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문정민 에듀아이엠 대표“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 줄 아니?”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면이다. 어린 왕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한다.“글쎄,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어린 왕자의 생각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서 아침부터 밤까지 얼마나 바쁜가? 지혜로운 사막여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그래, 네 말도 맞아.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뜻밖의 답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이다.회사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싶은 이유 중 첫 번째는 함께 일하는 사람이 싫어질 때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지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함께 하는 기간이 길면 괜찮을까?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가 부부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는 일은 어렵고 힘들다. 무조건 상대방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맞춰주면 다 될 것 같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한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좋다고 하지만 그것은 더 힘든 일이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혼란스럽기만 하다. 대체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일이다. 영국 육상 대표였던 데릭 레드먼드는 400m 달리기 종목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출발 신호가 울리고 트랙을 질주하던 선수들 사이에 갑자기 한 선수가 주저앉았다. 데릭 레드먼드였다. 150m쯤 다다랐을 때 갑자기 다리 힘줄이 끊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고통 속에서 레드먼드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일어섰다. 진행 요원과 의료진이 만류했지만, 레드먼드는 한 발로 뛰기 시작했다. 그때 관중석에서 한 사람이 뛰어들었다. 아들의 고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레드먼드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울고 있는 아들에게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레드먼드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다. 레이먼드는 더 큰 부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경기 결과는 이미 뒤집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모든 불운에도 그는 뛰고 싶었다. 비록 메달을 딸 수 없지만, 이 순간을 위해 애쓴 자신에게 떳떳해지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아들의 마음을 깨달은 아버지는 부축하며 말한다.“그래, 같이 뛰자!”아버지는 결승선까지 완주하도록 도왔다. 어깨동무하며 골인하는 그들에게 모든 관중이 일어서 박수를 보냈다.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친한 친구를 생각해 보자. 나에게 정답을 가르치고 강요하려는 친구보다, 내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는 친구에게 마음이 열린다. 존중받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마음을 얻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나 자신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스스로 현재 자신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 상태도 잘 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관심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잘하는지에 관심이 있다. 자신의 마음을 얻는 사람은 나 자신을 잘 돌보며 살아간다. 내가 잘한 일과 못 한 일, 그 모든 일이 합해 나라는 사실을 안다. 자신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을 수용한다. 그래서 자신을 받아들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내 경험에 비추어 남도 실수할 수 있다고 인정하며 무시하지 않는다.얼마 남지 않은 2019년, 정신없이 사느라 놓쳤던 부분은 없는지 생각해 본다. 이런저런 일로 웃고 울기도 했다. 기대했던 만큼 잘 풀리지 않은 일도 있지만, 뜻밖의 소식에 기쁘기도 했다.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사람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사람 덕분에 힘이 나기도 한다. 손가락을 꼽아가며 고마운 이름을 떠올려 본다. 열 손가락으로 부족하다. 괜히 부끄럽고 미안하다. 어쩌면 내 상처만 기억하느라 고마운 사람을 잊고 지내지는 않았을까? 올해가 가기 전에 연락해야겠다. 내게 사랑과 이해를 가르쳐 준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나를 더 아끼고 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기온이 뚝 떨어져 바람이 차다. 사람의 따스한 온기가 그리워지는 겨울밤이다.

2019-12-08

서울의 계단

스무 살 무렵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가장 버겁게 느껴졌던 것 하나가 계단이었다. 국문학과가 있는 1동 계단은 그런 대로 견딜 만 했다. 정말 적응하기 힘든 것은 도서관 쪽 5,6층 사이 계단이었다. 열람실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이었다.처음에 생각하기로는 설계가 잘못된 게 아닌가 했다. 나라마다 각각 사람의 체형에 맞는 계단 높이라는 게 있다. 혹시 설계자가 한국사람 키높이를 몰랐던 게 아닐까?달리, 혹시 뭔가 장중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일부러 한 계단 높이를 약간 높게 설계한 것은 아닌가 하고도 생각했다. 1975년에 완공되었다는 이 한 세트의 건물들은 모두 고동색 빛깔이었고 도서관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4층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관료적인 인상을 주는 외관이다. 계단 높이도 이런 장중함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였던 것일까? 이 의도된 장중함은 이 학교의 ‘센터’에 해당하는 사각 스퀘어를 통해서도 발현되고 있었다. 이 사각 스퀘어를 둘러싸고 행정관, 도서관이 위아래로 마주 보고, 다시 학생회관과 인문대학의 1동이 양 옆으로 마주 보며 서 있었다. 이 사각의 공간은 대학의 중핵 기관이 행정관과 도서관이라는, 또 학생회관과 인문대학이 대학의 정신을 상징한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단지 학교 도서관 계단만은 아니었다. 그 무렵 내가 겪은 서울의 계단들은 늘 어딘지 모르게 높아서 올라 딛기 불편했다. 그후 서울은 어딜 가나 지하철 계단으로 넘쳐나는 도시가 되었다. 이 지하철 계단들은 어른도 내딛기 어렵게 느껴졌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육교 계단도 마찬가지였다.생각해 본다. 정말 서울의 계단들이 그러했던 것일까? 아니면 혹시 서울이라는 적응하기 힘든 세상에 대한 나의 위화감이 작용한 심리적 반응이었던 것일까?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산 대전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 계단이라는 것이 대전에는 없었던 것도 같다. 요즘 아침저녁으로 지하 6층 깊은 곳에 플랫폼이 있는 독바위역을 드나들어야 한다. 꼭 한 층만은 에스컬레이터를 운행하지 않는단다. 절전 때문일 것이다. 늦은 밤 지친 몸으로 계단을 올라가야 할 때면 불편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이제는 계단에 대해 더는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건만, 나는 지금도 서울의 계단이란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투덜거리곤 한다. 어쩔 수 없이, 운동 삼아 오르내리며, 심술을 부려본다. 계단을 보면 차라리 고마워해야 한다던 운동 권유자의 말도 별로 듣기에 좋지는 않다고 말이다.계단은 있는 것보다 없는 쪽이 좋다. 물성을 갖춘 진짜 계단 말고도 모든 사회적 계단도 말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9-12-05

자살이란 사회 병리

사회 병리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과 집단이 어떤 충격적 요소에 의해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 질병의 사례는 빈곤, 실업, 계층간 대립, 범죄, 가정불화, 자살, 마약 등 수두룩하다.우리사회 체제나 구조가 지닌 모순으로 사회적 기능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해법은 매우 어렵다. 1997년 말 IMF체제로 온 국민이 어려운 시절을 보낸후 한 통계에서 드러났다. 우리나라의 자살자가 처음으로 교통사고 사망자를 넘어선 것이다. 불경기라는 불행한 사회구조로 자살이라는 사회 병리가 국민의 한구석에 자리를 튼 것이다.자살은 어떤 이유로든 용납되지 않는다. 그것이 정치적 이유로든 연예인이 가지는 대중성 때문이든 용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소중한 생명과 직결된 문제로 인간의 본성이 지닌 엄격한 도덕적 규율에도 어긋난다. 국가가 이런 문제에 적극 대처해야 하는 것은 국가 윤리에 관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최근 우리사회에 빚어지는 연이은 자살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다. 특히 젊은 연예인의 잇단 자살은 안타까움을 넘어 우리 사회에 대한 원망의 자책으로 되돌아온다. 뭔가 잘못된 사회 시스템을 꼬집고 싶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문제라 더욱 곤욕스럽다.자살은 질병이고 전염이고 재발한다. 1년 전 죽은 사람을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보다 자살할 가능성이 3.7배 높다는 조사가 있다. 괴테 작품에서 딴 베르테르의 효과가 이런 것이다.1962년 미국의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의 죽음은 미국 내 큰 파장을 미쳤다. 그녀의 자살로 미국의 자살률이 12%까지 올라간 것이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자살의 사회병리 현상은 누가 고칠 것인가. 국가가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05

협상 없는 정치 끝내려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강대강 대치가 우려스럽다. 정기국회 폐회일인 10일이 다가오고 있는 데도 내년도 예산안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벼랑 끝 대치가 더욱 격화하고 있다.더불어민주당은 예산안과 패스트트랙 법안의 일방 처리 수순에 들어갔고, 자유한국당은 강력 저지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청와대 하명 수사 및 감찰 무마 의혹이 계속 확산하면서 여야는 물론 여권과 검찰 간 대립마저 심화하고 있다.현재 민주당은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한국당에 최후통첩을 했다. 지난 3일 한국당에 민생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사전에 철회할 것을 요청한 데 이어 이날 다시 한국당의 협상 참여 전제조건으로 필리버스터 철회를 요구한 것이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입장 변화를 압박하는 동시에 최악의 경우 패스트트랙 법안 및 예산안을 일방 처리하기 위한 명분을 쌓기위한 것 아니냐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은 한국당이 민생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카드를 공식적으로 폐기하면 한국당과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계속 밝혀 왔다.다만 민주당은 한국당과의 협상이 최종 불발될 경우에 대비, 4+1 협의체 논의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공수처법의 경우 본회의 의결정족수 확보가 가능한 안건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선거법은 ‘지역구 250석·비례대표 50석’을 기준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적용 의석 규모와 연동률 등을 놓고 막판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이런 가운데 한국당은 이른바 ‘2대 악법 저지 및 3대 청와대 게이트’를 연결고리로 대여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및 공수처에 대한 원천 반대 입장을 기조로 하명 수사 의혹, 감찰 무마 의혹, 우리들병원 특혜의혹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파상공세다.어쨌든 여야가 제대로 대화 한번 하지못한 채 강대강 대치로만 치닫고 있는 것은 국회 정상화를 고대하는 국민들에게 매우 실망스런 모습이다. 그나마 여당이 선거법은 한국당의 원내사령탑이 새로 선출될 때까지 연장하기로 한 것은 여야간 협상의 물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한다. 현재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강석호·유기준 의원 등이 모두 협상력 복원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삭발과 단식투쟁으로 한국당을 강경노선으로 이끌고 있는 황교안 대표도 패스트트랙 법안과 선거제개편안을 무조건 반대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건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임기연장을 막은 것 역시 새로운 원내지도부의 협상력 복원에 기대를 거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민주당과 한국당은 대화와 협상에 나서서 민생법안과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는 성숙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전부 아니면 전무’인 대통령중심제란 권력구조가 협상없는 정치를 촉발하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되짚어볼 때다.

