 필요하지만 배제됐다.이런 점을 감안한 주도면밀한 설계나 합리적 논의 없이 ‘현인’ 4명이 플라톤식 철인(哲人)정치를 보여주려다 화를 좌초했다고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번에는 대구경북민 여론조사를 반영한다고 조항을 또 추가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뒤늦게 일을 키우고 있다는 인상마저 든다. 두 지역 주민투표율과 찬성률, 전체 시도민의 여론조사 비율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도 결정짓지 않았다.‘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군위와 의성도 처음부터 너무 지역의 이기주의 세력에 이리저리 휘둘려 대승적인 소신행정을 펼치지 못한 점에도 시선이 곱지 않다. 다선의 단체장이 보여줘야 할 경륜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다. 챗바퀴를 돌다 결국에는 국방부가 제시한 안으로 원점회귀하면서 지방자치를 부르짖는 명분마저 민망하게 만들고 말았다.통합신공항이 제대로 이전하려면 ‘일정을 역산, 험로가 예상된다고 더 이상 갈지자 행보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군위 의성 두 지역의 여론수렴과 함께 이번에 제시한 방안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마지막이란 각오로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역사적인 책무를 안게 됐다. 입지선정이 이렇게 꼬인 것은 대구시와 경북도가 내년도 총선을 의식해 충분히 숙의된 큰 대안없이 지나치게 졸속행정을 펼쳤다는 일부의 우려를 흘려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총선 후에는 사업의 속도가 더딜 것으로 판단, 충분한 사전 논의없이 너무 성급하게 밀어붙인 결과라는 소리다.공항실무진들도 좀 더 매끄럽게 시장과 지사의 소신행정을 뒷받침해야 한다. 언론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시도민의 큰 관심사항은 미리 언론에 고지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추후 결과를 공개하는 등 적극적인 공개행정이 필요하다.공개적이고 투명한 행정은 시도민 의 지지를 끌어내는 행정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2019-10-15

지역축제란 이런 것이다

심한식 경북부청도군과 청도반시축제추진위원회가 최근 3일간 ‘2019 청도반시축제’를 청도 야외공연장에서 개최했다.많은 사람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기자의 눈은 이들의 축제 준비와 축제의 기본이 되는 지역민을 배려하는 모습에 쏠렸다.끊이지 않고 연결되는 프로그램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먹을거리, 접근성이 좋은 주차장 등은 지역축제가 추구해야 하는 모든 면을 고스란히 보여줬다.감을 주제로 열리는 축제임을 부각시켜주는 체험과 다양한 농산물에 대한 정보제공 등은 가족단위 관람객의 증가를 설명해 주는 듯했다.수많은 사람이 찾은 축제장임에도 눈에 띄는 쓰레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세심한 준비성에도 감탄했다.청도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인 ‘코아페’가 함께 진행돼 관람객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축제의 기본이 되는 지역민을 배려하는 모습은 11일의 개막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시간적으로 늦은 오후 7시에 열린 개막식은 행정편의보다는 농사 일로 바쁜 지역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되도록 해 지역민이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대다수의 지역축제는 축제추진위원회와 자치단체의 이견조율 실패로 지역색깔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타성에 젖은 축제로 관람객과 지역민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축제추진위원회의 배만 불린다는 따가운 시선도 있다.하지만, 청도반시축제는 지자체와 축제추진위원회가 힘을 합치고 민의의 전당이라는 청도군의회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어 다른 자치단체의 부러움을 살만하다.지역축제는 관람객의 수도 중요하지만 축제의 기본이 되는 지역민이 대접받아야 한다. 주최·주관 측의 편의가 아닌 지역민과 관람객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올 가을엔 많은 자치단체가 축제를 진행 중이거나 예정하고 있다. 행정편의와 부수적인 조건을 탓하기보다는 ‘지역민과 관람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축제는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명제를 기억해야겠다./shs1127@kbmaeil.com