2019-12-05

공부의 즐거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유가 경전인 논어의 첫머리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말씀이다.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요즘 말로 공부를 한다는 것일 터인데,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 공자님도 공부를 한다는 것과 또 그것을 기쁘게 여긴다는 걸 알 수 있다. 학창시절의 학생들이나 하는 것이 공부요, 지긋지긋하지만 입시나 취직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공부라는 보통사람들의 통념과는 많이 다른 말씀이다.현생인류를 분류학상 학명으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고 한다. 우리말로 ‘슬기슬기사람’이라고도 하는데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될 것 같다. 인류가 다른 영장류에서 갈라져 나온 원인이 바로 공부하는 특성과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사람노릇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세상이 복잡다단해질수록 해야 할 공부도 그만큼 더 많아지게 마련이다.우선은 생업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보통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각종 시험에 높은 점수를 받고 더 좋은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보장 받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소위 출세를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남보다 많은 재물을 모으고 높은 지위에 올라간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전락해서 감옥에 가거나 자살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남에게 고약한 갑질을 하거나 자기이익을 위해서 남을 해치고 부정부패를 일삼거나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인문학적인 소양의 부족에서 나오는 행태라고 봐야 할 것이다.사람다운 사람으로 살려면 평생을 두고 덕을 쌓고 교양을 갖추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인문학적인 공부다. 인문학이 보통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일컫는다. 그것을 통해 폭넓고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삶의 진실을 깨치는 것이 인문학적인 공부다. 물론 예술과 종교를 통해 심미안과 영성을 함양하는 것도 인문학의 영역이라 할 수가 있고.요즘은 참 공부하기 좋은 시절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무슨 공부든 손쉽게 할 수 있는 세상이다. 휴대전화기 하나면 세상의 온갖 정보에 접속할 수가 있는 데다 유튜브(Youtuve) 같은 동영상으로 각계 석학들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음악과 미술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문학과 철학과 역사와 종교에 이르기까지 혼자서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세계를 두루 여행하면서 인문과 자연을 배우는 것도 어렵지 않은 시절이다.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은 시류에 휩쓸리거나 편견과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는다. 복잡하고 혼란한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올바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다. 편향된 진영논리나 당리당략 따위에 인생을 걸지 않는다. 기쁘고 정의롭지 않은 것은 공부가 아니다.

2019-12-05

마지막 달력 한 장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달력을 떼어내고 마지막 달력 한 장만 남았다. 한해가 간다. 금년 2019년도 이제 마지막 한달. 매년 보내는 이맘때면 보내는 한 해이지만 금년 한 해는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매년 말이면 “희망과 혼돈의 한 해가 간다”라고 했지만 금년엔 “혼돈의 한해가 간다”라고 해야하지 않을까?금년은 “조국에서 시작하여 조국으로 끝났다”고 할 정도로 조국 사태는 심각했고 그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법정공방은 오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매주 말 열린 태극기 집회와 촛불집회 등으로 국가가 두 동강이 난 느낌은 여전하다. 보수파와 진보파로 불리는 여론층은 서로 매질을 하면서 국가가 분열되는 모습을 보였다. 혹자는 해방 직후 둘로 갈라졌던 시절을 떠올리며 한국전쟁의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정부가 그토록 약속했던 평화는 이제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내로남불이란 단어가 유난히도 많이 언급되었던 한해이다. 내가 하면 되고 남이 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정치인들이 상황이 바뀔 때마다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모습. 그 모습이 2019년엔 유난히 느껴졌다.북한과의 평화국면도 사라지고 대결국면이 다시 시작되는 분위기다. 미국과 북한은 무력을 언급했고, 또한 군사긴장완화 계획으로 비무장지대내 GP(감시초소) 시범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등 진행되던 계획도 이젠 수포로 돌아가는 분위기다.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식을 하고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우선 정상화, 서해경제공동특구·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 협의 등 화려한 약속도 물거품이다. 도대체 지구상 최고의 일당 독재국가와 평화 협상을 무장해제를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깍두기처럼 처해진 한국의 입장은 동정심마저 생길 정도이다.한일 관계도 최악의 길을 걷고 있다. 65년 한일협정 이후 최대의 위기가 한일간에 형성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우리가 가장 동맹관계가 견고해야할 국가들이다. 경제 상황은 말이 아니다. 집값과 땅값은 사상 최대로 오르고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경제상황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극단적 선택이 많았던 한해이다. 정치적 이유로 또 생활고로 많은 사람이 떠났다.한전공대 설립과 특목고 폐지로 대변되는 “대통령 공약과 한마디”는 무리한 정책임을 알면서도 강행되고 있다. 최근 터진 청와대의 선거개입 건은 결말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 국가,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것일까? 쿼바디스 코리아 (Quo Vadis Korea·한국이여 어디로 가는가)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2020년은 총선거의 해이다. 선거를 통해 민심이 잘 반영되고 새로운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말 중에 “Tough times never last, but, tough people do ”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유명한 로벗 쉴러 목사가 말한 이 말은 “힘든 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힘든 시간을 견딘자는 오래간다”이다. 이 교훈이 우리의 경우이길 빌어본다.

2019-12-05

우연을 가장한 행운

옛날 구종직이라는 말단 관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경회루의 경치가 아름다워 몰래 궁중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임금의 거동이 있었습니다. 구종직은 급히 도망치려 했지만 담을 뛰어넘어야 할 형편이어서 어쩔 수 없이 길을 비켜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금이 묻습니다.“누구이기에 여기까지 들어왔느냐?”구종직이 우물쭈물하자, 임금이 갑자기 질문합니다.“여차여차한 문장을 아느냐?”“네. 알고 있는 줄 아뢰오.”“그럼 한 번 들어보자.”구종직은 평소에 글 읽기를 좋아하는지라 문장이 술술 나왔습니다. 가상히 여긴 임금은 정9품 말단 관리였던 그에게 종5품 벼슬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구종직이 순식간에 벼슬에 오른 이 사건을 안 신하들은 불평이 많았습니다. 임금은 신하들을 불러 구종직에게 물었던 그 문장을 외게 했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구종직을 발탁해 벼슬로 임용한 임금은 세종대왕입니다. 세종이 물었던 질문은 ‘춘추’였고 구종직은 세종 앞에서 춘추 한 권을 모조리 암송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늘 인재에 목말라했던 세종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언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는 중에도 부지런히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구종직의 태도도 놀랍습니다. 그 후 구종직은 세조, 성종 시대를 거치면서 자신의 배움을 마음껏 발휘해 국가를 위해 봉사합니다. 1466년에는 공조참판에 이르고 자헌대부까지 올랐습니다. 문장이 뛰어나고 역학, 경학에 밝았지요.엘빈 토플러는 말합니다. “21세기 문맹은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배우기를 멈춘 사람이다.” 인공지능이전방위적으로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배움에 열려 있는 누군가에게는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이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2020년에는 어떤 배움의 즐거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5

오천시의원 주민소환은 무엇을 가리나

안찬규기획취재부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광장으로 모여든 촛불 물결이 국가 원수를 물러나게 한 나라이기도 하다. 세계 200여 국가 중 대통령을 탄핵(彈劾)한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과 독일, 브라질, 에콰도르 등 12개 국가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즈 등 외신들은 공통으로 대규모 촛불집회가 탄핵의 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프랑스 르몽드는 “한국인들은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내려고 대규모로 움직였다. 바로 그들이 대통령으로부터 어설픈 사과를 하게 만들었고 특별검사에게 수사를 맡기게 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도 “한국인들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저항한 지 30년이 지난 후, 그들은 평화로운 방법으로 대통령을 파면하려고 저항했다”고 평가했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 국가의 본질이 촛불집회로 드러났다고도 볼 수 있다.최근 포항시 남구 오천읍 주민들은 지역구 박정호, 이나겸 시의원 2명을 상대로 주민소환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소환제는 재판이나 탄핵·행정처분에 의한 파면과는 달리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통제 방법이다. 주민소환을 청구한 ‘오천 SRF반대 어머니회(이하 어머니회)’는 “주민들이 SRF폐쇄와 이전 등을 요구하는데도 오천지역 자유한국당 두 시의원이 이를 무시한 채 포항시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며 선관위로부터 주민소환청구인 대표자 등록증을 교부받아 지난 7월 말부터 서명운동을 벌여왔다. 이들이 받은 서명은 투표 발의 요건을 충족했고, 주민소환투표일이 오는 12월 18일로 결정·공고됐다. 이 제도가 시작된 2007년부터 현재까지 90여건의 주민소환이 진행됐으나, 투표까지 간 사례는 8건에 불과했던 만큼 오천읍민들의 분노가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양측은 포항시남구선거관리위원회가 주민소환투표일을 공고한 지난달 26일부터 투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각종 구설이 불거졌다. 한 이장이 SNS를 통해 투표독려 문자를 보냈다가 입건될 처지에 놓였고, 논점과 벗어난 투표운동 홍보문구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주민소환은 SRF의 찬반을 가리는 투표가 아니라 두 시의원의 직무태만이나 잘못을 가리는 것이 목적이다. 청구한 쪽은 사실을 토대로 두 시의원을 경질해야 하는 이유를 알리고, 대상이 된 시의원들은 자신에 대한 의혹을 소명하면 된다. 선거운동처럼 경쟁이 아니므로 양측 다 선을 지키고 본인들의 주장만 알린다면 투표 운동이 과열될 이유가 없다. 양측 다 주민소환 투표와 관련한 법안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깨끗하고 공정한 투표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결은 다르지만, 광화문 비폭력 평화집회가 외신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것처럼 포항 오천읍 주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ack@kbmaeil.com

2019-12-04

12월 학교 하명 - 시험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1학기 때는 여유롭게 지내나 했는데, 2학기 오면서 내신 준비시킨다고 시험도 치고 있어요. 예민해지고, 친구와 갈등도 잦아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지난주부터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해요. 병원에서는 학교 스트레스래요. 아이 키우기 힘드네요.”지난 주 산자연중학교에서는 2020 학교설명회가 있었다. 지난 여름에 이어 전국에서 많은 학부모께서 학생의 행복 교육을 찾아 학교를 방문해 주셨다. 설명회가 끝나고 경기도에서 온 학부모께서 교무실 자리에 앉자마자 폭풍 같은 한숨과 함께 쏟아낸 이야기이다. 그 날 참가한 많은 중학생의 학부모와 이야기를 했는데, 공통점은 자유학년제의 배신이었다.“학생들의 꿈과 끼를 길러준다고요,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아요. 아이들이 이야기합니다, 자유학년제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과연 자유학년제를 운영하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진로를 지도해줄만한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보십니까. 자유학년제와 같은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교사들이 어떻게 학생들을 지도 할 수 있습니까. 그냥 연수나 이론으로 배워서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게 무슨 교육입니까? 자유학년제에 해당하는 학년의 자녀를 둔 교사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자신들의 아이들을 입시학원에 보내는 게 지금의 교육 현실입니다. 학생들 간의 교육 격차를 더 크게 만드는 것이 자유학년제라는 것을 정말 모르세요!”그 어떤 교육학자보다 더 정확하게 현재 실시되고 있는 자유학년(기)제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 학부모의 말에 필자는 그 어떤 부정도 할 수 없었다.자유학년제를 경험해 보지 못한 교사들의 “자유학년제 지도 가능 여부”를 따져 묻는 말은 지금도 필자의 마음에 꽂혀 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럼 지금의 자유학년(기)제는?한 나라의 문화는 곧 그 나라 국민들의 경험치(經驗値)이다. 국민들의 경험 수준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그 나라 문화 수준은 물론 그 나라 모습이 결정된다. 그럼 교육 수준은 어떨까? 그것은 교사의 경험치에 달렸다.우리나라 교사들의 경험치는 어떨까?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형식적으로는 자유학년(기)제다 뭐다 떠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성적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 이 나라 교육 수준과 이 나라 교사들의 경험치를 알만하다.교육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된지 오래다. 교육 문제의 핵심은 소통 부재이다. 근본도 없는 일방적인 교육당국의 하명과 그것을 따르기에 급급한 교사들에게 학생들의 이야기가 들릴 리 만무하다.교육 문제 해결의 해법은 소통이고, 그것의 구체적인 방법은 교사들의 경험치부터 넓히는 것이다.인성의 핵심 요소를 말하는 교사들 중에서 진정으로 사랑, 나눔, 배려 등을 실천하는 교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도전정신과 창조적인 삶을 이야기하면서 과연 이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몸소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교사는 몇이나 될까?또 답 없는 답답한 소리만 늘어놓았다. 시험 맹신자들이 만들어낸 시험 공화국의 학기말 시험 계절 12월, 한국 위기설이 아닌 한국 교육 붕괴설이 곧 현실이 될 것이 너무도 자명해 보이는 12월 첫 주다.

2019-12-04

온유에 대하여 2

‘벤허’의 전차 경주 장면에 나오는 네 마리 백마가 아라비아 명마입니다. 아라비아 말은 세계 최고 브랜드입니다. 그 배경에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옛날 아라비아에 말에 유독 관심이 많은 왕이 있었습니다. 온 천하를 다 뒤져 가장 뛰어난 준마(駿馬) 100필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구해 오라고 신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신하들은 정성껏 100필의 말을 구해왔지요. 왕은 뛰어난 조련사를 시켜 이 말들을 훈련시킵니다. 호각을 한 번 불면 달리기 시작하고 두 번 불면 어떤 일이 있어도 제자리에서 멈추게 했습니다.훈련이 다 되었을 때 왕은 특별한 시험을 시작합니다. 말들을 모두 마굿간에 넣은 뒤 사흘 동안 물을 주지 않습니다. 건초와 먹이는 주었지만, 물을 금지시킨 것이지요. 말들은 갈증에 시달리며 몹시 고통스러워합니다. 4일째 되는 날, 마굿간을 개방합니다. 100마리의 말들은 미친 듯이 개울가를 향해 초원을 달립니다. 그때 조련사가 호각을 두 번 불지요.이성을 잃은 말들은 조련사의 신호를 무시하고 거의 대부분의 말이 개울에서 허겁지겁 물을 먹기 바쁩니다. 그런데 딱 4마리의 말들이 브레이크를 잡았습니다. 호각 소리를 듣고 제자리에서 멈춥니다. 주인과의 약속을 무시하지 않은 것이지요. 왕은 나머지 96마리의 말을 처분하고 이 네 마리 말로 새로운 명마의 세계를 열어갑니다. 그 후손이 오늘날 아라비아 명마가 되었습니다.프라우스(온유)는 자신의 욕망, 추구, 의지를 내려놓고 겸손히 절대 선에 복종하는 태도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진리에 자신을 길들여가는 태도. 이것이 온유(meekness)함의 본래 뜻입니다.강철 같은 힘이 있으나, 그 힘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고 오직 선과 올바른 일에 절제하며 사용하는 능력입니다. 온유함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선물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4

6조를 내라고?!

김규종 경북대 교수‘다이내믹 코리아’는 쉬지 않는다. 나라 안팎의 사정도 그렇거니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역동적이며 욕망에 들뜨고 미래를 기획하는 한국인! 그래서 영국의 좌파 저술가 마틴 자크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에서 2050년 1인당 국민소득 1위로 대한민국을 꼽는다.그가 말하는 세계 1위 한국의 저변에 자리하는 것은 조지 소로스가 말하는 휴전선 철폐와 남북한 단일 경제공동체이리라.그것은 불과 30년 뒤의 일이다. 그것은 꿈도 아니고, 망상은 더더욱 아니다. 1960년대 세계 최빈국에서 2018년 30-50클럽에 가입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니까. 나는 ‘국뽕’ 개념으로 30∼50클럽을 말하지 않는다. 이념갈등, 빈부갈등, 노사갈등, 세대갈등, 종교갈등, 남녀갈등처럼 다차원적으로 작동하는 한국의 갈등기제는 임계점 직전까지 팽창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생각한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747’ 삽질과 ‘우주의 기운’ 운운했던 암흑시대를 지나면서도 우리는 세계가 인정하는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성취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무리 우심한 내우외환이 얽히고설킨다 해도 난관을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실패하지 않은 역사문화의 전달에 있다. 실패한 과거에서 배우고, 잘못된 과거를 관 속에 처넣고 대못을 치는 강력한 역사이해와 실천기제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얼마 전부터 한국사회를 요동치게 하는 청구서가 우방이자 동맹이라는 미국에서 날아들었다. 물경 6조를 내란다. 작년에 1조 2천억을 냈는데, 그 5배를 내라는 것이다.2015년에 담뱃값을 2천원 올리자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2천500원을 4천500원으로 0.8배 인상한 것이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한꺼번에 5배를 인상하라는 통지서를 날리고, 이의를 제기하니까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버린다.우리 국민 모두는 알고 있다. 한미동맹이 한미일동맹의 하부구조에 있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일본열도를 지켜주는 미일동맹의 실핏줄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기지 지어주고, 10조원으로 추산되는 미군기지 정화비용도 청구하지 않은 한국정부 아닌가?! 그런데 그들이 요구하는 6조의 실상을 보면 기도 차지 않는다.기존에 관행적으로 지급한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통상 9천억)는 당연하고, 괌이나 알래스카, 하와이에 있는 미군 순환배치 비용과 전략자산 전개비용도 한국이 내라는 것이다. 주한미군 특별수당은 물론 미군이 동반한 가족에게도 특별수당 주면 안 되겠냐는 게 미국의 주장이자 요구다. 이런 요구에 정부는 물론이고, 정치권 모두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때마침 우리에게는 지소미아 카드도 아직 살아 있고, 중국에서는 왕의 외교부장이 12월 4∼5일 이틀 예정으로 한국을 찾는다. 2016년 사드배치 이후 3년 만의 일이다. 우리가 가진 석장의 카드를 지혜롭게 활용해 전례 없는 난국을 풀어나가야 할 때다.

2019-12-04

ESG투자

ESG 투자에서 ESG는 환경·사회·지배구조(Environment· Social·Governance)의 약자다. 기업의 재무적 성과뿐만 아니라 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같은 환경적 요소나 지배구조처럼 비재무적 성과를 고려하는 투자를 의미한다. 즉, 투자 의사를 결정할 때 ‘사회책임투자’(SRI) 혹은 ‘지속가능투자’의 관점을 기업의 재무적 요소들과 함께 고려하는 투자를 말한다. 사회책임투자란 매출이나 수익성외에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가치와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주는 ESG 등의 비재무적 요소를 충분히 반영해 평가한다. 기업의 ESG 성과를 활용한 투자 방식은 투자자들의 장기적 수익을 추구하는 한편, 기업 행동이 사회에 이익이 되도록 영향을 줄 수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업과 투자자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지면서 세계적으로 많은 금융기관이 ESG 평가정보를 활용하고 있다. 영국(2000년)을 시작으로 스웨덴, 독일, 캐나다, 벨기에,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연기금을 중심으로 ESG 정보 공시 의무 제도를 도입했다. UN은 2006년 출범한 유엔책임투자원칙(UNPRI)을 통해 ESG 이슈를 고려한 사회책임투자를 장려하고 있다.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전체 자산군에 사회책임투자 원칙을 적용키로 하면서 ESG요소를 갖춘 착한 기업에 대한 투자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지난 2016년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이후에 사회책임투자(SRI) 펀드의 순자산이 증가하고 펀드 개수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착한기업에 대한 투자로 수익도 창출된다면 국민혈세로 조성된 기관투자가의 투자로서는 ‘일석이조’의 쾌거라 할 수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04

어린이의 나라는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나라를 잃었던 시절에 소파 방정환은 ‘우리의 미래는 어린 아이들에게 있다’고 했다. 작고 어린 꼬맹이들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없다는 생각에 ‘어린이’라는 표현을 지어주었다. 그런 어른들이 모여서 어린이를 위한 여러 활동을 한 끝에, 우리 정부는 1957년에 ‘어린이헌장’을 제정했다. 7개 조로 만들어진 헌장은 ‘어린이는 위험에서 맨 먼저 구출돼야 한다’라고 분명히 적고 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는 얼토당토않게 어린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긴 엄마아빠가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임에도 과속 자동차에 치였다거나 언덕받이 비탈길에서 굴러내린 트럭에 변을 당한 아이들이 있다는 게 아닌가. 우리는 어린이를 위험에서 구출하고 있는가.어린이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보다 우리에게 급한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정치인들의 다툼 마당에 얽히게 된 부모들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어린이헌장이 전문에 적고 있는 대로, 우리는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힘쓰고’ 있는가. 사회복리와 민생문제를 정치논리의 거래수단으로 사용하는 일은 관련 당사자들의 마음을 힘들게 할 뿐 아니라 정치의 진행에도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할 터이다. 아이가 당한 사고 앞에 누구라도 다른 핑계를 들이대면서 우선순위를 논한다면 당신은 참을 수 있을까. 눈물을 닦아줘도 모자랄 판에 엉뚱한 정치적 계산은 내려놓아야 한다. 어린이 안전을 위한 배려는 그야말로 ‘맨 먼저’ 해야 한다. 어른들 계산 탓에 아이들이 위험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칠 안에, 유엔(UN)이 정한 인권의 날(Human Rights Day)을 맞는다. 올해는 특별히, ‘청소년’들이 각종 인권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게 하고 인권침해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도록 캠페인을 벌인다고 한다. 어린이 인권에 대해서도 배려해, 어린이들을 위험과 폭력, 어려움과 문제들로부터 보호할 기준을 세운다고 한다. 각국의 정부들이 어린이들의 인권신장을 위하여 마음을 모은다고도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어린이들의 하루하루를 여러 위험으로부터 적절하게 보호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충분히 마련해 주고’ 있는가.필자는 한때, 우리에게 ‘어린이날’이 따로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한 미국 친구의 한 마디에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한국은 일 년에 단 하루를 정해 어린이날이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날마다 한국의 어린이날처럼 지내는데….’ 우리에게 어린이는 정말로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사람’인가. 어린이헌장은 ‘어린이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악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그들의 안전을 놓고 흥정하는 꼴을 보지 않았는가. 어린이가 안심하고 즐겁게 자라나는 나라가 돼야 한다. 나라를 찾기 위해서도, ‘어린이가 잘 자라야 한다’고 했던 그 어른들의 마음을 되새겨야 한다.