2019-10-15

10월, 天高心肥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10월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이 한층 더 깊어지는 달이다. 천고마비는 원래 ‘추고마비(秋高馬肥)’에서 유래되었는데, 송대 정강전신록에는, ‘가을이 깊어지고 말이 살찌면 오랑캐들이 다시 쳐들어와 이전의 맹약을 책할 것을 두려워한다.’라는 기록이 있고, 사마천의 사기에는 흉노족들이 ‘가을에 말이 살찌면 대림(8E5B林)에서 큰 모임을 갖고 가축들의 수를 비교한다.’고 적혀 있다. 흉노족은 가을철이면 살찐 말을 타고 중국 변방에 쳐들어와 노략질을 일삼았는데, 이로 인해 변방 중국인들은 가을이면 늘 전전긍긍해야만 했다.이처럼 가을이, 한쪽에선 약탈하기 좋은 계절로, 다른 쪽에선 두려움에 떠는 계절로 다가온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그러나 선우(흉노족의 우두머리)의 입장에서는, 겨울을 대비해 중국 변방을 공격하여 자국민의 양식을 비축할 필요가 있었고, 중국 군왕들의 입장에서는 장성을 쌓아 흉노의 침입을 막는 게 최우선의 과제였을 테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어느 쪽이든 모두 자국민의 생업 보장과 안전을 위한 위정자들의 고민이 ‘추고마비/천고마비’속에 함의되어 있었던 셈이다. 비록 한쪽에게 좋은 것이 다른 쪽에게는 그렇지 않긴 했어도. 적어도 자국민들을 위한 최선이 무엇일지는 늘 고민했던 위정자들의 흔적만큼은 엿볼 수 있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는 다 비슷비슷해서, 옛날이라 하여 위정자들이 늘 백성들만을 생각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당쟁과 사화들, 그 속에서 고통 받던 백성들이 일으킨 수많은 민란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러한 위정자들을 깨치려는 노력은 옛부터 줄기차게 일어났던 바다. 이와 관련해, 허균이 남긴 논설 호민론은 주목할 만하다.호민론에서는 백성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위정자들에게 가만히 순종하기만 하는 항민(恒民), 윗사람을 원망하기만 하는 원민(怨民), 가만히 참으며 틈만 엿보다가 시기가 오면 일어나는 호민(豪民)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 호민이 반기를 들면 원민들은 소리만 듣고도 절로 모이고, 항민들 또한 살기를 구해서 따라 일어나므로, 관직에 있는 자라면, 이러한 호민들을 두려워하여, 정치를 똑바로 하라는 것이 요지이다.옛말에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이 있다. 민심에 근간한 정치를 왕도 정치라 하여 가장 이상적으로 여긴 것도 이 때문이다. 옛 제왕들은 민심을 잘 파악하고자 언로(言路)를 확대하고 상소제도를 두었으며, 끊임없이 자기 수양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제도만 두고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나 ‘귀’가 없다면, 그 또한 옳지 않다고 여긴 탓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갈고 닦는 수신(修身)을 무엇보다도 크게 생각하곤 하였다.요새 들어 인재 등용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사회 이슈들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정치적 입장에 따른 시위대들의 시시비비를 논하기에 앞서, 이 천고(天高)의 계절 가을에, 위정자들은 민심의 소리에 깊이 한번 귀를 기울이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맑게 가꾸고 살찌워 보는, 심비(心肥)를 우선적으로 실천해 보면 어떨까?