2019-12-04

자동차의 짧은 역사

△최초의 자동차 아니, 최초의 자동차 사고1769년, 오스트리아의 육군 공병 니콜라 퀴뇨는 들뜬 마음이 무척 들떠 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이상한 탈 것을 몰고 나왔다.그가 타고 있는 것은 앞에는 한 개, 뒤에는 두 개의 바퀴가 달려 있는 세발차다. 그렇다. 이것은 증기기관 자동차다. 이 최초의 자동차는 그 무게가 무려 5t에 이르렀고, 속도는 무게만큼이나 느려서 시간당 3.2km를 달렸다. 이 정도면 보통의 성인보다 느리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퀴뇨는 이 거대하고 육중한 증기기관 자동차를 끌고 나왔다. 육군 대신에게 이 경이로운 작품을 보여준 후 무거운 대포를 운반하는 모습을 보여줄 작정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명민한 육군대신이 당박에 퀴뇨가 만든 자동차의 용도를 알아보고 막대한 사례금을 줄 것이라는 건 퀴뇨 생각이었다.퀴뇨는 그런 기대를 품고 몸소 파리교외의 방생숲까지 시범운전을 나갔다. 그러고 보면 이것이 최초의 드라이브인 셈이다. 거기까진 좋았다. 받은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날이 너무 좋아 깜빡 졸았던 것일까?퀴뇨는 이 중요한 순간, 남의 집 담벼락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만다. 그리하여 퀴뇨는 최초의 증기기관 자동차 발명자이자 동시에 최초의 자동차 사고를 낸 운전자라는 오명을 가져야 했다.퀴뇨 덕분에 자동차는 태동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야 했다. 그는 또 다른 후원자를 찾기 위해 이것을 타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다 두 번이나 체포되고,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종국에는 추방당해 객사했다.△19세기, 자동차의 전성시대자동차는 퀴뇨의 삶만큼이나 우울했다. 17∼18세기를 주름잡은 것은 증기기관차였다. 증기기관차는 유럽 전역에 철도문명시대를 열었다. 기차는 더 빨리 달리게 되었고, 더 멀리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기차는 사람만 운반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하는 문화까지 운반했다. 유럽의 산업문명은 기차와 함께 더 빨리, 더 멀리까지 퍼져 나가 아시아의 동쪽 끝인 우리나라에까지 와 닿을 수 있었다.그러나 19세기가 되면서 판세는 역전되었다. 유럽에는 증기기관 차량이 버스로 쓰일 정도로 많이 보급되었으며, 미국에서는 20세기 초까지도 생산됐다. 100년 가까운 동안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1906년 플로리다에서 개최된 ‘스피드위크’ 경기(현재 ‘데이토나 500’)에서 시속 203km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증기기관 자동차는 강력했다. 하지만 물을 끓여서 달려야 하므로 물도 실어야 했고, 물을 끓일 수 있는 연료인 석탄도 실어야 했고, 증기를 배출하는 장치까지 만들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갖추려다 보니 자동차는 무겁고 커야만 했다. 이러한 문제는 가솔린이나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에 의해 극복된다.가솔린 엔진은 1864년 니콜라우스 오토(Nikolaus August Otto, 1832∼1891)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이를 실용화한 것은 현대 자동차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칼 벤츠(Karl Friedrich Benz, 1844∼1929)와 고틀립 다임러(Gottlieb Daimler, 1834∼1900)에 의해서였다. 1885년에 고틀립 다임러는 가솔린 엔진을 자전거에 부착하여 최초의 오토바이를 만들었으며, 1886년 벤츠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들어 이를 특허 등록했다. 두 사람이 다임러-벤츠Daimler-Benz 자동차회사를 창업하면서 본격적인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가 열리게 된다.1889년 독일의 스퍼거는 자전거의 핸들처럼 생긴 조향장치를 원형으로 바꾸었고, 스포츠카의 대명사가 된 포르쉐의 창업자 페르디난드 포르쉐는 1899년에 전기와 가솔린 엔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만들기도 했다. 1898년 윈톤 자동차 운송회사는 최초로 자동차를 광고했는데, 자동차 가격이 1천달러에 달했다. 당시 미국에서 50달러 정도면 집과 토지까지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하니, 가히 파격적인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짧은 시간 동안에 자동차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일반 대중에게 자동차는 먼 곳에 있었다. 그랬던 자동차는 헨리 포드에 의해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1910년경 포드는 신시네티의 도축장에서 컨베이어벨트시스템의 일괄작업에 영감을 얻어, 이를 자동차조립공정에 도입하였다. 장인 몇 명이 자동차를 만들던 기존의 생산 방식을 과감히 바꾸었다. 모든 부품을 표준화했고,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하여 전문분업화함으로써 대량생산시대를 열었다.당시 차량 한 대당 생산비가 2천달러 가량 들던 것을 250달러인 거의 1/10의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다른 회사보다 싼 값에 자동차를 공급했고, 이렇게 되자 시장점유율을 8%에서 50%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한때 포드사의 자동차는 세계의 모든 길을 달렸다. 포드 자동차는 동방의 먼나라 대한제국에까지 들어와 고종임금이 타는 어차로 쓰기도 했다. ‘마이 카(My Car)’시대의 여명은 그렇게 밝아오고 있었다.

2019-12-03

짖는 행동 멈추게 하는 방법

개는 낯선 사람이나 동물이 자기 영역에 들어오면 본능적으로 권세본능과 경계심 때문에 흥분해서 짖는다. 개는 자기영역을 지키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짖기 때문에 매우 피곤하다.개는 마음이 편치 않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짖게 된다. 개가 짖다가 음악을 듣게 되었을 때 짖지 않고 평상심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간혹 피아노 소리를 듣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개도 있다. 어떤 특정음에 반응하는 현상이 간혹 있는데 이것은 개의 습성 때문이다.야생의 개나 늑대는 들판에서 사냥을 할 때 무리를 불러 모으기 위해 ‘멀리짖기’를 한다. 사람에게 구슬픈 소리로 들리는 개의 ‘멀리짖기’는 동료를 부르는 일종의 교신음이다.개가 특정한 소리에 반응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음이 개에게 교신음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에 평상심을 보이는 개가 있다면 개를 혼자두고 외출할 때 그 음악을 틀어주고 나오는 조건 반사를 활용해도 좋다. 가끔 타이머를 이용해 외출한 이후에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좋은데 개의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줄 수 있다.차에 타는 것을 싫어하는 개들에게도 평소 듣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좋은데, 음악을 들었을 때 개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느껴본 사람은 진정한 애견인이다.야생 개과 동물들이 짖는 것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침묵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개는 무리의 리더이거나 강아지의 어미 또는 무리에서 그 개보다 분명하게 순위가 높은 개다.우위에 있는 개는 짖고 있는 강아지의 코를 이빨을 세우지 않고 물면서 짧고 낮게 목쉰 듯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멀리까지 퍼지지 않고 한순간에 끝난다. 강아지는 코를 물려도 아픔은 느끼지 않기 때문에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가지 않고 이것으로 대게 곧바로 조용해진다.이런 행동을 응용하면 간단하게 개를 침묵 시킬 수 있다. 개를 왼쪽에 앉히고 개의 등쪽에서 당신의 왼 손가락을 목줄 밑에 끼워넣고 왼손으로 목줄을 잡으면서 오른손으로 개의 코를 감싸듯이 눌러 내린다.침착한 목소리로 “조용히!”라고 말한다. 필요하면 이 동작을 반복한다. 견종에 따라서 두 번에서 열 번 정도의 반복으로 “조용히” 라는 명령어와 침묵하는 것을 연결짓는다.이 방법은 무리의 리더가 시끄러운 강아지나 어린 멤버를 어떻게 침묵시키는지를 보고 그 방법을 본 뜬 것이다. 왼손으로 목줄을 쥐는 것은 단지 개의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오른손은 리더가 강아지의 코를 무는 것과 같은 작용을 한다. 침착한 목소리로 “조용히” 라고 말하는 것은 낮고 짧은 목쉰 듯한 으르렁거림을 흉내낸 것이다.이동훈권세본능으로 짖기를 멈추지 않는 심각한 개는 목줄을 사용해서 짖기를 멈추게 할 수 있는데 짖기를 멈추지 않고 특정 위치로 올라가려는 개의 경우 시선을 개와 맞추지 않고 목줄을 잡아 당겨 행동을 제어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개는 줄이 당겨지면서 목이 아픈 것을 체벌이라고 생각한다. 목줄을 사용하는 체벌에서 개와 사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체벌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목줄을 당기는 것을 알지 못하도록 서로 시선을 맞추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개를 교육할 때 결과가 칭찬이면 그 행동은 증가하고 결과가 체벌이면 그 행동은 감소한다. 개의 특정 행동에 대한 칭찬이나 체벌은 빠를수록 좋고 늦어도 5초 이내에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도 꼭 기억하자./서라벌대 반려동물학과 학과장

2019-12-03

歲暮의 언저리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어느덧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매듭달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올해도 또 한 겹 연륜(年輪)의 테를 남기며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다. 가을에서 겨울로, 기해년에서 경자년으로 시간의 바톤을 이어가며 서서히 세월의 바퀴를 굴려가고 있다.세모(歲暮)의 언저리에 서면 만감이 교차한다. 연초에 다짐했던 계획이나 목표를 어느 정도 실행하고 이뤘는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신뢰와 관계는 어땠는지, 고난과 예기치 못한 일들에 직면해서는 어떻게 참고 극복해냈는지, 실로 끊임없이 희비의 쌍곡선이 그려지고 행, 불운의 갈피가 아스라하게 펼쳐지는 듯하다.설레임과 기대로 맞이한 새해의 숱한 나날 동안 별반 이뤄놓은 일도 없이 그냥 보내야 한다면 아쉽고 허전하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있어서 무위(無爲)한 날은 단 하루도 없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하루를 나름의 방식과 내용으로 시간을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돋보이거나 괄목할만한 일이 아닐지라도 매 순간은 개개인 생활의 단면이고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루 한달 한해를 보내면서 개인이건 조직이건 가시적인 성과나 목표 달성의 정도에 따라 보람과 희열의 체감도가 다르게 나타남은 보편적인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사람들이 애써 노력하고 이룩한 결과물이 업적이 되고 내공과 지혜가 더해지면서 사회의 진보와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세월은 무심치 않아 연륜을 쌓고, 인생은 덧없지 않아 경륜을 낳는다고 했던가?12월은 한해를 매듭하기도 하지만 새해를 준비하는 달이기도 하다. 지나 온 날들에 대한 성찰과 미진함에 대한 점검으로 새로운 날들의 포부와 희망을 가늠해보는 때다.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의 충실함을 일구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비슷한 이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맘 때가 되면 망년회니 송년회니 모임을 하면서 한 해 동안의 괴로움이나 근심 걱정을 지는 해와 함께 잊고 묻어버리면서, 좀 더 밝고 희망찬 날들을 기약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하루하루 숨가쁘게 살아온 날들에 대한 수고와 감사의 마음으로 주위에 온정을 베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침잠의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가 자신을 위무하며 명상과 관조의 세계에 접어들기도 한다. 그렇게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들 속에서 사람들은 한 겹 한 겹 나이테를 더해 가듯이 관록을 채워가며 성장과 농밀함을 더해간다.무슨 일이든지 끝이 좋아야 시작과 과정을 넉넉하게 웃으며 되돌아 볼 수 있다. 물론, 시작이 반이고,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자체도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결말이 빈약하다거나 흠결이 생기면, 결국 아쉽고 안타깝거나 오점으로 남는 일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숱하게 접해 왔다. 기해년 수묵빛 세월의 여울목에서, 한 달 남짓 남은 올해지만 끝까지 잘 갈무리하여 보다 꿈이 밝고 푸른 의미있는 내년을 준비해보자.

2019-12-03

포항의 시티즌 브랜딩을 시작하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어느 나라나 기업이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담보하기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원을 꼽는다면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우수한 인재에 대한 수요는 국가나 기업의 발전 정도나 규모를 불문한다. 그들 모두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요구하는 인재상은 다를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청년들이 취업하기 어렵다는 시기에도 기업들은 언제나 인재난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기업들은 자사의 매력을 높여 재능이나 경험이 풍부한 우수 인재의 고용을 쉽게 하고 이직을 억제하며 사원과 기업 간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는 임플로이어 브랜딩(employer branding)이라는 홍보 전략을 구사한다.최근 포항시의 인구유출이 심상치 않다. 도시 인구의 이동은 농어촌 인구와 달리 비교적 이동을 준비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매우 탄력적이다. 도시인구는 일종의 생물과 같아서 충분한 먹거리가 있으면 몰려들고, 그렇지 않으면 흩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그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직장생활을 하다 은퇴해 새로운 지역으로의 이주를 꿈꾸기도 힘든 지역에 충성도가 높은 이른바 애향시민의 비율이 높은 경우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권을 제외하면 대부분 먼저 자녀들이 이탈하고 이후 그 자녀들이 성공적으로 이탈한 지역에 정착하게 되면 농어촌과는 달리 직장근로자들이 밀집한 도시의 부모가 함께 이주를 선택하는 것은 비교적 자유롭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제 포항은 여느 지자체들과는 달리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 전국 지자체들은 국제적인 이벤트 개최 안내, 지역 관광지나 특산품을 홍보하는데 그치고 있다. 물론 지역 관광객의 유치와 특산물을 알리는데 지자체가 적극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한 마케팅은 해당 생산 기업이나 농어촌의 협동조합 차원에서도 충분히 자신들의 생계가 걸린 만큼 스스로 최선을 다해 광고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지자체는 보고만 있으라는 것인가. 아니다. 우선순위를 지역의 관광객유치, 특산물판매보다는 이왕이면 지속 가능도시를 담보하기 위한 신규 시민의 확보와 이주억제를 위한 부분에 좀 더 주목하였으면 하는 것이다.기업들이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임플로이어 브랜딩이라는 전략을 구사하듯이, 포항시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포항이 살기 좋은 고장, 자녀를 키우고 양육하기에 좋은 도시, 은퇴이후 삶의 질과 만족도가 높은 바닷가의 그러나 대도시이고 국제항만도시라는 다양한 장점을 알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시티즌 브랜딩(citizen branding)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의 포항시민들도 다른 도시로 이주하지 않고 계속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비전. 전국에 소재한 예비 포항시민들에게 포항의 장점을 알리는 홍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도시마케팅이 절실한 시점이다. 외국의 방송에서 대통령이 한국을 알리는 광고를 본적도 있다. 포항시도 시장이 직접 출연해 ‘포항으로 이사 오이소.’라고 나서는 적극적인 도시마케팅을 할 때가 왔다. 포항의 각계각층 모두가 새로운 이웃을 맞이하기 위한 시티즌 브랜딩에 동참하자.

2019-12-03

온유에 대하여 1

온유(溫柔)의 한자어를 풀어보면 따뜻할 온(溫), 부드러울 유(柔)입니다. 영어로는 meekness죠.어감으로 느껴지는 온유는 부드럽고 나약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약함을 뜻하는 weakness와 어감도 비슷해서 더욱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일까요?온유의 진정한 의미를 파헤치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집니다. 용기, 절제, 지혜, 경건 등과 더불어 온유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고대 철학의 중요한 미덕 가운데 하나였지요.희랍 원어로 온유는 프라우스(πραν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온유의 미덕을 힘(power)이 있을 때 그 힘을 잘 조절하는 능력으로 표현합니다. 희랍어 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프라우스에는 부드러움이 있으나 배후에는 강철과 같은 힘이 있다.”프라우스의 원래 뜻은, 야생 동물이 주인에게 잘 길들여져서 쉽게 다룰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구 상에서 거래되는 동물 중에 가장 비싼 종이 무엇인지 혹시 아십니까? 써러브렛(Thoroughbred)이라는 종마는 실전에서 뛰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지 종자만으로 최소 150억원 정도에 거래가 이뤄진다고 합니다.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비싼 말은 Sunday Silence 즉 일요일의 침묵이라는 이름의 수컷 종마인데요. 일본의 한 갑부가 이 종마를 구매하려고 1억달러(약 1천200억원)의 금액을 제시했다가 단번에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왜냐구요? 이 종마의 씨를 받기 위해 전 세계 각국에서 암컷 명마들이 줄을 지어 섰기 때문이지요.수익이 대단합니다. 1회 교배에 받는 비용이 5억원이라나요? 1년에 줄잡아 100번 정도 교배가 성사된다 하니, 바보가 아닌 한 연매출 500억을 거뜬히 올리는 종마를 1천200억에 팔아 치울 리가 없겠습니다. 참으로 오묘한 말(馬)들의 세상입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3

인적쇄신과 정치지도자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여야 정치인을 막론하고 대구·경북지역에 대한 찬사는 수도 없이 많다. 우파는 거의 단골로 보수의 성지, 보수의 터전 등으로, 좌파는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 언급한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주 듣다 보니 이제 대구·경북 시도민은 이같은 찬사에 거의 무감각할 정도로 흘러간 옛노래가 됐다. 여야 정치인들도 더 이상 이런 찬사로는 지역을 공략할 수 없음을 느끼지만, 이런 발언들이 종종 들린다.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의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최근 자유한국당에서는 영남권 중진을 비롯한 강남 3구 의원에 대한 물갈이론이 제기됐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이른바 한국당 살생부까지 등장했다는 소문이다. 특히 지역은 30% 인적쇄신을 넘어 최고 50%까지 교체될 것이라는 풍문이 나돌고 있다. 근거로 서울과 수도권에는 인재풀이 거의 없고 유독 영남권에서만 후보자가 넘쳐나기 때문이라고 한다.하지만,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이런 논리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3선 이상 영남권 국회의원을 오는 총선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에 원인이 있다. 그동안 정치권은 지역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수의 성지이자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추켜세우면서도 더 이상 대구·경북에서 정치 지도자를 배출하지 않겠다는 소리와 같기 때문이다.그동안 보수당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내리꽂는데 열중하면서 다선 의원을 배출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나마 다선 의원이 된 이들을 향해 이제는 인적쇄신의 대상이 되라고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만일 이들마저 지역에서 사라진다면 다선 국회의원의 몫인 국회의장이나 당 대표 등도 배출할 수 없는 지역으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한국당은 대구·경북을 먹기에는 너무 양이 적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과 같은 존재로 보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역민이 불만을 가지는 요소가 되고도 남는다. 결국 한국당의 인적쇄신안은 대구·경북은 상징적인 보수의 성지로 남고 선거때 그냥 표만 주면 된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정권 창출을 위해 다잡은 물고기인 대구·경북에는 먹이를 주지 않겠다는 심보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나마 정치 지도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인사를 한국당이 인적쇄신이라는 말로 포장해 말살하려는 의도로 의심받기에도 충분하다.인적쇄신을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선택지를 내놓으라는 소리다. 최근과 같은 정치적 홀대를 지역민들은 익히 경험한 바 있고 선거 결과를 통해 철저히 응징해 왔다. 지역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은 물론이고 지난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김부겸·홍의락 의원을 탄생시킨 것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지역민들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언급하는 정치적인 기득권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 지도자를 키우지 않는 박탈감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다. 최근 한국당의 무작정 영남권 중진 인적쇄신론이 오는 총선에서 가져올 파장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한다는 한국당이 오히려 지역을 홀대하는 상황을 시도민이 그냥 지켜보기만 하지는 않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2019-12-03

시네마의 책임

올해는 한국 영화 100주년 되는 해다. 한국 영화가 국민과 가까워지면서 100년 영화 역사에 대한 국민적 호응도 높았다. 때마침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해 한국 영화 100년사의 의미를 더 높여주었다. 한국영화 100주년은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상영된 ‘의리적 구토’를 기준점으로 한다. 이 영화는 당시 신파극단을 이끌던 김도산이 감독, 주연한 연쇄극이다.시네마토 그라프(Cinemato Graphe)는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영화촬영 겸 영사기의 이름이다. 당시로는 특허를 얻을 만큼 획기적 발명품이었다. 그리스어 움직이다(Kinema)와 기록하다(Graphein)를 합성한 단어에서 따온 이름이나 시간이 지나 영화란 뜻의 시네마(Cinema)로 바뀐다.올해 한국 영화 관객이 사상 최다를 기록할 것 같다는 전망이다. 지난달까지 총 2억421만명을 기록했다. 연말까지 2억2천만명은 무난히 넘길 것이란 관측이다. 2013년 처음 2억명을 돌파한 이후 6년째 2억명 선을 유지한다. 영화가 왜 인기가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오락 기능으로서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과 접근성과 인프라 등이 좋다는 것. 그리고 팍팍한 현실 속에 초라해진 나를 위로해주는 카타르시스를 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100년을 맞는 우리 영화가 이제 예술성과 오락물의 차원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로서 영향력이 커졌다는 뜻이다. 영화 이후 나타나는 신드롬 현상이 이를 말한다. 어쩌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도약하고 있다고 봐야 할지 모른다. 관객의 높은 호응도만큼 책임감도 커진 것이 영화산업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12-03

미국식 예비군제도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대구의 남대구IC에 진입하려면 길게 쭉 뻗은 도로를 한참 지나야 한다. 그리고 경부고속도로 구미IC를 지나면, 일반 고속도로보다 더 넓고 곧게 뻗어 있는 고속도로를 만난다. 이들은 과거 공군용 비상활주로였다.필자는 공군 관제장교 출신이라 과거 군복무 시에 전국 비상활주로 좌표를 외우던 기억이 난다. 월배 비상활주로 자리에는 공장과 상가가 들어서 있고, 구미 비상활주로는 가변식에서 고정식 중앙분리대로 바뀐 것 같다.경북에는 영주와 울진에도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군 시절 영주 비상활주로는 자주 갔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변했는지 사뭇 궁금하다.월배 비상활주로와 구미 비상활주로를 지나갈 때면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예비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군사시설에서 해제되어 공장과 상가를 다 지어버렸는데, 언젠가 필요할 때에는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든다.미국은 상비군과 예비군을 복합적으로 운영한다. 이들을 다 합해서 국가방위군 및 예비군이라고 한다.일반 징병제 국가에서 제대 후 편입되는 예비군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절대 다수가 처음부터 예비군이 되는 개념이 존재한다. 미국이 연방국가임에 따라 연방예비군과 주방위군으로 구분되고, 상황에 따라 부분동원과 총동원을 할 수 있다. 2019년 현재, 미군은 상비군의 수가 135만 명, 예비군의 수가 81만 명에 달하며, 비상근과 상근 예비군 제도를 운영하면서 상비군 수준의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대부분의 비상근 예비역은 1년에 대략 보름에서 한달 반 정도의 훈련을 받고, 소수의 상근예비역은 이보다 훨씬 긴 연간 180일의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미국의 예비군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전시에도 동원되는 전력이다.한국은 국민 개병주의로 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이지만 요즘 모병제가 대두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모병제는 개인의 자발적인 의사로 입대하는 직업군인을 위주로 하는 제도라면, 징병제는 국민이라면 무조건 지게 되는 병역의 의무로 군복무를 하는 것이다. 냉전 이후 대체로 유럽의 각국들은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하는 추세였으나, 모병의 문제, 비용증가의 문제 등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모병제 도입 논란에 대해 아직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아 중장기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면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당장에 쓰지 않는다고 민간에 분양해버리거나 고정식 중앙분리대를 설치해서 사장(死藏)시키듯이 예비군을 운영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운영하면 어떨까? 미국식 예비군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볼 것을 제안한다. 건성건성 애국(!) 페이로 예비군을 운영할 것이 아니라, 현업에 종사하면서 충분한 보수를 지급받는 예비군으로 더블 잡(job)을 뛰게 하면 어떨까? 징병제이든지 모병제이든지, 어느 병역제도를 선택하더라도 미국식 예비군제도는 좋은 보완책이 될 것이다. 특히 인구감소에 따른 병력자원 부족 문제에도 효과적일 듯하다. 무조건 미국의 제도를 따르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시행하는 제도를 한국의 실정에 맞게 잘 응용하면 답이 나올 듯하다.