2019-10-15

포항경제의 새로운 가치사슬을 기대하며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지난주 세계은행은 “글로벌 가치사슬시대의 개발을 위한 무역”이라는 제목의 ‘세계개발보고서 2020(World Development Report 2020)’을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개발도상국이 고용확대와 소득증대 등을 동반하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과의 글로벌 가치사슬(value chain)에 참가하여야만 무역 확대와 더불어 성장을 촉진하는 변화를 가속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어느 특정 국가나 지역이 자체적인 순환경제만으로는 성장이나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그런 면에서 포항 지역 경제는 우리나라 고도 성장기에 건설, 자동차, 조선 등 수많은 성장산업들과 연계된 국내 가치사슬의 한축을 담당하면서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한 가치사슬에 동참함으로써 지금 포항지역 주민소득은 전국 지자체별 평균소득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다만 2000년대 이후 가속화되기 시작한 자동차 공장 등의 해외이전 등 여파로 포항과 연결되었던 국내의 공급사슬 또는 가치사슬이 매우 느슨해져 지역경제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적어도 지역 철강과 연계된 국내 가치사슬의 성장 동력 약화를 보완할 수 있도록 포항은 지역 자체의 철강생태계 조성에 더욱 힘써야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마침 그동안 경북도와 포항시가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과 함께 추진해왔던 안전로봇실증센터가 10월 17일 개소된다. 이 센터는 포항경제의 새로운 돌파구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된다. 하지만 한국은행 포항본부가 2013년 9월 한국로봇융합연구원과 공동으로 지역의 로봇산업 육성을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한 지 만 6년이 지났지만 당시에 제기되던 정책과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실정이다. 포항이 로봇산업의 핵심 연구기관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로봇산업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인 것은 로봇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어야하는 특징 때문이며, 그나마 이를 뒷받침하는 공공수요도 개발 이후의 상용화가 아닌 개발 자체에 목표를 두는 단발적인 사업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경제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가야할 최대의 과제는 비록 일회성의 단발적인 공공수요라고 할지라도 해외의 공공수요를 추가로 개척하거나, 개발된 기술이 민간수요로 원만히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그러한 맥락에서 이번에 문을 여는 안전로봇실증센터는 앞으로 포항 로봇산업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일례로 영일만대교를 건설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수중건설로봇, 해양탐사 등에 활용할 수중안전로봇 등 실제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로봇기술들은 많다. 세계은행이 지적한 것처럼 한 지역이 모든 것을 끌어안을 필요도 없다. 국내 안전로봇의 공공수요가 부족하면 영일만항의 주요 기착항인 동남아시아 등지의 정책당국과 협의하여 포항발 안전로봇의 가치사슬을 확장시키는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기에 앞으로 영일만항 배후단지에 자리잡게 된 실증센터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가야만 한다. 부디 실증센터의 개소를 계기로 포항 경제가 새로운 가치사슬을 엮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9-10-15

4분 33초

연미복을 차려입은 피아니스트가 무대 위로 올라옵니다. 우레 같은 박수를 받은 뒤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호흡을 가다듬은 피아니스트는 조심스레 피아노 뚜껑을 열고 악보를 제자리에 놓습니다. 청중들은 연주를 기다리지요.그런데 연주자는 묵묵히 피아노 건반을 응시합니다. 33초의 시간이 흐른 후 피아노 뚜껑을 닫습니다. 1악장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행위입니다. 잠깐 호흡을 고른 후 다시 뚜껑을 열고 2악장 연주를 시작하지요.이번에도 역시 연주자는 건반을 응시할 뿐,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콘서트홀의 무대는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청중석에서는 약간의 기침 소리,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부스럭대는 소리, 한숨 소리, 에어컨 소리가 가늘게 들립니다. 오히려 벽면의 시계 초침에서 미세한 울림이 들리듯 합니다. 2분 40초의 2악장이 끝나고 다시 피아노 뚜껑 덮기.마지막으로 1분 20초의 3악장을 동일한 방식으로 연주하고 피아니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악보를 경건하게 다시 품에 안고 청중에게 절을 하고 퇴장합니다. 관객들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지요.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연주회. 4분 33초의 공연 모습입니다.작곡가 존 케이지는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곧 음악이다.”침묵은 우리의 귀를 활짝 열도록 인도합니다. 평소 연주회장에서 소음으로 인식되었던 기침소리, 부스럭 소리, 바람 소리를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것이죠. 케이지에게 있어서 침묵은 진정한 평화에 이르도록 하는 하나의 수단인 동시에 재료인 셈입니다. 자신의 이름 케이지(Cage 새장)처럼 전통적 시스템이라는 새장에 수천 년 동안 묶여 있던 작곡가, 연주자, 청중에 대한 고정 관념과 음악과 소음에 대한 개념들을 모두 새장 밖으로 훨훨 날려 보냄으로써 진정한 소리를 찾을 수 있었던 셈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5