2019-12-02

386과 586

강희룡 서예가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학문으로 성립시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가 내세운 천심(天心)에 대해 공자는 ‘민심이 곧 천심이니 민심을 얻은 자가 천심을 가진 자’ 라고 정리했다. 맹자 역시 왕조는 천명에 의해 일어나며 천명(命)이 바뀌는(革) 것이 곧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 했다.이 혁명론은 민본주의와 직결되며 혁명의 주체는 엄격한 도덕성과 정의가 요구된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의 문하인 정몽주는 시경(詩經)의 이념을 바탕으로 고려왕조를 유지하면서 개혁을 하려는 온건파인 반면, 동문수학한 정도전은 서경(書經)의 정치이념과 궤를 같이하며 혁명을 들어 신 국가를 건설하자는 급진파로 역성혁명을 주장했다. 결국 신흥무인세력과 결탁한 급진파는 이 혁명을 통해 1392년 조선을 세우게 된다. 이처럼 혁명의 정당화는 완결된 인격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추진되었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현대사에서 1980년대는 민주화운동이 가장 격렬하게 대중적으로 확산된 시기이며, 대학생집단이 주도하였다. 1960년대 출생해 80년대 대학생활을 했고 90년대에 30대였던 이들이 바로 386세대로 부르는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1980년 광주항쟁에서부터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에서 이들은 사회의 공정과 정의 그리고 민주와 도덕을 앞세워 군사독재에 대항했다.이 운동권세대가 정치에 대거 진입한 건 2000년 총선 때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젊은 피 수혈’이라는 명분 속에 이 그룹을 대거 정치권에 입문시켰고,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이들이 노무현 후보의 열렬한 지지와 2004년 열린우리당까지 이끌면서 진보정치의 세대적 기반이 됐다.그들은 현재 한국정치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지도적인 위치에 도달했다. 이들은 짧은 고난으로 오랜 세월 영욕을 누리며 이제는 ‘586세대’가 됐다.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볼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 민주화의 선봉에 있었다는 그들만의 도덕적 우월감과 독특한 연대감을 갖추고 열정으로 세상을 바꿔보려 했던 패기가 모순과 불의로 가득 찬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없어지고 현실과 타협하며 기득권층이 된 것이다.보수기득권층을 경멸과 증오로 대하며 ‘우리끼리’ 라는 등식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공유하던 진보의 도덕과 정의도 사라졌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으며, 남의 눈 티끌까지 비판하면서 내 눈 속의 들보는 모른 척하는 이중적 태도까지 보인다. 국가의 주요정책이 처음부터 운동권 출신의 폐쇄적 생각에서 결정되니 그들 이외의 국민들이 이해 못하고 당혹해하는 결과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진다. 국민소득 약 2천달러 수준의 80년대에 저항했던 운동의 기억으로 국민소득 3만 달러시대의 한국을 진단하고 이끌어 가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자칭 진보라는 그들이 과거에 ‘독재’라고 그토록 비판하며 민주화를 외쳤던 정치행태를 지금 와서 더 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속성으로 적폐 덩어리로 변해있는 그들은 반드시 퇴출되어야 할 대상이다.

2019-12-02

투 핸즈(Two Hands) 2

2년의 방황 끝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두 손으로 연주할 수 있느냐보다 음악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돌아온 레온 플라이셔는 챔버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지휘를 시작하는 한편, 왼손으로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합니다.그가 도전한 왼손을 위한 솔로 작품과 라벨, 프로코피에프 협주곡을 녹음한 소니 클래식 레코드는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되기에 이르는 호평을 받습니다.왼손으로 연주회를 거듭 하면서, 레온 플라이셔는 결코 오른손을 포기하지 않습니다.수술에 실패했지만, 끝까지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내려놓지 않지요. 오른손을 위해서라면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입니다.1990년 정확한 진단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국소적 근육긴장이상증(focal task-specific dystonia) FTSD라는 것을 알아낸 겁니다.뒤틀린 넷째 다섯째 손가락에 보톡스를 주사하는 요법으로 치료합니다. 롤핑을 병행하면서 경직된 근육이 한결 유연해집니다.30년 만에 레온 플라이셔는 다시 두 손의 피아니스트로 돌아옵니다. 10년 활동 끝에 2004년, 새 음반 ‘투 핸즈 Two Hands’를 세상에 내 놓습니다.바흐와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 쇼팽의 녹턴, 슈베르트의 소나타 D.960.이런 주옥같은 곡들을 담은 이 앨범은 젊은 날 당당한 터치 대신 깊은 연륜과 예술 혼으로 악보 행간에 숨어 있던 작곡가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냅니다.안젤라 데이비스는 말합니다. “벽을 밀치면 문(door)이 되고 벽을 눕히면 다리(bridge)가 된다.” 벽을 밀쳐 문을 만들어 내고, 장벽을 눕혀 다리를 건넌 레온 플라이셔의 삶. 그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 아닐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2

능소화가 피는 계절에는 칠곡 도봉사(道蜂寺)

유학산은 옛날 학이 놀던 명산이다. 병풍처럼 깎아지른 절벽은 학바위라고도 하고 어른 키의 50길이나 된다하여 쉰질바위로도 불린다. 그 아래 도봉사가 가파른 지형에 아담하게 터를 잡고 앉아 있다. 그 비탈진 곳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채의 전각과 탑까지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눈을 부라리며 절 입구를 지키는 금강역사보다 더 먼저 마중을 나오는 관세음보살 염불 소리, 숙연할 정도로 차분하다. 천년고찰도 아니고 보물급 유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도봉사를 찾는 이는 많다. 기암괴석을 뒤로 하고 앞으로는 툭 트인 경관을 찾아오는 등산객과 6.25 전쟁 격전지 순례 답사 코스이기 때문이다.도봉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신라의 고찰 천수사의 옛 터에 1962년 건립되었다. 험준한 지형과 치열했던 전투가 주는 남성적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비구니 스님이 맞아 주셔서 내심 놀랐다. 도봉사의 속살은 여성적인 정겨움이 곳곳에 숨어 있다. 기왓장에 심어놓은 야생화와 다육이, 거친 암벽을 아름답게 장식할 덩굴식물, 부지런히 경내를 청소하는 스님 두 분의 세심함까지.서운 주지 스님께서 커피를 건네신다. 편안하고 따뜻한 고성(古城)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당시만 해도 약자인 여성으로서 발심 출가한 것도, 해발 700m 고지의 험준한 절을 선택한 것도 놀랍고 존경스럽다. 개인적인 질문을 하고 싶은 걸 꾹꾹 눌러 담고 도봉사 이야기를 듣는다.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 교통이 두절되기도 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절 살림을 서운 스님은 여성다운 부드러움과 노련함으로 잘 해내시는 것 같다. 구중을 떠돌던 원혼들도 비구니 스님의 염불 소리에 한결 안정감을 느끼리라. 도봉사와 스님의 하루를 여는 새벽예불은 아마도 젊은 원혼들의 넋을 위한 기도로 시작되지 않을까.부자가 많다는 다부동(多富洞)이나 학이 노닌다는 유학산(遊鶴山)이란 지명에 어울리지 않게 아픔이 서린 곳, 아름다운 풍광만큼 6.25때 격전지로 유명했던 이야기를 스님은 자세히 들려주신다. 슬픔은 언제나 묵직해서 듣는 이의 가슴을 여미게 한다. 주지 스님과 차담을 나누는 동안에도 관세음보살 독송은 쉬지 않고 허공을 울린다.가파른 지형 때문에 긴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당연하다. 수량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지금도 용왕단의 물을 신성하게 여겨 아침마다 법당에 올린다. 하지만 퍼내도 끝없이 쌀이 나오는 구멍을 욕심 많은 이가 파낸 후 그곳에서 빈대가 나와 빈대절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지금은 그 가난조차 애잔한 추억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과거사다. 끔찍한 전쟁의 비극, 물질만큼 평화를 간절히 원하던 시기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지금 누리는 경제적인 풍요와 여유, 그 밑거름이 된 숭고한 희생들을 생각한다면 좀 더 겸허해지고 좀 더 진중해야 하리라. 모처럼 대웅전 법당에서 내가 아닌 젖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한다. 나와 내면이 훨씬 더 잘 보인다.도봉사 뒤 가파른 암벽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이 궁금하다. 억척스럽고 투박한 줄기가 고지를 탈환하려는 젊은 병사의 생사에 놓인 몸부림 같다. 그에게 여유와 잉여는 없다. 오직 살기 위한 치열성과 숨 막히는 순간만 존재했을 뿐이다. 능소화라고 하신다. 여름이면 우리의 시선보다 높은 곳에서 화사하게 눈길을 끌던, 왕을 흠모하는 어느 궁녀의 슬픈 전설을 담고 있는, 명예와 그리움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이다.조낭희 수필가여름 날 도봉사를 화사하게 물들일 능소화를 상상한다. 청춘을 바친 호국장병의 넋들이 능소화로 피어나 도봉사는 온통 꽃 멀미로 몸살을 앓으리라. 못다 이룬 꿈들은 어사화란 또 다른 명칭으로 최상의 명예를 얻었지만 그 아픔은 어찌할 수가 없다. 쉰질바위를 훈장처럼 눈부시게 밝히다, 그 해 팔구 월의 절박함에 목이 졸리듯 통꽃으로 뚝뚝 떨어지며 ‘나를 잊지 마세요’ 한 마디를 남길 것만 같다.하늘을 업신여길 정도로 끝없이 위로 향하는 능소화, 헤어지고 떠나온 부모형제와 산천이 그리워 자꾸만 높은 쪽으로 향하는가? 꽃도 잎도 지고, 앙상한 줄기 홀로 오늘도 암벽을 탄다. 간신히 뻗어나가는 저 목마른 감각들, 신전처럼 버티고 서 있는 쉰질 바위, 오로지 바위만 의지하고 나아가는 뜨거운 혈류와도 같은 생명 앞에서 나는 가만히 두 손을 모은다.절벽 아래 잘려나간 느티나무 줄기 위에 동자상 하나 평화롭다. 전쟁은 인간과 문명 자체를 위협하는 가장 비극적인 일이다. 행여 나는 지금 누리는 행복과 나눔을 국한시키지는 않았는가. 물질적 안락함에 빠져 더 높은 가치와 이상을 추구하는 일에 소홀하지는 않은지 돌아본다.도봉사를 빠져나오며 다시 한번 아픈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지 않기를 바라며. 천천히 839고지를 오른다. 크게 분노할 일도 특별히 기뻐할 일도 없는 내게 염불소리가 친구가 되어 한참을 함께 걷는다.그 길은 마치 성소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2019-12-02