사랑하기와 용서하기-‘멜로가 체질’을 뒤늦게 보고

안재홍(범수)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천우희(진주)는 잘 모르는 배우인데 연기를 잘 한다.그리고 난 이런 느낌의 드라마가 좋다. 가볍고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은 영화. 아무런 무게도 교훈도 없는 그런 내용. 그런데 말이다. 이 드라마는 정말 감동이다. 왜냐고? 내 모습하고 비슷하니까. 내가 범수였으니까. 드라마라는 게 그런 것 같다. 결국 내 이야기를 해주는 느낌.진주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이 손을 잡아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져. 안아도 될 것 같고. 후회하지 않을 것 같고. 뭐 그런 믿음이 깨져가는 과정이 연애지만….”그래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당신을 만나고 열심히 일을 하고 싶어졌고, 무슨 일이든 가능할 것 같았던 때가 있었다.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모두 당신에게서 비롯되었던 때가 있었다.그런데 진주의 말처럼 연애란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깨져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은 느낌. 당신을 사랑하면 왠지 내가 착해지는 듯한 느낌. 그런 느낌에 하늘을 걷는 듯한 느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죽을 것 같은 느낌, 착해지는 듯한 느낌이 일상이 되어 버리고, 내가 들떠 있는 상태가 평상의 상태가 되어 버릴 때 우리의 사랑은 조금씩 식어 간다.그런데 그런 좋았던 느낌들이 일상이 되어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면 이제 당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객관적 상태에서 당신에게 싫은 부분이 많은지 좋은 부분이 많은지를 비교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여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이 드라마가 내게 와 닿았던 이유는 이런 부분 때문이다.범수: 정신이 없었어요. 오만가지 컨펌을 하느라.진주: 핑계~범수: 근데 나는 이게 왜 핑계가 되는 줄 모르겠는데? 일이잖아. 내가 동호회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술을 퍼마시고 논 것도 아니고. 바쁜 와중에 이렇게 틈내서 만나는데 어떻게….진주: 틈내서?범수: 틈내서라는 말이 기분 나쁜 말인가? 작가님도 나도 지금 너무 바쁘잖아. 그 와중에 틈내서 만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이야.나도 범수처럼 항상 바빴고 상대방은 그런 바쁜 나를 이해해주지 못했고. 바쁜 걸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짜증을 냈고. 상대는 더 짜증을 냈고.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 가는 거다. 여기서 범수의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다.범수: 말을 그렇게 해요? 빨래라니. 처리라니. 아니 바쁜 거 뻔히 알면서 왜 항상 이런 식으로 기분 상해해요?진주: 항. 항상이라뇨? 난 그런 적 없어요. 처음인데?범수: 맞아요.진주: 내가 감독님 전 여친한테 바통 이어받은 건가요?범수: 내가 그렇게 들릴 수 있게 말을 한 것 같아요. 내가 잘못했어요. 내 실수예요. 미안해요.진주: 난 내 출발선에서 출발했어요.범수: 맞아요.진주: 제가 오늘은 좀 실망을 해야겠어요. 갈게요.진주가 화가 난 이유는 범수가 진주를 옛날 연인과 비교했기 때문이다. 옛날에 바쁜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했던 과거의 연인과 진주를 동일시한 것이다. 그래서 진주는 화가 났다. 진주는 범수에 실망했다고 말하며 돌아선다. 그러면서 많은 잔고 끝에 “니놈은 나쁜 것보다 좋은 게 더 많은 놈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며, 범수를 용서한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지금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후에야 겨우 알게 되었는데 진주는 어떻게 이런 걸 알게 된 거지?그래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계산의 결과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싫음을 참아낼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싫음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다면, 헤어지면 된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그런데 그 사람의 싫음을 참아낼 수 있는 정도라면, 지금 화나는 기분을 억누르면 된다. 그리고 사과하라. 사과할 일이 아니라면 솔직하게 말하라. 무엇이 그렇게 싫은지. 그런데 내 경우에는 내가 싫다고 생각한 당신의 싫음은 더러운 내 성격 때문이지 당신의 잘못이 아니더란 거다. 결국 내가 이상한 놈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다. 그래서 사랑에는 또 다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자신의 상태를 바라볼 줄 아는 노력. 상대가 아니라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노력 말이다. 사랑이 노력 없이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잘못된 생각이다. 그건 망상이다.결국 사랑의 최종 단계에서 보게 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다. 당신이 아니라 ‘나’를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용납할 수 있는 싫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니 이유 불문하고 사랑하라.

2019-10-15

개의 발정기와 마운팅

개는 수컷과 암컷의 교미시기가 차이가 있다. 개의 경우 수컷은 일년내내 교미가 가능하지만 암컷은 한 해에 두 번 정도 발정기가 있는데, 수컷의 성욕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것은 발정기의 암컷이 눈앞에 있거나 적어도 그 냄새를 맡았을 때이다. 즉 수컷은 항상 교미에 관심이 있긴 해도 발정기에 있는 암컷이 있어야 교미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야생 개과동물의 발정기는 한 해에 한 번이고, 집개는 대부분 한 해에 두 번의 발정기를 가진다.발정기의 암컷은 난소가 수정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성호르몬을 분비하고 동시에 수컷을 끌어들이는 독특한 냄새를 만들어낸다. 발정기(Estrus) 라는 단어는 ‘광기’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나온 것인데, 발정기의 호르몬이 암컷을 평소보다 활동적으로, 때로는 지배적이고 공격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개의 발정기는 21일간 지속되고 세 단계가 있다. 1단계는 발정 전기인데 9일정도 계속된다. 이 시기의 암컷은 안절부절하게 되고 평소보다 왕성하게 돌아다닌다. 물을 먹는 양도 늘어서 가는 곳마다 방뇨를 하는데, 이는 오줌냄새를 통해 수컷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수컷은 암컷의 냄새를 아주 멀리서도 맡을 수 있기 때문에 발정기의 암컷이 있는 집 주위로 수컷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발정전기 단계가 끝날 무렵이 되면 질 분비물에 피가 섞여 거무스름해지기 시작하는데, 사람의 경우 생리가 배란 후에 시작되지만 개의 경우에는 배란전에 시작된다. 이것은 질벽에 변화가 생겨 배란 준비가 갖추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수컷입장에서 보면 이 시기의 암컷은 교미를 위한 강력한 유혹을 하고 있는 것인데, 정작 이때 수컷이 다가가도 암컷은 수컷을 거절한다. 다가오는 수컷에게 으르렁거리기도 하고, 위협하며 물어뜯기도 한다. 공격적이지 않은 암컷은 도망가거나 수컷이 등에 올라타려고 하면 방향을 바꾸어버리거나 하는데, 이런 행동은 수컷을 애태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암컷이 아직 배란을 하지 않은 것 뿐이다. 분비물의 수분이 많아지고 색이 투명해지면 암컷이 교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인데, 배란이 일어나더라도 개의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일수 있게 되려면 72시간이 걸린다. 개는 난자가 성숙한 상태에서 배란되는 것이 아니라 배란 후에도 시간을 가지면서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암컷의 거절행동은 배란기가 2∼3일밖에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그때까지 자신의 주변에 가능한 많은 수컷을 끌어들여 두는 것으로 해석된다.이동훈개를 기르다 보면 수컷이 교미흉내를 내는 마운팅 행동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강아지는 생후 6개월부터 8개월 무렵이 사춘기인데, 이 시기를 맞기 전부터 마운팅과 유사한 행동을 시작한다. 강아지는 보통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동료와 놀게 되면 곧바로 마운팅을 하는 데 이것은 성적인 행동이 아니라 사회적인 행동이다.기본적으로 이 행동은 지배성의 표현인데 강하고 튼튼한 강아지는 단순히 주도권이나 지배성을 나타내기 위해 복종적인 형제나 자매의 등에 올라탄다. 이런 행동은 성장해서도 계속되는데 마운팅은 주도권의 신호여서 생식과 무관하므로 상대가 암컷이든 수컷이든 상관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개가 사람에게 마운팅을 시도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때 개들이 성적으로 흥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사람보다 우위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개가 사람에게 마운팅을 시도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려면 사람이 우위인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복종훈련을 개에게 가르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서라벌대 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10-15