분단의 상징에서 통일과 평화의 상징으로

독일의 수도 베를린. 그곳에는 20세기 유럽의 역사를 가장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다.한때 베를린을 동과 서로 나누었던 이 문은 독일 분단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이념으로 충돌했던 두 세계의 분열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데 브란덴부르크 문의 역사적 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독 사람들이 자유를 찾기 위해 넘어야 했던 곳도 브란덴부르크 문이었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가슴 벅찬 역사의 현장도 다름 아닌 이곳 브란덴부르크 문이었다.브란데부르크 문의 역사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이곳은 베를린으로 들어오는 열여덟 개의 관문들 중 하나였는데 드나드는 마차로부터 세금을 걷는 곳이었다.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 2세의 명에 따라 1793년경 지금의 모습으로 브란덴부르크 문이 만들어 졌다. 건축가 카를 고트하르트 랑한스는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관문 ‘프로필라이아’(Propylaia)에서 영감을 받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브란덴부르크 문을 만들었다. 아마도 건축가는 이 문으로 들어가 내딛는 베를린이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였던 고대 아테네에 버금가는 도시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브란덴부르크 문 꼭대기에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승리의 여신 청동 조각상 ‘승리의 사두마차’가 장식으로 올라가 있어 기품 있고 위엄 있는 풍모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 위품 있는 문을 통과한 개선장군은 프로이센의 왕이 아니라 프랑스 ‘침략자’ 나폴레옹이었다. 1805년 나폴레옹은 체코 남동부 아우스터리츠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에 패배를 안겨주었다. 이듬해 10월 예나와 아우에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으로부터 승리를 거둔 나폴레옹은 군대를 이끌고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해 베를린 궁으로 입성했다. 나폴레옹은 전리품으로 브란덴부르크 문을 장식하던 청동 조각상을 끌어내려 파리로 가져가 루브르에다 전시를 했다. 프로이센에게 이보다 더 굴욕적인 일은 없었을 것이다.승리의 청동상을 약탈당한 브란덴부르크 문은 그 후 8년 동안이나 초라한 모습으로 베를린을 지키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의 침략을 피해 동쪽 끝 쾨니히스베르크(지금의 칼리닌그라드)로 도망했던 프로이센 왕실이 전력을 가다듬어 러시아와 연합군을 형성해 1813년 베를린을 수복하고서야 빼앗겼던 승리의 사두전차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1933년 1월 30일 독일 공화국 총리로 임명된 히틀러는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해 독재체제를 수립했다. 2만5천명의 나치당원들은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횃불 퍼레이드를 펼치며 히틀러에 열광했다. 그리고 악마가 일으킨 잔혹한 전쟁의 결과 독일은 동서로 분열되었다. 1953년 동베를린에서는 소련의 동유럽 지배를 반대하며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소련군은 탱크를 투입해 진압했다. 1961년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쌓기 시작하자 서독 시민들이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몰려나와 항의했다. 동독 정부는 브란덴부르크 문의 국경 검문소를 폐쇄했고 28년 동안 이 문은 열리지 않았다.1963년 냉전의 불안 속에 떨고 있는 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베를린을 찾았고 1987년 레이건 대통령은 같은 장소에서 소련 서기장 고르바초프를 향해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원한다면 이 문을 열고 장벽을 허물라고 외쳤다. 1989년 11월 9일 기적처럼 장벽은 무너졌고 2년 뒤 나뉘었던 독일은 다시 하나가 되었고 분단의 문은 통일의 문이 되었다./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 김석모

2019-12-02

한국인에게 시래기는 가난이자 고향

우거지와 시래기를 혼동한다. 우거지와 시래기는 전혀 다르다. 시인이자 정치인 도종환의 시가 있다. 제목은 ‘시래기’다.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중략)가장 오래 세찬 바람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기억하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겨울을 나다가/(중략) 서리에 맞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후략)이 시에서도 우거지와 시래기는 혼란스럽다. 우거지와 시래기를 뒤섞었다.우거지는 ‘웃걷이’ ‘웃거지’에서 시작된 말이다. ‘윗부분에 있었던 것’이 우거지다. 식물의 바깥 혹은 웃자란 부분이 바로 우거지다. 배추를 벗기면 겉껍질이 생긴다. 우거지다. 배추의 바깥 부분, 낡아서 버리는 부분이다. 정확하게는 ‘배추 우거지’다. 갓의 바깥 부분, 윗부분도 덜어내면 ‘갓 우거지’다. 다른 식재료도 마찬가지. 무청의 윗동은 무청 우거지다. 말리면 ‘무청 우거지 시래기’다. 줄여서 ‘무청 시래기’라 부른다.도종환 시인의 시에서 가장 오래 낡아간 것,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것이 바로 우거지다. 우거지를 기억하는 손에 의해서 거두어져, 서리 맞고, 눈 맞으며, 겨울을 지나면, 시래기가 된다. 우거지를 말린 시래기다. 우거지 시래기다. 정확하게는, ‘배추 우거지 시래기’다.우거지는 생물(生物)이다. 시래기는 겨울을 나면서, 말리고 발효시킨 것이다.한국인에게, 시래기는, 가난이자 고향이다. 시래기를 보면, 누구나 가난한 시절과 떠나온 고향을 떠올린다.나물과 말린 나물은 한식의 특질 중 하나다. 수도 헤아릴 수없이 많은 들나물, 산나물을 두루 먹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여러 종류의 나물을 말려서 이듬해 햇나물이 나올 때까지 먹는 나라도 한국뿐이다. 겨울이면 무청, 배추 우거지를 말리고, 주요한 식재료로 사용하는 나라도 한국뿐이다. 나물, 묵나물, 시래기, 우거지는 한국의 주요한 식재료이자 음식 문화의 특질이다.한국만 묵나물을 먹지는 않았다. 냉장, 냉동 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건조, 염장, 발효 등이 식재료 보관의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나물을 간장, 된장, 소금 등으로 절인다. 된장이나 김치 등은 발효를 통한 보관 방법이다. 말리는 것도 마찬가지. 주요한 보관 방법이었다.중국도, 오래전에는, 말린 나물, 묵나물을 사용했다.‘BAIDU[百度]’는 중국 검색 엔진이다.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바이두 사전[百度百科, 백도백과]라고 부른다. 바이두에서 ‘旨蓄(지축)’을 설명한다. “旨蓄: 貯藏的美好食品(저장적 미호식품)”. “지축: 저장한 맛있는 식품”이라는 뜻이다. 건조식품 중 특별히 ‘채소, 푸성귀[菜]’ 말린 것을 이른다. 넓은 의미에서 시래기다.중국에도 시래기가 있었고, 또 지금도 있지만, 우리처럼 무청 시래기, 배추 우거지 시래기를 널리 먹지 않았다.‘성호전집_권 53_가포정기(稼圃亭記)’에 ‘지축’이 있다.농사일하는 자가 채소밭 일하는 자에게 묻기를, “밭일에도 도가 있는가?” 하니, 밭일하는 자가 말하기를, “있다. 곡식이 있으면 채소가 있으니, 농사가 있으면 밭이 있는 법이다. 품종을 가려서 모종하고 시기를 기다려서 물을 주고, 뿌리가 있는 것은 흙을 북돋아 주고 덩굴을 뻗는 것은 뻗을 길을 내주며, 잎이 자라는 것은 물을 듬뿍 주고 열매가 있는 것은 길러 준다. 앞에는 가천(嘉薦)이 있고 뒤에는 지축(旨蓄)이 있으며, 크든 작든 빠르든 느리든 각각 그 능력대로 올려서 제향을 올리는데, 채마밭이 아니면 그 제수할 물건을 채울 수 없고 맛난 고기라 할지라도 채마밭이 아니면 그 맛을 더할 수 없으니, 이로써 말하자면 오직 밭일이 공이 있다.” 하였다.좋은 것과 부족한 것을 두루 설명한다. 농사일은 채소밭 일보다 앞선다. 채소 기르는 농사로 여기지 않았다. 곡식이 채소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가천(嘉薦)은 제품(祭品)이다. 제사에 쓰는 음식, 식재료다. 고기는 늘 채소보다 앞선다. 채소는 보완재다. 고기보다 뒤처지지만, 소중하다. 채소가 없으면 고기의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 지축은 고기보다 뒤처지고, 채소 중에서도 뒷자리지만, 소중하다.조선 전기 문신 허백당 성현(1439~1504년)의 시에도 ‘지축’이 있다. ‘허백당집_신춘 2수’의 내용이다. 새봄이니 묵은 나물, 시래기, 지축과 더불어 햇나물을 이야기한다.(전략)//겨울 넘긴 묵은 나물[旨蓄] 먹기가 괴로우니/병든 입에 깔끄러워 뱉으려다 삼키누나/봄이 오자 연한 햇나물 먹고파서/묵은 땅을 일구어서 순무 뿌리 심어 보네겨울을 넘긴 묵나물은 아무래도 햇나물보다 맛이 덜하다. 겨우 내내 묵나물을 먹었으니 이젠 몸이 햇나물을 원한다. 몸보다 입이다. 입이 햇나물을 원하니 순무 뿌리라도 심는다. 묵나물, 시래기는 예전에도 가난의 대명사였다.조선 중기 문신 오음 윤두수(1533~1601년)의 ‘오음잡설’에서는 ‘산나물 시래기’를 상세하게 설명한다.기고봉의 서실(書室)이 호현방(好賢坊) 골목에 있었는데, 일찍이 봄철에 종을 보내어 용문산의 산나물을 뜯어다가 뜰에서 말려 월동 준비를 하였으니, 즉 ‘시경’에 이른바, ‘내 아름다운 나물을 저축한다[我有旨蓄, 아유지축]’는 뜻이니, 그가 향리에 있을 때의 일을 알 수 있는 것이다.호현방은 회현방으로, 지금의 서울 회현동이 있는 충무로 일대다. 기고봉은 기대승(1527~1572년)이다. 고봉은 호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퇴계 이황과 ‘사단칠정론’ ‘이기 논쟁’을 벌인 조선 중기의 큰 성리학자다. 그의 서실이 호현방에 있었다. 고봉은, 한양에 살면서 봄철이면 사람을 보내 용문산의 산나물을 채취하고 말렸다.“我有旨蓄(아유지축)”은 중국 고전에서 비롯된 문장이다. “나에게 맛있는 묵나물이 있다”는 뜻이다. ‘지(旨)’는 아름다운 음식, 맛있는 음식이다. ‘축(蓄)’은 모은다, 비축한다, 저축한다는 뜻이다. 잘 모아둔 맛있는 음식, 결국 말려서 겨울을 나는 산나물, 들나물 등이다. 용문산에서 뜯어말렸으니, 고봉의 지축은 산나물 시래기다.위의 시는 고봉의 검약한 삶을 잘 보여준다. 조선 시대에도 우리는 시래기를 가난한 이들이 먹는 음식으로 여겼다.‘조선왕조실록 성종 18년(1487년) 9월11일’의 기사다. 음력 9월이니 10월, 11월 무렵이었을 것이다. 제목은 ‘양양도호부사 유자한이 강무의 연기를 상서하다’이다.양양 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 유자한(柳自漢)이 상서(上書)하였다. 대략 이르기를,“신(臣)이 보건대, 강원도(江原道)는, (중략) 영서(嶺西)는 서리와 눈이 많고 영동(嶺東)은 바람과 비가 많은 데다가 땅에 돌이 많아서 화곡(禾穀)이 번성하지 못하여, 풍년이라 하더라도 백성들이 오히려 지축(旨蓄)과 감자나 밤으로 이어가고서야 겨우 한 해를 넘길 수 있으므로, (후략)강원도는 곡식이 귀하다. 가을이면 지축, 도토리 등을 모으고 준비해야 한다. 강무는 군사훈련과 사냥을 겸하는 주요 행사다. 강무가 있으면, 인근 주민들은 행사에 동원된다. 길을 닦고, 식사 준비, 말 먹이 등도 챙겨야 한다. 가을에 강무가 있으면 백성들이 겨울 준비를 하지 못한다. 강원도 양양도호부사 유자한은 강무 연기를 말하고 있다.가난한 이들이 주로 먹던 지축을 우리는 꾸준히 발전시켰다. 오늘날 산나물 시래기, 즉 묵나물이 바로 지축이다.중국인들은, 지금도 ‘지축’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만 정작 시래기 음식은 버렸다. 우리도 시래기는 가난의 대명사로 여겼지만 늦가을, 초겨울이면 집집마다 시래기를 챙긴다. 사시사철 나물이 흔하니, 필요할 때마다 슈퍼나 마트에서 매번 챙긴다. 특정 지방에서는 시래기를 지역 특산물로 홍보한다. 아름다운 우리의 지축, 시래기 문화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2019-12-02