조국 장관 사퇴가 남긴 것

박준섭 변호사조국 장관이 전격 사퇴했다. 그동안 광화문 광장과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조국 사퇴와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여러 차례 열렸다. 조국 전 장관은 촛불시위가 ‘주권자인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제는 우리가 촛불민심의 의미에 대하여, 광장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과연 촛불 민심은 주권자 자체인가 아니면 주권자의 또 다른 대표인가.그러나 광장의 민주주의가 주권자의 의사라고 규정한 곳은 헌법 어디에도 없다. 우리 헌법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대통령과 입법부를 국민의 대표로 뽑고 입법부에게 법률을 만들게 하고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에 법률의 집행을 맡겼다. 입법부가 만든 법률에 의하여 지배하여야 한다는 헌법이념은 독재자의 자의(恣意)에 의한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고안해 낸 근대헌법의 지혜이다.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가 현대에 와서는 국민이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실현할 더 나은 대안은 없고, 이것이 최선의 지혜이다.먼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의 촛불시위를 생각해 보자. 이것이 미래의 민주주의에 대하여 성찰하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문제의 핵심은 촛불민심이 아니라 의회의 탄핵소추의결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인용이라는 헌법적 절차였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절차 등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우리는 전통과 제도와 국가의 권위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의 관점에서 이를 긍정하고 다음의 역사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한편, 최근의 조국장관과 관련된 촛불시위는 그 명분이 아무리 검찰개혁의 지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촛불의 민심이라는 이름으로 주권자의 의사와 동일시 될 수는 없다. 사실 서초동 촛불시위는 문재인 대통령 행정부와 여당 그리고 조국 장관을 지지하는 집단의 의사표현에 불과해 보인다. 그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국민들이 너무 많다. 조국 장관의 검찰개혁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검찰개혁이 아니라 특정 정파를 위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한국당 등 보수적 정파와 시민들이 조국 장관에 반대하는 시위를 대규모로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촛불은 갈라졌다. 결국 광장의 촛불은 국민의 민의가 아니라 특정 정파들의 의사표현일 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광장촛불의 진실은 여기에 있다.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두 눈을 부릅뜬 파수꾼처럼 지켜보아야 한다. 조국 장관도, 지난 주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도,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도 스스로 주권자의 의사를 빙자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여론의 다수가 이끌어가는 폭정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우리의 소중한 민주주의의 촛불이 포퓰리즘의 회오리에 꺼지지 않고 민주주의의 미래를 밝히는 지혜가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10-15

노벨상 유감

10월은 노벨상 시즌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상자가 발표된다.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노벨상을 받는 나라와 개인이 이맘때쯤이면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1901년부터 시작한 이 상은 올해로 벌써 118년째다. 그러면서 그 권위는 여전히 세계 최고다. 특히 과학분야의 수상자는 그 나라의 과학문명 발달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눈길을 끈다.역대 노벨상 수상자를 출신지별로 보면 미국이 가장 많다. 특히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미국 국적 보유자가 271명으로 전체의 43%를 차지한다. 영국 14%, 독일 11%, 프랑스 5.5%다. 아시아에서는 24명을 배출한 일본이 최다 기록 보유국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별로 보아도 미국이 단연 뛰어나다. 1위에서 8위까지 모두가 미국 소재 대학이 차지하고 있다. 가장 많이 배출한 1위 대학은 스탠퍼드 대학이다. 실리콘밸리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교육 및 연구에서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구글이나 야후 등의 창립자가 이 학교 출신이다.무역전쟁으로 우리와 각을 세우고 있는 일본은 올해도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화학상)를 배출했다. 작년에 이어 연속 수상의 영광도 안았다.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좁혀가며 노벨상 수상자 탄생을 고대하던 우리의 처지가 갑자기 초라해진다. 특히 올해 화학상을 수상한 일본인 요시노 아키라씨가 리튬이온 전지업체 샐러리맨 출신이라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다. 일본의 연구 문화가 우리와 다름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내겠다는 한국적 조급함으로 노벨상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