미닝아웃(Meaning out)

미닝아웃은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벽장 속에서 나온다는 뜻의 커밍아웃(coming out)이 결합된 용어로, 남들에게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던 정치적·사회적 신념을 소비 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소비자운동을 말한다.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해시태그(#) 기능을 사용해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함으로써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 내거나, 옷이나 가방 등에 메시지가 담긴 문구나 문양을 넣는 ‘슬로건 패션’, 환경보호를 위해 ‘업사이클링(up-cycling)’제품이나 페이크 퍼(fake fur)라고 불리는 인조 모피 제품을 구매하고, 이러한 내용을 SNS를 통해 공유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나타내는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18년 대한민국 소비트렌드로 선정되면서 널리 알려졌다.미닝아웃은 시대가 변하고, 생활상과 가치관이 변하고 있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가격 대비 성능을 강조하는 ‘가성비’가 소비 트렌드로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에는 금액에 관계없이 심리적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기 위한 에코백 구입,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 소비, 장애인 고용 기업의 제품 구매 등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지닌 제품은 가격이 비싸도 기꺼이 소비하는 ‘가치소비’가 확산하고 있다.특히 국내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역시 미닝아웃의 한 형태로 해석된다. 지난해 12월 인기 여행지 1위였던 일본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10월 일본 맥주의 한국 수출은 전년 대비 99.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이 아니라 신념을 사는 미닝아웃이 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12-02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구해줘 홈즈!’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25평 기준으로 4억원 상승했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서울 25평 아파트가 평균 12억6천만원으로 지난 2년 반 동안 32% 이상 상승했다고 한다.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 1.3%와 비교해 볼 때 아파트 가격이 12배나 뛰었다. 중산층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을 모아도 쉽게 마련하기 어려운 아파트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고 하였다. 내 집 마련이 어려워 좌절하고 있는 서민들의 체감과는 거리가 있는 답변이었다. 진보정권이기에 ‘혹시나’ 했던 기대가 부동산 문제에서 ‘역시나’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부동산 공화국에서 서울은 모순의 현장이다. 다주택자와 무주택자, 건물주와 세입자의 간극이 불평등 현상을 보여준다. 서울에 집이 있는 사람과 집 없이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은 출발부터 다르다. 부동산으로 매년 수억원의 불로소득을 버는 소수와, 허리띠를 졸라매도 서울에서 집 한 채 갖는 것이 쉽지 않은 대다수 서민이 존재한다. 강준만은 바벨탑공화국에서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고발한다. 공동체는 없고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바벨탑 멘탈리티가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온통 돈 버는 일과 소비하는 일로 시끌벅적한 욕망의 도시”인 서울로 집중화된 탐욕의 문화구조를 분석한다.부동산 불패 신화는 사실상 전국을 투기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 말을 믿는 것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일이라는 인식이 생긴 지 오래다. 부자들은 정권마다 달라지는 부동산 정책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 가격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2019 전국민중대회’ 참가자들은 “사회적 불평등이 유례없이 심화되고 있는데 사회정의를 확립하려는 노력은 실종 상태에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통계청의 ‘2019 사회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다섯 명 중에 한 명만이 “일생동안 노력한다면 본인 세대에서 개인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자식 세대에서는 계층 상승의 가능성이 더 희박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부와 권력이 부동산을 통해 대물림되면서 사실상 계급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일요일 밤에 하는 MBC 구해줘! 홈즈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다. 의뢰인들이 제시하는 비용 안에서 최고의 효용과 만족을 주는 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뜨는 이유는 집에 대한 기대와 욕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내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이 평생의 바람이다. 그러나 서울의 아파트 값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억 단위로 뛰고 있다. 삶의 질은 어디에 사는가 공간의 영향을 받는데, 정부의 주택 정책이 서민들의 팍팍한 삶에 단비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가 되지 않도록 서민의 현실 속에 발을 디딘 부동산 정책을 기대한다.

2019-12-02

핫팩으로 겨울나기

이시라 기획취재부포항지진특별법안이 지난달 2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지진 피해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포항시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선물해 주고 있다.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발목이 잡혀있지만 포항지진 발생 2년만에 특별법 제정이 가시권에 들어왔다.하지만 흥해실내체육관 임시구호소에서 생활하는 이재민들은 여전히 혹한이다.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방 한 칸도 없이 포항시가 마련해 준 텐트 속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올해도 역시 포항시에서 제공하는 핫팩 2개에 의지한 채 오들오들 떨며 겨울을 나야한다. 한밤중에 싸늘하게 식은 핫팩 대신 또 다른 핫팩을 꺼내서 비벼대는 동안 단잠에서 깨야 하고, 비박을 하는 등산객처럼 완전무장을 한 채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다.포항시가 온풍기 6대로 난방을 하고 있지만, 체육관의 천장이 높아 실제 생활하는 텐트까지 온기가 전해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개인생활공간인 한 평 남짓 한 텐트 안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가득하다.그럼에도 포항시는 전기담요나 전기장판 등 개인 전열기구에 대한 사용을 금지해 놓았다. 화재 발생의 위험성이 높다는 게 이유이다.하지만, 전기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개인 전열기구의 사용이 가능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콘센트를 추가로 설치하는 간단한 방법만으로도 화재의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 지금 생활중인 대피소 이재민 숫자의 10배가 추가되더라도 안전하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기술적인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지진대피소 전기사용을 놓고 두 기관의 견해가 완전히 상반되고 있다. 전기기술자의 진단대로면 포항시는 안전성만 추구하는 전형적인 복지부동행정이란 지적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불이 나면 누가 책임질 거냐. 개인 전열기 사용은 앞으로도 절대 불가능하다”며 강경했다. 지진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이재민들이 어떻게 겨울을 나란 말인가. 핫팩 지원 갯수를 기존 2개에서 4개로 늘린다는 게 포항시가 생각해낸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다.이재민들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포항시장과 간부공무원들이 단 하룻밤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대피소 텐트에서 영하의 추운 겨울밤을 보내 보면 어떨지. /sira115@kbmaeil.com

2019-12-01

독일 통일을 벤치마킹하자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독일이 통일을 이룬지 내년이면 꼭 30년이다. 2차 대전 후 우리와 같은 분단국 독일이 1990년 통일되고 이제 EU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 있다. 그들은 게르만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지속적인 국가 발전과 번영을 누리고 있다. 물론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지정학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 독일은 우리처럼 동족간의 전쟁도 겪지 않았다. 그러나 2차 대전 후 전범국가의 청산과정에서 분단국가로 낙착된 점은 우리와 같다. 엄격히 말하면 독일처럼 일본 본토가 분단되어야 하는데 식민지였던 한반도가 분단된 점은 아무래도 역사의 아이러니이다.여하튼 우리는 독일 통일과정에서 통일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서독의 일관성 있는 통일 정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사민당 빌리 브란트가 시작한 동방정책은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어도 대동독 화해정책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사민당의 브란트가 설계하여 1967년 시작한 동방정책은 1990년 기민당의 콜에 의해 독일 통일로 이어졌다. 통일된 지 30년이 된 독일 총리는 현재 동독 출신 앙겔라 메르켈이 맡고 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뀌면 대북 정책까지 180도 바뀌고 있다. 우리도 통일 정책만큼은 여야가 합의하여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독일은 1972년 양독 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조약에 서명하였다. 10개조의 합의서 내용은 서독이 동독을 정부로 인정하고 유엔에 동시에 가입한다는 것이 기본 골자이다. 물론 양독간 외교 관계인 대표부를 설치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양독은 이를 토대로 꾸준히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여 1990년 역사적인 통일을 이룩하였다. 우리는 그동안 남북 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 6·15 선언, 10·4 공동 선언, 지난해 9·19 공동 선언이 선포되었지만 발표와 동시에 사문화되어 버렸다. 우리는 남북 합의문의 실질적 이행장치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다.양독 간에는 기본합의서와 여러 협정에 의해 상호 교류 협력이 증대되었다. 어느 통계를 보니 서독은 동독에 1년에 26억불을 지원하였다고 적혀 있다. 이는 우리의 10여 년의 대북지원액에 해당된다. 그러한데도 우리는 ‘퍼주기’ 논쟁을 일삼다 그마저 중단되었다. 독일의 슈미트 정부는 동독 도로 건설에 20억 마르크를 투자하였다. 심지어 콜 정부는 1983년 동독의 부채 10억 마르크의 차관보증까지 해 주었다. 그 대가로 양독 간에는 TV방송이 전면 개방되었다. 동서독의 언론인들은 교차 상주하면서 기사를 송출하였다.서독인들은 동독을 자유롭게 방문하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는 약 500만 명이나 방문하였다. 심지어 서독인들은 최고 50만대의 차량으로 동독을 방문하였고, 그때 벌써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동독 전역에 파급되었다. 1987년 동독의 당서기 호네커도 서독을 방문하였다.우리가 김정은의 남한 방문에 기대를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독 간의 상호 교류가 독일 통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상호 여행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남북의 숨구멍 역할을 하던 개성과 금강산마저 막혀버렸다.독일 통일은 인적·물적 교류 협력이 결국 통일로 이어진다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에게 남겼다.

2019-12-01